1. 2011년 우양재단 농어촌 사례세미나
군위교회 사례발표
1.군위교회의 소개
2007년 8월 폭염에도 불구하고 전국 198개 지방에서 8만여 명의 감리교인이 참석한
영남선교대회를 통해 복음화율이 10%가 채 되지 않은 부산과 영남지역 선교 활성화
를 진작시키려는 데 목적을 두고 실시한 영남선교대회의 열매이다. 특히 군위군은
전국 군단위에서 유일하게 감리교회가 없는 지역이었다. 이미 지역에는 90여년이
넘는 역사의 성결교회와 장로교회, 천주교단등이 자리를 잡고 선교하고 있지만 복
음화율은 5%도 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감리교회는 전혀 발을 붙이지 못하는 상황
이었다. 그러나 2008년 7월에 첫삽을 뜨고 2009년 2월에 군위읍 동부리 96번지에
군위감리교회를 건축 완공 입당하게 되었고 ‘복음으로 지역을 섬기는 교회’를 표
어로 삼고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2.군위지역의 특징
군위는 농업위주의 고을로 일명 ‘삼국유사의 고장’이라고 한다. 즉 불교문화가
지역의 영적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고을이다. 읍내에서 약30분 거리에 제2석굴암이
있고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가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 시대의 유명한 사
찰인 지보사를 비롯한 많은 사찰들이 도처에 있다. 특히 지보사는 우리 교회에서
약 10분거리에 위치하며 4대강 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문수스님이 있던 절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지역은 불교의 영향권에 있다. 전도를 해보면 대체적으로 불교신
자임을 자처하면서 복음을 거부하거나 무시하기 십상이다.
또한 이 지역은 전국에서도 인구대비 노인비율이 거의 30%이상의 노인천국 지역이
라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아동과 청소년의 비율은 적은 편이다. 곳곳에 노인복지
시설이 증가하고 있는 반면 아동을 위한 복지시설과 교육시설은 위축되어 있는 편
이다. 지역의 중고등학교에서도 서울이나 대구등 외부의 학생들을 장학금을 주면서
유치하고 있는 형편이다. 직장이나 일터는 이 지역에 있지만 거주지는 근처의 대도
2. 2011년 우양재단 농어촌 사례세미나
시에 있다. 유동인구도 없는 편이어서 사고방식이나 가치관도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편이다. 그러나 이 지역을 살펴보면 장로교, 성결교를 비롯한 기존의 교단은 물론
통일교, 구원파교회등 각종 이단들도 지역내에 산재되어 있다.
2.현재 부임한 교회로 오게 된 배경 및 시작할 당시의 상황
2002년초부터 2008년 7월까지 왕십리교회에서 부담임목사로 재직하였다. 주로 선교
목사로 사역을 하면서 해마다 한두차례 전도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기대 이하
의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고 기대이상의 열매를 거두기도 하였다.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몇백 몇천명을 초대하는 대형 행사를 치루고 몇%안되는 열매를 거두면서 한편
으로는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얼마나 하나님이 기
뻐하시는 일인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2008년 삼남연회에서 군위교회의 담임목사 초빙공고를 교단지에 내었
고 교인 한명도 없이 시작하는 개척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지원하게 되었다.
결국 2008년 7월말 왕십리교회를 사임하고 곧바로 군위로 가족과 함께 이사를 하게
되었다. 원룸으로 일단 이사를 하였다. 장롱이나 큰 가구들은 모두 정리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동안 오랜기간 묵었던 책이나 옷가지들도 정리를 하면서 한편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목회의 성공에 대한 가치관도 다시 재정립하게 되었다. 도시에
서 수천수만명을 목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헌신하며 희생하는 선교사의 심정을 가지고 시작을 하였다. 교회는 2009년 2월에
입당을 하였기에 약 반면이상의 공백이 있었다. 그 기간동안 가족들과 함께 주일날
이면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주일을 성수하고 기회가 닿으면 지역교회와 주변도시 구
미나 안동, 대구등의 교회예배에 참석하면서 지역의 영적 분위기를 접해 보기도 했
다. 그러나 교인이 없이 시작한 교회는 앞으로 교회가 건축되면 부흥할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만을 가지고는 적지않은 선교적인 부담감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교회건물이 없다고 해서 기도만하고 손을 놓고 있을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지역사회와 한몸되기를 시작했다. 주민들이 모여있는 곳이나 마을을
다니면서 감리교회 목사임을 소개하고 감리교회가 이 마을에 들어설 것임을 알렸
다. 마을잔치나 결혼식, 장례식등에도 다니면서 마을 사람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면
서 친분을 이루어 나가기 시작했다. 김치를 담그어서 전도지를 넣고 집집마다 전달
하면서 전도의 연결고리로 삼기도 했다.
드디어 2008년 7월 기공식을 했는데 마을주민들이 많이 참석해서 축하해 주었다.
약5개월간 계속된 건축은 순조로이 진행되었고 2009년 2월에 입당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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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군위읍장을 비롯한 마을유지들이 참석해서 축사도 해주고 축하해 주었다.
입당식 이후에 놀라운 것은 마을주민들 7-8여명이 등록해서 예배에 참석을 시작했
다는 것이다. 또한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아이의 친구 부모가 함께 출석을 시작하고
이곳 군위지역에 감리교회가 없어서 타교회를 다니던 세가정이 출석했다. 교회를
시작하면서 바로 교회학교를 시작해서 아내가 맡았고 교사도 세웠다. 선교회도 조
직했다. 부활절에는 중학생 한명을 세례를 주었고 4명 입교식을 했다. 영성훈련도
시작했다. 주일에는 아내가 식사를 준비해서 공동식사를 하면서 교인들중 그주에
생일을 맞은 분들에게 생일 케익을 준비해서 축해해주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다.
그해 부활절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전도를 시작했다. 교인들과 함께 마을회관과 경
찰서, 보건소, 읍사무소등 관공서에 부활절 계란에 전도지를 넣어서 전도했다. 그
리고 5월에는 대전선교교회와 인천계산중앙교회에서 이 지역에 내려와서 노방전도
와 지역주민초청 식사대접을 하면서 전도프로그램과 더불어 이미용봉사, 영정사진
촬영등을 무료로 해주면서 전도했다. 5월31일에는 새가족초청주일 전도행사를 실
시했다. 그해 무더운 여름에도 전도행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대전산성교회 의
료팀의 지원으로 지역민을 위한 의료봉사를 실시했다. 내과, 소아과 정신과 치과,
한방(침) 그리고 약국까지 운영하는 종합병원 형식의 봉사였다. 여기에 전도폭발팀
이 가세해서 복음을 전했다. 교회학교도 성령체험캠프와 지방연합수련회에 15명이
참석하였다.
지역사회에는 봉사하는 감리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전도의 토양을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지역에 나가 감리교회 목사라고 소개를 하면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감리교회가 좋은 일을 많이 한다면서요. 수고하십니다’하면서 인정을 해
주고 관심을 보여주었다.
2009년 9월부터 일명 꿈터교실(수학교실과 논술교실)을 시작했다. 수학교실은 강경
중 선생이 담당했고 논술교실은 이상기 사모가 담당했다. 주중에 화, 목요일 오후
시간을 이용하여 시작했고 주일 오후에는 주중에 참석치 못한 아이들을 보충하였
다. 수학교실은 다양하게 진행하였는데 주일 오후에는 주산과 암산교실, 그리고 주
중에는 아이들의 학업진도에 맞추어서 공부방 형식으로 진행하였다. 논술교실은
아이들에게 올바른 책읽기와 신문을 활용한 시사와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
한 창조적인 활동등 다양하고 재미있게 진행하였다. 초기 7-8명이 시작했지만 점
차로 두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주일 오후에 진행하는 주산, 암산교실에는 장
년들도 함께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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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함께 나누는 이야기
실제적으로 작년 2010년 한해동안 우리교회는,
꿈터교실을 통해 활발한 전도의 열매가 있었다. 특히 지난 2월에는 겨울방학을 이
용하여 서울 문화체험(경복궁, 예술의 전당, 코엑스, 한강유람선, 서울대등)과 역
사적인 감리교회(정동제일, 종교)방문을 통해 감리교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더불
어 교회에 아이들만 꿈터교실에 보내고 부모들은 출석하지 았던 가정들중 부부가
함께 교회에 등록하는 결과물도 있었다.
두차례의 지역주민초청 전도잔치를 열었고 매번 80여명의 지역주민이 응했다. 또한
각 교회의 전도폭발팀, 의료봉사팀, 이미용봉사팀, 장수사진 촬영팀, 감리교웨슬리
전도팀들과 연결하여 지역전도를 일년내내 활발하게 하였다. 올해도 4월23일-24일
양일에 걸쳐 교회 본당에서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종합검진사역을 실시하
였다. 6월에는 농번기에 있는 지역을 돕기위한 도시교회 교인들이 내려와서 실제
적으로 필요한 일손(감자캐기, 양파, 마늘수확등)을 도왔다.다. 하늘은 스스로 돕
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도 있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하고자 하는 자에게 역사하심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5월에는 꿈터교실을 통해 우리교회에 나오게 된 젊은 부
부가 교회 창립이래 첫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7월 말에는 우리교회 역사상 처음으
로 제1회 지역청소년초청 영어캠프를 열었다. 군위와 의성의 인근에서 많은 청소년
들이 교회에 찾아와 영어캠프에 참여하였다. 이제 시작한 개척교회가 이렇게 활발
한 활동을 벌이자 기존의 오래된 장로,성결교회들도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와 프로
그램을 경쟁적으로 열기 시작했다.
8월에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봉사를 실시하였는데 특히 침술, 틀니수리,
치과 등의 봉사는 호응이 상당히 좋았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교회로
거듭난다면 선교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아름다운 열매가 있으리라 여겨진다.
농어촌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든 첨단문명의 이기에 대한 혜택은 부족하지
만 도시의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생활패턴과는 달리 이들에게는 정이 있다. 신뢰가
형성이 되고 내식구라는 인식이 들면 모든 것에 대해 함께 참여하고 협력하는 분위
기로 변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고 목회자가 어떠한 비전과 마
인드를 가지고 사역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관건이지 시골과 도시의 차이는 없다고
본다.
물론 도시교회 같이 한주에 수십명, 수백명 수평이동하여 등록하지는 않지만 , 한
5. 2011년 우양재단 농어촌 사례세미나
영혼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사랑으로 다가가서 케어
하고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그 하나님나라의 기쁨은 도시교회 목회와 비교할 수 없
는 은총이라 할 수 있다.
농촌목회와 삶이 조금은 도시에 비해 불편할 따름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도시교회나 우양 같은 복지재단의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지원만 지속된다면 충분히
농어촌교회도 부흥할 수 있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결국은 재정적인 밑받침이
되어야 모든 것을 운영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의문도 발생할텐데지방일수록 지속
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사역만 진행된다면 감당할 수 있는 길이 더 많다고 본
다. 보통 농촌교회는 안수받고 도시교회 부목사나 조금 더 낳은 형편의 교회로 이
동하는 것이 당연지사처럼 여겨지지만 잘못된 인식이라 여겨진다. 앞으로 시골은
목회초년병이, 도시교회는 증견목회자가 자리를 잡고 은퇴하는 곳이란 인식에서 오
히려 농어촌 작은 교회로 건강한 목회비전과 경륜도 있고 재정적인 후원과 밑받침
이 되어 있는 목회자가 파송되어서 사역을 감당한다면 능히 대도시교회와 시골교회
가 건강한 균형이 이루어 지게 될 것이다.
4. 앞으로의 비전
우리 교회의 비전은 장기적으로 이 지역에 복지센터를 건립하는 것이다. 적지않은
예산이 들겠지만 교회주변의 땅을 매입하여 센터를 세우고 아동과 노인들을 위한
다각적인 복지를 추진하고자 한다. 그동안 몇 년간의 사역을 통해 검증이 된 프로
그램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고 작년과 올해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
하고 있다. 더불어 이 지역의 아동과 청소년들이 훌륭한 차세대 민족과 종교적 지
도자로 세워지도록 장학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군위감리교회 장학재단 설립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
올해 두속회가 분속이 되었는데 앞으로 열두속을 목표로 기도하고 있다. 감리교회
는 속회 부흥과 함께 성장했다고 보는데 속회를 통해 교회가 건강해지고 안정되어
가는 체험을 한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이 지역에 제2의 군위감리교회를 개척하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멀지 않아 이루어 지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