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몸살] 2014년 1,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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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몸살] 2014년 1, 2월호

  1. 1. 몸살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삼성반도체 직업병 고 황유미님과 가 족인 황상기 아버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했습니다. 거대자본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7년 간 싸워 온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눈 물과 감동의 이야기를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객들 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 난 7년 간 삼성직업병 산재인정 싸움 에 반올림과 함께한 다산도 그 발걸음 에 함께 합니다. 영화 ‘또 하나의 약 속’, 많이 봐주시고, 주변 분들에게 소 문 많이 내 주세요~ 2014 01 02
  2. 2. 2 영화<또 하나의 약속>의 열풍을 기대하며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활동가 반올림은 매년 3월 6일 강남역 부근 삼성전자 본 관 앞에서 고 황유미 님의 추모제를 연다. 작년에도 그랬다. 유미 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영정 앞에 추 모객들이 줄을 지어 섰다. 국화를 들고 묵념을 하며 고인을 그리워하거나 반도체산업 직업병 문제의 조 속한 해결을 기원하는 사람들 속에, ‘영화를 잘 만 들어 보겠다’고 다짐하는 영화감독과 피디들도 있었 고, ‘유미 씨의 억울함을 잘 알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 달라’고 기도하는 배우도 있었다. 영 화 <또 하나의 약속>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영화의 제작과 관련된 미담들이 많다. 아버님의 이 야기와 미소에 꽂혀 버린 감독은 각본을 쓰기 위해 8개월 동안 아버님을 따라 다녔다 한다. 개런티 없 이 주연을 맡은 박철민 배우는 러닝개런티마저 전 액 기부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도둑들’과 ‘베를린’ 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휩쓴 최영환 촬영 감독은 수억대의 다른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이 영 화에 합류했다. 제작비가 다 모이지 않은 상황에서 촬영이 시작되자, 당장 생계가 급한 현장 스텝들 인 건비부터 지급했다고 한다. 투자 거부ㆍ철회가 계속 되며 위태로웠던 제작비는 결국 8000여건의 개인 후원과 100여건의 개인 투자로 이루어진 제작두레 로 해결되었고, 영화가 홍보되는 과정에서도 배급두 레가 시작되어 배급에 필요한 자금이 또 금세 모였 다. 정식 개봉(2월 6일) 전부터 단체관람 조직이 이 어지고, SNS 에서는 자발적인 홍보팀들이 꾸려지기 도 했다. 영화 속 유난주 노무사의 실제 인물인 이종란 노 무사가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보고 와 서는 “영화 참 잘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나는 그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팔은 안으로 굽기 01 특집
  3. 3. 3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 후 특별 시사회와 제작두레 시사회를 통해 이 영화를 두 번 봤고, 앞으로도 극 장에서 두어 번은 더 볼 예정이다. 반올림 활동가로 서 우리의 이야기가 흥하길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 다. 하지만 분명 그것만은 아니다. 처음 영화를 보 았을 때는 “참 다행이다.” 싶었다. 일단 만들어져서 다행이고, 너무 무겁고 어둡지 않아 다행이었다. 두 번째 영화를 보았을 때 비로소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혹은 좋아하게 될) 이유를 활동가의 입장 이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알게 되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과장되지 않았다’는 점일 거다. 어 느 영화기자의 평대로 ‘충분한 사실재현만으로 국가 -자본의 본질이 드러나’는 영화다. 이 영화가 얼마나 ‘사실’ 재현에 충실하였는지는, 일반 관객들로서는 알기 어려울 것이다(앞으로 반올 림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윤미가 아버지의 택시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을 두고 누군 가는 억지스러운 설정이라고 평했다지만, 유미 씨의 마지막이 실제 그랬다. 영화에서처럼 아버지의 택시 뒷자리에서 “더워” “추워”를 반복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어머님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창문을 여 닫다가 끝내 하얗게 스러진 딸을 끌어안고 오열했 다. 그 뿐인가. 윤미가 죽고 난 후 다른 제보자들과 함께 산재 신청과 소송에 이르는 과정, 그 사이사이 에 벌어진 사건들. 법정에서 이루어진 공방과 증인 의 진술. 회사와 공단이 보인 태도 등. 실제 황상기 아버님과 반올림이 겪은 상황들을 영화적 리듬에 맞게 각색하여 촘촘히 엮어 놓았다. 아무튼 그래서, 새삼 또 알게 된다. 영화에서나 있 을 법한 일들이 실제 일어났던 거구나. 감독은 정말 황상기 아버님을 비롯한 반도체 공장 직업병 피해 가족들이 겪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구 나. 다소 신기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들인데 볼 때 마다 많이 운다는 것. 특 히 윤미가 일하면서 많이 힘들었고 아픈 사람도 많 았다고, 그래도 내가 그 회사에서 일하는 걸 동네에 자랑하고 다닌 아빠 생각에 그만둘 생각은 못했다 고 털어 놓는 장면에서, 넋을 놓고 운다. 반올림 활 동이 정말 일처럼 느껴져서 지칠 때 쯤, 이러한 영 화를 통해 좋은 자극을 받았다. 감독님께 감사하다. 반올림 활동 중에 영화 제작팀 사람들도 종종 만 났다. 늘 만나면 즐거워지는 사람들이다. 반올림의 활동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기도 하지만, 언제부턴가 는 자신들의 ‘운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며칠 전 이 영화의 제작자 중 한 명인 윤기호 피디가 그 랬다. “영화에 자신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로 인해 아버님의 사연이 더 많이 알려지는 성과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 투자한 사람들이 수익 을 얻으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봐야 한다. 의미있는 일에 투자를 했더니 수익도 생기더라는 경험을 주고 싶다. 그러한 경험은 다른 공익사업에 도 분명 영향을 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버님의 사연을 세상에 알리는 정도의 성과를 기대했었지만, 이제는 제작팀의 그러한 운동까지 욕심이 난다. 무 엇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태 주었으면 참 좋겠다. 덧) 영화에서는 유난주가 황상구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으로 나오는데, 이 부분은 사실과 조금 다르다. “처음엔 아무도 안 들어줬어요. 그러던 중 딱 한 곳, 수원에 있는 다산인권센터에서 제 말을 들어 주었습니다.” 황상기 아버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다산인권센터를 응원하는 분들이 이 영화에 더 특별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 유미 씨의 마지막이 실제 그랬다. 영화에서처럼 아버지의 택시 뒷자리에서 ‘더워’, ‘추워’를 반복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어머님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창문을 여닫다가 끝내 하얗게 스러진 딸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
  4. 4. 4 극우 분들의 민낯을 보고- 서울학생인권조례 토론회 풍경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수원지부 활동가 토론회 진행을 방해한 무례와 폭력 국민의례를 거부하는 사람으로서 참 고민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2014년 1월 10일에 있었던 서울학 생인권조례 토론회도 그랬다. 국민의례를 거부하면, 토론회장에 오신 극우적이고 국가주의적인 분들이 그걸 가지고 시비를 걸 텐데 어떻게 하나,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토론회장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국민의례 시간. 진행자가 시간관계상 애국가는 생략하겠다고 하자, 한 집단에 서 온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여기가 ‘통진당’ 행사냐’, ‘애국가 부르세요!’ 등등. 진행자 가 규정에도 애국가를 생략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설명을 했으나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국민의례 를 다시 했는데, 그들은 이번엔 애국가를 왜 4절까 지 안 부르느냐,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은 왜 생략하 느냐 등등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또한 국민의 례 때 앉아 있는 사람들 사진을 찍어가며 수군거리 고 시비를 걸었다.(두 번째 할 때는 안 일어난 사람 들이 많았다. 그들이 억지를 써서 괜히 또 하게 된 것에 짜증이 난 탓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불쾌하니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항의하는 사람과 충돌이 빚어 졌고, 경찰이 와야 했다. 정말 다이나믹한 ‘국민의 례’ 시간이었다. 토론회 내내 그 분들의 방해는 계속되었다. 학생인 권조례를 지지하는 토론자에게 큰 소리로 욕설을 했고, 폐지하라고 하는 토론자가 발표할 땐 동조하 며 구호를 외쳤다. 학생 토론자에게는 입 닥치라고 하고 누가 시켜서 나왔는지 잘한다고 비꼬는 등 언 어폭력을 가했다. 학생인권조례 개악에 찬성하는 입 장의 토론자도 너무 시끄러워서 발표를 못하겠다고 할 지경이었다. 사회자가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여러 의견을 듣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하자 “의견을 02 인권이슈
  5. 5. 5 듣긴 뭘 듣냐, 당장 폐지해라!”라고 소리를 질러댈 지경이었으니, 말 다했다. 자유발언 때도 마찬가지 였다. 사회자가 교사 발언을 듣겠다고 했음에도 교 사가 아닌 사람이 발언을 하고, 전교조는 북한으로 가라는 등의 발언을 계속하자 사회자가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등, 그들의 행동은 토론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는 발언이 나올 때는 야유를 하고 발언을 방해했다. 교육청과 사회자의 진행은 엉성했고, 약간은 편파 적이었다. 사회자는 사회자의 자리를 망각하고 학생 인권조례 개악에 찬성하는 발언을 상당시간 했다. (하지만 ‘그 집단 분들’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외 쳤기 때문에 사회자의 이런 발언조차 야유를 받았 다.) 또한 반복되는 고성, 언어폭력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단호하게 제지하지 않았다. 자유발언 때는 사회자가 다양한 입장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눈에 띄는 대로 2명씩 발언을 듣겠다고 하면서, 여러 입 장의 발언을 듣자는 참가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물 론 사회자의 진행을 무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 었을 것은 십분 이해가 간다. 그래도 그 이상으로 사회자의 진행은 미숙했고 제대로 토론을 하려는 의지보다는 어서 이 곤란한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 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토론회장에서 어느 정도 폭언과 방해 등이 있을 것은 예상한 바였다. 2011년 공청회 때도 극 우단체 사람들이 곽노현을 욕하는 피켓을 들고 단 상에 올라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정도나 방식이 과거에 비해 훨씬 무례하고 저급해서 당황 스러웠다. 내가 속한 청소년운동 단체에서는, 만일 극우단체 쪽에서 와서 토론을 방해할 경우에는 항 “ 진행자가 규정에도 애국가를 생략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설명을 했으나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국민의례를 다시 했는데, 그들은 이번엔 애국가를 왜 4절까지 안 부르느냐,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은 왜 생략하느냐 등등으로 소리를 질렀다. “
  6. 6. 6 의하는 뜻으로 들기 위한 작은 천피켓을 몇 개 준 비해갔다. 토론회가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굳이 피켓 을 들 일도 없을 터였다. 그러나 결국 토론회는 온 갖 방해와 무례로 엉망이 되었다. 자유발언 시간, 사회자의 수차례 제지를 무시하고 어느 교수가 학 생인권조례는 종북세력의 음모라는 식의 발언을 이 어갈 때, 우리는 참지 못하고 피켓을 들었다. 성소 수자 단체에서도 자신들이 인쇄해온 A4용지를 함께 들었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종이에 “시민은 발언 못 하나?”라고 적어서 진행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사 람도 있었다. 청소년 단체와 성소수자 단체 사람들은 피켓을 들 고 자기 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그 조용한 행동 은, 그 전에 있었던 진행 무시와 무례와 폭언 등에 비교하면 토론회를 방해하는 행동 축에도 끼지 못 할 것이었다. 그러나 피켓을 보고 극우단체 사람들 이 더 흥분을 했고, 이에 진행요원들은 피켓을 내릴 것을 요청했다. 나에게 온 진행요원은 “마음은 충분 히 이해를 합니다. 우리도 저분들이 힘듭니다. 하지 만 피켓을 들고 있으면 점점 통제가 안 되니까 내 려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부탁했다. 이런 요청에 따라 청소년 단체 쪽은 피켓을 내리 기 시작했는데, 그 새 사건이 났다. 극우단체 사람 이 성소수자 단체에서 들고 있던 A4지를 뺏어서 찢 은 것이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은 자료집을 휘두르 고 욕을 하며 위협했다. 그런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 중 몇몇은 끝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 에는 경찰이 다수 출동을 해서 상황을 진정시키면 서 서울학생인권조례 토론회가 끝나게 되었다. 그들 은 경찰이 출동한 와중에도 자료집을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질렀다. 극우 분들의 노골적인 모습은… 2014년 1월 10일 서울학생조례 토론회 사태의 제 1원인제공자는 학생인권조례를 개악하려고 형식적 인 토론회를 급조한 서울시교육청일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와 별개로, 이 토론회에서 보여준 극우적 사 람들의 행동 방식에 대해서도 볼 필요가 있다. 그들 의 행태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욕설, 폭언, 차별적인 혐오발언, 직접적 폭 력의 행사 등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사회자도 무 시하고 토론회의 진행 자체를 방해한 것이다. 그들 은 시종일관, 토론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님을 보여주 었다. 사회자가 여러 의견을 듣겠다고 하자 “듣긴 뭘 듣냐, 당장 폐지해라!”라고 소리치는 등, 전혀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 냈다. 또한 여러 발언 기회를 보장하고 이야기해나 가기 위해서는 사회자의 합리적 진행은 존중해야 함에도, 그러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소리치기에 바빴다. 이는 그들이 상황을 일종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들은 국민의례를 할 때부 터, 국민의례가 자기의 애국심을 표현하는 의식이 아니라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표식인 것처럼 행동 했다. 국민의례를 할 때도 어수선하게 수군거리며 국민의례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색출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토론을 할 때도 그들은 학생인 권조례 자체에 대한 의견보다도 좌파가 어떻다느니 북한이 어떻다느니 전교조가 어떻다느니 하는 진영 논리를 들이대는 데 주력했다. ‘적과의 전쟁’이었으 니, 토론의 규칙이나 다른 사람의 발언 기회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런 행동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02 인권이슈
  7. 7. 7 ‘질서’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그토록 준법과 질서 를 강조하는 극우적인 분들이 이번처럼 질서를 파 괴하는 모습을 왕왕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 래도 그들이 말하는 ‘질서’란 일종의 보수적 권력관 계를 뜻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컨대 학 생인권조례라는 게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질서를 파괴하는 것처 럼 보이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교육청이 나 경찰 같은 기존의 권위나 질서도 무시한다. 그들 의 질서란 결국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모 두 닥치는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문득 어떤 단어가 떠오 른다. 적과 아군을 나누는 국가주의. 폭력과 차별과 혐오 발언. 현실을 전쟁으로 인식. 민주적인 권위나 질서를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곧 질서로 포 장. 이것은 많은 부분이 파시즘의 모습과 겹치지 않 는가. 한 트위터리안이 그들의 모습을 “태극나치”라 고 비꼬았는데, 그게 농담으로 들리질 않는다. 물론 그것은 아직 나치즘이나 파시즘이라고 하기에는 부 족한 부분이 많을 것이고, 다른 부분도 많을 것이 다. 한국의 맥락상 반공주의적 성향이 훨씬 강할 테 고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파시즘과 가까워보이는 현상들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때인 걸까? 우리는 단지 그들을 욕 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고민 과 실천이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할 시점인 것 같아 서 마음이 무겁다. “ 어느 교수가 학생인권조례는 종북세력의 음모라는 식의 발언을 이어갈 때, 우리는 참지 못하고 피켓을 들었다. 성소수자 단체에서도 자신들이 인쇄해온 A4용지를 함께 들었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종이에 ‘시민은 발언 못하나?’라고 적어서 진행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사람도 있었다. “
  8. 8. 8 병역거부로 망명을 선택한 지인을 떠나보내며 이승규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저... 해외에 나가 난민 신청을 하려고 해요.” 지난해 11월 말, 내가 좋아하는 이인 D씨가 나에 게 이런 말을 하니 '나가지 마라.'라고 말하고 싶었 어요. 그렇지만 차마 붙잡지 못하고 되물었습니다. “캐나다인가요? 프랑스인가요?” 필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이하 병역거부)자이 면서 수감을 당하다 출소한 지 7년이 넘었어요. 그 리고 D씨는 대략 3년 넘게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시 간이 되면 같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던 다산인권 센터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던 이입니다. 그렇지만, 난민 신청한다는 말을 들어보니 필자의 마음은 답답함 그 자체이었으나 그의 뜻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 업인 출신이니 실리적 차원에서 대체복무제는 바꿀 것으로 생각한 것과 달리 보수교회 장로로서 전임 정부가 추진하던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면서 이에 대 한 대체복무제도(이하, 대체복무제)를 “여론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무산시켜버렸습니다. 그 후 두 명의 국회의원 주도로 이 대체복무제를 삽입한 병역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국제법인 '자 유권 규약'에서 병역거부권을 도출한다는 UN 인권 이사회의 해석과 달리 헌법재판소는 그 규약은 법 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더불어 안식교의 핵심교리인 병역거부권을 배척한 반인반신의 자손 이 정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징역 3년형(현 재는 징역 1년 6월형이 대부분입니다)은 물론이고 인격 존재를 버릴 수 없이 목숨을 내놓았던 또 다 른 종교 신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저 항하고 있습니다. 최근 모 여론조사에선 '병역거부는 지지하지 않으 나, 대체복무제는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다수이고 병역거부를 소재로 한 '얼음강'이 수록한 '어떤 시선'이란 영화가 독립영화임에도 많은 관람 을 하는 등 희망의 끈은 있습니다만, 문제는 행정부 가 침묵하는 건 물론이고 입법부에선 실적 쌓기에 가까운 대체복무제 한 건만 제출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는 상황에서 D씨를 비롯한 병역거부를 선택하 려는 이들에겐 바늘구멍 수준이지만 가능할 수 있 는 2018년까지 입영연기를 하며 버텨야 한다는 겁 니다. 그렇지만, 병무청에서 연기할 수 있는 까닭은 얼마 안 되고 5년은 그들에겐 너무 긴 시간입니다. 그리고 절박함 그 자체입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던 D씨는 병역거부는 하겠지만, 부모와 관계가 틀어지 는 걸 두려운 건 물론이고 감옥은 못 가겠다고 합 니다. 앞서 말했듯이 필자도 '얼음강'의 주인공보다 심하 게 구속 전까지 부모에게 한마디 말도 못한 채 1년 6월 형을 받고 수감 당했습니다. 그리고 필자가 구 속당하면서 철벽같은 위계질서와 '나 혼자' 있을 수 없는 시스템 그리고 관행과 전횡뿐인 행형제도로 아주 힘들어했습니다. 1년 6월만 버티라고 말하기 엔 순간마다 당할 고역이 떠오르니... 필자는 그의 팔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인지, UN 인권이사회에선 지난해 9월까지 매 회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면서 구금당한 병역거부자 를 무죄 석방하라는 결의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더 불어 EU 인권재판소에서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 03 떴다! 벗바리
  9. 9. 9 는 아르메니아 정부에게 이를 시정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지난해 11월 구금당한 병역거부자를 석방했 습니다. 특히 언급해야 할 사항이 있는데, 바로 UN 인권이 사회에서 매번 병역거부 관련 결의안을 내면서 '난 민신청을 할 권리'도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병역거부로 갖가지 탄압을 받을 수 없어 다른 나라 에 가서 난민으로 살겠다면 그 나라에선 받아줘야 한다는 겁니다. 다만, 나라별로 온도 차가 있어 난 민 신청을 받기까지 수개월에서 몇 년이 넘으며 허 가하지 않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더불어 병역거부를 까닭으로 난민으로 인정되어 살다 귀국하고 싶어도 한국 기준에선 만 40세까지 들어갈 수 없습니다. 1년 6월을 살다 전과자로 살며 사회적 차별을 당 하는가? 적어도 15년 동안 모든 걸 내놓고 이역만 리 낯선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가? 평생 주민등록이 말소당하며 비국민으로서 숨어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선택에서 D씨는 오랜 시간을 고민한 끝에 난민으로 살겠다고 말하니 전 그의 뜻을 담담하게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이렇게 결행한 병역 거부자의 길을 그가 이어가고 앞으로도 누군가는 이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도... “잘 다녀와요. 그리고 건강히 잘 지내요. 언제 한번 손잡기 위해 다시 만나요.” “ D씨는 오랜 시간을 고민한 끝에 난민으로 살겠다고 말하니 전 그의 뜻을 담담하게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이렇게 결행한 병역거부자의 길을 그가 이어가고 앞으로도 누군가는 이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도... “
  10. 10. 10 오토바이. 사무국장. 그리고 행궁동 지킴이. 인터뷰어 만나다 인권교육 온다 활동가 몇 년전 우연한 기회에 대승원 사무국장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준 지인은 입에 침이 마 르도록 그 분을 소개하며 꼭 한번 만나보라고 했습니 다. 대승원? 사무국장?? 지역활동??? 알듯 말듯 누굴까 궁금해 하다 먼발치 어느 곳에서 슬쩍 스치듯 본 게 전 부였습니다. 그 후 다산이 행궁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저는 매일 그 분을 만납니다. 몇 년도 연식인지 모를 오토바이, 환하 게 미소 짓는 구릿빛 피부사이로 환하게 빛나는 치아 들, 그리고 하루 몇 번을 만나고 민망할 법도 한 인사 를 늘 먼저 건네주는 그 분과 드디어~ 인터뷰를 시작 합니다. 다산 : 본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황영 : 저는 이 동네 토박이예요. 고등학교 졸업후 서울에서 대학다닌 몇 년을 제하면 이 동네를 떠난 적이 없죠. 대학을 졸업하고 대승원에서 일을 시작 했어요. 대승원이 올해로 60주년인데 제 나이가 쉰 살이고, 대승원에서 일한지는 24년 되었네요. 04 남창동에 살다
  11. 11. 11 다산 : 그럼 대승원에 대해서 궁금해 지는데요, 간 단하게 대승원에 대해 소개해 주시고 대승원에서 일을 하시게 된 계기도 말씀해 주세요. 황영 : 먼저 대승원에 대해 설명하려면 1960년대 말 불교 내 종단갈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요. 그 당시에는 종단갈등이 무척 심했던 때라 몇몇 뜻 있는 분들이 종단을 뛰어 넘어 대중과 함께하는 포 교활동을 고민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게 불교사상연구회고 포교를 위한 사찰을 만들기 위해 종단이름을 갖지 않고 불교사상연구회를 법인으로 만들게 됩니다. 그때 뜻을 같이한 분들이 불교학을 가르치셨던 교수님이셨고 산속에 있는 사찰이 아닌 도심 속 사찰을 만들어서 마을에 뿌리를 둔 포교활 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60년 전 저희 선친이 대승 원을 세우셨고, 지금 주지스님이 형님이십니다. 그 런 영향이 있다 보니 저도 자연스레 가업처럼 대승 원 일을 시작하였고 그게 벌써 24년이 흘렀네요. 다산 : 기존의 종단하고는 출발이 다른데요, 사무국 장님이 생각하는 ‘포교’란 무엇일까요? 황영: 제가 생각하는 포교는 마을과 사회가 조화롭 게 살아갈 수 있는 종교 활동입니다. 마을이 건강해 야 사찰이 건강하지 않겠어요? 물론 이런 생각만큼 지금까지 우리의 포교활동에 큰 변화를 이끌었다고 는 보지 않지만 그 변화를 함께 만들려면 마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산 : 제가 뵙기에도 늘 마을활동의 궂은 일도 마 다하지 않고 활동하고 계신데요 특별히 ‘마을’에 관 심을 가지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황영: 저는 여기서 나고 자랐습니다. 제 어린시절 기억 속, 70,80년대 행궁동은 수원의 중심이었지요. 그런데 화성행궁 개발이 시작되면서 화성주변에 살 던 이웃 주민들이 이사를 나가게 되고 남문중심의 상권이 서서히 붕괴되면서 마을 공동화가 생기는 등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죠. 대학졸업 후 내려왔던 90년 중,후반 모습은 제가 기억하는 마을의 모습과 는 너무 달라져 있었어요. 너무 냉랭하고 쓸쓸했어 요. 마을 주민 간 소통도 단절되었고요, 그러다 보 니 민심도 사나웠고요. 처음 와서는 저도 대승원 생 활에 적응해야 되었고 실제 뭐부터 해야 될지 몰랐 다가 2006년부터 마을에 관심 있는 주민과 상인들 이 모이면서 마을 만들기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로 활동이 이어져오다 최근 몇 년간 마을사 업만 하는게 아니라 실제 활동에 참여할 주민을 대 상으로 마을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체계적인 마을교 육이 진행되면서 구체적 방법과 실천사업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수원화성문화제와 생태 교통페스티발 때 친환경 ‘등’ 만들기를 진행했는데 유치원생부터 경로당에 다니시는 어르신까지 ‘등’관 련 교육과 ‘등’제작을 함께 해 하면서 신나고 재미 있었습니다. 다산 : 현재까지 많은 활동들을 해 오셨는데 가장 크게 느끼는 보람은 무엇일까요? 황영 : 보람이요? 저의 보람은 마을활동에서 만나는 많은 분들의 즐거워하는 눈빛과 표정을 볼 때 정말 따스함을 느껴요. 그리고 마을 어르신과 제가 계속 만나면서 일상적인 관계가 이어지고 제가 그 자리 에 없더라도 자녀들이 자연스레 어르신들과 만나 “ 대학졸업 후 내려왔던 90년 중,후반 모습은 제가 기억하는 마을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져 있었어요. 너무 냉랭하고 쓸쓸했어요. 마을 주민 간 소통도 단절되었고요. 그러다 보니 민심도 사나웠고요. “
  12. 12. 12 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세대간 소통이 생기 게 됩니다. 그래서 소소한 것이 잔잔하고 오래가죠. 다산 : 지금까지 활동을 해 오시면서 늘 보람만 있 지는 않았을 텐 데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우실까요? 황영 : 제가 느꼈던 어려움은 서로 간 이해관계가 발생할 때입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양보도 해보고 납득이나 설명을 하면서 조율에 들어가는데... 조율 이 늘 되는 건 아니에요. 그러다보니 서먹해지기도 하고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여 기서 나고 자란 주민으로 제가 생각하는 마을주민 과의 인간관계는 정치나 종교를 뺀 인간관계로부터 시작된다고 믿고 있어요. 거기서부터 토박이 주민 과, 새롭게 만나는 주민과도 돈독한 관계를 쌓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다산 : 이제 2014년이 시작되었는데 올해 계획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황영 : 몇 가지 말씀드리면 대승원 60주년 행사가 있고요, 매년 진행해 온 전통‘등’달기 교육과 활동 이 시작될 거고, 동네에 아이들 놀이터가 없어서 고 민이었는데 최근 남창초등학교가 혁신학교가 되면 서 운동장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별도의 놀이터 보다 학교환경을 활용하면 될 것 같고요, 지 금 사춘기 자녀와의 소통교육과 사춘기 자녀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연극프로그램을 꾸나와 다 산. 온다와 마을주민이 모여 추진해 보고 싶습니다. 다산 : 좀 전에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전통‘등’ 전시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셨는데 애착이 많으신 것 같아서요. 사무국장님이 생각하시는 ‘등’의 의미는 04 남창동에 살다
  13. 13. 13 무엇일까요? 황영 : 개인적으로 저는 ‘등’을 지켜보면 편안한 느 낌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한데우물 주변에 걸어놓 은 물고기등은 물길을 뜻합니다. 원래 대승원 부터 한데우물, 남창천을 지나 수원천 까지 이어지는 물 길이었는데 지금은 복개가 되었어요. 그렇다고 당장 바닥을 뜯을 수는 없기 때문에 밤에 훤하게 비쳐지 는 ‘등’을 보면서 예전의 물길을 복원하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다산 : 그렇군요. 무심코 지나친 등들이 그런 의미 가 있다고 하니 새롭네요.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 아요. 그리고 저희가 이사 오면서 쭈욱 지켜보셨을 텐데요, 마을 주민으로 해주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 주세요. 황영 : 처음에는 다산인권센터 이미지가 강성일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동안 지켜보았습니다. 그동안 지켜본 모습은 강성 이미지가 아닌 차분하고 밝은 이미지가 보였어요. 서서히 호감이 생기게 되면서 지금은 지역활동에 대해 제안도 하게 된 거죠. 그리 고 지역주민들을 만나게 되시잖아요. 가르치려고 하 지 말고 지역주민들과는 평범하고 자연스런 만남이 필요한 것 같아요. 또 지역 청소년들과 딱딱한 인권 교육이 아닌 재미난 인권교육을 해 봤으면 합니다. 다산 : 자~ 그럼 마지막으로 라디오스타식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혹시 라디오스타 보세요? (예상대로 모르셨어요...그럼에도 질문을 날렸습니다.) 사무국 장님에게 오토바이란? 황영 : 많은 사람들이 제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에 대해 인상적으로 기억하시더군요. (잠시 뜸을 드리시다가 급 화색을 보이시며) ‘생활이다’. 왜냐면 오토바이 덕분에 언덕길을 오르내리면서 많은 사람 들을 만나고 인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다 산 사무실에서 대승원으로 가는 언덕은... 참 멀고 도 가파릅니다) 다산 : 이제 진짜 마지막으로 대승원에서 사무국장 이란? 황영 : ‘천직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정말 일 이 많다고 생각했고 제한된 테두리가 있다고 생각 해서 답답했어요. 그런데 30대를 지나 40대를 넘어 서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요즘 얼마 나 사는 게 팍팍합니까? 그런 삶에 비하면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람을 찾는 일을 하면 서 사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때론 진지함으로, 때론 달변으로, 때론 확신에 찬 인터 뷰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양팔에 날개를 단 듯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고백하자면... 이 인터뷰는 이미 작년 11/12월호에 자리 잡아야 했지만 저의 지나친 여유와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신 사무국장님과 일정을 잡는다는 건... 이미 마감을 넘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사무국장님을 찾는 방문객으로 몇 차례 멈추기도 했습니다. 바쁘신 연 초에도 시간 내주신 황영 사무국장님께 다 시 한 번 감사드리며 올해도 힘찬 지역활동 기대해 봅 니다. 그리고 빠라빠라 빠라밤~~~~ 오토바이의 활약도 기대해 봅니다^^ “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정말 일이 많다고 생각했고 제한된 테두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답답했어요. 그런데 30대를 지나 40대를 넘어서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요즘 얼마나 사는 게 팍팍합니까? 그런 삶에 비하면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람을 찾는 일을 하면서 사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
  14. 14. 14 <별이 크리스마스>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의 최종범 열사가 돌아가시고 유가족들이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제 막 돌을 맞는 최종범 열사의 딸 별이 는 첫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아버지 없는 첫 돌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자리를 만들었다. 별이의 아빠 가 되기로 한 최종범 열사의 동료들과 별이의 그림 책을 보내준 출판사, 돌복을 선물한 한복 디자이너, 진료를 약속한 의사, 유기농 쌀을 보내주겠다는 따 뜻한 손길들. 그날만큼은 별이 엄마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의 출범식에 모인 사람들은 이 번 크리스마스는 별이 크리스마스로 보내자고 이야 기를 모았다. 세상의 모든 고통 받는 이들이 하나로 마음을 모을 수 있는 크리스마스. 세상에서 가장 빛 나는 별이를 위한 크리스마스를 약속했다. 그사이 삼성전자서비스는 최종범 열사 유가족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에게 사과하고 노조활동을 보 장한다는 합의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24일 당일, 장례식이 치러졌다. 장례이후 크리스마스 행사를 할 것인가 논의한 끝에 준비하던 이들은 별이 크리스 마스를 삼성본관 앞에서 조촐하게 가졌다. <밀양 인권침해보고회> 밀양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직도 절박하다. 첫 번 째 밀양희망버스가 다녀온 후 유한숙 어르신 음독 자결이라는 비보를 접했었다. 경찰은 유한숙 어르신 의 죽음을 왜곡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7월과 10월 이미 두 차례 인권침해보고회를 가졌지만 전혀 나 아지지 않은 밀양 상황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기 위 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여전히 경찰은 공권력을 남 용하고 있었고 인권침해 양상은 심각해져있었다. 오히려 사회적 관심이 적어진 틈을 타 폭행과 미행, 감시 등 주민들을 괴롭히는 인권침해 유형들이 늘 어나 있었다. 국가인권위는 6차례의 진정에 아무런 답을 내놓지도 않았다. 인권침해보고회는 1월 22일(수) 진행되었고 인권보 고와 국가인권위문제 등을 발표했다. 민변은 기획소 송을 통해 밀양 문제를 지적했고, 밀양전국대책위는 밀양문제가 왜 인권문제인지를 짚었다. <르노삼성성희롱사건> 르노삼성자동차에서 성희롱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 는 팀장이었고 피해자는 팀원이었다. 피해자는 직속 상관인 가해자로부터 1년간 상습적이고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회 사를 그만 두려고 했다. 처음 성희롱 사실을 고지 받은 담당임원은 ‘성희롱이 있었다면, 피해자가 아 니라 가해자가 그만두어야 한다며 사직은 보류하자’ 며 피해자를 도와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회사의 태도는 며칠 새 바뀌었다.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 작했다. ‘여자가 먼저 유혹했다.’, ‘만남에 동의해 놓고, 이제 와서 무고한 사람을 성희롱으로 신고했 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가해자는 사건 보고이후 2달 만에 정직 2주라는 가벼운 처분만을 받았다. 더욱 놀라운 일들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회사는 피해자가 대표이사 및 사직종용 이사, 인사팀장, 가 해자 등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중에 드러난 증인, 피해자의 동료 직원에게 피해자와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동료직원이 말을 따르지 않자,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징계를 내려 보복을 시작했다. 피해자 는 전문업무에서 서무업무로 배정되었다. 지방노동 위원회에서 성희롱 피해자와, 동료직원 이 둘 모두 다산인권센터 활동소식 05 활동보고_ 사업별
  15. 15. 15 에 대한 부당 징계 결정이 났다. 이틀 후 회사는 바 로 피해자의 동료 직원 정00씨에게 직무정지와 대 기발령을 내렸다. 이에 놀란 정00씨가 당분간 사무 실에 출입할 수 없을 것이 염려되어 자기 개인 사 물들을 싸서 퇴근 중, 회사 정문에서 인사팀과 보안 팀 용역 직원 등 성인남자 5명이 차량을 덮쳤고, 정00씨와 피해자 김00씨를 회사 기밀을 탈취한 죄 인 취급하며 절도죄와 절도방조죄로 형사고소하기 에 이르렀다. 현재 피해자 김00씨와 도와준 동료 정00씨는 2달째 대기발령중이다. 다산인권센터는 여성단체, 국회의원들과 함께 기자 회견을 했고, 향후 문제해결을 위해 공동대응하기로 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발표한 2013년 상담사례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은 전체 상담건수의 56.35%로 절반 이상이었다. 지난해에 비해서 12% 증가했다. 특히 불이익조치에 대한 사례는 총79건 을 차지해 직장 내 성희롱 상담 중 35.59%에 달했 다. 르노삼성자동차에서 벌어진 사건은 성희롱 이후 조력자를 포함, 피해 노동자에 대한 부당징계와 각 종 괴롭힘 등 회사에 의한 불이익조치가 집약된 대 표적인 문제 사례이다. 아시아인권위원회 등 국제단 체들과 함께 르노삼성자동차 문제를 해결하고 향후 성차별, 성폭력이 사라지는 법제도 개선을 위해 노 력할 예정이다.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인권침해보고회> “아무도 우리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소위 '내란음 모사건' 피해자 인권 침해 보고회를 2월 12일(수) 정동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가졌다. 우리는 공안사건, 공안통치, 공안탄압 등 비인격적 언어 뒤에서 벌어 지는 피해자의 맨얼굴을 보지 못한다. 그들의 아픔 을 통해 공포정치가 파괴하는 것이 인간임을 보여 주고자 인권침해보고회를 준비했다. 다산인권센터,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인권운동사랑 방, 유엔인권정책센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인권활동가들이 함께 마련했다. 내란음모 사건의 가 족과 피해자를 인터뷰했다. 만나기 전에는 신념과 확신에 가득찬 사람들이니, 그런대로 잘 이겨나가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만나보고 알았다. 얼마 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지금도 그 아픔이 하루도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도. 어쩌면 우 리조차 정말 그들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안 되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피해자들을 만나는 동안 울고 같이 아파했다. 그래서 더욱 이번 작업을 세상에 내 놓는 것은 중요하다고, 우리가 느낀 만큼 다른 사람들이 공명해주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하루아침에 숨 쉬는 것조차 범죄가 된 것 같아, 아 파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제는 말할 수 있기를. 소위 내란음모사건에 대해 검찰은 각 20년, 15년, 10년을 구형했고 앞으로 선고가 남아있다. <반올림 주점> 지난 1월 17일 반올림 주점이 진행되었습니다. 많 은 분들이 반올림 주점에 찾아 주셔서 성황리에, 많 은 이익(?)을 남겼습니다. 앞으로 주점을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반도체전자산업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 을 위해 더 열심히 싸우는 반올림, 그리고 반올림과 함께 하는 다산이 되겠습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극장 확대 기자회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되었습니다. 하지만 대 형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또 하나의 약속에 상영관
  16. 16. 16 을 내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단체관람을 신청 했던 이들에게 취소 통보를 보내거나, 단체관람 예 약한 노동자들에게 ‘다른 영화를 상영해주면 안되 냐’는 등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외압이 있었던 것이 아 니라고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작동한 것이 아닌가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에 의해 영화를 볼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이에 반올림과 삼성노동인권지킴이와 함께 또 하나 의 약속 상영관 확대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했습 니다. 더 많은 이들이 또 하나의 약속을 볼 수 있었 으면 합니다. <삼성에버랜드 해고자 조장희 해고무효소송 기자회 견 건> 지난 1월 23일 행정법원은 의미있는 판결을 했습니 다. 삼성해고노동자 조장희에 대한 중앙노동위원회 의 해고는 부당하는 것이 그 판결이었습니다. 지난 해 심상정 의원에 의해 알려진 삼성노조파괴전략 문서에 명시된 대로 노조탄압 및 해고가 진행되었 다는 것이 그 판결의 취지입니다. 행정법원의 판결 에 중앙노동위원회가 항소하지 말라는 요구를 담은 기자회견을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진행했습 니다. 우리는 2년 7개월의 해고 기간 동안 고통스 럽게 살아왔을 해고 노동자에게 더 이상 고통이 지 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해고 노동자들을 위해 이 사회가 안전막이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노 동관련 기관들이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중앙 노동위원회가 이제라도 제 본분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1,2월 교육활동 > - 시흥 장곡중학교 인권교육 및 학생회 신구임원 학생자치 교육 - 수원여성회 겨울방학교실(권선초,신곡초,남수원초) "내 인생은 나의 것 드림아이“ - 경기도장애인권센터 인권강사단 교육 - 청옥중학교 교사연수 - 마음샘정신재활센터 인권교육 - 안양 부림중학교 학생임원 학생자치 교육 < 인권교육활동가 입문과정 후속모임‘텃밭’스터디 > 1월17일 텃밭 스터디와 신년회를 함께 진행하였습 니다. 작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인권의 문법’을 2시간동안 발제와 토론, 그리고 한숨(너무 어려워 서)으로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발제자들의 열정과 새로이 결합한 정우, 여름님의 활력으로 재빠르게 마무리하고 두부집에 가서 맞난 신년회를 가졌습니 다. 특히 연구년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시는 에라 만세님 에게 말띠해의 기운을 함께 보냅니다~ <“폭력에 反(반)하다”워크샾 참여 > 온다 내부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으로 1월22일~24일 에 전교조와 인권교육센터 들이 주관한 교사연수 “폭력에 反(반)하다” 워크샾에 참여했습니다. 오랜 만에 듣는 하루 종일 강의와 미세먼지의 급습으로 조금 피곤했으나 폭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오해와 진실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05 활동보고_ 사업별 인권교육 온다 활동소식
  17. 17. 17 다산인권센터에서 <인권인문학특강>을 시작해요! 수년전부터 한국에서 ‘인문학’ 열풍(?)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인문적 태도와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인권운 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정부 수준에서도 ‘인권조 례’가 만들어지고, ‘인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한국의 인권현실은 조처럼 나아 질 기미가 안보입니다. 그래서 수원지역에서 인권담론의 확산과 근본적인 사회탐구 작업을 위해 <인권인문학특강>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오늘 4월 봄학기와 10월 가을학기, 1 년에 두 학기를 개설할 예정입니다. 4월 봄학기 주 제는 ‘자유+평등’입니다. 강사진과 세부 일정이 확 정되는 대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픈하우스>, 기대하세요! 다산인권센터가 위치한 행궁동은 화성행궁과 공방 거리 등에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오고갑니다. 특히 봄과 가을에 각종 행사와 문화제가 집중적으 로 열리는데요. 이 시기에 맞춰 다산인권센터 <오픈 하우스>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럼 평소엔 사무실을 닫아놓냐구요? 그렇지는 않 습니다.^^ 다만, 보다 많은 분들이 다산인권센터를 들려주시고, 또 인권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시간으로 특별히(!) 준비하는 것이랍니다. 물론 평소에도 사무실은 항상 열려져 있습니다. 언 제라도 환영입니다~ 한 달에 한 번, 벗바리들과 <밥데이>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밥데이>. 벗바리 여러분 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골치(?) 아픈 인권이야기 안하고 카페같은 분위기의 다산인 권센터 공간에서 활동가들이 직접 요리하는 음식을 나누면서 사는 이야기 나누는 <밥데이>. 올해도 계 속됩니다. 그 달의 제철요리들과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나누는 술 한잔... 생각만 해도 즐겁습니다. 아직 한 번도 못 오신 분들, 올해는 꼭 들려주세 요~ 날짜는 홈페이지에도 올리고, 문자와 이메일로 도 알려 드릴게요. <몸살>이 한 달에 한 번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격월로 발행하는 다산인권센터 소식지 <몸살>이 이 제 한 달에 한 번 여러분들을 찾아갑니다. 두 달 동 안 기다리시느라 지루하셨죠? ^^ 그래서 발행주기 를 한 달로 변경합니다. 물론 소식지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만, 다산인권센터 활동을 보다 풍성 하고 자주 전달해드리기 위해 큰 맘 먹었습니다. 단, 우편발송을 기본으로 했던 기존 방식을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스마트폰, 태블릿이 대중화되기도 했고, 우편물이 집에 그대로 쌓이는 경우도 많다는 첩보(?)를 입수한바 종이도 아끼고 편리하게 받아 볼 수 있도록 전환하는 것입니다. 물 론, 우편발송이 필요하신 분들은 우편으로도 보내드 릴 예정이니까요,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올해 신설(변경) 되는 사업 안내
  18. 18. 18 2013년 11~12월 재정결산 수입 지출 총계 13,313,931 총계 5,477,820 이월 전월이월 10,012,581 운영비 소계 1,319,810 경상수입 CMS후원 경상운영비 대출이자 80,000 관리비 165,860자동이체후원 225,000 이사적립금 85,000특별후원 2,776,350 일반운영비 정보통신비 120,000일반후원 180,000 활동비 165,000 사업수입 일반사업 110,000 교육사업 사무관리비 469,000 재정사업 차량유지비 229,650 행사사업 기타 5,300 기타수입 결산이자 인건비 소계 3,057,500 기타 10,000 급여 급여 2,776,350 차입금 복리후생비 식대 281,150 상여금 자원활동가지원비 기타 사업비 소계 1,100,510 경상사업비 우편발송비 127,630 인쇄비 기타 일반사업비 교육사업비 260,430 행사사업비 119,200 기획사업비 42,550 현안사업비 190,100 기타 연대사업비 분담금 110,600 후원금 250,000 기타 차월이월 7,836,111 11월 결산 06 활동보고_ 재정결산
  19. 19. 19 수입 지출 총계 총계 이월 전월이월 7,836,111 운영비 소계 1,565,720 경상수입 CMS후원 9,631,940 경상운영비 대출이자 70,000 관리비 323,140 자동이체후원 270,000 이사적립금 120,000 특별후원 2,776,350 일반운영비 정보통신비 352,150 일반후원 활동비 27,000 사업수입 일반사업 400,000 사무관리비 70,000 교육사업 차량유지비 601,630재정사업 기타 1,800행사사업 기타수입 결산이자 1,910 인건비 소계 5,907,790 기타 7,765 급여 급여 5,576,350 차입금 복리후생비 식대 상여금 자원활동가지원비 기타 사업비 소계 2,773,450 경상사업비 우편발송비 7,600 인쇄비 기타 일반사업비 교육사업비 139,800 행사사업비 기획사업비 227,100 현안사업비 553,450 기타 1,601,400 연대사업비 분담금 186,100 후원금 58,000 기타 차월이월 10,677,116 12월 결산
  20. 20. DASAN HUMANRIGHTS 다산인권센터 주소 : (우)442-844,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91-3 2층 전화 : 031)213-2105 | 팩스 : 031)215-4395 ㅣ이메일 : humandasan@gmail.com 홈페이지 : http://www.rights.or.kr | 다음카페 : http://cafe.daum.net/humandasan 다산인권센터 간은균 간호중 강복심 강상원 강윤정 경기대학교민주동문회 고미영 고성준 고 영 곽봉식 곽봉재 곽지숙 곽창훈 구선희 국찬석 궁경혜 권민희 권순택 권인철 권정순 길은실 김갑수 김강학 김경숙 김경지 김계향 김관일 김근영 김기헌 김노진 김대술 김동겸 김동균 김동근 김동우 김만희 김명숙 김명욱 김명준 김문정 김미숙 김민규 김민석 김민태 김병곤 김병선 김병수 김보경 김상곤 김상기 김상순 김상욱 김상호 김선미 김선형 김성종 김성중 김성태 김성희 김 솔 김수영 김수정 김시연 김아름 김영기 김영기 김영숙 김영주 김영호 김완수 김용섭 김용신 김우진 김원규 김윤경 김윤종 김윤희 김은경 김은총 김이화 김의경 김의식 김장렬 김재영 김재욱 김정수 김정심 김종보 김종서 김종우 김종태 김주이 김준성 김지수 김지연 김진성 김진우 김진혁 김타균 김태은 김철환 김칠준 김태교 김태균 김태환 김학성 김화준 김향미 김현주 김현창 김현철 김형옥 김형인 김형일 김혜영 김혜령 김희연 김희정 김희태 남경호 남길현 남영숙 남지원 남현우 노수정 노영란 노완호 노정순 노정희 노창식 노학주 류용웅 문민수 문숙희 문정석 민진영 민현주 박경화 박관우 박래군 박미향 박민수 박선희 박설규 박성희 박숙경 박영재 박용태 박유순 박재형 박정근 박정희 박주민 박준모 박준영 박지영 박지훈 박 진 박 찬 박찬병 박 철 박치현 박태현 박혜상 박호철 박효진 반재운 법무법인 다산 배기성 배용석 백가윤 백수영 백아형 백정선 백종수 변상우 사미경 삼성 노동조합 서경숙 서미나 서미향 서윤수 서재덕 서정리 서정희 서태정 서채원 석권호 성명애 손난주 손어진 송명은 송명훈 송연주 송용기 송원찬 송인숙 송주현 송주희 승혜신 신강현 신남균 신 돈 신동석 신성원 신유아 신은정 신종은 심병훈 심지연 안금옥 안병일 안병주 안병진 안상용 안정희 안진영 양기석 양민재 양은숙 양훈도 엄명환 여운철 염경미 오동석 오석경 오세범 오일용 오준원 오준희 오춘상 왕윤정 원선옥 원영기 유기만 유덕화 유미희 유정은 유준영 유지혜 육대웅 육성철 윤권영 윤나경 윤세홍 윤영훈 윤은수 윤재훈 윤창경 윤태관 윤태기 윤흥준 이가영 이강복 이건해 이경이 이경진 이계수 이광훈 이근랑 이기만 이기원 이기성 이기은 이기자 이기주 이길순 이다예 이동찬 이문영 이미경 이민수 이민정 이민휘 이범희 이병삼 이봉임 이상명 이상무 이상목 이상언 이상희 이선용 이선희 이설희 이세훈 이소진 이수진 이순일 이승규 이연민 이연진 이영기 이영문 이영미 이영희 이용덕 이용석 이우상 이유정 이원숙 이은별 이정무 이정희 이종란 이종수 이종순 이종우 이주영 이주현 이중호 이창림 이태형 이필주 이학준 이향숙 이현찬 이 호 이호헌 이희정 임굉호 임대철 임성민 임수현 임시정 임양숙 임종혁 임태환 임혜경 장계순 장대전 장명호 장서연 장성옥 장세민 장소영 장여경 장진욱 장혜경 장혜진 전상천 전인숙 전창윤 정건희 정미현 정상용 정 민 정연희 정용진 정 웅 정준위 정지윤 정태욱 정태정 정현경 정현주 정혜민 정 희 조건준 조명진 조민호 조백기 조병희 조상현 조성범 조지훈 주재억 주재철 진상범 천 진 천홍석 최강호 최병호 최보라 최서영 최성규 최영롱 최용화 최유리 최율미 최재경 최종식 최준영 최혁진 최현모 최형규 최화정 태상미 한건희 한도숙 한상운 한상희 한수연 한준경 황영숙 허 선 허승대 허연실 허진만 허환주 홍영덕 홍의표 홍은화 홍진숙 황필규 황현수 인권교육온다 명 순 강민정 강영신 강지현 고 영 고성준 김갑수 김명희 김문정 김보형 김수현 김칠준 김향미 김현목 김현정 김현철 김혜영 남궁경 도영호 류명화 명성숙 민 선 민진영 박은경 박은순 박정선 배경내 서은희 신지영 오혜원 유경란 유 재 이광훈 이기자 이미현 이민정 이병삼 이정희 이찬미 임승국 장지현 전철호 정경수 정미현 정해윤 조건준 조성범 ●다산인권센터 벗바리가 되어주세요! 신한: 110-062-448424 (박진 다산인권상담소) 농협: 116-12-264081 (노영란) 11, 12월 후원해주신 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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