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deShare a Scribd company logo
1 of 51
Download to read offline
현대미술의 시작 - 사실성의 대두
1) 얀 반 에이크 (1390 - 1441) <수태고지> 1435, 캔버스에 37x93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15세기의 작품
서양 미술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우리는 흔히 고대 이집트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닌 고고학에서 파생된 것이 미술사인 것을 알 수 있다. 본격
적으로 ‘미술사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이다.
얀 반 에이크의 그림을 보면 르네상스의 그림임을 볼 수 있다. 서양미술은 동양권과는 다르게 건축이 미술사에서
정말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서양 미술의 출발은 기독교에서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교리만 전한다고 좋
은 것은 아니다. 그것에 더해 미적 가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 그림을 보면 건축의 투시법이 훌륭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백합은 마리아의 순결을 나타내고, 창을 통해 비
둘기가 내려오는 모습은 성모 마리아에게 잉태를 예언하러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창은 꺠지지않았는데, 이
는 마리아가 순결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임을 알 수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성서 등) 미술사는 발전함을 알 수 있다.
2) 조토(1266/7 - 1337) <성탄> 1305
3) 비잔틴 미술 - 회화 / 조토 <Nativity> 1305.
Giotto
앉아서 졸고 있는 사람은 요셉이다 아이의 탄생과 요셉은 상관이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마굿간, 소,말, 양 등 모
두 성경에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는 현명함을 나타내 아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이나 사물에 상징을 부여하는 것은 시대마다 비슷하다. 중세시대에는 원래 하늘을 노랗게 그렸지만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교토(Giotto)가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파란색으로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이는 르네상스 시기
부터인것으로 볼 수 있다. 르네상스때부터 인간중심사상이 적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토(Giotto)는 인물을 뒤에서 본 시각으로 그린 최초의 화가이다. 삼차원 화면의 구성을 시도함. (뒤로 서 있는 사
람을 그렸기 떄문에)
서양미술은 원근법에 충실하게 자연을 묘사하는 것에 사실적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았고 목자가 천사를 바라보고 있다. 한 남자는 졸고 있고 양과 염소가 있다. 이것은 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어떤식으로 표현하는 지는 화가의 몫이다. 졸고있는 남자는 요셉이다. 왜 졸고 있을까? 아이의
탄생과 관련이 없다고 표현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소는 아이가 탄생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
고 말은 쳐다보고 있지 않다. 말은 무지, 소는 현명함을 상징한다. 천사의 예고를 목동들이 듣고 있고 양이 나누어
지는 것은 선과 악이 나누어지는 것 지옥과 천당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상징한다. 조토라는 사람이 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로 넘어오는 큰 역할을 하는 위대한 화가인데 이 사람이 한 것은 무엇일까? 라고 생각을 해 보자. 뒷모습
을 그린 것을 이 사람이 생각한 것이고 베도르의 반석위에 교회가 설 것이라는 것을 예언한다. 그 예언을 떨쳐내고
보자면 음영을 집어 넣어 3차원 적인 것이 드러나게 된다. 하늘이 원래 중세시대때는 하느님이 사는 곳이라 하여
황금색으로 표현했지만 조토가 사실적으로 표현해서 하늘색을 넣었다. 원근법, 명암법을 발명해서 어떻게 하 인간
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을 잘 그릴 수 있을가. - 르네상스는 인본주의, 중세시대는 하느님을 중심으로 그려내었다. 14
세기 말에서 19세기까지 서양미술은 원근법과 명암법에 충실하게 자연을 묘사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했다. Realism
이라고 하면 사실주의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정확히 의미전달이 안 된다. 비잔틴은 원근법에 대해 잘 몰라서 평면
적으로 묘사를 했는데 조토의 그림을 보면 음영이 나름대로 표현이 되고 있고 주름진 것을 통해 3D를 나타내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다 예수가 태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다.
4)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26
신화와 성서 등 상상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날개달린 천사가 여성에게 내려와 ‘뱀을 무찌를 아이가 태어날 것
이다’라고 전하러 오는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잉태예연)
깊이감을 나타내려고 노력한 것을 볼 수 있다. (돌출하는 원근법), 원근법을 바라보는 시각도 시기(시대)별로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17세기에 오면 깊이의 원근법을 사용한 르네상스와 다르게 돌출하는 원근법을 표현해 강렬한 원근법을 사용했다.
5) 루벤스 <프로테메우스> 17세기 / 피터 라스트만<그리스도의 매장> 1612>
양식은 계속 변화되어오지만 주제는 바뀌지 않는다. 신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타낸다. 기독교의 강력한 힘으로 인
해 화가들은 교회의 후원을 받아 그림을 그리면서 거기에 맞는 주제에 충실하게 자신의 양식을 개발해 그림을 그려
왔다.
르네상스 그림을 보면 어두운 것을 볼 수 있다.
6~7) 엘 그레코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 1586-88
8) 쿠르베 <오르낭의 매장> 1849
두 그림 모두 매장하는 모습이지만 그리는 모습이 매우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왼편의 작품을 보면 매장을 그대로 그려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엇던 시기이다. 오른편의 작품을 보면 현실을 그
려낸 것을 볼 수 있다. 쿠르베는 작화 진보주의자로 정치적인 발언을 많이하는 공화주의 미술가였다. 사회주의자였
기 떄문에 화면 가운데에 노동자를 두고 노동자 계급에 초점을 맞춘 것을 볼 수 있다.
엘 그레코의 작품(오르가즈 백작의 매장)과 쿠르베의 작품(오르낭의 매장)을 비교해서 보면 엘 그레코의 작품은 마
치 종교화를 보는 듯하다. <오르가즈 백작>은 매장을 다루고 있지만 하나님이 계시고 성모 마리아가 있는 천상의
얘기에 초점을 맞춘 듯한 주제임을 알 수 있다. 서양은 중세 이후로 기독교가 굉장히 중요한 주제가 되었고 위대한
종교미술은 위대한 서양미술에 포함되었다. 서양미술이 근대미술까지 오기까지 종교미술이 앞도적으로 우위를 차
지함. 종교미술과 세속미술이 구분되지 않고 종교미술이 서양미술사에 큰 맥을 차지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오면서 근대사회가 형성이 되고 그 근대사회의 특징은 바로 산업혁명 즉, 과학기술의 발달이었
다.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정치적으로는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다. 이 두 가지의 결과로 인해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신분제도가 무너지는 것이 근대 사회의 특징이다. 혈통에 의한 신분제도가 19세기에 이
르기까지 지속이 되었는데 혁명이 일어나며 과학기술이 발달되어 공업과 상업이 발달했고 신분제도가 무너지게
되었다. 혈통이 아닌 자신의 노력과 재능으로 돈을 버는 계급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 계급이 국가의 경제권을 장악
하면서 신분제도는 무너졌다. 이 계급을 부르주아라고 부른다. 부르주아들의 강력한 경제권으로 인해 사회는 굉장
한 변화를 겪게 된다. 프랑스대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며 공화주의가 들어서게 된다. ‘만인이 평등하다’라는 내용을
가지고 나타남. 왕과 왕비는 사형을 받고 귀족은 무너진다. 굉장한 권력을 가졌던 교회가 무너지게 된다. 카톨릭 성
직자는 더 이상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 국민의 봉사자라는 개념으로 격하가 되었다. 그렇게 민중의 힘은 강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등장하게 된 것이 근대미술이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천당을 믿지 않게 되었다. 이
제 사람들은 세속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9) 쿠르베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1854.
세 사람이 우연히 마주쳐서 인사를 하는 듯 하다. 주변에서 경험하고 보는 현실속의 모티브로 볼 수 있다.
세 사람이 우연히 만나서 인사를 하고 있는 듯한 현실속의 하나의 모티브를 잡았다. 현대미술의 시작은 이와 같은
현실상, 사실상에 대두해서 시작된다. 모든 것은 상상에서 대두되어 현실로 넘어가게 되었다.
모든 아트는 상상 -> 현실에서 넘어가면서 생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8번의 그림을 보다 9번의 그림을 본다. 서양에서는 근대사회로 바뀐 기점을 <산업혁명>으로 보고있다. 미술은 근
대사회가 생겨나는 시기, 특히 쿠르베가 생겨나는 시기에서 얘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쿠르베라는 사람은 공부를 하다가 파리에 가게 된다. 1855년 쿠르베는 ‘나는 천사를 그리지않겠다.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다. ‘ 라고 살롱에서 이야기한다. 또한 개인창고에서 전시회를 열어 <리얼리즘 선언>을 한다.
고개를 푹 숙인 사람 : 시종 / 그 앞의 사람은 쿠르베를 후원한 부자 은행가이다. 그 뒤에 개가 있고 풍경이 있는 것
을 볼 수 있다. 이 시대에는 풍경을 그리는 것이 흔하지않았다. 하지만 쿠르베의 그림을 보면 풍경을 자세히 그려넣
은 것을 볼 수 있다. 쿠르베의 고개가 위로 치켜들고 있는 것은, 부르주아보다도 자신(화가)이 더 우위에 있다고 생
각함을 보여준다.
10 ) 쿠르베 <돌깨는 사람들> 1850 - 1851
쿠르베의 특징은 정치적이고 도덕적이며 사회적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현실을 그리되, 농민이나 노동자 계층에 초
점을 맞추면서 도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18~19세기는 산업발달시기인 것을 볼 수 있다. 쿠르베의 그림을 보면 현실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부터 ‘부르주아’가 생겨난다. 내가 돈을 벌면 부르주아가 되는 것이다. 더욱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강력한 교
회가 힘을 상실하게 된다 .상경을 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닌 국민으로 하락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 돈이 너무 좋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현실적’으로 변하게 된다. 교회에 사람들이 후원금을 주지 않게되
면서 교회의 그림을 그려내는 방식은 달라지게 된다.
그림을 판매하는 사람 + 수집가(그림을 사는 사람)이 생겨나는 시기가 산업혁명 이후부터이다.
서양의 근대사회(프랑스 혁명 / 산업혁명 / 공업,상업의 발달, 도시화 등 이후로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콜렉터 / 화상 / 판매가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이상 교회의 천상에 기대는 것이 아닌 현실에 눈을 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쿠르베는 노인과 아
이 / 노동자에게 관심을 주게 되었다.
11 ) 쿠르베 <미역감은 여인들> 1853 / 앵그르 <샘> 1856
부르주아들은 콜렉터로서 <풍경화>를 선호하게 된다. 19세기 모던 아트에서는 풍경화가 매우 대도하게 되고 이전
가지는 천대받아온 것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여서의 몸이 ‘미’로서 그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쿠르베의 여자누드는 근육질의 후덕한 몸(실제
여인의 몸)을 볼 수 있지만, 오른쪽의 앵그르의 그림은 이상화된 여성의 모습임을 볼 수 있다.
쿠르베는 “화가의 역할은 사회를 해석하고, 사회를 선동하고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 하였다. 모더니즘
시대에 들어가면 화가는 대중을 선동하는 위치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쿠르베가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쿠르베는 “화가는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사회를 그려내야 한다” (묘사를 정확히 하려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관저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그려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 리얼리즘의 시작
1855년 사실주의를 선언할떄, “내 시대의 사회와 풍습을 나 자신의 시선과 관점(견해)로 해석한다!”
앵그르의 그림이 더 늦게 나왔지만 쿠르베의 그림과 달랐던 이유는 이미 나이가 많았고, 나이가 많았을 때 사상과
생각을 바뀌기는 힘들다. 그래서 둘의 그림은 많이 달랐고 이 때는 이미 앵그르의 그림은 없어져야 할 봉건적인 것
으로 남았다.
교회와 황실이 무너지면서 화가는 그림을 팔면서 먹고 살게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화상과 화랑이 생겨났다.
12) 쿠르베 <떡갈나무> 1864
19세기부터는 현대미술이 시작하면서 풍경화가 괴앵장히 중요한 장르로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 그림의 나무
를 보면 현장감이 느껴지는 사실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냥 트로와이용 그림)
16) 트로와 이용 <풍경> 1856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많은 화가들이 사실주의 풍경화를 그린 화가들이 모여 살았었다. 그래
서 이들을 바르비종 화파라고 불렀다. 최초의 하나의 집단적인 사실주의 풍경화가 형성되는 것이 바르비종 화파에
의해서였다.
17 ) 밀레 <이삭줍는 여인들> 1857 / 밀레 <만종>1857-59
하지만 역사화가 바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평범한 생활을 보여주는 장르화. 만종을 보면 하루의 일과를 끝낸 부부
가 기도를 드리고 멀리에는 교회가 보인다. 역사화 종교화 같은게 평범한 장면 속으로 녹아들어 갔다는 것을 밀레
의 그림을 보면 알 수가 있다.
21 ) 모네 <해돋이-인상> 1872. 인상주의의 시작점
22~23) 마네 <풀밭 위의 점심> 1863. / 조르조네 <전원 음악제> 1500
우리는 근대미술의 선구자를 쿠르베가 아닌 ‘마네’로 생각한다. 이전과 다르게 그림에 있는 여자는 ‘실제’인물이다.
그림의 여자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전까지는 비너스, 요정들을 그려왔기 떄문에
실제인물이 아니엇지만, 마네는 회화의 (미학적가치) 형식에 치중하면서도 쿠르베의 의견(사실성)을 따른 것을 볼
수 있다.
근대미술의 본격적인 선구자를 쿠르베라고 생각하진 않고 마네라고 본다. 왜냐하면 낙선자 살롱에서 풀밭 위의 점
심이라는 그림을 전시하며 굉장히 주목을 받게 되었다. 낙선을 한 이유는 저 뒤에 있어야 할 사람이 너무 앞에 있어
서 원근감이 잘 적용되지 않아서 정말 실력없는 작가다 라고 했고 붓터치가 너무 거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 그
림을 보면서근대미술 첫 출발이라고 말하는데 조르조네의 그림을 보면 굉장히 여신처럼 보이지만 마네 그림의 여
자는 실제의 여인을 그린 것이다. 그 동안 누드의 여자는 사람이 아니라 요정이나 비너스 등이다. 하지만 조르조네
의 그림은 비너스나 요정의 누드를 그린 것이고 마네는 실제의 여자를 그렸다. 여자는 그림에서 우리와 눈을 맞추
고 있다. 옷을 벗고 포즈를 취한 여자 사람이다. 옛날에는 모델을 그리면서도 사람이 아니라 요정임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마네는 쿠르베의 영향을 받아 실제 사람을 그려 사실성을 본격적으로 보여주었다. 쿠르베는 정치적인 메시
지를 전달한다면 마네는 회화의 형식, 그리고 미학적 가치에 더 중점을 두게 되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누드를 보
면 왼쪽의 여자는 실제의 사람을 그린 생기가 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렸지만 오른쪽의 앵그르의 샘은 진짜 사람이
아니다.
24 ) 앵그르 <오달리스크> 1819
25) 마네 <올랭피아> 1865
사실성의 대두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두 작가는 동시대에 활동을 했지만 카바렐은 아카데믹한 점에 주력을 했고 마
네는 현대 미술로 나아간다. 그래서 마네는 모더니즘의 창시자라고도 불린다.
창녀를 그려내었다.
26~27) 카바넬 <비너스>1863 / 마네 <올랭피아> 1865 /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 누드(베토벤 프리즈 중앙
의 고르고네스를 위한 습작> 1901-02
3번은 음모를 적나라하게 그려내었고, 2번 올랭피아는 음모를 가리고 있다.
1번 비너스를 보면 올랭피아와 달리 현실의 여자를 그려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드임에도 불구하고 외설이 아닌
예술로 칭해진다. (그림을 보면 음모를 그리지않았는데, 이는 요정이기 떄문이다)
카바렐의 비너스가 가장 아카데믹하고 전통적인 그림이다. 누드를 르네상스 이후로 많이 그렸는데 터키나 프랑스
가 누드화가 발달하게 된다. 영국은 발달되지 않음. 유난히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발달이 되는데 어쨌든, 신
화 속의 요정이나 여신이기 때문에 이 누드화는 현실의 여자가 아니다. 굉장히 에로틱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이지 외
설적이지 않다. 굉장히 감미로운 피부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몸을 관람객에게 맘껏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마네의
올랭피아는 소설 속에 나오는 창녀의 이름이다. 올랭피아라는 이름을 사창가의 여자들이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었
다. 올랭피아는 실제의 여성이고 창녀이다. 얼굴을 빳빳이 들고 관람객과 눈을 마주치고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드
러내고 있다. 그 당시 비평가들은 너무나 불결하다 그래서 관람객들이 마네의 올랭피아를 볼 수가 없다는 말을 했
었다. 그 당시 아프리카 흑인 노예인 손님이 꽃다발을 주는 설정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하나는 요정이고 하나는 사실성을 추구한다는 차이점이 딱 드러난다. (마네와 카바렐의 차이)
클림트는 오스트리아의 작가로 북유럽은 프랑스보다 모던아트가 발달되기까지 몇 10년이 늦다. 여기서 굉장히 중
요한 것은 카바레의 그림에는 음모가 없다. 요정이기 때문이다. 실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올랭
피아는 음모를 손으로 가리고 있다. 하지만 클림트는 여성의 누드에 음모를 그려 넣었다. 이것은 이제 모더니즘 미
술, 사실성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바렐의 비너스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붓 터치를 감추었다. 그리고 물감이 아닌 것 처럼 감추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근대미술에 오게 되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회화의 조건인 평평한 표면 위에 물감과 붓 터
치로 이루어진 그 무엇이 회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더니즘의 미술은 평면성과 물질성을 향해 나아간다.
회화는 회화다워야 하고 조각은 조각다워야 한다는 것! 하지만 옛날에는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 명암법을 발
달시켜 마치 한 건물 안에 있는 듯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1495-97 하지만 이러한 것을 발
달시키면 평면성을 잊게 된다. 르네상스 때는 회화는 자연을 비추고 자연에 부속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모더니즘
미술에 오게 되면 회화는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회화 그 자체의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존재를 보여주려면
회화의 조건을 내보일 수 밖에 없다. 평평한 표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보여준다. 붓질이 드러나고 붓질로 인한 물
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평면성과 물질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원래는 회화의 조건은 열등한 것이어서 감추려고 했지만 근대사회에 오며 자신의 신분에 상관없이 아무리 열등하
다 해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했다. 회화는 이제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라고 생각하며 회화의 조건을 드러
내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바뀜
회화는 그 동안 열등하다고 생각되었던 조건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낸다.
모더니즘 미술은 평면성과 물질성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2차대전 이전까지 그렇게 발전함.
29) 마네 <피리부는 소년> 1866 / 벨라스케스 1624-1633 / 우타마로 <분 바르는 여자>
(피리부는 소년)
주제, 상상력, 독창성도 없다고 비평을 받았었지만 이것이 모더니즘 미술이다. 평면성과 물질성으로 나아가면서 ‘평
평한 캔버스의 표면을 드러내고, 표면이 물감으로 덮힌 그 무엇이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문학적인 이야
기는 다 배제하는 것이 모더니즘 미술이다. 회화는 구성, 조화, 형태, 색체 가 더 중요하게 바뀌었다. 미술을 위한 미
술 회화를 위한 회화로 나아가게 된다. 이제 어떠한 이야기도 집어넣지 않고 이러한 것을 추구하게 된다. 문학, 조
각, 신화로부터 독립되고 회화로서 완전하게 장르의 순수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우타마로, <분 바르는 여자>
일본 목판화가 유럽에 들어오게 되어서 근대미술가들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선만있고 음양이나 명암이
없이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고 색채도 순수하다는 것에 열광했다. 17세기 스페인 바로크 미술에 영향을 받게 되
었다.(벨라스케스 그림이 예가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영향이 있다.
21 ) 모네 <해돋이-인상> 1872 (인상주의 는 나중에 설명하는 바람에 앞번호로 넘어옴)
해가 뜰 때의 인상을 그린 작품이다. 항구에서 해가 뜨는 새벽녘의 인상을 그린 것이다. 너무나 빠르고 즉흥적으로
찰나적으로 그려졌다. 마네가 보여주었던 것은 사실성인데 이제는 사실성의 대두에서 더 나아가서 모네는
눈에 보이는 인상을 포착해서 그렸다.
19세기중반이후에 모네라는 작가는 본질적인 형태나 색채를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바로 그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
려고 한다. 그래서 명암법과 원근법을 버리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회화는 평평한 표면의 거친 붓터치가 보여
지는 평면성과 물질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인상주의라고 한다. 빛을 쫓아 한 순간의 인상을 보여
준다.
31 ) 만테냐-죽은 그리스도 1500 - 원래는 본질적인 형태, 색채를 추구했다면(르네상스)
와세<데셍 아카데미> 18세기 말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나타내어 명암법을 사용했다. 밝은 곳은 흰색을 쓰고 어두운 곳은 검정을 섞어서 3차원의
입체감은 잘 드러나는데 그림이 전반적으로 축축한 갈색톤이다. 하지만 어느 날 작가들은 이러한 짙은 갈색의 그림
에 회의감을 느끼게 되면서 쿠르베 이후로 사실주의 풍경화가 발달되면서 이젤을 들고 밖으로 나가면서 청명한 날
씨를 그리게 된다. 그렇게 색채의 순수함을 담게 되며 명암법은 자연히 버리게 된다.
나다르<초상화>1855
1874 인상파 전시회가 열린 나다르의 사진관
명암법은 버리지만 인상주의부터 냉온대비법을 사용하게 된다. 따뜻하고 차가움을 나타내는 냉온 대비법. 그
런데 사진이 발달 되면서 정교하게 그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고 화가의 눈으로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경험한 것
을 그리는 것이 중요해졌다. 또한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그 화가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빛의 중요성을 인식시키
게 되었다. 사진기의 발명으로 빛의 중요성이 인식되며 정교한 묘사보다는 화가의 경험, 주관성, 인상을 그리는 방
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르누아르-산책 1870
르누아르 - 뮬랭 가레트 1876
르누아르 - 햇빛 속의 토르소 1975
르누아르 - 수욕도 1884-7
(냉온 대비법 - 밝은곳은 분홍으로 그리고, 그림자부분
은 청색으로 표현해 보는 것)
빛을 포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 순간 순간의 빛을 포착하는 것. 그런데 르누아르 작가의 그림도 10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다. 다시 고전적으로 와해가 되었다. 흐뜨러지는 것에 회의를 느끼며 본질적인 질서를 찾아야 한다
고 생각하게 된다. 르누아르는 이탈리아에 가서 앵그르의 그림을 보며 다시 참조를 하게 된다. 그래서 수욕도는 앵
그르를 참조한 그림으로 음영을 보여주면서 빛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견고한 형태 감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80년대로 넘어가게 되면 인상주의는 와해의 움직임을 보이게 되며 다시 구성, 질서, 법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모더니즘 미술 -구성/질서
인상주의로 가면서 평면성과 물질성이 발달하다가 모네 해돋이와 같은 그림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36) 세잔느 <목을 맨 사람의 집> 1874
세잔느는 “모네의 눈은 너무나 훌륭하다. 그러나, 화가는 눈과 두뇌를 가져야 한다.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한 것을
그려야 한다.” 모네가 너무나 인상을 쫓아 그리다 보니 형태가 흐트러지는 결과에 회의를 느낀 사람이 등장하게 되
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세잔느이다. 세잔느뿐만 아니라, 고갱, 반 고흐 등이 있다. 눈에 보이는 인상만을 그리는 것을
반대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것을 후기 인상주의라고 얘기를 한다. 세잔느는 형태의 문제를 다시 생각
하게 되었고 폴 고갱은 색채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반 고흐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주장했다. 공통적으
로는 세잔느, 고갱, 반 고흐 모두 눈으로 보는 그것만이 아니라 내적인 세계를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법은
다 달랐다.(후기 인상주의)
세잔느는 말하였다. “모네의 그림은 훌륭하다. 하지만 너무나 시각을 좇아 그려 형태가 무녀졌다. 화가는 시각과 두
뇌를 모두 사용해야 한다.”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3>
세잔느,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70-71>
마네의 올랭피아와 마네의 그림을 비교
올랭피아는 여자가 고객을 바라보고 있다. 두 그림에서 지금 중요한 것은 올랭피아를 바라보는 관찰자가 나와있다.
그 차이가 크다. 일종의 자화상, 관찰자인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세잔이 보여주는 것은 예술과 개인의 어떠한 욕망
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가가 더 우위에 있다. 19세기는 예술가가 창조가로 엄청 격상이 되게 된다. 세잔의
작품에서는 그림에 화가가 있다. 그렇게 개인의 욕망을 보여준다. 등을 돌리고 있는 이 작가가 있음으로써 우리의
눈이 올랭피아로 금방 가지 않고 관찰자에서 멈춰지게 되고 우리의 눈이 캔버스의 표면에 머무르게 된다. 그 말은
즉, 캔버스의 표면을 드러내면서 더 강조한다는 말이 된다. 세잔같은 화가에 오게 되면서 캔버스의 표면이 세상과
독립된 것이고 표면을 드러내야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며 평면성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특
징이다.
세잔느 <목욕하는 사람> 1885
아돌프 윌리엄 부그로 <여자들> 1884
부그로는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옛 것에 매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워낙 유명했어서 거론이 되지만, 지금은
잘 언급되지 않는 것이다. 왼편의 세잔느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로서 추앙이 되게 된다.
세잔느는 형태를 흐트러뜨리는 것은 반대하며 화면은 구조적인 질서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른
편의 부그로와같은 작품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잔느는 견고함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부그로처
럼은 아니다.
화면을 흐트러뜨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의 정확한 형태를 보여주기 위해 검정색으로 테두리를 땄다.
남자는 밖으로 걸어나오는 듯 하지만 우리와는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눈을 아래로 뜨고 있으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도 않다. 분명히 우리와는 거리가 있다. 뒤에 산이 있고 물이 있는 듯한 배경인데 굉장히 원근법이 이
루어져있지 않아 평면적으로 보인다. 물감과 붓질 그리고 형태의 구조에 굉장히 관심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평면
성을 이룩하면서 사실성을 보여주면서 견고한 형태, 질서를 되찾자는 것을 세잔느는 보여준다.
그리고 세잔느는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원뿔, 원통, 원구의 기하학적 입방체로 구성되어 있다. 라고 주장
했다. 하늘 붓질을 보면 공기의 진동을 보여주려고 했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데 그것을 눈에 보이게 하고 있
다. 부그로의 그림에서는 주인공이 ‘여자들’이고 나머지는 다 배경이지만 세잔느는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밀
도 있는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즉, 배경이 아니라 이 공간도 하나의 형태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늘에 붓
질을 했다. 남자라는 형태가 흐뜨러지면 안되기 때문에 검정 윤곽선을 쓰고 있지만 선이 중간 중간에 끊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세잔느는 공간과 형태는 서로 상호 관계를 이룬다고 말했다. 기하학적인 형태로 견고하게 사람
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도 밀도 있는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공간과 형태는 서로
상화 관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평면성과 물질성을 드러내면서 견고한 내적 질서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세잔느가
이룩한 것은 회화는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세계라는 것을 확고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한
다.(마네는 현대미술의 창시자)
붓질이 마무리를 위해서 굉장히 정교하게 했는데 붓질을 과감히 드러내면서 남자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서로 상호
관계를 이룬다는 것을 말한다.
내적질서의 조화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회화의 법칙이다. 회화는 독자적인 질서를 가진 독립된 세계이
다. 라고 주장한 사람이 세잔느이다.
(캔버스의 독립적인 공간을 주장함)
41)
세잔느<커피포트와 여자> 1890-95
굉장히 중성적이다. 세잔느는 한 여자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회화’를 보여주려고 한다.
회화의 조건을 보여주기 위해 캔버스의 표면에 여성을 일치시켜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다. ‘원뿔
원통 원형의 입방체로 이루어져있다’를 주장하고 회화적인 구조를 보여주려 노력했다.
이것은 고전주의로 환원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유의 형태를 되찾자!!!!!!!
한 개인이 아니라 어떠한 존재를 표현하고자 한다. 모던아트는 환영을 제거하고 하나의 회화 자체를 제시하고자 한
다.
이 그림에서 회화적 조건(특성)이 더욱 잘 보인다. 모던아트의 특징은 환영(일루전)을 없애려고 하였는데, 회화 그
자체를 하나로써 우리에게 제시하려고 하였다.
앵그르 < 드 브로그리 왕자비의 초상> 1853년경
환영 : 거짓된 것이 진짜처럼 보이는 것
근대의 모던아트는 환영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림, 회화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앵그르는 왕자비
를 보여주고 싶어 했고 세잔느는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사각형의 틀, 붓의 터치
등 회화적 조건을 앞세우며 하나의 특성으로 보여주게 된다. (세잔느의 특징)
세잔느 <생 빅토와르 산> 1887
캔버스 안에 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서 캔버스 밖으로 나가지 않기를 원했고 화면 중심을 강조시켰다.(고전주
의의 특징)
원근법이 없지는 않지만 굉장히 압축시켜 보여주었다.
푸생 < 마르스와 비너스 >
푸생은 회화를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 보여주기를 원했고 통일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캔버스 사각형 틀에서 벗어
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 보이며 형태 하나하나가 굉장히 견고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세잔느가 했던 말은...
인상주의는 고유의 색과 형태를 무시하고 빛에 의한 것을 중요시하는데 그 결과 굉장히 형태가 흐트러지니까 눈으
로 보는 것만 쫓지 말고 견고한 본질적인 형태를 찾자고 외쳤다.
-고전주의를 다시 도입하고 싶다!!!!
-나는 푸생을 소생시키고 싶다.
42)
세잔느 <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 1890-92
굉장히 어색함이 없는 완벽한 구도를 사용함. 세잔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기, 공간 또한 하나의 밀도 있는 물질
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눈은 캔버스 표면에 부딪히게 된다. 왜냐하면 벽에 파이프 담배가 있음으로서 배경이 아니라 벽이라는 물질
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우리의 눈은 동시에 캔버스의 표면에 부딪혀 머무르게 된다. 모던아트는 회화의 조건을 나타
내며 어떠한 재현이나 환영은 버린다.
다른그림
화면의 삼각형 구도는 고전주의적인 매우 안정된 구조이다. 여자 누드들이 있다.
나무의 휘어지는 형과 더불어 누드가 맞추어져 있으면서 우리의 눈이 계속 머무르게 된다.
가운데 멀리 있는 사람이 있어서 가운데에서 눈이 부딪히게 되고 평면성을 유지하게 된다. 캔버스의 평평한 표면을
이렇게 강조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워낙 깊이 원근법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 환영이라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모던아
트이다.
43)
세잔느 <수욕도> 1885
하나 하나의 형태가 서로 상호 관계를 이루면서 질서 있게 재구성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잔느는 ‘그림을 그린
다는 것은 맹목적으로 대상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수 많은 관계들의 조화를 포착하고 독창적인 논리로 발전시키
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잔느 < 목욕하는 다섯 사람들 > 1885
기하학적인 구조가 서로의 관계를 맺고, 자기만의 해석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윌리엄 부그로 < 비너스의 탄생 > 1879
환영을 어떻게 잘 할 것인가 어떻게 거짓된 것을 진짜처럼 보여줄 것인가에 굉장히 몰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4)
세잔느 < 붉은 조끼 입은 소년 > 1890-95
캔버스 안에서 어떻게 틀을 맞춰 조화있게 구성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소년의 팔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창적인 논리로서 팔을 길게 하기도 하고 짧게 하기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세잔느가 보여주었고 이것을 형태의 자유성이라고 한다. 닮게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회화의 사각형 안의 세계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구성되는가를 고민했고 형태의 자유성을 강조
45)
세잔느 < 조끼 입은 소년 > 1990-95
앵그르 < 드 브로그리 왕자비의 초상> 1853년 경
세잔느는 대상이 이루고 있는 형태와 형태가 어떻게 관계를 이루며 재구성 되느냐에 관심을 가졌다.
46)
세잔느 <조끼입은 소년 > 1990-95
47)
세잔느 < 과일과 수건과 우유통 > 1879-82
샤르댕, <복숭아의 바구니> 1766년
사실적이지 않은 세잔느의 정물화. 시점이 제대로 맞지 않다. 르네상스 원근법은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지만 세잔
느는 다시점을 도입하게 된다. 다시점을 도입하는 이유는 본질을 파학하기 위함이다. 다시점을 한꺼번에 표현하다
보니 실제 같지 않다. 모든 형태들이 상호관계를 이루며 내적 법칙과 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점을 도
입하면서 세잔느는 하나의 전통이 나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라는 말을 했다. 감각적으로 내적질서를 파악해서 재구
성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눈과 마음은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의 확고성 견고성
을 보여준다.
샤르댕 - 샤르댕의 회화법이 세잔느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세잔느는 정물화에 가장 관심을 가졌다. 객관적으로 사물의 정보를 분석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물화는 관찰
이 중시되기 때문에 좋아했다고 한다.
(관찰이 중시되면서도 형태의 변형도 가능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다. 세잔느의 그림은 원근법이 안맞고 ‘다시점’
을 도입하였다. 이는 본질을 파악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하였다.)
48) 샤르댕 <복숭아의 바구니 > 1766
49)
세잔느 <병과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 1890-94
색채를 조금 달리한다던가 해서 옛날처럼 배경으로 처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형태로 처리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셔 브라운 듀란드 < 타나톱시스의 풍경 >
세잔느 < 쌩 빅투아르 산 > 1886
수직의 큰 소나무가 있어서 원근법이 완전히 없진 않음. 수평의 철교가 있어서 기하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수직
의 확고한 선 때문에 캔버스의 표면이 굉장히 강조되고 있다.
피카소 < 아비뇽의 처녀들 > 1907
세잔느 <수욕도> 1889-90
20세기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 5명 안에 피카소가 포함된다.
공간은 그냥 배경이 아니라 밀도 있는 덩어리이다. 또한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다방
면의 시점이 나타난다. 그런데 피카소의 그림의 가운데 여자의 포즈는 굉장히 고전주의적인 포즈라 고전주의적
인 점을 현대화 시켰다고 할 수 있다. 오른쪽 위에 얼굴은 ‘아프리카 가면’에서 온 얼굴이다. 원래는 백인을 중심으
로 해서 미의 가치가 결정이 되었지만 20세기로 오면서 사람들은 각 인종마다 미의 원칙이 다르다라는 것을 받아
들이게 된다. 절대적으로 백인이 아름답다는 것에서 벗어나 미의 상대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아프리카나 아
시아와의 교역을 통해 타인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알 수 있다. 인물은 기하학으로 분해가 되고 있고 공간도
하나의 형태로서 단면되었고 인간 형상의 이상화라는 원칙은 버려졌다. 굉장히 회화의 논리와 구조적 질서 그리고
미의 상대성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잔느는 형태의 자유성을 먼저 이야기 했고 피카소는 그것을 훨씬 더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죠르조 브라크 < 나무와 다리 > 1908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은 그 자체의 논리, 질서, 그리고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 회화는
그 자체에 대해서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회화는 무엇인가를 재현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회화 그 자체를
보여주고자 한다.
높이의 원근법 : 화면의 구조적인 질서와 밀도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당연히 환영적인 깊이감이 제거가 되어 회화는 평면적으로 된다. 또한 높이의 원근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시점을
한 화면에 표현하는 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에셔 브라운 듀란드 <친밀한 영혼들 > 1849
굉장히 깊이감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브라크 < 레스타크의 집 > 1908
높이의 원근법이 드러나는 그림이다. 화면은 훨씬 더 물질화되고 평면성으로 발전한다.
눈이 하나하나의 단계를 거치는 것 처럼 보인다고 해서 파사쥬라고 부른다.
촉각적이라는 단어도 쓴다.
피카소 < 칸 바일러의 초상 > 1910년
공간도 밀도있는 덩어리로 구성된 형태이고 형태도 기하학적인 입방체로 이루어져있다.
다시점이 보인다.
사물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
정면으로 본 그대로가 아니라 있는 존재로서의 여러 가지 모습을 그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
우리는 이러한 작품을 입체주의(큐비즘)라고 한다.
큐비즘은 1908-1914년 초까지 활발하게 전개가 된다.(1차대전 발발 전까지)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발하게...
입체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는 (피카소, 브라크)
->
(참고자료 - 카드놀이 하는 군인들 / 카라바조 도박꾼들)
페르낭 레제, <카드놀이 하는 사람> - 입체주의 작가임
세잔느의 그림에서 발전되어 아예 재구성, 재배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라바조 <The Cardsharp > 1596
세잔느 <카드놀이하는 사람>
인생의 허무함이 드러난다. 자신의 회화적 개념은 다 드러난다.
고갱 < 하얀 말 > 1989
고갱 < 신의 날 > 1894
분홍, 하늘색, 파란색 색채 그 자체의 존재를 보여주려고 했다.
색채와 색채의 구성과 조화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지 재현을 위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색채
의 자율성이라고 이야기하며 고갱은 친구에게 이러한 말을 했다. “자연에 매달리지 마라. 미술은 추상이다.” 이 점
에서 벌써 고갱은 추상미술이 발생되기 이전부터 추상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을
보고 명상하고 그 명상을 통해 예술을 끌어내어야 한다. 재현과 묘사에 너무 신경쓰지 마라는 말이다.
물론 인상주의 작가들이 대게 빛을 쫓았다면 세잔느, 고갱, 반 고흐와 같은 작가들은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
고 이들을 후기 인상주의자라고 부른다.
후기 인상주의자 - 세잔느, 고갱, 반 고흐
입체주의 - 브라크, 피카소
고갱 <설교 후의 환영 -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 1888
고갱의 초기 작품 중 가장 대표되는 작품이다. 실제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결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쿠르베
는 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겠다.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라며 사실성의 대두를 펼치며 모던아트가 시작
되었었다. 쿠르베의 리얼리즘 다음에 인상주의가 나오며 눈에 보이는 세계를 쫓았었다. 그러면서 후기 인상주의자
들은 내면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고갱은 조금 더 감성적, 원시적,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갱이 마치 옛날처럼 성경이나 문학의 이야기 전달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민속, 원시 미술에서 영감을 찾고 신비스러운 관념의 세계를 파헤치는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자들이 뒷모습으로서 싸움을 보고 있기 때문에 관객의 위치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우리의 눈이 저절로
싸움쪽으로 눈이 가게 된다. 암소는 재물이다. 나무는 선악과 나무이고 빨간색으로 인해 우리가 마치 상상의 세계
에 동화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굉장히 색면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
1. 실제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결합
2. 붓터치가 거의 안보이며 색면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3. 종합주의를 주장 후 확립하게 된다.
종합주의란 화가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종합한다. 상상이든 실제이든 모든 것을 종합해서 나타낸다는
것이다. 또한 대상을 단순화시켜 그 본질과 내용을 드러내는 것을 종합주의라고 한다.
고갱 < 자화상 > 1889
굉장히 평면적으로 색면이 강조 되고 있다. 색채의 강렬한 물질성
뱀의 유혹에 빠져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는 것을 담고 있으며 신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을 담고 있다.
일종의 창조자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 모더니즘의 미술이다. 마치 창조라는 것은 우리의 전능하신 주님이 하신 것
처럼 우리는 그와 같이 신의 태도에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속성과 신의 속성을 가진 사람이 바로 예술가다.라는 것을 고갱이 드러내고 있다.
미술작품은 창조다 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모더니즘의 사고이고 예술가의 지위가 높아지게됨.
고갱 <게세마니 동산의 그리스도> 1889
굉장히 불안해 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보인다. (얼굴)
고갱이 성경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그리스도를 사용해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이야기 하
고 있는 것이다. 여기 그리스도의 얼굴은 자신의 자화상이다.
물질적인 고통을 겪게 되고 처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과 중간에 반 고흐를 만나서 같이 살게 되는데 그 때 반 고흐
를 버리고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반 고흐가 가지 마라고 매달리다 반 고흐가 귀를 자르는 정신병에 걸리게 된다. 이
때 우리도 마찬가지겠지만 굉장히 사람들이 고갱을 비난했다. 반고흐와의 사건을 통해 죄책감을 나타내기도한다.
색채의 자율성이라는 점에서 머리가 빨간색인데 만약에 머리가 갈색이었다면 이 화면에서 너무 포인트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의 머리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빨간색이 이 그림에서 필요했기 때문에 쓴 것이다. 형식주의적이
라고 볼 수 있고 단지 마냥 형식만을 생각해서 빨간색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성경에서 보면 유다가 병
사를 데리고 그리스도를 잡으려고 하니까 그리스도의 제자가 왜 우리의 스승을 잡으려 하는가 하면서 귀를 자른다
고 한다. 그래서 저 붉은 것이 반 고흐가 귀를 잘라 나온 피라고 볼 수도 있고 성경에서 보면 귀를 자른 사람들이 그
리스도의 제자로 보면 본인을 변명하고 싶은 심정에서 그린 그림이라고도 알려지고 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
다’
1. 색채의 자율성
2.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들이 담겨있다.
3. 고갱을 상징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4. 그림 안에는 여러 가지 감정과 관념 그리고 어떤 신비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 그림이다.
세잔느 - 내적 질서, 내적 법칙, 형태의 자율성
폴 고갱 - 우리 내면에 가득히 있는 상상의 세계, 색채의 자율성, 감정적
눈으로 보여 지는 세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화가는 눈으로 보이는 세계이든 안 보이는 세계이든 어떠한
주제든 다룰 수 있다. 어떠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후기 인
상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반 고흐 < 감자 먹는 사람들 > 1885
격렬한 자신의 감정을 굉장히 솔직하게 표현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초기 작품으로 가장 대표되는 작품이다.
아버지는 목사 숙부는 화상이었음. 처음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목사가 되려고 신학 대학에 지원을 했지만 떨어
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유명한 목사의 아들이니까 교단에서 전도사로 보내주게 된다. 그 곳에 막상 가보니 너
무나 가난한 현실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고갱과는 다르게 열정적이고 정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고 수다쟁이었다.
그래서 여기 가서 보니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죄책감이 들어 이 사람들과 똑같이 거적을 덮고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살며 그렇게 살다보니 교단에서 파멸을 시킨다. 그렇게 반 고흐들은 성직자들을 보며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밤에 산책을 하다가 허름한 판잣집에서 식사하는 장면을 보았다. 오직 차와 감자만으로 식사를 하고 이것을 노동자
들의 성찬이라고 한다. 굉장히 종교 의식과 같은 엄숙함과 경건하을 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처럼 반 고흐는 자신
이 느꼈던 그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반고흐는 나중에 정신병이 들게 되고 붓 터치가 굉장히 격렬
해지면서 순수한 색채를 보였던 것과는 다른다. 원래는 밀레의 영향을 받아 굉장히 어두운 그림임을 알 수 있다.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사이프러스 나무와 교회 첨탑의 수직이 너무나 대비를 잘 이루고 있고 산의 능선의 수평성과 행성의 움직임을 나타
낸 역동적인 선들이 너무나도 대비를 잘 이루고 있다. 나무의 색채와 밝은 초승달의 색채 또한 굉장히 조화롭게 이
루어져있기 때문에 반 고흐의 그림이 정신병자의 그림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다.
마티스 < 스튜디오의 누드 > 1899
윌리엄 - 아돌프 부그로 , <수욕도 < 1884
마르케 < 야수로 불리워지는 누드 > 1899
마티스와 마르케는 친구이다. 둘 다 파리 국립 미술학교 동기생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가장 최초의 미술운동은
야수주의이다. 이 운동을 이끈 사람이 마티스이다. 역시 마르케도 동참을 하긴 했지만 마티스가 가장 대표저인 사
람이다.
격렬한 붓터치와 강렬한 색채가 눈에 띈다.
평면성과 원색을 강조한다.
마티스는 학교에 들어가서 모로라는 선생을 만나게 되는데 이 선생은 미술 교육의 가장 전형적인 우수한 선생으로
거론이 되고 있는데 학생의 개성을 많이 존중했다고 한다. 마티스에게 모로 선생이 한 말은 자신을 표현하라. 외적
으로 보이는 것을 묘사하려고 하지말고 너 자신을 표현하라 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후기 인상주의
를 거치면서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으로 주제가 굉장히 바뀌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상주의와는 좀 다르지만 인상주의는 엄청 빛을 쫓아 그리지만 주관성을 강조한다. 그 다음 등장하는 후기 인상주
의는 주관성을 더욱 발전시키게 되고 여기서 더 나아가 20세기에는 너 자신을 표현하라.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추상미술이 나오게 된다.
마티스 < 드랭의 초상화 > 1905
냉온대비법이 드러난다. 인상주의자들이 냉온대비법을 먼저 시작했었다.
밝은 곳을 따뜻한 색 어두운 색을 차가운 색으로 하여 굉장히 순수한 색채를 보여준다. 그리고 평면성으로 나아가
는 것을 보여준다.
훨씬 주관성이 분명해지고 대상을 묘사하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놀데 < 열광자 > 1919
놀데 < 황금 송아지 앞에서의 춤 > 1910
굉장히 원시적인 색채와 표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왼쪽 작품명은 모르겠음
드가 <다림질 > 1884
둘 다 다림질이라는 주제는 같다.
드가의 작품은 풍속화적인 느낌을 준다. 생활을 한 면을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왼편은 암울하고 피폐한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색채 역시 굉장히 암울하고 우울하다. 피카소의 작품이라고
한다.
오른쪽은 인상주의였던 드가의 그림이다. 신분의 하층계급의 여자들이 신분 상승을 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기도
한다.
뭉크 < 골고다 > 1900
뭉크 < 병든 아이 >
현대미술과 일본미술과의 만남 _ 3월 29일에 이어서 수업중
서양미술사에 있어서 근대 미술이 형성되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를 한 것이 일본미술이다.
Monet < La japonaise > 1876
일본 기노모를 입고 있지만 얼굴은 일본 여자가 아니다. 모네의 아내였던 까미유라는 여자이다. 이 여자를 모델로
그린 것이다. 일본과 서양의 완벽한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뒤에 부채같은 것도 얼마나 일본을 모네가 탐닉하고 있
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 보다시피 인상주의에 오게 되면서 얼마나 사람들이 일본미술에 심취하게 된 지 알 수 있
다. 유독 일본미술에 관심가진 사람들은 인상주의, 반고흐, 고갱, 세잔느 등 후기 인상주의 작가들이 아방가르드 작
가들이라고도 부른다. 전위적인 진보주의자들이 일본 미술을 받아들였다. 유독 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일본 목판화였다.
1888년 잡지 <일본예술>의 첫 호 서문에서 사무엘 빙이라는 화상은
“일본미술은 영원히 우리의 것과 하나가 된다. 이것은 우리의 피와 혼합된 핏방울과 같다. 이것은 다시 분리시킬 수
있는 힘은 지구상에 없다.”라고 했다.
Japonisme(자뽀니즘) - 일본 미술에 받은 영감을 조형미술에 다양하게 응용하여 새로운 독창적인 표현양식을 만
들어내는 것
판화가인 브라크 몽(Felix Henri Bracquemond, 1833~1914) - 1856년 호쿠사이 <망가>-(망가는 만화이다) 발견
일본 미술을 대중화시킨 사람은 화상이고 일본 연구 학자들이다.
항상 서양에서는 인간을 미의 전형으로서 보여주었었지만 일본의 망가에서는 사람의 일상 생활을 보여준다는 것
을 보고 굉장히 많은 감동을 받게 된다. 그래서 호쿠사이는 작가 목록에도 있지만 근 90에 가깝게 살았던 사람인데
유독 프랑스 파리에서만 높이 평가를 받았다.
왜 프랑스 사람들이 유독 일본 목판화에 (일본 미술 전체가 아니다.) 열광을 했는지 알아보자. 자뽀니즘 현상이 일
어나는데 인상주의에서 열광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씨름 장면,
호쿠사이, <후지산 36경 > 19세기 초
일상 생활의 장면들을 포착해서 그린게 우끼오?라고 부른다. 이것은 일본에서도 서민 용의 그림이었다. 역사와 종
교와 훌륭한 사람들만 그려온 프랑스사람들이 볼 때는 마치 낮은 자들을 위한 그림이라 생각이 되었고 프랑스 대
혁명 이후 자유, 평등을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뒤로 인상주의자들도 부르주아들의 일상 생활을 그리게 되었다.
르네상스 이후로 풍경화는 가장 낮은 장르였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 풍경화가 다시 위상이 높아지는데 그 때 일본 목판화를 보고 굉장히 감명을 받게 된다. 풍경
화가 회화에서 크게 급 부상 하게 되는데에 있어서 우끼오에의 영향이 매우 컸다고 한다.
Manet < Le Chemin de fe [The Railroad ], 1873
공간분할과 평면성을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창살의 기학학적인 모양과 엄격한 구조를 마네는 근대 사회의 냉정함이라 던지 도시화와 산업화의 분위기와 연결
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유보트 <발코니> 1880, 마네 < 발코니 > 1869
이 작가는 굉장히 부자였고 인상주의의다. 목록 4번에있는 작가이다. 마네의 ‘발코니’ 작품을 3000프랑을 주고 샀
고 근대화가들과 어울려 작품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 사람이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 마네였고 일본 목판화를 많이
수집했다.
이 작가는 발코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데, 카유보트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산업화가 된 배
경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산업화에 대한 경이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뒷모습으로 먼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카유
보트가 굉장히 좋아했던 일본 목판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 전체적으로 일본의 영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카
유보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일본의 목판화이다.
일본 목판화가 들어와서 동서미술이 어떻게 교류되는 가에 대해 배우는데 한 편에서 프랑스의 진보주의자들이 일
본 목판화를 받아들이는거지 프랑스가 일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17세기에 이미 일본에 원근법과 명암법
을 가르쳐줘서 목판화가 만들어지게 되었지만 19세기에는 오히려 일본 사람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목판화는 모더니티의 상징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른쪽의 후지산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고 카유보트는 근대화에 대한 경의를 표하
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에 이미 뒷모습이 나온 그림은 많아 꼭 일본 목판화만의 영향은 아닐 수도 있지만,
프리드리히의 작품을 보면 자연에 대한 숭고함을 보여주고 Callebotte의 작품을 보면 근대화에 대한 숭고를 보여
준다.
전적으로 일본 목판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다.
Callebote, Le Pont de I'Europe, 1876
Utagawa Hitoshige, Cotton goods lane, Odima-cho, 1958
일본 사람들이 르네상스 사람들의 원근감을 받아들이고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꾸로 서양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 너무나 역동적이라 생각을 하며 근대성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시각적 조형성
으로 표현하자고 느꼈다고 할 수 있다.
우끼오에의 사선의 원리는 근대성과 결합될 수 있는 시각 조형 예술로 받아들여졌다.
굉장히 동적인 느낌을 준다.
호쿠사이, <후지산 36경 > 19세기 초
낮은 자들의 혁명이라 생각했고, 일본을 만인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그 당시에 프랑스 사
람들이 열렬히 추구하던 이상적인 이념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에 어우러져 평화롭게 산다고 생각했고 일본
우끼오에가 들어오며 공예품들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유럽에서는 공예를 굉장히 무시했었고 회화에서도 풍경화는
굉장히 무시했었는데, 한 마디로 계급을 두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풍경 속에서 사람들이 함께 사는 모습을
보며 프랑스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르네상스 이후로 회화, 조각, 건축은 인문학이었다. 그 방면에 공예는 굉
장히 장인의 것이라고 생각을 해 왔다. 그래서 몇 백년동안 그것이 전해져 내려왔는데 프랑스 대혁명 뒤에 일본에
서 들어온 공예와 회화를 보며 계급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근대미술가들은 거의 공화주의자들이었
기 때문에 일본 목판화에 굉장히 열광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보수주의자들이나 왕정주의자들은 전혀 좋아하지
도 않았다. 프랑스에서 근대미술을 이끈 사람들은 공화주의자, 진보주의자들이었고 그들의 눈에는 일본 목판화는
만인이 평등한 사회로 보여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순수하게 보면 명암법 등을 몰라도 그림이 완성되고 순수한
색채와 평면성 왜곡된 원근법을 자신의 조형 원리로 하나의 근대적인 조형성 즉, 근대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Karsushika Hokusal, The Great Wave, In the hollow of a wave off the coast at kanagawa[Kanagawa ok]
naml 아 그냥 이러한 작품... 파도치는..
비대칭의 리듬이라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대칭이 아닌 비대칭이었을 때 더욱 더 자유로운 효과를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프랑스 사람들은 이러한 일본 목판화를 보고 자유와 동일시 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본 목판화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하나의 지역성을 보편성으로 전환시키는 아이디어를 서양사람들에게 주었
다.
비대칭성과 비규칙성을 프랑스사람들은 발견했고 자유와 평등의 개념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대칭성
과 비규칙성은 자유를 느끼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보편성으로 승화시키며 평등의 개념을 끌어 내었다.
도미에 < 삼등 열차 > 1862-1864
사회적 사실주의
19세기의 파리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났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관습이나 제도가 공격을 받게 된다. 1789
년 7월 14일 프랑스 대혁명에서 왕권이 신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선포된다.
성직자가 신의 대리자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봉사자의 개념으로 바뀌게 된다.
계속 혁명이 일어나던 차에 우끼오에가 전해졌다. 진보주의자들은 낮은 자들의 혁명으로 받아들이며 굉장히 좋아
했다.
히로시계 <에도 100경 > 중 <아타케대교의 소나기 > 1857
사람들은 마치 우끼오에의 그림을 도미에의 삼등 열차같은 그림과 같이 느꼈다.
3월 31일 목요일 현대미술의 이해
굉장히 모방적인 자연의 리얼리즘을 보여주려고 했던 반면에 근대미술은 실제로 눈에 본 세계를 탐구하며 작가의
주관성이 들어가게 됨.
일본미술과의 관계에서 왜 일본 미술을 하는가 하면, 근대미술이 탄생되는 데 있어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고 근대미술이 탄생된 것은 아니고, 서양사람들이 생각했던 방향 즉, 근대미술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방향이 일본의 미술과 같아 굉장히 열광했다. 근대미술의 개척자들이 일본 판화에서 발견한 것은
1. 시점의 자유로움 - 르네상스 원근감, 공간감에서 벗어나
2. 평면성 - 순수한 강렬한 (밝고 화사한)색채를 추구, 일본 목판화에서 굉장히 자극을 받음, 햇빛이 가득한 천국과
같은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했음
3. 일본 미술에서 볼 수 있는 모티브의 다양성 - 전통적으로 서양은 종교화, 전쟁, 초상화 등에서 국한이 되었었지
만 서민들의 생활상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일본 목판화를 보고 굉장히 감동을 받게 되었다.
4. 불규칙성을 통한 자유로운 리듬 -
5. 모방의 리얼리즘을 초월 - 굉장히 자유롭다고 생각했음
6. 일본 목판화 = 자유의 상징, 인상이라고 생각함
드가, <국화 옆에 앉은 여인>, 1865
주인공 여자가 잘려 있다.
드가 , <파리 오페라의 오케스트라 > 1868-69
히로시게, 하네다의 페리선 1856
재미있는 구도를 볼 수 있다. 사람과 자연이 굉장히 대등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자연이 굉장히 부각되는 것이 근대 사회의 특징인데 일본 목판화는 인간이 더 우월하지도 않고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드가 < 욕조 > 1886
일본 목판화의 영향을 받아 완전히 새롭게 독창적으로 변환시켜 ‘자포니즘’이 드러난 그림이다.
일본의 망가-드로잉 화첩
모네 < 세느 강 기슭 >모네 < 포플러 >
연작이 인상주의 전에는 없었는데 연작이라는 개념을 일본 목판화에서 얻었다.
하나의 테마로 100개를 그린다던가 그런 개념을 얻어옴.
19세기에 이어서 브루주아와 화상이 늘어나면서 A라는 사람이 포플러를 구입하는데 다른 사람이 화상에서 나도
포플러를 하나 사고 싶다라고 해서 연작을 자꾸자꾸 하게 되는 것이다.
모네 <건초더미 : 눈의 느낌, 아침 > 1891
모네 , <건초더미, 눈의 smRLa, 흐린날 > 1891
연작이라는 자체가 그림을 팔기위함이라는 것은 틀림없고 그 아이디어는 일본의 목판화에서 얻었다는 점이 중요
하다.
피사로 < 풍경 > 1864
평원의 나열식의 구도를 사용함
세잔느 < La maison 여 pendu, 1874 >
화면에 있어서의 견고한 구도를 중요시 여겼다. 구도와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 세상에 모든 사물은 기하학적
입방체로 존재한다고 했다. 세잔느는 풍경 그림과 같은 나열식 병열식의 그림에서 화면에 어떠한 질서와 구도를 많
이 생각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잔느 <목을 멘 사람의 집>
히로시게, 1834-42
세잔느의 작품이 히로시게그림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 목판화의 영향을 받음.
1970년대만 해도 세잔느는 일본 목판화를 유일하게 경멸했다고 알려지고 잇었는데 지금 보면 영향을 받았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세잔느 < 겨울의 자 드 부팡의 밤나무 < 1883-86 >
이것은 연작인데 이것도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기하학적이고 rs고한 형태감각을 보여주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한다.
세잔느는 자연을 회화의 법칙으로 탐구한 사람인데 그 반면에 호쿠사이는 굉장히 자유롭고 낭만적인 느낌을 준다.
세잔느 , 쌩 빅투아르 산
에셔 브라운듀란드 < 타나톱시스의 풍경 1850 >
세잔느, 쌩 빅투아르 산
나무의 수직과 철교의 수평이 만나 굉장히 기하학적이고 평면적인 느낌을 준다. 최대한 환영을 없애려는 느낌을 준
다. 그런데 여기서도 일본 목판화의 아이디어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사학자들의 견해
요아킴 가스케 - 세잔느 전기의 저술가
세잔느는 에드몽 드 콩쿠르의 호쿠사이와 우타마르에 관한 책을 읽었다.
고갱 < 설교 후의 환영 -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 1888
평면성, 강렬한 색채 - 일본 목판화의 영향
고갱 < 자화상 >
반 고흐 <페르 탕기 1887 >
배경에 기모노 입은 여자가 있음
반 고흐 <이탈리아 여자 > 1887
반 고흐 <랑글르와 다리> 1888
일본작품임 <일본식 다리 < 1840
반 고흐 < 풍경 >
일본 목판화
호쿠사이 < 후지산 36경 중 하나 >
반 고흐 <씨뿌리는 사람 <
호쿠사이 / 반 고흐 / 고갱 / 모네
일본미술에서 받은 영감을 굉장히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자포니즘 작품들
블림트도 영향을 받음
클라인 < 형상 8>
클라인 < 뉴욕 < 1953>
근대로 들어오면서 서양미술은 르네상스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며 그 대안을 통한 동양 미술에서 찾음. 19세기에 들
어서 모더니즘 미술의 방향 : 자연에서 벗어나 독립된 길을 걸어가려함.
필기
필기

More Related Content

Similar to 필기

213140037-김지은_수시과제
213140037-김지은_수시과제213140037-김지은_수시과제
213140037-김지은_수시과제zldnlwldms
 
컬처워크 북촌 코스 (7월 31일 ~ 8월 17일)
컬처워크 북촌 코스 (7월 31일 ~ 8월 17일)컬처워크 북촌 코스 (7월 31일 ~ 8월 17일)
컬처워크 북촌 코스 (7월 31일 ~ 8월 17일)sun_nysideup
 
1675686 색채학 최종보고서
1675686 색채학 최종보고서1675686 색채학 최종보고서
1675686 색채학 최종보고서Eunyoung Choi
 
사진의 역사
사진의 역사사진의 역사
사진의 역사mickieee
 
미술마케팅
미술마케팅미술마케팅
미술마케팅jasonyoudj
 
Typography 1510598 박수진 (1)
Typography 1510598 박수진 (1)Typography 1510598 박수진 (1)
Typography 1510598 박수진 (1)sujin park
 
세바시 15분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 샤넬과 유니클로, 패션의 두 가지 얼굴
세바시 15분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 샤넬과 유니클로, 패션의 두 가지 얼굴세바시 15분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 샤넬과 유니클로, 패션의 두 가지 얼굴
세바시 15분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 샤넬과 유니클로, 패션의 두 가지 얼굴cbs15min
 
미술사 보조교재(고대미술) 위키북
미술사 보조교재(고대미술) 위키북미술사 보조교재(고대미술) 위키북
미술사 보조교재(고대미술) 위키북Isaac Sinn
 
문예사_학기과제_20220856 김지민.docx
문예사_학기과제_20220856 김지민.docx문예사_학기과제_20220856 김지민.docx
문예사_학기과제_20220856 김지민.docxssuser002ee8
 
1675686 최은영 색채학
1675686 최은영 색채학1675686 최은영 색채학
1675686 최은영 색채학Eunyoung Choi
 
동네책장 12월
동네책장 12월동네책장 12월
동네책장 12월Kyung Mi Kim
 
조수연 포스트모더니즘 PPT
조수연 포스트모더니즘 PPT조수연 포스트모더니즘 PPT
조수연 포스트모더니즘 PPTCho Soo yeon
 
Portfolio_Yeonsin Kim
Portfolio_Yeonsin KimPortfolio_Yeonsin Kim
Portfolio_Yeonsin KimYeonsin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4기_면벽수행_탐방 보고서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4기_면벽수행_탐방 보고서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4기_면벽수행_탐방 보고서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4기_면벽수행_탐방 보고서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재벌의 외도-대형미술관들의 설립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재벌의 외도-대형미술관들의 설립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재벌의 외도-대형미술관들의 설립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재벌의 외도-대형미술관들의 설립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DigifunArt
 

Similar to 필기 (16)

213140037-김지은_수시과제
213140037-김지은_수시과제213140037-김지은_수시과제
213140037-김지은_수시과제
 
컬처워크 북촌 코스 (7월 31일 ~ 8월 17일)
컬처워크 북촌 코스 (7월 31일 ~ 8월 17일)컬처워크 북촌 코스 (7월 31일 ~ 8월 17일)
컬처워크 북촌 코스 (7월 31일 ~ 8월 17일)
 
1675686 색채학 최종보고서
1675686 색채학 최종보고서1675686 색채학 최종보고서
1675686 색채학 최종보고서
 
사진의 역사
사진의 역사사진의 역사
사진의 역사
 
미술마케팅
미술마케팅미술마케팅
미술마케팅
 
Typography 1510598 박수진 (1)
Typography 1510598 박수진 (1)Typography 1510598 박수진 (1)
Typography 1510598 박수진 (1)
 
바로크 ppt
바로크 ppt바로크 ppt
바로크 ppt
 
세바시 15분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 샤넬과 유니클로, 패션의 두 가지 얼굴
세바시 15분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 샤넬과 유니클로, 패션의 두 가지 얼굴세바시 15분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 샤넬과 유니클로, 패션의 두 가지 얼굴
세바시 15분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 샤넬과 유니클로, 패션의 두 가지 얼굴
 
미술사 보조교재(고대미술) 위키북
미술사 보조교재(고대미술) 위키북미술사 보조교재(고대미술) 위키북
미술사 보조교재(고대미술) 위키북
 
문예사_학기과제_20220856 김지민.docx
문예사_학기과제_20220856 김지민.docx문예사_학기과제_20220856 김지민.docx
문예사_학기과제_20220856 김지민.docx
 
1675686 최은영 색채학
1675686 최은영 색채학1675686 최은영 색채학
1675686 최은영 색채학
 
동네책장 12월
동네책장 12월동네책장 12월
동네책장 12월
 
조수연 포스트모더니즘 PPT
조수연 포스트모더니즘 PPT조수연 포스트모더니즘 PPT
조수연 포스트모더니즘 PPT
 
Portfolio_Yeonsin Kim
Portfolio_Yeonsin KimPortfolio_Yeonsin Kim
Portfolio_Yeonsin Kim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4기_면벽수행_탐방 보고서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4기_면벽수행_탐방 보고서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4기_면벽수행_탐방 보고서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4기_면벽수행_탐방 보고서
 
재벌의 외도-대형미술관들의 설립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재벌의 외도-대형미술관들의 설립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재벌의 외도-대형미술관들의 설립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재벌의 외도-대형미술관들의 설립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More from 보미 김

이별 그 후 중간 최종
이별 그 후 중간 최종이별 그 후 중간 최종
이별 그 후 중간 최종보미 김
 
4.18 :최종 7,8,9단원
4.18 :최종 7,8,9단원4.18 :최종 7,8,9단원
4.18 :최종 7,8,9단원보미 김
 
4.18 :최종 수정
4.18 :최종 수정4.18 :최종 수정
4.18 :최종 수정보미 김
 
1510808 김보미
1510808 김보미1510808 김보미
1510808 김보미보미 김
 
묻지마 범죄팀
묻지마 범죄팀묻지마 범죄팀
묻지마 범죄팀보미 김
 
1510808 김보미 주제발표
1510808 김보미 주제발표1510808 김보미 주제발표
1510808 김보미 주제발표보미 김
 
아이컬러 카드뉴스 수정본
아이컬러 카드뉴스 수정본아이컬러 카드뉴스 수정본
아이컬러 카드뉴스 수정본보미 김
 
1510808 김보미 색채학
1510808 김보미 색채학1510808 김보미 색채학
1510808 김보미 색채학보미 김
 
EYE COLOR INFOGRAPHY
EYE COLOR INFOGRAPHYEYE COLOR INFOGRAPHY
EYE COLOR INFOGRAPHY보미 김
 
김유정, 김보미 아이컬러
김유정, 김보미 아이컬러김유정, 김보미 아이컬러
김유정, 김보미 아이컬러보미 김
 
아이컬러 Ppt
아이컬러 Ppt아이컬러 Ppt
아이컬러 Ppt보미 김
 
1510808 김보미 색채 보고서
1510808 김보미 색채 보고서1510808 김보미 색채 보고서
1510808 김보미 색채 보고서보미 김
 
1510808 김보미
1510808 김보미1510808 김보미
1510808 김보미보미 김
 
아이컬러 김보미, 김유정
아이컬러   김보미, 김유정아이컬러   김보미, 김유정
아이컬러 김보미, 김유정보미 김
 
1510808 김보미 주제
1510808 김보미 주제1510808 김보미 주제
1510808 김보미 주제보미 김
 
1510808 김보미. pdf
1510808 김보미. pdf1510808 김보미. pdf
1510808 김보미. pdf보미 김
 
실험용
실험용실험용
실험용보미 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보미 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보미 김
 

More from 보미 김 (20)

이별 그 후 중간 최종
이별 그 후 중간 최종이별 그 후 중간 최종
이별 그 후 중간 최종
 
0423 final2
0423 final2 0423 final2
0423 final2
 
4.18 :최종 7,8,9단원
4.18 :최종 7,8,9단원4.18 :최종 7,8,9단원
4.18 :최종 7,8,9단원
 
4.18 :최종 수정
4.18 :최종 수정4.18 :최종 수정
4.18 :최종 수정
 
1510808 김보미
1510808 김보미1510808 김보미
1510808 김보미
 
묻지마 범죄팀
묻지마 범죄팀묻지마 범죄팀
묻지마 범죄팀
 
1510808 김보미 주제발표
1510808 김보미 주제발표1510808 김보미 주제발표
1510808 김보미 주제발표
 
아이컬러 카드뉴스 수정본
아이컬러 카드뉴스 수정본아이컬러 카드뉴스 수정본
아이컬러 카드뉴스 수정본
 
1510808 김보미 색채학
1510808 김보미 색채학1510808 김보미 색채학
1510808 김보미 색채학
 
EYE COLOR INFOGRAPHY
EYE COLOR INFOGRAPHYEYE COLOR INFOGRAPHY
EYE COLOR INFOGRAPHY
 
김유정, 김보미 아이컬러
김유정, 김보미 아이컬러김유정, 김보미 아이컬러
김유정, 김보미 아이컬러
 
아이컬러 Ppt
아이컬러 Ppt아이컬러 Ppt
아이컬러 Ppt
 
1510808 김보미 색채 보고서
1510808 김보미 색채 보고서1510808 김보미 색채 보고서
1510808 김보미 색채 보고서
 
1510808 김보미
1510808 김보미1510808 김보미
1510808 김보미
 
아이컬러 김보미, 김유정
아이컬러   김보미, 김유정아이컬러   김보미, 김유정
아이컬러 김보미, 김유정
 
1510808 김보미 주제
1510808 김보미 주제1510808 김보미 주제
1510808 김보미 주제
 
1510808 김보미. pdf
1510808 김보미. pdf1510808 김보미. pdf
1510808 김보미. pdf
 
실험용
실험용실험용
실험용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필기

  • 1. 현대미술의 시작 - 사실성의 대두 1) 얀 반 에이크 (1390 - 1441) <수태고지> 1435, 캔버스에 37x93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15세기의 작품 서양 미술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우리는 흔히 고대 이집트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닌 고고학에서 파생된 것이 미술사인 것을 알 수 있다. 본격 적으로 ‘미술사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이다. 얀 반 에이크의 그림을 보면 르네상스의 그림임을 볼 수 있다. 서양미술은 동양권과는 다르게 건축이 미술사에서 정말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서양 미술의 출발은 기독교에서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교리만 전한다고 좋 은 것은 아니다. 그것에 더해 미적 가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 그림을 보면 건축의 투시법이 훌륭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백합은 마리아의 순결을 나타내고, 창을 통해 비 둘기가 내려오는 모습은 성모 마리아에게 잉태를 예언하러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창은 꺠지지않았는데, 이 는 마리아가 순결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임을 알 수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성서 등) 미술사는 발전함을 알 수 있다. 2) 조토(1266/7 - 1337) <성탄> 1305
  • 2. 3) 비잔틴 미술 - 회화 / 조토 <Nativity> 1305. Giotto 앉아서 졸고 있는 사람은 요셉이다 아이의 탄생과 요셉은 상관이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마굿간, 소,말, 양 등 모 두 성경에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는 현명함을 나타내 아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이나 사물에 상징을 부여하는 것은 시대마다 비슷하다. 중세시대에는 원래 하늘을 노랗게 그렸지만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교토(Giotto)가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파란색으로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이는 르네상스 시기 부터인것으로 볼 수 있다. 르네상스때부터 인간중심사상이 적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토(Giotto)는 인물을 뒤에서 본 시각으로 그린 최초의 화가이다. 삼차원 화면의 구성을 시도함. (뒤로 서 있는 사 람을 그렸기 떄문에) 서양미술은 원근법에 충실하게 자연을 묘사하는 것에 사실적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았고 목자가 천사를 바라보고 있다. 한 남자는 졸고 있고 양과 염소가 있다. 이것은 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어떤식으로 표현하는 지는 화가의 몫이다. 졸고있는 남자는 요셉이다. 왜 졸고 있을까? 아이의 탄생과 관련이 없다고 표현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소는 아이가 탄생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 고 말은 쳐다보고 있지 않다. 말은 무지, 소는 현명함을 상징한다. 천사의 예고를 목동들이 듣고 있고 양이 나누어 지는 것은 선과 악이 나누어지는 것 지옥과 천당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상징한다. 조토라는 사람이 중세를 끝내고
  • 3. 르네상스로 넘어오는 큰 역할을 하는 위대한 화가인데 이 사람이 한 것은 무엇일까? 라고 생각을 해 보자. 뒷모습 을 그린 것을 이 사람이 생각한 것이고 베도르의 반석위에 교회가 설 것이라는 것을 예언한다. 그 예언을 떨쳐내고 보자면 음영을 집어 넣어 3차원 적인 것이 드러나게 된다. 하늘이 원래 중세시대때는 하느님이 사는 곳이라 하여 황금색으로 표현했지만 조토가 사실적으로 표현해서 하늘색을 넣었다. 원근법, 명암법을 발명해서 어떻게 하 인간 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을 잘 그릴 수 있을가. - 르네상스는 인본주의, 중세시대는 하느님을 중심으로 그려내었다. 14 세기 말에서 19세기까지 서양미술은 원근법과 명암법에 충실하게 자연을 묘사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했다. Realism 이라고 하면 사실주의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정확히 의미전달이 안 된다. 비잔틴은 원근법에 대해 잘 몰라서 평면 적으로 묘사를 했는데 조토의 그림을 보면 음영이 나름대로 표현이 되고 있고 주름진 것을 통해 3D를 나타내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다 예수가 태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다.
  • 4. 4)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26 신화와 성서 등 상상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날개달린 천사가 여성에게 내려와 ‘뱀을 무찌를 아이가 태어날 것 이다’라고 전하러 오는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잉태예연) 깊이감을 나타내려고 노력한 것을 볼 수 있다. (돌출하는 원근법), 원근법을 바라보는 시각도 시기(시대)별로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 5. 17세기에 오면 깊이의 원근법을 사용한 르네상스와 다르게 돌출하는 원근법을 표현해 강렬한 원근법을 사용했다. 5) 루벤스 <프로테메우스> 17세기 / 피터 라스트만<그리스도의 매장> 1612> 양식은 계속 변화되어오지만 주제는 바뀌지 않는다. 신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타낸다. 기독교의 강력한 힘으로 인 해 화가들은 교회의 후원을 받아 그림을 그리면서 거기에 맞는 주제에 충실하게 자신의 양식을 개발해 그림을 그려 왔다. 르네상스 그림을 보면 어두운 것을 볼 수 있다.
  • 6. 6~7) 엘 그레코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 1586-88 8) 쿠르베 <오르낭의 매장> 1849 두 그림 모두 매장하는 모습이지만 그리는 모습이 매우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왼편의 작품을 보면 매장을 그대로 그려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엇던 시기이다. 오른편의 작품을 보면 현실을 그 려낸 것을 볼 수 있다. 쿠르베는 작화 진보주의자로 정치적인 발언을 많이하는 공화주의 미술가였다. 사회주의자였 기 떄문에 화면 가운데에 노동자를 두고 노동자 계급에 초점을 맞춘 것을 볼 수 있다. 엘 그레코의 작품(오르가즈 백작의 매장)과 쿠르베의 작품(오르낭의 매장)을 비교해서 보면 엘 그레코의 작품은 마 치 종교화를 보는 듯하다. <오르가즈 백작>은 매장을 다루고 있지만 하나님이 계시고 성모 마리아가 있는 천상의 얘기에 초점을 맞춘 듯한 주제임을 알 수 있다. 서양은 중세 이후로 기독교가 굉장히 중요한 주제가 되었고 위대한 종교미술은 위대한 서양미술에 포함되었다. 서양미술이 근대미술까지 오기까지 종교미술이 앞도적으로 우위를 차 지함. 종교미술과 세속미술이 구분되지 않고 종교미술이 서양미술사에 큰 맥을 차지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오면서 근대사회가 형성이 되고 그 근대사회의 특징은 바로 산업혁명 즉, 과학기술의 발달이었 다.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정치적으로는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다. 이 두 가지의 결과로 인해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신분제도가 무너지는 것이 근대 사회의 특징이다. 혈통에 의한 신분제도가 19세기에 이 르기까지 지속이 되었는데 혁명이 일어나며 과학기술이 발달되어 공업과 상업이 발달했고 신분제도가 무너지게 되었다. 혈통이 아닌 자신의 노력과 재능으로 돈을 버는 계급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 계급이 국가의 경제권을 장악 하면서 신분제도는 무너졌다. 이 계급을 부르주아라고 부른다. 부르주아들의 강력한 경제권으로 인해 사회는 굉장 한 변화를 겪게 된다. 프랑스대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며 공화주의가 들어서게 된다. ‘만인이 평등하다’라는 내용을 가지고 나타남. 왕과 왕비는 사형을 받고 귀족은 무너진다. 굉장한 권력을 가졌던 교회가 무너지게 된다. 카톨릭 성
  • 7. 직자는 더 이상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 국민의 봉사자라는 개념으로 격하가 되었다. 그렇게 민중의 힘은 강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등장하게 된 것이 근대미술이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천당을 믿지 않게 되었다. 이 제 사람들은 세속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9) 쿠르베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1854. 세 사람이 우연히 마주쳐서 인사를 하는 듯 하다. 주변에서 경험하고 보는 현실속의 모티브로 볼 수 있다. 세 사람이 우연히 만나서 인사를 하고 있는 듯한 현실속의 하나의 모티브를 잡았다. 현대미술의 시작은 이와 같은 현실상, 사실상에 대두해서 시작된다. 모든 것은 상상에서 대두되어 현실로 넘어가게 되었다. 모든 아트는 상상 -> 현실에서 넘어가면서 생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8번의 그림을 보다 9번의 그림을 본다. 서양에서는 근대사회로 바뀐 기점을 <산업혁명>으로 보고있다. 미술은 근 대사회가 생겨나는 시기, 특히 쿠르베가 생겨나는 시기에서 얘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쿠르베라는 사람은 공부를 하다가 파리에 가게 된다. 1855년 쿠르베는 ‘나는 천사를 그리지않겠다.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다. ‘ 라고 살롱에서 이야기한다. 또한 개인창고에서 전시회를 열어 <리얼리즘 선언>을 한다. 고개를 푹 숙인 사람 : 시종 / 그 앞의 사람은 쿠르베를 후원한 부자 은행가이다. 그 뒤에 개가 있고 풍경이 있는 것 을 볼 수 있다. 이 시대에는 풍경을 그리는 것이 흔하지않았다. 하지만 쿠르베의 그림을 보면 풍경을 자세히 그려넣 은 것을 볼 수 있다. 쿠르베의 고개가 위로 치켜들고 있는 것은, 부르주아보다도 자신(화가)이 더 우위에 있다고 생 각함을 보여준다.
  • 8. 10 ) 쿠르베 <돌깨는 사람들> 1850 - 1851 쿠르베의 특징은 정치적이고 도덕적이며 사회적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현실을 그리되, 농민이나 노동자 계층에 초 점을 맞추면서 도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18~19세기는 산업발달시기인 것을 볼 수 있다. 쿠르베의 그림을 보면 현실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부터 ‘부르주아’가 생겨난다. 내가 돈을 벌면 부르주아가 되는 것이다. 더욱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강력한 교 회가 힘을 상실하게 된다 .상경을 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닌 국민으로 하락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 돈이 너무 좋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현실적’으로 변하게 된다. 교회에 사람들이 후원금을 주지 않게되 면서 교회의 그림을 그려내는 방식은 달라지게 된다. 그림을 판매하는 사람 + 수집가(그림을 사는 사람)이 생겨나는 시기가 산업혁명 이후부터이다. 서양의 근대사회(프랑스 혁명 / 산업혁명 / 공업,상업의 발달, 도시화 등 이후로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콜렉터 / 화상 / 판매가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이상 교회의 천상에 기대는 것이 아닌 현실에 눈을 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쿠르베는 노인과 아 이 / 노동자에게 관심을 주게 되었다.
  • 9. 11 ) 쿠르베 <미역감은 여인들> 1853 / 앵그르 <샘> 1856 부르주아들은 콜렉터로서 <풍경화>를 선호하게 된다. 19세기 모던 아트에서는 풍경화가 매우 대도하게 되고 이전 가지는 천대받아온 것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여서의 몸이 ‘미’로서 그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쿠르베의 여자누드는 근육질의 후덕한 몸(실제 여인의 몸)을 볼 수 있지만, 오른쪽의 앵그르의 그림은 이상화된 여성의 모습임을 볼 수 있다. 쿠르베는 “화가의 역할은 사회를 해석하고, 사회를 선동하고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 하였다. 모더니즘 시대에 들어가면 화가는 대중을 선동하는 위치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쿠르베가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쿠르베는 “화가는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사회를 그려내야 한다” (묘사를 정확히 하려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관저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그려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 리얼리즘의 시작 1855년 사실주의를 선언할떄, “내 시대의 사회와 풍습을 나 자신의 시선과 관점(견해)로 해석한다!”
  • 10. 앵그르의 그림이 더 늦게 나왔지만 쿠르베의 그림과 달랐던 이유는 이미 나이가 많았고, 나이가 많았을 때 사상과 생각을 바뀌기는 힘들다. 그래서 둘의 그림은 많이 달랐고 이 때는 이미 앵그르의 그림은 없어져야 할 봉건적인 것 으로 남았다. 교회와 황실이 무너지면서 화가는 그림을 팔면서 먹고 살게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화상과 화랑이 생겨났다. 12) 쿠르베 <떡갈나무> 1864 19세기부터는 현대미술이 시작하면서 풍경화가 괴앵장히 중요한 장르로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 그림의 나무 를 보면 현장감이 느껴지는 사실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 11. (그냥 트로와이용 그림) 16) 트로와 이용 <풍경> 1856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많은 화가들이 사실주의 풍경화를 그린 화가들이 모여 살았었다. 그래 서 이들을 바르비종 화파라고 불렀다. 최초의 하나의 집단적인 사실주의 풍경화가 형성되는 것이 바르비종 화파에 의해서였다.
  • 12. 17 ) 밀레 <이삭줍는 여인들> 1857 / 밀레 <만종>1857-59 하지만 역사화가 바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평범한 생활을 보여주는 장르화. 만종을 보면 하루의 일과를 끝낸 부부 가 기도를 드리고 멀리에는 교회가 보인다. 역사화 종교화 같은게 평범한 장면 속으로 녹아들어 갔다는 것을 밀레 의 그림을 보면 알 수가 있다.
  • 13. 21 ) 모네 <해돋이-인상> 1872. 인상주의의 시작점
  • 14. 22~23) 마네 <풀밭 위의 점심> 1863. / 조르조네 <전원 음악제> 1500 우리는 근대미술의 선구자를 쿠르베가 아닌 ‘마네’로 생각한다. 이전과 다르게 그림에 있는 여자는 ‘실제’인물이다. 그림의 여자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전까지는 비너스, 요정들을 그려왔기 떄문에 실제인물이 아니엇지만, 마네는 회화의 (미학적가치) 형식에 치중하면서도 쿠르베의 의견(사실성)을 따른 것을 볼 수 있다.
  • 15. 근대미술의 본격적인 선구자를 쿠르베라고 생각하진 않고 마네라고 본다. 왜냐하면 낙선자 살롱에서 풀밭 위의 점 심이라는 그림을 전시하며 굉장히 주목을 받게 되었다. 낙선을 한 이유는 저 뒤에 있어야 할 사람이 너무 앞에 있어 서 원근감이 잘 적용되지 않아서 정말 실력없는 작가다 라고 했고 붓터치가 너무 거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 그 림을 보면서근대미술 첫 출발이라고 말하는데 조르조네의 그림을 보면 굉장히 여신처럼 보이지만 마네 그림의 여 자는 실제의 여인을 그린 것이다. 그 동안 누드의 여자는 사람이 아니라 요정이나 비너스 등이다. 하지만 조르조네 의 그림은 비너스나 요정의 누드를 그린 것이고 마네는 실제의 여자를 그렸다. 여자는 그림에서 우리와 눈을 맞추 고 있다. 옷을 벗고 포즈를 취한 여자 사람이다. 옛날에는 모델을 그리면서도 사람이 아니라 요정임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마네는 쿠르베의 영향을 받아 실제 사람을 그려 사실성을 본격적으로 보여주었다. 쿠르베는 정치적인 메시 지를 전달한다면 마네는 회화의 형식, 그리고 미학적 가치에 더 중점을 두게 되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누드를 보 면 왼쪽의 여자는 실제의 사람을 그린 생기가 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렸지만 오른쪽의 앵그르의 샘은 진짜 사람이 아니다.
  • 16. 24 ) 앵그르 <오달리스크> 1819 25) 마네 <올랭피아> 1865 사실성의 대두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두 작가는 동시대에 활동을 했지만 카바렐은 아카데믹한 점에 주력을 했고 마 네는 현대 미술로 나아간다. 그래서 마네는 모더니즘의 창시자라고도 불린다. 창녀를 그려내었다.
  • 17. 26~27) 카바넬 <비너스>1863 / 마네 <올랭피아> 1865 /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 누드(베토벤 프리즈 중앙 의 고르고네스를 위한 습작> 1901-02 3번은 음모를 적나라하게 그려내었고, 2번 올랭피아는 음모를 가리고 있다. 1번 비너스를 보면 올랭피아와 달리 현실의 여자를 그려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드임에도 불구하고 외설이 아닌 예술로 칭해진다. (그림을 보면 음모를 그리지않았는데, 이는 요정이기 떄문이다) 카바렐의 비너스가 가장 아카데믹하고 전통적인 그림이다. 누드를 르네상스 이후로 많이 그렸는데 터키나 프랑스 가 누드화가 발달하게 된다. 영국은 발달되지 않음. 유난히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발달이 되는데 어쨌든, 신 화 속의 요정이나 여신이기 때문에 이 누드화는 현실의 여자가 아니다. 굉장히 에로틱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이지 외 설적이지 않다. 굉장히 감미로운 피부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몸을 관람객에게 맘껏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마네의 올랭피아는 소설 속에 나오는 창녀의 이름이다. 올랭피아라는 이름을 사창가의 여자들이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었 다. 올랭피아는 실제의 여성이고 창녀이다. 얼굴을 빳빳이 들고 관람객과 눈을 마주치고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드 러내고 있다. 그 당시 비평가들은 너무나 불결하다 그래서 관람객들이 마네의 올랭피아를 볼 수가 없다는 말을 했 었다. 그 당시 아프리카 흑인 노예인 손님이 꽃다발을 주는 설정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하나는 요정이고 하나는 사실성을 추구한다는 차이점이 딱 드러난다. (마네와 카바렐의 차이) 클림트는 오스트리아의 작가로 북유럽은 프랑스보다 모던아트가 발달되기까지 몇 10년이 늦다. 여기서 굉장히 중 요한 것은 카바레의 그림에는 음모가 없다. 요정이기 때문이다. 실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올랭 피아는 음모를 손으로 가리고 있다. 하지만 클림트는 여성의 누드에 음모를 그려 넣었다. 이것은 이제 모더니즘 미 술, 사실성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18. 카바렐의 비너스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붓 터치를 감추었다. 그리고 물감이 아닌 것 처럼 감추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근대미술에 오게 되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회화의 조건인 평평한 표면 위에 물감과 붓 터 치로 이루어진 그 무엇이 회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더니즘의 미술은 평면성과 물질성을 향해 나아간다. 회화는 회화다워야 하고 조각은 조각다워야 한다는 것! 하지만 옛날에는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 명암법을 발 달시켜 마치 한 건물 안에 있는 듯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1495-97 하지만 이러한 것을 발 달시키면 평면성을 잊게 된다. 르네상스 때는 회화는 자연을 비추고 자연에 부속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모더니즘 미술에 오게 되면 회화는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회화 그 자체의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존재를 보여주려면 회화의 조건을 내보일 수 밖에 없다. 평평한 표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보여준다. 붓질이 드러나고 붓질로 인한 물 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평면성과 물질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원래는 회화의 조건은 열등한 것이어서 감추려고 했지만 근대사회에 오며 자신의 신분에 상관없이 아무리 열등하 다 해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했다. 회화는 이제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라고 생각하며 회화의 조건을 드러 내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바뀜 회화는 그 동안 열등하다고 생각되었던 조건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낸다. 모더니즘 미술은 평면성과 물질성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2차대전 이전까지 그렇게 발전함.
  • 19. 29) 마네 <피리부는 소년> 1866 / 벨라스케스 1624-1633 / 우타마로 <분 바르는 여자> (피리부는 소년) 주제, 상상력, 독창성도 없다고 비평을 받았었지만 이것이 모더니즘 미술이다. 평면성과 물질성으로 나아가면서 ‘평 평한 캔버스의 표면을 드러내고, 표면이 물감으로 덮힌 그 무엇이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문학적인 이야 기는 다 배제하는 것이 모더니즘 미술이다. 회화는 구성, 조화, 형태, 색체 가 더 중요하게 바뀌었다. 미술을 위한 미 술 회화를 위한 회화로 나아가게 된다. 이제 어떠한 이야기도 집어넣지 않고 이러한 것을 추구하게 된다. 문학, 조 각, 신화로부터 독립되고 회화로서 완전하게 장르의 순수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 20. 우타마로, <분 바르는 여자> 일본 목판화가 유럽에 들어오게 되어서 근대미술가들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선만있고 음양이나 명암이 없이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고 색채도 순수하다는 것에 열광했다. 17세기 스페인 바로크 미술에 영향을 받게 되 었다.(벨라스케스 그림이 예가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영향이 있다. 21 ) 모네 <해돋이-인상> 1872 (인상주의 는 나중에 설명하는 바람에 앞번호로 넘어옴) 해가 뜰 때의 인상을 그린 작품이다. 항구에서 해가 뜨는 새벽녘의 인상을 그린 것이다. 너무나 빠르고 즉흥적으로 찰나적으로 그려졌다. 마네가 보여주었던 것은 사실성인데 이제는 사실성의 대두에서 더 나아가서 모네는 눈에 보이는 인상을 포착해서 그렸다. 19세기중반이후에 모네라는 작가는 본질적인 형태나 색채를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바로 그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 려고 한다. 그래서 명암법과 원근법을 버리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회화는 평평한 표면의 거친 붓터치가 보여 지는 평면성과 물질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인상주의라고 한다. 빛을 쫓아 한 순간의 인상을 보여 준다.
  • 21. 31 ) 만테냐-죽은 그리스도 1500 - 원래는 본질적인 형태, 색채를 추구했다면(르네상스) 와세<데셍 아카데미> 18세기 말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나타내어 명암법을 사용했다. 밝은 곳은 흰색을 쓰고 어두운 곳은 검정을 섞어서 3차원의 입체감은 잘 드러나는데 그림이 전반적으로 축축한 갈색톤이다. 하지만 어느 날 작가들은 이러한 짙은 갈색의 그림 에 회의감을 느끼게 되면서 쿠르베 이후로 사실주의 풍경화가 발달되면서 이젤을 들고 밖으로 나가면서 청명한 날 씨를 그리게 된다. 그렇게 색채의 순수함을 담게 되며 명암법은 자연히 버리게 된다. 나다르<초상화>1855 1874 인상파 전시회가 열린 나다르의 사진관 명암법은 버리지만 인상주의부터 냉온대비법을 사용하게 된다. 따뜻하고 차가움을 나타내는 냉온 대비법. 그 런데 사진이 발달 되면서 정교하게 그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고 화가의 눈으로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경험한 것 을 그리는 것이 중요해졌다. 또한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그 화가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빛의 중요성을 인식시키 게 되었다. 사진기의 발명으로 빛의 중요성이 인식되며 정교한 묘사보다는 화가의 경험, 주관성, 인상을 그리는 방 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 22. 르누아르-산책 1870 르누아르 - 뮬랭 가레트 1876 르누아르 - 햇빛 속의 토르소 1975 르누아르 - 수욕도 1884-7 (냉온 대비법 - 밝은곳은 분홍으로 그리고, 그림자부분 은 청색으로 표현해 보는 것) 빛을 포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 순간 순간의 빛을 포착하는 것. 그런데 르누아르 작가의 그림도 10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다. 다시 고전적으로 와해가 되었다. 흐뜨러지는 것에 회의를 느끼며 본질적인 질서를 찾아야 한다 고 생각하게 된다. 르누아르는 이탈리아에 가서 앵그르의 그림을 보며 다시 참조를 하게 된다. 그래서 수욕도는 앵 그르를 참조한 그림으로 음영을 보여주면서 빛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견고한 형태 감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80년대로 넘어가게 되면 인상주의는 와해의 움직임을 보이게 되며 다시 구성, 질서, 법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모더니즘 미술 -구성/질서 인상주의로 가면서 평면성과 물질성이 발달하다가 모네 해돋이와 같은 그림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 23. 36) 세잔느 <목을 맨 사람의 집> 1874 세잔느는 “모네의 눈은 너무나 훌륭하다. 그러나, 화가는 눈과 두뇌를 가져야 한다.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한 것을 그려야 한다.” 모네가 너무나 인상을 쫓아 그리다 보니 형태가 흐트러지는 결과에 회의를 느낀 사람이 등장하게 되 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세잔느이다. 세잔느뿐만 아니라, 고갱, 반 고흐 등이 있다. 눈에 보이는 인상만을 그리는 것을 반대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것을 후기 인상주의라고 얘기를 한다. 세잔느는 형태의 문제를 다시 생각 하게 되었고 폴 고갱은 색채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반 고흐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주장했다. 공통적으 로는 세잔느, 고갱, 반 고흐 모두 눈으로 보는 그것만이 아니라 내적인 세계를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법은 다 달랐다.(후기 인상주의) 세잔느는 말하였다. “모네의 그림은 훌륭하다. 하지만 너무나 시각을 좇아 그려 형태가 무녀졌다. 화가는 시각과 두 뇌를 모두 사용해야 한다.”
  • 24.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3> 세잔느,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70-71> 마네의 올랭피아와 마네의 그림을 비교 올랭피아는 여자가 고객을 바라보고 있다. 두 그림에서 지금 중요한 것은 올랭피아를 바라보는 관찰자가 나와있다. 그 차이가 크다. 일종의 자화상, 관찰자인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세잔이 보여주는 것은 예술과 개인의 어떠한 욕망 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가가 더 우위에 있다. 19세기는 예술가가 창조가로 엄청 격상이 되게 된다. 세잔의 작품에서는 그림에 화가가 있다. 그렇게 개인의 욕망을 보여준다. 등을 돌리고 있는 이 작가가 있음으로써 우리의 눈이 올랭피아로 금방 가지 않고 관찰자에서 멈춰지게 되고 우리의 눈이 캔버스의 표면에 머무르게 된다. 그 말은 즉, 캔버스의 표면을 드러내면서 더 강조한다는 말이 된다. 세잔같은 화가에 오게 되면서 캔버스의 표면이 세상과 독립된 것이고 표면을 드러내야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며 평면성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특 징이다.
  • 25.
  • 26. 세잔느 <목욕하는 사람> 1885 아돌프 윌리엄 부그로 <여자들> 1884 부그로는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옛 것에 매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워낙 유명했어서 거론이 되지만, 지금은 잘 언급되지 않는 것이다. 왼편의 세잔느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로서 추앙이 되게 된다. 세잔느는 형태를 흐트러뜨리는 것은 반대하며 화면은 구조적인 질서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른 편의 부그로와같은 작품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잔느는 견고함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부그로처 럼은 아니다. 화면을 흐트러뜨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의 정확한 형태를 보여주기 위해 검정색으로 테두리를 땄다. 남자는 밖으로 걸어나오는 듯 하지만 우리와는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눈을 아래로 뜨고 있으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도 않다. 분명히 우리와는 거리가 있다. 뒤에 산이 있고 물이 있는 듯한 배경인데 굉장히 원근법이 이 루어져있지 않아 평면적으로 보인다. 물감과 붓질 그리고 형태의 구조에 굉장히 관심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평면 성을 이룩하면서 사실성을 보여주면서 견고한 형태, 질서를 되찾자는 것을 세잔느는 보여준다. 그리고 세잔느는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원뿔, 원통, 원구의 기하학적 입방체로 구성되어 있다. 라고 주장 했다. 하늘 붓질을 보면 공기의 진동을 보여주려고 했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데 그것을 눈에 보이게 하고 있 다. 부그로의 그림에서는 주인공이 ‘여자들’이고 나머지는 다 배경이지만 세잔느는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밀 도 있는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즉, 배경이 아니라 이 공간도 하나의 형태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늘에 붓 질을 했다. 남자라는 형태가 흐뜨러지면 안되기 때문에 검정 윤곽선을 쓰고 있지만 선이 중간 중간에 끊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세잔느는 공간과 형태는 서로 상호 관계를 이룬다고 말했다. 기하학적인 형태로 견고하게 사람 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도 밀도 있는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공간과 형태는 서로 상화 관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평면성과 물질성을 드러내면서 견고한 내적 질서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세잔느가 이룩한 것은 회화는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세계라는 것을 확고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한 다.(마네는 현대미술의 창시자) 붓질이 마무리를 위해서 굉장히 정교하게 했는데 붓질을 과감히 드러내면서 남자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서로 상호 관계를 이룬다는 것을 말한다. 내적질서의 조화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회화의 법칙이다. 회화는 독자적인 질서를 가진 독립된 세계이 다. 라고 주장한 사람이 세잔느이다. (캔버스의 독립적인 공간을 주장함)
  • 27. 41) 세잔느<커피포트와 여자> 1890-95 굉장히 중성적이다. 세잔느는 한 여자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회화’를 보여주려고 한다. 회화의 조건을 보여주기 위해 캔버스의 표면에 여성을 일치시켜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다. ‘원뿔 원통 원형의 입방체로 이루어져있다’를 주장하고 회화적인 구조를 보여주려 노력했다. 이것은 고전주의로 환원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유의 형태를 되찾자!!!!!!! 한 개인이 아니라 어떠한 존재를 표현하고자 한다. 모던아트는 환영을 제거하고 하나의 회화 자체를 제시하고자 한 다. 이 그림에서 회화적 조건(특성)이 더욱 잘 보인다. 모던아트의 특징은 환영(일루전)을 없애려고 하였는데, 회화 그 자체를 하나로써 우리에게 제시하려고 하였다.
  • 28. 앵그르 < 드 브로그리 왕자비의 초상> 1853년경 환영 : 거짓된 것이 진짜처럼 보이는 것 근대의 모던아트는 환영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림, 회화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앵그르는 왕자비 를 보여주고 싶어 했고 세잔느는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사각형의 틀, 붓의 터치 등 회화적 조건을 앞세우며 하나의 특성으로 보여주게 된다. (세잔느의 특징)
  • 29. 세잔느 <생 빅토와르 산> 1887 캔버스 안에 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서 캔버스 밖으로 나가지 않기를 원했고 화면 중심을 강조시켰다.(고전주 의의 특징) 원근법이 없지는 않지만 굉장히 압축시켜 보여주었다. 푸생 < 마르스와 비너스 > 푸생은 회화를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 보여주기를 원했고 통일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캔버스 사각형 틀에서 벗어 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 보이며 형태 하나하나가 굉장히 견고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세잔느가 했던 말은... 인상주의는 고유의 색과 형태를 무시하고 빛에 의한 것을 중요시하는데 그 결과 굉장히 형태가 흐트러지니까 눈으 로 보는 것만 쫓지 말고 견고한 본질적인 형태를 찾자고 외쳤다. -고전주의를 다시 도입하고 싶다!!!! -나는 푸생을 소생시키고 싶다.
  • 30. 42) 세잔느 <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 1890-92 굉장히 어색함이 없는 완벽한 구도를 사용함. 세잔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기, 공간 또한 하나의 밀도 있는 물질 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눈은 캔버스 표면에 부딪히게 된다. 왜냐하면 벽에 파이프 담배가 있음으로서 배경이 아니라 벽이라는 물질 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우리의 눈은 동시에 캔버스의 표면에 부딪혀 머무르게 된다. 모던아트는 회화의 조건을 나타 내며 어떠한 재현이나 환영은 버린다. 다른그림 화면의 삼각형 구도는 고전주의적인 매우 안정된 구조이다. 여자 누드들이 있다. 나무의 휘어지는 형과 더불어 누드가 맞추어져 있으면서 우리의 눈이 계속 머무르게 된다. 가운데 멀리 있는 사람이 있어서 가운데에서 눈이 부딪히게 되고 평면성을 유지하게 된다. 캔버스의 평평한 표면을 이렇게 강조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워낙 깊이 원근법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 환영이라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모던아 트이다.
  • 31. 43) 세잔느 <수욕도> 1885 하나 하나의 형태가 서로 상호 관계를 이루면서 질서 있게 재구성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잔느는 ‘그림을 그린 다는 것은 맹목적으로 대상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수 많은 관계들의 조화를 포착하고 독창적인 논리로 발전시키 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잔느 < 목욕하는 다섯 사람들 > 1885 기하학적인 구조가 서로의 관계를 맺고, 자기만의 해석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윌리엄 부그로 < 비너스의 탄생 > 1879 환영을 어떻게 잘 할 것인가 어떻게 거짓된 것을 진짜처럼 보여줄 것인가에 굉장히 몰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32. 44) 세잔느 < 붉은 조끼 입은 소년 > 1890-95 캔버스 안에서 어떻게 틀을 맞춰 조화있게 구성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소년의 팔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창적인 논리로서 팔을 길게 하기도 하고 짧게 하기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세잔느가 보여주었고 이것을 형태의 자유성이라고 한다. 닮게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회화의 사각형 안의 세계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구성되는가를 고민했고 형태의 자유성을 강조 45) 세잔느 < 조끼 입은 소년 > 1990-95 앵그르 < 드 브로그리 왕자비의 초상> 1853년 경 세잔느는 대상이 이루고 있는 형태와 형태가 어떻게 관계를 이루며 재구성 되느냐에 관심을 가졌다. 46) 세잔느 <조끼입은 소년 > 1990-95
  • 33. 47) 세잔느 < 과일과 수건과 우유통 > 1879-82 샤르댕, <복숭아의 바구니> 1766년 사실적이지 않은 세잔느의 정물화. 시점이 제대로 맞지 않다. 르네상스 원근법은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지만 세잔 느는 다시점을 도입하게 된다. 다시점을 도입하는 이유는 본질을 파학하기 위함이다. 다시점을 한꺼번에 표현하다 보니 실제 같지 않다. 모든 형태들이 상호관계를 이루며 내적 법칙과 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점을 도 입하면서 세잔느는 하나의 전통이 나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라는 말을 했다. 감각적으로 내적질서를 파악해서 재구 성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눈과 마음은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의 확고성 견고성 을 보여준다. 샤르댕 - 샤르댕의 회화법이 세잔느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세잔느는 정물화에 가장 관심을 가졌다. 객관적으로 사물의 정보를 분석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물화는 관찰 이 중시되기 때문에 좋아했다고 한다. (관찰이 중시되면서도 형태의 변형도 가능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다. 세잔느의 그림은 원근법이 안맞고 ‘다시점’ 을 도입하였다. 이는 본질을 파악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하였다.) 48) 샤르댕 <복숭아의 바구니 > 1766
  • 34. 49) 세잔느 <병과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 1890-94 색채를 조금 달리한다던가 해서 옛날처럼 배경으로 처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형태로 처리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셔 브라운 듀란드 < 타나톱시스의 풍경 > 세잔느 < 쌩 빅투아르 산 > 1886 수직의 큰 소나무가 있어서 원근법이 완전히 없진 않음. 수평의 철교가 있어서 기하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수직 의 확고한 선 때문에 캔버스의 표면이 굉장히 강조되고 있다.
  • 35. 피카소 < 아비뇽의 처녀들 > 1907 세잔느 <수욕도> 1889-90 20세기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 5명 안에 피카소가 포함된다. 공간은 그냥 배경이 아니라 밀도 있는 덩어리이다. 또한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다방 면의 시점이 나타난다. 그런데 피카소의 그림의 가운데 여자의 포즈는 굉장히 고전주의적인 포즈라 고전주의적 인 점을 현대화 시켰다고 할 수 있다. 오른쪽 위에 얼굴은 ‘아프리카 가면’에서 온 얼굴이다. 원래는 백인을 중심으 로 해서 미의 가치가 결정이 되었지만 20세기로 오면서 사람들은 각 인종마다 미의 원칙이 다르다라는 것을 받아 들이게 된다. 절대적으로 백인이 아름답다는 것에서 벗어나 미의 상대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아프리카나 아 시아와의 교역을 통해 타인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알 수 있다. 인물은 기하학으로 분해가 되고 있고 공간도 하나의 형태로서 단면되었고 인간 형상의 이상화라는 원칙은 버려졌다. 굉장히 회화의 논리와 구조적 질서 그리고 미의 상대성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잔느는 형태의 자유성을 먼저 이야기 했고 피카소는 그것을 훨씬 더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 36. 죠르조 브라크 < 나무와 다리 > 1908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은 그 자체의 논리, 질서, 그리고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 회화는 그 자체에 대해서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회화는 무엇인가를 재현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회화 그 자체를 보여주고자 한다. 높이의 원근법 : 화면의 구조적인 질서와 밀도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당연히 환영적인 깊이감이 제거가 되어 회화는 평면적으로 된다. 또한 높이의 원근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시점을 한 화면에 표현하는 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에셔 브라운 듀란드 <친밀한 영혼들 > 1849 굉장히 깊이감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 37. 브라크 < 레스타크의 집 > 1908 높이의 원근법이 드러나는 그림이다. 화면은 훨씬 더 물질화되고 평면성으로 발전한다. 눈이 하나하나의 단계를 거치는 것 처럼 보인다고 해서 파사쥬라고 부른다. 촉각적이라는 단어도 쓴다.
  • 38. 피카소 < 칸 바일러의 초상 > 1910년 공간도 밀도있는 덩어리로 구성된 형태이고 형태도 기하학적인 입방체로 이루어져있다. 다시점이 보인다. 사물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 정면으로 본 그대로가 아니라 있는 존재로서의 여러 가지 모습을 그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 우리는 이러한 작품을 입체주의(큐비즘)라고 한다. 큐비즘은 1908-1914년 초까지 활발하게 전개가 된다.(1차대전 발발 전까지)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발하게... 입체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는 (피카소, 브라크)
  • 39. -> (참고자료 - 카드놀이 하는 군인들 / 카라바조 도박꾼들) 페르낭 레제, <카드놀이 하는 사람> - 입체주의 작가임 세잔느의 그림에서 발전되어 아예 재구성, 재배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라바조 <The Cardsharp > 1596 세잔느 <카드놀이하는 사람> 인생의 허무함이 드러난다. 자신의 회화적 개념은 다 드러난다.
  • 40. 고갱 < 하얀 말 > 1989 고갱 < 신의 날 > 1894 분홍, 하늘색, 파란색 색채 그 자체의 존재를 보여주려고 했다. 색채와 색채의 구성과 조화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지 재현을 위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색채 의 자율성이라고 이야기하며 고갱은 친구에게 이러한 말을 했다. “자연에 매달리지 마라. 미술은 추상이다.” 이 점 에서 벌써 고갱은 추상미술이 발생되기 이전부터 추상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을 보고 명상하고 그 명상을 통해 예술을 끌어내어야 한다. 재현과 묘사에 너무 신경쓰지 마라는 말이다. 물론 인상주의 작가들이 대게 빛을 쫓았다면 세잔느, 고갱, 반 고흐와 같은 작가들은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 고 이들을 후기 인상주의자라고 부른다. 후기 인상주의자 - 세잔느, 고갱, 반 고흐 입체주의 - 브라크, 피카소
  • 41. 고갱 <설교 후의 환영 -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 1888 고갱의 초기 작품 중 가장 대표되는 작품이다. 실제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결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쿠르베 는 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겠다.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라며 사실성의 대두를 펼치며 모던아트가 시작 되었었다. 쿠르베의 리얼리즘 다음에 인상주의가 나오며 눈에 보이는 세계를 쫓았었다. 그러면서 후기 인상주의자 들은 내면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고갱은 조금 더 감성적, 원시적,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갱이 마치 옛날처럼 성경이나 문학의 이야기 전달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민속, 원시 미술에서 영감을 찾고 신비스러운 관념의 세계를 파헤치는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자들이 뒷모습으로서 싸움을 보고 있기 때문에 관객의 위치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우리의 눈이 저절로 싸움쪽으로 눈이 가게 된다. 암소는 재물이다. 나무는 선악과 나무이고 빨간색으로 인해 우리가 마치 상상의 세계 에 동화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굉장히 색면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 1. 실제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결합 2. 붓터치가 거의 안보이며 색면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3. 종합주의를 주장 후 확립하게 된다. 종합주의란 화가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종합한다. 상상이든 실제이든 모든 것을 종합해서 나타낸다는 것이다. 또한 대상을 단순화시켜 그 본질과 내용을 드러내는 것을 종합주의라고 한다.
  • 42. 고갱 < 자화상 > 1889 굉장히 평면적으로 색면이 강조 되고 있다. 색채의 강렬한 물질성 뱀의 유혹에 빠져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는 것을 담고 있으며 신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을 담고 있다. 일종의 창조자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 모더니즘의 미술이다. 마치 창조라는 것은 우리의 전능하신 주님이 하신 것 처럼 우리는 그와 같이 신의 태도에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속성과 신의 속성을 가진 사람이 바로 예술가다.라는 것을 고갱이 드러내고 있다. 미술작품은 창조다 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모더니즘의 사고이고 예술가의 지위가 높아지게됨.
  • 43. 고갱 <게세마니 동산의 그리스도> 1889 굉장히 불안해 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보인다. (얼굴) 고갱이 성경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그리스도를 사용해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이야기 하 고 있는 것이다. 여기 그리스도의 얼굴은 자신의 자화상이다. 물질적인 고통을 겪게 되고 처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과 중간에 반 고흐를 만나서 같이 살게 되는데 그 때 반 고흐 를 버리고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반 고흐가 가지 마라고 매달리다 반 고흐가 귀를 자르는 정신병에 걸리게 된다. 이 때 우리도 마찬가지겠지만 굉장히 사람들이 고갱을 비난했다. 반고흐와의 사건을 통해 죄책감을 나타내기도한다. 색채의 자율성이라는 점에서 머리가 빨간색인데 만약에 머리가 갈색이었다면 이 화면에서 너무 포인트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의 머리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빨간색이 이 그림에서 필요했기 때문에 쓴 것이다. 형식주의적이 라고 볼 수 있고 단지 마냥 형식만을 생각해서 빨간색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성경에서 보면 유다가 병 사를 데리고 그리스도를 잡으려고 하니까 그리스도의 제자가 왜 우리의 스승을 잡으려 하는가 하면서 귀를 자른다 고 한다. 그래서 저 붉은 것이 반 고흐가 귀를 잘라 나온 피라고 볼 수도 있고 성경에서 보면 귀를 자른 사람들이 그 리스도의 제자로 보면 본인을 변명하고 싶은 심정에서 그린 그림이라고도 알려지고 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 다’ 1. 색채의 자율성 2.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들이 담겨있다. 3. 고갱을 상징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4. 그림 안에는 여러 가지 감정과 관념 그리고 어떤 신비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 그림이다. 세잔느 - 내적 질서, 내적 법칙, 형태의 자율성 폴 고갱 - 우리 내면에 가득히 있는 상상의 세계, 색채의 자율성, 감정적 눈으로 보여 지는 세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화가는 눈으로 보이는 세계이든 안 보이는 세계이든 어떠한 주제든 다룰 수 있다. 어떠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후기 인 상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반 고흐 < 감자 먹는 사람들 > 1885 격렬한 자신의 감정을 굉장히 솔직하게 표현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초기 작품으로 가장 대표되는 작품이다. 아버지는 목사 숙부는 화상이었음. 처음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목사가 되려고 신학 대학에 지원을 했지만 떨어 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유명한 목사의 아들이니까 교단에서 전도사로 보내주게 된다. 그 곳에 막상 가보니 너 무나 가난한 현실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고갱과는 다르게 열정적이고 정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고 수다쟁이었다. 그래서 여기 가서 보니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죄책감이 들어 이 사람들과 똑같이 거적을 덮고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살며 그렇게 살다보니 교단에서 파멸을 시킨다. 그렇게 반 고흐들은 성직자들을 보며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밤에 산책을 하다가 허름한 판잣집에서 식사하는 장면을 보았다. 오직 차와 감자만으로 식사를 하고 이것을 노동자 들의 성찬이라고 한다. 굉장히 종교 의식과 같은 엄숙함과 경건하을 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처럼 반 고흐는 자신 이 느꼈던 그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반고흐는 나중에 정신병이 들게 되고 붓 터치가 굉장히 격렬 해지면서 순수한 색채를 보였던 것과는 다른다. 원래는 밀레의 영향을 받아 굉장히 어두운 그림임을 알 수 있다.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사이프러스 나무와 교회 첨탑의 수직이 너무나 대비를 잘 이루고 있고 산의 능선의 수평성과 행성의 움직임을 나타 낸 역동적인 선들이 너무나도 대비를 잘 이루고 있다. 나무의 색채와 밝은 초승달의 색채 또한 굉장히 조화롭게 이 루어져있기 때문에 반 고흐의 그림이 정신병자의 그림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다.
  • 44. 마티스 < 스튜디오의 누드 > 1899 윌리엄 - 아돌프 부그로 , <수욕도 < 1884 마르케 < 야수로 불리워지는 누드 > 1899 마티스와 마르케는 친구이다. 둘 다 파리 국립 미술학교 동기생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가장 최초의 미술운동은 야수주의이다. 이 운동을 이끈 사람이 마티스이다. 역시 마르케도 동참을 하긴 했지만 마티스가 가장 대표저인 사 람이다. 격렬한 붓터치와 강렬한 색채가 눈에 띈다. 평면성과 원색을 강조한다. 마티스는 학교에 들어가서 모로라는 선생을 만나게 되는데 이 선생은 미술 교육의 가장 전형적인 우수한 선생으로 거론이 되고 있는데 학생의 개성을 많이 존중했다고 한다. 마티스에게 모로 선생이 한 말은 자신을 표현하라. 외적 으로 보이는 것을 묘사하려고 하지말고 너 자신을 표현하라 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후기 인상주의 를 거치면서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으로 주제가 굉장히 바뀌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상주의와는 좀 다르지만 인상주의는 엄청 빛을 쫓아 그리지만 주관성을 강조한다. 그 다음 등장하는 후기 인상주 의는 주관성을 더욱 발전시키게 되고 여기서 더 나아가 20세기에는 너 자신을 표현하라.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추상미술이 나오게 된다. 마티스 < 드랭의 초상화 > 1905 냉온대비법이 드러난다. 인상주의자들이 냉온대비법을 먼저 시작했었다. 밝은 곳을 따뜻한 색 어두운 색을 차가운 색으로 하여 굉장히 순수한 색채를 보여준다. 그리고 평면성으로 나아가 는 것을 보여준다. 훨씬 주관성이 분명해지고 대상을 묘사하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놀데 < 열광자 > 1919 놀데 < 황금 송아지 앞에서의 춤 > 1910 굉장히 원시적인 색채와 표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왼쪽 작품명은 모르겠음 드가 <다림질 > 1884 둘 다 다림질이라는 주제는 같다. 드가의 작품은 풍속화적인 느낌을 준다. 생활을 한 면을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왼편은 암울하고 피폐한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색채 역시 굉장히 암울하고 우울하다. 피카소의 작품이라고 한다. 오른쪽은 인상주의였던 드가의 그림이다. 신분의 하층계급의 여자들이 신분 상승을 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기도 한다. 뭉크 < 골고다 > 1900
  • 45. 뭉크 < 병든 아이 > 현대미술과 일본미술과의 만남 _ 3월 29일에 이어서 수업중 서양미술사에 있어서 근대 미술이 형성되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를 한 것이 일본미술이다. Monet < La japonaise > 1876 일본 기노모를 입고 있지만 얼굴은 일본 여자가 아니다. 모네의 아내였던 까미유라는 여자이다. 이 여자를 모델로 그린 것이다. 일본과 서양의 완벽한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뒤에 부채같은 것도 얼마나 일본을 모네가 탐닉하고 있 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 보다시피 인상주의에 오게 되면서 얼마나 사람들이 일본미술에 심취하게 된 지 알 수 있 다. 유독 일본미술에 관심가진 사람들은 인상주의, 반고흐, 고갱, 세잔느 등 후기 인상주의 작가들이 아방가르드 작 가들이라고도 부른다. 전위적인 진보주의자들이 일본 미술을 받아들였다. 유독 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일본 목판화였다. 1888년 잡지 <일본예술>의 첫 호 서문에서 사무엘 빙이라는 화상은 “일본미술은 영원히 우리의 것과 하나가 된다. 이것은 우리의 피와 혼합된 핏방울과 같다. 이것은 다시 분리시킬 수 있는 힘은 지구상에 없다.”라고 했다. Japonisme(자뽀니즘) - 일본 미술에 받은 영감을 조형미술에 다양하게 응용하여 새로운 독창적인 표현양식을 만 들어내는 것 판화가인 브라크 몽(Felix Henri Bracquemond, 1833~1914) - 1856년 호쿠사이 <망가>-(망가는 만화이다) 발견 일본 미술을 대중화시킨 사람은 화상이고 일본 연구 학자들이다. 항상 서양에서는 인간을 미의 전형으로서 보여주었었지만 일본의 망가에서는 사람의 일상 생활을 보여준다는 것 을 보고 굉장히 많은 감동을 받게 된다. 그래서 호쿠사이는 작가 목록에도 있지만 근 90에 가깝게 살았던 사람인데 유독 프랑스 파리에서만 높이 평가를 받았다. 왜 프랑스 사람들이 유독 일본 목판화에 (일본 미술 전체가 아니다.) 열광을 했는지 알아보자. 자뽀니즘 현상이 일 어나는데 인상주의에서 열광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씨름 장면, 호쿠사이, <후지산 36경 > 19세기 초
  • 46. 일상 생활의 장면들을 포착해서 그린게 우끼오?라고 부른다. 이것은 일본에서도 서민 용의 그림이었다. 역사와 종 교와 훌륭한 사람들만 그려온 프랑스사람들이 볼 때는 마치 낮은 자들을 위한 그림이라 생각이 되었고 프랑스 대 혁명 이후 자유, 평등을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뒤로 인상주의자들도 부르주아들의 일상 생활을 그리게 되었다. 르네상스 이후로 풍경화는 가장 낮은 장르였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 풍경화가 다시 위상이 높아지는데 그 때 일본 목판화를 보고 굉장히 감명을 받게 된다. 풍경 화가 회화에서 크게 급 부상 하게 되는데에 있어서 우끼오에의 영향이 매우 컸다고 한다. Manet < Le Chemin de fe [The Railroad ], 1873 공간분할과 평면성을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창살의 기학학적인 모양과 엄격한 구조를 마네는 근대 사회의 냉정함이라 던지 도시화와 산업화의 분위기와 연결 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유보트 <발코니> 1880, 마네 < 발코니 > 1869 이 작가는 굉장히 부자였고 인상주의의다. 목록 4번에있는 작가이다. 마네의 ‘발코니’ 작품을 3000프랑을 주고 샀 고 근대화가들과 어울려 작품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 사람이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 마네였고 일본 목판화를 많이 수집했다. 이 작가는 발코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데, 카유보트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산업화가 된 배 경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산업화에 대한 경이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뒷모습으로 먼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카유 보트가 굉장히 좋아했던 일본 목판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 전체적으로 일본의 영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카 유보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일본의 목판화이다. 일본 목판화가 들어와서 동서미술이 어떻게 교류되는 가에 대해 배우는데 한 편에서 프랑스의 진보주의자들이 일 본 목판화를 받아들이는거지 프랑스가 일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17세기에 이미 일본에 원근법과 명암법 을 가르쳐줘서 목판화가 만들어지게 되었지만 19세기에는 오히려 일본 사람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목판화는 모더니티의 상징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른쪽의 후지산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고 카유보트는 근대화에 대한 경의를 표하 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에 이미 뒷모습이 나온 그림은 많아 꼭 일본 목판화만의 영향은 아닐 수도 있지만, 프리드리히의 작품을 보면 자연에 대한 숭고함을 보여주고 Callebotte의 작품을 보면 근대화에 대한 숭고를 보여 준다. 전적으로 일본 목판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다. Callebote, Le Pont de I'Europe, 1876 Utagawa Hitoshige, Cotton goods lane, Odima-cho, 1958 일본 사람들이 르네상스 사람들의 원근감을 받아들이고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꾸로 서양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 너무나 역동적이라 생각을 하며 근대성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시각적 조형성 으로 표현하자고 느꼈다고 할 수 있다. 우끼오에의 사선의 원리는 근대성과 결합될 수 있는 시각 조형 예술로 받아들여졌다. 굉장히 동적인 느낌을 준다. 호쿠사이, <후지산 36경 > 19세기 초 낮은 자들의 혁명이라 생각했고, 일본을 만인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그 당시에 프랑스 사 람들이 열렬히 추구하던 이상적인 이념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에 어우러져 평화롭게 산다고 생각했고 일본 우끼오에가 들어오며 공예품들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유럽에서는 공예를 굉장히 무시했었고 회화에서도 풍경화는 굉장히 무시했었는데, 한 마디로 계급을 두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풍경 속에서 사람들이 함께 사는 모습을
  • 47. 보며 프랑스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르네상스 이후로 회화, 조각, 건축은 인문학이었다. 그 방면에 공예는 굉 장히 장인의 것이라고 생각을 해 왔다. 그래서 몇 백년동안 그것이 전해져 내려왔는데 프랑스 대혁명 뒤에 일본에 서 들어온 공예와 회화를 보며 계급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근대미술가들은 거의 공화주의자들이었 기 때문에 일본 목판화에 굉장히 열광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보수주의자들이나 왕정주의자들은 전혀 좋아하지 도 않았다. 프랑스에서 근대미술을 이끈 사람들은 공화주의자, 진보주의자들이었고 그들의 눈에는 일본 목판화는 만인이 평등한 사회로 보여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순수하게 보면 명암법 등을 몰라도 그림이 완성되고 순수한 색채와 평면성 왜곡된 원근법을 자신의 조형 원리로 하나의 근대적인 조형성 즉, 근대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Karsushika Hokusal, The Great Wave, In the hollow of a wave off the coast at kanagawa[Kanagawa ok] naml 아 그냥 이러한 작품... 파도치는.. 비대칭의 리듬이라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대칭이 아닌 비대칭이었을 때 더욱 더 자유로운 효과를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프랑스 사람들은 이러한 일본 목판화를 보고 자유와 동일시 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본 목판화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하나의 지역성을 보편성으로 전환시키는 아이디어를 서양사람들에게 주었 다. 비대칭성과 비규칙성을 프랑스사람들은 발견했고 자유와 평등의 개념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대칭성 과 비규칙성은 자유를 느끼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보편성으로 승화시키며 평등의 개념을 끌어 내었다. 도미에 < 삼등 열차 > 1862-1864 사회적 사실주의 19세기의 파리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났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관습이나 제도가 공격을 받게 된다. 1789 년 7월 14일 프랑스 대혁명에서 왕권이 신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선포된다. 성직자가 신의 대리자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봉사자의 개념으로 바뀌게 된다. 계속 혁명이 일어나던 차에 우끼오에가 전해졌다. 진보주의자들은 낮은 자들의 혁명으로 받아들이며 굉장히 좋아 했다. 히로시계 <에도 100경 > 중 <아타케대교의 소나기 > 1857 사람들은 마치 우끼오에의 그림을 도미에의 삼등 열차같은 그림과 같이 느꼈다. 3월 31일 목요일 현대미술의 이해 굉장히 모방적인 자연의 리얼리즘을 보여주려고 했던 반면에 근대미술은 실제로 눈에 본 세계를 탐구하며 작가의 주관성이 들어가게 됨. 일본미술과의 관계에서 왜 일본 미술을 하는가 하면, 근대미술이 탄생되는 데 있어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고 근대미술이 탄생된 것은 아니고, 서양사람들이 생각했던 방향 즉, 근대미술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방향이 일본의 미술과 같아 굉장히 열광했다. 근대미술의 개척자들이 일본 판화에서 발견한 것은 1. 시점의 자유로움 - 르네상스 원근감, 공간감에서 벗어나 2. 평면성 - 순수한 강렬한 (밝고 화사한)색채를 추구, 일본 목판화에서 굉장히 자극을 받음, 햇빛이 가득한 천국과 같은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했음
  • 48. 3. 일본 미술에서 볼 수 있는 모티브의 다양성 - 전통적으로 서양은 종교화, 전쟁, 초상화 등에서 국한이 되었었지 만 서민들의 생활상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일본 목판화를 보고 굉장히 감동을 받게 되었다. 4. 불규칙성을 통한 자유로운 리듬 - 5. 모방의 리얼리즘을 초월 - 굉장히 자유롭다고 생각했음 6. 일본 목판화 = 자유의 상징, 인상이라고 생각함 드가, <국화 옆에 앉은 여인>, 1865 주인공 여자가 잘려 있다. 드가 , <파리 오페라의 오케스트라 > 1868-69 히로시게, 하네다의 페리선 1856 재미있는 구도를 볼 수 있다. 사람과 자연이 굉장히 대등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자연이 굉장히 부각되는 것이 근대 사회의 특징인데 일본 목판화는 인간이 더 우월하지도 않고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드가 < 욕조 > 1886 일본 목판화의 영향을 받아 완전히 새롭게 독창적으로 변환시켜 ‘자포니즘’이 드러난 그림이다. 일본의 망가-드로잉 화첩 모네 < 세느 강 기슭 >모네 < 포플러 > 연작이 인상주의 전에는 없었는데 연작이라는 개념을 일본 목판화에서 얻었다. 하나의 테마로 100개를 그린다던가 그런 개념을 얻어옴. 19세기에 이어서 브루주아와 화상이 늘어나면서 A라는 사람이 포플러를 구입하는데 다른 사람이 화상에서 나도 포플러를 하나 사고 싶다라고 해서 연작을 자꾸자꾸 하게 되는 것이다. 모네 <건초더미 : 눈의 느낌, 아침 > 1891 모네 , <건초더미, 눈의 smRLa, 흐린날 > 1891 연작이라는 자체가 그림을 팔기위함이라는 것은 틀림없고 그 아이디어는 일본의 목판화에서 얻었다는 점이 중요 하다. 피사로 < 풍경 > 1864 평원의 나열식의 구도를 사용함 세잔느 < La maison 여 pendu, 1874 > 화면에 있어서의 견고한 구도를 중요시 여겼다. 구도와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 세상에 모든 사물은 기하학적 입방체로 존재한다고 했다. 세잔느는 풍경 그림과 같은 나열식 병열식의 그림에서 화면에 어떠한 질서와 구도를 많 이 생각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잔느 <목을 멘 사람의 집> 히로시게, 1834-42 세잔느의 작품이 히로시게그림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 목판화의 영향을 받음. 1970년대만 해도 세잔느는 일본 목판화를 유일하게 경멸했다고 알려지고 잇었는데 지금 보면 영향을 받았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세잔느 < 겨울의 자 드 부팡의 밤나무 < 1883-86 > 이것은 연작인데 이것도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기하학적이고 rs고한 형태감각을 보여주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한다. 세잔느는 자연을 회화의 법칙으로 탐구한 사람인데 그 반면에 호쿠사이는 굉장히 자유롭고 낭만적인 느낌을 준다.
  • 49. 세잔느 , 쌩 빅투아르 산 에셔 브라운듀란드 < 타나톱시스의 풍경 1850 > 세잔느, 쌩 빅투아르 산 나무의 수직과 철교의 수평이 만나 굉장히 기하학적이고 평면적인 느낌을 준다. 최대한 환영을 없애려는 느낌을 준 다. 그런데 여기서도 일본 목판화의 아이디어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사학자들의 견해 요아킴 가스케 - 세잔느 전기의 저술가 세잔느는 에드몽 드 콩쿠르의 호쿠사이와 우타마르에 관한 책을 읽었다. 고갱 < 설교 후의 환영 -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 1888 평면성, 강렬한 색채 - 일본 목판화의 영향 고갱 < 자화상 > 반 고흐 <페르 탕기 1887 > 배경에 기모노 입은 여자가 있음 반 고흐 <이탈리아 여자 > 1887 반 고흐 <랑글르와 다리> 1888 일본작품임 <일본식 다리 < 1840 반 고흐 < 풍경 > 일본 목판화 호쿠사이 < 후지산 36경 중 하나 > 반 고흐 <씨뿌리는 사람 < 호쿠사이 / 반 고흐 / 고갱 / 모네 일본미술에서 받은 영감을 굉장히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자포니즘 작품들 블림트도 영향을 받음 클라인 < 형상 8> 클라인 < 뉴욕 < 1953> 근대로 들어오면서 서양미술은 르네상스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며 그 대안을 통한 동양 미술에서 찾음. 19세기에 들 어서 모더니즘 미술의 방향 : 자연에서 벗어나 독립된 길을 걸어가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