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deShare a Scribd company logo
1 of 101
Download to read offline
연구보고서 99-



 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




            경남개발연구원
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




    연 구 진
    연구책임
    민 말 순 (경남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연구보조
    허 연 지 (경남개발연구원 도시지역실)
    이 백 호 (경남개발연구원 도시지역실)
    최 민 혜 (경남개발연구원 도시지역실)
머 리 말

  다가오는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로 예견되고 있으며 문화산업이 고부가치

업종으로 부상함으로써 문화진흥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과학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사람과 물자의 국제적 교류가 빈번해짐에 따라

각국 문화의 동질성이 초래되므로 각 지역의 고유 문화에 대한 가치가 높아져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있다. 한편, 소득 증대로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주민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옛 것에 대한 가치를 재인식하고 전통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의식이 제고되고 있다.

  신라․백제와 함께 한반도 남쪽 고대국가의 한 줄기를 구축하였던 가야는

그동안 신라․백제에 비해 국가적 관심이 미약하고 역사적 자료가 부족하여 고

대사에서 올바른 위상을 차지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80년 이후부터 가야문

화 발굴에 따른 가야사 정립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시대적 추세에 따라 경남도 차원에서 가야문화정비에 대한 국

가적 관심을 유도하고 역사문화자원을 바탕으로 한 내발적 지역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가야문화권 정비 방안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제까지는 각

전문영역의 분야별로 가야문화에 대한 단편적인 연구가 수행되어 왔으나   본

연구는 관련분야의 연계를 통한 다학제적이며 총체적 접근을 시도하여 가야문

화권 정비 방안의 틀을 제공하므로 학문적 연구와 함께 문화행정에서 적지 않

은 기여와 활용이 기대된다.

                           1999. 12

                           경남개발연구원 원장
차                 례



Ⅰ. 서       론
 1. 연구 배경 및 필요성 ·················································································· 1
 2. 연구 목적 ······································································································ 2
 3. 연구 범위 ······································································································ 4
  (1) 내용적 범위 ······························································································ 5
  (2) 공간적 범위 ······························································································ 6
 4. 연구 방법 ······································································································ 6



Ⅱ. 가야문화의 성립과 특색
 1. 고대사의 가야국의 위상 ············································································ 7
 2. 경남지역의 주요 가야국 ············································································ 9
  (1) 김해중심의 금관가야 ············································································ 9
  (2) 함안중심의 아라가야 ·········································································· 11
  (3) 고성중심의 소가야 ·············································································· 14
  (4) 창녕중심의 비사벌국(比斯伐國) ························································· 16
  (5) 서부경남일대의 가야 여러 나라 ······················································ 17
 3. 가야문화권의 특색 ··················································································· 18
  (1) 낙동강 연안의 찬란한 고대문화 중심지 ········································ 18
  (2) 내세관이 깃든 가야인의 삶 ······························································ 21
  (3) 국제교류가 빈번한 가야문화 ···························································· 24




                                                   - i -
Ⅲ . 역사문화 환경의 보전
     1. 역사문화환경의 보전 방안 ······································································ 26
     2. 우리 나라 역사문화환경 보전 ································································ 27
      (1) 역사문화환경 보전 제도 ···································································· 27
      (2) 우리나라의 역사문화권 정비사업 ···················································· 31
     3. 외국의 역사문화환경 보전 ······································································ 33
      (1) 유럽의 역사문화환경 보전 ································································ 33
      (2) 일본의 역사문화환경 보전 ································································ 35


Ⅳ. 가야문화권 정비
     1. 가야문화권 특색과 정비의 주안점 ························································ 37
     2. 경남의 가야문화권 정비 추진현황 ························································ 39
      (1) 낙동강하류 유역권 ·············································································· 41
      (2) 남강하류 유역권 ·················································································· 54
      (3) 남해안 연안권 ······················································································ 60
      (4) 황강 유역권 ·························································································· 67
     3. 가야문화환경 정비 방안 ·········································································· 75
      (1) 가야문화권 정비의 이념 ···································································· 75
      (2) 가야문화연구 네트워크 구축 ···························································· 77
      (3) 제도적 정비 방안 ················································································ 78
      (4) 민간차원의 참여 ·················································································· 80
      (5) 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 82


Ⅴ. 결 론 ·········································································································· 88


참고문헌


                                                      - ii -
표 차 례




<표 1> 문화재 보호구역 ·················································································· 28
<표 2> 백제역사재현단지 시설 계획 ······························································ 32

<표 3> 경상남도 가야문화권 정비계획(1998~2002) ································ 41

<표 4> 김해박물관의 가야유적 조사계획 ······················································ 45

<표 5> 대성동․양동리 고분군 정비계획 ························································· 46

<표 6> 의창 다호리 고분군 정비계획 ···························································· 50

<표 7> 도항․말산리 고분군 정비계획 ····························································· 56

<표 8> 송학동 고분군 정비계획 ······································································ 62

<표 9> 가야촌개발 계획 ···················································································· 69




                                               - iii -
그 림 차 례



<그림 1> 연구목적과 연구내용 ·········································································· 4

<그림 2> 가야제국도 ···························································································· 8
<그림 3> 가야 주요고분 분포도 ······································································ 40

<그림 4> 김해 대성동 고분군 전경 ································································ 44

<그림 5> 김해 대성동 고분군 출토물 ···························································· 44
<그림 6> 창원 다호리 유적 전경 ···································································· 48

<그림 7> 창원 다호리 유적 출토물 ································································ 48

<그림 8> 함안 도항리 고분군 전경 ································································ 55

<그림 9> 함안 도항리 고분군 출토물 ···························································· 55

<그림 10> 창녕 교동 고분군 전경 ································································· 59

<그림 11> 창녕 교동 고분군 출토물 ····························································· 59
<그림 12> 고성 송학고분군 전경 ··································································· 63

<그림 13> 합천 옥전고분군 전경 ··································································· 71

<그림 14> 합천 옥전고분군 출토물 ······························································· 71
<그림 15> 산청 구형왕릉 ················································································· 73

<그림 16> 산청 묵곡리 유적 출토물 ····························································· 73




                                                 - iv -
Ⅰ. 서 론


 1. 연구 배경 및 필요성


  최근 국제사회의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국가간의 무역장벽이 무너지고 교

통통신망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 자본, 정보의 국가간 이동이 증가하는 추세이

다. 국제교류가 급증함에 따라 과학기술의 보급과 함께 문화의 수렴 현상이

급속하게 나타나고 있다. 문화의 동질화현상은 각국의 생활양식의 동질화를
추구하므로 지역의 고유성은 희소성으로 더욱 가치를 높이게 된다.

  이와 같은 사회변화가운데 세계화의 전략은 ‘가장 지방적인 것이 가장 세

계적이다’로 요약되고 있다. 세계각국은 자국의 전통문화를 토대로 한 관광상
품을 개발하여 문화관광산업으로 세계무역장벽과 경제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 노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 나라도 지방자치제도의 정착에 따라 내

발적 개발에 의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고유한 향토자원의 관광자원화

방안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세는 지역의 향토자원인 전

통문화보전․정비에 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성장위주의 개발과정에서 외국문물의 무분별한 도입으로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정당한 평가 없이 많은 향토자원이 훼손․상실되

고 말았다. 산업화과정에서 문화재 보호는 뒷전으로 밀려 민족혼이 담긴 문화

재들은 파헤쳐지고 부서진 채로 방치되고 멸실되어 왔다. 국민 또한 역사적

문화환경을 향유할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문화의 고부가가치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됨에 따라 우리 옛

것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소득증대에 따른 삶의 질에 대한
주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쾌적한 생활환경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지속




                   - 1 -
가능한 개발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함에 따라 문화․생태도시 조성에 대한 인식

이 증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세가운데 21세기 문화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지역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하여 경남문화의 뿌리인 가야문화의 복원 및 정비에

관한 연구가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2. 연구 목적


  가야문화권 정비에 관한 연구는 아래와 같이 세 가지의 목적을 설정하여
수행토록 한다. 첫째, 전통문화의 복원 및 재현을 목적으로 경남의 뿌리인 가

야문화의 복원 및 정비방안을 제시한다. 우리 나라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

사와 전통 ……������으로 시작되며 제 9조에는������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듯이 민족문화유산의 보

존과 정비는 민족의 얼과 역사를 후손에게 길이 보존하기 위해 각 세대가 감

당하여야 할 의무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고대 신라의 도읍지인 경주는 1972년부터 10년간의

사업으로 진행되어 고도로서의 면모를 지녀 문화관광도시로 정착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백제문화권개발사업이 본격화되고 있어 백제의 도읍지인 부

여․공주를 중심으로 백제문화재현단지사업이 무르익고 있다. 이와 함께 신라․

백제와 함께 고대국가로서 찬란한 문화를 지녔던 가야문화 정비․보존도 하루

바삐 이루어져야 한다. 1980년대부터 학계에서도 활발하게 조명되어 온 가야
사의 정립과 함께 가야문화의 보전과 정비도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지방자

치단체차원에서 수행해 나가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 국가적

사업으로 국가가 선도적으로 수행되어 나가야 한다. 본 연구는 전통문화의 복

원 및 정비사업의 목적으로 가야문화 정비에 대한 국가적 관심을 제고하기 위

한 자료를 제공하도록 한다.



                   - 2 -
둘째, 주민의 삶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역사문화환경조성 방안을 제시하

도록 한다. 헌법 제35조의 환경권 확보는 경제성장으로 인한 물질적 풍요의

욕구를 넘어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의 증가와 삶의 질의 확대에 대한 관심을

만족시키는데 있다. 이와 연계하여 경제발전과 삶의 질 향상에 따른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차원에서 역사문화 환경권에 대한 정립이 이

루어져야 하며 헌법에 명시한 국가의 원리를 구현한다는 차원에서도 문화역사

환경권 확립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문화환경 조성시 문화재보호는 문화재를 포함하는 주위의 자연환경과

일체를 이루는 존재인식, 점(點)에서 면(面)으로 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며

단위건축물을 둘러싼 지역정비의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즉 역사문화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과의 연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문화‧역사지구의 관점에

서 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토개발과 문화유산의 보존문제는 통합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검토한다면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결론

에 이른다. 국토개발과 도시개발의 궁극적 목적도 국민의 삶의 질의 향상과
물질적인 생활의 풍요와 안녕을 넘어 정신적인 생활의 문화의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인간중심의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데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바탕으로 지역의 향토성을 세계화할 수 있
는 내발적 개발 방안을 모색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하도록 한다. 최근

서구 선진국가에서는 각 지역의 특성있는 경관뿐 아니라 문화․역사․민속을 장

소의 개성과 정신으로 재구성하는 문화전략형 장소판촉(place marketing)정책

을 수행하고 있다. 이 전략은 지역에 대한 소속감과 정체성을 강화함으로써

주민의 통합을 이끌어내고 문화전통을 산업화하며, 고급문화의 소비지라는 고

유한 장소이미지를 형성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
우도 지방자치제도의 정착으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내발적 개발전략을 추진

해 나가야 하므로 주요 향토자원인 향토문화자원을 산업화하는 발전전략이 요

구되고 있다.


                     - 3 -
다른 한편으로 삶의 질 제고와 환경 보전의 관점에서 환경친화적인 관광

산업은 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개발부문이다. 그러므로 자연환경을 보존

하고 주민의 문화향수의 기회를 제고하는 동시에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

관광산업이 21세기 유망산업으로 부상되고 있는 세계적 추세속에서 경남의

뿌리인 가야문화를 바탕으로 가야문화권을 정비하여 문화관광산업화하여 지역

경제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코저 한다.




               가 야 문 화 권



민족문화의 고양     주민의 삶의 질 제고          지역경제 활성화



             문화‧역사자원을 통한         지구단위의 가야문화권
가야문화권의 유적
             주민들의 문화향수기회           정비를 통한
 발굴 및 보전
                  제공               관광산업 육성

             <그림 1> 연구목적과 연구내용




 3. 연구 범위


  전술한 바와 같이 본 연구의 목적은 가야문화유적을 보존․정비함으로써 민

족문화의 창달을 도모하고 주민에게 문화향수의 기회를 제공하여 주민의 삶의
질을 제고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역사문화자원을 관광자원화하여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한다.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기발표된 가야사에 대

한 연구를 바탕으로 경남지역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가야국의 유적과

유물을 중심으로 가야문화권의 정비에 관한 연구로 연구범위를 한정한다. 그




                    - 4 -
러므로 본 연구는 기조사된 기존 가야諸國의 역사유적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

을 중심으로 가야문화의 얼을 보전․정비하는 문화환경 조성방안을 도출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내용적 범위와 공간적 범위는 아래와

같다.



 (1) 내용적 범위
  1) 경남 각 시․군의 가야문화의 시․군별 인벤토리를 작성한다. 이제까지 개

       발사업의 방향과 내용이 담긴 기본계획이 미비한 이유는 경남 전역의

       가야 유적의 현황에 대한 인벤토리 작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

       기 때문에 인벤토리 작성의 기초를 제공한다.

  2) 가야문화에 대한 특성을 고찰하고 가야문화환경 정비의 잠재력과 제한

       점을 도출한다.
      가. 가야문화정비에 관련된 기존 수립된 계획 및 사업을 검토한다.

      나. 가야문화 유적의 보전실태와 문제점을 도출한다.

  3) 우리 나라 역사문화환경 조성 방안 현황과 외국의 현황을 분석한다.
  4) 지역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가야문화권 정비 방안을 설정한다.

      가. 가야문화권 정비의 이념을 정립한다.

      나. 역사문화환경의 정비차원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루

        어야 하는 제도적 방안을 모색한다.

      다. 각 단위 가야문화권에서 문화환경조성 차원에서 이루어야 하는 물리

        적 환경 조성방안을 도출한다.

      라. 경남의 가야문화권 정비를 통한 지역경제활성화 방안을 검토한다.




                       - 5 -
(2) 공간적 범위
  공간적 대상범위는 가야시대를 통해 경남지역에 세워진 가야국에 한정하

여 경남 전역 20개 시군이 해당된다.



 4. 연구 방법


  21세기는 문화․역사환경이 조성된 환경공생적 도시가 경쟁력을 갖게 됨에

따라 경남문화의 모태인 가야문화 유산의 보전과 재정비 전략이 요구되고 있

다. 기존의 문화환경 조성은 유적이나 유물 등의 점적(點的) 보존차원에 머물

고 있으나 유적과 유물을 둘러 싼 주위환경과의 연계로 지구단위의 문화환경

정비방안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지향적 도시설계 및 계획 차

원으로 접근하는 역사문화지구의 구상 및 계획․개발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 가야문화에 대한 문헌조사

  □ 우리 나라의 문화환경 조성 방안
  □ 외국의 역사문화환경 조성 방안

  □ 현장조사




                     - 6 -
Ⅱ. 가야문화의 성립과 특색


 1. 고대사의 가야국의 위상


  한반도 중․남부지역에는 1~3세기 후반까지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이 존재

하였으며 마한은 그 구성원의 하나인 백제국에 통합되어 백제왕국이 되었고

진한도 사로국에 의해 통합되어 신라왕국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2국으로
구성된 변한은 그 내부의 어느 한 세력에 의해 통합되지 못한 채 3세기말 4

세기초에 가야사회로 전환되었다.(노중국, 1998) 맹주국의 변화를 중심으로

가야사는   전기(3세기말․~5세기초)․중기(5세기초~6세기말)․후기(6세기초~6세
기후반)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는 금관가야 중심체제이며, 중기는 대가야중심

체제이며 후기는 대가야와 아라가야 중심체제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의 연구에 따르면 전기에는 김해 가야국을 중심으로 한 소국연맹이
있었으되 연맹체는 소국들의 정치권력이 비교적 분산된 상태였으나 이미 3세

기 전반에 변진 12국은 김해의 구야국(가야국)을 중심으로 통합되어 변한소국

연맹, 즉 전기가야연맹을 이루고 있었다. 魏志 倭人傳 서두의 교통로 기록으로

보아서는 대방군과 마한계통의 여러 소국들을 왜의 소국들과 연결하는 중심지

가 김해의 구야국으로 나타나고 있다. 후기에는 고령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소

국연맹이 있었고 그 시기는 5세기 후반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가야국은 6가야로 많이 알려져 왔으나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게 발견

할 수 있다. 6가야의 명칭은 『삼국유사』5가야조에서 유래하여 아라가야․고

령가야․대가야․성산가야․소가야 등의 다섯가야가 나오며 수로왕이 가락국, 즉
금관가야를 건국할 때 나머지 다섯가야도 함께 건국되었다는 삼국유사를 토대

로 6가야연맹의 개념이 생긴 것이다. 금관가야는 경남 김해시, 아라가야는 경

남 함안군 가야읍, 고령가야는 경북 성주군 함창읍, 대가야는 경북 고령군


                     - 7 -
가야산

            거창
                                 하가라도
             거 열

           자 타

                         합천 다 라             창녕                                  울산
     함양                                                 밀양
                   사자기   사팔혜
                                        비자화
                          산반해

             산청                                                     양산
                 걸 손                        칠 토        졸 마
                                   사이기
      지리산                        의령
                               임 찰    안 라 탁 순          녹기탄
                                                               김해        부산
                                     함안 마산
                         진주
                                                  창원
     달 사                                                 금 관
           대 사                       골 포           진해
                      사천
      하동
                   보 기  사 물
                          물 혜    구 차
                                  고성

                                                                              국명
                                                 거제
                                       통영                                     현재 지명
                 남해
                                                                          우륵 12곡의
                                                                          곡명이 된 지명



                          <그림 2> 가야諸國圖            1)




고령읍, 성산가야는 경북 성주군성주읍, 소가야는 경남 고성군 고성읍을 가리

킨다. 그러나 고려시대 사서인 『本朝史略』에 의하면 5가야에 금관가야와 비

화가야가 들어가고 대가야와 소가야가 빠져 있다. 비화가야는 지금의 경남 창

녕에 해당한다.2) 가락국기에서는 가야의 영역을 동쪽은 황강, 서남쪽은 푸른

바다, 서북쪽은 지리산, 동북쪽은 가야산, 남쪽은 나라 끝이라고 설명하였다.

1) 부산‧경남역사연구소 편 「시민을 위한 가야사」의 그림을 재구성

2) 통설로 알려진 6가야연맹은 실재한 것이 아니라 신라말 고려초의 관념속에서 존재하던
 허구의 전설이나 고려시대의 삼국유사와 그를 반복적으로 기록한 조선시대의 신증동국
 여지승람 등의 각종 지리지, 읍기를 거치면서 사실처럼 굳어진 것이다.(김태식, 1997)




                                       - 8 -
그런가 하면 같은 「삼국유사」 오가야조에서는 낙동강 동쪽에 위치하는 창녕

의 비화가야와 가야산 북쪽에 위치한 성주의 성산가야를 말하고 있어 가락국

기 내용보다 범위가 넓게 표현되어 있다3).

  이상의 가야제국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전

반에 활발하여 이 시기는 여러 분야에서 가야사의 초석들이 놓여진 시기였다.
김해의 양동리고분과 대성동고분, 합천 옥전고분, 창녕교동고분, 함안 도항리

고분 등 각지에서 수많은 고분이 발굴 조사되어 문헌사료가 부족한 가야역사

를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2. 경남지역의 주요 가야국


 (1) 김해중심의 금관가야
  가야국의 중심국가인 금관가야가 입지한 김해 지역은 낙동강 하구 우안
(右岸)의 평야로 되어 있지만 옛 지질 연구에 따르면 가야 당시 그 일대는 넓

은 만(灣)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는 양항의 조건을 갖추었으

며 낙동강 주운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지에 해당하여 낙랑․대방군으로
부터 서, 남해안을 거쳐 왜(倭)로 가는 항로에서 한반도내 마지막 기착지였다.

한반도 서해안과 동해안을 동서로 잇고 영남 내륙과 왜를 남북으로 잇는 교

통, 교역로의 교차점으로 진․변한 당시의 대외 교역의 중심지로써 발전하였다

  금관가야의 공간적 범위는 시기에 따라 다소간 변화가 있지만 김해 일대

에 걸쳐 발달했으나 낙동강 하구 서안평야 주변부인 얕은 구릉 지대가 가장

중요한 지구였으며 웅천․다대포 등의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진영읍 동편의



3) 고고학자료로 보면 창녕이나 성주의 토기문화는 일반적인 가야토기양식과 다르게 나타
   나고 있고 오히려 지리산 넘어 전북의 남원, 장수 지역에서까지 고령계 토기가 다량 출
 토되고 있는 실정이다.



                       - 9 -
생림면․한림면 일대도 주요 읍락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후자의 퇴래리 분

묘군에서 출토된 갑옷 등이 그 점을 강력히 시사하는 자료이다. 김해시 북쪽

의 유적은 그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이지만 진영읍을 기준으로 서편인 창원시

다호리에서 변한 초기의 중심지였음을 나타내는 분묘 유적이 발견되고 그 후

의 고분군 흔적이 있으므로 금관가야 시기에도 일대에 주요 읍락이 있었을 가

능성이 높다. 다호리 유적에 가까운 덕천리 지석묘 유적은 변한 이전부터 중

요한 취락지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한편 낙동강 대안의 부산 지역에

도 금관가야 초기에 깊은 연계가 있었음을 보이는 고고학적 흔적이 보이고 있

다.

     지금까지 발굴된 금관가야의 주요 유적은 고(古)김해만 주변부와 낙동강

하류 주변부에 소재한 것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서편의 양동리고분

군 중심과 동편의 대성동고분군 중심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두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이나 유구를 볼 때 그들은 변한시에는 거의 대등한 세력이었을 것으

로 보이나 금관가야가 성립하면서 점차 대성동 쪽이 우세한 중심 읍락이 되어
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김해의 수가리패총이 남아 있으며 창원 덕천리의 지

석묘는 상석 주위의 석축열과 상석 아래 2중 3중 구조의 석곽묘 형식의 하부
구조로 유명하다. 그리고 김해의 구지봉에 있는 지석묘는 금관가야의 건국시

조 설화가 얽혀 있는 구지봉 중심부에 존재하고 있어 가야 형성의 원류를 암

시하고 있다. 또한 석관묘 유적은 마산 신촌리의 석관묘에서 청동검이 출토되

기도 하였다.

     청동기시대 유물인 창원 다호리유적에서는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 그 안을

파낸 형식의 목관묘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각종의 세형동검을 비롯한 철검
과 함께 철기재료로 쓸 수 있는 다량의 판상철부와 철제공구 등 풍부한 철제

품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 일반생활용기인 다수의 칠기 그릇들과 함께 붓이

출토되어 당시의 지배계층에서는 문자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 10 -
금관가야의 국명에서 나타나듯이 김해 지역은 대표적 철산지이거나 교역

의 중심지인 점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일본서기」에서는 수나라(湏那羅)라

하였고, 이는 쇠(鐵)나라로 해석되므로 국가명에서도 나타나듯이 김해 지역은

철생산국으로 대내외적으로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2) 함안중심의 아라가야
  함안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라가야는 「삼국유사」5가야조에 함안이라고

표기된 것을 비롯하여 「삼국사기」지리지 함안군조에도 아라가야 혹은 아나
가야로 나오고 있어 가야제국중 위치가 확실한 나라중 하나이다.4) 아라가야는

수로를 통해 내륙지역과 남해안과도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육상․해상의 지리적

이점으로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 발전하여, 남해안 지역인 마산․창원과 남강하

류 북안의 의령을 포함하는 하나의 권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라가야의 중심인 함안은 지리적으로 볼 때 경남의 중심지로 남강 및 낙

동강을 통해서 가야 전 지역으로 연결될 수 있다. 즉 서북쪽으로 남강을 거슬
러 올라가면 진주와 사천지역과 통하고, 남강을 타고 내려와 낙동강을 건너면

창녕에 닿는다. 거꾸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황강을 통해 합천의 내륙지

방에 닿을 수 있으며 더 올라가면 회천을 따라 고령의 대가야로 연결된다. 또

낙동강을 그대로 내려가면 김해지역으로 통할 수 있다. 한편 육로로는 동서로

뻗은 산지의 사면구릉을 따라 마산․창원에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계곡을 따라

곧 진동의 남해안에 다다르게 된다.
  아라가야국이 풍부한 농수산물과 철제품을 이용하여 동서의 여러 나라들

과의 교역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까닭은 이와 같은 지리적 이점에서 찾을 수



4) 「삼국지」동이전 한조에는 변한12국 중의 하나인 안야국으로 표기되며 이미 3세기에
 소국으로 존재하면서 김해의 구야국과 함께 진왕으로부터 우호를 받기도 하는 유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광개토왕비문에는 안라로,「일본서기」에는 안라국으로 표
 기되어 있다.



                      - 11 -
있다. 야로령이 남해안의 진동항과 마산항과 불과 10~20㎞ 정도 떨어져 있

어 수송상 유리하였다. 또한 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있었으므로 물물교류가

더욱 용이하였다. 이외에도 경질이며 섬세한 문양의 토기가 생활용구로 일본

등지에 수출되었다는 것 등에 비추어 볼 때, 고대 아라가야의 높은 문화수준

을 짐작할 수 있다.

  함안지역은 일찍부터 청동기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이후 철기문화가 유입

되어 각 부족간에 정복전쟁을 통한 정치적인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아라가야라

는 정치적 실체가 되었다. 봉성동, 괴산리, 동촌리, 광정리, 회산리 등의 지석

묘군 외에도 다수의 지석묘가 산재해 있어 청동기시대부터 일대에 주민이 거

주하였으나 변진안라국이 주위의 소국들을 흡수 통합하여 아라가야를 형성하

였다고 본다. 가야읍의 도항리, 말산리, 가야리, 신음리 일대의 낮은 구릉지대

에는 웅장하게 축조되어 있는 3세기이후의 고총고분 100여 기가 군집하고 있

다. 수장급 고분의 입지적 특징, 고분의 수, 묘역의 범위는 김해, 고령, 창녕,

고성 등 다른 가야국의 중심유적과 비교하여도 탁월하다. 고분 개석 남단에서
‘수하왕’이라고 새겨져 있는 명문이 발견되는 점에서 왕이라는 용어를 붙일 만

큼의 세력이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함안을 중심으로 김해, 마한, 낙랑, 왜 등과의 교역을 통하여 전성기를 이
루었다. 고구려의 세력팽창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는 전기 가야문화권에 비해

아라가야를 비롯한 고령, 함양 등의 내륙 산간 후진지역은 오히려 전화를 입

지 않고 세력기반을 확실히 성장하여 후가야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아라가야는

5세기 이후 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백제․가야․왜 연합세력에 참여하여 고

구려․신라 연합군에 패배하기도 하지만 꾸준한 성장과 발전을 계속하였다. 특

히 6세기 이후에는 신라의 계속되는 압박으로 가야세력이 위태롭게 되자 가야
의 결속과 부흥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라가야의

최고수장은 대가야와 같이 왕을 칭하고 그 아래 지배체제도 서열화 하는 등의

정치체제도 어느 정도 갖추었던 나라였다.


                    - 12 -
낙동강과 남강 유역의 넓은 평야와 고온다습한 여름기후는 농경에 매우

유리하여 일찍부터 논농사가 이루어졌다.5)(이덕순, 1998)   고현 남해안은 수

심이 앝으며, 해안의 굴곡이 심하고, 항만이 발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석간만

의 차도 크지 않아 물고기와 미역, 소금의 산지로 이름나 있다. 또한 함안의

야로령철산은 대가야의 야로철산과 함께 변진가야국의 이름난 철장으로 해외

에까지 알려졌다.6) 철광산 채굴, 제철에는 막대한 인력이 소요되므로 제철소

를 중심으로 취락이 형성되었다고 간주된다. 아라가야는 많은 양의 호미, 삽,

낫, 도끼, 창, 쟁기 등의 우수한 철제농기구를 생산하였으며 철제 쟁기를 이용
한 우경의 보급은 획기적이고 비약적인 생산력의 향상을 이끌었다. 이처럼 향

상된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인구가 증가하여 아라가야는 보다 강력한 정치적

실체로 발전할 수 있었다.
  아라가야의 유물이 함안군 전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아라가야

의 실상을 규명해 줄 국보급 유물은 일제 강점기에 발굴을 통하여 일본인들이

가져갔으며, 이후에는 도굴과 농민들의 무분별한 경작 등으로 귀중한 문화재
가 훼손되거나 사라졌다. 아라가야의 대표적 유적은 함안군 함안읍의 말이산

에서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구릉의 정상부를 따라 60여기의 고총고분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말산리, 도항리고분군이다. 도항리의 북쪽 자락에 위치한 마갑총

에서는 금동제 환두대도와 함께 철제 말갑옷이 출토된 바 있다. 그리고 마산

창원지역에서도 현동고분군, 창원 도계동고분군을 발굴 조사하였고, 남강하류

북안의 의령지역에서는 함안 황사리고분, 의령 예둔리고분 등이 조사되어 아

라가야권역의 문화상이 어느 정도 밝혀지게 되었다.


5) 삼국지 동이전 변진조에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 및 벼를 심고 잠상을 할 줄 안다는 기
 록으로 미루어 볼 때, 기원 3세기 이전에 벌써 도작농업이 성하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6)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조에 ‘國出鐵 韓濊倭皆從取之 諸市買皆用鐵 如中國用鐵又供給
 二郡’이라는 기록은 해외 여러 나라에까지 변진의 철산물이 공급될 만큼 변진에서 생산
 량이 방대하였음은 물론 철제기술이 고도화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 13 -
함안지역의 경우 유적, 유물을 통한 고고학적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

료에 의한 문헌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이는 아라가야에 대한 사료부족

이 근본원인일 것이고 지역단위의 아라가야사를 중심 논지로 진행한 연구가

부진한 까닭이다. 최근에 아라가야의 실체접근을 위한 고대사 및 고고학적 연

구가 잇달아 발표되어 아라가야사 연구는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또

한 최근의 도항리, 말산리 구릉지역의 발굴조사에서 무문토기시대의 주거지,

지석묘, 석관묘 및 1세기에서 4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토광목관묘와 대형 토광

목관묘가 집중 조사되었다. 이에 대한 연구와 분석작업이 이루어질 때 아라가

야의 실체는 서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3) 고성중심의 소가야
  소가야는 현재의 경남 고성군 지방을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에 형성된 세

력이다. 소가야는 「삼국유사」5가야조에 고성이라고 나오고, 「삼국사기」지

리지 고성군조에는 고자국(古自國)으로 나오고 있다. 고자국의 직접 지배권역

이 어디까지인지는 분명히 하기 어렵다. 그러나 「삼국사기」지리1 강주 고성

군조에 고성군의 영현이 셋인데 사천을 포함하는 사물현과, 고성군 영현면 지

역 및 진주의 일선현과 고성군 상리면 일대라고 생각되는 민화량현으로 나오

고 있다. 그러므로 소가야는 고성군을 중심으로 사천에 이르는 남해안 일대의

인접지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중심지는 고성군 고성읍 일대이다.7)

  한편 소가야의 다른 명칭인 고자국은 남해안 지역에 위치한 국들과 연계


7) 고자국을 「삼국유사」에서 소가야로 부른 것은 고령의 대가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은 가야란 의미로 쓰인 것이라 생각된다. 이 고자국은 「삼국사기」지리1 강주조에
 는 고자국으로, 「삼국지」동이전에는 변한 12국중의 하나인 변진고자미동국으로, 「일
 본서기」흠명기 5년조에는 고차국으로, 23년조에는 구차국으로, 「삼국유사」5가야조
 에는 소가야로,「삼국사기」물계자전에는 고사포국으로 나온다. 그리고 고자의 자는 성
 (城)에 대한 우리말 고어라고 하며 그런 연유로 경덕왕때 고자(古自)를 고성(固城)으로
 고친 것이라고 한다.



                     - 14 -
하여 지역세력권을 형성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포상팔국 세력권이다. 이 포상

팔국은 골포국(骨浦國 : 현재의 경남 마산․창원 지역), 칠포국(七浦國      : 현재

의 경남 칠원 지역), 사물국(史勿國 : 현재의 경남 사천시), 고사포국(古史浦國

: 현재의 경남 고성군), 보라국(寶羅國 : 위치 미상) 등을 말한다. 현재의 경남

고성군 고성읍 송학동에 위치한 송학동 고분군의 규모에서 미루어 볼 때 고사

포국이 포상팔국 내에서 핵심적인 국이었던 것 같다. 고자국을 중심으로 한

포상팔국은 한때는 서로 연계하여 낙동강 하구의 김해세력을 공격하였지만 사

로국을 중심으로 한 진한세력의 간섭으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

아 이후 고자국은 그 세력이 위축되게 되었으나 6세기 전반기에 와서 어느 정

도 세력을 회복하였다.8)

  지리적 위치에서 볼 때 남해안을 따라 동서로 뻗은 산지로 북쪽이 막혀
있어 고성반도를 중심으로 독립된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해안을

통한 해상교역 활동과 중국이나 왜와의 교역을 통해 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서 북서쪽으로 좁은 곡간통로를 통해 사천을 거쳐 진주와 관계를 맺으
며 발전하였다.

  패총이나 유물포함층으로 남아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주로 연대도,

욕지도 등 남해안의 바닷가나 섬지방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에
는 대가면과 하이면에 대규모 지석묘군이 존재하고 있어서 토착세력의 존재를

짐작하게 한다. 1~3세기 유적으로 파악되는 동외동 패총은 고자국을 성립시

킨 주체세력들의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소가야의 대표적 유적으로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의 고총 고분군을 들 수

있다. 고성읍의 서북쪽 구릉의 정상부에 대형 봉토분 10여기가 몰려 있는 소

8) 「일본서기」흠명기 5년(544)조에 의하면 고자국=구차국의 수장=한기가 임나부흥회에
   대표로 참가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5가야조에 고성지역이 소가야
 로 나오는 것도 고자국이 남해안 지역을 대표하는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 15 -
가야 지배층의 주고분군을 추정하고 있다. 송학동고분군 외에는 사천이나 고

성의 다른 지역에는 이렇다할 대형고분이 존재하지 않고 진주에 일부 고총고

분이 존재하고 있다. 진주 진양댐 수몰지구의 대평리지구에서 지석묘돠 함께

석관묘유적이 조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환호 취락지와 함께 1,500평이 넘

는 대규모의 밭유적이 발굴되어 이시대 농경생활은 물론 사회구조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4) 창녕중심의 비사벌국(比斯伐國)
  비사벌국은 낙동강 중류의 화황산 서남쪽을 중심으로 경남 창녕지역을 기

반으로 성립한 세력이다.9) 비사벌국이 성립하였던 죽사리와 장마면 유리에 지
석묘가 분포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청동기 시대 이래의 토착집단이 자리한 곳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토착집단을 기반으로 하여 전후한 시기에 창녕지

역에 비사벌국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5세기 이후에 비사벌국은 신라 진흥
왕에 의해 신라의 직할영역으로 편입되어 대가야를 공격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이용되었다.

  입지적으로 낙동강의 본류에 접하고 있으면서 초계․합천으로 올라갈 수 있
는 황강 입구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낙동강 연안평야의 저습지와 자연 늪지가

많으므로 풍부한 농업생산력과 편리한 교역을 통해 성장하였다. 비사벌국의

직접 지배권역은, 「삼국사기」지리1 양주 화왕군조에 추량화현(推良火縣 :

현재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이 영현으로 나오고 있는 것에서 미루어 볼

때 현재의 경남 창녕군 창녕읍과 대구시 달성군 현풍읍이 비사벌국의 직접 지

배권역으로 추정된다.


9) 비사벌국은 「삼국사기」지리1 양주 화왕군조에는 비자화국으로, 창녕진흥왕척경비에는
 비자벌로, 「삼국유사」5가야조에는 비화가야로, 「일본서기」신공 섭정기 49년조에는
 비자발로 나온다. 이 비사벌국은 명칭에서 미루어 볼 때 「삼국지」동이전에 나오는 진
 한 12국의 하나인 불사국에 비정된다.



                         - 16 -
비사벌국의 세력은 창녕읍에 소재한 교동고분군을 비롯하여, 계성고분군,

영산고분군, 현풍고분군을 통해 강대했음을 알 수 있다. 창녕지방의 고분에 대

한 지표조사는 일본인 학자들에 의하여 주도되었으며 조사는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다.10) 1994년에는 구마고속도로 4차선 확장공사로 인하여 부산대 박

물관의 계성면의 명리와 사리지구의 고분 발굴조사에서는 토기류와 철기류를

포함한 12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런데 출토품 중에 대간이라는 문자가

새겨진 굽다리접시가 포함되어 있어서 이 시기에 창녕지역의 정치․사회상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5) 서부경남일대의 가야 여러 나라
  다라국은 경남 합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세력이다. 변한 12국 가운데 다

라국과 연결되는 나라는 없으며, 이 다라국이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일본서

기」신공 십정기 49년조이다. 이는 다라국이 변한사회가 가야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새로이 두각을 나타낸 세력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마

도 이 다라국은 변한시기에는 소별읍과 같은 존재였거나 미미한 국(國)으로

있다가 4세기에 들어와서 세력을 키워 독립적인 국가로 성장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11)

10) 세키노는 창녕읍 일원의 유적과 교동고분군을 지표조사하였으며, 1915년에는 구로이
 타가 창녕고분군을 조사하였고, 1917년에는 이마니시 창녕의 유적에 대한 종합적 조사
 를 실시하여 상세한 보고서를 간행하였다. 그후 1918년부터 창녕 고분군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하다마와 우메하라 등에 의하여 교동 제21호분과 제31호분이 발
 굴되었고, 같은 해에 야쓰이는 교동 10기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보고서는
 간행되지 않았으나 출토된 유물이 마차 20대분(화차 2량분)에 달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 「일본서기」흠명기 2년조와 5년조에 의하면 다라국은 임나부흥회의에 하한기와 이수
    위를 대표로 파견하고 있다. 하한기는 다라국의 한기들이 상한기-하한기로 분화된 것
  을 보여주며, 이수위는 수위(首位) 층이 상수위-이수위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따
  라서 6세기에 들어와 다라국의 지배조직은 (상)한기-하한기라고 하는 한기조직과 상
  수위-이수위라고 하는 수위조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지배조직은



                      - 17 -
다라국의 직접 지배권역은 분명히 하기 어렵다. 그러나 「삼국사기」지리

1 강주 강양군(江陽郡 : 현재의 경남 합천군)조에 삼기현(三岐縣 : 현재의 경

남 합천군 대병면)과 초팔혜현(草八兮縣 : 현재의 경남 합천군 초계면)과 신이

현(辛尒縣 : 현재의 경남 의령군 부림면)이 합천군의 영현으로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서 미루어 볼 때 현재의 경남 합천군 합천읍과 대병면․초계면, 의령군

부림면 지역이 다라국의 직접 지배권역이 아니었을까 한다. 합천의 옥전고분

군은 다라국의 수장의 위용을 보여주는 물적 증거라고 하겠다.

  고령을 기반으로 한 대가야의 영현으로 적화현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경남 합천군 야로면․가야면일대이며 거창군 및 함양군 지역의 일부도 대가야

의 직접 지배권으로 포함되고 있다. 대가야 전성기에 조세를 수취하고 지역민

을 통제하는 간접통치 지역으로 합천, 거창, 함양, 남원 및 섬진강유역의 하동

이 해당되고 있다. 이는 대가야가 왜와 교역할 때 이용했던 교통로에 위치하

고 있다.



 3. 가야문화권의 특색


 (1) 낙동강 연안의 찬란한 고대문화 중심지
  가야문화 형성의 모태는 낙동강과 소백산맥이다. 동쪽에는 강원도에서 뻗

어내려온 태백산맥이 해안선과 평행하게 달리고, 서남으로 소백산맥이 영남지

방과 중부 및 호남지방의 자연적 장벽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앙을 낙동강과
지류가 하나의 대유역 분지를 형성하여 서부산지는 합천, 거창, 함양, 산청 등

의 분지가 발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낙동강과 지류 유역의 크고 작은 분지와 평야에 입지한 가야제


  왕을 칭한 안라국이나 가라국과 유사하다. 그렇다고 하면 6세기의 다라국의 정치발전
  은 수장의 칭호가 한기였던 다른 국들보다는 격이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 18 -
국은 온화한 기후와 비교적 풍부한 강우량으로 농업에 적합하였고, 또 해안지

대는 풍부한 해산물의 산지였다.

  고령분지를 형성한 회천을 합류하여 남하한 낙동강은 황강, 남강의 2대

대지류를 합류시킨다. 황강은 남덕유산 동사면에서 발원하여 상류지역에 거창

분지를 형성하나 비교적 유역이 좁아 큰 평야는 없으나 합천의 봉계지역, 합

천읍. 초계․쌍책지역에 분지를 형성시킨 후 창녕 부근에서 낙동강 본류에 합류

한다. 소백산맥의 줄기인 백운산에서 발원한 남강은 동류하는 위천과 남덕유

산에서 내려오는 남계천이 함양에 함양분지를 만들고, 다시 남류하면서 산청

에서 경호강으로 합쳐서 산청분지를 만들고 있다. 또한 진주에 이르러 진주분

지를 동류하여 남강이 되고 의령을 거쳐 남지에서 낙동강 본류에 합류한다.

의령에서 남강을 건너면 남쪽에 함안이 자리하고 있다.

  황강․남강을 남지에서 합류한 낙동강은 밀양강, 양산천과 합치면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김해를 거쳐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로 흘러들면서 퇴적시킨 넓

은 삼각주평야의 배후 구릉에 자리잡은 금관가야는 가야국의 맹주역할을 하며
창원․함안을 잇는 한산산지와 구릉으로 연결되어 진영․창원․마산으로 연결되는

지리적 여건을 가지고 있다. 영남지방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낙동강은 배가 안

동까지 올라갈 수 있어 고대로부터 내륙 수로 교통의 동맥이 되어 이 지역주
민의 젖줄과 같은 역할을 한 강이다.12)

  경상남도의 남해안 지역은 낙동강유역과 별개의 유역으로 한산산지라고

하는 구릉지군이 형성되어 그 남사면에 고성만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가야
제국은 서부의 산지와 남해안의 구릉지, 낙동강분지로 이루어져, 이러한 자연

환경에 의해 가야 여러 지역이 독자 영역으로 구분되고 각기 독립적인 정치체

를 이룩하였으나, 낙동강 수계를 통한 외부문화 수용에서 가야라는 공통된 인


12) 낙동강은 총길이 525㎞, 유역면적 23,859㎢로 남한 면적의 1/4, 영남면적의 3/4에 해
    당한다. 낙동강 경사는 지극히 완만하여 하구에서 약 344㎞상류에 있는 안동부근에서
  도 해발90m에 불과하다.



                          - 19 -
식을 가질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연지세와 기후를 배경으로 이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옛 가야의 땅에 남아 있는 산봉우리 같은 거대

한 고분군들, 화려한 장신구들과 부곽을 가득 메운 토기 등 출토된 유물로 보

아 신라나 백제에 못지 않은 높은 문화수준을 누렸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가야지역 문화의 원류는 신석기시대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신석기시대의 뒤를 이은 청동기시대는 가야지역에

서도 신석기유적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범위도 넓어지고 유적‧유물 또

한 다양하고 그 수도 많다. 이 시대의 유적은 지석묘, 석관묘, 옹관묘 등의 분

묘와 주거지 암각화 등이다. 지석묘는 낙동강과 그 지류의 수계 및 분지주변

에 열을 지어 분포하기도 하고 군집되어 분포하기도 하여 가야가 형성되기 이

전부터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의 제의와 신앙 등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암각화 유적은 우리나라

에서 경북 동해안 지방에 대부분 분포하지만 가야지역에도 나타나고 있다. 암
각화는 대개 큰 하천변의 절벽이나 바닷가 바위 혹은 지석묘 상석에 분포하는

데 청동기시대 내지 초기철기시대에 이지역 주민들이 태양신을 상징하는 동심

원과 지신을 상징하는 가면을 조각하여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던 제의장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함안 도항리에서는 지석묘 개석에 소용돌이 문

양이 새겨진 암각화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기원전 3세기경까지의 청동기문화에서는 한반도의 다른 지역과 같이 많은

무문토기와 부장용토기라고 생각되는 홍도, 각종의 마제석기, 생활용품 등이

출토되었다. 그후로부터 기원전후한 시기에 매우 활발하고 복잡한 초기철기문

화가 이 지역에 유입되고 특히 발달된 漢문화인 낙랑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
되었다.

  가야는 철기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할 만큼 철기문화가 발달하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함안의 야로령철산은 가야국의 주요철광으로 중국과 일본에


                       - 20 -
도 알려질 만큼 가야제국은 철제농기구를 비롯한 철기문화를 꽃피워 많은 철

제 유물이 고분에서 발굴되고 있다. 또한 가야와 활발한 교류를 맞은 일본은

가야의 철을 중심으로 한 선진문물을 수입하여 일본고 대문명의 원류를 이루

었으며 가야의 철은 중국까지 수출되었다.



 (2) 내세관이 깃든 가야인의 삶
  가야문화는 오랜 시일이 경과하여 지상의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제한성이 있으며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의식주문화는 고분에서 출토된 유

품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의복문화는 가야시대 고분에서 직조 도구인 토제

방추차가 흔히 출토되므로 간단한 의복 직조는 각 가정에서 직접 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장 환두대도의 칼자루, 손잡이 등에는

아주 고운 직물이 붙어있고 문헌기록에도 비단 종류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왕족을 비롯한 지배층에서는 견직의복도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식생활 문화로는 이미 쌀농사와 어업활동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가야시대의 논이 조사된 것은 없지만 김해 회현리 패총과 부원동 유적에서도
쌀이 출토된 점을 미루어 낙동강 연안의 평야지대에서는 논농사를 지었고 구

릉지 사면에서는 밭작물을 경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농경도구로는 철제낫이

가야 전역에 걸쳐 가장 많이 출토되고 괭이와 쇠스랑, 도끼류가 많이 출토되

었다. 그밖에 다용도 도구이지만 도자와 같은 소형칼도 농경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농작물경작과 함께 중요한 생업의 하나가 어로작업이다. 가야의 유적에서

많은 어망추가 출토되고 그릇에서 물고기가 많이 출토되는데, 이는 낙동강을

비롯한 하천에서 물고기를 잡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생업인 농경․어로와 함

께 가축사육․수렵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가야고분에서 닭뼈가 음식물과 함
께 출토되었으며 합천 옥전과 함안 도항리에서 말투구‧말갑옷이 출토된 바 있




                   - 21 -
고, 소를 잡아 제사 지내는 기록13)이 있는 것을 보면 소‧돼지를 길렀을 것이

확실하다. 수렵으로 포획한 꿩뼈, 멧돼지나 사슴뼈는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으

며 사냥도구인 창은 가야고분에서 많이 출토되고 활도 다호리고분에서 출토된

바 있다.

  이와 같이 가야국내에서 각국에서 공통적인 유물이 발굴된 것은 각 지역

의 특산물을 물물교환하여 내륙지방의 가야에서는 민물고기와 함께 쌀, 기장,

보리와 같은 곡물을 해안지역의 가야와 교역하고, 해안지역의 가야에서는 바

닷생선, 조개류와 소금을 서로 교역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거문화에 있어서는 가야인들의 발굴된 집터 자료가 없어 일반인들의 주

거생활에 대한 확실한 자료는 없다. 그러나 함안의 아라가야 궁성지에서 가야

시대 기와와 다듬은 석축돌이 보이고 있다. 그리고 고령의 주산성에서도 가야

시대 기와가 나오고 있어 국가건물 등에는 기와를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14)

그리고 일반인들의 집은 조사된 예가 없으나 초가집이나 움집에 살았을 것으

로 생각된다.

  또한 내륙지방에서 생산되는 쌀이나 잡곡류의 곡물외에 「삼국지」 위서 동

이전 한조에도 가야의 특산물이 철이라고 기록되어 가야의 철은 일찍부터 중

국과 일본에 수출한 중요물자였다. 제철관련 유물로는 합천 옥전고분과 의령
예둔리고분 등에서 철제집게와 망치, 모루 등 철을 다루는 단조도구가 출토되

었다. 아직 가야시대의 제철로나 용해로와 같은 제철유적은 알려지지 않지만

조선시대 양질의 철산지인 합천군 야로지역의 철생산은 가야시대까지 올라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와 같이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철제문화가 꽃피웠다.

  가야문화의 흔적은 고분발굴을 통해 알 수 있을 만큼 분묘가 가야문화에


13) 「영일냉수리신라비」와 「울진봉평신라비」에 나타나고 있다.

14) 삼국사기 신라본기편에 진흥왕때 신라가 대가야를 공격할 때 전단량이라는 성문으로
  들어갔다고 하는 기사로 보아 왕족이나 귀족들은 궁성내에 기와집을 짓고 마당이나
  통로에 벽돌을 깔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 22 -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가야문화의 보고로 알려진 분묘는 가야인의 내

세관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 나라 고대에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는 관습이 보

편적이었으며, 이는 사후에도 영혼이 지하의 세계에서 현세와 똑같은 생활을

계속한다는 계세사상이 만연하였기 때문이다.15) 계세사상의 영향으로 지배계

급의 분묘에는 순장품이 많이 발굴되고 있으며 기록에는 없지만 실제 지배층

고분에서 순장 사례가 가장 많이 확인되는 것이 가야의 고분이다. 함안의 도

항리고분군, 김해의 대성동고분군, 창녕의 교동고분군, 고성의 송학동고분군,

합천의 옥전고분군, 성주의 성산동고분군과 고령의 지산동고분군 등이 대표적
인 것이며 그밖에 진주의 옥봉 수정봉고분, 함양의 백천리고분군, 거창의 개봉

리고분군 등도 또다른 정치집단들이나 지배계층들의 고분군들이다.

  가야지배계층의 분묘는 주읍의 배후지역, 궁성을 방어하는 높은 산성을
배경으로 산줄기 정상부의 돌출부나 구릉의 정상부에 축조된 것을 알 수 있

다. 이것은 죽은 사람이 자기가 다스리던 국읍의 들판과 산천을 내려다보게

하는 배려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우세한 입지에 고분을 위엄있게 배치시킴으

로써 지배자 집단의 초월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

와 같이 산성을 배경으로 앞이 트인 벌판이 내려다보이는 높직한 구릉에 묘지

를 선정하는 것은 가야인들의 내세관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한편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분묘를 웅장하게 만들고 많은 부장품과 순장자를 매장하는 것과

분묘축조시 제의행사를 통하여 정치세력의 권력을 과시하여 지배체제를 확고

히 하고 상호관계를 재확인, 확대 재생산하기 위한 정치적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을을 내려다보는 높은 산정상에 열을 지어 큰 고분을 축조하

는 것이 신라 백제와 다른 가야의 특징이다.(김세기, 1998)




15) 인간의 죽음이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도 무덤속에서 생을 이어간다는
  사상을 계세사상이라고 한다.



                     - 23 -
(3) 국제교류가 빈번한 가야문화
  가야 여러 나라들은 한반도 내에서 고구려․백제․신라와 계를 맺으며 발전

하였고 한반도 외부의 중국이나 일본과도 문물을 주고받았다. 중국의 문화는

한반도 북부를 통해 남부지방으로 유입되어 북방 부여계통의 문물도 일찍이

가야까지 유입되기도 하였는데 김해 대성고분에서는 북방계의 유물인 동복

(솥)이 출토되었고, 중국제 거울을 모방하여 방제경을 만들기도 하였다.

  가야 지역을 둘러싼 주요 외교 대상국은 백제, 신라와 왜였으며 가야와

가장 활발하게 문물교류를 한 대상국은 일본이었다. 백제는 고구려에 대항하

기 위한 연대로써,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가야제국과 왜와 평화적 관계를 유
지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백제와의 교류가 활발하였으며 합천 옥정고분

군에서 출토된 금장봉황문환두대도와 여러 점 출토되고 있는 동체부가 풍만한

원저단경호 토기는 백제계 문물로써 백제와의 교류를 보여 주고 있다. 반면

신라는 가야지역이 영토 팽창의 대상지로서 가야를 공략하였으며 가야지역에

서 출토되는 신라계 문물은 백제계문물보다 훨씬 많다. 신라식의 고배와 대부

장경호와 같은 토기와 신라양식의 삼엽문화두도가 합천에서 출토되어 신라와
의 문화교류는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가야와 가장 활발하게 문물을 교류한 곳은 일본이었다. 서낙동강 하

류의 임나루는 김해에서 바다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로 가야의 국제무역항이
었다. 중국의 삼국지 위서 왜인전에 따르면 가야국 당시 남해안에서 일본쪽으

로 가는 해상로는 구야한국(김해)에서 대마도~이키~이도국, 또는 이키~이즈

모 해로가 주로 이용되었음을 서술하고 있다. 당시 왜가 가야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목적은 철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문물을 수입하기 위해서였다. 당

시 왜의 문화적 발전 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이 바로 가야라고 할 수

있는데 전기에는 김해의 금관가야가 주도적이었고 후기에는 고령의 대가야가
주도적이었다. 이는 일본의 고분에서 출토되는 철정은 가야의 철정과 크기, 모




                   - 24 -
양, 재질에서 매우 흡사한 점에서 찾을 수 있으며 고대일본에서 본격적인 제

철이 시작되는 6세기 이전까지는 가야에서 철을 수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이 한반도내에서 가장 먼저 교류한 대상이 가야제국이었으며

가야인들은 역시 일본열도로 진출 또는 이주하는 직접적인 인적교류도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양국간의 인적교류에서 일본문물도 역시 가야로 유입되었

음을 김해 대성동고분을 비롯한 함안, 창원일대에서 파형동기와 옥장, 일본제

청동거울과 통촉 등의 출토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출토된 유물을 통

해 가야제국은 일본을 비롯한 주변의 국가와의 활발한 교역을 통해 찬란한 문

화를 꽃피웠음을 알 수 있다.




                   - 25 -
Ⅲ . 역사문화 환경의 보전


 1. 역사문화환경의 보전 방안


  역사문화환경은 그 지역에 살아온 사람들에 의해 지나온 역사를 통하여

만들어지고,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으로 역사문화 환경은

마을의 모습으로 상징되며 그 지역에 대대로 살아 온 주민들의 자취와 자연에
대한 생각이나 자연을 이용하는 방식에 대한 교훈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우

리나라는 옛부터 터라는 장소성에 바탕을 두고 주변 자연환경과 입지조건을

고려하여 건축을 배치하고 평면을 구성한 마을구성방식은 다양하고 풍부한 삶
의 내용이 담겨져 지역의 고유성을 지닐 수 있는 뿌리가 되며, 후손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편 건축물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물리적

기능의 가치는 감소하나 문화적, 역사적 가치는 증대한다. 그러므로 후손들에
게 전달해야 하는 역사문화 환경을 기술적이며 제도적이며 이념적으로 보전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여야 한다.

  우선 역사문화환경의 보전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만을 한정하는 데

서 나아가 인간, 자연, 그리고 건축, 즉 인간을 중심으로 한 자연환경, 인문환

경 등 역사를 통하여 전승받은 모든 것에 관한 보전은 물론 나아가 새로운 역

사문화 환경의 창조까지 포함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문화환경의 보전은

古都내 유적․유물을 중심으로 하는 각 지구별 역사적 풍토의 특성과 함께 자

연적 환경을 고려하여 역사문화 환경에 뿌리를 둔 다양하고 풍부한 도시환경

을 만듬으로써 도시나 마을이 아이덴티티를 가지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환경에 활력을 주고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역사문화보전 대상은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것과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문화유산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지하의 문화유산은 발굴조사 계획과 병행하


                    - 26 -
여 보존되어야 하며 지상은 현재에도 주민의 생활 터전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

문에 복합적이고 기능적인 보전의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 이는 주민들의 생

활과 직결되기 때문에 피해나 불편을 최소화하고 피해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하며 주민이나 시행청의 끊임없는 투자와 조정이 필요하고, 엄격한 보존을 강

요하기보다는 활용을 위한 보전을 하여야 한다.

  현재 활용하고 있는 역사도시의 보존을 위한 실천수단으로서의 토지이용

및 건축규제는 도시계획법상의 지역지구제에 의한 고도제한 방식과 유사하나

우리 나라는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는데 비하여 외국의 경우 역사도시의 지

구별 특성에 적합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관리하고 있다. 즉 역사문화환경

을 간직한 땅, 터, 환경을 현재에도 상하지 않게 하며, 나아가 생명을 잃지 않

게 보호하기 위해 문화재라는 유물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나아가 문화재 보전

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도시설계적인 차원의 현재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진 도시로 가꾸기 위해서는 역사문화
환경을 지닌 단위건물을 바탕으로 면적으로 설계․보전되어야 한다. 현대적 의

미로 도시의 컨텍스트를 살리는 방식으로 사람의 흐름을 유도하고 휴식처도

제공하며 구조적으로 도시건축의 복합체의 재조직화 작업까지 영향을 주며 도
시내부의 토지이용을 유효적절하게 혼합격리시키는 기능을 역사문화 환경의

보전 및 재창조를 통하여 이룰 수 있도록 한다.



 2. 우리 나라 역사문화환경 보전


 (1) 역사문화환경 보전 제도
  우리 나라 역사문화환경 보전에 관한 제도적 장치는 역사적 유적․유물에

국한된 문화재보호법제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1933년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



                    - 27 -
기념물보존령이 발표되고 한국의 전통건조물은 1962년 제정한 문화재보호법

및 1984년에 제정된 전통건조물보존법(1999년 폐기)에 의해 제도화되었다.

문화재보호법은 개체의 엄격한 보존을 위한 법률이며 단위건축물에 대한 보존

과학기술 차원에서의 보존, 그리고 보존은 문화재를 위한 문화재의 보존 이상

은 기대하기가 힘들며 역사문화 환경보전 차원의 전단계에 머물고 있다. 현재

문화재보호법상의 문화재 보호구역은 지정문화재의 점유면적을 제외한 지역으

로 지정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하여 문화재관리법에서 지정된 구역으로써 국보․

보물 및 주요민속자료구역과 사적보호구역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지구차원의

보전보다 지정문화재의 단일보존차원에 머물고 있다. 또한 문화재 보존․관리

및


    <표 1> 문화재 보호구역

            보 호 대 상          보    호   구    역

                      추녀끝이나 또는 건물최돌점에서 수직선으로 닿는
          목조 및 석조건축물 각 지점을 서로 연결하는 선에서 20미터 내지 100
                     미터(사찰건조물의 경우에는 2천미터)이 내의 구역

            석탑‧전탑     지대석에서 10미터 내지 25미터이내의 구역
     국보
          석비‧부도‧석종‧석불 대석 최돌출점에서 10미터 내지 20미터이내의 구역
      ․
     보물      첨성대      하부 기단에서 50미터 내지 100미터이내의 구역
                      벽면상부지면에서 20미터 내지 100미터이내의 구
     및       석빙고
                      역
     중요       석굴      하부 기단에서 100미터 내지 500미터이내의 구역
     민속      마애불      불상의 반경 30미터 내지 50미터이내의 사방구역
     자료
           당간지주‧석등    각 물체를 중심으로 하여 반경 10미터 내지 20미터
     구역     ‧노주‧석조    이내의 사방구역

              석교      교대 및 교각에서 10미터 내지 30미터이내의 구역

          기타 국보‧보물 또는
                      각각 그 보호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구역
            중요민속자료




                         - 28 -
<표 1> 문화재 보호구역                             -계   속

-

            보 호 대 상           보   호   구    역

                       성벽면 하부 기석에서 외향 및 내향 각각 20미터
             성곽등
                       내지 50미터이내의 구역

                       벽면 하부 기석에서 외향 20미터 내지 50미터이내
           성‧산성‧성내전역
                       의 구역

     사적       제방       성곽에 준함.

     보호     왕릉‧고분묘     봉토 하단에서 10미터 내지 1천미터이내의 구역
     구역   사지‧사우지‧전묘지   담장 또는 경계선에서 5미터 내지 50미터이내의
              ‧고궁      구역

          목조건축물‧석조건축물
                      국보․보물의 보호구역의 지정기준
            기타 시설물

          기타 사적의 보호구역 보호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구역




활용계획에 관한 기본계획은 시․도지사의 협의를 거쳐 문화재청장이 수립할

수 있으며 기본계획을 수립한 경우에는 시․도지사에게 통보하여야 하며, 시․도

지사는 그 기본계획에 따른 세부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대

부분의 시․도에서는 현재 시행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

    가야문화의 보고인 매장문화재는 급속한 개발로 인해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매장문화재보호에 관한 법률은 문화재보호법, 환경영향평가법

및 유실물법 등이 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의하면 공사 과정에서 문화재가

노출되면 공사를 중지하고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세한 공사에서는 공사비에 여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가능한 짧은 기간에 공

사를 끝내기 위해 공사 도중 문화재가 발견되면 아예 흔적조차 남지 않게 파

괴해 버리는 예가 적지 않다. 이는 문화재 관련 법규, 특히 개발 초기 단계에

서 문화유산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조사 관련 법규의 미비가 문화유산




                         - 29 -
의 훼손을 방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지표조사와 관련된 법규는 환경영향평가법, 도시계획법, 택지개발촉

진법, 국토이용관리법 등을 들 수 있다. 환경영향평가법을 보면 문화재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하는 항목은 26개 개발분야 가운데 댐․저수지․하구언과

관광단지 개발 및 공원조성의 2개 사업에 불과하다. 또한 도시계획법조항 가

운데 ‘토지의 형질변경 등 행위허가기준에 대한 준칙’에 주거지역, 상업지역,

자연녹지내의 1만㎢ 미만의 면적(공업지역에서는 3만㎢)은 시장․군수의 허가

만 받으면 현상변경이 가능하며 더구나 높이 50㎝ 미만을 성토․절토하거나 정

지하는 경우에는 허가를 받지 않아도 좋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한편 허가가

필요한 경우에도 지정문화재 부문에 대해서만 고려할 뿐 비지정문화재나 매장

문화재에 대해서는 해당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제도적인 미비점으로 인해

신규개발뿐만 아니라 도시재개발과정에서도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훼손의 위기

에 처해 있다.

  역사도시에 대한 관리방안으로 역사적 건조물, 유적 등이 주위의 자연환
경과 일체를 이룰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함에 따라 역사유적․유물

지구에 대해서도 도시계획상의 지역지구제로 이른바 보존지구를 도입하여 고

도지구, 미관지구, 풍치지구와 차등을 두어 관리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지
역지구제의 도입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각 도시의 특성을 고려하는 데

는 미흡하였다. 한때 서울 종로구 가회동, 삼청동, 원서동에 고풍스런 기와지

붕과 돌담을 보존하기 위해 한옥보존지구가 지정되었으나 주민들의 사유재산

권행사에 대한 민원제기로 ‘91년에 해제되었으며, 전주시의 경우도 한옥보존

지구가 ’95년에 해제되었다. 또한 전통건조물의 보전을 위해 전통건조물보존

지구를 제정할 수 있는 전통건조물보존법도 ‘99년 7월에 폐지된 실정이다.
  역사문화 환경보전의 현재적 창출을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이 반영된 제도

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역사문화 환경보전법과 같은 법규의 제정, 역사문화

환경지역, 지구의 지정을 고려하여야 한다. 우리 나라에는 역사문화환경보전


                   - 30 -
관련법규는 도시계획법, 건축법, 문화재보호법, 자연공원법, 국토종합개발법,

국토이용관리법, 토지이용관리법, 관광진흥법이 있지만 이들 법령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상충부분을 조정할 수 있는 법령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정역할을 하

는 상위기구도 없다. 각 심의기구는 각기 따로 활동하고 있을 뿐 전체를 통합

하는 차원의 기능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역사문화 환경의 보전차원에서 관계

법이나 공공기관의 역할이 문화재를 보존, 보호, 관리 및 보전을 총괄하는 기

구 설치를 검토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면적 혹은 환경적 보존은 다른 선진국

에 비해 아주 늦은 편이다.



 (2) 우리나라의 역사문화권 정비사업
  우리나라 역사문화권의 대표적 정비사업으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수립을 들 수 있으며 이는 반만년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관광산업의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신라의 고도인 경주문화권 개발 및 정비를 지난 197

2~81년에 걸쳐 사적지구정비사업, 보문지구관광개발, 관광도시기반 및 환경

정비사업을 주사업내용으로 추진하여 완료한 바 있다. 그후 역사문화환경의
보다 체계적인 정비를 위해 경주지역 문화유적보존개발계획(1987)을 수립하

여 추진하였으며, 1997년에 경주장기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여 고속철도 유치

를 포함한 도시기반시설의 정비와 유적 및 관광자원을 특수지역으로 지정하여
개발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본 계획의 주요내용은 시가지내 역사문화재에 대

한 지표조사, 부지매입, 불량주거지 철거로 역사문화환경의 보전과 복원을 제

시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고도보존법의 제정을 제안하고 있다.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주도하였던 백제의 도읍지 부여를

중심으로 백제문화권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백제의 찬란한 문화

를 재조명하고 민족 전통문화 계승과 미래 지향적인 문화자원 개발의 터를 마

련하기 위해 백제문화 종합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90년 12월, 국토




                   - 31 -
건설종합계획법상의 「특정지역」으로 지정하여 타당성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에 착수하여 ‘93년 6월에 「특정지역」으로 지정․공고하였다. 이 계획을 본격

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실천계획으로 「백제문화권 종합개발계획」을 1년 6개

월에 걸친 중앙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94년 12월에 최종 확정되었다.

  백제문화권 종합개발사업(1994~2001년)은 공공과 민간자본이 함께 투자

되고 있으며 가장 핵심적인 사업은 백제역사재현단지조성으로 백제역사촌 재

현과 연구교육촌 조성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일원 120

만평 규모에 역사재현촌 30만평, 연구교육촌 20만평, 기타 녹지 및 휴게공간

이 구성될 계획이다. 백제역사재현단지 조성시설 내용은 <표 2>와 같다.


  <표 2> 백제역사재현단지 시설 계획

    구   분    시 설 공 간                      기         능

             개       국       촌     백제개국촌의 생활상 재현
             왕       궁       촌     백제왕도 입지와 모습 재현
             전   통   민   속   촌     백제마을 및 주변환경 재현
             군   사   통   신   촌     백제군사시설 재현
             장   제   묘   지   촌     백제전통장제 및 묘제 재현
             산   업   교   육   촌     전통산업 발달과정 재현
   백제역사촌     풍   속   교   육   촌     전통풍습, 민속놀이 등 행사 개최

             백 제 의 숲               백제조형물 전시 및 휴식공간시설
             전통운동시설지               전통운동 체험공간

             백 제 역 사
                                   백제역사와 문화의 종합전시
             민 속 박 물 관

             교   육       시   설     문화관련 전문인력 양성 및 관광 종사인
                                   력 훈련
             연   구       시   설     백제공예 연구활동 및 백제문화유적 연구
   연구교육촌                           활동
             예 술 인 마 을             예술인의 창작활동 공간제공
             주거 편익 시설              시설이용자의 편의제공을 위한 휴게, 주
                                   거, 정보센터, 국제회의장 시설




                                 - 32 -
자료: 열린충남(1996), 제2권 제4호(통권6호) p99에서 인용




                       - 33 -
백제역사촌은 백제문화 유산을 철저한 역사고증을 통한 실물 재현으로 다
양한 문화적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개국촌, 왕국촌, 전통민속촌, 군사통신
촌, 장제묘지촌, 산업교역촌, 풍속종교촌 및 백제역사민속박물관 등의 시설을
계획하고 있다. 백제역사촌의 가장 핵심시설인 왕궁촌은 백제 사비시대 궁궐
터로 유력시되는 관북리 일대의 유적 발굴 상황과 지형을 고려하여 고증에 의
한 복원을 시도하여 당시 건물배치와 건축물 양식을 재현하는 내용이다. 전통
민속촌은 사비성의 5부 5방의 도성 방리제를 취하여 백제가옥, 사찰, 정원, 원
지로 구성된 백제마을을 배치하되 신분별 주택을 복원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전통문화공간과 분리하여 산업교역촌과 풍속종교촌을 조성하여 먹거리,
쉴거리, 볼거리를 실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역사재현의 한계성을 극복하
고 첨단기술을 도입하여 백제문화를 주제로 한 하이테크 멀티미디어 공연장
등 민자유치를 추진할 계획이다. 백제역사민속박물관은 백제역사 전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고 교육․조사연구․전시기능을 담당하며 연구교육촌은 전통문화계
승․발전을 위한 교육연구와 학술교류의 장으로 교육활동과 연구활동을 지원하
는 부대시설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문화예술인으로 하여금 창작활동에 집중
하도록 예술인마을을 조성하며 그외 주거시설, 스포츠센터, 국제회의장, 정보
기기센터 등을 계획하고 있다.



 3. 외국의 역사문화환경 보전


 (1) 유럽의 역사문화환경 보전
  이태리와 프랑스의 역사도시는 건축법과 도시계획상의 상세계획으로 역사
도시를 관리하고 있으나 역사환경의 보존을 위하여 종래의 왕도 또는 고도의
성곽내에서는 지역전체를 역사적 유물지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심지로부터 반경 5~6㎞ 권내에서는 타지역과는 다른 토지이용 및




                     - 34 -
건축규제를 하고 있다.
  프랑스는 1913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여 역사적 문화재를 중심으로 반
경 500m 범위내에 보호구역을 설정․보존하고 1930년에 경관보존법을 제정하
여 파리의 개선문, 상제리제거리, 콩코드 광장 및 기타공원을 연계하여 보호하
게 되었다. 1962년에는 역사적 가로보존법을 제정하여 보호지역을 지정하고
건축, 도시계획, 역사 등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보존위원회가 조사 연구를
통한 계획지침을 마련하여 역사문화 환경의 보호와 도시개발을 서로 조정․조
화시키고 있다.
  베르사이유시 경우를 보면, 17세기 중엽에 지어진 모든 건물을 역사적 유
물로 등록하고 건축과 관련한 모든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으며 특히, 17세기
식의 건물을 신축․재건축할 경우는 중앙 및 지방정부의 지원을 조건 없이 받
을 수 있다. 그리고 중앙정부의 주거환경개선계획에 의하여 건물의 외부 또는
내부를   수리할   때   중앙정부   25%,     지방정부(Regional)   20%,   지역
(Department) 15%, 시 10%, 기금 30%로 나누어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건물의 보수, 개축 등과 관련한 재정적 지원은 보수, 개축 등에 필요한
건축자재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해 주는 것과, 당해 건물이 교육적 효과를
갖고 있을 경우 교육부에서도 지원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교육부의 재정지원
은 통상 전체 사업비의 25%를 차지하고 있다.(엄기철, 1995)
  역사․문화적 가치가 큰 건물은 시정부에서 매입한 후 보수하여 다시 민간
에게 매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역사․문화적 가치가 큰 건물의 세입자의
생활편의도를 높이기 위해 내부의 극히 일부를 공사하는 경우, 그 공사비의
전액을 지원하여 주며 분할상환을 허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1962년에 제정
된 조세감면법에 의해 세제혜택도 받는데, 건물의 소유 또는 임대에 따라 수
혜 정도에 차이는 있으나 평균 50%의 감세를 받고 있으며, 부동산에 대한 상
속세에 대해서는 조세감면이 되지 않는다.
  영국은 1967년 역사환경보존법을 제정하여 역사적 건조물은 물론 역사적



                       - 35 -
가로와 수목의 보존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지구보존을 위하여 주민이 거주하
여야 하며, 건물의 외관을 철저히 보존하고 건물의 내부와 후측은 필요에 따
라 환경을 침해하지 않는 한 새로운 기능에 맞게 적극적으로 적응시키도록 하
고 있다. 역사환경 보전은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민‧관
협력의 성격을 갖는 조직을 만들어 보존계획과 실무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며
역사환경과 자연을 보호할 목적으로 National Trust for Places of Historic
Interest of National Beauty가 결성되어 역사적 건축물 및 해안선과 정원 등
을 사들여 보존하고 있다.



  (2) 일본의 역사문화환경 보전
  일본의 역사문화환경 보전에 대한 적극적 관심은 1960년 후반부터 마을
가로보전운동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는 사람도
변하고 건축물, 경관, 주변의 환경도 변하므로 역사환경을 보존하고, 활용하면
서 마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마을가로 보존이 지향하는 바이다. 마을가로의
보존은 전통적인 건조물뿐만 아니라 보존지구의 환경과 보존지구내의 유형․무
형의 생활문화재가 동시에 보존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마을가로 보존의 도
화선이 된 것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였으며 1975년에 문화재보호법
이 개정되고 마을가로가 전통적 건조물보존지구로 규정되어 문화재의 한 장르
로 탄생했다. 전통적인 건조물군을 보존․활용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중점
을 두고 전통적인 기술도 전승하고 있다.
  시․정․촌은 마을가로보존에 관한 조례를 정하고 도시계획구역에서는 보존
지구를 결정하여 주민과의 협의를 거친다. 마을가로 보존의 주체는 주민이며
국가는 시․정․촌의 신청에 의해 가치가 높은 마을가로를 중요전통건조물 보존
지구로 선정하고 시․정․촌의 보존사업에 재정지원과 기술적 지도를 한다. 역사
적 풍토의 유지․보존 및 시설의 정비에 필요한 비용에 대해서는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방공공단체에 대하여 그 일부를 보조하도록 하고 있으며, 도시계획



                         - 36 -
에 의하여 건축물의 신축․개축․증축 등이 제한될 경우 허가를 받지 못하는 손
실에 대해서 적정한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중요한 문화재가 발굴되었을 때는 지정
과 함께 중앙정부인 문화청이 전체의 80%를 지원하고, 도현에서 10%를, 기
타 10%는 자기부담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국고보조형태는 보존정비보조금,
보존시설정비보조금, 사적매입보조금 등으로 구분하여 지원하고 있다. 토지매
입에 필요한 금액의 70%를 고도보존법에 의하여 중앙정부가 보조하여 주고
있으며, 중요도가 낮은 문화재는 시 또는 현청에서 100%를 보조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나, 회사 또는 일정한 단체에서 단지개발형식으로 개발하는 경
우에는 중앙 및 지방정부의 보조가 전혀 없으며, 당해기업 및 단체가 100%를
부담하여야 한다.
  한편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곳(예 : 절․신사)의 건물과 재산세는 일반적으
로 면세되고 있으나, 교토시의 경우 토지재산세를 과세하고 있다. 구시가지의
전통한옥에 대해서는 토지세의 약 50%가 감면되며, 전통가옥을 신축할 때 가
시권내 기둥, 지붕, 격자, 벽 등의 공사비 중 50%를 보조해 주며, 개축할 때
는 70%를 보조하고 있다. 특히 1946년 이전 건물은 80%까지 보조하여 주고
있으며, 보조범위는 건물을 옆에서 보았을 때 가시권에 속한 건축부문으로서,
대체로 건축물 전체의 1/2에 해당한다.
  또한 쿄토시의 경우, 지역의 성격에 따라 풍치지구, 공작물규제구역, 거대
공작물규제구역, 근교녹지보존구역, 역사경관지구, 근교녹지보존구역, 미관지
구 등으로 지정하는 한편 역사환경을 총체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고도보존법
에 의한 역사적 풍토특별보존구역과 도시계획상 역사적 풍토특별보존지구 등
이원적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내에서의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등은
문화재보존지구로 다시 지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시가지경관조례를 제정하여
지역특성에 적합한 도시경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도시전체와 지역 및
지구를 역사환경의 보존이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체계화하고 있다.



                    - 37 -
Ⅳ. 가야문화권 정비


 1. 가야문화권 특색과 정비의 주안점


  가야는 신라․백제와 함께 한반도의 남한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음에도

불구하고 가야문화권에 대한 관심은 매우 미흡한 편이다. 이는 신라․백제에 비

해 가야는 일찍 멸망한 까닭에 유적들이 대부분 훼손되어 지상에 남아있는 유

적이 거의 없으며 기록된 자료가 워낙 적다는 것에도 일부 기인하고 있다. 가
야문화조사의 공통점은 사료에 의한 문헌연구보다 유적․유물을 통한 고고학적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남아 있는 문화재는 상대적으로 빈

약하고 그나마 관련 유적이 경남․북 여러 지역에 흩어져 대부분 매장문화재로
남아 있는 형편이다.

  매장문화재는 현재로서는 도저히 그 전모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유적형성

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땅속에 보존되어 온 과거의 문화유산이며 개발사

업에서 파괴와 훼손에 특히 취약하다. 땅위에는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심코 행하는 단 한번의 삽질에도 그 원형이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 그 대

부분은 역사기록이 없는 아주 오래 전 시기의 것으로 문화기록을 보충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표조사를 한 사적지는 유적보다는 유물에 대한 조사와 연구에

많은 관심을 쏟아 상대적으로 유적의 구조와 규모, 원래의 형태, 복원방법 등

에 대해서는 소홀히 다루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매장문화재지점

에 대한 매장문화재지도를 참조하여 건설계획시 반드시 지점을 고려하여야 한

다. 또한 조사된 유적의 종류가 고분 관련 유적으로 매우 편중되어 가야문화
에 대한 고분연구를 심화시키는 데에는 기여를 하였지만 산성, 사찰, 주거지




                     - 38 -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More Related Content

Similar to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6 마상열 살기좋은지역만들기세부추진전략수립
6 마상열 살기좋은지역만들기세부추진전략수립6 마상열 살기좋은지역만들기세부추진전략수립
6 마상열 살기좋은지역만들기세부추진전략수립seekly
 
기본보고%2812 35%29김은숙
기본보고%2812 35%29김은숙기본보고%2812 35%29김은숙
기본보고%2812 35%29김은숙준일 홍
 
콘텐츠수출12쪽
콘텐츠수출12쪽콘텐츠수출12쪽
콘텐츠수출12쪽loo4joojup
 
[기본] 2013 11 문화융합형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기본] 2013 11 문화융합형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기본] 2013 11 문화융합형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기본] 2013 11 문화융합형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atelier t*h
 
09 김한도 경남의 인근 시도를 연계한 관광정책 방안
09 김한도 경남의 인근 시도를 연계한 관광정책 방안09 김한도 경남의 인근 시도를 연계한 관광정책 방안
09 김한도 경남의 인근 시도를 연계한 관광정책 방안seekly
 
200508 자체 김한도_지역이벤트사업 현황과 발전방안
200508 자체 김한도_지역이벤트사업 현황과 발전방안200508 자체 김한도_지역이벤트사업 현황과 발전방안
200508 자체 김한도_지역이벤트사업 현황과 발전방안seekly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벗 (B.U.T)_탐방 계획서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벗 (B.U.T)_탐방 계획서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벗 (B.U.T)_탐방 계획서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벗 (B.U.T)_탐방 계획서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자활백서 자활운동의 역사와 철학[2]
자활백서 자활운동의 역사와 철학[2]자활백서 자활운동의 역사와 철학[2]
자활백서 자활운동의 역사와 철학[2]seekly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Archi-Titanic_탐방 계획서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Archi-Titanic_탐방 계획서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Archi-Titanic_탐방 계획서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Archi-Titanic_탐방 계획서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Korea’s economic growth and government’s role: Past, present and future
Korea’s economic growth and government’s role: Past, present and futureKorea’s economic growth and government’s role: Past, present and future
Korea’s economic growth and government’s role: Past, present and futureK Developedia
 
OECD+주요국가의+문화산업+및+정책현황+비교조사.pdf
OECD+주요국가의+문화산업+및+정책현황+비교조사.pdfOECD+주요국가의+문화산업+및+정책현황+비교조사.pdf
OECD+주요국가의+문화산업+및+정책현황+비교조사.pdfssuser812090
 
폐가탐방 결과보고서-공개용-2014.10.10
폐가탐방 결과보고서-공개용-2014.10.10폐가탐방 결과보고서-공개용-2014.10.10
폐가탐방 결과보고서-공개용-2014.10.10jejuzip
 
문화원형 발굴 현황_및_성과:장계향의 음식디미방을 중심으로
문화원형 발굴 현황_및_성과:장계향의 음식디미방을 중심으로문화원형 발굴 현황_및_성과:장계향의 음식디미방을 중심으로
문화원형 발굴 현황_및_성과:장계향의 음식디미방을 중심으로Han Woo PARK
 
서천 국립 생태원 미디어 서비스 활성화 방안 (NIE Digital Exhibition _ Service)
서천 국립 생태원 미디어 서비스 활성화 방안 (NIE Digital Exhibition _ Service) 서천 국립 생태원 미디어 서비스 활성화 방안 (NIE Digital Exhibition _ Service)
서천 국립 생태원 미디어 서비스 활성화 방안 (NIE Digital Exhibition _ Service) M&M Networks
 
최종 역사문화의길수정계획 1차중간보고 수정
최종 역사문화의길수정계획 1차중간보고 수정최종 역사문화의길수정계획 1차중간보고 수정
최종 역사문화의길수정계획 1차중간보고 수정seekly
 

Similar to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7)

6 마상열 살기좋은지역만들기세부추진전략수립
6 마상열 살기좋은지역만들기세부추진전략수립6 마상열 살기좋은지역만들기세부추진전략수립
6 마상열 살기좋은지역만들기세부추진전략수립
 
기본보고%2812 35%29김은숙
기본보고%2812 35%29김은숙기본보고%2812 35%29김은숙
기본보고%2812 35%29김은숙
 
콘텐츠수출12쪽
콘텐츠수출12쪽콘텐츠수출12쪽
콘텐츠수출12쪽
 
[기본] 2013 11 문화융합형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기본] 2013 11 문화융합형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기본] 2013 11 문화융합형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기본] 2013 11 문화융합형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09 김한도 경남의 인근 시도를 연계한 관광정책 방안
09 김한도 경남의 인근 시도를 연계한 관광정책 방안09 김한도 경남의 인근 시도를 연계한 관광정책 방안
09 김한도 경남의 인근 시도를 연계한 관광정책 방안
 
200508 자체 김한도_지역이벤트사업 현황과 발전방안
200508 자체 김한도_지역이벤트사업 현황과 발전방안200508 자체 김한도_지역이벤트사업 현황과 발전방안
200508 자체 김한도_지역이벤트사업 현황과 발전방안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벗 (B.U.T)_탐방 계획서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벗 (B.U.T)_탐방 계획서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벗 (B.U.T)_탐방 계획서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벗 (B.U.T)_탐방 계획서
 
자활백서 자활운동의 역사와 철학[2]
자활백서 자활운동의 역사와 철학[2]자활백서 자활운동의 역사와 철학[2]
자활백서 자활운동의 역사와 철학[2]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Archi-Titanic_탐방 계획서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Archi-Titanic_탐방 계획서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Archi-Titanic_탐방 계획서
잡코리아 글로벌 프런티어 2기_Archi-Titanic_탐방 계획서
 
Korea’s economic growth and government’s role: Past, present and future
Korea’s economic growth and government’s role: Past, present and futureKorea’s economic growth and government’s role: Past, present and future
Korea’s economic growth and government’s role: Past, present and future
 
OECD+주요국가의+문화산업+및+정책현황+비교조사.pdf
OECD+주요국가의+문화산업+및+정책현황+비교조사.pdfOECD+주요국가의+문화산업+및+정책현황+비교조사.pdf
OECD+주요국가의+문화산업+및+정책현황+비교조사.pdf
 
폐가탐방 결과보고서-공개용-2014.10.10
폐가탐방 결과보고서-공개용-2014.10.10폐가탐방 결과보고서-공개용-2014.10.10
폐가탐방 결과보고서-공개용-2014.10.10
 
문화원형 발굴 현황_및_성과:장계향의 음식디미방을 중심으로
문화원형 발굴 현황_및_성과:장계향의 음식디미방을 중심으로문화원형 발굴 현황_및_성과:장계향의 음식디미방을 중심으로
문화원형 발굴 현황_및_성과:장계향의 음식디미방을 중심으로
 
20110327 진보신당 복지 대토론회 자료집
20110327 진보신당 복지 대토론회 자료집20110327 진보신당 복지 대토론회 자료집
20110327 진보신당 복지 대토론회 자료집
 
서천 국립 생태원 미디어 서비스 활성화 방안 (NIE Digital Exhibition _ Service)
서천 국립 생태원 미디어 서비스 활성화 방안 (NIE Digital Exhibition _ Service) 서천 국립 생태원 미디어 서비스 활성화 방안 (NIE Digital Exhibition _ Service)
서천 국립 생태원 미디어 서비스 활성화 방안 (NIE Digital Exhibition _ Service)
 
Korean Sports
Korean SportsKorean Sports
Korean Sports
 
최종 역사문화의길수정계획 1차중간보고 수정
최종 역사문화의길수정계획 1차중간보고 수정최종 역사문화의길수정계획 1차중간보고 수정
최종 역사문화의길수정계획 1차중간보고 수정
 

More from seekly

안산의제21 커뮤니티비즈니스 강의 김재현
안산의제21 커뮤니티비즈니스 강의   김재현안산의제21 커뮤니티비즈니스 강의   김재현
안산의제21 커뮤니티비즈니스 강의 김재현seekly
 
시장학교 특강 박원순
시장학교 특강   박원순시장학교 특강   박원순
시장학교 특강 박원순seekly
 
마젤란 완주공무원 일본연수 보고 김준호
마젤란 완주공무원 일본연수 보고   김준호마젤란 완주공무원 일본연수 보고   김준호
마젤란 완주공무원 일본연수 보고 김준호seekly
 
애뉴얼리포트 삼양그룹 후원 제안서 희망제작소
애뉴얼리포트 삼양그룹 후원 제안서   희망제작소애뉴얼리포트 삼양그룹 후원 제안서   희망제작소
애뉴얼리포트 삼양그룹 후원 제안서 희망제작소seekly
 
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 출력용
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 출력용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 출력용
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 출력용seekly
 
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
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
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seekly
 
100705 2회 국제전문가워크샵 기획안_한선경
100705 2회 국제전문가워크샵 기획안_한선경100705 2회 국제전문가워크샵 기획안_한선경
100705 2회 국제전문가워크샵 기획안_한선경seekly
 
[희망제작소]별책부록 영국
[희망제작소]별책부록 영국[희망제작소]별책부록 영국
[희망제작소]별책부록 영국seekly
 
Cb강연자료 김재현
Cb강연자료   김재현Cb강연자료   김재현
Cb강연자료 김재현seekly
 
(2007 17)경남지역 문화산업 분석
(2007 17)경남지역 문화산업 분석(2007 17)경남지역 문화산업 분석
(2007 17)경남지역 문화산업 분석seekly
 
(2007 13)경남여성경제활동활성화 b5
(2007 13)경남여성경제활동활성화 b5(2007 13)경남여성경제활동활성화 b5
(2007 13)경남여성경제활동활성화 b5seekly
 
(2007 13)(윤성윤)람사르총회
(2007 13)(윤성윤)람사르총회(2007 13)(윤성윤)람사르총회
(2007 13)(윤성윤)람사르총회seekly
 
(2007 11)도시재생전략의 도입을 통한 경상남도 도시지역 경쟁력 강화방안
(2007 11)도시재생전략의 도입을 통한 경상남도 도시지역 경쟁력 강화방안(2007 11)도시재생전략의 도입을 통한 경상남도 도시지역 경쟁력 강화방안
(2007 11)도시재생전략의 도입을 통한 경상남도 도시지역 경쟁력 강화방안seekly
 
(2007 8)경남지역 외국인노동자의 생활실태와 정책과제
(2007 8)경남지역 외국인노동자의 생활실태와 정책과제(2007 8)경남지역 외국인노동자의 생활실태와 정책과제
(2007 8)경남지역 외국인노동자의 생활실태와 정책과제seekly
 
2011 간사 사무장_채용마을_위치
2011 간사 사무장_채용마을_위치2011 간사 사무장_채용마을_위치
2011 간사 사무장_채용마을_위치seekly
 
진악 예비계획1203
진악 예비계획1203진악 예비계획1203
진악 예비계획1203seekly
 
여산거점마을종합개발
여산거점마을종합개발여산거점마을종합개발
여산거점마을종합개발seekly
 
마전권역1203
마전권역1203마전권역1203
마전권역1203seekly
 
금강붉은뎅이권역1203
금강붉은뎅이권역1203금강붉은뎅이권역1203
금강붉은뎅이권역1203seekly
 
110613 사회적기업 자금-지원제도_안내(공문)
110613 사회적기업 자금-지원제도_안내(공문)110613 사회적기업 자금-지원제도_안내(공문)
110613 사회적기업 자금-지원제도_안내(공문)seekly
 

More from seekly (20)

안산의제21 커뮤니티비즈니스 강의 김재현
안산의제21 커뮤니티비즈니스 강의   김재현안산의제21 커뮤니티비즈니스 강의   김재현
안산의제21 커뮤니티비즈니스 강의 김재현
 
시장학교 특강 박원순
시장학교 특강   박원순시장학교 특강   박원순
시장학교 특강 박원순
 
마젤란 완주공무원 일본연수 보고 김준호
마젤란 완주공무원 일본연수 보고   김준호마젤란 완주공무원 일본연수 보고   김준호
마젤란 완주공무원 일본연수 보고 김준호
 
애뉴얼리포트 삼양그룹 후원 제안서 희망제작소
애뉴얼리포트 삼양그룹 후원 제안서   희망제작소애뉴얼리포트 삼양그룹 후원 제안서   희망제작소
애뉴얼리포트 삼양그룹 후원 제안서 희망제작소
 
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 출력용
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 출력용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 출력용
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 출력용
 
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
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
20081020 창녕군발표자료
 
100705 2회 국제전문가워크샵 기획안_한선경
100705 2회 국제전문가워크샵 기획안_한선경100705 2회 국제전문가워크샵 기획안_한선경
100705 2회 국제전문가워크샵 기획안_한선경
 
[희망제작소]별책부록 영국
[희망제작소]별책부록 영국[희망제작소]별책부록 영국
[희망제작소]별책부록 영국
 
Cb강연자료 김재현
Cb강연자료   김재현Cb강연자료   김재현
Cb강연자료 김재현
 
(2007 17)경남지역 문화산업 분석
(2007 17)경남지역 문화산업 분석(2007 17)경남지역 문화산업 분석
(2007 17)경남지역 문화산업 분석
 
(2007 13)경남여성경제활동활성화 b5
(2007 13)경남여성경제활동활성화 b5(2007 13)경남여성경제활동활성화 b5
(2007 13)경남여성경제활동활성화 b5
 
(2007 13)(윤성윤)람사르총회
(2007 13)(윤성윤)람사르총회(2007 13)(윤성윤)람사르총회
(2007 13)(윤성윤)람사르총회
 
(2007 11)도시재생전략의 도입을 통한 경상남도 도시지역 경쟁력 강화방안
(2007 11)도시재생전략의 도입을 통한 경상남도 도시지역 경쟁력 강화방안(2007 11)도시재생전략의 도입을 통한 경상남도 도시지역 경쟁력 강화방안
(2007 11)도시재생전략의 도입을 통한 경상남도 도시지역 경쟁력 강화방안
 
(2007 8)경남지역 외국인노동자의 생활실태와 정책과제
(2007 8)경남지역 외국인노동자의 생활실태와 정책과제(2007 8)경남지역 외국인노동자의 생활실태와 정책과제
(2007 8)경남지역 외국인노동자의 생활실태와 정책과제
 
2011 간사 사무장_채용마을_위치
2011 간사 사무장_채용마을_위치2011 간사 사무장_채용마을_위치
2011 간사 사무장_채용마을_위치
 
진악 예비계획1203
진악 예비계획1203진악 예비계획1203
진악 예비계획1203
 
여산거점마을종합개발
여산거점마을종합개발여산거점마을종합개발
여산거점마을종합개발
 
마전권역1203
마전권역1203마전권역1203
마전권역1203
 
금강붉은뎅이권역1203
금강붉은뎅이권역1203금강붉은뎅이권역1203
금강붉은뎅이권역1203
 
110613 사회적기업 자금-지원제도_안내(공문)
110613 사회적기업 자금-지원제도_안내(공문)110613 사회적기업 자금-지원제도_안내(공문)
110613 사회적기업 자금-지원제도_안내(공문)
 

1999 12-01-연구-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 1. 연구보고서 99- 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 경남개발연구원
  • 2. 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1999. 12 연 구 진 연구책임 민 말 순 (경남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연구보조 허 연 지 (경남개발연구원 도시지역실) 이 백 호 (경남개발연구원 도시지역실) 최 민 혜 (경남개발연구원 도시지역실)
  • 3. 머 리 말 다가오는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로 예견되고 있으며 문화산업이 고부가치 업종으로 부상함으로써 문화진흥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과학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사람과 물자의 국제적 교류가 빈번해짐에 따라 각국 문화의 동질성이 초래되므로 각 지역의 고유 문화에 대한 가치가 높아져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있다. 한편, 소득 증대로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주민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옛 것에 대한 가치를 재인식하고 전통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의식이 제고되고 있다. 신라․백제와 함께 한반도 남쪽 고대국가의 한 줄기를 구축하였던 가야는 그동안 신라․백제에 비해 국가적 관심이 미약하고 역사적 자료가 부족하여 고 대사에서 올바른 위상을 차지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80년 이후부터 가야문 화 발굴에 따른 가야사 정립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시대적 추세에 따라 경남도 차원에서 가야문화정비에 대한 국 가적 관심을 유도하고 역사문화자원을 바탕으로 한 내발적 지역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가야문화권 정비 방안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제까지는 각 전문영역의 분야별로 가야문화에 대한 단편적인 연구가 수행되어 왔으나 본 연구는 관련분야의 연계를 통한 다학제적이며 총체적 접근을 시도하여 가야문 화권 정비 방안의 틀을 제공하므로 학문적 연구와 함께 문화행정에서 적지 않 은 기여와 활용이 기대된다. 1999. 12 경남개발연구원 원장
  • 4. 례 Ⅰ. 서 론 1. 연구 배경 및 필요성 ·················································································· 1 2. 연구 목적 ······································································································ 2 3. 연구 범위 ······································································································ 4 (1) 내용적 범위 ······························································································ 5 (2) 공간적 범위 ······························································································ 6 4. 연구 방법 ······································································································ 6 Ⅱ. 가야문화의 성립과 특색 1. 고대사의 가야국의 위상 ············································································ 7 2. 경남지역의 주요 가야국 ············································································ 9 (1) 김해중심의 금관가야 ············································································ 9 (2) 함안중심의 아라가야 ·········································································· 11 (3) 고성중심의 소가야 ·············································································· 14 (4) 창녕중심의 비사벌국(比斯伐國) ························································· 16 (5) 서부경남일대의 가야 여러 나라 ······················································ 17 3. 가야문화권의 특색 ··················································································· 18 (1) 낙동강 연안의 찬란한 고대문화 중심지 ········································ 18 (2) 내세관이 깃든 가야인의 삶 ······························································ 21 (3) 국제교류가 빈번한 가야문화 ···························································· 24 - i -
  • 5. Ⅲ . 역사문화 환경의 보전 1. 역사문화환경의 보전 방안 ······································································ 26 2. 우리 나라 역사문화환경 보전 ································································ 27 (1) 역사문화환경 보전 제도 ···································································· 27 (2) 우리나라의 역사문화권 정비사업 ···················································· 31 3. 외국의 역사문화환경 보전 ······································································ 33 (1) 유럽의 역사문화환경 보전 ································································ 33 (2) 일본의 역사문화환경 보전 ································································ 35 Ⅳ. 가야문화권 정비 1. 가야문화권 특색과 정비의 주안점 ························································ 37 2. 경남의 가야문화권 정비 추진현황 ························································ 39 (1) 낙동강하류 유역권 ·············································································· 41 (2) 남강하류 유역권 ·················································································· 54 (3) 남해안 연안권 ······················································································ 60 (4) 황강 유역권 ·························································································· 67 3. 가야문화환경 정비 방안 ·········································································· 75 (1) 가야문화권 정비의 이념 ···································································· 75 (2) 가야문화연구 네트워크 구축 ···························································· 77 (3) 제도적 정비 방안 ················································································ 78 (4) 민간차원의 참여 ·················································································· 80 (5) 가야문화권 정비 방안 ········································································ 82 Ⅴ. 결 론 ·········································································································· 88 참고문헌 - ii -
  • 6. 표 차 례 <표 1> 문화재 보호구역 ·················································································· 28 <표 2> 백제역사재현단지 시설 계획 ······························································ 32 <표 3> 경상남도 가야문화권 정비계획(1998~2002) ································ 41 <표 4> 김해박물관의 가야유적 조사계획 ······················································ 45 <표 5> 대성동․양동리 고분군 정비계획 ························································· 46 <표 6> 의창 다호리 고분군 정비계획 ···························································· 50 <표 7> 도항․말산리 고분군 정비계획 ····························································· 56 <표 8> 송학동 고분군 정비계획 ······································································ 62 <표 9> 가야촌개발 계획 ···················································································· 69 - iii -
  • 7. 그 림 차 례 <그림 1> 연구목적과 연구내용 ·········································································· 4 <그림 2> 가야제국도 ···························································································· 8 <그림 3> 가야 주요고분 분포도 ······································································ 40 <그림 4> 김해 대성동 고분군 전경 ································································ 44 <그림 5> 김해 대성동 고분군 출토물 ···························································· 44 <그림 6> 창원 다호리 유적 전경 ···································································· 48 <그림 7> 창원 다호리 유적 출토물 ································································ 48 <그림 8> 함안 도항리 고분군 전경 ································································ 55 <그림 9> 함안 도항리 고분군 출토물 ···························································· 55 <그림 10> 창녕 교동 고분군 전경 ································································· 59 <그림 11> 창녕 교동 고분군 출토물 ····························································· 59 <그림 12> 고성 송학고분군 전경 ··································································· 63 <그림 13> 합천 옥전고분군 전경 ··································································· 71 <그림 14> 합천 옥전고분군 출토물 ······························································· 71 <그림 15> 산청 구형왕릉 ················································································· 73 <그림 16> 산청 묵곡리 유적 출토물 ····························································· 73 - iv -
  • 8. Ⅰ. 서 론 1. 연구 배경 및 필요성 최근 국제사회의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국가간의 무역장벽이 무너지고 교 통통신망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 자본, 정보의 국가간 이동이 증가하는 추세이 다. 국제교류가 급증함에 따라 과학기술의 보급과 함께 문화의 수렴 현상이 급속하게 나타나고 있다. 문화의 동질화현상은 각국의 생활양식의 동질화를 추구하므로 지역의 고유성은 희소성으로 더욱 가치를 높이게 된다. 이와 같은 사회변화가운데 세계화의 전략은 ‘가장 지방적인 것이 가장 세 계적이다’로 요약되고 있다. 세계각국은 자국의 전통문화를 토대로 한 관광상 품을 개발하여 문화관광산업으로 세계무역장벽과 경제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 노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 나라도 지방자치제도의 정착에 따라 내 발적 개발에 의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고유한 향토자원의 관광자원화 방안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세는 지역의 향토자원인 전 통문화보전․정비에 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성장위주의 개발과정에서 외국문물의 무분별한 도입으로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정당한 평가 없이 많은 향토자원이 훼손․상실되 고 말았다. 산업화과정에서 문화재 보호는 뒷전으로 밀려 민족혼이 담긴 문화 재들은 파헤쳐지고 부서진 채로 방치되고 멸실되어 왔다. 국민 또한 역사적 문화환경을 향유할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문화의 고부가가치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됨에 따라 우리 옛 것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소득증대에 따른 삶의 질에 대한 주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쾌적한 생활환경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지속 - 1 -
  • 9. 가능한 개발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함에 따라 문화․생태도시 조성에 대한 인식 이 증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세가운데 21세기 문화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지역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하여 경남문화의 뿌리인 가야문화의 복원 및 정비에 관한 연구가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2. 연구 목적 가야문화권 정비에 관한 연구는 아래와 같이 세 가지의 목적을 설정하여 수행토록 한다. 첫째, 전통문화의 복원 및 재현을 목적으로 경남의 뿌리인 가 야문화의 복원 및 정비방안을 제시한다. 우리 나라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 사와 전통 ……������으로 시작되며 제 9조에는������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듯이 민족문화유산의 보 존과 정비는 민족의 얼과 역사를 후손에게 길이 보존하기 위해 각 세대가 감 당하여야 할 의무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고대 신라의 도읍지인 경주는 1972년부터 10년간의 사업으로 진행되어 고도로서의 면모를 지녀 문화관광도시로 정착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백제문화권개발사업이 본격화되고 있어 백제의 도읍지인 부 여․공주를 중심으로 백제문화재현단지사업이 무르익고 있다. 이와 함께 신라․ 백제와 함께 고대국가로서 찬란한 문화를 지녔던 가야문화 정비․보존도 하루 바삐 이루어져야 한다. 1980년대부터 학계에서도 활발하게 조명되어 온 가야 사의 정립과 함께 가야문화의 보전과 정비도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지방자 치단체차원에서 수행해 나가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 국가적 사업으로 국가가 선도적으로 수행되어 나가야 한다. 본 연구는 전통문화의 복 원 및 정비사업의 목적으로 가야문화 정비에 대한 국가적 관심을 제고하기 위 한 자료를 제공하도록 한다. - 2 -
  • 10. 둘째, 주민의 삶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역사문화환경조성 방안을 제시하 도록 한다. 헌법 제35조의 환경권 확보는 경제성장으로 인한 물질적 풍요의 욕구를 넘어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의 증가와 삶의 질의 확대에 대한 관심을 만족시키는데 있다. 이와 연계하여 경제발전과 삶의 질 향상에 따른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차원에서 역사문화 환경권에 대한 정립이 이 루어져야 하며 헌법에 명시한 국가의 원리를 구현한다는 차원에서도 문화역사 환경권 확립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문화환경 조성시 문화재보호는 문화재를 포함하는 주위의 자연환경과 일체를 이루는 존재인식, 점(點)에서 면(面)으로 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며 단위건축물을 둘러싼 지역정비의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즉 역사문화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과의 연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문화‧역사지구의 관점에 서 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토개발과 문화유산의 보존문제는 통합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검토한다면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결론 에 이른다. 국토개발과 도시개발의 궁극적 목적도 국민의 삶의 질의 향상과 물질적인 생활의 풍요와 안녕을 넘어 정신적인 생활의 문화의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인간중심의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데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바탕으로 지역의 향토성을 세계화할 수 있 는 내발적 개발 방안을 모색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하도록 한다. 최근 서구 선진국가에서는 각 지역의 특성있는 경관뿐 아니라 문화․역사․민속을 장 소의 개성과 정신으로 재구성하는 문화전략형 장소판촉(place marketing)정책 을 수행하고 있다. 이 전략은 지역에 대한 소속감과 정체성을 강화함으로써 주민의 통합을 이끌어내고 문화전통을 산업화하며, 고급문화의 소비지라는 고 유한 장소이미지를 형성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 우도 지방자치제도의 정착으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내발적 개발전략을 추진 해 나가야 하므로 주요 향토자원인 향토문화자원을 산업화하는 발전전략이 요 구되고 있다. - 3 -
  • 11. 다른 한편으로 삶의 질 제고와 환경 보전의 관점에서 환경친화적인 관광 산업은 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개발부문이다. 그러므로 자연환경을 보존 하고 주민의 문화향수의 기회를 제고하는 동시에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 관광산업이 21세기 유망산업으로 부상되고 있는 세계적 추세속에서 경남의 뿌리인 가야문화를 바탕으로 가야문화권을 정비하여 문화관광산업화하여 지역 경제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코저 한다. 가 야 문 화 권 민족문화의 고양 주민의 삶의 질 제고 지역경제 활성화 문화‧역사자원을 통한 지구단위의 가야문화권 가야문화권의 유적 주민들의 문화향수기회 정비를 통한 발굴 및 보전 제공 관광산업 육성 <그림 1> 연구목적과 연구내용 3. 연구 범위 전술한 바와 같이 본 연구의 목적은 가야문화유적을 보존․정비함으로써 민 족문화의 창달을 도모하고 주민에게 문화향수의 기회를 제공하여 주민의 삶의 질을 제고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역사문화자원을 관광자원화하여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한다.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기발표된 가야사에 대 한 연구를 바탕으로 경남지역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가야국의 유적과 유물을 중심으로 가야문화권의 정비에 관한 연구로 연구범위를 한정한다. 그 - 4 -
  • 12. 러므로 본 연구는 기조사된 기존 가야諸國의 역사유적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 을 중심으로 가야문화의 얼을 보전․정비하는 문화환경 조성방안을 도출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내용적 범위와 공간적 범위는 아래와 같다. (1) 내용적 범위 1) 경남 각 시․군의 가야문화의 시․군별 인벤토리를 작성한다. 이제까지 개 발사업의 방향과 내용이 담긴 기본계획이 미비한 이유는 경남 전역의 가야 유적의 현황에 대한 인벤토리 작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 기 때문에 인벤토리 작성의 기초를 제공한다. 2) 가야문화에 대한 특성을 고찰하고 가야문화환경 정비의 잠재력과 제한 점을 도출한다. 가. 가야문화정비에 관련된 기존 수립된 계획 및 사업을 검토한다. 나. 가야문화 유적의 보전실태와 문제점을 도출한다. 3) 우리 나라 역사문화환경 조성 방안 현황과 외국의 현황을 분석한다. 4) 지역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가야문화권 정비 방안을 설정한다. 가. 가야문화권 정비의 이념을 정립한다. 나. 역사문화환경의 정비차원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루 어야 하는 제도적 방안을 모색한다. 다. 각 단위 가야문화권에서 문화환경조성 차원에서 이루어야 하는 물리 적 환경 조성방안을 도출한다. 라. 경남의 가야문화권 정비를 통한 지역경제활성화 방안을 검토한다. - 5 -
  • 13. (2) 공간적 범위 공간적 대상범위는 가야시대를 통해 경남지역에 세워진 가야국에 한정하 여 경남 전역 20개 시군이 해당된다. 4. 연구 방법 21세기는 문화․역사환경이 조성된 환경공생적 도시가 경쟁력을 갖게 됨에 따라 경남문화의 모태인 가야문화 유산의 보전과 재정비 전략이 요구되고 있 다. 기존의 문화환경 조성은 유적이나 유물 등의 점적(點的) 보존차원에 머물 고 있으나 유적과 유물을 둘러 싼 주위환경과의 연계로 지구단위의 문화환경 정비방안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지향적 도시설계 및 계획 차 원으로 접근하는 역사문화지구의 구상 및 계획․개발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 가야문화에 대한 문헌조사 □ 우리 나라의 문화환경 조성 방안 □ 외국의 역사문화환경 조성 방안 □ 현장조사 - 6 -
  • 14. Ⅱ. 가야문화의 성립과 특색 1. 고대사의 가야국의 위상 한반도 중․남부지역에는 1~3세기 후반까지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이 존재 하였으며 마한은 그 구성원의 하나인 백제국에 통합되어 백제왕국이 되었고 진한도 사로국에 의해 통합되어 신라왕국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2국으로 구성된 변한은 그 내부의 어느 한 세력에 의해 통합되지 못한 채 3세기말 4 세기초에 가야사회로 전환되었다.(노중국, 1998) 맹주국의 변화를 중심으로 가야사는 전기(3세기말․~5세기초)․중기(5세기초~6세기말)․후기(6세기초~6세 기후반)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는 금관가야 중심체제이며, 중기는 대가야중심 체제이며 후기는 대가야와 아라가야 중심체제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의 연구에 따르면 전기에는 김해 가야국을 중심으로 한 소국연맹이 있었으되 연맹체는 소국들의 정치권력이 비교적 분산된 상태였으나 이미 3세 기 전반에 변진 12국은 김해의 구야국(가야국)을 중심으로 통합되어 변한소국 연맹, 즉 전기가야연맹을 이루고 있었다. 魏志 倭人傳 서두의 교통로 기록으로 보아서는 대방군과 마한계통의 여러 소국들을 왜의 소국들과 연결하는 중심지 가 김해의 구야국으로 나타나고 있다. 후기에는 고령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소 국연맹이 있었고 그 시기는 5세기 후반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가야국은 6가야로 많이 알려져 왔으나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게 발견 할 수 있다. 6가야의 명칭은 『삼국유사』5가야조에서 유래하여 아라가야․고 령가야․대가야․성산가야․소가야 등의 다섯가야가 나오며 수로왕이 가락국, 즉 금관가야를 건국할 때 나머지 다섯가야도 함께 건국되었다는 삼국유사를 토대 로 6가야연맹의 개념이 생긴 것이다. 금관가야는 경남 김해시, 아라가야는 경 남 함안군 가야읍, 고령가야는 경북 성주군 함창읍, 대가야는 경북 고령군 - 7 -
  • 15. 가야산 거창 하가라도 거 열 자 타 합천 다 라 창녕 울산 함양 밀양 사자기 사팔혜 비자화 산반해 산청 양산 걸 손 칠 토 졸 마 사이기 지리산 의령 임 찰 안 라 탁 순 녹기탄 김해 부산 함안 마산 진주 창원 달 사 금 관 대 사 골 포 진해 사천 하동 보 기 사 물 물 혜 구 차 고성 국명 거제 통영 현재 지명 남해 우륵 12곡의 곡명이 된 지명 <그림 2> 가야諸國圖 1) 고령읍, 성산가야는 경북 성주군성주읍, 소가야는 경남 고성군 고성읍을 가리 킨다. 그러나 고려시대 사서인 『本朝史略』에 의하면 5가야에 금관가야와 비 화가야가 들어가고 대가야와 소가야가 빠져 있다. 비화가야는 지금의 경남 창 녕에 해당한다.2) 가락국기에서는 가야의 영역을 동쪽은 황강, 서남쪽은 푸른 바다, 서북쪽은 지리산, 동북쪽은 가야산, 남쪽은 나라 끝이라고 설명하였다. 1) 부산‧경남역사연구소 편 「시민을 위한 가야사」의 그림을 재구성 2) 통설로 알려진 6가야연맹은 실재한 것이 아니라 신라말 고려초의 관념속에서 존재하던 허구의 전설이나 고려시대의 삼국유사와 그를 반복적으로 기록한 조선시대의 신증동국 여지승람 등의 각종 지리지, 읍기를 거치면서 사실처럼 굳어진 것이다.(김태식, 1997) - 8 -
  • 16. 그런가 하면 같은 「삼국유사」 오가야조에서는 낙동강 동쪽에 위치하는 창녕 의 비화가야와 가야산 북쪽에 위치한 성주의 성산가야를 말하고 있어 가락국 기 내용보다 범위가 넓게 표현되어 있다3). 이상의 가야제국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전 반에 활발하여 이 시기는 여러 분야에서 가야사의 초석들이 놓여진 시기였다. 김해의 양동리고분과 대성동고분, 합천 옥전고분, 창녕교동고분, 함안 도항리 고분 등 각지에서 수많은 고분이 발굴 조사되어 문헌사료가 부족한 가야역사 를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2. 경남지역의 주요 가야국 (1) 김해중심의 금관가야 가야국의 중심국가인 금관가야가 입지한 김해 지역은 낙동강 하구 우안 (右岸)의 평야로 되어 있지만 옛 지질 연구에 따르면 가야 당시 그 일대는 넓 은 만(灣)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는 양항의 조건을 갖추었으 며 낙동강 주운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지에 해당하여 낙랑․대방군으로 부터 서, 남해안을 거쳐 왜(倭)로 가는 항로에서 한반도내 마지막 기착지였다. 한반도 서해안과 동해안을 동서로 잇고 영남 내륙과 왜를 남북으로 잇는 교 통, 교역로의 교차점으로 진․변한 당시의 대외 교역의 중심지로써 발전하였다 금관가야의 공간적 범위는 시기에 따라 다소간 변화가 있지만 김해 일대 에 걸쳐 발달했으나 낙동강 하구 서안평야 주변부인 얕은 구릉 지대가 가장 중요한 지구였으며 웅천․다대포 등의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진영읍 동편의 3) 고고학자료로 보면 창녕이나 성주의 토기문화는 일반적인 가야토기양식과 다르게 나타 나고 있고 오히려 지리산 넘어 전북의 남원, 장수 지역에서까지 고령계 토기가 다량 출 토되고 있는 실정이다. - 9 -
  • 17. 생림면․한림면 일대도 주요 읍락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후자의 퇴래리 분 묘군에서 출토된 갑옷 등이 그 점을 강력히 시사하는 자료이다. 김해시 북쪽 의 유적은 그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이지만 진영읍을 기준으로 서편인 창원시 다호리에서 변한 초기의 중심지였음을 나타내는 분묘 유적이 발견되고 그 후 의 고분군 흔적이 있으므로 금관가야 시기에도 일대에 주요 읍락이 있었을 가 능성이 높다. 다호리 유적에 가까운 덕천리 지석묘 유적은 변한 이전부터 중 요한 취락지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한편 낙동강 대안의 부산 지역에 도 금관가야 초기에 깊은 연계가 있었음을 보이는 고고학적 흔적이 보이고 있 다. 지금까지 발굴된 금관가야의 주요 유적은 고(古)김해만 주변부와 낙동강 하류 주변부에 소재한 것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서편의 양동리고분 군 중심과 동편의 대성동고분군 중심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두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이나 유구를 볼 때 그들은 변한시에는 거의 대등한 세력이었을 것으 로 보이나 금관가야가 성립하면서 점차 대성동 쪽이 우세한 중심 읍락이 되어 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김해의 수가리패총이 남아 있으며 창원 덕천리의 지 석묘는 상석 주위의 석축열과 상석 아래 2중 3중 구조의 석곽묘 형식의 하부 구조로 유명하다. 그리고 김해의 구지봉에 있는 지석묘는 금관가야의 건국시 조 설화가 얽혀 있는 구지봉 중심부에 존재하고 있어 가야 형성의 원류를 암 시하고 있다. 또한 석관묘 유적은 마산 신촌리의 석관묘에서 청동검이 출토되 기도 하였다. 청동기시대 유물인 창원 다호리유적에서는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 그 안을 파낸 형식의 목관묘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각종의 세형동검을 비롯한 철검 과 함께 철기재료로 쓸 수 있는 다량의 판상철부와 철제공구 등 풍부한 철제 품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 일반생활용기인 다수의 칠기 그릇들과 함께 붓이 출토되어 당시의 지배계층에서는 문자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 10 -
  • 18. 금관가야의 국명에서 나타나듯이 김해 지역은 대표적 철산지이거나 교역 의 중심지인 점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일본서기」에서는 수나라(湏那羅)라 하였고, 이는 쇠(鐵)나라로 해석되므로 국가명에서도 나타나듯이 김해 지역은 철생산국으로 대내외적으로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2) 함안중심의 아라가야 함안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라가야는 「삼국유사」5가야조에 함안이라고 표기된 것을 비롯하여 「삼국사기」지리지 함안군조에도 아라가야 혹은 아나 가야로 나오고 있어 가야제국중 위치가 확실한 나라중 하나이다.4) 아라가야는 수로를 통해 내륙지역과 남해안과도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육상․해상의 지리적 이점으로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 발전하여, 남해안 지역인 마산․창원과 남강하 류 북안의 의령을 포함하는 하나의 권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라가야의 중심인 함안은 지리적으로 볼 때 경남의 중심지로 남강 및 낙 동강을 통해서 가야 전 지역으로 연결될 수 있다. 즉 서북쪽으로 남강을 거슬 러 올라가면 진주와 사천지역과 통하고, 남강을 타고 내려와 낙동강을 건너면 창녕에 닿는다. 거꾸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황강을 통해 합천의 내륙지 방에 닿을 수 있으며 더 올라가면 회천을 따라 고령의 대가야로 연결된다. 또 낙동강을 그대로 내려가면 김해지역으로 통할 수 있다. 한편 육로로는 동서로 뻗은 산지의 사면구릉을 따라 마산․창원에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계곡을 따라 곧 진동의 남해안에 다다르게 된다. 아라가야국이 풍부한 농수산물과 철제품을 이용하여 동서의 여러 나라들 과의 교역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까닭은 이와 같은 지리적 이점에서 찾을 수 4) 「삼국지」동이전 한조에는 변한12국 중의 하나인 안야국으로 표기되며 이미 3세기에 소국으로 존재하면서 김해의 구야국과 함께 진왕으로부터 우호를 받기도 하는 유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광개토왕비문에는 안라로,「일본서기」에는 안라국으로 표 기되어 있다. - 11 -
  • 19. 있다. 야로령이 남해안의 진동항과 마산항과 불과 10~20㎞ 정도 떨어져 있 어 수송상 유리하였다. 또한 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있었으므로 물물교류가 더욱 용이하였다. 이외에도 경질이며 섬세한 문양의 토기가 생활용구로 일본 등지에 수출되었다는 것 등에 비추어 볼 때, 고대 아라가야의 높은 문화수준 을 짐작할 수 있다. 함안지역은 일찍부터 청동기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이후 철기문화가 유입 되어 각 부족간에 정복전쟁을 통한 정치적인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아라가야라 는 정치적 실체가 되었다. 봉성동, 괴산리, 동촌리, 광정리, 회산리 등의 지석 묘군 외에도 다수의 지석묘가 산재해 있어 청동기시대부터 일대에 주민이 거 주하였으나 변진안라국이 주위의 소국들을 흡수 통합하여 아라가야를 형성하 였다고 본다. 가야읍의 도항리, 말산리, 가야리, 신음리 일대의 낮은 구릉지대 에는 웅장하게 축조되어 있는 3세기이후의 고총고분 100여 기가 군집하고 있 다. 수장급 고분의 입지적 특징, 고분의 수, 묘역의 범위는 김해, 고령, 창녕, 고성 등 다른 가야국의 중심유적과 비교하여도 탁월하다. 고분 개석 남단에서 ‘수하왕’이라고 새겨져 있는 명문이 발견되는 점에서 왕이라는 용어를 붙일 만 큼의 세력이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함안을 중심으로 김해, 마한, 낙랑, 왜 등과의 교역을 통하여 전성기를 이 루었다. 고구려의 세력팽창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는 전기 가야문화권에 비해 아라가야를 비롯한 고령, 함양 등의 내륙 산간 후진지역은 오히려 전화를 입 지 않고 세력기반을 확실히 성장하여 후가야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아라가야는 5세기 이후 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백제․가야․왜 연합세력에 참여하여 고 구려․신라 연합군에 패배하기도 하지만 꾸준한 성장과 발전을 계속하였다. 특 히 6세기 이후에는 신라의 계속되는 압박으로 가야세력이 위태롭게 되자 가야 의 결속과 부흥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라가야의 최고수장은 대가야와 같이 왕을 칭하고 그 아래 지배체제도 서열화 하는 등의 정치체제도 어느 정도 갖추었던 나라였다. - 12 -
  • 20. 낙동강과 남강 유역의 넓은 평야와 고온다습한 여름기후는 농경에 매우 유리하여 일찍부터 논농사가 이루어졌다.5)(이덕순, 1998) 고현 남해안은 수 심이 앝으며, 해안의 굴곡이 심하고, 항만이 발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석간만 의 차도 크지 않아 물고기와 미역, 소금의 산지로 이름나 있다. 또한 함안의 야로령철산은 대가야의 야로철산과 함께 변진가야국의 이름난 철장으로 해외 에까지 알려졌다.6) 철광산 채굴, 제철에는 막대한 인력이 소요되므로 제철소 를 중심으로 취락이 형성되었다고 간주된다. 아라가야는 많은 양의 호미, 삽, 낫, 도끼, 창, 쟁기 등의 우수한 철제농기구를 생산하였으며 철제 쟁기를 이용 한 우경의 보급은 획기적이고 비약적인 생산력의 향상을 이끌었다. 이처럼 향 상된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인구가 증가하여 아라가야는 보다 강력한 정치적 실체로 발전할 수 있었다. 아라가야의 유물이 함안군 전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아라가야 의 실상을 규명해 줄 국보급 유물은 일제 강점기에 발굴을 통하여 일본인들이 가져갔으며, 이후에는 도굴과 농민들의 무분별한 경작 등으로 귀중한 문화재 가 훼손되거나 사라졌다. 아라가야의 대표적 유적은 함안군 함안읍의 말이산 에서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구릉의 정상부를 따라 60여기의 고총고분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말산리, 도항리고분군이다. 도항리의 북쪽 자락에 위치한 마갑총 에서는 금동제 환두대도와 함께 철제 말갑옷이 출토된 바 있다. 그리고 마산 창원지역에서도 현동고분군, 창원 도계동고분군을 발굴 조사하였고, 남강하류 북안의 의령지역에서는 함안 황사리고분, 의령 예둔리고분 등이 조사되어 아 라가야권역의 문화상이 어느 정도 밝혀지게 되었다. 5) 삼국지 동이전 변진조에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 및 벼를 심고 잠상을 할 줄 안다는 기 록으로 미루어 볼 때, 기원 3세기 이전에 벌써 도작농업이 성하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6)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조에 ‘國出鐵 韓濊倭皆從取之 諸市買皆用鐵 如中國用鐵又供給 二郡’이라는 기록은 해외 여러 나라에까지 변진의 철산물이 공급될 만큼 변진에서 생산 량이 방대하였음은 물론 철제기술이 고도화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 13 -
  • 21. 함안지역의 경우 유적, 유물을 통한 고고학적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 료에 의한 문헌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이는 아라가야에 대한 사료부족 이 근본원인일 것이고 지역단위의 아라가야사를 중심 논지로 진행한 연구가 부진한 까닭이다. 최근에 아라가야의 실체접근을 위한 고대사 및 고고학적 연 구가 잇달아 발표되어 아라가야사 연구는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또 한 최근의 도항리, 말산리 구릉지역의 발굴조사에서 무문토기시대의 주거지, 지석묘, 석관묘 및 1세기에서 4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토광목관묘와 대형 토광 목관묘가 집중 조사되었다. 이에 대한 연구와 분석작업이 이루어질 때 아라가 야의 실체는 서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3) 고성중심의 소가야 소가야는 현재의 경남 고성군 지방을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에 형성된 세 력이다. 소가야는 「삼국유사」5가야조에 고성이라고 나오고, 「삼국사기」지 리지 고성군조에는 고자국(古自國)으로 나오고 있다. 고자국의 직접 지배권역 이 어디까지인지는 분명히 하기 어렵다. 그러나 「삼국사기」지리1 강주 고성 군조에 고성군의 영현이 셋인데 사천을 포함하는 사물현과, 고성군 영현면 지 역 및 진주의 일선현과 고성군 상리면 일대라고 생각되는 민화량현으로 나오 고 있다. 그러므로 소가야는 고성군을 중심으로 사천에 이르는 남해안 일대의 인접지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중심지는 고성군 고성읍 일대이다.7) 한편 소가야의 다른 명칭인 고자국은 남해안 지역에 위치한 국들과 연계 7) 고자국을 「삼국유사」에서 소가야로 부른 것은 고령의 대가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은 가야란 의미로 쓰인 것이라 생각된다. 이 고자국은 「삼국사기」지리1 강주조에 는 고자국으로, 「삼국지」동이전에는 변한 12국중의 하나인 변진고자미동국으로, 「일 본서기」흠명기 5년조에는 고차국으로, 23년조에는 구차국으로, 「삼국유사」5가야조 에는 소가야로,「삼국사기」물계자전에는 고사포국으로 나온다. 그리고 고자의 자는 성 (城)에 대한 우리말 고어라고 하며 그런 연유로 경덕왕때 고자(古自)를 고성(固城)으로 고친 것이라고 한다. - 14 -
  • 22. 하여 지역세력권을 형성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포상팔국 세력권이다. 이 포상 팔국은 골포국(骨浦國 : 현재의 경남 마산․창원 지역), 칠포국(七浦國 : 현재 의 경남 칠원 지역), 사물국(史勿國 : 현재의 경남 사천시), 고사포국(古史浦國 : 현재의 경남 고성군), 보라국(寶羅國 : 위치 미상) 등을 말한다. 현재의 경남 고성군 고성읍 송학동에 위치한 송학동 고분군의 규모에서 미루어 볼 때 고사 포국이 포상팔국 내에서 핵심적인 국이었던 것 같다. 고자국을 중심으로 한 포상팔국은 한때는 서로 연계하여 낙동강 하구의 김해세력을 공격하였지만 사 로국을 중심으로 한 진한세력의 간섭으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 아 이후 고자국은 그 세력이 위축되게 되었으나 6세기 전반기에 와서 어느 정 도 세력을 회복하였다.8) 지리적 위치에서 볼 때 남해안을 따라 동서로 뻗은 산지로 북쪽이 막혀 있어 고성반도를 중심으로 독립된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해안을 통한 해상교역 활동과 중국이나 왜와의 교역을 통해 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서 북서쪽으로 좁은 곡간통로를 통해 사천을 거쳐 진주와 관계를 맺으 며 발전하였다. 패총이나 유물포함층으로 남아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주로 연대도, 욕지도 등 남해안의 바닷가나 섬지방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에 는 대가면과 하이면에 대규모 지석묘군이 존재하고 있어서 토착세력의 존재를 짐작하게 한다. 1~3세기 유적으로 파악되는 동외동 패총은 고자국을 성립시 킨 주체세력들의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소가야의 대표적 유적으로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의 고총 고분군을 들 수 있다. 고성읍의 서북쪽 구릉의 정상부에 대형 봉토분 10여기가 몰려 있는 소 8) 「일본서기」흠명기 5년(544)조에 의하면 고자국=구차국의 수장=한기가 임나부흥회에 대표로 참가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5가야조에 고성지역이 소가야 로 나오는 것도 고자국이 남해안 지역을 대표하는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 15 -
  • 23. 가야 지배층의 주고분군을 추정하고 있다. 송학동고분군 외에는 사천이나 고 성의 다른 지역에는 이렇다할 대형고분이 존재하지 않고 진주에 일부 고총고 분이 존재하고 있다. 진주 진양댐 수몰지구의 대평리지구에서 지석묘돠 함께 석관묘유적이 조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환호 취락지와 함께 1,500평이 넘 는 대규모의 밭유적이 발굴되어 이시대 농경생활은 물론 사회구조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4) 창녕중심의 비사벌국(比斯伐國) 비사벌국은 낙동강 중류의 화황산 서남쪽을 중심으로 경남 창녕지역을 기 반으로 성립한 세력이다.9) 비사벌국이 성립하였던 죽사리와 장마면 유리에 지 석묘가 분포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청동기 시대 이래의 토착집단이 자리한 곳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토착집단을 기반으로 하여 전후한 시기에 창녕지 역에 비사벌국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5세기 이후에 비사벌국은 신라 진흥 왕에 의해 신라의 직할영역으로 편입되어 대가야를 공격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이용되었다. 입지적으로 낙동강의 본류에 접하고 있으면서 초계․합천으로 올라갈 수 있 는 황강 입구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낙동강 연안평야의 저습지와 자연 늪지가 많으므로 풍부한 농업생산력과 편리한 교역을 통해 성장하였다. 비사벌국의 직접 지배권역은, 「삼국사기」지리1 양주 화왕군조에 추량화현(推良火縣 : 현재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이 영현으로 나오고 있는 것에서 미루어 볼 때 현재의 경남 창녕군 창녕읍과 대구시 달성군 현풍읍이 비사벌국의 직접 지 배권역으로 추정된다. 9) 비사벌국은 「삼국사기」지리1 양주 화왕군조에는 비자화국으로, 창녕진흥왕척경비에는 비자벌로, 「삼국유사」5가야조에는 비화가야로, 「일본서기」신공 섭정기 49년조에는 비자발로 나온다. 이 비사벌국은 명칭에서 미루어 볼 때 「삼국지」동이전에 나오는 진 한 12국의 하나인 불사국에 비정된다. - 16 -
  • 24. 비사벌국의 세력은 창녕읍에 소재한 교동고분군을 비롯하여, 계성고분군, 영산고분군, 현풍고분군을 통해 강대했음을 알 수 있다. 창녕지방의 고분에 대 한 지표조사는 일본인 학자들에 의하여 주도되었으며 조사는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다.10) 1994년에는 구마고속도로 4차선 확장공사로 인하여 부산대 박 물관의 계성면의 명리와 사리지구의 고분 발굴조사에서는 토기류와 철기류를 포함한 12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런데 출토품 중에 대간이라는 문자가 새겨진 굽다리접시가 포함되어 있어서 이 시기에 창녕지역의 정치․사회상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5) 서부경남일대의 가야 여러 나라 다라국은 경남 합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세력이다. 변한 12국 가운데 다 라국과 연결되는 나라는 없으며, 이 다라국이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일본서 기」신공 십정기 49년조이다. 이는 다라국이 변한사회가 가야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새로이 두각을 나타낸 세력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마 도 이 다라국은 변한시기에는 소별읍과 같은 존재였거나 미미한 국(國)으로 있다가 4세기에 들어와서 세력을 키워 독립적인 국가로 성장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11) 10) 세키노는 창녕읍 일원의 유적과 교동고분군을 지표조사하였으며, 1915년에는 구로이 타가 창녕고분군을 조사하였고, 1917년에는 이마니시 창녕의 유적에 대한 종합적 조사 를 실시하여 상세한 보고서를 간행하였다. 그후 1918년부터 창녕 고분군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하다마와 우메하라 등에 의하여 교동 제21호분과 제31호분이 발 굴되었고, 같은 해에 야쓰이는 교동 10기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보고서는 간행되지 않았으나 출토된 유물이 마차 20대분(화차 2량분)에 달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 「일본서기」흠명기 2년조와 5년조에 의하면 다라국은 임나부흥회의에 하한기와 이수 위를 대표로 파견하고 있다. 하한기는 다라국의 한기들이 상한기-하한기로 분화된 것 을 보여주며, 이수위는 수위(首位) 층이 상수위-이수위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따 라서 6세기에 들어와 다라국의 지배조직은 (상)한기-하한기라고 하는 한기조직과 상 수위-이수위라고 하는 수위조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지배조직은 - 17 -
  • 25. 다라국의 직접 지배권역은 분명히 하기 어렵다. 그러나 「삼국사기」지리 1 강주 강양군(江陽郡 : 현재의 경남 합천군)조에 삼기현(三岐縣 : 현재의 경 남 합천군 대병면)과 초팔혜현(草八兮縣 : 현재의 경남 합천군 초계면)과 신이 현(辛尒縣 : 현재의 경남 의령군 부림면)이 합천군의 영현으로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서 미루어 볼 때 현재의 경남 합천군 합천읍과 대병면․초계면, 의령군 부림면 지역이 다라국의 직접 지배권역이 아니었을까 한다. 합천의 옥전고분 군은 다라국의 수장의 위용을 보여주는 물적 증거라고 하겠다. 고령을 기반으로 한 대가야의 영현으로 적화현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경남 합천군 야로면․가야면일대이며 거창군 및 함양군 지역의 일부도 대가야 의 직접 지배권으로 포함되고 있다. 대가야 전성기에 조세를 수취하고 지역민 을 통제하는 간접통치 지역으로 합천, 거창, 함양, 남원 및 섬진강유역의 하동 이 해당되고 있다. 이는 대가야가 왜와 교역할 때 이용했던 교통로에 위치하 고 있다. 3. 가야문화권의 특색 (1) 낙동강 연안의 찬란한 고대문화 중심지 가야문화 형성의 모태는 낙동강과 소백산맥이다. 동쪽에는 강원도에서 뻗 어내려온 태백산맥이 해안선과 평행하게 달리고, 서남으로 소백산맥이 영남지 방과 중부 및 호남지방의 자연적 장벽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앙을 낙동강과 지류가 하나의 대유역 분지를 형성하여 서부산지는 합천, 거창, 함양, 산청 등 의 분지가 발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낙동강과 지류 유역의 크고 작은 분지와 평야에 입지한 가야제 왕을 칭한 안라국이나 가라국과 유사하다. 그렇다고 하면 6세기의 다라국의 정치발전 은 수장의 칭호가 한기였던 다른 국들보다는 격이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 18 -
  • 26. 국은 온화한 기후와 비교적 풍부한 강우량으로 농업에 적합하였고, 또 해안지 대는 풍부한 해산물의 산지였다. 고령분지를 형성한 회천을 합류하여 남하한 낙동강은 황강, 남강의 2대 대지류를 합류시킨다. 황강은 남덕유산 동사면에서 발원하여 상류지역에 거창 분지를 형성하나 비교적 유역이 좁아 큰 평야는 없으나 합천의 봉계지역, 합 천읍. 초계․쌍책지역에 분지를 형성시킨 후 창녕 부근에서 낙동강 본류에 합류 한다. 소백산맥의 줄기인 백운산에서 발원한 남강은 동류하는 위천과 남덕유 산에서 내려오는 남계천이 함양에 함양분지를 만들고, 다시 남류하면서 산청 에서 경호강으로 합쳐서 산청분지를 만들고 있다. 또한 진주에 이르러 진주분 지를 동류하여 남강이 되고 의령을 거쳐 남지에서 낙동강 본류에 합류한다. 의령에서 남강을 건너면 남쪽에 함안이 자리하고 있다. 황강․남강을 남지에서 합류한 낙동강은 밀양강, 양산천과 합치면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김해를 거쳐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로 흘러들면서 퇴적시킨 넓 은 삼각주평야의 배후 구릉에 자리잡은 금관가야는 가야국의 맹주역할을 하며 창원․함안을 잇는 한산산지와 구릉으로 연결되어 진영․창원․마산으로 연결되는 지리적 여건을 가지고 있다. 영남지방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낙동강은 배가 안 동까지 올라갈 수 있어 고대로부터 내륙 수로 교통의 동맥이 되어 이 지역주 민의 젖줄과 같은 역할을 한 강이다.12) 경상남도의 남해안 지역은 낙동강유역과 별개의 유역으로 한산산지라고 하는 구릉지군이 형성되어 그 남사면에 고성만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가야 제국은 서부의 산지와 남해안의 구릉지, 낙동강분지로 이루어져, 이러한 자연 환경에 의해 가야 여러 지역이 독자 영역으로 구분되고 각기 독립적인 정치체 를 이룩하였으나, 낙동강 수계를 통한 외부문화 수용에서 가야라는 공통된 인 12) 낙동강은 총길이 525㎞, 유역면적 23,859㎢로 남한 면적의 1/4, 영남면적의 3/4에 해 당한다. 낙동강 경사는 지극히 완만하여 하구에서 약 344㎞상류에 있는 안동부근에서 도 해발90m에 불과하다. - 19 -
  • 27. 식을 가질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연지세와 기후를 배경으로 이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옛 가야의 땅에 남아 있는 산봉우리 같은 거대 한 고분군들, 화려한 장신구들과 부곽을 가득 메운 토기 등 출토된 유물로 보 아 신라나 백제에 못지 않은 높은 문화수준을 누렸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가야지역 문화의 원류는 신석기시대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신석기시대의 뒤를 이은 청동기시대는 가야지역에 서도 신석기유적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범위도 넓어지고 유적‧유물 또 한 다양하고 그 수도 많다. 이 시대의 유적은 지석묘, 석관묘, 옹관묘 등의 분 묘와 주거지 암각화 등이다. 지석묘는 낙동강과 그 지류의 수계 및 분지주변 에 열을 지어 분포하기도 하고 군집되어 분포하기도 하여 가야가 형성되기 이 전부터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의 제의와 신앙 등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암각화 유적은 우리나라 에서 경북 동해안 지방에 대부분 분포하지만 가야지역에도 나타나고 있다. 암 각화는 대개 큰 하천변의 절벽이나 바닷가 바위 혹은 지석묘 상석에 분포하는 데 청동기시대 내지 초기철기시대에 이지역 주민들이 태양신을 상징하는 동심 원과 지신을 상징하는 가면을 조각하여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던 제의장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함안 도항리에서는 지석묘 개석에 소용돌이 문 양이 새겨진 암각화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기원전 3세기경까지의 청동기문화에서는 한반도의 다른 지역과 같이 많은 무문토기와 부장용토기라고 생각되는 홍도, 각종의 마제석기, 생활용품 등이 출토되었다. 그후로부터 기원전후한 시기에 매우 활발하고 복잡한 초기철기문 화가 이 지역에 유입되고 특히 발달된 漢문화인 낙랑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 되었다. 가야는 철기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할 만큼 철기문화가 발달하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함안의 야로령철산은 가야국의 주요철광으로 중국과 일본에 - 20 -
  • 28. 도 알려질 만큼 가야제국은 철제농기구를 비롯한 철기문화를 꽃피워 많은 철 제 유물이 고분에서 발굴되고 있다. 또한 가야와 활발한 교류를 맞은 일본은 가야의 철을 중심으로 한 선진문물을 수입하여 일본고 대문명의 원류를 이루 었으며 가야의 철은 중국까지 수출되었다. (2) 내세관이 깃든 가야인의 삶 가야문화는 오랜 시일이 경과하여 지상의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제한성이 있으며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의식주문화는 고분에서 출토된 유 품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의복문화는 가야시대 고분에서 직조 도구인 토제 방추차가 흔히 출토되므로 간단한 의복 직조는 각 가정에서 직접 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장 환두대도의 칼자루, 손잡이 등에는 아주 고운 직물이 붙어있고 문헌기록에도 비단 종류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왕족을 비롯한 지배층에서는 견직의복도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식생활 문화로는 이미 쌀농사와 어업활동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가야시대의 논이 조사된 것은 없지만 김해 회현리 패총과 부원동 유적에서도 쌀이 출토된 점을 미루어 낙동강 연안의 평야지대에서는 논농사를 지었고 구 릉지 사면에서는 밭작물을 경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농경도구로는 철제낫이 가야 전역에 걸쳐 가장 많이 출토되고 괭이와 쇠스랑, 도끼류가 많이 출토되 었다. 그밖에 다용도 도구이지만 도자와 같은 소형칼도 농경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농작물경작과 함께 중요한 생업의 하나가 어로작업이다. 가야의 유적에서 많은 어망추가 출토되고 그릇에서 물고기가 많이 출토되는데, 이는 낙동강을 비롯한 하천에서 물고기를 잡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생업인 농경․어로와 함 께 가축사육․수렵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가야고분에서 닭뼈가 음식물과 함 께 출토되었으며 합천 옥전과 함안 도항리에서 말투구‧말갑옷이 출토된 바 있 - 21 -
  • 29. 고, 소를 잡아 제사 지내는 기록13)이 있는 것을 보면 소‧돼지를 길렀을 것이 확실하다. 수렵으로 포획한 꿩뼈, 멧돼지나 사슴뼈는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으 며 사냥도구인 창은 가야고분에서 많이 출토되고 활도 다호리고분에서 출토된 바 있다. 이와 같이 가야국내에서 각국에서 공통적인 유물이 발굴된 것은 각 지역 의 특산물을 물물교환하여 내륙지방의 가야에서는 민물고기와 함께 쌀, 기장, 보리와 같은 곡물을 해안지역의 가야와 교역하고, 해안지역의 가야에서는 바 닷생선, 조개류와 소금을 서로 교역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거문화에 있어서는 가야인들의 발굴된 집터 자료가 없어 일반인들의 주 거생활에 대한 확실한 자료는 없다. 그러나 함안의 아라가야 궁성지에서 가야 시대 기와와 다듬은 석축돌이 보이고 있다. 그리고 고령의 주산성에서도 가야 시대 기와가 나오고 있어 국가건물 등에는 기와를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14) 그리고 일반인들의 집은 조사된 예가 없으나 초가집이나 움집에 살았을 것으 로 생각된다. 또한 내륙지방에서 생산되는 쌀이나 잡곡류의 곡물외에 「삼국지」 위서 동 이전 한조에도 가야의 특산물이 철이라고 기록되어 가야의 철은 일찍부터 중 국과 일본에 수출한 중요물자였다. 제철관련 유물로는 합천 옥전고분과 의령 예둔리고분 등에서 철제집게와 망치, 모루 등 철을 다루는 단조도구가 출토되 었다. 아직 가야시대의 제철로나 용해로와 같은 제철유적은 알려지지 않지만 조선시대 양질의 철산지인 합천군 야로지역의 철생산은 가야시대까지 올라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와 같이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철제문화가 꽃피웠다. 가야문화의 흔적은 고분발굴을 통해 알 수 있을 만큼 분묘가 가야문화에 13) 「영일냉수리신라비」와 「울진봉평신라비」에 나타나고 있다. 14) 삼국사기 신라본기편에 진흥왕때 신라가 대가야를 공격할 때 전단량이라는 성문으로 들어갔다고 하는 기사로 보아 왕족이나 귀족들은 궁성내에 기와집을 짓고 마당이나 통로에 벽돌을 깔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 22 -
  • 30.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가야문화의 보고로 알려진 분묘는 가야인의 내 세관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 나라 고대에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는 관습이 보 편적이었으며, 이는 사후에도 영혼이 지하의 세계에서 현세와 똑같은 생활을 계속한다는 계세사상이 만연하였기 때문이다.15) 계세사상의 영향으로 지배계 급의 분묘에는 순장품이 많이 발굴되고 있으며 기록에는 없지만 실제 지배층 고분에서 순장 사례가 가장 많이 확인되는 것이 가야의 고분이다. 함안의 도 항리고분군, 김해의 대성동고분군, 창녕의 교동고분군, 고성의 송학동고분군, 합천의 옥전고분군, 성주의 성산동고분군과 고령의 지산동고분군 등이 대표적 인 것이며 그밖에 진주의 옥봉 수정봉고분, 함양의 백천리고분군, 거창의 개봉 리고분군 등도 또다른 정치집단들이나 지배계층들의 고분군들이다. 가야지배계층의 분묘는 주읍의 배후지역, 궁성을 방어하는 높은 산성을 배경으로 산줄기 정상부의 돌출부나 구릉의 정상부에 축조된 것을 알 수 있 다. 이것은 죽은 사람이 자기가 다스리던 국읍의 들판과 산천을 내려다보게 하는 배려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우세한 입지에 고분을 위엄있게 배치시킴으 로써 지배자 집단의 초월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 와 같이 산성을 배경으로 앞이 트인 벌판이 내려다보이는 높직한 구릉에 묘지 를 선정하는 것은 가야인들의 내세관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한편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분묘를 웅장하게 만들고 많은 부장품과 순장자를 매장하는 것과 분묘축조시 제의행사를 통하여 정치세력의 권력을 과시하여 지배체제를 확고 히 하고 상호관계를 재확인, 확대 재생산하기 위한 정치적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을을 내려다보는 높은 산정상에 열을 지어 큰 고분을 축조하 는 것이 신라 백제와 다른 가야의 특징이다.(김세기, 1998) 15) 인간의 죽음이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도 무덤속에서 생을 이어간다는 사상을 계세사상이라고 한다. - 23 -
  • 31. (3) 국제교류가 빈번한 가야문화 가야 여러 나라들은 한반도 내에서 고구려․백제․신라와 계를 맺으며 발전 하였고 한반도 외부의 중국이나 일본과도 문물을 주고받았다. 중국의 문화는 한반도 북부를 통해 남부지방으로 유입되어 북방 부여계통의 문물도 일찍이 가야까지 유입되기도 하였는데 김해 대성고분에서는 북방계의 유물인 동복 (솥)이 출토되었고, 중국제 거울을 모방하여 방제경을 만들기도 하였다. 가야 지역을 둘러싼 주요 외교 대상국은 백제, 신라와 왜였으며 가야와 가장 활발하게 문물교류를 한 대상국은 일본이었다. 백제는 고구려에 대항하 기 위한 연대로써,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가야제국과 왜와 평화적 관계를 유 지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백제와의 교류가 활발하였으며 합천 옥정고분 군에서 출토된 금장봉황문환두대도와 여러 점 출토되고 있는 동체부가 풍만한 원저단경호 토기는 백제계 문물로써 백제와의 교류를 보여 주고 있다. 반면 신라는 가야지역이 영토 팽창의 대상지로서 가야를 공략하였으며 가야지역에 서 출토되는 신라계 문물은 백제계문물보다 훨씬 많다. 신라식의 고배와 대부 장경호와 같은 토기와 신라양식의 삼엽문화두도가 합천에서 출토되어 신라와 의 문화교류는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가야와 가장 활발하게 문물을 교류한 곳은 일본이었다. 서낙동강 하 류의 임나루는 김해에서 바다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로 가야의 국제무역항이 었다. 중국의 삼국지 위서 왜인전에 따르면 가야국 당시 남해안에서 일본쪽으 로 가는 해상로는 구야한국(김해)에서 대마도~이키~이도국, 또는 이키~이즈 모 해로가 주로 이용되었음을 서술하고 있다. 당시 왜가 가야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목적은 철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문물을 수입하기 위해서였다. 당 시 왜의 문화적 발전 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이 바로 가야라고 할 수 있는데 전기에는 김해의 금관가야가 주도적이었고 후기에는 고령의 대가야가 주도적이었다. 이는 일본의 고분에서 출토되는 철정은 가야의 철정과 크기, 모 - 24 -
  • 32. 양, 재질에서 매우 흡사한 점에서 찾을 수 있으며 고대일본에서 본격적인 제 철이 시작되는 6세기 이전까지는 가야에서 철을 수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이 한반도내에서 가장 먼저 교류한 대상이 가야제국이었으며 가야인들은 역시 일본열도로 진출 또는 이주하는 직접적인 인적교류도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양국간의 인적교류에서 일본문물도 역시 가야로 유입되었 음을 김해 대성동고분을 비롯한 함안, 창원일대에서 파형동기와 옥장, 일본제 청동거울과 통촉 등의 출토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출토된 유물을 통 해 가야제국은 일본을 비롯한 주변의 국가와의 활발한 교역을 통해 찬란한 문 화를 꽃피웠음을 알 수 있다. - 25 -
  • 33. Ⅲ . 역사문화 환경의 보전 1. 역사문화환경의 보전 방안 역사문화환경은 그 지역에 살아온 사람들에 의해 지나온 역사를 통하여 만들어지고,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으로 역사문화 환경은 마을의 모습으로 상징되며 그 지역에 대대로 살아 온 주민들의 자취와 자연에 대한 생각이나 자연을 이용하는 방식에 대한 교훈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우 리나라는 옛부터 터라는 장소성에 바탕을 두고 주변 자연환경과 입지조건을 고려하여 건축을 배치하고 평면을 구성한 마을구성방식은 다양하고 풍부한 삶 의 내용이 담겨져 지역의 고유성을 지닐 수 있는 뿌리가 되며, 후손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편 건축물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물리적 기능의 가치는 감소하나 문화적, 역사적 가치는 증대한다. 그러므로 후손들에 게 전달해야 하는 역사문화 환경을 기술적이며 제도적이며 이념적으로 보전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여야 한다. 우선 역사문화환경의 보전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만을 한정하는 데 서 나아가 인간, 자연, 그리고 건축, 즉 인간을 중심으로 한 자연환경, 인문환 경 등 역사를 통하여 전승받은 모든 것에 관한 보전은 물론 나아가 새로운 역 사문화 환경의 창조까지 포함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문화환경의 보전은 古都내 유적․유물을 중심으로 하는 각 지구별 역사적 풍토의 특성과 함께 자 연적 환경을 고려하여 역사문화 환경에 뿌리를 둔 다양하고 풍부한 도시환경 을 만듬으로써 도시나 마을이 아이덴티티를 가지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환경에 활력을 주고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역사문화보전 대상은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것과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문화유산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지하의 문화유산은 발굴조사 계획과 병행하 - 26 -
  • 34. 여 보존되어야 하며 지상은 현재에도 주민의 생활 터전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 문에 복합적이고 기능적인 보전의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 이는 주민들의 생 활과 직결되기 때문에 피해나 불편을 최소화하고 피해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하며 주민이나 시행청의 끊임없는 투자와 조정이 필요하고, 엄격한 보존을 강 요하기보다는 활용을 위한 보전을 하여야 한다. 현재 활용하고 있는 역사도시의 보존을 위한 실천수단으로서의 토지이용 및 건축규제는 도시계획법상의 지역지구제에 의한 고도제한 방식과 유사하나 우리 나라는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는데 비하여 외국의 경우 역사도시의 지 구별 특성에 적합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관리하고 있다. 즉 역사문화환경 을 간직한 땅, 터, 환경을 현재에도 상하지 않게 하며, 나아가 생명을 잃지 않 게 보호하기 위해 문화재라는 유물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나아가 문화재 보전 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도시설계적인 차원의 현재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진 도시로 가꾸기 위해서는 역사문화 환경을 지닌 단위건물을 바탕으로 면적으로 설계․보전되어야 한다. 현대적 의 미로 도시의 컨텍스트를 살리는 방식으로 사람의 흐름을 유도하고 휴식처도 제공하며 구조적으로 도시건축의 복합체의 재조직화 작업까지 영향을 주며 도 시내부의 토지이용을 유효적절하게 혼합격리시키는 기능을 역사문화 환경의 보전 및 재창조를 통하여 이룰 수 있도록 한다. 2. 우리 나라 역사문화환경 보전 (1) 역사문화환경 보전 제도 우리 나라 역사문화환경 보전에 관한 제도적 장치는 역사적 유적․유물에 국한된 문화재보호법제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1933년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 - 27 -
  • 35. 기념물보존령이 발표되고 한국의 전통건조물은 1962년 제정한 문화재보호법 및 1984년에 제정된 전통건조물보존법(1999년 폐기)에 의해 제도화되었다. 문화재보호법은 개체의 엄격한 보존을 위한 법률이며 단위건축물에 대한 보존 과학기술 차원에서의 보존, 그리고 보존은 문화재를 위한 문화재의 보존 이상 은 기대하기가 힘들며 역사문화 환경보전 차원의 전단계에 머물고 있다. 현재 문화재보호법상의 문화재 보호구역은 지정문화재의 점유면적을 제외한 지역으 로 지정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하여 문화재관리법에서 지정된 구역으로써 국보․ 보물 및 주요민속자료구역과 사적보호구역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지구차원의 보전보다 지정문화재의 단일보존차원에 머물고 있다. 또한 문화재 보존․관리 및 <표 1> 문화재 보호구역 보 호 대 상 보 호 구 역 추녀끝이나 또는 건물최돌점에서 수직선으로 닿는 목조 및 석조건축물 각 지점을 서로 연결하는 선에서 20미터 내지 100 미터(사찰건조물의 경우에는 2천미터)이 내의 구역 석탑‧전탑 지대석에서 10미터 내지 25미터이내의 구역 국보 석비‧부도‧석종‧석불 대석 최돌출점에서 10미터 내지 20미터이내의 구역 ․ 보물 첨성대 하부 기단에서 50미터 내지 100미터이내의 구역 벽면상부지면에서 20미터 내지 100미터이내의 구 및 석빙고 역 중요 석굴 하부 기단에서 100미터 내지 500미터이내의 구역 민속 마애불 불상의 반경 30미터 내지 50미터이내의 사방구역 자료 당간지주‧석등 각 물체를 중심으로 하여 반경 10미터 내지 20미터 구역 ‧노주‧석조 이내의 사방구역 석교 교대 및 교각에서 10미터 내지 30미터이내의 구역 기타 국보‧보물 또는 각각 그 보호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구역 중요민속자료 - 28 -
  • 36. <표 1> 문화재 보호구역 -계 속 - 보 호 대 상 보 호 구 역 성벽면 하부 기석에서 외향 및 내향 각각 20미터 성곽등 내지 50미터이내의 구역 벽면 하부 기석에서 외향 20미터 내지 50미터이내 성‧산성‧성내전역 의 구역 사적 제방 성곽에 준함. 보호 왕릉‧고분묘 봉토 하단에서 10미터 내지 1천미터이내의 구역 구역 사지‧사우지‧전묘지 담장 또는 경계선에서 5미터 내지 50미터이내의 ‧고궁 구역 목조건축물‧석조건축물 국보․보물의 보호구역의 지정기준 기타 시설물 기타 사적의 보호구역 보호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구역 활용계획에 관한 기본계획은 시․도지사의 협의를 거쳐 문화재청장이 수립할 수 있으며 기본계획을 수립한 경우에는 시․도지사에게 통보하여야 하며, 시․도 지사는 그 기본계획에 따른 세부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대 부분의 시․도에서는 현재 시행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 가야문화의 보고인 매장문화재는 급속한 개발로 인해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매장문화재보호에 관한 법률은 문화재보호법, 환경영향평가법 및 유실물법 등이 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의하면 공사 과정에서 문화재가 노출되면 공사를 중지하고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세한 공사에서는 공사비에 여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가능한 짧은 기간에 공 사를 끝내기 위해 공사 도중 문화재가 발견되면 아예 흔적조차 남지 않게 파 괴해 버리는 예가 적지 않다. 이는 문화재 관련 법규, 특히 개발 초기 단계에 서 문화유산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조사 관련 법규의 미비가 문화유산 - 29 -
  • 37. 의 훼손을 방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지표조사와 관련된 법규는 환경영향평가법, 도시계획법, 택지개발촉 진법, 국토이용관리법 등을 들 수 있다. 환경영향평가법을 보면 문화재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하는 항목은 26개 개발분야 가운데 댐․저수지․하구언과 관광단지 개발 및 공원조성의 2개 사업에 불과하다. 또한 도시계획법조항 가 운데 ‘토지의 형질변경 등 행위허가기준에 대한 준칙’에 주거지역, 상업지역, 자연녹지내의 1만㎢ 미만의 면적(공업지역에서는 3만㎢)은 시장․군수의 허가 만 받으면 현상변경이 가능하며 더구나 높이 50㎝ 미만을 성토․절토하거나 정 지하는 경우에는 허가를 받지 않아도 좋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한편 허가가 필요한 경우에도 지정문화재 부문에 대해서만 고려할 뿐 비지정문화재나 매장 문화재에 대해서는 해당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제도적인 미비점으로 인해 신규개발뿐만 아니라 도시재개발과정에서도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훼손의 위기 에 처해 있다. 역사도시에 대한 관리방안으로 역사적 건조물, 유적 등이 주위의 자연환 경과 일체를 이룰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함에 따라 역사유적․유물 지구에 대해서도 도시계획상의 지역지구제로 이른바 보존지구를 도입하여 고 도지구, 미관지구, 풍치지구와 차등을 두어 관리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지 역지구제의 도입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각 도시의 특성을 고려하는 데 는 미흡하였다. 한때 서울 종로구 가회동, 삼청동, 원서동에 고풍스런 기와지 붕과 돌담을 보존하기 위해 한옥보존지구가 지정되었으나 주민들의 사유재산 권행사에 대한 민원제기로 ‘91년에 해제되었으며, 전주시의 경우도 한옥보존 지구가 ’95년에 해제되었다. 또한 전통건조물의 보전을 위해 전통건조물보존 지구를 제정할 수 있는 전통건조물보존법도 ‘99년 7월에 폐지된 실정이다. 역사문화 환경보전의 현재적 창출을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이 반영된 제도 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역사문화 환경보전법과 같은 법규의 제정, 역사문화 환경지역, 지구의 지정을 고려하여야 한다. 우리 나라에는 역사문화환경보전 - 30 -
  • 38. 관련법규는 도시계획법, 건축법, 문화재보호법, 자연공원법, 국토종합개발법, 국토이용관리법, 토지이용관리법, 관광진흥법이 있지만 이들 법령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상충부분을 조정할 수 있는 법령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정역할을 하 는 상위기구도 없다. 각 심의기구는 각기 따로 활동하고 있을 뿐 전체를 통합 하는 차원의 기능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역사문화 환경의 보전차원에서 관계 법이나 공공기관의 역할이 문화재를 보존, 보호, 관리 및 보전을 총괄하는 기 구 설치를 검토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면적 혹은 환경적 보존은 다른 선진국 에 비해 아주 늦은 편이다. (2) 우리나라의 역사문화권 정비사업 우리나라 역사문화권의 대표적 정비사업으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수립을 들 수 있으며 이는 반만년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관광산업의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신라의 고도인 경주문화권 개발 및 정비를 지난 197 2~81년에 걸쳐 사적지구정비사업, 보문지구관광개발, 관광도시기반 및 환경 정비사업을 주사업내용으로 추진하여 완료한 바 있다. 그후 역사문화환경의 보다 체계적인 정비를 위해 경주지역 문화유적보존개발계획(1987)을 수립하 여 추진하였으며, 1997년에 경주장기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여 고속철도 유치 를 포함한 도시기반시설의 정비와 유적 및 관광자원을 특수지역으로 지정하여 개발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본 계획의 주요내용은 시가지내 역사문화재에 대 한 지표조사, 부지매입, 불량주거지 철거로 역사문화환경의 보전과 복원을 제 시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고도보존법의 제정을 제안하고 있다.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주도하였던 백제의 도읍지 부여를 중심으로 백제문화권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백제의 찬란한 문화 를 재조명하고 민족 전통문화 계승과 미래 지향적인 문화자원 개발의 터를 마 련하기 위해 백제문화 종합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90년 12월, 국토 - 31 -
  • 39. 건설종합계획법상의 「특정지역」으로 지정하여 타당성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에 착수하여 ‘93년 6월에 「특정지역」으로 지정․공고하였다. 이 계획을 본격 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실천계획으로 「백제문화권 종합개발계획」을 1년 6개 월에 걸친 중앙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94년 12월에 최종 확정되었다. 백제문화권 종합개발사업(1994~2001년)은 공공과 민간자본이 함께 투자 되고 있으며 가장 핵심적인 사업은 백제역사재현단지조성으로 백제역사촌 재 현과 연구교육촌 조성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일원 120 만평 규모에 역사재현촌 30만평, 연구교육촌 20만평, 기타 녹지 및 휴게공간 이 구성될 계획이다. 백제역사재현단지 조성시설 내용은 <표 2>와 같다. <표 2> 백제역사재현단지 시설 계획 구 분 시 설 공 간 기 능 개 국 촌 백제개국촌의 생활상 재현 왕 궁 촌 백제왕도 입지와 모습 재현 전 통 민 속 촌 백제마을 및 주변환경 재현 군 사 통 신 촌 백제군사시설 재현 장 제 묘 지 촌 백제전통장제 및 묘제 재현 산 업 교 육 촌 전통산업 발달과정 재현 백제역사촌 풍 속 교 육 촌 전통풍습, 민속놀이 등 행사 개최 백 제 의 숲 백제조형물 전시 및 휴식공간시설 전통운동시설지 전통운동 체험공간 백 제 역 사 백제역사와 문화의 종합전시 민 속 박 물 관 교 육 시 설 문화관련 전문인력 양성 및 관광 종사인 력 훈련 연 구 시 설 백제공예 연구활동 및 백제문화유적 연구 연구교육촌 활동 예 술 인 마 을 예술인의 창작활동 공간제공 주거 편익 시설 시설이용자의 편의제공을 위한 휴게, 주 거, 정보센터, 국제회의장 시설 - 32 -
  • 40. 자료: 열린충남(1996), 제2권 제4호(통권6호) p99에서 인용 - 33 -
  • 41. 백제역사촌은 백제문화 유산을 철저한 역사고증을 통한 실물 재현으로 다 양한 문화적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개국촌, 왕국촌, 전통민속촌, 군사통신 촌, 장제묘지촌, 산업교역촌, 풍속종교촌 및 백제역사민속박물관 등의 시설을 계획하고 있다. 백제역사촌의 가장 핵심시설인 왕궁촌은 백제 사비시대 궁궐 터로 유력시되는 관북리 일대의 유적 발굴 상황과 지형을 고려하여 고증에 의 한 복원을 시도하여 당시 건물배치와 건축물 양식을 재현하는 내용이다. 전통 민속촌은 사비성의 5부 5방의 도성 방리제를 취하여 백제가옥, 사찰, 정원, 원 지로 구성된 백제마을을 배치하되 신분별 주택을 복원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전통문화공간과 분리하여 산업교역촌과 풍속종교촌을 조성하여 먹거리, 쉴거리, 볼거리를 실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역사재현의 한계성을 극복하 고 첨단기술을 도입하여 백제문화를 주제로 한 하이테크 멀티미디어 공연장 등 민자유치를 추진할 계획이다. 백제역사민속박물관은 백제역사 전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고 교육․조사연구․전시기능을 담당하며 연구교육촌은 전통문화계 승․발전을 위한 교육연구와 학술교류의 장으로 교육활동과 연구활동을 지원하 는 부대시설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문화예술인으로 하여금 창작활동에 집중 하도록 예술인마을을 조성하며 그외 주거시설, 스포츠센터, 국제회의장, 정보 기기센터 등을 계획하고 있다. 3. 외국의 역사문화환경 보전 (1) 유럽의 역사문화환경 보전 이태리와 프랑스의 역사도시는 건축법과 도시계획상의 상세계획으로 역사 도시를 관리하고 있으나 역사환경의 보존을 위하여 종래의 왕도 또는 고도의 성곽내에서는 지역전체를 역사적 유물지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심지로부터 반경 5~6㎞ 권내에서는 타지역과는 다른 토지이용 및 - 34 -
  • 42. 건축규제를 하고 있다. 프랑스는 1913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여 역사적 문화재를 중심으로 반 경 500m 범위내에 보호구역을 설정․보존하고 1930년에 경관보존법을 제정하 여 파리의 개선문, 상제리제거리, 콩코드 광장 및 기타공원을 연계하여 보호하 게 되었다. 1962년에는 역사적 가로보존법을 제정하여 보호지역을 지정하고 건축, 도시계획, 역사 등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보존위원회가 조사 연구를 통한 계획지침을 마련하여 역사문화 환경의 보호와 도시개발을 서로 조정․조 화시키고 있다. 베르사이유시 경우를 보면, 17세기 중엽에 지어진 모든 건물을 역사적 유 물로 등록하고 건축과 관련한 모든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으며 특히, 17세기 식의 건물을 신축․재건축할 경우는 중앙 및 지방정부의 지원을 조건 없이 받 을 수 있다. 그리고 중앙정부의 주거환경개선계획에 의하여 건물의 외부 또는 내부를 수리할 때 중앙정부 25%, 지방정부(Regional) 20%, 지역 (Department) 15%, 시 10%, 기금 30%로 나누어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건물의 보수, 개축 등과 관련한 재정적 지원은 보수, 개축 등에 필요한 건축자재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해 주는 것과, 당해 건물이 교육적 효과를 갖고 있을 경우 교육부에서도 지원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교육부의 재정지원 은 통상 전체 사업비의 25%를 차지하고 있다.(엄기철, 1995) 역사․문화적 가치가 큰 건물은 시정부에서 매입한 후 보수하여 다시 민간 에게 매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역사․문화적 가치가 큰 건물의 세입자의 생활편의도를 높이기 위해 내부의 극히 일부를 공사하는 경우, 그 공사비의 전액을 지원하여 주며 분할상환을 허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1962년에 제정 된 조세감면법에 의해 세제혜택도 받는데, 건물의 소유 또는 임대에 따라 수 혜 정도에 차이는 있으나 평균 50%의 감세를 받고 있으며, 부동산에 대한 상 속세에 대해서는 조세감면이 되지 않는다. 영국은 1967년 역사환경보존법을 제정하여 역사적 건조물은 물론 역사적 - 35 -
  • 43. 가로와 수목의 보존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지구보존을 위하여 주민이 거주하 여야 하며, 건물의 외관을 철저히 보존하고 건물의 내부와 후측은 필요에 따 라 환경을 침해하지 않는 한 새로운 기능에 맞게 적극적으로 적응시키도록 하 고 있다. 역사환경 보전은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민‧관 협력의 성격을 갖는 조직을 만들어 보존계획과 실무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며 역사환경과 자연을 보호할 목적으로 National Trust for Places of Historic Interest of National Beauty가 결성되어 역사적 건축물 및 해안선과 정원 등 을 사들여 보존하고 있다. (2) 일본의 역사문화환경 보전 일본의 역사문화환경 보전에 대한 적극적 관심은 1960년 후반부터 마을 가로보전운동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는 사람도 변하고 건축물, 경관, 주변의 환경도 변하므로 역사환경을 보존하고, 활용하면 서 마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마을가로 보존이 지향하는 바이다. 마을가로의 보존은 전통적인 건조물뿐만 아니라 보존지구의 환경과 보존지구내의 유형․무 형의 생활문화재가 동시에 보존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마을가로 보존의 도 화선이 된 것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였으며 1975년에 문화재보호법 이 개정되고 마을가로가 전통적 건조물보존지구로 규정되어 문화재의 한 장르 로 탄생했다. 전통적인 건조물군을 보존․활용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중점 을 두고 전통적인 기술도 전승하고 있다. 시․정․촌은 마을가로보존에 관한 조례를 정하고 도시계획구역에서는 보존 지구를 결정하여 주민과의 협의를 거친다. 마을가로 보존의 주체는 주민이며 국가는 시․정․촌의 신청에 의해 가치가 높은 마을가로를 중요전통건조물 보존 지구로 선정하고 시․정․촌의 보존사업에 재정지원과 기술적 지도를 한다. 역사 적 풍토의 유지․보존 및 시설의 정비에 필요한 비용에 대해서는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방공공단체에 대하여 그 일부를 보조하도록 하고 있으며, 도시계획 - 36 -
  • 44. 에 의하여 건축물의 신축․개축․증축 등이 제한될 경우 허가를 받지 못하는 손 실에 대해서 적정한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중요한 문화재가 발굴되었을 때는 지정 과 함께 중앙정부인 문화청이 전체의 80%를 지원하고, 도현에서 10%를, 기 타 10%는 자기부담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국고보조형태는 보존정비보조금, 보존시설정비보조금, 사적매입보조금 등으로 구분하여 지원하고 있다. 토지매 입에 필요한 금액의 70%를 고도보존법에 의하여 중앙정부가 보조하여 주고 있으며, 중요도가 낮은 문화재는 시 또는 현청에서 100%를 보조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나, 회사 또는 일정한 단체에서 단지개발형식으로 개발하는 경 우에는 중앙 및 지방정부의 보조가 전혀 없으며, 당해기업 및 단체가 100%를 부담하여야 한다. 한편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곳(예 : 절․신사)의 건물과 재산세는 일반적으 로 면세되고 있으나, 교토시의 경우 토지재산세를 과세하고 있다. 구시가지의 전통한옥에 대해서는 토지세의 약 50%가 감면되며, 전통가옥을 신축할 때 가 시권내 기둥, 지붕, 격자, 벽 등의 공사비 중 50%를 보조해 주며, 개축할 때 는 70%를 보조하고 있다. 특히 1946년 이전 건물은 80%까지 보조하여 주고 있으며, 보조범위는 건물을 옆에서 보았을 때 가시권에 속한 건축부문으로서, 대체로 건축물 전체의 1/2에 해당한다. 또한 쿄토시의 경우, 지역의 성격에 따라 풍치지구, 공작물규제구역, 거대 공작물규제구역, 근교녹지보존구역, 역사경관지구, 근교녹지보존구역, 미관지 구 등으로 지정하는 한편 역사환경을 총체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고도보존법 에 의한 역사적 풍토특별보존구역과 도시계획상 역사적 풍토특별보존지구 등 이원적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내에서의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등은 문화재보존지구로 다시 지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시가지경관조례를 제정하여 지역특성에 적합한 도시경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도시전체와 지역 및 지구를 역사환경의 보존이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체계화하고 있다. - 37 -
  • 45. Ⅳ. 가야문화권 정비 1. 가야문화권 특색과 정비의 주안점 가야는 신라․백제와 함께 한반도의 남한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음에도 불구하고 가야문화권에 대한 관심은 매우 미흡한 편이다. 이는 신라․백제에 비 해 가야는 일찍 멸망한 까닭에 유적들이 대부분 훼손되어 지상에 남아있는 유 적이 거의 없으며 기록된 자료가 워낙 적다는 것에도 일부 기인하고 있다. 가 야문화조사의 공통점은 사료에 의한 문헌연구보다 유적․유물을 통한 고고학적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남아 있는 문화재는 상대적으로 빈 약하고 그나마 관련 유적이 경남․북 여러 지역에 흩어져 대부분 매장문화재로 남아 있는 형편이다. 매장문화재는 현재로서는 도저히 그 전모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유적형성 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땅속에 보존되어 온 과거의 문화유산이며 개발사 업에서 파괴와 훼손에 특히 취약하다. 땅위에는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심코 행하는 단 한번의 삽질에도 그 원형이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 그 대 부분은 역사기록이 없는 아주 오래 전 시기의 것으로 문화기록을 보충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표조사를 한 사적지는 유적보다는 유물에 대한 조사와 연구에 많은 관심을 쏟아 상대적으로 유적의 구조와 규모, 원래의 형태, 복원방법 등 에 대해서는 소홀히 다루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매장문화재지점 에 대한 매장문화재지도를 참조하여 건설계획시 반드시 지점을 고려하여야 한 다. 또한 조사된 유적의 종류가 고분 관련 유적으로 매우 편중되어 가야문화 에 대한 고분연구를 심화시키는 데에는 기여를 하였지만 산성, 사찰, 주거지 - 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