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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발전연구원 출판시도서목록(CIP)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 한상우·박원철·이강국 공저.--.
 --창원: 경남발전연구원, 2007
148p. ; 29.8㎝. --


 1.경남의주요역사 2.테마별관련유적 3.역사유적테마관광
 ISBN 978-89-8351-129-4-93320 : 비매품



 326.39-KDC
 338.4791-DDC
차 례

제1장 서론 ································································································ 1
제1절 연구목적 ············································································································· 1
제2절 연구범위 및 방법 ····························································································· 2


제2장 경남의 주요 역사 개관 및 테마 발굴 ···································· 5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 11
제1절 경남의 역사적 뿌리 가야의 흔적 ······························································· 11
   1. 테마 개관 ············································································································ 11
   2. 유적 현황표 ········································································································ 14
   3. 주요 유적위치 ···································································································· 18
   4. 주요 유적소개 ···································································································· 19
제2절 민관의 항쟁 임진왜란 유적 ········································································· 39
   1. 테마 개관 ············································································································ 39
   2. 유적 현황표 ········································································································ 42
   3. 주요 유적위치 ···································································································· 45
   4. 주요 유적소개 ···································································································· 46
제3절 조선의 선비정신의 상징 : 서원(書院), 정(亭) ·········································· 63
   1. 테마개관 ·············································································································· 63
   2. 유적 현황표 ········································································································ 65
   3. 주요 유적위치 ···································································································· 68
   4. 주요 유적소개 ···································································································· 69
제4절 경상우도 영남학파의 거두 남명의 자취 ··················································· 86
   1. 테마개관 ·············································································································· 86
   2. 유적 현황표 ········································································································ 88
   3. 주요 유적위치 ···································································································· 89
   4. 주요 유적소개 ···································································································· 90



                                                              - i -
제5절 자연친화적 생명력, 시대정신, 조화의 상징 : 전통가옥 ························ 95
   1. 테마 개관 ············································································································ 95
   2. 유적 현황표 ········································································································ 97
   3. 주요 유적위치 ·································································································· 100
   4. 주요 유적소개 ·································································································· 101
제6절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민주의 소박한 극복의지 : 벅수와 장승 ········ 115
   1. 테마개관 ·········································································································· 115
   2. 유적 현황표 ······································································································ 118
   3. 주요 유적위치 ·································································································· 119
   4. 주요 유적소개 ·································································································· 120


제4장 결론 및 제언 ··········································································· 127


참고문헌 ····················································································································· 129




                                                               - ii -
표차례

<표 3-1> 금관가야권 문화유적 현황 ····································································· 14
<표 3-2> 아라가야권 문화유적 현황 ····································································· 15
<표 3-3> 소가야권 문화유적 현황 ········································································· 16
<표 3-4> 대가야권 문화유적 현황 ········································································· 17
<표 3-5> 임진왜란 관련 문화유적 현황 ····························································· 42
<표 3-6> 경남지역 남해안 왜성 현황 ··································································· 62
<표 3-7> 서원(書院), 정(亭) 관련 문화유적 현황 ··············································· 65
<표 3-8> 남명 선생 관련 문화유적 현황 ··························································· 88
<표 3-9> 전통가옥 문화유적 현황 ······································································· 97
<표 3-10> 벅수와 장승 관련 문화유적 현황 ··················································· 118




                                                - iii -
그림차례

<그림 3-1> 가야권 문화유적 분포현황 ································································· 18
<그림 3-2> 임진왜란 문화유적 분포현황 ····························································· 45
<그림 3-3> 서원․정 문화유적 분포현황 ····························································· 68
<그림 3-4> 남명조식 문화유적 분포현황 ····························································· 89
<그림 3-5> 전통가옥 문화유적 분포현황 ··························································· 100
<그림 3-6> 벅수와 장승 문화유적 분포현황 ····················································· 119




                                             - iv -
1   서론
제1장 서론




                  제1장 서론

제1절 연구목적

 경남지역 전역에는 우리 조상들의 혼과 정신이 녹아있는 삶의 물질적 흔적인 다양하고
많은 역사문화자원들이 산재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문화자원들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경
남 지역의 정체성 확립과 지역문화의 다양성 확보라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
며, 또한 문화관광 및 역사교육 등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활용가치를 가지고 있다. 경남지
역 전역에 산재하고 있는 이러한 소중한 역사문화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자라나는 청소년
과 일반인들에게 역사체험의 산 교육장을 제공하고, 문화의 세기인 21세기에 부응하는 문
화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적극 활용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최근 주 5일제 근무 등에 따른 여가시간의 증가와 소득증대에 따라 관광의 형태
도 단순히 보는 관광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지역의 문화나 역사, 생태를 직접 체험하고 느
끼면서 개인의 삶과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러한
관광 트렌드에 부합하기 위하여 새롭고 다양한 관광자원의 개발 노력 특히, 지역의 역사
문화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관광자원화 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에 현재 경남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바탕으로 한 테마관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이 개발․운영되고 있으며, 계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테마관광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이 이미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일부의 역사문화유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남지방의 역
사와 문화의 이해에 필수불가결한 역사문화자원들에 관하여 추가적인 관심과 자원화 노
력이 더욱 필요한 실정이다.
 본 자료집은 경남지역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파생된 많은 역사문화자원을 올바르게 이
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화관광과 역사교육 및 체험을 위한 소중한 자원으로 적극 활용
하기 위하여, 경남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역사문화자
원을 역사 및 문화 관련 테마별로 정리 소개하여 문화관광과 역사체험 교육을 위한 테마
관광 자원화의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그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것을 그 목적
으로 한다.




                      - 1 -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제2절 연구범위 및 방법

 본 연구의 수행을 위한 공간적인 범위는 경남전역의 20개 시군을 그 대상으로 하였으
며, 시간적인 범위는 경남의 오랜 역사적 기간, 즉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전시기를
포함하는 통시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하였다. 아울러 다양한 경남지방의 문화역사자원의 체
계적인 소개 및 정리를 위하여 경남의 오랜 역사 속에서 도출 가능한 다양한 테마 중 몇
가지 테마를 선별하여 그에 맞는 문화유적을 정리 소개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연구의 체
계성을 갖추고자 하였다.
 본 연구를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경남지역의 문화역사자원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와 심층 연구가 실질적으로 요구되지만, 문화역사자원의 수적 방대함, 대상지역의 광
범위, 그리고 시간의 절대적인 제약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에 의하여 기존의 문헌자
료를 선별하여 이를 발췌 인용하였으며, 일부 유적들에 대해서는 보충적으로 현지 조사를
실시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또한 현재 특정 테마별 관련 유적의 수적 방대함에 의하여
국가 및 도지정문화재를 중심으로 유적을 일부 선별하고 정리하여 연구를 진행한 점은
본 연구의 한계임을 먼저 밝힌다.




                          - 2 -
2   경남의 주요 역사
    개관 및 테마 발굴
제2장 경남의 주요 역사 개관 및 테마 발굴




 제2장 경남의 주요 역사 개관 및 테마 발굴

 원래 경상도라는 명칭은 지금의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합하여 부르는 이름으로, ������경상������이
라는 지명은 고려 때 이 지역의 대표적 고을인 경주와 상주의 각 머리글자를 합쳐 만들었다.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는 조선시대에 경상도 지방을 동서로 나누었을 때 생겨난 행정구역 이름으
로, 1407년 (태종 7년) 9월 군사행정상의 편의를 위하여 경상도를 좌도와 우도로 나누어 낙동강
동쪽을 경상좌도, 서쪽을 경상우도라고 칭하게 되었다. 경상남도가 현재와 같은 행정구역 이름으
로 확정된 것은 조선시대 말기로, 1896년(고종 33년) 8월 4일 칙령 제 36호로 지방제도 관제
등을 개정하여 종전 23부를 13부로 고칠 때 경상도를 남북 2개 도로 나누면서부터 비롯되었다.
 경남의 역사는 최근 여러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따라 경남의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의
문화상들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멀리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예로서, 창녕 비봉
리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의식주를 보여주는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고, 특히 국내 최초
로 통나무배가 발견되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밖에 진주 대평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밭 유적과 주거지 등이 발견되었고 마산진동과 김해 율하 택지개발사업 예
정지구 등에서도 많은 청동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드러나, 경남이 신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부터 이미 우수한 문화적 세력이 번성했던 지역임이 명확해지고 있다.
 경남의 고대문화는 이 지역에서 번성했던 가야문화에 의하여 더욱 뚜렷해진다. 과거 고
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과 함께 대략 3세기에서 6세기 후반까지 강력한 문화와 지배력을
누려왔던 가야제국의 많은 유적들이 경남전역에 산재하고 있다. 가야제국의 시대변천과
그 영역범위는 가야사 연구자들마다 다양하게 주장되어 명확한 정의의 어려움이 존재하
나 현재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분류에 따르면 가야권역을 금관가야권, 아라가야
권, 소가야권, 그리고 대가야권 으로 나눌 수 있다.
 경남의 역사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가야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백제나 신라 혹은 왜
의 역사 중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정도였기 때문에, 가야사는 항상 주변국의 관심과 입장
에 의해 왜곡되어 왔기 때문에 한국고대사 연구에서 가야사의 위상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 가야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와 연구 성과가 급증
하고 역사학계에서도 가야의 자체적인 역사를 집중적으로 논의해 온 결과, 삼국시대의 역
사에서 가야의 역할이나 비중이 상당했던 것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특히, 고대 가야
의 문화는 주변국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것이 최근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삼국과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경남은 유학, 특히 남명유학의 근거지로 조선
유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이래 퇴계 이황과 남명조식이 영남지역 사림세력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유학



                          - 5 -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의 거두인 두 인물은 당시의 향촌사회를 성리학적 체계로 재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이후 영남학파를 퇴계학파와 남명학파라고 하는 두 줄기의 커다란 학통으로
구성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특히 경의에 바탕을 둔 남명의 실천철학은 경상우도 사림들
에게 정신적인 구심처의 역할을 하였다. 일두 정여창을 배향하는 남계서원과 남명 조식을
배향하는 덕천서원은 경상우도의 공론을 수렴하고 창출하는 중심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
였다. 경의에 바탕을 둔 남명의 실천적인 유학사상은 특히 임진왜란 시 곽재우, 정인홍
등으로 대변되는 경남우도의 의병활동의 정신적인 뿌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경남은 임진왜란 전란의 최 일선에 있었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1592년 4월 13
일 임진왜란의 발발과 전개, 그리고 최후의 승전에 이르는 임진왜란 전 기간에 걸쳐 일본
군의 섬멸과 호국의 일선을 담당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인적․ 물적 피해와 고통을 당하
였다. 이순신, 김시민, 권율을 비롯한 많은 임진왜란 영웅들의 승전의 장이자 또한 곽재우
와 정인홍으로 대변되는 일반백성들의 의병활동을 통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민․관․
군 모두의 호국의지가 살아 빛나는 호국의 지역이 경남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옥포해
전에서부터 시작된 이순신의 연전연승의 해전과 진주대첩으로 대변되는 육상전투의 승전
지이며, 최초의 의병봉기 및 승전 등 의병의 눈부신 구국활동의 중심 지역으로, 경남지역
에서의 민․관․군 일체의 눈부신 활약은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통로를 완전히 봉쇄하여
임진왜란 최후의 승리를 이끌어 내는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경남의 임진왜란시의
역할과 항쟁의 자취는 오늘날에도 남아 있어 역사교훈의 장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오면서 경남지역 곳곳에 일반 민중과 지배층들의 일
상의 삶과 정신문화의 흔적이 남게 되었다. 경남지역의 지리적, 환경적, 인문적 영향과 다
양한 기후적 조건을 반영한 전통가옥과 양반지배층과 선비들의 정신문화와 안빈낙도의
삶이 반영되어 있는 서원, 정자 등이 경남 전역에 남아 있어 조선시대의 성리학 지배사상
과 양반․선비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지배층의 양반․선비문화와 잘 대
별되는 일반 백성들의 삶과 신앙의 소박한 표현들인 많은 민속자료들, 그 중에서도 많은
장승과 벅수들은 경남의 민속신앙의 하나의 구체적인 상징으로 잘 남아 있어 지난 시절
민중들의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소박한 삶의 의지를 일부 엿보게 한다.
 이러한 개략적인 경남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역민의 삶의 흔적을 바탕으로 다양한
경남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문화관광의 테마발굴이 가능하나, 이 연구에서는 그
중 몇 가지를 도출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자 한다.


○ 경남의 뿌리 가야문화의 흔적
○ 민관의 항쟁 임진왜란 유적
○ 조선의 선비정신의 상징: 서원(書院)과 정(亭)




                          - 6 -
제2장 경남의 주요 역사 개관 및 테마 발굴



○ 경상우도 영남학파의 거두 남명의 자취
○ 자연친화적 생명력, 시대정신, 조화의 상징: 전통가옥
○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민중의 소박한 극복의지: 벅수와 장승




                       - 7 -
3   테마별 관련 유적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제1절 경남의 역사적 뿌리 가야의 흔적

1. 테마 개관

 가야는 일반적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에 존속했던 소국
(小國), 혹은 소국연합체(小國聯合體)로 서기 300년 무렵 변한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된 여
러 집단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가야의 역사에 대해 상세히 기록된 문헌을 찾기 어렵고 명
칭도 가야(加耶), 가야(伽耶), 가야(伽倻), 가라(加羅), 구사(狗邪), 가락(駕洛) 등으로 일관되
지 않아서, 가야가 지칭하는 실체와 존재했던 시기에 대해서는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최근의 연구 성과를 종합해 보면, 가야의 원류가 되는 집단은 기원전 1세기 무렵 낙동
강 유역에서 태동하였으며 기원후 2세기 무렵에는 12개의 소국으로 발전하였다. 3-4세기
에는 김해 가락국 중심의 전기 가야연맹이 번성하였으며, 5-6세기에는 고령의 대가야국
중심의 후기 가야연맹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고 있다.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는
532년 신라에 투항하였고, 고령을 위주로 한 대가야도 562년 낙동강을 장악한 신라에 의
해 멸망되었다.
 원래 신라와 가야지역은 고구려나 백제보다 광역의 정치체로의 통합이 시기적으로 늦
게 달성되었다. 특히 가야 사회는 매우 늦은 시기에 이르기까지 소국단위로 성장해 왔으
며, 고구려나 백제와는 달리 연맹체를 구성했다고 주장되어 온 점에서 독특한 사회적 성
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가야의 사회적 특성은 가야지역의 독특한 환경적 여건
과 한반도 동남부라는 지리적 위치와 관련시켜 이해할 수 있다.
 가야의 본거지인 소백산맥 동쪽과 낙동강 서쪽지역 일대는 첫째, 지형적으로 산줄기로
둘러싸여 폐쇄되거나 반 폐쇄된 분지로 구성되어 있고, 둘째 각 분지마다 자원분포가 불
균등하며, 셋째 각 분지는 일정한 방향으로만 교통로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폐쇄된 분
지라는 지형적으로 한정된 영역 안에서 정치체가 성장하게 되므로 늦은 시기까지 소국의
규모로 남아 있게 될 여지가 많은 것이다. 또한 각 분지마다 한정된 자원을 소유할 수밖
에 없으므로 각 분지의 정치체제는 제한된 교통로를 이용하여 교역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교역망은 경제적인 교환망으로서만 기능하지 않고, 소국들 사이의 사회적․정치적
관계망으로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다.



                          - 11 -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또한 가야소국들은 한반도 동남부 해안을 포함하여 낙동강, 남강, 섬진강 수계를 끼고
분산되었기 때문에, 해안과 내륙, 나아가 한군현이나 중국 본토와 일본 각지로 통하는 교
통망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삼한시기 및 4세기경의 김해 금관가
야와 5-6세기경의 고성․사천지역 소가야는 국제적인 해상 교역망과 영호남의 내륙을 연
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추측된다. 그러한 이유로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양동리 고분군 등 덧널무덤(木槨墓) 단계의 대형묘에서는 다량의 낙랑계 및 왜계 유물이
출토되며, 5-6세기 고성지역 고분문화에서 신라계 문화와 왜계 문화요소가 혼합되는 양상
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여건은 가야문화 자체가 국제성을 띠게 되고 또
한 주변국들에게 문화적인 영향을 끼치는 배경이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가야의 문화적 특성은 두 가지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전체 가야사회의 문화적 특
성이 어떠한지를 파악하는 것이 한 가지 이해의 방향이라면, 다른 하나의 관점은 개별 가
야소국의 문화는 어떠한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가야문화의 원형은 선사시대부터 파악되어
야 하겠지만, 우선은 가야소국의 직접적인 선구라 할 수 있는 변한 소국의 문화부터 논의
될 수 있다. 그러나 삼한시기에 있어서 변한의 문화를 신라의 모태가 되었다고 여겨지는
진한의 문화와 별개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의 기록대로 진한과 변한이 제사를 지내는 것 이외에는 서로 섞여 살면서 언어나 습속까
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면, 고고학적인 자료상으로도 두 사회의 차이점을 지적하기
란 쉽지 않을 것이다. 원삼국시대의 분묘분화와 토기문화상으로는 지역적인 차이를 어렵
지 않게 파악할 수 있는데, 그것이 진한과 변한 양 문화상의 차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
다. 가령 3 세기 대부터 경주의 사로국 일대에서는 덧널무덤 평면형이 아주 길어지는 특
징이 나타나는데 비해 김해나 함안지역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볼 수 없다든지, 무덤에 부
장하는 그릇의 종류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릇의 제작방법이 상이하다든지 하는 예를
들 수 있지만, 그것을 진한과 변한 문화상의 차이에 대입하기는 어렵다.
 5세기 이후부터 영남지방에서는 낙동강을 경계로 신라와 가야의 문화가 뚜렷이 대비된
다. 특히, 고고학적으로 많이 조사된 고분문화를 보면 신라와 가야의 문화적 특성이 분명
하게 구별됨을 알 수 있다. 신라의 중심지에서는 돌무지 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 주된 묘
제이지만 돌덧널무덤(石槨墓)도 경주를 비롯한 낙동강 동안 일대에 널리 퍼져 있다. 가야
의 묘제도 돌덧널무덤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신라와 가야는 덧널의 형태와 그
배치방법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가야문화의 전반적인 특성은 토기의 조형성이나 고분 부장 철기의 종류와 형태, 마구류
의 형식, 관모의 양식, 갑옷의 종류 등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가야소국들이 전반적으로
유사한 문화를 지니게 된 것은 단순히 지리적인 근접성 때문만은 아니고, 끊임없는 정치
적․경제적 상호작용이 문화적 동질성을 나타나게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 12 -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개별 가야국의 문화적 특성 역시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충분히 지적될 수 있다. 가야는
각각의 소국에 따라 중심고분군의 입지가 다르고 덧널의 배치방법, 순장법 등에 차이가
있다. 물론 토기양식에 있어서도 4세기 금관가야식 토기가 있는가 하면, 5-6세기 대가야
식토기, 아라가야식토기, 소가야식토기 양식이 뚜렷이 구분되며, 거시적으로 보아 교역 및
해상활동을 많이 한 해안의 문화와 내륙의 문화는 서로 대비되는 점이 많다. 가야라고 하
면 흔히 풍부한 철 생산을 연상하게 되지만 사실 철 생산이 풍부했던 소국과 그렇지 못
했던 소국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가야문화는 전체적 관점에서 공통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는 한편 개별 소국마다 문화적 개성이 분명했다고 할 수 있다.
 본 테마에서는 경남전역에 산재하는 가야의 문화흔적을 대가야권, 아라가야권, 소가야
권, 그리고 대가야권 유적으로 분류하여 소개하여 개별 가야권 유적의 테마관광 또는 각
가야권을 연결하여 가야 문화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테마관광 프로그램의 개발을 위한
기본적인 자료를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권주현. 1998. 가야문화사 연구, 계명대학교박사학위논문
김태식. 1993. 가야연맹사, 일조각
문화재연구소. 2002. 고고학사전
박천수 외 3인. 2003. 가야의 역사와 유적, 학연문화사
주보돈 외. 1995. 가야사연구, 경상북도
한국고대사연구회. 1998. 가야문화도록, 경상북도




                           - 13 -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2. 유적 현황표

<표 3-1> 금관가야권 문화유적 현황1)

         유 적 명                 소 재 지                    비 고

   봉황대유적과 패총            김해시 봉황동               사적 제2호 (63.1.21)

   구지봉                  김해시 구산동               사적 제429호 (01.3.7)

   대성동고분군               김해시 대성동               사적 제341호 (91.1.8)

   예안리고분군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사적 제261호 (78.6.23)

   두곡고분군                김해시 삼계동                           -

   화정고분군                김해시 삼계동                           -

   구산동고분군               김해시 구산동               사적 제75호 (63.1.21)

   분산성                  김해시 어방동               사적 제66호 (63.1.21)

   부원동유적                김해시 부원동                           -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          김해시 서상동, 구산동          사적 제73.74호 (63.1.21)

   칠산동고분군               김해시 명법동               기념물 제98호 (99.12.23)

   양동리고분군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사적 제454호 (04.7.23)

   양동산성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기념물 제91호 (88.12.23)

   유하리고분군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                       -

   유하리패총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           기념물 제45호 (79.5.7)

   마현산성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기념물 제150호 (96.3.11)

   구산동백운대고분군            김해시 대성동               기념물 제223호 (99.8.3)

   파사석탑                 김해시 구산동               문화재자료 제227호 (96.8.3)

   내덕리고분군               김해시 장유면 관동리                       -

   능동고분군                김해시 장유면 능동리                       -

   대청유적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

   다호리유적                창원시 동면 다호리            사적 제327호 (88.09.03)

   진해 웅천패총              진해시 웅천동                           -

   용원유적                 진해시 용원동                           -



1) 박천수, 홍보식, 이주현, 류창환, 2003,『가야의 유적과 유물』,학연문화사; 경남개발연구원, 1999, 『가야문화권 정비방
   안』, 경남개발연구원 등의 참고문헌과 각 시군의 행정자료에서 지정문화재를 중심으로 발췌 참조



                                 - 14 -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표 3-2> 아라가야권 문화유적 현황2)

          유 적 명         소 재 지                        비 고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말산리고분군                           사적 제 84.85호 (62.1.21)
                  도항리, 말산리

   윤외리고분군         함안군 법수면 윤외리                         -

   황사리고분군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                         -

   오곡리고분군         함안군 칠원면 오곡리                         -

   명관리고분군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

   원북리 태실고분군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

   사도리고분군         함안군 군북면 사도리                         -

   남문외고분군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기념물 제226호 (00.8.31)

   묘사리토기요지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

   전안라왕궁지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함안
   성산산성                                 사적 제67호 (62.1.21)
                  면 괴산리
   봉산산성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
                                        문화재자료 제202호
   칠원산성           함안군 칠원면 유원리
                                        (93.12.27)
   대평리고분군         마산시 진북면 대평리                         -

   현동고분군 및 패총     마산시 함포구 현동                          -

   천선동고분군         창원시 천선동                             -

   도계동고분군         창원시 도계동                             -

   가음정동고분군        창원시 가음정동              기념물 제126호 (93.12.27)

   반계동고분군         창원시 반계동                             -

   삼동동고분군         창원시 삼동동                             -

   중동리고분군         의령군 의령읍 중동리           기념물 제189호 (97.12.31)

   예둔리고분군         의령군 정곡면 예둔리                         -

   운곡리고분군         의령군 용덕면 운곡리           기념물 제222호 (99.8.3)

   호미산성           의령군 정곡면 죽전리           기념물 제101호 (90.12.30)

   죽전리고분군         의령군 정곡면 죽전리           기념물 제100호 (90.12.30)


2) 각주 1) 참고



                          - 15 -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표 3-3> 소가야권 문화유적 현황3)

         유 적 명                 소 재 지                    비 고
   중촌리고분군              산청군 신안면 중촌리                       -
   명동유적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                       -
   양전고분군               산청군 신등면 양전리                       -
   묵곡리고분군              산청군 산청읍 묵곡리                       -
   옥산리고분군              산청군 산청읍 옥산리                       -
   생초고분군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기념물 제7호 (74.2.16)
   관지고분군               산청군 생초면 월곡리                       -
   매곡고분군               산청군 차황면 매곡리                       -
   평촌고분군               산청군 생초면 평촌리                       -
   주상고분군               산청군 금서면 주상리                       -
   손곡리고분군              함양군 유림면 손곡리                       -
   수정봉․옥봉고분군           진주시 옥봉남동               기념물 제1호 (74.2.16)
   가좌동고분군              진주시 가좌동                           -
   우수리고분군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
   내촌리고분군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
   죽산유적                진주시 집현면 신당리                       -
   진동고분군               진주시 진성면 가진리                       -
   마성리고분군              진주시 사봉면 마성리                       -
   무촌리고분군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                    -
   원당고분군               진주시   일반성면 운천리                   -
   평촌리고분군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                   -
   송학동고분군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          사적 제119호 (63.1.21)
   율대리고분군              고성군 고성읍 율대리                       -
   내산리고분군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            사적 제120호 (63.1.21)
   양촌리고분군              고성군 동해면 양촌리                       -
   연당리고분군              고성군 영오면 연당리                       -
   영대리고분군              고성군 영오면 영대리                       -
   예수리고분군              사천시 정동면 예수리                       -
   송지리고분군              사천시 용현면 송지리                       -
   고이리고분군              하동군 진교면 고이리                       -
   우복리고분군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
   삼가고분군               합천군 삼가면 양전리            기념물 제8호 (74.2.16)
   천곡리고분군              의령군 대의면 천곡리                       -




3) 박천수, 홍보식, 이주현, 류창환, 2003,『가야의 유적과 유물』,학연문화사; 경남개발연구원, 1999, 『가야문화권 정비방
   안』, 경남개발연구원 등의 참고문헌과 각 시군의 행정자료에서 지정문화재를 중심으로 발췌 참조



                                 - 16 -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표 3-4> 대가야권 문화유적 현황4)

         유 적 명                 소 재 지                    비 고

   옥전고분군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사적 제326호 (88.7.28)

   영창리고분군               합천군 합천읍 영창리                       -

   대야산성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기념물 제133호 (93.12.27)

   창리고분군                합천군 대병면 창리                        -

   저포리고분군               합천군 봉산면 저포리                       -

   중반계고분군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                       -

   반계제고분군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                       -

   봉계리고분군               합천군 봉산면 봉계리                       -

   독산산성                 합천군 덕곡면 학리                        -

   월광리고분군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

   유곡리고분군               의령군 부림면 유곡리                       -

   경산리고분군               의령군 부림면 경산리                       -

   개봉동고분군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           기념물 제51호 (80.12.26)

   말흘리고분군               거창군 마리면 말흘리                       -

   무릉리고분군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

   석강리고분군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                       -

   백천리고분군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기념물 제171호 (97.12.31)

   사근산성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사적 제152호 (66.9.8)

   상백리고분군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                       -

   팔령산성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           기념물 제172호 (97.12.31)

   고소산성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사적 제151호 (66.9.6)

   남산리고분군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

   전도리산성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



4) 박천수, 홍보식, 이주현, 류창환, 2003,『가야의 유적과 유물』,학연문화사; 경남개발연구원, 1999, 『가야문화권 정비방
   안』, 경남개발연구원 등의 참고문헌과 각 시군의 행정자료에서 지정문화재를 중심으로 발췌 참조



                                 - 17 -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3. 주요 유적위치




                <그림 3-1> 가야권 문화유적 분포현황



                          - 18 -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4. 주요 유적소개5)



  1) 금관가야권 문화유적
봉황대 유적과 패총: 사적 제2호
김해봉황대 유적과 패총은 김해 회현리 조개무지 서쪽에 인접한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2∼1993년에 발굴 조사된 유적이다. 패총은 동쪽 경사면을 제외한 전 지역에
있는데, 기원전 2세기 초부터 6세기 전반까지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주거지는 중복되어 밀집을 이루고 있고 주거지를 둘러싸듯이 환호가 축조되어 있다. 이곳
에서는 다량의 적갈색 연질토기, 소량의 와질토기와 도질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숫돌․골
각기․목제빗․철기․동물뼈․철재․송풍관 등이 출토되었다.


구지봉: 사적 제429호
구지봉은 수로왕비릉 서쪽 얕은 구릉 선단부에 가락국 시조 수로왕이 하강하였다는 전설
을 지닌 거북이 머리를 내민 것 같은 지형에 위치한다. 일제 강점기에 진영으로 가는 도
로를 개설하면서 거북의 목 부분이 끊겼던 것을 근년에 흙에 덮은 돌다리로 연결하여 차
는 다리 밑으로 다니고 있다. 왼편 숲에는 지석묘가 있는데, 덮개돌에 구지봉석(龜旨峰石)
이라 새겨져 있다. 구지봉석은 지름 2.5미터 정도의 덮개돌과 5∼6개의 짧은 받침돌로 돌
기반식 지석묘로 청동기시대의 무덤이다. 이 고인돌의 피장자와 축조자들은 철기문화인
(鐵器文化人)인 수로집단이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토착의 청동기 문화인으로서 구간(九
干)들이 영도하였으며, 구지봉은 구간사회인들이 굿과 같은 제의(祭儀)를 벌였던 신성한
지역이었을 것이다. 수로왕이 구지봉에 내린다는 것은 이러한 토착사회의 신성성을 빌려
가락국의 건국사회를 재구성하였음을 의미한다.


대성동고분군: 사적 제341호
김해시 구지로(龜旨路)에서 김해공설운동장으로 뻗은 낮은 구릉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잦
은 도굴로 지금도 여러 종류의 토기편들이 산재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경성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1세기 전후부터 5세기까지 구지로의
낮은 곳에서 정상부를 향하여 지석묘. 옹관. 목관묘. 수혈식석관묘. 횡구식석관묘 등이 축
조되어 있다. 1∼3세기의 고분군은 낮은 곳에 위치하며, 구릉에는 4∼5세기의 고분군이


5) 이 유적소개에 설명된 글은   박천수, 홍보식, 이주현, 류창환, 2003,『가야의 유적과 유물』,학연문화사의 관련내용을
   발췌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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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밀집되어 있다. 토기류를 비롯하여 파형동기(巴形銅器). 통형동기(筒形銅器) 등의 청동기
와 벽옥제옥장(璧玉製玉丈) 등의 옥류와 구슬류가 출토되었고, 공구․무기․마구․갑주(甲
胄) 등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다량의 파형동기와 통형동기의 출토는 왜의 유물로 생각하
던 종래의 연구와는 반대로 가야가 원산지였을 가능성을 제시 하였다. 1993년 9월에 구지
로 개설공사에 따른 긴급발굴조사로 57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제12호 목관묘 에서는 이
마에 철제띠(鐵帶)를 두른 인골이 확인되었다. 철제띠는 관(冠)이나 고깔(弁)로 보여, 김해
의 변한인(弁韓人)이 이런 고깔을 썼던 풍습에서 '변한(弁韓)'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제기
되었다.


예안리고분군: 사적 제261호
예안리고분군은 해발 327m의 까치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평지 구릉에 위치하고 있
으며, 김해 예안리 조개무지와 도로를 사이에 둔 밭에 집중되어, 1947년경까지 다수의 석
관묘가 노출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경작지로 변해 있다. 고분군은 서북의 까치산과 동쪽
의 마산이 길게 연결된 아주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립박물관과 부산대학교
박물관이 모두 5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된 유구는 목관묘 59기, 석관묘 93기,
옹관 17기, 석실묘 12기 등 총181기이고,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1100여점, 철기류 660여
점, 구슬류 180여점, 귀고리 14쌍, 골촉 60여점 등 총 2,000여점에 달하고 있다. 고분군은
4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조영되었으며, 가야지역에서 확인되는 모든 묘제가 중복되어 있
어, 가야의 묘제가 목관묘에서 석관묘로, 석관묘에서 석실묘로 변해 갔던 과정이 확인되
었다. <삼국지> <위서> 변진조는 3세기경의 변한사회에 아이가 태어나면 돌로 머리를 눌
러 편두(編頭)를 만드는 풍습이 있었음을 전하고 있으며, 190여 구의 인골이 검출되어 고
대 한국인과 가야인에 관한 풍부한 형질인류학의 자료를 얻게 되었다. 이 중에서 앞이마
가 심하게 후퇴하여 두개골 성형이 행해진 것으로 보이는 10구의 편두는 실제로 가락국
에 이러한 풍습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준다.


구산동고분군: 사적 제75호
구산동 고분군은 김해시 동북쪽에 있는 분산성의 서남쪽에 걸쳐 산재해 있다. 일제 때 삼
산리고분(三山里古墳)이란 명칭으로 사적 제109호로 지정되었다가, 1963년에 구산동 고분
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75호로 변경 지정되었다. 이 구릉은 해발 78m〜82m의 비교적
원만한 구릉지인데, 발굴 전부터 사적으로 지정된 구릉 정상일대를 제외한 구릉의 사면은
이미 절토되어 있었으며, 봉토분에 횡혈식 주 석실을 비롯하여 3기의 부속석곽이 함께 조
성되었다. 주석실의 규모는 현실이 가로 2m, 세로 3.2m의 장방형을 이루고, 현실의 좌벽
에 연하여 길이 2.8m, 폭 0.84m-1.1m의 연도가 있다. 부속석곽으로는 주석실의 연도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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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에 연하여 동서방향으로 조성된 장벽 2.1m, 단벽 0.7m의 장방형의 분묘가 있다. 그리고
주 석실 동쪽에서 내호석 사이에 위치한 장벽 0.9m 단벽 0.55m의 장방형인 제1부곽과 주
석실의 남동쪽으로 치우쳐 내호석과 외호석 사이에서 남북방향으로 위치하는 소형의 수
혈식석곽으로 장벽 1.0m, 단벽 0.8m인 장방형상의 제2부곽이 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34건에 44점(철제 11점, 금동제 1점, 청동제 2점) 등 총 48건에 58점으로, 석실의 연대는
6세기후반에 해당한다.


분산성: 사적 제66호
김해시의 동북방에 우뚝 솟은 해발 330m의 분산(盆山)에 자리하여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를 한 눈에 바라보는 지점에 위치한다. 분산은 큰 수목들이 자랄 수 없는 바위산을
이루고 있으며, 성은 산정의 평탄한 지형을 돌아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부
분적으로 천연의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는데 특히 김해시에 면한 서남부는 높은 암
석들이 치솟아 매우 험준하다. 성내에 이르는 통로는 주로 산성 서쪽에 있는 계곡을 거쳐
북쪽 후면에서 들어가는 경사면에 축조되었으며, 수직에 가까운 석벽은 높이가 3-4m가량
되는데 무너진 부분이 많다. 산성 주위의 둘레는 900m이며, 면적은 50,721㎡이다. 동쪽
중앙부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는 높이 2.1m, 폭 1.12m의 출입구가 만들어져 있는데
내부 통로는 'ㄱ'자 모양으로 꺾어져 있고 성벽은 대부분 두께가 1m 내외의 외겹석축이
다. 이곳에 세워진 '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靖國君朴公葳築城事蹟碑)'에 의하면 이 산성
은 고려 말에 김해부사 박위(朴葳)가 왜구를 막기 위해서 옛 산성의 의거하여 수축한 후
임진왜란 때에 허물어졌던 것을 고종 8년(1871)에 부사 정현석(鄭顯奭)이 다시 현재의 성
벽으로 개축하였다고 한다. 이 분산성은 성기(城基)의 선정법이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소위 퇴뫼식을 따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처음 축성한 시기는 삼국시
대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로왕릉: 사적 제73호
김해시가지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가락국(駕洛國)의 시조 수로왕의 능으
로 전해져 왔다. 고려 문종대 까지는 능묘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였지만 조선 시대 초기에
는 능묘가 크게 황폐되었던 듯하다. 세종 21년(1439)에 당시 경상도관찰사인 이선(李宣)의
건의에 따라 능묘 30 보 주변을 보호하게 되었고 세종 28년(1446)에는 다시 수로왕릉과
허왕후릉에 대해 봉분을 중심으로 사방 100보에 표석을 세워 수호구역으로 확대하였다.
왕릉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선조 13년(1580) 영남관찰사 허수(許粹)가 상석, 석단,
능표 등의 석물을 시설하여 수축하면서 부터다. 임진왜란 때에는 도굴을 당하기도 하였
다. 인조 25년(1647)에 능비를 세우고 고종 2년(1884)에는 숭선전 (崇善殿)이란 호를 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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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침묘를 개축하였다. 이때 안향각(安香閣)과 신도비각(神道碑閣), 석수(石獸)도 설치하였다.
봉분은 원형 봉토분으로 규모는 길이 22m, 폭 21m, 높이 약 5m이며 봉분의 주변에는 특
별한 시설이 없다. 봉분 앞에는 능비, 상석, 장명등(長明燈), 망주(望柱)가 있고 숭선전을
비롯하여 가락루(駕洛樓), 홍전문(紅箭門), 숭화문(崇化門) 등의 여러 건물과 석조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삼국유사 (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보이는 수로왕의 장례
기사에는 ""드디어 대궐의 동북쪽 평지에 빈궁(능묘)을 지었다. 높이 일장이고 주위 삼백
보로 그곳에 장사를 지내고 수로왕묘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봉분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듯하다. 이 능의 내부구조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이 능이 실제로 가락국의 수로왕릉이라고 한다면 그 시기는 1세기부터 3세기 사이가 되
며 이 시기는 문화단계로 보아 본격적인 고총 고분(高塚古墳) 이전의 단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생각한다면 토광묘일 가능성도 있고
<<지봉유설(芝峰類說)>>에 보이는 왕릉의 도굴기사로 보면 규모가 큰 석실묘일 가능성도
있다. 규모는 면적 61,751㎡이다.


수로왕비릉: 사적 제74호
김해시가지 북쪽에 위치한 이 능은 가락국(駕洛國) 시조 수로왕의 비(妃)릉이라고 전하는
고분으로 구지봉(龜旨烽)의 동북쪽 국도 건너편 구산동고분군(龜山洞古墳群)으로부터 서
쪽으로 100m의 거리에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의하면 허후
(許后)는 옛 아유타국의 공주로 16세 때에 배를 타고 와서 수로왕 7년에 왕비가 되어 189
년 3월 1일에 수로왕보다 10년 앞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수로왕의 두 아들도
허씨의 성을 따르게 하여 지금도 그 후손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전한다. 능은 원형 봉토
분으로 봉분의 주위에는 아무런 시설이 되어 있지 않다. 그 규모는 길이 18m, 폭 6m, 높
이 약 5m이며 능 주위에는 얕은 돌담이 방형으로 둘러져 있다. 능의 전면에는 장대석으
로 축대를 쌓았으며 중앙에는 상석과 능비가 세워져 있고 ""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
씨지능(駕洛國首露王妃普州太后許氏之陵)""이라고 두 줄로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 비문은
<<조선금석총람 (朝鮮金石總攬)>>에 실려 있다. 능 구역의 입구에는 내삼문이 있으며 밖
에는 숭보재(崇報齋)와 외삼문, 홍전문이 있다. 세종 28년(1446)에 수로왕릉과 함께 보호
구역이 넓혀졌으며 <<김해읍지(金海邑誌)>>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에 도굴되었다고 기록
되어 있다. 그 후 인조 25년(1641)에 다시 수축하면서 현재의 능비와 상석 등을 설치하였
다고 한다. 1972년과 1981년에 건물과 능묘 주변을 보수하였다. 이 능은 왕릉에 비해서는
시설이 빈약한 편이고 수로왕비릉 이라고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 왔으므로 이것이 수로
왕릉과 비슷한 시기에 축조되었다고 한다면 그 내부구조는 토광묘(土壙墓) 또는 수혈식석
곽묘(竪穴式石槨墓)일 가능성이 높다. 묘역의 규모는 33,55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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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칠산동고분군: 기념물 제98호
김해시의 중심에서 서남쪽으로 직선거리 약 4㎞ 거리에 있는 동북에서 서남으로 길게 뻗
은 칠산(七山)의 명법 1구 마을 뒷쪽 해발 100m 전후의 산마루를 중심으로 145.546㎡의
범위에 널리 분포해 있다. 1987·1988년의 2년간 2회에 걸쳐 경성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조
사되어 모두 122기의 분묘가 확인되었다. 유구는 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와 수혈식석실분
(竪穴式石室墳)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토광목관묘(土壙木棺墓), 횡구식석실분(橫口
式石室墳), 옹관묘(甕棺墓) 등의 묘제도 혼재되어 있다. 이 유적에 있어 각 묘제의 특징을
살펴보면 토광목곽묘는 이른 시기에는 바닥이 얕고 묘광이 넓음에 비해 연대가 내려올수
록 바닥이 깊어지고 묘광의 폭은 좁아지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수혈식석실분
(竪穴式石室墳)은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가 지하식이고 길이에 비해 폭이 넓고 천정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등의 특징이 있다. 천정돌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돌로 된 천
정이 아닌 나무로 된 천정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수혈식석실분 가운데서도
돌로 된 천정을 만들었던 묘제보다도 시기적으로 약간 앞서는 것으로 보인다. 칠산동고분
군은 시기적으로 4세기부터 6세기 대까지의 가야묘제나 유물의 변천 등을 파악할 수 있
는 중요한 유적의 하나로 낙동강 하류 역에 있어서 가야묘제가 토광목관묘 이후 수혈식
석실분, 횡구식석 실분, 횡혈식석실분으로 변화, 발전되어 갔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양동리고분군: 사적 제454호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가곡마을 뒷산에 위치하며, 가야고분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모든
형식의 가야고분 수백여기가 확인되었다. 1969년 중국경과 청동기가 수습되면서 알려져,
1984년 문화재연구소와 국립진주박물관이 발굴조사 하였으며, 1990년부터 1995년까지 동
의대학교박물관이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시행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162호분은 대
형의 목관묘로 널은 판상철부(板狀鐵斧)로 네 모서리를 깐 위에 안치되었고, 널 안에는
중국경. 방제경 9면이 피장자의 상체부에 주장되었고, 목곽 바로 안쪽에는 철복 등이 출
토되었다. 235호분도 7.6미터나 되는 대형 목관묘로 162호분과 비슷한 유물과 시기를 보
이며, 318호분과 함께 매장 뒤에 불을 지른 특이한 장법이 확인되었다. 322호분에서는 '
西口宮鼎, 容一斗, 弁重十七斤七兩, 七'의 명문이 있는 청동제솥(靑銅鼎)이 출토되어, 기원
전 100년∼서기 100년 사이에 한(漢)에서 제작되고 3세기경에 부장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조사 성과로 가락국이 2세기 후반∼3세기경에 최고의 문화를 꽃피웠고 중국 또는
한군현(漢郡縣)이나 왜(倭)와의 활발한 교역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양동산성: 기념물 제91호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와 내삼리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332m의 산정에 위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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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고 있는 테뫼식의 돌로 쌓은 성이다. 성은 김해평야와 낙동강 하구를 조망할 수 있는 위
치에 있으며 주변의 양동리 고분, 유하리 조개더미와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석
축의 높이는 약 2.5m이며, 폭이 2.5m, 둘레가 약 800m이다. 남북의 두 성문에는 초석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우물자리가 있다. 성의 안팎에는 삼국시대 토기조각들이 많이 흩
어져 있다. 이 산성은 원래 문헌상에서는 가곡산성(歌谷山城)이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내
삼리와 양동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정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내삼산성(內三山城)이라고
도 불리며 지금은 위치한 동의 이름을 따서 양동산성 이라고 한다. <<문헌비고(文獻備
考)>> <여지고십오관방삼(與地考十五關防三)>에 의하면 ""가곡산성은 서쪽 20리에 있는
석축으로 둘레가 600척(尺)인데 지금은 폐하였다.""라고 한다. <<대동지지(大東地誌)>>에
는 우물 한 곳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하리패총: 기념물 제45호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 하손마을 외산의 남쪽 경사면 2곳에 있다. 유적의 일부는 전답으로
경작되면서 깎여 나갔으며, 굴 껍질을 주로 하는 패각이 노출되어 있다. 유하조개 더미에
서 채집되는 유물은 대합, 재첩, 굴, 소라 등의 패각과 적색, 갈색, 회색, 회흑색의 작은
토기편들이다. 유하리패총은 학술적인 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유적의 정확한 성격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유적의 잔재상태가 비교적 양호하여 이 지방의 선사문화 규명에 중요
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유적이다.


마현산성: 기념물 제150호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에 있는 해발 215m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 길이 약
600m, 높이 3m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김해도호부성지조에 마현성은 ‘과녀산성’이라
고도 부르며, 성 둘레는 1,300척, 우물 1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성을 쌓은 시기는
알 수 없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가락국 수로왕 때 쌓은 것이라고 하는데 확실하지 않
다. 성의 동쪽과 북쪽 일부는 천연 암벽으로 되어있고 서쪽 중앙부가 약간 안으로 밀려들
어와 전체가 누에고치 모양을 하고 있다. 현재 북쪽과 남쪽에 문터가 남아있다.


구산동백운대고분군: 도기념물 제223호
김해 구산동 백운대 고분은 1기의 봉토분좌편에 출입구가 있는 횡혈식의 주석실과 3기의
부속석곽이 함께 조성된 것으로 현실은 2차에 걸쳐 추가장이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고
분군은 이미 도굴되었지만 토기류, 철기류, 금동제품, 청동기류 등 58점의 유물이 출토되
어 6세기 후반 금관가야 멸망 후 이 지역묘제 및 유물편년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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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파사석탑: 문화재자료 제227호
파사 석탑은 수로왕비릉 내 파사각에 보관되어 있으며 1996년 3월 11일 경남도 문화재자
료 제 227호로 지정되어있다. 현재는 6개의 석재만 남아 있는데, 조각이 기이하고 석재
자체에 희미한 붉은 무늬가 있다. 신농본초에 닭 벼슬의 피를 찍어서 엉겨 붙는지를 시험
했다는 것이 바로 이 탑이어서 신비를 더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금관성 파사 석탑조에 "
허왕후가 서역 아유타국에서 양친의 명을 받들어 바닷길로 동쪽 가락국으로 향했으나, 파
신의 노여움을 받아 향해하지 못하고 돌아와 부왕께 아뢰니 부왕이 이 탑을 싣고 가게
하여 편안히 바다를 건너올 수 있었다"고 한다. 방형의 4면 5층탑이 있었으나, 세월에 본
모습을 잃고 있다. 이탑은 동상동 호계천가의 호계사 폐사지에 있었는데 고종 10년(1873)
에 김해부사 정현석이 허비능 앞으로 옮겼다. 조각이 기이하고 희미한 붉은 무늬가 있으
며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돌이라고 한다.


능동고분군
능동고분군은 김해시와 창원시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720m의 용지봉에서 급경사를 이루
는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옛 부터 삼문리 고분군(三文里古墳群)이라고 알려져 왔던
곳이다. 마을의 이름은 능동(陵洞)인데 가락국(駕洛國)때의 왕릉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며, 가락국의 제4대 거질미왕(居叱彌王) 또는 이시품왕(伊尸品王)의
능(陵)이 이곳에 있다고 하는데 어느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고분군은 현재 능동 새
마을 회관의 뒤편 산에 형성되어 있는데, 고분 군 위에 1-20년생의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
어서 있다. 이 지역도 옛날부터 도굴이 심했던 지역이며, 지금도 많은 도굴갱과 개석이
노출되어 있다.


다호리유적: 사적 제327호
다호리 유적은 동읍 다호리 마을 뒷전의 나지막한 구릉과 주남저수지로 이어지는 저습한
평지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88년부터 92년 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의 7차의 발굴조사 결과
삼한시대부터 가야시대에 이르기까지 집중적으로 조성된 집단묘역임이 밝혀졌다. 특히 기
원전 1세기경의 목관묘에서 철제 무기와 농기구류 각종 용기류에서 붓에 이르기까지 다
양한 종류의 칠기가 출토되었으며 성운경, 오수전등의 중국 한나라 계통의 유물로 출토되
어 삼한시대의 문화상을 밝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주목된다. 발굴조사에서 5세기말∼7세기
대의 삼국시대 토기가 출토되었다. 이중 B1호의 주구 내에서 출토된 가형토기는 고상식
의 맞배지붕으로 추정되는데, 처마, 서까래, 창틀 등이 표현된 희귀한 예이다. 대형봉토분
과 B27호 제사유구에서는 대가야계의 토기들도 출토되어 고령지역과의 교류상, 세력권
등을 파악하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이러한 토기류 외에 화살촉, 도자, 꺽쇠 등의 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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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류와 금제세환이식, 경식 등의 장신구류도 출토되었다.


용원유적
용원유적은 용원초등학교 맞은 편 독립 구릉의 상부 평탄면과 인접하는 경사면에 위치하
는 집락지이다.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는데 50기의 유구를 발굴하였다. 그 가운
데 주거지나 건물지로 추정되는 것이 21기 있었는데, 그 중 평면 원형에 가까운 것 16기,
방형의 것 5기, 주혈만 남긴 고상가옥(高床家屋)으로 추정되는 것이 4기 있다. 출토유물들
은 적갈색연질토기편(赤褐色軟質土器片)과 회청색연질토기편(灰靑色軟質土器片)·회청색경
질토기편(灰靑色硬質土器片) 등의 토기편이 대부분이며, 기타 방추차(紡錘車)·어망추(漁網
錘) 등의 토제품, 지석(砥石) 등의 석기, 소도자(小刀子) 등의 철기가 주거지 안쪽에서 출
토되었으나 대부분은 주거지 폐기 후 주변에 있던 것이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여러 상
황을 종합해 볼 때 용원 수혈주거지는 규모이나 형태, 구조, 분포상태 등이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특징과 유사하며, 사회적으로는 비교적 안정된 세력집단이 생활한 것으로 추정
된다. 특히 출토된 유물의 특징이 원삼국시대 문화내용이 주종을 이르지만, 그 중에서도
농경보다는 어로(漁撈) 중심의 생활구조를 가지면서 그 중에는 일본과도 교류한 흔적이
남아있어 주목된다.



 2) 아라가야권 문화유적
도항리․말산리고분군: 사적 제84.85호
함안의 중심지로서 가야읍의 서쪽 남북으로 뻗은 가늘고 긴 구릉 위에 외형상 원형 봉토
분 50여기가 연이어 분포하고 있는데, 이 고분군은 행정구역상 도항리 고분군과 말산리
고분군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이 일대에는 약 113여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는데 도항리 고
분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말산리에 포함되는 고분은 봉분이 뚜렷한 7기의 고분(봉분이
뚜렷하지 않는 것이 5기) 이다. 현재 가야읍 아라공원내에 있는 외형이 가장 큰 무덤(당
시 34호, 지금 4 호)이 1971년 일본인 금서룡(今西龍)에 의해 발굴 조사되어 무덤 내부 구
조와 성격이 알려져 있다. 조사내용에 의하면 봉토의 높이가 약 10m, 무덤의 밑지름이
약 43m이고 내부에는 석실을 만들어 시체를 위에서 내려놓고 여러 개의 판석을 잇대어
덮어 만드는 수혈식 석실묘(竪穴式石室墓)임이 밝혀졌다. 석실은 길이 약10m, 너비 1.6m,
높이 1.7m의 규모로 석실의 네 벽은 모두 할석을 사용하여 쌓아 올렸다. 특이한 것은 동
서의 긴 벽에 각 2개소, 북쪽의 짧은 벽에 1개소 등, 모두 5개소에 작은 벽장을 마련하였
다. 유물은 남아 있지 않아 벽장의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등잔을 올려놓아 무덤 내
부를 밝히는 등감으로 보인다. 벽에는 회칠을 하지 않았으나 못이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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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그림을 그려 놓은 커튼 형태의 채화장막(彩畵帳幕)을 드리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석실 내
에서는 토기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 수습되었다. 대표적인 출토유물로는 거륜식(車
輪式)토기·행엽(杏葉) · 조형(鳥形) 토기 등이 있다.


윤외리고분군
법수 초등학교 북서편 능선의 정선대지와 그 남쪽 완경사면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1991
년 윤외리 야산일대에서 가야시대 토광묘를 도굴하던 범인이 검거됨에 따라 외부에 알려
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창원문화재연구소에서는 함안 분지 외곽의 가야 토광묘문화에 대
한 이해를 위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1992년) 6기의 토광묘를 발굴하였다. 특히 한 토광
묘에서는 묘광의 내부에 파기(破器)한 상태로 토기를 매납한 예가 확인되었는데 이는 당
시의 장송의례와 관련된 행위의 반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통형 고배, 단경호, 노형기대, 파배 등 토기류 7종 42점과 부(斧), 촉(鏃)의 철기류 3종 5
점으로 총 47점이다. 이밖에 발굴 전 수습된 50여점의 유물 중에는 상면에 점렬문(點列
文), 방사상거치선문(放射狀鋸齒線文)이 음각된 "파오"형의 이형토제 뚜껑들이 다수 채집
되었는데 이는 인근의 의령 예둔리 고분군(宜寧禮屯里古墳群)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남문외고분군: 기념물 제226호
남문외고분군은 도항리고분군의 서편에 위치한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한 삼국시대 대형
분묘군이다. 이 고분군은 일제시대부터 말이산고분군으로 알려졌으며, 현재까지 학술조사
는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 도굴이 심하게 진행되어 대형석곽묘가 드러나 있고, 개석의 일
부는 부락의 표지석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낮은 능선의 상부에 직경 25m 내외의 대형
봉토분 24기가 조성되어있고, 주변부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채집된 유물들은 5세기 후
반 대에 함안지역에서 크게 유행한 유개식고배와 발형기대편들이다. 고분군이 위치한 구
릉은 오차등이라고도 불리며 이곳은 아라왕궁지를 보호하는 토성역할을 하고 있다. 고분
군의 남쪽으로는 남문, 남문외, 대문천 등 문과 관련된 지명이 많아 이 지역 일대가 전아
라왕궁지로 전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안라왕궁지
가야산 북편에 위치한 삼봉산(해발302.2m)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어 내려오는 낮은 구릉
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전방으로는 남쪽의 피수리에서 북으로 흘러드는 관동천과
서쪽에서 흘러드는 대문천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 아라왕궁지에 대한 문헌기록으로는
함주지(咸州誌)의 기록이 가장 오래된 기록인데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기록
은 오늘날에 있어서 왕궁지의 위치를 지리적으로 고증하는 데 매우 유익한 정보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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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해 주고 있다. 가야국의 옛터는 부존정(扶尊亭)의 북쪽에 있다고 했는데 함주지의 기록과
여러 정황으로 보아 부존정의 위치는 지금의 괘안 뒷산(해발 79m)인듯 하므로 가야동은
부존정의 북쪽에 해당된다. 일제시대 때 함안 지방을 직접 조사한 이마니시류(今西龍)는
왕궁지의 후보지를 7개소로 들고4) 그 중 제일 유력한 곳으로서 가야리 가야동을 꼽고
있다. 아라왕궁지로 생각되는 가야동(작은 개애재 지역)은 1921년경 함안 둘안 제방(堤防)
을 축조할 때 일본인들이 인근의 대문천(大門川)의 수로를 변경시키기 위해 새로운 제방
을 만들면서 이 곳 구릉의 흙을 약 2m 이상 파내어 마을 앞 제방을 쌓았는데 이로 인해
이곳의 지형 자체가 변형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노인들에 의하면 옛 가야동 자좌오행(子
坐午行)의 자리가 왕궁지라고 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는 상태이다. 왕궁지 주위에서 채집
된 유물들은 토기편과 기와들이 대부분이지만 완전한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은 없
다. 토기편 중에는 가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들이 몇 점 있으므로 더욱
더 아라국의 왕궁지일 가능성을 높게 하고 있다.


성산산성: 사적 제67호
함안읍 북서편에 위치한 성산(城山) 위에 축조된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북쪽은 평야에 임
하고 서북쪽에 봉산산성(蓬山山城), 동북쪽에 문암산성(門岩山城)과 동지산성(冬只山城),
동남쪽에는 함참산성(咸站山城)등이 호위하고 있다. 성벽(城壁)은 산위에 준선을 둘러서
석루(石壘)를 축조하였으며 길이는 약 1,400m에 달한다. 현재는 대부분 논, 밭으로 경작
되고 있다. 정문지(正門址)가 있으며 서쪽 성벽에도 또 하나의 문지(門址)로 추측되는 곳
이 잔존할 뿐 기타 시설물은 보이지 않는다. 이 성산산성(城山山城)은 일명 조남산성(造南
山城)이라 불리고 있으며, 한편 <<함안읍지(咸安邑誌)>>에 의하면 "가야국 구허(伽倻國舊
墟)"라 기록되어 있다. 산성의 형식은 삼국시대의 유형을 따르고 있고 산 아래 낮은 구릉
위에 동시대의 고분들이 군집하고 있어 가야의 유적으로 판단된다.


봉산산성
유원에서 장암으로 향하는 길모퉁이인 장암교 서북쪽 구릉의 정상 부위에 형성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대정육년도 고적조사보고(大正六年度古蹟調査報告)>>에는 유원리산성
(柳原里山城)이라하여 석축성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현재 이 성을 칠원산성(漆原山城)
이라 부르고 있으나 적절한 명칭은 못된다고 생각한다. 성이 입지한 곳은 자양산(紫陽山)
(해발 401.8m)이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의 정상부에 해당되며 북쪽으로 어령(於嶺)·도둑고
개를 사이에 두고 안곡산성(安谷山城)과 대치해 있다. 이는 안곡산성과의 조응관계를 시
사 하며 성의 방비목적이 어령(於嶺)·도둑고개의 차단에 두어졌음을 알게 한다. 성의 평
면형은 능선의 길이 방향을 따른 장타원형이다. 성벽의 축조는 산의 경사면에 의지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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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탁(內托)과 협축(夾築)을 혼용하였으나 내탁식의 편축 위주이다. 석재는 주변 야산에서 쉽
게 구해지는 할석들이다. 현재 성은 북쪽사면에 대규모 암석 채취 공장이 입주하여 능선
종단면의 절반을 훼손한 상태이다.


가음정동고분군: 기념물 제126호
가음정동 산 15번지 일대의 넓은 범위에 위치한다. 이 곳 소나무밭의 곳곳에 봉분(封墳)
과 도굴구덩이, 석관묘(石棺墓)에서 파손된 석재, 토기편 등이 널려져 있어 고분군임을 알
수 있다. 이 유적에 대한 지표조사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에 걸쳐 성산패총을
조사하면서 가음정동유적이 지표조사 되었고, 1981년 이후 부터는 창원대학교박물관에서
수시로 지표조사 하였다. 유적 발굴 조사는 1990년 11월 20일부터 60일간에 걸쳐 창원문
화재연구소에 의해서 1차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당시 4세기대의 토광목곽묘 5기, 6세기대
의 석곽묘, 석실분, 옹관묘가 조사되었다. 봉토분은 동일 봉분내에 주피장자의 묘인 석실
분외 소형석곽묘 및 옹관이 매장된 다곽식(多槨式) 묘제로 되어 있었다. 출토 유물은 각
종 고배류와 단경호, 장경호와 같은 호형토기(壺形土器) 등과 화살촉, 도끼, 손칼 등의 철
기류등 일반적인 유물이 대부분이다. 가음정동 고분유적은 가야시대 이후의 한정된 유구
만 있는 것을 보여 지나 이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지석묘, 석관묘
등으로 보아 구릉 남서편 하단부인 창원남중학교 일대에는 삼한시대의 분묘유구가 분포
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동리고분군: 기념물 제189호
중동리고분군은 의령읍을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흐르는 남산천 남쪽에 솟아 있는 남
산(해발320.8m)의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직경 15〜20m 정도의 대형 봉토분 4기가 경
사면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1호분은 횡혈식석곽묘이며, 단벽장벽의 길이의 비율이
1:6.9에 달하는 극단적인 세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야의 늦은 시기
에 축조된 고분이라 추정된다. 도굴갱내에서는 1점의 개와 2점의 고배편이 발견되었는데
개는 석곽내의 교란토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본 고분의 매납품일 가능성이 높지만 2점
의 고배편들은 석곽 밖의 봉분(封墳)의 도굴갱내에서 발견되었으므로 1호분의 부장품이었
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출토유물 중에는 장식마구(裝飾馬具)도 있다. 조선시대의 민묘에
의해 태반이 파괴되었으나 다행히 남아있는 부분을 참고로 복원하면, 일반적인 가야의 소
형 횡혈식석곽묘와는 달리 석곽 안에 부장유물을 포함하지 않은 석곽이 만들어져 있는
다소 특이한 구조를 가진 유구이다. 출토되는 토기는 모두 도질토기로서 개배와 고배, 장
경호, 컵형토기, 대호소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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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예둔리고분군
의령군 남강변에 형성된 능선의 해발 30-70m 정도 되는 남사면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군은 1992년 경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 한 유적으로 목곽묘, 석곽묘, 토광묘
61기가 조사되어 이곳에서 고식 경질토기를 비롯한 각종의 토기류, 집게와 망치를 비롯한
철기류가 500여점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4세기에서 6세기에 형성되었으며 함안과 진주
등 여러 지역의 토기문화가 함께 나타나고 있어 당시의 대외 문화교류상을 잘 반영해 주
고 있다. 이 유적은 수장층의 고분군이 아닌 일반인의 분묘로서 의령읍 주변의 고총고분
이 분포하는 고분군과는 뚜렷한 계층성을 보여주고 있다.


운곡리고분군: 기념물 제222호
의령에서 창녕과 합천방향으로 연결되는 20번국도에 이웃해 있으며 삼봉산(해발199.6m)
에서 남쪽으로 뻗은 전주 최씨(全州崔氏) 묘역이 있는 구릉의 남서쪽 사면에 위치한다.
유적의 앞으로는 주변 골짜기에 형성된 좁은 들이 운곡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고분군
은 운곡 뒷산이 남동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설상대지(舌狀臺地)의 경사가 완만한 남서쪽
사면 저지에 분포한다. 산발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의 전언에 의하면 10년 전에 도굴되었다
고 하며 능선의 저지에서 황토를 파낼 때도 토기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유적
내에는 도굴에 의한 파괴분의 흔적이나 유물은 잘 관찰되지 않으며 점토 채취장 부근에
서 파괴 석곽으로 추정되는 유구 1기가 확인되었을 뿐이다. 석곽은 능선의 길이 방향을
따라 소형 할석을 가로뉘어쌓기식으로 축조한 것이며 한쪽 장벽만 남아 있다. 방위는 북
서-남동이고 석곽 현재 길이는1.8m, 깊이 0.6m이다.


호미산성: 기념물 제101호
진주에서 남지(南旨)로 사행하는 남강 북쪽에 위치한 호미산(해발98.9m)정상부에 위치하
며, 정곡면 죽전리(竹田里)에 있는 호미산(虎尾山)의 정상 9부 능선을 따라 잡석을 이용하
여 축조한 테뫼식 산성으로 약 200m 가량의 토성 흔적이 현재 남아 있다. 현재 성 안팎
이 개간되어 밭으로 사용되면서 많이 훼손되었는데, 성은 이 곳 남강변의 단애가 자연성
곽으로서 알맞은 지형을 백분 활용하였다. 이 산성의 축성연대는 진동고개에 있는 고분군
과도 관계가 있을 듯 하며 벽화산성(碧華山城)과도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남강유역인 죽
전리의 진동고개와 백곡리 외곡동 주변에는 청동기시대에 이어 가야 시대의 고분군이 밀
집하여 분포하고 있다. 주변 고분군의 위치나 주변에서 수습된 토기조각으로 미루어 보아
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산성은 또한 임진왜란 당시 망우당(忘憂堂) 곽재
우(郭再祐)장군의 전적지라고 전한다. 선조 25년 (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는 4
월 22일 정곡면과 이웃한 유곡면 세간리 고향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홍의(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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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衣)를 입고 의병을 지휘하여 의령, 창녕지방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전공을 세워 홍의장군
(紅衣將軍)이라고 불렸으며 정유재란 때에도 그의 휘하에 모여든 군민을 이끌고 유격전으
로 이 지방을 끝까지 지켰는데 지금의 의령, 창령, 현풍지방에 있는 산성들은 대개 이때
수축한 것으로 되어 있다.


죽전리고분군: 기념물 제 100호
정곡면(正谷面) 호미산성에 위치하며 고분은 진등고개에서 동쪽으로 남강을 따라 형성된
해발 100m 정도의 능선 정상부에 열을 이루어 수기가 분포한다. 대부분 도굴로 크게 훼
손된 상태이며 수목에 덮여 봉분의 외형도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에 총 몇 기가 있었는지
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 수 없다. 봉분은 직경 10-15m 정도로서 내부 주체는 석곽을 이루
고 있는데, 수혈식과 횡혈식이 섞여 있다. 고분의 구조와 수습자료를 통해서 볼 때 이 고
분군은 6세기 대에 주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소가야권 문화유적


양전고분군
신등면 소재지에서 단계교를 건너면 양전마을이 위치하고 이 마을 뒷편의 야트막한 야산
전체에 석곽·석실분 등 다양한 고분이 밀집 분포한다. 고분군 앞은 두 개의 하천이 합류
하면서 형성한 넓은 들이 펼쳐진다. 양전고분군(陽前古墳群)은 대부분 봉토가 유실되었으
며 최근까지도 도굴이 심하게 자행되어 처참할 정도로 파괴가 심하다. 대략 200여기 정도
로 추산되며 산청군내에서는 수량면에서 가장 대규모의 고분군이다. 무수한 토기편이 산
재해 있으며 대옹편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 특이하다. 다양한 종류의 토기편을 수습했으며
유적 및 수습된 토기편으로 보아 5, 6세기의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생초고분군: 기념물 제7호
생초면 소재지 서편 산록에 위치한다. 산정의 대형분을 중심으로 동남 능선에는 대형분,
남북 능선에는 중·소형분의 고분 100여기가 밀집 분포한다. 산정에 위치한 고분의 경우
봉토 직경이 30m, 개석 상부에 쌓인 높이만도 4m에 달하는 대형분이며 봉토가 절개되어
파헤쳐지는 피해를 입고 있다. 주변에서는 고배, 기대편 등의 토기편과 대도편 등의 철기
류들이 수습되었다. 북쪽 능선에 위치한 1기의 고분의 경우는 도굴갱으로 석실 내부를 확
인할 수 있었으며 정방형 석실이다. 석실 내부에서 보았을 때 연도가 우편재한 횡혈식석
실분이다. 생초고분군은 수혈식과 횡혈식석실분이 혼재한 6세기의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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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된다.


관지고분군
생초면 소재지에서 3번 국도를 따라 산청읍 방면으로 약 2.5km쯤 가면, 생림교(生林橋)가
나오고 이 다리 좌측으로 월곡천(月谷川)이 흐른다. 월곡천변 소로를 따라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서 월곡교(月谷橋)를 건너면 관지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고분군은 관지마을 뒷산
에 위치한다. 산정부에서 시작하여 남향한 능선을 따라 봉토 직경 10- 20m, 높이 3-5m
규모의 중형 고분 약 50여기가 분포한다. 대부분 도굴이 심하게 되었으며 능선 하단부에
위치한 고분은 개간으로 거의 파괴된 상태이다. 도굴에 의해 노출된 일부 고분의 경우
주·부곽식 고분으로 보이며 벽석에 사용된 석재는 천석도 일부 보이나 대부분이 할석을
이용하였다. 고분군 앞은 산지에 둘러싸인 소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인근의 생초 고분군과
함께 산청군의 대규모 고분군을 이루고 있다. 노출된 유구 외 수습된 유물들로 미루어 보
아 5, 6세기의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수정봉․옥봉고분군: 기념물 제 1호
진주시의 동쪽에 있는 진주 향교의 맞은편에는 해발 64.7m인 남북 2개의 봉우리를 가진
독립 구릉인 남봉(南峰)이 있다. 이 구릉의 정상부에는 대형의 봉토를 가진 7기의 고분이
일정한 사이를 두고 군(群)을 이루며 분포되어 있었으며 이 봉우리가 일반적으로 '수정봉
(水精峰)', '옥봉(玉峰)'으로 불리어진다. 원래 대형의 봉토분 7기가 분포되어 있던 이 고분
군 일대는 일제하 이래 고분의 파괴가 진행 되어 지금은 단 2기의 고분만이 남아있을 뿐
이다. 이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1910년대에 일인학자 관야정(關野貞)에 의해 이루어진 후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報)>>에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이것이 수정봉 2, 3호와 옥봉 7
호분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서 출토되었던 유물의 대부분을 일본 동경대학으로 가져갔으
며 최근에 소개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의하면 수정봉 2호분은 할석으로 쌓은 석실분
으로 연도는 중앙에 있으며 현실의 규모는 길이 5.32m, 너비 1.76m, 높이 2.3m이고 석실
안에서 토기, 가락바퀴, 구슬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철기들이 출토되었다. 수정봉 3호분은
원분으로서 배부 주체 는 2호분과 같이 횡혈식 석실분으로 연도는 남벽의 중앙에 만들어
졌으며, 석실의 규모는 2호실과 거의 같다. 석실 내에서 출토된 유물은 쇠칼, 창과 함께
많은 철기류들이다. 옥봉 7호분은 봉분의 모습이나 규모를 알 수 없으나 수정봉 2, 3호분
과 같은 횡혈식 석실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석실내에는 철제의 칼, 도끼, 재갈, 등자를
비롯하여 몇점의 토기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자료들로 보아
6세기 전반대에 축조된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무덤의 구조형식과 출토유물로 보아서 백제
와 대가야와의 관계 규명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진주지역 일대의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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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문화 양상을 보여 주고 있는 중요한 고분군이라고 판단된다.
원당고분군
원당고분군은 남강의 지류인 반성천 남쪽에 형성되어 있는 매화산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내린 야산의 서북쪽 사면에 위치한다. 1호분은 저경이 약 15m 정도 되는 거대한 고분이
나 일제 시에 도굴되었다. 현재는 남동편으로 연도가 뚫려 있어서 고분의 내부가 노출되
어 있는데 내부에는 큰 현실이 있는 석실고분이다. 현실의 길이는 5.25m, 폭 2.8m, 높이
2.8m이며 개석의 길이는 1.5m, 연도는 길이 0.33m, 폭 1.5m, 높이 1.3m 정도 되며 고분
의 총고는 4m 정도이다. 1호분 아래쪽으로 같은 유형의 2호분이 있으나 정상부 부분은
역시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봉분 주변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둘러져 있으며 크기는 1호분
과 동일하다. 이 고분 주변에서 횡·종선이 교차된 타날문 회백색 연질 토기편, 회청색 경
질토기편, 고배편 등이 수습되었다.


송학동고분군: 사적 제 119호
고성읍의 북동쪽 야산인 높이 30m의 무기산(舞妓山)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데 제1고분군
과 제2고분군으로 나뉘어 불리고 있다. 무기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는 1호분은 근년에
전방후원분논쟁(前方後圓墳論爭)을 불러일으킨 고분이기도 하다. 이 고분은 1914년에 일
본인 조거룡장(鳥居龍藏)에 의해 조사된 바 있으나, 1986년동의 측량에 의하여 전장(前長)
이 66m, 후원부(後圓部)가 36.6m이고 높이는 6.4m이며 전방부는 길이 29.4m이고 높이는
5m로 알려졌다. 이 봉토분은 천정 개석의 일부가 노출되어 있어 내부를 엿볼 수 있는데
하부구조는 길이가 10m 정도의 석실로 장축의 방향은 남북으로 추정된다. 이 부근에는
송학동 고분군 외에도 마주 보고 있는 기월리(基月里)고분과 남동쪽의 율대리(栗垈里) 고
분군이 있으며,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 의하면 고성읍 무량리(武良里)와 대가
면(大可面) 송계리(松溪里)에서도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고 한다. 이들 고적군
의 입지조건을 살펴보면 대체로 평지 주변의 낮은 언덕이나 야산 혹은 산기슭에 분포되
어 있는데 이는 부산, 김해 등 동부 경남의 가야 고분 입지조건과 닮은 양상을 보이고 있
다. 출토된 토기와 묘제를 통해 볼 때 대개 6세기 중엽 무렵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인
다.


내산리고분군: 사적 제 120호
내산리고분군은 남쪽으로 해발 419.5m의 수양산, 북쪽으로는 해발 263m의 장군산과 해발
271m의 노인산으로 둘러싸인 야트막한 야산에 위치한다. 성산(城山)을 배경으로 하여 대
형 고분 36기가 흩어져 있으나 지정문화재로 보존되어 있다. 해방이전에는 1백여 기에 달
하는 크고 작은 고분들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주변이 논밭으로 개간되면서 많이 훼손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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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어 현재는 대형분만 남아 있다. 또한 남아 있는 대부분의 고분들도 민족항쟁기에 일본인
들에 의해 모두 도굴되어 겨우 유구만이 보존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성은 해안지대와 평
야에 청동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에 이르는 각종 유적들이 밀집되어 있어 이 지방이 일
찍부터 농경문화가 발달하였던 곳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문헌을 통해서 볼 때 <<삼국
지(三國志)>>의 변진 12국 가운데 하나인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 그리고 <<삼국사기(三
國史記)>>에 보이는 포상팔국(浦上八國) 가운데의 고자국(古自國)이 이 지역으로 파악된
다. 이들 세력이 기반이 되어 삼국시대에는 6가야의 하나인 소가야로 발전하였다고 생각
된다. 외형상에 나타난 유규의 특징은 할석(割石)으로 축조된 장방형의 수혈식석곽묘(竪穴
式石槨墓, 구덩식 돌덧널무덤)이며 주변에서 채집된 토기조각을 조사하여 본 결과 6세기
를 전후한 시기의 것으로 추측된다. 서남쪽에는 같은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양촌리 고분
군(陽村里古墳群)이 이 유적에 연결되어 있으며 그 정상에는 둘레가 약 700m 정도되는
작은 산성이 있다. 또한 인접한 장기리(章基里)에도 성벽의 높이가 5.6m, 둘레가 350m 인
철마산성(鐵馬山城)이 약 250m 가량 무너진 상태로 남아 있다.


삼가고분군: 기념물 제 8호
삼가고분군은 삼가면에서 합천쪽으로 국도 33호선을 따라 1km쯤 떨어진 도로변의 북서
쪽으로 뻗어 내린 세 능선에 분포하고 있다. 산기슭에서 해발 190m에 이르기까지 등선
마루의 좌우에는 대형 봉토군이 일정한 사이를 두고 군집하고 있는데, 대체로 지름 15∼
30m 정도의 대·소형의 봉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분군 가장 남쪽 끝은 도굴되어 가야
토기 편들이 흩어져 있으며, 뚜렷한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토광묘들이 분포하는 것으
로 추정된다. 이 유적에 대해서는 1981년 진주〜합천간 국도 확장공사로 인해 그 일부가
파괴되어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총 9기의 고분이 발굴 조사되었다. 이들은 모두 봉분
을 가진 것으로 내부주체는 수혈식 석곽 및 횡혈식 석실의 구조와 형식을 갖춘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까지의 조사를 토대로 보면 이 유적에 있어서 유구는 이른 시기의 토광
묘를 비롯하여 수혈식 석곽묘, 횡혈식 석실분이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그 연대는 4세기
초부터 가야가 신라에 정복당한 6세기 중엽까지일 것으로 추측된다.




 4) 대가야권 문화유적
옥전고분군: 사적 제 326호
옥전고분군은 합천과 거창지역을 유역권으로 하는 황강(黃江)이 낙동강 본류와 합쳐지는
하류의 관문지역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몇 개의 능선에 나누어져 분포하고 있으며 전체로
는 1,000 여기에 달한다.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5차에 걸쳐 발굴



                          - 34 -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한 조사보고에 따르면 지표조사에 의한 분포상태는 소형 석곽묘가 전체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반면, 이른 시기의 목곽묘는 능선의 정상부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 주로
분포하고 고총 고분은 서남쪽의 고개마루 건너편의 능선에 26기가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
다. 조사된 고총 고분과는 달리 횡혈식 석실분을 내부주체로 하는 고총 고분이 능선의 동
북 반대쪽의 다른 능선에도 형성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도로의 확장공사와 수로공사
때에 다수의 토기가 출토되었다고 하며 압형토기도 이곳 능선의 말단부에서 수습되어 신
고 되었다. 옥전 고분군의 묘제는 목곽묘→대형 수혈식 석곽묘→고총 고분(소형 석곽묘와
같은 시기)으로 변화하였으며, 목곽묘 단계의 지표유물은 무개무투창고배이고 대형 수혈
식 석곽묘 단계의 지표유물은 유개유투창고배이며, 고총 단계의 지표유물은 개배와 유개
식장경호 이것들이 부장되기 시작하는 시기의 것들이다. 이들 유적은 유구의 구조에 따른
분포와 구획이 이루어지고 동시에 유력계층으로 추정되는 묘역의 설정도 일정한 규칙성
을 나타내어 4세기에서 5세기 중엽까지는 능선 정상부를 중심으로 목곽묘가 분포하고 있
으며, 5세기 중엽 이후부터 묘역은 서쪽의 고개마루 건너편 능선으로 이동하여 축조하였
다. 6세기 중반부터는 횡혈식 석실분들 이 능선의 경사진 곳에 한 두 기씩 축조되는 현상
을 보인다.


대야산성: 기념물 제 133호
대야산성은 해발 약 90m 취적산 쌍봉 동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 황강과 접해 있다. 삼
국시대 백제와의 접경지대인 신라 서부지방의 요지로서 642년 (신라 진덕여왕11년, 백제
의자왕 2년)에 백제장군 윤충(允忠)의 공격으로 함락된 적이 있고 이때에 도독(都督) 김품
석(金品釋)과 그 부인(김춘추의 딸)도 죽어 신라는 한때 큰 타격을 받고 김춘추를 고구려
에 보내어 구원을 청하기도 했다. 또한 이 싸움에서 김춘추는 딸의 죽음을 듣고 백제를
멸망시켜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하며 경명왕(920)때에는 후백제 견훤(甄萱)
에게 다시 함락되기도 했다. 강변에 면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토석혼축 했으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창리고분군
창리 고분군은 황강 서안의 금성산에서 뻗어 내린 북쪽 주능선 해발 145〜185m의 서쪽
가지 구릉사면의 강을 조망하는 지점에 위치하며, 이곳에서 발견되는 묘제는 크게 단곽분
과 다곽분으로 나눌 수 있고 내부 구조에 따라 석곽묘, 석관묘, 석실분, 옹관묘로 세분할
수 있다. 고분의 봉토는 도굴로 훼손되어 내부의 석조유구가 지상에 노출되었거나 또는
부분적으로 판축된 봉토의 일부가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장축은 남북향이 동서향보다
우세한 경향을 보이지만 봉계리 고분군은 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출토된 유물은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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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 1.
  • 2. 경남발전연구원 출판시도서목록(CIP)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 한상우·박원철·이강국 공저.--. --창원: 경남발전연구원, 2007 148p. ; 29.8㎝. -- 1.경남의주요역사 2.테마별관련유적 3.역사유적테마관광 ISBN 978-89-8351-129-4-93320 : 비매품 326.39-KDC 338.4791-DDC
  • 3. 차 례 제1장 서론 ································································································ 1 제1절 연구목적 ············································································································· 1 제2절 연구범위 및 방법 ····························································································· 2 제2장 경남의 주요 역사 개관 및 테마 발굴 ···································· 5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 11 제1절 경남의 역사적 뿌리 가야의 흔적 ······························································· 11 1. 테마 개관 ············································································································ 11 2. 유적 현황표 ········································································································ 14 3. 주요 유적위치 ···································································································· 18 4. 주요 유적소개 ···································································································· 19 제2절 민관의 항쟁 임진왜란 유적 ········································································· 39 1. 테마 개관 ············································································································ 39 2. 유적 현황표 ········································································································ 42 3. 주요 유적위치 ···································································································· 45 4. 주요 유적소개 ···································································································· 46 제3절 조선의 선비정신의 상징 : 서원(書院), 정(亭) ·········································· 63 1. 테마개관 ·············································································································· 63 2. 유적 현황표 ········································································································ 65 3. 주요 유적위치 ···································································································· 68 4. 주요 유적소개 ···································································································· 69 제4절 경상우도 영남학파의 거두 남명의 자취 ··················································· 86 1. 테마개관 ·············································································································· 86 2. 유적 현황표 ········································································································ 88 3. 주요 유적위치 ···································································································· 89 4. 주요 유적소개 ···································································································· 90 - i -
  • 4. 제5절 자연친화적 생명력, 시대정신, 조화의 상징 : 전통가옥 ························ 95 1. 테마 개관 ············································································································ 95 2. 유적 현황표 ········································································································ 97 3. 주요 유적위치 ·································································································· 100 4. 주요 유적소개 ·································································································· 101 제6절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민주의 소박한 극복의지 : 벅수와 장승 ········ 115 1. 테마개관 ·········································································································· 115 2. 유적 현황표 ······································································································ 118 3. 주요 유적위치 ·································································································· 119 4. 주요 유적소개 ·································································································· 120 제4장 결론 및 제언 ··········································································· 127 참고문헌 ····················································································································· 129 - ii -
  • 5. 표차례 <표 3-1> 금관가야권 문화유적 현황 ····································································· 14 <표 3-2> 아라가야권 문화유적 현황 ····································································· 15 <표 3-3> 소가야권 문화유적 현황 ········································································· 16 <표 3-4> 대가야권 문화유적 현황 ········································································· 17 <표 3-5> 임진왜란 관련 문화유적 현황 ····························································· 42 <표 3-6> 경남지역 남해안 왜성 현황 ··································································· 62 <표 3-7> 서원(書院), 정(亭) 관련 문화유적 현황 ··············································· 65 <표 3-8> 남명 선생 관련 문화유적 현황 ··························································· 88 <표 3-9> 전통가옥 문화유적 현황 ······································································· 97 <표 3-10> 벅수와 장승 관련 문화유적 현황 ··················································· 118 - iii -
  • 6. 그림차례 <그림 3-1> 가야권 문화유적 분포현황 ································································· 18 <그림 3-2> 임진왜란 문화유적 분포현황 ····························································· 45 <그림 3-3> 서원․정 문화유적 분포현황 ····························································· 68 <그림 3-4> 남명조식 문화유적 분포현황 ····························································· 89 <그림 3-5> 전통가옥 문화유적 분포현황 ··························································· 100 <그림 3-6> 벅수와 장승 문화유적 분포현황 ····················································· 119 - iv -
  • 7. 1 서론
  • 8. 제1장 서론 제1장 서론 제1절 연구목적 경남지역 전역에는 우리 조상들의 혼과 정신이 녹아있는 삶의 물질적 흔적인 다양하고 많은 역사문화자원들이 산재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문화자원들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경 남 지역의 정체성 확립과 지역문화의 다양성 확보라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 며, 또한 문화관광 및 역사교육 등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활용가치를 가지고 있다. 경남지 역 전역에 산재하고 있는 이러한 소중한 역사문화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자라나는 청소년 과 일반인들에게 역사체험의 산 교육장을 제공하고, 문화의 세기인 21세기에 부응하는 문 화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적극 활용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최근 주 5일제 근무 등에 따른 여가시간의 증가와 소득증대에 따라 관광의 형태 도 단순히 보는 관광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지역의 문화나 역사, 생태를 직접 체험하고 느 끼면서 개인의 삶과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러한 관광 트렌드에 부합하기 위하여 새롭고 다양한 관광자원의 개발 노력 특히, 지역의 역사 문화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관광자원화 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에 현재 경남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바탕으로 한 테마관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이 개발․운영되고 있으며, 계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테마관광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이 이미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일부의 역사문화유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남지방의 역 사와 문화의 이해에 필수불가결한 역사문화자원들에 관하여 추가적인 관심과 자원화 노 력이 더욱 필요한 실정이다. 본 자료집은 경남지역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파생된 많은 역사문화자원을 올바르게 이 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화관광과 역사교육 및 체험을 위한 소중한 자원으로 적극 활용 하기 위하여, 경남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역사문화자 원을 역사 및 문화 관련 테마별로 정리 소개하여 문화관광과 역사체험 교육을 위한 테마 관광 자원화의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그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것을 그 목적 으로 한다. - 1 -
  • 9.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제2절 연구범위 및 방법 본 연구의 수행을 위한 공간적인 범위는 경남전역의 20개 시군을 그 대상으로 하였으 며, 시간적인 범위는 경남의 오랜 역사적 기간, 즉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전시기를 포함하는 통시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하였다. 아울러 다양한 경남지방의 문화역사자원의 체 계적인 소개 및 정리를 위하여 경남의 오랜 역사 속에서 도출 가능한 다양한 테마 중 몇 가지 테마를 선별하여 그에 맞는 문화유적을 정리 소개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연구의 체 계성을 갖추고자 하였다. 본 연구를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경남지역의 문화역사자원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와 심층 연구가 실질적으로 요구되지만, 문화역사자원의 수적 방대함, 대상지역의 광 범위, 그리고 시간의 절대적인 제약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에 의하여 기존의 문헌자 료를 선별하여 이를 발췌 인용하였으며, 일부 유적들에 대해서는 보충적으로 현지 조사를 실시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또한 현재 특정 테마별 관련 유적의 수적 방대함에 의하여 국가 및 도지정문화재를 중심으로 유적을 일부 선별하고 정리하여 연구를 진행한 점은 본 연구의 한계임을 먼저 밝힌다. - 2 -
  • 10. 2 경남의 주요 역사 개관 및 테마 발굴
  • 11.
  • 12. 제2장 경남의 주요 역사 개관 및 테마 발굴 제2장 경남의 주요 역사 개관 및 테마 발굴 원래 경상도라는 명칭은 지금의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합하여 부르는 이름으로, ������경상������이 라는 지명은 고려 때 이 지역의 대표적 고을인 경주와 상주의 각 머리글자를 합쳐 만들었다.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는 조선시대에 경상도 지방을 동서로 나누었을 때 생겨난 행정구역 이름으 로, 1407년 (태종 7년) 9월 군사행정상의 편의를 위하여 경상도를 좌도와 우도로 나누어 낙동강 동쪽을 경상좌도, 서쪽을 경상우도라고 칭하게 되었다. 경상남도가 현재와 같은 행정구역 이름으 로 확정된 것은 조선시대 말기로, 1896년(고종 33년) 8월 4일 칙령 제 36호로 지방제도 관제 등을 개정하여 종전 23부를 13부로 고칠 때 경상도를 남북 2개 도로 나누면서부터 비롯되었다. 경남의 역사는 최근 여러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따라 경남의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의 문화상들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멀리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예로서, 창녕 비봉 리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의식주를 보여주는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고, 특히 국내 최초 로 통나무배가 발견되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밖에 진주 대평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밭 유적과 주거지 등이 발견되었고 마산진동과 김해 율하 택지개발사업 예 정지구 등에서도 많은 청동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드러나, 경남이 신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부터 이미 우수한 문화적 세력이 번성했던 지역임이 명확해지고 있다. 경남의 고대문화는 이 지역에서 번성했던 가야문화에 의하여 더욱 뚜렷해진다. 과거 고 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과 함께 대략 3세기에서 6세기 후반까지 강력한 문화와 지배력을 누려왔던 가야제국의 많은 유적들이 경남전역에 산재하고 있다. 가야제국의 시대변천과 그 영역범위는 가야사 연구자들마다 다양하게 주장되어 명확한 정의의 어려움이 존재하 나 현재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분류에 따르면 가야권역을 금관가야권, 아라가야 권, 소가야권, 그리고 대가야권 으로 나눌 수 있다. 경남의 역사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가야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백제나 신라 혹은 왜 의 역사 중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정도였기 때문에, 가야사는 항상 주변국의 관심과 입장 에 의해 왜곡되어 왔기 때문에 한국고대사 연구에서 가야사의 위상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 가야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와 연구 성과가 급증 하고 역사학계에서도 가야의 자체적인 역사를 집중적으로 논의해 온 결과, 삼국시대의 역 사에서 가야의 역할이나 비중이 상당했던 것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특히, 고대 가야 의 문화는 주변국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것이 최근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삼국과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경남은 유학, 특히 남명유학의 근거지로 조선 유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이래 퇴계 이황과 남명조식이 영남지역 사림세력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유학 - 5 -
  • 13.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의 거두인 두 인물은 당시의 향촌사회를 성리학적 체계로 재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이후 영남학파를 퇴계학파와 남명학파라고 하는 두 줄기의 커다란 학통으로 구성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특히 경의에 바탕을 둔 남명의 실천철학은 경상우도 사림들 에게 정신적인 구심처의 역할을 하였다. 일두 정여창을 배향하는 남계서원과 남명 조식을 배향하는 덕천서원은 경상우도의 공론을 수렴하고 창출하는 중심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 였다. 경의에 바탕을 둔 남명의 실천적인 유학사상은 특히 임진왜란 시 곽재우, 정인홍 등으로 대변되는 경남우도의 의병활동의 정신적인 뿌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경남은 임진왜란 전란의 최 일선에 있었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1592년 4월 13 일 임진왜란의 발발과 전개, 그리고 최후의 승전에 이르는 임진왜란 전 기간에 걸쳐 일본 군의 섬멸과 호국의 일선을 담당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인적․ 물적 피해와 고통을 당하 였다. 이순신, 김시민, 권율을 비롯한 많은 임진왜란 영웅들의 승전의 장이자 또한 곽재우 와 정인홍으로 대변되는 일반백성들의 의병활동을 통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민․관․ 군 모두의 호국의지가 살아 빛나는 호국의 지역이 경남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옥포해 전에서부터 시작된 이순신의 연전연승의 해전과 진주대첩으로 대변되는 육상전투의 승전 지이며, 최초의 의병봉기 및 승전 등 의병의 눈부신 구국활동의 중심 지역으로, 경남지역 에서의 민․관․군 일체의 눈부신 활약은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통로를 완전히 봉쇄하여 임진왜란 최후의 승리를 이끌어 내는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경남의 임진왜란시의 역할과 항쟁의 자취는 오늘날에도 남아 있어 역사교훈의 장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오면서 경남지역 곳곳에 일반 민중과 지배층들의 일 상의 삶과 정신문화의 흔적이 남게 되었다. 경남지역의 지리적, 환경적, 인문적 영향과 다 양한 기후적 조건을 반영한 전통가옥과 양반지배층과 선비들의 정신문화와 안빈낙도의 삶이 반영되어 있는 서원, 정자 등이 경남 전역에 남아 있어 조선시대의 성리학 지배사상 과 양반․선비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지배층의 양반․선비문화와 잘 대 별되는 일반 백성들의 삶과 신앙의 소박한 표현들인 많은 민속자료들, 그 중에서도 많은 장승과 벅수들은 경남의 민속신앙의 하나의 구체적인 상징으로 잘 남아 있어 지난 시절 민중들의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소박한 삶의 의지를 일부 엿보게 한다. 이러한 개략적인 경남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역민의 삶의 흔적을 바탕으로 다양한 경남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문화관광의 테마발굴이 가능하나, 이 연구에서는 그 중 몇 가지를 도출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자 한다. ○ 경남의 뿌리 가야문화의 흔적 ○ 민관의 항쟁 임진왜란 유적 ○ 조선의 선비정신의 상징: 서원(書院)과 정(亭) - 6 -
  • 14. 제2장 경남의 주요 역사 개관 및 테마 발굴 ○ 경상우도 영남학파의 거두 남명의 자취 ○ 자연친화적 생명력, 시대정신, 조화의 상징: 전통가옥 ○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민중의 소박한 극복의지: 벅수와 장승 - 7 -
  • 15.
  • 16. 3 테마별 관련 유적
  • 17.
  • 18.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제1절 경남의 역사적 뿌리 가야의 흔적 1. 테마 개관 가야는 일반적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에 존속했던 소국 (小國), 혹은 소국연합체(小國聯合體)로 서기 300년 무렵 변한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된 여 러 집단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가야의 역사에 대해 상세히 기록된 문헌을 찾기 어렵고 명 칭도 가야(加耶), 가야(伽耶), 가야(伽倻), 가라(加羅), 구사(狗邪), 가락(駕洛) 등으로 일관되 지 않아서, 가야가 지칭하는 실체와 존재했던 시기에 대해서는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최근의 연구 성과를 종합해 보면, 가야의 원류가 되는 집단은 기원전 1세기 무렵 낙동 강 유역에서 태동하였으며 기원후 2세기 무렵에는 12개의 소국으로 발전하였다. 3-4세기 에는 김해 가락국 중심의 전기 가야연맹이 번성하였으며, 5-6세기에는 고령의 대가야국 중심의 후기 가야연맹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고 있다.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는 532년 신라에 투항하였고, 고령을 위주로 한 대가야도 562년 낙동강을 장악한 신라에 의 해 멸망되었다. 원래 신라와 가야지역은 고구려나 백제보다 광역의 정치체로의 통합이 시기적으로 늦 게 달성되었다. 특히 가야 사회는 매우 늦은 시기에 이르기까지 소국단위로 성장해 왔으 며, 고구려나 백제와는 달리 연맹체를 구성했다고 주장되어 온 점에서 독특한 사회적 성 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가야의 사회적 특성은 가야지역의 독특한 환경적 여건 과 한반도 동남부라는 지리적 위치와 관련시켜 이해할 수 있다. 가야의 본거지인 소백산맥 동쪽과 낙동강 서쪽지역 일대는 첫째, 지형적으로 산줄기로 둘러싸여 폐쇄되거나 반 폐쇄된 분지로 구성되어 있고, 둘째 각 분지마다 자원분포가 불 균등하며, 셋째 각 분지는 일정한 방향으로만 교통로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폐쇄된 분 지라는 지형적으로 한정된 영역 안에서 정치체가 성장하게 되므로 늦은 시기까지 소국의 규모로 남아 있게 될 여지가 많은 것이다. 또한 각 분지마다 한정된 자원을 소유할 수밖 에 없으므로 각 분지의 정치체제는 제한된 교통로를 이용하여 교역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교역망은 경제적인 교환망으로서만 기능하지 않고, 소국들 사이의 사회적․정치적 관계망으로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다. - 11 -
  • 19.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또한 가야소국들은 한반도 동남부 해안을 포함하여 낙동강, 남강, 섬진강 수계를 끼고 분산되었기 때문에, 해안과 내륙, 나아가 한군현이나 중국 본토와 일본 각지로 통하는 교 통망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삼한시기 및 4세기경의 김해 금관가 야와 5-6세기경의 고성․사천지역 소가야는 국제적인 해상 교역망과 영호남의 내륙을 연 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추측된다. 그러한 이유로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양동리 고분군 등 덧널무덤(木槨墓) 단계의 대형묘에서는 다량의 낙랑계 및 왜계 유물이 출토되며, 5-6세기 고성지역 고분문화에서 신라계 문화와 왜계 문화요소가 혼합되는 양상 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여건은 가야문화 자체가 국제성을 띠게 되고 또 한 주변국들에게 문화적인 영향을 끼치는 배경이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가야의 문화적 특성은 두 가지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전체 가야사회의 문화적 특 성이 어떠한지를 파악하는 것이 한 가지 이해의 방향이라면, 다른 하나의 관점은 개별 가 야소국의 문화는 어떠한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가야문화의 원형은 선사시대부터 파악되어 야 하겠지만, 우선은 가야소국의 직접적인 선구라 할 수 있는 변한 소국의 문화부터 논의 될 수 있다. 그러나 삼한시기에 있어서 변한의 문화를 신라의 모태가 되었다고 여겨지는 진한의 문화와 별개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의 기록대로 진한과 변한이 제사를 지내는 것 이외에는 서로 섞여 살면서 언어나 습속까 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면, 고고학적인 자료상으로도 두 사회의 차이점을 지적하기 란 쉽지 않을 것이다. 원삼국시대의 분묘분화와 토기문화상으로는 지역적인 차이를 어렵 지 않게 파악할 수 있는데, 그것이 진한과 변한 양 문화상의 차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 다. 가령 3 세기 대부터 경주의 사로국 일대에서는 덧널무덤 평면형이 아주 길어지는 특 징이 나타나는데 비해 김해나 함안지역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볼 수 없다든지, 무덤에 부 장하는 그릇의 종류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릇의 제작방법이 상이하다든지 하는 예를 들 수 있지만, 그것을 진한과 변한 문화상의 차이에 대입하기는 어렵다. 5세기 이후부터 영남지방에서는 낙동강을 경계로 신라와 가야의 문화가 뚜렷이 대비된 다. 특히, 고고학적으로 많이 조사된 고분문화를 보면 신라와 가야의 문화적 특성이 분명 하게 구별됨을 알 수 있다. 신라의 중심지에서는 돌무지 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 주된 묘 제이지만 돌덧널무덤(石槨墓)도 경주를 비롯한 낙동강 동안 일대에 널리 퍼져 있다. 가야 의 묘제도 돌덧널무덤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신라와 가야는 덧널의 형태와 그 배치방법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가야문화의 전반적인 특성은 토기의 조형성이나 고분 부장 철기의 종류와 형태, 마구류 의 형식, 관모의 양식, 갑옷의 종류 등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가야소국들이 전반적으로 유사한 문화를 지니게 된 것은 단순히 지리적인 근접성 때문만은 아니고, 끊임없는 정치 적․경제적 상호작용이 문화적 동질성을 나타나게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 12 -
  • 20.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개별 가야국의 문화적 특성 역시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충분히 지적될 수 있다. 가야는 각각의 소국에 따라 중심고분군의 입지가 다르고 덧널의 배치방법, 순장법 등에 차이가 있다. 물론 토기양식에 있어서도 4세기 금관가야식 토기가 있는가 하면, 5-6세기 대가야 식토기, 아라가야식토기, 소가야식토기 양식이 뚜렷이 구분되며, 거시적으로 보아 교역 및 해상활동을 많이 한 해안의 문화와 내륙의 문화는 서로 대비되는 점이 많다. 가야라고 하 면 흔히 풍부한 철 생산을 연상하게 되지만 사실 철 생산이 풍부했던 소국과 그렇지 못 했던 소국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가야문화는 전체적 관점에서 공통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는 한편 개별 소국마다 문화적 개성이 분명했다고 할 수 있다. 본 테마에서는 경남전역에 산재하는 가야의 문화흔적을 대가야권, 아라가야권, 소가야 권, 그리고 대가야권 유적으로 분류하여 소개하여 개별 가야권 유적의 테마관광 또는 각 가야권을 연결하여 가야 문화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테마관광 프로그램의 개발을 위한 기본적인 자료를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권주현. 1998. 가야문화사 연구, 계명대학교박사학위논문 김태식. 1993. 가야연맹사, 일조각 문화재연구소. 2002. 고고학사전 박천수 외 3인. 2003. 가야의 역사와 유적, 학연문화사 주보돈 외. 1995. 가야사연구, 경상북도 한국고대사연구회. 1998. 가야문화도록, 경상북도 - 13 -
  • 21.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2. 유적 현황표 <표 3-1> 금관가야권 문화유적 현황1) 유 적 명 소 재 지 비 고 봉황대유적과 패총 김해시 봉황동 사적 제2호 (63.1.21) 구지봉 김해시 구산동 사적 제429호 (01.3.7) 대성동고분군 김해시 대성동 사적 제341호 (91.1.8) 예안리고분군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사적 제261호 (78.6.23) 두곡고분군 김해시 삼계동 - 화정고분군 김해시 삼계동 - 구산동고분군 김해시 구산동 사적 제75호 (63.1.21) 분산성 김해시 어방동 사적 제66호 (63.1.21) 부원동유적 김해시 부원동 -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 김해시 서상동, 구산동 사적 제73.74호 (63.1.21) 칠산동고분군 김해시 명법동 기념물 제98호 (99.12.23) 양동리고분군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사적 제454호 (04.7.23) 양동산성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기념물 제91호 (88.12.23) 유하리고분군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 - 유하리패총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 기념물 제45호 (79.5.7) 마현산성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기념물 제150호 (96.3.11) 구산동백운대고분군 김해시 대성동 기념물 제223호 (99.8.3) 파사석탑 김해시 구산동 문화재자료 제227호 (96.8.3) 내덕리고분군 김해시 장유면 관동리 - 능동고분군 김해시 장유면 능동리 - 대청유적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 다호리유적 창원시 동면 다호리 사적 제327호 (88.09.03) 진해 웅천패총 진해시 웅천동 - 용원유적 진해시 용원동 - 1) 박천수, 홍보식, 이주현, 류창환, 2003,『가야의 유적과 유물』,학연문화사; 경남개발연구원, 1999, 『가야문화권 정비방 안』, 경남개발연구원 등의 참고문헌과 각 시군의 행정자료에서 지정문화재를 중심으로 발췌 참조 - 14 -
  • 22.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표 3-2> 아라가야권 문화유적 현황2) 유 적 명 소 재 지 비 고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말산리고분군 사적 제 84.85호 (62.1.21) 도항리, 말산리 윤외리고분군 함안군 법수면 윤외리 - 황사리고분군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 - 오곡리고분군 함안군 칠원면 오곡리 - 명관리고분군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 원북리 태실고분군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 사도리고분군 함안군 군북면 사도리 - 남문외고분군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기념물 제226호 (00.8.31) 묘사리토기요지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 전안라왕궁지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함안 성산산성 사적 제67호 (62.1.21) 면 괴산리 봉산산성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 문화재자료 제202호 칠원산성 함안군 칠원면 유원리 (93.12.27) 대평리고분군 마산시 진북면 대평리 - 현동고분군 및 패총 마산시 함포구 현동 - 천선동고분군 창원시 천선동 - 도계동고분군 창원시 도계동 - 가음정동고분군 창원시 가음정동 기념물 제126호 (93.12.27) 반계동고분군 창원시 반계동 - 삼동동고분군 창원시 삼동동 - 중동리고분군 의령군 의령읍 중동리 기념물 제189호 (97.12.31) 예둔리고분군 의령군 정곡면 예둔리 - 운곡리고분군 의령군 용덕면 운곡리 기념물 제222호 (99.8.3) 호미산성 의령군 정곡면 죽전리 기념물 제101호 (90.12.30) 죽전리고분군 의령군 정곡면 죽전리 기념물 제100호 (90.12.30) 2) 각주 1) 참고 - 15 -
  • 23.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표 3-3> 소가야권 문화유적 현황3) 유 적 명 소 재 지 비 고 중촌리고분군 산청군 신안면 중촌리 - 명동유적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 - 양전고분군 산청군 신등면 양전리 - 묵곡리고분군 산청군 산청읍 묵곡리 - 옥산리고분군 산청군 산청읍 옥산리 - 생초고분군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기념물 제7호 (74.2.16) 관지고분군 산청군 생초면 월곡리 - 매곡고분군 산청군 차황면 매곡리 - 평촌고분군 산청군 생초면 평촌리 - 주상고분군 산청군 금서면 주상리 - 손곡리고분군 함양군 유림면 손곡리 - 수정봉․옥봉고분군 진주시 옥봉남동 기념물 제1호 (74.2.16) 가좌동고분군 진주시 가좌동 - 우수리고분군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 내촌리고분군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 죽산유적 진주시 집현면 신당리 - 진동고분군 진주시 진성면 가진리 - 마성리고분군 진주시 사봉면 마성리 - 무촌리고분군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 - 원당고분군 진주시 일반성면 운천리 - 평촌리고분군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 - 송학동고분군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 사적 제119호 (63.1.21) 율대리고분군 고성군 고성읍 율대리 - 내산리고분군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 사적 제120호 (63.1.21) 양촌리고분군 고성군 동해면 양촌리 - 연당리고분군 고성군 영오면 연당리 - 영대리고분군 고성군 영오면 영대리 - 예수리고분군 사천시 정동면 예수리 - 송지리고분군 사천시 용현면 송지리 - 고이리고분군 하동군 진교면 고이리 - 우복리고분군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 삼가고분군 합천군 삼가면 양전리 기념물 제8호 (74.2.16) 천곡리고분군 의령군 대의면 천곡리 - 3) 박천수, 홍보식, 이주현, 류창환, 2003,『가야의 유적과 유물』,학연문화사; 경남개발연구원, 1999, 『가야문화권 정비방 안』, 경남개발연구원 등의 참고문헌과 각 시군의 행정자료에서 지정문화재를 중심으로 발췌 참조 - 16 -
  • 24.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표 3-4> 대가야권 문화유적 현황4) 유 적 명 소 재 지 비 고 옥전고분군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사적 제326호 (88.7.28) 영창리고분군 합천군 합천읍 영창리 - 대야산성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기념물 제133호 (93.12.27) 창리고분군 합천군 대병면 창리 - 저포리고분군 합천군 봉산면 저포리 - 중반계고분군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 - 반계제고분군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 - 봉계리고분군 합천군 봉산면 봉계리 - 독산산성 합천군 덕곡면 학리 - 월광리고분군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 유곡리고분군 의령군 부림면 유곡리 - 경산리고분군 의령군 부림면 경산리 - 개봉동고분군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 기념물 제51호 (80.12.26) 말흘리고분군 거창군 마리면 말흘리 - 무릉리고분군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 석강리고분군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 - 백천리고분군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기념물 제171호 (97.12.31) 사근산성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사적 제152호 (66.9.8) 상백리고분군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 - 팔령산성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 기념물 제172호 (97.12.31) 고소산성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사적 제151호 (66.9.6) 남산리고분군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 전도리산성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 4) 박천수, 홍보식, 이주현, 류창환, 2003,『가야의 유적과 유물』,학연문화사; 경남개발연구원, 1999, 『가야문화권 정비방 안』, 경남개발연구원 등의 참고문헌과 각 시군의 행정자료에서 지정문화재를 중심으로 발췌 참조 - 17 -
  • 25.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3. 주요 유적위치 <그림 3-1> 가야권 문화유적 분포현황 - 18 -
  • 26.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4. 주요 유적소개5) 1) 금관가야권 문화유적 봉황대 유적과 패총: 사적 제2호 김해봉황대 유적과 패총은 김해 회현리 조개무지 서쪽에 인접한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2∼1993년에 발굴 조사된 유적이다. 패총은 동쪽 경사면을 제외한 전 지역에 있는데, 기원전 2세기 초부터 6세기 전반까지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주거지는 중복되어 밀집을 이루고 있고 주거지를 둘러싸듯이 환호가 축조되어 있다. 이곳 에서는 다량의 적갈색 연질토기, 소량의 와질토기와 도질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숫돌․골 각기․목제빗․철기․동물뼈․철재․송풍관 등이 출토되었다. 구지봉: 사적 제429호 구지봉은 수로왕비릉 서쪽 얕은 구릉 선단부에 가락국 시조 수로왕이 하강하였다는 전설 을 지닌 거북이 머리를 내민 것 같은 지형에 위치한다. 일제 강점기에 진영으로 가는 도 로를 개설하면서 거북의 목 부분이 끊겼던 것을 근년에 흙에 덮은 돌다리로 연결하여 차 는 다리 밑으로 다니고 있다. 왼편 숲에는 지석묘가 있는데, 덮개돌에 구지봉석(龜旨峰石) 이라 새겨져 있다. 구지봉석은 지름 2.5미터 정도의 덮개돌과 5∼6개의 짧은 받침돌로 돌 기반식 지석묘로 청동기시대의 무덤이다. 이 고인돌의 피장자와 축조자들은 철기문화인 (鐵器文化人)인 수로집단이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토착의 청동기 문화인으로서 구간(九 干)들이 영도하였으며, 구지봉은 구간사회인들이 굿과 같은 제의(祭儀)를 벌였던 신성한 지역이었을 것이다. 수로왕이 구지봉에 내린다는 것은 이러한 토착사회의 신성성을 빌려 가락국의 건국사회를 재구성하였음을 의미한다. 대성동고분군: 사적 제341호 김해시 구지로(龜旨路)에서 김해공설운동장으로 뻗은 낮은 구릉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잦 은 도굴로 지금도 여러 종류의 토기편들이 산재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경성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1세기 전후부터 5세기까지 구지로의 낮은 곳에서 정상부를 향하여 지석묘. 옹관. 목관묘. 수혈식석관묘. 횡구식석관묘 등이 축 조되어 있다. 1∼3세기의 고분군은 낮은 곳에 위치하며, 구릉에는 4∼5세기의 고분군이 5) 이 유적소개에 설명된 글은 박천수, 홍보식, 이주현, 류창환, 2003,『가야의 유적과 유물』,학연문화사의 관련내용을 발췌 인용하였음. - 19 -
  • 27.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밀집되어 있다. 토기류를 비롯하여 파형동기(巴形銅器). 통형동기(筒形銅器) 등의 청동기 와 벽옥제옥장(璧玉製玉丈) 등의 옥류와 구슬류가 출토되었고, 공구․무기․마구․갑주(甲 胄) 등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다량의 파형동기와 통형동기의 출토는 왜의 유물로 생각하 던 종래의 연구와는 반대로 가야가 원산지였을 가능성을 제시 하였다. 1993년 9월에 구지 로 개설공사에 따른 긴급발굴조사로 57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제12호 목관묘 에서는 이 마에 철제띠(鐵帶)를 두른 인골이 확인되었다. 철제띠는 관(冠)이나 고깔(弁)로 보여, 김해 의 변한인(弁韓人)이 이런 고깔을 썼던 풍습에서 '변한(弁韓)'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제기 되었다. 예안리고분군: 사적 제261호 예안리고분군은 해발 327m의 까치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평지 구릉에 위치하고 있 으며, 김해 예안리 조개무지와 도로를 사이에 둔 밭에 집중되어, 1947년경까지 다수의 석 관묘가 노출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경작지로 변해 있다. 고분군은 서북의 까치산과 동쪽 의 마산이 길게 연결된 아주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립박물관과 부산대학교 박물관이 모두 5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된 유구는 목관묘 59기, 석관묘 93기, 옹관 17기, 석실묘 12기 등 총181기이고,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1100여점, 철기류 660여 점, 구슬류 180여점, 귀고리 14쌍, 골촉 60여점 등 총 2,000여점에 달하고 있다. 고분군은 4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조영되었으며, 가야지역에서 확인되는 모든 묘제가 중복되어 있 어, 가야의 묘제가 목관묘에서 석관묘로, 석관묘에서 석실묘로 변해 갔던 과정이 확인되 었다. <삼국지> <위서> 변진조는 3세기경의 변한사회에 아이가 태어나면 돌로 머리를 눌 러 편두(編頭)를 만드는 풍습이 있었음을 전하고 있으며, 190여 구의 인골이 검출되어 고 대 한국인과 가야인에 관한 풍부한 형질인류학의 자료를 얻게 되었다. 이 중에서 앞이마 가 심하게 후퇴하여 두개골 성형이 행해진 것으로 보이는 10구의 편두는 실제로 가락국 에 이러한 풍습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준다. 구산동고분군: 사적 제75호 구산동 고분군은 김해시 동북쪽에 있는 분산성의 서남쪽에 걸쳐 산재해 있다. 일제 때 삼 산리고분(三山里古墳)이란 명칭으로 사적 제109호로 지정되었다가, 1963년에 구산동 고분 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75호로 변경 지정되었다. 이 구릉은 해발 78m〜82m의 비교적 원만한 구릉지인데, 발굴 전부터 사적으로 지정된 구릉 정상일대를 제외한 구릉의 사면은 이미 절토되어 있었으며, 봉토분에 횡혈식 주 석실을 비롯하여 3기의 부속석곽이 함께 조 성되었다. 주석실의 규모는 현실이 가로 2m, 세로 3.2m의 장방형을 이루고, 현실의 좌벽 에 연하여 길이 2.8m, 폭 0.84m-1.1m의 연도가 있다. 부속석곽으로는 주석실의 연도입구 - 20 -
  • 28.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에 연하여 동서방향으로 조성된 장벽 2.1m, 단벽 0.7m의 장방형의 분묘가 있다. 그리고 주 석실 동쪽에서 내호석 사이에 위치한 장벽 0.9m 단벽 0.55m의 장방형인 제1부곽과 주 석실의 남동쪽으로 치우쳐 내호석과 외호석 사이에서 남북방향으로 위치하는 소형의 수 혈식석곽으로 장벽 1.0m, 단벽 0.8m인 장방형상의 제2부곽이 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34건에 44점(철제 11점, 금동제 1점, 청동제 2점) 등 총 48건에 58점으로, 석실의 연대는 6세기후반에 해당한다. 분산성: 사적 제66호 김해시의 동북방에 우뚝 솟은 해발 330m의 분산(盆山)에 자리하여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를 한 눈에 바라보는 지점에 위치한다. 분산은 큰 수목들이 자랄 수 없는 바위산을 이루고 있으며, 성은 산정의 평탄한 지형을 돌아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부 분적으로 천연의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는데 특히 김해시에 면한 서남부는 높은 암 석들이 치솟아 매우 험준하다. 성내에 이르는 통로는 주로 산성 서쪽에 있는 계곡을 거쳐 북쪽 후면에서 들어가는 경사면에 축조되었으며, 수직에 가까운 석벽은 높이가 3-4m가량 되는데 무너진 부분이 많다. 산성 주위의 둘레는 900m이며, 면적은 50,721㎡이다. 동쪽 중앙부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는 높이 2.1m, 폭 1.12m의 출입구가 만들어져 있는데 내부 통로는 'ㄱ'자 모양으로 꺾어져 있고 성벽은 대부분 두께가 1m 내외의 외겹석축이 다. 이곳에 세워진 '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靖國君朴公葳築城事蹟碑)'에 의하면 이 산성 은 고려 말에 김해부사 박위(朴葳)가 왜구를 막기 위해서 옛 산성의 의거하여 수축한 후 임진왜란 때에 허물어졌던 것을 고종 8년(1871)에 부사 정현석(鄭顯奭)이 다시 현재의 성 벽으로 개축하였다고 한다. 이 분산성은 성기(城基)의 선정법이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소위 퇴뫼식을 따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처음 축성한 시기는 삼국시 대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로왕릉: 사적 제73호 김해시가지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가락국(駕洛國)의 시조 수로왕의 능으 로 전해져 왔다. 고려 문종대 까지는 능묘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였지만 조선 시대 초기에 는 능묘가 크게 황폐되었던 듯하다. 세종 21년(1439)에 당시 경상도관찰사인 이선(李宣)의 건의에 따라 능묘 30 보 주변을 보호하게 되었고 세종 28년(1446)에는 다시 수로왕릉과 허왕후릉에 대해 봉분을 중심으로 사방 100보에 표석을 세워 수호구역으로 확대하였다. 왕릉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선조 13년(1580) 영남관찰사 허수(許粹)가 상석, 석단, 능표 등의 석물을 시설하여 수축하면서 부터다. 임진왜란 때에는 도굴을 당하기도 하였 다. 인조 25년(1647)에 능비를 세우고 고종 2년(1884)에는 숭선전 (崇善殿)이란 호를 내린 - 21 -
  • 29.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침묘를 개축하였다. 이때 안향각(安香閣)과 신도비각(神道碑閣), 석수(石獸)도 설치하였다. 봉분은 원형 봉토분으로 규모는 길이 22m, 폭 21m, 높이 약 5m이며 봉분의 주변에는 특 별한 시설이 없다. 봉분 앞에는 능비, 상석, 장명등(長明燈), 망주(望柱)가 있고 숭선전을 비롯하여 가락루(駕洛樓), 홍전문(紅箭門), 숭화문(崇化門) 등의 여러 건물과 석조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삼국유사 (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보이는 수로왕의 장례 기사에는 ""드디어 대궐의 동북쪽 평지에 빈궁(능묘)을 지었다. 높이 일장이고 주위 삼백 보로 그곳에 장사를 지내고 수로왕묘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봉분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듯하다. 이 능의 내부구조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이 능이 실제로 가락국의 수로왕릉이라고 한다면 그 시기는 1세기부터 3세기 사이가 되 며 이 시기는 문화단계로 보아 본격적인 고총 고분(高塚古墳) 이전의 단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생각한다면 토광묘일 가능성도 있고 <<지봉유설(芝峰類說)>>에 보이는 왕릉의 도굴기사로 보면 규모가 큰 석실묘일 가능성도 있다. 규모는 면적 61,751㎡이다. 수로왕비릉: 사적 제74호 김해시가지 북쪽에 위치한 이 능은 가락국(駕洛國) 시조 수로왕의 비(妃)릉이라고 전하는 고분으로 구지봉(龜旨烽)의 동북쪽 국도 건너편 구산동고분군(龜山洞古墳群)으로부터 서 쪽으로 100m의 거리에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의하면 허후 (許后)는 옛 아유타국의 공주로 16세 때에 배를 타고 와서 수로왕 7년에 왕비가 되어 189 년 3월 1일에 수로왕보다 10년 앞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수로왕의 두 아들도 허씨의 성을 따르게 하여 지금도 그 후손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전한다. 능은 원형 봉토 분으로 봉분의 주위에는 아무런 시설이 되어 있지 않다. 그 규모는 길이 18m, 폭 6m, 높 이 약 5m이며 능 주위에는 얕은 돌담이 방형으로 둘러져 있다. 능의 전면에는 장대석으 로 축대를 쌓았으며 중앙에는 상석과 능비가 세워져 있고 ""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 씨지능(駕洛國首露王妃普州太后許氏之陵)""이라고 두 줄로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 비문은 <<조선금석총람 (朝鮮金石總攬)>>에 실려 있다. 능 구역의 입구에는 내삼문이 있으며 밖 에는 숭보재(崇報齋)와 외삼문, 홍전문이 있다. 세종 28년(1446)에 수로왕릉과 함께 보호 구역이 넓혀졌으며 <<김해읍지(金海邑誌)>>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에 도굴되었다고 기록 되어 있다. 그 후 인조 25년(1641)에 다시 수축하면서 현재의 능비와 상석 등을 설치하였 다고 한다. 1972년과 1981년에 건물과 능묘 주변을 보수하였다. 이 능은 왕릉에 비해서는 시설이 빈약한 편이고 수로왕비릉 이라고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 왔으므로 이것이 수로 왕릉과 비슷한 시기에 축조되었다고 한다면 그 내부구조는 토광묘(土壙墓) 또는 수혈식석 곽묘(竪穴式石槨墓)일 가능성이 높다. 묘역의 규모는 33,554㎡이다. - 22 -
  • 30.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칠산동고분군: 기념물 제98호 김해시의 중심에서 서남쪽으로 직선거리 약 4㎞ 거리에 있는 동북에서 서남으로 길게 뻗 은 칠산(七山)의 명법 1구 마을 뒷쪽 해발 100m 전후의 산마루를 중심으로 145.546㎡의 범위에 널리 분포해 있다. 1987·1988년의 2년간 2회에 걸쳐 경성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조 사되어 모두 122기의 분묘가 확인되었다. 유구는 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와 수혈식석실분 (竪穴式石室墳)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토광목관묘(土壙木棺墓), 횡구식석실분(橫口 式石室墳), 옹관묘(甕棺墓) 등의 묘제도 혼재되어 있다. 이 유적에 있어 각 묘제의 특징을 살펴보면 토광목곽묘는 이른 시기에는 바닥이 얕고 묘광이 넓음에 비해 연대가 내려올수 록 바닥이 깊어지고 묘광의 폭은 좁아지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수혈식석실분 (竪穴式石室墳)은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가 지하식이고 길이에 비해 폭이 넓고 천정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등의 특징이 있다. 천정돌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돌로 된 천 정이 아닌 나무로 된 천정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수혈식석실분 가운데서도 돌로 된 천정을 만들었던 묘제보다도 시기적으로 약간 앞서는 것으로 보인다. 칠산동고분 군은 시기적으로 4세기부터 6세기 대까지의 가야묘제나 유물의 변천 등을 파악할 수 있 는 중요한 유적의 하나로 낙동강 하류 역에 있어서 가야묘제가 토광목관묘 이후 수혈식 석실분, 횡구식석 실분, 횡혈식석실분으로 변화, 발전되어 갔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양동리고분군: 사적 제454호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가곡마을 뒷산에 위치하며, 가야고분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모든 형식의 가야고분 수백여기가 확인되었다. 1969년 중국경과 청동기가 수습되면서 알려져, 1984년 문화재연구소와 국립진주박물관이 발굴조사 하였으며, 1990년부터 1995년까지 동 의대학교박물관이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시행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162호분은 대 형의 목관묘로 널은 판상철부(板狀鐵斧)로 네 모서리를 깐 위에 안치되었고, 널 안에는 중국경. 방제경 9면이 피장자의 상체부에 주장되었고, 목곽 바로 안쪽에는 철복 등이 출 토되었다. 235호분도 7.6미터나 되는 대형 목관묘로 162호분과 비슷한 유물과 시기를 보 이며, 318호분과 함께 매장 뒤에 불을 지른 특이한 장법이 확인되었다. 322호분에서는 ' 西口宮鼎, 容一斗, 弁重十七斤七兩, 七'의 명문이 있는 청동제솥(靑銅鼎)이 출토되어, 기원 전 100년∼서기 100년 사이에 한(漢)에서 제작되고 3세기경에 부장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조사 성과로 가락국이 2세기 후반∼3세기경에 최고의 문화를 꽃피웠고 중국 또는 한군현(漢郡縣)이나 왜(倭)와의 활발한 교역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양동산성: 기념물 제91호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와 내삼리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332m의 산정에 위치하 - 23 -
  • 31.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고 있는 테뫼식의 돌로 쌓은 성이다. 성은 김해평야와 낙동강 하구를 조망할 수 있는 위 치에 있으며 주변의 양동리 고분, 유하리 조개더미와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석 축의 높이는 약 2.5m이며, 폭이 2.5m, 둘레가 약 800m이다. 남북의 두 성문에는 초석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우물자리가 있다. 성의 안팎에는 삼국시대 토기조각들이 많이 흩 어져 있다. 이 산성은 원래 문헌상에서는 가곡산성(歌谷山城)이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내 삼리와 양동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정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내삼산성(內三山城)이라고 도 불리며 지금은 위치한 동의 이름을 따서 양동산성 이라고 한다. <<문헌비고(文獻備 考)>> <여지고십오관방삼(與地考十五關防三)>에 의하면 ""가곡산성은 서쪽 20리에 있는 석축으로 둘레가 600척(尺)인데 지금은 폐하였다.""라고 한다. <<대동지지(大東地誌)>>에 는 우물 한 곳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하리패총: 기념물 제45호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 하손마을 외산의 남쪽 경사면 2곳에 있다. 유적의 일부는 전답으로 경작되면서 깎여 나갔으며, 굴 껍질을 주로 하는 패각이 노출되어 있다. 유하조개 더미에 서 채집되는 유물은 대합, 재첩, 굴, 소라 등의 패각과 적색, 갈색, 회색, 회흑색의 작은 토기편들이다. 유하리패총은 학술적인 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유적의 정확한 성격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유적의 잔재상태가 비교적 양호하여 이 지방의 선사문화 규명에 중요 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유적이다. 마현산성: 기념물 제150호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에 있는 해발 215m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 길이 약 600m, 높이 3m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김해도호부성지조에 마현성은 ‘과녀산성’이라 고도 부르며, 성 둘레는 1,300척, 우물 1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성을 쌓은 시기는 알 수 없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가락국 수로왕 때 쌓은 것이라고 하는데 확실하지 않 다. 성의 동쪽과 북쪽 일부는 천연 암벽으로 되어있고 서쪽 중앙부가 약간 안으로 밀려들 어와 전체가 누에고치 모양을 하고 있다. 현재 북쪽과 남쪽에 문터가 남아있다. 구산동백운대고분군: 도기념물 제223호 김해 구산동 백운대 고분은 1기의 봉토분좌편에 출입구가 있는 횡혈식의 주석실과 3기의 부속석곽이 함께 조성된 것으로 현실은 2차에 걸쳐 추가장이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고 분군은 이미 도굴되었지만 토기류, 철기류, 금동제품, 청동기류 등 58점의 유물이 출토되 어 6세기 후반 금관가야 멸망 후 이 지역묘제 및 유물편년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었다. - 24 -
  • 32.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파사석탑: 문화재자료 제227호 파사 석탑은 수로왕비릉 내 파사각에 보관되어 있으며 1996년 3월 11일 경남도 문화재자 료 제 227호로 지정되어있다. 현재는 6개의 석재만 남아 있는데, 조각이 기이하고 석재 자체에 희미한 붉은 무늬가 있다. 신농본초에 닭 벼슬의 피를 찍어서 엉겨 붙는지를 시험 했다는 것이 바로 이 탑이어서 신비를 더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금관성 파사 석탑조에 " 허왕후가 서역 아유타국에서 양친의 명을 받들어 바닷길로 동쪽 가락국으로 향했으나, 파 신의 노여움을 받아 향해하지 못하고 돌아와 부왕께 아뢰니 부왕이 이 탑을 싣고 가게 하여 편안히 바다를 건너올 수 있었다"고 한다. 방형의 4면 5층탑이 있었으나, 세월에 본 모습을 잃고 있다. 이탑은 동상동 호계천가의 호계사 폐사지에 있었는데 고종 10년(1873) 에 김해부사 정현석이 허비능 앞으로 옮겼다. 조각이 기이하고 희미한 붉은 무늬가 있으 며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돌이라고 한다. 능동고분군 능동고분군은 김해시와 창원시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720m의 용지봉에서 급경사를 이루 는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옛 부터 삼문리 고분군(三文里古墳群)이라고 알려져 왔던 곳이다. 마을의 이름은 능동(陵洞)인데 가락국(駕洛國)때의 왕릉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며, 가락국의 제4대 거질미왕(居叱彌王) 또는 이시품왕(伊尸品王)의 능(陵)이 이곳에 있다고 하는데 어느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고분군은 현재 능동 새 마을 회관의 뒤편 산에 형성되어 있는데, 고분 군 위에 1-20년생의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 어서 있다. 이 지역도 옛날부터 도굴이 심했던 지역이며, 지금도 많은 도굴갱과 개석이 노출되어 있다. 다호리유적: 사적 제327호 다호리 유적은 동읍 다호리 마을 뒷전의 나지막한 구릉과 주남저수지로 이어지는 저습한 평지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88년부터 92년 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의 7차의 발굴조사 결과 삼한시대부터 가야시대에 이르기까지 집중적으로 조성된 집단묘역임이 밝혀졌다. 특히 기 원전 1세기경의 목관묘에서 철제 무기와 농기구류 각종 용기류에서 붓에 이르기까지 다 양한 종류의 칠기가 출토되었으며 성운경, 오수전등의 중국 한나라 계통의 유물로 출토되 어 삼한시대의 문화상을 밝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주목된다. 발굴조사에서 5세기말∼7세기 대의 삼국시대 토기가 출토되었다. 이중 B1호의 주구 내에서 출토된 가형토기는 고상식 의 맞배지붕으로 추정되는데, 처마, 서까래, 창틀 등이 표현된 희귀한 예이다. 대형봉토분 과 B27호 제사유구에서는 대가야계의 토기들도 출토되어 고령지역과의 교류상, 세력권 등을 파악하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이러한 토기류 외에 화살촉, 도자, 꺽쇠 등의 철기 - 25 -
  • 33.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류와 금제세환이식, 경식 등의 장신구류도 출토되었다. 용원유적 용원유적은 용원초등학교 맞은 편 독립 구릉의 상부 평탄면과 인접하는 경사면에 위치하 는 집락지이다.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는데 50기의 유구를 발굴하였다. 그 가운 데 주거지나 건물지로 추정되는 것이 21기 있었는데, 그 중 평면 원형에 가까운 것 16기, 방형의 것 5기, 주혈만 남긴 고상가옥(高床家屋)으로 추정되는 것이 4기 있다. 출토유물들 은 적갈색연질토기편(赤褐色軟質土器片)과 회청색연질토기편(灰靑色軟質土器片)·회청색경 질토기편(灰靑色硬質土器片) 등의 토기편이 대부분이며, 기타 방추차(紡錘車)·어망추(漁網 錘) 등의 토제품, 지석(砥石) 등의 석기, 소도자(小刀子) 등의 철기가 주거지 안쪽에서 출 토되었으나 대부분은 주거지 폐기 후 주변에 있던 것이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여러 상 황을 종합해 볼 때 용원 수혈주거지는 규모이나 형태, 구조, 분포상태 등이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특징과 유사하며, 사회적으로는 비교적 안정된 세력집단이 생활한 것으로 추정 된다. 특히 출토된 유물의 특징이 원삼국시대 문화내용이 주종을 이르지만, 그 중에서도 농경보다는 어로(漁撈) 중심의 생활구조를 가지면서 그 중에는 일본과도 교류한 흔적이 남아있어 주목된다. 2) 아라가야권 문화유적 도항리․말산리고분군: 사적 제84.85호 함안의 중심지로서 가야읍의 서쪽 남북으로 뻗은 가늘고 긴 구릉 위에 외형상 원형 봉토 분 50여기가 연이어 분포하고 있는데, 이 고분군은 행정구역상 도항리 고분군과 말산리 고분군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이 일대에는 약 113여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는데 도항리 고 분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말산리에 포함되는 고분은 봉분이 뚜렷한 7기의 고분(봉분이 뚜렷하지 않는 것이 5기) 이다. 현재 가야읍 아라공원내에 있는 외형이 가장 큰 무덤(당 시 34호, 지금 4 호)이 1971년 일본인 금서룡(今西龍)에 의해 발굴 조사되어 무덤 내부 구 조와 성격이 알려져 있다. 조사내용에 의하면 봉토의 높이가 약 10m, 무덤의 밑지름이 약 43m이고 내부에는 석실을 만들어 시체를 위에서 내려놓고 여러 개의 판석을 잇대어 덮어 만드는 수혈식 석실묘(竪穴式石室墓)임이 밝혀졌다. 석실은 길이 약10m, 너비 1.6m, 높이 1.7m의 규모로 석실의 네 벽은 모두 할석을 사용하여 쌓아 올렸다. 특이한 것은 동 서의 긴 벽에 각 2개소, 북쪽의 짧은 벽에 1개소 등, 모두 5개소에 작은 벽장을 마련하였 다. 유물은 남아 있지 않아 벽장의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등잔을 올려놓아 무덤 내 부를 밝히는 등감으로 보인다. 벽에는 회칠을 하지 않았으나 못이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 26 -
  • 34.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그림을 그려 놓은 커튼 형태의 채화장막(彩畵帳幕)을 드리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석실 내 에서는 토기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 수습되었다. 대표적인 출토유물로는 거륜식(車 輪式)토기·행엽(杏葉) · 조형(鳥形) 토기 등이 있다. 윤외리고분군 법수 초등학교 북서편 능선의 정선대지와 그 남쪽 완경사면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1991 년 윤외리 야산일대에서 가야시대 토광묘를 도굴하던 범인이 검거됨에 따라 외부에 알려 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창원문화재연구소에서는 함안 분지 외곽의 가야 토광묘문화에 대 한 이해를 위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1992년) 6기의 토광묘를 발굴하였다. 특히 한 토광 묘에서는 묘광의 내부에 파기(破器)한 상태로 토기를 매납한 예가 확인되었는데 이는 당 시의 장송의례와 관련된 행위의 반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통형 고배, 단경호, 노형기대, 파배 등 토기류 7종 42점과 부(斧), 촉(鏃)의 철기류 3종 5 점으로 총 47점이다. 이밖에 발굴 전 수습된 50여점의 유물 중에는 상면에 점렬문(點列 文), 방사상거치선문(放射狀鋸齒線文)이 음각된 "파오"형의 이형토제 뚜껑들이 다수 채집 되었는데 이는 인근의 의령 예둔리 고분군(宜寧禮屯里古墳群)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남문외고분군: 기념물 제226호 남문외고분군은 도항리고분군의 서편에 위치한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한 삼국시대 대형 분묘군이다. 이 고분군은 일제시대부터 말이산고분군으로 알려졌으며, 현재까지 학술조사 는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 도굴이 심하게 진행되어 대형석곽묘가 드러나 있고, 개석의 일 부는 부락의 표지석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낮은 능선의 상부에 직경 25m 내외의 대형 봉토분 24기가 조성되어있고, 주변부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채집된 유물들은 5세기 후 반 대에 함안지역에서 크게 유행한 유개식고배와 발형기대편들이다. 고분군이 위치한 구 릉은 오차등이라고도 불리며 이곳은 아라왕궁지를 보호하는 토성역할을 하고 있다. 고분 군의 남쪽으로는 남문, 남문외, 대문천 등 문과 관련된 지명이 많아 이 지역 일대가 전아 라왕궁지로 전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안라왕궁지 가야산 북편에 위치한 삼봉산(해발302.2m)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어 내려오는 낮은 구릉 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전방으로는 남쪽의 피수리에서 북으로 흘러드는 관동천과 서쪽에서 흘러드는 대문천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 아라왕궁지에 대한 문헌기록으로는 함주지(咸州誌)의 기록이 가장 오래된 기록인데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기록 은 오늘날에 있어서 왕궁지의 위치를 지리적으로 고증하는 데 매우 유익한 정보를 제공 - 27 -
  • 35.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해 주고 있다. 가야국의 옛터는 부존정(扶尊亭)의 북쪽에 있다고 했는데 함주지의 기록과 여러 정황으로 보아 부존정의 위치는 지금의 괘안 뒷산(해발 79m)인듯 하므로 가야동은 부존정의 북쪽에 해당된다. 일제시대 때 함안 지방을 직접 조사한 이마니시류(今西龍)는 왕궁지의 후보지를 7개소로 들고4) 그 중 제일 유력한 곳으로서 가야리 가야동을 꼽고 있다. 아라왕궁지로 생각되는 가야동(작은 개애재 지역)은 1921년경 함안 둘안 제방(堤防) 을 축조할 때 일본인들이 인근의 대문천(大門川)의 수로를 변경시키기 위해 새로운 제방 을 만들면서 이 곳 구릉의 흙을 약 2m 이상 파내어 마을 앞 제방을 쌓았는데 이로 인해 이곳의 지형 자체가 변형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노인들에 의하면 옛 가야동 자좌오행(子 坐午行)의 자리가 왕궁지라고 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는 상태이다. 왕궁지 주위에서 채집 된 유물들은 토기편과 기와들이 대부분이지만 완전한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은 없 다. 토기편 중에는 가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들이 몇 점 있으므로 더욱 더 아라국의 왕궁지일 가능성을 높게 하고 있다. 성산산성: 사적 제67호 함안읍 북서편에 위치한 성산(城山) 위에 축조된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북쪽은 평야에 임 하고 서북쪽에 봉산산성(蓬山山城), 동북쪽에 문암산성(門岩山城)과 동지산성(冬只山城), 동남쪽에는 함참산성(咸站山城)등이 호위하고 있다. 성벽(城壁)은 산위에 준선을 둘러서 석루(石壘)를 축조하였으며 길이는 약 1,400m에 달한다. 현재는 대부분 논, 밭으로 경작 되고 있다. 정문지(正門址)가 있으며 서쪽 성벽에도 또 하나의 문지(門址)로 추측되는 곳 이 잔존할 뿐 기타 시설물은 보이지 않는다. 이 성산산성(城山山城)은 일명 조남산성(造南 山城)이라 불리고 있으며, 한편 <<함안읍지(咸安邑誌)>>에 의하면 "가야국 구허(伽倻國舊 墟)"라 기록되어 있다. 산성의 형식은 삼국시대의 유형을 따르고 있고 산 아래 낮은 구릉 위에 동시대의 고분들이 군집하고 있어 가야의 유적으로 판단된다. 봉산산성 유원에서 장암으로 향하는 길모퉁이인 장암교 서북쪽 구릉의 정상 부위에 형성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대정육년도 고적조사보고(大正六年度古蹟調査報告)>>에는 유원리산성 (柳原里山城)이라하여 석축성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현재 이 성을 칠원산성(漆原山城) 이라 부르고 있으나 적절한 명칭은 못된다고 생각한다. 성이 입지한 곳은 자양산(紫陽山) (해발 401.8m)이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의 정상부에 해당되며 북쪽으로 어령(於嶺)·도둑고 개를 사이에 두고 안곡산성(安谷山城)과 대치해 있다. 이는 안곡산성과의 조응관계를 시 사 하며 성의 방비목적이 어령(於嶺)·도둑고개의 차단에 두어졌음을 알게 한다. 성의 평 면형은 능선의 길이 방향을 따른 장타원형이다. 성벽의 축조는 산의 경사면에 의지한 내 - 28 -
  • 36.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탁(內托)과 협축(夾築)을 혼용하였으나 내탁식의 편축 위주이다. 석재는 주변 야산에서 쉽 게 구해지는 할석들이다. 현재 성은 북쪽사면에 대규모 암석 채취 공장이 입주하여 능선 종단면의 절반을 훼손한 상태이다. 가음정동고분군: 기념물 제126호 가음정동 산 15번지 일대의 넓은 범위에 위치한다. 이 곳 소나무밭의 곳곳에 봉분(封墳) 과 도굴구덩이, 석관묘(石棺墓)에서 파손된 석재, 토기편 등이 널려져 있어 고분군임을 알 수 있다. 이 유적에 대한 지표조사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에 걸쳐 성산패총을 조사하면서 가음정동유적이 지표조사 되었고, 1981년 이후 부터는 창원대학교박물관에서 수시로 지표조사 하였다. 유적 발굴 조사는 1990년 11월 20일부터 60일간에 걸쳐 창원문 화재연구소에 의해서 1차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당시 4세기대의 토광목곽묘 5기, 6세기대 의 석곽묘, 석실분, 옹관묘가 조사되었다. 봉토분은 동일 봉분내에 주피장자의 묘인 석실 분외 소형석곽묘 및 옹관이 매장된 다곽식(多槨式) 묘제로 되어 있었다. 출토 유물은 각 종 고배류와 단경호, 장경호와 같은 호형토기(壺形土器) 등과 화살촉, 도끼, 손칼 등의 철 기류등 일반적인 유물이 대부분이다. 가음정동 고분유적은 가야시대 이후의 한정된 유구 만 있는 것을 보여 지나 이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지석묘, 석관묘 등으로 보아 구릉 남서편 하단부인 창원남중학교 일대에는 삼한시대의 분묘유구가 분포 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동리고분군: 기념물 제189호 중동리고분군은 의령읍을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흐르는 남산천 남쪽에 솟아 있는 남 산(해발320.8m)의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직경 15〜20m 정도의 대형 봉토분 4기가 경 사면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1호분은 횡혈식석곽묘이며, 단벽장벽의 길이의 비율이 1:6.9에 달하는 극단적인 세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야의 늦은 시기 에 축조된 고분이라 추정된다. 도굴갱내에서는 1점의 개와 2점의 고배편이 발견되었는데 개는 석곽내의 교란토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본 고분의 매납품일 가능성이 높지만 2점 의 고배편들은 석곽 밖의 봉분(封墳)의 도굴갱내에서 발견되었으므로 1호분의 부장품이었 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출토유물 중에는 장식마구(裝飾馬具)도 있다. 조선시대의 민묘에 의해 태반이 파괴되었으나 다행히 남아있는 부분을 참고로 복원하면, 일반적인 가야의 소 형 횡혈식석곽묘와는 달리 석곽 안에 부장유물을 포함하지 않은 석곽이 만들어져 있는 다소 특이한 구조를 가진 유구이다. 출토되는 토기는 모두 도질토기로서 개배와 고배, 장 경호, 컵형토기, 대호소호이다. - 29 -
  • 37.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예둔리고분군 의령군 남강변에 형성된 능선의 해발 30-70m 정도 되는 남사면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군은 1992년 경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 한 유적으로 목곽묘, 석곽묘, 토광묘 61기가 조사되어 이곳에서 고식 경질토기를 비롯한 각종의 토기류, 집게와 망치를 비롯한 철기류가 500여점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4세기에서 6세기에 형성되었으며 함안과 진주 등 여러 지역의 토기문화가 함께 나타나고 있어 당시의 대외 문화교류상을 잘 반영해 주 고 있다. 이 유적은 수장층의 고분군이 아닌 일반인의 분묘로서 의령읍 주변의 고총고분 이 분포하는 고분군과는 뚜렷한 계층성을 보여주고 있다. 운곡리고분군: 기념물 제222호 의령에서 창녕과 합천방향으로 연결되는 20번국도에 이웃해 있으며 삼봉산(해발199.6m) 에서 남쪽으로 뻗은 전주 최씨(全州崔氏) 묘역이 있는 구릉의 남서쪽 사면에 위치한다. 유적의 앞으로는 주변 골짜기에 형성된 좁은 들이 운곡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고분군 은 운곡 뒷산이 남동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설상대지(舌狀臺地)의 경사가 완만한 남서쪽 사면 저지에 분포한다. 산발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의 전언에 의하면 10년 전에 도굴되었다 고 하며 능선의 저지에서 황토를 파낼 때도 토기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유적 내에는 도굴에 의한 파괴분의 흔적이나 유물은 잘 관찰되지 않으며 점토 채취장 부근에 서 파괴 석곽으로 추정되는 유구 1기가 확인되었을 뿐이다. 석곽은 능선의 길이 방향을 따라 소형 할석을 가로뉘어쌓기식으로 축조한 것이며 한쪽 장벽만 남아 있다. 방위는 북 서-남동이고 석곽 현재 길이는1.8m, 깊이 0.6m이다. 호미산성: 기념물 제101호 진주에서 남지(南旨)로 사행하는 남강 북쪽에 위치한 호미산(해발98.9m)정상부에 위치하 며, 정곡면 죽전리(竹田里)에 있는 호미산(虎尾山)의 정상 9부 능선을 따라 잡석을 이용하 여 축조한 테뫼식 산성으로 약 200m 가량의 토성 흔적이 현재 남아 있다. 현재 성 안팎 이 개간되어 밭으로 사용되면서 많이 훼손되었는데, 성은 이 곳 남강변의 단애가 자연성 곽으로서 알맞은 지형을 백분 활용하였다. 이 산성의 축성연대는 진동고개에 있는 고분군 과도 관계가 있을 듯 하며 벽화산성(碧華山城)과도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남강유역인 죽 전리의 진동고개와 백곡리 외곡동 주변에는 청동기시대에 이어 가야 시대의 고분군이 밀 집하여 분포하고 있다. 주변 고분군의 위치나 주변에서 수습된 토기조각으로 미루어 보아 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산성은 또한 임진왜란 당시 망우당(忘憂堂) 곽재 우(郭再祐)장군의 전적지라고 전한다. 선조 25년 (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는 4 월 22일 정곡면과 이웃한 유곡면 세간리 고향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홍의(紅 - 30 -
  • 38.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衣)를 입고 의병을 지휘하여 의령, 창녕지방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전공을 세워 홍의장군 (紅衣將軍)이라고 불렸으며 정유재란 때에도 그의 휘하에 모여든 군민을 이끌고 유격전으 로 이 지방을 끝까지 지켰는데 지금의 의령, 창령, 현풍지방에 있는 산성들은 대개 이때 수축한 것으로 되어 있다. 죽전리고분군: 기념물 제 100호 정곡면(正谷面) 호미산성에 위치하며 고분은 진등고개에서 동쪽으로 남강을 따라 형성된 해발 100m 정도의 능선 정상부에 열을 이루어 수기가 분포한다. 대부분 도굴로 크게 훼 손된 상태이며 수목에 덮여 봉분의 외형도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에 총 몇 기가 있었는지 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 수 없다. 봉분은 직경 10-15m 정도로서 내부 주체는 석곽을 이루 고 있는데, 수혈식과 횡혈식이 섞여 있다. 고분의 구조와 수습자료를 통해서 볼 때 이 고 분군은 6세기 대에 주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소가야권 문화유적 양전고분군 신등면 소재지에서 단계교를 건너면 양전마을이 위치하고 이 마을 뒷편의 야트막한 야산 전체에 석곽·석실분 등 다양한 고분이 밀집 분포한다. 고분군 앞은 두 개의 하천이 합류 하면서 형성한 넓은 들이 펼쳐진다. 양전고분군(陽前古墳群)은 대부분 봉토가 유실되었으 며 최근까지도 도굴이 심하게 자행되어 처참할 정도로 파괴가 심하다. 대략 200여기 정도 로 추산되며 산청군내에서는 수량면에서 가장 대규모의 고분군이다. 무수한 토기편이 산 재해 있으며 대옹편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 특이하다. 다양한 종류의 토기편을 수습했으며 유적 및 수습된 토기편으로 보아 5, 6세기의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생초고분군: 기념물 제7호 생초면 소재지 서편 산록에 위치한다. 산정의 대형분을 중심으로 동남 능선에는 대형분, 남북 능선에는 중·소형분의 고분 100여기가 밀집 분포한다. 산정에 위치한 고분의 경우 봉토 직경이 30m, 개석 상부에 쌓인 높이만도 4m에 달하는 대형분이며 봉토가 절개되어 파헤쳐지는 피해를 입고 있다. 주변에서는 고배, 기대편 등의 토기편과 대도편 등의 철기 류들이 수습되었다. 북쪽 능선에 위치한 1기의 고분의 경우는 도굴갱으로 석실 내부를 확 인할 수 있었으며 정방형 석실이다. 석실 내부에서 보았을 때 연도가 우편재한 횡혈식석 실분이다. 생초고분군은 수혈식과 횡혈식석실분이 혼재한 6세기의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 31 -
  • 39.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추정된다. 관지고분군 생초면 소재지에서 3번 국도를 따라 산청읍 방면으로 약 2.5km쯤 가면, 생림교(生林橋)가 나오고 이 다리 좌측으로 월곡천(月谷川)이 흐른다. 월곡천변 소로를 따라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서 월곡교(月谷橋)를 건너면 관지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고분군은 관지마을 뒷산 에 위치한다. 산정부에서 시작하여 남향한 능선을 따라 봉토 직경 10- 20m, 높이 3-5m 규모의 중형 고분 약 50여기가 분포한다. 대부분 도굴이 심하게 되었으며 능선 하단부에 위치한 고분은 개간으로 거의 파괴된 상태이다. 도굴에 의해 노출된 일부 고분의 경우 주·부곽식 고분으로 보이며 벽석에 사용된 석재는 천석도 일부 보이나 대부분이 할석을 이용하였다. 고분군 앞은 산지에 둘러싸인 소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인근의 생초 고분군과 함께 산청군의 대규모 고분군을 이루고 있다. 노출된 유구 외 수습된 유물들로 미루어 보 아 5, 6세기의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수정봉․옥봉고분군: 기념물 제 1호 진주시의 동쪽에 있는 진주 향교의 맞은편에는 해발 64.7m인 남북 2개의 봉우리를 가진 독립 구릉인 남봉(南峰)이 있다. 이 구릉의 정상부에는 대형의 봉토를 가진 7기의 고분이 일정한 사이를 두고 군(群)을 이루며 분포되어 있었으며 이 봉우리가 일반적으로 '수정봉 (水精峰)', '옥봉(玉峰)'으로 불리어진다. 원래 대형의 봉토분 7기가 분포되어 있던 이 고분 군 일대는 일제하 이래 고분의 파괴가 진행 되어 지금은 단 2기의 고분만이 남아있을 뿐 이다. 이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1910년대에 일인학자 관야정(關野貞)에 의해 이루어진 후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報)>>에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이것이 수정봉 2, 3호와 옥봉 7 호분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서 출토되었던 유물의 대부분을 일본 동경대학으로 가져갔으 며 최근에 소개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의하면 수정봉 2호분은 할석으로 쌓은 석실분 으로 연도는 중앙에 있으며 현실의 규모는 길이 5.32m, 너비 1.76m, 높이 2.3m이고 석실 안에서 토기, 가락바퀴, 구슬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철기들이 출토되었다. 수정봉 3호분은 원분으로서 배부 주체 는 2호분과 같이 횡혈식 석실분으로 연도는 남벽의 중앙에 만들어 졌으며, 석실의 규모는 2호실과 거의 같다. 석실 내에서 출토된 유물은 쇠칼, 창과 함께 많은 철기류들이다. 옥봉 7호분은 봉분의 모습이나 규모를 알 수 없으나 수정봉 2, 3호분 과 같은 횡혈식 석실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석실내에는 철제의 칼, 도끼, 재갈, 등자를 비롯하여 몇점의 토기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자료들로 보아 6세기 전반대에 축조된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무덤의 구조형식과 출토유물로 보아서 백제 와 대가야와의 관계 규명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진주지역 일대의 가야 - 32 -
  • 40.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문화 양상을 보여 주고 있는 중요한 고분군이라고 판단된다. 원당고분군 원당고분군은 남강의 지류인 반성천 남쪽에 형성되어 있는 매화산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내린 야산의 서북쪽 사면에 위치한다. 1호분은 저경이 약 15m 정도 되는 거대한 고분이 나 일제 시에 도굴되었다. 현재는 남동편으로 연도가 뚫려 있어서 고분의 내부가 노출되 어 있는데 내부에는 큰 현실이 있는 석실고분이다. 현실의 길이는 5.25m, 폭 2.8m, 높이 2.8m이며 개석의 길이는 1.5m, 연도는 길이 0.33m, 폭 1.5m, 높이 1.3m 정도 되며 고분 의 총고는 4m 정도이다. 1호분 아래쪽으로 같은 유형의 2호분이 있으나 정상부 부분은 역시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봉분 주변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둘러져 있으며 크기는 1호분 과 동일하다. 이 고분 주변에서 횡·종선이 교차된 타날문 회백색 연질 토기편, 회청색 경 질토기편, 고배편 등이 수습되었다. 송학동고분군: 사적 제 119호 고성읍의 북동쪽 야산인 높이 30m의 무기산(舞妓山)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데 제1고분군 과 제2고분군으로 나뉘어 불리고 있다. 무기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는 1호분은 근년에 전방후원분논쟁(前方後圓墳論爭)을 불러일으킨 고분이기도 하다. 이 고분은 1914년에 일 본인 조거룡장(鳥居龍藏)에 의해 조사된 바 있으나, 1986년동의 측량에 의하여 전장(前長) 이 66m, 후원부(後圓部)가 36.6m이고 높이는 6.4m이며 전방부는 길이 29.4m이고 높이는 5m로 알려졌다. 이 봉토분은 천정 개석의 일부가 노출되어 있어 내부를 엿볼 수 있는데 하부구조는 길이가 10m 정도의 석실로 장축의 방향은 남북으로 추정된다. 이 부근에는 송학동 고분군 외에도 마주 보고 있는 기월리(基月里)고분과 남동쪽의 율대리(栗垈里) 고 분군이 있으며,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 의하면 고성읍 무량리(武良里)와 대가 면(大可面) 송계리(松溪里)에서도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고 한다. 이들 고적군 의 입지조건을 살펴보면 대체로 평지 주변의 낮은 언덕이나 야산 혹은 산기슭에 분포되 어 있는데 이는 부산, 김해 등 동부 경남의 가야 고분 입지조건과 닮은 양상을 보이고 있 다. 출토된 토기와 묘제를 통해 볼 때 대개 6세기 중엽 무렵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인 다. 내산리고분군: 사적 제 120호 내산리고분군은 남쪽으로 해발 419.5m의 수양산, 북쪽으로는 해발 263m의 장군산과 해발 271m의 노인산으로 둘러싸인 야트막한 야산에 위치한다. 성산(城山)을 배경으로 하여 대 형 고분 36기가 흩어져 있으나 지정문화재로 보존되어 있다. 해방이전에는 1백여 기에 달 하는 크고 작은 고분들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주변이 논밭으로 개간되면서 많이 훼손되 - 33 -
  • 41. 경남의 역사문화 테마관광 구상 기초 자료집 어 현재는 대형분만 남아 있다. 또한 남아 있는 대부분의 고분들도 민족항쟁기에 일본인 들에 의해 모두 도굴되어 겨우 유구만이 보존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성은 해안지대와 평 야에 청동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에 이르는 각종 유적들이 밀집되어 있어 이 지방이 일 찍부터 농경문화가 발달하였던 곳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문헌을 통해서 볼 때 <<삼국 지(三國志)>>의 변진 12국 가운데 하나인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 그리고 <<삼국사기(三 國史記)>>에 보이는 포상팔국(浦上八國) 가운데의 고자국(古自國)이 이 지역으로 파악된 다. 이들 세력이 기반이 되어 삼국시대에는 6가야의 하나인 소가야로 발전하였다고 생각 된다. 외형상에 나타난 유규의 특징은 할석(割石)으로 축조된 장방형의 수혈식석곽묘(竪穴 式石槨墓, 구덩식 돌덧널무덤)이며 주변에서 채집된 토기조각을 조사하여 본 결과 6세기 를 전후한 시기의 것으로 추측된다. 서남쪽에는 같은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양촌리 고분 군(陽村里古墳群)이 이 유적에 연결되어 있으며 그 정상에는 둘레가 약 700m 정도되는 작은 산성이 있다. 또한 인접한 장기리(章基里)에도 성벽의 높이가 5.6m, 둘레가 350m 인 철마산성(鐵馬山城)이 약 250m 가량 무너진 상태로 남아 있다. 삼가고분군: 기념물 제 8호 삼가고분군은 삼가면에서 합천쪽으로 국도 33호선을 따라 1km쯤 떨어진 도로변의 북서 쪽으로 뻗어 내린 세 능선에 분포하고 있다. 산기슭에서 해발 190m에 이르기까지 등선 마루의 좌우에는 대형 봉토군이 일정한 사이를 두고 군집하고 있는데, 대체로 지름 15∼ 30m 정도의 대·소형의 봉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분군 가장 남쪽 끝은 도굴되어 가야 토기 편들이 흩어져 있으며, 뚜렷한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토광묘들이 분포하는 것으 로 추정된다. 이 유적에 대해서는 1981년 진주〜합천간 국도 확장공사로 인해 그 일부가 파괴되어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총 9기의 고분이 발굴 조사되었다. 이들은 모두 봉분 을 가진 것으로 내부주체는 수혈식 석곽 및 횡혈식 석실의 구조와 형식을 갖춘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까지의 조사를 토대로 보면 이 유적에 있어서 유구는 이른 시기의 토광 묘를 비롯하여 수혈식 석곽묘, 횡혈식 석실분이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그 연대는 4세기 초부터 가야가 신라에 정복당한 6세기 중엽까지일 것으로 추측된다. 4) 대가야권 문화유적 옥전고분군: 사적 제 326호 옥전고분군은 합천과 거창지역을 유역권으로 하는 황강(黃江)이 낙동강 본류와 합쳐지는 하류의 관문지역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몇 개의 능선에 나누어져 분포하고 있으며 전체로 는 1,000 여기에 달한다.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5차에 걸쳐 발굴 - 34 -
  • 42. 제3장 테마별 관련 유적 한 조사보고에 따르면 지표조사에 의한 분포상태는 소형 석곽묘가 전체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반면, 이른 시기의 목곽묘는 능선의 정상부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 주로 분포하고 고총 고분은 서남쪽의 고개마루 건너편의 능선에 26기가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 다. 조사된 고총 고분과는 달리 횡혈식 석실분을 내부주체로 하는 고총 고분이 능선의 동 북 반대쪽의 다른 능선에도 형성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도로의 확장공사와 수로공사 때에 다수의 토기가 출토되었다고 하며 압형토기도 이곳 능선의 말단부에서 수습되어 신 고 되었다. 옥전 고분군의 묘제는 목곽묘→대형 수혈식 석곽묘→고총 고분(소형 석곽묘와 같은 시기)으로 변화하였으며, 목곽묘 단계의 지표유물은 무개무투창고배이고 대형 수혈 식 석곽묘 단계의 지표유물은 유개유투창고배이며, 고총 단계의 지표유물은 개배와 유개 식장경호 이것들이 부장되기 시작하는 시기의 것들이다. 이들 유적은 유구의 구조에 따른 분포와 구획이 이루어지고 동시에 유력계층으로 추정되는 묘역의 설정도 일정한 규칙성 을 나타내어 4세기에서 5세기 중엽까지는 능선 정상부를 중심으로 목곽묘가 분포하고 있 으며, 5세기 중엽 이후부터 묘역은 서쪽의 고개마루 건너편 능선으로 이동하여 축조하였 다. 6세기 중반부터는 횡혈식 석실분들 이 능선의 경사진 곳에 한 두 기씩 축조되는 현상 을 보인다. 대야산성: 기념물 제 133호 대야산성은 해발 약 90m 취적산 쌍봉 동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 황강과 접해 있다. 삼 국시대 백제와의 접경지대인 신라 서부지방의 요지로서 642년 (신라 진덕여왕11년, 백제 의자왕 2년)에 백제장군 윤충(允忠)의 공격으로 함락된 적이 있고 이때에 도독(都督) 김품 석(金品釋)과 그 부인(김춘추의 딸)도 죽어 신라는 한때 큰 타격을 받고 김춘추를 고구려 에 보내어 구원을 청하기도 했다. 또한 이 싸움에서 김춘추는 딸의 죽음을 듣고 백제를 멸망시켜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하며 경명왕(920)때에는 후백제 견훤(甄萱) 에게 다시 함락되기도 했다. 강변에 면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토석혼축 했으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창리고분군 창리 고분군은 황강 서안의 금성산에서 뻗어 내린 북쪽 주능선 해발 145〜185m의 서쪽 가지 구릉사면의 강을 조망하는 지점에 위치하며, 이곳에서 발견되는 묘제는 크게 단곽분 과 다곽분으로 나눌 수 있고 내부 구조에 따라 석곽묘, 석관묘, 석실분, 옹관묘로 세분할 수 있다. 고분의 봉토는 도굴로 훼손되어 내부의 석조유구가 지상에 노출되었거나 또는 부분적으로 판축된 봉토의 일부가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장축은 남북향이 동서향보다 우세한 경향을 보이지만 봉계리 고분군은 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출토된 유물은 토 - 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