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이그나이트 나주 - 8.다와도로지아비르메드(나주시 거주하는 이주여성 목소리)daesung choi
안녕하세요, 저는 몽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입니다. 한국에 와서 나주에 산지 9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와서 한국어 배우고, 한국 문화 적응 하느라 힘들었습니다. 그러지만 더불어 사는 나주시민들의 덕분에 힘든 부분을 이끌어 내여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나주시민으로서 같은 이주여성들을 대신하여 고마운 목소리를 내고자하여 신청서를 보냅니다.
학교에는 이름이 아닌 번호로 호명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느 해 마지막 수업시간, 전혀 낯이 익지 않는 아이가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너 전학 왔니?”라고 묻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지요. 그날의 충격이 저로 하여금 차별이라는 룰로 운영되는 학교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는 기술을 익히게 되면서 소통의 달인이란 과분한 별명도 얻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저는 제가 좋아집니다.
세바시 15분 이레샤 다문화가정봉사단 톡투미 대표 - Talk to me:당신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해주세요cbs15min
저는 스리랑카 사람, 페라라 헬레세게 이레샤 딜라니라고 합니다. 저는 지난 2000년 의상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한국 출장 올 때마다 묵었던 민박집 장남과 눈이 맞아 한국으로 시집오게 됐습니다. 지금은 Talk to Me 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어 저와 같은 이주민 여성들을 돕고 있습니다. 이주민 여성들이 한국생활에 잘 적응하고, 자신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지금 제 삶의 큰 보람과 행복입니다. 그 기쁨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6. 1 이제는 파주
결혼이민자에게 한국어 교육 - 파주다문화가정지원센터
캄보디아 3 명 일본 3 명 필리핀 4 명 중국 9 명 베트남 3 명 태국 1 명
카자흐스탄 1 명
사할린동포 영구귀국자 한국어교육 - 파주시청 교육지원과
23 명
소외계층의 한국어 문해교육 - 모집중
결혼 이주 여성 사할린 동포
7. 2 한국어 교육의 전략
기본방향
결혼 사할린 한국인의
이주여성들의 동포들의 문해교육
교육 교육
8. 3 운영 프로그램
한국어 회화
사할린 동포
발음교정
어휘학습
결혼이주 여성 쓰기학습
문화체험
주3회 한국요리학습
월 수 금 6 시간
노래실은 고향생각
주2회
화 목 4 시간
9. 4 학습교재
국립국어원 발행 평생교육원 발행 자작자료
여성결혼이민자와 소망의 나무 . 동요 트롯트 악보
함께하는 한국어 3 배움의 나무 . 및 시사성 프린트
지혜의 나무 교재
19. 13 개선사항
결혼이주여성의 한국어교육 의무화
초급 . 중급 . 고급 단계별 이수 - 국적 취득의 필수 요건
한국어교육의 일원화 - 교육기관의 일원화
교재의 개발 - 좀 더 쉽고 재미있게
20. < 문화체험 > < 결혼이주여성 한국어교육 >
< 체험학습 > < 외국인 장기자랑 최우수 >
21.
22. 넷째 딸의 한국생활
문산 중급반 마리테스 ( 한유진 )
어언간 한국에 첫발을 디딘지 벌써 만 4 년이 다가오고 있군요 !
빠르다 생각하면 한 없이 빠른 시간이었고 반 대로 생각하면 무지하게 더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시 간이 내 인생의 절반을 경험한 것 같아요
고향에 가고 싶어 울기도 많이 울었고 꿈에서도 보고 싶은 부모님과 가족들이 그 리워서 하얗 기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
고향을 떠나 올 때 기대 반 두려움이 반 이었어요
필리핀에서 저의 가족은 대가족이었으며 부모님 그 리고 저희 형제자매가 자그만치 10 남매거든요
한국 속담 중에
“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한 것 이 우리가족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집안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아 먹을 것도 풍부하지 않고 환경도 빈약 합니다 .
평소 주변에 알고 지내던 한국인 아주머니가 있었는 데 그분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
저하 고는 나이차이가 20 살이나 나지만 서로의 믿 음과 사랑이 있다면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고 지금도 믿고 있 습니다 .
고향을 떠나올 때는 설레임과 희망보다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운 적도 많습니다 .
부모님과 언니동생들을 작별하 고 대한민국에 첫발을 딛었습니다 .
인천공항을 떠나 도심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본 한국 의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
지금부터시작이다 !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야지 하며 다짐을 했습니다 .
그러나 적응하기란 너무 어려웠습니다 .
음식도 맞지 않고 배알이도 많이 하고 모든 게 어리벙벙하였습니다 .
음식도 문제지만 언어가 어려워 손짓발짓 다하며 의사소통을 하였습니다 .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도 되어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귀엽고 천사 같은 아들도 태어나고 얼마 전에는 정식으 로 한 국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
성과 이름도 예쁜 “한 유진”이 되었습니다 .
그러나 슬픈 건 꿈에도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고국에는 아직도 한 번도 가질 못했습니다 .
언젠가는 갈 수가 있겠지요 ?
열심히 지내고 즐겁게 생활하다보면 그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가 족과 나를 아는 모든 분께 감 사드리 며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