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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 주년 기념 포럼
REFORMATION 500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아프리카공부모임
모든민족신학교
아프리카선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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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 주년 기념 포럼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기간: 2017 년 10 월 27~28 일
장소: 모든민족신학교 (우간다 캄팔라)
아프리카공부모임
모든민족신학교
아프리카선교대학
아프리카음악대학(특별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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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머리말
종교개혁 500 주년을 기념할 이유가 매우 많다. 김성환 선교사가 이 기념포
럼의 머리말을 써달라고 부탁할 때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는 김 박사를
2000 년초부터 알고 있는데 아프리카대륙에서 선교를 위해 측정할 수 없는
열정과 헌신으로 우간다에서 일하는 선교사이다. 그는 건전한 성경 해석과
적용을 위해 마찬가지로 열정적이다. 그 이후로 우리는 “선교의 동반자”가
되었다. 본인이 마케레레대학교에서 은퇴한 이후로 그러한 관계 속에서 계
속 동역하고 있다. 나는 아프리카선교대학(Africa School of Intercultural
Studies)에서 그와 함께 신학을 가르친다.
마틴 루터가 로마카톨릭교회의 교리와 행습을 내부로부터 개혁하려
고 의도했지만 결국은 분리를 가져왔다. 1517 년 10 월 31 일에 마틴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교회문에 95 개조를 못질했다. 이렇게 해서 성경적이 아니라
고 그가 간주한 면죄부판매, 연옥과 다른 행위에 대한 교리정책에 대해 로
마카톨릭교회에 공식적으로 도전을 가했다. 로마카톨릭교도들은 이 95 개
조에 대해 가혹하게 반응해서 분리가 초래되었고 종교개혁자들을 경멸적
으로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렀고 그것이 명칭이 되었다. 개혁자들의 확신
이 다섯 개의 sola 로 요약된다. 종교개혁부터 오늘날까지 개신교회를 자세
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되는 건전한 교리를 거듭거듭 배반
한 것을 본다. 그래서 거듭거듭 부흥이 필요했다. 우간다교회는 세 번의
부흥을 경험했다. 새롭게 도착한 조지 배스커빌(George Baskerville) 목사
는 음주와 비도덕에 대해 교회를 영적으로 척결해야 할 필요성을 보았다.
그래서 한 주 선교집회를 개최했고 작은 부흥을 초래했다. 두번째 작은 부
흥은 필킹턴(Pilkington)부흥이었다. 시미오니 은시밤비(Simeoni Nsibambi)
와 조우 처치(Joe Church) 의사선교사는 세 번째로 동아프리카부흥운동을
주도해서 수십년 계속 되었다. 이러한 모든 부흥운동에도 불구하고 자유주
의와 근대이념이 많은 사람에게 혼동을 초래해 세상이 점점더 불경건하게
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개혁은 여전히 필요하다.
나의 간절한 희망은 이 책의 내용이 교단간의 경계를 넘어 읽히기를
ii
바라는 것이다. 정통기독교가 누리는 도덕적 가치를 자유주의가 침식하고
있는데, 또한 이 책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의 계속적인 개혁을 위해
갱신의 열망을 불어 넣어 주기를 기도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연구를 많
이 한 것으로 안다. 우리의 기도와 사역이 미치는 곳마다 이러한 시도가
현금의 교회를 자극해 영적인 개혁을 추구하도록 되기를 바란다.
Rev. Canon Dr. Johnson Ebong
신학교수
아프리카선교대학교,
나무공고순교자기념신학교,
Conquering Storms of Life-A Theology of Suffering 의 저자
iii
“아공모”가 드리는 초대의 글
동아프리카에서 종교개혁 500 주년을 기리며
2017 년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피운지 500 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신교에 속한 우리에게는 우리 신앙의 근본을 알려주는 이 사건과
운동을 기리며 오늘날에도 그 정신을 이어 우리가 처한 선교상황에서 실
천하고자 합니다.
이 기념의 배경에는 매주 모여 평상시 선교와 아프리카를 배우는 한
국선교사들의 모임(아공모)이 있습니다.1 종교개혁 500 주년을 즈음해 유럽
과 북미와 한국에서는 수많은 기념 집회, 학술대회 강연들이 열리고 있습
니다. 그에 비해 우간다에서는 기리는 일이 별로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오
히려 외부에서 와서 일과성으로 행사를 치르고 가려는 움직임도 보게 되
었습니다.
아공모가 먼저 선교와 아프리카를 평소에 공부하면서 우리를 보낸
한국교회와 우리가 섬기는 우간다교회가 계속 개혁해 나가야 하는 필요성
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문화와 세상에 처한 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개혁할 것은 교회
의 온전성 회복으로 교회의 본질인 선교를 회복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모임을 준비하면서 진행할수록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상아탑의 연구실에서 글쓰기에 전념할 수는 없었고 복잡하고 분주한 선교
사역을 수행하는 중에 틈틈이 짬을 내서 읽고 쓴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적
개혁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우간다동역자들이 동참하기
는 했지만 우리의 동역자들(hosts)이 주가 되고 우리는 돕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더 많은 한국선교사들과 다른 나
라 사역자들이 참석하지 못해 역시 아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다음에 계
속되는 포럼에서 더 넓고 다양한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바램이
1
정식명칭은 Africa Institute of Mission Studies and Services (AIMSS)이고 한국말로
는 아프리카공부모임(아공모)입니다.
iv
고 그렇게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의 소박한 시작이 작은 불꽃으로 튀고 잔잔한 물결로 퍼져 나가
계속 개혁의 운동이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침체될 뿐만 아니라 각종 부조
리에 휩싸인 한국교회가 사랑과 공의가 넘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
로 그 선교적 열정을 펼쳐나가면서 아울러 한국적이고 세계적인 선교 신
학과 실천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소 주춤하고 수줍어하는 우간
다교회가 이제는 자립, 자신학화, 자선교화가 되어 마지막때에 세계선교를
적극적으로 담당하고 주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으로 두 구절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개혁과 선교
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하나는 종교개혁의 경구이고 하나는 성경구절입니
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이미 개혁된 교회도 끊임
없이 개혁되어져야 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
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 11:36).
김성환 목사
v
“ANTS”가 드리는 초대의 글
교회개혁운동과 세계부흥운동의 꿈
올해는 종교개혁 500 주년이 되는 해이다. 전세계의 많은 교회와 단체가
오늘날에도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많은 작업을 하고 있다. “종
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포럼이 저의 학
교 ANTS(All Nations Theological College & Seminary)에서 개최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특히 우간다의 한국선교사들과 우간다교역자들이 이 포
럼을 준비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 지금 여기에서의 개혁을 위해 연합하고
연대하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도전을 준다. 하
나는 우리의 본질인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가 항상
개혁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포럼을 통해 “교회개혁운동”과 “세계부흥
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우간다를 포함해 동아프리카교회들이 모든민
족을 제자삼기 위해 부흥하기를 바란다.
여러분을 이 포럼에 진심으로 초대한다. 여러분이 이 포럼에 참석하
는 것을 통해 개혁의 꿈을 이루고 동아프리카교회에 부흥을 가져다 주시
기를 바란다. 이 포럼을 준비한 선교사님들과 목사님들에게 감사드린다.
윤재승 목사
ANTS 교장
vi
프로그램
DDAAYY 11 ((2277tthh
,, 금금요요일일))
사회: 존 코니 목사
시간 프로그램
09:00-10:00
개회예배:
사회: 벤슨 무네네 목사
설교: 윤재승 목사
10:00-10:50
주 발제:
500 년 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김성환 선교사)
10:50-11:20 논찬: 김무열 목사
11:20-11:40 휴식 시간
11:40-12:30 질의 & 응답
12:30-13:30 점심 시간
13:30-15:30
주제발표:
1. Africa Philharmonic Orchestra and AIM Choir
(공연기획: 박마리아 선교사)
2.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 대 논문에 나타난 종교개혁
사상과 적용 (최태용 선교사)
3.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김동언 선교사)
15:30-16:00 질의 & 응답
16:00-16:10 폐회 (기도: 사회자)
vii
프로그램
DAY 2 (28th
, 토토요요일일)
사회: 벤슨 무네네 목사
시간 프로그램
10:00-10:50 주 발제:
종교개혁 500 주년을 기념하면서: 우간다에의 적용
(에봉 존슨 교수)
10:50-11:20 논찬: 카랑과 스태니스라스 목사
11:20-11:40 휴식 시간
11:40-12:30 질의 & 답변
12:30-13:30 점심 시간
13:30-14:00 특송: ANTS 합창단
14:00-15:30
주제발표:
1. 마틴 루터의 성경번역과 그 번역이 독일어에 미친
영향: 우간다와 아프리카에 주는 교훈
(무랑가 마누엘 교수)
2. 아프리카 선교로서 정보통신기술개발과 신앙개혁
(정유철 선교사)
3. 구약 안에 나타난 종교개혁과 루터의 종교개혁의 비교
연구 (신동헌 선교사)
15:30-16:00 질의 & 응답
16:00-16:10 폐회 (기도: 사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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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x
CONTENTS
머리말 .................................................................................................................. i
“아공모”가 드리는 초대의 글....................................................................... iii
“ANTS”가 드리는 초대의 글........................................................................... v
프로그램 ........................................................................................................... vi
DDAAYY 11
500 년 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김성환 선교사)................................... 3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 대 논문에 나타난 종교개혁 사상과 적용
(최태용 선교사) ........................................................................................... 25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김동언 선교사)......................... 31
DDAAYY 22
종교개혁 500 주년을 기념하면서: 우간다에의 적용 (에봉 존슨 교수).... 45
마틴 루터의 성경번역과 그 번역이 독일어에 미친 영향: 우간다와
아프리카에 주는 교훈? (무랑가 마누엘 교수)......................................... 55
신앙 개혁을 위한 아프리카 선교로서 정보통신기술 개발
(정유철 선교사) ........................................................................................... 65
구약 안에 나타난 종교개혁과 루터의 종교개혁의 비교 연구
(신동헌 선교사)........................................................................ 81
저자약력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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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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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00년 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Reformation There-Then and Here-Now
김성환
(Ph.D, 아프리카선교대학 및 아프리카음악대학 교수, africaninitiatives@gmail.com)
2017 년은 마르틴 루터가 성당문에 95 개조를 내걸어 종교개혁
(Reformation)의 도화선을 그은 지 500 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확히 비텐버
르크(Wittenberg)의 쉴로쓰교회(Schlosskirche)의 교회문에 만성절(All
Saints Day) 전날인 1517 년 10 월 30 일에 95 개조의 반박문을 못질해 걸어
로마카톨릭교회에 잘못된 교리와 행습에 도전을 가한 것이다.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우리는 이 종교개혁을 기리고 오늘날 우
리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도모하고자 한다. 500 년전의 종교개혁의 정신을
배워서 오늘날 동아프리카교회의 개혁을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다.
I. 서론
본논문에서는 루터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특히 그가 말씀
앞에서 어떻게 섰는가에 최종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겠다. 종교개혁자 특히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의 실례를 관찰하고 그 신학과 실천을 오늘
날 우리의 사역과 선교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본논문과 발표의 대
상으로 보다 젊은 교회지도자 특히 신학생들과 현장사역자들과 그들과 동
역하는 선교사를 대상으로 써내려 가도록 하겠다.1
신학적으로 세세한 기
술적인 파헤치기보다는 선교와 목회에 도움이 되도록 쉽게 풀어가는데 초
점을 맞추려고 한다.
1
이번 종교개혁 500 주년기념 포럼에 이들이 주된 참석자가 될 것이다.
4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1. 전제
교회의 본질은 선교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선교는 신학의 어머니
이다 (Mission is the mother of theology)”라는 마르틴 켈러(Marin Kähler)
의 말을 전제로 한다 (Shenk 1995:43 에서 재인용). 신학이 사색으로 흘러
서는 안되고 오히려 세상으로 간 교회가 세상에 선교하는 것이 신학의 원
동력이 되어야 한다.
2. 루터와 선교
흔히 종교개혁자들에게는 선교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루터가 독
일내에서의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작업 앞에 미처 해외선교에 신경을 쓸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회가 다시 세상으로 들
어가서 모든 신자가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선
교가 수도원으로 간 중세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점을 본 논문에서 살피고 증명하고자 한다.
3. 본 논문의 논제
본 논문의 논제는 “오늘날 가장 필요한 개혁은 교회의 본질인 선교를 회
복하고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우리도 세상 끝까지, 땅의 모든 끝들
까지 동참하는 것이다”는 것이다.
4. 루터의 종교개혁 연구를 위한 1차 자료
우리가 공부하는데 2 차자료, 3 차자료를 읽거나 인터넷에서 취합하는 것보
다 좀 느리고 힘들더라도 원전으로 가서 보화를 캐는 것이 진짜 공부이다.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으나 일단 읽고 뼈대를 추린 다음 또
읽고 또 필요하다면 거듭 읽으면 그 이득은 값으로 따질 수가 없다. 진지
한 독서와 공부를 통해 우리의 영성이 깊어지고 세계관이 변화한다.
루터를 공부하기 위해서 전집이 있다. Weimar Ausgabe(바이마르 아
우스가베 혹은 바이마르판)라고 하는데 총 121 권이 있다. 그 전집은 루터
의 탄생 400 주년인 1883 년에 시작해서 2009 년에 121 권으로 마쳤다. 총
80,000 쪽이 되는 거대한 분량이다. 다음과 같이 구분되어 있다: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5
Division I: Schriften / Werke (writings/works, 저작), 72 volumes, includ-
ing 8 in two parts (abbreviation: WA)
Division II: Tischreden (table talk, 탁상담화), 6 volumes (abbreviation:
WA TR)
Division III: Die deutsche Bibel (The German Bible, 독일성경), 15 vol-
umes (abbreviation: WA DB)
Division IV: Briefe / Briefwechsel (correspondence, 서신), 18 volumes
(abbreviation: WA BR)
위의 책들은 온라인에서 읽을 수 있게 공개되어 있다. 단 라틴어나
독일어로 되어 있다.2
이것이 미국의 Concordia 출판사에서 영어로 번역
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역시 그 선집이 컨콜디아출판사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마르틴 루터의 글 중에 종교개혁 3 대 논문(The Reformation Trea-
tises)이 있다. 이 논문들은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3 년 뒤인 1520 년에 발
표됐으며, 루터의 새로운 신학 사상의 윤곽을 제시하고 있다.3
독일어이름 영어이름 한국어이름 출판 내용
An den christ-
lichen Adel
deutscher Na-
tion
To the Chris-
tian Nobility
of the German
Nation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
는 글
1520 년
8 월
교황의 지고성을 둘
러싼 담을 헐기. 성
경의 우위.
Von der baby-
lonischen Ge-
fangenschaft
der Kirche
Babylonish
Captivity of
the Church
교회의 바벨론
감금
1520 년
10 월
성경적인 성례는 세
례와 성찬이며 믿음
에 근거해야
Von der Frei-
heit eines
Christenmen-
schen
On Christian
Liberty
크리스천의 자
유
1520 년
11 월
그리스도인은 모두에
게 자유하나 모두를
섬겨야
영어로 된 루터의 선집으로 다음의 두 책이 대표적이다:
2
본논문에서는 루터에 초점을 맞추지만 존 칼빈도 중요한 종교개혁가이다. 그의 저
작도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칼빈에 관해서는 이번 포럼에
서 김동언 목사가 발제를 한다.
3
이 3 대논문에 대해서는 이번 포럼의 발제자 중의 하나인 최태용 목사가 보다 자
세히 취급할 것이다. 이 세 편의 논문은 최근 출판사길에서 WA(라틴어)로부터 황
정욱이 번역해서 새롭게 출판되었다.
6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1. Dillenberger, John, ed.
1961 Martin Luther: Selections from His Writings. Garden
City, NY: Anchor Books.
2. Lull, Timothy F.
1898 Martin Luther’s Basic Theological Writings. Minne-
apolis: MN: Fortress Press.
한국어로는 지원용이 편집하고 컨콜디아사에서 발간한 루터선집
(1981-1989)이 있다. 종교개혁 당시의 신앙고백은 필립 샤프(Philip Schaff)
가 편집한 The Creeds of Chrstendom 에 수록이 되어 있다.
서양사람들의 학구열이 대단하다. 이에 비해 우리 아시아나 아프리카
에서는 기록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구전문화는 발달되어 있으나 기록하고
읽고 쓰는 문화에는 많이 뒤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신학교 교육
에서 이점에 보강을 하면 좋겠다.
5. 종교개혁의 정의
한국어로는 종교개혁이라고 번역이 되는데 보다 정확하게 삶의 전반에 있
어서의 개혁을 의미한다. 교회개혁이라고 번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유해
무 교수는 “사람 개혁, 교회 개혁, 세상 개혁”라고 해서 포괄적이고 총체
적인 개혁을 주장한다.4
그러나 종교개혁이라는 말이 이미 관용적으로 굳
어서 종교개혁이라고 계속 말하지만 그 의미는 교회개혁이 될 것이다.
개혁(reformation)은 라틴어의 reformatio 에서 나온 말로 형식(forma)을
재정립(re-)하는 것이다. 그 동안에 고질적으로 형성된 삐뚤어진(de-
formed) 형태를 바른 형태로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re-formed). 또 그
동안 전혀 형성이 안되고 원시상태나 자연상태에 있는 것은 비로소 형태
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성경에서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단순
히 형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하고 개선하고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종교개혁에서는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이고 초대교회를 넘
어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루터는 어거스틴을 넘어 바울을 통해 복음
의 바른 의미를 깨닫게 된다. 복음을 새롭게 발견하고 새롭게 교회와 선교
4
유해무 교수는 2016 년 11 월 5 일 제 33 회 기독교학문학회 주최 제 33 회 기독
교학문학회.종교개혁의 유산과 과제 특강에서 그렇게 말했다.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7
를 바르게 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단순히
개혁할 (reformed) 뿐만 아니라 계속 해서 개혁해 나가야 (reforming) 한
다는 것이다.5
II. 루터와 종교개혁
종교개혁은 루터 이전부터 시작해 루터 이후로 계속된다. 본논문에서는 루
터에 초점을 맞춘다.
1. 마르틴루터의 간단한 생애
마르틴 루터는 1493 년 11 월 10 일에 아이스레벤(Eisleben)에서 태어났다.6
그는 만스펠트에서 라츠슐레(Ratschule), 막데부르크에서 프란스시파 학교,
아이제나흐에서 게오르겐슐레(Georgenschule)를 다녔다. 대학교는 에르푸
프트(Erfurt)로 갔다. 이 미래종교개혁자는 1502 년에 B.A., 1505 년에 M.A.
를 취득했다.
그는 1507 년에 사제로 안수받았다. 1508 년에 신설 비텐베르크
(Wittenberg)대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1512 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
았다.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동대학에서 성경강사(lectura in Biblica) 자리
에 임명을 받았다.
루터는 1511년에 로마를 방문했다. 1512년 전후로 수도원의 골방에서
고뇌하던 중에 이신칭의의 교리를 발견하게 된다. 로마서가 아니더라도 시
편과 히브리서를 강의하던 중에 이 교리를 갖게 된다.
1520 년 6 월 15 일 교황 레오는 루터를 출교하는 문서(bulla)에 서명
했다. 루터는 1525 년 6 월 27(13?)일에 수녀였던 카터린 폰보라(Katherine
von Bora)와 결혼했다. 루터는 1546 년 2 월 18 일에 여행중에 그가 태어났
던 도시 아이스레벤에서 죽었다.
2. 마르틴루터와 성경
5
개혁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한 카우프만의 책에서 많은 도움
을 받았다 (Kaufmann 2017, 특히 3-10 쪽).
6
그는 동일한 도시에서 1546 년 2 월 18 일에 죽는다.
8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루터는 어렸을 때 성경을 접하지 못한 것 같다. 청소년 시절 우연히 성경
을 접하기는 했지만 수도원에 들어 가서야 성경을 갖게 된 것 같다. 이후
그는 성경을 열심으로 읽었다. 결국 그는 성경박사(Doctor in Biblia)가 되
었다. 그 자신의 고백에 의하면 그런 성경지식을 계속 유지했으면 놀라운
성경성구사전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Luther 1979:6-7).7
그는 조직신학
보다는 성경해석을 가르쳤다.8
성경을 살펴보는 가운데 루터는 카톨릭교회의 the sacrament of pen-
ance 의 근거가 되는 라틴 불가타(the Latin Vulgata)의 성경구절이 잘못된
번역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루터는 에라스무스(Erasmus)가 편집한 헬라
어성경9
을 읽고 있었다. 루터는 이 신약원문성경을 95 개조를 걸기 1 년전
에 입수해 읽고 있었다. 루터는 헬라어성경을 읽으며 그당시 보편적인 불
가타번역에 의한 잘못된 성경해석을 감지하게 된다.
특별히 마태복음 4:17 의 해석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된다. 도표로 다음
과 같이 비교할 수 있다:
Latin Vulgata Greek New Testament
Text Poenitentiam agite µετανοεῖτε
Translation 고백성사를 집행하다
회개하다, 돌아서다, 개혁
하다
Justification by Act (행위구원) Faith (믿음구원)
루터는 이에 대해 “나는 이 구절에 힘을 얻어 헬라어에서의 믿음을
넘어 라틴어를 통해 행위를 강조한 그들은 틀렸다고 감히 말하게 되었다”
고 말한다. 루터 자신은 이 발견을 “찬란한” 발견이라고 불렀다.10
7
If I had retained this knowledge, I should have been a wonderfully good biblical con-
cordance
8
물론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은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조직신학이 사색적으로 흘러
서는 안되고 반드시 성경의 해석과 그 조직화(체계화)로부터 출발해야 하고 성경
신학도 조직신학의 도움을 받아 성경과 시대를 통괄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성
경신학과 조직신학의 관계에 관해서는 두 논문을 추천한다 (Gaffin 1975 and
Poythress 2008).
9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헬라어 신학성경은 결국 Textus Receptus(공인된 본문)가 되
었다. 이 TR 이 영어 KJV(King James Version)의 본문이 되었다.
10
Fortified with this passage I venture to say they are wrong who make more of the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9
루터의 이러한 성경원칙을 sola Scriptura(오직 말씀으로)라고 부른다.
교황이나 교회의 권위나 전통보다 먼저 그리고 오직 성경을 원칙으로 삼
는다는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신념은 철저하게 sola Scriptura 의 원칙
에서 나왔고 그에 따른 확신에 죽음도 각오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루터 자신이 밝히고 있다 (Luther 1979:8):
교황이 힘과 거짓으로 모든 권력과 권위를 걸머쥐고 왕이나 황
제가 그를 거역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파멸의 자식은 말씀
에 의해 폭로되어져야만 했었다. 나는 그 과업에 무의식 속에
빠져 들어 갔다.
교황권이 세속권세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 교황권은 폭력과 기만으로
쟁취한 것이다. 루터는 그런 교황을 멸망 혹은 파멸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그 교황을 폭로할 힘은 오직 말씀뿐이라는 것을 루터는 알았다. 처음부터
교황에 저항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를 개혁으로 끌고 간 것이다.
이것이 sola Scriptura 의 원칙이다.
그러나 sola Scriptura 와 함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다른 종교개혁
성경원칙은 tota Scriptura 이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단이 성경만 가지고 논할 수는 있으나 좋아하는 구절만 뽑아서 곡해하
고 전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사설을 주장하는 것이다. Sola Scrip-
tura 에 못지 않게 Total Scriptura 의 종교개혁 원칙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루터는 자신의 신구약 강의를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전에 근거한 최
초의 독일 교수 중의 하나였다. 그는 라틴어 대신에 학생들의 모국어인 독
일어로 강의하기 시작한 최초의 교수 중 하나이다.
오늘날 우간다에서도 진정한 개혁은 말씀을 진지하게 읽고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성경원어
를 정확하게 읽고 해설할 수 있는 신학자도 양성해야 할 것이다.
3. 종교개혁을 향한 루터의 인내와 열정
종교개혁이전의 종교개혁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개혁자들로서 존 위클리
act in Latin than of the change of heart in Greek.” Luther himself called this discov-
ery a “glowing” discovery.
10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프, 존 후스가 있다. 후스는 이미 한 세기 전에 종교개혁의 씨앗을 뿌렸으
나 교황의 유인으로 잡혀서 화형을 당했다. 그의 사상은 씨앗이 땅에 떨어
져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다는 말씀처럼 사라지지 않고 계속 퍼지고
있었다. 루터는 어느 시점에 후스의 저서를 접하면서11
이미 같은 신학을
주창한 사람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자신의 신학에 힘을 얻는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위해 죽음의 위협을 받았으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교황과 교황추종자들에 의해 죽음의 위협을 받았다. 그
는 죽음이 바로 진짜 사는 삶의 시작이라고 보았으며 죽음으로 인해 오히
려 많은 열매가 맺게 되리라고 믿었다 (Luther 1979:58):
교황주의자들은 내가 죽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죽을
때 나의 진정한 삶은 시작될 것이다; 왜냐하면 씨앗이 먼저 땅
에 떨어지기 전에는 싹이 트지 않기 때문이다.12
4. 종교개혁의 대상
루터가 종교개혁의 대상으로 삼은 것에는 대표적으로 교황과 면제부가 있
다. 포럼에서 발표되는 논문의 성격상 골격만 제시하도록 하겠다.
1) 교황(Pope)
루터는 처음부터 교황과 대결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안으로부터 개혁을
이루어 가려고 했다. 교황 자신보다 전통에 찌들은 체제와 교황 주위의 바
르지 못한 교권에 먼저 저항을 했다. 초기에는 교황과는 화해하기를 힘쓰
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을 중심으로 교권의 힘으로 잘못된 교리와 잘못된
행습이 고질화 되어 갈 때 루터는 결연하게 저항과 개혁을 강화한다.
교황에 대해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던 루터는 갈수록 교황의
허구성을 알고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칭하게 되었다. 로마카톨릭내에서 교
황은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교황은 성경 위에 위치했고, 공의회
위에 위치했고, 교회 위에 위치했다. 성경해석권은 교황에게 속했다. 그리
11
후스의 제자들이 가져다 준 후스의 저서를 루터는 1520 년에 이미 읽기 시작해
서 그의 신학에 영향을 받고 자신의 신학에 확신을 얻게 된다. 그는 후스의 제자
가 된다 (Kuiper 1962:174).
12
The papists are longing eagerly for my death. But when I am dead, then my real life
will begin; for the seed does not spring up, till first it has fallen to the ground.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11
고 이 교황과 교황의 해석은 무오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루터는 교황과 공의회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고의 권위는 성경이며 교황과 공의회도 동일하게 성경의 권위 아래 놓
인다.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 교황이나 소위 평신도나 평등하다.
교황은 루터를 파멸의 자식이라고 부르고 루터는 교황을 진짜 적그
리스도라고 부른다.
2) 면죄부(Indulgence)
유명한 루터의 95 개조는 무엇보다도 면제부에 대한 반박문이었다. 면죄부
는 죄를 짓고 회개하는 자가 벌과 그에 따른 벌을 감면받기 위해 돈을 지
불하고 받는 교황의 증서이다. 이 증서를 사면 연옥에서 머무는 기간이 줄
어 들게 된다. 이 면죄부는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심지어
는 이미 죽은 친척이나 친구를 위해서도 살 수 있었다. 이것에 대한 반박
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면죄부는 교회에게는 아주 좋은 수입원이 되었다. 루터가 일하는 비
테베르크 근처에 테쩰(Tetzel)이라는 사제가 면죄부를 대대적으로 팔고 있
어서 이것이 루터가 개혁을 시도하는 촉발이 되었다. 그가 면죄부를 팔면
서 외친 구호는 유명하다, “여러분의 돈이 상자에 쨍그랑 떨어지는 순간,
여러분의 어머니는 연옥으로부터 튀어 오를 것이다.” 이에 대해 루터는
95 개조 27 조에서 밝힌다: “돈이 헌금함의 바닥에 챙그랑 떨어지는 순간 영
혼들이 연옥으로부터 튀어 오른다고 설교하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전혀 권
위가 부여되지 않은 설교이다” (Luther 1962:493).13
5. 종교개혁의 과정
루터에게 종교개혁의 사명이 서서히 지워졌고 루터는 이 사명을 서서히
감당하게 된다. 성경이 그를 끌고 갔고 루터의 개혁이라기보다 하나님의
개혁인 것이 드러났다.
1) 95개조
13
There is no divine authority for preaching that the souls flies out of purgatory imme-
diately the money clinks in the bottom of the chest.
12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1517 년 10 월 31 일 만성절에 루터는 면죄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95 개
조의 반박문을 써서 위텐베르크의 쉴로쓰교회(Schlosskirche=Castle
Church)의 나무문에 못질을 해서 걸었다. 그때 그는 34 세의 대학교 교수
였다. 라틴어로 써서 일반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대학교 내에서 토
론이 되기를 원했다. 루터는 이 95 개조가 몇 사람에게만 관심을 끌 뿐이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뿐만 아니라 전유럽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 내
용에 이미 공감하고 있었다. 라틴어 내용을 이해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그룹의 사람들이 라틴어를 독일어로 번역해서
보급했다. 두 주만에 전독일에 퍼졌고 4 주만에 전유럽에 퍼졌다. 새로 발
명된 인쇄술 때문이었다.14
4 주만에 로마의 레오 10 세(Leo X) 교황에게 그
내용이 전달되었다.
교황이 이 문서를 읽었을 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술에 취한
독일인이 술에서 깨면 다르게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터의 친구들은
자제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루터의 신념은 확실했고 흔들리지 않았다.
2) 하이델베르그 토론(1518년 4월)
루터가 속한 아우구스티누수수도원의 원장인 요한 쉬타오피츠
(Johann Staupitz)는 이 하이델베르크토론을 주선하면서 루터에게 그의 복
음적인 생각을 이해하고 검증하기 쉽도록 정리하라고 부탁했다. 루터는 이
토론을 위해 하이델베르크개조(Heidelberg Thesis)를 작성했다. 95 개조에
비해 죄, 자유의지, 은혜와 같은 중심문제에 집중했다.
특별히 십자가의 신학과 영광을 신학을 비교했다. 십자가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고 영광의 신학은 악을 선
이라고 하고 선을 악이라고 하는 등 가치를 전도하는 신학이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고 하는 잘못된 지혜는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사람
을 오도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있는 대상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창조해서라도 사랑을 베풀고 복을 내리신다. 오늘날 아프리카선교와 세계
14
인쇄술의 발달에 의해 정보가 속히 전달된 것과 관련해 정유철 박사가 본 포럼
에서 페이퍼를 제시할 것이다.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13
선교에 적용할 수 있는 선교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15
3) 아우그스부르그 토론(1518년)
1518 년에 교황은 60 일내로 루터가 로마로 오도록 소환을 했다. 직접 와서
잘못된 교리에 대해 설명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독일제국에서 교황을 대표
하는 카제탄(Cajetan) 추기경은 사안이 시급하다고 보고 그전에라도 해결
하고자 루터를 아우구스부르크(Ausburg)에 소환했다. 아우구스부르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 루터는 살아서 돌아 올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을 각오했다:
나는 죽어야 한다. 오, 불쌍한 우리 부모님에게 나는 수모를
끼쳤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우그스부르크
에서, 원수들에게 둘려싸여도 그리스도가 지배하신다. 그리스
도는 살고 루터는 죽을지어다.16
신분안전보장을 막시밀란 황제에게 받아 그는 마침내 아우구스부르
크로 간다. 이 즈음에 루터와 함께 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친
구들은 그가 성급했다고 생각했다.
아우스부르크가 루터에게 있어 교황과의 대결에 있어 최저점이 아닌
가 생각한다. 교리에 대한 토론과 변증은 허락하지 않았고 단지 카톨릭의
입장과 다른 루터의 교리를 철회하라는 요구만 있었다. 추기경의 의한 체
포위협 속에 루터는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밤중에 탈출한다.
그를 대변하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떠났다고 당시 그의 증인이 고백
한다 (Luther 1979:29):
루터가 위해 아우구스부르크에 가서 카제탄을 만나 철회하기를
15
오늘날 한국과 아프리카에서 십자가의 신학보다 번영신학이 요란스럽게 사람들
을 오도 내지는 선동하고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손바닥 보듯이 읽는다고 하는
예언자도 많다. 하나님의 사랑이시라 선교의 대상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 나서시
며 그 대상을 창조해서라도 사랑하신다. 그 하나님의 최초의 선교행위가 창세기
1:1 의 창조행위이다.
16
I must die. Oh, the disgrace that I heap upon my poor parents! But the Lord’s will
be done. Even at Augsburg, even in the midst of his enemies, Christ reigns. Let
Christ live; let Luther die!”
14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거절 했을 때 그는 황제, 교황, 추기경사절, 자신의 군주, 프레
데릭, 삭소니의 제후, 자신의 수도원종단, 가장 친근했던 친구
쉬타우피츠 등 모든 인간 변호자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프레테
릭 군주는 그가 아우스부르크에서 돌아 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
았고 자신도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소망이 없었다. 프랑스는 교황의 영향 아래 있어 위험했
다. 할 수 없이 그는 비텐베르크로 돌아 왔다. 그가 돌아 왔을 때 교황이
보낸 사절이 와 있었고 그는 각지의 군주나 주교에 보내 무슨 수단을 써
서라도 루터를 체포해 로마의 교황에게 압송해 오라는 편지를 70 개를 소
지하고 있었다. 그는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이
리다”고 고백한다(시 27:10).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아니었으면 이
런 상황을 인간적으로는 결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도 그의 sola Scrip-
tura 원칙의 아주 구체적이고 대표적인 실례(實例)이다 (Luther 1979:29).
4) 라이프찌히 토론 (1519년 7월)
그사이에 바티칸은 면죄부판매를 다소 누그러뜨린다. 그리고 존 엑(John
Eck)을 대표로 해서 루터와 라이프찌히에서 토론을 하도록 한다.
루터는 교황도, 공의회도 인간이라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한다. 최
고의 권위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역설한다. 초대교회에서
헬라교회는 로마교회의 권위 아래 있지 않았다. 공의회들의 결정 사이에도
모순되는 것이 발견된다. 말씀으로 무장한 평범한 성도가 말씀 없는 교황
이나 공의회보다 우위에 선다.
이에 대해 엑은 루터가 후스의 오류를 뒤따르는 이단이라고 규정했
다. 토론은 18 일간 계속되었다. 이 토론이 끝난 후에도 양측은 인쇄물을
통해 공방을 계속했다.
5) 보름스회의 (1521년 4월)
루터는 보름스회의 부름을 받고 출발을 하면서 죽음까지도 각오했다. 그는
동료인 멜랑크톤에게 헤어지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내가 돌아오지 못하고, 내 원수들이 나
를 죽인다면 당신이 진리안에서 계속 가르치고 굳건하게 서실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15
것입니다. 당신이 살아있다면 내가 죽는 것은 상관없습니다.17
루터는 떨면서 갔지만 모든 악마들이 모여 있다 하더라고 가겠다고
했다.
보름스회가 열리자 황제는 책상에 놓인 책자들을 가리키며 그것이
루터의 것이며 그 글들의 내용을 취소할 것이냐 아니면 그대로 주장할 것
이냐고 묻는다. 루터는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두번
째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을 시간을 달라고 황제에게 요청한다. 의회는 24
시간의 시간을 준다. 다음날 4 월 18 일 루터는 다시 의회 앞에 선다. 루터
는 먼저 라틴어로 말한다. 그리고 다시 독일어로 말하도록 요청을 받는다.
루터의 말이 끝났을 때 관리는 질문에 대해 바로 대답하도록 요청한다. 질
문은 그의 가르침을 취소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대답한다:
황제께서 명백한 대답을 원하신다면,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성
경의 증거에 의해 내가 잘못되었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나는
취소할 수 없습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잡혀 있습
니다. 양심에 거스려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않고 정직하지
도 않습니다. 나는 여기 서 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도우
소서. 나는 달리 할 수 없습니다.18
보름스성벽에 조그만 문이 있었다. 루터는 그 문들 통해 4 월 27 일
에 탈출한다.
6) 바르트부르크(Wartburg)성에서 숨어지내기
보름스성을 탈출한 루터는 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납치된다. 사
실은 현자 프레데릭(Frederick)이 그의 안전을 위해 사람들을 시켜 그를
바르트부르크성에 데려온 것이다. 숨어있으면서 루터는 10 개월돌안 많은
저작을 했다. 특히 신약을 그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번역했다.
17
My dear brother, if I do not come back, if my enemies put me to death, you will go
on teaching and standing fast in the truth; if you live, my death will matter little.
18
If the emperor desires a plain answer, I will give it to him. It is impossible for me to
recant unless I am proved to be wrong by the testimony of Scripture. My con-
science is bound to the Word of God. It is neither safe nor honest to act against
one’s conscience. Here I stand. God help me. I cannot do otherwise.
16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6. 종교개혁의 결과 - 선교적 삶과 일
종교개혁후 루터는 물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선교, 세계선교, 복음화
와 같은 선교신학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용어를 사용하지 않
는다고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이 당장 해외선교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더라고 세계선교의 태동을 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아래에서
루터의 선교 신학과 실천을 살피고자 한다.
1) 십가자의 신학
루터의 신학은 십자가와 고난으로 특징지워진다. 십자가의 신학자를 영광
의 신학자와 대조한다. 그에 의하면 영광의 신학은 기독교의 가치를 전도
해서, 악을 선이라고 하고 선을 악이라고 한다 (Heidelberg Disputation;
Lull 1989:46-49).
앞에서 말한 유해무 교수는 한국교회에 십자가의 신학이 제대로 소
개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국의 개혁교회의 신학
이 칼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그에 앞서 근원인 루터를 연구하지 않
는데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중세와 초대교회를 거슬려 결국은 성경
으로 가야 할 것을 주장한다.
2) 모든 성도의 제사장화
독일어로는 Das Priestertum aller Gläubigen, 영어로는 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가 한글로는 보통 만인제사장설로 번역이 되고 있다. 만인은 모
든 사람이라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아니라 믿는 자
(성도, 신도)가 그리스도의 제사장이다. 따라서 바른 번역은 “모든 믿는자
의 제사장설(전신자의 제사장설)” 혹은 “모든 성도의 제사장설(전성도의
제사장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루터 자신이 위의 표현 자체를 쓴 것은 아니다. 용어 자체는 없지만
그 개념은 분명히 있다. 아주 근접한 표현을 사용한다. 위의 표현보다는
Das Priestertum aller Getauften(the priesthood of all those baptized)의 개념
이 등장한다:
교황이나 주교가 기름을 바르고, 삭발을 하고, 안수를 하고, 성
직에 임명하고, 평신도와 다르게 옷을 입을 때, 그는 어떤 사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17
람을 위선자로 만들거나 성별된 이미지로 만들 수 있겠으나,
그를 결코 그리스도인이나 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실은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 우리 모두는 제
사장이 되는 것이다. 성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2:9 에서 말했듯
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
라요,” 계시록에서 말했듯이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
와 제사장들을 삼으셨다” (계 5:9f.). (emphasis mine,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 Luther 1961:408).19
루터는 안수 받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제사
장이라는 신학을 분명히 한다. 이에 비해 성직자와 평신도를 분명히 구별
하고 소위 평신도는 사역에 있어 수동적인 역할로 전락하고 성직자는 권
위적인 위치에 선 한국교회는 한참 후퇴한 느낌이다.
성도는 왕 중에서 가장 자유스러운 왕일 뿐만 아니라 영원히 제사장
으로서 하나님의 존전에 믿음의 정신으로 과감히 나아가 남을 위해 기도
하고 서로를 신령한 것으로 가르친다 (cf. 히 10:19,22; Luther 1961:64). 성
도는 만물 위의 왕으로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 모든 일에 노예가 되어 모든 사람에게 복종한다. 그리
스도 안에서 참 자유는 섬기기 위한 자유이다. 믿음은 행위가 열매로 반드
시 뒤따르고 사랑 가운데 활동하는 믿음이다.
3) 이웃사랑
루터의 글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책임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그리스
도인의 자유) Luther 1961: 73-76).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섬기기 위한 자유
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해 어느 누구의 구속을 받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유스럽과 자발적으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모
든 것의 아래에 서서 그 모두를 섬기는 자발적인 종이 된다.20
그 이웃이
19
When a pope or bishop anoints, grants tonsures, ordains, consecrates, dresses
differently from laymen, he may make a hypocrite of a man, or an anointed image,
but never a Christian or a spiritually-minded man. The fact is that our baptism con-
secrates us all without exception, and makes us all priests. As St. Peter says, I Pet.
2 [:9], “You are a royal priesthood and a realm of priests”, and Revelation, “Thou
hast made us priests and kings by Thy blood” [Rev. 5:9 f.]. (Luther 1961:408).
20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논지(thesis)가 등장한다:
18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온 인류에게까지 확장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
니라 남을 그것도 이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
다고 말한다. 이 목적을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켜 보다 진
지하게, 보다 자유스럽게 남을 섬긴다 (롬 14:7-8). 루터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는 남을 섬기기 위한 자유이다. 물론 섬김의 극치적인 모범은 인간의
몸을 입고 죽기까지 복종하고 구속사역을 이루신 그리스도이시다. 성도는
하는 모든 일에 남을 섬기고 그들에게 유익을 끼친다. 심지어는 이웃의 필
요와 유익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손으로 부지런히 일
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은 이웃에게 작은
그리스도(a Christ, Christs)가 된다 (Luther 1961:75, 76). 루터는 『그리스도
인의 자유』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 속에서 살지 않고 그리스도
안과 이웃 안에서 산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사랑을 통해 그의 이웃 안에서 산다. 믿음으로 그는 자신을 넘
어 하나님에게까지 들리움을 받았다. 사랑으로 그는 자신을 넘
어 이웃에게 내려 간다 (Luther 1961:80).21
여기서 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과 함께 낮아져서 이웃을
섬기는 사랑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낮아져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
는가?22
우리가 소위 말하는 해외선교가 종교개혁 당시에는 본격적으로 이
A Christian is a perfectly free lord of all, subject to none.
A Christian is a perfectly dutiful servant of all, subject to all. (영어번역;
Luther 1961:53)
Ein Christenmensch ist ein freier Herr über alle Dinge und niemand
untertan.
Ein Christenmensch ist ein dienstbarer Knecht aller Dinge und jeder-
mann untertan. (독일어 원전; Luther 1977:162).
Christianus homo omnium dominus est liberrimus, nulli subiectus.
Christianus homo omnium servus est officiosissimus, omnibus subi-
ectus (라틴어 원문, Weimar Ausgabe 7:49)
21
We conclude, therefore, that a Christian lives not in himself, but in Christ and in his
neighbor. Otherwise he is not a Christian. He lives in Christ through faith, in his
neighbor through love. By faith he is caught up beyond himself into God. By love
he descends beneath himself into his neighbor.
22
우리의 선교의 원칙은 위로는 무엇을 먹으나 마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19
루어지지 않았다고 흔히 비판하지만 이보다 더 선교적인 메시지가 있는가?
(엡 4:28; Luther 1961:73). 나는 이번 리서치를 통해서 루터가 훌륭한 선교
신학자라고 믿게 되었다.
4) 세상으로 간 수도사 - 선교
중세시대에 집중된 신학과 실천은 수도원에서 이루어졌다. 루터가 수도사
가 되어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그는 헌신했으나 세상을 떠났다.23
엄격한
금욕주의를 실천함으로써 행위를 통해 구원을 성취하고자 했다. 수도생활
은 헌신과 봉사가 되어야 했는데 세상과 분리된 공적이 되었다. 수도생활
이 소수의 개인적인 성취가 됨으로써 교회 구성원의 대부분은 이런 헌신
된 삶으로부터 면제를 받았다.
그러나 다시 루터는 수도원을 떠나 세상으로 감으로써 선교를 세상
에서 수행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철수했던 그리스도인은 다시 세상으로 선
교적 사명을 가지고 나아가게 되었다. 본 회퍼는 수도원의 고립, 수행, 고
행을 루터가 세상으로 이끌고 간 이 선교를 근접전투(Nahkampf) 24
라고
불렀다. 예수의 명령에 대한 성도의 완전한 순종은 성도가 매일매일 세상
에서 일상생활 속에 소명의 삶을 사는 것으로 완수되게 되었다
(Bonhoeffer 1992:35).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 될 뿐 아니라 세상으로 간 수도사가 되고 선
교사가 된다. 이는 만인제사장설일 뿐만 아니라 만인선교사설이라고 불러
야 할 것이다.25
광이지만, 아래로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즉 그의 성육신과 죽음을 본받아 낮아
져서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23
혹시나 우리가 신학교에 들어 올 때 세상을 떠나 상아탑 속으로 오는 것은 아닌
가?
24
영어로는 hand-to-hand combat, 한국어로는 백병전으로 번역된다.
25
흔히 “교회중심”이라는 표어를 교회에서 많이 내건다. 이 말의 의미가 교회의 방
주화, 쇼셜클럽화, 수도원화, 게토화, 세상과의 분리 및 구획화로 흘러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에서 부름받아 모인 교회(gathering church)는 다시 교회의 담을 넘
어, 아니 교회의 담을 헐고 세상으로 흩어지는 교회(scattering church)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III. 계속적인 개혁을 위한 제언
우리가 500 년전의 종교개혁을 기리는 것은 그 정신을 오늘 우리의 사역과
선교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개혁열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끊이지 않
아야 할 것이다.
1. 교회의 개혁은 교회의 본질로 돌아 가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은
넓은 의미에서의 선교이다. 불은 타는 것으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하는 것으로 존재한다(Emil Brunner).
2. 받기보다는 주기를 힘쓰도록 하자. 받을 생각보다는 무엇을 누구
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하자. 이것이 개혁신학과
개혁선교신학의 출발이다. 선교는 나누는 것이고 주는 것이고 베
푸는 것이다. 주는 것 없이는 선교가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 주
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고 하셨다 (행 20:35).
주기 시작할 때 자립은 이루어지고 자립이 이루어질 때 성숙한
선교가 이루어진다.
3. 개혁은 남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개혁이다.
나의 교회, 나의 기관, 나의 나라의 개혁에 앞서 나 자신의 개혁
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급선무이다. 나를 개혁하지 않고 남의 개
혁을 논할 자격이 없다. 많은 경우에 개혁을 논하는 사람들이 자
신들이 가장 먼저 개혁이 되어야 할 대상인 것을 본다.
4.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비판하고 건설적인 대안이 없으면 비
판을 삼가야 한다. 진리를 말하되 사랑으로 진리를 말해야 한다
(갈 4:15). 사랑하지 않는다면 비판도 삼가야 한다.
5. 개신교에서는 구교에서와 같은 교황은 공식적으로 없다. 그러나
각 교회나 단체에서 교황 못지 않게 전횡을 저지르는 작은 교황
이 있을 수 있다. 우리 교회와 단체에서도 계속 성경적인 개혁을
해 나가야 한다. 지도자는 섬기는 리더십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막 10:45).
6. 우리의 성경과 신학공부는 평생 이어져야 한다. 이번에 대회를
치루지만 이것이 하나의 작은 자극이 되어 개혁의 공부와 실천은
평생 계속되어야만 한다. 교부(특히 아우구스티누스), 종교개혁자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21
들(특히 루터와 칼빈)의 원전으로 가서 읽고 공부하고 적용하는
작업이 이번 대회를 계기로 정립되기를 바란다.
7. 개혁에는 교리적인 개혁도 있고 윤리적인 개혁도 있다. 바른 신
학도 중요하고 바른 실천도 함께 가야 한다. 신학이 없는 윤리는
위험하고 윤리 없는 신학은 공허하다. 믿음은 반드시 실천을 수
반한다.
8. 개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과 신학에 있어 기본 지
식과 자세와 지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하고 성경읽기와
묵상을 하는 것과 동시에 기본 서적과 문서를 읽어 나가는 훈련
을 쌓아야 한다. 독서는 배움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자 아주 효
과적인 수단이다. 독서를 통해 지식과 지혜를 쌓아가야 한다. 루
터와 칼빈의 저술을 읽어가는 것을 추천한다.26
9. 사실 종교개혁이 루터에 의해 비로소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 이전의 종교개혁자(Pre-Reformers)27
에 의해 기반이 마
련되었고 루터에 이르러 시대가 무러익어 종교개혁이 촉발되었고
성공했다. 우리는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위해 적절하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다.
10. 우리 선교사는 우리의 선교를 성경에 의해 성령에 의존해 철저하
게 개혁하는 과제가 있다. 우리가 아프리카사람을 진정으로 이해
하고 사랑하고 섬기는가? 혹시라도 우월의식으로 접근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문화와 언어와 정서와 애환을 진정하고 이해하
고 공감하고 있는가?
IV. 추천 (Recommendations)
루터가 개신교의 역사를 연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가 많
이 부족하다. 개혁교회전통에서는 칼빈을, 감리교회전통에서는 웨슬리를
26
루터의 경우는 위에서 소개한 종교개혁 3 대논문과 선집을 읽어 가면 좋겠다. 칼
빈의 경우는 『기독교강요』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Calvin 1960).
27
종교개혁이전의 종교개혁자로 존 위크리프(John Wycliffe)와 존 후스(John Huss)를
들 수 있다.
22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연구하나 그 이전의 루터에 대한 공부는 부족하다.28 뿌리를 모르는 것은
그만큼 기반이 약하다는 것이고 사회의 풍조에 넘어지기 쉽다는 말이다.
우간다에서도 루터에 대한 공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루터전문가가 나왔
으면 한다.
우간다의 신학교에서 종교개혁의 원전들이 도서관에 갖추어지고 보
다 진지한 강의와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아직 자료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Corpus Christianum 이나 Weimar Ausgabe 와 같은
자료가 비치되기를 바란다. 독서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지 않다. 각 학교에
서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추도록 교육하고 비평적 책읽기와 글쓰기를 하도
록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V. 결론
개혁에 관련해 유명한 라틴어경구(警句)가 있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이미 개혁된 교회라도 끊임없이 개혁되어져 한다는 말이다.
종교개혁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
듯이 잠시라도 나 자신부터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나 자신을 살피는 개혁
을 게을리하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 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있어 단순한 과거회상이 아니라 오늘날의 적극적이고 활발한 삶
과 사역의 개혁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나로부터 출발해 가정과 사회와
교회와 세상이 개혁되어져 나가야 한다. 그러나 개혁은 하나님의 일이다.
나는 그 일에 준비가 되고 시대가 찾을 때 도구와 일꾼으로 쓰임을 받는
것이다.
28
Coram Deo(하나님 앞에서)의 신학이 칼빈주의의 핵심인데 그 신학이 이미 루터
에서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루터는 시편 51 편 주석에서 coram Deo 의 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23
References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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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aff, Philip, ed.
1983 The Creeds of Christiendom with a History and Critical Notes.
Three Volumes. Sixth Edition. Reprint of 1931 edition. Revised
24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by David S. Schaff. Grand Rapids, MI: Baker Books.
Shenk, Wilber R.
1995 Write the Vision: the Church Renewed. Harrisburg, PA: Trinity
Press.
Yu Hae-moo (유해무)
2016 “종교개혁과 신학.” 2016 년 11 월 5 일 제 33 회 기독교학문학회
주최 『 종교개혁의 유산과 과제 』 중 주제발표.
https://www.youtube.com/watch?v=5fxNkGzFRDk
25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에 나타난		
종교개혁 사상과 적용
최태용
(Ph. D. Can., 모든민족신학교 교수, ccjjii@hanmail.net)
I. 서론
1520 년은 종교개혁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그해 6 월 15 일 교황 레
오 10 세는 마틴 루터에 대한 특별 교서를 선포하였다. 60 일 이내에 루터의
모든 견해를 공식적으로 취소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이단자로 판정할
것이라는 엄격한 경고였다. 루터는 그 교서에 맞서 12 월 10 일 교황의 교
서와 교회법령집과 교황권을 지지하는 책과 모든 문서들을 불태웠다. 그리
하여 1521 년 1 월 3 일 루터에 대한 파문과 출고가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이 위급한 상황 가운데서 마틴 루터는 종교 개혁과 관련된 3 개의 논
문을 쓰며 교황권에 저항하였다. 1520 년 8 월, 10 월 11 월에 각각 발표된 이
세 논문들은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1 본 논문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이 함축되어 있는 3 개 논문을 살펴보고, 그 신
학적 의미를 찾아보고 적용해 보고자 한다.
II. 루터의 3대 논문과 그 사상
그의 3 대 논문은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To the Christian No-
bility of the German Nation), 교회의 바벨론 포로(Babylonish Captivity of
the Church), 크리스천의 자유(On Christian Liberty)이다. 그의 논문 내용
과 사상을 살펴보자.
1
지원용 역, 말틴 루터의 종교개혁 3 대 논문 (서울: 컨콜디아사, 1997), p.4.
26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1.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
이 논문은 루터가 1520 년에 기록한 논문이다. 루터가 머지않아 추방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독일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루터는 이에 대하여 강력
히 반발하였으며, 6 월 중순에 이 논문을 쓰기 시작하여 8 월 초순에 출판하
게 되었다. 이 논문은 출판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켜 2
주 만에 4 천부 이상이 매진되었다고 한다.2 그는 자신을 지지 하고 있던
독일의 귀족들에게 교황의 문제와 월권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며 함께
저항 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 논문은 1 천년 가까이 서방세계의 사회, 경제,
정치, 법조, 종교계의 기반을 이루고 있었던 사상적 기반을 “로마의 세 가
지 담(fence)"에 비유하면서 그 담을 허물고자 하였다.
첫째 담(墻)은 세속적 계급 위에 있는 영적 계급의 담이다. 당시
에는 교황, 주교, 사제들을 “영적 계급”이라고 부르고 군주, 영주, 직공 및
농부를 “세속적 계급”이라고 불렀으며 영적 계급이 세속적 계급보다 우위
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루터는 이러한 “영적 계급”은 사제들의 기득권
을 유지하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고 보았다. 루터에 의하면 모든 크리스천
들은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계급”에 속한다. 사제나 주교나 교황과 같이
“영적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의 직무인 말씀과 성례전의 집행을 맡
는 것을 제외 하고는 아무런 차이가 없고, 우위에 있지도 않다고 주장하였
다.3 루터는 세속적 계급에 대한 영적 계급의 우위성은 근거가 없는 주장
이며, 모든 크리스천은 다 사제라는 만인 제사장주의를 선언하였다. “영적
계급”에 속한 자라도 잘못이 있으면 “세속권력”에 의해 벌을 받아야 한다
고 주장하였다.
둘째 담은 성경해석자인 교황과 교황 무오설에 관한 내용이다. 루
터는 교황이 성경의 유일한 교사가 되려고 한다고 비판하였다.4 당시에는
교황만이 성서를 해석 할 수 있는 유일한 권위자였으며, 그 누구도 성경을
해석할 수 없었다. 또한 교황은 신앙문제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교황 무오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성서 해석의 권한이 오직 교황
에게만 있다는 것은 교황의 기득권을 위한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루
2
Ibid, p.,17.
3
Ibid, p.,29.
4
Ibid, p.,38.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 대 논문에 나타난 종교개혁 사상과 적용 27
터는 모든 크리스천은 신앙에 근거해 성서 해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셋째 담은 교황과 공의회의 담이다. 당시에는 교황만이 공의회를
소집할 권한이 있고, 공의회의 결정을 확인하는 것도 오직 교황에게만 있
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루터는 아무런 성경적인 근거가 없이 자신들
의 법령에만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루터는 실례로 가장
유명한 니케아 공의회가 주교가 아닌 콘스탄틴 황제에 의하여 소집이 되
었다는 역사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교황이 잘못할 경우 공의회를 소집하여
교황을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루터는 이 논문을 통해 교황권
을 강화하고 있던 중세 교회의 세 가지 담을 파괴하려고 하였다.
2. 교회의 바벨론 포로
루터는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을 발표한 2 개월 후에 이 논
문을 발표하였다. 루터는 이 논문을 통해 당시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
된 성례관을 신학적으로 설명하고 반박하였다.5 “바벨론 포로”라는 제목은
성례전의 왜곡된 가르침을 의미하는 말로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랫동
안 바벨론이 포로가 되어 고난을 겪은 것처럼 그리스도 교회의 성례전이
중세 로마 교회에 의하여 “포로”가 되었던 현실을 비유해서 붙인 표현이
다.
루터는 본 논문에서 카톨릭 교회의 성례를 비판하였다. 카톨릭 교
회의 7 가지 성례인 세례, 성찬, 참회, 안수례, 견신례, 결혼례, 그리고 임종
시의 도유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루터는 이 7 가지의 성례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말씀하고 인정한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전으로 보았다. 또한 그
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인정하신 것이 아니면 성례전으로 취급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 더 첨가하여 참회까지도 성례로 보았
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참회와 같은 외부적으로 나타
나는 표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루터는 가톨릭 교회의 성만찬 세 가지 행위, 즉 평신도 분잔 금지,
화체설, 미사의 공로와 희생제사적 성격을 3 대 '바벨론 포로 상태'로 비유
하고 이를 거부했다. 루터는 평신도들에게 포도주를 금하는 것을 로마 교
회의 횡포로 간주했고, 화체설은 '인간의 머리로 꾸며낸 허구, 기괴한 생각
5
Ibid, p.,155.
28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이라고 비난했으며, 미사가 선행이자 희생제사라는 견해에 대해선 '가장
사악한 오용'으로 취급했다.
3. 크리스천의 자유 (On Christian Liberty)
같은 달 나온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교황의 특사 칼 폰 밀티즈(Karl von
Miltitiz) 추기경이 교황과 루터를 화해시키려 한 것에 대한 응답이었다.
밀티즈는 루터를 보호하기 위하여 루터에게 그가 사적으로 교황을 공격하
지 않았음을 밝히고 그의 신앙에 대한 간략한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권유
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루터가 이에 동의해 교황 레오 10 세에게
보낸 공개서한과 함께 집필된 결과물이다.
루터에 의하면 크리스천은 자유로운 만물의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이 자유는 인간의 행위나 실천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
의 말씀을 통해 주신 선물이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 아래 얽매여 있지 않고 자유인이다. 반
면 크리스천은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한다. 그리스도인은 그
자유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여
야 한다. 6이웃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
III. 결론과 그 적용
루터는 그 시대 교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
의 문제를 끌어 안고 고민하였으며, 개혁해 나갔다. 루터의 3 대 논문에 의
하면 그의 시대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는 교회지도자, 성만찬, 그리스도인
의 삶의 문제였다. 그는 이 세 가지 문제를 개혁의 핵심적인 문제로 보았
으며, 진지하게 개혁해 나갔다.
1. 지도자
루터는 중세 교회 타락의 근원에 교황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다른 대부분
의 문제들은 교황의 문제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교황의 타락은 곧 그가
지배하고 있던 중세 교회의 타락으로 이어졌다. 중세교회 타락의 중심에
6
Ibid, p.,328.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 대 논문에 나타난 종교개혁 사상과 적용 29
교황이 있었기에 교황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개혁은 불가능 하였다.
결국 루터는 당시 기독교 최고의 지도자였던 교황의 탄핵을 시도하였다.
루터의 이런 지적은 우리시대 교회 지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루
터에 의하면 교회 지도자들은 개혁의 첫 번째 대상이다. 지도자가 타락하
면 교회도 타락한다. 지도자가 바뀌지 않으면 교회가 바뀔 수 없다. 종교
개혁 500 주년을 맞이하여 교회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개혁되어야 할 것인
가? 문제의 중심에 교권주의가 있다. 그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세
가지 벽을 쌓고, 교회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루터 의하면 사제들이란 주어
진 종교권력으로 교인들을 지배하는 자들이 아니라, 말씀과 성례전으로 그
들을 섬기는 자들이다. 우리 시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말씀과 성례전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 위에 군림하고 있는가?
2. 성례전
루터는 성례전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았다. 중세교회의 성만찬은 화채설을
주장함으로 미신적이었으며, 평신도에게 잔을 주지 않으므로 교회 안에 사
제와 평신도 계급을 구분하였으며, 성만찬에 선행과 희생제사의 의미를 부
여함으로서 왜곡되었음을 지적하였다. 루터에 의하면 성만찬은 중세 교회
와 교인들을 구속하는 하나의 제도였다. 루터는 성만찬의 개혁을 시도하였
다. 루터의 이런 지적은 우리의 성만찬 예식을 돌아보게 한다. 개신교는
말씀과 성례전을 통한 그리스도의 임재를 고백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성례
전은 어떻게 베풀어지고 있는가?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하는
가? 성례전에 참여할 때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그를 기념하고 있
는가?
3. 그리스도인의 삶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개혁되지 않으면 교회가 개혁될 수 없다고 보
았다. 중세시대 그리스도인들은 공로사상의 구속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었
다. 그러나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자유와 예속의 관점에서 이해하였다.
그리스도인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자유인
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섬기는 일에 책임성이 있으며, 그 일에
예속되어 있다. 루터의 이런 지적은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이웃과 사회에
얼마나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
30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떻게 개혁되는가? 우리는 개인의 구원과 개 교회의 성장을 넘어서, 이웃과
사회를 향한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의인의 단계를 넘어 성화
의 단계로 살아가고 있는가?
종교개혁 500 주년을 맞이하여 루터의 3 대 논문을 읽으면서 교회 지
도자의 문제, 성만찬의 문제, 그리스도인의 삶에 문제를 다시 점검하고, 개
혁해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혁교회의 바른 자세일 것이다.
31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김동언
(M.Div, 아프리카음악대학 교목, spring062988@gmail.com)
I. 서론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저술한 종교개혁 신학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학문적 이론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실제 스위스 제네
바에서 도시 개혁을 이끈 현장 운동가이기도 하였다. 종교개혁 당시 사회
상황은 전 영역에 있어서 로마 카톨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고 그들의
부패와 타락이 종교개혁의 원인이었다. 제네바도 마찬가지였다.
우간다는 어떤가? 통계에 따르면 교회를 다니며 기독교인이라고 인
정하는 우간다인이 인구의 80%가 넘는다. 1 이런 측면에서 우간다에서의
기독교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는 영국 때문에
우간다 내 성공회 교회의 영향력이 크고 최근에는 순복음 계통 교회들이
급속히 성장하며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한 국가, 한 사회에 있어서 교
회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은 성경적 가르침으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로마 카톨릭처럼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발생할 때 부정적인 모습들도 나타나므로 우리는 종교개혁가들처
럼 이를 경계해야 한다.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
지만 우리 모두는 죄의 속성 아래 있으므로 모든 교회가 전 시대를 통틀
어 항상 순수하고 건강한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의 몸 된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고 그것을 회복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
여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기독교인의 시대적 책무이다. 그
1
Patrick Johnston and Jason Mandryk, Operation World, 죠이선교회 역, 『세계기
도정보』 (서울: 죠이선교회, 2010), 511-12.
32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러므로 이 글에서는 전자가 아닌 후자의 측면에서, 칼빈의 제네바 개혁운
동을 통해 오늘날 우간다 교회가 부패와 타락을 경계하고 교회와 국가 공
동체를 성경의 교훈으로 바르게 세우는데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지 살피고
그 적용점들을 찾고자 한다.
II. 칼빈의 제네바 사역 배경
칼빈은 프랑스에서 출생하였지만(1509 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하
였고(1 차 1536-1538, 2 차 1541-1564), 그 곳에서 사망하였다.2 그는 제네바
에서 기독교강요 3 판~최종판(5 판)까지 저술하였다.3 칼빈이 제네바로 가게
된 계기는 당시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운동을 펼치던 기욤 파렐(Guillaume
Farel)이 제네바에 잠시 머물던 칼빈의 숙소로 찾아가 칼빈에게 종교개혁
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강권하였기 때문이다.4 파렐은 프랑스에서 추방된
종교개혁자로서, 칼빈에 앞서 제네바에서 종교개혁 운동-면죄부 판매 반대,
교황청 부정 부패 비판-을 전개하였고 천주교도들과의 공개토론을 통해 시
민들의 지지를 얻었다.5 이와 같은 파렐의 종교개혁을 통해 제네바 시민총
회는 만장일치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 성상과 우상 타파, 미사와 악
습 폐지를 서약하였다.6 그리고 시의회는 교회 재산을 관할하고 교회-정부
가 동일한 국가 교회의7 형태를 취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 시기에 칼빈이
2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New York: Oxford Univer-
sity Press, 1962), 93. ;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서울: 대한기독교서
회, 2013), 134-35.
3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3), 135.
4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7 ; 오덕교, 『종교개혁사』 (경기: 합동
신학대학원출판부, 2010), 234.
5
오덕교, 『종교개혁사』, 235.
6
오덕교, 『종교개혁사』, 236.
7
우리는 이와 같은 국가-교회 관계를 “Christendom”으로 볼 수 있는데, Wilbert R.
Shenk 는 Christendom 에 대해 “Christendom meant that Christianity became
recognized as the religion of state, and the church functioned as the religious
guardian of society. Christendom, or the corpus Christanum, thereby became indis-
tinguishable from society.”라고 설명한다. Wilbert R. Shenk, Write the Vision, (Har-
risburg: Gracewing Publishing, 1995), 9-10 참조.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33
제네바를 지나게 된 것이다.8
III. 제1차 제네바 사역 (1536-1538)
칼빈은 1 차 제네바 사역 기간 동안 생 피에르 교회에서 바울서신을 강해
하고 설교와 토론을9
통해서성경 교사와 목회자로 사역하였고, 제네바 교
회 개혁을 위해 『신앙고백과 규율』(Instruction and Confession of Faith),
『요리문답』(Geneva Catechism)을 작성하여 의회 승인까지 받았으나, 복
음에 어긋나게 생활하는 사람들과 신앙고백서에 서명하지 않은 사람들에
게 성찬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시의회에 의해 파렐과 함께 추
방당하였다.10
칼빈은 천주교 사제들과 수사들과의 토론회에서 천주교회가 터툴리
안, 아우구스티누스 등 교부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났다고 비판했고 성찬에
있어서 화체설이 아닌 영적 임재설을 주장했다.11 또한 그는 교회개혁을 위
해 파렐과 함께 『교회 행정에 관한 조례』(Articles concerning the organ-
ization of the Church and of Worship at Geneva)를 제네바 시의회에 제출
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1)바울의 가르침을 따라 예배 때 시편찬송을 부
를 것(어린이 성가대 조직) (2)매월 성찬 실시 (3)어린이 교육(요리문답) (4)
결혼법 개혁(성례가 아닌 제도) 등 이었다.12 칼빈은 천주교회와 재세례파
의 그릇된 교훈을 막기 위해 앞서 언급한 『 교훈과 신앙고백 』
(Instruction and Confession of Faith)을 작성하고 “오직 성경만이 믿음과
신앙의 유일한 법칙”임을 모든 시민이 고백함으로써 제네바를 하나의 신
앙공동체,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는 사회로 만들고자 하였다.13 칼빈은 이
를 위해 제네바 시민들이 10 명씩 관원 앞에 나와 신앙고백을 하고 준수
8
오덕교, 『종교개혁사』, 236.
9
Ibid., 236.
10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7.
11
오덕교, 『종교개혁사』, 236-37.
12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138-40; 오덕교, 『종교
개혁사』, 237.
13
오덕교, 『종교개혁사』, 237-38. 이와 관련하여 Instruction and Confession of
Faith 을 번역할 때 오덕교 교수는 『교훈과 신앙고백』으로, 박경수 목사는 『신
앙고백과 규율』로 번역하고 있다.
34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서약을 하도록 강제하였는데, 이것이 오히려 시민들의 저항을 불러 일으켰
고, 칼빈은 권징을 교회의 고유 권한이라 주장하여 시 당국과 갈등을 초래
하였다.14 칼빈의 종교개혁 방식에 반대한 장 필립(Jean Philippe)은 칼빈의
강제적인 신앙고백과 성찬의 권징수단화를 비판하였고, 선거 승리 이후 의
회총회에서 칼빈과 파렐의 설교권을 박탈하고 추방하였다.15
IV. 제2차 제네바 사역 (1541-1564)
제네바에서 추방당한 칼빈은 바젤을 거쳐, 처음엔 거절하였던 스트라스부
르(현재는 프랑스 지역) 프랑스 난민들의 담임목사 청빙을 수락하고16 그곳
에서 기독교강요 개정판과 로마서 주석을 집필하였다.17 스트라스부르에서
그는 종교개혁자 마틴 부쳐(Martin Bucer, 1491-1551)의 영향을 많이 받아
기도로서의 찬송을 강조하고 초대교회의 예배 방식과 교회 연합을 중시하
였다.18
한편, 파렐과 칼빈을 추방한 후 제네바 시가 종교적으로는 천주교회
로부터 복귀 위협을 받았고, 정치적으로는 칼빈을 추방한 세력이 베른과
불평등 조약을 맺은 것 때문에 시민들에 의해 탄핵되어 칼빈에게 우호적
인 당파가 권력을 잡는 정치변화가 일어났다.19 이후 제네바 시민들은 칼빈
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요청하였고 파렐과 부쳐의 설득으로 칼빈은 제네
바로 돌아왔다.20
칼빈은 제네바로 돌아왔지만 반대세력들의 방해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대표적으로 카드놀이 제조업자 피에르 아뫼(Pierre Ameaux)가
교회권징의 실시와 유흥 기피 풍조 때문에 자신이 막대한 재정 손실을 입
자 칼빈을 중상모략 하였고, 아미 페린(Ami Perrin)은 자신의 장인과 아내
가 치리 받자 칼빈의 개혁운동에 반대하였으며, 제롬 볼색(Jerome Hermes
14
오덕교, 『종교개혁사』, 238.
15
Ibid., 239.
16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144.
17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7-38, 146-49; 오덕교, 『종교개혁사』,
239-40.
18
오덕교, 『종교개혁사』, 240-44.
19
Ibid., 245.
20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8.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35
Bolsec)은 예정교리를 거짓이라고 비판하고 칼빈에 대한 부정적인 책을 써
종교개혁을 반대하였고, 마이클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는 삼위일체
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였으며, 카스텔리오(Sebastian Castellio)도 성경
으로서의 아가서 배제, 교리보다 윤리를 중시할 것을 주장하여 칼빈의 종
교개혁에 반대하였다.21
칼빈은 『 제네바 교회법령 』 (The Ecclesiastical Ordinances of the
Church of Geneva)을 만들어 잘못된 예배의식과 관습을 개혁하였는데, 이
법령은 지역 교회의 자율과 평등을 중시함으로써 감독정치와 같은 위계질
서를 배제하였고, 목사·교사·장로·집사로 구성되는 장로정치의 골격을 유지
하도록 규정하였다.22 또한 목회자와 평신도로 구성된 치리기구 ‘Consisto-
ry’를 조직하여 도덕을 바로 세웠고, 신학적 논쟁을 통해 올바른 사상을
수립하였다.23 아울러 교회개혁을 이룰 인물을 양성하기 위해 ‘제네바 아카
데미’를 세워서 학생들에게 신앙고백, 시험과 토론을 통해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등 교육을 개혁하였다.24 나아가 ‘종합구빈원’(General Hospital)
과 ‘프랑스기금’(Bourse Francaise)을 통해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등 제네바
를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도시로 만들었는데 25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낙스는 당시 제네바에 대해 ‘사도 시대 이후 가장 완벽한 그리스도의
학교’라고 감탄했다.26
V. 적용
개신교 교회는 거짓 진리에 맞서 처절하게 투쟁했던 종교개혁의 소중한
21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165-75 ; 오덕교, 『종교
개혁사』, 246-52.
22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160-65; 오덕교, 『종교
개혁사』, 246.
23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8-39.
24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194-96 ; 오덕교, 『종교
개혁사』, 253-54 ;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8-39.
25
오덕교, 『종교개혁사』, 253-54 ;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9. ;
‘구제’ 믿는 이의 마땅한 직무, <한국기독공보>, 2017/03/19, http://www.pck-
world.com/news/articleView.html?idxno=42974 (2017 년 10 월 12 일 검색)
26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9.
36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열매이며 살아 있는 역사이다. 우간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당시 로마 카톨
릭처럼 면죄부를 팔고 성상과 교황을 숭배하는 모습은 없지만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종교개혁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물질주의, 신
비주의, 신사도주의, 영지주의 등 성경을 왜곡하고 성도들을 미혹하는 가
르침들이 교회에 침투하여 교회의 건강을 해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위에서 살핀 제네바 종교개혁을 우간다에 적용하여 고찰하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온전히 회복하기 위한 시도가 될 것이다.
1. 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과 지지
제네바에서 파렐과 칼빈의 종교개혁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네바 시민들의 개혁에 대한 열망과 지지가 있었다. 칼빈이 제네바에 오
기 전 이미 제네바 시민들은 파렐이라는 종교개혁가에 의해 로마 카톨릭
의 부패와 폐해를 극복하려는 열망이 있었다. 당시 제네바의 종교개혁은
소수의 종교개혁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시민들의 요구와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칼빈의 종교개
혁은 이와 같은 시민들의 요구와 지지 위에 있었다.
교회는 교회 지도자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몸은 성도들이다. 건강한 교회를 향한 성도들의 소망이 변화의 기초이
며 그들의 집결된 지지가 변화의 힘이다. 우간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간다 교회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변화를 바라는 우간다 교회의 성도들의
강한 갈망과 힘이 필요하다. 우간다 교회의 부족한 모습에 대해 변화의 필
요성을 느끼는 교회 성도들의 깨어 있는 정신이 변화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종교개혁가들은 어떻게 시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는가?
제네바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들이 택한 방법 중 하나는 천주교도
들과의 공개토론이었다. 문제해결을 위해 로마 카톨릭과 이면에서 합의하
지 않았다. 토론을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로마 카톨릭의 문제를 드러냈다.
그리고 어느 쪽이 더 성경에 부합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시민들은 그 결
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현 시대는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통신기술이 발달하여 토론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가능성이 높다. 신문, 라
디오, TV 방송, 인터넷은 교회의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들이다. 그러므로 파렐과 칼빈처럼 교
회가 주님의 몸으로 회복하길 바라는 이들은 이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활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37
용하여 토론의 장을 만들고 시민들이 성경의 정확한 진리를 스스로 확인
하고 교회를 위한 변화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2. 개혁에 대한 저항의 극복
제네바 시민들과 시의회는 로마 카톨릭에 대항하는 종교개혁에는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칼빈이 신앙고백서와 교리를 확립하여 성도들에게 이를 확
산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을 때, 그들은 오히려 저항했다. 칼빈은 교리를
지키지 않고 신앙고백서에 서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성찬을 받지 못하
게 하였는데 시민들과 시의회가 이를 반대하고 수용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칼빈의 개혁이 지나치게 금욕적이고 일방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시
의회는 제네바 교회의 통제권을 목회자가 아닌 자신들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칼빈은 이에 대해 단호했다. 그들에게 굴복하거
나 타협하지 않았다. 결국 시의회는 칼빈을 추방했다. 그의 개혁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3 년 후 그는 자기를 쫓아냈던 시의회에 의해 다시
제네바로 복귀하였다. 마침내 시의회는 칼빈의 교회법령을 수용하였다. 칼
빈이 제네바로 돌아온 후에도 칼빈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여전히 저항하였지만 칼빈은 개혁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들의
저항을 극복해 나갔다.
변화가 있을 때 저항은 따른다. 특히 그 변화가 급진적이고 강제적일
때 이에 비례하여 저항의 강도도 세다. 저항에 의해 변화와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 칼빈도 처음엔 실패했다. 자신의 개혁이 실패하고 추방당했을 때
그는 좌절하고 상실감이 컸다. 뿐만 아니라 제네바 복귀 후, 두 번째 개혁
에서도 그는 많은 위기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반대하던 세력과
의 타협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개혁처럼 실패하
지 않았던 이유는 정치적·사회적 상황이 칼빈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여
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교회개혁의 성공여부는 사람에게 있지 않
고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개혁이 옳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개혁은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개혁의
성공 여부가 아니라 변화와 개혁을 위해 성경을 따라 우리가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의 개혁과 달리 교회의 개혁은 그 성공 확률이 크면 시
도하고, 그것이 적으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와 개혁을 위한 노력은
항상 있어야 한다. 그 노력 자체가 저항을 극복하는 힘이다. 칼빈의 경우
38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가 이것을 증명한다. 그는 개혁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성경의 진리에 따
라 움직였다. 물론 개혁에 실패했을 때 그는 좌절했고 매우 외로웠다. 그
러나 그가 저항이 두려워 타협했다면 제네바의 종교개혁은 영원히 역사에
서 사라졌을 것이다.
이와 같이 칼빈을 통해 우리는 우간다 교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 가져야 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앞서 우간다 교회 내 물질주의,
영지주의, 신사도주의, 신비주의를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다양성이라는 명
분으로 수용해서는 안 되는 비진리이다. 또한 여호와의증인, 제 7 일안식교
에 대해서도 우간다 교회는 성경을 기준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많은 정
통 교회가 성경 외 다른 책에 성경의 권위를 부여하고 잘못된 구원론과
종말론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우간다 교회와
성도들은 성경에 근거하여 교회 안에서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한 후 비진
리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 자체가 개혁의 시작이
다. 물론 그런 노력이 저항에 부딪혀 제네바의 경우와는 달리 결실 없이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제네바 종교개혁의 중요성은 성공과 실패에 있지
않다. 칼빈은 성공의 가능성 때문에 개혁에 나서지 않았다. 잘못된 교회를
바로 세우려는 소망 때문에 그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
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끊임없이 성경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개혁하는 것
이다. 개혁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는 힘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경
의 진리를 사모하고 그 진리대로 교회를 세우려는 마음이다.
3. 바른 신학과 교리의 대중화·생활화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제네바에서 그는 기독
교강요 3 판~최종판(5 판)을 저술하였다. 그는 왜 기독교강요를 썼을까? 그
가 기독교강요를 쓴 목적은 ①“기독교 기초교리의 진술(confession)과 교
육적 동기(catechism)”, ②“개혁신학에 대한 변증(apologie)”, ③“신학도들
을 위하여 성경을 올바르게 읽도록 하는 안내서의 역할”, ④“경건의 지침
서(summa pietatis)”이다.27 아울러 그는 많은 성경 주석도 저술하였다. 그
는 자신의 기독교강요와 주석서들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
하게 이해하고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침으
27
김은수, 『칼빈과 개혁신앙』 (서울: SFC 출판부, 2011), 19-20.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39
로써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이것을 바탕으로
그는 제네바 시민들이 지켜야 할 『요리문답』(Genevan Catechism), 『교
회 행정에 관한 조례』(Articles concerning the organization fo the Church
and of Worship at Geneva), 『교훈과 신앙고백』(Instruction and Confes-
sion of Faith), 『제네바 교회법령』(The Ecclesiastical Ordinances of the
Church of Geneva)을 작성하고 의회의 승인을 받았으며 이는 제네바 시민
들의 신앙 및 생활규범이 되었다. 그러므로 신앙과 삶의 일치라는 제네바
종교개혁의 힘의 원천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 뿌리를 둔 바른 신
학과 교리이다.
2014 년 현재 우간다 종교현황은 개신교 45.1%(Anglican 32.0%, Pen-
tecostal/Born Again/Evangelical 11.1%, Seventh Day Adventist 1.7%, Bap-
tist 0.3%), 로마카톨릭 39.3%, 무슬림 13.7%, 기타 1.8% 이다.28 성공회와
개신교를 묶어 함께 개신교를 42%로 보기도 하는데 우간다에서는 여호와
의 증인, 제 7 일 안식교가 개신교에 포함되므로 이들과 신사도주의, 신비주
의, 은사주의, 번영신학, 영지주의 등을 제외한다면 개혁신앙을 따르는 개
신교 비중은 줄어든다. 물론 개혁신학을 따른다고 해서 모두 바른 신학과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고, 개혁신학을 따르지 않는다고 모두 잘못
된 신학과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 종교개혁
이 추구하였던 개혁은 어느 한 종파의 개혁이 아니라 교회로서의 본질을
상실한 당시 로마 카톨릭에 대립하여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를 고백한 교회의 개혁이며, 우간다 개신교회도 이를 계승하고 있으므로
이를 기준으로 현재 교회들이 바른 신학과 교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그리고 얼마나 그 교리와 신학들이 성도들의 삶에
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칼빈은 개
혁신앙의 원리를 담은 교리를 대중화하여 신앙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였다.
의회의 승인을 받은 것도 그것을 위함이었다.
우간다 내 기독교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중 절반 이
상이 로마 카톨릭이고 사회 내 이슬람의 영향력도 아주 크다. 그러므로 칼
빈 당시 제네바처럼 모든 사회를 아우르는 생활규범으로서 교리를 사용하
28
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fields/2122.html#198
(2017 년 10 월 14 일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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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이 페이지는 일부러 공백으로 남겨두었습니다.
  • 3. 종교개혁 500 주년 기념 포럼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기간: 2017 년 10 월 27~28 일 장소: 모든민족신학교 (우간다 캄팔라) 아프리카공부모임 모든민족신학교 아프리카선교대학 아프리카음악대학(특별공연)
  • 4. 이 페이지는 일부러 공백으로 남겨두었습니다.
  • 5. i 머리말 종교개혁 500 주년을 기념할 이유가 매우 많다. 김성환 선교사가 이 기념포 럼의 머리말을 써달라고 부탁할 때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는 김 박사를 2000 년초부터 알고 있는데 아프리카대륙에서 선교를 위해 측정할 수 없는 열정과 헌신으로 우간다에서 일하는 선교사이다. 그는 건전한 성경 해석과 적용을 위해 마찬가지로 열정적이다. 그 이후로 우리는 “선교의 동반자”가 되었다. 본인이 마케레레대학교에서 은퇴한 이후로 그러한 관계 속에서 계 속 동역하고 있다. 나는 아프리카선교대학(Africa School of Intercultural Studies)에서 그와 함께 신학을 가르친다. 마틴 루터가 로마카톨릭교회의 교리와 행습을 내부로부터 개혁하려 고 의도했지만 결국은 분리를 가져왔다. 1517 년 10 월 31 일에 마틴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교회문에 95 개조를 못질했다. 이렇게 해서 성경적이 아니라 고 그가 간주한 면죄부판매, 연옥과 다른 행위에 대한 교리정책에 대해 로 마카톨릭교회에 공식적으로 도전을 가했다. 로마카톨릭교도들은 이 95 개 조에 대해 가혹하게 반응해서 분리가 초래되었고 종교개혁자들을 경멸적 으로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렀고 그것이 명칭이 되었다. 개혁자들의 확신 이 다섯 개의 sola 로 요약된다. 종교개혁부터 오늘날까지 개신교회를 자세 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되는 건전한 교리를 거듭거듭 배반 한 것을 본다. 그래서 거듭거듭 부흥이 필요했다. 우간다교회는 세 번의 부흥을 경험했다. 새롭게 도착한 조지 배스커빌(George Baskerville) 목사 는 음주와 비도덕에 대해 교회를 영적으로 척결해야 할 필요성을 보았다. 그래서 한 주 선교집회를 개최했고 작은 부흥을 초래했다. 두번째 작은 부 흥은 필킹턴(Pilkington)부흥이었다. 시미오니 은시밤비(Simeoni Nsibambi) 와 조우 처치(Joe Church) 의사선교사는 세 번째로 동아프리카부흥운동을 주도해서 수십년 계속 되었다. 이러한 모든 부흥운동에도 불구하고 자유주 의와 근대이념이 많은 사람에게 혼동을 초래해 세상이 점점더 불경건하게 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개혁은 여전히 필요하다. 나의 간절한 희망은 이 책의 내용이 교단간의 경계를 넘어 읽히기를
  • 6. ii 바라는 것이다. 정통기독교가 누리는 도덕적 가치를 자유주의가 침식하고 있는데, 또한 이 책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의 계속적인 개혁을 위해 갱신의 열망을 불어 넣어 주기를 기도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연구를 많 이 한 것으로 안다. 우리의 기도와 사역이 미치는 곳마다 이러한 시도가 현금의 교회를 자극해 영적인 개혁을 추구하도록 되기를 바란다. Rev. Canon Dr. Johnson Ebong 신학교수 아프리카선교대학교, 나무공고순교자기념신학교, Conquering Storms of Life-A Theology of Suffering 의 저자
  • 7. iii “아공모”가 드리는 초대의 글 동아프리카에서 종교개혁 500 주년을 기리며 2017 년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피운지 500 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신교에 속한 우리에게는 우리 신앙의 근본을 알려주는 이 사건과 운동을 기리며 오늘날에도 그 정신을 이어 우리가 처한 선교상황에서 실 천하고자 합니다. 이 기념의 배경에는 매주 모여 평상시 선교와 아프리카를 배우는 한 국선교사들의 모임(아공모)이 있습니다.1 종교개혁 500 주년을 즈음해 유럽 과 북미와 한국에서는 수많은 기념 집회, 학술대회 강연들이 열리고 있습 니다. 그에 비해 우간다에서는 기리는 일이 별로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오 히려 외부에서 와서 일과성으로 행사를 치르고 가려는 움직임도 보게 되 었습니다. 아공모가 먼저 선교와 아프리카를 평소에 공부하면서 우리를 보낸 한국교회와 우리가 섬기는 우간다교회가 계속 개혁해 나가야 하는 필요성 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문화와 세상에 처한 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개혁할 것은 교회 의 온전성 회복으로 교회의 본질인 선교를 회복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모임을 준비하면서 진행할수록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상아탑의 연구실에서 글쓰기에 전념할 수는 없었고 복잡하고 분주한 선교 사역을 수행하는 중에 틈틈이 짬을 내서 읽고 쓴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적 개혁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우간다동역자들이 동참하기 는 했지만 우리의 동역자들(hosts)이 주가 되고 우리는 돕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더 많은 한국선교사들과 다른 나 라 사역자들이 참석하지 못해 역시 아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다음에 계 속되는 포럼에서 더 넓고 다양한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바램이 1 정식명칭은 Africa Institute of Mission Studies and Services (AIMSS)이고 한국말로 는 아프리카공부모임(아공모)입니다.
  • 8. iv 고 그렇게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의 소박한 시작이 작은 불꽃으로 튀고 잔잔한 물결로 퍼져 나가 계속 개혁의 운동이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침체될 뿐만 아니라 각종 부조 리에 휩싸인 한국교회가 사랑과 공의가 넘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 로 그 선교적 열정을 펼쳐나가면서 아울러 한국적이고 세계적인 선교 신 학과 실천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소 주춤하고 수줍어하는 우간 다교회가 이제는 자립, 자신학화, 자선교화가 되어 마지막때에 세계선교를 적극적으로 담당하고 주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으로 두 구절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개혁과 선교 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하나는 종교개혁의 경구이고 하나는 성경구절입니 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이미 개혁된 교회도 끊임 없이 개혁되어져야 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 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 11:36). 김성환 목사
  • 9. v “ANTS”가 드리는 초대의 글 교회개혁운동과 세계부흥운동의 꿈 올해는 종교개혁 500 주년이 되는 해이다. 전세계의 많은 교회와 단체가 오늘날에도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많은 작업을 하고 있다. “종 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포럼이 저의 학 교 ANTS(All Nations Theological College & Seminary)에서 개최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특히 우간다의 한국선교사들과 우간다교역자들이 이 포 럼을 준비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 지금 여기에서의 개혁을 위해 연합하고 연대하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도전을 준다. 하 나는 우리의 본질인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가 항상 개혁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포럼을 통해 “교회개혁운동”과 “세계부흥 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우간다를 포함해 동아프리카교회들이 모든민 족을 제자삼기 위해 부흥하기를 바란다. 여러분을 이 포럼에 진심으로 초대한다. 여러분이 이 포럼에 참석하 는 것을 통해 개혁의 꿈을 이루고 동아프리카교회에 부흥을 가져다 주시 기를 바란다. 이 포럼을 준비한 선교사님들과 목사님들에게 감사드린다. 윤재승 목사 ANTS 교장
  • 10. vi 프로그램 DDAAYY 11 ((2277tthh ,, 금금요요일일)) 사회: 존 코니 목사 시간 프로그램 09:00-10:00 개회예배: 사회: 벤슨 무네네 목사 설교: 윤재승 목사 10:00-10:50 주 발제: 500 년 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김성환 선교사) 10:50-11:20 논찬: 김무열 목사 11:20-11:40 휴식 시간 11:40-12:30 질의 & 응답 12:30-13:30 점심 시간 13:30-15:30 주제발표: 1. Africa Philharmonic Orchestra and AIM Choir (공연기획: 박마리아 선교사) 2.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 대 논문에 나타난 종교개혁 사상과 적용 (최태용 선교사) 3.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김동언 선교사) 15:30-16:00 질의 & 응답 16:00-16:10 폐회 (기도: 사회자)
  • 11. vii 프로그램 DAY 2 (28th , 토토요요일일) 사회: 벤슨 무네네 목사 시간 프로그램 10:00-10:50 주 발제: 종교개혁 500 주년을 기념하면서: 우간다에의 적용 (에봉 존슨 교수) 10:50-11:20 논찬: 카랑과 스태니스라스 목사 11:20-11:40 휴식 시간 11:40-12:30 질의 & 답변 12:30-13:30 점심 시간 13:30-14:00 특송: ANTS 합창단 14:00-15:30 주제발표: 1. 마틴 루터의 성경번역과 그 번역이 독일어에 미친 영향: 우간다와 아프리카에 주는 교훈 (무랑가 마누엘 교수) 2. 아프리카 선교로서 정보통신기술개발과 신앙개혁 (정유철 선교사) 3. 구약 안에 나타난 종교개혁과 루터의 종교개혁의 비교 연구 (신동헌 선교사) 15:30-16:00 질의 & 응답 16:00-16:10 폐회 (기도: 사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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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ix CONTENTS 머리말 .................................................................................................................. i “아공모”가 드리는 초대의 글....................................................................... iii “ANTS”가 드리는 초대의 글........................................................................... v 프로그램 ........................................................................................................... vi DDAAYY 11 500 년 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김성환 선교사)................................... 3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 대 논문에 나타난 종교개혁 사상과 적용 (최태용 선교사) ........................................................................................... 25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김동언 선교사)......................... 31 DDAAYY 22 종교개혁 500 주년을 기념하면서: 우간다에의 적용 (에봉 존슨 교수).... 45 마틴 루터의 성경번역과 그 번역이 독일어에 미친 영향: 우간다와 아프리카에 주는 교훈? (무랑가 마누엘 교수)......................................... 55 신앙 개혁을 위한 아프리카 선교로서 정보통신기술 개발 (정유철 선교사) ........................................................................................... 65 구약 안에 나타난 종교개혁과 루터의 종교개혁의 비교 연구 (신동헌 선교사)........................................................................ 81 저자약력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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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 Da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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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3 500년 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Reformation There-Then and Here-Now 김성환 (Ph.D, 아프리카선교대학 및 아프리카음악대학 교수, africaninitiatives@gmail.com) 2017 년은 마르틴 루터가 성당문에 95 개조를 내걸어 종교개혁 (Reformation)의 도화선을 그은 지 500 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확히 비텐버 르크(Wittenberg)의 쉴로쓰교회(Schlosskirche)의 교회문에 만성절(All Saints Day) 전날인 1517 년 10 월 30 일에 95 개조의 반박문을 못질해 걸어 로마카톨릭교회에 잘못된 교리와 행습에 도전을 가한 것이다.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우리는 이 종교개혁을 기리고 오늘날 우 리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도모하고자 한다. 500 년전의 종교개혁의 정신을 배워서 오늘날 동아프리카교회의 개혁을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다. I. 서론 본논문에서는 루터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특히 그가 말씀 앞에서 어떻게 섰는가에 최종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겠다. 종교개혁자 특히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의 실례를 관찰하고 그 신학과 실천을 오늘 날 우리의 사역과 선교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본논문과 발표의 대 상으로 보다 젊은 교회지도자 특히 신학생들과 현장사역자들과 그들과 동 역하는 선교사를 대상으로 써내려 가도록 하겠다.1 신학적으로 세세한 기 술적인 파헤치기보다는 선교와 목회에 도움이 되도록 쉽게 풀어가는데 초 점을 맞추려고 한다. 1 이번 종교개혁 500 주년기념 포럼에 이들이 주된 참석자가 될 것이다.
  • 18. 4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1. 전제 교회의 본질은 선교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선교는 신학의 어머니 이다 (Mission is the mother of theology)”라는 마르틴 켈러(Marin Kähler) 의 말을 전제로 한다 (Shenk 1995:43 에서 재인용). 신학이 사색으로 흘러 서는 안되고 오히려 세상으로 간 교회가 세상에 선교하는 것이 신학의 원 동력이 되어야 한다. 2. 루터와 선교 흔히 종교개혁자들에게는 선교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루터가 독 일내에서의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작업 앞에 미처 해외선교에 신경을 쓸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회가 다시 세상으로 들 어가서 모든 신자가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선 교가 수도원으로 간 중세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점을 본 논문에서 살피고 증명하고자 한다. 3. 본 논문의 논제 본 논문의 논제는 “오늘날 가장 필요한 개혁은 교회의 본질인 선교를 회 복하고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우리도 세상 끝까지, 땅의 모든 끝들 까지 동참하는 것이다”는 것이다. 4. 루터의 종교개혁 연구를 위한 1차 자료 우리가 공부하는데 2 차자료, 3 차자료를 읽거나 인터넷에서 취합하는 것보 다 좀 느리고 힘들더라도 원전으로 가서 보화를 캐는 것이 진짜 공부이다.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으나 일단 읽고 뼈대를 추린 다음 또 읽고 또 필요하다면 거듭 읽으면 그 이득은 값으로 따질 수가 없다. 진지 한 독서와 공부를 통해 우리의 영성이 깊어지고 세계관이 변화한다. 루터를 공부하기 위해서 전집이 있다. Weimar Ausgabe(바이마르 아 우스가베 혹은 바이마르판)라고 하는데 총 121 권이 있다. 그 전집은 루터 의 탄생 400 주년인 1883 년에 시작해서 2009 년에 121 권으로 마쳤다. 총 80,000 쪽이 되는 거대한 분량이다. 다음과 같이 구분되어 있다:
  • 19.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5 Division I: Schriften / Werke (writings/works, 저작), 72 volumes, includ- ing 8 in two parts (abbreviation: WA) Division II: Tischreden (table talk, 탁상담화), 6 volumes (abbreviation: WA TR) Division III: Die deutsche Bibel (The German Bible, 독일성경), 15 vol- umes (abbreviation: WA DB) Division IV: Briefe / Briefwechsel (correspondence, 서신), 18 volumes (abbreviation: WA BR) 위의 책들은 온라인에서 읽을 수 있게 공개되어 있다. 단 라틴어나 독일어로 되어 있다.2 이것이 미국의 Concordia 출판사에서 영어로 번역 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역시 그 선집이 컨콜디아출판사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마르틴 루터의 글 중에 종교개혁 3 대 논문(The Reformation Trea- tises)이 있다. 이 논문들은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3 년 뒤인 1520 년에 발 표됐으며, 루터의 새로운 신학 사상의 윤곽을 제시하고 있다.3 독일어이름 영어이름 한국어이름 출판 내용 An den christ- lichen Adel deutscher Na- tion To the Chris- tian Nobility of the German Nation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 는 글 1520 년 8 월 교황의 지고성을 둘 러싼 담을 헐기. 성 경의 우위. Von der baby- lonischen Ge- fangenschaft der Kirche Babylonish Captivity of the Church 교회의 바벨론 감금 1520 년 10 월 성경적인 성례는 세 례와 성찬이며 믿음 에 근거해야 Von der Frei- heit eines Christenmen- schen On Christian Liberty 크리스천의 자 유 1520 년 11 월 그리스도인은 모두에 게 자유하나 모두를 섬겨야 영어로 된 루터의 선집으로 다음의 두 책이 대표적이다: 2 본논문에서는 루터에 초점을 맞추지만 존 칼빈도 중요한 종교개혁가이다. 그의 저 작도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칼빈에 관해서는 이번 포럼에 서 김동언 목사가 발제를 한다. 3 이 3 대논문에 대해서는 이번 포럼의 발제자 중의 하나인 최태용 목사가 보다 자 세히 취급할 것이다. 이 세 편의 논문은 최근 출판사길에서 WA(라틴어)로부터 황 정욱이 번역해서 새롭게 출판되었다.
  • 20. 6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1. Dillenberger, John, ed. 1961 Martin Luther: Selections from His Writings. Garden City, NY: Anchor Books. 2. Lull, Timothy F. 1898 Martin Luther’s Basic Theological Writings. Minne- apolis: MN: Fortress Press. 한국어로는 지원용이 편집하고 컨콜디아사에서 발간한 루터선집 (1981-1989)이 있다. 종교개혁 당시의 신앙고백은 필립 샤프(Philip Schaff) 가 편집한 The Creeds of Chrstendom 에 수록이 되어 있다. 서양사람들의 학구열이 대단하다. 이에 비해 우리 아시아나 아프리카 에서는 기록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구전문화는 발달되어 있으나 기록하고 읽고 쓰는 문화에는 많이 뒤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신학교 교육 에서 이점에 보강을 하면 좋겠다. 5. 종교개혁의 정의 한국어로는 종교개혁이라고 번역이 되는데 보다 정확하게 삶의 전반에 있 어서의 개혁을 의미한다. 교회개혁이라고 번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유해 무 교수는 “사람 개혁, 교회 개혁, 세상 개혁”라고 해서 포괄적이고 총체 적인 개혁을 주장한다.4 그러나 종교개혁이라는 말이 이미 관용적으로 굳 어서 종교개혁이라고 계속 말하지만 그 의미는 교회개혁이 될 것이다. 개혁(reformation)은 라틴어의 reformatio 에서 나온 말로 형식(forma)을 재정립(re-)하는 것이다. 그 동안에 고질적으로 형성된 삐뚤어진(de- formed) 형태를 바른 형태로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re-formed). 또 그 동안 전혀 형성이 안되고 원시상태나 자연상태에 있는 것은 비로소 형태 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성경에서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단순 히 형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하고 개선하고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종교개혁에서는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이고 초대교회를 넘 어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루터는 어거스틴을 넘어 바울을 통해 복음 의 바른 의미를 깨닫게 된다. 복음을 새롭게 발견하고 새롭게 교회와 선교 4 유해무 교수는 2016 년 11 월 5 일 제 33 회 기독교학문학회 주최 제 33 회 기독 교학문학회.종교개혁의 유산과 과제 특강에서 그렇게 말했다.
  • 21.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7 를 바르게 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단순히 개혁할 (reformed) 뿐만 아니라 계속 해서 개혁해 나가야 (reforming) 한 다는 것이다.5 II. 루터와 종교개혁 종교개혁은 루터 이전부터 시작해 루터 이후로 계속된다. 본논문에서는 루 터에 초점을 맞춘다. 1. 마르틴루터의 간단한 생애 마르틴 루터는 1493 년 11 월 10 일에 아이스레벤(Eisleben)에서 태어났다.6 그는 만스펠트에서 라츠슐레(Ratschule), 막데부르크에서 프란스시파 학교, 아이제나흐에서 게오르겐슐레(Georgenschule)를 다녔다. 대학교는 에르푸 프트(Erfurt)로 갔다. 이 미래종교개혁자는 1502 년에 B.A., 1505 년에 M.A. 를 취득했다. 그는 1507 년에 사제로 안수받았다. 1508 년에 신설 비텐베르크 (Wittenberg)대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1512 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 았다.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동대학에서 성경강사(lectura in Biblica) 자리 에 임명을 받았다. 루터는 1511년에 로마를 방문했다. 1512년 전후로 수도원의 골방에서 고뇌하던 중에 이신칭의의 교리를 발견하게 된다. 로마서가 아니더라도 시 편과 히브리서를 강의하던 중에 이 교리를 갖게 된다. 1520 년 6 월 15 일 교황 레오는 루터를 출교하는 문서(bulla)에 서명 했다. 루터는 1525 년 6 월 27(13?)일에 수녀였던 카터린 폰보라(Katherine von Bora)와 결혼했다. 루터는 1546 년 2 월 18 일에 여행중에 그가 태어났 던 도시 아이스레벤에서 죽었다. 2. 마르틴루터와 성경 5 개혁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한 카우프만의 책에서 많은 도움 을 받았다 (Kaufmann 2017, 특히 3-10 쪽). 6 그는 동일한 도시에서 1546 년 2 월 18 일에 죽는다.
  • 22. 8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루터는 어렸을 때 성경을 접하지 못한 것 같다. 청소년 시절 우연히 성경 을 접하기는 했지만 수도원에 들어 가서야 성경을 갖게 된 것 같다. 이후 그는 성경을 열심으로 읽었다. 결국 그는 성경박사(Doctor in Biblia)가 되 었다. 그 자신의 고백에 의하면 그런 성경지식을 계속 유지했으면 놀라운 성경성구사전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Luther 1979:6-7).7 그는 조직신학 보다는 성경해석을 가르쳤다.8 성경을 살펴보는 가운데 루터는 카톨릭교회의 the sacrament of pen- ance 의 근거가 되는 라틴 불가타(the Latin Vulgata)의 성경구절이 잘못된 번역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루터는 에라스무스(Erasmus)가 편집한 헬라 어성경9 을 읽고 있었다. 루터는 이 신약원문성경을 95 개조를 걸기 1 년전 에 입수해 읽고 있었다. 루터는 헬라어성경을 읽으며 그당시 보편적인 불 가타번역에 의한 잘못된 성경해석을 감지하게 된다. 특별히 마태복음 4:17 의 해석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된다. 도표로 다음 과 같이 비교할 수 있다: Latin Vulgata Greek New Testament Text Poenitentiam agite µετανοεῖτε Translation 고백성사를 집행하다 회개하다, 돌아서다, 개혁 하다 Justification by Act (행위구원) Faith (믿음구원) 루터는 이에 대해 “나는 이 구절에 힘을 얻어 헬라어에서의 믿음을 넘어 라틴어를 통해 행위를 강조한 그들은 틀렸다고 감히 말하게 되었다” 고 말한다. 루터 자신은 이 발견을 “찬란한” 발견이라고 불렀다.10 7 If I had retained this knowledge, I should have been a wonderfully good biblical con- cordance 8 물론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은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조직신학이 사색적으로 흘러 서는 안되고 반드시 성경의 해석과 그 조직화(체계화)로부터 출발해야 하고 성경 신학도 조직신학의 도움을 받아 성경과 시대를 통괄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성 경신학과 조직신학의 관계에 관해서는 두 논문을 추천한다 (Gaffin 1975 and Poythress 2008). 9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헬라어 신학성경은 결국 Textus Receptus(공인된 본문)가 되 었다. 이 TR 이 영어 KJV(King James Version)의 본문이 되었다. 10 Fortified with this passage I venture to say they are wrong who make more of the
  • 23.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9 루터의 이러한 성경원칙을 sola Scriptura(오직 말씀으로)라고 부른다. 교황이나 교회의 권위나 전통보다 먼저 그리고 오직 성경을 원칙으로 삼 는다는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신념은 철저하게 sola Scriptura 의 원칙 에서 나왔고 그에 따른 확신에 죽음도 각오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루터 자신이 밝히고 있다 (Luther 1979:8): 교황이 힘과 거짓으로 모든 권력과 권위를 걸머쥐고 왕이나 황 제가 그를 거역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파멸의 자식은 말씀 에 의해 폭로되어져야만 했었다. 나는 그 과업에 무의식 속에 빠져 들어 갔다. 교황권이 세속권세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 교황권은 폭력과 기만으로 쟁취한 것이다. 루터는 그런 교황을 멸망 혹은 파멸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그 교황을 폭로할 힘은 오직 말씀뿐이라는 것을 루터는 알았다. 처음부터 교황에 저항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를 개혁으로 끌고 간 것이다. 이것이 sola Scriptura 의 원칙이다. 그러나 sola Scriptura 와 함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다른 종교개혁 성경원칙은 tota Scriptura 이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단이 성경만 가지고 논할 수는 있으나 좋아하는 구절만 뽑아서 곡해하 고 전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사설을 주장하는 것이다. Sola Scrip- tura 에 못지 않게 Total Scriptura 의 종교개혁 원칙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루터는 자신의 신구약 강의를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전에 근거한 최 초의 독일 교수 중의 하나였다. 그는 라틴어 대신에 학생들의 모국어인 독 일어로 강의하기 시작한 최초의 교수 중 하나이다. 오늘날 우간다에서도 진정한 개혁은 말씀을 진지하게 읽고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성경원어 를 정확하게 읽고 해설할 수 있는 신학자도 양성해야 할 것이다. 3. 종교개혁을 향한 루터의 인내와 열정 종교개혁이전의 종교개혁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개혁자들로서 존 위클리 act in Latin than of the change of heart in Greek.” Luther himself called this discov- ery a “glowing” discovery.
  • 24. 10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프, 존 후스가 있다. 후스는 이미 한 세기 전에 종교개혁의 씨앗을 뿌렸으 나 교황의 유인으로 잡혀서 화형을 당했다. 그의 사상은 씨앗이 땅에 떨어 져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다는 말씀처럼 사라지지 않고 계속 퍼지고 있었다. 루터는 어느 시점에 후스의 저서를 접하면서11 이미 같은 신학을 주창한 사람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자신의 신학에 힘을 얻는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위해 죽음의 위협을 받았으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교황과 교황추종자들에 의해 죽음의 위협을 받았다. 그 는 죽음이 바로 진짜 사는 삶의 시작이라고 보았으며 죽음으로 인해 오히 려 많은 열매가 맺게 되리라고 믿었다 (Luther 1979:58): 교황주의자들은 내가 죽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죽을 때 나의 진정한 삶은 시작될 것이다; 왜냐하면 씨앗이 먼저 땅 에 떨어지기 전에는 싹이 트지 않기 때문이다.12 4. 종교개혁의 대상 루터가 종교개혁의 대상으로 삼은 것에는 대표적으로 교황과 면제부가 있 다. 포럼에서 발표되는 논문의 성격상 골격만 제시하도록 하겠다. 1) 교황(Pope) 루터는 처음부터 교황과 대결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안으로부터 개혁을 이루어 가려고 했다. 교황 자신보다 전통에 찌들은 체제와 교황 주위의 바 르지 못한 교권에 먼저 저항을 했다. 초기에는 교황과는 화해하기를 힘쓰 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을 중심으로 교권의 힘으로 잘못된 교리와 잘못된 행습이 고질화 되어 갈 때 루터는 결연하게 저항과 개혁을 강화한다. 교황에 대해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던 루터는 갈수록 교황의 허구성을 알고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칭하게 되었다. 로마카톨릭내에서 교 황은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교황은 성경 위에 위치했고, 공의회 위에 위치했고, 교회 위에 위치했다. 성경해석권은 교황에게 속했다. 그리 11 후스의 제자들이 가져다 준 후스의 저서를 루터는 1520 년에 이미 읽기 시작해 서 그의 신학에 영향을 받고 자신의 신학에 확신을 얻게 된다. 그는 후스의 제자 가 된다 (Kuiper 1962:174). 12 The papists are longing eagerly for my death. But when I am dead, then my real life will begin; for the seed does not spring up, till first it has fallen to the ground.
  • 25.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11 고 이 교황과 교황의 해석은 무오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루터는 교황과 공의회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고의 권위는 성경이며 교황과 공의회도 동일하게 성경의 권위 아래 놓 인다.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 교황이나 소위 평신도나 평등하다. 교황은 루터를 파멸의 자식이라고 부르고 루터는 교황을 진짜 적그 리스도라고 부른다. 2) 면죄부(Indulgence) 유명한 루터의 95 개조는 무엇보다도 면제부에 대한 반박문이었다. 면죄부 는 죄를 짓고 회개하는 자가 벌과 그에 따른 벌을 감면받기 위해 돈을 지 불하고 받는 교황의 증서이다. 이 증서를 사면 연옥에서 머무는 기간이 줄 어 들게 된다. 이 면죄부는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심지어 는 이미 죽은 친척이나 친구를 위해서도 살 수 있었다. 이것에 대한 반박 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면죄부는 교회에게는 아주 좋은 수입원이 되었다. 루터가 일하는 비 테베르크 근처에 테쩰(Tetzel)이라는 사제가 면죄부를 대대적으로 팔고 있 어서 이것이 루터가 개혁을 시도하는 촉발이 되었다. 그가 면죄부를 팔면 서 외친 구호는 유명하다, “여러분의 돈이 상자에 쨍그랑 떨어지는 순간, 여러분의 어머니는 연옥으로부터 튀어 오를 것이다.” 이에 대해 루터는 95 개조 27 조에서 밝힌다: “돈이 헌금함의 바닥에 챙그랑 떨어지는 순간 영 혼들이 연옥으로부터 튀어 오른다고 설교하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전혀 권 위가 부여되지 않은 설교이다” (Luther 1962:493).13 5. 종교개혁의 과정 루터에게 종교개혁의 사명이 서서히 지워졌고 루터는 이 사명을 서서히 감당하게 된다. 성경이 그를 끌고 갔고 루터의 개혁이라기보다 하나님의 개혁인 것이 드러났다. 1) 95개조 13 There is no divine authority for preaching that the souls flies out of purgatory imme- diately the money clinks in the bottom of the chest.
  • 26. 12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1517 년 10 월 31 일 만성절에 루터는 면죄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95 개 조의 반박문을 써서 위텐베르크의 쉴로쓰교회(Schlosskirche=Castle Church)의 나무문에 못질을 해서 걸었다. 그때 그는 34 세의 대학교 교수 였다. 라틴어로 써서 일반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대학교 내에서 토 론이 되기를 원했다. 루터는 이 95 개조가 몇 사람에게만 관심을 끌 뿐이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뿐만 아니라 전유럽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 내 용에 이미 공감하고 있었다. 라틴어 내용을 이해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그룹의 사람들이 라틴어를 독일어로 번역해서 보급했다. 두 주만에 전독일에 퍼졌고 4 주만에 전유럽에 퍼졌다. 새로 발 명된 인쇄술 때문이었다.14 4 주만에 로마의 레오 10 세(Leo X) 교황에게 그 내용이 전달되었다. 교황이 이 문서를 읽었을 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술에 취한 독일인이 술에서 깨면 다르게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터의 친구들은 자제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루터의 신념은 확실했고 흔들리지 않았다. 2) 하이델베르그 토론(1518년 4월) 루터가 속한 아우구스티누수수도원의 원장인 요한 쉬타오피츠 (Johann Staupitz)는 이 하이델베르크토론을 주선하면서 루터에게 그의 복 음적인 생각을 이해하고 검증하기 쉽도록 정리하라고 부탁했다. 루터는 이 토론을 위해 하이델베르크개조(Heidelberg Thesis)를 작성했다. 95 개조에 비해 죄, 자유의지, 은혜와 같은 중심문제에 집중했다. 특별히 십자가의 신학과 영광을 신학을 비교했다. 십자가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고 영광의 신학은 악을 선 이라고 하고 선을 악이라고 하는 등 가치를 전도하는 신학이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고 하는 잘못된 지혜는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사람 을 오도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있는 대상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창조해서라도 사랑을 베풀고 복을 내리신다. 오늘날 아프리카선교와 세계 14 인쇄술의 발달에 의해 정보가 속히 전달된 것과 관련해 정유철 박사가 본 포럼 에서 페이퍼를 제시할 것이다.
  • 27.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13 선교에 적용할 수 있는 선교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15 3) 아우그스부르그 토론(1518년) 1518 년에 교황은 60 일내로 루터가 로마로 오도록 소환을 했다. 직접 와서 잘못된 교리에 대해 설명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독일제국에서 교황을 대표 하는 카제탄(Cajetan) 추기경은 사안이 시급하다고 보고 그전에라도 해결 하고자 루터를 아우구스부르크(Ausburg)에 소환했다. 아우구스부르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 루터는 살아서 돌아 올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을 각오했다: 나는 죽어야 한다. 오, 불쌍한 우리 부모님에게 나는 수모를 끼쳤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우그스부르크 에서, 원수들에게 둘려싸여도 그리스도가 지배하신다. 그리스 도는 살고 루터는 죽을지어다.16 신분안전보장을 막시밀란 황제에게 받아 그는 마침내 아우구스부르 크로 간다. 이 즈음에 루터와 함께 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친 구들은 그가 성급했다고 생각했다. 아우스부르크가 루터에게 있어 교황과의 대결에 있어 최저점이 아닌 가 생각한다. 교리에 대한 토론과 변증은 허락하지 않았고 단지 카톨릭의 입장과 다른 루터의 교리를 철회하라는 요구만 있었다. 추기경의 의한 체 포위협 속에 루터는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밤중에 탈출한다. 그를 대변하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떠났다고 당시 그의 증인이 고백 한다 (Luther 1979:29): 루터가 위해 아우구스부르크에 가서 카제탄을 만나 철회하기를 15 오늘날 한국과 아프리카에서 십자가의 신학보다 번영신학이 요란스럽게 사람들 을 오도 내지는 선동하고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손바닥 보듯이 읽는다고 하는 예언자도 많다. 하나님의 사랑이시라 선교의 대상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 나서시 며 그 대상을 창조해서라도 사랑하신다. 그 하나님의 최초의 선교행위가 창세기 1:1 의 창조행위이다. 16 I must die. Oh, the disgrace that I heap upon my poor parents! But the Lord’s will be done. Even at Augsburg, even in the midst of his enemies, Christ reigns. Let Christ live; let Luther die!”
  • 28. 14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거절 했을 때 그는 황제, 교황, 추기경사절, 자신의 군주, 프레 데릭, 삭소니의 제후, 자신의 수도원종단, 가장 친근했던 친구 쉬타우피츠 등 모든 인간 변호자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프레테 릭 군주는 그가 아우스부르크에서 돌아 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 았고 자신도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소망이 없었다. 프랑스는 교황의 영향 아래 있어 위험했 다. 할 수 없이 그는 비텐베르크로 돌아 왔다. 그가 돌아 왔을 때 교황이 보낸 사절이 와 있었고 그는 각지의 군주나 주교에 보내 무슨 수단을 써 서라도 루터를 체포해 로마의 교황에게 압송해 오라는 편지를 70 개를 소 지하고 있었다. 그는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이 리다”고 고백한다(시 27:10).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아니었으면 이 런 상황을 인간적으로는 결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도 그의 sola Scrip- tura 원칙의 아주 구체적이고 대표적인 실례(實例)이다 (Luther 1979:29). 4) 라이프찌히 토론 (1519년 7월) 그사이에 바티칸은 면죄부판매를 다소 누그러뜨린다. 그리고 존 엑(John Eck)을 대표로 해서 루터와 라이프찌히에서 토론을 하도록 한다. 루터는 교황도, 공의회도 인간이라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한다. 최 고의 권위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역설한다. 초대교회에서 헬라교회는 로마교회의 권위 아래 있지 않았다. 공의회들의 결정 사이에도 모순되는 것이 발견된다. 말씀으로 무장한 평범한 성도가 말씀 없는 교황 이나 공의회보다 우위에 선다. 이에 대해 엑은 루터가 후스의 오류를 뒤따르는 이단이라고 규정했 다. 토론은 18 일간 계속되었다. 이 토론이 끝난 후에도 양측은 인쇄물을 통해 공방을 계속했다. 5) 보름스회의 (1521년 4월) 루터는 보름스회의 부름을 받고 출발을 하면서 죽음까지도 각오했다. 그는 동료인 멜랑크톤에게 헤어지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내가 돌아오지 못하고, 내 원수들이 나 를 죽인다면 당신이 진리안에서 계속 가르치고 굳건하게 서실
  • 29.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15 것입니다. 당신이 살아있다면 내가 죽는 것은 상관없습니다.17 루터는 떨면서 갔지만 모든 악마들이 모여 있다 하더라고 가겠다고 했다. 보름스회가 열리자 황제는 책상에 놓인 책자들을 가리키며 그것이 루터의 것이며 그 글들의 내용을 취소할 것이냐 아니면 그대로 주장할 것 이냐고 묻는다. 루터는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두번 째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을 시간을 달라고 황제에게 요청한다. 의회는 24 시간의 시간을 준다. 다음날 4 월 18 일 루터는 다시 의회 앞에 선다. 루터 는 먼저 라틴어로 말한다. 그리고 다시 독일어로 말하도록 요청을 받는다. 루터의 말이 끝났을 때 관리는 질문에 대해 바로 대답하도록 요청한다. 질 문은 그의 가르침을 취소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대답한다: 황제께서 명백한 대답을 원하신다면,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성 경의 증거에 의해 내가 잘못되었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나는 취소할 수 없습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잡혀 있습 니다. 양심에 거스려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않고 정직하지 도 않습니다. 나는 여기 서 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도우 소서. 나는 달리 할 수 없습니다.18 보름스성벽에 조그만 문이 있었다. 루터는 그 문들 통해 4 월 27 일 에 탈출한다. 6) 바르트부르크(Wartburg)성에서 숨어지내기 보름스성을 탈출한 루터는 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납치된다. 사 실은 현자 프레데릭(Frederick)이 그의 안전을 위해 사람들을 시켜 그를 바르트부르크성에 데려온 것이다. 숨어있으면서 루터는 10 개월돌안 많은 저작을 했다. 특히 신약을 그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번역했다. 17 My dear brother, if I do not come back, if my enemies put me to death, you will go on teaching and standing fast in the truth; if you live, my death will matter little. 18 If the emperor desires a plain answer, I will give it to him. It is impossible for me to recant unless I am proved to be wrong by the testimony of Scripture. My con- science is bound to the Word of God. It is neither safe nor honest to act against one’s conscience. Here I stand. God help me. I cannot do otherwise.
  • 30. 16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6. 종교개혁의 결과 - 선교적 삶과 일 종교개혁후 루터는 물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선교, 세계선교, 복음화 와 같은 선교신학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용어를 사용하지 않 는다고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이 당장 해외선교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더라고 세계선교의 태동을 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아래에서 루터의 선교 신학과 실천을 살피고자 한다. 1) 십가자의 신학 루터의 신학은 십자가와 고난으로 특징지워진다. 십자가의 신학자를 영광 의 신학자와 대조한다. 그에 의하면 영광의 신학은 기독교의 가치를 전도 해서, 악을 선이라고 하고 선을 악이라고 한다 (Heidelberg Disputation; Lull 1989:46-49). 앞에서 말한 유해무 교수는 한국교회에 십자가의 신학이 제대로 소 개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국의 개혁교회의 신학 이 칼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그에 앞서 근원인 루터를 연구하지 않 는데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중세와 초대교회를 거슬려 결국은 성경 으로 가야 할 것을 주장한다. 2) 모든 성도의 제사장화 독일어로는 Das Priestertum aller Gläubigen, 영어로는 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가 한글로는 보통 만인제사장설로 번역이 되고 있다. 만인은 모 든 사람이라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아니라 믿는 자 (성도, 신도)가 그리스도의 제사장이다. 따라서 바른 번역은 “모든 믿는자 의 제사장설(전신자의 제사장설)” 혹은 “모든 성도의 제사장설(전성도의 제사장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루터 자신이 위의 표현 자체를 쓴 것은 아니다. 용어 자체는 없지만 그 개념은 분명히 있다. 아주 근접한 표현을 사용한다. 위의 표현보다는 Das Priestertum aller Getauften(the priesthood of all those baptized)의 개념 이 등장한다: 교황이나 주교가 기름을 바르고, 삭발을 하고, 안수를 하고, 성 직에 임명하고, 평신도와 다르게 옷을 입을 때, 그는 어떤 사
  • 31.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17 람을 위선자로 만들거나 성별된 이미지로 만들 수 있겠으나, 그를 결코 그리스도인이나 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실은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 우리 모두는 제 사장이 되는 것이다. 성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2:9 에서 말했듯 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 라요,” 계시록에서 말했듯이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 와 제사장들을 삼으셨다” (계 5:9f.). (emphasis mine,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 Luther 1961:408).19 루터는 안수 받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제사 장이라는 신학을 분명히 한다. 이에 비해 성직자와 평신도를 분명히 구별 하고 소위 평신도는 사역에 있어 수동적인 역할로 전락하고 성직자는 권 위적인 위치에 선 한국교회는 한참 후퇴한 느낌이다. 성도는 왕 중에서 가장 자유스러운 왕일 뿐만 아니라 영원히 제사장 으로서 하나님의 존전에 믿음의 정신으로 과감히 나아가 남을 위해 기도 하고 서로를 신령한 것으로 가르친다 (cf. 히 10:19,22; Luther 1961:64). 성 도는 만물 위의 왕으로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 모든 일에 노예가 되어 모든 사람에게 복종한다. 그리 스도 안에서 참 자유는 섬기기 위한 자유이다. 믿음은 행위가 열매로 반드 시 뒤따르고 사랑 가운데 활동하는 믿음이다. 3) 이웃사랑 루터의 글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책임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그리스 도인의 자유) Luther 1961: 73-76).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섬기기 위한 자유 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해 어느 누구의 구속을 받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유스럽과 자발적으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모 든 것의 아래에 서서 그 모두를 섬기는 자발적인 종이 된다.20 그 이웃이 19 When a pope or bishop anoints, grants tonsures, ordains, consecrates, dresses differently from laymen, he may make a hypocrite of a man, or an anointed image, but never a Christian or a spiritually-minded man. The fact is that our baptism con- secrates us all without exception, and makes us all priests. As St. Peter says, I Pet. 2 [:9], “You are a royal priesthood and a realm of priests”, and Revelation, “Thou hast made us priests and kings by Thy blood” [Rev. 5:9 f.]. (Luther 1961:408). 20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논지(thesis)가 등장한다:
  • 32. 18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온 인류에게까지 확장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 니라 남을 그것도 이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 다고 말한다. 이 목적을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켜 보다 진 지하게, 보다 자유스럽게 남을 섬긴다 (롬 14:7-8). 루터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는 남을 섬기기 위한 자유이다. 물론 섬김의 극치적인 모범은 인간의 몸을 입고 죽기까지 복종하고 구속사역을 이루신 그리스도이시다. 성도는 하는 모든 일에 남을 섬기고 그들에게 유익을 끼친다. 심지어는 이웃의 필 요와 유익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손으로 부지런히 일 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은 이웃에게 작은 그리스도(a Christ, Christs)가 된다 (Luther 1961:75, 76). 루터는 『그리스도 인의 자유』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 속에서 살지 않고 그리스도 안과 이웃 안에서 산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사랑을 통해 그의 이웃 안에서 산다. 믿음으로 그는 자신을 넘 어 하나님에게까지 들리움을 받았다. 사랑으로 그는 자신을 넘 어 이웃에게 내려 간다 (Luther 1961:80).21 여기서 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과 함께 낮아져서 이웃을 섬기는 사랑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낮아져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 는가?22 우리가 소위 말하는 해외선교가 종교개혁 당시에는 본격적으로 이 A Christian is a perfectly free lord of all, subject to none. A Christian is a perfectly dutiful servant of all, subject to all. (영어번역; Luther 1961:53) Ein Christenmensch ist ein freier Herr über alle Dinge und niemand untertan. Ein Christenmensch ist ein dienstbarer Knecht aller Dinge und jeder- mann untertan. (독일어 원전; Luther 1977:162). Christianus homo omnium dominus est liberrimus, nulli subiectus. Christianus homo omnium servus est officiosissimus, omnibus subi- ectus (라틴어 원문, Weimar Ausgabe 7:49) 21 We conclude, therefore, that a Christian lives not in himself, but in Christ and in his neighbor. Otherwise he is not a Christian. He lives in Christ through faith, in his neighbor through love. By faith he is caught up beyond himself into God. By love he descends beneath himself into his neighbor. 22 우리의 선교의 원칙은 위로는 무엇을 먹으나 마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
  • 33.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19 루어지지 않았다고 흔히 비판하지만 이보다 더 선교적인 메시지가 있는가? (엡 4:28; Luther 1961:73). 나는 이번 리서치를 통해서 루터가 훌륭한 선교 신학자라고 믿게 되었다. 4) 세상으로 간 수도사 - 선교 중세시대에 집중된 신학과 실천은 수도원에서 이루어졌다. 루터가 수도사 가 되어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그는 헌신했으나 세상을 떠났다.23 엄격한 금욕주의를 실천함으로써 행위를 통해 구원을 성취하고자 했다. 수도생활 은 헌신과 봉사가 되어야 했는데 세상과 분리된 공적이 되었다. 수도생활 이 소수의 개인적인 성취가 됨으로써 교회 구성원의 대부분은 이런 헌신 된 삶으로부터 면제를 받았다. 그러나 다시 루터는 수도원을 떠나 세상으로 감으로써 선교를 세상 에서 수행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철수했던 그리스도인은 다시 세상으로 선 교적 사명을 가지고 나아가게 되었다. 본 회퍼는 수도원의 고립, 수행, 고 행을 루터가 세상으로 이끌고 간 이 선교를 근접전투(Nahkampf) 24 라고 불렀다. 예수의 명령에 대한 성도의 완전한 순종은 성도가 매일매일 세상 에서 일상생활 속에 소명의 삶을 사는 것으로 완수되게 되었다 (Bonhoeffer 1992:35).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 될 뿐 아니라 세상으로 간 수도사가 되고 선 교사가 된다. 이는 만인제사장설일 뿐만 아니라 만인선교사설이라고 불러 야 할 것이다.25 광이지만, 아래로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즉 그의 성육신과 죽음을 본받아 낮아 져서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23 혹시나 우리가 신학교에 들어 올 때 세상을 떠나 상아탑 속으로 오는 것은 아닌 가? 24 영어로는 hand-to-hand combat, 한국어로는 백병전으로 번역된다. 25 흔히 “교회중심”이라는 표어를 교회에서 많이 내건다. 이 말의 의미가 교회의 방 주화, 쇼셜클럽화, 수도원화, 게토화, 세상과의 분리 및 구획화로 흘러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에서 부름받아 모인 교회(gathering church)는 다시 교회의 담을 넘 어, 아니 교회의 담을 헐고 세상으로 흩어지는 교회(scattering church)가 되어야 할 것이다.
  • 34. 20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III. 계속적인 개혁을 위한 제언 우리가 500 년전의 종교개혁을 기리는 것은 그 정신을 오늘 우리의 사역과 선교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개혁열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끊이지 않 아야 할 것이다. 1. 교회의 개혁은 교회의 본질로 돌아 가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은 넓은 의미에서의 선교이다. 불은 타는 것으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하는 것으로 존재한다(Emil Brunner). 2. 받기보다는 주기를 힘쓰도록 하자. 받을 생각보다는 무엇을 누구 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하자. 이것이 개혁신학과 개혁선교신학의 출발이다. 선교는 나누는 것이고 주는 것이고 베 푸는 것이다. 주는 것 없이는 선교가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 주 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고 하셨다 (행 20:35). 주기 시작할 때 자립은 이루어지고 자립이 이루어질 때 성숙한 선교가 이루어진다. 3. 개혁은 남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개혁이다. 나의 교회, 나의 기관, 나의 나라의 개혁에 앞서 나 자신의 개혁 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급선무이다. 나를 개혁하지 않고 남의 개 혁을 논할 자격이 없다. 많은 경우에 개혁을 논하는 사람들이 자 신들이 가장 먼저 개혁이 되어야 할 대상인 것을 본다. 4.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비판하고 건설적인 대안이 없으면 비 판을 삼가야 한다. 진리를 말하되 사랑으로 진리를 말해야 한다 (갈 4:15). 사랑하지 않는다면 비판도 삼가야 한다. 5. 개신교에서는 구교에서와 같은 교황은 공식적으로 없다. 그러나 각 교회나 단체에서 교황 못지 않게 전횡을 저지르는 작은 교황 이 있을 수 있다. 우리 교회와 단체에서도 계속 성경적인 개혁을 해 나가야 한다. 지도자는 섬기는 리더십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막 10:45). 6. 우리의 성경과 신학공부는 평생 이어져야 한다. 이번에 대회를 치루지만 이것이 하나의 작은 자극이 되어 개혁의 공부와 실천은 평생 계속되어야만 한다. 교부(특히 아우구스티누스), 종교개혁자
  • 35.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21 들(특히 루터와 칼빈)의 원전으로 가서 읽고 공부하고 적용하는 작업이 이번 대회를 계기로 정립되기를 바란다. 7. 개혁에는 교리적인 개혁도 있고 윤리적인 개혁도 있다. 바른 신 학도 중요하고 바른 실천도 함께 가야 한다. 신학이 없는 윤리는 위험하고 윤리 없는 신학은 공허하다. 믿음은 반드시 실천을 수 반한다. 8. 개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과 신학에 있어 기본 지 식과 자세와 지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하고 성경읽기와 묵상을 하는 것과 동시에 기본 서적과 문서를 읽어 나가는 훈련 을 쌓아야 한다. 독서는 배움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자 아주 효 과적인 수단이다. 독서를 통해 지식과 지혜를 쌓아가야 한다. 루 터와 칼빈의 저술을 읽어가는 것을 추천한다.26 9. 사실 종교개혁이 루터에 의해 비로소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 이전의 종교개혁자(Pre-Reformers)27 에 의해 기반이 마 련되었고 루터에 이르러 시대가 무러익어 종교개혁이 촉발되었고 성공했다. 우리는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위해 적절하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다. 10. 우리 선교사는 우리의 선교를 성경에 의해 성령에 의존해 철저하 게 개혁하는 과제가 있다. 우리가 아프리카사람을 진정으로 이해 하고 사랑하고 섬기는가? 혹시라도 우월의식으로 접근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문화와 언어와 정서와 애환을 진정하고 이해하 고 공감하고 있는가? IV. 추천 (Recommendations) 루터가 개신교의 역사를 연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가 많 이 부족하다. 개혁교회전통에서는 칼빈을, 감리교회전통에서는 웨슬리를 26 루터의 경우는 위에서 소개한 종교개혁 3 대논문과 선집을 읽어 가면 좋겠다. 칼 빈의 경우는 『기독교강요』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Calvin 1960). 27 종교개혁이전의 종교개혁자로 존 위크리프(John Wycliffe)와 존 후스(John Huss)를 들 수 있다.
  • 36. 22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연구하나 그 이전의 루터에 대한 공부는 부족하다.28 뿌리를 모르는 것은 그만큼 기반이 약하다는 것이고 사회의 풍조에 넘어지기 쉽다는 말이다. 우간다에서도 루터에 대한 공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루터전문가가 나왔 으면 한다. 우간다의 신학교에서 종교개혁의 원전들이 도서관에 갖추어지고 보 다 진지한 강의와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아직 자료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Corpus Christianum 이나 Weimar Ausgabe 와 같은 자료가 비치되기를 바란다. 독서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지 않다. 각 학교에 서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추도록 교육하고 비평적 책읽기와 글쓰기를 하도 록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V. 결론 개혁에 관련해 유명한 라틴어경구(警句)가 있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이미 개혁된 교회라도 끊임없이 개혁되어져 한다는 말이다. 종교개혁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 듯이 잠시라도 나 자신부터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나 자신을 살피는 개혁 을 게을리하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 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있어 단순한 과거회상이 아니라 오늘날의 적극적이고 활발한 삶 과 사역의 개혁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나로부터 출발해 가정과 사회와 교회와 세상이 개혁되어져 나가야 한다. 그러나 개혁은 하나님의 일이다. 나는 그 일에 준비가 되고 시대가 찾을 때 도구와 일꾼으로 쓰임을 받는 것이다. 28 Coram Deo(하나님 앞에서)의 신학이 칼빈주의의 핵심인데 그 신학이 이미 루터 에서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루터는 시편 51 편 주석에서 coram Deo 의 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 37. 500 년전의 개혁과 오늘날의 개혁 23 References Cited Bonhoeffer, Dietrich 1992 Nachfolge Christi. Gütersloh, Germany: Gütersloh Verlagshaus. Calvin, John 1960 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 Two Volumes. Edited by John T. McNeill. Translated by Ford Lewis Battles. Philadelphia: West- minster. Dillenberger, John, ed. 1961 Martin Luther: Selections from His Writings. Garden City, NY: Anchor Books. Gaffin, Richard B. Jr. 1976 “Systematic Theology and Biblical Theology.” Westminster The- ological Journal 38: 281-99. Kaufmann, Thomas 2016 Reformation. 100 Seiten. Munchen, Germany: Reclam. Kuiper, B. K. 1964 The Church in History. Grand Rapids, MI: Eerdmans. Lull, Timothy F. 1898 Martin Luther’s Basic Theological Writings.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Luther, Martin 1979 Table Talk: Conversation with Martin Luther. Translated and ed- ited by Preseved Smith and Herbert Percival Gallinger. New Canaan, CT: Keats Publishing. 1977 Von der Freiheit eines Christenmenschen: Fünf Schriften au den Anfängen der Reformation. Gütersloh, Germany: Gütersloher Verlangshaus Mohn. Poythress, Vern Sherican 2008 “Biblical Sduties: Kinds of Biblical Theology.”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70:129-42. Schaff, Philip, ed. 1983 The Creeds of Christiendom with a History and Critical Notes. Three Volumes. Sixth Edition. Reprint of 1931 edition. Revised
  • 38. 24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by David S. Schaff. Grand Rapids, MI: Baker Books. Shenk, Wilber R. 1995 Write the Vision: the Church Renewed. Harrisburg, PA: Trinity Press. Yu Hae-moo (유해무) 2016 “종교개혁과 신학.” 2016 년 11 월 5 일 제 33 회 기독교학문학회 주최 『 종교개혁의 유산과 과제 』 중 주제발표. https://www.youtube.com/watch?v=5fxNkGzFRDk
  • 39. 25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에 나타난 종교개혁 사상과 적용 최태용 (Ph. D. Can., 모든민족신학교 교수, ccjjii@hanmail.net) I. 서론 1520 년은 종교개혁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그해 6 월 15 일 교황 레 오 10 세는 마틴 루터에 대한 특별 교서를 선포하였다. 60 일 이내에 루터의 모든 견해를 공식적으로 취소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이단자로 판정할 것이라는 엄격한 경고였다. 루터는 그 교서에 맞서 12 월 10 일 교황의 교 서와 교회법령집과 교황권을 지지하는 책과 모든 문서들을 불태웠다. 그리 하여 1521 년 1 월 3 일 루터에 대한 파문과 출고가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이 위급한 상황 가운데서 마틴 루터는 종교 개혁과 관련된 3 개의 논 문을 쓰며 교황권에 저항하였다. 1520 년 8 월, 10 월 11 월에 각각 발표된 이 세 논문들은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1 본 논문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이 함축되어 있는 3 개 논문을 살펴보고, 그 신 학적 의미를 찾아보고 적용해 보고자 한다. II. 루터의 3대 논문과 그 사상 그의 3 대 논문은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To the Christian No- bility of the German Nation), 교회의 바벨론 포로(Babylonish Captivity of the Church), 크리스천의 자유(On Christian Liberty)이다. 그의 논문 내용 과 사상을 살펴보자. 1 지원용 역, 말틴 루터의 종교개혁 3 대 논문 (서울: 컨콜디아사, 1997), p.4.
  • 40. 26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1.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 이 논문은 루터가 1520 년에 기록한 논문이다. 루터가 머지않아 추방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독일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루터는 이에 대하여 강력 히 반발하였으며, 6 월 중순에 이 논문을 쓰기 시작하여 8 월 초순에 출판하 게 되었다. 이 논문은 출판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켜 2 주 만에 4 천부 이상이 매진되었다고 한다.2 그는 자신을 지지 하고 있던 독일의 귀족들에게 교황의 문제와 월권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며 함께 저항 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 논문은 1 천년 가까이 서방세계의 사회, 경제, 정치, 법조, 종교계의 기반을 이루고 있었던 사상적 기반을 “로마의 세 가 지 담(fence)"에 비유하면서 그 담을 허물고자 하였다. 첫째 담(墻)은 세속적 계급 위에 있는 영적 계급의 담이다. 당시 에는 교황, 주교, 사제들을 “영적 계급”이라고 부르고 군주, 영주, 직공 및 농부를 “세속적 계급”이라고 불렀으며 영적 계급이 세속적 계급보다 우위 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루터는 이러한 “영적 계급”은 사제들의 기득권 을 유지하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고 보았다. 루터에 의하면 모든 크리스천 들은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계급”에 속한다. 사제나 주교나 교황과 같이 “영적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의 직무인 말씀과 성례전의 집행을 맡 는 것을 제외 하고는 아무런 차이가 없고, 우위에 있지도 않다고 주장하였 다.3 루터는 세속적 계급에 대한 영적 계급의 우위성은 근거가 없는 주장 이며, 모든 크리스천은 다 사제라는 만인 제사장주의를 선언하였다. “영적 계급”에 속한 자라도 잘못이 있으면 “세속권력”에 의해 벌을 받아야 한다 고 주장하였다. 둘째 담은 성경해석자인 교황과 교황 무오설에 관한 내용이다. 루 터는 교황이 성경의 유일한 교사가 되려고 한다고 비판하였다.4 당시에는 교황만이 성서를 해석 할 수 있는 유일한 권위자였으며, 그 누구도 성경을 해석할 수 없었다. 또한 교황은 신앙문제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교황 무오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성서 해석의 권한이 오직 교황 에게만 있다는 것은 교황의 기득권을 위한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루 2 Ibid, p.,17. 3 Ibid, p.,29. 4 Ibid, p.,38.
  • 41.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 대 논문에 나타난 종교개혁 사상과 적용 27 터는 모든 크리스천은 신앙에 근거해 성서 해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셋째 담은 교황과 공의회의 담이다. 당시에는 교황만이 공의회를 소집할 권한이 있고, 공의회의 결정을 확인하는 것도 오직 교황에게만 있 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루터는 아무런 성경적인 근거가 없이 자신들 의 법령에만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루터는 실례로 가장 유명한 니케아 공의회가 주교가 아닌 콘스탄틴 황제에 의하여 소집이 되 었다는 역사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교황이 잘못할 경우 공의회를 소집하여 교황을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루터는 이 논문을 통해 교황권 을 강화하고 있던 중세 교회의 세 가지 담을 파괴하려고 하였다. 2. 교회의 바벨론 포로 루터는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을 발표한 2 개월 후에 이 논 문을 발표하였다. 루터는 이 논문을 통해 당시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 된 성례관을 신학적으로 설명하고 반박하였다.5 “바벨론 포로”라는 제목은 성례전의 왜곡된 가르침을 의미하는 말로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랫동 안 바벨론이 포로가 되어 고난을 겪은 것처럼 그리스도 교회의 성례전이 중세 로마 교회에 의하여 “포로”가 되었던 현실을 비유해서 붙인 표현이 다. 루터는 본 논문에서 카톨릭 교회의 성례를 비판하였다. 카톨릭 교 회의 7 가지 성례인 세례, 성찬, 참회, 안수례, 견신례, 결혼례, 그리고 임종 시의 도유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루터는 이 7 가지의 성례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말씀하고 인정한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전으로 보았다. 또한 그 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인정하신 것이 아니면 성례전으로 취급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 더 첨가하여 참회까지도 성례로 보았 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참회와 같은 외부적으로 나타 나는 표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루터는 가톨릭 교회의 성만찬 세 가지 행위, 즉 평신도 분잔 금지, 화체설, 미사의 공로와 희생제사적 성격을 3 대 '바벨론 포로 상태'로 비유 하고 이를 거부했다. 루터는 평신도들에게 포도주를 금하는 것을 로마 교 회의 횡포로 간주했고, 화체설은 '인간의 머리로 꾸며낸 허구, 기괴한 생각 5 Ibid, p.,155.
  • 42. 28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이라고 비난했으며, 미사가 선행이자 희생제사라는 견해에 대해선 '가장 사악한 오용'으로 취급했다. 3. 크리스천의 자유 (On Christian Liberty) 같은 달 나온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교황의 특사 칼 폰 밀티즈(Karl von Miltitiz) 추기경이 교황과 루터를 화해시키려 한 것에 대한 응답이었다. 밀티즈는 루터를 보호하기 위하여 루터에게 그가 사적으로 교황을 공격하 지 않았음을 밝히고 그의 신앙에 대한 간략한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권유 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루터가 이에 동의해 교황 레오 10 세에게 보낸 공개서한과 함께 집필된 결과물이다. 루터에 의하면 크리스천은 자유로운 만물의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이 자유는 인간의 행위나 실천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 의 말씀을 통해 주신 선물이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 아래 얽매여 있지 않고 자유인이다. 반 면 크리스천은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한다. 그리스도인은 그 자유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여 야 한다. 6이웃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 III. 결론과 그 적용 루터는 그 시대 교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 의 문제를 끌어 안고 고민하였으며, 개혁해 나갔다. 루터의 3 대 논문에 의 하면 그의 시대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는 교회지도자, 성만찬, 그리스도인 의 삶의 문제였다. 그는 이 세 가지 문제를 개혁의 핵심적인 문제로 보았 으며, 진지하게 개혁해 나갔다. 1. 지도자 루터는 중세 교회 타락의 근원에 교황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다른 대부분 의 문제들은 교황의 문제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교황의 타락은 곧 그가 지배하고 있던 중세 교회의 타락으로 이어졌다. 중세교회 타락의 중심에 6 Ibid, p.,328.
  • 43.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 대 논문에 나타난 종교개혁 사상과 적용 29 교황이 있었기에 교황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개혁은 불가능 하였다. 결국 루터는 당시 기독교 최고의 지도자였던 교황의 탄핵을 시도하였다. 루터의 이런 지적은 우리시대 교회 지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루 터에 의하면 교회 지도자들은 개혁의 첫 번째 대상이다. 지도자가 타락하 면 교회도 타락한다. 지도자가 바뀌지 않으면 교회가 바뀔 수 없다. 종교 개혁 500 주년을 맞이하여 교회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개혁되어야 할 것인 가? 문제의 중심에 교권주의가 있다. 그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세 가지 벽을 쌓고, 교회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루터 의하면 사제들이란 주어 진 종교권력으로 교인들을 지배하는 자들이 아니라, 말씀과 성례전으로 그 들을 섬기는 자들이다. 우리 시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말씀과 성례전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 위에 군림하고 있는가? 2. 성례전 루터는 성례전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았다. 중세교회의 성만찬은 화채설을 주장함으로 미신적이었으며, 평신도에게 잔을 주지 않으므로 교회 안에 사 제와 평신도 계급을 구분하였으며, 성만찬에 선행과 희생제사의 의미를 부 여함으로서 왜곡되었음을 지적하였다. 루터에 의하면 성만찬은 중세 교회 와 교인들을 구속하는 하나의 제도였다. 루터는 성만찬의 개혁을 시도하였 다. 루터의 이런 지적은 우리의 성만찬 예식을 돌아보게 한다. 개신교는 말씀과 성례전을 통한 그리스도의 임재를 고백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성례 전은 어떻게 베풀어지고 있는가?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하는 가? 성례전에 참여할 때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그를 기념하고 있 는가? 3. 그리스도인의 삶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개혁되지 않으면 교회가 개혁될 수 없다고 보 았다. 중세시대 그리스도인들은 공로사상의 구속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었 다. 그러나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자유와 예속의 관점에서 이해하였다. 그리스도인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자유인 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섬기는 일에 책임성이 있으며, 그 일에 예속되어 있다. 루터의 이런 지적은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이웃과 사회에 얼마나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
  • 44. 30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떻게 개혁되는가? 우리는 개인의 구원과 개 교회의 성장을 넘어서, 이웃과 사회를 향한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의인의 단계를 넘어 성화 의 단계로 살아가고 있는가? 종교개혁 500 주년을 맞이하여 루터의 3 대 논문을 읽으면서 교회 지 도자의 문제, 성만찬의 문제, 그리스도인의 삶에 문제를 다시 점검하고, 개 혁해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혁교회의 바른 자세일 것이다.
  • 45. 31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김동언 (M.Div, 아프리카음악대학 교목, spring062988@gmail.com) I. 서론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저술한 종교개혁 신학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학문적 이론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실제 스위스 제네 바에서 도시 개혁을 이끈 현장 운동가이기도 하였다. 종교개혁 당시 사회 상황은 전 영역에 있어서 로마 카톨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고 그들의 부패와 타락이 종교개혁의 원인이었다. 제네바도 마찬가지였다. 우간다는 어떤가? 통계에 따르면 교회를 다니며 기독교인이라고 인 정하는 우간다인이 인구의 80%가 넘는다. 1 이런 측면에서 우간다에서의 기독교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는 영국 때문에 우간다 내 성공회 교회의 영향력이 크고 최근에는 순복음 계통 교회들이 급속히 성장하며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한 국가, 한 사회에 있어서 교 회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은 성경적 가르침으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로마 카톨릭처럼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발생할 때 부정적인 모습들도 나타나므로 우리는 종교개혁가들처 럼 이를 경계해야 한다.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 지만 우리 모두는 죄의 속성 아래 있으므로 모든 교회가 전 시대를 통틀 어 항상 순수하고 건강한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의 몸 된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고 그것을 회복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 여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기독교인의 시대적 책무이다. 그 1 Patrick Johnston and Jason Mandryk, Operation World, 죠이선교회 역, 『세계기 도정보』 (서울: 죠이선교회, 2010), 511-12.
  • 46. 32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러므로 이 글에서는 전자가 아닌 후자의 측면에서, 칼빈의 제네바 개혁운 동을 통해 오늘날 우간다 교회가 부패와 타락을 경계하고 교회와 국가 공 동체를 성경의 교훈으로 바르게 세우는데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지 살피고 그 적용점들을 찾고자 한다. II. 칼빈의 제네바 사역 배경 칼빈은 프랑스에서 출생하였지만(1509 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하 였고(1 차 1536-1538, 2 차 1541-1564), 그 곳에서 사망하였다.2 그는 제네바 에서 기독교강요 3 판~최종판(5 판)까지 저술하였다.3 칼빈이 제네바로 가게 된 계기는 당시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운동을 펼치던 기욤 파렐(Guillaume Farel)이 제네바에 잠시 머물던 칼빈의 숙소로 찾아가 칼빈에게 종교개혁 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강권하였기 때문이다.4 파렐은 프랑스에서 추방된 종교개혁자로서, 칼빈에 앞서 제네바에서 종교개혁 운동-면죄부 판매 반대, 교황청 부정 부패 비판-을 전개하였고 천주교도들과의 공개토론을 통해 시 민들의 지지를 얻었다.5 이와 같은 파렐의 종교개혁을 통해 제네바 시민총 회는 만장일치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 성상과 우상 타파, 미사와 악 습 폐지를 서약하였다.6 그리고 시의회는 교회 재산을 관할하고 교회-정부 가 동일한 국가 교회의7 형태를 취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 시기에 칼빈이 2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New York: Oxford Univer- sity Press, 1962), 93. ;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서울: 대한기독교서 회, 2013), 134-35. 3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3), 135. 4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7 ; 오덕교, 『종교개혁사』 (경기: 합동 신학대학원출판부, 2010), 234. 5 오덕교, 『종교개혁사』, 235. 6 오덕교, 『종교개혁사』, 236. 7 우리는 이와 같은 국가-교회 관계를 “Christendom”으로 볼 수 있는데, Wilbert R. Shenk 는 Christendom 에 대해 “Christendom meant that Christianity became recognized as the religion of state, and the church functioned as the religious guardian of society. Christendom, or the corpus Christanum, thereby became indis- tinguishable from society.”라고 설명한다. Wilbert R. Shenk, Write the Vision, (Har- risburg: Gracewing Publishing, 1995), 9-10 참조.
  • 47.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33 제네바를 지나게 된 것이다.8 III. 제1차 제네바 사역 (1536-1538) 칼빈은 1 차 제네바 사역 기간 동안 생 피에르 교회에서 바울서신을 강해 하고 설교와 토론을9 통해서성경 교사와 목회자로 사역하였고, 제네바 교 회 개혁을 위해 『신앙고백과 규율』(Instruction and Confession of Faith), 『요리문답』(Geneva Catechism)을 작성하여 의회 승인까지 받았으나, 복 음에 어긋나게 생활하는 사람들과 신앙고백서에 서명하지 않은 사람들에 게 성찬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시의회에 의해 파렐과 함께 추 방당하였다.10 칼빈은 천주교 사제들과 수사들과의 토론회에서 천주교회가 터툴리 안, 아우구스티누스 등 교부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났다고 비판했고 성찬에 있어서 화체설이 아닌 영적 임재설을 주장했다.11 또한 그는 교회개혁을 위 해 파렐과 함께 『교회 행정에 관한 조례』(Articles concerning the organ- ization of the Church and of Worship at Geneva)를 제네바 시의회에 제출 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1)바울의 가르침을 따라 예배 때 시편찬송을 부 를 것(어린이 성가대 조직) (2)매월 성찬 실시 (3)어린이 교육(요리문답) (4) 결혼법 개혁(성례가 아닌 제도) 등 이었다.12 칼빈은 천주교회와 재세례파 의 그릇된 교훈을 막기 위해 앞서 언급한 『 교훈과 신앙고백 』 (Instruction and Confession of Faith)을 작성하고 “오직 성경만이 믿음과 신앙의 유일한 법칙”임을 모든 시민이 고백함으로써 제네바를 하나의 신 앙공동체,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는 사회로 만들고자 하였다.13 칼빈은 이 를 위해 제네바 시민들이 10 명씩 관원 앞에 나와 신앙고백을 하고 준수 8 오덕교, 『종교개혁사』, 236. 9 Ibid., 236. 10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7. 11 오덕교, 『종교개혁사』, 236-37. 12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138-40; 오덕교, 『종교 개혁사』, 237. 13 오덕교, 『종교개혁사』, 237-38. 이와 관련하여 Instruction and Confession of Faith 을 번역할 때 오덕교 교수는 『교훈과 신앙고백』으로, 박경수 목사는 『신 앙고백과 규율』로 번역하고 있다.
  • 48. 34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서약을 하도록 강제하였는데, 이것이 오히려 시민들의 저항을 불러 일으켰 고, 칼빈은 권징을 교회의 고유 권한이라 주장하여 시 당국과 갈등을 초래 하였다.14 칼빈의 종교개혁 방식에 반대한 장 필립(Jean Philippe)은 칼빈의 강제적인 신앙고백과 성찬의 권징수단화를 비판하였고, 선거 승리 이후 의 회총회에서 칼빈과 파렐의 설교권을 박탈하고 추방하였다.15 IV. 제2차 제네바 사역 (1541-1564) 제네바에서 추방당한 칼빈은 바젤을 거쳐, 처음엔 거절하였던 스트라스부 르(현재는 프랑스 지역) 프랑스 난민들의 담임목사 청빙을 수락하고16 그곳 에서 기독교강요 개정판과 로마서 주석을 집필하였다.17 스트라스부르에서 그는 종교개혁자 마틴 부쳐(Martin Bucer, 1491-1551)의 영향을 많이 받아 기도로서의 찬송을 강조하고 초대교회의 예배 방식과 교회 연합을 중시하 였다.18 한편, 파렐과 칼빈을 추방한 후 제네바 시가 종교적으로는 천주교회 로부터 복귀 위협을 받았고, 정치적으로는 칼빈을 추방한 세력이 베른과 불평등 조약을 맺은 것 때문에 시민들에 의해 탄핵되어 칼빈에게 우호적 인 당파가 권력을 잡는 정치변화가 일어났다.19 이후 제네바 시민들은 칼빈 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요청하였고 파렐과 부쳐의 설득으로 칼빈은 제네 바로 돌아왔다.20 칼빈은 제네바로 돌아왔지만 반대세력들의 방해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대표적으로 카드놀이 제조업자 피에르 아뫼(Pierre Ameaux)가 교회권징의 실시와 유흥 기피 풍조 때문에 자신이 막대한 재정 손실을 입 자 칼빈을 중상모략 하였고, 아미 페린(Ami Perrin)은 자신의 장인과 아내 가 치리 받자 칼빈의 개혁운동에 반대하였으며, 제롬 볼색(Jerome Hermes 14 오덕교, 『종교개혁사』, 238. 15 Ibid., 239. 16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144. 17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7-38, 146-49; 오덕교, 『종교개혁사』, 239-40. 18 오덕교, 『종교개혁사』, 240-44. 19 Ibid., 245. 20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8.
  • 49.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35 Bolsec)은 예정교리를 거짓이라고 비판하고 칼빈에 대한 부정적인 책을 써 종교개혁을 반대하였고, 마이클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는 삼위일체 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였으며, 카스텔리오(Sebastian Castellio)도 성경 으로서의 아가서 배제, 교리보다 윤리를 중시할 것을 주장하여 칼빈의 종 교개혁에 반대하였다.21 칼빈은 『 제네바 교회법령 』 (The Ecclesiastical Ordinances of the Church of Geneva)을 만들어 잘못된 예배의식과 관습을 개혁하였는데, 이 법령은 지역 교회의 자율과 평등을 중시함으로써 감독정치와 같은 위계질 서를 배제하였고, 목사·교사·장로·집사로 구성되는 장로정치의 골격을 유지 하도록 규정하였다.22 또한 목회자와 평신도로 구성된 치리기구 ‘Consisto- ry’를 조직하여 도덕을 바로 세웠고, 신학적 논쟁을 통해 올바른 사상을 수립하였다.23 아울러 교회개혁을 이룰 인물을 양성하기 위해 ‘제네바 아카 데미’를 세워서 학생들에게 신앙고백, 시험과 토론을 통해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등 교육을 개혁하였다.24 나아가 ‘종합구빈원’(General Hospital) 과 ‘프랑스기금’(Bourse Francaise)을 통해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등 제네바 를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도시로 만들었는데 25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낙스는 당시 제네바에 대해 ‘사도 시대 이후 가장 완벽한 그리스도의 학교’라고 감탄했다.26 V. 적용 개신교 교회는 거짓 진리에 맞서 처절하게 투쟁했던 종교개혁의 소중한 21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165-75 ; 오덕교, 『종교 개혁사』, 246-52. 22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160-65; 오덕교, 『종교 개혁사』, 246. 23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8-39. 24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194-96 ; 오덕교, 『종교 개혁사』, 253-54 ;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8-39. 25 오덕교, 『종교개혁사』, 253-54 ;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9. ; ‘구제’ 믿는 이의 마땅한 직무, <한국기독공보>, 2017/03/19, http://www.pck- world.com/news/articleView.html?idxno=42974 (2017 년 10 월 12 일 검색) 26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139.
  • 50. 36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열매이며 살아 있는 역사이다. 우간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당시 로마 카톨 릭처럼 면죄부를 팔고 성상과 교황을 숭배하는 모습은 없지만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종교개혁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물질주의, 신 비주의, 신사도주의, 영지주의 등 성경을 왜곡하고 성도들을 미혹하는 가 르침들이 교회에 침투하여 교회의 건강을 해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위에서 살핀 제네바 종교개혁을 우간다에 적용하여 고찰하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온전히 회복하기 위한 시도가 될 것이다. 1. 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과 지지 제네바에서 파렐과 칼빈의 종교개혁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네바 시민들의 개혁에 대한 열망과 지지가 있었다. 칼빈이 제네바에 오 기 전 이미 제네바 시민들은 파렐이라는 종교개혁가에 의해 로마 카톨릭 의 부패와 폐해를 극복하려는 열망이 있었다. 당시 제네바의 종교개혁은 소수의 종교개혁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시민들의 요구와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칼빈의 종교개 혁은 이와 같은 시민들의 요구와 지지 위에 있었다. 교회는 교회 지도자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몸은 성도들이다. 건강한 교회를 향한 성도들의 소망이 변화의 기초이 며 그들의 집결된 지지가 변화의 힘이다. 우간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간다 교회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변화를 바라는 우간다 교회의 성도들의 강한 갈망과 힘이 필요하다. 우간다 교회의 부족한 모습에 대해 변화의 필 요성을 느끼는 교회 성도들의 깨어 있는 정신이 변화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종교개혁가들은 어떻게 시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는가? 제네바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들이 택한 방법 중 하나는 천주교도 들과의 공개토론이었다. 문제해결을 위해 로마 카톨릭과 이면에서 합의하 지 않았다. 토론을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로마 카톨릭의 문제를 드러냈다. 그리고 어느 쪽이 더 성경에 부합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시민들은 그 결 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현 시대는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통신기술이 발달하여 토론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가능성이 높다. 신문, 라 디오, TV 방송, 인터넷은 교회의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들이다. 그러므로 파렐과 칼빈처럼 교 회가 주님의 몸으로 회복하길 바라는 이들은 이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활
  • 51.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37 용하여 토론의 장을 만들고 시민들이 성경의 정확한 진리를 스스로 확인 하고 교회를 위한 변화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2. 개혁에 대한 저항의 극복 제네바 시민들과 시의회는 로마 카톨릭에 대항하는 종교개혁에는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칼빈이 신앙고백서와 교리를 확립하여 성도들에게 이를 확 산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을 때, 그들은 오히려 저항했다. 칼빈은 교리를 지키지 않고 신앙고백서에 서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성찬을 받지 못하 게 하였는데 시민들과 시의회가 이를 반대하고 수용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칼빈의 개혁이 지나치게 금욕적이고 일방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시 의회는 제네바 교회의 통제권을 목회자가 아닌 자신들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칼빈은 이에 대해 단호했다. 그들에게 굴복하거 나 타협하지 않았다. 결국 시의회는 칼빈을 추방했다. 그의 개혁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3 년 후 그는 자기를 쫓아냈던 시의회에 의해 다시 제네바로 복귀하였다. 마침내 시의회는 칼빈의 교회법령을 수용하였다. 칼 빈이 제네바로 돌아온 후에도 칼빈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여전히 저항하였지만 칼빈은 개혁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들의 저항을 극복해 나갔다. 변화가 있을 때 저항은 따른다. 특히 그 변화가 급진적이고 강제적일 때 이에 비례하여 저항의 강도도 세다. 저항에 의해 변화와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 칼빈도 처음엔 실패했다. 자신의 개혁이 실패하고 추방당했을 때 그는 좌절하고 상실감이 컸다. 뿐만 아니라 제네바 복귀 후, 두 번째 개혁 에서도 그는 많은 위기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반대하던 세력과 의 타협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개혁처럼 실패하 지 않았던 이유는 정치적·사회적 상황이 칼빈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여 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교회개혁의 성공여부는 사람에게 있지 않 고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개혁이 옳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개혁은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개혁의 성공 여부가 아니라 변화와 개혁을 위해 성경을 따라 우리가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의 개혁과 달리 교회의 개혁은 그 성공 확률이 크면 시 도하고, 그것이 적으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와 개혁을 위한 노력은 항상 있어야 한다. 그 노력 자체가 저항을 극복하는 힘이다. 칼빈의 경우
  • 52. 38 종교개혁 500 주년: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미치는 그 의미 가 이것을 증명한다. 그는 개혁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성경의 진리에 따 라 움직였다. 물론 개혁에 실패했을 때 그는 좌절했고 매우 외로웠다. 그 러나 그가 저항이 두려워 타협했다면 제네바의 종교개혁은 영원히 역사에 서 사라졌을 것이다. 이와 같이 칼빈을 통해 우리는 우간다 교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 가져야 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앞서 우간다 교회 내 물질주의, 영지주의, 신사도주의, 신비주의를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다양성이라는 명 분으로 수용해서는 안 되는 비진리이다. 또한 여호와의증인, 제 7 일안식교 에 대해서도 우간다 교회는 성경을 기준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많은 정 통 교회가 성경 외 다른 책에 성경의 권위를 부여하고 잘못된 구원론과 종말론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우간다 교회와 성도들은 성경에 근거하여 교회 안에서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한 후 비진 리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 자체가 개혁의 시작이 다. 물론 그런 노력이 저항에 부딪혀 제네바의 경우와는 달리 결실 없이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제네바 종교개혁의 중요성은 성공과 실패에 있지 않다. 칼빈은 성공의 가능성 때문에 개혁에 나서지 않았다. 잘못된 교회를 바로 세우려는 소망 때문에 그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 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끊임없이 성경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개혁하는 것 이다. 개혁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는 힘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경 의 진리를 사모하고 그 진리대로 교회를 세우려는 마음이다. 3. 바른 신학과 교리의 대중화·생활화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제네바에서 그는 기독 교강요 3 판~최종판(5 판)을 저술하였다. 그는 왜 기독교강요를 썼을까? 그 가 기독교강요를 쓴 목적은 ①“기독교 기초교리의 진술(confession)과 교 육적 동기(catechism)”, ②“개혁신학에 대한 변증(apologie)”, ③“신학도들 을 위하여 성경을 올바르게 읽도록 하는 안내서의 역할”, ④“경건의 지침 서(summa pietatis)”이다.27 아울러 그는 많은 성경 주석도 저술하였다. 그 는 자신의 기독교강요와 주석서들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 하게 이해하고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침으 27 김은수, 『칼빈과 개혁신앙』 (서울: SFC 출판부, 2011), 19-20.
  • 53. 칼빈의 제네바 개혁과 우간다에의 적용 39 로써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이것을 바탕으로 그는 제네바 시민들이 지켜야 할 『요리문답』(Genevan Catechism), 『교 회 행정에 관한 조례』(Articles concerning the organization fo the Church and of Worship at Geneva), 『교훈과 신앙고백』(Instruction and Confes- sion of Faith), 『제네바 교회법령』(The Ecclesiastical Ordinances of the Church of Geneva)을 작성하고 의회의 승인을 받았으며 이는 제네바 시민 들의 신앙 및 생활규범이 되었다. 그러므로 신앙과 삶의 일치라는 제네바 종교개혁의 힘의 원천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 뿌리를 둔 바른 신 학과 교리이다. 2014 년 현재 우간다 종교현황은 개신교 45.1%(Anglican 32.0%, Pen- tecostal/Born Again/Evangelical 11.1%, Seventh Day Adventist 1.7%, Bap- tist 0.3%), 로마카톨릭 39.3%, 무슬림 13.7%, 기타 1.8% 이다.28 성공회와 개신교를 묶어 함께 개신교를 42%로 보기도 하는데 우간다에서는 여호와 의 증인, 제 7 일 안식교가 개신교에 포함되므로 이들과 신사도주의, 신비주 의, 은사주의, 번영신학, 영지주의 등을 제외한다면 개혁신앙을 따르는 개 신교 비중은 줄어든다. 물론 개혁신학을 따른다고 해서 모두 바른 신학과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고, 개혁신학을 따르지 않는다고 모두 잘못 된 신학과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 종교개혁 이 추구하였던 개혁은 어느 한 종파의 개혁이 아니라 교회로서의 본질을 상실한 당시 로마 카톨릭에 대립하여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를 고백한 교회의 개혁이며, 우간다 개신교회도 이를 계승하고 있으므로 이를 기준으로 현재 교회들이 바른 신학과 교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그리고 얼마나 그 교리와 신학들이 성도들의 삶에 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칼빈은 개 혁신앙의 원리를 담은 교리를 대중화하여 신앙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였다. 의회의 승인을 받은 것도 그것을 위함이었다. 우간다 내 기독교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중 절반 이 상이 로마 카톨릭이고 사회 내 이슬람의 영향력도 아주 크다. 그러므로 칼 빈 당시 제네바처럼 모든 사회를 아우르는 생활규범으로서 교리를 사용하 28 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fields/2122.html#198 (2017 년 10 월 14 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