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Ÿ 일시 : 2018.02.08.(목) 오후 7시
Ÿ 장소 : 여전도회기념음악관 연주실
Ÿ 내용 : 1부 신/학/포/럼/
­ 발표1. 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의 문제점들
현요한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 발표2. 역사와 신앙의 관점에서 본 담임목사직 세습
홍지훈 교수 (호남신학대학교 종교개혁사)
2부 연/합/기/도/회/
Ÿ 주관 : 명성교회 세습철회와 교회개혁을 위한 장신대 교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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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신학포럼 오후 7:00~8:00
사회 : 박경수 교수 (세교모 총무)
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의 문제점들 *
오후 7:05~7:25 │ 현요한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지난 10여 년 간 한국교회 안에서는 담임목사직의 대물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대형 교회들이 너도
나도 세습을 감행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또한 이제 담임목사직 세습이 대형교회들 뿐만이 아니라, 중
소형 교회들에까지도 번져가고 있다. 일부 교단들에서 세습 금지법이 제정되기도 하였지만, 법망을 교묘히 피
하거나, 심지어 법질서를 어기고 파괴하면서까지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고, 조직적으로 담임목사직 세습을 옹호
하는 주장들도 시도되고 있다. 이 글은 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이 옳지 않음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한다.
1. 교회의 주권자, 하나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믿음과 순종으로 거기에 응답하여 하나님께 예배
하며,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모여진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성도들,’ ‘시민,’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성전(엡 2:19) 혹은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고전 3:9) 등으로 불려진
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에 의하여 모여진 하나님의 백성이다(벧전 2:9).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고전 12:27, 엡 1:23). 교회가 하나님의 권속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교회의 주(主)는 하나님이시
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값으로 산 것’(고
전 6:20)이 된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주님의 주권을 부정
하거나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 된다. 왜냐하면,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것은 특정 목회자와 그 가문이 교회의
주권을 차지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담임목사직 세습은 흔히 카리스마적인 목회자가 이끌어 온 대형교회들에서 일어난다. 그러한 교회들
의 모습은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이기 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자발적 결사(結社)(voluntary association) 혹은
하나의 거대한 사설 기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모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관심사에 따라서 모
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대개 카리스마적인 목회자가 제공하는 설교를 비롯한 여러 가지 종교 프로그램의 유익
을 누리며, 헌금을 바친다. 아마도 그 카리스마적인 목회자는 그 교회가 자신이 자수성가하여 이룩한 자신의
공적이요,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에 대하여 아깝고 불안하게 느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기독교 협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표방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이루어진 교회라면, 그들의 외형적 형태는 자발적 결사라 할지라도 내용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부르심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요, 거기에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목회자와 교인들의 겸손한 나눔과 섬김의 모습으
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목회자는 진정 주님의 종처럼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내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
라”(눅 17:10)고 고백해야 할 것이고, 임기를 마쳤으면 겸손하게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2. 교회의 표지들과 세습 문제
예로부터 교회는 교회의 본질적 특징들을 교회의 '표징(marks)'이라는 용어로 신앙고백에 담아 표현하여
왔다. 주후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확정되어 발표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교회에 관하여
* 이 글은 필자가 2013년 2월 19일에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교회세습에 대한 조직신학적 고찰”이라는 글을
수정 보완하여, 필자의 졸저 『조직신학과 목회현장』 (서울: 한들, 2017), 제2장에 실었던 것을 이번 발표를 위해서 발췌, 편집한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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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표징을 고백한다: “우리는 또한 하나의(one), 거룩하고(holy), 보편적이며(catholic), 사도적인(apostolic)
교회를 믿습니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본성을 가진다. 이것은 하나
님으로부터 주어진 서술적인(indicative)인 선언이며 동시에, 명령적인(imperative) 함의를 가진다. 만일 교회
가 이 표징들을 무시하고, 올바로 실현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하나님이 교회에 부여하신 특
징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교회의 담임목사직 세습은 바로 이 표징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하는 행위이다.
1)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일치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하나이다(엡 4:4-6). 교회가 하나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새로운 공동
체인 교회의 특징이다. 교회는 교회 안에 여러 지체들이 존재하고 여러 지교회들과 여러 교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이다. 교회의 일치성은 획일적인 일치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이다. 교회의 일치성은
여러 다른 인종, 성별, 신분,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이루는 일치성이다.
그것은 위계질서적이고 수직적으로 강요된 일치성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존중하는 가운데, 평등한 지체들이
이루는 일치성이다. 교회의 하나됨은 성령 안에서 성부와 성자가 이루는 공동체의 일치를 반영한다(요 17:21).
그런데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일치를 깨뜨리고, 교회 안에 분쟁과 분열을 야기한다. (세습에 성공한 교회
들은 평등한 지체들의 일치성이 아니라, 위계질서적이며 획일적인 일치성을 강조한다.) 또한 특정 교회의 담임
목사직 세습은 다른 교회나 사회가 무어라 하든, 다른 교회야 어찌 되든 자신들의 교회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개교회주의적 발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아래에서 논할 교회의 보편성을 포함하는 교회 전체의 일치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2)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거룩하다. 교회의 거룩함의 근거는 교회 구성원들의 도덕적 우월성이 아니라, 교회가 거룩하신 하나
님의 부르심을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된 사실에 근거한다. 교회의 거룩함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
수에 의하여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었기 때문이다(고전1:2). 교회의 세습은 이러한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한다. 교회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교회의 거룩성의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어진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원수 같은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희생적 사랑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한다. 담임목사직을 세습함으로써 교회의 거룩함은 속됨으로 왜곡되고, 거룩한 섬김의
직무는 지배하고 군림하는 권력으로 왜곡된다.
3)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보편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보편적이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본래 catholic인데, 이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
라, 헬라어 kata와 holos의 합성에서 온 말로서, 전 세계에 있는 전체로서의 교회를 가리키며, 이는 교회의
전체성, 우주성 혹은 보편성으로 이해된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전체로서의 교회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며
(예를 들어, 엡 3:21), 지역에 있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 된다(예를 들어, 계2:1, 8, 12 18 등). 그러
므로 교회는 한 지역에 존재하더라도 그 성격은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우주적이며 공공적 교회이
다. 그러므로 교회는 특정인들의 의견을 대변하거나 특정인들의 이익과 권력에 봉사하는 단체가 아니다. 교회
의 보편성은 또한 공공성(publicness)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회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이러한 교회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이다. 교회를 세습하는 것은 교회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해치고 교회를 사유화
(私有化)하는 일이며, 또한 교회를 사적인 단체로 만들어 사사화(私事化, privatization)하는 것이다. 신앙을 가
지고 교회에 참여하는 일은 전적으로 개인의 사적인 영역의 일이며 누군가가 외부에서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들만의 일이니 우리가 어떻게 믿고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말라는 것이다. 외부에서는 담임
목사직 세습이 교회의 사회적 신뢰를 더욱 추락시키며 선교를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교회는 더욱 잘 성장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결국 공적 영역에서 교회의 존재
가치와 신뢰를 더욱 상실하게 만들고, 복음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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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보편성과 공공성을 상실한 “그들만의 교회”가 되고 말며, 다른 교회들 즉, 전체로서의 교회는 신뢰성을
더욱 상실하고 오히려 선교의 장애를 겪게 된다. “그들만의 교회”에서는 모든 권력이 담임목사에게 집중됨으로
써 결국 교회가 단순히 교인 각자의 정신적 사사화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 특정인이나 특정 가문을 위한 사사
화의 길에 빠지게 만든다. 이것은 교회의 보편성을 상실한 개교회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4)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교회의 사도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사도적이다(엡 2:20). 교회가 사도적이라는 말은 교회가 사도들이 전해 준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
하여 있으며, 그 복음을 계속해서 전파하도록 보내심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사도성은 사제나 목사에게 안수를
통해 부여된 특권이 아니라, 교회가 전파하는 복음이 사도들이 전하여 준 복음과의 내용적 연속성을 가지며,
계속 그 복음을 전파할 사명이 있음을 의미한다.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결과적으로 특정 가문의 목회자만이 그
교회에서 복음을 설교할 수 있게 만듦으로써, 교회를 사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특정 가문의 사적인 단체로 변
질시킨다.
3. 교직자 소명론, 청빙론의 관점
담임목사직 세습에 대한 비판론이 맹렬하게 일어나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목회자 청빙(부르심)이라는 관
점에서 보아야 하며, 세습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칼뱅은 교역자(주로 목사)
가 정식으로 세움을 받는데 있어서 두 가지 요소를 말한다. 즉, 각 사람이 하나님 존전에서 의식하고 있는 하
나님의 비밀스러운 소명, 즉 내적 소명(inner calling)과 신자들(교회)이 어떤 신자의 자질과 자격을 보아서 선
택하는 외적 소명(outer calling)이 그것이다.
먼저 내적 소명에 대하여 살펴보자. 목사의 자녀가 다시 목사로 부름 받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
러나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교회의 모든 목사들이 과연 그 부친이 사역하던 바로 그 교회를 향한 진실한 내
적 소명을 받았는가?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부르심인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물려
주는 것보다 낫다는 극히 인간적이고 사적인 동기가 지배적이지 않은가?
외적인 소명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세습을 감행하는 교회들은 그 결정 과정이 절차상 법적으로 아무 문제
가 없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외적 소명의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 매체는 세습한 교회
들의 청빙 과정에 여러 가지 불법, 탈법의 사례가 있었음을 보도하고 있다. 또한 외부인 후보자에겐 아예 기회
조차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정당한 청빙인가? 또한 외부인 후보자가 있어도, 아들 목사가 원로목사가 되
는 부친의 카리스마적인 영향력의 후원을 받고 있는데 공정한 심사가 가능할까? 또한 세습이 예상되는 자녀가
이미 그 교회 안에서 교역자로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에 있다면, 설
사 외부인 후보자가 있더라도 과연 동등한 심사가 가능한가?
4. 제사장직 세습과 담임목사직 세습
구약시대의 제사장직 세습이 담임목사직 세습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구약시대에 제사장직 그리고 제사장
을 보좌하는 레위인들의 직무는 처음부터 세습직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이제 특정한 계급
의 사람들만이 제사장이 아니다. 모든 신자들은 다 왕 같은 제사장들로 부름 받았다(벧전 2:9). 그러므로 이제
목사만이 제사장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직이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대신하는 제사장이요, 성경에서 제
사장들은 대대로 세습되는 직책이었으므로, 담임목사직 세습은 성서적인 정당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우리의 죄를 속해 주는 희생제사로서의 제사는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더 이상 속죄의 희생 제사는 없다(히 9:23-28). 따라서 희생 제사
를 드리는 제사장도 이제는 없다. 지금도 우리가 드려야할 제사가 있다면 그것은 기도와 감사와 찬양의 제사
요, 서로 섬기고 나누는 사랑의 제사이다(히 13:15-16). 이러한 제사는 목사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일이며, 따라서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다(벧전 2:9). 루터는 로마 교회의 희생제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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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미사를 집전하는 계급적 제사장직에 대하여 반대하고, ‘전신자 제사장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목사가
제사장이어서 세습할 수 있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주목해 볼 것은 제사장직이 세습되던 구약 시대
에도, 제사장 가문은 생업의 기반이 되는 토지를 기업으로 소유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그들이 대를 이
어 간 것은 권력과 이익이 아니라 희생과 헌신이었던 것이다.
4. 맺는 말
지금까지 담임목사직의 세습이 왜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살펴보았다. 담임목사직 세습은 신학적으로 정
당화될 수 없다. 또한 이렇게 신학적으로 고찰하기 이전에 이미 사회인들은 그것이 상식 이하의 일이라고 생각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세습을 감행한다면, 그것은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성을 더욱 실추시키는
일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복음 전파를 더욱 어렵게 하고, 교회로 하여금 사회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변혁
적 능력을 상실케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역사와 신앙의 관점에서 본 담임목사직 세습
오후 7:25~7:45 │ 홍지훈 교수 (호남신학대학교 종교개혁사)
기독교 역사 2000년은 ‘신앙의 역사’인 동시에 ‘교회의 역사’다. 교회(church)라는 용어는 에클레시아의 번
역인데, “기관”의 의미가 강한 용어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루터는 교회(Kirche)보다는 공동체(Gemeinde)라
는 용어를 선호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독일 루터교는 교회공동체(Kirchengemeind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다
시 말하면, “교회”는 “기관” 또는 “기구”로써 가시적이지만, 그 본질은 “공동체”로써 불가시적이다. 공동체는
그 공동체를 이끄는 “정신”이 있는데, 비가시적인 정신을 가시화하는 일이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다. 따라서
2000년 기독교의 역사 또는 교회사는 반드시 기구로써의 관점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끄는 “정신”의 관점에서
관찰하여야 한다. 그 정신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다.
마찬가지 논리이지만,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은 적이 있었는지 되묻는다
면, 같은 대답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뿐만이 아니라,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 존
재하였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품었던 예수의
신앙이다. 그 정신이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흔적을 남겼는지를 추적하는 작업이 오늘 우
리가 모여 논의하는 “담임목사직 세습”에 대한 역사신학적인 비판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사실 “대물림”이란 생물학적인 용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전이라는 것은 후손의 책임이 아니다. 만일 당뇨
나 고혈압 또는 특정한 암이라는 질병이 가족력에 포함되면, 후손에게 이런 질병이 대물림될 확률이 매우 높
다. 후손이 자신의 가족력을 알면, 그 질병을 안 물려받으려고 열심히 운동하고 식습관을 바꾸며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게 된다. 동시에 대물림은 재산상속에서도 크게 작용한다. 재산을 크게 물려받는 후손은 좋겠지만,
가난을 물려받는 후손은 가난 탈출과 자수성가를 꿈꾸며 노력한다.
“대물림”을 생물학적이라고 한 이유는, 좋던 싫던 대물림은 존재하고 이에 대한 수용과 거부가 그 반응으로
당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질병이든 사업체든 유산이든 모든 일에는 대물림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수용할 것
인지, 거부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후손이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므로 담임목사직을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일도 “당연히” 시도하는 유전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질병이나 가난이라면, 절대로 안 물려받으려고 할 것
이고, 권력이나 재산이라면 물려받으려고 할 것이다. 여기서 던져야하는 질문이 바로 이런 “대물림” 과정 속에
서 “예수의 정신”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하는 질문이다.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0년 교회의 역사를 예수의 신앙
이라는 관점에서 보자고 한 것은 “교회론”의 문제로 세습 문제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습이 문제가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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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그 전에 더 많은 교회론의 문제가 누적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의 정신을 본질로 삼고
2000년 역사를 이끌어 왔는지 되물어야한다. 대물림의 수용이나 거부의 기준이 자기 사랑(amor sui)이었다면,
교회는 하나님 사랑(amor Dei)을 잊은 것이다. 예수의 신앙이 작동하면, 하기 싫은 것도 하게 되고, 하고 싶
은 것도 안 하게 된다. 율법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 복음이 생물학적 대물림의 법칙을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사 속에 남긴 복음의 흔적이 중요하다.
거대담론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를 기관이나 기구로만 여겼다는 사실을 반성해
야한다. 4세기의 기독교 공인과 국교화는 전형적인 기독교 제국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로마제국의 지배이념
으로 등극한 기독교는 기구로써 존재할 뿐, 예수의 정신을 점점 상실해가는 기구교회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잠
깐 프라하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Jan Hus, 1371-1415)가 남긴 말을 들어보자. “나는 자신의 악한 욕망 때문
에 어렸을 때 빨리 사제가 되어 좋은 집에 살며 화려한 옷을 입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성
경을 알게 되면서 그것이 악한 욕망임을 알았다.”*
성경이란 최초의 기독교적 정신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후스의 고백은 14세기 말의 기독교 상태와 사제
직의 성격을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최초의 기독교 정신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온 제국교회의 계급적 교
권아래에 함몰된 예수의 정신을 성경을 알고 나서 깨닫기 시작하였다는 후스의 고백은 교회의 머리가 누구인
지를 묻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적어도 종교개혁은 본질에서 멀어진 교회제도를 제자리로 되돌려놓으려는 회복적 시도였다. 그렇다면 오늘
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성경에 드러난 복음을 기준으로 “악한 욕망”의 껍데기를 제거하는 일에 협력해야 한
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는 더 이상 프로테스탄트도 개혁교회도 아니다. 종교개혁과 개혁교회가 극복하려
했던 문제는 “성직자 중심주의”(Clericalism)였다. 루터가 주장한 만인사제직(Priestertum aller Gläubigen)은
성직자 중심적 교회와 계급적 성직제도의 구조를 바꾸자는 주장이었다. 신앙의 세계 속에서 중심은 그리스도뿐
이고 그 외의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
프로테스탄트 방식으로 건축된 예배당도 이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단이 정 중앙에 있
고 신자들은 그 주위에 둘러앉는다. 로마 가톨릭 예배당이 긴 구조로 계급적인 자리배치를 지향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직분은 신분도 계급도 아니다. 담임목사직의 대물림이 문제가 되는 것은 직
분을 신분으로 둔갑시키는 “악한 욕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결정에 따른 직분선출과정을 거쳤
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제대로 공
부한 적이 없다는 반증이 된다. 대물림이란 심지어 프로테스탄트 운동과 개혁신학이 걸었던 목숨 값을 가벼이
여기는 처사이다.
AD 590-604년 사이에 재위한 그레고리 1세 교황을 우리는 기억한다. 로마의 부유한 귀족가문 출신으로
안락한 삶을 던져 버리고 수도사가 된 그는 교황의 자리에 오르지 않으려고 애써 피했던 인물이다. 그는 가난
한 이들의 수호자였으며, 자신을 “하나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불렀다. 성직자들의 도덕적 수준을 고양시켰고,
순결서약을 강화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자기의 신분이었던 귀족의 지위를 버렸다. 하지만 중세 1000년간 교황
중심의 로마 성직자단은 종교권력을 넘어 세속권력에까지 욕심을 부렸다. 그리고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에게도
“가문”이라는 것이 등장하였다. 대부분의 교황이 귀족출신이었고, 전 교황의 친인척이거나 사생아 교황이 다수
등장한 것은 종교권력의 독점이며 일종의 대물림의 역사이다.
루터가 출생할 때의 교황은 알렉산더 6세(재위 1492-1503)인데 본명은 로드리고 데 보르지아(1431-1492)
이다. 주교와 추기경을 거쳤으며, 선대 교황 갈리스토 3세(재위 1455-1458)의 조카였다. 심지어 그는 2명의
정부(情婦)에게서 9명의 사생아를 낳았다.** 그 중에 체사레(1475-1507)는 19세의 나이로 추기경을 역임하였
다. 다음 교황 비오 3세도 비오 2세 교황의 조카였다. 병들고 늙어서 몇 달을 채우지 못하고 죽자, 다음 교황
인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가 선출되었는데, 그 역시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조카였다. 3대 연속 조카
* Tomas Butta, 이종실 옮김, 『체교 종교개혁자 얀 후스를 만나다』, (동연 2015), 22
** P.G. Maxwell-Stuart, 박기영 옮김, 『교황의 역사』, (갑인공방 2005),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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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사례였다.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면죄부가 가장 극성을 부리던 시기도 이 시기였고, 베드로 대성당이 건
축되던 시기도 이때였다.
루터의 비판이 가장 날카로웠던 시기의 교황은 레오 10세(재위 1513-1521)였다. 본명이 조반니 데 메디치
(1475-1521)로 피렌체의 지배자며 위대한 로렌초로 불리던 메디치의 둘째 아들이었다. 막강한 아버지를 둔 조
반니는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를 다녔고 문학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13세에
추기경이 되었고, 37세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역대 가장 사치한 교황으로 이름을 남겼으며, 성직매매와 면죄
부 판매로 재원을 마련하였다.
다소 길게 교황의 역사를 소개한 것은 “종교가문”의 결탁이 어떤 결말로 달려가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한 권력에서 나와 세속정치를 이용하여 또 다른 권력으로 이어지는 교황선출의 역사는 비단 로마교회만의 문
제는 아니다. 1000년간이나 직분을 신분으로 바꾸는 생물학적 유전을 거듭하도록 방치하고 심지어 독려한 결
과가 똑같은 방식으로 500년 역사를 달려온 프로테스탄트 안에서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만일, 우리가 항의하
기(protest)를 멈춘다면 말이다, 만일 우리가 계속 개혁하기(semper reformanda)를 멈춘다면 말이다.
역사의 의미는 과거인식을 통하여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역사 학습의 근본적인 목적은
“비판력 증진”이다. 그리스도인은 일반역사를 넘어서 신앙의 역사를 비판적인 눈으로 볼 줄 알아야한다. 앞서
기구화 된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의 정신을 대비시킨 것도 껍데기와 본질을 구별할 줄 아는 비판적인 안목이 필
요하다는 의미였다. 물이 담긴 컵을 예로 들자. 목적은 갈증 난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이지만, 컵이 없으면 물
을 담아 놓을 수가 없다. 반대로 아무리 비싼 컵을 가져와도, 담을 물이 없거나 썩은 물이라면 그것 또한 아무
의미가 없다. 기구화 된 교회는 컵이고, 물은 그 속에 담긴 예수의 정신이다. 컵은 컵의 역할을 해야 하고, 물
은 물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뒤바뀔 때, 신앙의 위기가 찾아온다. 역사의식과 비판정신은 본질과 형식이
뒤바뀐 것을 알아채고 반성하여 개선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 2000년간 교회는 패러다임을 바꾸어가며 오늘에 이르렀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던 최초의 제자들은
고대교회를 형성하였고, 고대교회는 교부들을 통하여 교회전승을 힘겹게 이어갔다. 콘스탄티누스의 공인과 더
불어 등장한 중세 로마교회는 스콜라신학과 함께 제국교회를 만들고 교황과 성직자단 중심의 교회 패러다임을
완성하였다. 종교개혁운동은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패러다임으로 지역중심의 교회구조를 선택하였고, 이는 국
가교회의 출발을 알렸다.
우리 한국교회는 유럽의 근세적 기독교 경험이 없다. 정통주의와 계몽주의 그리고 경건주의운동이 각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기독교 역사를 이끌었던 경험 없이 교파별 기독교를 미국으로부터 전수 받았다. 오랜 세월
다양한 경험이 뒤섞인 채로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전해 받은 한국 기독교가 분파주의적 경향을 띠게 된 것이
나 개별교회 중심적 기독교가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전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이제 개별교회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회와 총회라는 상위 기구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공공성의 상징이다. 교회의 공적
역할이 강조되는 이 시기에 노회와 총회의 감독과 치리가 공적이지 못하면, 교회는 교회의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
우지 못하고 퇴보하고 만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성직자 중심주의의 벽을 허물었다면, 개혁교회의 정치구조는 철
저하게 대의 민주적 협의체를 구성하게 만들었다.*** 만일 개별적인 교회의 결정이 우선한다면 역사는 거꾸로
흘러가는 셈이 되고 만다. “담임목사직 대물림”이라는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는 2000년 기독교 역사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뒤흔드는 문제라는 인식이 절실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욕심이 충돌하는 신앙의 현장
속에서, 생물학적 유전인 “악한 욕망”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지 않고 복음이 이끄는 “역설적 선택”을 하는 역사적
비판정신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다.
토 론
오후 7:45~8:00 │ 박경수 교수 (세교모 총무)
*** Hans Küng, 이종한 옮김, 『그리스도교. 본질과 역사』, (분도 2001), 720-721.
- 8 -
2부 연합기도회 (2차) 오후 8:00~9:00
인 도 : 김 영 동 교 수
반 주 : 김 은 성 교 수
선 창 : 김준혁, 윤강희
※표는 가능하신 분은 일어서서
촛불점화와 타종 맡 은 이
※ 여 는 찬 송 우리 주님 예수께 (찬103장) 다 함 께
※ 여 는 기 도 인도자와 회중
인 도 자│ 하나님이여,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회 중│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소서
인 도 자│ 우리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니
회 중│ 우리보다 높은 바위에 우리를 인도하소서
인 도 자│ 주는 우리의 피난처이시오니
회 중│ 우리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시86편)
인 도 자│ 기도합시다
※ 기 원 송 가 진리와 생명 되신 주 (찬630장) 다 함 께
구 약 낭 독 사 40:21-31 박 민 서 ( 총 학 생 회 부 회 장 )
(낭독 후) 낭 독 자│ 이것은 구약의 말씀입니다
회 중│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시 편 교 독 시 147:1-3, 5-8, 10-11 인도자와 회중
(인도자와 회중이 교독하며, 중간 ○표에서 숨을 쉬고 후반절을 읽습니다.)
1 알렐루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 노래 얼마나 좋으냐 ○ 우리 하나님, 그 찬미
얼마나 부드러우냐.
2 주님은 예루살렘을 세우신 분 ○ 흩어졌던 이스라엘을 모아들이시는 분
3 상처 입은 마음을 고치시고 ○ 터진 상처를 싸매 주시는 분
5 전능하신 우리의 주님 얼마나 크시냐 ○ 그의 슬기 형용할 길 없어라
6 주, 낮은 자는 들어 올리시고 ○ 악인들은 땅에까지 낮추신다
7 주님께 감사노래 불러라 ○ 수금 타며 우리 하나님 찬미하여라
8 구름으로 하늘을 덮어 땅에 비를 내리시고 ○ 이 산에도 풀, 저 산에도 풀,
사람 먹을 곡식 나게 하시며
10 힘센 말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 힘 좋은 장정의 다리도 반기지 않으신다
11 당신 두려운 줄 아는 사람 ○ 당신 사랑 믿는 사람, 그들만을 반기신다.
(다함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서 신 서 낭 독 고전 9:16-23 양주희 (신대원 여학우회장)
- 9 -
(낭독 후) 낭 독 자│ 이것은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회 중│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복 음 찬 미 송 주를 찬양하나이다 (2창) 다 함 께
※ 복 음 서 낭 독 막 1:29-39 유난희 (목연과 여학우회장)
(낭독 후) 낭 독 자│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회 중│ 그리스도를 찬미합니다
설 교 예수님의 기도 김재남 목사 (전국노회장협의회 부회장)
신 앙 고 백 사도신경 다 함 께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
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평 화 의 인 사 인도자와 회중
인 도 자│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시며, 각 사람은 그분의 지체입니다. 그리스
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으니 우리
도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됩시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회 중│ 또한 당신과 함께 하소서
인 도 자│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눕시다
서로에게│ 주님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 소 명 찬 송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찬516장) 다 함 께
명성교회 세습철회와 한국교회 개혁을 위한 간구의 기도 맡 은 이
합 심 기 도 1 다 함 께
하나님, 명성교회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명성교회가 하나님 외에 누구도 어떤
것도 경외하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 거짓을 버리고 정직하게 서게
하옵소서. 사람을 교회의 주인 삼는 어둠의 일에서 떠나 빛으로 나아오게 하옵소서.
- 10 -
대 표 기 도 1 이정호 집사 (명성교회 교회학교 교사)
키 리 에 다 함 께
합 심 기 도 2 다 함 께
주여,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가 질서와 치리권을 바르게 행사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진리의 말씀 안에
총회의 기강과 헌법질서를 바로 세워주셔서 공의로운 판결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대 표 기 도 2 이용혁 목사 (작은교회)
키 리 에 다 함 께
합 심 기 도 3 다 함 께
하나님, 총회 산하 7개 신학교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어두운 시대에 신학교가
교회와 세상을 깨우는 경건과 지성의 전당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교회와 세상을 선도하는 신실하고 용기 있는 지도자들을 양성하게 하옵소서.
대 표 기 도 3 김형민 교수 (호남신학대학교)
키 리 에 다 함 께
주 의 기 도 다 함 께
※ 닫 는 찬 송 시온성과 같은 교회 (찬210장) 다 함 께
※ 강 복 선 언 정 우 목사 (신대원 76기│미암교회)
경 과 보 고 사회 : 임희국 교수 (세교모 의장)
증 언 1 조병길 집사 (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 총무)
증 언 2 김수원 목사 (서울동남노회비상대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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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명성교회 세습철회와 교회개혁을 위한 신학포럼 및 연합기도회’ 내용

  • 1. - 1 - Ÿ 일시 : 2018.02.08.(목) 오후 7시 Ÿ 장소 : 여전도회기념음악관 연주실 Ÿ 내용 : 1부 신/학/포/럼/ ­ 발표1. 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의 문제점들 현요한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 발표2. 역사와 신앙의 관점에서 본 담임목사직 세습 홍지훈 교수 (호남신학대학교 종교개혁사) 2부 연/합/기/도/회/ Ÿ 주관 : 명성교회 세습철회와 교회개혁을 위한 장신대 교수모임
  • 2. - 2 - 1부 신학포럼 오후 7:00~8:00 사회 : 박경수 교수 (세교모 총무) 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의 문제점들 * 오후 7:05~7:25 │ 현요한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지난 10여 년 간 한국교회 안에서는 담임목사직의 대물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대형 교회들이 너도 나도 세습을 감행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또한 이제 담임목사직 세습이 대형교회들 뿐만이 아니라, 중 소형 교회들에까지도 번져가고 있다. 일부 교단들에서 세습 금지법이 제정되기도 하였지만, 법망을 교묘히 피 하거나, 심지어 법질서를 어기고 파괴하면서까지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고, 조직적으로 담임목사직 세습을 옹호 하는 주장들도 시도되고 있다. 이 글은 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이 옳지 않음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한다. 1. 교회의 주권자, 하나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믿음과 순종으로 거기에 응답하여 하나님께 예배 하며,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모여진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성도들,’ ‘시민,’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성전(엡 2:19) 혹은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고전 3:9) 등으로 불려진 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에 의하여 모여진 하나님의 백성이다(벧전 2:9).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고전 12:27, 엡 1:23). 교회가 하나님의 권속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교회의 주(主)는 하나님이시 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값으로 산 것’(고 전 6:20)이 된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주님의 주권을 부정 하거나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 된다. 왜냐하면,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것은 특정 목회자와 그 가문이 교회의 주권을 차지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담임목사직 세습은 흔히 카리스마적인 목회자가 이끌어 온 대형교회들에서 일어난다. 그러한 교회들 의 모습은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이기 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자발적 결사(結社)(voluntary association) 혹은 하나의 거대한 사설 기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모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관심사에 따라서 모 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대개 카리스마적인 목회자가 제공하는 설교를 비롯한 여러 가지 종교 프로그램의 유익 을 누리며, 헌금을 바친다. 아마도 그 카리스마적인 목회자는 그 교회가 자신이 자수성가하여 이룩한 자신의 공적이요,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에 대하여 아깝고 불안하게 느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기독교 협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표방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이루어진 교회라면, 그들의 외형적 형태는 자발적 결사라 할지라도 내용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부르심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요, 거기에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목회자와 교인들의 겸손한 나눔과 섬김의 모습으 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목회자는 진정 주님의 종처럼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내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 라”(눅 17:10)고 고백해야 할 것이고, 임기를 마쳤으면 겸손하게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2. 교회의 표지들과 세습 문제 예로부터 교회는 교회의 본질적 특징들을 교회의 '표징(marks)'이라는 용어로 신앙고백에 담아 표현하여 왔다. 주후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확정되어 발표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교회에 관하여 * 이 글은 필자가 2013년 2월 19일에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교회세습에 대한 조직신학적 고찰”이라는 글을 수정 보완하여, 필자의 졸저 『조직신학과 목회현장』 (서울: 한들, 2017), 제2장에 실었던 것을 이번 발표를 위해서 발췌, 편집한 것 이다.
  • 3. - 3 - 네 가지 표징을 고백한다: “우리는 또한 하나의(one), 거룩하고(holy), 보편적이며(catholic), 사도적인(apostolic) 교회를 믿습니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본성을 가진다. 이것은 하나 님으로부터 주어진 서술적인(indicative)인 선언이며 동시에, 명령적인(imperative) 함의를 가진다. 만일 교회 가 이 표징들을 무시하고, 올바로 실현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하나님이 교회에 부여하신 특 징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교회의 담임목사직 세습은 바로 이 표징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하는 행위이다. 1)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일치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하나이다(엡 4:4-6). 교회가 하나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새로운 공동 체인 교회의 특징이다. 교회는 교회 안에 여러 지체들이 존재하고 여러 지교회들과 여러 교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이다. 교회의 일치성은 획일적인 일치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이다. 교회의 일치성은 여러 다른 인종, 성별, 신분,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이루는 일치성이다. 그것은 위계질서적이고 수직적으로 강요된 일치성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존중하는 가운데, 평등한 지체들이 이루는 일치성이다. 교회의 하나됨은 성령 안에서 성부와 성자가 이루는 공동체의 일치를 반영한다(요 17:21). 그런데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일치를 깨뜨리고, 교회 안에 분쟁과 분열을 야기한다. (세습에 성공한 교회 들은 평등한 지체들의 일치성이 아니라, 위계질서적이며 획일적인 일치성을 강조한다.) 또한 특정 교회의 담임 목사직 세습은 다른 교회나 사회가 무어라 하든, 다른 교회야 어찌 되든 자신들의 교회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개교회주의적 발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아래에서 논할 교회의 보편성을 포함하는 교회 전체의 일치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2)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거룩하다. 교회의 거룩함의 근거는 교회 구성원들의 도덕적 우월성이 아니라, 교회가 거룩하신 하나 님의 부르심을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된 사실에 근거한다. 교회의 거룩함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 수에 의하여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었기 때문이다(고전1:2). 교회의 세습은 이러한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한다. 교회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교회의 거룩성의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어진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원수 같은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희생적 사랑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한다. 담임목사직을 세습함으로써 교회의 거룩함은 속됨으로 왜곡되고, 거룩한 섬김의 직무는 지배하고 군림하는 권력으로 왜곡된다. 3)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보편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보편적이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본래 catholic인데, 이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 라, 헬라어 kata와 holos의 합성에서 온 말로서, 전 세계에 있는 전체로서의 교회를 가리키며, 이는 교회의 전체성, 우주성 혹은 보편성으로 이해된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전체로서의 교회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며 (예를 들어, 엡 3:21), 지역에 있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 된다(예를 들어, 계2:1, 8, 12 18 등). 그러 므로 교회는 한 지역에 존재하더라도 그 성격은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우주적이며 공공적 교회이 다. 그러므로 교회는 특정인들의 의견을 대변하거나 특정인들의 이익과 권력에 봉사하는 단체가 아니다. 교회 의 보편성은 또한 공공성(publicness)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회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이러한 교회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이다. 교회를 세습하는 것은 교회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해치고 교회를 사유화 (私有化)하는 일이며, 또한 교회를 사적인 단체로 만들어 사사화(私事化, privatization)하는 것이다. 신앙을 가 지고 교회에 참여하는 일은 전적으로 개인의 사적인 영역의 일이며 누군가가 외부에서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들만의 일이니 우리가 어떻게 믿고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말라는 것이다. 외부에서는 담임 목사직 세습이 교회의 사회적 신뢰를 더욱 추락시키며 선교를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교회는 더욱 잘 성장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결국 공적 영역에서 교회의 존재 가치와 신뢰를 더욱 상실하게 만들고, 복음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그
  • 4. - 4 - 교회는 보편성과 공공성을 상실한 “그들만의 교회”가 되고 말며, 다른 교회들 즉, 전체로서의 교회는 신뢰성을 더욱 상실하고 오히려 선교의 장애를 겪게 된다. “그들만의 교회”에서는 모든 권력이 담임목사에게 집중됨으로 써 결국 교회가 단순히 교인 각자의 정신적 사사화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 특정인이나 특정 가문을 위한 사사 화의 길에 빠지게 만든다. 이것은 교회의 보편성을 상실한 개교회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4)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교회의 사도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사도적이다(엡 2:20). 교회가 사도적이라는 말은 교회가 사도들이 전해 준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 하여 있으며, 그 복음을 계속해서 전파하도록 보내심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사도성은 사제나 목사에게 안수를 통해 부여된 특권이 아니라, 교회가 전파하는 복음이 사도들이 전하여 준 복음과의 내용적 연속성을 가지며, 계속 그 복음을 전파할 사명이 있음을 의미한다.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결과적으로 특정 가문의 목회자만이 그 교회에서 복음을 설교할 수 있게 만듦으로써, 교회를 사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특정 가문의 사적인 단체로 변 질시킨다. 3. 교직자 소명론, 청빙론의 관점 담임목사직 세습에 대한 비판론이 맹렬하게 일어나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목회자 청빙(부르심)이라는 관 점에서 보아야 하며, 세습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칼뱅은 교역자(주로 목사) 가 정식으로 세움을 받는데 있어서 두 가지 요소를 말한다. 즉, 각 사람이 하나님 존전에서 의식하고 있는 하 나님의 비밀스러운 소명, 즉 내적 소명(inner calling)과 신자들(교회)이 어떤 신자의 자질과 자격을 보아서 선 택하는 외적 소명(outer calling)이 그것이다. 먼저 내적 소명에 대하여 살펴보자. 목사의 자녀가 다시 목사로 부름 받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 러나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교회의 모든 목사들이 과연 그 부친이 사역하던 바로 그 교회를 향한 진실한 내 적 소명을 받았는가?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부르심인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물려 주는 것보다 낫다는 극히 인간적이고 사적인 동기가 지배적이지 않은가? 외적인 소명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세습을 감행하는 교회들은 그 결정 과정이 절차상 법적으로 아무 문제 가 없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외적 소명의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 매체는 세습한 교회 들의 청빙 과정에 여러 가지 불법, 탈법의 사례가 있었음을 보도하고 있다. 또한 외부인 후보자에겐 아예 기회 조차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정당한 청빙인가? 또한 외부인 후보자가 있어도, 아들 목사가 원로목사가 되 는 부친의 카리스마적인 영향력의 후원을 받고 있는데 공정한 심사가 가능할까? 또한 세습이 예상되는 자녀가 이미 그 교회 안에서 교역자로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에 있다면, 설 사 외부인 후보자가 있더라도 과연 동등한 심사가 가능한가? 4. 제사장직 세습과 담임목사직 세습 구약시대의 제사장직 세습이 담임목사직 세습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구약시대에 제사장직 그리고 제사장 을 보좌하는 레위인들의 직무는 처음부터 세습직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이제 특정한 계급 의 사람들만이 제사장이 아니다. 모든 신자들은 다 왕 같은 제사장들로 부름 받았다(벧전 2:9). 그러므로 이제 목사만이 제사장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직이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대신하는 제사장이요, 성경에서 제 사장들은 대대로 세습되는 직책이었으므로, 담임목사직 세습은 성서적인 정당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우리의 죄를 속해 주는 희생제사로서의 제사는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더 이상 속죄의 희생 제사는 없다(히 9:23-28). 따라서 희생 제사 를 드리는 제사장도 이제는 없다. 지금도 우리가 드려야할 제사가 있다면 그것은 기도와 감사와 찬양의 제사 요, 서로 섬기고 나누는 사랑의 제사이다(히 13:15-16). 이러한 제사는 목사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일이며, 따라서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다(벧전 2:9). 루터는 로마 교회의 희생제사로
  • 5. - 5 - 서의 미사를 집전하는 계급적 제사장직에 대하여 반대하고, ‘전신자 제사장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목사가 제사장이어서 세습할 수 있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주목해 볼 것은 제사장직이 세습되던 구약 시대 에도, 제사장 가문은 생업의 기반이 되는 토지를 기업으로 소유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그들이 대를 이 어 간 것은 권력과 이익이 아니라 희생과 헌신이었던 것이다. 4. 맺는 말 지금까지 담임목사직의 세습이 왜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살펴보았다. 담임목사직 세습은 신학적으로 정 당화될 수 없다. 또한 이렇게 신학적으로 고찰하기 이전에 이미 사회인들은 그것이 상식 이하의 일이라고 생각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세습을 감행한다면, 그것은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성을 더욱 실추시키는 일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복음 전파를 더욱 어렵게 하고, 교회로 하여금 사회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변혁 적 능력을 상실케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역사와 신앙의 관점에서 본 담임목사직 세습 오후 7:25~7:45 │ 홍지훈 교수 (호남신학대학교 종교개혁사) 기독교 역사 2000년은 ‘신앙의 역사’인 동시에 ‘교회의 역사’다. 교회(church)라는 용어는 에클레시아의 번 역인데, “기관”의 의미가 강한 용어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루터는 교회(Kirche)보다는 공동체(Gemeinde)라 는 용어를 선호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독일 루터교는 교회공동체(Kirchengemeind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다 시 말하면, “교회”는 “기관” 또는 “기구”로써 가시적이지만, 그 본질은 “공동체”로써 불가시적이다. 공동체는 그 공동체를 이끄는 “정신”이 있는데, 비가시적인 정신을 가시화하는 일이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다. 따라서 2000년 기독교의 역사 또는 교회사는 반드시 기구로써의 관점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끄는 “정신”의 관점에서 관찰하여야 한다. 그 정신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다. 마찬가지 논리이지만,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은 적이 있었는지 되묻는다 면, 같은 대답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뿐만이 아니라,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 존 재하였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품었던 예수의 신앙이다. 그 정신이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흔적을 남겼는지를 추적하는 작업이 오늘 우 리가 모여 논의하는 “담임목사직 세습”에 대한 역사신학적인 비판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사실 “대물림”이란 생물학적인 용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전이라는 것은 후손의 책임이 아니다. 만일 당뇨 나 고혈압 또는 특정한 암이라는 질병이 가족력에 포함되면, 후손에게 이런 질병이 대물림될 확률이 매우 높 다. 후손이 자신의 가족력을 알면, 그 질병을 안 물려받으려고 열심히 운동하고 식습관을 바꾸며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게 된다. 동시에 대물림은 재산상속에서도 크게 작용한다. 재산을 크게 물려받는 후손은 좋겠지만, 가난을 물려받는 후손은 가난 탈출과 자수성가를 꿈꾸며 노력한다. “대물림”을 생물학적이라고 한 이유는, 좋던 싫던 대물림은 존재하고 이에 대한 수용과 거부가 그 반응으로 당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질병이든 사업체든 유산이든 모든 일에는 대물림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수용할 것 인지, 거부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후손이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므로 담임목사직을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일도 “당연히” 시도하는 유전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질병이나 가난이라면, 절대로 안 물려받으려고 할 것 이고, 권력이나 재산이라면 물려받으려고 할 것이다. 여기서 던져야하는 질문이 바로 이런 “대물림” 과정 속에 서 “예수의 정신”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하는 질문이다.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0년 교회의 역사를 예수의 신앙 이라는 관점에서 보자고 한 것은 “교회론”의 문제로 세습 문제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습이 문제가 되기
  • 6. - 6 - 까지 그 전에 더 많은 교회론의 문제가 누적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의 정신을 본질로 삼고 2000년 역사를 이끌어 왔는지 되물어야한다. 대물림의 수용이나 거부의 기준이 자기 사랑(amor sui)이었다면, 교회는 하나님 사랑(amor Dei)을 잊은 것이다. 예수의 신앙이 작동하면, 하기 싫은 것도 하게 되고, 하고 싶 은 것도 안 하게 된다. 율법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 복음이 생물학적 대물림의 법칙을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사 속에 남긴 복음의 흔적이 중요하다. 거대담론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를 기관이나 기구로만 여겼다는 사실을 반성해 야한다. 4세기의 기독교 공인과 국교화는 전형적인 기독교 제국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로마제국의 지배이념 으로 등극한 기독교는 기구로써 존재할 뿐, 예수의 정신을 점점 상실해가는 기구교회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잠 깐 프라하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Jan Hus, 1371-1415)가 남긴 말을 들어보자. “나는 자신의 악한 욕망 때문 에 어렸을 때 빨리 사제가 되어 좋은 집에 살며 화려한 옷을 입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성 경을 알게 되면서 그것이 악한 욕망임을 알았다.”* 성경이란 최초의 기독교적 정신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후스의 고백은 14세기 말의 기독교 상태와 사제 직의 성격을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최초의 기독교 정신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온 제국교회의 계급적 교 권아래에 함몰된 예수의 정신을 성경을 알고 나서 깨닫기 시작하였다는 후스의 고백은 교회의 머리가 누구인 지를 묻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적어도 종교개혁은 본질에서 멀어진 교회제도를 제자리로 되돌려놓으려는 회복적 시도였다. 그렇다면 오늘 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성경에 드러난 복음을 기준으로 “악한 욕망”의 껍데기를 제거하는 일에 협력해야 한 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는 더 이상 프로테스탄트도 개혁교회도 아니다. 종교개혁과 개혁교회가 극복하려 했던 문제는 “성직자 중심주의”(Clericalism)였다. 루터가 주장한 만인사제직(Priestertum aller Gläubigen)은 성직자 중심적 교회와 계급적 성직제도의 구조를 바꾸자는 주장이었다. 신앙의 세계 속에서 중심은 그리스도뿐 이고 그 외의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 프로테스탄트 방식으로 건축된 예배당도 이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단이 정 중앙에 있 고 신자들은 그 주위에 둘러앉는다. 로마 가톨릭 예배당이 긴 구조로 계급적인 자리배치를 지향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직분은 신분도 계급도 아니다. 담임목사직의 대물림이 문제가 되는 것은 직 분을 신분으로 둔갑시키는 “악한 욕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결정에 따른 직분선출과정을 거쳤 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제대로 공 부한 적이 없다는 반증이 된다. 대물림이란 심지어 프로테스탄트 운동과 개혁신학이 걸었던 목숨 값을 가벼이 여기는 처사이다. AD 590-604년 사이에 재위한 그레고리 1세 교황을 우리는 기억한다. 로마의 부유한 귀족가문 출신으로 안락한 삶을 던져 버리고 수도사가 된 그는 교황의 자리에 오르지 않으려고 애써 피했던 인물이다. 그는 가난 한 이들의 수호자였으며, 자신을 “하나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불렀다. 성직자들의 도덕적 수준을 고양시켰고, 순결서약을 강화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자기의 신분이었던 귀족의 지위를 버렸다. 하지만 중세 1000년간 교황 중심의 로마 성직자단은 종교권력을 넘어 세속권력에까지 욕심을 부렸다. 그리고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에게도 “가문”이라는 것이 등장하였다. 대부분의 교황이 귀족출신이었고, 전 교황의 친인척이거나 사생아 교황이 다수 등장한 것은 종교권력의 독점이며 일종의 대물림의 역사이다. 루터가 출생할 때의 교황은 알렉산더 6세(재위 1492-1503)인데 본명은 로드리고 데 보르지아(1431-1492) 이다. 주교와 추기경을 거쳤으며, 선대 교황 갈리스토 3세(재위 1455-1458)의 조카였다. 심지어 그는 2명의 정부(情婦)에게서 9명의 사생아를 낳았다.** 그 중에 체사레(1475-1507)는 19세의 나이로 추기경을 역임하였 다. 다음 교황 비오 3세도 비오 2세 교황의 조카였다. 병들고 늙어서 몇 달을 채우지 못하고 죽자, 다음 교황 인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가 선출되었는데, 그 역시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조카였다. 3대 연속 조카 * Tomas Butta, 이종실 옮김, 『체교 종교개혁자 얀 후스를 만나다』, (동연 2015), 22 ** P.G. Maxwell-Stuart, 박기영 옮김, 『교황의 역사』, (갑인공방 2005), 192.
  • 7. - 7 - 교황의 사례였다.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면죄부가 가장 극성을 부리던 시기도 이 시기였고, 베드로 대성당이 건 축되던 시기도 이때였다. 루터의 비판이 가장 날카로웠던 시기의 교황은 레오 10세(재위 1513-1521)였다. 본명이 조반니 데 메디치 (1475-1521)로 피렌체의 지배자며 위대한 로렌초로 불리던 메디치의 둘째 아들이었다. 막강한 아버지를 둔 조 반니는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를 다녔고 문학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13세에 추기경이 되었고, 37세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역대 가장 사치한 교황으로 이름을 남겼으며, 성직매매와 면죄 부 판매로 재원을 마련하였다. 다소 길게 교황의 역사를 소개한 것은 “종교가문”의 결탁이 어떤 결말로 달려가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한 권력에서 나와 세속정치를 이용하여 또 다른 권력으로 이어지는 교황선출의 역사는 비단 로마교회만의 문 제는 아니다. 1000년간이나 직분을 신분으로 바꾸는 생물학적 유전을 거듭하도록 방치하고 심지어 독려한 결 과가 똑같은 방식으로 500년 역사를 달려온 프로테스탄트 안에서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만일, 우리가 항의하 기(protest)를 멈춘다면 말이다, 만일 우리가 계속 개혁하기(semper reformanda)를 멈춘다면 말이다. 역사의 의미는 과거인식을 통하여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역사 학습의 근본적인 목적은 “비판력 증진”이다. 그리스도인은 일반역사를 넘어서 신앙의 역사를 비판적인 눈으로 볼 줄 알아야한다. 앞서 기구화 된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의 정신을 대비시킨 것도 껍데기와 본질을 구별할 줄 아는 비판적인 안목이 필 요하다는 의미였다. 물이 담긴 컵을 예로 들자. 목적은 갈증 난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이지만, 컵이 없으면 물 을 담아 놓을 수가 없다. 반대로 아무리 비싼 컵을 가져와도, 담을 물이 없거나 썩은 물이라면 그것 또한 아무 의미가 없다. 기구화 된 교회는 컵이고, 물은 그 속에 담긴 예수의 정신이다. 컵은 컵의 역할을 해야 하고, 물 은 물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뒤바뀔 때, 신앙의 위기가 찾아온다. 역사의식과 비판정신은 본질과 형식이 뒤바뀐 것을 알아채고 반성하여 개선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 2000년간 교회는 패러다임을 바꾸어가며 오늘에 이르렀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던 최초의 제자들은 고대교회를 형성하였고, 고대교회는 교부들을 통하여 교회전승을 힘겹게 이어갔다. 콘스탄티누스의 공인과 더 불어 등장한 중세 로마교회는 스콜라신학과 함께 제국교회를 만들고 교황과 성직자단 중심의 교회 패러다임을 완성하였다. 종교개혁운동은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패러다임으로 지역중심의 교회구조를 선택하였고, 이는 국 가교회의 출발을 알렸다. 우리 한국교회는 유럽의 근세적 기독교 경험이 없다. 정통주의와 계몽주의 그리고 경건주의운동이 각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기독교 역사를 이끌었던 경험 없이 교파별 기독교를 미국으로부터 전수 받았다. 오랜 세월 다양한 경험이 뒤섞인 채로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전해 받은 한국 기독교가 분파주의적 경향을 띠게 된 것이 나 개별교회 중심적 기독교가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전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이제 개별교회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회와 총회라는 상위 기구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공공성의 상징이다. 교회의 공적 역할이 강조되는 이 시기에 노회와 총회의 감독과 치리가 공적이지 못하면, 교회는 교회의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 우지 못하고 퇴보하고 만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성직자 중심주의의 벽을 허물었다면, 개혁교회의 정치구조는 철 저하게 대의 민주적 협의체를 구성하게 만들었다.*** 만일 개별적인 교회의 결정이 우선한다면 역사는 거꾸로 흘러가는 셈이 되고 만다. “담임목사직 대물림”이라는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는 2000년 기독교 역사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뒤흔드는 문제라는 인식이 절실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욕심이 충돌하는 신앙의 현장 속에서, 생물학적 유전인 “악한 욕망”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지 않고 복음이 이끄는 “역설적 선택”을 하는 역사적 비판정신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다. 토 론 오후 7:45~8:00 │ 박경수 교수 (세교모 총무) *** Hans Küng, 이종한 옮김, 『그리스도교. 본질과 역사』, (분도 2001), 720-721.
  • 8. - 8 - 2부 연합기도회 (2차) 오후 8:00~9:00 인 도 : 김 영 동 교 수 반 주 : 김 은 성 교 수 선 창 : 김준혁, 윤강희 ※표는 가능하신 분은 일어서서 촛불점화와 타종 맡 은 이 ※ 여 는 찬 송 우리 주님 예수께 (찬103장) 다 함 께 ※ 여 는 기 도 인도자와 회중 인 도 자│ 하나님이여,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회 중│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소서 인 도 자│ 우리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니 회 중│ 우리보다 높은 바위에 우리를 인도하소서 인 도 자│ 주는 우리의 피난처이시오니 회 중│ 우리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시86편) 인 도 자│ 기도합시다 ※ 기 원 송 가 진리와 생명 되신 주 (찬630장) 다 함 께 구 약 낭 독 사 40:21-31 박 민 서 ( 총 학 생 회 부 회 장 ) (낭독 후) 낭 독 자│ 이것은 구약의 말씀입니다 회 중│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시 편 교 독 시 147:1-3, 5-8, 10-11 인도자와 회중 (인도자와 회중이 교독하며, 중간 ○표에서 숨을 쉬고 후반절을 읽습니다.) 1 알렐루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 노래 얼마나 좋으냐 ○ 우리 하나님, 그 찬미 얼마나 부드러우냐. 2 주님은 예루살렘을 세우신 분 ○ 흩어졌던 이스라엘을 모아들이시는 분 3 상처 입은 마음을 고치시고 ○ 터진 상처를 싸매 주시는 분 5 전능하신 우리의 주님 얼마나 크시냐 ○ 그의 슬기 형용할 길 없어라 6 주, 낮은 자는 들어 올리시고 ○ 악인들은 땅에까지 낮추신다 7 주님께 감사노래 불러라 ○ 수금 타며 우리 하나님 찬미하여라 8 구름으로 하늘을 덮어 땅에 비를 내리시고 ○ 이 산에도 풀, 저 산에도 풀, 사람 먹을 곡식 나게 하시며 10 힘센 말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 힘 좋은 장정의 다리도 반기지 않으신다 11 당신 두려운 줄 아는 사람 ○ 당신 사랑 믿는 사람, 그들만을 반기신다. (다함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서 신 서 낭 독 고전 9:16-23 양주희 (신대원 여학우회장)
  • 9. - 9 - (낭독 후) 낭 독 자│ 이것은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회 중│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복 음 찬 미 송 주를 찬양하나이다 (2창) 다 함 께 ※ 복 음 서 낭 독 막 1:29-39 유난희 (목연과 여학우회장) (낭독 후) 낭 독 자│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회 중│ 그리스도를 찬미합니다 설 교 예수님의 기도 김재남 목사 (전국노회장협의회 부회장) 신 앙 고 백 사도신경 다 함 께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 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평 화 의 인 사 인도자와 회중 인 도 자│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시며, 각 사람은 그분의 지체입니다. 그리스 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으니 우리 도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됩시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회 중│ 또한 당신과 함께 하소서 인 도 자│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눕시다 서로에게│ 주님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 소 명 찬 송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찬516장) 다 함 께 명성교회 세습철회와 한국교회 개혁을 위한 간구의 기도 맡 은 이 합 심 기 도 1 다 함 께 하나님, 명성교회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명성교회가 하나님 외에 누구도 어떤 것도 경외하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 거짓을 버리고 정직하게 서게 하옵소서. 사람을 교회의 주인 삼는 어둠의 일에서 떠나 빛으로 나아오게 하옵소서.
  • 10. - 10 - 대 표 기 도 1 이정호 집사 (명성교회 교회학교 교사) 키 리 에 다 함 께 합 심 기 도 2 다 함 께 주여,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가 질서와 치리권을 바르게 행사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진리의 말씀 안에 총회의 기강과 헌법질서를 바로 세워주셔서 공의로운 판결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대 표 기 도 2 이용혁 목사 (작은교회) 키 리 에 다 함 께 합 심 기 도 3 다 함 께 하나님, 총회 산하 7개 신학교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어두운 시대에 신학교가 교회와 세상을 깨우는 경건과 지성의 전당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교회와 세상을 선도하는 신실하고 용기 있는 지도자들을 양성하게 하옵소서. 대 표 기 도 3 김형민 교수 (호남신학대학교) 키 리 에 다 함 께 주 의 기 도 다 함 께 ※ 닫 는 찬 송 시온성과 같은 교회 (찬210장) 다 함 께 ※ 강 복 선 언 정 우 목사 (신대원 76기│미암교회) 경 과 보 고 사회 : 임희국 교수 (세교모 의장) 증 언 1 조병길 집사 (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 총무) 증 언 2 김수원 목사 (서울동남노회비상대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