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Untitled, Acrylic on Canvas, 152.4×145.1cm, 1970,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12. ‘나는 추상주의에 속하는 화가가 아니다. 나는 색체나
형태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비극, 아이러니, 관능미, 운
명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
이 있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가진 것과 똑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Mark Rothko 1903-1970
13. 로스코 예배당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인권을 신장시키고, 서로 다른 믿음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14.
15.
16. 그림 그리는 일은 내게 구원과 같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테니까
-1887년 여름 (빈센트 반 고호 1853-1890)
19. 내 감각으로 만나는 세계
내 욕구를 통해 펼치는 세계 : [자발성]
내가 ‘나’이고자 하는 욕구가,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유용함’을 만든다 : [작품]
20. 우리는 기계로 태어나지 않고 창작자(창조적 존재)로 태어난다.
그러나, 조급함과 실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에 스스로 기계가 되기를 결정한다. 너무 쉽게..
기계
(노예)
주인
(사기꾼)
의존하여 불안을 해소하려 함, 스스로 자신을 외면, 부인 (인류적 손실, 비극의 쳇바퀴)
자신의 이득을 자신만 알고 있음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세상은 위험함 곳 이라고 가르침
내가 아니면 너희는 안된다고 가르침
이게 과연 옳은가?
21. 내 감각으로 세상을 만나는 그 처음 순간부터 내가 중요했던 것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내부의 욕구보다, 외부의 요구에 길들여짐
내면의 욕구 외부의 요구
72. #3. 창작에 이르게 하는 창조적 관찰
- 바라보기, 발견하기
- 창작에 이르게 하는 창조적 관찰
- 창작, 나와 내가 만나는 세계의 이야기
73.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보여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의미는 없다. 오로지 사물만이 존재할 뿐이다.
-윌리엄스 W.C.Williams
74. 사진이 찍혀지는 순간까지 그것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삶 전체를 통틀어 내가 배운 것들은 이 머무름과 반대 선상에
있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빛, 공간, 거리 사이의 관계, 공기, 울림, 리듬,
질감, 운동의 형태, 명암, ... 사물 그 자체 ... 이들이 나중에 무엇을 의
미하든 아직은 사회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성적이지도 않다.
(여송연cigar은 아직 여송연이 아니다.)
이름을 주지도 , 상표를 붙이지도, 재 보지도,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기억하지도, 탐하지도 마라, 그저 바라만 보아라.
이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저 보이는 게 찍힐 뿐이다. 카메라
는 파인더 안에 보이는 사물의 표면에 반사된 빛을 기록할 뿐이다. 그
것이 전부다.
75. 그것의 의미를 경험한다는 것, 몇 초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보며 그 존재를 느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가 배재된 목소리, 음악의 선율, 도자기, 추상화, 그것의 현존,
그것의 무게, 그것의 존재와 나의 존재의 경이로움. 사실 그 자체의
신비.
아마도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남은 길이의 반만큼을 끊임없이 가고
또 가야 되는 제논의 역설과 같다.
영원을 향한 노정의 절반에 도달했을 때 남은 거리를 뛰어넘기 위해
서는 하늘의 은총이 필요하다.
그 틈새를 건너뛰게 도와줄 무언가를 희망하며 나는 계속 사진을 찍
는다.
-필립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 중
76. “모든 사물을 볼 때 난생 처음 보는 것 처럼 보라”
- Henri Matisse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성공 사례들로부터의 자유
선입견, 선지식으로 보지 않기 : 나를 잃어버리거나
빼앗길 수 있음, 자기 감각의 중요성
77. •난 생 처음 만난다는 것 (유아기의 중요성)
•선 지식이 없고, 내가 보는 대상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을 때의 우리의 감각 (순
수, 능동적)
•자연스럽게 예민해지는 감각 (즐거움, 흥분, 호기심, 상상력)
•보는 것에 대한 열망, 깊은 곳에 이르기
•마티스 - 끝없는 탐구의 즐거움, 그 과정을 기록하고 보여주는 즐거움
98. 빌럼 데 쿠닝
(Willem de Kooning, 1904년 4월 24일 - 1997년 3월 19일)
20세기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이다.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추상표현주의의 화가로 구상도, 추상도 할 수없는 표현과 격
렬한 필촉이 특색이다. 드 쿠닝은 잭슨 폴락과 대등한 "액션
페인팅"의 대표적인 작가이고, 추상표현주의의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서, 20세기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0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사춘기에는 상업미술
회사에서 일하는 하면서, 로테르담 미술공업학교의 야학으로 공
부했다. 네덜란드에 있었던 시기에 몬드리안 등의 "더 스테일" 운
동을 접했다.
1926년 미국으로 건너와 이후 미국에서 활동한다. 1927년경 아르
메니아에서 온 화가 아실 고치와 알게 되어 많은 영향을 받았다.
드 쿠닝은 1930년대 중반까지 상업 미술 작품으로 생계를 유지했
다. 또한, 마크 로스코 등 다른 추상화가들과 함께 WPA (공공사
업 촉진국)의 연방 미술 계획 업무에 종사했다. 연방미술계획은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화가들에게 공공건물의 벽화 제작 등을 위
촉했던 곳이다. 1948년, 뉴욕 이건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
한다.
1940년대 경부터 드 쿠닝은 인물 표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다. 195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여자" 시리즈가 잘 알려져 있다.
폴록의 "드립핑"(물감을 뚝뚝 떨어지는) 회화와 달리 데 쿠닝이 그
리는 "여자"는 캔버스에 붓으로 그린 것이지만, 감정이 향하는 대
로, 붓을 놀린 것처럼 보이는 화면은 거의 추상에 접근하고 있다.
그 후 화면에서 구체적인 이미지를 배제한 추상적인 작품을 그렸
던 시기도 있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다시 "여자"를 테마로 작
품을 만들어 냈다.
- 출처 : 위키백과
121. joan mitchell
(February 12, 1925 – October 30, 1992)
1925년 미국 일리노이주(州)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이자 아마추어 화
가였고, 어머니는 시인이며 잡지사 편집자였다. 미첼은 이러한 좋은 환경에서 일찍
이 예술과 문학에 눈을 떴다. 그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뉴욕의 한스 호프만 미술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미첼은 반 고흐, 세잔, 칸딘스키의 영향을 받았으며, 1950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추
상표현주의 모임인 '아티스트 클럽'에 초대되어 드 쿠닝, 폴록, 클라인, 호프만 등과
교류하였다. 그리고 1951년 5월 레오 카스텔리가 기획한 '9번가 회화, 조각전'에 참
여하여 호평을 받았다. 1955년 캐나다 화가인 리오펠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하였고,
1959년 이후에는 파리와 뉴욕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추상화가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바로 풍경과 동등하게 될 수도 있다는 폴록이
나 클라인 같은 선배 추상표현주의자의 발견을 확장시키고 거기에 변화를 주었다.
그의 주제는 풍경과 색채, 그리고 빛이며 자연에 대한 정감 넘치는 기억과 감성을 회
화적 선과 움직임을 통해 보여주었다. 미첼의 커다란 화폭은 거침없는 붓질로 에너
지가 넘치며, 강렬한 색채는 자연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그대로 담아냈다.
미첼은 캔버스를 새로운 이미지가 탄생하는 커다란 장(field)으로 보았고, 그곳에 그
림을 완성해가면서 끊임없이 요구되는 행위 그 자체로부터 철저히 영감을 얻고 움직
였다. 남성 작가 못지않은 힘찬 붓놀림과 춤추는 듯한 섬세한 색채의 조합, 그리고 추
상과 구상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그의 회화는 생의 의욕과 충만감을 북돋운
다. 그는 1992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142. 감각하기
감각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감각하기 때문에 결국 생각하고 상상한다.
감각한다는 것은 굉장히 원시적인(원초적인)일이다. 그렇게 때문에 발달한 이성으로 통
제해서는 안된다.
감각한다는 것은 차별되어서는 안되는 너무 중요한 반쪽이다.
143. 1. 감각하기에는 목적이 없어야한다. 감각한다는 것은 자연발생적 이어야한다.
2. 불안은 감각을 가로막는다. 불안은 불필요한 이성만 자극할때가 많다.
3. 감각하는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아야한다. 감각을 이성이나 규범보다 저속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감각한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이다.
4. 눈으로 시각세계를 순수하게 감각하게 되면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지 않을 수 없다.
144. 관찰하기
관찰하기는 자발적행위이다. 그래서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대상, 방법, 과정
등.. 스스로 만들어야한다.
관찰하기는 자신의 취향, 호기심, 관점이 전부여야한다.
145. 1. 선입견과 선직식을 버리고 대상을 대하는 즐거움에 빠져야한다.
2. 창작은 낯선것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3. 설명서 또는 지도가 있는 대상은 사실 관찰의 대상이 아니다(학습의 대상이다)
146. 겪음(경험하기)
겪음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과정이다.
진정한 겪음은 자유로운 자만이 누릴 수 있으며, 외부의 평가가 아닌 자신의 성찰로
결론내어져야한다.
진정한 겪음만이 나의 다음 스탭을 발견하게 한다.
147. 1. 관찰이 호기심을 필요로 한다면, 겪음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2. 우리는 무소부재하지 않다는 사실(몸), 여기에 있으면 저기에 없다. 결국 양다리를 걸
칠 수 없다. 안전을 위한 보험은 겪음을 방해할 수 있다.
3. 좋은 겪음은 진실에 가까운 통찰을 얻게하며, 오래 함께할 좋은 친구를 발견할 수 있
게 한다.
148. * ‘감각하기, 관찰하기, 겪기’는 내가 나일 수록 더욱 더 가능하다.
* 진정으로, 순수하게 ‘감각하기, 관찰하기, 겪기’를 이루어 낼 때 수평적으로 이
세계를 마음껏 탐험할 수 있다.
* 이것만으로도 그림에 빠질 수 있다면 평생 그림을 그릴 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