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눈물, 비명, 폭력, 웃음, 한국 장르 영화의 네 가지 변
주
식민지에 도착한 활동사진, 서구로부터 이식된 장르
한국영화사에는 자기 스스로 발명한 장르 없음
서로 상이한 나라의 영화문화 변형, 발전, 진화
<식민지 시대 한국 영화의 한계>
① 영화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문화적 배경에 이르지 못함
② 영화가 한반도의 식민지화와 함께 시작
장르의 수용과 파괴가 동시에 이루어짐
장르 영화가 상업영화와 이음동의어
장르 영화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
3. 멜로드라마:유교의 재생산, 남성의 재남성화, 여성의 가족화
멜로드라마 대중적 성공 이유
① 대중영화의 최초의 관객들은 여성 - 사회적 취향의 젠더화
② 신파 소설의 영화화
청춘 로맨스
홈 드라마
여성(전기) 영화
③ 서사와 배우에 집중
일본 멜로드라마 베끼고 변형시키면서 한국적 정서 찾게 됨
여성의 희생과 남성의 복권 과정 반복
4. 멜로드라마:유교의 재생산, 남성의 재남성화, 여성의 가족화
1960년대:
근대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여성상 VS. 봉건적 가족주의
봉건적 남성성의 재구성
여성에게는 희생과 포기의 능동성과 자발성 요구
<자유부인>(1956) 한형모 <엽기적인 그녀>(2001)곽재용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두 영화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멜로드라마 안에서 신여성의 유토피아가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다.
5. 공포영화의 사회적 억압과 한의 귀환:누가 돌아오는가?
공포, 액션, 코미디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변주
<한국 공포영화 특징>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귀신의 이름을 빌려 등장
귀신은 대부분 여자들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남성
<월하의 공동묘지>(1967)권철휘 <여고괴담>(1998) 박기형
억압과 귀환이라는 형태를 전통 공포영화의 형태를 그대로 떠안고 <여고괴담>이 제작되었다.
6. 액션 영화 :
잃어버린 부권의 향수, 전후 한국사회의 힘에 대한 숭배와 복종
멜로드라마의 남성영화버전
패배 영웅주의가 불러일으키는 감상주의
<특징>
① „형님‟ 문화의 재생산 – 강한 아버지에 대한 간절한 요구
② 사법적 판단에 앞서는 힘에 대한 숭배 – 사회 정의에 대한 불
신
③ 남성성의 힘에 의한 우위의 표현
1966년 이후 홍콩 영화의 수입으로 액션 영화 변질
무술 액션 장면의 기교에 집중
<장군의 아들>(1990) 임권택
액션 영화의 부활 – „깡패‟ 영화의 귀환
7. 코미디:유머 없는 웃음, 혹은 장르의 잡종
한국형 코미디 영화
자기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있는 일종의 혼성 장르
슬랩스틱 코미디 전통 없음
일본 소시민 희극영화의 영향 아래 발전
1960년대 영화에는 풍자정신이 없었음 – 검열의 영향
1990년대 코미디는 로맨스 멜로드라마의 각색
웃음을 통해 세상을 풍자하는 저항의 칼날을 기대하기 어려움
한국영화에 반영된 대중성이 온전하게 한국 근대사의 반영이라
고 말하기 어려움
8.
9. 눈물, 비명, 폭력, 웃음, 한국 장르 도래 네 가지 변
시네마토그라프의 영화의
주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고안된
시네마토그라프
<공장을 나서
는 노동자들>
시네마토그라
프로 촬영했다.
오른쪽은 뤼미
에르 형제
10. 1903년 6월 하순
『황성신문』에 활동사진 관람 광고 게재
한국에는 1897, 1898년 전후 활동사진 들어왔을 것으로 예측
<피라미드에서 카이로까지>(1905)
이 시기에 극장을 지배한 것은 프랑
스의 파테(Pathé)사와 고(Gaumont)
사의 단편 실사(기록)영화였다. <피
라미드에서 카이로까지>는 파테사가
제작했다.
11. 눈물, 비명, 폭력, 웃음, 한국선보인 연쇄극 가지 변
기록영화와 함께 장르 영화의 네
주
활동사진이 일반에 정착되는 과정
영화 종주국: 발명-제작-흥행
영화 수입국: 수입-제작-흥행
우리나라 1920년대 초까지 외국영화가 흥행 주도
실사 영화에서 허구 영화로 관객 취향의 변화
<명금>(1915) 프랜시스 포드
우미관에서 상영했다. 관객의 취향이
변하면서 <명금>과 같은 허구 영화의
인기가 많아졌다.
12. 1910년 말
우리 나라 활동사진 연쇄극(Kino-drama) 시대 열림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1919)
일본의 방식과 내용을 모방
장르 결합
서로의 양식적 특성을 손상 -> 지속적 호응 얻지 못함
<경성전시의 경>(1919)
한국 최초의 단편 기록 영화.
„반쪽 영화‟(연쇄극)의 약점을
보완하고도 남는 한국영화의
의미를 가진다.
13. 눈물, 비명, 폭력, 웃음, 한국태생적 한계점 가지 변
일본인에 의존한 장르 영화의 네
주
1923년 100% 필름으로 완성된 극영화가 등장
<국경> ,<월하의 맹서>, <춘향전> 인기
<장화홍련전>(1924) 박정현:
단성사 경영주 박승필이 극장 내에 촬영부 신설, 제작
자주적 역량 모아 만든 최초의 순수 한국영화
조선키네마주식회사의 설립과 해체:
<해의 비곡>(1924), <운영전>(1925), <암광>(1925), <촌의 영
웅>(1925)
나운규
<심청전>(1925)에서 심봉사 역할로
주목 받았으며 <아리랑>(1926)을 통
해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14. 한계점 : 제작자의 거주지 귀착설
일본인이 영화를 제작했더라도 우리 영화로 받아들여야 함
-생활 근거지가 한국
-소재와 관람 대상 우리 문화와 정서 눈높이에 맞춰 기획
영화에 대한 지나친 국수주의적 관점 경계
<탈출기>(1985) 제작중인 신상옥 감독
과 최은희.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 있던 시절 만든 작
품인 탈출기도 우리나라 영화로 볼 수 있
어야 한다. (김종원)
15. 눈물, 비명, 폭력, 활동사진의 상영
웃음, 한국 장르 영화의 네 가지 변
주
『황성신문』 1901년 9월 14일자 논설
-“사진활동승어생인활동(寫眞活動勝於生人活動)”
심훈
-“조선에 활동사진이라는 것이 맨 처음 수입되기는 1897년” 이라
고 전제
해링튼 박사학위 논문
-1898년 10월 17일 서대문-홍릉 간 단선궤도 부설공사 착수되는
시점에 활동사진 들어왔음 언급
이구영
- “일본 사람을 통해 1897년 진고개의 혼마찌좌(本町座)에서 자
기네 거류민을 위해 영화를 상영한 일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활동사진 상영은 19세기 말로 보는 것이 타당
16. 상설 영화관의 설립
눈물, 비명, 폭력, 웃음, 한국 장르 영화의 네 가지 변
주
동대문 활동사진소
-> 영화 상영 극장 급속 증가
광무대(1907∼1930): 구극 전용관으로 바뀜
장안사: 가설극장 -> 재래 가무 주력
단성사: 1913년부터 상설 영화관 형태 구축
경성고등연예관: 활동사진 전용극장
황금관: <문명의 복수(文明の復讐)>라는 일본의 연쇄극 소개
우미관: 북촌 지역에 제일 먼저 발성영화 공개
3대 한국 영화 중심관 : 단성사, 우미관, 조선극장
우미관. 3대 한국 영화
중심관이었다.
17. 의리적 구토 촬영 장면 (삽화)
연쇄극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
는 과도기적 제작 과정. 연극의 보조수단
이었다.
<월하의 맹서> 주인공 이월
화, 윤백남. <월하의 맹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최초의 극
영화다.
18.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와 기생 배우의 활동
무성영화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기생의 출연 의의
여성의 대외 활동이 금기
남성들이 여성 역할 대신 함
기생 배우들이 출연하면서 여성 역할 일부분이나마 맡아 함
일반 여성들 배우 진출 자극
19. <장화홍련전>과 제작자 박승필
1921년 활동사진 -> 영화 명칭 변경
변사는 대중의 우상
<박승필> 우리의 대
표적인 고전 „춘향전‟
이 일본 사람의 제작
으로 선점 당했다는
사실에 자극 받아 또
다른 고전인 장화홍련
전을 들고 나왔다.
<장화홍련전>(1937) 홍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