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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학생회 계속해주세요
- 황지수 (숙명여대)
들어가며: 나는 학생회를 왜 했나? 학생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발제를 준비하면서 총학생회 선거를 준비하던 때로 돌아가 생각해봤다. 나는 왜 출마했고, 어떤
결심을 했었나? 나는 학생회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었나? 대학 생활 동안 겪었던 부조리들을 해
결하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이 겪는 부당한 일들을 가만 둘 수 없어서 뭐라도 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다. 나는 학생회가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하며 나아가 개인의 삶과 대
학,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정치조직이라고 믿는다. 학생회는 단순히 학교 입장을 학생들에
게, 학생 입장을 학교에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교와 학생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고 믿는다. ‘현상 유지’가 아니라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며, ‘행정’만 할 것이 아니라 ‘정치’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들 속에서 총학생회를 통해 이루고자 설정한 목표는 크게 세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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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목표는 ‘숙명여대 학생자치(기구) 체계 정비’였다. 숙명여대 총학생회칙 및 하위 세칙은
매우 부실하다. 재정 운용 및 감사에 대한 세칙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선거시행세칙과 총학생회
칙이 서로 충돌하며, 단과대학 학생회칙은 13개 단위 중 3곳에만 존재한다. 중앙운영위원회는
15분 만에,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30분 만에 끝나는 것이 일쑤였으며 단과대학운영위원회는
2018년 내내 선거 때를 제외하곤 아예 개회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학생회비 예결산 공개를 하
는 학과는 손으로 꼽을 수 있었고, 심지어 총학생회 예결산도 대외비라며 전체 회원에게 공개되
지 않았다. 장과 절의 구분도 없는 9쪽 짜리 총학생회칙과 2쪽 짜리 중앙운영위원회 회의록, 관
항목 구분이 되지 않은 결산 자료를 인수인계 받았다.
무엇보다 문제는 숙명여대 학생들이 학생회가 무엇을 하는 기구인지 모르기 전에, 학생회 대표
자들마저 학생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학생회 대표자들이 예결산 공고
를 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몰랐고, 단위별 회칙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2019년 51대
총학생회 임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마치 1대 총학생회처럼, 법과 원칙을 세우고
학생회의 존재감을 키워야 하는 것이었다. 가장 우선적으로 단위별 학생회칙 제정 ‧ 단과대학운
영위원회 정기회의 개회 ‧ 예결산 공고를 권고했고, 단과대학/학과별 OT를 돌아다니며 총학생회
가 뭔지, 학생회가 뭔지 설명하고 다녔다. 10년 만에 총학생회칙과 선거시행세칙을 전부 개정했
다. 학생회가 제대로 활동을 하려면 기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건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숙
명여대에서는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았다. 원칙 없이 일하는 학생회는 안정적으
로 일할 수 없고, 후임 양성도 못하며, 다른 조직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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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개인의 생각과 일상의 변화’라는 목표를 세웠다. 학교를 3년 다니면서, 나도 그안에
몸담고 있었지만 단과대학/학과 학생회, 총학생회에 대한 존재감이 크지 않다 생각했고 효능감
역시 없었다. 시험기간 간식, 축제와 선거철 외에 눈에 띄게 보인 적도 없었다. 총학생회의 기조
나 가치관이 내 생각에 끼어든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학생회가 직접 학생들의
생각에 끼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사법이 시행되어 강의의 절반이 날라간다고 할 때에 ‘아
그냥 이번 학기엔 강의가 안 열리나보다’라는 생각에 총학생회가 직접 개입해서 강사법이 무엇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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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지금 대학 본부의 입장이 얼마나 부당한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건물에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학생에게 배리어 프리하지 않은 캠퍼스가 누군가를 차
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등록금이 비싸구나’하고 마는 생각에 끼어들어
‘등록금은 이렇게 비싼데 왜 수업환경은 이 모양이지?’ 라는 의문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 방법
은 공청회일 수도 있고, 카드뉴스일 수도 있고, 대자보 일수도 있으며, 선거 유세 때 나눠주는
정책자료집일 수도 있다. 학생회는 생각의 변화에서 나아가 실제로 누군가의 일상을 바꾸어내야
한다. 월경통 때문에 수업에 나오지 못하는데 이를 평가와 학점에 반영한다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을 모으는 것에서 나아가 월경공결제를 시행해내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월경공결제
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집행해야 하며, 월경공결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체학생총회와 인권주간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고 일상에 균열을 내어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문제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이끌어 내었던 사례 말이다. 지난 5월
2006년, 2012년 이래로 7년 만에 숙명여대에서 전체학생총회가 성사되었다. 정족수의 3배를
웃도는 3천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학생참여 총장직선제 결의가 안건이었고, 많은 학생들이 총
회로 인해 학생참여 총장직선제라는 의제를 이해하고, “학내 정치가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9월에는 숙명여대에서 처음으로 인권주간을 진행했다. 도시 개발과 철거
민, 난민, 국가폭력과 같은 이슈는 숙명여대에서 낯선 이슈이다.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 문제일 수도 있다. 전시와 문집, 강연, 부스, 영화 GV 등 다양한 형
식을 통해 낯선 주제들을 마구 던졌다. 어떤 학우에게는 매우 강렬하게 다가갔나 보다. 전시공간
에서 강의실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수많은 학생들이 마음에 강한 울
림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총학생회는 ‘광장을 직접 만들어 채우는 경험’과 ‘낯선 타인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을 직접 기획할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 정도 예산과 인력과 역
량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감수성들은 학생회가 공약을 이행하고 사업을 진행하
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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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표는 ‘숙명여대 공동체의 변화’였다. 학생이 학교 구성원으로 온전하게 인정받는 학교
를 만들고 싶었고, 성소수자와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으며 다니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 학교의
구성원들이 안전함을 느끼고, 공동체에 애정을 갖길 바랐다. 한 두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우리 주변의 사회적 현실과 조건을 바꿔내고 싶었다. (사실 세 번째 목표는
두 번째 목표의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51대 총학생회 임기 1년만으로 이를 이룰 수는 없을 것
이다. 52대, 53대 총학생회가 건설되어 51대 총학생회의 기조를 이어받아 준다면 더할 나위 없
겠지만, 다음 대 총학생회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기조를 내세울 수도 있고 비상대책위원회가
세워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1번의 목표 달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각종 회칙, 세칙과
제도를 정비하고 정기적 회의 운영과 정상적인 재정 운용을 당연한 학생회 문화로 만들었다. 인
수인계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내가 당선 직후에 받았던 인수인계 파일의 크기는 24MB였다.
만약 작년에 선거로 선출된 총학생회가 아니라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이렇게 인수인계를
받았다면 올해 우리가 이뤄낸 것 중 그 무엇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의 숙명여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되돌아보자면, 글쎄다 싶을 거
다. 여전히 학생회관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고, 내년에도 등록금은 동결될 것이고, 교수들은 오늘
도 강단에서 차별적 발언을 내뱉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앞에서 서술했듯 분명 바뀐 것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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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은 변화들이 조금씩 쌓여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를 만들어낼 거라 믿는다. 나는 고작 이
정도밖에 못했지만 우리가 마음을 움직이고 설득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이어서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사실 나는 앞으로도 고민하고 토론하고 싸워 나갈 수 있는 좋은 후임들을 만든
것만으로 내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나가며: 앞으로 학생회를 할 사람들에게
임기가 한 달 남았다. 발제를 제안 받았을 때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고민을 조금
했다. 대단한 지론도 없고 뛰어난 역량도 없어 분석이나 비평같은 그럴 듯한 이야기는 할 수 없
는데 무슨 얘기를 하지 싶었다. 내 경험과 공과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지금은 힘들기도 하
고. 공론장을 기획하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대단한 이야기는 못하겠고 이번 기회에 1년을 돌아
보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학생회를 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임기가 1년뿐이라 조바심을 많이 냈다. 이 짧은 임기는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를 아는 시
간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내 한계를 알고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무엇을 해내는 시간
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할지 매 순간 깨닫는 시간이었다.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면서도, 나는 평생 이 일을 하게 되겠구나 직감하는 시간
이었다. 세상은 뛰어나고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부족하고 서툴지만 타인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사람들이 바꾼다. 학생회도 마찬가지다. 누구든 마음에 품고 있는 목표나 꿈이 있을 테다. 앞으
로(도) 학생회를 할 사람들은 수많은 실패를 겪고, 크기보다는 거의 대부분 작은 결실들을 맺겠
지만, 계속 해주었으면 좋겠다. 계속 해야 당신이 마음에 품고 있는 것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
가갈 수 있을 테니까.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 혹은 내 옆의 친구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학생회
열심히 해주세요.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