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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학생회 운영경향 돌아보기
2010년대 학생회 운영은 학생 정치조직이 학생사회 내 영향력이 남아있던 전반기와 주요 학생
정치조직들이 위축되고, 심지어 학생회 활동을 철수하면서 공백이 생긴 후반기로 나눠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0년대 초반도 지금과 유사한 달력식 사업을 기준으로 학생회가 운영됐습니다. 1월~2월에는
대학당국이 등록금을 정하는 시기였기에 등록금문제와 관련한 활동, 총학생회, 단과대학생회, 과/
반 학생회가 단합을 도모하는 LT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2월부터 과/반 학생회-단과대학학
생회-총학생회가 주도하는 신입생 환영행사가 진행됐습니다. ‘새내기 새로 배움터’라는 이름으로
말이지요.
3월부터는 신입생 조직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각 학과별 MT가 진행됐고,
부분적으로는 봄농활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소소하게 여성의날 행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학교마다 편차가 큰 편이었습니다. 총여학생회가 있거나, 학내 여성주의 동아리가 돌아가는 단위
는 여성의날 기념 행사를 기획했고, 그게 아닌 학교들의 경우엔 학내 여학우들에게 장미꽃을 나
눠주는 수준의 행사를 진행하곤 했습니다.
1박2일, 또는 2박3일 정도로 짧게 학생회와 연계하고 있는 농민 단체에 가입된 마을에서 농민-
학생 연대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4월은 학생회 일정에서 가장 바쁜 시기로, 기말고사 간식
행사, 5월 대동제 준비, 운동권 학생회의 경우, 5월1일 노동절과 5.18 행사 기획까지 세가지 행사
를 한꺼번에 진행했습니다.
5월에는 앞서 말한 노동절, 5.18, 대동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준비과정도 어렵지만, 행사 자체
도 워낙 큰지라 총학생회, 단과대 학생회, 과학생회가 모든 인력을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6월과 7
월은 비교적 한산한 시기지만, 농민-학생연대활동과 운동권 학생회의 경우엔 ‘선봉대’ 활동을, 비
운동권 학생회의 경우 ‘국토대장정’ 일정을 준비했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바로 농활을, 농활이
끝나면 선봉대나 국토대장정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또한 농활과 선봉대, 국토대장정 일정과 동시
에, 학생회 내부적으로는 ‘인선’과정을 거쳤습니다. 11월 학생회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내부적으로 교통정리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강이 시작되면 9월 축제일정을 소화했는데, 5월 대동제와 달리 단과대학과 과/반 중심의 연합
행사식으로 운영됐습니다. 물론 5.18의 아픈 기억을 가진 광주전남지역은 대동제를 이시기에 개최
했습니다. 지역 상황에 따라 대동제 일정이 미뤄진 것이지요.
10월부터는 중선관위가 구성되고, 시험기간 간식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물밑에선 학생회 구성을
위한 조직사업과 선거운동캠프가 가동되던 시기기도 합니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바로 학생회 선
거 캠프를 공식적으로 발동해 선거에 돌입했습니다. 11월과 12월초는 학생회 선거를 진행했습니
다. 학생회 일정의 마무리인 셈이죠. 여기 계신분들은 다 11월을 경험하셨을 분들이라 크게 설명
하지는 않겠습니다. 10년대 전반기와 후반기 모두 크게 달라지진 않았으니까요.
후반기 학생회는 세월호 참사, 일부 학생운동조직들의 학생회 사업 철수과 학우대중의 파편화
로 인한 달력식 일정의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서울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젠더를
필두로 한 소수자 담론이 가시화되고, 어느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대학 학생회 일정에 상당한 변화를 줬습니다. 5월 대동제가 9월 대동제로 바뀌었
기 때문이지요. 이와 더불어 대학 내 학생회에서 상당한 파벌을 구성하던 운동권 학생회들이, 총
학생회 사업보다는 동아리나 대학 밖을 향하면서 학생회 농활사업과 ‘선봉대’나 ‘국토대장정’사업
이 축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여기엔 학생 대중들이 점차 파편화되면서 학생회 사업 참여율
이 떨어진 것도 한 몫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방학 중 조직사업의 후퇴는 결국 5월 대동제가 9월 대동제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
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꽤 많은 대학들이 대동제를 9월로 옮기게 됐습니다.
또한, 대학 내 젠더-소수자 담론이 가시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배경엔 조직운동 중심의 대학문
화가 파편화를 겪고, 진보정당의 분열로 와해되기에 이릅니다. 또한 ‘메갈리아’ 붐으로 페미니즘이
부상하게 되면서 ‘부문운동’으로 취급받았던 여성주의, 젠더 담론이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3월 8일 세계 여성의날 행사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출마한
학생회장 후보자들이 등장하고, 실제 당선까지 이어진 경우가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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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0년대 학생회 운영경향 돌아보기 2010년대 학생회 운영은 학생 정치조직이 학생사회 내 영향력이 남아있던 전반기와 주요 학생 정치조직들이 위축되고, 심지어 학생회 활동을 철수하면서 공백이 생긴 후반기로 나눠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0년대 초반도 지금과 유사한 달력식 사업을 기준으로 학생회가 운영됐습니다. 1월~2월에는 대학당국이 등록금을 정하는 시기였기에 등록금문제와 관련한 활동, 총학생회, 단과대학생회, 과/ 반 학생회가 단합을 도모하는 LT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2월부터 과/반 학생회-단과대학학 생회-총학생회가 주도하는 신입생 환영행사가 진행됐습니다. ‘새내기 새로 배움터’라는 이름으로 말이지요. 3월부터는 신입생 조직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각 학과별 MT가 진행됐고, 부분적으로는 봄농활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소소하게 여성의날 행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학교마다 편차가 큰 편이었습니다. 총여학생회가 있거나, 학내 여성주의 동아리가 돌아가는 단위 는 여성의날 기념 행사를 기획했고, 그게 아닌 학교들의 경우엔 학내 여학우들에게 장미꽃을 나 눠주는 수준의 행사를 진행하곤 했습니다. 1박2일, 또는 2박3일 정도로 짧게 학생회와 연계하고 있는 농민 단체에 가입된 마을에서 농민- 학생 연대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4월은 학생회 일정에서 가장 바쁜 시기로, 기말고사 간식 행사, 5월 대동제 준비, 운동권 학생회의 경우, 5월1일 노동절과 5.18 행사 기획까지 세가지 행사 를 한꺼번에 진행했습니다. 5월에는 앞서 말한 노동절, 5.18, 대동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준비과정도 어렵지만, 행사 자체 도 워낙 큰지라 총학생회, 단과대 학생회, 과학생회가 모든 인력을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6월과 7 월은 비교적 한산한 시기지만, 농민-학생연대활동과 운동권 학생회의 경우엔 ‘선봉대’ 활동을, 비 운동권 학생회의 경우 ‘국토대장정’ 일정을 준비했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바로 농활을, 농활이 끝나면 선봉대나 국토대장정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또한 농활과 선봉대, 국토대장정 일정과 동시 에, 학생회 내부적으로는 ‘인선’과정을 거쳤습니다. 11월 학생회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내부적으로 교통정리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강이 시작되면 9월 축제일정을 소화했는데, 5월 대동제와 달리 단과대학과 과/반 중심의 연합 행사식으로 운영됐습니다. 물론 5.18의 아픈 기억을 가진 광주전남지역은 대동제를 이시기에 개최 했습니다. 지역 상황에 따라 대동제 일정이 미뤄진 것이지요. 10월부터는 중선관위가 구성되고, 시험기간 간식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물밑에선 학생회 구성을 위한 조직사업과 선거운동캠프가 가동되던 시기기도 합니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바로 학생회 선 거 캠프를 공식적으로 발동해 선거에 돌입했습니다. 11월과 12월초는 학생회 선거를 진행했습니 다. 학생회 일정의 마무리인 셈이죠. 여기 계신분들은 다 11월을 경험하셨을 분들이라 크게 설명
  • 2. 하지는 않겠습니다. 10년대 전반기와 후반기 모두 크게 달라지진 않았으니까요. 후반기 학생회는 세월호 참사, 일부 학생운동조직들의 학생회 사업 철수과 학우대중의 파편화 로 인한 달력식 일정의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서울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젠더를 필두로 한 소수자 담론이 가시화되고, 어느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대학 학생회 일정에 상당한 변화를 줬습니다. 5월 대동제가 9월 대동제로 바뀌었 기 때문이지요. 이와 더불어 대학 내 학생회에서 상당한 파벌을 구성하던 운동권 학생회들이, 총 학생회 사업보다는 동아리나 대학 밖을 향하면서 학생회 농활사업과 ‘선봉대’나 ‘국토대장정’사업 이 축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여기엔 학생 대중들이 점차 파편화되면서 학생회 사업 참여율 이 떨어진 것도 한 몫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방학 중 조직사업의 후퇴는 결국 5월 대동제가 9월 대동제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 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꽤 많은 대학들이 대동제를 9월로 옮기게 됐습니다. 또한, 대학 내 젠더-소수자 담론이 가시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배경엔 조직운동 중심의 대학문 화가 파편화를 겪고, 진보정당의 분열로 와해되기에 이릅니다. 또한 ‘메갈리아’ 붐으로 페미니즘이 부상하게 되면서 ‘부문운동’으로 취급받았던 여성주의, 젠더 담론이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3월 8일 세계 여성의날 행사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출마한 학생회장 후보자들이 등장하고, 실제 당선까지 이어진 경우가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