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터뷰<br />-김다은/김경욱<br />만나서 반갑습니다, 허생원씨, 저는 한국문학 수업을 위해 1930년대 살아온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있습니다.<br />일단 태어날 때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br />제가 태어났을떄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1932년에 태어났습니다. 아, 참고로 저는 외동아들입니다.<br />저, 태어날 때의 시기에 관해서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br />그때는 일본의 식민통치 시기로 우리나라가 식민지국가였습니다. 일본은 징용 등으로 우리나라사람들을 공장, 광산, 전쟁으로 동원하고 징병제를 실시하여 전투지역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참 가슴아팠던 시기였죠.<br />정말 슬프네요. 그럼 주로 어렸을 때 했던 놀이는 무엇이였습니까?<br />뭐 특별한게 있나요. 그냥 저의 동무들과 제기차기, 말뚝박기 등을 했죠.<br />와, 정말 재미있었겠네요. 그후에 국민학교 생활은 어떠하셨습니까?<br />음..그때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면 칼을찬 일본 선생님들이 수업을 했기 때문이예요. 저는 한국어도 쓰지 못한채 비참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br />음...그렇군요. 혹시 어렸을 때에 특별한 일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십니까?<br />제가 어렸을 때, 일본군이 저의 아버지를 끌고 갔어요.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못가게 해봤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끌려간 후 한동안 어머니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셨어요. 저는 그때 이후로 아버지의 얼굴을 본적도 없고 아버지 소식을 들은적도 없어요. 차라리 생사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좋을텐데.......<br />아.. 제가 괜한걸 물었나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 지금하시는 직업이 장돌림이라고 들었는데, 장돌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br />장돌림은 여러 장으로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장수예요. 흔히 사람들이 장돌림과 봇짐장사를 헷갈리는데 장돌림과 봇짐장사는 다른 것으로, 봇짐장사는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메고 다니는 장사라구요.<br />혹시 그일을 시작한 계기가 있으십니까?<br />맨 처음 시작한 계기는 저의 아버지가 장돌림이셨습니다. 그래서 아는사람의 도움을 받아 시작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하다보니 이렇게 떠돌면서 경치도 구경하니 너무 즐겁더라구요. 그래서 지금 이 일을 무척 좋아하고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전 죽을때까지 이 일을 할 생각입니다.<br />와 정말 대단한 각오인데요. 그럼 주로 파시는 물건은 무엇입니까?<br />제가 주로 파는 물건은 옷감입니다. 무명필과 주단바리를 두 고리짝에 채우고 장 이곳저곳을 돌며 팔고 있습니다.<br />그럼 장돌림 할 때 어려웠던 적은 없으십니까?<br />장돌림을 하면 많이 걸어다니기 때문에 발이 정말 아파요. 맨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고도 싶었죠. 하지만 지금은 체력도 전보다 더 좋아져서 발도 아프지 않아요. <br />장돌림 할 떄 가장 인상깊었던 적은 없으신가요?<br />제가 길을 걷고있는데 일본 순사가 조선인을 마구 때리고 있었어요. 그 떄 저는 나라를 뼀겼던 설움이 밀려와 눈물이 나왔어요. 그리고 빨리 우리나라가 해방되길 진심으로 바랬어요.<br />그럼 장돌림 할 때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십니까?<br />예전에는 조선달이라는 친구와 같이 동행을 했죠. 그 친구는 참 사람말을 잘들어주고 편한사람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항상 입버릇처럼 참한 여자를 만나 가족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소식이 끊겨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착한 녀셕이니 지금쯤 가족을 만나 잘 살고 있을지도요.<br />저 동이씨가 자신이 아들이라는 사실과 심지어는 태어난 지도 몰랐다 들었는데, 그럼 언제 처음 만나셨습니까?<br />처음 만남은 충주에 있는 어느 술집에서 였습니다. 그때는 동이가 제가 좋아하고 있는 충주댁과 놀아나는 걸 보고 제가 너무 화가나서 그만 소리를 쳤는데 그후에 그런 저의 나귀가 맞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줄 때 정말 미안하면서도 참 속이 깊은 녀석이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후로 어쩌다 보니 동행하게 됬습니다.<br />그럼 지금도 충주댁을 좋아하시는 겁니까?<br />물론 아니죠. 어차피 충주댁은 저를 좋아하지도 않고 저는 한 여자에게 정착해 살아갈 성격이 못돼거든요. 저는 자연을 벗삼아 걸어다니는걸 좋아하니 애초에 되지도 않을 사람이었죠.<br />저 나귀를 정말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언제 처음만나셨습니까?<br />아...어느날에 봉평에서 걷고 있던중 한 당나귀 상인이 자기 당나귀를 막 때리고 있더라구요. 제가 왜냐고 물었더니 너무 약해서 쓸모가 없다고 하고 다시 때리더군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위서 제가 그 상인에게 그 나귀를 팔라고 하였죠. 그 때부터 제가 많이 먹이고 돌봐주며 반평생을 같이 살아왔죠. <br />음...알겠습니다. 그럼 동이씨의 어머니와는 어떻게 만나셨죠?<br />아..그 사람하고는 참으로 기이한 운명으로 만났죠. 물레방앗간에 옷을 벗으러 들어갔는데 그만 난데없이 성서방네 처녀와 딱 마주쳤지 뭡니까. 그렇게 단 한번의 만남으로 그녀를 알게 되었습니다.하지만 그때 이후로 연락은 끊겼습니다.<br />그 후로 연락이 끊겼다 했는데 다시 찾아갈 생각은 안해보셨습니까?<br />물론 찾아갈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제천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전 제천 장판을 다 뒤지고 찾아다녔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습니다.<br />정말 괴이한 인연이네요. 저 그럼 동이씨가 허생원씨 아들이라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br />대화장에 간뒤 오랜만에 제천으로 가보고 싶어서 조선달과 동이와 함께 그 곳으로 갔습니다. 때마침 동이가 자기의 모친이 제천에 있다길래 잠시 묵어갈까 하고 동이의 어머니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보니 동이의 모친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안타까운 마음에 장례식을 도와주게 되었지요. 그 때 동이가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는데 바로 그때 알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맥이 탁 풀리고 그만 주저앉을 뻔 했습니다.<br />저, 실례지만, 동이씨가 허생원씨가 아들이라는 것을 말했을 때 반응이 어땠나요?<br />그때 동이는 무척이나 당황한듯 했어요. 처음엔 저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하긴 저라도 그랬을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계속 동이의 엄마에 대해 얘기하고 왼손잡이라는 걸 이용해 설득하자 동이는 그제야 믿는지 막 울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갑지기 저에게 안겼는데 그때의 기분은 참....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기뻤어요.<br />음...... 그럼 지금 동이씨는 뭐하고 계십니까?<br />지금 제 아들 동이는 저랑 같이 장돌림을 하고 있어요. 동이는 저랑 장돌림을 하며 세상의 이치와 경험을 쌓고 있죠. 그리고 동이도 장돌림을 꽤 맘에 들어하는 것 같으니 같이 다니면 정말 즐겁죠.<br />그럼 지금은 어떻게 지내십니까?<br />지금은 저의 고향 청주로 집을 옮겨서 동이와 함께 오순도순 살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정말 행복합니다.<br />저 그럼 마지막으로 봉평의 볼거리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br />봉평의 볼거리는 참 많아요. 여름에는 메밀밭이 소금을 뿌린듯이 풍성하고 향기는 코를 자극하죠. 게다가 밤에도 자연풍경이 정말 좋아요. 태기산의 성터도 있구요. 봉평에는 메밀국수가 유명한데 정말 신선하고 정말 쫄깃해서 한번 먹으면 쉽게 그맛이 잊혀지지가 않죠.<br />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br />수고하셨습니다.<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