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풀꽃과 함께 자라는 아이 1
내 어린 스승 늘봄,
그림책을 읽다 으앙 하며 울음을 터뜨린 늘봄이를 겨우 달래 재워놓고도 자꾸만 웃음이‘ ’
비져나옵니다 아기때부터 읽어준 강아지똥 동화이건만 강아지똥이 참새와 흙덩이에게 더. ‘ ’ ‘
럽다 고 놀림을 받아 우는 장면만 나오면 강아지똥처럼 으앙 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 ’ .
강아지똥이 조금 훌쩍거릴 땐 저도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감다가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 ’
는 장면이 나오면 눈물을 뚝뚝 흘리기까지 하며 누가 저를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울어대곤
해 책을 끝까지 읽어주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동화 속 강아지똥의 울음. ,
도 강아지똥의 슬픔도 제 울음으로 받아안아 버립니다 그 울음에 웃다가 내 마음은 어떠, .
한가 하여 뒤돌아 마음 깊은 곳을 가만가만 살펴봅니다.
아침이면 누워있는 제 손을 이끌며 산책을 나가자고 일으키는 늘봄이와 함께 걷는 산책길,
꽃마다 향기를 맡으며 혼자 까르르 웃고 매만지며 제 손을 잡아당겨 향기를 맡으라고 기‘ ’
다리는 아이의 손길에 묻어나는 향기에 저도 걸음을 멈추고 꽃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입니
다 숲의 나무를 안아주고 입맞추고 앞서가는 강아지를 부르고 꽃마다 향기를 맡고 자라. , , …
나고 있는 모든 생명들과 하나 하나 인사를 나누다 보면 아침 산책길은 길어지기만 합니다.
집 앞 커다란 은사시나무며 옥수수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을 보면서도 우와 소리를 연, ‘ ’
발하는 늘봄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쉿 하며 숲에서 나는 새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이내, ‘ ’
뻐꿍 까까 하며 새들을 따라 쫑긋거리며 노래하는 늘봄이 할머니가 텃밭에 심어주신 딸‘ ’, ‘ ’ ,
기 앞으로 가서 주세요 하며 손을 내밀고 기다리는 늘봄이 그 맑은 영혼을 통해 다시 아‘ ’ …
침의 땅을 느끼며 천천히 걷는 법을 귀 기울이고 숲의 소리를 듣는 법을 나무에 입을 맞, ,
추고 바람을 향해 탄성을 지르는 법을 배워갑니다.
그렇게 하늘과 대지 햇살과 바람으로 익어가는 모든 생명과 교감하며 제 꽃을 피우는 소중,
한 천사 늘봄이가 우리와 함께 삶을 시작한 지 어느 새 일 년 반이 지났습니다 아이의 키, .
가 자라고 영혼이 자란 일 년여의 시간 동안 제 속엔 아이의 눈빛을 닮은 맑고 깊은 속눈이
조금씩 열려지고 있는것만 같습니다.
첫 만남에서 여기까지 저 맑은 영혼 어린 스승을 보내주신 이의 속뜻이 무엇인지 아침의, ,
산책길 묵상처럼 묻고 또 묻습니다 세상에 스승 아닌 것이 있던가요 허나 매일 아침 찬. ?
샘물같이 맑은 기쁨 솟아오르는 저 어린 스승을 통해 그 기쁨을 통해 그분은 제게 고통 뒤,
에 숨겨둔 기쁨의 비밀을 알게 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몸이 밥으로 변하기 위한 고통의 문…
을 지난 며칠 후 도에서 도의 끓는 점에 다다르기 위해 온 몸을 열어야 했던 해산의, 99 100
고통이 가시기도 전에 아이는 제게서 밥을 구했습니다.
2. 눈도 채 뜨지 못한 어린 생명이 젖을 찾아 제 품에서 어린 새처럼 입술을 쫑긋거리며 품을
파고들 때 온 몸의 피가 젖이 된다 한들 뼈가 젖이 된다 한들 그 어린 입을 통해 생명이,
피어나는 것을 보는 기쁨과 바꿀 수 있을까요 처음 젖을 먹이던 일 주일 젖을 먹인다는. .
일의 기쁨만을 생각했던 내게 다가온 고통은 굳은 결심을 뿌리채 흔들었습니다 아직 출산.
의 통증이 가시지 않은 성긴 몸으로 아기를 안고 몇 시간씩 앉아 있노라면 허리가 끊어질
듯 했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여린 살갗들이 갈라지고 터져 피와 고름이 묻어나오기 시작하고 심지,
어 아이가 토한 젖에도 피가 묻어나오기도 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젖을 찾는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마다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어도 스며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인다는 일이 젖만이.
아니라 온 몸의 에너지 사랑 영혼과 영혼의 교감임을 신뢰하는 힘이 없었다면 주여의 고, , 2
통을 지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렇듯 지나온 고통의 문 뒤에도 일을 하는 사람이 젖을 먹인다는 일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젖이 불고 옷이 젖어 반나절 이상은 외출조차 망설여야 했던 날들 며칠은. ,
커녕 하루만 젖을 주지 못해도 옷이 젖고 통증이 시작돼 며칠의 여행은 포기해야 했던 날이
었습니다 젖을 먹인 일 년여는 그렇게 아기가 몸 속에 있을 때 만큼이나 안과 밖을 향해.
조심스레 깨어 있어야 하는 날들이었습니다.
허나 엄마만 해산의 문을 지나오는 것이 아니었듯 아기 또한 젖을 빠는 일이 그리 쉬운 것
만은 아니었습니다 젖이 안 나오는 삼 일 동안은 물만 먹으며 몸 속에 쌓인 영양분으로 배.
고픔을 견디며 태변을 내보내야 했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 울어도 엄마 아빠가 주는 건. ,
따스한 품과 물 미음이 전부였습니다 젖이 나오기까지 그 며칠은 하늘이 내린 단식의 시, .
간이라 합니다 그 기간 동안 아기는 뱃속에서 먹었던 양분으로 쌓인 태변을 쏟아내 몸을.
깨끗이 비우고 엄마의 몸에서 나오는 노오란 초유로 온 몸에 면역을 길러 줄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구요 뱃속에서부터 듣던 아빠의 목소리와 엄마의 심장소리로 배고픔을 달래며.
온 힘을 다해 빨아야 겨우 몇 모금 얻어먹을 수 있었던 엄마의 젖 아기는 그렇게 새로운,
세상에서 사는 법을 익힌 것이겠지요.
젖을 먹는 아기는 우유병을 빠는 아기보다 배의 힘을 더 써야 한다고 합니다60 .
그래서 우유병을 먼저 빤 아기들은 엄마 젖을 안 빨기도 한다지요 훨씬 힘겨우니까요 하. .
지만 엄마의 심장소리를 듣고 엄마의 체온과 살갗을 느끼며 서로 나누는 눈빛 속에 젖을 먹
는 순간 아기는 혼자 누워 우유병을 빠는 순간보다 배가 아니라 배의 사랑을 영혼, 60 600
깊이 느끼는 것일 테지요.
그렇듯 서로에게 힘겨웠던 생의 문턱들 그 문을 넘어서 우리의 삶이 밥으로 익어가고 아기,
가 한 생명으로 여물어 갔습니다 가르쳐준 적 없는 햇살같은 미소를 짓고 그 작은 손으로. ,
사람과 식물 흙을 매만질 줄 압니다 강아지똥의 슬픔에 눈물을 흘릴 줄도 알고 조금만 흘, . ,
겨보면 가짜로 우는 척을 하다가 장난스런 웃음을 터뜨려 버리기도 합니다 아기를 자라게.
하는 것이 젖만은 아닐 테지요 집앞의 옥수수가 자라듯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의 모습 속.
엔 풀숲에서나 묻어나는 햇살 바람 흙냄새 같은 것들이 배어 있습니다 아이를 스치고 지, , .
3. 나가는 세월과 사람 햇살과 바람 고통과 슬픔을 통해 아이는 하나의 사람으로 여물어 가, ,
고 있습니다 젖먹이 늘봄이가 조금만 이상한 똥을 싸도 어머니는 바로 물어보십니다 에미. .“
가 뭐 잘못 먹었구나 음식 가려 먹어라 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내 몸을 통해 늘봄, .”
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는 나날을 통해 하나님은 내 말과 눈빛 웃음과 울음으로 아기의 몸,
과 영혼을 빚어가는 부모로서의 삶을 단련시키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아기에게 젖을.
주고 아기는 우리에게 하늘의 기운을 전해주는 것일까요 아기의 똥을 통해 내 입으로 들어.
간 음식을 보게 하신 것처럼 아기의 말과 행동을 통해 내 삶의 생각과 걸음을 살피게 하십
니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대해 깨어 있는 것처럼 내 영혼에 대해 깨어 있음이 부모.
의 삶의 시작이라고 .…
풀꽃과 함께 자라는 아이 2
그 아이를 기쁨으로 맞이하면…
무 씨앗을 뿌린 지 얼마 안 된 것 같건만 어머니는 아침 밥상에 열무 새잎을 쌈으로 올리십
니다 늘봄이에게 얼마 전 뿌린 씨앗에서 움튼 무잎이라고 가르쳐주며 함께 어린 잎을 먹습.
니다 이렇게 어린 잎을 먹어도 되느냐 묻자 풀무학교 시절 농사를 지어본 늘봄이 이모가.
무는 잎을 솎아 주어야 한다며 늘봄이에게 한 가지 더 가르쳐 줍니다 늘봄 아빠가 매어 놓.
은 호박줄을 타고 무성한 담장을 이룬 호박이 여기저기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 넝쿨에 맺힌.
작은 호박이 조금씩 자라는 것을 보느라 늘봄이는 아침마다 문안을 나섭니다 어느 새 늘봄.
이 머리보다 훨씬 커버린 호박을 껴안고 뽀뽀를 해 주며 제게도 입을 맞춰 달라고 목을 끌
어당기곤 합니다 할머니는 늘봄이에게 호박이 늙는 것까지 보여 주신다며 커진 호박이 틀.
어질 새라 밑에 받침까지 놓아 주셨습니다.
어느새 어머니와 다시 살림을 시작한 지 한 해가 차오릅니다 지난 가을이었지요 숲과 새. . ,
마을과 밭이 있는 구파발 방아다골로 집을 옮긴 것이 늘봄이 고향은 우리가 신혼살림을 시.
작한 사당동입니다 아빠와 할머니 조산원 할머니의 응원 속에서 탯줄이 두 번이나 감겨. ,
세상으로 나오기가 힘들었던 시간 엄마 아빠의 손길과 목소리 속에서 세상을 향해 힘찬 첫,
발을 내디딘 집이니 고향이라 할 수 있겠지요, .
허나 사당동엔 마음의 고향으로 삼을 만한 숲도 사람도 새들도 없었습니다 그 때 구파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직 마을이 살아 있고 산과 숲 새와 동물들이 함께 사는 마을이라. ,
고 그 마을과 집을 본 후 이사하고 싶은 마음에 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구파발. .…
로 이사를 한다는 것은 어머니와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늘봄을 낳고 젖.
을 먹이는 년 동안 미뤄 두었던 대학원 공부를 쉬고 있던 일을 다시 시작하려면 또 늘봄2 , ,
4. 이를 우리가 공부하고 준비한 것처럼 키우려면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
었습니다 결혼하면서 그 불화와 상처로부터 달아나 살아온 년간의 고요를 떨치고 다시 휘. 3
저을 일상에 대한 두려움이 이사 결정을 머뭇거리게 했습니다.
허나 삶은 내게 그 두려움을 직면하라고 그 불화의 강을 건널 마지막 기회라고 내 어깨를,
가만히 떠밀어 주었습니다.
참 이상해요 시골에 들어가서 이웃분들께 오골계며 토종닭을 얻었거든요 부화장에서 온“ . .
닭들도 있고 아닌 것들도 있어요 그런데 부화장 양계장 닭들은 알을 낳기만 하지 품을 줄. ,
을 몰라요 토종닭들이 알을 품는 걸 뻔히 보면서도 알만 낳고는 품질 않고 그냥 둬요 기. .
억할 수 없는 시간 속인데도 어미닭 품에서 부화한 닭만 제 새끼를 품는 거 있죠 참 신기?
하죠 생명의 기억력이란 게 귀농한 지 얼마 안 된 아줌마가 들려주신 이야기가 내 속? .”…
깊은 곳을 툭 치고 지나갔습니다 내가 아이를 낳으며 지닌 두려움이 부화장의 닭에게서 묻.
어난 까닭일까요 내 마음 깊은 곳에 오랜동안 지녀온 어머니와의 불화를 덜어내지 못한. ,
채 내가 늘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임신한 기간 동안에는 누구나‘ ’ .…
예민해지기 마련이지요.
자기 속을 들여다 보는 내관이 깊어지며 해결되지 않은 상처들이 살아오기도 하구요 그런.
나날 동안 밤마다 나를 적신 힘겨운 꿈은 어머니와의 싸움 이었습니다 어머니와 격한 싸움‘ ’ .
끝에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를 밀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때리기까지 하는 꿈을 꾸다 젖은 베
개에서 잠을 깨곤 했습니다.
혼곤한 밤을 보내고 나면 한층 예민해져 딸의 임신이 걱정스러워 전화를 하시는 어머니께
괜한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와 싸운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싸운 것.
이기에 화로도 다툼으로도 그 불화의 강은 쉬이 건너지지 않았습니다, .
내 어린 날 동안 내 어머니는 할머니 였습니다 할머니 친구들은 노상 영신이는 네 머리칼‘ ’ . “
로 할머니 짚신을 삼아드려도 그 공을 다 못 갚는다 며 제게 할머니 사랑을 기억하라고 젖”
은 눈빛으로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유년 시절 돈을 벌기 위해 강릉에 계시던 어머니를 보기.
위해 나는 참 먼 길을 할머니의 손을 잡고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춘천 원주 강릉 강원도. , , …
땅을 전전하시다가 가끔씩 어머니가 집에 오실 때면 나는 마당에서 오래오래 어머니 고무신
을 닦았습니다 어린 계집아이가 할머니 고무신은 옆만 닦더니 제 에미 것은 바닥까지 닦는.
다며 어른들은 키워준 공 없다고 혀를 찼지만 엄마 품에 엉기는 일도 어리광을 부리는 일,
도 익숙치 않은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었겠지요 그렇게 할머니의 치마 뒤에서. ,
등 뒤에서 보았던 어머니는 항상 멀고 어려웠습니다 어머니는 강인한 분이셨습니다 하루. .
에 한 번씩 길거리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면서도 신경안정제와 청심환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하루하루를 살면서도 한 번도 딸들의 꿈을 꺾은 적이 없습니다 사업부도로 빚잔치.
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는 화려한 삶의 습관을 다 벗고 바람 많은 신림동 다리 위에 작
은 함지박 하나로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