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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시
원
노량진탐사대 매거진 Vol. 1
구석구석 숨겨진 노량진 이야기
WWW.YOUTHZONE.KR
문의 geum_siru@youthzonek.kr / www.youthzone.kr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 10(대방동)
* 이 책의 저작권은 무중력지대 대방동에게 있습니다.
Chapter
Prologue
들어가는말1
32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①
Prologue
들어가는 말
여러분들은 '노량진'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세요? 
츄리닝 차림을 한 고시생들이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새벽의 어두운 골목길을 빠져나와
학원으로 향하는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노량진엔 고시시험 합격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국에서 몰려는 청년들로 가득합니다. 
고시생들의 작은 섬이라고 불리는 노량진. 매스컴에서는 생기없는 고시생들이 가득한
암울하고 차가운 곳이라는 말로 노량진을 소개하기도 하고,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고 노량진에 온 청년들이 있는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일부 매스컴에서 소개하는 노량진 청년들의 단편적인 모습(우울하고, 암울한, 안타까운
청년들의 모습)들이 노량진 청년 전체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우울하고
불안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꿈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청년들도 있을 것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의 표정에는 불안함이 가득한 표정만 있는 것이 아닌, 단단한 의지와 결의가
보여지는 표정을 한 청년들도 보입니다.
노량진청년들을 보면서, '수 많은 청년들이 왜 노량진에 몰려들 수 밖에 없는 지' 궁금했습니다.
알고 싶었습니다.
노량진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취업시장이 갖고 있는 불안감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각자 고시시험 합격 말고도, 다른 꿈들을 갖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하게 된 배경이 있지 않을까요.
하루에도 몇십 명의 사람들이 드나들고, 또 빠져나가는 곳. 노량진을 찾은 청년들이 생각하는
노량진의 모습은 어떠한지, 얼마나 노량진에 있고 싶은지, 또 언제 가장 노량진을 벗어나고 싶은지
궁금했고, 알고 싶었습니다.
고시생 말고 또 어떤 것들이 노량진을 표현하고 있는지, 노량진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생활 정보와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슈들을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노량진을 같이 알아볼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지난 6월부터 시작한 1기에는 10명의 청년이, 2기에는
두 곳의 단체(트웬티스 타임라인, 고함20)들과 함께 노량진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노량진탐사대가 찾은 노량진의 모습은 어떤지, 어떤 정보들을 알려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자, 이제부터 책장을 넘겨 노량진을 만나보세요. 노량진탐사대의 활동은 2016년도에도
계속될 예정이니, 앞으로의  활동에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노량진탐사대 함금실 매니저
① Prologue 들어가는말 ① Prologue 들어가는말
54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INDEX
Prologue. 들어가는 말
무중력지대 대방동 소개
노량진탐사대 소개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노량진탐사대 어떻게 활동했나?
활동사진
2015년 한해동안 노량진에서 생긴 일
노량진탐사대 활동 톡
노량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노량진탐사대 기사
02p
06p
08p
09p
10p
11p
12p
14p
17p
19p
Chapter
무중력지대 대방동 소개
노량진탐사대 소개2
76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②
무중력지대 대방동
소개
서울시 청년공간 무중력지대 대방동은 다양한 청년활동을 지원하는 커뮤니티
공간입니다.
청년들이 청년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성장해가는 공간이자 지역의 플랫폼이 되기
위해서 일, 모임, 공부, 취업준비, 문화, 창작활동 등 다양한 청년활동을 지원하고
협력하는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함께 할 동료를 만나
커뮤니티를 이루며, 생활속에서 지속가능한 변화를 꿈꾸는 대방동은 청년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청년들의 자유로운 활동과 생활의 안전망이 되기위해 만들어진
청년을 위한, 청년에 의한, 청년의 공간. 무중력지대 대방동.
무중력지대 대방동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더 다양한 활동 모습 및 내용들을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청년문제해결을위한
다양한청년활동이즐겁게펼쳐지는공간”
② 무중력지대 대방동 소개
무중력지대대방동
진행프로그램
노량진탐사대
지역탐사활동을통한
고시원,학원가등서남권청년공동체
생활이슈콘텐츠자료구축
15인의청년기자단(기수운영)
청년주간/청춘운동회
청년허브,청정넷,무중력지대G밸리등
서울시내주요청년기관들과단체
함께힘을모아청년이슈관련
다양한모임과행사를지역에서주최
서로서로클래스
청년활짝아카데미
청년들이스스로배움을향유하는
지식문화공동체로성장,
다양한전문강좌와의연결
공간이캠퍼스가되는프로젝트
청년사회적자본포럼
5개분야의사회적자본구축을위한
청년연구진들의리서치와토론회
무중력지대대방동사업의방향과
지역+청년의제를강화하는포럼추진
청년활동씨앗사업
청년스스로자기다움을발견하고
아이디어를실행으로옮기는
프로젝트경험기회제공
전문가워크숍,연수과정통한
청년활동인큐베이팅,20팀육성목표
청년활짝 커뮤니티
공간을기반으로관계를맺으며
함께일하고,공부하고밥도나누며
진정성있는동료문화를공유하는
청년활짝멤버십
정기적인네트워킹모임과행사지원
지역기반
청년자원구축
청년다움
프로젝트지원
청년활동
네트워크형성
② 무중력지대 대방동 소개
②
무중력지대 대방동
소개
98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탐사대가제작한 콘텐츠
② 노량잔탐사대 소개
노량진탐사대는 노량진 지역을 기반으로 생활하는 청년들에게 유익하고 재밌는
생활정보 콘텐츠와 청년이슈를 발굴해 정보를 제공하는 지역기반 리서치 활동입니다.
청년이슈의 상징처럼 부상하는 노량진에서 다채로운 청년의 삶과 가능성에 주목하고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기 위한 정보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팀 프로젝트입니다.
* 노량진탐사대의 기사는 무중력지대 대방동 홈페이지를 통해 더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무중력지대 대방동 홈페이지 > 커뮤니티 콘텐츠> 청년 라이프에서 연재 중)
노량진
생활문화
콘텐츠
고시생의삶
1인가구청년*
청년주거
노량진핫이슈/
지역소식
②
노량진탐사대
소개
Chapter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3
1110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노량진탐사대어떻게활동했나?
노량진탐사대 시즌 1: 2015년 6월 ~ 9월(4개월)
노량진을 함께 탐색하고자 하는 청년 10명과 함께 14건의 노량진콘텐츠를 발행했습니다.
콘텐츠 수
14건
콘텐츠 수
28건
노량진탐사대 시즌 2: 2015년 9월~ 12월(4개월)
20's Timeline (트웬티스 타임라인), 고함 20이 함께 28건의 노량진콘텐츠를 발행했습니다.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활동사진
5월
노량진탐사대
1기모집
9월
노량진탐사대
2기모집
6~9월
탐사진행/
콘텐츠제작
9~12월
탐사진행/
콘텐츠제작
1312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③
2015년 한해동안
노량진에서 생긴 일.
③
2015년 한해동안
노량진에서 생긴 일.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노량진에는1년동안어떤일들이있었을까?
1. 추억의 노량진 육교 철거
지난 1980년에 만들어진 노량진 육교. 35년
동안 노량진역 1호선과 9호선을 이어주며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었던 노량진 육교가
지난 2015년 10월 17일에 철거되었습니다.
세월의 흔적만큼 시설이 낡아 보수가
어렵고, 전동차의 진동과 흔들거림으로
건너가기 불안하다는 민원이 많아 철거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횡단보도가 육교를
대신해서 그 자리를 메워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노량진 육교가 사라진다는
소식은 아쉬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노량진 육교를 볼 수 없겠지만, 그곳을
지나오던 많은 사람의 가슴 한쪽에 오랜
추억거리로 기억될 것입니다.
“1999년 봄 노량진역. 우리는 햇살을 받아
마른버짐처럼 하얗게 빛나는 육교 위에
앉아 농담처럼 그랬다. 되고 싶은 것?
대학생. 존경하는 사람? 대학생. 네꿈도,
내꿈도 그러니까 대학생” 작가 김애란의
소설 『자오선을 지나갈 때』에서 담아낸
노량진 육교의 모습이다. 35년간 제 자리를
지켜온 노량진 보도육교. 그 오랜 시간 동안
보도육교는 얼마나 많은 수험생들의 속내를
들어왔을까.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오늘의
위로를 찾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내일의
희망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렇게 노량진
보도육교는 공간이기 이전에 하나의 추억으로,
모두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노량진에는1년동안어떤일들이있었을까?
2. 노량진의 명물, 컵밥 거리 이전
노량진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컵밥
상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
쌀국수부터 폭탄밥, 김치볶음밥, 닭강정
등 2,000원~4,000원대의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컵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주머니가
얇은 고시생들에게는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노량진 1역
출구가 아닌, 반대쪽 공간(사육신 방향)으로
이동한 상태입니다. 이동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요. 노량진 컵밥 가게들의
손님이 늘면서 좁은 거리가 더 비좁아져
통행에 불편이 생기기 시작했고, 주변 상점들
간의 갈등도 오랫동안 마찰을 빚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문제해결 책으로 동작구는
2015년 5월 상인들과 협의해 특화거리를
추진했습니다. 또한, 컵밥 상인들은 매달 1인당
5만 원씩 역발전기금을 내놓는 방안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옮겨진 곳은
학원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고시생들의
발길이 많은 곳이 아니어서 이전보다
매출액이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요. 새로운 터전이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듯합니다.
노량진의 명물로 자리 잡은 컵밥 거리가
다시 예전처럼 활성화되어, 고시생들과 주변
상인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활기찬 거리로
재탄생하길 바라봅니다.
78쪽 ‘노량진 육교를 위한 마지막 송가’ 기사 中 일부
1514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매스컴에서 다뤄지는 노량진은 공무원 열풍, 컵밥 등 몇 개의 키워드로 규정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처음 언더랜드에 떨어졌을 때와 같은
생경함이 가득했습니다. 우연히 노량진탐사대 활동을 하게 되면서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청년들에 대해 이해하려 했고, 불확실한 시대에 불안한 미래를 담보로 각자 삶의 추를 움직여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아픔을 느꼈습니다. 노량진의 청년을 희미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는 활동이었습니다. 청년들이 더 이상 ‘안정’과 ‘열정’의
삶으로 평가되지 않기를 바라며 미완의 활동을 접어봅니다.
1기 노량진탐사대 서은진
노량진탐사대는 노량진의 이야기를 조사하는 모임과 구성원들을 말합니다.
서울로 올라와 동작구 노량진에 자리 잡고 살기 시작할 때, 동네에서 재밌는 일을 하고 싶어
찾아보던 중 '무중력지대 대방동'과 그곳에서 진행하는 '노량진탐사대'프로젝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이면서, 나와 같은 2030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활동이라니! 굉장히 재밌어 보여 앞뒤 보지 않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노량진탐사대는
4개의 활동팀으로 나눠서 활동했는데, 그중에서 저는 노량진 1인 가구 청년들의 식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1인가구팀’에서 글을 썼습니다. 청년들이 이곳 노량진에서 잘 먹고
사는지, 무엇을 먹고사는지 궁금했습니다. 탐사대 활동을 하며 나름 고민도 하고 노량진 마트
이곳저곳을 다니며 조사도 했습니다. 지금껏 쓴 글들을 보며 노량진탐사대로서 노량진 청년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다음 노량진탐사대 3기에서는
노량진과 청년에 관한 이야기, 이슈들을 사회에 던져주는 역할을 기대하며 앞으로의
노량진탐사대 활동을 응원합니다.
1기 노량진탐사대 김아리
TALK
노량진탐사대
활동 톡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어떤 곳을 찾아가서 살펴보고 조사한다는 탐험의 원래 의미처럼, 알고 있는 것 너머의 노량진을
오감으로 알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더 많은 노량진의 매력이 무중력지대를 통해
발굴되었으면 합니다.
트웬티스 타임라인
노량진 주변을 가끔 지날 때면, 뭐랄까 노량진은 조금 다른 공간으로 느껴졌습니다. 서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물가를 가졌으며, 소소한 놀 거리로 가득 차 있는 곳.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가득하고 시끌벅적한 곳. 그런데도 외부인에겐 상당히 음울한 곳으로 여겨지는 곳.
노량진이라는 공간을 다시 보고 싶었고 새로운 것을 읽어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뜻대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노량진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고함20 농구선수
취재나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노량진은 평범한 노량진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평소 무심히
지나치는 골목이나 공간,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었음을 일깨워준 곳입니다. 노량진
탐사대는 기자로서 지나치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어 앞으로도 계속 안고 가야
할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취재와 인터뷰에 응해주신 모든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고함20 김연희
③
TALK
노량진탐사대
활동 톡
③
1716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몇 년 동안 들락날락했지만, 노량진의 이미지는 항상 비슷했습니다. 고시나 재수, 학원가. 그
이미지를 때론 동정하고, 때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쉽게 소비해왔습니다. 언젠가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폭력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노량진탐사대는 제게
어떤 의미론 반성의 장이었습니다. 그 반성이 잘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놓쳐버린
모습들도, 또 다시 쉽게 생각해버릴 무언가도 노량진엔 아직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탐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고함20 인디피그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누군가에게는 노량진이 그런 곳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거기에 고시생들이 있고, 늘 있던
자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컵밥거리가 있으며, 재미있지만 조금은 낡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수산시장이 변함없이 있을 것처럼 생각된다. 작년 찍은 풍경 사진과 올해 찍은 사진이 같고
내년도 그러할 거라고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곳, 노량진은 그런 장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가 살펴본 결과, 앞으로 노량진을 생각할 때는 뻔한 사람들이 뻔한 일들을 하면서
뻔하게 살아간다는 고정관념만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노량진은 세상의 흐름과
상황에 결코 모자람 없이 반응하고 변화하는 곳이었다. 첨예한 대립부터 상권의 변화, 새
건물의 건설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받아들이며 보이지 않게 조금씩 탈바꿈하고 있는 노량진은
오늘도 박제되지 못할, 어떤 색다른 모습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노량진은 박제되지 않는다’ 기사 일부(트웬티스 타임라인)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TALK
노량진탐사대
활동 톡
③
TALK
노량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③
1918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노량진은 고립된 곳이지만 고립된 곳이 아니기도 하다. 노량진에 잠깐 있으면서 수산 시장은
근처도 가보지 못했고, 지하철을 탈 일도 없었다. ....그때 나는 노량진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사는 갇힌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수산 시장도 가보고, 그
공간을 휘 돌기도 하며 이곳 또한 결국 사람 사는 곳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
관한 이야기 역시 앞서 말한 시각과 크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은 노량진을
굉장히 특수한 공간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노량진을 좀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분석적으로 뜯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노량진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굉장히 한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낭만’과 ‘고된
현실’이라는 두 가지 초점이 교묘하게 섞이면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그나마 수산 시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함께 조명을 받는 정도다. 그래서 앞으로는 노량진
탐사대처럼 조금 더 ‘다른’ 시각의 노량진 바라보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노량진 탐사대를 진행하는 모든 이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노량진 : 낭만과 그렇지 않은 사이의 틈에 관하여’ 기사 일부(고함20)
③ 노량진탐사대 기사
Chapter
노량진탐사대
기사4 제 이름은 고시생이 아닙니다
노량진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여행하다
1편<정조와 화성행궁길>
진짜 노량진은 그곳에 없다
미디어가 바라본 노량진
노량진은 어떻게 고시촌이
되었을까요?
노량진 핫플레이스를
다녀오다
노량진 1인 가구를 위한
식문화
노량진에 에너지를
전달하고파
the avec과의 만남
'반수생',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젊은이들
청춘의 추석
노량진에서 1인가구로살아가기
24시간의 고사원 일주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에게 경의를
노량진 육고를 위한
마지막 송가
육교위에서
노량진에 그대를 위한
공터가 있다
TALK
노량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③
2120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그것은 방이라고 하기보다는 관이라고
불러야 할 크기의 공간…그 좁고 외롭고…
정숙해야만 하는 방 안에서 나는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했고…"
작가 박민규는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비좁은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젊은 청춘을
이렇게 그려냈다. 세상이라는 냉정한 문
앞에서 침묵해야 하는 노량진 안 젊은이들의
모습. 이는 비단 한 작가만의 시각이 아니다.
어둡고 조용하고 외로운 노량진 속 청춘들의
모습은 어느새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떠올리는 노량진의 단편적인 모습이 됐다.
획일화된 모습에서 청춘들은 노량진
속의 다양한 얼굴들은 다채롭던 색을 잃고
단편적인 노량진의 모습에 물들어갔다.
‘노량진에 있었다’는 말은 '고시생이었다는
말'과 동급이 되고, 노량진에 발을 디디는
순간 수많은 청춘 또한 자신의 이름 대신
'고시생'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귀결되고
만다.
제 이름은
고시생이 아닙니다
글/사진: <Twenties Timeline> 에디터 강연주, 김세림
하지만 길가의 꽃 하나도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가 있는 것처럼, 그들도
모두 다 각자 '노량진'에 뿌리를 내리게 된
이유가 있을것이다. '고시생'이라는 이름
아래 잃어버렸던 청춘들의 이름을, 가려졌던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어본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됐을까. 그리고
이들은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
이 이야기는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노량진 고시생’이 아닌 ‘ㅇㅇㅇ’의
이야기다.
1. 경찰공무원 준비생 오훈
노량진에 있는 친구들만 경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Q.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A.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경찰공무원 준비 중인
27살 오훈이라고 합니다
Q.
요즘 어떻게 지내요?
A.
항상 똑같죠. 공부, 잠. 공부, 잠. 딱히 특별하게
지내고 있지는 않아요.
Q.
노량진은 어떻게 오게 됐나요?
A.
대학 졸업을 앞두고 휴학 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처음에는 다양한 대외활동을
목표로 여기저기 많은 경험을 하고자
왔습니다. 그러다 잠깐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도 하며 지냈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일이
무엇인가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고, 결론은
경찰이었습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꿈이
경찰이었거든요. 그래서 전공도 법을 택했던
거고요. 그렇게 조금은 늦었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곳, 노량진으로 오게
됐습니다.
Q.
매일 같은 사람들과 공부하고,
스터디하고. 한 공간 안에서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비슷한 일상을 지낸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A.
남들은 우리보고 갑갑하다느니, 우물 안
개구리 같지 않으냐는 말을 하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많은 자극제가
돼요. 합격을 위해서는 그 많은 사람을 이겨야
하니까요. 그 사람보다 한 시간을 더 공부해야
하고, 그 사람보다 한 시간을 더 일찍 일어나야
이길 수 있다는 압박감도 있고요, 누구보다
좋은, 서로에게 도움되는 자극제죠.
Q.
미디어에서는 노량진을 주로 무거운
경쟁의 공간으로 표현하거나, 고시생과
취준생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고정된
틀에서만 바라보는데요. 이에 대한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2322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Q.
어릴 적 자신에게 노량진은 어떤
곳이었나요?
A.
저한테는 초·중학생 때의 임시놀이터였던
거 같아요. 집에서 한 정거장 정도 거리인
노량진에는 저렴한 옷을 파는 곳도, 혹은
놀잇거리도 많았기에 이곳에서 친구들과 자주
걸어와 놀곤 했었죠.
Q.
노량진을 추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면?
A.
어렸을 적, 유독 군것질을 좋아해서 그런지
혼자 노량진까지 걸어가서 꼭 참새 방앗간
들르듯 먹고 왔던 가게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오가네 팬케익’이었죠. 물론 지금은
SNS에 노량진 맛집으로 뜨면서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늘었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초심 잃지 않고 장사하시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푸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지곤 합니다.
이곳을 떠올리면 오랜 시간만큼 노량진의
정서나 이미지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가게라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노량진역에서 옛 동창들을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그 가게 쪽으로 발걸음이
향하곤 합니다.
Q.
노량진 토박이였던(인근 지역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노량진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노량진을 보면 시골의 삼일장, 오일장 같은
푸근함이 느껴져요. 그리고 이것을 파는
푸근한 인상의 상인들과 저렴한 밥 한 끼
먹으며 힘내려는 고시생 및 취준생들과의
대화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스스럼없는
모습에 정다운 느낌도 들어요. 허물없는 정과
그 속의 따뜻함. 이게 제가 생각하는, 내가
생각하는 노량진만의 매력이에요.
Q.
미디어에서는 노량진을 주로 무거운
경쟁의 공간으로 표현하거나, 청년들이
‘안정적인 삶을 바란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데요.
A.
수많은 고시생과 취준생들의 생활터인
노량진. 전 청년들이 좀 더 나은 삶, 또는
미래를 위해 이곳을 찾는 거라 생각해요. 더
나은 삶을 위해 자기 나름의 피나는 노력을
결승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지금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요. 그러니 우리, 중간에
지쳐서 포기만 하지 맙시다. 모든 노량지너들
파이팅입니다!!
2. 노량진 인근 거주자 영은
노량진은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
을 품어주는 따뜻한 곳이에요.
Q.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재학생이자 과거
대방역(노량진역에서 한 정거장) 거주자
조영은이라고 합니다.
본인의 생각은?
A.
노량진이 고시생과 취준생들을 위한
공간으로만 다루는 건 부정할수 없는 부분이
맞습니다. 노량진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시생들이죠. 하지만 저희들만
경쟁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않아요.
요즘 취업난 때문에 젊은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있죠. 제 주변 사람들도 자소서며
면접이며 엄청 빡쎄게 준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니까요.
저희도 같아요. 같은 꿈을 위해 경쟁을 하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사실 이곳 노량진뿐만
아니라 모든 곳이 청년들에겐 전쟁터라
생각해요. 모든 청년이 ‘꿈’을 향해 달리고
있는 지금, 노력하는 청년들의 삶을 더이상
특별한 취준생, 혹은 고시생이라는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노량진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마디
A.
저도 아직 공부를 오래 하진 않았지만,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요. 공부도 체력,
정신력 싸움이다 보니 항상 건강하게 몸 관리
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저는 항상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2524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될 법한 정치외교학과로 선택했죠. 처음
노량진에 온 건 2012년 5월쯤이었습니다.
집에서 혼자 인강으로 공부하기엔 제 의지가
좀 부족하더라고요.
Q.
요즘 자신의 머리를 채우고 있는 고민이
있나요? 일상적인 고민도 좋고요.
A.
사실 매일 뭐 먹고 뭐 마실지가 항상
고민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노량진 학원가 안쪽으로 들어오면 의외로
맛집이 많거든요. 그런데 장소 자체가 별로
예쁘지 않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아요. 그런 곳들을 알게 되면 나중에 진짜
고민될 때가 있습니다. 큰맘 먹고 거기에 가서
호사를 부려 볼까, 그냥 삼각김밥 먹고 말까,
이게 참 고민이에요.
Q.
공부하며 바쁜 와중에도 노량진을
떠올렸을 때 나는 좋은 기억이나 추억이
있다면?
A.
노량진 육교에서 눈 내리는 걸 바라보던
기억이 좋았어요. 육교에는 항상 눈이 예쁘게
쌓이거든요. 공부하다 말고 한 1분 정도
그 풍경을 멍하니 보는 거죠. 그리고 다시
공부하고. 근데 이제는 철거돼서 육교 눈 쌓인
건 못 보겠네요.
Q.
미디어에서는 노량진 청년들의 삶을
‘경쟁’이나 ‘안정적인 삶을 바란다’는
틀에서만 바라보는데요.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A.
사실 저는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 맞아요.
노량진 학원 오는 사람 중에 안 그런 사람
거의 없을걸요. 근데 안정을 추구하는 게
왜 나쁜지 모르겠어요. 누군가는 공무원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공무원이 적성에 맞는
거잖아요.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 오히려 안정
추구가 나쁘다느니, 공시생들이 다 철밥통만
원한다느니 하면서 멋대로 말하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Q.
당신은 ‘고시생, 공시생’이 아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A.
효녀요. 제가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잖아요.
하고있는 사람들인데 왜 그걸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지, 사실 이해가 안 갑니다.
그래서 저는 되려 미디어에게 묻고 싶어요.
왜 이곳을 어둡게만 포장하는지. 매일 최선을
다해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가장 잘 헤아려주는 것도, 그런
이들을 품어주는 따뜻함도 노량진의 소중한
모습인데 말이죠.
Q.
마지막으로 노량진의 청춘들에 한마디.
A.
자신의 목표가 확실하다면 포기하지 마시고,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길로 도전해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됐든, 그 목표를
이루는 날까지 힘내서 원하는 바를 이루시길
바라요!
3. 행정고시 준비생 소정
누군가는 공무원이 적성에 맞는 거잖아요.
안정을 추구하는 게 나쁜건가요?
Q.
먼저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A.
노량진 A학원에서 9급 행정고시 공부하고
있는 소정이라고 합니다. 올해 27살입니다.
Q.
이곳 노량진에 오게 된 계기는?
A.
제 성격이 굉장히 안정추구형입니다. 대학
입시할 때쯤부터 공무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대학 전공도 도움이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2726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사실 같이
일하는 회사에서 알바생이 그만두는 바람에
정원이 비어서 저를 넣었다고 하더군요.
Q.
영상촬영 알바, 생소하네요. 어떤 일을
하는 거죠?
A.
제 일은 제 스케줄과 강의 스케줄을
비교해서 제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맞추고, 강의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서
고시학원의 강의를 촬영해 업로드하는
일이었습니다. 매시간 무거운 장비를 들고
5층까지 오르내려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처음
알바를 시작했을 때는 제가 중도휴학을 한
상태였어요. 학교가 다니기 싫어서 군대 가기
전에 돈이나 벌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잠깐 할줄 알았는데 복학하고
나서도 계속하게 됐죠. 물론 이 일이라고 안
힘든 건 아니었지만, 홀서빙이나 다른 힘든
알바하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저는 편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했던 알바였어요. 하다
보면 그곳에서 공부하는 많은 학생을 볼 것
같은데. 제가 2학년 때 일을 시작했어요. 1년
정도. 사실 대학교 1학년까지만 하더라도
저도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대로 보고, 공무원
준비하고 고시 준비하는 사람들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것 사실이었거든요. 근데 일에
적응하고 슬슬 지루해질 때쯤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 한 명씩 바라보는 게 나름
시간 보내는 방법이 되었었죠. 그때 다들
뭔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걸 느꼈어요. 일단 노량진에 있는 친구들은
목적이 확실해요. 실패하면 안 된다. 이런
분위기가 느껴지고. 여기에서 일하면서 진짜
그 열정이 느껴졌죠.
Q.
학원 영상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그곳에서 공부하는 많은 학생을 볼 것
같은데.
A.
제가 2학년 때 일을 시작했어요. 1년 정도.
사실 대학교 1학년까지만 하더라도 저도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대로 보고, 공무원
준비하고 고시 준비하는 사람들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것 사실이었거든요. 근데 일에
적응하고 슬슬 지루해질 때쯤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 한 명씩 바라보는 게 나름
시간 보내는 방법이 되었었죠. 그때 다들
뭔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걸 느꼈어요. 일단 노량진에 있는 친구들은
목적이 확실해요. 실패하면 안 된다. 이런
분위기가 느껴지고. 여기에서 일하면서 진짜
그 열정이 느껴졌죠.
그동안 부모님 몸 고생 마음고생이 얼마나
크셨을지를 이제 좀 알겠더라고요. 그걸 좀
갚아드리고 싶어요. 저는 지금 공시 공부
중이니까 합격하는 게 효도겠죠? 그래서 더
빨리 합격하고 싶은 것도 있어요. 그렇게
합격을 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더불어 지금
제가 다니는 학원에 합격 수기를 써서 붙이고
싶어요. “비결은없다, 비결 있다는 수기는 다
거짓말이다”. 진심을 담은 딱 이 3마디만 써서
내걸어보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노량진에서 살아가는 모든
노량지너들에게 한 마디.
A.
저 이래 봬도 처음 보는 사람이랑
쓸데없는 얘기하는 것 좋아합니다. 혹시
노량진에서 만나거든 아는 척해 주세요.
3. 학원 영상촬영 알바 영돈
노량진을 떠날 때, 부디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갔으면 해요
Q.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A.
안녕하세요. 노량진에서 나는 찌든 짠내를
좋아하는 올해로 반 오십 된 상도동 주민
김영돈입니다. 현재 노량진에서 영상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4학년 대학생이죠.
Q.
노량진에서 아르바이트 하게된 계기는?
A.
지인의 소개였습니다. 영상을 다룰 줄 아니까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2928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말이죠.
언젠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노량진을
떠나게 될 거에요. 어떤이유로든. 그러니까
결론은, 떠날때 부디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갔으면 해요.
노량진 보도육교처럼 말이죠.
제 이름은 고시생이 아니에요.
이름 불러주면 감사해요.
시인 김춘수는 말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이름이란 그렇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 나의 다채로움을 증명해주는
존재가 바로 이름이다. 그렇기에 고시생이라는
이름 앞에 자신의 이름을 잃은 이곳의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숱한 말들이
아니라, 내 이름을 묻고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오늘, 나는 고시생이라는 단어 뒤에
감춰진 당신의 이름을 묻는다. 그렇게, 당신은
내게 청춘이라는 이름의 한 떨기 꽃이 된다.
Q.
미디어에서는 노량진을 주로 무거운
경쟁의 공간으로 표현하는데,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A.
솔직히 아니라고는 못하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고 모여서 공부하면서 조금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인 건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사람들도 처음부터 공무원이나 고시준비를
하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요.
마치 제가 그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던
것처럼. 그 사람들도 자기 미래를 생각하다
보니. 아 여기구나. 하고 찾아온 것일 테니까요.
‘경쟁’이요? 세상에 노량진만큼 평화로운
경쟁을 하는 곳이 있나요? 노량진에 성적순
줄 세우기를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 주변을
한번만 둘러봤으면 좋겠어요. 회사, 학교
안에서는 줄 세우기가 없는지. ‘안정적인
삶’이라. 제가 한 명 한 명 찾아가며 혹시
즐거우세요? 아니면 슬프세요? 이렇게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안정적인 삶이 꿈인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안정적인 삶은 다음
꿈을 위한 기반일뿐일 걸요… 딛고 서 있는
땅이 불안정한 이곳에서 단단한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부정적인 시선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Q.
당신은 ‘노량진 알바’가 아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A.
저 같은 경우에 지방 출신에 서울생활한 지
5년차. 서울은 항상 낯설어요. 제가 ‘노량진
알바’이긴했지만, 노량진에 있을 때는 노량진
사람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노량진에서 제가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냐고
물으시면. 저는 이곳에 소속된 한 사람, 혹은
노량진의 ‘주민’으로 기억되고싶어요.
Q.
마지막으로 노량진에서 살아가는 모든
노량지너들에게 한 마디.
A.
노량진 보도육교가 철거되기 전, 많은 사람이
육교에 한 마디씩 남겼죠. 잘 가라, 수고했다
등등. 다들 그 자리에 있었을 때는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사라질때 그 가치를
재발견한 거죠. 육교를 떠올리면 왠지 우리
옆에 오래 공부하던 장수생 선배를 보는
느낌이 딱 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는 선배를 보고 쟤는 언제
합격해서 언제 나가나 하지만, 결국 언제가
되었든 노량진을 떠나잖아요. 합격하던
고시를 포기하던, 육교가 사라진 것처럼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3130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결은 모두 미묘하게 다를 것이다. 애초에 25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을 몇 가지 특징으로만
관념화시키는 것 자체가 무리지 않은가.
그럼에도 기존의 미디어는 도심 속 공부의 섬
노량진과 그 속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외부의
시각으로 관념화, 객체화, 수단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마디로 시험 준비전념해야 하는
고시생이 공부 말고 다른 게 있겠냐는 식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분명 그들의 생활에도 공부
외에 다른 삶의 요소들이 아주 약간씩이라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우선 몇가지 사례를
통해 미디어가 바라보고, 정립하는 노량진의
모습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1) 뉴스: 청년의 삶을
관망하다
미디어가 노량진을 타자화하는 경향은
뉴스, 예능, 다큐 등 어느 카테고리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뉴스
속 정치인들이 선거 유세를 펼치는 도중
노량진을 찾아가 청년들을 위로하려는 듯한
모습은 가장 대표적이다. 최근의 사례로 보면,
대선 때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후보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때는 무소속의 박원순
후보가, 당장 지난해 있었던 새누리당 당 대표
경선 때는 김무성 후보가 노량진을 찾았었다.
이들은 모두 마치 코스가 있다는 듯이
길거리에서 컵밥을 먹고, 고시촌과 학원을
찾아가 청년들과 상인들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곤 했었다.
뻔히 보이듯 그들이 노량진을 방문한
목적은 청년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노량진을 찾아간 정치인들 은 대체로
청년들이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지 않았고,
그들이 이곳에서 정착해 사는 와중에 들었던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다. 대신 그 동안 해보지
않았던 것을 ‘체험’해본다든가, 성공한 사람
입장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등의 행동을
했었다. 그리고 미디어는 현장에서 딸 수 있는
몇 개의 장면, 장면을 따 전파를 타고 내보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노량진의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주체가 아닌 들러리가 되어버린다. 결국,
뉴스를 통해 노량진 외부에 위치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건 그들이 컵밥을 먹고, 공부한다는
것뿐이게 된다.
ⓒ서울신문
섬, 모두 익히 알고 있듯이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작은 육지를 뜻한다. 그래서
섬에서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시에 배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야만 한다. 그만큼 이동
자체가 다른 일반적인지역에 비해 수월하지
못한 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지형상의 특성 때문에 섬을
신비로운 미지의 공간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심지어 지도를 펼쳐놓고 다른 육지와
비교해서 보면, 이 섬이라는 작은 공간은
외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까지는 물리적인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섬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니,
그렇다면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육지가 아닌
섬도 존재한다는 말인가? 말장난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사회에는 같은
계층을 중심으로, 혹은 똑같이 특수한 상황에
부닥친 상태를 중심으로 육지 안에서도 섬을
형성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노량진은 그런
아이러니한 육지 속 섬 중에서도 꿈꾸는
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치열하게 사는 섬이다.
이곳은 고시, 공시(공무원시험) 등 여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흥미로운
하이 소사이어티의 결정체인 여의도와 도심
한가운데서 텃밭을 가꾸는 평화로운 노들섬을
바로 곁에 두고 있음에도 오로지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삭막함을
머금고 있어 다른 공간과 단절된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즉, 노량진은 ‘합격’이라는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일부러
세상으로부터 격리하는 정서적 의미에서의
섬인 셈이다.
Another.
미디어가 만든 노량진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노량진에 온 사람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
그리고 이전에 살아온 인생의 서사가 같은 건
아니다. 설령 노량진에 도착해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이곳에 오게 된 이유부터
수험 생활 중에 느끼는 생각과 감정까지 그
진짜 노량진은
그곳에 없다
미디어가 바라본 노량진
<Twenties Timeline> 에디터 김정원
Island. 노량진, 섬이 된 동네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3332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무한도전 멤버들은 노량진의
사람들을ㅡ타자화하여 형식적인 위로와
응원만을 해주기보다는 마치 자신의
처지처럼 생각하고 진정한 충고를 해준다.
당시 방영분에서 노홍철은 ‘지금도 정말
힘들겠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며 취업이
되면 더 힘들고, 사회는 더 지독할거’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물론, 곧바로 유재석에게
제지당하고, 촬영은 밝은 톤을 유지하며
마무리되지만, 이는 정치인이 나오는
뉴스에서도, 노량진 속 삶을 비추려 했던
다큐에서도 하지못한 유쾌하면서도 현실적인
부분이었다. 그들 하나하나를 세밀히 보는
디테일은 부족했지만, 적어도 섣부른 관념화와
나와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타자 화는
없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Real.
노량진 속에서 바라본 노량진
이렇듯 우린 직접 찾아가거나 주변에 수험
생활 중인 사람을 두지 않는 이상 위의
사례와 같은 미디어 속 편집된 노량진만을
접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실 우린 노량진에
관해 접했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아닐까. 당당하게 알고 있다고
얘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개인, 그리고
공간의 맥락이 편집되고 왜곡된 감이
없지않아 있다. 그래서 2기 노량진 탐사대는
지금까지 미디어가 해왔던 방식보다 더
세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노량진을 바라보려
한다. 물론 우리가 보여주는 노량진이
진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노량진’과 그 속의 ‘청년’을 규정하지 않고 좀
더 다양하고 솔직하게 보여줄 뿐이다. 무엇이
진짜인지 판단하는 일은 우리가 담아낸
노량진을 지켜볼 당신께 맡긴다. 이제 아무도
보여주지 않았던 노량진, 그 안 에 담긴 진솔한
청춘의 이야기를 마주할 차례다.
ⓒMBC, 무한도전
그간 뉴스가 노량진을 객체화, 수단화했다면
다큐의 경우에는 노량진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그 속의 사람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주지
못했었다. 대표적인 노량진 관련 다큐로는
2011년 방영된 KBS스페셜 <꿈꾸는 자들의 섬,
노량진>, 2012년 방영된 다큐 3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량진 고시촌>이 있다. 이중 비교적
최근에 방영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량진
고시촌>은 노량진에 살거나 오가며 공부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한 다큐다.
프로그램 안에는 이제 막 대구에서 올라와
노량진에 정착한 사람, 다니던 대학교를
포기하고 강의 영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재수를 결심한 사람, 경찰공무원에 몇 년
째 도전하는 사람이등장한다. 또, 어떻게
보면 주변인이라할 수 있는 늦은 나이에
공인중개사시험을 준비하는 노년의 수험생들,
그리고 이른 새벽부터 공부하는 청년들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는 교회의 권사들도
모습을 비춘다. 어떻게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비추기에 다각적이라고할 수 있지만, 다큐는
취재 대상을 선정한 것과 별개로 노량진
사람들을 ‘벼랑 끝에 서 있어 힘들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전형적인
상으로 균일화시킨다. 서두에서 말했던 것처럼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더라도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 노량진에 오기
전까지의 개인의 서사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그저 슬프고 안타까운,
하지만 힘을 내야 하고 응원이 필요한 존재로
정립할 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개인의 서사는
청춘을 향한 응원으로만 귀결된다.
(3) 예능: 꾸미지 않은
노량진을보여주다
나름대로 긍정적인 예시도 있다.
예능에서 노량진을 비췄던 경우로는
대표적으로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2014년 초,응원단에
도전하면서 현장 실습으로 노량진의 대형
학원을 찾아갔던 것을 들 수 있다. 현장
실습의 차원에서 찾아갔다는 점에서 뉴스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노량진을 수단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앞서
소개한 뉴스, 다큐에 비해서 그 분량은 짧지만,
오히려 화면에 등장하는 수험생들과 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노량진의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2) 다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은 청년을 그리다
ⓒKBS2, 다큐멘터리3일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3534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양화진과 함께 가장 주요하여 전하의 옥체를
보존하기 위해 군대를 주둔하는 진을
설치하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고려 때부터 행인들의 왕래가
잦았고, 그 때문에 선왕이신 태종께서는
특별히 별감을 파견하여 나루 관리에 신경을
쓰셨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별감파견과
함께 짐과 사람을 실어 나르는 진선들이
뱃삯을 받지 않게 하도록 관선 15척도
비치하셨지요. 이는 근본적으로 백성들이
도강을 편히 하기 위함이었는데, 그와 함께
수상한 자를 기찰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습니다. 전하, 이곳 노량진은 과천, 시흥,
수원, 더 나아가 충청, 전라, 인천, 개경까지
통하는 만큼 각 지방의 갖가지 특산물이 한데
모여 상업이 발달한 지역이기도 하옵니다.
이는 노량진이 나룻배가 발착하는 도선장을
중심으로 하여 발달한 취락이라는 뜻의
도진취락(渡津聚落)이라 불리우는 연유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무언가를 사고파는 상인들로
가득하고, 그 덕에 도선 시설은 물론이거니와
주막과 객주 집이 많이 들어서 있사옵니다.
하지만 노량진이 이리 마냥 기쁨만 가득한
곳은 또 아니옵니다. 나루의 북쪽 강변에는
새남터라 하는 넓은 백사장이 있는데,
그곳은 왕조 대대로 죄인들을 벌하는
사형장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선왕이신 세조께서는 즉위 2년에 반정을
꾀했던 여섯 명의 신하, 사육신(死六臣)을
이곳에서 처형하기를명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사육신묘 역시 노량진에
있사옵니다.
노량진은 항시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하여
전하께서 행차하시기에는 다소 번잡할 수
있습니다. 하오나, 태종께서는 노량진을
관리하기 이전에 사냥을끝내고 환궁하는
길에 노량진 나루터에서 배를 탄 채로
술과 함께 풍류를 즐기신 적이 있사옵니다.
혹여나 전하께서도 노량진에 행차하실
일이 있으시거든 신이 다른 관리들과 함께
버선발로 나와 맞이하도록 하겠사옵니다.그럼
신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만수무강하옵소서, 전하.
乙未年(1895년) 正月
▲ 서울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잇던 노량진 나루터
▲ 1920년대 노량진하루 평균 상주인구 1만 명, 유동 인구25만 명.
2015년 현재 노량진의 인구관련 데이터다.
수산시장에 대형 학원과 고시촌까지 즐비한
노량진은 이렇듯 매일 바삐 돌아간다.
개중에는 당연히 고시, 혹은 공시(공무원 시험)
등 여러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시대에서는 노량진이 ‘공부의
메카’로 인식되는게 일반적이지만, 과거에는
어땠을까?
대한민국에 입시 제도가 틀이
잡히고서야 노량진이 그렇게 변했겠지,
처음부터 노량진이 그런 동네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량진은 언제부터 한해의
노력을 한순간에 쏟아 붓는 시험이라는
거사(?)를 준비하는 곳이 된 건지, 또
그 이전에는 어떤 동네였는지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해서 이 글은 그 내용을
크게 고시촌이 되기 전과 후로 나누어
설명하였으며, 좀 더 흥미롭게 내용을
풀어내기 위해 픽션적인 요소가 가미된 가상
편지 형식을 차용했다. 물론, 편지 속 노량진에
관한 내용은 대부분 사실에 기반을 두어
작성했다.
노량진은 어떻게
고시촌이 되었을까요?
<Twenties Timeline> 에디터 김정원
“과천 현감 이노량,
주상 전하께 아뢰옵니다.”
주상 전하, 신 과천 현감 이노량이라하옵니다.
전하께서 노량진(鷺梁津)이 소상히
궁금하다 하시어 감히 이렇게 서한을
보내옵니다. 내용에 미진한 점이 있더라도
굽어살펴주시옵소서.
전하, 노량진은 백로 로(鷺), 징검돌 량(梁),
나루 진(津)이라 하여 본디 ‘백로가 노닐던
나루터’라는 뜻을 품고 있는 지역이옵니다.
수양버들이 울창한 나루터라 하여
노들나루라고도 하며, 외에도 노도진(露渡津),
노량진도(鷺梁津渡)라고도 불리우고
있사옵니다.
이 나루는 전하께서도 알고 계시듯
사대문 밖에 위치해 경기 과천과 시흥,수원을
도성과 연결하고, 충청과 전라로까지 나갈
수 있는 길목이옵니다. 한성으로 통하는
한강 나루터 중에서도 상류의 한강진 하류와
▲ 노들나루가 표기되어 있는 조선 시대 지도
ⓒ동작뉴스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3736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인구가 많아졌습니다. 그에 더불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유흥 거리인 오락실이나 술집,
저렴한 가격의 분식집이나 일반 음식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 한 가득입니다. 덕분에
학생들이 아닌 일반 주민들도 소비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노량진이 지금은 제가
맡고 있는 관악구 소속이지만, 이제 새로운
구를 신설하여서 분리될 예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제 관할 구역이 아니라
뭐라 이야기하기 어렵겠지만, 각하께서
신설되는 구를 맡는 청장에게 노량진에
관해 이야기해주심이 어떨지요? 노량진은
분명 지금보다 더 커지고, 더 활발해질
것입니다. 각하가 꿈꾸는 도시와 나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노량진이 꼭
필요할지도모릅니다. 그러니 각하의 국정
계획에이곳을 염두에 둔 사항을 넣어두심이
어떨지 싶습니다. 주제 넘는 말을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국정에 참고하실 만한 일이
있으면 또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각하,
건강하십시오.
1979년 6월
이 가상 편지를 쓴 사람은 현재
노량진이 속해 있는 구인 동작구가 아닌
관악구청장이다. 실제로 노량진은 980년,
동작구가 관악구에서 분할되기 전까지는
관악구 소속이었다. 또한, 수산시장이
형성되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강북
중심가 일대의 학원들이 그 주변으로
내쫓기던 것도 모두 1970년대에 일어났던
일들이다. 물론, 독재 정권하에 대형 학원들이
강제로 타 지역으로 내쫓긴 것 자체는 부당한
사실이지만, 어쨌든 노량진은 이로써 지금의
학원가와 고시촌을 형성하게 됐다.
그 이후의 노량진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도다. 대치동을
중심으로 한 강남 대형 학원들의 성장에
비교적 약세에 접어든 적도 있었고, 또
2010년대 초반에는 공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지금은 재수생보다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이 많아졌다는
것 정도가 큰일이라면 큰일이었다. 그렇게
노량진은 과거 전략적 요충지에서 ‘공부의
메카’로 변한채로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 1971년 지금 위치에 터를 잡은 노량진 수산시장
참고자료
한국콘텐츠진흥원,
“노량진나루터”, http://goo.gl/q74fJv
“노량진 공시촌 블루스”, 『한겨레21』,
제837호, 2010.11.23  http://goo.gl/thu8v
가상 서한에 나와 있듯이 노량진은 고려
시대 때부터 백성들의 왕래가 잦았고, 강북과
강남의 중간에 위치해 조선시대에도 지리적,
상업적,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한강만 건너면 곧바로 임금의 거처로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니 두말 할 것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많은 이들이
이곳에 함께 머물며 (조선시대의 고시라할 수
있는) 과거를 준비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노량진에 학원이 몰려들고,
고시촌이 형성된건 언제부터였을까? 그
해답은 시간을 많이 건너뛰어 1970년대에서야
찾을수 있었다.
“각하, 관악구청장
강노량 보고 드립니다.”
각하, 관악구청장 강노량입니다. 수년 전,
각하께서 종로구를 비롯한 강북 도심지역이
그곳에 밀집한 대형 학원들 때문에 학생들로
시끌벅적했던 것을 타파하기 위해 그들을
중심부 밖으로 밀어낸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한샘, 정진, 대성 등의 그때 밀려났던 그
학원들이 지금 저희 관악구 노량진에 터를
잡고 지역 상권을 활성화시키고 있다는
보고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들 학원은 아무래도 노량진을
중심부에서 완전히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교통의 요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한반도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시발지라는 건 둘째치고, 한강 철교와 인도교,
또 몇 년 전에 개통된 수도권 전철 1호선까지
더해지니 학생들이 오고 가기에는 더없이
좋을 거라 판단한 듯합니다. 노량진에서
상도동을 연결하는 터널도 곧 준공될
예정이라 교통적인 측면에서 지금보다 더
발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시다시피 사실 노량진은 서울수산,
노량진수산(주), 삼호물산이 1975년
한국냉장(주)에게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
수산시장이 이미 잘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형 학원을 따라 학생들이 많이 몰려오니
이전에 비하면 지금은 말도 안 되게 유동
▲ 1974년, 지하철 1호선 개통 당시 사진
ⓒ동아일보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3938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시장경제까지 반영한 경제 질서까지 아우르는
근대 부흥을 향할 르네상스를 빛낸 정치력을
보였다.
정조가 수원화성을 건설하고자 한
이유는 많은 문헌들과 연구로 남아있지만
그가 원했던 것은 양반 몇몇의 세력사회가
아닌 백성을 위한 강력한 국가건설이
아니였을까하는 추측을 조심히 해본다.
1800년,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그의 꿈도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양반
세도가의 사회가 되어 정조의 화성건설의
꿈을 저울질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서두른 것처럼 보인다.
노량진에는 강력한 국가건설의 염원을
담은 화성으로 향하는 그의 몇몇 발자취가
남아 있다. 현재의 나는 그가 꿈꾼 강력한
왕권이며 국가와는 동떨어진 한 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량진은 오히려 그런 그의 염원이
무색하게 백성의 꿈을 담아 공직에
종사하고픈 청춘들의 삶 하나로 채워지고
있다. 학원이 가득한 노량진이라는 외딴
섬에서 나는 정조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노량(노들나루)에 배다리를
건설해서 도하한 정조
화성으로 가기 위해서 가장 어려운 일은
한강을 건너야 하는 일이였다. 왕이 살고
있는 한양에서 화성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한강을 건너야하는데 보통은 배를 통해서
한강을 건넜다고 한다. 처음엔 뚝섬에
배다리를 놓고 건넜놓고 건너는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배다리는 수십 척의 배 위에
널판을 대어서 그 위를 지나가는 방법이다.
배다리설계와 건설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어 정조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맞아
함께 화성행궁을 한 기록이 [화성능행도]에
남아 있고 그 중 <노량주교도섭도>을 통해
수십의 배 위에 다리를 놓아 행렬한 모습이
남아 있어서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그만큼 노량진에 배다리를 놓는 것은 당시의
기술로는 파격적인 일이였다. 여러 사료의
기록에 의하면 노량배다리는 한강철교와
한강대교 사이에 놓아졌을 거라고 하지만
▲ 왼쪽 <노량주교도섭도> 용산쪽에서 본 모습으로 	
노량행궁, 오른쪽 (현재의 용양봉저정)과
노량진 나루터
“진실이 아닌 게 없는 과거가 지나간 자리”
“근대 문명의 하나인 경인선 철도의 시발점”
현재는 바쁘게 지나간다. 누군가의 삶이 지고
피고 또 새롭게 태어난다. 노량진의 삶은
정체된 듯 보이지만 나는 이 노량진이 역사
속에서 과거, 현재 그리고 나를 잇는 무언가가
있는 곳이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노량진에는 정조가 남긴 몇 안되는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
장소를 탐험하기로 했다.
과거, 노량진 그리고 현재
노량진은 참 신기한 곳이다. 아침 이른 시간
노량진역으로 향하면 역사로 연결된 허름한
육교를 사람들이 표정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직장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
있는가 싶고, 편안한 옷차림에 백팩을 둘러맨
젊은 사람들도 보이고 두꺼운 책을 가슴에
안고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도보인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노량진’이였다.
노량진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여행하다 1편
<정조와 화성행궁길>
기사: 서은진
언제나 ‘노량진역’을 시발점으로 다른 곳으로
향하는 나에게는 그런 그들의 바쁜 발걸음이
의문으로 남았다. 공무원시험의 메카로
알려진 노량진은 저렴한 물가로 유명하고
컵밥거리라고 불리는 노점상이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어떤 역사가 있었다. 노량진은 1897년
우리나라 철도의 시발점인 경인선 철도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정조의 효심과 화성행궁,
노량진을 경유한 역사의
흔적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서
재위기간 동안 총 13회 행궁을 하였다고
역사적으로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정조는
조선조 마지막 왕조부흥의 모색했던 초월적
군주로 알려져있다. 그는 왕권을 확립하고
지방사회를 포용한 사회통합을 모색했으며,
18세기 급격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 1897년도 경인선 개통 당시의 철도 모습 (노량진역)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4140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나타날 것만 같은 울창한 숲이였다고한다.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의 현륭원으로 가는
정조의 어가는 한번쯤 쉬어 가야 했으나, 숲이
우거진 이 지점에서 쉬기란 적적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정조는 “이곳에 장승을 세워라.
하나는 장사 모양을 한 남상 장승을 세워
천하대장군이라 이름을 붙이고 또 하나는
여상을 한 지하여장군으로 하여라.” 하고
명하였다. 어명으로 곧 두 개의 높다란 장승이
세워지게 되었고 현재의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
참배 길에 이 장승 앞에서 어가를 멈추고
쉬었다.지금도 장승백이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지키고 있다. 사람들은 이 곳을
무심히 지나치지만 누군가는 멈추고 과일을
바치기도 한다.
▲ 전설처럼 남은 장승백이역의 장승들
여정의 끝, 그리고 나는......
아마 정조는 여기 잠시 쉬어가고 길고
긴 능행길을 채찍했으리라 여기서 다시
번대방길(지금의 대방길)을 통해 까마득한
화성까지의 길, 노량진에서의 여정은 이렇게
끝이 나는 것 같다. 화성능행길에서 노량진은
겨우 10분의 2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 짧은
길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조는 한강너머에서
지친 몸을 늬울 장소로 노량행궁을 만들었고
숲이 험하고 맹수가 있는 장승백이에는
장승을 세우라 했다.
몇백 년의 시간을 지나서 사람들은
정조가 남긴 능행길을 연구하고 남은 흔적을
찾고 있었다. 나는 과거와 완전히 동떨어진
역사속 정조의 흔적에서 그냥 공시족의
메카라고만 알려진 노량진에서 다른 모습을
보았다. 나는 현재에 있지만 정조는 과거에
있다. 몇백년의 시간을 넘어서 같이 장소에
서있다. 오롯이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상관없이 그냥 똑같은 자리에
나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있었던 곳,
그렇게 과거와 현재는 시간은 제멋대로
흘러가고만 있었다.
정확한 위치에 대한 표식도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노들역에서 노들나루의 비석을
보면서‘그냥 이쪽이였겠구나’하는 추측을
할뿐, 도로와 여러 가지 시설로 가려진 한강을
어렴풋이 바라본다. 지금은 그냥 멀리 한강
너머로 고층아파트와 지나가는 차들이 과거로
회귀하는 길을 막아서고 있다.
노량배다리를 건너
하루 쉬어갔다는
용양봉저정(노량행궁)
노들나루 맞은 편에 행궁 중에 하루
쉬어갔다는 용양봉저정이 쓸쓸하게
집한 칸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정조와 인연이 있을곳인지
알 수 없는 용양봉저정은 김흥도가 그린
<노량주교도섭도>에 남겨진 노량행궁의
규모와 비교해서 초라하기 그지 않다.
이 곳에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며 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200년이 훌쩍 지난 후, 완전히 그
모습을 탈바꿈한 용양봉저정이지만 그 앞에
서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행궁길의
피로를 푸는 한 남자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용양봉저정에서
만안고개를 통해 장승백이로
용양봉저정에서 사실은 상도터널을 통해서
장승백이로 가는 길이 정조의 능행길이였지만
나는 노량진의 현재를 누구보다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노량진역으로 해서 차도가
이어진 큰 길을 통해서 가기로 했다.
노들쪽의 한산하고 조용한 느낌과 비교해서
노량진역으로 오면 올수록 왁자지껄한
사람들과 큰 학원가 건물, 활발한 노점상 등이
눈에 띈다.
수백 배는 빠르게 시간이 흐른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한 노량진역
근처의 학원가의 모습, 초라했던
노들나루와용양봉저정과 비교해서 사람의
냄새가 난다. 이렇게 사람 많은 노량진을
지나서 다시 조금 한산해지는 장승백이역으로,
정조와 관련된 설화가 남겨진 곳앞에 섰다.
당시 장승배기 일대는 낮에도 맹수가
▲ 한칸만 쓸쓸히 남은 용양봉저정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4342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이곳은 사육신묘가 있는 곳인데요, 경사
길을 올라가다보면 두 갈래 길 중 오른쪽에
있습니다! 참배시간, 즉 안에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은 동절기의 경우 9:00 ~ 17:00, 해가 긴
하절기의 경우 9:00 ~ 17:30 입니다. 안에는
아래처럼 세면에 각각 사육신 선생님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제 사육신묘에서 나와 왼쪽 길로
올라가보니 또 두 갈래 길이 나왔습니다! 왼쪽
길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건물이 하나 보이는
데, 사육신 역사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사육신역사관에서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데요,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공부장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옆의 샛길을 따라가다 보면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운동
기구들과 배드민턴을 칠 수 있는 장소가
제공되어 있으니 체육활동을 하고 싶다면 이
곳에서 가볍게 운동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육신 공원 안에는 또 다른 자랑거리가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전망대입니다!
전망대에 도착하면 서울의 모습이 아주
아름답게 펼쳐져 있습니다.오른쪽을 보면
한강이 보이고, 정면에는 63빌딩이 그
위용을 보여줍니다. 저는 낮에 갔지만, 저녁
야경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 사육신묘가 있는 곳
▲ 사육신역사관 전경
(사진출처 : 아시아경제 신문기사)
노량진에는 대부분 고시생활이나 대입시험을
위해 많은 1인 가구들이 거주한다. 1인
가구들이 자신만의 생활 때문에 매우
바쁘지만 가끔씩 그들만의 생활을 영위하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노량진 특성상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 다른 지역에서
노량진으로 온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량진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특히
1인 가구는 혼자이기 때문에 노량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렵고 혼자서 여가 생활을
영위하기도 힘들다. 이러한 노량진에 거주하는
1인 가구들을 위한 정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조용히 자연과 함께 쉬고
싶을 때: 사육신 역사공원
노량진에 거주하시는 여러분들이 대부분
볼 수 있는 큰 종로학원에서부터 걸어가
노량진 핫플레이스를
다녀오다
기사: 김나영
보았는데요. 더운 금요일 오후3시에
걸어가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1호선 노량진역 1번출구로 나와서 직진으로
쭉 약 6~7분 걸어가니 어느새 사육신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약간의 경사길이 있었지만 충분히
걷기에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위로 조금만
올라가다보면 옆에 조그마한 풀 숲 속에
아기자기한 돌계단도 있었는데요. 저는 그런
길을 좋아해서 그길로도 나가봤습니다. 결국
경사길과 만나긴 했지만 돌길이 완전히 숲에
들어온 느낌이라서 좋았습니다! :)
▲ (위)사육신공원 올라가는 길
(아래) 돌계단이 놓여있는 산책로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4544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첫 컨텐츠 제작 그 막중한
임무를 맡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노량진을
열심히 탐사하다가 의문의 명함을 하나 받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적힌 건 공연날짜와 장소, 그리고
뒷면엔 공연순서였습니다. 날짜는 6.16(화)
오후 8:00, 장소는 노량진 요거프레소 라고
되어있었는데요. "요거프레소는 유명한 카페
아닌가?"라는 의문과 함께, 노량진에서도
이런 공연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는 순간 이였습니다. 저는 들뜬
마음으로 서둘러 인터뷰질문지 작성 후
공연날인 6월 16일에 찾아갔습니다.
노량진에 에너지를
전달하고파.
the avec과의 만남
취재/사진: 차붐
▲ 의문의 명함 앞
그 곳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이미
공연 준비가 한창이였는데요. 외부에서
팀원들과 잠시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커피숍 내부의 테이블과 의자를 돌려다
함께 볼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 이 공간에
들어서니 공연을 기다리는 노량진 청년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공연 팀의 열정에 찬
눈빛이 맞닿으면서 내부를 밝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 빛을 보며 가슴속 깊숙이 숨어있던
제 열정도 밝은 빛을 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청년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잠시 멈추고,
간단한 팀 소개 및 공연소개 후 the avec팀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내부
2. 나 혼자 신나게 놀고 싶을
때: 1인 노래방(코인 노래방)
24시 코인 노래방은 금요일 오후 4시쯤에
방문했는데요,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3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노래방을
가고 싶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코인 노래방에 저도 한 번 체험하러 들어가
보았습니다.
코인 노래방 내부는 약 두 명에서
세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형식입니다.
지하이고 여름이라서 더울 수도있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방 안에는 에어컨도
나오고 선풍기를 틀 수 있어서 시원하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가격은 2곡에
500원으로 매우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3. 오늘만은 고급스럽게 먹고
싶다!: 노량진 수산시장
세번째 <노량진 핫플레이스>는 노량진
수산시장입니다!
노량진수산시장은 노량진사람들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아직 학생인지라 회를 사먹을 수는
없지만 가격과 다양한 해산물들을 구경하기
위해서 방문했습니다!
노량진수산시장 입구는 노량진역에
매우 인접해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여러 수산물 상가들이
즐비하고 있습니다. 위층계단에서 보면 굉장히
넓게 분포되어있습니다.
지나가다보면 요즘 새우가 제철인지
새우들이 종류별로 늘어져있습니다. 가격이
궁금해서 4인으로 어느 정도 가격이냐고
여쭤보니 좋은 물고기 3마리와 연어로
4만원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거절하고
나왔지만 그 긴 길목을 지나가면서 수많은
가게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가게로 오라고
손짓하셨습니다. 나오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다시 들려서 회를
먹고싶었습니다!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4746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avec페이지에 공연날짜를 공지
중입니다. 당일에는 공연순서 대기하고
있는 팀원들이 거리에서 명함을
나눠주면서 홍보하고 있어요.
Q.
노량진이라는 공간이 청년들이 많이
있지만 우울할 수 있는 공간인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연하시나요?
A.
일단 말마따나 젊은 사람들이
많잖아요. 공부하러 올라온 사람들도
많고..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모이면
홍대, 대학로처럼 번화하기 마련인데
노량진은 이상하게 침울한 뉘앙스가
풍기는 촉박한 땅인 것 같아요. 그런
공간을 우리가 서로 공감하는 느낌을
보여주면서 에너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팀원들 모두 음악을
좋아하고 하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노량진 공간에 무대가
주어진다는 것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도
갖고있습니다.
Q.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의미를
가슴속에 품고 있네요. 혹시 그런
에너지를 받아 음악을 맘속에만 품고
있던 노량진 청년들이 음악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나 팀에 들어오는 법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A.
앞서 말씀 드렸듯이 교회에서 부터
시작된 팀이다 보니 찬양 팀에 먼저
오셔야 해요(웃음).
강남교회 청년1부 2시50분
예배 오시면 됩니다!
Q.
the avec라는 팀이 있지만, 혹시 또
다른 팀이 있나요?
A.
아까 피아노 치던 ‘노래하는 감자’ 그
친구는 유재하경연대회에서 대상 탄
친구거든요. 현재 혼자로도 아티스트
활동 많이 하고 있는데 저희와도 같이
하고 있어요.
Q.
노량진에서의 공연이라는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A.
이 질문에서 많이 생각했었어요.
(소리)
(리더)
(소리)
(리더)
(리더)
▲ The avec 공연모습
좋은 노래들을 1부, 2부로 나누어
불러주시고는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함께 멋진
공연도 끝이 났습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팀원들에게 다가갔는데요, 사전에 흔쾌히
인터뷰 허락을 해주셔서 어렵지 않게 the
avec의 '리더(문지훈)'님과 보컬 '소리'님을
인터뷰 할 수 있었습니다.
▲ 소리님(좌), 리더님(중), 차붐(우) 인터뷰모습
Q.
안녕하세요! 저는 대방동에 있는
무중력지대에서 노량진 탐사대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차붐이에요.
the avec란 팀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A.
저희 팀은 노량진 강남교회
찬양팀에서부터 시작된 팀인데요,
avec란 이름이 아름다운 백성이라는
의미가 있고 불어로써 함께하자는
의미도 갖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하자는 의미로 avec라는
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노량진
청년들아 함께하자는 의미도 될 수
있겠네요(웃음).
Q.
첫 공연은 언제 하셨나요? 공연날짜는
어떻게 정하세요?
A.
첫 공연은 4월말 이였어요.
언제였더라...?
4월26일이요!
공연날짜는 팀원 개개인 스케줄에
맞춰서 하다 보니 큰 의미는
없었어요(웃음). 페이스북 the
(리더)
(리더)
(소리)
(리더)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4948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얼마나 더 의미 있게 잘 버티고 잘
살아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까요?
예전에 저에게 많은 의미를 주었던
한마디가 있어요. ‘넘어진 곳에서 주울
수 있는 것들을 다 주워라’ 넘어진
곳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일어 섰으면
좋겠어요.
멋진 인터뷰와 함께 the avec과의
시간도 끝이 났는데요. 열정 가득한 목소리로
노량진에 에너지를 전파하고 싶다는 the avec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다음 공연도 꼭 참석하고 싶네요!!
the avec 팀의 다음공연이 궁금하시거나
더많은 정보를 원하신다면 http://facebook.
com/theavec1로 가시면 함께 소통 하실
수있습니다!
▲ the avec 단체사진!!
(리더)
에필로그
노량진에서의 지친 일상에 도피하듯지원했던
노량진 탐사대, 그 첫 컨텐츠로 운명처럼
the avec를 만나게 된 것 같다.
그들이 불러주는 노래는 기교 섞인
가수들의 노래가 아닌 노량진 청년들의
풋풋함과 진심이 담겨있어 더욱 와 닿았다.
이렇게 밝은 빛이 넘치는 청년들이
사는 노량진이 어쩌다 빛을 잃게 되었는지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공부하는 자식을
둔 수많은 부모들의 간절한 바램과 소망이
오히려 노량진 하늘을 뒤덮어 빛을 잃은 것
일까. 아니면 그 바램이 노량진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우리사회가 이미 어두운 것 일까?
많은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노량진 탐사대원으로써 작은
성냥불이되어 이곳을 밝혀나가고 싶다.
노량진엔 정말 청년들이 많아요
공부하러 온 친구들이 많겠지만,
사람이 공부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그런 청년들이 누릴 문화시설이
너무나도 부족하다고 느껴요.. 노량진
주민으로써도 그렇고요. 그래서 이
곳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청년들에게
에너지를 주고 문화컨텐츠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그럼 노량진 주민으로써 좋은 점이나
바꾸고 싶은 점들이 있나요?
A.
노량진은 정말 값이 싸요.
대중교통이 정말 편리해요
1호선 9호선 다 있고 좋아요.
노량진에서 공부하러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군대에서 봤던
선후임들도 만나게 되더라고요. 어떤
만남의 장이라고 할까?
저도 비슷하게 노량진에 있으면서
인맥의 스펙트럼이 넓어 진다고 해야
할까요? 노량진 동에 살면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교회에서 만나다 보면 얘기할 기회도
많고 관계도 많아지다 보니 인맥구축에
좋은 것 같아요.
(리더)
(소리)
(리더)
(소리)
Q.
장점들이 많이 있네요. 다른 나쁜
점이나 바꾸고 싶은 점은 없을까요?
A.
청년들이 누릴 공간이 너무 없고 거리에
쓰레기.. 그리고 간판이 잘 정비가
안돼있는 느낌이라 보기에 깔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지나다니는 사람들 자체가
위축되어있고 친구들한테 ‘나 노량진
살아’ 이러면 ‘거기 사람도 살아?’ 이런
반응이에요.
Q.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힘이 될 수있는
한마디씩 해주시겠어요?
A.
음.. 제 생각엔 요즘 청년들이 많이들
고통 받고 있잖아요. 취업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한
얘기일 수 있지만, 그 고통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특권이 아닐까 생각해봐요.
사람은 고통 없이 너무 행복하기만 한
공간에 있으면 오히려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고 해요. 어느 정도 고통은
인간에게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그 고통을 겪는 시간을
(리더)
(소리)
(소리)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5150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힘들게 학교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다니던 학교를 포기하고, 자신의 꿈
혹은 이상을 위해 돈이나 시간 등을 투자하여
보다 발전된 삶을 살아가려는 젊은이들이라는
것이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반수생을 '사회적
낭비를 조장하는 이들' 이라는 부정적
시선으로바라보기도 합니다. 바로 ‘사회적
비용’ 때문인데요, 반수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까요?
이처럼 대학교 등록금과 더불어,
반수생들이 다닐 재수학원의 학원비는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반수생 중에는 대학 입학 전부터
다시 수능을 볼 것임을 결심하고도, 현실적인
상황과 심적인 부담의 경감을 위해 소위
‘안전빵’으로 맘에 들지않는 대학을 등록만 해
놓는 학생들도 대다수 라고 합니다.
이런 반수생들은 첫번째로는 비싼
대학등록금을 내고 한학기만 흐지부지
다니다가 다시 재수학원 비용을 지불하는
식의 비용적인 낭비를 유발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반수생들이 임시방편으로 등록해
놓은 학교가 다른 학생들에게는 큰 교육의
기회였을 수 있었다는 면에서는 사회적인
인재 발굴의 효율성을 저하시킨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렇게 반수생에 대한 여러 가지
사회적 시선들이 존재하는 중에, 저는 문득
노량진에서의 ‘실제 반수생’은 이러한 사회적
시선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또한 그들의 반수생으로서의 삶은 어떤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제
노량진에서 반수 중인 A양을 찾아가 직접
인터뷰를 해 보았습니다.
▲ 2014 대학교 연평균 등록금 순위
(1-10) (출처: 대학알리미/ http://freest80.
blog.me/220395162745)
▲ 2015 재수(반수)정규반 학원비
대부분 대학의 여름방학이 시작된 7월,
sns에는 수 많은 피서지에서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즐거운
사진이 올라오곤 합니다. 그러나 한편, 1학기
내내 즐겁게 활동했던 sns를 비활성화하고
노량진에 발을 내딛은 대학생들이 있습니다.
바로 ‘반수생’들인데요.
이들은 일정한 기간 대학 생활을 하다,
다시 수능을 보기 위해 노량진 학원가로
몰려든 청년들이라고 합니다. 저는 ‘재학생’과
‘n수생’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있는 그들은
누구인지와, 그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들, 또
개인적으로 그들이 이렇게 늦은 시기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사연과, 지금 노량진에서
그들의 삶은 어떠한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반수생',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젊은이들.
기사: 엄지민
▲ 노량진의 반수반 모집 학원 배너들
반수란 일정한 기간 대학을 다니다가
다른 대학을 가기 위해 현재의 대학생활을
지양하고 다시 수능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재수나 삼수와 같은 n수는 대학을
다니지 않고 전년도에 이어 계속 수능을
준비하지만, 반수는 대학생활을 일정기간 하고
다시 수험생활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n수와
구분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반수생이 수능장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비율을 차지할까요?
위의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체
수능응시생 중 20퍼센트 이상이 졸업생이고,
졸업생 중 절반 정도의 비율을 반수생이
차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체 수험생 중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반수생들에 대해서,
사회적으로는 두 가지 평가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좆아 다시 도전하는 청년들’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입니다.
▲ 평가원, 헤럴드 경제 기사 참고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5352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가끔 쉬고 싶을 때 빼고는 그 점에서는 별로
힘들진 않아요.
Q.
재학생이나, n수생은 이르면 12월부터
시작하기도 하는데, 반수생은 훨씬 늦은
7월에 시작하잖아요. 혹시 시기적으로
다른 수험생보다 늦게 시작했는데,
시간적인 압박감은 없나요?
A.
엄청나죠. 일단 놀다가 공부를 시작하니
공부 내용을 완전히 까먹어버렸어요..(웃음)
다시 개념익히고 감까지 익혀야 하는데
7월에 시작하는건 엄청 촉박해요. 그리고
학원 선생님들도 그러고 수능 관련해서
인터넷 사이트를 들어가도 반수생 시간 엄청
부족하다고 그러니까 뭔가 더 불안해요.
빨리개념 익히고 약점 위주로 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부해야죠, 뭐.
Q.
여러 고민을 하시는 것 보니, 반수전과
지금 반수하고 있는 중의 마음이나
생각이 변하셨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A.
반수 전에는 반수하기로 마음 굳혀서 그런지,
학교 기말고사도 싫고 빨리 반수해서 더
좋은 대학 가야지 이런 생각이 많았어요.
기말고사 끝나고 반수 시작하기 직전에는
또 괜히 불안하고 걱정되고 그랬고요. 근데
또 막상 시작하니까 그냥 적응하고 생활도
단조로워지고 맘도 편안해지고 그래요. 근데
이러다가도 수능이 무섭고 불안하고 이러면
학교로 돌아갈까 생각도 들고, 너무 내 인생의
일부를 낭비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무휴학 반수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그냥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이 들어요.
Q.
혹시 다니던 대학에서의 생활이나
교우관계에 대한 미련 때문에 힘든 점은
없었어요?
A.
일단 교우관계는 별로 크게 넓거나 깊지
않아서 전혀 신경쓰이는 건 없었어요. 근데
가끔 학교가 그립긴 해요. 그것도 수험생활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만 가끔 그러는
거라서.. 큰 미련은 없어요.
Q.
덤덤하시네요. 아, 작년에도, 올해에
도 노량진에서 공부하시는데, 노량진에
서 공부하면서 좋은 점 혹은 나쁜 점
Q.
반수를 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A.
대학 생활이 제가 상상한 대학 생활이랑
너무 달랐어요. 우선 여대 특유의 분위기도
저랑 조금 맞지 않았어요. 그것 때문에 학교에
적응하기 힘든 상태에서, 과 자체도 적성에
너무 안맞더라고요. 제 대학이나 과가 제가
원했던 곳이 아니라, 작년 수능 성적 맞춰서 갈
수 있는 최선의 대학에 넣은거였어요. 처음에
학교에 붙었을 때는 그냥 마냥 기뻤죠. 근데
시간이 지나고 수업을 들으면서, 수업이 저랑
너무 맞지 않으니까 그때부터 고민되더라고요.
과연 내가 이 과에서 4년을 버틸 수 있을까. 또
이런 적성적인 문제와 더불어 성적에 미련도
사실 있었죠. 재수까지 열심히 했는데, 공부한
만큼 성적이 덜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청 복합적인 이유죠(웃음) ‘삼’반수라는
재수때와 다른 부담감도 있었고, 놀다가 다 시
수험생을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는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기로 했죠, 뭐. 이렇게 선택하고 만약
실패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냥 미련
없애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근데
그 전까지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반수를 결심하기로 하니 대학 이름 자체에도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Q.
대학 다니다가 수험생활로 돌아가니
어때요?
A.
일단 처음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첫
번째로 몸이 너무 힘들어요. 아예 생활 리듬이
통째로 바뀌니까요. 대학 다닐 때는 2시
취침에 10시 기상하다가 학원 들어오고는
12시 취침에 6시기상.. 진짜 처음에는
아침마다 죽는 줄 알았어요. 아침마다 졸고, 또
소화도 잘 안되고.. 어쨌든 몸이 적응하는게
가장 힘들었죠. 근데 지금3주 지나고 나니까
또 적응이 되가는거 같아요. 음 그리고 막
주위에서 놀다가 공부하니까 놀고 싶지
않냐고 묻기도 하는데, 저는 오히려 재수 때
보다 놀고 싶다는 생각은 덜 들더라고요.
대학을 가보기 전까지는 ‘대학 가면 어떻게
놀까..? ‘대학에선 진짜 재미있게 놀겠지?’
이런 호기심 비스무리한 생각들에 더
대학가고 싶고, 대학 간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는데, 막상 대학 다녀보니 별거 없더라고요.
놀거 다 놀고 별거 없다는거 알고 공부하니까
그다지 대학생 친구들도 부럽지도 않고, 그냥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5554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혼자 공부하면 계속 아는 것만 반복하게
되거든요. 괜히 돈 아낀다고 흐지부지 시간
낭비하는 것 보다는 어짜피 할거 제대로
조금 비용 들여서 하는게 결과적으로는 대학
가는데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만약에, 아주 만약에, 반수에
실패하는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나요?
A.
당연히 있죠. 늘 생각해요. 불안하죠. 그래도
지금은 그냥 실패해도 가치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려고요. 최소한 ‘더 해볼걸’하는
미련이나 학교 간판에 대한 미련은 없앨 수
있는거니까요. 다시 돌아가면 ‘그래도 해볼건
다 해봤으니까’ 하고 그냥 다니던 학교에
만족하려고요.
Q.
반수는 ‘꿈을 위한 도전’이다. vs
‘사회적 낭비’다.
A.
낭비죠. 사실 웬만하면 그냥 학교
들어가서 적성이 완전히 다르지 않는
이상 욕심 없이 적당히 잘 지내고, 만
족하면 그게 자신 스스로에게도, 사회
적으로도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욕심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시
많은 비용을 들여 공부를 하는거잖아
요. 심지어 잘된다는 보장도 없어요.
물론 꿈이나 도전도 좋지만, 자기가 조
금만 욕심을 줄이고 스스로 만족을 하
는게 제일 나은거 같아요. 그니까, 반수가
최선은 아니라는 거죠.
Q.
그러니까 반수가 개인의 욕심의 문
제라는 건가요?
A.
개인의 만족의 문제죠. 근데 그게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문제기도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학벌 무시할 수 없잖아요.
아니 사실, 매우 중요하잖아요. 이런 사회적
현실에서 사람이면 당연히 학벌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거니까요. 그런데, 제 말은 그
문제가 온전히 사회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거에요. 왜냐면 사람마다 기준이 너무 달라요.
만족하는 정도, 그니까 욕심이 다 다른거죠.
사람마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도 만족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고, 지금 여기서 반수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거잖아요. 예를 들어 저희
학원 반에도 서강대 다니다가 반수하는
친구가 있어요. 저였으면 서강대에서 반수
안해요. 근데 그 친구는 거기서 만족 못하고
이 있나요?
A.
일단 나랑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많으니까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요.
그리고 63빌딩과 한강경치가 잘 보인다는
점도 큰 좋은 점이에요. 힘들 때 마다 옥상에서
좋은 경치 보며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정말
많이 위로가 되거든요. 안 좋은 점은 비올 때면
수산시장 비린내가 너무 심하다는 점. 그리고
주말 식사 시간에는 외출해서 밥을 먹을 수
있는데, 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복잡한
점인 것같아요.
Q.
오.. 여러 이유들이 있네요. 이제 학원
관련된 질문들을 할텐데요, 우선 왜
굳이 재수종합반을 선택했나요?
단과라든지 독학의 방법도 있고, 또
요즘에는 인터넷강의도 많이 활용할 수
있을텐데요.
▲ A양의 평일 반수 일과와 수칙
A.
의지력이 엄청나게 뛰어나지 않는 이상
혼자 하면 망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도 혼자하는 친구들을 보면 저 말이
사실이고요. 학원 다니다가 중간에 혼자
한다고 나간 친구들 조차 혼자 하면 엄청
풀어지더라고요.. 저는 의지가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고, 혼자 할 자신도 없어서 그냥
학원에 들어갔어요.
Q.
그렇긴 하지만, 300만원 상당의 학교
등록금이나, 매달 100만원 이상의
학원비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수종합학원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A.
사실 학교 등록금은 아빠 회사에서
나와서..(웃음) 별로 부담 없었어요. 그래도
학원비에 대해서는 많이 갈등했어요. 작년에
재수하면서 너무 많은 돈을 써서 부담이
되었거든요. 근데 그런 비싼 학원비를
내더라도 학원에 다니는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남은 시간이 없는
반수생에게는 효율적인 공부가 필요하거든요..
학원에 있으면 의지 측면에서도 많이
도움되고, 또 강의도 모르는 부분을 채우는
식으로 해서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어요.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5756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나는 노량진 2동에 자리 잡아가고 있는 20대
청년이다. 꿈과 직장을 찾아 작년 여름 서울로
올라왔고 우연히 노량진에서 서울드림을
시작하였다. 어느 덧 노량진에서 산지 1년.
혼자 살아가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하나 둘 씩 생겨난다. 가장 아쉬운 점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온다. 같은 고민과
아쉬움을 가진 1인 청년 가구들과 '먹는 것'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논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아가고싶다.
우선 첫 시작은 노량진 일대의 청년들의
‘식생활’을 소개하고자한다. 노량진 하면
제일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컵밥이다. 빠르게 조리되어 먹을 수 있는
간편함, 3천원이면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저렴함 등 많은 청춘들이 한 끼 식사로 컵밥을
선호하고있다. 하지만 노량진 청년들이 컵밥만
주구장창 먹으며 공부하진 않는다. 그럼
노량진 청춘들이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지
그들의 식문화를 알아 보자! Let's Go!
노량진은 행정구역이 1동과 2동으로
나누어진다. 노들역~노량진1/9호선 및
장승배기 부근까지가 포함된다. 노량진 1동은
대체적으로 지하철역과 가깝고 대부분의
학원들이 밀집해 있다. 학원을 따라 컵밥
노점과 음식점들도 즐비하다. 이 많은 메뉴들
중 어느 것을 먹을지 고민하고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노량진에
살고 있는 나의 ‘밥’ 기준은 간단하다. 안/밖
첫째로 가게 안에서 먹는 음식이냐, 가게
밖(즉, 길거리)에서 먹느냐 하는 것이고 두
번째의 의미는 집 안에서 먹느냐(손수 해
먹느냐), 집 밖에서 먹느냐(외식)의 기준이다.
첫 번째, OUT
가게에서 먹는 것
노량진 1호선 앞 맥도날드를 뒤편으로 꽤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맥도날드,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점을 비롯하여 프랜차이즈
식당(백종원씨 체인점, 유가네 닭갈비, 놀부
부대찌개 등)과 백반 위주의 고시식당, 고깃집
등 다양한 가게들이 자리해있다. 다양한 가게
수만큼 메뉴 선택권도 넓다. 가게형 컵밥
노량진 1인 가구를
위한 식문화
기사 :김아리
반수하는거죠. 결론적으로, 반수가 온전한
사회적 문제는 아니라는 거에요. 개인의
욕심문제도 크죠.
Q.
반수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시네요.
그렇다면 반수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하실지 궁금한데요.
A.
욕심, 미련, 불안 그러나 희망. 지금은 그렇게
좋게만 보이지는 않네요(웃음)
Q.
그렇다면, 혹시 반수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한마디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이러다 망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막상 시작하면 그냥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안 해보고 후회하느니
하는 게 나을 것 같고, 또 모든 경험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들 망설이지 말고 같이
해봐요!
반수생에 대해 세간에서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그러한 말들은 반수를 하려는 학생,
그리고 반수를 하고 있는 학생의 실제와는
동떨어진 이야기 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수생, 그들은 그저 우리 모두와
다르지 않게 그저 자신의 삶을 찾아가고
있는 청년이며,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 중 하나일 뿐
인 것이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찾는 과정을 놓고 사회적 잣대를 들이대며
평가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것 아닐까요?
혹시, 앞으로 반수생을 마주친다면,
‘꿈’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올려다 보거나
‘사회적 낭비’라는 부정적인 단어로 내려다
보지 말고, 그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환하게
활짝 한번 웃어주고, 등 한번 토닥여 주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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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지대 대방동] 노량진탐사대, 구석구석 노량진 이야기

  • 1. 고 시 원 노량진탐사대 매거진 Vol. 1 구석구석 숨겨진 노량진 이야기 WWW.YOUTHZONE.KR 문의 geum_siru@youthzonek.kr / www.youthzone.kr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 10(대방동) * 이 책의 저작권은 무중력지대 대방동에게 있습니다.
  • 3. 32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① Prologue 들어가는 말 여러분들은 '노량진'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세요?  츄리닝 차림을 한 고시생들이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새벽의 어두운 골목길을 빠져나와 학원으로 향하는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노량진엔 고시시험 합격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국에서 몰려는 청년들로 가득합니다.  고시생들의 작은 섬이라고 불리는 노량진. 매스컴에서는 생기없는 고시생들이 가득한 암울하고 차가운 곳이라는 말로 노량진을 소개하기도 하고,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고 노량진에 온 청년들이 있는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일부 매스컴에서 소개하는 노량진 청년들의 단편적인 모습(우울하고, 암울한, 안타까운 청년들의 모습)들이 노량진 청년 전체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우울하고 불안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꿈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청년들도 있을 것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의 표정에는 불안함이 가득한 표정만 있는 것이 아닌, 단단한 의지와 결의가 보여지는 표정을 한 청년들도 보입니다. 노량진청년들을 보면서, '수 많은 청년들이 왜 노량진에 몰려들 수 밖에 없는 지' 궁금했습니다. 알고 싶었습니다. 노량진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취업시장이 갖고 있는 불안감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각자 고시시험 합격 말고도, 다른 꿈들을 갖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하게 된 배경이 있지 않을까요. 하루에도 몇십 명의 사람들이 드나들고, 또 빠져나가는 곳. 노량진을 찾은 청년들이 생각하는 노량진의 모습은 어떠한지, 얼마나 노량진에 있고 싶은지, 또 언제 가장 노량진을 벗어나고 싶은지 궁금했고, 알고 싶었습니다. 고시생 말고 또 어떤 것들이 노량진을 표현하고 있는지, 노량진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생활 정보와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슈들을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노량진을 같이 알아볼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지난 6월부터 시작한 1기에는 10명의 청년이, 2기에는 두 곳의 단체(트웬티스 타임라인, 고함20)들과 함께 노량진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노량진탐사대가 찾은 노량진의 모습은 어떤지, 어떤 정보들을 알려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자, 이제부터 책장을 넘겨 노량진을 만나보세요. 노량진탐사대의 활동은 2016년도에도 계속될 예정이니, 앞으로의  활동에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노량진탐사대 함금실 매니저 ① Prologue 들어가는말 ① Prologue 들어가는말
  • 4. 54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INDEX Prologue. 들어가는 말 무중력지대 대방동 소개 노량진탐사대 소개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노량진탐사대 어떻게 활동했나? 활동사진 2015년 한해동안 노량진에서 생긴 일 노량진탐사대 활동 톡 노량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노량진탐사대 기사 02p 06p 08p 09p 10p 11p 12p 14p 17p 19p Chapter 무중력지대 대방동 소개 노량진탐사대 소개2
  • 5. 76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② 무중력지대 대방동 소개 서울시 청년공간 무중력지대 대방동은 다양한 청년활동을 지원하는 커뮤니티 공간입니다. 청년들이 청년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성장해가는 공간이자 지역의 플랫폼이 되기 위해서 일, 모임, 공부, 취업준비, 문화, 창작활동 등 다양한 청년활동을 지원하고 협력하는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함께 할 동료를 만나 커뮤니티를 이루며, 생활속에서 지속가능한 변화를 꿈꾸는 대방동은 청년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청년들의 자유로운 활동과 생활의 안전망이 되기위해 만들어진 청년을 위한, 청년에 의한, 청년의 공간. 무중력지대 대방동. 무중력지대 대방동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더 다양한 활동 모습 및 내용들을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청년문제해결을위한 다양한청년활동이즐겁게펼쳐지는공간” ② 무중력지대 대방동 소개 무중력지대대방동 진행프로그램 노량진탐사대 지역탐사활동을통한 고시원,학원가등서남권청년공동체 생활이슈콘텐츠자료구축 15인의청년기자단(기수운영) 청년주간/청춘운동회 청년허브,청정넷,무중력지대G밸리등 서울시내주요청년기관들과단체 함께힘을모아청년이슈관련 다양한모임과행사를지역에서주최 서로서로클래스 청년활짝아카데미 청년들이스스로배움을향유하는 지식문화공동체로성장, 다양한전문강좌와의연결 공간이캠퍼스가되는프로젝트 청년사회적자본포럼 5개분야의사회적자본구축을위한 청년연구진들의리서치와토론회 무중력지대대방동사업의방향과 지역+청년의제를강화하는포럼추진 청년활동씨앗사업 청년스스로자기다움을발견하고 아이디어를실행으로옮기는 프로젝트경험기회제공 전문가워크숍,연수과정통한 청년활동인큐베이팅,20팀육성목표 청년활짝 커뮤니티 공간을기반으로관계를맺으며 함께일하고,공부하고밥도나누며 진정성있는동료문화를공유하는 청년활짝멤버십 정기적인네트워킹모임과행사지원 지역기반 청년자원구축 청년다움 프로젝트지원 청년활동 네트워크형성 ② 무중력지대 대방동 소개 ② 무중력지대 대방동 소개
  • 6. 98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탐사대가제작한 콘텐츠 ② 노량잔탐사대 소개 노량진탐사대는 노량진 지역을 기반으로 생활하는 청년들에게 유익하고 재밌는 생활정보 콘텐츠와 청년이슈를 발굴해 정보를 제공하는 지역기반 리서치 활동입니다. 청년이슈의 상징처럼 부상하는 노량진에서 다채로운 청년의 삶과 가능성에 주목하고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기 위한 정보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팀 프로젝트입니다. * 노량진탐사대의 기사는 무중력지대 대방동 홈페이지를 통해 더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무중력지대 대방동 홈페이지 > 커뮤니티 콘텐츠> 청년 라이프에서 연재 중) 노량진 생활문화 콘텐츠 고시생의삶 1인가구청년* 청년주거 노량진핫이슈/ 지역소식 ② 노량진탐사대 소개 Chapter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3
  • 7. 1110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노량진탐사대어떻게활동했나? 노량진탐사대 시즌 1: 2015년 6월 ~ 9월(4개월) 노량진을 함께 탐색하고자 하는 청년 10명과 함께 14건의 노량진콘텐츠를 발행했습니다. 콘텐츠 수 14건 콘텐츠 수 28건 노량진탐사대 시즌 2: 2015년 9월~ 12월(4개월) 20's Timeline (트웬티스 타임라인), 고함 20이 함께 28건의 노량진콘텐츠를 발행했습니다.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활동사진 5월 노량진탐사대 1기모집 9월 노량진탐사대 2기모집 6~9월 탐사진행/ 콘텐츠제작 9~12월 탐사진행/ 콘텐츠제작
  • 8. 1312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③ 2015년 한해동안 노량진에서 생긴 일. ③ 2015년 한해동안 노량진에서 생긴 일.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노량진에는1년동안어떤일들이있었을까? 1. 추억의 노량진 육교 철거 지난 1980년에 만들어진 노량진 육교. 35년 동안 노량진역 1호선과 9호선을 이어주며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었던 노량진 육교가 지난 2015년 10월 17일에 철거되었습니다. 세월의 흔적만큼 시설이 낡아 보수가 어렵고, 전동차의 진동과 흔들거림으로 건너가기 불안하다는 민원이 많아 철거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횡단보도가 육교를 대신해서 그 자리를 메워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노량진 육교가 사라진다는 소식은 아쉬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노량진 육교를 볼 수 없겠지만, 그곳을 지나오던 많은 사람의 가슴 한쪽에 오랜 추억거리로 기억될 것입니다. “1999년 봄 노량진역. 우리는 햇살을 받아 마른버짐처럼 하얗게 빛나는 육교 위에 앉아 농담처럼 그랬다. 되고 싶은 것? 대학생. 존경하는 사람? 대학생. 네꿈도, 내꿈도 그러니까 대학생” 작가 김애란의 소설 『자오선을 지나갈 때』에서 담아낸 노량진 육교의 모습이다. 35년간 제 자리를 지켜온 노량진 보도육교. 그 오랜 시간 동안 보도육교는 얼마나 많은 수험생들의 속내를 들어왔을까.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오늘의 위로를 찾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내일의 희망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렇게 노량진 보도육교는 공간이기 이전에 하나의 추억으로, 모두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노량진에는1년동안어떤일들이있었을까? 2. 노량진의 명물, 컵밥 거리 이전 노량진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컵밥 상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 쌀국수부터 폭탄밥, 김치볶음밥, 닭강정 등 2,000원~4,000원대의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컵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주머니가 얇은 고시생들에게는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노량진 1역 출구가 아닌, 반대쪽 공간(사육신 방향)으로 이동한 상태입니다. 이동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요. 노량진 컵밥 가게들의 손님이 늘면서 좁은 거리가 더 비좁아져 통행에 불편이 생기기 시작했고, 주변 상점들 간의 갈등도 오랫동안 마찰을 빚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문제해결 책으로 동작구는 2015년 5월 상인들과 협의해 특화거리를 추진했습니다. 또한, 컵밥 상인들은 매달 1인당 5만 원씩 역발전기금을 내놓는 방안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옮겨진 곳은 학원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고시생들의 발길이 많은 곳이 아니어서 이전보다 매출액이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요. 새로운 터전이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듯합니다. 노량진의 명물로 자리 잡은 컵밥 거리가 다시 예전처럼 활성화되어, 고시생들과 주변 상인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활기찬 거리로 재탄생하길 바라봅니다. 78쪽 ‘노량진 육교를 위한 마지막 송가’ 기사 中 일부
  • 9. 1514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매스컴에서 다뤄지는 노량진은 공무원 열풍, 컵밥 등 몇 개의 키워드로 규정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처음 언더랜드에 떨어졌을 때와 같은 생경함이 가득했습니다. 우연히 노량진탐사대 활동을 하게 되면서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청년들에 대해 이해하려 했고, 불확실한 시대에 불안한 미래를 담보로 각자 삶의 추를 움직여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아픔을 느꼈습니다. 노량진의 청년을 희미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는 활동이었습니다. 청년들이 더 이상 ‘안정’과 ‘열정’의 삶으로 평가되지 않기를 바라며 미완의 활동을 접어봅니다. 1기 노량진탐사대 서은진 노량진탐사대는 노량진의 이야기를 조사하는 모임과 구성원들을 말합니다. 서울로 올라와 동작구 노량진에 자리 잡고 살기 시작할 때, 동네에서 재밌는 일을 하고 싶어 찾아보던 중 '무중력지대 대방동'과 그곳에서 진행하는 '노량진탐사대'프로젝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이면서, 나와 같은 2030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활동이라니! 굉장히 재밌어 보여 앞뒤 보지 않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노량진탐사대는 4개의 활동팀으로 나눠서 활동했는데, 그중에서 저는 노량진 1인 가구 청년들의 식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1인가구팀’에서 글을 썼습니다. 청년들이 이곳 노량진에서 잘 먹고 사는지, 무엇을 먹고사는지 궁금했습니다. 탐사대 활동을 하며 나름 고민도 하고 노량진 마트 이곳저곳을 다니며 조사도 했습니다. 지금껏 쓴 글들을 보며 노량진탐사대로서 노량진 청년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다음 노량진탐사대 3기에서는 노량진과 청년에 관한 이야기, 이슈들을 사회에 던져주는 역할을 기대하며 앞으로의 노량진탐사대 활동을 응원합니다. 1기 노량진탐사대 김아리 TALK 노량진탐사대 활동 톡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어떤 곳을 찾아가서 살펴보고 조사한다는 탐험의 원래 의미처럼, 알고 있는 것 너머의 노량진을 오감으로 알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더 많은 노량진의 매력이 무중력지대를 통해 발굴되었으면 합니다. 트웬티스 타임라인 노량진 주변을 가끔 지날 때면, 뭐랄까 노량진은 조금 다른 공간으로 느껴졌습니다. 서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물가를 가졌으며, 소소한 놀 거리로 가득 차 있는 곳.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가득하고 시끌벅적한 곳. 그런데도 외부인에겐 상당히 음울한 곳으로 여겨지는 곳. 노량진이라는 공간을 다시 보고 싶었고 새로운 것을 읽어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뜻대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노량진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고함20 농구선수 취재나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노량진은 평범한 노량진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평소 무심히 지나치는 골목이나 공간,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었음을 일깨워준 곳입니다. 노량진 탐사대는 기자로서 지나치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어 앞으로도 계속 안고 가야 할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취재와 인터뷰에 응해주신 모든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고함20 김연희 ③ TALK 노량진탐사대 활동 톡 ③
  • 10. 1716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몇 년 동안 들락날락했지만, 노량진의 이미지는 항상 비슷했습니다. 고시나 재수, 학원가. 그 이미지를 때론 동정하고, 때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쉽게 소비해왔습니다. 언젠가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폭력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노량진탐사대는 제게 어떤 의미론 반성의 장이었습니다. 그 반성이 잘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놓쳐버린 모습들도, 또 다시 쉽게 생각해버릴 무언가도 노량진엔 아직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탐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고함20 인디피그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누군가에게는 노량진이 그런 곳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거기에 고시생들이 있고, 늘 있던 자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컵밥거리가 있으며, 재미있지만 조금은 낡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수산시장이 변함없이 있을 것처럼 생각된다. 작년 찍은 풍경 사진과 올해 찍은 사진이 같고 내년도 그러할 거라고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곳, 노량진은 그런 장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가 살펴본 결과, 앞으로 노량진을 생각할 때는 뻔한 사람들이 뻔한 일들을 하면서 뻔하게 살아간다는 고정관념만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노량진은 세상의 흐름과 상황에 결코 모자람 없이 반응하고 변화하는 곳이었다. 첨예한 대립부터 상권의 변화, 새 건물의 건설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받아들이며 보이지 않게 조금씩 탈바꿈하고 있는 노량진은 오늘도 박제되지 못할, 어떤 색다른 모습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노량진은 박제되지 않는다’ 기사 일부(트웬티스 타임라인) 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TALK 노량진탐사대 활동 톡 ③ TALK 노량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③
  • 11. 1918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③ 노량진탐사대 활동 돌아보기 노량진은 고립된 곳이지만 고립된 곳이 아니기도 하다. 노량진에 잠깐 있으면서 수산 시장은 근처도 가보지 못했고, 지하철을 탈 일도 없었다. ....그때 나는 노량진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사는 갇힌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수산 시장도 가보고, 그 공간을 휘 돌기도 하며 이곳 또한 결국 사람 사는 곳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 관한 이야기 역시 앞서 말한 시각과 크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은 노량진을 굉장히 특수한 공간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노량진을 좀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분석적으로 뜯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노량진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굉장히 한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낭만’과 ‘고된 현실’이라는 두 가지 초점이 교묘하게 섞이면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그나마 수산 시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함께 조명을 받는 정도다. 그래서 앞으로는 노량진 탐사대처럼 조금 더 ‘다른’ 시각의 노량진 바라보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노량진 탐사대를 진행하는 모든 이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노량진 : 낭만과 그렇지 않은 사이의 틈에 관하여’ 기사 일부(고함20) ③ 노량진탐사대 기사 Chapter 노량진탐사대 기사4 제 이름은 고시생이 아닙니다 노량진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여행하다 1편<정조와 화성행궁길> 진짜 노량진은 그곳에 없다 미디어가 바라본 노량진 노량진은 어떻게 고시촌이 되었을까요? 노량진 핫플레이스를 다녀오다 노량진 1인 가구를 위한 식문화 노량진에 에너지를 전달하고파 the avec과의 만남 '반수생',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젊은이들 청춘의 추석 노량진에서 1인가구로살아가기 24시간의 고사원 일주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에게 경의를 노량진 육고를 위한 마지막 송가 육교위에서 노량진에 그대를 위한 공터가 있다 TALK 노량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③
  • 12. 2120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그것은 방이라고 하기보다는 관이라고 불러야 할 크기의 공간…그 좁고 외롭고… 정숙해야만 하는 방 안에서 나는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했고…" 작가 박민규는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비좁은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젊은 청춘을 이렇게 그려냈다. 세상이라는 냉정한 문 앞에서 침묵해야 하는 노량진 안 젊은이들의 모습. 이는 비단 한 작가만의 시각이 아니다. 어둡고 조용하고 외로운 노량진 속 청춘들의 모습은 어느새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떠올리는 노량진의 단편적인 모습이 됐다. 획일화된 모습에서 청춘들은 노량진 속의 다양한 얼굴들은 다채롭던 색을 잃고 단편적인 노량진의 모습에 물들어갔다. ‘노량진에 있었다’는 말은 '고시생이었다는 말'과 동급이 되고, 노량진에 발을 디디는 순간 수많은 청춘 또한 자신의 이름 대신 '고시생'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귀결되고 만다. 제 이름은 고시생이 아닙니다 글/사진: <Twenties Timeline> 에디터 강연주, 김세림 하지만 길가의 꽃 하나도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가 있는 것처럼, 그들도 모두 다 각자 '노량진'에 뿌리를 내리게 된 이유가 있을것이다. '고시생'이라는 이름 아래 잃어버렸던 청춘들의 이름을, 가려졌던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어본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됐을까. 그리고 이들은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 이 이야기는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노량진 고시생’이 아닌 ‘ㅇㅇㅇ’의 이야기다. 1. 경찰공무원 준비생 오훈 노량진에 있는 친구들만 경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Q.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A.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경찰공무원 준비 중인 27살 오훈이라고 합니다 Q. 요즘 어떻게 지내요? A. 항상 똑같죠. 공부, 잠. 공부, 잠. 딱히 특별하게 지내고 있지는 않아요. Q. 노량진은 어떻게 오게 됐나요? A. 대학 졸업을 앞두고 휴학 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처음에는 다양한 대외활동을 목표로 여기저기 많은 경험을 하고자 왔습니다. 그러다 잠깐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도 하며 지냈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일이 무엇인가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고, 결론은 경찰이었습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꿈이 경찰이었거든요. 그래서 전공도 법을 택했던 거고요. 그렇게 조금은 늦었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곳, 노량진으로 오게 됐습니다. Q. 매일 같은 사람들과 공부하고, 스터디하고. 한 공간 안에서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비슷한 일상을 지낸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A. 남들은 우리보고 갑갑하다느니, 우물 안 개구리 같지 않으냐는 말을 하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많은 자극제가 돼요. 합격을 위해서는 그 많은 사람을 이겨야 하니까요. 그 사람보다 한 시간을 더 공부해야 하고, 그 사람보다 한 시간을 더 일찍 일어나야 이길 수 있다는 압박감도 있고요, 누구보다 좋은, 서로에게 도움되는 자극제죠. Q. 미디어에서는 노량진을 주로 무거운 경쟁의 공간으로 표현하거나, 고시생과 취준생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고정된 틀에서만 바라보는데요. 이에 대한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13. 2322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Q. 어릴 적 자신에게 노량진은 어떤 곳이었나요? A. 저한테는 초·중학생 때의 임시놀이터였던 거 같아요. 집에서 한 정거장 정도 거리인 노량진에는 저렴한 옷을 파는 곳도, 혹은 놀잇거리도 많았기에 이곳에서 친구들과 자주 걸어와 놀곤 했었죠. Q. 노량진을 추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면? A. 어렸을 적, 유독 군것질을 좋아해서 그런지 혼자 노량진까지 걸어가서 꼭 참새 방앗간 들르듯 먹고 왔던 가게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오가네 팬케익’이었죠. 물론 지금은 SNS에 노량진 맛집으로 뜨면서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늘었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초심 잃지 않고 장사하시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푸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지곤 합니다. 이곳을 떠올리면 오랜 시간만큼 노량진의 정서나 이미지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가게라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노량진역에서 옛 동창들을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그 가게 쪽으로 발걸음이 향하곤 합니다. Q. 노량진 토박이였던(인근 지역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노량진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노량진을 보면 시골의 삼일장, 오일장 같은 푸근함이 느껴져요. 그리고 이것을 파는 푸근한 인상의 상인들과 저렴한 밥 한 끼 먹으며 힘내려는 고시생 및 취준생들과의 대화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스스럼없는 모습에 정다운 느낌도 들어요. 허물없는 정과 그 속의 따뜻함. 이게 제가 생각하는, 내가 생각하는 노량진만의 매력이에요. Q. 미디어에서는 노량진을 주로 무거운 경쟁의 공간으로 표현하거나, 청년들이 ‘안정적인 삶을 바란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데요. A. 수많은 고시생과 취준생들의 생활터인 노량진. 전 청년들이 좀 더 나은 삶, 또는 미래를 위해 이곳을 찾는 거라 생각해요. 더 나은 삶을 위해 자기 나름의 피나는 노력을 결승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지금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요. 그러니 우리, 중간에 지쳐서 포기만 하지 맙시다. 모든 노량지너들 파이팅입니다!! 2. 노량진 인근 거주자 영은 노량진은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 을 품어주는 따뜻한 곳이에요. Q.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재학생이자 과거 대방역(노량진역에서 한 정거장) 거주자 조영은이라고 합니다. 본인의 생각은? A. 노량진이 고시생과 취준생들을 위한 공간으로만 다루는 건 부정할수 없는 부분이 맞습니다. 노량진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시생들이죠. 하지만 저희들만 경쟁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않아요. 요즘 취업난 때문에 젊은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있죠. 제 주변 사람들도 자소서며 면접이며 엄청 빡쎄게 준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니까요. 저희도 같아요. 같은 꿈을 위해 경쟁을 하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사실 이곳 노량진뿐만 아니라 모든 곳이 청년들에겐 전쟁터라 생각해요. 모든 청년이 ‘꿈’을 향해 달리고 있는 지금, 노력하는 청년들의 삶을 더이상 특별한 취준생, 혹은 고시생이라는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노량진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마디 A. 저도 아직 공부를 오래 하진 않았지만,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요. 공부도 체력, 정신력 싸움이다 보니 항상 건강하게 몸 관리 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저는 항상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14. 2524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될 법한 정치외교학과로 선택했죠. 처음 노량진에 온 건 2012년 5월쯤이었습니다. 집에서 혼자 인강으로 공부하기엔 제 의지가 좀 부족하더라고요. Q. 요즘 자신의 머리를 채우고 있는 고민이 있나요? 일상적인 고민도 좋고요. A. 사실 매일 뭐 먹고 뭐 마실지가 항상 고민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노량진 학원가 안쪽으로 들어오면 의외로 맛집이 많거든요. 그런데 장소 자체가 별로 예쁘지 않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아요. 그런 곳들을 알게 되면 나중에 진짜 고민될 때가 있습니다. 큰맘 먹고 거기에 가서 호사를 부려 볼까, 그냥 삼각김밥 먹고 말까, 이게 참 고민이에요. Q. 공부하며 바쁜 와중에도 노량진을 떠올렸을 때 나는 좋은 기억이나 추억이 있다면? A. 노량진 육교에서 눈 내리는 걸 바라보던 기억이 좋았어요. 육교에는 항상 눈이 예쁘게 쌓이거든요. 공부하다 말고 한 1분 정도 그 풍경을 멍하니 보는 거죠. 그리고 다시 공부하고. 근데 이제는 철거돼서 육교 눈 쌓인 건 못 보겠네요. Q. 미디어에서는 노량진 청년들의 삶을 ‘경쟁’이나 ‘안정적인 삶을 바란다’는 틀에서만 바라보는데요.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A. 사실 저는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 맞아요. 노량진 학원 오는 사람 중에 안 그런 사람 거의 없을걸요. 근데 안정을 추구하는 게 왜 나쁜지 모르겠어요. 누군가는 공무원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공무원이 적성에 맞는 거잖아요.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 오히려 안정 추구가 나쁘다느니, 공시생들이 다 철밥통만 원한다느니 하면서 멋대로 말하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Q. 당신은 ‘고시생, 공시생’이 아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A. 효녀요. 제가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잖아요. 하고있는 사람들인데 왜 그걸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지, 사실 이해가 안 갑니다. 그래서 저는 되려 미디어에게 묻고 싶어요. 왜 이곳을 어둡게만 포장하는지. 매일 최선을 다해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가장 잘 헤아려주는 것도, 그런 이들을 품어주는 따뜻함도 노량진의 소중한 모습인데 말이죠. Q. 마지막으로 노량진의 청춘들에 한마디. A. 자신의 목표가 확실하다면 포기하지 마시고,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길로 도전해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됐든, 그 목표를 이루는 날까지 힘내서 원하는 바를 이루시길 바라요! 3. 행정고시 준비생 소정 누군가는 공무원이 적성에 맞는 거잖아요. 안정을 추구하는 게 나쁜건가요? Q. 먼저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A. 노량진 A학원에서 9급 행정고시 공부하고 있는 소정이라고 합니다. 올해 27살입니다. Q. 이곳 노량진에 오게 된 계기는? A. 제 성격이 굉장히 안정추구형입니다. 대학 입시할 때쯤부터 공무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대학 전공도 도움이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15. 2726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사실 같이 일하는 회사에서 알바생이 그만두는 바람에 정원이 비어서 저를 넣었다고 하더군요. Q. 영상촬영 알바, 생소하네요. 어떤 일을 하는 거죠? A. 제 일은 제 스케줄과 강의 스케줄을 비교해서 제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맞추고, 강의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서 고시학원의 강의를 촬영해 업로드하는 일이었습니다. 매시간 무거운 장비를 들고 5층까지 오르내려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처음 알바를 시작했을 때는 제가 중도휴학을 한 상태였어요. 학교가 다니기 싫어서 군대 가기 전에 돈이나 벌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잠깐 할줄 알았는데 복학하고 나서도 계속하게 됐죠. 물론 이 일이라고 안 힘든 건 아니었지만, 홀서빙이나 다른 힘든 알바하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저는 편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했던 알바였어요. 하다 보면 그곳에서 공부하는 많은 학생을 볼 것 같은데. 제가 2학년 때 일을 시작했어요. 1년 정도. 사실 대학교 1학년까지만 하더라도 저도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대로 보고, 공무원 준비하고 고시 준비하는 사람들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것 사실이었거든요. 근데 일에 적응하고 슬슬 지루해질 때쯤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 한 명씩 바라보는 게 나름 시간 보내는 방법이 되었었죠. 그때 다들 뭔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걸 느꼈어요. 일단 노량진에 있는 친구들은 목적이 확실해요. 실패하면 안 된다. 이런 분위기가 느껴지고. 여기에서 일하면서 진짜 그 열정이 느껴졌죠. Q. 학원 영상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그곳에서 공부하는 많은 학생을 볼 것 같은데. A. 제가 2학년 때 일을 시작했어요. 1년 정도. 사실 대학교 1학년까지만 하더라도 저도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대로 보고, 공무원 준비하고 고시 준비하는 사람들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것 사실이었거든요. 근데 일에 적응하고 슬슬 지루해질 때쯤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 한 명씩 바라보는 게 나름 시간 보내는 방법이 되었었죠. 그때 다들 뭔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걸 느꼈어요. 일단 노량진에 있는 친구들은 목적이 확실해요. 실패하면 안 된다. 이런 분위기가 느껴지고. 여기에서 일하면서 진짜 그 열정이 느껴졌죠. 그동안 부모님 몸 고생 마음고생이 얼마나 크셨을지를 이제 좀 알겠더라고요. 그걸 좀 갚아드리고 싶어요. 저는 지금 공시 공부 중이니까 합격하는 게 효도겠죠? 그래서 더 빨리 합격하고 싶은 것도 있어요. 그렇게 합격을 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더불어 지금 제가 다니는 학원에 합격 수기를 써서 붙이고 싶어요. “비결은없다, 비결 있다는 수기는 다 거짓말이다”. 진심을 담은 딱 이 3마디만 써서 내걸어보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노량진에서 살아가는 모든 노량지너들에게 한 마디. A. 저 이래 봬도 처음 보는 사람이랑 쓸데없는 얘기하는 것 좋아합니다. 혹시 노량진에서 만나거든 아는 척해 주세요. 3. 학원 영상촬영 알바 영돈 노량진을 떠날 때, 부디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갔으면 해요 Q.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A. 안녕하세요. 노량진에서 나는 찌든 짠내를 좋아하는 올해로 반 오십 된 상도동 주민 김영돈입니다. 현재 노량진에서 영상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4학년 대학생이죠. Q. 노량진에서 아르바이트 하게된 계기는? A. 지인의 소개였습니다. 영상을 다룰 줄 아니까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16. 2928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말이죠. 언젠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노량진을 떠나게 될 거에요. 어떤이유로든. 그러니까 결론은, 떠날때 부디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갔으면 해요. 노량진 보도육교처럼 말이죠. 제 이름은 고시생이 아니에요. 이름 불러주면 감사해요. 시인 김춘수는 말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이름이란 그렇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 나의 다채로움을 증명해주는 존재가 바로 이름이다. 그렇기에 고시생이라는 이름 앞에 자신의 이름을 잃은 이곳의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숱한 말들이 아니라, 내 이름을 묻고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오늘, 나는 고시생이라는 단어 뒤에 감춰진 당신의 이름을 묻는다. 그렇게, 당신은 내게 청춘이라는 이름의 한 떨기 꽃이 된다. Q. 미디어에서는 노량진을 주로 무거운 경쟁의 공간으로 표현하는데,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A. 솔직히 아니라고는 못하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고 모여서 공부하면서 조금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인 건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사람들도 처음부터 공무원이나 고시준비를 하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요. 마치 제가 그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던 것처럼. 그 사람들도 자기 미래를 생각하다 보니. 아 여기구나. 하고 찾아온 것일 테니까요. ‘경쟁’이요? 세상에 노량진만큼 평화로운 경쟁을 하는 곳이 있나요? 노량진에 성적순 줄 세우기를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 주변을 한번만 둘러봤으면 좋겠어요. 회사, 학교 안에서는 줄 세우기가 없는지. ‘안정적인 삶’이라. 제가 한 명 한 명 찾아가며 혹시 즐거우세요? 아니면 슬프세요? 이렇게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안정적인 삶이 꿈인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안정적인 삶은 다음 꿈을 위한 기반일뿐일 걸요… 딛고 서 있는 땅이 불안정한 이곳에서 단단한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부정적인 시선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Q. 당신은 ‘노량진 알바’가 아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A. 저 같은 경우에 지방 출신에 서울생활한 지 5년차. 서울은 항상 낯설어요. 제가 ‘노량진 알바’이긴했지만, 노량진에 있을 때는 노량진 사람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노량진에서 제가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냐고 물으시면. 저는 이곳에 소속된 한 사람, 혹은 노량진의 ‘주민’으로 기억되고싶어요. Q. 마지막으로 노량진에서 살아가는 모든 노량지너들에게 한 마디. A. 노량진 보도육교가 철거되기 전, 많은 사람이 육교에 한 마디씩 남겼죠. 잘 가라, 수고했다 등등. 다들 그 자리에 있었을 때는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사라질때 그 가치를 재발견한 거죠. 육교를 떠올리면 왠지 우리 옆에 오래 공부하던 장수생 선배를 보는 느낌이 딱 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는 선배를 보고 쟤는 언제 합격해서 언제 나가나 하지만, 결국 언제가 되었든 노량진을 떠나잖아요. 합격하던 고시를 포기하던, 육교가 사라진 것처럼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17. 3130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결은 모두 미묘하게 다를 것이다. 애초에 25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을 몇 가지 특징으로만 관념화시키는 것 자체가 무리지 않은가. 그럼에도 기존의 미디어는 도심 속 공부의 섬 노량진과 그 속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외부의 시각으로 관념화, 객체화, 수단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마디로 시험 준비전념해야 하는 고시생이 공부 말고 다른 게 있겠냐는 식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분명 그들의 생활에도 공부 외에 다른 삶의 요소들이 아주 약간씩이라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우선 몇가지 사례를 통해 미디어가 바라보고, 정립하는 노량진의 모습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1) 뉴스: 청년의 삶을 관망하다 미디어가 노량진을 타자화하는 경향은 뉴스, 예능, 다큐 등 어느 카테고리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뉴스 속 정치인들이 선거 유세를 펼치는 도중 노량진을 찾아가 청년들을 위로하려는 듯한 모습은 가장 대표적이다. 최근의 사례로 보면, 대선 때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후보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때는 무소속의 박원순 후보가, 당장 지난해 있었던 새누리당 당 대표 경선 때는 김무성 후보가 노량진을 찾았었다. 이들은 모두 마치 코스가 있다는 듯이 길거리에서 컵밥을 먹고, 고시촌과 학원을 찾아가 청년들과 상인들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곤 했었다. 뻔히 보이듯 그들이 노량진을 방문한 목적은 청년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노량진을 찾아간 정치인들 은 대체로 청년들이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지 않았고, 그들이 이곳에서 정착해 사는 와중에 들었던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다. 대신 그 동안 해보지 않았던 것을 ‘체험’해본다든가, 성공한 사람 입장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등의 행동을 했었다. 그리고 미디어는 현장에서 딸 수 있는 몇 개의 장면, 장면을 따 전파를 타고 내보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노량진의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주체가 아닌 들러리가 되어버린다. 결국, 뉴스를 통해 노량진 외부에 위치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건 그들이 컵밥을 먹고, 공부한다는 것뿐이게 된다. ⓒ서울신문 섬, 모두 익히 알고 있듯이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작은 육지를 뜻한다. 그래서 섬에서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시에 배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야만 한다. 그만큼 이동 자체가 다른 일반적인지역에 비해 수월하지 못한 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지형상의 특성 때문에 섬을 신비로운 미지의 공간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심지어 지도를 펼쳐놓고 다른 육지와 비교해서 보면, 이 섬이라는 작은 공간은 외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까지는 물리적인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섬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니, 그렇다면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육지가 아닌 섬도 존재한다는 말인가? 말장난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사회에는 같은 계층을 중심으로, 혹은 똑같이 특수한 상황에 부닥친 상태를 중심으로 육지 안에서도 섬을 형성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노량진은 그런 아이러니한 육지 속 섬 중에서도 꿈꾸는 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치열하게 사는 섬이다. 이곳은 고시, 공시(공무원시험) 등 여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흥미로운 하이 소사이어티의 결정체인 여의도와 도심 한가운데서 텃밭을 가꾸는 평화로운 노들섬을 바로 곁에 두고 있음에도 오로지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삭막함을 머금고 있어 다른 공간과 단절된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즉, 노량진은 ‘합격’이라는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일부러 세상으로부터 격리하는 정서적 의미에서의 섬인 셈이다. Another. 미디어가 만든 노량진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노량진에 온 사람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 그리고 이전에 살아온 인생의 서사가 같은 건 아니다. 설령 노량진에 도착해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이곳에 오게 된 이유부터 수험 생활 중에 느끼는 생각과 감정까지 그 진짜 노량진은 그곳에 없다 미디어가 바라본 노량진 <Twenties Timeline> 에디터 김정원 Island. 노량진, 섬이 된 동네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18. 3332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무한도전 멤버들은 노량진의 사람들을ㅡ타자화하여 형식적인 위로와 응원만을 해주기보다는 마치 자신의 처지처럼 생각하고 진정한 충고를 해준다. 당시 방영분에서 노홍철은 ‘지금도 정말 힘들겠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며 취업이 되면 더 힘들고, 사회는 더 지독할거’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물론, 곧바로 유재석에게 제지당하고, 촬영은 밝은 톤을 유지하며 마무리되지만, 이는 정치인이 나오는 뉴스에서도, 노량진 속 삶을 비추려 했던 다큐에서도 하지못한 유쾌하면서도 현실적인 부분이었다. 그들 하나하나를 세밀히 보는 디테일은 부족했지만, 적어도 섣부른 관념화와 나와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타자 화는 없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Real. 노량진 속에서 바라본 노량진 이렇듯 우린 직접 찾아가거나 주변에 수험 생활 중인 사람을 두지 않는 이상 위의 사례와 같은 미디어 속 편집된 노량진만을 접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실 우린 노량진에 관해 접했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아닐까. 당당하게 알고 있다고 얘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개인, 그리고 공간의 맥락이 편집되고 왜곡된 감이 없지않아 있다. 그래서 2기 노량진 탐사대는 지금까지 미디어가 해왔던 방식보다 더 세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노량진을 바라보려 한다. 물론 우리가 보여주는 노량진이 진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노량진’과 그 속의 ‘청년’을 규정하지 않고 좀 더 다양하고 솔직하게 보여줄 뿐이다. 무엇이 진짜인지 판단하는 일은 우리가 담아낸 노량진을 지켜볼 당신께 맡긴다. 이제 아무도 보여주지 않았던 노량진, 그 안 에 담긴 진솔한 청춘의 이야기를 마주할 차례다. ⓒMBC, 무한도전 그간 뉴스가 노량진을 객체화, 수단화했다면 다큐의 경우에는 노량진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그 속의 사람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주지 못했었다. 대표적인 노량진 관련 다큐로는 2011년 방영된 KBS스페셜 <꿈꾸는 자들의 섬, 노량진>, 2012년 방영된 다큐 3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량진 고시촌>이 있다. 이중 비교적 최근에 방영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량진 고시촌>은 노량진에 살거나 오가며 공부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한 다큐다. 프로그램 안에는 이제 막 대구에서 올라와 노량진에 정착한 사람, 다니던 대학교를 포기하고 강의 영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재수를 결심한 사람, 경찰공무원에 몇 년 째 도전하는 사람이등장한다. 또, 어떻게 보면 주변인이라할 수 있는 늦은 나이에 공인중개사시험을 준비하는 노년의 수험생들, 그리고 이른 새벽부터 공부하는 청년들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는 교회의 권사들도 모습을 비춘다. 어떻게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비추기에 다각적이라고할 수 있지만, 다큐는 취재 대상을 선정한 것과 별개로 노량진 사람들을 ‘벼랑 끝에 서 있어 힘들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전형적인 상으로 균일화시킨다. 서두에서 말했던 것처럼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더라도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 노량진에 오기 전까지의 개인의 서사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그저 슬프고 안타까운, 하지만 힘을 내야 하고 응원이 필요한 존재로 정립할 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개인의 서사는 청춘을 향한 응원으로만 귀결된다. (3) 예능: 꾸미지 않은 노량진을보여주다 나름대로 긍정적인 예시도 있다. 예능에서 노량진을 비췄던 경우로는 대표적으로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2014년 초,응원단에 도전하면서 현장 실습으로 노량진의 대형 학원을 찾아갔던 것을 들 수 있다. 현장 실습의 차원에서 찾아갔다는 점에서 뉴스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노량진을 수단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앞서 소개한 뉴스, 다큐에 비해서 그 분량은 짧지만, 오히려 화면에 등장하는 수험생들과 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노량진의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2) 다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은 청년을 그리다 ⓒKBS2, 다큐멘터리3일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19. 3534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양화진과 함께 가장 주요하여 전하의 옥체를 보존하기 위해 군대를 주둔하는 진을 설치하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고려 때부터 행인들의 왕래가 잦았고, 그 때문에 선왕이신 태종께서는 특별히 별감을 파견하여 나루 관리에 신경을 쓰셨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별감파견과 함께 짐과 사람을 실어 나르는 진선들이 뱃삯을 받지 않게 하도록 관선 15척도 비치하셨지요. 이는 근본적으로 백성들이 도강을 편히 하기 위함이었는데, 그와 함께 수상한 자를 기찰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습니다. 전하, 이곳 노량진은 과천, 시흥, 수원, 더 나아가 충청, 전라, 인천, 개경까지 통하는 만큼 각 지방의 갖가지 특산물이 한데 모여 상업이 발달한 지역이기도 하옵니다. 이는 노량진이 나룻배가 발착하는 도선장을 중심으로 하여 발달한 취락이라는 뜻의 도진취락(渡津聚落)이라 불리우는 연유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무언가를 사고파는 상인들로 가득하고, 그 덕에 도선 시설은 물론이거니와 주막과 객주 집이 많이 들어서 있사옵니다. 하지만 노량진이 이리 마냥 기쁨만 가득한 곳은 또 아니옵니다. 나루의 북쪽 강변에는 새남터라 하는 넓은 백사장이 있는데, 그곳은 왕조 대대로 죄인들을 벌하는 사형장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선왕이신 세조께서는 즉위 2년에 반정을 꾀했던 여섯 명의 신하, 사육신(死六臣)을 이곳에서 처형하기를명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사육신묘 역시 노량진에 있사옵니다. 노량진은 항시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하여 전하께서 행차하시기에는 다소 번잡할 수 있습니다. 하오나, 태종께서는 노량진을 관리하기 이전에 사냥을끝내고 환궁하는 길에 노량진 나루터에서 배를 탄 채로 술과 함께 풍류를 즐기신 적이 있사옵니다. 혹여나 전하께서도 노량진에 행차하실 일이 있으시거든 신이 다른 관리들과 함께 버선발로 나와 맞이하도록 하겠사옵니다.그럼 신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만수무강하옵소서, 전하. 乙未年(1895년) 正月 ▲ 서울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잇던 노량진 나루터 ▲ 1920년대 노량진하루 평균 상주인구 1만 명, 유동 인구25만 명. 2015년 현재 노량진의 인구관련 데이터다. 수산시장에 대형 학원과 고시촌까지 즐비한 노량진은 이렇듯 매일 바삐 돌아간다. 개중에는 당연히 고시, 혹은 공시(공무원 시험) 등 여러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시대에서는 노량진이 ‘공부의 메카’로 인식되는게 일반적이지만, 과거에는 어땠을까? 대한민국에 입시 제도가 틀이 잡히고서야 노량진이 그렇게 변했겠지, 처음부터 노량진이 그런 동네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량진은 언제부터 한해의 노력을 한순간에 쏟아 붓는 시험이라는 거사(?)를 준비하는 곳이 된 건지, 또 그 이전에는 어떤 동네였는지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해서 이 글은 그 내용을 크게 고시촌이 되기 전과 후로 나누어 설명하였으며, 좀 더 흥미롭게 내용을 풀어내기 위해 픽션적인 요소가 가미된 가상 편지 형식을 차용했다. 물론, 편지 속 노량진에 관한 내용은 대부분 사실에 기반을 두어 작성했다. 노량진은 어떻게 고시촌이 되었을까요? <Twenties Timeline> 에디터 김정원 “과천 현감 이노량, 주상 전하께 아뢰옵니다.” 주상 전하, 신 과천 현감 이노량이라하옵니다. 전하께서 노량진(鷺梁津)이 소상히 궁금하다 하시어 감히 이렇게 서한을 보내옵니다. 내용에 미진한 점이 있더라도 굽어살펴주시옵소서. 전하, 노량진은 백로 로(鷺), 징검돌 량(梁), 나루 진(津)이라 하여 본디 ‘백로가 노닐던 나루터’라는 뜻을 품고 있는 지역이옵니다. 수양버들이 울창한 나루터라 하여 노들나루라고도 하며, 외에도 노도진(露渡津), 노량진도(鷺梁津渡)라고도 불리우고 있사옵니다. 이 나루는 전하께서도 알고 계시듯 사대문 밖에 위치해 경기 과천과 시흥,수원을 도성과 연결하고, 충청과 전라로까지 나갈 수 있는 길목이옵니다. 한성으로 통하는 한강 나루터 중에서도 상류의 한강진 하류와 ▲ 노들나루가 표기되어 있는 조선 시대 지도 ⓒ동작뉴스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20. 3736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인구가 많아졌습니다. 그에 더불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유흥 거리인 오락실이나 술집, 저렴한 가격의 분식집이나 일반 음식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 한 가득입니다. 덕분에 학생들이 아닌 일반 주민들도 소비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노량진이 지금은 제가 맡고 있는 관악구 소속이지만, 이제 새로운 구를 신설하여서 분리될 예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제 관할 구역이 아니라 뭐라 이야기하기 어렵겠지만, 각하께서 신설되는 구를 맡는 청장에게 노량진에 관해 이야기해주심이 어떨지요? 노량진은 분명 지금보다 더 커지고, 더 활발해질 것입니다. 각하가 꿈꾸는 도시와 나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노량진이 꼭 필요할지도모릅니다. 그러니 각하의 국정 계획에이곳을 염두에 둔 사항을 넣어두심이 어떨지 싶습니다. 주제 넘는 말을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국정에 참고하실 만한 일이 있으면 또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각하, 건강하십시오. 1979년 6월 이 가상 편지를 쓴 사람은 현재 노량진이 속해 있는 구인 동작구가 아닌 관악구청장이다. 실제로 노량진은 980년, 동작구가 관악구에서 분할되기 전까지는 관악구 소속이었다. 또한, 수산시장이 형성되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강북 중심가 일대의 학원들이 그 주변으로 내쫓기던 것도 모두 1970년대에 일어났던 일들이다. 물론, 독재 정권하에 대형 학원들이 강제로 타 지역으로 내쫓긴 것 자체는 부당한 사실이지만, 어쨌든 노량진은 이로써 지금의 학원가와 고시촌을 형성하게 됐다. 그 이후의 노량진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도다. 대치동을 중심으로 한 강남 대형 학원들의 성장에 비교적 약세에 접어든 적도 있었고, 또 2010년대 초반에는 공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지금은 재수생보다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이 많아졌다는 것 정도가 큰일이라면 큰일이었다. 그렇게 노량진은 과거 전략적 요충지에서 ‘공부의 메카’로 변한채로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 1971년 지금 위치에 터를 잡은 노량진 수산시장 참고자료 한국콘텐츠진흥원, “노량진나루터”, http://goo.gl/q74fJv “노량진 공시촌 블루스”, 『한겨레21』, 제837호, 2010.11.23  http://goo.gl/thu8v 가상 서한에 나와 있듯이 노량진은 고려 시대 때부터 백성들의 왕래가 잦았고, 강북과 강남의 중간에 위치해 조선시대에도 지리적, 상업적,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한강만 건너면 곧바로 임금의 거처로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니 두말 할 것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많은 이들이 이곳에 함께 머물며 (조선시대의 고시라할 수 있는) 과거를 준비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노량진에 학원이 몰려들고, 고시촌이 형성된건 언제부터였을까? 그 해답은 시간을 많이 건너뛰어 1970년대에서야 찾을수 있었다. “각하, 관악구청장 강노량 보고 드립니다.” 각하, 관악구청장 강노량입니다. 수년 전, 각하께서 종로구를 비롯한 강북 도심지역이 그곳에 밀집한 대형 학원들 때문에 학생들로 시끌벅적했던 것을 타파하기 위해 그들을 중심부 밖으로 밀어낸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한샘, 정진, 대성 등의 그때 밀려났던 그 학원들이 지금 저희 관악구 노량진에 터를 잡고 지역 상권을 활성화시키고 있다는 보고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들 학원은 아무래도 노량진을 중심부에서 완전히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교통의 요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한반도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시발지라는 건 둘째치고, 한강 철교와 인도교, 또 몇 년 전에 개통된 수도권 전철 1호선까지 더해지니 학생들이 오고 가기에는 더없이 좋을 거라 판단한 듯합니다. 노량진에서 상도동을 연결하는 터널도 곧 준공될 예정이라 교통적인 측면에서 지금보다 더 발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시다시피 사실 노량진은 서울수산, 노량진수산(주), 삼호물산이 1975년 한국냉장(주)에게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 수산시장이 이미 잘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형 학원을 따라 학생들이 많이 몰려오니 이전에 비하면 지금은 말도 안 되게 유동 ▲ 1974년, 지하철 1호선 개통 당시 사진 ⓒ동아일보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21. 3938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시장경제까지 반영한 경제 질서까지 아우르는 근대 부흥을 향할 르네상스를 빛낸 정치력을 보였다. 정조가 수원화성을 건설하고자 한 이유는 많은 문헌들과 연구로 남아있지만 그가 원했던 것은 양반 몇몇의 세력사회가 아닌 백성을 위한 강력한 국가건설이 아니였을까하는 추측을 조심히 해본다. 1800년,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그의 꿈도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양반 세도가의 사회가 되어 정조의 화성건설의 꿈을 저울질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서두른 것처럼 보인다. 노량진에는 강력한 국가건설의 염원을 담은 화성으로 향하는 그의 몇몇 발자취가 남아 있다. 현재의 나는 그가 꿈꾼 강력한 왕권이며 국가와는 동떨어진 한 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량진은 오히려 그런 그의 염원이 무색하게 백성의 꿈을 담아 공직에 종사하고픈 청춘들의 삶 하나로 채워지고 있다. 학원이 가득한 노량진이라는 외딴 섬에서 나는 정조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노량(노들나루)에 배다리를 건설해서 도하한 정조 화성으로 가기 위해서 가장 어려운 일은 한강을 건너야 하는 일이였다. 왕이 살고 있는 한양에서 화성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한강을 건너야하는데 보통은 배를 통해서 한강을 건넜다고 한다. 처음엔 뚝섬에 배다리를 놓고 건넜놓고 건너는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배다리는 수십 척의 배 위에 널판을 대어서 그 위를 지나가는 방법이다. 배다리설계와 건설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어 정조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맞아 함께 화성행궁을 한 기록이 [화성능행도]에 남아 있고 그 중 <노량주교도섭도>을 통해 수십의 배 위에 다리를 놓아 행렬한 모습이 남아 있어서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그만큼 노량진에 배다리를 놓는 것은 당시의 기술로는 파격적인 일이였다. 여러 사료의 기록에 의하면 노량배다리는 한강철교와 한강대교 사이에 놓아졌을 거라고 하지만 ▲ 왼쪽 <노량주교도섭도> 용산쪽에서 본 모습으로 노량행궁, 오른쪽 (현재의 용양봉저정)과 노량진 나루터 “진실이 아닌 게 없는 과거가 지나간 자리” “근대 문명의 하나인 경인선 철도의 시발점” 현재는 바쁘게 지나간다. 누군가의 삶이 지고 피고 또 새롭게 태어난다. 노량진의 삶은 정체된 듯 보이지만 나는 이 노량진이 역사 속에서 과거, 현재 그리고 나를 잇는 무언가가 있는 곳이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노량진에는 정조가 남긴 몇 안되는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 장소를 탐험하기로 했다. 과거, 노량진 그리고 현재 노량진은 참 신기한 곳이다. 아침 이른 시간 노량진역으로 향하면 역사로 연결된 허름한 육교를 사람들이 표정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직장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 있는가 싶고, 편안한 옷차림에 백팩을 둘러맨 젊은 사람들도 보이고 두꺼운 책을 가슴에 안고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도보인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노량진’이였다. 노량진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여행하다 1편 <정조와 화성행궁길> 기사: 서은진 언제나 ‘노량진역’을 시발점으로 다른 곳으로 향하는 나에게는 그런 그들의 바쁜 발걸음이 의문으로 남았다. 공무원시험의 메카로 알려진 노량진은 저렴한 물가로 유명하고 컵밥거리라고 불리는 노점상이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어떤 역사가 있었다. 노량진은 1897년 우리나라 철도의 시발점인 경인선 철도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정조의 효심과 화성행궁, 노량진을 경유한 역사의 흔적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서 재위기간 동안 총 13회 행궁을 하였다고 역사적으로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정조는 조선조 마지막 왕조부흥의 모색했던 초월적 군주로 알려져있다. 그는 왕권을 확립하고 지방사회를 포용한 사회통합을 모색했으며, 18세기 급격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 1897년도 경인선 개통 당시의 철도 모습 (노량진역)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22. 4140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나타날 것만 같은 울창한 숲이였다고한다.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의 현륭원으로 가는 정조의 어가는 한번쯤 쉬어 가야 했으나, 숲이 우거진 이 지점에서 쉬기란 적적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정조는 “이곳에 장승을 세워라. 하나는 장사 모양을 한 남상 장승을 세워 천하대장군이라 이름을 붙이고 또 하나는 여상을 한 지하여장군으로 하여라.” 하고 명하였다. 어명으로 곧 두 개의 높다란 장승이 세워지게 되었고 현재의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 참배 길에 이 장승 앞에서 어가를 멈추고 쉬었다.지금도 장승백이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지키고 있다. 사람들은 이 곳을 무심히 지나치지만 누군가는 멈추고 과일을 바치기도 한다. ▲ 전설처럼 남은 장승백이역의 장승들 여정의 끝, 그리고 나는...... 아마 정조는 여기 잠시 쉬어가고 길고 긴 능행길을 채찍했으리라 여기서 다시 번대방길(지금의 대방길)을 통해 까마득한 화성까지의 길, 노량진에서의 여정은 이렇게 끝이 나는 것 같다. 화성능행길에서 노량진은 겨우 10분의 2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 짧은 길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조는 한강너머에서 지친 몸을 늬울 장소로 노량행궁을 만들었고 숲이 험하고 맹수가 있는 장승백이에는 장승을 세우라 했다. 몇백 년의 시간을 지나서 사람들은 정조가 남긴 능행길을 연구하고 남은 흔적을 찾고 있었다. 나는 과거와 완전히 동떨어진 역사속 정조의 흔적에서 그냥 공시족의 메카라고만 알려진 노량진에서 다른 모습을 보았다. 나는 현재에 있지만 정조는 과거에 있다. 몇백년의 시간을 넘어서 같이 장소에 서있다. 오롯이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상관없이 그냥 똑같은 자리에 나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있었던 곳, 그렇게 과거와 현재는 시간은 제멋대로 흘러가고만 있었다. 정확한 위치에 대한 표식도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노들역에서 노들나루의 비석을 보면서‘그냥 이쪽이였겠구나’하는 추측을 할뿐, 도로와 여러 가지 시설로 가려진 한강을 어렴풋이 바라본다. 지금은 그냥 멀리 한강 너머로 고층아파트와 지나가는 차들이 과거로 회귀하는 길을 막아서고 있다. 노량배다리를 건너 하루 쉬어갔다는 용양봉저정(노량행궁) 노들나루 맞은 편에 행궁 중에 하루 쉬어갔다는 용양봉저정이 쓸쓸하게 집한 칸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정조와 인연이 있을곳인지 알 수 없는 용양봉저정은 김흥도가 그린 <노량주교도섭도>에 남겨진 노량행궁의 규모와 비교해서 초라하기 그지 않다. 이 곳에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며 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200년이 훌쩍 지난 후, 완전히 그 모습을 탈바꿈한 용양봉저정이지만 그 앞에 서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행궁길의 피로를 푸는 한 남자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용양봉저정에서 만안고개를 통해 장승백이로 용양봉저정에서 사실은 상도터널을 통해서 장승백이로 가는 길이 정조의 능행길이였지만 나는 노량진의 현재를 누구보다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노량진역으로 해서 차도가 이어진 큰 길을 통해서 가기로 했다. 노들쪽의 한산하고 조용한 느낌과 비교해서 노량진역으로 오면 올수록 왁자지껄한 사람들과 큰 학원가 건물, 활발한 노점상 등이 눈에 띈다. 수백 배는 빠르게 시간이 흐른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한 노량진역 근처의 학원가의 모습, 초라했던 노들나루와용양봉저정과 비교해서 사람의 냄새가 난다. 이렇게 사람 많은 노량진을 지나서 다시 조금 한산해지는 장승백이역으로, 정조와 관련된 설화가 남겨진 곳앞에 섰다. 당시 장승배기 일대는 낮에도 맹수가 ▲ 한칸만 쓸쓸히 남은 용양봉저정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23. 4342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이곳은 사육신묘가 있는 곳인데요, 경사 길을 올라가다보면 두 갈래 길 중 오른쪽에 있습니다! 참배시간, 즉 안에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은 동절기의 경우 9:00 ~ 17:00, 해가 긴 하절기의 경우 9:00 ~ 17:30 입니다. 안에는 아래처럼 세면에 각각 사육신 선생님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제 사육신묘에서 나와 왼쪽 길로 올라가보니 또 두 갈래 길이 나왔습니다! 왼쪽 길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건물이 하나 보이는 데, 사육신 역사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사육신역사관에서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데요,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공부장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옆의 샛길을 따라가다 보면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운동 기구들과 배드민턴을 칠 수 있는 장소가 제공되어 있으니 체육활동을 하고 싶다면 이 곳에서 가볍게 운동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육신 공원 안에는 또 다른 자랑거리가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전망대입니다! 전망대에 도착하면 서울의 모습이 아주 아름답게 펼쳐져 있습니다.오른쪽을 보면 한강이 보이고, 정면에는 63빌딩이 그 위용을 보여줍니다. 저는 낮에 갔지만, 저녁 야경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 사육신묘가 있는 곳 ▲ 사육신역사관 전경 (사진출처 : 아시아경제 신문기사) 노량진에는 대부분 고시생활이나 대입시험을 위해 많은 1인 가구들이 거주한다. 1인 가구들이 자신만의 생활 때문에 매우 바쁘지만 가끔씩 그들만의 생활을 영위하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노량진 특성상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 다른 지역에서 노량진으로 온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량진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특히 1인 가구는 혼자이기 때문에 노량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렵고 혼자서 여가 생활을 영위하기도 힘들다. 이러한 노량진에 거주하는 1인 가구들을 위한 정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조용히 자연과 함께 쉬고 싶을 때: 사육신 역사공원 노량진에 거주하시는 여러분들이 대부분 볼 수 있는 큰 종로학원에서부터 걸어가 노량진 핫플레이스를 다녀오다 기사: 김나영 보았는데요. 더운 금요일 오후3시에 걸어가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1호선 노량진역 1번출구로 나와서 직진으로 쭉 약 6~7분 걸어가니 어느새 사육신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약간의 경사길이 있었지만 충분히 걷기에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위로 조금만 올라가다보면 옆에 조그마한 풀 숲 속에 아기자기한 돌계단도 있었는데요. 저는 그런 길을 좋아해서 그길로도 나가봤습니다. 결국 경사길과 만나긴 했지만 돌길이 완전히 숲에 들어온 느낌이라서 좋았습니다! :) ▲ (위)사육신공원 올라가는 길 (아래) 돌계단이 놓여있는 산책로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24. 4544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첫 컨텐츠 제작 그 막중한 임무를 맡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노량진을 열심히 탐사하다가 의문의 명함을 하나 받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적힌 건 공연날짜와 장소, 그리고 뒷면엔 공연순서였습니다. 날짜는 6.16(화) 오후 8:00, 장소는 노량진 요거프레소 라고 되어있었는데요. "요거프레소는 유명한 카페 아닌가?"라는 의문과 함께, 노량진에서도 이런 공연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는 순간 이였습니다. 저는 들뜬 마음으로 서둘러 인터뷰질문지 작성 후 공연날인 6월 16일에 찾아갔습니다. 노량진에 에너지를 전달하고파. the avec과의 만남 취재/사진: 차붐 ▲ 의문의 명함 앞 그 곳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이미 공연 준비가 한창이였는데요. 외부에서 팀원들과 잠시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커피숍 내부의 테이블과 의자를 돌려다 함께 볼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 이 공간에 들어서니 공연을 기다리는 노량진 청년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공연 팀의 열정에 찬 눈빛이 맞닿으면서 내부를 밝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 빛을 보며 가슴속 깊숙이 숨어있던 제 열정도 밝은 빛을 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청년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잠시 멈추고, 간단한 팀 소개 및 공연소개 후 the avec팀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내부 2. 나 혼자 신나게 놀고 싶을 때: 1인 노래방(코인 노래방) 24시 코인 노래방은 금요일 오후 4시쯤에 방문했는데요,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3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노래방을 가고 싶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코인 노래방에 저도 한 번 체험하러 들어가 보았습니다. 코인 노래방 내부는 약 두 명에서 세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형식입니다. 지하이고 여름이라서 더울 수도있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방 안에는 에어컨도 나오고 선풍기를 틀 수 있어서 시원하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가격은 2곡에 500원으로 매우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3. 오늘만은 고급스럽게 먹고 싶다!: 노량진 수산시장 세번째 <노량진 핫플레이스>는 노량진 수산시장입니다! 노량진수산시장은 노량진사람들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아직 학생인지라 회를 사먹을 수는 없지만 가격과 다양한 해산물들을 구경하기 위해서 방문했습니다! 노량진수산시장 입구는 노량진역에 매우 인접해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여러 수산물 상가들이 즐비하고 있습니다. 위층계단에서 보면 굉장히 넓게 분포되어있습니다. 지나가다보면 요즘 새우가 제철인지 새우들이 종류별로 늘어져있습니다. 가격이 궁금해서 4인으로 어느 정도 가격이냐고 여쭤보니 좋은 물고기 3마리와 연어로 4만원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거절하고 나왔지만 그 긴 길목을 지나가면서 수많은 가게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가게로 오라고 손짓하셨습니다. 나오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다시 들려서 회를 먹고싶었습니다!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25. 4746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avec페이지에 공연날짜를 공지 중입니다. 당일에는 공연순서 대기하고 있는 팀원들이 거리에서 명함을 나눠주면서 홍보하고 있어요. Q. 노량진이라는 공간이 청년들이 많이 있지만 우울할 수 있는 공간인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연하시나요? A. 일단 말마따나 젊은 사람들이 많잖아요. 공부하러 올라온 사람들도 많고..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모이면 홍대, 대학로처럼 번화하기 마련인데 노량진은 이상하게 침울한 뉘앙스가 풍기는 촉박한 땅인 것 같아요. 그런 공간을 우리가 서로 공감하는 느낌을 보여주면서 에너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팀원들 모두 음악을 좋아하고 하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노량진 공간에 무대가 주어진다는 것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도 갖고있습니다. Q.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의미를 가슴속에 품고 있네요. 혹시 그런 에너지를 받아 음악을 맘속에만 품고 있던 노량진 청년들이 음악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나 팀에 들어오는 법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A. 앞서 말씀 드렸듯이 교회에서 부터 시작된 팀이다 보니 찬양 팀에 먼저 오셔야 해요(웃음). 강남교회 청년1부 2시50분 예배 오시면 됩니다! Q. the avec라는 팀이 있지만, 혹시 또 다른 팀이 있나요? A. 아까 피아노 치던 ‘노래하는 감자’ 그 친구는 유재하경연대회에서 대상 탄 친구거든요. 현재 혼자로도 아티스트 활동 많이 하고 있는데 저희와도 같이 하고 있어요. Q. 노량진에서의 공연이라는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A. 이 질문에서 많이 생각했었어요. (소리) (리더) (소리) (리더) (리더) ▲ The avec 공연모습 좋은 노래들을 1부, 2부로 나누어 불러주시고는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함께 멋진 공연도 끝이 났습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팀원들에게 다가갔는데요, 사전에 흔쾌히 인터뷰 허락을 해주셔서 어렵지 않게 the avec의 '리더(문지훈)'님과 보컬 '소리'님을 인터뷰 할 수 있었습니다. ▲ 소리님(좌), 리더님(중), 차붐(우) 인터뷰모습 Q. 안녕하세요! 저는 대방동에 있는 무중력지대에서 노량진 탐사대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차붐이에요. the avec란 팀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A. 저희 팀은 노량진 강남교회 찬양팀에서부터 시작된 팀인데요, avec란 이름이 아름다운 백성이라는 의미가 있고 불어로써 함께하자는 의미도 갖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하자는 의미로 avec라는 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노량진 청년들아 함께하자는 의미도 될 수 있겠네요(웃음). Q. 첫 공연은 언제 하셨나요? 공연날짜는 어떻게 정하세요? A. 첫 공연은 4월말 이였어요. 언제였더라...? 4월26일이요! 공연날짜는 팀원 개개인 스케줄에 맞춰서 하다 보니 큰 의미는 없었어요(웃음). 페이스북 the (리더) (리더) (소리) (리더)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26. 4948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얼마나 더 의미 있게 잘 버티고 잘 살아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까요? 예전에 저에게 많은 의미를 주었던 한마디가 있어요. ‘넘어진 곳에서 주울 수 있는 것들을 다 주워라’ 넘어진 곳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일어 섰으면 좋겠어요. 멋진 인터뷰와 함께 the avec과의 시간도 끝이 났는데요. 열정 가득한 목소리로 노량진에 에너지를 전파하고 싶다는 the avec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다음 공연도 꼭 참석하고 싶네요!! the avec 팀의 다음공연이 궁금하시거나 더많은 정보를 원하신다면 http://facebook. com/theavec1로 가시면 함께 소통 하실 수있습니다! ▲ the avec 단체사진!! (리더) 에필로그 노량진에서의 지친 일상에 도피하듯지원했던 노량진 탐사대, 그 첫 컨텐츠로 운명처럼 the avec를 만나게 된 것 같다. 그들이 불러주는 노래는 기교 섞인 가수들의 노래가 아닌 노량진 청년들의 풋풋함과 진심이 담겨있어 더욱 와 닿았다. 이렇게 밝은 빛이 넘치는 청년들이 사는 노량진이 어쩌다 빛을 잃게 되었는지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공부하는 자식을 둔 수많은 부모들의 간절한 바램과 소망이 오히려 노량진 하늘을 뒤덮어 빛을 잃은 것 일까. 아니면 그 바램이 노량진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우리사회가 이미 어두운 것 일까? 많은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노량진 탐사대원으로써 작은 성냥불이되어 이곳을 밝혀나가고 싶다. 노량진엔 정말 청년들이 많아요 공부하러 온 친구들이 많겠지만, 사람이 공부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그런 청년들이 누릴 문화시설이 너무나도 부족하다고 느껴요.. 노량진 주민으로써도 그렇고요. 그래서 이 곳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청년들에게 에너지를 주고 문화컨텐츠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그럼 노량진 주민으로써 좋은 점이나 바꾸고 싶은 점들이 있나요? A. 노량진은 정말 값이 싸요. 대중교통이 정말 편리해요 1호선 9호선 다 있고 좋아요. 노량진에서 공부하러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군대에서 봤던 선후임들도 만나게 되더라고요. 어떤 만남의 장이라고 할까? 저도 비슷하게 노량진에 있으면서 인맥의 스펙트럼이 넓어 진다고 해야 할까요? 노량진 동에 살면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교회에서 만나다 보면 얘기할 기회도 많고 관계도 많아지다 보니 인맥구축에 좋은 것 같아요. (리더) (소리) (리더) (소리) Q. 장점들이 많이 있네요. 다른 나쁜 점이나 바꾸고 싶은 점은 없을까요? A. 청년들이 누릴 공간이 너무 없고 거리에 쓰레기.. 그리고 간판이 잘 정비가 안돼있는 느낌이라 보기에 깔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지나다니는 사람들 자체가 위축되어있고 친구들한테 ‘나 노량진 살아’ 이러면 ‘거기 사람도 살아?’ 이런 반응이에요. Q.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힘이 될 수있는 한마디씩 해주시겠어요? A. 음.. 제 생각엔 요즘 청년들이 많이들 고통 받고 있잖아요. 취업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한 얘기일 수 있지만, 그 고통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특권이 아닐까 생각해봐요. 사람은 고통 없이 너무 행복하기만 한 공간에 있으면 오히려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고 해요. 어느 정도 고통은 인간에게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그 고통을 겪는 시간을 (리더) (소리) (소리)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27. 5150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힘들게 학교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다니던 학교를 포기하고, 자신의 꿈 혹은 이상을 위해 돈이나 시간 등을 투자하여 보다 발전된 삶을 살아가려는 젊은이들이라는 것이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반수생을 '사회적 낭비를 조장하는 이들' 이라는 부정적 시선으로바라보기도 합니다. 바로 ‘사회적 비용’ 때문인데요, 반수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까요? 이처럼 대학교 등록금과 더불어, 반수생들이 다닐 재수학원의 학원비는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반수생 중에는 대학 입학 전부터 다시 수능을 볼 것임을 결심하고도, 현실적인 상황과 심적인 부담의 경감을 위해 소위 ‘안전빵’으로 맘에 들지않는 대학을 등록만 해 놓는 학생들도 대다수 라고 합니다. 이런 반수생들은 첫번째로는 비싼 대학등록금을 내고 한학기만 흐지부지 다니다가 다시 재수학원 비용을 지불하는 식의 비용적인 낭비를 유발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반수생들이 임시방편으로 등록해 놓은 학교가 다른 학생들에게는 큰 교육의 기회였을 수 있었다는 면에서는 사회적인 인재 발굴의 효율성을 저하시킨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렇게 반수생에 대한 여러 가지 사회적 시선들이 존재하는 중에, 저는 문득 노량진에서의 ‘실제 반수생’은 이러한 사회적 시선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또한 그들의 반수생으로서의 삶은 어떤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제 노량진에서 반수 중인 A양을 찾아가 직접 인터뷰를 해 보았습니다. ▲ 2014 대학교 연평균 등록금 순위 (1-10) (출처: 대학알리미/ http://freest80. blog.me/220395162745) ▲ 2015 재수(반수)정규반 학원비 대부분 대학의 여름방학이 시작된 7월, sns에는 수 많은 피서지에서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즐거운 사진이 올라오곤 합니다. 그러나 한편, 1학기 내내 즐겁게 활동했던 sns를 비활성화하고 노량진에 발을 내딛은 대학생들이 있습니다. 바로 ‘반수생’들인데요. 이들은 일정한 기간 대학 생활을 하다, 다시 수능을 보기 위해 노량진 학원가로 몰려든 청년들이라고 합니다. 저는 ‘재학생’과 ‘n수생’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있는 그들은 누구인지와, 그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들, 또 개인적으로 그들이 이렇게 늦은 시기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사연과, 지금 노량진에서 그들의 삶은 어떠한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반수생',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젊은이들. 기사: 엄지민 ▲ 노량진의 반수반 모집 학원 배너들 반수란 일정한 기간 대학을 다니다가 다른 대학을 가기 위해 현재의 대학생활을 지양하고 다시 수능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재수나 삼수와 같은 n수는 대학을 다니지 않고 전년도에 이어 계속 수능을 준비하지만, 반수는 대학생활을 일정기간 하고 다시 수험생활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n수와 구분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반수생이 수능장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비율을 차지할까요? 위의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체 수능응시생 중 20퍼센트 이상이 졸업생이고, 졸업생 중 절반 정도의 비율을 반수생이 차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체 수험생 중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반수생들에 대해서, 사회적으로는 두 가지 평가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좆아 다시 도전하는 청년들’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입니다. ▲ 평가원, 헤럴드 경제 기사 참고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28. 5352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가끔 쉬고 싶을 때 빼고는 그 점에서는 별로 힘들진 않아요. Q. 재학생이나, n수생은 이르면 12월부터 시작하기도 하는데, 반수생은 훨씬 늦은 7월에 시작하잖아요. 혹시 시기적으로 다른 수험생보다 늦게 시작했는데, 시간적인 압박감은 없나요? A. 엄청나죠. 일단 놀다가 공부를 시작하니 공부 내용을 완전히 까먹어버렸어요..(웃음) 다시 개념익히고 감까지 익혀야 하는데 7월에 시작하는건 엄청 촉박해요. 그리고 학원 선생님들도 그러고 수능 관련해서 인터넷 사이트를 들어가도 반수생 시간 엄청 부족하다고 그러니까 뭔가 더 불안해요. 빨리개념 익히고 약점 위주로 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부해야죠, 뭐. Q. 여러 고민을 하시는 것 보니, 반수전과 지금 반수하고 있는 중의 마음이나 생각이 변하셨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A. 반수 전에는 반수하기로 마음 굳혀서 그런지, 학교 기말고사도 싫고 빨리 반수해서 더 좋은 대학 가야지 이런 생각이 많았어요. 기말고사 끝나고 반수 시작하기 직전에는 또 괜히 불안하고 걱정되고 그랬고요. 근데 또 막상 시작하니까 그냥 적응하고 생활도 단조로워지고 맘도 편안해지고 그래요. 근데 이러다가도 수능이 무섭고 불안하고 이러면 학교로 돌아갈까 생각도 들고, 너무 내 인생의 일부를 낭비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무휴학 반수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그냥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이 들어요. Q. 혹시 다니던 대학에서의 생활이나 교우관계에 대한 미련 때문에 힘든 점은 없었어요? A. 일단 교우관계는 별로 크게 넓거나 깊지 않아서 전혀 신경쓰이는 건 없었어요. 근데 가끔 학교가 그립긴 해요. 그것도 수험생활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만 가끔 그러는 거라서.. 큰 미련은 없어요. Q. 덤덤하시네요. 아, 작년에도, 올해에 도 노량진에서 공부하시는데, 노량진에 서 공부하면서 좋은 점 혹은 나쁜 점 Q. 반수를 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A. 대학 생활이 제가 상상한 대학 생활이랑 너무 달랐어요. 우선 여대 특유의 분위기도 저랑 조금 맞지 않았어요. 그것 때문에 학교에 적응하기 힘든 상태에서, 과 자체도 적성에 너무 안맞더라고요. 제 대학이나 과가 제가 원했던 곳이 아니라, 작년 수능 성적 맞춰서 갈 수 있는 최선의 대학에 넣은거였어요. 처음에 학교에 붙었을 때는 그냥 마냥 기뻤죠. 근데 시간이 지나고 수업을 들으면서, 수업이 저랑 너무 맞지 않으니까 그때부터 고민되더라고요. 과연 내가 이 과에서 4년을 버틸 수 있을까. 또 이런 적성적인 문제와 더불어 성적에 미련도 사실 있었죠. 재수까지 열심히 했는데, 공부한 만큼 성적이 덜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청 복합적인 이유죠(웃음) ‘삼’반수라는 재수때와 다른 부담감도 있었고, 놀다가 다 시 수험생을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는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기로 했죠, 뭐. 이렇게 선택하고 만약 실패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냥 미련 없애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근데 그 전까지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반수를 결심하기로 하니 대학 이름 자체에도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Q. 대학 다니다가 수험생활로 돌아가니 어때요? A. 일단 처음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첫 번째로 몸이 너무 힘들어요. 아예 생활 리듬이 통째로 바뀌니까요. 대학 다닐 때는 2시 취침에 10시 기상하다가 학원 들어오고는 12시 취침에 6시기상.. 진짜 처음에는 아침마다 죽는 줄 알았어요. 아침마다 졸고, 또 소화도 잘 안되고.. 어쨌든 몸이 적응하는게 가장 힘들었죠. 근데 지금3주 지나고 나니까 또 적응이 되가는거 같아요. 음 그리고 막 주위에서 놀다가 공부하니까 놀고 싶지 않냐고 묻기도 하는데, 저는 오히려 재수 때 보다 놀고 싶다는 생각은 덜 들더라고요. 대학을 가보기 전까지는 ‘대학 가면 어떻게 놀까..? ‘대학에선 진짜 재미있게 놀겠지?’ 이런 호기심 비스무리한 생각들에 더 대학가고 싶고, 대학 간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는데, 막상 대학 다녀보니 별거 없더라고요. 놀거 다 놀고 별거 없다는거 알고 공부하니까 그다지 대학생 친구들도 부럽지도 않고, 그냥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29. 5554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혼자 공부하면 계속 아는 것만 반복하게 되거든요. 괜히 돈 아낀다고 흐지부지 시간 낭비하는 것 보다는 어짜피 할거 제대로 조금 비용 들여서 하는게 결과적으로는 대학 가는데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만약에, 아주 만약에, 반수에 실패하는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나요? A. 당연히 있죠. 늘 생각해요. 불안하죠. 그래도 지금은 그냥 실패해도 가치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려고요. 최소한 ‘더 해볼걸’하는 미련이나 학교 간판에 대한 미련은 없앨 수 있는거니까요. 다시 돌아가면 ‘그래도 해볼건 다 해봤으니까’ 하고 그냥 다니던 학교에 만족하려고요. Q. 반수는 ‘꿈을 위한 도전’이다. vs ‘사회적 낭비’다. A. 낭비죠. 사실 웬만하면 그냥 학교 들어가서 적성이 완전히 다르지 않는 이상 욕심 없이 적당히 잘 지내고, 만 족하면 그게 자신 스스로에게도, 사회 적으로도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욕심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시 많은 비용을 들여 공부를 하는거잖아 요. 심지어 잘된다는 보장도 없어요. 물론 꿈이나 도전도 좋지만, 자기가 조 금만 욕심을 줄이고 스스로 만족을 하 는게 제일 나은거 같아요. 그니까, 반수가 최선은 아니라는 거죠. Q. 그러니까 반수가 개인의 욕심의 문 제라는 건가요? A. 개인의 만족의 문제죠. 근데 그게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문제기도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학벌 무시할 수 없잖아요. 아니 사실, 매우 중요하잖아요. 이런 사회적 현실에서 사람이면 당연히 학벌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거니까요. 그런데, 제 말은 그 문제가 온전히 사회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거에요. 왜냐면 사람마다 기준이 너무 달라요. 만족하는 정도, 그니까 욕심이 다 다른거죠. 사람마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도 만족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고, 지금 여기서 반수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거잖아요. 예를 들어 저희 학원 반에도 서강대 다니다가 반수하는 친구가 있어요. 저였으면 서강대에서 반수 안해요. 근데 그 친구는 거기서 만족 못하고 이 있나요? A. 일단 나랑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많으니까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요. 그리고 63빌딩과 한강경치가 잘 보인다는 점도 큰 좋은 점이에요. 힘들 때 마다 옥상에서 좋은 경치 보며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정말 많이 위로가 되거든요. 안 좋은 점은 비올 때면 수산시장 비린내가 너무 심하다는 점. 그리고 주말 식사 시간에는 외출해서 밥을 먹을 수 있는데, 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복잡한 점인 것같아요. Q. 오.. 여러 이유들이 있네요. 이제 학원 관련된 질문들을 할텐데요, 우선 왜 굳이 재수종합반을 선택했나요? 단과라든지 독학의 방법도 있고, 또 요즘에는 인터넷강의도 많이 활용할 수 있을텐데요. ▲ A양의 평일 반수 일과와 수칙 A. 의지력이 엄청나게 뛰어나지 않는 이상 혼자 하면 망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도 혼자하는 친구들을 보면 저 말이 사실이고요. 학원 다니다가 중간에 혼자 한다고 나간 친구들 조차 혼자 하면 엄청 풀어지더라고요.. 저는 의지가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고, 혼자 할 자신도 없어서 그냥 학원에 들어갔어요. Q. 그렇긴 하지만, 300만원 상당의 학교 등록금이나, 매달 100만원 이상의 학원비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수종합학원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A. 사실 학교 등록금은 아빠 회사에서 나와서..(웃음) 별로 부담 없었어요. 그래도 학원비에 대해서는 많이 갈등했어요. 작년에 재수하면서 너무 많은 돈을 써서 부담이 되었거든요. 근데 그런 비싼 학원비를 내더라도 학원에 다니는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남은 시간이 없는 반수생에게는 효율적인 공부가 필요하거든요.. 학원에 있으면 의지 측면에서도 많이 도움되고, 또 강의도 모르는 부분을 채우는 식으로 해서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어요.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
  • 30. 5756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노량진 탐사대 매거진 Vol.1 나는 노량진 2동에 자리 잡아가고 있는 20대 청년이다. 꿈과 직장을 찾아 작년 여름 서울로 올라왔고 우연히 노량진에서 서울드림을 시작하였다. 어느 덧 노량진에서 산지 1년. 혼자 살아가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하나 둘 씩 생겨난다. 가장 아쉬운 점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온다. 같은 고민과 아쉬움을 가진 1인 청년 가구들과 '먹는 것'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논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아가고싶다. 우선 첫 시작은 노량진 일대의 청년들의 ‘식생활’을 소개하고자한다. 노량진 하면 제일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컵밥이다. 빠르게 조리되어 먹을 수 있는 간편함, 3천원이면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저렴함 등 많은 청춘들이 한 끼 식사로 컵밥을 선호하고있다. 하지만 노량진 청년들이 컵밥만 주구장창 먹으며 공부하진 않는다. 그럼 노량진 청춘들이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지 그들의 식문화를 알아 보자! Let's Go! 노량진은 행정구역이 1동과 2동으로 나누어진다. 노들역~노량진1/9호선 및 장승배기 부근까지가 포함된다. 노량진 1동은 대체적으로 지하철역과 가깝고 대부분의 학원들이 밀집해 있다. 학원을 따라 컵밥 노점과 음식점들도 즐비하다. 이 많은 메뉴들 중 어느 것을 먹을지 고민하고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노량진에 살고 있는 나의 ‘밥’ 기준은 간단하다. 안/밖 첫째로 가게 안에서 먹는 음식이냐, 가게 밖(즉, 길거리)에서 먹느냐 하는 것이고 두 번째의 의미는 집 안에서 먹느냐(손수 해 먹느냐), 집 밖에서 먹느냐(외식)의 기준이다. 첫 번째, OUT 가게에서 먹는 것 노량진 1호선 앞 맥도날드를 뒤편으로 꽤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맥도날드,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점을 비롯하여 프랜차이즈 식당(백종원씨 체인점, 유가네 닭갈비, 놀부 부대찌개 등)과 백반 위주의 고시식당, 고깃집 등 다양한 가게들이 자리해있다. 다양한 가게 수만큼 메뉴 선택권도 넓다. 가게형 컵밥 노량진 1인 가구를 위한 식문화 기사 :김아리 반수하는거죠. 결론적으로, 반수가 온전한 사회적 문제는 아니라는 거에요. 개인의 욕심문제도 크죠. Q. 반수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시네요. 그렇다면 반수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하실지 궁금한데요. A. 욕심, 미련, 불안 그러나 희망. 지금은 그렇게 좋게만 보이지는 않네요(웃음) Q. 그렇다면, 혹시 반수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한마디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이러다 망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막상 시작하면 그냥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안 해보고 후회하느니 하는 게 나을 것 같고, 또 모든 경험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들 망설이지 말고 같이 해봐요! 반수생에 대해 세간에서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그러한 말들은 반수를 하려는 학생, 그리고 반수를 하고 있는 학생의 실제와는 동떨어진 이야기 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수생, 그들은 그저 우리 모두와 다르지 않게 그저 자신의 삶을 찾아가고 있는 청년이며,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 중 하나일 뿐 인 것이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찾는 과정을 놓고 사회적 잣대를 들이대며 평가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것 아닐까요? 혹시, 앞으로 반수생을 마주친다면, ‘꿈’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올려다 보거나 ‘사회적 낭비’라는 부정적인 단어로 내려다 보지 말고, 그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환하게 활짝 한번 웃어주고, 등 한번 토닥여 주는 것이 어떨까요? ④ 노량진탐사대 기사④ 노량진탐사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