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왜 쓸까?
• 생각과 말은 흩날려 사라진다
• 지난 주 이 시간
– 대화 중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할까?
– 그 대화들이 쓸모 없는 것이었을까?
• 인간은 잊기 마련이다
– 따라서 쓴다는 것은
–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4. 왜 쓸까?
•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면…
– 두서 없던 생각이
– 두서 없는 글이 되면
– 읽기가 싫어진다
– 그래서 두서를 만든다
• (두서(頭緖)[명사] 1.일의 단서. 2.=조리)
– 글을 쓰는 것은 흩어지는 생각을 잡아
– 말이 되는 말로 기록하는 행위다
5. 왜 쓸까?
• 글은 가장 간단한 매체다
– 내 생각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매체
– 내 생각의 시비를 가려볼 수 있는 매체
– 내 생각과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매체
• 따라서 글을 통해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 SNS에 깨작거리는 것과
– 책을 쓰는 것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 겁내지 마라
6. 왜 쓸까?
• 우리가 기록한 오늘
= 내일의 자산
• 개인의 자산일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자산이 될 수도 있다
• 혼자 본다고 쓰는 글이라도
누군가에게 큰 감동을 줄 지 모른다.
13. 생각하기
• 내가 오늘 뭘 했지?
– 오늘은 내가 7년 만에 여자사람친구를 만났지.
• 처음으로 두근거렸던 경험은?
– 사랑에 관해서 기억나는 글/영화/노래
• 살면서 제일 ‘쪽’팔렸던 것은?
– 나는 취해서 노상방뇨를 한 게 ‘쪽’팔리린다. 노상방뇨
는 범법행위일까? 노상방뇨가 당연한 시대도 있지 않
았을까?
• 지우고 싶은 기억은 뭘까?
– 나는 그 기억을 지우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런
기억을 어떻게 했을까? 지울 수 있을까? 비슷한 경험
을 한 사람은 없을까?
14. 생각하기
3. 질문하라
– 왜 하필 오늘 기억 중에 7년만에 만난 여자사
람친구에 관한 기억이 가장 생생할까?
– 왜 하필 사랑에 관한 그 글/영화/노래가 내게
가장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을까?
– 언제부터 노상방뇨는 불법이 됐을까?
– 다른 사람은 어떻게 그 기억을 극복했거나 그
기억 때문에 무너졌을까?
28. 고치기
• 우리의 얼굴도 뽀샵을 하면 예뻐지듯
– 많이 고칠수록 글에 두서가 생긴다
– 많이 고칠수록 글이 예뻐진다
– 많이 고칠수록 읽을만한 글이 된다
– 고치면 고칠수록 글이 된다
– 보기 싫어 토가 나올 정도면 명문이 나온다
29. 고치기
• 고치면서 관련 글을 읽어라
– 내용을 추가할 수도 있고
– 잘못된 게 있으면 뺄 수도 있고
– 어떻게 고쳐야 할 지 참고 할 수 있다
• 가령 번역자들은 한 권의 책을 번역하기 위해
10 권의 관련 서적을 읽는다
• 하물며 본인의 글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30. 고치기
• 그리고 다시 내 글을 읽어라
– 지치면 쉬었다가 다시 읽어라
– 하지만…
– 쉬기 전에는 반드시 ‘결말’지어야 한다
– 중간까지 두고 한참을 쉬면
– 그냥 다른 글 쓰는 것
31. 고치기
• 소리 내서 읽으면 문장이 부드러워진다
– 고칠 만큼 고쳤다 싶을 때 소리 내서 읽으라
– 또 고칠 것이 들린다
–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다면
– 부자연스러운 문장
32. 고치기
• 남에게 보여줘라
– 고친다는 것은 화장하는 것과 같다
– 화장하면서 자기만족이라는 건 뻥이듯,
고치면서 혼자 볼 거라는 건 뻥!
–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보여줘라
33. 고치기
•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보여줘라
– 독설가일수록 좋다
– 안면몰수 할수록 좋다
– 다시 안 볼 사이일수록 좋다
– 원수 같은 사이일수록 좋다
– 어쨌든 보여줘라
34. Tips_
• 부사를 없애라 (王중요)
– Ex) 대학 신입생.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가 죽을 만큼 띵~
• 반복적으로 쓰이는 단어는 지워라
– ‘킁킁’, ‘도리도리’, ‘긁적긁적’, ‘You know’
• 문장과 문단은 독립할 수 없다
(시가 아닌 이상)
37. Case_2
• 2014. 9. 20. (첫 번째 원고)
• “인권의 출발은 평등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
났다 .이 말은 인권의 중요한 사상이다. 또한 가장 낮은,
가장 약한 사람들의 열망으로 바꿔온 인권의 역사는
오랜 시간을 거쳐 발전되었다. 인권을 지키기 위한 투
쟁은 계속 일어나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인권은 아직도 권력아래, 무관심, 외면으
로 인권의 보편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인권을 외치면서도 아직도 곳곳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
로 갈리고 학벌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쉽게 접
할 수 있는 현실이다. 시대가 발전하고 생활의 많은 변
화가 일어났음에도 많은 여성들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차별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여성을 낡은 관념
과 관습의 뿌리 깊은 인식이 남아 있다. “
38. Case_2
• 2014. 10. 5. (세 번째 수정)
• “가장 낮은, 가장 약한 사람들의 열망으로 바꿔온
인권의 역사는 오랜 시간을 거쳐 발전되었다. 인권
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계속 일어나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인권은 아직도
권력 아래, 무관심, 외면으로 인권의 보편성을 유
지하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인권을 외치면서도
아직도 곳곳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로 갈리고 학벌
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쉽게 접 할 수 있는
현실이다. 시대가 발전하고 생활의 많은 변화가 일
어났음에도 많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시선은 옛
날과 다를 바 없다. ”
39. Case_2
• 2014. 10. 5. (세 번째 수정)
• “그 중 사회적 약자의 범주 안에 들어있는 여성들의 경
제적, 사회적 차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직
도 낡은 관념과 관습이 뿌리깊이 남아 있다. 여성에 대
한 인식은 여성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가 하는 문
제이다. 시각에 따 여성의 위상과 역할은 달라 질수 있
다. 여성을 아름다운 상징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
도 있고, 아주 연약한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거
며, 위대한 존재로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문화마다의 그 색깔은 다르며 시
각도 각양각색이다. 그런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의 인권도 매 나라마다 사회마다 똑 같이 지켜
지는 것은 아니다. “
40. Case_2
• 12월 19일 (다섯 번째 수정)
• “어릴 적부터 나는 집에서는 부모님 말을 잘 듣
는 딸로,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을 그대로 따랐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언
제나 북한 사회의 질서와 규정에 맞게 생활했고,
법을 지키며 생활했다. 그렇게 유년기를 보내가다
사춘기가 다가왔을 때 우연한 기회로 암암리에 돌
던 남한 라디오 방송과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여기와 다른 바깥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드라마의 동갑내기 여주인공을 보면
서 자유로운 그녀의 모습에 부러움을 금치 못했고
내 모습을 비교해보며“난 왜 자유롭지 못하지?”라
는 질문을 처음 던졌다.“
41. Case_2
• 12월 19일 (다섯 번째 수정)
• “드라마 속 그녀가 사는 남한은 내가 듣던 세상과
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조금씩 드라마속 세상이
궁금해졌다. 내가 사는 세상은 답답해져만 갔
다. 너도나도 똑같은 머리 스타일로 묶고 다니는
것도 그만하고 싶었다. 옷 입는 것까지 단속 받으
며 살아야 되는 고향이 싫어졌다. 드라마의 주인공
들처럼 좋은 환경에서 우아한 생활은 누리지는 못
할지라도 누군가에게 구속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고 싶었다. 한껏 멋을 낸 긴 머리를 풀고 거리를 활
보하는 것이 사춘기 시절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꿈
이었다.”
42. Case_3
• 2014. 10. 1. 첫 원고
• “이때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은 것은 변방이었다. 평양과 멀리 떨어
질수록 ‘주체’가 강조되었다. 이 시기 ‘주체’는 북한의 자립을 뜻하
기보다는 국가가 책임질 수 없으니 자력갱생하라는 뜻이 더 도드
라졌다. 경제적 위기상황에서 위험을 지방화시키고 죽음을 외주
화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위험을 지방화
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핵발전소를 서울에 지으라는
주장은 일종의 농담처럼 받아들이면서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진
부산 인근 소도시와 시골에는 30년짜리 수명을 넘긴 핵발전소들
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그 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를 대도시에
보내기 위해 초대형 송전탑을 세우려는 것에 맞서 밀양과 청도에
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10년 가까이 싸우고 있다.
죽음 또한 외주화되어 변방으로 밀려난다. 2013년 한 해 동안 산
업재해로 인한 사망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2천 건이다. 직업 현장
에서 공식적으로 죽음이 인정받은 건만 하루에 5.3명인데, 2000
년 이후 13년 간 약 3만 명이 된다고 한다. “
43. Case_3
• 2014. 10. 1. 첫 원고
• “하지만 이런 통계에 잡히지 않는 죽음들은 13~30배 이를 것이라
추정하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입장이다. 특수고용형태로 고용된 경
우나, 사실상 고용되었으나 자영업 형태로 외주사업자로 등록된 경
우 서류상으로는 노동자가 아닌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이
산재신청 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의외로 흔하다. 현장에서 망자가 생
겨도 앰뷸런스를 부르지 않고 현장 차량으로 운구하며 은폐하는 것
도 일종의 관행이다.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합의나 협박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민주화 정도는 당연히 비교할 수 없고, 경제적 격차 역시 한참이나
벌어져 있는 한국사회도 이러한데 초유의 식량 및 경제 위기 상황에
서도 이례적으로 견고한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 내 변
방지역의 상황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식량기구 연구결과와 국
내외 추정치를 종합하여 대기근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사망한 인
원이 40~6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런 경제적 폐허는 사회체계와 국
가운영에서 서로 다른 두 측면으로 이전과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
게 된다.”
44. Case_3
• 2014. 12. 19. (네 번째 수정)
• “이때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은 것은 변방이었다. 평양과 멀리 떨어질
수록 ‘주체’가 강조되었다. 이 시기 ‘주체’는 북한의 자립을 뜻하기보
다는 국가가 책임질 수 없으니 자력갱생하라는 뜻이 더 도드라졌다.
경제적 위기상황에서 위험을 소외지역으로 돌리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위험을 ‘지방화’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핵발전소를 서울에 지으라는 주장은 일종의 농담처럼
받아들이면서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진 소도시나 시골에는 설계수
명을 훌쩍 넘긴 핵발전소들을 계속 운용하는 것도 이런 위험의 지방
화라고 볼 수 있다.
• 북한과 민주화 정도는 비교할 수 없고, 경제적 격차 역시 한참이나
벌어져 있는 한국사회도 이러한데 초유의 경제 위기 상태에서도 견
고한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한 북한의 변방지역 상황은 상상 이상이
었을 것이다. 란코프는 세계식량기구의 연구결과와 국내외 추정치를
종합하여 대기근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사망한 인원은 40~6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하며, 미국의 연구자 놀런드 등은 60만에서 100
만명 사이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