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 Old Boy
-OLD BOY
-Director : Park Chan-wook
-Cast : Oh Dae-su (Choi Min-sik)
-Movie info
Oh Dae-su (Choi Min-sik) is a
husband and father whose reputation
for womanizing is well known. One
day, for reasons he doesn't
understand, Oh Dae-su finds himself
locked up in a prison cell, with no
idea of what his crime was or whom
his jailers may be. With a small
television as his only link to the
outside world and a daily ration of
fried dumplings as his only
sustenance, Oh Dae- su
3. 2.Bakjwi (Thirst)
(2009)
-Bakjwi(Thirst) (2009)
-Director : Park Chan-wook
-Cast : Shin Ha-kyun, Song kang- ho
-Movie info
Song Kang-ho, Shin Ha-kyun, and Kim
Ok-bin star in Oldboy director Park
Chan-wook's frightener concerning a
priest whose life takes a turn for
the worst after he participates in a
medical experiment to find a cure
for a deadly disease
4. 3. Lady Vengeance
-Lady Vengeance (2005)
-Director : Park Chan-wook
-Cast : Lee Yeong-ae
-Movie info
A woman looks for both revenge and
redemption after spending 13 years in
prison in this offbeat thriller from
South Korea. Lee Geum-ja (Lee Yeong-ae)
was in her early twenties when she was
found guilty of kidnapping and killing
a young boy, and though she confessed
to the crime under duress, while behind
bars she dreamed of one day being able
to clear her name -- and even the score
with the people who railroaded her,
including the police officer who
brought her in (Nam Il-woo) and Mr.
Baek
5. 4.Im Cyborg, But That’s OK
-Im a Cyborg, But That’s ok (2008)
-Director : Park Chan-wook
-Cast :RAIN
-Movie info
Young-goon is admitted to a mental
institution. Believing herself a
cyborg, she charges herself with a
transistor radio. Il-soon, a fellow
inmate, steals the other inmates'
personality traits and believes he is
fading and will one day turn into a
dot. When Young-goon refuses to eat,
Il-soon decides it's his job to get her
on her feet again. This charming,
tender and visually arresting film
cements Park Chan-wook's reputation as
one of the most gifted and
stylistically playful filmmakers
working today.
그는 1928 년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 사실 논문을 참조하다보니 알게된 사실인데 , 출생증명서에 의하면 그의 출생지가 펜실베니아 피츠버그로 명시되어있지만 그가 어디서 출생했고 또 언제 출생했는지 정확히 알수는없습니다 . 이는 미스테리한 삶을 살고자했던 그의 생각이 반영된것인데요 . 생전에 그는 ‘나는 신비롭게 남고싶다 나는 나의 배경이 알려지는것이 싫고 , 그렇기 때문에 질문을 받을때마다 다르게 이야기했다’라며 인터뷰마다 자신의 출생지를 필라델피아 라고도 했다가 클리브랜드 라고도 했으며 피츠버그라고도 했습니다 . 태어난 해도 1929 년에 태어났다고 하는등 바꾸어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 그의 집은 슬로바키아 ( 당시는 체코 ) 이민자의 가정으로 위로 두 명의 형이 있었 .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 앤디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지역 고등학교에다니다가 , 카네기 공과 대학 ( 현재 카네기멜론 대학교 ) 에서 상업 예술을 전공한다 . 1949 년 졸업을 하면서 뉴욕 시로 이주하여 잡지 삽화와 광고 제작으로 명성을 쌓았다 . 22 살때 대학 졸업 후 뉴욕으로 옮겨 ' 보그 '(VOGUE) 나 '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 등의 잡지 광고와 일러스트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60 년대부터 그는 〈캠벨 수프 캔〉이나 〈코카콜라 병〉 등 유명한 상품들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 후에 실크스크린으로 바꾸어 , 대량생산된 상품의 그림을 그리는 것만 아니라 작품 자체를 대량생산하였다 . 그의 나이 40 세 인 , 1968 년 6 월 3 일 팩토리 스튜디오의 직원 발레리 솔라나스가 스튜디오에 들어와 워홀을 총으로 세 발 쏘았다 . 두 발은 빗나갔지만 세 번째 총알이 그의 양쪽 폐 , 지라 , 위 , 식도를 관통했다 . 병원에서 의사들은 그가 죽었다고 선언했으나 그는 그 총격에서 살아남았다 . 그러나 죽을 때까지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했다 . 솔라나스는 후에 " 그는 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있었다 ." 고 말했다 . 이 사건은 1995 년에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 1970 년대부터 1980 년대는 사교계로부터 의뢰를 받아 초상화 실크 스크린 제작 프린트를 다수 제작한다 . 1970 년 〈라이프 지〉에 의해서 비틀즈와 함께 ‘ 1960 년대에 가장 영향력이 있던 인물’로 선정됩니다 . 1987 년 2 월 21 일 뉴욕 코넬 의료 센터에 담낭 수술을 받은 다음 날인 22 일 , 상태가 악화되어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 그의 나이 58 세였으며 , 평생 독신이었다 . 미국 노스 쇼어 지역에 《앤디 워홀 미술관》이 있다 . 개인 예술가 전문 미술관으로서 미국 최대라고 합니다 . 생전 예술가로써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컷는지 알아볼수있는ㄷ ㅐ목입니다 .
그의 예술을 이해하기전에 ,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배경에대해서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 2 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유럽과 대등한 강대국이 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 전쟁 후 유럽의 많은 미술가들이 미국으로 망명을 하였구요 . 이를 통해 미국은 문화적으로도 강대국을 꿈꾸었지요 . 미국이라는 나라는 뿌리 깊게 유럽 컴플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이고 그 중심에는 유럽인들이 있는데 당시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을 저급한 양키라고 하였지요 . 왜냐 ? 유럽에서 적응을 못한 이들이 모여사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2 차 대전이 미국의 승리로 돌아가자 상황은 달라졌지요 . 경제적으로는 강대국이었지만 문화부분에서는 여전히 열등국가였습니다 . 그리고 이념적으로 미국은 ' 메카시 선언 ' 을 통해정치적으로 냉전시대를 돌입했는데 라이벌인 소련은리얼리티에 입각한 사실주의가 강세였습니다 . 결국 미국은 이와는 다른 추상 표현주의를 밀 수 밖에 없었죠 . 이를 통해 미국 = 자유 라는 인식을 톡톡히 세계인에게 각인 시켰지요 . 하지만 추상 표현주의는 아직도 유럽의 유산이었고 활동하는 많은 작가들이 유럽인 출신들이었습니다 . 이들은 자신들을 유럽인이라고 생각을 하였지 미국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 미국은 정책적으로 미국인들에 의한 미국인만이 할 수 있는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사조를 창조하려고 하였지요 . 이때등장한 것이 팝아트입니다 . 즉 대중 예술 미국이 가장 내세울 수 있는 소비자본주의를 반영한 사조가 팝아트입니다 .
첫번째 입니다 . 얼마 전이었죠 전국민의 분노를 사게한 오원춘 수원 살인사건입니다 . 죽음의 그늘 앞에서 , 살아보고자 손을 뻗었던 112 세자리 숫자 .. 하지만 돌아온 경찰의 반응은 장난 전화아니냐는 반응이였으며 , 그토록 정확하게 위치를 전달했던 피해자의 노력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 7 분 가량의 통화 속에서 들려오던 비명소리에도 ' 단순한 (?)' 가정 폭력이 아니냐는 경찰들간의 대화도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 그 전화가 마지막 전화인줄 알았다면 , 부모님한테 할 것을 ... 한 사람의 목숨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지난 2007 년 한국으로 건너온 오원춘은 경남 거제 , 경기 화성과 용인 , 부산 , 대전 , 제주 , 경남 함안 , 수원 등지의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해 왔으며 주 1 회 정도 성매매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 또 최근 구입한 스마트폰으로 하루 3 회 이상 ' 음란물 ' 을 검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 더욱이 범행 당일에도 스마트폰을 사용해 38 회나 음란물을 검색했고 시체를 훼손 중이었다고 진술한 2 일 오전에도 6 회에 걸쳐 음란사진을 검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 오원춘의 스마트폰에는 약 700 여장의 음란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최근 경찰이 공개한 cctv 에서도 오원춘의 의도적인 납치 행각이 다뤄졌으며 , 모든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 뒤늦은 수색과정과 , 또 되려 피해자의 가족에게 막말을 서슴치 않았던 형사의 행동까지도 모조리 국민들에게 보여졌습니다 .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 모든 것이 잘 맞지 않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간 것 같습니다 .
첫번째 입니다 . 얼마 전이었죠 전국민의 분노를 사게한 오원춘 수원 살인사건입니다 . 죽음의 그늘 앞에서 , 살아보고자 손을 뻗었던 112 세자리 숫자 .. 하지만 돌아온 경찰의 반응은 장난 전화아니냐는 반응이였으며 , 그토록 정확하게 위치를 전달했던 피해자의 노력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 7 분 가량의 통화 속에서 들려오던 비명소리에도 ' 단순한 (?)' 가정 폭력이 아니냐는 경찰들간의 대화도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 그 전화가 마지막 전화인줄 알았다면 , 부모님한테 할 것을 ... 한 사람의 목숨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지난 2007 년 한국으로 건너온 오원춘은 경남 거제 , 경기 화성과 용인 , 부산 , 대전 , 제주 , 경남 함안 , 수원 등지의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해 왔으며 주 1 회 정도 성매매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 또 최근 구입한 스마트폰으로 하루 3 회 이상 ' 음란물 ' 을 검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 더욱이 범행 당일에도 스마트폰을 사용해 38 회나 음란물을 검색했고 시체를 훼손 중이었다고 진술한 2 일 오전에도 6 회에 걸쳐 음란사진을 검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 오원춘의 스마트폰에는 약 700 여장의 음란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최근 경찰이 공개한 cctv 에서도 오원춘의 의도적인 납치 행각이 다뤄졌으며 , 모든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 뒤늦은 수색과정과 , 또 되려 피해자의 가족에게 막말을 서슴치 않았던 형사의 행동까지도 모조리 국민들에게 보여졌습니다 .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 모든 것이 잘 맞지 않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