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정] 20대 후반~30대 초반에 만났을 때는 비혼인 게 서로 좋고 즐거웠어요. 근데 그 이상 만나다 보니까 서로가 각자 질환이나 질병으로 아플 때가 생기더라고요. 친한 사람이 장기입원이나 수술을 한다고 했을 때, 간병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지인들 중에 간단한 수술을 하는 경우에 머리를 감겨준다든지, 식사를 챙겨준다든지,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와준다든지. 혼자 살아가는, 기혼인 분도 한두 분 있었는데, 가족이 돌보지 못하는 경우에 도움을 요청하시면 우리가 가서 그 사람의 아픔이라든지 그 사람에게 필요한 돌봄을 함께 나눴어요. . . [김란이]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의 삶을 공부했어요. 공부하지 않으면 점점 그 친구에게 공감하기 어려웠고, ‘정상’을 자꾸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었죠. 가족은 사실 이런 ‘공부’를 하면서 돌보지는 않잖아요. 가족이 아니어서 생기는 ‘거리감’ 때문에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공부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서운한 게 있으면 말하고, 모르는 주제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공부하고, 완전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서로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던 시간을 거쳤어요. . . [봄봄] 40대가 되니까 생활공동체 안에서 몸이라는, 이 육체성이 너무 확연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내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당면한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외면하고 싶었어요. 노인여성 공동체 얘기를 할 때도 “그런 거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하고 불평하고(웃음). (그리고) 노년이라고 하면 내가 내 몸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게 떠올라 힘들었어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내 몸의 상태를 인정하게 되면 노년에도 ‘받아들임’이 어렵지 않을 것 같거든요. 공부와 논의의 과정 안에서 저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들이 생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