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 심층 사례집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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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가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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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은평 품앗이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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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나 동 잡지원 기

서울시 용산구 《남산골 해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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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알 란성장관찰일지

서울시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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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공 육 , 마을속 로퐁 ~

서울시 은평구 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 	

광 사 들의 잔치 야기
ⅴ 마을미디어《 진 람 》 돌 이
서울시 광진구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통
가
ⅵ 소 하는 자원활동 를 꿈꾸며
서울시 성동구 〈책과 함께 사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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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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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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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내며

‘마을씨’들이 하나둘 움트고 싹을 낼 것입니다
지난 9월 말, 시장님을 모시고 서울시의 여러 간부, 마을의 활동가, 센터의 식구가
한데 모여, 한 해 동안의 마을공동체 활동의 성과를 나누고 내년의 방향을 의논하는
자리를 가졌다. 마을기업 인큐베이터, 자치구의 담당 공무원, 센터의 활동가 등이
각자의 활동을 TED 방식으로 발표하였다. 발표 후에는 참석한 전문가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황윤옥 하자센터 부센터장이 세 번째인가에 마이크를 들었다.

“태어나면 두 살이고, 이제 막 돌 지난 간난쟁이더러 세 살이라 하듯이, 서울시
마을지원센터 이제 일 년 되었는데 세 살이라 한다.” 순간 행사장은 “와하하하~”
유쾌한 웃음이 터졌다. “맞아, 맞아, 이제 일 년 되었는데 바라는 게 너무 많아.” 황
부센터장이 말을 잇는다. “돌이 되었다는 것은 살아주었다는 것이다. 돌잔치를 하
는 것은 세상에 갓 나와 일 년이나 버티고 살아준 것을 기뻐하고 또한 고마워하는
것이다.” 그 자리의 있던 나는 물론이고, 여러 활동가는 커다란 위안을 얻었다. 이
러저러한 개선점을 세세히 지적하던 사람들도 “그래~ 이만하면 그동안 잘한 거지”
하며 팽팽한 듯 긴장된 분위기는 일순 거짓말처럼 누그러지고, 서로 대견해하고 수
고했노라는 덕담장으로 뒤바뀌었다.

그렇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을 시작한 지 만 이 년, 센터가 설립되어 활동한
지는 일 년이 조금 넘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약 7,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서울시 및
센터가 주관하는 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새롭게 등장하였다. 그리고 등장한 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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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 그러다 보면 마을의 씨앗들이 하나둘 만들어질 것이
다. 내년이 지나고 나면 이런 ‘마을씨’들은 하나둘 움트고 싹을 낼 것이다. 마을씨가
움트는 과정에서 활동가의 활약은 필수다. 마을은 사람들의 관계망이고, 사람들의
힘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사람들 속에서 움직이는 활동가들의 양성이 관건이라고
들 한다. 그런데 그 활동가는 마을씨가 움트고 활발해지는 과정에서 발굴되고 배출
된다. 동네 이웃들과 좌충우돌 지지고 볶으며 우여곡절 몇 고비 넘기고 나서, 겨우
돌아보니 함께 일구어온 성과가 대견하고 함께 만들어온 이야깃거리가 대단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도 어느덧 활동가가 되어있다.

여기 실린 여러 이야기, 한 해 두 해 여러 해 동안의 우여곡절과 지지고 볶아온
이야깃거리들이다. 평범한 동네 주민이 이웃들과 함께 벌여온 각본 없는 드라마들
이다. 평범한 주민의 성장기이며, 우리 마을의 생생한 아카이브다. 활동하랴 짬짬
이 글 쓰랴, 날밤 새운 날도 부지기수였을 거다. 안 봐도 비디오다. 하지만 개인적
으론 인생 한때의 값진 기록이고, 마을로서는 생생한 역사 그 자체다.

“정말,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2013년 12월 12일
짱가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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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은평 품앗이 육아〉

글쓴이 | 안세정

3살, 6살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2008년 첫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스트레스로 우울증에 시
달리며 행복한 육아를 고민하다가 우연히 듣게 된 한 강의를 통해 ‘품앗이 육아’를 알게 되었다.
이후 ‘품앗이 육아’에 대한 막연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살다가 2012년 6월, 10개월 된 둘째 아이
를 안고 참석한 ‘책 꾸러미 행사’(생후 3~18개월 아이를 위한 북 스타트 운동의 일환)에서 만난
10명의 엄마들과 운명처럼 ‘품앗이 동화책 읽어주기’ 모임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모임은 2012년
서울시 마을공동체 돌봄 분야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은평 품앗이 육아’라는 이름의 단체로 재탄
생하게 되었고, 그녀는 자신의 깜냥과는 무관하게 엉겁결에 대표를 맡아 마을공동체 속에서 새
로운 삶을 경험하게 된다. ‘은평 품앗이 육아’는 지역 엄마들의 욕구에 발맞춘 꾸준한 성장으로
2012년과 2013년, 2년 연속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현재는 80여 명의 엄마
와 아이들이 좌충우돌하며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 읽어주기와 엄마표 수업 및 엄마들을 위한 독
서토론, 기타 여러 소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ansjjjang@naver.com
글소개

품앗이 육아, 해보면 알게 될 걸?
“육아를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든든한 동지들이 생겨서 너무 행복하다.”
“‘함께’의 힘을 아이들도 엄마도 배우게 되었다. 내 아이뿐만 아닌, 우리 아이들이
다 함께 커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크고 가치 있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아이를 위해 만난 모임인데, 이제는 아이보다 내가 더 많이 성장하고 배우는 공
동체가 되었다.”
“육아로 힘들고 무거웠던 일상이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과의 만남으로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엄마’라는 명함을 더욱 더 빛날 수 있게 해주는 공동체, 우리 아이들의 ‘첫 책 놀
이터’이다.”

우리 마을공동체 ‘은평구 품앗이 육아’ 회원들의 활동소감이다. 때로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 볼만한 이 ‘품앗이 육아의 가치와 비전’을 우리의 실제 활
동모습과 성장과정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어서 용기 내어 이 글을 전하게 되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한 작년 2012년 6월부터 현재 마을공동체로서 자리매김을 하기
까지 리더로서 역량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다른 이들은
아이가 아프면 한두 번 모임에 빠지기도 하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만,
리더인 나로서는 아이가 아파도 모임을 위해 내색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
는 점이 너무나 힘이 들었다. ‘나 역시 아이를 위해 시작한 모임인데, 왜 지금은 모
임을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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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은평 품앗이 육아
           은평 품앗이 육아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잘한 일은 당연시되고, 문제가 발생되면 모두 내
책임이 되는 듯해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어느 곳에 토로를 해야 할지 막막하고 힘
들어서 숨 막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깨가 무거웠던 시
기였다. 하지만 매 모임마다 함께하는 육아의 즐거움과 부모로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알아가는 나와 회원들의 모습 속에서 ‘아, 이래서 이 일
이 가치 있는 거구나’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품앗이 육아’는
내게 포기할 수 없는 과업이 되었다. 힘들었지만 분명히 가치 있는 시간들이었고,
지금도 힘들지만 그렇게 견디면서 단계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의 경험을 통해, 다른 이들이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이거나 힘들 때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족하지만 몇 글자 남겨보고
자 한다. 특히 ‘품앗이 육아’로 내 아이를 내 손으로, 또 ‘함께’ 키우며 서로의 아이가
자라고 그 속에서 내 아이와 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뜻 깊은 일인
지를 알리고 싶었다. ‘품앗이 육아’를 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모
르는 분들에게 나의 경험이 작은 나침반이 되었으면 한다.
험난하고 막막하기만 했던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나를 믿어주고 함께 최
선을 다해준 1기 북키북키 멤버들, 열등감과 콤플렉스로 점철된 나를 ‘은평 품앗이
육아’ 속에서 새롭게 단련하고 그로부터 다시 용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 딸 휘준이와 휘연이, 집안
살림은 뒷전으로 미룬 채 마을공동체 활동에만 전념하던 나를 보며 가끔은 싫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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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도 했지만 내가 행복해보이니 그저 묵묵히 협조해주었던 남편 안병화씨, 딸내미
의 마을공동체 활동으로 손자들 픽업과 돌봄으로 본의 아니게 바빠지셨던 친정아버
지, 언제나 사랑과 기도로 함께 해주는 친정엄마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배려와 그들이 주는 안락함이 없었다면 그토록 최선을 다해
마을공동체 활동에 전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울시마을공동체사례집에 참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신 서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 관계자분들께도 매우 감사
하며 깊은 내공으로 정성껏 피드백해주신 이현구 선생님께도 고개 숙여 감사의 마
음을 보낸다.
내 개인의 시선과 견해가 우리 멤버들 또는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상
처가 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다. 그래도 ‘은평 품앗이 육아’의 탄생부터 짧은 기간
의 성장 동안 리더로서 보고 들으며 겪은 이야기와 속내를 여과 없이 솔직하게 털
어내고 싶다. 그래야 다음 길을 걷게 될 누군가가 좀 더 앞길을 예측하고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미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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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차례

           은평 품앗이 육아

1. 작은 품앗이 모임이 마을공동체가 되기까지
어색한 첫 만남 / 커뮤니티로 소통하기 / 우연히 알게 된 마을공동체 /
좌충우돌 마을공동체 만들기 작전 / 마을공동체로 결정

2. 마을공동체로서의 몸부림
애 메고 누가 일하나? / 마을공동체가 된 후 활동의 변화 / ‘함께’의 열매, 첫 소식지

3. 수많은 어려움들
우리만의 장소가 필요해 / 누군 하고 누군 안 하고 /
회의, 회의, 끝없는 회의 속에 드는 회의감 / 뻣뻣해진 마음을 풀어주는 ‘수다의 힘’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쭉쭉’ 성장 중
육아에 지친 엄마들의 안식처 / 더 큰 성장을 위한, 새로운 장소물색 /
대망의 2기를 모집하다 / 그들의 열정, 2기 모집 대성공 /
2013년 마을공동체 재선정 / 드디어 우리만의 전용공간이 생기다

5. 우리의 앞날 생각해보기
리더로서의 고충 / 내려놓아야 할 시간 /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
끊임없는 회의와 토론 / 리더의 조건 / 이게 뭐라고!!

6. 그들이 본 은평 품앗이 육아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 이현숙 팀장과 곽영선 /
어린이 도서연구회 은평지회 석은진 /
신사종합사회복지관 담당 홍경희 사회복지사 /
신사종합사회복지관 관장 보련스님과 부장 이승재 사회복지사 /
아빠들 대표 3인(은찬아빠 양길수, 태희아빠 김재광, 한비아빠 이지현)

에필로그
품앗이 육아, 이 정도면 해 볼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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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은 품앗이 모임이
마을공동체가 되기까지
어색한 첫 만남

주민등록등본을 뗄 일이 있어서 10개월 된 딸아이를 안고 응암동사무소에 갔다. 등
본을 떼고,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입구에 붙은 손바닥만 한 종이의 공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 책 놀이방 북스타트 데이 1. 일시: 06.19.(화) 10:00~12:00
2. 대상: 은평구 내 생후 3개월~18개월 영아 20명(선착순)
3.  용: 시행대상 부모에게 북스타트 꾸러미(그림책 2권, 북스타트 가방, 	
내
손수건, 권장도서목록)를 증정하고 책을 통한 놀이프로그램 진행.
4. 장소: 꿈나무 도서관 내 2층 책 놀이방
5. 방법: 유선연락을 통한 사전접수
6. 준비: 당일 영아와 함께 참여 및 주민등록등본 지참
7. 신청 접수 및 문의: ☎ 351-2016 (10:00~17:00)
※ 오시는 방법: 은평구청 건너편 파리바게트와 청진동해장국 사이 골목으로 들
어와 직진하면 꿈나무 마을 후문이 나옵니다. 후문으로 들어와서 우측에 실내수
영장 있고, 바로 옆이 책 놀이방입니다.
★ 책 놀이방 운영시간 : 10:00~17:00 매주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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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오호, 책 꾸러미를 공짜로 준다고? 한 번 가봐야겠는걸?’ 다이어리에 일정을 표
시하고 ‘유선연락을 통한 사전접수’라는 안내는 뒷전으로 한 채 그날 당일, 큰 아이
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작은 아이를 안고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신청 안 해서 안

           은평 품앗이 육아

된다면 말지 뭐’라는 생각과 ‘설마, 아이 안고 거기까지 갔는데 그냥 가라고 하겠
어?’라는 알 수 없는 배짱으로 말이다.
사실 우리 집 근처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도서관이 있다는 게 놀랍고 궁금해
서였다. 평소 책에 관심이 많고 휴식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도서관을 찾는 나로서
는 행사보다는 ‘꿈나무 도서관’에 더 관심이 갔다. 은평구청 맞은편 언덕을 헉헉 거
리며 겨우 올라 꿈나무 도서관에 도착했다. 이미 몇몇 엄마들이 아가들과 함께 행사
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신청하고 오신 거 맞죠?” 데스크에 계신 선생님이 나를
향해 물었다.
“아, 아니요. 신청은 못했는데…….”
“아, 그러세요. 그럼 그냥 여기에 이름이랑 주소 써주시고 참석해주세요. 다행히
오늘 오신다고 하신 한 분이 빠지게 돼서 공석이 있거든요.”
바쁘게 이름을 적고 아가와 엄마들 무리에 자리하고 앉았다. 영국에서 시작되었
다는 ‘북스타트 운동’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책을 접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로 우
리나라에서도 이 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라는 설명과 함께 좋은 도서목록과 동화책
2권, 손수건을 에코백에 담아 무상으로 주었다.
선생님이 나오셔서 책을 읽어주시고 같이 동요를 부른 후 이날의 행사는 간략하
게 끝이 났다. 도서관측에서 북스타트 데이 행사를 담당한 선생님은 이번이 은평구
에서 처음 시행한 북스타트 운동이라면서 앞으로 매월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씀하셨
다. 더불어, 오늘 배운 것처럼 엄마들이 아이와 함께 책을 통해 같이 성장하면 좋겠
다며 지금 모인 엄마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만나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기를 해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셨다.
3~18개월의 아이들이 모인 자리였으므로 아이들의 발달은 제각각이었다. 누워
있는 아이, 기어 다니는 아이, 서 있는 아이, 걷는 아이, 뛰는 아이 등등……. 아이
가 걷고 뛰는 엄마들은 전반적으로 자신의 아이들이 너무 커서 함께 하기에는 월령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 같다며 모임 결성 및 참여에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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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함께 모임 꾸려가기 원하시는 분들 한 번 모여보세요.” 선생님의 진두
지휘로 둥그렇게 앉은 엄마들은 나까지 총 10명이었다.
“네, 이 정도면 괜찮네요. 그럼 같이 어떻게 모이고 어떻게 진행할지 의논해보세
요. 모임 장소는 저희 꿈나무 도서관을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이곳의 도서는 원래
대출이 되지 않지만, 모임에 필요하시다면 따로 대출도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혹
시 부모교육 등이 필요하시면 강사도 섭외해서 강의를 제공해드릴 의향도 있고요.”
담당 선생님의 모임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의사에 자리에 앉은 엄마들 모두 얼굴
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누가 먼저 일을 진행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중
간쯤에 앉은 이제 막 아이가 5~6개월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우리 만남 일정을 정해볼까요?”
결국 우리는 매월 둘째, 넷째 주 금요일 오전 10시 반에 꿈나무 도서관에서 만나
기로 했다. 자리에 앉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품앗이로 동화책 읽어주기로 프로그램
을 확정하고 말이다.
1기 멤버들은 동화책 읽어주기 모임을 갖기로 결정 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승연맘 배진윤 : 그냥 마실할 곳이 필요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만남으로 말이지요.
은찬맘 장명정: 은찬이에게 많은 책을 읽어주고 싶어서 그날 도서관 북스타트
행사에 가게 됐고 마침 선생님의 권유로, 엄마들이 함께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모임을 시작하게 됐죠.
윤지맘 김미정: 처음에는 윤지한테 문화센터보단 엄마표로 뭔가를 해주고 싶
은 맘으로 모임에 동참하게 되었어요.
호연맘 강은자 : 저는 맨 처음은 아니고 중간에 들어왔는데, 그냥 엄마들과 같
이 모여서 소통하고 싶었어요. 처음 키우는 아이라서 그저 육아방법을 같이
나누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리고 한두 달 지나면서 아이와 내가 성장한
것을 느꼈고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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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커뮤니티로 소통하기

이제 정기적으로 만나서 엄마들이 돌아가며 동화책 읽어주기를 하자는 의견이 결정
된 순간, 나의 머릿속에 불빛이 ‘번쩍’ 했다.

           은평 품앗이 육아

2008년 여름, 첫 아이를 낳고 매일 집에 틀어박혀 육아를 해야 하는 나의 일상이
그저 우울함으로 물들 던 어느 날 들었던 강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네 아줌마들
과 작은 재능을 모아서 품앗이 교육으로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
당시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엄청난 가슴 떨림을 경험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단
순히 시간 보내는 것이 아닌 내가 가진 작은 재능으로 서로 나눌 수 있고 아이들은
그를 통해 사교육에서 얻을 수 없는 무한한 사랑과 긍정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서
말이다.
그때부터 나의 마음에는 언제나 ‘품앗이 육아’에 대한 열망이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이곳이 그런 내 열망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는 ‘촉’이 온
것이다.
“그럼, 제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열게요. 카페가 있으면 앞으로 저희가 지속적인
활동을 하기에 편할 것 같아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처해서 온라인 커뮤니티인 ‘카페’를 만들겠다고 나섰
다. 모두들 그런 것도 만들 줄 아냐면서 대단하다고 좋다는 반응이었다. 다음으로
카페 이름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우리의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나면서 오랫동안 지속하기를 바라는 암묵적인 나의 염원을 담아 ‘은평
북스타트 맘’이라는 이름으로 열기로 결정했다.
“그럼 카페를 열고나서 제가 카페 주소를 다시 문자로 알려드리도록 하죠.”
그러자고 한 후, 각자 어색한 인사와 마무리를 하고 하나둘 자리를 비웠다. 그리
고 첫 만남 후 딱 일주일 뒤인 2012년 6월 26일, 드디어 포털 사이트에 ‘은평 북스
타트 맘’이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를 열었다. 미리 취합한 회원들의 핸드폰 번호로
문자를 보내서 공지를 하고 각자 자기소개를 간략히 남기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라는 이름의 공감대로 서로를 알아갔고 그 마음으로 ‘품앗이 동화책 읽어주기’
를 2주에 한 번 진행해나갔다.
그 후 카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 모임을 체계적으로 끌어가고 함께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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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하며,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는 데 매우 좋은 소통공간으로 함께 하고 있다. 무
엇보다 우리 모임을 알고 싶어 하는 새로운 이들에게 우리를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통로이다.
그 속에는 우리가 함께 했던 다양한 활동, 아이들과 엄마의 성장이 고스란히 담
겨져 있다. 만일, 누군가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꼭 온라인
커뮤니티를 동반하라고 권하고 싶다. 함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온라인상에
그 문제를 올려놓고 고민하고, 의논하기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를 둔 엄
마들은 같이 만나서 이야기 할 시간이 녹록치 않을 때, 서로 필요한 것을 채우고 싶
을 때, 이 카페에서 많은 것을 드러내고 주고받을 수 있다.
그리고 꿈나무 도서관에서는 매월 북스타트 행사가 진행되는데, 그때마다 우리
카페를 소개해주어서 계속 새로운 멤버들이 유입되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마을공동체

“언니, 얼마 전에 은평구 소식지에 보니까 마을공동체라고 3인 이상 되면 신청할 수
있더라고요. 예산도 얼마 받을 수 있고 하던데, 생각해보니까 우리 인원이면 충분
하겠다 싶더라고요.”
멤버 중 같은 동네에 사는 언니 집에서 수다를 떨다가 가볍게 던진 이야기였다.
나는 평소 지역정보나 소소한 정보들에 관심이 많은 터라 나와 연관지을만한 것이
있으면 기억해두거나 메모를 해두는 편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지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또 그 일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일련의 과정에 대한 마음가짐이 선뜻 생겨나지
않은 터였다.
며칠 후,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세정아, 내가 다 알아봤더니 우리도 할 수 있겠더라. 양식 다 뽑아놨으니까 다
같이 모여서 의논하고 작성해보자.”
맨 처음 모임을 열 때도 모임 일정 및 방법 등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주도했던
언니다. 이번에도 그런 빛나는 추진력으로 우리를 리드했다. 함께 의견을 모으기
위해 일일이 모든 멤버에게 전화를 걸었고 어디서 만나서 의논할지 미리 정해서 알
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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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며칠 후 우리는 대형마트 8층 푸드 코트에서 각자 아이를 가슴에 안고 모여 앉았
다. 손에는 하얗고 두꺼운 마을공동체 지원양식이 들려졌다. 마을공동체지원사업
에 선정되면 예산도 받을 수 있고 우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으니 힘내서 한

           은평 품앗이 육아

번 지원해보자는 얘기와 함께 이런 저런 의견이 오고 갔다. 각자 양식을 가져가서
작성해 본 후 다음번 모임에 들고 오기로 하고 헤어졌다.

좌충우돌 마을공동체 만들기 작전

각자 지원양식에 아이디어를 조금씩 모아서 취합을 했지만, 처음으로 이런 양식을
작성하는 우리는 그야말로 모든 작성란이 오리무중이었다. 어떻게 작성해야 탁월
한 것인지, 어떤 내용을 적어야 옳은지를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골치를 썩여야 했
다. 우선 처음 일을 주도하게 된 명정언니와 내가 은평구청 담당자와 통화를 하면서
일을 진행해 갔다. 날은 한여름으로 땡볕이었고 우리는 아이를 안고 동분서주 하면
서 지원 마지막 일정인 8월 10일까지 제대로 해내기 위해 애써야 했다.
“언니, 우리 오늘 은평구청 안에 커피숍에서 만날까요? 거기 커피도 싸고 시원하
고, 컴퓨터도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명정언니와 나는 은평구청 커피숍에서 각자 아이를 가슴에 안고 만났다. 내 손에
는 지난번에 사람들이 모아준 지원서가 한데 뭉쳐 있었다. 내용이 중복되거나 조금
엉뚱한 것들도 뒤섞여있어서 하나로 잘 통합해서 구성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명정언니가 아이의 기저귀를 갈러 간 사이 나는 딸아이를 안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구상하고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다. 점심 끼니도 놓친 채, 좀 전에 산 머
핀 케이크로 허기를 겨우 달래면서 말이다.
그때 옆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지금 뭐 하고 계세요?”
“네?”
“애 안고 힘들게 작성하시는 게 뭔가 하고요.”
“네. 마을공동체 지원서 작성하고 있어요.”
“아, 그러세요. 이런 일은 저희가 얼마든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저를 따라오
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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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그 분은 은평구청 주민참여위원회 위원장이셨다. 우리에게 친히 주민
참여위원회 회의 장소 공간을 열어주시면서 편하게 컴퓨터로 작성하고 잘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시며 관계부서 분들을 불러 모아 소개해주셨다.
“이봐, 여기 이분들이 이번에 새로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원
하실 계획이라는데 좀 도와드려.”
비록 양식 작성은 모두 우리 몫이었지만, 예산구성 등에 있어서는 은평구청측으
로부터 많은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밖에 단체 등록을 위해 우리 단체명을 ‘은평
품앗이 육아’로 정한 후 장소 지정이 필요했을 때, 꿈나무도서관측의 협조로 도서관
을 우리 단체주소로 지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엉겁결에 만장일치로 ‘은평 품앗이 육아’라는 단체의 대표가 되었다.
조금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 작은 모임이 앞으로 우리와 우리 아이들, 그리고 이
지역의 엄마들에게 분명히 크고 작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거라는 확고한 비전이
있었기에 순순히 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어떤 모임의 ‘장’이 아닌 한 단체의
‘대표’가 된다는 것은 내게 매우 큰 의미이자 막중한 책임을 묻는 일이었기에 어깨가
매우 무거웠다.

마을공동체로 결정

은평 품앗이 육아 대표가 된 나는 본격적으로 마을공동체로서 자리매김을 위한 대
부분의 일들을 전담해서 하게 되었다. 관계기관이 필요한 서류나 미팅이 있을 때 내
게 전화를 하거나 메일 등을 보내왔다. 그때마다 나는 회원들에게 알릴 사항이 있을
경우 카페를 통해 알렸다.

“지난 8월 10일, 서울시에 ‘은평구 품앗이 육아’로 마을공동체 사업 지원하였
습니다. 서울시에 현재 회원 명단 제출하였고요. 추후 실제 진행여부 확인을
위하여 해당부처 담당자와 미팅이 진행 될 예정입니다. 정확한 일정은 다시
확인해서 카페를 통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 있도
록,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활동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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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꿈나무 도서관 현장조사와 서울시청에서의 면접 등을 통해 최종 마을공동체 사
업자로 선정이 되었다. 지원서 양식 작성과 서울시 직원 방문 현장조사, 서울시청
면접 등의 일련의 과정은 아이를 동반해야 하는 우리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은평 품앗이 육아

하지만 마을공동체를 위해 뛰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끈끈해졌고 앞으로 우리 모
임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상황을 우리 회원들은 다음
과 같이 회상한다.

승연맘 배진윤: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되겠어?’라는 마음이 더 컸다. 서울
시에서 이제 막 시작하는 정책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
했다.
호연맘 강은자: 나도 솔직히 ‘되겠어?’라는 생각이 강했고, 내놓을만한 무언가
도 없었는데 빠른 추진력과 열정에 놀랐다.

2.
마을공동체로서의
몸부림
애 메고 누가 일하나?

2012년 10월~12월까지 총 3개월의 기간 동안 300만 원의 서울시 예산을 지원받게
되었다. 자부담 10퍼센트가 있기에 우리 멤버 14명은(중간에 새로 멤버가 4명 들어
왔다) 3개월분의 회비 3만 원을 한 번에 납입해서 자부담 비용으로 충당해 넣었다.
막상 서울시 예산을 받고 마을공동체가 되고 보니 그전에 느슨하게 진행되던 것
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원서에 적은대로 부모교
육이나 외부활동 등 여러 가지가 실제로 이어져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우리는 누가
그런 일을 주도할 지에 대한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냥 성인 한사람, 한사람으로 움직이면 일에 대한 포지션을 명확히 나눠서 할

19
수 있지만 각자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고 때에 따라 아이들의 컨디션이 천양지차인
지라 누구도 나서서 무엇을 하겠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임을 위한 리
더로 나와 총무가 있었지만, 마을공동체로서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는 것은 우리 모
두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300만 원의 예산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특히나 한 번도 정부 예산을 운
용해본 적이 없는 평범한 우리로서는 조금은 버거운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행여
잘못 써서 문제되는 것 아닐까 노심초사하기도 하였으며 행사 하나하나가 처음이라
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을 진행하면서 전체적인 운영과 관리, 마을공동체 예산 운용과 때에 따른 마을
공동체 교육 참석, 필요한 양식작성 등 뜻밖의 일들이 많았다. 더군다나 서울시와
구청의 사업에 대한 이해가 일치되지 않아서 중간에서 설명하고 같은 이야기를 반
복하면서 해나가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비일비재했다. 때문에 우리는 그에 따른 에
너지 소모에 대한 비용을 회장과 총무에게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회장과 총
무역시도 아이를 키우는 똑같은 입장에서 희생을 감행하고 있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꼭 필요하다는 점에 전체가 동의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인건비 책정은 회장과 총무 스스로 그에 준하는 성실함을 갖추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단순히 회장과 총무라는 직함으로 뭉뚱그려진 희생과 헌신보다는
어느 정도의 인건비를 책정하여 일에 대한 당위성을 가지고, 또 일을 보다 추진력
있게 진행해보자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사실 당사자인 회장과 총무에 대한 인건
비 책정은 도리어 더 큰 올가미 같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특히, 대표자로서 그
일을 결정한 나는 더욱 그런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총 예산 300만 원 중 한 달에 회
장과 총무에게 각각 20만 원씩 3개월 동안 총 120만 원의 지출은 적은 금액이 아니
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례를 만들어가는 시점에서 리더의 결정력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나머지 예산은 엄마표 수업 재료비와
우리 활동을 기록으로 남길 소식지 제작, 식비나 간식비 등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회장과 총무 인건비 관련해서는, 2013년에도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에 지원하며
예산안에도 넣은 바 있다. 하지만 단체의 운영진에게는 인건비를 일절 지급하지 않
는다는 규정으로 인해 2013년 회장, 총무에게는 인건비 지급이 전혀 안 되는 실정

20
서울시 은평구

이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꼭 언급하고 싶다. 아무리 공익을 위한 단체라
하더라도 그 단체가 제대로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운영진에 대한 예우가 반드시 필
요하다.

           은평 품앗이 육아

물론, 이런 단체의 장이나 운영진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희생과 헌신의 마
인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을공동체를 끌어가기 위한 나의 활동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일들의 당위성을
가치와 비전으로만 증명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리고 이런 도시의 삭막하고 바쁜 현
실에서 그런 가치와 비전을 공유해 줄 수 있는 가족도 흔치 않다.
실제로 나는 마을공동체를 끌어가면서 집안 살림과 아이들 돌보는 일에 그전보
다 훨씬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전업주부가 정작 돌봐야 할 아이들과
살림은 뒷전으로 하고 모임에만 전념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질문을 자주 해왔고,
부모님 역시도 네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집안 살림을 이 꼴로 하면서 그렇게
열정을 쏟아야 하느냐고 묻는 일이 다반사였다.
더군다나 단체 성장 및 모임도모를 위해 애쓰면서 들어가는 교통비와 통신비가
평소의 2~3배 넘게 늘어나는데, 주부인 우리에게는 어마어마한 비용일 수밖에 없
다. 따라서 운영진 인건비 부분은 최소한의 활동비라도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에너지 소비 외에도 경제적으로 개인비용이 추가되면 부담이 돼서 운영진
활동에 어려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운영진이 지속적인 책임과 의무를 갖고, 마을공
동체의 꾸준한 성장을 위해 애쓰게 하려면, 이런 부분의 예산규정이 반드시 생겨나
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을공동체가 된 후 활동의 변화

마을공동체로 선정이 되면서 2주에 한 번이었던 모임을 1주에 한 번으로 늘리고, 돌
아가며 동화책 읽어주기와 함께 2인 1조로 엄마표 수업을 같이 진행해보기로 했다.
첫 순서는 나와 명정언니가 맡았다. 이런저런 의논 끝에 인형극을 겸한 촉감놀이를
하기로 했다. 인형을 구하고 검은 콩과 쌀을 준비해서 아가들 양말에 넣어보고 만지
는 놀이로 정했다.
첫 번째 타자인 우리는 많이 떨리고 부담되어서 미리 만나 리허설도 했다. 다행

21
히 엄마들이 크게 호응해주고 아이들이 잘 따라줘서 잘 마쳤지만 긴장한 탓인지 호
흡이 너무 빠르게 진행된 면이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이후, 엄마표 수업은 점점 익
숙해지고 점점 진화되어 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엄마와 옆의 친구들과 함
께 행복하고 즐겁게 교감하며 자라갔다.
어린 아이를 둔 엄마들은 집 안에서 아이하고만 지내는, 참으로 힘든 일상을 보
낸다. 우리는 다함께 카카오톡으로 일상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서로 육아나 살림에
대한 궁금증 등을 풀어가면서 친해져갔다. 함께 같은 시기의 아이를 키워간다는 것
은 엄청난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에게 힘을 불어넣을 원동력이 되었다.
좀 더 끈끈하고 의미 있는 성장을 위해 ‘일주일에 하루를 더 모이면 좋겠다’는 생
각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하루를 기왕이면, 동화책에 대한 엄마들의 공부로 시
작하면 어떨까 싶던 찰나에, 기존에 활동하고 있던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연락이
와서 순간적으로 도움을 청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정씨, 요즘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요? 혹시 앞으로 활동 못하시는 건가
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요. 제가 품앗이 육아로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어서 요
즘 못 갔네요. 죄송해요~ 그런데 혹시 저희 모임에 독서모임을 도와주실 선생님 안
계실까요?”
덕분에, 어린이도서연구회 은평지회에서 10년 넘게 활동하시고 사단법인 어린
이도서연구회 서울지부에서 지부장까지 맡으셨던 석은진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
다. 선생님의 어린이 동화책 강의를 시작으로 우리에게 독서모임이 생기면 어떨지
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다행히 다들 좋다고 했고 우리는 이 날을 엄마를 위한, 엄마
가 공부하는, ‘맘스데이’라 칭하고 함께 좋은 작가의 동화책과 양질의 자녀양육 이
론서를 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좋은 동화책은 무엇인지 서서히 알게 되었으며, 동화책
속에 담긴 삶의 철학과 지혜를 한층 더 깊이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동화책과 자녀
양육 이론서를 함께 보고 토론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다들 생소한 듯 했지만, 시간
이 흐를수록,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펼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덕분에
우리는 선생님이 없이도 스스로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22
서울시 은평구

‘함께’의 열매, 첫 소식지

2012년 11월, 우연히 5살 큰 아이의 어린이집 소식지를 보다가 우리도 이런 소식지

           은평 품앗이 육아

를 발간하면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면서 동시에 마을공동체로서 하나의 새로
운 일로 부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뿐 아니라, 다음 해에도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좋은 기폭제가 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특히, 주변에 아가를 키우면서 힘든 엄마들에게 우리 모임을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내포되어 있었다.
모임이 있는 날, 큰 아이 어린이집에 비치된 소식지를 몇 장 집어 들고 멤버들에
게 우리 이야기를 이렇게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었다. 모두 찬성하였고
어떤 형식으로 만들면 좋을지에 대한 의논이 시작되었다. 우선 멤버들 중 관련분야
에서 일했던 사람이나 미술 쪽에 재능 있는 사람을 뽑아 총괄하면 어떨지 의견을 모
았다. 다행히, 결혼 전에 만화가로 활동했던 미해가 해보겠다고 나서주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니 같이 만
나서 아이를 봐주기로 했다. 한 사람이 모두 전담하기 보다는 최대한 함께 모여서
아이디어를 짜고 같이 만들어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왜냐면, 모두 아이를 키우고
있고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버겁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 카페에는 소식지에 들어갈 아이템을 함께 모으기로 하고 우선 모임 외에
시간이 되는 날을 잡아 전지를 하나 놓고 전체 틀을 짜보기로 했다.
그런데 소식지 발간을 위한 첫 모임을 약속한 그 날,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덕
분에 전원이 함께 하지는 못했다. 참석한 인원들도 아이들을 안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에 휩싸이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나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함께 격려하고 다독였다. 모인 인원들은 각자 집에서 가져온 가위, 풀, 색종이, 스
카치테이프 등을 꺼내놓고 머리를 모았다. 우선 소식지가 발간되는 시기가 12월이
니 컨셉을 크리스마스로 잡고 디자인하기로 했다.
소식지 발간 리더를 맡은 미해가 아이들 사진을 보면서 집에서 미리 아이들 얼굴
을 캐리커처로 그려왔다. 사진처럼 아이들의 특징을 잘 살린 그녀의 그림은 우리에
게 엄청난 환호를 불러 일으켰다. 늘 함께 아이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던 평범한 우리
속에 이런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신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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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그날의 단상을 당시에 우리 모임 카페에 올린 나의 모임 후기로 대
체해볼까 한다.

제목: 이번엔 雨中 소식지 발간모임!! ^ㅡㅡ^’’
지난 금요일, 지난 3개월 동안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 활동을 추억으로 남길
소식지를 만들기 위해 만나기로 한 우리!!
열심을 내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속이 든든해야 하기에 울 동네 30년
전통의 김밥역사를 자랑한다는 ‘청기와 김밥집’에 전화로 15줄의 김밥을 주문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데다 큰 아들내미 어린이집도
보내야하니 김밥을 찾으러 갈길이 너무 막막했습니다.ㅠㅠ
더군다나 그 김밥집 현금만 받으시는 곳인데, 수중에 현금이 제로!! 은행에 들
러 현금 찾고 가야할 판, ‘어쨌든 가보자’ 하고 나왔어요. 헌데, 비바람 너무 심
하게 불어서 아들이 든 우산은 뒤집어지고, 저도 휘연이 매고 우산 들고 멘붕
이 왔는데, 그 순간 은자에게 걸려온 전화!!
“언니, 김밥 안 찾았으면 내가 가져갈께!! 나 호연이 두고 혼자 가!!”
‘오예~기쁘다, 구주 오셨네~’ 구렁텅이에서 누군가 손 내밀어 구해준 느낌!!
가볍게 아들을 어린이집으로 들여 보내고 꿈나무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천
재지변을 뚫고 만나서인지 더욱 반가웠던 우리~

오자마자 열심히 컨셉 잡아주시는 두 분의 미술 전문
가, 미해와 명정언니^^(또랑또랑 은찬이 영문을 모른
채 엄마 등에 밀착!! ‘은찬아, 너희 엄마가 이렇게 멋진
사람이란다.’)
아픈 아가들이 많고 아침부터 비가 몰아쳐서 많은 분들
이 함께 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윤이와 미해가 남편이
휴무이고 은자도 친절한 시엄마가 호연이를 봐주셔서
자유부인으로 나와서 일이 너무 수월했네요. (물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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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는 주아, 유이, 호연이를 매우 사랑합니다. 암요!!)

           은평 품앗이 육아

전날 밤에, 잠을 쪼개 그려온 미해의 아가들 캐리커처 보면서 완전 신난 우리.
조심조심 가위질 해봅니다. 이런 보물 같은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우리 안에
있다니, 너무 감동~~물결~~은자는 미해에
게 가족 캐리커쳐 선주문 넣어주셨어요.ㅋㅋㅋ
우리 모두 공동구매로 미해에게 캐리커쳐 그려
달라 하자며 한동안 왁자지껄 신나게 웃었네
요.^^

하릴없이 턱 괴고 경청만 하고 있는 저의 모습.
우헤헤헤, 보이시나요? ‘나는 왜 그림 그리는
재주가 없이 태어난 걸까~’ 하고 슬퍼하는 중.ㅠㅠ (괜찮아요, 함께 하는 것만
으로도 힘이 되고 즐거우니까~호호호….)
그래도 함께인 덕분에 여차저차 컨셉은 잡았네요. 하지만 결국 미해에게 일이
다 몰리게 되어 미해는 정신이 살짝 혼미해진 거 같았어요.ㅠㅠ 기꺼이 기쁘
게 착착 진행해가는 미해 솜씨가 어찌나 믿음직스럽던 지요~ 역시 같이 모인
덕분에 소식지 이름도 1분 만에 ‘북키북키’(북과 키즈의 합성어)라고 정하고
요.ㅎㅎ 세찬 빗소리 들으며 김밥 2줄 이상 흡입하고 위층 카페 올라가 커피
도 한잔씩 들이키며 나름 즐거운 시간 보냈답니다.

이 날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모인 우리, 왠지 더 끈끈하게 뭉친 느낌이었네
요. 오고 싶었지만, 아가들 컨디션과 여러 가지 여건이 되지 않아 못 오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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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마음으로 함께 했다는 거 다 알아요. 그러니 미안해하지 말기!! 그 마음으
로 다음번에 더 많이 헌신해주기!!
월요일에도 미해의 작업을 돕기 위해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윤이, 은자, 명정
언니, 제가 미해 집에 갑니다. 저는 큰 아이를 찾으러 금세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미해가 작업할 동안 유이도 볼봐주고 옆에서 외롭지
않게 수다 떨고 오렵니다. 맛난 것도 같이 시켜먹고요~^^;;
우리 이렇게 사랑과 추억 쌓아가는 거 맞지요. 모든 과정과정 감사하고 행복
합니다. 소식지 나오는 그날을 기대하며~우리 소식지 만들기 첫 모임 후기
마쳐요~^^

소식지 발간을 통해, 우리는 처음으로 마을공동체로서 함께 뭉침의 의미를 깨닫
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는 소식지에 들어갈 전반적인 내용을 구상하고, 또 누군
가는 아이 때문에 작업이 힘든 미해를 돕기 위해 주말에 몇몇이 미해 집으로 가서
미해가 컴퓨터 작업할 동안 같이 아이를 돌봐주었다. 또 다른 멤버는 그동안 찍은
활동사진 중 잘 나온 것들을 골라서 한데 모아 미해에게 전달해주었다. 다 같이 일
을 쪼개서 하긴 했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리드하는 사람이 가장 고생을 하기 마
련이다. 덕분에 미해는 몇 날을 아이를 재운 후 밤마다 고된 작업을 해야 했다.
“언니, 우리 남편이 나 이거 하는 것 보고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하더라.”
“그러게, 너 잠도 못자고 너무 고생이 많다. 신랑이 그렇게 말할만해.”
“근데 언니, 나 재밌어. 하나하나 채워지는 것 보면 너무 뿌듯해~ 오랜만에 그림
그리니까 즐겁고 또 애들 얼굴 하나하나 사진 보면서 그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애정
이 새록새록 피어나더라고.”
한동안 아이를 키우느라 자신의 재능을 묻어두고 지낸 미해의 말이었다. 개인적
으로 처음 품앗이 육아를 시작할 때 가지고 있던 비전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
다. 집에서 육아에만 전념하느라 자신의 재능을 잊은 엄마들이 작은 달란트일지라
도 이곳을 통해 그것을 발현시켜 엄마로서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의 빛나는 미래
를 닦아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 남몰래 혼자 마음이 따끈해졌다. 덧붙여 미해에게
다른 한 마디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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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미해야, 노파심에 하는 이야기인데 말야. 혹시라도 이 모임에서 활동을 하면서
네가 한 일에 대해 누군가가 엄청난 칭찬과 격려를 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만일, 그런 기대가 너무 높아지고 사람들이 호응이 없으면 넌 네가 할 일에

           은평 품앗이 육아

대한 가치를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냥 네가 그 일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완성된 것을 통해 성취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다행히 속 깊은 미해는 나의 이야기를 깊이 공감해 주었고 그로 인해 서로 좀 더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마을공동체를 끌어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내가 한 일을 누군가가 당연시
할 때였다. 자신의 상황은 어쩔 수 없으니 못하는 것이고, 누군가가 해주겠지 하는
마인드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희생하며 감내하는 이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낀 가장 큰 교훈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지 말고 일 그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고 스스로의 성장에 기뻐하자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계
속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기대로 갈등을 양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우리 소식지 ‘북키북키’(북 앤드 키즈의 줄인 말)가 발간되었다.
“300부 나왔습니다.”
“정말?”
“드디어 나온 거야? 어디 있어?”
“빨리 받아보고 싶다.”
“나 주변에 다 돌려야지~”
“우리 이 소식지 어디다가 배포할까?”
“보건소랑 구청이랑, 어린이집, 교회, 동사무소 등등 놓으면 되지 않을까요?”
“누가 배포하지?”
“나!! 만들 때 많이 돕지 못했으니 배포는 내가 할게요!!”
“저도요~!!”
카카오톡 단체 채팅창이 후끈 달아올랐다. 처음으로 다함께 마음을 모아 만든 결
과물이었다. 전문가의 도움 하나 받지 않고 다함께 마음과 시간을 쪼개서 아이를 같
이 봐주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소중한 소식지 한 장, 한 장이 마치 우리의 자
식처럼 느껴졌다. 적지 않은 비용으로 만든 소식지였기에 한 사람당 한 두 장만 가
져가게 하고 배포 할 곳도 잘 선별하기로 한 뒤 우선 도서관 창고 한 편에 잘 모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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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그리고 이후 이 소식지는 우리 단체 소개가 필요한 곳곳에 열 마디 말을 대신
할 최고의 자료가 되어주었다.

▲ 우리 모두의 힘으로 만들어진 첫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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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3.
수많은
어려움들

           은평 품앗이 육아

우리만의 장소가 필요해!!

우리 마을공동체 이름은 ‘은평 품앗이 육아’, 말 그대로 품앗이로 아이들을 함께 키
워가자는 취지지만, 장소가 한정적인데다 모임장소인 도서관 특성상, 정해진 날만
모이고 헤어져야 하니 활동이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 좀 더 적극적인 품앗이
육아를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여건에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각자의 집을 돌아가
면서 해보면 어떠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다들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집을 오
픈하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좀 더 자주모여서 같이 수다도 떨고, 맛있는 음식도 해먹고, 밑반찬도 나누고, 다
함께 돌아가며 아이들을 봐주며 힐링을 할 수 있는 장소를 필요로 했다. 이런 이야
기가 계속 오고 가면서 나는 카페에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카테고리를 개설했다.
이 카테고리는 우리 마을공동체가 미래에 이루고 싶은 일들을 적어놓는 버킷리스트
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다음과 같은 글을 첫 번째로 남겼다.

제목: 사랑방 만들기!!
언제든 맘만 먹으면 모일 수 있는 ‘사랑방’을 만들어요.
그곳에서 함께 배고플 땐 음식도 나눠먹고,
힘들거나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땐 애도 봐주고,
우울할 땐 수다로 풀어내면서 다시 에너지를 충전하는 거예요!!
언제든지 모이고 싶을 때 모일 수 있는 우리만의 장소, 꼭 만들자고요~^^

그리고 이 꿈은 불과 반년 만에 이뤄졌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
록 하겠다.

29
누군 하고 누군 안 하고!!

하나의 마을공동체로 꾸려가려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일들이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서 진행하여야 했다. 예산을 가지고 어떤 강의를 열어야 우리가 유익한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를 구상해야 했고, 도서관 사용문제에 변경이 생길 때 수시로 담당자와 연
락을 해야 했으며, 강의 발굴 및 강사 섭외, 일정 조율하기, 지출 정산, 카페 운영,
아이들을 위한 교육 발굴 등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어쩌면 사실은 별 일 아닌 것들인
데 처음 해보는 우리가, 더군다나 육아와 병행하며 진행해야 했기에 버겁게 느낀 것
일지도 모른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멤버들과 그렇지 못한 멤버들로 나
뉘기 시작했다. 사실, 그렇지 못한 멤버들은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빠진다거
나, 일이 생겨서 결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만일, 아이가 없다면 지적할 수 있
는 문제들이지만 아이를 잘 키우자고 모인 모임이고 우리 주업은 육아이므로 이 마
을공동체가 육아에 방해가 된다면 그 의미가 상실되므로 뭐라 말할 수 없는 입장이
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간의 그런 괴리 속에서 불만이 쌓이지 않을 수 없었
다. 누군가는 아이가 조금 아프면 아픈 대로 ‘모임을 위해’ 나오는가 하면, 누군가는
아이가 아플 것 같은 기미만 보여도 ‘아이를 위해’ 바로 모임을 뒤로 미루었기 때문
이다. 모두 내 아이를 소중히 하는 건 결코 다르지 않은데, 활동에 대한 각자의 다른
기준이 엄마인 우리 스스로에게 매우 큰 자괴감이 들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이를 위해서 하는 모임인데, 왜 내 애는 이 모임 지속을 위해 방치되고 제대로
케어도 못 받고 있는 거지? 저 사람은 아이 열 조금 난다고 안 나왔는데 난 왜 이렇
게 열성적으로 애 열 조금밖에 안 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나오고 있는 거야?’
사실 이런 고민은 모임을 리드해야 하는 나부터 모임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문제였다. 특히,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아파도 모임 때마다 그 자리를 지켜야 했
고 관계기관에서 갑자기 요구하는 서류나 교육자리 등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
이를 안고 참석해야 했다. 서울시에서도 처음 실시하는 마을공동체 사업이고, 우리
엄마들 역시 처음 해보는 마을공동체라서 좌충우돌하며 진행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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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누군 하고 누군 안 하고’의 문제는 지속되었다. 아마 어떤 단체에서든 이런 문제
는 항상 제기될 것이다. 리더는 이런 문제에 봉착했을 때 좀 더 꼼꼼히 계획을 세우
고 더욱 솔선수범하면서 그 과정 자체에서 성장하고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멤버들에

           은평 품앗이 육아

게 설파하면서 끌어가야 한다.

회의, 회의, 끝없는 회의 속에 드는 회의감

“같이 아이 키우면서 편하게 나올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무언가를 요
구할수록 불편하고 부담스러웠어요. 나는 그냥 수다 떨고 일상 이야기, 내 고민 등
을 말하고 싶은데 만날 마을공동체를 위한 회의, 회의, 회의 너무 지겹고 힘들었어
요. 이 부분은 지금도 그래요. 그냥 나는 예를 들어 어느 목욕탕의 누가 때를 잘 밀
어요? 하면 ‘아, 거기 A목욕탕에 세 번째 아줌마가 싹싹하게 때를 잘 밀어요!’ 하는
식의 아주 사소한 질문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을 바랐는데 말이에요.”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오고 있는 한 멤버의 이야기다. 이번 마을공동체 사례
집 발간을 위해 한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객관적으로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며 이야
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차’ 싶었다.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으
로 인해 느끼는 부담감으로 우리 본연의 색을 잃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더군다나 우리 모임의 가치와 비전 속 에는 서로 힐링이 되는 육아, 함께 성
장하는 육아를 위한 것이 내포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 다른 멤버가 반대 의견을 냈다.
“물론, 수다 떨고 일상대화 나누는 거 좋죠. 하지만 그럼 그걸로 뭐할 건데요? 물
론 힐링은 되지만, 지금처럼 우리가 체계를 잡고 은평 품앗이 육아라고 했을 때 “이
런 활동을 하는 곳이에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단체가 될 수 있었을까요? 생각해봐
요, 꿈나무 도서관에서 매달 북 스타트 행사하면서 지속적인 모임 하라고 얘기하지
만 우리처럼 이렇게 모임이 지속되고 있는 곳은 단 한곳도 없어요.”
실제로 최근에 들어온 새로운 멤버들 중 한명은 이 모임에 들어온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 아이 또래 엄마들과 만날 만나서 수다 떨고 차 마시고 밥 먹고 할 때는 너무
기분 좋고 행복해요. 근데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뭐했지 싶고 마음이 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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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거예요. 아이 또래 엄마들과 만나서 공감하고 서로 이해하는 시간은 됐지만, 정
작 내 아이는 방치되고 결국 무의미한 시간이었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이곳 ‘은평 품앗이 육아’를 알게 되었어요. 순간, 이곳이면 내
아이도 좋고, 나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게 됐죠.”
“언니, 나는 사실 내 아이들 대안학교 보내고 싶었는데 이 은평 품앗이 육아에서
활동하면서 대안학교는 보내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대안학교는 학부모 회의로 많
은 일이 이뤄지잖아요. 이젠 회의에 지쳤어요. 그냥 일반학교 편하게 보낼래요.”
지금까지 함께 활동한 또 다른 멤버의 이야기다. 리더로서 미안한 마음이 앞
섰다.
“아니에요, 언니. 시행착오를 먼저 겪었으니까 좋은 거지. 이 모임자체는 너무 좋
은데 내가 적응을 못한 거예요.”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 그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녀도 이곳에서 자신을 많이 발견한 사람 중 하나임을 나는 안다.
사실 ‘중도’가 필요했다. 때로는 웃고 즐기면서 편안한 수다 모임이 되면서 맛있
는 음식도 나눠먹고 이런 저런 일상 이야기도 나눴어야 했는데 대표인 나에게는 마
을공동체 지원 사업으로 어떻게 새로운 일을 만들면서 우리가 더 알차게 예산을 쓰
고, 지역에 보탬이 될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래
서 마을공동체로서의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기도 했지만, 속속들이 보면 회의와 새
로운 일 구상에 지친 멤버들이 있었다. 앞으로도 이 문제는 차근차근 풀어가야 할
문제 중 하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뻣뻣해진 마음을 풀어주는 ‘수다의 힘’

앞서 말했듯이 하나의 단체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운영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
다. 이들이 먼저 나서서 솔선수범하고 새로운 방안을 구상해서 어떻게 리드해 가느
냐에 따라 모임의 색이 전혀 달라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운영진으로서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무엇보다 매월 있을 행사들의 향후 방향에 대한 회의를 주기적으로
해야 하고 수많은 문제에 대한 논의를 누구보다 최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영진이라고 따로 예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동반한 채 따로 시간을 내서 미
팅을 하고 회의를 해야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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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올해 2월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2기 새 멤버들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
는데, 꿈나무 도서관측에서 방학에는 그곳에 있는 보육원 아이들이 주로 사용해야
하므로 장소사용을 자제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초 처음 모임을 계획할 당시,

           은평 품앗이 육아

공휴일을 제외하고 정해진 요일에는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다는 약속이 있었다. 더
군다나 마을공동체로서 방학 때마다 활동이 중간에 끊기게 되면 보통 문제가 아니
므로 도서관 운영담당자 분들과 바로 미팅을 잡았다.
당시 우리는 1, 2기 멤버가 3개의 모둠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각 반별 반장과 부반
장, 회장과 총무까지 함께 모이기로 했다. 결국, 이야기가 잘 마무리 되어서 방학에
도 원활히 장소사용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미팅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
지만, 모두들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아침부터 아이들을 일찌감치 씻기고, 기저귀
가방을 챙기고 급하게 아이 밥만 먹인 채 배를 곯고 나온 우리들의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
“우리 아침부터 고생했는데 이럴 땐 카페인이 들어가 줘야지?!!”
미팅을 마친 후, 그냥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도서관 바로 위에 자리한 카페에 올
라갔다. 나를 포함해서 다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얼굴색이 펴지면서 활기찬 수다가
시작됐다. 오늘 아침 아이 안고 나오면서 힘들었던 이야기, 어제 아이가 잠투정했
던 이야기, 아이 이유식 만드는 이야기, 남편과 시부모님 이야기 등등
여자들은 이렇듯 할 이야기가 많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육아, 살림,
남편, 가정경제 등등 할 이야기가 어마어마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각자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고 또 어떤 일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남편은 어떤 사람
이고 집안 분위기는 어떤지 곧잘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우리 모임 속에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를 대충 가늠할 수 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은 모임에서 활동
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확인되지만 말이다. 서로를 인간적으로 알아 가는 데는
‘수다’ 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 그리고 수다를 떨며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친밀
해지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만남 그 자체가 즐거우므로 일 진행이 훨씬 수월해지
기 마련이다.
실제로 처음 마을공동체로 선정이 되고 프로그램 정비 등 여러 가지 일을 도모하
려 할 때 우리 마을공동체를 컨설팅해주셨던 사단법인 공동육아측의 이현숙 팀장과
곽영선님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루 속히 친해지는 것이에요. 친해지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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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한결 매끄럽게 진행될 거예요”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날 우리는 정말 뜻밖의 ‘수다’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 운영진은 헤어지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카톡으로 주고받았다.
“운영진분들 모두 수고하셨어요. 오늘 즐거웠습니다.”
“그러게요, 미팅은 힘들었지만 마지막 수다가 골든타임이었네요.”
“저는 미팅보다 수다가 더 의미 있고 즐거웠네요.”
“맞아요, 수다 떠니까 스트레스가 확!! 수다타임 즐거웠어요.”
우리에게 활력은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는 대화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 일이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쭉쭉’ 성장 중
육아에 지친 엄마들의 안식처

우리의 관계 속에는 마을공동체라는 ‘일’이 있기에 서로 맞지 않거나 생각이 다른 부
분이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그런 모든 과정 속에서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하나
하나 진행해 가며 점점 발전하는 우리 모습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더 나은 프로그램과 진행을 온통 우리 스스로 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
야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속에서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많은 힘이 되었다.
아이가 잠을 자지 않을 때는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늦은 밤에도 카톡을 주고받으
며 서로를 격려하고, 아이가 고열이 나거나 아플 때도 근처에 좋은 병원을 소개하거
나 먼저 겪은 엄마들이 조언을 하면서 다독이며, 심심한 사람은 짬이 나는 대로 야
외에 나가 아이들을 풀어놓고 수다를 떨거나 차를 마시고, 누군가는 집을 오픈해서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생일파티도 해주곤 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매주 만나는 우리는 누구보다 친했으며 단순한 친
목도모를 위해 만난 관계가 아니었기에 우리가 하고 있는 엄마표 수업이나 맘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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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이 활동 등에 대한 이야기로 늘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6월, 2기 현교맘 준희씨가 해 준 이야기다.(2기 멤버 모집 과정에 대한 이야
기는 바로 뒤에 나온다.)

           은평 품앗이 육아

“은평 품앗이 육아를 만나고 복직하기 싫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예요. 이제 겨우
몇 개월 활동 했는데 우리 멤버들 모두 마치 죽마고우인 거 같이 편하고 좋아요. 특
히 우리 달님반은 공동구매를 좋아하거든요. 발목 스타킹, 스티커북, 기저귀 등을
같이 사면서 얼마나 큰 즐거움을 느끼는지 몰라요. 또 모임 없는 날은 벙개도 많이
하고요. 육아에 대한 니즈 뿐 아니라 개인적인 욕구도 채우고 힐링도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더 큰 성장을 위한, 새로운 장소물색

2012년 10월~12월, 3개월간의 마을공동체 지원이 끝나고 새해가 도래할 즈음, 멤
버들에게 물었다.
“다음 해에도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원하길 원하시나요?”
다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래도 마을공동체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많
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자리를 잡았다는 점에 모두 의견을 모았다.
다시 마을공동체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토인 품앗이 육아가 더 많은 이
지역의 엄마들과 공유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2기 멤버를 모집하기로 결정했다. 그
동안 카페를 통해 오프멤버가 되고 싶다는 회원들이 많았으므로 2기 멤버 모집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꿈나무 도서관은 화, 목 오전만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장소물색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우선 주민센터와 가정지원센터 측
에 전화를 걸어 사정이야기를 해보았다. 적어도 서울시 마을공동체로 인증이 된 단
체이고, 엄마들이 스스로 모여서 함께 아이를 키우고 성장하는 자조모임이니 지자
체에서도 반기고 적극 협조해줄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이 근방의 동사무소와 가정지원센터 측에 전화를 걸어 빌려줄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물은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은평 품앗이 육아라는 마을공동체 대표인데요. 혹시 저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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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할 수 있는 장소를 일정하게 대여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자체가 해줘야 할 일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으므로 당연히 쌍수를 들
어 환영하는 반응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우리의 착각이었다.
“죄송합니다. 공공예약 시스템을 이용해주세요.”
주민 센터 측에서는 매번 이용할 때마다 미리 공공예약시스템을 이용해 장소를
예약하고 대여료를 내야 한다는 답변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국가에서는 출
산과 육아지원정책을 장려한다면서 연일 언론에 보도하고 있는데 막상, 서민의 삶
을 가장 가까이 하고 있는 지자체는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해 보였기 때문
이다. 가정지원센터 역시, 우리 단체에게 따로 내 줄 장소가 없다고 했다. 정말이지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일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기운이 쭉 빠졌다.
때마침, 구청장님이 각 동 주민 센터를 돌면서 행사보고 등을 주민과 함께 듣는
자리가 열린다는 공고문을 보고 우리 모두 유모차를 끌고 가서 구청장님께 직접 건
의해볼까 하는 의견도 카페에 올려봤다. 정말이지 유모차 부대로 데모라도 해서 장
소를 얻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모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잠
시 조급함을 내려놓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답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성장을
위해 새로운 장소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답답한 심정을 맘스데이 때마다 함께 독서토론을 진행해주시는 은평어린이도서
연구회 석은진 선생님께 토로했다. 우리의 처음 시작과 현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
신데다, 오랫동안 동화책 읽어주기와 부모교육 강의 등의 활동을 하셨기에 주변 도
서관과 관계기관 담당자들을 많이 알고 계셨다.
우선 아쉬운 대로, 은평어린이도서연구회 사무실을 함께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
안해주셨다. 하지만 그 곳은 우리 아이들이 엄마들과 동반해서 활동하기에는 겨
울인 그 때에 다소 썰렁하고 협소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유난히도 추웠던 2012년
12월, 아이를 안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를 전화를 돌리면서 장소물색에
힘을 쏟았다. 그러기를 딱 한 달이 되었던 어느 날!! 석은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세정씨, 내일 시간 되요? 활동을 할 수 있을만한 장소 두 곳이 있는데 같이 가볼
까 해서요.”
다음날 아침,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급히 보내고 바로 길을 나섰다. 매서운 바람
이 뺨을 얼얼하게 하던 1월, 옷을 잔뜩 껴입고 아이를 가슴에 품은 채 ‘정말이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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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무 힘들다’는 생각이 온몸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무엇보다 내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
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해 시작한 일인데 지금 나는 아이가 아닌 ‘모
임’을 위해 내 아이를 혹사시키고 있으니 이 무슨 일인가 싶었던 것이다.

           은평 품앗이 육아

아이의 코와 양 볼이 빨개졌다. 아이를 좀 더 감싸 안으며 선생님과 함께 두 곳
을 알아보기로 했다. 한 군데는 초록엔 도서관으로 얼마 전에 생긴 동네 도서관이었
고, 한 곳은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이었다. 첫 번째로 방문한 초록엔 도서관은 동네도
서관으로서는 손색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우리 아가들이 활동하기에는 이동거리와
위치, 공간 등이 조금 애매했다. 함께 한 선생님께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엄청나게 낙심이 됐다. ‘나는 지금 어디를 찾고 있는 걸까? 그냥 이대로 집으로 돌
아가고 싶다. 과연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긴 한 걸까?’ 하는 생각
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신사복지관으
로 향했다.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은 응암역에서 5분정도 거리에 있고, 1층에 엘리베이터가 있
어서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와도 아주 편하게 이동이 가능한 곳이었다. ‘아, 엘리
베이터가 있다니 너무 좋은걸? 더군다나 이곳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평지!!’ 마음
으로 쾌재를 부르며 꼭 좋은 공간을 만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담당인 홍경희
선생님과 미팅을 했다. 미리 준비해 온 우리
모임 소식지를 가방에서 고이 꺼내 보이며 모
임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담당자인 홍경희 선생님은 소식지를 보시
면서 정말로 이 소식지를 엄마들이 만들었냐
면서 감탄하셨다. 그 속에 담긴 우리 활동사
진들도 꼼꼼히 살피셨다. 엄마들이 참 대단하

▲ 신사복지관 첫 미팅 사진, 왼쪽부터 홍경희, 석은진 선생님

다며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바
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니 부장님과 관장님의 허락을 받고 오픈여부를
다시 알려주겠다고 했다.

꼭 오픈해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만일 우리가 활동하게 된다면 쓸 수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여쭸다. 2층 강당이라고 하셨다. ‘강당?’ 어떤 곳일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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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여러 곳을 알아보고 돌아보는 가운데 낙심했던 마음에 또 상처가 될까 두려
운 마음도 들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2층 강당을 보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그곳을 보고 나는 ‘왈칵’ 눈
물이 쏟아질 뻔 했다. 그야말로 우리 모임에 ‘딱’인 장소였다. 매번 장소를 알아볼
때마다, 아이들 때문에 겨울에는 따뜻한지, 여름에는 시원한지부터 체크했는데 이
곳은 겨울에는 바닥에 보일러가 들어오고 여름에는 천정에 에어컨이 있어서 냉난방
시설에 전혀 손색없는 장소였다. 더군다나 우리 아이들이 맘껏 뛸 수 있는 넓은 공
간이 더없이 맘에 들었다. ‘이 곳에 오면 우리 아이들 맘껏 뛰어놀 수 있겠구나!’
너무 신이 나서 아직 결정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으로 강당 사진을
찍어 카페에 올렸다. 꼭 이곳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길 다함께 기도하자면서 말이다.
다들 열화와 같은 반응을 보여줬다.
“우리 애들 맘껏 뛰어놀 수 있겠다.”
“와우, 짱! 꼭 되길!!”
“우리 그럼 2기 모집 오픈 수업 여기서 하는 거야?” 등등.
그리고 며칠 뒤에 담당자 홍경희 선생님으로부터 장소 사용 승인이 났다는 연
락이 왔고, 우리는 월요일, 수요일 오전 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
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복지관도 어떻게 하면 이 지역주민들이 문턱
없이 드나드는 곳이 될지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고 한다. 우리에게 신사종합사
회복지관은 그야말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었다.

대망의 2기를 모집하다

신사종합사회복지관에서 강당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2기 모집에 대한 안건이 초
읽기로 들어갔다.
“우리 그럼 오픈수업으로 하는 것 어때? 우리가 하고 있는 수업 그대로, 한 사람
이 동화책 읽어주고 2인 1조로 엄마표 수업 진행하는 거 보여주면 될 것 같은데.”
“그래, 그러자!!”
당초 오픈수업을 2회로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선보이면 어떨까하고 마음을 모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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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지만,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처음 해보는 오픈수업을 2주에 걸쳐 2번이나
감행하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우리에게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딱 1회만 진
행하기로 하고 대신에 혼신의 힘을 다해 뜻을 모으기로 했다.

           은평 품앗이 육아

우선 오픈수업 참여희망자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 온라인 카페에 2기 멤버 모집에
대한 공지를 올렸다. 그리고 기왕 하는 것이니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수업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엄마들의 정보망으로 유명한 대규모 온라인 육아 커뮤
니티 한군데에도 오픈수업 공지 글을 아래와 같이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2012년 서울시 마을공동체 ‘은평 품앗이 육아’입니다.
지난 2012년 6월 북스타트 (생후 3~18개월의 책꾸러미 행사)를 통해 첫 만남
을 가져, 14명의 엄마들이 마음을 모아 ‘은평 북스타트 맘’이라는 카페를 개설
하고 서로 의견을 교류하며 ‘품앗이 동화책 읽어주기’를 시작으로 모임을 열었
는데요.
불볕 같은 더위 속에서도 아가들을 책과 함께 지혜롭고 밝게 키우고 싶은 열
망으로 모인 우리는 그 열정으로 서울시에서 새로 시행한 ‘마을공동체 사업’
에 지원하게 되었고, ‘은평 품앗이 육아’라는 이름의 마을공동체로 새롭게 탄
생하였습니다.
지난 반년동안 14명의 아이들은 엄마들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담긴 책이야기
와 활동 속에서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는
지역의 엄마와 아가들이 행복한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체 안의 소통을 통해 바
르게 길러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번 2013년에 2기 어머님들과 아가들을 모집하기 위해 오픈수업을
진행합니다. 그동안 진행과정에서 저희 쪽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주
신 분들이 많았는데요. 이제야 그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하
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에도 공지합니다.
모집요건은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고요. 책을 좋아하고, 좋아하고 싶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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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아가(생후 3~18개월)이면 충분합니다.
아울러, 좋은 정보와 자료 같이 나누고 만들어가고 싶은 적극적인 마인드도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오픈 수업 일정〉
2013년 1월 31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이고요.
장소는, 신청하고 오셔야 사전 준비가 됨에 차질이 없으니 아래 링크된 카페
로 오셔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오픈수업이라 해서 굉장히 거창한건 아니고, 저희들이 늘 해왔던 수업을 어머
님들께 보여 드리고자 하는 자리입니다.
편하게 오셔서 참석하시고 오실 땐 아가들 먹을 것 잘 챙겨 오시고요.어머님
들께서 생각했던 것 보다 수준이 낮을 수도 높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함께
모여 정성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부모로서 성장해가기 위함이지요.
신청은 이번 주말까지만 받습니다.
내용 확인 후 신청 원하시면 아래 카페로 들어오셔서 가입 후 댓글 남겨주시
기 바랍니다.^^ 좋은 만남 기대하겠습니다.
http://cafe.naver.com/epbookstart/315

오픈수업을 준비하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우선 그동안 했던 수업
중 괜찮았던 것들을 선별하여 최종으로 악기놀이를 선택했다. 월령 구분 없이 포괄
적으로 엄마와 아이가 함께 교감하는 시간을 갖기에 악기와 노래가 제격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집집마다 있는 악기가 무엇인지 취합하고 생수 통에 반짝이를 넣
어 흔들어서 시각과 청각을 자극할 수 있는 악기를 만들어, 오픈수업에 참여하는 모
든 분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작고 예쁜 생수 통을 각자 10개씩 모으기로 했다. 시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생수
통이 아니라, 그 통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는 발 빠르게 미리 택배주문을 했고, 또 누
군가는 주말 내내 대형마트를 돌아다녀야 했으며, 그런 줄도 모르고 동네슈퍼가면
얼마든지 있겠지 하고 넋 놓고 있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지금 마트에 그 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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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통을 찾았다고 카톡을 통해 비상연락을 해온 다른 누군가에게 함께 구해줄 것을 부
탁해야 했다.
오픈수업은 프로그램 준비, 진행, 완료 후 오프멤버 희망자 취합 등에 있어 매우

           은평 품앗이 육아

세심한 준비가 필요했다. 신청자는 스무 명이 넘었고 엄마와 아이들을 합치면 벌써
40~50명의 인원이 채워진 셈이었다. 장소와 활동 여건상 급하게 더 이상의 회원모
집은 어려워서 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바로 삭제하고 최종 리허설에 들어
갔다.
인사노래부터 자기소개하기, 동화 구연, 엄마표 수업, 다과, 모임운영규칙, 질의
응답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하고 사이사이 필요한 준비물 등을 우리가 미리 준비
하거나 복지관에 요청해서 협업하기로 했다. 꼼꼼하게 준비가 되지 않으면 자칫 오
픈수업이 엉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행사 이틀 전 날, 미리 프로그램 표를 짜
고 그에 따른 준비물 등을 나름대로 최대한 꼼꼼히 정리해서 홍경희 선생님에게 아
래와 같이 메일을 보냈다.

〈프로그램 진행 순서〉

〈복지관 협조 요청사항〉

- 정: 2013. 01. 31. 목. 오전 10시 30분	
일
(총 예상소요시간: 1시간 30분 내외)
-장소: 신사종합사회복지관 2층 강당

(1) 입장 전 명단체크 및
명찰 작성 부착

〈전체진행: 안세정〉

-명단에 참가체크하고 	

- 체 안전대비 공지 및 안내	
전

입장하는 분들께 빈 명찰

(쓰레기 배출, 화장실 등)

1) 자기소개 및 인사
- 자 자기 소개하면서 노래 불러주기	
각
‘호연아~호연아~반가워요.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노래 음으로~)
-싱글벙글 노래 부르면서 다함께 인사

라벨을 나눠주고 	
각자 스스로 ‘본인이름/	
아가이름/아가 개월 수/
사는 곳/연락처’ 쓰고 	
가슴에 붙이게 해주세요.
(준비물: 라벨지, 	
유성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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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싱글싱글~~~~ 벙글벙글 ~~~~	

(2) 동영상 및 사진촬영

우리 모두 고개 돌려 샥!

협조

싱글싱글 ~~~~벙글벙글 ~~~~	

-프로그램 시작되면 	

옆 사람과 인사해요(안녕하세요!!)

동영상 촬영고정 부탁드

싱글~~벙글~~싱글~~벙글~해

립니다.

싱글~~벙글~~싱글~~벙글~해

중간에 사진 촬영(준비물:

2) 동화구연
-효정(시리동동, 거미동동)
-미정(숲속 음악회): CD플레이안효정
#1.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개사해서 부르기
#2. ‘우리 모두 다함께 ~해’ 개사해서 부르기
#3. ‘리듬 악기 놀이’ 노래 개사해서 부르기

3) 활동 마침 노래
(다리 펴서 무릎 위에 아가 올려놓고 	
무릎 세워, 아가와 엄마 눈 맞추며)
‘~야, 엄만 너를 사랑해, ~야 	
엄만 너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나는 엄만 너를 사랑해~’

4) 은평 품앗이 육아 운영규칙
간략히 소개(총무 안효정)
-5분 이내로 운영규칙 간략히 소개

5) 소식지 배포  간식과 함께
자유 질의응답 시간
6) 모두 마침-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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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대, 동영상 촬영기,
카메라)
(3) 안전사고 대비 가이드
-아가들이 밖으로 나가거
나 사고가 없도록 곁에서
지켜봐 주세요.
(4) 동화구연_	
시리동동 거미동동 내용
이젤 설치
(5) 악기놀이 완료 후 	
악기수거
-병으로 된 악기 제외
(6) 소식지 및 간식 배포
-’프로그램 6’ 진행에 필
요(준비물: 소식지, 간식)
7) 활동 희망자 명단 체크
-품앗이 활동 희망자들
체크해주세요.
서울시 은평구

- 앗이 활동의사 있는 사람은 데스크에서 	
품
명단 체크하고 가기.

7) 활동 희망자 명단 체크

           은평 품앗이 육아

-품앗이 활동 희망자들 체크해주세요.

오픈 수업 전날, 난생 처음 해보는 행사로 너무나 긴장되고 과연 신청인원이 모
두 참석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서 도무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더군다나
매끄럽게 전체진행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그 속에 있을 여러 가지 상황을 예견하고
안내와 당부사항 등을 꼼꼼히 체크해서 멘트를 짜느라 이틀 전날부터 새벽 4시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리고 행사 당일에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1월 31일, 그 날 아침에 쓴 나의 블로그 일기다.

밤새 잠을 설쳤다. 결국 새벽 3시30분 기상.
몇 시간 뒤면 대망의 ‘은평 품앗이 육아’ 2기 모집을 위한 오픈 수업이 진행된
다. 그동안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여건상 무리가 따랐기에 적
당한 시점을 잡아 신입모집을 위한 오픈수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난 월요일, 최종 리허설을 위해 모였던 우리. 아가들과 신나는 노래, 동화책
읽어주기, 악기놀이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악기 만들기를 위해 지난 주말 각
자 이곳저곳 마트를 돌아다니며,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300밀리리터짜리
생수 병을 찾아 말리고 가져와서 그 안에 색종이와 반짝이를 쪼개 넣고.
각자 아이들을 업고 안고, 누군가는 악기놀이 프로그램 진행을 구상하고, 누
군가는 재밌는 동화구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누군가는 그런 엄
마들 때문에 방치된 아이들을 돌본다. 서로의 할일들을 체크하면서, 긴장의
빛으로 해나가는 모습들. 칭얼거리는 아이를 업고 안고서라도, 누구 하나 손
놓지 않고 함께 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쁜 엄마들 사이에서 밝게
놀아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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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종일 카톡이 바빴다.
“누구야~우리 같이 만나서 따로 동화구연 연습 좀 하자!!”
“얼굴 빨개진 것 티 안 나게 내일 얼굴에 파운데이션 두껍게 바르고들 나오세요.”
“귀 빨개지는 건 어떻게 해?”
“머리 내리면 되지~”
“아휴, 시선 집중 무서워~”
“자그마치 눈이 몇 개야? 까악~우리 멤버들까지 총 120개가 넘잖아!”
“정말이네?ㅠㅠ”
이제 곧 이 ‘떨림의 향연’이 시작된다. 오전 10시30분에 있을 우리의 오픈 수업.
순식간에 신청자가 20명이 훌쩍 넘어 깜짝 놀라, 품앗이 육아 컨설팅을 해주셨던,
사단법인 공동육아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만큼 지역 엄마들의 욕구가 간절했
다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혹자는 폄하할지도 모를, ‘함께 하는 육아, 같이 키우는 아이’에 대한 새로운 사명
감이 생겨난다. 과연 우리는 이번 행사를 통해 얼마만큼 성장하고 서로에게 힘이 될
지, 또 새로 오시는 분들은 우리를 통해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될지, ‘즐거운 긴장과
설렘’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그들의 열정, 2기 모집 대성공

2기 모집을 위한 오픈 수업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행사 시작 1시간 전부터 모인
1기 멤버들은 분주하게 자신이 할 일을 체크하고 준비하면서 기대를 품고 이른 아
침부터 아가를 안고 달려온 엄마들을 기쁘게 맞이해주었다.
총 25명 신청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20명이었다. 다행히 복지관에서 아이들의 안
전과 전체 프로그램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보조해 줄 인력을 2~3명 투입해주
셔서 행사를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오픈 수업을 모두 마치고 공지사항을
알린 후, 활동 희망자들은 미리 준비된 출석부의 본인 이름에 체크를 하고 가도록
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결과!! 참석자 20명 중 무려 19명이 활동의사를 밝힌 것이
다. 오픈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마치 연극무대에서 내려온 배우들처럼 서로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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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를 토닥이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서로에게 미소를 한껏 띠여 보내면서 너무나 수
고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오픈수업은 소식지 발간 이후로 우리 모두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만들어낸 최고의 걸

           은평 품앗이 육아

작품이었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오롯이 우리 스스로 머
리를 맞대, 하나하나 닦아 만들어
낸 작품. 우리의 모습을 통해 육아
에 힘들고 지치기만 했던 다른 엄
마들에게 한줄기 새로운 희망을 준
우리가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엄청

▲ 오픈 수업하는 우리 모습

난 희열과 성취감으로 우리는 모두 상기되어 있었다.
이 날 우리 카페에 올라온 오픈수업 후기다.

“오늘 너무 재미있었고요~ 뭔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요. 수고들도 많으셨고, 대단들 하십니다.”
“으흐흐흐~이렇게 감동적인 게 정상인가요?ㅋㅋ 이런 모임 있음 진작 왔을
것을 이제야 알아서 서운하네요.ㅜㅜ”
“문화센터는 그저 그랬는데 앞으로의 활동 기대만발입니다!”

▲ 오픈 수업 후 기쁨과 환희에 찬 우리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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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육아만 하는 엄마들이었지만 그날의 우리는
마치 이전의 나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 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2013년 마을공동체로 재선정

오픈 수업에 참여한 후 활동의사를 밝힌 사람들 외에 우리 모임을 주변에서 소개받
고 참여를 희망한 사람들까지 합류하게 되어 2기 모임은 총 21명으로 새롭게 출발
하게 되었다. 기존의 1기 멤버들은 그 모둠대로 모임을 진행하고 새로 들어 온 멤버
들은 아이들 월령별로 2개의 반으로 나눠서 진행하기로 했다. 다들 어찌나 설렘과
기대, 열정으로 뭉치는지 그날 이후 우리 온라인 커뮤니티가 연일 후끈후끈 달아올
랐다. 모임이 있던 날은 어김없이 모임후기가 올라오고 사진들도 즐비하게 업데이
트 되었다. 새로운 모임에 융합되면서 함께 아이를 키우는 공감과 이해의 즐거움을
그들은 한껏 만끽하며 신나했다.
2013년 2월, 2013년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이 공고되었다. 드디어, 2013년 마을
공동체에 재도전할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마을공동체 지원 양식을 다운 받아 온라
인 커뮤니티에 올린 후 예산을 제외한 모든 공란을 전 회원이 아이디어를 모아 양식
을 작성하고 모둠별로 최종안을 만들어서 그것을 다시 취합한 후 마지막 지원서를
올리기로 했다. 우리가 작년에 그랬듯이, 다들 어리둥절하고 힘들어하는 모양이었
지만 그래도 마을공동체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임을 인식하고 각 반의 반장들
이 최종 작성해서 정해진 날짜에 맞춰 카페에 업데이트 해놓은 모습을 보고 매우 흡
족했다.
작년에 이미 작성을 해봤던 1기는 올해 다시 봐도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이 역력했
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혼자서 하는 것보다 다 같이 만나서 함께 결론을 도출
하는 것이 빠르다는 점을 익히 아는 우리는 모임날 함께 작성해서 최종 본을 만들어
냈다.
최종 3개의 안을 가지고 내용을 모으고 예산을 짜서 지원을 하고 선정결과를 기
다렸다. 작년에는 인큐베이팅으로 10~12월 3백만 원의 지원을 받았고, 그 때보다
는 훨씬 많은 인원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성장했으므로 선정은 당연히 될 것이고 예
산도 넉넉히 받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서류를 접수하고 서울시와 은평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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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에서 현장조사를 나온 후 결과가 발표되었다.
결과는 2013년에도 마을공동체로 선정!!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뒤따랐다. 우
리의 기대와는 달리 작년대비 훨씬 적은 예산을 지원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년보

           은평 품앗이 육아

다 예산사용기간이 훨씬 더 길고 인원수가 훨씬 늘었음에도 고작 4백만 원의 예산
이 책정된 것이다. 조금은 억울하고 이해가 안가는 마음이 들어서 가만히 선정결과
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선정공고문을 제대로 확인해보니 선정된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었
다. 예산금액을 떠나서, 우리가 지원단체 32개 중에서 단, 7개 선정단체 안에 든 것
이었다. 말 그대로 무려 25개의 단체가 재심사 대상이거나 불합격처리가 되었다.
더군다나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는 꿈나무 도서관과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을 번갈아
사용하며 정확한 거점이 없음에도 선정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 같았다.
예산은 둘째 치고, ‘서울시가 선정한 마을공동체’로서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에 참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회원들에게 알리니 회원들도
모두 기뻐하며 예산이 적게 책정된 것에 대한 불만은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이런 때는 항상 생각한다. 리더는 먼저 깊게 생각하고 설득하며 격려할 줄 알아
야 팀을 꾸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쨌든 2년 연속 마을공동체로 선정된 것
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큰 성취였다.

드디어 우리만의 전용공간이 생기다

신사종합사회복지관과 꿈나무 도서관 두 개의 장소를 원활히 사용하고 있는 우리였
지만, 언제든 맘 놓고 모일 장소에 대한 목마름이 가시지 않았다.
“언니, 우리 다 같이 모여서 애들 풀어놓고 수다 떨고 맛있는 것도 나눠먹을 장소
있으면 진짜 좋겠어요.”
“장소만 있으면 우리 애들 어린이집 보낼 필요 없이 돌아가면서 어린이집처럼 보
고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진짜 나도 그런 생각 했었어. 우리 안에 어린이집처럼 돌볼 수 있는 곳만 있으면
맘 놓고 직장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 어차피 일 안하고 애 키우는 엄마들이 같이 애
봐주면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믿고 맡길 수 있으니까 너무 좋을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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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한차례씩 진행되는 전체모임 때 1기 멤버들이 김밥 한 줄씩 앞에 놓고 먹으
며 나눈 대화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복지관 담당자 홍경희 선생님이 “어떻게 5층에
방 하나 열어달라고 말씀 드려볼까요?”라는 말을 건네 오셨다. 우리는 정말 그게 가
능한 일이냐며 신나했고 그럼 너무나 좋겠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있은 지 불과 2~3개월 만에,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우리만의 전용공간을 신사종합사회복지관 5층에 열 수 있게 되었다. 지속적
으로 열심히 모임을 진행하고 성장해가는 우리 모습이 복지관 관장님 눈에도 좋게
보였던 것이다.
기존에 복지관 이미지는 지역주민들에게 장애인이나 노인들 또는 저소득층 아이
들 정도의 특정인에게만 이용되는 곳으로 인식되었었는데 우리 멤버들이 이용하면
서 복지관 내에 도서관 활용도 늘고 엄마와 아이의 왕래가 잦아들면서 활기가 돌았
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복지관측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우리처럼 주민이 스스로 자조
하는 모임을 만난 것이 복지관측에서도 매우 큰 행운이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마
을공동체로 대외활동을 하면서 다른 단체를 만나다보면 장소는 아주 훌륭하게 마련
되어 있는데 주민 모임을 유치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복지관의 전폭적인 지지로 2013년 6월 11일 화요일, 은평 품앗이 육아 전용공간
‘육아사랑방’을 오픈하게 되었다. 이 날 그동안 우리 모임을 위해 곁에서 도움주신
어린이도서연구회은평지회 운영진 분들과 우리에게 지속적인 컨설팅과 조언을 아
끼지 않아주셨던 사단법인 공동육아측의 이현숙 팀장님과 곽영선님도 오셔서 축하
해주셨다.
이 날, 우리는 우리모임이 시작된 지 1년이 됐음을 기억하며 지난날을 함께 회상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품앗이 동화책 읽기모임으로 시작해서 마을공동체
로 선정되기까지의 일, 원활한 모임을 위한 장소를 얻기 위해 추운겨울 이곳저곳을
누벼야 했던 일, 오픈수업으로 새로운 멤버들을 영입한 일 등등 모든 것이 주마등처
럼 지나갔다.
2012년 11월 말에 카페에 꿈꾸는 다락방 카테고리에 올린 첫 번째 버킷리스트 ‘사
랑방 만들기’가 고작 6개월 남짓의 시간 만에 이뤄진 역사적인 날이었다. 우리 1기
멤버들은 지난 날 카페에 올린 그 글을 보면서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개인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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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이날 개소식은 내게 결혼식 다음으로 뜻 깊은 의식이었다. 우리의 시작을 잘 알고
있는 주변 분들의 축하와 격려가 너무나 가슴 벅차고 감사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지
난 1년은 지난 삶 중 가장 길고, 힘들고,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은평 품앗이 육아

5.
우리의 앞날
생각해보기
리더로서의 고충

2012년 처음 마을공동체로 선정된 직후, 남편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아 속상하다는
것을 핑계로 나는 강릉행 기차에 홀로 몸을 실었다.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원하는 일
부터 본격적인 활동으로 많이 힘들고 지쳐있는 상태에서 좀 유치해보이지만, 그나
마 생일로 기분전환을 좀 하고 싶었는데 남편마저 바쁘다고 무심하게 깜박해버리자
어느 때보다 상심이 컸었다. 어딘가의 ‘장’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공동체지만 그곳의 ‘대표’라는 자리가 무척 부담되었다.
하나하나 새로운 일을 꾸려가면서 리더인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 하나
도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처음 해보는 마을공동체인 것은 나 말고도 우리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므로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싶다. 리더로서 가장
힘든 것은, 앞서 말했듯이 다들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다 보니 맘 놓고 일을 분담하
기가 어려웠던 점이다. 일을 분담한다고 해도 아이가 아프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
게 미뤄지기 마련이었다.
당시 나는 크지 않은 돈이지만, 정부 예산을 받아 일을 진행하는 것이 너무나 어
렵게 느껴졌다. 행여 잘못 되서 문제가 되면 어쩌나 하는 고민에 휩싸여 쉽게 결정
내리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대표로서 최종결정을 모두 내가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은 실로 컸다.
결국 그래서 하나하나 세심하고 꼼꼼하게 내 손으로 하는 일이 늘어갔고 그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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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나는 지쳐갔다. 하지만 함께 아이들을 키우면서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내 자신에게 동기부여 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모임이 원활히 돌아가게 하기 위해 장소 담당자와 수시로 연락을 해야 했고, 수
업을 담당하는 선생님과도 수시로 모임 인원을 체크해서 알리며 의견을 주고받아야
했으며, 모임이 저조하면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방안을 모색함과 동시에 불시에 메
일이나 전화로 들어오는 지자체의 서류요청과 미팅에도 언제든 달려가야 했다.
바다를 보면 기분전환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바다에 도착하고 보니 외로움과 슬
픔이 한없이 밀려들어 왔다. 멤버들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푸념이나 낙
담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을 나 혼자 짊어지고 꾸려가야 하는 이 모든
상황 앞에서 나는 무력하게 삶을 연명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모임을 끌어가면서 ‘그
냥 이대로 내 존재자체가 증발해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멤버들 모두 아이를 키우느라 힘든 상황인데 ‘여러분, 나 지금 힘들어요’라는 말
을 감히 건넬 수 없었다. 서울에서 강릉까지의 거리가 너무 먼 탓인지 내가 보고 싶
었던 청량한 바다는 온 데 간 데 없고 칠흑 같은 밤바다만이 어두운 내 마음을 더욱
어둡고 암울하게 하며 저 혼자 철석이고 있었다. 바다에게 바란 위로는 물거품이 되
고 뒤돌아서서 하룻밤 머물고 갈, 숙소를 찾았다.
“방 있어요?”
“혼자 왔소?”
“네.”
“방 없어요!!”
민박집 주인들은 모두 혼자 여행 온 나를 기피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자살여행을
온 사람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마음이 울적한데 숙소도 구하기 힘드니
몸도 함께 지쳐갔다. 겨우 방을 구하고 들어가 앉았는데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떼어 내고 나온 나의 젖이 꽉 차오르기 시작했다. 혼자 앉아서 돌처럼 굳은 젖을 짜
내고 생전 처음 홀로 떠나온 여행에서 행여 누가 문을 따고 들어올까 싶어 여관방의
문고리만 3시간쯤 쳐다보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기차역으로 가서 첫 기차를 타고 서
울로 돌아왔다.
여행은 내게 아무것도 선사해주지 못한 채, 도리어 나의 몸과 마음을 더욱 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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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창이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웃음이 난다. 역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제일 뜻 깊은 추억으로 남는다고 했던가. 지금에 와서는 ‘내가 그
때 그렇게 힘들었지’ 하면서 미소 한번 머금을 수 있을 만큼 가벼운 농담거리가 되

           은평 품앗이 육아

었으니 말이다.
마을공동체 대표로 활동하면서 역사의 뒤안길에서 국가를 살리겠다고 온 몸 바
쳐 정치를 하시던 분들이 왜 나라 일에는 미친 듯이 나서면서 가정은 엉망으로 했다
고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고민 등 여러 가지 고민들에
휩싸이면서 이곳저곳에 가서 자문하고 전화통화를 하고 교육과 견학을 찾아다니면
서 집안일은 어느새 뒷전이 되고 살림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친정아버지가 옆에서 큰 아이를 픽업해주시고 내가 힘들 때 잠이라도 한
숨 자라고 두 아이를 봐주셔서 에너지를 모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듯, 품앗이 육
아로 야심차게 함께 키우겠다고 한 나의 아이는 늘 나와 함께였지만 그저 몸만 함께
일 따름이었으므로 그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일을 진행하면서 얻게 되는 소중한 인연들이 너무 좋았다. 우리
멤버들은 물론, 어린이도서연구회 석은진 선생님, 사단법인 공동육아의 이현숙 팀
장님과 곽영선님,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의 홍경희 선생님 등등 이 일을 통해 좋은 분
들을 무척 많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또, 멤버들과 조금씩 뜻을 맞춰가면서 얻는 희
열과 성취가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오랫동안 품어
왔던 ‘품앗이 육아’에 대한 비전과 가치가 있었기에.
사실은 그래서 더 어렵게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우리 멤버 모두가 편안하
게 활동할 수 있는 모임으로만 국한되어서 고만고만하게 진행됐으면 될 일들을 나
는 좀 더 체계적으로 꼼꼼히 만들어 더욱 확장하고 성장시키려 애썼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맨 처음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을 때처럼 훗날 우리의 모습이 작지만 뜻
깊은 역사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선례가 되고 함께한 우리 모든 멤버들이 단순히 육
아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 속에서 새로운 자아로 성장해서 이 단체의 활동과 노하우
를 가지고 다시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모두 알아줄 리 만무하고 또 그것이 그들이 진정으로 바
라는 것인지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이는 것은 여러모로 서로에게 힘든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가치와 비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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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변함이 없었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멤버들 역시 그런 나의 그
가치와 비전에 조금씩 호응해주었기에 이만큼 지속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나는
감히 확신한다.
지금의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이자 마포에 있는 성미산 마을에서 마
을활동가로 20년 가까이 활동한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은 말했
다. “결국 마을은 좋아서 하는 놈이 하는 것이다”라고. 나 역시 이 사실을 시간이 흐
를수록 깨닫는다. 분명 힘든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모든 일이 좋아서 견딜 수 있었
고 지금 우리 속에도 힘들지만 이 모든 과정이 좋아서 견디며 하나하나 스스로 움직
이며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내려놓아야 할 시간

“세정 언니 눈에 띄면 안 돼. 그럼 일하게 되니까.”
1기 멤버 중 한명이 한 말이었다. 한 사람의 말이었지만, 문득 그 말은 우리 1기
멤버들의 마음을 대표하는 이야기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어느 순간 정말 나는 일을
만들기 위해 회의를 주도하고 각자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업무를 분담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뒤에 함께 일을 하고 있던 총무 효정언니에게 사임의사를 밝혔
다. 같이 맘 맞추며 새벽까지 우리의 앞날을 고민하면서 힘을 내던 언니도 그러면
같이 그만두겠다고 했다. 이제 2기 멤버들이 어느 정도 활동에 적응했고 지금 가지
고 있는 활기로 새로운 모임을 꾸려가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에 우리는 뜻을 모았다.
각반 운영진을 모은 회의에서 이 사실을 미리 알렸고, 그들도 그동안 고생 많았
다면서 알겠다는 반응으로 동의해줬다. 그리고 우리 전용공간 개소식 행사직후 새
로운 회장과 총무를 뽑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회원들에게 당일 날 급작스런 통보를
할 경우 많이 당황할 수 있겠다는 판단 하에 운영진에게 뜻을 알린 그날 밤에 이 사
실을 미리 카페를 통해 모든 회원들에게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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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사랑하는 은평 품앗이 육아 회원님들~
즐겁고 행복한 금요일 밤 보내고 계신가요?

           은평 품앗이 육아

여러분에게 중요한 이야기 하나 올리려고 이렇게 늦은 시간 글을 씁니다.
흠…….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씀드려야할까요~
어느덧 은평 품앗이 육아 모임이 꽉 찬 1년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지난 1년은 마치 엄마 뱃속에서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가가 돌이 되
어 스스로 걸어 다닐 때까지의 인생의 가장 큰 성장기와 같은 뜻 깊고 의미 있
는, 격동의 시간이였습니다.^^
1기 북키북키 멤버들과 함께 숨차게 달려온 한 해가 아니었나 싶은 데요~ 어
느덧 14명 남짓으로 시작한 인원이 40명 가까이 되었네요.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엄마와 아가들이 함께 하게 된 것은, 참으로 기쁘면서
도 또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합니다.
홀로 육아의 통로를 지나고 있는 엄마들의 아픔이 우리 모임의 성장계기가 아
닐까 싶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외롭고 심심하다고 해서 누구나 박차고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용기 있게 이 길을 나서준 여러분의 발걸음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그런 여러분이 더욱 즐겁고, 행복하고, 원활한 소통의 장으로 안내될 수 있기
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와 안효정 총무님은 이번 개소식을 마지막으로 회장과
총무직을 사임하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 2기 은동이 멤버들이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개
월의 활동모습을 돌아보아, 1기의 바통을 2기에 이어줄 시간이 되었다는 판단
하에 심사숙고하여 총무님과 함께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지금까지 여러분이 믿고 따라주신 운영진 모임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마쳤으며, 이 부분에 대해 모두 깊이 이해하고 동의해주신 바,
여러분께도 개소식 전체모임 전에 말씀드리는 것이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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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인 것 같아 카페를 통해 미리 알립니다.
많이 놀라셨나요?^^;;
지난 1년은 무에서 유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강한 연대’의 시기
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느슨한 연대’로 숨을 좀 고르며, 즐겁게, 신나게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임원진 교체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임원과 운영진을 구성한 후, 저와 총무님은 6월 한 달 동안 업무인수
인계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떠나는 것은 결코 아니고요~ㅋㅋ
ㅋ 저와 총무님 모두,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실히 임할 것입니다.^^ 아무
쪼록, 여러분들의 많은 협조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임원진과 운영진 구성은 지난 3개월 동안 열심히 활동해준 2기 멤버들이 중심
이 됐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이미 느껴서 아시겠지만, 공동체로서의 3개월은
충분히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소식 행사 3부에 임원진 투표에 들어가겠습니다. 모두 미리 마음에 준비하
시고 임해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부족한 제 글이 어느 한 사람에게도 오
해소지가 되거나 당황스런 이야기가 되지 않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곳에 모여 연을 맺어주신 여러분, 모두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여, 2013년 6월 11일 화요일 개소식 후 회장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 모임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가진 똑순이 2기 멤버 승연맘 현주씨가 새
로 회장 자리를 맡게 되었고, 이전에 법무 회계 팀에서 일해 본 경력이 있다던 도연
맘 서희씨가 총무로 그 역할을 기꺼이 담당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 날 감동이었던 것은 개소식이 있기 열흘 전에 남편을 갑작스럽게 하
늘나라로 보낸 도연맘 서희씨가 우리 곁에 다시 와서 이곳에서 바쁘게 자신의 삶을
닦아나가고 싶다는 뜻을 알리며 총무 일을 하겠다고 자처해준 것이었다. 우리 모두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럽고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 망설
이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용기 있게 앞장서서 우리 안에 자신의 재능을 펼쳐주
는 그녀의 모습은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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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어떻게 성장해 갈 것인가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멀다. 그동안 초석을 다졌다면 다음에는 어

           은평 품앗이 육아

느 쪽으로 방향을 잡고 길을 내느냐가 우리의 숙제다. 하지만 성장의 방향을 잡는데
있어 멤버들의 필요와 욕구가 가장 중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 몇몇 회원들에게 의견
을 물었다.

Q. 앞으로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떻게 성장하기 바라시나요?

호연맘 강은자: 육아로 힘들어하는 한 엄마가 이 모임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의 정화를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정을 나눌 수 있는 은평 품앗이 육
아가 되기 바란다.
승연맘 배진윤: 너무 크고 조직화 되어 틀에 맞춰 성장하기 보다는 엄마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소소한 모임이 되기 바란다. 내 아이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엄마들의
힐링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은찬맘 장명정: 지금보다 나아야 한다. 센터를 구축한다던가, 대안학교를 세우던가
해야 하지 않을까? 또, 엄마들을 위한 직업훈련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태희맘 안효정: 우리가 마을을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모여서 아이를 함께 키우
며 아이가 자라남과 동시에 우리도 자라고 있다. 내 아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준비 중인 방과 후 수업 등을 시작으로 지역아동센터등과 연결하여 재능기부
및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은평구 전체에 점조직처럼 넓게 확장 분포되어 은평구 전
체가 마을이 되는 것어서 은평 품앗이 육아의 분신이 생기면 어떨까 싶다.
이렇듯 한 공간에서 함께 활동한 사람들이지만 각자 원하는 성장방향이 천양지
차이다. 하지만 여기서 공통점이 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힐링을 원한
다. 작게는 마음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학교를 만들든 지역 안에서 큰 조직으
로 성장해 가든 그 모든 것들 안에는 모두 엄마들의 힐링이 내재되어 있다. 왜냐하
면 성장도 우리가 새로운 일들을 성취하며 느끼게 될 또 하나의 짜릿한 힐링일 테니
말이다.
대부분의 영유아를 키우는 엄마들은 24시간, 365일 아이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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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어 하느라 자신을 돌볼 틈이 없다. 자신이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등을 잊은 채 서서히 그만의 빛을 잃어가게 된다. 그렇다고 육아가 무가치한 일이라
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세상 어떤 일보다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 ‘아이를 키우는 일’
이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하지만 엄마들은 그러한 당위성 이전에
‘쉼’이 필요하다. 그리고 엄마들의 행복이 곧 아이의 행복으로 전이된다.
단언컨대 엄마라는 이름으로 육아를 해나가는 일은 세상 어떤 일보다 버겁고 힘
들다. 그리고 그들은 육아를 하는 엄마들이 어디서도 얻지 못하는 희로애락을 이곳
에서 나누고, 또 새롭게 배우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돌보겠다는 생각일리는 없다. 이미 엄마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덧입혀진
그들은 육아와 ‘더 나은 내 아이 키우기’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그 속에서 자
신의 즐거움을 찾기 바란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힐링과 아이들을 위한 배움이 곧
우리의 성장 방향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기준을 세우고 하나씩 해 나가다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다음은 지난 8월 23일, 우리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혹시 메이크업 지도나 강의 하실 수 있는 분 있나요? 제가 너무 너무 듣고 싶
어서요.ㅋㅋㅋ 문화센터에 메이크업 강좌 있는데 밤 8시부터입니다. 흑흑~
신부화장 이런 게 아닌 본인 스타일에 맞는? 혹은 전반적인 화장법(특히 눈
화장) 강의 가능하신 분 있나요? 있다면 수강생 모아보고 강의료 한 번 절충
해 보아요.”

메이크업 강의는 결혼 전에 방송국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했던 다인맘 의
혜씨가 해주기로 했다. 우연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전에 방송국에서 메
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메이크업 강좌가 필요하다는 의견
이 나오자 2기 회장인 현주가 발 빠르게 중간에서 시간, 장소, 인원, 수강료 조율에
들어갔다. 한동안 육아에만 전념하던 의혜씨는 처음에는 주춤했지만 이내 강의요
청을 수락해줬다. 강의를 해야 하는 의혜씨가 다인이를 맡겨야 해서 주말에 하기로
하고 수강희망자 중 아이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현주씨가 맡아주기로 했다. 능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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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으로 중간에서 조율하고 솔선수범하는 2기 회장 승연맘 현주씨가 정말 든든하고 고
마웠다. 앞으로 그녀의 성장이 가히 기대된다.
드디어 지난 10월 5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에 ‘동안 메이크업 1일 특강’을 열 수

           은평 품앗이 육아

있게 되었다. 일인당 1만 원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들은 수업은 그야말로 알차고 즐
거운 시간이었다.
자, 그럼 그날 카페에 올라온 메이크업 강의 후기를 들어볼까?

휘연맘 안세정: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성아보다 자상하고 따뜻한 카리스마로
열정적인 강의를 펼쳐주신 황의혜 쌤♥ 감사합니다.
동안 메이크업 강좌 ppt까지 준비해주시고 정말 감개무량이었답니다!
동안 메이크업 눈화장은 아랫부분에 검은 라인이 아닌 하얀색으로 하는 거라
고 신나게 가르쳐줬는데 점막까지 깜장으로 꽉 채우고 멍 때리고 있던 저를
용서 하세요.
덕분에 저의 긴 턱을 없애버리는 방법과 아이라인 잘 그리는 법, 입체적인 얼
굴표현을 위한 하이라이트 주는 법 등 너무 잘 배웠습니다. 그 외에도 같이 얼
굴 두드리며 친해진 현옥, 지영씨도 너무 반가웠고요~~
원활한 수업을 위해, 정작 자기 아이들은 시엄마께 맡기고 수강자 아이들 돌
봄에 최선을 다해준 살신성인 회장님, 너무 감동이었습니다.ㅠㅠ
재능기부 해주신 의혜쌤께 다시 한 번 감
사드리며 오늘의 수강후기를 마칩니다.^^
준호맘 석현옥 :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
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내 안의 다른 모
습을 봤네요 ㅎㅎ 그런데 수업이 지난 지
금은……흑흑 다시 원래대로 하고 나왔네
요.ㅋㅋ 내일은 다시 동안 메이크업으로
다시 도전해봐야겠어요^^ 의혜 언니 너무
고마워요~~ 현주 언니도 고생 많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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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크업 강의 동안
아이들 돌봄 해주는 회장님 모습
▲ 선생님의 1대 1 지도 받고 메이크업 한 후
기분 좋은 우리 모습

‘은평 품앗이 육아’가 있는 이유는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을 ‘공유’하기 위
함이다. 가지고 있는 재능, 지식, 정보, 생각 등을 될 수 있는 한 공유하고 나누면서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것. 그 속에서 엄마들은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잃지 않고 빛낼
수 있으며 다시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런 행복한 엄마 아래 자란 아이들도 스스로 꿈을 키우는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믿
어 의심치 않는다. 이는 부모의 자존감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상속된다는 의미이기
도 하다.
이 부분에 대해 더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 모임의 특징 중 하나는 누
구도 ‘휘연이 엄마’, ‘주아엄마’, ‘승연맘’ 등으로 호칭하지 않는다. 맨 처음 카페를 만
들면서 닉네임을 ‘휘연맘 안세정’이라는 식으로 아이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붙여서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아이의 엄마이긴 하지만 내 자신을 잃지 말기 바라는
마음에서부터였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만나면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아마 내 아이의 어린이집이
나 유치원 친구엄마들과 인연을 맺은 엄마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실
제로 나는 우리 큰 아이 친구 엄마들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냥 그녀는 ‘○○엄마’
이며 ‘○○엄마’로 불릴 뿐이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다만,
우리 모임에서만큼은 ‘내 이름이 불린 게 언제였지?’라는 슬픈 자기분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물론, 이름 하나가지고 뭘~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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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까.
이렇게 우리는 우리 안에서 자신의 재능을 찾고 그것으로 새로운 즐거움을 창조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배우면서 이 길을 닦아가고

           은평 품앗이 육아

있다.

지속적인 의논과 협의

1기 북키 멤버들과 질리도록 했던 회의와 토론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물론, 처
음에는 우리 14명의 1기 멤버들이 전부였고 운영진이 따로 구성되어 포지션이 나뉜
것이 아니라서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3개의 모둠에서 각반 반
장과 부반장이 있고 총괄하는 회장과 총무로 운영진이 구성되어 있어서 매번 심도
있는 회의가 모임에서 진행될 필요는 없게 되었다.
각반의 반장과 부반장은 모임이 운영되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체크하고 그
모임이 활동이 차질 없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리드하고, 회장과 총무는 전체 모둠
을 보면서 월별 해야 하는 행사 및 마을공동체로서 활동에 필요한 것들을 재정비하
고 각반에서 나오는 의견 등을 수렴하고 공지하여 의견을 조율하는 일을 하면 된다.
운영진 회의는 월 2회로 한 번은 전 회장과 총무, 그리고 현 회장과 총무 네 명이
모여서 하는 임원진 회의이고 한 번은 운영진 전체 회의이다. 이렇듯 회의와 토론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가 공동체로 함께 갈수 있는 소통의 방법이기 때문
이다. 문제가 있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 그에 대한 안건을 놓고 함께 의견을
조율하고 결정된 사안을 각 모둠 회원들에게 명쾌하고 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바
로 이 운영진의 역할이다.
이 운영진 회의 때 운영진 모두가 의견이 합일되지 않은 채 결정이 되고 각 모둠
으로 의견이 전달될 때는 많은 오해와 불만을 양산할 우려가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안건에 대해 회원들에게 전달을 할 때 각반의 리더들이 그들을 확실히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영진 회의 때 어떤 문제와 해법에 대
해 충분한 논의가 있은 후에 마무리가 되어서 모두 납득이 되었을 때 결정이 되어야
한다.
가끔 어떤 회원들은 운영진이 무슨 회의가 그렇게 많으냐고 묻곤 한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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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반이 순탄하게 운영되기 위해 해야 할 이야기는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최근에는
꿈나무도서관 이용에 있어 도서관 특성상 정숙해야 하는 분위기에 우리 아이들의
활동이 담당자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서 서로 불편이 야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
했다.
자라면서 활동량이 많아지는 아이들은 비치된 화분의 흙을 파서 여기저기 흩뿌
리기도 하고 계단을 마구 오르면서 정신이 없다. 이런 상황이 자꾸 발생될 때는 장
소 담당자와 우리와의 대화가 필요하다. 서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등의
구분을 짓고 의견을 맞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안에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
하며 그 후에 그 분들과 최종 미팅을 할지 전화통화로 이야기를 나눠볼지를 결정하
게 된다. 또, 이런 문제가 각반마다 느끼는 고충인지 모두 확인을 하고 해당 문제점
들을 모두 체크해서 미팅을 해야 한다. 인원과 모둠이 많아지면서 하나의 문제가 단
순하게 마무리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는 육아사랑방이라는 큰 과업이 있다. 정말 원해서
열기는 했지만, 막상 열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활용이 되고 있지 않아서 골치다. 무
엇보다 육아사랑방 이용을 좀 더 시스템화해서 자유이용시간이나 문화센터처럼 수
업을 하는 시간 등을 만들어 봐도 좋을 듯한데 뭐든 처음이다 보니 그 모든 일을 시
작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그토록 바라던 우리만의 전용공간이었고 힘들게 다함께 힘을 합쳐 조성한 공간
이기에, 잘 관리하고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모색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다. 물론, 현
재로서 우리가 모이고 싶을 때 모이고 모일 장소가 없을 때 모일 수 있는 용도로 충
분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 안에 큰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방과 후 수업이나 현재 우
리가 하고 있는 엄마표 수업을 단기수업으로 지역 엄마들에게 이 공간에서 오픈해
보면 어떨까 하는 방안 등을 생각 중에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운영진 회의를 통해 결
정되고 각반에 알린 후 적정한 재원을 배치해서 실행하게 된다.

그들과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조건

이렇게 마을공동체처럼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
요하다. 개개인의 필요와 문제점 등을 파악해서 그것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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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운 대안을 마련하고 진행해감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 해결해가면 좋을지에 대한 최
종결정이 그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은평 품앗이 육아 멤버들은 어떤 리
더를 원하는지 또 리더로 활동한 나로서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리더라면 어떤 자

           은평 품앗이 육아

질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멤버들이 바라는 리더의 조건
을 먼저 들어보기로 하자.

2기 멤버 윤서맘 김지현: 리더의 조건이라면, 결단력이랑 추진력이 있
어야 한다. 내가 운영진을 해보니까, 의견은 많이 나오는데 진행 시키는 것이
참 어려운 것 같더라. 리더에게는 이런저런 아이디어 속에서 진짜 필요한 것
을 집어내는 결단력과 그것을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는 추진력이 필요하다.
또 하나!! 시간이 필요하다. 리더로 일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3기 멤버 아영맘 김현숙: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전체를 휘어잡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겠다.
1기 멤버 승연맘 배진윤 : 리더에게 모든 일을 일임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
면서 미안한 마음이 생기긴 하지만 그래도 리더는 리더니까 그 모든 걸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리더는 엄마 같은 사람이다. 우리 모임에서는
능력보다는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1기 멤버이자 전 총무 태희맘 안효정: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에서 리더는 미
친 듯이 하고 싶은 자가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부수적으론 시야가 넓고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사람이여야지만, 하고 싶어 미치겠는 1인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다.
1기 멤버 호연맘 강은자 : 넓은 마음을 가진 자, 헌신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마 우리 회원들이 생각하는 리더의 조건이 진짜 리더의 조건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리더였던 내가 그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조건’을 낱낱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첫째, 솔선수범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공동체가 잘 되기 위해서는 각자 할 일을 주고 무임승차 없이 가야 한다고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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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실상은 그렇게 되기가 힘들다. 이 일이 할 만한 가치가 있고 내 스스로 나눌 수
있는 역량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임무가 주어진다면 그저 도망가고 싶거나 모
임에서 탈퇴하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기 마련이다. 그때 상황을 빠르게 간파하고 제
일 먼저 솔선수범을 해주어야 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이다.
모임을 끌어가다보면 내가 왜 이런 일까지 일일이 다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마
련이고, 그런 일들을 리더가 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로 인해 상처받기도 한
다. 그러나 열 가지 일 이상을 리더가 스스로 먼저 할 때 회원들은 힘들지만 한 가지
라도 해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한 가지’는 뛰어
난 리더의 ‘열 가지’보다 훨씬 강력한 힘으로 발현된다. 결국, 리더의 열정과 솔선수
범만이 회원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며 리더의 그런 헌신과 노력이 있을 때에만 회원
들에게 리더의 방향성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어떤 일이 있어도 화를 내선 안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나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단지 ‘엄
마’라는 하나의 공감대로 뭉쳤다. 따라서 다들 생각의 기준과 상식이 전혀 다르다.
내가 A라고 말해도 B~Z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때 화를 내
게 되면 모든 일이 말짱 도루묵이 된다. 내 뜻을 전혀 이해를 못하거나 내 뜻대로 움
직여주지 않더라도 절대로 화를 내서는 안 된다. 먼저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하
는지 어떤 배경에서 그런 생각과 행동이 나오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이해를 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의외로 내 생각이 잘못 된 경우도 종종 나온다는 사실
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경청은 하되 결정은 단호하게!!
앞서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만큼 말도 많다. 불만과 요구사항
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때로는 벅차고 힘들 때가 있
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중한 하나의 인격체이지만 리더 한사람에게 깨알같이
쏟아지는 그들의 의견은 실로 버거운 문제이다.
이때, 리더는 경청하고 깊게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아주 사소한 상황과 문제라
할지라도 그 개인에게는 큰 문제일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하지만 여기서 리
더에게 필요한 것은 전체를 보는 눈이다. 개인의 이야기는 들어주고 공감하되 그것
에 쏠려서 개인의 의견을 바로 결정에 올려서는 절대 안 된다. 우선 이 모임의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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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와 처음 기준을 다시금 살펴보고 그것에 따르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늘 통찰력으
로 단호한 결정력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넷째, 욕먹는 것을 두려야하지 말아야 한다.

           은평 품앗이 육아

속되게 말해서 리더는 ‘씹히기’ 가장 좋은 사람이다. 모두를 대표해서 일을 진행
하고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 속에 어쩌면 가장 큰 공감대가 바로 ‘리더 이야기’
일 것이다. 리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분명 좋은 이야기도 있겠지만 때로는 안 좋
은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옛말에 ‘나라님 없는 자리에선 나라님도 욕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군림하려고 애쓰다 보면 해야 할 일도 못하게 되고 자기
이미지 관리한다고 포장하기에 바빠진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 쓰지 말고 ‘당연히 욕
먹을 건 먹어야지, 욕먹어도 할 수 없어’라는 마음가짐으로 마음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리더는 연예인이 아니다. 모두에게 인기 얻으려 애쓰지 말라. 사심 없이 대의
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결국 진심은 시간이 알아서 증명해 줄 것이다.
다섯째, 문제가 있을 땐 전화 통화나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은 카톡이나 여러 매체가 발달하다보니 전화 통화나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
하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더군다나 우리처럼 육아를 하는 엄마들은 행여 아이 자
는 시간이거나 예민한 육아생활에 방해가 될까봐 더욱 전화나 만남이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거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꼭 전화를 하거나 만나
서 이야기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왜냐하면 카톡 등의 메시지는 나의 감정으로 읽어
서 자칫 서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데 반해, 전화통화는 서로 이야기를 주
고받으며 목소리로 교감하므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결국 가장 좋은 것은 얼굴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하다보면 몇 마디 말로도
의외로 금세 오해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리더는 반드시 모임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을 설정하고 끌어가야 한
다. (이것을 ‘초심’이라고 해도 좋겠다.) 회원 개개인은 이 모임을 그저 편하고 쉽게
모인 자리라고 생각할지라도 그들을 끌어가는 사람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확
실히 세워놔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모임의 성격이 때에 따라 달라지
거나 퇴색 될 우려가 있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떤 길을 걸을지에 대해 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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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하고 그에 맞춰서 해나가려 애써왔다. 그리고 때때로 “그냥 편하게 만나고 재
미있기만 하면 되지 무슨 그런 가치관이며 철학이나 비전이 필요하냐”고 했던 사람
들도 지금은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함께 해주고 있다.
비전과 가치, 철학을 함께 한 사람들은 마을공동체 활동이 아무리 힘들어도 웬만
해서는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사소한 문제에도 모임을 그만
두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마을공동체에서는 ‘푯대’를 세우고 가는 리더만이 회원들에게 모임을 통
한 삶의 새로운 방향을 심어줄 수 있게 되고 그로 하여금 또 모임을 성장시킬 수 있
는 원동력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우리의 바람은 모임을 위한 개인성장보다
개인의 행복한 성장을 토대로 한 발전적 공동체 모임이 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이었던 매머슨은 “좋은 리더는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리더라면 당연히 회원들보다 한발 앞서 내
다보고 그 뜻을 회원들에게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급하지 않게
말로써가 아닌 실천적 행동으로 서서히 해나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말이 먼저
앞서면 회원들은 리더를 신뢰할 수 없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 하는 대로 살아라’라는 말이 있다. 가치와 철학은
우리의 삶을 바다라고 했을 때, 물이 흐르는 대로 그냥 둥둥 떠가는 게 아니라 방향
을 설정한 후 배를 띄워 놓고 노를 저어서 목적지로 향해 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솔직하게 이야기 하되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말할 줄 알아야 하
며, 타인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누구보다 커야 한다. 혹자는 이것을 보고 ‘오지
랍’이라 폄하하지만 리더에게 ‘오지랍’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 시간을 내서 회원들
과 긴밀한 관계가 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모든 관계는 시간의 양과 비
례 한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사실 이 부분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마을공동체
일 외에도 집에서 기사 쓰는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활동 외에 멤버들과 모여서 친목
을 다질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시간을 가지려 애쓰지 못
한 점이 나의 시행착오였음을 느끼게 된다. 리더인 나부터가 좀 더 모이기에 힘쓰고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면 우리가 좀 더 끈끈하게 서로를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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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는 아쉬움이 있다.
내가 생각한 이 리더의 조건들은 대부분 나의 시행착오에서 깨달은 것들이다. 아
마 이외에도 무수한 리더의 조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리더라고 해서 완벽할 수

           은평 품앗이 육아

는 없다. 그리고 완벽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때로는
힘든 것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면서 ‘힘듦’을 표출하고 나눠야만 리더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언제나 강직하고 묵묵히 아픔과 힘듦을 삭여가며 헌신을 해야 한다면 누구도 자
처해서 리더를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회원들도 리더에게 리더로서의 역할
만 강조하지 말고 리더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그들 앞에 서서 기쁘게 깃발을 들고
나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며 기꺼이 협력하며 애써주면 좋겠다. 마을공동체에서
리더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하겠지’라는 생각
이다.
리더가 의견을 제시할 때 명쾌하게 예스와 노를 말해주는 것, 또 노를 말할 때는
될 수 있으면 다른 대안도 함께 제시해주는 것, 그리고 운영진이 일을 잘 했을 때 당
연시하기보다 ‘수고 했어요’라는 작은 한마디로라도 감사를 표시하는 것을 잊지 말
았으면 좋겠다.
나의 이런 이야기를 종합해서 누군가 ‘마을공동체 리더는 참 힘들구나, 나는 절대
마을공동체에서 리더가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까 싶어 한 마디 덧붙
이려 한다. 물론 리더는 엄청나게 힘들다. 하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엄청나게 크다.
물론, 신체와 정신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하나 새로운 일을
도전하고 그것을 함께 해나가면서 느끼는 성취와 희열은 실로 크다.
더군다나 개인으로는 만날 수 없었던 훌륭한 분들을 마을공동체의 대표라는 이
름으로 가까이서 뵙고 귀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의 경험과 노하우가 소중한 자산이 되어 이제 막 마을공동체를 시작
하려는 사람이나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도 무척 기분
좋은 일이다.
사실, 리더로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회원들과 생기는 불협화음이다. 하
지만 이제 돌이켜보니 그 과정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다
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속에서 인간의 다양성과 조율을 위해서 어떤 커뮤니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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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이 필요한지에 대해 생생하게 배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 가장 큰 화두가
되는 것이 ‘소통’이다. 마을공동체 리더는 이 ‘소통’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과 시행착
오를 경험하면서 스스로 한 단계 성숙하고 폭넓
은 시야로 사람과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소득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최근 가장 중시하는 학문이 ‘인문학’이 아닌
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과 생
각을 조율하면서 ‘살아있는 인문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그로 인한 많은 번뇌와 고민
이 이전보다 한 차원 높은 나로 성장시켜 줌을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된다. 마을공동체 대표로
서의 지난 1년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 중에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경험은
어디서도 돈 주고 살 수 없는 제일 큰 가치라고
▲ 지난 9월 6일 리빙 라이브러러에 ‘사람책’으로 참여한 모습

자부할 수 있겠다.

이게 뭐라고!!

처음 이 모임을 해나가면서 지금까지 특히 우리 1기 멤버들이 가장 많이 한 생각이
“아니, 도대체 이게 뭐라고!!”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품앗이 육아는 결코 쉽지 않
다. 더군다나 영유아를 키우며 함께 해가는 품앗이 육아는 더욱 그렇다. 아이를 위
한 모임인데 정작 아이는 방치되고 엄마는 지쳐가곤 했다. 이 문제에 대해 1기의 한
회원은 이런 말을 했다.
“함께 키우고 나누는 건 좋아요. 그런데 아기를 데리고 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고
불편했어요. 애를 위한 것인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되
죠. 심지어 어느 순간엔 이 모임이 너무 힘들어서 그냥 애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싶
다는 생각까지 들곤 했다니까요. 시작은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어요.”
나는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 엄마들이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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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품앗이 육아해요”라고 하면 누군가는 그렇구나 하고 쉽게 지나칠 수 있겠지만 그 속
을 들여다보면 기본적으로 각자 자신이 나눌 수 있는 ‘품’을 기꺼이 나누겠다는 기본
마인드가 준비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모임의 주된 프로그램인 엔

           은평 품앗이 육아

젤데이(아이들에게 엄마표 수업을 하는 날)와 맘스데이(좋은 작가의 책으로 독서토
론 하는 날)는 엄마표 수업과 독서토론 발제 등의 준비가 누구에게나 순번제로 돌아
간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이해와 확실한 의지가 없을 경우에는 활동이 불가능하다. 그것
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각자의 ‘품앗이’ 역할이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오
픈수업을 했을 때 “저는 못할 것 같아요”라는 소수의 인원이 있었으리라 미루어 짐
작해본다. 물론, 그들을 폄하하거나 평가절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이 모임
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품앗이’라는 점에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함께 힘든 과정을 겪어온 1기멤버들은 아직도 대부분 우리와 함께 하
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음에도 함께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호연맘 강은자: 나는 사실 내 것에 대한 애착이 심했다. 하지만 이 품앗
이육아를 통해 ‘함께’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나 스스로 변화를 느꼈다.
물론, 다들 적극적이고 솔선수범하는 데 도움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 때는 부
담도 크고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이 모임에서 나간다면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것도 잘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을 모임을 통해 내가 얻은 가
장 큰 변화는 우리 호연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는 인
내가 생겼다는 점이다.
윤지맘 김미정: 인간관계,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못 떠났다.
승연맘 배진윤: 물론,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내 아이와 나의 발전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몸담게 되었다. 사실은 중간에 그만둘까 하다가
남편의 “너 거기 아니면 우리 승연이한테 뭐 해줄 수 있겠니?”라는 말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나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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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마을공동체가 되고 사단법인 공동육아에서 컨설팅을 해주러 오셨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질문이 그것이었다. “모임을 위해 이렇게 만날 회의하고 이야기 나
누면서 정작 아이는 방치되는 데 이게 맞는 건가요? 이래도 우리 아이들 괜찮을까
요?” 그랬더니 그분들이 말씀이, “어른들의 그런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보고 자라가
는 아이들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자리매김해나가야 할지를 스스로 배우게
됩니다. 그러니 절대 그런 부분은 걱정 마세요”였다.
먼저 그 길을 걸으신 분들의 조언은 우리에게 무척 귀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도대체!! 이게 뭐라고!!” 하며 불평 아닌 불평을 하면서도 멈
추지 않고 걷고 또 걷는다.
얼마 전에 사단법인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에서 실시한 7주 간의 ‘돌봄 코디네이
터 양성’과정에 참여하면서 받은 교재에서 ‘품앗이 육아’와 관련된 좋은 글을 발견해
서 이곳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글을 쓰신 분은 우리에게 《야생초 편지》라는 책의
저자로 잘 알려진 황대권씨다.

공동체와 품앗이생태
(생태공동체 운동센터 소장 황대권)
엄마들이 모여 아이를 함께 키우는 품앗이육아공동체는 현재 많은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공동육아형 어린이집 운영과는 다른 공동체 활동이다. 즉 공동
육아형 어린이집은 마음이 맞는 부모들이 모여 ‘아이를 함께 키우자’라는 목적
으로 공동으로 출자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이다. 교사선정에서 교육과정,
간식 등 부모들이 출자해 설립한 어린이집인 만큼 보육과정에 있어 많은 개입
을 할 수 있는 육아 형태이다.
품앗이 육아, 품앗이 학습은 말 그대로 이웃에 사는 사람들끼리 아이들을 키
우고 학습하는 데 있어 품앗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비슷한 연령이거나 가까운
지역에 거주하는 엄마들이 모여 아이들을 돌봐주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아이
들에게 직접 가르쳐주고, 다른 엄마에게 배우자는 것으로 가정과 가정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엄마들이 직접 아이들을 키움으로 엄마와 아이, 가정과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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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이 호흡을 맞추어 육아와 교육을 함께 하는 것이다.
품앗이육아공동체는 고립적인(핵가족화로 인한 가족으로부터의 고립, 지역주
민의 단절성에서 야기되는 고립) 육아가 갖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지역공동체

           은평 품앗이 육아

성을 살릴 수 있는데 여러 강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자녀를 건강하고 사회성이 좋은 아이로 성장시킬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과 다른 가정이 모여 함께 자란 아이는 다양한 인적 교류로 인해 정서
적으로 건강해지고 사회성이 잘 길러진다.
둘째, 주 양육자이며 지역사회 주체인 엄마들의 정체성 회복이다. 전업주부로
서 전적으로 양육과 가사 일에 매달려온 주부는 다른 가족과 아이를 함께 키
우면서 양육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품앗이육아의 한 부분인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 직접 가르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교육자로서의
자존감 향상, 이를 위한 자기계발 등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이 늘고 정체
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품앗이육아공동체를 통해 고립적인 핵가족 문화가 지닌 가족이기주의,
이웃과 단절된 삶이 회복되면서 엄마와 자녀가 건강한 사회의식을 성장시
키게 되며 이는 품앗이육아공동체 내에서 뿐 아니라 지역사회활동에 긍정적
인 영향을 주어 주민자치, 시민자치의 주역, 씨앗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는 것
이다.
잘 되는 조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을 한다. 품앗이육아공동체 역시 시
간이 지남에 따라 자녀와 엄마들이 성장한다. 그리고 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주민모임도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성장한 주민모임은 지역 내에서 스스로 모
임을 독립적이며 자율적으로 운영해 나가게 된다.
탄생, 성장 그리고 독립 이것이 주민모임의 발전적인 성장모델이 될 것이다.
성장해서 독립한 주민모임은 인연을 놓지 않고 주민활동가로서 품앗이육아활
동의 선배로서 새로운 품앗이육아, 주민모임이 탄생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
다. 그들 스스로가 품앗이육아공동체 안에서 몸소 체험한 가족친화, 공동체,
더불어 삶의 가치를 우리의 또 다른 이웃에게 전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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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이 원고의 에필로그까지 모두 쓴 상태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이 글
을 읽으면서 마치 인류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의 종말을 예언하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치는 경험을 했다. 아니, 황대권씨는 노스트라다무스보다 더욱 강력한
품앗이육아공동체에 대한 확실한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보면서 힘이 빠졌다. 내가 앞에서 무려 몇 십 장에 걸쳐 설
명한 이야기를 이 분이 단 A4 용지 한 장 반 정도로 아주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가 경험으로 겨우 깨우친 이야기를 나보다 더 자세하고 확실
한 비전 아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뜨악’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분은 품앗이
육아를 해보신 분인가? 남자분이신데 그럴 리 만무하다. 역시 사회를 통찰하는 지
식인의 눈은 경험이 없이도 한눈에 발견해낼 수 있는 엄청난 것임을 다시금 느끼
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분의 예견이 상당 부분 나의 깨달음과 일치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
었다. 전문가의 시선이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상과 일맥상통하다는 것은 그만큼 우
리 은평품앗이육아의 앞날이 밝다는 의미가 아닐까. 괜히 어깨를 들썩이며 혼자 키
득거리고 있는 유치한 나이다. ‘와우~우리의 앞날 완전 기대만발인걸?’ 혼자 쾌재
를 부르며 감히 전문가의 글을 덧붙여 나의 경험과 우리의 예견이 결코 헛되지 않음
을 다시금 증명해보고자 한다.

6.
그들이 본
‘은평 품앗이 육아’
지난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가 지속되고 또 조금씩 성장할 수
있기까지는 여러 곳에서 도움을 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분들
이 있어서 더욱 힘을 내고 지속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곁에서 바라본 은평 품앗이 육아는 어떤 모습인지 그 분들의 생생한 목소리
로 들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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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1)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 이현숙 팀장과 곽영선
(여러 공동체를 보면서 사례를 보시는 분들의 시야)

           은평 품앗이 육아

이현숙 팀장님과 곽영선님과의 인연은 마을공동체로 선정된 직후 우리 모임을 컨설
팅해주시기 위해 나오셨던 지난해 10월경부터였다. 그 이후, 힘들거나 어려운 문제
가 생기면 달려가서 자문하거나 전화통화로 여쭙고 강의요청도 하면서 많은 조언을
얻은 바 있다.
지난 9월, 인터뷰를 위해 찾아뵌 날도 두 분 모두 상냥한 미소로 반갑게 인사해주
시며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셨다.

Q1. 처음 은평 품앗이 육아를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어떠했나요?

•이현숙 팀장: 처음 봤을 때 엄마들이 애 안고 업고 하는 모습 보면서 지금 다시 생
각해보니까 눈물이 나려고 한다. 힘든 육아를 잘해보겠다고 낯선 사람들과 모여서
뭔가를 해보려는 모습이 안쓰럽고도 참 훌륭하구나. 도움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곽영선: 나도 비슷한 느낌이었다.(웃음)

Q2. 은평 품앗이 육아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느낀 점이라면?

•곽영선: 다른 팀도 돌아보지만 첫 기수에서 다음 기수로 적극적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보통은 자기들 선에서 좋게 하고 애들이 크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데 이 모임은 우리가 했고 좋았기 때문에 알려주고 싶다는 적극적
인 모습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그 이후 2, 3기가 나왔다는 게 정말 장하다. 더군다
나 2, 3기는 선배들 모습 보면서 할 수 있고 조언을 구하면서 성장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다.
•이현숙 팀장: 내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게 아닌, 우리 아이를 우리가 함께 키울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아마 그래서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마
음을 가졌다는 게 대단하다. 초심을 이어갔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것은 공간을 만들려 했던 모습이다. 나만이 아닌, 다른 이들과의 융합을 생
각한 것에서 너무나 감명 깊었다. 그래서 그 속에서 그 가치가 더욱 점철되지 않았
나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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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그 첫 마음을 이어가게 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Q3.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시나요?

•이현숙 팀장: 회원들이 그 모임에 가면 즐겁고 재미있고 위로가 된다는 느낌을 주
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마음이 순환하게 되면 성장을 위해 뭘 할까하
고 고민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되어있다. 최근에 읽은 만화책에 ‘도시락
데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모임도 함께 밥을 나누고 맛있는 것들을 나누면서 마음
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곽영선: 지난번 만나보니 공간을 힘들게 만들었지만 협소한 관계로 여전히 모임
활동 공간사용에 어려움이 있어 보여서 아쉬웠다. 특히 꿈나무 도서관을 사용할 때
딱 그 시간에 수업만 하고 헤어져야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수업 후에 좀 더 서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두 분은 언제나 따뜻하고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에게 자꾸 무얼 가르치려 하지 말고 아이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면서
엄마들이 함께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씀과 요즘은 품앗이 육아로 엄마표 수업의
분담은 아주 잘 되 있지만 정작 꼭 필요한 ‘공동체적 마인드’가 부족해서 너무나 아
쉽다는 말씀이 무척 인상 깊었다.
아마도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표 수업으로 인한 정보나 지식 주입이
아닌 엄마들 스스로가 함께 어울리며 배려하고 헌신하고 소통하는 모습이라는 점에
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2) 어린이 도서연구회 은평지회 석은진 선생님

“지금 이 나이에 우리한테 ‘선생님’ 하면 가슴 따뜻하게 떠올릴 수 있는 분이 있어서
너무 좋다.”
“석은진 선생님은 정말 멘토 같은 분이야.”
“선생님 우리 너무 예뻐하시는 거 아냐? 히히히.”
석은진 선생님은 우리의 미약하고 여리기만 했던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따뜻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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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음으로 다독여주시면서 크고 작은 힘을 실어주신 분이다. 지난 9월, 석은진 선생님
을 오랜만에 찾아뵈었다.

           은평 품앗이 육아

Q1. 처음 은평 품앗이 육아를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어떠했나요?

•석은진: 세정씨를 처음 만났을 때, 나도 아이를 키워본 사람으로서 세정씨가 가
지고 있는 나눔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 열정에 너무나 놀랐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뻤
다. 그리고 회원들을 만났을 때, 요즘은 경제적 창출, 개인의 발전에 집중되어 있는
데 북 스타트 행사를 통해 모임을 만들고 순수하게 이웃과 함께 하겠다는 의욕을 가
진 모습이 너무나 신선했다. 목적과 의지가 명확해서 너무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스스로 자생했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꼈다.

Q2. 은평 품앗이 육아에서 모임장소에 대해 큰 고민을 할 때 누구보다 앞장서서 도움을
주셨고, 결국 신사종합사회복지관과 연계를 해주셨는데요. 당시에 어떤 마음으로 그런 도
움을 주시게 됐는지 이야기 해주실 수 있나요?

•석은진: 나도 사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하루아침에 사무실이 쫓겨
나야 하는 상황이 닥친 적이 있었다. 열정은 있는데 모임장소가 없을 때 그 간절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때 나에게도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있었다. 녹번종합
사회복지관 관장님과 은평시민넷, 좋은만남 교회 목사님 같은 분들 덕분에 모임 장
소를 구하고 모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그 감사함을 다시 나눠주
고 싶다고 느꼈다.

Q3. 은평 품앗이 육아 엄마들의 2기 멤버 모집을 위한 오픈수업을 흐뭇하게 지켜보셨는데
요. 당시 느끼신 점이라면?

•석은진: 덜 세련된 순수한 모습을 보게 되서 너무 즐거웠다. 누구도 할 수 없는 것
을 함께 해냈다는 점이 대단했다. 함께의 즐거움과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
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보기 좋았다.

Q4.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으로서, 앞으로 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떻게 성장하기 바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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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은진: 처음 가졌던 그 순수함과 가치, 비전을 잃지 말았으면 한다. 하다보면 ‘내
가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때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석은진 선생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엇을 더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시며
지금까지 우리에게 많은 경험과 노하우, 가르침을 주셨다. 나의 마지막 질문 “저희
가 어떻게 성장하면 좋을까요?”라는 물음에 “세정씨는 이 힘든 일을 왜 지금까지 했
는데요?”라고 도리어 내게 물어오셨다.
나는 웃으며 제가 인터뷰 하러 왔는데 왜 저에게 물으시냐 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이렇게 버티고 또 해나가고 있는가?’ “저는 이 힘들고 외로운 육아
를 함께 하면 얼마나 행복하고 가치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고 또 정말 해나가면서 그
사람들이 웃으면서 이 모임 오길 잘했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했어요.
앞으로도 아이 키우면서 힘들어하는 엄마들에게 함께 아이 키우기의 가치와 행복을
알려주고 싶어요.” 나의 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석은진 선생님은 바쁜 손을 멈추고
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시며 “그 마음, 그 초심 절대 잃지 마!!”라고 강하게 당부하
셨다. 그 마음이 이 모임이 있어야 할 이유와 미래라면서 말이다.

3) 신사종합사회복지관_ 담당 홍경희 선생님

“언니, 홍경희 선생님 우리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요?”
“완전 천사 선생님이다”
아무 곳에도 비빌 언덕이 없던 우리에게 홍경희 선생님은 처음으로 우리에게 비
빌 언덕이 되어주셨던 분이다. 오픈수업이 있던 날 복지관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은
평 품앗이 육아 오픈 수업 2층 강당’이라는 예쁜 안내문을 붙여놓으신 분도, 원활한
오픈수업 진행을 위해 공익요원을 배치해주신 분도, 동화책 소개 때 앞에 세워둘 이
젤을 준비해주신 분도 홍경희 선생님이었다. 지난 9월, 복지관 행사로 너무나 바쁘
셔서 이메일로 인터뷰를 요청 드렸고, 선생님은 부족한 잠을 줄여가며 성심껏 답변
을 보내오셨다.

Q1. 처음 장소섭외를 하러 온 ‘은평 품앗이 육아’ 대표와의 미팅 때 첫인상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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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홍경희 : 날씨가 추운 겨울날이었다. 1월15일로 그 날이 우리 큰아이 생일이라 특
히 기억에 남는다. 석은진 선생님과 함께 휘연이를 데리고 복지관(도서관)을 방문
한 세정씨. 아이들을 엄마표로 잘 키우고 싶은데 공간이 없다, 우리를 받아주는 곳

           은평 품앗이 육아

이 없다, 어느 공간이든 괜찮다며 열변을 토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을
공동체’라는 말이 새롭게 들리기는 했지만 아이들의 미래, 엄마들의 미래를 생각하
며 정말 열심히 사는 분들이 여기 있구나! 생각했다. 복지라는 것이 특별한 것은 아
니니까 어느 한 계층을 위한 선별적인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로 누구에게나 필요
로 하는 곳이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어야하기에 적극적으로 돕고 싶
다는 생각이 들었다.

Q2. ‘은평 품앗이 육아’ 엄마들의 활동모습을 처음 대면했을 때 느낌은 어떠셨나요?

•홍경희 : 처음 ‘은평 품앗이 육아’ 1기를 만나게 된 것은 도서관 옆 작은 방인 꿈자
람터에서 오픈수업을 위해 업무 분담하는 모습이었다. 준비는 해야 하는 데 아기들
은 울면서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전부 다 업고서 의논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
하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이길 원하는 엄마들의 공개수업
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Q3. 지금까지 반 년 넘게 ‘은평 품앗이 육아’를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되거나 느낀 점은 무엇
인가요?

•홍경희 : 나는 우리 아이 어릴 때 뭐했나 싶을 정도로 ‘은평 품앗이 육아’ 팀이 많
이 부럽다. 도서관에 오는 이용자들에게도 홍보를 많이 한다. 아기들을 위해, 엄마
들을 위해 참여해 보시라고. 새로이 2기가 들어오면서 앞으로의 원활한 활동을 위
해서는 인원이 많은 기수에서 회장이 나와야한다며 기꺼이 회장과 총무 자리를 내
어주는 모습에서 이것이 또한 진정한 ‘리더’구나 느꼈다.

Q4. 앞으로 ‘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떻게 성장하기 바라시나요?

•홍경희 : 엄마들도 아기들도 이 신사복지관 내에서 무럭무럭 성장했으면 좋겠다.
2기 회장이 선출되면서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가들
이 커가면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내 아이도 없는데……’ 하는 생각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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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약간 주춤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분들이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
하여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은평 품앗이 육아’만의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 가면 좋지
않을까. ‘은평 품앗이 육아’ 내에서는 진심어린 소통과 활동으로 복지관 내에서는
다른 단체와의 협업으로 지역사회와도 함께하여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은평 품앗
이 육아’가 되었으면 한다.

홍경희 선생님은 언제나 염치불구하고 요청 드리는 대부분의 것들에 흔쾌히 응
해주시고 도움을 주셨다. 물론 그 이면에는 복지관측의 협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중간 통로역할을 기꺼이 해주신 선생님에 대한 은혜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워낙 동안이어서 ‘미혼이신가요?’ 하고 조심스레 여쭸다가 중학생 큰 딸이 있다
고 하셔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녀 자신도 이전에 힘든 육아를 경험한 엄마이므로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부어줄 수 있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4) 신사종합사회복지관 관장 보련스님과 부장 이승재 사회복지사

가장 힘들 때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준 신사종합사회복지관. 2기 모집을 위한 장소
를 구할 때 이곳이 없었다면 ‘은평 품앗이 육아’가 지금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웠을지
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에게 고마운 곳이다.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이 우
리에게 터를 내어주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복지관 사업의 주최가 되는 부장
님과 관장님이신 보련스님을 지난 6월에 찾아뵙고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1. 처음에 ‘은평 품앗이 육아’가 강당사용을 할 수 있도록 오픈해주셨던 계기라면?

•보련스님: 우리가 새롭게 미션 비전을 ‘마을지향’으로 설정을 했는데 그 때 마침
은평 품앗이 육아에서 장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취지와
이 모임의 활동이 딱 맞겠구나 싶어서 흔쾌히 욕심 없이 자리를 내준 것이다. 사실
우리로서는 굉장한 도전이기도 했다.
•이승재 부장: 2년 전에 이 신사종합사회복지관 운영법인이 조계종으로 바뀌면서
우리가 지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찾으면서 복지관의 역할을 새롭게
찾자고 늘 회의하고 고민하던 중이었다. 특히 지역주민이 뭔가 스스로 해나가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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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때 도움주고 성장시키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마음을 모으던 중이었을 때 ‘은평 품앗
이 육아’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해온 것이었다.

           은평 품앗이 육아

Q2. ‘은평 품앗이 육아’ 활동을 보면서 느끼신 점은 무엇인가요?

•보련스님: 사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다른 복지관에서는 하지 않은 일을 한 것이
기 때문에 우리로선 대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추상적인 마을지향이 ‘은평
품앗이 육아’를 통해 성취되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보람 있고 좋았다.
•이승재 부장: 역시 주민 스스로 하는 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복지가 성장이 빠르다
는 것에 대한 가치와 확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됐다. 지속가능한 복지
를 위해서는 이런 모임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3. ‘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떻게 성장하기 바라시나요?

•보련스님: 실패와 성공에 상관없이 서로 서로 엮여서 이곳에 자주 왕래하면서 소
통하고 함께 나가는 장이 되기 바란다. 그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거니까. 어떤 면에서는 이미 활동을 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이다. 실
패는 없다. 다만, 과정일 뿐이다. 작은 모임으로 시작됐지만, 지역을 위한 여러 분
야의 자조모임이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의도적이거나 인공적인 것이 아니라 재
미와 필요욕구에 의해 서서히 성장하기 바란다. 성미산 마을처럼.(웃음)
•이승재 부장: 육아로 시작된 모임이지만, 그 초심을 잃지 말고 아이들이 잘 살기
위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함께 풀어갈 수 있는 단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역
사회를 위한 활동으로 더 많이 넓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통해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이 우리에게 장소를 내어주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심과 도전의식이 필요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나의 ‘은평 품앗이 육아’
에 대한 원대한 포부와 비전을 가장 먼저 이해하고 함께 해 준 게 바로 이 신사종합
사회복지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우리만을 위한 육아사랑방을 열어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오픈수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활동의 주 무대인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은 앞
으로 어떤 인연으로 끝날지 몰라도 우리에게 재도약의 힘을 실어준 무척 고마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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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점은 변함이 없다. 마을지향을 위한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의 노력과 신뢰가 헛되
지 않도록 그 속에서 함께 더욱 큰 성장을 이룰 수 있길 바라본다.

5) 아빠들 대표 3인(처음 마을공동체 선정을 위해 앞장서서 힘쓴 1기 장명정의 남편
은찬아빠 양길수, 1기 총무 안효정의 남편이자 태희아빠 김재광, 1기 모습을 보며 참여를
희망했던 2기 장연지의 남편 한비아빠 이지현)

육아를 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주 양육자인 엄마이지만 - 또
엄마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은 바로 아이의 아빠가 아닐까. 은평 품앗이
육아의 아빠들은 자신의 아내와 아이가 이곳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함께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Q.1 아내와 아이가 ‘은평 품앗이 육아’에서 활동한다고 했을 때 어땠나요? (ex. 별 생각 없
었다, 정말 그런 곳도 있나하고 놀랐다, 아내가 가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등)

•김재광: 그냥 집에서 따분하게 있는 것보다 나가서 활동하는게 엄마에게 정서적
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길수 : 발전적인 모습이라 생각했고 엄마와 아기의 유대감 형성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좋았고 아내와 아이가 사랑스러워 보였으며 나도 아내에게 배워서 동참하여
우리 은찬이에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현 : 집에서 혼자 육아에 전념하는 것도 좋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엄마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그 생각들을 직접 실천한다면, 내 아내와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Q2.곁에서 아내와 아이가 활동하는 모습을 볼 때, ‘은평 품앗이 육아’는 아내와 아이에게
어떤 곳인가요?

•양길수 : 아내는 결혼 전에 미술학원 원장이었다. 그런 아내가 가진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곳이자, 우리 은찬이에게는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함께 자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김재광 : 은평 품앗이 활동을 하면서 자녀교육에 대한 유익한 정보을 공유하고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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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매우 유익한 곳이라 생각한다.
•이지현 : 나의 아내와 나의 아이가 에너지를 얻어오는 곳 이라고 생각한다. 전문
적인 교육단체는 아니지만,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과 그들의 엄마들이 함께 생각을

           은평 품앗이 육아

공유하며, 이야기 나누고, 고민을 해결하는 훌륭한 단체라고 생각한다.

Q3.아내와 아이의 은평 품앗이 육아 활동을 보면서 크게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혹시 이
곳을 통해 아내와 아이 또는 본인이 달라진 점이 있나요?

•양길수: 사실 아내가 처음부터 활동을 해 와서 어떤 달라진 점이 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마을공동체 신청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
에게 주부로서의 모습 외에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어 대단해 보이고 힘껏 응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재광: 솔직히 나나 아이가 달라진 점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내인 엄마에게
는 육아에 도움이 되리라고 믿고 있기에 활동에 대해 호의적으로 지원하고 격려해
주고 있다.
•이지현: 사교육에 대한 비중이 줄어들며, 책읽기와 놀이에 대한 접근방법이 달라
졌다. 그들의 교육놀이 문화가 신기하기도 하고,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Q4.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앞으로 ‘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시나요?

•김재광: 엄마와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접하게 해주고 책 읽는 것을 즐거워하게 해
줄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양길수: 아내의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곳이자 우리 은찬이에게는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교육의 장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이지현 : 최근 전문적인 교육단체들의 높은 사교육 비용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
에서, 이런 자발적이고,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은평 품앗이 육아’가 성공사례
가 되어 이슈가 되었으면 좋겠다.

Q5. 추가로 건의할 사항이나 하고 싶은 말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김재광: 특별한 건의 사항은 없다. 다만, 회원 모든 분들이 이 모임 속에서 바라
는 바대로 좋은 결과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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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 육아에 관련된, 아이를 지도하는 부분에 있어 성공사례 발표가 있으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3살 아이가 어떠한 방법으로 배변 훈련을 쉽게 성공할 수 있
었는지? ’ 같은…….
•양길수: 더 많이 성장하여 마을 곳곳에 생겨나길 바란다.

처음 아빠들의 인터뷰를 계획했을 때는 좌담회 형식으로 도란도란 앉아 간식도 나
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깥일로 매우 바쁜 아빠
들의 특성상 자리 마련이 쉽지 않아서 어떤 분은 전화로 어떤 분은 이메일로 인터뷰
를 요청 드렸다.
이 자리를 빌려, 인터뷰에 응해 준 아빠들에게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
다. 이렇게 바쁜 시대에 아내와 아이가 활동하는 모임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해 진
솔한 의견을 흔쾌히 풀어주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새삼 우리의 활동 및 성장
의 배경에는 이런 남편들의 지지와 응원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에필로그
품앗이 육아, 이 정도면 해 볼만 하지?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누군가 나처럼 ‘품앗이 육아’를 하고 싶지만 앞이
막막할 때, 어디서 조언을 구할 지조차 몰라 발을 동동 구른다면 내 글이 한줄기 빛
이 되었으면 하는 의미에서였다. 내 경험으로써 조금이라도 이 길이 어떤 길이고 어
디쯤 가면 될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하지만 도리어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나온 길을 정리해보면서 내가 얻은 것들이 더 많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짧지만 굵은’ 역사를 돌이켜보는 작업은 뜻밖에도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명쾌하게 제시해주었다. 어찌 보면 나는 이글을 통해 우리 ‘품앗이 육아’의 정
체성을 다시 재정비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 글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나이
며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라는 생각이 든다.
마을공동체 사례집 원고를 작성한다는 명분으로 회원들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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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까지는 몰랐던, 회원들 각자가 마음에 숨겨왔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내가 리더로서 간과했던 것들은 무엇
이며 시행착오는 무엇인지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은평 품앗이 육아

한 때는 ‘기존의 공동육아와는 또 다른 우리의 활동을 도대체 어떻게 규정해야 할
까, 정말 뜻있는 사람끼리 목돈을 출자해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라도 개원해야 할
까’ 등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었다. 각자의 상황에 맞춰
나눌 수 있는 만큼 서로 나누면서 서로의 아이들을 함께 사랑으로 즐겁게 같이 키워
가는 것이 바로 이 ‘품앗이 육아’의 매력이고 ‘품앗이 육아’만의 독보적인 정체성이
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가 앞으로도 ‘엄마’라는 이름의 타이틀로 휘청거리는 엄마
들의 손을 잡고 힘을 모아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인지를
알려줄 수 있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 또 그 속에서 엄마들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 자
신을 잃지 않고 다시 세우는 일이 가능했으면 한다. 아니, 우리는 이미 그 모든 일들
을 조금씩 이뤄내고 있다.
나는 감히 단언한다. 이 차가운 도시에서 우리 아이를 따뜻한 사랑으로 키울 방
법 중 하나가 바로 이 ‘품앗이 육아’라고. 그러므로 엄마라는 이름 아래 넉넉한 마음
만 준비됐다면 누구든 쉽게 이 ‘품앗이 육아’를 할 수 있다고. 이제 우리는 우리가 경
험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이 ‘품앗이 육아’의 노하우를 전국적으로 전파하여 막중한
육아스트레스로 힘겨워 하고 있는 엄마들과 아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의 뒤를 이어 현재 회장 자리를 맡고 있는 승연맘 현주씨의 우리
마을공동체 이야기를 담은 자작시 ‘우리는 여기서 함께 산다’를 소개하고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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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서 함께 산다

여기는
혼자하기에는 길고 외로운 육아를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든든한 동지들을 만드는 곳
형제 없는 아이에게 친구들을 만들어 준 소중한 곳
여기는
‘함께’라는 것을 아이들도 엄마들도 배우는 곳
내 아이가 아닌 우리들의 아이,
서로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또 다른 가족이 생긴 곳
여기는
나에게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그들의 아이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곳
여기는
육아는 나의 소신으로 감당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누고 소통해야 한다는 걸 알게 해준 곳
여기는
지금보다 서로 더 의지하고 나누고 싶은 곳
만나면 헤어지기 싫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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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여기는
엄마의 꿈과 열정이 해님달님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놀이터
덩달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아이들도 신이 나는 보물섬 같은 곳

           은평 품앗이 육아

여기는
책을 통해, 자라는 아이 마음의 키에 눈높이를 맞추는 배움터
아이들과 엄마들이 맘껏 어우러져 즐거운 곳
우리는 여기서 함께 산다.

83
ⅱ나
의
동 지원 기
네잡 정
서울시 용산구 《남산골 해방촌》

글쓴이 | 이한솔

어느덧 남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지도 15년이 넘었다는 후암동 주민. 보성여자중학교로 배정 받
고는 처음 용산2가동에 발을 들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갈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곳, 가깝고
도 먼 옆 동네 ‘해방촌.’ 하지만 2012년 초부터 함께 만드는 동네잡지 《남산골 해방촌》 덕분에 최
근엔 오히려 후암동보다 해방촌이 더 우리 동네처럼 느껴진다고. 현재는 ‘모두를위한극장 공정
영화협동조합’에서 어떻게 영화산업 속 부조리를 들어내고, 관객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 중이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쫓기듯 지내는 바보이기도. roodbeam@gmail.
com
글소개

《남산골 해방촌》
2012년 5월에 창간하여 2013년 10월 현재 5호까지 발행한 용산2가동의 동네잡지.
단지 이웃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고, 마을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목적으로 삼삼오오 모인
자발적인 단체다. 1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해방촌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임을
거쳐 갔거나 함께 하고 있다. 현재까지 잡지는 지원 및 후원으로 발간하고 있으며 무가지다.
동네 버스정류장, 카페, 슈퍼 등에 비치하니 해방촌 어딘가에서 만나 보시길. 이들이 잡지를
낼 때면 개최하는 발간 파티를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 최근에는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을
따로 진행하여 동네의 역사도 담아보겠다는 포부를 비쳤다. 늘 그래왔지만,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궁금한 《남산골 해방촌》이다. http://www.facebook.com/hbcproject

86
서울시 용산구

차례

           《남산골 해방촌》

1. 출발
해방촌 사람을 찾습니다
왜 왔니? 친구를 만나러 왔단다

2. 창간
첫 취재: 동네에서 헤매기
당신이 《남산골 해방촌》이라 불러줄 때 우리는 잡지가 되었다
잡지는 무슨 돈으로 나오나요?
드디어 창간호를 손에 들다

3. 성장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다
잃어버린 해방촌의 역사를 찾아서
밖에서 본 우리 동네: 외부기고 싣기
잡지는 언제 나오나요? 애독자 발견!

4. 고민
《남산골 해방촌》 2기 대 모집!
경로를 재탐색 합니다
광고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더 가까이 다가가다

5. 지속
더욱 다채로워진 동네잡지
발간파티를 마을잔치로
자립을 꿈꾸며
《남산골 해방촌》을 넘어서

* 이 글에 실린 기사, 회의록 외 자료는 부분 발췌 했습니다.
* 발췌 자료는 되도록 손질 없이 있는 그대로 싣고자 했습니다.
* 현장감과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기사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글쓴이가 부르는 호칭으로 씁니다.
다만 처음 적을 때에 한하여 괄호 안에 실명을 넣습니다.
* 잡지 기사의 표기는 다음과 같이 합니다. 〈제목〉(글쓴이, 호 수)
* 별도의 제공자 또는 촬영자 표기가 따로 되지 않은 사진들은 글쓴이가 직접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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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리*, 너 이런 데에 관심 많지? 예전에 동네잡지
만들고 싶다고 했잖아. 연락 해봐!”
나의 동네잡지 원정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평소 살고 있는 곳에 관심이 많아 인터넷 검색창에 ‘후암동’이라는 이름을 간혹
넣어봅니다. 근처 청년들을 만나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만
들어볼까 생각도 했죠.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활동을 하며 이러한 생각은 점점 더 강
해져 옆 동네 해방촌**에 살고 있는 십년지기 친구에게 마을 신문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종종 건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가 위의 문자와 함께 사진을 한 장
보내줬어요. 누군가 동네잡지를 함께 만들 사람을 찾고 있더라고 말이죠. 사진 속
포스터에는 뾰족한 ‘N서울타워’가 서있는 남산 그림 아래로 누구든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이메일을 보내달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망설일 것도 없이 간단한 지
원서를 적어 보냈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그저 동네 사람을 만나고 흩어져 가는 흔적들을 담아가고
싶을 뿐이었죠. 이 문자 하나가 지난 1년 반 정도의 제 생활을 바꿔 놓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변화가 있었느냐고요? 마을 잡지를 만들게 된 제게 무
슨 일이 생겼을까요? 사실 저도 궁금합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 오늘 동네
잡지 모임 가”, “동네잡지 만들러 가야 해”라고 말하던 습관 덕분인지 ‘동네잡지’는
붙여 쓰고 ‘마을 잡지’는 띄어 쓰고 있으니까요. 어느덧 제게 ‘동네잡지’란 고유명사
로 자리 잡았나봅니다.
제 생활에 일정한 비중을 차지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는 《남산골 해방촌》. 이
녀석이 제게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앞으로 또 무슨 일들을 해나가게 될지 저도
알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긴 글을 써볼까 합니다.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
고 이 소중한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거든요. 어때요, 들어보실래요?
*  한도리: 고등학교 친구들이 붙여주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글쓴이의 별명.
**  해방촌: 용산구 용산동1가·용산동2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1945년 8·15 해방과 더불어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과 월남 동포들이 이 부근 산기슭에 임시 거주처를 마련하고 살게 된 데서 마을 이름이 유
래되었다. 처음에는 해방 후에 생긴 마을이라 하여 해방동이라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해방촌이라 불렀
다. 1979년도 용산제1지구 재개발지구로 선정되어 주택건립사업을 하였다. → 용산동2가 [법정동] (서울
지명사전, 2009.2.13,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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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1. 출발
서울 속 ‘촌’(村)이라니 정겹고도 낯선 이름의 해방촌.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
드는 잡지에 어떤 내용이 실리고 있는지 궁금하실 듯합니다. 2013년 추석 즈음, 우
리의 《남산골 해방촌》 5호 발행을 위해 막바지 편집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9월을

           《남산골 해방촌》

얼마 남기지 않고 드디어 성대한 발간 파티와 함께 5호가 나왔죠. 동네잡지가 어떻
게 만들어지고 배포되는지,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한데 모여 이러한 일을 하고 있
는 것인지 이제부터 이야기를 하나 둘 들려드릴게요. 우선 그간 《남산골 해방촌》이
걸어온 길을 정리해 볼까요?

《남산골 해방촌》, 창간호에서 5호까지
구분

1호

2호

3호

4호

5호

표제

EARLY
SUMMER

뜨거운 여름

겨울의 한창

여기서 → 저기

찾아온 가을: 변화
에 대처하는 방법

발간일

2012.05.27

2012.08.24

2012.12.21

2013.05.15

2013.09.28

쪽수

20쪽

20쪽

40쪽

40쪽

40쪽

참여 인원

12명

12명

11명

10명

9명

후원

해안건축

서울연구원
해안건축

서울연구원
해안건축

용산구

용산구
서울연구원

특이 사항

- 객원기자
- 영문기사

아카이브
동시진행

《남산골 해방촌》 모임은 2012년 3월에 시작하여 같은 해 5월, 창간호를 발행했
습니다. 이후 계간지에 가까우나 비정기적으로 잡지를 펴내고 있죠. 표제의 변천을
보면 알 수 있듯 1호에서 3호까지는 기사들을 특정한 주제로 묶지 않았습니다. 그
러나 창간으로부터 한 해가 지난 2013년 5월에 발행했던 4호는 ‘여기서 → 저기’라
는 제목으로 여러 글을 엮어냈습니다. 또한 5호는 ‘찾아온 가을’이라는 제호로 계간
지임을 알림과 동시에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을 주제로 기사를 묶어내기도 했습니다.
한편 각 호마다 참여자 개개인에는 변화가 있었으나 최종 참가인원은 비슷했습
니다. 쪽수의 경우, 앞의 두 권은 최종작업물이 20쪽이었던 데에 비해 3호부터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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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이 이전의 두 배로 늘어난 40쪽으로 마감하였습니다. 특히 3호에는 내·외국인
객원기자가 각각 한 명씩 기사를 작성했고, 이후에도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은 채
자유롭게 기고를 받고 있습니다.
재원의 경우,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의 인쇄 협찬으로 1호, 2호, 3호를 발행하
였습니다. 4호는 용산구의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여하여 잡지 발간 예산을 마련했
죠. 또한 2012년 하반기에는 서울연구원의 지원이 모임을 지속하는 데에 도움을 주
었고, 2013년 10월 현재도 서울연구원의 후원을 받아 해방촌을 색다른 방법으로 연
구하는 작은 모임인 동네잡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잡지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분명히 계실 테고, 혹시나 긴 글이 지루하게 느껴
질 독자를 위하여 이후 기사 본문을 군데군데에 포진시킬 것입니다. 그전에 우선 지
금까지 발행된 《남산골 해방촌》 1호에서 5호까지 각 호에 실린 기사들의 제목을 통
해 간략하게 내용을 정리해 볼까요? 책의 표제와 목차는 전체를 관망하는 지도와도
같다고 하니 말입니다.

《남산골 해방촌》 목차 정리

호수

기사 제목

1호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 종점 없는 종점약국 / 숨은 명당 한 컷 / 쫀드기 행방불명 / 정원
가꾸는 사람들 / 안녕하세요 젠

2호

《남산골 해방촌》 인터뷰 ‘당’하다 / 해방촌, 색(色)을 입다 / 어느 갠 날 / 3세대 토박이,
해방촌의 변화를 말하다 / 어느 벽화 이야기 / 언저리 뉴스

3호

늦었습니다 / 만나고 만나고 만나다 /사연 있는 지도를 기획하다 / 까페 해방촌, 빈가게
의 어느 저녁 / All Sorrows are less with bread(빵만 있으면 어지간한 슬픔은 견딜
수 있다) / 골목길 / 해방촌성당을 찾아서 / 백수? / 한마디

4호

에디터의 말 / 모든 뚜벅이를 위한 골목길 가이드 / 10년쯤 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꼼
수 / 상이와 메콩의 가구 리폼 도전기 / 해방촌 예술마을, 그 뒷이야기 / Spring is
coming(봄이 오고 있어요*) / 갤러리 에이큐브 / 남산갈래? / 초대합니다

5호

편집자의 말 / 단언컨대 그곳은 최고의 피서지! / 해방촌을 담다: 응답하라 1960 / 맹탐
정 디스패치 / 동네 한바퀴: 신흥시장 걷기 / 슈리슈리, 그곳은 어디? / 《한겨레21》 〈우
리가 몰랐던 동네〉 취재 후기: 여전히 궁금한 동네 / 해방촌 사운드트랙

*

*   잡지에는 번역된 기사 제목이 실리지 않았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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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골 해방촌》이 잡지에 실릴 기사의 소재 혹은 주제를 결정하는 기준은 단순
합니다. 각자 하고 싶었던 말들, 궁금했던 소재를 다루는 것이지요. 유일한 제약이
라면 반드시 해방촌과 관련한 내용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종점 없는 종점약국〉
(1호), 〈어느 벽화 이야기〉(2호), 〈사연 있는 지도를 기획하다〉(3호), 〈갤러리 에이큐
브〉(4호), 〈슈리슈리, 그곳은 어디?〉(5호)와 같은 기사들은 동네 에서 일어나고 있는

           《남산골 해방촌》

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장소 등 마을과 관련한 내용들입니다. 특히 최신호에 실린
〈맹탐정 디스패치〉는 해방촌에 살거나 자주 출몰한다고 알려진 유명인들을 찾아 헤
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요. 낯익은 해방촌의 풍경과 흥미로운 주제가 어우러져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한편 〈숨은 명당 한 컷〉(1호), 〈어느 갠 날〉
(2호), 〈골목길〉(3호) 등은 해방촌 곳곳의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동네를 설명합니다.
창간호를 여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를 비롯하여 〈《남산골 해방촌》 인터뷰 ‘당’
하다〉(2호), 〈늦었습니다〉(3호) 일부, 〈만나고 만나고 만나다〉(3호) 등은 잡지의 발
행목적과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4호 이후로는 잡지의 성격 혹은 잡지 그 자체에
대한 기사는 없습니다. 관심이나 돌아보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일정 정
도 이상의 잡지에 대한 공동 개념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덕분이라 볼 수 있겠습니
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3호에는 〈All Sorrows are less with bread〉(빵만 있으면
어지간한 슬픔은 견딜 수 있다)와 〈해방촌성당을 찾아서〉라는 두 편의 내외국인 객
원 기자의 기사들이 실렸습니다.
4호는 ‘여기’에서 ‘저기’로의 이행이라는 주제로 전체를 관통하는 맥락을 잡고
자 했습니다. 〈모든 뚜벅이를 위한 골목길 가이드〉와 마을버스 잡아타기의 노하우
를 다룬 기사인 〈10년쯤 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꼼수〉는 해방촌의 어딘가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공간적 이동을 다뤘습니다. 〈상이와 메콩의 가구 리폼 도전기〉와
〈Spring is coming〉(봄이 오고 있어요)는 각각 사물과 계절의 변화를 이야기했죠.
〈남산갈래?〉는 에세이의 형식을 빌려 해방촌 언덕에서의 기억들을 통해 시간의 흐
름을 써냈습니다. 한편 〈해방촌 예술마을, 그 뒷이야기〉는 〈해방촌, 색(色)을 입다〉
(2호)와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2012년 5월에 ‘해방촌 예술마을 조성 사업’에 관한 신
문기사를 읽고 동네주민으로서의 기대를 쓴 것이 앞선 기사이며, 사업 완료 후 실제
로 나타난 변화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 한 호를 건너 4호에 실렸습니다.
해방촌이 일명 예술마을로 꾸며지기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다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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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 2013년 9월 말에 나온 5호에는 편집자의 말을 포함하여 총 8개의 기
사가 담겨 있습니다. 자신만의 명소, 잊혀 가는 역사 속 해방촌 발견하기, 숨은 명
사 찾기, 동네 한 바퀴, 창간호 때부터 벼려왔던 사원 취재기, 동네 관찰기, 해방촌
사운드트랙 등 다채로운 내용으로 잡지에 재미를 더했습니다. 펼쳐보면 어느덧 《남
산골 해방촌》이 한층 성장하고 정비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각 기사의 분
량이 늘어 심층취재가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주제 중 절반 정도는 각자가 진행하고
있는 일과 연관이 되어 있어 더 상세한 접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해 하고도 반년을 더 자라나는 동안, 해방촌의 유일한 동네잡지는 이러한 내
용들을 담아왔습니다. 매번 잡지가 인쇄되어 나오면 해방촌의 주요 버스정류장 네
곳과 음식점, 카페, 슈퍼 등에 직접 배포합니다.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지 늘 궁금해 하
면서 말이죠. 광고 한 편 싣지 않은
채, 구성원들의 취미에 약간의 지향
을 더해 만들고 있다는 《남산골 해
방촌》, 지금부터 본격적인 이야기
가 시작됩니다.

▶해방촌으로 들어가는 길목,
우리도 그렇게 시작 했답니다

해방촌 사람을 찾습니다

그들을 처음 만난 건 2012년 초봄, 3월의 끝자락이었습니다. 해방촌에서 잡지를 만
들겠다는 생각만으로 동네 카페에서 십 여 명이 모였답니다. 대자보를 보고 무작정
연락을 했던 처음엔 반신반의 했습니다. 바쁘게 오가는 도시민들이 과연 글을 눈여
겨보기나 했을까 싶었고 마을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서울에서 동네를 이야
기한다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었습니다. 평소 살아가는 곳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낯선 이와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저조차도 모임에
나가기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동네 카페를 찾아
갔을 때, 기대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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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기뻤답니다. 그 때의 장면이 창간호에 실려 있는데, 잠시 읽어 보시겠어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배영욱, 1호)

2012.03.29

           《남산골 해방촌》

해방촌 동네잡지 만들기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전단지. 정류장에서 보신
적 있으신가요?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뜯어온 사람들
이 만났습니다.
2012.03.30 ~ 04.14
그렇게 2주간의 시간을 두고 해방촌 주민과 해방촌에 관심 있는 사람 8명이
모였습니다. 후암동이 두텁바위의 한자 이름인 걸 알려준, 보성여고 나온 여
자 한솔이. 해방촌 이주 2개월 만에 해방촌의 매력에 빠져버린, 요가 하는 시
원.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에너지도 않은 디자이너 학생 해지. 6년간 해방촌 관
찰만 했다는 도시 설계하는 학생 영욱.
2012.03.30 ~ 05.19
첫 번째 만남 그리고 이어진 13번의 만남.
어색하게, 하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해방촌과의 인연, 나만 알고 있는
동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갔습니다.

▲ 해방촌 동네잡지 모임의 첫 만남(제공: 배영욱)

15년 정도를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잡지 만들기를 쉽게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제
가 살고 있는 후암동에는 젊은이를 마주치는 일보다는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모습을 뵙기가 더 잦았거든요. 그나마도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때문인지 간혹 이야
기를 꺼내보아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동네로는 초등학교 졸업을
고작 6개월 정도 남긴 시점에 전학 왔고, 중·고등학교는 옆 동네 해방촌에서 다닌
지라 마음을 나눌 친구도 많지 않았답니다. 그나마 십 수 년을 다닌 성당의 청년 공
동체는 존재가 미미한 정도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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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동네활동에 관심이 많았느냐고요? 잠시 뒤에 더 자세히 말씀 드리겠
지만 제가 잡지 모임에 나가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동네 친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을이라는 화두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조금 더
큰 목표를 위해서였어요. 졸업 후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
을 보고,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돈’이라는 것을 구체적으
로 의식하게 된 것이지요.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픈 일을 하면서 즐겁게 더불
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마을’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어
요. 동네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가고 그것으로 경제적 소통을 하다보
면, 이웃과 더 친밀해지고 돈 너머의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그 출발은 서로의 소식을 나누는 신문과 같은 형태가 되길 바랐습니다. 이것
이 제가 마을 공동체, 특히 소식지 만들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입니다. 물론 마
을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짧게나마 경험한 지금에는 이 꿈을 이루기가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제가 살고 있는 후암동에서는 시작하기 어려웠던 저의 동네잡지 만들기
를 옆 마을에서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이사며 진학
으로 하나 둘 떠났고, 해방촌에서 새로이 누군가를 사귈 방법은 없어보였기 때문이
죠. 이제는 말을 걸만한 사람조차 몇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가봅니다. 혹은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요.
평소 동네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활동을 만들고자 안달 나 있었던 제게 친구의 반가
운 문자가 도착했으니 말입니다. 사진 속 포스터에 적힌 연락처로 보냈던 메일을 이
제와 다시 읽어보면 웃음이 납니다.

동네잡지 모임 지원 메일 (이한솔)

제목 : 안녕하세요 해방촌 주민님
보낸 사람 : Doris Han Lee 12.03.30 14:47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해방촌 주민님!
저는 한도리라고 합니다.
후암동에 살고 있지만, 보성여중고를 다녔고 친구들도 그 쪽에 많이 사는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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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분에 준 해방촌 거주민.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잖아도 동네에 관심이 많아서……. 동네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다며 친구
와 논의 하던 중이었는데!
오늘 친구가 깜짝 놀라며 포스터를 찍어서 보내왔더라고요.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해방촌 소식지 만들기!

           《남산골 해방촌》

무작정 자기소개를 하려니 좀 막연한데요.
일단 같이 만들고 싶은 맘 하나는 확실해요! 꺄!
어서 뵙고 싶네요.

지금은 어떨까요? 종종 초심을 잃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하게 됩니다. 가끔은 잡
지 모임이 제 주말을 빼앗아가는 의무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아침잠을 서둘러
깨어야 하는 경우에는 말이죠. 하지만 막상 동네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의 활동과 서
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아, 그래서 내가 잡지 만들기를 계속하고 있었구
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벗어나기는 이른가 봐요.

왜 왔니? 친구를 만나러 왔단다.

첫 만남으로부터 두 달여 만에 창간호를 손에 들었습니다. 해방촌 이곳저곳에 배포
하기를 마친 다음에는 주위 친구, 가족, 지인들에게도 한 부씩 수줍게 내밀고 반응
을 기다렸죠. 여러 이야기가 있었는데 “신기하다”, “뭐 이런 걸 다 하고 있나”, “그
동네에는 재밌는 게 많은가”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잡지의 주인공인 해방촌에
관한 질문도 있었지만 동네잡지를 만드는 작업 자체에 대해 묻는 사람이 더 많았답
니다. 수많은 궁금증들에 대한 답변을 〈《남산골 해방촌》 인터뷰 ‘당’하다〉라는 제목
으로 2호에서 풀어냈습니다.
질문들 중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했던 것은 “도대체 이 모임을 왜 만들었고 무엇
을 위하여 지속하고자 하는가?”였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궁금증을 가졌던 사람들
위해서, 그보다 스스로 우리 잡지의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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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을 모았습니다. 여러 가지 의문을 던졌던 이들 중 한 사람의 질문에 대하여 답
하는 형식으로 말이죠. 처음에는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었다는 생각에 마냥 기분이
좋았는데, 잠시 뒤에는 ‘우리가 뭔가 의도나 계획이 애초에 있었던가?’ ‘우리는 왜
모였을까?’ 등 각자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남산골 해방촌》 인터뷰 ‘당’하다〉 (박지영 외 5인, 2호)

지난 5월 《남산골 해방촌》 1호가 발간된 후 여기저기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
다. 그러던 중 의외의 인물에게 잡지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받게 되었다.

질문 1: 해방촌에서 이 잡지를 만드는 친구들은 왜 이 작업을 하는 것인지? 또
이 잡지가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는 것인지? 즉 이 잡지의 목적은 무엇인지?
영욱: 참여하는 각자를 위해서? 아마도 여기 참여하는 친구들 중 누구도 “해
방촌 공동체를 위하여”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진 않을 것 같다. 시작은 소박
했다. 동네 친구들이 있고 이 친구들과 뭔가를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솔: 일단 잡지를 통해 동네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과정
을 겪는다는 것이 주요한 목적인 듯! 같이 작업하는 우리끼리도 친구가 되어
가겠지만, 점점 해방촌이라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과 마주할 기회가 많아지지
않을까나?
지은: 동네 친구도 만들고 글 쓰는 것에 두려움을 없애고자. (몸담을 광고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였음) 잡지의 목적은 동네 커뮤니티 활성화랄까?
해지: 먼저, 시작은 꿈틀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서울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정착을 마음먹은 사랑스러운 이 동네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고 싶었다. 게다가 나에게 잡지와 출판은 너무나 매력적인 주제이다!
시원: 늘 하던 일에서 조금은 색다른 일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이 지역에 개성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이 작업을 통해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는 네트워크의 통로가 되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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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해방촌’ 그리고 ‘잡지’라는 두 단어로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각자의 생각은 달
라도 마음은 비슷했습니다. 하고 있는 일이나 공부와 관련이 있어서, 자신의 재능
을 발휘하여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혹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온 경우도 있었습
니다. 저는 앞서 언급했듯 평소 마을 공동체에 관심이 많았고, 마침 지속 가능한 활
동을 모색하던 중이라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남산골 해방촌》

것처럼 보여도 모두가 공감하고 지향하는 목표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바로 ‘동네 친
구’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위 기사에 이러한 점들이 잘 드러나 있죠.
‘친구’와 ‘재미’를 찾는 집단이라니, 낯설지 않으신가요? 언뜻 특이한 청년들이다
싶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여러분의 동네에서도 이런 활동들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
니다. 아시다시피 기존에 공공기관 또는 시민단체의 주관으로 이루어져왔던 마을
활동이 이제는 동네사람들이 직접 만들고 주도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경
제적·제도적 측면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덕분이기도 합니다. 물
론 그러한 활동들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복지와 노동시간 감촉, 자유롭
게 이용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의 확대 등 훨씬 더 많은 변화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경
제적 효용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와 풍토도 차츰 근본적으로 바뀌어 가
야 할 테고요.
하지만 동네에서의 다양한 활동이 늘어난 궁극적인 이유는 마을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특히 서울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직장,
교육 여건, 집값 등의 요인에 따라 거주지역이 인위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에 누가 살고 있는지, 동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둘
여유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각자의 삶만 살아가던 이들이 다시 이웃과
친구를 찾으려 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이렇게 출발했습니다. 해방촌에서 태어나 자란 학생부터 홀로 서
울에서 자리 잡기가 쓸쓸해 사람을 찾아온 직장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모였습니다.
누군가 《남산골 해방촌》에 참여하여 무엇을 얻었느냐 묻는다면 각자 다른 대답을
하겠지만 동네 친구가 생겼다는 말만은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마을 돌아보기’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을 동
시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지요. 같이 밥을 먹고, 안부를 물으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는 동네

97
의 경험을 말입니다.

2. 창간
첫 취재: 동네에서 헤매기

이렇게 나름대로의 목적과 다짐으로 시작한 동네잡지 만들기는 쉽고도 어려웠습니
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일을 도모하다보니 재미도 있었고, 친구를 만들고자
했던 덕분에 모임도 자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 및 집필과 발간까지 전
체 과정을 경험해본 사람이 없었을 뿐더러, 생각보다 우리는 동네에 대해 제대로 알
고 있는 것이 많지 않더군요.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기사를 써내는 것이었습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친구도 있었지만 대체로 누군가에게 보일 글을 작성하는 것
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농담처럼 말하던 ‘창작의 고통’이 그저 웃어넘길
일은 아니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첫 취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
습니다.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잡지 만들기를 시작한지 1년
반이 넘은 지금에는 과정 중 가장 순조로운 부분이 기사 작성이라는 농담을 주고받
을 정도입니다.
처음이기에 잡지의 틀부터 고민해야 했습니다. 어떤 주제로 첫 호를 꾸밀지, 기
사는 몇 개를 실을지 수차례 다양한 의견이 오갔습니다. 동네잡지이다 보니 새 소식
을 중심으로 실어야 할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인터뷰로 담을까, 지나
다보면 길에 고양이가 많던데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해방촌을 다룬 문화예술 콘텐츠
들을 다뤄볼까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던 끝에 우선은 각자가 궁금한 내
용, 소개하고 싶은 소재를 선택하여 취재하기로 했죠. 이러한 방침은 5호를 막 발간
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진정 하
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에 완성도가 더 높아지고, 우리의 활동을 지속해나갈 수 있
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98
서울시 용산구

회의록 (2012년 3월 30일)

*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나?
- 소통의 방식은 가볍게, 자주 찌라시(전단)의 형태로
- 지속성에 대한 고민의 일환으로 정기적인 발행일을 정하는 것이 필요

           《남산골 해방촌》

- 잡지는 양보다는 재미를 추구했으면 함
-  호 잡지가 외부인이 만든 느낌이 많이 나기 때문에 2호 잡지는 마을의 이
1
야기, 잡지를 통해서 마을사람들을 만나는, 아! 우리마을에 이런 일이 있구
나, 주민도 잘 모르는 해방촌 이야기*
- 해방촌스러운 것, 해방촌의 지금을 기록하고 담음

이제는 종점이 아닌 종점약국, 어딘가에 숨어있을 전망 좋은 명당자리, 동네에서
보낸 유년시절 이야기, 해방촌에 살고 있는 어느 외국인 가수의 사연, 모르는 사이
생겨난 작은 공방 등. 우리의 창간호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담게 되었습니다.
주로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던 만큼,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동네 사람
들도 자연스레 마주하게 되었죠. 그 중에서도 제가 택한 첫 주제는 해방촌 곳곳에서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계신 어르신들의 사연이었습니다. 평소 도시농업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회색 공간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푸름이 돋보이는 봄이었기 때문이
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시 제 첫 기사를 소개할게요.

〈해방촌,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이한솔/김민오, 1호)

감나무가 있는 마당(이영숙, 70세)
4월 19일, 신흥로에는 갖가지 꽃과 나무가 서로 어우러져 완연한 봄을 알리고
있었다. 곳곳의 모퉁이와 화분 등 작은 공간들에도 생명이 가득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6·25 전쟁 이후 심었다는 감나무가 지키는 한 마당에는 유난히 다

*   여기서 ‘1호 잡지’란 발행인 영욱 언니(배영욱)가 2011년 여름, 서울문화포럼에 참여해 만든 《다른동
네 해방촌》을 말합니다. 또한 ‘2호 잡지’는 《남산골 해방촌》 창간호를 의미합니다. 

99
채로운 색감을 자랑하는 꽃들이 피어나 눈길을 끌었다. 자그마한 마당 정원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아름다운 화단의 주인공이 문을 열고 나섰다. 꽃을 좋아해
화분을 하나하나 늘려 왔다는 이영숙 할머니.
방음벽 옆집(비밀, 72세)
남산 3호 터널 옆 방음벽에 주욱 늘어선 화분들을 본 기억이 있는지? 아마도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궁금해 했을 화분의 주인공을 드디
어 만났다. (중략) 할머니는 특히 야생화를 좋아해 야생화 전집까지 사서 공부
를 했다. 그 덕분에 화분들은 제각각 예쁜 이름이 적힌 팻말도 얻었다. 봄맞이
꽃, 아이리스, 구절초, 작약, 인동, 병꽃나무……. 이렇게 하나하나 이름을 적
어둔 연유를 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꽃을 많이 보고 가는데 이름도 알면서 보면 더 좋잖아.”
간혹 근처에 사는 아가씨와 꽃을 서로 주고받기도 하고, 분양을 원하는 사람
들에게는 그냥 나누어주기도 한다고. 작고 고운 생명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
웃을 아끼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가 보다.
꽃이 망울을 틔울 즈음에 다시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며 더 풍성해질
골목 풍경을 상상했다. 야생화 할머니의 정성과 오가는 이웃들의 관심으로 탐
스러워질 꽃들을 한 송이, 두 송이 기대해 본다.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작업은 생각보다 더 흥미로웠습니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부분이었고, 나름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이 점은 예상했던 것이지만 생각지 못했던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소일거리로만 여
겼던 정원 가꾸기가 누군가에겐 행복한 취미였고, 이웃을 위한 배려였으며 평생의
성취였습니다. 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면 화분 하나하나의 의미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겠지요. 《남산골 해방촌》을 만들며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무엇
하나도 허투루 넘길 것이 없구나’,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했던가!’ 하는 것들
이죠. 기사를 쓰면서 글도, 마음도 다듬어 간답니다.

100
서울시 용산구

당신이 《남산골 해방촌》이라 불러줄 때 우리는 잡지가 되었다

기사가 하나 둘 탄생하고 창작의 고통이 끝나갈 무렵, 우리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잡지 모임을 주도했던 발행인 영욱 언니(배영욱)가 건축을
전공한 덕분에 편집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었죠. 하지만 막상 기사를 배

           《남산골 해방촌》

치하고 인쇄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도
와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바로 그 때 나타난 친구가 여전히 큰 힘을 보태고 있는 해
지(정해지)입니다. 창간호부터 5호까지 우리 잡지의 디자이너와 편집장이라는 막중
한 임무들을 겸하고 있죠.
또 다른 고민은 잡지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지니까요. 모두가 창작열에 휩싸였고 재기 넘치
는 제안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해방촌 블루스’, ‘해방촌 돋보기’, ‘어큐파
이(occupy) 해방촌’, ‘해방촌 복덕방’, ‘무소식이 희소식’ 등 아래 기사에 나와 있는
것들 외에도 많은 후보가 있었어
요. 모두가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
는 제목들이었죠. 하지만 동네잡지
이니만큼 최종 결정은 해방촌 주민
들께 부탁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버스정류장 등에
대자보를 붙이고 이틀을 기다렸습
▲  방촌 곳곳에서 화분에 심긴 나무, 꽃, 채소 그리고 장독대를
해

니다. 결과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3곳, 48시간, 477명〉 (배영욱, 1호)

2012. 04. 17
우리 잡지 이름? 주민투표로 결정하자!
잡지 이름 후보들: ‘해방촌 발견’, ‘해방촌 사람들’, ‘월간 해방촌’, ‘안녕하세요
해방촌’, ‘남산골 해방촌’, ‘우리동네 해방촌’, ‘다른 동네 해방촌’, ‘해방촌 동네

101
한바퀴’, ‘무소식이 희소식’
2012. 04. 26
이틀 만에 촘촘히 붙어 있는 스티커를 세면서 다시 흥분되기 시작했습니다.
개표 30분 만에 결산 마감! 와, 총 투표수 447! 감격했습니다. ‘남산골 해방촌’
160표(33.5퍼센트).
이렇게 우리들의 잡지는 《남산골 해방촌》이 되었습니다. 이 작은 이벤트가 별
일 없이 살아가는 477분의 일상에 소소한 재미가 되었기를 바라며, 주민 여러
분들이 이름을 정해 주신 잡지 《남산
골 해방촌》도 발간이 기다려지는 희
소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지 이름 투표용 포스터와 주민들의 응답 (제공: 배영욱)
잡

그렇게 드디어 잡지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몇 번이나 소리 내어 말했던 그 이
름, 《남산골 해방촌》. 해방촌 주민 500여 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총 33.5퍼센트
에 해당하는 160명이 ‘남산골 해방촌’을 선택했답니다. 해방촌 사람들이 무명 잡지
의 이름을 붙여준 순간, 《남산골 해방촌》은 비로소 동네잡지로서의 출발선에 설 수
있었죠. 이틀 동안 확인한 뜨거운 관심은 첫 호 발간을 앞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
습니다. 잡지를 기다리는 분들도 많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잡지는 무슨 돈으로 나오나요?

이제 잡지 기사는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이름도 정해졌죠. 하지만 발간을 위해서는
넘어야할 큰 산이 아직 하나 남아있었으니, 바로 인쇄비 문제였습니다. 주민들이
오며가며 편하게 읽는 잡지가 되고 싶었고, 특히 해방촌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
기 때문에 온라인 발간보다는 인쇄물로 소식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최근 많은 수의

102
서울시 용산구

웹진이 발간되고 있지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민들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손닿는 곳에서
쉽게 잡지를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취재, 편집, 배포 등 다른 과정은 우리의 힘을 모아 진행할 수 있었지만 잡지를
한부씩 손으로 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사실 잡지 창간호부터 참여했던 모

           《남산골 해방촌》

기 씨(고헌)는 회의 중에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릴지라도 수작업으로 잡지를 펴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의견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와 재미를 떠나 현실적
으로 어려움이 많으리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잡지가 인쇄물로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다해보기로 했습니다. 두드리면 열리리라는 말은 두드려
야만 열린다는 말이기도 하겠죠. 발행인 영욱 언니는 무작정 서울시에 제안서를 만
들어 보내보고 각종 기업의 후원 프로그램, 연구 지원 사업, 아르코 등 문화예술 관
련 사업,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까지 바쁘게 《남산골 해방촌》을 알리고 다양한 활로
를 찾고자 했습니다. 얼마 전에 나눈 대화에서는 당시에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방법까지 연구하고 있었다는 소회도 했지요. 이곳저곳을 두드려 본 결과, 생각보다
빨리 잡지 인쇄비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5호를 발간한 2013년 9월 말, 지금까
지 잡지 발간 비용 문제로 큰 곤란을 겪은 적은 없고요.

회의록 (2012년 3월 30일)

*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나?
-  방촌답게 지역주민이 볼 수 있도록 아날로그적인 방식의 인쇄물로 	
해
제작 배포
-  지의 타깃을 마을 주민으로 명확히 한다면 간단, 명료, 쉽게, 	
잡
주민들 입맛에 맞게 제작
-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함
-  부분은 수작업을 통해서도 제작이 가능할 것. 예를 들면, 아이들이 	
일
직접 그린 그림을 표지로 사용
- 인쇄를 협찬 받을 수 있는 경로를 알아보겠음

103
이쯤 되면 아마 궁금해 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도대체 자금은 어떻게
구해서 잡지 출판을 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점 말입니다. 대체로 마을 소식지가 와해
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인쇄비 조달의 어려움입니다. 운이 좋게도 《남산골 해방촌》
은 비교적 평탄하게 운영되어 온 편이지만요. 1~3호의 인쇄는 영욱 언니가 적을 두
었던 회사인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지원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발행인 배영욱의 제안에 대한 ㈜해안건축의 답신 메일

제목 : 해방촌 동네잡지
보낸 사람 : 김 태만 13.05.18 17:56
배영욱씨,
열심히 살고 있군.
동네잡지 칼라인쇄 지원에 대해 이렇게 하도록 하겠네.
2012년 4회 발행된다는 계획에 의거,
2012년에만 지원
우선 최초 2회 지원, 그 이후 결과를 보고^^ 연내 총 4회까지 지원
사내출력소 이용.
잘 만드시고~
이용/비용처리 방법에 대해서는 이상명상무님께 문의하시게.

한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공모한 ‘2012년도 1학기 대학문화예술활동 지
원 사업’에 해당 학과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공모제안서를 냈습니다. 본래 해방촌에
서 동네잡지를 함께 만들 사람들을 모집하는 포스터가 붙게 된 출발점은 다름 아닌
영욱 언니의 과제 때문이었습니다. 도시설계를 전공하고 일을 하다 다시 공부를 시
작한 언니의 박사과정 첫 학기 과목이 커뮤니티 설계였습니다. 영욱 언니는 5년 넘
게 살아 온 해방촌을 대상지로 삼았고 잡지 만들기를 통해 활동을 시도하기로 했죠.
그렇기 때문에 초기 구성원 중 세 명이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학생이었습니다. 덕

104
서울시 용산구

분에 동아리 활동비를 지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동네 HBC_지역신문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30만 원을 지원받았고, 잡지 발행 및 창간파티에 유용하게 사
용했습니다.
2호가 발행될 즈음부터는 서울연구원에서도 후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작은 연
구, 좋은 서울’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지원금은 주로 모임 비용으로 이용했

           《남산골 해방촌》

습니다. 회의 진행비, 해방촌 주민들과 만남의 장이 되는 발간파티 준비비, 《남산골
해방촌》 참여자들 간의 관계를 다지기 위한 여행비 등으로 말이죠. 동네잡지를 만
드는 과정 자체가 해방촌에 대한 작은 연구이기도 하고, 동시에 마을에서 어떠한 모
임이 만들어지고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기에 의미 있는 지원이었다고
자화자찬 해봅니다. 물론 2013년 하반기에 같은 프로젝트에 공모하여 다시 한 번
지원을 받게 된 것을 보면, 우리의 작은 연구가 좋은 서울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
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작은 연구, 좋은 서울’ 연구모임 결과 발표회〉 웹진 기사

2012년 12월 17일(월) 오후 2시 우리 연구원 2층 대회의실에서, ‘작은 연구,
좋은 서울’ 연구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금년 5월 공모를 거쳐 선정된 11개 연구
모임 중 금년 말에 종료되는 7개 연구모임의 성과가 발표되었다. 이날 발표된
7개 연구모임은 아래와 같다.*
1) 서울특별시 특별사법경찰제의 실태분석과 개선방안(특별사법경찰 연구모임)
2) 남산골 해방촌 동네잡지 발간(남산골 해방촌 매거진 연구모임)
3) 동시대 주거문화로서의 한옥(몸-도시포럼)
4)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와 사회적 기업의 역할
    (서울지역 사회적기업 생태계 조성 연구모임)
5) 공동체적 시민학습 모임의 구축 및 활성화에 관한 연구
    (풀뿌리 2.0 업그레이드 연구모임)
6) 성년후견제도 이해와 성년후견인 양성
*   출처: 서울연구원 Webzine(http://news.si.re.kr/newshome/mtnmain.php?eda=sda=sid=17
stext=mtnkey=articleviewmkey=dsearchlistmkey2=17aid=1023) 

105
(장애인이 행복한 서울 만들기 연구모임)
7) 서울지역 시민사회 민간연구소 교류 및 협력방안 모색
    (민간연구소 협력 모색 연구모임)

최근 서울시를 비롯하여 여러 기관에서 마을 만들기와 관련한 지원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지요. 그러나 실제로 수혜 단체가 지원금을 운용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
습니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각각 지원이 필요한 영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육
이나 세미나를 중심으로 하는 단체의 경우에는 강사비 지원이 유용하겠지만 우리와
같은 잡지 모임에게는 크게 필요하지 않은 부분입니다. 오히려 기존 서울시 지원 체
제에서는 사용이 어려운 참여자 인건비라든지, 외부가 아닌 내부 회의비 지원이 절
실한 상황입니다. 잡지 참여자들이 대체로 생활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서비스
나 대의명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취미나 친목을 도모하려고 모였기 때문입니다. 이
런 면에서 서울연구원의 지원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마을 공동체의 자생적 성장과 지속을 위해서 지원금 사용에 제한을 둘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동네 모임의 성격에 따라, 그것의 최종적인 목적이 비즈니스가
아니라 이웃과의 만남이라면 거기에 걸맞은 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
이 모여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든가 함께 모였을 때 만남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비용 등 말입니다. 이 점이 현재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시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의 난점이 아닐까 합니다. 적어도 반 년 혹은 일 년 정도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 몇몇이 모임에만 집중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비즈니스 차원
에서의 장기적 구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재원이 시민들의 세
금이다 보니 공정하고 투명한 집행이 필요하겠죠. 앞으로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수반될 지점이리라 생각합니다.

드디어 창간호를 손에 들다

드디어 발간일. 영욱 언니의 집으로 우리의 어엿한 첫 번째 성과물이 도착했습니
다. 총 스무 쪽의 작은 규모지만 각자의 글이 막상 잡지로 출력되어 나오니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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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색다르더군요. 마침 해지의 옆방에 사는 현진 언니(김현진)가 교열로 재능을 기부
해 읽기 편한 글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인연이 참 묘한 것이라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힘이 나온다며 잡지를 들고 서로 함박
웃음을 지었습니다. 각자 《남산골 해방촌》을
가슴에 품고 해방촌 오거리 길을 오르고 카페

           《남산골 해방촌》

가 많은 골목을 걸었습니다. 창간 겸 후원 파
티 직전에 모여 해방촌 곳곳에 잡지를 가져다
뒀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버스 정류장
과 길목 카페, 동네 슈퍼, 세탁소 등에 말이죠.
잡지를 담아둘 상자를 설치하는 동안 사람들
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고, 잡지가 놓이
▲ 《남산골 해방촌》 창간호 첫 배포

자 이내 한두 부씩 챙겨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유도 잠시, 곧 첫 호 발간을 기념하며 준비한 《남산골 해방촌》 후원 파
티가 열렸습니다. 기사를 마무리하고 편집과 최종 발행을 기다리며 하나 둘 준비했
었죠. 우리가 처음 만났던 카페 ‘열두 가지’ 옆 자그마한 공터를 빌려 떡볶이와 부침
개, 간단한 칵테일 등 음식을 준비하고 장식물을 달았습니다. 그간 해왔던 모임과
활동들을 정리해 벽에 붙이기도 하고 공연할 친구들도 알음알음 몇 팀 모셨습니다.
잡지에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던 동네 외국인 가수도 축하공연을 해주었답니다. 보
슬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고 기쁨을 함께 나눴습니다.
반응은 어땠느냐고요?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잡
지를 나누어주었는데 호기심과 관심이 기대 이상이었습니
다. 처음엔 어색하게 여기시던 동네 주민들도
하나둘 자연스레 파티에 참여해 주셨고 낮에 시
작한 잔치는 밤까지 이어졌습니다. 삼삼오오 모
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앞으로 우리 잡
지가 나아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동네 사람끼리 마주칠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거듭나고 싶었습니다.
▲ 《남산골 해방촌》 발간 기념 및 후원을 위한 잔치 쿠폰
▲▲ 《남산골 해방촌》 발간 기념 및 후원 파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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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장
진부한 표현이긴 합니다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죠. 취미로 만드는 동네잡
지가 일단 인쇄물을 받아들었으니, 그 목표가 절반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
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출 《남산골 해방촌》이 아닙니다. 이후 네 권을 더 내며 많은
변화들을 겪기도 했답니다. 이 장에서는 잡지에 실렸던 기사를 중심으로 2호와 3호
로 이어지는 우리 잡지의 성장과정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다

창간호에는 해방촌을 묘사하는 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
은 기사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이라 각자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기가 조심스럽기도
했고, 해방촌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들 보다는 호기심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길
게는 평생, 짧게는 일 년 정도 해방촌을 경험했다지만 막상 동네를 주의 깊게 관찰
하지는 않았었나 봅니다. 물론 1호에도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기사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는 의견이라기보다는 감상에 가까웠습니다.

〈쫀드기 행방불명〉 (박지영, 1호)

해방村, 해방과 村 사이
해방촌은 동네 사람들끼리의 유대가 돈독한 그야말로 촌동네였다. 그런데 어
느 순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니 예전의 그 모습을 잃을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불안하고 불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해방촌이 예전처럼 닫혀 있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변화가 주는 풍족함을 누리면서도 학창시절 친
구들과 뛰어다니던 해방촌의 기억들도 공존할 수 있는 푸근한 모습이 남아 있
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위 기사는 십 여 년이 넘게 해방촌에서 살아온 지영이(박지영)가 쓴 글입니다. 동

108
서울시 용산구

네에 오래 살았던 만큼 애정도 있고 마을에 바라는 모습도 존재하지요. 하지만 구체
적인 변화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느낌을 적는 데
에서 그쳤습니다. 물론 이러한 글 덕분에 잡지가 더욱 풍성해지고 주민과의 친밀도
가 높아집니다. 동네잡지의 구성에 반드시 필요한 형식이죠. 하지만 2호부터는 감
상을 적은 글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해방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리고 의

           《남산골 해방촌》

견을 제시하고자 하는 글이 등장했습니다.
이렇게 1호는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주민들에게 가까이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비해 2호는 세 편의 큰 기사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분석하는 마을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더 집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의 기사는 당시 용산구청에서 발표되었던 ‘해방촌 예술마을’ 사업 공고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담은 글입니다.

〈해방촌, 色(색)을 입다〉 (이한솔, 2호)

해방촌 예술마을 만들기는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그간 사례들에서 예술마
을 사업의 많은 장점들을 그려 본다. 기존 마을의 모습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
을 만들어냈다든가, 주민들의 얼굴을 담장에 그려 정겨움을 더했다든가. 평소
외지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던 지방도시에선 예술마을이 관광자원이 되어, 경
제를 일으키는 데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화마을의 천사날개 사
례에서도 볼 수 있듯, 일상생활 공간이 쉽게 침범 당하거나 마을이 소란해질
우려도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의 참여가 중
요한 이유다.
용산구청 도시디자인과 담당자는 예술마을사업에서 주민참여 부분이 크지 않
다고 말했다. 기획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다만 사
유지가 대상지로 선정되었을 경우 협의가 가능한 수준의 권리만 보장될 따름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제시한 주민설명회라든지 여러 경로로의 건의,
제안들을 지속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우리마을은, 좀 더 ‘우리의 마을’에 가까
워지지 않을까? 예술적 요소의 중요성만큼이나 마을의 의미도 잊지 않는 진
정한 “예술마을로 거듭나는 해방촌”이 되기를 바라본다.

109
본 기사는 2호에서 비교적 비중 있게 실렸습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지
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마을의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변화에 주목하게 되
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관공서에서 진행하는 일들은 주민들의 생활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알려지지 않는 편입니다. 물론 사업 주체
인 관이 정보에의 접근을 차단하는 탓은 아닙니다. 다만 각자의 생업에 바쁜 주민들
이 굳이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반인의 입장
에서 행정이란 으레 번거롭고 지루한 일이려니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산골
해방촌》을 만드는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동네잡지를 시작하고 나니, 해
방촌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시시때때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건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주민들에게 자세히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
니다.
이 기사가 가지는 두 번째 의미이자 변화는 각자가 해방촌을 바라보는 특정한 시
각과 해방촌의 모습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잠시 여러분의 동네
를 떠올려 봅니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금세
말해줄 수 있나요? 혹은 어떻게 변화하길 바라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동
네잡지를 만들며 이웃들에게 소식을 전하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나의 삶
터’를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위 기사의 전반부에는 해방촌을 예술마을로 만들겠다는 구청의 기획을 소개하고
당시까지의 진행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후반부에는 다른 마을에서 이루어진 벽화
사업 등을 소개했죠. 관공서의 관계자들과 주민 인터뷰를 통해 정보를 수집했고 사
업 선정자를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4호에서는 이 기사에 이어 실제로 진행
된 사업을 돌아보는 글을 쓰기도 했죠.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볼까요? 이어지는 기사, 〈어느 벽화 이야기: 어디에선가 이
글을 읽고 있을 거리의 예술가에게〉 역시 해방촌에서 펼쳐지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적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어느 벽화 이야기〉는 잡지 모임에서 일명 ‘벽화 전쟁’
으로 알려진 사건에 대한 기사입니다. 담벼락에 특정한 메시지를 담은 그라피티가
남겨졌고, 누군가는 이것을 지우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덧입히며 마치 전쟁과도 같은
의견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처음 발견한 벽화는 회색 벽에 새파랗고 새하얀
페인트로 그려진 그림이었어요. 그림 위에는 ‘우리 가족’이라는 제목이 달려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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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성인 여성과 남성의 손을 한 쪽씩 잡은
아이, 여성 둘의 손을 잡은 아이, 남성 둘의 손을 잡은 아이, 둘 중 어느 한 쪽과 걸
어가는 아이 등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구성 외에도 동성애 커플 가정, 한 부
모 가정 등 다른 모습들을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림의 한편에 가위표가
쳐졌습니다. 아마도 항의 혹은 불쾌감의 표현이었겠죠. 여기에 질세라 익명의 작가

           《남산골 해방촌》

는 그림을 덧그렸습니다. 이 싸움이 수차례 반복된 끝에 누군가 벽을 흰 색으로 뒤
덮어버렸죠. 아예 논의의 장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아래 기사는 바로 이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어느 벽화 이야기: 어디에선가 이 글을 읽고 있을 거리의 예술가에게〉 (신지은/조민정, 2호)

몇 년째 동네를 오가며 관심 있게 지켜본 그림이 한 점 있다. 해방촌 길에서
인디고를 오른쪽으로 끼고 한신아파트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골목 코너에
바로 그 벽화가 있다. 아니 있었다. 지금은 마치 치아미백을 막 마친 듯 온통
새하얗게 칠해진 벽만이 그 벽화가 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한두 해 동안 이 벽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던 것은 “MY FAMILY 우리 가족”
이라는 이름의 그림이었다. 이 것 말고도 크고 작은 그라피티는 우리 동네 구
석구석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벽화가 유
독 눈에 띈 것은 보편적 가족
뿐만 아니라 폭넓은 가족의
구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
고, 또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변
화했기 때문이었다.

▲ 벽화전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 모음 (제공: 마티어스 레먼,
provided by Matthias Lahmann | Matt Lemon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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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그림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
했고, 그에 대해 다른 누군가는 빨간 스프레
이로 가위표를 그렸습니다. 이러한 일이 반
복되자 결국 담벼락은 또 다른 누군가에 의
해 새하얗게 칠해지고 말았죠. 그라피티의
작자를 찾는다는 문장으로 기사의 끝을 맺
었지만 궁극적으로 이 글이 말하고 있는 바
는 우리가 서로의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이
고 대응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가족’이라는 단어에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다
▲ 한편 지금은 기린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양한 인상과 개념을 서로 어떻게 이해하고
소통할지 묻는 거죠.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서울, 그 중에서도 여러 인종과 계층, 문화가 혼
재되어 있는 해방촌에서 벽화전쟁과 같은 사건은 상당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해방
촌이 형성된 계기도 해방 이후 이루어진 대규모 이주 때문이었고, 현재까지도 내·
외국인의 이동이 잦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촌’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
도로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서는 시시때때로 색깔을 바꾸며 당대를 드
러내고 있는 해방촌.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해방촌의 문제를 보
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을 문화적 차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벽화전쟁에 관한 이 기사는 해방촌의 변화를 담담하게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벽
화 사건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레몬(마티어스 레먼) 씨를 만나고, 작가를 찾
는다는 공고문을 내는 등 이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고자 하는 노력을 해왔죠. 어느
담벼락의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해석하거나 거기에 참여하고자 했던 것입
니다. 2호의 표지를 장식한 하얀 벽, 《남산골 해방촌》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이렇
게 차츰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해방촌의 역사를 찾아서

창간호에 이어 2호에는 해방촌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가고 이곳만의 이야기를 정

112
서울시 용산구

리하고자 하는 목적이 뚜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호에 실렸던 〈종점 없는 종점약
국〉의 경우, 과거와 현재의 해방촌의 모습을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하여 재구성
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지금은 그 어떤 버스의 종점도 아닌 ‘종점약국’, 그 이름의 유
래를 통해 동네의 옛이야기를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래 기사의 경우에는 ‘도대
체 왜 종점약국이었을까?’라는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내용

           《남산골 해방촌》

을 정리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평소 가지고 있던 궁금증의 해소가 목표였던 것입
니다. 이 과정에서 해방촌의 지난 역사와 사람들의 기억이 재구성되었습니다. 근현
대 해방촌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은 이후에도 이어져 한 해 뒤에는 구성원 몇이 모여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을 기획하게 되었죠.

〈종점 없는 종점약국〉 (신지은/조민정, 1호)

종점약국에서 종점을 묻다
비가 시원스레 내리던 토요일 오후, 무작정 찾아간 종점약국! 약사 박○○ 씨
는 처음 보는 인터뷰어 일행에게 친절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이
약국은 60년 전에 종점약국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박○○ 씨는 40년
전에 이곳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고.
‘60년 전에 종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종점인 거죠?” ‘마을버스가 다
니긴 하지만 종점약국이 종점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60년 전이면 6·25전쟁
발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그때도 버스가 있었나요?’라고도 묻고 싶었지
만, 초면에 달려들듯 물어보면 실례가 될 것 같아 꾹 참고 있는데 그 마음을
읽기라고 한 듯 박○○ 씨는 꽤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배차실의 추억
1960년대 초 해방촌을 다녔던 첫 번째 버스는 미국 폐차를 개조해서 만든 마
이크로 버스였다. 그 후 배차실을 두고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등장했다. 약국
옆에 위치한 배차실은 안내양과 운전기사들의 휴게실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인지 약국의 판매량 상위를 차지했던 건 숙취해소 제품과 더불어 아침마다 안

113
내양들이 사가던 박카스였다고. 요즘은 박카스 매상이 예전만 못하다고 덧붙
이는 박○○ 씨의 말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남대문을 돌아 다시 해방촌으로
당시 해방촌을 돌던 28-1번 버스는 종점약국에서 출발해 남대문을 돌아오는
순환버스였다. 그때는 많은 동네 주민이 남대문에서 일했다고 한다. 버스 노
선이 우리 동네와 남대문을 이어주고 있는 건 이유가 있었다. 현재 규모는 많
이 줄었지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가내수공업 스웨터(요꼬) 공장도 제품 운
송에 당시 해방촌과 남대문을 오가는 버스를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요즘도
동네에서 스웨터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를 종종 볼 수 있는데 당시에는 운송수
단으로 이 버스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1호에서 해방촌의 옛 모습을 다루었던 또 하나의 글을 꼽자면 앞서 일부 발췌한
바 있는 〈쫀드기 행방불명〉이 있습니다. 이 기사를 쓴 지영이는 해방촌에 급격한 변
화가 일기 직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자기 자신이 살아왔고 경험해 온
동네의 이야기를 하기에 별도의 인터뷰를 하기보다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정리하
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사실 저의 중·고등학교 친구들만 돌아봐도 해방촌에서 태
어나서 이곳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는 토박이는 몇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
구에게나 있는 어린 시절의 보편적인 경험이면서도, ‘종점약국에서 3호 터널 쪽으
로 가려면 건너야 하는 굴다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해방촌의 쫀드기에는 독특
한 맛이 있습니다. 또한 ‘종점약국 간판의 세련미’를 말하는 재미 덕분에 이 기사의
맛이 더욱 살아납니다.
앞서 종점약국 기사가 호기심을 해결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면, 〈쫀드기 행방불
명〉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회하고 현재의 모습과 견주어 보는 데에 의의가 있습
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해방촌,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다
시 한 번 떠올리며 참여자 자신도 성장해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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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쫀드기 행방불명〉 (박지영, 1호)

담백한 동네 해방촌
나는 해방촌에서 나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학창시절을 모두 이곳에서 보냈다.
내가 처음 해방촌에 살게 되었던 건 2001년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그

           《남산골 해방촌》

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해방촌으로 돌아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남산 3호 터널 위에 있는, 한 학년 당 3학급으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학교였고 고등학교도 남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아담한 학교였다.
종점약국에서 3호 터널 쪽으로 가려면 굴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내가 초등학
교에 다닐 때 그 굴다리 앞에는 작게 천막을 치고 쫀드기 같은 불량식품이나
쥐포를 구워서 파는 할머니가 계셨다. 초등학생 때 학교가 끝나면 하루도 빠
짐없이 할머니 천막에서 아폴로와 쫀드기를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종
점약국 간판도 지금처럼 세련되지 않았었고 새로 지은 원룸들도 없었다.

한편 2호에는 해방촌의 꽤 오래된 이야기와 최신 소식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우
선 〈3세대 토박이, 해방촌의 변화를 말하다〉의 주인공은 해방촌 아랫동네 거리의
터줏대감 격인 ‘르 카페’의 주인이자, 보기 드문 3세대 토박이인 한사장님(한명덕)입
니다. 이 기사 역시 해방촌의 지난날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앞선 종점약국, 쫀
드기의 기억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이 다른 점은 여기서 나고 자라
온, 한 카페 주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취재원의 시각과 기획의도를 좀 더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사의 주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해방촌 변천사라 할 수 있습니다. 해방촌의
집값과 임대료의 변화를 선 그래프로 나타내고 그 위에 관련 인터뷰 내용을 얹힌 도
표는 이 기사의 백미입니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해방촌의 변화를 좀 더 구체적인 자
료와 특정한 각도에서의 조망을 통해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영욱 언니
는 자신의 전공인 도시설계의 측면에서 기사를 기획하고 인터뷰도 진행했습니다.
몇 년 째 살아가고 있는 해방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내
고자 했던 것입니다. 종점약국 기사의 경우에는 인터뷰, 〈쫀드기 행방불명〉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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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과거의 풍경을 묘사하였습니다. 두 기사 모두 목적성이
나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래 기사는 해방촌의 공
간적인 변화, 특히 경제적 측면과 맞물려 빚어지는 양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
고자 하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 일정한 방향성을 획득했다는 것입니다.

〈3세대 토박이, 해방촌의 변화를 말하다〉 (배영욱, 2호)

사실 난 요즘 해방촌의 변화가 재미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해방촌이 변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한다.
하지만 왜 변화를 걱정스럽게만 느낄까? 지금 우리가 하는 잡지 만드는 작업
들도 해방촌에 이전에 없던 변화하는 모습 중에 하나일 텐데 말이다.
3년 전, 동네 구성원들이 변하면서 새롭게 나타나는 요구를 르 카페(le cafe)
주인장 명덕 씨 외에 동네 젊은 사람들이 감지하고 특징 있는 가게들을 오픈
했다. 그때 그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냈던 변화가 지금의 조금 더 다양한 사
람들이 다른 매력을 나타내는 해방촌, 밤길이 더 재미있는 동네를 만든 것처
럼 지금 우리가 만들어 낸, 만들어 내고 있는 이 잡지가 지금 해방촌의 변화를
즐기면서도 해방촌다움_로컬이 살아있는 동네를 지키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주체적으로 만드는 방법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취재원마다 다루고 싶은 것이 다르고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 또한 다양하기 때
문에 무엇이 좋고 나쁜지, 어떤 게 먼저고 나중인지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남산골 해방촌》이 해방촌을 좀 더 파고들고 있다는 점은 주지할 만합니다.

밖에서 본 우리 동네: 외부기고 싣기

《남산골 해방촌》 3호, ‘겨울의 한창’에는 객원 기자의 글이 두 편 실렸습니다. 그 중
하나는 후암동에 거주하는 필자의 아버지, 건축사 이상행 씨의 글입니다. 기사는
옆 동네 해방촌 성당을 찾아가는 길을 상세히 묘사하고 성당 건물을 건축학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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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에서 설명하여 잡지에 색다른 맛을 더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중·고등학교를 다니
는 6년 동안 해방촌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골목과 적잖이 친해져 있었습니다. 해방
촌에 지금 살고 있는 대부분의 잡지 참여자들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옆 동네에
살며 간혹 해방촌을 방문하는 입장에서 쓴 글은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남산골 해방촌》

〈해방촌성당을 찾아서〉 (이상행, 3호)

해방촌성당을 찾아가는 길은 초행인 사람에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간혹
들르는 나조차도 행로는 여전히 눈에 익지 않다. 멀리서 보아도 눈에 띌 법한
산등성이에 있긴 하지만 다른 건물에 묻혀 구별되지 않을뿐더러 큰길에서도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해방촌성당으로 가는 길을 ‘해방촌 오거리’에서부터 그려본다. 오거리엔 신호
등도 없지만, 사람과 자동차가 눈치껏 어울려 잘도 소통된다. 길을 건너는 사
람은 곁눈질로 차를 살피거나 애써 외면하고 운전자들은 조심조심 지나간다.
사람이 우선인 분위기가 물씬 풍
겨 좋다. 오거리에서 남쪽 방향 길
을 바라보면 해방교회의 첨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해방촌성당
을 처음 찾는 사람이라면 교회 건
물을 성당으로 착각할 법도 하다.
몇몇 여학생들이 늦은 등굣길을
서두르는 뒤를 따라 걸음을 재촉
해 본다.

▲ 거리만큼이나 얽히고설킨 해방촌 오거리의 전선들

특히 해방촌 오거리에 대한 묘사는 주민의 입장에서 잡지를 만들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해방촌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쓰고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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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상대적으로 특정한 환경, 배경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었기 때문입니다.
동네 사람에게는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장면일지라도 외부인에게는 낯선 광경이
며 찾기 어려운 장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즈음 《남산골 해방촌》은 동네 안에서 소
통의 채널이 될 뿐만 아니라 내·외부를 잇는 가교가 되어가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
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섯 달이 지나 나온 4호에는 그 이전보다 해방촌을 설
명하는 글이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All Sorrows Are Less With Bread: Life of a German migrant in HBC〉(“빵만 있으면 어지간한 슬픔은
견딜 수 있다”: 어느 독일 이주자의 해방촌에서의 삶) (마티어스 레먼/번역: 이한솔/정해지, 3호)

살던 곳에서 좀 더 아래로 이사 오니 해방촌의 또 다른 반쪽이 보이기 시작했
다. 윗동네는 대부분 한국인이었는데, 아래엔 외국인 거주자들이 많았다. 하
지만 그들은 서로 어울려 살았다. 내가 두 세계의 충돌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은, 좋아하던 그라피티(벽에 그린 그림, 낙서)가 갑자기 훼손된 것을 보았던
때다.
해방촌으로 오기 전, 이미 3년 반을 한국에서 살았으니 사실 완전히 처음 온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해방촌에서 사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다른
곳에선 이방인이었지만, 해방촌에서는 한국 사회의 일부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는 주로 대학생이나 교수들만 알았던 데 비해, 이제는 지역주민
도 만나게 되었다. 이는 내가 단지 방문자이기 보다는 한국의 시민이 된 것 같
은 기분이 들게 한다. 나는 주위의 사람들을 만나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집 근
처 가게의 사장님들이나 같은 카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웃으로 알고 지내
는 것은 훨씬 멋진 일이다.

3호에 글을 실었던 또 한 명의 객원기자는 이전 2호의 벽화 기사에서 인터뷰 대
상자가 되었던 레몬 씨입니다. 3호를 낼 때 즈음에 그는 이미 베를린으로 돌아가 있
었지만, 글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우리의 제안에 선뜻 손을 잡았습니다. 외국인 기
자의 글을 싣는 것은 까다로운 작업이었습니다. 번역의 번거로움도 문제였으나, 문
화적 차이로 인해 글의 내용을 다소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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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불구하고 쉽지만은 않은 타향살이 속에 담긴 소소한 재미와 생생한 이주기를 접하
니, 잡지의 내용이 또 다른 방향에서 훨씬 풍성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레몬 씨의 기고는 단순히 객원기자의 글을 받은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기존 한국인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윗동네 해방촌과 주로 외국인들, 최근에는 외부
인들이 나들이를 나오는 아랫동네 해방촌. 그 간극을 좁혀보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남산골 해방촌》

했던 것입니다. 외국인의 이주기를 통해 한국인 주민들이 그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
일 수 있길 바랐고, 잡지에 영어 기사를 실어서 그동안 배제되었던 비한국어 독자를
포섭하고자 했습니다. 《남산골 해방촌》이 지역 커뮤니티를 느슨하게 연결하는 역할
을 시도한 것입니다. 최근 나온 5호에도 또 다른 외국인 객원기자의 글을 싣고자 했
으나, 작업상의 문제로 아쉽게도 다음 차례로 넘겼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해방촌
안과 밖, 한국인과 외국인의 틈을 좁히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잡지는 언제 나오나요? 애독자 발견!

본래 《남산골 해방촌》은 격월간으로 기획되었으나 취미로 하는 활동이다 보니 작업
의 속도를 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2012년 5월, 8월, 12월 그리고 2013년 5월,
9월에 잡지가 발행되었으니 발행주기가 비정기적입니다. 그렇다보니 누구보다도
잡지를 기다리는 것은 물론 만들고 있는 우리 모임이겠습니다만, 이제는 제법 다음
호는 언제 나오는지 문의하는 경우가 가끔 생깁니다. 애독자를 자처하는 고마운 분
들도 나타나기 시작했고요. 잡지를 보고 또 함께 하고 싶어 종종 찾아오는 새로운
구성원들도 있습니다.

《남산골 해방촌》 페이스북 페이지에 남겨진 메시지

2013년 6월 7일
안녕하세요. 잡지를 구독해보는 팬입니다. 작가들과 연락할 길이 있다해서 문
의 드립니다. 이메일주소나 연락처 혹시 알 수 있나요?
2013년 6월 18일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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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신문기사 보고 《남산골 해방촌》에 대해서
알고 나서 저도 같이 잡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연락드려요.
참고로 저는 광고와 그래픽 디자인 전공해서 편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되는데 연락 부탁드립니다.
2013년 8월 23일
저는 용산구에 살고 있는 용산구 주민인데요 : )
카페 ‘소월길 밀영’ 을 갔다가 잡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받아보거나 구할 수 있을까요 ?

이전에도 종종 개인적으로 혹은 발간 파티 때마다 다음 호 발간 예정에 대해 묻
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잡지 뒤에 적어두었던 메일로 의견이 오는 경우도 있었죠.
최근에 페이스북 페이지 *를 만든 이후로는 페이지를 통해 대화 신청을 하시는 분들
도 많습니다. 잡지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고, 지난 호를 받아볼 수 있는지
묻는 분들도 있어요. 간혹 저희가 해방촌의 여러 부분에 대한 의견을 묻거나 정보를
수집하고자 버스정류장에 포스터
를 붙이기도 하는데 재미있는 반응
이 나오기도 하더군요.
얼마 전, 《남산골 해방촌》 내 작
은 모임인 ‘해방촌 아카이브’에서
동네의 옛이야기를 들려주실 분
혹은 자료를 가지고 계신 분들을
▲ ‘해방촌 아카이브’ 자료를 찾기 위해 붙인 포스터

찾기 위해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80년대에 해방촌 이야기를 담았던 라디오 뉴스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계신 분이 연
락을 주셨습니다. 잡지 창간 파티에 들려주셨고 이후로 계속 관심을 두고 있었다
고 하시더군요. 자료에 대한 사례비는 다시 저희 모임에 기부하셨습니다. 해방촌에
서 뜻있는 일을 한다며 칭찬도 받았답니다. 이렇게 독자 분들의 관심과 긍정적인 반
*   페이스북 페이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사회적 관계망의 형성, 유지, 확산을 위한 기술적 기반을 제
공하는 서비스)의 일종인 ‘페이스북’에서 비즈니스용으로 개발한 계정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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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응, 새로운 참여자, 또 다른 방법으로의 도움들로 《남산골 해방촌》은 무럭무럭 자라
나고 있습니다.

4. 고민
           《남산골 해방촌》

《남산골 해방촌》이 지금까지 보내온 시간을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하자면 창간호에
서 3호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 나눌 수 있을 듯합니다. 4호가 이전에 비해 긴 시간
을 두고 발행되었기도 했지만 3호 발간 이후 대대적으로 2기를 모집했기 때문이죠.
2013년 초, 추운 겨울을 보내는 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잡지의 지속을 위해서
놓칠 수 없는 부분들이었죠. 물론 당시에 생각을 모았다고 해서 지금까지 안정적인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다시 전열을 정비할 때가 되었어요.
앞선 글에서 조금은 쉽게, 성공적으로 만들어져 온 것만 같아 보이는 《남산골 해방
촌》, 그 복잡한 속내를 슬쩍 드러내 봅니다.

《남산골 해방촌》 2기 대 모집!

2012년 말, 따끈따끈한 3호와 함께 온기 가득한 송년 파티를 했습니다. 어느덧 우리
의 단골가게이자 회의장소가 된 ‘르 카페’를 빌렸죠. 동네 분들도 들려주시고 친구
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2013년이 밝았어요. 새해엔 역시 새
다짐들을 하는 법이죠.《남산골 해방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하여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두 주에 걸쳐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논의하였습니다. 종
종 모여서 비정기적인 회의 겸 수다도 가졌고요. 그 때를 돌이켜보니 문득 지난겨울
의 찬 공기가 눈앞에 선합니다.
당시 회의록의 내용이 조금 길기는 하지만 우리 잡지가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고
민들의 축약판이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2012년 초, 잡지를 처음 시작할 때
열 명 가량 모였고 이후 잡지를 만들 때마다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함께 작업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 문득 잡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사람은 몇 남지 않았다는 자각
을 하게 되었죠. 사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취미로 만드는 잡지이기 때문에 누가 축

121
이 되어 일을 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
나 모임을 지속하고 각자에게 맡겨진 짐을 나누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생각을 나누
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두 차례의 회의에서 주로 다루었던 내용은 잡지의 재원을 마련하고, 지금까지는
상시 지원을 받았던 《남산골 해방촌》 2기를 대대적으로 모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들어올 기수를 위해 일정한 틀을 마련하고, 잡지 제작의 과정을 하나의 프로그
램으로 정리해보려 했죠.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간 우리의 작업이 반복되면서 자연
스레 형성된 방식이 체득되기는 했으나 그러한 형태로는 다른 이들에게 내용을 전
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잡지 만들기의 틀을 만들기
위해 회의를 했습니다. 물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새해를 맞이하여 대대적으로
준비했던 것들이 작심삼일이 되기 쉬운 것 마냥 우리의 기획도 그저 계획에 그치고
말았던 결과를 낳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 이렇게 계획을 세우
고, 그것이 성취되지 않았을 때 반성하며 새로운 틀을 또 마련하는 것이 한해 한해
를 살아가는 과정인 게 아닐까 싶습니다. 5호가 나온 지금, 잡지 모임을 재정비 해
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회의록 (2013년 1월 26일)

회의 -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할꺼신가아아~ 두둥
1. 26, 2013 업데이트됨
2013. 1. 26 16:00 / 배, 해지, 모기 / 마실집

2.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1)  람을 다시 모아야 함. 대자보를 다시 붙이던가 해서. 사람을 끌어 모으고
사
관리하는 일이 중요. 글의 퀄리티는 상관없음. 기자의 신분을 밝히면 되니
까. 글의 퀄리티보다 커뮤니티 생성이 중요.
2)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보상이 필요한가?
3) 투고. 객원기자. 등 다양한 접촉방식
4) 영어 기사의 개수를 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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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3. 이후 발간 계획
1) 발간 주기: 계절 별로 1년에 4번. 3월(말), 7(초), 9(말), 12(말).
2) 부 수: 600부 인쇄가 적당. 인쇄비용은 40만 원 선에서.
3) 제작 기간: 12주 간격으로. (2주 기획회의 + 5주 기사 쓰기 + 3주 교열 편
집 인쇄 + 2주 휴식)

           《남산골 해방촌》

4. 잡지 작업 시스템 만들기
1)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시스템이 필요.
2)  자단 모집 시스템을 시도해 보기로.
기
    자단 모으기 → 5주프로그램(기사가 하나 완성) → 기획팀이 모여서 다시
기
    방향설정하고 → 마감 → 편집 → 완성.
3)  자단 모으기 전에 기획회의를 먼저 해서 준비하는 호에 필요한 	
기
프로그램, 콘셉트 잡고.
4) 기획단은 누구? 정해지, 배영욱, 고헌, 이한솔

5. 기자단 모집 세부 계획
1) 28일 월요일까지 모집 포스터 제작 출력
    디자인-해지, 문구-모기, 출력-배 / 사이즈 A3
2)  8일 월요일 7시 배포: 정류장, 카페, 배포처, 마을버스 안(뚫어 봅시다!!)
2
1주일간 모집. 최대 8명. 그 이상 오면 다음 호로 유도. 페북 가입시키기.
3) 기자단 모집 전에 기획회의에서 전체 콘셉트 제시

회의록을 보면 《남산골 해방촌》의 큰 목표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
니다. 기사의 질보다는 공동체를 활성화 하는 데에 더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
다. 물론 동네에서 만드는 잡지라고 해서 노력을 덜 한다든가, 적당히 지면만 채우
든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떠한 모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그것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이 잡지를 더 풍성하게 해주고, 이 안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
가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어떠한 글이 나왔는가, 얼마나 화려했는가를 따지기 보
다는 충분히 느낌을 나누고 참여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 평가하게 됩니다. 동네에 대

123
한 애착이 생기고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이유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우
리 모임의 성격과 지향하는 목적이 잡지의 질을 굳이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
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2기를 모집한 뒤에 어떻게 모임을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던 부분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당시 2기 기자단을 위해 기획했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앞서 인용한 회의록 중 ‘잡지 작업 시스템 만들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이죠. 우리는 그 중에서도 기사 작성을 위해 설정했던 5주를 처음에는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회의록 (2013년 1월 26일)

6. 5주 프로그램
1) 1주차
- 소개, 페이퍼 나눠주고, 잡지 소개, 프로그램 진행사항 소개.
-  신이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입니까. 콘셉트 정하기(가안), 	
당
어떤 기사 쓸지 정하기(인터뷰)
2) 2주차
- 인터뷰 취재의 경우는 기획안, 나머지는 초안 구성 등 되는대로 글 써오기
- 팀 꾸려주기
3) 3주차
- 기사 초안 나옴
- 기획팀 전체 모여서 기획회의.
4) 4주차 - 수정작업
5) 5주차 - 마감. 최종 수정

한 권의 잡지가 나오기까지의 체계와 한 편의 기사가 완성되는 과정은 비슷합니
다. 대략적으로 정리를 해보면 우선 무슨 내용을 주로 다룰 것인지 큰 가닥을 잡는
기획 단계, 어떠한 방식을 사용할 것인지 구상하는 도입 단계, 실제로 취재한 후 작
성 혹은 엮음에 들어가는 실행 단계, 퇴고와 기사 간 균형을 맞추는 마무리 단계가

124
서울시 용산구

있겠습니다. 세 권의 잡지를 발행하는 동안 이러한 과정을 어설프게나마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2기는 시행착오 없이 좀 더 빠르게 기사를 작성해
나가도록 돕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목표는 어느 정도 실현되어 새로 참여하게 된
구성원들도 비교적 빠른 속도로 글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의 역량이 바
탕이 되었던 덕분인지, 프로그램의 효과인지 판별하지 어렵지만 말입니다.

           《남산골 해방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간 시기에 대한 우리의 목표는 요원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
다. 잡지의 발행주기에 대한 질문을 여러 차례 받기도 했고, 지켜지기 어려울지언
정 목표를 세우는 것이 잡지 만들기를 활성화 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에
연초 회의에서 이 내용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발행주기를 다시 계간지의 형태로 다
잡고 2013년 안에는 네 부의 잡지를 내는 것으로 계획을 설정했던 것입니다. 당시
에 세웠던 이후 발간 계획은 여덟 달이 지난 지금, 사실상 절반 정도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2013년 9월 말 현재, 두 부를 발행하는 데에 그쳐 목표를 달성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1년 반이 넘
는 시간동안 《남산골 해방촌》이 사라지지 않
는 이유는 적어도 활동을 지속해나가겠다는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
만 2주간 1차 기획회의를 하고, 다음 5주 동
안에는 기사를 작성한 뒤 3주의 편집 및 교열
작업을 거쳐 잡지를 발간하겠다는 계획, 나머
지 2주 동안에는 파티를 기획하고 휴지기를
갖겠다는 목표가 지켜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012년 겨울, 우리는 사진 속 3호를 내고
2
한참을 쉬었습니다

경로를 재탐색 합니다

글을 완성하는 것은 ‘마감’이라는 말이 있었던가요? 잡지의 발간이 늦어지는 데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단계는 ‘글쓰기’와 ‘편집’이었습니다. 물론 이 두 과정이 잡지
를 만드는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
만 기사와 잡지의 전반적인 주제가 결정되는 기획회의의 속도는 매우 빠른 반면 각

125
자의 작업은 늦어지기 일쑤였죠. 마감의 압박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각각에게 존재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개인 신변의 변화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
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2013년 상반기를 마무리하며 저는 새로운 직
업을 찾았고, 편집과 디자인을 담당한 친구는 학교를 옮기게 되었죠. 그 외에 다른
친구들도 각자의 삶터에서 바삐 지내며 점차 작업은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잡지는
본업이 아니니까요. 더욱이 즐겁고자 시작한 일에서 괴로움을 느끼지는 말자고 서
로 다짐했기 때문에 발간일은 점점 더 늦어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기
사를 마쳐야 하는 사람과 잡지 후반 작업을 담당하는 쪽 모두가 오히려 더 큰 스트
레스를 받게 되었죠. 이 문제에 대해 5호 발간 이후, 10월 초에 있었던 첫 모임에서
더욱 상세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회의록 (2013년 10월 6일)

일시: 10월 6일 13시
참석: 배영욱, 이한솔, 성승현, 박주형, 엄미나, 김의영, 배덕상, 신숙영

*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1. 업무 재조정 필요
-  집 등 업무가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적 부담감이 커지고 	
편
잡지의 비중도 달라짐.
- 편집과 디자인을 분리할 필요.
- 3기 모집해야 하나?
2. 만남 지속하기
- 일단은 만나서 근황에 대해 이야기 하든, 동네를 함께 돌아보든 같이 보내
는 시간을 다시 늘려야할 필요가 있음.
-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일 년에 잡지를 몇 부 내는가가 아니라, 함
께 즐겁고 각자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만들어 가는 것임.
- 우선 다음 주 회의도 결정 내용과 관계없이 여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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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우리마을 돌아보기’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남산골 해방촌》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많은 이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그간 해왔던 활동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글로 남
겨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겠지요. 또한 지금까지는 막연
하게 가져왔던 느낌이나 결심들이 ‘돌아보기’를 통하여 좀 더 구체화되고, 그것이
우리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꿈꾸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글쓰기가 한창 진행되는

           《남산골 해방촌》

와중에 진행된 회의에서 저는 우리 모임이 지난날 가져왔던 목표, 지나왔던 과정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10월 6일 가졌던 회
의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올 초에 세웠던 목표와 현황을 비교하고 여기에 대해 어
떠한 방안을 강구해야할지 논의하고자 했습니다.
“지난 1월 말에 세웠던 계획에 따르면 우리는 한 해에 총 네 부의 잡지를 찍어내
기로 했어요. 하지만 9월 말까지 두 권의 책이 나오는 데에 그쳤죠. 왜 이런 일이 일
어났을까요? 어떠한 방비책을 세워야 할까요?” 하지만 제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답
변은 의외였습니다. 계획에 굳이 맞추려 하고 그로인해 서로를 만나고 잡지를 함께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잊을 바에야, 재미있고 편한 만남을 지속하며 천천히 작업하
자는 것이었습니다. 《남산골 해방촌》의 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연대감과 재미를 다시 이끌어내고, 잡지라는 큰 이름에 매몰되지 않도록 주
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제가 《남산골 해방촌》에 계속 참여하는 이유가 이러한 모습에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잡지의 이름이 외부에 조금씩 알려져 가고 인터뷰도 몇 차
례 했습니다. 주위의 기대가 커지고 문의도 많아집니다. 적은 수이긴 하지만 잡지
를 보고 싶어 일부러 해방촌을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잡지를 함께 만드는 우리들은 애초에 잡지 만들기를 시작했던 이유를 돌
이켜 보며, 《남산골 해방촌》이라는 이름 아래에 그것을 묻어버리지 않기 위해 조금
은 느린 길을 택합니다.

광고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자, 그럼 다음 고민으로 넘어가 볼까요? 요즘 다양한 마을 잡지들이 생겼다 이내 사
라져 갑니다. 개중에는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행사나 장터 등을 통해 혹

127
은 사재를 이용하여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는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한 이
유에서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했을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광고를
넣을 것인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죠. 《남산골 해방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회의록 (2013년 2월 2일)

회의 -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할꺼신가 2탄
2. 02, 2013 업데이트됨
2013. 2. 3 일요일 / 남산끽다점 / 배, 모기, 한솔

2. 재원 마련 아이디어
- 공공기관 항시 안테나를 세우자
- 해방촌 투어를 통해 재원마련하자 : 프로그램 개발 필요.
- 텀블벅
- 광고는 시기상조
- 파티? 혹은 후원주점?
- 르 까페 활용해서 콘텐츠 생산: 전시 등.
- 마켓, 벼룩시장
- 열두 가지 마켓 날에 투어를 하자
→ 텀블벅, 투어, 후원주점 셋중에 하나 총회에서 결정하기로

3. 총회 소집 : 지금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모여봅시다.
- 시간 : 5일 화요일 저녁
- 총회 안건
     돈 버는 얘기 결정(텀블벅, 투어, 후원주점)
     4호 콘셉트 결정(기자단에게 던저줄 구체적인 안 마련)
     기자단 5주간의 커리큘럼 세부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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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일단 잡지 만들기를 처음 시작할 당시에 잠시 광고를 고려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발행이라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던지라 광고 효과를 보장할 수 없기에
시기상조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다 곧 후원을 받는 등 다른 방법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고, 광고에 대한 생각은 점점 더 멀어져 갔죠. 특히 어떠한 이
해관계에 휩쓸리지 않는 동네잡지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자는 의견들이 있어 잠

           《남산골 해방촌》

정적으로 광고는 싣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해안건축에서 출력 후원을 약속 받았던 2012년이 지나갔습니다.
서울연구원의 1차 지원도 3호 발간 시점 즈음에 끝났죠. 새로운 구성원을 모집함과
동시에 재원도 찾아야 했습니다. 다양한 구상들이 펼쳐졌죠. 우선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마을 공동체인지라 각종 공공기관의 지원 사업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로 했습니
다. 덕분에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우마프’(우리마을 프로
젝트)에 선정되어 잡지 발간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2013년 4월경에는 《남
산골 해방촌》 구성원 중 일부가 자체적으로 모여,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을 구상했
는데 용산구의 마을 공동체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두 사업은 서로 다른
프로젝트였지만 일정 부분 연관도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자세히 다
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해방촌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 재미를 다시 발견하는 투어 프로그램
을 개발하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또한 텀블벅, 후원주점 등 뜻있는 분들의 금전
적 참여를 유도하려는 계획도 있었죠. 최근 해방촌에 공방이나 예술가들의 작업실
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문화 콘텐츠를 이용하는 전시나 다양한 생산물
들을 판매하는 장터를 기획하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텀블벅, 해방촌 투어, 후원주점 중 하나 혹은 여럿을 선택해 실험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지원 덕분에 부담이 줄어들어, 수익사업으로
의 발걸음을 조금은 늦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적 여유와 역량을 넘어
서는 프로젝트를 무리하게 벌이지는 않았죠. 아래 회의록에 나타나듯 무리해서 일
을 진행하지는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더 오래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자발성과
즐거움에서 나오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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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록 (2013년 6월 29일)

일시 : 2013.06.29. 오전 10시
참여인원 : 영욱, 정민, 의영
2. 5호 잡지
- 예산 확보 방안
ㆍ서울시 에서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 참여 시 최대 2천 까지 지원
   ⇨ 우리는 250 정도 지원 받아도 충분히 꾸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
ㆍ참여는 할 수 있지만 현재 아카이브 사업도 빠듯.
ㆍ사업에 관심이 있는 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ㆍ일단 기획서는 제출 예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장은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있
습니다. 특히 매 호 발간을 전후로 하여 발간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
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생각이 구체화 됩니다. 5호가 나오고 현재 지원금은
6호 발간비용까지 확보된 상태입니다. 이후 발행비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할 시점이
온 것이죠. 《남산골 해방촌》의 자립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5장의 뒷부분에서 조금
더 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다

지금까지의 《남산골 해방촌》을 돌이켜보면 가장 아쉬운 점이 사람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민들과도, 우리끼리도 마찬가지인데요.
초기에는 주로 인터뷰 기사가 많았기 때문에 동네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분들
을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혼자 인터뷰를 하면 쑥스럽다는 이유로 몇몇씩 모여 이
야기를 듣고 기사를 완성했었죠. 하지만 점차 글의 형식이 다양해지고 주제가 개별
화됨에 따라 기사 작성은 대체로 각 개인의 몫이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도, 같이 생
각을 이야기할 사람도 만나기를 게을리 했던 것이지요. 그동안 잡지의 양적·질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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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성장에 눈길이 쏠려 이 점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글을
작성하며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니 문득 깨닫게 되었죠.
남산골 해방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에게 물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들
을 강구했었죠. 창간호를 준비하면서 우리 잡지의 이름을 직접 정해 주십사 포스터

           《남산골 해방촌》

를 붙였습니다. 그 외에도 사진작가의 경우, 하루 날을 정해 주위를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어떨까 논의하기도 했었습니다.
발간의 꽃인 파티에 해방촌에 살고 계시는 여러 분들을 초청하려 하기도 했죠. 그리
고 3호에서는 함께 ‘사연 있는 지도’를 기획하는 대대적인 프로젝트 기사를 준비 했
습니다. 포스터를 붙였던 것이 늦가을, 겨울의 초입이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응답해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 특히 학생으로 추정되는
주민들이 주로 어디에서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물론 해방촌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남산골 해방촌》의 의지를 보이고, 함께 무언가
를 만들어 나가려는 목적이 제일 컸고요.

〈‘사연 있는 지도’를 기획하다〉 (배영욱, 3호)

#1. 야심차게 준비한 대자보
2012년 가을. 해방촌 사람들과 함께하
는 기사를 한 번 써보겠다며 ‘동네지도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관심 있
어 하는 친구들을 모아 몇 번의 회의를
한 후에, 해방촌 사람들의 사연을 이끌
어 낼 수 있는 질문을 만들고,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지도를 넣었다.

▲‘사연 있는 지도’ 기사 작성을 위해 붙인
포스터와 주민 응답 (제공: 배영욱)

그리하여 11월 어느 저녁.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네 곳의 정류장에 대자보를 붙
이고 일주일을 기다렸다.

131
이어 《남산골 해방촌》 4호에는 마을 주민들과 외부인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내
용의 기사를 기획했습니다. 〈모든 뚜벅이를 위한 골목길 가이드: 골목탐험 신비의
세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기사는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이 걸었
던, 걷도록 추천하고픈 해방촌의 골목을 다시 한 번 탐험하고 소개하는 목적을 가
지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평소 잘 알고 있었던 길이라고 생각했던 곳
들을 더 재미있고 낯설게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읽는다면 ‘아, 그
래! 거기에 그런 게 있었지?’라며 웃음을 지을만했고요. 해방촌을 처음 찾는 사람이
라면 이 기사를 가이드 삼아 자신에게 알맞은 산책길을 찾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평소 궁금했던 부분, 말하고 싶은 것들을 담는 것도 즐거운 작업이었지만 누군가에
게 해방촌의 골목을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한다는 설정의 기사 작성은 다른 때보다 더
흥미로웠답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은 더 읽어보셔도 재미있을 기사입니다.

〈모든 뚜벅이를 위한 골목길 가이드: 골목 탐험 신비의 세계 3〉 (이한솔, 4호)

3. 시간 많고 할 일 없는 커플들의 봄나들이 데이트 코스
“드디어 봄이 오려나?” 기대와 실망을 여러 차례. 저녁에 부는 바람은 아직 차
지만 한낮의 햇살은 따뜻하다. 정말 봄이다. 이젠 겨울옷을 과감하게 넣어두
고 거리로 나설 때다. 남산엔 고운 분홍의 벚꽃이 피었고 남산골 언덕에서 유
난히 가까이 느껴지는 하늘은 파란 빛을 더해갈 것이다. 즉, 해방촌에서의 멋
진 데이트를 기대해도 좋다는 말이다. 어느 이른 봄날, 해방촌 오거리에서
《남산골 해방촌》의 황금 같은 주말 아침이 시작되었다. 직접 골목을 누비며
데이트 코스를 발굴하기 위해서다. 뭐, 여자 셋이 모여 연인들을 위한 장소를
찾는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않은가?
이제 학교를 나와 정문 오른쪽 부대 담벼락을 따라 내려간다. 경사가 급하니
만약 당신의 애인이 하이힐을 신었다면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꼭 잡아주길 권
한다. 경사로의 끝자락에서 왼쪽으로 걷다보면 오른편에 자그마한 계단이 있
다. 이번 답사의 가장 큰 수확. 가지런히 놓인 화분과 의자, 흰색과 초록이 늘
어선 차양 그리고 얽혀있는 가스관이 인상적이다. 담벼락이 심심하지 않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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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해방촌의 또 다른 묘미다.
해방촌엔 카페가 없었다. 15년 전, 옆 동네 이태원은 거리를 걷는 사람의 반
이상이 이방인이었지만 해방촌은 그저 해방촌이었다. 그러나 최근 해방촌 아
랫길엔 외국인 거주자가 많이 늘었고 작은 카페와 이국적인 식당들을 심심찮
게 보게 된다. 고바우 슈퍼 앞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여유롭게 차 한 잔

           《남산골 해방촌》

을 즐기거나 음식 한 접시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 정도면
봄날을 즐기기에 충분한 데이
트 코스가 아닌가? 누구라도
좋다. 애인이든 친구든 자기
자신과 함께든 해방촌의 골목
을 즐기기 바란다.
▲ 기사에 등장하는 ‘자그마한 계단’이 바로 여기

한편 기사를 통해 주민들과 유대감을 형성해갈 수도 있겠지만, 잡지 자체가 해방
촌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창
간호 발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요. 앞서 쓴 바와 같이 기사를 작
성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주민들의 의견과 경험을 적어주셨으면 하는 포스터를 붙
이기도 합니다. 종종 메일로 반응들이 전해지기도 하고, 2012년 말부터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과도 소통하고 싶
은지라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해봅니다. 잡지가 나오면 버스정류장을 비롯하여 카
페, 슈퍼, 교회 등 동네 곳곳에 잡지를 몇 차례 배포합니다. 어느 정도 돌렸다 생각
이 되면 다시 포스터를 붙여 이번 잡지는 어땠는지, 인상 깊게 본 기사는 무엇인지,
앞으로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는 무엇인지 등 독자엽서에 실릴 법한 질문들을 던져
보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한 두 차례 실시했지만 배포 이후에 진행하다보니 잡지
의 내용을 상세하게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 않아 자료 수집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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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반드시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해방촌 없이는 《남산골 해방
촌》도 없기 때문입니다. ‘동네잡지’라는 이름을 붙이고도 정작 동네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게 아니겠어요?

회의록 (2012년 9월 1일)

1. 주민들(독자들)과 어떻게 소통을 할 수 있지?
-  호 때는 소소한 이벤트들(포스터를 통해 투표하기, 발간파티등)이 	
첫
있었기 때문에 가깝게 다가가고 반응들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번 호에는 그런 게 없다보니까 잡지가 제대로 배포가 되서 	
읽히고 있는지 어쩐지 감이 잘 잡히지 않음.
-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함. (기사에 대한 의견이나 독자 투고)
-  재는 공동으로 쓰는 메일이 전부인데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는 	
현
않은 것 같음.
- 블로그 같은 걸 만들까?
- 해방촌 동네 게시판을 설치하는 건?

잡지를 만드는 동안 내·외부와의 소통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해왔습니다. 주민
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감상평을 적어달라는 포스터도 붙였고 종종 만나는 사람
들에게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죠. 외국인 거주자의 글을 싣기도 하고, 어느 미국인
이 가꾸는 정원에 놀러가 대화를 나누고 그의 서울 생활에 대한 기고를 받기도 했습
니다. 하지만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유일하게 우리의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는 존
재가 있다면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대화하고자, 함께 만들
어가고자 하는 시도를 잊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해방촌에서 자리 잡는 《남산골 해방
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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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5. 지속
더욱 다채로워진 동네잡지

2013년 2월, 《남산골 해방촌》은 새로운 구성원을 맞아들였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하

           《남산골 해방촌》

고 있는 대학생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해방촌 토박이, 도색작업을 하시
는 아저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잡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죠. 어설프게나마 잡혀
진 틀에 각자의 역량이 더해지니 우리의 동네잡지는 더욱 다채로워졌답니다. 3호에
서 4호까지 다섯 달, 다시 또 5호를 작업하는 데에 네 달이 걸렸습니다. 가구 리폼
도전기가 실리기도 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와중에 이사를 떠난 갤러리에 관한 글도
있었죠. 해방촌에 살고 있거나 여기를 자주 방문한다고 알려진 유명 인사를 찾아 동
네를 헤매기도 하고, 창간호부터 궁금해 하던 힌두교 사원을 5호에서야 드디어 취
재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재미있는 글 한 편을 소개할게요.

〈모든 뚜벅이를 위한 골목길 가이드: 마을버스에 대한 고찰〉 (김의영, 4호)

해방촌 마을버스를 이용한 지 어언 십 년째. 지금은 용산등기소부터 6호선 녹
사평역까지 노선이 확장되고 버스 차량도 7대로 늘어났다. 배차 간격은 30분
에서 10분으로 줄어들었고 버스 디자인도 예뻐졌다. 게다가 버스 안의 공간도
넓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편리하게 바뀌어도 나에겐 여러 가지 고민들이 있
다. 그 중의 하나가 항상 출근하러 나가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 “어디서 승차해
야 편안하게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종점 약국 정류장
집에서 나와 경사길을 쭉 내려가 동심으로 가득 채워진(?) 지하도 밑을 빠져
나오면 정면에 흥부골 숯불돼지갈비집이 보인다. 그 집 왼쪽 유리문에 초록
색깔이 비치면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구나’라는 인식이 대뇌의 전두엽까지
전해지면서 좀 더 속력을 내면 버스에 가까스로 세이프! 거기다가 앉아서 간
다면 ‘오늘 운 좋은데~’ 하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목적지까지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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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이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는 글이자 누군가 근처에 살고 있다면 분명히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장담하는 기사입니다. 마을버스의 변화상을 가서 묻지 않
아도 단 번에 읊어줄 수 있고, “흥부골 숯불돼지갈비집 왼쪽 유리문에 초록 색깔이
비치면” 버스의 도착 정보가 전두엽까지 전해진다는 의영 씨(김의영). 동네 사람이
라면 ‘맞아, 맞아’ 하며 무릎을 칠 테고 해방촌을 잘 알지 못하는 여러분들께도 재미
있는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전에도 마을버스에 관한 기사를 기획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해방촌에 오래
살지 않은 사람이 제안한 기사였기에 마을버스 회사를 찾아가 기사님들께 인터뷰를
요청하자고 했었죠. 하지만 동네 토박이가 쓴 글은 이렇게 나오기도 하네요. 각각
의 맛이 다르겠지만 이 정도면 감칠맛 나지 않습니까?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기사는 다소 재미는 없지만 2호에 실렸던 기사와 연계된다
는 특징이 있어 싣습니다. 해방촌을 예술마을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발표가 있고 얼
마 지나지 않아 〈해방촌, 色을 입다〉라는 기사를 작성했었습니다. 예술마을 사업
의 취지와 진행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
지, 다른 예술마을의 사례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죠. 아래
글은 거기에 대한 후속기사입니다. 사업 진행으로부터 몇 달이 지난 2013년 봄, 해
방촌 예술마을은 주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해 하며 이 기사를 시작
했습니다. 처음에는 설문조사 등을 통해 해방촌 사람들이 예술마을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죠. 하지만 막상 질문을 하다 보니 사실상 어디에 어
떠한 구조물과 벽화가 생겨났는지 제대로 본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해방촌 예술
마을 사업 자체를 인식하거나 여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주민을 찾기 어려웠죠. 그
래서 기사의 소재는 두되 주제를 바꾸게 되
었습니다. 해방촌 예술마을이 왜 주민들에게
이렇게나 ‘존재감’이 없는 사업이 되어버렸는
지에 대한 짧은 에세이로 말입니다. 기사 내
용을 간단하게 정리한 마지막 문단을 실어봅
니다.

▲예술마을 사업으로 꾸며진 보성여중·고 담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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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해방촌 예술마을, 그 뒷이야기〉 (이한솔, 4호)

해방촌 예술마을에 없는 것
그러한 의미에서 아직 해방촌 예술마을 사업은 끝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드나들고 시간이 지나며, 현재의 모습은 낡아 가거나 그 위에 무언가 더해질

           《남산골 해방촌》

것이다. 조금은 무리하게 덧입혀진 지금의 풍경이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자
연스레 동네의 일부가 되어 가려면 ‘실제적 효용을 고려하지 않은 기획’과 ‘유
용성에 의해서만 행동을 바꾸는 도시민의 태도’를 돌아봐야 한다. 사업 주체
들은 거주자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주민들은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보는 여유를 가질 때 예술마을은 진정으로 해방촌에 내
려앉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재미있는 기사들이 많아 그냥 넘기기가 아쉬운지라 한 편만 더 소개할
까 합니다. 재기 넘치는 두 아가씨, 미나(엄미나)와 숙영(신숙영)이의 해방촌 유명
인 찾기가 바로 그것인데요. 비록 수사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귀여우면서도 해방촌
다운 글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널리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
에서 찾을 수 있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들이 모두 해방촌의 유명인이라는 결론이
었죠. 아래에 짤막하게 발췌하니 슬쩍 읽어보세요.

〈맹탐정 디스패치〉 (엄미나/신숙영, 5호)

해방촌 디스패치 취재 결과,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화려하며, 많은 연예
인들이―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을 찍고 피날레로 뮤직뱅크를 찍어도 될 정도
― 해방촌을 찾았다. 실로 ‘뜨는’ 동네 해방촌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해방촌
에 실제로 살고 있는 몇몇 유명인들을 제외하고는 주기적으로 온다기보다는
일회성 방문에 그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해방촌의 연예인을 찾다 ‘느낌
있는’ 카사블랑카 종업원, 이효리보다 빨간 립스틱이 잘 어울리는 디에스프레
소 주인언니와 귀여운 두 강아지들 그리고 유아인보다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잘 어울리는 해크니의 아르바이트생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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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이 아니라 카페에서 회의하던 중 옆자리에 앉아 뉴스를 읽던 중후한 신
사, 당당하게 쭉 뻗은 다리를 의자 위에 얹어 놓고 신나게 이야기하는 멋진 아
가씨… TV나 영화에 나오는 유명인이 아니어도 우리 모든 해방촌 디스패치가
해방촌에서 만난 저 모든 사람들은 사실 우리가 찾던 연예인들보다 더욱 흥미
로웠다. 마지막 르카페 인터뷰에서 두 햇병아리 기자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르카페의 주인 한사장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해방촌에 유명인 한
명 더 있잖아. 나!”
사실, 우리 모두가 해방촌의 유명인이 될 자격은 충분하지 않을까, 하고 두 맹
탐정은 생각했다. 이렇게 해방촌 디스패치 건은 평화롭게 종료되었다.

어떠신가요? 두 맹탐정이 비록 연예인 찾기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해방촌의 무명
유명인(?!)을 다수 발견하는 수확물을 거뒀습니다. 재미도 있고 동네 카페들의 분위
기도 한 마디로 설명해주는 글이죠. 어느덧 잡지 만들기 회의를 위해 카페나 음식점
에 들어가면 알아보고 인사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러다 《남산골 해방촌》도 해
방촌의 유명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기사를 싣는 것이 장기적으로 동네잡지가 살아남을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해방촌의 역사를 몇 번쯤 다뤄
본들 그 소재가 동이 나겠습니까마는 비슷한 형식의 기사를 계속해서 읽는 것은 독
자들에게도 지루한 일일 테니까요. 더욱이 우리의 모임은 늘 열려있기 때문에 새로
운 구성원이 찾아와 기존에 갖지 못했던 시각으로 소식을 전해준다면 점점 더 재미
있는 《남산골 해방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해방촌 주민들과 함께 정보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사라면 더욱 좋을 테고요. 동네잡지의 지속을 위한 첫 번째 방안이
자 전제 조건이죠.

발간파티를 동네잔치로

지난 9월 28일에는 그간 해왔던 것보다 화려한 발간파티를 하게 되었습니다. 창간
호가 나오고 준비했던 후원주점 이후로 두어 차례의 발간파티는 동네 주민들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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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연스럽게 와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심한 초대장을 보냈을 뿐이었지요. 동네에
작은 출력물을 붙인다든지, 잡지의 맨 뒷장에 초대장을 싣고 온라인상에 홍보를 한
다든지 말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며가며 들려주셨던 해방촌 사람들이
종종 계셨어요.

           《남산골 해방촌》

〈초대합니다〉 (이한솔, 4호)

봄에 맞춰서 준비한 호인데 봄바람은 가시고, 벌써 초여름에 들어서고 있네
요. 여러분 곁을 조금 늦게 찾아온 건 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려 했기 때문이
에요.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이번 4호 발간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기쁜 마음으
로 작은 파티를 열게 되었습니다. 무려 5월 17일 부처님 오신 날!
애독자 여러분, 해방촌에서 새 친구를 만나보고 싶으신 분, 평소 잡지에 대해
궁금증을 품고 계셨던 분들 모두모두 초대합니다. 이번 파티는 해방촌의 카
페, ‘르 카페’에서 펼쳐질 예정입니다. 좋은 날,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고 함께
나눌 간식이나 음료를 가지고 오셔도 좋습니다. 기다리겠어요!

하지만 이번 발간파티는 규모가 달랐어요. 그동안 2013년 4월경부터 지금까지
진행해온 해방촌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발표하는 시간을 함께 가졌기 때문
입니다. 더불어 영욱 언니와 함께 해방촌을 답사하고 한 달 가량의 기간 동안 짤막
한 동영상을 완성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학생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포스터만
보고도 지나가던 외국인들과 동네 사람들 몇 분이 참여해주셨죠. 그간의 발간파티
들이 주로 우리의 노고를 스스로 치하하며 먹을 것을 나누고 수다를 떠는 시간이었
다면, 이번에는 좀 더 해방촌에 대한 이야기를 던져보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정
작 아카이브를 위한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이나 좀 더 다양한 주민 분들을 모시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5호 발간 파티를 마치며 우리가 해방촌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아직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파티라는 이름
의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연세가 많은 분들이나, 이러한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많
은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욱이 해방촌에 탄탄한 인적 연결망이 있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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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취지와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을 종종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다보면 어느 날엔 발간파티가
마을잔치가 되어 남녀노소 관계없이 누구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죠. 그 때
《남산골 해방촌》의 또 다른 의미도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우
리 잡지의 지속을 위해 두 번째로 기억해야할 점입니다.

▶ 《남산골 해방촌》 5호
발간 파티 중
아카이브 상영

자립을 꿈꾸며

앞서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에 대해 몇 차례 적은 바 있습니다. 《남산골 해방촌》이라
는 동네잡지와 우리 동네의 역사를 기록하는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 이 두 가지는
참여자를 공유하기는 했지만 서로 다른 프로젝트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아카이
브 사업은 잡지의 발간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다른 활동을 모색하던 와중에 기획한
것입니다. 그러나 잡지 안에 이 내용을 담을 수 없을뿐더러 좀 더 깊고 넓은 이야기
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아카이브 사업을 따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을의
어르신들이 아직 곁에 계시는 동안 해
방촌의 역사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이
동네를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잡지는 계속해서 비영리로 운
영, 즉 광고 없는 무가지로 지속하되 마
을의 콘텐츠를 이용해 다른 수익사업을
꾀하고자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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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마을 프로젝트 기본교육을 받으러 간
우
‘해방촌 아카이브’
서울시 용산구

촌 곳곳을 함께 돌아보고 마지막엔 자그마한 파티를 하는 투어 프로그램, 동네 장터
판짜기, 각자 가진 재능을 발휘하는 주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의견이 있
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해방촌 자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를 우선 높여
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더불어 잊혀가는 이곳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한다는 당
위성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엔 잡지 작업을 위해서도 아카이브 사업

           《남산골 해방촌》

이 필요했던 것이었죠.
《남산골 해방촌》의 지속적인 발간과 자립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
장 최근에 나온 5호까지는 용산구 등의 지원을 받아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서
울연구원에서 2013년 하반기 지원을 받아 6호 인쇄비 및 활동비도 확보했죠. 아카
이브 사업의 내용을 바탕으로 특집호를 기획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의견도 있었습니
다. 당분간 우리의 동네잡지는 특히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마을 공동체 관련 지원 사
업에 여러 차례 손을 내밀 듯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다양한 수익사업 구상의 예로
들었던 사안들을 수정 및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있던 잡지도 사라져간다는
요즘에 보기 드문 사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방법을 찾는다면 여러분과 또 공
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남산골 해방촌》을 넘어서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의 《남산골 해방촌》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2013년 초
에 했던 고민들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정체된 상태
는 아닙니다. 그간 두 권의 잡지가 더 나왔고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도 진행 했으니
까요. 동네잡지 《남산골 해방촌》을 넘어서는 해방촌 모임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왜
냐고요? 살짝 제 생각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의 출발을 떠올려 봅니다. 잡지 발간을 위한 금전적인 문제
를 해결하고자 수익사업에 대하여 시작한 고민은 결국 우리 잡지의 큰 목표 중 하나
와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마을과 만나고, 마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익
을 창출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들의 출발은 물론 잡지 발간비용 마
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만 멈추는 발상은 아니었답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우리 동네의 좋은 점들을 소개하고 사람들을 초대해 한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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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를 수익사업과 연
계하여 고민하다보니 일정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다양한 콘텐츠와 접목한다면 해
방촌 탐방을 유료 행사로 만들 수 있겠다는 의견이 많아졌죠. 하지만 막상 프로그
램을 만들려다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우리는 해방촌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리
하여 해방촌의 역사를 기록하고, 사람들
에게 알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여
기에 대해 더욱 심도 있는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해방촌 아카이브’ 작업을 시작
▲ ‘해방촌 아카이브’를 위한 동네 어르신 인터뷰 장면

하게 되었죠.

이 글의 도입부에 저는 동네잡지를 함께 해보고 싶었던 이유, 무엇이 되었건 마
을 사업을 벌이고자 했던 까닭을 상세하게 적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저는
지속적이며 좀 더 창의적인 작업, 자본에 의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일이란 지역
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행복을 찾
고자 하는 마음으로 마을활동을 시작했죠. 제 사견으로는 《남산골 해방촌》이 잡지
로서의 기능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벌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애착을 가지고 살
아가는 동네인 해방촌이 삶의 터전인 동시에 경제적 기반이 된다면, 그리하여 거대
한 사슬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가까이에 머물고 있는 이웃들과 함께 비교적 자유롭
게 생을 유지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아직은 막연하고 추상
적인 접근일지 몰라도 동네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한 해, 두 해 계속 하다보면 작은
곳에서부터 내 삶을, 이웃의 삶을 바꿔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난 2012년 늦겨울 혹은 초봄에 처음 만나 2013년 가을까지 이어오고 있는 《남
산골 해방촌》의 이야기. 어떠셨어요? 잡지를 보며 많은 분들이 보내주시는 관심과
호기심만큼 이 글이 재미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기를 바라봅니다. 여기
에서 미처 풀어 놓지 못한 말들, 여러분께서 더 궁금해 하실 내용들은 언젠가 또 다
시 나눌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썼던 기사 두 편을 적어 인
사를 대신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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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한 편은 따끈따끈한 신간에 실린 〈해방촌 사운드트랙〉입니다. 그간 창간호에 담
았던 정원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제 의견이나 주장이 다소 강하게 들어간 글들을 많
이 써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가볍고 감성적인 기사를 쓰고 싶었죠. 한 해
동안, 1월에서 12월까지 각각 해방촌에서 들으면 어울릴만한 음악을 선정하여 에세
이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아마 이 글이 여러분께 전해질 때쯤이면 겨울이 임박하

           《남산골 해방촌》

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마지막 달인 12월의 음악 한 편을 전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대미를 장식할 글은 2012년 12월에 나온 3호의 끝자락에 실렸던 〈한마디〉입니다.
지난해의 생각과 다짐이 올해엔 또 어떻게 달라질지 저도 궁금해지네요.
그럼 두 편의 기사를 마지막으로 저는 이만 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남산골 해방
촌》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이메일(공식: namsan_hbc@daum.net, 개인:
roodbeam@gmail.com) 혹은 페이스북 페이지(http:/
/www.facebook.com/hbcproject)에 남겨 주시고요. 언제든 해방촌으로 놀러오세요. 그럼 조만간 또 뵙겠습
니다!

〈해방촌 사운드트랙〉 (이한솔, 5호)

12월: 서울(김해송)
드디어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입니다. 오늘은 오늘,
내일은 내일이라며 가는 해의 아쉬움과 새해의 부담감을 떨쳐보려 하지만 쉽
지는 않아요. 차라리 지난 열두 달을 숙연하게 마무리하기 보다는 화려한 불
빛에 맘을 맡긴 채 즐기고 싶어집니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요. 1930~4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곡가이자 가수 김해송은 일본 곡
“도쿄 랩소디”를 번안하여 “(꽃)서울”을 발표합니다. 12월에 이 곡을 추천하는
이유는 해방촌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 볼 때, 이 노래의 정서와 비슷한 감정
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과 국토가 피폐해지는 와중에도 다양한 문화들이 유입
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1930년대 종로에는 재즈가 흐르고 낭만을 찾는 젊은이
들이 모여들었다고 하죠. 그들은 ‘오색꽃 불야성’에 춤추지 않을 수 없었지만,

143
마음 한 구석엔 애써 억누른 울분을 자신조차 모르게 숨겼을 겁니다. 지금 우
리가 보는 서울의 화려한 불빛이 그와 다를까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그래
도 나는 이만큼을 가졌다고 자위하거나, 저 편의 것을 더 좇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공허해집니다. 눈부신 조명을 걷어내고 그림자에 무엇이 숨었
나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때겠죠, 연말이란.

〈한마디〉 (이한솔 외, 3호)

한마디(이한솔)
1998년 겨울, 중학교 예비소집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해방촌을 올랐고 이후
6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친한 친구를 만
나러 가는 것 외엔 해방촌의 언덕을 마주할 일이 없었죠. 경사로가 만만찮아
큰 맘 먹고 놀러 가는 동네였어요.
2012년 봄, 드디어 다시 해방촌과 친해질 이유가 생겼습니다. 바로 《남산골
해방촌》이죠. 덕분에 동네 친구가 여럿 생겼고 길 하나, 나무 한 그루도 허투
루 지나치지 않아요. 어느덧 해방촌의 봄,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을 봅니다.
내년의 풍경들도 담을 수 있도록 새로운 준비를 해야겠지요. 이제는 우리 동
네 해방촌, 2013년에도 함께할게요!

◀ 해방촌에서 나오는 길,
이제 《남산골 해방촌》과 함께
그 너머의 더 큰 세상을
보려 합니다

144
iii알 란
토
성 관찰 지
장 일
서울시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글쓴이 | 권기정

두 아이의 엄마이자 중랑구립면목정보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다. 동대문구에서 태어나고 자
라 동대문구에서 살고 있다. 육아지진아이자 워킹맘이라는 최악의 조건에서 아이를 잘 기르고
싶은 마음에 품앗이 공동육아를 결심하게 된 용감한 여자. 온 동네를 누비며 공동육아를 하자고
파닥파닥 부채질을 했던 끝에 알토란 대표를 맡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도움을 뻔뻔
하게 받으며 스스로 인복이 있다고 감탄 중이다.
글소개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알토란’이라는 꽉 찬 이름으로 2012년 6월 출발한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육아 모임이다.
2012년 10월에 우리마을 프로젝트 유형 2로 선정되었다. 2013년 8월에는 서울시 공동육아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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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서울시 동대문구

1. 땅 다지기
목마른 사람의 우물파기
타는 목마름으로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오아시스를 만나다
재능기부로 시작해

2. 씨앗 심기
알토란이 되다
아까운 여자들
우.마.프가 뭔가요?
알토란 배움터로 오세요
노는 게 제일 좋아
집밥의 힘

3. 새싹 틔우기
한 뼘 더 크기
주목받는 알토란
굿바이, 2012년

4. 뿌리 내리기
자생력을 키워요
텃밭 가자
대안은 공동육아

글을 마치며……

147
1. 땅 다지기
목마른 사람의 우물파기

복잡한 미로
끝없는 기다림

제일 중요한
일

나를 진짜
든것
어른으로 만

인내와 노력의
결정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무엇을 정의한 말들일까요? 바로 ‘육아’에 대한 알토란 엄마들의 생각그물입니다.
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엄마가 되
는 시험이 있었다면 아마 합격하기 어려울 만큼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
다. 아니, 이런 시험이 실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할 만큼 육아에 무지하고 엄마
가 될 준비가 미약했기에 막막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나 좀 도와
주면 좋을 텐데…. 하루에 1시간만이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
할까…. 나처럼 육아가 힘든 사람이 또 있을까…. 이런 생각들 끝에 저는 ‘누가’ 되
기로 했습니다. 누군가 나를 도와주기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스스로를 돕고
나처럼 힘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기로 작정한 겁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 하죠. 목마른 사람이 제대로 물을 찾는다면 그 우물에
서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한 두 명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본인의 목마름
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그 마을의 중요한 자원이자 소통공간의 역할까지 해낼 수 있
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옛날 우물은 마을 사람들이 만나 정보를 주고받
고 물자를 교환하는 생활의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우물의 물을 함께 마시는 사람은

148
한 마을의 구성원이자 믿을만한 사람이었죠. 그래서 두레패를 이뤄 공동노동을 하
서울시 동대문구

고 함께 수확하기도 했습니다. 생명의 근원인 물을 공유하는 마을 사람 전부가 아
이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키워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가
족이 기본이라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 고모, 사촌형제들 사이에서 어우러져
자라고 이웃들의 관심 속에서 클 수 있었기에 할머니들은 십남매도 거뜬하게 키워
내셨던 게지요.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든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모든 부담이 엄마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부담을 누군가가, 마을이 함께 나눠준다면 하는 생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각이 우리의 첫 삽을 뜨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엄마, 힘들어?!”
다섯 딸 난 딸아이가 묻습니다. 젖먹이 동생을 보다가 손이 모자라 책 읽어 달라
거나 간식을 달라는 큰 아이의 요구를 즉시 들어줄 수 없으면 가만 쳐다보다 묻는
말입니다. 그래, 힘들다 하고 속 시원히 말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말하자니 굳어
진 얼굴을 펴기가 힘드네요. 2011년 10월에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한 후 두
아이를 키우며 받은 육아스트레스는 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누가 집에서 애나 보
라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겁니까? 아이 둘과 씨름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
를 지경인데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책 읽어주는 시간은커녕 아이들 끼니 챙기기도
벅찬 경우가 많습니다. 막 지은 따뜻한 밥에 삼시 세끼 다른 반찬, 국을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야 다 똑같겠지만 현실은 하루 종일 같은 반찬과 국을 챙겨주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힘드냐고요? 사막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끝이 안 보이는 모래언덕, 어딜 가야
이 열기를 식힐 수 있을지 끝없는 갈증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건지 막막해서 울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
렇게 힘든 걸까? 여유가 너무 없고 아이들, 특히 큰 아이에게 할애할 시간이 절대적
으로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아직은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나이인데
동생까지 나타나자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지사. 동생보다 뭐든지 더 많이 더 먼저
달라고 떼쓰는 건 기본이고 자기도 젖 달라며 보채는 퇴행현상까지 나타나 안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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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지경이었어요.
보통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오후 1~3시에 끝납니다. 이후부터 저녁 먹는 시간
까지 딸아이와 놀아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어줄라면 젖먹이는 울
어대고, 종이접기라도 하나 할까 하면 색종이를 찢어대는 아기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5살 아이를 매일 학원에 보내 오후 시간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연령대가 연령대인지라 보낼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고 40~50분 수업
후엔 엄마가 또 다른 학원 혹은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돌도
안 된 아기를 업거나 안고 간식, 준비물 챙겨 학원에 보내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
었답니다.

오아시스를 만나다

이렇게 사막을 헤매고 있을 때 나타난 우리의 오아시스. 그곳은 둥그레 문고였습니
다. 제가 살고 있던 장안동 힐스테이트 아파트에는 작은 도서관 둥그레 문고가 있어
요. 주민들이 책을 읽거나 대여해 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윤혜경 회장님을 비롯해
순수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아름다운 곳이죠.
여기에 매주 월요일 1시간 남짓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딸아이는 이
시간을 아주 좋아했어요.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또래 친구들과 같이 놀 수 있는
즐거운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원 후에는 늘 심심했는데 즐거운 수업이 있으니 월
요일만 기다리곤 했었죠. 저도 마찬가지로 큰 아이가 수업에 들어가 있는 동안은 잠
깐이라도 집안일을 하거나 둘째 낮잠을 재우면서 꿀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 개인 사정으로 이 책읽기 시간
이 없어지게 된 거에요. 실망한 건 우리 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수업을 듣는
동네 친구들, 친구의 엄마, 할머니…. 무엇보다 저에게 청천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
거든요.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누군가 책을 읽어주고 아이들에게 유익한
수업을 해주면 좋겠는데…. 누군가 적임자가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 보니 대답은
제 안에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사서입니다. 구립도서관에서 일하고 어린이 독서수업에 대한 관심도
커서 유아 대상 프로그램을 운영한 경험이 있어요. 육아휴직으로 아이를 키우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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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도 새로운 책은 뭐가 나왔는지, 아이에게 무슨 책을 읽어줄까 하면서 동네 도서
서울시 동대문구

관을 방앗간처럼 자주 들락날락 하곤 하는 참새였죠. 제가 일하면서 했던 책 놀이
프로그램을 우리 아이에게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엄마가 내 아이를
한명을 가르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었어요. 일단 정해진 시간을 지키기가
쉽지 않고 엄마에게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 둘째가 방해공작을 펼치기 일쑤였습
니다. 둥그레 문고에서 수업을 한다면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책 놀
이 수업 준비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당장 다음 시간부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터 책 읽어주는 시간이 없어지게 생겼다고, 어떻게 아이들에게 알려주나 걱정하시
는 윤회장님께 선뜻 제가 한번 해보겠노라고 손을 들었습니다. 한 번에 오케이 하시
며 수업을 맡아달라고 하셨지만 사실 그 때 제 모습은 가관이었을 겁니다. 대강 묶
은 머리, 큰 기저귀 가방에 겨우 7개월 된 아기를 안고 5살 난 딸 손을 잡고 서 있어
누가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여자가 다른 사람을 위해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라니.

재능기부로 시작해

그렇게 둥그레 문고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아이들과 책 놀이 수업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2012년 5월부터 시작한 이 재능기부 수업이 바로 오늘날 알토란의 시초
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답니다. 그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독서수업으로 내 아이와
친구들이 한 시간이라도 즐겁게 보냈으면 했거든요. 수업시간 동안 꼬꼬마 둘째는
이모와 둥그레 문고의 자원봉사자들이 봐주시기로 했고 덕분에 홀가분하게 수업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반응도 매우 좋았답니다. 책
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친구, 덕분에 한글까지 떼는 기회가 되었다는 동네
엄마들의 말 한마디에 즐겁게 월요일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작은 재능이나마 나눌
기회가 생겨서 정말 기분이 좋았고 내 아이와 그 친구들을 위한 시간을 마련할 수
있어 금상첨화였습니다.
수업을 진행해 나가며 긍정적인 반응을 많이 얻고, 이런 수업이 또 있었으면 좋
겠다는 말들을 듣게 되자 품앗이 수업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
럽게 공동육아에 대한 관심도 커지기 시작했어요. 첫째를 키우면서 공동육아 어린
이집에 보냈으면 했는데 동대문구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한 곳도 없어 아쉬웠던

151
기억이 있었거든요.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부모가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장점들을 익히 들어와서 우리
동네에도 생겼으면 했습니다. 둘째아이를 낳고 더 나은 보육에 대한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동육아로 눈이 가게 되었어요. 요즘 어린이집에 대한 말들이 많
죠. 뉴스에 안 좋은 소식이 날 때마다 부모 입장에서 가슴이 두근거린 적이 한 두 번
이 아닙니다. 단순히 어린이집이 못미더워서만은 아니에요.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시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더 나
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엄마의 바람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특히
유아기의 양육환경과 주 양육자가 한 사람의 일생에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크다는 점에 매우 공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주변에서 공동육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동대문구
에서 태어나 자란 저는 친구들이며 동창, 선후배 모두 동네 사람들이었거든요. 비
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며 평소에도 육아에 대한 정보들을 주고받던 이웃들에게
도 의견을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육아 문제를 고민하고 있
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같이 수다라도 떨까 하며 집에서, 놀이터에서 만나기를 거듭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모임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끼
리 ‘공동육아’라는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만나게 된 겁니다.

2. 씨앗 심기
알토란이 되다

2012년 6월 19일 / 알토란 성장 관찰일지

이제부터 우리의 이름은 알토란!!
껍질을 벗긴 토란은 동글동글하고 알차게 보인다. 그래서 알토란이라고 하면
아주 튼튼하고 실속 있는 것의 비유로 쓰인다. 옹골차고 여럿가운데 표본이
되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동글동글한 뿌리가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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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 있는 모습이 무척 귀여워 마치 우리 아이들 같은 느낌이 들어 이름을 정
서울시 동대문구

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알토란처럼 실하게 크기를 바라고 또 서로 얽혀 기대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컸으면 하는 부모들의 희망이 담긴 이름이란 걸 모두 알아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는 기분으로 이름까지 정했으니 정말 잘해봐야지.
철이 들고 나서는 화분을 하나 심는 것에도 버거워했던 나였는데 이렇게 모임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까지 만들게 되다니 부모라는 이름 아래 정말 용감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농사 프로젝트 알토란 시작!!

모임 이름을 만들자 괜히 좀 더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고민부터 생기더라
고요. 그리고 좀 더 많은 분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 동대문구청에 공동육아에 대한
교육을 신청했습니다. 구청의 협조로 2012년 8월 31일에 찾아가는 주민설명회를
열 수 있었죠. 주로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둥그레 문고에서 진행되었
습니다.
마을공동체의 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성미산 마을에서 무지개 육아사랑방을
운영하셨던 정영화 강사님을 모셨습니다.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라는 주제로 육아
사랑방을 하시며 겪었던 일들과 공동육아의 개념부터 찬찬히 짚어주셨어요. 공동
육아의 추진배경, 장점과 조심해야 할 점, 시작하기 위한 절차와 방법에 대하여 강
의를 들었습니다. 공동육아를 미리 해 본 선배엄마의 경험담과 더불어 생생한 현장
의 이야기를 들으니 구상 중이던 생각들의 실현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그 날의 가장 큰 성과는 공동육아에 관심 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는 겁니다. 주변 아파트에 공고하고 지인을 통해 동네 분들에게 강의를 홍보하긴 했
지만 사람들이 많이 올까 기대 반 걱정 반이었거든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놀랐고 그 분들 가운데는 초등학교 동창, 엄마 친구 딸 등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는
분들이 꽤 되었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줄 생각도 못했던 사람
들이 강의를 듣고 궁금한 점을 서로 물어보며 연락처까지 주고받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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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운 여자들

“자신의 장점을 이야기해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겠습니까?”
공동육아 교육을 받던 중 정영화 강사님이 이렇게 질문했을 때 선뜻 대답한 사람
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서른 명이 넘는 엄마들이 강의를 듣고 있었지만 말이에
요. 그러다 한 두 사람씩 장점들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음, 이 친구는 손재주가 좋아요. 이분은 음식솜씨가 최고에요. 네, 바로 옆 사람
이나 아는 분을 칭찬하는 거였어요. 결국 강사님의 제안으로 의무적으로 한 개씩 자
기 자랑을 하기로 했습니다. 전 김치를 잘 담궈요. 다이어트는 자신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꼭 필요한 장점부터 깨알 같은 자랑들이 쏟아져 나오더군요. 머리핀이나 리
본을 직접 만드시는 분, 손수 만드는 쿠키가 수준급이라는 분부터 미대에서 공예를
전공하신 분, 각종 자격증 있으신 분들 등 다양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다들 장점이
없는 사람들이어서라기 보다 평소 장점을 펼칠 기회가 많지 않았거나 쑥스러워서
말씀을 못하신 거 같았어요. 정말 아까운 사람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엄마들의 재능기부를 기본으로 한 품앗이 수업을 기획한 건 이렇게 엄마들의 아
까운 재능을 살려보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출산과 육아로 직
장을 그만두었지만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충분한 분들이 많았거든요. 보육
교사, 초등학교 교사 등 선생님이시거나 미술, 음악 등 특화과목을 전공하신 분들
은 경험도 매우 풍부하셨습니다. 또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가르칠 수 있다거나 우는
아이를 누구보다 잘 달래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도 계셨어요.
품앗이 수업을 기획하며 우리들은 서로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게 되었고 무엇보
다 스스로에 대해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출산과 육아
를 포함한 가사노동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경제적 손실은 일인당 4억 7천만
원이고 사회 전체로는 60조 원에 이른다죠. 개인의 손해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2012년 한해에 출산과 육아로 인해 일을 그만둔 여성이
417만 명으로, 일할 수 있는 여성인구의 21퍼센트나 된다고 합니다. 경력 단절로 인
한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을 1퍼센트 끌어올리면, 일인당 국민소득이 1퍼센트 증가
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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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닌 육아의 어려움 때문입니다.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없는 현실이 출산율
서울시 동대문구

을 떨어뜨리고 아까운 여성 인재의 활용을 막고 있는 거죠. 공동육아의 필요성을 다
시 한 번 절감하며 마을과 사회가 육아의 짐을 나눠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마.프가 뭔가요?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그런데 때마침 그 즈음 서울시에서는 재미있는 일을 시작했어요. ‘우리마을 프로젝
트’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말입니다. 마을공동체라는 말도 처음 접하게 되었죠. 주민
의 자발적인 참여와 필요에 따른 마을공동체 형성을 지원한다는 취지가 우리와 딱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이었죠. 마을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고 싶어 누가 모이자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모임을 이뤄 알토란이라는 씨앗을 심은 상태였으니까요. 옆집 친
구랑 신나게 놀 수 있고 우리 동네 아저씨를 보고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고 아랫집
동생한테 옷도 물려줄 수 있는 그런 마을을 만들고 싶은 우리를 알아봐줄까 반신반
의하며 ‘우리마을 프로젝트’에 지원서를 내기로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는
회의로는 부족해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지원서를 써 내려갔죠. 2012년 9월 5일
까지 서류를 제출하기로 마음먹고 우리의 생각을 다듬는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생각들, 회의 내용들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매우 의
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그동안의 만남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어 좋았고 무엇
보다 우리의 공통적인 육아가치관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 공동육아를
하고 싶은지, 어떤 기준으로 우리의 생각을 실천할 것인지 문서화 하는 기회를 갖게
된 거죠.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일을 진행한다는 것도 고무적이었습니다. 씨
앗을 겨우 심은 우리가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뭔가 계기가 필요했거든요.
사업제안 주민모임 소개서를 쓰며 우리의 설립목적과 사업신청취지를 정리해 보
았습니다.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은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육아를 목표로 올바른 인
성교육이 목적입니다. 육아를 한 개인 혹은 가정의 책임이 아닌 함께 연구할 대상
으로 정하여 가족과 사회가 함께 손잡고 미래의 주인공들을 알차게 키워나가려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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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그 실현방법으로 육아 품앗이를 선택하여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해소하고 이
웃과 즐겁게 아이들을 돌보며 창의적인 보육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부모가 ‘내 아
이’와 ‘남의 아이’의 경계를 허물고 공동육아에 참여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삶이 아
름답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서류를 내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주민 모임 대표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어요. 네,
제가 제일 급했거든요. 육아휴직 중이긴 했지만 내년 초에 복직할 예정이었고 더 나
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저를 과감하게 만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마을 프로젝트 지원하셨죠?!”
“네? 뭐라고요?”
“우.마.프!! 우리마을 프로젝트요.”
“아, 맞아요.”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의 전화를 받고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현
장조사와 면접을 거쳐 드디어 9월에 협약식을 하게 되었어요.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에서 아이를 키워보겠다는 우리의 뜻은 우리마을 프로젝트
협약과 더불어 서울시의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알토란배움터로 오세요

누군가에게 지원을 받는다는 것, 정말 든든한 일이더군요. 모임을 만들고 정기적으
로 회의를 해가며 품앗이 수업을 기획하던 우리에게 우리마을프로젝트는 마치 제트
엔진을 달아준 격이었습니다. 이왕 하려던 사업을 더 신나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사업계획서를 내고 면접까지 거친 후라 무척 인정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서
울시가 우리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 준다고 생각하니 사업 진도가 빨리 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품앗이 수업은 ‘알토란 배움터’란 이름을 달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개의 수업
을 정하여 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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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대문구

알토란배움터
하나. 엄마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만들어가는 수업입니다.
둘. 각 요일마다 협동심과 창의력을 기르는 특화된 수업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셋. 엄마들이 만들어, 최소한의 비용으로 우리 아이들이 함께 놀며 공부할 수
있습니다.
넷. 10월 한달간 재료비, 교육비 전액 무료로 진행됩니다.

소
개

수

목

금

〈전래놀이〉

〈국악〉

〈미술〉

〈요리〉

사서선생님과
함께 하는
책 놀이터

하늘땅
전래놀이

신바람
사물놀이

꼬마 피카소

몸 튼튼 마음 튼튼
유기농 쿠킹

권기정
강
사

화

〈독서〉
과
목

월

홍승현

박경자

권정연

김지선

구립도서관 사서

방송작가

국립국악원수료
2011년 서울시장배
사물놀이 대상수상

미술실기교사
보육교사 1급 및
방과 후 교실 교사

보육교사 1급

다 같이 놀자!!
전래놀이·동요를
배우며
협동심과 지혜를
키우고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요.

리듬감,박자감 팡팡!!
우리 전통악기를
배우고 협주해요.
타악기 연주로 스트레
스는 저 멀리로,
자신감은 내 안으로!!

다양한 미술활동으로
창의성을 키우고
명화감상을 통해
정서발달에 도움을
주는 감성개발 종합
선물세트!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요
일

오감자극, 두뇌개발!
요리하며 집중력과
성취감을 얻고 바른
먹거리로 식습관
교정도 도와줘요.

주제에 맞게
선정한
동화를 듣고
이해력 쏙쏙,
재미있는 독후
활동으로
사고력도
쑥쑥!!

※모든 식재료는 한살림
을 비롯한 유기농재료로
만 공급합니다.

인
원

10명

10명

10명

10명

10명

시
간

오후 4시

오후 4시

오후 4시

오후 4시

오후 4시

약속해주세요
- 프로그램 내용은 사정상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수업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해주세요.
- 접수 후 참가해 주세요.(우리 아이들의 안전과 교육의 질을 위해 10명 정원
을 원칙으로 합니다. 꼭 접수 후에 오세요.)

157
품앗이 육아모임 〈알토란〉이란??
“우리 아이 어떻게 키울까?” 고민 많으시죠!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육아, 올바른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한 창의적인
육아가 필요한 지금!
공동육아 모임 〈알토란〉은, 이웃과 즐겁게 자녀를 돌보는 육아 품앗이를 목적
으로 태어났습니다. 〈알토란〉과 함께 ‘내 아이’와 ‘남의 아이’의 경계가 없는 육
아와 교육환경을 만들어 봐요!

10월부터 품앗이 수업을 시작하며 주변 아파트에 공고를 붙였습니다. 반신반의
하며 아이들이 얼마나 올까 걱정도 했고요. 그런데 접수 10분 만에 모든 수업이 마
감되었답니다. 하루도 아니고 단 10분 만에 마감되어 많은 친구들이 아쉬워하고 대
기자에 이름을 올려놓았을 정도였어요. 전액 무료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나? 아니면
내가 하는 수업에 대한 기대가 이 정도인가? 품앗이를 맡은 엄마들은 책임감에 가
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걱정도 해가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그럼 우리도 알토란 배움터로 가 볼까요?!
월요일은 독서수업으로 제가 진행하는 ‘사서와 함께하는 책 놀이터’입니다. 한 달
마다 주제를 가지고 일주일에 두 권씩 총 여덟 권의 동화를 선정하여 읽어주고 어울
리는 독후활동을 하는 시간이에요. 독후활동은 주로 연관된 만들기나 창의적인 꾸
미기를 하는 편이에요. 아이들이 책을 읽고 난 후 느끼거나 새로 익힌 내용을 독후
활동으로 확인 해 볼 수 있고 즐겁게 책읽기를 기대할 수 있어 좋아한답니다. 네 살
이었던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면서 간단하게 자신의 의견 말하기도 많이 하고 있어
요. 책 내용에 대한 단순한 질문과 답이 아닌 주인공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결말이 아니라 다른 결말이라면 어떨까 하고 친구들과 토론하기도 합니다.
사실 아이들보다도 준비하는 제가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책 읽기를 좋아하고
꼬물꼬물 만들기를 좋아하는 제가 아이들과 눈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라 준비 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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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  서와 함께 하는
사
책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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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은 언제나 친구들이 넘치는 가장 인기 있는 전래놀이 시간이에요. ‘하늘땅
전래놀이’라는 수업 이름처럼 온몸으로 움직이고 느낄 수 있는 놀이시간이라 아이
들이 가장 신나합니다. 대문놀이, 투호놀이, 윷놀이 등 옛날부터 해왔던 고유의 놀
이부터 우리가 어릴 때 놀이터에서 했던 놀이들까지 골고루 하고 있습니다. 그저 또
래 아이들과 땀 흘리며 노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전래 놀이는 굉장
히 많은 장점이 있어 함께 수업해나가는 선생님도 놀란답니다. 여러 명이 함께 하는
놀이라 협동심이 길러지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역시 자연스럽게 몸에 익힐 수 있죠.
규칙을 정하고 역할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리더십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고도 합
니다. 이런 과정들이 친구들과 놀면서 이루어진다니 그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한꺼
번에 잡는 격이죠. 엉덩이 들썩들썩, 가만히 앉아있기 힘든 유아들에게 딱 맞는 수
업이라 수업이 끝나고 나면 친구들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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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사물놀이는 수요일에 만나요. 사물놀이의 시작은 장구라 유아 사이즈에 맞는 장
구를 배우고 있습니다. 국립국악원을 수료하신 할머니 선생님께서 정성스럽게 가
르쳐주세요. 흥겨운 우리 가락으로 리듬감을 익히고 타악기를 연주하며 평소 쓰지
않던 근육들을 움직일 수 있어 두뇌 발달에 좋답니다. 요즘은 영유아 스트레스가 심
각하다고 하는데 사물놀이는 무엇보다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해요. 덩
더더 쿵딱, 아이들이 어떻게 치나 듣고 있다 보면 저도 모르고 얼쑤~ 추임새를 넣
게 되고 함께 듣던 언니, 오빠들도 한번 쳐 보고 싶다며 창가에 매달리게 되는 수업
이랍니다.

꼬마 피카소들과 함께 하는 미술
시간은 목요일이에요. 미술을 전공
한 정빈 엄마, 권정연 선생님이 다양
한 재료와 기법으로 함께 하고 있습
니다. 취학 전 아이들에게 미술활동
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표현의 통
로이자 놀이라고 생각해요.
엄마표 미술시간의 특징은 아이들
의 표현이 최대한 존중받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멋지게 작품을 완성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 눈으로 보고 아이 손으로 표현 해내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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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요. 사물을 관찰하고 직접 만져보며 그리는 유아 정물화, 점토를 이용한 공예, 오
감을 이용한 만들기 수업, 명화를 감상하고 화가에 대해 알아보는 명화 따라잡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금요일은 몸 튼튼 마음 튼튼 유기농 쿠킹 시간입니다. 모든 식재료는 우리 땅에
서 난 유기농 재료만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재료들을 직접 만지고 손질하며 오감을
발달시키고 수 개념과 창의력을 길러
주기 좋은 시간이랍니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성취감까지 주
는 수업이라 아이들의 호응이 남달랐
어요. 내가 만든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말하며 오늘 만든 걸 누구와
나눠 먹을까 고민하는 친구들의 모습
을 볼 때면 재료 준비의 번거로움도 싹
잊게 되는 마법같은 시간입니다.

10월 한 달 동안은 전액 무료로 수업
을 진행했어요. 재료비도 전혀 받지 않
고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욕심껏 수업을 신청해놓고 안 오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어
요. 소규모 수업이라 한명만 비어도 빈자리가 큰 데다 미술, 요리처럼 재료를 미리
준비해 놓은 수업은 더더욱 안타까웠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의 기회를 앗아
간 거 같아 정말 미안했어요. 수업 마감이 빨랐던 만큼 대기했던 친구들도 많았고
수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던 아이들이 많았는데 말입니다.
결국 우리는 소정의 재료비를 받고 책임감을 부여하기로 했어요. 알토란배움터
의 강사료는 없이 재능기부를 하되 재료비는 본인 부담으로 하여 무책임하게 수업
에 빠지는 경우를 방지하고 낭비되는 재료로 없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정식으로 11~12월 수강신청을 받게 되었죠.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두 달
에 한 번씩 신청을 받아 배움터를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수업은 주 1회, 월 4회
를 기본으로 하고 한번 신청하면 8회 수업을 듣도록 했어요. 재료비 책정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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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습니다. 어느 선이어야 적절한지, 실질적으로 무리 없이
서울시 동대문구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컸답니다. 우선 우리 동네 학원이나 문화센터의
수강료들을 알아보고 비교해보는 정보 수집을 기본으로 했고요. 다음으로 10월에
수업을 들었던 분들의 의견을 여쭈어 봤습니다. 또, 실제 공부방이나 방과 후 수업
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조언을 참고하기도 했어요. 회의 하는 동안 선생님 입장이었
다가, 학부모 입장이었다가, 또 배움터 운영진의 입장이었다가 하면서 머리를 모은
끝에 결정했어요.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독서와 전래놀이 수업은 월 1만 원, 사물놀이는 2만 원, 실 재료비가 많이 드는
미술과 요리수업은 3만 원씩 책정했습니다. 재료비를 부담하고도 수업을 들으러 올
까 하는 걱정이 머리를 들기도 전에 11~12월 수업신청도 마감되었어요.
알토란 배움터의 수업대상인 4~6세 유아들은 학원에 보내자니 손이 많이 갈 나
이이고 오후시간을 집에서만 보내기엔 무료한 연령이에요.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
면서도 스펀지 같은 아이들을 위해 알찬 수업이 필요하기에 엄마표 품앗이 수업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아이가 수업을 듣는데 허술하게 준비하는 엄마
는 없으니까요. 알토란배움터가 인기 있는 이유는 아마 이런 엄마 마음을 다들 알아
주시기 때문인 거 같아요.

●인터뷰 | 윤혜경 둥그레문고 회장님

결국 아이들은 모두 부모를 닮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 사이에 무슨 인터뷰냐며 웃음 짓던 윤해경 회장님. 막상 질문에 들어가
니 진지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권기정 : 저희의 첫 만남 기억하세요?
윤해경 : 기정씨가 재능기부 하겠다고 했던
날이었을 거야. 애기 업고 와서 독서 수업하겠
다고 했던 게 벌써 1년도 넘었네.
권기정 : 그게 우리들의 시작이었죠. 그 수업
을 계기로 공동육아가 시작된 건데요. 회장님
이야말로 저희의 탄생을 처음부터 봐주신 분

163
이라고 생각해요.
윤해경: 나도 같이 시작한거지 뭐, 그 수업하면서 문고가 좀 더 활성화 되었으
면 한 거니까.
권기정 : 그렇게 공동육아랑 배움터하면서 저희가 수업 공간을 많이 쓰게 되
었는데, 사실 반대하셨던 분도 있다고 알고 있거든요?
윤해경: 아무래도 여러 사람 들락날락 한다고 어르신들이 못 마땅해 하시는
편이지. 왜 아이들에게만 특혜를 주냐고 생각하는 주민들도 있고, 무엇보다
기정씨가 아파트 주택 상관없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 모두 참가해도 좋다고
한 게 좀 걸리는 거지. 근데 이런 분들도 열심히 하니까 많이 조용해졌어. 여
기저기서 취재도 오고 아파트 이름으로 기사도 많이 나갔잖아.
권기정 :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희에게 공간을 내주신 이유가 있을까요?
윤해경: 우선 취지가 정말 좋았고 자기네가 열심히 하니까. 우리가 같이 하면
시너지 효과가 많이 났잖아. 행사도 같이 하니까 즐겁고….
권기정 : 저희랑 회의도 가끔 같이 하시잖아요. 저희의 공동육아의 목표인 인
성교육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해경: 이건 답을 알고 하는 질문 같은데~~ (웃음) 일단 너무 이른 선행교육
이나 사교육은 별로라는데 동의하고, 아이들마다 다른 재능이 있으니까 그걸
잘 발견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부모도
욕심이 있고 또 아이가 잘했으면 하는 마음도 계속 생기니까…. 더 키워봐. 쉽
지 않다니까….
권기정 : 앞으로 저희 알토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윤해경: 바라는 점이라기 보다는 지금 모습을 잘 유지하고 발전해나갔으면 하
는 거야. 난 자기네가 좋은 이유 중의 하나가 너무 무리하지 않는 거. 할 수 있
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은 거 같아. 사실 요즘 엄마들 너무 무리하거
든. 아이들은 결국 부모들을 닮게 되어 있는데…. 엄마들이 즐겁고 행복해야
지. 아이들도 같이 행복하지. 난 그게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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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게 제일 좋아

서울시 동대문구

배움터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주로 놀이터에 갑니다. 1시간 남짓의 수업시간만으
로는 아쉬운지 동네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은 가 봐요. 저 어릴 때는 엄마가 밥 먹자
고 부르러 올 때까지 항상 놀이터에 있었던 거 같은데, 사실 엄마가 되고 보니 매일
놀이터에 나오기도 간단치 않았습니다. 아기 기저귀가방 챙기랴, 마실 물이랑 간식
등 챙겨야 할 것도 많았고 큰아이가 미끄럼틀 탈 동안 기어코 따라 타겠다는 18개월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동생 따라다니기에 지쳐 놀이터를 외면할 때가 많았던 불량 엄마였어요. 그런데 알
토란 친구들과 함께 가면 오히려 놀이터 나들이가 여유로워집니다. 꼬마 동생들까
지 의젓하게 챙겨주는 언니, 오빠들이 많아 아이를 따라 다니기보다 지켜볼 수 있게
해주거든요. 친구들과 노는 아이들은 엄마에게 떼쓰기를 그만 두고 놀이에 집중합
니다.
사실 아이들이 가장 행복해 하는 시간은 바로 이렇게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
는 시간이었어요.

집밥의 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놀다 보면 어느새 6시 가까이 되어 저녁 먹을 시간이
되요. 엄마들이 돌아가며 차려 놓은 밥상이 우릴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집으로 가야
겠죠? 공동육아를 결심하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간이었어요. 수업과 돌
봄은 주로 둥그레 문고에서 했지만 밥을 먹으려면 당연히 부엌이 있는 어딘가로 가
야할 테니 말입니다. 다행히 정빈이네 집이 개방을 약속해서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죠. 엄마들은 돌아가며 식사당번과 저녁 설거지 당번을 정했습
니다. 식단은 동대문구 보육정보센터에서 제공되는 유아용 식단과 엄마가 선택하
고 아이들이 선호하는 반찬들을 참고하여 만들었어요.
음식이 결국 그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성품이 달
라진다는 말을 저는 믿어요. 알토란 엄마들이 공동육아에 대해 의논하며 가장 먼저
뜻을 모은 것은 바로 유기농 식단입니다. 유아시기인 우리 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건 건강한 먹거리라고 생각해요.

165
우리 땅에서 제때에 키운 제철 식재료로 정성들여 요리한 음식을 먹고 큰 아이
는 반드시 바르게 자란다는 게 우리의 신념입니다. 매일 매일 갓 지은 잡곡밥에 엄
마 손으로 만든 균형 있는 반찬을 먹게 해준다는 건 알토란 공동육아의 큰 목표 중
하나였어요. 말이 쉽지 혼자서는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라는 거 엄마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살림하면서 매일 다른 반찬에 갓 지은 밥을 내놓기가 어디 쉬운가요. 아이
에게 가능하면 인스턴트 음식 안 먹이려고 노력하지만 피곤하니까, 밥 차릴 시간이
없어서 등등 이유를 대며 반 조리식품으로 요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식재료가 없
거나 양을 조절하기 어려워 아예 배달음식 시켜먹거나 외식 해버리는 경우도 생기
죠. 이렇게 저녁을 제대로 먹이기는 보통 정성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엄마들은 우리의 믿음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아이들의 간식과 반찬을 함께 만들며 내가 모르
는 레시피를 공유하고 우리 아이의 식습관과 영양 상태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답니다.
건강을 위해 선택한 ‘집밥’의 장점은 한 가지가 아니었어요.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온 식구가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대화 속
에서 인성을 키우는 시간인데
요, 사실 저희 집만 해도 주중
에 아빠와 저녁을 함께 먹는 시
간은 거의 없었어요. 엄마인 저
는 애들 밥 챙기고 설거지, 부
엌일에 바빠 여유 있게 대화를
할 육체적, 심적 여유가 부족
한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다함
께 밥을 먹으면서 드디어 밥상
머리 교육을 실천할 기회가 온
겁니다. 혼자 있을 때는 떠먹여
줘야 겨우 밥을 먹는 아이, 편
식하는 아이, 돌아다니며 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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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등 생활 습관이 바르게 잡히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우선 밥상에 잘 앉아
서울시 동대문구

있는 습관부터 바로 잡히기 시작했어요. 밥 먹기 전에 꼭 손을 씻고 밥 먹고 나서는
자기 식판은 스스로 옮기기 등 아이들의 달라진 모습에 저부터 깜짝 놀랐답니다. 사
소한 습관이지만 집에서는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었거든요.
밥을 먹으며 오늘 수업했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거나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
친구들과의 일상을 이야기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가 저렇게 말이 많았나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었는지, 내가 얼마나 못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들어줬었는지 새삼스레 반성할 수 있는 계기였어요.
하버드대 캐서린 스노우 연구 결과 만 3세 어린이가 책을 통해 배우는 단어는
140개, 가족식사를 통해서 배우는 단어는 1,000개라고 합니다. 유치원 시기의 풍부
한 어휘는 고등학교 시기의 이해력과 관련이 높다고 하네요. 어릴 때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제대로 한다면 입시용 사교육에 대한 부담까지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
았습니다.
가족은 함께 밥 먹는 사람이라 식구(食口)라고 하죠. 밥을 먹으며 정든다는 말처
럼 우리도 따뜻한 집밥을 통해 유대감을 쌓아가며 한 식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3. 새싹 틔우기
한 뼘 더 크기

알토란은 매주 목요일 저녁 회의를 했어요. 공동육아를 진행하고 배움터를 운영하
다보니 공유해야 사항이 많아지고 의견을 물어야 할 일이 점점 늘어났기에 주 1회
회의를 원칙으로 회의날짜를 잡은 겁니다. 시간은 저녁 먹고 난 후, 가능한 부모가
모두 참석하여 회의를 하기로 했어요.
현황을 점검하고 계획을 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회의록을 작성하도록 하고 의
사를 결정할 때에는 1인 1표를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우리의 회
의록을 한번 공유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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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란 회의록
회의일시

2012년 10월 18일

작성자

회의안건

권기정

1. 공동육아 시 놀이 주권 다툼
2. 알토란 배움터 수업현황

내용
1. 아이들의 관계형성에 대한 고민하기
: 어른들과 다르게 아이들에게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시
간적 여유가 필요함
혹시 폭력을 행사하거나 나쁜 언어 사용 시 따끔한 훈계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
아이들마다 특성이 매우 다르므로 조심스러운 관찰 및 적
절한 개입 필요
2. 알토란 배움터 수업일지 모두 공유하기
11~12월 알토란 배움터 모집 전단지 제작하기
(배포방식 및 배포인원 고민하기)
게시판 활용 홍보계획 세우기
등록기간 및 방식 결정하기

◎ 어떤 행동이 잘못된 것
인지, 잘못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평한 규칙 수립의 필요
성 절감
◎ 아이들 개인 물건 가져
오도록 하여 개별영역 확
보해주기

내용

회의내용

비고

진행일정
10월 19일

11~12월 알토란 배움터 모집 예정
:선착순 방문접수 (둥그레문고)

10월 23~24일

아이들 각자의 장난감 및 여벌 옷 가져오기

결정사항

알토란배움터 홍보 전단지 게시판 부착
: 장안힐스테이트아파트 전 동 엘리베이터
내 게시판 활용

10월 19일

2012년 10월 18일의 회의록입니다. (부분 발췌) 회의 안건 가운데 첫 번째는 바
로 아이들 간의 갈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놀이의 주도권에 대한 다툼이 주 내용
이었죠. 사실 전 그 무렵 속상한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나 정말 가슴이 찢어지
는 거 같다”로 시작한 알토란 엄마의 마음 아픈 이야기. 다른 아이들이 한 아이를 때
리고 괴롭혀 그 아이가 힘들어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이가 가장 많지만 워낙 점

168
잖고 착한 아이라 동생들이 귀찮게 해도 참고 넘어간 것이 문제였을까요? 아이들이
서울시 동대문구

모여 있으니 다툼이 생기기 마련일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보이니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공동육아를 너무 쉽게 생각했었던 건 아닐까 후회가 밀려오
고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어요. 4~6세 아이들은 자기주장은 할 줄 알아도 사
고력과 분별력은 그에 못 미치는 나이라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럭비공 같은 시기라고
하더니 바로 럭비공에 제대로 맞은 거 같았답니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을 아이와 엄마의 심정에 100퍼센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트 공감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정식으로 회의 안건에 올려 해결책을 마련해 보기로
하고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함께 고민하면서 어른들의 잘못이 크다는 반성부터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어른
들은 몇 개월 전부터 모임을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만큼 여
유를 주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번 안면이 있는 상태에서 저
녁까지 함께 있는 생활을 시작하다보니 아무래도 어색한 면이 있고 친해지는 데까
지 시간이 걸리는 걸릴 테니 말이에요.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적응 기간을 거쳐야 했
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며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
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 원인의 하나가 아니었나 싶더군요. 저녁을
먹고 나서 자유 놀이 시간을 길게 둔 것 역시 지적되었습니다. 식사 후 설거지며 청
소 시간 등으로 당번 엄마들이 바쁜 틈을 타 아이들끼리만 있는 시간에 주로 다툼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정답은 없겠지만 우리는 몇 가지 합의점을 찾아냈습니다. 먼저 아이들 각자의 영
역 확보에 나섰어요. 자신의 장난감과 간단한 소지품을 가지고 와서 낯선 환경과 친
해질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하는 겁니다. 다음으로 우리들의 ‘원칙’을 정하기로 했
습니다. 어떤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잘못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평한 규칙을 수립해 놓는 것이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납득하기 쉬울 거 같았어
요. 아이들은 이런 원칙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자신과 관련한 원칙을 세우고 지키
는 것을 자신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는군요. 몸과 마음을 조절하는 힘을 기르
고 있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일관성 있게 지키기로 결정했
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지켜봐주기’라고 마무리했어요. 조금
더 느긋하게 기다려주고 아이들을 믿기로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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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란 회의록
회의일시

2012년 10월 25일

작성자

회의안건

권기정

1. 저녁식사 후 프로그램 고민
2. 알토란 배움터 수업현황

내용

회의내용

1. 저녁식사 후 독서 프로그램 강화
: 책 읽어주기, 영어책 듣고 따라하기, 영어골든벨 게임, 빙
고 등 저녁 프로그램을 고민
역할분담을 잘 하여 저녁 시간 활용하기
2. 10월 알토란 배움터 수업 31일 끝남
11~12월은 11월 5일부터 수업시작
(선착순 신청 마감 완료)
11~12월 수업준비, 수업안 제출
(이메일로 제출하기)

비고

◎ 11~12월 수업
신청자에게 등록확인
및 안내 문자 보내기

내용

진행일정

특이사항

10월 29일부터

11~12월 알토란 배움터 수업시작
: 장소 - 둥그레 문고
시간 - 오후 4시~5시

결정사항

공동육아 저녁프로그램
: 월 - 영어책 읽고 CD듣기
수 - 책읽어주기
금 - 영어 골든벨

11월 5일~12월 28일

아이들 각자 개별 영역 확보한 후 사이가 많이 좋아지고 있는 중

10월 25일 회의록의 주요 안건도 아이들의 다툼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저녁 시간
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서로 더 잘 알게 되는 기회를 주고 싶어 ‘부엉부엉’이
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월요일에는 블록, 화요일과 목요일은 자유놀이,
수요일은 게임, 금요일은 영어책을 읽어주기로 시간표를 그렸습니다. 자유놀이 시
간에는 아이들이 다투지 않도록 유도하고 놀이 및 프로그램 끝나면 스스로 정리하
는 습관 길러주기로 했어요.

170
정식 회의록에 기록된 것은 간단하지만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까지 엄마들은 틈
서울시 동대문구

틈이 이야기하고 몇 번이나 전화와 메시지로 의견을 주고받고 고민해가며 많은 시
간을 보냈답니다. 공동육아란 내 아이만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를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답니다. 사실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보면 다툼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죠. 당연히 싸움과 의견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어야 했는데 좋은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점만 생각했던 것이 착오였습니다. 다행인 것은 엄마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솔직하
게 의견을 나누었다는 점이에요. 그것이 문제해결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
로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알토란이 유지되기 힘들었을 테니 말이에요.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하죠. 친구와의 관계 형성에 있어 약간의 다툼과 트러
블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화해와 용서를 배우고 진정한
우정을 얻으려면 다툼 역시 필수 요소가 아닐까요?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서로
존중할 줄 알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세상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
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아프지만 그만큼 알차게 자라나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지
켜보기로 마음먹었어요.
또한 처음에 생각했던 공동육아의 목표에 대하여 조율하는 좋은 터닝 포인트였
습니다. 느슨해질 수도 있는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 더 노력하기
위한 이유가 되어 주었어요. 내 아이 뿐만 아니라 이웃의 아이, 우리 마을의 아이,
결국에는 이 사회 전체의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커야 내 아이도 행복해 질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이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답니다.

주목받는 알토란

2012년 11월 20일 / 알토란 관찰일지
함께 공동육아를 하는 현우 엄마가 저녁을 먹던 중 지나가는 말처럼 묻는다.
“우리 공동육아 하는 거 취재하러 온대. 괜찮아?”
현우아빠네 회사에서 마침 공동육아를 주제로 짧게 뉴스를 만든다고 한다.

171
(현우 엄마는 방송작가, 아빠는 PD로 일하고 있다.)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하며 좋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핸드폰에 날아든
문자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MBC 뉴스데스크에서 취재 온다고? TV에
나오는 그 MBC 뉴스데스크?! 뜨아~
이거였어?! 난 케이블 프로그램에 잠깐 나오는 건 줄 알고 쉽게 생각한건데
~~ 뭘 준비해야 되지?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되나?
고민은 잠시. 그래.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데 뭐 어려울라고.
평소처럼 수업준비를 하고 취재에 응하기로 했다. 유기농 쿠킹이 있는 금요일
에 오신다고 해서 품앗이 수업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초상권에 대한 동의 여부
를 묻고 협조를 요청했는데, 다들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뉴스데스크 앵커인 양승은 아나운서와 취재진이 오면서 촬영이 시작
되자 살짝 긴장했던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웃고 떠들기 바쁘다.
오늘의 요리 수업은 유기농 현미 김밥 만들기.
예쁜 아나운서 언니 옆에서 만들겠다고 자리를 지키는 친구부터 김밥 옆구리
가 터졌다고 떼를 써서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친구까지 수업이 진행될수
록 취재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리고 인터뷰 시작. 품앗이 수업
의 취지부터 공동육아의 목표까지 다양한 질문들을 대답하고 무사히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역시 평소대
로 하는 게 최고야 하며 흐뭇
해했는데…. 너~무 평소 모습
그대로인 나를 발견하고야 말
았다. 화장이라도 좀 할 걸 그
랬나?!

2012년 12월 2일 일요일, 9시 경부터 갑자기 핸드폰에 문자들이 다다다 오기 시작
했습니다. 공중파 뉴스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고 해야 할까요. 아는 사람의 얼
굴을 뉴스에서 본 지인들의 궁금증 섞인 안부인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정작 저는
볼일이 있어 정규 방송을 챙겨보지 못한 터라 우선 뉴스부터 다시 보기로 했어요.

172
꽤 오랜 시간 촬영하고 인터뷰도 다양하게 했는데, 편집의 힘은 정말 놀라웠습니
서울시 동대문구

다. 제 인터뷰는 딱 한마디.
“저희가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지원금을 받고 있고요. 총 480만 원, 한
달에 160만 원 받고 있습니다.”
우리마을 프로젝트에서 받는 지원 금액만 나왔어요. 이 말 때문에 오해를 하는
분들이 생길까 걱정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원금으로 뭐 하냐 수준이 아니라 너
희 월급으로 쓰는 거 아니냐 하는 얼토당토 안 되는 말까지 듣자 기분이 좀 상하더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라고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봐 주시는 분들 역시 많았고 격려해주시는 분들의 따뜻
한 시선 덕분에 훌훌 털어낼 수 있었어요.
《MBC》를 시작으로 알토란은 꽤 많은 언론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답니다. 동대문
구에서 흔치 않은 공동육아 사례이고 품앗이 수업이 활성화 된 것이 이유일까요?
《EBS》와 《교통방송》, 지역 케이블 방송 《CMB》 등의 방송국에서 취재진들이 다녀
가고 《레몬트리》, 《서울타임스》, 《환경일보》를 비롯한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도 기
사들이 나왔습니다. 횟수로 보면 꽤 많은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언론 노출에 대해
몇 개의 원칙을 세워놓았기에 취재요청에 거절한 횟수도 적지 않아요. 우선 기사 방
향이 어떤 것인지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기사를 내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인
터뷰 질문지를 먼저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어떻게 조명될 건지에 대
한 부분을 꼭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173
굿바이, 2012년!!

뉴스의 방영과 함께 시작한 12월은 사실 우리가 준비한 이벤트가 많은 달이었어요.
한해를 마감하는 달이고 가족, 이웃과 무언가를 나누고 싶은 알토란의 마음을 표현
하고 싶기도 하여 11월부터 준비를 차곡차곡 해놓았답니다. 우리는 12월의 행사에
대해 공고를 붙여 마을에 알렸어요.

알토란 친구들!!
12월엔 모두 모여라
안녕하세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는 둥그레 문고에서 알려드립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12월을 계획하며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행사
를 준비했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날짜

시간

12월
17일
(월요일)

오후
3시

12월
22일
(토요일)

오전
11시

내용

대상

준비물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감상해요.
*월요일 알토란 배움터수업은 연극관람으로
대체합니다.

누구나

무료

매직 카프라
지도 : 큐브레인 윤혜경 선생님

6세
이상
아동 및
보호자

참가비2,000원
* 재료준비 관계
로 12가족 선착
순 접수

연극 〈무지개 물고기〉
‘장평초등학교 어머니극단’

집중력과 창의력 발달에 좋은 카프라 블록놀이
를 엄마, 아빠와 함께 해요.
굿바이 파티!!
Good bye, 2012!! Good buy, 2013!!

12월
29일
(토요일)

174

오후
2시

벼룩시장과 마니또 파티를 동시에!
벼룩시장 :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에게 주인을
찾아주세요!!
마니또 파티 : 이웃과 함께 연말 선물을 나눠요
^^

누구나

3,000원 상당의
마니또 선물 지
참
* 모든 접수는 둥그레문고에서 받습니다.

서울시 동대문구

안내

* 둥그레문고 자원봉사자 및 재능기부자 언제나 모집합니다.

가장 먼저 집 앞에서 볼 수 있는 연극 공연을 기획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가본 엄마들은 알 겁니다. 공연 미리 예약해야지, 차 타고 가야지, 나가서 간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식에 식사까지 챙겨야 하고 돌아오려면 얼마나 지치는지 말이에요. 우리 집 앞에서
친구들과 공연을 보고 공연 후 활동까지 곁들인다면 훨씬 더 기억에 남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답니다. 마침 우리 동네에 장평초등학교 어머니극단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둥그레 문고 자원봉사자이기도 한 승이 엄마가 극단의 감
독이란 말씀을 듣고 얼른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공연 후 활동을 책임지
기로 하고요.

그렇게 연극 〈무지개 물
고기〉는 12월 17일 막을 올
릴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
은 70여명, 어른들은 30여
명이나 와서 둥그레 문고가
꽉 차도록 앉아서 공연을
관람했어요. 무대부터 의
상까지 꼼꼼하게 준비해 주셔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들
의 연기는 수준급이었고 아이들이 깔깔 웃을 정도로 재미나게 해주셨어요. 연극 후
에는 다 같이 무지개 물고기 만들기를 했답니다. 그리고 어머니극단 분들이 준비한
간식주머니까지 들고 집에 갈 수 있었어요. 공연 한번 보러갈 때마다 힘들었던 기억
이 있는 저에겐 정말 환상적인 날이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연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친구들도 아마 행복했겠죠?

175
다음으로 준비한 것은 가족과 함께 하는 카프라 블록 놀이였습니다. 원목으로 만
든 한 가지 모양의 나무판자로 수 만 가지 모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카프라를 매
개로 온 가족이 함께 여가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했어요. 주말에 아이들과 어
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신 적 많으실 겁니다. 12월은 날씨가 추워 쉽게 외출하기
어렵고 주말엔 사람이 붐벼 어린 아이들을 선뜻 나가기 힘들었는데 아빠, 엄마와 함
께 할 수 있는 놀이가 있다면 좋을 거 같다는 의견이 많았거든요.
둥그레 문고의 윤혜경 회장님이 흔쾌히 재능기부 해주셔서 강사 섭외 문제가 쉽
게 해결되었고 카프라까지 빌려주셨습니다. 대부분 원목 블록 놀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 조립하는 것이 아닌 무게 중심과 중력의 원리를 이용한 블록놀이가 신기

176
하다고 했어요. 그런 만큼 집중도도 높아서 예정 시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놀이 시간
서울시 동대문구

을 갖게 되었답니다. 나무 특유의 재질과 향을 가진 원목 블록 놀이는 향기치료 역할
도 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놀이를 통한 힐링을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이웃과 함께 하는 굿바이 파티를 열었습니다. 〈Good bye, 2012!!
Good buy, 2013〉이라는 부제를 달고 착한 소비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자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했어요. 한 해를 보내며 자신에게 필요 없지만 다른
이에게는 유용한 물건들에게 새 주인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벼룩시장을 열고, 작은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선물을 마련해 이웃들과 더 친해질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을 실천에 옮겼답니다. 우
리가 책 읽고 수업하던 둥그레 문고는 시장으로 변신해서 사람들을 맞았어요. 작아
진 옷, 다 읽은 책들을 파는 꼬마 사장님부터 냄비, 그릇을 들고 나온 어머님들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나와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답니다. 형과 동생이 같은 스케치북
을 팔면서 100원 더 싸게 해주겠다고 흥정하는 바람에 웃으며 사기도 하고 아기 모
자도 공짜로 얻어가며 시장놀이 하는 기분이었어요.
마니또 파티는 각자 3,000원 상당의 작은 선물을 가지고 와서 이웃과 나누는 형식
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각자 번호표를 추첨함에 넣고 자기 소개부터 시작했어요. 한
동네에 살면서 얼굴은 자주 보지만 잘 모르는 분들도 많고 지나치면서 어색하게 눈
인사만 하던 분들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인사할 수 있었죠. 3살 아기부터 40대의
주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이웃들이 참가해서 같이 귤껍질 까기 게임, 신문지 잘게
자르기 게임 등을 하면서 친목을 도모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번호 추첨시간! 다들
이웃들이 무슨 선물을 가져왔는지 보며 받고 싶은 선물을 찜하기도 하고 친해진 친
구랑 교환했으면 바라기도 하면서 번호를 뽑았습니다. 아이들 과자, 핸드로션, 양
말 등 소소한 선물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다들 원하는 선물을 받아갈 수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공개 추첨이었는데 필요한 사람에게 딱 맞는 선물들이 돌아간 겁니다.
한해를 마치는 굿바이파티를 마치며 2012년은 정말 풍성한 마음으로 안녕할 수
있었어요. 참석했던 이웃 분들과 알토란 가족들도 그런 마음을 나눠가셨으리라 믿
습니다.

177
〈2012년 우리마을 프로젝트 진행 사업을 한눈에 보기 쉽게 표로 정리해 보았어요〉
세부사업명

일시·장소

참여인원·
물량

활동내용

평가의견

10월~12월
* 시간
15시~20시
* 장소
삼성래미안
2차 224동
1702호

회원 6명
유아 4명

- 3시 픽업 후 간식제공
- 알토란 배움터 수업
- 저녁식사
- 식사 후 독서 및 엄마표 놀이

-픽업 시간 철저히 지키
고 각 교육기관과 연계
하기
-바른 먹거리 제공에 긍
정적인 반응

10월~12월
상시

* 회원 6명 및
자원봉사자
10명
* 전단지
800장 내외

- 장안힐스테이트 아파트 내
게시판 공고 및 엘리베이터 내 부착
- 장안힐스테이트 아파트세대 안내방송
- 둥그레 문고 내 Pop 게시판 제작
- 둥그레 문고 방문 이용자 대상
전단지 배포

-마을 내 다른 아파트 게
시판에도 홍보활동을 했
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음
-둥그레문고이용자들에
게 배포한 전단지 효과
좋았음

10월 8일
~12월28일
(매주 월~금)
* 시간
16시~17시
* 장소
둥그레문고

* 각 수업별
유아
10~15명

회원 6명

- 아이들 현황 상의
- 알토란배움터 수업 현황 공개 및
계획안 발표
- 식단 제시 및 분담
- 스케줄 조정
- 수정안 및 비전 제시

-아빠회원들
참석시간 엄수
-회의록 참조

알토란
부모회의

10월~12월
(매주목요일)
* 시간
20시~21시
* 장소
삼성래미안
2차 224동
1702호

저녁
프로그램
〈부엉부엉〉

10월~12월
매일 저녁
* 시간
오후6시30분
~ 7시 30분

회원 6명
유아 4명

월 : 몰펀
화 : 자유놀이
수 : 게임
목 : 자유놀이
금 : 영어책읽기

- 자유놀이시 아이들 다
투지 않도록 유도
- 놀이 및 프로그램
끝나고 스스로 정리
습관 길러주기

* 시간
: 11월 14일
오후 3시
* 장소
: 둥그레문고

현장탐방단
- 15명
발표자
- 권기정

- 서울시 마을공동체 분야 인센티브
평가 중 자치구 우수사례 현장탐방 참여
- ppt 자료 제작 및 발표
- 알토란 배움터 수업 참관

- 탐방단 및 구청, 동사
무소와 연계하여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
배움터를 돌아보 았음
- ppt자료를 통해
정리할 수 있는 기회라
좋았음

공동육아

알토란
배움터
홍보

알토란
배움터
운영

서울시
마을공동체 분
야
인센티브
평가 참여

178

* 요일별
강사 1명
도우미 2명

월

화

수

〈독서〉 〈미술〉 〈국악〉
책
꼬마
놀이터 피카소

목

금

〈전래
놀이〉

〈요리〉

-학부모들의 관심도가
매우 높았음
-참여한 유아들의 피드
백 철저히 기록할 것

신바람 하늘땅
유기농
사물
전래
쿠킹
놀이
놀이
세부사업명

일시·장소

〈굿바이파티

마니또파티〉

* 시간
: 12월 29일
오후 1시
* 장소
: 둥그레문고

평가의견

참가 :
어린이-40명
성인 - 34명

- 굿바이파티 : 주민 벼룩시장
(물물교환이나 저렴한 가격으로 안쓰는 물건
들을 사고 팔수 있는 기회)
- 마니또파티 : 마니또 선물교환
(게임 진행 및 선물교환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냄 )

- 마을주민들과 서로 교
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이라 즐거웠음
- 연말을 맞아 다같이 모
여 다과도 먹으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

* 시간
: 12월 17일
오후3시 30
분
* 장소
: 둥그레문고

어린이
: 약 65명
성인: 약 25명
자원봉사자
: 6명
극단 : 13명

-장평초등학교 어머니극단
: 재능기부 무료공연
-공연제목 〈무지개물고기〉
-공연 후 활동
: ‘무지개물고기’ 만들기
-극단 및 참여 어린이 간식제공

- 참가대상을 주민 모두
로 하여 참가율 높았음
- 재능기부로 인한 연극
공연으로 지역주민들의
문화생활에 기여

* 시간
: 12월 22일
오전 11시
* 장소
: 둥그레문고

참가: 10가족
(26명)

- 강사 : 윤혜경 선생님
(재능기부)
- 카프라 원목 블록 대여

- 주말을 활용한 수업이
라 아빠와 함께 참여할
수도 있어
더욱 의미 있었음
- 토요수업을 했으면 좋
겠다는 의견이
많았음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토요 수업
〈매직
카프라〉

활동내용

서울시 동대문구

연극 공연
〈무지개
물고기〉

참여인원·
물량

자생력을 키워요

2012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우리마을 프로젝트는 마쳤고 서울시지원금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2013년 1월에 저는 육아휴직이 끝나 복직을 하게 되
었습니다. 알토란은 큰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된 셈이죠.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루 종
일 붙어 있던 대표는 회사로 출근하게 되었고 서울시의 지원 역시 없어졌으니 말입
니다. 알토란을 확실하게 밀어주던 두 가지가 사라진다는 불안감과 걱정이 솔솔 밀
려드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일이 아니었으므로 대비책을 강
구했습니다.
첫 번째,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알토란의 대표이자 모든 잡다한 일, 약간은 귀찮
은 일들을 맡고 있던 저는 프로그램 기획과 사업계획서 작성을 주로 맡기로 했어요.
알토란의 전반적인 일들을 책임지는 사람이며 함께 나아갈 방향을 주도하는 키를
잡기로 한 겁니다. 부대표인 현우엄마는 알토란의 외부 활동 참여를 담당하기로 하
였고 회계와 기록 부분의 역할 역시 나누었어요. 구립햇살어린이집 이인서 원장님

179
께서 알토란의 감사를 맡아 주기로 하셔서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로 했습
니다. 유아 보육 및 교육전문가의 입장에서 재능기부 해주시기로 하여 여러 가지로
도움을 청하기로 했어요.
두 번째, 금전적인 독립을 추진했습니다. 우리 알토란은 지원금 외에 작년부터
꾸준히 회비를 모았어요. 자생력을 갖추려면 비용의 자부담은 필수여야 하기에 다
들 합의했습니다.
공동육아를 하면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금액은 바로 인건비였어요.
아이들을 돌보고 밥을 하고 엄마표 수업을 하는 ‘사람’이 가장 필요하답니다. 다행
히도 알토란은 엄마들의 재능기부로 수업을 하고 당번제로 돌봄을 하기에 인건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아이들을 전담할 돌봄 선생님이
필요하고 수업운영에 대한 교통비 차원의 강사료라도 지급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
다. 우리는 몇 달만 하고 끝나는 모임이 되긴 싫었거든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언젠
가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가지고 하나씩 실천해
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우리마을 프로젝트 유형2를 하면서 퍼실리테이터에게 지급
된 비용을 전액 내놓았어요. 알토란의 자립을 위해 유용하게 쓰이리라 의심치 않았
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의 지원은 정말 좋은 계기였어요. 우리마을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자 뭔가 인정받은 것 같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임에
추진력을 더해주어 견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거죠. 하지만 지원은
지원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늘 이야기해 왔습니다. 우리 알토란이 지속되려면
결국 주체는 스스로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말해왔던 것이었어요. 이렇게 2013년
을 준비해 왔기에 여러 변화에도 알토란의 새해는 문제없이 밝을 수 있었답니다.
알토란 배움터는 2013년에도 계속해서 수업을 해 왔어요. 엄마표 수업에 대한 반
응이 좋아 여전히 대기자가 끊이지 않을 만큼 인기랍니다. 재능기부 선생님이 늘어
수업 내용은 계속 업데이트 되고 초등학생들의 수업까지 신설하게 되었어요. 가장
먼저 사물놀이 수업이 초등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더 늦게 시작했
지만 유아들보다 훨씬 진도가 빨라 제법 근사한 소리를 내고 있어요. 북과 꽹과리,
징까지 모두 갖추어 멋진 공연을 할 날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다음으로 수업에 참여하던 서연이 엄마가 과학 실험 선생님이 되어 주셨어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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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풀어 내 주고 직접 실
서울시 동대문구

험해 본답니다. 실험을 진행할 때마다 “우와~” 탄성 소리가 연발하는 흥미 만점 시
간이에요.

● 인터뷰 | 알토란 참여 어머니(이명선, 서연 엄마)

반짝 반짝한 아이들 눈을 보면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언제나 똑 소리 나는 과학 선생님, 엄마에서 알토란배움터 품앗이 수업 선생
님이 되기까지 이야기해주세요.
권: 선생님, 처음 과학 실험 수업 부탁드렸을 때 어떤 마음으로 승낙해주셨는
지 궁금해요.
이: 사실 제가 과학을 전공하고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쳐 왔는
데, 이렇게 어린 아이들은 처음 가르쳐 봐요. (이명선 선생님은 10년 넘게 대
치동 등 유수의 입시학원에서 과학을 강의하시고 계십니다. ) 우리 딸 서연이
가 아니었으면 엄두도 내기 힘들죠. 그런데 알토란에서 같이 수업하는 걸 좋
아하는 거 보고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 물론 저의 막무가내성 강력한 부탁이 크게 작용했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
다. (웃음) 수업명인 브라이트 사이언스도 제가 지은 거 알고 계시죠?
이: 제 이름에 밝을 명(明)자가 들어가고 우리 아이들이 총명하게 컸으면 해서
지었다고 하셨죠. 수업 이름 뭐할까 몇 가지 후보 주셨잖아요? 중의적인 뜻이
들어가선지 저도 이게 가장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거에요.
권: 유아들에게 과학실험 수업을 하면 어떤 장점들이 있을까요?
이: 우선 재미있고 호기심을 채워주는 걸 꼽고 싶어요. 5~6세 아이들 집중력
짧은 거 아시죠? 근데 제 수업에는 집중력이 엄청나게 높아요. 시간 내내 눈
이 반짝반짝해서, 실험 결과 볼 때쯤에는 눈이 이만큼씩 커져 있어요. 그게 얼
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그리고 과학적인 사고의 기초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학교 다닐 때 과학 좋아하는 학생 많지 않잖
아요. 특히 우리 같은 여학생들은 더욱 흔하지 않았는데, 어릴 때부터 과학이
얼마나 생활 가까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고 흥미를 가질 수 있다면 나중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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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공부할 수 있거든요.
권: 수업 진행하면서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이: 그냥 친구 엄마, 아는 아줌마였다가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낯설게 생각하
지 않을까 고민했었어요. 전 수업시간엔 좀 엄한 편이라 무섭다고 하거나 날
미워하면 어쩌지 할 때도 있었거든요. 다행히 아이들이라 적응이 빨라 안심입
니다.
권: 일 하시면서 따로 시간 내어 재능기부를 해 주신다는 게 쉬운 게 아닌데요.
이: 거창하게 재능기부라고 하니까 쑥스러운데요. 우리 딸이랑 친구들이랑 함
께 놀아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같이 노는 게 더 재미있잖아요.
권: 앞으로 우리 알토란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생각하신 점 있나요?
이: 지금처럼 아이들을 위해 좋은 프로그램 많이 생겼으면 하죠. 서연이는 혼
자라 형제나 언니, 동생처럼 같이 커 나갈 수 있어 정말 좋거든요. 또 저처럼
일하는 엄마의 힘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텃밭 가자

2013년 야심차게 내놓은 알토란의 자연 체험장이자 놀이터는 바로 텃밭입니다. 땅
을 밟을 수 있고 흙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서울살이 가운데 밭을 구한다
는 것이 쉽지 않아 실천하기 어려운 과제였어요. 그런데 마침 동대문구청에서 중랑
천 뚝방에 텃밭 사업을 시작하게 되어 3월에 텃밭을 신청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장 쉽고 수확이 빠른 쌈 채소로 시작하기로 하고 모종을 심었어요.
다들 텃밭이 처음이고 아이들과 함께 심는 거라 “이게 제대로 심는 건가?” 반신반
의 하며 호미며, 모종삽을 들었답니다. 상추, 치커리, 청경채, 겨자채 등 우리가 좋
아하는 쌈 채소 모종을 줄줄이 심었어요. 다섯 살, 여섯 살 고사리 손으로 심은 거
라 잘 클지 미심쩍었지만 그래도 줄 맞춰 심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물을 흠
뻑 주고 돌아서며 “또 올게”를 연발하는 아이들, 우리는 쌈 채소가 자라면 같이 나
눠 먹기로 약속하고 텃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안되었는데, 거짓말 조
금 보태면 텃밭이 아니라 정글로 착각할 정도로 채소들이 잘 자랐어요. 비료도 한번
안 주고 농약은 당연히 쓰지 않았는데 얼마나 탐스럽게 자라는지 초보자들이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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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 치곤 과분한 성공이라고나 할까요. 쌈밥을 해먹고 샤브샤브도 해먹고 알토란
서울시 동대문구

식구 모두 나눠 먹을 만큼 충분한 양이었습니다. 이렇게 텃밭이 잘 가꿔진 이유는
다름 아닌 할머니들의 노고 덕분이에요. 해준이 할머니, 예서 할머니, 성우 할머니
등 많은 할머님들이 수시로 물을 주고 살
펴봐 주신 덕분에 텃밭 채소를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터라 무언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가 심어본 적이 없었어요. 우리 아이들 역
시 흙을 밟고 무언가를 재배할 수 있는 기
회가 없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물을 주러
갔다가 아이들이랑 고랑 옆에 앉아 흙장난을 하거나 도시락을 싸들고 가서 함께 소
풍 온 기분을 느껴보기도 하면서 ‘아, 이래서 텃밭을 마련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
었죠. 자연스럽게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스스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시
간입니다. 편식하던 아이들, 야채만 쏙쏙 빼먹던 아이들도 우리가 키운 거니까 먹
어보라는 권유는 거절하기 어려웠죠.
지금 우리 텃밭엔 무와 배추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무씨와 배추 모종을 심으며
올 해 김장은 이걸로 담자고 하면서 같이 웃었죠. 농사라고는 모르는 엄마들과 고사

183
리 아이들 손으로 심으면서 이게 정말 잘 큰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이 아닐까 생각했
답니다. 어제 보니 다행히도 배추가 쑥쑥 크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이렇게 또 하나
의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대안은 공동육아

2013년 3월경에 《조선일보》에서 취재를 위해 한 기자분이 왔었어요. 인터뷰 하는
내내 열 명 남짓의 아이가 제 주변에서 놀고 있었답니다.
“아이들이 꽤 많은데 권기정 대표님 첫째 아이는 누구인가요?”
자연스럽게 놀고 있는 아이들 가운데 첫 아이의 뒤통수를 찾고 있는데, 일곱 살
현우가 말하는 겁니다.
“저요. 제가 첫째에요.”
맞습니다. 현우는 알토란 아이들 가운데 가장 형님이거든요.
“맞아요. 우리 현우가 첫째 아이에요.”
우리 딸은 어느새 제 옆으로 와서 “저는 둘째에요”라고 이어 말하는 겁니다. 거기
에 셋째, 넷째하면서 아이들이 줄을 좍 서자 질문한 기자님이 좀 당황하시는 거 같
더라고요. 저는 그만 웃음이 터져 웃고 말았답니다. 아이들도 와르르 저를 따라 웃
어대고요. 웃는 얼굴들을 보자 그만 주책없이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다투기도 많
이 하고 서로 내 것 네 것 하면서 엄마 속을 태우던 녀석들이 이런 면이 있었네 싶어
서요. 무엇보다 스스럼없이 안기며 “제가 우리 집 첫째에요”라고 하는 현우의 말이
어찌나 고맙고 기특하던지. 제가 기억하는 가장 감동적인 순간 가운데 하나에요.
알토란은 2013년 8월 서울시의 공동육아 활성화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습니
다. 현재 서울시에서는 25개의 공동육아 모임 및 단체를 지원하고 있어요. 우리는
2012년 우리마을 프로젝트 유형2에 이어 좀 더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서울시와
협약을 체결한 겁니다. 알토란은 적지 않은 갈등과 힘든 일들을 겪어 왔고 지금도
헤쳐 나가며 운영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아직 여기 있는 이유는 공동육아에 대
한 신념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을에서 안심하고 아
이를 키울 수 있고 인성이 올바른 배려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모두의 마음에
점점 깊어가기 때문이겠죠.

184
서울시 동대문구

2013년 9월 04일 / 알토란 관찰일지
식물은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고 한다.
얼마나 돌봐주고 공을 들이냐에 따라 성장이 좌지우지 된다는 점에서 아이가
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이가 크는 것을 봐주고 옆에서 지켜주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지만 맞벌이 엄마라거나 형제자매가 있다거나 사정은 달라도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모든 시간을 아이에게만 할애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품앗이 수업을 하면 엄
마가 매일 옆에 없어도 안심하고 친구들과 수업 잘 듣고 오후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공동돌봄을 하면 엄마가 아이 모두 행복한 육아를 실천
하기.
매일 물을 주고 흙을 돋아주고 잘 크고 있나 봐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알
토란들은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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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어디 사세요?!”
“아…. 저기…. 장안동이요.”
처음 만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의 하나, 어디 사냐는 질문에 잠깐 대
답을 망설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장안동. 이렇게 대답하면 야릇한 웃음을 보이거나
‘그 동네~’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곤 하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대학교에 다
닐 땐 다른 데로 이사 가자고 부모님께 수차례 조를 정도였어요. 장안동 하면 유흥
업소가 떠올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술집으로 유명한 동네에 산다는 게
싫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주택가에 주로 살았던 어린 시절의 저는 유
해환경에 노출되었던 경우가 많이 없었어요. 우리 동네가 뭔가 다르다는 것도 대학
교에 가서야 알 게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서울 각 곳에서 모인 친구들, 사회인이 되
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야 “우리 동네가 그랬어?” 했다니까요.
동대문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된 저는 결혼한
이후에도 우리 동네, 장안동에 살고 있습니다. 남들 시선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가장 익숙하고 무엇보다 친구, 친척들, 오래된 이웃들이 있는 곳이니까요.
다행히도 옛날에 유명했다던 ‘그 유흥가’가 많이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편견은 달라
지지 않은 거 같습니다. 아직도 장안동이라는 동네 이름을 말할 때마다 “어떻게 그
런 곳에 살아?” 하는 느낌의 질문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결심했답니다.
‘내가 조금 바꿔보자’ 하고요. 우리 아이가 나중에 장안동에 산다고 말하고 다닐
때쯤엔 “와~ 그 동네? 좋은 동네에 사네” 하는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도, 창피해서 다른 동네로 이사 가고 싶다던 학생도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엄마니까
요. 스스로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어른이니 말입니다. 내 아이에게는 가장 좋은 것만 주고 싶다던 어떤 광고 문
구처럼 내 아이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갖춰주고 싶은 엄마 심정으
로 알토란을 꾸려가고 있어요. 아이들이 자라기 좋은 마을이 결국 좋은 동네, 사람
들이 이사 오고 싶어 하는 동네라는 것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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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그리 좋은 엄마가 아니에요. 살림과 육아에 서툴고 엄마가 회사에 가
서울시 동대문구

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을 두고 회사에 가는 ‘나쁜’ 엄마랍니다. 저의 모자라
고 아쉬운 부분을 채워 주고 또 제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으로 누군가를 도와주면서
함께 아이를 키워가는 게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에요.
모자란 엄마에게 와 준 완벽한 아가들, 정말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
고 알토란을 꾸려가면서 알게 된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저의 오지랖으
로 벌여내는 많은 일들 다 감당해주고 안아주는 알토란 식구들 항상 미안하고 고맙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습니다.
인생은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에 새삼 고개를 끄
덕이게 됩니다. 제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우리 알토란 식구들을 보면 알 수 있거든
요. 우리들의 발자국을 조금이나마 남기고 싶어 이렇게 서툰 글로 기록했습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모두에게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는데, 살짝 걱정되는 부분도 있지
만 너그러이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187
iv 공 육 ,
동 아
마을속 로퐁 ~
으 당
서울시 은평구 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

글쓴이 | 김영미

은평구에서 태어났고, 은평구에서 자랐다. 은평구에서 자란 남편을 만나 역시 은평이 고향인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첫째 아이 강인은 여섯 살에 등원하여 소리나는 어린이집을 졸업, 현재 초
등학생이며 둘째 강솔과 막내 강준은 현재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아이 셋을 보내면
서 10년 가까이 조합 생활을 하는 셈. 은평두레생협, 《은평시민신문》 등 다양한 은평구 시민사
회단체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은평두레생협 이사장이다. 내 고향 은평이 사람들이 언제든 들
어와 살기 ‘만만한 곳’이 되기를 바란다.
글 소개

소리나는 어린이집
은평구에 공동육아협동조합으로 1996년 개원하였다. 2013년 현재까지 졸업한
선배조합원만 200가구에 이른다. 공동육아를 졸업한 이들은 다양한 형태로 지역 	
시민 사회 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필자는 여러 부모가 여러 아이를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가 지난 17년간 은평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역사회와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기술하려 노력했다. 조금은 생소하고 낯선 공동육아가 이 글을 통해서 	
좀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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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서울시 은평구

1. 우리들의 며느리
선배조합원과의 축구대회
갈현동 반지하 셜명회에 모인 20가구
공동육아, 대안의 삶을 꿈꾸다
부모가 참여한 만큼 삶의 질 높아져

           소리나는 어린이집

2. 사람이 안보여
공동육아의 지역 연대 활동 사례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 연대 활동
출자금의 높은 벽, 맞벌이 부모의 한계

3. 소리나는이 확 달라졌어요
2011년, 지역 연대의 기지개를 펴다
와글와글골목상상, 벽화도 그려요~

4. 뜨거운 참여 열기, 공동육아? 살아있네~
어린이 놀이터와 부모 강의가 함께! 은지야 마실가자~
한 걸음 더 내딛은 ‘소리나는’
생태 프로그램으로 정착한 은지야 마실가자 2

5. 공동육아는 왜 지역사회와 소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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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들의 며느리
선배조합원과의 축구대회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2013년 4월의 어느 일요일,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
는 어린이집 마루에서는 북적북적 시끌벅적 잔치가 벌어졌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을 졸업한 아이들과 부모들이 오랜만에 터전(공동육아는 어린이집을 터전이라 부른
다)에 와서 현재 아이를 보내고 있는 부모들과 축구 시합을 벌이고 왁자지껄 뒤풀이
중이다. 자기 소개 시간이 이어진다. 올해 대학에 갓 입학한 한 졸업생은 입학 두 달
만에 여자 친구와 함께 왔다. 아버지 친구들의 소개가 재미있다.
“다음은 누구? 자~ 우리들의 며느리~!!”
“우와~! 박수~”
“이 분들이 아이를 낳고 또 아이를 낳으면 소리나는에 보내는 겁니다잉~”
쑥스럽게 인사하는 이는
1996년 개원하여 올해로 17년을
맞이한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졸
업생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과
꿈이크는 방과후 교실을 거쳐 고
등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대학 신
입생이 되었다. 소리나는 어린이
집의 첫 졸업생이 여자 친구와 함
께 현재 소리나는 어린이집 행사
에 놀러온 것. 다들 재미있다는
▲ 1996년에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 만들었던 부모와 아이들, 2013년에
이 곳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부모가 만나 축구를 하고 술 한잔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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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다. 지금 아이를 터전에
보내고 있는 부모들은 우리 아이도 저렇게 커서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오겠구나. 상상
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보인다. 조합원들이 기증한 경품 추첨이 이어
지고 두런두런 말소리, 서로 주고받는 막걸리, 재잘재잘 떠들며 웃는 아이들의 목
서울시 은평구

소리로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었다.

갈현동 반지하 설명회에 모인 20가구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다. ‘공동육아’란 원장이 공간을 마련하
여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방식이 아닌, 부모들이 출자금을 내고 공간을 임대하여 교

           소리나는 어린이집

사를 고용하고 함께 운영하는 협동조합 방식의 어린이집이다. 현재 전국에 65개 조
합이 운영되고 있으며 은평구에는 소리나는 어린이집 한 곳이 있다.

은평구 갈현동 494-12번지, 소리나는 어린이집.
이곳이 우리의 터전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1996년 서울 신촌 우리어린이집에 대기했던 은평구 부모
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당시 신촌 우리어린이집에 대기를 했던 은평구 부모들
은 적어도 1~2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은평
구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드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우리 어린이집’ 대기자
중에 은평구에 사는 가구는 4가구, 이 4가구는 95년 크리스마스 직후부터 96년 2월
까지 2주에 한 번씩 신촌 우리어린이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은평
구에 96년 하반기까지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설립하는데 의견을 모으고 자료 준비,
설립 과정에 대한 일정 수립, 주변에 알리기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했다. 당시
처음 시작한 네가구 중 세가구는 준비 과정의 번거로움과 두려움으로 참여를 포기
했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일렀다. 모 대학 민주동문회 회보에 은평공동육아협동
조합 설립 광고를 싣고 몇 개 대학 민주동문회보에 조합원 모집 광고가 실리면서 다
시금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당시 성균관대 민주동문회 간사를 맡고 있었던 조수영
씨는 “우리 어린이집을 취재하면서 은평구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민주동문회 회보에 조합원 모집 광고를 싣자 문의 전화가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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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했다”고 회상한다.
이러한 과정 끝에 8가구가 모여 1996년 2월에 공식적으로 ‘은평 지역 공동육아
협동조합 설립 준비위’를 발족시킬 수 있었다. 조수영씨는 부천에 살다가 은평으로
이사까지 하여 준비위에 참여했으며 임신중이던 소현 엄마는 교육 간사로 출발하여
어린이집 운영규정을 비롯, 출자금/가입비/보육료 문제, 조합원 규모 결정, 교사 구
인, 설립 일정들은 협의해 나갔다. 당시 활동했던 가구로는 서영이네, 다연이네, 보
경이네, 동백이네 등이 있었다.
가까스로 12~13가구가 모였지만 공간이 정해지지 않아 공동육아 어린이집 설립
은 지지부진해있었다. 관심을 보인 가구에게 실체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
기 때문이었다. 추진력을 발휘할 때였다. 당시 준비위는 20가구 이상 모이면 터전
(공동육아에서는 어린이집을 터전이라고 부른다)을 계약하기로 했던 것을 수정하
여 과감하게 모험을 감행했다. 모험이란 잔금을 치루지 못할 경우 1천만 원에 달하
는 계약금을 날릴 수 있음을 감수하고(96년의 1천만 원은 지금의 가치보다 훨씬 크
다.)일단 터전부터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임신 중인 몸으로 열흘 이상 100군데 가까이 알아보던 소현 엄마의 노력에 힘입
어 현재의 터전을 찾아냈고 96년 4월, 최대한 잔금 날짜를 미뤄 8월에 내기로 하고
덜컥 계약하고 말았다. 과감한 결단이었다. 준비위는 터전 계약과 동시에 바로 갈
현동/구산동/대조동/역촌동에 배포되는 《한겨레》 신문에 간지 광고를 내고 조합원
모집에 박차를 가했다. 놀랍게도 갑자기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조수영씨 반지
하 집에서 열렸던 당시 설명회는 20가구 넘게 참석하여 참석자 일부는 서있어야 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인터넷도 없고 오로지 간지 광고를 보고 모인 당시 예비 조
합원들의 열성은 현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자택에서 설명회를
열었던 조수영씨는 “처음에 5~6가구가 터전을 계약하고 최대한 입주 날짜를 길게
잡았다. 덜컥 계약을 했지만 조합원을 모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
겨레》 신문 광고를 내고 성균관대 민주동문회 사무실로 손가락이 마비될 정도로 많
은 문의전화를 받았다. 감격스러웠다”고 회상한다. 서용이네, 찬이네, 영진이네, 영
호네, 정훈이네, 강산이네, 민중이네, 명진이네, 연식이네, 진우네, 다은이네, 한
슬이네, 한솔이네, 훈규네, 정원이네, 지환이네, 수혁이네 등이 이때 처음 참여했
다.(필자는 2010년에 처음 공동육아를 시작했기에 여기에 언급된 선배조합원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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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한다. 그러나 이 글이 흘러 흘러 선배조합원들이 보았을 때 혹시라도 느낄 반
가움을 위해 한 분 한 분 적어본다.) 설명회에는 현재 은평구에서 활발하게 마을 활
동을 하고 있는 고병헌 교수님 가족도 있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맞벌이 부부를
서울시 은평구

위한 종일반 운영은 아직 계획 중이어서 당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준비위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조합원 모집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13가구이던 조합원 숫자를 20가구로 부풀리기도 했고 개원 시점을 9월이 아닌 7월
이라고 속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민의 시간은 잠시, 출자금과 가입비가 통장으로
속속 입금되고 바로 개원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준비위의 다소 불법적인(?)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조합원으로 가입했던 수혁이네는

           소리나는 어린이집

자리를 꼭 확보해 달라고 수박 한 덩어리를 뇌물로 가져오기도 했다. 당시 설명회에
왔던 가구들이 대부분 초기 조합원 30여 가구를 구성했다. 준비위는 8월초 준비된
출자금 7천여만 원과 조합원들이 융통한 3천여만 원으로 잔금을 치르고 터전 열쇠
를 받았다. 열쇠를 받고 일부 조합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잘 관리가 되지 않
고 있던 당시의 터전을 보며 유행어이던 ‘귀곡산장’을 떠올리기도 했다. 사람이 살
지 않고 있어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기 때문이다. 선배조합원 최순옥씨(현 열린사
회은평시민회 대표)는 “사람이 몇 달 동안 살고 있지 않아 잡풀이 무성했다. 현관
입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쓰레기도 많아 거의 폐가처럼 보였다”고 기억한다.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모였던 조합원들은 마당 풀숲 사이에 앉아 첫 막걸리를 마
시며 터전의 역할이 아이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역사
적인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때부터 주말마다 터전 시설 작업이 시작되었다.
마당 한 가운데 있었던 화단을 분해하고 연못을 메우고 중간 중간 심어져 있던 나무
를 뽑았다. 나무를 뽑아내는 데에만 성인 남자 두 사람이 2~3시간이 꼬박 걸렸다.
민중이 아빠는 이 작업으로 허리가 다치기도 했다. 영진이 엄마를 중심으로 한 페인
트칠, 잔디 걷어내기 등 조합원들의 헌신적인 봉사로 터전은 점점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이어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첫 원장인 깔끔이(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교사와 아이, 부모 모두 별명을 부른다)가 출근하기 시작했고 방글이, 캔디, 꿀단지
가 교사로 채용되었다. 교사와 조합원이 처음 만나 회의하던 날 3만 원의 경품을 걸
고 터전의 이름이 공모에 붙여졌고 원장 깔끔이가 제안한 ‘소리나는 어린이집’이 압
도적인 지지로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의 이름이 되었다. 이즈음 조합원의 참여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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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좀 느려지기도 했는데 원장이 채용되면서 벽지/온돌/장판 등 내부 공사와 그
네/자갈/모래/쓰레기 치우기(트럭 5대분) 등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때 쓰인 비용
이 애초 계획보다 많이 쓰여져 이후 조합에 상당한 부담이 되기도 했다.

전국 65개 조합 중 6번째 조합

드디어 1996년 9월 1일, 은평 지역 공동육아 협동조합은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29가구 34명의 아이들이 참여했다. 공식적으로 출범을 알리고 정관과 운영/인사/
급여 규정을 총회에서 의결했다. 9월 1일부터 교사들이 오리엔테이션/실내 가꾸기
가 시작되었고 이 일주일간 아이들은 다은이네(최순옥 현 열린사회은평시민회 대
표)서 지냈다. 당시 학원에서 아이들 글쓰기를 가르쳤던 최순옥 열린사회은평시민

◀ 소리나는 어린이집 개원잔치.
여러 부모와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고사상을 바라보고 있다.

◀ 1996년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 개원잔치.
동네 사람들에게 터전 개원을
알리려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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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대표(이하 대표)는 학원 일정을 조정하여 아이들을 돌보았으며 교사들이 최순옥
대표의 집에서 등원 전까지 아이들을 돌보았다.
마침내 9월 8일부터 아이들은 정식으로 등원했고 조합원들은 이사장의 도포 자
서울시 은평구

락이 인상 깊게 남은 고사로 개원잔치를 진행했다. 장장 9개월간의 은평공동육아협
동조합의 설립 준비 과정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전국 65개 조합 중 여섯 번째로 개원했으며 가장 단시간 준
비해 개원한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기록에 남았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역 사회에 대안적 교육 방식을 제시하고 지역과 함께 하는 지역 공동
체의 일원으로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소리나는 어린이집 사람들 1

터전지킴이?
조합원들의 관심과 사랑이 진하게 배였던 그 시절
현재 신나는 애프터에서 사서로 근무하고 있는 조수영씨는 소리나는 어린이
집 첫 조합원이다. 큰 아들인 설재민군(20세)이 세 살부터 일곱 살까지 소리
나는 어린이집을 다녔고 둘째 아들은 일곱 살에 등원하여 일 년 동안 다녔다.
조수영씨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바로 소리나는 어린이집에서 1년 넘게
터전지킴이로 지내왔던 기억이다. 당시 터전은 저녁에 집이 비어있어 도둑이
들까봐 염려스러워 ‘터전지킴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부천에서 살다가 은평구에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위해 터전 근처 반
지하 빌라로 이사 온 조수영씨는 작은 전세금으로 마당 넓은 단독주택에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사생활 보장 문제는 확 접어두고 터전에서 살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하루 종일
터전에 있는데 밤에도 터전에 있는 것이 못내 걱정되었지만 하원 후 한 시간
정도 동네 나들이를 하면서 즐거움을 만들었고 정해진 보육 시간보다 늦게 하
원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에게는 든든하게 비빌 언덕이 되기도 했다.
조합원 모임이 끝나고 정리하면서 쉽지 않은 세월이었지만 힘들고 부담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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웠던 기억보다는 즐겁고 행복했던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냉장고에 누
가 갖다놓았는지도 모를 음식을 발견하기도 하고를 여러 번, 늘 많은 사람들
과 저녁식사를 하고 임신하면서 입덧에 살림까지 걱정해주었던 조합원들…
단순하게 아이를 맡기고 데려가는 터전이 아니라 조합원 모두가 함께 지켰던
터전이었다. 여러 조합원들의 따뜻했던 마음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조
수영씨.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터전지킴이 생활을 마무리했다는 조수영씨
는 이 특별한 경험이 아직도 가슴에 진하게 남아있다.

공동육아, 대안의 삶을 꿈꾸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체험을 교육의 근본으로 삼는
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어른들이 정해놓은 무언가를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니라 집
처럼 안정적이고 편안한 공간이다. 따라서 교사 1인당 아이 수가 일반 어린이집의
2분의 1 정도로 현저히 적다. 친구, 형, 동생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형제 관계에서
얻는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아이 수가 30명 내외로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
이다. 하루 일과 흐름은 일반 어린이집과 비슷한 듯 하지만 매우 다르다. 가장 큰 특
징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에 걸쳐 ‘나들이’를 한다. 아이들은 두 시
간이라는 충분한 시간 동안 자연이라는 광활한 공간 안에서 발산하고 체험한다. ‘나
들이’라는 자연 체험은 실내 공간과 인간 관계에서 얻을 수 없는 엄청난 교육적 경
험을 하게 한다. 짜여진 프로그램 중심이 아니라 질서나 예절, 정리 습관은 일반 어
린이집에 부족할 수 있지만 나들이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글쓰기, 숫자외우
기 등 짜인 틀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매일 매일
나들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자연과 사물, 사회생활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하
는 것이다
나들이는 날씨가 아주 춥거나 덥지 않는 한, 비가 아주 많이 오지 않는 날이면 모
든 아이들이 바깥으로 나간다. 일상적인 나들이와 특별한 나들이로 이루어진다. 터
전 인근의 앵봉산, 수국사 뒤편 봉산, 서오릉 텃밭 나들이를 가고 은평구의 주요산
이말산, 비단산, 백련산 등지를 다닌다. 대조동 꿈나무 도서관, 은평 구립 도서관,
증산 정보 도서관, 초록길 도서관 등 은평구의 갖가지 작은 도서관도 아이들의 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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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 장소이다. 역촌 중앙 시장, 대조 시장, 불광 시장 등 재래 시장도 가끔 간다.
매주 금요일이면 점심을 먹고 오는 먼 나들이를 간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월드컵
공원, 일산 호수 공원,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과천과학관, 광화문 경찰박물관 등에
서울시 은평구

가기도 한다. 터전 살이라 하여 만 3세 이상의 아이들이 터전에서 1박 2일을 지내는
나들이가 있고 초여름과 초가을에 교사와 아이들만으로 구성하여 1박 2일 들살이를
가기도 한다. 졸업하는 만 5세 아이들은 졸업하기 전 2월에 방교사와 1박 2일 졸업
여행을 간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 공동육아 아이들은 주로
일상을 나들이로 보낸다.
터전 주변의 모든 곳이
아이들의 나들이 장소이다.

어른에게 반말하는 아이들

공동육아는 다양한 활동과 함께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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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을 부르고 반말을 한다. 아이들에게 존대말을 쓰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공동육아 아이들은 종종 버릇없는 아이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아이들은 왜 어른에게 반말을 할까? 별명 부르기와 반말 사용은 어른과 아이 간의
자유롭게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의도로 시작되어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고유한 말
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교사인 2013년 현재 너구리, 무지개, 하
니, 웬디, 해님, 솔방울이 있다. 처음 등원하는 아이들은 사람에게 동물 이름을 부
르거나 사물 이름을 붙이는 것에 대해 매우 신기해 하고 의아해하지만 금방 익숙해
지고 재미있어 한다. 아이가 교사에게 반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꺼려하는 사람이
많지만 반말을 쓰게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어른
과의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반말이 주는 관계의 평
등성은 아이와 교사간의 진지한 대화의 가능성, 아이가 자기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
현할 수 있는 가능성, 교사와 아이 상호간의 자유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교사와 아이가 공동 영역을 구성할 수 있는 관계적 토대를 마련해준다. 이러
한 관계 교육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3세방 아이가 7세방에 가서 놀기도 하
고 6세 아이가 4세방에 가서 스스럼없이 논다. 이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나거나 갈
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특징을 알게 되고 중재하는 방법도 배운다. 특히 형제가 없는 아이들은 터전에서 형
제를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부모와 교사는 날적이를 통해 소통한다. 날적이는 아이의 생활에 대한 단순한 기
록이 아닌 아이를 사이에 두고 부모와 교사가 대화를 나누며 매일 기록하는 아이의
성장일기 역할을 하는 기록물의 성격을 가진다. 공동육아에 있어 날적이는 현재 삶
에 대한 기록이며 지나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친환경 식재료에 비닐까지 친환경

생협에서 공급하는 안전한 먹거리도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특징이다. 요사이 친환
경 식재료를 사용한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일반 어린이집이 늘고 있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먹는 음식을 100퍼센트 유기농으로 먹이는 어린이집은 매우 드물다.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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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농산물을 사용하더라도 전체 먹거리 중 몇 퍼센트나 사용하는지 알아봐야 한
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을 비롯한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유기농 식재료를 100퍼센트
사용하고 인공 조미료나 인스턴트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간혹 먹는 가공식품에
서울시 은평구

도 식품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생협 제품을 이용한다. 우리 땅에서 건강하게 자란
재료로 직접 정성들여 만든 우리 음식을 먹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휴지나, 비닐,
비누, 치약까지 생협 제품을 이용하는 곳이 공동육아이다. 사탕, 초콜릿, 탄산음료,
빙과류 등은 먹이지 않는다. 김치는 아이들, 부모들과 함께 담그고 고추장, 된장도
교사들, 부모들과 담근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은 이런 재료들을 가지고 정성껏 만
들어 영양이 풍부하고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음식을 식단에 반영한다. 농약을 치지

           소리나는 어린이집

않고 성장호르몬이나 식품첨가물이 들어가지 음식을 먹이고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
록 하는 것이다.
일반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들 생일잔치를 한다. 그런데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생
일상은 좀 다르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하다. 일단 최대한 자기 생일날을 맞춘다. 주
말이나 쉬는 날이 아니라면 자기가 태어난 그날, 생일 축하를 받도록 한다. 영양 교
사는 터전에서 직접 찐 떡이나 피자빵, 과일 등으로 생일상을 차리고 아이들은 그
아이 생일 즈음하여 각자 카드를 그리거나 쓴다. 교사가 사회를 보면서 생일 축하
노래, 아이가 듣고 싶어 하는 노래, 아이의 성장 과정이 담긴 그림판(부모가 만든
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
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보낸 시간
중 가장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연말이면 아이들이 부모들과 함
께 모여 장기자랑을 한다. 회관을
빌리거나 넓은 공간에 한껏 차려입
은 아이들이 나와서 삐까뻔쩍한 공
연을 펼치지는 않는다. 몇 날 동안

▲ 직접 만든 떡과 제철 과일 등으로 생일상을 차린다. 함께 어린이집을 다니는 모든
아이들이 생일을 맞이한 아이에게 정성스럽게 카드를 건네준다.

정성스럽게 연습한 노래나 연극을
보여주기도 하고 한껏 외운 동시를 큰 목소리로 외치기도 한다. 부모들도 각 방별로
모여 각자 장기자랑을 준비한다. 연극을 하기도 하고 간단한 노래나 연주를 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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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해마다 다르지만 어떤 해에는 차력(?)을 하기도 했다는 소문도. 물론 교사들
도 직접 무대에서 자기 기량을 뽑낸다. 아이들만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잔치인 것. 부모들로 구성된 홍보소위에서는 한 해동안 지낸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
들어 함께 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뒤풀이. 즐겁게 먹고 신나게 노는 곳이 공동육아
소리나는 어린이집이다.

행복한 뽐내기로 즐거운 졸업식 만드는 공동육아
아이들 진 빼는 졸업공연 NO!
… 소리나는 어린이집 해보내기 밤을 다녀와서
2010년 12월 마지막 주 어느 날, 날이 어둑해지고 아이들, 선생님들, 아마들
(엄마와 아빠의 줄임말, 부모들)이 속속 모여든다. 할 이야기들이 어찌나 많은
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어린이집은 터질 것 같은 분위기다. 아마들은 분
주하게 움직이면서 좀 있다 공연할 깜짝 연극을 위해 최대한 아이들의 눈을
피해 대본을 보며 연습을 하기도 하고, 율동을 맞춰보기도 하려 하나!! 이미
아이들 눈을 피할 길이 없다.^^ 아이들 웃는 소리, 우는 소리, 떠드는 소리 등
에 아마들의 다소 흥분된 기색과 소리가 어우러져 열기가 가득~한 소리나는
어린이집!
은평구의 공동육아조합인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매년 연말이면 조합원 전체가
참여하는 ‘해보내기 밤’ 행사를 연다. 교사, 아마들, 아이들 모두가 참여하여
서로 간단하게 준비한 공연을 보여주고, 초청 공연도 보고, 음식도 먹고, 이야
기도 나누고, 정도 나눈다.
세 살부터 방과 후 방 아이들까지 방마다 의견을 수렴하여 아이들이 즐겁게
준비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공연을 준비한다. 또 세 살부터
방과 후 방 아마들 역시 공연을 준비해서 함께 나누는 행사다. 더불어 한해를
정리하는 영상이 상영되기도 하고, 졸업하는 아이들의 졸업식이 열린다. 졸업
식에서는 졸업하는 아이들과 1년을 함께 보냈던 교사가 직접 작성한 졸업장이
전해지는데, 교사에 따라 졸업장의 내용이 달라서 해마다 다른 내용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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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교사가 느꼈던 아이들의 모습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메시지로 이루어
진 졸업장이었는데, 부모인 나와 교사가 어떤 면을 공유하는지, 터전(어린이
집을 소리나는 식구들은 이렇게 부른다)에서 교사가 본 모습은 어떤지 등을
서울시 은평구

알 수 있어 참 흥미로웠다. 물론 행사장을 따로 빌려 졸업식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생활하던 곳에서 아마들까지 전부 모이는 행사이다 보니 매
우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공연을 준비하며 즐거운 부모들
아마들까지 모인 그 자리가 주는 축제 같은 분위기에 아이들은 흥분하고 달뜨

           소리나는 어린이집

게 된다. 가온이가 등원하던 해 처음 해보내기 밤 행사를 할 때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공연을 하는 것에 대해 잘~해야지 하는 어떤 긴장 보다는
자신이 잘하는 것들을 마치 친척들 앞에서 선보여야 할 때의 쑥스러움에 더
가까운 느낌을 아이들에게 받았고, 그것이 정겹고 편안했다. 또 아마들의 급
조한 공연을 보면서도 너무너무 즐거워하고 오래도록 즐거움과 흥분으로 기
억하고 있었다.(사실 우리 아이는 일 년이 지난 후에도 아마들이 했던 공연 내
용과 배역을 맡은 아마들, 그리고 공연 중 있었던 에피소드까지 정확히 기억
하고 있었다!)

▶연말이면 한 해를 정리하면서
부모와 아이, 교사가
함께 잔치를 만든다.
무엇보다 부모들이 준비한
공연이 볼만하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전에 다녔던 구립 어린이집 경우에도 원장이 아이들에게
노동(?)이 되거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는 행사를 지양하던 분이셔서 그
런 공연이 아예 없었다. 당시에는 그런 공연이 아예 없는 것이 준비하느라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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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을 보는 것보다는 백번 좋았다. 그렇지만 소리나는 어린
이집은 아이들과 즐겁게 공연을 준비할 수 있고 준비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
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도 공연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느낀 것
은 공연을 하면서도 서로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약간의 노력과
시간이 투자되기는 하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우리 아이는 올 해 다른 4명의 아이들과 함께 졸업을 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있던 씨앗의 싹을 틔워 나가는 느낌이다. ‘내 아이’만이 아니라 다
른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즐거
움이었다. 2011년이 이틀인가 지난 후, 졸업해서 집에서 뒹굴 거리던 아이는
갑자기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내가 온갖 많은 재주를 부리며 2010년
을 잘 지냈어”라고.^^ 그렇지, 너의 하루하루가 사실 경이로움이고 온갖 많은
재주다! 더불어 너를 지켜보며 나의 하루하루도 그런 날들이란 걸 이제는 안
단다, 얘야. 고맙다, 아이야.
김형주(구슬, 가온엄마)
-2010년 12월 《은평시민신문》에 실린 글-

소리나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삶은 어떨까? 아이와 함께하는 가장 중요한 관계는
부모와 교사이다. 그러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마도 교사일 것
이다. 영어나 체육, 오르다나 미술 등 특별 활동 중심의 활동이 아닌 나들이 위주의
프로그램은 종일 아이를 보는 교사 입장에서 체력적으로 무척 힘든 일이다. 이러한
공동육아 프로그램은 교사들의 역량을 강화시키기도 하지만 일반 어린이집에서 근
무하다 온 교사들은 당황스러워 하기도 한다.
교사들은 일반 어린이집에 비해 부모들과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 어려움도
발생한다. 터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부모들과 함께 공유해야 하고 일일이
소통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관계가 꼬이면 해결하는 데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
해야 한다. 또 합리적인 근무 환경을 확보하기 위해 매년 연말이면 ‘노동조건개선위
원회’에 참여하기도 한다. 대신 경제적으로 많은 가치를 줄 수 없는 현실을 감안 여
름방학과 겨울방학 각 2주일씩 돌아가면서 휴가를 가고 매월 연차 휴가를 통해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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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루 쉰다. 2년에 한 번 유급 안식월을 통해 재충전하는 계기를 갖는 등 비교적
다양한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기도 하다.

서울시 은평구

부모가 참여한 만큼 삶의 질 높아져

사회 통념이 점차 변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육아는 엄마만의 몫이고 아빠의 몫은 밖
에서 일하고 돈벌어오는 것으로 차치된다. 또 아이는 유치원, 어린이집, 학교 등
기관에 맡기기만 하면 그만이고 오로지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
적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일반 어린이집과 비교했을 때 가장 다른 점은 부모들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부모들은 아이의 보육을 위해 조합에 가입하고 출자금과 가입
비를 내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데 직접 참여한다. 800만 원에 달하는 고액의 출자
금을 내고 법정 보육료 외에 25~36만 원의 추가 보육료를 부담하고 연말에 적자가
나면 n분의 1의 적자분담금을 내면서 아이들을 이곳에 맡기고 있다. 경제적인 부담
뿐만 아니라 매월 4~5명이 교사가 휴가를 가면 그 자리를 ‘아마’라는 이름으로 한
방 전체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맡아 일일교사를 하기도 한다.
주방교사가 휴가를 가는 날은 각 반별로 부모가 그 방 아이들의 도시락을 싼다.
집 도시락이다. 어린이집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부모들이 감내하는 노력
과 열성은 일반 부모들이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조율하기 위해
토론을 벌이고 상처를 주어가며 싸우기도 하고 육체적 노동, 경제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나서 1~2년이 지나면 부모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
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노력한 게 아까워서 물리
지도 못하겠다”고 말한다.

내 아이만 보지 말고 전체 아이를 함께 보자는 암묵적인 분위기도 부모들이 성장
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 사회적 부모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은 터전에서
부모들이 지켜야 할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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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나는 어린이집 이모저모 1

초등학교 친구들보다 편한 터전 친구들, 만나면 편안해요.
* 어린이집에 들어서면 자기 아이만 찾거나 자기 아이를 향해서 일직선으로
뛰어가지 말자.
* 여유로운 마음으로 모든 아이들을 다 살펴보고 관심을 가져준다.
* 울고 있거나 외로워 보이는 아이에게 우선적으로 관심을 표시한다.
* 아마 활동이나 아이들에게서 별명을 얻어서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한다.
* 터전에서 먼저 마주친 아이들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주고 함께 뒹굴며 정
다운 대화를 나누자.
* 아이들이 몰두하고 있는 놀이나 활동에 즉석에서 동참하여 친구가 된다.
* 터전에 들어섰을 때 자기 아이가 놀이나 활동을 중단하고 자기에게로 쏜살
같이 달려오기를 기대하지 말자.
* 등하원 시간은 꼭 지켜주고 중간에 방문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공동육아 부모들의 90퍼센트 이상 맞벌이 부모들이다. 우리 사회가 부모들에게
아이를 양육할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간을 쪼개어 노력을 기울
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공동육아 부모가 된다는 것은 결코 돈만 갖고 되
는 일은 아니다. 실천적 참여를 담보로 한다. 등원하고 있는 전 가구가 돌아가면서
이사회를 구성하여 어린이집 운영 전반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업무를 나눠가진다.
교사에게 월급을 주는 일, 조합 행사가 있을 때 음식을 만들고 치우고 정리하는 일,
어린이집을 홍보하는 일,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 전반에 대해 교사와 상의하고 결정
하는 일 등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은 일을 부모들이 나서서
직접 하고 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의 90퍼센트 이상이 맞벌이 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아이의 개성이 어릴 때부터 충분히 발현되고 정해
진 틀에서 인지 교육 위주로 구성되는 교육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껏 놀고 활동
하면 잘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연을 가까이 매일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공동육아의 철학도 부모들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점 중 하나이다.

206
현대 사회에서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는 부모들에게 소리
나는 어린이집이 요구하는 공동체적인 삶은 무척 낯설다. 아이와 관계된 다른 집에
놀러 가본 경험도 거의 없을 정도이다. 부모들은 공동육아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부
서울시 은평구

터 이 낯설음과 가까워진다. 익숙하지 않은 데서 오는 낯설음이 분명히 있지만 사람
사는 재미가 솔솔 난다. 공동육아에 재미를 붙인 부모들은 어릴 적 마실 다니듯이
시간이 날 때마다 모여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졸업한 부모들과 축구 모임을 하기도
하고 영화 번개를 하거나 생일날 모여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퇴근이 늦어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 힘들 때는 시간이 되는 부모에게 부탁하는 품앗이 육아 문화도 정착되
어 있다. 매년 초여름이 되면 전 가구 전 아이들이 모여 1박 2일 들살이(MT)를 가기

           소리나는 어린이집

도 한다. 이러한 마실 문화는 개별적이고 고립적인 삶의 패턴에 지친 부모들에게 정
서적 쉼터와 유대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공동육아 부모들은 왜 이런 일을 하는가. 물론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
는 소망일 것이다. ‘잘’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아이의 개성이 충분히 존중되고 주
입식 교육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껏 놀고 활동하면 잘 클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런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부모들의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참여를 통한
공동 작업에서 오는 즐거움이 바로 공동육아의 맛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사람들 2

초등학교 친구들보다 편한 터전 친구들, 만나면 편안해요.
★소리나는 졸업생 열아홉 살 설재민군
올해 대학에 갓 입학한 설재민군은 은평
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
1기 졸업생이다. 지금도 어릴 적 함께 어
린이집에 다녔던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
도 나누고 여행도 간나는 재민군은 기억
저편에 아스라이 남아있는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풍경을 기억한다. “아빠들이
여름에 터전에 초록색 차양막을 달았던 기억, 미끄럼틀을 고치던 기억이 나고
요. 어린이집 건물 뒤쪽을 친구들과 돌면서 뛰던 기억이 난다”고 말하는 재민

207
씨는 올여름에도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중학
교에 가면서 봄, 가을에 함께 소풍을 갔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선생님과 친구
들이 함께 터전에서 1박 2일로 놀기도 하고 여행도 다녔다. 친구들과는 딱히
할 이야기도 없는데 익숙하기도 하고 만나면 편하다. 초등학교 친구들보다 더
편한 것 같다”고 말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터전을 빌려 들살이(터전에서는 1박
2일 MT를 들살이라고 부른다.)를 하면서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면
서 지금까지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만난 어린이집 친구
들이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라는 재민군. 그에게는 공동육아에서 보냈던 삶이
지금도 진행 중인 듯하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이모저모 2

공동육아 부모들의 부모 참여 활동
* 방모임 : 공동육아의 방은 일반 어린이집이 반 개념이다. 방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부모들과 교사가 만나 어린이들의 한 달 생활과 교육 과정을 이야기
하고 논의한다.
* 아마 활동 : 부모들의 교육 참여 활동으로 교사들의 개인 월차 휴가, 교사
교육의 날 등에 아이를 교사 대신 돌보는 활동이다. 각 가정의 부모는 1년에
적어도 5~6회 정도는 아마 활동에 참여한다.
* 이사회 : 공동육아는 이사회를 두어 해마다 돌아가면서 이사를 맡아 어린
이집 운영 전반을 담당한다. 이사회는 이사장과 운영/교육/재정/시설/홍보로
구성된다.
* 소위활동 : 아이가 등원하면 부모는 각 소위에 들어가 활동한다.
* 교육소위
- 신입조합원 교육 및 기존 조합원 재교육을 담당한다.
- 공동육아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교육 내용과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제안한다.

208
- 공동육아와 공동체와 조합과의 의사소통 채널 기능의 역할을 한다.
- 아이들 반 구성 및 교사 배치 계획을 수립하여 이사회에 보고한다.
* 홍보소위
서울시 은평구

- 조합의 활동을 대내외에 홍보한다.
- 어린이집 대기자를 관리한다.
- 어린이집 총회 자료집을 제작하고 회의록 등 각종 서식을 관리한다.
- 은평지역사회네트워크 회의에 조합을 대표하여 참여한다.
* 운영소위

           소리나는 어린이집

- 어린이집 1년 운영계획표를 작성한다.
- 총회 등의 주요 행사와 조합원들의 단합을 위한 활동을 기획 준비 진행하다.
- 조합원들의 회의 및 행사 참여를 독려하고 파악한다.
* 재정소위
- 어린이집 운영을 위한 지출과 보육료 수입을 관리한다.
- 상하반기에 예산안과 결산안을 작성하여 이사회에 제출한다.
- 출자금의 관리와 운용을 담당한다.
* 시설소위
- 어린이집 시설과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매월 초에 진행하는 대청소를 총괄
관리한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이모저모 3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등원하려면
아이와 부모, 교사가 함께 행복한 공간, 그러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곳.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등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과정을 대략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터전을 방문하여 대표교사에게 가입 안내를 듣고 이사회 면담 날짜를 정한다.

209
2.면담은 부모 둘 다 참석하며 면담 후에 가입신청서를 작성한다.
3.조합 가입이 승인되면 가입비를 납부하고 등원 날짜를 정한다.
4.등원 일주일 전, 부모 중 1인이 사전 아마(부모일일교사 : 아이들과 하루 종
일 지내는 체험)을 한다.
5. 등원하여 1~2주의 적응기간을 보내고 적응이 끝날 때까지 엄마나 아빠가
일정 시간 함께 터전에서 시간을 보낸다. 적응기간 운영방안은 대표교사와 상
의한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이모저모 4

소리나는 어린이집 출자금과 가입비, 보육료, 발전기금
* 출자금 - 터전 임대를 위한 전세금으로 1자녀 800만 원, 2자녀 950만 원(졸
업 후 3년 후에 반환)
* 가입비 - 50만 원(시설 투자비로 사용되며 반환되지 않음, 아이 수에 무관
* 발전기금 - 등원과 동시에 100만 원 납부. 터전 안정화 기금.
* 보육료 - 나이에 따라 다르며 월 보육료 54~60만 원 선(2013년 현재)법정
보육료는 국가에서 지원. 차액을 조합비로 납부

2. 사람이 안보여?
공동육아는 아이와 부모, 교사가 함께 크는 교육 공동체라는 공동 육아 이념의 구현
을 목표로 하여 공동육아 주체에 대한 상호 신뢰와 배려를 모든 출발점으로 삼는다.
내 아이만을 키우는 부모의 시선에서 확장하여 지역 공동체, 공동육아 공동체 연대
를 통해 함께 성장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것은 보육 시설 안
의 아이들만이 아니라 세상의 아이들을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
육아 아이들은 나들이를 다니다가 인사하는 이웃들과 만나고 서로 돌봐주는 가운데

210
성장해 간다. 아이들이, 부모와 교사들이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고 나누는 모습을
보고 큰다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세상과 소통하고 공동체성을 키워나갈 것이다.
이는 단지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이라는 기반을 만나고
서울시 은평구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공동육아와 지역과 소통하는 것은
공동육아 교육 운동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이다. 지역의 아이들, 지역 주민들과 함
께하는 것은 좁은 영역에서 진행되는 부모협동보육의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자 지역
의 역사와 사람들의 생활을 교육 내용을 속으로 끌어 들여 그 내용을 확장하는 작업
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공동육아의 지역 활동 사례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다양한 지역 활동을 하면서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먼저 타 지
역 공동육아의 예를 살펴보자. 인천의 희망세상어린이집은 지역 주민을 조합원으
로 받아들여 지역의 시민단체가 조합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어린
이집 운영과 조합 행사가 지역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매년 지역 단체
들과 연계하여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하여 지역의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다. 마
포 일대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지역 단체들과 함께 매년 봄에 마을 축제를 기획하
여 운영한다. 원주는 협동조합 결성 초기부터 지역 사회단체들과의 상호 협조 및 지
원을 받아 원주생활협동조합으로부터 저렴한 비용으로 식재료를 제공받고 있으며
성공회 원주교구, 지역YMCA와 여성민우회, 지역사회 교육기관 등 지역사회 자원
을 연계하여 조합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공동육아가 지향하는 바는 공동체의 가치를 지역사회로 확장하는 일이다. 강동
구에서 저소득 가정을 위한 지역 방과후 교실 ‘강동꿈나무학교’를 운영하는 강동조
합은 1998년 하반기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의 지원을 받아 ‘강동꿈나무학교’라는
공동육아의 지향을 실현하는 저소득 지역 방과후 교실을 만들어낸 주체이다. 과천
의 공동육아협동조합은 지역사회단체들과 연대하여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보육조
례 개정작업’에 참여했으며 그 외에도 지역 사회를 위한 무료 의료 검진 활동을 하
거나 지역 사회에 터전을 개방하기도 하고 지역 저소득층을 위한 직접 지원 사업(연
탄 나누기 등)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211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 연대 활동

그렇다면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 연대 활동은 지금까지 어떻게 진행되었을 까?
기록을 보면 1996년 개원 이후 어린이집 차원에서 프로젝트성 지역 연대 사업을 진
행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만 해도 은평구는 시민사회 활동이 활발하지 않음을 감안
하면 초창기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당시 활동은 눈여겨 볼만 하다. 1998년 가을, 소
리나는 어린이집은 개원한 후 조합 홍보를 위한 입학설명회나 터전 개방 행사를 진
행하면서 송추농원에서 아빠캠프를 진행했다. ‘아빠와 아이만 참여하는 신나는 하
룻밤’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행사로 공동육아에 관심 있는 은평구 부모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된 행사로 보인다. 이후 초등학
교 방학이 되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터전으로 초청해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
다고 한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IMF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조합원이 줄
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연대 차원의 활동도 줄어들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은 은평구에서 활동하고 있던 시민사회단체들이 각자의 사업을
하는 동시에 시민단체들이 연대하여 행사를 기획하는 등 단체 간의 연대의 기지개
를 펴는 시점이었다. 열린사회은평시민회, 은평두레생협, 터울림, 생태보전시민모
임 등 은평구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은 2004년 은평지역사회네트
워크(이하 은지네)를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연대 행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은지네
행사는 어린이 축제 한마당, 상상축제, 골목축제 등으로 발전했으며 이와 함께 주
민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이 과정에
서 주체로서 꾸준히 참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간헐적으로 2004년, 2005년
어린이날 축제 한마당에 참여하였으나 이후에는 참여가 꾸준히 이어지지는 않았
다. 어린이날 행사에서는 부스를 만들어 아이들을 대상으로 전래놀이를 하거나 간
단한 만들기를 하는 등 부모들이 어린이날 하루를 자기 아이들뿐만 아니라 은평구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보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이 이 시기에 지역 행사에 참여한
것은 5월 5일 열리는 ‘어린이 축제 한마당’ 2회 정도로 기록되고 있다. 이때 일각에
서는 “은평구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유지하고 꾸준히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212
출자금의 높은 벽, 맞벌이 부모의 한계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은평구에 딱 하나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다. 마을 공동체
서울시 은평구

의 대표적인 사례로 불리는 마포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4개가 있고 인근 고양파주
지역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6개가 있다. 최근에 서대문구에도 한 곳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대기자가 많지 않아 정원을 꽉 채운 적이 거의 없다. 대다수의 공동육
아 어린이집이 1년 이상 대기를 해야 들어올 수 있음을 생각하면 원인이 궁금하다.
첫 번째는 출자금이다. 은평구는 서울 전체 25개구 가운데 재정자립도 23위로 주
민들의 경제적 수준이 높지 않다. 800만 원의 출자금과 조합비로 발생하는 보육료

           소리나는 어린이집

를 감당하기 어렵다. 공동육아의 특성상 부모 참여 활동을 부담스러워하는 부모들
도 적지 않다. 대기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등원하는 부모들이 100퍼센트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 외에 지역 사회 연대 활동에
힘을 쏟을 만한 여력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순옥 열린사회은평시민회 대
표는 이에 대해 “맞벌이 부부가 많은데다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는 조합원이 거
의 없었다. 어린이집 부모 참여 활동을 하면서 에너지가 고갈되어 친목 위주의 활동
에 더 매력을 느낀 것으로 본다”고 말하며 “아이를 낳고 초등학교에 가기 전까지 아
이를 키우는 시기가 부모에게 있어서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인생에서 가장 바
쁜 시기이다. 마음에 여유가 거의 없기 때문에 지역 연대 활동까지 할 여력이 없었
을 것이다. 설립 당시에는 어린이집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부모들이 너무 과
도하게 시간을 들이고 힘을 쓰다 보니 지역 연대 사업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전
한다. 이외에도 초창기에 공동육아를 설립했던 세대가 졸업하고 이후 세대가 공동
육아를 구성하면서 부모들이 서로 가치관의 충돌을 겪고 있기도 하다. 공동육아를
만들었던 선배조합원이 내세웠던 공동체적인 가치보다는 질 좋은 보육에 더 방점을
찍기 때문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초창기 조합원들은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은평두레
생협을 만들면서 당시 척박했던 은평시민사회단체사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그러
나 이후 가입한 조합원들은 이미 지역에서 자리 잡고 활동하는 선배조합원들이 있
었음에도 어린이집 안의 부모 참여 활동에 국한하여 밖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다
고 한다. 이후 은평시민사회단체 연대 행사가 무르익어가는 2006년부터 2010년까

213
지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지역 행사에 주체로 참여하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데 더 초점을 두고 활동을 해왔다.

3. ‘소리나는’이 확 달라졌어요.
그런데 2011년에 들어서면서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새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부모들의 지역 행사에 참여하는 회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상상축제, 골목
축제, 각 생협 총회 돌봄, 지역 영유아 부모 대상 부모 커뮤니티 사업 등 이전과 비
교하여 무척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1년에는 4~5년 만에
5월 5일 열리는 ‘상상축제’에 축제 주체로 참여했으며 2012년에는 ‘상상축제’와 함
께 갈현동 길마공원길에서 열린 ‘골목축제’에 주체로 참여하여 터전을 개방하고 ‘주
민과 함께 벽화그리기 사업’을 진행했다. 가을에는 소리나는 어린이집 교육소위에
서 은평구 영유아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은지야 마실가자’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주
민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2013년 3월에는 살림의료생협과 은평두레생협 총회에 ‘아
이 돌봄’ 사업을 진행했으며 상상축제, 골목축제는 물론 ‘은지야 마실가자 2’를 꾸준
히 진행하고 있다. 이는 2000년대 지역 연대 사업 활동과 비교했을 때 괄목할만한
성장이며 ‘맞벌이 부부’ 비율이 줄어들지 않음을 감안했을 때 지역 연대 활동의 폭이
어떻게 넓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지역 연대 활동이 활발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우선 터전 인근에 소리나는 어린이집 조합원이 활동할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 거
점이 대폭 늘어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변화의 시작은 은평시민단체에 있어 좌장
격인 열린사회은평시민회가 2008년 응암동에서 갈현동으로 사무실을 옮긴 것이다.
열린사회은평시민회는 당시 ‘즐거운 소통’이라는 회의실을 운영하며 지역 사회에
개방했는데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연 2회 총회가 열릴 때 마다 이 회의실을 이용했
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친환경 먹거리를 생산자 직거래로 조합원에게 공급하
는 은평두레생협은 2009년 6월, 터전 인근에 첫 매장을 개점했다. 소리나는 어린이
집 조합원 대부분이 생협 조합원이었으며 이들은 매장 개점 후 꾸준히 이용하고 있
다. 2010년 8월에는 살림의료생협이 구산역 사거리에 가정의학과 의원을 개원했다.

214
이러한 지역 사회의 다양한 움직임은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들이 지역 연대 활동
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은평 지역 시민사회
단체들이 터전 근처에 둥지를 틀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의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서울시 은평구

2011년 지역 연대의 기지개를 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이 지역 연대 활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2011년
이후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 연대 활동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11년 상상축
제 ‘어린이 잔치 한마당’은 소리나는 어린이집 홍보소위원회 구성원인 달빛, 천미,

           소리나는 어린이집

꽃게 등 홍보소위원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 홍보소위는 은지네 대표들로 구
성된 축제 회의에 참석하고 녹번초등학교에서 열린 ‘어린이 잔치 한마당’에 부스를
만들어 참여했다. 지역 행사가 생소한 조합원들에게는 홍보소위원들이 직접 전화
를 걸어 보다 많은 가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프로그램은 유아와 어린이
를 대상으로 ‘꽃수레 타기’, ‘구슬치기’, ‘비석치기’ 등을 진행했다. 19가구 중 16가구
가 참석하여 높은 조합원 참석율을 보였다. 당시 행사를 치른 후 홍보소위 평가에서
는 소리나는 어린이집이 ‘어린이 잔치 한마당’에 참여하는 의미는 공동육아가 지역
사회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후에도 조합원
에게 지역 행사를 꾸준히 홍보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 은평구는 매년 5월이면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되어 10년째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한다.
소리나는 어린이집도 이 행사에 주체가 되어 참여하고 있다.

215
2011년 상상축제 평가
1. 사전준비
준비물 : 골고루 안배되어 빠뜨리는 것 없이 가져왔다. 스템플러와 가위는 미
리 준비하거나 주최 측에 빌리는 것도 좋겠다.
행사 부스 위치 : 부스 뒤에 놀이터와 모래놀이가 있어 아이들 놀기 좋았다.
행사가 초등학교 저학년 중심이라 우리 아이들 놀거리를 좀 생각하며 위치를
정해야 한다.
아마홍보 : 19가구 중 16가구 참석으로 참석율이 높았다. 미리 홍보를 많이 한
것이 도움이 되었고 각방별로 독려전화를 한 것이 주효했다. 어린이날 갑자기
상상축제 오라고 하면 아이들과 가고 싶은 곳도 많아 당황스러울 텐데 미리
홍보하고 사전 참석 확인 작업을 해서 더 나았다.
2. 프로그램별 운영 상황 :
무료 음료권으로 동기를 유발하면서 아이들이 참여하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운동장 가운데 전래놀이보다 우리 부스에 아이들이 더 많았다.
각 놀이별 평가
놀이 종류

평가

구슬치기

너구리(대표교사)가 처음에 룰을 만들고 분위기를 잡아줘서 진행이 원활했다. 놀이
방법을 잘 모르는 아마들이 많아 헤맬 뻔 했는데 감 잡을 수 있도록 틀을 만들어주
었다. 1시간에 1명을 배치하는 것은 힘에 부쳤다. 30분에 한 명이 적당하다. 애들이
몰려서 시간배분하기 힘들었다. 구슬 전체 600개였는데 2개씩 주면서 시작하면
개수는 적당하다.

비석치기

아이들이 생소해했지만 참여하면서 즐거워했다. 좀 큰 아이들에게 맞는 프로그램
이다.

꽃수레타기

어린 아이들이 좋아했다. 아이들 몸무게로 구분은 하지 말자. ‘30kg 이상 안된다’
말고 기준을 정해야 한다. 수레 꾸미는 데 있어 아이들 손으로 많이 만들어 꾸미려
는 시도 좋았다. 좀 폼이 안나거나 화려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직접 준비한 꾸밀
거리를 만든 게 좋았다. 미리 리어카 사진 보여주고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3. 전체 평가 :

216
조합원 참석율도 높았고 참가하는 어린이들이 반응도 좋았다. 물론 어린이 잔
치 한마당은 어린 아이들이 즐길 거리, 놀 거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해야
할 것만 홍보하지 말고 가면 어떤 즐거움이 있다는 홍보도 중요하다. 은평 시
서울시 은평구

민사회단체 행사에는 처음 참여해보는 아마들이 많으므로 상상축제 홍보와
함께 주변 즐길 거리, 놀 거리와 함께 주변 맛집을 함께 패키지로 꾸며 홍보하
는 것도 좋겠다.

이어 2011년 6월에는 은평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연대하여 북한산케이블카지

           소리나는 어린이집

키기은평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를 결성했다. 은평구 시민사회단체들과 주민들은
2010년부터 북한산을 위협하는 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해 왔으며, 은평새길, 북한
산 관광자원화 사업 등 북한산을 둘러싼 여러 현안에 폭 넓게 대응하기로 하고, 기
존 연대모임을 새롭게 정비했다. 시민연대에는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생태
보전시민모임, 열린사회은평시민회, 은평두레생협, 은평시민넷 등 제 시민단체와
정당 등 12개 단체가 참여했는데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으로
시민연대에 참여하고 이러한 활동을 조합원들에게 알려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외부 활동이 점차 늘어나는 가운데 2011년 10월에는 졸업
한 선배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15주년 개원잔치’를 열기도 했다. 소리나는 어
린이집 선배조합원들이 터전을 스스럼없이 방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선배조합원들과 아이들이 함께 터전 인근 뒷산을 거닐기도 하고 터전 마당에 천막
을 치고 음식상을 마련하여 동
네 잔치를 열었다. 오랜만에 터
전을 방문한 선배조합원들이 무
척 흡족해 하기도 했다. 2011년
지역사회 연대활동의 결과인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당시 개원잔
치에는 은평두레생협, 살림의
료생협, 마을n까페에서 후원 물
품이 쏟아지기도 했다. 2011년
하반기 총회는 당시 개관했던

▲ 2011년, 소리나는 어린이집 개원 15주년 행사를 터전 마당에서 개최하고 있다.
선배조합원들이 많이 참석했다.

217
역촌동 초록길 도서관에서 개최하여 소리나는 어린이집 조합원들이 갈현동에서 확
장하여 은평구 단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와글와글골목상상, 벽화도 그려요~

2012년 상상축제는 녹번초등학교에서 5월 5일에 열리는 ‘어린이 잔치 한마당’의 연
장선상에서 5월 19일 갈현동 길마공원길에서 첫 번째 ‘와글와글골목상상축제’가 개
최되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이 양 축제에 모두 참여하였으며 다양한 행사를 개
최하여 시선을 끌었다. 특히 골목 축제는 터전 인근 도로를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하
여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으며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주민들이 스스럼없이
터전을 방문할 수 있도록 터전을 개방하였다. 방문하는 주민들에게 공동육아를 알
리고 홍보지도 배포하면서 지역
사회에 소리나는 어린이집을 알렸
다. 이어 열린 5월 19일 골목축제
에서는 소리나는 어린이집 벽면에
경희대학교 벽화그리기 동아리 ‘월
담’을 섭외하여 ‘주민들과 함께하
는 벽화그리기’작업을 진행했다.
축제에 참여한 주민들은 아이들이
함께 붓을 들고 벽화를 그렸으며
조합원도 주민들도 즐겁게 참여한
행사로 기억에 남았다. 당시 소리
나는 어린이집 홍보소위는 ‘어린이
잔치 한마당’과 ‘골목축제가 각각
의미가 있으며 이러한 자리를 통
해 공동육아 홍보마당으로 활용하
는 것도 좋겠다고 평가했다.
▲ 2012년 상상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터전 외벽 벽화그리기. 동네 주민들과
자원봉사 대학생,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들이 함께 했다.

218
2012년 상상축제 및 골목축제 평가

서울시 은평구

1. 5월 5일 어린이 잔치 한마당
조합원 중 3가구 제외하고 모두 참여함. 비석치기는 흥미로운 면이 부족하므
로 내년에는 다른 전통놀이(예-딱지치기, 팔씨름)를 도입하도록 함. 들살이
와 방모임, 문자, 안내지를 통해 다방면으로 적극적으로 홍보하였음. 안내판
재활용 가능하므로 모아 둘 것

           소리나는 어린이집

2. 5월 19일 와글와글 골목 상상 축제
지역에서 행사에 주체로 참여하여 터전을 홍보하는 계기가 되었음.
공동육아의 비전이 잘 연계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음. 공동육아를 이해할 수
있는 안내판 및 안내책자를 주면 공동육아 홍보가 될 것임. 안내 책자를 소식
지 만들 때 같이 만들거나 소식지를 공동육아 홍보에 그래도 활용해도 좋을
것임.
3. 기타
행사를 상상축제와 골목상상축제로 두 번에 걸쳐 한 것은, 각각의 의미가 있
고 둘 중 하나의 행사에 참여하면 된다는 측면에서 내년에도 양일에 걸쳐 참
여하도록 함. 졸업생에게도 문자나 전화통화를 통해 적극적인 홍보를 하여 졸
업생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면 좋은 것임.
4. 전체 평가
양 축제는 매년 둘 다 참여하자. 문자나 전화를 적극 활용하여 선배 조합원들
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 터전 홍보 플랜카드를 만들어 보자.

219
4. 뜨거운 참여 열기, 공동육아? 살아있네~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 연대 활동의 백미를 꼽으라면 무엇보다 2012년에 진행
한 부모커뮤티니 사업 ‘은지야! 마실가자~’일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은평구 영유아
부모 대상으로 진행된 강의 프로그램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21012년 가을에 서
울시 부모커뮤니티 사업 제안서를 내고 은평구 영유아 부모 대상으로 ‘은지야, 마실
가자!’ 사업을 진행했다. 부모교육 6강과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를 돌보는 어린
이 놀이터 5회가 함께 진행되었다. 강의 외에도 소리나는 어린이집 한가위 행사를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였다.

어린이 놀이터와 부모 강의가 함께! 은지야 마실가자~

소리나는 어린이집 ‘은지야, 마실가자!’ 프로젝트는 부모를 대상하는 강의프로그램
과 강의를 듣는 동안 아이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어린이 놀이터’로 진행
되었다. 강의는 대다수 젊은 부모들이 사전 정보 없이 부모가 되고 조언자 없이 아
이를 키우면서 부닥치는 갖가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며 육아스트레스를 받
지 않고 아이를 키울 것인지에 초점을 두었다.
2012년 9월 8일 첫 번째로 〈행복한 부모, 건강한 아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뿐만 아니라 은평 지역의 젊은 부모 26명이 참여했다. 장윤
경 갈등경영연구소 소장이 진행한 열정적인 강의에 질의응답 시간이 길어져 다과를
먹을 시간도 부족했다. 10월 13일에 공동육아 현장 전문가 김경태 선생님이 나선
‘어른들이 모르는 아동의 심리’에서는 아이들의 심리에 대한 이론과 현장에서의 사
례가 적절히 배치되어 이해하기 쉬웠다.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진지하고 재미나게
들을 수 있었던 강의였다. 부모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았던 11월 3일 ‘유아의 성 이해
하기’는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교육 방향에 대해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한 주
후 10일에 진행된 아빠의 놀이학교는 은평뉴타운 물푸레 북까페에서 권오진 선생님
과 함께했으며 아빠들이 10명 넘게 참여하여 몸놀이, 숲체험 프로그램이 알차게 진
행되었다. 아빠들이 아이와의 놀이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약간 오버도 하면서 신나
게 놀아줄 때 아이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게 된다는 강의 내용도 부모들의 가슴에 오

220
래 남았다. 또 일상적인 물건을 이용한 놀이 방법들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참가자
들의 평이다. 11월 17일에는 마을공동체와 공동육아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은지야, 마실가자!’가 은평 지역 영유아 부모의 마실문화 활성화와 연대를 위해
서울시 은평구

기획되었던 데 반해 부모 교육을 거듭하면서 강의에 참여하는 부모들이 마을공동
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공동육아는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고 궁금해 했기 때문
이다. 최순옥 열린사회은평시민회 대표가 맡았던 이 강의에서 최순옥 대표는 마을
공동체의 유래와 역사, 철학, 공동육아의 이론과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참가자들은 공동육아, 두레생협, 의료생협 등 은평구의 다양한 공동체
이야기를 처음 들어본 사람들도 있어 놀랍기도 했다. ‘사전인지 교육 정말 필요한

           소리나는 어린이집

가?’라는 주제로 2013년 초등학교 예비 학부모 대상으로 진행된 12월 15일 6차 교
육은 은평구 현직 초등학교 교사 5인과 함께하는 간담회로 이루어졌다. 혁신초등학
교 교사와 일반초등학교 교사가 적절히 구성되어 참가자들의 호응이 높았다. 참석
한 선생님들은 초등학교 아이들의 교육 과정과 사전학습이 아이들의 학습 능력 발
달에 미치는 장단기적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했으며 지나친 사전 학습은 학
습의 흥미를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와 함
께 하여 현장감이 있었으며 이 강좌를 통해 영유아 인지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이 부모 대상 강의를 진행하면서 어린이 놀이터를 실시한 것
은 부모들이 마음 편하게 강의를 듣고 아이들도 그 시간에 행복하게 보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은지야, 마실가자!’ 부모커뮤니티 사업은 행복한 부모가 건강한 아이
를 키운다는 컨셉에 맞게 부모가 강의를 듣고 있는 동안 아이가 부모를 찾지 않도록
흥미로운 놀이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많은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첫 강의에는 소리
나는 어린이집의 100평이 넘는 마당을 개방하여 아이들이 마당놀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마당 놀이가 싫은 아이들은 소리나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평소에 즐겨 하는 습
식수채화 놀이를 하도록 했다. 처음 오는 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마당에서 모래놀이
나 꽃그림 그리기 등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였으며 습식수채화를 처음 접해
본 아이들도 능숙하게 놀았다. 9월 26일은 한가위 행사, 동네 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놀이마당을 열었다. 씨름, 줄다리기, 강강술래, 투호, 활쏘기 등 민속놀이 등을 했

221
으며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행사 후 떡을 나누어 먹
고 주변 집과 상가에 아이들이 떡을 돌리기도 했다.

▲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 연대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은지야 마실가자’.
은평 영유아 부모들의
호응이 높았다.

‘어른들이 모르는 아동 심리’ 강의가 진행된 10월 13일 이루어진 오감발달 흙놀
이. 6~7세 유아들이 흙으로 숲이나 정글을 만들고 동물 모형을 만들어 꾸미는 활동
으로 흙으로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릇을 만드는 활동을 재미있어 했고 3~5세 유아들
은 흙과 물을 섞어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하면서 즐거워했다. 어린이집에 처
음 온 아이들도 흙놀이나 실내외 자유놀이 활동에 신나게 참여했고 공동육아 아이
들과도 거부감 없이 어울려 놀았다.
어린이 성교육이 있었던 11월 3일에는 아이들도 성교육 인형극을 보며 주제를 이
어갔다. 손인형극은 재미있었지만 성지식을 알려주는 시간에는 다소 지루해 하기
도 하였다. 인형극 후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했던 ‘숲체험 교실’이었다. 아빠의 놀이학교가 끝나고 2명
의 숲체험 강사와 아이들, 아빠들이 북한산 둘레길 코스로 이동했다. 숲 속을 살피
며 식물의 이름을 알아보고 계절의 변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쌀쌀한 날씨에
도 아이들이 자연물을 이용한 줄넘기, 사방치기, 낙엽 뿌리기 등 다양한 놀이에 적
극적으로 참여하여 즐거워 했다.
부모들이 ‘예비학부모 간담회’를 할 동안 아이들은 ‘어린이 영양교육’에 참여했다.
6~7세 아이들은 건강에 대한 사전 지식이 풍부하여 강사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
답하였고 4~5세 아이들은 PPT 수업 자료에 특히 흥미를 가졌다. ‘영양 샌드위치’
만들기에는 3세 아이들도 참여하였다. 3세부터 7세까지 아이들 대부분이 강사의 이

222
야기를 경청하고 요리 순서에 따라 즐겁게 요리 활동을 하였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은지야, 마실가자!’는 그간 간헐적으로 이루어졌던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 활동이 주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데 그 의미가 깊다.
서울시 은평구

2012 은지야 마실가자 세부 프로그램
일시

부모강의

강사

참여인원

어린이놀이터

9. 8

행복한 부모, 건강한 아이

장윤경 갈등경영연구소 소장
서울서북병원 물리치료사 최은혜

28명

9. 26

동네 주민과 한가위 마당

소리나는 어린이집 교사회

50여 명

10. 13

어른들은 모르는 아동의 심리

김경태 공동육아 현장지원전문가

30명

오감발달/흙놀이

11. 3

유아의 성 이해하기

정태경 탁틴 열린내일 성교육 팀장

30명

어린이 성교육

11. 10

아빠 놀이학교

권오진 아빠의 놀이학교 교장

아빠 12명/
아이 14명

11.17

마을공동체와 공동육아

최순옥 은평시민회 대표

13명

숲체험 교실

12.15

사전인지교육 필요한가?

초등교사 5인

30명

어린이영양교육

마당놀이/
습식수채화

           소리나는 어린이집

한 걸음 더 내딛은 ‘소리나는’

2012년에 다양한 지역 활동으로 자신감을 얻은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2013년 3월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은평구의 협동조합 간 연대 차원에서 기획된 ‘총회 아
이돌봄 지원’이다. 협동조합들이 해마다 총회를 여는 데 총회가 진행되는 동안 소리
나는 어린이집 조합원들이 아이를 돌봐주는 것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들은
2013년 3월 9일과 16일에 개최된 은평두레생협과 살림의료생협 총회에서 2~3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주는 지원 사업을 펼쳤다.
당시 의료생협과 두레생협 조합원들은 소리나는 어린이집 지원 사업에 무척 고마워
했으며 처음으로 총회를 조용하게(?) 치뤘다는 조합원들의 인사를 듣기도 했다. 지
역 협동조합 총회 아이돌봄 지원 활동의 경우 《은평시민신문》에도 소개되었고 총회
가 끝난 후 돌봄을 이용했던 각 생협 조합원들이 온라인 까페에 장문의 감사인사를
올리기도 했다.

223
●2013년 3월 22일 게재된 《은평시민신문》 기사

소리나는어린이집, 두레생협과 의료생협 총회에 유아돌봄 지원
아이들도 행복한 총회 만들기 … 협동조합간 협동 의미 있어
해마다 2~3월이면 은평 곳곳에서 다양한 단체들이 총회를 개최한다. 주로 어
른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참석자들이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경우도 많다. 아이
들은 지루한 총회를 즐기지도 못하고 부모 품에서 조용히 하라는 “쉿” 소리만
듣다 오기도 한다. 그런데 올해 두레생협과 의료생협 총회에서는 이런 모습이
싹 사라졌다.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어린이집이 양 총회에 유아 돌
봄을 지원한 것이다. 이번 유아 돌봄은 협동조합간 협동 차원에서 기획되었으
며 소리나는어린이집 부모들은 총회가 진행되는 2~3시간 동안 10~20여명의
유아 및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신문지 놀이, 만다라 그리기, 종이접기 등을 하
며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김천수 소리나는어린이집 홍보이사는 “아
이들도 행복하고 어른도 행복한 총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향후에도 꾸준히 행사를 지원할 것이라 밝혔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커뮤니티에 올라온 은평두레생협 조합원의 감사 인사

아이돌봄 감사후기 남겨요~
마을에서 이런저런 행사에 참가하거나 생협 조합원 활동 하다보면 가장 마음
에 걸리는 것이 아이 문제죠. 낮이라면 어린이집에 있을 시간이라 걱정할 일
없지만, 이 또한 직장다니는 조합원들에게는 아쉬운 점이고… 하지만 정작 맞
벌이 부부에게 저녁 행사와 주말 행사는 반가우면서도 아이가 어리면 그 때마
다 일일이 데리고다녀야 하는 점입니다.
이번 2013년 은평두레생협 대의원 총회에는 은평의 유일한 공동육아조합인
소리나는어린이집 부모님들이 아이돌봄방을 운영해주셔서 마음놓고 참석할
수 있었어요. 총회가 열린 4층 바로 밑 3층에는 온돌방이 있는데, 사실 그곳이

224
우리가 원했던 장소였어요. 다만 이날 강습이 잡혀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해
옆의 다른 강의실로 장소가 급변경되었죠. 이 강의실은 입식 바닥이고 조금더
협소했어요. 다행히 소리나는 조합 부모님들이 가져오신 신문지와 만다라 색
서울시 은평구

칠하기 활동으로 아이들은 지루한 줄 모르고 즐겁게 지냈어요. 이럴 때 얇은
매트라도 1~2장 깔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지만, 급하게 구할 곳이 없었죠. 평
생학습관 측에서 이런 간단한 집기를 구비해놓고 대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
도 들었어요. 크기가 작긴 하지만 4층에 구비되어 있는 요가매트를 급히 깔았
으면 어땠을까 뒤늦게 떠오르기도 하고요^^

           소리나는 어린이집

돌 지난 지 얼마 안 된 준이부터 중학생 경수까지 돌봄방은 와글와글 시끌벅
적. 부모님들은 바퀴달린 강의실 의자에 심심해하는 아이들을 태우고 윙윙 놀
이도 하시고… 저희 둘째는 요즘 껌딱지로 빙의하여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기
실습을 하느라 주로 제 팔과 무릎에 안겨 있었지만, 그래도 큰아이는 돌봄방
에서 만다라에 집중하며 나름 시간을 즐겼다고 하네요.
이모 삼촌과 함께 신문지도 찢어보고, 찢은 신문지와 테이프로 공을 둘둘 말
아보고, 그 공을 굴리며 노는 아이들… 덕분에 대의원 총회는 무사히 잘 끝났
다죠^^
엊그제 일주일 뒤 열린 살림의료생협 총회때는 더욱 준비된 자세로 돌봄방이
운영되어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님들에게 깜짝 놀랐습니다.^^ 풍부한 간식,
니모를 찾아서 영상보기, 소리나는 어린이집을 알리는 펼침막과 포스터 등…
여러가지 사정상 저희 가족은 직접 공동육아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은평에 소
리나는 공동육아 조합이 있어서 정말 든든합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님들, 2주간 고생 많으셨고 부모들과 아이들 모두에
게 즐거운 시간 만들어주시고 안전하게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평두레생협 김시형 조합원

225
다시 참여한 지 3년차에 접어든 상상축제와 골목축제는 더욱 더 구체화되었다.
2013년 상상축제 어린이 잔치 한마당은 녹번초등학교에서 확장하여 불광역 사회적
경제지원센터(구 질병관리본부)에서 개최되었으며 조합원들이 아이와 함께 참여하
여 판제기차기, 사방치기, 투호놀이 등을 진행했다. 부모들은 부스에 꼭 자리를 잡
고 앉아서 행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30분 정도만 자기가 지원한 시
간대에만 부스를 지키고 주로 타 단체에서 하는 놀이 등을 즐기며 어린이날을 보냈
다. 이어 열린 5월 11일 골목상상축제에서는 예년과 같이 방방이(트렘폴린)을 개방
하고 관심있는 주민들에게 터전 건물을 개방,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간식과 홍보
지를 준비했으며 졸업한 선배조합원들에게도 행사 소시을 알려 터전을 방문하도록
유도했다.

2013년 상상축제 및 골목축제 평가
어린이 잔치한마당
일시 : 2013년 5월 4일 토요일 오전 11시 ~ 오후 4시
장소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구 질병관리본부)
진행 놀이 : 투호, 제기차기, 사방치기
평가 : 먼지가 나지 않고 넓지 않아 녹번초등학교 운동장보다 좋았다는 반응
이 많았다. 신입조합원 참여가 많았으며 놀이 중 작년행사 후 남은 구슬을 선
물로 주어 아이들이 좋아함
골목상상축제
일시 : 2014년 5월 11일 토요일 오전 11시 ~ 오후 5시
장소 : 갈현동 길마공원 일대
놀이내용: 터전마당 개방(모래놀이, 그네 등), 방방이
평가 : 5월 4일 어린이 잔치한마당과 연속으로 이루어진 행사임을 감안하여
조직위에서 회의참석이나 놀이수준 등 참여수준을 배려. 홍보소위 구성원들
위주로 진행하였다. 축제와 관련, 은지네 기획회의가 많아 부담스럽지만 다른
단체 들이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특성을 감안, 적은 참여나 성의만으로도 존재

226
감을 나타낼 수 있었다. 지역 단체와의 협력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 조합 홍보
의 기초가 될 수 있으므로 5월 행사는 부스 방문자에 대한 홍보 뿐 아니라 지
역단체를 대상으로 한 홍보 효과도 크다.
서울시 은평구

생태 프로그램으로 정착한 은지야 마실가자 2

5월 축제가 끝나고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2012년에 이어 2013년 가을에도 ‘은지
야 마실가자 2’를 진행하였다. 서울시 ‘부모커뮤니티’ 사업의 일환으로 은평구 영유

           소리나는 어린이집

아 및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되었다. 첫 번째 생태마실은 9월
14일 북한산 둘레길에서 ‘생명의 숲’이라는 주제로 진행됐으며 오는 10월 5일 토요
일 오전 10시 30분, 북한산 둘레길 ‘숲속의 보물’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생태마실이
진행되었다. ‘은지야 마실가자 2’는 2013년 9월 14일부터 12월 7일까지 총 6회에 걸
쳐 진행되며 안전한 먹거리, 어른을 위한 생태교
육 등 성인을 위한 강좌도 진행했다. 2012년에
는 강의와 어린이 놀이터를 중심으로 진행했다
면 2013년에는 아이들과 부모과 함께 숲에서 노
는 프로그램을 위주로 구성했다. 영유아 및 초등
학생 부모들의 관심이 높았으며 현 조합원들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수 참석했다.

▲ 2013 ‘은지야 마실가자 2’는 영유아 생태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되었다. 아이들과 숲에서 노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2013년 소리나는 어린이집 생태마실 프로그램
일시

시간

주제

참가비

장소

비고

9월 14일

10시 30분

생명의 숲

3천 원

북한산 둘레길

4세~초등저학년,
보호자 1인 동반

10월 5일

10시 30분

숲속의 보물

3천 원

북한산 둘레길

위와 같음

10월 26일

10시 30분

수변의 생태

3천 원

고덕수변생태공원

위와 같음

11월 9일

10시 30분

숲의 변화

3천 원

이말산

위와 같음

11월 23일

10시

안전한 먹거리

무료

은평두레생협 사무실

성인 대상

12월 7일

10시

엄마생태교육

무료

물푸레 북까페

성인 대상

227
5. 공동육아는 왜 지역사회와 소통하는가
지금까지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17년 역사를 되짚으면서 그
간 진행해왔던 지역 연대 활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공동육아는 왜 지역사회와 소통
하는가? 전국 65개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연합회인 (사)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에
따르면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 뿐만 아니라 부모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공동육아와 시민사회단체 활동은 가치적으로 같은 선상에 있다. 공동육아는 부
모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스스로 참여하는 활동 자체가 지금보다 더 나은 보
육 환경을 만들겠다는 보육 운동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친환경 먹거리 100퍼센트를 고집하는 것도 실내 활동 위주의 보육에서 벗어나 나들
이 중심의 교육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는 것도, 어른과 아이가 반말을
하면서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도 이러한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
아야 한다.
이 시대의 부모들은 예전에 비해 키우는 아이의 숫자가 적고 조언할 수 있는 어
른들이 없는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따라서 아이를 돌보는 데 있어 부모가
모든 분야에 있어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해야 한다. 공동육아에서 자란 아이들
이 학교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다행스럽게도 은평구는 부모들이 의지할 수 있는 자
율적인 공간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조용히 책을 읽는 도서관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드나들며 편안하게 강의를 듣고 취미나 공부 모임을 하는 초록길 도서관,
청소년들이 마음껏 끼를 발산할 수 있는 신나는 애프터, 2014년 10월에 건립되는
구산동 도서관 마을까지,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
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단체나 공간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지역 사회와 넓고 깊게
교류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아이들과 부모들은 삶 속에서 지역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터전 근처에 친환경 먹거리를 생산자 직거래로 공급하는 은평두레생협
매장이 생기고 협동조합의 가치를 의료 서비스를 통해 실현하는 살림의료생협이 의
원을 설립하면서 소리나는 어린이집 조합원들은 설립 과정에서 열렬한 지지를 보여
주었다.

228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들은 아이의 보육을 위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발을 디
디면서 자연스럽게 은평두레생협에서 장을 보고 아이가 아프면 살림의료생협을 이
용하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에너지 협동조합에 참여한다. 건강한 지역 언론을 지
서울시 은평구

지하는 마음에서 《은평시민신문》을 후원하고 은평두레생협이 진행하는 생산자 초
청 강좌나 식품안전강의를 듣는다. 은평학부모네트워크가 준비한 아이를 위한 교
육 강좌에 참여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고 밥을 먹는 일상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실
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몸으로 체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지금
은 작은 마을에서 이뤄지지만 이러한 생활에 습관이 되면서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더 큰 가치로 다가올 것이다. 일곱 살 아이의 부모인 신승화씨는 “어른들이 환경을

           소리나는 어린이집

잘 만들어 놔도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잘 활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우리
가 가고자 하는 철학이 다음 세대에 이어지도록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영
유아 시기의 무의식 속에 녹아 있는 철학이 가장 기본 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최순옥 열린사회은평시민회 대표는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지역 사회에 있는 다양한
자원들과 교류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는 것이 맞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현재 긍
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는 개인적인 일상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뜨겁게 실현하고 있다. 공동육아의 다양한 지역 연대 활동이 이들의 삶을 더욱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 믿는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홈페이지: sorinaneun.gongdong.or.kr
● 전화: 02-358-7725
● 주소 : 서울시 은평구 갈현2동 494-12

참고자료

1
•	 998 소리나는 어린이집 2주년 자료집
2
•	 003 소리나는 어린이집 신입조합원 교육 자료집
부모협동어린이집 운영지침서 2010
•	
국내 언론에 소개된 소리나는 어린이집 각종 기사
•	

229
《
•	 은평시민신문》(www.epnews.net)에 게재된 각종 기사
소
•	 리나는 어린이집 온라인 홈페이지 sorinaneun.gongdong.or.kr
소
•	 리나는 어린이집 선배조합원, 현 조합원 인터뷰

230
iii알 란성
토 ⅴ
장

마 미 어 광 사찰 》
을 디 《 진관 들지
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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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이
잔치 야기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육아를 진행하며
서울시 광진구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글쓴이 | 권기정(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대표)
글쓴이 | 오봉석

두 아이의 엄마이자 중랑구립면목정보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다. 동대문구에서 태어나고 자
서울시 광진구에서 태어나 20여년을 살고, 15년의 외지생활 끝에 광진구에 다시 돌아와 지역 활
라 동대문구에서 살고 있다. 육아지진아이자 워킹맘이라는 최악의 조건에서 아이를 잘 기르고
동을 한 지 5년이 되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의 발행인이고,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
싶은 마음에 품앗이 공동육아를 결심하게 된 용감한 여자. 온 동네를 누비며 공동육아를 하자고
센터의 마을상담원이며, 서울시 지역아동센터 생태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소모임 만들기가 취
파닥파닥 부채질을 했던 끝에 알토란 대표를 맡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도움을 뻔뻔
미여서 현재 독서모임과 청년층모임 등 3개의 모임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아빠들 모임까지
하게 받으며 스스로 인복이 있다고 감탄 중이다.
만들려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다. 40대 인생의 초입에 마을공동체를 만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
며 살고 있으며. 아홉 살, 여섯 살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글소개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사람만이 희망이고 마을에 답이 있다’는 믿음으로 2012년 11월 창간한 광진구지역의 	
마을미디어. 인터넷 블로그에서 다양한 마을소식과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종이신문도 발행하고 있다. 마을기자학교를 개최하여 지역주민들이 직접 자기 동네 	
골목골목의 마을소식을 기사로 만들도록 하고 있다. 또한, 전국 최초의 인물중심 	
마을미디어를 표방한다.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마을미디어를 통해 나누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블로그주소 : http://blog.naver.com/gjpeoples
● 이메일 : gjpeoples@naver.com
● 연락처 :  행인 오봉석 010-6209-4848
발

/	

편집국장 표재선 010-5064-2126

232
차례

들어가며
서울시 광진구

1. 《광진사람들》의 창간
“한 사람이 미치고 두 세 사람이 마지못해 끌려나오면 마을일은 시작할 수 있습니다!”

2. 《광진사람들》의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people 人 광진’
2013년의 시작, 1기 광진마을기자학교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고요?
마을미디어협동조합 1차 설립신고 실패기
조급한 협동조합 설립에 따른 깨달음
대한민국 마을공동체 최고의 인터뷰어가 되고 싶다!
푸르른 5월, 《광진사람들》 종이신문 준비호가 태어나다!
국내최초 인물중심 마을신문 《광진사람들》을 창간하다!
갑·을의 관계를 넘어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공동체를 향해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 마을기자를 모집합니다!

3. 《광진사람들》의 내일은?
겨울에는 광진 마을미디어문화교실로!
일희일비 NO! 천천히 꾸준히 웃으면서 YES!
인터뷰 : 《디지털광진》 홍진기 대표
좌담회 : 《디지털광진》 13년의 역사가 남긴 지역사회의 변화는?

4. 또 하나의 지역 언론 《디지털광진》 돌아보기
“나타났다! 홍박사!”
《디지털광진》이 걸어온 길

나오며

233
들어가며
첫 눈을 밟을 때에 조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 눈을 밟은 내 발자국을 보고 누군가가 따라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래서 ‘처음’ ‘최초’라는 말은 언론에서 좋아하는 수식어이긴 하지만 ‘처음’ ‘최초’로 어
떤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전국 최초의 ‘구’단위 인터넷 신문을 시작한 곳이 바로 서울 광진구의 《디지털광
진》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국 최초의 인물중심 마을미디어를 표방하며 시작한 곳도
서울 광진구의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이었습니다.
《광진사람들》이 태어난 지 갓 1년 된 어린 아기에 불과하다면, 《디지털광진》은
10살을 훌쩍 넘긴 청소년에 해당합니다. 《광진사람들》과 《디지털광진》은 얼핏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점을 안고 있습니다. 《광진사람들》은 마
을미디어를, 《디지털광진》은 인터넷신문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사 내용
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광진사람들》의 돌잔치 이야기를 하면서 《디지털광진》의 역
사를 함께 보려는 것은 두 매체의 창간정신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역주
민이 주인이 되는 언론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마을신문을 만드는데 도움을 받고 싶다며 다른 지역의 분들께 연락
을 받곤 합니다. 이렇게 마을미디어에 관심 있는 분들은 물론이고, 마을공동체와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광진사람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34
1. 《광진사람들》의 창간
“한 사람이 미치고 두 세 사람이 마지못해 끌려나오면 마을일은 시작할 수 있습니다!”

2012년 가을,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사례를 설명해 주신 서울시 마을
서울시 광진구

공동체종합지원센터 유창복 센터장님의 강연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내가 미치고 주변의 두 세 사람만 끌어당기면 우리 지역에서도 성미산 마
을처럼 마을일을 할 수 있겠구나.’
막연한 자신감에 내가 우리 지역, 광진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습니다.
광진구지역에서는 시민단체와 복지관 등에서 이러저러한 마을사업을 예전부터 잘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해오고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을미디어’와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은 한 군
데도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 이거야!’
‘마을미디어’라는 새로운 분야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신이 났던지 혼자서 잠 못 이
루며 상상의 날개를 펼쳐 나갔습니다. 그 순간, 파란만장했던 대학시절에 유독 이
루지 못했던 신문기자의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을미디어’라는 낯선 분야의 일을 시
작하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고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나는 마을미디어를 왜 하고 싶은 거지?’
‘마을미디어가 무엇이지?’
‘정말, 책임 있게 마을미디어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마을미디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

▲ 《광진사람들》 오봉석 발행인

인가?’
그리고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이야기를 컴퓨터 자판 앞에서 단숨
에 써 내려 갔습니다.

235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창간사
휴대폰 중독에 빠진 한국사회.
다양한 정보와 편리성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하철에서도 식당에서도 	
길을 걸을 때에도 손바닥만 액정을 보고 있는 풍경이 왠지 씁쓸합니다.
저 출산 고령화시대에 자살률마저 세계 최고인 우리 사회.
사람과 사람의 눈을 마주보고 대화하기 보다는 무한경쟁과 각박한 세상살이
에 내몰린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사람, 지역, 마을, 힐링, 소통…….”
사람만이 희망이고, 지역(마을)에 답이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
《광진사람들》을 창간합니다.
《광진사람들》은 지역 내 다양한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담고자 합니다.
평소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지역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접하면서, 	
이 시대의 희망과 대안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11월 5일, 아차산자락에서
《광진사람들》 발행인, 오 봉 석

우선은 돈이 들지 않는 인터넷 블로그를 개설하고, 거창하게 창간사를 올렸습니다.
마을미디어의 이름은 《광진사람들》이라고 정했습니다.
광진구 지역 내에 역사를 갖고 있는 여러 지역 언론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기존
의 지역 언론과는 차별적인 마을미디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기사를 중심으로 하
는 지역 언론은 많지만, 사람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언론은 광진구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흔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미
디어가 마을공동체의 취지에도 맞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보화시대이후 하루하루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에 허우적대는 모습입니다. 언론
기사도 마찬가지여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언론사에서 매일 쏟아내는 기사들

236
속에 이제는 포털사이트 뉴스 란의 기사 제목만 보기에도 벅찬 지경입니다. 광진구
도 마찬가지여서 지역 내의 언론이 10여개에 이르는 상황에서 《광진사람들》까지 기
사 중심의 마을미디어를 추구하는 게 옳은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정보홍수의 시대에 우리가 정작 잊고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했습
니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인터넷 세계에 빠져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서울시 광진구

를 진지하게 되돌아보았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
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고, 스마트폰과 인터넷속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미디어, 우리 동네 주변 사람들의 이
야기를 차분하게 전해주는 마을신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물론, 사람 인물 중심의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마을미디어라고 해서 마을기사를 전혀 싣지 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따뜻한 사람
들의 이야기는 인터뷰 형식을 통해서 만날 수도 있고 기사 형식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블로그 주소는 gjpeoples 로 정했습니다.
광진의 이니셜을 따서 gj 를 붙였고, 사람들에서 peoples를 붙였습니다. 지역에
서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어느 분이 people이 복수형인데 왜 s 자를 붙였냐고 물어
보셔서 그 꼼꼼함에 놀란 적이 있는데, gjpeople은 기존에 존재하는 주소여서 어쩔
수 없이 s 자를 붙인 것이랍니다.

인터넷 블로그도 개설하고, 마을미디어 이름도 정하고, 창간사까지 올렸으니 이
제 남은 일은 ‘마지못해 끌려 나올 두 세 사람’
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손을 잡은 사람은 제가 ‘2012년
광진평화·통일한마당’의 집행위원장을 할
때, 자원봉사단장으로 행사를 도와준 표재선
이라는 후배였습니다. 180cm의 키에 76kg
몸무게로 거의 축구선수 몸매를 유지하고 있
는 표재선님은 저의 거창한 설명에 “어어어어

▲《광진사람들》 표재선 편집국장

237
어……” 하다가 수락을 하였습니다.
제가 내민 손을 가장 먼저 잡은 사람이기에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에서 맡고
싶은 직책을 이야기해 보시라 얘기했는데, 그 성격처럼 “어어어어어……” 하며 말
이 없기에 ‘편집국장’이라는 중책을 맡겼습니다.

다음으로 손을 내민 사람은
광진397모임(광진구내의 30대,
90년대 학번, 70년대 생의 모
임)의 멤버인 김승호님이었습
니다. 광진397모임은 지역 내
젊은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보
고자 2009년 말부터 시작한 친
목모임입니다.
▲왼쪽부터 이혜민 마을기자와 김승호 마을기자

광진주민연대의 대표이기도
했던 김승호님은 마을미디어라

는 낯선 일을 제안하자, 처음에는 한두 번 예의상 대답하고는 이내 빠져나가려 했지
만 저의 집요한 제안에 어쩔 수 없이 수락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지금은 《광진사람
들》의 가장 든든한 마을기자이자 편집기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손을 내민 사람은 광진시민연대의 이나리 사무국장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20대의 여성인데, 마을미디어를 제안하자 마치 기
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단번에 수락하였습니다. 대학언론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이나리님은 본인이 지역단체의 일을 시작하면서 꿈꾸었던 것이 바로 마을미디어와
같은 것이었다면서 열정적으로 화답해 주었습니다. 컴퓨터의 즐겨찾기 목록에 《광
진사람들》을 가장 먼저 올려놓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광진사람들》의 분위
기 메이커형 마을기자랍니다.

238
2. 《광진사람들》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people 人 광진’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의 대표적인 코너가 ‘people 人 광진’이라는 코너인데, 지
서울시 광진구

역의 사람들 이야기를 담는 코너입니다. 그 첫 번째 기사 제목은 ‘마을의 30대 청년
들, 40대 형님을 만나다’였습니다.

2012년 겨울, 광진397모임에 나오는 30대의 청년들이 40대의 민동세(광진구 늘
푸른돌봄센터장)님을 모시고, 호프집에서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이 날의 자리에 참석한 30대 청년들은 물론이고 40대의 민동세님도 너무나 흥겨워
하는 것을 보며 마을미디어라는 일을 시작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되
었습니다. 민동세님은 자신의 30대 시절을 회상하며 지역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를 이야기해 주셨는데, 청년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예전
에는 지역단체의 벽을 넘어서 활동가들이
모여 함께 지역사회의 대안에 대해 공부했
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민동세님
은 이렇게 지역청년들이 불러 주어서 고맙
다고 했고, 청년들은 형님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며 덕담을 주고받는 훈훈한 분위기

▲왼쪽에서 두 번째가 민동세님

가 연출되었답니다.

‘people 人 광진’의 두 번째 기사 제목은 ‘민족고대 82학번 이해삼·안순종의 아
주 특별한 만남’이었습니다.

광진구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는 새날을여는지역사회교육센터의 이해
삼 대표님과 광진참여네트워크의 안순종 대표님이 같은 대학 동기였다는 사실을 어
느 술자리에서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이 기사의 시초였습니다.

239
우리는 같은 회사, 가정, 마을에서 주변
의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경우가 많이 있습
니다.
50대의 나이에 접어든 두 아저씨와의 만
남은 두 분의 삶만큼이나 진솔하고 진지하
였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함께 얼싸안고 사
▲ 왼쪽부터 이해삼님과 안순종님

진을 찍는 50대 두 아저씨의 모습을 바라보
며, ‘이게 바로 마을미디어가 가야할 길이구

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50대의 두 아저씨는 지난 자신들의 삶에서 자랑
하고픈 것과 함께 후회되는 것을 이야기하였는데, 이 부분이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
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주 뵙던 분들임에도, 어쩌면 자신의 숨기고 싶
은 부분들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올 봄, 이해삼님께서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해삼님의
마지막 육성을 이날의 인터뷰 동영상으로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이 천사 같은 모습을 보이면 나는 거기에 가요.
그렇게 살면 되잖아요. 그렇게 살자고요…….”
마을미디어는 한 지역과 사람의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이해삼님과 나
누었던 이야기들과 인터뷰기사, 장례식소식을 묶어 ‘[추모] 故 이해삼 새날을여는지
역사회교육센터 대표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올렸습니다. 이해삼님의 소식이
여러 언론에 알려지면서 이 기사를 통해 《광진사람들》 블로그에 5천명이상의 사람
들이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이 지역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겨울이 찾아왔습
니다. 매년, 연말이면 신문사에서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올 해의 한자성어를 공모
하여 발표하곤 합니다. 그래서 마을미디어도 한자성어를 주민들에게 공모해 보자
고 생각했습니다. “한자성어가 대학교수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지 지역에서는 무

240
리이다”라며 만류하는 분도 계셨으나, 마을미디어라는 낯선 일도 시작한 마당에 못
해낼 일이 어디 있으랴? 용기를 내어 인터넷 블로그 공지사항을 통해서 공모를 하
였는데, 마감일이 다 되도록 응모자가 없었습니다. 이 때, 편집국장님의 제안으로
인터넷 페이스북과 스마트폰 카카오톡을 활용해 올해의 한자성어를 공모하였더니,
한 명씩 응모자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0여명의 주민들이 한자성어에 응모
서울시 광진구

해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3명의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대학교수들처럼 어려운 한자성어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의 주민들이 스스로 한
자성어를 냈다는 게 마냥 좋았습니다.
대상은 ‘주마가편’(走馬加鞭)으로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뜻으로, 열심히 하
는 사람을 더욱 잘하도록 격려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최우수상은 3명이 동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시에 수상했는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눈이 내리는 위에 서리까지 더한다’는
뜻으로, 어려운 일이나 불행이 겹쳐서 일어
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우수상은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머리는 용
이나 꼬리는 뱀’이라는 뜻으로, 처음은 좋으
나 끝이 좋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고 합니다.
대상을 제외하고는 ‘설상가상’이나 ‘용두사
미’처럼 2012년이 그다지 기분 좋게 마무리
되는 해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2013년에
는 좀 더 기분 좋고 활기찬 사자성어가 당첨

▲ 2012년 올해의 사자성어 대상자 홍태용님
“주마가편 走馬加鞭”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2013년의 시작, 1기 광진마을기자학교

2013년 새해를 맞아 지역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던 중, ‘1기 광
진마을기자학교’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마을미디어라는 단어조차도 생소한 지역
에서 마을기자학교라는 것을 개최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더 생소해 했습니다. 마을
기자학교 웹포스트를 아는 분의 재능기부로 만들고, A4용지로 출력해서 사람들을

241
만나며 마을기자를 모집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궁금증 투성이였습니다.
“마을미디어가 뭐예요?”
“마을기자를 하면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마을미디어에 대해 설명하고, 마을기자학교를 소개하면
서 정작 들었던 생각은 제 자신도 이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이었
습니다. 오히려,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마을미디어의 개념에 대해 스스로 정립
해 나가고, 마을기자학교와 마을기자의 역할에 대해 깨달아 나가는 과정이었습니
다. 사실, 그랬습니다. 공동육아나 마을도서관 등의 마을사업은 예전부터 해왔던
역사가 있고, 자기 지역이 아니어도 다른 지역의 사례가 많이 있는 편입니다. 반면,
마을미디어는 그 역사도 사례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2013년 1월 24일 ‘1기 광진마을기자학교’를 15명의 주민들과 함께 개최하였습니
다. 모두가 낯설어 하는 마을미디어와 《광진사람들》에 대해 제가 파워포인트를 활
용해 설명하였고, 서울시민네트워크 임후상 운영위원님으로부터 ‘마을공동체와 마
을미디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강연 후에는 2개의 조로 나누어 토론을 하였는데,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눈에 띄는 의견은 가령 ‘내 사랑 화양리’라는 추적 기사를 통
해 세종대학교 인근 화양리 지역의 변천사를 담아보면 좋겠다는 의견과 구의시장의
변화상을 밀착해 시리즈로 담아보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재개발, 재건축 등
으로 변화하는 동네의 사람들이야기를
마을미디어가 추적기사로 실었으면 좋
겠다는 의견이 눈에 띄었습니다.
모든 행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뒷
풀이! 유난히 쌀쌀했던 날씨에도 불구
하고, 10여명의 사람들이 뚝섬유원지
역 인근 호프집에 모였습니다. 시끌벅
적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고 이야기하
는 사람들을 보며, 난생 처음 마을미디
▲ 1기 광진마을기자학교 사진

242

어라는 것을 만들고 ‘1기 광진마을기자
학교’를 준비하며 이런저런 고민으로 고생했던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이 한 순간에 보
상받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외로웠고, 힐링이 필요했고, 공동체를 원하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월 22일에는 ‘1기 광진마을기자학교의 두 번째 이야기’로 《디지털광진》
서울시 광진구

의 홍진기 대표님을 모시고 ‘지역기자에게 듣는 우리 마을과 알기 쉬운 기사작성법’
에 대해 강의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디지털광진》의 홍진기님은 마을미디어를
시작하기 전부터 지역사회에서 격의 없이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랬기에 마
을미디어라는 마을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조언을 구한 사람도 바로 홍진기
기자님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여러 매체가 존재하는 광진구에서 마을미디어까지 뛰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어들면 경쟁자로 여기지 않으실까 내심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
고 이야기하니 제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 게 되었습니다.
“아니, 왜 그런 걱정을 하세요? 사실 제가 《디지털광진》을 처음 시작할 때 꿈꾸었
던 모습이 바로 마을미디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라며 오히려 《광진사람들》을 반갑
게 맞아주셨던 홍진기 기자님이었습니다.
우리 지역에 대해 누구보다 세세히 알고 계셨던 분이었기에 이 날의 강연은 어느
강연보다 귀에 쏙쏙 들어오고 유익했습니다.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고요?

2월 초순, 처음에는 마지못해 끌려 나왔다가 이제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마을기자를
함께 하고 있는 몇 분과 마인드맵(Mind Map) 방식을 활용해 마을신문 만들기를 토
론하였습니다.
참으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가장 뜨거운 쟁점은 마을미디어 《광진
사람들》을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문제였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재정문제였습니다. 인터넷을 넘어서 지역주민들과 실제 만나서
소통할 수 있는 종이신문을 만들자니 재정문제가 딱하니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뜻을 함께하는 분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다채로운 공연을 준비하고 티켓
을 판매하여 재정을 마련하면 어떨까 논의하였는데,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겠다는

243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재정마련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협동조합 설
립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모든 지하철마다 기린 사진에 ‘5명만 모
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라는 광고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고, 잘은
모르지만 협동조합을 추진하면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게 있었습니다.
협동조합 얘기가 나오자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 방향으로 가자고 이야기하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정작 저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협동조합은 기존의 법률에 따라
야 하고,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마을미디어와의 상관성도 막연한 상황
에서,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광진사람들》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 아닌 가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협동조합 설립으로 기울었고, 계속해서 협동조합 설립을 반
대하는 것은 내심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을 오봉석 개인의 사유물로 활용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에 직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마을미디어 협동조
합’이라는 정말 생소한 일을 시작하기로 하였고 발기인 모집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광진구 마을미디어 협동조합 《광진사람들》〉 창립총회 공고’를 내고 설 연휴가 지난
2월22일, 《디지털광진》 홍진기 대표기자님의 초청강연에 이어 〈광진구 마을미디어
협동조합 《광진사람들》〉의 창립총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때까지는 정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광진구 마을미디어협동조
합의 이사장으로 제가 선출되었고, 협동조합의 이사와 감사도 선출하였습니다. 물
론, 정관과 사업계획 등
도 확정하였습니다. 아마
도, ‘마을미디어협동조합’
이라는 이름의 협동조합
창립총회 개최는 당시까
지는 전국 최초의 사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뜻밖의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 광진구 마을미디어협동조합 창립총회 사진

244
마을미디어협동조합 1차 설립신고 실패기

전국 최초(아마도)로 마을미디어협동조합 창립총회까지 마쳤으니, 기세등등하게
설립신고를 하기 위해 서류를 검토하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각자의 직장
과 단체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짬을 내어 마을미디어를 꾸려가며 상근자
서울시 광진구

한 명 없는 상황에서 협동조합 설립에 필요한 정관 사본부터, 사업계획서, 임원 이
력서, 수입 지출예산서, 조합원 출자좌수를 적은 서류 등까지의 신청서류를 준비하
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각 단체별로 마을사업이 본격화되던 시기라 설립신고 준비를 누구에게 맡
길 처지도 못되었고, 역설적이게도 유일하게 협동조합 설립을 반대했던 제가 거의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모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했던 저는 퇴
근 후 짬짬이 관련 서류들을 준비했는데, 이게 스트레스가 의외로 많았습니다.
물론, 제 성격이 꼼꼼하지 못하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라 남들보다는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서울시청 1층 열린 민원실에 들어서기까지 골머리를
앓아야 했습니다.
마을미디어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은 책임감에 꾸역꾸역 설립신고 서류를 챙겨
들고, 서울시청 1층 열린 민원실내의 협동조합 접수지원 창구를 찾으니 너무도 친
절한 여성분이 접수처에서 상담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습니다. 우리가 준비했던 정
관이 서울시가 권고하는 표준정관례를 참조하지 않고 특수한 정관을 참조했던 사실
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을미디어협동조합의 성격은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
합에 적합하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즉, 처음부터 정관을 표준정관에 기초해서 다시
작성해야 했던 겁니다.
이 뿐이 아니라, 곳곳의 오타와 부실한 사업계획서에 수입지출예산서까지 정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할 지경이었습니다. 씁쓸한 표정으로 서울시청을 걸
어 나오며, ‘아, 누가 5명만 모이면 쉽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고 했던가?’ 하
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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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미디어협동조합 2차 설립신고 실패기

마음 같아서는 협동조합 추진을 당장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습
니다. 그러나 이미 창립총회까지 마치고 지역의 케이블방송에까지 이 소식이 보도
된 상황에서 협동조합 설립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습니다. 게
다가, 지역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협동조합 설립은 어떻게 됐냐고 묻는데 정말 어
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표준정관을 참조해 정관을 다시 작성하고, 부실했던 서
류들을 한 장 한 장 다시 챙겼습니다. 3월 21일 광진구 마을미디어협동조합 《광진사
람들》 임시총회를 통해 정관 및 규약을 수정하고 사업계획과 제반 서류들을 검토하
였습니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울시청 열린민원실을 다시 찾았습니다. 협동조합
접수지원 창구의 상담원은 이미 제 얼굴을 기억하고 계셨고, 역시 친절하게 맞아 주
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야 말았습니다. 창립총회와 임시총회
개최와 관련된 서류들을 보시던 상담원님은 등기소에 문의를 하시더니, 협동조합
총회를 두 번 개최한 것으로 등기소에 설립 신고를 하면 통과가 어렵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즉, 창립총회 서류를 하나로 단일화해서 다시 방문해 달라고 하셨습니
다. 상담원님은 무척 미안해하며 설명을 해주셨고, 저는 괜찮다고 대답하였지만 제
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조급한 협동조합 설립에 따른 깨달음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한 가지 사안을 두 번씩 연거푸 실패를 맛보게 되면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2012년 가을부터 일사천리로 달려가던 마을미디어 사업에 첫 번째 위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위기의 가장 큰 징후는 바로 의욕상실이었습니다. 기사를 쓰기도 싫
고, 사람들 인터뷰를 하기도 싫고, 협동조합은 더더구나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246
그래도,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두 번씩 협동조합 설립신고
를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첫 번째 실패 때와는 다르게 격려하는 말들이 들려왔
습니다.
“협동조합은 천천히 추진해도 된다.”
“그래도, 협동조합에 참여했던 분들께는 일일이 알려 드려야 한다.”
서울시 광진구

야심차게 추진했던 ‘광진구 마을미디어협동조합’은 이제 장기적 과제로 남겨놓게
되었습니다.

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하며 2013년의 초부터 봄까지의 시간을 보내고, 뒤늦은 교
훈을 몇 가지 얻었습니다. 우선은 일반적인 마을사업은 ‘한 사람이 미치고 두 세 사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람이 마지못해 끌려 나오면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법의 영역 안에 들어가는 협동조
합은 차원이 다르다는 교훈입니다. 지하철안의 광고처럼 5명이 모이기만 하면 협동
조합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이 다섯 사람이 만들고자 하는 협동조합에 대해 충분
히 공부하고 뜻을 모아 나가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협동조합의 주체가 되려는 사람이 협동조합을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추진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교훈입니다. 내 자신은 반신반의하면서
대세에 따라 협동조합을 추진했던 결과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창피함이었습니
다. 협동조합의 주체가 되려는 사람이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 있게 해당 협동조합
을 설명할 수 있을 때라야 추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으로는 단순히 재정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협동조합을 추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사실, 마을미디어협동조합을 추진했던 처음의 고민은 재정문
제를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것이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마을미디어와 협동조
합의 상관성에 대한 충분한 협의 없이 단순히 재정문제 해결책으로 협동조합을 추
진했던 결과가 좋게 나올 리가 없었겠지요.

어느 날, 서울시의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다는 기자 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마을미디어협동조합에 대한 소식을 듣고 전화했습니다. 다시 설립을 추진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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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면, 설립 과정의 어려움까지 포함해서 기사로 작성하고 싶은데요?”
서울시의 뉴스레터에 비중 있게 나온다는 귀띔에 마음이 조금은 흔들렸지만, 이
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지금은 좀 쉬고 싶어요…….
마을 사업이란 게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 협동조합 추진하면서 그 재미를
잃어버렸거든요……”

대한민국 마을공동체 최고의 인터뷰어가 되고 싶다!

지금은 인기가 좀 시들해 졌지만, 강호동씨가 진행하는 MBC방송의 무릎팍도사를
보며 “우와~ 어떻게 저런 진솔한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가 있을까?” 하며 경외의
눈빛으로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나름 한국사회에서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무릎팍
도사 강호동씨 앞에만 앉으면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까지 눈물을 흘리며 쏟아내는
것을 보고, 인터뷰어로서의 강호동씨에 대해 놀라워했습니다.
그리곤 생각했습니다.
‘나도 강호동씨처럼 마을공동체 최고의 인터뷰어가 되어 보고 싶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의 ‘people 人 광진’ 코너를 통해 지역의 사람들과 여러
번 인터뷰를 하였지만, 단연 최고의 인터뷰를 꼽으라면 바로 ‘돈키호테 윤여운님’과
의 인터뷰입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내과의사인 윤여운님은 흔히 젊은 사람들의 상근직으로 인
식되는 광진주민연대의 사무처장으로 2013년 봄 지역사회에 돌아왔습니다. 나름,
왕년에는 주민의원 원장부터 각종 단체의 대표직을 수행했던 윤여운님이 어찌 보면
실무자급이라 할 수 있는 한 단체의 사무처장을 맡게 된 계기가 궁금했습니다.
건국대학교 후문의 작은 서점에서 만난 윤여운님과 인터뷰를 하며 든 생각은 또
한사람의 박원순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
기에 우리가 믿고 있는 마을공동체는 실현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
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 후유증은 길게 갔습니다. 마치,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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듯이 매일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
은 금방이지만, 이 내용을 글로 옮기는 것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
다. 그 사람의 말투, 눈빛, 표정까지를 마을미디어를 통해 생생하게 지역주민들에
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인터뷰의 내용을 정리해서 기사를 완성하기까지는 무려
열흘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서울시 광진구

‘의사가 되어서도 와 달라’는 철거민과의 25년 전 약속을 지키는
돈키호테, 윤여운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Q. 의사라는 직업의 일과 시민단체 사무처장이라는 일, 두 가지의 일을 하시는 셈인
데 힘들지 않으신지요?

 
윤여운 : 원래는 주 2일 정도를 지역단체에서 일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해보니 그렇게는 못하겠더라구요……. 지금은, 경기도 안산의 한 정형외
과에서 오전에 내과 진료를 보고, 오후에 광진주민연대의 일을 보고 있습니
다. 두 가지의 일을 같이 하다 보니, 주민연대의 일을 세세히 모르는 단점이
있는 반면, 주민연대라는 단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플러스 요인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의료와 지역운동이라는 두 가지 영역의 일을 하면서, 한 쪽
의 경험이 다른 쪽에 활용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흔히, ‘천재라는 것도 여러 분야의 연
관성을 잘 찾아내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여러 경험의 장점이 분명
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까지는 북한 의료지원 단체인 ‘어
린이의약품지원본부’의 일을 주로 하
였고요, 올해부터는 지역사회의 일을
위해 이 일의 비중을 줄였습니다.

▲ 광진주민연대 윤여운 사무처장

249
Q. 성동(광진)지역에 처음 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윤여운 : 예, 제가 시간 약속부터 시작해서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인데요…….
특별한 약속이 있었어요. 예전, 80년대 목동이 강제철거되기 전에 진료활동을
갔었던 적이 있는데, 이 때 주민들이 저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는 거예요…….
“학생! 지금 이렇게 와서 도와주는 것도 고마운데, 이다음에 의사가 되어서도
찾아주면 정말 고맙겠어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레지던트 시절 찾은 곳이 바로 성동구지역이었습니다.

Q. 3년여 만에 지역사회에 돌아오셔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

 
윤여운 : 지금의 상황이 한 마디로는 표현하기 어려운데, 과거에 비해 전문화
된 영역이 생겼고 서울시의 자극에 힘입어 주민들과의 다양한 사업이 시도되
고 있습니다. 반면, 지역사회 전체의 변화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최근 드는 생각은 전문적 영역의 지역사업을
‘왜’ 하는 건지에 대해 희미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얼마 전, 주민연대의 한 회원에게 이에 대한 따끔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요. 자칫, 우리도 일본식 시민운동처럼 흘러가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일
본은 사실 마을만들기 운동의 시초였거든요. 15년 전쯤, 우리나라에 소개되기
도 했지요. 엄청난 협동조합의 인프라와 인권운동 등 각기의 전문적 시민운동
은 매우 뛰어난데, 막상 일본의 우경화와 같은 사회적 문제의 해결에는 미약
하기 그지없거든요.

Q. 윤여운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윤여운 : 북한 지역에서 지역공동체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북
한에서는 사회주의라는 공동체 모델이 있고, 남한에서는 자본주의라는 모델
이 있잖습니까. 이 모델을 제가 갖고 있는 ‘의료’라는 전문성을 통해 제3의 새
로운 모델로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남북교류 차원의 모델을 넘어서, 예를 들어 황해도면 황해도 어느 마을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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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 함께 생활하면서 그 지역의 새로운 공동체 모델을 만들어 보고 싶은 꿈
입니다. ^^
 
Q. 얼마 전, 따님에게 특별한 선물을 받으셨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윤여운 : 복학해서 대학교 2학년인 아들과 대학교 4학년인 딸. 이렇게 두 아이
서울시 광진구

를 두고 있습니다. 딸아이가 얼마 전 유럽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스페인
을 갔다가 한 눈에 아빠와 똑같은 캐릭터를 발견했다며 선물을 사온 거예요.
그게 바로 ‘돈키호테’ 선물입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기사를 완성해 블로그에 올리고 독자들의 반응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딱히, 독자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가까운 마을기자들에게 먼저 물어보았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제목을 너무 잘 뽑으시는 것 같아요. 인물과 내용에 딱 맞는 제목이에요. 그리고
읽히는 글을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정말 과찬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광진주민연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단체 소식지를 만들며
어떻게 하면 읽혀지는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저를 초빙해 강의를 들
어볼까 하는 이야기까지 나누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정성을 다해서 진심
어린 기사를 쓰면 사람들이 감동하고 좋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인터뷰 기
사였습니다.

다음으로, 28년 동안 헌신했던 지역단체의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신
이현주님도 ‘people 人 광진’ 코너를 통해 만났습니다.

“언제나 단아한 소녀와 같은 모습, 이현주님”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좋은 제목을 뽑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제목입니다.)

251
Q. 먼저, 선생님의 살아오신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현주 : 경기도 여주에서 1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져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중학교 선생님이 예치금을
내주셔서 중학교 입학을 할 수 있었으나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업을 중단했어
요. 청량리의 청소년회관이라는 곳에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쳤는데 장
학금으로 마쳤어요. 야간반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남편은 검정고시를 같이 공부했던 친구였는데, 나이 들어 20대에 사귀게 되었
어요. 저는 이상하게 대학생은 철이 없
어 눈에 안 들었어요. 검정고시부터 함
께 공부했던 지금의 남편이 저를 이해
해줄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에 사귀게
되었지요.
연애를 계속하다가 1990년 스물여덟 살
에 결혼을 했어요. 신혼집은 망우동에
▲ 언제나 단아한 소녀와 같은 이현주님

서 살다가 성동구로 이사를 왔습니다.

Q. 주민의원을 거쳐 늘푸른돌봄센타에서 일을 하시며 느끼신 게 많을 텐데요.

 
이현주 : 요양보호사, 산후관리사, 장애인활동보조인 등으로 불리는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계세요. 이 분들은 고용이 불안정하고 다 시간급제이기 때문에
돌보던 사람이 사고가 생기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직장을 잃게 돼요. 그리
고 몸으로 하는 일이라 근골격계 질환이 많고요, 대인 서비스직이다 보니 감
정노동이나 감정스트레스가 매우 심해요.
그런데, 기껏해야 가사도우미 정도로 취급되는 사회적 인식이 큰 문제예요.
Q. 선생님의 송별회때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현주 : 네, 지난 5월 29일 사직원을 내고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잠도 잘 안
오고 앞으로 내 삶을 지탱하는 게 뭘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건 아마도 삶속
에서 만난 사람들의 힘일 것 같아요.

252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공부했던 시절의 경험이 제 삶의 기본이었고, 힘든 시기
제일 힘이 되었던 게 건강소모임 사람들이었어요. 중년 여성들의 살아가는 모
습들이 저를 잘 버티게 했던 힘이었던 것 같아요.
Q. 해남에서 농사짓는 게 꿈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서울시 광진구

 
이현주 : 제가 지금 쉰한 살인데, 예전부터 쉰 살이 넘으면 여유롭게 생활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다른 삶으로 전환하고 싶어요. 농촌에 대한 환상이랄까.
10년 후에는 해남에 정착하는 게 꿈입니다. 3년쯤 정착하면 나름대로 도시 사
람들이 해남에 왔을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키웠듯이, 큰 딸이 애를 낳으면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봐줄 생각이에요. 저는 노인의 중요한 역할이 손자 양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찌 보면, 적정한 선에서의 노후대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딸도 일하는
여성으로 살았으면 해요.
Q. 끝으로 마을신문 《광진사람들》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현주 : 마을 곳곳에서 훌륭한 일들을 하시는 분들의 따뜻함이 흐르는 이야
기를 실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요양보호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싣는 것
도 좋을 듯합니다.

이현주님께 28년 동안 헌신했던 지역단체 일을 정리하는 소감을 묻자,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빛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저의 마음도 함
께 흔들렸습니다. 이현주님이 회상하는 지난 28년의 세월에 대한 감정이 인터뷰어
인 제게도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현주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
며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습니다. 언젠가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상대의 감정이 내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 때가 바로 마을미디어 일을 그만 둘 때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여름, 박원순 서울시장님이 광진구를 1박 2일 동안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에 박원순 시장님께 자신 있게 말씀드렸습니다.

253
“저는 대한민국 최고의 마을공동체 인터뷰어가 되는 게 꿈입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에서 박원순 시장님을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박 시장님은 함께 있던 사람들과 박수를 쳐주시며 흔쾌히 인터뷰 요청을 수락해
주셨습니다. 시장님과 마을미디어의 단독인터뷰는 정말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푸르른 5월, 《광진사람들》 종이신문 준비호가 태어나다!

마을미디어협동조합 추진 실패의 아픔을 딛고, 2013년 광진구청의 마을공동체 주
민제안사업에 응모하여 연간 280만 원이라는 값진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소규모의 지원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협동조합을 추진하면서 얻은 상처가 컸
던 만큼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무엇보다 지역 내의 다른 단체, 모임들과 함께 마을
공동체 사업을 벌려 나갈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5월 24일, 마을신문 준비를 위한 편집회의를 갖고 광진마을네트워크의 창립총회
및 마을파티가 예정되어 있는 5월 31일까지 준비호를 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1주
일이라는 다소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축적한 기사들이 있었고 4면으로 간소
하게 발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당일까지 준비호를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종이신문 《광진
사람들》 준비호는 광진구 화양동주민센
터 1층에 위치한 씨앗카페 ‘느티’에서 지
역주민들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1면에는 창간사와 《광진사람들》의 계
획이 담겨 있고, 2면에는 마을기자들에
대한 소개를 실었고, 3면에는 ‘PEOPLE
人 광진’ 첫 번째 편으로 광진주민연대
윤여운 사무처장님의 진솔한 인터뷰 내
용이, 4면에는 ‘우리마을 소식’ 코너를 담
았습니다.
▲ 종이신문 《광진사람들》 창간준비호

254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창간
준비호를 발행하고 가장 많이들은 이야기는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제발 편집에
신경을 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처음으로 종이신문을 만들다 보니, 편집디자이너를
따로 섭외하지 못하고 한글문서에 직접 편집을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슨 초등
학교 학급신문과 같은 수준의 편집이 나왔지요. 편집에 신경 써 달라는 이야기는 고
서울시 광진구

마웠지만, 그래도 듣는 마음은 씁쓸했답니다.

국내최초 인물중심 마을신문 《광진사람들》을 창간하다!

2013년 7월10일, 마침내 국내 최초(?) 인물 중심의 마을신문 《광진사람들》을 창간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하였습니다. 기존의 기사중심의 지역 언론과 차별성을 두면서도 마을공동체의 취
지와 방향에 맞는 마을미디어를 추구하고자 사람(인물)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마
을신문을 드디어 창간하였습니다.

▲종이신문 《광진사람들》 창간호

255
지난 창간 준비호 때 가장 많이 들었던 편집에 대한 비판을 고려하여 한 마을기
자님의 추천을 받아 전문 편집디자이너의 편집을 거쳤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을신
문을 받아보는 분들이 한결같이 “와~ 신문 예쁘게 편집됐네요.^^” 하며 반갑게 받
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타블로이드판에 8면으로 발행해 신문의 무게감을 더했습니다. 그제야, 사
람들로부터 “고생했네요”라는 말을 듣게 되어 나름 감개무량했습니다.
신문의 내용은 인물중심의 마을 신문답게 지역의 마을공동체 현장에서 만난 세
분의 인터뷰를 4면에 걸쳐 비중 있게 실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에서 발행한 《서울,
마을을 품다》라는 책을 읽은 광진 청년들의 유쾌한 수다 토크를 재미있게 담았습니
다. 함께 광진마을공동체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단체에 부탁하여 마을신문 창간
축하글을 1면과 2면에 걸쳐 실어 앞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만드는 마을신문이 될 것
을 표방하기도 하였습니다.
막상, 마을신문 창간호를 발행하고 나니 제 자신 스스로가 생각해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2년 가을, 처음 마을미디어를 구상할 때 막연하게 종이신문
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였으나, 실제로 이렇게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될 줄은
제 자신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마을미디어 얼마나 가겠어?’
라고 생각했던 분들도 차츰 《광진사람들》을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흔히, ‘無에서 有를 창조한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듯
싶었습니다. 낯설고 생소하기만 했던 마을미디어라는 것을 처음 시작해서 마을
기자학교를 개최하고, 창간준비호에 이어 종이신문 창간호까지 발행했으니 말
입니다.

◀ 을신문 광진사람들
마
창간기념식

256
갑·을의 관계를 넘어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공동체를 향해

이제야 신문다운 마을신문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안고 7월19일, 마을신문 《광진사
람들》의 창간기념식을 광진구 화양동주민센터에서 개최하였습니다.
창간기념식에는 지역사회의 여러 단체와 모임의 분들을 초청하였고, 구청장님께
서울시 광진구

축사도 부탁드렸으며, 마을기자들이 손수 준비한 ‘우리마을 뉘~우스’도 한참 연습
중이었습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잘 진행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청과의 관계에서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구청장님의
축사를 요청한 뒤 창간기념식의 준비과정을 구청과 협의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상
상도 못했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마을신문이라면서 동네소식은 없고 왜 인터뷰 기사만 있는 것인가요? 마을신문
이면 마을기자들이 작성해야 하는데 발행인 혼자 다 만든 건 아닌가요? 부적절한
사람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한 것은 아닌가요? 신문이 되려면 정기간행물 등록신고
를 해야 배포할 수 있는 게 아닌가요?”
그야말로 저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들이었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한
순간에 허물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일종의 모욕감을 느꼈지만, 끝내 참고 하
나하나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구청을 나와 마을기자
들과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창간기념식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구청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에 와있음을 마을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구했습니다. 어느 마을기자는
그동안 구청에서 받았던 지원금을 모두 반납하고, 우리 자력으로 마을신문을 만들
자고 했고, 당시의 제 마음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많았습니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면서 구청과 함께 하는 것
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인데, 이번 일로 구청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것은 지역주민
들에게 무책임하게 비칠 수도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결론은 나질 않았고, 날짜는
다가와 창간기념식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1시간 남짓한 기념식을 의례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이 답답한 마음을 풀고 우리
의 진정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발행인의 인사말 대
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윤도현의 ‘너를 보내고’를 연습해서 불렀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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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게 고음일 줄은 몰랐습니다. 오전 11시에 부르는 윤도현의 노랫소리에 참석한 사
람들은 처음에는 놀라다가 나중에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구청에서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2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해 마을신문의 창
간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습니다. 두 마을기자가 정성스레 준비한 ‘우리마을 뉘~
우스’에서는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습니다.

창간기념식을 잘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구청과의 풀리지 않은 숙제에 다시 직
면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구청의 주민제안사업을 반납하고 우리의 자력으로 마을
신문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약속된 연말까지 구청과 적절한 타협을 통해 마을신문
을 지속할 것인가?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마을공동체에 관련된 일이었기 때
문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마을공동체는 세대와 종교, 정당, 빈부, 남녀, 민관 등의
차이를 모두 넘어서는 가장 광범위한 공동체인데, 이 정도의 사안으로 구청과 등을
진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이윽고, 구청과의 타협을 통해 마을신문을 적게 발행하고 마을기자학교를 충실
히 진행하는 것으로 사업계획을 변경하였습니다. 애초, 매달 발행하려던 마을신문
의 계획은 수정되었지만 그래도 2기 마을기자학교를 통해 새로 만나게 될 마을기자
들과 함께 더 알찬 마을신문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구청에 계신 분들은 분명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았겠지만, 민간의 영역에서 마을
사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분명 ‘갑’과 ‘을’의 관계로 느껴졌습니다. 박원순 서울
시장님을 비롯해 많은 마을 강사님들이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
이었습니다. 관과 민의 관계가 ‘갑’과 ‘을’의 관계로 형성되면 그 마을사업은 망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시작한 구청의 마을공동체 주민제안사업이었기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관은 물론이고, 민도 준비부족인 상태에서 각종
마을공동체 사업을 벌이려니 손과 발이 따로 놀 수밖에요. 구청에 대해 서운함을 가
졌던 첫 마음과 달리 공무원으로서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제가 너무
준비부족이었음을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258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 마을기자를 모집합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요?
지난겨울의 1기 마을기자학교를 통해서 탄생한 마을기자들은 주로 지역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직장에 다니는 젊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울시 광진구

마을기사를 작성하고 마을신문을 만드는 데 생각처럼 시간과 정성을 쏟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기 마을기자학교를 준비하면서는 기자학교의 시간대를 오후로 잡
았습니다.
낮 시간에 마을기자학교에 참석할 수 있는 분들이라면, 앞으로 함께 마을기사를
작성하고 마을신문을 만드는 데 시간을 내실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시간대에 참석할 수 있는 분들은 주로 주부나 어르신들일 텐데 이 분들은 젊은 층
직장인에 비해 마을 골목골목의 소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다는 장점도 고려했
습니다.
사람들이 찾기 쉬운 주민자치센터의 회의실을 대여하고, 웹포스트를 만들고, 사
람들을 만나며 마을기자를 모집하였습니다. 예전 어느 선배에게 배운 게 아직까지
도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행사를 준비할 때에 일시와 장소가 결정되면 행사의
50퍼센트는 준비한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몇 차례의 변경 끝에 일시와 장소를 결정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추석연휴도 있고 해서 느긋하게 마을기자학교를 준비하려다 보니 약속
된 날짜가 코앞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강사를 섭외하려는데, 마음에 두었
던 강사님들은 일정이 맞지를 않았습니다. 편집국장의 소개를 통해 2강 기사쓰기
강좌의 강사를 섭외하고, 지역단체를 통해 3강 사진 찍기 강좌의 강사까지는 어렵
사리 섭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강 ‘마을공동체와 마을미디어’ 주제의 강사 섭외가 벽에 부딪혔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일정을 맞출 수 있는 강사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늦추다가는 전체 일정에 차질이 생길 상황이라, 제가 결심을 하고 1강 강의를 해보
겠다고 편집국장에게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외부강사가 좋지 않겠느냐는 마을기자
도 있었지만, 편집국장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 동의하였습니다.
마을생태계 조성을 위한 청년활동가 한 분께 2기 마을기자학교의 웹포스트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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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하였는데 예쁘게 디자인되었습니다. 웹포스트를 인터넷 이곳저곳에 홍보하고,
이를 출력하여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PEOPLE 人 광진’ 코너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는 배명숙님을 찾아뵈었더니, 광
진정보도서관에서 함께 글쓰기 수업을 하는 분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 분들은
50대 이상의 연령층이어서 오후 시간에 시간 내기가 편했고, 글쓰기 수업을 통해
만난 분들이라 마을기자학교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배명숙님이 소개해 주신 분
들 중 4명 정도가 기자학교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편집국장님과 함께 광진구청앞과 주요 지하철 역 앞, 그리고, 주민자치센터앞 등
에 현수막을 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전화 한 통도 없어서, 현수막을 괜히 달았나 싶
었습니다. 그런데 몇 일후부터 문의전화가 오기 시작하는데, 한결 같이 주민자치센
터앞의 현수막을 보고 전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깨달은 것이 마을공동
체와 같이 주민대상의 사업을 할 때에는 대로변 보다는 동네안의 주민자치센터앞에
현수막을 다는 것이 훨씬 홍보효과가 좋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역사적인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를 앞두고 과연 몇 명이나 참석할지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습니다.
때마침 큰 아이 운동회 날이라 운동회를 마치고 부랴부랴 주민자치센터 회의실
로 들어섰더니, 편집국장이 열심히 빔프로젝트를 설치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실내
현수막을 달고 행사 준비를 하는데, 한 분 한 분 주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제
게는 너무나 소중한 10명의 주민들이 마을기자학교 1강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이 날, 10명의 신입마을기자들이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제 카카오톡 프로필의
상태메시지를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 조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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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가량 ‘마을공동체와 마을미디어’를 주제로 혼신의 힘을 다해 강의를 하였습
니다. 대상이 주로 50대 이상 연령이 높은 분들이라 새마을운동과 마을공동체를 비
교하기도 하고, 우리 주변의 실례를 들기도 하면서 최대한 쉽게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강의 중간 중간 폭소가 터지는 것으로 보아 지루하지는 않
았던 것 같습니다.
서울시 광진구

하이라이트는 강의 후 자기소개 시간이었습니다. 둥글게 마주보고 앉아 10여명
의 사람들이 ‘나와 우리 마을’을 주제로 스케치북에 쓴 것을 발표하였는데, 그렇게
감동적일 수 없었습니다. 60여년 삶의 경험이 묻어있는 생생한 이야기들을 너무도
솔직하게 발표해 주었습니다. 이때에 비로소 준비과정은 힘들었지만, 2기 마을기자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학교를 개최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주일 후, 2강은 《오마이뉴스》 최지용 기자의 ‘쉽게 배우는 기사 쓰기’ 강좌를 들
었습니다. 직접 취재현장에서 보고 느끼신 내용을 주민들에게 알기 쉽게 알리기 위
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이날, 자양골목시장에서 떡집을 하시는 아주
머니께서 맛있는 시루떡을 들고 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12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마을기자학교 두 번째 날에는 강의 후 2개의 조로 나누
어 ‘각자 생각한 우리 마을 기사거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최고령 신
입마을기자이신 75세의 어르신께서는 동네의 우범지대로 방치된 종합시장을 취재
하고 싶다고 하셨고, 떡집 아주머니는 자양골목시장의 쉼터 공사가 진척되지 않는
것을 취재하시겠다고 발표하셨습니다.
신입마을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1기 마을기자들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 짐
을 느꼈습니다.

드디어, 10월 16일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의 3강 및 수료식이 열렸습니다. 이 날
에는 최영교 마을 강사의 사진 찍기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사님은 예전 흑백사진을
한 장씩 보여 주셨는데, 나이 드신 예비마을기자님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
강연 후, 예비마을기자들이 준비한 마을기사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75세 고령의 마을기자께서 USB에 손수 작성하신 기사와 사진을 담아 오신 것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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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 기념사진

고 깜짝 놀랐습니다. 미리 이메일로 기사와 사진을 보내주신 분들도 계셨고, 쑥스
럽다며 종이에 기사를 써오신 분도 계셨습니다. 떡집 아주머니는 이 날도 맛있는 떡
을 들고 오셨는데, 바빠서 기사를 못써왔다고 마을기자 못할 거 같다고 하셔서 모두
가 만류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진지하면서도 한편 왁자지껄한 마을기사 발표를
마치고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의 수료식이 열렸습니다.
한 분 한 분께 수료증을 전달해 드리고, 전체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3강과 수료
식을 마무리했습니다.

3.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의 내일은?
겨울에는 광진 마을미디어문화교실로!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를 진행하면서 편집기자들과 몇 차례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회의에서는 마을기자학교를 점검하는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향후 《광진사람들》 계
획에 대한 논의도 하였습니다.
소중하게 만난 2기 마을기자들과의 인연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올 12월
까지로 예정되어 있는 광진구청 주민제안사업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지, 그리
고 내년부터는 어떻게 《광진사람들》을 운영해 나갈까 등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우선, 2기 마을기자들과의 인연을 이어나가고 구청의 주민제안사업을 연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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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짓기 위해서 몇 가자 사업계획을 세웠습니다. 첫 째는 마을신문 2호를 11월
5일, 《광진사람들》 창간 1주년에 맞추어 내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순
전히 2기 마을기자들이 직접 취재한 내용들로 가득 채울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마
을기자들을 2개의 조로 나누어 조모임과 워크숍을 하며 기자들이 서로 도와 기사를
완성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서울시 광진구

그리고 쑥스럽지만 《광진사람들》 창간 1주년이 되는 11월 5일에 ‘창간 1주년 기념
워크숍’을 지역 내 북카페에서 조촐하게나마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는 마을신문 2호가 첫 선을 보이고, 2기 마을기자들에게 마을기자증을 나누어 드릴
생각입니다. 워크숍에 맞는 강연 또는 토크쇼도 준비해볼까 합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12월 초순에는 광진마을미디어문화교실을 개최하려고 합니다. 두 달 간격으로
마을기자학교를 또 개최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강좌형
식의 마을미디어문화교실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개 강좌는 오후 시간대에
진행해서 2기 마을기자들과 주민들이 참석할 수 있게 하고, 1개 강좌는 저녁시간대
로 잡아서 직장인들이 퇴근 후 들을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마을신문 3호는 1기 마을기자들과 2기 마을기자들이 합심해서 12월말 발행할 예
정입니다. 2013년 말에도 ‘광진 올해의 사자성어’를 공모해 볼까 합니다. 2012년에
비해 올해에는 얼마나 더 긍정적인 사자성어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또한 몇 년이 흐
른 후 《광진사람들》에서 공모한 매년의 사자성어를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
라 생각해 봅니다.

걱정은 내년 2014년 이후 《광진사람들》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
입니다. 사실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 문제로 머리가 좀 아픕니다. 그나마 편
집기자들과 나눈 얘기는 내년에는 마을공동체공모사업을 서울시와 했으면 합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올해에는 마을신문에 대해 구청과의 의견차이가 발생했던 만
큼, 내년에는 서울시와 사업을 벌이는 게 좋겠다는 다수의 의견이었습니다. 서울시
의 마을공동체사업이 지원규모는 더 크면서 자율성이 보장되고 마을미디어센터 등
을 통한 여러 지원이 많은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서울시의 공모사업이 주로 봄철에 시작되기 때문에 그 때까지의 공백기

263
가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서울시의 공모사업에 꼭 《광진사람들》이 채택된다
는 보장도 없는 것이기에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실정입니
다. 이 문제를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2013년 초부터 시도했던 협동조합 추진이 2차례나 실패했던 경험이 있는 상황에
서 또 다시 협동조합을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큽니다. 아니면, 《광진사람들》의 회원
을 모집해서 매월 일정금액의 회비나 후원금을 모금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을 것
입니다. 현재로서는 이 방식이 가장 유력할 듯싶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사람
들에게 괜한 부담을 지우는 것은 아닌지, 마을신문을 정기적으로 발행할 정도의 안
정적인 수입구조가 마련될지 고민이 됩니다.
《광진사람들》을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듯이 걱정은 줄이고 실천을 앞세울 생각입
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마을공동체사업이 아니기에 이것저것 걱정하기 보다는 다
만 몇 명의 회원과 소액의 후원금이 모이더라도 그에 맞게 마을신문을 만들어 나가
면 점차 확대되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희일비 NO! 천천히 꾸준히 웃으면서 YES!

1년이라는 시간동안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의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일희일비하
지 말고, 천천히 웃으면서 꾸준히 마을사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협동
조합이 대세라고 섣부르게 추진했다가 실패를 맛보고, 협동조합 설립에 실패했다
고 의욕상실증에 빠진 것은 일희일비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리고 구청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감정대로 대응하지 않고 천천히 웃
으면서 일을 풀어 나간 것은 광진구지역 전체의 마을공동체를 위해 바람직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마을공동체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어느 날, 운전을 하면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 있던 차가 단 몇 초를 기다
리지 못한 채 경적을 울려대는 것을 보면서였습니다.
‘우리는 왜 하루하루의 일상을 이처럼 급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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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정 놓치고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지금 여기서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건지라는 물음의 답을 찾다가 처음 방문한 곳이 성당이었고, 그 다음이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였습니다.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들으며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시 광진구

센터의 명칭 그대로, 마을공동체를 복원해 나가는 것이 제 물음에 대한 해답이었음
을 고백합니다. 마을미디어는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아름
답게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도구일 것입니다.
처음에는 인터넷 블로그로 시작해서 지금은 종이신문을 제작하고, 마을기자학교
를 진행하는 정도이지만, 더 나아가서는 마을의 라디오방송을 할 수도 있고 영상분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야로까지 나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의 열정과 체력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 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이 마흔을 맞이하며 새롭게 시작한 마을미디어라는 일
이 앞으로 남은 생의 활력을 불어넣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의 마을공동체 인터뷰어가 되고 싶다는 꿈은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내가 쓴 인터뷰
기사에 독자들이 함께 웃고 울고 감동을 느낀다면, 이보다 더한 기쁨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요?

4. 또 하나의 지역 언론 《디지털광진》 돌아보기
“나타났다! 홍박사!”

광진구의 지역사회에서 어떤 이슈가 발생하면 바람처럼 나타나는 홍박사님이 계십
니다.
이름하여, 《디지털광진》의 홍진기 기자님.
2000년, 전국 최초로 구 단위 인터넷신문을 창간하여 10여년이 넘는 세월을 광
진구라는 지역사회에서 인터넷언론 활동을 하셨던 홍진기 대표기자님은 지역 내 누
구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정보통임과 동시에 지역사회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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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지역사회의 궁금한 점이 생기면 홍반장님을 먼
저 찾을 정도로 인지도와 신뢰도가 형성되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
니다. 홍 기자님도 성동지역(광진구와 성동구가 분구되기 이전)에서 지역 활동을
하시며 이러저러한 경험을 한 후에, 지역사회에 좀 더 밀착한 활동을 위해 《디지털
광진》을 창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광진구에는 《디지털광진》 외에도 여러 지역 언론이 함께 있는데, 굳이 《디
지털광진》을 주목하여 본 것은 창간준비부터 성장까지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을 맞
춘 지역 언론이 바로 《디지털광진》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이 표방하는 ‘주민이 마을기자다’라는 슬로건도 《디지털
광진》의 창간정신과 부합하는 것이었기에 《디지털광진》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돌아보았습니다.

《디지털광진》이 걸어온 길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거리에서도 각종 언론의 기사를 검
색하는 풍경이 익숙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휴대하고 있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 년밖에 안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살아가
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0년에도 그러했습니다. 당시 정보화시대라는 표현은
많이 하였지만, 인터넷을 통해 언론기사를 검색해 보는 세상이 올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창간된 해가 바
로 2000년이었습니다. 같은 해에 아무도 주목하지 못했던 인터넷신문이 창간되었
습니다. 바로 자치구단위 최초의 인터넷신문인 《디지털광진》입니다.
2003년 《미디어오늘》의 〈인터넷 지역 언론 뿌리내린다〉 기사 중에는 “시 단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디지털성남일보》, 《수원신문닷컴》, 《군산신문》, 《부천닷컴》,
《디지털김제시대》 등이 있으며 유일한 구 단위 인터넷신문인 《광진닷컴》이 있다”라
는 내용이 나옵니다.

266
2004년 《오마이뉴스》의 〈지역민주화 실현 기치로 인터넷 《은평시민신문》 창간〉
기사 중에는 “서울에서 구 단위의 인터넷신문이 창간된 것은 광진구의 《디지털광
진》에 이어 《은평시민신문》이 두 번째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디지털광진》은 2000년 창간을 하면서 정보화시대와 인터넷지역신문의 관계를
서울시 광진구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지역정보를 신속히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정보민주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셋째, 참여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합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넷째,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지역주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신문, 지역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신문,
인터넷 지역신문의 미래는 주민들의 참여에 달려 있다고 하는 《디지털광진》의 탄생
은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디지털광진》이 지역사회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성수여중 폭력사건’이라는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 이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광진》이 품고 있던 지역사회 변화에 대한 꿈이 있었기에 우연한
기회를 전국적인 이슈로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성수여중 폭력사건 이후 아차산
녹지보전, 광진구의회 파행운영, 광진정보도서관의 인선문제 등의 기사를 통해 올
바른 지역여론 형성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제일 먼저 찾아보는 언론이
되었습니다.
《디지털광진》의 창간이후 지역사회의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유언
비어가 사라지고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딱히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시기에는 각종 유언비어가 지역사회에 유포되었는데,
《디지털광진》의 객관적인 보도가 자리 잡은 후부터 이러한 관행이 사라지기 시작했
습니다.
둘째는 지역단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267
지금은 지역단체의 기자회견이나 주장들이 지역 언론에 반영되는 것이 일반적이
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디지털광진》이 밀착취재한 지역 내의
부조리한 사항들에 대해 지역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해결에 앞장서 나가
면서부터 지역단체의 목소리를 지역 언론이 반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셋째는 구청, 구의회 등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디지털광진》이 주목
해온 인사비리문제, 구의원 해외연수문제 등의 기사가 지역사회에 반향을 불러일
으키면서 구청, 구의회의 좀 더 투명하고 신뢰 있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끝으로, 지역사회의 변화에 대한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대담
론 중심으로 고민하던 지역단체들이 《디지털광진》의 창간 이후 다양한 지역사안을
접하면서 지역사회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를 변화시
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장 정보가 없어 막연했던 지역사회에
하나 둘 정보가 생기면서 더욱 애정을 갖고 지역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지역단체들
이 헌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인터뷰 : 《디지털광진》 홍진기 대표

청명한 가을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운 2013년 9월 초순의 어느 오후, 광진구 군자동
에 위치한 세종대학교 교정에서 《디지털광진》의 홍진기 대표를 만났습니다.
홍진기님은 광진구의 마당발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분입니다. 2000년 《디지털광
진》 창간 이후 13년 동안 광진구에서만 지역인터넷
신문 한 길을 걸어온 분이기 때문입니다. 취재현장에
서 만날 때는 냉철한 기자 같지만, 편한 자리에서 만
날 때는 동네 형님 같은 분, 홍진기님과의 대화 속으
로 안내합니다.

Q. 《디지털광진》을 시작하시기 전에는 지역운동을 하셨
다고 들었습니다.

▲ 《디지털광진》 홍진기 대표

268

홍진기 : 네, 지역운동으로 이 지역과 만났습니다.
원래 지역 언론은 서울보다는 지방에 많았는데, 그에 앞서 광진구의 시민사회 역사
를 먼저 살펴 보는 게 중요할거 같아요.
1980년대에는 성수동(광진구의 옛 노유 1, 2동을 포함)이 서울 제2의 공단이었거든
요. 구로공단 다음으로요. 여기에 각종 운동역량이 집중되어 있었어요. 성수교회도
이때 역할을 했고, 야학도 있었어요. 노동야학과 검정고시반 이렇게 있었지요. 지
서울시 광진구

금 자양4동의 새날을여는지역사회교육센터도 이전의 한겨레, 청송야학이 합쳐진
것이지요. 그러다가, 성동광진민주단체협의회가 생겼는데 민주화와 통일을 지향하
는 단체들이 모여 지역에서 활동했습니다. 주로 통일관련 사업과 노동운동지원, 공
정선거 감시활동 등을 했지요. 1995년에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나름의 역할을 위
해 노력했습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그러다가 1999년 말 저를 비롯한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지역 언론을 고민했
고 때마침 인터넷이 초기 보급되던 시기여서 2000년 초, 인터넷신문 《디지털광진》
을 창간했습니다. 지역의 정보를 알아내고 지역사회에 기여하자는 마음으로 시작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언론을 구축할 시스템이 국내에 거의 없었어요. 겨
우겨우 성남의 한 인터넷 프로그램 업체에 의뢰를 해서 최초로 만들어 보았었죠. 참
고로, 《오마이뉴스》도 2000년에 창간했답니다.
초기에는 편집도 없었고 조악한 수준이었어요. 최근 기사가 위에 뜨고 지난 기사
는 밑으로 내려가는 정도였지요. 당시, 지역의 오프라인 언론은 2종이 있었어요. 월
2회 발행하는 《경동신문》과 월1회 발행하는 《광진신문》이었어요. 아무래도, 인터넷
신문의 인지도가 낮았지요.
저 역시 언론전공자가 아니었기에 여기저기서 배워 나갔습니다.

Q. 2000년, 성수여중 폭력사건이 중요했다고 하던데요?

홍진기 : 예, 2000년 6월경 성동구에 위치한 성수여중에서 폭력사건이 발생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제보가 들어온 사건인데, 사회지도층 자녀들이 소위 일진이라는 형
태로 한 학생을 집단폭행한 사건이었어요.
저는 이 사건의 기본적 내용과 더불어 탄원서 내용을 기사로 올렸어요. 그러자, 인터
넷에 난리가 났어요. 인터넷 DAUM 카페가 생겼는데, 회원수가 10만 명이 넘었어요.

269
일부 네티즌들이 흥분을 해서 성수여중 홈페이지가 이틀 만에 폐쇄되기도 했고, 가
해자의 아버지가 속해있던 자유총연맹 홈페이지가 하루 만에 다운되기도 했어요.
저는 2주마다 팩트를 정리하는 역할을 했어요. ‘PD수첩’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의 방송에도 보도가 되었지요.
《디지털광진》에는 단 며칠 만에 몇 만 명이 회원 가입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네티즌
들이 폭주하면서 《디지털광진》 홈페이지도 몇 번 다운되었답니다. 당시 피해자 학
부모님은 향후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를 구성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
후, 옥정중학교 폭행사망사건도 발생했었지요.
이 사건은 《디지털광진》이 초기 인터넷 여론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졌고 자유게시판이 폭주해 저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Q. 초기 《디지털광진》을 어떻게 지역사회에 알려 나갔는지요?

홍진기 : 초기에는 현수막이나 포스터로도 《디지털광진》을 홍보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진구의회 모니터링과 취재를 했습니다. 구의회라는 곳은 지역의 현안
이 한 곳으로 모이는 곳이에요. 그래서 이 길목을 잘 잡고 있으면 지역의 정보를 어
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지요.
2000년 11월경 개관한 광진정보도서관은 200~3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 곳인데,
당시 광진구에 이렇다 할 도서관이 없었기에 관심이 모아졌지요.
그런데, 광진구청장이 퇴직공무원을 도서관장으로 앉히고, 구청장 최측근 인사를
사서과장에 앉혔다는 소식을 제보로 알게 되었어요. 법조문을 검토하다 관장은 사
서자격증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정보도서관
인사에 법적 문제가 있음을 기사로 썼습니다. 이에, 지역단체에서는 건국대학교앞
인문사회과학 서점의 심범섭 대표 등이 모여 대책위원회를 구성했지요. 결국, 지역
단체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도서관장과 사서과장이 사퇴를 했습니다.
《디지털광진》이 초기 지역에서 자리 잡는 데에는 이 사건의 영향도 컸습니다.
그 후, 제보자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조심해야할 제보자들도 생겼
는데, 제가 제보자들과 손잡고 다른 사람을 공격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답니다.

270
Q. 인사비리문제가 지역사회에서는 크게 여론화되었군요?

홍진기 : 2004~2005년경 광진구시설관리공단에 퇴직공무원이 낙하산으로 내려
왔다는 의혹의 인사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구청장 측근들의 자리보전 문제로 보여
졌지요.
서울시 광진구

이때에도 지역 내 공대위가 구성되었어요. 공채가 50퍼센트를 넘어야 한다는 규정
을 어긴 것이었어요. 저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도덕적 문제와 함께 법적인 문
제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디지털광진》의 초기에는 또한 구의원들의 해외연수 문제를 집중 기사화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에서 피켓팅도 많이 하였고, 이를 통해 심의위원회도 생겨났습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니다. 저도 심의위원회에 참여했다가 최근에는 의견이 맞지 않아 사퇴했습니다.

Q. 일부에선 인터넷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평도 있던데요?

홍진기 : 초기에는 ‘인터넷에 떴다’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
요. 그래서 광진구의원들은 속성으로 인터넷을 공부하기도 했지요.
자유게시판에 한 구의원을 공격하는 글이 떴었어요. 이를 본 한 보좌관이 대뜸 저
한테 “조기자가 누구요?”라고 묻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디지털광진》에 조씨
성을 가진 기자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조회 수’를 사람 이름으로 착각했던 겁니다.
해당 구의원도 저한테 똑같이 물어봤었어요. 도대체 조회수 기자가 누구냐고요.
초기에는 취재 제한도 많았습니다. 구의회 출입제한도 받아서 구의회 의장에게 항
의하기도 했지요. 저는 어느 정당이냐 보다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역 언론 중에서는 사고를 치는 곳도 많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어요. 《디지털광
진》의 한 기자가 어느 직능단체에 취재를 갔는데 “얼마면 되냐?”고 묻는 사람도 있
었던 거죠.
독자들이 짜릿해 하는 것은 인사문제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디지털광진》의 기사
가 예방적 효과가 되었어요. 이젠, 관공서에서 인사행정을 다룰 때에는 꼭 관련서
류 등을 준비하려 하니까요.

271
Q. 《디지털광진》을 운영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홍진기 : 어려운 점은 하루 전날 기사로 비판하고, 다음날 그 사람을 바로 만나 악수
하며 인사하는 게 어려웠어요. 어느 구청장은 저에게 독사라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구청 홈페이지에 두 차례나 사과를 했을 정도이니까요.
《디지털광진》이 정보라는 측면에서 지역운동에 기여하는 바가 많았다고 생각합니
다. 초기에는 지역단체에 포커스를 많이 맞추었는데, 지금은 지역정보의 유통창구
로서의 기능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언비어가 돌다가도 《디지털광진》의 기사에 의
해 정리되는 측면도 있었지요. “《디지털광진》에 떴대”가 정확한 사실의 판가름 역할
을 했답니다.
어찌 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 유언비어가 지역을 지배하던 시대를 《디지털광진》
이 걷어냈다고 자평할 수 있겠습니다.

Q. 《디지털광진》의 향후 과제는 무엇일까요?

홍진기 : 《디지털광진》은 배포나 영향력의 문제는 지나갔고, 이제는 향후 양질의 기
사를 얼마나 생산하느냐가 관건일 것 같아요. 한 마디로 네거티브는 가능하나, 포
지티브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의 광진구 방문 기사를 올린 적이 있는데, 반나절 만에 조
회 수 5,000을 넘어서는 거예요. 알고 보니, 박 시장님이 트위터에 《디지털광진》 기
사를 링크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이 사례 또한 《디지털광진》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72
좌담회 : 《디지털광진》 13년의 역사가 남긴 지역사회의 변화는?

■ 일시 : 2013년 9월 26일(목) 오전11시
■ 장소 : 광진주민연대 3층 회의실
■ 참석 : 홍진기(《디지털광진》 대표), 김승호(광진마을네트워크 집행위원장/ 광진
서울시 광진구

주민연대 전 대표), 안순종(광진참여네트워크 대표), 오봉석(필자)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  쪽부터 안순종님,
왼
김승호님, 홍진기님

Q. 얼마나 자주 그리고 깊이 있게 《디지털광진》을 보시는지요?

김승호 : 매일 보고 있습니다. 보도자료 형식은 제목만 보고 구의회, 해외연수, 인
사문제 등 관심 있는 내용은 꼼꼼히 보는 편입니다. 《디지털광진》의 기사 중 관심
있는 내용은 저희 단체에서 입장을 내고 이슈화하기도 했습니다. 기사를 유심히 보
는 편이지요.

안순종 : 사안이 있을 때는 집중적으로 들어가 봅니다. 평소엔 월 1~2회 정도 보는
데, 엊그제는 자유게시판 댓글에 관심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습니다.

홍진기 : 저희 《디지털광진》 조회 수에 부침이 큰 편이에요. 지역이슈 기사가 있거
나 선거 시기에는 상당히 많이 들어오고 기사 클릭수도 높습니다. 얼마 전에는 ‘박
원순 시장’ 관련기사가 몇 시간 내에 약 5,000건 조회 수를 기록한 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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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곡 3동 파출소’ 관련 기사도 조회 수가 급증했던 적이 있는데, 아마도 관련 사건
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안철수씨가 지난 대선 전 건대입구역에 왔을 때도 조회 수
가 하루 만에 만 명이 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안순종 : 지역에서 이슈가 생길 때 우선 드는 생각은 《디지털광진》 밖에 없다는 생
각입니다. 지역 일이 궁금하다 싶으면 《디지털광진》을 봅니다. 이전의 기사내용까
지 보면 해당 사건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광진》에 대한 신뢰도와는
별개로 궁금하면 《디지털광진》을 봅니다.

홍진기 : 궁금한데 기사가 없으면 취재요청을 해주세요. 《디지털광진》 초창기에는
지역단체와 지역사회가 분리되어 있어서 지방자치 문제와 같은 현안과 동떨어져 살
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론을 함께 형성할 수 있음에도 활성화가 부족한 것 같
습니다.

Q. 주변에서 느끼는 《디지털광진》은 어떠한지요?

안순종 : 주변도 비슷해요. 내용의 연결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해당 사건의 경과를
볼 수 있으니까 주변 사람들도 신뢰감을 갖는 것 같아요.

김승호 : 일상적으로 보기는 어려우나 이른바 지역 유지 층은 꽤 보는 듯합니다.

홍진기 : 여전히 가능성은 갖고 있으면서 조회 수 등을 보면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공격하는 기사가 있거나 분쟁이 있을 때에는 독자들
의 관심이 높은 편입니다. 일상적으로 주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자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Q. 《디지털광진》 하면 떠오르는 명장면을 꼽는다면?

김승호 : 몇 가지 사건들이 기억에 떠오릅니다. 하나는 시설관리공단에 구청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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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원 측근을 요직에 앉힌 사건입니다. 다른 하나는 광진문화원과 관련된 인사비
리 사건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광진구의원 해외 연수 사건과 광진구의회 의정비
인상 사건 등이 떠오릅니다. 《디지털광진》이 없었다면 시민사회 혼자의 힘으로는
지역 이슈화도 힘들고, 해당 정보도 얻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서울시 광진구

안순종 :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할 때, 바람처럼 나타나는 홍반장(홍진기 기자) 생각
이 많이 납니다. 지역 언론이 심층보도를 했기 때문에 지역단체들이 움직일 수 있었
습니다. 저희들에게는 《디지털광진》이 동기유발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기자회견을 하더라도 홍반장님이 나타나면 희희덕 거리며 대충할 수는 없는 것
입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홍진기 : 《디지털광진》이 혼자 부르짖어도 반향이 없으면 한계가 있었을 텐데, 시민
사회가 현장에서 피켓시위도 하고, 주민감사청구 등도 하니까 지역사회를 변화시
킬 수 있었습니다.

Q. 만약, 《디지털광진》이 없었다면 시민사회와 광진구는 어땠을까요?

김승호 : 자기 단체 일만 열심히 했을 것입니다. 지역사회 전체가 어떤 흐름으로 갈
지는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내 단체 중심이고, 지역사회에선 사건이 터진
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야 뒷북을 쳤을 것입니다.

안순종 : 사실, 전에는 우리 지역사회의 일에 대한 목적의식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디지털광진》을 통해 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고, 비로소 지역사회 전반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 것 같아요.
만약, 《디지털광진》이 우리지역에 없었다면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있
는 언론을 찾았겠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디지털광진》이라는 지역의 언론이 있어
서 보도할 수 있었다는 게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Q. 2000년 ‘시민이 기자다’라는 모토로 《오마이뉴스》가 창간되었고, 2012년에는 ‘주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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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다’라는 모토로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이 창간되었습니다. 2000년에 창간한 《디지
털광진》이 주민기자를 육성하는데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요?

홍진기 : 주체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시도는 했었지요. 개별적
노력도 했고 스스로 주민기자 가입도 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초기에는, 정치인들이 내가 주민기자가 되겠다며 다가오는 게 고민이 있었어요. 칼
럼을 받기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지요. 어느 정도 방향이 맞아야 하는 거니
까요.
그래도, 2000년대 중후반까지는 광진주민연대와의 관계 속에 《디지털광진》을 성장
시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김승호 : 예를 들어, 이번에 진행한 ‘광진주민연대 포럼’의 경우, 제가 기사를 써도
좋은데 기사 쓰기가 어려우니 《디지털광진》의 기사를 퍼서 옮기는 게 더 쉽더라구
요. 일정한 교육 없이 기사를 쓴다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일반인들이 일목요연하
게 기사를 작성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단체 홈페이지에는 내 감정을 실을 수 있으나 《디지털광진》에 주민기자로 글을 쓰
게 되면 객관성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 게 있습니다.

홍진기 : 기사에 감정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지요.^^

안순종 : 《디지털광진》이 커가는 만큼 주민 기자가 많아지는 게 맞지 않을까요? 예
를 들면, 《디지털광진》의 기본 포맷에서 한 꼭지를 만들어 주민기자들이 올리고 싶
은 것을 올릴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자유게시판과는 다른 개념으로 말입니다.

홍진기 : 자신감 부족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지역은 한 단계 건너면 다 알 수 있는 곳
이기 때문에 기사의 취사선택에서 감정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이라는 어려움이 분명히 있거든요. 해당 이슈에 대해 해당인에게 투고를 요청
하는 방식이 절충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한동안 투고도 뜸했는데, 얘기를 듣다
보니 외부 필진 활성화에도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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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의 향후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승호 : 지금까지는 문제가 발생하면 후속조치를 하는 형국이었는데, 앞으로는 지
역이슈를 생산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걷고 싶은 거리의 장애인 이동권 문제나
보육문제 등 지역을 바꾸어 나가는 데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가 같이 연구하고, 내용
서울시 광진구

을 생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홍진기 : 김승호님이 중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가 전체적인
합의를 이루는 게 필요할 듯합니다. 예전에는 청원을 하거나, 구의원을 통해 지역
사회에 목소리를 냈지만, 마땅치 않았지요.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이제, 시민사회와 지역 언론이 손을 잡는다면 지역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입
니다. 지속적으로 이슈를 찾는 것이 중요하고 지역사회의 문제와 지방자치에 대한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의 합의가 필요하겠습니다. 목표와 위상에 맞는 현실적 이슈
를 잡아내고 개선방향을 이슈화하면 가능할 듯합니다.

안순종 : 매체는 어느 특정 단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되, 받아쓰는 기사가 아니라
어떤 관점으로 볼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나오며
저는 어릴 적부터 상상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부모님 두 분이 장사를 하시는 터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내성적인 성격 탓
에 밖에 나가서 놀기보다는 그냥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이
런 제가 답답했는지 ‘암사내’라고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부모님께서
는 다른 집처럼 공부하라고 성화를 부리지도 않으셔서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시
간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성격도 서서히 외향적으로 변하고 친구들도 사귀고 세상을 배워
나갔지만, 어릴 적 갖고 있던 상상하기의 취미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277
스물아홉의 나이에도 그랬지만, 작년 서른아홉의 나이에도 40대의 삶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생각이 많았습니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상상력은 한없이
발동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력의 끝자락에서 결심한 일이 바로 마을미디어 《광
진사람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상상력은 이랬습니다.
먼저 인터넷 공간 안에 《광진사람들》을 만들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종이신문을
창간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을기자학교를 몇 차례 개최하여 마을기자들을 육
성한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에게 마을신문을 배포하면서 일종의 후원자인 옴부즈맨
을 모집하고, 마을신문의 뜻에 동의하는 상점에는 고정 배포처라는 의미의 그루터
기 현판을 달아 드린다. 1년 동안 지역주민 100여명을 인터뷰하여 이 분들의 삶을
《광진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한다. 창간 1주년이 되는 2013년 11월 5일
에는 창간1주년 기념식을 개최하고, 연말에는 《광진사람들》 북콘서트를 재미나게
열어 한 해를 마감한다.

창간1주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위의 상상력 중에서 마을신문을 창간하고 기자학
교를 통해 마을기자를 육성하는 것까지는 이루어졌으나, 100여명의 사람들을 인터
뷰해서 한 권의 책으로 엮겠다는 꿈은 상상으로 남겨졌습니다.
《광진사람들》 창간1주년 기념식은 조촐하게 2기 마을기자들을 중심으로 워크숍
형태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일종의 《광진사람들》 돌잔치가 되는 셈입니다. 자영업

▲ 광진사람들, 신문 읽어주는 사람들

278
성패의 1차 관문이 1년을 버티느냐로 판가름 난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광진사람들》은 이제 1차 관문을 통과한 셈입니다. 2차 관문은 안정적인 마을신문
발간, 마을기자 육성, 그리고 마을라디오나 영상 등으로의 확장일 것입니다.
《광진사람들》이 이제 돌잔치를 앞둔 애기라면, 《디지털광진》은 13살이 된 청소년
에 해당할 것입니다. 10여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광진 지역사회에서 자리 잡으며 나
서울시 광진구

름의 수많은 고민을 홀로 안고 살아왔을 《디지털광진》입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
는 중앙 언론매체들도 경영난에 허덕인다는 이야기가 들리곤 하는데, 한 지역사회
의 인터넷언론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는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디지털광진》이 주로 구청과 구의회에 대한 언론본연의 감시기능과 지역 내 소식
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면, 《광진사람들》은 기성 언론에서는 보기 힘든 동네소식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과 사람들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디지털광진》과 《광진사람들》의
파트너십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으나, 아직은 《광진사람들》이 걸음마를 떼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광진사람들》이 돌잔치를 맞기까지 엉뚱한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데 함께 해준
표재선 편집국장님과 1기 마을기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아
름다운 감동을 전해 주신 2기 마을기자 여러분들과 웹디자인 및 마을신문 디자인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실패는 하였으나 당차게 추진했던 마을미디
어협동조합에 뜻을 모아 주셨던 지역단체의 소중한 분들과 두서없는 회의에도 불만
없이 참가해준 편집기자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인터뷰의 대상이
되어 주시고, 마을신문을 읽어 주시고, 마을기사의 주인공이신 광진 주민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광진사람들》이라는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오늘
도 엉뚱한 상상을 계속하고 있는 제 자신에게 고생했다는 인사와 함께 이 한권의 책
으로 선물을 대신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마을공동체는 그 마을이 어느 마을이건, 하고 싶은 일이 어떠한
일이건, 한 사람이 미치고 두 세 사람이 마지못해 끌려나오면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엉뚱한 때로는 불가능한 일들도 세 사람만 뜻을 모은다면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보고 대화하고, 아이들이 골목에서 놀이터에서 뛰어
놀고, 옥상에서 베란다에서 자투리땅에서 키운 채소들을 나누어 먹고, 우리 집 아

279
이가 어려워하는 과학문제를 앞집 대학생이 가르쳐 주고, 야근하는 날에는 옆집 할
머니에게 우리 집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마을. 진정 사람냄새가 나는 아름답고 평화
로운 마을공동체를 꿈꾸신다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내가 미치고 오른손
과 왼손에 마지못해 끌려나오는 두 사람만 손잡으면 마을공동체의 일은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280
iiivi토통성
알소 하는
란 장
자원 동 를찰 지
활 가관 일
꿈 며
꾸
서 울 시 구 동 구 이 책공 동 함 께 를 는 행 하 며
동대문 성 품앗 〈
과 육아 사 진 마을〉

글쓴이 | 권기정(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대표)
글쓴이 | 전은희

두 아이의 엄마이자 중랑구립면목정보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다. 동대문구에서 태어나고 자
라 동대문구에서 살고 있다. 육아지진아이자 워킹맘이라는 최악의 조건에서 아이를 잘 소모임
성동구 여러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며 특별한 자원활동가를 꿈꾸었다. 소통을 위한 단체, 기르고
싶은 마음에 품앗이 공동육아를 결심하게 된 용감한 여자. 온 동네를 누비며 공동육아를 하자고
을 생각하며 서울시 우리마을프로젝트인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사업을 기획하며 활동했다. 성동
파닥파닥 책과 함께 다양한 연령층을 만나며 즐거운 활동을 하고 사람들의 엄청난 도움을 뻔뻔
구 내에서부채질을 했던 끝에 알토란 대표를 맡게 되었다. 수많은 있다.
하게 받으며 스스로 인복이 있다고 감탄
이메일 주소 hanul0149@hanmail.net 중이다.
글소개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한 동네에 사는 주민들이 책을 매개로 소통의 기회를 갖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서울시 성동구 주민들의 프로젝트이자 모임. 소통을 위한 자원활동가를 모집하여 교육하고
그들이 모여 봉사와 모임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이 글에는 자원활동가를 위한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와 활동가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주민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노인정 방문 활동 등의
진행과정 회의, 정모 과정 등 그동안의 활동 내용과 함께 사업 기획 요령, 추진 노하우 등을
가급적 상세히 소개하고자 했다.
책을 통해 동네 이웃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분들, 특히 마음은 있지만 	
막상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 망설이시는 분들이 이 글을 통해 보시고 	
조금이나마 힘을 얻으셨으면 한다.

282
차례

들어가며

서울시 성동구

1.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시작
책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데요 / 어디를 둘러볼까 / 마을공동체를 알다 /
도전하자, 우리 마을 이야기

2. 자원활동가
〈 1. 교육 첫 마당 〉 디베이트가 생소해요 / 내 목소리로 말하다 /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소리 / 새로운 세계가 열리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 2. 또 다른 교육 마당 〉 독서로 치료한다고? / 전래놀이로 한 바탕 웃고 /
발문이 뭐예요? / 교육을 마치고
〈 3. 활동 〉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성동구사회복지관으로 /
봉사하러 갔다가 힐링을 하다 - 노인정 봉사를 다니며 / 강사에 도전했지만

3.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
기타와 스토리텔링 / 디베이트 프로그램 강좌 / 영화와 도란도란

4. 옆 동네 사람들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연극지도사에 도전하다 / 들썩이는 마을문고 /
햇빛이 모든 곳을 비추진 않는다.

5. 우리는 현재 진행형
새로운 꿈을 향해 / 함께 ‘도들이봉사단’으로

나오는 말

283
들어가며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은 서울시 우리마을프로젝트 사업명입니다. 성동구에서 자원
활동가를 꿈꾸며 함께 소통하는 소모임을 구성하고 싶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 프
로그램입니다. 처음엔 막연한 꿈이었던 일들이지만,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
원서를 넣고, 사람들과 만나며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서 작은 현실을 만
들어 갔습니다. 이 글은 그 일련의 과정과 활동을 담았습니다.
작은 생각, 작은 마음이 활동으로 이어져서 결과물을 낳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꿈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며 활동을 정리하니 그때의 감동이 다시 새겨집니다.
물론 모든 활동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고민하고 즐겁게 활동하는 사
람들이 있어서 기뻤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 공공 기관의 직원, 고민을 나누던 활
동가들, 봉사를 나가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우리 프로그램은 학생과 성인, 부모와 아이들, 노인과 봉사자들과의 소통을 연계
하는 활동가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이 봉사를 하고 또 다른 세대와 만나며 작게
웃으며 소통을 하는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재미로 시작한 일이 힘든 일이 되어 포기
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묵묵하게 앞을 바라보며 즐기는 주민이 있기에 성동
구의 활동가는 오늘도 들썩입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은 책을 매개로 진행되었습니다. 때문에 가장 먼
저 자원활동가 교육을 먼저 했습니다. 능동적인 독서 활동을 증진시키는 ‘디베이
트’, 즐거운 놀이문화를 주동하는 ‘전래놀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독여주는 ‘독서
치료’ 프로그램이 주프로그램입니다.
교육 프로그램 진행 후, 교육을 받은 자원활동가가 성동구 금호동을 중심으로 자
원활동을 시작하였고, 지금은 성동구 주민 외 타 지역 주민도 교육을 받을 수 있도
록 연계하고 있습니다.

284
현재는 교육 연극을 하는 자원활동가와 연계하여 아이들과 어르신을 만나 자원
봉사활동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자원활동가들이 봉사단체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
니다. 이름하여 ‘도들이봉사단’. 책을 읽으며 도란도란, 연극을 하며 들썩들썩한
마을을 꿈꾸는 봉사단입니다. 아이들은 처음에 봉사자들을 부담스러워 하기도 했
습니다. 하지만 함께 아이들과 대화의 방법을 찾아가는 일 또한 보람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길 위에 서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고 있을 겁니다.
서울시 성동구

자, 꿈을 꾸는 여러분! 시작을 두려워하는 여러분 ‘책과 함께 사는 마을’로 푹 빠
져보실까요?

1.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시작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책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데요.

저는 성동구에서 살다가 재개발로 노원구로 이사 갔다가 다시 성동구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살고 있습니다. 이사 가기 전 성동구에서 ‘발마사지봉사단’에서 1년을 봉
사하고, 도서관의 명예사서와 자원봉사 상담가로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봉사라
는 것을 하기 위해서 강연을 듣고 활동을 하다 보니 아쉬움이 하나 있었습니다.
‘책을 이용한 전문적인 봉사는 없을까?’
저는 노원구에서 책과 함께 하는 수업도 하고, 봉사도 하면서 ‘소통’에 대한 생각
을 깊게 했습니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마을주민
이 하나가 되는 마을을 만들 수도 있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이지요.
저는 구체적인 실행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무
엇을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사 온 금호동의 아파트에 작은 문고가 있
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봉사단체나 모임이 없어서 문을 열지 못했지만 공
간은 적당했습니다.
깨끗하게 지어진 아파트의 문고에 책은 별로 없었지만 넓은 공간이 마음에 들었
습니다. 저는 작은 꿈을 꾸었습니다.

285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문고에 모여서 삼삼오오 책을 읽고 이야기 하는
장면. 어르신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봉사자가 책을 읽어주는 장면. 엄마와
아이가 도란도란 책으로 눈빛을 교환하는 장면. 아버지들이 모여서 아이들을 위한
동화구연을 해주는 장면.’
아파트의 작은 문고 앞에서 저는 설레었습니다. 하지만 문고의 문은 굳게 닫혀있
었습니다. 저는 관리소장님을 찾아갔습니다.
“문고는 언제 개방하나요?”
관리소장님은 웃으시며 따뜻한 차를 내주셨습니다.
“아직은 여건 상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관리소장님도 이전에 여기저기 건의를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관리소장님도 문고에서 마을 주민
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웃으며 지낼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저 또한
아이들과 책을 보며 지내는 작은 사랑방을 생각했습니다. 아이들 교육에도 관심이
있고, 책을 좋아해서 작은 소모임을 결성하여 소통을 하고 싶었습니다. 관리소장님
도 방법을 알아본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마을문고를 이용하여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자!”

‘어디를 둘러볼까’

2007년 동사무소 자원봉사활동가로 있을 때 동장님의 도움으로 동사무소의 작은
문고에서 초등학생들과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도서관
명예사서를 하면서 만났던 봉사자들과 연계하여 문고 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일 먼저, 동사무소의 문고를 방문했습니다. 작은 도서관의 형태로 자리한 문고
는 2층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활성화 되지 않고 봉사자들도 없이 문만 열려있었습
니다.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주변을 살폈습니다. 우리 아파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구
립도서관이 있었습니다. 먼저 도서관의 동아리가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다행스
럽게 도서관에는 모임이 결성되어 있었습니다. 조언도 구하고 함께 하고 싶어서 독

286
서회장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박숙영 독서회장님은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기존에 결성되어 자리
잡힌 단체라서 신입회원을 받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힘을 주셨습니다.
“일단 사람들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요? 같은 생각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
말이죠.”
따뜻한 박숙영 독서회장님에게 힘을 얻어서 다시 마을문고로 돌아왔습니다.
서울시 성동구

‘분명 사람들이 있을 텐데…….’
아쉬워하며 터벅터벅 돌아섰습니다. 그때 관리소장님이 봉사자를 모집하는 공고
문을 붙여보자고 했습니다. 자원봉사자나 독서모임 구성원을 우리 아파트에서 모
아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을 하다가 책을 가까이 하
며 활동을 하는 모임이니까 ‘책뒹굴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관리소장님께 부탁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을 하여 독서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책뒹굴이’ 모집 공고를 만들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엘리베이터와 아파트 공고판에 붙였습니다.

**책뒹굴이 회원모집 안내**
안녕하세요. 하이리버 201동 202동 주민 여러분~~
우리 아파트 202동에 마을문고가 있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아직 책의 양도
부족하고 시설도 미비하여 오픈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향후 오픈과 관련하
여 함께 하실 ‘책뒹굴이’ 회원을 모집합니다.
1. 신청기간 : 2013년 4월 15 일부터~
2. 신청방법 :  리사무소 문의 ☎ 02)2256-5131	
관
책뒹굴이 회장 문의 ☎ 010-2440-2716
3. 향후 일정 :  초등 대상 프로그램 (독서, 예술, 대회 참가 등 )	
-중, 고등학생 프로그램 ( 디베이트, 문학지도 등 )	
-마을 신문 발간 계획 ( 어린이 마을 기자, 성인 기자 활동 포함 )
4. 대상 : 금호 2, 3가 동주민

287
5. 회원 특전 :  책대여 추가	
-마을프로젝트 사업 회비 감면	
-학생 프로그램 수강료 감면
● 책 뒹굴이 담당자 ●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이 주일이 넘도록 연락이 없었습니다. 실망을 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을공동체를 알다

“마을공동체 알아?”
어느 날, 동네의 주민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을공동체?”
“그래. 누가 그러는데 서울시에서 3명 이상 모인 주민에게 사업을 준다나?”
‘3인 이상?’
저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홈페이지를 찾아서 둘러보았습니다. 많은
일들이 기획되고 사람들이 활동하고, 뜻 깊은 결과물을 낸 서울시민의 활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 이거다!’
우리 아파트 마을문고 활성화를 위해서, 또한 소통하는 사랑방을 만들기 위해서
‘마을 공동체’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고 동아리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프로그
램을 만들어 보자.’
‘책뒹굴이 회원’이 모이지 않았기에 ‘함께 할 자원활동가를 어디서 찾지?’ 하며 고
민을 했습니다. ‘3인 이상이면 시작할 수 있을 텐데.’
‘아~ 거기면 되겠다.’
저는 바로 동사무소의 자원봉사센터장님을 찾아갔습니다. 흥분한 목소리로 ‘마을
공동체’에 관하여 설명을 드렸습니다. 센터장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함께 해보자

288
고 했습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봉사자들도 열 명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이미 많
은 봉사를 하고 있는 회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또 아파트 통장님을 찾아갔습니다. 늘 앞장서서 마을을 위해 뛰시는 통장님도 마
을문고와 주민을 위해서 공동체 사업에 함께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자신의 재능을 봉사로 연계하며, 작은 일을 만들어
가는 활동가’를 양성하자고 했습니다. 작은 모임이 주민의 귀가 되고 눈이 되어 우
리 동네에서 도란도란 책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시간을 떠올렸습니다. 함께 차를 마
서울시 성동구

시고, 생각을 나누며 기획안을 완성했습니다. 이름하여 ‘책과 함께 사는 마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긴장이 되어서 우리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2013년 4월. 결과가 발표되었던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동사무소에서 자원봉사
센터의 회의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이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
원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자원봉사센터장님은 동장님께 서울시마을공동체 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동장님의 커다랗게 웃는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동장님께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도와주시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모인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웃
었습니다.
드디어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이란 이름의 공동체호가 첫 발자국을 내딛었습니다.

도전하자, 우리 마을 이야기

먼저 책을 이용하여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위해 선정한 강사님들과 회의를 했
습니다. 봉사자 모집에 실패한 경험이 있던 터라 좀 더 계획적인 일처리를 하고자
했습니다. 이번엔 혼자 고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원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을 교
육해 주실 강사님들과 수업 전에 기획 회의를 했습니다. 때문에 강사님들과 깊숙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2013년 4월 24일.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주된 과목인 디베이트 전수완 강사님.
주민들의 마음을 감싸줄 독서·미술 치료 고경희 강사님. 즐거운 놀이를 강의해 주
실 김영선 강사님. 독서의 전문적인 발문을 진행하실 정은정 강사님과 맛난 차와 간
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89
전수완 : 디베이트가 생소해서 주민들이 공부할 때 힘들어할 수도 있어요. 즐
거운 수업이 되도록 활동을 많이 넣어야겠어요.
김영선 : 맞아요. 전래놀이를 하는 선생님들을 보면 모두 아이 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고경희 : 책으로 소통하는 모임이니까 책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주민들이 아이들의 부모이고, 누군가의 자식이니까 마음을 열기엔 책만 한 것
이 없어요.

강사님들과 오랜 시간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주민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마을문고로, 동사무소로, 도서관으로,
아파트 게시판으로 소문을 낼 일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자원활동가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할 장소 섭외가 쉽지 않았습니다. 예정
한 마을문고는 강의 장비들이 부족하여 교육 시설로써는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강
사님들께는 교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빔프로젝터와 교구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향후 동아리 장소와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수업 장소로써 시설을 갖추기까지 시
간이 필요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동장님께서 지원해주시기로 한 동사무소의 강의
실 등은 성동문화원의 수업과 겹쳐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성동구 내에서 봉사를 하시던 현금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현금림
선생님은 이미 이미용 봉사와 구청의 예산감사 봉사를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동네
에 아시는 분도 많았고 그동안의 봉사 활동을 하면서 아는 장소도 많았습니다. 현금
림 선생님은 강의실로 고민을 한다는 말을 듣고 함께 장소 섭외를 위해 움직여주었
습니다. 선생님은 기동력 있게 함께 움직이는 훌륭한 적토마 같았습니다.
왕십리의 성동구청 강의실을 알아보고, 도서관 등을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곳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터덜터덜 움직이던 우리는 구청 건너편에 자리한 ‘성동여성인
력개발센터’를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책과 함께 사는 마을’ 기획안을 들고 무작정
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그때 성동여성인력개발센터의 박은옥 과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주민과 경력단절
여성들에게도 좋은 프로그램이라며 흔쾌히 강의실을 빌려주셨습니다.

290
드디어 마을에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아파트 입구에 커
다랗게 웃으며 펄럭이는 현수막이 힘차게 보였습니다. 성동구의 주민과 주변의 주
민이 한 명 한 명 모여서 20명의 ‘책과 함께 사는 마을’ 구성원이 여성인력센터의 강
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함께 할 20명의 상기된 얼굴
을 기다리는 우리는 함께 할 친구를 만난 것처럼 신이 났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성동구청의 자원봉사센터장님과 자원봉사 팀장님께도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을 알려나갔습니다. 또 아파트의 게시판에도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하지
서울시 성동구

만 교육 장소가 마을문고에서 성동여성인력센터인 왕십리로 변경되자 우리 아파트
에선 한 명의 교육생도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젠간 우리 마을문고에서 함께 할
자원활동가가 나타날 거라는 생각을 하며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직접 얼굴을 보면서 조금씩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을 알려가기도
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주민이 많다는 관리소장님의 말씀에 엘리베이터에도 안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내문을 붙었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불빛을 보고 달려와 줄 동지가 있
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수업 시작에 설레며 성동구에서 함께 봉사하며 소통할 회원들을 기다렸
습니다. 우리의 기대에 찬 눈빛은 강의가 시작에 되자 무지갯빛으로 바뀌었습니다.

◀ 성동 개강

291
2. 자원활동가
(1) 교육 첫 마당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
회기

날짜

1

4. 29

2

강의명

내용

강사명

OT 봉사와 책사마

봉사의 의의, 책사마 프로그램
자원활동가란, 책과 함께

센터 샘.
정은정

5. 1

독서• 미술치료와 스활코

독서• 미술치료의 이론, 실습

고경희

3

5. 3

전래놀이와 스활코

전래놀이 이론, 실습

김영선

4

5. 6

디베이트 1

디베이트 이론 , 실전
(독서 디베이트)

전수완

5

5. 8

디베이트 2

디베이트의 형식, 실전
(시사 디베이트)

전수완

6

5. 10

디베이트3,

디베이터 활동 이론(심사와 강평, 매체
디베이트), 실전

전수완

‘책과 함께 사는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자원활동가 양성입니다. 전문적
인 교육을 받은 봉사자들이 주민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됩니다. 또한 봉
사자들은 소통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세대의 주민들과 어울려 즐거운 마을을 만드
는 것이 목표입니다.
디베이트와 독서, 미술치료와 전래놀이 등을 함께 배우며 책을 읽으며 함께 소통
하는 방법에 대한 수업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또, 책을 읽고 이야기 하고 전래놀이를 하면서 즐겁게 뛰어 놉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이야기 나누며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림책과
동화책 등 다양한 책을 읽으며 일상의 이야기, 주변의 이야기를 나누며 삶을 나누는
것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처음에 무엇을 교육하는지 모른다면서 설명을 해달라고
찾아온 주민들과 조금씩 얼굴을 익히면서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문이 열렸습니다.

디베이트가 생소해요
함께 모인 20명의 교육생들은 처음에 디베이트가 무엇인지 의아해했습니다. 전수

292
완 강사님이 설명을 천천히 하고, PPT로 사례를 보여주었습니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TV속에서 가끔 보던 토론 프로그램과 비
교하며 강의를 들었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살던 세대가 아닌 교육생들은 한
편으로 재미있다고 하셨지만 어렵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초등학생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을 해야 하는가’
강사님이 적당한 주제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조별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나누었
서울시 성동구

습니다. 초등학교 자녀를 둔 엄마들은 자녀를 빗대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신문, 인터넷을 뒤져서 실제적인 사례를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자주 가는 곳에 가서 질문을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주제에 대한 토론을 하기 위해
서 문방구 주변을 돌아다닌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수업 전에 조사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별 생각이 없었던 분야인데 공부를 하려고 자세히 찾아보니 생각거리가 많아졌
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깊게 생각을 하며 조별 활동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디베이트를 준비하였지만 긴장이 되었습니다.
디베이트는 형식에 맞춘 토론이라고 강사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시간을 정해놓
고,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생소하지만 수업을 듣는 교육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디베이트 전수완 강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디베이트는 말입니다. 책을 읽기도 하고, 신문을 보기도 하면서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어르신들과 대화도 합니다. 하지만 그냥 무작위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
다. 형식을 갖춰서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근거가 있어야겠지요. 근거들
은 어디에서 찾을까요? 네. 바로 자료조사에서 나와야겠지요.”
교육생들은 노트에 빼곡하게 강사님의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책을 선정해서 밑
줄을 그어가면서 읽고, 조별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토론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말을 나누었습니다. 처음엔 눈치를 보던 교육생들이 조금씩 입을 떼기 시작했습니
다. 시간이 지나자 서로 더 말을 하려고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자, 이제 시간을 체크하며 공정하게 말을 할 겁니다. 그렇다면 누구는 많이 하

293
고, 누구는 조금 얘기한다고 불만이 없을 겁니다. 이렇게 형식에 맞춰 말을 하는 것
이 디베이트입니다. 학교에서 조금씩 시작하고 있지만 아직 처음이신 분도 있을 겁
니다. 형식에 맞춰서, 예의를 갖춰서 말을 하다가 보면 싸움 없는 사회가 될 겁니
다. 주장도 근거를 합리적으로 제시하면 빛이 납니다.”
형식에 맞춰서 발표를 하고, 정성껏 듣게 되니 이구동성으로 시끄럽던 교실이 조
용해졌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강사님이 후기를 돌아가며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집에 가서 아이들과 디베이트를 해보았어요. 자료를 조사해서 의견을 나누니까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더라구요. 마냥 고집을 부리던 아이들이 차분하게 자
신의 말로 이야기를 하니까 평화로운 가정이 된 것 같아요.”
“부부 싸움을 할 때도 디베이트가 좋더라구요. 시간을 나눠서 이야기하고 끼어들
지 않고 들어주니 더 좋고요.”
“저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디베이트를 하려고 보니 여러 번 읽게 되었
어요. 근거가 되는 곳에 밑줄을 치고. 엄마가 공부를 하니 아이들이 좋아해요. 또,
열심히 배워서 봉사도 가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수완 강사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면 선생님들도 모두 발전 하실 거예요.”
전수완 강사님 또한 공동체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즐거운 마음으로 강의
를 해주셨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이 주민과 함께 하는 소통의 세상
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아시고, 강사비도 적게 받고 참여해주셨습니다.

◀ 디베이트 수업

294
힘든 교육과정이었지만 책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발표하는 과정에 성취감
을 느낀 교육생도 있다고 했습니다.
함께 디베이트를 하다보면 자세하게 주의 깊게 듣는 마음이 생기고, 민주적인 의
사결정을 할 수 있어 뜻 깊을 거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함께 한 교육생들의 미
래를 생각하며 꾸는 꿈이 같은 길이라서 든든했습니다.

내 목소리로 말하다
서울시 성동구

책을 읽고 앞에 나와서 의견을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수업 중에 발표
하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아직 한 번도 앞에 나와서 이야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
은 목소리가 아주 작았습니다. 하지만 강사님의 조언을 들으며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직 남편한테도 내 의견을 말한 적이 없었어요. 의견이라는 것이 근거가 되는
증거를 하나, 하나 찾아내서 발표를 하니 꽤 재미있는데요.”

           책과 함께 사는 마을

그렇습니다. 디베이트라는 것이 바로 근거에 맞춘 합리적인 이야기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뒷받침되는 근거가 정확하지 않는다면 주장은 힘을 잃고 만다고 했습니
다. 우리는 점점 의견이 많아졌습니다. 그에 따른 자료조사도 더 많이 하게 되니 디
베이트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소리
이제 드디어 형식에 맞추어 디베이트를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발표한 사람
이 의견을 말하면, 두 팀으로 나누어서 찬성과 반대로 말을 해야 합니다. 드디어 따
로 또 같이 협동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혼자만 잘 한다고 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 디베이트 수업

295
디베이트 시간에 자신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
다. 각자의 역할을 잘하고, 돌아가면서 시간을 나누어서 협동을 해야 할 시간입
니다.
힘든 교육과정이 끝나자 책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발표하는 과정에 성취감
을 느낀 사람도 있었습니다.
강사님은 주민들과 함께 디베이트를 하다보면 경청의 마음이 생기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 뜻 깊을 것이라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함께 한 주민들이
미래를 생각하며 꾸는 꿈이 같은 길이라서 든든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는 것을 깨달으며, 사람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라서 조
금은 어려웠지만 전수완 강사님과 한 첫 도전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다
처음에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모여서 토의를 했습니다. 여러 의견을 들어보고
이야기 거리인 주제나 논제를 찾았습니다. 그 후에 팀을 나누어서 찬/반 디베이트
를 했습니다. 초시계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떨리는 것을 참고 한바탕 디베이
트를 벌이고 나면 상대방의 이야기도, 우리 팀의 이야기도 남습니다. 한참을 듣고
함께 소감을 이야기 하다 보면 전혀 새로운 의견도 듣고, 느낌을 듣습니다. 나와 다
른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읽은 책을 한 번 더 읽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디베이트를 하며 겪은 경험을 주민들과 함께 할 거라는 굳은 다짐을
했습니다.

(2) 또 다른 교육 마당

독서로 치료한다고?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자원활동가의 두 번째 교육 프로그램은 ‘독서치료’입니다. 책
을 읽고,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들어
주는 것입니다. 학생인 주민들은 독서치료 시간이 신났습니다. 전지에 자신을 그리
며 조별로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장점을 말하고, 단점을 말합니다. 커다랗게 자
신을 그리고 색칠을 하며 모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한 착각을 했습니다.

296
독서·미술 치료 과정은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자원활동가 교육 중 참여자들이
많이 느끼고 공감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전지에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적고 발표를 하고, 아픈 마음의 상처를 서로 어루만
져주고, 힘내라는 말 한마디에 눈시울을 적시던 교육생은 마음이 솜사탕처럼 달달
하게 느꼈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강의실이 아주 따뜻했습니다.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 사람, 어머니 이야기를 하시는 사람, 남편과 싸우고 나왔
지만 힘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사람의 이야기로 강의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나
서울시 성동구

중에 자원봉사에 참여하면 더욱 뜻 깊은 시간이 될 거라는 고경희 강사님의 강의를
들으며 그림책 한 권도 소중하게 안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외치는 소리
가 들렸습니다.
《너는 특별하단다》라는 책으로 수업을 했습니다. 책 한 권이 주는 감동을 한 사
람, 한 사람이 가슴에 안고 가서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료에게 전해줄 수 있기를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바라며 뭉클했던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책을 읽고 작업을 하며 나에게 특
별한 사람은 누가 있는지, 나는 누구에게 특별한 사람인지를 떠올렸습니다. 또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교육생들은 즐거운 공동 작업을 했습니다. 책상에 전지를 펼치고 함께 하는 작
업이었습니다. 조 이름을 정하고, 각자의 장점을 이야기하며 서로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장소에 대해 이야기
를 했습니다. 같은 또래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에
는 서로가 할 말이 많다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평소에 잘 들어주지 않는 자

◀ 독서치료

297
신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맘껏 풀어놓았습니다. 그림
을 그리면서 우리는 더욱 흥이 났습니다. 크레파스를
들고, 색연필을 사용하고, 스티커를 붙이며 전지를
채웠습니다.
그림책을 보면서 언젠가부터 초라해져 버린 자아
찾기를 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
고 살았다던 주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서 위로하기
▲ 고경희 강사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듣지 못하던 칭찬을 듣고, 누군가에게 칭찬을 해주는 넉넉한 마음을 나누
었습니다. 고경희 강사님의 수업 사례를 들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
어가는 과정에 대한 지름길을 발견한 주민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전래놀이로 한 바탕 웃고
세 번째는 전래놀이시간이었습니다. 센터 내에 운동장만큼 커다란 교실로 옮겨서
수업을 했습니다. 책상이 없는 넓은 공간에서 교육생들은 각자의 어린 시절을 추억
했습니다.
김영선 강사님이 설명해주시는 프로그램을 듣고 둥그런 원을 만들어 섰습니다.
우리는 쥐와 고양이가 되어서 뛰어다니며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눈을 감고 이동을
하며 놀이를 즐겼습니다. 어린 시절 함께 하던 얼음 땡 놀이도 하며 신이 났습니다.

◀ 전래놀이-전체놀이

298
전래놀이는 활동적인 수업 외에도 고누놀이도 있었습니다. 종이에 선을 그리고
한 차례씩 돌을 옮기며 상대편 진영에 도착하면 이기는 놀이입니다. 마치 장기나 체
스와 비슷하지만 좀 더 간단하여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놀이였습니다.

서울시 성동구

           책과 함께 사는 마을

▲ 전래놀이-고누놀이

▲ 전래놀이-산가지놀이

또, 산가지 놀이라 하여 나무젓가락을 사용한 막대를 만들었습니다. 각자 색을
칠하며 작업을 한 산가지로 집중을 하여야만 이길 수 있는 놀이를 했습니다. 쌓아놓
은 산가지를 무너뜨리지 않고 가지고 오는 것인데 작은 공간에서도 할 수 있는 놀이
였습니다. 산가지 놀이로 교육생들은 집중력을 키우며 모두 숨을 죽였습니다.

또한 우유팩으로 만든 자연산 딱지에 몸을 맡기고 교육생들은 신나게 즐겼습니
다. 어린 시절 딱지를 가지고 하루 종일 놀던 때로 돌아간 듯 한 착각을 하며 각자의
손에 딱지를 쥐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김영선 강사님은 전래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어르신까지 재미와 교육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흥겹게 논다는 것이 결국 함께 하는 활동이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어깨가 들썩들썩 했습니다.

발문이 뭐예요?
교육 중 마지막 과목은 ‘발문’시간이었습니다. 정은정 강사님이 해주시는 강의를 들
으면서 교육생들은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299
◀ 발문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었습니다. 나무의 입장이 되어서 말을 했습니다. 또
아이의 입장이 되어서 이야기 했습니다. 또 어른이 된 아이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다리는 나무가 되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젠 아이들의 시선으로 말을 했습니다. 수업을 다니는 자녀가 되어서 말을 하다
가, 우리의 부모님의 자리에서 생각을 했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은 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마을공동체입니다.
때문에 책 속에서 깊게 생각하며 확장적인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은정
강사님의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형태의 질문을 하면서 미래의 자원활동가 선
생님들이 즐겁게 수업에 참가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으며 생활에 대해, 경제에 대해, 사람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다른 그림을 보고,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회에서 나무와 같은 존재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발문을 맡으신 정은정 강사님이 웃었습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서로 다른 이야기
가 나오는 것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을
하는 선생님들 뒤에 몽글몽글 이야기가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총 18시간의 교육을 마쳤습니다. 교육생들은 짧지만 긴 시간을 보내며 각자의 포부
를 말했습니다.

300
“방과 후 지도를 가면서 교육을 해보았어요. 디베이트는 정말 재밌는 시간이
었어요.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내 주장을 펼치는 것이 흥미로워요. 하지만 더
재밌는 것은 입장에 따른 준비인 것 같아요. 양쪽의 입장을 다 말하니까 한쪽
으로만 치우는 내 생각을 우기진 않아요.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교차질문
을 하니 더 재밌네요. 얼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서울시 성동구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힘들었지만, 보람 있네요. 특히 독서치료를 하면서 서
로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과정도 좋았어요. 봉사활동을 가면서 함께 할 시간이
기다려져요.”
“마지막 시간에 일이 있어서 못 와서 아쉬워요.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더
배우고 싶어요.”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아이들이 어려서 맡기고 오느라 힘들었어요. 함께 놀이도 하고, 이야기를 나
누면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이 생겨서 좋아요. 짧은 시간이어서 아쉬웠지만
봉사를 하며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나의 책을 읽어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이
겠죠.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주다보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때 성동여성인력센터 박은옥 과장님이 들어오셔서 격려의 메시지를 해주셨습
니다.
“마을공동체가 활성화 되어서 이렇게 선생님들과 만나 뵙게 되어서 즐거웠습니
다.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함께 소통하는 밝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향
후에도 공동체 모임이 있을 때 늘 연락 주세요. 함께 할게요.”
늘 따뜻한 커피를 준비해주시면 도와주신 박은옥 과장님과 깨끗한 센터가 따뜻
한 집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음을 가진 집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20명으로 시작된 ‘자원활동과’ 교육은 8명만이 수료를 했습니다. 교육과
정만 이수하고 활동은 하지 않겠다고 하신 사람도 있고,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다고
중간에서 포기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301
떠나는 사람들을 아쉬워하며 남겨진 사람들은 즐거운 공동체 모임을 만들어가기
로 했습니다. 교육과정을 마치고 성동여성인력센터에서 조촐한 파티를 하며 본격
적인 활동에 대해 회의를 했습니다. 또 서로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성동여성인력센터의 박은옥 과장님의 아낌없는 격려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 성동여성인력센터 박은옥 과장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자원활동가’ 과정의 장소를 섭외하다 난항을 겪을 당
시 흔쾌히 장소를 제공해주신 박은옥 여성인력센터 과장님을 뵙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Q.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자원활동가 양성 과정의 장소 문
의가 왔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박은옥 : 경력단절여성 즉, 전업주부인데 마을공동체 활
동하는 모습에서 믿음이 갔습니다. 여성인력개발센터 입
장에서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좋은 취
지를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를 통해서 배출된 많은 여성
들이 마을공동체의 영향을 받아 사회진출을 많이 할 것
▲박은옥 과장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체에서 들어온 현재의 상
황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고요.

Q. 센터에 근무하시면 성동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거시적인 관점으로 보시겠어요.
박은옥 과장님이 생각하는 마을활동가란 어떤 모습입니까? 저도 마을활동가인 셈
이죠.

박은옥 : 아이들의 엄마로서 필요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입장으로 일하
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마을활동가란 마을의 재원들을 적재적소에 연
결하는 일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일하고 싶은 사람과 교육을 받고
싶은 사람들은 연결하는 매니저 역할을 하시는 분으로 꼭 마을에 필요한 인재

302
라고 생각합니다.

Q. 현재 진행되는 공동체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실제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참여자
들을 가까이에서 보셨잖아요? 우리 ‘책과 함께 사는 마을’도 노인정과 복지관에 재
능 봉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박은옥 :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이 있습니다. 평생교육이념이지요. 현대사
서울시 성동구

회에 반드시 필요한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역할로 활동영역이 더욱 확대
되고 수요 또한 급증할 것으로 보입니다. 향후에 공동체도 다양하게 진화해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으로의 도약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거라고 믿
습니다.

Q. 옆에서 보시기도 하고 들려오는 이야기도 있을 듯합니다. 현재 마을공동체의 문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은옥 : 당연히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의
개발과 강사양성과정의 진행으로 발전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더욱 단단한 사
업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또한 한 번 참여한 사람들이 또 다른 사업을 진행해
서 경험이 능력이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공동체는 주민 몇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을의 공동체
가 의미 있는 사업을 연장해서 나아가면 결국 지역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
다. 제가 아는 분들도 작은 모임이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하신 분들도 있으니
까요.

Q. 성동구에서 ‘앞으로의 이런 공동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으십
니까?

박은옥 : 저는 재활용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개발되었으면 합니다. 환경과도
직결되는 문제이지요. 자원의 순환에 관심을 가지고 널리 알리는 공동체가 마
련되었으면 합니다.

303
Q. 공동체 마을활동가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또는 서울시마을공동체에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박은옥 : 서로 돕고 나누는 마을공동체의 정신을 살려서 지역의 복지문제를
주민들 스스로 참여해 해결할 수 있는 사업으로 발전되어 마을의 성장을 이끌
수 있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여성인력개발센터와 협약을 맺어 마을공동체에
서 필요한 것을 이끌어 내주는 역할을 해주시면 그것을 실현가능하게 풀어나
가는 역할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현
실을 풀어보려는 마음을 가지신 많은 공동체 활동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
각합니다.

Q. 늘 아낌없는 지원 감사드립니다.

박은옥 : 언제나 변함없는 활동을 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3) 활동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성동구사회복지관으로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스토리활용지도사 과정을 수료한 선생
님들은 처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될까’ 생각을 하고 참여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지
도사 과정을 듣는 동안 수업이 재미있었다며 기관이나 동네에 봉사활동을 다니며
배운 것을 실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을 기획하고 진행
했을 때 도와주신 동장님, 아파트 관리소장님, 성동여성인력개발센터 과장님도 멈
추지 말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확장해라고 조언을 해주셔서 도전을 했습니다.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성동구장애인사회복지관이었습니다. 이준구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한 후 방문을 했습니다. 이준구 선생님은 복지관의 김창희 과장
님과 함께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한 설명을 하고 수료증을 받은 우리 구성원이 동아리 활동

304
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복지관 아이들과 수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셔서
일곱 분의 선생님이 조를 이루어 수업을 맡아서 하기로 했습니다.
교육을 받았을 때는 몰랐는데 스스로 봉사활동을 갈 생각에 구성원들은 모두 떨
렸습니다.
‘무엇을 해야하지?’, ‘수업을 했을 때 기억나는 것이 없어.’
‘아이들 앞에서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각자가 교육 받았던 내용을 생각하며 회의를 했습니다. 소란도 잠시, 선생님들
서울시 성동구

모두 하나의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조별로 나가니까 함께 준비
한 수업을 한 사람이 진행을 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피드백을 해주면서 부족한 부분
을 채우자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수업은 제가 진행을 하고 두 분의 선생님이 참
관을 했습니다. 경험이 있는 제가 먼저 시강을 하고 함께 참여하는 수업을 진행했습
니다. 처음에는 떨린다고 아이들 앞에서 작게 말씀하시던 선생님들이 이젠 아이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옆에서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피드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자기소개를 먼저 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 속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이름을 짓기였습니다. 좋아하는 캐
릭터를 생각하면서 옆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선생님에게 자신을 표
현하는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드디어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또한 소통의 첫 걸음을 뗐습니다. 상기된 표정으로 복지관을
나서는 선생님들의 표정이 가지각색이었습니다. 7명의 아이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
를 할 때는 정신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소개를 하고, 발표를 하면서 조금씩 다
가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안정되니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시선을 맞췄다는 선

▲성동복지관

305
생님의 이야기에 앞으로 동아리 활동을 잘 하시리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아이들
도 ‘책사마’ 봉사자들과 말을 섞지 않더니 지금은 함께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지금
은 한 달에 한 번 두 명씩 짝을 지어 아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디베이트를 하고, 책
을 읽으며 살아있는 발문 작업을 합니다. 현재 고민도 책을 수단으로 털어놓으면 선
생님들은 친구가 되었다가, 이모가 되었다가, 선생님이 되었다가 하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합니다. 책의 향기가 모락모락 나는 듯합니다.

            

인터뷰 : 자원활동가 현금림 선생님

지역 주민과의 모임 만들기를 고민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이미용 봉사를 하고
있는 현금림 선생님을 만났다. 현금림 선생님은
이미용 봉사를 하며, 금호 2, 3가 자원봉사 팀에
소속되어 노인정 봉사와 김치나누기 봉사 등을 하
고 있었다.
서울시 마을 프로젝트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 자원활동가 현금림 선생님

‘스토리활용지도사’ 과정을 마치고 사회복지관에

서 봉사 첫날을 맞이한 현금림 선생님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Q. 어떠셨어요? 첫 교육봉사인데요?

현금림 : 떨렸어요. 아이들이 떠들고, 조용히 시키는데 순간 놀랐어요.

Q. 교육봉사를 생각하고 계셨어요?

현금림 : 아뇨. 지도사 과정을 마치고 봉사 동의서를 작성하고 왔지만 과연 내
가 잘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지요.

Q.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요?

현금림 : 네. 약간 아프다고 하면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때문에  걱정스러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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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달래고 말을 걸어주니 오히려 조용하네요.

Q. 아이들과 친해지셨네요.

현금림 : 네. 노인정 봉사도 많이 다녔는데 아이들과 지내니 우리나라가 자라
나는 새싹에 힘을 쏟아야하겠구나 생각했어요. 짧은 수업이지만 아이들이 ‘디
베이트’라는 소통의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하는데 놀랐어요. 요즘
서울시 성동구

아이들의 자신감, 거침없음…….하지만 그 사이에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
견을 나누는 과정에선 저도 배웠어요. 아이들은 금방 배워요.

현금림 선생님은 ‘책사마’ 프로그램 중 ‘기타와 스토리텔링’ 수업에 아들 병구
를 보내고 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Q. 병구는 어때요? 기타를 치며 이야기를 나누던가요?

현금림 : 기타 치는 것도 좋아하지만 병구는 함께 지내는 선생님과도 잘 지내
요. 웃으면서 꿈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Q. 기타를 배우며 이야기하는 병구가 수업이 끝나면 무엇을 했으면 하세요?

현금림 : 작은 무대에서 작은 공연을 했으면 좋겠어요.

Q. 수업 마지막에 마을문고에서 작은 공연을 한다던데요?

현금림 : 네. 그래서 아이아빠와 동네 어르신과 함께 올 예정이에요.

Q. 마지막으로, 현금림 선생님은 마을공동체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금림 : 저는 봉사를 하며 주민과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지도사라는 교육이
있어서 참여를 하고 이렇게 교육봉사를 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어르신들을 만
나게 되어서 좋아요. 또, 저도 성취감을 느꼈고요.

307
Q. 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뵙겠어요.

현금림 : 네. 이젠 노인정에 이야기 하러 가야죠?
 
7월에 예정되어 있는 노인정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현금림 선생님의
얼굴은 햇빛보다 더 밝았다.
 

봉사하러 갔다가 힐링을 하다-노인정 봉사를 다니며
복지관 수업을 다니며 힘을 얻은 자원활동가들이 이젠 어르신이 계신 노인정으로
봉사기획을 세웠습니다.
교육프로그램 중 발문지도 강사님과 책을 매개로 한 수업을 떠올리며 회의를 했
습니다.
처음엔 두 명의 자원활동가가 아파트 경로당을 찾았습니다. 《팥죽할머니와 호랑
이》라는 책을 여러 번 읽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어르신과 이야기 할
부분에서는 밑줄을 긋고, 어떤 이야기로 이끌어 나갈 지 고민을 하고 심호흡을 하고
노인정 문을 두드렸습니다. 노인회 부회장님이 반갑게 문을 열어주셔서 웃으면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고, 뒤에서 바라보고 자원봉사자 한 분이 그
림책을 먼저 읽어주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이야기를 듣는 어르신들이 꼭 어린아
이들 같았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으신 어르신들이 호기심의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화구연을 하듯이 다시 책을 읽어드렸더니 유치원생이 엄마의 이야

◀ 노인정 봉사

308
기에 집중을 하듯이 어르신들이 귀를 기울이느라 숨도 쉬지 않는 듯했습니다.
호랑이가 나오고, 할머니가 나오고, 할머니를 돕는 지게와 돌쩌귀와 멍석과 옛날
도구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와 같이 누군가를 도와주며 살아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물건들이 하나같이 보답을 하려고 하잖아.”
“역시 나쁜 호랑이는 벌을 받는 거야.”
그때였습니다. 어르신 한 분이 지게를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서울시 성동구

“지게를 보니 생각나네. 내 동생은 어릴 적에 게으름을 피우며 일을 하지 않아서
내가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몰라. 지금 생각하면 아주 미워죽겠어.”
할머니는 어린 시절 동생을 떠올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
는 할머니가 슬며시 거들었습니다.
“그럼 동생은 어디에 있었어? 놀러갔어?”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먼저 이야기를 꺼낸 어르신이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팠던 거 같아.”
이야기를 거들던 어르신 한 분이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거봐. 그냥 놀았던 건 아니네. 아파서 그러니 언니가 이해해.”
“그런가? 그렇군.”
함박웃음을 짓는 어르신 얼굴이 밝았습니다. 자원활동가 한 분이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어르신들끼리 서로 말씀해주시니 미워하던 동생이 이젠 안 미워요?”
처음에 동생 이야기를 하시던 어르신이 살짝 웃으십니다.
“그러게.”
모두 웃으며 다시 도란도란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처음에 동생 이야기를 하신 어
르신이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봉사가 끝나고 모인 자리에서 한 자원활동가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속에 작은 이야기가 하나씩 생겼어요. 남을 위한 봉사를 한다지만 자신의
마음속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요.”
저도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처음엔 무언가를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르신들끼리 말씀을 나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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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서로 위로를 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배우고 가는 것이 많아요.”

두 번째로 노인정 봉사를 가는 날이었습니다. 날씨는 아주 맑았습니다. 마을문고
에 불이 켜졌습니다. 이번엔 일곱 분의 자원활동가가 경로당에 가기 위해 모여서 회
의를 했습니다. 각각 《돼지책》을 들고 와서 발문 회의를 했습니다. 앤서니브라운의
《돼지책》은 엄마만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에 가정에 경고를 합니다. 유아들부터
성인까지 꾸준하게 읽히는 책이라서 이야깃거리라 많을 거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10시에 모인 선생님들은 서로의 입장에서 경험을 담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
다. ‘혼자서 일하는 엄마를 도와야한다. 가족에게 말하지 않은 엄마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한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질문을 할 것을 의논하고 무
슨 이야기로 접근을 할 것인지 생각을 했습니다. 한글을 모르시는 어르신을 위해서
커다란 전지를 준비했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작은 그림을 그려서 발표를 하면 서로
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그림책을 처음 읽었다는 자원활
동가 한 분은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한 분은 봉사활동을 오
는 것이 여의치 않았는데 용기를 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7명의 선생님은 이젠 각
자가 생각하는 그림책을 가지고 마을문고로 향했습니다.
이번에 처음 경로당 봉사에 참여하신 선생님들이 계셔서 이름표 하나씩을 달고
가벼운 마음으로 경로당 문을 열었습니다. 동그란 상에 책을 놓고 둘러앉았습니다.
반갑게 맞아주신 어르신들 보다 우리가 더 떨렸습니다.

이번엔 주도하여 진행할 분을 선정했습니다. 활동적인 현금림 선생님이 앞장서
주셨습니다.
“자, 신나게 출발!”
노인정 문을 열고 계신 어르신들이 자원활동가를 보고 놀랐습니다. 설레는 얼굴
을 하고 어르신 옆에 흩어져서 앉았습니다. 《돼지책》을 읽는 동안 얼굴을 찡그리는
분도, 빙그레 미소 짓는 분도 있었습니다. 낭독을 모두 마치고, 우리는 어르신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준비해간 색연필
로 어르신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처음에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는
어르신도 예쁘게 색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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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자원활동가가 어르신을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장면.”
“왜요?”
“시원했어.”
“무엇이요?”
“우리는 저렇게 살았잖아.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서울시 성동구

“어떻게 사는 거 말씀이세요.”
“저, 아줌마만 힘들잖아. 이젠 자기 일을 하며 살아야해.”
“아니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나서는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엄마가 저렇게 하지 않으면 누가 해?”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엄마만 하란 법 있나?”
이젠 편을 나누어서 이야기를 하십니다. 봉사자들도 어르신들 옆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가 다시 이야기를 모아서 진행했습니다.
“자, 그럼 여기에 있는 종이에 그림을 그려볼까요? 이번에는 어르신들의 일했던
이야기, 아니면 예전에 있었던 일들. 무엇이든 그려보세요.”
이번엔 한글을 몰라서 듣고만 있던 어르신 한 분이 색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이런 곤로라는 것이 있었어. 눈이 아프게 그을음이 나오고. 그 앞에서 밥
을 하는데 얼마나 눈이 쓰리던지.”
옆에 앉아있던 자원활동가가 이야기를 들으며 색칠을 도왔습니다.
도란도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네 장의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림을 벽
에 붙여놓은 전지에 하나하나 전시하듯 붙였습니다. 함께 도와주신 자원활동가가
나와서 어르신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중간에 부족한 부분은 어르
신이 이어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자 선풍기도 없는 경
로당의 더위는 어디론가 사라진 듯 했습니다. 모든 활동이 끝나고 어르신들과 자원
활동가가 서로의 이야기를 돌아가며 풀어놓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311
“그림책도 읽어주고 그림도 그리니 꼭 학생이 된 것 같아.”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옛날 생각이 났어. 호호.”
수줍게 이야기 하며 자원활동가들과 음료수를 마시는 어르신들의 경로당에 작은
이야기가 솔솔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을 뒤로 하고 우리들은 아쉬운 인사를 하고 작은 커피전문점으로 발길
을 돌렸습니다.
찌는 무더위에 시원한 냉커피 한 잔이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했던 봉사 프로그램에 대한 정리를 하고, 다음에 갈 복지관 프로그램에 대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강사에 도전했지만
‘책과 함께 사는 마을’에는 마을문고에서 아이들 대상 디베이트 수업이 있었어요.
저학년 한 반, 고학년 한 반을 모집을 해서 무료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봉사만 하던
자원활동가가 이번에는 직접 디베이트 수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함께
회의를 하고 프로그램을 짜면서 용기가 생겼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습니다. 배
운 대로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수업을 하는 것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아
직은 용기가 부족해서 봉사만 하겠다는 자원활동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원활
동가들은 강사님들의 수업을 다시 들으며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수업 뒤
에서 도우미 역할을 하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강사님이 수업하시는 것을
참관하며 강의 노하우를 적으며 더욱 열심히 준비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3.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
기타와 스토리텔링

책사마 프로그램 중엔 예술 활동을 이야기와 엮어서 소통 문화를 활성화 하자는 내
용이 있습니다. 예술 활동을 지원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자는 ‘소통’을

312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당시 저는 딸이 생일선물로 기타를 사달라고 해서 과외선생님을 찾고 있었습니
다. 예쁜 기타를 샀더니 연주에 욕심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혼자 독학하기에는 힘
들어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금호동 주민 중에 기타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수소
문 했습니다.
마을문고에서 멀지 않은 커피전문점에 기타가 멋지게 걸려있었습니다. 여쭈어
보니 자주 방문하는 학생이 기타를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딸의 과외 선생님으로 부
서울시 성동구

탁을 하다가 몇몇 주민들과 이야기 했던 프로그램이 생각났습니다.
대학을 다니며 음악을 공부하는 선생님께 과외 지도와 더불어 마을 공동체 프로
그램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재미있는 일이라며 수락을 했습니다. 그것
이 박성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공동체를 진행할 의사가 있다고 했습니
다. 이렇게 의논을 하여 ‘기타와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리 딸의 과외 선생님이 마을공동체의 프로그램 강사로 바로 섭외된 셈입니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설명을 하고 프로그램 진행에 대한 회의를 했습니다. 강사료와
재능봉사를 겸하여 활동하시기로 한 선생님도 강의계획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제 홍보를 할 일이 남았습니다. 이번엔 동네 문방구 사장님을 찾아가서 안
내문을 부탁드렸습니다. 학생 프로그램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다음에 어른 프로그램
이 있을 때 꼭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커피전문점 사장님도 오가는 손님들에게 홍보
를 주셨습니다. ‘기타와 스토리텔링’은 마을문고에서 진행되는 첫 번째 프로그램이
었습니다. 컴퓨터나 빔 프로젝트 등의 장비를 따로 준비할 필요 없이 장소만 제공
받으면 되었으므로 바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강의 첫 날 네 명의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다행히 자부담으로 충당한 아파트 커
뮤니티 비용으로 세 명의 아이들의 기타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성인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우리 주민을 위해서 구비해놓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첫 날을 기념하여 자녀들의 부모님이 참석을 했습니다. 네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아이들은 지칠 수도 있고, 힘이 들어 짜증이 날 때도 있을 겁니다. 부모님은 따뜻한
시선으로 한 마디 한 마디 격려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학 시절 대학가요제에 나가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셨다는 지환의 아버님은
진지한 눈빛으로 어깨를 다독이고 가셨습니다.

313
막내아들 병구가 친구들을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기타를 배우려 한다는 말에
기뻤다는 병구 어머님, 아버님이 연예기획 사무실에 근무하셔서 이미 예술적인 끼
가 있다며 좋아하시는 채련의 어머니와 언니, 누나가 멋진 연주를 할 거라며 파이팅
을 외치는 혜림의 동생 등이 모두 신이 났습니다.
이제 박성오 선생님의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스토리텔링을 담당한 저 또한 앞
으로 15회기가 넘는 시간 동안 아이들과 이야기할 자료를 준비하며 재미있을 시간
이 기대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조용하던 마을문고에 불이 켜지자 주민 한 사람, 한 사람 씩이 들
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책이 있는지 보고 가시고,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시고,
어른 강의는 없는지, 봉사를 할 수 있는 지 등등.
월요일 밤 6시~7시 반이 되면 어두컴컴했던 마을문고 앞이 밝아지고, 띄엄띄엄
들리는 기타줄 튕기는 소리에 주민이 하나 둘 고개를 들이밀었습니다. 자, 또 하나
의 불빛이 비친 것입니다.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이 작지만 소박한 콘서
트를 위해서 첫 수업을 시작을 했습니다.
중학생 두 명, 초등학생 두 명과 선생님. 첫 날이라 긴장을 했을 법도 한데, 선생
님과 아이들이 기타의 키를 맞추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동영상 강의에 대한 예
습과 학교생활에 대해서 기타 줄을 튕기며 도란도란 시간이 갔습니다.
가장 맏형인 지환은 늘 조용합니다. 제 시간에 와서 키를 맞추고, 둘째인 병구는
학원에 다녀오느라 늘 헐레벌떡 마을문고로 들어섭니다. 하지만 병구는 늘 분위기
를 맞추는 재주꾼입니다.
셋째인 혜림은 수줍게 웃으며 기타를 칩니다. 언니라고 동생의 음료수를 따라주
면 기타에 도전합니다.
막내인 채련은 기타를 빨리 배우고 싶어서 하루에 몇 시간 씩 연습을 하다가 손
에 물집이 잡혔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시켜보는 박성오선생님은 늘 유쾌한 웃음으
로 지루하고 힘든 기타 배우기를 즐겁게 유도합니다.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기타를 쳤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팝페라 가수가 된 폴포츠’
‘자신의 목숨을 걸고 행인을 구한 이수현’
‘새벽에 김밥을 팔며 아껴 모은 돈 10억을 선뜻 불우이웃에게 기부한 할머니’

314
▶ 기타수업

서울시 성동구

아이들은 이제 기타를 치며 꿈을 이야기 했습니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기부를 생각하며 미래를 생각하고, 부모님이 보내주신 격려의 말씀
에 눈물을 머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역경은 있습니다. 시험기간과 겹쳤던 지환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눈이 퀭해져서 나타났습니다. 학원 공부가 많아서, 늦게 끝나고, 학교의 조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별 과제에 지친 병구는 무거운 기타를 메고 오는 시간이 고통스러웠습니다. 6학년
이라 공부양이 많아진 혜림은 연습이 부족해서 작은 콘서트에 연주할 곡으로 박성
오선생님과 옥신각신 했습니다. 채련도 방학을 맞아 친구와 놀고 싶은 마음을 꾹 참
고 무거운 기타를 등에 지고 나타났습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지쳐갈 때 쯤 힘을 주시는 분이 등장했습니다. 우리 아파트
관리소장님이 퇴근도 미루시고 피자를 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음료수와 피자
를 나누어 주셔서 모처럼 아이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습니다. 맛난 음식을 먹으
며 관리소장님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현재 근무하
는 사무실에 관한 것까지. 아이들은 기타를 치며 달려온 시간을 잠시 멈추고 동네
이장님이 들려주시는 옛이야기인 듯 귀를 기울이며 잠시 여름밤에 휴식을 맞이했
습니다. 어려운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관리소장님의 얼굴도 달빛에 비쳐 따뜻
했습니다. 또 다시 시작된 기타 선생님과의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
과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 선생님도 또다시 힘이 났습니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기타
소리가 아파트 주변을 돌아 건너편 주민에게도 들렸나봅니다. 앞 단지의 주민이 와
서 마을문고를 보시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본인의 아파트 마을문고보다 작은 공간
에서 기타를 배우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니 신기하다고 하시며 돌아갔습니다.
그 분이 하시는 말씀.

315
“이런 것이 공동체라고? 음, 우리도 넣어봐야겠어요.”
아이들의 콘서트가 다가올수록 마을문고에 드나드는 주민이 하나, 둘 늘어날 때
쯤이었습니다. 늘,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을문고의 전기료 문제나 장소 사용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
는 자원활동가들과 주민의 대표 등을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마을 아이
들이 하는 문화 활동, 공동체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조금씩 마음을 여는 마을
주민과 민원을 해결해갔던 것입니다. 이겨나가면 또 새로운 일, 즐거운 일이 생길
것이라는 걸 ‘책과 함께 사는 마을’ 구성원들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타와 스토리텔링’ 수업이 진행될수록 아이들은 박성오 선생님과 더불어 함께
굴러 가는 과정을 익혔습니다. 부모님들은 기타 시간에 즐겁게 자발적으로 마을문
고로 향하는 아이들을 독려하고,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가 아닌 주민과 이
야기를 하고 연주를 합니다. ‘청년과 청소년이 만나 소통하다.’ 전 이런 생각을 했습
니다. 고등학교,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초등학생과 소통하여 봉사를 한다면
동사무소나 도서관 등에서 작은 청소를 하거나 책을 정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박성오 선생님은 프로그램 중간쯤에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작은 콘서트
는 다가오는데 아이들의 진도는 일취월장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서 가슴이 탄다고
말입니다. 스토리를 진행하는 저 또한 부담이 되었습니다. 부모님들과 마을 주민들
이 모여서 콘서트를 할 때, 아이들이 생각보다 연주를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매 시간 즐겁게 연습하는 모습을 보며 힘을 내기로 했습니다.
창밖에서 바라보는 동네 어르신들의 웃음이 비출 때, 지나는 주민이 가끔 음료수를
가져다 주셨을 때, 부모님과 형제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지나갈 때 아이들은 이야기
를 하면서 힘을 내곤 했습니다.
드디어 가족들과 관객을 모시고 작은 콘서트를 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자원활
동가와 마을문고에 예쁜 꽃 풍선을 붙이며 우리 아이들이 떨리는 콘서트를 잘 치를
수 있을 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공연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가끔 어르신들이 들르셨습니다. 기타공연을
한다고 했지만 선뜻 들어오시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도착을 하고 기타 선생님이
떨리는 눈빛으로 마을문고에 들어섰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316
“몇 백 명 앞에서도 공연을 했는데 우리 아이들이 할 생각을 하니 떨리네요.”
선생님은 기타 공연 외에도 드럼 연주도 가뿐히 하는 연주자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라고 할 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습니다. 드디어 아이들의 연습
이 끝나고 부모님과 가족들이 마을문고로 들어섰습니다. 처음에 아이들을 이곳으
로 보내놓고 잊고 계셨다는 말씀을 하시는 아버님께서도 긴장을 하셨습니다. 우리
딸이 저 앞 무대에 앉아 있는 걸 보시더니 침을 꼴깍 넘기십니다. 누나 두 명과 어머
님이 힘내라고 외치자 우리의 장난꾸러기 병구도 겸연쩍은 듯이 웃었습니다. 오히
서울시 성동구

려 수줍어하는 여학생 두 명은 덤덤합니다.
드디어 개인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잠깐 들르셨던 주민도 가족도 선생님도 모
두 숨을 죽이고 들었습니다. 4개월이 넘도록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타를 치며 이야
기하던 우리의 아이들이 작은 기타 줄에 몸을 실어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동
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으며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과 그동안 많은 이야기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를 준비하며 함께 했던 저 또한 가슴이 벅찼습니다. 드디어 함께 연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협동을 하여 옆 친구와 하나가 되어 기타를 튕깁니다. 옆에 앉아있던
기타 선생님도 이제 가슴을 쓸어내리고 편안하게 즐기셨습니다. 모든 공연이 끝나
고 부모님과 주민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고 계신 누군가의
아버님, 누나가 자랑스러운 듯 크게 웃는 동생, 장난꾸러기 동생이 대견하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내민 누나들 모두 하나가 되어 커다란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젠 부모님들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5개월 전 시작하던 날 모였던 부모님들이
한 분 한 분이 작은 콘서트를 본 느낌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 딸이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어요. 그런데 집에서 연습한다
고 기타를 짊어지고 오지 뭐예요? 무거울 텐데. 그러더니 몇 시간씩 연습하더
군요. 작은 손으로, 쥐기도 힘든 기타와 앉아서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연습
하더라구요. 밑에 집에서 시끄럽다고 하니까 바깥문을 닫고 찜통 같은 더위도
모르는 듯 연습하더라구요. 이렇게 보니 정말 대견해요. 앞으로 무엇을 하던
믿고 도와주고 싶어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잘 하는군요. 연습을 많이 하면서 공

317
부를 놓칠까봐 걱정도 되었어요. 하지만 짬을 내어가면서 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받았어요. 저도 저렇게 무언가에 열중했었던가 되돌아보기도 하구요. 자
랑스러워요. 파이팅!”
“역시. 우리 아들이에요. 사실, 중간에는 안 간다고 해서 걱정을 했어요. 하지
만 언덕길을 올라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놀랐어요. 한 달 다니
다가 관둘 줄 알았거든요. 중간 중간에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활동지를 모
아서 과정을 기록해놓은 걸 보며 알차게 보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연주 모
습을 보니 대견해요. 떨지도 않고 끝까지 해내는 모습에 감사합니다. 누나들
보다 훨씬 훌륭하다. 후후.”
“처음에 기타를 산다고 했을 때 걱정이 되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물
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중간에 힘들어서 관두지 않을까? 걱정을 했습니다.
집에서 연습을 많이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웃음). 오늘 보다가 깜짝 놀랐
습니다. 우리 딸보다 더 어린 친구도 기타를 치는 군요.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
고 연주를 한 친구들 모두 대견합니다. 이렇게 우리 동네에서 멋진 선생님과
기타를 치며 보낸 시간, 아이들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우리 딸이 이젠 무엇
을 한다고 해도 무조건 밀어주는 아빠가 될 랍니다.”

부모님들이 말씀 하실 때 아이들은 처음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삼삼오오 사람
들이 모여서 자신들을 바라보자 수줍게 웃던 아이들이 부모님의 이야기가 무르익
을 무렵 하나, 둘 웃기 시작했습니다. 얼굴 가득 느끼는 부모님과 시선을 마주하고
여름밤, 마을문고에 따뜻한 공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손가락이 아팠던
두 번째 시간을, 늘지 않는 기타실력에 선생님께 투정을 부리던 그 때의 시간을, 아
이스크림을 먹으면 열기를 식히던 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의 고개를 넘
어섰을 때 느끼는 성취감을 부모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책사마’ 프로그램은 박성
오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의 기록을 작은 제본 노트로 남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야기 했던 감동의 시간을 모으고, 시간이 끝날 때 마다 선생님이 적어주신 격려의
메시지를 소중하게 모아서 작은 기념물을 작업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쥐어질 지나
간 기억이 아이들 부모님과 함께 추억될 수 있도록 두 명의 선생님이 작업을 했습니

318
다. 아이들이 받아보고 커다랗게 웃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음은 박성오 강사님이 아이들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혜림
매 시간 어머니와 함께 나와 항상 1등 아니면 2등으로 왔던 혜림아. 그동안 기
타 수업하느라 수고가 많았단다. 그래도 매주 나와서 기타 수업하고 집 가서
서울시 성동구

가끔이라도 연습해줘서 고맙구나. 조금 더 꾸준히 연습한다면 아마 더 잘 치
지 않을까 싶다.
매 시간마다 그래도 열심히 하고 바코드 잡을 때 손이 꽤나 아플 텐데 그래도
잘 해줘서 선생님은 참 기쁘단다. 앞으로도 매사에 더 열심히 하면 너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 힘내렴.

           책과 함께 사는 마을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는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단다. 편하고 쉬운 일
이 아니라 힘들더라도 혜림이에게 유익한 일을 즐겨 했으면 좋겠구나.

병구
처음에는 잘 따라올 수 있을지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마지막 공연 때 가장
선생님을 놀라게 했던 병구. C코드도 잘 잡지 못하던 녀석이 부모님들 앞에서
어색하긴 해도 코드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잡아서 굉장히 놀랐단다. 처음엔
재미로 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재미보다는 지루함이 더 크게 느껴
지기 마련이란다. 그래도 매 시간마다 꾸준히 나와서 친 네가 대견하단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처음엔 재미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흥미를 잃는 것이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단다. 그
러나 그 즐거움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또 다른 즐거움으로 나타나니 원하는
것을 할 때는 포기하거나 흥미를 잃었다고 다른 새로운 것을 잡기보다는 그것
을 꾸준히 하는 것이 더 좋더구나.
기타 뿐 아니라 그 밖에 모든 분야에서도 열심히 하는 병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319
지환
기타 수업 때 가장 열심히 하던 지환아. 네가 코드를 칠 때가 선생님이 지금까
지 네가 올 때부터 갈 때까지의 표정들 중에 가장 밝았던 거 아니? 네가 원하
는 곡(연가)를 칠 때, 또는 같이 합주하려고 연습했던 비와 당신을 연주할 때
밝게 웃는 네 모습이 기억에 남는구나.
우리 수업에선 맏형이라 손가락이 아파도 내색하지 않고, 연습을 항상 꾸준히
해와 줘서 고맙구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항상 밝게 웃고 지
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가끔이라도 기타도 쳐주고. 아마 기타를 꾸준히 치
면 아마추어들 중에선 그래도 좀 친다는 소리를 들을 거야.

채련
손이 작아서 코드를 잡기가 힘들어도 하고자 하는 의지는 충분했던 채련아.
늘 가장 먼저 와서 기다리느라 고생했단다. 그래도 아마 네가 가장 먼저 코드
스케일을 다 외웠을 거야. 코드 잡기는 좀 힘들었을지 몰라도 기타 연주하다
가 조금 틀릴지 몰라도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치는 자세가 중요하단다. 몸은
언젠가 지금 이상으로 클 거니까 시간이 조금 지나서 기타를 칠 때는 지금보
다 훨씬 잘 치게 될 거란다. 그러니 혹여나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렴.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듯 모든 일은 처음 시작이란 것이 있단
다. 그게 힘들더라도 모든 시작은 0에서부터 시작하니까 조바심을 갖지 말고
천천히 차근차근 해 나갔으면 좋겠구나.

320
디베이트 프로그램 강좌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주요 프로그램인 디베이트 강좌를 진행할 시간이 다가왔습
니다. 저학년, 고학년, 중학생 반의 프로그램을 자원활동가와 함께 이끌어 가야 했
습니다. 하지만 활동지를 만들고 고민하던 활동가들이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습
니다. 우리는 회의를 거쳐서 강사님들에게 부탁을 하고 수업에 참관하기로 했습니
다. 즐거운 마음으로 공동체에 참여하던 자원활동가들은 많은 고민을 한 결과 ‘즐거
서울시 성동구

운 활동’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하지만 기획을 하고 홍보를 하여 아이들을 모집
하는 과정에는 동참하며 수업에 열의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먼저 가까운 도서관 관장님을 찾아가서 디베이트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드리
고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또한 동장님에게 안내를 위한 설명을 했습니다. 또, 학생
이 있는 집에 방문하여 안내를 했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드디어 마을문고에서 디베이트 수업이 있던 첫 날. 저학년 반은 8명, 고학년 반은
4명이 지원을 했습니다. 강사님과 자원활동가가 수업을 준비하고, 강의실에 빔 프
로젝트를 연결하여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아쉽게도 중학교 반은 인원수가 모자라
서 성동구사회복지관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저학년 반은 김정숙 강사님이 준비를 해서 3일간의 활동을 했습니다. 《나쁜 어린
이표》를 읽고 온 아이들과 강사님이 디베이트에 대한 이론으로 수업을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온 주민들은 마을문고에서 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
다. 자원활동가들은 책을 보며 방문한 주민들과 디베이트에 대한 설명도 하고, 책
을 읽는 문화에 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고학년 아이들은 이수영 강사님과 함께 《할머니를 따라 간 메주》를 읽으면서 시
골의 풍습에 대한 이야기 풀기를 시작했습니다. 풍습에 대한 이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문고에서 기다리던 동생은 그림책을 보고, 함께 방문한 어머니는 읽을
책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두 반 모두 생소한 디베이트에 대한 질문을 자원활동가와 이야기 하며 신기해했
습니다. 또한 마을문고를 방문하며 앞으로 이용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문지
방을 드나들면 사람이 꼬인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조용하던 문고가 살아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321
▲디베이트 수업

중학교 아이들은 성동구복지관에서 전수완 강사님과 수업을 했습니다. 〈7번방의
선물〉이란 영화를 보며 미디어 디베이트를 했습니다. 영화 속에 나온 사형제도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함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과 현실이 다
르다는 것을 아는 중학생들은 집중해서 토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우리들
의 행복한 시간》이란 책을 이야기 하며 진행된 디베이트 시간에 또 다른 독서로 이
어질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영화와 도란도란

마을문고가 활성화 되면서 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하다가 자원활
동가 한 분이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도서관에서 가끔 영화를 보여주는데 우리 문고
에서도 상영을 하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다행스럽게 빔 프로젝트와 스피커를 대
여하실 수 있는 기사님을 알게 되어서 우리는 마을문고에서 영화를 상영하기로 했
습니다.

322
기사님이 빔을 설치해주시고 스피커를 연결하여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
다. 하지만 그동안 홍보를 해도 잘 모이지 않는 주민들을 어떻게 모을 지 고민을 했
습니다. 그래서 주민모임에 참석하여 홍보를 하고 관리소장님께 말씀드려서 방송
도 했습니다.
토요일 오전 10시. 감동적인 〈7번방의 선물〉을 상영할 준비를 했습니다. 동대표
회장님도 참석하셔서 즐거운 마을문고 활동이 이루어져서 좋다고 격려의 말씀을 하
셨습니다. 마을문고에 처음 와 봤다는 주민은 책 한 권을 빌려서 자리에 앉았습니
서울시 성동구

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온 주민은 아이들과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28명의 주민이
모여서 두 시간 동안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간혹 눈물을 흘리시며 영화를 보는 소리
도 들렸습니다. 봤던 영화인데 또 본다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북적거리는 문고에
서 있던 프로그램을 물어보시는 주민 한 분은 다음에 기타 프로그램이 있으면 꼭 알
려달라고 했습니다. 디베이트 프로그램을 듣고 싶었는데 기간이 지나서 아쉽다는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주민도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주민들을 보며 자원활동가들은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없
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구나!” 하며 웃었습니다.

▲ 영화와 도란도란

323
4. 옆 동네 사람들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연극지도사에 도전하다

마을문고에서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던 중 주민 몇 분이 관
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연극지도사’에 관심이 있던 주민들이 공동체
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연극을 하면서 주민들과 소통을 하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던 현금림 선생님과 두 분이 함께 ‘엄마가 날다’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엄마들이 마음을 모아서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며 소통을 하자
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연극에 대한 꿈을 가진 분도 있었습니다. 마을문고에서
주민들과 작은 공연을 하고 싶다는 주민도 분도 있었습니다. 공동체를 경험한 저도
연극지도사가 되어 주민들과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 함께 해요.”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연극지도사를 검색했습니다. 인천에 있는 협회가 떴습니
다. 우리는 또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2013년 2차 우리마을프로젝트 신청기간이었습니다. 강사님께 전화를 걸어
교육내용과 활동 방법에 관해 들었습니다. 함께 기획서를 쓰던 주민들은 또다시 설
레었습니다. 꼭 내일 당장 연극 무대에 설 것만 같은 흥분에 또다시 들썩였습니다.
2013년 6월 어느 날. 성동구에서 공동체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성동마을넷’ 모
임을 위해 뚝섬의 ‘서울숲’으로 갔습니다. 각각의 공동체를 하면서 도와가는 모임에
서 우리 ‘연극과 함께’가 우리마을프로젝트 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
니다. 가족과 같이 함께 기뻐해주시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또 신이 났습니다. 그
사이에 빔 시설을 임대할 수 있는 분도 알게 되어서 ‘연극과 함께’는 마을문고에서
교육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표로 기획서를 넣은 주민이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저녁
으로 교육시간을 잡았습니다. 매주 수요일 7시가 되면 마을문고 앞이 훤하게 밝을
것입니다. 인천의 연극 강사님도 턱없는 강의료였지만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선뜻
수락해주셨습니다. 아이들과 어르신과 또 모여서 함께 할 우리들의 연극무대가 꾸
물거리기 시작한 시간이었습니다.

324
현수막과 공고문 몇 개로는 주민들에게 호응이 없었다는 경험한 우리는 그림 작
가에게 예쁜 포스터를 부탁했습니다. 20장의 포스터를 들고 동네를 돌아다녔습니
다. 약국, 슈퍼마켓, 문방구, 학교 앞, 도서관, 신금호역 등 곳곳에 포스터를 붙였습
니다. 함께 한 공동체 회원들은 지나가면 묻는 사람들에게 천천히 알려드렸습니다.
연극을 배워서 마을에서 즐겨보자는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또한 ‘연극과 함께’는 온라인 카페에도 포스터를 올렸습니다. 주변의 대학생도 참
여했습니다. 학생들은 공동체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학교 가까이에 있는 마을
서울시 성동구

문고에 와서 책을 보기도 했습니다. 어르신들도 오셔서 한 말씀씩 하셨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나?”
웃으며 우리는 말했습니다.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활동가들이 곧 찾아갈 거예요.”
마을문고에서 시작된 작은 공동체 ‘연극과 함께’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주민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들은 받은 예산으로 강사료를 책정하고 최소의 경비를 아껴가며 교육을 받았습니
다. 더운 여름날 ‘한여름 밤의 꿈’을 꾸면서 말입니다.

들썩이는 마을문고

‘연극지도사’ 안내를 여러 곳에 했더니 순식간에 수강생이 접수를 했습니다. 많아야
10명일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정원이 40명이 넘었습니다. 이젠 심사선생님을 모시
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사람을 골라야 했습니다. 물론 주민들은 제일 먼저 수강자
명단에 올렸습니다. 대학생, 직장인, 경력단절 여성, 다른 곳에서 공동체 사업을 하
고 계시는 선생님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두 시간에 걸쳐서 면접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사람들에게 공동체 사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결국 수
강자는 29명이 되었습니다.
이젠 마을문고의 의자가 부족했습니다. 훌륭한 강사를 모셔서 질 좋은 수업을 듣
고 즐겁게 활동할 수 있다는 생각에 구비 시설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한 겁니다. 낮
에 함께 활동하는 현금림 선생님과 의논을 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동사무소에 동장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아직 열지 못한 마을문고라서,
또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시로 의자를 빌렸습니다. 한 번을 빌려주고

325
다시 반납한 의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관리소장
님이 다가오셨습니다. 마을을 위한 일에 도움을 주실 분을 모시고 와서 기증을 받
아오신 겁니다. 현금림 선생님과 마을문고 앞에서 얼마나 뛰었던지 하늘이 그렇
게 밝고 맑을 수가 없었습니다. 20개의 의자가 도착하고 포장박스를 풀며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수업 준비를 했습니다. 3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저녁 7시가 되
면 소란스럽게 수다를 떱니다. 즐거운 수업을 듣고 활동을 하면서 밤 10시가 되도
록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또다시 마을 주민이 다가왔습니다. 교실 안에
서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을 보시며, 나중에 노인정에서도 수업을 해달라는 어르신
도 있었습니다. 동대표 회장님도 퇴근을 하다 들어오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웃고 즐길 수 있을
까?”라며 즐거워 하셨다고 합니다.
드디어 ‘연극지도사가 되자’ 첫 번째 수업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같이 마을에
모여서 연극을 배웠다는 강사님이 도착했습니다. 주민 스스로 모여서 공부를 하고,
대본을 만들고 지역에서 강의를 하고 아이들과 연극을 한다는 윤혜림 강사님은 수
강생들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막대기를 들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마임을 했습니다.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누구하나 똑같은 발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창의력 시험을 치
르듯이 모두가 독특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PPT 강의를 하셔서 빔 시설을 빌려놓
으니 마을문고가 멋진 강의실이 되었습니다. 윤혜림 강사님이 보여주신 학교 실전
은 재미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겪는 여러 가지 애환도 보였습니다. 복지관이나 방
과 후 교실에 남아서 연극을 가르치면서 힘든 일도 많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
이들 얼굴에 피어난 커다란 행복 앞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말씀에 우리들도 모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을 받아야 해서 옆 동의 아기 엄마는 아이들이 수시
로 하는 전화 때문에 신경이 쓰였지만 끝까지 수업을 들었습니다. 수료증을 따서 실
전에 나가서 아이들과 함께 즐기려고 애쓰는 주민도 있었습니다. 지금 강사로 나가
고 있으나 연극을 하면서 더 재미있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연
기가 좋아서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하는 연극을 하고 싶다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저도 가까운 곳에서 우리 아이와 연극을 하면서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했습니다.

326
마을문고 옆에 있는 노인정의 어르신들도 얼른 배워서 함께 웃고 싶다고 늘 앞에
서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극단 예터의 강신화 강사님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연
극과 교육을 함께 강의해 오신 강신화 강사님의 강의에 마을문고는 커다란 웃음 태
풍이 불었습니다.
청소년과 함께 한 연극은 문제가 많은 듯 보이기도 했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이겨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픈 사람과 함께 한 교육은 포용력으로 수업을 했다고
서울시 성동구

했습니다.
흥부전을 각색하여 직접 대본을 만들면서 나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
때의 방식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요즈음 나만 아는 세상에서 ‘함께 더불어’가 무
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
면서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공동체가 되어 함께 산다는

           책과 함께 사는 마을

것은 바로 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주민들과 연극을 하며 들썩들썩할 우리 동네를 꿈
꾸며 즐거운 수업시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연극지도사를 위해 마을문고는 매주 수요일 저녁 7~10시에 불이 켜졌습니다.

햇빛이 모든 곳을 비추진 않는다.

‘연극지도사가 되다’를 중반부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미리 알지 못해서 참여
할 수 없었던 주민들과 ‘기타와 스토리텔링’의 대상자가 되지 못한 주민들이 민원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주민 전체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이 아닌데 전기세를 낭비해가
면서 마을문고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또한, 성인대상 프로그램만 있고 아이들 프로그램이 없다는 분이 있고, 기타를
치지 않는 주민들은 각자에게 해당하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이유로 마을문고를 사용
하지 말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마을공동체 사업에는 전기료나 임대료를 지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민이 제
기한 민원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연극지도사 구성원은 단순인건비로라도 마을
문고에 발생하는 경비를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중간
에, 알지 못해서 참여하지 못했다는 주민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포스터를

327
여러 곳에 붙였어도 보지 못한 주민도 있었습니다. 홍보의 수단인 엘리베이터, 게
시판 등에 포스터를 붙였어도 주민을 위한 소통의 수단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민원이 들어오자 직장 때문에 참여를 하지 못하던 구성
원 선생님이 공동체를 중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우리 주민만이 아닌 외
부인의 참여가 주민이 하는 공동체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30여 명이 넘는 수강생들은 수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무르익고 있는 학구열과 들썩들썩하던 내면의 끼가 정지 신호를 받자 당황했습니
다. 반대하는 주민을 설득하여 마지막 수업까지 수료를 하여 27명이 ‘연극지도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주민들 간의 다른 생각은 작은 틈을
만들었습니다. 나머지 구성원들은 이제 교육이 끝나고 동아리를 구성하여 봉사를
가고, 활동을 할 생각에 설레었습니다. 하지만 뜻이 다른 구성원은 참여를 하지 않
게 되고 ‘마을공동체’에 대한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절실하게 느낀 것은 처음 시작은 같아도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여기서
불쑥, 저기서 불쑥 걸림돌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모두 물 흐르듯이 해결되는 것
은 아니지만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경험이 생기고 다음번에는 또다시 시행착오를 하지 않으려는 꼼꼼한 계획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극교육 중에 ‘둘이서 한 마음’이란 지도안이 있었습니다. 원형으로 앉아서 두
명이 손을 잡고 가운데 새로운 한 사람과 손을 잡고 자기의 자리로 돌아와 앉는 활
동입니다. 둘이서 함께 일어서서 누군가를 데려와야 하는 것인데 손잡은 두 사람이
다른 곳을 향해 있으면 시간이 초과되어 벌칙을 받습니다. 협동이, 이해가, 배려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27명이 수료증을 받고 마지막 수업에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연극지
도사가 되자’를 통해 느낀 점을 돌아가면서 말했습니다.

“연극을 배우고 싶고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참여했습니다. 즐거운 수업이
었고, 직접 수업을 하러 간다면 완벽하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잠시 쉬고 있다가 동네에서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연극지도

328
를 할 수 있다면 역동적인 작업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강사님
께 수업을 들으면서 내 안의 끼가 발산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
면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수업을 아이
들과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다면,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습니다.”
“예전에 연기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구청에서 뽑는 배우 오디션에
합격을 했습니다. 살아있는 기분이 듭니다. 농사를 짓는 공동체를 운영하고
서울시 성동구

있는데 다른 마을에서 하는 공동체에 참여해보니 즐겁습니다. 봉사활동도 꼭
가고 싶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참여하게 해주세요.”
“독서지도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을 접목해서 아이들과 즐거운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생기 있는 강사님의 수업을 들으며 나 자신을 돌아본 계기가
되었어요. 늘 즐거운 선생님이 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줄 수 있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을 거란 확신이 듭니다. 성동구 내에 봉사를 다니면서 좀 더 배우고 싶어요.”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입니다. 우연하게 알게 되어 참여하게 되었어
요. 희곡을 쓰고 싶었는데 희곡 강사님 수업을 들어서 좋았습니다. 늘 우리 또
래들과 수업을 듣다가 엄마, 이모 나이의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하니 새로웠
어요. 함께 활동하다 보니 전혀 낯설지 않고 즐거웠어요.”
“학생이라 학교에서 수업만 듣다가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를 해보니 정말 새
로웠어요. 전,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서 첫 시간에는 조용하게 있었는데요.
함께 한 선생님들과 대본을 만들고 상황을 만들다 보니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되었어요. 이제는 먼저 인사를 합니다. 또한 연애 상담사 연기를 할 때 양쪽의
입장을 다 들어볼 수 있다는 것에 재미있었어요.”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에요. 도서관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고 참여하게
되었어요.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학부모들에게 새로운 프로그램이 없
느냐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새로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서 기뻤어
요. 꼭 활용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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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신 분들 인터뷰

1. 성동구 부모커뮤니티 담당자 박숙영 선생님
성동구의 부모커뮤니티 담당자 박숙영 선생님을 만나서 활동가로 일하는 이
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 현재 부모커뮤니티를 진행하고 계신데요. 대략적인 목표를 말씀해주신다면?

박숙영 : 부모가 먼저 변해야 아이가 행복하게 되므로 부모들이 먼저 육아서
와 사회에 대한 전망등을 공유하고 아이들을 코칭 할 수 있는 마음을 다지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아이들이 사교육에 허덕이며 불안에 쫓겨 입시 경쟁에 힘겨워
하기 보다는 각 나이에 맞는 발달 단계를 고려해서 친구들과 책을 함께 읽고
연대하며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기록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Q. 본인이 생각하는 마을활동가란?

박숙영 :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문제를 타인과 늘 비교하며 저울질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 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열린 마
음으로 문제를 드러내 놓고 함께 더 나은 해결점을 찾아가는 연대의식과 열정
이 있고, 소통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Q. 현재 진행되는 마을활동가로서의 경험 중 감동?

박숙영 : 독서클럽 활동 속에서 키운 아이가 외동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만 움켜쥐지 않고 아이들과 나눌 줄도 알고 외동 아이 같지 않게 사회성이
좋다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보람이 느껴집니다.

Q. 현재 진행되는 마을활동가로서의 경험중 애로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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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영 : 개별적인 친목모임에서 열린 모임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기
존 분들의 비이성적 텃새로 새로운 사람들은 물론 진행하는 리더마저 넌더리
를 치며 모임을 해체시킬까 하는 마음이 들도록 흔들 때… 행복하려고 하는
모임인데 이 모임을 유지하려고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까 하는 마
음이 들 때였습니다.

Q. 성동구에서 앞으로의 활동 방향은?

서울시 성동구

박숙영 : 아이가 점차 자라서 학습을 본격적으로 할 나이가 되었으므로 신화
를 시작으로 아이와 아이 친구들과 함께 고전읽기를 하면서 생산적인 글쓰기
와 체험활동을 기획해서 나와 가족 마을 나아가 세계를 가슴에 품는 지평을
열어주는 활동들을 기획하고 싶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Q. 활동하면서 이런 점을 바란다? (공기관, 회원들 등)

박숙영 : 아이들에게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공부하는 우리의 뒷모습, 민주
적인 운영형태를 보여서 아이들의 모범이 되어주도록 노력해 봐요^^

Q. 주민의 소통 활성화 방안 3가지?

박숙영 :  .우리 모임이 추구하는 육아활동에 대해서 알릴 수 있는 강연기획	
1
   (11월 어느날). 	
2.관심있는 초등생 부모에게 모임 오픈.	
3.내실있는 독서클럽운영

Q. 마을공동체에게 전반적인 조언?

박숙영 : 마을 공동체가 활성화 되어서 우리 문제가 무엇인지 성찰하고 함께
모여서 해결책을 나눈 수 있는 성숙하고 역량 있는 시민들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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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이리버 아파트 관리소장님
우리마을프로젝트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접수 전부터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주신 관리소장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기타와 스토리텔링’ 아이들에게 격려의 말씀과 함께 간식도 제공해주셨습니다.
또한 주민과의 마찰로 ‘책사마’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도 격려와 힘이 되어
주셨던 소장님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Q. 처음 우리마을프로젝트에 대해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관리소장 : 생소하지만 지역 주민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Q. 본인이 생각하는 우리마을프로젝트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은 무엇일까요?

관리소장 : 마을문고에 활력을 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데 문고에서 진행되는 수업이나 활동을 보면서 저도 흥겨웠습니다.

Q. 현재 진행되는 모습을 보며 느낀 점은?

관리소장 : 아직 홍보 등의 부족으로 조심스럽지만, 향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리라고 봅니다.

Q.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은 우리 하이리버@ 마을문고 활성화 사업과 주민들이 모
여드는 사랑방 정도의 역할을 목적으로 한다. 향후 진행과정에 대한 애로사항은?

관리소장 : 앞으로도 더욱 널리 알려져서 우리 아파트의 특성으로 자리 잡았
으면 좋겠습니다. 열정적인 활동가들을 보니 가능하다고 봅니다. 아직 여건상
완전한 오픈을 못한 상황이라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책사마’ 이런 점은 안타까웠다?

관리소장 : 홍보가 일단 부족하지요. 지역 주민과의 소통에 홍보가 꼭 필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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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장년 층의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합니다.

Q. 주민의 소통 활성화 방안 3가지?

관리소장 : 늘, 열려 있는 공간과 사람들의 관심이 아닐까요?

Q. 마을공동체에게 전반적인 조언?

서울시 성동구

관리소장 : 향후에 더욱 발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지역만 우선으로 삼지
말고 다른 지역과도 네트워킹이 되면 좋겠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5. 우리는 현재 진행형
새로운 꿈을 향해

‘책과 함께 사는 마을’과 ‘연극과 함께’를 함께 해온 자원활동가는 현재 작은 꿈을 품
기 시작했습니다. 사회복지관과 노인정 봉사, 또 다른 수업을 진행하면서 얻은 경
험으로 주민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가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아이들과 ‘소통대회’를 계획했습니다. 어디가 좋을까
회의를 하며 자원봉사자들이 의논을 했습니다. 그들은 현재 봉사를 나가면서 함께
한 아이들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성동구사회복지관의 아이들과 ‘소통대회’를 기
획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활동가들도 유동성 있게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적으로 자발적인 활동가들이 모여서 프로그램을 짜기 시
작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과 1대 1 만남을 가지면서 얼굴을 익히고, 아이들의 이
야기를 들었습니다. 책을 들고 와서 읽으며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아이들과 대화하
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입을 여는 아이들이 1대 1로 다가온 활동가들에게 맘속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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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기에는 책과 케이크를 이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자는 활동가가 나왔습니
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케이크를 준비하여 이야기 하러 갔습니다. 음식과 함께
책을 읽어주자 아이들은 집중을 잘 했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1대 1로 다가온 선생님들과 가족, 학교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활동가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복지관 교실을 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직 남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회의를 하면서 자원활동가들은 말합니다.
“이야기 할 다음 수업을 짜다가 보면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어요.”

함께 ‘도들이봉사단’으로

현재 우리 자원활동가는 성동구에 자원봉사 단체 신청을 준비 중입니다. 공동체 활
동을 하다 보니 봉사단체로 움직일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음에 무엇을 할 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모여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행
동하다 보면 우리는 작은 일들을 하나씩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
래서 지금도 또 생각하고 머리를 모으는 것이겠지요.
앞으로 우리 아파트 문고에서 책을 활용하는 프로그램도 더 나올 것이고, 도란도
란 들썩들썩이며 활동을 하는 내용을 어딘가에 소문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한 번 해봤더니 그 맛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도들이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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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말
이 글은 서울시 마을프로젝트 사업인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을 진행하면서 담은 이야
기입니다. 함께 활동하며 웃고 즐거웠지만, 어렵고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던 자원
활동가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아직 홍보 부족이라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지 않듯이
작은 시작을 한 우리의 첫걸음이 다음에는 마라톤의 첫 발자국이 되도록 더욱 열심
서울시 성동구

히 책과 함께 달리고 있을 겁니다. 부족하지만 우리 마을 사업에 대하여 알고 싶으
신 분은 제게 연락 주세요.
늘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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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3-01-005호

2013 마을공동체 심층사례집

2013우 마을돌 기
리
아보
1판 1쇄 인쇄 2013년 12월 17일
1판 1쇄 발행 2013년 12월 17일
기획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마을지원실
글쓴이 안세정외 5명
편집/디자인 보임디자인(주)
발행인 유창복
발행처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주소  울시 은평구 통일로 684, 8동 3층
서
ⓒ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홈페이지 www.seoulmaeul.org
대표전화 02-385-2642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2013 마을공동체 심층사례집 우리마을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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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 을 ’이하움 고싹 낼것 니 마 씨들 나둘 트 을 입 다 짱가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 ‘ 이 키 니까‘ ’ 더 ⅰ 같 ’ 우 , 가치 를알겠 라 서울시 은평구 <은평 품앗이 육아> 의 네 정 ⅱ 나 동 잡지원 기 서울시 용산구 《남산골 해방촌》 토 ⅲ 알 란성장관찰일지 서울시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동 아 으 당 ⅳ 공 육 , 마을속 로퐁 ~ 서울시 은평구 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 광 사 들의 잔치 야기 ⅴ 마을미디어《 진 람 》 돌 이 서울시 광진구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통 가 ⅵ 소 하는 자원활동 를 꿈꾸며 서울시 성동구 〈책과 함께 사는 마을〉 4 7 85 145 189 231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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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펴내며 ‘마을씨’들이 하나둘 움트고싹을 낼 것입니다 지난 9월 말, 시장님을 모시고 서울시의 여러 간부, 마을의 활동가, 센터의 식구가 한데 모여, 한 해 동안의 마을공동체 활동의 성과를 나누고 내년의 방향을 의논하는 자리를 가졌다. 마을기업 인큐베이터, 자치구의 담당 공무원, 센터의 활동가 등이 각자의 활동을 TED 방식으로 발표하였다. 발표 후에는 참석한 전문가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황윤옥 하자센터 부센터장이 세 번째인가에 마이크를 들었다. “태어나면 두 살이고, 이제 막 돌 지난 간난쟁이더러 세 살이라 하듯이, 서울시 마을지원센터 이제 일 년 되었는데 세 살이라 한다.” 순간 행사장은 “와하하하~” 유쾌한 웃음이 터졌다. “맞아, 맞아, 이제 일 년 되었는데 바라는 게 너무 많아.” 황 부센터장이 말을 잇는다. “돌이 되었다는 것은 살아주었다는 것이다. 돌잔치를 하 는 것은 세상에 갓 나와 일 년이나 버티고 살아준 것을 기뻐하고 또한 고마워하는 것이다.” 그 자리의 있던 나는 물론이고, 여러 활동가는 커다란 위안을 얻었다. 이 러저러한 개선점을 세세히 지적하던 사람들도 “그래~ 이만하면 그동안 잘한 거지” 하며 팽팽한 듯 긴장된 분위기는 일순 거짓말처럼 누그러지고, 서로 대견해하고 수 고했노라는 덕담장으로 뒤바뀌었다. 그렇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을 시작한 지 만 이 년, 센터가 설립되어 활동한 지는 일 년이 조금 넘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약 7,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서울시 및 센터가 주관하는 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새롭게 등장하였다. 그리고 등장한 이 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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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들이 서로 연결되고있다. 그러다 보면 마을의 씨앗들이 하나둘 만들어질 것이 다. 내년이 지나고 나면 이런 ‘마을씨’들은 하나둘 움트고 싹을 낼 것이다. 마을씨가 움트는 과정에서 활동가의 활약은 필수다. 마을은 사람들의 관계망이고, 사람들의 힘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사람들 속에서 움직이는 활동가들의 양성이 관건이라고 들 한다. 그런데 그 활동가는 마을씨가 움트고 활발해지는 과정에서 발굴되고 배출 된다. 동네 이웃들과 좌충우돌 지지고 볶으며 우여곡절 몇 고비 넘기고 나서, 겨우 돌아보니 함께 일구어온 성과가 대견하고 함께 만들어온 이야깃거리가 대단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도 어느덧 활동가가 되어있다. 여기 실린 여러 이야기, 한 해 두 해 여러 해 동안의 우여곡절과 지지고 볶아온 이야깃거리들이다. 평범한 동네 주민이 이웃들과 함께 벌여온 각본 없는 드라마들 이다. 평범한 주민의 성장기이며, 우리 마을의 생생한 아카이브다. 활동하랴 짬짬 이 글 쓰랴, 날밤 새운 날도 부지기수였을 거다. 안 봐도 비디오다. 하지만 개인적 으론 인생 한때의 값진 기록이고, 마을로서는 생생한 역사 그 자체다. “정말,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2013년 12월 12일 짱가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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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같 ’우 , ‘이 키 니까 ‘ ’ 알겠 라 가치 를 더 서울시 은평구 〈은평 품앗이 육아〉 글쓴이 | 안세정 3살, 6살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2008년 첫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스트레스로 우울증에 시 달리며 행복한 육아를 고민하다가 우연히 듣게 된 한 강의를 통해 ‘품앗이 육아’를 알게 되었다. 이후 ‘품앗이 육아’에 대한 막연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살다가 2012년 6월, 10개월 된 둘째 아이 를 안고 참석한 ‘책 꾸러미 행사’(생후 3~18개월 아이를 위한 북 스타트 운동의 일환)에서 만난 10명의 엄마들과 운명처럼 ‘품앗이 동화책 읽어주기’ 모임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모임은 2012년 서울시 마을공동체 돌봄 분야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은평 품앗이 육아’라는 이름의 단체로 재탄 생하게 되었고, 그녀는 자신의 깜냥과는 무관하게 엉겁결에 대표를 맡아 마을공동체 속에서 새 로운 삶을 경험하게 된다. ‘은평 품앗이 육아’는 지역 엄마들의 욕구에 발맞춘 꾸준한 성장으로 2012년과 2013년, 2년 연속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현재는 80여 명의 엄마 와 아이들이 좌충우돌하며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 읽어주기와 엄마표 수업 및 엄마들을 위한 독 서토론, 기타 여러 소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ansjjj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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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소개 품앗이 육아, 해보면알게 될 걸? “육아를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든든한 동지들이 생겨서 너무 행복하다.” “‘함께’의 힘을 아이들도 엄마도 배우게 되었다. 내 아이뿐만 아닌, 우리 아이들이 다 함께 커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크고 가치 있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아이를 위해 만난 모임인데, 이제는 아이보다 내가 더 많이 성장하고 배우는 공 동체가 되었다.” “육아로 힘들고 무거웠던 일상이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과의 만남으로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엄마’라는 명함을 더욱 더 빛날 수 있게 해주는 공동체, 우리 아이들의 ‘첫 책 놀 이터’이다.” 우리 마을공동체 ‘은평구 품앗이 육아’ 회원들의 활동소감이다. 때로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 볼만한 이 ‘품앗이 육아의 가치와 비전’을 우리의 실제 활 동모습과 성장과정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어서 용기 내어 이 글을 전하게 되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한 작년 2012년 6월부터 현재 마을공동체로서 자리매김을 하기 까지 리더로서 역량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다른 이들은 아이가 아프면 한두 번 모임에 빠지기도 하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만, 리더인 나로서는 아이가 아파도 모임을 위해 내색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 는 점이 너무나 힘이 들었다. ‘나 역시 아이를 위해 시작한 모임인데, 왜 지금은 모 임을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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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은평 품앗이 육아 은평 품앗이 육아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잘한 일은 당연시되고, 문제가 발생되면 모두 내 책임이 되는 듯해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어느 곳에 토로를 해야 할지 막막하고 힘 들어서 숨 막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깨가 무거웠던 시 기였다. 하지만 매 모임마다 함께하는 육아의 즐거움과 부모로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알아가는 나와 회원들의 모습 속에서 ‘아, 이래서 이 일 이 가치 있는 거구나’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품앗이 육아’는 내게 포기할 수 없는 과업이 되었다. 힘들었지만 분명히 가치 있는 시간들이었고, 지금도 힘들지만 그렇게 견디면서 단계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의 경험을 통해, 다른 이들이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이거나 힘들 때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족하지만 몇 글자 남겨보고 자 한다. 특히 ‘품앗이 육아’로 내 아이를 내 손으로, 또 ‘함께’ 키우며 서로의 아이가 자라고 그 속에서 내 아이와 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뜻 깊은 일인 지를 알리고 싶었다. ‘품앗이 육아’를 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모 르는 분들에게 나의 경험이 작은 나침반이 되었으면 한다. 험난하고 막막하기만 했던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나를 믿어주고 함께 최 선을 다해준 1기 북키북키 멤버들, 열등감과 콤플렉스로 점철된 나를 ‘은평 품앗이 육아’ 속에서 새롭게 단련하고 그로부터 다시 용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 딸 휘준이와 휘연이, 집안 살림은 뒷전으로 미룬 채 마을공동체 활동에만 전념하던 나를 보며 가끔은 싫은 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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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도 했지만 내가행복해보이니 그저 묵묵히 협조해주었던 남편 안병화씨, 딸내미 의 마을공동체 활동으로 손자들 픽업과 돌봄으로 본의 아니게 바빠지셨던 친정아버 지, 언제나 사랑과 기도로 함께 해주는 친정엄마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배려와 그들이 주는 안락함이 없었다면 그토록 최선을 다해 마을공동체 활동에 전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울시마을공동체사례집에 참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신 서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 관계자분들께도 매우 감사 하며 깊은 내공으로 정성껏 피드백해주신 이현구 선생님께도 고개 숙여 감사의 마 음을 보낸다. 내 개인의 시선과 견해가 우리 멤버들 또는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상 처가 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다. 그래도 ‘은평 품앗이 육아’의 탄생부터 짧은 기간 의 성장 동안 리더로서 보고 들으며 겪은 이야기와 속내를 여과 없이 솔직하게 털 어내고 싶다. 그래야 다음 길을 걷게 될 누군가가 좀 더 앞길을 예측하고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미에서 말이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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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차례 은평 품앗이 육아 1. 작은 품앗이 모임이 마을공동체가 되기까지 어색한 첫 만남 / 커뮤니티로 소통하기 / 우연히 알게 된 마을공동체 / 좌충우돌 마을공동체 만들기 작전 / 마을공동체로 결정 2. 마을공동체로서의 몸부림 애 메고 누가 일하나? / 마을공동체가 된 후 활동의 변화 / ‘함께’의 열매, 첫 소식지 3. 수많은 어려움들 우리만의 장소가 필요해 / 누군 하고 누군 안 하고 / 회의, 회의, 끝없는 회의 속에 드는 회의감 / 뻣뻣해진 마음을 풀어주는 ‘수다의 힘’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쭉쭉’ 성장 중 육아에 지친 엄마들의 안식처 / 더 큰 성장을 위한, 새로운 장소물색 / 대망의 2기를 모집하다 / 그들의 열정, 2기 모집 대성공 / 2013년 마을공동체 재선정 / 드디어 우리만의 전용공간이 생기다 5. 우리의 앞날 생각해보기 리더로서의 고충 / 내려놓아야 할 시간 /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 끊임없는 회의와 토론 / 리더의 조건 / 이게 뭐라고!! 6. 그들이 본 은평 품앗이 육아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 이현숙 팀장과 곽영선 / 어린이 도서연구회 은평지회 석은진 / 신사종합사회복지관 담당 홍경희 사회복지사 / 신사종합사회복지관 관장 보련스님과 부장 이승재 사회복지사 / 아빠들 대표 3인(은찬아빠 양길수, 태희아빠 김재광, 한비아빠 이지현) 에필로그 품앗이 육아, 이 정도면 해 볼만 하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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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은 품앗이 모임이 마을공동체가되기까지 어색한 첫 만남 주민등록등본을 뗄 일이 있어서 10개월 된 딸아이를 안고 응암동사무소에 갔다. 등 본을 떼고,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입구에 붙은 손바닥만 한 종이의 공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 책 놀이방 북스타트 데이 1. 일시: 06.19.(화) 10:00~12:00 2. 대상: 은평구 내 생후 3개월~18개월 영아 20명(선착순) 3. 용: 시행대상 부모에게 북스타트 꾸러미(그림책 2권, 북스타트 가방, 내 손수건, 권장도서목록)를 증정하고 책을 통한 놀이프로그램 진행. 4. 장소: 꿈나무 도서관 내 2층 책 놀이방 5. 방법: 유선연락을 통한 사전접수 6. 준비: 당일 영아와 함께 참여 및 주민등록등본 지참 7. 신청 접수 및 문의: ☎ 351-2016 (10:00~17:00) ※ 오시는 방법: 은평구청 건너편 파리바게트와 청진동해장국 사이 골목으로 들 어와 직진하면 꿈나무 마을 후문이 나옵니다. 후문으로 들어와서 우측에 실내수 영장 있고, 바로 옆이 책 놀이방입니다. ★ 책 놀이방 운영시간 : 10:00~17:00 매주 월요일 휴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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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오호, 책꾸러미를 공짜로 준다고? 한 번 가봐야겠는걸?’ 다이어리에 일정을 표 시하고 ‘유선연락을 통한 사전접수’라는 안내는 뒷전으로 한 채 그날 당일, 큰 아이 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작은 아이를 안고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신청 안 해서 안 은평 품앗이 육아 된다면 말지 뭐’라는 생각과 ‘설마, 아이 안고 거기까지 갔는데 그냥 가라고 하겠 어?’라는 알 수 없는 배짱으로 말이다. 사실 우리 집 근처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도서관이 있다는 게 놀랍고 궁금해 서였다. 평소 책에 관심이 많고 휴식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도서관을 찾는 나로서 는 행사보다는 ‘꿈나무 도서관’에 더 관심이 갔다. 은평구청 맞은편 언덕을 헉헉 거 리며 겨우 올라 꿈나무 도서관에 도착했다. 이미 몇몇 엄마들이 아가들과 함께 행사 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신청하고 오신 거 맞죠?” 데스크에 계신 선생님이 나를 향해 물었다. “아, 아니요. 신청은 못했는데…….” “아, 그러세요. 그럼 그냥 여기에 이름이랑 주소 써주시고 참석해주세요. 다행히 오늘 오신다고 하신 한 분이 빠지게 돼서 공석이 있거든요.” 바쁘게 이름을 적고 아가와 엄마들 무리에 자리하고 앉았다. 영국에서 시작되었 다는 ‘북스타트 운동’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책을 접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로 우 리나라에서도 이 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라는 설명과 함께 좋은 도서목록과 동화책 2권, 손수건을 에코백에 담아 무상으로 주었다. 선생님이 나오셔서 책을 읽어주시고 같이 동요를 부른 후 이날의 행사는 간략하 게 끝이 났다. 도서관측에서 북스타트 데이 행사를 담당한 선생님은 이번이 은평구 에서 처음 시행한 북스타트 운동이라면서 앞으로 매월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씀하셨 다. 더불어, 오늘 배운 것처럼 엄마들이 아이와 함께 책을 통해 같이 성장하면 좋겠 다며 지금 모인 엄마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만나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기를 해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셨다. 3~18개월의 아이들이 모인 자리였으므로 아이들의 발달은 제각각이었다. 누워 있는 아이, 기어 다니는 아이, 서 있는 아이, 걷는 아이, 뛰는 아이 등등……. 아이 가 걷고 뛰는 엄마들은 전반적으로 자신의 아이들이 너무 커서 함께 하기에는 월령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 같다며 모임 결성 및 참여에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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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그럼 함께모임 꾸려가기 원하시는 분들 한 번 모여보세요.” 선생님의 진두 지휘로 둥그렇게 앉은 엄마들은 나까지 총 10명이었다. “네, 이 정도면 괜찮네요. 그럼 같이 어떻게 모이고 어떻게 진행할지 의논해보세 요. 모임 장소는 저희 꿈나무 도서관을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이곳의 도서는 원래 대출이 되지 않지만, 모임에 필요하시다면 따로 대출도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혹 시 부모교육 등이 필요하시면 강사도 섭외해서 강의를 제공해드릴 의향도 있고요.” 담당 선생님의 모임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의사에 자리에 앉은 엄마들 모두 얼굴 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누가 먼저 일을 진행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중 간쯤에 앉은 이제 막 아이가 5~6개월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우리 만남 일정을 정해볼까요?” 결국 우리는 매월 둘째, 넷째 주 금요일 오전 10시 반에 꿈나무 도서관에서 만나 기로 했다. 자리에 앉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품앗이로 동화책 읽어주기로 프로그램 을 확정하고 말이다. 1기 멤버들은 동화책 읽어주기 모임을 갖기로 결정 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승연맘 배진윤 : 그냥 마실할 곳이 필요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만남으로 말이지요. 은찬맘 장명정: 은찬이에게 많은 책을 읽어주고 싶어서 그날 도서관 북스타트 행사에 가게 됐고 마침 선생님의 권유로, 엄마들이 함께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모임을 시작하게 됐죠. 윤지맘 김미정: 처음에는 윤지한테 문화센터보단 엄마표로 뭔가를 해주고 싶 은 맘으로 모임에 동참하게 되었어요. 호연맘 강은자 : 저는 맨 처음은 아니고 중간에 들어왔는데, 그냥 엄마들과 같 이 모여서 소통하고 싶었어요. 처음 키우는 아이라서 그저 육아방법을 같이 나누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리고 한두 달 지나면서 아이와 내가 성장한 것을 느꼈고 달라졌어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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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커뮤니티로 소통하기 이제정기적으로 만나서 엄마들이 돌아가며 동화책 읽어주기를 하자는 의견이 결정 된 순간, 나의 머릿속에 불빛이 ‘번쩍’ 했다. 은평 품앗이 육아 2008년 여름, 첫 아이를 낳고 매일 집에 틀어박혀 육아를 해야 하는 나의 일상이 그저 우울함으로 물들 던 어느 날 들었던 강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네 아줌마들 과 작은 재능을 모아서 품앗이 교육으로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 당시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엄청난 가슴 떨림을 경험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단 순히 시간 보내는 것이 아닌 내가 가진 작은 재능으로 서로 나눌 수 있고 아이들은 그를 통해 사교육에서 얻을 수 없는 무한한 사랑과 긍정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서 말이다. 그때부터 나의 마음에는 언제나 ‘품앗이 육아’에 대한 열망이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이곳이 그런 내 열망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는 ‘촉’이 온 것이다. “그럼, 제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열게요. 카페가 있으면 앞으로 저희가 지속적인 활동을 하기에 편할 것 같아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처해서 온라인 커뮤니티인 ‘카페’를 만들겠다고 나섰 다. 모두들 그런 것도 만들 줄 아냐면서 대단하다고 좋다는 반응이었다. 다음으로 카페 이름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우리의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나면서 오랫동안 지속하기를 바라는 암묵적인 나의 염원을 담아 ‘은평 북스타트 맘’이라는 이름으로 열기로 결정했다. “그럼 카페를 열고나서 제가 카페 주소를 다시 문자로 알려드리도록 하죠.” 그러자고 한 후, 각자 어색한 인사와 마무리를 하고 하나둘 자리를 비웠다. 그리 고 첫 만남 후 딱 일주일 뒤인 2012년 6월 26일, 드디어 포털 사이트에 ‘은평 북스 타트 맘’이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를 열었다. 미리 취합한 회원들의 핸드폰 번호로 문자를 보내서 공지를 하고 각자 자기소개를 간략히 남기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라는 이름의 공감대로 서로를 알아갔고 그 마음으로 ‘품앗이 동화책 읽어주기’ 를 2주에 한 번 진행해나갔다. 그 후 카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 모임을 체계적으로 끌어가고 함께 생각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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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유하며, 새로운 일을만들어가는 데 매우 좋은 소통공간으로 함께 하고 있다. 무 엇보다 우리 모임을 알고 싶어 하는 새로운 이들에게 우리를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통로이다. 그 속에는 우리가 함께 했던 다양한 활동, 아이들과 엄마의 성장이 고스란히 담 겨져 있다. 만일, 누군가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꼭 온라인 커뮤니티를 동반하라고 권하고 싶다. 함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온라인상에 그 문제를 올려놓고 고민하고, 의논하기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를 둔 엄 마들은 같이 만나서 이야기 할 시간이 녹록치 않을 때, 서로 필요한 것을 채우고 싶 을 때, 이 카페에서 많은 것을 드러내고 주고받을 수 있다. 그리고 꿈나무 도서관에서는 매월 북스타트 행사가 진행되는데, 그때마다 우리 카페를 소개해주어서 계속 새로운 멤버들이 유입되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마을공동체 “언니, 얼마 전에 은평구 소식지에 보니까 마을공동체라고 3인 이상 되면 신청할 수 있더라고요. 예산도 얼마 받을 수 있고 하던데, 생각해보니까 우리 인원이면 충분 하겠다 싶더라고요.” 멤버 중 같은 동네에 사는 언니 집에서 수다를 떨다가 가볍게 던진 이야기였다. 나는 평소 지역정보나 소소한 정보들에 관심이 많은 터라 나와 연관지을만한 것이 있으면 기억해두거나 메모를 해두는 편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지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또 그 일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일련의 과정에 대한 마음가짐이 선뜻 생겨나지 않은 터였다. 며칠 후,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세정아, 내가 다 알아봤더니 우리도 할 수 있겠더라. 양식 다 뽑아놨으니까 다 같이 모여서 의논하고 작성해보자.” 맨 처음 모임을 열 때도 모임 일정 및 방법 등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주도했던 언니다. 이번에도 그런 빛나는 추진력으로 우리를 리드했다. 함께 의견을 모으기 위해 일일이 모든 멤버에게 전화를 걸었고 어디서 만나서 의논할지 미리 정해서 알 려왔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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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며칠 후우리는 대형마트 8층 푸드 코트에서 각자 아이를 가슴에 안고 모여 앉았 다. 손에는 하얗고 두꺼운 마을공동체 지원양식이 들려졌다. 마을공동체지원사업 에 선정되면 예산도 받을 수 있고 우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으니 힘내서 한 은평 품앗이 육아 번 지원해보자는 얘기와 함께 이런 저런 의견이 오고 갔다. 각자 양식을 가져가서 작성해 본 후 다음번 모임에 들고 오기로 하고 헤어졌다. 좌충우돌 마을공동체 만들기 작전 각자 지원양식에 아이디어를 조금씩 모아서 취합을 했지만, 처음으로 이런 양식을 작성하는 우리는 그야말로 모든 작성란이 오리무중이었다. 어떻게 작성해야 탁월 한 것인지, 어떤 내용을 적어야 옳은지를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골치를 썩여야 했 다. 우선 처음 일을 주도하게 된 명정언니와 내가 은평구청 담당자와 통화를 하면서 일을 진행해 갔다. 날은 한여름으로 땡볕이었고 우리는 아이를 안고 동분서주 하면 서 지원 마지막 일정인 8월 10일까지 제대로 해내기 위해 애써야 했다. “언니, 우리 오늘 은평구청 안에 커피숍에서 만날까요? 거기 커피도 싸고 시원하 고, 컴퓨터도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명정언니와 나는 은평구청 커피숍에서 각자 아이를 가슴에 안고 만났다. 내 손에 는 지난번에 사람들이 모아준 지원서가 한데 뭉쳐 있었다. 내용이 중복되거나 조금 엉뚱한 것들도 뒤섞여있어서 하나로 잘 통합해서 구성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명정언니가 아이의 기저귀를 갈러 간 사이 나는 딸아이를 안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구상하고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다. 점심 끼니도 놓친 채, 좀 전에 산 머 핀 케이크로 허기를 겨우 달래면서 말이다. 그때 옆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지금 뭐 하고 계세요?” “네?” “애 안고 힘들게 작성하시는 게 뭔가 하고요.” “네. 마을공동체 지원서 작성하고 있어요.” “아, 그러세요. 이런 일은 저희가 얼마든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저를 따라오 세요.”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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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보니 그분은 은평구청 주민참여위원회 위원장이셨다. 우리에게 친히 주민 참여위원회 회의 장소 공간을 열어주시면서 편하게 컴퓨터로 작성하고 잘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시며 관계부서 분들을 불러 모아 소개해주셨다. “이봐, 여기 이분들이 이번에 새로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원 하실 계획이라는데 좀 도와드려.” 비록 양식 작성은 모두 우리 몫이었지만, 예산구성 등에 있어서는 은평구청측으 로부터 많은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밖에 단체 등록을 위해 우리 단체명을 ‘은평 품앗이 육아’로 정한 후 장소 지정이 필요했을 때, 꿈나무도서관측의 협조로 도서관 을 우리 단체주소로 지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엉겁결에 만장일치로 ‘은평 품앗이 육아’라는 단체의 대표가 되었다. 조금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 작은 모임이 앞으로 우리와 우리 아이들, 그리고 이 지역의 엄마들에게 분명히 크고 작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거라는 확고한 비전이 있었기에 순순히 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어떤 모임의 ‘장’이 아닌 한 단체의 ‘대표’가 된다는 것은 내게 매우 큰 의미이자 막중한 책임을 묻는 일이었기에 어깨가 매우 무거웠다. 마을공동체로 결정 은평 품앗이 육아 대표가 된 나는 본격적으로 마을공동체로서 자리매김을 위한 대 부분의 일들을 전담해서 하게 되었다. 관계기관이 필요한 서류나 미팅이 있을 때 내 게 전화를 하거나 메일 등을 보내왔다. 그때마다 나는 회원들에게 알릴 사항이 있을 경우 카페를 통해 알렸다. “지난 8월 10일, 서울시에 ‘은평구 품앗이 육아’로 마을공동체 사업 지원하였 습니다. 서울시에 현재 회원 명단 제출하였고요. 추후 실제 진행여부 확인을 위하여 해당부처 담당자와 미팅이 진행 될 예정입니다. 정확한 일정은 다시 확인해서 카페를 통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 있도 록,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활동 부탁드립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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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꿈나무 도서관현장조사와 서울시청에서의 면접 등을 통해 최종 마을공동체 사 업자로 선정이 되었다. 지원서 양식 작성과 서울시 직원 방문 현장조사, 서울시청 면접 등의 일련의 과정은 아이를 동반해야 하는 우리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은평 품앗이 육아 하지만 마을공동체를 위해 뛰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끈끈해졌고 앞으로 우리 모 임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상황을 우리 회원들은 다음 과 같이 회상한다. 승연맘 배진윤: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되겠어?’라는 마음이 더 컸다. 서울 시에서 이제 막 시작하는 정책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 했다. 호연맘 강은자: 나도 솔직히 ‘되겠어?’라는 생각이 강했고, 내놓을만한 무언가 도 없었는데 빠른 추진력과 열정에 놀랐다. 2. 마을공동체로서의 몸부림 애 메고 누가 일하나? 2012년 10월~12월까지 총 3개월의 기간 동안 300만 원의 서울시 예산을 지원받게 되었다. 자부담 10퍼센트가 있기에 우리 멤버 14명은(중간에 새로 멤버가 4명 들어 왔다) 3개월분의 회비 3만 원을 한 번에 납입해서 자부담 비용으로 충당해 넣었다. 막상 서울시 예산을 받고 마을공동체가 되고 보니 그전에 느슨하게 진행되던 것 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원서에 적은대로 부모교 육이나 외부활동 등 여러 가지가 실제로 이어져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우리는 누가 그런 일을 주도할 지에 대한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냥 성인 한사람, 한사람으로 움직이면 일에 대한 포지션을 명확히 나눠서 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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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있지만 각자아이를 키우는 입장이고 때에 따라 아이들의 컨디션이 천양지차인 지라 누구도 나서서 무엇을 하겠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임을 위한 리 더로 나와 총무가 있었지만, 마을공동체로서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는 것은 우리 모 두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300만 원의 예산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특히나 한 번도 정부 예산을 운 용해본 적이 없는 평범한 우리로서는 조금은 버거운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행여 잘못 써서 문제되는 것 아닐까 노심초사하기도 하였으며 행사 하나하나가 처음이라 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을 진행하면서 전체적인 운영과 관리, 마을공동체 예산 운용과 때에 따른 마을 공동체 교육 참석, 필요한 양식작성 등 뜻밖의 일들이 많았다. 더군다나 서울시와 구청의 사업에 대한 이해가 일치되지 않아서 중간에서 설명하고 같은 이야기를 반 복하면서 해나가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비일비재했다. 때문에 우리는 그에 따른 에 너지 소모에 대한 비용을 회장과 총무에게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회장과 총 무역시도 아이를 키우는 똑같은 입장에서 희생을 감행하고 있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꼭 필요하다는 점에 전체가 동의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인건비 책정은 회장과 총무 스스로 그에 준하는 성실함을 갖추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단순히 회장과 총무라는 직함으로 뭉뚱그려진 희생과 헌신보다는 어느 정도의 인건비를 책정하여 일에 대한 당위성을 가지고, 또 일을 보다 추진력 있게 진행해보자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사실 당사자인 회장과 총무에 대한 인건 비 책정은 도리어 더 큰 올가미 같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특히, 대표자로서 그 일을 결정한 나는 더욱 그런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총 예산 300만 원 중 한 달에 회 장과 총무에게 각각 20만 원씩 3개월 동안 총 120만 원의 지출은 적은 금액이 아니 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례를 만들어가는 시점에서 리더의 결정력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나머지 예산은 엄마표 수업 재료비와 우리 활동을 기록으로 남길 소식지 제작, 식비나 간식비 등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회장과 총무 인건비 관련해서는, 2013년에도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에 지원하며 예산안에도 넣은 바 있다. 하지만 단체의 운영진에게는 인건비를 일절 지급하지 않 는다는 규정으로 인해 2013년 회장, 총무에게는 인건비 지급이 전혀 안 되는 실정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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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이다. 하지만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꼭 언급하고 싶다. 아무리 공익을 위한 단체라 하더라도 그 단체가 제대로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운영진에 대한 예우가 반드시 필 요하다. 은평 품앗이 육아 물론, 이런 단체의 장이나 운영진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희생과 헌신의 마 인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을공동체를 끌어가기 위한 나의 활동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일들의 당위성을 가치와 비전으로만 증명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리고 이런 도시의 삭막하고 바쁜 현 실에서 그런 가치와 비전을 공유해 줄 수 있는 가족도 흔치 않다. 실제로 나는 마을공동체를 끌어가면서 집안 살림과 아이들 돌보는 일에 그전보 다 훨씬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전업주부가 정작 돌봐야 할 아이들과 살림은 뒷전으로 하고 모임에만 전념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질문을 자주 해왔고, 부모님 역시도 네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집안 살림을 이 꼴로 하면서 그렇게 열정을 쏟아야 하느냐고 묻는 일이 다반사였다. 더군다나 단체 성장 및 모임도모를 위해 애쓰면서 들어가는 교통비와 통신비가 평소의 2~3배 넘게 늘어나는데, 주부인 우리에게는 어마어마한 비용일 수밖에 없 다. 따라서 운영진 인건비 부분은 최소한의 활동비라도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에너지 소비 외에도 경제적으로 개인비용이 추가되면 부담이 돼서 운영진 활동에 어려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운영진이 지속적인 책임과 의무를 갖고, 마을공 동체의 꾸준한 성장을 위해 애쓰게 하려면, 이런 부분의 예산규정이 반드시 생겨나 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을공동체가 된 후 활동의 변화 마을공동체로 선정이 되면서 2주에 한 번이었던 모임을 1주에 한 번으로 늘리고, 돌 아가며 동화책 읽어주기와 함께 2인 1조로 엄마표 수업을 같이 진행해보기로 했다. 첫 순서는 나와 명정언니가 맡았다. 이런저런 의논 끝에 인형극을 겸한 촉감놀이를 하기로 했다. 인형을 구하고 검은 콩과 쌀을 준비해서 아가들 양말에 넣어보고 만지 는 놀이로 정했다. 첫 번째 타자인 우리는 많이 떨리고 부담되어서 미리 만나 리허설도 했다. 다행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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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엄마들이 크게호응해주고 아이들이 잘 따라줘서 잘 마쳤지만 긴장한 탓인지 호 흡이 너무 빠르게 진행된 면이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이후, 엄마표 수업은 점점 익 숙해지고 점점 진화되어 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엄마와 옆의 친구들과 함 께 행복하고 즐겁게 교감하며 자라갔다. 어린 아이를 둔 엄마들은 집 안에서 아이하고만 지내는, 참으로 힘든 일상을 보 낸다. 우리는 다함께 카카오톡으로 일상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서로 육아나 살림에 대한 궁금증 등을 풀어가면서 친해져갔다. 함께 같은 시기의 아이를 키워간다는 것 은 엄청난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에게 힘을 불어넣을 원동력이 되었다. 좀 더 끈끈하고 의미 있는 성장을 위해 ‘일주일에 하루를 더 모이면 좋겠다’는 생 각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하루를 기왕이면, 동화책에 대한 엄마들의 공부로 시 작하면 어떨까 싶던 찰나에, 기존에 활동하고 있던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연락이 와서 순간적으로 도움을 청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정씨, 요즘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요? 혹시 앞으로 활동 못하시는 건가 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요. 제가 품앗이 육아로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어서 요 즘 못 갔네요. 죄송해요~ 그런데 혹시 저희 모임에 독서모임을 도와주실 선생님 안 계실까요?” 덕분에, 어린이도서연구회 은평지회에서 10년 넘게 활동하시고 사단법인 어린 이도서연구회 서울지부에서 지부장까지 맡으셨던 석은진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 다. 선생님의 어린이 동화책 강의를 시작으로 우리에게 독서모임이 생기면 어떨지 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다행히 다들 좋다고 했고 우리는 이 날을 엄마를 위한, 엄마 가 공부하는, ‘맘스데이’라 칭하고 함께 좋은 작가의 동화책과 양질의 자녀양육 이 론서를 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좋은 동화책은 무엇인지 서서히 알게 되었으며, 동화책 속에 담긴 삶의 철학과 지혜를 한층 더 깊이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동화책과 자녀 양육 이론서를 함께 보고 토론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다들 생소한 듯 했지만, 시간 이 흐를수록,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펼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덕분에 우리는 선생님이 없이도 스스로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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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함께’의 열매,첫 소식지 2012년 11월, 우연히 5살 큰 아이의 어린이집 소식지를 보다가 우리도 이런 소식지 은평 품앗이 육아 를 발간하면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면서 동시에 마을공동체로서 하나의 새로 운 일로 부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뿐 아니라, 다음 해에도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좋은 기폭제가 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특히, 주변에 아가를 키우면서 힘든 엄마들에게 우리 모임을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내포되어 있었다. 모임이 있는 날, 큰 아이 어린이집에 비치된 소식지를 몇 장 집어 들고 멤버들에 게 우리 이야기를 이렇게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었다. 모두 찬성하였고 어떤 형식으로 만들면 좋을지에 대한 의논이 시작되었다. 우선 멤버들 중 관련분야 에서 일했던 사람이나 미술 쪽에 재능 있는 사람을 뽑아 총괄하면 어떨지 의견을 모 았다. 다행히, 결혼 전에 만화가로 활동했던 미해가 해보겠다고 나서주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니 같이 만 나서 아이를 봐주기로 했다. 한 사람이 모두 전담하기 보다는 최대한 함께 모여서 아이디어를 짜고 같이 만들어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왜냐면, 모두 아이를 키우고 있고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버겁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 카페에는 소식지에 들어갈 아이템을 함께 모으기로 하고 우선 모임 외에 시간이 되는 날을 잡아 전지를 하나 놓고 전체 틀을 짜보기로 했다. 그런데 소식지 발간을 위한 첫 모임을 약속한 그 날,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덕 분에 전원이 함께 하지는 못했다. 참석한 인원들도 아이들을 안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에 휩싸이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나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함께 격려하고 다독였다. 모인 인원들은 각자 집에서 가져온 가위, 풀, 색종이, 스 카치테이프 등을 꺼내놓고 머리를 모았다. 우선 소식지가 발간되는 시기가 12월이 니 컨셉을 크리스마스로 잡고 디자인하기로 했다. 소식지 발간 리더를 맡은 미해가 아이들 사진을 보면서 집에서 미리 아이들 얼굴 을 캐리커처로 그려왔다. 사진처럼 아이들의 특징을 잘 살린 그녀의 그림은 우리에 게 엄청난 환호를 불러 일으켰다. 늘 함께 아이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던 평범한 우리 속에 이런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신기했기 때문이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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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잠깐!! 그날의단상을 당시에 우리 모임 카페에 올린 나의 모임 후기로 대 체해볼까 한다. 제목: 이번엔 雨中 소식지 발간모임!! ^ㅡㅡ^’’ 지난 금요일, 지난 3개월 동안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 활동을 추억으로 남길 소식지를 만들기 위해 만나기로 한 우리!! 열심을 내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속이 든든해야 하기에 울 동네 30년 전통의 김밥역사를 자랑한다는 ‘청기와 김밥집’에 전화로 15줄의 김밥을 주문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데다 큰 아들내미 어린이집도 보내야하니 김밥을 찾으러 갈길이 너무 막막했습니다.ㅠㅠ 더군다나 그 김밥집 현금만 받으시는 곳인데, 수중에 현금이 제로!! 은행에 들 러 현금 찾고 가야할 판, ‘어쨌든 가보자’ 하고 나왔어요. 헌데, 비바람 너무 심 하게 불어서 아들이 든 우산은 뒤집어지고, 저도 휘연이 매고 우산 들고 멘붕 이 왔는데, 그 순간 은자에게 걸려온 전화!! “언니, 김밥 안 찾았으면 내가 가져갈께!! 나 호연이 두고 혼자 가!!” ‘오예~기쁘다, 구주 오셨네~’ 구렁텅이에서 누군가 손 내밀어 구해준 느낌!! 가볍게 아들을 어린이집으로 들여 보내고 꿈나무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천 재지변을 뚫고 만나서인지 더욱 반가웠던 우리~ 오자마자 열심히 컨셉 잡아주시는 두 분의 미술 전문 가, 미해와 명정언니^^(또랑또랑 은찬이 영문을 모른 채 엄마 등에 밀착!! ‘은찬아, 너희 엄마가 이렇게 멋진 사람이란다.’) 아픈 아가들이 많고 아침부터 비가 몰아쳐서 많은 분들 이 함께 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윤이와 미해가 남편이 휴무이고 은자도 친절한 시엄마가 호연이를 봐주셔서 자유부인으로 나와서 일이 너무 수월했네요. (물론, 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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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는 주아,유이, 호연이를 매우 사랑합니다. 암요!!) 은평 품앗이 육아 전날 밤에, 잠을 쪼개 그려온 미해의 아가들 캐리커처 보면서 완전 신난 우리. 조심조심 가위질 해봅니다. 이런 보물 같은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우리 안에 있다니, 너무 감동~~물결~~은자는 미해에 게 가족 캐리커쳐 선주문 넣어주셨어요.ㅋㅋㅋ 우리 모두 공동구매로 미해에게 캐리커쳐 그려 달라 하자며 한동안 왁자지껄 신나게 웃었네 요.^^ 하릴없이 턱 괴고 경청만 하고 있는 저의 모습. 우헤헤헤, 보이시나요? ‘나는 왜 그림 그리는 재주가 없이 태어난 걸까~’ 하고 슬퍼하는 중.ㅠㅠ (괜찮아요, 함께 하는 것만 으로도 힘이 되고 즐거우니까~호호호….) 그래도 함께인 덕분에 여차저차 컨셉은 잡았네요. 하지만 결국 미해에게 일이 다 몰리게 되어 미해는 정신이 살짝 혼미해진 거 같았어요.ㅠㅠ 기꺼이 기쁘 게 착착 진행해가는 미해 솜씨가 어찌나 믿음직스럽던 지요~ 역시 같이 모인 덕분에 소식지 이름도 1분 만에 ‘북키북키’(북과 키즈의 합성어)라고 정하고 요.ㅎㅎ 세찬 빗소리 들으며 김밥 2줄 이상 흡입하고 위층 카페 올라가 커피 도 한잔씩 들이키며 나름 즐거운 시간 보냈답니다. 이 날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모인 우리, 왠지 더 끈끈하게 뭉친 느낌이었네 요. 오고 싶었지만, 아가들 컨디션과 여러 가지 여건이 되지 않아 못 오신 분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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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 마음으로 함께했다는 거 다 알아요. 그러니 미안해하지 말기!! 그 마음으 로 다음번에 더 많이 헌신해주기!! 월요일에도 미해의 작업을 돕기 위해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윤이, 은자, 명정 언니, 제가 미해 집에 갑니다. 저는 큰 아이를 찾으러 금세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미해가 작업할 동안 유이도 볼봐주고 옆에서 외롭지 않게 수다 떨고 오렵니다. 맛난 것도 같이 시켜먹고요~^^;; 우리 이렇게 사랑과 추억 쌓아가는 거 맞지요. 모든 과정과정 감사하고 행복 합니다. 소식지 나오는 그날을 기대하며~우리 소식지 만들기 첫 모임 후기 마쳐요~^^ 소식지 발간을 통해, 우리는 처음으로 마을공동체로서 함께 뭉침의 의미를 깨닫 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는 소식지에 들어갈 전반적인 내용을 구상하고, 또 누군 가는 아이 때문에 작업이 힘든 미해를 돕기 위해 주말에 몇몇이 미해 집으로 가서 미해가 컴퓨터 작업할 동안 같이 아이를 돌봐주었다. 또 다른 멤버는 그동안 찍은 활동사진 중 잘 나온 것들을 골라서 한데 모아 미해에게 전달해주었다. 다 같이 일 을 쪼개서 하긴 했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리드하는 사람이 가장 고생을 하기 마 련이다. 덕분에 미해는 몇 날을 아이를 재운 후 밤마다 고된 작업을 해야 했다. “언니, 우리 남편이 나 이거 하는 것 보고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하더라.” “그러게, 너 잠도 못자고 너무 고생이 많다. 신랑이 그렇게 말할만해.” “근데 언니, 나 재밌어. 하나하나 채워지는 것 보면 너무 뿌듯해~ 오랜만에 그림 그리니까 즐겁고 또 애들 얼굴 하나하나 사진 보면서 그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애정 이 새록새록 피어나더라고.” 한동안 아이를 키우느라 자신의 재능을 묻어두고 지낸 미해의 말이었다. 개인적 으로 처음 품앗이 육아를 시작할 때 가지고 있던 비전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 다. 집에서 육아에만 전념하느라 자신의 재능을 잊은 엄마들이 작은 달란트일지라 도 이곳을 통해 그것을 발현시켜 엄마로서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의 빛나는 미래 를 닦아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 남몰래 혼자 마음이 따끈해졌다. 덧붙여 미해에게 다른 한 마디 말을 건넸다.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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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미해야, 노파심에하는 이야기인데 말야. 혹시라도 이 모임에서 활동을 하면서 네가 한 일에 대해 누군가가 엄청난 칭찬과 격려를 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만일, 그런 기대가 너무 높아지고 사람들이 호응이 없으면 넌 네가 할 일에 은평 품앗이 육아 대한 가치를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냥 네가 그 일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완성된 것을 통해 성취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다행히 속 깊은 미해는 나의 이야기를 깊이 공감해 주었고 그로 인해 서로 좀 더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마을공동체를 끌어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내가 한 일을 누군가가 당연시 할 때였다. 자신의 상황은 어쩔 수 없으니 못하는 것이고, 누군가가 해주겠지 하는 마인드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희생하며 감내하는 이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낀 가장 큰 교훈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지 말고 일 그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고 스스로의 성장에 기뻐하자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계 속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기대로 갈등을 양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우리 소식지 ‘북키북키’(북 앤드 키즈의 줄인 말)가 발간되었다. “300부 나왔습니다.” “정말?” “드디어 나온 거야? 어디 있어?” “빨리 받아보고 싶다.” “나 주변에 다 돌려야지~” “우리 이 소식지 어디다가 배포할까?” “보건소랑 구청이랑, 어린이집, 교회, 동사무소 등등 놓으면 되지 않을까요?” “누가 배포하지?” “나!! 만들 때 많이 돕지 못했으니 배포는 내가 할게요!!” “저도요~!!” 카카오톡 단체 채팅창이 후끈 달아올랐다. 처음으로 다함께 마음을 모아 만든 결 과물이었다. 전문가의 도움 하나 받지 않고 다함께 마음과 시간을 쪼개서 아이를 같 이 봐주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소중한 소식지 한 장, 한 장이 마치 우리의 자 식처럼 느껴졌다. 적지 않은 비용으로 만든 소식지였기에 한 사람당 한 두 장만 가 져가게 하고 배포 할 곳도 잘 선별하기로 한 뒤 우선 도서관 창고 한 편에 잘 모셔두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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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었다. 그리고 이후이 소식지는 우리 단체 소개가 필요한 곳곳에 열 마디 말을 대신 할 최고의 자료가 되어주었다. ▲ 우리 모두의 힘으로 만들어진 첫 ‘소식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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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3. 수많은 어려움들 은평 품앗이 육아 우리만의 장소가 필요해!! 우리 마을공동체 이름은 ‘은평 품앗이 육아’, 말 그대로 품앗이로 아이들을 함께 키 워가자는 취지지만, 장소가 한정적인데다 모임장소인 도서관 특성상, 정해진 날만 모이고 헤어져야 하니 활동이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 좀 더 적극적인 품앗이 육아를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여건에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각자의 집을 돌아가 면서 해보면 어떠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다들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집을 오 픈하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좀 더 자주모여서 같이 수다도 떨고, 맛있는 음식도 해먹고, 밑반찬도 나누고, 다 함께 돌아가며 아이들을 봐주며 힐링을 할 수 있는 장소를 필요로 했다. 이런 이야 기가 계속 오고 가면서 나는 카페에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카테고리를 개설했다. 이 카테고리는 우리 마을공동체가 미래에 이루고 싶은 일들을 적어놓는 버킷리스트 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다음과 같은 글을 첫 번째로 남겼다. 제목: 사랑방 만들기!! 언제든 맘만 먹으면 모일 수 있는 ‘사랑방’을 만들어요. 그곳에서 함께 배고플 땐 음식도 나눠먹고, 힘들거나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땐 애도 봐주고, 우울할 땐 수다로 풀어내면서 다시 에너지를 충전하는 거예요!! 언제든지 모이고 싶을 때 모일 수 있는 우리만의 장소, 꼭 만들자고요~^^ 그리고 이 꿈은 불과 반년 만에 이뤄졌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 록 하겠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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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 하고 누군안 하고!! 하나의 마을공동체로 꾸려가려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일들이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서 진행하여야 했다. 예산을 가지고 어떤 강의를 열어야 우리가 유익한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를 구상해야 했고, 도서관 사용문제에 변경이 생길 때 수시로 담당자와 연 락을 해야 했으며, 강의 발굴 및 강사 섭외, 일정 조율하기, 지출 정산, 카페 운영, 아이들을 위한 교육 발굴 등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어쩌면 사실은 별 일 아닌 것들인 데 처음 해보는 우리가, 더군다나 육아와 병행하며 진행해야 했기에 버겁게 느낀 것 일지도 모른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멤버들과 그렇지 못한 멤버들로 나 뉘기 시작했다. 사실, 그렇지 못한 멤버들은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빠진다거 나, 일이 생겨서 결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만일, 아이가 없다면 지적할 수 있 는 문제들이지만 아이를 잘 키우자고 모인 모임이고 우리 주업은 육아이므로 이 마 을공동체가 육아에 방해가 된다면 그 의미가 상실되므로 뭐라 말할 수 없는 입장이 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간의 그런 괴리 속에서 불만이 쌓이지 않을 수 없었 다. 누군가는 아이가 조금 아프면 아픈 대로 ‘모임을 위해’ 나오는가 하면, 누군가는 아이가 아플 것 같은 기미만 보여도 ‘아이를 위해’ 바로 모임을 뒤로 미루었기 때문 이다. 모두 내 아이를 소중히 하는 건 결코 다르지 않은데, 활동에 대한 각자의 다른 기준이 엄마인 우리 스스로에게 매우 큰 자괴감이 들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이를 위해서 하는 모임인데, 왜 내 애는 이 모임 지속을 위해 방치되고 제대로 케어도 못 받고 있는 거지? 저 사람은 아이 열 조금 난다고 안 나왔는데 난 왜 이렇 게 열성적으로 애 열 조금밖에 안 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나오고 있는 거야?’ 사실 이런 고민은 모임을 리드해야 하는 나부터 모임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문제였다. 특히,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아파도 모임 때마다 그 자리를 지켜야 했 고 관계기관에서 갑자기 요구하는 서류나 교육자리 등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 이를 안고 참석해야 했다. 서울시에서도 처음 실시하는 마을공동체 사업이고, 우리 엄마들 역시 처음 해보는 마을공동체라서 좌충우돌하며 진행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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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누군 하고누군 안 하고’의 문제는 지속되었다. 아마 어떤 단체에서든 이런 문제 는 항상 제기될 것이다. 리더는 이런 문제에 봉착했을 때 좀 더 꼼꼼히 계획을 세우 고 더욱 솔선수범하면서 그 과정 자체에서 성장하고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멤버들에 은평 품앗이 육아 게 설파하면서 끌어가야 한다. 회의, 회의, 끝없는 회의 속에 드는 회의감 “같이 아이 키우면서 편하게 나올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무언가를 요 구할수록 불편하고 부담스러웠어요. 나는 그냥 수다 떨고 일상 이야기, 내 고민 등 을 말하고 싶은데 만날 마을공동체를 위한 회의, 회의, 회의 너무 지겹고 힘들었어 요. 이 부분은 지금도 그래요. 그냥 나는 예를 들어 어느 목욕탕의 누가 때를 잘 밀 어요? 하면 ‘아, 거기 A목욕탕에 세 번째 아줌마가 싹싹하게 때를 잘 밀어요!’ 하는 식의 아주 사소한 질문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을 바랐는데 말이에요.”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오고 있는 한 멤버의 이야기다. 이번 마을공동체 사례 집 발간을 위해 한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객관적으로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며 이야 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차’ 싶었다.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으 로 인해 느끼는 부담감으로 우리 본연의 색을 잃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더군다나 우리 모임의 가치와 비전 속 에는 서로 힐링이 되는 육아, 함께 성 장하는 육아를 위한 것이 내포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 다른 멤버가 반대 의견을 냈다. “물론, 수다 떨고 일상대화 나누는 거 좋죠. 하지만 그럼 그걸로 뭐할 건데요? 물 론 힐링은 되지만, 지금처럼 우리가 체계를 잡고 은평 품앗이 육아라고 했을 때 “이 런 활동을 하는 곳이에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단체가 될 수 있었을까요? 생각해봐 요, 꿈나무 도서관에서 매달 북 스타트 행사하면서 지속적인 모임 하라고 얘기하지 만 우리처럼 이렇게 모임이 지속되고 있는 곳은 단 한곳도 없어요.” 실제로 최근에 들어온 새로운 멤버들 중 한명은 이 모임에 들어온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 아이 또래 엄마들과 만날 만나서 수다 떨고 차 마시고 밥 먹고 할 때는 너무 기분 좋고 행복해요. 근데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뭐했지 싶고 마음이 휑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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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거예요. 아이또래 엄마들과 만나서 공감하고 서로 이해하는 시간은 됐지만, 정 작 내 아이는 방치되고 결국 무의미한 시간이었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이곳 ‘은평 품앗이 육아’를 알게 되었어요. 순간, 이곳이면 내 아이도 좋고, 나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게 됐죠.” “언니, 나는 사실 내 아이들 대안학교 보내고 싶었는데 이 은평 품앗이 육아에서 활동하면서 대안학교는 보내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대안학교는 학부모 회의로 많 은 일이 이뤄지잖아요. 이젠 회의에 지쳤어요. 그냥 일반학교 편하게 보낼래요.” 지금까지 함께 활동한 또 다른 멤버의 이야기다. 리더로서 미안한 마음이 앞 섰다. “아니에요, 언니. 시행착오를 먼저 겪었으니까 좋은 거지. 이 모임자체는 너무 좋 은데 내가 적응을 못한 거예요.”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 그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녀도 이곳에서 자신을 많이 발견한 사람 중 하나임을 나는 안다. 사실 ‘중도’가 필요했다. 때로는 웃고 즐기면서 편안한 수다 모임이 되면서 맛있 는 음식도 나눠먹고 이런 저런 일상 이야기도 나눴어야 했는데 대표인 나에게는 마 을공동체 지원 사업으로 어떻게 새로운 일을 만들면서 우리가 더 알차게 예산을 쓰 고, 지역에 보탬이 될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래 서 마을공동체로서의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기도 했지만, 속속들이 보면 회의와 새 로운 일 구상에 지친 멤버들이 있었다. 앞으로도 이 문제는 차근차근 풀어가야 할 문제 중 하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뻣뻣해진 마음을 풀어주는 ‘수다의 힘’ 앞서 말했듯이 하나의 단체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운영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 다. 이들이 먼저 나서서 솔선수범하고 새로운 방안을 구상해서 어떻게 리드해 가느 냐에 따라 모임의 색이 전혀 달라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운영진으로서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무엇보다 매월 있을 행사들의 향후 방향에 대한 회의를 주기적으로 해야 하고 수많은 문제에 대한 논의를 누구보다 최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영진이라고 따로 예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동반한 채 따로 시간을 내서 미 팅을 하고 회의를 해야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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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올해 2월에있었던 일이다. 당시 2기 새 멤버들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 는데, 꿈나무 도서관측에서 방학에는 그곳에 있는 보육원 아이들이 주로 사용해야 하므로 장소사용을 자제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초 처음 모임을 계획할 당시, 은평 품앗이 육아 공휴일을 제외하고 정해진 요일에는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다는 약속이 있었다. 더 군다나 마을공동체로서 방학 때마다 활동이 중간에 끊기게 되면 보통 문제가 아니 므로 도서관 운영담당자 분들과 바로 미팅을 잡았다. 당시 우리는 1, 2기 멤버가 3개의 모둠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각 반별 반장과 부반 장, 회장과 총무까지 함께 모이기로 했다. 결국, 이야기가 잘 마무리 되어서 방학에 도 원활히 장소사용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미팅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 지만, 모두들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아침부터 아이들을 일찌감치 씻기고, 기저귀 가방을 챙기고 급하게 아이 밥만 먹인 채 배를 곯고 나온 우리들의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 “우리 아침부터 고생했는데 이럴 땐 카페인이 들어가 줘야지?!!” 미팅을 마친 후, 그냥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도서관 바로 위에 자리한 카페에 올 라갔다. 나를 포함해서 다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얼굴색이 펴지면서 활기찬 수다가 시작됐다. 오늘 아침 아이 안고 나오면서 힘들었던 이야기, 어제 아이가 잠투정했 던 이야기, 아이 이유식 만드는 이야기, 남편과 시부모님 이야기 등등 여자들은 이렇듯 할 이야기가 많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육아, 살림, 남편, 가정경제 등등 할 이야기가 어마어마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각자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고 또 어떤 일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남편은 어떤 사람 이고 집안 분위기는 어떤지 곧잘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우리 모임 속에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를 대충 가늠할 수 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은 모임에서 활동 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확인되지만 말이다. 서로를 인간적으로 알아 가는 데는 ‘수다’ 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 그리고 수다를 떨며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친밀 해지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만남 그 자체가 즐거우므로 일 진행이 훨씬 수월해지 기 마련이다. 실제로 처음 마을공동체로 선정이 되고 프로그램 정비 등 여러 가지 일을 도모하 려 할 때 우리 마을공동체를 컨설팅해주셨던 사단법인 공동육아측의 이현숙 팀장과 곽영선님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루 속히 친해지는 것이에요. 친해지고 나면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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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일이 한결매끄럽게 진행될 거예요”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날 우리는 정말 뜻밖의 ‘수다’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 운영진은 헤어지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카톡으로 주고받았다. “운영진분들 모두 수고하셨어요. 오늘 즐거웠습니다.” “그러게요, 미팅은 힘들었지만 마지막 수다가 골든타임이었네요.” “저는 미팅보다 수다가 더 의미 있고 즐거웠네요.” “맞아요, 수다 떠니까 스트레스가 확!! 수다타임 즐거웠어요.” 우리에게 활력은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는 대화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 일이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쭉쭉’ 성장 중 육아에 지친 엄마들의 안식처 우리의 관계 속에는 마을공동체라는 ‘일’이 있기에 서로 맞지 않거나 생각이 다른 부 분이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그런 모든 과정 속에서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하나 하나 진행해 가며 점점 발전하는 우리 모습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더 나은 프로그램과 진행을 온통 우리 스스로 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 야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속에서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많은 힘이 되었다. 아이가 잠을 자지 않을 때는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늦은 밤에도 카톡을 주고받으 며 서로를 격려하고, 아이가 고열이 나거나 아플 때도 근처에 좋은 병원을 소개하거 나 먼저 겪은 엄마들이 조언을 하면서 다독이며, 심심한 사람은 짬이 나는 대로 야 외에 나가 아이들을 풀어놓고 수다를 떨거나 차를 마시고, 누군가는 집을 오픈해서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생일파티도 해주곤 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매주 만나는 우리는 누구보다 친했으며 단순한 친 목도모를 위해 만난 관계가 아니었기에 우리가 하고 있는 엄마표 수업이나 맘스데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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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이 활동등에 대한 이야기로 늘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6월, 2기 현교맘 준희씨가 해 준 이야기다.(2기 멤버 모집 과정에 대한 이야 기는 바로 뒤에 나온다.) 은평 품앗이 육아 “은평 품앗이 육아를 만나고 복직하기 싫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예요. 이제 겨우 몇 개월 활동 했는데 우리 멤버들 모두 마치 죽마고우인 거 같이 편하고 좋아요. 특 히 우리 달님반은 공동구매를 좋아하거든요. 발목 스타킹, 스티커북, 기저귀 등을 같이 사면서 얼마나 큰 즐거움을 느끼는지 몰라요. 또 모임 없는 날은 벙개도 많이 하고요. 육아에 대한 니즈 뿐 아니라 개인적인 욕구도 채우고 힐링도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더 큰 성장을 위한, 새로운 장소물색 2012년 10월~12월, 3개월간의 마을공동체 지원이 끝나고 새해가 도래할 즈음, 멤 버들에게 물었다. “다음 해에도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원하길 원하시나요?” 다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래도 마을공동체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많 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자리를 잡았다는 점에 모두 의견을 모았다. 다시 마을공동체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토인 품앗이 육아가 더 많은 이 지역의 엄마들과 공유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2기 멤버를 모집하기로 결정했다. 그 동안 카페를 통해 오프멤버가 되고 싶다는 회원들이 많았으므로 2기 멤버 모집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꿈나무 도서관은 화, 목 오전만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장소물색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우선 주민센터와 가정지원센터 측 에 전화를 걸어 사정이야기를 해보았다. 적어도 서울시 마을공동체로 인증이 된 단 체이고, 엄마들이 스스로 모여서 함께 아이를 키우고 성장하는 자조모임이니 지자 체에서도 반기고 적극 협조해줄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이 근방의 동사무소와 가정지원센터 측에 전화를 걸어 빌려줄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물은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은평 품앗이 육아라는 마을공동체 대표인데요. 혹시 저희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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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할 수 있는장소를 일정하게 대여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자체가 해줘야 할 일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으므로 당연히 쌍수를 들 어 환영하는 반응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우리의 착각이었다. “죄송합니다. 공공예약 시스템을 이용해주세요.” 주민 센터 측에서는 매번 이용할 때마다 미리 공공예약시스템을 이용해 장소를 예약하고 대여료를 내야 한다는 답변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국가에서는 출 산과 육아지원정책을 장려한다면서 연일 언론에 보도하고 있는데 막상, 서민의 삶 을 가장 가까이 하고 있는 지자체는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해 보였기 때문 이다. 가정지원센터 역시, 우리 단체에게 따로 내 줄 장소가 없다고 했다. 정말이지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일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기운이 쭉 빠졌다. 때마침, 구청장님이 각 동 주민 센터를 돌면서 행사보고 등을 주민과 함께 듣는 자리가 열린다는 공고문을 보고 우리 모두 유모차를 끌고 가서 구청장님께 직접 건 의해볼까 하는 의견도 카페에 올려봤다. 정말이지 유모차 부대로 데모라도 해서 장 소를 얻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모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잠 시 조급함을 내려놓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답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성장을 위해 새로운 장소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답답한 심정을 맘스데이 때마다 함께 독서토론을 진행해주시는 은평어린이도서 연구회 석은진 선생님께 토로했다. 우리의 처음 시작과 현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 신데다, 오랫동안 동화책 읽어주기와 부모교육 강의 등의 활동을 하셨기에 주변 도 서관과 관계기관 담당자들을 많이 알고 계셨다. 우선 아쉬운 대로, 은평어린이도서연구회 사무실을 함께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 안해주셨다. 하지만 그 곳은 우리 아이들이 엄마들과 동반해서 활동하기에는 겨 울인 그 때에 다소 썰렁하고 협소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유난히도 추웠던 2012년 12월, 아이를 안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를 전화를 돌리면서 장소물색에 힘을 쏟았다. 그러기를 딱 한 달이 되었던 어느 날!! 석은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세정씨, 내일 시간 되요? 활동을 할 수 있을만한 장소 두 곳이 있는데 같이 가볼 까 해서요.” 다음날 아침,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급히 보내고 바로 길을 나섰다. 매서운 바람 이 뺨을 얼얼하게 하던 1월, 옷을 잔뜩 껴입고 아이를 가슴에 품은 채 ‘정말이지 너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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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무 힘들다’는생각이 온몸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무엇보다 내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 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해 시작한 일인데 지금 나는 아이가 아닌 ‘모 임’을 위해 내 아이를 혹사시키고 있으니 이 무슨 일인가 싶었던 것이다. 은평 품앗이 육아 아이의 코와 양 볼이 빨개졌다. 아이를 좀 더 감싸 안으며 선생님과 함께 두 곳 을 알아보기로 했다. 한 군데는 초록엔 도서관으로 얼마 전에 생긴 동네 도서관이었 고, 한 곳은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이었다. 첫 번째로 방문한 초록엔 도서관은 동네도 서관으로서는 손색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우리 아가들이 활동하기에는 이동거리와 위치, 공간 등이 조금 애매했다. 함께 한 선생님께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엄청나게 낙심이 됐다. ‘나는 지금 어디를 찾고 있는 걸까? 그냥 이대로 집으로 돌 아가고 싶다. 과연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긴 한 걸까?’ 하는 생각 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신사복지관으 로 향했다.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은 응암역에서 5분정도 거리에 있고, 1층에 엘리베이터가 있 어서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와도 아주 편하게 이동이 가능한 곳이었다. ‘아, 엘리 베이터가 있다니 너무 좋은걸? 더군다나 이곳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평지!!’ 마음 으로 쾌재를 부르며 꼭 좋은 공간을 만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담당인 홍경희 선생님과 미팅을 했다. 미리 준비해 온 우리 모임 소식지를 가방에서 고이 꺼내 보이며 모 임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담당자인 홍경희 선생님은 소식지를 보시 면서 정말로 이 소식지를 엄마들이 만들었냐 면서 감탄하셨다. 그 속에 담긴 우리 활동사 진들도 꼼꼼히 살피셨다. 엄마들이 참 대단하 ▲ 신사복지관 첫 미팅 사진, 왼쪽부터 홍경희, 석은진 선생님 다며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바 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니 부장님과 관장님의 허락을 받고 오픈여부를 다시 알려주겠다고 했다. 꼭 오픈해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만일 우리가 활동하게 된다면 쓸 수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여쭸다. 2층 강당이라고 하셨다. ‘강당?’ 어떤 곳일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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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동안 여러곳을 알아보고 돌아보는 가운데 낙심했던 마음에 또 상처가 될까 두려 운 마음도 들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2층 강당을 보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그곳을 보고 나는 ‘왈칵’ 눈 물이 쏟아질 뻔 했다. 그야말로 우리 모임에 ‘딱’인 장소였다. 매번 장소를 알아볼 때마다, 아이들 때문에 겨울에는 따뜻한지, 여름에는 시원한지부터 체크했는데 이 곳은 겨울에는 바닥에 보일러가 들어오고 여름에는 천정에 에어컨이 있어서 냉난방 시설에 전혀 손색없는 장소였다. 더군다나 우리 아이들이 맘껏 뛸 수 있는 넓은 공 간이 더없이 맘에 들었다. ‘이 곳에 오면 우리 아이들 맘껏 뛰어놀 수 있겠구나!’ 너무 신이 나서 아직 결정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으로 강당 사진을 찍어 카페에 올렸다. 꼭 이곳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길 다함께 기도하자면서 말이다. 다들 열화와 같은 반응을 보여줬다. “우리 애들 맘껏 뛰어놀 수 있겠다.” “와우, 짱! 꼭 되길!!” “우리 그럼 2기 모집 오픈 수업 여기서 하는 거야?” 등등. 그리고 며칠 뒤에 담당자 홍경희 선생님으로부터 장소 사용 승인이 났다는 연 락이 왔고, 우리는 월요일, 수요일 오전 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 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복지관도 어떻게 하면 이 지역주민들이 문턱 없이 드나드는 곳이 될지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고 한다. 우리에게 신사종합사 회복지관은 그야말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었다. 대망의 2기를 모집하다 신사종합사회복지관에서 강당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2기 모집에 대한 안건이 초 읽기로 들어갔다. “우리 그럼 오픈수업으로 하는 것 어때? 우리가 하고 있는 수업 그대로, 한 사람 이 동화책 읽어주고 2인 1조로 엄마표 수업 진행하는 거 보여주면 될 것 같은데.” “그래, 그러자!!” 당초 오픈수업을 2회로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선보이면 어떨까하고 마음을 모았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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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지만, 프로그램을구상하는 과정에서 처음 해보는 오픈수업을 2주에 걸쳐 2번이나 감행하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우리에게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딱 1회만 진 행하기로 하고 대신에 혼신의 힘을 다해 뜻을 모으기로 했다. 은평 품앗이 육아 우선 오픈수업 참여희망자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 온라인 카페에 2기 멤버 모집에 대한 공지를 올렸다. 그리고 기왕 하는 것이니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수업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엄마들의 정보망으로 유명한 대규모 온라인 육아 커뮤 니티 한군데에도 오픈수업 공지 글을 아래와 같이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2012년 서울시 마을공동체 ‘은평 품앗이 육아’입니다. 지난 2012년 6월 북스타트 (생후 3~18개월의 책꾸러미 행사)를 통해 첫 만남 을 가져, 14명의 엄마들이 마음을 모아 ‘은평 북스타트 맘’이라는 카페를 개설 하고 서로 의견을 교류하며 ‘품앗이 동화책 읽어주기’를 시작으로 모임을 열었 는데요. 불볕 같은 더위 속에서도 아가들을 책과 함께 지혜롭고 밝게 키우고 싶은 열 망으로 모인 우리는 그 열정으로 서울시에서 새로 시행한 ‘마을공동체 사업’ 에 지원하게 되었고, ‘은평 품앗이 육아’라는 이름의 마을공동체로 새롭게 탄 생하였습니다. 지난 반년동안 14명의 아이들은 엄마들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담긴 책이야기 와 활동 속에서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는 지역의 엄마와 아가들이 행복한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체 안의 소통을 통해 바 르게 길러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번 2013년에 2기 어머님들과 아가들을 모집하기 위해 오픈수업을 진행합니다. 그동안 진행과정에서 저희 쪽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주 신 분들이 많았는데요. 이제야 그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하 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에도 공지합니다. 모집요건은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고요. 책을 좋아하고, 좋아하고 싶은 엄마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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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아가(생후 3~18개월)이면충분합니다. 아울러, 좋은 정보와 자료 같이 나누고 만들어가고 싶은 적극적인 마인드도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오픈 수업 일정〉 2013년 1월 31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이고요. 장소는, 신청하고 오셔야 사전 준비가 됨에 차질이 없으니 아래 링크된 카페 로 오셔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오픈수업이라 해서 굉장히 거창한건 아니고, 저희들이 늘 해왔던 수업을 어머 님들께 보여 드리고자 하는 자리입니다. 편하게 오셔서 참석하시고 오실 땐 아가들 먹을 것 잘 챙겨 오시고요.어머님 들께서 생각했던 것 보다 수준이 낮을 수도 높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함께 모여 정성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부모로서 성장해가기 위함이지요. 신청은 이번 주말까지만 받습니다. 내용 확인 후 신청 원하시면 아래 카페로 들어오셔서 가입 후 댓글 남겨주시 기 바랍니다.^^ 좋은 만남 기대하겠습니다. http://cafe.naver.com/epbookstart/315 오픈수업을 준비하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우선 그동안 했던 수업 중 괜찮았던 것들을 선별하여 최종으로 악기놀이를 선택했다. 월령 구분 없이 포괄 적으로 엄마와 아이가 함께 교감하는 시간을 갖기에 악기와 노래가 제격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집집마다 있는 악기가 무엇인지 취합하고 생수 통에 반짝이를 넣 어 흔들어서 시각과 청각을 자극할 수 있는 악기를 만들어, 오픈수업에 참여하는 모 든 분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작고 예쁜 생수 통을 각자 10개씩 모으기로 했다. 시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생수 통이 아니라, 그 통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는 발 빠르게 미리 택배주문을 했고, 또 누 군가는 주말 내내 대형마트를 돌아다녀야 했으며, 그런 줄도 모르고 동네슈퍼가면 얼마든지 있겠지 하고 넋 놓고 있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지금 마트에 그 생수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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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통을 찾았다고카톡을 통해 비상연락을 해온 다른 누군가에게 함께 구해줄 것을 부 탁해야 했다. 오픈수업은 프로그램 준비, 진행, 완료 후 오프멤버 희망자 취합 등에 있어 매우 은평 품앗이 육아 세심한 준비가 필요했다. 신청자는 스무 명이 넘었고 엄마와 아이들을 합치면 벌써 40~50명의 인원이 채워진 셈이었다. 장소와 활동 여건상 급하게 더 이상의 회원모 집은 어려워서 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바로 삭제하고 최종 리허설에 들어 갔다. 인사노래부터 자기소개하기, 동화 구연, 엄마표 수업, 다과, 모임운영규칙, 질의 응답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하고 사이사이 필요한 준비물 등을 우리가 미리 준비 하거나 복지관에 요청해서 협업하기로 했다. 꼼꼼하게 준비가 되지 않으면 자칫 오 픈수업이 엉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행사 이틀 전 날, 미리 프로그램 표를 짜 고 그에 따른 준비물 등을 나름대로 최대한 꼼꼼히 정리해서 홍경희 선생님에게 아 래와 같이 메일을 보냈다. 〈프로그램 진행 순서〉 〈복지관 협조 요청사항〉 - 정: 2013. 01. 31. 목. 오전 10시 30분 일 (총 예상소요시간: 1시간 30분 내외) -장소: 신사종합사회복지관 2층 강당 (1) 입장 전 명단체크 및 명찰 작성 부착 〈전체진행: 안세정〉 -명단에 참가체크하고 - 체 안전대비 공지 및 안내 전 입장하는 분들께 빈 명찰 (쓰레기 배출, 화장실 등) 1) 자기소개 및 인사 - 자 자기 소개하면서 노래 불러주기 각 ‘호연아~호연아~반가워요.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노래 음으로~) -싱글벙글 노래 부르면서 다함께 인사 라벨을 나눠주고 각자 스스로 ‘본인이름/ 아가이름/아가 개월 수/ 사는 곳/연락처’ 쓰고 가슴에 붙이게 해주세요. (준비물: 라벨지, 유성매직)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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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절 싱글싱글~~~~ 벙글벙글 ~~~~ (2)동영상 및 사진촬영 우리 모두 고개 돌려 샥! 협조 싱글싱글 ~~~~벙글벙글 ~~~~ -프로그램 시작되면 옆 사람과 인사해요(안녕하세요!!) 동영상 촬영고정 부탁드 싱글~~벙글~~싱글~~벙글~해 립니다. 싱글~~벙글~~싱글~~벙글~해 중간에 사진 촬영(준비물: 2) 동화구연 -효정(시리동동, 거미동동) -미정(숲속 음악회): CD플레이안효정 #1.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개사해서 부르기 #2. ‘우리 모두 다함께 ~해’ 개사해서 부르기 #3. ‘리듬 악기 놀이’ 노래 개사해서 부르기 3) 활동 마침 노래 (다리 펴서 무릎 위에 아가 올려놓고 무릎 세워, 아가와 엄마 눈 맞추며) ‘~야, 엄만 너를 사랑해, ~야 엄만 너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나는 엄만 너를 사랑해~’ 4) 은평 품앗이 육아 운영규칙 간략히 소개(총무 안효정) -5분 이내로 운영규칙 간략히 소개 5) 소식지 배포 간식과 함께 자유 질의응답 시간 6) 모두 마침-안녕!! 42 삼각대, 동영상 촬영기, 카메라) (3) 안전사고 대비 가이드 -아가들이 밖으로 나가거 나 사고가 없도록 곁에서 지켜봐 주세요. (4) 동화구연_ 시리동동 거미동동 내용 이젤 설치 (5) 악기놀이 완료 후 악기수거 -병으로 된 악기 제외 (6) 소식지 및 간식 배포 -’프로그램 6’ 진행에 필 요(준비물: 소식지, 간식) 7) 활동 희망자 명단 체크 -품앗이 활동 희망자들 체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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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 앗이활동의사 있는 사람은 데스크에서 품 명단 체크하고 가기. 7) 활동 희망자 명단 체크 은평 품앗이 육아 -품앗이 활동 희망자들 체크해주세요. 오픈 수업 전날, 난생 처음 해보는 행사로 너무나 긴장되고 과연 신청인원이 모 두 참석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서 도무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더군다나 매끄럽게 전체진행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그 속에 있을 여러 가지 상황을 예견하고 안내와 당부사항 등을 꼼꼼히 체크해서 멘트를 짜느라 이틀 전날부터 새벽 4시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리고 행사 당일에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1월 31일, 그 날 아침에 쓴 나의 블로그 일기다. 밤새 잠을 설쳤다. 결국 새벽 3시30분 기상. 몇 시간 뒤면 대망의 ‘은평 품앗이 육아’ 2기 모집을 위한 오픈 수업이 진행된 다. 그동안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여건상 무리가 따랐기에 적 당한 시점을 잡아 신입모집을 위한 오픈수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난 월요일, 최종 리허설을 위해 모였던 우리. 아가들과 신나는 노래, 동화책 읽어주기, 악기놀이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악기 만들기를 위해 지난 주말 각 자 이곳저곳 마트를 돌아다니며,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300밀리리터짜리 생수 병을 찾아 말리고 가져와서 그 안에 색종이와 반짝이를 쪼개 넣고. 각자 아이들을 업고 안고, 누군가는 악기놀이 프로그램 진행을 구상하고, 누 군가는 재밌는 동화구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누군가는 그런 엄 마들 때문에 방치된 아이들을 돌본다. 서로의 할일들을 체크하면서, 긴장의 빛으로 해나가는 모습들. 칭얼거리는 아이를 업고 안고서라도, 누구 하나 손 놓지 않고 함께 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쁜 엄마들 사이에서 밝게 놀아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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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종일 카톡이바빴다. “누구야~우리 같이 만나서 따로 동화구연 연습 좀 하자!!” “얼굴 빨개진 것 티 안 나게 내일 얼굴에 파운데이션 두껍게 바르고들 나오세요.” “귀 빨개지는 건 어떻게 해?” “머리 내리면 되지~” “아휴, 시선 집중 무서워~” “자그마치 눈이 몇 개야? 까악~우리 멤버들까지 총 120개가 넘잖아!” “정말이네?ㅠㅠ” 이제 곧 이 ‘떨림의 향연’이 시작된다. 오전 10시30분에 있을 우리의 오픈 수업. 순식간에 신청자가 20명이 훌쩍 넘어 깜짝 놀라, 품앗이 육아 컨설팅을 해주셨던, 사단법인 공동육아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만큼 지역 엄마들의 욕구가 간절했 다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혹자는 폄하할지도 모를, ‘함께 하는 육아, 같이 키우는 아이’에 대한 새로운 사명 감이 생겨난다. 과연 우리는 이번 행사를 통해 얼마만큼 성장하고 서로에게 힘이 될 지, 또 새로 오시는 분들은 우리를 통해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될지, ‘즐거운 긴장과 설렘’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그들의 열정, 2기 모집 대성공 2기 모집을 위한 오픈 수업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행사 시작 1시간 전부터 모인 1기 멤버들은 분주하게 자신이 할 일을 체크하고 준비하면서 기대를 품고 이른 아 침부터 아가를 안고 달려온 엄마들을 기쁘게 맞이해주었다. 총 25명 신청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20명이었다. 다행히 복지관에서 아이들의 안 전과 전체 프로그램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보조해 줄 인력을 2~3명 투입해주 셔서 행사를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오픈 수업을 모두 마치고 공지사항을 알린 후, 활동 희망자들은 미리 준비된 출석부의 본인 이름에 체크를 하고 가도록 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결과!! 참석자 20명 중 무려 19명이 활동의사를 밝힌 것이 다. 오픈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마치 연극무대에서 내려온 배우들처럼 서로 어깨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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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를 토닥이고,하이파이브를 하고, 서로에게 미소를 한껏 띠여 보내면서 너무나 수 고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오픈수업은 소식지 발간 이후로 우리 모두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만들어낸 최고의 걸 은평 품앗이 육아 작품이었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오롯이 우리 스스로 머 리를 맞대, 하나하나 닦아 만들어 낸 작품. 우리의 모습을 통해 육아 에 힘들고 지치기만 했던 다른 엄 마들에게 한줄기 새로운 희망을 준 우리가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엄청 ▲ 오픈 수업하는 우리 모습 난 희열과 성취감으로 우리는 모두 상기되어 있었다. 이 날 우리 카페에 올라온 오픈수업 후기다. “오늘 너무 재미있었고요~ 뭔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요. 수고들도 많으셨고, 대단들 하십니다.” “으흐흐흐~이렇게 감동적인 게 정상인가요?ㅋㅋ 이런 모임 있음 진작 왔을 것을 이제야 알아서 서운하네요.ㅜㅜ” “문화센터는 그저 그랬는데 앞으로의 활동 기대만발입니다!” ▲ 오픈 수업 후 기쁨과 환희에 찬 우리들 모습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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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않은 평범한, 육아만 하는 엄마들이었지만 그날의 우리는 마치 이전의 나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 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2013년 마을공동체로 재선정 오픈 수업에 참여한 후 활동의사를 밝힌 사람들 외에 우리 모임을 주변에서 소개받 고 참여를 희망한 사람들까지 합류하게 되어 2기 모임은 총 21명으로 새롭게 출발 하게 되었다. 기존의 1기 멤버들은 그 모둠대로 모임을 진행하고 새로 들어 온 멤버 들은 아이들 월령별로 2개의 반으로 나눠서 진행하기로 했다. 다들 어찌나 설렘과 기대, 열정으로 뭉치는지 그날 이후 우리 온라인 커뮤니티가 연일 후끈후끈 달아올 랐다. 모임이 있던 날은 어김없이 모임후기가 올라오고 사진들도 즐비하게 업데이 트 되었다. 새로운 모임에 융합되면서 함께 아이를 키우는 공감과 이해의 즐거움을 그들은 한껏 만끽하며 신나했다. 2013년 2월, 2013년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이 공고되었다. 드디어, 2013년 마을 공동체에 재도전할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마을공동체 지원 양식을 다운 받아 온라 인 커뮤니티에 올린 후 예산을 제외한 모든 공란을 전 회원이 아이디어를 모아 양식 을 작성하고 모둠별로 최종안을 만들어서 그것을 다시 취합한 후 마지막 지원서를 올리기로 했다. 우리가 작년에 그랬듯이, 다들 어리둥절하고 힘들어하는 모양이었 지만 그래도 마을공동체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임을 인식하고 각 반의 반장들 이 최종 작성해서 정해진 날짜에 맞춰 카페에 업데이트 해놓은 모습을 보고 매우 흡 족했다. 작년에 이미 작성을 해봤던 1기는 올해 다시 봐도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이 역력했 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혼자서 하는 것보다 다 같이 만나서 함께 결론을 도출 하는 것이 빠르다는 점을 익히 아는 우리는 모임날 함께 작성해서 최종 본을 만들어 냈다. 최종 3개의 안을 가지고 내용을 모으고 예산을 짜서 지원을 하고 선정결과를 기 다렸다. 작년에는 인큐베이팅으로 10~12월 3백만 원의 지원을 받았고, 그 때보다 는 훨씬 많은 인원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성장했으므로 선정은 당연히 될 것이고 예 산도 넉넉히 받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서류를 접수하고 서울시와 은평구청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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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에서 현장조사를나온 후 결과가 발표되었다. 결과는 2013년에도 마을공동체로 선정!!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뒤따랐다. 우 리의 기대와는 달리 작년대비 훨씬 적은 예산을 지원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년보 은평 품앗이 육아 다 예산사용기간이 훨씬 더 길고 인원수가 훨씬 늘었음에도 고작 4백만 원의 예산 이 책정된 것이다. 조금은 억울하고 이해가 안가는 마음이 들어서 가만히 선정결과 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선정공고문을 제대로 확인해보니 선정된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었 다. 예산금액을 떠나서, 우리가 지원단체 32개 중에서 단, 7개 선정단체 안에 든 것 이었다. 말 그대로 무려 25개의 단체가 재심사 대상이거나 불합격처리가 되었다. 더군다나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는 꿈나무 도서관과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을 번갈아 사용하며 정확한 거점이 없음에도 선정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 같았다. 예산은 둘째 치고, ‘서울시가 선정한 마을공동체’로서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에 참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회원들에게 알리니 회원들도 모두 기뻐하며 예산이 적게 책정된 것에 대한 불만은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이런 때는 항상 생각한다. 리더는 먼저 깊게 생각하고 설득하며 격려할 줄 알아 야 팀을 꾸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쨌든 2년 연속 마을공동체로 선정된 것 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큰 성취였다. 드디어 우리만의 전용공간이 생기다 신사종합사회복지관과 꿈나무 도서관 두 개의 장소를 원활히 사용하고 있는 우리였 지만, 언제든 맘 놓고 모일 장소에 대한 목마름이 가시지 않았다. “언니, 우리 다 같이 모여서 애들 풀어놓고 수다 떨고 맛있는 것도 나눠먹을 장소 있으면 진짜 좋겠어요.” “장소만 있으면 우리 애들 어린이집 보낼 필요 없이 돌아가면서 어린이집처럼 보 고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진짜 나도 그런 생각 했었어. 우리 안에 어린이집처럼 돌볼 수 있는 곳만 있으면 맘 놓고 직장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 어차피 일 안하고 애 키우는 엄마들이 같이 애 봐주면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믿고 맡길 수 있으니까 너무 좋을 텐데 말이야.”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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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월 한차례씩 진행되는전체모임 때 1기 멤버들이 김밥 한 줄씩 앞에 놓고 먹으 며 나눈 대화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복지관 담당자 홍경희 선생님이 “어떻게 5층에 방 하나 열어달라고 말씀 드려볼까요?”라는 말을 건네 오셨다. 우리는 정말 그게 가 능한 일이냐며 신나했고 그럼 너무나 좋겠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있은 지 불과 2~3개월 만에,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우리만의 전용공간을 신사종합사회복지관 5층에 열 수 있게 되었다. 지속적 으로 열심히 모임을 진행하고 성장해가는 우리 모습이 복지관 관장님 눈에도 좋게 보였던 것이다. 기존에 복지관 이미지는 지역주민들에게 장애인이나 노인들 또는 저소득층 아이 들 정도의 특정인에게만 이용되는 곳으로 인식되었었는데 우리 멤버들이 이용하면 서 복지관 내에 도서관 활용도 늘고 엄마와 아이의 왕래가 잦아들면서 활기가 돌았 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복지관측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우리처럼 주민이 스스로 자조 하는 모임을 만난 것이 복지관측에서도 매우 큰 행운이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마 을공동체로 대외활동을 하면서 다른 단체를 만나다보면 장소는 아주 훌륭하게 마련 되어 있는데 주민 모임을 유치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복지관의 전폭적인 지지로 2013년 6월 11일 화요일, 은평 품앗이 육아 전용공간 ‘육아사랑방’을 오픈하게 되었다. 이 날 그동안 우리 모임을 위해 곁에서 도움주신 어린이도서연구회은평지회 운영진 분들과 우리에게 지속적인 컨설팅과 조언을 아 끼지 않아주셨던 사단법인 공동육아측의 이현숙 팀장님과 곽영선님도 오셔서 축하 해주셨다. 이 날, 우리는 우리모임이 시작된 지 1년이 됐음을 기억하며 지난날을 함께 회상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품앗이 동화책 읽기모임으로 시작해서 마을공동체 로 선정되기까지의 일, 원활한 모임을 위한 장소를 얻기 위해 추운겨울 이곳저곳을 누벼야 했던 일, 오픈수업으로 새로운 멤버들을 영입한 일 등등 모든 것이 주마등처 럼 지나갔다. 2012년 11월 말에 카페에 꿈꾸는 다락방 카테고리에 올린 첫 번째 버킷리스트 ‘사 랑방 만들기’가 고작 6개월 남짓의 시간 만에 이뤄진 역사적인 날이었다. 우리 1기 멤버들은 지난 날 카페에 올린 그 글을 보면서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개인적으로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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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이날 개소식은내게 결혼식 다음으로 뜻 깊은 의식이었다. 우리의 시작을 잘 알고 있는 주변 분들의 축하와 격려가 너무나 가슴 벅차고 감사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지 난 1년은 지난 삶 중 가장 길고, 힘들고,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은평 품앗이 육아 5. 우리의 앞날 생각해보기 리더로서의 고충 2012년 처음 마을공동체로 선정된 직후, 남편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아 속상하다는 것을 핑계로 나는 강릉행 기차에 홀로 몸을 실었다.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원하는 일 부터 본격적인 활동으로 많이 힘들고 지쳐있는 상태에서 좀 유치해보이지만, 그나 마 생일로 기분전환을 좀 하고 싶었는데 남편마저 바쁘다고 무심하게 깜박해버리자 어느 때보다 상심이 컸었다. 어딘가의 ‘장’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공동체지만 그곳의 ‘대표’라는 자리가 무척 부담되었다. 하나하나 새로운 일을 꾸려가면서 리더인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 하나 도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처음 해보는 마을공동체인 것은 나 말고도 우리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므로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싶다. 리더로서 가장 힘든 것은, 앞서 말했듯이 다들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다 보니 맘 놓고 일을 분담하 기가 어려웠던 점이다. 일을 분담한다고 해도 아이가 아프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 게 미뤄지기 마련이었다. 당시 나는 크지 않은 돈이지만, 정부 예산을 받아 일을 진행하는 것이 너무나 어 렵게 느껴졌다. 행여 잘못 되서 문제가 되면 어쩌나 하는 고민에 휩싸여 쉽게 결정 내리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대표로서 최종결정을 모두 내가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은 실로 컸다. 결국 그래서 하나하나 세심하고 꼼꼼하게 내 손으로 하는 일이 늘어갔고 그럴수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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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 나는 지쳐갔다.하지만 함께 아이들을 키우면서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내 자신에게 동기부여 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모임이 원활히 돌아가게 하기 위해 장소 담당자와 수시로 연락을 해야 했고, 수 업을 담당하는 선생님과도 수시로 모임 인원을 체크해서 알리며 의견을 주고받아야 했으며, 모임이 저조하면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방안을 모색함과 동시에 불시에 메 일이나 전화로 들어오는 지자체의 서류요청과 미팅에도 언제든 달려가야 했다. 바다를 보면 기분전환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바다에 도착하고 보니 외로움과 슬 픔이 한없이 밀려들어 왔다. 멤버들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푸념이나 낙 담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을 나 혼자 짊어지고 꾸려가야 하는 이 모든 상황 앞에서 나는 무력하게 삶을 연명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모임을 끌어가면서 ‘그 냥 이대로 내 존재자체가 증발해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멤버들 모두 아이를 키우느라 힘든 상황인데 ‘여러분, 나 지금 힘들어요’라는 말 을 감히 건넬 수 없었다. 서울에서 강릉까지의 거리가 너무 먼 탓인지 내가 보고 싶 었던 청량한 바다는 온 데 간 데 없고 칠흑 같은 밤바다만이 어두운 내 마음을 더욱 어둡고 암울하게 하며 저 혼자 철석이고 있었다. 바다에게 바란 위로는 물거품이 되 고 뒤돌아서서 하룻밤 머물고 갈, 숙소를 찾았다. “방 있어요?” “혼자 왔소?” “네.” “방 없어요!!” 민박집 주인들은 모두 혼자 여행 온 나를 기피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자살여행을 온 사람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마음이 울적한데 숙소도 구하기 힘드니 몸도 함께 지쳐갔다. 겨우 방을 구하고 들어가 앉았는데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떼어 내고 나온 나의 젖이 꽉 차오르기 시작했다. 혼자 앉아서 돌처럼 굳은 젖을 짜 내고 생전 처음 홀로 떠나온 여행에서 행여 누가 문을 따고 들어올까 싶어 여관방의 문고리만 3시간쯤 쳐다보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기차역으로 가서 첫 기차를 타고 서 울로 돌아왔다. 여행은 내게 아무것도 선사해주지 못한 채, 도리어 나의 몸과 마음을 더욱 만신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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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창이로 만들어버렸다.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웃음이 난다. 역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제일 뜻 깊은 추억으로 남는다고 했던가. 지금에 와서는 ‘내가 그 때 그렇게 힘들었지’ 하면서 미소 한번 머금을 수 있을 만큼 가벼운 농담거리가 되 은평 품앗이 육아 었으니 말이다. 마을공동체 대표로 활동하면서 역사의 뒤안길에서 국가를 살리겠다고 온 몸 바 쳐 정치를 하시던 분들이 왜 나라 일에는 미친 듯이 나서면서 가정은 엉망으로 했다 고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고민 등 여러 가지 고민들에 휩싸이면서 이곳저곳에 가서 자문하고 전화통화를 하고 교육과 견학을 찾아다니면 서 집안일은 어느새 뒷전이 되고 살림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친정아버지가 옆에서 큰 아이를 픽업해주시고 내가 힘들 때 잠이라도 한 숨 자라고 두 아이를 봐주셔서 에너지를 모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듯, 품앗이 육 아로 야심차게 함께 키우겠다고 한 나의 아이는 늘 나와 함께였지만 그저 몸만 함께 일 따름이었으므로 그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일을 진행하면서 얻게 되는 소중한 인연들이 너무 좋았다. 우리 멤버들은 물론, 어린이도서연구회 석은진 선생님, 사단법인 공동육아의 이현숙 팀 장님과 곽영선님,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의 홍경희 선생님 등등 이 일을 통해 좋은 분 들을 무척 많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또, 멤버들과 조금씩 뜻을 맞춰가면서 얻는 희 열과 성취가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오랫동안 품어 왔던 ‘품앗이 육아’에 대한 비전과 가치가 있었기에. 사실은 그래서 더 어렵게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우리 멤버 모두가 편안하 게 활동할 수 있는 모임으로만 국한되어서 고만고만하게 진행됐으면 될 일들을 나 는 좀 더 체계적으로 꼼꼼히 만들어 더욱 확장하고 성장시키려 애썼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맨 처음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을 때처럼 훗날 우리의 모습이 작지만 뜻 깊은 역사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선례가 되고 함께한 우리 모든 멤버들이 단순히 육 아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 속에서 새로운 자아로 성장해서 이 단체의 활동과 노하우 를 가지고 다시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모두 알아줄 리 만무하고 또 그것이 그들이 진정으로 바 라는 것인지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이는 것은 여러모로 서로에게 힘든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가치와 비전은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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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변함이 없었기에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멤버들 역시 그런 나의 그 가치와 비전에 조금씩 호응해주었기에 이만큼 지속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나는 감히 확신한다. 지금의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이자 마포에 있는 성미산 마을에서 마 을활동가로 20년 가까이 활동한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은 말했 다. “결국 마을은 좋아서 하는 놈이 하는 것이다”라고. 나 역시 이 사실을 시간이 흐 를수록 깨닫는다. 분명 힘든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모든 일이 좋아서 견딜 수 있었 고 지금 우리 속에도 힘들지만 이 모든 과정이 좋아서 견디며 하나하나 스스로 움직 이며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내려놓아야 할 시간 “세정 언니 눈에 띄면 안 돼. 그럼 일하게 되니까.” 1기 멤버 중 한명이 한 말이었다. 한 사람의 말이었지만, 문득 그 말은 우리 1기 멤버들의 마음을 대표하는 이야기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어느 순간 정말 나는 일을 만들기 위해 회의를 주도하고 각자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업무를 분담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뒤에 함께 일을 하고 있던 총무 효정언니에게 사임의사를 밝혔 다. 같이 맘 맞추며 새벽까지 우리의 앞날을 고민하면서 힘을 내던 언니도 그러면 같이 그만두겠다고 했다. 이제 2기 멤버들이 어느 정도 활동에 적응했고 지금 가지 고 있는 활기로 새로운 모임을 꾸려가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에 우리는 뜻을 모았다. 각반 운영진을 모은 회의에서 이 사실을 미리 알렸고, 그들도 그동안 고생 많았 다면서 알겠다는 반응으로 동의해줬다. 그리고 우리 전용공간 개소식 행사직후 새 로운 회장과 총무를 뽑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회원들에게 당일 날 급작스런 통보를 할 경우 많이 당황할 수 있겠다는 판단 하에 운영진에게 뜻을 알린 그날 밤에 이 사 실을 미리 카페를 통해 모든 회원들에게도 알렸다.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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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사랑하는 은평품앗이 육아 회원님들~ 즐겁고 행복한 금요일 밤 보내고 계신가요? 은평 품앗이 육아 여러분에게 중요한 이야기 하나 올리려고 이렇게 늦은 시간 글을 씁니다. 흠…….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씀드려야할까요~ 어느덧 은평 품앗이 육아 모임이 꽉 찬 1년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지난 1년은 마치 엄마 뱃속에서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가가 돌이 되 어 스스로 걸어 다닐 때까지의 인생의 가장 큰 성장기와 같은 뜻 깊고 의미 있 는, 격동의 시간이였습니다.^^ 1기 북키북키 멤버들과 함께 숨차게 달려온 한 해가 아니었나 싶은 데요~ 어 느덧 14명 남짓으로 시작한 인원이 40명 가까이 되었네요.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엄마와 아가들이 함께 하게 된 것은, 참으로 기쁘면서 도 또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합니다. 홀로 육아의 통로를 지나고 있는 엄마들의 아픔이 우리 모임의 성장계기가 아 닐까 싶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외롭고 심심하다고 해서 누구나 박차고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용기 있게 이 길을 나서준 여러분의 발걸음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그런 여러분이 더욱 즐겁고, 행복하고, 원활한 소통의 장으로 안내될 수 있기 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와 안효정 총무님은 이번 개소식을 마지막으로 회장과 총무직을 사임하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 2기 은동이 멤버들이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개 월의 활동모습을 돌아보아, 1기의 바통을 2기에 이어줄 시간이 되었다는 판단 하에 심사숙고하여 총무님과 함께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지금까지 여러분이 믿고 따라주신 운영진 모임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마쳤으며, 이 부분에 대해 모두 깊이 이해하고 동의해주신 바, 여러분께도 개소식 전체모임 전에 말씀드리는 것이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는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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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법인 것 같아카페를 통해 미리 알립니다. 많이 놀라셨나요?^^;; 지난 1년은 무에서 유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강한 연대’의 시기 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느슨한 연대’로 숨을 좀 고르며, 즐겁게, 신나게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임원진 교체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임원과 운영진을 구성한 후, 저와 총무님은 6월 한 달 동안 업무인수 인계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떠나는 것은 결코 아니고요~ㅋㅋ ㅋ 저와 총무님 모두,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실히 임할 것입니다.^^ 아무 쪼록, 여러분들의 많은 협조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임원진과 운영진 구성은 지난 3개월 동안 열심히 활동해준 2기 멤버들이 중심 이 됐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이미 느껴서 아시겠지만, 공동체로서의 3개월은 충분히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소식 행사 3부에 임원진 투표에 들어가겠습니다. 모두 미리 마음에 준비하 시고 임해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부족한 제 글이 어느 한 사람에게도 오 해소지가 되거나 당황스런 이야기가 되지 않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곳에 모여 연을 맺어주신 여러분, 모두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여, 2013년 6월 11일 화요일 개소식 후 회장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 모임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가진 똑순이 2기 멤버 승연맘 현주씨가 새 로 회장 자리를 맡게 되었고, 이전에 법무 회계 팀에서 일해 본 경력이 있다던 도연 맘 서희씨가 총무로 그 역할을 기꺼이 담당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 날 감동이었던 것은 개소식이 있기 열흘 전에 남편을 갑작스럽게 하 늘나라로 보낸 도연맘 서희씨가 우리 곁에 다시 와서 이곳에서 바쁘게 자신의 삶을 닦아나가고 싶다는 뜻을 알리며 총무 일을 하겠다고 자처해준 것이었다. 우리 모두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럽고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 망설 이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용기 있게 앞장서서 우리 안에 자신의 재능을 펼쳐주 는 그녀의 모습은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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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어떻게 성장해갈 것인가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멀다. 그동안 초석을 다졌다면 다음에는 어 은평 품앗이 육아 느 쪽으로 방향을 잡고 길을 내느냐가 우리의 숙제다. 하지만 성장의 방향을 잡는데 있어 멤버들의 필요와 욕구가 가장 중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 몇몇 회원들에게 의견 을 물었다. Q. 앞으로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떻게 성장하기 바라시나요? 호연맘 강은자: 육아로 힘들어하는 한 엄마가 이 모임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의 정화를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정을 나눌 수 있는 은평 품앗이 육 아가 되기 바란다. 승연맘 배진윤: 너무 크고 조직화 되어 틀에 맞춰 성장하기 보다는 엄마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소소한 모임이 되기 바란다. 내 아이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엄마들의 힐링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은찬맘 장명정: 지금보다 나아야 한다. 센터를 구축한다던가, 대안학교를 세우던가 해야 하지 않을까? 또, 엄마들을 위한 직업훈련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태희맘 안효정: 우리가 마을을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모여서 아이를 함께 키우 며 아이가 자라남과 동시에 우리도 자라고 있다. 내 아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준비 중인 방과 후 수업 등을 시작으로 지역아동센터등과 연결하여 재능기부 및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은평구 전체에 점조직처럼 넓게 확장 분포되어 은평구 전 체가 마을이 되는 것어서 은평 품앗이 육아의 분신이 생기면 어떨까 싶다. 이렇듯 한 공간에서 함께 활동한 사람들이지만 각자 원하는 성장방향이 천양지 차이다. 하지만 여기서 공통점이 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힐링을 원한 다. 작게는 마음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학교를 만들든 지역 안에서 큰 조직으 로 성장해 가든 그 모든 것들 안에는 모두 엄마들의 힐링이 내재되어 있다. 왜냐하 면 성장도 우리가 새로운 일들을 성취하며 느끼게 될 또 하나의 짜릿한 힐링일 테니 말이다. 대부분의 영유아를 키우는 엄마들은 24시간, 365일 아이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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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어 하느라 자신을돌볼 틈이 없다. 자신이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등을 잊은 채 서서히 그만의 빛을 잃어가게 된다. 그렇다고 육아가 무가치한 일이라 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세상 어떤 일보다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 ‘아이를 키우는 일’ 이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하지만 엄마들은 그러한 당위성 이전에 ‘쉼’이 필요하다. 그리고 엄마들의 행복이 곧 아이의 행복으로 전이된다. 단언컨대 엄마라는 이름으로 육아를 해나가는 일은 세상 어떤 일보다 버겁고 힘 들다. 그리고 그들은 육아를 하는 엄마들이 어디서도 얻지 못하는 희로애락을 이곳 에서 나누고, 또 새롭게 배우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돌보겠다는 생각일리는 없다. 이미 엄마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덧입혀진 그들은 육아와 ‘더 나은 내 아이 키우기’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그 속에서 자 신의 즐거움을 찾기 바란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힐링과 아이들을 위한 배움이 곧 우리의 성장 방향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기준을 세우고 하나씩 해 나가다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다음은 지난 8월 23일, 우리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혹시 메이크업 지도나 강의 하실 수 있는 분 있나요? 제가 너무 너무 듣고 싶 어서요.ㅋㅋㅋ 문화센터에 메이크업 강좌 있는데 밤 8시부터입니다. 흑흑~ 신부화장 이런 게 아닌 본인 스타일에 맞는? 혹은 전반적인 화장법(특히 눈 화장) 강의 가능하신 분 있나요? 있다면 수강생 모아보고 강의료 한 번 절충 해 보아요.” 메이크업 강의는 결혼 전에 방송국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했던 다인맘 의 혜씨가 해주기로 했다. 우연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전에 방송국에서 메 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메이크업 강좌가 필요하다는 의견 이 나오자 2기 회장인 현주가 발 빠르게 중간에서 시간, 장소, 인원, 수강료 조율에 들어갔다. 한동안 육아에만 전념하던 의혜씨는 처음에는 주춤했지만 이내 강의요 청을 수락해줬다. 강의를 해야 하는 의혜씨가 다인이를 맡겨야 해서 주말에 하기로 하고 수강희망자 중 아이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현주씨가 맡아주기로 했다. 능동적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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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으로 중간에서조율하고 솔선수범하는 2기 회장 승연맘 현주씨가 정말 든든하고 고 마웠다. 앞으로 그녀의 성장이 가히 기대된다. 드디어 지난 10월 5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에 ‘동안 메이크업 1일 특강’을 열 수 은평 품앗이 육아 있게 되었다. 일인당 1만 원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들은 수업은 그야말로 알차고 즐 거운 시간이었다. 자, 그럼 그날 카페에 올라온 메이크업 강의 후기를 들어볼까? 휘연맘 안세정: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성아보다 자상하고 따뜻한 카리스마로 열정적인 강의를 펼쳐주신 황의혜 쌤♥ 감사합니다. 동안 메이크업 강좌 ppt까지 준비해주시고 정말 감개무량이었답니다! 동안 메이크업 눈화장은 아랫부분에 검은 라인이 아닌 하얀색으로 하는 거라 고 신나게 가르쳐줬는데 점막까지 깜장으로 꽉 채우고 멍 때리고 있던 저를 용서 하세요. 덕분에 저의 긴 턱을 없애버리는 방법과 아이라인 잘 그리는 법, 입체적인 얼 굴표현을 위한 하이라이트 주는 법 등 너무 잘 배웠습니다. 그 외에도 같이 얼 굴 두드리며 친해진 현옥, 지영씨도 너무 반가웠고요~~ 원활한 수업을 위해, 정작 자기 아이들은 시엄마께 맡기고 수강자 아이들 돌 봄에 최선을 다해준 살신성인 회장님, 너무 감동이었습니다.ㅠㅠ 재능기부 해주신 의혜쌤께 다시 한 번 감 사드리며 오늘의 수강후기를 마칩니다.^^ 준호맘 석현옥 :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 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내 안의 다른 모 습을 봤네요 ㅎㅎ 그런데 수업이 지난 지 금은……흑흑 다시 원래대로 하고 나왔네 요.ㅋㅋ 내일은 다시 동안 메이크업으로 다시 도전해봐야겠어요^^ 의혜 언니 너무 고마워요~~ 현주 언니도 고생 많았어요 ^^♥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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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이크업 강의동안 아이들 돌봄 해주는 회장님 모습 ▲ 선생님의 1대 1 지도 받고 메이크업 한 후 기분 좋은 우리 모습 ‘은평 품앗이 육아’가 있는 이유는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을 ‘공유’하기 위 함이다. 가지고 있는 재능, 지식, 정보, 생각 등을 될 수 있는 한 공유하고 나누면서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것. 그 속에서 엄마들은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잃지 않고 빛낼 수 있으며 다시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런 행복한 엄마 아래 자란 아이들도 스스로 꿈을 키우는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믿 어 의심치 않는다. 이는 부모의 자존감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상속된다는 의미이기 도 하다. 이 부분에 대해 더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 모임의 특징 중 하나는 누 구도 ‘휘연이 엄마’, ‘주아엄마’, ‘승연맘’ 등으로 호칭하지 않는다. 맨 처음 카페를 만 들면서 닉네임을 ‘휘연맘 안세정’이라는 식으로 아이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붙여서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아이의 엄마이긴 하지만 내 자신을 잃지 말기 바라는 마음에서부터였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만나면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아마 내 아이의 어린이집이 나 유치원 친구엄마들과 인연을 맺은 엄마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실 제로 나는 우리 큰 아이 친구 엄마들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냥 그녀는 ‘○○엄마’ 이며 ‘○○엄마’로 불릴 뿐이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다만, 우리 모임에서만큼은 ‘내 이름이 불린 게 언제였지?’라는 슬픈 자기분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물론, 이름 하나가지고 뭘~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냥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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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내 개인적인생각일 뿐이니까. 이렇게 우리는 우리 안에서 자신의 재능을 찾고 그것으로 새로운 즐거움을 창조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배우면서 이 길을 닦아가고 은평 품앗이 육아 있다. 지속적인 의논과 협의 1기 북키 멤버들과 질리도록 했던 회의와 토론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물론, 처 음에는 우리 14명의 1기 멤버들이 전부였고 운영진이 따로 구성되어 포지션이 나뉜 것이 아니라서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3개의 모둠에서 각반 반 장과 부반장이 있고 총괄하는 회장과 총무로 운영진이 구성되어 있어서 매번 심도 있는 회의가 모임에서 진행될 필요는 없게 되었다. 각반의 반장과 부반장은 모임이 운영되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체크하고 그 모임이 활동이 차질 없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리드하고, 회장과 총무는 전체 모둠 을 보면서 월별 해야 하는 행사 및 마을공동체로서 활동에 필요한 것들을 재정비하 고 각반에서 나오는 의견 등을 수렴하고 공지하여 의견을 조율하는 일을 하면 된다. 운영진 회의는 월 2회로 한 번은 전 회장과 총무, 그리고 현 회장과 총무 네 명이 모여서 하는 임원진 회의이고 한 번은 운영진 전체 회의이다. 이렇듯 회의와 토론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가 공동체로 함께 갈수 있는 소통의 방법이기 때문 이다. 문제가 있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 그에 대한 안건을 놓고 함께 의견을 조율하고 결정된 사안을 각 모둠 회원들에게 명쾌하고 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바 로 이 운영진의 역할이다. 이 운영진 회의 때 운영진 모두가 의견이 합일되지 않은 채 결정이 되고 각 모둠 으로 의견이 전달될 때는 많은 오해와 불만을 양산할 우려가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안건에 대해 회원들에게 전달을 할 때 각반의 리더들이 그들을 확실히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영진 회의 때 어떤 문제와 해법에 대 해 충분한 논의가 있은 후에 마무리가 되어서 모두 납득이 되었을 때 결정이 되어야 한다. 가끔 어떤 회원들은 운영진이 무슨 회의가 그렇게 많으냐고 묻곤 한다. 하지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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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반이 순탄하게운영되기 위해 해야 할 이야기는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최근에는 꿈나무도서관 이용에 있어 도서관 특성상 정숙해야 하는 분위기에 우리 아이들의 활동이 담당자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서 서로 불편이 야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 했다. 자라면서 활동량이 많아지는 아이들은 비치된 화분의 흙을 파서 여기저기 흩뿌 리기도 하고 계단을 마구 오르면서 정신이 없다. 이런 상황이 자꾸 발생될 때는 장 소 담당자와 우리와의 대화가 필요하다. 서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등의 구분을 짓고 의견을 맞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안에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 하며 그 후에 그 분들과 최종 미팅을 할지 전화통화로 이야기를 나눠볼지를 결정하 게 된다. 또, 이런 문제가 각반마다 느끼는 고충인지 모두 확인을 하고 해당 문제점 들을 모두 체크해서 미팅을 해야 한다. 인원과 모둠이 많아지면서 하나의 문제가 단 순하게 마무리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는 육아사랑방이라는 큰 과업이 있다. 정말 원해서 열기는 했지만, 막상 열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활용이 되고 있지 않아서 골치다. 무 엇보다 육아사랑방 이용을 좀 더 시스템화해서 자유이용시간이나 문화센터처럼 수 업을 하는 시간 등을 만들어 봐도 좋을 듯한데 뭐든 처음이다 보니 그 모든 일을 시 작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그토록 바라던 우리만의 전용공간이었고 힘들게 다함께 힘을 합쳐 조성한 공간 이기에, 잘 관리하고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모색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다. 물론, 현 재로서 우리가 모이고 싶을 때 모이고 모일 장소가 없을 때 모일 수 있는 용도로 충 분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 안에 큰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방과 후 수업이나 현재 우 리가 하고 있는 엄마표 수업을 단기수업으로 지역 엄마들에게 이 공간에서 오픈해 보면 어떨까 하는 방안 등을 생각 중에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운영진 회의를 통해 결 정되고 각반에 알린 후 적정한 재원을 배치해서 실행하게 된다. 그들과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조건 이렇게 마을공동체처럼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 요하다. 개개인의 필요와 문제점 등을 파악해서 그것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새로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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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운 대안을마련하고 진행해감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 해결해가면 좋을지에 대한 최 종결정이 그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은평 품앗이 육아 멤버들은 어떤 리 더를 원하는지 또 리더로 활동한 나로서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리더라면 어떤 자 은평 품앗이 육아 질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멤버들이 바라는 리더의 조건 을 먼저 들어보기로 하자. 2기 멤버 윤서맘 김지현: 리더의 조건이라면, 결단력이랑 추진력이 있 어야 한다. 내가 운영진을 해보니까, 의견은 많이 나오는데 진행 시키는 것이 참 어려운 것 같더라. 리더에게는 이런저런 아이디어 속에서 진짜 필요한 것 을 집어내는 결단력과 그것을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는 추진력이 필요하다. 또 하나!! 시간이 필요하다. 리더로 일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3기 멤버 아영맘 김현숙: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전체를 휘어잡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겠다. 1기 멤버 승연맘 배진윤 : 리더에게 모든 일을 일임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 면서 미안한 마음이 생기긴 하지만 그래도 리더는 리더니까 그 모든 걸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리더는 엄마 같은 사람이다. 우리 모임에서는 능력보다는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1기 멤버이자 전 총무 태희맘 안효정: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에서 리더는 미 친 듯이 하고 싶은 자가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부수적으론 시야가 넓고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사람이여야지만, 하고 싶어 미치겠는 1인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다. 1기 멤버 호연맘 강은자 : 넓은 마음을 가진 자, 헌신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마 우리 회원들이 생각하는 리더의 조건이 진짜 리더의 조건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리더였던 내가 그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조건’을 낱낱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첫째, 솔선수범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공동체가 잘 되기 위해서는 각자 할 일을 주고 무임승차 없이 가야 한다고는 하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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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 실상은 그렇게되기가 힘들다. 이 일이 할 만한 가치가 있고 내 스스로 나눌 수 있는 역량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임무가 주어진다면 그저 도망가고 싶거나 모 임에서 탈퇴하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기 마련이다. 그때 상황을 빠르게 간파하고 제 일 먼저 솔선수범을 해주어야 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이다. 모임을 끌어가다보면 내가 왜 이런 일까지 일일이 다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마 련이고, 그런 일들을 리더가 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로 인해 상처받기도 한 다. 그러나 열 가지 일 이상을 리더가 스스로 먼저 할 때 회원들은 힘들지만 한 가지 라도 해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한 가지’는 뛰어 난 리더의 ‘열 가지’보다 훨씬 강력한 힘으로 발현된다. 결국, 리더의 열정과 솔선수 범만이 회원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며 리더의 그런 헌신과 노력이 있을 때에만 회원 들에게 리더의 방향성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어떤 일이 있어도 화를 내선 안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나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단지 ‘엄 마’라는 하나의 공감대로 뭉쳤다. 따라서 다들 생각의 기준과 상식이 전혀 다르다. 내가 A라고 말해도 B~Z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때 화를 내 게 되면 모든 일이 말짱 도루묵이 된다. 내 뜻을 전혀 이해를 못하거나 내 뜻대로 움 직여주지 않더라도 절대로 화를 내서는 안 된다. 먼저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하 는지 어떤 배경에서 그런 생각과 행동이 나오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이해를 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의외로 내 생각이 잘못 된 경우도 종종 나온다는 사실 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경청은 하되 결정은 단호하게!! 앞서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만큼 말도 많다. 불만과 요구사항 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때로는 벅차고 힘들 때가 있 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중한 하나의 인격체이지만 리더 한사람에게 깨알같이 쏟아지는 그들의 의견은 실로 버거운 문제이다. 이때, 리더는 경청하고 깊게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아주 사소한 상황과 문제라 할지라도 그 개인에게는 큰 문제일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하지만 여기서 리 더에게 필요한 것은 전체를 보는 눈이다. 개인의 이야기는 들어주고 공감하되 그것 에 쏠려서 개인의 의견을 바로 결정에 올려서는 절대 안 된다. 우선 이 모임의 취지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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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와 처음기준을 다시금 살펴보고 그것에 따르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늘 통찰력으 로 단호한 결정력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넷째, 욕먹는 것을 두려야하지 말아야 한다. 은평 품앗이 육아 속되게 말해서 리더는 ‘씹히기’ 가장 좋은 사람이다. 모두를 대표해서 일을 진행 하고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 속에 어쩌면 가장 큰 공감대가 바로 ‘리더 이야기’ 일 것이다. 리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분명 좋은 이야기도 있겠지만 때로는 안 좋 은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옛말에 ‘나라님 없는 자리에선 나라님도 욕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군림하려고 애쓰다 보면 해야 할 일도 못하게 되고 자기 이미지 관리한다고 포장하기에 바빠진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 쓰지 말고 ‘당연히 욕 먹을 건 먹어야지, 욕먹어도 할 수 없어’라는 마음가짐으로 마음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리더는 연예인이 아니다. 모두에게 인기 얻으려 애쓰지 말라. 사심 없이 대의 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결국 진심은 시간이 알아서 증명해 줄 것이다. 다섯째, 문제가 있을 땐 전화 통화나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은 카톡이나 여러 매체가 발달하다보니 전화 통화나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 하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더군다나 우리처럼 육아를 하는 엄마들은 행여 아이 자 는 시간이거나 예민한 육아생활에 방해가 될까봐 더욱 전화나 만남이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거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꼭 전화를 하거나 만나 서 이야기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왜냐하면 카톡 등의 메시지는 나의 감정으로 읽어 서 자칫 서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데 반해, 전화통화는 서로 이야기를 주 고받으며 목소리로 교감하므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결국 가장 좋은 것은 얼굴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하다보면 몇 마디 말로도 의외로 금세 오해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리더는 반드시 모임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을 설정하고 끌어가야 한 다. (이것을 ‘초심’이라고 해도 좋겠다.) 회원 개개인은 이 모임을 그저 편하고 쉽게 모인 자리라고 생각할지라도 그들을 끌어가는 사람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확 실히 세워놔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모임의 성격이 때에 따라 달라지 거나 퇴색 될 우려가 있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떤 길을 걸을지에 대해 맵을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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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정하고 그에 맞춰서해나가려 애써왔다. 그리고 때때로 “그냥 편하게 만나고 재 미있기만 하면 되지 무슨 그런 가치관이며 철학이나 비전이 필요하냐”고 했던 사람 들도 지금은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함께 해주고 있다. 비전과 가치, 철학을 함께 한 사람들은 마을공동체 활동이 아무리 힘들어도 웬만 해서는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사소한 문제에도 모임을 그만 두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마을공동체에서는 ‘푯대’를 세우고 가는 리더만이 회원들에게 모임을 통 한 삶의 새로운 방향을 심어줄 수 있게 되고 그로 하여금 또 모임을 성장시킬 수 있 는 원동력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우리의 바람은 모임을 위한 개인성장보다 개인의 행복한 성장을 토대로 한 발전적 공동체 모임이 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이었던 매머슨은 “좋은 리더는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리더라면 당연히 회원들보다 한발 앞서 내 다보고 그 뜻을 회원들에게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급하지 않게 말로써가 아닌 실천적 행동으로 서서히 해나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말이 먼저 앞서면 회원들은 리더를 신뢰할 수 없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 하는 대로 살아라’라는 말이 있다. 가치와 철학은 우리의 삶을 바다라고 했을 때, 물이 흐르는 대로 그냥 둥둥 떠가는 게 아니라 방향 을 설정한 후 배를 띄워 놓고 노를 저어서 목적지로 향해 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솔직하게 이야기 하되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말할 줄 알아야 하 며, 타인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누구보다 커야 한다. 혹자는 이것을 보고 ‘오지 랍’이라 폄하하지만 리더에게 ‘오지랍’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 시간을 내서 회원들 과 긴밀한 관계가 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모든 관계는 시간의 양과 비 례 한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사실 이 부분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마을공동체 일 외에도 집에서 기사 쓰는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활동 외에 멤버들과 모여서 친목 을 다질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시간을 가지려 애쓰지 못 한 점이 나의 시행착오였음을 느끼게 된다. 리더인 나부터가 좀 더 모이기에 힘쓰고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면 우리가 좀 더 끈끈하게 서로를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하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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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는 아쉬움이있다. 내가 생각한 이 리더의 조건들은 대부분 나의 시행착오에서 깨달은 것들이다. 아 마 이외에도 무수한 리더의 조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리더라고 해서 완벽할 수 은평 품앗이 육아 는 없다. 그리고 완벽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때로는 힘든 것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면서 ‘힘듦’을 표출하고 나눠야만 리더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언제나 강직하고 묵묵히 아픔과 힘듦을 삭여가며 헌신을 해야 한다면 누구도 자 처해서 리더를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회원들도 리더에게 리더로서의 역할 만 강조하지 말고 리더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그들 앞에 서서 기쁘게 깃발을 들고 나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며 기꺼이 협력하며 애써주면 좋겠다. 마을공동체에서 리더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하겠지’라는 생각 이다. 리더가 의견을 제시할 때 명쾌하게 예스와 노를 말해주는 것, 또 노를 말할 때는 될 수 있으면 다른 대안도 함께 제시해주는 것, 그리고 운영진이 일을 잘 했을 때 당 연시하기보다 ‘수고 했어요’라는 작은 한마디로라도 감사를 표시하는 것을 잊지 말 았으면 좋겠다. 나의 이런 이야기를 종합해서 누군가 ‘마을공동체 리더는 참 힘들구나, 나는 절대 마을공동체에서 리더가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까 싶어 한 마디 덧붙 이려 한다. 물론 리더는 엄청나게 힘들다. 하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엄청나게 크다. 물론, 신체와 정신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하나 새로운 일을 도전하고 그것을 함께 해나가면서 느끼는 성취와 희열은 실로 크다. 더군다나 개인으로는 만날 수 없었던 훌륭한 분들을 마을공동체의 대표라는 이 름으로 가까이서 뵙고 귀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의 경험과 노하우가 소중한 자산이 되어 이제 막 마을공동체를 시작 하려는 사람이나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도 무척 기분 좋은 일이다. 사실, 리더로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회원들과 생기는 불협화음이다. 하 지만 이제 돌이켜보니 그 과정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다 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속에서 인간의 다양성과 조율을 위해서 어떤 커뮤니케이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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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션이 필요한지에 대해생생하게 배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 가장 큰 화두가 되는 것이 ‘소통’이다. 마을공동체 리더는 이 ‘소통’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과 시행착 오를 경험하면서 스스로 한 단계 성숙하고 폭넓 은 시야로 사람과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소득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최근 가장 중시하는 학문이 ‘인문학’이 아닌 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과 생 각을 조율하면서 ‘살아있는 인문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그로 인한 많은 번뇌와 고민 이 이전보다 한 차원 높은 나로 성장시켜 줌을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된다. 마을공동체 대표로 서의 지난 1년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 중에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경험은 어디서도 돈 주고 살 수 없는 제일 큰 가치라고 ▲ 지난 9월 6일 리빙 라이브러러에 ‘사람책’으로 참여한 모습 자부할 수 있겠다. 이게 뭐라고!! 처음 이 모임을 해나가면서 지금까지 특히 우리 1기 멤버들이 가장 많이 한 생각이 “아니, 도대체 이게 뭐라고!!”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품앗이 육아는 결코 쉽지 않 다. 더군다나 영유아를 키우며 함께 해가는 품앗이 육아는 더욱 그렇다. 아이를 위 한 모임인데 정작 아이는 방치되고 엄마는 지쳐가곤 했다. 이 문제에 대해 1기의 한 회원은 이런 말을 했다. “함께 키우고 나누는 건 좋아요. 그런데 아기를 데리고 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고 불편했어요. 애를 위한 것인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되 죠. 심지어 어느 순간엔 이 모임이 너무 힘들어서 그냥 애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싶 다는 생각까지 들곤 했다니까요. 시작은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어요.” 나는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 엄마들이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저희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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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품앗이 육아해요”라고하면 누군가는 그렇구나 하고 쉽게 지나칠 수 있겠지만 그 속 을 들여다보면 기본적으로 각자 자신이 나눌 수 있는 ‘품’을 기꺼이 나누겠다는 기본 마인드가 준비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모임의 주된 프로그램인 엔 은평 품앗이 육아 젤데이(아이들에게 엄마표 수업을 하는 날)와 맘스데이(좋은 작가의 책으로 독서토 론 하는 날)는 엄마표 수업과 독서토론 발제 등의 준비가 누구에게나 순번제로 돌아 간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이해와 확실한 의지가 없을 경우에는 활동이 불가능하다. 그것 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각자의 ‘품앗이’ 역할이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오 픈수업을 했을 때 “저는 못할 것 같아요”라는 소수의 인원이 있었으리라 미루어 짐 작해본다. 물론, 그들을 폄하하거나 평가절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이 모임 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품앗이’라는 점에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함께 힘든 과정을 겪어온 1기멤버들은 아직도 대부분 우리와 함께 하 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음에도 함께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호연맘 강은자: 나는 사실 내 것에 대한 애착이 심했다. 하지만 이 품앗 이육아를 통해 ‘함께’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나 스스로 변화를 느꼈다. 물론, 다들 적극적이고 솔선수범하는 데 도움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 때는 부 담도 크고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이 모임에서 나간다면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것도 잘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을 모임을 통해 내가 얻은 가 장 큰 변화는 우리 호연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는 인 내가 생겼다는 점이다. 윤지맘 김미정: 인간관계,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못 떠났다. 승연맘 배진윤: 물론,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내 아이와 나의 발전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몸담게 되었다. 사실은 중간에 그만둘까 하다가 남편의 “너 거기 아니면 우리 승연이한테 뭐 해줄 수 있겠니?”라는 말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나오게 됐다.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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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처음 마을공동체가되고 사단법인 공동육아에서 컨설팅을 해주러 오셨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질문이 그것이었다. “모임을 위해 이렇게 만날 회의하고 이야기 나 누면서 정작 아이는 방치되는 데 이게 맞는 건가요? 이래도 우리 아이들 괜찮을까 요?” 그랬더니 그분들이 말씀이, “어른들의 그런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보고 자라가 는 아이들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자리매김해나가야 할지를 스스로 배우게 됩니다. 그러니 절대 그런 부분은 걱정 마세요”였다. 먼저 그 길을 걸으신 분들의 조언은 우리에게 무척 귀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도대체!! 이게 뭐라고!!” 하며 불평 아닌 불평을 하면서도 멈 추지 않고 걷고 또 걷는다. 얼마 전에 사단법인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에서 실시한 7주 간의 ‘돌봄 코디네이 터 양성’과정에 참여하면서 받은 교재에서 ‘품앗이 육아’와 관련된 좋은 글을 발견해 서 이곳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글을 쓰신 분은 우리에게 《야생초 편지》라는 책의 저자로 잘 알려진 황대권씨다. 공동체와 품앗이생태 (생태공동체 운동센터 소장 황대권) 엄마들이 모여 아이를 함께 키우는 품앗이육아공동체는 현재 많은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공동육아형 어린이집 운영과는 다른 공동체 활동이다. 즉 공동 육아형 어린이집은 마음이 맞는 부모들이 모여 ‘아이를 함께 키우자’라는 목적 으로 공동으로 출자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이다. 교사선정에서 교육과정, 간식 등 부모들이 출자해 설립한 어린이집인 만큼 보육과정에 있어 많은 개입 을 할 수 있는 육아 형태이다. 품앗이 육아, 품앗이 학습은 말 그대로 이웃에 사는 사람들끼리 아이들을 키 우고 학습하는 데 있어 품앗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비슷한 연령이거나 가까운 지역에 거주하는 엄마들이 모여 아이들을 돌봐주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아이 들에게 직접 가르쳐주고, 다른 엄마에게 배우자는 것으로 가정과 가정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엄마들이 직접 아이들을 키움으로 엄마와 아이, 가정과 가정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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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이 호흡을맞추어 육아와 교육을 함께 하는 것이다. 품앗이육아공동체는 고립적인(핵가족화로 인한 가족으로부터의 고립, 지역주 민의 단절성에서 야기되는 고립) 육아가 갖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지역공동체 은평 품앗이 육아 성을 살릴 수 있는데 여러 강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자녀를 건강하고 사회성이 좋은 아이로 성장시킬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과 다른 가정이 모여 함께 자란 아이는 다양한 인적 교류로 인해 정서 적으로 건강해지고 사회성이 잘 길러진다. 둘째, 주 양육자이며 지역사회 주체인 엄마들의 정체성 회복이다. 전업주부로 서 전적으로 양육과 가사 일에 매달려온 주부는 다른 가족과 아이를 함께 키 우면서 양육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품앗이육아의 한 부분인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 직접 가르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교육자로서의 자존감 향상, 이를 위한 자기계발 등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이 늘고 정체 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품앗이육아공동체를 통해 고립적인 핵가족 문화가 지닌 가족이기주의, 이웃과 단절된 삶이 회복되면서 엄마와 자녀가 건강한 사회의식을 성장시 키게 되며 이는 품앗이육아공동체 내에서 뿐 아니라 지역사회활동에 긍정적 인 영향을 주어 주민자치, 시민자치의 주역, 씨앗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는 것 이다. 잘 되는 조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을 한다. 품앗이육아공동체 역시 시 간이 지남에 따라 자녀와 엄마들이 성장한다. 그리고 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주민모임도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성장한 주민모임은 지역 내에서 스스로 모 임을 독립적이며 자율적으로 운영해 나가게 된다. 탄생, 성장 그리고 독립 이것이 주민모임의 발전적인 성장모델이 될 것이다. 성장해서 독립한 주민모임은 인연을 놓지 않고 주민활동가로서 품앗이육아활 동의 선배로서 새로운 품앗이육아, 주민모임이 탄생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 다. 그들 스스로가 품앗이육아공동체 안에서 몸소 체험한 가족친화, 공동체, 더불어 삶의 가치를 우리의 또 다른 이웃에게 전파하게 될 것이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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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글을이 원고의 에필로그까지 모두 쓴 상태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이 글 을 읽으면서 마치 인류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의 종말을 예언하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치는 경험을 했다. 아니, 황대권씨는 노스트라다무스보다 더욱 강력한 품앗이육아공동체에 대한 확실한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보면서 힘이 빠졌다. 내가 앞에서 무려 몇 십 장에 걸쳐 설 명한 이야기를 이 분이 단 A4 용지 한 장 반 정도로 아주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가 경험으로 겨우 깨우친 이야기를 나보다 더 자세하고 확실 한 비전 아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뜨악’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분은 품앗이 육아를 해보신 분인가? 남자분이신데 그럴 리 만무하다. 역시 사회를 통찰하는 지 식인의 눈은 경험이 없이도 한눈에 발견해낼 수 있는 엄청난 것임을 다시금 느끼 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분의 예견이 상당 부분 나의 깨달음과 일치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 었다. 전문가의 시선이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상과 일맥상통하다는 것은 그만큼 우 리 은평품앗이육아의 앞날이 밝다는 의미가 아닐까. 괜히 어깨를 들썩이며 혼자 키 득거리고 있는 유치한 나이다. ‘와우~우리의 앞날 완전 기대만발인걸?’ 혼자 쾌재 를 부르며 감히 전문가의 글을 덧붙여 나의 경험과 우리의 예견이 결코 헛되지 않음 을 다시금 증명해보고자 한다. 6. 그들이 본 ‘은평 품앗이 육아’ 지난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가 지속되고 또 조금씩 성장할 수 있기까지는 여러 곳에서 도움을 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분들 이 있어서 더욱 힘을 내고 지속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곁에서 바라본 은평 품앗이 육아는 어떤 모습인지 그 분들의 생생한 목소리 로 들어보기로 하자.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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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1) 공동육아와공동체 교육 이현숙 팀장과 곽영선 (여러 공동체를 보면서 사례를 보시는 분들의 시야) 은평 품앗이 육아 이현숙 팀장님과 곽영선님과의 인연은 마을공동체로 선정된 직후 우리 모임을 컨설 팅해주시기 위해 나오셨던 지난해 10월경부터였다. 그 이후, 힘들거나 어려운 문제 가 생기면 달려가서 자문하거나 전화통화로 여쭙고 강의요청도 하면서 많은 조언을 얻은 바 있다. 지난 9월, 인터뷰를 위해 찾아뵌 날도 두 분 모두 상냥한 미소로 반갑게 인사해주 시며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셨다. Q1. 처음 은평 품앗이 육아를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어떠했나요? •이현숙 팀장: 처음 봤을 때 엄마들이 애 안고 업고 하는 모습 보면서 지금 다시 생 각해보니까 눈물이 나려고 한다. 힘든 육아를 잘해보겠다고 낯선 사람들과 모여서 뭔가를 해보려는 모습이 안쓰럽고도 참 훌륭하구나. 도움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곽영선: 나도 비슷한 느낌이었다.(웃음) Q2. 은평 품앗이 육아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느낀 점이라면? •곽영선: 다른 팀도 돌아보지만 첫 기수에서 다음 기수로 적극적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보통은 자기들 선에서 좋게 하고 애들이 크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데 이 모임은 우리가 했고 좋았기 때문에 알려주고 싶다는 적극적 인 모습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그 이후 2, 3기가 나왔다는 게 정말 장하다. 더군다 나 2, 3기는 선배들 모습 보면서 할 수 있고 조언을 구하면서 성장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다. •이현숙 팀장: 내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게 아닌, 우리 아이를 우리가 함께 키울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아마 그래서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마 음을 가졌다는 게 대단하다. 초심을 이어갔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것은 공간을 만들려 했던 모습이다. 나만이 아닌, 다른 이들과의 융합을 생 각한 것에서 너무나 감명 깊었다. 그래서 그 속에서 그 가치가 더욱 점철되지 않았 나하고 생각해본다.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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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도 그 첫마음을 이어가게 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Q3.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시나요? •이현숙 팀장: 회원들이 그 모임에 가면 즐겁고 재미있고 위로가 된다는 느낌을 주 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마음이 순환하게 되면 성장을 위해 뭘 할까하 고 고민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되어있다. 최근에 읽은 만화책에 ‘도시락 데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모임도 함께 밥을 나누고 맛있는 것들을 나누면서 마음 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곽영선: 지난번 만나보니 공간을 힘들게 만들었지만 협소한 관계로 여전히 모임 활동 공간사용에 어려움이 있어 보여서 아쉬웠다. 특히 꿈나무 도서관을 사용할 때 딱 그 시간에 수업만 하고 헤어져야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수업 후에 좀 더 서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두 분은 언제나 따뜻하고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에게 자꾸 무얼 가르치려 하지 말고 아이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면서 엄마들이 함께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씀과 요즘은 품앗이 육아로 엄마표 수업의 분담은 아주 잘 되 있지만 정작 꼭 필요한 ‘공동체적 마인드’가 부족해서 너무나 아 쉽다는 말씀이 무척 인상 깊었다. 아마도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표 수업으로 인한 정보나 지식 주입이 아닌 엄마들 스스로가 함께 어울리며 배려하고 헌신하고 소통하는 모습이라는 점에 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2) 어린이 도서연구회 은평지회 석은진 선생님 “지금 이 나이에 우리한테 ‘선생님’ 하면 가슴 따뜻하게 떠올릴 수 있는 분이 있어서 너무 좋다.” “석은진 선생님은 정말 멘토 같은 분이야.” “선생님 우리 너무 예뻐하시는 거 아냐? 히히히.” 석은진 선생님은 우리의 미약하고 여리기만 했던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따뜻한 마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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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음으로 다독여주시면서크고 작은 힘을 실어주신 분이다. 지난 9월, 석은진 선생님 을 오랜만에 찾아뵈었다. 은평 품앗이 육아 Q1. 처음 은평 품앗이 육아를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어떠했나요? •석은진: 세정씨를 처음 만났을 때, 나도 아이를 키워본 사람으로서 세정씨가 가 지고 있는 나눔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 열정에 너무나 놀랐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뻤 다. 그리고 회원들을 만났을 때, 요즘은 경제적 창출, 개인의 발전에 집중되어 있는 데 북 스타트 행사를 통해 모임을 만들고 순수하게 이웃과 함께 하겠다는 의욕을 가 진 모습이 너무나 신선했다. 목적과 의지가 명확해서 너무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스스로 자생했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꼈다. Q2. 은평 품앗이 육아에서 모임장소에 대해 큰 고민을 할 때 누구보다 앞장서서 도움을 주셨고, 결국 신사종합사회복지관과 연계를 해주셨는데요. 당시에 어떤 마음으로 그런 도 움을 주시게 됐는지 이야기 해주실 수 있나요? •석은진: 나도 사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하루아침에 사무실이 쫓겨 나야 하는 상황이 닥친 적이 있었다. 열정은 있는데 모임장소가 없을 때 그 간절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때 나에게도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있었다. 녹번종합 사회복지관 관장님과 은평시민넷, 좋은만남 교회 목사님 같은 분들 덕분에 모임 장 소를 구하고 모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그 감사함을 다시 나눠주 고 싶다고 느꼈다. Q3. 은평 품앗이 육아 엄마들의 2기 멤버 모집을 위한 오픈수업을 흐뭇하게 지켜보셨는데 요. 당시 느끼신 점이라면? •석은진: 덜 세련된 순수한 모습을 보게 되서 너무 즐거웠다. 누구도 할 수 없는 것 을 함께 해냈다는 점이 대단했다. 함께의 즐거움과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 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보기 좋았다. Q4.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으로서, 앞으로 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떻게 성장하기 바라시나요?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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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은진: 처음 가졌던그 순수함과 가치, 비전을 잃지 말았으면 한다. 하다보면 ‘내 가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때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석은진 선생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엇을 더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시며 지금까지 우리에게 많은 경험과 노하우, 가르침을 주셨다. 나의 마지막 질문 “저희 가 어떻게 성장하면 좋을까요?”라는 물음에 “세정씨는 이 힘든 일을 왜 지금까지 했 는데요?”라고 도리어 내게 물어오셨다. 나는 웃으며 제가 인터뷰 하러 왔는데 왜 저에게 물으시냐 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이렇게 버티고 또 해나가고 있는가?’ “저는 이 힘들고 외로운 육아 를 함께 하면 얼마나 행복하고 가치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고 또 정말 해나가면서 그 사람들이 웃으면서 이 모임 오길 잘했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했어요. 앞으로도 아이 키우면서 힘들어하는 엄마들에게 함께 아이 키우기의 가치와 행복을 알려주고 싶어요.” 나의 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석은진 선생님은 바쁜 손을 멈추고 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시며 “그 마음, 그 초심 절대 잃지 마!!”라고 강하게 당부하 셨다. 그 마음이 이 모임이 있어야 할 이유와 미래라면서 말이다. 3) 신사종합사회복지관_ 담당 홍경희 선생님 “언니, 홍경희 선생님 우리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요?” “완전 천사 선생님이다” 아무 곳에도 비빌 언덕이 없던 우리에게 홍경희 선생님은 처음으로 우리에게 비 빌 언덕이 되어주셨던 분이다. 오픈수업이 있던 날 복지관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은 평 품앗이 육아 오픈 수업 2층 강당’이라는 예쁜 안내문을 붙여놓으신 분도, 원활한 오픈수업 진행을 위해 공익요원을 배치해주신 분도, 동화책 소개 때 앞에 세워둘 이 젤을 준비해주신 분도 홍경희 선생님이었다. 지난 9월, 복지관 행사로 너무나 바쁘 셔서 이메일로 인터뷰를 요청 드렸고, 선생님은 부족한 잠을 줄여가며 성심껏 답변 을 보내오셨다. Q1. 처음 장소섭외를 하러 온 ‘은평 품앗이 육아’ 대표와의 미팅 때 첫인상은 어땠나요?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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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홍경희 :날씨가 추운 겨울날이었다. 1월15일로 그 날이 우리 큰아이 생일이라 특 히 기억에 남는다. 석은진 선생님과 함께 휘연이를 데리고 복지관(도서관)을 방문 한 세정씨. 아이들을 엄마표로 잘 키우고 싶은데 공간이 없다, 우리를 받아주는 곳 은평 품앗이 육아 이 없다, 어느 공간이든 괜찮다며 열변을 토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을 공동체’라는 말이 새롭게 들리기는 했지만 아이들의 미래, 엄마들의 미래를 생각하 며 정말 열심히 사는 분들이 여기 있구나! 생각했다. 복지라는 것이 특별한 것은 아 니니까 어느 한 계층을 위한 선별적인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로 누구에게나 필요 로 하는 곳이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어야하기에 적극적으로 돕고 싶 다는 생각이 들었다. Q2. ‘은평 품앗이 육아’ 엄마들의 활동모습을 처음 대면했을 때 느낌은 어떠셨나요? •홍경희 : 처음 ‘은평 품앗이 육아’ 1기를 만나게 된 것은 도서관 옆 작은 방인 꿈자 람터에서 오픈수업을 위해 업무 분담하는 모습이었다. 준비는 해야 하는 데 아기들 은 울면서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전부 다 업고서 의논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 하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이길 원하는 엄마들의 공개수업 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Q3. 지금까지 반 년 넘게 ‘은평 품앗이 육아’를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되거나 느낀 점은 무엇 인가요? •홍경희 : 나는 우리 아이 어릴 때 뭐했나 싶을 정도로 ‘은평 품앗이 육아’ 팀이 많 이 부럽다. 도서관에 오는 이용자들에게도 홍보를 많이 한다. 아기들을 위해, 엄마 들을 위해 참여해 보시라고. 새로이 2기가 들어오면서 앞으로의 원활한 활동을 위 해서는 인원이 많은 기수에서 회장이 나와야한다며 기꺼이 회장과 총무 자리를 내 어주는 모습에서 이것이 또한 진정한 ‘리더’구나 느꼈다. Q4. 앞으로 ‘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떻게 성장하기 바라시나요? •홍경희 : 엄마들도 아기들도 이 신사복지관 내에서 무럭무럭 성장했으면 좋겠다. 2기 회장이 선출되면서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가들 이 커가면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내 아이도 없는데……’ 하는 생각으로 활동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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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약간 주춤하는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분들이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 하여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은평 품앗이 육아’만의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 가면 좋지 않을까. ‘은평 품앗이 육아’ 내에서는 진심어린 소통과 활동으로 복지관 내에서는 다른 단체와의 협업으로 지역사회와도 함께하여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은평 품앗 이 육아’가 되었으면 한다. 홍경희 선생님은 언제나 염치불구하고 요청 드리는 대부분의 것들에 흔쾌히 응 해주시고 도움을 주셨다. 물론 그 이면에는 복지관측의 협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중간 통로역할을 기꺼이 해주신 선생님에 대한 은혜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워낙 동안이어서 ‘미혼이신가요?’ 하고 조심스레 여쭸다가 중학생 큰 딸이 있다 고 하셔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녀 자신도 이전에 힘든 육아를 경험한 엄마이므로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부어줄 수 있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4) 신사종합사회복지관 관장 보련스님과 부장 이승재 사회복지사 가장 힘들 때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준 신사종합사회복지관. 2기 모집을 위한 장소 를 구할 때 이곳이 없었다면 ‘은평 품앗이 육아’가 지금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웠을지 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에게 고마운 곳이다.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이 우 리에게 터를 내어주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복지관 사업의 주최가 되는 부장 님과 관장님이신 보련스님을 지난 6월에 찾아뵙고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1. 처음에 ‘은평 품앗이 육아’가 강당사용을 할 수 있도록 오픈해주셨던 계기라면? •보련스님: 우리가 새롭게 미션 비전을 ‘마을지향’으로 설정을 했는데 그 때 마침 은평 품앗이 육아에서 장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취지와 이 모임의 활동이 딱 맞겠구나 싶어서 흔쾌히 욕심 없이 자리를 내준 것이다. 사실 우리로서는 굉장한 도전이기도 했다. •이승재 부장: 2년 전에 이 신사종합사회복지관 운영법인이 조계종으로 바뀌면서 우리가 지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찾으면서 복지관의 역할을 새롭게 찾자고 늘 회의하고 고민하던 중이었다. 특히 지역주민이 뭔가 스스로 해나가려 할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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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때 도움주고성장시키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마음을 모으던 중이었을 때 ‘은평 품앗 이 육아’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해온 것이었다. 은평 품앗이 육아 Q2. ‘은평 품앗이 육아’ 활동을 보면서 느끼신 점은 무엇인가요? •보련스님: 사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다른 복지관에서는 하지 않은 일을 한 것이 기 때문에 우리로선 대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추상적인 마을지향이 ‘은평 품앗이 육아’를 통해 성취되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보람 있고 좋았다. •이승재 부장: 역시 주민 스스로 하는 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복지가 성장이 빠르다 는 것에 대한 가치와 확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됐다. 지속가능한 복지 를 위해서는 이런 모임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3. ‘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떻게 성장하기 바라시나요? •보련스님: 실패와 성공에 상관없이 서로 서로 엮여서 이곳에 자주 왕래하면서 소 통하고 함께 나가는 장이 되기 바란다. 그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거니까. 어떤 면에서는 이미 활동을 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이다. 실 패는 없다. 다만, 과정일 뿐이다. 작은 모임으로 시작됐지만, 지역을 위한 여러 분 야의 자조모임이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의도적이거나 인공적인 것이 아니라 재 미와 필요욕구에 의해 서서히 성장하기 바란다. 성미산 마을처럼.(웃음) •이승재 부장: 육아로 시작된 모임이지만, 그 초심을 잃지 말고 아이들이 잘 살기 위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함께 풀어갈 수 있는 단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역 사회를 위한 활동으로 더 많이 넓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통해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이 우리에게 장소를 내어주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심과 도전의식이 필요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나의 ‘은평 품앗이 육아’ 에 대한 원대한 포부와 비전을 가장 먼저 이해하고 함께 해 준 게 바로 이 신사종합 사회복지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우리만을 위한 육아사랑방을 열어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오픈수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활동의 주 무대인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은 앞 으로 어떤 인연으로 끝날지 몰라도 우리에게 재도약의 힘을 실어준 무척 고마운 곳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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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 점은 변함이없다. 마을지향을 위한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의 노력과 신뢰가 헛되 지 않도록 그 속에서 함께 더욱 큰 성장을 이룰 수 있길 바라본다. 5) 아빠들 대표 3인(처음 마을공동체 선정을 위해 앞장서서 힘쓴 1기 장명정의 남편 은찬아빠 양길수, 1기 총무 안효정의 남편이자 태희아빠 김재광, 1기 모습을 보며 참여를 희망했던 2기 장연지의 남편 한비아빠 이지현) 육아를 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주 양육자인 엄마이지만 - 또 엄마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은 바로 아이의 아빠가 아닐까. 은평 품앗이 육아의 아빠들은 자신의 아내와 아이가 이곳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함께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Q.1 아내와 아이가 ‘은평 품앗이 육아’에서 활동한다고 했을 때 어땠나요? (ex. 별 생각 없 었다, 정말 그런 곳도 있나하고 놀랐다, 아내가 가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등) •김재광: 그냥 집에서 따분하게 있는 것보다 나가서 활동하는게 엄마에게 정서적 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길수 : 발전적인 모습이라 생각했고 엄마와 아기의 유대감 형성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좋았고 아내와 아이가 사랑스러워 보였으며 나도 아내에게 배워서 동참하여 우리 은찬이에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현 : 집에서 혼자 육아에 전념하는 것도 좋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엄마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그 생각들을 직접 실천한다면, 내 아내와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Q2.곁에서 아내와 아이가 활동하는 모습을 볼 때, ‘은평 품앗이 육아’는 아내와 아이에게 어떤 곳인가요? •양길수 : 아내는 결혼 전에 미술학원 원장이었다. 그런 아내가 가진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곳이자, 우리 은찬이에게는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함께 자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김재광 : 은평 품앗이 활동을 하면서 자녀교육에 대한 유익한 정보을 공유하고 접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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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할 수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매우 유익한 곳이라 생각한다. •이지현 : 나의 아내와 나의 아이가 에너지를 얻어오는 곳 이라고 생각한다. 전문 적인 교육단체는 아니지만,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과 그들의 엄마들이 함께 생각을 은평 품앗이 육아 공유하며, 이야기 나누고, 고민을 해결하는 훌륭한 단체라고 생각한다. Q3.아내와 아이의 은평 품앗이 육아 활동을 보면서 크게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혹시 이 곳을 통해 아내와 아이 또는 본인이 달라진 점이 있나요? •양길수: 사실 아내가 처음부터 활동을 해 와서 어떤 달라진 점이 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마을공동체 신청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 에게 주부로서의 모습 외에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어 대단해 보이고 힘껏 응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재광: 솔직히 나나 아이가 달라진 점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내인 엄마에게 는 육아에 도움이 되리라고 믿고 있기에 활동에 대해 호의적으로 지원하고 격려해 주고 있다. •이지현: 사교육에 대한 비중이 줄어들며, 책읽기와 놀이에 대한 접근방법이 달라 졌다. 그들의 교육놀이 문화가 신기하기도 하고,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Q4.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앞으로 ‘은평 품앗이 육아’가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시나요? •김재광: 엄마와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접하게 해주고 책 읽는 것을 즐거워하게 해 줄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양길수: 아내의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곳이자 우리 은찬이에게는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교육의 장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이지현 : 최근 전문적인 교육단체들의 높은 사교육 비용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 에서, 이런 자발적이고,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은평 품앗이 육아’가 성공사례 가 되어 이슈가 되었으면 좋겠다. Q5. 추가로 건의할 사항이나 하고 싶은 말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김재광: 특별한 건의 사항은 없다. 다만, 회원 모든 분들이 이 모임 속에서 바라 는 바대로 좋은 결과 얻기를 바란다.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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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현 : 육아에관련된, 아이를 지도하는 부분에 있어 성공사례 발표가 있으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3살 아이가 어떠한 방법으로 배변 훈련을 쉽게 성공할 수 있 었는지? ’ 같은……. •양길수: 더 많이 성장하여 마을 곳곳에 생겨나길 바란다. 처음 아빠들의 인터뷰를 계획했을 때는 좌담회 형식으로 도란도란 앉아 간식도 나 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깥일로 매우 바쁜 아빠 들의 특성상 자리 마련이 쉽지 않아서 어떤 분은 전화로 어떤 분은 이메일로 인터뷰 를 요청 드렸다. 이 자리를 빌려, 인터뷰에 응해 준 아빠들에게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 다. 이렇게 바쁜 시대에 아내와 아이가 활동하는 모임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해 진 솔한 의견을 흔쾌히 풀어주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새삼 우리의 활동 및 성장 의 배경에는 이런 남편들의 지지와 응원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에필로그 품앗이 육아, 이 정도면 해 볼만 하지?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누군가 나처럼 ‘품앗이 육아’를 하고 싶지만 앞이 막막할 때, 어디서 조언을 구할 지조차 몰라 발을 동동 구른다면 내 글이 한줄기 빛 이 되었으면 하는 의미에서였다. 내 경험으로써 조금이라도 이 길이 어떤 길이고 어 디쯤 가면 될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하지만 도리어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나온 길을 정리해보면서 내가 얻은 것들이 더 많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짧지만 굵은’ 역사를 돌이켜보는 작업은 뜻밖에도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명쾌하게 제시해주었다. 어찌 보면 나는 이글을 통해 우리 ‘품앗이 육아’의 정 체성을 다시 재정비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 글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나이 며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라는 생각이 든다. 마을공동체 사례집 원고를 작성한다는 명분으로 회원들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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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들을 수있었다. 덕분에 지금까지는 몰랐던, 회원들 각자가 마음에 숨겨왔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내가 리더로서 간과했던 것들은 무엇 이며 시행착오는 무엇인지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은평 품앗이 육아 한 때는 ‘기존의 공동육아와는 또 다른 우리의 활동을 도대체 어떻게 규정해야 할 까, 정말 뜻있는 사람끼리 목돈을 출자해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라도 개원해야 할 까’ 등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었다. 각자의 상황에 맞춰 나눌 수 있는 만큼 서로 나누면서 서로의 아이들을 함께 사랑으로 즐겁게 같이 키워 가는 것이 바로 이 ‘품앗이 육아’의 매력이고 ‘품앗이 육아’만의 독보적인 정체성이 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은평 품앗이 육아’가 앞으로도 ‘엄마’라는 이름의 타이틀로 휘청거리는 엄마 들의 손을 잡고 힘을 모아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인지를 알려줄 수 있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 또 그 속에서 엄마들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 자 신을 잃지 않고 다시 세우는 일이 가능했으면 한다. 아니, 우리는 이미 그 모든 일들 을 조금씩 이뤄내고 있다. 나는 감히 단언한다. 이 차가운 도시에서 우리 아이를 따뜻한 사랑으로 키울 방 법 중 하나가 바로 이 ‘품앗이 육아’라고. 그러므로 엄마라는 이름 아래 넉넉한 마음 만 준비됐다면 누구든 쉽게 이 ‘품앗이 육아’를 할 수 있다고. 이제 우리는 우리가 경 험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이 ‘품앗이 육아’의 노하우를 전국적으로 전파하여 막중한 육아스트레스로 힘겨워 하고 있는 엄마들과 아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의 뒤를 이어 현재 회장 자리를 맡고 있는 승연맘 현주씨의 우리 마을공동체 이야기를 담은 자작시 ‘우리는 여기서 함께 산다’를 소개하고 마친다.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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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여기서 함께산다 여기는 혼자하기에는 길고 외로운 육아를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든든한 동지들을 만드는 곳 형제 없는 아이에게 친구들을 만들어 준 소중한 곳 여기는 ‘함께’라는 것을 아이들도 엄마들도 배우는 곳 내 아이가 아닌 우리들의 아이, 서로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또 다른 가족이 생긴 곳 여기는 나에게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그들의 아이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곳 여기는 육아는 나의 소신으로 감당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누고 소통해야 한다는 걸 알게 해준 곳 여기는 지금보다 서로 더 의지하고 나누고 싶은 곳 만나면 헤어지기 싫은 곳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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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 여기는 엄마의 꿈과열정이 해님달님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놀이터 덩달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아이들도 신이 나는 보물섬 같은 곳 은평 품앗이 육아 여기는 책을 통해, 자라는 아이 마음의 키에 눈높이를 맞추는 배움터 아이들과 엄마들이 맘껏 어우러져 즐거운 곳 우리는 여기서 함께 산다.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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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ⅱ나 의 동 지원 기 네잡정 서울시 용산구 《남산골 해방촌》 글쓴이 | 이한솔 어느덧 남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지도 15년이 넘었다는 후암동 주민. 보성여자중학교로 배정 받 고는 처음 용산2가동에 발을 들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갈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곳, 가깝고 도 먼 옆 동네 ‘해방촌.’ 하지만 2012년 초부터 함께 만드는 동네잡지 《남산골 해방촌》 덕분에 최 근엔 오히려 후암동보다 해방촌이 더 우리 동네처럼 느껴진다고. 현재는 ‘모두를위한극장 공정 영화협동조합’에서 어떻게 영화산업 속 부조리를 들어내고, 관객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 중이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쫓기듯 지내는 바보이기도. roodbeam@gmail.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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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소개 《남산골 해방촌》 2012년 5월에창간하여 2013년 10월 현재 5호까지 발행한 용산2가동의 동네잡지. 단지 이웃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고, 마을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목적으로 삼삼오오 모인 자발적인 단체다. 1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해방촌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임을 거쳐 갔거나 함께 하고 있다. 현재까지 잡지는 지원 및 후원으로 발간하고 있으며 무가지다. 동네 버스정류장, 카페, 슈퍼 등에 비치하니 해방촌 어딘가에서 만나 보시길. 이들이 잡지를 낼 때면 개최하는 발간 파티를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 최근에는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을 따로 진행하여 동네의 역사도 담아보겠다는 포부를 비쳤다. 늘 그래왔지만,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궁금한 《남산골 해방촌》이다. http://www.facebook.com/hbcproject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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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차례 《남산골 해방촌》 1. 출발 해방촌 사람을 찾습니다 왜 왔니? 친구를 만나러 왔단다 2. 창간 첫 취재: 동네에서 헤매기 당신이 《남산골 해방촌》이라 불러줄 때 우리는 잡지가 되었다 잡지는 무슨 돈으로 나오나요? 드디어 창간호를 손에 들다 3. 성장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다 잃어버린 해방촌의 역사를 찾아서 밖에서 본 우리 동네: 외부기고 싣기 잡지는 언제 나오나요? 애독자 발견! 4. 고민 《남산골 해방촌》 2기 대 모집! 경로를 재탐색 합니다 광고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더 가까이 다가가다 5. 지속 더욱 다채로워진 동네잡지 발간파티를 마을잔치로 자립을 꿈꾸며 《남산골 해방촌》을 넘어서 * 이 글에 실린 기사, 회의록 외 자료는 부분 발췌 했습니다. * 발췌 자료는 되도록 손질 없이 있는 그대로 싣고자 했습니다. * 현장감과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기사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글쓴이가 부르는 호칭으로 씁니다. 다만 처음 적을 때에 한하여 괄호 안에 실명을 넣습니다. * 잡지 기사의 표기는 다음과 같이 합니다. 〈제목〉(글쓴이, 호 수) * 별도의 제공자 또는 촬영자 표기가 따로 되지 않은 사진들은 글쓴이가 직접 찍은 것입니다.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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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도리*, 너 이런데에 관심 많지? 예전에 동네잡지 만들고 싶다고 했잖아. 연락 해봐!” 나의 동네잡지 원정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평소 살고 있는 곳에 관심이 많아 인터넷 검색창에 ‘후암동’이라는 이름을 간혹 넣어봅니다. 근처 청년들을 만나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만 들어볼까 생각도 했죠.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활동을 하며 이러한 생각은 점점 더 강 해져 옆 동네 해방촌**에 살고 있는 십년지기 친구에게 마을 신문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종종 건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가 위의 문자와 함께 사진을 한 장 보내줬어요. 누군가 동네잡지를 함께 만들 사람을 찾고 있더라고 말이죠. 사진 속 포스터에는 뾰족한 ‘N서울타워’가 서있는 남산 그림 아래로 누구든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이메일을 보내달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망설일 것도 없이 간단한 지 원서를 적어 보냈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그저 동네 사람을 만나고 흩어져 가는 흔적들을 담아가고 싶을 뿐이었죠. 이 문자 하나가 지난 1년 반 정도의 제 생활을 바꿔 놓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변화가 있었느냐고요? 마을 잡지를 만들게 된 제게 무 슨 일이 생겼을까요? 사실 저도 궁금합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 오늘 동네 잡지 모임 가”, “동네잡지 만들러 가야 해”라고 말하던 습관 덕분인지 ‘동네잡지’는 붙여 쓰고 ‘마을 잡지’는 띄어 쓰고 있으니까요. 어느덧 제게 ‘동네잡지’란 고유명사 로 자리 잡았나봅니다. 제 생활에 일정한 비중을 차지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는 《남산골 해방촌》. 이 녀석이 제게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앞으로 또 무슨 일들을 해나가게 될지 저도 알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긴 글을 써볼까 합니다.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 고 이 소중한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거든요. 어때요, 들어보실래요? * 한도리: 고등학교 친구들이 붙여주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글쓴이의 별명. ** 해방촌: 용산구 용산동1가·용산동2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1945년 8·15 해방과 더불어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과 월남 동포들이 이 부근 산기슭에 임시 거주처를 마련하고 살게 된 데서 마을 이름이 유 래되었다. 처음에는 해방 후에 생긴 마을이라 하여 해방동이라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해방촌이라 불렀 다. 1979년도 용산제1지구 재개발지구로 선정되어 주택건립사업을 하였다. → 용산동2가 [법정동] (서울 지명사전, 2009.2.13,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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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1. 출발 서울속 ‘촌’(村)이라니 정겹고도 낯선 이름의 해방촌.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 드는 잡지에 어떤 내용이 실리고 있는지 궁금하실 듯합니다. 2013년 추석 즈음, 우 리의 《남산골 해방촌》 5호 발행을 위해 막바지 편집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9월을 《남산골 해방촌》 얼마 남기지 않고 드디어 성대한 발간 파티와 함께 5호가 나왔죠. 동네잡지가 어떻 게 만들어지고 배포되는지,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한데 모여 이러한 일을 하고 있 는 것인지 이제부터 이야기를 하나 둘 들려드릴게요. 우선 그간 《남산골 해방촌》이 걸어온 길을 정리해 볼까요? 《남산골 해방촌》, 창간호에서 5호까지 구분 1호 2호 3호 4호 5호 표제 EARLY SUMMER 뜨거운 여름 겨울의 한창 여기서 → 저기 찾아온 가을: 변화 에 대처하는 방법 발간일 2012.05.27 2012.08.24 2012.12.21 2013.05.15 2013.09.28 쪽수 20쪽 20쪽 40쪽 40쪽 40쪽 참여 인원 12명 12명 11명 10명 9명 후원 해안건축 서울연구원 해안건축 서울연구원 해안건축 용산구 용산구 서울연구원 특이 사항 - 객원기자 - 영문기사 아카이브 동시진행 《남산골 해방촌》 모임은 2012년 3월에 시작하여 같은 해 5월, 창간호를 발행했 습니다. 이후 계간지에 가까우나 비정기적으로 잡지를 펴내고 있죠. 표제의 변천을 보면 알 수 있듯 1호에서 3호까지는 기사들을 특정한 주제로 묶지 않았습니다. 그 러나 창간으로부터 한 해가 지난 2013년 5월에 발행했던 4호는 ‘여기서 → 저기’라 는 제목으로 여러 글을 엮어냈습니다. 또한 5호는 ‘찾아온 가을’이라는 제호로 계간 지임을 알림과 동시에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을 주제로 기사를 묶어내기도 했습니다. 한편 각 호마다 참여자 개개인에는 변화가 있었으나 최종 참가인원은 비슷했습 니다. 쪽수의 경우, 앞의 두 권은 최종작업물이 20쪽이었던 데에 비해 3호부터는 분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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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량이 이전의 두배로 늘어난 40쪽으로 마감하였습니다. 특히 3호에는 내·외국인 객원기자가 각각 한 명씩 기사를 작성했고, 이후에도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은 채 자유롭게 기고를 받고 있습니다. 재원의 경우,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의 인쇄 협찬으로 1호, 2호, 3호를 발행하 였습니다. 4호는 용산구의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여하여 잡지 발간 예산을 마련했 죠. 또한 2012년 하반기에는 서울연구원의 지원이 모임을 지속하는 데에 도움을 주 었고, 2013년 10월 현재도 서울연구원의 후원을 받아 해방촌을 색다른 방법으로 연 구하는 작은 모임인 동네잡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잡지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분명히 계실 테고, 혹시나 긴 글이 지루하게 느껴 질 독자를 위하여 이후 기사 본문을 군데군데에 포진시킬 것입니다. 그전에 우선 지 금까지 발행된 《남산골 해방촌》 1호에서 5호까지 각 호에 실린 기사들의 제목을 통 해 간략하게 내용을 정리해 볼까요? 책의 표제와 목차는 전체를 관망하는 지도와도 같다고 하니 말입니다. 《남산골 해방촌》 목차 정리 호수 기사 제목 1호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 종점 없는 종점약국 / 숨은 명당 한 컷 / 쫀드기 행방불명 / 정원 가꾸는 사람들 / 안녕하세요 젠 2호 《남산골 해방촌》 인터뷰 ‘당’하다 / 해방촌, 색(色)을 입다 / 어느 갠 날 / 3세대 토박이, 해방촌의 변화를 말하다 / 어느 벽화 이야기 / 언저리 뉴스 3호 늦었습니다 / 만나고 만나고 만나다 /사연 있는 지도를 기획하다 / 까페 해방촌, 빈가게 의 어느 저녁 / All Sorrows are less with bread(빵만 있으면 어지간한 슬픔은 견딜 수 있다) / 골목길 / 해방촌성당을 찾아서 / 백수? / 한마디 4호 에디터의 말 / 모든 뚜벅이를 위한 골목길 가이드 / 10년쯤 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꼼 수 / 상이와 메콩의 가구 리폼 도전기 / 해방촌 예술마을, 그 뒷이야기 / Spring is coming(봄이 오고 있어요*) / 갤러리 에이큐브 / 남산갈래? / 초대합니다 5호 편집자의 말 / 단언컨대 그곳은 최고의 피서지! / 해방촌을 담다: 응답하라 1960 / 맹탐 정 디스패치 / 동네 한바퀴: 신흥시장 걷기 / 슈리슈리, 그곳은 어디? / 《한겨레21》 〈우 리가 몰랐던 동네〉 취재 후기: 여전히 궁금한 동네 / 해방촌 사운드트랙 * * 잡지에는 번역된 기사 제목이 실리지 않았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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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남산골 해방촌》이잡지에 실릴 기사의 소재 혹은 주제를 결정하는 기준은 단순 합니다. 각자 하고 싶었던 말들, 궁금했던 소재를 다루는 것이지요. 유일한 제약이 라면 반드시 해방촌과 관련한 내용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종점 없는 종점약국〉 (1호), 〈어느 벽화 이야기〉(2호), 〈사연 있는 지도를 기획하다〉(3호), 〈갤러리 에이큐 브〉(4호), 〈슈리슈리, 그곳은 어디?〉(5호)와 같은 기사들은 동네 에서 일어나고 있는 《남산골 해방촌》 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장소 등 마을과 관련한 내용들입니다. 특히 최신호에 실린 〈맹탐정 디스패치〉는 해방촌에 살거나 자주 출몰한다고 알려진 유명인들을 찾아 헤 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요. 낯익은 해방촌의 풍경과 흥미로운 주제가 어우러져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한편 〈숨은 명당 한 컷〉(1호), 〈어느 갠 날〉 (2호), 〈골목길〉(3호) 등은 해방촌 곳곳의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동네를 설명합니다. 창간호를 여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를 비롯하여 〈《남산골 해방촌》 인터뷰 ‘당’ 하다〉(2호), 〈늦었습니다〉(3호) 일부, 〈만나고 만나고 만나다〉(3호) 등은 잡지의 발 행목적과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4호 이후로는 잡지의 성격 혹은 잡지 그 자체에 대한 기사는 없습니다. 관심이나 돌아보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일정 정 도 이상의 잡지에 대한 공동 개념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덕분이라 볼 수 있겠습니 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3호에는 〈All Sorrows are less with bread〉(빵만 있으면 어지간한 슬픔은 견딜 수 있다)와 〈해방촌성당을 찾아서〉라는 두 편의 내외국인 객 원 기자의 기사들이 실렸습니다. 4호는 ‘여기’에서 ‘저기’로의 이행이라는 주제로 전체를 관통하는 맥락을 잡고 자 했습니다. 〈모든 뚜벅이를 위한 골목길 가이드〉와 마을버스 잡아타기의 노하우 를 다룬 기사인 〈10년쯤 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꼼수〉는 해방촌의 어딘가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공간적 이동을 다뤘습니다. 〈상이와 메콩의 가구 리폼 도전기〉와 〈Spring is coming〉(봄이 오고 있어요)는 각각 사물과 계절의 변화를 이야기했죠. 〈남산갈래?〉는 에세이의 형식을 빌려 해방촌 언덕에서의 기억들을 통해 시간의 흐 름을 써냈습니다. 한편 〈해방촌 예술마을, 그 뒷이야기〉는 〈해방촌, 색(色)을 입다〉 (2호)와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2012년 5월에 ‘해방촌 예술마을 조성 사업’에 관한 신 문기사를 읽고 동네주민으로서의 기대를 쓴 것이 앞선 기사이며, 사업 완료 후 실제 로 나타난 변화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 한 호를 건너 4호에 실렸습니다. 해방촌이 일명 예술마을로 꾸며지기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다룬 것입니다.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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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최근, 2013년9월 말에 나온 5호에는 편집자의 말을 포함하여 총 8개의 기 사가 담겨 있습니다. 자신만의 명소, 잊혀 가는 역사 속 해방촌 발견하기, 숨은 명 사 찾기, 동네 한 바퀴, 창간호 때부터 벼려왔던 사원 취재기, 동네 관찰기, 해방촌 사운드트랙 등 다채로운 내용으로 잡지에 재미를 더했습니다. 펼쳐보면 어느덧 《남 산골 해방촌》이 한층 성장하고 정비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각 기사의 분 량이 늘어 심층취재가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주제 중 절반 정도는 각자가 진행하고 있는 일과 연관이 되어 있어 더 상세한 접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해 하고도 반년을 더 자라나는 동안, 해방촌의 유일한 동네잡지는 이러한 내 용들을 담아왔습니다. 매번 잡지가 인쇄되어 나오면 해방촌의 주요 버스정류장 네 곳과 음식점, 카페, 슈퍼 등에 직접 배포합니다.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지 늘 궁금해 하 면서 말이죠. 광고 한 편 싣지 않은 채, 구성원들의 취미에 약간의 지향 을 더해 만들고 있다는 《남산골 해 방촌》, 지금부터 본격적인 이야기 가 시작됩니다. ▶해방촌으로 들어가는 길목, 우리도 그렇게 시작 했답니다 해방촌 사람을 찾습니다 그들을 처음 만난 건 2012년 초봄, 3월의 끝자락이었습니다. 해방촌에서 잡지를 만 들겠다는 생각만으로 동네 카페에서 십 여 명이 모였답니다. 대자보를 보고 무작정 연락을 했던 처음엔 반신반의 했습니다. 바쁘게 오가는 도시민들이 과연 글을 눈여 겨보기나 했을까 싶었고 마을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서울에서 동네를 이야 기한다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었습니다. 평소 살아가는 곳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낯선 이와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저조차도 모임에 나가기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동네 카페를 찾아 갔을 때, 기대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몹시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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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기뻤답니다. 그때의 장면이 창간호에 실려 있는데, 잠시 읽어 보시겠어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배영욱, 1호) 2012.03.29 《남산골 해방촌》 해방촌 동네잡지 만들기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전단지. 정류장에서 보신 적 있으신가요?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뜯어온 사람들 이 만났습니다. 2012.03.30 ~ 04.14 그렇게 2주간의 시간을 두고 해방촌 주민과 해방촌에 관심 있는 사람 8명이 모였습니다. 후암동이 두텁바위의 한자 이름인 걸 알려준, 보성여고 나온 여 자 한솔이. 해방촌 이주 2개월 만에 해방촌의 매력에 빠져버린, 요가 하는 시 원.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에너지도 않은 디자이너 학생 해지. 6년간 해방촌 관 찰만 했다는 도시 설계하는 학생 영욱. 2012.03.30 ~ 05.19 첫 번째 만남 그리고 이어진 13번의 만남. 어색하게, 하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해방촌과의 인연, 나만 알고 있는 동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갔습니다. ▲ 해방촌 동네잡지 모임의 첫 만남(제공: 배영욱) 15년 정도를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잡지 만들기를 쉽게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제 가 살고 있는 후암동에는 젊은이를 마주치는 일보다는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모습을 뵙기가 더 잦았거든요. 그나마도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때문인지 간혹 이야 기를 꺼내보아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동네로는 초등학교 졸업을 고작 6개월 정도 남긴 시점에 전학 왔고, 중·고등학교는 옆 동네 해방촌에서 다닌 지라 마음을 나눌 친구도 많지 않았답니다. 그나마 십 수 년을 다닌 성당의 청년 공 동체는 존재가 미미한 정도였고요.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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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렇게 동네활동에관심이 많았느냐고요? 잠시 뒤에 더 자세히 말씀 드리겠 지만 제가 잡지 모임에 나가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동네 친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을이라는 화두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조금 더 큰 목표를 위해서였어요. 졸업 후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 을 보고,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돈’이라는 것을 구체적으 로 의식하게 된 것이지요.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픈 일을 하면서 즐겁게 더불 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마을’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어 요. 동네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가고 그것으로 경제적 소통을 하다보 면, 이웃과 더 친밀해지고 돈 너머의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그 출발은 서로의 소식을 나누는 신문과 같은 형태가 되길 바랐습니다. 이것 이 제가 마을 공동체, 특히 소식지 만들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입니다. 물론 마 을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짧게나마 경험한 지금에는 이 꿈을 이루기가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제가 살고 있는 후암동에서는 시작하기 어려웠던 저의 동네잡지 만들기 를 옆 마을에서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이사며 진학 으로 하나 둘 떠났고, 해방촌에서 새로이 누군가를 사귈 방법은 없어보였기 때문이 죠. 이제는 말을 걸만한 사람조차 몇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가봅니다. 혹은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요. 평소 동네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활동을 만들고자 안달 나 있었던 제게 친구의 반가 운 문자가 도착했으니 말입니다. 사진 속 포스터에 적힌 연락처로 보냈던 메일을 이 제와 다시 읽어보면 웃음이 납니다. 동네잡지 모임 지원 메일 (이한솔) 제목 : 안녕하세요 해방촌 주민님 보낸 사람 : Doris Han Lee 12.03.30 14:47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해방촌 주민님! 저는 한도리라고 합니다. 후암동에 살고 있지만, 보성여중고를 다녔고 친구들도 그 쪽에 많이 사는 덕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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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분에 준해방촌 거주민.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잖아도 동네에 관심이 많아서……. 동네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다며 친구 와 논의 하던 중이었는데! 오늘 친구가 깜짝 놀라며 포스터를 찍어서 보내왔더라고요.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해방촌 소식지 만들기! 《남산골 해방촌》 무작정 자기소개를 하려니 좀 막연한데요. 일단 같이 만들고 싶은 맘 하나는 확실해요! 꺄! 어서 뵙고 싶네요. 지금은 어떨까요? 종종 초심을 잃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하게 됩니다. 가끔은 잡 지 모임이 제 주말을 빼앗아가는 의무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아침잠을 서둘러 깨어야 하는 경우에는 말이죠. 하지만 막상 동네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의 활동과 서 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아, 그래서 내가 잡지 만들기를 계속하고 있었구 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벗어나기는 이른가 봐요. 왜 왔니? 친구를 만나러 왔단다. 첫 만남으로부터 두 달여 만에 창간호를 손에 들었습니다. 해방촌 이곳저곳에 배포 하기를 마친 다음에는 주위 친구, 가족, 지인들에게도 한 부씩 수줍게 내밀고 반응 을 기다렸죠. 여러 이야기가 있었는데 “신기하다”, “뭐 이런 걸 다 하고 있나”, “그 동네에는 재밌는 게 많은가”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잡지의 주인공인 해방촌에 관한 질문도 있었지만 동네잡지를 만드는 작업 자체에 대해 묻는 사람이 더 많았답 니다. 수많은 궁금증들에 대한 답변을 〈《남산골 해방촌》 인터뷰 ‘당’하다〉라는 제목 으로 2호에서 풀어냈습니다. 질문들 중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했던 것은 “도대체 이 모임을 왜 만들었고 무엇 을 위하여 지속하고자 하는가?”였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궁금증을 가졌던 사람들 위해서, 그보다 스스로 우리 잡지의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로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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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견을 모았습니다. 여러가지 의문을 던졌던 이들 중 한 사람의 질문에 대하여 답 하는 형식으로 말이죠. 처음에는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었다는 생각에 마냥 기분이 좋았는데, 잠시 뒤에는 ‘우리가 뭔가 의도나 계획이 애초에 있었던가?’ ‘우리는 왜 모였을까?’ 등 각자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남산골 해방촌》 인터뷰 ‘당’하다〉 (박지영 외 5인, 2호) 지난 5월 《남산골 해방촌》 1호가 발간된 후 여기저기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 다. 그러던 중 의외의 인물에게 잡지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받게 되었다. 질문 1: 해방촌에서 이 잡지를 만드는 친구들은 왜 이 작업을 하는 것인지? 또 이 잡지가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는 것인지? 즉 이 잡지의 목적은 무엇인지? 영욱: 참여하는 각자를 위해서? 아마도 여기 참여하는 친구들 중 누구도 “해 방촌 공동체를 위하여”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진 않을 것 같다. 시작은 소박 했다. 동네 친구들이 있고 이 친구들과 뭔가를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솔: 일단 잡지를 통해 동네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과정 을 겪는다는 것이 주요한 목적인 듯! 같이 작업하는 우리끼리도 친구가 되어 가겠지만, 점점 해방촌이라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과 마주할 기회가 많아지지 않을까나? 지은: 동네 친구도 만들고 글 쓰는 것에 두려움을 없애고자. (몸담을 광고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였음) 잡지의 목적은 동네 커뮤니티 활성화랄까? 해지: 먼저, 시작은 꿈틀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서울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정착을 마음먹은 사랑스러운 이 동네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고 싶었다. 게다가 나에게 잡지와 출판은 너무나 매력적인 주제이다! 시원: 늘 하던 일에서 조금은 색다른 일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이 지역에 개성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이 작업을 통해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는 네트워크의 통로가 되기를 기대했다.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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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해방촌’ 그리고‘잡지’라는 두 단어로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각자의 생각은 달 라도 마음은 비슷했습니다. 하고 있는 일이나 공부와 관련이 있어서, 자신의 재능 을 발휘하여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혹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온 경우도 있었습 니다. 저는 앞서 언급했듯 평소 마을 공동체에 관심이 많았고, 마침 지속 가능한 활 동을 모색하던 중이라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남산골 해방촌》 것처럼 보여도 모두가 공감하고 지향하는 목표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바로 ‘동네 친 구’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위 기사에 이러한 점들이 잘 드러나 있죠. ‘친구’와 ‘재미’를 찾는 집단이라니, 낯설지 않으신가요? 언뜻 특이한 청년들이다 싶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여러분의 동네에서도 이런 활동들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 니다. 아시다시피 기존에 공공기관 또는 시민단체의 주관으로 이루어져왔던 마을 활동이 이제는 동네사람들이 직접 만들고 주도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경 제적·제도적 측면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덕분이기도 합니다. 물 론 그러한 활동들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복지와 노동시간 감촉, 자유롭 게 이용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의 확대 등 훨씬 더 많은 변화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경 제적 효용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와 풍토도 차츰 근본적으로 바뀌어 가 야 할 테고요. 하지만 동네에서의 다양한 활동이 늘어난 궁극적인 이유는 마을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특히 서울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직장, 교육 여건, 집값 등의 요인에 따라 거주지역이 인위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에 누가 살고 있는지, 동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둘 여유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각자의 삶만 살아가던 이들이 다시 이웃과 친구를 찾으려 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이렇게 출발했습니다. 해방촌에서 태어나 자란 학생부터 홀로 서 울에서 자리 잡기가 쓸쓸해 사람을 찾아온 직장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모였습니다. 누군가 《남산골 해방촌》에 참여하여 무엇을 얻었느냐 묻는다면 각자 다른 대답을 하겠지만 동네 친구가 생겼다는 말만은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마을 돌아보기’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을 동 시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지요. 같이 밥을 먹고, 안부를 물으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는 동네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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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경험을 말입니다. 2.창간 첫 취재: 동네에서 헤매기 이렇게 나름대로의 목적과 다짐으로 시작한 동네잡지 만들기는 쉽고도 어려웠습니 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일을 도모하다보니 재미도 있었고, 친구를 만들고자 했던 덕분에 모임도 자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 및 집필과 발간까지 전 체 과정을 경험해본 사람이 없었을 뿐더러, 생각보다 우리는 동네에 대해 제대로 알 고 있는 것이 많지 않더군요.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기사를 써내는 것이었습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친구도 있었지만 대체로 누군가에게 보일 글을 작성하는 것 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농담처럼 말하던 ‘창작의 고통’이 그저 웃어넘길 일은 아니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첫 취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 습니다.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잡지 만들기를 시작한지 1년 반이 넘은 지금에는 과정 중 가장 순조로운 부분이 기사 작성이라는 농담을 주고받 을 정도입니다. 처음이기에 잡지의 틀부터 고민해야 했습니다. 어떤 주제로 첫 호를 꾸밀지, 기 사는 몇 개를 실을지 수차례 다양한 의견이 오갔습니다. 동네잡지이다 보니 새 소식 을 중심으로 실어야 할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인터뷰로 담을까, 지나 다보면 길에 고양이가 많던데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해방촌을 다룬 문화예술 콘텐츠 들을 다뤄볼까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던 끝에 우선은 각자가 궁금한 내 용, 소개하고 싶은 소재를 선택하여 취재하기로 했죠. 이러한 방침은 5호를 막 발간 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진정 하 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에 완성도가 더 높아지고, 우리의 활동을 지속해나갈 수 있 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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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회의록 (2012년3월 30일) *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나? - 소통의 방식은 가볍게, 자주 찌라시(전단)의 형태로 - 지속성에 대한 고민의 일환으로 정기적인 발행일을 정하는 것이 필요 《남산골 해방촌》 - 잡지는 양보다는 재미를 추구했으면 함 - 호 잡지가 외부인이 만든 느낌이 많이 나기 때문에 2호 잡지는 마을의 이 1 야기, 잡지를 통해서 마을사람들을 만나는, 아! 우리마을에 이런 일이 있구 나, 주민도 잘 모르는 해방촌 이야기* - 해방촌스러운 것, 해방촌의 지금을 기록하고 담음 이제는 종점이 아닌 종점약국, 어딘가에 숨어있을 전망 좋은 명당자리, 동네에서 보낸 유년시절 이야기, 해방촌에 살고 있는 어느 외국인 가수의 사연, 모르는 사이 생겨난 작은 공방 등. 우리의 창간호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담게 되었습니다. 주로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던 만큼,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동네 사람 들도 자연스레 마주하게 되었죠. 그 중에서도 제가 택한 첫 주제는 해방촌 곳곳에서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계신 어르신들의 사연이었습니다. 평소 도시농업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회색 공간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푸름이 돋보이는 봄이었기 때문이 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시 제 첫 기사를 소개할게요. 〈해방촌,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이한솔/김민오, 1호) 감나무가 있는 마당(이영숙, 70세) 4월 19일, 신흥로에는 갖가지 꽃과 나무가 서로 어우러져 완연한 봄을 알리고 있었다. 곳곳의 모퉁이와 화분 등 작은 공간들에도 생명이 가득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6·25 전쟁 이후 심었다는 감나무가 지키는 한 마당에는 유난히 다 * 여기서 ‘1호 잡지’란 발행인 영욱 언니(배영욱)가 2011년 여름, 서울문화포럼에 참여해 만든 《다른동 네 해방촌》을 말합니다. 또한 ‘2호 잡지’는 《남산골 해방촌》 창간호를 의미합니다.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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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로운 색감을 자랑하는꽃들이 피어나 눈길을 끌었다. 자그마한 마당 정원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아름다운 화단의 주인공이 문을 열고 나섰다. 꽃을 좋아해 화분을 하나하나 늘려 왔다는 이영숙 할머니. 방음벽 옆집(비밀, 72세) 남산 3호 터널 옆 방음벽에 주욱 늘어선 화분들을 본 기억이 있는지? 아마도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궁금해 했을 화분의 주인공을 드디 어 만났다. (중략) 할머니는 특히 야생화를 좋아해 야생화 전집까지 사서 공부 를 했다. 그 덕분에 화분들은 제각각 예쁜 이름이 적힌 팻말도 얻었다. 봄맞이 꽃, 아이리스, 구절초, 작약, 인동, 병꽃나무……. 이렇게 하나하나 이름을 적 어둔 연유를 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꽃을 많이 보고 가는데 이름도 알면서 보면 더 좋잖아.” 간혹 근처에 사는 아가씨와 꽃을 서로 주고받기도 하고, 분양을 원하는 사람 들에게는 그냥 나누어주기도 한다고. 작고 고운 생명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 웃을 아끼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가 보다. 꽃이 망울을 틔울 즈음에 다시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며 더 풍성해질 골목 풍경을 상상했다. 야생화 할머니의 정성과 오가는 이웃들의 관심으로 탐 스러워질 꽃들을 한 송이, 두 송이 기대해 본다.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작업은 생각보다 더 흥미로웠습니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부분이었고, 나름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이 점은 예상했던 것이지만 생각지 못했던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소일거리로만 여 겼던 정원 가꾸기가 누군가에겐 행복한 취미였고, 이웃을 위한 배려였으며 평생의 성취였습니다. 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면 화분 하나하나의 의미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겠지요. 《남산골 해방촌》을 만들며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무엇 하나도 허투루 넘길 것이 없구나’,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했던가!’ 하는 것들 이죠. 기사를 쓰면서 글도, 마음도 다듬어 간답니다.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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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당신이 《남산골해방촌》이라 불러줄 때 우리는 잡지가 되었다 기사가 하나 둘 탄생하고 창작의 고통이 끝나갈 무렵, 우리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잡지 모임을 주도했던 발행인 영욱 언니(배영욱)가 건축을 전공한 덕분에 편집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었죠. 하지만 막상 기사를 배 《남산골 해방촌》 치하고 인쇄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도 와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바로 그 때 나타난 친구가 여전히 큰 힘을 보태고 있는 해 지(정해지)입니다. 창간호부터 5호까지 우리 잡지의 디자이너와 편집장이라는 막중 한 임무들을 겸하고 있죠. 또 다른 고민은 잡지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지니까요. 모두가 창작열에 휩싸였고 재기 넘치 는 제안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해방촌 블루스’, ‘해방촌 돋보기’, ‘어큐파 이(occupy) 해방촌’, ‘해방촌 복덕방’, ‘무소식이 희소식’ 등 아래 기사에 나와 있는 것들 외에도 많은 후보가 있었어 요. 모두가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 는 제목들이었죠. 하지만 동네잡지 이니만큼 최종 결정은 해방촌 주민 들께 부탁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버스정류장 등에 대자보를 붙이고 이틀을 기다렸습 ▲ 방촌 곳곳에서 화분에 심긴 나무, 꽃, 채소 그리고 장독대를 해 니다. 결과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3곳, 48시간, 477명〉 (배영욱, 1호) 2012. 04. 17 우리 잡지 이름? 주민투표로 결정하자! 잡지 이름 후보들: ‘해방촌 발견’, ‘해방촌 사람들’, ‘월간 해방촌’, ‘안녕하세요 해방촌’, ‘남산골 해방촌’, ‘우리동네 해방촌’, ‘다른 동네 해방촌’, ‘해방촌 동네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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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바퀴’, ‘무소식이 희소식’ 2012.04. 26 이틀 만에 촘촘히 붙어 있는 스티커를 세면서 다시 흥분되기 시작했습니다. 개표 30분 만에 결산 마감! 와, 총 투표수 447! 감격했습니다. ‘남산골 해방촌’ 160표(33.5퍼센트). 이렇게 우리들의 잡지는 《남산골 해방촌》이 되었습니다. 이 작은 이벤트가 별 일 없이 살아가는 477분의 일상에 소소한 재미가 되었기를 바라며, 주민 여러 분들이 이름을 정해 주신 잡지 《남산 골 해방촌》도 발간이 기다려지는 희 소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지 이름 투표용 포스터와 주민들의 응답 (제공: 배영욱) 잡 그렇게 드디어 잡지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몇 번이나 소리 내어 말했던 그 이 름, 《남산골 해방촌》. 해방촌 주민 500여 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총 33.5퍼센트 에 해당하는 160명이 ‘남산골 해방촌’을 선택했답니다. 해방촌 사람들이 무명 잡지 의 이름을 붙여준 순간, 《남산골 해방촌》은 비로소 동네잡지로서의 출발선에 설 수 있었죠. 이틀 동안 확인한 뜨거운 관심은 첫 호 발간을 앞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 습니다. 잡지를 기다리는 분들도 많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잡지는 무슨 돈으로 나오나요? 이제 잡지 기사는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이름도 정해졌죠. 하지만 발간을 위해서는 넘어야할 큰 산이 아직 하나 남아있었으니, 바로 인쇄비 문제였습니다. 주민들이 오며가며 편하게 읽는 잡지가 되고 싶었고, 특히 해방촌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 기 때문에 온라인 발간보다는 인쇄물로 소식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최근 많은 수의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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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웹진이 발간되고있지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민들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손닿는 곳에서 쉽게 잡지를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취재, 편집, 배포 등 다른 과정은 우리의 힘을 모아 진행할 수 있었지만 잡지를 한부씩 손으로 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사실 잡지 창간호부터 참여했던 모 《남산골 해방촌》 기 씨(고헌)는 회의 중에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릴지라도 수작업으로 잡지를 펴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의견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와 재미를 떠나 현실적 으로 어려움이 많으리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잡지가 인쇄물로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다해보기로 했습니다. 두드리면 열리리라는 말은 두드려 야만 열린다는 말이기도 하겠죠. 발행인 영욱 언니는 무작정 서울시에 제안서를 만 들어 보내보고 각종 기업의 후원 프로그램, 연구 지원 사업, 아르코 등 문화예술 관 련 사업,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까지 바쁘게 《남산골 해방촌》을 알리고 다양한 활로 를 찾고자 했습니다. 얼마 전에 나눈 대화에서는 당시에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방법까지 연구하고 있었다는 소회도 했지요. 이곳저곳을 두드려 본 결과, 생각보다 빨리 잡지 인쇄비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5호를 발간한 2013년 9월 말, 지금까 지 잡지 발간 비용 문제로 큰 곤란을 겪은 적은 없고요. 회의록 (2012년 3월 30일) *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나? - 방촌답게 지역주민이 볼 수 있도록 아날로그적인 방식의 인쇄물로 해 제작 배포 - 지의 타깃을 마을 주민으로 명확히 한다면 간단, 명료, 쉽게, 잡 주민들 입맛에 맞게 제작 -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함 - 부분은 수작업을 통해서도 제작이 가능할 것. 예를 들면, 아이들이 일 직접 그린 그림을 표지로 사용 - 인쇄를 협찬 받을 수 있는 경로를 알아보겠음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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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 되면 아마궁금해 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도대체 자금은 어떻게 구해서 잡지 출판을 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점 말입니다. 대체로 마을 소식지가 와해 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인쇄비 조달의 어려움입니다. 운이 좋게도 《남산골 해방촌》 은 비교적 평탄하게 운영되어 온 편이지만요. 1~3호의 인쇄는 영욱 언니가 적을 두 었던 회사인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지원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발행인 배영욱의 제안에 대한 ㈜해안건축의 답신 메일 제목 : 해방촌 동네잡지 보낸 사람 : 김 태만 13.05.18 17:56 배영욱씨, 열심히 살고 있군. 동네잡지 칼라인쇄 지원에 대해 이렇게 하도록 하겠네. 2012년 4회 발행된다는 계획에 의거, 2012년에만 지원 우선 최초 2회 지원, 그 이후 결과를 보고^^ 연내 총 4회까지 지원 사내출력소 이용. 잘 만드시고~ 이용/비용처리 방법에 대해서는 이상명상무님께 문의하시게. 한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공모한 ‘2012년도 1학기 대학문화예술활동 지 원 사업’에 해당 학과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공모제안서를 냈습니다. 본래 해방촌에 서 동네잡지를 함께 만들 사람들을 모집하는 포스터가 붙게 된 출발점은 다름 아닌 영욱 언니의 과제 때문이었습니다. 도시설계를 전공하고 일을 하다 다시 공부를 시 작한 언니의 박사과정 첫 학기 과목이 커뮤니티 설계였습니다. 영욱 언니는 5년 넘 게 살아 온 해방촌을 대상지로 삼았고 잡지 만들기를 통해 활동을 시도하기로 했죠. 그렇기 때문에 초기 구성원 중 세 명이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학생이었습니다. 덕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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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분에 동아리활동비를 지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동네 HBC_지역신문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30만 원을 지원받았고, 잡지 발행 및 창간파티에 유용하게 사 용했습니다. 2호가 발행될 즈음부터는 서울연구원에서도 후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작은 연 구, 좋은 서울’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지원금은 주로 모임 비용으로 이용했 《남산골 해방촌》 습니다. 회의 진행비, 해방촌 주민들과 만남의 장이 되는 발간파티 준비비, 《남산골 해방촌》 참여자들 간의 관계를 다지기 위한 여행비 등으로 말이죠. 동네잡지를 만 드는 과정 자체가 해방촌에 대한 작은 연구이기도 하고, 동시에 마을에서 어떠한 모 임이 만들어지고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기에 의미 있는 지원이었다고 자화자찬 해봅니다. 물론 2013년 하반기에 같은 프로젝트에 공모하여 다시 한 번 지원을 받게 된 것을 보면, 우리의 작은 연구가 좋은 서울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 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작은 연구, 좋은 서울’ 연구모임 결과 발표회〉 웹진 기사 2012년 12월 17일(월) 오후 2시 우리 연구원 2층 대회의실에서, ‘작은 연구, 좋은 서울’ 연구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금년 5월 공모를 거쳐 선정된 11개 연구 모임 중 금년 말에 종료되는 7개 연구모임의 성과가 발표되었다. 이날 발표된 7개 연구모임은 아래와 같다.* 1) 서울특별시 특별사법경찰제의 실태분석과 개선방안(특별사법경찰 연구모임) 2) 남산골 해방촌 동네잡지 발간(남산골 해방촌 매거진 연구모임) 3) 동시대 주거문화로서의 한옥(몸-도시포럼) 4)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와 사회적 기업의 역할 (서울지역 사회적기업 생태계 조성 연구모임) 5) 공동체적 시민학습 모임의 구축 및 활성화에 관한 연구 (풀뿌리 2.0 업그레이드 연구모임) 6) 성년후견제도 이해와 성년후견인 양성 * 출처: 서울연구원 Webzine(http://news.si.re.kr/newshome/mtnmain.php?eda=sda=sid=17 stext=mtnkey=articleviewmkey=dsearchlistmkey2=17aid=1023)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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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이 행복한 서울만들기 연구모임) 7) 서울지역 시민사회 민간연구소 교류 및 협력방안 모색 (민간연구소 협력 모색 연구모임) 최근 서울시를 비롯하여 여러 기관에서 마을 만들기와 관련한 지원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지요. 그러나 실제로 수혜 단체가 지원금을 운용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 습니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각각 지원이 필요한 영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육 이나 세미나를 중심으로 하는 단체의 경우에는 강사비 지원이 유용하겠지만 우리와 같은 잡지 모임에게는 크게 필요하지 않은 부분입니다. 오히려 기존 서울시 지원 체 제에서는 사용이 어려운 참여자 인건비라든지, 외부가 아닌 내부 회의비 지원이 절 실한 상황입니다. 잡지 참여자들이 대체로 생활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서비스 나 대의명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취미나 친목을 도모하려고 모였기 때문입니다. 이 런 면에서 서울연구원의 지원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마을 공동체의 자생적 성장과 지속을 위해서 지원금 사용에 제한을 둘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동네 모임의 성격에 따라, 그것의 최종적인 목적이 비즈니스가 아니라 이웃과의 만남이라면 거기에 걸맞은 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 이 모여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든가 함께 모였을 때 만남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비용 등 말입니다. 이 점이 현재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시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의 난점이 아닐까 합니다. 적어도 반 년 혹은 일 년 정도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 몇몇이 모임에만 집중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비즈니스 차원 에서의 장기적 구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재원이 시민들의 세 금이다 보니 공정하고 투명한 집행이 필요하겠죠. 앞으로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수반될 지점이리라 생각합니다. 드디어 창간호를 손에 들다 드디어 발간일. 영욱 언니의 집으로 우리의 어엿한 첫 번째 성과물이 도착했습니 다. 총 스무 쪽의 작은 규모지만 각자의 글이 막상 잡지로 출력되어 나오니 기분이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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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색다르더군요. 마침해지의 옆방에 사는 현진 언니(김현진)가 교열로 재능을 기부 해 읽기 편한 글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인연이 참 묘한 것이라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힘이 나온다며 잡지를 들고 서로 함박 웃음을 지었습니다. 각자 《남산골 해방촌》을 가슴에 품고 해방촌 오거리 길을 오르고 카페 《남산골 해방촌》 가 많은 골목을 걸었습니다. 창간 겸 후원 파 티 직전에 모여 해방촌 곳곳에 잡지를 가져다 뒀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버스 정류장 과 길목 카페, 동네 슈퍼, 세탁소 등에 말이죠. 잡지를 담아둘 상자를 설치하는 동안 사람들 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고, 잡지가 놓이 ▲ 《남산골 해방촌》 창간호 첫 배포 자 이내 한두 부씩 챙겨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유도 잠시, 곧 첫 호 발간을 기념하며 준비한 《남산골 해방촌》 후원 파 티가 열렸습니다. 기사를 마무리하고 편집과 최종 발행을 기다리며 하나 둘 준비했 었죠. 우리가 처음 만났던 카페 ‘열두 가지’ 옆 자그마한 공터를 빌려 떡볶이와 부침 개, 간단한 칵테일 등 음식을 준비하고 장식물을 달았습니다. 그간 해왔던 모임과 활동들을 정리해 벽에 붙이기도 하고 공연할 친구들도 알음알음 몇 팀 모셨습니다. 잡지에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던 동네 외국인 가수도 축하공연을 해주었답니다. 보 슬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고 기쁨을 함께 나눴습니다. 반응은 어땠느냐고요?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잡 지를 나누어주었는데 호기심과 관심이 기대 이상이었습니 다. 처음엔 어색하게 여기시던 동네 주민들도 하나둘 자연스레 파티에 참여해 주셨고 낮에 시 작한 잔치는 밤까지 이어졌습니다. 삼삼오오 모 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앞으로 우리 잡 지가 나아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동네 사람끼리 마주칠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거듭나고 싶었습니다. ▲ 《남산골 해방촌》 발간 기념 및 후원을 위한 잔치 쿠폰 ▲▲ 《남산골 해방촌》 발간 기념 및 후원 파티 풍경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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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장 진부한 표현이긴합니다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죠. 취미로 만드는 동네잡 지가 일단 인쇄물을 받아들었으니, 그 목표가 절반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 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출 《남산골 해방촌》이 아닙니다. 이후 네 권을 더 내며 많은 변화들을 겪기도 했답니다. 이 장에서는 잡지에 실렸던 기사를 중심으로 2호와 3호 로 이어지는 우리 잡지의 성장과정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다 창간호에는 해방촌을 묘사하는 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 은 기사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이라 각자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기가 조심스럽기도 했고, 해방촌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들 보다는 호기심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길 게는 평생, 짧게는 일 년 정도 해방촌을 경험했다지만 막상 동네를 주의 깊게 관찰 하지는 않았었나 봅니다. 물론 1호에도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기사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는 의견이라기보다는 감상에 가까웠습니다. 〈쫀드기 행방불명〉 (박지영, 1호) 해방村, 해방과 村 사이 해방촌은 동네 사람들끼리의 유대가 돈독한 그야말로 촌동네였다. 그런데 어 느 순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니 예전의 그 모습을 잃을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불안하고 불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해방촌이 예전처럼 닫혀 있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변화가 주는 풍족함을 누리면서도 학창시절 친 구들과 뛰어다니던 해방촌의 기억들도 공존할 수 있는 푸근한 모습이 남아 있 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위 기사는 십 여 년이 넘게 해방촌에서 살아온 지영이(박지영)가 쓴 글입니다. 동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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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네에 오래살았던 만큼 애정도 있고 마을에 바라는 모습도 존재하지요. 하지만 구체 적인 변화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느낌을 적는 데 에서 그쳤습니다. 물론 이러한 글 덕분에 잡지가 더욱 풍성해지고 주민과의 친밀도 가 높아집니다. 동네잡지의 구성에 반드시 필요한 형식이죠. 하지만 2호부터는 감 상을 적은 글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해방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리고 의 《남산골 해방촌》 견을 제시하고자 하는 글이 등장했습니다. 이렇게 1호는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주민들에게 가까이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비해 2호는 세 편의 큰 기사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분석하는 마을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더 집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의 기사는 당시 용산구청에서 발표되었던 ‘해방촌 예술마을’ 사업 공고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담은 글입니다. 〈해방촌, 色(색)을 입다〉 (이한솔, 2호) 해방촌 예술마을 만들기는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그간 사례들에서 예술마 을 사업의 많은 장점들을 그려 본다. 기존 마을의 모습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 을 만들어냈다든가, 주민들의 얼굴을 담장에 그려 정겨움을 더했다든가. 평소 외지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던 지방도시에선 예술마을이 관광자원이 되어, 경 제를 일으키는 데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화마을의 천사날개 사 례에서도 볼 수 있듯, 일상생활 공간이 쉽게 침범 당하거나 마을이 소란해질 우려도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의 참여가 중 요한 이유다. 용산구청 도시디자인과 담당자는 예술마을사업에서 주민참여 부분이 크지 않 다고 말했다. 기획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다만 사 유지가 대상지로 선정되었을 경우 협의가 가능한 수준의 권리만 보장될 따름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제시한 주민설명회라든지 여러 경로로의 건의, 제안들을 지속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우리마을은, 좀 더 ‘우리의 마을’에 가까 워지지 않을까? 예술적 요소의 중요성만큼이나 마을의 의미도 잊지 않는 진 정한 “예술마을로 거듭나는 해방촌”이 되기를 바라본다.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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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2호에서비교적 비중 있게 실렸습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지 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마을의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변화에 주목하게 되 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관공서에서 진행하는 일들은 주민들의 생활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알려지지 않는 편입니다. 물론 사업 주체 인 관이 정보에의 접근을 차단하는 탓은 아닙니다. 다만 각자의 생업에 바쁜 주민들 이 굳이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반인의 입장 에서 행정이란 으레 번거롭고 지루한 일이려니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산골 해방촌》을 만드는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동네잡지를 시작하고 나니, 해 방촌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시시때때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건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주민들에게 자세히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 니다. 이 기사가 가지는 두 번째 의미이자 변화는 각자가 해방촌을 바라보는 특정한 시 각과 해방촌의 모습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잠시 여러분의 동네 를 떠올려 봅니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금세 말해줄 수 있나요? 혹은 어떻게 변화하길 바라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동 네잡지를 만들며 이웃들에게 소식을 전하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나의 삶 터’를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위 기사의 전반부에는 해방촌을 예술마을로 만들겠다는 구청의 기획을 소개하고 당시까지의 진행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후반부에는 다른 마을에서 이루어진 벽화 사업 등을 소개했죠. 관공서의 관계자들과 주민 인터뷰를 통해 정보를 수집했고 사 업 선정자를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4호에서는 이 기사에 이어 실제로 진행 된 사업을 돌아보는 글을 쓰기도 했죠.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볼까요? 이어지는 기사, 〈어느 벽화 이야기: 어디에선가 이 글을 읽고 있을 거리의 예술가에게〉 역시 해방촌에서 펼쳐지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적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어느 벽화 이야기〉는 잡지 모임에서 일명 ‘벽화 전쟁’ 으로 알려진 사건에 대한 기사입니다. 담벼락에 특정한 메시지를 담은 그라피티가 남겨졌고, 누군가는 이것을 지우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덧입히며 마치 전쟁과도 같은 의견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처음 발견한 벽화는 회색 벽에 새파랗고 새하얀 페인트로 그려진 그림이었어요. 그림 위에는 ‘우리 가족’이라는 제목이 달려있었고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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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다양한 가족의형태를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성인 여성과 남성의 손을 한 쪽씩 잡은 아이, 여성 둘의 손을 잡은 아이, 남성 둘의 손을 잡은 아이, 둘 중 어느 한 쪽과 걸 어가는 아이 등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구성 외에도 동성애 커플 가정, 한 부 모 가정 등 다른 모습들을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림의 한편에 가위표가 쳐졌습니다. 아마도 항의 혹은 불쾌감의 표현이었겠죠. 여기에 질세라 익명의 작가 《남산골 해방촌》 는 그림을 덧그렸습니다. 이 싸움이 수차례 반복된 끝에 누군가 벽을 흰 색으로 뒤 덮어버렸죠. 아예 논의의 장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아래 기사는 바로 이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어느 벽화 이야기: 어디에선가 이 글을 읽고 있을 거리의 예술가에게〉 (신지은/조민정, 2호) 몇 년째 동네를 오가며 관심 있게 지켜본 그림이 한 점 있다. 해방촌 길에서 인디고를 오른쪽으로 끼고 한신아파트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골목 코너에 바로 그 벽화가 있다. 아니 있었다. 지금은 마치 치아미백을 막 마친 듯 온통 새하얗게 칠해진 벽만이 그 벽화가 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한두 해 동안 이 벽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던 것은 “MY FAMILY 우리 가족” 이라는 이름의 그림이었다. 이 것 말고도 크고 작은 그라피티는 우리 동네 구 석구석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벽화가 유 독 눈에 띈 것은 보편적 가족 뿐만 아니라 폭넓은 가족의 구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 고, 또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변 화했기 때문이었다. ▲ 벽화전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 모음 (제공: 마티어스 레먼, provided by Matthias Lahmann | Matt Lemon Photography)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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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그림으로 자신의의견을 피력 했고, 그에 대해 다른 누군가는 빨간 스프레 이로 가위표를 그렸습니다. 이러한 일이 반 복되자 결국 담벼락은 또 다른 누군가에 의 해 새하얗게 칠해지고 말았죠. 그라피티의 작자를 찾는다는 문장으로 기사의 끝을 맺 었지만 궁극적으로 이 글이 말하고 있는 바 는 우리가 서로의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이 고 대응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가족’이라는 단어에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다 ▲ 한편 지금은 기린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양한 인상과 개념을 서로 어떻게 이해하고 소통할지 묻는 거죠.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서울, 그 중에서도 여러 인종과 계층, 문화가 혼 재되어 있는 해방촌에서 벽화전쟁과 같은 사건은 상당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해방 촌이 형성된 계기도 해방 이후 이루어진 대규모 이주 때문이었고, 현재까지도 내· 외국인의 이동이 잦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촌’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 도로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서는 시시때때로 색깔을 바꾸며 당대를 드 러내고 있는 해방촌.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해방촌의 문제를 보 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을 문화적 차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벽화전쟁에 관한 이 기사는 해방촌의 변화를 담담하게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벽 화 사건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레몬(마티어스 레먼) 씨를 만나고, 작가를 찾 는다는 공고문을 내는 등 이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고자 하는 노력을 해왔죠. 어느 담벼락의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해석하거나 거기에 참여하고자 했던 것입 니다. 2호의 표지를 장식한 하얀 벽, 《남산골 해방촌》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이렇 게 차츰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해방촌의 역사를 찾아서 창간호에 이어 2호에는 해방촌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가고 이곳만의 이야기를 정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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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리하고자 하는목적이 뚜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호에 실렸던 〈종점 없는 종점약 국〉의 경우, 과거와 현재의 해방촌의 모습을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하여 재구성 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지금은 그 어떤 버스의 종점도 아닌 ‘종점약국’, 그 이름의 유 래를 통해 동네의 옛이야기를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래 기사의 경우에는 ‘도대 체 왜 종점약국이었을까?’라는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내용 《남산골 해방촌》 을 정리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평소 가지고 있던 궁금증의 해소가 목표였던 것입 니다. 이 과정에서 해방촌의 지난 역사와 사람들의 기억이 재구성되었습니다. 근현 대 해방촌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은 이후에도 이어져 한 해 뒤에는 구성원 몇이 모여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을 기획하게 되었죠. 〈종점 없는 종점약국〉 (신지은/조민정, 1호) 종점약국에서 종점을 묻다 비가 시원스레 내리던 토요일 오후, 무작정 찾아간 종점약국! 약사 박○○ 씨 는 처음 보는 인터뷰어 일행에게 친절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이 약국은 60년 전에 종점약국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박○○ 씨는 40년 전에 이곳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고. ‘60년 전에 종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종점인 거죠?” ‘마을버스가 다 니긴 하지만 종점약국이 종점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60년 전이면 6·25전쟁 발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그때도 버스가 있었나요?’라고도 묻고 싶었지 만, 초면에 달려들듯 물어보면 실례가 될 것 같아 꾹 참고 있는데 그 마음을 읽기라고 한 듯 박○○ 씨는 꽤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배차실의 추억 1960년대 초 해방촌을 다녔던 첫 번째 버스는 미국 폐차를 개조해서 만든 마 이크로 버스였다. 그 후 배차실을 두고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등장했다. 약국 옆에 위치한 배차실은 안내양과 운전기사들의 휴게실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인지 약국의 판매량 상위를 차지했던 건 숙취해소 제품과 더불어 아침마다 안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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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양들이 사가던 박카스였다고.요즘은 박카스 매상이 예전만 못하다고 덧붙 이는 박○○ 씨의 말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남대문을 돌아 다시 해방촌으로 당시 해방촌을 돌던 28-1번 버스는 종점약국에서 출발해 남대문을 돌아오는 순환버스였다. 그때는 많은 동네 주민이 남대문에서 일했다고 한다. 버스 노 선이 우리 동네와 남대문을 이어주고 있는 건 이유가 있었다. 현재 규모는 많 이 줄었지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가내수공업 스웨터(요꼬) 공장도 제품 운 송에 당시 해방촌과 남대문을 오가는 버스를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요즘도 동네에서 스웨터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를 종종 볼 수 있는데 당시에는 운송수 단으로 이 버스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1호에서 해방촌의 옛 모습을 다루었던 또 하나의 글을 꼽자면 앞서 일부 발췌한 바 있는 〈쫀드기 행방불명〉이 있습니다. 이 기사를 쓴 지영이는 해방촌에 급격한 변 화가 일기 직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자기 자신이 살아왔고 경험해 온 동네의 이야기를 하기에 별도의 인터뷰를 하기보다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정리하 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사실 저의 중·고등학교 친구들만 돌아봐도 해방촌에서 태 어나서 이곳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는 토박이는 몇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 구에게나 있는 어린 시절의 보편적인 경험이면서도, ‘종점약국에서 3호 터널 쪽으 로 가려면 건너야 하는 굴다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해방촌의 쫀드기에는 독특 한 맛이 있습니다. 또한 ‘종점약국 간판의 세련미’를 말하는 재미 덕분에 이 기사의 맛이 더욱 살아납니다. 앞서 종점약국 기사가 호기심을 해결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면, 〈쫀드기 행방불 명〉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회하고 현재의 모습과 견주어 보는 데에 의의가 있습 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해방촌,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다 시 한 번 떠올리며 참여자 자신도 성장해가는 것이죠.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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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쫀드기 행방불명〉(박지영, 1호) 담백한 동네 해방촌 나는 해방촌에서 나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학창시절을 모두 이곳에서 보냈다. 내가 처음 해방촌에 살게 되었던 건 2001년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그 《남산골 해방촌》 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해방촌으로 돌아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남산 3호 터널 위에 있는, 한 학년 당 3학급으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학교였고 고등학교도 남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아담한 학교였다. 종점약국에서 3호 터널 쪽으로 가려면 굴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내가 초등학 교에 다닐 때 그 굴다리 앞에는 작게 천막을 치고 쫀드기 같은 불량식품이나 쥐포를 구워서 파는 할머니가 계셨다. 초등학생 때 학교가 끝나면 하루도 빠 짐없이 할머니 천막에서 아폴로와 쫀드기를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종 점약국 간판도 지금처럼 세련되지 않았었고 새로 지은 원룸들도 없었다. 한편 2호에는 해방촌의 꽤 오래된 이야기와 최신 소식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우 선 〈3세대 토박이, 해방촌의 변화를 말하다〉의 주인공은 해방촌 아랫동네 거리의 터줏대감 격인 ‘르 카페’의 주인이자, 보기 드문 3세대 토박이인 한사장님(한명덕)입 니다. 이 기사 역시 해방촌의 지난날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앞선 종점약국, 쫀 드기의 기억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이 다른 점은 여기서 나고 자라 온, 한 카페 주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취재원의 시각과 기획의도를 좀 더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사의 주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해방촌 변천사라 할 수 있습니다. 해방촌의 집값과 임대료의 변화를 선 그래프로 나타내고 그 위에 관련 인터뷰 내용을 얹힌 도 표는 이 기사의 백미입니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해방촌의 변화를 좀 더 구체적인 자 료와 특정한 각도에서의 조망을 통해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영욱 언니 는 자신의 전공인 도시설계의 측면에서 기사를 기획하고 인터뷰도 진행했습니다. 몇 년 째 살아가고 있는 해방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내 고자 했던 것입니다. 종점약국 기사의 경우에는 인터뷰, 〈쫀드기 행방불명〉은 기자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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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의 기억을 재구성하여과거의 풍경을 묘사하였습니다. 두 기사 모두 목적성이 나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래 기사는 해방촌의 공 간적인 변화, 특히 경제적 측면과 맞물려 빚어지는 양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 고자 하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 일정한 방향성을 획득했다는 것입니다. 〈3세대 토박이, 해방촌의 변화를 말하다〉 (배영욱, 2호) 사실 난 요즘 해방촌의 변화가 재미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해방촌이 변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한다. 하지만 왜 변화를 걱정스럽게만 느낄까? 지금 우리가 하는 잡지 만드는 작업 들도 해방촌에 이전에 없던 변화하는 모습 중에 하나일 텐데 말이다. 3년 전, 동네 구성원들이 변하면서 새롭게 나타나는 요구를 르 카페(le cafe) 주인장 명덕 씨 외에 동네 젊은 사람들이 감지하고 특징 있는 가게들을 오픈 했다. 그때 그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냈던 변화가 지금의 조금 더 다양한 사 람들이 다른 매력을 나타내는 해방촌, 밤길이 더 재미있는 동네를 만든 것처 럼 지금 우리가 만들어 낸, 만들어 내고 있는 이 잡지가 지금 해방촌의 변화를 즐기면서도 해방촌다움_로컬이 살아있는 동네를 지키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주체적으로 만드는 방법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취재원마다 다루고 싶은 것이 다르고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 또한 다양하기 때 문에 무엇이 좋고 나쁜지, 어떤 게 먼저고 나중인지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남산골 해방촌》이 해방촌을 좀 더 파고들고 있다는 점은 주지할 만합니다. 밖에서 본 우리 동네: 외부기고 싣기 《남산골 해방촌》 3호, ‘겨울의 한창’에는 객원 기자의 글이 두 편 실렸습니다. 그 중 하나는 후암동에 거주하는 필자의 아버지, 건축사 이상행 씨의 글입니다. 기사는 옆 동네 해방촌 성당을 찾아가는 길을 상세히 묘사하고 성당 건물을 건축학적 관점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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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에서 설명하여잡지에 색다른 맛을 더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중·고등학교를 다니 는 6년 동안 해방촌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골목과 적잖이 친해져 있었습니다. 해방 촌에 지금 살고 있는 대부분의 잡지 참여자들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옆 동네에 살며 간혹 해방촌을 방문하는 입장에서 쓴 글은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남산골 해방촌》 〈해방촌성당을 찾아서〉 (이상행, 3호) 해방촌성당을 찾아가는 길은 초행인 사람에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간혹 들르는 나조차도 행로는 여전히 눈에 익지 않다. 멀리서 보아도 눈에 띌 법한 산등성이에 있긴 하지만 다른 건물에 묻혀 구별되지 않을뿐더러 큰길에서도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해방촌성당으로 가는 길을 ‘해방촌 오거리’에서부터 그려본다. 오거리엔 신호 등도 없지만, 사람과 자동차가 눈치껏 어울려 잘도 소통된다. 길을 건너는 사 람은 곁눈질로 차를 살피거나 애써 외면하고 운전자들은 조심조심 지나간다. 사람이 우선인 분위기가 물씬 풍 겨 좋다. 오거리에서 남쪽 방향 길 을 바라보면 해방교회의 첨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해방촌성당 을 처음 찾는 사람이라면 교회 건 물을 성당으로 착각할 법도 하다. 몇몇 여학생들이 늦은 등굣길을 서두르는 뒤를 따라 걸음을 재촉 해 본다. ▲ 거리만큼이나 얽히고설킨 해방촌 오거리의 전선들 특히 해방촌 오거리에 대한 묘사는 주민의 입장에서 잡지를 만들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해방촌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쓰고 읽기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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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문에, 상대적으로 특정한환경, 배경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었기 때문입니다. 동네 사람에게는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장면일지라도 외부인에게는 낯선 광경이 며 찾기 어려운 장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즈음 《남산골 해방촌》은 동네 안에서 소 통의 채널이 될 뿐만 아니라 내·외부를 잇는 가교가 되어가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 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섯 달이 지나 나온 4호에는 그 이전보다 해방촌을 설 명하는 글이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All Sorrows Are Less With Bread: Life of a German migrant in HBC〉(“빵만 있으면 어지간한 슬픔은 견딜 수 있다”: 어느 독일 이주자의 해방촌에서의 삶) (마티어스 레먼/번역: 이한솔/정해지, 3호) 살던 곳에서 좀 더 아래로 이사 오니 해방촌의 또 다른 반쪽이 보이기 시작했 다. 윗동네는 대부분 한국인이었는데, 아래엔 외국인 거주자들이 많았다. 하 지만 그들은 서로 어울려 살았다. 내가 두 세계의 충돌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은, 좋아하던 그라피티(벽에 그린 그림, 낙서)가 갑자기 훼손된 것을 보았던 때다. 해방촌으로 오기 전, 이미 3년 반을 한국에서 살았으니 사실 완전히 처음 온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해방촌에서 사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다른 곳에선 이방인이었지만, 해방촌에서는 한국 사회의 일부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는 주로 대학생이나 교수들만 알았던 데 비해, 이제는 지역주민 도 만나게 되었다. 이는 내가 단지 방문자이기 보다는 한국의 시민이 된 것 같 은 기분이 들게 한다. 나는 주위의 사람들을 만나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집 근 처 가게의 사장님들이나 같은 카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웃으로 알고 지내 는 것은 훨씬 멋진 일이다. 3호에 글을 실었던 또 한 명의 객원기자는 이전 2호의 벽화 기사에서 인터뷰 대 상자가 되었던 레몬 씨입니다. 3호를 낼 때 즈음에 그는 이미 베를린으로 돌아가 있 었지만, 글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우리의 제안에 선뜻 손을 잡았습니다. 외국인 기 자의 글을 싣는 것은 까다로운 작업이었습니다. 번역의 번거로움도 문제였으나, 문 화적 차이로 인해 글의 내용을 다소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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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불구하고 쉽지만은않은 타향살이 속에 담긴 소소한 재미와 생생한 이주기를 접하 니, 잡지의 내용이 또 다른 방향에서 훨씬 풍성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레몬 씨의 기고는 단순히 객원기자의 글을 받은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기존 한국인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윗동네 해방촌과 주로 외국인들, 최근에는 외부 인들이 나들이를 나오는 아랫동네 해방촌. 그 간극을 좁혀보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남산골 해방촌》 했던 것입니다. 외국인의 이주기를 통해 한국인 주민들이 그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 일 수 있길 바랐고, 잡지에 영어 기사를 실어서 그동안 배제되었던 비한국어 독자를 포섭하고자 했습니다. 《남산골 해방촌》이 지역 커뮤니티를 느슨하게 연결하는 역할 을 시도한 것입니다. 최근 나온 5호에도 또 다른 외국인 객원기자의 글을 싣고자 했 으나, 작업상의 문제로 아쉽게도 다음 차례로 넘겼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해방촌 안과 밖, 한국인과 외국인의 틈을 좁히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잡지는 언제 나오나요? 애독자 발견! 본래 《남산골 해방촌》은 격월간으로 기획되었으나 취미로 하는 활동이다 보니 작업 의 속도를 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2012년 5월, 8월, 12월 그리고 2013년 5월, 9월에 잡지가 발행되었으니 발행주기가 비정기적입니다. 그렇다보니 누구보다도 잡지를 기다리는 것은 물론 만들고 있는 우리 모임이겠습니다만, 이제는 제법 다음 호는 언제 나오는지 문의하는 경우가 가끔 생깁니다. 애독자를 자처하는 고마운 분 들도 나타나기 시작했고요. 잡지를 보고 또 함께 하고 싶어 종종 찾아오는 새로운 구성원들도 있습니다. 《남산골 해방촌》 페이스북 페이지에 남겨진 메시지 2013년 6월 7일 안녕하세요. 잡지를 구독해보는 팬입니다. 작가들과 연락할 길이 있다해서 문 의 드립니다. 이메일주소나 연락처 혹시 알 수 있나요? 2013년 6월 18일 안녕하세요^^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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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신문기사보고 《남산골 해방촌》에 대해서 알고 나서 저도 같이 잡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연락드려요. 참고로 저는 광고와 그래픽 디자인 전공해서 편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되는데 연락 부탁드립니다. 2013년 8월 23일 저는 용산구에 살고 있는 용산구 주민인데요 : ) 카페 ‘소월길 밀영’ 을 갔다가 잡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받아보거나 구할 수 있을까요 ? 이전에도 종종 개인적으로 혹은 발간 파티 때마다 다음 호 발간 예정에 대해 묻 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잡지 뒤에 적어두었던 메일로 의견이 오는 경우도 있었죠. 최근에 페이스북 페이지 *를 만든 이후로는 페이지를 통해 대화 신청을 하시는 분들 도 많습니다. 잡지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고, 지난 호를 받아볼 수 있는지 묻는 분들도 있어요. 간혹 저희가 해방촌의 여러 부분에 대한 의견을 묻거나 정보를 수집하고자 버스정류장에 포스터 를 붙이기도 하는데 재미있는 반응 이 나오기도 하더군요. 얼마 전, 《남산골 해방촌》 내 작 은 모임인 ‘해방촌 아카이브’에서 동네의 옛이야기를 들려주실 분 혹은 자료를 가지고 계신 분들을 ▲ ‘해방촌 아카이브’ 자료를 찾기 위해 붙인 포스터 찾기 위해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80년대에 해방촌 이야기를 담았던 라디오 뉴스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계신 분이 연 락을 주셨습니다. 잡지 창간 파티에 들려주셨고 이후로 계속 관심을 두고 있었다 고 하시더군요. 자료에 대한 사례비는 다시 저희 모임에 기부하셨습니다. 해방촌에 서 뜻있는 일을 한다며 칭찬도 받았답니다. 이렇게 독자 분들의 관심과 긍정적인 반 * 페이스북 페이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사회적 관계망의 형성, 유지, 확산을 위한 기술적 기반을 제 공하는 서비스)의 일종인 ‘페이스북’에서 비즈니스용으로 개발한 계정의 일종.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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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응, 새로운참여자, 또 다른 방법으로의 도움들로 《남산골 해방촌》은 무럭무럭 자라 나고 있습니다. 4. 고민 《남산골 해방촌》 《남산골 해방촌》이 지금까지 보내온 시간을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하자면 창간호에 서 3호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 나눌 수 있을 듯합니다. 4호가 이전에 비해 긴 시간 을 두고 발행되었기도 했지만 3호 발간 이후 대대적으로 2기를 모집했기 때문이죠. 2013년 초, 추운 겨울을 보내는 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잡지의 지속을 위해서 놓칠 수 없는 부분들이었죠. 물론 당시에 생각을 모았다고 해서 지금까지 안정적인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다시 전열을 정비할 때가 되었어요. 앞선 글에서 조금은 쉽게, 성공적으로 만들어져 온 것만 같아 보이는 《남산골 해방 촌》, 그 복잡한 속내를 슬쩍 드러내 봅니다. 《남산골 해방촌》 2기 대 모집! 2012년 말, 따끈따끈한 3호와 함께 온기 가득한 송년 파티를 했습니다. 어느덧 우리 의 단골가게이자 회의장소가 된 ‘르 카페’를 빌렸죠. 동네 분들도 들려주시고 친구 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2013년이 밝았어요. 새해엔 역시 새 다짐들을 하는 법이죠.《남산골 해방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하여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두 주에 걸쳐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논의하였습니다. 종 종 모여서 비정기적인 회의 겸 수다도 가졌고요. 그 때를 돌이켜보니 문득 지난겨울 의 찬 공기가 눈앞에 선합니다. 당시 회의록의 내용이 조금 길기는 하지만 우리 잡지가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고 민들의 축약판이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2012년 초, 잡지를 처음 시작할 때 열 명 가량 모였고 이후 잡지를 만들 때마다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함께 작업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 문득 잡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사람은 몇 남지 않았다는 자각 을 하게 되었죠. 사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취미로 만드는 잡지이기 때문에 누가 축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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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되어 일을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 나 모임을 지속하고 각자에게 맡겨진 짐을 나누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생각을 나누 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두 차례의 회의에서 주로 다루었던 내용은 잡지의 재원을 마련하고, 지금까지는 상시 지원을 받았던 《남산골 해방촌》 2기를 대대적으로 모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들어올 기수를 위해 일정한 틀을 마련하고, 잡지 제작의 과정을 하나의 프로그 램으로 정리해보려 했죠.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간 우리의 작업이 반복되면서 자연 스레 형성된 방식이 체득되기는 했으나 그러한 형태로는 다른 이들에게 내용을 전 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잡지 만들기의 틀을 만들기 위해 회의를 했습니다. 물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새해를 맞이하여 대대적으로 준비했던 것들이 작심삼일이 되기 쉬운 것 마냥 우리의 기획도 그저 계획에 그치고 말았던 결과를 낳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 이렇게 계획을 세우 고, 그것이 성취되지 않았을 때 반성하며 새로운 틀을 또 마련하는 것이 한해 한해 를 살아가는 과정인 게 아닐까 싶습니다. 5호가 나온 지금, 잡지 모임을 재정비 해 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회의록 (2013년 1월 26일) 회의 -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할꺼신가아아~ 두둥 1. 26, 2013 업데이트됨 2013. 1. 26 16:00 / 배, 해지, 모기 / 마실집 2.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1) 람을 다시 모아야 함. 대자보를 다시 붙이던가 해서. 사람을 끌어 모으고 사 관리하는 일이 중요. 글의 퀄리티는 상관없음. 기자의 신분을 밝히면 되니 까. 글의 퀄리티보다 커뮤니티 생성이 중요. 2)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보상이 필요한가? 3) 투고. 객원기자. 등 다양한 접촉방식 4) 영어 기사의 개수를 늘리자.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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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3. 이후발간 계획 1) 발간 주기: 계절 별로 1년에 4번. 3월(말), 7(초), 9(말), 12(말). 2) 부 수: 600부 인쇄가 적당. 인쇄비용은 40만 원 선에서. 3) 제작 기간: 12주 간격으로. (2주 기획회의 + 5주 기사 쓰기 + 3주 교열 편 집 인쇄 + 2주 휴식) 《남산골 해방촌》 4. 잡지 작업 시스템 만들기 1)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시스템이 필요. 2) 자단 모집 시스템을 시도해 보기로. 기 자단 모으기 → 5주프로그램(기사가 하나 완성) → 기획팀이 모여서 다시 기 방향설정하고 → 마감 → 편집 → 완성. 3) 자단 모으기 전에 기획회의를 먼저 해서 준비하는 호에 필요한 기 프로그램, 콘셉트 잡고. 4) 기획단은 누구? 정해지, 배영욱, 고헌, 이한솔 5. 기자단 모집 세부 계획 1) 28일 월요일까지 모집 포스터 제작 출력 디자인-해지, 문구-모기, 출력-배 / 사이즈 A3 2) 8일 월요일 7시 배포: 정류장, 카페, 배포처, 마을버스 안(뚫어 봅시다!!) 2 1주일간 모집. 최대 8명. 그 이상 오면 다음 호로 유도. 페북 가입시키기. 3) 기자단 모집 전에 기획회의에서 전체 콘셉트 제시 회의록을 보면 《남산골 해방촌》의 큰 목표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 니다. 기사의 질보다는 공동체를 활성화 하는 데에 더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 다. 물론 동네에서 만드는 잡지라고 해서 노력을 덜 한다든가, 적당히 지면만 채우 든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떠한 모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그것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이 잡지를 더 풍성하게 해주고, 이 안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 가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어떠한 글이 나왔는가, 얼마나 화려했는가를 따지기 보 다는 충분히 느낌을 나누고 참여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 평가하게 됩니다. 동네에 대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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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애착이 생기고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이유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우 리 모임의 성격과 지향하는 목적이 잡지의 질을 굳이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 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2기를 모집한 뒤에 어떻게 모임을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던 부분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당시 2기 기자단을 위해 기획했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앞서 인용한 회의록 중 ‘잡지 작업 시스템 만들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이죠. 우리는 그 중에서도 기사 작성을 위해 설정했던 5주를 처음에는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회의록 (2013년 1월 26일) 6. 5주 프로그램 1) 1주차 - 소개, 페이퍼 나눠주고, 잡지 소개, 프로그램 진행사항 소개. - 신이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입니까. 콘셉트 정하기(가안), 당 어떤 기사 쓸지 정하기(인터뷰) 2) 2주차 - 인터뷰 취재의 경우는 기획안, 나머지는 초안 구성 등 되는대로 글 써오기 - 팀 꾸려주기 3) 3주차 - 기사 초안 나옴 - 기획팀 전체 모여서 기획회의. 4) 4주차 - 수정작업 5) 5주차 - 마감. 최종 수정 한 권의 잡지가 나오기까지의 체계와 한 편의 기사가 완성되는 과정은 비슷합니 다. 대략적으로 정리를 해보면 우선 무슨 내용을 주로 다룰 것인지 큰 가닥을 잡는 기획 단계, 어떠한 방식을 사용할 것인지 구상하는 도입 단계, 실제로 취재한 후 작 성 혹은 엮음에 들어가는 실행 단계, 퇴고와 기사 간 균형을 맞추는 마무리 단계가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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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있겠습니다. 세권의 잡지를 발행하는 동안 이러한 과정을 어설프게나마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2기는 시행착오 없이 좀 더 빠르게 기사를 작성해 나가도록 돕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목표는 어느 정도 실현되어 새로 참여하게 된 구성원들도 비교적 빠른 속도로 글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의 역량이 바 탕이 되었던 덕분인지, 프로그램의 효과인지 판별하지 어렵지만 말입니다. 《남산골 해방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간 시기에 대한 우리의 목표는 요원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 다. 잡지의 발행주기에 대한 질문을 여러 차례 받기도 했고, 지켜지기 어려울지언 정 목표를 세우는 것이 잡지 만들기를 활성화 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에 연초 회의에서 이 내용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발행주기를 다시 계간지의 형태로 다 잡고 2013년 안에는 네 부의 잡지를 내는 것으로 계획을 설정했던 것입니다. 당시 에 세웠던 이후 발간 계획은 여덟 달이 지난 지금, 사실상 절반 정도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2013년 9월 말 현재, 두 부를 발행하는 데에 그쳐 목표를 달성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1년 반이 넘 는 시간동안 《남산골 해방촌》이 사라지지 않 는 이유는 적어도 활동을 지속해나가겠다는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 만 2주간 1차 기획회의를 하고, 다음 5주 동 안에는 기사를 작성한 뒤 3주의 편집 및 교열 작업을 거쳐 잡지를 발간하겠다는 계획, 나머 지 2주 동안에는 파티를 기획하고 휴지기를 갖겠다는 목표가 지켜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012년 겨울, 우리는 사진 속 3호를 내고 2 한참을 쉬었습니다 경로를 재탐색 합니다 글을 완성하는 것은 ‘마감’이라는 말이 있었던가요? 잡지의 발간이 늦어지는 데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단계는 ‘글쓰기’와 ‘편집’이었습니다. 물론 이 두 과정이 잡지 를 만드는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 만 기사와 잡지의 전반적인 주제가 결정되는 기획회의의 속도는 매우 빠른 반면 각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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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의 작업은 늦어지기일쑤였죠. 마감의 압박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각각에게 존재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개인 신변의 변화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 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2013년 상반기를 마무리하며 저는 새로운 직 업을 찾았고, 편집과 디자인을 담당한 친구는 학교를 옮기게 되었죠. 그 외에 다른 친구들도 각자의 삶터에서 바삐 지내며 점차 작업은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잡지는 본업이 아니니까요. 더욱이 즐겁고자 시작한 일에서 괴로움을 느끼지는 말자고 서 로 다짐했기 때문에 발간일은 점점 더 늦어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기 사를 마쳐야 하는 사람과 잡지 후반 작업을 담당하는 쪽 모두가 오히려 더 큰 스트 레스를 받게 되었죠. 이 문제에 대해 5호 발간 이후, 10월 초에 있었던 첫 모임에서 더욱 상세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회의록 (2013년 10월 6일) 일시: 10월 6일 13시 참석: 배영욱, 이한솔, 성승현, 박주형, 엄미나, 김의영, 배덕상, 신숙영 *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1. 업무 재조정 필요 - 집 등 업무가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적 부담감이 커지고 편 잡지의 비중도 달라짐. - 편집과 디자인을 분리할 필요. - 3기 모집해야 하나? 2. 만남 지속하기 - 일단은 만나서 근황에 대해 이야기 하든, 동네를 함께 돌아보든 같이 보내 는 시간을 다시 늘려야할 필요가 있음. -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일 년에 잡지를 몇 부 내는가가 아니라, 함 께 즐겁고 각자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만들어 가는 것임. - 우선 다음 주 회의도 결정 내용과 관계없이 여는 것으로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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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우리마을 돌아보기’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남산골 해방촌》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많은 이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그간 해왔던 활동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글로 남 겨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겠지요. 또한 지금까지는 막연 하게 가져왔던 느낌이나 결심들이 ‘돌아보기’를 통하여 좀 더 구체화되고, 그것이 우리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꿈꾸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글쓰기가 한창 진행되는 《남산골 해방촌》 와중에 진행된 회의에서 저는 우리 모임이 지난날 가져왔던 목표, 지나왔던 과정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10월 6일 가졌던 회 의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올 초에 세웠던 목표와 현황을 비교하고 여기에 대해 어 떠한 방안을 강구해야할지 논의하고자 했습니다. “지난 1월 말에 세웠던 계획에 따르면 우리는 한 해에 총 네 부의 잡지를 찍어내 기로 했어요. 하지만 9월 말까지 두 권의 책이 나오는 데에 그쳤죠. 왜 이런 일이 일 어났을까요? 어떠한 방비책을 세워야 할까요?” 하지만 제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답 변은 의외였습니다. 계획에 굳이 맞추려 하고 그로인해 서로를 만나고 잡지를 함께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잊을 바에야, 재미있고 편한 만남을 지속하며 천천히 작업하 자는 것이었습니다. 《남산골 해방촌》의 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연대감과 재미를 다시 이끌어내고, 잡지라는 큰 이름에 매몰되지 않도록 주 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제가 《남산골 해방촌》에 계속 참여하는 이유가 이러한 모습에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잡지의 이름이 외부에 조금씩 알려져 가고 인터뷰도 몇 차 례 했습니다. 주위의 기대가 커지고 문의도 많아집니다. 적은 수이긴 하지만 잡지 를 보고 싶어 일부러 해방촌을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잡지를 함께 만드는 우리들은 애초에 잡지 만들기를 시작했던 이유를 돌 이켜 보며, 《남산골 해방촌》이라는 이름 아래에 그것을 묻어버리지 않기 위해 조금 은 느린 길을 택합니다. 광고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자, 그럼 다음 고민으로 넘어가 볼까요? 요즘 다양한 마을 잡지들이 생겼다 이내 사 라져 갑니다. 개중에는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행사나 장터 등을 통해 혹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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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사재를 이용하여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는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한 이 유에서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했을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광고를 넣을 것인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죠. 《남산골 해방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회의록 (2013년 2월 2일) 회의 -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할꺼신가 2탄 2. 02, 2013 업데이트됨 2013. 2. 3 일요일 / 남산끽다점 / 배, 모기, 한솔 2. 재원 마련 아이디어 - 공공기관 항시 안테나를 세우자 - 해방촌 투어를 통해 재원마련하자 : 프로그램 개발 필요. - 텀블벅 - 광고는 시기상조 - 파티? 혹은 후원주점? - 르 까페 활용해서 콘텐츠 생산: 전시 등. - 마켓, 벼룩시장 - 열두 가지 마켓 날에 투어를 하자 → 텀블벅, 투어, 후원주점 셋중에 하나 총회에서 결정하기로 3. 총회 소집 : 지금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모여봅시다. - 시간 : 5일 화요일 저녁 - 총회 안건 돈 버는 얘기 결정(텀블벅, 투어, 후원주점) 4호 콘셉트 결정(기자단에게 던저줄 구체적인 안 마련) 기자단 5주간의 커리큘럼 세부 조정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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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일단 잡지만들기를 처음 시작할 당시에 잠시 광고를 고려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발행이라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던지라 광고 효과를 보장할 수 없기에 시기상조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다 곧 후원을 받는 등 다른 방법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고, 광고에 대한 생각은 점점 더 멀어져 갔죠. 특히 어떠한 이 해관계에 휩쓸리지 않는 동네잡지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자는 의견들이 있어 잠 《남산골 해방촌》 정적으로 광고는 싣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해안건축에서 출력 후원을 약속 받았던 2012년이 지나갔습니다. 서울연구원의 1차 지원도 3호 발간 시점 즈음에 끝났죠. 새로운 구성원을 모집함과 동시에 재원도 찾아야 했습니다. 다양한 구상들이 펼쳐졌죠. 우선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마을 공동체인지라 각종 공공기관의 지원 사업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로 했습니 다. 덕분에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우마프’(우리마을 프로 젝트)에 선정되어 잡지 발간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2013년 4월경에는 《남 산골 해방촌》 구성원 중 일부가 자체적으로 모여,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을 구상했 는데 용산구의 마을 공동체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두 사업은 서로 다른 프로젝트였지만 일정 부분 연관도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자세히 다 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해방촌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 재미를 다시 발견하는 투어 프로그램 을 개발하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또한 텀블벅, 후원주점 등 뜻있는 분들의 금전 적 참여를 유도하려는 계획도 있었죠. 최근 해방촌에 공방이나 예술가들의 작업실 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문화 콘텐츠를 이용하는 전시나 다양한 생산물 들을 판매하는 장터를 기획하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텀블벅, 해방촌 투어, 후원주점 중 하나 혹은 여럿을 선택해 실험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지원 덕분에 부담이 줄어들어, 수익사업으로 의 발걸음을 조금은 늦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적 여유와 역량을 넘어 서는 프로젝트를 무리하게 벌이지는 않았죠. 아래 회의록에 나타나듯 무리해서 일 을 진행하지는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더 오래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자발성과 즐거움에서 나오기 때문이죠.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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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록 (2013년 6월29일) 일시 : 2013.06.29. 오전 10시 참여인원 : 영욱, 정민, 의영 2. 5호 잡지 - 예산 확보 방안 ㆍ서울시 에서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 참여 시 최대 2천 까지 지원 ⇨ 우리는 250 정도 지원 받아도 충분히 꾸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 ㆍ참여는 할 수 있지만 현재 아카이브 사업도 빠듯. ㆍ사업에 관심이 있는 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ㆍ일단 기획서는 제출 예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장은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있 습니다. 특히 매 호 발간을 전후로 하여 발간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 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생각이 구체화 됩니다. 5호가 나오고 현재 지원금은 6호 발간비용까지 확보된 상태입니다. 이후 발행비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할 시점이 온 것이죠. 《남산골 해방촌》의 자립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5장의 뒷부분에서 조금 더 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다 지금까지의 《남산골 해방촌》을 돌이켜보면 가장 아쉬운 점이 사람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민들과도, 우리끼리도 마찬가지인데요. 초기에는 주로 인터뷰 기사가 많았기 때문에 동네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분들 을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혼자 인터뷰를 하면 쑥스럽다는 이유로 몇몇씩 모여 이 야기를 듣고 기사를 완성했었죠. 하지만 점차 글의 형식이 다양해지고 주제가 개별 화됨에 따라 기사 작성은 대체로 각 개인의 몫이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도, 같이 생 각을 이야기할 사람도 만나기를 게을리 했던 것이지요. 그동안 잡지의 양적·질적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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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성장에 눈길이쏠려 이 점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글을 작성하며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니 문득 깨닫게 되었죠. 남산골 해방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에게 물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들 을 강구했었죠. 창간호를 준비하면서 우리 잡지의 이름을 직접 정해 주십사 포스터 《남산골 해방촌》 를 붙였습니다. 그 외에도 사진작가의 경우, 하루 날을 정해 주위를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어떨까 논의하기도 했었습니다. 발간의 꽃인 파티에 해방촌에 살고 계시는 여러 분들을 초청하려 하기도 했죠. 그리 고 3호에서는 함께 ‘사연 있는 지도’를 기획하는 대대적인 프로젝트 기사를 준비 했 습니다. 포스터를 붙였던 것이 늦가을, 겨울의 초입이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응답해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 특히 학생으로 추정되는 주민들이 주로 어디에서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물론 해방촌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남산골 해방촌》의 의지를 보이고, 함께 무언가 를 만들어 나가려는 목적이 제일 컸고요. 〈‘사연 있는 지도’를 기획하다〉 (배영욱, 3호) #1. 야심차게 준비한 대자보 2012년 가을. 해방촌 사람들과 함께하 는 기사를 한 번 써보겠다며 ‘동네지도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관심 있 어 하는 친구들을 모아 몇 번의 회의를 한 후에, 해방촌 사람들의 사연을 이끌 어 낼 수 있는 질문을 만들고,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지도를 넣었다. ▲‘사연 있는 지도’ 기사 작성을 위해 붙인 포스터와 주민 응답 (제공: 배영욱) 그리하여 11월 어느 저녁.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네 곳의 정류장에 대자보를 붙 이고 일주일을 기다렸다.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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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 《남산골 해방촌》4호에는 마을 주민들과 외부인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내 용의 기사를 기획했습니다. 〈모든 뚜벅이를 위한 골목길 가이드: 골목탐험 신비의 세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기사는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이 걸었 던, 걷도록 추천하고픈 해방촌의 골목을 다시 한 번 탐험하고 소개하는 목적을 가 지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평소 잘 알고 있었던 길이라고 생각했던 곳 들을 더 재미있고 낯설게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읽는다면 ‘아, 그 래! 거기에 그런 게 있었지?’라며 웃음을 지을만했고요. 해방촌을 처음 찾는 사람이 라면 이 기사를 가이드 삼아 자신에게 알맞은 산책길을 찾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평소 궁금했던 부분, 말하고 싶은 것들을 담는 것도 즐거운 작업이었지만 누군가에 게 해방촌의 골목을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한다는 설정의 기사 작성은 다른 때보다 더 흥미로웠답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은 더 읽어보셔도 재미있을 기사입니다. 〈모든 뚜벅이를 위한 골목길 가이드: 골목 탐험 신비의 세계 3〉 (이한솔, 4호) 3. 시간 많고 할 일 없는 커플들의 봄나들이 데이트 코스 “드디어 봄이 오려나?” 기대와 실망을 여러 차례. 저녁에 부는 바람은 아직 차 지만 한낮의 햇살은 따뜻하다. 정말 봄이다. 이젠 겨울옷을 과감하게 넣어두 고 거리로 나설 때다. 남산엔 고운 분홍의 벚꽃이 피었고 남산골 언덕에서 유 난히 가까이 느껴지는 하늘은 파란 빛을 더해갈 것이다. 즉, 해방촌에서의 멋 진 데이트를 기대해도 좋다는 말이다. 어느 이른 봄날, 해방촌 오거리에서 《남산골 해방촌》의 황금 같은 주말 아침이 시작되었다. 직접 골목을 누비며 데이트 코스를 발굴하기 위해서다. 뭐, 여자 셋이 모여 연인들을 위한 장소를 찾는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않은가? 이제 학교를 나와 정문 오른쪽 부대 담벼락을 따라 내려간다. 경사가 급하니 만약 당신의 애인이 하이힐을 신었다면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꼭 잡아주길 권 한다. 경사로의 끝자락에서 왼쪽으로 걷다보면 오른편에 자그마한 계단이 있 다. 이번 답사의 가장 큰 수확. 가지런히 놓인 화분과 의자, 흰색과 초록이 늘 어선 차양 그리고 얽혀있는 가스관이 인상적이다. 담벼락이 심심하지 않은 게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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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해방촌의 또다른 묘미다. 해방촌엔 카페가 없었다. 15년 전, 옆 동네 이태원은 거리를 걷는 사람의 반 이상이 이방인이었지만 해방촌은 그저 해방촌이었다. 그러나 최근 해방촌 아 랫길엔 외국인 거주자가 많이 늘었고 작은 카페와 이국적인 식당들을 심심찮 게 보게 된다. 고바우 슈퍼 앞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여유롭게 차 한 잔 《남산골 해방촌》 을 즐기거나 음식 한 접시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 정도면 봄날을 즐기기에 충분한 데이 트 코스가 아닌가? 누구라도 좋다. 애인이든 친구든 자기 자신과 함께든 해방촌의 골목 을 즐기기 바란다. ▲ 기사에 등장하는 ‘자그마한 계단’이 바로 여기 한편 기사를 통해 주민들과 유대감을 형성해갈 수도 있겠지만, 잡지 자체가 해방 촌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창 간호 발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요. 앞서 쓴 바와 같이 기사를 작 성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주민들의 의견과 경험을 적어주셨으면 하는 포스터를 붙 이기도 합니다. 종종 메일로 반응들이 전해지기도 하고, 2012년 말부터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과도 소통하고 싶 은지라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해봅니다. 잡지가 나오면 버스정류장을 비롯하여 카 페, 슈퍼, 교회 등 동네 곳곳에 잡지를 몇 차례 배포합니다. 어느 정도 돌렸다 생각 이 되면 다시 포스터를 붙여 이번 잡지는 어땠는지, 인상 깊게 본 기사는 무엇인지, 앞으로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는 무엇인지 등 독자엽서에 실릴 법한 질문들을 던져 보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한 두 차례 실시했지만 배포 이후에 진행하다보니 잡지 의 내용을 상세하게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 않아 자료 수집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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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반드시 지속적으로고민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해방촌 없이는 《남산골 해방 촌》도 없기 때문입니다. ‘동네잡지’라는 이름을 붙이고도 정작 동네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게 아니겠어요? 회의록 (2012년 9월 1일) 1. 주민들(독자들)과 어떻게 소통을 할 수 있지? - 호 때는 소소한 이벤트들(포스터를 통해 투표하기, 발간파티등)이 첫 있었기 때문에 가깝게 다가가고 반응들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번 호에는 그런 게 없다보니까 잡지가 제대로 배포가 되서 읽히고 있는지 어쩐지 감이 잘 잡히지 않음. -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함. (기사에 대한 의견이나 독자 투고) - 재는 공동으로 쓰는 메일이 전부인데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는 현 않은 것 같음. - 블로그 같은 걸 만들까? - 해방촌 동네 게시판을 설치하는 건? 잡지를 만드는 동안 내·외부와의 소통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해왔습니다. 주민 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감상평을 적어달라는 포스터도 붙였고 종종 만나는 사람 들에게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죠. 외국인 거주자의 글을 싣기도 하고, 어느 미국인 이 가꾸는 정원에 놀러가 대화를 나누고 그의 서울 생활에 대한 기고를 받기도 했습 니다. 하지만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유일하게 우리의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는 존 재가 있다면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대화하고자, 함께 만들 어가고자 하는 시도를 잊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해방촌에서 자리 잡는 《남산골 해방 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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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5. 지속 더욱다채로워진 동네잡지 2013년 2월, 《남산골 해방촌》은 새로운 구성원을 맞아들였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하 《남산골 해방촌》 고 있는 대학생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해방촌 토박이, 도색작업을 하시 는 아저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잡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죠. 어설프게나마 잡혀 진 틀에 각자의 역량이 더해지니 우리의 동네잡지는 더욱 다채로워졌답니다. 3호에 서 4호까지 다섯 달, 다시 또 5호를 작업하는 데에 네 달이 걸렸습니다. 가구 리폼 도전기가 실리기도 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와중에 이사를 떠난 갤러리에 관한 글도 있었죠. 해방촌에 살고 있거나 여기를 자주 방문한다고 알려진 유명 인사를 찾아 동 네를 헤매기도 하고, 창간호부터 궁금해 하던 힌두교 사원을 5호에서야 드디어 취 재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재미있는 글 한 편을 소개할게요. 〈모든 뚜벅이를 위한 골목길 가이드: 마을버스에 대한 고찰〉 (김의영, 4호) 해방촌 마을버스를 이용한 지 어언 십 년째. 지금은 용산등기소부터 6호선 녹 사평역까지 노선이 확장되고 버스 차량도 7대로 늘어났다. 배차 간격은 30분 에서 10분으로 줄어들었고 버스 디자인도 예뻐졌다. 게다가 버스 안의 공간도 넓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편리하게 바뀌어도 나에겐 여러 가지 고민들이 있 다. 그 중의 하나가 항상 출근하러 나가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 “어디서 승차해 야 편안하게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종점 약국 정류장 집에서 나와 경사길을 쭉 내려가 동심으로 가득 채워진(?) 지하도 밑을 빠져 나오면 정면에 흥부골 숯불돼지갈비집이 보인다. 그 집 왼쪽 유리문에 초록 색깔이 비치면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구나’라는 인식이 대뇌의 전두엽까지 전해지면서 좀 더 속력을 내면 버스에 가까스로 세이프! 거기다가 앉아서 간 다면 ‘오늘 운 좋은데~’ 하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목적지까지 가게 된다.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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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사람이 아니면절대 쓸 수 없는 글이자 누군가 근처에 살고 있다면 분명히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장담하는 기사입니다. 마을버스의 변화상을 가서 묻지 않 아도 단 번에 읊어줄 수 있고, “흥부골 숯불돼지갈비집 왼쪽 유리문에 초록 색깔이 비치면” 버스의 도착 정보가 전두엽까지 전해진다는 의영 씨(김의영). 동네 사람이 라면 ‘맞아, 맞아’ 하며 무릎을 칠 테고 해방촌을 잘 알지 못하는 여러분들께도 재미 있는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전에도 마을버스에 관한 기사를 기획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해방촌에 오래 살지 않은 사람이 제안한 기사였기에 마을버스 회사를 찾아가 기사님들께 인터뷰를 요청하자고 했었죠. 하지만 동네 토박이가 쓴 글은 이렇게 나오기도 하네요. 각각 의 맛이 다르겠지만 이 정도면 감칠맛 나지 않습니까?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기사는 다소 재미는 없지만 2호에 실렸던 기사와 연계된다 는 특징이 있어 싣습니다. 해방촌을 예술마을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발표가 있고 얼 마 지나지 않아 〈해방촌, 色을 입다〉라는 기사를 작성했었습니다. 예술마을 사업 의 취지와 진행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 지, 다른 예술마을의 사례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죠. 아래 글은 거기에 대한 후속기사입니다. 사업 진행으로부터 몇 달이 지난 2013년 봄, 해 방촌 예술마을은 주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해 하며 이 기사를 시작 했습니다. 처음에는 설문조사 등을 통해 해방촌 사람들이 예술마을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죠. 하지만 막상 질문을 하다 보니 사실상 어디에 어 떠한 구조물과 벽화가 생겨났는지 제대로 본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해방촌 예술 마을 사업 자체를 인식하거나 여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주민을 찾기 어려웠죠. 그 래서 기사의 소재는 두되 주제를 바꾸게 되 었습니다. 해방촌 예술마을이 왜 주민들에게 이렇게나 ‘존재감’이 없는 사업이 되어버렸는 지에 대한 짧은 에세이로 말입니다. 기사 내 용을 간단하게 정리한 마지막 문단을 실어봅 니다. ▲예술마을 사업으로 꾸며진 보성여중·고 담벼락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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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해방촌 예술마을,그 뒷이야기〉 (이한솔, 4호) 해방촌 예술마을에 없는 것 그러한 의미에서 아직 해방촌 예술마을 사업은 끝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드나들고 시간이 지나며, 현재의 모습은 낡아 가거나 그 위에 무언가 더해질 《남산골 해방촌》 것이다. 조금은 무리하게 덧입혀진 지금의 풍경이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자 연스레 동네의 일부가 되어 가려면 ‘실제적 효용을 고려하지 않은 기획’과 ‘유 용성에 의해서만 행동을 바꾸는 도시민의 태도’를 돌아봐야 한다. 사업 주체 들은 거주자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주민들은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보는 여유를 가질 때 예술마을은 진정으로 해방촌에 내 려앉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재미있는 기사들이 많아 그냥 넘기기가 아쉬운지라 한 편만 더 소개할 까 합니다. 재기 넘치는 두 아가씨, 미나(엄미나)와 숙영(신숙영)이의 해방촌 유명 인 찾기가 바로 그것인데요. 비록 수사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귀여우면서도 해방촌 다운 글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널리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 에서 찾을 수 있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들이 모두 해방촌의 유명인이라는 결론이 었죠. 아래에 짤막하게 발췌하니 슬쩍 읽어보세요. 〈맹탐정 디스패치〉 (엄미나/신숙영, 5호) 해방촌 디스패치 취재 결과,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화려하며, 많은 연예 인들이―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을 찍고 피날레로 뮤직뱅크를 찍어도 될 정도 ― 해방촌을 찾았다. 실로 ‘뜨는’ 동네 해방촌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해방촌 에 실제로 살고 있는 몇몇 유명인들을 제외하고는 주기적으로 온다기보다는 일회성 방문에 그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해방촌의 연예인을 찾다 ‘느낌 있는’ 카사블랑카 종업원, 이효리보다 빨간 립스틱이 잘 어울리는 디에스프레 소 주인언니와 귀여운 두 강아지들 그리고 유아인보다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잘 어울리는 해크니의 아르바이트생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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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뿐만이 아니라 카페에서회의하던 중 옆자리에 앉아 뉴스를 읽던 중후한 신 사, 당당하게 쭉 뻗은 다리를 의자 위에 얹어 놓고 신나게 이야기하는 멋진 아 가씨… TV나 영화에 나오는 유명인이 아니어도 우리 모든 해방촌 디스패치가 해방촌에서 만난 저 모든 사람들은 사실 우리가 찾던 연예인들보다 더욱 흥미 로웠다. 마지막 르카페 인터뷰에서 두 햇병아리 기자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르카페의 주인 한사장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해방촌에 유명인 한 명 더 있잖아. 나!” 사실, 우리 모두가 해방촌의 유명인이 될 자격은 충분하지 않을까, 하고 두 맹 탐정은 생각했다. 이렇게 해방촌 디스패치 건은 평화롭게 종료되었다. 어떠신가요? 두 맹탐정이 비록 연예인 찾기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해방촌의 무명 유명인(?!)을 다수 발견하는 수확물을 거뒀습니다. 재미도 있고 동네 카페들의 분위 기도 한 마디로 설명해주는 글이죠. 어느덧 잡지 만들기 회의를 위해 카페나 음식점 에 들어가면 알아보고 인사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러다 《남산골 해방촌》도 해 방촌의 유명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기사를 싣는 것이 장기적으로 동네잡지가 살아남을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해방촌의 역사를 몇 번쯤 다뤄 본들 그 소재가 동이 나겠습니까마는 비슷한 형식의 기사를 계속해서 읽는 것은 독 자들에게도 지루한 일일 테니까요. 더욱이 우리의 모임은 늘 열려있기 때문에 새로 운 구성원이 찾아와 기존에 갖지 못했던 시각으로 소식을 전해준다면 점점 더 재미 있는 《남산골 해방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해방촌 주민들과 함께 정보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사라면 더욱 좋을 테고요. 동네잡지의 지속을 위한 첫 번째 방안이 자 전제 조건이죠. 발간파티를 동네잔치로 지난 9월 28일에는 그간 해왔던 것보다 화려한 발간파티를 하게 되었습니다. 창간 호가 나오고 준비했던 후원주점 이후로 두어 차례의 발간파티는 동네 주민들이 자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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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연스럽게 와주셨으면하는 마음으로 소심한 초대장을 보냈을 뿐이었지요. 동네에 작은 출력물을 붙인다든지, 잡지의 맨 뒷장에 초대장을 싣고 온라인상에 홍보를 한 다든지 말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며가며 들려주셨던 해방촌 사람들이 종종 계셨어요. 《남산골 해방촌》 〈초대합니다〉 (이한솔, 4호) 봄에 맞춰서 준비한 호인데 봄바람은 가시고, 벌써 초여름에 들어서고 있네 요. 여러분 곁을 조금 늦게 찾아온 건 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려 했기 때문이 에요.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이번 4호 발간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기쁜 마음으 로 작은 파티를 열게 되었습니다. 무려 5월 17일 부처님 오신 날! 애독자 여러분, 해방촌에서 새 친구를 만나보고 싶으신 분, 평소 잡지에 대해 궁금증을 품고 계셨던 분들 모두모두 초대합니다. 이번 파티는 해방촌의 카 페, ‘르 카페’에서 펼쳐질 예정입니다. 좋은 날,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고 함께 나눌 간식이나 음료를 가지고 오셔도 좋습니다. 기다리겠어요! 하지만 이번 발간파티는 규모가 달랐어요. 그동안 2013년 4월경부터 지금까지 진행해온 해방촌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발표하는 시간을 함께 가졌기 때문 입니다. 더불어 영욱 언니와 함께 해방촌을 답사하고 한 달 가량의 기간 동안 짤막 한 동영상을 완성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학생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포스터만 보고도 지나가던 외국인들과 동네 사람들 몇 분이 참여해주셨죠. 그간의 발간파티 들이 주로 우리의 노고를 스스로 치하하며 먹을 것을 나누고 수다를 떠는 시간이었 다면, 이번에는 좀 더 해방촌에 대한 이야기를 던져보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정 작 아카이브를 위한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이나 좀 더 다양한 주민 분들을 모시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5호 발간 파티를 마치며 우리가 해방촌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아직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파티라는 이름 의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연세가 많은 분들이나, 이러한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많 은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욱이 해방촌에 탄탄한 인적 연결망이 있다거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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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하는 게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취지와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을 종종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다보면 어느 날엔 발간파티가 마을잔치가 되어 남녀노소 관계없이 누구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죠. 그 때 《남산골 해방촌》의 또 다른 의미도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우 리 잡지의 지속을 위해 두 번째로 기억해야할 점입니다. ▶ 《남산골 해방촌》 5호 발간 파티 중 아카이브 상영 자립을 꿈꾸며 앞서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에 대해 몇 차례 적은 바 있습니다. 《남산골 해방촌》이라 는 동네잡지와 우리 동네의 역사를 기록하는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 이 두 가지는 참여자를 공유하기는 했지만 서로 다른 프로젝트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아카이 브 사업은 잡지의 발간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다른 활동을 모색하던 와중에 기획한 것입니다. 그러나 잡지 안에 이 내용을 담을 수 없을뿐더러 좀 더 깊고 넓은 이야기 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아카이브 사업을 따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을의 어르신들이 아직 곁에 계시는 동안 해 방촌의 역사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이 동네를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잡지는 계속해서 비영리로 운 영, 즉 광고 없는 무가지로 지속하되 마 을의 콘텐츠를 이용해 다른 수익사업을 꾀하고자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해방 140 ▲ 리마을 프로젝트 기본교육을 받으러 간 우 ‘해방촌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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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촌 곳곳을함께 돌아보고 마지막엔 자그마한 파티를 하는 투어 프로그램, 동네 장터 판짜기, 각자 가진 재능을 발휘하는 주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의견이 있 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해방촌 자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를 우선 높여 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더불어 잊혀가는 이곳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한다는 당 위성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엔 잡지 작업을 위해서도 아카이브 사업 《남산골 해방촌》 이 필요했던 것이었죠. 《남산골 해방촌》의 지속적인 발간과 자립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 장 최근에 나온 5호까지는 용산구 등의 지원을 받아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서 울연구원에서 2013년 하반기 지원을 받아 6호 인쇄비 및 활동비도 확보했죠. 아카 이브 사업의 내용을 바탕으로 특집호를 기획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의견도 있었습니 다. 당분간 우리의 동네잡지는 특히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마을 공동체 관련 지원 사 업에 여러 차례 손을 내밀 듯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다양한 수익사업 구상의 예로 들었던 사안들을 수정 및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있던 잡지도 사라져간다는 요즘에 보기 드문 사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방법을 찾는다면 여러분과 또 공 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남산골 해방촌》을 넘어서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의 《남산골 해방촌》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2013년 초 에 했던 고민들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정체된 상태 는 아닙니다. 그간 두 권의 잡지가 더 나왔고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도 진행 했으니 까요. 동네잡지 《남산골 해방촌》을 넘어서는 해방촌 모임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왜 냐고요? 살짝 제 생각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해방촌 아카이브 사업의 출발을 떠올려 봅니다. 잡지 발간을 위한 금전적인 문제 를 해결하고자 수익사업에 대하여 시작한 고민은 결국 우리 잡지의 큰 목표 중 하나 와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마을과 만나고, 마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익 을 창출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들의 출발은 물론 잡지 발간비용 마 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만 멈추는 발상은 아니었답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우리 동네의 좋은 점들을 소개하고 사람들을 초대해 한 바퀴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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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를 수익사업과 연 계하여 고민하다보니 일정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다양한 콘텐츠와 접목한다면 해 방촌 탐방을 유료 행사로 만들 수 있겠다는 의견이 많아졌죠. 하지만 막상 프로그 램을 만들려다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우리는 해방촌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리 하여 해방촌의 역사를 기록하고, 사람들 에게 알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여 기에 대해 더욱 심도 있는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해방촌 아카이브’ 작업을 시작 ▲ ‘해방촌 아카이브’를 위한 동네 어르신 인터뷰 장면 하게 되었죠. 이 글의 도입부에 저는 동네잡지를 함께 해보고 싶었던 이유, 무엇이 되었건 마 을 사업을 벌이고자 했던 까닭을 상세하게 적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저는 지속적이며 좀 더 창의적인 작업, 자본에 의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일이란 지역 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행복을 찾 고자 하는 마음으로 마을활동을 시작했죠. 제 사견으로는 《남산골 해방촌》이 잡지 로서의 기능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벌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애착을 가지고 살 아가는 동네인 해방촌이 삶의 터전인 동시에 경제적 기반이 된다면, 그리하여 거대 한 사슬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가까이에 머물고 있는 이웃들과 함께 비교적 자유롭 게 생을 유지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아직은 막연하고 추상 적인 접근일지 몰라도 동네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한 해, 두 해 계속 하다보면 작은 곳에서부터 내 삶을, 이웃의 삶을 바꿔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난 2012년 늦겨울 혹은 초봄에 처음 만나 2013년 가을까지 이어오고 있는 《남 산골 해방촌》의 이야기. 어떠셨어요? 잡지를 보며 많은 분들이 보내주시는 관심과 호기심만큼 이 글이 재미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기를 바라봅니다. 여기 에서 미처 풀어 놓지 못한 말들, 여러분께서 더 궁금해 하실 내용들은 언젠가 또 다 시 나눌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썼던 기사 두 편을 적어 인 사를 대신 하려고 합니다.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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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용산구 한 편은따끈따끈한 신간에 실린 〈해방촌 사운드트랙〉입니다. 그간 창간호에 담 았던 정원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제 의견이나 주장이 다소 강하게 들어간 글들을 많 이 써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가볍고 감성적인 기사를 쓰고 싶었죠. 한 해 동안, 1월에서 12월까지 각각 해방촌에서 들으면 어울릴만한 음악을 선정하여 에세 이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아마 이 글이 여러분께 전해질 때쯤이면 겨울이 임박하 《남산골 해방촌》 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마지막 달인 12월의 음악 한 편을 전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대미를 장식할 글은 2012년 12월에 나온 3호의 끝자락에 실렸던 〈한마디〉입니다. 지난해의 생각과 다짐이 올해엔 또 어떻게 달라질지 저도 궁금해지네요. 그럼 두 편의 기사를 마지막으로 저는 이만 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남산골 해방 촌》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이메일(공식: namsan_hbc@daum.net, 개인: roodbeam@gmail.com) 혹은 페이스북 페이지(http:/ /www.facebook.com/hbcproject)에 남겨 주시고요. 언제든 해방촌으로 놀러오세요. 그럼 조만간 또 뵙겠습 니다! 〈해방촌 사운드트랙〉 (이한솔, 5호) 12월: 서울(김해송) 드디어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입니다. 오늘은 오늘, 내일은 내일이라며 가는 해의 아쉬움과 새해의 부담감을 떨쳐보려 하지만 쉽 지는 않아요. 차라리 지난 열두 달을 숙연하게 마무리하기 보다는 화려한 불 빛에 맘을 맡긴 채 즐기고 싶어집니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요. 1930~4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곡가이자 가수 김해송은 일본 곡 “도쿄 랩소디”를 번안하여 “(꽃)서울”을 발표합니다. 12월에 이 곡을 추천하는 이유는 해방촌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 볼 때, 이 노래의 정서와 비슷한 감정 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과 국토가 피폐해지는 와중에도 다양한 문화들이 유입 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1930년대 종로에는 재즈가 흐르고 낭만을 찾는 젊은이 들이 모여들었다고 하죠. 그들은 ‘오색꽃 불야성’에 춤추지 않을 수 없었지만,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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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한 구석엔애써 억누른 울분을 자신조차 모르게 숨겼을 겁니다. 지금 우 리가 보는 서울의 화려한 불빛이 그와 다를까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그래 도 나는 이만큼을 가졌다고 자위하거나, 저 편의 것을 더 좇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공허해집니다. 눈부신 조명을 걷어내고 그림자에 무엇이 숨었 나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때겠죠, 연말이란. 〈한마디〉 (이한솔 외, 3호) 한마디(이한솔) 1998년 겨울, 중학교 예비소집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해방촌을 올랐고 이후 6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친한 친구를 만 나러 가는 것 외엔 해방촌의 언덕을 마주할 일이 없었죠. 경사로가 만만찮아 큰 맘 먹고 놀러 가는 동네였어요. 2012년 봄, 드디어 다시 해방촌과 친해질 이유가 생겼습니다. 바로 《남산골 해방촌》이죠. 덕분에 동네 친구가 여럿 생겼고 길 하나, 나무 한 그루도 허투 루 지나치지 않아요. 어느덧 해방촌의 봄,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을 봅니다. 내년의 풍경들도 담을 수 있도록 새로운 준비를 해야겠지요. 이제는 우리 동 네 해방촌, 2013년에도 함께할게요! ◀ 해방촌에서 나오는 길, 이제 《남산골 해방촌》과 함께 그 너머의 더 큰 세상을 보려 합니다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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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알 란 토 성 관찰지 장 일 서울시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글쓴이 | 권기정 두 아이의 엄마이자 중랑구립면목정보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다. 동대문구에서 태어나고 자 라 동대문구에서 살고 있다. 육아지진아이자 워킹맘이라는 최악의 조건에서 아이를 잘 기르고 싶은 마음에 품앗이 공동육아를 결심하게 된 용감한 여자. 온 동네를 누비며 공동육아를 하자고 파닥파닥 부채질을 했던 끝에 알토란 대표를 맡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도움을 뻔뻔 하게 받으며 스스로 인복이 있다고 감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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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소개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알토란’이라는꽉 찬 이름으로 2012년 6월 출발한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육아 모임이다. 2012년 10월에 우리마을 프로젝트 유형 2로 선정되었다. 2013년 8월에는 서울시 공동육아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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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서울시 동대문구 1. 땅다지기 목마른 사람의 우물파기 타는 목마름으로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오아시스를 만나다 재능기부로 시작해 2. 씨앗 심기 알토란이 되다 아까운 여자들 우.마.프가 뭔가요? 알토란 배움터로 오세요 노는 게 제일 좋아 집밥의 힘 3. 새싹 틔우기 한 뼘 더 크기 주목받는 알토란 굿바이, 2012년 4. 뿌리 내리기 자생력을 키워요 텃밭 가자 대안은 공동육아 글을 마치며……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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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땅 다지기 목마른사람의 우물파기 복잡한 미로 끝없는 기다림 제일 중요한 일 나를 진짜 든것 어른으로 만 인내와 노력의 결정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무엇을 정의한 말들일까요? 바로 ‘육아’에 대한 알토란 엄마들의 생각그물입니다. 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엄마가 되 는 시험이 있었다면 아마 합격하기 어려울 만큼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 다. 아니, 이런 시험이 실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할 만큼 육아에 무지하고 엄마 가 될 준비가 미약했기에 막막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나 좀 도와 주면 좋을 텐데…. 하루에 1시간만이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 할까…. 나처럼 육아가 힘든 사람이 또 있을까…. 이런 생각들 끝에 저는 ‘누가’ 되 기로 했습니다. 누군가 나를 도와주기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스스로를 돕고 나처럼 힘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기로 작정한 겁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 하죠. 목마른 사람이 제대로 물을 찾는다면 그 우물에 서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한 두 명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본인의 목마름 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그 마을의 중요한 자원이자 소통공간의 역할까지 해낼 수 있 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옛날 우물은 마을 사람들이 만나 정보를 주고받 고 물자를 교환하는 생활의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우물의 물을 함께 마시는 사람은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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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마을의 구성원이자믿을만한 사람이었죠. 그래서 두레패를 이뤄 공동노동을 하 서울시 동대문구 고 함께 수확하기도 했습니다. 생명의 근원인 물을 공유하는 마을 사람 전부가 아 이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키워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가 족이 기본이라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 고모, 사촌형제들 사이에서 어우러져 자라고 이웃들의 관심 속에서 클 수 있었기에 할머니들은 십남매도 거뜬하게 키워 내셨던 게지요.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든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모든 부담이 엄마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부담을 누군가가, 마을이 함께 나눠준다면 하는 생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각이 우리의 첫 삽을 뜨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엄마, 힘들어?!” 다섯 딸 난 딸아이가 묻습니다. 젖먹이 동생을 보다가 손이 모자라 책 읽어 달라 거나 간식을 달라는 큰 아이의 요구를 즉시 들어줄 수 없으면 가만 쳐다보다 묻는 말입니다. 그래, 힘들다 하고 속 시원히 말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말하자니 굳어 진 얼굴을 펴기가 힘드네요. 2011년 10월에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한 후 두 아이를 키우며 받은 육아스트레스는 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누가 집에서 애나 보 라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겁니까? 아이 둘과 씨름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 를 지경인데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책 읽어주는 시간은커녕 아이들 끼니 챙기기도 벅찬 경우가 많습니다. 막 지은 따뜻한 밥에 삼시 세끼 다른 반찬, 국을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야 다 똑같겠지만 현실은 하루 종일 같은 반찬과 국을 챙겨주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힘드냐고요? 사막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끝이 안 보이는 모래언덕, 어딜 가야 이 열기를 식힐 수 있을지 끝없는 갈증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건지 막막해서 울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 렇게 힘든 걸까? 여유가 너무 없고 아이들, 특히 큰 아이에게 할애할 시간이 절대적 으로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아직은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나이인데 동생까지 나타나자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지사. 동생보다 뭐든지 더 많이 더 먼저 달라고 떼쓰는 건 기본이고 자기도 젖 달라며 보채는 퇴행현상까지 나타나 안쓰러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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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 지경이었어요. 보통 어린이집이나유치원은 오후 1~3시에 끝납니다. 이후부터 저녁 먹는 시간 까지 딸아이와 놀아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어줄라면 젖먹이는 울 어대고, 종이접기라도 하나 할까 하면 색종이를 찢어대는 아기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5살 아이를 매일 학원에 보내 오후 시간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연령대가 연령대인지라 보낼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고 40~50분 수업 후엔 엄마가 또 다른 학원 혹은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돌도 안 된 아기를 업거나 안고 간식, 준비물 챙겨 학원에 보내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 었답니다. 오아시스를 만나다 이렇게 사막을 헤매고 있을 때 나타난 우리의 오아시스. 그곳은 둥그레 문고였습니 다. 제가 살고 있던 장안동 힐스테이트 아파트에는 작은 도서관 둥그레 문고가 있어 요. 주민들이 책을 읽거나 대여해 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윤혜경 회장님을 비롯해 순수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아름다운 곳이죠. 여기에 매주 월요일 1시간 남짓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딸아이는 이 시간을 아주 좋아했어요.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또래 친구들과 같이 놀 수 있는 즐거운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원 후에는 늘 심심했는데 즐거운 수업이 있으니 월 요일만 기다리곤 했었죠. 저도 마찬가지로 큰 아이가 수업에 들어가 있는 동안은 잠 깐이라도 집안일을 하거나 둘째 낮잠을 재우면서 꿀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 개인 사정으로 이 책읽기 시간 이 없어지게 된 거에요. 실망한 건 우리 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수업을 듣는 동네 친구들, 친구의 엄마, 할머니…. 무엇보다 저에게 청천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 거든요.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누군가 책을 읽어주고 아이들에게 유익한 수업을 해주면 좋겠는데…. 누군가 적임자가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 보니 대답은 제 안에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사서입니다. 구립도서관에서 일하고 어린이 독서수업에 대한 관심도 커서 유아 대상 프로그램을 운영한 경험이 있어요. 육아휴직으로 아이를 키우는 동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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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에도 새로운 책은뭐가 나왔는지, 아이에게 무슨 책을 읽어줄까 하면서 동네 도서 서울시 동대문구 관을 방앗간처럼 자주 들락날락 하곤 하는 참새였죠. 제가 일하면서 했던 책 놀이 프로그램을 우리 아이에게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엄마가 내 아이를 한명을 가르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었어요. 일단 정해진 시간을 지키기가 쉽지 않고 엄마에게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 둘째가 방해공작을 펼치기 일쑤였습 니다. 둥그레 문고에서 수업을 한다면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책 놀 이 수업 준비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당장 다음 시간부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터 책 읽어주는 시간이 없어지게 생겼다고, 어떻게 아이들에게 알려주나 걱정하시 는 윤회장님께 선뜻 제가 한번 해보겠노라고 손을 들었습니다. 한 번에 오케이 하시 며 수업을 맡아달라고 하셨지만 사실 그 때 제 모습은 가관이었을 겁니다. 대강 묶 은 머리, 큰 기저귀 가방에 겨우 7개월 된 아기를 안고 5살 난 딸 손을 잡고 서 있어 누가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여자가 다른 사람을 위해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라니. 재능기부로 시작해 그렇게 둥그레 문고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아이들과 책 놀이 수업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2012년 5월부터 시작한 이 재능기부 수업이 바로 오늘날 알토란의 시초 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답니다. 그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독서수업으로 내 아이와 친구들이 한 시간이라도 즐겁게 보냈으면 했거든요. 수업시간 동안 꼬꼬마 둘째는 이모와 둥그레 문고의 자원봉사자들이 봐주시기로 했고 덕분에 홀가분하게 수업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반응도 매우 좋았답니다. 책 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친구, 덕분에 한글까지 떼는 기회가 되었다는 동네 엄마들의 말 한마디에 즐겁게 월요일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작은 재능이나마 나눌 기회가 생겨서 정말 기분이 좋았고 내 아이와 그 친구들을 위한 시간을 마련할 수 있어 금상첨화였습니다. 수업을 진행해 나가며 긍정적인 반응을 많이 얻고, 이런 수업이 또 있었으면 좋 겠다는 말들을 듣게 되자 품앗이 수업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 럽게 공동육아에 대한 관심도 커지기 시작했어요. 첫째를 키우면서 공동육아 어린 이집에 보냈으면 했는데 동대문구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한 곳도 없어 아쉬웠던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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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이 있었거든요. 안심하고아이를 맡길 수 있고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부모가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장점들을 익히 들어와서 우리 동네에도 생겼으면 했습니다. 둘째아이를 낳고 더 나은 보육에 대한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동육아로 눈이 가게 되었어요. 요즘 어린이집에 대한 말들이 많 죠. 뉴스에 안 좋은 소식이 날 때마다 부모 입장에서 가슴이 두근거린 적이 한 두 번 이 아닙니다. 단순히 어린이집이 못미더워서만은 아니에요.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시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더 나 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엄마의 바람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특히 유아기의 양육환경과 주 양육자가 한 사람의 일생에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크다는 점에 매우 공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주변에서 공동육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동대문구 에서 태어나 자란 저는 친구들이며 동창, 선후배 모두 동네 사람들이었거든요. 비 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며 평소에도 육아에 대한 정보들을 주고받던 이웃들에게 도 의견을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육아 문제를 고민하고 있 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같이 수다라도 떨까 하며 집에서, 놀이터에서 만나기를 거듭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모임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끼 리 ‘공동육아’라는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만나게 된 겁니다. 2. 씨앗 심기 알토란이 되다 2012년 6월 19일 / 알토란 성장 관찰일지 이제부터 우리의 이름은 알토란!! 껍질을 벗긴 토란은 동글동글하고 알차게 보인다. 그래서 알토란이라고 하면 아주 튼튼하고 실속 있는 것의 비유로 쓰인다. 옹골차고 여럿가운데 표본이 되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동글동글한 뿌리가 연결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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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어 있는 모습이무척 귀여워 마치 우리 아이들 같은 느낌이 들어 이름을 정 서울시 동대문구 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알토란처럼 실하게 크기를 바라고 또 서로 얽혀 기대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컸으면 하는 부모들의 희망이 담긴 이름이란 걸 모두 알아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는 기분으로 이름까지 정했으니 정말 잘해봐야지. 철이 들고 나서는 화분을 하나 심는 것에도 버거워했던 나였는데 이렇게 모임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까지 만들게 되다니 부모라는 이름 아래 정말 용감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농사 프로젝트 알토란 시작!! 모임 이름을 만들자 괜히 좀 더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고민부터 생기더라 고요. 그리고 좀 더 많은 분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 동대문구청에 공동육아에 대한 교육을 신청했습니다. 구청의 협조로 2012년 8월 31일에 찾아가는 주민설명회를 열 수 있었죠. 주로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둥그레 문고에서 진행되었 습니다. 마을공동체의 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성미산 마을에서 무지개 육아사랑방을 운영하셨던 정영화 강사님을 모셨습니다.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라는 주제로 육아 사랑방을 하시며 겪었던 일들과 공동육아의 개념부터 찬찬히 짚어주셨어요. 공동 육아의 추진배경, 장점과 조심해야 할 점, 시작하기 위한 절차와 방법에 대하여 강 의를 들었습니다. 공동육아를 미리 해 본 선배엄마의 경험담과 더불어 생생한 현장 의 이야기를 들으니 구상 중이던 생각들의 실현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그 날의 가장 큰 성과는 공동육아에 관심 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는 겁니다. 주변 아파트에 공고하고 지인을 통해 동네 분들에게 강의를 홍보하긴 했 지만 사람들이 많이 올까 기대 반 걱정 반이었거든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놀랐고 그 분들 가운데는 초등학교 동창, 엄마 친구 딸 등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는 분들이 꽤 되었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줄 생각도 못했던 사람 들이 강의를 듣고 궁금한 점을 서로 물어보며 연락처까지 주고받게 되었답니다.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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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운 여자들 “자신의 장점을이야기해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겠습니까?” 공동육아 교육을 받던 중 정영화 강사님이 이렇게 질문했을 때 선뜻 대답한 사람 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서른 명이 넘는 엄마들이 강의를 듣고 있었지만 말이에 요. 그러다 한 두 사람씩 장점들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음, 이 친구는 손재주가 좋아요. 이분은 음식솜씨가 최고에요. 네, 바로 옆 사람 이나 아는 분을 칭찬하는 거였어요. 결국 강사님의 제안으로 의무적으로 한 개씩 자 기 자랑을 하기로 했습니다. 전 김치를 잘 담궈요. 다이어트는 자신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꼭 필요한 장점부터 깨알 같은 자랑들이 쏟아져 나오더군요. 머리핀이나 리 본을 직접 만드시는 분, 손수 만드는 쿠키가 수준급이라는 분부터 미대에서 공예를 전공하신 분, 각종 자격증 있으신 분들 등 다양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다들 장점이 없는 사람들이어서라기 보다 평소 장점을 펼칠 기회가 많지 않았거나 쑥스러워서 말씀을 못하신 거 같았어요. 정말 아까운 사람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엄마들의 재능기부를 기본으로 한 품앗이 수업을 기획한 건 이렇게 엄마들의 아 까운 재능을 살려보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출산과 육아로 직 장을 그만두었지만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충분한 분들이 많았거든요. 보육 교사, 초등학교 교사 등 선생님이시거나 미술, 음악 등 특화과목을 전공하신 분들 은 경험도 매우 풍부하셨습니다. 또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가르칠 수 있다거나 우는 아이를 누구보다 잘 달래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도 계셨어요. 품앗이 수업을 기획하며 우리들은 서로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게 되었고 무엇보 다 스스로에 대해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출산과 육아 를 포함한 가사노동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경제적 손실은 일인당 4억 7천만 원이고 사회 전체로는 60조 원에 이른다죠. 개인의 손해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2012년 한해에 출산과 육아로 인해 일을 그만둔 여성이 417만 명으로, 일할 수 있는 여성인구의 21퍼센트나 된다고 합니다. 경력 단절로 인 한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을 1퍼센트 끌어올리면, 일인당 국민소득이 1퍼센트 증가 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이유는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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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름 아닌 육아의어려움 때문입니다.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없는 현실이 출산율 서울시 동대문구 을 떨어뜨리고 아까운 여성 인재의 활용을 막고 있는 거죠. 공동육아의 필요성을 다 시 한 번 절감하며 마을과 사회가 육아의 짐을 나눠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마.프가 뭔가요?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그런데 때마침 그 즈음 서울시에서는 재미있는 일을 시작했어요. ‘우리마을 프로젝 트’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말입니다. 마을공동체라는 말도 처음 접하게 되었죠. 주민 의 자발적인 참여와 필요에 따른 마을공동체 형성을 지원한다는 취지가 우리와 딱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이었죠. 마을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고 싶어 누가 모이자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모임을 이뤄 알토란이라는 씨앗을 심은 상태였으니까요. 옆집 친 구랑 신나게 놀 수 있고 우리 동네 아저씨를 보고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고 아랫집 동생한테 옷도 물려줄 수 있는 그런 마을을 만들고 싶은 우리를 알아봐줄까 반신반 의하며 ‘우리마을 프로젝트’에 지원서를 내기로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는 회의로는 부족해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지원서를 써 내려갔죠. 2012년 9월 5일 까지 서류를 제출하기로 마음먹고 우리의 생각을 다듬는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생각들, 회의 내용들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매우 의 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그동안의 만남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어 좋았고 무엇 보다 우리의 공통적인 육아가치관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 공동육아를 하고 싶은지, 어떤 기준으로 우리의 생각을 실천할 것인지 문서화 하는 기회를 갖게 된 거죠.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일을 진행한다는 것도 고무적이었습니다. 씨 앗을 겨우 심은 우리가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뭔가 계기가 필요했거든요. 사업제안 주민모임 소개서를 쓰며 우리의 설립목적과 사업신청취지를 정리해 보 았습니다.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은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육아를 목표로 올바른 인 성교육이 목적입니다. 육아를 한 개인 혹은 가정의 책임이 아닌 함께 연구할 대상 으로 정하여 가족과 사회가 함께 손잡고 미래의 주인공들을 알차게 키워나가려 합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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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다. 그 실현방법으로육아 품앗이를 선택하여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해소하고 이 웃과 즐겁게 아이들을 돌보며 창의적인 보육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부모가 ‘내 아 이’와 ‘남의 아이’의 경계를 허물고 공동육아에 참여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삶이 아 름답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서류를 내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주민 모임 대표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어요. 네, 제가 제일 급했거든요. 육아휴직 중이긴 했지만 내년 초에 복직할 예정이었고 더 나 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저를 과감하게 만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마을 프로젝트 지원하셨죠?!” “네? 뭐라고요?” “우.마.프!! 우리마을 프로젝트요.” “아, 맞아요.”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의 전화를 받고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현 장조사와 면접을 거쳐 드디어 9월에 협약식을 하게 되었어요.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에서 아이를 키워보겠다는 우리의 뜻은 우리마을 프로젝트 협약과 더불어 서울시의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알토란배움터로 오세요 누군가에게 지원을 받는다는 것, 정말 든든한 일이더군요. 모임을 만들고 정기적으 로 회의를 해가며 품앗이 수업을 기획하던 우리에게 우리마을프로젝트는 마치 제트 엔진을 달아준 격이었습니다. 이왕 하려던 사업을 더 신나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사업계획서를 내고 면접까지 거친 후라 무척 인정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서 울시가 우리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 준다고 생각하니 사업 진도가 빨리 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품앗이 수업은 ‘알토란 배움터’란 이름을 달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개의 수업 을 정하여 구성하였습니다.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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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동대문구 알토란배움터 하나. 엄마들의재능기부를 통해 만들어가는 수업입니다. 둘. 각 요일마다 협동심과 창의력을 기르는 특화된 수업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셋. 엄마들이 만들어, 최소한의 비용으로 우리 아이들이 함께 놀며 공부할 수 있습니다. 넷. 10월 한달간 재료비, 교육비 전액 무료로 진행됩니다. 소 개 수 목 금 〈전래놀이〉 〈국악〉 〈미술〉 〈요리〉 사서선생님과 함께 하는 책 놀이터 하늘땅 전래놀이 신바람 사물놀이 꼬마 피카소 몸 튼튼 마음 튼튼 유기농 쿠킹 권기정 강 사 화 〈독서〉 과 목 월 홍승현 박경자 권정연 김지선 구립도서관 사서 방송작가 국립국악원수료 2011년 서울시장배 사물놀이 대상수상 미술실기교사 보육교사 1급 및 방과 후 교실 교사 보육교사 1급 다 같이 놀자!! 전래놀이·동요를 배우며 협동심과 지혜를 키우고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요. 리듬감,박자감 팡팡!! 우리 전통악기를 배우고 협주해요. 타악기 연주로 스트레 스는 저 멀리로, 자신감은 내 안으로!! 다양한 미술활동으로 창의성을 키우고 명화감상을 통해 정서발달에 도움을 주는 감성개발 종합 선물세트!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요 일 오감자극, 두뇌개발! 요리하며 집중력과 성취감을 얻고 바른 먹거리로 식습관 교정도 도와줘요. 주제에 맞게 선정한 동화를 듣고 이해력 쏙쏙, 재미있는 독후 활동으로 사고력도 쑥쑥!! ※모든 식재료는 한살림 을 비롯한 유기농재료로 만 공급합니다. 인 원 10명 10명 10명 10명 10명 시 간 오후 4시 오후 4시 오후 4시 오후 4시 오후 4시 약속해주세요 - 프로그램 내용은 사정상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수업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해주세요. - 접수 후 참가해 주세요.(우리 아이들의 안전과 교육의 질을 위해 10명 정원 을 원칙으로 합니다. 꼭 접수 후에 오세요.)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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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앗이 육아모임 〈알토란〉이란?? “우리아이 어떻게 키울까?” 고민 많으시죠!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육아, 올바른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한 창의적인 육아가 필요한 지금! 공동육아 모임 〈알토란〉은, 이웃과 즐겁게 자녀를 돌보는 육아 품앗이를 목적 으로 태어났습니다. 〈알토란〉과 함께 ‘내 아이’와 ‘남의 아이’의 경계가 없는 육 아와 교육환경을 만들어 봐요! 10월부터 품앗이 수업을 시작하며 주변 아파트에 공고를 붙였습니다. 반신반의 하며 아이들이 얼마나 올까 걱정도 했고요. 그런데 접수 10분 만에 모든 수업이 마 감되었답니다. 하루도 아니고 단 10분 만에 마감되어 많은 친구들이 아쉬워하고 대 기자에 이름을 올려놓았을 정도였어요. 전액 무료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나? 아니면 내가 하는 수업에 대한 기대가 이 정도인가? 품앗이를 맡은 엄마들은 책임감에 가 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걱정도 해가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그럼 우리도 알토란 배움터로 가 볼까요?! 월요일은 독서수업으로 제가 진행하는 ‘사서와 함께하는 책 놀이터’입니다. 한 달 마다 주제를 가지고 일주일에 두 권씩 총 여덟 권의 동화를 선정하여 읽어주고 어울 리는 독후활동을 하는 시간이에요. 독후활동은 주로 연관된 만들기나 창의적인 꾸 미기를 하는 편이에요. 아이들이 책을 읽고 난 후 느끼거나 새로 익힌 내용을 독후 활동으로 확인 해 볼 수 있고 즐겁게 책읽기를 기대할 수 있어 좋아한답니다. 네 살 이었던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면서 간단하게 자신의 의견 말하기도 많이 하고 있어 요. 책 내용에 대한 단순한 질문과 답이 아닌 주인공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결말이 아니라 다른 결말이라면 어떨까 하고 친구들과 토론하기도 합니다. 사실 아이들보다도 준비하는 제가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책 읽기를 좋아하고 꼬물꼬물 만들기를 좋아하는 제가 아이들과 눈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라 준비 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답니다.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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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 서와 함께 하는 사 책 놀이터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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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일은 언제나 친구들이넘치는 가장 인기 있는 전래놀이 시간이에요. ‘하늘땅 전래놀이’라는 수업 이름처럼 온몸으로 움직이고 느낄 수 있는 놀이시간이라 아이 들이 가장 신나합니다. 대문놀이, 투호놀이, 윷놀이 등 옛날부터 해왔던 고유의 놀 이부터 우리가 어릴 때 놀이터에서 했던 놀이들까지 골고루 하고 있습니다. 그저 또 래 아이들과 땀 흘리며 노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전래 놀이는 굉장 히 많은 장점이 있어 함께 수업해나가는 선생님도 놀란답니다. 여러 명이 함께 하는 놀이라 협동심이 길러지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역시 자연스럽게 몸에 익힐 수 있죠. 규칙을 정하고 역할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리더십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고도 합 니다. 이런 과정들이 친구들과 놀면서 이루어진다니 그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한꺼 번에 잡는 격이죠. 엉덩이 들썩들썩, 가만히 앉아있기 힘든 유아들에게 딱 맞는 수 업이라 수업이 끝나고 나면 친구들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합니다.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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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사물놀이는 수요일에 만나요. 사물놀이의 시작은 장구라 유아 사이즈에 맞는 장 구를 배우고 있습니다. 국립국악원을 수료하신 할머니 선생님께서 정성스럽게 가 르쳐주세요. 흥겨운 우리 가락으로 리듬감을 익히고 타악기를 연주하며 평소 쓰지 않던 근육들을 움직일 수 있어 두뇌 발달에 좋답니다. 요즘은 영유아 스트레스가 심 각하다고 하는데 사물놀이는 무엇보다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해요. 덩 더더 쿵딱, 아이들이 어떻게 치나 듣고 있다 보면 저도 모르고 얼쑤~ 추임새를 넣 게 되고 함께 듣던 언니, 오빠들도 한번 쳐 보고 싶다며 창가에 매달리게 되는 수업 이랍니다. 꼬마 피카소들과 함께 하는 미술 시간은 목요일이에요. 미술을 전공 한 정빈 엄마, 권정연 선생님이 다양 한 재료와 기법으로 함께 하고 있습 니다. 취학 전 아이들에게 미술활동 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표현의 통 로이자 놀이라고 생각해요. 엄마표 미술시간의 특징은 아이들 의 표현이 최대한 존중받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멋지게 작품을 완성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 눈으로 보고 아이 손으로 표현 해내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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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요. 사물을 관찰하고직접 만져보며 그리는 유아 정물화, 점토를 이용한 공예, 오 감을 이용한 만들기 수업, 명화를 감상하고 화가에 대해 알아보는 명화 따라잡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금요일은 몸 튼튼 마음 튼튼 유기농 쿠킹 시간입니다. 모든 식재료는 우리 땅에 서 난 유기농 재료만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재료들을 직접 만지고 손질하며 오감을 발달시키고 수 개념과 창의력을 길러 주기 좋은 시간이랍니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성취감까지 주 는 수업이라 아이들의 호응이 남달랐 어요. 내가 만든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말하며 오늘 만든 걸 누구와 나눠 먹을까 고민하는 친구들의 모습 을 볼 때면 재료 준비의 번거로움도 싹 잊게 되는 마법같은 시간입니다. 10월 한 달 동안은 전액 무료로 수업 을 진행했어요. 재료비도 전혀 받지 않 고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욕심껏 수업을 신청해놓고 안 오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어 요. 소규모 수업이라 한명만 비어도 빈자리가 큰 데다 미술, 요리처럼 재료를 미리 준비해 놓은 수업은 더더욱 안타까웠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의 기회를 앗아 간 거 같아 정말 미안했어요. 수업 마감이 빨랐던 만큼 대기했던 친구들도 많았고 수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던 아이들이 많았는데 말입니다. 결국 우리는 소정의 재료비를 받고 책임감을 부여하기로 했어요. 알토란배움터 의 강사료는 없이 재능기부를 하되 재료비는 본인 부담으로 하여 무책임하게 수업 에 빠지는 경우를 방지하고 낭비되는 재료로 없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정식으로 11~12월 수강신청을 받게 되었죠.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두 달 에 한 번씩 신청을 받아 배움터를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수업은 주 1회, 월 4회 를 기본으로 하고 한번 신청하면 8회 수업을 듣도록 했어요. 재료비 책정을 하면서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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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회의에 회의를거듭했습니다. 어느 선이어야 적절한지, 실질적으로 무리 없이 서울시 동대문구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컸답니다. 우선 우리 동네 학원이나 문화센터의 수강료들을 알아보고 비교해보는 정보 수집을 기본으로 했고요. 다음으로 10월에 수업을 들었던 분들의 의견을 여쭈어 봤습니다. 또, 실제 공부방이나 방과 후 수업 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조언을 참고하기도 했어요. 회의 하는 동안 선생님 입장이었 다가, 학부모 입장이었다가, 또 배움터 운영진의 입장이었다가 하면서 머리를 모은 끝에 결정했어요.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독서와 전래놀이 수업은 월 1만 원, 사물놀이는 2만 원, 실 재료비가 많이 드는 미술과 요리수업은 3만 원씩 책정했습니다. 재료비를 부담하고도 수업을 들으러 올 까 하는 걱정이 머리를 들기도 전에 11~12월 수업신청도 마감되었어요. 알토란 배움터의 수업대상인 4~6세 유아들은 학원에 보내자니 손이 많이 갈 나 이이고 오후시간을 집에서만 보내기엔 무료한 연령이에요.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 면서도 스펀지 같은 아이들을 위해 알찬 수업이 필요하기에 엄마표 품앗이 수업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아이가 수업을 듣는데 허술하게 준비하는 엄마 는 없으니까요. 알토란배움터가 인기 있는 이유는 아마 이런 엄마 마음을 다들 알아 주시기 때문인 거 같아요. ●인터뷰 | 윤혜경 둥그레문고 회장님 결국 아이들은 모두 부모를 닮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 사이에 무슨 인터뷰냐며 웃음 짓던 윤해경 회장님. 막상 질문에 들어가 니 진지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권기정 : 저희의 첫 만남 기억하세요? 윤해경 : 기정씨가 재능기부 하겠다고 했던 날이었을 거야. 애기 업고 와서 독서 수업하겠 다고 했던 게 벌써 1년도 넘었네. 권기정 : 그게 우리들의 시작이었죠. 그 수업 을 계기로 공동육아가 시작된 건데요. 회장님 이야말로 저희의 탄생을 처음부터 봐주신 분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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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고 생각해요. 윤해경: 나도같이 시작한거지 뭐, 그 수업하면서 문고가 좀 더 활성화 되었으 면 한 거니까. 권기정 : 그렇게 공동육아랑 배움터하면서 저희가 수업 공간을 많이 쓰게 되 었는데, 사실 반대하셨던 분도 있다고 알고 있거든요? 윤해경: 아무래도 여러 사람 들락날락 한다고 어르신들이 못 마땅해 하시는 편이지. 왜 아이들에게만 특혜를 주냐고 생각하는 주민들도 있고, 무엇보다 기정씨가 아파트 주택 상관없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 모두 참가해도 좋다고 한 게 좀 걸리는 거지. 근데 이런 분들도 열심히 하니까 많이 조용해졌어. 여 기저기서 취재도 오고 아파트 이름으로 기사도 많이 나갔잖아. 권기정 :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희에게 공간을 내주신 이유가 있을까요? 윤해경: 우선 취지가 정말 좋았고 자기네가 열심히 하니까. 우리가 같이 하면 시너지 효과가 많이 났잖아. 행사도 같이 하니까 즐겁고…. 권기정 : 저희랑 회의도 가끔 같이 하시잖아요. 저희의 공동육아의 목표인 인 성교육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해경: 이건 답을 알고 하는 질문 같은데~~ (웃음) 일단 너무 이른 선행교육 이나 사교육은 별로라는데 동의하고, 아이들마다 다른 재능이 있으니까 그걸 잘 발견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부모도 욕심이 있고 또 아이가 잘했으면 하는 마음도 계속 생기니까…. 더 키워봐. 쉽 지 않다니까…. 권기정 : 앞으로 저희 알토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윤해경: 바라는 점이라기 보다는 지금 모습을 잘 유지하고 발전해나갔으면 하 는 거야. 난 자기네가 좋은 이유 중의 하나가 너무 무리하지 않는 거. 할 수 있 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은 거 같아. 사실 요즘 엄마들 너무 무리하거 든. 아이들은 결국 부모들을 닮게 되어 있는데…. 엄마들이 즐겁고 행복해야 지. 아이들도 같이 행복하지. 난 그게 좋더라.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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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는 게 제일좋아 서울시 동대문구 배움터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주로 놀이터에 갑니다. 1시간 남짓의 수업시간만으 로는 아쉬운지 동네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은 가 봐요. 저 어릴 때는 엄마가 밥 먹자 고 부르러 올 때까지 항상 놀이터에 있었던 거 같은데, 사실 엄마가 되고 보니 매일 놀이터에 나오기도 간단치 않았습니다. 아기 기저귀가방 챙기랴, 마실 물이랑 간식 등 챙겨야 할 것도 많았고 큰아이가 미끄럼틀 탈 동안 기어코 따라 타겠다는 18개월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동생 따라다니기에 지쳐 놀이터를 외면할 때가 많았던 불량 엄마였어요. 그런데 알 토란 친구들과 함께 가면 오히려 놀이터 나들이가 여유로워집니다. 꼬마 동생들까 지 의젓하게 챙겨주는 언니, 오빠들이 많아 아이를 따라 다니기보다 지켜볼 수 있게 해주거든요. 친구들과 노는 아이들은 엄마에게 떼쓰기를 그만 두고 놀이에 집중합 니다. 사실 아이들이 가장 행복해 하는 시간은 바로 이렇게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 는 시간이었어요. 집밥의 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놀다 보면 어느새 6시 가까이 되어 저녁 먹을 시간이 되요. 엄마들이 돌아가며 차려 놓은 밥상이 우릴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집으로 가야 겠죠? 공동육아를 결심하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간이었어요. 수업과 돌 봄은 주로 둥그레 문고에서 했지만 밥을 먹으려면 당연히 부엌이 있는 어딘가로 가 야할 테니 말입니다. 다행히 정빈이네 집이 개방을 약속해서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죠. 엄마들은 돌아가며 식사당번과 저녁 설거지 당번을 정했습 니다. 식단은 동대문구 보육정보센터에서 제공되는 유아용 식단과 엄마가 선택하 고 아이들이 선호하는 반찬들을 참고하여 만들었어요. 음식이 결국 그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성품이 달 라진다는 말을 저는 믿어요. 알토란 엄마들이 공동육아에 대해 의논하며 가장 먼저 뜻을 모은 것은 바로 유기농 식단입니다. 유아시기인 우리 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건 건강한 먹거리라고 생각해요.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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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땅에서 제때에키운 제철 식재료로 정성들여 요리한 음식을 먹고 큰 아이 는 반드시 바르게 자란다는 게 우리의 신념입니다. 매일 매일 갓 지은 잡곡밥에 엄 마 손으로 만든 균형 있는 반찬을 먹게 해준다는 건 알토란 공동육아의 큰 목표 중 하나였어요. 말이 쉽지 혼자서는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라는 거 엄마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살림하면서 매일 다른 반찬에 갓 지은 밥을 내놓기가 어디 쉬운가요. 아이 에게 가능하면 인스턴트 음식 안 먹이려고 노력하지만 피곤하니까, 밥 차릴 시간이 없어서 등등 이유를 대며 반 조리식품으로 요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식재료가 없 거나 양을 조절하기 어려워 아예 배달음식 시켜먹거나 외식 해버리는 경우도 생기 죠. 이렇게 저녁을 제대로 먹이기는 보통 정성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엄마들은 우리의 믿음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아이들의 간식과 반찬을 함께 만들며 내가 모르 는 레시피를 공유하고 우리 아이의 식습관과 영양 상태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답니다. 건강을 위해 선택한 ‘집밥’의 장점은 한 가지가 아니었어요.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온 식구가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대화 속 에서 인성을 키우는 시간인데 요, 사실 저희 집만 해도 주중 에 아빠와 저녁을 함께 먹는 시 간은 거의 없었어요. 엄마인 저 는 애들 밥 챙기고 설거지, 부 엌일에 바빠 여유 있게 대화를 할 육체적, 심적 여유가 부족 한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다함 께 밥을 먹으면서 드디어 밥상 머리 교육을 실천할 기회가 온 겁니다. 혼자 있을 때는 떠먹여 줘야 겨우 밥을 먹는 아이, 편 식하는 아이, 돌아다니며 먹는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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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등 생활습관이 바르게 잡히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우선 밥상에 잘 앉아 서울시 동대문구 있는 습관부터 바로 잡히기 시작했어요. 밥 먹기 전에 꼭 손을 씻고 밥 먹고 나서는 자기 식판은 스스로 옮기기 등 아이들의 달라진 모습에 저부터 깜짝 놀랐답니다. 사 소한 습관이지만 집에서는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었거든요. 밥을 먹으며 오늘 수업했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거나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 친구들과의 일상을 이야기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가 저렇게 말이 많았나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었는지, 내가 얼마나 못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들어줬었는지 새삼스레 반성할 수 있는 계기였어요. 하버드대 캐서린 스노우 연구 결과 만 3세 어린이가 책을 통해 배우는 단어는 140개, 가족식사를 통해서 배우는 단어는 1,000개라고 합니다. 유치원 시기의 풍부 한 어휘는 고등학교 시기의 이해력과 관련이 높다고 하네요. 어릴 때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제대로 한다면 입시용 사교육에 대한 부담까지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 았습니다. 가족은 함께 밥 먹는 사람이라 식구(食口)라고 하죠. 밥을 먹으며 정든다는 말처 럼 우리도 따뜻한 집밥을 통해 유대감을 쌓아가며 한 식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3. 새싹 틔우기 한 뼘 더 크기 알토란은 매주 목요일 저녁 회의를 했어요. 공동육아를 진행하고 배움터를 운영하 다보니 공유해야 사항이 많아지고 의견을 물어야 할 일이 점점 늘어났기에 주 1회 회의를 원칙으로 회의날짜를 잡은 겁니다. 시간은 저녁 먹고 난 후, 가능한 부모가 모두 참석하여 회의를 하기로 했어요. 현황을 점검하고 계획을 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회의록을 작성하도록 하고 의 사를 결정할 때에는 1인 1표를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우리의 회 의록을 한번 공유해 볼까요?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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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토란 회의록 회의일시 2012년 10월18일 작성자 회의안건 권기정 1. 공동육아 시 놀이 주권 다툼 2. 알토란 배움터 수업현황 내용 1. 아이들의 관계형성에 대한 고민하기 : 어른들과 다르게 아이들에게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시 간적 여유가 필요함 혹시 폭력을 행사하거나 나쁜 언어 사용 시 따끔한 훈계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 아이들마다 특성이 매우 다르므로 조심스러운 관찰 및 적 절한 개입 필요 2. 알토란 배움터 수업일지 모두 공유하기 11~12월 알토란 배움터 모집 전단지 제작하기 (배포방식 및 배포인원 고민하기) 게시판 활용 홍보계획 세우기 등록기간 및 방식 결정하기 ◎ 어떤 행동이 잘못된 것 인지, 잘못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평한 규칙 수립의 필요 성 절감 ◎ 아이들 개인 물건 가져 오도록 하여 개별영역 확 보해주기 내용 회의내용 비고 진행일정 10월 19일 11~12월 알토란 배움터 모집 예정 :선착순 방문접수 (둥그레문고) 10월 23~24일 아이들 각자의 장난감 및 여벌 옷 가져오기 결정사항 알토란배움터 홍보 전단지 게시판 부착 : 장안힐스테이트아파트 전 동 엘리베이터 내 게시판 활용 10월 19일 2012년 10월 18일의 회의록입니다. (부분 발췌) 회의 안건 가운데 첫 번째는 바 로 아이들 간의 갈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놀이의 주도권에 대한 다툼이 주 내용 이었죠. 사실 전 그 무렵 속상한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나 정말 가슴이 찢어지 는 거 같다”로 시작한 알토란 엄마의 마음 아픈 이야기. 다른 아이들이 한 아이를 때 리고 괴롭혀 그 아이가 힘들어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이가 가장 많지만 워낙 점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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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잖고 착한 아이라동생들이 귀찮게 해도 참고 넘어간 것이 문제였을까요? 아이들이 서울시 동대문구 모여 있으니 다툼이 생기기 마련일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보이니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공동육아를 너무 쉽게 생각했었던 건 아닐까 후회가 밀려오 고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어요. 4~6세 아이들은 자기주장은 할 줄 알아도 사 고력과 분별력은 그에 못 미치는 나이라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럭비공 같은 시기라고 하더니 바로 럭비공에 제대로 맞은 거 같았답니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을 아이와 엄마의 심정에 100퍼센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트 공감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정식으로 회의 안건에 올려 해결책을 마련해 보기로 하고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함께 고민하면서 어른들의 잘못이 크다는 반성부터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어른 들은 몇 개월 전부터 모임을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만큼 여 유를 주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번 안면이 있는 상태에서 저 녁까지 함께 있는 생활을 시작하다보니 아무래도 어색한 면이 있고 친해지는 데까 지 시간이 걸리는 걸릴 테니 말이에요.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적응 기간을 거쳐야 했 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며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 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 원인의 하나가 아니었나 싶더군요. 저녁을 먹고 나서 자유 놀이 시간을 길게 둔 것 역시 지적되었습니다. 식사 후 설거지며 청 소 시간 등으로 당번 엄마들이 바쁜 틈을 타 아이들끼리만 있는 시간에 주로 다툼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정답은 없겠지만 우리는 몇 가지 합의점을 찾아냈습니다. 먼저 아이들 각자의 영 역 확보에 나섰어요. 자신의 장난감과 간단한 소지품을 가지고 와서 낯선 환경과 친 해질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하는 겁니다. 다음으로 우리들의 ‘원칙’을 정하기로 했 습니다. 어떤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잘못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평한 규칙을 수립해 놓는 것이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납득하기 쉬울 거 같았어 요. 아이들은 이런 원칙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자신과 관련한 원칙을 세우고 지키 는 것을 자신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는군요. 몸과 마음을 조절하는 힘을 기르 고 있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일관성 있게 지키기로 결정했 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지켜봐주기’라고 마무리했어요. 조금 더 느긋하게 기다려주고 아이들을 믿기로 했답니다.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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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토란 회의록 회의일시 2012년 10월25일 작성자 회의안건 권기정 1. 저녁식사 후 프로그램 고민 2. 알토란 배움터 수업현황 내용 회의내용 1. 저녁식사 후 독서 프로그램 강화 : 책 읽어주기, 영어책 듣고 따라하기, 영어골든벨 게임, 빙 고 등 저녁 프로그램을 고민 역할분담을 잘 하여 저녁 시간 활용하기 2. 10월 알토란 배움터 수업 31일 끝남 11~12월은 11월 5일부터 수업시작 (선착순 신청 마감 완료) 11~12월 수업준비, 수업안 제출 (이메일로 제출하기) 비고 ◎ 11~12월 수업 신청자에게 등록확인 및 안내 문자 보내기 내용 진행일정 특이사항 10월 29일부터 11~12월 알토란 배움터 수업시작 : 장소 - 둥그레 문고 시간 - 오후 4시~5시 결정사항 공동육아 저녁프로그램 : 월 - 영어책 읽고 CD듣기 수 - 책읽어주기 금 - 영어 골든벨 11월 5일~12월 28일 아이들 각자 개별 영역 확보한 후 사이가 많이 좋아지고 있는 중 10월 25일 회의록의 주요 안건도 아이들의 다툼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저녁 시간 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서로 더 잘 알게 되는 기회를 주고 싶어 ‘부엉부엉’이 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월요일에는 블록, 화요일과 목요일은 자유놀이, 수요일은 게임, 금요일은 영어책을 읽어주기로 시간표를 그렸습니다. 자유놀이 시 간에는 아이들이 다투지 않도록 유도하고 놀이 및 프로그램 끝나면 스스로 정리하 는 습관 길러주기로 했어요.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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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식 회의록에 기록된것은 간단하지만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까지 엄마들은 틈 서울시 동대문구 틈이 이야기하고 몇 번이나 전화와 메시지로 의견을 주고받고 고민해가며 많은 시 간을 보냈답니다. 공동육아란 내 아이만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를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답니다. 사실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보면 다툼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죠. 당연히 싸움과 의견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어야 했는데 좋은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점만 생각했던 것이 착오였습니다. 다행인 것은 엄마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솔직하 게 의견을 나누었다는 점이에요. 그것이 문제해결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 로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알토란이 유지되기 힘들었을 테니 말이에요.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하죠. 친구와의 관계 형성에 있어 약간의 다툼과 트러 블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화해와 용서를 배우고 진정한 우정을 얻으려면 다툼 역시 필수 요소가 아닐까요?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서로 존중할 줄 알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세상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 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아프지만 그만큼 알차게 자라나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지 켜보기로 마음먹었어요. 또한 처음에 생각했던 공동육아의 목표에 대하여 조율하는 좋은 터닝 포인트였 습니다. 느슨해질 수도 있는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 더 노력하기 위한 이유가 되어 주었어요. 내 아이 뿐만 아니라 이웃의 아이, 우리 마을의 아이, 결국에는 이 사회 전체의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커야 내 아이도 행복해 질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이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답니다. 주목받는 알토란 2012년 11월 20일 / 알토란 관찰일지 함께 공동육아를 하는 현우 엄마가 저녁을 먹던 중 지나가는 말처럼 묻는다. “우리 공동육아 하는 거 취재하러 온대. 괜찮아?” 현우아빠네 회사에서 마침 공동육아를 주제로 짧게 뉴스를 만든다고 한다.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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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우 엄마는 방송작가,아빠는 PD로 일하고 있다.)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하며 좋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핸드폰에 날아든 문자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MBC 뉴스데스크에서 취재 온다고? TV에 나오는 그 MBC 뉴스데스크?! 뜨아~ 이거였어?! 난 케이블 프로그램에 잠깐 나오는 건 줄 알고 쉽게 생각한건데 ~~ 뭘 준비해야 되지?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되나? 고민은 잠시. 그래.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데 뭐 어려울라고. 평소처럼 수업준비를 하고 취재에 응하기로 했다. 유기농 쿠킹이 있는 금요일 에 오신다고 해서 품앗이 수업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초상권에 대한 동의 여부 를 묻고 협조를 요청했는데, 다들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뉴스데스크 앵커인 양승은 아나운서와 취재진이 오면서 촬영이 시작 되자 살짝 긴장했던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웃고 떠들기 바쁘다. 오늘의 요리 수업은 유기농 현미 김밥 만들기. 예쁜 아나운서 언니 옆에서 만들겠다고 자리를 지키는 친구부터 김밥 옆구리 가 터졌다고 떼를 써서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친구까지 수업이 진행될수 록 취재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리고 인터뷰 시작. 품앗이 수업 의 취지부터 공동육아의 목표까지 다양한 질문들을 대답하고 무사히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역시 평소대 로 하는 게 최고야 하며 흐뭇 해했는데…. 너~무 평소 모습 그대로인 나를 발견하고야 말 았다. 화장이라도 좀 할 걸 그 랬나?! 2012년 12월 2일 일요일, 9시 경부터 갑자기 핸드폰에 문자들이 다다다 오기 시작 했습니다. 공중파 뉴스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고 해야 할까요. 아는 사람의 얼 굴을 뉴스에서 본 지인들의 궁금증 섞인 안부인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정작 저는 볼일이 있어 정규 방송을 챙겨보지 못한 터라 우선 뉴스부터 다시 보기로 했어요.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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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오랜 시간촬영하고 인터뷰도 다양하게 했는데, 편집의 힘은 정말 놀라웠습니 서울시 동대문구 다. 제 인터뷰는 딱 한마디. “저희가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지원금을 받고 있고요. 총 480만 원, 한 달에 160만 원 받고 있습니다.” 우리마을 프로젝트에서 받는 지원 금액만 나왔어요. 이 말 때문에 오해를 하는 분들이 생길까 걱정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원금으로 뭐 하냐 수준이 아니라 너 희 월급으로 쓰는 거 아니냐 하는 얼토당토 안 되는 말까지 듣자 기분이 좀 상하더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라고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봐 주시는 분들 역시 많았고 격려해주시는 분들의 따뜻 한 시선 덕분에 훌훌 털어낼 수 있었어요. 《MBC》를 시작으로 알토란은 꽤 많은 언론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답니다. 동대문 구에서 흔치 않은 공동육아 사례이고 품앗이 수업이 활성화 된 것이 이유일까요? 《EBS》와 《교통방송》, 지역 케이블 방송 《CMB》 등의 방송국에서 취재진들이 다녀 가고 《레몬트리》, 《서울타임스》, 《환경일보》를 비롯한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도 기 사들이 나왔습니다. 횟수로 보면 꽤 많은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언론 노출에 대해 몇 개의 원칙을 세워놓았기에 취재요청에 거절한 횟수도 적지 않아요. 우선 기사 방 향이 어떤 것인지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기사를 내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인 터뷰 질문지를 먼저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어떻게 조명될 건지에 대 한 부분을 꼭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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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바이, 2012년!! 뉴스의 방영과함께 시작한 12월은 사실 우리가 준비한 이벤트가 많은 달이었어요. 한해를 마감하는 달이고 가족, 이웃과 무언가를 나누고 싶은 알토란의 마음을 표현 하고 싶기도 하여 11월부터 준비를 차곡차곡 해놓았답니다. 우리는 12월의 행사에 대해 공고를 붙여 마을에 알렸어요. 알토란 친구들!! 12월엔 모두 모여라 안녕하세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는 둥그레 문고에서 알려드립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12월을 계획하며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행사 를 준비했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날짜 시간 12월 17일 (월요일) 오후 3시 12월 22일 (토요일) 오전 11시 내용 대상 준비물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감상해요. *월요일 알토란 배움터수업은 연극관람으로 대체합니다. 누구나 무료 매직 카프라 지도 : 큐브레인 윤혜경 선생님 6세 이상 아동 및 보호자 참가비2,000원 * 재료준비 관계 로 12가족 선착 순 접수 연극 〈무지개 물고기〉 ‘장평초등학교 어머니극단’ 집중력과 창의력 발달에 좋은 카프라 블록놀이 를 엄마, 아빠와 함께 해요. 굿바이 파티!! Good bye, 2012!! Good buy, 2013!! 12월 29일 (토요일) 174 오후 2시 벼룩시장과 마니또 파티를 동시에! 벼룩시장 :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에게 주인을 찾아주세요!! 마니또 파티 : 이웃과 함께 연말 선물을 나눠요 ^^ 누구나 3,000원 상당의 마니또 선물 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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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접수는둥그레문고에서 받습니다. 서울시 동대문구 안내 * 둥그레문고 자원봉사자 및 재능기부자 언제나 모집합니다. 가장 먼저 집 앞에서 볼 수 있는 연극 공연을 기획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가본 엄마들은 알 겁니다. 공연 미리 예약해야지, 차 타고 가야지, 나가서 간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식에 식사까지 챙겨야 하고 돌아오려면 얼마나 지치는지 말이에요. 우리 집 앞에서 친구들과 공연을 보고 공연 후 활동까지 곁들인다면 훨씬 더 기억에 남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답니다. 마침 우리 동네에 장평초등학교 어머니극단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둥그레 문고 자원봉사자이기도 한 승이 엄마가 극단의 감 독이란 말씀을 듣고 얼른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공연 후 활동을 책임지 기로 하고요. 그렇게 연극 〈무지개 물 고기〉는 12월 17일 막을 올 릴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 은 70여명, 어른들은 30여 명이나 와서 둥그레 문고가 꽉 차도록 앉아서 공연을 관람했어요. 무대부터 의 상까지 꼼꼼하게 준비해 주셔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들 의 연기는 수준급이었고 아이들이 깔깔 웃을 정도로 재미나게 해주셨어요. 연극 후 에는 다 같이 무지개 물고기 만들기를 했답니다. 그리고 어머니극단 분들이 준비한 간식주머니까지 들고 집에 갈 수 있었어요. 공연 한번 보러갈 때마다 힘들었던 기억 이 있는 저에겐 정말 환상적인 날이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연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친구들도 아마 행복했겠죠?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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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준비한 것은가족과 함께 하는 카프라 블록 놀이였습니다. 원목으로 만 든 한 가지 모양의 나무판자로 수 만 가지 모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카프라를 매 개로 온 가족이 함께 여가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했어요. 주말에 아이들과 어 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신 적 많으실 겁니다. 12월은 날씨가 추워 쉽게 외출하기 어렵고 주말엔 사람이 붐벼 어린 아이들을 선뜻 나가기 힘들었는데 아빠, 엄마와 함 께 할 수 있는 놀이가 있다면 좋을 거 같다는 의견이 많았거든요. 둥그레 문고의 윤혜경 회장님이 흔쾌히 재능기부 해주셔서 강사 섭외 문제가 쉽 게 해결되었고 카프라까지 빌려주셨습니다. 대부분 원목 블록 놀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 조립하는 것이 아닌 무게 중심과 중력의 원리를 이용한 블록놀이가 신기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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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다고 했어요. 그런만큼 집중도도 높아서 예정 시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놀이 시간 서울시 동대문구 을 갖게 되었답니다. 나무 특유의 재질과 향을 가진 원목 블록 놀이는 향기치료 역할 도 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놀이를 통한 힐링을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이웃과 함께 하는 굿바이 파티를 열었습니다. 〈Good bye, 2012!! Good buy, 2013〉이라는 부제를 달고 착한 소비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자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했어요. 한 해를 보내며 자신에게 필요 없지만 다른 이에게는 유용한 물건들에게 새 주인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벼룩시장을 열고, 작은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선물을 마련해 이웃들과 더 친해질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을 실천에 옮겼답니다. 우 리가 책 읽고 수업하던 둥그레 문고는 시장으로 변신해서 사람들을 맞았어요. 작아 진 옷, 다 읽은 책들을 파는 꼬마 사장님부터 냄비, 그릇을 들고 나온 어머님들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나와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답니다. 형과 동생이 같은 스케치북 을 팔면서 100원 더 싸게 해주겠다고 흥정하는 바람에 웃으며 사기도 하고 아기 모 자도 공짜로 얻어가며 시장놀이 하는 기분이었어요. 마니또 파티는 각자 3,000원 상당의 작은 선물을 가지고 와서 이웃과 나누는 형식 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각자 번호표를 추첨함에 넣고 자기 소개부터 시작했어요. 한 동네에 살면서 얼굴은 자주 보지만 잘 모르는 분들도 많고 지나치면서 어색하게 눈 인사만 하던 분들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인사할 수 있었죠. 3살 아기부터 40대의 주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이웃들이 참가해서 같이 귤껍질 까기 게임, 신문지 잘게 자르기 게임 등을 하면서 친목을 도모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번호 추첨시간! 다들 이웃들이 무슨 선물을 가져왔는지 보며 받고 싶은 선물을 찜하기도 하고 친해진 친 구랑 교환했으면 바라기도 하면서 번호를 뽑았습니다. 아이들 과자, 핸드로션, 양 말 등 소소한 선물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다들 원하는 선물을 받아갈 수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공개 추첨이었는데 필요한 사람에게 딱 맞는 선물들이 돌아간 겁니다. 한해를 마치는 굿바이파티를 마치며 2012년은 정말 풍성한 마음으로 안녕할 수 있었어요. 참석했던 이웃 분들과 알토란 가족들도 그런 마음을 나눠가셨으리라 믿 습니다.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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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우리마을 프로젝트진행 사업을 한눈에 보기 쉽게 표로 정리해 보았어요〉 세부사업명 일시·장소 참여인원· 물량 활동내용 평가의견 10월~12월 * 시간 15시~20시 * 장소 삼성래미안 2차 224동 1702호 회원 6명 유아 4명 - 3시 픽업 후 간식제공 - 알토란 배움터 수업 - 저녁식사 - 식사 후 독서 및 엄마표 놀이 -픽업 시간 철저히 지키 고 각 교육기관과 연계 하기 -바른 먹거리 제공에 긍 정적인 반응 10월~12월 상시 * 회원 6명 및 자원봉사자 10명 * 전단지 800장 내외 - 장안힐스테이트 아파트 내 게시판 공고 및 엘리베이터 내 부착 - 장안힐스테이트 아파트세대 안내방송 - 둥그레 문고 내 Pop 게시판 제작 - 둥그레 문고 방문 이용자 대상 전단지 배포 -마을 내 다른 아파트 게 시판에도 홍보활동을 했 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음 -둥그레문고이용자들에 게 배포한 전단지 효과 좋았음 10월 8일 ~12월28일 (매주 월~금) * 시간 16시~17시 * 장소 둥그레문고 * 각 수업별 유아 10~15명 회원 6명 - 아이들 현황 상의 - 알토란배움터 수업 현황 공개 및 계획안 발표 - 식단 제시 및 분담 - 스케줄 조정 - 수정안 및 비전 제시 -아빠회원들 참석시간 엄수 -회의록 참조 알토란 부모회의 10월~12월 (매주목요일) * 시간 20시~21시 * 장소 삼성래미안 2차 224동 1702호 저녁 프로그램 〈부엉부엉〉 10월~12월 매일 저녁 * 시간 오후6시30분 ~ 7시 30분 회원 6명 유아 4명 월 : 몰펀 화 : 자유놀이 수 : 게임 목 : 자유놀이 금 : 영어책읽기 - 자유놀이시 아이들 다 투지 않도록 유도 - 놀이 및 프로그램 끝나고 스스로 정리 습관 길러주기 * 시간 : 11월 14일 오후 3시 * 장소 : 둥그레문고 현장탐방단 - 15명 발표자 - 권기정 - 서울시 마을공동체 분야 인센티브 평가 중 자치구 우수사례 현장탐방 참여 - ppt 자료 제작 및 발표 - 알토란 배움터 수업 참관 - 탐방단 및 구청, 동사 무소와 연계하여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 배움터를 돌아보 았음 - ppt자료를 통해 정리할 수 있는 기회라 좋았음 공동육아 알토란 배움터 홍보 알토란 배움터 운영 서울시 마을공동체 분 야 인센티브 평가 참여 178 * 요일별 강사 1명 도우미 2명 월 화 수 〈독서〉 〈미술〉 〈국악〉 책 꼬마 놀이터 피카소 목 금 〈전래 놀이〉 〈요리〉 -학부모들의 관심도가 매우 높았음 -참여한 유아들의 피드 백 철저히 기록할 것 신바람 하늘땅 유기농 사물 전래 쿠킹 놀이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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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사업명 일시·장소 〈굿바이파티 마니또파티〉 * 시간 : 12월29일 오후 1시 * 장소 : 둥그레문고 평가의견 참가 : 어린이-40명 성인 - 34명 - 굿바이파티 : 주민 벼룩시장 (물물교환이나 저렴한 가격으로 안쓰는 물건 들을 사고 팔수 있는 기회) - 마니또파티 : 마니또 선물교환 (게임 진행 및 선물교환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냄 ) - 마을주민들과 서로 교 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이라 즐거웠음 - 연말을 맞아 다같이 모 여 다과도 먹으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 * 시간 : 12월 17일 오후3시 30 분 * 장소 : 둥그레문고 어린이 : 약 65명 성인: 약 25명 자원봉사자 : 6명 극단 : 13명 -장평초등학교 어머니극단 : 재능기부 무료공연 -공연제목 〈무지개물고기〉 -공연 후 활동 : ‘무지개물고기’ 만들기 -극단 및 참여 어린이 간식제공 - 참가대상을 주민 모두 로 하여 참가율 높았음 - 재능기부로 인한 연극 공연으로 지역주민들의 문화생활에 기여 * 시간 : 12월 22일 오전 11시 * 장소 : 둥그레문고 참가: 10가족 (26명) - 강사 : 윤혜경 선생님 (재능기부) - 카프라 원목 블록 대여 - 주말을 활용한 수업이 라 아빠와 함께 참여할 수도 있어 더욱 의미 있었음 - 토요수업을 했으면 좋 겠다는 의견이 많았음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토요 수업 〈매직 카프라〉 활동내용 서울시 동대문구 연극 공연 〈무지개 물고기〉 참여인원· 물량 자생력을 키워요 2012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우리마을 프로젝트는 마쳤고 서울시지원금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2013년 1월에 저는 육아휴직이 끝나 복직을 하게 되 었습니다. 알토란은 큰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된 셈이죠.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루 종 일 붙어 있던 대표는 회사로 출근하게 되었고 서울시의 지원 역시 없어졌으니 말입 니다. 알토란을 확실하게 밀어주던 두 가지가 사라진다는 불안감과 걱정이 솔솔 밀 려드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일이 아니었으므로 대비책을 강 구했습니다. 첫 번째,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알토란의 대표이자 모든 잡다한 일, 약간은 귀찮 은 일들을 맡고 있던 저는 프로그램 기획과 사업계획서 작성을 주로 맡기로 했어요. 알토란의 전반적인 일들을 책임지는 사람이며 함께 나아갈 방향을 주도하는 키를 잡기로 한 겁니다. 부대표인 현우엄마는 알토란의 외부 활동 참여를 담당하기로 하 였고 회계와 기록 부분의 역할 역시 나누었어요. 구립햇살어린이집 이인서 원장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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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께서 알토란의 감사를맡아 주기로 하셔서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로 했습 니다. 유아 보육 및 교육전문가의 입장에서 재능기부 해주시기로 하여 여러 가지로 도움을 청하기로 했어요. 두 번째, 금전적인 독립을 추진했습니다. 우리 알토란은 지원금 외에 작년부터 꾸준히 회비를 모았어요. 자생력을 갖추려면 비용의 자부담은 필수여야 하기에 다 들 합의했습니다. 공동육아를 하면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금액은 바로 인건비였어요. 아이들을 돌보고 밥을 하고 엄마표 수업을 하는 ‘사람’이 가장 필요하답니다. 다행 히도 알토란은 엄마들의 재능기부로 수업을 하고 당번제로 돌봄을 하기에 인건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아이들을 전담할 돌봄 선생님이 필요하고 수업운영에 대한 교통비 차원의 강사료라도 지급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 다. 우리는 몇 달만 하고 끝나는 모임이 되긴 싫었거든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언젠 가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가지고 하나씩 실천해 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우리마을 프로젝트 유형2를 하면서 퍼실리테이터에게 지급 된 비용을 전액 내놓았어요. 알토란의 자립을 위해 유용하게 쓰이리라 의심치 않았 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의 지원은 정말 좋은 계기였어요. 우리마을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자 뭔가 인정받은 것 같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임에 추진력을 더해주어 견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거죠. 하지만 지원은 지원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늘 이야기해 왔습니다. 우리 알토란이 지속되려면 결국 주체는 스스로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말해왔던 것이었어요. 이렇게 2013년 을 준비해 왔기에 여러 변화에도 알토란의 새해는 문제없이 밝을 수 있었답니다. 알토란 배움터는 2013년에도 계속해서 수업을 해 왔어요. 엄마표 수업에 대한 반 응이 좋아 여전히 대기자가 끊이지 않을 만큼 인기랍니다. 재능기부 선생님이 늘어 수업 내용은 계속 업데이트 되고 초등학생들의 수업까지 신설하게 되었어요. 가장 먼저 사물놀이 수업이 초등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더 늦게 시작했 지만 유아들보다 훨씬 진도가 빨라 제법 근사한 소리를 내고 있어요. 북과 꽹과리, 징까지 모두 갖추어 멋진 공연을 할 날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다음으로 수업에 참여하던 서연이 엄마가 과학 실험 선생님이 되어 주셨어요. 생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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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 속에서 쉽게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풀어 내 주고 직접 실 서울시 동대문구 험해 본답니다. 실험을 진행할 때마다 “우와~” 탄성 소리가 연발하는 흥미 만점 시 간이에요. ● 인터뷰 | 알토란 참여 어머니(이명선, 서연 엄마) 반짝 반짝한 아이들 눈을 보면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언제나 똑 소리 나는 과학 선생님, 엄마에서 알토란배움터 품앗이 수업 선생 님이 되기까지 이야기해주세요. 권: 선생님, 처음 과학 실험 수업 부탁드렸을 때 어떤 마음으로 승낙해주셨는 지 궁금해요. 이: 사실 제가 과학을 전공하고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쳐 왔는 데, 이렇게 어린 아이들은 처음 가르쳐 봐요. (이명선 선생님은 10년 넘게 대 치동 등 유수의 입시학원에서 과학을 강의하시고 계십니다. ) 우리 딸 서연이 가 아니었으면 엄두도 내기 힘들죠. 그런데 알토란에서 같이 수업하는 걸 좋 아하는 거 보고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 물론 저의 막무가내성 강력한 부탁이 크게 작용했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 다. (웃음) 수업명인 브라이트 사이언스도 제가 지은 거 알고 계시죠? 이: 제 이름에 밝을 명(明)자가 들어가고 우리 아이들이 총명하게 컸으면 해서 지었다고 하셨죠. 수업 이름 뭐할까 몇 가지 후보 주셨잖아요? 중의적인 뜻이 들어가선지 저도 이게 가장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거에요. 권: 유아들에게 과학실험 수업을 하면 어떤 장점들이 있을까요? 이: 우선 재미있고 호기심을 채워주는 걸 꼽고 싶어요. 5~6세 아이들 집중력 짧은 거 아시죠? 근데 제 수업에는 집중력이 엄청나게 높아요. 시간 내내 눈 이 반짝반짝해서, 실험 결과 볼 때쯤에는 눈이 이만큼씩 커져 있어요. 그게 얼 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그리고 과학적인 사고의 기초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학교 다닐 때 과학 좋아하는 학생 많지 않잖 아요. 특히 우리 같은 여학생들은 더욱 흔하지 않았는데, 어릴 때부터 과학이 얼마나 생활 가까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고 흥미를 가질 수 있다면 나중에도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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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겁게 공부할 수있거든요. 권: 수업 진행하면서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이: 그냥 친구 엄마, 아는 아줌마였다가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낯설게 생각하 지 않을까 고민했었어요. 전 수업시간엔 좀 엄한 편이라 무섭다고 하거나 날 미워하면 어쩌지 할 때도 있었거든요. 다행히 아이들이라 적응이 빨라 안심입 니다. 권: 일 하시면서 따로 시간 내어 재능기부를 해 주신다는 게 쉬운 게 아닌데요. 이: 거창하게 재능기부라고 하니까 쑥스러운데요. 우리 딸이랑 친구들이랑 함 께 놀아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같이 노는 게 더 재미있잖아요. 권: 앞으로 우리 알토란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생각하신 점 있나요? 이: 지금처럼 아이들을 위해 좋은 프로그램 많이 생겼으면 하죠. 서연이는 혼 자라 형제나 언니, 동생처럼 같이 커 나갈 수 있어 정말 좋거든요. 또 저처럼 일하는 엄마의 힘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텃밭 가자 2013년 야심차게 내놓은 알토란의 자연 체험장이자 놀이터는 바로 텃밭입니다. 땅 을 밟을 수 있고 흙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서울살이 가운데 밭을 구한다 는 것이 쉽지 않아 실천하기 어려운 과제였어요. 그런데 마침 동대문구청에서 중랑 천 뚝방에 텃밭 사업을 시작하게 되어 3월에 텃밭을 신청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장 쉽고 수확이 빠른 쌈 채소로 시작하기로 하고 모종을 심었어요. 다들 텃밭이 처음이고 아이들과 함께 심는 거라 “이게 제대로 심는 건가?” 반신반 의 하며 호미며, 모종삽을 들었답니다. 상추, 치커리, 청경채, 겨자채 등 우리가 좋 아하는 쌈 채소 모종을 줄줄이 심었어요. 다섯 살, 여섯 살 고사리 손으로 심은 거 라 잘 클지 미심쩍었지만 그래도 줄 맞춰 심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물을 흠 뻑 주고 돌아서며 “또 올게”를 연발하는 아이들, 우리는 쌈 채소가 자라면 같이 나 눠 먹기로 약속하고 텃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안되었는데, 거짓말 조 금 보태면 텃밭이 아니라 정글로 착각할 정도로 채소들이 잘 자랐어요. 비료도 한번 안 주고 농약은 당연히 쓰지 않았는데 얼마나 탐스럽게 자라는지 초보자들이 재배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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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것 치곤과분한 성공이라고나 할까요. 쌈밥을 해먹고 샤브샤브도 해먹고 알토란 서울시 동대문구 식구 모두 나눠 먹을 만큼 충분한 양이었습니다. 이렇게 텃밭이 잘 가꿔진 이유는 다름 아닌 할머니들의 노고 덕분이에요. 해준이 할머니, 예서 할머니, 성우 할머니 등 많은 할머님들이 수시로 물을 주고 살 펴봐 주신 덕분에 텃밭 채소를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터라 무언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가 심어본 적이 없었어요. 우리 아이들 역 시 흙을 밟고 무언가를 재배할 수 있는 기 회가 없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물을 주러 갔다가 아이들이랑 고랑 옆에 앉아 흙장난을 하거나 도시락을 싸들고 가서 함께 소 풍 온 기분을 느껴보기도 하면서 ‘아, 이래서 텃밭을 마련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 었죠. 자연스럽게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스스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시 간입니다. 편식하던 아이들, 야채만 쏙쏙 빼먹던 아이들도 우리가 키운 거니까 먹 어보라는 권유는 거절하기 어려웠죠. 지금 우리 텃밭엔 무와 배추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무씨와 배추 모종을 심으며 올 해 김장은 이걸로 담자고 하면서 같이 웃었죠. 농사라고는 모르는 엄마들과 고사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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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 아이들 손으로심으면서 이게 정말 잘 큰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이 아닐까 생각했 답니다. 어제 보니 다행히도 배추가 쑥쑥 크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이렇게 또 하나 의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대안은 공동육아 2013년 3월경에 《조선일보》에서 취재를 위해 한 기자분이 왔었어요. 인터뷰 하는 내내 열 명 남짓의 아이가 제 주변에서 놀고 있었답니다. “아이들이 꽤 많은데 권기정 대표님 첫째 아이는 누구인가요?” 자연스럽게 놀고 있는 아이들 가운데 첫 아이의 뒤통수를 찾고 있는데, 일곱 살 현우가 말하는 겁니다. “저요. 제가 첫째에요.” 맞습니다. 현우는 알토란 아이들 가운데 가장 형님이거든요. “맞아요. 우리 현우가 첫째 아이에요.” 우리 딸은 어느새 제 옆으로 와서 “저는 둘째에요”라고 이어 말하는 겁니다. 거기 에 셋째, 넷째하면서 아이들이 줄을 좍 서자 질문한 기자님이 좀 당황하시는 거 같 더라고요. 저는 그만 웃음이 터져 웃고 말았답니다. 아이들도 와르르 저를 따라 웃 어대고요. 웃는 얼굴들을 보자 그만 주책없이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다투기도 많 이 하고 서로 내 것 네 것 하면서 엄마 속을 태우던 녀석들이 이런 면이 있었네 싶어 서요. 무엇보다 스스럼없이 안기며 “제가 우리 집 첫째에요”라고 하는 현우의 말이 어찌나 고맙고 기특하던지. 제가 기억하는 가장 감동적인 순간 가운데 하나에요. 알토란은 2013년 8월 서울시의 공동육아 활성화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습니 다. 현재 서울시에서는 25개의 공동육아 모임 및 단체를 지원하고 있어요. 우리는 2012년 우리마을 프로젝트 유형2에 이어 좀 더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서울시와 협약을 체결한 겁니다. 알토란은 적지 않은 갈등과 힘든 일들을 겪어 왔고 지금도 헤쳐 나가며 운영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아직 여기 있는 이유는 공동육아에 대 한 신념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을에서 안심하고 아 이를 키울 수 있고 인성이 올바른 배려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모두의 마음에 점점 깊어가기 때문이겠죠.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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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동대문구 2013년 9월04일 / 알토란 관찰일지 식물은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고 한다. 얼마나 돌봐주고 공을 들이냐에 따라 성장이 좌지우지 된다는 점에서 아이가 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이가 크는 것을 봐주고 옆에서 지켜주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지만 맞벌이 엄마라거나 형제자매가 있다거나 사정은 달라도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모든 시간을 아이에게만 할애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품앗이 수업을 하면 엄 마가 매일 옆에 없어도 안심하고 친구들과 수업 잘 듣고 오후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공동돌봄을 하면 엄마가 아이 모두 행복한 육아를 실천 하기. 매일 물을 주고 흙을 돋아주고 잘 크고 있나 봐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알 토란들은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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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마치며 “어디 사세요?!” “아….저기…. 장안동이요.” 처음 만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의 하나, 어디 사냐는 질문에 잠깐 대 답을 망설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장안동. 이렇게 대답하면 야릇한 웃음을 보이거나 ‘그 동네~’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곤 하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대학교에 다 닐 땐 다른 데로 이사 가자고 부모님께 수차례 조를 정도였어요. 장안동 하면 유흥 업소가 떠올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술집으로 유명한 동네에 산다는 게 싫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주택가에 주로 살았던 어린 시절의 저는 유 해환경에 노출되었던 경우가 많이 없었어요. 우리 동네가 뭔가 다르다는 것도 대학 교에 가서야 알 게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서울 각 곳에서 모인 친구들, 사회인이 되 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야 “우리 동네가 그랬어?” 했다니까요. 동대문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된 저는 결혼한 이후에도 우리 동네, 장안동에 살고 있습니다. 남들 시선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가장 익숙하고 무엇보다 친구, 친척들, 오래된 이웃들이 있는 곳이니까요. 다행히도 옛날에 유명했다던 ‘그 유흥가’가 많이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편견은 달라 지지 않은 거 같습니다. 아직도 장안동이라는 동네 이름을 말할 때마다 “어떻게 그 런 곳에 살아?” 하는 느낌의 질문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결심했답니다. ‘내가 조금 바꿔보자’ 하고요. 우리 아이가 나중에 장안동에 산다고 말하고 다닐 때쯤엔 “와~ 그 동네? 좋은 동네에 사네” 하는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도, 창피해서 다른 동네로 이사 가고 싶다던 학생도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엄마니까 요. 스스로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어른이니 말입니다. 내 아이에게는 가장 좋은 것만 주고 싶다던 어떤 광고 문 구처럼 내 아이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갖춰주고 싶은 엄마 심정으 로 알토란을 꾸려가고 있어요. 아이들이 자라기 좋은 마을이 결국 좋은 동네, 사람 들이 이사 오고 싶어 하는 동네라는 것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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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저는 그리좋은 엄마가 아니에요. 살림과 육아에 서툴고 엄마가 회사에 가 서울시 동대문구 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을 두고 회사에 가는 ‘나쁜’ 엄마랍니다. 저의 모자라 고 아쉬운 부분을 채워 주고 또 제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으로 누군가를 도와주면서 함께 아이를 키워가는 게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에요. 모자란 엄마에게 와 준 완벽한 아가들, 정말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 고 알토란을 꾸려가면서 알게 된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저의 오지랖으 로 벌여내는 많은 일들 다 감당해주고 안아주는 알토란 식구들 항상 미안하고 고맙 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습니다. 인생은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에 새삼 고개를 끄 덕이게 됩니다. 제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우리 알토란 식구들을 보면 알 수 있거든 요. 우리들의 발자국을 조금이나마 남기고 싶어 이렇게 서툰 글로 기록했습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모두에게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는데, 살짝 걱정되는 부분도 있지 만 너그러이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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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공 육, 동 아 마을속 로퐁 ~ 으 당 서울시 은평구 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 글쓴이 | 김영미 은평구에서 태어났고, 은평구에서 자랐다. 은평구에서 자란 남편을 만나 역시 은평이 고향인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첫째 아이 강인은 여섯 살에 등원하여 소리나는 어린이집을 졸업, 현재 초 등학생이며 둘째 강솔과 막내 강준은 현재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아이 셋을 보내면 서 10년 가까이 조합 생활을 하는 셈. 은평두레생협, 《은평시민신문》 등 다양한 은평구 시민사 회단체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은평두레생협 이사장이다. 내 고향 은평이 사람들이 언제든 들 어와 살기 ‘만만한 곳’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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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소개 소리나는 어린이집 은평구에공동육아협동조합으로 1996년 개원하였다. 2013년 현재까지 졸업한 선배조합원만 200가구에 이른다. 공동육아를 졸업한 이들은 다양한 형태로 지역 시민 사회 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필자는 여러 부모가 여러 아이를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가 지난 17년간 은평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역사회와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기술하려 노력했다. 조금은 생소하고 낯선 공동육아가 이 글을 통해서 좀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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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서울시 은평구 1. 우리들의며느리 선배조합원과의 축구대회 갈현동 반지하 셜명회에 모인 20가구 공동육아, 대안의 삶을 꿈꾸다 부모가 참여한 만큼 삶의 질 높아져 소리나는 어린이집 2. 사람이 안보여 공동육아의 지역 연대 활동 사례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 연대 활동 출자금의 높은 벽, 맞벌이 부모의 한계 3. 소리나는이 확 달라졌어요 2011년, 지역 연대의 기지개를 펴다 와글와글골목상상, 벽화도 그려요~ 4. 뜨거운 참여 열기, 공동육아? 살아있네~ 어린이 놀이터와 부모 강의가 함께! 은지야 마실가자~ 한 걸음 더 내딛은 ‘소리나는’ 생태 프로그램으로 정착한 은지야 마실가자 2 5. 공동육아는 왜 지역사회와 소통하는가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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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들의 며느리 선배조합원과의축구대회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2013년 4월의 어느 일요일,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 는 어린이집 마루에서는 북적북적 시끌벅적 잔치가 벌어졌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을 졸업한 아이들과 부모들이 오랜만에 터전(공동육아는 어린이집을 터전이라 부른 다)에 와서 현재 아이를 보내고 있는 부모들과 축구 시합을 벌이고 왁자지껄 뒤풀이 중이다. 자기 소개 시간이 이어진다. 올해 대학에 갓 입학한 한 졸업생은 입학 두 달 만에 여자 친구와 함께 왔다. 아버지 친구들의 소개가 재미있다. “다음은 누구? 자~ 우리들의 며느리~!!” “우와~! 박수~” “이 분들이 아이를 낳고 또 아이를 낳으면 소리나는에 보내는 겁니다잉~” 쑥스럽게 인사하는 이는 1996년 개원하여 올해로 17년을 맞이한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졸 업생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과 꿈이크는 방과후 교실을 거쳐 고 등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대학 신 입생이 되었다. 소리나는 어린이 집의 첫 졸업생이 여자 친구와 함 께 현재 소리나는 어린이집 행사 에 놀러온 것. 다들 재미있다는 ▲ 1996년에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 만들었던 부모와 아이들, 2013년에 이 곳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부모가 만나 축구를 하고 술 한잔 기울이고 있다. 192 표정이다. 지금 아이를 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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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내고 있는 부모들은우리 아이도 저렇게 커서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오겠구나. 상상 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보인다. 조합원들이 기증한 경품 추첨이 이어 지고 두런두런 말소리, 서로 주고받는 막걸리, 재잘재잘 떠들며 웃는 아이들의 목 서울시 은평구 소리로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었다. 갈현동 반지하 설명회에 모인 20가구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다. ‘공동육아’란 원장이 공간을 마련하 여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방식이 아닌, 부모들이 출자금을 내고 공간을 임대하여 교 소리나는 어린이집 사를 고용하고 함께 운영하는 협동조합 방식의 어린이집이다. 현재 전국에 65개 조 합이 운영되고 있으며 은평구에는 소리나는 어린이집 한 곳이 있다. 은평구 갈현동 494-12번지, 소리나는 어린이집. 이곳이 우리의 터전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1996년 서울 신촌 우리어린이집에 대기했던 은평구 부모 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당시 신촌 우리어린이집에 대기를 했던 은평구 부모들 은 적어도 1~2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은평 구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드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우리 어린이집’ 대기자 중에 은평구에 사는 가구는 4가구, 이 4가구는 95년 크리스마스 직후부터 96년 2월 까지 2주에 한 번씩 신촌 우리어린이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은평 구에 96년 하반기까지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설립하는데 의견을 모으고 자료 준비, 설립 과정에 대한 일정 수립, 주변에 알리기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했다. 당시 처음 시작한 네가구 중 세가구는 준비 과정의 번거로움과 두려움으로 참여를 포기 했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일렀다. 모 대학 민주동문회 회보에 은평공동육아협동 조합 설립 광고를 싣고 몇 개 대학 민주동문회보에 조합원 모집 광고가 실리면서 다 시금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당시 성균관대 민주동문회 간사를 맡고 있었던 조수영 씨는 “우리 어린이집을 취재하면서 은평구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민주동문회 회보에 조합원 모집 광고를 싣자 문의 전화가 오기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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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했다”고 회상한다. 이러한 과정끝에 8가구가 모여 1996년 2월에 공식적으로 ‘은평 지역 공동육아 협동조합 설립 준비위’를 발족시킬 수 있었다. 조수영씨는 부천에 살다가 은평으로 이사까지 하여 준비위에 참여했으며 임신중이던 소현 엄마는 교육 간사로 출발하여 어린이집 운영규정을 비롯, 출자금/가입비/보육료 문제, 조합원 규모 결정, 교사 구 인, 설립 일정들은 협의해 나갔다. 당시 활동했던 가구로는 서영이네, 다연이네, 보 경이네, 동백이네 등이 있었다. 가까스로 12~13가구가 모였지만 공간이 정해지지 않아 공동육아 어린이집 설립 은 지지부진해있었다. 관심을 보인 가구에게 실체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 기 때문이었다. 추진력을 발휘할 때였다. 당시 준비위는 20가구 이상 모이면 터전 (공동육아에서는 어린이집을 터전이라고 부른다)을 계약하기로 했던 것을 수정하 여 과감하게 모험을 감행했다. 모험이란 잔금을 치루지 못할 경우 1천만 원에 달하 는 계약금을 날릴 수 있음을 감수하고(96년의 1천만 원은 지금의 가치보다 훨씬 크 다.)일단 터전부터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임신 중인 몸으로 열흘 이상 100군데 가까이 알아보던 소현 엄마의 노력에 힘입 어 현재의 터전을 찾아냈고 96년 4월, 최대한 잔금 날짜를 미뤄 8월에 내기로 하고 덜컥 계약하고 말았다. 과감한 결단이었다. 준비위는 터전 계약과 동시에 바로 갈 현동/구산동/대조동/역촌동에 배포되는 《한겨레》 신문에 간지 광고를 내고 조합원 모집에 박차를 가했다. 놀랍게도 갑자기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조수영씨 반지 하 집에서 열렸던 당시 설명회는 20가구 넘게 참석하여 참석자 일부는 서있어야 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인터넷도 없고 오로지 간지 광고를 보고 모인 당시 예비 조 합원들의 열성은 현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자택에서 설명회를 열었던 조수영씨는 “처음에 5~6가구가 터전을 계약하고 최대한 입주 날짜를 길게 잡았다. 덜컥 계약을 했지만 조합원을 모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 겨레》 신문 광고를 내고 성균관대 민주동문회 사무실로 손가락이 마비될 정도로 많 은 문의전화를 받았다. 감격스러웠다”고 회상한다. 서용이네, 찬이네, 영진이네, 영 호네, 정훈이네, 강산이네, 민중이네, 명진이네, 연식이네, 진우네, 다은이네, 한 슬이네, 한솔이네, 훈규네, 정원이네, 지환이네, 수혁이네 등이 이때 처음 참여했 다.(필자는 2010년에 처음 공동육아를 시작했기에 여기에 언급된 선배조합원을 알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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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못한다. 그러나이 글이 흘러 흘러 선배조합원들이 보았을 때 혹시라도 느낄 반 가움을 위해 한 분 한 분 적어본다.) 설명회에는 현재 은평구에서 활발하게 마을 활 동을 하고 있는 고병헌 교수님 가족도 있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맞벌이 부부를 서울시 은평구 위한 종일반 운영은 아직 계획 중이어서 당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준비위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조합원 모집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13가구이던 조합원 숫자를 20가구로 부풀리기도 했고 개원 시점을 9월이 아닌 7월 이라고 속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민의 시간은 잠시, 출자금과 가입비가 통장으로 속속 입금되고 바로 개원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준비위의 다소 불법적인(?)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조합원으로 가입했던 수혁이네는 소리나는 어린이집 자리를 꼭 확보해 달라고 수박 한 덩어리를 뇌물로 가져오기도 했다. 당시 설명회에 왔던 가구들이 대부분 초기 조합원 30여 가구를 구성했다. 준비위는 8월초 준비된 출자금 7천여만 원과 조합원들이 융통한 3천여만 원으로 잔금을 치르고 터전 열쇠 를 받았다. 열쇠를 받고 일부 조합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잘 관리가 되지 않 고 있던 당시의 터전을 보며 유행어이던 ‘귀곡산장’을 떠올리기도 했다. 사람이 살 지 않고 있어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기 때문이다. 선배조합원 최순옥씨(현 열린사 회은평시민회 대표)는 “사람이 몇 달 동안 살고 있지 않아 잡풀이 무성했다. 현관 입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쓰레기도 많아 거의 폐가처럼 보였다”고 기억한다.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모였던 조합원들은 마당 풀숲 사이에 앉아 첫 막걸리를 마 시며 터전의 역할이 아이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역사 적인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때부터 주말마다 터전 시설 작업이 시작되었다. 마당 한 가운데 있었던 화단을 분해하고 연못을 메우고 중간 중간 심어져 있던 나무 를 뽑았다. 나무를 뽑아내는 데에만 성인 남자 두 사람이 2~3시간이 꼬박 걸렸다. 민중이 아빠는 이 작업으로 허리가 다치기도 했다. 영진이 엄마를 중심으로 한 페인 트칠, 잔디 걷어내기 등 조합원들의 헌신적인 봉사로 터전은 점점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이어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첫 원장인 깔끔이(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교사와 아이, 부모 모두 별명을 부른다)가 출근하기 시작했고 방글이, 캔디, 꿀단지 가 교사로 채용되었다. 교사와 조합원이 처음 만나 회의하던 날 3만 원의 경품을 걸 고 터전의 이름이 공모에 붙여졌고 원장 깔끔이가 제안한 ‘소리나는 어린이집’이 압 도적인 지지로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의 이름이 되었다. 이즈음 조합원의 참여 속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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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가 좀 느려지기도했는데 원장이 채용되면서 벽지/온돌/장판 등 내부 공사와 그 네/자갈/모래/쓰레기 치우기(트럭 5대분) 등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때 쓰인 비용 이 애초 계획보다 많이 쓰여져 이후 조합에 상당한 부담이 되기도 했다. 전국 65개 조합 중 6번째 조합 드디어 1996년 9월 1일, 은평 지역 공동육아 협동조합은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29가구 34명의 아이들이 참여했다. 공식적으로 출범을 알리고 정관과 운영/인사/ 급여 규정을 총회에서 의결했다. 9월 1일부터 교사들이 오리엔테이션/실내 가꾸기 가 시작되었고 이 일주일간 아이들은 다은이네(최순옥 현 열린사회은평시민회 대 표)서 지냈다. 당시 학원에서 아이들 글쓰기를 가르쳤던 최순옥 열린사회은평시민 ◀ 소리나는 어린이집 개원잔치. 여러 부모와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고사상을 바라보고 있다. ◀ 1996년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 개원잔치. 동네 사람들에게 터전 개원을 알리려 나오고 있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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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 대표(이하 대표)는학원 일정을 조정하여 아이들을 돌보았으며 교사들이 최순옥 대표의 집에서 등원 전까지 아이들을 돌보았다. 마침내 9월 8일부터 아이들은 정식으로 등원했고 조합원들은 이사장의 도포 자 서울시 은평구 락이 인상 깊게 남은 고사로 개원잔치를 진행했다. 장장 9개월간의 은평공동육아협 동조합의 설립 준비 과정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전국 65개 조합 중 여섯 번째로 개원했으며 가장 단시간 준 비해 개원한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기록에 남았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역 사회에 대안적 교육 방식을 제시하고 지역과 함께 하는 지역 공동 체의 일원으로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소리나는 어린이집 사람들 1 터전지킴이? 조합원들의 관심과 사랑이 진하게 배였던 그 시절 현재 신나는 애프터에서 사서로 근무하고 있는 조수영씨는 소리나는 어린이 집 첫 조합원이다. 큰 아들인 설재민군(20세)이 세 살부터 일곱 살까지 소리 나는 어린이집을 다녔고 둘째 아들은 일곱 살에 등원하여 일 년 동안 다녔다. 조수영씨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바로 소리나는 어린이집에서 1년 넘게 터전지킴이로 지내왔던 기억이다. 당시 터전은 저녁에 집이 비어있어 도둑이 들까봐 염려스러워 ‘터전지킴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부천에서 살다가 은평구에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위해 터전 근처 반 지하 빌라로 이사 온 조수영씨는 작은 전세금으로 마당 넓은 단독주택에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사생활 보장 문제는 확 접어두고 터전에서 살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하루 종일 터전에 있는데 밤에도 터전에 있는 것이 못내 걱정되었지만 하원 후 한 시간 정도 동네 나들이를 하면서 즐거움을 만들었고 정해진 보육 시간보다 늦게 하 원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에게는 든든하게 비빌 언덕이 되기도 했다. 조합원 모임이 끝나고 정리하면서 쉽지 않은 세월이었지만 힘들고 부담스러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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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웠던 기억보다는 즐겁고행복했던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냉장고에 누 가 갖다놓았는지도 모를 음식을 발견하기도 하고를 여러 번, 늘 많은 사람들 과 저녁식사를 하고 임신하면서 입덧에 살림까지 걱정해주었던 조합원들… 단순하게 아이를 맡기고 데려가는 터전이 아니라 조합원 모두가 함께 지켰던 터전이었다. 여러 조합원들의 따뜻했던 마음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조 수영씨.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터전지킴이 생활을 마무리했다는 조수영씨 는 이 특별한 경험이 아직도 가슴에 진하게 남아있다. 공동육아, 대안의 삶을 꿈꾸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체험을 교육의 근본으로 삼는 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어른들이 정해놓은 무언가를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니라 집 처럼 안정적이고 편안한 공간이다. 따라서 교사 1인당 아이 수가 일반 어린이집의 2분의 1 정도로 현저히 적다. 친구, 형, 동생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형제 관계에서 얻는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아이 수가 30명 내외로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 이다. 하루 일과 흐름은 일반 어린이집과 비슷한 듯 하지만 매우 다르다. 가장 큰 특 징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에 걸쳐 ‘나들이’를 한다. 아이들은 두 시 간이라는 충분한 시간 동안 자연이라는 광활한 공간 안에서 발산하고 체험한다. ‘나 들이’라는 자연 체험은 실내 공간과 인간 관계에서 얻을 수 없는 엄청난 교육적 경 험을 하게 한다. 짜여진 프로그램 중심이 아니라 질서나 예절, 정리 습관은 일반 어 린이집에 부족할 수 있지만 나들이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글쓰기, 숫자외우 기 등 짜인 틀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매일 매일 나들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자연과 사물, 사회생활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하 는 것이다 나들이는 날씨가 아주 춥거나 덥지 않는 한, 비가 아주 많이 오지 않는 날이면 모 든 아이들이 바깥으로 나간다. 일상적인 나들이와 특별한 나들이로 이루어진다. 터 전 인근의 앵봉산, 수국사 뒤편 봉산, 서오릉 텃밭 나들이를 가고 은평구의 주요산 이말산, 비단산, 백련산 등지를 다닌다. 대조동 꿈나무 도서관, 은평 구립 도서관, 증산 정보 도서관, 초록길 도서관 등 은평구의 갖가지 작은 도서관도 아이들의 주요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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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들이 장소이다. 역촌중앙 시장, 대조 시장, 불광 시장 등 재래 시장도 가끔 간다. 매주 금요일이면 점심을 먹고 오는 먼 나들이를 간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월드컵 공원, 일산 호수 공원,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과천과학관, 광화문 경찰박물관 등에 서울시 은평구 가기도 한다. 터전 살이라 하여 만 3세 이상의 아이들이 터전에서 1박 2일을 지내는 나들이가 있고 초여름과 초가을에 교사와 아이들만으로 구성하여 1박 2일 들살이를 가기도 한다. 졸업하는 만 5세 아이들은 졸업하기 전 2월에 방교사와 1박 2일 졸업 여행을 간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 공동육아 아이들은 주로 일상을 나들이로 보낸다. 터전 주변의 모든 곳이 아이들의 나들이 장소이다. 어른에게 반말하는 아이들 공동육아는 다양한 활동과 함께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별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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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을 부르고 반말을한다. 아이들에게 존대말을 쓰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공동육아 아이들은 종종 버릇없는 아이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아이들은 왜 어른에게 반말을 할까? 별명 부르기와 반말 사용은 어른과 아이 간의 자유롭게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의도로 시작되어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고유한 말 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교사인 2013년 현재 너구리, 무지개, 하 니, 웬디, 해님, 솔방울이 있다. 처음 등원하는 아이들은 사람에게 동물 이름을 부 르거나 사물 이름을 붙이는 것에 대해 매우 신기해 하고 의아해하지만 금방 익숙해 지고 재미있어 한다. 아이가 교사에게 반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꺼려하는 사람이 많지만 반말을 쓰게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어른 과의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반말이 주는 관계의 평 등성은 아이와 교사간의 진지한 대화의 가능성, 아이가 자기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 현할 수 있는 가능성, 교사와 아이 상호간의 자유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교사와 아이가 공동 영역을 구성할 수 있는 관계적 토대를 마련해준다. 이러 한 관계 교육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3세방 아이가 7세방에 가서 놀기도 하 고 6세 아이가 4세방에 가서 스스럼없이 논다. 이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나거나 갈 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특징을 알게 되고 중재하는 방법도 배운다. 특히 형제가 없는 아이들은 터전에서 형 제를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부모와 교사는 날적이를 통해 소통한다. 날적이는 아이의 생활에 대한 단순한 기 록이 아닌 아이를 사이에 두고 부모와 교사가 대화를 나누며 매일 기록하는 아이의 성장일기 역할을 하는 기록물의 성격을 가진다. 공동육아에 있어 날적이는 현재 삶 에 대한 기록이며 지나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친환경 식재료에 비닐까지 친환경 생협에서 공급하는 안전한 먹거리도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특징이다. 요사이 친환 경 식재료를 사용한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일반 어린이집이 늘고 있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먹는 음식을 100퍼센트 유기농으로 먹이는 어린이집은 매우 드물다. 친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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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 농산물을 사용하더라도전체 먹거리 중 몇 퍼센트나 사용하는지 알아봐야 한 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을 비롯한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유기농 식재료를 100퍼센트 사용하고 인공 조미료나 인스턴트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간혹 먹는 가공식품에 서울시 은평구 도 식품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생협 제품을 이용한다. 우리 땅에서 건강하게 자란 재료로 직접 정성들여 만든 우리 음식을 먹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휴지나, 비닐, 비누, 치약까지 생협 제품을 이용하는 곳이 공동육아이다. 사탕, 초콜릿, 탄산음료, 빙과류 등은 먹이지 않는다. 김치는 아이들, 부모들과 함께 담그고 고추장, 된장도 교사들, 부모들과 담근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은 이런 재료들을 가지고 정성껏 만 들어 영양이 풍부하고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음식을 식단에 반영한다. 농약을 치지 소리나는 어린이집 않고 성장호르몬이나 식품첨가물이 들어가지 음식을 먹이고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 록 하는 것이다. 일반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들 생일잔치를 한다. 그런데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생 일상은 좀 다르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하다. 일단 최대한 자기 생일날을 맞춘다. 주 말이나 쉬는 날이 아니라면 자기가 태어난 그날, 생일 축하를 받도록 한다. 영양 교 사는 터전에서 직접 찐 떡이나 피자빵, 과일 등으로 생일상을 차리고 아이들은 그 아이 생일 즈음하여 각자 카드를 그리거나 쓴다. 교사가 사회를 보면서 생일 축하 노래, 아이가 듣고 싶어 하는 노래, 아이의 성장 과정이 담긴 그림판(부모가 만든 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 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보낸 시간 중 가장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연말이면 아이들이 부모들과 함 께 모여 장기자랑을 한다. 회관을 빌리거나 넓은 공간에 한껏 차려입 은 아이들이 나와서 삐까뻔쩍한 공 연을 펼치지는 않는다. 몇 날 동안 ▲ 직접 만든 떡과 제철 과일 등으로 생일상을 차린다. 함께 어린이집을 다니는 모든 아이들이 생일을 맞이한 아이에게 정성스럽게 카드를 건네준다. 정성스럽게 연습한 노래나 연극을 보여주기도 하고 한껏 외운 동시를 큰 목소리로 외치기도 한다. 부모들도 각 방별로 모여 각자 장기자랑을 준비한다. 연극을 하기도 하고 간단한 노래나 연주를 하기도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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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다. 해마다 다르지만어떤 해에는 차력(?)을 하기도 했다는 소문도. 물론 교사들 도 직접 무대에서 자기 기량을 뽑낸다. 아이들만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잔치인 것. 부모들로 구성된 홍보소위에서는 한 해동안 지낸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 들어 함께 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뒤풀이. 즐겁게 먹고 신나게 노는 곳이 공동육아 소리나는 어린이집이다. 행복한 뽐내기로 즐거운 졸업식 만드는 공동육아 아이들 진 빼는 졸업공연 NO! … 소리나는 어린이집 해보내기 밤을 다녀와서 2010년 12월 마지막 주 어느 날, 날이 어둑해지고 아이들, 선생님들, 아마들 (엄마와 아빠의 줄임말, 부모들)이 속속 모여든다. 할 이야기들이 어찌나 많은 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어린이집은 터질 것 같은 분위기다. 아마들은 분 주하게 움직이면서 좀 있다 공연할 깜짝 연극을 위해 최대한 아이들의 눈을 피해 대본을 보며 연습을 하기도 하고, 율동을 맞춰보기도 하려 하나!! 이미 아이들 눈을 피할 길이 없다.^^ 아이들 웃는 소리, 우는 소리, 떠드는 소리 등 에 아마들의 다소 흥분된 기색과 소리가 어우러져 열기가 가득~한 소리나는 어린이집! 은평구의 공동육아조합인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매년 연말이면 조합원 전체가 참여하는 ‘해보내기 밤’ 행사를 연다. 교사, 아마들, 아이들 모두가 참여하여 서로 간단하게 준비한 공연을 보여주고, 초청 공연도 보고, 음식도 먹고, 이야 기도 나누고, 정도 나눈다. 세 살부터 방과 후 방 아이들까지 방마다 의견을 수렴하여 아이들이 즐겁게 준비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공연을 준비한다. 또 세 살부터 방과 후 방 아마들 역시 공연을 준비해서 함께 나누는 행사다. 더불어 한해를 정리하는 영상이 상영되기도 하고, 졸업하는 아이들의 졸업식이 열린다. 졸업 식에서는 졸업하는 아이들과 1년을 함께 보냈던 교사가 직접 작성한 졸업장이 전해지는데, 교사에 따라 졸업장의 내용이 달라서 해마다 다른 내용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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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교사가 느꼈던아이들의 모습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메시지로 이루어 진 졸업장이었는데, 부모인 나와 교사가 어떤 면을 공유하는지, 터전(어린이 집을 소리나는 식구들은 이렇게 부른다)에서 교사가 본 모습은 어떤지 등을 서울시 은평구 알 수 있어 참 흥미로웠다. 물론 행사장을 따로 빌려 졸업식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생활하던 곳에서 아마들까지 전부 모이는 행사이다 보니 매 우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공연을 준비하며 즐거운 부모들 아마들까지 모인 그 자리가 주는 축제 같은 분위기에 아이들은 흥분하고 달뜨 소리나는 어린이집 게 된다. 가온이가 등원하던 해 처음 해보내기 밤 행사를 할 때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공연을 하는 것에 대해 잘~해야지 하는 어떤 긴장 보다는 자신이 잘하는 것들을 마치 친척들 앞에서 선보여야 할 때의 쑥스러움에 더 가까운 느낌을 아이들에게 받았고, 그것이 정겹고 편안했다. 또 아마들의 급 조한 공연을 보면서도 너무너무 즐거워하고 오래도록 즐거움과 흥분으로 기 억하고 있었다.(사실 우리 아이는 일 년이 지난 후에도 아마들이 했던 공연 내 용과 배역을 맡은 아마들, 그리고 공연 중 있었던 에피소드까지 정확히 기억 하고 있었다!) ▶연말이면 한 해를 정리하면서 부모와 아이, 교사가 함께 잔치를 만든다. 무엇보다 부모들이 준비한 공연이 볼만하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전에 다녔던 구립 어린이집 경우에도 원장이 아이들에게 노동(?)이 되거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는 행사를 지양하던 분이셔서 그 런 공연이 아예 없었다. 당시에는 그런 공연이 아예 없는 것이 준비하느라 스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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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을보는 것보다는 백번 좋았다. 그렇지만 소리나는 어린 이집은 아이들과 즐겁게 공연을 준비할 수 있고 준비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 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도 공연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느낀 것 은 공연을 하면서도 서로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약간의 노력과 시간이 투자되기는 하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우리 아이는 올 해 다른 4명의 아이들과 함께 졸업을 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있던 씨앗의 싹을 틔워 나가는 느낌이다. ‘내 아이’만이 아니라 다 른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즐거 움이었다. 2011년이 이틀인가 지난 후, 졸업해서 집에서 뒹굴 거리던 아이는 갑자기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내가 온갖 많은 재주를 부리며 2010년 을 잘 지냈어”라고.^^ 그렇지, 너의 하루하루가 사실 경이로움이고 온갖 많은 재주다! 더불어 너를 지켜보며 나의 하루하루도 그런 날들이란 걸 이제는 안 단다, 얘야. 고맙다, 아이야. 김형주(구슬, 가온엄마) -2010년 12월 《은평시민신문》에 실린 글- 소리나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삶은 어떨까? 아이와 함께하는 가장 중요한 관계는 부모와 교사이다. 그러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마도 교사일 것 이다. 영어나 체육, 오르다나 미술 등 특별 활동 중심의 활동이 아닌 나들이 위주의 프로그램은 종일 아이를 보는 교사 입장에서 체력적으로 무척 힘든 일이다. 이러한 공동육아 프로그램은 교사들의 역량을 강화시키기도 하지만 일반 어린이집에서 근 무하다 온 교사들은 당황스러워 하기도 한다. 교사들은 일반 어린이집에 비해 부모들과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 어려움도 발생한다. 터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부모들과 함께 공유해야 하고 일일이 소통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관계가 꼬이면 해결하는 데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 해야 한다. 또 합리적인 근무 환경을 확보하기 위해 매년 연말이면 ‘노동조건개선위 원회’에 참여하기도 한다. 대신 경제적으로 많은 가치를 줄 수 없는 현실을 감안 여 름방학과 겨울방학 각 2주일씩 돌아가면서 휴가를 가고 매월 연차 휴가를 통해 평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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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하루 쉰다.2년에 한 번 유급 안식월을 통해 재충전하는 계기를 갖는 등 비교적 다양한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기도 하다. 서울시 은평구 부모가 참여한 만큼 삶의 질 높아져 사회 통념이 점차 변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육아는 엄마만의 몫이고 아빠의 몫은 밖 에서 일하고 돈벌어오는 것으로 차치된다. 또 아이는 유치원, 어린이집, 학교 등 기관에 맡기기만 하면 그만이고 오로지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 적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일반 어린이집과 비교했을 때 가장 다른 점은 부모들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부모들은 아이의 보육을 위해 조합에 가입하고 출자금과 가입 비를 내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데 직접 참여한다. 800만 원에 달하는 고액의 출자 금을 내고 법정 보육료 외에 25~36만 원의 추가 보육료를 부담하고 연말에 적자가 나면 n분의 1의 적자분담금을 내면서 아이들을 이곳에 맡기고 있다. 경제적인 부담 뿐만 아니라 매월 4~5명이 교사가 휴가를 가면 그 자리를 ‘아마’라는 이름으로 한 방 전체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맡아 일일교사를 하기도 한다. 주방교사가 휴가를 가는 날은 각 반별로 부모가 그 방 아이들의 도시락을 싼다. 집 도시락이다. 어린이집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부모들이 감내하는 노력 과 열성은 일반 부모들이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조율하기 위해 토론을 벌이고 상처를 주어가며 싸우기도 하고 육체적 노동, 경제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나서 1~2년이 지나면 부모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 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노력한 게 아까워서 물리 지도 못하겠다”고 말한다. 내 아이만 보지 말고 전체 아이를 함께 보자는 암묵적인 분위기도 부모들이 성장 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 사회적 부모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은 터전에서 부모들이 지켜야 할 약속이다.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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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나는 어린이집 이모저모1 초등학교 친구들보다 편한 터전 친구들, 만나면 편안해요. * 어린이집에 들어서면 자기 아이만 찾거나 자기 아이를 향해서 일직선으로 뛰어가지 말자. * 여유로운 마음으로 모든 아이들을 다 살펴보고 관심을 가져준다. * 울고 있거나 외로워 보이는 아이에게 우선적으로 관심을 표시한다. * 아마 활동이나 아이들에게서 별명을 얻어서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한다. * 터전에서 먼저 마주친 아이들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주고 함께 뒹굴며 정 다운 대화를 나누자. * 아이들이 몰두하고 있는 놀이나 활동에 즉석에서 동참하여 친구가 된다. * 터전에 들어섰을 때 자기 아이가 놀이나 활동을 중단하고 자기에게로 쏜살 같이 달려오기를 기대하지 말자. * 등하원 시간은 꼭 지켜주고 중간에 방문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공동육아 부모들의 90퍼센트 이상 맞벌이 부모들이다. 우리 사회가 부모들에게 아이를 양육할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간을 쪼개어 노력을 기울 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공동육아 부모가 된다는 것은 결코 돈만 갖고 되 는 일은 아니다. 실천적 참여를 담보로 한다. 등원하고 있는 전 가구가 돌아가면서 이사회를 구성하여 어린이집 운영 전반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업무를 나눠가진다. 교사에게 월급을 주는 일, 조합 행사가 있을 때 음식을 만들고 치우고 정리하는 일, 어린이집을 홍보하는 일,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 전반에 대해 교사와 상의하고 결정 하는 일 등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은 일을 부모들이 나서서 직접 하고 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의 90퍼센트 이상이 맞벌이 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아이의 개성이 어릴 때부터 충분히 발현되고 정해 진 틀에서 인지 교육 위주로 구성되는 교육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껏 놀고 활동 하면 잘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연을 가까이 매일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공동육아의 철학도 부모들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점 중 하나이다.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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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에서 너무나익숙해져버린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는 부모들에게 소리 나는 어린이집이 요구하는 공동체적인 삶은 무척 낯설다. 아이와 관계된 다른 집에 놀러 가본 경험도 거의 없을 정도이다. 부모들은 공동육아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부 서울시 은평구 터 이 낯설음과 가까워진다. 익숙하지 않은 데서 오는 낯설음이 분명히 있지만 사람 사는 재미가 솔솔 난다. 공동육아에 재미를 붙인 부모들은 어릴 적 마실 다니듯이 시간이 날 때마다 모여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졸업한 부모들과 축구 모임을 하기도 하고 영화 번개를 하거나 생일날 모여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퇴근이 늦어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 힘들 때는 시간이 되는 부모에게 부탁하는 품앗이 육아 문화도 정착되 어 있다. 매년 초여름이 되면 전 가구 전 아이들이 모여 1박 2일 들살이(MT)를 가기 소리나는 어린이집 도 한다. 이러한 마실 문화는 개별적이고 고립적인 삶의 패턴에 지친 부모들에게 정 서적 쉼터와 유대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공동육아 부모들은 왜 이런 일을 하는가. 물론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 는 소망일 것이다. ‘잘’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아이의 개성이 충분히 존중되고 주 입식 교육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껏 놀고 활동하면 잘 클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런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부모들의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참여를 통한 공동 작업에서 오는 즐거움이 바로 공동육아의 맛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사람들 2 초등학교 친구들보다 편한 터전 친구들, 만나면 편안해요. ★소리나는 졸업생 열아홉 살 설재민군 올해 대학에 갓 입학한 설재민군은 은평 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 1기 졸업생이다. 지금도 어릴 적 함께 어 린이집에 다녔던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 도 나누고 여행도 간나는 재민군은 기억 저편에 아스라이 남아있는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풍경을 기억한다. “아빠들이 여름에 터전에 초록색 차양막을 달았던 기억, 미끄럼틀을 고치던 기억이 나고 요. 어린이집 건물 뒤쪽을 친구들과 돌면서 뛰던 기억이 난다”고 말하는 재민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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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는 올여름에도 친구들과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중학 교에 가면서 봄, 가을에 함께 소풍을 갔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선생님과 친구 들이 함께 터전에서 1박 2일로 놀기도 하고 여행도 다녔다. 친구들과는 딱히 할 이야기도 없는데 익숙하기도 하고 만나면 편하다. 초등학교 친구들보다 더 편한 것 같다”고 말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터전을 빌려 들살이(터전에서는 1박 2일 MT를 들살이라고 부른다.)를 하면서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면 서 지금까지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만난 어린이집 친구 들이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라는 재민군. 그에게는 공동육아에서 보냈던 삶이 지금도 진행 중인 듯하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이모저모 2 공동육아 부모들의 부모 참여 활동 * 방모임 : 공동육아의 방은 일반 어린이집이 반 개념이다. 방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부모들과 교사가 만나 어린이들의 한 달 생활과 교육 과정을 이야기 하고 논의한다. * 아마 활동 : 부모들의 교육 참여 활동으로 교사들의 개인 월차 휴가, 교사 교육의 날 등에 아이를 교사 대신 돌보는 활동이다. 각 가정의 부모는 1년에 적어도 5~6회 정도는 아마 활동에 참여한다. * 이사회 : 공동육아는 이사회를 두어 해마다 돌아가면서 이사를 맡아 어린 이집 운영 전반을 담당한다. 이사회는 이사장과 운영/교육/재정/시설/홍보로 구성된다. * 소위활동 : 아이가 등원하면 부모는 각 소위에 들어가 활동한다. * 교육소위 - 신입조합원 교육 및 기존 조합원 재교육을 담당한다. - 공동육아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교육 내용과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제안한다.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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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동육아와 공동체와조합과의 의사소통 채널 기능의 역할을 한다. - 아이들 반 구성 및 교사 배치 계획을 수립하여 이사회에 보고한다. * 홍보소위 서울시 은평구 - 조합의 활동을 대내외에 홍보한다. - 어린이집 대기자를 관리한다. - 어린이집 총회 자료집을 제작하고 회의록 등 각종 서식을 관리한다. - 은평지역사회네트워크 회의에 조합을 대표하여 참여한다. * 운영소위 소리나는 어린이집 - 어린이집 1년 운영계획표를 작성한다. - 총회 등의 주요 행사와 조합원들의 단합을 위한 활동을 기획 준비 진행하다. - 조합원들의 회의 및 행사 참여를 독려하고 파악한다. * 재정소위 - 어린이집 운영을 위한 지출과 보육료 수입을 관리한다. - 상하반기에 예산안과 결산안을 작성하여 이사회에 제출한다. - 출자금의 관리와 운용을 담당한다. * 시설소위 - 어린이집 시설과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매월 초에 진행하는 대청소를 총괄 관리한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이모저모 3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등원하려면 아이와 부모, 교사가 함께 행복한 공간, 그러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곳.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등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과정을 대략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터전을 방문하여 대표교사에게 가입 안내를 듣고 이사회 면담 날짜를 정한다.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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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면담은 부모 둘다 참석하며 면담 후에 가입신청서를 작성한다. 3.조합 가입이 승인되면 가입비를 납부하고 등원 날짜를 정한다. 4.등원 일주일 전, 부모 중 1인이 사전 아마(부모일일교사 : 아이들과 하루 종 일 지내는 체험)을 한다. 5. 등원하여 1~2주의 적응기간을 보내고 적응이 끝날 때까지 엄마나 아빠가 일정 시간 함께 터전에서 시간을 보낸다. 적응기간 운영방안은 대표교사와 상 의한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이모저모 4 소리나는 어린이집 출자금과 가입비, 보육료, 발전기금 * 출자금 - 터전 임대를 위한 전세금으로 1자녀 800만 원, 2자녀 950만 원(졸 업 후 3년 후에 반환) * 가입비 - 50만 원(시설 투자비로 사용되며 반환되지 않음, 아이 수에 무관 * 발전기금 - 등원과 동시에 100만 원 납부. 터전 안정화 기금. * 보육료 - 나이에 따라 다르며 월 보육료 54~60만 원 선(2013년 현재)법정 보육료는 국가에서 지원. 차액을 조합비로 납부 2. 사람이 안보여? 공동육아는 아이와 부모, 교사가 함께 크는 교육 공동체라는 공동 육아 이념의 구현 을 목표로 하여 공동육아 주체에 대한 상호 신뢰와 배려를 모든 출발점으로 삼는다. 내 아이만을 키우는 부모의 시선에서 확장하여 지역 공동체, 공동육아 공동체 연대 를 통해 함께 성장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것은 보육 시설 안 의 아이들만이 아니라 세상의 아이들을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 육아 아이들은 나들이를 다니다가 인사하는 이웃들과 만나고 서로 돌봐주는 가운데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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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해 간다. 아이들이,부모와 교사들이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고 나누는 모습을 보고 큰다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세상과 소통하고 공동체성을 키워나갈 것이다. 이는 단지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이라는 기반을 만나고 서울시 은평구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공동육아와 지역과 소통하는 것은 공동육아 교육 운동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이다. 지역의 아이들, 지역 주민들과 함 께하는 것은 좁은 영역에서 진행되는 부모협동보육의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자 지역 의 역사와 사람들의 생활을 교육 내용을 속으로 끌어 들여 그 내용을 확장하는 작업 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공동육아의 지역 활동 사례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다양한 지역 활동을 하면서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먼저 타 지 역 공동육아의 예를 살펴보자. 인천의 희망세상어린이집은 지역 주민을 조합원으 로 받아들여 지역의 시민단체가 조합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어린 이집 운영과 조합 행사가 지역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매년 지역 단체 들과 연계하여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하여 지역의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다. 마 포 일대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지역 단체들과 함께 매년 봄에 마을 축제를 기획하 여 운영한다. 원주는 협동조합 결성 초기부터 지역 사회단체들과의 상호 협조 및 지 원을 받아 원주생활협동조합으로부터 저렴한 비용으로 식재료를 제공받고 있으며 성공회 원주교구, 지역YMCA와 여성민우회, 지역사회 교육기관 등 지역사회 자원 을 연계하여 조합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공동육아가 지향하는 바는 공동체의 가치를 지역사회로 확장하는 일이다. 강동 구에서 저소득 가정을 위한 지역 방과후 교실 ‘강동꿈나무학교’를 운영하는 강동조 합은 1998년 하반기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의 지원을 받아 ‘강동꿈나무학교’라는 공동육아의 지향을 실현하는 저소득 지역 방과후 교실을 만들어낸 주체이다. 과천 의 공동육아협동조합은 지역사회단체들과 연대하여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보육조 례 개정작업’에 참여했으며 그 외에도 지역 사회를 위한 무료 의료 검진 활동을 하 거나 지역 사회에 터전을 개방하기도 하고 지역 저소득층을 위한 직접 지원 사업(연 탄 나누기 등)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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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연대 활동 그렇다면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 연대 활동은 지금까지 어떻게 진행되었을 까? 기록을 보면 1996년 개원 이후 어린이집 차원에서 프로젝트성 지역 연대 사업을 진 행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만 해도 은평구는 시민사회 활동이 활발하지 않음을 감안 하면 초창기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당시 활동은 눈여겨 볼만 하다. 1998년 가을, 소 리나는 어린이집은 개원한 후 조합 홍보를 위한 입학설명회나 터전 개방 행사를 진 행하면서 송추농원에서 아빠캠프를 진행했다. ‘아빠와 아이만 참여하는 신나는 하 룻밤’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행사로 공동육아에 관심 있는 은평구 부모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된 행사로 보인다. 이후 초등학 교 방학이 되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터전으로 초청해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 다고 한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IMF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조합원이 줄 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연대 차원의 활동도 줄어들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은 은평구에서 활동하고 있던 시민사회단체들이 각자의 사업을 하는 동시에 시민단체들이 연대하여 행사를 기획하는 등 단체 간의 연대의 기지개 를 펴는 시점이었다. 열린사회은평시민회, 은평두레생협, 터울림, 생태보전시민모 임 등 은평구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은 2004년 은평지역사회네트 워크(이하 은지네)를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연대 행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은지네 행사는 어린이 축제 한마당, 상상축제, 골목축제 등으로 발전했으며 이와 함께 주 민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이 과정에 서 주체로서 꾸준히 참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간헐적으로 2004년, 2005년 어린이날 축제 한마당에 참여하였으나 이후에는 참여가 꾸준히 이어지지는 않았 다. 어린이날 행사에서는 부스를 만들어 아이들을 대상으로 전래놀이를 하거나 간 단한 만들기를 하는 등 부모들이 어린이날 하루를 자기 아이들뿐만 아니라 은평구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보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이 이 시기에 지역 행사에 참여한 것은 5월 5일 열리는 ‘어린이 축제 한마당’ 2회 정도로 기록되고 있다. 이때 일각에 서는 “은평구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유지하고 꾸준히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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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자금의 높은 벽,맞벌이 부모의 한계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은평구에 딱 하나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다. 마을 공동체 서울시 은평구 의 대표적인 사례로 불리는 마포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4개가 있고 인근 고양파주 지역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6개가 있다. 최근에 서대문구에도 한 곳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대기자가 많지 않아 정원을 꽉 채운 적이 거의 없다. 대다수의 공동육 아 어린이집이 1년 이상 대기를 해야 들어올 수 있음을 생각하면 원인이 궁금하다. 첫 번째는 출자금이다. 은평구는 서울 전체 25개구 가운데 재정자립도 23위로 주 민들의 경제적 수준이 높지 않다. 800만 원의 출자금과 조합비로 발생하는 보육료 소리나는 어린이집 를 감당하기 어렵다. 공동육아의 특성상 부모 참여 활동을 부담스러워하는 부모들 도 적지 않다. 대기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등원하는 부모들이 100퍼센트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 외에 지역 사회 연대 활동에 힘을 쏟을 만한 여력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순옥 열린사회은평시민회 대 표는 이에 대해 “맞벌이 부부가 많은데다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는 조합원이 거 의 없었다. 어린이집 부모 참여 활동을 하면서 에너지가 고갈되어 친목 위주의 활동 에 더 매력을 느낀 것으로 본다”고 말하며 “아이를 낳고 초등학교에 가기 전까지 아 이를 키우는 시기가 부모에게 있어서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인생에서 가장 바 쁜 시기이다. 마음에 여유가 거의 없기 때문에 지역 연대 활동까지 할 여력이 없었 을 것이다. 설립 당시에는 어린이집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부모들이 너무 과 도하게 시간을 들이고 힘을 쓰다 보니 지역 연대 사업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전 한다. 이외에도 초창기에 공동육아를 설립했던 세대가 졸업하고 이후 세대가 공동 육아를 구성하면서 부모들이 서로 가치관의 충돌을 겪고 있기도 하다. 공동육아를 만들었던 선배조합원이 내세웠던 공동체적인 가치보다는 질 좋은 보육에 더 방점을 찍기 때문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초창기 조합원들은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은평두레 생협을 만들면서 당시 척박했던 은평시민사회단체사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그러 나 이후 가입한 조합원들은 이미 지역에서 자리 잡고 활동하는 선배조합원들이 있 었음에도 어린이집 안의 부모 참여 활동에 국한하여 밖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다 고 한다. 이후 은평시민사회단체 연대 행사가 무르익어가는 2006년부터 2010년까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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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소리나는 어린이집은지역 행사에 주체로 참여하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데 더 초점을 두고 활동을 해왔다. 3. ‘소리나는’이 확 달라졌어요. 그런데 2011년에 들어서면서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새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부모들의 지역 행사에 참여하는 회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상상축제, 골목 축제, 각 생협 총회 돌봄, 지역 영유아 부모 대상 부모 커뮤니티 사업 등 이전과 비 교하여 무척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1년에는 4~5년 만에 5월 5일 열리는 ‘상상축제’에 축제 주체로 참여했으며 2012년에는 ‘상상축제’와 함 께 갈현동 길마공원길에서 열린 ‘골목축제’에 주체로 참여하여 터전을 개방하고 ‘주 민과 함께 벽화그리기 사업’을 진행했다. 가을에는 소리나는 어린이집 교육소위에 서 은평구 영유아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은지야 마실가자’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주 민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2013년 3월에는 살림의료생협과 은평두레생협 총회에 ‘아 이 돌봄’ 사업을 진행했으며 상상축제, 골목축제는 물론 ‘은지야 마실가자 2’를 꾸준 히 진행하고 있다. 이는 2000년대 지역 연대 사업 활동과 비교했을 때 괄목할만한 성장이며 ‘맞벌이 부부’ 비율이 줄어들지 않음을 감안했을 때 지역 연대 활동의 폭이 어떻게 넓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지역 연대 활동이 활발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우선 터전 인근에 소리나는 어린이집 조합원이 활동할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 거 점이 대폭 늘어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변화의 시작은 은평시민단체에 있어 좌장 격인 열린사회은평시민회가 2008년 응암동에서 갈현동으로 사무실을 옮긴 것이다. 열린사회은평시민회는 당시 ‘즐거운 소통’이라는 회의실을 운영하며 지역 사회에 개방했는데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연 2회 총회가 열릴 때 마다 이 회의실을 이용했 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친환경 먹거리를 생산자 직거래로 조합원에게 공급하 는 은평두레생협은 2009년 6월, 터전 인근에 첫 매장을 개점했다. 소리나는 어린이 집 조합원 대부분이 생협 조합원이었으며 이들은 매장 개점 후 꾸준히 이용하고 있 다. 2010년 8월에는 살림의료생협이 구산역 사거리에 가정의학과 의원을 개원했다.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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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지역 사회의다양한 움직임은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들이 지역 연대 활동 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은평 지역 시민사회 단체들이 터전 근처에 둥지를 틀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의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서울시 은평구 2011년 지역 연대의 기지개를 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이 지역 연대 활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2011년 이후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 연대 활동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11년 상상축 제 ‘어린이 잔치 한마당’은 소리나는 어린이집 홍보소위원회 구성원인 달빛, 천미, 소리나는 어린이집 꽃게 등 홍보소위원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 홍보소위는 은지네 대표들로 구 성된 축제 회의에 참석하고 녹번초등학교에서 열린 ‘어린이 잔치 한마당’에 부스를 만들어 참여했다. 지역 행사가 생소한 조합원들에게는 홍보소위원들이 직접 전화 를 걸어 보다 많은 가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프로그램은 유아와 어린이 를 대상으로 ‘꽃수레 타기’, ‘구슬치기’, ‘비석치기’ 등을 진행했다. 19가구 중 16가구 가 참석하여 높은 조합원 참석율을 보였다. 당시 행사를 치른 후 홍보소위 평가에서 는 소리나는 어린이집이 ‘어린이 잔치 한마당’에 참여하는 의미는 공동육아가 지역 사회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후에도 조합원 에게 지역 행사를 꾸준히 홍보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 은평구는 매년 5월이면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되어 10년째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한다. 소리나는 어린이집도 이 행사에 주체가 되어 참여하고 있다.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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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상상축제 평가 1.사전준비 준비물 : 골고루 안배되어 빠뜨리는 것 없이 가져왔다. 스템플러와 가위는 미 리 준비하거나 주최 측에 빌리는 것도 좋겠다. 행사 부스 위치 : 부스 뒤에 놀이터와 모래놀이가 있어 아이들 놀기 좋았다. 행사가 초등학교 저학년 중심이라 우리 아이들 놀거리를 좀 생각하며 위치를 정해야 한다. 아마홍보 : 19가구 중 16가구 참석으로 참석율이 높았다. 미리 홍보를 많이 한 것이 도움이 되었고 각방별로 독려전화를 한 것이 주효했다. 어린이날 갑자기 상상축제 오라고 하면 아이들과 가고 싶은 곳도 많아 당황스러울 텐데 미리 홍보하고 사전 참석 확인 작업을 해서 더 나았다. 2. 프로그램별 운영 상황 : 무료 음료권으로 동기를 유발하면서 아이들이 참여하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운동장 가운데 전래놀이보다 우리 부스에 아이들이 더 많았다. 각 놀이별 평가 놀이 종류 평가 구슬치기 너구리(대표교사)가 처음에 룰을 만들고 분위기를 잡아줘서 진행이 원활했다. 놀이 방법을 잘 모르는 아마들이 많아 헤맬 뻔 했는데 감 잡을 수 있도록 틀을 만들어주 었다. 1시간에 1명을 배치하는 것은 힘에 부쳤다. 30분에 한 명이 적당하다. 애들이 몰려서 시간배분하기 힘들었다. 구슬 전체 600개였는데 2개씩 주면서 시작하면 개수는 적당하다. 비석치기 아이들이 생소해했지만 참여하면서 즐거워했다. 좀 큰 아이들에게 맞는 프로그램 이다. 꽃수레타기 어린 아이들이 좋아했다. 아이들 몸무게로 구분은 하지 말자. ‘30kg 이상 안된다’ 말고 기준을 정해야 한다. 수레 꾸미는 데 있어 아이들 손으로 많이 만들어 꾸미려 는 시도 좋았다. 좀 폼이 안나거나 화려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직접 준비한 꾸밀 거리를 만든 게 좋았다. 미리 리어카 사진 보여주고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3. 전체 평가 :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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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합원 참석율도 높았고참가하는 어린이들이 반응도 좋았다. 물론 어린이 잔 치 한마당은 어린 아이들이 즐길 거리, 놀 거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해야 할 것만 홍보하지 말고 가면 어떤 즐거움이 있다는 홍보도 중요하다. 은평 시 서울시 은평구 민사회단체 행사에는 처음 참여해보는 아마들이 많으므로 상상축제 홍보와 함께 주변 즐길 거리, 놀 거리와 함께 주변 맛집을 함께 패키지로 꾸며 홍보하 는 것도 좋겠다. 이어 2011년 6월에는 은평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연대하여 북한산케이블카지 소리나는 어린이집 키기은평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를 결성했다. 은평구 시민사회단체들과 주민들은 2010년부터 북한산을 위협하는 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해 왔으며, 은평새길, 북한 산 관광자원화 사업 등 북한산을 둘러싼 여러 현안에 폭 넓게 대응하기로 하고, 기 존 연대모임을 새롭게 정비했다. 시민연대에는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생태 보전시민모임, 열린사회은평시민회, 은평두레생협, 은평시민넷 등 제 시민단체와 정당 등 12개 단체가 참여했는데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으로 시민연대에 참여하고 이러한 활동을 조합원들에게 알려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외부 활동이 점차 늘어나는 가운데 2011년 10월에는 졸업 한 선배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15주년 개원잔치’를 열기도 했다. 소리나는 어 린이집 선배조합원들이 터전을 스스럼없이 방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선배조합원들과 아이들이 함께 터전 인근 뒷산을 거닐기도 하고 터전 마당에 천막 을 치고 음식상을 마련하여 동 네 잔치를 열었다. 오랜만에 터 전을 방문한 선배조합원들이 무 척 흡족해 하기도 했다. 2011년 지역사회 연대활동의 결과인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당시 개원잔 치에는 은평두레생협, 살림의 료생협, 마을n까페에서 후원 물 품이 쏟아지기도 했다. 2011년 하반기 총회는 당시 개관했던 ▲ 2011년, 소리나는 어린이집 개원 15주년 행사를 터전 마당에서 개최하고 있다. 선배조합원들이 많이 참석했다.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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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촌동 초록길 도서관에서개최하여 소리나는 어린이집 조합원들이 갈현동에서 확 장하여 은평구 단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와글와글골목상상, 벽화도 그려요~ 2012년 상상축제는 녹번초등학교에서 5월 5일에 열리는 ‘어린이 잔치 한마당’의 연 장선상에서 5월 19일 갈현동 길마공원길에서 첫 번째 ‘와글와글골목상상축제’가 개 최되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이 양 축제에 모두 참여하였으며 다양한 행사를 개 최하여 시선을 끌었다. 특히 골목 축제는 터전 인근 도로를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하 여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으며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주민들이 스스럼없이 터전을 방문할 수 있도록 터전을 개방하였다. 방문하는 주민들에게 공동육아를 알 리고 홍보지도 배포하면서 지역 사회에 소리나는 어린이집을 알렸 다. 이어 열린 5월 19일 골목축제 에서는 소리나는 어린이집 벽면에 경희대학교 벽화그리기 동아리 ‘월 담’을 섭외하여 ‘주민들과 함께하 는 벽화그리기’작업을 진행했다. 축제에 참여한 주민들은 아이들이 함께 붓을 들고 벽화를 그렸으며 조합원도 주민들도 즐겁게 참여한 행사로 기억에 남았다. 당시 소리 나는 어린이집 홍보소위는 ‘어린이 잔치 한마당’과 ‘골목축제가 각각 의미가 있으며 이러한 자리를 통 해 공동육아 홍보마당으로 활용하 는 것도 좋겠다고 평가했다. ▲ 2012년 상상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터전 외벽 벽화그리기. 동네 주민들과 자원봉사 대학생,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들이 함께 했다.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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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상상축제 및골목축제 평가 서울시 은평구 1. 5월 5일 어린이 잔치 한마당 조합원 중 3가구 제외하고 모두 참여함. 비석치기는 흥미로운 면이 부족하므 로 내년에는 다른 전통놀이(예-딱지치기, 팔씨름)를 도입하도록 함. 들살이 와 방모임, 문자, 안내지를 통해 다방면으로 적극적으로 홍보하였음. 안내판 재활용 가능하므로 모아 둘 것 소리나는 어린이집 2. 5월 19일 와글와글 골목 상상 축제 지역에서 행사에 주체로 참여하여 터전을 홍보하는 계기가 되었음. 공동육아의 비전이 잘 연계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음. 공동육아를 이해할 수 있는 안내판 및 안내책자를 주면 공동육아 홍보가 될 것임. 안내 책자를 소식 지 만들 때 같이 만들거나 소식지를 공동육아 홍보에 그래도 활용해도 좋을 것임. 3. 기타 행사를 상상축제와 골목상상축제로 두 번에 걸쳐 한 것은, 각각의 의미가 있 고 둘 중 하나의 행사에 참여하면 된다는 측면에서 내년에도 양일에 걸쳐 참 여하도록 함. 졸업생에게도 문자나 전화통화를 통해 적극적인 홍보를 하여 졸 업생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면 좋은 것임. 4. 전체 평가 양 축제는 매년 둘 다 참여하자. 문자나 전화를 적극 활용하여 선배 조합원들 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 터전 홍보 플랜카드를 만들어 보자.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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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뜨거운 참여열기, 공동육아? 살아있네~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 연대 활동의 백미를 꼽으라면 무엇보다 2012년에 진행 한 부모커뮤티니 사업 ‘은지야! 마실가자~’일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은평구 영유아 부모 대상으로 진행된 강의 프로그램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21012년 가을에 서 울시 부모커뮤니티 사업 제안서를 내고 은평구 영유아 부모 대상으로 ‘은지야, 마실 가자!’ 사업을 진행했다. 부모교육 6강과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를 돌보는 어린 이 놀이터 5회가 함께 진행되었다. 강의 외에도 소리나는 어린이집 한가위 행사를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였다. 어린이 놀이터와 부모 강의가 함께! 은지야 마실가자~ 소리나는 어린이집 ‘은지야, 마실가자!’ 프로젝트는 부모를 대상하는 강의프로그램 과 강의를 듣는 동안 아이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어린이 놀이터’로 진행 되었다. 강의는 대다수 젊은 부모들이 사전 정보 없이 부모가 되고 조언자 없이 아 이를 키우면서 부닥치는 갖가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며 육아스트레스를 받 지 않고 아이를 키울 것인지에 초점을 두었다. 2012년 9월 8일 첫 번째로 〈행복한 부모, 건강한 아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뿐만 아니라 은평 지역의 젊은 부모 26명이 참여했다. 장윤 경 갈등경영연구소 소장이 진행한 열정적인 강의에 질의응답 시간이 길어져 다과를 먹을 시간도 부족했다. 10월 13일에 공동육아 현장 전문가 김경태 선생님이 나선 ‘어른들이 모르는 아동의 심리’에서는 아이들의 심리에 대한 이론과 현장에서의 사 례가 적절히 배치되어 이해하기 쉬웠다.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진지하고 재미나게 들을 수 있었던 강의였다. 부모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았던 11월 3일 ‘유아의 성 이해 하기’는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교육 방향에 대해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한 주 후 10일에 진행된 아빠의 놀이학교는 은평뉴타운 물푸레 북까페에서 권오진 선생님 과 함께했으며 아빠들이 10명 넘게 참여하여 몸놀이, 숲체험 프로그램이 알차게 진 행되었다. 아빠들이 아이와의 놀이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약간 오버도 하면서 신나 게 놀아줄 때 아이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게 된다는 강의 내용도 부모들의 가슴에 오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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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 남았다. 또일상적인 물건을 이용한 놀이 방법들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참가자 들의 평이다. 11월 17일에는 마을공동체와 공동육아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은지야, 마실가자!’가 은평 지역 영유아 부모의 마실문화 활성화와 연대를 위해 서울시 은평구 기획되었던 데 반해 부모 교육을 거듭하면서 강의에 참여하는 부모들이 마을공동 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공동육아는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고 궁금해 했기 때문 이다. 최순옥 열린사회은평시민회 대표가 맡았던 이 강의에서 최순옥 대표는 마을 공동체의 유래와 역사, 철학, 공동육아의 이론과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참가자들은 공동육아, 두레생협, 의료생협 등 은평구의 다양한 공동체 이야기를 처음 들어본 사람들도 있어 놀랍기도 했다. ‘사전인지 교육 정말 필요한 소리나는 어린이집 가?’라는 주제로 2013년 초등학교 예비 학부모 대상으로 진행된 12월 15일 6차 교 육은 은평구 현직 초등학교 교사 5인과 함께하는 간담회로 이루어졌다. 혁신초등학 교 교사와 일반초등학교 교사가 적절히 구성되어 참가자들의 호응이 높았다. 참석 한 선생님들은 초등학교 아이들의 교육 과정과 사전학습이 아이들의 학습 능력 발 달에 미치는 장단기적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했으며 지나친 사전 학습은 학 습의 흥미를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와 함 께 하여 현장감이 있었으며 이 강좌를 통해 영유아 인지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이 부모 대상 강의를 진행하면서 어린이 놀이터를 실시한 것 은 부모들이 마음 편하게 강의를 듣고 아이들도 그 시간에 행복하게 보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은지야, 마실가자!’ 부모커뮤니티 사업은 행복한 부모가 건강한 아이 를 키운다는 컨셉에 맞게 부모가 강의를 듣고 있는 동안 아이가 부모를 찾지 않도록 흥미로운 놀이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많은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첫 강의에는 소리 나는 어린이집의 100평이 넘는 마당을 개방하여 아이들이 마당놀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마당 놀이가 싫은 아이들은 소리나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평소에 즐겨 하는 습 식수채화 놀이를 하도록 했다. 처음 오는 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마당에서 모래놀이 나 꽃그림 그리기 등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였으며 습식수채화를 처음 접해 본 아이들도 능숙하게 놀았다. 9월 26일은 한가위 행사, 동네 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놀이마당을 열었다. 씨름, 줄다리기, 강강술래, 투호, 활쏘기 등 민속놀이 등을 했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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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며 부모들이 적극적으로참여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행사 후 떡을 나누어 먹 고 주변 집과 상가에 아이들이 떡을 돌리기도 했다. ▲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 연대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은지야 마실가자’. 은평 영유아 부모들의 호응이 높았다. ‘어른들이 모르는 아동 심리’ 강의가 진행된 10월 13일 이루어진 오감발달 흙놀 이. 6~7세 유아들이 흙으로 숲이나 정글을 만들고 동물 모형을 만들어 꾸미는 활동 으로 흙으로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릇을 만드는 활동을 재미있어 했고 3~5세 유아들 은 흙과 물을 섞어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하면서 즐거워했다. 어린이집에 처 음 온 아이들도 흙놀이나 실내외 자유놀이 활동에 신나게 참여했고 공동육아 아이 들과도 거부감 없이 어울려 놀았다. 어린이 성교육이 있었던 11월 3일에는 아이들도 성교육 인형극을 보며 주제를 이 어갔다. 손인형극은 재미있었지만 성지식을 알려주는 시간에는 다소 지루해 하기 도 하였다. 인형극 후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했던 ‘숲체험 교실’이었다. 아빠의 놀이학교가 끝나고 2명 의 숲체험 강사와 아이들, 아빠들이 북한산 둘레길 코스로 이동했다. 숲 속을 살피 며 식물의 이름을 알아보고 계절의 변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쌀쌀한 날씨에 도 아이들이 자연물을 이용한 줄넘기, 사방치기, 낙엽 뿌리기 등 다양한 놀이에 적 극적으로 참여하여 즐거워 했다. 부모들이 ‘예비학부모 간담회’를 할 동안 아이들은 ‘어린이 영양교육’에 참여했다. 6~7세 아이들은 건강에 대한 사전 지식이 풍부하여 강사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 답하였고 4~5세 아이들은 PPT 수업 자료에 특히 흥미를 가졌다. ‘영양 샌드위치’ 만들기에는 3세 아이들도 참여하였다. 3세부터 7세까지 아이들 대부분이 강사의 이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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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기를 경청하고 요리순서에 따라 즐겁게 요리 활동을 하였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은지야, 마실가자!’는 그간 간헐적으로 이루어졌던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지역 활동이 주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데 그 의미가 깊다. 서울시 은평구 2012 은지야 마실가자 세부 프로그램 일시 부모강의 강사 참여인원 어린이놀이터 9. 8 행복한 부모, 건강한 아이 장윤경 갈등경영연구소 소장 서울서북병원 물리치료사 최은혜 28명 9. 26 동네 주민과 한가위 마당 소리나는 어린이집 교사회 50여 명 10. 13 어른들은 모르는 아동의 심리 김경태 공동육아 현장지원전문가 30명 오감발달/흙놀이 11. 3 유아의 성 이해하기 정태경 탁틴 열린내일 성교육 팀장 30명 어린이 성교육 11. 10 아빠 놀이학교 권오진 아빠의 놀이학교 교장 아빠 12명/ 아이 14명 11.17 마을공동체와 공동육아 최순옥 은평시민회 대표 13명 숲체험 교실 12.15 사전인지교육 필요한가? 초등교사 5인 30명 어린이영양교육 마당놀이/ 습식수채화 소리나는 어린이집 한 걸음 더 내딛은 ‘소리나는’ 2012년에 다양한 지역 활동으로 자신감을 얻은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2013년 3월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은평구의 협동조합 간 연대 차원에서 기획된 ‘총회 아 이돌봄 지원’이다. 협동조합들이 해마다 총회를 여는 데 총회가 진행되는 동안 소리 나는 어린이집 조합원들이 아이를 돌봐주는 것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들은 2013년 3월 9일과 16일에 개최된 은평두레생협과 살림의료생협 총회에서 2~3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주는 지원 사업을 펼쳤다. 당시 의료생협과 두레생협 조합원들은 소리나는 어린이집 지원 사업에 무척 고마워 했으며 처음으로 총회를 조용하게(?) 치뤘다는 조합원들의 인사를 듣기도 했다. 지 역 협동조합 총회 아이돌봄 지원 활동의 경우 《은평시민신문》에도 소개되었고 총회 가 끝난 후 돌봄을 이용했던 각 생협 조합원들이 온라인 까페에 장문의 감사인사를 올리기도 했다.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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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3월 22일게재된 《은평시민신문》 기사 소리나는어린이집, 두레생협과 의료생협 총회에 유아돌봄 지원 아이들도 행복한 총회 만들기 … 협동조합간 협동 의미 있어 해마다 2~3월이면 은평 곳곳에서 다양한 단체들이 총회를 개최한다. 주로 어 른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참석자들이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경우도 많다. 아이 들은 지루한 총회를 즐기지도 못하고 부모 품에서 조용히 하라는 “쉿” 소리만 듣다 오기도 한다. 그런데 올해 두레생협과 의료생협 총회에서는 이런 모습이 싹 사라졌다.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어린이집이 양 총회에 유아 돌 봄을 지원한 것이다. 이번 유아 돌봄은 협동조합간 협동 차원에서 기획되었으 며 소리나는어린이집 부모들은 총회가 진행되는 2~3시간 동안 10~20여명의 유아 및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신문지 놀이, 만다라 그리기, 종이접기 등을 하 며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김천수 소리나는어린이집 홍보이사는 “아 이들도 행복하고 어른도 행복한 총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향후에도 꾸준히 행사를 지원할 것이라 밝혔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커뮤니티에 올라온 은평두레생협 조합원의 감사 인사 아이돌봄 감사후기 남겨요~ 마을에서 이런저런 행사에 참가하거나 생협 조합원 활동 하다보면 가장 마음 에 걸리는 것이 아이 문제죠. 낮이라면 어린이집에 있을 시간이라 걱정할 일 없지만, 이 또한 직장다니는 조합원들에게는 아쉬운 점이고… 하지만 정작 맞 벌이 부부에게 저녁 행사와 주말 행사는 반가우면서도 아이가 어리면 그 때마 다 일일이 데리고다녀야 하는 점입니다. 이번 2013년 은평두레생협 대의원 총회에는 은평의 유일한 공동육아조합인 소리나는어린이집 부모님들이 아이돌봄방을 운영해주셔서 마음놓고 참석할 수 있었어요. 총회가 열린 4층 바로 밑 3층에는 온돌방이 있는데, 사실 그곳이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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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원했던 장소였어요.다만 이날 강습이 잡혀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해 옆의 다른 강의실로 장소가 급변경되었죠. 이 강의실은 입식 바닥이고 조금더 협소했어요. 다행히 소리나는 조합 부모님들이 가져오신 신문지와 만다라 색 서울시 은평구 칠하기 활동으로 아이들은 지루한 줄 모르고 즐겁게 지냈어요. 이럴 때 얇은 매트라도 1~2장 깔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지만, 급하게 구할 곳이 없었죠. 평 생학습관 측에서 이런 간단한 집기를 구비해놓고 대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 도 들었어요. 크기가 작긴 하지만 4층에 구비되어 있는 요가매트를 급히 깔았 으면 어땠을까 뒤늦게 떠오르기도 하고요^^ 소리나는 어린이집 돌 지난 지 얼마 안 된 준이부터 중학생 경수까지 돌봄방은 와글와글 시끌벅 적. 부모님들은 바퀴달린 강의실 의자에 심심해하는 아이들을 태우고 윙윙 놀 이도 하시고… 저희 둘째는 요즘 껌딱지로 빙의하여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기 실습을 하느라 주로 제 팔과 무릎에 안겨 있었지만, 그래도 큰아이는 돌봄방 에서 만다라에 집중하며 나름 시간을 즐겼다고 하네요. 이모 삼촌과 함께 신문지도 찢어보고, 찢은 신문지와 테이프로 공을 둘둘 말 아보고, 그 공을 굴리며 노는 아이들… 덕분에 대의원 총회는 무사히 잘 끝났 다죠^^ 엊그제 일주일 뒤 열린 살림의료생협 총회때는 더욱 준비된 자세로 돌봄방이 운영되어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님들에게 깜짝 놀랐습니다.^^ 풍부한 간식, 니모를 찾아서 영상보기, 소리나는 어린이집을 알리는 펼침막과 포스터 등… 여러가지 사정상 저희 가족은 직접 공동육아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은평에 소 리나는 공동육아 조합이 있어서 정말 든든합니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님들, 2주간 고생 많으셨고 부모들과 아이들 모두에 게 즐거운 시간 만들어주시고 안전하게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평두레생협 김시형 조합원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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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참여한 지3년차에 접어든 상상축제와 골목축제는 더욱 더 구체화되었다. 2013년 상상축제 어린이 잔치 한마당은 녹번초등학교에서 확장하여 불광역 사회적 경제지원센터(구 질병관리본부)에서 개최되었으며 조합원들이 아이와 함께 참여하 여 판제기차기, 사방치기, 투호놀이 등을 진행했다. 부모들은 부스에 꼭 자리를 잡 고 앉아서 행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30분 정도만 자기가 지원한 시 간대에만 부스를 지키고 주로 타 단체에서 하는 놀이 등을 즐기며 어린이날을 보냈 다. 이어 열린 5월 11일 골목상상축제에서는 예년과 같이 방방이(트렘폴린)을 개방 하고 관심있는 주민들에게 터전 건물을 개방,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간식과 홍보 지를 준비했으며 졸업한 선배조합원들에게도 행사 소시을 알려 터전을 방문하도록 유도했다. 2013년 상상축제 및 골목축제 평가 어린이 잔치한마당 일시 : 2013년 5월 4일 토요일 오전 11시 ~ 오후 4시 장소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구 질병관리본부) 진행 놀이 : 투호, 제기차기, 사방치기 평가 : 먼지가 나지 않고 넓지 않아 녹번초등학교 운동장보다 좋았다는 반응 이 많았다. 신입조합원 참여가 많았으며 놀이 중 작년행사 후 남은 구슬을 선 물로 주어 아이들이 좋아함 골목상상축제 일시 : 2014년 5월 11일 토요일 오전 11시 ~ 오후 5시 장소 : 갈현동 길마공원 일대 놀이내용: 터전마당 개방(모래놀이, 그네 등), 방방이 평가 : 5월 4일 어린이 잔치한마당과 연속으로 이루어진 행사임을 감안하여 조직위에서 회의참석이나 놀이수준 등 참여수준을 배려. 홍보소위 구성원들 위주로 진행하였다. 축제와 관련, 은지네 기획회의가 많아 부담스럽지만 다른 단체 들이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특성을 감안, 적은 참여나 성의만으로도 존재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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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을 나타낼 수있었다. 지역 단체와의 협력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 조합 홍보 의 기초가 될 수 있으므로 5월 행사는 부스 방문자에 대한 홍보 뿐 아니라 지 역단체를 대상으로 한 홍보 효과도 크다. 서울시 은평구 생태 프로그램으로 정착한 은지야 마실가자 2 5월 축제가 끝나고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2012년에 이어 2013년 가을에도 ‘은지 야 마실가자 2’를 진행하였다. 서울시 ‘부모커뮤니티’ 사업의 일환으로 은평구 영유 소리나는 어린이집 아 및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되었다. 첫 번째 생태마실은 9월 14일 북한산 둘레길에서 ‘생명의 숲’이라는 주제로 진행됐으며 오는 10월 5일 토요 일 오전 10시 30분, 북한산 둘레길 ‘숲속의 보물’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생태마실이 진행되었다. ‘은지야 마실가자 2’는 2013년 9월 14일부터 12월 7일까지 총 6회에 걸 쳐 진행되며 안전한 먹거리, 어른을 위한 생태교 육 등 성인을 위한 강좌도 진행했다. 2012년에 는 강의와 어린이 놀이터를 중심으로 진행했다 면 2013년에는 아이들과 부모과 함께 숲에서 노 는 프로그램을 위주로 구성했다. 영유아 및 초등 학생 부모들의 관심이 높았으며 현 조합원들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수 참석했다. ▲ 2013 ‘은지야 마실가자 2’는 영유아 생태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되었다. 아이들과 숲에서 노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2013년 소리나는 어린이집 생태마실 프로그램 일시 시간 주제 참가비 장소 비고 9월 14일 10시 30분 생명의 숲 3천 원 북한산 둘레길 4세~초등저학년, 보호자 1인 동반 10월 5일 10시 30분 숲속의 보물 3천 원 북한산 둘레길 위와 같음 10월 26일 10시 30분 수변의 생태 3천 원 고덕수변생태공원 위와 같음 11월 9일 10시 30분 숲의 변화 3천 원 이말산 위와 같음 11월 23일 10시 안전한 먹거리 무료 은평두레생협 사무실 성인 대상 12월 7일 10시 엄마생태교육 무료 물푸레 북까페 성인 대상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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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공동육아는 왜지역사회와 소통하는가 지금까지 은평공동육아협동조합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17년 역사를 되짚으면서 그 간 진행해왔던 지역 연대 활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공동육아는 왜 지역사회와 소통 하는가? 전국 65개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연합회인 (사)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에 따르면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 뿐만 아니라 부모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공동육아와 시민사회단체 활동은 가치적으로 같은 선상에 있다. 공동육아는 부 모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스스로 참여하는 활동 자체가 지금보다 더 나은 보 육 환경을 만들겠다는 보육 운동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친환경 먹거리 100퍼센트를 고집하는 것도 실내 활동 위주의 보육에서 벗어나 나들 이 중심의 교육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는 것도, 어른과 아이가 반말을 하면서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도 이러한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 아야 한다. 이 시대의 부모들은 예전에 비해 키우는 아이의 숫자가 적고 조언할 수 있는 어 른들이 없는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따라서 아이를 돌보는 데 있어 부모가 모든 분야에 있어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해야 한다. 공동육아에서 자란 아이들 이 학교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다행스럽게도 은평구는 부모들이 의지할 수 있는 자 율적인 공간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조용히 책을 읽는 도서관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드나들며 편안하게 강의를 듣고 취미나 공부 모임을 하는 초록길 도서관, 청소년들이 마음껏 끼를 발산할 수 있는 신나는 애프터, 2014년 10월에 건립되는 구산동 도서관 마을까지,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 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단체나 공간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지역 사회와 넓고 깊게 교류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아이들과 부모들은 삶 속에서 지역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터전 근처에 친환경 먹거리를 생산자 직거래로 공급하는 은평두레생협 매장이 생기고 협동조합의 가치를 의료 서비스를 통해 실현하는 살림의료생협이 의 원을 설립하면서 소리나는 어린이집 조합원들은 설립 과정에서 열렬한 지지를 보여 주었다.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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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들은아이의 보육을 위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발을 디 디면서 자연스럽게 은평두레생협에서 장을 보고 아이가 아프면 살림의료생협을 이 용하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에너지 협동조합에 참여한다. 건강한 지역 언론을 지 서울시 은평구 지하는 마음에서 《은평시민신문》을 후원하고 은평두레생협이 진행하는 생산자 초 청 강좌나 식품안전강의를 듣는다. 은평학부모네트워크가 준비한 아이를 위한 교 육 강좌에 참여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고 밥을 먹는 일상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실 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몸으로 체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지금 은 작은 마을에서 이뤄지지만 이러한 생활에 습관이 되면서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더 큰 가치로 다가올 것이다. 일곱 살 아이의 부모인 신승화씨는 “어른들이 환경을 소리나는 어린이집 잘 만들어 놔도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잘 활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우리 가 가고자 하는 철학이 다음 세대에 이어지도록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영 유아 시기의 무의식 속에 녹아 있는 철학이 가장 기본 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최순옥 열린사회은평시민회 대표는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지역 사회에 있는 다양한 자원들과 교류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는 것이 맞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현재 긍 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리나는 어린이집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는 개인적인 일상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뜨겁게 실현하고 있다. 공동육아의 다양한 지역 연대 활동이 이들의 삶을 더욱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 믿는다. ‘소리나는 어린이집’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홈페이지: sorinaneun.gongdong.or.kr ● 전화: 02-358-7725 ● 주소 : 서울시 은평구 갈현2동 494-12 참고자료 1 • 998 소리나는 어린이집 2주년 자료집 2 • 003 소리나는 어린이집 신입조합원 교육 자료집 부모협동어린이집 운영지침서 2010 • 국내 언론에 소개된 소리나는 어린이집 각종 기사 •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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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은평시민신문》(www.epnews.net)에 게재된각종 기사 소 • 리나는 어린이집 온라인 홈페이지 sorinaneun.gongdong.or.kr 소 • 리나는 어린이집 선배조합원, 현 조합원 인터뷰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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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알 란성 토 ⅴ 장 마미 어 광 사찰 》 을 디 《 진관 들지 람일 의 돌 이 잔치 야기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육아를 진행하며 서울시 광진구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글쓴이 | 권기정(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대표) 글쓴이 | 오봉석 두 아이의 엄마이자 중랑구립면목정보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다. 동대문구에서 태어나고 자 서울시 광진구에서 태어나 20여년을 살고, 15년의 외지생활 끝에 광진구에 다시 돌아와 지역 활 라 동대문구에서 살고 있다. 육아지진아이자 워킹맘이라는 최악의 조건에서 아이를 잘 기르고 동을 한 지 5년이 되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의 발행인이고,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 싶은 마음에 품앗이 공동육아를 결심하게 된 용감한 여자. 온 동네를 누비며 공동육아를 하자고 센터의 마을상담원이며, 서울시 지역아동센터 생태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소모임 만들기가 취 파닥파닥 부채질을 했던 끝에 알토란 대표를 맡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도움을 뻔뻔 미여서 현재 독서모임과 청년층모임 등 3개의 모임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아빠들 모임까지 하게 받으며 스스로 인복이 있다고 감탄 중이다. 만들려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다. 40대 인생의 초입에 마을공동체를 만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 며 살고 있으며. 아홉 살, 여섯 살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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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소개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사람만이 희망이고마을에 답이 있다’는 믿음으로 2012년 11월 창간한 광진구지역의 마을미디어. 인터넷 블로그에서 다양한 마을소식과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종이신문도 발행하고 있다. 마을기자학교를 개최하여 지역주민들이 직접 자기 동네 골목골목의 마을소식을 기사로 만들도록 하고 있다. 또한, 전국 최초의 인물중심 마을미디어를 표방한다.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마을미디어를 통해 나누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블로그주소 : http://blog.naver.com/gjpeoples ● 이메일 : gjpeoples@naver.com ● 연락처 : 행인 오봉석 010-6209-4848 발 / 편집국장 표재선 010-5064-2126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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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들어가며 서울시 광진구 1. 《광진사람들》의창간 “한 사람이 미치고 두 세 사람이 마지못해 끌려나오면 마을일은 시작할 수 있습니다!” 2. 《광진사람들》의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people 人 광진’ 2013년의 시작, 1기 광진마을기자학교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고요? 마을미디어협동조합 1차 설립신고 실패기 조급한 협동조합 설립에 따른 깨달음 대한민국 마을공동체 최고의 인터뷰어가 되고 싶다! 푸르른 5월, 《광진사람들》 종이신문 준비호가 태어나다! 국내최초 인물중심 마을신문 《광진사람들》을 창간하다! 갑·을의 관계를 넘어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공동체를 향해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 마을기자를 모집합니다! 3. 《광진사람들》의 내일은? 겨울에는 광진 마을미디어문화교실로! 일희일비 NO! 천천히 꾸준히 웃으면서 YES! 인터뷰 : 《디지털광진》 홍진기 대표 좌담회 : 《디지털광진》 13년의 역사가 남긴 지역사회의 변화는? 4. 또 하나의 지역 언론 《디지털광진》 돌아보기 “나타났다! 홍박사!” 《디지털광진》이 걸어온 길 나오며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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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첫 눈을 밟을때에 조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 눈을 밟은 내 발자국을 보고 누군가가 따라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래서 ‘처음’ ‘최초’라는 말은 언론에서 좋아하는 수식어이긴 하지만 ‘처음’ ‘최초’로 어 떤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전국 최초의 ‘구’단위 인터넷 신문을 시작한 곳이 바로 서울 광진구의 《디지털광 진》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국 최초의 인물중심 마을미디어를 표방하며 시작한 곳도 서울 광진구의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이었습니다. 《광진사람들》이 태어난 지 갓 1년 된 어린 아기에 불과하다면, 《디지털광진》은 10살을 훌쩍 넘긴 청소년에 해당합니다. 《광진사람들》과 《디지털광진》은 얼핏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점을 안고 있습니다. 《광진사람들》은 마 을미디어를, 《디지털광진》은 인터넷신문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사 내용 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광진사람들》의 돌잔치 이야기를 하면서 《디지털광진》의 역 사를 함께 보려는 것은 두 매체의 창간정신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역주 민이 주인이 되는 언론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마을신문을 만드는데 도움을 받고 싶다며 다른 지역의 분들께 연락 을 받곤 합니다. 이렇게 마을미디어에 관심 있는 분들은 물론이고, 마을공동체와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광진사람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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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진사람들》의 창간 “한사람이 미치고 두 세 사람이 마지못해 끌려나오면 마을일은 시작할 수 있습니다!” 2012년 가을,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사례를 설명해 주신 서울시 마을 서울시 광진구 공동체종합지원센터 유창복 센터장님의 강연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내가 미치고 주변의 두 세 사람만 끌어당기면 우리 지역에서도 성미산 마 을처럼 마을일을 할 수 있겠구나.’ 막연한 자신감에 내가 우리 지역, 광진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습니다. 광진구지역에서는 시민단체와 복지관 등에서 이러저러한 마을사업을 예전부터 잘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해오고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을미디어’와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은 한 군 데도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 이거야!’ ‘마을미디어’라는 새로운 분야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신이 났던지 혼자서 잠 못 이 루며 상상의 날개를 펼쳐 나갔습니다. 그 순간, 파란만장했던 대학시절에 유독 이 루지 못했던 신문기자의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을미디어’라는 낯선 분야의 일을 시 작하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고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나는 마을미디어를 왜 하고 싶은 거지?’ ‘마을미디어가 무엇이지?’ ‘정말, 책임 있게 마을미디어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마을미디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 ▲ 《광진사람들》 오봉석 발행인 인가?’ 그리고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이야기를 컴퓨터 자판 앞에서 단숨 에 써 내려 갔습니다.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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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창간사 휴대폰중독에 빠진 한국사회. 다양한 정보와 편리성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하철에서도 식당에서도 길을 걸을 때에도 손바닥만 액정을 보고 있는 풍경이 왠지 씁쓸합니다. 저 출산 고령화시대에 자살률마저 세계 최고인 우리 사회. 사람과 사람의 눈을 마주보고 대화하기 보다는 무한경쟁과 각박한 세상살이 에 내몰린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사람, 지역, 마을, 힐링, 소통…….” 사람만이 희망이고, 지역(마을)에 답이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 《광진사람들》을 창간합니다. 《광진사람들》은 지역 내 다양한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담고자 합니다. 평소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지역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접하면서, 이 시대의 희망과 대안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11월 5일, 아차산자락에서 《광진사람들》 발행인, 오 봉 석 우선은 돈이 들지 않는 인터넷 블로그를 개설하고, 거창하게 창간사를 올렸습니다. 마을미디어의 이름은 《광진사람들》이라고 정했습니다. 광진구 지역 내에 역사를 갖고 있는 여러 지역 언론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기존 의 지역 언론과는 차별적인 마을미디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기사를 중심으로 하 는 지역 언론은 많지만, 사람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언론은 광진구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흔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미 디어가 마을공동체의 취지에도 맞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보화시대이후 하루하루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에 허우적대는 모습입니다. 언론 기사도 마찬가지여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언론사에서 매일 쏟아내는 기사들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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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에 이제는 포털사이트뉴스 란의 기사 제목만 보기에도 벅찬 지경입니다. 광진구 도 마찬가지여서 지역 내의 언론이 10여개에 이르는 상황에서 《광진사람들》까지 기 사 중심의 마을미디어를 추구하는 게 옳은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정보홍수의 시대에 우리가 정작 잊고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했습 니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인터넷 세계에 빠져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서울시 광진구 를 진지하게 되돌아보았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 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고, 스마트폰과 인터넷속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미디어, 우리 동네 주변 사람들의 이 야기를 차분하게 전해주는 마을신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물론, 사람 인물 중심의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마을미디어라고 해서 마을기사를 전혀 싣지 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따뜻한 사람 들의 이야기는 인터뷰 형식을 통해서 만날 수도 있고 기사 형식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블로그 주소는 gjpeoples 로 정했습니다. 광진의 이니셜을 따서 gj 를 붙였고, 사람들에서 peoples를 붙였습니다. 지역에 서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어느 분이 people이 복수형인데 왜 s 자를 붙였냐고 물어 보셔서 그 꼼꼼함에 놀란 적이 있는데, gjpeople은 기존에 존재하는 주소여서 어쩔 수 없이 s 자를 붙인 것이랍니다. 인터넷 블로그도 개설하고, 마을미디어 이름도 정하고, 창간사까지 올렸으니 이 제 남은 일은 ‘마지못해 끌려 나올 두 세 사람’ 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손을 잡은 사람은 제가 ‘2012년 광진평화·통일한마당’의 집행위원장을 할 때, 자원봉사단장으로 행사를 도와준 표재선 이라는 후배였습니다. 180cm의 키에 76kg 몸무게로 거의 축구선수 몸매를 유지하고 있 는 표재선님은 저의 거창한 설명에 “어어어어 ▲《광진사람들》 표재선 편집국장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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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하다가 수락을하였습니다. 제가 내민 손을 가장 먼저 잡은 사람이기에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에서 맡고 싶은 직책을 이야기해 보시라 얘기했는데, 그 성격처럼 “어어어어어……” 하며 말 이 없기에 ‘편집국장’이라는 중책을 맡겼습니다. 다음으로 손을 내민 사람은 광진397모임(광진구내의 30대, 90년대 학번, 70년대 생의 모 임)의 멤버인 김승호님이었습 니다. 광진397모임은 지역 내 젊은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보 고자 2009년 말부터 시작한 친 목모임입니다. ▲왼쪽부터 이혜민 마을기자와 김승호 마을기자 광진주민연대의 대표이기도 했던 김승호님은 마을미디어라 는 낯선 일을 제안하자, 처음에는 한두 번 예의상 대답하고는 이내 빠져나가려 했지 만 저의 집요한 제안에 어쩔 수 없이 수락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지금은 《광진사람 들》의 가장 든든한 마을기자이자 편집기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손을 내민 사람은 광진시민연대의 이나리 사무국장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20대의 여성인데, 마을미디어를 제안하자 마치 기 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단번에 수락하였습니다. 대학언론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이나리님은 본인이 지역단체의 일을 시작하면서 꿈꾸었던 것이 바로 마을미디어와 같은 것이었다면서 열정적으로 화답해 주었습니다. 컴퓨터의 즐겨찾기 목록에 《광 진사람들》을 가장 먼저 올려놓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광진사람들》의 분위 기 메이커형 마을기자랍니다.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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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광진사람들》 절반의성공과 절반의 실패 ‘people 人 광진’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의 대표적인 코너가 ‘people 人 광진’이라는 코너인데, 지 서울시 광진구 역의 사람들 이야기를 담는 코너입니다. 그 첫 번째 기사 제목은 ‘마을의 30대 청년 들, 40대 형님을 만나다’였습니다. 2012년 겨울, 광진397모임에 나오는 30대의 청년들이 40대의 민동세(광진구 늘 푸른돌봄센터장)님을 모시고, 호프집에서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이 날의 자리에 참석한 30대 청년들은 물론이고 40대의 민동세님도 너무나 흥겨워 하는 것을 보며 마을미디어라는 일을 시작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되 었습니다. 민동세님은 자신의 30대 시절을 회상하며 지역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를 이야기해 주셨는데, 청년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예전 에는 지역단체의 벽을 넘어서 활동가들이 모여 함께 지역사회의 대안에 대해 공부했 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민동세님 은 이렇게 지역청년들이 불러 주어서 고맙 다고 했고, 청년들은 형님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며 덕담을 주고받는 훈훈한 분위기 ▲왼쪽에서 두 번째가 민동세님 가 연출되었답니다. ‘people 人 광진’의 두 번째 기사 제목은 ‘민족고대 82학번 이해삼·안순종의 아 주 특별한 만남’이었습니다. 광진구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는 새날을여는지역사회교육센터의 이해 삼 대표님과 광진참여네트워크의 안순종 대표님이 같은 대학 동기였다는 사실을 어 느 술자리에서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이 기사의 시초였습니다.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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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같은 회사,가정, 마을에서 주변 의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경우가 많이 있습 니다. 50대의 나이에 접어든 두 아저씨와의 만 남은 두 분의 삶만큼이나 진솔하고 진지하 였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함께 얼싸안고 사 ▲ 왼쪽부터 이해삼님과 안순종님 진을 찍는 50대 두 아저씨의 모습을 바라보 며, ‘이게 바로 마을미디어가 가야할 길이구 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50대의 두 아저씨는 지난 자신들의 삶에서 자랑 하고픈 것과 함께 후회되는 것을 이야기하였는데, 이 부분이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 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주 뵙던 분들임에도, 어쩌면 자신의 숨기고 싶 은 부분들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올 봄, 이해삼님께서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해삼님의 마지막 육성을 이날의 인터뷰 동영상으로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이 천사 같은 모습을 보이면 나는 거기에 가요. 그렇게 살면 되잖아요. 그렇게 살자고요…….” 마을미디어는 한 지역과 사람의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이해삼님과 나 누었던 이야기들과 인터뷰기사, 장례식소식을 묶어 ‘[추모] 故 이해삼 새날을여는지 역사회교육센터 대표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올렸습니다. 이해삼님의 소식이 여러 언론에 알려지면서 이 기사를 통해 《광진사람들》 블로그에 5천명이상의 사람 들이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이 지역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겨울이 찾아왔습 니다. 매년, 연말이면 신문사에서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올 해의 한자성어를 공모 하여 발표하곤 합니다. 그래서 마을미디어도 한자성어를 주민들에게 공모해 보자 고 생각했습니다. “한자성어가 대학교수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지 지역에서는 무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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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이다”라며 만류하는 분도계셨으나, 마을미디어라는 낯선 일도 시작한 마당에 못 해낼 일이 어디 있으랴? 용기를 내어 인터넷 블로그 공지사항을 통해서 공모를 하 였는데, 마감일이 다 되도록 응모자가 없었습니다. 이 때, 편집국장님의 제안으로 인터넷 페이스북과 스마트폰 카카오톡을 활용해 올해의 한자성어를 공모하였더니, 한 명씩 응모자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0여명의 주민들이 한자성어에 응모 서울시 광진구 해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3명의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대학교수들처럼 어려운 한자성어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의 주민들이 스스로 한 자성어를 냈다는 게 마냥 좋았습니다. 대상은 ‘주마가편’(走馬加鞭)으로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뜻으로, 열심히 하 는 사람을 더욱 잘하도록 격려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최우수상은 3명이 동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시에 수상했는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눈이 내리는 위에 서리까지 더한다’는 뜻으로, 어려운 일이나 불행이 겹쳐서 일어 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우수상은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머리는 용 이나 꼬리는 뱀’이라는 뜻으로, 처음은 좋으 나 끝이 좋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고 합니다. 대상을 제외하고는 ‘설상가상’이나 ‘용두사 미’처럼 2012년이 그다지 기분 좋게 마무리 되는 해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2013년에 는 좀 더 기분 좋고 활기찬 사자성어가 당첨 ▲ 2012년 올해의 사자성어 대상자 홍태용님 “주마가편 走馬加鞭”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2013년의 시작, 1기 광진마을기자학교 2013년 새해를 맞아 지역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던 중, ‘1기 광 진마을기자학교’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마을미디어라는 단어조차도 생소한 지역 에서 마을기자학교라는 것을 개최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더 생소해 했습니다. 마을 기자학교 웹포스트를 아는 분의 재능기부로 만들고, A4용지로 출력해서 사람들을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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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며 마을기자를 모집했는데,사람들의 반응은 궁금증 투성이였습니다. “마을미디어가 뭐예요?” “마을기자를 하면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마을미디어에 대해 설명하고, 마을기자학교를 소개하면 서 정작 들었던 생각은 제 자신도 이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이었 습니다. 오히려,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마을미디어의 개념에 대해 스스로 정립 해 나가고, 마을기자학교와 마을기자의 역할에 대해 깨달아 나가는 과정이었습니 다. 사실, 그랬습니다. 공동육아나 마을도서관 등의 마을사업은 예전부터 해왔던 역사가 있고, 자기 지역이 아니어도 다른 지역의 사례가 많이 있는 편입니다. 반면, 마을미디어는 그 역사도 사례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2013년 1월 24일 ‘1기 광진마을기자학교’를 15명의 주민들과 함께 개최하였습니 다. 모두가 낯설어 하는 마을미디어와 《광진사람들》에 대해 제가 파워포인트를 활 용해 설명하였고, 서울시민네트워크 임후상 운영위원님으로부터 ‘마을공동체와 마 을미디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강연 후에는 2개의 조로 나누어 토론을 하였는데,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눈에 띄는 의견은 가령 ‘내 사랑 화양리’라는 추적 기사를 통 해 세종대학교 인근 화양리 지역의 변천사를 담아보면 좋겠다는 의견과 구의시장의 변화상을 밀착해 시리즈로 담아보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재개발, 재건축 등 으로 변화하는 동네의 사람들이야기를 마을미디어가 추적기사로 실었으면 좋 겠다는 의견이 눈에 띄었습니다. 모든 행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뒷 풀이! 유난히 쌀쌀했던 날씨에도 불구 하고, 10여명의 사람들이 뚝섬유원지 역 인근 호프집에 모였습니다. 시끌벅 적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고 이야기하 는 사람들을 보며, 난생 처음 마을미디 ▲ 1기 광진마을기자학교 사진 242 어라는 것을 만들고 ‘1기 광진마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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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를 준비하며 이런저런고민으로 고생했던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이 한 순간에 보 상받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외로웠고, 힐링이 필요했고, 공동체를 원하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월 22일에는 ‘1기 광진마을기자학교의 두 번째 이야기’로 《디지털광진》 서울시 광진구 의 홍진기 대표님을 모시고 ‘지역기자에게 듣는 우리 마을과 알기 쉬운 기사작성법’ 에 대해 강의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디지털광진》의 홍진기님은 마을미디어를 시작하기 전부터 지역사회에서 격의 없이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랬기에 마 을미디어라는 마을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조언을 구한 사람도 바로 홍진기 기자님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여러 매체가 존재하는 광진구에서 마을미디어까지 뛰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어들면 경쟁자로 여기지 않으실까 내심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 고 이야기하니 제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 게 되었습니다. “아니, 왜 그런 걱정을 하세요? 사실 제가 《디지털광진》을 처음 시작할 때 꿈꾸었 던 모습이 바로 마을미디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라며 오히려 《광진사람들》을 반갑 게 맞아주셨던 홍진기 기자님이었습니다. 우리 지역에 대해 누구보다 세세히 알고 계셨던 분이었기에 이 날의 강연은 어느 강연보다 귀에 쏙쏙 들어오고 유익했습니다.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고요? 2월 초순, 처음에는 마지못해 끌려 나왔다가 이제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마을기자를 함께 하고 있는 몇 분과 마인드맵(Mind Map) 방식을 활용해 마을신문 만들기를 토 론하였습니다. 참으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가장 뜨거운 쟁점은 마을미디어 《광진 사람들》을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문제였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재정문제였습니다. 인터넷을 넘어서 지역주민들과 실제 만나서 소통할 수 있는 종이신문을 만들자니 재정문제가 딱하니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뜻을 함께하는 분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다채로운 공연을 준비하고 티켓 을 판매하여 재정을 마련하면 어떨까 논의하였는데,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겠다는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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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재정마련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협동조합 설 립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모든 지하철마다 기린 사진에 ‘5명만 모 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라는 광고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고, 잘은 모르지만 협동조합을 추진하면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게 있었습니다. 협동조합 얘기가 나오자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 방향으로 가자고 이야기하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정작 저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협동조합은 기존의 법률에 따라 야 하고,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마을미디어와의 상관성도 막연한 상황 에서,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광진사람들》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 아닌 가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협동조합 설립으로 기울었고, 계속해서 협동조합 설립을 반 대하는 것은 내심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을 오봉석 개인의 사유물로 활용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에 직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마을미디어 협동조 합’이라는 정말 생소한 일을 시작하기로 하였고 발기인 모집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광진구 마을미디어 협동조합 《광진사람들》〉 창립총회 공고’를 내고 설 연휴가 지난 2월22일, 《디지털광진》 홍진기 대표기자님의 초청강연에 이어 〈광진구 마을미디어 협동조합 《광진사람들》〉의 창립총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때까지는 정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광진구 마을미디어협동조 합의 이사장으로 제가 선출되었고, 협동조합의 이사와 감사도 선출하였습니다. 물 론, 정관과 사업계획 등 도 확정하였습니다. 아마 도, ‘마을미디어협동조합’ 이라는 이름의 협동조합 창립총회 개최는 당시까 지는 전국 최초의 사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뜻밖의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 광진구 마을미디어협동조합 창립총회 사진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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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미디어협동조합 1차 설립신고실패기 전국 최초(아마도)로 마을미디어협동조합 창립총회까지 마쳤으니, 기세등등하게 설립신고를 하기 위해 서류를 검토하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각자의 직장 과 단체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짬을 내어 마을미디어를 꾸려가며 상근자 서울시 광진구 한 명 없는 상황에서 협동조합 설립에 필요한 정관 사본부터, 사업계획서, 임원 이 력서, 수입 지출예산서, 조합원 출자좌수를 적은 서류 등까지의 신청서류를 준비하 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각 단체별로 마을사업이 본격화되던 시기라 설립신고 준비를 누구에게 맡 길 처지도 못되었고, 역설적이게도 유일하게 협동조합 설립을 반대했던 제가 거의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모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했던 저는 퇴 근 후 짬짬이 관련 서류들을 준비했는데, 이게 스트레스가 의외로 많았습니다. 물론, 제 성격이 꼼꼼하지 못하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라 남들보다는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서울시청 1층 열린 민원실에 들어서기까지 골머리를 앓아야 했습니다. 마을미디어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은 책임감에 꾸역꾸역 설립신고 서류를 챙겨 들고, 서울시청 1층 열린 민원실내의 협동조합 접수지원 창구를 찾으니 너무도 친 절한 여성분이 접수처에서 상담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습니다. 우리가 준비했던 정 관이 서울시가 권고하는 표준정관례를 참조하지 않고 특수한 정관을 참조했던 사실 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을미디어협동조합의 성격은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 합에 적합하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즉, 처음부터 정관을 표준정관에 기초해서 다시 작성해야 했던 겁니다. 이 뿐이 아니라, 곳곳의 오타와 부실한 사업계획서에 수입지출예산서까지 정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할 지경이었습니다. 씁쓸한 표정으로 서울시청을 걸 어 나오며, ‘아, 누가 5명만 모이면 쉽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고 했던가?’ 하 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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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미디어협동조합 2차 설립신고실패기 마음 같아서는 협동조합 추진을 당장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습 니다. 그러나 이미 창립총회까지 마치고 지역의 케이블방송에까지 이 소식이 보도 된 상황에서 협동조합 설립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습니다. 게 다가, 지역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협동조합 설립은 어떻게 됐냐고 묻는데 정말 어 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표준정관을 참조해 정관을 다시 작성하고, 부실했던 서 류들을 한 장 한 장 다시 챙겼습니다. 3월 21일 광진구 마을미디어협동조합 《광진사 람들》 임시총회를 통해 정관 및 규약을 수정하고 사업계획과 제반 서류들을 검토하 였습니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울시청 열린민원실을 다시 찾았습니다. 협동조합 접수지원 창구의 상담원은 이미 제 얼굴을 기억하고 계셨고, 역시 친절하게 맞아 주 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야 말았습니다. 창립총회와 임시총회 개최와 관련된 서류들을 보시던 상담원님은 등기소에 문의를 하시더니, 협동조합 총회를 두 번 개최한 것으로 등기소에 설립 신고를 하면 통과가 어렵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즉, 창립총회 서류를 하나로 단일화해서 다시 방문해 달라고 하셨습니 다. 상담원님은 무척 미안해하며 설명을 해주셨고, 저는 괜찮다고 대답하였지만 제 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조급한 협동조합 설립에 따른 깨달음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한 가지 사안을 두 번씩 연거푸 실패를 맛보게 되면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2012년 가을부터 일사천리로 달려가던 마을미디어 사업에 첫 번째 위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위기의 가장 큰 징후는 바로 의욕상실이었습니다. 기사를 쓰기도 싫 고, 사람들 인터뷰를 하기도 싫고, 협동조합은 더더구나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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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사람들에게 이소식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두 번씩 협동조합 설립신고 를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첫 번째 실패 때와는 다르게 격려하는 말들이 들려왔 습니다. “협동조합은 천천히 추진해도 된다.” “그래도, 협동조합에 참여했던 분들께는 일일이 알려 드려야 한다.” 서울시 광진구 야심차게 추진했던 ‘광진구 마을미디어협동조합’은 이제 장기적 과제로 남겨놓게 되었습니다. 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하며 2013년의 초부터 봄까지의 시간을 보내고, 뒤늦은 교 훈을 몇 가지 얻었습니다. 우선은 일반적인 마을사업은 ‘한 사람이 미치고 두 세 사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람이 마지못해 끌려 나오면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법의 영역 안에 들어가는 협동조 합은 차원이 다르다는 교훈입니다. 지하철안의 광고처럼 5명이 모이기만 하면 협동 조합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이 다섯 사람이 만들고자 하는 협동조합에 대해 충분 히 공부하고 뜻을 모아 나가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협동조합의 주체가 되려는 사람이 협동조합을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추진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교훈입니다. 내 자신은 반신반의하면서 대세에 따라 협동조합을 추진했던 결과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창피함이었습니 다. 협동조합의 주체가 되려는 사람이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 있게 해당 협동조합 을 설명할 수 있을 때라야 추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으로는 단순히 재정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협동조합을 추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사실, 마을미디어협동조합을 추진했던 처음의 고민은 재정문 제를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것이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마을미디어와 협동조 합의 상관성에 대한 충분한 협의 없이 단순히 재정문제 해결책으로 협동조합을 추 진했던 결과가 좋게 나올 리가 없었겠지요. 어느 날, 서울시의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다는 기자 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마을미디어협동조합에 대한 소식을 듣고 전화했습니다. 다시 설립을 추진하신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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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면, 설립 과정의어려움까지 포함해서 기사로 작성하고 싶은데요?” 서울시의 뉴스레터에 비중 있게 나온다는 귀띔에 마음이 조금은 흔들렸지만, 이 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지금은 좀 쉬고 싶어요……. 마을 사업이란 게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 협동조합 추진하면서 그 재미를 잃어버렸거든요……” 대한민국 마을공동체 최고의 인터뷰어가 되고 싶다! 지금은 인기가 좀 시들해 졌지만, 강호동씨가 진행하는 MBC방송의 무릎팍도사를 보며 “우와~ 어떻게 저런 진솔한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가 있을까?” 하며 경외의 눈빛으로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나름 한국사회에서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무릎팍 도사 강호동씨 앞에만 앉으면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까지 눈물을 흘리며 쏟아내는 것을 보고, 인터뷰어로서의 강호동씨에 대해 놀라워했습니다. 그리곤 생각했습니다. ‘나도 강호동씨처럼 마을공동체 최고의 인터뷰어가 되어 보고 싶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의 ‘people 人 광진’ 코너를 통해 지역의 사람들과 여러 번 인터뷰를 하였지만, 단연 최고의 인터뷰를 꼽으라면 바로 ‘돈키호테 윤여운님’과 의 인터뷰입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내과의사인 윤여운님은 흔히 젊은 사람들의 상근직으로 인 식되는 광진주민연대의 사무처장으로 2013년 봄 지역사회에 돌아왔습니다. 나름, 왕년에는 주민의원 원장부터 각종 단체의 대표직을 수행했던 윤여운님이 어찌 보면 실무자급이라 할 수 있는 한 단체의 사무처장을 맡게 된 계기가 궁금했습니다. 건국대학교 후문의 작은 서점에서 만난 윤여운님과 인터뷰를 하며 든 생각은 또 한사람의 박원순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 기에 우리가 믿고 있는 마을공동체는 실현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 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 후유증은 길게 갔습니다. 마치,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있는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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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듯이 매일 그사람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 은 금방이지만, 이 내용을 글로 옮기는 것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 다. 그 사람의 말투, 눈빛, 표정까지를 마을미디어를 통해 생생하게 지역주민들에 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인터뷰의 내용을 정리해서 기사를 완성하기까지는 무려 열흘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서울시 광진구 ‘의사가 되어서도 와 달라’는 철거민과의 25년 전 약속을 지키는 돈키호테, 윤여운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Q. 의사라는 직업의 일과 시민단체 사무처장이라는 일, 두 가지의 일을 하시는 셈인 데 힘들지 않으신지요?   윤여운 : 원래는 주 2일 정도를 지역단체에서 일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해보니 그렇게는 못하겠더라구요……. 지금은, 경기도 안산의 한 정형외 과에서 오전에 내과 진료를 보고, 오후에 광진주민연대의 일을 보고 있습니 다. 두 가지의 일을 같이 하다 보니, 주민연대의 일을 세세히 모르는 단점이 있는 반면, 주민연대라는 단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플러스 요인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의료와 지역운동이라는 두 가지 영역의 일을 하면서, 한 쪽 의 경험이 다른 쪽에 활용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흔히, ‘천재라는 것도 여러 분야의 연 관성을 잘 찾아내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여러 경험의 장점이 분명 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까지는 북한 의료지원 단체인 ‘어 린이의약품지원본부’의 일을 주로 하 였고요, 올해부터는 지역사회의 일을 위해 이 일의 비중을 줄였습니다. ▲ 광진주민연대 윤여운 사무처장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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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성동(광진)지역에 처음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윤여운 : 예, 제가 시간 약속부터 시작해서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인데요……. 특별한 약속이 있었어요. 예전, 80년대 목동이 강제철거되기 전에 진료활동을 갔었던 적이 있는데, 이 때 주민들이 저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는 거예요……. “학생! 지금 이렇게 와서 도와주는 것도 고마운데, 이다음에 의사가 되어서도 찾아주면 정말 고맙겠어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레지던트 시절 찾은 곳이 바로 성동구지역이었습니다. Q. 3년여 만에 지역사회에 돌아오셔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   윤여운 : 지금의 상황이 한 마디로는 표현하기 어려운데, 과거에 비해 전문화 된 영역이 생겼고 서울시의 자극에 힘입어 주민들과의 다양한 사업이 시도되 고 있습니다. 반면, 지역사회 전체의 변화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최근 드는 생각은 전문적 영역의 지역사업을 ‘왜’ 하는 건지에 대해 희미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얼마 전, 주민연대의 한 회원에게 이에 대한 따끔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요. 자칫, 우리도 일본식 시민운동처럼 흘러가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일 본은 사실 마을만들기 운동의 시초였거든요. 15년 전쯤, 우리나라에 소개되기 도 했지요. 엄청난 협동조합의 인프라와 인권운동 등 각기의 전문적 시민운동 은 매우 뛰어난데, 막상 일본의 우경화와 같은 사회적 문제의 해결에는 미약 하기 그지없거든요. Q. 윤여운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윤여운 : 북한 지역에서 지역공동체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북 한에서는 사회주의라는 공동체 모델이 있고, 남한에서는 자본주의라는 모델 이 있잖습니까. 이 모델을 제가 갖고 있는 ‘의료’라는 전문성을 통해 제3의 새 로운 모델로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남북교류 차원의 모델을 넘어서, 예를 들어 황해도면 황해도 어느 마을에 들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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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가 함께 생활하면서그 지역의 새로운 공동체 모델을 만들어 보고 싶은 꿈 입니다. ^^   Q. 얼마 전, 따님에게 특별한 선물을 받으셨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윤여운 : 복학해서 대학교 2학년인 아들과 대학교 4학년인 딸. 이렇게 두 아이 서울시 광진구 를 두고 있습니다. 딸아이가 얼마 전 유럽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스페인 을 갔다가 한 눈에 아빠와 똑같은 캐릭터를 발견했다며 선물을 사온 거예요. 그게 바로 ‘돈키호테’ 선물입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기사를 완성해 블로그에 올리고 독자들의 반응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딱히, 독자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가까운 마을기자들에게 먼저 물어보았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제목을 너무 잘 뽑으시는 것 같아요. 인물과 내용에 딱 맞는 제목이에요. 그리고 읽히는 글을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정말 과찬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광진주민연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단체 소식지를 만들며 어떻게 하면 읽혀지는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저를 초빙해 강의를 들 어볼까 하는 이야기까지 나누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정성을 다해서 진심 어린 기사를 쓰면 사람들이 감동하고 좋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인터뷰 기 사였습니다. 다음으로, 28년 동안 헌신했던 지역단체의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신 이현주님도 ‘people 人 광진’ 코너를 통해 만났습니다. “언제나 단아한 소녀와 같은 모습, 이현주님”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좋은 제목을 뽑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제목입니다.)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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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먼저, 선생님의살아오신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현주 : 경기도 여주에서 1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져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중학교 선생님이 예치금을 내주셔서 중학교 입학을 할 수 있었으나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업을 중단했어 요. 청량리의 청소년회관이라는 곳에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쳤는데 장 학금으로 마쳤어요. 야간반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남편은 검정고시를 같이 공부했던 친구였는데, 나이 들어 20대에 사귀게 되었 어요. 저는 이상하게 대학생은 철이 없 어 눈에 안 들었어요. 검정고시부터 함 께 공부했던 지금의 남편이 저를 이해 해줄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에 사귀게 되었지요. 연애를 계속하다가 1990년 스물여덟 살 에 결혼을 했어요. 신혼집은 망우동에 ▲ 언제나 단아한 소녀와 같은 이현주님 서 살다가 성동구로 이사를 왔습니다. Q. 주민의원을 거쳐 늘푸른돌봄센타에서 일을 하시며 느끼신 게 많을 텐데요.   이현주 : 요양보호사, 산후관리사, 장애인활동보조인 등으로 불리는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계세요. 이 분들은 고용이 불안정하고 다 시간급제이기 때문에 돌보던 사람이 사고가 생기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직장을 잃게 돼요. 그리 고 몸으로 하는 일이라 근골격계 질환이 많고요, 대인 서비스직이다 보니 감 정노동이나 감정스트레스가 매우 심해요. 그런데, 기껏해야 가사도우미 정도로 취급되는 사회적 인식이 큰 문제예요. Q. 선생님의 송별회때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현주 : 네, 지난 5월 29일 사직원을 내고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잠도 잘 안 오고 앞으로 내 삶을 지탱하는 게 뭘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건 아마도 삶속 에서 만난 사람들의 힘일 것 같아요.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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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공부했던시절의 경험이 제 삶의 기본이었고, 힘든 시기 제일 힘이 되었던 게 건강소모임 사람들이었어요. 중년 여성들의 살아가는 모 습들이 저를 잘 버티게 했던 힘이었던 것 같아요. Q. 해남에서 농사짓는 게 꿈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서울시 광진구   이현주 : 제가 지금 쉰한 살인데, 예전부터 쉰 살이 넘으면 여유롭게 생활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다른 삶으로 전환하고 싶어요. 농촌에 대한 환상이랄까. 10년 후에는 해남에 정착하는 게 꿈입니다. 3년쯤 정착하면 나름대로 도시 사 람들이 해남에 왔을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키웠듯이, 큰 딸이 애를 낳으면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봐줄 생각이에요. 저는 노인의 중요한 역할이 손자 양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찌 보면, 적정한 선에서의 노후대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딸도 일하는 여성으로 살았으면 해요. Q. 끝으로 마을신문 《광진사람들》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현주 : 마을 곳곳에서 훌륭한 일들을 하시는 분들의 따뜻함이 흐르는 이야 기를 실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요양보호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싣는 것 도 좋을 듯합니다. 이현주님께 28년 동안 헌신했던 지역단체 일을 정리하는 소감을 묻자,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빛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저의 마음도 함 께 흔들렸습니다. 이현주님이 회상하는 지난 28년의 세월에 대한 감정이 인터뷰어 인 제게도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현주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 며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습니다. 언젠가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상대의 감정이 내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 때가 바로 마을미디어 일을 그만 둘 때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여름, 박원순 서울시장님이 광진구를 1박 2일 동안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에 박원순 시장님께 자신 있게 말씀드렸습니다.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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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대한민국 최고의마을공동체 인터뷰어가 되는 게 꿈입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에서 박원순 시장님을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박 시장님은 함께 있던 사람들과 박수를 쳐주시며 흔쾌히 인터뷰 요청을 수락해 주셨습니다. 시장님과 마을미디어의 단독인터뷰는 정말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푸르른 5월, 《광진사람들》 종이신문 준비호가 태어나다! 마을미디어협동조합 추진 실패의 아픔을 딛고, 2013년 광진구청의 마을공동체 주 민제안사업에 응모하여 연간 280만 원이라는 값진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소규모의 지원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협동조합을 추진하면서 얻은 상처가 컸 던 만큼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무엇보다 지역 내의 다른 단체, 모임들과 함께 마을 공동체 사업을 벌려 나갈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5월 24일, 마을신문 준비를 위한 편집회의를 갖고 광진마을네트워크의 창립총회 및 마을파티가 예정되어 있는 5월 31일까지 준비호를 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1주 일이라는 다소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축적한 기사들이 있었고 4면으로 간소 하게 발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당일까지 준비호를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종이신문 《광진 사람들》 준비호는 광진구 화양동주민센 터 1층에 위치한 씨앗카페 ‘느티’에서 지 역주민들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1면에는 창간사와 《광진사람들》의 계 획이 담겨 있고, 2면에는 마을기자들에 대한 소개를 실었고, 3면에는 ‘PEOPLE 人 광진’ 첫 번째 편으로 광진주민연대 윤여운 사무처장님의 진솔한 인터뷰 내 용이, 4면에는 ‘우리마을 소식’ 코너를 담 았습니다. ▲ 종이신문 《광진사람들》 창간준비호 254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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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호를 발행하고 가장많이들은 이야기는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제발 편집에 신경을 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처음으로 종이신문을 만들다 보니, 편집디자이너를 따로 섭외하지 못하고 한글문서에 직접 편집을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슨 초등 학교 학급신문과 같은 수준의 편집이 나왔지요. 편집에 신경 써 달라는 이야기는 고 서울시 광진구 마웠지만, 그래도 듣는 마음은 씁쓸했답니다. 국내최초 인물중심 마을신문 《광진사람들》을 창간하다! 2013년 7월10일, 마침내 국내 최초(?) 인물 중심의 마을신문 《광진사람들》을 창간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하였습니다. 기존의 기사중심의 지역 언론과 차별성을 두면서도 마을공동체의 취 지와 방향에 맞는 마을미디어를 추구하고자 사람(인물)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마 을신문을 드디어 창간하였습니다. ▲종이신문 《광진사람들》 창간호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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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창간 준비호때 가장 많이 들었던 편집에 대한 비판을 고려하여 한 마을기 자님의 추천을 받아 전문 편집디자이너의 편집을 거쳤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을신 문을 받아보는 분들이 한결같이 “와~ 신문 예쁘게 편집됐네요.^^” 하며 반갑게 받 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타블로이드판에 8면으로 발행해 신문의 무게감을 더했습니다. 그제야, 사 람들로부터 “고생했네요”라는 말을 듣게 되어 나름 감개무량했습니다. 신문의 내용은 인물중심의 마을 신문답게 지역의 마을공동체 현장에서 만난 세 분의 인터뷰를 4면에 걸쳐 비중 있게 실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에서 발행한 《서울, 마을을 품다》라는 책을 읽은 광진 청년들의 유쾌한 수다 토크를 재미있게 담았습니 다. 함께 광진마을공동체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단체에 부탁하여 마을신문 창간 축하글을 1면과 2면에 걸쳐 실어 앞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만드는 마을신문이 될 것 을 표방하기도 하였습니다. 막상, 마을신문 창간호를 발행하고 나니 제 자신 스스로가 생각해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2년 가을, 처음 마을미디어를 구상할 때 막연하게 종이신문 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였으나, 실제로 이렇게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될 줄은 제 자신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마을미디어 얼마나 가겠어?’ 라고 생각했던 분들도 차츰 《광진사람들》을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흔히, ‘無에서 有를 창조한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듯 싶었습니다. 낯설고 생소하기만 했던 마을미디어라는 것을 처음 시작해서 마을 기자학교를 개최하고, 창간준비호에 이어 종이신문 창간호까지 발행했으니 말 입니다. ◀ 을신문 광진사람들 마 창간기념식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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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을의 관계를 넘어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공동체를 향해 이제야 신문다운 마을신문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안고 7월19일, 마을신문 《광진사 람들》의 창간기념식을 광진구 화양동주민센터에서 개최하였습니다. 창간기념식에는 지역사회의 여러 단체와 모임의 분들을 초청하였고, 구청장님께 서울시 광진구 축사도 부탁드렸으며, 마을기자들이 손수 준비한 ‘우리마을 뉘~우스’도 한참 연습 중이었습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잘 진행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청과의 관계에서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구청장님의 축사를 요청한 뒤 창간기념식의 준비과정을 구청과 협의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상 상도 못했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마을신문이라면서 동네소식은 없고 왜 인터뷰 기사만 있는 것인가요? 마을신문 이면 마을기자들이 작성해야 하는데 발행인 혼자 다 만든 건 아닌가요? 부적절한 사람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한 것은 아닌가요? 신문이 되려면 정기간행물 등록신고 를 해야 배포할 수 있는 게 아닌가요?” 그야말로 저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들이었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한 순간에 허물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일종의 모욕감을 느꼈지만, 끝내 참고 하 나하나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구청을 나와 마을기자 들과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창간기념식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구청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에 와있음을 마을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구했습니다. 어느 마을기자는 그동안 구청에서 받았던 지원금을 모두 반납하고, 우리 자력으로 마을신문을 만들 자고 했고, 당시의 제 마음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많았습니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면서 구청과 함께 하는 것 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인데, 이번 일로 구청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것은 지역주민 들에게 무책임하게 비칠 수도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결론은 나질 않았고, 날짜는 다가와 창간기념식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1시간 남짓한 기념식을 의례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이 답답한 마음을 풀고 우리 의 진정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발행인의 인사말 대 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윤도현의 ‘너를 보내고’를 연습해서 불렀는데, 그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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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렇게 고음일 줄은몰랐습니다. 오전 11시에 부르는 윤도현의 노랫소리에 참석한 사 람들은 처음에는 놀라다가 나중에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구청에서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2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해 마을신문의 창 간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습니다. 두 마을기자가 정성스레 준비한 ‘우리마을 뉘~ 우스’에서는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습니다. 창간기념식을 잘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구청과의 풀리지 않은 숙제에 다시 직 면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구청의 주민제안사업을 반납하고 우리의 자력으로 마을 신문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약속된 연말까지 구청과 적절한 타협을 통해 마을신문 을 지속할 것인가?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마을공동체에 관련된 일이었기 때 문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마을공동체는 세대와 종교, 정당, 빈부, 남녀, 민관 등의 차이를 모두 넘어서는 가장 광범위한 공동체인데, 이 정도의 사안으로 구청과 등을 진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이윽고, 구청과의 타협을 통해 마을신문을 적게 발행하고 마을기자학교를 충실 히 진행하는 것으로 사업계획을 변경하였습니다. 애초, 매달 발행하려던 마을신문 의 계획은 수정되었지만 그래도 2기 마을기자학교를 통해 새로 만나게 될 마을기자 들과 함께 더 알찬 마을신문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구청에 계신 분들은 분명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았겠지만, 민간의 영역에서 마을 사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분명 ‘갑’과 ‘을’의 관계로 느껴졌습니다. 박원순 서울 시장님을 비롯해 많은 마을 강사님들이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 이었습니다. 관과 민의 관계가 ‘갑’과 ‘을’의 관계로 형성되면 그 마을사업은 망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시작한 구청의 마을공동체 주민제안사업이었기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관은 물론이고, 민도 준비부족인 상태에서 각종 마을공동체 사업을 벌이려니 손과 발이 따로 놀 수밖에요. 구청에 대해 서운함을 가 졌던 첫 마음과 달리 공무원으로서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제가 너무 준비부족이었음을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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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 마을기자를모집합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요? 지난겨울의 1기 마을기자학교를 통해서 탄생한 마을기자들은 주로 지역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직장에 다니는 젊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울시 광진구 마을기사를 작성하고 마을신문을 만드는 데 생각처럼 시간과 정성을 쏟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기 마을기자학교를 준비하면서는 기자학교의 시간대를 오후로 잡 았습니다. 낮 시간에 마을기자학교에 참석할 수 있는 분들이라면, 앞으로 함께 마을기사를 작성하고 마을신문을 만드는 데 시간을 내실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시간대에 참석할 수 있는 분들은 주로 주부나 어르신들일 텐데 이 분들은 젊은 층 직장인에 비해 마을 골목골목의 소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다는 장점도 고려했 습니다. 사람들이 찾기 쉬운 주민자치센터의 회의실을 대여하고, 웹포스트를 만들고, 사 람들을 만나며 마을기자를 모집하였습니다. 예전 어느 선배에게 배운 게 아직까지 도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행사를 준비할 때에 일시와 장소가 결정되면 행사의 50퍼센트는 준비한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몇 차례의 변경 끝에 일시와 장소를 결정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추석연휴도 있고 해서 느긋하게 마을기자학교를 준비하려다 보니 약속 된 날짜가 코앞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강사를 섭외하려는데, 마음에 두었 던 강사님들은 일정이 맞지를 않았습니다. 편집국장의 소개를 통해 2강 기사쓰기 강좌의 강사를 섭외하고, 지역단체를 통해 3강 사진 찍기 강좌의 강사까지는 어렵 사리 섭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강 ‘마을공동체와 마을미디어’ 주제의 강사 섭외가 벽에 부딪혔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일정을 맞출 수 있는 강사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늦추다가는 전체 일정에 차질이 생길 상황이라, 제가 결심을 하고 1강 강의를 해보 겠다고 편집국장에게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외부강사가 좋지 않겠느냐는 마을기자 도 있었지만, 편집국장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 동의하였습니다. 마을생태계 조성을 위한 청년활동가 한 분께 2기 마을기자학교의 웹포스트를 부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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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하였는데 예쁘게 디자인되었습니다.웹포스트를 인터넷 이곳저곳에 홍보하고, 이를 출력하여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PEOPLE 人 광진’ 코너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는 배명숙님을 찾아뵈었더니, 광 진정보도서관에서 함께 글쓰기 수업을 하는 분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 분들은 50대 이상의 연령층이어서 오후 시간에 시간 내기가 편했고, 글쓰기 수업을 통해 만난 분들이라 마을기자학교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배명숙님이 소개해 주신 분 들 중 4명 정도가 기자학교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편집국장님과 함께 광진구청앞과 주요 지하철 역 앞, 그리고, 주민자치센터앞 등 에 현수막을 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전화 한 통도 없어서, 현수막을 괜히 달았나 싶 었습니다. 그런데 몇 일후부터 문의전화가 오기 시작하는데, 한결 같이 주민자치센 터앞의 현수막을 보고 전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깨달은 것이 마을공동 체와 같이 주민대상의 사업을 할 때에는 대로변 보다는 동네안의 주민자치센터앞에 현수막을 다는 것이 훨씬 홍보효과가 좋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역사적인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를 앞두고 과연 몇 명이나 참석할지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습니다. 때마침 큰 아이 운동회 날이라 운동회를 마치고 부랴부랴 주민자치센터 회의실 로 들어섰더니, 편집국장이 열심히 빔프로젝트를 설치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실내 현수막을 달고 행사 준비를 하는데, 한 분 한 분 주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제 게는 너무나 소중한 10명의 주민들이 마을기자학교 1강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이 날, 10명의 신입마을기자들이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제 카카오톡 프로필의 상태메시지를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 조별모임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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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시간가량 ‘마을공동체와 마을미디어’를주제로 혼신의 힘을 다해 강의를 하였습 니다. 대상이 주로 50대 이상 연령이 높은 분들이라 새마을운동과 마을공동체를 비 교하기도 하고, 우리 주변의 실례를 들기도 하면서 최대한 쉽게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강의 중간 중간 폭소가 터지는 것으로 보아 지루하지는 않 았던 것 같습니다. 서울시 광진구 하이라이트는 강의 후 자기소개 시간이었습니다. 둥글게 마주보고 앉아 10여명 의 사람들이 ‘나와 우리 마을’을 주제로 스케치북에 쓴 것을 발표하였는데, 그렇게 감동적일 수 없었습니다. 60여년 삶의 경험이 묻어있는 생생한 이야기들을 너무도 솔직하게 발표해 주었습니다. 이때에 비로소 준비과정은 힘들었지만, 2기 마을기자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학교를 개최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주일 후, 2강은 《오마이뉴스》 최지용 기자의 ‘쉽게 배우는 기사 쓰기’ 강좌를 들 었습니다. 직접 취재현장에서 보고 느끼신 내용을 주민들에게 알기 쉽게 알리기 위 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이날, 자양골목시장에서 떡집을 하시는 아주 머니께서 맛있는 시루떡을 들고 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12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마을기자학교 두 번째 날에는 강의 후 2개의 조로 나누 어 ‘각자 생각한 우리 마을 기사거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최고령 신 입마을기자이신 75세의 어르신께서는 동네의 우범지대로 방치된 종합시장을 취재 하고 싶다고 하셨고, 떡집 아주머니는 자양골목시장의 쉼터 공사가 진척되지 않는 것을 취재하시겠다고 발표하셨습니다. 신입마을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1기 마을기자들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 짐 을 느꼈습니다. 드디어, 10월 16일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의 3강 및 수료식이 열렸습니다. 이 날 에는 최영교 마을 강사의 사진 찍기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사님은 예전 흑백사진을 한 장씩 보여 주셨는데, 나이 드신 예비마을기자님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 강연 후, 예비마을기자들이 준비한 마을기사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75세 고령의 마을기자께서 USB에 손수 작성하신 기사와 사진을 담아 오신 것을 보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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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기념사진 고 깜짝 놀랐습니다. 미리 이메일로 기사와 사진을 보내주신 분들도 계셨고, 쑥스 럽다며 종이에 기사를 써오신 분도 계셨습니다. 떡집 아주머니는 이 날도 맛있는 떡 을 들고 오셨는데, 바빠서 기사를 못써왔다고 마을기자 못할 거 같다고 하셔서 모두 가 만류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진지하면서도 한편 왁자지껄한 마을기사 발표를 마치고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의 수료식이 열렸습니다. 한 분 한 분께 수료증을 전달해 드리고, 전체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3강과 수료 식을 마무리했습니다. 3.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의 내일은? 겨울에는 광진 마을미디어문화교실로! 2기 광진마을기자학교를 진행하면서 편집기자들과 몇 차례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회의에서는 마을기자학교를 점검하는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향후 《광진사람들》 계 획에 대한 논의도 하였습니다. 소중하게 만난 2기 마을기자들과의 인연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올 12월 까지로 예정되어 있는 광진구청 주민제안사업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지, 그리 고 내년부터는 어떻게 《광진사람들》을 운영해 나갈까 등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우선, 2기 마을기자들과의 인연을 이어나가고 구청의 주민제안사업을 연말까지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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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 짓기 위해서몇 가자 사업계획을 세웠습니다. 첫 째는 마을신문 2호를 11월 5일, 《광진사람들》 창간 1주년에 맞추어 내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순 전히 2기 마을기자들이 직접 취재한 내용들로 가득 채울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마 을기자들을 2개의 조로 나누어 조모임과 워크숍을 하며 기자들이 서로 도와 기사를 완성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서울시 광진구 그리고 쑥스럽지만 《광진사람들》 창간 1주년이 되는 11월 5일에 ‘창간 1주년 기념 워크숍’을 지역 내 북카페에서 조촐하게나마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는 마을신문 2호가 첫 선을 보이고, 2기 마을기자들에게 마을기자증을 나누어 드릴 생각입니다. 워크숍에 맞는 강연 또는 토크쇼도 준비해볼까 합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12월 초순에는 광진마을미디어문화교실을 개최하려고 합니다. 두 달 간격으로 마을기자학교를 또 개최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강좌형 식의 마을미디어문화교실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개 강좌는 오후 시간대에 진행해서 2기 마을기자들과 주민들이 참석할 수 있게 하고, 1개 강좌는 저녁시간대 로 잡아서 직장인들이 퇴근 후 들을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마을신문 3호는 1기 마을기자들과 2기 마을기자들이 합심해서 12월말 발행할 예 정입니다. 2013년 말에도 ‘광진 올해의 사자성어’를 공모해 볼까 합니다. 2012년에 비해 올해에는 얼마나 더 긍정적인 사자성어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또한 몇 년이 흐 른 후 《광진사람들》에서 공모한 매년의 사자성어를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 라 생각해 봅니다. 걱정은 내년 2014년 이후 《광진사람들》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 입니다. 사실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 문제로 머리가 좀 아픕니다. 그나마 편 집기자들과 나눈 얘기는 내년에는 마을공동체공모사업을 서울시와 했으면 합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올해에는 마을신문에 대해 구청과의 의견차이가 발생했던 만 큼, 내년에는 서울시와 사업을 벌이는 게 좋겠다는 다수의 의견이었습니다. 서울시 의 마을공동체사업이 지원규모는 더 크면서 자율성이 보장되고 마을미디어센터 등 을 통한 여러 지원이 많은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서울시의 공모사업이 주로 봄철에 시작되기 때문에 그 때까지의 공백기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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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발생하는 문제입니다.그리고 서울시의 공모사업에 꼭 《광진사람들》이 채택된다 는 보장도 없는 것이기에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실정입니 다. 이 문제를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2013년 초부터 시도했던 협동조합 추진이 2차례나 실패했던 경험이 있는 상황에 서 또 다시 협동조합을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큽니다. 아니면, 《광진사람들》의 회원 을 모집해서 매월 일정금액의 회비나 후원금을 모금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을 것 입니다. 현재로서는 이 방식이 가장 유력할 듯싶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사람 들에게 괜한 부담을 지우는 것은 아닌지, 마을신문을 정기적으로 발행할 정도의 안 정적인 수입구조가 마련될지 고민이 됩니다. 《광진사람들》을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듯이 걱정은 줄이고 실천을 앞세울 생각입 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마을공동체사업이 아니기에 이것저것 걱정하기 보다는 다 만 몇 명의 회원과 소액의 후원금이 모이더라도 그에 맞게 마을신문을 만들어 나가 면 점차 확대되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희일비 NO! 천천히 꾸준히 웃으면서 YES! 1년이라는 시간동안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의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일희일비하 지 말고, 천천히 웃으면서 꾸준히 마을사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협동 조합이 대세라고 섣부르게 추진했다가 실패를 맛보고, 협동조합 설립에 실패했다 고 의욕상실증에 빠진 것은 일희일비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리고 구청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감정대로 대응하지 않고 천천히 웃 으면서 일을 풀어 나간 것은 광진구지역 전체의 마을공동체를 위해 바람직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마을공동체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어느 날, 운전을 하면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 있던 차가 단 몇 초를 기다 리지 못한 채 경적을 울려대는 것을 보면서였습니다. ‘우리는 왜 하루하루의 일상을 이처럼 급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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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진정 놓치고살아가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지금 여기서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건지라는 물음의 답을 찾다가 처음 방문한 곳이 성당이었고, 그 다음이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였습니다.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들으며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시 광진구 센터의 명칭 그대로, 마을공동체를 복원해 나가는 것이 제 물음에 대한 해답이었음 을 고백합니다. 마을미디어는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아름 답게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도구일 것입니다. 처음에는 인터넷 블로그로 시작해서 지금은 종이신문을 제작하고, 마을기자학교 를 진행하는 정도이지만, 더 나아가서는 마을의 라디오방송을 할 수도 있고 영상분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야로까지 나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의 열정과 체력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 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이 마흔을 맞이하며 새롭게 시작한 마을미디어라는 일 이 앞으로 남은 생의 활력을 불어넣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의 마을공동체 인터뷰어가 되고 싶다는 꿈은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내가 쓴 인터뷰 기사에 독자들이 함께 웃고 울고 감동을 느낀다면, 이보다 더한 기쁨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요? 4. 또 하나의 지역 언론 《디지털광진》 돌아보기 “나타났다! 홍박사!” 광진구의 지역사회에서 어떤 이슈가 발생하면 바람처럼 나타나는 홍박사님이 계십 니다. 이름하여, 《디지털광진》의 홍진기 기자님. 2000년, 전국 최초로 구 단위 인터넷신문을 창간하여 10여년이 넘는 세월을 광 진구라는 지역사회에서 인터넷언론 활동을 하셨던 홍진기 대표기자님은 지역 내 누 구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정보통임과 동시에 지역사회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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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이기도 합니다. 이제는누구든지 지역사회의 궁금한 점이 생기면 홍반장님을 먼 저 찾을 정도로 인지도와 신뢰도가 형성되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 니다. 홍 기자님도 성동지역(광진구와 성동구가 분구되기 이전)에서 지역 활동을 하시며 이러저러한 경험을 한 후에, 지역사회에 좀 더 밀착한 활동을 위해 《디지털 광진》을 창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광진구에는 《디지털광진》 외에도 여러 지역 언론이 함께 있는데, 굳이 《디 지털광진》을 주목하여 본 것은 창간준비부터 성장까지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을 맞 춘 지역 언론이 바로 《디지털광진》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이 표방하는 ‘주민이 마을기자다’라는 슬로건도 《디지털 광진》의 창간정신과 부합하는 것이었기에 《디지털광진》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돌아보았습니다. 《디지털광진》이 걸어온 길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거리에서도 각종 언론의 기사를 검 색하는 풍경이 익숙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휴대하고 있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 년밖에 안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살아가 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0년에도 그러했습니다. 당시 정보화시대라는 표현은 많이 하였지만, 인터넷을 통해 언론기사를 검색해 보는 세상이 올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창간된 해가 바 로 2000년이었습니다. 같은 해에 아무도 주목하지 못했던 인터넷신문이 창간되었 습니다. 바로 자치구단위 최초의 인터넷신문인 《디지털광진》입니다. 2003년 《미디어오늘》의 〈인터넷 지역 언론 뿌리내린다〉 기사 중에는 “시 단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디지털성남일보》, 《수원신문닷컴》, 《군산신문》, 《부천닷컴》, 《디지털김제시대》 등이 있으며 유일한 구 단위 인터넷신문인 《광진닷컴》이 있다”라 는 내용이 나옵니다.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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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오마이뉴스》의 〈지역민주화실현 기치로 인터넷 《은평시민신문》 창간〉 기사 중에는 “서울에서 구 단위의 인터넷신문이 창간된 것은 광진구의 《디지털광 진》에 이어 《은평시민신문》이 두 번째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디지털광진》은 2000년 창간을 하면서 정보화시대와 인터넷지역신문의 관계를 서울시 광진구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지역정보를 신속히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정보민주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셋째, 참여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합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넷째,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지역주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신문, 지역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신문, 인터넷 지역신문의 미래는 주민들의 참여에 달려 있다고 하는 《디지털광진》의 탄생 은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디지털광진》이 지역사회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성수여중 폭력사건’이라는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 이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광진》이 품고 있던 지역사회 변화에 대한 꿈이 있었기에 우연한 기회를 전국적인 이슈로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성수여중 폭력사건 이후 아차산 녹지보전, 광진구의회 파행운영, 광진정보도서관의 인선문제 등의 기사를 통해 올 바른 지역여론 형성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제일 먼저 찾아보는 언론이 되었습니다. 《디지털광진》의 창간이후 지역사회의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유언 비어가 사라지고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딱히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시기에는 각종 유언비어가 지역사회에 유포되었는데, 《디지털광진》의 객관적인 보도가 자리 잡은 후부터 이러한 관행이 사라지기 시작했 습니다. 둘째는 지역단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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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지역단체의 기자회견이나주장들이 지역 언론에 반영되는 것이 일반적이 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디지털광진》이 밀착취재한 지역 내의 부조리한 사항들에 대해 지역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해결에 앞장서 나가 면서부터 지역단체의 목소리를 지역 언론이 반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셋째는 구청, 구의회 등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디지털광진》이 주목 해온 인사비리문제, 구의원 해외연수문제 등의 기사가 지역사회에 반향을 불러일 으키면서 구청, 구의회의 좀 더 투명하고 신뢰 있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끝으로, 지역사회의 변화에 대한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대담 론 중심으로 고민하던 지역단체들이 《디지털광진》의 창간 이후 다양한 지역사안을 접하면서 지역사회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를 변화시 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장 정보가 없어 막연했던 지역사회에 하나 둘 정보가 생기면서 더욱 애정을 갖고 지역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지역단체들 이 헌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인터뷰 : 《디지털광진》 홍진기 대표 청명한 가을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운 2013년 9월 초순의 어느 오후, 광진구 군자동 에 위치한 세종대학교 교정에서 《디지털광진》의 홍진기 대표를 만났습니다. 홍진기님은 광진구의 마당발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분입니다. 2000년 《디지털광 진》 창간 이후 13년 동안 광진구에서만 지역인터넷 신문 한 길을 걸어온 분이기 때문입니다. 취재현장에 서 만날 때는 냉철한 기자 같지만, 편한 자리에서 만 날 때는 동네 형님 같은 분, 홍진기님과의 대화 속으 로 안내합니다. Q. 《디지털광진》을 시작하시기 전에는 지역운동을 하셨 다고 들었습니다. ▲ 《디지털광진》 홍진기 대표 268 홍진기 : 네, 지역운동으로 이 지역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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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지역 언론은서울보다는 지방에 많았는데, 그에 앞서 광진구의 시민사회 역사 를 먼저 살펴 보는 게 중요할거 같아요. 1980년대에는 성수동(광진구의 옛 노유 1, 2동을 포함)이 서울 제2의 공단이었거든 요. 구로공단 다음으로요. 여기에 각종 운동역량이 집중되어 있었어요. 성수교회도 이때 역할을 했고, 야학도 있었어요. 노동야학과 검정고시반 이렇게 있었지요. 지 서울시 광진구 금 자양4동의 새날을여는지역사회교육센터도 이전의 한겨레, 청송야학이 합쳐진 것이지요. 그러다가, 성동광진민주단체협의회가 생겼는데 민주화와 통일을 지향하 는 단체들이 모여 지역에서 활동했습니다. 주로 통일관련 사업과 노동운동지원, 공 정선거 감시활동 등을 했지요. 1995년에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나름의 역할을 위 해 노력했습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그러다가 1999년 말 저를 비롯한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지역 언론을 고민했 고 때마침 인터넷이 초기 보급되던 시기여서 2000년 초, 인터넷신문 《디지털광진》 을 창간했습니다. 지역의 정보를 알아내고 지역사회에 기여하자는 마음으로 시작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언론을 구축할 시스템이 국내에 거의 없었어요. 겨 우겨우 성남의 한 인터넷 프로그램 업체에 의뢰를 해서 최초로 만들어 보았었죠. 참 고로, 《오마이뉴스》도 2000년에 창간했답니다. 초기에는 편집도 없었고 조악한 수준이었어요. 최근 기사가 위에 뜨고 지난 기사 는 밑으로 내려가는 정도였지요. 당시, 지역의 오프라인 언론은 2종이 있었어요. 월 2회 발행하는 《경동신문》과 월1회 발행하는 《광진신문》이었어요. 아무래도, 인터넷 신문의 인지도가 낮았지요. 저 역시 언론전공자가 아니었기에 여기저기서 배워 나갔습니다. Q. 2000년, 성수여중 폭력사건이 중요했다고 하던데요? 홍진기 : 예, 2000년 6월경 성동구에 위치한 성수여중에서 폭력사건이 발생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제보가 들어온 사건인데, 사회지도층 자녀들이 소위 일진이라는 형 태로 한 학생을 집단폭행한 사건이었어요. 저는 이 사건의 기본적 내용과 더불어 탄원서 내용을 기사로 올렸어요. 그러자, 인터 넷에 난리가 났어요. 인터넷 DAUM 카페가 생겼는데, 회원수가 10만 명이 넘었어요.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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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네티즌들이 흥분을해서 성수여중 홈페이지가 이틀 만에 폐쇄되기도 했고, 가 해자의 아버지가 속해있던 자유총연맹 홈페이지가 하루 만에 다운되기도 했어요. 저는 2주마다 팩트를 정리하는 역할을 했어요. ‘PD수첩’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의 방송에도 보도가 되었지요. 《디지털광진》에는 단 며칠 만에 몇 만 명이 회원 가입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네티즌 들이 폭주하면서 《디지털광진》 홈페이지도 몇 번 다운되었답니다. 당시 피해자 학 부모님은 향후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를 구성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 후, 옥정중학교 폭행사망사건도 발생했었지요. 이 사건은 《디지털광진》이 초기 인터넷 여론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졌고 자유게시판이 폭주해 저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Q. 초기 《디지털광진》을 어떻게 지역사회에 알려 나갔는지요? 홍진기 : 초기에는 현수막이나 포스터로도 《디지털광진》을 홍보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진구의회 모니터링과 취재를 했습니다. 구의회라는 곳은 지역의 현안 이 한 곳으로 모이는 곳이에요. 그래서 이 길목을 잘 잡고 있으면 지역의 정보를 어 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지요. 2000년 11월경 개관한 광진정보도서관은 200~3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 곳인데, 당시 광진구에 이렇다 할 도서관이 없었기에 관심이 모아졌지요. 그런데, 광진구청장이 퇴직공무원을 도서관장으로 앉히고, 구청장 최측근 인사를 사서과장에 앉혔다는 소식을 제보로 알게 되었어요. 법조문을 검토하다 관장은 사 서자격증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정보도서관 인사에 법적 문제가 있음을 기사로 썼습니다. 이에, 지역단체에서는 건국대학교앞 인문사회과학 서점의 심범섭 대표 등이 모여 대책위원회를 구성했지요. 결국, 지역 단체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도서관장과 사서과장이 사퇴를 했습니다. 《디지털광진》이 초기 지역에서 자리 잡는 데에는 이 사건의 영향도 컸습니다. 그 후, 제보자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조심해야할 제보자들도 생겼 는데, 제가 제보자들과 손잡고 다른 사람을 공격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답니다.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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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인사비리문제가 지역사회에서는크게 여론화되었군요? 홍진기 : 2004~2005년경 광진구시설관리공단에 퇴직공무원이 낙하산으로 내려 왔다는 의혹의 인사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구청장 측근들의 자리보전 문제로 보여 졌지요. 서울시 광진구 이때에도 지역 내 공대위가 구성되었어요. 공채가 50퍼센트를 넘어야 한다는 규정 을 어긴 것이었어요. 저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도덕적 문제와 함께 법적인 문 제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디지털광진》의 초기에는 또한 구의원들의 해외연수 문제를 집중 기사화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에서 피켓팅도 많이 하였고, 이를 통해 심의위원회도 생겨났습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니다. 저도 심의위원회에 참여했다가 최근에는 의견이 맞지 않아 사퇴했습니다. Q. 일부에선 인터넷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평도 있던데요? 홍진기 : 초기에는 ‘인터넷에 떴다’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 요. 그래서 광진구의원들은 속성으로 인터넷을 공부하기도 했지요. 자유게시판에 한 구의원을 공격하는 글이 떴었어요. 이를 본 한 보좌관이 대뜸 저 한테 “조기자가 누구요?”라고 묻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디지털광진》에 조씨 성을 가진 기자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조회 수’를 사람 이름으로 착각했던 겁니다. 해당 구의원도 저한테 똑같이 물어봤었어요. 도대체 조회수 기자가 누구냐고요. 초기에는 취재 제한도 많았습니다. 구의회 출입제한도 받아서 구의회 의장에게 항 의하기도 했지요. 저는 어느 정당이냐 보다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역 언론 중에서는 사고를 치는 곳도 많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어요. 《디지털광 진》의 한 기자가 어느 직능단체에 취재를 갔는데 “얼마면 되냐?”고 묻는 사람도 있 었던 거죠. 독자들이 짜릿해 하는 것은 인사문제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디지털광진》의 기사 가 예방적 효과가 되었어요. 이젠, 관공서에서 인사행정을 다룰 때에는 꼭 관련서 류 등을 준비하려 하니까요.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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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디지털광진》을 운영하시면서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홍진기 : 어려운 점은 하루 전날 기사로 비판하고, 다음날 그 사람을 바로 만나 악수 하며 인사하는 게 어려웠어요. 어느 구청장은 저에게 독사라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구청 홈페이지에 두 차례나 사과를 했을 정도이니까요. 《디지털광진》이 정보라는 측면에서 지역운동에 기여하는 바가 많았다고 생각합니 다. 초기에는 지역단체에 포커스를 많이 맞추었는데, 지금은 지역정보의 유통창구 로서의 기능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언비어가 돌다가도 《디지털광진》의 기사에 의 해 정리되는 측면도 있었지요. “《디지털광진》에 떴대”가 정확한 사실의 판가름 역할 을 했답니다. 어찌 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 유언비어가 지역을 지배하던 시대를 《디지털광진》 이 걷어냈다고 자평할 수 있겠습니다. Q. 《디지털광진》의 향후 과제는 무엇일까요? 홍진기 : 《디지털광진》은 배포나 영향력의 문제는 지나갔고, 이제는 향후 양질의 기 사를 얼마나 생산하느냐가 관건일 것 같아요. 한 마디로 네거티브는 가능하나, 포 지티브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의 광진구 방문 기사를 올린 적이 있는데, 반나절 만에 조 회 수 5,000을 넘어서는 거예요. 알고 보니, 박 시장님이 트위터에 《디지털광진》 기 사를 링크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이 사례 또한 《디지털광진》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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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담회 : 《디지털광진》13년의 역사가 남긴 지역사회의 변화는? ■ 일시 : 2013년 9월 26일(목) 오전11시 ■ 장소 : 광진주민연대 3층 회의실 ■ 참석 : 홍진기(《디지털광진》 대표), 김승호(광진마을네트워크 집행위원장/ 광진 서울시 광진구 주민연대 전 대표), 안순종(광진참여네트워크 대표), 오봉석(필자)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 쪽부터 안순종님, 왼 김승호님, 홍진기님 Q. 얼마나 자주 그리고 깊이 있게 《디지털광진》을 보시는지요? 김승호 : 매일 보고 있습니다. 보도자료 형식은 제목만 보고 구의회, 해외연수, 인 사문제 등 관심 있는 내용은 꼼꼼히 보는 편입니다. 《디지털광진》의 기사 중 관심 있는 내용은 저희 단체에서 입장을 내고 이슈화하기도 했습니다. 기사를 유심히 보 는 편이지요. 안순종 : 사안이 있을 때는 집중적으로 들어가 봅니다. 평소엔 월 1~2회 정도 보는 데, 엊그제는 자유게시판 댓글에 관심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습니다. 홍진기 : 저희 《디지털광진》 조회 수에 부침이 큰 편이에요. 지역이슈 기사가 있거 나 선거 시기에는 상당히 많이 들어오고 기사 클릭수도 높습니다. 얼마 전에는 ‘박 원순 시장’ 관련기사가 몇 시간 내에 약 5,000건 조회 수를 기록한 적도 있었습니다.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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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곡 3동 파출소’관련 기사도 조회 수가 급증했던 적이 있는데, 아마도 관련 사건 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안철수씨가 지난 대선 전 건대입구역에 왔을 때도 조회 수 가 하루 만에 만 명이 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안순종 : 지역에서 이슈가 생길 때 우선 드는 생각은 《디지털광진》 밖에 없다는 생 각입니다. 지역 일이 궁금하다 싶으면 《디지털광진》을 봅니다. 이전의 기사내용까 지 보면 해당 사건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광진》에 대한 신뢰도와는 별개로 궁금하면 《디지털광진》을 봅니다. 홍진기 : 궁금한데 기사가 없으면 취재요청을 해주세요. 《디지털광진》 초창기에는 지역단체와 지역사회가 분리되어 있어서 지방자치 문제와 같은 현안과 동떨어져 살 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론을 함께 형성할 수 있음에도 활성화가 부족한 것 같 습니다. Q. 주변에서 느끼는 《디지털광진》은 어떠한지요? 안순종 : 주변도 비슷해요. 내용의 연결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해당 사건의 경과를 볼 수 있으니까 주변 사람들도 신뢰감을 갖는 것 같아요. 김승호 : 일상적으로 보기는 어려우나 이른바 지역 유지 층은 꽤 보는 듯합니다. 홍진기 : 여전히 가능성은 갖고 있으면서 조회 수 등을 보면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공격하는 기사가 있거나 분쟁이 있을 때에는 독자들 의 관심이 높은 편입니다. 일상적으로 주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자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Q. 《디지털광진》 하면 떠오르는 명장면을 꼽는다면? 김승호 : 몇 가지 사건들이 기억에 떠오릅니다. 하나는 시설관리공단에 구청장과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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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의원 측근을 요직에앉힌 사건입니다. 다른 하나는 광진문화원과 관련된 인사비 리 사건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광진구의원 해외 연수 사건과 광진구의회 의정비 인상 사건 등이 떠오릅니다. 《디지털광진》이 없었다면 시민사회 혼자의 힘으로는 지역 이슈화도 힘들고, 해당 정보도 얻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서울시 광진구 안순종 :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할 때, 바람처럼 나타나는 홍반장(홍진기 기자) 생각 이 많이 납니다. 지역 언론이 심층보도를 했기 때문에 지역단체들이 움직일 수 있었 습니다. 저희들에게는 《디지털광진》이 동기유발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기자회견을 하더라도 홍반장님이 나타나면 희희덕 거리며 대충할 수는 없는 것 입니다.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홍진기 : 《디지털광진》이 혼자 부르짖어도 반향이 없으면 한계가 있었을 텐데, 시민 사회가 현장에서 피켓시위도 하고, 주민감사청구 등도 하니까 지역사회를 변화시 킬 수 있었습니다. Q. 만약, 《디지털광진》이 없었다면 시민사회와 광진구는 어땠을까요? 김승호 : 자기 단체 일만 열심히 했을 것입니다. 지역사회 전체가 어떤 흐름으로 갈 지는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내 단체 중심이고, 지역사회에선 사건이 터진 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야 뒷북을 쳤을 것입니다. 안순종 : 사실, 전에는 우리 지역사회의 일에 대한 목적의식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디지털광진》을 통해 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고, 비로소 지역사회 전반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 것 같아요. 만약, 《디지털광진》이 우리지역에 없었다면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있 는 언론을 찾았겠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디지털광진》이라는 지역의 언론이 있어 서 보도할 수 있었다는 게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Q. 2000년 ‘시민이 기자다’라는 모토로 《오마이뉴스》가 창간되었고, 2012년에는 ‘주민이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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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다’라는 모토로 마을미디어《광진사람들》이 창간되었습니다. 2000년에 창간한 《디지 털광진》이 주민기자를 육성하는데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요? 홍진기 : 주체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시도는 했었지요. 개별적 노력도 했고 스스로 주민기자 가입도 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초기에는, 정치인들이 내가 주민기자가 되겠다며 다가오는 게 고민이 있었어요. 칼 럼을 받기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지요. 어느 정도 방향이 맞아야 하는 거니 까요. 그래도, 2000년대 중후반까지는 광진주민연대와의 관계 속에 《디지털광진》을 성장 시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김승호 : 예를 들어, 이번에 진행한 ‘광진주민연대 포럼’의 경우, 제가 기사를 써도 좋은데 기사 쓰기가 어려우니 《디지털광진》의 기사를 퍼서 옮기는 게 더 쉽더라구 요. 일정한 교육 없이 기사를 쓴다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일반인들이 일목요연하 게 기사를 작성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단체 홈페이지에는 내 감정을 실을 수 있으나 《디지털광진》에 주민기자로 글을 쓰 게 되면 객관성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 게 있습니다. 홍진기 : 기사에 감정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지요.^^ 안순종 : 《디지털광진》이 커가는 만큼 주민 기자가 많아지는 게 맞지 않을까요? 예 를 들면, 《디지털광진》의 기본 포맷에서 한 꼭지를 만들어 주민기자들이 올리고 싶 은 것을 올릴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자유게시판과는 다른 개념으로 말입니다. 홍진기 : 자신감 부족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지역은 한 단계 건너면 다 알 수 있는 곳 이기 때문에 기사의 취사선택에서 감정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이라는 어려움이 분명히 있거든요. 해당 이슈에 대해 해당인에게 투고를 요청 하는 방식이 절충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한동안 투고도 뜸했는데, 얘기를 듣다 보니 외부 필진 활성화에도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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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지역 언론과시민사회의 향후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승호 : 지금까지는 문제가 발생하면 후속조치를 하는 형국이었는데, 앞으로는 지 역이슈를 생산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걷고 싶은 거리의 장애인 이동권 문제나 보육문제 등 지역을 바꾸어 나가는 데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가 같이 연구하고, 내용 서울시 광진구 을 생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홍진기 : 김승호님이 중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가 전체적인 합의를 이루는 게 필요할 듯합니다. 예전에는 청원을 하거나, 구의원을 통해 지역 사회에 목소리를 냈지만, 마땅치 않았지요.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이제, 시민사회와 지역 언론이 손을 잡는다면 지역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입 니다. 지속적으로 이슈를 찾는 것이 중요하고 지역사회의 문제와 지방자치에 대한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의 합의가 필요하겠습니다. 목표와 위상에 맞는 현실적 이슈 를 잡아내고 개선방향을 이슈화하면 가능할 듯합니다. 안순종 : 매체는 어느 특정 단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되, 받아쓰는 기사가 아니라 어떤 관점으로 볼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나오며 저는 어릴 적부터 상상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부모님 두 분이 장사를 하시는 터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내성적인 성격 탓 에 밖에 나가서 놀기보다는 그냥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이 런 제가 답답했는지 ‘암사내’라고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부모님께서 는 다른 집처럼 공부하라고 성화를 부리지도 않으셔서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시 간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성격도 서서히 외향적으로 변하고 친구들도 사귀고 세상을 배워 나갔지만, 어릴 적 갖고 있던 상상하기의 취미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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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아홉의 나이에도 그랬지만,작년 서른아홉의 나이에도 40대의 삶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생각이 많았습니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상상력은 한없이 발동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력의 끝자락에서 결심한 일이 바로 마을미디어 《광 진사람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상상력은 이랬습니다. 먼저 인터넷 공간 안에 《광진사람들》을 만들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종이신문을 창간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을기자학교를 몇 차례 개최하여 마을기자들을 육 성한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에게 마을신문을 배포하면서 일종의 후원자인 옴부즈맨 을 모집하고, 마을신문의 뜻에 동의하는 상점에는 고정 배포처라는 의미의 그루터 기 현판을 달아 드린다. 1년 동안 지역주민 100여명을 인터뷰하여 이 분들의 삶을 《광진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한다. 창간 1주년이 되는 2013년 11월 5일 에는 창간1주년 기념식을 개최하고, 연말에는 《광진사람들》 북콘서트를 재미나게 열어 한 해를 마감한다. 창간1주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위의 상상력 중에서 마을신문을 창간하고 기자학 교를 통해 마을기자를 육성하는 것까지는 이루어졌으나, 100여명의 사람들을 인터 뷰해서 한 권의 책으로 엮겠다는 꿈은 상상으로 남겨졌습니다. 《광진사람들》 창간1주년 기념식은 조촐하게 2기 마을기자들을 중심으로 워크숍 형태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일종의 《광진사람들》 돌잔치가 되는 셈입니다. 자영업 ▲ 광진사람들, 신문 읽어주는 사람들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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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패의 1차 관문이1년을 버티느냐로 판가름 난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광진사람들》은 이제 1차 관문을 통과한 셈입니다. 2차 관문은 안정적인 마을신문 발간, 마을기자 육성, 그리고 마을라디오나 영상 등으로의 확장일 것입니다. 《광진사람들》이 이제 돌잔치를 앞둔 애기라면, 《디지털광진》은 13살이 된 청소년 에 해당할 것입니다. 10여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광진 지역사회에서 자리 잡으며 나 서울시 광진구 름의 수많은 고민을 홀로 안고 살아왔을 《디지털광진》입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 는 중앙 언론매체들도 경영난에 허덕인다는 이야기가 들리곤 하는데, 한 지역사회 의 인터넷언론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는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디지털광진》이 주로 구청과 구의회에 대한 언론본연의 감시기능과 지역 내 소식 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면, 《광진사람들》은 기성 언론에서는 보기 힘든 동네소식 마을미디어 《광진사람들》 과 사람들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디지털광진》과 《광진사람들》의 파트너십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으나, 아직은 《광진사람들》이 걸음마를 떼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광진사람들》이 돌잔치를 맞기까지 엉뚱한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데 함께 해준 표재선 편집국장님과 1기 마을기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아 름다운 감동을 전해 주신 2기 마을기자 여러분들과 웹디자인 및 마을신문 디자인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실패는 하였으나 당차게 추진했던 마을미디 어협동조합에 뜻을 모아 주셨던 지역단체의 소중한 분들과 두서없는 회의에도 불만 없이 참가해준 편집기자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인터뷰의 대상이 되어 주시고, 마을신문을 읽어 주시고, 마을기사의 주인공이신 광진 주민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광진사람들》이라는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오늘 도 엉뚱한 상상을 계속하고 있는 제 자신에게 고생했다는 인사와 함께 이 한권의 책 으로 선물을 대신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마을공동체는 그 마을이 어느 마을이건, 하고 싶은 일이 어떠한 일이건, 한 사람이 미치고 두 세 사람이 마지못해 끌려나오면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엉뚱한 때로는 불가능한 일들도 세 사람만 뜻을 모은다면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보고 대화하고, 아이들이 골목에서 놀이터에서 뛰어 놀고, 옥상에서 베란다에서 자투리땅에서 키운 채소들을 나누어 먹고, 우리 집 아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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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가 어려워하는 과학문제를앞집 대학생이 가르쳐 주고, 야근하는 날에는 옆집 할 머니에게 우리 집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마을. 진정 사람냄새가 나는 아름답고 평화 로운 마을공동체를 꿈꾸신다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내가 미치고 오른손 과 왼손에 마지못해 끌려나오는 두 사람만 손잡으면 마을공동체의 일은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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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vi토통성 알소 하는 란 장 자원동 를찰 지 활 가관 일 꿈 며 꾸 서 울 시 구 동 구 이 책공 동 함 께 를 는 행 하 며 동대문 성 품앗 〈 과 육아 사 진 마을〉 글쓴이 | 권기정(품앗이 공동육아 〈알토란〉 대표) 글쓴이 | 전은희 두 아이의 엄마이자 중랑구립면목정보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다. 동대문구에서 태어나고 자 라 동대문구에서 살고 있다. 육아지진아이자 워킹맘이라는 최악의 조건에서 아이를 잘 소모임 성동구 여러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며 특별한 자원활동가를 꿈꾸었다. 소통을 위한 단체, 기르고 싶은 마음에 품앗이 공동육아를 결심하게 된 용감한 여자. 온 동네를 누비며 공동육아를 하자고 을 생각하며 서울시 우리마을프로젝트인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사업을 기획하며 활동했다. 성동 파닥파닥 책과 함께 다양한 연령층을 만나며 즐거운 활동을 하고 사람들의 엄청난 도움을 뻔뻔 구 내에서부채질을 했던 끝에 알토란 대표를 맡게 되었다. 수많은 있다. 하게 받으며 스스로 인복이 있다고 감탄 이메일 주소 hanul0149@hanmail.net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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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소개 책과 함께 사는마을 한 동네에 사는 주민들이 책을 매개로 소통의 기회를 갖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서울시 성동구 주민들의 프로젝트이자 모임. 소통을 위한 자원활동가를 모집하여 교육하고 그들이 모여 봉사와 모임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이 글에는 자원활동가를 위한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와 활동가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주민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노인정 방문 활동 등의 진행과정 회의, 정모 과정 등 그동안의 활동 내용과 함께 사업 기획 요령, 추진 노하우 등을 가급적 상세히 소개하고자 했다. 책을 통해 동네 이웃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분들, 특히 마음은 있지만 막상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 망설이시는 분들이 이 글을 통해 보시고 조금이나마 힘을 얻으셨으면 한다.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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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들어가며 서울시 성동구 1. ‘책과함께 사는 마을’의 시작 책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데요 / 어디를 둘러볼까 / 마을공동체를 알다 / 도전하자, 우리 마을 이야기 2. 자원활동가 〈 1. 교육 첫 마당 〉 디베이트가 생소해요 / 내 목소리로 말하다 /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소리 / 새로운 세계가 열리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 2. 또 다른 교육 마당 〉 독서로 치료한다고? / 전래놀이로 한 바탕 웃고 / 발문이 뭐예요? / 교육을 마치고 〈 3. 활동 〉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성동구사회복지관으로 / 봉사하러 갔다가 힐링을 하다 - 노인정 봉사를 다니며 / 강사에 도전했지만 3.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 기타와 스토리텔링 / 디베이트 프로그램 강좌 / 영화와 도란도란 4. 옆 동네 사람들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연극지도사에 도전하다 / 들썩이는 마을문고 / 햇빛이 모든 곳을 비추진 않는다. 5. 우리는 현재 진행형 새로운 꿈을 향해 / 함께 ‘도들이봉사단’으로 나오는 말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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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책과 함께 사는마을’은 서울시 우리마을프로젝트 사업명입니다. 성동구에서 자원 활동가를 꿈꾸며 함께 소통하는 소모임을 구성하고 싶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 프 로그램입니다. 처음엔 막연한 꿈이었던 일들이지만,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 원서를 넣고, 사람들과 만나며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서 작은 현실을 만 들어 갔습니다. 이 글은 그 일련의 과정과 활동을 담았습니다. 작은 생각, 작은 마음이 활동으로 이어져서 결과물을 낳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꿈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며 활동을 정리하니 그때의 감동이 다시 새겨집니다. 물론 모든 활동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고민하고 즐겁게 활동하는 사 람들이 있어서 기뻤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 공공 기관의 직원, 고민을 나누던 활 동가들, 봉사를 나가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우리 프로그램은 학생과 성인, 부모와 아이들, 노인과 봉사자들과의 소통을 연계 하는 활동가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이 봉사를 하고 또 다른 세대와 만나며 작게 웃으며 소통을 하는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재미로 시작한 일이 힘든 일이 되어 포기 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묵묵하게 앞을 바라보며 즐기는 주민이 있기에 성동 구의 활동가는 오늘도 들썩입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은 책을 매개로 진행되었습니다. 때문에 가장 먼 저 자원활동가 교육을 먼저 했습니다. 능동적인 독서 활동을 증진시키는 ‘디베이 트’, 즐거운 놀이문화를 주동하는 ‘전래놀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독여주는 ‘독서 치료’ 프로그램이 주프로그램입니다. 교육 프로그램 진행 후, 교육을 받은 자원활동가가 성동구 금호동을 중심으로 자 원활동을 시작하였고, 지금은 성동구 주민 외 타 지역 주민도 교육을 받을 수 있도 록 연계하고 있습니다.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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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는 교육 연극을하는 자원활동가와 연계하여 아이들과 어르신을 만나 자원 봉사활동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자원활동가들이 봉사단체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 니다. 이름하여 ‘도들이봉사단’. 책을 읽으며 도란도란, 연극을 하며 들썩들썩한 마을을 꿈꾸는 봉사단입니다. 아이들은 처음에 봉사자들을 부담스러워 하기도 했 습니다. 하지만 함께 아이들과 대화의 방법을 찾아가는 일 또한 보람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길 위에 서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고 있을 겁니다. 서울시 성동구 자, 꿈을 꾸는 여러분! 시작을 두려워하는 여러분 ‘책과 함께 사는 마을’로 푹 빠 져보실까요? 1.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시작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책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데요. 저는 성동구에서 살다가 재개발로 노원구로 이사 갔다가 다시 성동구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살고 있습니다. 이사 가기 전 성동구에서 ‘발마사지봉사단’에서 1년을 봉 사하고, 도서관의 명예사서와 자원봉사 상담가로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봉사라 는 것을 하기 위해서 강연을 듣고 활동을 하다 보니 아쉬움이 하나 있었습니다. ‘책을 이용한 전문적인 봉사는 없을까?’ 저는 노원구에서 책과 함께 하는 수업도 하고, 봉사도 하면서 ‘소통’에 대한 생각 을 깊게 했습니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마을주민 이 하나가 되는 마을을 만들 수도 있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이지요. 저는 구체적인 실행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무 엇을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사 온 금호동의 아파트에 작은 문고가 있 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봉사단체나 모임이 없어서 문을 열지 못했지만 공 간은 적당했습니다. 깨끗하게 지어진 아파트의 문고에 책은 별로 없었지만 넓은 공간이 마음에 들었 습니다. 저는 작은 꿈을 꾸었습니다.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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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아이들이 문고에 모여서 삼삼오오 책을 읽고 이야기 하는 장면. 어르신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봉사자가 책을 읽어주는 장면. 엄마와 아이가 도란도란 책으로 눈빛을 교환하는 장면. 아버지들이 모여서 아이들을 위한 동화구연을 해주는 장면.’ 아파트의 작은 문고 앞에서 저는 설레었습니다. 하지만 문고의 문은 굳게 닫혀있 었습니다. 저는 관리소장님을 찾아갔습니다. “문고는 언제 개방하나요?” 관리소장님은 웃으시며 따뜻한 차를 내주셨습니다. “아직은 여건 상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관리소장님도 이전에 여기저기 건의를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관리소장님도 문고에서 마을 주민 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웃으며 지낼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저 또한 아이들과 책을 보며 지내는 작은 사랑방을 생각했습니다. 아이들 교육에도 관심이 있고, 책을 좋아해서 작은 소모임을 결성하여 소통을 하고 싶었습니다. 관리소장님 도 방법을 알아본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마을문고를 이용하여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자!” ‘어디를 둘러볼까’ 2007년 동사무소 자원봉사활동가로 있을 때 동장님의 도움으로 동사무소의 작은 문고에서 초등학생들과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도서관 명예사서를 하면서 만났던 봉사자들과 연계하여 문고 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일 먼저, 동사무소의 문고를 방문했습니다. 작은 도서관의 형태로 자리한 문고 는 2층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활성화 되지 않고 봉사자들도 없이 문만 열려있었습 니다.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주변을 살폈습니다. 우리 아파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구 립도서관이 있었습니다. 먼저 도서관의 동아리가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다행스 럽게 도서관에는 모임이 결성되어 있었습니다. 조언도 구하고 함께 하고 싶어서 독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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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회장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박숙영독서회장님은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기존에 결성되어 자리 잡힌 단체라서 신입회원을 받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힘을 주셨습니다. “일단 사람들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요? 같은 생각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 말이죠.” 따뜻한 박숙영 독서회장님에게 힘을 얻어서 다시 마을문고로 돌아왔습니다. 서울시 성동구 ‘분명 사람들이 있을 텐데…….’ 아쉬워하며 터벅터벅 돌아섰습니다. 그때 관리소장님이 봉사자를 모집하는 공고 문을 붙여보자고 했습니다. 자원봉사자나 독서모임 구성원을 우리 아파트에서 모 아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을 하다가 책을 가까이 하 며 활동을 하는 모임이니까 ‘책뒹굴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관리소장님께 부탁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을 하여 독서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책뒹굴이’ 모집 공고를 만들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엘리베이터와 아파트 공고판에 붙였습니다. **책뒹굴이 회원모집 안내** 안녕하세요. 하이리버 201동 202동 주민 여러분~~ 우리 아파트 202동에 마을문고가 있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아직 책의 양도 부족하고 시설도 미비하여 오픈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향후 오픈과 관련하 여 함께 하실 ‘책뒹굴이’ 회원을 모집합니다. 1. 신청기간 : 2013년 4월 15 일부터~ 2. 신청방법 : 리사무소 문의 ☎ 02)2256-5131 관 책뒹굴이 회장 문의 ☎ 010-2440-2716 3. 향후 일정 : 초등 대상 프로그램 (독서, 예술, 대회 참가 등 ) -중, 고등학생 프로그램 ( 디베이트, 문학지도 등 ) -마을 신문 발간 계획 ( 어린이 마을 기자, 성인 기자 활동 포함 ) 4. 대상 : 금호 2, 3가 동주민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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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회원 특전: 책대여 추가 -마을프로젝트 사업 회비 감면 -학생 프로그램 수강료 감면 ● 책 뒹굴이 담당자 ●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이 주일이 넘도록 연락이 없었습니다. 실망을 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을공동체를 알다 “마을공동체 알아?” 어느 날, 동네의 주민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을공동체?” “그래. 누가 그러는데 서울시에서 3명 이상 모인 주민에게 사업을 준다나?” ‘3인 이상?’ 저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홈페이지를 찾아서 둘러보았습니다. 많은 일들이 기획되고 사람들이 활동하고, 뜻 깊은 결과물을 낸 서울시민의 활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 이거다!’ 우리 아파트 마을문고 활성화를 위해서, 또한 소통하는 사랑방을 만들기 위해서 ‘마을 공동체’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고 동아리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프로그 램을 만들어 보자.’ ‘책뒹굴이 회원’이 모이지 않았기에 ‘함께 할 자원활동가를 어디서 찾지?’ 하며 고 민을 했습니다. ‘3인 이상이면 시작할 수 있을 텐데.’ ‘아~ 거기면 되겠다.’ 저는 바로 동사무소의 자원봉사센터장님을 찾아갔습니다. 흥분한 목소리로 ‘마을 공동체’에 관하여 설명을 드렸습니다. 센터장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함께 해보자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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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했습니다. 현재활동하고 있는 봉사자들도 열 명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이미 많 은 봉사를 하고 있는 회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또 아파트 통장님을 찾아갔습니다. 늘 앞장서서 마을을 위해 뛰시는 통장님도 마 을문고와 주민을 위해서 공동체 사업에 함께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자신의 재능을 봉사로 연계하며, 작은 일을 만들어 가는 활동가’를 양성하자고 했습니다. 작은 모임이 주민의 귀가 되고 눈이 되어 우 리 동네에서 도란도란 책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시간을 떠올렸습니다. 함께 차를 마 서울시 성동구 시고, 생각을 나누며 기획안을 완성했습니다. 이름하여 ‘책과 함께 사는 마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긴장이 되어서 우리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2013년 4월. 결과가 발표되었던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동사무소에서 자원봉사 센터의 회의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이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 원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자원봉사센터장님은 동장님께 서울시마을공동체 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동장님의 커다랗게 웃는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동장님께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도와주시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모인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웃 었습니다. 드디어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이란 이름의 공동체호가 첫 발자국을 내딛었습니다. 도전하자, 우리 마을 이야기 먼저 책을 이용하여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위해 선정한 강사님들과 회의를 했 습니다. 봉사자 모집에 실패한 경험이 있던 터라 좀 더 계획적인 일처리를 하고자 했습니다. 이번엔 혼자 고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원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을 교 육해 주실 강사님들과 수업 전에 기획 회의를 했습니다. 때문에 강사님들과 깊숙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2013년 4월 24일.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주된 과목인 디베이트 전수완 강사님. 주민들의 마음을 감싸줄 독서·미술 치료 고경희 강사님. 즐거운 놀이를 강의해 주 실 김영선 강사님. 독서의 전문적인 발문을 진행하실 정은정 강사님과 맛난 차와 간 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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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수완 : 디베이트가생소해서 주민들이 공부할 때 힘들어할 수도 있어요. 즐 거운 수업이 되도록 활동을 많이 넣어야겠어요. 김영선 : 맞아요. 전래놀이를 하는 선생님들을 보면 모두 아이 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고경희 : 책으로 소통하는 모임이니까 책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주민들이 아이들의 부모이고, 누군가의 자식이니까 마음을 열기엔 책만 한 것 이 없어요. 강사님들과 오랜 시간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주민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마을문고로, 동사무소로, 도서관으로, 아파트 게시판으로 소문을 낼 일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자원활동가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할 장소 섭외가 쉽지 않았습니다. 예정 한 마을문고는 강의 장비들이 부족하여 교육 시설로써는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강 사님들께는 교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빔프로젝터와 교구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향후 동아리 장소와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수업 장소로써 시설을 갖추기까지 시 간이 필요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동장님께서 지원해주시기로 한 동사무소의 강의 실 등은 성동문화원의 수업과 겹쳐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성동구 내에서 봉사를 하시던 현금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현금림 선생님은 이미 이미용 봉사와 구청의 예산감사 봉사를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동네 에 아시는 분도 많았고 그동안의 봉사 활동을 하면서 아는 장소도 많았습니다. 현금 림 선생님은 강의실로 고민을 한다는 말을 듣고 함께 장소 섭외를 위해 움직여주었 습니다. 선생님은 기동력 있게 함께 움직이는 훌륭한 적토마 같았습니다. 왕십리의 성동구청 강의실을 알아보고, 도서관 등을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곳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터덜터덜 움직이던 우리는 구청 건너편에 자리한 ‘성동여성인 력개발센터’를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책과 함께 사는 마을’ 기획안을 들고 무작정 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그때 성동여성인력개발센터의 박은옥 과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주민과 경력단절 여성들에게도 좋은 프로그램이라며 흔쾌히 강의실을 빌려주셨습니다.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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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마을에 ‘책과함께 사는 마을’의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아파트 입구에 커 다랗게 웃으며 펄럭이는 현수막이 힘차게 보였습니다. 성동구의 주민과 주변의 주 민이 한 명 한 명 모여서 20명의 ‘책과 함께 사는 마을’ 구성원이 여성인력센터의 강 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함께 할 20명의 상기된 얼굴 을 기다리는 우리는 함께 할 친구를 만난 것처럼 신이 났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성동구청의 자원봉사센터장님과 자원봉사 팀장님께도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을 알려나갔습니다. 또 아파트의 게시판에도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하지 서울시 성동구 만 교육 장소가 마을문고에서 성동여성인력센터인 왕십리로 변경되자 우리 아파트 에선 한 명의 교육생도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젠간 우리 마을문고에서 함께 할 자원활동가가 나타날 거라는 생각을 하며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직접 얼굴을 보면서 조금씩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을 알려가기도 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주민이 많다는 관리소장님의 말씀에 엘리베이터에도 안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내문을 붙었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불빛을 보고 달려와 줄 동지가 있 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수업 시작에 설레며 성동구에서 함께 봉사하며 소통할 회원들을 기다렸 습니다. 우리의 기대에 찬 눈빛은 강의가 시작에 되자 무지갯빛으로 바뀌었습니다. ◀ 성동 개강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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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원활동가 (1) 교육첫 마당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 회기 날짜 1 4. 29 2 강의명 내용 강사명 OT 봉사와 책사마 봉사의 의의, 책사마 프로그램 자원활동가란, 책과 함께 센터 샘. 정은정 5. 1 독서• 미술치료와 스활코 독서• 미술치료의 이론, 실습 고경희 3 5. 3 전래놀이와 스활코 전래놀이 이론, 실습 김영선 4 5. 6 디베이트 1 디베이트 이론 , 실전 (독서 디베이트) 전수완 5 5. 8 디베이트 2 디베이트의 형식, 실전 (시사 디베이트) 전수완 6 5. 10 디베이트3, 디베이터 활동 이론(심사와 강평, 매체 디베이트), 실전 전수완 ‘책과 함께 사는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자원활동가 양성입니다. 전문적 인 교육을 받은 봉사자들이 주민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됩니다. 또한 봉 사자들은 소통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세대의 주민들과 어울려 즐거운 마을을 만드 는 것이 목표입니다. 디베이트와 독서, 미술치료와 전래놀이 등을 함께 배우며 책을 읽으며 함께 소통 하는 방법에 대한 수업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또, 책을 읽고 이야기 하고 전래놀이를 하면서 즐겁게 뛰어 놉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이야기 나누며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림책과 동화책 등 다양한 책을 읽으며 일상의 이야기, 주변의 이야기를 나누며 삶을 나누는 것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처음에 무엇을 교육하는지 모른다면서 설명을 해달라고 찾아온 주민들과 조금씩 얼굴을 익히면서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문이 열렸습니다. 디베이트가 생소해요 함께 모인 20명의 교육생들은 처음에 디베이트가 무엇인지 의아해했습니다. 전수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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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 강사님이 설명을천천히 하고, PPT로 사례를 보여주었습니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TV속에서 가끔 보던 토론 프로그램과 비 교하며 강의를 들었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살던 세대가 아닌 교육생들은 한 편으로 재미있다고 하셨지만 어렵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초등학생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을 해야 하는가’ 강사님이 적당한 주제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조별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나누었 서울시 성동구 습니다. 초등학교 자녀를 둔 엄마들은 자녀를 빗대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신문, 인터넷을 뒤져서 실제적인 사례를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자주 가는 곳에 가서 질문을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주제에 대한 토론을 하기 위해 서 문방구 주변을 돌아다닌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수업 전에 조사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별 생각이 없었던 분야인데 공부를 하려고 자세히 찾아보니 생각거리가 많아졌 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깊게 생각을 하며 조별 활동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디베이트를 준비하였지만 긴장이 되었습니다. 디베이트는 형식에 맞춘 토론이라고 강사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시간을 정해놓 고,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생소하지만 수업을 듣는 교육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디베이트 전수완 강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디베이트는 말입니다. 책을 읽기도 하고, 신문을 보기도 하면서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어르신들과 대화도 합니다. 하지만 그냥 무작위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 다. 형식을 갖춰서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근거가 있어야겠지요. 근거들 은 어디에서 찾을까요? 네. 바로 자료조사에서 나와야겠지요.” 교육생들은 노트에 빼곡하게 강사님의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책을 선정해서 밑 줄을 그어가면서 읽고, 조별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토론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말을 나누었습니다. 처음엔 눈치를 보던 교육생들이 조금씩 입을 떼기 시작했습니 다. 시간이 지나자 서로 더 말을 하려고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자, 이제 시간을 체크하며 공정하게 말을 할 겁니다. 그렇다면 누구는 많이 하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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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누구는 조금얘기한다고 불만이 없을 겁니다. 이렇게 형식에 맞춰 말을 하는 것 이 디베이트입니다. 학교에서 조금씩 시작하고 있지만 아직 처음이신 분도 있을 겁 니다. 형식에 맞춰서, 예의를 갖춰서 말을 하다가 보면 싸움 없는 사회가 될 겁니 다. 주장도 근거를 합리적으로 제시하면 빛이 납니다.” 형식에 맞춰서 발표를 하고, 정성껏 듣게 되니 이구동성으로 시끄럽던 교실이 조 용해졌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강사님이 후기를 돌아가며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집에 가서 아이들과 디베이트를 해보았어요. 자료를 조사해서 의견을 나누니까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더라구요. 마냥 고집을 부리던 아이들이 차분하게 자 신의 말로 이야기를 하니까 평화로운 가정이 된 것 같아요.” “부부 싸움을 할 때도 디베이트가 좋더라구요. 시간을 나눠서 이야기하고 끼어들 지 않고 들어주니 더 좋고요.” “저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디베이트를 하려고 보니 여러 번 읽게 되었 어요. 근거가 되는 곳에 밑줄을 치고. 엄마가 공부를 하니 아이들이 좋아해요. 또, 열심히 배워서 봉사도 가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수완 강사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면 선생님들도 모두 발전 하실 거예요.” 전수완 강사님 또한 공동체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즐거운 마음으로 강의 를 해주셨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이 주민과 함께 하는 소통의 세상 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아시고, 강사비도 적게 받고 참여해주셨습니다. ◀ 디베이트 수업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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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든 교육과정이었지만 책을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발표하는 과정에 성취감 을 느낀 교육생도 있다고 했습니다. 함께 디베이트를 하다보면 자세하게 주의 깊게 듣는 마음이 생기고, 민주적인 의 사결정을 할 수 있어 뜻 깊을 거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함께 한 교육생들의 미 래를 생각하며 꾸는 꿈이 같은 길이라서 든든했습니다. 내 목소리로 말하다 서울시 성동구 책을 읽고 앞에 나와서 의견을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수업 중에 발표 하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아직 한 번도 앞에 나와서 이야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 은 목소리가 아주 작았습니다. 하지만 강사님의 조언을 들으며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직 남편한테도 내 의견을 말한 적이 없었어요. 의견이라는 것이 근거가 되는 증거를 하나, 하나 찾아내서 발표를 하니 꽤 재미있는데요.” 책과 함께 사는 마을 그렇습니다. 디베이트라는 것이 바로 근거에 맞춘 합리적인 이야기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뒷받침되는 근거가 정확하지 않는다면 주장은 힘을 잃고 만다고 했습니 다. 우리는 점점 의견이 많아졌습니다. 그에 따른 자료조사도 더 많이 하게 되니 디 베이트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소리 이제 드디어 형식에 맞추어 디베이트를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발표한 사람 이 의견을 말하면, 두 팀으로 나누어서 찬성과 반대로 말을 해야 합니다. 드디어 따 로 또 같이 협동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혼자만 잘 한다고 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 디베이트 수업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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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베이트 시간에 자신만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 다. 각자의 역할을 잘하고, 돌아가면서 시간을 나누어서 협동을 해야 할 시간입 니다. 힘든 교육과정이 끝나자 책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발표하는 과정에 성취감 을 느낀 사람도 있었습니다. 강사님은 주민들과 함께 디베이트를 하다보면 경청의 마음이 생기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 뜻 깊을 것이라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함께 한 주민들이 미래를 생각하며 꾸는 꿈이 같은 길이라서 든든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는 것을 깨달으며, 사람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라서 조 금은 어려웠지만 전수완 강사님과 한 첫 도전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다 처음에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모여서 토의를 했습니다. 여러 의견을 들어보고 이야기 거리인 주제나 논제를 찾았습니다. 그 후에 팀을 나누어서 찬/반 디베이트 를 했습니다. 초시계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떨리는 것을 참고 한바탕 디베이 트를 벌이고 나면 상대방의 이야기도, 우리 팀의 이야기도 남습니다. 한참을 듣고 함께 소감을 이야기 하다 보면 전혀 새로운 의견도 듣고, 느낌을 듣습니다. 나와 다 른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읽은 책을 한 번 더 읽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디베이트를 하며 겪은 경험을 주민들과 함께 할 거라는 굳은 다짐을 했습니다. (2) 또 다른 교육 마당 독서로 치료한다고?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자원활동가의 두 번째 교육 프로그램은 ‘독서치료’입니다. 책 을 읽고,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들어 주는 것입니다. 학생인 주민들은 독서치료 시간이 신났습니다. 전지에 자신을 그리 며 조별로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장점을 말하고, 단점을 말합니다. 커다랗게 자 신을 그리고 색칠을 하며 모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한 착각을 했습니다.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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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미술 치료 과정은‘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자원활동가 교육 중 참여자들이 많이 느끼고 공감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전지에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적고 발표를 하고, 아픈 마음의 상처를 서로 어루만 져주고, 힘내라는 말 한마디에 눈시울을 적시던 교육생은 마음이 솜사탕처럼 달달 하게 느꼈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강의실이 아주 따뜻했습니다.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 사람, 어머니 이야기를 하시는 사람, 남편과 싸우고 나왔 지만 힘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사람의 이야기로 강의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나 서울시 성동구 중에 자원봉사에 참여하면 더욱 뜻 깊은 시간이 될 거라는 고경희 강사님의 강의를 들으며 그림책 한 권도 소중하게 안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외치는 소리 가 들렸습니다. 《너는 특별하단다》라는 책으로 수업을 했습니다. 책 한 권이 주는 감동을 한 사 람, 한 사람이 가슴에 안고 가서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료에게 전해줄 수 있기를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바라며 뭉클했던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책을 읽고 작업을 하며 나에게 특 별한 사람은 누가 있는지, 나는 누구에게 특별한 사람인지를 떠올렸습니다. 또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교육생들은 즐거운 공동 작업을 했습니다. 책상에 전지를 펼치고 함께 하는 작 업이었습니다. 조 이름을 정하고, 각자의 장점을 이야기하며 서로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장소에 대해 이야기 를 했습니다. 같은 또래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에 는 서로가 할 말이 많다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평소에 잘 들어주지 않는 자 ◀ 독서치료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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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이야기를 모두에게맘껏 풀어놓았습니다. 그림 을 그리면서 우리는 더욱 흥이 났습니다. 크레파스를 들고, 색연필을 사용하고, 스티커를 붙이며 전지를 채웠습니다. 그림책을 보면서 언젠가부터 초라해져 버린 자아 찾기를 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 고 살았다던 주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서 위로하기 ▲ 고경희 강사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듣지 못하던 칭찬을 듣고, 누군가에게 칭찬을 해주는 넉넉한 마음을 나누 었습니다. 고경희 강사님의 수업 사례를 들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 어가는 과정에 대한 지름길을 발견한 주민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전래놀이로 한 바탕 웃고 세 번째는 전래놀이시간이었습니다. 센터 내에 운동장만큼 커다란 교실로 옮겨서 수업을 했습니다. 책상이 없는 넓은 공간에서 교육생들은 각자의 어린 시절을 추억 했습니다. 김영선 강사님이 설명해주시는 프로그램을 듣고 둥그런 원을 만들어 섰습니다. 우리는 쥐와 고양이가 되어서 뛰어다니며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눈을 감고 이동을 하며 놀이를 즐겼습니다. 어린 시절 함께 하던 얼음 땡 놀이도 하며 신이 났습니다. ◀ 전래놀이-전체놀이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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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래놀이는 활동적인 수업외에도 고누놀이도 있었습니다. 종이에 선을 그리고 한 차례씩 돌을 옮기며 상대편 진영에 도착하면 이기는 놀이입니다. 마치 장기나 체 스와 비슷하지만 좀 더 간단하여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놀이였습니다. 서울시 성동구 책과 함께 사는 마을 ▲ 전래놀이-고누놀이 ▲ 전래놀이-산가지놀이 또, 산가지 놀이라 하여 나무젓가락을 사용한 막대를 만들었습니다. 각자 색을 칠하며 작업을 한 산가지로 집중을 하여야만 이길 수 있는 놀이를 했습니다. 쌓아놓 은 산가지를 무너뜨리지 않고 가지고 오는 것인데 작은 공간에서도 할 수 있는 놀이 였습니다. 산가지 놀이로 교육생들은 집중력을 키우며 모두 숨을 죽였습니다. 또한 우유팩으로 만든 자연산 딱지에 몸을 맡기고 교육생들은 신나게 즐겼습니 다. 어린 시절 딱지를 가지고 하루 종일 놀던 때로 돌아간 듯 한 착각을 하며 각자의 손에 딱지를 쥐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김영선 강사님은 전래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어르신까지 재미와 교육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흥겹게 논다는 것이 결국 함께 하는 활동이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어깨가 들썩들썩 했습니다. 발문이 뭐예요? 교육 중 마지막 과목은 ‘발문’시간이었습니다. 정은정 강사님이 해주시는 강의를 들 으면서 교육생들은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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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문 책을 읽고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었습니다. 나무의 입장이 되어서 말을 했습니다. 또 아이의 입장이 되어서 이야기 했습니다. 또 어른이 된 아이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다리는 나무가 되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젠 아이들의 시선으로 말을 했습니다. 수업을 다니는 자녀가 되어서 말을 하다 가, 우리의 부모님의 자리에서 생각을 했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은 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마을공동체입니다. 때문에 책 속에서 깊게 생각하며 확장적인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은정 강사님의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형태의 질문을 하면서 미래의 자원활동가 선 생님들이 즐겁게 수업에 참가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으며 생활에 대해, 경제에 대해, 사람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다른 그림을 보고,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회에서 나무와 같은 존재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발문을 맡으신 정은정 강사님이 웃었습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서로 다른 이야기 가 나오는 것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을 하는 선생님들 뒤에 몽글몽글 이야기가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총 18시간의 교육을 마쳤습니다. 교육생들은 짧지만 긴 시간을 보내며 각자의 포부 를 말했습니다.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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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과 후 지도를가면서 교육을 해보았어요. 디베이트는 정말 재밌는 시간이 었어요.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내 주장을 펼치는 것이 흥미로워요. 하지만 더 재밌는 것은 입장에 따른 준비인 것 같아요. 양쪽의 입장을 다 말하니까 한쪽 으로만 치우는 내 생각을 우기진 않아요.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교차질문 을 하니 더 재밌네요. 얼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서울시 성동구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힘들었지만, 보람 있네요. 특히 독서치료를 하면서 서 로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과정도 좋았어요. 봉사활동을 가면서 함께 할 시간이 기다려져요.” “마지막 시간에 일이 있어서 못 와서 아쉬워요.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더 배우고 싶어요.”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아이들이 어려서 맡기고 오느라 힘들었어요. 함께 놀이도 하고, 이야기를 나 누면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이 생겨서 좋아요. 짧은 시간이어서 아쉬웠지만 봉사를 하며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나의 책을 읽어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이 겠죠.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주다보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때 성동여성인력센터 박은옥 과장님이 들어오셔서 격려의 메시지를 해주셨습 니다. “마을공동체가 활성화 되어서 이렇게 선생님들과 만나 뵙게 되어서 즐거웠습니 다.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함께 소통하는 밝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향 후에도 공동체 모임이 있을 때 늘 연락 주세요. 함께 할게요.” 늘 따뜻한 커피를 준비해주시면 도와주신 박은옥 과장님과 깨끗한 센터가 따뜻 한 집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음을 가진 집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20명으로 시작된 ‘자원활동과’ 교육은 8명만이 수료를 했습니다. 교육과 정만 이수하고 활동은 하지 않겠다고 하신 사람도 있고,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다고 중간에서 포기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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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는 사람들을 아쉬워하며남겨진 사람들은 즐거운 공동체 모임을 만들어가기 로 했습니다. 교육과정을 마치고 성동여성인력센터에서 조촐한 파티를 하며 본격 적인 활동에 대해 회의를 했습니다. 또 서로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성동여성인력센터의 박은옥 과장님의 아낌없는 격려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 성동여성인력센터 박은옥 과장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자원활동가’ 과정의 장소를 섭외하다 난항을 겪을 당 시 흔쾌히 장소를 제공해주신 박은옥 여성인력센터 과장님을 뵙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Q.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자원활동가 양성 과정의 장소 문 의가 왔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박은옥 : 경력단절여성 즉, 전업주부인데 마을공동체 활 동하는 모습에서 믿음이 갔습니다. 여성인력개발센터 입 장에서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좋은 취 지를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를 통해서 배출된 많은 여성 들이 마을공동체의 영향을 받아 사회진출을 많이 할 것 ▲박은옥 과장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체에서 들어온 현재의 상 황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고요. Q. 센터에 근무하시면 성동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거시적인 관점으로 보시겠어요. 박은옥 과장님이 생각하는 마을활동가란 어떤 모습입니까? 저도 마을활동가인 셈 이죠. 박은옥 : 아이들의 엄마로서 필요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입장으로 일하 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마을활동가란 마을의 재원들을 적재적소에 연 결하는 일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일하고 싶은 사람과 교육을 받고 싶은 사람들은 연결하는 매니저 역할을 하시는 분으로 꼭 마을에 필요한 인재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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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고 생각합니다. Q. 현재진행되는 공동체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실제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참여자 들을 가까이에서 보셨잖아요? 우리 ‘책과 함께 사는 마을’도 노인정과 복지관에 재 능 봉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박은옥 :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이 있습니다. 평생교육이념이지요. 현대사 서울시 성동구 회에 반드시 필요한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역할로 활동영역이 더욱 확대 되고 수요 또한 급증할 것으로 보입니다. 향후에 공동체도 다양하게 진화해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으로의 도약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거라고 믿 습니다. Q. 옆에서 보시기도 하고 들려오는 이야기도 있을 듯합니다. 현재 마을공동체의 문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은옥 : 당연히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의 개발과 강사양성과정의 진행으로 발전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더욱 단단한 사 업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또한 한 번 참여한 사람들이 또 다른 사업을 진행해 서 경험이 능력이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공동체는 주민 몇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을의 공동체 가 의미 있는 사업을 연장해서 나아가면 결국 지역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 다. 제가 아는 분들도 작은 모임이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하신 분들도 있으니 까요. Q. 성동구에서 ‘앞으로의 이런 공동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으십 니까? 박은옥 : 저는 재활용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개발되었으면 합니다. 환경과도 직결되는 문제이지요. 자원의 순환에 관심을 가지고 널리 알리는 공동체가 마 련되었으면 합니다.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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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공동체 마을활동가에게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또는 서울시마을공동체에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박은옥 : 서로 돕고 나누는 마을공동체의 정신을 살려서 지역의 복지문제를 주민들 스스로 참여해 해결할 수 있는 사업으로 발전되어 마을의 성장을 이끌 수 있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여성인력개발센터와 협약을 맺어 마을공동체에 서 필요한 것을 이끌어 내주는 역할을 해주시면 그것을 실현가능하게 풀어나 가는 역할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현 실을 풀어보려는 마음을 가지신 많은 공동체 활동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 각합니다. Q. 늘 아낌없는 지원 감사드립니다. 박은옥 : 언제나 변함없는 활동을 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3) 활동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성동구사회복지관으로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스토리활용지도사 과정을 수료한 선생 님들은 처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될까’ 생각을 하고 참여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지 도사 과정을 듣는 동안 수업이 재미있었다며 기관이나 동네에 봉사활동을 다니며 배운 것을 실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을 기획하고 진행 했을 때 도와주신 동장님, 아파트 관리소장님, 성동여성인력개발센터 과장님도 멈 추지 말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확장해라고 조언을 해주셔서 도전을 했습니다.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성동구장애인사회복지관이었습니다. 이준구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한 후 방문을 했습니다. 이준구 선생님은 복지관의 김창희 과장 님과 함께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한 설명을 하고 수료증을 받은 우리 구성원이 동아리 활동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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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하고 있다는말씀을 드렸습니다. 복지관 아이들과 수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셔서 일곱 분의 선생님이 조를 이루어 수업을 맡아서 하기로 했습니다. 교육을 받았을 때는 몰랐는데 스스로 봉사활동을 갈 생각에 구성원들은 모두 떨 렸습니다. ‘무엇을 해야하지?’, ‘수업을 했을 때 기억나는 것이 없어.’ ‘아이들 앞에서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각자가 교육 받았던 내용을 생각하며 회의를 했습니다. 소란도 잠시, 선생님들 서울시 성동구 모두 하나의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조별로 나가니까 함께 준비 한 수업을 한 사람이 진행을 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피드백을 해주면서 부족한 부분 을 채우자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수업은 제가 진행을 하고 두 분의 선생님이 참 관을 했습니다. 경험이 있는 제가 먼저 시강을 하고 함께 참여하는 수업을 진행했습 니다. 처음에는 떨린다고 아이들 앞에서 작게 말씀하시던 선생님들이 이젠 아이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옆에서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피드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자기소개를 먼저 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 속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이름을 짓기였습니다. 좋아하는 캐 릭터를 생각하면서 옆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선생님에게 자신을 표 현하는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드디어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또한 소통의 첫 걸음을 뗐습니다. 상기된 표정으로 복지관을 나서는 선생님들의 표정이 가지각색이었습니다. 7명의 아이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 를 할 때는 정신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소개를 하고, 발표를 하면서 조금씩 다 가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안정되니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시선을 맞췄다는 선 ▲성동복지관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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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님의 이야기에 앞으로동아리 활동을 잘 하시리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아이들 도 ‘책사마’ 봉사자들과 말을 섞지 않더니 지금은 함께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지금 은 한 달에 한 번 두 명씩 짝을 지어 아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디베이트를 하고, 책 을 읽으며 살아있는 발문 작업을 합니다. 현재 고민도 책을 수단으로 털어놓으면 선 생님들은 친구가 되었다가, 이모가 되었다가, 선생님이 되었다가 하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합니다. 책의 향기가 모락모락 나는 듯합니다. 인터뷰 : 자원활동가 현금림 선생님 지역 주민과의 모임 만들기를 고민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이미용 봉사를 하고 있는 현금림 선생님을 만났다. 현금림 선생님은 이미용 봉사를 하며, 금호 2, 3가 자원봉사 팀에 소속되어 노인정 봉사와 김치나누기 봉사 등을 하 고 있었다. 서울시 마을 프로젝트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의 ▲ 자원활동가 현금림 선생님 ‘스토리활용지도사’ 과정을 마치고 사회복지관에 서 봉사 첫날을 맞이한 현금림 선생님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Q. 어떠셨어요? 첫 교육봉사인데요? 현금림 : 떨렸어요. 아이들이 떠들고, 조용히 시키는데 순간 놀랐어요. Q. 교육봉사를 생각하고 계셨어요? 현금림 : 아뇨. 지도사 과정을 마치고 봉사 동의서를 작성하고 왔지만 과연 내 가 잘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지요. Q.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요? 현금림 : 네. 약간 아프다고 하면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때문에  걱정스러웠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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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데 달래고 말을걸어주니 오히려 조용하네요. Q. 아이들과 친해지셨네요. 현금림 : 네. 노인정 봉사도 많이 다녔는데 아이들과 지내니 우리나라가 자라 나는 새싹에 힘을 쏟아야하겠구나 생각했어요. 짧은 수업이지만 아이들이 ‘디 베이트’라는 소통의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하는데 놀랐어요. 요즘 서울시 성동구 아이들의 자신감, 거침없음…….하지만 그 사이에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 견을 나누는 과정에선 저도 배웠어요. 아이들은 금방 배워요. 현금림 선생님은 ‘책사마’ 프로그램 중 ‘기타와 스토리텔링’ 수업에 아들 병구 를 보내고 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Q. 병구는 어때요? 기타를 치며 이야기를 나누던가요? 현금림 : 기타 치는 것도 좋아하지만 병구는 함께 지내는 선생님과도 잘 지내 요. 웃으면서 꿈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Q. 기타를 배우며 이야기하는 병구가 수업이 끝나면 무엇을 했으면 하세요? 현금림 : 작은 무대에서 작은 공연을 했으면 좋겠어요. Q. 수업 마지막에 마을문고에서 작은 공연을 한다던데요? 현금림 : 네. 그래서 아이아빠와 동네 어르신과 함께 올 예정이에요. Q. 마지막으로, 현금림 선생님은 마을공동체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금림 : 저는 봉사를 하며 주민과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지도사라는 교육이 있어서 참여를 하고 이렇게 교육봉사를 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어르신들을 만 나게 되어서 좋아요. 또, 저도 성취감을 느꼈고요.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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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네. 감사합니다.앞으로도 자주 뵙겠어요. 현금림 : 네. 이젠 노인정에 이야기 하러 가야죠?   7월에 예정되어 있는 노인정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현금림 선생님의 얼굴은 햇빛보다 더 밝았다.   봉사하러 갔다가 힐링을 하다-노인정 봉사를 다니며 복지관 수업을 다니며 힘을 얻은 자원활동가들이 이젠 어르신이 계신 노인정으로 봉사기획을 세웠습니다. 교육프로그램 중 발문지도 강사님과 책을 매개로 한 수업을 떠올리며 회의를 했 습니다. 처음엔 두 명의 자원활동가가 아파트 경로당을 찾았습니다. 《팥죽할머니와 호랑 이》라는 책을 여러 번 읽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어르신과 이야기 할 부분에서는 밑줄을 긋고, 어떤 이야기로 이끌어 나갈 지 고민을 하고 심호흡을 하고 노인정 문을 두드렸습니다. 노인회 부회장님이 반갑게 문을 열어주셔서 웃으면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고, 뒤에서 바라보고 자원봉사자 한 분이 그 림책을 먼저 읽어주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이야기를 듣는 어르신들이 꼭 어린아 이들 같았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으신 어르신들이 호기심의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화구연을 하듯이 다시 책을 읽어드렸더니 유치원생이 엄마의 이야 ◀ 노인정 봉사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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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에 집중을 하듯이어르신들이 귀를 기울이느라 숨도 쉬지 않는 듯했습니다. 호랑이가 나오고, 할머니가 나오고, 할머니를 돕는 지게와 돌쩌귀와 멍석과 옛날 도구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와 같이 누군가를 도와주며 살아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물건들이 하나같이 보답을 하려고 하잖아.” “역시 나쁜 호랑이는 벌을 받는 거야.” 그때였습니다. 어르신 한 분이 지게를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서울시 성동구 “지게를 보니 생각나네. 내 동생은 어릴 적에 게으름을 피우며 일을 하지 않아서 내가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몰라. 지금 생각하면 아주 미워죽겠어.” 할머니는 어린 시절 동생을 떠올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 는 할머니가 슬며시 거들었습니다. “그럼 동생은 어디에 있었어? 놀러갔어?”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먼저 이야기를 꺼낸 어르신이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팠던 거 같아.” 이야기를 거들던 어르신 한 분이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거봐. 그냥 놀았던 건 아니네. 아파서 그러니 언니가 이해해.” “그런가? 그렇군.” 함박웃음을 짓는 어르신 얼굴이 밝았습니다. 자원활동가 한 분이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어르신들끼리 서로 말씀해주시니 미워하던 동생이 이젠 안 미워요?” 처음에 동생 이야기를 하시던 어르신이 살짝 웃으십니다. “그러게.” 모두 웃으며 다시 도란도란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처음에 동생 이야기를 하신 어 르신이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봉사가 끝나고 모인 자리에서 한 자원활동가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속에 작은 이야기가 하나씩 생겼어요. 남을 위한 봉사를 한다지만 자신의 마음속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요.” 저도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처음엔 무언가를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르신들끼리 말씀을 나누면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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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서로 위로를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배우고 가는 것이 많아요.” 두 번째로 노인정 봉사를 가는 날이었습니다. 날씨는 아주 맑았습니다. 마을문고 에 불이 켜졌습니다. 이번엔 일곱 분의 자원활동가가 경로당에 가기 위해 모여서 회 의를 했습니다. 각각 《돼지책》을 들고 와서 발문 회의를 했습니다. 앤서니브라운의 《돼지책》은 엄마만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에 가정에 경고를 합니다. 유아들부터 성인까지 꾸준하게 읽히는 책이라서 이야깃거리라 많을 거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10시에 모인 선생님들은 서로의 입장에서 경험을 담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 다. ‘혼자서 일하는 엄마를 도와야한다. 가족에게 말하지 않은 엄마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한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질문을 할 것을 의논하고 무 슨 이야기로 접근을 할 것인지 생각을 했습니다. 한글을 모르시는 어르신을 위해서 커다란 전지를 준비했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작은 그림을 그려서 발표를 하면 서로 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그림책을 처음 읽었다는 자원활 동가 한 분은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한 분은 봉사활동을 오 는 것이 여의치 않았는데 용기를 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7명의 선생님은 이젠 각 자가 생각하는 그림책을 가지고 마을문고로 향했습니다. 이번에 처음 경로당 봉사에 참여하신 선생님들이 계셔서 이름표 하나씩을 달고 가벼운 마음으로 경로당 문을 열었습니다. 동그란 상에 책을 놓고 둘러앉았습니다. 반갑게 맞아주신 어르신들 보다 우리가 더 떨렸습니다. 이번엔 주도하여 진행할 분을 선정했습니다. 활동적인 현금림 선생님이 앞장서 주셨습니다. “자, 신나게 출발!” 노인정 문을 열고 계신 어르신들이 자원활동가를 보고 놀랐습니다. 설레는 얼굴 을 하고 어르신 옆에 흩어져서 앉았습니다. 《돼지책》을 읽는 동안 얼굴을 찡그리는 분도, 빙그레 미소 짓는 분도 있었습니다. 낭독을 모두 마치고, 우리는 어르신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준비해간 색연필 로 어르신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처음에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는 어르신도 예쁘게 색칠을 했습니다.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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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대목이 가장기억에 남으세요?” 자원활동가가 어르신을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장면.” “왜요?” “시원했어.” “무엇이요?” “우리는 저렇게 살았잖아.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서울시 성동구 “어떻게 사는 거 말씀이세요.” “저, 아줌마만 힘들잖아. 이젠 자기 일을 하며 살아야해.” “아니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나서는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엄마가 저렇게 하지 않으면 누가 해?”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엄마만 하란 법 있나?” 이젠 편을 나누어서 이야기를 하십니다. 봉사자들도 어르신들 옆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가 다시 이야기를 모아서 진행했습니다. “자, 그럼 여기에 있는 종이에 그림을 그려볼까요? 이번에는 어르신들의 일했던 이야기, 아니면 예전에 있었던 일들. 무엇이든 그려보세요.” 이번엔 한글을 몰라서 듣고만 있던 어르신 한 분이 색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이런 곤로라는 것이 있었어. 눈이 아프게 그을음이 나오고. 그 앞에서 밥 을 하는데 얼마나 눈이 쓰리던지.” 옆에 앉아있던 자원활동가가 이야기를 들으며 색칠을 도왔습니다. 도란도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네 장의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림을 벽 에 붙여놓은 전지에 하나하나 전시하듯 붙였습니다. 함께 도와주신 자원활동가가 나와서 어르신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중간에 부족한 부분은 어르 신이 이어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자 선풍기도 없는 경 로당의 더위는 어디론가 사라진 듯 했습니다. 모든 활동이 끝나고 어르신들과 자원 활동가가 서로의 이야기를 돌아가며 풀어놓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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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도 읽어주고 그림도그리니 꼭 학생이 된 것 같아.”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옛날 생각이 났어. 호호.” 수줍게 이야기 하며 자원활동가들과 음료수를 마시는 어르신들의 경로당에 작은 이야기가 솔솔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을 뒤로 하고 우리들은 아쉬운 인사를 하고 작은 커피전문점으로 발길 을 돌렸습니다. 찌는 무더위에 시원한 냉커피 한 잔이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했던 봉사 프로그램에 대한 정리를 하고, 다음에 갈 복지관 프로그램에 대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강사에 도전했지만 ‘책과 함께 사는 마을’에는 마을문고에서 아이들 대상 디베이트 수업이 있었어요. 저학년 한 반, 고학년 한 반을 모집을 해서 무료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봉사만 하던 자원활동가가 이번에는 직접 디베이트 수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함께 회의를 하고 프로그램을 짜면서 용기가 생겼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습니다. 배 운 대로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수업을 하는 것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아 직은 용기가 부족해서 봉사만 하겠다는 자원활동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원활 동가들은 강사님들의 수업을 다시 들으며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수업 뒤 에서 도우미 역할을 하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강사님이 수업하시는 것을 참관하며 강의 노하우를 적으며 더욱 열심히 준비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3.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 기타와 스토리텔링 책사마 프로그램 중엔 예술 활동을 이야기와 엮어서 소통 문화를 활성화 하자는 내 용이 있습니다. 예술 활동을 지원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자는 ‘소통’을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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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당시저는 딸이 생일선물로 기타를 사달라고 해서 과외선생님을 찾고 있었습니 다. 예쁜 기타를 샀더니 연주에 욕심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혼자 독학하기에는 힘 들어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금호동 주민 중에 기타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수소 문 했습니다. 마을문고에서 멀지 않은 커피전문점에 기타가 멋지게 걸려있었습니다. 여쭈어 보니 자주 방문하는 학생이 기타를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딸의 과외 선생님으로 부 서울시 성동구 탁을 하다가 몇몇 주민들과 이야기 했던 프로그램이 생각났습니다. 대학을 다니며 음악을 공부하는 선생님께 과외 지도와 더불어 마을 공동체 프로 그램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재미있는 일이라며 수락을 했습니다. 그것 이 박성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공동체를 진행할 의사가 있다고 했습니 다. 이렇게 의논을 하여 ‘기타와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리 딸의 과외 선생님이 마을공동체의 프로그램 강사로 바로 섭외된 셈입니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설명을 하고 프로그램 진행에 대한 회의를 했습니다. 강사료와 재능봉사를 겸하여 활동하시기로 한 선생님도 강의계획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제 홍보를 할 일이 남았습니다. 이번엔 동네 문방구 사장님을 찾아가서 안 내문을 부탁드렸습니다. 학생 프로그램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다음에 어른 프로그램 이 있을 때 꼭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커피전문점 사장님도 오가는 손님들에게 홍보 를 주셨습니다. ‘기타와 스토리텔링’은 마을문고에서 진행되는 첫 번째 프로그램이 었습니다. 컴퓨터나 빔 프로젝트 등의 장비를 따로 준비할 필요 없이 장소만 제공 받으면 되었으므로 바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강의 첫 날 네 명의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다행히 자부담으로 충당한 아파트 커 뮤니티 비용으로 세 명의 아이들의 기타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성인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우리 주민을 위해서 구비해놓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첫 날을 기념하여 자녀들의 부모님이 참석을 했습니다. 네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아이들은 지칠 수도 있고, 힘이 들어 짜증이 날 때도 있을 겁니다. 부모님은 따뜻한 시선으로 한 마디 한 마디 격려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학 시절 대학가요제에 나가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셨다는 지환의 아버님은 진지한 눈빛으로 어깨를 다독이고 가셨습니다.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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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아들 병구가 친구들을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기타를 배우려 한다는 말에 기뻤다는 병구 어머님, 아버님이 연예기획 사무실에 근무하셔서 이미 예술적인 끼 가 있다며 좋아하시는 채련의 어머니와 언니, 누나가 멋진 연주를 할 거라며 파이팅 을 외치는 혜림의 동생 등이 모두 신이 났습니다. 이제 박성오 선생님의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스토리텔링을 담당한 저 또한 앞 으로 15회기가 넘는 시간 동안 아이들과 이야기할 자료를 준비하며 재미있을 시간 이 기대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조용하던 마을문고에 불이 켜지자 주민 한 사람, 한 사람 씩이 들 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책이 있는지 보고 가시고,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시고, 어른 강의는 없는지, 봉사를 할 수 있는 지 등등. 월요일 밤 6시~7시 반이 되면 어두컴컴했던 마을문고 앞이 밝아지고, 띄엄띄엄 들리는 기타줄 튕기는 소리에 주민이 하나 둘 고개를 들이밀었습니다. 자, 또 하나 의 불빛이 비친 것입니다.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이 작지만 소박한 콘서 트를 위해서 첫 수업을 시작을 했습니다. 중학생 두 명, 초등학생 두 명과 선생님. 첫 날이라 긴장을 했을 법도 한데, 선생 님과 아이들이 기타의 키를 맞추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동영상 강의에 대한 예 습과 학교생활에 대해서 기타 줄을 튕기며 도란도란 시간이 갔습니다. 가장 맏형인 지환은 늘 조용합니다. 제 시간에 와서 키를 맞추고, 둘째인 병구는 학원에 다녀오느라 늘 헐레벌떡 마을문고로 들어섭니다. 하지만 병구는 늘 분위기 를 맞추는 재주꾼입니다. 셋째인 혜림은 수줍게 웃으며 기타를 칩니다. 언니라고 동생의 음료수를 따라주 면 기타에 도전합니다. 막내인 채련은 기타를 빨리 배우고 싶어서 하루에 몇 시간 씩 연습을 하다가 손 에 물집이 잡혔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시켜보는 박성오선생님은 늘 유쾌한 웃음으 로 지루하고 힘든 기타 배우기를 즐겁게 유도합니다.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기타를 쳤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팝페라 가수가 된 폴포츠’ ‘자신의 목숨을 걸고 행인을 구한 이수현’ ‘새벽에 김밥을 팔며 아껴 모은 돈 10억을 선뜻 불우이웃에게 기부한 할머니’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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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타수업 서울시 성동구 아이들은이제 기타를 치며 꿈을 이야기 했습니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기부를 생각하며 미래를 생각하고, 부모님이 보내주신 격려의 말씀 에 눈물을 머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역경은 있습니다. 시험기간과 겹쳤던 지환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눈이 퀭해져서 나타났습니다. 학원 공부가 많아서, 늦게 끝나고, 학교의 조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별 과제에 지친 병구는 무거운 기타를 메고 오는 시간이 고통스러웠습니다. 6학년 이라 공부양이 많아진 혜림은 연습이 부족해서 작은 콘서트에 연주할 곡으로 박성 오선생님과 옥신각신 했습니다. 채련도 방학을 맞아 친구와 놀고 싶은 마음을 꾹 참 고 무거운 기타를 등에 지고 나타났습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지쳐갈 때 쯤 힘을 주시는 분이 등장했습니다. 우리 아파트 관리소장님이 퇴근도 미루시고 피자를 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음료수와 피자 를 나누어 주셔서 모처럼 아이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습니다. 맛난 음식을 먹으 며 관리소장님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현재 근무하 는 사무실에 관한 것까지. 아이들은 기타를 치며 달려온 시간을 잠시 멈추고 동네 이장님이 들려주시는 옛이야기인 듯 귀를 기울이며 잠시 여름밤에 휴식을 맞이했 습니다. 어려운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관리소장님의 얼굴도 달빛에 비쳐 따뜻 했습니다. 또 다시 시작된 기타 선생님과의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 과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 선생님도 또다시 힘이 났습니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기타 소리가 아파트 주변을 돌아 건너편 주민에게도 들렸나봅니다. 앞 단지의 주민이 와 서 마을문고를 보시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본인의 아파트 마을문고보다 작은 공간 에서 기타를 배우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니 신기하다고 하시며 돌아갔습니다. 그 분이 하시는 말씀.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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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것이 공동체라고?음, 우리도 넣어봐야겠어요.” 아이들의 콘서트가 다가올수록 마을문고에 드나드는 주민이 하나, 둘 늘어날 때 쯤이었습니다. 늘,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을문고의 전기료 문제나 장소 사용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 는 자원활동가들과 주민의 대표 등을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마을 아이 들이 하는 문화 활동, 공동체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조금씩 마음을 여는 마을 주민과 민원을 해결해갔던 것입니다. 이겨나가면 또 새로운 일, 즐거운 일이 생길 것이라는 걸 ‘책과 함께 사는 마을’ 구성원들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타와 스토리텔링’ 수업이 진행될수록 아이들은 박성오 선생님과 더불어 함께 굴러 가는 과정을 익혔습니다. 부모님들은 기타 시간에 즐겁게 자발적으로 마을문 고로 향하는 아이들을 독려하고,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가 아닌 주민과 이 야기를 하고 연주를 합니다. ‘청년과 청소년이 만나 소통하다.’ 전 이런 생각을 했습 니다. 고등학교,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초등학생과 소통하여 봉사를 한다면 동사무소나 도서관 등에서 작은 청소를 하거나 책을 정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박성오 선생님은 프로그램 중간쯤에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작은 콘서트 는 다가오는데 아이들의 진도는 일취월장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서 가슴이 탄다고 말입니다. 스토리를 진행하는 저 또한 부담이 되었습니다. 부모님들과 마을 주민들 이 모여서 콘서트를 할 때, 아이들이 생각보다 연주를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매 시간 즐겁게 연습하는 모습을 보며 힘을 내기로 했습니다. 창밖에서 바라보는 동네 어르신들의 웃음이 비출 때, 지나는 주민이 가끔 음료수를 가져다 주셨을 때, 부모님과 형제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지나갈 때 아이들은 이야기 를 하면서 힘을 내곤 했습니다. 드디어 가족들과 관객을 모시고 작은 콘서트를 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자원활 동가와 마을문고에 예쁜 꽃 풍선을 붙이며 우리 아이들이 떨리는 콘서트를 잘 치를 수 있을 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공연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가끔 어르신들이 들르셨습니다. 기타공연을 한다고 했지만 선뜻 들어오시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도착을 하고 기타 선생님이 떨리는 눈빛으로 마을문고에 들어섰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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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백 명앞에서도 공연을 했는데 우리 아이들이 할 생각을 하니 떨리네요.” 선생님은 기타 공연 외에도 드럼 연주도 가뿐히 하는 연주자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라고 할 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습니다. 드디어 아이들의 연습 이 끝나고 부모님과 가족들이 마을문고로 들어섰습니다. 처음에 아이들을 이곳으 로 보내놓고 잊고 계셨다는 말씀을 하시는 아버님께서도 긴장을 하셨습니다. 우리 딸이 저 앞 무대에 앉아 있는 걸 보시더니 침을 꼴깍 넘기십니다. 누나 두 명과 어머 님이 힘내라고 외치자 우리의 장난꾸러기 병구도 겸연쩍은 듯이 웃었습니다. 오히 서울시 성동구 려 수줍어하는 여학생 두 명은 덤덤합니다. 드디어 개인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잠깐 들르셨던 주민도 가족도 선생님도 모 두 숨을 죽이고 들었습니다. 4개월이 넘도록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타를 치며 이야 기하던 우리의 아이들이 작은 기타 줄에 몸을 실어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동 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으며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과 그동안 많은 이야기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를 준비하며 함께 했던 저 또한 가슴이 벅찼습니다. 드디어 함께 연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협동을 하여 옆 친구와 하나가 되어 기타를 튕깁니다. 옆에 앉아있던 기타 선생님도 이제 가슴을 쓸어내리고 편안하게 즐기셨습니다. 모든 공연이 끝나 고 부모님과 주민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고 계신 누군가의 아버님, 누나가 자랑스러운 듯 크게 웃는 동생, 장난꾸러기 동생이 대견하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내민 누나들 모두 하나가 되어 커다란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젠 부모님들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5개월 전 시작하던 날 모였던 부모님들이 한 분 한 분이 작은 콘서트를 본 느낌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 딸이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어요. 그런데 집에서 연습한다 고 기타를 짊어지고 오지 뭐예요? 무거울 텐데. 그러더니 몇 시간씩 연습하더 군요. 작은 손으로, 쥐기도 힘든 기타와 앉아서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연습 하더라구요. 밑에 집에서 시끄럽다고 하니까 바깥문을 닫고 찜통 같은 더위도 모르는 듯 연습하더라구요. 이렇게 보니 정말 대견해요. 앞으로 무엇을 하던 믿고 도와주고 싶어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잘 하는군요. 연습을 많이 하면서 공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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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를 놓칠까봐 걱정도되었어요. 하지만 짬을 내어가면서 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받았어요. 저도 저렇게 무언가에 열중했었던가 되돌아보기도 하구요. 자 랑스러워요. 파이팅!” “역시. 우리 아들이에요. 사실, 중간에는 안 간다고 해서 걱정을 했어요. 하지 만 언덕길을 올라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놀랐어요. 한 달 다니 다가 관둘 줄 알았거든요. 중간 중간에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활동지를 모 아서 과정을 기록해놓은 걸 보며 알차게 보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연주 모 습을 보니 대견해요. 떨지도 않고 끝까지 해내는 모습에 감사합니다. 누나들 보다 훨씬 훌륭하다. 후후.” “처음에 기타를 산다고 했을 때 걱정이 되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물 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중간에 힘들어서 관두지 않을까? 걱정을 했습니다. 집에서 연습을 많이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웃음). 오늘 보다가 깜짝 놀랐 습니다. 우리 딸보다 더 어린 친구도 기타를 치는 군요.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 고 연주를 한 친구들 모두 대견합니다. 이렇게 우리 동네에서 멋진 선생님과 기타를 치며 보낸 시간, 아이들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우리 딸이 이젠 무엇 을 한다고 해도 무조건 밀어주는 아빠가 될 랍니다.” 부모님들이 말씀 하실 때 아이들은 처음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삼삼오오 사람 들이 모여서 자신들을 바라보자 수줍게 웃던 아이들이 부모님의 이야기가 무르익 을 무렵 하나, 둘 웃기 시작했습니다. 얼굴 가득 느끼는 부모님과 시선을 마주하고 여름밤, 마을문고에 따뜻한 공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손가락이 아팠던 두 번째 시간을, 늘지 않는 기타실력에 선생님께 투정을 부리던 그 때의 시간을, 아 이스크림을 먹으면 열기를 식히던 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의 고개를 넘 어섰을 때 느끼는 성취감을 부모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책사마’ 프로그램은 박성 오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의 기록을 작은 제본 노트로 남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야기 했던 감동의 시간을 모으고, 시간이 끝날 때 마다 선생님이 적어주신 격려의 메시지를 소중하게 모아서 작은 기념물을 작업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쥐어질 지나 간 기억이 아이들 부모님과 함께 추억될 수 있도록 두 명의 선생님이 작업을 했습니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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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아이들이 받아보고커다랗게 웃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음은 박성오 강사님이 아이들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혜림 매 시간 어머니와 함께 나와 항상 1등 아니면 2등으로 왔던 혜림아. 그동안 기 타 수업하느라 수고가 많았단다. 그래도 매주 나와서 기타 수업하고 집 가서 서울시 성동구 가끔이라도 연습해줘서 고맙구나. 조금 더 꾸준히 연습한다면 아마 더 잘 치 지 않을까 싶다. 매 시간마다 그래도 열심히 하고 바코드 잡을 때 손이 꽤나 아플 텐데 그래도 잘 해줘서 선생님은 참 기쁘단다. 앞으로도 매사에 더 열심히 하면 너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 힘내렴. 책과 함께 사는 마을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는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단다. 편하고 쉬운 일 이 아니라 힘들더라도 혜림이에게 유익한 일을 즐겨 했으면 좋겠구나. 병구 처음에는 잘 따라올 수 있을지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마지막 공연 때 가장 선생님을 놀라게 했던 병구. C코드도 잘 잡지 못하던 녀석이 부모님들 앞에서 어색하긴 해도 코드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잡아서 굉장히 놀랐단다. 처음엔 재미로 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재미보다는 지루함이 더 크게 느껴 지기 마련이란다. 그래도 매 시간마다 꾸준히 나와서 친 네가 대견하단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처음엔 재미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흥미를 잃는 것이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단다. 그 러나 그 즐거움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또 다른 즐거움으로 나타나니 원하는 것을 할 때는 포기하거나 흥미를 잃었다고 다른 새로운 것을 잡기보다는 그것 을 꾸준히 하는 것이 더 좋더구나. 기타 뿐 아니라 그 밖에 모든 분야에서도 열심히 하는 병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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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환 기타 수업 때가장 열심히 하던 지환아. 네가 코드를 칠 때가 선생님이 지금까 지 네가 올 때부터 갈 때까지의 표정들 중에 가장 밝았던 거 아니? 네가 원하 는 곡(연가)를 칠 때, 또는 같이 합주하려고 연습했던 비와 당신을 연주할 때 밝게 웃는 네 모습이 기억에 남는구나. 우리 수업에선 맏형이라 손가락이 아파도 내색하지 않고, 연습을 항상 꾸준히 해와 줘서 고맙구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항상 밝게 웃고 지 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가끔이라도 기타도 쳐주고. 아마 기타를 꾸준히 치 면 아마추어들 중에선 그래도 좀 친다는 소리를 들을 거야. 채련 손이 작아서 코드를 잡기가 힘들어도 하고자 하는 의지는 충분했던 채련아. 늘 가장 먼저 와서 기다리느라 고생했단다. 그래도 아마 네가 가장 먼저 코드 스케일을 다 외웠을 거야. 코드 잡기는 좀 힘들었을지 몰라도 기타 연주하다 가 조금 틀릴지 몰라도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치는 자세가 중요하단다. 몸은 언젠가 지금 이상으로 클 거니까 시간이 조금 지나서 기타를 칠 때는 지금보 다 훨씬 잘 치게 될 거란다. 그러니 혹여나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렴.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듯 모든 일은 처음 시작이란 것이 있단 다. 그게 힘들더라도 모든 시작은 0에서부터 시작하니까 조바심을 갖지 말고 천천히 차근차근 해 나갔으면 좋겠구나.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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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베이트 프로그램 강좌 ‘책과함께 사는 마을’의 주요 프로그램인 디베이트 강좌를 진행할 시간이 다가왔습 니다. 저학년, 고학년, 중학생 반의 프로그램을 자원활동가와 함께 이끌어 가야 했 습니다. 하지만 활동지를 만들고 고민하던 활동가들이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습 니다. 우리는 회의를 거쳐서 강사님들에게 부탁을 하고 수업에 참관하기로 했습니 다. 즐거운 마음으로 공동체에 참여하던 자원활동가들은 많은 고민을 한 결과 ‘즐거 서울시 성동구 운 활동’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하지만 기획을 하고 홍보를 하여 아이들을 모집 하는 과정에는 동참하며 수업에 열의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먼저 가까운 도서관 관장님을 찾아가서 디베이트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드리 고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또한 동장님에게 안내를 위한 설명을 했습니다. 또, 학생 이 있는 집에 방문하여 안내를 했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드디어 마을문고에서 디베이트 수업이 있던 첫 날. 저학년 반은 8명, 고학년 반은 4명이 지원을 했습니다. 강사님과 자원활동가가 수업을 준비하고, 강의실에 빔 프 로젝트를 연결하여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아쉽게도 중학교 반은 인원수가 모자라 서 성동구사회복지관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저학년 반은 김정숙 강사님이 준비를 해서 3일간의 활동을 했습니다. 《나쁜 어린 이표》를 읽고 온 아이들과 강사님이 디베이트에 대한 이론으로 수업을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온 주민들은 마을문고에서 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 다. 자원활동가들은 책을 보며 방문한 주민들과 디베이트에 대한 설명도 하고, 책 을 읽는 문화에 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고학년 아이들은 이수영 강사님과 함께 《할머니를 따라 간 메주》를 읽으면서 시 골의 풍습에 대한 이야기 풀기를 시작했습니다. 풍습에 대한 이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문고에서 기다리던 동생은 그림책을 보고, 함께 방문한 어머니는 읽을 책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두 반 모두 생소한 디베이트에 대한 질문을 자원활동가와 이야기 하며 신기해했 습니다. 또한 마을문고를 방문하며 앞으로 이용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문지 방을 드나들면 사람이 꼬인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조용하던 문고가 살아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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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베이트 수업 중학교 아이들은성동구복지관에서 전수완 강사님과 수업을 했습니다. 〈7번방의 선물〉이란 영화를 보며 미디어 디베이트를 했습니다. 영화 속에 나온 사형제도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함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과 현실이 다 르다는 것을 아는 중학생들은 집중해서 토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우리들 의 행복한 시간》이란 책을 이야기 하며 진행된 디베이트 시간에 또 다른 독서로 이 어질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영화와 도란도란 마을문고가 활성화 되면서 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하다가 자원활 동가 한 분이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도서관에서 가끔 영화를 보여주는데 우리 문고 에서도 상영을 하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다행스럽게 빔 프로젝트와 스피커를 대 여하실 수 있는 기사님을 알게 되어서 우리는 마을문고에서 영화를 상영하기로 했 습니다.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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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님이 빔을 설치해주시고스피커를 연결하여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 다. 하지만 그동안 홍보를 해도 잘 모이지 않는 주민들을 어떻게 모을 지 고민을 했 습니다. 그래서 주민모임에 참석하여 홍보를 하고 관리소장님께 말씀드려서 방송 도 했습니다. 토요일 오전 10시. 감동적인 〈7번방의 선물〉을 상영할 준비를 했습니다. 동대표 회장님도 참석하셔서 즐거운 마을문고 활동이 이루어져서 좋다고 격려의 말씀을 하 셨습니다. 마을문고에 처음 와 봤다는 주민은 책 한 권을 빌려서 자리에 앉았습니 서울시 성동구 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온 주민은 아이들과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28명의 주민이 모여서 두 시간 동안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간혹 눈물을 흘리시며 영화를 보는 소리 도 들렸습니다. 봤던 영화인데 또 본다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북적거리는 문고에 서 있던 프로그램을 물어보시는 주민 한 분은 다음에 기타 프로그램이 있으면 꼭 알 려달라고 했습니다. 디베이트 프로그램을 듣고 싶었는데 기간이 지나서 아쉽다는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주민도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주민들을 보며 자원활동가들은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없 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구나!” 하며 웃었습니다. ▲ 영화와 도란도란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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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옆 동네사람들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연극지도사에 도전하다 마을문고에서 ‘책과 함께 사는 마을’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던 중 주민 몇 분이 관 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연극지도사’에 관심이 있던 주민들이 공동체 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연극을 하면서 주민들과 소통을 하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던 현금림 선생님과 두 분이 함께 ‘엄마가 날다’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엄마들이 마음을 모아서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며 소통을 하자 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연극에 대한 꿈을 가진 분도 있었습니다. 마을문고에서 주민들과 작은 공연을 하고 싶다는 주민도 분도 있었습니다. 공동체를 경험한 저도 연극지도사가 되어 주민들과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 함께 해요.”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연극지도사를 검색했습니다. 인천에 있는 협회가 떴습니 다. 우리는 또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2013년 2차 우리마을프로젝트 신청기간이었습니다. 강사님께 전화를 걸어 교육내용과 활동 방법에 관해 들었습니다. 함께 기획서를 쓰던 주민들은 또다시 설 레었습니다. 꼭 내일 당장 연극 무대에 설 것만 같은 흥분에 또다시 들썩였습니다. 2013년 6월 어느 날. 성동구에서 공동체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성동마을넷’ 모 임을 위해 뚝섬의 ‘서울숲’으로 갔습니다. 각각의 공동체를 하면서 도와가는 모임에 서 우리 ‘연극과 함께’가 우리마을프로젝트 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 니다. 가족과 같이 함께 기뻐해주시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또 신이 났습니다. 그 사이에 빔 시설을 임대할 수 있는 분도 알게 되어서 ‘연극과 함께’는 마을문고에서 교육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표로 기획서를 넣은 주민이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저녁 으로 교육시간을 잡았습니다. 매주 수요일 7시가 되면 마을문고 앞이 훤하게 밝을 것입니다. 인천의 연극 강사님도 턱없는 강의료였지만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선뜻 수락해주셨습니다. 아이들과 어르신과 또 모여서 함께 할 우리들의 연극무대가 꾸 물거리기 시작한 시간이었습니다.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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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수막과 공고문 몇개로는 주민들에게 호응이 없었다는 경험한 우리는 그림 작 가에게 예쁜 포스터를 부탁했습니다. 20장의 포스터를 들고 동네를 돌아다녔습니 다. 약국, 슈퍼마켓, 문방구, 학교 앞, 도서관, 신금호역 등 곳곳에 포스터를 붙였습 니다. 함께 한 공동체 회원들은 지나가면 묻는 사람들에게 천천히 알려드렸습니다. 연극을 배워서 마을에서 즐겨보자는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또한 ‘연극과 함께’는 온라인 카페에도 포스터를 올렸습니다. 주변의 대학생도 참 여했습니다. 학생들은 공동체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학교 가까이에 있는 마을 서울시 성동구 문고에 와서 책을 보기도 했습니다. 어르신들도 오셔서 한 말씀씩 하셨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나?” 웃으며 우리는 말했습니다.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활동가들이 곧 찾아갈 거예요.” 마을문고에서 시작된 작은 공동체 ‘연극과 함께’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주민 책과 함께 사는 마을 들은 받은 예산으로 강사료를 책정하고 최소의 경비를 아껴가며 교육을 받았습니 다. 더운 여름날 ‘한여름 밤의 꿈’을 꾸면서 말입니다. 들썩이는 마을문고 ‘연극지도사’ 안내를 여러 곳에 했더니 순식간에 수강생이 접수를 했습니다. 많아야 10명일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정원이 40명이 넘었습니다. 이젠 심사선생님을 모시 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사람을 골라야 했습니다. 물론 주민들은 제일 먼저 수강자 명단에 올렸습니다. 대학생, 직장인, 경력단절 여성, 다른 곳에서 공동체 사업을 하 고 계시는 선생님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두 시간에 걸쳐서 면접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사람들에게 공동체 사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결국 수 강자는 29명이 되었습니다. 이젠 마을문고의 의자가 부족했습니다. 훌륭한 강사를 모셔서 질 좋은 수업을 듣 고 즐겁게 활동할 수 있다는 생각에 구비 시설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한 겁니다. 낮 에 함께 활동하는 현금림 선생님과 의논을 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동사무소에 동장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아직 열지 못한 마을문고라서, 또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시로 의자를 빌렸습니다. 한 번을 빌려주고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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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반납한 의자는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관리소장 님이 다가오셨습니다. 마을을 위한 일에 도움을 주실 분을 모시고 와서 기증을 받 아오신 겁니다. 현금림 선생님과 마을문고 앞에서 얼마나 뛰었던지 하늘이 그렇 게 밝고 맑을 수가 없었습니다. 20개의 의자가 도착하고 포장박스를 풀며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수업 준비를 했습니다. 3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저녁 7시가 되 면 소란스럽게 수다를 떱니다. 즐거운 수업을 듣고 활동을 하면서 밤 10시가 되도 록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또다시 마을 주민이 다가왔습니다. 교실 안에 서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을 보시며, 나중에 노인정에서도 수업을 해달라는 어르신 도 있었습니다. 동대표 회장님도 퇴근을 하다 들어오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웃고 즐길 수 있을 까?”라며 즐거워 하셨다고 합니다. 드디어 ‘연극지도사가 되자’ 첫 번째 수업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같이 마을에 모여서 연극을 배웠다는 강사님이 도착했습니다. 주민 스스로 모여서 공부를 하고, 대본을 만들고 지역에서 강의를 하고 아이들과 연극을 한다는 윤혜림 강사님은 수 강생들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막대기를 들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마임을 했습니다.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누구하나 똑같은 발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창의력 시험을 치 르듯이 모두가 독특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PPT 강의를 하셔서 빔 시설을 빌려놓 으니 마을문고가 멋진 강의실이 되었습니다. 윤혜림 강사님이 보여주신 학교 실전 은 재미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겪는 여러 가지 애환도 보였습니다. 복지관이나 방 과 후 교실에 남아서 연극을 가르치면서 힘든 일도 많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 이들 얼굴에 피어난 커다란 행복 앞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말씀에 우리들도 모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을 받아야 해서 옆 동의 아기 엄마는 아이들이 수시 로 하는 전화 때문에 신경이 쓰였지만 끝까지 수업을 들었습니다. 수료증을 따서 실 전에 나가서 아이들과 함께 즐기려고 애쓰는 주민도 있었습니다. 지금 강사로 나가 고 있으나 연극을 하면서 더 재미있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연 기가 좋아서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하는 연극을 하고 싶다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저도 가까운 곳에서 우리 아이와 연극을 하면서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했습니다.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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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문고 옆에 있는노인정의 어르신들도 얼른 배워서 함께 웃고 싶다고 늘 앞에 서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극단 예터의 강신화 강사님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연 극과 교육을 함께 강의해 오신 강신화 강사님의 강의에 마을문고는 커다란 웃음 태 풍이 불었습니다. 청소년과 함께 한 연극은 문제가 많은 듯 보이기도 했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이겨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픈 사람과 함께 한 교육은 포용력으로 수업을 했다고 서울시 성동구 했습니다. 흥부전을 각색하여 직접 대본을 만들면서 나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 때의 방식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요즈음 나만 아는 세상에서 ‘함께 더불어’가 무 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 면서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공동체가 되어 함께 산다는 책과 함께 사는 마을 것은 바로 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주민들과 연극을 하며 들썩들썩할 우리 동네를 꿈 꾸며 즐거운 수업시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연극지도사를 위해 마을문고는 매주 수요일 저녁 7~10시에 불이 켜졌습니다. 햇빛이 모든 곳을 비추진 않는다. ‘연극지도사가 되다’를 중반부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미리 알지 못해서 참여 할 수 없었던 주민들과 ‘기타와 스토리텔링’의 대상자가 되지 못한 주민들이 민원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주민 전체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이 아닌데 전기세를 낭비해가 면서 마을문고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또한, 성인대상 프로그램만 있고 아이들 프로그램이 없다는 분이 있고, 기타를 치지 않는 주민들은 각자에게 해당하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이유로 마을문고를 사용 하지 말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마을공동체 사업에는 전기료나 임대료를 지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민이 제 기한 민원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연극지도사 구성원은 단순인건비로라도 마을 문고에 발생하는 경비를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중간 에, 알지 못해서 참여하지 못했다는 주민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포스터를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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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곳에 붙였어도보지 못한 주민도 있었습니다. 홍보의 수단인 엘리베이터, 게 시판 등에 포스터를 붙였어도 주민을 위한 소통의 수단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민원이 들어오자 직장 때문에 참여를 하지 못하던 구성 원 선생님이 공동체를 중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우리 주민만이 아닌 외 부인의 참여가 주민이 하는 공동체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30여 명이 넘는 수강생들은 수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무르익고 있는 학구열과 들썩들썩하던 내면의 끼가 정지 신호를 받자 당황했습니 다. 반대하는 주민을 설득하여 마지막 수업까지 수료를 하여 27명이 ‘연극지도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주민들 간의 다른 생각은 작은 틈을 만들었습니다. 나머지 구성원들은 이제 교육이 끝나고 동아리를 구성하여 봉사를 가고, 활동을 할 생각에 설레었습니다. 하지만 뜻이 다른 구성원은 참여를 하지 않 게 되고 ‘마을공동체’에 대한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절실하게 느낀 것은 처음 시작은 같아도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여기서 불쑥, 저기서 불쑥 걸림돌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모두 물 흐르듯이 해결되는 것 은 아니지만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경험이 생기고 다음번에는 또다시 시행착오를 하지 않으려는 꼼꼼한 계획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극교육 중에 ‘둘이서 한 마음’이란 지도안이 있었습니다. 원형으로 앉아서 두 명이 손을 잡고 가운데 새로운 한 사람과 손을 잡고 자기의 자리로 돌아와 앉는 활 동입니다. 둘이서 함께 일어서서 누군가를 데려와야 하는 것인데 손잡은 두 사람이 다른 곳을 향해 있으면 시간이 초과되어 벌칙을 받습니다. 협동이, 이해가, 배려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27명이 수료증을 받고 마지막 수업에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연극지 도사가 되자’를 통해 느낀 점을 돌아가면서 말했습니다. “연극을 배우고 싶고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참여했습니다. 즐거운 수업이 었고, 직접 수업을 하러 간다면 완벽하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잠시 쉬고 있다가 동네에서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연극지도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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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할 수있다면 역동적인 작업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강사님 께 수업을 들으면서 내 안의 끼가 발산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 면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수업을 아이 들과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다면,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습니다.” “예전에 연기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구청에서 뽑는 배우 오디션에 합격을 했습니다. 살아있는 기분이 듭니다. 농사를 짓는 공동체를 운영하고 서울시 성동구 있는데 다른 마을에서 하는 공동체에 참여해보니 즐겁습니다. 봉사활동도 꼭 가고 싶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참여하게 해주세요.” “독서지도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을 접목해서 아이들과 즐거운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생기 있는 강사님의 수업을 들으며 나 자신을 돌아본 계기가 되었어요. 늘 즐거운 선생님이 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줄 수 있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을 거란 확신이 듭니다. 성동구 내에 봉사를 다니면서 좀 더 배우고 싶어요.”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입니다. 우연하게 알게 되어 참여하게 되었어 요. 희곡을 쓰고 싶었는데 희곡 강사님 수업을 들어서 좋았습니다. 늘 우리 또 래들과 수업을 듣다가 엄마, 이모 나이의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하니 새로웠 어요. 함께 활동하다 보니 전혀 낯설지 않고 즐거웠어요.” “학생이라 학교에서 수업만 듣다가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를 해보니 정말 새 로웠어요. 전,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서 첫 시간에는 조용하게 있었는데요. 함께 한 선생님들과 대본을 만들고 상황을 만들다 보니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되었어요. 이제는 먼저 인사를 합니다. 또한 연애 상담사 연기를 할 때 양쪽의 입장을 다 들어볼 수 있다는 것에 재미있었어요.”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에요. 도서관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고 참여하게 되었어요.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학부모들에게 새로운 프로그램이 없 느냐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새로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서 기뻤어 요. 꼭 활용할거예요.”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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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와주신 분들 인터뷰 1.성동구 부모커뮤니티 담당자 박숙영 선생님 성동구의 부모커뮤니티 담당자 박숙영 선생님을 만나서 활동가로 일하는 이 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 현재 부모커뮤니티를 진행하고 계신데요. 대략적인 목표를 말씀해주신다면? 박숙영 : 부모가 먼저 변해야 아이가 행복하게 되므로 부모들이 먼저 육아서 와 사회에 대한 전망등을 공유하고 아이들을 코칭 할 수 있는 마음을 다지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아이들이 사교육에 허덕이며 불안에 쫓겨 입시 경쟁에 힘겨워 하기 보다는 각 나이에 맞는 발달 단계를 고려해서 친구들과 책을 함께 읽고 연대하며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기록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Q. 본인이 생각하는 마을활동가란? 박숙영 :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문제를 타인과 늘 비교하며 저울질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 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열린 마 음으로 문제를 드러내 놓고 함께 더 나은 해결점을 찾아가는 연대의식과 열정 이 있고, 소통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Q. 현재 진행되는 마을활동가로서의 경험 중 감동? 박숙영 : 독서클럽 활동 속에서 키운 아이가 외동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만 움켜쥐지 않고 아이들과 나눌 줄도 알고 외동 아이 같지 않게 사회성이 좋다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보람이 느껴집니다. Q. 현재 진행되는 마을활동가로서의 경험중 애로사항?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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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숙영 : 개별적인친목모임에서 열린 모임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기 존 분들의 비이성적 텃새로 새로운 사람들은 물론 진행하는 리더마저 넌더리 를 치며 모임을 해체시킬까 하는 마음이 들도록 흔들 때… 행복하려고 하는 모임인데 이 모임을 유지하려고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까 하는 마 음이 들 때였습니다. Q. 성동구에서 앞으로의 활동 방향은? 서울시 성동구 박숙영 : 아이가 점차 자라서 학습을 본격적으로 할 나이가 되었으므로 신화 를 시작으로 아이와 아이 친구들과 함께 고전읽기를 하면서 생산적인 글쓰기 와 체험활동을 기획해서 나와 가족 마을 나아가 세계를 가슴에 품는 지평을 열어주는 활동들을 기획하고 싶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Q. 활동하면서 이런 점을 바란다? (공기관, 회원들 등) 박숙영 : 아이들에게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공부하는 우리의 뒷모습, 민주 적인 운영형태를 보여서 아이들의 모범이 되어주도록 노력해 봐요^^ Q. 주민의 소통 활성화 방안 3가지? 박숙영 : .우리 모임이 추구하는 육아활동에 대해서 알릴 수 있는 강연기획 1 (11월 어느날). 2.관심있는 초등생 부모에게 모임 오픈. 3.내실있는 독서클럽운영 Q. 마을공동체에게 전반적인 조언? 박숙영 : 마을 공동체가 활성화 되어서 우리 문제가 무엇인지 성찰하고 함께 모여서 해결책을 나눈 수 있는 성숙하고 역량 있는 시민들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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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이리버 아파트관리소장님 우리마을프로젝트 ‘책과 함께 사는 마을’ 접수 전부터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주신 관리소장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기타와 스토리텔링’ 아이들에게 격려의 말씀과 함께 간식도 제공해주셨습니다. 또한 주민과의 마찰로 ‘책사마’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도 격려와 힘이 되어 주셨던 소장님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Q. 처음 우리마을프로젝트에 대해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관리소장 : 생소하지만 지역 주민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Q. 본인이 생각하는 우리마을프로젝트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은 무엇일까요? 관리소장 : 마을문고에 활력을 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데 문고에서 진행되는 수업이나 활동을 보면서 저도 흥겨웠습니다. Q. 현재 진행되는 모습을 보며 느낀 점은? 관리소장 : 아직 홍보 등의 부족으로 조심스럽지만, 향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리라고 봅니다. Q.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은 우리 하이리버@ 마을문고 활성화 사업과 주민들이 모 여드는 사랑방 정도의 역할을 목적으로 한다. 향후 진행과정에 대한 애로사항은? 관리소장 : 앞으로도 더욱 널리 알려져서 우리 아파트의 특성으로 자리 잡았 으면 좋겠습니다. 열정적인 활동가들을 보니 가능하다고 봅니다. 아직 여건상 완전한 오픈을 못한 상황이라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책사마’ 이런 점은 안타까웠다? 관리소장 : 홍보가 일단 부족하지요. 지역 주민과의 소통에 홍보가 꼭 필요하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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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고 생각합니다. 또한중·장년 층의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합니다. Q. 주민의 소통 활성화 방안 3가지? 관리소장 : 늘, 열려 있는 공간과 사람들의 관심이 아닐까요? Q. 마을공동체에게 전반적인 조언? 서울시 성동구 관리소장 : 향후에 더욱 발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지역만 우선으로 삼지 말고 다른 지역과도 네트워킹이 되면 좋겠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5. 우리는 현재 진행형 새로운 꿈을 향해 ‘책과 함께 사는 마을’과 ‘연극과 함께’를 함께 해온 자원활동가는 현재 작은 꿈을 품 기 시작했습니다. 사회복지관과 노인정 봉사, 또 다른 수업을 진행하면서 얻은 경 험으로 주민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가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아이들과 ‘소통대회’를 계획했습니다. 어디가 좋을까 회의를 하며 자원봉사자들이 의논을 했습니다. 그들은 현재 봉사를 나가면서 함께 한 아이들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성동구사회복지관의 아이들과 ‘소통대회’를 기 획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활동가들도 유동성 있게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적으로 자발적인 활동가들이 모여서 프로그램을 짜기 시 작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과 1대 1 만남을 가지면서 얼굴을 익히고, 아이들의 이 야기를 들었습니다. 책을 들고 와서 읽으며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아이들과 대화하 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입을 여는 아이들이 1대 1로 다가온 활동가들에게 맘속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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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회기에는 책과케이크를 이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자는 활동가가 나왔습니 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케이크를 준비하여 이야기 하러 갔습니다. 음식과 함께 책을 읽어주자 아이들은 집중을 잘 했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1대 1로 다가온 선생님들과 가족, 학교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활동가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복지관 교실을 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직 남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회의를 하면서 자원활동가들은 말합니다. “이야기 할 다음 수업을 짜다가 보면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어요.” 함께 ‘도들이봉사단’으로 현재 우리 자원활동가는 성동구에 자원봉사 단체 신청을 준비 중입니다. 공동체 활 동을 하다 보니 봉사단체로 움직일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음에 무엇을 할 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모여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행 동하다 보면 우리는 작은 일들을 하나씩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 래서 지금도 또 생각하고 머리를 모으는 것이겠지요. 앞으로 우리 아파트 문고에서 책을 활용하는 프로그램도 더 나올 것이고, 도란도 란 들썩들썩이며 활동을 하는 내용을 어딘가에 소문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한 번 해봤더니 그 맛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도들이 봉사단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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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는 말 이 글은서울시 마을프로젝트 사업인 ‘책과 함께 사는 마을’을 진행하면서 담은 이야 기입니다. 함께 활동하며 웃고 즐거웠지만, 어렵고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던 자원 활동가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아직 홍보 부족이라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지 않듯이 작은 시작을 한 우리의 첫걸음이 다음에는 마라톤의 첫 발자국이 되도록 더욱 열심 서울시 성동구 히 책과 함께 달리고 있을 겁니다. 부족하지만 우리 마을 사업에 대하여 알고 싶으 신 분은 제게 연락 주세요. 늘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책과 함께 사는 마을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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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13-01-005호 2013 마을공동체 심층사례집 2013우마을돌 기 리 아보 1판 1쇄 인쇄 2013년 12월 17일 1판 1쇄 발행 2013년 12월 17일 기획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마을지원실 글쓴이 안세정외 5명 편집/디자인 보임디자인(주) 발행인 유창복 발행처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주소 울시 은평구 통일로 684, 8동 3층 서 ⓒ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홈페이지 www.seoulmaeul.org 대표전화 02-385-2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