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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역시좋은종이이다.매순간나에게주어진종이를손으로 쓸어보고감촉이나
나에게가장

두께감이내가좋아하는종이이기를바란다.좋은종이와까만플러스펜,나와콘티를위한최고의동료
CONTENTS




                                               상상공감
                                               04 상상 한마디 내 인생 영화처럼 “반짝반짝” 하던 순간
                                                              ⊙



                                               06 상상 스토리 상상하고 있던 것, 바라던 장면은 나의 손 끝에서 생명을 얻어
                                                              ⊙



                                               10 한국제지의 상상 아트지, 코팅이 바로 아트다!
                                                                   ⊙




                                               1%의 종이, 99%의 상상
                                               12 별처럼 반짝이는 종이. 하나             ⊙   그들이 말하는 한 장의 리얼리티, 매그넘(Magnum)

                                               16 별처럼 반짝이는 종이. 둘          ⊙   사진, 그 위에 남는 것은 시간

                                               20 별처럼 반짝이는 종이. 셋          ⊙   상상은 24장의 종이 위에서 1초의 현실이 된다



                                               Book in Book
                                               23 이상한 나라의 블로거


“반짝반짝”                                         한국제지
                                               34 종이가 있는 풍경 50년, 그 동안 한국제지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올해의 마지막 PAPER COMMUNICATION은 “반짝반짝”입니다.        38 내일의 종이 미래, 지구와 공존하기 위한 종이의 진화
                                                              ⊙



세상에 “반짝반짝”한 것,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요?               42 종이 연구소 종이에도 트러블이? 알아야 피해갈 수 있는 종이 트러블
                                                              ⊙


                                                              ⊙   종이 연구소의 친절한 Q&A
반짝반짝 금가락지, 반짝반짝 작은 별, 반짝반짝 그녀 혹은 그의 눈망울까지.
보고만 있어도 “반짝반짝”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까지 “반짝반짝” 빛나게 합니다.   48 News
                                               50 독자마당
“반짝반짝”한 마음은 사진 한 컷, 영화 한 편으로 종이 위에 남습니다.
인화지와 필름 위에 기록되는 “반짝반짝”한 순간들.
PAPER COMMUNICATION이 그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PAPER COMMUNICATION • 계간지 | 등록일·2005년 6월 8일 | 발행인·전원중 | 발행일·2009년 10월 14일 | 통권 95호 | 발행처·한국제지주식회사_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58-6 사보편집실 02-3475-7255 기획 윤소정_한국제지 마케팅 TF팀 | 기획·디자인 디자인수목원 | 출력·인쇄 비.지.아이
모두의 “반짝반짝”, PAPER COMMUNICATION시작합니다.                                                                                                               본 인쇄물은 콩기름
                                                                                                                                                    잉크를 사용하고,
                                               •  국제지 사외보는 CTP인쇄 방식을 채택하여 인쇄품질이 우수합니다. 한국제지 사외보 표지는 하이퍼 엑스프리아트 250g, 내지는 하이퍼 엑스프리
                                                 한                                                                                                  워터베이스 인쇄를 한
                                                스노우화이트 150g을 사용하였습니다.                                                                               친환경 인쇄물입니다.
상
         상
         공
         감
⊙




         상
         상
         한
         마
         디                      ★ 헤어지잔 말 한 마디에 내 손을 잡고                            찻길로 뛰어든 남자친구 내 인생
                                호러영화 되는 순간!             ★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 내가 짝사랑하던 남자의
                                                                     여, 20대, 교사




                                갑작스러운 고백. 눈물이 줄줄줄                 ★ 아직 내 인생엔 그 순간이      여, 30대, 공연마케팅




                                오지 않았다.       ★ 지금. 영화에 나오는 백수만큼
                                                남, 20대, 학생              이나 찌질 하지만 지금도

                                난 반짝반짝 함.        ★ 피가 끓던 그 시절 밤기차타고 해운대로 향하
                                                    여, 20대, 학생




                      내인 영 처
                        생 화 럼   던 길...     ★ 우리 마누라처음 만났을 때
                                      여, 20대, 회사원                        ★ 내가 벌어서 차를                          남, 20대, 엔지니어




                                사던 그 때(카드를 긁던 그 순간)           ★ 아이 낳고처음으로 모유 먹이던



                      “반 반
                        짝 짝”
                                                                                  남, 20대, 회사원




                                순간      ★ 대학원 합격했을 때 (할머니가 울었다...)
                                   여, 20대, 주부                                      ★ 내가                                             남, 20대, 학생




                                좀 목매고 있던 남자한테 먼저 헤어지자고 쿨하게 말했을 때. 그 순간, 나는




                      하 순
                       던 간      영화 속 여주인공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 진짜 끝.
                                짝사랑하고 있는 여자가 보고 있는데, 헤매고 있는 외국인에게 길안내해줬
                                을때. 영어로!!!         ★ 체육대회에서 오래 달리기하고 난 뒤에, 다시 뛰
                                                       남, 30대, 회사원
                                                                                 ★ 수 년째                                          여, 30대, 교사




                                어서 수돗가까지 물 먹으러 갔을 때.                ★ 직장생활을 하면서 꿈을 위해           여, 30대, 회사원




                                야간대학을 다녔을 때. 피곤한 하루하루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가 가장 ‘반짝’였던 시기 같다.             ★ 사귄 지 백일 되었을 때
                                                                           독자_김지영 님(서울시 도봉구)



04                                                                                                                                               05
                                백송이의 장미와 목걸이, 그리고 처음 만난 날처럼 차려 입고 첫 만남인 척 했던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것들. 닭살처럼 보이지만 우린 다이아몬드보다 더 반짝였다.                                                             독자_김선용 님(서울시 양천구)
상
                                          상
                                          공                                                                               글·민보라 + 사진·김현호
                                          감
                           ⊙




                                          상
                                          상
                                          스
                                                                                      1 초 예 이 고부 다 프 그 과프 그 사 에 수 없 나 났 사 지 를반 ,
                                                                                       5 의 술 라 른 . 로 램 로 램 이 서 도 이 타 다 라 기 복
                                          토
                                          리                                           이 는없 면서 한C 이 .짧 시 안 시 자 눈 사 잡 넘 나 C 속 서살
                                                                                       제 으 운 F 다 은 간 에 청 의 을 로 고 쳐 는F 에 아
       그
       림
                                              아
                                              티
                                                  종
                                                  이
                                                                                      남 위 다 고다 은강 한한편 그한편 위 오 도광 인 은밤 달 다 그 데
                                                                                       기 해 듬 듬 렬     .   을 해 늘 고 들 을 린 . 런
       들                                      스   를
       은                                      트
       어                                      들
                                                  통
                                                  해                                   저 다개 강 광 인 은무 을매 로일 불 하 움 여그 게완 한한편 C 를
                                                                                       마 성 한 고 들 엇 개 사 란 게 직 렇 벽         의 F
       떻                                      을
                                                  새
       게                                      만   로
       멋                                      나   운                                   만 어 것 까 그키 드 바 ‘ 티.종 위 그 진콘 는모 에 가 강 하 서
                                                                                       들 낸 일 ?  워 는 로콘 ’ 이 에 려 티 두 게 장 렬 면 도
       진                                      그   문
       결                                      들   화
       과
       로
                                              의
                                              작
                                                  와
                                                  예
                                                                                      확 하 광 의컨 을전 할수있 매 체 된 .
                                                                                       실 게 고 셉 달     는 개 가 다
       만                                      업   술
       들                                      과   을
       어                  삶                       창
       질                                          조
 까 ,그                                             해
  요 리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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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고 던
        에 기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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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립



                                                                                      바 던장 은
                                                                                       라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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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이                             근
                   나 위




                                                                                      나 손끝 서
                                                                                       의 에
                    보 에                           주
                     세 서                          목
                      요 시                         받
                                작                 는
.




                                  된               디
                                    무             자




                                                                                      생 을얻
                                                                                       명 어
                                      수           이
                                        한         너
                                                  와
                                          낙
                                            서
                                              와




                                                                                      전국민이 다 아는 CF, 그 CF의 콘티를 그린 콘티라이터는 눈 밑에 다크
                                                      김일영 콘티라이터                       서클도, 지친 기색도 없는 소녀 같은 모습. 콘티의 세계가 엄청 바쁘고
                                                      1996년 한양대학교 응용미술 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만화공부를 하던 중 광고프로덕션         빠르게 돌아간다지만 김일영 작가는 그 폭풍 속에서 피해 앉은 듯 살짝
                                                      ‘광고방’에 입사한다. 3년 간 일하며 쌓은 실력
                                                      으로 2000년부터 프리랜서로 독립하여 콘티
                                                                                      기대했던, 콘티세계라는 정글을 헤쳐 나온 여전사 이미지 같은 것은 찾아
                                                      라이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카투니스트
                                                      로 일하고 있다. KTF의 Show 일본여행
                    06                                을 비롯하여 진로소주 J 송혜교지현우,
                                                                                      볼 수 없다. 부끄러워 정면 얼굴을 공개하지 못하겠다는 그녀의 발언으로,             07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매직스 놀이동산 등 인상적인 CF들의
                                                      콘티를 작업하였으며, 개인 홈페이지 www.
                                                                                      얼굴없는인터뷰이제시작한다.
                                                      ilungsworld.com에 그보다 더 많은 콘티와
                                                      만화들이 올라오고 있다.
1차로 콘티라이터가 필요한 순간이다. 회의에서 나온 아        다. 1997년에 입사하여 2000년까지 짧은 시간 동안 많     꾸준히 요가를 하고 있다. 직업이 조금 거칠고 고되기 때
                                                         이디어 몇 가지를 콘티로 그리면 다시 회의를 거쳐 몇 개       은 콘티를 그린 덕분인지 프리랜서로 나서는데 어려움          문에 몸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의 안을 추린 후 광고주에게 보여준다. 광고주와 광고대        은 없었다.그리고 지금까지 프리랜서 콘티라이터로 활동         래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도 하고 있다. 여유가
                                                         행사가 다시 회의를 하고 최종 안이 확정된다. 그리고 촬       중이다. 한 달에 대략 100건 이상의 콘티를 그리고 있다.     있을 때는 여행을 간다. 여행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해 국
                                                         영을 진행할 광고프로덕션도 선정된다. 광고프로덕션의                                                내나 해외 가리지 않고 훌쩍 떠나는 편이다.
                                                         감독이 촬영콘티를 그리는데, 이것을 가지고 콘티라이터         ★ 콘티라이터로서의 어려움도 있고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하나씩
                                                                                               이야기한다면?
                                                         는 최종 콘티를 그린다. CF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무수히                                             ★ 김일영에게 종이란 어떤 의미인가?
                                                                                               어떤 직업이든 그렇겠지만 어려움도 많고 즐거움도 많
                                                         많은 협의 연속이다. 광고대행사의 CF플래너들이 머리                                               종이가 없으면 작업이 안 되기 때문에 종이가 떨어지면 불
                                                                                               다. 콘티라이터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광고회사의
                                                         를 쥐어짜 만든 아이디어는 콘티가 되어 광고주와 감독,                                              안하다. 늘 종이를 비축해두는 편이라고 할까? 프리랜서이
                                                                                               시간에 내 작업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 쪽
                                                         모델 등 광고 스태프 간의 의사소통을 주도한다. 이때 말                                             기 때문에 여러 회사를 다니며 작업을 하는데, 나에게 가
                                                                                               사람들은 늘 바쁘다. 밤을 새서 회의를 하거나 새벽에
                                                         을 이용한다면 그 과정은 몇 배나 더 힘겨울 것이다. 매                                             장 중요한 것은 역시 좋은 종이이다. 매 순간 나에게 주어
                                                                                               모이는 것은 예삿일이다. 콘티라이터라면 그것에 익숙
                                                         번 얘기할 때마다 살이 붙거나 누락이 될 수도 있고, CF                                            진 종이를 손으로 쓸어보고 감촉이나 두께감이 내가 좋아
                                                                                               해져야 한다. 그래서 여자보단 남자 콘티라이터가 많은
                                                         플래너가 애초에 생각했던 그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                                               하는 종이이기를 바란다. 좋은 종이와 까만 플러스펜, 나
                                                                                               것 같다. 그 다음 힘든 것인 스케줄 관리이다. 콘티라이
                                                         다. 하지만 콘티로 그려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에게                                             와 콘티를 위한 최고의 동료이다.
                                                                                               터는 프리랜서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여러 회사를 다니
                                                         나 똑같은 그림을 보여주니 오해의 소지 없이 원활한 커뮤
                                                                                               며 일을 한다. 스케줄 관리를 잘못하면 연달아 펑크 나
                                                         니케이션이 가능하다. CF기획자부터 광고주, 카메라감독,
                                                                                               는 경우도 생기므로 매번 주의한다. 혼자 일하기 때문
                                                         스타일리스트, 모델에 이르기까지 같은 콘티로 CF가 보여
                                                                                               에 외로운 직업이라는 것도 콘티라이터로서의 어려움
                      ★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혹은 콘티작가, 어떤 직업인가?     주고나 하는 바를 정확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얻는 즐거움도 많아 10년째 이
                      이 직업을 가리키는 말은 무수히 많다. 스토리보드 아티
                                                         ★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일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린 그림은 일반 사
                      스트, 콘티작가 또한 그 중의 하나이다. 광고 쪽에서 일
                                                         어려서부터 만화를 그리고 싶어했다. 아빠는 요리사,        람들에게까지 전달될 일이 없다. 촬영 전까지만 필요한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콘티                                                                                                        까만 플러스펜으로 쓰윽 그려내자 어느 새

                                                         몬스터, 이나중 탁구부, 아즈망가 대왕등을 좋       것이 콘티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가 콘티를 그린 CF                              종이 한 장이 꽉 찬다. 콘티라이터에게
                      라이터라고 부른다. 콘티라이터라는 직업은 최근 들어
                                                                                                                                                            중요한 것은 잘 그리는 것, 무엇이든 그릴
                                                         아하는 만화가 지망생. 디자인을 전공한 후 1년 정도 만       에 내 일러스트가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렇게 일반 사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은데, 꽤 오래 전부터 많은 콘티라                                                                                                       수 있는 것, 그리고 누구보다 빨리 그려

                                                         화 공부를 하던 중 친구의 소개로 광고프로덕션에 면접         람들에게 내 그림이 조금씩 알려지면 즐거움을 느낀다.                                내는 것이다.
                      이터들이 활동했다. 현재에도 약 100여 명의 콘티라이터
                                                         을 보러 가게 되었다. 처음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받은        또 그리면 그릴수록 조금씩 늘어나는 그림 실력 때문에
                      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콘티란 CF나
                                                         질문이 콘티를 그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만화         매일 조금 흐뭇하다.
                      영화 등 영상으로 만들기 전에 만드는 대본과 같은 것으
                      로 만화처럼 컷을 나눠 움직임을 그린다. 나는 CF를 메    를 연습했고 드로잉 을 좋아했기에 당연히 그릴 수 있
                                                         다고 이야기했다. 콘티를 모르던 때라 가능한 대답이          ★ 어떤 방식으로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고 기분전환을 하는가?
                      인으로 작업한다.
                                                         아니었을까?                                스트레스를 푸는 일이라. 우선 프리랜서이고, 콘티라이
08                                                                                                                                                                                    09
                      ★ CF를 메인으로 하는 콘티라이터...더 자세한 설명은?   만화, 일러스트와 콘티는 무척 다른 일이었다. 만화나         터이다 보니 불규칙한 생활이 어쩔 수 없이 지속되는 경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콘티는 CF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맞물려 설명해야 쉽다.     일러스트는 작업 시간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만 콘티         우가 있다. 그래서 낮과 밤이 바뀌고 잠이 부족한 경우가

                      예를 하나 들어 광고대행사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는 요청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바로 그려야 한다. 옆        종종 있는데, 시간이 나면 길고 깊은 잠을 자며 거기에서

                      이 자리에서 컨셉도 정해지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에서 내용을 불러주면 그것이 바로 콘티가 되는 경우도         오는 스트레스를 푼다. 또 한 자리에 앉아 오랜 시간 작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있었다. 한 달에 거의 200~300건 정도의 콘티를 그렸      업을 하니 어깨가 많이 굳는데,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상
                                                                          상
                                                                          공
                                                                          감
                                                                 ⊙




                                                                          한
                                                                          국
                                                                          제
                                                                          지
                                                                          의
                                                                          상                            앞 뒤로 두 번 구운 김이       더 아삭하고 고소하다는 내용의 광고가 있었다. 두 번 이리 뒤집
                                                                          상

                               과                                                 언        한
                               연
                               어
                                                                                 제
                                                                                 나
                                                                                          국
                                                                                          제
                                                                                                       고 저리 뒤집어 굽는 게 뭐가 어려워서? 별 말씀을. ‘두 번’ 그것이 바로 기술이다. 아트지도 두 번
                               떻                                                 최        지
                               게                                                 초        의
                               만                                                 와        새
                               들
                               어
                                                                                 최
                                                                                 고
                                                                                          로
                                                                                          운            코팅하면 격이 달라도 다르다. 무엇이 다르냐, 하고 물으신다면 할 말 많은
                               졌                                                 를        도
                               을                                                 향        전
                               까                                                 한        에
                               요                                                          관
?
                                                                                 노
                                                                                 력        한            이다. 우리나라     아트지는 처음에는 모두 싱글아트지였다. 인쇄선진국에서는 이미
 한                                                                               을        이
   국                                                                                      야
     제                                                                           멈
                                                                                 추        기
       지                                                                                  입
                                                                                 지
         의                                                                                니            두 번 코팅한 더블아트지를 쓰는 바, 날로 발전하는 인쇄기술에 보탬이 되고자 한국제지에서는



                                                                                                아 지
                                                                                                 트 ,
           새                                                                     않        다
             로                                                                   았
                                                                                 습
                                                                                       . 1958




               운
                                                                                 니

                                                                                                       우리 기술로 더블아트지를 만들어 보기로 마음 먹었다. 1993년, 그렇게 해서 국내 최초로
                 상                                                               다        년
                   상
                     이                                                           우        설
                                                                       .




                                                                                 리        립
                       만
                         들                                                       생        이
                           어                                                     활        후




                                                                                                코 이바
                                                                                                 팅 로
                             낸                                                   속        한
                               재
                                 미
                                                                                 에
                                                                                 서
                                                                                          국
                                                                                          의
                                                                                                       공장에     들여 놓은 더블코터. 제대로 만든 한국제지의 더블아트지 덕분에 우리나라 아트지
                                   있                                             빼        제
                                     는                                           놓        지
                                       종                                         을        역
                                         이                                                사
                                           이
                                                                                 수
                                                                                          와            기술과 인쇄수준은 한 단계, 아니 두 단계는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렇다면 왜 더블아트지일까?



                                                                                                아트다!
                                                                                 없
                                             야                                   는        함
                                               기                                          께
                                                 를                               무
                                                                                 수        해
                                                   들                             히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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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                         많        한
                                                                                                       확실히 두 번 코팅하니 종이의 표면은 평평해지고, 표면이 평평하다 보니 잉크가           고루
                                                         립                       은        국
                                                           니                     종        제
                                                             다                   이        지
                                                                                 들        는
                                                                                                       먹어 소위 말하는 ‘인쇄발’ 선다는 사실. 그뿐만 아니라 싱글아트지에 비해 광택은 20% 증가 평소보
.




                                                                                 은




                                                                                                       다 적은 잉크로 찍어도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광이 살아나 눈이 부실 정도. 지금이야 여기 저기서


                                                                                                       더블아트지를 만들고 있지만 ‘인쇄발’ 선 책자를       만나면 이것부터 기억하자. 더블아트지는


                                                                                                       한국제지가 제일 먼저! 덧붙여 국내 최초로 최상의 ‘인쇄발’을 자랑하는 프리미엄 아트지 ‘엑스프리’

                                              10                                                                                                                   11
                                                                                                       를 개발한 곳도 한국제지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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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그 이말 는
                         들 하
                 처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데이비드 시무
                 럼                                                                              어(David Seymour), 조지 로저(George Rodger) 등의 사진작가들이 모여 만든 국제자유보도사진 작가 그룹이다. 단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일깨워주는 작품들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집단으로 손꼽힌다.
                 반
                 짝                                                                              최근 한국에서도 ‘매그넘 작가들이 바라본 한국’을 주제로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다.




                       Magnum
                 이


                        한장 리 리 매 넘
                          의 얼 티 그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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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




                 하
                 나


                                                                                                “만약당신의사진이만족스럽지않다면그건충분히가까이에서
                                                                                                찍지않았기때문이다.”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



                        수 십, 수 백 종류의 카메라가 있다. 렌즈 또한 각양각색이다. 21세기의 카메라는 누가 셔터   카메라는 재현을 위한 기계이다. 풍경화나 초상화로 남기던 기록들을 조금 빨리, 더욱 쉽게 남기기 위한 것이다. 간편
                                                                               하게 셔터를 누름으로써 그 순간은 기록되고 기억된다.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기록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20세기 초,
                        를 누르든 훌륭한 사진이 되도록 다양한 장치를 구비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기술적인
                                                                               연이어 터진 전쟁은 사진의 매력을 극대화시킨다. 전쟁과 떨어져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전쟁터에서 날아온
                        행위. 좋은 장비와 그 장비를 다루는 뛰어난 스킬은 언제 어디서든 ‘작가주의’ 사진을 찍을
                                                                               사진 한 장은 엄청난 양의 소문보다 선명하게 전쟁의 양상을 보여줬다. 로버트 카파(Robert Capa)는 그 중 단연 돋보였다.
                        수 있도록 돕는다. 매그넘(Magnum)은 장비와 스킬, 거기에 몇 가지를 더해 전세계 사진    가장 치열한 격전의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스페인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종군기자’가 아닌 ‘참전자’로서 리얼리티
                        작가들이 열망하는 단체로 알려졌다. 단 한 장의 사진, 그 안에 담고자 하는 매그넘 정신.     넘치는 사진을 찍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한 유일한 사진작가로 바다에서 육지를
                                                                               향해 떨리는 손으로 셔터를 누르던 그의 열정은 ‘카파주의(Capaism)’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5번의 참전. 그가 죽음
                        그들은 오늘도 어딘가에서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며 사진 한 장을 내밀 것이다.
                                                                               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진은 더욱 현실감 있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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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PER COMMUN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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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처
                 럼
                       “나는아직도새로운것을찾아내고싶고,이세상과그인간을기록하고싶다.                                                         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면서도 작가 각자의 개성 있는 시각을 잃지 않는 것, 이것만이 지금

                 반     왜냐하면,그들의괴로움과나자신이비통한순간에도인간이라는사실은여전히아주                                                      까지 지켜지는 매그넘의 유일한 규제이다. 매그넘 작가들은 리포터처럼 기록을 하고, 예술
                 짝
                 이     특별한것이다.” 크리스 스틸 퍼킨스(Chris Steele-Perkins, 1947~)                                          가처럼 순간의 시간을 포착했다. 이러한 매그넘의 방식은 저널리즘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는
                                                                                                                 그 저널리즘에 속하지 않고 저널리즘의 한계를 뛰어 넘는 사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들
                 종
                 이                                                                                               은 자신만의 주제와 색채를 가지고 현실에 포커스를 맞춘다. 거기에는 작가만의 철학과 신
    ―




                 하                                                                                               념이 담긴다. 오랜 시간 자신만의 주제를 가지고 일해 온 작가의 작품에는 주제의 깊이와
                 나
                                                                                                                 통일, 작업의 지속성이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같은 사진이라도 매그넘의 사진에서
                                                                                                                 는 기록물의 차가움보다는 공감대가 느껴진다. 지금도 리포터와 예술가의 경계를 넘나들
                                                                                                                 고 포토저널리즘부터 다큐멘터리까지 폭 넓은 범위를 아우르며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전쟁과 분쟁의 현장, 사회의 이슈, 새로운 트랜드 등 매그넘의 카메라는 현실 속
                                                                                                                 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찍으며 ‘순간’으로서의 역사를 기록했다.



                                                                                                                 “내가두려운것은육체적위협보다는상상력의부재이다.”
                                                                                                                 아바스(Abbas, 1944~)




                                                                                                                 한 사진평론가는 “세계 사진 역사에서 매그넘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뿐만 아니라 세상
                                                                                                                 을 보는 방법까지 고민했던 사진작가들이다’라고 말한다. 비극적인 현장에서부터 사람의
                       1947년 4월, 뉴욕 현대미술관 식당에서 로버트 카파를 비롯하여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일상적인 모습까지, 세상을 보여주면서 정확한 관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를
                       데이비드 시무어(David Seymour), 조지 로저(George Rodger) 등 4명의 사진작가는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담기 위해 연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민하고 순간을 포착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를 창립한다. 사진기자들의 불안한 지위, 특정매체의 틀에 박힌 편집방향과 포맷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작업을
                                                                                                                 그로써 총을 맞고 쓰러지는 병사나 지하로 피신하여 떨고 있는 소녀의 표정은 보는 이에게
                       보장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윌리엄 반디버트(William Vandivert), 엘리어트 어윗(Elliott
                                                                                                                 현실을 전하고 전쟁의 참상을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로버트 카파는 지뢰를 밟아 유명을
                       Erwitt), 워너 비숍(Werner Bischof), 잉게 모라스(Inge Maurras), 브루스 데이비슨(Bruce Davidson), 레이몽 드파르
                                                                                                                 달리했고, 데이비드 시무어는 수에즈에서 이집트 병사의 총을 맞고 최후를 맞았다.
                       동(Raymond Depardon), 토마스 헵케르(Thomas Hoepker) 등 저명 사진작가들이 차례대로 가세하며 그 명성을 잇는다.
                       이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지구촌 곳곳을 렌즈에 담기 시작한다.




                                            매그넘. 그들을 하나로 묶는 이 이름은 그들의 창립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때까지 사
                                            진기자는 매체에, 사진은 기사에 종속되어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매체의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을 전하겠다는 대범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라틴어로는 위대함
 14                                         을 뜻하고 ‘매그넘 총’의 강인함을, 그리고 샴페인 더블 사이즈 ‘매그넘’의 축하를 담고 있는                 60년. 현재까지 매그넘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소수정예. ‘사진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그넘 정회원이 되는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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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PER COMMUNICATION
                                            이 다의적인 단어는 포토저널리즘의 새 장을 열었다. 소속된 사진작가들은 자신의 필름에                      것은 사진가에게 최고의 영예가 된다. 이미 죽은 작가까지 합쳐 정회원은 60명 정도, 아시아에서는 단 3명뿐이다. 후보
                                            대한 저작권과 작업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 받는다. 어떠한 매체로부터 주문도, 제약도 받                     회원과 준회원을 차례로 거쳐 정회원의 투표를 통해 정회원이 될 수 있다. 2~3년마다 한 번씩 엄격한 검증절차를 거쳐
                                            지 않으며, 개인적인 특성과 자유의지로 활동을 한다. 매그넘은 단체이면서도 단체로서 회                     자격을 유지한다. 그래서 매그넘의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들이 찍은 것은 한 장의 사진, 그리고 우리가
                                            원들을 규제하지 않는다. 창립 때부터 매그넘의 스타일,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기억하는 현실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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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
                 럼
                 반
                 짝
                 이
                 는
                 종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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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사 ,
                        진
                       그위 남 것
                         에 는 은   디지털카메라, 일명 디카. 찍은 자리에서 바로 확인하고 금세 컴퓨터로 올린다. 사진이 마음에 안 들 삭 후
                                 재촬영에들어가도된다.디카가없었다면여전히27장짜리혹은36장짜리필름을넣고사진을찍은후사 관
                                                                              진 에
                                                                                        면 제




                        시간
                                 맡기고몇시간,길면며칠을기다려야사진을받았을것이다.사진이찍힐때활짝웃고있는지,눈을감 는 는
                                                                            았 지
                                 현 이된사 을봐 만알수있 다 별생 없 찍 어 사 을본후 찍 준사 을원 하 일 허 하 .
                                  상   진 야     었 . 각 이 혔 도 진    에 어 람 망 던 도 다 다
                                 하지만컴퓨터를켜는것이아니라먼지쌓인앨범을꺼내한장씩넘기면옛날일이어제일처럼떠 른 .오
                                                                        오 다 래
                                 되어색이바랜백일사진부터찢어져테이프로이어붙인졸업사진까지,찍었던때부터사진에얽힌이 기 지
                                                                           야 까 .
                                 인화지위에남는것은얼굴도아니고멋진풍경도아닌각자의시간이다.



                                 동네사진관, 낡은 의자와 늘 같은 배경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빠지지 않고 하는 일. 부모들은 머리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동네사진
                                 관을 찾는다. 그리고 입혀 왔던 옷을 벗기고 의자에 앉힌다. 갑자기 옷도 벗고, 낯선 의자에 앉혀진 아이는 칭얼칭얼. 아
                                 빠와 엄마 사진관 아저씨까지 하나가 되어 우는 아이를 달래고 카메라에 시선을 맞추도록 한다. 의자에 앉은 아기는 좌
                                 불안석, 아기와 카메라 사이를 오가는 아저씨 얼굴에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땀이 번질거리기 마련이다. 힘겹게 백일 사
 16                                                                                                    17
                                 진을 찍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돌 사진을 찍을 날은 부쩍 크는 아이만큼 빨리 다가온다. 백일 때는 실오라기 걸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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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PER COMMUNICATION
                                 은 모습을 남겼지만 돌 때는 다르다. 아기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한복을 입고 점잖게 앉는다. 백일 때처럼 울먹이고 안아
                                 달라고 조르기도 하지만, 카메라를 쳐다볼 때는 눈도 맞춘다. 그렇게 남은 사진은 앨범 앞 부분에 넣어진다. 지금은 아
                                 기자기하게 꾸며진 베이비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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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처     인생의 1/8, 동갑내기들과 함께 한 추억
                 럼
                 반     유치원, 빠르면 유아원부터 또래친구들과 함께 하는 생활의 시작이다. 그리고 매년 오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자연스러울까 하는 걱정도 잠깐. 몇 시간 뒤
                 짝
                 이     봄소풍, 가을운동회, 학예회 등등. 병아리같이 노란 체육복이나 단정한 교복을 입은 채 단       에 찾으러 오라고 하니 그때 확인하고 별로구나 싶으면 다시 찍을 생각을 한
                 는
                       체로 앉아 카메라를 보고 찍는 사진도 빠질 수 없다. 5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다. 그렇게 받아 든 대여섯 장의 사진은 이력서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스캔을 받아 컴퓨
                 종
                 이     보니 사진 한 번 찍는 것도 일이다.                                    터에 저장해두기도 한다. 요즘에는 아예 CD로 구워서 사진 데이터를 주는 곳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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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친구 뒤로 숨어버리거나 다른 짓을 하며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간신히 집중시키고 셔터를
                       누른다. 한창 민감한 나이의 여학생들은 작은 얼굴을 꿈꾸며 친구보다 뒤에 서려고 애쓴         화려한 촬영, 평생 간직할 반쪽과의 기억
                       다. 막상 나온 사진에는 눈을 감은 아이가 10% 이상, 얼굴이 가려진 아이가 15% 이상, 햇   사랑하는 사람과는 무엇을 해도 즐거운 법. 특히 가슴 설레는 웨딩촬영은 평생 기억에 남
                       볕에 눈을 찡그린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 서로 누가 잘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따져       을 사건이다. 영화에서만 보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티아라를 쓴다. 날렵하게 빠진 연미
                       보다가 한 장씩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앨범 한 켠에 꽂아둔다. 혹시나 본인 얼굴이 마음에       복을 입어 보기도 한다. 사진작가가 시키는 대로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행복한 미소를 날
                       안 들면 지워버리기도 하고, 미운 친구 얼굴에는 낙서를 하기도 한다. 나중에 친구나 애인       린다. 요즘은 다양한 상황 설정으로 평생 남을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에게 비슷한 아이들 사이에서 본인을 찾아 보라고 시키기도 한다.                     스튜디오와 야외를 오가며 하루 종일, 또는 며칠에 걸쳐 촬영한 사진은 두고두고 힘들었
                                                                               지만 아름다웠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예전에는 따로 웨딩촬영을 하지 않아 결혼식 날 찍
                       이력서의 꽃, 포토샵을 방불케 하는 한 컷                                 은 사진이 전부였다. 흑백 사진 속에는 잔뜩 긴장한 듯한 신랑과 신부가 서 있다. 여러 장
                       졸업을 앞 둔 예비 사회인들은 이 한 컷을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다. 어느 사진관이 자      을 찍지만 신랑, 신부는 변함 없다. 단지 주변에 서 있는 인물들이 부모님에서 친지, 친구
                       연스러우면서도 매끄럽게 컴퓨터의 힘을 발휘하는지 알기 위해서다. 하지만 포토샵에 너          들로 바뀔 뿐이다. 작은 카메라 렌즈 안에 모두 들어가기 위해 어깨를 비스듬히 한 채 서
                       무 의존해도 마이너스라는 것을 알기에 포토샵을 능가하는 준비과정을 거친다.               있는 사진 속에는 부케 받을 친구도, 눈물로 딸을 보내는 어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여자라면 안 한 듯 하면서도 모든 잡티를 커버한다는 투명 메이크업, 남자라면 단정하면서
                       도 자신감 넘치는 머리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단정한 옷을 챙겨 입은 후 사진관으로 나        거실 풍경, 어색한 미소가 더욱 정겨운 사진
                       선다. 배경을 두고 앉으면 사진가의 요구가 떨어진다. 고개를 왼쪽으로, 어깨에 힘을 빼세       거실이든, 지갑 안이든 꼭 챙겨가지고 다니는 것이 가족사진. 온 가족이 사진관을 찾아 사
                       요, 머리를 귀 뒤로 넘겨보세요 등. 그리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힌다. 척추부터      진을 찍는 일은 평생에 몇 안 되는 중요 행사이다. 가족사진은 며느리, 사위 등 새로운 가
                                                                               족이 생기거나 부모님의 회갑, 칠순 때 많이 찍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중후한 의자에 앉
                                                                               고 자녀들은 그 뒤로, 옆으로 자리를 잡는다.
                                                                               말끔하게 차려 입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꽤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는다. 아버지의 손은 주
                                                                               먹을 꼭 쥔 채 무릎 위에 올라가 있고, 큰 아들의 손은 믿음직스럽게도 아버지나 어머니
                                                                               의 어깨에 올리는 것이 가족사진의 매뉴얼이다. 딸이 있다면 밝게 미소를 짓는다. 온 가족
                                                                               이 모여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지으려니 수줍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거실 한 켠에 걸릴 사
                                                                               진이기에 사진가의 주문을 곧잘 따른다. 사진을 찍은 후, 가족들의 논의를 거쳐 사진 테두
                                                                               리를 장식할 액자를 고르면 끝. 며칠 후에 대형 사이즈 가족사진과 함께 지갑에 쏙 들어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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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사이즈의 가족사진을 찾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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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PER COMMUN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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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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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상 은
                        상
                 처              수업은 지루하고, 선생님 말씀은 길기만 하다. 교과서 구석에 끄적끄적. 누구나 해봤을 일이다. 책 귀퉁이를
                 럼
                 반              잡고 후루룩 넘기면 ‘옷’ 모양의 사람이 점프를 하고 힘껏 달리거나, 미사일이 교과서 이 끝부터 저 끝까
                 짝
                 이
                 는              지 날아가기도 한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 명의 사람이 격투를 벌이고 장풍을 쏘기도 한다.
                 종



                       24장의
                 이              그냥 두면 귀퉁이에 작게 그려진 조잡한 그림들이지만 여러 장이 모이자 근사한 세계가 완성된다. 이게
    ―




                 셋              바로 애니메이션의 탄생. TV나 스크린을 가득 메운 화려한 영상들도 시작은 종이 위다. 종이와 상상,


                       종 위 서
                        이 에
                                거기에 속도가 더해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애니메이션!




                       1초의      나이 먹어도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거다.
                                요즘 애니메이션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톰, 은하
                                                                     볼 때마다 궁금하다, 어떻게 만드는 건지.
                                                                                        토토로가 털을 파르르


                       현 이된 .
                        실 다     철도 999나 태권 V, 독수리 오형제, 메칸더 V, 미래소년
                                코난으로 대표되던 미래지향적 SF 애니메이션은 이제 지
                                브리 시리즈와 카우보이 비밥, 에반게리온, 명탐정 코난,
                                                                                        떨며 괴성을 지른다. 덩
                                                                                        치 큰 적과 맞서 싸우는
                                                                                        루피의 힘줄은 미세하게
                                원피스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었                            꿈틀댄다. 현실에서야
                                다. 물론 기가 막힌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는 그대로                          그러려니 할 만한 장면
                                지만, 역시 세월이 세월인지라 그 퀄리티는 하늘 높은 줄                         들이지만 애니메이션에
                                모르고 솟아올라 영화의 특수효과 뺨치는 모양새이다. 예                          서는 보면 볼수록 신기
                                전 애니메이션에서 나타나던 배경과 인물의 차이, 배경은       하다.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조금이라도 알
                                약간 흐리고 단조롭고 반복되는데 비해 캐릭터는 역동적        고 있다면 신기함에 놀라움이 더해진다. 애니메이션은 수
                                으로 움직이는 그런 어색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입       업시간에 끄적이던 낙서처럼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이 모
                                모양과 성우의 목소리가 단 한 번도 맞지 않는 그런 일도      여 만들어진다.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장의 화면을 연속 촬영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
                                승승장구 발달된 기술은 애니메이션과 현실의 싱크로율         게 하는 것, 이것이 애니메이션이다. 2차원의 종이, 그 위
                                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이 아이      에 그려진 것들이 어떻게 세밀한 3차원의 움직임을 보이
                                들만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팍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방      는 것일까? 사람들에게 일련의 정지된 이미지를 연속적
                                학맞이로 극장에서 개봉하던 애니메이션은 이제 헐리우         으로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 이미지들이 이어진다고 착각
                                드 대작 사이에서도 늠름하게 스크린을 차지하고 어른 아       하게 된다. 이는 잔상효과에 의한 것인데, 잔상효과란 이
 20                             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미지가 이미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눈이나 뇌에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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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PER COMMUNICATION
                                거기에 아이들은 절대 이해 못할 심오한 세계를 담은 애       계속 남아 있으려는 경향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초당 15
                                니메이션들도 속속 등장하며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장 이상이 되어야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느낀다고 한다.
                                있다. 바야흐로 애니메이션이 키덜트들의 지지를 한 몸에       물론 작품이나 작가의 성향에 따라 프레임의 수는 다르다.
                                받는 시대의 시작.                           이것이 흔히 알려진 셀 애니메이션이다.
1
 %의 종이

99%의 상상




                 별
                 처
                 럼
                 반
                 짝
                 이                                          계가 열린다. 컴퓨터가 없었다면 전세계 애니메이터들의
                 는
                 종                                          손 끝에는 굳은 살이 야무지게 박혔을 것이다.
                 이
    ―




                 셋
                                                            모두를 위해 애니메이션이여, 영원하길!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만드는 과정 또한 장인의 손길
                                                            뺨칠 정도로 복잡 다단한 공정을 거치는 애니메이션, 처
                                                            음에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약 100년 전, 제임스 스튜어
                                                            트라는 사람이 칠판 위에 그린 유쾌한 얼굴(Houmours
                       그림을 그려 넘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Phase on Funny Face, 1906)이 최초의 애니메이션 필
                       애니메이션. 라틴어에서 영혼을 뜻하는 anima와 살아       름으로 평가 받고 있다. 무려 1초에 20 프레임. 만화가의
                       나게 하다라는 의미의 animatus가 합쳐진 말처럼 생명     손이 나와 칠판 위에 하얀 분필로 얼굴을 그리고, 얼굴들
                       력 제로의 종이는 어느 새 뛰고 춤추고 하늘로 날아오르       은 각자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보고 있으면 재미는
                       는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잘 빠진 캐릭터, 매끄러     있지만 스토리는 없다. 스토리가 있는 최초의 애니메이션
                       운 그림 솜씨라 하더라도 여러 가지 복잡한 단계를 거쳐       은 팡타스마고리(Fantasmagorie, 1908). 선으로 그려
                       야 혼이 쏙 빠질 정도로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이 탄생한다.      진 광대가 나와 이것 저것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1분
                       우선 기획. 전체적인 스토리부터 구성, 컨셉을 짜고 들어      18초라는 짧은 시간, 물론 흑백에 소리도 없지만 다이내
                       가는 돈이 얼마쯤 될지 예상도 해본다. 예산이라는 현실       믹한 광대의 움직임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한 사람
                       적인 문제까지 해결이 되면 본격적으로 시놉시스와 시나        들이 기겁을 했을 수 밖에. 이후에 애니메이터들의 무한
                       리오를 짠다. 이 단계에서 스토리는 한결 간결해지지만        한 노력과 부지런한 움직임 덕분에 애니메이션은 봇물처
                       설득력은 2배, 3배가 된다.                     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1909년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시작
                       스토리를 가지고 대사와 내레이션을 짠다. 캐릭터와 배경       으로 스크린에서 TV로 다시 DVD로, 애니메이션은 그 전
                       도 이 부분에서 구체화된다. 그리고 바로 24장의 종이로      달 매체만 바꾸어 가면서 주위를 맴맴 돌고 있다.
                       건너 뛰느냐, 그건 아니란 말씀. 콘티, 즉 스토리보드를      세월이 지나도 재미있는 것은 재미있는 법. 종이 위에 손
                       작업해야 한다. 캐릭터는 더 생동감 있고 감정이 풍부해       으로 그리든, 손으로 그린 후 컴퓨터로 넘기든 애니메이
                       진다. 콘티가 다 짜이면 콘티를 바탕으로 원화를 그린다.      션은 종이 위에서 태어난 것. 작가의 무한 상상력은 종이
                       원화란 애니메이션 흐름을 이어가는 중요한 동작의 시작        위에서 캐릭터를 만들고,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 넣어 걸
 22                    과 끝을 말한다. 이 사이를 이어주는 무수한 그림들을 동      작을 남긴다. 주변에 낙서해도 좋은 책이 있으면 한 권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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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라고 한다. 동화가 얼마나 정교하게 들어가느냐에 따        아라. 그리고 귀퉁이를 노려라. 상상력과 종이만 있다면
                       라 태권 V는 매끄럽게 움직일 수도, 아니면 곧 주저앉을      누구든 애니메이터!
                       것처럼 어설프게 움직일 수도 있다. 이렇게 한 장면 완성.
                       약 1만 4,000여 장 정도 그리면 10분짜리 애니메이션 세
이상한나라의
블로거
언제나 카메라는 필수. 세상을 향한 블로거의 눈
은 늘 렌즈와 닿아 있다. 맛집이든 유명한 장소
든 아기자기한 거리든, 그들에게 카메라가 있는
한 그 공간은 블로거의 공간. 누구의 렌즈냐에
따라 한 장소는 전혀 다른 수 십 만개의 공간으
로 거듭나고, 작은 프레임 안의 풍경은 전혀 모
르는 세계로 돌변한다. 셔터를 누르고, 글을 올
린다. 그 순간 당신은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
로 뛰어든 블로거가 된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블로거 ‘노군’이 찍은 시간들입니다.




블로거 Blogger
요즘처럼 블로그가 대세인 시대에 한 번쯤은 들어봤을 신조
어이다. 블로그를 소유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통틀어 가리키지
만, 네티즌들의 입 소문에 의해 유명해져야 비로서 ‘블로거’라
고 불리게 되는 것이 요즘 트랜드. 전문사진가 못지 않은 사진
기술과 작가 뺨치는 글발을 자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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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December




파 Paris
 리
누군가는 에펠탑 앞에서의 기념사진으로, 다른 누군가는 몽마르뜨에서 마셨던 뜨거운 커피 한 잔으로 기억하
는 곳. 유명하다는 곳은 모두 둘러보았지만 그 감격은 잠시, 역시 가장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은 신호등 하나도
아름다웠던 파리 그리고 여행 내내 맑은 하늘을 선사해줬던 꿈 같은 파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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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January




도 Tokyo
 쿄
도쿄의 빗방울이 어깨 위로 떨어진다. 역 앞에서 제일 싼 우산을 사 들고 거리를 걷다 보니 이곳이 종로 어디
쯤처럼 느껴진다. 길에서 파는 음식은 모습도, 냄새도 종로의 그것과 같다. 하지만 역시 도쿄는 도쿄. 맛있는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서도 언제 또 이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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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February




서 Seoul
 울
휴일, 카메라를 둘러매고 집 앞으로 나선다. 홍대, 내 생활의 절반 이상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지만 카메라로
보는 홍대는 늘 새롭다. 길거리의 강아지, 손을 맞잡고 걷는 연인들, 앉아서 담배를 태우는 아저씨까지. 홍대
의 소소한 풍경들 때문에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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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March




터 Turkey
 키
입 안에서 터지는 ‘터키’라는 발음 덕분에 막연한 환상으로 시작한 터키여행은 지중해 바다에서 마무리되었다.
맑은 소금빛 바다였다. 그 끝에는 바다와 꼭 닮은 하늘이 마주하고 있었다. 터키, 터키, 입 안에서 굴려보다
바다 앞에서 외쳐보았다.
한
         국
         제
         지
⊙




         종
         이
         가
         있

                      50년,그동 한 제 에
                            안 국 지 는
                                                                                 지금이야 흔한 것이 종이입니다. 책상마다 노트부터 메모지, A4용
         는
         풍                                                                       지까지 종류별로 다양하게 구비해 놓고 일하니 종이가 귀하던 50년
         경



                      무 일 있 을
                       슨 이 었 까?
                                                                                 전 이야기는 생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종이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나마 간신히 구한 종이도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살살 써야 찢어지지 않는, 그런 종이였습니다.
                                                                                 지금은 종이는 하얗고 매끄러운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는 회색이고 울퉁불퉁한 것이 일반적인 종이의 모습이었습니다.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조금 좋은 종이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만든,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꿈에도 못 꿀 정도로 비싼 몸값을 자랑했습니다.
                      해마다 한국제지는 몇 번의 크고 작은 행사를 준비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하는
                      행사가 바로 서울국제문구전시회입니다. 항상 종이를 통해 만나던 소비자들을 직접 만난다는 생각에
                      모두가 분주하게, 매우 열심히 문구전시회를 준비합니다. 정성껏 준비한 축제에 많은 분들이 찾아와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기회에 한국제지가 50년 동안 가지고 있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시중에서 만나는 한국제지 종이들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늘 종이
                      이야기만 하다가 종이를 만드는 우리 이야기를 직접 하려니 설렙니다. 이야기 시작해볼까요?
                                                                                 1950~1970
                                                                                 1950   1960    1970

                                                                                 한국제지가 제지회사로서 첫 걸음을 시작한 것이 이런 시기였습니다. 1958년 한국제지의 전신인 한국특수제지공업주
                                                                                 식회사가 문을 열었습니다. 다른 나라도 만드는 하얀 종이, 우리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한국 제지산업 역사에 전환점
                                                                                 이 된 것입니다. 1960년 안양공장이 준공되면서 한국제지표 백상지가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백상지는 우리가 일반적
                                                                                 으로 사용하는 모조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백색도도 높고 매끄러워 연필에 걸려 찢어지던 종이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1963년에는 경상북도와 전라남도에 임야를 구입합니다.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한국특수제
                                                                                                        지공업주식회사는 그 곳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제지회사에게 한없이 필요
                                                                                                        한 것은 나무, 한편으로 나무를 베어 펄프를 만들고 있으니 그 이상의 나무를 심겠
                                                                                                        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우거진 한국제지의 숲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966년, 한국특수제지공업주식회사가 한국제지로 상호를 변경하고 종이생산에 박
34                                                                                                     차를 가합니다. 이듬해 안양공장에 1호 코터를 신설하며 아트지를 생산하기 시작합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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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PER COMMUNICATION
                                                                                                       니다. 백상지가 흑백인쇄에 적합하여 활자를 돋보이게 했다면, 아트지는 컬러인쇄에
                                                                                                   적합하여 사진과 그림을 인쇄하기 좋은 종이입니다. 한동안 백상지와 아트지는 한국
                                                                                                   제지 생산 종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품질은 수입종이
                                                                                                  이상인데 가격은 훨씬 저렴해 많은 사람들이 찾았습니다.
한
         국
         제
         지
⊙




         종
         이
         가
         있
         는
         풍
         경
                                                                                             1990~2009
                                                                                             1990    2000     2009


                                                                                             온산공장과 안양공장, 두 개의 고장에서는 끊임 없이 연구하고 생산하며
                                                                                             더 좋은 종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1992년에는 온산공장에 연구개
                                                                                             발 전담부서, 기술개발연구실이 만들어집니다. 이어 다음해인 1993년에
                                                                                             는 온산공장에 최신제어장치를 갖춘 고속 4헤드 코터를 설치, 국내 최초로 양면 동시 더블
                                                                                             코팅이 가능해졌습니다. 한국제지에서 생산된 더블아트지는 광택이 좋고 종이 섬유가 평평
                                                                                             하게 퍼져 우수한 인쇄적성을 보입니다. 국내시장의 수요에 대응하면서도 수출시장에서도
                                                                                             크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1996년 5천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한 지 2년만인 1998년 1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습니다. 이렇게 온산공장과 안양공장은 나란히 다양하고
                                                                                             많은 종이들을 생산해냅니다. 그러다 1998년 40년 동안 돌아가던 안양공장을 폐지하고 온
                                                                                             산공장 단일체제로 들어갑니다. 수도권과는 떨어져 있지만 창동과 동탄, 오봉역 등에 물류
                                                                                             센터를 운영하며 거리적인 단점은 없어집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제지회사들 간의 생산설비나 기술적인 격차가 줄어들면서 더블아트지

                      1970~1990                                                              공급이 증가합니다. 해외 고급용지와 저가수입용지까지 넘쳐나며 더블아트지 시장은 말 그
                                                                                             대로 총성 없는 전쟁터처럼 치열한 경쟁만이 남습니다. 거기에 소비자들은 더욱 좋은 종이
                      1970    1980    1990                                                   를 요구해 새로운 아트지의 필요성이 늘어만 갔습니다. 그래서 한국제지는 프리미엄 아트
                                                                                             지 개발을 추진하게 됩니다. 기술연구소에서는 개발에 착수, 시중 아트지들을 분석하고 개
                      1972년, 안양공장에는 초지3호기가 증설됩니다. 이 기계에서는 박엽지와 특수지가 생산됩니다. 우표용지가 생산된 것
                                                                                             발컨셉을 설정합니다. 이후 무수한 실험을 거쳐 2004년 국내 최초 프리미엄 아트지 엑스
                      도 이 시기입니다. 재습접착제를 고급화학펄프 위에 바르고 그 위에 코팅하는 것이 우표용지의 핵심 기술. 이 기술이 없
                                                                                             프리 개발에 성공합니다. 순백색의 부드러운 색감과 뛰어난 더블코팅 기술, 작은 망점까지
                      어 우리나라는 100년 가까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우표용지를 수입해 사용했습니다. 이에 체신부와 한국제지는 우표용지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능력 덕분에 엑스프리는 출시되자마자 국내시장은 물
                      의 국산화를 위해 의기투합 손을 잡았고, 결국 100% 국산 우표용지를 만들게 됩니다. 1980년대까지는 한 면에 한 번만
                                                                                             론 해외시장에서도 호평을 받습니다. 엑스프리를 만들었던 기술은 복사지 부
                      코팅하는 싱글아트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한 면에 두 번 코팅하는 더블코팅이나 세 번 코팅 하는 트리플코
                                                                                             분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그래서 프리미엄 복사지 ‘하이퍼씨씨’를 탄생시키기
                      팅 기술이 개발되어 아트지의 품질이 향상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로 제지기술
                                                                                             에 이릅니다. 하이퍼씨씨는 친환경원료, 최고의 설비, 한국제지의 기술력
                      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쇄기술이 발전하고 고급인쇄기가 보급되면서 좋은 아
                                                                                             이 더해진 프리미엄 복사용지입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수입산 복사용
                      트지 수요가 증가하자 더블아트지의 필요성 또한 높아졌습니다. 1986년 안양공장에서
                                                                                             지를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를 하는 등 고객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대
36                    더블코팅 기술을 도입하여 더블아트지를 생산하려 합니다. 정식 기술이 적용된 것이 아                                                                                  37
                                                                                             한민국 1등 복사지랍니다.
                      니기에 높은 품질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블아트지 제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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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PER COMMUNICATION
                      술이 늘어납니다. 1987년 안양공장에 기술연구소가 들어서 한국제지의 종이 품
                      질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며, 1989년에는 온산공장이 준공되어 안양공장과 함
                      께 이원체제로 종이 생산을 하게 됩니다.
한
         국
         제
         지
⊙




         내
         일
         의
         종                                                                         잘 알려진 것처럼 종이의 원료는 나무이다. 그것도 길게 잘 자란 아름드리 나무들. 이 나무
         이
                                                                                   들은 펄프가 되고 펄프는 여러 공정과정을 거치며 다양한 종이로 만들어진다. 제지회사들
                                                                                   은 원료조달에서부터 ‘벌채’라는 행위를 통해 환경파괴에 일조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려야
                                                                                   했다. 따라서 많은 제지회사들이 땅을 사들여 나무를 심고 가꾼다. 매년 식목일뿐만 아니
                                                                                   라 쉬는 날이면 직원들과 함께 조림사업에 매진한다. 우리나라에 조성된 숲의 나무들은 기
                                                                                   후적인 문제 때문에 펄프로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제지회사들은 조림에서 얻는 일차적인
                                                                                   수익보다는 사회환원적인 목적에 중점을 두고 조림을 한다. 한국제지 또한 마찬가지. 여의
                                                                                   도 18배에 해당하는 한국제지 조림지에는 해송과 잣나무, 전나무, 느티나무, 리기다 소나
                                                                                   무 등이 자라고 있다.




                      미 지 와공 하 위
                       래, 구 존 기 한
                                                                                   이렇게 나무를 심고 가꾸며 원료조달에서 오는 환경적인 부담감은 줄어든다. 하지만 그 이
                                                                                   후의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다. 펄프, 종이 생산단계. 나무가 펄프가 되고 종이가 되는 과정
                                                                                   에는 많은 물과 여러 가지 화학약품이 필요하다. 종이의 흡습성을 줄여주는 약품부터 종이



                      종 의진
                       이 화                                                         를 더욱 하얗게 만들어주는 표백제까지 다양하게 사용되는 약품들 또한 환경을 위협한다
                                                                                   는 지적을 받아왔다. 제지회사들은 더욱 좋은 종이와 함께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 종이를
                                                                                   만들어야 했다. 각 회사의 연구팀들은 분주하게 움직였고, 종이는 미래를 위해 서서히 진
                                                                                   화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노력은 각양각색의 환경마크로 보상된다.
                      2세 , 다 한 가 가 수 위 떠
                       1 기 양    치   면 로 오르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동안 냉전과 경제발전 등에 가려져
                      관 받 못 던여 가 문 들 수면위로떠오른것이다.그중가장핫한주제는바로ECO.21세기최고의
                       심 지 했 러 지 제 이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마크는 국제 NGO단체인 FSC가 승인하는 국제환경마
                                                                                   크이다. 지속 가능한 산림경영이 시행되고 있는 숲에는 FM(Forest Management, 산림경
                      키 드 떠 른E O 인 와지 의지 적 공 이보 되 힘 환 문 로인 급 상 다 과 환 보
                       워 로 오 C는 류 구 속 인 존 장 기 든 경 제 해 부 했 . 거 경
                                                                                   영)인증을 부여하고 FM인증 산림에서 채취한 목재를 사용한 제품의 제조·유통·가공단
                      호 는소 적 자 로일 하 인 조금더적극적으로지구의환경을위해노력하게되었다.그대열에서
                       라 극 인 세 관 던 류는
                                                                                   계에 CoC(Chain of Custody, 가공유통과정)인증을 준다. 숲에서부터 최종 소비자에게 전
                      인 의가 오 기 매 인종 가빠질수는없는일.종이선택에있어서소비자들은얼마나좋은종이인가
                       류 장 랜 록 체 이                                                 달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추적 관리하고 있다. 2007년 11월 한국제지는 펄프를 사용하고

                      하 조 과함 이표 을체 하 되었다.바로환경마크.종이선택에있어서얼마나현명한소비자인지를
                       는 건 께   식 크 게                                               판매하는 전 과정이 FSC에 적합하다고 인정 받아 FSC-CoC인증이 부여됐다. 비슷한 마크
                                                                                   로는 Well Managed Forest마크가 있다. 벌채나 나무심기 강제조항을 통해 환경의 파괴
                      좌 하 것 이마 의유 에달 있다.
                       우 는 은  크 무 려
                                                                                   없이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한 숲이나 숲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만들어진 제품을 인증하는
                                                                                   마크이다.
                                                                                   하얀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염소표백도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 새로운 기술
                                                                                   로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우선 ECF표백. 염소 대신에 산소를 펄프 표백에 사용하는 방법
                                                                                   이다. 염소화합물이 생성되지 않아 다이옥신 발생량이 제로에 가깝다. 이 방법으로 만들
38                                                                                                                                                                            39
                                                                                   어진 펄프에는 ECF(Elemental Chlorine Free)마크가 부여된다. 세계 각국의 제지회사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들이 대부분 ECF표백을 채택하여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마크가 되었다. 펄프의 표백과정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   Well Managed Forest   ECF(Elemental Chlorine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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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CONTENTS 상상공감 04 상상 한마디 내 인생 영화처럼 “반짝반짝” 하던 순간 ⊙ 06 상상 스토리 상상하고 있던 것, 바라던 장면은 나의 손 끝에서 생명을 얻어 ⊙ 10 한국제지의 상상 아트지, 코팅이 바로 아트다! ⊙ 1%의 종이, 99%의 상상 12 별처럼 반짝이는 종이. 하나 ⊙ 그들이 말하는 한 장의 리얼리티, 매그넘(Magnum) 16 별처럼 반짝이는 종이. 둘 ⊙ 사진, 그 위에 남는 것은 시간 20 별처럼 반짝이는 종이. 셋 ⊙ 상상은 24장의 종이 위에서 1초의 현실이 된다 Book in Book 23 이상한 나라의 블로거 “반짝반짝” 한국제지 34 종이가 있는 풍경 50년, 그 동안 한국제지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올해의 마지막 PAPER COMMUNICATION은 “반짝반짝”입니다. 38 내일의 종이 미래, 지구와 공존하기 위한 종이의 진화 ⊙ 세상에 “반짝반짝”한 것,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요? 42 종이 연구소 종이에도 트러블이? 알아야 피해갈 수 있는 종이 트러블 ⊙         ⊙ 종이 연구소의 친절한 Q&A 반짝반짝 금가락지, 반짝반짝 작은 별, 반짝반짝 그녀 혹은 그의 눈망울까지. 보고만 있어도 “반짝반짝”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까지 “반짝반짝” 빛나게 합니다. 48 News 50 독자마당 “반짝반짝”한 마음은 사진 한 컷, 영화 한 편으로 종이 위에 남습니다. 인화지와 필름 위에 기록되는 “반짝반짝”한 순간들. PAPER COMMUNICATION이 그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PAPER COMMUNICATION • 계간지 | 등록일·2005년 6월 8일 | 발행인·전원중 | 발행일·2009년 10월 14일 | 통권 95호 | 발행처·한국제지주식회사_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58-6 사보편집실 02-3475-7255 기획 윤소정_한국제지 마케팅 TF팀 | 기획·디자인 디자인수목원 | 출력·인쇄 비.지.아이 모두의 “반짝반짝”, PAPER COMMUNICATION시작합니다. 본 인쇄물은 콩기름 잉크를 사용하고, • 국제지 사외보는 CTP인쇄 방식을 채택하여 인쇄품질이 우수합니다. 한국제지 사외보 표지는 하이퍼 엑스프리아트 250g, 내지는 하이퍼 엑스프리 한 워터베이스 인쇄를 한 스노우화이트 150g을 사용하였습니다. 친환경 인쇄물입니다.
  • 3. 상 공 감 ⊙ 상 상 한 마 디 ★ 헤어지잔 말 한 마디에 내 손을 잡고 찻길로 뛰어든 남자친구 내 인생 호러영화 되는 순간! ★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 내가 짝사랑하던 남자의 여, 20대, 교사 갑작스러운 고백. 눈물이 줄줄줄 ★ 아직 내 인생엔 그 순간이 여, 30대, 공연마케팅 오지 않았다. ★ 지금. 영화에 나오는 백수만큼 남, 20대, 학생 이나 찌질 하지만 지금도 난 반짝반짝 함. ★ 피가 끓던 그 시절 밤기차타고 해운대로 향하 여, 20대, 학생 내인 영 처 생 화 럼 던 길... ★ 우리 마누라처음 만났을 때 여, 20대, 회사원 ★ 내가 벌어서 차를 남, 20대, 엔지니어 사던 그 때(카드를 긁던 그 순간) ★ 아이 낳고처음으로 모유 먹이던 “반 반 짝 짝” 남, 20대, 회사원 순간 ★ 대학원 합격했을 때 (할머니가 울었다...) 여, 20대, 주부 ★ 내가 남, 20대, 학생 좀 목매고 있던 남자한테 먼저 헤어지자고 쿨하게 말했을 때. 그 순간, 나는 하 순 던 간 영화 속 여주인공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 진짜 끝. 짝사랑하고 있는 여자가 보고 있는데, 헤매고 있는 외국인에게 길안내해줬 을때. 영어로!!! ★ 체육대회에서 오래 달리기하고 난 뒤에, 다시 뛰 남, 30대, 회사원 ★ 수 년째 여, 30대, 교사 어서 수돗가까지 물 먹으러 갔을 때. ★ 직장생활을 하면서 꿈을 위해 여, 30대, 회사원 야간대학을 다녔을 때. 피곤한 하루하루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가 가장 ‘반짝’였던 시기 같다. ★ 사귄 지 백일 되었을 때 독자_김지영 님(서울시 도봉구) 04 05 백송이의 장미와 목걸이, 그리고 처음 만난 날처럼 차려 입고 첫 만남인 척 했던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것들. 닭살처럼 보이지만 우린 다이아몬드보다 더 반짝였다. 독자_김선용 님(서울시 양천구)
  • 4. 상 공 글·민보라 + 사진·김현호 감 ⊙ 상 상 스 1 초 예 이 고부 다 프 그 과프 그 사 에 수 없 나 났 사 지 를반 , 5 의 술 라 른 . 로 램 로 램 이 서 도 이 타 다 라 기 복 토 리 이 는없 면서 한C 이 .짧 시 안 시 자 눈 사 잡 넘 나 C 속 서살 제 으 운 F 다 은 간 에 청 의 을 로 고 쳐 는F 에 아 그 림 아 티 종 이 남 위 다 고다 은강 한한편 그한편 위 오 도광 인 은밤 달 다 그 데 기 해 듬 듬 렬 . 을 해 늘 고 들 을 린 . 런 들 스 를 은 트 어 들 통 해 저 다개 강 광 인 은무 을매 로일 불 하 움 여그 게완 한한편 C 를 마 성 한 고 들 엇 개 사 란 게 직 렇 벽 의 F 떻 을 새 게 만 로 멋 나 운 만 어 것 까 그키 드 바 ‘ 티.종 위 그 진콘 는모 에 가 강 하 서 들 낸 일 ? 워 는 로콘 ’ 이 에 려 티 두 게 장 렬 면 도 진 그 문 결 들 화 과 로 의 작 와 예 확 하 광 의컨 을전 할수있 매 체 된 . 실 게 고 셉 달 는 개 가 다 만 업 술 들 과 을 어 삶 창 질 조 까 ,그 해 요 리 내 고 는 ? 상 일 크 [ 상 상 리 스 의 에 토 이 이 리 야 터 상 하 있 것, 상 고 던 에 기 들 ] 서 를 과 의 그 들 인 숨 려 터 은 드 뷰 립 바 던장 은 라 면 이 니 입 야 다 니 기 다 를 종 . 최 . 만 이 근 나 위 나 손끝 서 의 에 보 에 주 세 서 목 요 시 받 작 는 . 된 디 무 자 생 을얻 명 어 수 이 한 너 와 낙 서 와 전국민이 다 아는 CF, 그 CF의 콘티를 그린 콘티라이터는 눈 밑에 다크 김일영 콘티라이터 서클도, 지친 기색도 없는 소녀 같은 모습. 콘티의 세계가 엄청 바쁘고 1996년 한양대학교 응용미술 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만화공부를 하던 중 광고프로덕션 빠르게 돌아간다지만 김일영 작가는 그 폭풍 속에서 피해 앉은 듯 살짝 ‘광고방’에 입사한다. 3년 간 일하며 쌓은 실력 으로 2000년부터 프리랜서로 독립하여 콘티 기대했던, 콘티세계라는 정글을 헤쳐 나온 여전사 이미지 같은 것은 찾아 라이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카투니스트 로 일하고 있다. KTF의 Show 일본여행 06 을 비롯하여 진로소주 J 송혜교지현우, 볼 수 없다. 부끄러워 정면 얼굴을 공개하지 못하겠다는 그녀의 발언으로, 07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매직스 놀이동산 등 인상적인 CF들의 콘티를 작업하였으며, 개인 홈페이지 www. 얼굴없는인터뷰이제시작한다. ilungsworld.com에 그보다 더 많은 콘티와 만화들이 올라오고 있다.
  • 5. 1차로 콘티라이터가 필요한 순간이다. 회의에서 나온 아 다. 1997년에 입사하여 2000년까지 짧은 시간 동안 많 꾸준히 요가를 하고 있다. 직업이 조금 거칠고 고되기 때 이디어 몇 가지를 콘티로 그리면 다시 회의를 거쳐 몇 개 은 콘티를 그린 덕분인지 프리랜서로 나서는데 어려움 문에 몸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의 안을 추린 후 광고주에게 보여준다. 광고주와 광고대 은 없었다.그리고 지금까지 프리랜서 콘티라이터로 활동 래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도 하고 있다. 여유가 행사가 다시 회의를 하고 최종 안이 확정된다. 그리고 촬 중이다. 한 달에 대략 100건 이상의 콘티를 그리고 있다. 있을 때는 여행을 간다. 여행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해 국 영을 진행할 광고프로덕션도 선정된다. 광고프로덕션의 내나 해외 가리지 않고 훌쩍 떠나는 편이다. 감독이 촬영콘티를 그리는데, 이것을 가지고 콘티라이터 ★ 콘티라이터로서의 어려움도 있고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하나씩 이야기한다면? 는 최종 콘티를 그린다. CF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무수히 ★ 김일영에게 종이란 어떤 의미인가? 어떤 직업이든 그렇겠지만 어려움도 많고 즐거움도 많 많은 협의 연속이다. 광고대행사의 CF플래너들이 머리 종이가 없으면 작업이 안 되기 때문에 종이가 떨어지면 불 다. 콘티라이터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광고회사의 를 쥐어짜 만든 아이디어는 콘티가 되어 광고주와 감독, 안하다. 늘 종이를 비축해두는 편이라고 할까? 프리랜서이 시간에 내 작업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 쪽 모델 등 광고 스태프 간의 의사소통을 주도한다. 이때 말 기 때문에 여러 회사를 다니며 작업을 하는데, 나에게 가 사람들은 늘 바쁘다. 밤을 새서 회의를 하거나 새벽에 을 이용한다면 그 과정은 몇 배나 더 힘겨울 것이다. 매 장 중요한 것은 역시 좋은 종이이다. 매 순간 나에게 주어 모이는 것은 예삿일이다. 콘티라이터라면 그것에 익숙 번 얘기할 때마다 살이 붙거나 누락이 될 수도 있고, CF 진 종이를 손으로 쓸어보고 감촉이나 두께감이 내가 좋아 해져야 한다. 그래서 여자보단 남자 콘티라이터가 많은 플래너가 애초에 생각했던 그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 하는 종이이기를 바란다. 좋은 종이와 까만 플러스펜, 나 것 같다. 그 다음 힘든 것인 스케줄 관리이다. 콘티라이 다. 하지만 콘티로 그려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에게 와 콘티를 위한 최고의 동료이다. 터는 프리랜서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여러 회사를 다니 나 똑같은 그림을 보여주니 오해의 소지 없이 원활한 커뮤 며 일을 한다. 스케줄 관리를 잘못하면 연달아 펑크 나 니케이션이 가능하다. CF기획자부터 광고주, 카메라감독, 는 경우도 생기므로 매번 주의한다. 혼자 일하기 때문 스타일리스트, 모델에 이르기까지 같은 콘티로 CF가 보여 에 외로운 직업이라는 것도 콘티라이터로서의 어려움 ★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혹은 콘티작가, 어떤 직업인가? 주고나 하는 바를 정확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얻는 즐거움도 많아 10년째 이 이 직업을 가리키는 말은 무수히 많다. 스토리보드 아티 ★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일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린 그림은 일반 사 스트, 콘티작가 또한 그 중의 하나이다. 광고 쪽에서 일 어려서부터 만화를 그리고 싶어했다. 아빠는 요리사, 람들에게까지 전달될 일이 없다. 촬영 전까지만 필요한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콘티 까만 플러스펜으로 쓰윽 그려내자 어느 새 몬스터, 이나중 탁구부, 아즈망가 대왕등을 좋 것이 콘티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가 콘티를 그린 CF 종이 한 장이 꽉 찬다. 콘티라이터에게 라이터라고 부른다. 콘티라이터라는 직업은 최근 들어 중요한 것은 잘 그리는 것, 무엇이든 그릴 아하는 만화가 지망생. 디자인을 전공한 후 1년 정도 만 에 내 일러스트가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렇게 일반 사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은데, 꽤 오래 전부터 많은 콘티라 수 있는 것, 그리고 누구보다 빨리 그려 화 공부를 하던 중 친구의 소개로 광고프로덕션에 면접 람들에게 내 그림이 조금씩 알려지면 즐거움을 느낀다. 내는 것이다. 이터들이 활동했다. 현재에도 약 100여 명의 콘티라이터 을 보러 가게 되었다. 처음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받은 또 그리면 그릴수록 조금씩 늘어나는 그림 실력 때문에 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콘티란 CF나 질문이 콘티를 그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만화 매일 조금 흐뭇하다. 영화 등 영상으로 만들기 전에 만드는 대본과 같은 것으 로 만화처럼 컷을 나눠 움직임을 그린다. 나는 CF를 메 를 연습했고 드로잉 을 좋아했기에 당연히 그릴 수 있 다고 이야기했다. 콘티를 모르던 때라 가능한 대답이 ★ 어떤 방식으로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고 기분전환을 하는가? 인으로 작업한다. 아니었을까? 스트레스를 푸는 일이라. 우선 프리랜서이고, 콘티라이 08 09 ★ CF를 메인으로 하는 콘티라이터...더 자세한 설명은? 만화, 일러스트와 콘티는 무척 다른 일이었다. 만화나 터이다 보니 불규칙한 생활이 어쩔 수 없이 지속되는 경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콘티는 CF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맞물려 설명해야 쉽다. 일러스트는 작업 시간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만 콘티 우가 있다. 그래서 낮과 밤이 바뀌고 잠이 부족한 경우가 예를 하나 들어 광고대행사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는 요청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바로 그려야 한다. 옆 종종 있는데, 시간이 나면 길고 깊은 잠을 자며 거기에서 이 자리에서 컨셉도 정해지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에서 내용을 불러주면 그것이 바로 콘티가 되는 경우도 오는 스트레스를 푼다. 또 한 자리에 앉아 오랜 시간 작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있었다. 한 달에 거의 200~300건 정도의 콘티를 그렸 업을 하니 어깨가 많이 굳는데,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 6. 상 공 감 ⊙ 한 국 제 지 의 상 앞 뒤로 두 번 구운 김이 더 아삭하고 고소하다는 내용의 광고가 있었다. 두 번 이리 뒤집 상 과 언 한 연 어 제 나 국 제 고 저리 뒤집어 굽는 게 뭐가 어려워서? 별 말씀을. ‘두 번’ 그것이 바로 기술이다. 아트지도 두 번 떻 최 지 게 초 의 만 와 새 들 어 최 고 로 운 코팅하면 격이 달라도 다르다. 무엇이 다르냐, 하고 물으신다면 할 말 많은 졌 를 도 을 향 전 까 한 에 요 관 ? 노 력 한 이다. 우리나라 아트지는 처음에는 모두 싱글아트지였다. 인쇄선진국에서는 이미 한 을 이 국 야 제 멈 추 기 지 입 지 의 니 두 번 코팅한 더블아트지를 쓰는 바, 날로 발전하는 인쇄기술에 보탬이 되고자 한국제지에서는 아 지 트 , 새 않 다 로 았 습 . 1958 운 니 우리 기술로 더블아트지를 만들어 보기로 마음 먹었다. 1993년, 그렇게 해서 국내 최초로 상 다 년 상 이 우 설 . 리 립 만 들 생 이 어 활 후 코 이바 팅 로 낸 속 한 재 미 에 서 국 의 공장에 들여 놓은 더블코터. 제대로 만든 한국제지의 더블아트지 덕분에 우리나라 아트지 있 빼 제 는 놓 지 종 을 역 이 사 이 수 와 기술과 인쇄수준은 한 단계, 아니 두 단계는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렇다면 왜 더블아트지일까? 아트다! 없 야 는 함 기 께 를 무 수 해 들 히 온 려 드 많 한 확실히 두 번 코팅하니 종이의 표면은 평평해지고, 표면이 평평하다 보니 잉크가 고루 립 은 국 니 종 제 다 이 지 들 는 먹어 소위 말하는 ‘인쇄발’ 선다는 사실. 그뿐만 아니라 싱글아트지에 비해 광택은 20% 증가 평소보 . 은 다 적은 잉크로 찍어도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광이 살아나 눈이 부실 정도. 지금이야 여기 저기서 더블아트지를 만들고 있지만 ‘인쇄발’ 선 책자를 만나면 이것부터 기억하자. 더블아트지는 한국제지가 제일 먼저! 덧붙여 국내 최초로 최상의 ‘인쇄발’을 자랑하는 프리미엄 아트지 ‘엑스프리’ 10 11 를 개발한 곳도 한국제지라는 것!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 7. 1 %의 종이 99%의 상상 별 그 이말 는 들 하 처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데이비드 시무 럼 어(David Seymour), 조지 로저(George Rodger) 등의 사진작가들이 모여 만든 국제자유보도사진 작가 그룹이다. 단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일깨워주는 작품들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집단으로 손꼽힌다. 반 짝 최근 한국에서도 ‘매그넘 작가들이 바라본 한국’을 주제로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다. Magnum 이 한장 리 리 매 넘 의 얼 티 그 는 종 이 ― 하 나 “만약당신의사진이만족스럽지않다면그건충분히가까이에서 찍지않았기때문이다.”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 수 십, 수 백 종류의 카메라가 있다. 렌즈 또한 각양각색이다. 21세기의 카메라는 누가 셔터 카메라는 재현을 위한 기계이다. 풍경화나 초상화로 남기던 기록들을 조금 빨리, 더욱 쉽게 남기기 위한 것이다. 간편 하게 셔터를 누름으로써 그 순간은 기록되고 기억된다.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기록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20세기 초, 를 누르든 훌륭한 사진이 되도록 다양한 장치를 구비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기술적인 연이어 터진 전쟁은 사진의 매력을 극대화시킨다. 전쟁과 떨어져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전쟁터에서 날아온 행위. 좋은 장비와 그 장비를 다루는 뛰어난 스킬은 언제 어디서든 ‘작가주의’ 사진을 찍을 사진 한 장은 엄청난 양의 소문보다 선명하게 전쟁의 양상을 보여줬다. 로버트 카파(Robert Capa)는 그 중 단연 돋보였다. 수 있도록 돕는다. 매그넘(Magnum)은 장비와 스킬, 거기에 몇 가지를 더해 전세계 사진 가장 치열한 격전의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스페인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종군기자’가 아닌 ‘참전자’로서 리얼리티 작가들이 열망하는 단체로 알려졌다. 단 한 장의 사진, 그 안에 담고자 하는 매그넘 정신. 넘치는 사진을 찍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한 유일한 사진작가로 바다에서 육지를 향해 떨리는 손으로 셔터를 누르던 그의 열정은 ‘카파주의(Capaism)’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5번의 참전. 그가 죽음 그들은 오늘도 어딘가에서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며 사진 한 장을 내밀 것이다. 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진은 더욱 현실감 있게 남았다. 12 13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 8. 1 %의 종이 99%의 상상 별 처 럼 “나는아직도새로운것을찾아내고싶고,이세상과그인간을기록하고싶다. 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면서도 작가 각자의 개성 있는 시각을 잃지 않는 것, 이것만이 지금 반 왜냐하면,그들의괴로움과나자신이비통한순간에도인간이라는사실은여전히아주 까지 지켜지는 매그넘의 유일한 규제이다. 매그넘 작가들은 리포터처럼 기록을 하고, 예술 짝 이 특별한것이다.” 크리스 스틸 퍼킨스(Chris Steele-Perkins, 1947~) 가처럼 순간의 시간을 포착했다. 이러한 매그넘의 방식은 저널리즘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는 그 저널리즘에 속하지 않고 저널리즘의 한계를 뛰어 넘는 사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들 종 이 은 자신만의 주제와 색채를 가지고 현실에 포커스를 맞춘다. 거기에는 작가만의 철학과 신 ― 하 념이 담긴다. 오랜 시간 자신만의 주제를 가지고 일해 온 작가의 작품에는 주제의 깊이와 나 통일, 작업의 지속성이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같은 사진이라도 매그넘의 사진에서 는 기록물의 차가움보다는 공감대가 느껴진다. 지금도 리포터와 예술가의 경계를 넘나들 고 포토저널리즘부터 다큐멘터리까지 폭 넓은 범위를 아우르며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전쟁과 분쟁의 현장, 사회의 이슈, 새로운 트랜드 등 매그넘의 카메라는 현실 속 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찍으며 ‘순간’으로서의 역사를 기록했다. “내가두려운것은육체적위협보다는상상력의부재이다.” 아바스(Abbas, 1944~) 한 사진평론가는 “세계 사진 역사에서 매그넘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뿐만 아니라 세상 을 보는 방법까지 고민했던 사진작가들이다’라고 말한다. 비극적인 현장에서부터 사람의 1947년 4월, 뉴욕 현대미술관 식당에서 로버트 카파를 비롯하여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일상적인 모습까지, 세상을 보여주면서 정확한 관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를 데이비드 시무어(David Seymour), 조지 로저(George Rodger) 등 4명의 사진작가는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담기 위해 연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민하고 순간을 포착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를 창립한다. 사진기자들의 불안한 지위, 특정매체의 틀에 박힌 편집방향과 포맷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작업을 그로써 총을 맞고 쓰러지는 병사나 지하로 피신하여 떨고 있는 소녀의 표정은 보는 이에게 보장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윌리엄 반디버트(William Vandivert), 엘리어트 어윗(Elliott 현실을 전하고 전쟁의 참상을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로버트 카파는 지뢰를 밟아 유명을 Erwitt), 워너 비숍(Werner Bischof), 잉게 모라스(Inge Maurras), 브루스 데이비슨(Bruce Davidson), 레이몽 드파르 달리했고, 데이비드 시무어는 수에즈에서 이집트 병사의 총을 맞고 최후를 맞았다. 동(Raymond Depardon), 토마스 헵케르(Thomas Hoepker) 등 저명 사진작가들이 차례대로 가세하며 그 명성을 잇는다. 이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지구촌 곳곳을 렌즈에 담기 시작한다. 매그넘. 그들을 하나로 묶는 이 이름은 그들의 창립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때까지 사 진기자는 매체에, 사진은 기사에 종속되어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매체의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을 전하겠다는 대범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라틴어로는 위대함 14 을 뜻하고 ‘매그넘 총’의 강인함을, 그리고 샴페인 더블 사이즈 ‘매그넘’의 축하를 담고 있는 60년. 현재까지 매그넘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소수정예. ‘사진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그넘 정회원이 되는 15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이 다의적인 단어는 포토저널리즘의 새 장을 열었다. 소속된 사진작가들은 자신의 필름에 것은 사진가에게 최고의 영예가 된다. 이미 죽은 작가까지 합쳐 정회원은 60명 정도, 아시아에서는 단 3명뿐이다. 후보 대한 저작권과 작업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 받는다. 어떠한 매체로부터 주문도, 제약도 받 회원과 준회원을 차례로 거쳐 정회원의 투표를 통해 정회원이 될 수 있다. 2~3년마다 한 번씩 엄격한 검증절차를 거쳐 지 않으며, 개인적인 특성과 자유의지로 활동을 한다. 매그넘은 단체이면서도 단체로서 회 자격을 유지한다. 그래서 매그넘의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들이 찍은 것은 한 장의 사진, 그리고 우리가 원들을 규제하지 않는다. 창립 때부터 매그넘의 스타일,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기억하는 현실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 9. 1 %의 종이 99%의 상상 별 처 럼 반 짝 이 는 종 이 ― 둘 사 , 진 그위 남 것 에 는 은 디지털카메라, 일명 디카. 찍은 자리에서 바로 확인하고 금세 컴퓨터로 올린다. 사진이 마음에 안 들 삭 후 재촬영에들어가도된다.디카가없었다면여전히27장짜리혹은36장짜리필름을넣고사진을찍은후사 관 진 에 면 제 시간 맡기고몇시간,길면며칠을기다려야사진을받았을것이다.사진이찍힐때활짝웃고있는지,눈을감 는 는 았 지 현 이된사 을봐 만알수있 다 별생 없 찍 어 사 을본후 찍 준사 을원 하 일 허 하 . 상 진 야 었 . 각 이 혔 도 진 에 어 람 망 던 도 다 다 하지만컴퓨터를켜는것이아니라먼지쌓인앨범을꺼내한장씩넘기면옛날일이어제일처럼떠 른 .오 오 다 래 되어색이바랜백일사진부터찢어져테이프로이어붙인졸업사진까지,찍었던때부터사진에얽힌이 기 지 야 까 . 인화지위에남는것은얼굴도아니고멋진풍경도아닌각자의시간이다. 동네사진관, 낡은 의자와 늘 같은 배경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빠지지 않고 하는 일. 부모들은 머리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동네사진 관을 찾는다. 그리고 입혀 왔던 옷을 벗기고 의자에 앉힌다. 갑자기 옷도 벗고, 낯선 의자에 앉혀진 아이는 칭얼칭얼. 아 빠와 엄마 사진관 아저씨까지 하나가 되어 우는 아이를 달래고 카메라에 시선을 맞추도록 한다. 의자에 앉은 아기는 좌 불안석, 아기와 카메라 사이를 오가는 아저씨 얼굴에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땀이 번질거리기 마련이다. 힘겹게 백일 사 16 17 진을 찍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돌 사진을 찍을 날은 부쩍 크는 아이만큼 빨리 다가온다. 백일 때는 실오라기 걸치지 않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은 모습을 남겼지만 돌 때는 다르다. 아기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한복을 입고 점잖게 앉는다. 백일 때처럼 울먹이고 안아 달라고 조르기도 하지만, 카메라를 쳐다볼 때는 눈도 맞춘다. 그렇게 남은 사진은 앨범 앞 부분에 넣어진다. 지금은 아 기자기하게 꾸며진 베이비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 10. 1 %의 종이 99%의 상상 별 처 인생의 1/8, 동갑내기들과 함께 한 추억 럼 반 유치원, 빠르면 유아원부터 또래친구들과 함께 하는 생활의 시작이다. 그리고 매년 오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자연스러울까 하는 걱정도 잠깐. 몇 시간 뒤 짝 이 봄소풍, 가을운동회, 학예회 등등. 병아리같이 노란 체육복이나 단정한 교복을 입은 채 단 에 찾으러 오라고 하니 그때 확인하고 별로구나 싶으면 다시 찍을 생각을 한 는 체로 앉아 카메라를 보고 찍는 사진도 빠질 수 없다. 5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다. 그렇게 받아 든 대여섯 장의 사진은 이력서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스캔을 받아 컴퓨 종 이 보니 사진 한 번 찍는 것도 일이다. 터에 저장해두기도 한다. 요즘에는 아예 CD로 구워서 사진 데이터를 주는 곳도 생겼다. ― 둘 친구 뒤로 숨어버리거나 다른 짓을 하며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간신히 집중시키고 셔터를 누른다. 한창 민감한 나이의 여학생들은 작은 얼굴을 꿈꾸며 친구보다 뒤에 서려고 애쓴 화려한 촬영, 평생 간직할 반쪽과의 기억 다. 막상 나온 사진에는 눈을 감은 아이가 10% 이상, 얼굴이 가려진 아이가 15% 이상, 햇 사랑하는 사람과는 무엇을 해도 즐거운 법. 특히 가슴 설레는 웨딩촬영은 평생 기억에 남 볕에 눈을 찡그린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 서로 누가 잘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따져 을 사건이다. 영화에서만 보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티아라를 쓴다. 날렵하게 빠진 연미 보다가 한 장씩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앨범 한 켠에 꽂아둔다. 혹시나 본인 얼굴이 마음에 복을 입어 보기도 한다. 사진작가가 시키는 대로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행복한 미소를 날 안 들면 지워버리기도 하고, 미운 친구 얼굴에는 낙서를 하기도 한다. 나중에 친구나 애인 린다. 요즘은 다양한 상황 설정으로 평생 남을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에게 비슷한 아이들 사이에서 본인을 찾아 보라고 시키기도 한다. 스튜디오와 야외를 오가며 하루 종일, 또는 며칠에 걸쳐 촬영한 사진은 두고두고 힘들었 지만 아름다웠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예전에는 따로 웨딩촬영을 하지 않아 결혼식 날 찍 이력서의 꽃, 포토샵을 방불케 하는 한 컷 은 사진이 전부였다. 흑백 사진 속에는 잔뜩 긴장한 듯한 신랑과 신부가 서 있다. 여러 장 졸업을 앞 둔 예비 사회인들은 이 한 컷을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다. 어느 사진관이 자 을 찍지만 신랑, 신부는 변함 없다. 단지 주변에 서 있는 인물들이 부모님에서 친지, 친구 연스러우면서도 매끄럽게 컴퓨터의 힘을 발휘하는지 알기 위해서다. 하지만 포토샵에 너 들로 바뀔 뿐이다. 작은 카메라 렌즈 안에 모두 들어가기 위해 어깨를 비스듬히 한 채 서 무 의존해도 마이너스라는 것을 알기에 포토샵을 능가하는 준비과정을 거친다. 있는 사진 속에는 부케 받을 친구도, 눈물로 딸을 보내는 어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여자라면 안 한 듯 하면서도 모든 잡티를 커버한다는 투명 메이크업, 남자라면 단정하면서 도 자신감 넘치는 머리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단정한 옷을 챙겨 입은 후 사진관으로 나 거실 풍경, 어색한 미소가 더욱 정겨운 사진 선다. 배경을 두고 앉으면 사진가의 요구가 떨어진다. 고개를 왼쪽으로, 어깨에 힘을 빼세 거실이든, 지갑 안이든 꼭 챙겨가지고 다니는 것이 가족사진. 온 가족이 사진관을 찾아 사 요, 머리를 귀 뒤로 넘겨보세요 등. 그리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힌다. 척추부터 진을 찍는 일은 평생에 몇 안 되는 중요 행사이다. 가족사진은 며느리, 사위 등 새로운 가 족이 생기거나 부모님의 회갑, 칠순 때 많이 찍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중후한 의자에 앉 고 자녀들은 그 뒤로, 옆으로 자리를 잡는다. 말끔하게 차려 입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꽤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는다. 아버지의 손은 주 먹을 꼭 쥔 채 무릎 위에 올라가 있고, 큰 아들의 손은 믿음직스럽게도 아버지나 어머니 의 어깨에 올리는 것이 가족사진의 매뉴얼이다. 딸이 있다면 밝게 미소를 짓는다. 온 가족 이 모여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지으려니 수줍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거실 한 켠에 걸릴 사 진이기에 사진가의 주문을 곧잘 따른다. 사진을 찍은 후, 가족들의 논의를 거쳐 사진 테두 리를 장식할 액자를 고르면 끝. 며칠 후에 대형 사이즈 가족사진과 함께 지갑에 쏙 들어갈 18 19 미니사이즈의 가족사진을 찾으러 간다.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 11. 1 %의 종이 99%의 상상 별 상 은 상 처 수업은 지루하고, 선생님 말씀은 길기만 하다. 교과서 구석에 끄적끄적. 누구나 해봤을 일이다. 책 귀퉁이를 럼 반 잡고 후루룩 넘기면 ‘옷’ 모양의 사람이 점프를 하고 힘껏 달리거나, 미사일이 교과서 이 끝부터 저 끝까 짝 이 는 지 날아가기도 한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 명의 사람이 격투를 벌이고 장풍을 쏘기도 한다. 종 24장의 이 그냥 두면 귀퉁이에 작게 그려진 조잡한 그림들이지만 여러 장이 모이자 근사한 세계가 완성된다. 이게 ― 셋 바로 애니메이션의 탄생. TV나 스크린을 가득 메운 화려한 영상들도 시작은 종이 위다. 종이와 상상, 종 위 서 이 에 거기에 속도가 더해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애니메이션! 1초의 나이 먹어도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거다. 요즘 애니메이션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톰, 은하 볼 때마다 궁금하다, 어떻게 만드는 건지. 토토로가 털을 파르르 현 이된 . 실 다 철도 999나 태권 V, 독수리 오형제, 메칸더 V, 미래소년 코난으로 대표되던 미래지향적 SF 애니메이션은 이제 지 브리 시리즈와 카우보이 비밥, 에반게리온, 명탐정 코난, 떨며 괴성을 지른다. 덩 치 큰 적과 맞서 싸우는 루피의 힘줄은 미세하게 원피스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었 꿈틀댄다. 현실에서야 다. 물론 기가 막힌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는 그대로 그러려니 할 만한 장면 지만, 역시 세월이 세월인지라 그 퀄리티는 하늘 높은 줄 들이지만 애니메이션에 모르고 솟아올라 영화의 특수효과 뺨치는 모양새이다. 예 서는 보면 볼수록 신기 전 애니메이션에서 나타나던 배경과 인물의 차이, 배경은 하다.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조금이라도 알 약간 흐리고 단조롭고 반복되는데 비해 캐릭터는 역동적 고 있다면 신기함에 놀라움이 더해진다. 애니메이션은 수 으로 움직이는 그런 어색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입 업시간에 끄적이던 낙서처럼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이 모 모양과 성우의 목소리가 단 한 번도 맞지 않는 그런 일도 여 만들어진다.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장의 화면을 연속 촬영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 승승장구 발달된 기술은 애니메이션과 현실의 싱크로율 게 하는 것, 이것이 애니메이션이다. 2차원의 종이, 그 위 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이 아이 에 그려진 것들이 어떻게 세밀한 3차원의 움직임을 보이 들만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팍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방 는 것일까? 사람들에게 일련의 정지된 이미지를 연속적 학맞이로 극장에서 개봉하던 애니메이션은 이제 헐리우 으로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 이미지들이 이어진다고 착각 드 대작 사이에서도 늠름하게 스크린을 차지하고 어른 아 하게 된다. 이는 잔상효과에 의한 것인데, 잔상효과란 이 20 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미지가 이미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눈이나 뇌에 21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거기에 아이들은 절대 이해 못할 심오한 세계를 담은 애 계속 남아 있으려는 경향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초당 15 니메이션들도 속속 등장하며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장 이상이 되어야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느낀다고 한다. 있다. 바야흐로 애니메이션이 키덜트들의 지지를 한 몸에 물론 작품이나 작가의 성향에 따라 프레임의 수는 다르다. 받는 시대의 시작. 이것이 흔히 알려진 셀 애니메이션이다.
  • 12. 1 %의 종이 99%의 상상 별 처 럼 반 짝 이 계가 열린다. 컴퓨터가 없었다면 전세계 애니메이터들의 는 종 손 끝에는 굳은 살이 야무지게 박혔을 것이다. 이 ― 셋 모두를 위해 애니메이션이여, 영원하길!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만드는 과정 또한 장인의 손길 뺨칠 정도로 복잡 다단한 공정을 거치는 애니메이션, 처 음에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약 100년 전, 제임스 스튜어 트라는 사람이 칠판 위에 그린 유쾌한 얼굴(Houmours 그림을 그려 넘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Phase on Funny Face, 1906)이 최초의 애니메이션 필 애니메이션. 라틴어에서 영혼을 뜻하는 anima와 살아 름으로 평가 받고 있다. 무려 1초에 20 프레임. 만화가의 나게 하다라는 의미의 animatus가 합쳐진 말처럼 생명 손이 나와 칠판 위에 하얀 분필로 얼굴을 그리고, 얼굴들 력 제로의 종이는 어느 새 뛰고 춤추고 하늘로 날아오르 은 각자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보고 있으면 재미는 는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잘 빠진 캐릭터, 매끄러 있지만 스토리는 없다. 스토리가 있는 최초의 애니메이션 운 그림 솜씨라 하더라도 여러 가지 복잡한 단계를 거쳐 은 팡타스마고리(Fantasmagorie, 1908). 선으로 그려 야 혼이 쏙 빠질 정도로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이 탄생한다. 진 광대가 나와 이것 저것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1분 우선 기획. 전체적인 스토리부터 구성, 컨셉을 짜고 들어 18초라는 짧은 시간, 물론 흑백에 소리도 없지만 다이내 가는 돈이 얼마쯤 될지 예상도 해본다. 예산이라는 현실 믹한 광대의 움직임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한 사람 적인 문제까지 해결이 되면 본격적으로 시놉시스와 시나 들이 기겁을 했을 수 밖에. 이후에 애니메이터들의 무한 리오를 짠다. 이 단계에서 스토리는 한결 간결해지지만 한 노력과 부지런한 움직임 덕분에 애니메이션은 봇물처 설득력은 2배, 3배가 된다. 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1909년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시작 스토리를 가지고 대사와 내레이션을 짠다. 캐릭터와 배경 으로 스크린에서 TV로 다시 DVD로, 애니메이션은 그 전 도 이 부분에서 구체화된다. 그리고 바로 24장의 종이로 달 매체만 바꾸어 가면서 주위를 맴맴 돌고 있다. 건너 뛰느냐, 그건 아니란 말씀. 콘티, 즉 스토리보드를 세월이 지나도 재미있는 것은 재미있는 법. 종이 위에 손 작업해야 한다. 캐릭터는 더 생동감 있고 감정이 풍부해 으로 그리든, 손으로 그린 후 컴퓨터로 넘기든 애니메이 진다. 콘티가 다 짜이면 콘티를 바탕으로 원화를 그린다. 션은 종이 위에서 태어난 것. 작가의 무한 상상력은 종이 원화란 애니메이션 흐름을 이어가는 중요한 동작의 시작 위에서 캐릭터를 만들고,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 넣어 걸 22 과 끝을 말한다. 이 사이를 이어주는 무수한 그림들을 동 작을 남긴다. 주변에 낙서해도 좋은 책이 있으면 한 권 잡 PAPER COMMUNICATION 화라고 한다. 동화가 얼마나 정교하게 들어가느냐에 따 아라. 그리고 귀퉁이를 노려라. 상상력과 종이만 있다면 라 태권 V는 매끄럽게 움직일 수도, 아니면 곧 주저앉을 누구든 애니메이터! 것처럼 어설프게 움직일 수도 있다. 이렇게 한 장면 완성. 약 1만 4,000여 장 정도 그리면 10분짜리 애니메이션 세
  • 13. 이상한나라의 블로거 언제나 카메라는 필수. 세상을 향한 블로거의 눈 은 늘 렌즈와 닿아 있다. 맛집이든 유명한 장소 든 아기자기한 거리든, 그들에게 카메라가 있는 한 그 공간은 블로거의 공간. 누구의 렌즈냐에 따라 한 장소는 전혀 다른 수 십 만개의 공간으 로 거듭나고, 작은 프레임 안의 풍경은 전혀 모 르는 세계로 돌변한다. 셔터를 누르고, 글을 올 린다. 그 순간 당신은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 로 뛰어든 블로거가 된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블로거 ‘노군’이 찍은 시간들입니다. 블로거 Blogger 요즘처럼 블로그가 대세인 시대에 한 번쯤은 들어봤을 신조 어이다. 블로그를 소유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통틀어 가리키지 만, 네티즌들의 입 소문에 의해 유명해져야 비로서 ‘블로거’라 고 불리게 되는 것이 요즘 트랜드. 전문사진가 못지 않은 사진 기술과 작가 뺨치는 글발을 자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 14. 이상한 나라의 블로거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2009 December 파 Paris 리 누군가는 에펠탑 앞에서의 기념사진으로, 다른 누군가는 몽마르뜨에서 마셨던 뜨거운 커피 한 잔으로 기억하 는 곳. 유명하다는 곳은 모두 둘러보았지만 그 감격은 잠시, 역시 가장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은 신호등 하나도 아름다웠던 파리 그리고 여행 내내 맑은 하늘을 선사해줬던 꿈 같은 파리뿐.
  • 15. 이상한 나라의 블로거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2010 January 도 Tokyo 쿄 도쿄의 빗방울이 어깨 위로 떨어진다. 역 앞에서 제일 싼 우산을 사 들고 거리를 걷다 보니 이곳이 종로 어디 쯤처럼 느껴진다. 길에서 파는 음식은 모습도, 냄새도 종로의 그것과 같다. 하지만 역시 도쿄는 도쿄. 맛있는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서도 언제 또 이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으니까.
  • 16. 이상한 나라의 블로거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2010 February 서 Seoul 울 휴일, 카메라를 둘러매고 집 앞으로 나선다. 홍대, 내 생활의 절반 이상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지만 카메라로 보는 홍대는 늘 새롭다. 길거리의 강아지, 손을 맞잡고 걷는 연인들, 앉아서 담배를 태우는 아저씨까지. 홍대 의 소소한 풍경들 때문에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
  • 17. 이상한 나라의 블로거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2010 March 터 Turkey 키 입 안에서 터지는 ‘터키’라는 발음 덕분에 막연한 환상으로 시작한 터키여행은 지중해 바다에서 마무리되었다. 맑은 소금빛 바다였다. 그 끝에는 바다와 꼭 닮은 하늘이 마주하고 있었다. 터키, 터키, 입 안에서 굴려보다 바다 앞에서 외쳐보았다.
  • 18.
  • 19. 국 제 지 ⊙ 종 이 가 있 50년,그동 한 제 에 안 국 지 는 지금이야 흔한 것이 종이입니다. 책상마다 노트부터 메모지, A4용 는 풍 지까지 종류별로 다양하게 구비해 놓고 일하니 종이가 귀하던 50년 경 무 일 있 을 슨 이 었 까? 전 이야기는 생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종이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나마 간신히 구한 종이도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살살 써야 찢어지지 않는, 그런 종이였습니다. 지금은 종이는 하얗고 매끄러운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는 회색이고 울퉁불퉁한 것이 일반적인 종이의 모습이었습니다.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조금 좋은 종이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만든,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꿈에도 못 꿀 정도로 비싼 몸값을 자랑했습니다. 해마다 한국제지는 몇 번의 크고 작은 행사를 준비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하는 행사가 바로 서울국제문구전시회입니다. 항상 종이를 통해 만나던 소비자들을 직접 만난다는 생각에 모두가 분주하게, 매우 열심히 문구전시회를 준비합니다. 정성껏 준비한 축제에 많은 분들이 찾아와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기회에 한국제지가 50년 동안 가지고 있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시중에서 만나는 한국제지 종이들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늘 종이 이야기만 하다가 종이를 만드는 우리 이야기를 직접 하려니 설렙니다. 이야기 시작해볼까요? 1950~1970 1950 1960 1970 한국제지가 제지회사로서 첫 걸음을 시작한 것이 이런 시기였습니다. 1958년 한국제지의 전신인 한국특수제지공업주 식회사가 문을 열었습니다. 다른 나라도 만드는 하얀 종이, 우리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한국 제지산업 역사에 전환점 이 된 것입니다. 1960년 안양공장이 준공되면서 한국제지표 백상지가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백상지는 우리가 일반적 으로 사용하는 모조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백색도도 높고 매끄러워 연필에 걸려 찢어지던 종이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1963년에는 경상북도와 전라남도에 임야를 구입합니다.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한국특수제 지공업주식회사는 그 곳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제지회사에게 한없이 필요 한 것은 나무, 한편으로 나무를 베어 펄프를 만들고 있으니 그 이상의 나무를 심겠 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우거진 한국제지의 숲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966년, 한국특수제지공업주식회사가 한국제지로 상호를 변경하고 종이생산에 박 34 차를 가합니다. 이듬해 안양공장에 1호 코터를 신설하며 아트지를 생산하기 시작합 35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니다. 백상지가 흑백인쇄에 적합하여 활자를 돋보이게 했다면, 아트지는 컬러인쇄에 적합하여 사진과 그림을 인쇄하기 좋은 종이입니다. 한동안 백상지와 아트지는 한국 제지 생산 종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품질은 수입종이 이상인데 가격은 훨씬 저렴해 많은 사람들이 찾았습니다.
  • 20. 국 제 지 ⊙ 종 이 가 있 는 풍 경 1990~2009 1990 2000 2009 온산공장과 안양공장, 두 개의 고장에서는 끊임 없이 연구하고 생산하며 더 좋은 종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1992년에는 온산공장에 연구개 발 전담부서, 기술개발연구실이 만들어집니다. 이어 다음해인 1993년에 는 온산공장에 최신제어장치를 갖춘 고속 4헤드 코터를 설치, 국내 최초로 양면 동시 더블 코팅이 가능해졌습니다. 한국제지에서 생산된 더블아트지는 광택이 좋고 종이 섬유가 평평 하게 퍼져 우수한 인쇄적성을 보입니다. 국내시장의 수요에 대응하면서도 수출시장에서도 크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1996년 5천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한 지 2년만인 1998년 1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습니다. 이렇게 온산공장과 안양공장은 나란히 다양하고 많은 종이들을 생산해냅니다. 그러다 1998년 40년 동안 돌아가던 안양공장을 폐지하고 온 산공장 단일체제로 들어갑니다. 수도권과는 떨어져 있지만 창동과 동탄, 오봉역 등에 물류 센터를 운영하며 거리적인 단점은 없어집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제지회사들 간의 생산설비나 기술적인 격차가 줄어들면서 더블아트지 1970~1990 공급이 증가합니다. 해외 고급용지와 저가수입용지까지 넘쳐나며 더블아트지 시장은 말 그 대로 총성 없는 전쟁터처럼 치열한 경쟁만이 남습니다. 거기에 소비자들은 더욱 좋은 종이 1970 1980 1990 를 요구해 새로운 아트지의 필요성이 늘어만 갔습니다. 그래서 한국제지는 프리미엄 아트 지 개발을 추진하게 됩니다. 기술연구소에서는 개발에 착수, 시중 아트지들을 분석하고 개 1972년, 안양공장에는 초지3호기가 증설됩니다. 이 기계에서는 박엽지와 특수지가 생산됩니다. 우표용지가 생산된 것 발컨셉을 설정합니다. 이후 무수한 실험을 거쳐 2004년 국내 최초 프리미엄 아트지 엑스 도 이 시기입니다. 재습접착제를 고급화학펄프 위에 바르고 그 위에 코팅하는 것이 우표용지의 핵심 기술. 이 기술이 없 프리 개발에 성공합니다. 순백색의 부드러운 색감과 뛰어난 더블코팅 기술, 작은 망점까지 어 우리나라는 100년 가까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우표용지를 수입해 사용했습니다. 이에 체신부와 한국제지는 우표용지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능력 덕분에 엑스프리는 출시되자마자 국내시장은 물 의 국산화를 위해 의기투합 손을 잡았고, 결국 100% 국산 우표용지를 만들게 됩니다. 1980년대까지는 한 면에 한 번만 론 해외시장에서도 호평을 받습니다. 엑스프리를 만들었던 기술은 복사지 부 코팅하는 싱글아트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한 면에 두 번 코팅하는 더블코팅이나 세 번 코팅 하는 트리플코 분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그래서 프리미엄 복사지 ‘하이퍼씨씨’를 탄생시키기 팅 기술이 개발되어 아트지의 품질이 향상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로 제지기술 에 이릅니다. 하이퍼씨씨는 친환경원료, 최고의 설비, 한국제지의 기술력 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쇄기술이 발전하고 고급인쇄기가 보급되면서 좋은 아 이 더해진 프리미엄 복사용지입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수입산 복사용 트지 수요가 증가하자 더블아트지의 필요성 또한 높아졌습니다. 1986년 안양공장에서 지를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를 하는 등 고객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대 36 더블코팅 기술을 도입하여 더블아트지를 생산하려 합니다. 정식 기술이 적용된 것이 아 37 한민국 1등 복사지랍니다. 니기에 높은 품질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블아트지 제조 기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술이 늘어납니다. 1987년 안양공장에 기술연구소가 들어서 한국제지의 종이 품 질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며, 1989년에는 온산공장이 준공되어 안양공장과 함 께 이원체제로 종이 생산을 하게 됩니다.
  • 21. 국 제 지 ⊙ 내 일 의 종 잘 알려진 것처럼 종이의 원료는 나무이다. 그것도 길게 잘 자란 아름드리 나무들. 이 나무 이 들은 펄프가 되고 펄프는 여러 공정과정을 거치며 다양한 종이로 만들어진다. 제지회사들 은 원료조달에서부터 ‘벌채’라는 행위를 통해 환경파괴에 일조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려야 했다. 따라서 많은 제지회사들이 땅을 사들여 나무를 심고 가꾼다. 매년 식목일뿐만 아니 라 쉬는 날이면 직원들과 함께 조림사업에 매진한다. 우리나라에 조성된 숲의 나무들은 기 후적인 문제 때문에 펄프로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제지회사들은 조림에서 얻는 일차적인 수익보다는 사회환원적인 목적에 중점을 두고 조림을 한다. 한국제지 또한 마찬가지. 여의 도 18배에 해당하는 한국제지 조림지에는 해송과 잣나무, 전나무, 느티나무, 리기다 소나 무 등이 자라고 있다. 미 지 와공 하 위 래, 구 존 기 한 이렇게 나무를 심고 가꾸며 원료조달에서 오는 환경적인 부담감은 줄어든다. 하지만 그 이 후의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다. 펄프, 종이 생산단계. 나무가 펄프가 되고 종이가 되는 과정 에는 많은 물과 여러 가지 화학약품이 필요하다. 종이의 흡습성을 줄여주는 약품부터 종이 종 의진 이 화 를 더욱 하얗게 만들어주는 표백제까지 다양하게 사용되는 약품들 또한 환경을 위협한다 는 지적을 받아왔다. 제지회사들은 더욱 좋은 종이와 함께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 종이를 만들어야 했다. 각 회사의 연구팀들은 분주하게 움직였고, 종이는 미래를 위해 서서히 진 화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노력은 각양각색의 환경마크로 보상된다. 2세 , 다 한 가 가 수 위 떠 1 기 양 치 면 로 오르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동안 냉전과 경제발전 등에 가려져 관 받 못 던여 가 문 들 수면위로떠오른것이다.그중가장핫한주제는바로ECO.21세기최고의 심 지 했 러 지 제 이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마크는 국제 NGO단체인 FSC가 승인하는 국제환경마 크이다. 지속 가능한 산림경영이 시행되고 있는 숲에는 FM(Forest Management, 산림경 키 드 떠 른E O 인 와지 의지 적 공 이보 되 힘 환 문 로인 급 상 다 과 환 보 워 로 오 C는 류 구 속 인 존 장 기 든 경 제 해 부 했 . 거 경 영)인증을 부여하고 FM인증 산림에서 채취한 목재를 사용한 제품의 제조·유통·가공단 호 는소 적 자 로일 하 인 조금더적극적으로지구의환경을위해노력하게되었다.그대열에서 라 극 인 세 관 던 류는 계에 CoC(Chain of Custody, 가공유통과정)인증을 준다. 숲에서부터 최종 소비자에게 전 인 의가 오 기 매 인종 가빠질수는없는일.종이선택에있어서소비자들은얼마나좋은종이인가 류 장 랜 록 체 이 달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추적 관리하고 있다. 2007년 11월 한국제지는 펄프를 사용하고 하 조 과함 이표 을체 하 되었다.바로환경마크.종이선택에있어서얼마나현명한소비자인지를 는 건 께 식 크 게 판매하는 전 과정이 FSC에 적합하다고 인정 받아 FSC-CoC인증이 부여됐다. 비슷한 마크 로는 Well Managed Forest마크가 있다. 벌채나 나무심기 강제조항을 통해 환경의 파괴 좌 하 것 이마 의유 에달 있다. 우 는 은 크 무 려 없이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한 숲이나 숲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만들어진 제품을 인증하는 마크이다. 하얀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염소표백도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 새로운 기술 로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우선 ECF표백. 염소 대신에 산소를 펄프 표백에 사용하는 방법 이다. 염소화합물이 생성되지 않아 다이옥신 발생량이 제로에 가깝다. 이 방법으로 만들 38 39 어진 펄프에는 ECF(Elemental Chlorine Free)마크가 부여된다. 세계 각국의 제지회사 PAPER COMMUNICATION PAPER COMMUNICATION 들이 대부분 ECF표백을 채택하여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마크가 되었다. 펄프의 표백과정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 Well Managed Forest ECF(Elemental Chlorine 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