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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풀뿌리사회지기학교
나배월든 활동 보고서
목표	 	 	 	   	
일정	 	 	 	   	
사람들	 	 	   	
토론	 	 	      
     _원강		        
에세이	
     _태영	
     _범수	
     _민주	
     _다은	
     _정아		
사진	
결산	
스케치	
     _연태	
     _혜진	
목표
	 만들어가는 나배 월든, 만들어가는 우리와 나
‘우리는 집 짓는 일의 즐거움을 영원히 목수에게 넘겨주고 말
것인가? 대부분 사람들의 경험에서 건축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
은 어느 정도 일까? 나는 여기저기 꽤 돌아다닌 편이지만 자기
집을 짓는 것처럼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난 적이 없다.’
-「월든」 중 발췌-
나배 월든, 이 이름에 걸맞는 장소가 되어갈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매번 가서 먼지만 쓸어내는 것
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함께 바뀌어
가려고 합니다. 나배 월든이 어떤 곳이었으면 좋겠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만듭니다.
   또한 개개인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갑니다. 어떤 공
간이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고민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이 무엇인지, 자신은 어떤 사람이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민
과 이어져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고민과 상상력을 갖고서
나누는 대화는 서로를 다듬고 키워가는데 좋은 양분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과 상상력을 안고 공간을 바꾸어가
는 일은 결국 자신의 상상력을 일상과 연결지어 실현시켜
내는 일일 것입니다. 일상과 연결된 상상력은 허상이 아니
라는 점에서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게 나배 월든도 함
께 변화하고 상상해 나가길 바랍니다.
   앞으로 나배 월든이 잘 가꾸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 가장 기초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작업들이 있습니다. 일
단은 공간이 언제가도 건재해야 합니다. 비가 오거나 습한
날에 건물이 잘 버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물들이 고이
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 우리 손으로 공간을 변화시켜
가기에 필요한 공구들이 있습니다. 또 그 수공구들이 녹슬
지 않고 보관될 수 있는 공구함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번
나배에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작업들을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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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5월 2일 5월 3일 5월 4일 5월 5일 5월 6일
06:00 기상
진도로 이동 아침식사 아침식사
아침식사
07:00
08:00 아침식사 청소
09:00
팽목항으로
나배도로
<노작>
치수작업
공구함 제작
조도
사전투표
창유항으로
10:00
팽목항으로11:00
12:00
대청소13:00 점심식사 점심식사
팽목 ->
서울
체화당으로
이동
14:00
<노작>
치수작업
공구함 제작
<노작>
화단 정리
씨앗심기
부엌 수리
15:00 점심식사
16:00
마을 인사
뒷바다산책
17:00
18:00
저녁식사
19:00 체화당 집결
저녁 식사
나무 심기
저녁만찬20:00
21:00 서울->
해남
미세마을로
이동
저녁식사
22:00
밤산책 월든 토론
23:00
	
	 장소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나배도리
사람들
권다은,김노아,김다은,김민주,김범수,  김연태,김한수,
         마원강,박미르,신정아,이소현,이신행,이태영,윤혜진,지민준이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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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토론 읽을거리 : 소로우_『월든』
마지막 날 밤, 더욱 정성스레 촛불을 밝혔습니다. 소로우의 월든을 각자 읽
고서 동그랗게 모였습니다. 한껏 땀흘리며 나배에서의 생활들을 마무리하며
토론공동체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날의 주요 대화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깊어지고자 하는 욕심이 결여된 삶이라면?”_원강
“적어도 내가 살고싶은 곳은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_정아
“월든 호숫가에서 지낸 시간들 보다도, 그곳에서 들어가게 했던
질문과 나오게 했던 질문. 그 질문이 우리에게 있다면..!”_태영
토론공동체를 떠올리며 _마원강 배울이
나는 중학교부터 대안학교를 다녔다. 지금도 대안학교를 다
니며 월든과 아름다운 삶을 읽으며 다양한 삶의 형태를 탐구
한다. 그리고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근대사를 배운다.
대안학교가 사람의 그릇을 만든다면 그 안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우리가 아무리 좋은 삶, 정의를 주장해도 그것을 뒷받
침할 게 없으면 영향력이 없다. 선한 생각을 품는 건 잘된 일
이지만 그것을 실현시킬 능력이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다.
그렇다면 그저 휘둘리기만 하는 착한 깡통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위해선 실력이 필요하고
실력을 위해선 지금보다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 나는 배움을
공유하는 삶을 원했지만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대학 입시하는 내 또래들을 안됐다고 생각
했지만 걔네들이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대안학
교 학생들은 진짜를 알지만 그것을 실행시킬 실력이 부족하
고 일반학교 학생은 진짜는 모르지만 많은 것을 안다.
얕음은 ‘도덕은 정언명령에 따르는 것이군, 그렇군.’ 으로
끝나는 것이고 깊음은 그것을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 까
지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적용시킬까 라는 고민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더 배워야한다. 나는 깊어지고 싶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었다.
7
에세이
좋은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조건에 대해
   배를 타고 들어간다.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는다. 전기
가 절반만 들어온다. 쉽게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바다 소
리가 들린다. 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햇빛이 들어온다.
햇빛을 막는 건 나무 밖에 없다. 걸어서 바다에 갈 수 있
다. 별 보기를 가로막는 먼지와 빛이 적다. 한 없이 고요하
다.
   우리가 나배도에서 느끼는 충만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질문해본다. 서로에게 집중하고, 자기에게 집중하
고, 자기의 삶과 사회의 미래에 대해 집중할 수 있는 조건
이라는 것이 이 정도일까? 소로우가 삶이 아닌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월든 호수를 찾았을 때, 삶이 아닌 삶을 걸러내
기 위해 만들어낸 조건과 나배도의 그것은 비슷할까?
   이번 나배도에서 나눴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기억해본
다. 누군가는 나배도에서의 고민과 다짐들이 나배도를 벗
어나는 순간 사라지고, 나배도에서 마음 먹은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도시에서는 사실 상 어렵다는 고백을 했다.
나 역시 그렇다. 어디 나배도 뿐일까. 마음을 평안하게 하
겠다고, 혹은 어려운 질문에 답을 찾아보겠다고 나선 자리
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의 마음 뿐. 여행이 내 삶에 좋은
영향을 이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져버린지 오래다.
   그래서 더, 우리의 지적인 영역과 몸의 영역과 감각의 영
역과 감정의 영역이 충만해지는 그 순간의 조건이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물어보고 싶어졌다. 나배도의 기억을 만들어 낸
그 조건, 그리고 소로우가 월든호수를 찾게 만든 그 조건.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는 어떤 질문을 안고 살아갈 것인
가 다시 본격적으로 물어보고 싶어졌다. 소로우의 삶이, 니
어링 부부의 삶이 ‘어떤 형태’였는지를 지식으로 습득하
는 것이 아니라, 니어링 부부와 소로우가 어떤 질문의 답을
찾고 싶어 월든 호수를 찾고, 버몬트 호수를 찾았는지 질문
해보고 싶어져졌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아니라, 그
들이 왜 그런 삶을 선택했는지, 그것이 우리에게는 더 필요
한 질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것이 된 그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일상의 조건을 스스로 구축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
배월든을 찾는 이유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인생을 내 뜻대로 살아보고 싶어 숲으로 갔다. 삶
의 본질적인 요소들에 정면으로 맞닥뜨린 채, 삶이 주는 가
르침을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나중에 죽음을 맞
이하게 되었을 때, 헛되이 살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었
다.” (월든 中 )
_이태영 교무지기
98
2017년 라배도_김범수 교장
나배도는 현지에서 라배도라고 불리웠다. 아름다운 섬이라는
의미이다. 나배나 라배나 그게 그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의
미를 음미해 보는 시도와 노력에 따라 나배도는 나배가 아닌
라배가 된다.
주마간산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석탄과 다이아몬드는 원소
가 동일하다는 말도 듣는다. 진리와 미, 선과 같은 가치는 타
인에 의해 주어질 수 있지만, 내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때
나에게로 와 의미가 되고 삶의 가치가 된다.
8시간의 운전을 하며 도착한 팽목항, 그리고 9시간이 걸린 귀
가길을 생각하면 나배도는 정말 멀었다. 집에서 팽목항까지
430여 키로미터였다. 한 참을 운전했으나 여전히 충청도였
고, 전북에 들어섰는데 온 거리는 200여 킬로미터로 절반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라배도를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했고 말하듯
이,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하기 시작하면 피로는 없
어지고 새로운 기대감과 여유가 생겨난다. 이번 방문에는 아
들 노아도 함께 하였다. 팽목에서 조도로 가서 조도에서 라배
도의 전 이장님의 배를 타고 라배도로 들어 갔다. 푸른 바다,
작은 배가 전진할 때 퉁겨져 오는 바닷물방물들, 배에서 바라
본 라배도와 우리가 머물 라배월든.
라배월든에는 후발대로 갔기 때문에 먼저 도착한 여러 배울이
들과 태영교무지기 민주행정지기를 만났다. 라배도 선착장에
서 따듯한 환영인사를 받고 동산 둔턱을 지나 폐교되어 우리
의 라배월든이 된 라배분교를 향해 걸었다. 수 년 후에는 조도
와 라배도 사이에 다리를 건설한다고 하여 라배월든으로 향하
는 길은 신작로가 되어 있었다.
2박 3일동안 공동 작업을 통해 ‘만들어가는 나배월든, 만들
어가는 나’를 경험했다. 감나무 심기, 학교 주변 치수 사업
(물길내기), 밤 산책, 운동장에서 텐트 점검, 벌 나들이, 이신
행 교수님 덕분에 경험한 아궁이 장작 지피기를 함께 했다.
라배월든은 내가 노력하면 무엇이든 가능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개방해 주었다. 문제는 ‘나’ 자신이었
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아닐까?
우리는 2017년 라배월든 방문의 주제를 ‘만들어가 가는 연
수원으로서의 라배월든, 그리고 나를 만들기’정도로 공감했
다. 더 많은 나와 더 많은 우리들이 나배월든을 라배월든으로
만들길 소원한다. 행정명 나배도가 아름다운 라배도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시간, 땀, 그리고 나배와의 추억 만들기가 꼭
필요하다.     
1110
달, 그림자_김민주 행정지기
   나배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옆 사택건물까지는 불이 들어오
니 분교(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핵심건물)에는 의도적으로 들이지 않았
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때문에 나배분교는 저녁이면 해가 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진짜 어둠이 내린다. 스물네시간을 돌고 도는 서울을 떠올린다면, 휴
대폰 충전은 둘째 치고 잘 터지지도 않는 나배에서의 생활이 조용하고 정적
일 것이라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전기를 들이지 않은 나배는 생각
보다 부산스럽고, 자극적이다.
   일단, 해가 지기 전에 난로를 피울 준비를 마쳐놓아야 한다. 이를테면 장
작을 미리 구해서 쌓아놓아야 마음 편히 저녁을 맞이할 수 있는데, 이번에
는 한수용 나배월든 원장님(나배 전 이장님)께서 틈틈이 장작을 잔뜩 쌓아
놓은 터라 그럴 필요는 없었다. 첫날 저녁, 헌데 웬일인지 난로에 불붙이기
를 번번이 실패해 연기만 실컷 마시게 되었다. 더 시도했다가는 호흡기에
병이 생길 것 같아 그냥 웅크린 채 잠을 청했다. 이튿날 연통에서 지어놓은
지 오래된 말벌 집을 발견했다. 꽉 막혀있어 연기가 빠져나갈 틈이 없었으
니 연기가 전부 교실로 역류한 것이고, 우리는 그 고됐던 필패의 원인을 발
견한 것이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장작을 구하는 대신 연통청소를 해야
만 했다. 소소하지만 일상에서 특별히 고민하여 이유를 찾지 않아도 열심히
움직여야 하는 일들을 발견해간다. 이 과정이  '진짜' 자극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나배에 들어올 때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일 년에 몇 번 못 들어가
지만 그럼에도 잘 가꾸어 함께 쓸모 있는 공간과 이용자로 성장할 수 있도
록 기초적인 노작을 하고 오는 것이었다. 그런 노작들 역시 해가 떠 있는 동
안 부지런히 해야만 했고, 저녁식사 준비도 가능한 해가지기 전에 마치려
노력하였다. 또, 그 노작들 사이사이 하고 싶었던 일들도 틈틈이 해야 한다.
이를테면 나배 앞바다에서의 물놀이는, 뜨거운 낮 시간에 노작을 막 마쳤
을 때. 그 땀이 식기 전에 뛰어들어야 제 맛이다. 우리가 갔을 땐 아직 초여
름이라 물이 차가왔지만, 서울에서부터 앞바다 수영을 벼르고 있던 탓에 가
능했다. 열정이 초여름의 찬 바다를 이긴 셈이다. 사실 낮에 벌어지는 일들
을 나열하자면 몇 가지를 더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지어
야겠다. 촛불이나 후레쉬와는 견줄 수 없이 효과적이고 따듯한 햇빛을 한껏
활용 한 뒤 어둠이 내리면, 사실은 더 본격적인 나배생활이 시작되기 때문
이다.
   나배도를 연상시켜 보면 떠오르는 단어는 밤바다, 밤산책, 밤하늘 등이
있다. 나배에서의 ‘밤’은 분명 무언가 다른 힘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렇지 않고서야 매일 어디서든 찾아오는 밤이 이리도 특별할 수가 있을까.
지구가 일정한 속도로 돌기 때문에, 이 땅은 생겨난 이래로 낮과 밤을 규칙
적으로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배의 밤하늘이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를 찾고 싶다. 찾아낸다면, 어쩌면 매일 매일을 특별한 밤으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서울에서의 밤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밤을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두운 밤을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고, 그에 걸맞는 일
정을 만든다. 우린 서울에서 어둠을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어두워지기 전
부터 밝혀둔 형광등 덕분에 몇 시간이고 실내에서의 작업에 몰두 할 수 있
게 되었고, 덕분에 어느 샌가 깜깜해진 밖을 볼 때면 그저 깜짝 놀랄 뿐이
다. 기술이 발달한 탓에 우리는 밤이 왔는지도 모르고 지낼 수 있게 된 것이
다. 서울에서 지낼 때면 대단한 문명의 혜택인 것처럼 어둠을 잊고 사는 것
이 잘 사는 것이라 여겼을지 모르지만, 나배에서 어둠을 추억하는 것을 보
면 기술에 무언가 가려진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생각을 해 본다면 나배의 밤이 왜 유독 기억에 남는지를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단은 ‘기다림’이 만든 소중함이 그 첫 번째 단추
가 아닐까. 어둠이 내리기 전에 활동적인 일들을 마치고, 완전한 어둠을 기
다렸다가 달빛에 길을 비추며 산책을 한다. 그리곤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에
누워 별들을 헤아려본다. 무엇이든 기다리고 준비하면 소중해지기 마련인
데, 심지어 서울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니 소중할 수밖에. 내 방 불하나 끈
다고 결코 어둠을 허락하지 않는 서울에서는 달빛에 진 그림자를 볼 수 없
다. 그렇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나배에서의 밤은, 더 밝다.
1312
달 그리고 밤산책_권다은 배울이
1년 만에 나배에 왔다. 나배를 가기 한 달 전부터 설레어 마음
이 붕 떠 있었다. 꼭 좋아하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러 가는 기
분이었다. 나배를 도착하고, 청소를 하고, 마을에 인사를 드리
고, 저녁을 먹고 나니 어둠이 드리웠다. 그리고 우리는 밤 산책
을 했다. 내가 나배에서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아무말없이 각자 조금씩 떨어져 혼자 걸어갔다. 파도소
리, 풀벌레 소리 그리고 멀리 보이는 등대 모든 것이 그대로였
다. 그러나 지난밤 산책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바다, 풀 그리고
등대 모든 것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데. 분명 밤 산책을 하고
있는데 밝은 느낌이었다. 나배에서 밤 산책을 할 때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파도 소리, 팔과 다리에 스치는 풀들, 한번 씩 밟히
는 돌들 등 눈이 아닌 나머지 감각들에 의존을 해 걸어가야 한
다. 그러나 이번 밤 산책에서는 그 감각들에 의존하지 않아도
잘 걸어 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나배의 밤은 유난히 밝
았다. 지난 나배에서는 달이 보이지 않았는데 아니 늘 나배에는
달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배에서는 달을 보기가 좀처럼 힘들어
밤에는 ‘아주 깜깜한 밤이다’라는 말이 익숙한 그런 곳이다.  
나에게는 낯선 산책이었다. 나배의 밤 산책이란 나에게 이런
것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무섭지만 의존할 누군가가 없
기 때문에 오롯이 나 자신에게 의존을 하면서 걸어가다 보면
나 자신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게 되고, 그러다 여유가 생기면
저기서 들려오는 풀벌레, 파도소리에 집중을 하다 저기 건너편
섬에 보이는 불빛을 따라 걸어간다. 걸어가다 보면 방파제에 도
착을 하게 되는데 아무 말 없이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쏟아질
것 같은 별들보고, 간혹 떨어지는 별똥별에 소원을 빌어보기도
하고, 갈대밭에 누워 밤하늘을 보기도 한다.
이번 밤 산책은 달이 유난히 밝아 무섭지 않았다. 달이 밝아 그
냥 걸어갈 수 있어서 파도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멀리서도 방파제가 보였다. 방파제가 보일 정도니 달빛에 내 그
림자가 드리웠다. 달빛으로 그림자는 보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도시에서 밤에 집을 가다 매일 보게 되는 익숙한 그 아이가 아
닌 낯선 아이가 나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너는 언제부터 내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와
내가 함께 걸어가 방파제에 함께 누웠다. 방파제에 누워 하늘을
보는데 별들이 쏟아지지 않았다. 달이 밝아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달을 등지고 누워 보아도 달은 나를 향해 달빛
을 보내고 있었다. 눈이 부시지 않을 만큼 뜨고 본 밤하늘은 북
두칠성만큼은 그대로였다. 그 북두칠성을 바라보다 나배 월든
으로 돌아왔다. 같이 돌아오던 그 아이는 어느 순간 보이지 않
았다.
1514
나무와 배와 도시에서 온 사람들_신정아 배울이
나무가 잘려져 밑동만 남은 게 여러 그루였고 그 나무들 아
래 있어야 할 평상이 보이지 않았다. 잔가지 타고 남은 재
만 흩어져 있었다. 어디로 떠난 걸까 생각했다. 나는 무화
과나무를 심었고 우리는 해바라기 씨를 잔뜩 뿌렸다. 흙 위
에 쪼그리고 앉아 호미와 삽을 내리치며 열심히 땀을 흘렸
다. 비가 내린 날도 있었지만 새 생명을 많이 심었다. 작년
엔 평상 위에 앉아서 민주랑 기타를 쳤었는데. 모두들 없어
져버린 평상을 조금씩 생각하며 투박하게 썬 토마토를 맨
손으로 집어 먹었고 다시 일을 했다. 일을 아주 많이 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기술이 있었다. 다시 사거나 그냥 가져다
버릴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덧 대고 뚝딱 거려서 고치고 또
만들었다. 구멍 뚫린 바닥을 단단히 수리 하고 공구함을 만
들어 세워 두었고 여름을 대비해 수로를 팠다. 그런 뒤엔
바다에 뛰어들어 땀을 식혔다.  
배를 얻어 타고 다른 섬으로 갔다. 뱃삯을 지불해야 할 것
같은 익숙한 마음이 불쑥 들어서 반대로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어색하고야 말았다. 마음이 붕 뜬 것이다. 통통배는
생각보다 느리게 달렸지만 우리는 물방울들의 공격을 받
아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어느 작은 초등학교에 도
착해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줄을 섰다가 나무 아래로
하나둘 다시 모였다. 말들은 별로 오가지 않았다. 하고 싶
은 말, 해야 하나 싶었던 말들이 그냥 조용하게 우리와 나
란히 걸었다. 그동안 지나간 여러 날들이 생각났다. 변한다
는 것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얼마간 걷다가, 다시 차를
조금 타고 달리다가, 다시 배를 타고 우리들의 나배 월든으
로 돌아왔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승복이에게 인사를
했다. 다시 뛰어다니고 싶어졌다. 모두 목소리가 커져서는
쌀을 벅벅 씻어 밥을 짓고 당근을 썰고 양파를 썰고 국물
을 만들기 시작했다.
도시로, 다시 각자의 주거지로 돌아오면 고요한 바람소리
대신 멈추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울
것이고, 나무와 작은 풀들을 더 이상 만질 수도 볼 수도 없
는 눈과 손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내일 뭐 먹지가 아닌 내
일까지는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잠이 들 것이고, 슈퍼
에 가서 뭔가를 잔뜩 사고 집은 점점 더러워 질 것이다. 질
문들만 계속 밀어닥칠 것이고 밥을 해 먹거나 몸을 건강히
하는 데에는 점점 바보가 돼버릴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가끔 나배도에서 맞은 시원한 바다바람 냄새나 함
께 해 먹었던 국과 밥이 기억나면 그것은 참 다행이다. 우
리가 촛불 앞에서 이야기 나눴듯이 좋은 기억의 원형을 하
나 더 우리 마음에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이니까. 어느 정
도 우리는 그런 좋은 기억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시간을 거
슬러서 그 기억들에 마음을 쓰고 힘을 실어 보내기도 한다.
풀밭에 놓아준 꽃게도 무사히 바다로 돌아갔길 바라며, 단
단히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들이 서로서로 도와가며 잘 자
랄 수 있기를.  
1716
사진
박영모 엔담께서 감사히도 차량지원을 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15인
승 미니버스에 많은 짐들을 싣고 무사히 팽목항에 도착했습니다. 물
론, 대형면허를 갖고있는 이태영 교무지기의 노고도 잊을 수 없을 것
입니다.
나배도로 들어가는 배에 올랐습니다. 대부분의 배울이들이 대합실에
서 골아 떨어졌는데, 두 다은과 태영은 갑판 위에서 아직 쌩쌩하네요.
간단히 짐을 풀고, 정리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고서. 다같이 마을인
사와 뒷바다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마을회관에서는 근사한 고깃상을
대접받았습니다. 뒷바다로 향하는 오르막길 뒤로 저런 근사한 풍경
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뒷바다에 도착하고 나면 다들 물수제비를 던
지며 놀아요.
1918
습기와 세월에 많이 헐렁이고 내려앉은 복도와 교실이 서울에서 출
발할 때부터 걱정이었습니다. 도착해보니 복도입구가 생각보다 심각
하여 발견즉시 뜯어냈습니다. 지지하고 있었던 썩은 나무를 튼튼한
나무로 교체하였습니다. 첫 번째 교실을 정리하고 공구함을 만들었
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찾느라 헤매고, 찾았더니 녹슬고 썩어서 사용
할 수 없는 상황을 이제는 예방하기로 했습니다.
심고 싶은 묘목들을 사갔습니다. 윤혜진 배울이는 본인의 묘목이 생
각보다 작아서 많이 놀랐습니다. 각자 감나무, 무화과나무, 비파나무,
왕벚나무 등을 심었습니다. 오는 가을,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궁
금해서 꼭 다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초여름의 바다는 아직 차가왔습니다. 하지만 배울이들의 물놀이를
향한 마음은 누구보다 뜨거웠지요. 누구는 서울에서 오리발까지 챙
겨왔습니다. 다같이 여름인 것처럼 신나게 놀았습니다.
박유종 전 이장님의 통통배 지원으로 조도 사전투표소를 다함께 다
녀왔습니다. 귀한 한 표, 잊지 못할 기억이죠.
2120
결산 스케치
윤혜진배울이,2017나배스케치
2322
달빛은 정말 밝았다.
정말 오랜만에 달빛에 비춘 그림자를 보았다.
가로등의 그림자와는 달랐다.
울퉁불퉁한 길에 움직이는 그림자는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그림자를 신기해서 계속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그림자와 달빛에 단둘이 걷는 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선명하고 활기차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계속해서 쳐다보았고 그러다보니, 그림자도 쳐다보는 것 같았다.
또 그러다보니, 그림자도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그림자는 얼마나 멍청하게 봤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살아있는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늦게나마 알아서 다행이다.
그림자의 존재를 알고 나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주변에선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우린 둘이서 밤을 걸었다.
달빛은 정말 밝았다_김연태 배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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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봄 나배월든 보고서

  • 2. 목표 일정 사람들 토론 _원강 에세이 _태영 _범수 _민주 _다은 _정아 사진 결산 스케치 _연태 _혜진 목표 만들어가는 나배 월든, 만들어가는 우리와 나 ‘우리는 집 짓는 일의 즐거움을 영원히 목수에게 넘겨주고 말 것인가? 대부분 사람들의 경험에서 건축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 은 어느 정도 일까? 나는 여기저기 꽤 돌아다닌 편이지만 자기 집을 짓는 것처럼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난 적이 없다.’ -「월든」 중 발췌- 나배 월든, 이 이름에 걸맞는 장소가 되어갈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매번 가서 먼지만 쓸어내는 것 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함께 바뀌어 가려고 합니다. 나배 월든이 어떤 곳이었으면 좋겠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만듭니다. 또한 개개인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갑니다. 어떤 공 간이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고민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이 무엇인지, 자신은 어떤 사람이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민 과 이어져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고민과 상상력을 갖고서 나누는 대화는 서로를 다듬고 키워가는데 좋은 양분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과 상상력을 안고 공간을 바꾸어가 는 일은 결국 자신의 상상력을 일상과 연결지어 실현시켜 내는 일일 것입니다. 일상과 연결된 상상력은 허상이 아니 라는 점에서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게 나배 월든도 함 께 변화하고 상상해 나가길 바랍니다. 앞으로 나배 월든이 잘 가꾸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 가장 기초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작업들이 있습니다. 일 단은 공간이 언제가도 건재해야 합니다. 비가 오거나 습한 날에 건물이 잘 버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물들이 고이 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 우리 손으로 공간을 변화시켜 가기에 필요한 공구들이 있습니다. 또 그 수공구들이 녹슬 지 않고 보관될 수 있는 공구함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번 나배에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작업들을 하려 합니다. 3 4 5 6 8 18 22 23 3
  • 3. 일정 5월 2일 5월 3일 5월 4일 5월 5일 5월 6일 06:00 기상 진도로 이동 아침식사 아침식사 아침식사 07:00 08:00 아침식사 청소 09:00 팽목항으로 나배도로 <노작> 치수작업 공구함 제작 조도 사전투표 창유항으로 10:00 팽목항으로11:00 12:00 대청소13:00 점심식사 점심식사 팽목 -> 서울 체화당으로 이동 14:00 <노작> 치수작업 공구함 제작 <노작> 화단 정리 씨앗심기 부엌 수리 15:00 점심식사 16:00 마을 인사 뒷바다산책 17:00 18:00 저녁식사 19:00 체화당 집결 저녁 식사 나무 심기 저녁만찬20:00 21:00 서울-> 해남 미세마을로 이동 저녁식사 22:00 밤산책 월든 토론 23:00 장소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나배도리 사람들 권다은,김노아,김다은,김민주,김범수, 김연태,김한수, 마원강,박미르,신정아,이소현,이신행,이태영,윤혜진,지민준이 함께 54
  • 4. 토론 토론 읽을거리 : 소로우_『월든』 마지막 날 밤, 더욱 정성스레 촛불을 밝혔습니다. 소로우의 월든을 각자 읽 고서 동그랗게 모였습니다. 한껏 땀흘리며 나배에서의 생활들을 마무리하며 토론공동체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날의 주요 대화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깊어지고자 하는 욕심이 결여된 삶이라면?”_원강 “적어도 내가 살고싶은 곳은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_정아 “월든 호숫가에서 지낸 시간들 보다도, 그곳에서 들어가게 했던 질문과 나오게 했던 질문. 그 질문이 우리에게 있다면..!”_태영 토론공동체를 떠올리며 _마원강 배울이 나는 중학교부터 대안학교를 다녔다. 지금도 대안학교를 다 니며 월든과 아름다운 삶을 읽으며 다양한 삶의 형태를 탐구 한다. 그리고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근대사를 배운다. 대안학교가 사람의 그릇을 만든다면 그 안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우리가 아무리 좋은 삶, 정의를 주장해도 그것을 뒷받 침할 게 없으면 영향력이 없다. 선한 생각을 품는 건 잘된 일 이지만 그것을 실현시킬 능력이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다. 그렇다면 그저 휘둘리기만 하는 착한 깡통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위해선 실력이 필요하고 실력을 위해선 지금보다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 나는 배움을 공유하는 삶을 원했지만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대학 입시하는 내 또래들을 안됐다고 생각 했지만 걔네들이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대안학 교 학생들은 진짜를 알지만 그것을 실행시킬 실력이 부족하 고 일반학교 학생은 진짜는 모르지만 많은 것을 안다. 얕음은 ‘도덕은 정언명령에 따르는 것이군, 그렇군.’ 으로 끝나는 것이고 깊음은 그것을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 까 지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적용시킬까 라는 고민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더 배워야한다. 나는 깊어지고 싶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었다. 7
  • 5. 에세이 좋은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조건에 대해 배를 타고 들어간다.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는다. 전기 가 절반만 들어온다. 쉽게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바다 소 리가 들린다. 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햇빛이 들어온다. 햇빛을 막는 건 나무 밖에 없다. 걸어서 바다에 갈 수 있 다. 별 보기를 가로막는 먼지와 빛이 적다. 한 없이 고요하 다. 우리가 나배도에서 느끼는 충만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질문해본다. 서로에게 집중하고, 자기에게 집중하 고, 자기의 삶과 사회의 미래에 대해 집중할 수 있는 조건 이라는 것이 이 정도일까? 소로우가 삶이 아닌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월든 호수를 찾았을 때, 삶이 아닌 삶을 걸러내 기 위해 만들어낸 조건과 나배도의 그것은 비슷할까? 이번 나배도에서 나눴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기억해본 다. 누군가는 나배도에서의 고민과 다짐들이 나배도를 벗 어나는 순간 사라지고, 나배도에서 마음 먹은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도시에서는 사실 상 어렵다는 고백을 했다. 나 역시 그렇다. 어디 나배도 뿐일까. 마음을 평안하게 하 겠다고, 혹은 어려운 질문에 답을 찾아보겠다고 나선 자리 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의 마음 뿐. 여행이 내 삶에 좋은 영향을 이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져버린지 오래다. 그래서 더, 우리의 지적인 영역과 몸의 영역과 감각의 영 역과 감정의 영역이 충만해지는 그 순간의 조건이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물어보고 싶어졌다. 나배도의 기억을 만들어 낸 그 조건, 그리고 소로우가 월든호수를 찾게 만든 그 조건.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는 어떤 질문을 안고 살아갈 것인 가 다시 본격적으로 물어보고 싶어졌다. 소로우의 삶이, 니 어링 부부의 삶이 ‘어떤 형태’였는지를 지식으로 습득하 는 것이 아니라, 니어링 부부와 소로우가 어떤 질문의 답을 찾고 싶어 월든 호수를 찾고, 버몬트 호수를 찾았는지 질문 해보고 싶어져졌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아니라, 그 들이 왜 그런 삶을 선택했는지, 그것이 우리에게는 더 필요 한 질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것이 된 그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일상의 조건을 스스로 구축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 배월든을 찾는 이유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인생을 내 뜻대로 살아보고 싶어 숲으로 갔다. 삶 의 본질적인 요소들에 정면으로 맞닥뜨린 채, 삶이 주는 가 르침을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나중에 죽음을 맞 이하게 되었을 때, 헛되이 살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었 다.” (월든 中 ) _이태영 교무지기 98
  • 6. 2017년 라배도_김범수 교장 나배도는 현지에서 라배도라고 불리웠다. 아름다운 섬이라는 의미이다. 나배나 라배나 그게 그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의 미를 음미해 보는 시도와 노력에 따라 나배도는 나배가 아닌 라배가 된다. 주마간산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석탄과 다이아몬드는 원소 가 동일하다는 말도 듣는다. 진리와 미, 선과 같은 가치는 타 인에 의해 주어질 수 있지만, 내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때 나에게로 와 의미가 되고 삶의 가치가 된다. 8시간의 운전을 하며 도착한 팽목항, 그리고 9시간이 걸린 귀 가길을 생각하면 나배도는 정말 멀었다. 집에서 팽목항까지 430여 키로미터였다. 한 참을 운전했으나 여전히 충청도였 고, 전북에 들어섰는데 온 거리는 200여 킬로미터로 절반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라배도를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했고 말하듯 이,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하기 시작하면 피로는 없 어지고 새로운 기대감과 여유가 생겨난다. 이번 방문에는 아 들 노아도 함께 하였다. 팽목에서 조도로 가서 조도에서 라배 도의 전 이장님의 배를 타고 라배도로 들어 갔다. 푸른 바다, 작은 배가 전진할 때 퉁겨져 오는 바닷물방물들, 배에서 바라 본 라배도와 우리가 머물 라배월든. 라배월든에는 후발대로 갔기 때문에 먼저 도착한 여러 배울이 들과 태영교무지기 민주행정지기를 만났다. 라배도 선착장에 서 따듯한 환영인사를 받고 동산 둔턱을 지나 폐교되어 우리 의 라배월든이 된 라배분교를 향해 걸었다. 수 년 후에는 조도 와 라배도 사이에 다리를 건설한다고 하여 라배월든으로 향하 는 길은 신작로가 되어 있었다. 2박 3일동안 공동 작업을 통해 ‘만들어가는 나배월든, 만들 어가는 나’를 경험했다. 감나무 심기, 학교 주변 치수 사업 (물길내기), 밤 산책, 운동장에서 텐트 점검, 벌 나들이, 이신 행 교수님 덕분에 경험한 아궁이 장작 지피기를 함께 했다. 라배월든은 내가 노력하면 무엇이든 가능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개방해 주었다. 문제는 ‘나’ 자신이었 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아닐까? 우리는 2017년 라배월든 방문의 주제를 ‘만들어가 가는 연 수원으로서의 라배월든, 그리고 나를 만들기’정도로 공감했 다. 더 많은 나와 더 많은 우리들이 나배월든을 라배월든으로 만들길 소원한다. 행정명 나배도가 아름다운 라배도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시간, 땀, 그리고 나배와의 추억 만들기가 꼭 필요하다. 1110
  • 7. 달, 그림자_김민주 행정지기 나배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옆 사택건물까지는 불이 들어오 니 분교(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핵심건물)에는 의도적으로 들이지 않았 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때문에 나배분교는 저녁이면 해가 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진짜 어둠이 내린다. 스물네시간을 돌고 도는 서울을 떠올린다면, 휴 대폰 충전은 둘째 치고 잘 터지지도 않는 나배에서의 생활이 조용하고 정적 일 것이라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전기를 들이지 않은 나배는 생각 보다 부산스럽고, 자극적이다. 일단, 해가 지기 전에 난로를 피울 준비를 마쳐놓아야 한다. 이를테면 장 작을 미리 구해서 쌓아놓아야 마음 편히 저녁을 맞이할 수 있는데, 이번에 는 한수용 나배월든 원장님(나배 전 이장님)께서 틈틈이 장작을 잔뜩 쌓아 놓은 터라 그럴 필요는 없었다. 첫날 저녁, 헌데 웬일인지 난로에 불붙이기 를 번번이 실패해 연기만 실컷 마시게 되었다. 더 시도했다가는 호흡기에 병이 생길 것 같아 그냥 웅크린 채 잠을 청했다. 이튿날 연통에서 지어놓은 지 오래된 말벌 집을 발견했다. 꽉 막혀있어 연기가 빠져나갈 틈이 없었으 니 연기가 전부 교실로 역류한 것이고, 우리는 그 고됐던 필패의 원인을 발 견한 것이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장작을 구하는 대신 연통청소를 해야 만 했다. 소소하지만 일상에서 특별히 고민하여 이유를 찾지 않아도 열심히 움직여야 하는 일들을 발견해간다. 이 과정이 '진짜' 자극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나배에 들어올 때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일 년에 몇 번 못 들어가 지만 그럼에도 잘 가꾸어 함께 쓸모 있는 공간과 이용자로 성장할 수 있도 록 기초적인 노작을 하고 오는 것이었다. 그런 노작들 역시 해가 떠 있는 동 안 부지런히 해야만 했고, 저녁식사 준비도 가능한 해가지기 전에 마치려 노력하였다. 또, 그 노작들 사이사이 하고 싶었던 일들도 틈틈이 해야 한다. 이를테면 나배 앞바다에서의 물놀이는, 뜨거운 낮 시간에 노작을 막 마쳤 을 때. 그 땀이 식기 전에 뛰어들어야 제 맛이다. 우리가 갔을 땐 아직 초여 름이라 물이 차가왔지만, 서울에서부터 앞바다 수영을 벼르고 있던 탓에 가 능했다. 열정이 초여름의 찬 바다를 이긴 셈이다. 사실 낮에 벌어지는 일들 을 나열하자면 몇 가지를 더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지어 야겠다. 촛불이나 후레쉬와는 견줄 수 없이 효과적이고 따듯한 햇빛을 한껏 활용 한 뒤 어둠이 내리면, 사실은 더 본격적인 나배생활이 시작되기 때문 이다. 나배도를 연상시켜 보면 떠오르는 단어는 밤바다, 밤산책, 밤하늘 등이 있다. 나배에서의 ‘밤’은 분명 무언가 다른 힘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렇지 않고서야 매일 어디서든 찾아오는 밤이 이리도 특별할 수가 있을까. 지구가 일정한 속도로 돌기 때문에, 이 땅은 생겨난 이래로 낮과 밤을 규칙 적으로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배의 밤하늘이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를 찾고 싶다. 찾아낸다면, 어쩌면 매일 매일을 특별한 밤으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서울에서의 밤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밤을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두운 밤을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고, 그에 걸맞는 일 정을 만든다. 우린 서울에서 어둠을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어두워지기 전 부터 밝혀둔 형광등 덕분에 몇 시간이고 실내에서의 작업에 몰두 할 수 있 게 되었고, 덕분에 어느 샌가 깜깜해진 밖을 볼 때면 그저 깜짝 놀랄 뿐이 다. 기술이 발달한 탓에 우리는 밤이 왔는지도 모르고 지낼 수 있게 된 것이 다. 서울에서 지낼 때면 대단한 문명의 혜택인 것처럼 어둠을 잊고 사는 것 이 잘 사는 것이라 여겼을지 모르지만, 나배에서 어둠을 추억하는 것을 보 면 기술에 무언가 가려진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생각을 해 본다면 나배의 밤이 왜 유독 기억에 남는지를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단은 ‘기다림’이 만든 소중함이 그 첫 번째 단추 가 아닐까. 어둠이 내리기 전에 활동적인 일들을 마치고, 완전한 어둠을 기 다렸다가 달빛에 길을 비추며 산책을 한다. 그리곤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에 누워 별들을 헤아려본다. 무엇이든 기다리고 준비하면 소중해지기 마련인 데, 심지어 서울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니 소중할 수밖에. 내 방 불하나 끈 다고 결코 어둠을 허락하지 않는 서울에서는 달빛에 진 그림자를 볼 수 없 다. 그렇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나배에서의 밤은, 더 밝다. 1312
  • 8. 달 그리고 밤산책_권다은 배울이 1년 만에 나배에 왔다. 나배를 가기 한 달 전부터 설레어 마음 이 붕 떠 있었다. 꼭 좋아하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러 가는 기 분이었다. 나배를 도착하고, 청소를 하고, 마을에 인사를 드리 고, 저녁을 먹고 나니 어둠이 드리웠다. 그리고 우리는 밤 산책 을 했다. 내가 나배에서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아무말없이 각자 조금씩 떨어져 혼자 걸어갔다. 파도소 리, 풀벌레 소리 그리고 멀리 보이는 등대 모든 것이 그대로였 다. 그러나 지난밤 산책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바다, 풀 그리고 등대 모든 것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데. 분명 밤 산책을 하고 있는데 밝은 느낌이었다. 나배에서 밤 산책을 할 때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파도 소리, 팔과 다리에 스치는 풀들, 한번 씩 밟히 는 돌들 등 눈이 아닌 나머지 감각들에 의존을 해 걸어가야 한 다. 그러나 이번 밤 산책에서는 그 감각들에 의존하지 않아도 잘 걸어 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나배의 밤은 유난히 밝 았다. 지난 나배에서는 달이 보이지 않았는데 아니 늘 나배에는 달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배에서는 달을 보기가 좀처럼 힘들어 밤에는 ‘아주 깜깜한 밤이다’라는 말이 익숙한 그런 곳이다. 나에게는 낯선 산책이었다. 나배의 밤 산책이란 나에게 이런 것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무섭지만 의존할 누군가가 없 기 때문에 오롯이 나 자신에게 의존을 하면서 걸어가다 보면 나 자신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게 되고, 그러다 여유가 생기면 저기서 들려오는 풀벌레, 파도소리에 집중을 하다 저기 건너편 섬에 보이는 불빛을 따라 걸어간다. 걸어가다 보면 방파제에 도 착을 하게 되는데 아무 말 없이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쏟아질 것 같은 별들보고, 간혹 떨어지는 별똥별에 소원을 빌어보기도 하고, 갈대밭에 누워 밤하늘을 보기도 한다. 이번 밤 산책은 달이 유난히 밝아 무섭지 않았다. 달이 밝아 그 냥 걸어갈 수 있어서 파도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멀리서도 방파제가 보였다. 방파제가 보일 정도니 달빛에 내 그 림자가 드리웠다. 달빛으로 그림자는 보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도시에서 밤에 집을 가다 매일 보게 되는 익숙한 그 아이가 아 닌 낯선 아이가 나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너는 언제부터 내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와 내가 함께 걸어가 방파제에 함께 누웠다. 방파제에 누워 하늘을 보는데 별들이 쏟아지지 않았다. 달이 밝아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달을 등지고 누워 보아도 달은 나를 향해 달빛 을 보내고 있었다. 눈이 부시지 않을 만큼 뜨고 본 밤하늘은 북 두칠성만큼은 그대로였다. 그 북두칠성을 바라보다 나배 월든 으로 돌아왔다. 같이 돌아오던 그 아이는 어느 순간 보이지 않 았다. 1514
  • 9. 나무와 배와 도시에서 온 사람들_신정아 배울이 나무가 잘려져 밑동만 남은 게 여러 그루였고 그 나무들 아 래 있어야 할 평상이 보이지 않았다. 잔가지 타고 남은 재 만 흩어져 있었다. 어디로 떠난 걸까 생각했다. 나는 무화 과나무를 심었고 우리는 해바라기 씨를 잔뜩 뿌렸다. 흙 위 에 쪼그리고 앉아 호미와 삽을 내리치며 열심히 땀을 흘렸 다. 비가 내린 날도 있었지만 새 생명을 많이 심었다. 작년 엔 평상 위에 앉아서 민주랑 기타를 쳤었는데. 모두들 없어 져버린 평상을 조금씩 생각하며 투박하게 썬 토마토를 맨 손으로 집어 먹었고 다시 일을 했다. 일을 아주 많이 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기술이 있었다. 다시 사거나 그냥 가져다 버릴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덧 대고 뚝딱 거려서 고치고 또 만들었다. 구멍 뚫린 바닥을 단단히 수리 하고 공구함을 만 들어 세워 두었고 여름을 대비해 수로를 팠다. 그런 뒤엔 바다에 뛰어들어 땀을 식혔다. 배를 얻어 타고 다른 섬으로 갔다. 뱃삯을 지불해야 할 것 같은 익숙한 마음이 불쑥 들어서 반대로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어색하고야 말았다. 마음이 붕 뜬 것이다. 통통배는 생각보다 느리게 달렸지만 우리는 물방울들의 공격을 받 아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어느 작은 초등학교에 도 착해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줄을 섰다가 나무 아래로 하나둘 다시 모였다. 말들은 별로 오가지 않았다. 하고 싶 은 말, 해야 하나 싶었던 말들이 그냥 조용하게 우리와 나 란히 걸었다. 그동안 지나간 여러 날들이 생각났다. 변한다 는 것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얼마간 걷다가, 다시 차를 조금 타고 달리다가, 다시 배를 타고 우리들의 나배 월든으 로 돌아왔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승복이에게 인사를 했다. 다시 뛰어다니고 싶어졌다. 모두 목소리가 커져서는 쌀을 벅벅 씻어 밥을 짓고 당근을 썰고 양파를 썰고 국물 을 만들기 시작했다. 도시로, 다시 각자의 주거지로 돌아오면 고요한 바람소리 대신 멈추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울 것이고, 나무와 작은 풀들을 더 이상 만질 수도 볼 수도 없 는 눈과 손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내일 뭐 먹지가 아닌 내 일까지는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잠이 들 것이고, 슈퍼 에 가서 뭔가를 잔뜩 사고 집은 점점 더러워 질 것이다. 질 문들만 계속 밀어닥칠 것이고 밥을 해 먹거나 몸을 건강히 하는 데에는 점점 바보가 돼버릴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가끔 나배도에서 맞은 시원한 바다바람 냄새나 함 께 해 먹었던 국과 밥이 기억나면 그것은 참 다행이다. 우 리가 촛불 앞에서 이야기 나눴듯이 좋은 기억의 원형을 하 나 더 우리 마음에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이니까. 어느 정 도 우리는 그런 좋은 기억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시간을 거 슬러서 그 기억들에 마음을 쓰고 힘을 실어 보내기도 한다. 풀밭에 놓아준 꽃게도 무사히 바다로 돌아갔길 바라며, 단 단히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들이 서로서로 도와가며 잘 자 랄 수 있기를. 1716
  • 10. 사진 박영모 엔담께서 감사히도 차량지원을 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15인 승 미니버스에 많은 짐들을 싣고 무사히 팽목항에 도착했습니다. 물 론, 대형면허를 갖고있는 이태영 교무지기의 노고도 잊을 수 없을 것 입니다. 나배도로 들어가는 배에 올랐습니다. 대부분의 배울이들이 대합실에 서 골아 떨어졌는데, 두 다은과 태영은 갑판 위에서 아직 쌩쌩하네요. 간단히 짐을 풀고, 정리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고서. 다같이 마을인 사와 뒷바다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마을회관에서는 근사한 고깃상을 대접받았습니다. 뒷바다로 향하는 오르막길 뒤로 저런 근사한 풍경 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뒷바다에 도착하고 나면 다들 물수제비를 던 지며 놀아요. 1918
  • 11. 습기와 세월에 많이 헐렁이고 내려앉은 복도와 교실이 서울에서 출 발할 때부터 걱정이었습니다. 도착해보니 복도입구가 생각보다 심각 하여 발견즉시 뜯어냈습니다. 지지하고 있었던 썩은 나무를 튼튼한 나무로 교체하였습니다. 첫 번째 교실을 정리하고 공구함을 만들었 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찾느라 헤매고, 찾았더니 녹슬고 썩어서 사용 할 수 없는 상황을 이제는 예방하기로 했습니다. 심고 싶은 묘목들을 사갔습니다. 윤혜진 배울이는 본인의 묘목이 생 각보다 작아서 많이 놀랐습니다. 각자 감나무, 무화과나무, 비파나무, 왕벚나무 등을 심었습니다. 오는 가을,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궁 금해서 꼭 다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초여름의 바다는 아직 차가왔습니다. 하지만 배울이들의 물놀이를 향한 마음은 누구보다 뜨거웠지요. 누구는 서울에서 오리발까지 챙 겨왔습니다. 다같이 여름인 것처럼 신나게 놀았습니다. 박유종 전 이장님의 통통배 지원으로 조도 사전투표소를 다함께 다 녀왔습니다. 귀한 한 표, 잊지 못할 기억이죠. 2120
  • 13. 달빛은 정말 밝았다. 정말 오랜만에 달빛에 비춘 그림자를 보았다. 가로등의 그림자와는 달랐다. 울퉁불퉁한 길에 움직이는 그림자는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그림자를 신기해서 계속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그림자와 달빛에 단둘이 걷는 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선명하고 활기차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계속해서 쳐다보았고 그러다보니, 그림자도 쳐다보는 것 같았다. 또 그러다보니, 그림자도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그림자는 얼마나 멍청하게 봤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살아있는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늦게나마 알아서 다행이다. 그림자의 존재를 알고 나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주변에선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우린 둘이서 밤을 걸었다. 달빛은 정말 밝았다_김연태 배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