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농업으로 부식은 자급하자

1,332 views
1,087 views

Published on

KB국민은행에서 발간하는 VIP대상의 잡지 GOLD&WISE 2014년 3월호에 게재됨 - 시니어파트너즈 김형래 상무의 칼럼

Published in: Education
0 Comments
0 Likes
Statistics
Notes
  • Be the first to comment

  • Be the first to like this

No Downloads
Views
Total views
1,332
On SlideShare
0
From Embeds
0
Number of Embeds
3
Actions
Shares
0
Downloads
4
Comments
0
Likes
0
Embeds 0
No embeds

No notes for slide

도시 농업으로 부식은 자급하자

  1. 1. <GOLD&WISE>는ASA(미국대두협회)가인증한친환경콩기름잉크를이용해인쇄합니다. 는KB국민은행프라이빗뱅킹브랜드입니다 위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GOLD&WISE의 앱(app)으로 연결됩니다. <GOLD&WISE> 3월호 표지는 건축 장인의 혼을 엿볼 수 있는 궁 궐 회랑 기둥과 장엄한 소나무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전통 목조건 축물에서대들보와 아울러 가장 중요한 부재인 기둥에 쏟은 장인의 열정과 항상 변하지 않는 소나무의 품성은 고객님께 변함없이 든든 한 기둥이되고자 하는 KB국민은행의마음과도 닮아있습니다. KB PremiumMembership Magazine ISSUE104 March2014 www.kbstar.com Issue104March2014
  2. 2. 3월을 기다리며_나명욱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풀고 따뜻한 공기와 맑은 햇살을 가슴 아름 품을 수 있는 아름다운 3월 3월의 첫 날에는 창문의 겨울 커튼도 밀어내고 구석구석 쌓여있던 먼지들도 털고 창살마다 하얀 페인트를 다시 칠하리라 베란다의 그동안 버려두었던 파랑 빨강 하얀 화분들도 깨끗이 닦고 베고니아 피튜니아 꽃도 심을 준비를 하리라 3월이면 거리에도 꽃들의 향기로 가득할 것이다
  3. 3. KB Premium Membership Magazine ISSUE 104 March 2014 www.kbstar.com 명인의 삶, 열정과 조화 contents GOLD GOLD는 품격 있고 여유로운 삶을 위한 안목을 한층 높여주는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공간입니다 Travel_길위의풍경 눈물이미소가되어돌아오는땅,아프리카.............................................................28 Humanities_인문학산책 호모노마드의유전자를지닌그대에게.................................................................42 People_리더와의만남 철학박사박재희/아름다운문양이넘쳐나는인문의시대를위해...................................46 & KB KB는 고객에게 드리는 KB의 다양한 서비스 정보와 혜택을 담았습니다 Eassy 그림편지...................................................................................................88 KBNews 세계로번져가는KB의발자취...........................................................................90 KBLetter KB 희망키움교복지원후원금전달.....................................................................91 KBSTARTABLE STAR TABLE 라운지시행..............................................................................92 KBPB For Healing뮤지컬갈라토크콘서트................................................................93 wise WISE는 1막보다 더 멋진 인생 제2막의 지혜로운 설계를 위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Senior_골든라이프 도시농업으로부식은자급하자.........................................................................52 BusinessTip_성공에티켓 운동의품격,매너가답이다..............................................................................56 foodessay_미각의즐거움 통통하게살오른봄의전령사주꾸미의참맛...........................................................60 Health_내몸다스리기 공공의적,미세먼지......................................................................................64 BetterLife_행복한삶으로의초대 공간,컬러를입다.........................................................................................68 Golf_홀인원을꿈꾸며 이보미의골프레슨/굿샷을위한7가지팁............................................................74 Macroeconomics_크게보는경제 요동치는이머징마켓,제2의신흥국위기오나?.......................................................78 Tax_세금이야기 주택임대관련개정세법지원내용......................................................................82 RealEstate_부동산노하우 강북부동산도약할수있을까?..........................................................................84 FinancialProduct_금융상품가이드 신흥국금융불안과현명한자산선택...................................................................86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GOLDWISE의 앱(app)으로 연결됩니다. ●발행인_이건호●발행처_KB국민은행·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8길 26 홍보부 02-2073-7177·WM사업부 02-2073-8520 ●발행일_2014년 3월 1일 (통권 제104호·등록번호 서울 중 라 00098)● 기획_KB국민은행 홍보부 :이승재, 윤창하, 전인수,이모란 ● 편집·디자인_Solution Co.,Ltd.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820(청담동) 남한강빌딩 3층 Vip Marketing Dept. 02-3443-6923 편집_ 조민진,이은혜디자인_김진림마케팅_엄성근 교열_조인영, 정혜경 ● 사진_Antenna 02-518-8130 ●시스템 출력_ING Process ●인쇄_서울시인쇄정보산업(협), (주)나무와 물고기 GOLDWISE는 한국정기간행물 윤리위원회 도서잡지 윤리강령및 실천요강을 준수하며, 잡지에 실린 글과 사진은 KB국민은행의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GOLDWISE에 실린기사는 모두 필자 개인의의견을 따른 것입니다. GOLDWISE는 고객을 제일로 생각하는 KB국민은행이 사랑과 정성을 담아 고객님께 드리는 매거진입니다. GOLDWISE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아이폰,안드로이드폰)으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www.kbstar.com  전체서비스  은행 소개  사이버홍보관  KB 매거진 28 46 91
  4. 4. 한국의 美_명인의 삶 우리문화의고유한 기조가 이렇게오랜 시간 전통성과 예술성을 유지할 수있었던것은 사회곳곳에서문화를 지키고자 노력한 우리선조의열정과 다른 문화를 수용하더라도 우리것으로 재창조하는 창의력이있었기때문입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의분야에대한 무한한 애정과 즐거운 몰입, 그리고 평생에걸친열정은 다양한 분야에서우리역사의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GOLDWISE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기운이넘치는 3월, 조선시대명인의삶에깃든 지혜로운 가르침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에디터 조민진 캘리그래피 강병인 포토그래퍼 김재이, 안종근(표지)
  5. 5. 6 한국의 美_명인의 삶 goldwis e 2014 Ma rch 7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배흘림기둥으로 이름난 영주 부석사다.가장 갖고 싶은 물건은 고려시대 상감청자다.하고 싶은 일은 수월관음도 같은 빼어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남기고 싶은 것은 홍길동 같은 이야기다.모두 그림의떡이다. 우리역사에 주인공으로 기록된 사람의면면을 보면 거의가 정치와 관련된 이들이다. 그런데역사에기록된 정치가 모두는 공(功)과 과(過)를 공유한다.아주 특별하면 공이 과를 덮지만,대부분은 과에치여 불명예를 안는다.분당(分黨),당쟁,매관매직, 가렴주구….권력이 목적인 정치의 다른 이름을 좇았기때문이다. 우리역사는 과연 그런 이들의 손으로 나아져온 것일까? 아니다,악인은 언제나 조연이지 주인공이될 수 없다.정치는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심지어는 나라를 팔기도 하지않았는가.그럼에도 여전히정치지향이다.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착각 때문이다.허지만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의 주인 중에이름을 남긴 이는 허균(許筠) 선생뿐이다. 모두 이름 없는 목수,도공,화가다.팔만대장경을 그처럼 온전히보존할 수 있게 한 빛과 공기의 흐름, 숯의기능을 알아낸 것도 이름 없는,그저 우리의선조다. 천박하게 속내를 드러내겠다.명품을 남기는 사람을 명인(名人)이라 일컫는다. 명인의 삶은 고달팠을까? 맞다,고달팠다.명인이되려는 이는 노동의 값진 땀을 흘렸고, 마침내명인의 반열에 올랐다.언제나 눈 밝은 이많은 세상이다.누구도 할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의재능이니원하는 자 줄을 섰다.배도 부르고 등도 따숩지만, 좋아하는 일이었고 그 완성이니권력따위는 눈에 차지도 않는다. 문화라는 말이지천에널린 세상이다.비로소 알게 된다.우리역사를 앞으로 끌어온 주인공은 이름 없는 그 선조들이었음을.신라 땅에서발굴된 서역의 유물, 고려의 무명씨가 빚은 청자와 금동보살상,조선에서만들어진 예술과 문장이그 문화의 밑천이다.스토리텔링을 덮어씌우면 대박 예약이다.더구나 이제는 명인이되기전에도 당당히제이름을 내놓는다.내가 세상을 다녀보니이렇더라, 이걸 하고 있는데앞으로 이렇게 나아질 거다….뻔뻔한 것이아니라 당당하게 미완(未完)이라 말할 수 있는 세상이고, 용인하고 동참도 한다. 이제 막장이다.‘펜은 총보다 강하다’는 명구가 있다.맞다,펜은 권력이다. 펜대를 잡으려면 하얀 와이셔츠에넥타이가 제격이다.햇볕 잘 드는 창가에 반듯한 책상과 회전의자면 금상첨화고.그러나 펜대는 쉰 살을 넘기기어려워지고 있다. 빙글빙글 도는 회전의자에정신 줄 놓았다가 폼 나던 넥타이에 제 목을 죄이는 꼴이다. 뒤늦게허둥거려야 헛발질에 찬밥 신세나 되기십상이다.되도 않는 헛된 욕심에허송세월 하지말고 명인의길을 좇아가야 한다는 소리다.제 꿈과 소질만 알면 절반은 이룬 거다. 절반을 이루고도 땀 흘리기싫어 자빠지는 건 팔자소관이고. 변호사를 하다가 셰프가 되고,권력을 버리고 선생이되고, 돈방석에서일어나 그림을 그리고,멀쩡한 직장 내던지고 목공이되고,대장공이되고….남의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감동의 눈물을 짜면서도 막상 내가,생각하면 슬며시외면한다. 에구,명인은 아무나 되나!천생 조연될라! 글김정현(소설가)포토그래퍼 안종근 주 인 공 으 로 살 기 명 인 되 기 ,
  6. 6. 8 한국의 美_명인의 삶 名人 자연, 사람 그리고 문화와 소통하다 혼 신 의 여 정 으 로 세 월 의 빗 장 을 풀 다 goldwis e 2014 Janua ry 9 때로는구멍을내고,아니면쇳조각두개를 덧대무언가를만든다.신기하게도장인의 손길이닿으면쓸모없던쇠붙이가생명을 얻는다.이처럼구리나주석을합금한놋쇠로 장식을만드는공예를두석공예라한다. 소중한것을보호하는자물쇠,목가구에 붙여결합부분을보강하는금속장식이 모두이에속한다.두석공예는독립된 공예라기보다는목가구나나전공예의 일부분으로여기는경우가많다.그러나, 실상은한옥문고리나경첩같은두석은 숙련된장인의손끝을통해서만탄생할수 있는오브제다.목가구의비례와장식의 조화를꿰뚫어볼수있는두석장인의혜안 없이는훌륭한목가구나건축물이나올수 없다.그래서두석장인은화룡점정을찍는 화가의손길에비유되곤한다.
  7. 7. 10 예부터문방사우의으뜸으로여긴벼루는돌에 문양이나글귀를새겨감상하는애장품의하나로서, 각별한대우를받았다.선비는품격높은벼루를즐겨 소장했고,가보로삼아대대손손집안의숨결을 전했다.벼루깎는장인은좀체그이름을남기는법이 없다.그런데이벼루로자신의이름을역사에남긴 인물이있다.바로조선시대사대부였던석치 정철조다.유득공이기하실장단연가에서 ‘모두들바람풍(風)자모양의풍자식벼루만쓸때 석치는안동마간석과남포의화초석에가을국화와 귀뚜라미같은벌레를아로새겨높은품격을 뽐냈다’라는석치의벼루에대해쓴대목이나온다. 홍주의한아전이그의방법을배워,원래의돌 모양을살려조각을새기는방식으로이름을날렸다. 이렇게보면,정석치의벼루는특징이돌의생김새와 성질을최대한그대로살려자연스럽게조각을얹는 데있었음을알수있다.문방사우중하나인한지는 자연과구분하지않으려고한지장들의자연관을 엿볼수있다.조선종이라고불리는한지는닥나무 껍질과깨끗한물을이용해우리고유의기법으로뜬 종이다.순백색그자체가땅과흙,햇볕으로부터온 산물이다.그렇게완성된한지는그저태어난 그대로의모습,자연미를지니고있다. 소 박 한 선 인 의 숨 결 을 담 다 goldwis e 2014 Janua ry 11
  8. 8. 12 , goldwis e 2014 Janua ry 13 매화는초야에묻혀고고하게살아가는선비의 품성을닮아예부터시와그림의단골소재였다. 매화를좋아했던옛예술가들은매화의여러 특징중자신이좋아하는점을들어귀히 여겼다.어떤이는운치를,또다른이는자태와 품격을중요시했다. 우리선조는매화를통해 맑고고고한정신에이르고자한것이다.매화에 집중해서많은시를쓴퇴계이황,자신의그림을 팔아매화를샀다는김홍도뿐아니라,문인화가 조희룡도매화를즐겨그렸다.매화그림병풍에 매화문양을넣은먹과벼루,매화차로하루를 보내는선비의일상은매화가예술로승화된 가장좋은예라하겠다. 에디터 조민진 포토그래퍼 김재이 어시스턴트 이선우 스타일링 이종국 어시스턴트 최은미, 박진우, 윤현석 참고도서 조선의 프로페셔널(이수광 지음, 시아 펴냄) 매 화, 화 려 한 예 술 로 빛 나 다
  9. 9. 14 시대를 꽃피운, 조선의 전문가들 조선 시대는 신분 사회였다. 정해진 틀에 부합하지 않으면 능력이 있어도 펼칠 수 없고 알아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을 혁신하고 새로운 틀을 조형하는 결정타는 대부분 기존의 체계 밖에서 나왔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식과 기술을 쌓아 사회를 변화시킨 사람들, 방대한 영역에서 소리 없이 역량을 축적한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우리는 그들을 전문가라고 한다. 이들이 조선 시대의 문화유산을 꽃피우고 근현대 국가의 기틀을 닦았다. 한국의 美_명인의 삶 김홍도‘연광정연회도’(71.2×196.9cm, 조선시대,국립중앙박물관소장). 평안감사의부임을축하하며연광정에서 열린성대한연회다.담장을사이에두고 사대부들이잔치를벌이는동안,대동문앞 시전에서는상공인들이저마다물건을 파느라여념이없다. goldwis e 2014 Ma rch 15 왕과 양반이정치적 주도 세력으로 활동했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사회전 영역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일을 하며 살았다.집을 짓는 일부터사람의병을 고치고 하늘의 움직임을 읽는 일까지조선 사회를 들여다보면 그들의실생활 한가운데에는 조선의전문가로 살았던 수많은 사람의뼈마디굵은 손길이 있다.이들 대부분은 신분의제약에도 자신이하는 일에서만큼은 최고의 전문가가 되려고 했다.조선의 사회·문화·경제를 지탱한 전문가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기업인터뷰를 하다 보면 기업의얼굴이되는 사람과 심장이되는 사람을 동시에 만난다.독자는 책을 통해얼굴을 만나고 싶지만, 특정 분야에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심장이더반갑다.얼굴은 대의를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에 맞는 색을 칠하는 반면 심장은 모든 색의 특징을 먼저 물색하고 체험하고 선별한다.심장은 실무자이자 보이지않는 조선 시대 전문가의 낯설거나 새로운 삶
  10. 10. 16 information 국가정책의근간이된 사람들,중인 조선의신분계층을양반과평민으로 양분화한다면조선의문화를제대로 들여다볼큰통로를잃게된다.조선 후기,신기술을일찍습득하고 전문적으로발전시킨사람은대부분 중인이었다.중인은양반으로 태어나지는못했으나스스로부를 창출해큰부자가되기도하고오랜 연구를통해전문지식인이되었다. 외교문제에중책을맡는 통신사였으며,구제도를수호하는 양반과달리신문물을받아들여 새로운전문직을창출한것도 중인이었다.특히조선시대국가 정책을수행하는데는중인의학문인 잡학이중요한기능을했다.과거 시험에서천대받고사대부가관심 갖지않았던잡학이현대사회에 이르러서는가장전문적이고 대접받는지식이되었다. 곳에서일하는 전문가다.이들은 직급이낮더라도 만나서이야기를 나누다 보면얼마나 깊이있게 자기 분야를 탐구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직업이 세분화되고 기술이발전하고 삶의 반 이상이일에 투입되는 현대 사회에서 담당자는 그렇게일해야 자기 분야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그런데이것이현대 사회만의 특징은 아니다.조선 시대에도 그랬다. 그 시대에도 전문직이 존재했고,그들이 사회의명암과 온도를 바꾸었다. 대표적인 전문직으로는 한성 중심가에 살던역관,의관, 산관,화원 등이 있다.이들은 잡과 시험이나 취재를 거쳐 뽑힌 정식 관원으로 오늘날의의사와 외교관,번역가,수학자,화가로 볼 수 있다.이직업 중에는 현재와 달리천대를 받은 것도,사회적위치에비해 큰 활약을 펼친 것도 있다.수백년 전으로 돌아가 지금도 존재하는 직업의면면을 살펴보면 시대적변화를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우선 공통적으로 이들 전문가의 사회적지위는 양반보다 낮고 대우도 변변치않았다.특히 훈장이그랬다.휑한 곳을 말할 때 ‘훈장네 마당 같다’는 속담을 쓰는데,여기에는 재산 꾸리는 데 무능한 훈장의 삶이 드러난다.훈장은 조선의양반 관료 사회에서 요직에 오르지 못한 양반이나 하는 한직으로 취급되었고,조선 후기에는 몰락한 선비가 대거 훈장 자리를 차지하면서 상민이나 천민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됐다.실질적인 밥벌이없이 명예만으로 영위되던 교육자의 자리가 시대의역풍을 맞은 것이다. 우리 모두 ‘군사부일체’를 듣고 자라 믿기힘든 대목이지만, 몰락한 훈장의 지위는 한국민요집에 수록된 전래가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서당 강아지똥강아지 누른밥 딸딸 긁어서 선생한 그릇 처박드리고 내한 그릇 잡숫고 - 마산 지방 전래가사 훈장이 삶의 스승에서한직으로 전락하는 사이,실력있는 중인층 지식인들은 새로운 교육 형태를 만들어냈다.이들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전문적인 학관 경영을 시작했다.당시도시 상공인을 포함한 하층민이이룬 경제적성장은 그들 스스로 교육 시설을 확보하고,교육 기회의획득을 요구하는 바탕이 되었다.전통적으로 운영되는 서당에서 훈장의 보수는 일정한 현금이아닌 의복이나 양식 등으로 대체됐고,그 때문에 교사들 대부분이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지만,가르치는 일이영리적인 계약 관계로 발전한 뒤부터교직은 체계적·조직적인 제도로 자리 잡았다.그 덕분에 선생의 사회적지위도 조금씩 높아졌다. 조선 시대에는 의사의지위도 지금과 달랐다.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엮은 조선 전문가의일생에는 “조선 중기관료 사회에서의관을 비롯한 잡관의 위치는 조선 초에 확립된 큰 원칙,‘문무관보다 하등’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성종실록은 ‘의원은 처음부터잡과를 거쳐진출한 자이므로, goldwis e 2014 Ma rch 17 조종(祖宗) 때부터사림의 반열에 들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사림의 반열에 들지 못했음은 곧 의과 출신인 의관이 동반과 서반의양반 요직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뜻한다.오직의원직만 맡을 수 있었는데,‘이들은 최고 직책이당하관 정3품인 내의원의정(正)이었다’고 나와 있다.요직으로 나갈 수도없기에의사는 양반이꺼리는 직종 중 하나였다.큰 병이생기면 의원에게가기보다는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던시대였다.그러나 다행히의사는 조선시대여성도 진출할 수있는 거의유일한 분야였다.신분이높은 여성을 진료할 사람이필요했기에의녀제도가 존재했다.의녀는 유교 사상이약하고 남녀부동석의개념이적다는 이유로 천민가운데서뽑았다.천민입장에서는 신분의굴레에서벗어날일생일대의기회였으니많은 의녀가 침술과 약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가로 성장했다.우리가 잘 아는 ‘대장금’도 그중 하나다. 천민 여성은 궁녀가 되기도 했다.조선의 궁녀는 주로 공노비의 딸 중에서 선발했다.열 살 전후의어린 나이에입궁하면 평생을 왕가에예속되어 살게 된다.비록 연애도, 혼인도 할 수 없지만 이들은 궁에있는 동안 철저한 교육을 받고 체계적인 절차를 거쳐점차 전문가로 거듭났다.궁녀가 없었다면 왕과 왕실 가족의의식주 생활은 영위될 수 없었을 것이다.궁녀는 왕실의법도와 예의를 전문적으로 익혀 왕비의비서역할을 했다.의전에 관한 일은 물론 복식, 지운영‘정문입설’(27.2×24cm, 조선시대,간송미술관) ‘정씨집문앞에서서눈을 맞다’라는고사성어를풀이한 그림으로,스승을향한제자들의 존경과간절히배움을구하는 자세를엿볼수있다.지위고하를 막론하고스승은언제나존경의 대상이었다.
  11. 11. 18 음식,접대,직조,사법 분야에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약했다.국가의 녹을 받거나 국가 관료 기구의 공식 구성원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왕실에 물품을 공급하는 여러 관서로부터 물품을 받았다는 점에서‘반공반사의 불안정하고 모호한 위상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궁녀만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 전문직으로 천문역산가도 있다.천문역산가는 왕의명을 받아 그를 대신해 천문을 읽는 유일한 직업이었다.하늘이 왕에게 주는 메시지는 왕만을 위한 것이기에 반드시 왕이위임을 해야 했다. 천문역산가의 주요 업무는 역서편찬과 간행,천변재이의 관측과 보고,그 외 일월식의예보 등이었다.관상감에서편찬,간행하는 역서는 요즘의 달력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1년 동안의 날짜와 길흉을 담은 책,일과력이다. 이와 함께일월오성을 비롯한 천체의 운행 도수 데이터를 담은 칠정력도 편찬했다.일과력은 백성에게널리배포하고 칠정력은 왕과 세자에게 바쳤다.이들은 하늘의현상을 살피고 태양과 달의 운행을 계산하고, 일식과 월식을 예측했다.의사만큼이나 공부할 양이방대했음에도 군자가 해야 할 공부로 취급되지 못했다.문인 관료는 이 분야를 기피했고,정부는 문과의지식을 갖춘 뛰어난 인재가 필요했다.그래서 사대부 문인들이천문학 공부를 하면 특혜를 주는 제도를 만들어권장하기도 했다.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천문역산가는 스스로 전문성을 입증하며 사회적지위를 높여갔다. 양반 출신의 과학자들이 관청을 옮겨다니느라 깊이있게 과학 연구를 하지 못한 사이 오랜 연구를 통해 쌓은 내공으로 나라에서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훌륭하게 수행한 것이다. 나라 안에서질서를 잡고 학문을 꽃피운 사람이있다면 나라 밖 문물을 통해 사회적위상을 높인 사람도 있다.주변국과 끊임없이외교 활동을 펼쳐야 하는 작은 나라에서이들의역할은 높이평가됐다.대표적인 직업으로 역관이있다. 주 업무는 외국 사신의영접,외국으로 가는 사신단의 수행과 통역이었다. “중국 사신을 접견하여 잔치할 때에,사신이평소 술을 잘 마신다고 소문이 났으므로 임금이대작하지 못할 것을 염려해 꿀물을 바치게 했다.사신은 취하고 임금은 취하지않게되자 사신이깨닫고 잡은 잔을 바꾸기를 청하니, 넓은 세상에서 배운 지혜로 나라를 지키다 goldwis e 2014 Ma rch 19 공이청하여임금의 잔을 받들고 사신 앞으로 가다 문득 넘어지는 체하고 잔을 엎었다.”통문관지에 등장하는 표헌이라는 역관의일화다. 그는 명나라 사신과 조선 국왕 사이에서통역을 담당하면서국제정세를 잘 파악해여러난관을 해결했다.역관은 이처럼말이통하고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창구였기때문에국내보다 해외에서더대접을 받았다.역관 시인으로 불린 홍세태는 통신사의말단 수행원으로일본을 방문했지만,곧 시와 그림으로 조선의문화를 보여주는 대표 시인이되었다.한시를 잘 짓는다는 소문이나면서 중국과 일본의사신은 그의시를 받기위해줄을 서기도 했다.그럼에도 조선 사회에서통역은 ‘잡기’로 취급되었다.사대부는역관을 높은 관직에등용함에 반대했다.역관은 이에대응해세습과 통혼으로 가문 형성에공을 들였다.같은 혼인권을 형성해재능을 상호 전수하며전문성을 키운 것이다.이렇게형성된 조선시대명문역관 가문으로는 밀양변씨,전주이씨,청주한씨등이있다. 역관이 우리 문화를 외부에알리는 데일조했다면,외부 문물을 국내에 들여와 문화 발전에기여한 사람도 있다.우리민족이외부의 문물을 배척하고 먼 길 떠나기를 몹시 주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않다.정부에서파견하는 통신사라든가 해외 문물 수용에적극적인 지식인,무역업에 종사하는 상인은 다양한 경로로 해외를 탐방했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으며,이런 기록과 각종 지도는 세상을 대하는 선조의시야를 넓혀주었다. 특히개화기를 전후해 대대적인 외유가 있었다.고종은 국정개혁에필요한 자료를 수집할 목적으로 1881년일본 국정시찰단인 조사 시찰단을 파견한다. 시찰단은 약 4개월 동안 일본에머무르며 근대시설과 선진 문물을 탐방했고, 조선에 돌아와 국내개화 여론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이후 일본이 세력을 확장하려 하자 지식인은 조국의 근대화를 통한 주권 강화에앞장선다. 대표적인물이바로 민영환이다.1896년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된 민영환은 윤치호,김득련 등과 함께러시아 황제니콜라이2세대관식에 참석한다. 세계일주를 위한 첫발을 뗀 것이다.일행은 인천에서러시아 군함을 타고 상하이,도쿄를 거쳐캐나다에 도착한다.여기서기차로 북미대륙을 횡단해 뉴욕으로,다시 상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런던으로 향한다.런던에서는 네덜란드, 독일, 폴란드를 거쳐러시아로 들어갔다.민영환은 병조판서를 지낸 경험으로 러시아의 근대식 군사 제도를 보고 감명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온 후 군제를 개편한다.그리고 영국 빅토리아 여왕 즉위60년 축하식에 참석하라는 어명을 받고 1897년에 두 번째 외유를 떠난다.당시대한제국은 양력을 사용한 지얼마 되지않았기에 서구와 시공간의개념부터달랐다.중국이 세계의 중심인 줄 알았던 사절단은 이여행을 통해 세상을 다시보게되었다. 그리고 여기서배운 지식과 지혜로 국가 개혁과 독립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그는 당시가장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관료로서정부 내적극적인 독립협회의 후원자가 되었고,이런 노력이 쌓여 근대화가 진행됐다. 글 김선미(자유기고가) 자료협조 간송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참고도서 조선 전문가의 일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펴냄),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이승원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조선의 르네상스인 중인(허경진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김명국(추정)‘인조십사년통신사입강호성도’ (30.7×595cm,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일본에파견한외교사절단인통신사 일행이일본에도성(지금의도쿄)에 입성하는행렬도다.외국과의관계에서 일차적인의사소통을담당하던계층은 중인신분의역관이었다.
  12. 12. 2 0 한국의 美_명인의 삶 서울 인왕산서촌 내일 향해 꿈꾸는 사람들의 터전 2 1 goldwis e 2014 Ma rch 21 인왕산 자락에 둥지 튼 사람들 서촌은 북촌과 짝을 맞춰 새롭게 붙인 이름이다.본래청계천 상류 지역이어서 ‘웃대’라고 했다.경복궁 서문인 영추문 밖으로부터인왕산 기슭에이르기까지의 공간으로 지금의 누상동,누하동,청운동, 통인동 일대를 가리킨다. 서촌에 가장 먼저 살았던 사람은 누구일까.조선이건국되고 경복궁의배후지역할을 했기에 당연히 왕족이었다.그중 대표적인물이 세종(1397~1450)이다.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은 “태조 6년 4월임진일에 한양 준수방 잠저에서탄생했다”고 한다. 잠저(潛邸)란 왕이 즉위전에 살던 집을 말한다.그 밖에 효령대군,안평대군,광해군 등이서촌에 발자취를 남겼다. 왕족이 살던 서촌에 권문세가의 사대부가 들어오기시작한 것은 성종(1469~1494) 때였다.그 무렵 큰 흔적을 남긴 사람이성수침(1493~1564)이다.그는 특이하게도 산골에 파묻혀일생을 보낸 게아니라 조선의정궁 가장 가까운 곳에 서재를 만들어 두문불출했다.기묘사화(1519)가 일어나 스승인 조광조와 벗들이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자 입신양명을 단념하고 은둔한 것이다. 성수침과 남곤 등이머물던 서촌은 17~18세기초반까지 장동김씨가문이거주한다. 장동은 조선 시대서촌의 장의동을 가리키는 말이다.대표적인 사람은 병자호란 때 충절의 상징인 김상용(1561〜1637)과 김상헌(1570~1652) 형제다.장동김씨가 탄탄하게 닦아놓은 서촌은 18세기 중반부터완숙기를 맞는다.그 주인공이겸재정선 등이다. 지금의경복고등학교 자리에서태어난 겸재는 장동팔경을 비롯해 그림여러점을 남겨서촌의옛 모습을 복원하는 데결정적기여를 했다. 18세기영·정조대 ‘조선의 르네상스’를 맞아 서촌의 주인공은 사대부에서 중인으로 바뀐다.천문학자,규장각 서리,화원 등 전문 기술직에 종사한 중인은 사대부처럼시사 모임을 열었다.대표적인 것이서당 훈장 천수경이 좌장으로 장혼,김낙서 등이 참여한 ‘송석원 시사(松石園 詩社)’다.중인의지식과 취향은 사대부와 어깨를 나란히하기에 이르렀고,거기에 재력도 갖췄다.그들은 당대최고 도화서 화원인 이인문과 김홍도에게 그림을 주문했고,화원들은 기꺼이 그림을 그렸다.이는 ‘송석원 시사’와 ‘송석원 야연도’로 남아 있다.조선 르네상스는 일제 강점기를 맞으면서꺾이고 서촌의 주인 역시친일파 윤덕영과 이완용으로 바뀐다.이로써 조선 왕실의배후지로서,사대부의 세거지로서,그리고 중인 문화의 중심지로서500년간 수행해온 서촌의역할은 종말을 고한다.그러나 시인 이상(1910〜1937)과 윤동주(1917~1945),화가 이쾌대(1913〜?)와 이중섭(1916〜1956) 등 예술가들이이곳을 찾아 새로운 꿈을 꾸었고,그 꿈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왕산 트레킹 발길 멈춘 곳이 전망대, 서울 이렇게 아름다웠나? 인왕산은 작지만 옹골차다.도심에서쳐다보면 대수롭지않게 보이지만,일단 올라가면 입이쩍벌어진다.기차바위,치마바위,부처바위, 삿갓바위,범바위,선바위 등 아기자기하고 기이한 화강암 덩어리도 볼만하지만,발길 멈춘 곳마다 시야에 잡히는 서울 조망이일품이다.조선의 수도 한양은 유교와 풍수 지리적덕목으로 디자인된 계획 도시였다.개국 당시정도전,하륜,무악대사 등 풍수지리를 겸비한 당대최고 3 1 인왕산은도성의내사산중하나로풍수 지리적으로우백호에해당한다.도성은인왕산에서 내려와도시구간을지나남산으로이어진다. 2 거대한바위2개가스님이장삼을입고서있는 것처럼보여‘선바위’로불린다. 3 인왕산의성곽은 한양도성에서보존상태가좋은성곽중하나다.
  13. 13. 2 2 1 4 2 1 3 1 인왕산에서본도심일출.600년역사를간직한도성안쪽은빌딩숲으로둘러싸여있다.과거와 현재가공존하는서울의모습이다.2 통인시장의명물기름떡볶이.3 담백한 맛이 일품인 자하손만두의 떡만둣국. 4 경교장에 전시된 김구 선생의 피에 젖은 의복. goldwis e 2014 Ma rch 2 3 학자와 승려들의치열한 논쟁을 거쳐 북악산 아래에경복궁이 들어섰다.그 결과 내사산(內四山)으로 주산 북악산,좌청룡 낙산,우백호 인왕산,안산으로 남산을 배치했고,그곳에 도성을 쌓았다.즉,내사산이 한양을 보호하는 성곽이된 것이다. 멀리서 한양을 수호하는 진산은 북한산,조산으로 관악산이 자리 잡게 된다.이여섯 산 중에 가장 역동적인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인왕산이다. 수도 서울을 지키는 호랑이산 인왕산 트레킹은 창의문에서시작해 경교장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창의문은 북악산과 인왕산의접점으로 두 산의 들머리가 된다.창의문에서길을 건너면 ‘윤동주 시인의언덕’이다.윤동주 시비앞에서‘죽는 날까지하늘을 우러러…’ 서시를 읊조리며길을 나선다.인왕산길옆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200m쯤 따르다 보면 ‘정상 1.01㎞’라 적힌 팻말을 만난다.여기서성곽을 따라 이어진 가파른 오르막을 20분쯤 오르면 능선 삼거리에 올라붙는다. 이곳에서정상은 왼쪽,기차바위는 오른쪽이다.30m쯤 가면 널찍한 암반이 나오는데,사람들이앉아 조망을 즐기고 있다.그 옆에 서니북악산에서청와대,다시 경복궁에서 도심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장쾌하다.이어 봉우리에 올라서면 그곳부터 기차바위가 시작된다.기차바위는 길이약 30m의 바위 능선이다.기차바위의 조망은 상상을 초월한다.북쪽으로 보현봉〜문수봉〜비봉〜족두리봉이이어진 북한산 비봉능선이하늘의성채처럼 웅장하고,그 품으로 구기동,평창동이젖먹이처럼안겨 있다.동쪽으로는 북악산 자락이미끄러지면서도심으로 이어지다 남산이 봉곳하고, 서쪽으로는 안산과 홍제동,그리고 멀리 한강이넘실거린다.그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아〜 서울이이렇게멋진 곳이었구나!’ 하는 감탄이절로 튀어나온다. 인왕산 정상으로 가려면 능선 삼거리로 되돌아가야 한다.삼거리에서남쪽 능선을 따르면 말끔히보수된 성곽길이이어지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철계단을 만난다. 탕탕거리며철계단을 밟고 오르면 앞으로 주름진 바위가 보이는데,이곳이치마바위다. 치마바위에는 중종의첫 번째 왕비인 단경왕후와 관련된 애잔한 전설이내려온다. 1506년연산군의 폭정으로 중종반정이일어났고,진성대군이 중종으로 등극한다. 당시 부인이었던 신씨의아버지신수근은 반정때피살된다.반정을 주도한 박원종 등이죄인의 딸은 왕비가 될 수 없다고 주장,결국 신씨는 인왕산 아래 사직골로 쫓겨나 살게되었다.중종은 부인을 잊을 수 없어경회루에 올라 인왕산 기슭을 바라보곤 했고,신씨는 이말을 전해 듣고 종을 시켜자기가 입던 붉은 치마를 경회루가 보이는 이바위에걸쳐놓음으로써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다.정상에는 작은 바위 하나가 도드라져있다.삿갓을 벗은 모양이라 해서 삿갓바위다.인왕산을 찾은 사람은 누구나 높이약 1.5m의 삿갓바위에 올라 정상 등정의기쁨을 만끽한다.하산은 도심을 바라보며남쪽 능선을 따른다.급경사 계단을 15분쯤 내려오면 범바위에 올라서고, 호젓한 성곽길이이어진다. 성곽이 도심으로 들어서면 예쁜 빨간 벽돌집을 만난다.이곳이‘봉선화’의 작곡가 홍난파가 살던 집이다.홍난파는 이곳에서 주옥같은 동요를 만들었다.홍난파 가옥을 지나 계속 성곽길을 따르면 공원이나오고,곧 경교장에 닿는다.김구 선생의 자취가 서린 경교장을 둘러보며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information 맛집 창의문일대(부암동) 20여년전통의자하손만두 (02-379-2648)가게는만두로일가를 이룬곳이다.장은시골에서정성껏띄운 메주와서해섬에서공수한소금을쓴다. 담백하고깔끔한맛의서울스타일로 자극적인맛이없다.만둣국이대표메뉴로 녹두전을곁들일수있다. 계열사(02-391-3566)는대한민국3대 닭집중한곳으로꼽힌다.프라이드치킨 외에도골뱅이국수가맛나다.그밖에클럽 에스프레소(02-764-8719)의커피맛도 유명하다. 통인시장과경복궁역일대(통인동) 통인시장의도시락카페(02-722-0911)가 명물이다.시장의먹거리를담아함께밥을 먹을수있다.시장구경하는재미가 어우러져인기가좋다.시장안에는 기름떡볶이가명물.양념한떡대에기름을 두르고살짝볶는다.경복궁역1번출구 금천교시장의 체부동잔칫집(02-730-5420)을빼놓을수 없다.녹두가씹히는녹두전,담백한 잔치국수등이싸고푸짐하다. 박노수가옥일대(누상동) ‘밥이보약,내몸에밥을더하자’는뜻인 밥+(02-725-1253)는담백한가정식 식사를내온다.강원도정선에서먹는것 같은곤드레밥,매생이떡국을잘한다. 남도분식(02-723-7775)은상추튀김, 김밥쌈,오순떡(오징어순대+떡볶이)이 유명하다.
  14. 14. 2 4 3 2 1 1 봄꽃이핀창의문.도성의실질적인북대문역할을담당한문으로인왕산의종착점이자북악산의 시작점이다.2 작년가을에개관한박노수미술관.이곳이중인들의시모임인송석원시사가열린 주무대였다.3 윤동주시인의언덕꼭대기에는잘생긴소나무한그루가서있다.그뒤로도성이 흐르고북한산연봉이병풍처럼펼쳐진다. goldwis e 2014 Ma rch 2 5 서촌 걷기 인왕산 품에 서린 꿈과 희망을 찾아서 서촌에 서린역사와 문화,그리고 인물을 둘러보는 걷기의 출발점은 통의동 백송터다. 경복궁역3번 출구 앞의버스 정류장을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천연기념물이던 서촌의랜드마크 백송은 1990년 태풍으로 쓰러져안타깝게 고사했다.나무는 잘려나가고 밑동만 남았지만,그 옆에 백송 4그루가 자라고 있다. 주민과 종로구청 등에서백송을 기리기위해 심은 것이다.백송터앞 벽에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액자가 문패처럼걸려있다. 백송터는 추사의집터로 알려졌지만,이는 잘못이다.이곳은 어린영조가 자랐던 잠저 창의궁 자리다.영조는 백송을 보면서 자랐고,경복궁역3번 출구 근처의 ‘월서위궁’에서지낸 추사 역시백송의 그늘에서 놀았다.추사가 태어난 1786년은 당시 서촌의 주인공이된 중인이‘송석원 시사’를 결성한 해다.추사는 송석원 시사가 벌어진 천수경(?~1818) 집 근처바위에 ‘송석원’이란 각자를 새겼다고 전한다. ‘송석원 시사’가 열리던 박노수미술관 터 백송터에서 골목을 이리저리휘돌아 나오면 자하문로를 만나고,길을 건너면 우리은행(효자동지점) 앞이다.여기서왼쪽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제비다방을 맞닥뜨린다.한옥 형태의이집은 소설가 이상의 큰아버지집이다.이상은 두 살 때 큰아버지양자로 들어와 스물두 해를 살았다.이상은 스물여덟의나이로 요절했으니 이집은 그의 자의식과 세계관이형성된 자궁과 같은 곳이었다. 이상의 꿈이서린 제비다방에서차 한 잔 마시고 다시길을 나서면 통인시장이다.시장 구경을 겸해 도시락 카페와 기름떡볶이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으면, 옥인길 골목으로 접어든다.10분쯤 걸으면 박노수미술관을 만난다.평민 서당 훈장이던 천수경이인왕산 옥류천 위에 초가집‘송석원(松石園)’을 짓고 시 모임을 열던 바로 그 장소다.일제 강점기친일파 윤덕영(1873~1940)이이곳을 사들여1914년 건평1,983㎡에 달하는 호화 별장(벽수산장)을 지었다.윤덕영은 자신의별장 터에 딸을 위해 동서양 건축 기법을 절충한 2층 벽돌 건물을 짓는다.이곳이박노수미술관이다.박노수(1927~2013) 화백이집을 사들여 살다가, 종로구청에기증하고 미술관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마당에는 박 화백이 수집한 기이한 수석이가득하다.개관 기념 전시달과 소년이열리고 있다.박 화백은 해방 후 한국화 1세대로 꼽히는 작가로, 고아한 품격과 절제된 운필,그리고 파격적 구도와 색감 가득한 작품이전시되고 있다. 미술관을 나오면 인왕산을 바라보며빌라 건물 사이를 걷는다.빌라 건물 중 ‘윤동주 하숙집터’ 동판이 붙어있다.이빌라촌 일대에서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학생 시절 소설가 김송의집(누상동 9)에서하숙했다.김송의회상에 의하면, 윤동주는 아침일찍인왕산을 오르내리며시심을 닦았다고 한다.윤동주는 이곳에서‘별 헤는 밤’,‘자화상’ 등의절창을 남겼다.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20분쯤 가면 ‘윤동주문학관’에이른다.안에는 윤동주의 육필 원고,시집,사진 등이전시되어있고, 문학관 옆 작은 계단을 오르면 ‘윤동주 시인의언덕(청운공원)’에 닿는다.그의대표작 ‘서시’가 새겨진 비석뒤로 아스라이펼쳐진 도심을 바라보며서촌 걷기를 마무리한다. 글·사진 진우석(여행 칼럼니스트) information 서촌걷기인왕산트레킹가이드 서촌은워낙방대하기에코스를잘짜서 둘러봐야한다.걷기코스는경복궁역3번 출구~통의동백송터~(자하문로건너 우리은행왼쪽골목)~제비다방~통인시장 ~수성동계곡~인왕산자락길~윤동주 시인의언덕(윤동주문학관)~창의문으로 이어진다.인왕산트레킹은창의문을 들머리로하는코스가수월하다.월요일과 공휴일다음날에는입산을통제한다. 교통 3호선경복궁역3번출구로나오면통의동 백송터.4번출구는 제비다방(수성동 계곡)으로갈수있다. 3번출구버스 정류장에서1020번버스를타면창의문과 윤동주시인의언덕,3번마을버스를타면 박노수미술관과수성동계곡(종점)으로갈 수있다.
  15. 15. 금강이라는 이름에서 사람은 쉽게비단(錦)을 떠올린다.백제의 고도를 적시며서해로 흘러가는 이 물줄기는 비단결처럼 아름답지만,금강의‘금’은 비단이아니라 ‘곰(熊)’이다. 공주의옛 이름은 ‘고마나루’였고,‘고마’는 곰의옛말이다. ‘고마나루’를 한자로 옮기면 ‘웅진(熊津)’이된다.삼국 시대에 공주성을 웅진성으로 부른 건 그 때문이다. 공주시서북쪽의 곰나루는 예부터금강 수운의 중심인 동시에 군사적 요충지였다.옛 이름 고마나루를 여태 간직하고 있는 이곳엔 곰에얽힌 슬픈 전설이전해진다.아득한 옛날, 강마을 나무꾼과 부부의연을 맺고 살다 버림받은 암곰이 두 자식을 안고 절벽아래 급류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날 이후 부쩍 잦아진 풍랑은 곰의 한이요,나루터 솔숲을 무시로 적시는 빗줄기는 강변에 뿌려진 곰의 눈물이다. 하지만 금강에 흐르는 한은 곰만의것도,멸망한 백제인만의 것도 아니다.여기엔 갑오년에 들고 일어난 농민의피와 통곡이 고스란히흐르고 있다.녹두 장군 전봉준이 금강을 건너 압송되기도 했거니와 농민군의 마지막 항전이 무위로 돌아간 곳도 금강 언저리였던 것.곰나루 남쪽 봉황산 기슭의야트막한 고개 우금치가 바로 그곳이다. “껍데기는 가라.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금강을 사랑한 신동엽시인의일갈이다. 전라도 고부 땅에서시작해 들불처럼번져나간 아우성은 이곳에서 통곡으로 변하고 말았다.그들이 울리던 개벽고는 곰나루 물속에 가라앉았고,그들이 부르던 격양가는 우금치 고갯길에서기어이막혀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금강의 물빛은 여전히짙푸르고 봉황산의 노송도 몸빛만은 여전하다.산하를 뒤흔들던 갑오년의 푸른 함성은 세월에도 아랑곳없이그렇게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물새들 넘나드는 뱃길을 더듬어그 옛날의나루터를 거닐어본다. 다시 돌아온 갑오년의 봄,곰나루 너른 모랫벌에서길손들은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글 박경수(소설가) 사진제공 공주시청 곰나루 gold Travel_길위의풍경 눈물이미소가되어돌아오는땅,아프리카...................................................................... 28 Humanities_인문학산책 호모노마드의유전자를지닌그대에게............................................................................. 42 People_리더와의만남 철학박사박재희/아름다운문양이넘쳐나는인문의시대를위해...................................... 46 goldwise GOLD는 품격있고 여유로운 삶을 위한 안목을 한층 높여주는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공간입니다
  16. 16. 2 8 Travel_길 위의 풍경 눈물이 미소가 되어 돌아오는 땅, 아프리카 쉽사리 발길을 들일 수 없을 거라 여겼다. 지도 속에서나 어렴풋이 짚어내던 아프리카를 품을 줄은. 얼기설기 짠 모포를 두르고 서걱대는 입김을 몰아쉬는 레소토 사람들의 눈망울엔 고요한 하늘이 걸려 있었다. 노예로 팔려야 했던 쓰라린 역사 속 상처를 어루만지며, 고단한 도시의 삶으로 뛰어드는 세네갈 사람들의 눈빛에 서린 희망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여행의 끝이라 여겼던 아프리카야말로 여행의 시작임을. goldwis e 2014 Ma rch 2 9
  17. 17. 3 0 2 1 서아프리카 아프리카의 흑진주, 세네갈 다카르 세상에는여러희망이있다.이룰 수 없는 꿈도,반드시이뤄내는 꿈도 있다.때로는 꿈을 꾼다는것, 그스스로희망이되는것도있다. 이룰 수있는 꿈인지아닌지재는 것은 사치에가까운일일지도 모른다.그런희망조차절실히 필요한 곳이아프리카다. 아프리카의 파리, 다카르 사하라 사막에서시작된 뜨겁고 건조한 열풍 하르마탄(Harmattan)이 불어오는 세네갈 수도 다카르. 아프리카에서 잘사는 도시 중 하나라지만 가난과 실업,질병이 만연한 그곳의 삶은 여전히고단해 보인다.‘아프리카의 파리’라는 낯간지러운 찬사가 무색할 정도로 도시는 매연과 오물,형편없는 도로와 집들로 가득하다.어쨌거나 세네갈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또는 돈을 벌기위해 다카르로 몰려든다.시골에 살면 밥은 먹을 수 있지만 돈을 만질 수는 없다.개발 경제 시대때서울이 그랬듯 세네갈 인구의1/5이 사는 이 도시는 주택난과 실업,각종 쓰레기와 자동차 매연과 교통 체증으로 열병을 앓고 있다.대서양 연안의 유럽식리조트에서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계획이아니라면 다카르는 그다지 추천할 만한 여행지는 아니다.그나마 시내에는 아프리카인의 삶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가볼 만한 여행지몇 곳은 있다.아프리카 노예 무역이시작되었다고 알려진 고레섬과 해변에 자리한 어시장 숨베디운,시내 중심부 독립 광장이그곳이다. 다카르 시내의 중심을 이루는 독립 광장은 서울로 따지면 광화문 네거리에 해당한다.이곳을 중심으로 대통령 관저와 주요 관공서, 금융 기관, 특급 호텔 등이밀집해있다.외국인과 비교적 부유한 사람이 자주 찾는 이곳에도 조악한 기념품을 파는 잡상인과 구두를 닦는 소년들이 손님을 기다린다.광장 인근에는 고만고만한 점포와 레스토랑이밀집한 시장도 있다.시내를 벗어나면 활기 넘치는 재래시장을 만날 수 있다.대서양에서 잡은 생선을 거래하는 숨베디운 어시장이다. 숨베디운 어시장과 어부 이브 숨베디운(Soumbedioune)의아침은 피로그(Pirogue: 통나무 속을 파낸 작은 고깃배)를 바다에띄우는 함성으로 시작된다.동쪽 바다가 붉게 밝아오면 숨베디운 어부들은 바다에 나갈 채비를 서두른다.적으면 둘 많으면 네댓이 짝을 이뤄 한 배에 오른다. 숨베디운의어부 이브와 사촌형이사는 매일 아침피로그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구름이낮게 깔렸지만 바람은 순하다.뼈가 굵어질 무렵부터함께 배를 탄 형제가 어부로 살아온 지도 20년.다섯 아이를 키우고 작지만 피로그도 한 척 마련했으니어부로서그다지 3 1 낡은트럭이나폐차직전의통학버스를개조한다카르의대중 교통수단.2 아프리카북동부대서양해안에자리한다카르는 내륙에비해기후가선선한편이다.3 굵은통나무원목의속을 파내만든세네갈의전통목선피로그.
  18. 18. 실패한 삶은 아니다.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이브는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신(알라)의 뜻이지요.” 물결은 신의 축복처럼고요하다.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물살을 따라 잘게 부서지고 또 떠밀려먼바다로 흩어진다. 숨베디운에서남서쪽으로 2시간 떨어진 난바다까지배를 몰고 나간다.이브가 자주 닻을 내리는 곳은 서너군데다.사촌형이사가 배를 모는 동안 이브는 미끼로 쓸 정어리를 손가락 한 마디정도로 토막 낸다.아가미와 내장은 따로 모아 밑밥으로 써야 한다. 오전 10시.구름이머물던 자리에 하늘의퍼런 속살이 드러난다. 이사가 엔진을 끄자 이브는 닻을 내린다.손가락에 테이프를 두껍게 감고 바다에 낚싯줄을 푼다.이브는 정어리의내장과 머리를 절구에넣고 빻은 후 바다에 뿌린다.낚시 추가 바다 바닥에 닿으면 낚싯줄을 감았다 풀기를 반복한다.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미세한 힘의변화를 느낄 때 줄을 채야 한다.생각보다 빠르게입질이 왔다.제법 묵직한 저항이이브의 손끝에전달된다.검고 주둥이가 뾰족한 물뱀이낚시 끝에 매달려나온다.놈은 성격이 사납고 거칠기 때문에 몽둥이로 머리를 때려기절시킨 뒤에 배로 들여야 한다.첫 수확이지만 그다지달갑지않은 손님이다.이사도 곧이어 한 자 정도 되는 돔 한 마리를 낚아 올렸다.그러나 이후 작은 파도만 이따금 뱃전을 두드릴 뿐 바다는 깊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이 사납게 달려든다.손바닥만 한 고깃배안에 몸을 숨길 은신처는 없다.물 한가운데있어도 처지는 사막에있는 것과 같다. 숨베디운 어부들은 해 지기전에 난전이열리는 해변으로 돌아온다. 장사치들은 바다에서 돌아오는 어부들을 해변에서맞이한다. 바다에서갓 잡은 어물들은 바로 해변에서거래되거나 어부와 가족이직접팔기도 한다.다금바리와 돔,장어와 민어,바라쿠다 등 우리나라에서귀한 대접을 받는 어종도 수두룩하다. 어시장 근처로 해물 굽는 구수한 냄새가 풍긴다.이물이 잔뜩 붙은 살집 두둑한 홍합과 새우,그리고 따로 팔기에는 작은 잡어들을 숯불에 구워 그 자리에서맛볼 수 있다.한 입베어물면입안에 짭짤한 바다 향이감돌고 씹는 맛도 그만이다.숨베디운 어시장은 서민의억척스러운 삶의열정과 활기로 가득하다. 고레 섬 이야기 다카르의베르데(Verde) 곶 남쪽 바다.육지에서배로 불과 20분 거리에 작고 아담한 섬이대서양에떠있다.섬의이름은 고레(Goree). 불과 150년 전 사람을 사고팔던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를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고레섬은 생각보다 작고 조용하다.선착장에서섬 중심인 광장으로 1 information 세네갈개요 수도는다카르.직항편은없고프랑스파리를경유해야 한다.프랑스어와월로프어를공용어로쓰지만, 관광지나호텔등에선영어도사용한다.건기인 12~5월이여행하기에좋고,우기인7~8월에는열대성 강우가쏟아지므로가급적자제한다.인구의95%가 이슬람교도라서돼지고기를먹지않는다.다른 아프리카국가에비해치안은비교적안전한편이지만, 관광지외의외곽지역,슬럼,야간에는출입을삼가야 한다.시장이나복잡한거리에서여행자를대상으로 소매치기가빈번히발생하므로주의한다. 비자및예방접종 2013년7월이후전자사증제도가도입되었다.입국전 반드시www.visasenegal.sn을통해온라인신청, 접수후비자발급비용50유로를신용카드로 결제해야한다.이메일로지불확인서(Registration Receipt)와사증발급인정서(Approved Pre-enrolment)를출력한후세네갈공항입국시 제출하고비자를받는다.입국전말라리아예방약을 복용하거나준비해야하며,황열병예방접종후접종 카드를챙겨간다. goldwis e 2014 Ma rch 3 3 1 매일아침열리는숨베디운어시장.대서양에서매일잡은생선들이거래된다.2 어부이브의집.두칸 남짓한집에10여명의아이들과가족이모여산다.3 다카르에서1시간거리인고레섬앞바다.아프리카 노예들이팔려간곳으로악명높다. 1 2 3
  19. 19. 3 4 들어가면 한가운데아프리카의 상징인 바오밥나무가 우뚝 서있고, 그 뒤로 프랑스 식민 시절 만들어진 붉고 노란 건물이 오후의 뜨거운 햇살 아래 그림처럼 자리한다.천천히걸어도 섬전체를 둘러보는 데2시간이면 충분하다.섬의 사방을 험악한 절벽과 파도가 부서질 때마다 허연 이빨을 드러내는 암초가 둘러싸고 있다.선착장에서 다시배를 타고 나가지않는다면인간의힘으로 이섬을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섬은 어떤 이에게는 고요한 낙원이었겠지만 다른 이에게는 죽음이기다리는 지옥이었다.이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가장 참혹한 비극이벌어졌다는 사실에 숨이막히고 가슴이떨린다.비극적아름다움이란 존재하지않는다.비극의 당사자에게 그런 감상은 진실을 감추는 수사(修辭)에지나지 않는다. 섬 중앙 광장에서언덕으로 이어진 길에레스토랑과 기념품점이 즐비하다.현란한 원색을 사용한 아프리카풍 그림을 그리는 거리의 화가들이언덕길을 오르는 여행자들을 보며아는 척을 한다.언덕 위에는 대서양을 겨냥한 거대한 녹슨 포대가 있다.모래 그림을 만드는 이들이이 황량한 포대를 아틀리에로 쓴다.이해안 반대편에 고레섬의 참혹한 역사를 증언하는 ‘노예의집’이있다. 과거섬을 점령한 포르투갈,프랑스,영국의 노예 상인들은 이집에서 유럽과 아메리카로 노예를 팔아넘겼다.19세기말 네덜란드 노예 상인이 소유하던 이가옥은 노예 제도가 폐지된 후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노예의집안으로 들어서면 2층으로 올라가는 양 갈래계단이첫눈에 들어온다.1층은 노예를 수용하는 공간이고, 2층은 노예 상인의거처였다.빛조차 들지않는 방에 사냥한 노예를 수백명씩가두었다.너무 비좁은 나머지그 자리에 선 채로 용변을 보고 잠들어야 했다.바닥은 오물로 질펀했고 악취와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노예들은 보름에서길게는 한 달까지이곳에서 살면서 지옥을 체험했다.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은 노예들은 섬앞바다에 버려져 상어밥이되었다.거친 파도와 상어떼가 에워싼 고레섬을 빠져나갈 방법은 둘뿐이다.죽어서 상어밥이되거나 노예 선에 실려 팔려가거나….노예 무역을 통해 아메리카로 끌려간 아프리칸의 후예는 법적으로는 비록 노예의 굴레에서벗어났지만,비인간적인 삶의 굴레에서는 완전히벗어나지 못했다. 아프리카에서인간을 사냥하던 이들의 후예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다.고레섬이더욱 비극적인 이유는 이같은 불의의역사가 자행된 현장이었기때문이다.고레섬의 담장과 언덕에는 피처럼 붉은 부겐빌레아가 철마다 피어난다.부겐빌레아가 피워낸 화려한 빛의정체는 꽃이아니라 잎이다.진짜 꽃은 잎 속에 숨어있다.우리가 보는 세상의얼굴이 모두 진실이아닌 것처럼…. 글ㆍ사진 박정호(여행 칼럼니스트) information 세네갈통화및물가 세네갈화폐단위는세파프랑(CFA Franc,XOF)이고, 1세파프랑은약2.7원.유로나달러를준비해현지에서 환전한다.수도인다카르나제2의도시인생루이는 물가가비싸기로악명높다.택시의경우가까운거리는 요금이보통1,000세파프랑(약2,700원),10분이넘는 거리는2,000~2,500세파프랑.매번흥정을해야 하며외국인에겐통상2배의요금을요구한다.그나마 두도시외지역은택시자체가없다.숙소의경우 여행자가이용하는중급호텔은한화로8만원이 넘지만시설은형편없다.외국인이이용하는 레스토랑은한끼식사에최소 2,500~5,000세파프랑(약6,000~1만4,000원) 수준이다. 음식 주요음식은풀레(Poulet)나야사풀레(Yassa Poulet)로,양념해구운양고기또는닭고기와쌀, 샐러드를한접시에담아내온다.땅콩을넣은스튜, 마페(Mafe)도즐겨먹는다.가정식으로는다카르의 어부이사가만들어준체부젠(Ceebu Jen).향신료와 토마토,당근,양파등각종야채,생선을밥과함께 버무려찐음식이다.생선대신고기를넣으면 체부얍(Ceebu Yaap)이된다.다카르에는양식과중식, 한인음식점도있다. 1 goldwis e 2014 Ma rch 3 5 3 4 1 다카르의어부이브.매일새벽그의사촌형인이사와함께인근해안에나가낚시로고기를잡아 숨베디운시장에판다.2 고레섬에핀부겐빌레아.3 해변에서만난밝은표정의아이들. 4 고레섬해안절벽의해안초소.제2차세계대전당시연합군이방어용진지를구축한지역으로섬 곳곳에서포대를볼수있다. 2
  20. 20. 3 6 Travel_길 위의 풍경 2 1 goldwis e 2014 Ma rch 3 7 남아프리카공화국 영토 안에 자리한 산악 국가 레소토는 면적이고작 3만344㎢로 우리나라 경상도 크기만 하며,인구는 210만 명밖에 되지않는다.예부터‘킹덤인 더스카이(Kingdom in the Sky)’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이는 하늘에 맞닿은,아프리카에서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한 나라라는 의미다.실제로 이나라의해발 고도는 가장 낮은 지점도 1,000m나 된다.그만큼 영토 대부분이2,000m 이상의 고산 지대다.레소토는 남반구에 자리해 한겨울이6~8월에 해당하지만,5월이나 9월에도 기온이많이내려가 해발 2,000m를 넘는 고지대에는 눈이내리기도 한다.기온이영하로 떨어지는 추위에서 생활하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 풍습은 덥고 습한 해안가나 사바나 기후에서 사는 아프리카 사람들과는 확연히다르다. 레소토는 ‘소토족이 사는 땅’이란 의미다.레소토의 주요 부족은 바소토(Basotho),소토(Sotho),츠와나(Tswana)다.농경과 함께 목축업을 주로 하는 이들은 추위 탓에 바소토 블랭킷(Basotho Blanket)이라는 담요 같은 모포를 몸에 두르고 생활한다.아프리카 어느 곳에서도 이처럼 모포를 두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볼 수 없기에 바소토 블랭킷은 이나라 고유의 문화적아이템이되었다. 드라마틱한 고갯길을 넘다 레소토로 들어가는 관문은 여러 군데가 있지만,남아공 동부 산악 지역에서 들어가는 길이가장 인상적이다.이곳은 유네스코에서정한 세계 자연유산 드라켄스버그(Drakensberg)의 북부 산악 지대를 둘러보고,남아프리카 최대비경길이라는 사니패스(Sani Pass)를 통과할 수 있기때문이다.사니패스는 해발 2,873m의험난한 고지대를 넘는 고갯길이라 일반 차량이아닌 사륜구동 차량만 운행이가능하다. 남아공의 드라켄스버그에서 사니패스까지는 거리가 얼마 되지않지만 비포장도로라 시간이 좀 걸린다.울퉁불퉁한 바위와 큰 돌을 피해 협곡 길을 헤쳐가려면 노후된 사륜구동 차량보다는 먼저 노련한 운전사가 숙련된 운전 솜씨를 발휘해야 한다.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할 무렵멀리험준한 산자락 사이로 V자형계곡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푸르스름한 모습을 보노라면 스코틀랜드의 낮은 구릉지의 풍광이떠오른다.유명세만큼 드라마틱한 드라켄스버그의비경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에여행자들은 차를 잠시멈추고 망원경을 꺼내먼 산을 살펴보거나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건조하고 황량한 남아프리카 하늘에 걸린 땅,레소토 깎아지른 듯한절벽을 마주한해발2,873m의 비경길을지나면 아프리카의티베트라는 레소토왕국에들어서게 된다.영토의대부분이 산악지대인이나라는 아프리카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의독특한 문화와 마치다른세상에 온 듯한 몽환적인산세의 풍광이아프리카의다른 곳에서는만끽할 수없는 신비한매력을발산한다. 3 1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레소토의고산지대까지이어진 드라켄스버그산악지대의비경.2 해발2,873m의고갯길인사니 패스의드라마틱한풍광.3 사니패스인근의한마을움막집에 거주하는여성이방문객에게전통민예품을보여주고있다.
  21. 21. 3 8 2 3 1 2 1 추운고산지대에서살아가기에레소토사람들은두꺼운모포를걸치고다닌다.2 레소토의수도인 마세루에자리한서양식스타일의교회건물과주변모습.3 언덕위에서내려다본마세루의모습.작은 변방의타운에서점차근대화된도시의모습으로변모하고있다.4 탁트인하늘과거주지역사이에놓인 마세루의국도위로자동차들이달리고있다. goldwis e 2014 Ma rch 3 9 기암괴석도 보이고 듬성듬성 자란 키작은 초목도 눈앞에어른거린다. 스펙터클한 드라켄스버그의 산세를 바로 밑에서 올려다볼 수 있다는 점이 황홀하기만 하다.사니패스의최정점에 오르면 매서운 찬 바람이 콧등을 휘감는다.사니패스라는 안내판이 놓인 곳 주변에는 인적이 없다.레소토의 출입국 사무소와 여행자 숙박 시설 사니톱 샬레(Sani Top Chalet)만 덩그러니자리하고 있다. 담요를 두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 레소토에입국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이곳 사람들의 차림새다.유목민처럼바소토 블랭킷이라는 담요를 두른 모습이 이채롭기만 한다.흑갈색 말을 이끌고 어디선가 나타난 청년들의 꾀죄죄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웃음을 머금게 한다. 하지만 눈인사를 하며타지에서 온 여행자를 맞이하는 이들의 눈빛은 순박하기만 하다. 국경에서멀지않은 산악 마을에는 자연석을 쌓아 만든 원추형가옥이 몇 채있다.그 안으로 들어가면 고산 지대 주민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추운 날씨에 난방도 없는 곳에서어떻게겨울을 보낼까 싶은 생각이 가장 먼저뇌리를 스친다.전기,난방은 물론 가스조차 없는 원시적 주거형태라니,지구촌이라는 말이 공공연히쓰이는 글로벌 시대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담요를 두른 채머리에 모자를 쓴 한 여인이앞에볏짚으로 만든 식기도구를 잔뜩 늘어놓은 채어눌한 영어로 부족과 마을,생활 풍습 등을 알려준다.그러고는 가축의배설물로 만든 것 같은 연료로 물을 끓여 차를 대접하고 구운 빵을 내놓는다.딱딱한 빵 한 덩이와 한기탓에 information 가는길 아프리카최대항공사이자스타얼라이언스 멤버인남아공항공(www.flysaa.com)은홍콩과 남아공의요하네스버그를경유,레소토의수도 마세루까지운항한다(투어및항공권문의: 인터아프리카여행사www.interafrica.co.kr, 02-775-6006). 사니패스투어 사니패스를방문하려면남아공 더반(Durban)에서투어를통해방문하는것이 가장편리하다.더반의주요호텔과시내여행사 등지에서투어를알선해준다.1일투어는아침 일찍출발해야하는데방문객은주로1박2일 코스로사니패스를다녀온다.이곳을방문하려면 반드시사륜구동형차량을대여해야한다. 여권을지참,사니패스방문후국경심사를거쳐 레소토를방문해최소2,3일일정으로레소토의 산악지대를여행해보자. 4
  22. 22. 4 0 1 2 1 goldwis e 2014 Ma rch 41 식어버린 차 한 잔이이들에게는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에너지이자 한 끼식사다. 사니패스 일대를 떠나 미니버스를 타면 레소토 북동부에서가장 큰 타운인 모코틀롱(Mokhotlong)에 도착한다.어찌 보면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레소토 여행이시작된다.남아공에서레소토로 들어가는 여행자의기분은 마치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시간을 거스르는 여행처럼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게 또 있을까 싶다.무엇보다 현대식시설과 발전된 도시 문명을 자랑하는 곳에서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곳으로 한발 옮겨갔다는 사실이마음을 설레게 한다.사니패스를 통해 레소토로 들어온 여행자 대부분 모코틀롱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눈여겨볼 만한 관광 명소는 없지만 이 작은 마을은 흡사 개척시대에 남아 있는 변방의이미지를 고스란히간직하고 있다. 말을 타고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담요를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레소토 고유의 문화적 숨결이엿보인다. 레소토의 숨은 비경을 보여주는 모할레 댐 수도 마세루(Maseru)는 위에서언급한 모코틀롱에서미니버스로 8시간 거리에있다.모코틀롱에서마세루로 가는 길은 이나라 북부 산악 지대의 드라마틱한 산세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깎아지른 듯한 바위산 아래예배당이다소곳이 자리한 모습은 지구 상 어디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풍광이다.말이이끄는 달구지위에앉아 바소토 블랭킷을 걸치고 어디론가 떠나는 현지인, 산 중턱에 홀로 앉아 피리를 부는 목동의 모습에서이들의 소박한 삶의일면을 엿볼 수 있다. 마세루는 영국의지배 당시식민 행정 당국이 들어섰던 곳으로,1869년 독립한 뒤이나라의 수도가 되었다.마세루는 온화한 기후 덕분에이 나라에서현대 문명의 모든 이기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인 한편, 초라한 행정타운에서 급속히팽창하는 현대 도시의 단면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여행자에게는 남아공 최대의 도시 요하네스버그와 연결된 이나라의 국제적 관문이자 주변 고산 지대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레소토의 그림같은 풍광을 만끽하려면 마세루에서 운전사와 함께 차량을 대여해 하루 일정으로 숨은 비경을 찾아보는 게 좋다.추천할 곳은 모할레(Mohale) 댐.레소토 중부에 자리한 이댐은 남아공 일부 지방에 부족한 물을 제공하기위해 지난 2002년 남아공의기술과 지원으로 세운 댐이다.센쿠냐네 강의 한쪽을 막아 물 흐름을 차단해 강의 수량이많아진 곳에서 물을 충분히 쓸 수 있게건설했다. 댐 주변 산세와 인공 호수 같은 모양의 풍광이가히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흥취와 풍경을 담고 있기에 하루 일정으로 방문하기 좋은 명소다. 글ㆍ사진 김후영(여행 칼럼니스트) 4 information 비자 대한민국여권소지자는관광목적으로비자 없이레소토와남아공에서각각60일,30일간 체류할수있다. 환율 남아공화폐단위는랜드(Rand)이며,1랜드는약 100원이다(2014년현재).레소토의화폐단위는 레소토로티(LSL)이며,랜드와화폐가치가 동일하다.1레소토로티는약100원.레소토 현지에서는레소토로티와함께남아공랜드가 널리사용된다. 1 남아공지역에식수를제공할목적으로세운모할레댐주변의 스펙터클한장관.2 레소토의시골에서흔히볼수있는전통 양식의움막집.3 레소토에는 고산 지대에서 목축업을 하며 사는 사람이 많다. 사진은 피리 부는 목동의 모습. 3
  23. 23. 4 2 목동의 노래 나의기억 속에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노래 한 곡이저장돼있다.그 노래가 언제 발표되고 어떤 경로로 내게 왔고,어떻게익혀진 것인지나는 아는 게없다.특별히 노래를 배우려고 한 적도 없고 가사를 암기한 적도 없는데,아주 어린 시절부터그것은 내정서와 감성의일부인 것처럼나를 따라다녔다.그것이바로 ‘목동의 노래’다. 끝없는 광야,오늘도 하루 / 소와 말을 동무 삼는 / 나는 외로운 목동 / 흘러흘러서가는 곳 어디/ 동서남북 바람 부는 데로 / 그리운 고향에는 언제언제가보나 / 눈을 붙이고 꿈이나 꾸리/ 부모형제정든 마을사람 / 그리운 사람과는 언제언제만나나 문인들이 모이는 술자리에서나는 가끔 그 노래를 부른다.그 노래를 부를 때 좌중의 사람들은 뜨악한 표정을 짓지만 나는 그 노래의정서에 흠뻑취하고 만다.광야에서 소와 말을 돌보는 양치기의정서를 21세기에 들이대는 게 온당한 일인가.스스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지만 그 노래에깃든 정서는 전생의혈연을 기억해내는 일처럼 내가슴을 아리게 한다. 피에르 퓌비 드샤반(Pierre Puvis de Chavannes)이그린 ‘목동의 노래’라는 그림도 있다.1891년에 그려진 유화인데,그림에는 광야에서 목동 생활을 하는 인물 네명이 나온다.인물들의 모습에서갈망, 동경,고뇌가 느껴지는 그림이다.그림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곳을 동경하는 인물과 현재를 힘들어하는 인물,그리고 묵묵히현실에 충실한 인물이 보인다.하루의대부분을 광야에서보내고,때때로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목동의 삶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그들의 표정과 모습에서왠지 과거의 우리가 읽히는 건 무슨 까닭일까. 유목하는 인간, 호모 노마드 여러해 전의일이지만 프랑스의지성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가 쓴 호모 노마드(L’homme Nomade)를 만났을 때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깊은 충격에 사로잡혔다.인류의정체성을 호모 노마드, 즉 ‘유목하는 인간’으로 풀어낸 그의지성에 깊이 공감해 그것으로부터내정체성을 되짚어보지않을 수 없었다.지금까지내가 알아온 모든 지식과 역사가 정착민의 관점에서잉태되고 분만된 것이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태초의인류는 지구를 떠돌아다니는 여행자들이었다.인류의전 역사를 놓고 볼 때 정착의역사가 고작 6,000년이고 유목의역사가 600만 년이라 0.1% 대99.9%이니 호 모 노 마 드 의 유 전 자 를 지 닌 그 대 에 게 Humanities_인문학 산책 goldwis e 2014 Ma rch 4 3
  24. 24. 4 4 상호 비교의대상이 못 된다.인류의역사는 노마드를 통해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몽골의 유목민이나 유럽과 북미이주민이 세계경제력의 판도를 바꾸고 광야 생활을 토대로 한 기독교 역사 역시 노마드적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그럼에도 0.1%의 정착 역사는 99.9%의 노마드 역사를 야만과 무지의 세월로 가차 없이폄훼한다. 문화(Culture)라는 말이경작(Cultivation)에서 온 것이고,그것이정착의 바탕이 되었음을 감안한다면 정착민이방랑과 유랑을 일삼는 유목민을 얼마나 야만스럽고 무지한 존재로 치부했는지절로 알게 된다. 자크 아탈리는 30억명이상의인류가 일상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놀라운 미래 사회를 예견한다.아침은 서울에서먹고 점심은 베이징에서먹고 저녁에는 파리에서 와인을 마시는 삶을 상상해보라.특별한 부자의 삶이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삶이 세계를 일일생활권으로 삼으며이동한다면 우리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드넓어질 것이다.자크 아탈리는 그것이기술 문명의진보나 발전 때문이아니라 600만 년 동안 인류의 유전자 속에내재돼온 인간의 본성때문이라고 설파한다.정착민은 국가를 만들고 세금을 거두고 감옥을 만들고 저축을 권장하고 국익을 위한 전쟁을 하기위해 총,대포,화약을 만들어냈다.반면 노마드는 불,사냥,언어, 농경, 목축,신발, 옷,연장, 제식,예술, 음악,계산,바퀴,법,시장과 민주주의,나아가 신(神)까지만들어냈다. 자동차,비행기,인터넷,텔레비전,휴대폰,심지어인공위성,우주선,우주여행, 우주탐사 같은 것도 전적으로 노마드적기질의 산물이다. 노마드는 불편하지만 자유로운 인생을 추구한다.한곳에머물지않고 자유롭게 떠돈다는 것이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몰고 오는지 한곳에 눌어붙어 사는 정착민은 잘 알고 있다.그래서정착민은 ‘집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좌우명처럼마음에 품고 산다.하지만 세상을 떠도는 노마드적 삶은 모험과 고난을 겪으며 창의적인 산물과 goldwis e 2014 Ma rch 4 5 삶의 방식을 끝없이고안한다.필요는 발명의어머니가 되고 인생에필요한 것 대부분을 길 위에서배우니세상이 곧 살아 있는 지식과 지혜의 교과서가 된다.정착민이 노름을 하고 살롱에서 술을 마시며인생을 탕진하는 동안 노마드는 노래를 만들고 별자리를 보며시를 짓는다.창조적인 자유인,그들이 곧 ‘호모 노마드’인 것이다. 호모 노마드 이후 21세기는 디지털 노마드의시대다.기동력, 순발력,창조력은 현대인이갖춰야 할 필수 덕목으로 자리 잡은 지이미 오래다.그것을 위한 도구로 인터넷과 휴대폰,노트북이 활용된다.그것들만 있으면 앉은 자리에서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일별하거나 떠돌 수 있다.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한국이디지털 노마드의신세계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잡다한 것 모두 제하고 초고속 광대역 통신 하나만 예로 들어도 기동력, 순발력,창의력은 한국인의전매특허인 것처럼 표 나게 두드러진다. 하지만 자크 아탈리가 예견하는 노마드의미래전망이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미래의 국가는 노마드 행렬이지나가는 오아시스가 되고 기업은 제한된 시간에 주어진 역할을 맡은 사람이 모였다 흩어지는 유랑 극단이나 서커스가 될 것이라고 자크 아탈리는 예견한다.그뿐 아니라 미래의인류는 부유하게 즐기며 사는 소수의 하이퍼 노마드(Hyper Nomad) 부류, 농민·상인·공무원·의사·교사 등의정착민 부류, 생존을 위해떠돌아다니는 노숙자·이주노동자 등의인프라 노마드(Infra Nomad) 부류로 나뉠 것이라 예견한다.2050년경 극빈층인인프라 노마드가 인류의절반을 차지함으로써 그들은 하이퍼노마드와 충돌할 것이라는 전망은 노마드적 세계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인류의 바람직한 미래로 자크 아탈리는 트랜스휴머니티(Trans-Humanity)를 제안한다.정착민적이면서도 노마드적인 노마드, 즉 정착민적가치와 노마드적 가치의변증법적가치를 절충형으로 제시하는 것이다.그렇게 바람직한 신인류가 나타날지의문이지만,한국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찾아내야 할 새로운 가치는 트랜스휴머니티보다 구체적이고 생산적이어야 할 무엇이다.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이곳에 정착해 살고 있다.하지만 나는 늘 어디론가로 떠나고 싶어 한다.’ 그 두 가지 상반된 갈등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열심히일한 자, 떠나라!’라는 광고 문구처럼열심히일한 뒤에여행을 떠나지만 모든 여행은 떠난 자리로의회귀를 전제로 한다.이와 같은 불화와 반복이 죽는 날까지되풀이된다. 그것에서영원히벗어나는 길이배낭 하나 걸머지고 세계를 떠돌며 사는 것이라고 조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여행도 하지말고 오직일만 하며 살라고 조언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그런 의미에서21세기의진정한 호모 노마드는 인생의 행로를 밖이아니라 안으로 설정하는 지혜를 갖출 필요가 있다.드넓은 하드웨어적 유랑은 이미앞선 인류가 600만 년 동안 되풀이했으니답습할 필요가 없다. 내면의 노마드는 창조의길로 이어지고,창조의길은 좁은 지구적 삶을 위성시각으로 내려다보는 우주적지혜를 심화시킬 것이다.그런 의식을 지닌 사람이21세기를 살아가는 멋진 창조인,호모 크리에이터(Homo Creator)가 될 것이다. 글 박상우 일러스트 홍소희 글쓴이박상우 중앙대학교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1988년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중편스러지지않는 빛이당선되어문단에 데뷔했으며,1999년내마음의 옥탑방으로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첫창작집샤갈의 마을에내리는눈이주목을받아 1990년대작가군의선두주자로 활동하며독산동천사의시, 호텔캘리포니아,사랑보다 낯선,인형의마을,혼자일때 그곳에간다,작가등많은 작품을발표했다.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겸임교수를거쳐현재 소설창작커뮤니티 ‘소행성B612’에서강의하며많은 후배작가를배출하고 있다.
  25. 25. 4 6 철학박사 박재희 아름다운 문양이 넘쳐나는 인문의 시대를 위해 계절이 바뀔 때, 사랑을 할 때,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술 한잔할 때, 친구를 만날 때 욀 수 있는 가슴에 가장 와 닿는 시 10편. 멜로디 하나하나 깊숙이 이해하고 느끼고 행복할 수 있는 음악 10곡. 좋아하는 인생의 철학이 담겨 있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고전 10편. 박재희 훈장은 이것만 있으면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한다. People_리더와의 만남 goldwis e 2014 Ma rch 4 7 사실 그는 철학박사이자 교수이며 민족문화콘텐츠진흥원의원장이다.그러나 대중에게 그는 ‘훈장님’이다.KBS라디오 시사고전(이하 시사고전)을 7년째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붙은 호칭이다.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아래서어릴 때부터고전을 배웠죠. 할아버지가 진로를 앞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라고 하셨는데 다른 걸 생각할 수 없었어요.그냥 좋았으니까요. 좋아하는 걸 하면 마음이편안하잖아요.사자소학, 명심보감으로 시작해논어,맹자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게 참 재미있었어요.마침성균관대학교에 관련된 과가 있다고 해서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했죠. 그리고 사람들에게 고전의재미를 알려주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시사고전을 7년 넘게진행하다 보니이제저더러 다들 훈장님이라고 해요.” 그는 ‘훈장’이라는 호칭이 참 좋다고 했다.“영예로운 호칭이잖아요.가르치는 어른, 얼마나 좋아요.” 천천히차를 우리며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고전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이야기를 주고받다 본격적인 질문을 했다.이미지 속 훈장님보다 훨씬 싱싱한 젊은 훈장님을 만난 건 묻고 싶은 게있어서였다.눈사태로 인한 재해, 동계 올림픽으로 어수선한 와중에 슬며시 봄기운이 공기에 닿았고 아차,더 늦기전에 서둘러야지했던 것이다. 소중하게 주어진 새로운 해를 어떻게 하면 조금 더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고전 속에진리가 있다는데,고전을 오래 공부한 훈장님이라면 알고 있지않을까 싶어 찾아간 길이었다.질문을 하자 박재희 교수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인 문 학, 내 인 생 을 위한 학 문 “패턴을 만드세요.” 패턴이라니? 삼각형,사각형,오각형 아니면 직선,사선으로 이루어진 무늬 말인가? “맞습니다.그 무늬요.자기인생의 문양을 만들어야 해요.하늘의 문양을 뭐라고 합니까? 천문이라고 하죠.자,그렇다면인간의 문양이뭐겠어요? 인문입니다.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인문학을 해야 해요.글월 문자 인문학이아니라 문양 문자 인문학 말입니다.” 그는 이어말했다.하늘을 보면 온갖 문양이아름답게 펼쳐지는데,현재 우리는 입시,취직, 승진 그리고 자식의 입시,취직, 승진.오직이 세 가지 문양만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인생팔미(人生八味)”.그러니까 문양을 여덟개 고전에 서 답 을 찾 다
  26. 26. 4 8 만들어야 해요.인생팔미는 중용에 나오는 말인데,인생을 좀 더 풍요하게 해주는 여덟가지죠.그 첫째가 학습의 문양입니다.배움이라는 것은 인간을 아름답게 해주는 문양이죠.배움을 통해 성장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되고,큰 가치를 이해하게되니까요.안타까운 게지금 학습의 문양이없어지고 취직과 자격증의 문양만 남았어요.진짜 배움을 찾아보는 것,그것이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관계의 문양이에요.이해관계에 따라 만났다가 이익이없으면 사라지는 관계는 문양을 새길 시간도 여유도 없죠.부모 자식간에도 친구 간에도 동료 간에도 아름다운 관계의 문양을 만들어가야 해요.셋째로 직업의 문양입니다.도덕 시간에직업은 나의 꿈을 성취하고 삶의의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배웠는데,어디 현실에서도 그럽니까? 연봉,조건,다른 사람의시선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니까 일에대한 성취감이나 자부심이없죠.업은 없고 직만 남은 거예요.넷째는 음식의 문양이에요.그냥 배를 채우기위함이아니라 나를 살게 하는 음식과 공존하는 마음이있어야죠.더불어다섯째로 건강의 문양도 중요하고요.여섯째 풍류의 문양이없어요.여행을 자주 다니지만 진짜 눈과 가슴에 남을 여행이아니라 어디 다녀왔다고 뻐기기위한 행위이기쉽죠.음악도 마찬가지예요.피아노를 칠 줄 아는 게 중요한 게아니라, 음악을 얼마나 가슴으로 이해하고 즐기느냐가 중요한 겁니다.풍류의 문양만 잘 살려도 인생의아름다운 문양을 만들 수 있어요.그리고 봉사의 문양입니다.이것도 꼭 필요하지만 잊고 살기십상이죠.나만을 위해 사는 게아니라 남을 위해 나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는 삶이아름다운 삶이지않습니까? 마지막으로 성찰의 문양이있어요.아름다운 삶의 문양을 위해서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하죠.이런 문양을 새기면서 사는 게진짜 아름다운 삶이고,이 문양으로 이뤄진 학문이인문학입니다.그러니인문학은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뽐내기위한 공부가 아니라 내 참인생을 위한 학문이에요.” 인 문의 시대 를 위한 군자 학 교 그렇지않아도 지난해 말인 석 달 전쯤,그는 아름다운 삶의 문양이 사라짐을 고민하던 중 삶의 문양을 새기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었다.이름 하여‘군자 학교’.시범적으로 초등부와 청년부 각 20명,두 개기수로 8주간 매주 토요일 교육을 했는데,아이들의변화가 눈에 보였다. “삶의 문양을 고민하다 보니그렇게 사는 사람을 뭐라고 해야 할지생각해봤어요. 성인은 너무 크고 멀고,그렇다고 참 진(眞) 자를 써서진인이라고 하자니너무 종교적이고요.그래서생각한 게 군자(君子)였어요.조금 낯설고 오래된 말이지만, 풍류를 알고 자신을 알고 끊임없이 학습하면서남을 배려하고 공존해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바로 ‘군자’거든요.” 군자에 생각이미치자 ‘삶의 문양을 만드는 법을 좀 더나은 사람에게 가르치자, 그래서 군자가 군자를 낳고 또 군자를 만들어온 세상 사람이 자신의인생을 아름답게 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렇게 문을 연 군자 학교 1기의 문양 수업이 끝났다. “음악의 문양,예절의 문양,다도의 문양,고전의 문양.8주 프로젝트로 이 삶의 문양을 가르쳤어요.아이들의변화는 어마어마합니다.여섯 살 아이들이예를 알고 goldwis e 2014 Ma rch 4 9 기다릴 줄 알고 나눌 줄 알게 됐죠.대학생은 철학이바뀌었어요.당장 눈앞의취직 걱정이아니라 자신이이 사회에서어떻게 쓰일지를 고민하게 됐으니까요.” 시범 삼아 문을 열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군자를 양성할 계획이다.그의 꿈은 전국에 군자 학교 228곳을 세우는 것이다.“228은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수예요. 228개의지방자치단체에 하나씩,전국 방방곡곡에 군자 학교를 세우고 싶습니다. 더나아가 미국, 중국,유럽 등 세계 곳곳에 군자 학교의 교육을 전하고 싶어요. 이번 1기를 잘 마친 청년에게이렇게 말했습니다.“각 분야에서 군자가 되어 당신의 문양을 만들고 나 혼자 끝날 게아니라 이 세상 다른 사람에게도 문양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그게 바로 인문의시대다”라고 말이죠.진짜 삶의 문양을 배울 수 있는 군자 학교를 통해인문의 꽃이피길 바랍니다.누구나 아름다운 문양을 갖고 사는 세상을 만들면 행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 믿습니다.” 박재희 교수는 다시한번 강조했다.“고전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다 알지 않아도 되고요.많이앎이 중요한 게아니라 가슴에 새기는 게 중요하니까요. 외우면 행복해지는 시10편, 음악 10곡,그림10점, 문장 여럿만 있으면 충분해요. 지금이라도 그것을 찾아내 자신만의 문양을 만들어보세요.” 그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편안해졌다.새해의 들썩임이너무 빨리 사라지고 봄바람이 불어온대도 시절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천천히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하나 새기는 삶이라면 서두르지않아도 조금 부족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테니말이다.마지막으로 청마해를 맞은 훈장님의덕담을 전한다. “젊고 푸른 청마도 좋지만 저는 올해한비자(韓非子) 세림(說林) 상편에있는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젊은 말은 힘은 좋은데지혜가 없는 반면 늙은 말은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누구나 저마다의 장기가 있는 법입니다. 늙은 말의아름다운 지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거죠.군자의 마음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장기를 발휘하는 지혜로운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 이재영(자유기고가, 엄마의 짧은 휴가 긴 여행: 예쁘다고 말해줄걸 그랬어 저자) 포토그래퍼 최충식 어시스턴트 박혜미 “삶의문양을고민하다 보니그렇게사는 사람을 뭐라고해야 할지 생각해봤어요.성인은너무 크고멀고,그렇다고 참진(眞)자를써서 진인이라고하자니너무 종교적이고요. 그래서생각한게 군자(君子)였어요.조금 낯설고오래된말이지만, 풍류를알고자신을알고 끊임없이학습하면서남을 배려하고공존해아름다운 관계를만들어가는 사람이 바로‘군자’거든요.”
  27. 27. 노루 한 마리가 여러짐승을 잔치에 초대했는데, 늙은 두꺼비가 상석을 차지했다.이를 시기한 여우가 천하를 주유한 견문을 뽐낸답시고 사해(四海) 문물이며천문 지리따위를 짓궂게 물어댄다.그러나 두꺼비는 전혀막힘없이척척 답변을 해서 오히려여우만 망신을 당했다고 한다.조선 후기의 우화 두껍전의 줄거리다. 두꺼비는 예부터겉은 어수룩하되 속은 지혜로운 의뭉스러운 동물로 통했다.임신부에겐 떡두꺼비같은 아들 낳으라는 게 최고의덕담이었고,두꺼비상(相)은 대기만성의 관상으로 꼽혔다. 집과 재물을 지키는 수호신이기도 해서한국인치고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다오’를 안 불러본 사람이없을 만큼 우리와 친숙하다. 두꺼비는 달에도 산다.예부터달을 형용하는 말에는 으레‘두꺼비 섬(蟾)’ 자가 들어가곤 했다.두꺼비와 계수나무가 있다 하여 ‘섬계(蟾桂)’,두꺼비와 옥토끼가 산다는 ‘섬토(蟾兎)’….원래 달 속의계수나무는 백약의 으뜸이라 했는데,두꺼비역시재생의 상징인 까닭에 월궁(月宮)의 동물로 우러름을 받았던 것이다. 두꺼비는 외적의침략을 물리치는 영물이기도 했다. 대표적 사례가 섬진강이라는 이름의 유래다.고려 우왕 때인 14세기 후반,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일제히 울부짖어왜구들이결국 바다로 후퇴했다고 한다.그리하여‘모래가람’ 또는 ‘두치강’으로 불리던 이름이 ‘섬진강(蟾津江)’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경칩(驚蟄)이되면 개구리만 깨어나는 게아니고 두꺼비도 함께 깨어난다.예전엔 봄이되면 산란을 위해 산 아래 논으로 수백 마리씩떼지어이동하는 두꺼비를 흔히 볼 수 있었지만,지금은 생김새조차 가물거릴 만큼 개체 수가 줄었다.이 봄에 두꺼비가 기다려지는 건 재물이아쉬워서가 아니라 그들을 품어줄 맑은 산하가 그리워서다.6일은 갑오년의경칩이다. 글 임유승(수필가) 두꺼비 wise Senior_골든라이프................................................................................................... 52 Business Tip_성공에티켓....................................................................................... 56 food essay_미각의즐거움...................................................................................... 60 Health_내몸다스리기............................................................................................... 64 Better Life_행복한삶으로의초대............................................................................... 68 Golf_홀인원을꿈꾸며................................................................................................ 74 Macroeconomics_크게보는경제........................................................................... 78 Tax_세금이야기....................................................................................................... 82 Real Estate_부동산................................................................................................ 84 Financial Product_금융상품가이드....................................................................... 86 wisegold WISE는 인생 제2막의 지혜로운 설계를 위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28. 28. 5 2 도시 농업으로 부식은 자급하자 Senior_골든라이프 goldwis e 2014 Ma rch 5 3 유미진(65세) 시니어는 지난해 내내여고 동창에게서 상추, 쑥갓,고추 등 유기농 푸성귀를 얻어먹었다.그 동창은 종묘사에서파는 모종을 사다 집마당에 심었고, 그렇게 자란 채소는 동창 부부가 먹고도 남을 정도였다.그러니가까이 사는 친구에게 신선한 부식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 경험을 통해 유 시니어는 베란다에있는 가장 큰 화분에 토마토를 심었고,그야말로 주렁주렁달린 수확의 기쁨을 맛보았다.그러던 차에 외국 여행 중 영국의런던 도심에서 도시 농부가 채소를 수확하는 모습을 보고는 올봄에는 자신도 도시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봄이 오기를 고대하는 이들이점차 늘고 있다. 도시 농업이 왜 생겨났나? 산업혁명의시발국인영국은 18세기말 이후 공업국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른 도시의 급격한 팽창으로 런던 교외지역은 도시계획과는 무관하게 도심에서밀려나 땅값이 싼 지역을 찾아 이동한 주민들의 주택이대거 들어섰다. 도시의 무한 팽창은 토지이용과 도시시설을 정비하는 데 많은 문제를 유발했다. 도시는 부와 번영의 상징이되었고,도시내 농업생산의필요성은 상실되었으며, 도시내 작물 재배는 사라졌다. 또 공간 확보와 오물·소음 등의 문제로 도시내 소규모 축산도 식량을 얻기위한 형태에서애완용 가축 기르기로 바뀌었다.그러나 제1·2차 세계대전 때겪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도시 농업의 중요성이다시 부각되었다.폐허가 된 도시에서 스스로 식량난을 해결하기위해 도시의뒷골목과 거리를 이용해 채소를 심거나 돼지와 염소를 기르기시작한 것이다.이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었다.이 당시의대표 도시 농업으로는 영국의 할당 채원지(Allotment Garden)와 도시 축산 운동,그리고 독일의 분구원 운동 등이있다. 영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채소와 과일 소비량의10% 정도를 도시 농업으로 해결했고,이후 농무성 주도하에 닭과 돼지를 키우는 도시 농업이정착했다.이 현상은 캐나다와 덴마크 등에까지 확산됐다.특히캐나다는 밴쿠버를 중심으로 도시내 공한지를 싼값에임대해 1943년 3만1,000톤에이르는 야채와 과일을 생산했는데,이는 1979년의가격으로 2,000만 달러에 해당한다. 현대에이르러서는 경제적 측면보다는 도시내 환경과 건강에대한 관심, 그리고 시니어층의 사회 참여및 여가 기회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도시 농업이 새롭게 조명되고 발전하고 있다.도시내폐열과 폐기물,길가에버려지는 낙엽 등을 이용해 토양을 비옥화하는 방법이나 화학 비료의 사용으로 발생하는 문제에대한 방지책을 각국에서연구하고 있다.이뿐 아니라 자연 관찰과 학습 기회가 적은 도시의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교육적 효과 역시식량 생산을 통한 경제적이점을 넘어서는 중요한 사회적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영국의 도시 농업형태는 할당 채원지라는 개인 단위의 농업 공간과 공동체 정원을 꼽을 수 있다.레저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은 할당 채원지에서성인인구의 80%가 여러방식으로 정원을 가꾸고 있으며,런던 거주자의약 14%는 자신의 information 서울시농업기술센터의 도시농업전문가교육 프로그램 서울시농업기술센터에서는도시 농업 육성과지원에따라2014년제4기‘도시 농업전문가양성교육’대상자를모집한다. 신청기간2014년3월3일~10일 교육기간3월24일~4월4일 교육시간09:00~18:00 (1일8시간,총80시간) 교육비무료 교육장소농업기술센터,농사체험장, 친환경농업체험교육농장등 인원100명 수강내용이론40%+실습40%+벤치마킹 견학및평가20%로도시농업전문가로서 활동에필요한이론과기술(도시농업의 이해와중요성,토양과비료,생리장해대책, 병해충관리,잡초관리,친환경농자재, 텃밭채소,가정과수,옥상농원,상자텃밭, 잡곡및서류재배,벼재배,강의기법등) 신청자격서울시민으로서농업계학교 출신자,농업관련자격증소지자, 영농경력자(3년),귀농교육등농업관련 교육(50시간이상)이수자,서울시소재농업 관련기관및단체근무경력자 (거주지제한없음) 신청방법서울시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agro.seoul.go.kr/)참고.
  29. 29. 5 4 집정원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기르고 있다.런던의 자루텃밭은 현재737곳,구획 수는 3만6,000개로 3만 명이 도시텃밭을 이용하고 있다.공공 기관이 운영하는 임대텃밭은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경작지가 부족한 런던에서는 상자나 자루를 이용해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위에서 농사를 짓는 사례도 늘고 있다.영국의 할당 채원지,러시아의 다차(Dacha), 독일의 클라인가르텐(Kleine Garten), 북미의커뮤니티가든(Community Garden) 등 도시 농업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농업에대한 도시인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나 지자체에서그와 관련해법적기반을 마련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2011년 11월에 도시 농업의 육성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고,주요 지자체에서는 농업기술센터를 설치하고 도시 농업체험,교육,교류 등을 지원하고 있다. 도시 농업은 취미와 여가 또는 학습과 체험 등의 농사 활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