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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 서론
여성은 소비되었다.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남자의 사회적 존재감은 그가 다른 사람에게
행사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반면, 여자는 타인에게, 궁극적으로는 남자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그녀
인생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1
다시 말해 여성의 겉모습은 오랜 시간 동안 다른 이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여성들은 남성들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여성은 더 이상
소비되는 대상이 아닌 주체이다. 여성도 이제 스스로 한 선택으로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다. 그녀는 ‘스스로’
화장품을 사고, ‘스스로’ 다이어트를 하며 ‘스스로’의 의지로 성형수술을 한다. 자기관리를 하는 21 세기 ‘주체적
여성’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과연 진정한 주체성인지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여성들이 용모를 가꾸고자
노력하는 것은 분명 그들의 의지에 의한 자발적 행위이다. 하지만 그 의지를 갖추게 된 경로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대중매체는 간접적으로 이상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주입하고, 소비문화의 트렌드는 그를 따를 수밖에
없도록 한다. 결국 여성은 주체성이라는 명목하에 자신을 남이 원하는 대로 결정하는 것이다.
Ⅱ.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여성: 주체적 여성상의 경로이탈
1. 획일화된 여성의 몸 – TV 다이어트 광고의 사례
“허리 지방은 파고, 골반은 리얼볼륨업!” TV 다이어트 광고 <허파고리>의 캐치프레이즈 문구이다.
말 그대로 허리의 지방을 골반에 이식해서 잘록한 허리와 넓은 골반 라인을 만들어 주는 수술이다.
<허파고리>의 제작사 측은 허리에서 파낸 ‘쓸모없는’ 지방을 골반에 옮겨 ‘쓸모있는’ 볼륨으로
탈바꿈한다며 수술을 홍보한다. 여기서 이 ‘쓸모’란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에 보탬이 되는지의 여부에 따라
정해진다. TV 다이어트 광고는 군살 하나 없는 여성의 몸을 드러내며 외모의 기준점을 제시한다. 이때,
다이어트의 미용상 목적만이 강조되며 오히려 정상 체중의 여성들에게도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요구하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시중에는 다이어트 식품을 필두로 식욕을 억제하는 다이어트 보조제, 지방흡입 수술 등
관련 상품이 계속 출시되고 있다.
존 버거는 유럽의 누드 예술형식에서부터 시작된 남자와 여자의 불평등한 관계가 문화에 깊이 각인되어
여자들이 남자들과 같은 관점에서 자신들의 여성성을 바라보고, 남자들이 요구하는 것을 자신에게 요구하는
1
John Berger, 최민 옮김, 『다른 방식으로 보기』, 열화당, 2012, 54쪽
5. 의식을 형성했다고 기술한다. 2
사람들이 흔히 아름답다고 평가하는 몸은 전통적인 회화의 여성 누드화처럼
현실성이 다소 떨어진다. 여성의 이상화된 몸이 대중매체를 통해 빈번히 노출될수록 일반 여성들은 그
이미지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자신에게 스스로 요구하게 된다.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여성들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긴다. 이에 대해 김소민은 “한국은 ‘정상적인’ 몸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협소하다.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잔인한 사회다.”3
라고 평가했다.
TV 다이어트 광고는 여성의 몸을 개선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몸에 대해 평가가 자연스럽게 진행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몸은 부위별로 나뉘어 세부적인 기준이 메겨진다. 예를 들면 ‘쭉 뻗은 일자 다리’,
‘11 자 복근’이나 ‘직각 어깨’ 등의 표현은 파편화된 여성의 몸에 각기 다른 형태의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이수안에 따르면 여성 몸의 파편화된 인식은 여성을 주체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다양한 세대와
직업의 여성 모두를 평생 몸매를 정형화된 기준에 맞춰 관리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게 한다.4
결국 여성들
대중매체의 감독하에 설정된 ‘바람직한 몸매’에 자기 몸을 맞춰가고 있던 것이다.
2. 성역할의 고정 – 영화 속 여성 히어로의 사례
대중매체 속 여성 캐릭터는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전에는 수동적이고 남성 캐릭터를 위해 소모되는
설정이 많았다면, 이제는 자기 능력을 드러내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여성 캐릭터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캐릭터로는 영화 속 여성 히어로들이 있다. DC 코믹스의 ‘원더우먼’, 마블
시리즈의 ‘블랙 위도우’, ‘완다 막시모프’ 등의 캐릭터들은 초월적인 힘이나 뛰어난 전투력을 바탕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이다. 다만, 그들은 몸에 딱 달라붙은 전신 타이즈를 입고, 높은 굽이 달린 신발을 신은
상태로 전장을 누빈다. (그림 3) 여성 캐릭터들의 성격은 주체적으로 설정되었으나 그들의 겉모습은 여전히
남성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꾸며진 것이다.
‘완다 막시모프’는 그녀의 가슴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의상을 입는다. (그림 1) 해당 배역을 맡은 배우
리지 올슨은 의상의 노출이 불편하다며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적과 싸우는 와중에 자신의 몸매가 두드러지는
옷을 입는 것은 영웅답지 않다. 이것은 이 여성 캐릭터를 지켜보는 남성 관객들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런 불필요한 노출은 사람들이 여성 히어로를 영웅의 관점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성적 대상화
하게 만든다. 같은 제작사의 여성 히어로인 블랙 위도우 역시 마찬가지다. 전신의 몸매를 그대로 부각하는
2
John Berger , 위의 책, 75쪽
3
유선애, 「Body Talk」, 『marie claire』, 2022.06, https://www.marieclairekorea.com/culture/2022/06/body-
talk/?utm_source=naver&utm_medium=partnership, 접속일 2022.06.20
4
이수안, 「여성 몸 이미지의 전형과 내면화 과정의 시각 체계적 상호작용: 몸매관리산업 광고 이미지 분석을 중심으로」,
『여성학논집』, 제26권 제1호, 한국여성학회, 2009, 102쪽
6. 그녀의 외관만 봤을 때 영웅의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이는 남성 히어로의 의상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
확실히 드러난다. (그림 2)
이처럼 여성 히어로들은 영웅적 면모를 보여주기보다 스크린 바깥의 남성 관객들이 성적 매력을 느끼게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작품 내에서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인 성격을 가져도, 그 바깥에서는 관람자에게
소비되는 대상인 것이다. 즉,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여전히 기존의 성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Ⅲ. 여성을 소비하는 소비문화
1. ‘어덜키즈’의 등장
2017 년 5 월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가 전국의 남녀 초·중·고등학생 4736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린이·청소년 화장품 사용 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자 초등학생 5 명 중 1 명이 색조화장을 해본 경험이
있고, 초등학생의 12.1%가 매일 색조 화장을 한다고 답했다.5
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듯이 상당수의 초등학생이
화장을 하며 자신을 어른처럼 꾸민다. 이를 가리키는 신조어 ‘어덜키즈’도 생겨났다. 이 어덜키즈들의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그 연령대 또한 계속해서 어려지는 상황이다. 이런 경향에는 SNS 나 또래집단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또한 뷰티와 패션 산업에서 어린아이들을 겨냥한 상품들을 출시하며 이를 부추기고 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성인문화를 무분별하게 따라 하는 것은 위험성이 높다. 건강에
도 좋지 않을뿐더러 아이들이 자기 외모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얻는 자신감은 외모지상주의적 사고를 형성한다.
특히 뷰티 업계는 여성을 주 고객층으로 삼기 때문에 여성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 여성
청소년들이 화장을 시작하면 자기 맨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사회 전반의 외모지상주의적
소비문화가 어린 여성들에게 항상 자기 외모를 완전무결하게 가꾸기를 장려하며, 그들을 사회가 원하는 모습
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2. 옷에 몸을 맞추는 여자들
최근 여성복의 치수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프리사이즈’ 상의를 사들였지만 너무 작아서 자기
반려견에게 딱 맞았다며 인증 사진을 올린 네티즌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중에 출시되는 여성복은 얼핏
봤을 때 아동복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모두 키 크고 마른 몸을 ‘표준’으로 제시한다. 주로 날씬한
연예인들이 입었을 때 가장 이상적인 핏이 나올 수 있는 옷들이다. 이때, 표준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보통
여성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옷에 맞춰 체중을 감량할 수밖에 없다. 자기 신체
5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어린이·청소년 화장품 사용 행태”, http://gcn.dothome.co.kr/, 2022년 6월 18일 검색
7. 치수를 바꿔서 기성복을 입게 된 여성들은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게 되고, 또 그 바깥의 사람들은 그 안에
포함되기 위해 노력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뿐만 아니라 한 번 표준에 도달한 여성들도 그곳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감시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마치 현대판 코르셋을 연상하게 한다.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여자는 “ 한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이렇게 감시하는 부분과
감시당하는 부분이라는, 서로 분명히 구별되는 두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기술한다. 6
그의 주장은
여성들이 계속해서 자기 몸을 감시하며 옷에 몸을 맞추는 모습과 연결된다. 유지민은 국내 여성복 사이즈의
축소 현상은 여성들의 의류 선택권을 박탈하며, 여성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체형을 검열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7
결국 나날이 작아지는 여성복은 여성이 자율적 의지로 의복을 소비할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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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어린이·청소년 화장품 사용 행태”, http://gcn.dothome.co.kr/, 2022년 6월 18일 검
색
이수안, 「여성 몸 이미지의 전형과 내면화 과정의 시각 체계적 상호작용: 몸매관리산업 광고 이미지 분석을 중
심으로」, 『여성학논집』, 제26권 제1호, 한국여성학회, 2009, 73-109쪽
_______, 「대중매체와 성형의료산업의 연동 구조 속 여성 몸 이미지 전형의 재강화 기제와 포스트페미니즘 해
석의 모순적 공존 = TV 메이크오버쇼 이미지 내러티브 분석을 중심으로」, 『여성학논집』, 제32권 제2호, 한국
여성학회, 2016, 71-112쪽
6
John Berger, 앞의 책, 55쪽
7
유지민, 「[Z의 휠체어] 내가 왜 옷에 맞춰야 해?」,『조선미디어』, 2022.04.28., https://futurechosun.com/archives/64317, 접
속일 2022.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