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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초보 주부 제2의 인생 스토리
                           - 김기애


       안녕하세요. 화전식품 김경애입니다.


       결혼을 흔히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라고들 하지요. 지금부터 제2의 인생스토리를
       풀어보겠습니다.


       내 나이 27세에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직장생활만 착실하게 할 것 같았던 9살 연상
       의 남자였답니다. 우직하고 착실해 보이는 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이차
       가 크다고 결혼을 반대하시는 부모님에게는 그나마 8살 연상이라 속여야 했습니다.
       평소, 여자가 시집을 가서 가장 고생스럽다고 생각한 것은 어른들의 육순, 회갑, 진
       갑 잔치라 생각이 들었기에, 엄마에겐 그런 큰 행사는 다 지나 없다고 고생스럽지
       않을 것이라 설득하여 우여곡절 속에 결혼을 했답니다.


       결혼 직전까지도 집안일이라고는 손에 물 한번 제대로 묻혀 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속옷까지도 친정어머니가 빨아 챙겨주셨던, 진짜 고생이 무엇인지 몰랐던 저였습
       니다. 근데 이게 웬일!! 직장만 잘 다닐 거라 생각했던 남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결혼 후 몇 달 되지도 않아 우리 큰딸 혜정이와 저를 시골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데
       리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엔 저도 모르는 사이 건물이 하나 지어지고 있었습니
       다. 그때부터 저에겐 부담 백배, 짐이 지어지기 시작 했지요.


       남편은 장류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저는 너무나 반대하고 싶었지만, 결혼 전부터 심사숙고하고 시작한 일이라는 남편
       의 뜻을 존중하고 싶었기에 하는 수 없이 승낙했습니다.


       저희 살림집은 시내 쪽에 있었고 공장은 시골에 있다 보니 남편은 퇴근 후엔 그곳




18 yesland
에서 살다시피 했지요. 옛날 방식 그대로 장을 만드시는 어머님만 믿고 시작한 사업
이었으나, 한 해가 지나 어머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남편이 어깨 너머로 배운
기술을 토대로, 주말만 되면 우리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장류를 하고 있는 웬만한 곳
은 모두 다니며 벤치마킹을 했고, 갖은 노력 끝에 우리만의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장을 만들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2~3년이 흐른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은 나에게 또 황당한 말을 건넸지요. 다
짜고짜 내일 공장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입니다. 공장을 늘 비워둘 순 없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저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것도 이사 전 날 통보
를 하다니요. 황당하고 놀랬지만 시집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색시가 남편과 소리
지르며 싸울 수도 없고... 혼자 울며 안 간다고 했지만 저의 힘으론 어쩔 수가 없었지
요. 남편은 제가 가지 않겠다는 말에 다음날 저희 형님을 모시고 와서 부엌살림 정
리를 부탁했고 저는 그 시간 아무 말도 못하고 보일러실에서 실컷 울다 가자는 소
리에 울며, 지금 살고 있는 이곳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들어온 후에도 이곳에
적응을 못한 저는 늘 겉돌며, 새로운 생활에 안정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도 벌여 놓은 사업이라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예산군에서 안내하는
직거래 및 행사장엘 다니며, 홍보 겸 장류 판매까지 하게 되었지요. 지나다니는 손
님들께선 저희 제품에 대해 이것저것 제게 물어 와도, 아는 것이 없던 저는 대충대
충 넘어 가며 상황정리를 하곤 했습니다. 그땐 이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감사하게도 장을 드셔 보신 손님들께서 맛있다는 말씀들을 많이              예산군 E-비즈니스
해주시고 후에도 주문해서 드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렇게 다니던 중 우리 장에 관심을 갖고 수출을 해보자는 제의를 받아 미국에 수
                                                   Business2.0



출을 하게 되고 미국 식품 안전청 FDA에 가입도 하게 되었지요. 한창 장류 사업이
날개를 단 듯이 궤도에 올라 잘 나가고 있던 때, 큰 아이를 낳고 7년만에 둘째 재훈
이를 낳게 되어 육아가 저의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아이 낳고 3~4년은 육아에 전
념하느라 꼼짝도 못하고 집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19
그러던 중 둘째가 4살 되던 어느 날, 농업기술센터 김기예 선생님의 전화 한 통은
       제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e-비즈니스 과정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낯선 소
       리였지만 집에서만 생활하기에는 너무 싫었기 때문에 한 번 배워보기로 결정하고
       농업기술센터 컴퓨터교실을 찾아 갔습니다. 그곳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땐 너무 생소
       하고 어색하여 다시 나오고 싶은 생각뿐이었지요. 처음 보는 시골 아저씨, 아주머니
       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저에겐 다였거든요. 그렇게 그분들과의 만남이 하루하루 더
       해지자 오히려 제 자신이 더욱 초라하고 못났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창피했습니다.
       나이가 드셨지만 낮에는 일터에서 종일 일을 하시고 그 밤에 나오셔서 잘 보이지도
       않는 자판을 두드리며 배우시는 모습을 보며, 공부는 죽을 때 까지 한다는 말이 맞
       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분들을 보며 한 분, 한
       분이 존경스럽고 훌륭하지 않으신 분이 없었습니다. ‘정말 대단들 하시다...’ 제 입에
       서 저절로 이 소리가 튀어나오더군요. 난 여직 뭐했나 생각하며, 후회가 막심했습니
       다.


       저에게 컴퓨터란? 약간의 워드, 쇼핑하는 정도로만 사용했고 솔직히 기본적인 메일
       보내는 것조차 잘 못 했던 저지만 지금 컴퓨터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습
       니다. 처음에는 블로그가 뭔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blog.naver.com/wajen9001 이렇
       게 멋진 나만의 블로그를 내가 직접 만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엔 제가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 제가 살고 있는 곳의 아름다운 모습, 제가 하고 있는 일 등 제가 담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기에 너무나 신기하고 흐뭇합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에도 조금씩 변화가 온 것 같습니다. 사업에 사자도 몰라 겉돌며,
       내 일이 아니란 생각을 했던 마음이 이제는 내가 해야 하는 일, 늘 열심히 장을 만드
       는 남편의 뒤에서 보조만 하던 내가 직접 손을 걷어 부치고 보조가 아닌 주인이 되
       어 움직이게 되었고 얼마 전에는 저희가 새로운 상품으로 장과는 잘 어울릴 것 같
       지 않은 초콜릿을 만들게 되었지요. 예산에 맛있는 사과와 초콜릿이 만나 사과초콜
       릿! 그냥 먹긴 좀 구수한 냄새가 나는 청국장과 초콜릿이 만나 청국장의 냄새를 없애
       고 초콜릿의 단맛이 덜한 청국장초콜릿! 드셔 보신 분들의 반응이 참 좋았지요. 그래




20 yesland
서 소비자와 좀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그래서 올해 부터는 소비자들이 체험 할 수 있
는 공간을 만들고 그분들이 쉬었다 갈 수 있는 “꽃과 콩나무”란 예쁜 이름을 가진 팬
션도 열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많은 분들께서 이용을 하시고 만족하시기에 저
는 너무나 행복하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하고 있는 활동을 좀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
고 싶은 마음에 농업기술센터 김기예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2009년엔 홈페이지를 통
해, 사이버공간 안에서도 저희 점포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부족하지만 올
해 e-비즈니스 3년차로 부족한 것을 넉넉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갑자기 선녀와 나무꾼이란 동화 속 이야기가 생각이 나네요. 또 선녀와 나무꾼이란
노래도 있었지요. 이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옛날부터 이 노래는 제 애창곡 이었
거든요. 첫째 혜정이를 낳아 키우는 내내,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의 성격
이 저에겐 정말 맞지 않았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도망갈 기회만 엿봤던 것
같아요. 그러다 둘째 재훈이를 낳고 보니 그 마음이 점점 약해지더군요. 그러다 제
가 얼마 전에 셋째 승열이를 낳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젠 남편이 어디가 아플까
겁나고, 없어질까 겁이 난답니다. 셋째를 낳고 나선 책임감이란 단어가 더욱 가슴
깊이 새겨지고 이제야 세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화전식품의 주인으로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아 서툴기만 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후회가 되기도 한
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앞으론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죠? 요즘, 세 아이를 바라보는 저            예산군 E-비즈니스
희 부부는 너무나 행복하답니다. 또한, 앞으로도 사이버공간 속에서 떠오르는 별
(☆)인 화전식품과 꽃과 콩나무를 활발히 운영할 것입니다.
                                                  Business2.0



제가 지금처럼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기에 제2의 인생은 성공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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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서울 새댁, 사과나무 엄마
                        - 김경희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20여년을 살아왔답니다. 사과 열린 모습에 반해 낮 설고
       물 설은 이곳으로 신랑 하나 믿고 시집을 왔습니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채로 말
       입니다. 눈이 많이 내려 날씨고 추운 12월 18일 여기로 둥지를 틀었답니다. 정말 아
       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의 시간은 적응하기 엄청 애를 먹었습니다.


       그해 봄 사과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 적과를 해야 하는데 작은 사과나무 열
       매 따낸 것을 아까워서 주머니에 한가득 넣어서 가지고 다니던 기억도 있네요. 그렇
       게 새로운 세상과 접하면서 83년도에 시집와 85년도에 큰아이를 낳았지요. 그 아이
       키우느라 정신을 쏟다 보니 농사는 그저 손님이 왔다 가는 것처럼 그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87년 둘째 아이를 낳았지요. 아이들을 어느 정도 스스로 놀 수 있을 때까
       지는 농사일을 주변에서 보고만 지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농사일. 그때는 복숭아도 과수원에 있었거든요. 복숭아는 특성상 하
       루만 늦어도 과육이 물러서 상품 가치가 떨어지니 바로 수확을 해야 하는 상황 이
       었답니다. 그러니 신랑하고 복숭아를 수확해서 고덕 시내에 있는 과일 가게에 배달
       을 해야 하는데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리어카에 의자를 달고 아이를 앉혀 신랑
       은 끌고 저는 밀며 복숭아를 팔러 다녔지요. 그리고 이른 벼를 심어 익어가니 새들
       이 벼 낟알을 쪼아 먹어 피해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논둑에서 아이와 함께 새를 쫒
       다가 아이가 갱구랑(개울)으로 굴러 놀란 기억도 스쳐 지나갑니다. 다행히 다치지
       는 않아서 그렇게 지나가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그때도 일반농사를 짓기는 했지만 농약을 치는 횟수는 다른 사람들보다 월
       등히 적은 횟수로 방제를 했지요.


       그러다 유기농사에 대한 강의를 듣고 빠져들기 시작해 태평농법에서부터 직파재배,




24 yesland
오리농법 정말 안 해본 농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직파 재배를 한다고 했다가 수확
량이 턱없이 줄어 고생한 시기, 오리농법 한다고 오리를 300마리 정도 논에 넣어 제
초작업을 한다고 한 것이 하루저녁에 너구리 녀석이 급습을 해 50마리가 한꺼번에
죽었던 일 정말 생각하면 파노라마 같이 스치고 지나가네요.


그래도 두 녀석들 큰 병치레 없이 잘 자라 주었답니다. 시할머니에 시어머니, 시동
생 셋이 있는 이곳으로 시집와 멋모르고 지낸 세월이 벌써 25년. 이제는 유기농사도
안정이 되었고 판로도 확실한 곳이 생겨서 농사짓고 판매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매장으로 보냈다가 판매대금을 못 받고 손해 본 일, 쌀값을 2년 만에 받았던
일, 이런 저런 일들이 제가 걸어온 발자국들이랍니다. 이제는 큰아이가 대학 졸업반
이고 작은 아이가 대학 3학년이니 제가 신경을 써주지 못해도 스스로 알아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된듯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모습도 많
이 변해 있더군요. 농사일 이라면 아무것도 모르던 서울 새댁이 이제는 사과나무 전
지에서부터 적과 등등 사과나무에 대해서는 알아서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었으니
20여년 세월이 허송세월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일은 식구 모두 편안하게 즐거운 삶을 이어갈 수 있게 준비 하는 것 만
남은 것 같습니다. 서로 의지 하며 즐겁게 일하면서 노년을 함께할 방법들만 찾으면
될 것인데 그것이 가장 큰 숙제로 남은 것 같습니다.


* 원고가 너무 짧고, 블로그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예산군 E-비즈니스
                                                  Business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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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버섯시장 점유율 1%를 향하여
                              - 김낙천


       농촌에서 평범하게 생활하며 부모님과 생활하던 중, 농업전문대 입학 때 아버지께
       서 참나무 3,000본을 사오셨다. 청양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시는 외가댁의 자문을
       받아 처음으로 버섯재배를 시도하시려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종균을 사오시고
       드릴과 접종기구가 준비되면서 표고버섯 접종이 시작되었다. 내가 버섯과 첫 인연
       을 맺게 된 것이다. 버섯은 접종 후 배양과정을 거쳐 집 앞 밭에 하우스를 짓고, 차광
       망을 씌우고 말목을 박아 반생이 철사로 줄을 띄워 버섯 목을 세워 놓고, 발생을 위
       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여 살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이 끝나고 버섯
       목에서 첫 발생한 버섯을 보았을 때, 그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고 예쁘던지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서 아른거린다. 지금도 버섯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고
       부자가 된 듯 넉넉해진다.


       그렇게 시작된 버섯재배는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전역할 때까지 계속 되었
       다. 전역 후 이듬해 봄에 표고접종을 마치고, 경기도 군포에서 1달 동안 원정 가서
       표고접종을 할 때 집에서 전화가 왔다. 농촌진흥청에 들어가서 일용직으로 기술을
       배우고 익히라는 거였다. 전화통화 후 집으로 내려와 이력서 1통을 가지고 진흥청
       장 비서관실로 갔다. 그 길로 비서관님을 찾아 뵙고 바로 농업기술연구소에서 균이
       과로 입사하면서 버섯인으로서의 내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균이과에서 맡은 업무는 병재배 버섯사 관리였다. 1993년도 당시에는 균상느
       타리재배에서 판넬 구조의 자동화 설비의 첨단시설과 대량생산의 초기단계로 병
       버섯재배의 도입시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운이 상당히 좋았던 것 같다. 농촌진흥청




28 yesland
에서 새로운 버섯 기술 보급과 대량생산 체계를 확대하기 위해 교육생을 받아 버섯
생산기술을 가르쳐주었다. 교육생들에게 새로운 재배방법과 균 관리 및 기계사용
방법 등을 가르쳐 주는데다 대부분 정부 보조금을 받아가며 교육받고 있는 교육생
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작은 형 집에서 출퇴근을 하였고 공무원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작업을 마치고 청소 중에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한순간 왼손가락
중지와 약지가 기계 속으로 들어가 손가락을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입
원하였고, 그 기간에 바로 시험 날이 있었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은 치르지도 못하
였고, 대신 당시 함께 교육받던 교육생들과 대화를 통하여 정부지원을 받는 방법 등
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4년도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여 1995년도에 우여곡
절을 겪은 후 유통특작지원사업을 받게 되었다. 1994년도 봄에 농촌진흥청을 퇴사
했는데 아마도 그때까지가 내가 버섯에 몸담고 있던 중 가장 황금기였다고 생각된
다. 근무하는 동안 전국의 많은 버섯인을 알게 되었고 많은 기계업자를 알게 된 것
이 훗날 아주 큰 재산이 되었다.


퇴사하면서 경북 칠곡에 있는 버섯 재배사에서 컨설팅을 하면서 대량 재배의 경험
을 쌓게 되었다. 1995년에 5억5천만원(보조금 1억2천, 융자 3억3천, 자담 1억2천)의
                                                             예산군 E-비즈니스
큰 사업을 받았다. 그때 나이가 28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금오영농
조합법인을 설립하고 사업에 착수하였다. 아버지께서 사업자금 3천만원을 주셨고
대지 2천평을 내주셔서 토목업자와 8천에 계약하고 계약금으로 3천만원을 건네주
                                                       Business2.0



었다. 드디어 토목공사가 시작되었다. 불도저가 흙을 밀어내고 덤프트럭에 자갈을
실어 정지 작업을 한 위에 쏟아 부으면 그래이더가 나라시하고 진동로더가 땅을 다
지는 모습을 보며, 버섯 대량 생산을 할 꿈과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29
그런 희망도 잠시, 토목업자가 사라진 것이다. 말로만 듣던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
       이다.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했다. 그래도 사업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사라진 토목
       업자 이외 두 명과 같이 토목공사는 끝이 났다. 문제는 공사대금이었다. 아버지 논
       밭을 담보로 하여 5천 8백만원을 대출받아 대금을 일부 결제하고 나머지로 철골과
       건물 판넬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사는 자재는 내가 사주고 시공만 맡겼다. 문제는
       또 자금이었다. 철골과 판넬 비용으로 1억8천만원이 소요된다. 자금동원 방법을 총
       동원 하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결국 후계자자금과 전업농자금으로 8천만원을 지원
       받아 공사가 진행되어가지만 갈수록 자금 압박을 받았다.


       그 당시의 하루 일과는 농협과 군청에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했다. 판넬은 평택에서
       사오면서 지불각서를 써주고 조달하여 공사 진행 중 시공업자와 트러블이 생겼다.
       대금결재 일부를 결재 해주고 나서 작업은 진행되어 가고 있던 중 8월에 태풍의 피
       해로 재배사 1동이 파손되어 날아가 버리고 전봇대에 판넬이 걸쳐있는 걸 보니 암
       담하고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다. 그 후 군청에서 태풍피해 보상 융자 3
       천만원을 지원받아 다시 작업이 진행되어 가던 중 추석에 업자는 짐을 챙겨 철수해
       버렸다. 큰일이다. 다른 업자를 선정하여 작업은 진행되고 건물 성과에 따라 후취
       담보를 신청하고 냉동기 설비를 1억5천만원에 계약하였고 기계계약을 1억4천만원
       에 계약하였다. 계약금은 냉동업자에게 3천만원을 주고 기계업체는 신용으로 믿기
       로 하였다. 이때 농촌진흥청에 있으면서 맺었던 인맥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는 생각도 못했다.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돈은 주위사람이 벌어준다
       는 말씀과 사람과의 인맥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균이과서 기계업체는 기계 개발을 하는데 실험과 자문을 많이 받았고, 그때 기계업
       체를 알게 되었다. 드디어 건물이 완성되고 냉동설비가 완성되고 기계설비가 갖춰
       져 재배사가 완성되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그




30 yesland
러나 해결되지 않은 자금문제는 12월을 지나 1월에 건물 등기 후 후취 담보로 하여
3억3천만원을 받아 해결하고 남은 금액은 벌어서 갚기로 하고 대망의 팽이버섯 재
배가 시작되었다.


1995년은 평생 잊지 못할 할 해이며 평생 할 마음고생과 28살 어린 나이에 감당하
기 힘든 어려움을 경험하고 극복한 해로 지금 생각하면 대견하기도 하고 어떻게 했
는지 이해가 안가며 지금 하라면 아마 못할 것 같다. 버섯종균을 만들고 입병하고
접종하고 배양이 완료되어 균긁기를 하고 발생실에서 버섯 발생이 될 때 그 조마조
마함과 설레임과 뿌듯함의 감격을 느끼는 순간이다. 버섯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걱
정도 하고 잘 자라기를 바라며 첫 수확하는 날 비로소 진정한 버섯인이 되었음을
확인했다.


1995년 10월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1996년 3월 2일 결혼을 하였고 버섯은 일일 생
산되어 소득을 올리며 시설비용의 외상 빚도 갚으며 아버지 논과 밭의 담보대출을
갚고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2~3년 흘러 아들과 딸이 태어났으며 IMF
를 겪으며 버섯 값이 하락하고 대형업체의 등장으로 버섯업계의 커다란 위기가 찾
아와 중소 규모의 업체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7년에 충남농업기술원에서
‘미소느타리버섯’을 개발하여 시험 재배를 하여 성공함으로써 통상 실시를 받아 현
                                                           예산군 E-비즈니스
재 미소느타리를 재배하지만 규모가 작고 홍보 부족으로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
다. 그러나 버섯시장 점유율 1%를 목표로 열심히 하고 있다. 목표가 이루어 질 때까
지 노력하면 꼭 이루어질 것이다. 버섯시장 점유율 1%가 되는 그 날까지....
                                                     Business2.0




* 소셜웹과 관련한 부분 인터뷰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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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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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하이디의 행복한 만남
                           - 류영희

       하이디 고향은 전라남도 고흥이랍니다. 50이 낼 모레인 제가 7살 때부터 지금은 69
       세이신 큰오빠가 평생을 유자농사 해서 막내 동생인 저와 당신 자식 오남매를 키워
       내셨지요.


       고흥유자는 지리적 표시 등록이 되어 있고, 친환경 저농약 인증을 받아 제초제 사용
       을 전혀 하지 않고 ‘헤어리베치’라는 풀로 잡초제거를 한답니다. 그동안 나 살기 바
       쁘다고 돌아볼 새 없이 살았는데 언제부터 오빠의 쇠잔해진 뒷모습에 가슴이 먹먹
       해 짐을 느끼게 되었네요.


       어제 하루 유자를 따는데도 이리 힘든데, 평생을 독한 유자가시에 찔리면서 농사지
       으셨을 오빠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유자가시가 정말 무서울 정도로 강
       하거든요. 멋진 유자사진 올리고 싶은데 리더기를 안 가져 왔네요. 여긴 읍내 한 번
       나가려 해도 한참을 가야 하는 깡촌이거든요. 아직 오염이 전혀 안된 순수한 시골
       공장도 축사도 없는 그야말로 청정 깡촌 시골이에요. 마을 앞에 있던 멋진 바다가
       지금은 논으로 변한 것 말고는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인 시골이랍니다.


       조카들이 아버지 심심하실까봐 중고 컴퓨터를 설치해 드려, 느리긴 하지만 이렇게
       글을 올릴 수 있어 좋네요. 제 블로그에 있는 사진 복사해서 올려보네요.




       형님이 돌아가셔서 책임져야 할 조카가 둘 있고 홀어머니를 모시는 남편을 만나 결
       혼하겠다는 나에게 아버지는 ‘볏짚을 안고 불로 들어가는 줄로 알라’는 말씀과 함께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기에 네 아이들의 엄마로 직장
       인으로 열심히 살아 이제 안정된 삶을 사는가 싶은 98년 6월 평생을 직장인으로만




34 yesland
살 것 같던 남편은 한 달 동안 예산으로 출장을 갔다 오더니 갑자기 예산에 가서 농
기계 대리점을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생면부지의 땅.


지도를 들고 찾아온 예산은 멀고 험한 길을 2시간 30분을 달려서야 도착했습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남편은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다며 설득을 하고 나 또한 젊은데
해 보자 하는 생각에 남편 뜻을 따르기로 하고 대학생부터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
까지 아이들을 대전에 두고 간단한 짐을 꾸려 험한 차동고개를 넘을 때 왜 그리 서
럽던지요.


적응되지 않은 시골 생활과 두고 온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에 내 마음은 깊은 웅덩
이가 생겨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고 심한 우울증으로 치료가 필요해질 정도로 마
음이 황폐화 되었습니다. 2002년 고3이 되는 딸아이를 핑계로 대전으로 가 막내딸
의 고3 까지 보내고 나니 주말 부부를 해야 하는 의미는 퇴색되고 남편과 아이들은
제가 아내의 자리로 돌아오길 바랐습니다. 때문에 2005년 다시 예산으로 왔지만 언
제든지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던 차에 2007년 12월 29일부터 일
주일간 딸들과 여행을 하며 마음을 정했습니다.


시골 외갓집의 추억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세련되었지만 삭막한 도시보다
예산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는 것도 그 동안 아이들에게 가졌던 미안한 마음을 조금
이나마 보상해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래 이제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정말
이곳에서 터를 잡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보금자리를 만들 터도 마련하고 하면서 내            예산군 E-비즈니스
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지역 정보지에서
농업기술센터에서 e-비즈니스 컴퓨터 과정과 사과대학이라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전업농이 아니라는 생각에 몇 번을 망설이다가 전화를
                                                   Business2.0



했습니다. 매주 금요일에 있는 사과대학엔 다행이 작은 과수원이 있던 터라 갈수 있
었고, e-비즈니스 과정은 인원이 다 되어 지금은 수강이 어렵다는 대답에 실망했지
만 개강식 날 농업기술센터 김기예 선생님으로부터 결원이 생겼으니 하고 싶으면
오라는 전화에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35
드디어 예산에도 내가 발붙일 곳이 생긴 것이지요. 매주 화요일 저녁 e-비즈니스 교
       육과 금요일 오후 사과대학 교육에 가는 발걸음은 신나기만 했습니다. 항상 반갑게
       맞아주시던 농업기술센터 직원 분들과 제게 허물없이 대해 주시는 수강생 여러분
       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유능한 강사님들의 좋은 강의를 들으니 그동안 드리워졌
       던 마음속의 그늘이 서서히 녹아, 예전의 밝은 모습을 찾게 되자 남편과 가족들은
       농업기술센터가 병원이라며 제 활동에 적극 찬성하며 힘을 실어줍니다.


       컴퓨터라면 아주 기본적인 메일 등 기본적인 것만 알고 사용하다가 큰 회사만이 아
       닌 개인도 전자 상거래로 상품을 판매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홈페이지라는 것과 블로그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포토샵이며 사진
       촬영 등 다양한 교육을 농업기술센터와 충남농업기술원을 통해 배우게 되면서 ‘내
       가 이 예산에서 대체 무얼 하며 살까‘ 하던 막연함에서 벗어나 건강한 먹거리를 만
       들어 전자상거래로 정직하게 판매하고 작은 쉼터를 만들어 마음이 힘든 사람 누구
       나 쉬어갈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남에게 맡겼던 사과농사도 올해부터는 직접 하면서 땀의 진정한 의미와 자
       연에 대한 고마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작년 정보화 대회를 보면서 충남전자상거
       래연구회이란 곳을 알게 되고, 조남준 사무국장의 열정에 반해 카페에서도 활동하
       면서 온라인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장태평 장관님과의 덕산 번
       개며, 농림부 홍보대사님들과 파워블로거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며
       꿈꾸는 것으로 머물지 않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씩 준비해 봅니다. 내 꿈이 이
       루어지는 그날을 위하여...




       내 고향 고흥에 계신 오빠의 다급함과 미안함이 가득한 목소리가 전화기 저 너머에
       서 들려옵니다. '언제쯤 올수 있냐' 아버지 같은 오빠. 칠남매의 장남으로 5남매의 아
       버지와 같은 오빠의 존재. 그중 막내인 제겐 오빠의 존재가 더욱 특별합니다. 오빠
       힘으로 학업을 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36 yesland
40여년 유자농사. 유기농 인증은 없지만, 항상 내 새끼가 먹을 거라 하시는 오빠언
니의 농사철학은 최소한의 농약사용과 따뜻한 가슴과 거칠어진 손과 발의 수고로
해야 한다고 내 식구 내 새끼 먹거리라고 한없는 정성으로 지은 유자 농사. 뭔가 도
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수확 철이면 남편과 봉사활동 갑니다. 고흥 유자 따러 가세
~ 매번 싫다 안하고 가주는 우리 신랑... 정말 고맙지요!


바람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고흥 유자로 내 정성으로 담은 유자차를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를 시집온 후 25년 동안 했지요. 다들 정말 맛있다며 유자차 장사라도 시작
해라 했지만, 사느라 바빠써 못했는데 올해는 조금 많이 담았네요. 가져가신 분들의
좋은 반응에 힘이 납니다. 조금이나마 오빠에게 힘이 되어드릴 수 있어 행복합니다.




                                                       예산군 E-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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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land Business2.0
    05:
                  민균이네 인삼농장 - 문태화


       어언간 인생의 반 백년이란 덧없는 세월이 지나간 지금 지나간 그 시절, 그토록 꿈
       많았던 젊었던 시절. 삼대독자이신 시아버님에 장손 며느리로 시집을 오니 시아버
       님과 계모 시어머님 고등학교에 다니는 시동생과 다섯 식구가 살면서 어려운 우여
       곡절이 많았다. 그때 이미 시아버님께서는 인삼 농사를 짓고 계시던 터. 인삼에 인
       자도 모르고 시집와서 날마다 식구들이 인삼 일에 몰두하는 것이 신기했고 생소했
       다.


       산에 가서 억새풀을 베어다 겨울에 발을 짜고 벼 짚으로 이영 엮고 이런 일을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품앗이를 하신다. 그때만 하여도 모두가 어려운 시절 이었고, 어쨌
       든 부모님 모시고 공경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임무.


       어려운 시골살림을 시작했다. 시아버님께선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지극정
       성으로 따뜻하게 베풀어 주셨고, 반면에 시어머님은 질투 반 시샘 반 섞어서 며느리
       에 대한 차가운 시선뿐. 정을 주지 않으시는 시어머님과의 전쟁과 갈등은 시작되었
       고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은 나의 존재를 잊게 하였다.


       외롭고 쓸쓸한 시집살이에 하루하루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결혼 삼년 만에
       큰 딸을 낳았고 이년 후에 작은딸 딸 딸을 낳은 뒤에야 기다리던 아들이 우렁찬 함
       성과 함께 태어나게 되었고 아이들로 하여 나의 인생은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는 시골 일이 모든 일이 수작업이기 때문에 시아버님께선 아침 일찍 일어나 아
       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에 물을 가득 데워놓으시곤 하셨다. 밥을 해 식구들 밥상을
       차려드리고 품앗이를 하러 일터로 가는 것이 매일 같은 일상생활이었다.


       * 아궁이 이야기/ 품앗이 이야기 --- 농촌정서
       → 추억이나 얽힌 에피소드 등 구체적 추가 사연 듣고 싶어요.



38 yesland
저녁 늦게 밭에서 돌아오면 시어머님은 집안일은 아무런 관심 없이 밖에 나가셨다
가 며느리가 집에 와야 집에 들어오시곤 하셨다. 아이들은 하루 온종일 흙에 먼지에
꾀죄죄한 모습으로 허기진 채로 그냥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속상하고 마음 아파
도 어찌 해야 될지를 몰랐던 그 시절. 어려운 시골살림 어떡하면 남한테 아쉬운 소
리 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품을 팔아 돈을 벌어야 했고, 또 내가 많
이 배우지 못했던 공부를 아이들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려고
안간힘을 다해 노력하였다.


하루는 남의 인삼밭 일을 하러 경운기를 타고 갔다. 팔십 년대 초만 하여도 시골에
선 경운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고, 마을에서 인삼밭을 갈려면 한 시간내지는 두
세 시간은 보통거리 이다 보니 일 끝나고 밭에서 해 넘어간 뒤 집에 오면 보통봄여
름엔 여덟 아홉시는 기본. 캄캄한 밤에 집에 오니 난리 가 났다. 며느리 기다리던 시
어머님께서 저녁밥을 지어 드시는데 누룽지를 뜨겁게 끓여 밥상머리에 놓은 걸 두
살 바기 막내딸 이마에 화상을 입고 울고 있다. 그런데도 그 옆에 식구들은 그대로
저녁밥을 드시고!


정신 없이 아이를 들쳐 업고 신작로로 나와 지나가는 차를 세워 타고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병원까지 데려다 준 트럭 기사아저씨가 지금도 감사하며 고맙기 한이 없다.

                                                         예산군 E-비즈니스
다행이 빨리 병원에서 치료해서 흉터는 생기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그때를 생각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왜 그랬을까... 그 어린 피부에 화 독기를 빼낸다고 독한
소주를 발랐으니 어린 것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 아직까지도 미안하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품앗이 가면 모유가 꽉 차서 가슴이 아파 팔을 들을 수가 없
어 몸이 아플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젖을 충분이 못 먹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Business2.0




이 메어온다


이른 봄 찬 통에 점심을 싸서 오토바이 뒤에 싣고 집에서 30~40분 거리를 달려가면
무릎이 시려 굳어버린 다리를 한참 동안 주물러 언 다리를 풀어주는 것이 아침에
일하기 전 준비운동 이다. 부지런히 일을 하다 점심때가 되어 아침에 싸온 도시락을



                                                   39
풀어 점심을 먹으려 밥통을 여는 순간, 통속에 밥은 크고 작은 주먹밥이 되어있다.
       오토바이에 싣고 오는 동안 비포장 에 사정없이 흔들어 밥통 속에서 요절 복통을
       한 탓이다. 어쨌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남편과 나는 웃음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주먹밥을 나눠 먹곤 했다.


       이르면 양력 삼월 중순에 인삼밭 두둑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면 종묘 채굴해서 상
       품을 등급별로 선별해서 식재 한다. 인삼 싹이 올라오면 늦은 서리 때문에 냉해가
       올 수 있어 바람 방지 해 가림 준비로 막대기로 기둥을 세우고 연재 걸고 그 위에
       발을 짜서 올려놓고 집으로 이영을 엮어 덮는 일을 한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일차
       로 영양제를 뿌려주고 밭에 나는 잡초 제거를 해 준다. 해서 시간은 빠르면 한 달 정
       도면 우선 식재와 집짓기가 완성이 되는 셈이다. 신포가 끝나면 구포손질까지 하고,
       이 한 바퀴를 돌고 나면 5월 초나 중순이 되어 있다.


       하루 온종일 일하고 해가지면 집에서 하루 종일 엄마 아빠를 기다리다 잠이든 아이
       들을 볼 때 마다 아이들한테 미안한 마음에 들어 잠든 아이들을 꼭 안아주곤 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엄마 아빠 보다 키도 크고 착실하고 성실 하게 예쁘게 잘 자
       라 의젓한 사회인으로 장성을 한 것이 고맙고 대견스럽기만 하다. 아무튼 건강 하고
       숨결마다 걸음걸음마다 복과 행운이 늘 함께 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가 할 몫인
       것 같다.


       덧없는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채 안되어 시어머님 그토
       록 미운 며느리를 놔두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기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 이
       후로 홀 시아버님과 5년을 같이 살았고 아버님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큰 슬픔에 해
       를 거듭 하던 중 나에게 새 삶을 갖게 된 동기는 운전면허를 취득하게 된 것이 중요
       한 날개를 단 최초원인이다. 그리고 곧이어 컴퓨터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였고 가정
       형편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초보운전에 차를 끌고 열심히 다니며 컴퓨터도 배우
       기 시작했다. 변해가는 세월 속에 나 또한 변해야 세상 흐름에 끼어서 살고 싶어 노력
       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려도 다시 배우고 또 복습하고 이
       제는 어느 정도 정보화 수준이 올라가다 보니 그래도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게 더
       많이 있는 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40 yesland
하지만 내가 지금 컴퓨터에 글씨를 쓰고 있지 않는가! 여기까지 온 과정은 길었을
지언정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나는 지금 내 삶을 윤택하게 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열심히 노력 하고 알을 박차고 깨어나는 병아리처럼 시
작은 있으되 끝을 모르는 인생 즐거운 삶을 행복으로 간주하는 나는 행복한 여자.
그리고 농업리더과정 e-비즈니스 4년차도 꿈꾸고 있지 않는가!


내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있기까지에는 농업기술센터에 생활개선회가 있었고 역
대 소장님을 비롯하여 과장님, 계장님, 지도 사 선생님들의 아낌없는 성원과 지칠
줄 모르는 끈기 인내심 덕분입니다.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 나의 각오 -
나를 이끌어주는 는 용기만이
소리 없이 사뿐사뿐 내리는 눈처럼
온 천하가 하얀 백색으로 변해
눈꽃을 만들듯이
나의 지식창고에도

                                                     예산군 E-비즈니스
눈송이 숫자만큼
많은 지식과 덕을 쌓으며
지나온 세월만큼 열심히 달려 나갈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행복은 나를 지켜줄 것이며
                                               Business2.0




나는 행복한 여자.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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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이화영
■ 닉 : yiabb (이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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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메일 : yiabb@yahoo.co.kr
■ 네이트온 : yiabb@nate.com
■ 블로그 : http://leemix.tistory.com
■ 소속 / 하는 일
웹사운드 전문가, 프리랜서 사운드 디자이너, 웹 기획, 음원서비
스 기획
■ 태그 : 웹사운드, 웹뮤직, 사운드디자인, 뮤직비즈니스




                                      43
http://junzzang.com/entry/13-1
  Yesland Business2.0
    06:
              해, 달, 별, 빛이 머무는 가야약선농장
                        - 박광수

       명산대찰을 배경으로 한 산촌에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농부인가 신선인가. 예산군 가야 약선마을 대표 박광수씨가 그런 사람이다. 이
       런저런 가공식품도 내놓고 유기농 나물채소도 상품화한 농가라 해서 특별한 시설
       재배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현장은 영 딴 판이다.


       박 씨는 농업경영인 중 임업후계자이다. 수덕사를 품고 있는 가야산 3부 능선쯤의
       산 35만㎡에 참죽, 오가피, 엄나무, 두릅, 도라지, 더덕 등 40여 종의 약용과 식용이
       가능한 산야초를 재배하는 임업인이다. 봄이 오면 이런 나무들의 새순을 따서 나물
       채소를 팔기도 하고, 가을에는 열매를 따다 장아찌를 담거나 뿌리로 즙을 내기도 하
       는 소위 혼자서 생산, 가공, 유통을 다하는 신지식 농업인이다.


       그런데 그의 농법이 예사롭지 않다. 그 흔한 무농약, 저농약 운운하는 유기농법이
       아니고 완전 자연농법에 가까운 농사를 하고 있다. “햇빛, 달빛, 별빛에 물과 바람을
       고스란히 맞히지 않고는 자연 임산물이라 말 할 수 없다” 는 것이 박 씨의 신념이며
       고집불통 농법철학의 바탕을 이룬다.


       모든 작물은 어린 묘목 때 잡초에 치이어 이겨내지 못하고 질 때가 문제이지 그 단
       계만 지나서 잡초보다 커지면 별문제 없이 성장한다.그래서 물길 닿고 햇볕 좋은
       곳을 찾아 작물을 심고 한두 해 잡초를 제거하는 것, 이것이 이곳의 농법이다. 그 다
       음은 야생 작물과 똑같이 비바람 맞으며 크게 놔두고 적기 수확하여 이용하는 것이
       란다.


       백문이 불여일견. 4륜 구동 차를 타고 산판길을 돌아 그의 농장을 돌아보니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생산된 임산물의 관건은 판로이다. 박씨는 각종 상을 타고 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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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도 타기 시작하면서 산림청, 농업기술원, 농업기술센터, 지자체에서도 이런저런
정책, 기술지원을 해주어 여건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모든 것이 나의 몫이라는 생각
으로 주경야독하면서 계속 탐구하고 쫓아다니는 신지식 농업을 한다.


카페에 띄워 번개 만남으로 농식품부 장관이 이 마을을 방문하기도 하고 지인과 마
니아들을 이곳에 유치하여 시찰 프로그램을 운영, 입소문을 퍼뜨리며 경영개선 노
력을 기울인다.


겉보기엔 유유자적하는 농사꾼인 것 같지만 역시 농사도 경영 수지를 맞추진 않고
는 어림도 없는 험산험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씨는 자기 집 앞에 약초체험관은
물론, 덕산 스파캐슬, 수덕사, 성지순례길 심지어 한서대학까지 지근거리의 모든 여
건을 감안한 홍보 전략과 체험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란다. 농민의 살아남기 위한 처
절한 노력의 일단을 볼 수 있었다.


* 이야기가 좀 더 풍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농법을 시작한 사연, 소셜 웹을 활용한
사례가 없네요,




                                                        예산군 E-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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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영원한 선생님이 되고픈.. - 박순선


       한과를 만들며 농촌체험관광 사업을 하고 있는 나는 강원도가 고향이다. 강원도 하
       면 산과 계곡 그리고 푸른 바다가 먼저 떠오른다. 나의 고향은 푸른 바다를 가지고
       있는 삼척. 지금은 관광산업이 경제 동력의 한 축이라지만 당시 삼척은 굉장히 조용
       한 곳이었다.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이 평범히 지내던 나는 학교 졸업 후 서울로 상
       경 후 재미있는 시절을 보냈다.


       서울 하면 그때만 하여도 ‘서울사람은 깍쟁이’라는 나름대로의 시골사람들의 평가
       가 있었지만 서울사람들도 대부분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활하던 시기들 이었다. 사
       람 많고 배울 점도 많았기에 어른들께 모르는 것을 배우며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고 언제나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마음이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만난 지금의 남편은 동생들을 돌보며 가르치
       느라 정신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결혼하면 시골로 가서 농사를 짓겠다는 그의 말
       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 채, 콩깍지 씌었다는 남들의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은 결혼 후 불과 1년도 채 안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가장 큰 착각은 여자가 들판에서 감당해야 하는 노동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생
       각지도, 꿈도 꾸지 못 했다는 것. 힘든 노동에 어린 새댁이었던 나는 여러 가지를 고
       민했었고,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신 시어머니와의 갈등 또한 수년간의 연애 끝
       에 이룬 사랑을 파하고 싶다는 마음마저 들게 했다. 그때는 신랑에게 다 못했던 이
       야기들... 그러나 1990년, 시어머니께서 명절 때 마다 만드시던 한과를 정식으로 제
       조허가 받아 시작 한 후 수많은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 제조허가를 어디에서 받았는지, 국가에서 받았는지 등 명시를 정확히. 시어머니에



46 yesland
게서 만들던 한과가 어떤 특징과 장점이 있어 선정 되었는지. 시어머니가 함께 만들
던 한과를 며느리가 함께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함께 만들면서 어려운 점은 없
었는지. 하는 내용이 추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한과의 종류 ♣
유과류, 강정류, 다식류, 숙실과, 정과류 등으로 나뉘어 지며 그 중 유과와 강정, 다식
의 종류는 간식용으로 애용이 된다. 유과는 각 지방 여러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생
산되고 있으며 그 제 법은 찹쌀을 주 원료로 하며 떡 만들기-건조-튀김-즙청-고
물무치기 등의 일반적 순서로 만들어 지며 만드는 지역, 사람에 따라 다르다. 주로
중, 장년층을 주 소비자로 하고 있어 자라나는 신세대에 가까이 다가 가는 것은 한
과업계의 큰 숙제 중 하나이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기록이 있고 한과의 전성
기는 고려, 조선시대를 지나 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생과가 없던 시절
겨울에 주로 만들어 먹었던 것으로 생과 대비 조과라고 하기도 한다.


가장 맛있게 만드는 방법은 좋은 찹쌀의 선택과 착실한 기술 ,좋은 조청의 선택이다.
유과에 있어 좋은 품질의 한과는 부드러우면서 달지 않고 기름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관건이며 오래 될수록 노화 현상에 의한 딱딱하고 상대적으로 부드럽지 않다.
건조하고 서늘하며 햇볕이 없는 곳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산군 E-비즈니스
사람이, 세상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시금석이 되어 나
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1991년 한과 정부지원 업체로 선정되어 지원이 되었고,
1992년 정부품질인증을 받은 일 (농림전통8호 업체), 한과업계 최초로 낱개 포장한
한과가 히트 치던 일, IMF때의 쓰라린 추억, 그 속에서 겪었던 여러 형태의 인간들,
                                                    Business2.0




세상의 모습, 어려울 때마다 용기를 주었던 기도의 힘, 남의 일이라 여겼던 병마와
의 투쟁, 모든 것을 잊고 재미있게 살라는 조언을 받아, 공부하고자 다닌 기술센터
와의 인연. 컴퓨터를 배우고, 규방공예며 한지공예, 음식을 배우면서 여러 가지 느낀
새로운 것들...




                                                    47
아이들이 어렸을 때인 1995년에 잠시 컴퓨터를 배웠지만 지금에 비하면 너무 힘들
       게 또 어렵게 배웠다. 너무 재미있게 작은아이와 같이 배우면서도 학생들 틈에 끼어
       열심히 배웠지만 컴퓨터를 별로 쓸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농업기술센터에서 컴퓨
       터 교육과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처음 기초부터 다시 배울 수 있어 반가웠다. 기
       초 과정부터 차근차근, 또한 블로그 개설 및 운영, 전자상거래의 가능성에 대하여는
       한마디로 무한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무한 한 공간에서 마음껏
       활동이 가능 할 것이라 생각 하지만 그만큼 그쪽에 시간을 할애 할 수 없다는 현실
       이 안타깝다.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강구하고 있지만 정답이 없고 좀 더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잊고 살았던, 어릴 적 꿈꾸던 선생님의 길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 서로 알려주
       고 배우며 살아가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흘러가는 모든 것 들이 아름답다. 이젠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나눔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살려 한다. 전통음식을 만들고, 바느질
       을 하며, 한지공예와, 어른, 아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재미있게 가르치고 또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새로운 날을 마지막 날처럼 살려 한다. 지금은 훌~~쩍 커 버
       린 아이들 앞에서, 세상 앞에서, 당당한 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 배우신 것들을 가르쳐 줄 사람이 생긴 건가요? 아니면 현재 누구를 가르치고 있으
       신 건지? 구체적으로 설명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존경 받는 선생님, 스승님처럼..
       스승이 없는 지금의 시대에 스승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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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E-비즈니스
              Business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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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bizstory.com/445
  Yesland Business2.0
    08:         복사과 열매를 맺기까지 - 복경춘



       1984년 3월 18일에 7남매의 장남인 남편을 만나 예산으로 시집을 왔어요. 농촌생활
       농사일이 두렵지 않아 선택했습니다. 이웃끼리 정겹고, 서로 돕고 생각하는 자그마
       한 마을입니다. 85년에 남편의 권유로 농민후계자에 선정이 되었고, 그 해에 큰아들
       호선이를 얻었습니다.


       시골생활을 하다 보니 저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동네의 젊은
       아낙들을 보니 기동성이 없어 논밭을 다니기가 답답하다며 저를 부러워했어요. 그
       래서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 마을회관에서 자전거 타기를 가르치기 시작했
       어요. 낮에는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날마다 자전거를 가르쳤어요.
       너무나 힘들었지만 남편과 시어머님께서는 아기를 돌봐주셨기에 더 열심히 가르쳐
       줄 수 있었어요. 정말 보람 있었어요. 그리고 오토바이도 배우고 싶으신 분들을 위
       해 오토바이도 가르쳐 드렸습니다. 매일 그렇게 가르쳐 드리면서 얼마나 힘들었는
       지 허리도 꼼짝 못하고 해서 한의원을 갔다니 맥을 보시고는 임신이라고 하시더군
       요. 이듬해 둘째 아들을 얻었어요. 그 후 8년 동안 병석에 계시던 아버님은 92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96년도에 공주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을 하면서 여성농업인 창립을 했어요.
       그 해에 남편과 함께 축산을 접고 사과나무를 심었어요. 예산하면 사과의 고장이잖
       아요. 열심히 노력했죠. 사과 첫 수확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여성농업
       인 연합회 임원 활동을 틈틈이 하면서 사과농사와 벼농사를 하였고, 힘들었지만 보
       람도 있었고 재산도 조금씩 불어나서 쏠쏠하니 재미가 있었어요.


       열심히 농사일을 하면서 사는 저에게 어느 날 아무도 생각 못한 시련이 왔습니다.
       감기 한 번 앓지 않고 평생 건강하던 남편이 급성 암으로 2003년 12월 25일에 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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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아직은 40대 젊은 나이에 기가 막혔
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사랑하는 아들 호선이, 호식이가 있기 때문에 슬퍼하며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사과과수원 4,000평, 벼농사 20,000여평...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멈춰버리기 때문입니다.


장대 같은 아들만 바라보고 더 열심히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두
아들을 같은 해에 군 입대 시키고 정말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동네 부녀회장을
맡아 “여성이 건강해야 집안이 건강하다. 그래야 농촌이 더 잘 살 수 있다.”고 새벽
부터 저녁 늦게까지 동네 일이며 면사무소 행사며 여성경영인 일이며 동분서주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열심히 땀을 흘렸습니다. 조금이라도 여유시간이 나면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린 남편생각에 잠 못 이루며 힘들었기 때문에 몸이 으스러지
도록 정말 일을 하고 또 하고 억척스레 살아왔습니다.


우리 마을도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어 거의 대부분이 60이 넘은 어르신들입니
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친목도 다질 겸 일주일에 한번 등산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우선은 부녀회원 중심으로 가까운 산부터 도전을 하였습니다. 나의 애마 더블 캡에
여러 형님들(대개 60~70세 할머니)을 태우고 용봉산, 가야산, 칠갑산, 오서산 등을
오가며 땀 흘려 등산을 마치고 올 때는 따끈한 칼국수 한 그릇 씩 나눠먹고, 비좁은
차 안에서 며느리, 시어머니, 남편 흉도 보고 자식들 자랑도 하고 온갖 수다를 떨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며 이웃집 숟가락 갯수도 훤히 알만큼 서로 친숙하게 살아가
게 되었습니다.                                                     예산군 E-비즈니스


남편이 남기고 간 커다란 구멍을 동네일로, 과수원일로 달래가던 중 2004년에 농업
기술센터에서 컴퓨터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친김에 우리 마을 모든 분들에게
                                                       Business2.0



컴퓨터라는 기계 구경이라도 해드리고 싶어 마을주민 단체교육을 신청하여 인터넷
활용과정까지 3주 동안을 야간으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온 동네가 컴
퓨터 열풍이 불어 컴맹을 탈출하였답니다. 과정이 끝나는 수료식 날 농업기술센터
에서 동네 잔치를 벌였습니다. 떡도 하고 돼지도 잡고 직접 동네 분들과 음식을 장
만하여 직원 분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자축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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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가슴 뿌듯하던지요...


       그때부터 주경야독으로 컴퓨터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2005년에 과수전자상거래
       실용화과정(10개월), 2006년 전자상거래과정, 2007년 e-비즈니스과정, 2008년 e-비
       즈니스심화과정, 2009년 e-비즈니스 3년차 과정, 2010년 e-비즈니스 4년차 과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마케팅이 뭔지, 포토샵이 뭔지, 블로그, 카페가 뭔지 교
       육장에서 강의를 들을 때는 끄덕끄덕했는데 돌아서서 문을 닫고 나오면 뭔 소리인
       지 못 알아 듣는 게 더 많았지만 콩나물 시루에 콩나물이 시나브로 자라듯이 이제
       는 이메일도 연애편지 쓰듯이 잘도 쓰고, 블로그 포스팅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습니
       다. 사과작목반을 구성하고 친환경 인증을 받고, 농산물직거래장터와 이곳저곳 여
       러 행사장을 통하여 예산사과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하고 판매를 했습니다. 인터넷
       전자상거래도 시작하여 성수기에는 택배작업 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기도 합니다.


       e-비즈니스과정을 4년차 하면서 가장 큰 수확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된 것입
       니다. 전국적인 인맥을 맺게 되어 복사과의 인기가 날로날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서
       울, 인천, 수원, 대전, 천안 등 대도시 소비자들이 우리 사과를 맛있다고 성원해주셔
       서 늘 기쁜 마음으로 사과농사를 짓고 있답니다.


       올 겨울은 정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마을길이 눈이 쌓여 빙판길이 되어 운전하기
       가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요... 그래서 마을 분들과 의논을 하여 눈이 내린 날은 동
       네 분들이 모두 모여 눈을 치우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내집 앞 눈은 물론이고 동
       네 골목골목 차가 다닐 수 있는 길 위의 눈을 한삽 한삽 치우기로 한 것이지요. 모두
       힘을 합쳐서 일을 하니 훨씬 힘을 덜 들이고도 효과는 엄청났습니다. 우리 마을은
       눈이 와도 미끄럽지 않아 안전사고도 줄어들었고 어르신들도 좋아하시고, 젊은 사
       람들에게도 본이 되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아름다운 본보기가 되었답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더니 주위 분들도 항상
       도와 주셨습니다. 농번기가 되면 동네 분들이 못자리도 도와주시고 모내기도 함께
       하고, 사과 적과, 벼 베기, 사과 따기 등 등 혼자 일해야 하는 저를 먼저 도와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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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겨주십니다. 우리 마을은 황토밭이 넓게 펼쳐서 있습니다. 황토밭에서 충분한 햇
빛을 받고 자란 복사과는 모든 이들에게 복을 담아드립니다. 농사도 정성입니다. 꽃
이 필 때부터 하늘과 땅과 농부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한올 한올 실을 짜듯이 사과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내 아들들이 먹고 부모 형제와 친척, 내 가족이 먹기 때문에
안전한 먹거리 생산이 가장 큰 화두입니다. 번거롭고 조금은 더 힘들지만 친환경자
재와 퇴비, 미생물 등을 많이 사용합니다.


금방 따서 옷자락에 쓱쓱 문질러 한입 베어 물면 단물이 입안 가득 차며 사과 향이
상큼하게 퍼지는 새콤달콤한 복사과! 농촌의 따스한 인심과 여유까지 담아 복사과
가 찾아갑니다.


올해도 주경야독하며 함께 더불어 잘사는 농촌 만들기에 굵은 땀방울을 아끼지 않
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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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실 향 나는 숲속궁전, 은솔매
                          - 신영목

       정부의 시책으로 정관신도시가 탄생되던 날. 정관 주민들은 탄성을 내지르며 모두
       들 축제 분이기에 젖어 들었어요. 그것도 어렵사리 김동주 국회의원님과 박태준국
       무총리님이 애써 힘써준 덕분으로 좋은 결실의 열매를 맺었는데 신도시로 확정되
       고 보니 우리 주민들에게는 불행의 씨앗으로 변했어요. 처음에는 다들 부자가 되는
       기분이었는데 현실은 너무 초라했어요. 땅 평당싯가는 너무 낮게 책정되고 공지싯가
       로 보상을 받게 됐어요 * 구체적인 가격 들려주세요. 고향주변에 정착을 해보려 하여
       도 이미 주변에 땅값이 너무 올라 제2의 고향을 찾다 보니 친척의 권유로 충청도 예
       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산에 정착한지도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
       다더니 이제 어엿한 은솔매 농장 주인이 됐네요. 처음에 올라왔을 땐 동산에 나무들
       이 우거져 작은 산속에 동그라니 집 한 채 있어 너무 삭막했는데 이젠 숲속 궁전이
       됐네요. 꽃과 나무를 좋아해 한 그루 두 그루 심다 보니 꽃밭도 있고 소나무 은행나
       무 향나무 여러 가지 나무동산이 됐네요. 그리고 매실나무도 심다 보니 은솔매 농장
       이 탄생한 거지요.


       은솔매란 은행 소나무 매실나무가 아름다운 농장이란 뜻이에요. 이른 봄이 되면 매
       화꽃이 활짝 피고 꽃샘추위를 이겨낸 목련의 하얀 꽃송이가 달빛에 비추어 보면 하
       얀 눈송이가 뚝뚝 떨어지는 샹들리에 눈꽃송이처럼 보여요. 목련이 지고 나면 영산
       홍 붉은 꽃이 너무나 곱게 피죠. 함박꽃 라일락 백합이 고귀한 멋을 부릴 땐 천지가
       백향기로 가득하죠. 그러다 보면 연록색 잎이 새침떼기가 될 때 초롱초롱 매실이 콩
       알처럼 커가요. 그리고 이맘때쯤이면 고사리 땅두릅 엄나무순 두릅 참죽 죽순 나물
       시장이 되는 거죠. 이렇게 자연이 주는 혜택에 늘 감사하며 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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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유월이 되면 상큼한 매실이 주렁주렁 커가요. 상상해 보셨나요? 매실 철이
되면 살구랑 자두랑 보리수도 빠알갛게 익어가고 새까만 오디도 그 대열에 춤춘답
니다. 이맘때쯤 되면 잠자던 은솔매 농장에 방문객이 하나 둘 늘어가고 매실 따기
체험도 이루어져요. 작은 수입이지만 내 가게에 보탬을 주지요. 많은 사람들과 인정
을 나눌 수 있고 친해지기도 한답니다. 아침이 되면 참새들이 대나무 높은 가지에
앉아서 재잘재잘 새벽잠을 깨우고 동창너머 큰 나무 높은 가지에는 비둘기 나래를
펴고 숲속엔 꿩들이 둥지를 틀고 아침 해가 떠오르면 농부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죠.
* 매실따기 체험이나 은솔매농원을 운영하는 구체적인 모습이 좀 더 그려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소셜 웹 활용은?


튼실튼실한 팔다리에 힘을 주다 보면 배꼽시계가 식사시간을 정확하게 알리는데
그때의 먹는 밥은 꿀맛이죠. 여름이 지나갈 무렵엔 노오란 은행잎이 뚝뚝 떨어지고
노오란 알맹이가 함초롬이 달리는데 자연의 신비로움에 경탄을 금치 못하죠. 노오
란 알맹이를 자루에 담아 짓눌러 물에 씻어 하얗게 말리면 살아있는 생징코민. 이놈
을 신문지에 싸 전자렌지에 4분간 구으면 쫀득한 것이 얼마나 맛있는지. 또 대추나
무에 주렁주렁 달린 빨갛게 익어가는 생대추는 얼마나 달콤한지. 벌어진 밤송이를
털어 알맹이를 까는 재미는 먹는 것 보다도 더 신바람 나죠.


가을 찬 서리에도 끄떡없는 야생들국화 금잔화 설악초 꽃송이는 꽃들의 향년에 날
아드는 꿀벌과나비들의 축제는 오늘 내가 살아있어 오감의 행복을 맛보는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 싶어요. 인생은 어차피 진공묘유 공수래공수거 라지만 책 속에 빠져          예산군 E-비즈니스
진리를 찾는 삼매경이나 취생몽사 몽생에서 대아를 좇는 삼매경이나 인생은 어차
피 인생일장 춘몽일진대 수신제가 이후 지천명이라 했던가. 안마을 사장님이 자주
쓰는 말씀이죠. 세상만물 만상의 끝에 서더라도 아무런 후회가 없겠죠.
                                                Business2.0




계절이 바뀌면 숲속에 궁전에도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오죠. 멀리 부산에서 서울에
서 혹은 고향에서 친지들이나 고향친구들의 방문이 있을 땐 은솔매의 친환경 농산
물로 찬치를 벌이죠. 먹는재미 보는재미를 느끼면서 고마움과 감사하는 마음의 표
시를 아끼지 않죠. 정말로 세상사는 재미를 느끼고 항상 자연이 주는 모든 것에 감




                                                57
사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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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E-Business 3년
                           - 안종우

       옛날에 가난한 선비가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공부를 하였는데 촛불을 밝힐 수가
       없어 여름에는 들에 날아다니는 개똥벌레를 잡아 모아서 여러 마리의 반딧불이 밝
       히는 불빛을 이용하여 글을 읽었고, 겨울에는 눈 내린 달밤에 달빛이 눈을 비춰 창
       문너머로 들어오는 눈빛을 이용하여 글을 읽어 공을 이루었다 하여 주경야독(晝耕
       夜讀),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 하였다.


       우리 예산군 E-Business 교육생들은 아주 힘들게 공부를 하였다. 낮에는 각자의 농
       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였고, 밤에는 기술센터 정보화 교육장에 모여 컴퓨터 및 각종
       교육을 받았다. 적은 예산이기에 정보화 담당직원이 직접 컴퓨터 강사가 되었고, 낮
       에 교육을 받을 시에는 가격이 저렴한 구내식당을 많이 이용했으며, 교육 시간을 아
       끼기 위해 식사를 배달시켰으며, 겨울 밤 추울 때에는 교육장 안에서 식사한 기억이
       있다.


       신라의 화랑도가 삼국통일을 위해 전국을 다니면서 훈련을 받고 심신을 수련했듯
       이 우리 교육생들도 선진 농업인을 찾아서 현장 교육을 많이 했고, 벤치마킹을 많이
       했다. 강원도의 에덴양봉원과 홈삼팜을 갔을 때 비가 많이 내려 도로까지 올라와 차
       가 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물위에 떠가는 느낌이었다. 일종의 수막현상이다. 우
       리 일행 모두가 동해바다로 떠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황급히 계획을 바꾸어 수원의
       농협마트를 살펴보고, 서산의 정동홍화마을을 방문하여 견학한 기억이 있다. 고양
       시의 마실촌 체험농장과 마마님 청국장, 프로방스와 ~~~~(뭐죠??)을 방문하여 견
       문을 넓힌 기억도 있고. 교육생 각 가정을 모두 방문하여 문제점과 발전방향을 함께
       연구하였으며 윤선 박사님의 마케팅 교육 시 가야약선마을의 MBC 현장 촬영에 함
       께한 기억이 있다. 땅끝 마을 해남에 갔을 때는 오랜 가뭄으로 애타고 있을 때 단비
       를 몰고 가서 함박눈을 선물로 주고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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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암~~~~(~~부분 내용 삽입 필요)은 수령 500년의 동백나무가 특이했고, 고구마
와 호박을 생산하여 고소득을 올렸고 끝없이 펼쳐진 갈대숲은 이지역의 크나큰 자
랑이었다. 은향다원의 녹차밭 언덕에는 눈이 내리고 있는데도 개나리가 노랗게 피
었으며 녹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설아다원의 펜션은 우리
일행의 보금자리였으며 전남의 명창이 이 집에 있었다. 백년지기의 무화과 재배와
연근 재배, 드넓은 농경지와 수많은 장비들은 농업도 기업임을 실감케 하였다.
~~~~어장에서 전복과 소주가 어찌나 맛있던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
생하다. 오는 길에 함박눈이 많이 내려 차량이 거북이 걸음으로 운행하여 무척 불안
했으나 우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각자의 발표와 토론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익
히며 연구했다.
Q 다녀오신 곳에 관한 지역 정보만 있고 각각의 방문을 통해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벤치마킹하고 계신지에 대한 언급이 없으시네요, 이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하고 궁금한
걸요~


제주도 서부농업기술센터엔 우리나라 제일의 선인장 재배와 가공공장, 주변의 열
대 식물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울창하였다. 카멜리아힐은 개인 독지가가 황무지를 개
발하여 제주도의 한림공원에 준하는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인 수목원 이었다. 서귀
포농업기술센터의 <자연생태원과 감귤홍보관>은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규모가
아닌가 생각된다. 올fp길 맨발로 걷기, 한라산 극기 훈련, 등산하는 도중 비를 맞으
며 등산했고, 관음사 계곡으로 하산 할 때는 8.7km의 거리를 200mm의 비를 맞으며         예산군 E-비즈니스
5시간동안 내려오면서 천둥 번개와 폭우로 인해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려도 낙뢰가
두려워서 받을 수가 없어 본 훈련에 참석하지 못한 교육생은 실종되지 않았나 하고
무척 애를 태운 모양이다. 어느 군 특수부대가 이보다 더 강한 훈련을 받으랴? 그러
                                                    Business2.0



나 우리는 해냈다.


우리가 본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로 옛날 탐라국이 재현된 것만 같았다. 우거진 숲도,
열대우림도, 돌과 바람과 바다와 과일나무 열매까지도 이국적(異國的)인 느낌을 주
었다. 다른 곳은 차량과 선박을 이용하지만 제주도는 비행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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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연(충남전자상거래연합회) 번개모임에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온종일
       우리와 함께 있었고, 충남농업기술원에서의 충남사이버농업인정보화대회에서도
       오랫동안 함께한 것은 크나큰 자랑이다.
       지난 가을부터 연말까지 Vcorea 유영진 대표와 코칭님들의 블로그, 트위터, 링크나
       우 등의 교육으로 인해 많은 인맥이 연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3년이란 세월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열심히 공부했다. 낮에는 일
       하고 밤에 공부를 하려니 몸이 피곤하고, 쏟아지는 졸음을 견딜 수 없어 커피를 연
       거푸 마셔가며 교육을 받았기에 지금의 이 수료증은 서울의 일류대학의 졸업장보
       다 더 소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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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나나리기법과 함께 한 나의 인생
                      - 이능원
       내 인생의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와 준 것은 IMF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농업
       이 후회하지 않는 좋은 나의 업이다. 새로운 세계에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1978년 학교를 마치고 농업에 뛰어들어 처음으로 해본 것이 고추 온상묘로 재배하
       는 것과 봄배추와 양배추를 도전 했던 것이다. 고추는 성공적인 수확을 했고 배추
       역시 잘 가꾸었다. 양배추는 묘상에서 실패하여 묘 숫자가 나오지 않아 한 봉지의
       종자로 100여 개의 모종을 생산하여 양배추재배 특성을 파악하였다. 지금이나 예전
       이나 생산은 되어도 판매가 항상 걸림돌이었다.


       아버지 곁에서 하는 농업의 경험을 개혁이라 할까 어린 제 나름대로 해보았지만 판
       매의 문제점이 따라다녀 하는 수 없이 한 해를 못 버티고 상경을 결정하고 아버지
       께 말씀을 드리니 마음대로 해보라고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마음 가볍게 무작정 상
       경해 형님 댁에 머무르고 구로 공단을 헤메기 시작했는데 정문에 구인광고가 있는
       곳은 무작정 들어가 일하고 싶어 왔노라고 말하면 공장에서 원하는 인력이 아니라
       는 말에 뒤통수를 긁적이며 돌아서야만 하는 일을 반복하다. 영등포역 뒤에 있던
       OB맥주공장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하니 경비실에서 기선산업이란 곳을 알려
       주며 거기에 가서 말하라기에 가서 말하니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묻더군요. OB맥주
       가 그냥 좋아 왔노라고 했더니 내일부터 나오라기에 이제 일자릴 구한 기쁨. 하루
       일하고 그만 둔 것이다. 그곳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 두게 된 것이
       다. 그리고 하는 수 없이 귀향길을 택해 내려와 추운 겨울을 넘기고 다시 상경하여
       신문광고만 뒤적여 보았는데 거대 삼성전자의 구인 광고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희
       망과 기대에 차 이력서를 가지고 수원으로 내려가 삼성전자 정문에 서니 정말 어마
       어마하게 보였다. 인사과장의 면접을 보고 나서 부서 배치가 되는데 도장부서라는
       전혀 생소한 곳이었다. 나하고 같은 부서를 배정받은 동료들이 불만이 많았다. 제일
       나쁜 곳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말을 들으니 뭔지 모르게 싫었다. 점심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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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 과장과 면담을 하고 나서 공정배치가 되는데 정문을 나선 것이다. 매주 목요일
에 모집을 하는 것을 알았기에 한 달 후에 다시 접수하여 가려고...


한 달 후에 다시 가서 면접을 했는데 재수가 이리도 없는 거야 세 명의 면접관이 있
는데 왜 또 지난번에 면접을 한 그 사람이 날 면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
까 날 알아보는 것이었다. 지난번에 오지 않았냐고 묻기에 솔직히 그렇다고 말했더
니 더 이상 묻지 않고 끝난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대기업은 컴퓨터가 활용되는 시
대라 이제는 끝났구나 하고 가슴 졸이고 합격여부를 기다리고 있는데 또 먼저 그
부서였다. 다시 귀향할 순 없고 체념하고 말았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열심히 하기로 다짐하고 근무를 시작했다. 며칠 간 일을 하다 보
니 기술 분야가 보인 것이다.


이곳에서 최고의 기술은 SPRAYER가 되는 것이었다. 당장 반장을 만나 SPRAY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니 공정을 바꾸어 기능연마 할 수 있게 공정이동 배치해주어 한
달 간 기술연마 끝에 조장이 날 데리고 다음공정으로 간다. 속으로 환호의 쾌재를
외치며 내숭을 “제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라고 하니 아무 소리 말고 따라오라
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3년 씩 기다리고 있는 근무선배가 많았는데 입사한지 한 달
만에 승진코스인 하도로 공정을 옮긴 것이다.) 하도에서 약 3개월 만에 다시 중도로
중도에서 6개월 만에 상도로 진입했다. 아주 빠르게 최고의 기술공정에 진입한 것
이다. 상도에서는 DISK (미국의 RANSBERG사에서 만든 자동 원심분력을 이용한
도장기임)를 컨트롤하는 OPERAYTER까지 기능을 쌓았다. 그 당시 기능공은 회사          예산군 E-비즈니스
를 3회 이상 이동해야 임금을 제대로 받는다는 설이 있었다.


그래서 선배들이 소개한 대우통신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대우로 직장을 옮기고
                                                  Business2.0



나니 마음이 그리 편할 수가 토요일 오전근무 일요일 휴무 봉급은 전보다 2배. 삼성
에서는 휴일도 없어 연애 하려고 해도 근무에 시간 배치가 되질 않아 고생했는데...
이런 것이 만고강산이라고 하는 건가?


1984년 이모님의 소개로 지금의 집사람을 만나게 되어1985년 결혼를 하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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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집사람 역시 부천이 직장이라 연애하는데 편리한 점도 있었지요. 수원 천천동에
       동생이 투기를 한다고 주공아파트를 당첨해놓은 것이 부동산 침체로 가격이 부동
       이었다. 계약금 300만원을 넣고 중도금이 2차 연체가 되어 계약금을 날릴까 싶어 내
       가 사기로 결정해 있는 돈 없는 돈 빌려가며 연체중도금을 치르고 1986년 12월에
       입주를 해 수원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수원에서 부천까지 전철로 출근을 하는데 시
       간 활용을 위해 농업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버섯의 책을 보다 천마를 처음 알게 되었
       고 항상 머릿속에서 궁금한 존재였다. 아침마다 전철을 타려고 아파트 정문을 나서면
       삼성전자 통근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러움이 넘쳤다.


       1987년, 다시 삼성을 전에 근무할 적 선배들이 주선해서 다시 입사하게 되었다. 있
       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근무했던 사람, 그것도 경력자로 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선배들이 만들어 입사를 하게 되었다). 다시 삼성에 우수한 이론 시험
       성적으로 합격해 ROBOT 도장기를 컨트롤 해오면서 도장공정의 가장 큰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방향을 돌렸다. 가장 큰 문제가 색상 교환 장치 개발이었다. 여러 기능
       공이 시도 했으나 실패했다는 것이다. 실패사례를 취합하여 나름 연구해 시험해 보
       고 실패하고 실패를 반복해 가며 자나 깨나 출퇴근 통근버스에서도 메모지에 그리
       고 쓰고 하여 개선 방안만 모색했던 것이다. 약6개월간 내 머리는 오직 연구에만 빠
       진 것이다. 그 당시 나의 아내가 고맙게 생각되는 것은 어떤 불평도 없이 나를 편안
       하게 해주어 한곳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발명을 탄생시킨 것이다. 내가 해낸 것이지
       만 너무나 큰 발명이었다. 도장인이라면 누구든 놀랄만한 발명이었다. 더욱 높이 평
       가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적은 금액으로 제작이 가능하게 개발 한 것이다. 도장
       업계의 혁명이라 해도 될 만큼 대단한 발명이었다.


       나는 이것으로 끝을 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특허에 도전을 했다. 기술을 글로 논
       리 정연하게 기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술을 글로 쓰는데 1년이 걸렸
       다 써 놓은 것을 다시 읽으면 내가 보아도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수없이 발생되어 다
       시 고쳐 쓰고 읽고 하여 1년 만에 특허를 접수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심사
       기간이 3~5년이 걸려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특허취득 통보가 온 것이다. 하지만 여
       기서 끝을 내지 않았다.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 해외 특허에 도전하기로 결정.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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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은 일본과 중국이었다. 2개국에 제출한 결과 중국 특허를 취득해낸 것이다. 이번
특허에 탄력을 받아 도장 공정의 모든 공정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개선에 들어갔다.
성과가 큰 개선이 나를 통해 개선이 되자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는 도중에 도장산업이 환경에 문제가 되다 보니 WET(촉촉한)에서 POWDER
(분말)로 바뀌는 추세로 LINE 이 새로 바뀌어졌다. 도장인으로서 WET 도장만 알고
POWDER를 모르면 어찌 도장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공사 중인 설
비를 틈틈이 살펴보았다. 신POWDER LINE이 생산에 진입했는데 생각대로 생산이
이루어지질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 LINE을 안정화 시킬 사람이 나라고 판단한
과장이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내심 기다리던 것이 찾아온 것이다. 스카우
트 제의에 수락하고 부서를 이동해 설비를 파악하고 개선이 시작되었다. 일이 재미
가 있었다. 집보다 회사가 더 좋았다고 하면 믿겠는가. 이것은 경험하지 않은 분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이렇게 약5년이 지나고 POWDER 공장도 문을 닫고 말았다. 칼라강판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라도 광주 하남 공장으로 이동하게 되어 집사람과 별거가 시작되었다. 주
말부부란 꼬리표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광주로 내려간 지 1년 만에 그 유명했던 파
국IMF가 터졌다. 그것도 1순위로 대상에 걸린 것이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번을 피해도 2순위 3순위가 또 있는데... 마
음의 결정을 바꾼 것이다 나가기로...
                                                         예산군 E-비즈니스
나오고 나니 구직과 실업급여 등등 찾아 다니다 보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해고자
위로금지급에서 화가 난 것이다. 내생의 청춘을 모두 바쳤는데 위로금 1000만원을
주고 내쫓았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거대 삼성이다. 그 당시 쫓겨난 삼성인 모두가 그
                                                   Business2.0



런 대우를 받았다. 훗날 한국유리와 SK,토지공사 등은 위로금으로 1~2억을 주었다
는 것을 들었을 때 느꼈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승에서 요람까지 책임
진다고 회장이 말한 지 2~3년 만에 이렇게 박대를 했다. 모든 것을 다 바꾸라고 외
치며 마누라만 남기고 모두 바꾸라고 하더니... 잘 먹고 잘 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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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될 것을 예측을 하고 시골에 준비를 해둔 것이 맞아 떨어졌다. 밭에
       배나무를 심어 놓았던 것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2000가을에 일반 벼 포장을 살
       피다 발견한 변이종 찰흑미벼를 증식보급하며 유색 농산물에 빠지기도 했는데 고
       생만 하고 소득은 없던 것을 3년을 이끌어 오다가 이제는 결정을 다시 했다. 고품질
       벼를 생산하여 소비자에게 공급하기로 방향을 바꾸어 고품질 쌀만 공급한다. 배 농
       사를 200그루에서 소득이 점점 늘어 1000만원까지 매출이 올랐는데, 2003년 4월에
       청양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진화작업 중 오른쪽어깨를 다쳐 배나무 과수원 소독
       을 한번 거르는 바람에 적성이 침입해 나무가 피해를 입어 2년을 관리해도 회복이
       되질 않아 결국 캐내고 말았다.


       과거에 일을 하다 다친 어깨는 농업을 하면서 종종 빠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일하
       다 어깨가 빠지면 1톤 트럭을 왼손으로 기어를 변속하며 예산에 있는 정형외과
       (20km)를 달려 맞추곤 했다. 2004년 4월에는 10일 동안 3회나 어깨가 빠지는 바람
       에 마음의 결정을 했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서울 중앙병원에 인맥을 통
       해 수술일자를 예약했는데 8월 5일자로 수술 날짜가 잡혀 한 달을 기다려 수술을 8
       시간에 걸쳐 마쳤답니다. 그동안 한우 축사는 이웃집후배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1
       주일이 되니 퇴원을 시켜서 집에서 자활치료를 했는데 축사관리는 왼손으로 하기
       시작했다. 삽자루 끝은 배에 대고 왼손은 삽자루 중간을 잡고 분변 제거 삽질을 아
       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을 해야 하는 작업이 무리가 되어 결국 왼쪽 팔마저 이상이
       오고 말았다. 몸은 부서지고 소득은 약하고 이때 농업기술세터의 교육에 눈이 트인
       것이다.


       2005년 기술원에서 영농사 양성반 2주간 교육을 최우수로 수료하고 1년간 교육 프로
       그램 중 컴퓨터관련 전자상거래, 엑셀, 파워포인트, 포토샵, 무비메이커, 블로그, 홈페
       이지관리, 마케팅 등의 교육을 모두 이수했다. 처음에 컴퓨터 교육을 신청할 당시의
       제 자신은 직장에서 컴퓨터를 접해 봤기에 시골 분들 들보다 뒤지지 않을 것으로 생
       각을 했는데 막상 교육에 임하니 완전한 판단 착오였던 것이다. 질문하는 내용을 보
       니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분들이 상당 수였고 관리자 모드가 어떻고 하는데 도대체
       알 수 없는 질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관리자 모드에 관한 질문에 기를




68 yesland
기울여도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강사도 개인적인 강의로 전락
되고...


그래서 홈페이지가 있어야 하겠다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2007년에 농촌진흥
청에서 지원한 농가 홈페이지도 지원받아 농산물 홍보 판매도 하고 있다. 충남농업
기술원 정보화 교육과정 중 정보화 과정을 3년간 모든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2007
년 E-biz 멘토링 과정이 신설되어 수준 높은 정보화 교육에 참여하게 되어 질 좋은
교육을 받고 나니 전자상거래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1년 과정을 개근
으로 무사히 수료를 했다. 그런데 E-biz 과정이 2년 과정이 또 있다는 것이다. 더없
이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2008년 3월 어느 날 기술센터에 정보화 교육담당을 찾았는데 하시는 말씀이 충북
영동 농업기술센터에서 1년차 E-biz과정을 시작 하는데 E-biz과정을 수료한 교육
생을 불러서 먼저 배운 입장에서 소감을 발표해 달라는 제의가 있다며 저에게 가서
발표를 해보라고 말씀을 하시기에 한마디로 거절했는데 하시는 말씀이 자료 준비
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질의 응답 식으로 요청이 왔다며 가서 해주길 다시 권하시
기에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었기에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일이니 매우 갈등이 생
기기도 했는데 더욱 걱정은 지금까지 교육을 받으면서 자료 없이 와서 경험담 이라
든가 사례 발표하는 사람을 못 봤기에 망설인 것인데 질의응답 식이라니 대답을 해
놓고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실력은 없어서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은
못하고 한글로 줄줄이 작성해서 usb에 담아 수 없이 읽어 가며 연습을 하고 영동농              예산군 E-비즈니스
업기술센터의 교육이 저녁6시부터 인데 초행길이며 긴장이 되어 집에서 오전 10에
출발을 했다.
                                                      Business2.0



유성ic로 진입해서 경부고속도로를 100km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엘란트
라가 한 번도 속을 썩인 경험이 없던 차인데 이상하게 감이 오는 것이다. 속도는
100km이니 가기는 빠르게 가고 있다. 각속페달을 밟아도 더 이상 속력이 붙질 않
는 것 같다. 시동이 꺼진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일 !!! 그것도 고속도로에서... 우측 깜
빡이를 키고 갓 차선으로 변경해서 탄력이 있어 가는 곳 까지 가다가 차를 세우고




                                                      69
본네트를 열고 의심 가는 부분을 흔들어보고 다시 시동을 시도 했는데 시동이 된
       것이다. 그때의 기분이 말로 표현이 되겠습니까. 당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엄청
       난 기분... 다시 달리기시작 그런데 속력이 나오질 않는 것이다. 30~40km밖에 달릴
       수가 없는 것이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런 경우가 태산이구나 하고 실감했답니
       다. 앞에 터널이 나타나는 것이다. 믿지도 않던 하느님께 마음속으로 빌고 빌었답니
       다. 이 터널을 무사히 지나서 차가 서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었답니다. 그런데
       터널을 통과하는 게 아닌가! 이제 다시 하느님께 다시 빌었지요. 뭐라고? 고속도로
       만 나가서 정지해달라고 말입니다. 아웃 체인지만 있으면 그냥 나가려고 마음을 먹
       은 것입니다. 정비를 해도 일단 고속도로를 빠져나가야 할 것이란 생각에 빌었답니
       다. 그런데 하느님이 신통하게도 내 소원을 잘도 들어주시는 겁니다. 이렇게 국도를
       무사히 나왔지요. 또다시 하느님께 빌기 시작 뭐라고? 정비공장까지 가서 퍼지게
       해달라고 빌었지요. 시내를 한참 달렸는데 정비공장이 보인다 기아 정비공장이다
       내차는 현대인데도 무지무지 반갑다. 상황 설명을 하고 수리를 시작했는데 전혀 다
       른 곳을 만지고 있다 이쪽 센서가 이상이 있으니 부품을 교체해달라고 했는데 그곳
       이 아니라며 엉뚱한 곳을 만지작 거린다. 결국은 내가 말한 부품을 교체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수리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수리하나 마나였던 것이다. 가속이
       붙질 않는 것이 수리전과 동일한 것이다. 그냥 영동센터로 가고 있다. 멀기도 멀군
       요. 물어 물어 영동 센터를 찾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다시 시내로 돌아갔다. 슈퍼
       에 가서 점심을 빵과 우유로 때우고 가게 주인과 손님과 대화로 시간을 죽이고 있
       다 14시 경에 도착을 했으니 너무 일찍 당도한 것이다.


       2~3시간을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고 17시경에 센터에 도착해 담당자를 만나서 인사
       를 나누고 교육할 장소를 살펴보고 센터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시간을 보내고 나니
       드디어 발표시간이 당도 했다. 진흥청에서 오신 오상헌 박사님과 제가 발표하는 것
       이었다. 발표순서가 제가 먼저하고 오박사가 나중에 하기로 되었는데 순서를 바꿔
       오박사님이 먼저 다음에 제가 하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좋다고 하고 시작이 되었는
       데 오박사님은 2~30분으로 간단히 하시고 내 차례가 된 것이다. 단상에 올라가 큰
       절로 인사를 드리고 시작을 했지요. 교육에 가장 기본적인 출석부터 참여와 목표의
       식 등에 대해 발표를 했다. 내가 만든 나나리기법도 설명을 했다.




70 yesland
<나나리기법이란?>
목적과 방법을 정확히 알아 실천하고 숙달되어 여유가 있으며 잊지 못하게 계속한
다. (나나리는 집 지을 장소와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반
복 숙달하여 여유가 있으며 노래로 반복을 계속한다.) 나나리 기법을 최초로 발표
한 사람이 바로 오곡농장 이능원이다.


이렇게 한 발표는 쉬는 시간도 없이 밤10:45분에서 끝을 냈답니다. 발표중간에 유
머러스한 멘트도 준비해 대답하는 분에게는 잡곡을 준비해 간 것을 상품으로 나누
어 주면서 진행을 했답니다. 끝나고 오는데 여포농장에서 포도 와인2병를 선물로
주셔서 한 병은 센터에 한 병은 내가 꼴깍 했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갈 걱정이 태산 국도로 갈까 고속도로로 갈까? 국도로 가도 길도 모
르고 정비공장도 밤12시라 잠을 자니 소용이 없는 것. 가자! 고속도로로 또 하느님
께 빌기 시작. 차가 퍼져도 고속도로를 지나 국도에서 퍼지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고
속도로 통과 다시 바꿔 빌기 시작. 국도를 통과하고 나니 차동고개를 넘게 해달라고
빌며 오르기 시작. 저단 기어를 사용해도 20km 이상 나오질 않는다 .간신히 차동고
개를 넘었다. 요구사항이 또 변한 것이다 집에까지 가게 해달라고 집에 가서 고장이
나도 좋다고 빌며 빌며 온 것이 집에까지 도착 휴~~~~~~우.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
발표를 못했어도 끝냈고 고장난 차가 집에 까지 도착 시켰고 발 뻗고 잘 수 있다. 현
재시각 다음날02시 잠자리에 누웠다.                                      예산군 E-비즈니스
* 앞에서부터 이어진 한 장 여 분량의 차 고장난 에피소드는 생략하는 것이 더 좋을
듯 싶습니다.
                                                    Business2.0



이렇게 E-biz 2년차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2년차에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책임과 의무가 있어 교육이 있는 날이면 집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교육이 있
는 날은 16시부터 교육이면 오전일 하고 점심을 먹고 14시에 소 저녁을 주고 30km
거리를 달리기 시작하면 약30분소요하면 센터에 도착을 한다. 교육담당이신 김기
예 지도사님과 상의 할 사항이 있는지 교육시간 전 30분~1시간을 일찍 출근한 것이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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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산군 본문 20100123

  • 2. http://blog.sciletters.com/89 Yesland Business2.0 01: 초보 주부 제2의 인생 스토리 - 김기애 안녕하세요. 화전식품 김경애입니다. 결혼을 흔히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라고들 하지요. 지금부터 제2의 인생스토리를 풀어보겠습니다. 내 나이 27세에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직장생활만 착실하게 할 것 같았던 9살 연상 의 남자였답니다. 우직하고 착실해 보이는 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이차 가 크다고 결혼을 반대하시는 부모님에게는 그나마 8살 연상이라 속여야 했습니다. 평소, 여자가 시집을 가서 가장 고생스럽다고 생각한 것은 어른들의 육순, 회갑, 진 갑 잔치라 생각이 들었기에, 엄마에겐 그런 큰 행사는 다 지나 없다고 고생스럽지 않을 것이라 설득하여 우여곡절 속에 결혼을 했답니다. 결혼 직전까지도 집안일이라고는 손에 물 한번 제대로 묻혀 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속옷까지도 친정어머니가 빨아 챙겨주셨던, 진짜 고생이 무엇인지 몰랐던 저였습 니다. 근데 이게 웬일!! 직장만 잘 다닐 거라 생각했던 남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결혼 후 몇 달 되지도 않아 우리 큰딸 혜정이와 저를 시골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데 리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엔 저도 모르는 사이 건물이 하나 지어지고 있었습니 다. 그때부터 저에겐 부담 백배, 짐이 지어지기 시작 했지요. 남편은 장류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저는 너무나 반대하고 싶었지만, 결혼 전부터 심사숙고하고 시작한 일이라는 남편 의 뜻을 존중하고 싶었기에 하는 수 없이 승낙했습니다. 저희 살림집은 시내 쪽에 있었고 공장은 시골에 있다 보니 남편은 퇴근 후엔 그곳 18 yesland
  • 3. 에서 살다시피 했지요. 옛날 방식 그대로 장을 만드시는 어머님만 믿고 시작한 사업 이었으나, 한 해가 지나 어머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남편이 어깨 너머로 배운 기술을 토대로, 주말만 되면 우리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장류를 하고 있는 웬만한 곳 은 모두 다니며 벤치마킹을 했고, 갖은 노력 끝에 우리만의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장을 만들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2~3년이 흐른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은 나에게 또 황당한 말을 건넸지요. 다 짜고짜 내일 공장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입니다. 공장을 늘 비워둘 순 없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저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것도 이사 전 날 통보 를 하다니요. 황당하고 놀랬지만 시집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색시가 남편과 소리 지르며 싸울 수도 없고... 혼자 울며 안 간다고 했지만 저의 힘으론 어쩔 수가 없었지 요. 남편은 제가 가지 않겠다는 말에 다음날 저희 형님을 모시고 와서 부엌살림 정 리를 부탁했고 저는 그 시간 아무 말도 못하고 보일러실에서 실컷 울다 가자는 소 리에 울며, 지금 살고 있는 이곳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들어온 후에도 이곳에 적응을 못한 저는 늘 겉돌며, 새로운 생활에 안정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도 벌여 놓은 사업이라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예산군에서 안내하는 직거래 및 행사장엘 다니며, 홍보 겸 장류 판매까지 하게 되었지요. 지나다니는 손 님들께선 저희 제품에 대해 이것저것 제게 물어 와도, 아는 것이 없던 저는 대충대 충 넘어 가며 상황정리를 하곤 했습니다. 그땐 이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감사하게도 장을 드셔 보신 손님들께서 맛있다는 말씀들을 많이 예산군 E-비즈니스 해주시고 후에도 주문해서 드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렇게 다니던 중 우리 장에 관심을 갖고 수출을 해보자는 제의를 받아 미국에 수 Business2.0 출을 하게 되고 미국 식품 안전청 FDA에 가입도 하게 되었지요. 한창 장류 사업이 날개를 단 듯이 궤도에 올라 잘 나가고 있던 때, 큰 아이를 낳고 7년만에 둘째 재훈 이를 낳게 되어 육아가 저의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아이 낳고 3~4년은 육아에 전 념하느라 꼼짝도 못하고 집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19
  • 4. 그러던 중 둘째가 4살 되던 어느 날, 농업기술센터 김기예 선생님의 전화 한 통은 제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e-비즈니스 과정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낯선 소 리였지만 집에서만 생활하기에는 너무 싫었기 때문에 한 번 배워보기로 결정하고 농업기술센터 컴퓨터교실을 찾아 갔습니다. 그곳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땐 너무 생소 하고 어색하여 다시 나오고 싶은 생각뿐이었지요. 처음 보는 시골 아저씨, 아주머니 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저에겐 다였거든요. 그렇게 그분들과의 만남이 하루하루 더 해지자 오히려 제 자신이 더욱 초라하고 못났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창피했습니다. 나이가 드셨지만 낮에는 일터에서 종일 일을 하시고 그 밤에 나오셔서 잘 보이지도 않는 자판을 두드리며 배우시는 모습을 보며, 공부는 죽을 때 까지 한다는 말이 맞 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분들을 보며 한 분, 한 분이 존경스럽고 훌륭하지 않으신 분이 없었습니다. ‘정말 대단들 하시다...’ 제 입에 서 저절로 이 소리가 튀어나오더군요. 난 여직 뭐했나 생각하며, 후회가 막심했습니 다. 저에게 컴퓨터란? 약간의 워드, 쇼핑하는 정도로만 사용했고 솔직히 기본적인 메일 보내는 것조차 잘 못 했던 저지만 지금 컴퓨터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습 니다. 처음에는 블로그가 뭔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blog.naver.com/wajen9001 이렇 게 멋진 나만의 블로그를 내가 직접 만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엔 제가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 제가 살고 있는 곳의 아름다운 모습, 제가 하고 있는 일 등 제가 담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기에 너무나 신기하고 흐뭇합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에도 조금씩 변화가 온 것 같습니다. 사업에 사자도 몰라 겉돌며, 내 일이 아니란 생각을 했던 마음이 이제는 내가 해야 하는 일, 늘 열심히 장을 만드 는 남편의 뒤에서 보조만 하던 내가 직접 손을 걷어 부치고 보조가 아닌 주인이 되 어 움직이게 되었고 얼마 전에는 저희가 새로운 상품으로 장과는 잘 어울릴 것 같 지 않은 초콜릿을 만들게 되었지요. 예산에 맛있는 사과와 초콜릿이 만나 사과초콜 릿! 그냥 먹긴 좀 구수한 냄새가 나는 청국장과 초콜릿이 만나 청국장의 냄새를 없애 고 초콜릿의 단맛이 덜한 청국장초콜릿! 드셔 보신 분들의 반응이 참 좋았지요. 그래 20 yesland
  • 5. 서 소비자와 좀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그래서 올해 부터는 소비자들이 체험 할 수 있 는 공간을 만들고 그분들이 쉬었다 갈 수 있는 “꽃과 콩나무”란 예쁜 이름을 가진 팬 션도 열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많은 분들께서 이용을 하시고 만족하시기에 저 는 너무나 행복하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하고 있는 활동을 좀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 고 싶은 마음에 농업기술센터 김기예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2009년엔 홈페이지를 통 해, 사이버공간 안에서도 저희 점포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부족하지만 올 해 e-비즈니스 3년차로 부족한 것을 넉넉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갑자기 선녀와 나무꾼이란 동화 속 이야기가 생각이 나네요. 또 선녀와 나무꾼이란 노래도 있었지요. 이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옛날부터 이 노래는 제 애창곡 이었 거든요. 첫째 혜정이를 낳아 키우는 내내,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의 성격 이 저에겐 정말 맞지 않았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도망갈 기회만 엿봤던 것 같아요. 그러다 둘째 재훈이를 낳고 보니 그 마음이 점점 약해지더군요. 그러다 제 가 얼마 전에 셋째 승열이를 낳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젠 남편이 어디가 아플까 겁나고, 없어질까 겁이 난답니다. 셋째를 낳고 나선 책임감이란 단어가 더욱 가슴 깊이 새겨지고 이제야 세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화전식품의 주인으로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아 서툴기만 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후회가 되기도 한 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앞으론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죠? 요즘, 세 아이를 바라보는 저 예산군 E-비즈니스 희 부부는 너무나 행복하답니다. 또한, 앞으로도 사이버공간 속에서 떠오르는 별 (☆)인 화전식품과 꽃과 콩나무를 활발히 운영할 것입니다. Business2.0 제가 지금처럼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기에 제2의 인생은 성공한 것 아닐까요? 21
  • 7. 예산군 E-비즈니스 Business2.0 ■ 이름 : ■닉: ■ 이메일 : ■ 블로그 : ■ 소속 / 하는 일 ■ 태그 : 23
  • 8. http://blog.daum.net/jinny2192/13427006 Yesland Business2.0 02: 서울 새댁, 사과나무 엄마 - 김경희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20여년을 살아왔답니다. 사과 열린 모습에 반해 낮 설고 물 설은 이곳으로 신랑 하나 믿고 시집을 왔습니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채로 말 입니다. 눈이 많이 내려 날씨고 추운 12월 18일 여기로 둥지를 틀었답니다. 정말 아 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의 시간은 적응하기 엄청 애를 먹었습니다. 그해 봄 사과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 적과를 해야 하는데 작은 사과나무 열 매 따낸 것을 아까워서 주머니에 한가득 넣어서 가지고 다니던 기억도 있네요. 그렇 게 새로운 세상과 접하면서 83년도에 시집와 85년도에 큰아이를 낳았지요. 그 아이 키우느라 정신을 쏟다 보니 농사는 그저 손님이 왔다 가는 것처럼 그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87년 둘째 아이를 낳았지요. 아이들을 어느 정도 스스로 놀 수 있을 때까 지는 농사일을 주변에서 보고만 지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농사일. 그때는 복숭아도 과수원에 있었거든요. 복숭아는 특성상 하 루만 늦어도 과육이 물러서 상품 가치가 떨어지니 바로 수확을 해야 하는 상황 이 었답니다. 그러니 신랑하고 복숭아를 수확해서 고덕 시내에 있는 과일 가게에 배달 을 해야 하는데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리어카에 의자를 달고 아이를 앉혀 신랑 은 끌고 저는 밀며 복숭아를 팔러 다녔지요. 그리고 이른 벼를 심어 익어가니 새들 이 벼 낟알을 쪼아 먹어 피해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논둑에서 아이와 함께 새를 쫒 다가 아이가 갱구랑(개울)으로 굴러 놀란 기억도 스쳐 지나갑니다. 다행히 다치지 는 않아서 그렇게 지나가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그때도 일반농사를 짓기는 했지만 농약을 치는 횟수는 다른 사람들보다 월 등히 적은 횟수로 방제를 했지요. 그러다 유기농사에 대한 강의를 듣고 빠져들기 시작해 태평농법에서부터 직파재배, 24 yesland
  • 9. 오리농법 정말 안 해본 농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직파 재배를 한다고 했다가 수확 량이 턱없이 줄어 고생한 시기, 오리농법 한다고 오리를 300마리 정도 논에 넣어 제 초작업을 한다고 한 것이 하루저녁에 너구리 녀석이 급습을 해 50마리가 한꺼번에 죽었던 일 정말 생각하면 파노라마 같이 스치고 지나가네요. 그래도 두 녀석들 큰 병치레 없이 잘 자라 주었답니다. 시할머니에 시어머니, 시동 생 셋이 있는 이곳으로 시집와 멋모르고 지낸 세월이 벌써 25년. 이제는 유기농사도 안정이 되었고 판로도 확실한 곳이 생겨서 농사짓고 판매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매장으로 보냈다가 판매대금을 못 받고 손해 본 일, 쌀값을 2년 만에 받았던 일, 이런 저런 일들이 제가 걸어온 발자국들이랍니다. 이제는 큰아이가 대학 졸업반 이고 작은 아이가 대학 3학년이니 제가 신경을 써주지 못해도 스스로 알아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된듯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모습도 많 이 변해 있더군요. 농사일 이라면 아무것도 모르던 서울 새댁이 이제는 사과나무 전 지에서부터 적과 등등 사과나무에 대해서는 알아서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었으니 20여년 세월이 허송세월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일은 식구 모두 편안하게 즐거운 삶을 이어갈 수 있게 준비 하는 것 만 남은 것 같습니다. 서로 의지 하며 즐겁게 일하면서 노년을 함께할 방법들만 찾으면 될 것인데 그것이 가장 큰 숙제로 남은 것 같습니다. * 원고가 너무 짧고, 블로그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예산군 E-비즈니스 Business2.0 25
  • 11. 예산군 E-비즈니스 Business2.0 ■ 이름 : ■닉: ■ 이메일 : ■ 블로그 : ■ 소속 / 하는 일 ■ 태그 : 27
  • 12. http://blog.naver.com/mvpda/10045337802 Yesland Business2.0 03: 버섯시장 점유율 1%를 향하여 - 김낙천 농촌에서 평범하게 생활하며 부모님과 생활하던 중, 농업전문대 입학 때 아버지께 서 참나무 3,000본을 사오셨다. 청양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시는 외가댁의 자문을 받아 처음으로 버섯재배를 시도하시려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종균을 사오시고 드릴과 접종기구가 준비되면서 표고버섯 접종이 시작되었다. 내가 버섯과 첫 인연 을 맺게 된 것이다. 버섯은 접종 후 배양과정을 거쳐 집 앞 밭에 하우스를 짓고, 차광 망을 씌우고 말목을 박아 반생이 철사로 줄을 띄워 버섯 목을 세워 놓고, 발생을 위 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여 살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이 끝나고 버섯 목에서 첫 발생한 버섯을 보았을 때, 그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고 예쁘던지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서 아른거린다. 지금도 버섯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고 부자가 된 듯 넉넉해진다. 그렇게 시작된 버섯재배는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전역할 때까지 계속 되었 다. 전역 후 이듬해 봄에 표고접종을 마치고, 경기도 군포에서 1달 동안 원정 가서 표고접종을 할 때 집에서 전화가 왔다. 농촌진흥청에 들어가서 일용직으로 기술을 배우고 익히라는 거였다. 전화통화 후 집으로 내려와 이력서 1통을 가지고 진흥청 장 비서관실로 갔다. 그 길로 비서관님을 찾아 뵙고 바로 농업기술연구소에서 균이 과로 입사하면서 버섯인으로서의 내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균이과에서 맡은 업무는 병재배 버섯사 관리였다. 1993년도 당시에는 균상느 타리재배에서 판넬 구조의 자동화 설비의 첨단시설과 대량생산의 초기단계로 병 버섯재배의 도입시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운이 상당히 좋았던 것 같다. 농촌진흥청 28 yesland
  • 13. 에서 새로운 버섯 기술 보급과 대량생산 체계를 확대하기 위해 교육생을 받아 버섯 생산기술을 가르쳐주었다. 교육생들에게 새로운 재배방법과 균 관리 및 기계사용 방법 등을 가르쳐 주는데다 대부분 정부 보조금을 받아가며 교육받고 있는 교육생 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작은 형 집에서 출퇴근을 하였고 공무원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작업을 마치고 청소 중에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한순간 왼손가락 중지와 약지가 기계 속으로 들어가 손가락을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입 원하였고, 그 기간에 바로 시험 날이 있었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은 치르지도 못하 였고, 대신 당시 함께 교육받던 교육생들과 대화를 통하여 정부지원을 받는 방법 등 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4년도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여 1995년도에 우여곡 절을 겪은 후 유통특작지원사업을 받게 되었다. 1994년도 봄에 농촌진흥청을 퇴사 했는데 아마도 그때까지가 내가 버섯에 몸담고 있던 중 가장 황금기였다고 생각된 다. 근무하는 동안 전국의 많은 버섯인을 알게 되었고 많은 기계업자를 알게 된 것 이 훗날 아주 큰 재산이 되었다. 퇴사하면서 경북 칠곡에 있는 버섯 재배사에서 컨설팅을 하면서 대량 재배의 경험 을 쌓게 되었다. 1995년에 5억5천만원(보조금 1억2천, 융자 3억3천, 자담 1억2천)의 예산군 E-비즈니스 큰 사업을 받았다. 그때 나이가 28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금오영농 조합법인을 설립하고 사업에 착수하였다. 아버지께서 사업자금 3천만원을 주셨고 대지 2천평을 내주셔서 토목업자와 8천에 계약하고 계약금으로 3천만원을 건네주 Business2.0 었다. 드디어 토목공사가 시작되었다. 불도저가 흙을 밀어내고 덤프트럭에 자갈을 실어 정지 작업을 한 위에 쏟아 부으면 그래이더가 나라시하고 진동로더가 땅을 다 지는 모습을 보며, 버섯 대량 생산을 할 꿈과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29
  • 14. 그런 희망도 잠시, 토목업자가 사라진 것이다. 말로만 듣던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 이다.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했다. 그래도 사업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사라진 토목 업자 이외 두 명과 같이 토목공사는 끝이 났다. 문제는 공사대금이었다. 아버지 논 밭을 담보로 하여 5천 8백만원을 대출받아 대금을 일부 결제하고 나머지로 철골과 건물 판넬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사는 자재는 내가 사주고 시공만 맡겼다. 문제는 또 자금이었다. 철골과 판넬 비용으로 1억8천만원이 소요된다. 자금동원 방법을 총 동원 하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결국 후계자자금과 전업농자금으로 8천만원을 지원 받아 공사가 진행되어가지만 갈수록 자금 압박을 받았다. 그 당시의 하루 일과는 농협과 군청에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했다. 판넬은 평택에서 사오면서 지불각서를 써주고 조달하여 공사 진행 중 시공업자와 트러블이 생겼다. 대금결재 일부를 결재 해주고 나서 작업은 진행되어 가고 있던 중 8월에 태풍의 피 해로 재배사 1동이 파손되어 날아가 버리고 전봇대에 판넬이 걸쳐있는 걸 보니 암 담하고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다. 그 후 군청에서 태풍피해 보상 융자 3 천만원을 지원받아 다시 작업이 진행되어 가던 중 추석에 업자는 짐을 챙겨 철수해 버렸다. 큰일이다. 다른 업자를 선정하여 작업은 진행되고 건물 성과에 따라 후취 담보를 신청하고 냉동기 설비를 1억5천만원에 계약하였고 기계계약을 1억4천만원 에 계약하였다. 계약금은 냉동업자에게 3천만원을 주고 기계업체는 신용으로 믿기 로 하였다. 이때 농촌진흥청에 있으면서 맺었던 인맥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는 생각도 못했다.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돈은 주위사람이 벌어준다 는 말씀과 사람과의 인맥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균이과서 기계업체는 기계 개발을 하는데 실험과 자문을 많이 받았고, 그때 기계업 체를 알게 되었다. 드디어 건물이 완성되고 냉동설비가 완성되고 기계설비가 갖춰 져 재배사가 완성되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그 30 yesland
  • 15. 러나 해결되지 않은 자금문제는 12월을 지나 1월에 건물 등기 후 후취 담보로 하여 3억3천만원을 받아 해결하고 남은 금액은 벌어서 갚기로 하고 대망의 팽이버섯 재 배가 시작되었다. 1995년은 평생 잊지 못할 할 해이며 평생 할 마음고생과 28살 어린 나이에 감당하 기 힘든 어려움을 경험하고 극복한 해로 지금 생각하면 대견하기도 하고 어떻게 했 는지 이해가 안가며 지금 하라면 아마 못할 것 같다. 버섯종균을 만들고 입병하고 접종하고 배양이 완료되어 균긁기를 하고 발생실에서 버섯 발생이 될 때 그 조마조 마함과 설레임과 뿌듯함의 감격을 느끼는 순간이다. 버섯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걱 정도 하고 잘 자라기를 바라며 첫 수확하는 날 비로소 진정한 버섯인이 되었음을 확인했다. 1995년 10월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1996년 3월 2일 결혼을 하였고 버섯은 일일 생 산되어 소득을 올리며 시설비용의 외상 빚도 갚으며 아버지 논과 밭의 담보대출을 갚고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2~3년 흘러 아들과 딸이 태어났으며 IMF 를 겪으며 버섯 값이 하락하고 대형업체의 등장으로 버섯업계의 커다란 위기가 찾 아와 중소 규모의 업체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7년에 충남농업기술원에서 ‘미소느타리버섯’을 개발하여 시험 재배를 하여 성공함으로써 통상 실시를 받아 현 예산군 E-비즈니스 재 미소느타리를 재배하지만 규모가 작고 홍보 부족으로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 다. 그러나 버섯시장 점유율 1%를 목표로 열심히 하고 있다. 목표가 이루어 질 때까 지 노력하면 꼭 이루어질 것이다. 버섯시장 점유율 1%가 되는 그 날까지.... Business2.0 * 소셜웹과 관련한 부분 인터뷰가 필요합니다. 31
  • 17. 예산군 E-비즈니스 Business2.0 ■ 이름 : ■닉: ■ 이메일 : ■ 블로그 : ■ 소속 / 하는 일 ■ 태그 : 33
  • 18. http://stsupporters.tistory.com/67 04: 하이디의 행복한 만남 - 류영희 하이디 고향은 전라남도 고흥이랍니다. 50이 낼 모레인 제가 7살 때부터 지금은 69 세이신 큰오빠가 평생을 유자농사 해서 막내 동생인 저와 당신 자식 오남매를 키워 내셨지요. 고흥유자는 지리적 표시 등록이 되어 있고, 친환경 저농약 인증을 받아 제초제 사용 을 전혀 하지 않고 ‘헤어리베치’라는 풀로 잡초제거를 한답니다. 그동안 나 살기 바 쁘다고 돌아볼 새 없이 살았는데 언제부터 오빠의 쇠잔해진 뒷모습에 가슴이 먹먹 해 짐을 느끼게 되었네요. 어제 하루 유자를 따는데도 이리 힘든데, 평생을 독한 유자가시에 찔리면서 농사지 으셨을 오빠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유자가시가 정말 무서울 정도로 강 하거든요. 멋진 유자사진 올리고 싶은데 리더기를 안 가져 왔네요. 여긴 읍내 한 번 나가려 해도 한참을 가야 하는 깡촌이거든요. 아직 오염이 전혀 안된 순수한 시골 공장도 축사도 없는 그야말로 청정 깡촌 시골이에요. 마을 앞에 있던 멋진 바다가 지금은 논으로 변한 것 말고는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인 시골이랍니다. 조카들이 아버지 심심하실까봐 중고 컴퓨터를 설치해 드려, 느리긴 하지만 이렇게 글을 올릴 수 있어 좋네요. 제 블로그에 있는 사진 복사해서 올려보네요. 형님이 돌아가셔서 책임져야 할 조카가 둘 있고 홀어머니를 모시는 남편을 만나 결 혼하겠다는 나에게 아버지는 ‘볏짚을 안고 불로 들어가는 줄로 알라’는 말씀과 함께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기에 네 아이들의 엄마로 직장 인으로 열심히 살아 이제 안정된 삶을 사는가 싶은 98년 6월 평생을 직장인으로만 34 yesland
  • 19. 살 것 같던 남편은 한 달 동안 예산으로 출장을 갔다 오더니 갑자기 예산에 가서 농 기계 대리점을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생면부지의 땅. 지도를 들고 찾아온 예산은 멀고 험한 길을 2시간 30분을 달려서야 도착했습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남편은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다며 설득을 하고 나 또한 젊은데 해 보자 하는 생각에 남편 뜻을 따르기로 하고 대학생부터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 까지 아이들을 대전에 두고 간단한 짐을 꾸려 험한 차동고개를 넘을 때 왜 그리 서 럽던지요. 적응되지 않은 시골 생활과 두고 온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에 내 마음은 깊은 웅덩 이가 생겨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고 심한 우울증으로 치료가 필요해질 정도로 마 음이 황폐화 되었습니다. 2002년 고3이 되는 딸아이를 핑계로 대전으로 가 막내딸 의 고3 까지 보내고 나니 주말 부부를 해야 하는 의미는 퇴색되고 남편과 아이들은 제가 아내의 자리로 돌아오길 바랐습니다. 때문에 2005년 다시 예산으로 왔지만 언 제든지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던 차에 2007년 12월 29일부터 일 주일간 딸들과 여행을 하며 마음을 정했습니다. 시골 외갓집의 추억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세련되었지만 삭막한 도시보다 예산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는 것도 그 동안 아이들에게 가졌던 미안한 마음을 조금 이나마 보상해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래 이제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정말 이곳에서 터를 잡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보금자리를 만들 터도 마련하고 하면서 내 예산군 E-비즈니스 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지역 정보지에서 농업기술센터에서 e-비즈니스 컴퓨터 과정과 사과대학이라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전업농이 아니라는 생각에 몇 번을 망설이다가 전화를 Business2.0 했습니다. 매주 금요일에 있는 사과대학엔 다행이 작은 과수원이 있던 터라 갈수 있 었고, e-비즈니스 과정은 인원이 다 되어 지금은 수강이 어렵다는 대답에 실망했지 만 개강식 날 농업기술센터 김기예 선생님으로부터 결원이 생겼으니 하고 싶으면 오라는 전화에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35
  • 20. 드디어 예산에도 내가 발붙일 곳이 생긴 것이지요. 매주 화요일 저녁 e-비즈니스 교 육과 금요일 오후 사과대학 교육에 가는 발걸음은 신나기만 했습니다. 항상 반갑게 맞아주시던 농업기술센터 직원 분들과 제게 허물없이 대해 주시는 수강생 여러분 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유능한 강사님들의 좋은 강의를 들으니 그동안 드리워졌 던 마음속의 그늘이 서서히 녹아, 예전의 밝은 모습을 찾게 되자 남편과 가족들은 농업기술센터가 병원이라며 제 활동에 적극 찬성하며 힘을 실어줍니다. 컴퓨터라면 아주 기본적인 메일 등 기본적인 것만 알고 사용하다가 큰 회사만이 아 닌 개인도 전자 상거래로 상품을 판매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홈페이지라는 것과 블로그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포토샵이며 사진 촬영 등 다양한 교육을 농업기술센터와 충남농업기술원을 통해 배우게 되면서 ‘내 가 이 예산에서 대체 무얼 하며 살까‘ 하던 막연함에서 벗어나 건강한 먹거리를 만 들어 전자상거래로 정직하게 판매하고 작은 쉼터를 만들어 마음이 힘든 사람 누구 나 쉬어갈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남에게 맡겼던 사과농사도 올해부터는 직접 하면서 땀의 진정한 의미와 자 연에 대한 고마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작년 정보화 대회를 보면서 충남전자상거 래연구회이란 곳을 알게 되고, 조남준 사무국장의 열정에 반해 카페에서도 활동하 면서 온라인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장태평 장관님과의 덕산 번 개며, 농림부 홍보대사님들과 파워블로거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며 꿈꾸는 것으로 머물지 않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씩 준비해 봅니다. 내 꿈이 이 루어지는 그날을 위하여... 내 고향 고흥에 계신 오빠의 다급함과 미안함이 가득한 목소리가 전화기 저 너머에 서 들려옵니다. '언제쯤 올수 있냐' 아버지 같은 오빠. 칠남매의 장남으로 5남매의 아 버지와 같은 오빠의 존재. 그중 막내인 제겐 오빠의 존재가 더욱 특별합니다. 오빠 힘으로 학업을 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36 yesland
  • 21. 40여년 유자농사. 유기농 인증은 없지만, 항상 내 새끼가 먹을 거라 하시는 오빠언 니의 농사철학은 최소한의 농약사용과 따뜻한 가슴과 거칠어진 손과 발의 수고로 해야 한다고 내 식구 내 새끼 먹거리라고 한없는 정성으로 지은 유자 농사. 뭔가 도 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수확 철이면 남편과 봉사활동 갑니다. 고흥 유자 따러 가세 ~ 매번 싫다 안하고 가주는 우리 신랑... 정말 고맙지요! 바람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고흥 유자로 내 정성으로 담은 유자차를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를 시집온 후 25년 동안 했지요. 다들 정말 맛있다며 유자차 장사라도 시작 해라 했지만, 사느라 바빠써 못했는데 올해는 조금 많이 담았네요. 가져가신 분들의 좋은 반응에 힘이 납니다. 조금이나마 오빠에게 힘이 되어드릴 수 있어 행복합니다. 예산군 E-비즈니스 Business2.0 ■ 이름 : ■닉: ■ 이메일 : ■ 블로그 : ■ 소속 / 하는 일 ■ 태그 : 37
  • 22. http://leemix.tistory.com/23 Yesland Business2.0 05: 민균이네 인삼농장 - 문태화 어언간 인생의 반 백년이란 덧없는 세월이 지나간 지금 지나간 그 시절, 그토록 꿈 많았던 젊었던 시절. 삼대독자이신 시아버님에 장손 며느리로 시집을 오니 시아버 님과 계모 시어머님 고등학교에 다니는 시동생과 다섯 식구가 살면서 어려운 우여 곡절이 많았다. 그때 이미 시아버님께서는 인삼 농사를 짓고 계시던 터. 인삼에 인 자도 모르고 시집와서 날마다 식구들이 인삼 일에 몰두하는 것이 신기했고 생소했 다. 산에 가서 억새풀을 베어다 겨울에 발을 짜고 벼 짚으로 이영 엮고 이런 일을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품앗이를 하신다. 그때만 하여도 모두가 어려운 시절 이었고, 어쨌 든 부모님 모시고 공경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임무. 어려운 시골살림을 시작했다. 시아버님께선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지극정 성으로 따뜻하게 베풀어 주셨고, 반면에 시어머님은 질투 반 시샘 반 섞어서 며느리 에 대한 차가운 시선뿐. 정을 주지 않으시는 시어머님과의 전쟁과 갈등은 시작되었 고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은 나의 존재를 잊게 하였다. 외롭고 쓸쓸한 시집살이에 하루하루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결혼 삼년 만에 큰 딸을 낳았고 이년 후에 작은딸 딸 딸을 낳은 뒤에야 기다리던 아들이 우렁찬 함 성과 함께 태어나게 되었고 아이들로 하여 나의 인생은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는 시골 일이 모든 일이 수작업이기 때문에 시아버님께선 아침 일찍 일어나 아 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에 물을 가득 데워놓으시곤 하셨다. 밥을 해 식구들 밥상을 차려드리고 품앗이를 하러 일터로 가는 것이 매일 같은 일상생활이었다. * 아궁이 이야기/ 품앗이 이야기 --- 농촌정서 → 추억이나 얽힌 에피소드 등 구체적 추가 사연 듣고 싶어요. 38 yesland
  • 23. 저녁 늦게 밭에서 돌아오면 시어머님은 집안일은 아무런 관심 없이 밖에 나가셨다 가 며느리가 집에 와야 집에 들어오시곤 하셨다. 아이들은 하루 온종일 흙에 먼지에 꾀죄죄한 모습으로 허기진 채로 그냥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속상하고 마음 아파 도 어찌 해야 될지를 몰랐던 그 시절. 어려운 시골살림 어떡하면 남한테 아쉬운 소 리 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품을 팔아 돈을 벌어야 했고, 또 내가 많 이 배우지 못했던 공부를 아이들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려고 안간힘을 다해 노력하였다. 하루는 남의 인삼밭 일을 하러 경운기를 타고 갔다. 팔십 년대 초만 하여도 시골에 선 경운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고, 마을에서 인삼밭을 갈려면 한 시간내지는 두 세 시간은 보통거리 이다 보니 일 끝나고 밭에서 해 넘어간 뒤 집에 오면 보통봄여 름엔 여덟 아홉시는 기본. 캄캄한 밤에 집에 오니 난리 가 났다. 며느리 기다리던 시 어머님께서 저녁밥을 지어 드시는데 누룽지를 뜨겁게 끓여 밥상머리에 놓은 걸 두 살 바기 막내딸 이마에 화상을 입고 울고 있다. 그런데도 그 옆에 식구들은 그대로 저녁밥을 드시고! 정신 없이 아이를 들쳐 업고 신작로로 나와 지나가는 차를 세워 타고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병원까지 데려다 준 트럭 기사아저씨가 지금도 감사하며 고맙기 한이 없다. 예산군 E-비즈니스 다행이 빨리 병원에서 치료해서 흉터는 생기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그때를 생각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왜 그랬을까... 그 어린 피부에 화 독기를 빼낸다고 독한 소주를 발랐으니 어린 것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 아직까지도 미안하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품앗이 가면 모유가 꽉 차서 가슴이 아파 팔을 들을 수가 없 어 몸이 아플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젖을 충분이 못 먹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Business2.0 이 메어온다 이른 봄 찬 통에 점심을 싸서 오토바이 뒤에 싣고 집에서 30~40분 거리를 달려가면 무릎이 시려 굳어버린 다리를 한참 동안 주물러 언 다리를 풀어주는 것이 아침에 일하기 전 준비운동 이다. 부지런히 일을 하다 점심때가 되어 아침에 싸온 도시락을 39
  • 24. 풀어 점심을 먹으려 밥통을 여는 순간, 통속에 밥은 크고 작은 주먹밥이 되어있다. 오토바이에 싣고 오는 동안 비포장 에 사정없이 흔들어 밥통 속에서 요절 복통을 한 탓이다. 어쨌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남편과 나는 웃음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주먹밥을 나눠 먹곤 했다. 이르면 양력 삼월 중순에 인삼밭 두둑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면 종묘 채굴해서 상 품을 등급별로 선별해서 식재 한다. 인삼 싹이 올라오면 늦은 서리 때문에 냉해가 올 수 있어 바람 방지 해 가림 준비로 막대기로 기둥을 세우고 연재 걸고 그 위에 발을 짜서 올려놓고 집으로 이영을 엮어 덮는 일을 한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일차 로 영양제를 뿌려주고 밭에 나는 잡초 제거를 해 준다. 해서 시간은 빠르면 한 달 정 도면 우선 식재와 집짓기가 완성이 되는 셈이다. 신포가 끝나면 구포손질까지 하고, 이 한 바퀴를 돌고 나면 5월 초나 중순이 되어 있다. 하루 온종일 일하고 해가지면 집에서 하루 종일 엄마 아빠를 기다리다 잠이든 아이 들을 볼 때 마다 아이들한테 미안한 마음에 들어 잠든 아이들을 꼭 안아주곤 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엄마 아빠 보다 키도 크고 착실하고 성실 하게 예쁘게 잘 자 라 의젓한 사회인으로 장성을 한 것이 고맙고 대견스럽기만 하다. 아무튼 건강 하고 숨결마다 걸음걸음마다 복과 행운이 늘 함께 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가 할 몫인 것 같다. 덧없는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채 안되어 시어머님 그토 록 미운 며느리를 놔두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기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 이 후로 홀 시아버님과 5년을 같이 살았고 아버님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큰 슬픔에 해 를 거듭 하던 중 나에게 새 삶을 갖게 된 동기는 운전면허를 취득하게 된 것이 중요 한 날개를 단 최초원인이다. 그리고 곧이어 컴퓨터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였고 가정 형편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초보운전에 차를 끌고 열심히 다니며 컴퓨터도 배우 기 시작했다. 변해가는 세월 속에 나 또한 변해야 세상 흐름에 끼어서 살고 싶어 노력 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려도 다시 배우고 또 복습하고 이 제는 어느 정도 정보화 수준이 올라가다 보니 그래도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게 더 많이 있는 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40 yesland
  • 25. 하지만 내가 지금 컴퓨터에 글씨를 쓰고 있지 않는가! 여기까지 온 과정은 길었을 지언정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나는 지금 내 삶을 윤택하게 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열심히 노력 하고 알을 박차고 깨어나는 병아리처럼 시 작은 있으되 끝을 모르는 인생 즐거운 삶을 행복으로 간주하는 나는 행복한 여자. 그리고 농업리더과정 e-비즈니스 4년차도 꿈꾸고 있지 않는가! 내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있기까지에는 농업기술센터에 생활개선회가 있었고 역 대 소장님을 비롯하여 과장님, 계장님, 지도 사 선생님들의 아낌없는 성원과 지칠 줄 모르는 끈기 인내심 덕분입니다.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 나의 각오 - 나를 이끌어주는 는 용기만이 소리 없이 사뿐사뿐 내리는 눈처럼 온 천하가 하얀 백색으로 변해 눈꽃을 만들듯이 나의 지식창고에도 예산군 E-비즈니스 눈송이 숫자만큼 많은 지식과 덕을 쌓으며 지나온 세월만큼 열심히 달려 나갈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행복은 나를 지켜줄 것이며 Business2.0 나는 행복한 여자. 41
  • 27. 예산군 E-비즈니스 ■ 이름 : 이화영 ■ 닉 : yiabb (이얍) Business2.0 ■ 이메일 : yiabb@yahoo.co.kr ■ 네이트온 : yiabb@nate.com ■ 블로그 : http://leemix.tistory.com ■ 소속 / 하는 일 웹사운드 전문가, 프리랜서 사운드 디자이너, 웹 기획, 음원서비 스 기획 ■ 태그 : 웹사운드, 웹뮤직, 사운드디자인, 뮤직비즈니스 43
  • 28. http://junzzang.com/entry/13-1 Yesland Business2.0 06: 해, 달, 별, 빛이 머무는 가야약선농장 - 박광수 명산대찰을 배경으로 한 산촌에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농부인가 신선인가. 예산군 가야 약선마을 대표 박광수씨가 그런 사람이다. 이 런저런 가공식품도 내놓고 유기농 나물채소도 상품화한 농가라 해서 특별한 시설 재배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현장은 영 딴 판이다. 박 씨는 농업경영인 중 임업후계자이다. 수덕사를 품고 있는 가야산 3부 능선쯤의 산 35만㎡에 참죽, 오가피, 엄나무, 두릅, 도라지, 더덕 등 40여 종의 약용과 식용이 가능한 산야초를 재배하는 임업인이다. 봄이 오면 이런 나무들의 새순을 따서 나물 채소를 팔기도 하고, 가을에는 열매를 따다 장아찌를 담거나 뿌리로 즙을 내기도 하 는 소위 혼자서 생산, 가공, 유통을 다하는 신지식 농업인이다. 그런데 그의 농법이 예사롭지 않다. 그 흔한 무농약, 저농약 운운하는 유기농법이 아니고 완전 자연농법에 가까운 농사를 하고 있다. “햇빛, 달빛, 별빛에 물과 바람을 고스란히 맞히지 않고는 자연 임산물이라 말 할 수 없다” 는 것이 박 씨의 신념이며 고집불통 농법철학의 바탕을 이룬다. 모든 작물은 어린 묘목 때 잡초에 치이어 이겨내지 못하고 질 때가 문제이지 그 단 계만 지나서 잡초보다 커지면 별문제 없이 성장한다.그래서 물길 닿고 햇볕 좋은 곳을 찾아 작물을 심고 한두 해 잡초를 제거하는 것, 이것이 이곳의 농법이다. 그 다 음은 야생 작물과 똑같이 비바람 맞으며 크게 놔두고 적기 수확하여 이용하는 것이 란다. 백문이 불여일견. 4륜 구동 차를 타고 산판길을 돌아 그의 농장을 돌아보니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생산된 임산물의 관건은 판로이다. 박씨는 각종 상을 타고 매스 44 yesland
  • 29. 컴도 타기 시작하면서 산림청, 농업기술원, 농업기술센터, 지자체에서도 이런저런 정책, 기술지원을 해주어 여건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모든 것이 나의 몫이라는 생각 으로 주경야독하면서 계속 탐구하고 쫓아다니는 신지식 농업을 한다. 카페에 띄워 번개 만남으로 농식품부 장관이 이 마을을 방문하기도 하고 지인과 마 니아들을 이곳에 유치하여 시찰 프로그램을 운영, 입소문을 퍼뜨리며 경영개선 노 력을 기울인다. 겉보기엔 유유자적하는 농사꾼인 것 같지만 역시 농사도 경영 수지를 맞추진 않고 는 어림도 없는 험산험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씨는 자기 집 앞에 약초체험관은 물론, 덕산 스파캐슬, 수덕사, 성지순례길 심지어 한서대학까지 지근거리의 모든 여 건을 감안한 홍보 전략과 체험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란다. 농민의 살아남기 위한 처 절한 노력의 일단을 볼 수 있었다. * 이야기가 좀 더 풍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농법을 시작한 사연, 소셜 웹을 활용한 사례가 없네요, 예산군 E-비즈니스 Business2.0 ■ 이름 : ■닉: ■ 이메일 : ■ 블로그 : ■ 소속 / 하는 일 ■ 태그 : 45
  • 30. http://goood000.tistory.com/7 Yesland Business2.0 07: 영원한 선생님이 되고픈.. - 박순선 한과를 만들며 농촌체험관광 사업을 하고 있는 나는 강원도가 고향이다. 강원도 하 면 산과 계곡 그리고 푸른 바다가 먼저 떠오른다. 나의 고향은 푸른 바다를 가지고 있는 삼척. 지금은 관광산업이 경제 동력의 한 축이라지만 당시 삼척은 굉장히 조용 한 곳이었다.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이 평범히 지내던 나는 학교 졸업 후 서울로 상 경 후 재미있는 시절을 보냈다. 서울 하면 그때만 하여도 ‘서울사람은 깍쟁이’라는 나름대로의 시골사람들의 평가 가 있었지만 서울사람들도 대부분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활하던 시기들 이었다. 사 람 많고 배울 점도 많았기에 어른들께 모르는 것을 배우며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고 언제나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마음이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만난 지금의 남편은 동생들을 돌보며 가르치 느라 정신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결혼하면 시골로 가서 농사를 짓겠다는 그의 말 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 채, 콩깍지 씌었다는 남들의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은 결혼 후 불과 1년도 채 안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가장 큰 착각은 여자가 들판에서 감당해야 하는 노동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생 각지도, 꿈도 꾸지 못 했다는 것. 힘든 노동에 어린 새댁이었던 나는 여러 가지를 고 민했었고,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신 시어머니와의 갈등 또한 수년간의 연애 끝 에 이룬 사랑을 파하고 싶다는 마음마저 들게 했다. 그때는 신랑에게 다 못했던 이 야기들... 그러나 1990년, 시어머니께서 명절 때 마다 만드시던 한과를 정식으로 제 조허가 받아 시작 한 후 수많은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 제조허가를 어디에서 받았는지, 국가에서 받았는지 등 명시를 정확히. 시어머니에 46 yesland
  • 31. 게서 만들던 한과가 어떤 특징과 장점이 있어 선정 되었는지. 시어머니가 함께 만들 던 한과를 며느리가 함께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함께 만들면서 어려운 점은 없 었는지. 하는 내용이 추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한과의 종류 ♣ 유과류, 강정류, 다식류, 숙실과, 정과류 등으로 나뉘어 지며 그 중 유과와 강정, 다식 의 종류는 간식용으로 애용이 된다. 유과는 각 지방 여러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생 산되고 있으며 그 제 법은 찹쌀을 주 원료로 하며 떡 만들기-건조-튀김-즙청-고 물무치기 등의 일반적 순서로 만들어 지며 만드는 지역, 사람에 따라 다르다. 주로 중, 장년층을 주 소비자로 하고 있어 자라나는 신세대에 가까이 다가 가는 것은 한 과업계의 큰 숙제 중 하나이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기록이 있고 한과의 전성 기는 고려, 조선시대를 지나 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생과가 없던 시절 겨울에 주로 만들어 먹었던 것으로 생과 대비 조과라고 하기도 한다. 가장 맛있게 만드는 방법은 좋은 찹쌀의 선택과 착실한 기술 ,좋은 조청의 선택이다. 유과에 있어 좋은 품질의 한과는 부드러우면서 달지 않고 기름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관건이며 오래 될수록 노화 현상에 의한 딱딱하고 상대적으로 부드럽지 않다. 건조하고 서늘하며 햇볕이 없는 곳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산군 E-비즈니스 사람이, 세상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시금석이 되어 나 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1991년 한과 정부지원 업체로 선정되어 지원이 되었고, 1992년 정부품질인증을 받은 일 (농림전통8호 업체), 한과업계 최초로 낱개 포장한 한과가 히트 치던 일, IMF때의 쓰라린 추억, 그 속에서 겪었던 여러 형태의 인간들, Business2.0 세상의 모습, 어려울 때마다 용기를 주었던 기도의 힘, 남의 일이라 여겼던 병마와 의 투쟁, 모든 것을 잊고 재미있게 살라는 조언을 받아, 공부하고자 다닌 기술센터 와의 인연. 컴퓨터를 배우고, 규방공예며 한지공예, 음식을 배우면서 여러 가지 느낀 새로운 것들... 47
  • 32. 아이들이 어렸을 때인 1995년에 잠시 컴퓨터를 배웠지만 지금에 비하면 너무 힘들 게 또 어렵게 배웠다. 너무 재미있게 작은아이와 같이 배우면서도 학생들 틈에 끼어 열심히 배웠지만 컴퓨터를 별로 쓸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농업기술센터에서 컴퓨 터 교육과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처음 기초부터 다시 배울 수 있어 반가웠다. 기 초 과정부터 차근차근, 또한 블로그 개설 및 운영, 전자상거래의 가능성에 대하여는 한마디로 무한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무한 한 공간에서 마음껏 활동이 가능 할 것이라 생각 하지만 그만큼 그쪽에 시간을 할애 할 수 없다는 현실 이 안타깝다.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강구하고 있지만 정답이 없고 좀 더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잊고 살았던, 어릴 적 꿈꾸던 선생님의 길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 서로 알려주 고 배우며 살아가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흘러가는 모든 것 들이 아름답다. 이젠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나눔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살려 한다. 전통음식을 만들고, 바느질 을 하며, 한지공예와, 어른, 아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재미있게 가르치고 또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새로운 날을 마지막 날처럼 살려 한다. 지금은 훌~~쩍 커 버 린 아이들 앞에서, 세상 앞에서, 당당한 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 배우신 것들을 가르쳐 줄 사람이 생긴 건가요? 아니면 현재 누구를 가르치고 있으 신 건지? 구체적으로 설명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존경 받는 선생님, 스승님처럼.. 스승이 없는 지금의 시대에 스승님처럼.... 48 yesland
  • 33. 예산군 E-비즈니스 Business2.0 ■ 이름 : ■닉: ■ 이메일 : ■ 블로그 : ■ 소속 / 하는 일 ■ 태그 : 49
  • 34. http://www.ebizstory.com/445 Yesland Business2.0 08: 복사과 열매를 맺기까지 - 복경춘 1984년 3월 18일에 7남매의 장남인 남편을 만나 예산으로 시집을 왔어요. 농촌생활 농사일이 두렵지 않아 선택했습니다. 이웃끼리 정겹고, 서로 돕고 생각하는 자그마 한 마을입니다. 85년에 남편의 권유로 농민후계자에 선정이 되었고, 그 해에 큰아들 호선이를 얻었습니다. 시골생활을 하다 보니 저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동네의 젊은 아낙들을 보니 기동성이 없어 논밭을 다니기가 답답하다며 저를 부러워했어요. 그 래서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 마을회관에서 자전거 타기를 가르치기 시작했 어요. 낮에는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날마다 자전거를 가르쳤어요. 너무나 힘들었지만 남편과 시어머님께서는 아기를 돌봐주셨기에 더 열심히 가르쳐 줄 수 있었어요. 정말 보람 있었어요. 그리고 오토바이도 배우고 싶으신 분들을 위 해 오토바이도 가르쳐 드렸습니다. 매일 그렇게 가르쳐 드리면서 얼마나 힘들었는 지 허리도 꼼짝 못하고 해서 한의원을 갔다니 맥을 보시고는 임신이라고 하시더군 요. 이듬해 둘째 아들을 얻었어요. 그 후 8년 동안 병석에 계시던 아버님은 92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96년도에 공주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을 하면서 여성농업인 창립을 했어요. 그 해에 남편과 함께 축산을 접고 사과나무를 심었어요. 예산하면 사과의 고장이잖 아요. 열심히 노력했죠. 사과 첫 수확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여성농업 인 연합회 임원 활동을 틈틈이 하면서 사과농사와 벼농사를 하였고, 힘들었지만 보 람도 있었고 재산도 조금씩 불어나서 쏠쏠하니 재미가 있었어요. 열심히 농사일을 하면서 사는 저에게 어느 날 아무도 생각 못한 시련이 왔습니다. 감기 한 번 앓지 않고 평생 건강하던 남편이 급성 암으로 2003년 12월 25일에 갑자 50 yesland
  • 35. 기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아직은 40대 젊은 나이에 기가 막혔 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사랑하는 아들 호선이, 호식이가 있기 때문에 슬퍼하며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사과과수원 4,000평, 벼농사 20,000여평...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멈춰버리기 때문입니다. 장대 같은 아들만 바라보고 더 열심히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두 아들을 같은 해에 군 입대 시키고 정말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동네 부녀회장을 맡아 “여성이 건강해야 집안이 건강하다. 그래야 농촌이 더 잘 살 수 있다.”고 새벽 부터 저녁 늦게까지 동네 일이며 면사무소 행사며 여성경영인 일이며 동분서주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열심히 땀을 흘렸습니다. 조금이라도 여유시간이 나면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린 남편생각에 잠 못 이루며 힘들었기 때문에 몸이 으스러지 도록 정말 일을 하고 또 하고 억척스레 살아왔습니다. 우리 마을도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어 거의 대부분이 60이 넘은 어르신들입니 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친목도 다질 겸 일주일에 한번 등산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우선은 부녀회원 중심으로 가까운 산부터 도전을 하였습니다. 나의 애마 더블 캡에 여러 형님들(대개 60~70세 할머니)을 태우고 용봉산, 가야산, 칠갑산, 오서산 등을 오가며 땀 흘려 등산을 마치고 올 때는 따끈한 칼국수 한 그릇 씩 나눠먹고, 비좁은 차 안에서 며느리, 시어머니, 남편 흉도 보고 자식들 자랑도 하고 온갖 수다를 떨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며 이웃집 숟가락 갯수도 훤히 알만큼 서로 친숙하게 살아가 게 되었습니다. 예산군 E-비즈니스 남편이 남기고 간 커다란 구멍을 동네일로, 과수원일로 달래가던 중 2004년에 농업 기술센터에서 컴퓨터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친김에 우리 마을 모든 분들에게 Business2.0 컴퓨터라는 기계 구경이라도 해드리고 싶어 마을주민 단체교육을 신청하여 인터넷 활용과정까지 3주 동안을 야간으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온 동네가 컴 퓨터 열풍이 불어 컴맹을 탈출하였답니다. 과정이 끝나는 수료식 날 농업기술센터 에서 동네 잔치를 벌였습니다. 떡도 하고 돼지도 잡고 직접 동네 분들과 음식을 장 만하여 직원 분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자축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51
  • 36. 얼마나 가슴 뿌듯하던지요... 그때부터 주경야독으로 컴퓨터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2005년에 과수전자상거래 실용화과정(10개월), 2006년 전자상거래과정, 2007년 e-비즈니스과정, 2008년 e-비 즈니스심화과정, 2009년 e-비즈니스 3년차 과정, 2010년 e-비즈니스 4년차 과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마케팅이 뭔지, 포토샵이 뭔지, 블로그, 카페가 뭔지 교 육장에서 강의를 들을 때는 끄덕끄덕했는데 돌아서서 문을 닫고 나오면 뭔 소리인 지 못 알아 듣는 게 더 많았지만 콩나물 시루에 콩나물이 시나브로 자라듯이 이제 는 이메일도 연애편지 쓰듯이 잘도 쓰고, 블로그 포스팅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습니 다. 사과작목반을 구성하고 친환경 인증을 받고, 농산물직거래장터와 이곳저곳 여 러 행사장을 통하여 예산사과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하고 판매를 했습니다. 인터넷 전자상거래도 시작하여 성수기에는 택배작업 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기도 합니다. e-비즈니스과정을 4년차 하면서 가장 큰 수확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된 것입 니다. 전국적인 인맥을 맺게 되어 복사과의 인기가 날로날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서 울, 인천, 수원, 대전, 천안 등 대도시 소비자들이 우리 사과를 맛있다고 성원해주셔 서 늘 기쁜 마음으로 사과농사를 짓고 있답니다. 올 겨울은 정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마을길이 눈이 쌓여 빙판길이 되어 운전하기 가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요... 그래서 마을 분들과 의논을 하여 눈이 내린 날은 동 네 분들이 모두 모여 눈을 치우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내집 앞 눈은 물론이고 동 네 골목골목 차가 다닐 수 있는 길 위의 눈을 한삽 한삽 치우기로 한 것이지요. 모두 힘을 합쳐서 일을 하니 훨씬 힘을 덜 들이고도 효과는 엄청났습니다. 우리 마을은 눈이 와도 미끄럽지 않아 안전사고도 줄어들었고 어르신들도 좋아하시고, 젊은 사 람들에게도 본이 되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아름다운 본보기가 되었답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더니 주위 분들도 항상 도와 주셨습니다. 농번기가 되면 동네 분들이 못자리도 도와주시고 모내기도 함께 하고, 사과 적과, 벼 베기, 사과 따기 등 등 혼자 일해야 하는 저를 먼저 도와주시고 52 yesland
  • 37. 챙겨주십니다. 우리 마을은 황토밭이 넓게 펼쳐서 있습니다. 황토밭에서 충분한 햇 빛을 받고 자란 복사과는 모든 이들에게 복을 담아드립니다. 농사도 정성입니다. 꽃 이 필 때부터 하늘과 땅과 농부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한올 한올 실을 짜듯이 사과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내 아들들이 먹고 부모 형제와 친척, 내 가족이 먹기 때문에 안전한 먹거리 생산이 가장 큰 화두입니다. 번거롭고 조금은 더 힘들지만 친환경자 재와 퇴비, 미생물 등을 많이 사용합니다. 금방 따서 옷자락에 쓱쓱 문질러 한입 베어 물면 단물이 입안 가득 차며 사과 향이 상큼하게 퍼지는 새콤달콤한 복사과! 농촌의 따스한 인심과 여유까지 담아 복사과 가 찾아갑니다. 올해도 주경야독하며 함께 더불어 잘사는 농촌 만들기에 굵은 땀방울을 아끼지 않 으렵니다. 예산군 E-비즈니스 Business2.0 53
  • 39. 예산군 E-비즈니스 Business2.0 ■ 이름 : ■닉: ■ 이메일 : ■ 블로그 : ■ 소속 / 하는 일 ■ 태그 : 55
  • 40. http://lifestyledesign.kr/134 Yesland Business2.0 09: 매실 향 나는 숲속궁전, 은솔매 - 신영목 정부의 시책으로 정관신도시가 탄생되던 날. 정관 주민들은 탄성을 내지르며 모두 들 축제 분이기에 젖어 들었어요. 그것도 어렵사리 김동주 국회의원님과 박태준국 무총리님이 애써 힘써준 덕분으로 좋은 결실의 열매를 맺었는데 신도시로 확정되 고 보니 우리 주민들에게는 불행의 씨앗으로 변했어요. 처음에는 다들 부자가 되는 기분이었는데 현실은 너무 초라했어요. 땅 평당싯가는 너무 낮게 책정되고 공지싯가 로 보상을 받게 됐어요 * 구체적인 가격 들려주세요. 고향주변에 정착을 해보려 하여 도 이미 주변에 땅값이 너무 올라 제2의 고향을 찾다 보니 친척의 권유로 충청도 예 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산에 정착한지도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 다더니 이제 어엿한 은솔매 농장 주인이 됐네요. 처음에 올라왔을 땐 동산에 나무들 이 우거져 작은 산속에 동그라니 집 한 채 있어 너무 삭막했는데 이젠 숲속 궁전이 됐네요. 꽃과 나무를 좋아해 한 그루 두 그루 심다 보니 꽃밭도 있고 소나무 은행나 무 향나무 여러 가지 나무동산이 됐네요. 그리고 매실나무도 심다 보니 은솔매 농장 이 탄생한 거지요. 은솔매란 은행 소나무 매실나무가 아름다운 농장이란 뜻이에요. 이른 봄이 되면 매 화꽃이 활짝 피고 꽃샘추위를 이겨낸 목련의 하얀 꽃송이가 달빛에 비추어 보면 하 얀 눈송이가 뚝뚝 떨어지는 샹들리에 눈꽃송이처럼 보여요. 목련이 지고 나면 영산 홍 붉은 꽃이 너무나 곱게 피죠. 함박꽃 라일락 백합이 고귀한 멋을 부릴 땐 천지가 백향기로 가득하죠. 그러다 보면 연록색 잎이 새침떼기가 될 때 초롱초롱 매실이 콩 알처럼 커가요. 그리고 이맘때쯤이면 고사리 땅두릅 엄나무순 두릅 참죽 죽순 나물 시장이 되는 거죠. 이렇게 자연이 주는 혜택에 늘 감사하며 살죠. 56 yesland
  • 41. 그러다 유월이 되면 상큼한 매실이 주렁주렁 커가요. 상상해 보셨나요? 매실 철이 되면 살구랑 자두랑 보리수도 빠알갛게 익어가고 새까만 오디도 그 대열에 춤춘답 니다. 이맘때쯤 되면 잠자던 은솔매 농장에 방문객이 하나 둘 늘어가고 매실 따기 체험도 이루어져요. 작은 수입이지만 내 가게에 보탬을 주지요. 많은 사람들과 인정 을 나눌 수 있고 친해지기도 한답니다. 아침이 되면 참새들이 대나무 높은 가지에 앉아서 재잘재잘 새벽잠을 깨우고 동창너머 큰 나무 높은 가지에는 비둘기 나래를 펴고 숲속엔 꿩들이 둥지를 틀고 아침 해가 떠오르면 농부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죠. * 매실따기 체험이나 은솔매농원을 운영하는 구체적인 모습이 좀 더 그려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소셜 웹 활용은? 튼실튼실한 팔다리에 힘을 주다 보면 배꼽시계가 식사시간을 정확하게 알리는데 그때의 먹는 밥은 꿀맛이죠. 여름이 지나갈 무렵엔 노오란 은행잎이 뚝뚝 떨어지고 노오란 알맹이가 함초롬이 달리는데 자연의 신비로움에 경탄을 금치 못하죠. 노오 란 알맹이를 자루에 담아 짓눌러 물에 씻어 하얗게 말리면 살아있는 생징코민. 이놈 을 신문지에 싸 전자렌지에 4분간 구으면 쫀득한 것이 얼마나 맛있는지. 또 대추나 무에 주렁주렁 달린 빨갛게 익어가는 생대추는 얼마나 달콤한지. 벌어진 밤송이를 털어 알맹이를 까는 재미는 먹는 것 보다도 더 신바람 나죠. 가을 찬 서리에도 끄떡없는 야생들국화 금잔화 설악초 꽃송이는 꽃들의 향년에 날 아드는 꿀벌과나비들의 축제는 오늘 내가 살아있어 오감의 행복을 맛보는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 싶어요. 인생은 어차피 진공묘유 공수래공수거 라지만 책 속에 빠져 예산군 E-비즈니스 진리를 찾는 삼매경이나 취생몽사 몽생에서 대아를 좇는 삼매경이나 인생은 어차 피 인생일장 춘몽일진대 수신제가 이후 지천명이라 했던가. 안마을 사장님이 자주 쓰는 말씀이죠. 세상만물 만상의 끝에 서더라도 아무런 후회가 없겠죠. Business2.0 계절이 바뀌면 숲속에 궁전에도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오죠. 멀리 부산에서 서울에 서 혹은 고향에서 친지들이나 고향친구들의 방문이 있을 땐 은솔매의 친환경 농산 물로 찬치를 벌이죠. 먹는재미 보는재미를 느끼면서 고마움과 감사하는 마음의 표 시를 아끼지 않죠. 정말로 세상사는 재미를 느끼고 항상 자연이 주는 모든 것에 감 57
  • 43. 예산군 E-비즈니스 Business2.0 ■ 이름 : ■닉: ■ 이메일 : ■ 블로그 : ■ 소속 / 하는 일 ■ 태그 : 59
  • 44. http://happycoach.tistory.com/31 Yesland Business2.0 10: E-Business 3년 - 안종우 옛날에 가난한 선비가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공부를 하였는데 촛불을 밝힐 수가 없어 여름에는 들에 날아다니는 개똥벌레를 잡아 모아서 여러 마리의 반딧불이 밝 히는 불빛을 이용하여 글을 읽었고, 겨울에는 눈 내린 달밤에 달빛이 눈을 비춰 창 문너머로 들어오는 눈빛을 이용하여 글을 읽어 공을 이루었다 하여 주경야독(晝耕 夜讀),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 하였다. 우리 예산군 E-Business 교육생들은 아주 힘들게 공부를 하였다. 낮에는 각자의 농 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였고, 밤에는 기술센터 정보화 교육장에 모여 컴퓨터 및 각종 교육을 받았다. 적은 예산이기에 정보화 담당직원이 직접 컴퓨터 강사가 되었고, 낮 에 교육을 받을 시에는 가격이 저렴한 구내식당을 많이 이용했으며, 교육 시간을 아 끼기 위해 식사를 배달시켰으며, 겨울 밤 추울 때에는 교육장 안에서 식사한 기억이 있다. 신라의 화랑도가 삼국통일을 위해 전국을 다니면서 훈련을 받고 심신을 수련했듯 이 우리 교육생들도 선진 농업인을 찾아서 현장 교육을 많이 했고, 벤치마킹을 많이 했다. 강원도의 에덴양봉원과 홈삼팜을 갔을 때 비가 많이 내려 도로까지 올라와 차 가 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물위에 떠가는 느낌이었다. 일종의 수막현상이다. 우 리 일행 모두가 동해바다로 떠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황급히 계획을 바꾸어 수원의 농협마트를 살펴보고, 서산의 정동홍화마을을 방문하여 견학한 기억이 있다. 고양 시의 마실촌 체험농장과 마마님 청국장, 프로방스와 ~~~~(뭐죠??)을 방문하여 견 문을 넓힌 기억도 있고. 교육생 각 가정을 모두 방문하여 문제점과 발전방향을 함께 연구하였으며 윤선 박사님의 마케팅 교육 시 가야약선마을의 MBC 현장 촬영에 함 께한 기억이 있다. 땅끝 마을 해남에 갔을 때는 오랜 가뭄으로 애타고 있을 때 단비 를 몰고 가서 함박눈을 선물로 주고 왔었다. 60 yesland
  • 45. 고천암~~~~(~~부분 내용 삽입 필요)은 수령 500년의 동백나무가 특이했고, 고구마 와 호박을 생산하여 고소득을 올렸고 끝없이 펼쳐진 갈대숲은 이지역의 크나큰 자 랑이었다. 은향다원의 녹차밭 언덕에는 눈이 내리고 있는데도 개나리가 노랗게 피 었으며 녹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설아다원의 펜션은 우리 일행의 보금자리였으며 전남의 명창이 이 집에 있었다. 백년지기의 무화과 재배와 연근 재배, 드넓은 농경지와 수많은 장비들은 농업도 기업임을 실감케 하였다. ~~~~어장에서 전복과 소주가 어찌나 맛있던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 생하다. 오는 길에 함박눈이 많이 내려 차량이 거북이 걸음으로 운행하여 무척 불안 했으나 우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각자의 발표와 토론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익 히며 연구했다. Q 다녀오신 곳에 관한 지역 정보만 있고 각각의 방문을 통해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벤치마킹하고 계신지에 대한 언급이 없으시네요, 이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하고 궁금한 걸요~ 제주도 서부농업기술센터엔 우리나라 제일의 선인장 재배와 가공공장, 주변의 열 대 식물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울창하였다. 카멜리아힐은 개인 독지가가 황무지를 개 발하여 제주도의 한림공원에 준하는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인 수목원 이었다. 서귀 포농업기술센터의 <자연생태원과 감귤홍보관>은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규모가 아닌가 생각된다. 올fp길 맨발로 걷기, 한라산 극기 훈련, 등산하는 도중 비를 맞으 며 등산했고, 관음사 계곡으로 하산 할 때는 8.7km의 거리를 200mm의 비를 맞으며 예산군 E-비즈니스 5시간동안 내려오면서 천둥 번개와 폭우로 인해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려도 낙뢰가 두려워서 받을 수가 없어 본 훈련에 참석하지 못한 교육생은 실종되지 않았나 하고 무척 애를 태운 모양이다. 어느 군 특수부대가 이보다 더 강한 훈련을 받으랴? 그러 Business2.0 나 우리는 해냈다. 우리가 본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로 옛날 탐라국이 재현된 것만 같았다. 우거진 숲도, 열대우림도, 돌과 바람과 바다와 과일나무 열매까지도 이국적(異國的)인 느낌을 주 었다. 다른 곳은 차량과 선박을 이용하지만 제주도는 비행기로 ~~~~ 61
  • 46. 충전연(충남전자상거래연합회) 번개모임에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온종일 우리와 함께 있었고, 충남농업기술원에서의 충남사이버농업인정보화대회에서도 오랫동안 함께한 것은 크나큰 자랑이다. 지난 가을부터 연말까지 Vcorea 유영진 대표와 코칭님들의 블로그, 트위터, 링크나 우 등의 교육으로 인해 많은 인맥이 연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3년이란 세월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열심히 공부했다. 낮에는 일 하고 밤에 공부를 하려니 몸이 피곤하고, 쏟아지는 졸음을 견딜 수 없어 커피를 연 거푸 마셔가며 교육을 받았기에 지금의 이 수료증은 서울의 일류대학의 졸업장보 다 더 소중한 것 같다. 62 yesland
  • 47. 예산군 E-비즈니스 Business2.0 ■ 이름 : ■닉: ■ 이메일 : ■ 블로그 : ■ 소속 / 하는 일 ■ 태그 : 63
  • 48. http://blog.daum.net/bbnworld/8441463 Yesland Business2.0 11: 나나리기법과 함께 한 나의 인생 - 이능원 내 인생의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와 준 것은 IMF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농업 이 후회하지 않는 좋은 나의 업이다. 새로운 세계에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1978년 학교를 마치고 농업에 뛰어들어 처음으로 해본 것이 고추 온상묘로 재배하 는 것과 봄배추와 양배추를 도전 했던 것이다. 고추는 성공적인 수확을 했고 배추 역시 잘 가꾸었다. 양배추는 묘상에서 실패하여 묘 숫자가 나오지 않아 한 봉지의 종자로 100여 개의 모종을 생산하여 양배추재배 특성을 파악하였다. 지금이나 예전 이나 생산은 되어도 판매가 항상 걸림돌이었다. 아버지 곁에서 하는 농업의 경험을 개혁이라 할까 어린 제 나름대로 해보았지만 판 매의 문제점이 따라다녀 하는 수 없이 한 해를 못 버티고 상경을 결정하고 아버지 께 말씀을 드리니 마음대로 해보라고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마음 가볍게 무작정 상 경해 형님 댁에 머무르고 구로 공단을 헤메기 시작했는데 정문에 구인광고가 있는 곳은 무작정 들어가 일하고 싶어 왔노라고 말하면 공장에서 원하는 인력이 아니라 는 말에 뒤통수를 긁적이며 돌아서야만 하는 일을 반복하다. 영등포역 뒤에 있던 OB맥주공장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하니 경비실에서 기선산업이란 곳을 알려 주며 거기에 가서 말하라기에 가서 말하니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묻더군요. OB맥주 가 그냥 좋아 왔노라고 했더니 내일부터 나오라기에 이제 일자릴 구한 기쁨. 하루 일하고 그만 둔 것이다. 그곳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 두게 된 것이 다. 그리고 하는 수 없이 귀향길을 택해 내려와 추운 겨울을 넘기고 다시 상경하여 신문광고만 뒤적여 보았는데 거대 삼성전자의 구인 광고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희 망과 기대에 차 이력서를 가지고 수원으로 내려가 삼성전자 정문에 서니 정말 어마 어마하게 보였다. 인사과장의 면접을 보고 나서 부서 배치가 되는데 도장부서라는 전혀 생소한 곳이었다. 나하고 같은 부서를 배정받은 동료들이 불만이 많았다. 제일 나쁜 곳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말을 들으니 뭔지 모르게 싫었다. 점심을 먹고 64 yesland
  • 49. 부서 과장과 면담을 하고 나서 공정배치가 되는데 정문을 나선 것이다. 매주 목요일 에 모집을 하는 것을 알았기에 한 달 후에 다시 접수하여 가려고... 한 달 후에 다시 가서 면접을 했는데 재수가 이리도 없는 거야 세 명의 면접관이 있 는데 왜 또 지난번에 면접을 한 그 사람이 날 면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 까 날 알아보는 것이었다. 지난번에 오지 않았냐고 묻기에 솔직히 그렇다고 말했더 니 더 이상 묻지 않고 끝난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대기업은 컴퓨터가 활용되는 시 대라 이제는 끝났구나 하고 가슴 졸이고 합격여부를 기다리고 있는데 또 먼저 그 부서였다. 다시 귀향할 순 없고 체념하고 말았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열심히 하기로 다짐하고 근무를 시작했다. 며칠 간 일을 하다 보 니 기술 분야가 보인 것이다. 이곳에서 최고의 기술은 SPRAYER가 되는 것이었다. 당장 반장을 만나 SPRAY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니 공정을 바꾸어 기능연마 할 수 있게 공정이동 배치해주어 한 달 간 기술연마 끝에 조장이 날 데리고 다음공정으로 간다. 속으로 환호의 쾌재를 외치며 내숭을 “제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라고 하니 아무 소리 말고 따라오라 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3년 씩 기다리고 있는 근무선배가 많았는데 입사한지 한 달 만에 승진코스인 하도로 공정을 옮긴 것이다.) 하도에서 약 3개월 만에 다시 중도로 중도에서 6개월 만에 상도로 진입했다. 아주 빠르게 최고의 기술공정에 진입한 것 이다. 상도에서는 DISK (미국의 RANSBERG사에서 만든 자동 원심분력을 이용한 도장기임)를 컨트롤하는 OPERAYTER까지 기능을 쌓았다. 그 당시 기능공은 회사 예산군 E-비즈니스 를 3회 이상 이동해야 임금을 제대로 받는다는 설이 있었다. 그래서 선배들이 소개한 대우통신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대우로 직장을 옮기고 Business2.0 나니 마음이 그리 편할 수가 토요일 오전근무 일요일 휴무 봉급은 전보다 2배. 삼성 에서는 휴일도 없어 연애 하려고 해도 근무에 시간 배치가 되질 않아 고생했는데... 이런 것이 만고강산이라고 하는 건가? 1984년 이모님의 소개로 지금의 집사람을 만나게 되어1985년 결혼를 하게 되었지 65
  • 50. 요. 집사람 역시 부천이 직장이라 연애하는데 편리한 점도 있었지요. 수원 천천동에 동생이 투기를 한다고 주공아파트를 당첨해놓은 것이 부동산 침체로 가격이 부동 이었다. 계약금 300만원을 넣고 중도금이 2차 연체가 되어 계약금을 날릴까 싶어 내 가 사기로 결정해 있는 돈 없는 돈 빌려가며 연체중도금을 치르고 1986년 12월에 입주를 해 수원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수원에서 부천까지 전철로 출근을 하는데 시 간 활용을 위해 농업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버섯의 책을 보다 천마를 처음 알게 되었 고 항상 머릿속에서 궁금한 존재였다. 아침마다 전철을 타려고 아파트 정문을 나서면 삼성전자 통근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러움이 넘쳤다. 1987년, 다시 삼성을 전에 근무할 적 선배들이 주선해서 다시 입사하게 되었다. 있 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근무했던 사람, 그것도 경력자로 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선배들이 만들어 입사를 하게 되었다). 다시 삼성에 우수한 이론 시험 성적으로 합격해 ROBOT 도장기를 컨트롤 해오면서 도장공정의 가장 큰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방향을 돌렸다. 가장 큰 문제가 색상 교환 장치 개발이었다. 여러 기능 공이 시도 했으나 실패했다는 것이다. 실패사례를 취합하여 나름 연구해 시험해 보 고 실패하고 실패를 반복해 가며 자나 깨나 출퇴근 통근버스에서도 메모지에 그리 고 쓰고 하여 개선 방안만 모색했던 것이다. 약6개월간 내 머리는 오직 연구에만 빠 진 것이다. 그 당시 나의 아내가 고맙게 생각되는 것은 어떤 불평도 없이 나를 편안 하게 해주어 한곳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발명을 탄생시킨 것이다. 내가 해낸 것이지 만 너무나 큰 발명이었다. 도장인이라면 누구든 놀랄만한 발명이었다. 더욱 높이 평 가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적은 금액으로 제작이 가능하게 개발 한 것이다. 도장 업계의 혁명이라 해도 될 만큼 대단한 발명이었다. 나는 이것으로 끝을 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특허에 도전을 했다. 기술을 글로 논 리 정연하게 기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술을 글로 쓰는데 1년이 걸렸 다 써 놓은 것을 다시 읽으면 내가 보아도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수없이 발생되어 다 시 고쳐 쓰고 읽고 하여 1년 만에 특허를 접수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심사 기간이 3~5년이 걸려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특허취득 통보가 온 것이다. 하지만 여 기서 끝을 내지 않았다.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 해외 특허에 도전하기로 결정. 대상 66 yesland
  • 51. 국은 일본과 중국이었다. 2개국에 제출한 결과 중국 특허를 취득해낸 것이다. 이번 특허에 탄력을 받아 도장 공정의 모든 공정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개선에 들어갔다. 성과가 큰 개선이 나를 통해 개선이 되자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는 도중에 도장산업이 환경에 문제가 되다 보니 WET(촉촉한)에서 POWDER (분말)로 바뀌는 추세로 LINE 이 새로 바뀌어졌다. 도장인으로서 WET 도장만 알고 POWDER를 모르면 어찌 도장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공사 중인 설 비를 틈틈이 살펴보았다. 신POWDER LINE이 생산에 진입했는데 생각대로 생산이 이루어지질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 LINE을 안정화 시킬 사람이 나라고 판단한 과장이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내심 기다리던 것이 찾아온 것이다. 스카우 트 제의에 수락하고 부서를 이동해 설비를 파악하고 개선이 시작되었다. 일이 재미 가 있었다. 집보다 회사가 더 좋았다고 하면 믿겠는가. 이것은 경험하지 않은 분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이렇게 약5년이 지나고 POWDER 공장도 문을 닫고 말았다. 칼라강판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라도 광주 하남 공장으로 이동하게 되어 집사람과 별거가 시작되었다. 주 말부부란 꼬리표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광주로 내려간 지 1년 만에 그 유명했던 파 국IMF가 터졌다. 그것도 1순위로 대상에 걸린 것이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번을 피해도 2순위 3순위가 또 있는데... 마 음의 결정을 바꾼 것이다 나가기로... 예산군 E-비즈니스 나오고 나니 구직과 실업급여 등등 찾아 다니다 보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해고자 위로금지급에서 화가 난 것이다. 내생의 청춘을 모두 바쳤는데 위로금 1000만원을 주고 내쫓았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거대 삼성이다. 그 당시 쫓겨난 삼성인 모두가 그 Business2.0 런 대우를 받았다. 훗날 한국유리와 SK,토지공사 등은 위로금으로 1~2억을 주었다 는 것을 들었을 때 느꼈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승에서 요람까지 책임 진다고 회장이 말한 지 2~3년 만에 이렇게 박대를 했다. 모든 것을 다 바꾸라고 외 치며 마누라만 남기고 모두 바꾸라고 하더니... 잘 먹고 잘 사는군요. 67
  • 52. 그러나 이렇게 될 것을 예측을 하고 시골에 준비를 해둔 것이 맞아 떨어졌다. 밭에 배나무를 심어 놓았던 것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2000가을에 일반 벼 포장을 살 피다 발견한 변이종 찰흑미벼를 증식보급하며 유색 농산물에 빠지기도 했는데 고 생만 하고 소득은 없던 것을 3년을 이끌어 오다가 이제는 결정을 다시 했다. 고품질 벼를 생산하여 소비자에게 공급하기로 방향을 바꾸어 고품질 쌀만 공급한다. 배 농 사를 200그루에서 소득이 점점 늘어 1000만원까지 매출이 올랐는데, 2003년 4월에 청양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진화작업 중 오른쪽어깨를 다쳐 배나무 과수원 소독 을 한번 거르는 바람에 적성이 침입해 나무가 피해를 입어 2년을 관리해도 회복이 되질 않아 결국 캐내고 말았다. 과거에 일을 하다 다친 어깨는 농업을 하면서 종종 빠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일하 다 어깨가 빠지면 1톤 트럭을 왼손으로 기어를 변속하며 예산에 있는 정형외과 (20km)를 달려 맞추곤 했다. 2004년 4월에는 10일 동안 3회나 어깨가 빠지는 바람 에 마음의 결정을 했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서울 중앙병원에 인맥을 통 해 수술일자를 예약했는데 8월 5일자로 수술 날짜가 잡혀 한 달을 기다려 수술을 8 시간에 걸쳐 마쳤답니다. 그동안 한우 축사는 이웃집후배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1 주일이 되니 퇴원을 시켜서 집에서 자활치료를 했는데 축사관리는 왼손으로 하기 시작했다. 삽자루 끝은 배에 대고 왼손은 삽자루 중간을 잡고 분변 제거 삽질을 아 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을 해야 하는 작업이 무리가 되어 결국 왼쪽 팔마저 이상이 오고 말았다. 몸은 부서지고 소득은 약하고 이때 농업기술세터의 교육에 눈이 트인 것이다. 2005년 기술원에서 영농사 양성반 2주간 교육을 최우수로 수료하고 1년간 교육 프로 그램 중 컴퓨터관련 전자상거래, 엑셀, 파워포인트, 포토샵, 무비메이커, 블로그, 홈페 이지관리, 마케팅 등의 교육을 모두 이수했다. 처음에 컴퓨터 교육을 신청할 당시의 제 자신은 직장에서 컴퓨터를 접해 봤기에 시골 분들 들보다 뒤지지 않을 것으로 생 각을 했는데 막상 교육에 임하니 완전한 판단 착오였던 것이다. 질문하는 내용을 보 니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분들이 상당 수였고 관리자 모드가 어떻고 하는데 도대체 알 수 없는 질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관리자 모드에 관한 질문에 기를 68 yesland
  • 53. 기울여도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강사도 개인적인 강의로 전락 되고... 그래서 홈페이지가 있어야 하겠다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2007년에 농촌진흥 청에서 지원한 농가 홈페이지도 지원받아 농산물 홍보 판매도 하고 있다. 충남농업 기술원 정보화 교육과정 중 정보화 과정을 3년간 모든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2007 년 E-biz 멘토링 과정이 신설되어 수준 높은 정보화 교육에 참여하게 되어 질 좋은 교육을 받고 나니 전자상거래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1년 과정을 개근 으로 무사히 수료를 했다. 그런데 E-biz 과정이 2년 과정이 또 있다는 것이다. 더없 이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2008년 3월 어느 날 기술센터에 정보화 교육담당을 찾았는데 하시는 말씀이 충북 영동 농업기술센터에서 1년차 E-biz과정을 시작 하는데 E-biz과정을 수료한 교육 생을 불러서 먼저 배운 입장에서 소감을 발표해 달라는 제의가 있다며 저에게 가서 발표를 해보라고 말씀을 하시기에 한마디로 거절했는데 하시는 말씀이 자료 준비 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질의 응답 식으로 요청이 왔다며 가서 해주길 다시 권하시 기에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었기에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일이니 매우 갈등이 생 기기도 했는데 더욱 걱정은 지금까지 교육을 받으면서 자료 없이 와서 경험담 이라 든가 사례 발표하는 사람을 못 봤기에 망설인 것인데 질의응답 식이라니 대답을 해 놓고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실력은 없어서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은 못하고 한글로 줄줄이 작성해서 usb에 담아 수 없이 읽어 가며 연습을 하고 영동농 예산군 E-비즈니스 업기술센터의 교육이 저녁6시부터 인데 초행길이며 긴장이 되어 집에서 오전 10에 출발을 했다. Business2.0 유성ic로 진입해서 경부고속도로를 100km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엘란트 라가 한 번도 속을 썩인 경험이 없던 차인데 이상하게 감이 오는 것이다. 속도는 100km이니 가기는 빠르게 가고 있다. 각속페달을 밟아도 더 이상 속력이 붙질 않 는 것 같다. 시동이 꺼진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일 !!! 그것도 고속도로에서... 우측 깜 빡이를 키고 갓 차선으로 변경해서 탄력이 있어 가는 곳 까지 가다가 차를 세우고 69
  • 54. 본네트를 열고 의심 가는 부분을 흔들어보고 다시 시동을 시도 했는데 시동이 된 것이다. 그때의 기분이 말로 표현이 되겠습니까. 당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엄청 난 기분... 다시 달리기시작 그런데 속력이 나오질 않는 것이다. 30~40km밖에 달릴 수가 없는 것이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런 경우가 태산이구나 하고 실감했답니 다. 앞에 터널이 나타나는 것이다. 믿지도 않던 하느님께 마음속으로 빌고 빌었답니 다. 이 터널을 무사히 지나서 차가 서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었답니다. 그런데 터널을 통과하는 게 아닌가! 이제 다시 하느님께 다시 빌었지요. 뭐라고? 고속도로 만 나가서 정지해달라고 말입니다. 아웃 체인지만 있으면 그냥 나가려고 마음을 먹 은 것입니다. 정비를 해도 일단 고속도로를 빠져나가야 할 것이란 생각에 빌었답니 다. 그런데 하느님이 신통하게도 내 소원을 잘도 들어주시는 겁니다. 이렇게 국도를 무사히 나왔지요. 또다시 하느님께 빌기 시작 뭐라고? 정비공장까지 가서 퍼지게 해달라고 빌었지요. 시내를 한참 달렸는데 정비공장이 보인다 기아 정비공장이다 내차는 현대인데도 무지무지 반갑다. 상황 설명을 하고 수리를 시작했는데 전혀 다 른 곳을 만지고 있다 이쪽 센서가 이상이 있으니 부품을 교체해달라고 했는데 그곳 이 아니라며 엉뚱한 곳을 만지작 거린다. 결국은 내가 말한 부품을 교체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수리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수리하나 마나였던 것이다. 가속이 붙질 않는 것이 수리전과 동일한 것이다. 그냥 영동센터로 가고 있다. 멀기도 멀군 요. 물어 물어 영동 센터를 찾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다시 시내로 돌아갔다. 슈퍼 에 가서 점심을 빵과 우유로 때우고 가게 주인과 손님과 대화로 시간을 죽이고 있 다 14시 경에 도착을 했으니 너무 일찍 당도한 것이다. 2~3시간을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고 17시경에 센터에 도착해 담당자를 만나서 인사 를 나누고 교육할 장소를 살펴보고 센터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시간을 보내고 나니 드디어 발표시간이 당도 했다. 진흥청에서 오신 오상헌 박사님과 제가 발표하는 것 이었다. 발표순서가 제가 먼저하고 오박사가 나중에 하기로 되었는데 순서를 바꿔 오박사님이 먼저 다음에 제가 하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좋다고 하고 시작이 되었는 데 오박사님은 2~30분으로 간단히 하시고 내 차례가 된 것이다. 단상에 올라가 큰 절로 인사를 드리고 시작을 했지요. 교육에 가장 기본적인 출석부터 참여와 목표의 식 등에 대해 발표를 했다. 내가 만든 나나리기법도 설명을 했다. 70 yesland
  • 55. <나나리기법이란?> 목적과 방법을 정확히 알아 실천하고 숙달되어 여유가 있으며 잊지 못하게 계속한 다. (나나리는 집 지을 장소와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반 복 숙달하여 여유가 있으며 노래로 반복을 계속한다.) 나나리 기법을 최초로 발표 한 사람이 바로 오곡농장 이능원이다. 이렇게 한 발표는 쉬는 시간도 없이 밤10:45분에서 끝을 냈답니다. 발표중간에 유 머러스한 멘트도 준비해 대답하는 분에게는 잡곡을 준비해 간 것을 상품으로 나누 어 주면서 진행을 했답니다. 끝나고 오는데 여포농장에서 포도 와인2병를 선물로 주셔서 한 병은 센터에 한 병은 내가 꼴깍 했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갈 걱정이 태산 국도로 갈까 고속도로로 갈까? 국도로 가도 길도 모 르고 정비공장도 밤12시라 잠을 자니 소용이 없는 것. 가자! 고속도로로 또 하느님 께 빌기 시작. 차가 퍼져도 고속도로를 지나 국도에서 퍼지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고 속도로 통과 다시 바꿔 빌기 시작. 국도를 통과하고 나니 차동고개를 넘게 해달라고 빌며 오르기 시작. 저단 기어를 사용해도 20km 이상 나오질 않는다 .간신히 차동고 개를 넘었다. 요구사항이 또 변한 것이다 집에까지 가게 해달라고 집에 가서 고장이 나도 좋다고 빌며 빌며 온 것이 집에까지 도착 휴~~~~~~우.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 발표를 못했어도 끝냈고 고장난 차가 집에 까지 도착 시켰고 발 뻗고 잘 수 있다. 현 재시각 다음날02시 잠자리에 누웠다. 예산군 E-비즈니스 * 앞에서부터 이어진 한 장 여 분량의 차 고장난 에피소드는 생략하는 것이 더 좋을 듯 싶습니다. Business2.0 이렇게 E-biz 2년차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2년차에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책임과 의무가 있어 교육이 있는 날이면 집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교육이 있 는 날은 16시부터 교육이면 오전일 하고 점심을 먹고 14시에 소 저녁을 주고 30km 거리를 달리기 시작하면 약30분소요하면 센터에 도착을 한다. 교육담당이신 김기 예 지도사님과 상의 할 사항이 있는지 교육시간 전 30분~1시간을 일찍 출근한 것이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