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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시민공모전 <내셔널트러스트상> 수상지 경주 읍천리 화산지형




 2012년 제10회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상식 개최                                                                                                    2012 | Autumn | No.25
                                                                                                                     www.nationaltrust.or.kr
 점점 그 속도를 더해가는 난개발과 외면 속에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자연과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는 이러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중 보존가치가 뛰어난 지역을 일반 시민들과 함께 발굴하고
 보존방안을 모색하고자‘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이곳만은 꼭 지키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올해 10회째를 맞이한‘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 주부, 학생, 직장인, 시민단체 등의 참여로 전국에 걸쳐
                         은
 총 27개 대상지가 접수되었고, 전문가 서류심사와 네티즌 평가를 반영하여 현장심사 대상지 15곳을 선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장심사를 통해 최종 수상지역을 선정하게 됩니다. 시민공모전에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2012년 시민공모전 시상식에서 훼손위기로 신음하고 있는 소중한 유산들을 확인하시고,
함께 보전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 일시│2012년 12월 4일 화요일 저녁 6시 30분
● 장소│문학의집・서울(02-778-1026)
● 프로그램│접수 및 안내 / 축하공연 / 대표인사 / 축사 / 시민공모전 경과보고 /
               수상지역 영상 상영 / 시상식 / 기념촬영 / 만찬 / 폐회
● 주최                           한국내셔널트러스트

● 주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 후원



※ 프로그램은 당일 사정에 의해 일부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참석 신청 및 문의: 전화 02-739-3131 contest@nationaltrust.or.kr
※ 자리배치와 식사 예약을 위해 미리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ISSN 1976-2577
CONTENTS
04 집중과 조명                산업유산의 보존과 활용    윤인석 |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고 교수

                         미래 세대에 어떤 것들을 생활문화 유산으로 남겨주어야 하나?               전우용 | 서울시 문화재위원

                         기억의 연금술로서 미래유산, 민주화운동유산          서해성 | 한신대학교・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12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        박원순 서울시장     양병이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

16 영국NT 이야기              시민공유의 공간, 애팅험 공원       조명래 | 단국대 교수, 내셔널트러스트 이사

20 근대문화유산                慈생의원, 문화를 통해 거듭나는 집단 기억의 장소를 기대하며…                     안창모 | 경기대학교 교수

22 내셔널트러스트 여행            제주 한림마을 서중천 답사기        임종수 | 강화 초지리 새마을지도자

26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자연이야기     민초의 지팡이에서 소금까지, 붉나무          고주환 | 작가

                         습지생태계의 최후포식자 삵        김연수 | 문화일보 기자, 생태사진가

30 품안에                   600년 조선의 도읍에 서다! 한양성 서쪽의 발견             김경민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온새미로 기자단, 용인외고

33 회원인터뷰                 고고학의 설렘, 문화유산 사랑으로         박준범 회원님

                         Cogitans!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      김홍렬 회원님

36 내셔널트러스트 추천도서          스마트폰보다 더 어려운 물없는 화장실 만들기                임정진 | 동화작가, 서울디지털대문창학과 객원교수

38 내셔널트러스트 소식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소식
39 내셔널트러스트 알림마당          공지사항
40 후원해주시는 분들             2012년 6월 ~ 8월 후원내역
43 팝업카드시리즈               우리집은 한옥이다




                                                                                                                   발행일 2012년 10월 1일                   발행처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발행인 김홍남 양병이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11길 20 우리빌딩 4층
                                                                                                  2012년 가을호        편집위원장 이은희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4가 72-4번지 우리빌딩 4층)
                                                                                                                   편집위원 강동진 남준기 서왕진 안창모 오충현           전화 02-739-3131
                                                                                                                   유상오 윤인석 임정진 전은정 조명래 한동욱            전송 02-739-9598
                                                                                                                   기획 허주희                             1년 정기구독료 20,000원
                                                                                                                   편집인쇄 (주)디자인내일                      (정기구독료는 후원금으로 사용됩니다.)
                                                                                                  ISSN 1976-2577
                                                                                                                   www.nationaltrust.or.kr            * 본지에 게재된 글과 사진, 그림은
                                                                                                                   페이스북 www.facebook.com/trustkorea   무단 전재하거나 복제하여 사용할 수 없습니다.

                                                                                                                   트위터 @ntrustkorea
                  표지                                                                                               ※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기증과 기부를 통해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을 확보하여 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입니다.
                  삵의 발자국. 생태학자들은 삵이 살아있는 습지는 생태계 균형을 갖춘 건강한 습지라 말하고 있으나,
                  최근 개체수가 급속히 줄고 있다. 사진 김연수(문화일보 기자)                                                                              목차사진 새만금 방조제 연결 전 동진강 하구의 도요새와 어부들 사진 남준기(내일신문 기자)
| ✽집중과 조명 |




                                                                                   ‘교훈’
                                                                                      이라 함은‘교육’ ‘배움’ ‘현물’ 유구
                                                                                              과    인데   의
                                                                                   가 가지는 생생함이 있을 때 효과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모조리 없애 놓고 그 기록영상들을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이미지만 보여 주어서는 깊은 인식을 하기
                                                                                   에는 부족함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압축성장의 대명사처럼 자랑스럽게 입에 담았던 그
                                                                                   숨가쁨 속에 우리의 가까운 과거는 아침안개처럼 사라
                                                                                   져버리고 말았다.
                                                                                    개항기 이전에 한반도로 흘러들어 온 각종 기술과 지
                                                                                   식들이 집약되어 나름의 생산방식이 구축되어 있었으
                                                                                   나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번져 나가던
                                                                                   산업화 물결이 유입되어 이 땅의 기반시설들을 그 이전
                                                                                   과 다르게 만들었다.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막강한 힘
                                                                                   을 분출하는 동력공급과 발전소, 전기를 이용한 시설
                                                                                   과 기기 등장, 철도와 신작로 건설, 그 위를 달리는 기
                                                                                   차와 자동차. 생산의 속도와 수량에서 그 이전 시대와
                                                                                   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번창함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 전통적인 방식이 다 버려졌는가 하면
                                                                              1                                      2
                                                                                   그렇지도 않아서 이 땅의 환경에 맞는 방법들은 유지되
                                                                                                                     1 1933년 경상남도 창녕과 함안 사이 낙동강에 설치된 트러스 교. 6・25 때 폭격 당한 것을 복구하여 사용하였다. 2000년대
                                                                                   고 있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역사’ 함은 적어도
                                                                                                      라
                                                                                                                      에 들어서 안전 상의 이유로 철거 계획을 세우던 중, 지역주민들의 보존운동에 힘 입어 등록문화재 제145호로 등록되었다.
                                                                                   한 세기가 넘어야 그 범주에 끼워주는 것으로 인식되       사진 부산시민운동본부



산업유산의 보존과 활용
                                                                                                                     2 한강 선유도의 과거 정수장 건축 구조물을 재활용한 국내 최초의 환경재생 생태공원
                                                                                   어, 개항전의 유물과 유품, 유적들은 귀하게 여기며 보
                                                                                   존의 대상으로 삼아‘문화재’ 지정하여 지켜 왔다.
                                                                                                 로

윤인석 |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하지만 나이가 백 살에 미치지 못하는 것들은 유물대접
                                                                                   을 받지 못하며 후속 세대의 신기술과 신제품에 밀려
                                                                                   사라져 버려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못하고‘영결’
                                                                                                             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는 모든 것이 참으로 빠르게 변해 가고 있다. 쓰던 물건의 기   공업입국, 산업화의 현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    고 만 것이었다.                         해 주는 것이며‘집단기억’ 나이를 먹으며
                                                                                                                                  이        ‘역사’ 편입되는 것이다. 기억이 역사
                                                                                                                                              에
능이 급격히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불과 이삼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들이 엄청     다. 광복 후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섰던 재건과    다행히 50년 정도의 나이를 먹은 유물을 보존대상으     속에 편입될 때까지 우리는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나의 시대가 만들어 낸 산물을
난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개발되어 우리 일상생활을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     조국근대화의 현장이 이럴진대 개항기부터 광복기에      로 삼는 제도가 최근 10년 사이에 생겨서 조금씩 그 가   없애버리지 말고 우리의 아이들 세대에게 넘겨 줄 의무가 있다.
고 있다. 우선 우리 몸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전화기로,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이르는 동안 자발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받아 들였던     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문화     ‘집단기억’ ‘산업시설’ 어떤 것이 있을까? 건축학에서는 건물의 용도별로
                                                                                                                          속의     은
모양이 전화기 같아서 그리 불리는 것이지 단순히 통화만을 위한 기기가 아니라 기억      ‘부국강병’
                                                        ,‘동도서기’구호 하의 근대화, 산업화 초    시설, 주택, 종교, 교육시설 등,
                                                                                                     ‘격조’
                                                                                                        있는 유적들을 향    유형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중에 산업시설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공장을 비롯한 생
장치와 지식정보의 전달 창구역할을 하며 인간 두뇌기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기 현장들은 전쟁 통에 도시재개발로, 민족감정으로,    한 관심은 높아도‘공장’
                                                                                               ‘창고’
                                                                                                , ‘수송’
                                                                                                   , ‘관개’
                                                                                                      ,  시설          산시설, 생산품을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보관시설 및 창고, 또 이것들을 옮기는 수송,
    물품의 기능이 급속하게 바뀌면서 그것을 생산하는 시설도 당연히 변화가 생겼는     용도전환으로 없어졌음은 물론 뜯어 낸 기계의 부품과    등, 생산과 노동에 관련된 시설들은 관심 밖에 있으면     운수시설 등이다. 물론 여기에 설치된 설비와 기기들도 포함을 한다. 또, 산업에는 1
데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지역의 경제발전의 척도가‘공장 굴뚝에 연기가 피어     유적지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서 그 남루함으로 인해‘제거”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
                                                                                                  의                  차, 2차, 3차 산업이 있다. 농업에는 전 근대기부터 이어져 오던 기법과 시설이 있
오르는가’였지만 이제는 굴뚝산업이라 함은 후진성의 상징처럼 인식되어 가고 있          우리는‘역사
                                                         ‘가 매우 중요하다고 곧잘 애기한다. 하    다. 익숙하게 다루었던 탈곡기, 풍로, 소달구지, 천일염   다. 이 시기의 유구들은 이미 문화재로서 지정되어 행정력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다. 굴뚝산업으로 일컬어지던 생산시설과 장비들은 노동집약적 산업과 연관되어 임        지만 그‘역사’
                                                          라는 것이 무엇인가? 옛 사람들이 살던    전, 계단식 논이 없어지고 소규모 저수지도 대규모 다     근대기의 유구에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앗간, 정미소, 곡물창고와 관개시설, 저수
금의 급등, 수입에 의존하는 원자재비의 급등을 이유로 동남아시아의 후발 공업국가       때의‘기록’
                                                        에서부터 유적지 또는 그것들과 관련 있는     목적 댐 속에 잠겨 버리게 되었다. 우리에겐 같은 시대    지, 육종배양 연구시설 등이 있다. 공업생산 시설에는 공장과 그 동력을 얻기 위한
로 이전되고 그 터가 주거시설이나 부도심으로 재개발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급격히      ‘사건’ 얘기한다. 그리고
                                                      을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를 살았던 사람들이 가지는‘집단기억’ 있다. 이 집
                                                                                                      이              화력, 전기 에너지원 시설 등이 있는데, 공장에는 생산품에 따라 여러 가지 공장들이
생산터전의 환경이 변해가는 사이에 20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그렇게도 부르짖었던        역사공부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이때    단기억을 잘 지키는 방법이 당대의 유물과 유적을 보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경공업 설비만을 설치하였기 때문에 주로 섬유산업의 유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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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과 조명 |




이 더러 남아 있다. 광복 후 고도경제성장기에 세워진 철광업, 중화학 시설은 물론이          면 어렵게 보존으로 가닥을 잡은 산업유구들을 어떻게
고 탄광, 저탄시설 등이 생산력을 낮추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남아 있다. 서비스 산          활용할 수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남루하게 보이고
업에는 운송, 수송시설이 해당하여, 도로, 철도, 교량, 역, 터미널, 시장 같은 것들이       품격 없어 보이기는 하여도 지난 한 세기동안 우리들이
해당하고 이에 딸린 보관시설을 같이 생각할 수 있다. 개항기 이후의 신작로가 만들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우리들의‘집단기
어짐으로써 옛길의 사용빈도가 떨어졌듯이 고속도로 건설 후에는 국도가 외면 받고             억’
                                                         이기 때문에 잘 다듬어서 활용하면, 원래의 그 자리
있고, 20세기 초 철로가 부설되면서 옛길들이 뒤안길로 밀려 났고, 터널과 철교들이          에서 공동의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다. 옛날의 기능을
등장하였다. 최근에는 KTX 등장으로 재래선 철로의 활용도가 떨어지며 거기에 딸            살려서 재현할 수도 있고 용도를 바꾸어서 새로운 기능
린 역건물과 부속시설들 역시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 나고 있다. 선박수송이 이           의 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 공장이 미술관으로 되는 것
루어지는 곳에 만들어진 부두와 관련시설들이 시설의 진보와 도시재개발에 의해 용             은 이제 흔한 예가 되었고 아파트나 스튜디오로 사용할
도폐기 되면서 제거되어 가고 있다. 여기에 남북분단의 특수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           수 있다. 그 밖의 여러 가지 용도와 시설로 융통성 있게
나라에서는 군사관련 시설도 도시기능의 변화에 따라 이전되고 그 터가 재개발 지역            활용할 수 있으니 이제부터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에 편입되어 가고 있다.                                           발휘되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모두 인식하고
    자, 이제는 보존해야 할 산업시설에 무엇이 있는지 꼽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야 할 때이다.
                                                                                                                                                                                      북한산 당집 굿




                                                                                                    미래 세대에
                                                      1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스왈로 초콜릿 공장을 고급 맨션으로 개조한 주택단지
                                            2 옛 시드니 부두의 선창과 창고를 고급 아파트로 개조하기도 하고 요트 클럽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3 충청북도 진천군의 덕산 양조장
                                                                                                    어떤 것들을 생활문화 유산으로
                                                1


                                                                                                    남겨주어야 하나?
                                                                                                    전우용 | 서울시 문화재위원




                                                                                                    “인류 문화 활동의 소산으로써 예술・과학・종교・도덕・법률・경제・민속・
                                                    2                                                생활양식 등에서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브리태니커)
                                                    3
                                                                                                    “대상이 구현하는 정신적 가치와 시각적・음향적으로 표현하는
                                                                                                     심미적 가치가 독특하고 주체성을 보존하는 중요한 매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세계적 유산으로써
                                                                                                     역사적・예술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큰 것”
                                                                                                                            (대한민국 문화재보호법)



                                                                                                    이상은 문화재, 또는 문화유산에 대한 여러 정의이다. 일   사라진 과거의 문화요소뿐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 형성되어 현재까지 영향을 미
                                                                                                    반적으로 문화는 특정한 자연적 인위적 환경 안에서 인간    치고 있는 생활태도와 습관, 기계, 기구, 도구, 공예품, 생활용품, 언어 등도 넓은 의미에
                                                                                                    이 획득하고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총체적인 삶의 태도 일    서는 문화유산의 범주에 포함된다.
                                                                                                    반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사용가치’ 이미
                                                                                                                            가          그런데 현대는 대량생산과 복제의 시대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물품들에는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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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과 개별적 고유가치가 없다. 더구나 이들 제품의 사용가치는 물리적으로 소진되         거의 것’ 중에서 선별하면 되지만, 미래 생활문화유
                                                                                                  들                               상암월드컵경기장에 걸렸던 태극기와 공장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태극기는 같은 물
                                         기 전에 기능적으로 소진된다. 수공 도자기의 경우 100년은 지나야‘유물’ 취급되
                                                                                 로            산을 고민하는 자체가 이미 그런‘우연성’ 배제하겠
                                                                                                                   을              건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미래의 생활 문화유산은 현재의‘기념품’
                                                                                                                                                                     들이라고 할 수
                                         지만, 휴대전화기는 5년 전 모델도 이미‘골동품’ ‘유물’
                                                                   이자   이다. 공장 생산 물품들         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있다.
                                         에는‘인간의 향취’ 배지 못하며, 문화재 또는 문화유산 개념이 요구하는 독창성,
                                                  가                                            1994년 서울시는 당대의 생활 문화를 압축적으로 표       인간이 경험한 바는 일단 기억으로 저장된 뒤 이야기로 구축되고 전달, 전파된다.
                                         희소성, 예술성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럼에도 현대의 공장제 생활용품들이 인간의         현하는 600점의 물건과 영상, 기록물을 선정하여 타임      현대인들은 급변하는 물질생활 속에서도 물건 하나하나에 특별한 이야기 거리들을 담
                                         삶과 태도, 지식과 기능에 미치는 영향은 압도적이다. 시장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캡슐에 묻은 바 있다. 여기에는 의복, 식기, 의약품, TV   아 물건과 자기와의 관계를 설정한다. 이렇게 관계, 또는 관계에 관한 기억이 남아 있
                                         새 기술을 채용한 새 제품이 나와 대중의 선택을 기다린다. 현대인은 새 기술과 기계       수상기, PC, 휴대전화기 등의 현물과 신문, 잡지, CD,   는 물건들이 비로소 개인 또는 집단의 기념물로 남는다. 현대의 생활 물품들을 기념물
                                         에‘적응’
                                             하면서 진화를 체험하고 자기 시대의 특수성을 확인한다.                   사진 등의 기록물들이 포함되었다. 이들은 당시에는 단       로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억이 담겨 있는 물품들을 지속적으로 발굴, 수집, 기록
                                             수많은 사조와 양식(樣式)이 짧은 기간 내에 생성 소멸을 거듭하는 현대에는 건축     순히‘소비되는’
                                                                                                     물건들이었으나, 400년 후에는‘문화         하고 관찰하며 보존해야 한다. 기억이 씻겨 나간‘제품’
                                                                                                                                                               들은 미래에도‘고물’ 지위
                                                                                                                                                                         의
1
                                         물, 기계, 도구, 의복, 음식, 예술 등 모든 문화요소들의 수명이 짧다. 또 자본주의 세   유산’ 가치를 인정받으리라 기대되는
                                                                                                의                ‘미래의 생활문         를 면할 수 없다. 미래 생활문화 유산을 만드는 일은, 몰개성한’
                                                                                                                                                               ‘     물건들에 담긴‘개성
2
                                         계 시장은 지역적, 민족적 특성을 간직한 독특한 문화요소들을 소멸시키고 세계적 표        화유산’
                                                                                                 들이었다. 600점에 달하는‘물품’ 다 소개할
                                                                                                                   을              있는 사연들’ 보존하는 일이다.
                                                                                                                                        을
                                         준을 창안하여 전 세계에 확산시킨다. 문화의 세계화와 보편화, 빠른 변용 등은 지역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주제별 분류표만 제시한다.
                                         과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의 형성 자체를 곤란하게 한다.                      서울 600년 타임캡슐에 담은 물품들 중에는 일부‘한
                                             현대 문화의 이런 특성이 현대인의 정서적 불안을 낳는다. 현대인은 미증유의 물질     국적’ 것도 있으나, 대다수는
                                                                                                인             ‘범세계적 보편성’
                                                                                                                       을
                                         적 풍요 속에 살면서도 정작 마음을 담을 소재(素材)는 갖지 못한 부유하는 존재라 할      지닌 것들이다. 한국산 휴대 전화기는 한국뿐 아니라 전                                                   타임캡슐 수장품

                                         수 있다. 인간에게 지속감과 안정감을 제공해주는‘전통’ ‘역사’ 연계할 수 있
                                                                       또는  와                  세계에서 소비되며, 한국산 PC의 주요 부품은 미국 기
                                         는 체계와 기제(機制)를 마련하는 것은 이런 실존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필요하       술로 생산된 것들이다. 또 이 타임캡슐에 담긴 것 중에
                                         다. 당대의 특징적 문화요소를 발굴, 기록, 정리, 보존, 전승하는 일련의 행위는 바로     ‘유일한 것’ 없다. 수만 개, 또는 수백 만 개의 동종
                                                                                                    은
                                         이를 위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同種) 제품 중에서 손닿는 대로 하나씩만 골라 담았을
1 인쇄기 2 붕어빵 틀                                문화재가 현재에 속한 과거라면, 미래 생활 문화유산은 미래에 속한 현재다. 그런     뿐이다. 현재가 미래에 넘겨 줄‘생활 문화유산’ 대개
                                                                                                                       은
                                         데 하루에도 수백 만 개씩 새로 쏟아져 나오는 현재의‘제품들’
                                                                          중에서 대체 어떤 것들        이런 것들이다. 이들 유산에는 문화재 또는 문화유산이
                                         을 보존하고 전승할 것인가? 모든 제품의 샘플이나 최초 생산품을 다 보관하는 것은        요구하는 고유성과 개별성이 없다. 오직 대표성만 있을
                                         현실적이지 않을뿐더러 필요하지도 않다. 현재의 문화재들은‘우연히’
                                                                            살아남은‘과            뿐인데, 그 대표성 역시 다분히 임의적이다. 서울 600
                                                                                              년 타임캡슐 수장품의 경우 전문가의 심의와 시민 의견
                                                                                              수렴이라는 과정을 거치기는 했으나, 지금에 와서 돌이
                                                                                              켜 보면 아주 적절한 선정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서울 600년 타임캡슐 수장 물품                                                                            2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또 만약 1993년이나
                                                                                              1995년에 타임캡슐을 묻었다면 컬렉션은 많이 달랐을
              분류                소분류                                     세목
                                                                                              것이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와 세상을 채우는 물질이 변
                               양식(73점)                         의식주, 통과의례, 건강기호식품
                                                                                              하는 속도는 대략 같다. 그렇다고 매년 하나씩 타임캡슐
                              제도(215점)                    언론, 의료, 경제, 치안, 행정, 복지, 교육, 사회관습
                                                                                              을 묻을 수는 없는 일이고, 우리의 생활공간을 계속해서
        시민의 삶 (501점)           환경(77점)                            자연, 도시, 교통, 문화재             ‘고물들’ 채워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로
                              산물(78점)                    전자, 전기, 통신, 토목건축, 도시정비, 개발, 각종 소재     공장 생산 제품이 대부분인 현대의 생활 물품들과 문
                           형태, 주변, 기타(58점)                 사회특이형태, 국방 및 남북관계, 외교, 기타          화요소을‘미래의 생활 문화유산’
                                                                                                              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치(40점)                      종교의식, 기호, 취미, 여가활동, 일상적인 삶
                                                                                              는 이들 제품에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는‘고유성’
                                                                                                                        과
                                                                                              ‘개별성’ 인위적으로 부가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을
                              표현(35점)                          문학, 음악, 미술, 연극 영화, 체육
       시민의 사상 (99점)                                                                           ‘개별 구체적인 기억들’ 곧 이야기이다. 같은 날, 같은
                                                                                                          ,
                             미래지향(9점)                        시민의식, 미래계획, 미래에 대한 상상력
                                                                                              공장에서 생산된 태극기라도 언제 어디에 걸렸던 것인
                               기타(15점)                                600년 사업
                                                                                              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물건이다. 2002년


8   | 2012년 가을호 |      |                                                                                                                                       | 2012년 가을호 |       |   9
| ✽집중과 조명 |




기억의 연금술로서 미래유산,
                                                                                                                                                          민족해방운동과 민주화운동은 이렇듯 한국사회에서 부단히 기록 자체와 투쟁중이
                                                                                                                                                         라는 점에서, 박정희기념관 등 억압자와 싸우고 있다는 점에서나 불행히도 지금도
                                                                                                                                                         항쟁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인류 보편적 원리가 이 땅에 아직 상식으로 자리 잡


민주화운동유산                                                                                                                                                  지 않고 있다는 명백한 방증이다. 때로 이는 역사 녹화사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임 서울시장은 이른바 남산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울 남산일대 역
                                                                                                                                                         사유산을 복원하고 나머지 공간을 녹화하여 시민공간으로 돌려주겠다고 했다. 성곽
서해성 | 소설가, 한신대학교・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등은 보수하고 중앙정보부 건물 등을 해체한 자리를 녹지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었
                                                                                                     건물 외부 절개를 통해 시대의 비명과 동시에 부활을, 창틀을 손짓으로, 5국 건물 앞 주   다. 가해자의 역사기록을 휴식이라는 이미지로 바꿔치기하려 한 이 발상은 충분히
                                                                                                     자창을 메모리얼 공간화하여 표현하였다.
                                                                                                                                                         역사 지우기 녹화사업으로 의심 내지는 지탄 받을 만한 일이었다. 역사를 여는 사람
                                                                                                                                                                                           ‘
                                                                                                                                                         들’ 중심으로 한 시민활동으로 이를 저지한 일은 민주화운동 역사에 비춰 미래유
                                                                                                                                                          을
사회적 유산이란 과거로서 현재이며, 역사의 실존하는 거울이자 문화적으로는 약이                          하거나 망각토록 하는 기재로 작동해온 측면이 있다.    점유했음을 선언하는 일이었다.                                    산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를 분명히 한 일이기도 했다.
다. 오직 이때만 미래유산일 수 있다. 모든 역사가 언제나 현재사이듯 유산 또한 그                        근대사회는 중세를 폭력으로 파괴시키면서 혁명과        이 박제화 된 보호의 쇼 케이스 관점은 식민지 지배                       1961년 쿠데타세력은 거사와 거의 동시(6.10)에 서울시 예장동 2-1번지에 중앙정
약효가 늘 현재적 재생과 치유능력을 지녀야 하는 법이다.                                      함께 등장했다. 이들이 중세를 지배하고 있다는 명백한   이념으로 한국을 여과 없이 침투해왔다. 그에 따라 한                       보부를 설치했다. 정확하게 51년 전 같은 자리에서 대한제국은 일본에 국권이 넘어갔
 한국인에게 문화유산이란 오랫동안 늘 과거, 그 자체였다. 이는 수학여행을 경                          선언이 궁궐 공개와 몇몇 기물을 쇼 케이스에 보관・전   국인은 문화(유산)을 자기 내부에서 재식민화해서 관                        다. 그 여름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 사방에 만개했다. 민중들은 이를 일러 망(국)초라
주・부여 따위로만 한정하는 발상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역사문화유산은 생명력                         시하는 박물관이었다. 권력으로서 완전히 멸실되었다     조하는 비극적 모순에 입각한 완상미학을 형성할 수밖                        했다.
                                                                                                                                                           ‘망쪼 든다’ 말은 여기서 연유하다. 경술국치를 당한 한국통감관저 자리가
                                                                                                                                                                 는
있는 현재가 아니라 가닿을 수 없는 먼 옛날에만 존재해왔던 것이다. 그 유산 앞에서                       는 것을 확인된 위험하지 않은 중세는 이윽고‘보호’    에 없었다. 쇼비니즘(Chauvinism, 광신적 애국주                     이곳이다. 땅의 운명이 이토록 비감어린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보다 더
사진 몇 장을 찍고 교복을 입은 채 술을 마시는 추억은 지난 1백 년 동안 한국인의 핵                     받기 시작했다. 이는 동물원의 등장시기와 대체로 일치   의)의 문화 우월주의 또한 그 변종일 따름이다.                          민족해방과 민주화운동을 응축하고 있는 고도의 역사적 공간은 없는 줄 안다.
심 성장기억 중 하나였다. 식민지시대 학생들에게 잠시 주어진 거의 유일한 여행은 억                       한다. 창살 안에 웅크린 열대동물 사자는 봉건과 마찬     20세기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일은 일제                       이곳 전체를 새로운 역사문화공간으로 재창조하자고 제안한 것은 벌써 15년 전 일
압교육에서 일탈과 동행했던 것이다. 이는 역사와 유산을 현실로 연결하지 못하게끔                         가지로 서구제국주의가 자연지배에서 폭력적 지위를      식민지배에 저항한 일과 민주화운동이다. 이는 한국사                        이다. 국치현장을 기록・복원하고 더불어 중정 역사 또한 부끄러운 유산으로 남겨
                                                                                                     이자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고 있다. 인간해방에 기초                        후대에 거울로 삼자는 뜻이었다. 남산 북쪽 기슭에서 군림하면서 박정희시대와 전두
남산의‘서울문학의집・서울’이곳은 과거 중앙정보부 공관이었으며, 서울유스호스텔은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의 남산 본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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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가를 세우겠다는 자유와 인권을 향한 투쟁은 20                       환・노태우 시대를 통치해오던 반인권 정보기관‘남산’ 떠날 때 폭파・해체하고
                                                                                                                                                                                    이
                                                                                                     세기 들어 전지구적 일반원리가 되었다. 민족해방투쟁                        도 남아 있는 건물은 아직 여러 채다. 그 가운데 현재 서울시청별관으로 사용하고 있
                                                                                                     에 이은 민주화운동은 한국 뿐 아니라 제3세계에서 자                       는 중앙정보부 5국은 납북어부 등을 간첩으로 조작해낸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곳이
                                                                                                     연스러운 연계로 진행된 역사전개과정이었다. 한국 근                        다. 서울시는 얼마 전 이를 민주화운동 관련한 공간으로 내놓겠다고 했다.
                                                                                                     대문화유산의 뼈대는 그 가치를 세우고자 투쟁한 일이                         서울시에 제안한 바 있는, 이를 보전하는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었어야 마땅했다.                                           우선 공간의 원형보전과 활용이다. 두 번째는 운영 주체다. 이 공간의 주인은 마땅히
                                                                                                       역사나 문화유산에서 민족해방과 민주화 가치를 여                        민주・평화・인권이어야 한다. 한국인 후대를 포함한 인간 누구나, 미래에도 변치
                                                                                                     전히 온전하게 형성시켜내지 못하고 있는 게 한국사회                        않게 세 가치를 집약한 주체의 이름을 민평인이라 하자는 의견도 덧붙였다. 세 번째
                                                                                                     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단적인 예가 화폐인물선정이                       는 단순히 의전적 기념공간이 아니라 감각을 종합하는 창조적 형상화다. 건물 재구
                                                                                                     다. 제3세계의 경우 공화정 국가의 지폐 인물이 두 가                      성을 아우르는 시각작업을 기본으로, 소리와 촉각까지를 두루 활용해야 한다. 무엇
                                                                                                     치를 체현(體現)하고 있는 역사적 위인이 선정되는 게                       보다 미래의 민주성을 담지해내야 한다. (그림으로 기본구상을 공유코자 한다.)
                                                                                                     당연한 일이다. 유산의 3대 요소를 인물, 가치, 기물이                      어떤 유산의 전승이든지 집단기억의 재구성을 통해 이뤄진다. 기록 전승 작업은
                                                                                                     라 할 때 가장 우선하는 것이 인격적 유산, 곧 사람임은                     철저히 사실이되 사실을 넘을 때 비로소 창조적 힘을 갖는다. 새로운 형상화 없이 이
                                                                                                     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 정부는 상당한 논의를 통해 1                      는 이르기 어려운 경로다. 국치의 기억과 고문 등 반인륜적 국가폭력의 기억은 곧이
                                                                                                     십만 원 권 화폐인물로 김구를 선정했다. 이는 이명박                       곧대로 드러냈을 때 즉물적 재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 기억은 연금술의 과정을
                                                                                                     정부 들어 까닭 없이 유보되더니 이내 5만 원 권 지폐                      반드시 거쳐야 한다. 유산이 문화로서 치유력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여기서 탄생한
                                                                                                     신사임당으로 교체되었다. 근대에서 중세로 회귀해버                         다. 한국 민주화운동은 그 굵은 궤적에 비해 기록과 형상화에서 아직 전형이 제시되
                                                                                                     린 것이다. 이는 근대가치의 일상화를 거부한 전형이                        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남산’재구성은 역사적・문화적 명약을 창
                                                                                                     자 수구적 행태의 전범이기도 하다.                                 조해낼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10   | 2012년 가을호 |    |                                                                                                                                                                 | 2012년 가을호 |   |   11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 |




박
원                          ● 오래간만에 다시 내셔널트러스트 매거진을 통해 뵙겠습니다. 지난 인
                            터뷰(2007년 9호)에는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님으로 만나 뵈었고, 오늘
                            은 시장님으로 만나 뵙게 되었네요. 예전에는 시민운동가로서 정부를
                                                                       한데, 문제는 지금까지 개발에 치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보존이 안
                                                                       되었던 것이죠. 서울은 미래세대가 살아가야 할 미래의 땅이기도 하
                                                                       잖아요. 과거를 보면 서울은 한양으로서 조선시대 600년의 수도였




순
                            감시하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입장이 바뀌셨는데, 어떤 차이가 있으      고, 한성백제 500년의 수도였거든요. 1000년 동안 수도였기에 어
                            신가요?                                       떻게 보면 거의 로마에 버금가는 그런 도시죠. 서울은 우리 역사와
                           ○ 그때는 조금 더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었고 정부나 다른 기관에 대      문화가 많이 녹아있고 아름다운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수도에요.
                            해 잘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요구를 받는 입       전 세계 수백 개의 도시에 가봤지만 서울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다고
                            장이 되었고, 제가 결정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까 아무래도 많이 다       생각해요. 아쉽게도 그동안 그런 유적들을 남겨오지 못했어요. 제
                            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갖고 있는 생각 비전, 원칙이 바뀌      가 시장되고 나서는 도시안전을 위한 토목공사처럼 불가피한 개발

서울                          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때는 정부에 해 달라 요구하던 것들
                            을 지금은 실천해야 되니까 방식과 위치가 바뀌었지만, 그래서 더
                                                                       도 해야 되지만 그래도 보존과 문화재 활용 소프트웨어, 이런 쪽으
                                                                       로 가야된다고 중심을 두고 있죠.


시장
                            열심히 해야죠. 전에는 할 힘이 없어서 해 달라 했는데 지금은 힘이
                            있잖아요. 이런 기관, NGO 등과 협력하면서 가고 싶습니다.        ● 마을공동체 생태계 만들기에도 힘쓰고 계신데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도 동강 제장마을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보존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 시민운동가 출신의 시장으로 사회에서 거는 기대가 크실 거라고 생각합     서울의 마을공동체 생태계만들기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신지 듣
일시 : 2012. 9. 22
                            니다. 특히나 자연과 문화유산 보전에 대한 입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    고 싶습니다.
장소 : 시청 별관
                            는데요, 근래에 서촌 개발, 한옥보존지구의 관광자원화 등에 대해 이슈    ○ 그런데 저는 마을공동체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은‘서울 같은 대도
진행 : 양병이 (서울대학교 교수,
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               가 많습니다. 요즘 같이 첨예하게 개발과 보존에 대한 입장이 대립하고     시에서 왠 뜬금없는 마을이야.’
                                                                                       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대도시도 작

사진 : 남준기 편집위원 (내일신문 기자)     있는 시점에 박시장님의 입장이 궁금합니다.                    은 공동체의 결합체거든요. 도시라는게 아무래도 이기주의랄지, 비
참관 : 내셔널트러스트 온새미로 청소년기자단   ○ 전 기본적으로 사실 개발과 보존이라는 것이 반드시 모순되는 게 아      즈니스가 지배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외국에 보면 커뮤니티 중
박수빈(용인외고), 이현무(무림여고)        니라고 봅니다. 때론 개발도 필요하고 보존도 해야 되는 것도 당연       심, 축제, 마을 경제라든지 마을 통합 등이 살아있거든요. 영국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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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히 보존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유용성을 지닌 공간으로 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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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좋은 예나 구상하시는 바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 그 말씀에 동의하는데 예컨대 최순우 옛집이 빈집이면 금방 상하죠.
                                                                                         공공기관이 하면 훨씬 좋다고 봐요. 내셔널트러스트도 공공기관이
                                                                                         죠. 영국내셔널트러스트도 많이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보고요. 내셔
                                                                                         널트러스트가 많이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으면 가능하다 봅니다. 꼭
                                                                                         공간만 있다고 보지 않고요. 예컨대, 장인들이라든지 공예라든지 기
                                                                                         술이라든지 하다못해 스토리도 다 소중하잖아요. 앞으로 서울이 부
                                                                                         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관광이라 보는데, 다른 도시
                                                                                         가 가지고 있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점이 크다고 보고요. 그 역
                                                                                         사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스토리텔링 사업단도 별
                                                                                         도로 만들고 있고 서울성곽, 한양도성 연구소, 박물관도 만듭니다.
                                                                                         이런 역사, 문화재 쪽에 투자하는 게 예산문제를 떠나 관심이 더 커
                                                                                         졌다고 봐야죠. 서울이 많이 바뀔 겁니다.


                                                                                        ● 현재 박원순 시장님만의 미래문화유산이 있다면?
                                                                                        ○ 이 시장실의 모든 것도 다 미래문화유산이라고 보거든요. 제가 웬만
     은 경우 노동당 시절 지역공동체장관이 있더라고요. 그 정도로 그 공     면서 좋은 구성원이 되어야 하는데, 국・영・수만 시키니 사람 관계      하면 안 버립니다. 5만권 되는 자료를 수원이 인문학거리를 만든다        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동체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발전해서 OECD      맺기 어렵고 갈등과 편견이 높아지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      고 해서 기증했어요. 서울시장 될 줄 알았으면 안 주는 건데요(웃음).
     회원국가가 됐지만 반면 부정적 지표도 많아요. 자살률 1위, 노동생     아가는데 결정적 장애물이라 생각해요. 교육도 완전히 바뀌어야 한       시장되기 전에 약속을 해놔서 지킬 수 밖에 없었죠. 시장실의 이 책상     ● 현재 서울시의 미래유산 찾기사업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가지고 있
     산성은 낮고, 노동시간은 길고, 안전 불안증 등 이런 게 왜 생겨났나    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에는 투표권이 없는 중고등학생들이 저를 가      도 이명박, 오세훈 前시장님도 쓰신 것 같아요. 구청사 시장실은 보존      는 미션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후손을 위해 지금 현재는 관심을 끌지
     보면 소득만으로는 해결 안 되는게 있다고 보거든요. 이걸 공동체로      장 많이 지지하는 거 같아요. (웃음)                     할 예정이라 이 책상도 뺏길 것 같아요. 저는 새 책상을 쓰게 되겠죠.     못하지만 미래에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는 보물을 찾아내 보존하고 후
     풀어보려는 거죠. 지금 여러 사회적 후유증이 생겨나고 국민들은 피                                                                                            손에게 물려주는 것이지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대한 박원순 시장님
     로하고 스트레스로 자살률이 높고…. 이제 한번 멈추어서 성찰하고      ● 시장이 되시기 전부터‘옛 서울역사의 복원과 활용’ 문화유산을 보전
                                                                           등            ●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성인이 되기 까지 사는 사람이 서울에 몇 되지 않    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새로운 비전으로 가야하는 결정적 단계에 있다고 봐요. 새로운 문화      하고자 하는 관심이 많으셨던 걸로 압니다. 현재“서울 속 미래유산      을 것 같습니다. 시민 각자가 살았던 자신의 소중한 삶의 터전을 미래세    ○ 내셔널트러스트가 공공기관이다. 다만 법적으로는 공공기관이 아니
     유산 보존이라든지, 창조적 사업이라든지, 국민들의 삶의 질과 쉼의      찾기”시민공모전을 통해 대상지를 모으고 전문가 검토를 통해 100선을    대에 까지 그대로 전해줄 수 있도록 시장님께서 시정을 통해 많이 힘써      기 때문에 갖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고 봐요. 단점은 예산, 여러
     새로운 비전을 고민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제가 잘나서 주장하는 게      지정・보존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취지로 진행하시는 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행정력이라든지 이런 게 부족하시잖아요. 장점은 시민들이 함께 참
     아니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업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 제 취임사 중에 기억하는 구절이‘우리들의 삶에 기억들이 남아있는        여하고 있기 때문에 자율적이고 훨씬 활력 있는 것이죠. 반대로 서울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제 트위터에“시험이 얼마 안 남았는데 불안해      ○ 저도 이 사업에 대해 내셔널트러스트와 함께 하겠다고 했어요. 서울     그런 거리’
                                                                                              라는 구절이 있었어요. 요즘 자고 일어나면 골목이 사라         시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합치면 부족한 것을 보완하면 파트너로써 더
     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라는 얘길 굉장히 많이 해요. 그런 얘기를     지방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보거든요. 서로 파트너로      지고 있고 그러다보면 아마 아버님, 할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제사 지        많은 일을 잘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협력, 거버넌스를 강조하는 것이
     들으면 너무 미안하고 저도 힘들어요. 기성세대가 여러분들을 이렇       서 함께 할 수 있다고 보는데,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보존 가치가     낼 때 찾아오시기 힘들 것 같아요. 옥인동 수성동 계곡은 정말 아름       그것이죠. 내셔널트러스트가 잘해서 보존하면 그것이 결국 서울과
     게 힘들게 만들었잖아요. (온새미로 기자단에게) 어때요, 이런 활동     높은 유산이 많다고 보거든요. 많은 유산도 결국 100년 뒤면 문화재    다운 곳인데 복원이 됐어요. 그곳에 옥인동 아파트 짓는다는 것을 주       대한민국의 것이지 누구 것이겠습니까? 서로 협력해서 역사문화유
     하니까 신나고 재미있죠?                             급이 되는 거잖아요. 문화재로 등록하지 않아도 다음세대에 많이 물      민들과 계속 협의 중에 있는데, 좀 낮게 지어서 산이 보이게 하고 유      산을 잘 간직하고 활용됨으로써 서울시민들이 잘 향유할 수 있도록
     온새미로기자단 | 네, 아무래도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재미있어요.      려주는 것이 좋다고 보거든요. 시민들의 제안을 받기도 하구요. 그      지하자, 서울시가 돈을 더 내겠다고 하고 있고 주민분들은 높이 짓자       노력해나가겠습니다.
     박원순 | 국・영・수 외우는 것보다 낫지 않아요? 이 경험으로 학생     런 시행은 민간기구와 같이 힘을 합쳐서 행정적 권한과 예산과 하다
     들은 훨씬 더 많이 배우게 될꺼에요. 나중에 무얼 할까 도움이 많이     못해 매체를 통해 열심히 도와드려서 함께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
     될 거에요. 청소년들이 외국에서처럼 철학공부도 하고, 경험도 많이      니다. 미래유산 사업은 지금도 내셔널트러스트에 상의 드리고 있는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사람>은 명사와의 대담현장에 회원들을 초청하여 오픈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어,
                                                                                                               이번 인터뷰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온새미로 청소년기자단과 함께 했습니다.
     쌓아서 그런 과정에서 세상을 잘 이해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으      걸로 알고 있어요. 좋은 제안 많이 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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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NT 이야기 |




시민공유의 공간,
애팅험 공원
조명래 | 단국대학교 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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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팅험 공원(Attingham Park)은 2009~2010년 사이 영국내셔널트러스트(NT) 사    애팅험 공원은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접경 지역인 슈         스 다윈이 태어나 수학한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다가 1953년 영국내셔널트러스트의 소유로 넘어갔다.
이트 중 방문객이 다섯 번째로 많은 곳이다. 257,340명이 찾았을 정도로‘인기           루즈버리(Shrewsbury)란 곳에 위치해 있다. 인구 6만    현재 애팅험 공원으로 불러지는 부지는 애팅험 저택             애팅험 저택은 1782년부터 1785년까지 3년간 지어졌다. 건축주인 힐은 정치, 땅
짱’ 사이트다. 18세기 후반 4000 에이커(약460만평) 부지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인                                                      명의 소도시 슈루즈버리는 슈롭셔(Shropshire) 군      을 중심으로 조성된 장원(estate)에 해당한다. 1785년,     장사, 대부업, 광산업 등을 하면서 많은 돈을 모았고, 이를 가지고 저택을 지었다. 힐
‘애팅험 저택(Attingham Mansion)’ 중심으로 잘 꾸며진 숲, 사슴정원, 과수원,
                          을                             (county) 소재지다. 런던을 중심으로 해서 본다면, 서북   노엘 힐(Noel Hill)이란 사람이‘턴 홀(Tern Hall)’
                                                                                                                                 이   은‘그의 부인과 6명의 자녀’ 위해 대저택을 지었다고 했지만, 지금과 같은 대저택
                                                                                                                                                    를
강 등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국가가 조성하고 지정한 공원이 아니라 NT가 소유하          쪽의 제2도시 버밍험(Birmingham)을 약간 지나 서쪽    라 불리던 건물이 있던 자리를 허물고 지금의 애팅험            의 모습은 후손들이 덧붙이고 가꾼 결과다. 건물 자체는 조지 스튜어트(George
고 있는 사이트를 시민들에게 개방해‘공원 같이’활용하고 있는‘시민공유의 공               으로 방향을 틀어 웨일즈로 들어가기 전에 슈루즈버리         저택을 지었다. 힐 집안은 1700년대부터 이곳의 땅을          Steuart)란 건축가가 설계했다. 그러나 애팅험 저택을 화려하게 변신시킨 조경정원
간’ 셈이다. 오래된 대저택을 관람하고, 부속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각종 문화행
 인                                                      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5~6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웨일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 헨리8세가 단행한 수도원 해체           과 저택 내의 갤러리는 2대 소유주에 의해 꾸며졌다. 1대 소유주인 노엘 힐이 죽으면
사에 참여하고, 숲과 정원을 거닐며, 잔디밭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등이 이곳을 찾는          즈 군주들이 수도로 삼았던 곳이었지만, 8세기 말에 엥       에 의해 생겨난 지역 수도원(Haughmond Abbey) 땅      서 애팅험 장원의 소유권은 그의 세 아들인 토마스(Thomas), 윌리암(William), 리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NT의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이            글로섹슨족의 러시아 왕국에 흡수되면서 잉글랜드의 영         을 매입해 두었다가 애팅험 장원을 건설했던 것이다.            차드(Richard)에 의해 차례로 승계되었다. 2대 소유주인 토마스는 영국의 전통적인
‘공유 공간’ 자연 및 문화유산으로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을 돕고 있다. NT는 9개
      이                                                 토로 편입되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지만 잉글         이 장원을 건설하면서 주인인 노엘 힐은 제1대‘버크공           정원 디자인을 창시한 험프리 렙톤(Humphry Retpon)을 고용해 장원을 공원으로
권역의 지역본부(Regional Headquarter)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데, 애팅험 공원   랜드로 보면 변방이어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Lords Berk)’ 귀족 신분까지 얻었다. 그 후 애팅
                                                                                                         이란                          설계하도록 했다. 또한‘픽처레스크 컨트리하우스(picturesque countryhouse)’
                                                                                                                                                                                        의
은 지역본부의 하나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영국인에게 슈루즈버리는 진화론의 제창자인 찰         험 장원은 160여 년 간 버윅 집안에 의해 소유 관리되         설계자로 유명한 존 내시(John Nash)에 의뢰해 저택 내부를 다시 꾸미도록 해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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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팅험 저택 사진제공 Etrusia UK                                                                                                                                                          사진제공 (위)Mark Ellam (아래)quimby



의‘픽쳐 갤러리’시설 등이 생겨났다. 그러나 방탕한 생활을 한 결과, 1827년 집안          버윅 공이 되었다. 그러나 퇴역군인이었던 그는 저택에        부분을 셔롭셔(Shropshire) 군(郡)이 30년간 사회교육      면서, 그가 죽은 후엔 보다 안전하게 영구히 지켜질 길 바랬다. 그 바람은 곧 NT에 소
은 사실상 파산했다.                                              돌보는 것에 더해 별로 관심이 없었고, 거처도 저택 밖       원(Adult Education College)으로 사용하도록 임대를   유권을 넘기는 것이었다. NT에게 자산을 넘기는 것을 그는‘대중의 편익을 위한 것
  장원은 토마스의 동생 윌리암(William)이 인수해 관리하면서 회복되었다. 방탕한 형       에 있었다. 결국 귀족 타이틀은 윌리암의 조카인 리차        주었다. 집안의 지출을 줄이면서 수익을 더 얻기 위한            (for the benefit of the public)’
                                                                                                                                                                      이라고 스스로 불렀다.
과 달리, 윌리암은 직업 외교관(주 이탈리아 영국 대사) 출신으로 차분한 성품의 소유자         드 헨리(Richard Henry)에게로 넘어갔다. 불행하게    한 방편이었다.                                   9대 버윅 공 찰스는 1953년 1월 사망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그를 이를 대가 없
였다. 3대‘버윅 공(Lord Berwick, 3대 소유주)’ 된 윌리암은 이탈리아 가구나 프랑스
                                 이                       도 제7대 소유주가 된 그 또한 집이나 장원을 돌보는         1947년 8대 소유주인 토마스는 세상을 떠나면서 애           었다. 버웍 공이란 지위는 그의 사망과 함께 단절되었다. 공식적인 상속자가 없게 되
도자기와 은제품 등을 들어와 저택의 내부를 화려하게 꾸몄다. 이렇게 해서 애팅험 저택          데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집안을 돌보는 것보다 부인        팅험 전체를 NT에게 유증했다. NT 역사에서 가장 큰           자, 8대 소유주 토마스의 유증에 따라 애팅험 장원의 소유권은 NT에게로 정식으로
은 안팎으로 귀족의 저택으로 풍모를 완연히 갖추게 되었다. 1842년 윌리암이 죽으면          과 함께 사냥을 하거나 배를 타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규모의 유증이었다. 그러나 애팅험 장원의 소유권이 실            넘어갔다. NT 소유권으로 바뀌면서 애팅험 장원은 시민공유의 공간인 애팅험 공원
서, 셋째 리차드(Richard)가 68세 나이로‘4대 버웍 공’ 소유주)이 되었다. 그는 인
                                   (4대                   쏟았다.                                 제 넘어간 것은 1953년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NT가 애         으로 거듭났다. 2006년부터 NT는‘애팅험의 재발견(Attingham Re-discovered)’
근 베링톤(Berrington) 지역의 목사였다. 그는 집안을 별로 돌보지 않았고, 또한 술을      이렇게 해서 1897년 토마스(Thomas)가 8대 버윅 공   팅험 공원을 획득한 것은 1953년으로 되어 있다. 이는          이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애팅험 집과 땅의 생명을 되살리는 것(bringing
많이 마시는 사람으로 좋지 않는 평판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버윅 공 자리(4대 소유          (8대 소유주)이 되었다. 결혼 후 1920년 그는 애팅험     1947년 토마스의 유증이 6년 뒤인 1953년에 정식으로         the house and grounds back to life)’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애팅험 공원 내에
                                                                                                                                                                          이
주)를 그는 겨우 6년간 지켰다. 그 결과 애팅험에는 그의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저택으로 들어 왔고, 살면서 애팅험 장원을 돌보고 가        실현 되었 것, 즉 소유권이 정식으로 넘어간 것을 의미           는‘턴(Tern)’
                                                                                                                                                이란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이 하천은 공원의 동측 경계 밖에서
  1848년‘버윅 공’타이틀은 리차드의 아들인‘또 다른 리차드(another Richard)’    꾸는 일에 전념했다. 재정적 어려움을 덜기 위해 그는        한다. 토마스가 죽은 뒤 조카인 찰스(Charls Michael      ‘서번(Servern)’
                                                                                                                                                   이란 강과 합류하여 웨일즈의 바다로 흘러간다. 오래 전부터 영국
에게로 넘어갔다. 5대 소유주가 된 리차드는 집안을 되살려내기 위한 여러 혁신적             8000 에이커(약 980만평)에 이르는 장원의 땅 반을 팔    Wentworth)가 잠시 9대 버윅 공의 타이틀을 가진 적        인들은 이곳의 땅을 소중한‘생명의 터’ 이용하고 가꾸어 왔다. NT의 새 프로젝트
                                                                                                                                                           로
인 일들을 했다. 대물림된 집안 부채를 청산하고, 장원을 근대화하며, 모범적인 농            았다. 애팅험 공원의 현재 면적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        이 있었지만, 애팅험 장원의 소유권은 승계하지 않았             ‘애팅험의 재발견’ 자연 및 문화유산을 단순히 보전 관리하는 게 아니라 그 유산
                                                                                                                                                은
장을 건설하고, 저택 내 부엌시설을 새로 설치하는 등이 그가 집안을 되살리기 위             다. 그리고 그는 부인과 함께 저택의 많은 부분들을 수       다. 8대 소유주인 토마스는 애팅험이 선대로부터 여러            이 자리한 터의 생명을 온전히 되살려내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NT운동이 예사롭지
해 했던 일들이었다. 13년 뒤인 1861년, 리차드의 남동생 윌리암(William)이 6대      리하고 복원하는 일들을 벌렸다. 1946년 저택의 서쪽       차례 소유와 관리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음을 목격하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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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 |




                                                 들었을 때, 나도 무엇인가 기여하는 바가 있으면 좋겠    거의 시간 속에 도착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생의원은 매력이 있었다.      완벽한 옛 모습을 접하게 된다. 비록 의료장비들은 철거
                                                  자생의원은 해방후 서울대 의과대학의 첫 졸업생이      되어 있지만, 나무바닥의 복도와 징두리벽 그리고 회벽
                                                                                                                                                                 병동
                                                 었던 성수현 원장이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의병제    은 원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문과 창호의 존재와
                                                 대하고 고향에 돌아와 아버님이 운영하던 점포에서 진     함께 나를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게 하기에 충분하다.
                                                 료를 보면서 시작되었다. 전문의가 없던 시절에 군의관     복도를 들어서면 왼편에는 X-Ray실과 수술실이 위
                                                 의 경험을 바탕으로 거창에서 처음으로 수술을 하면서,    치해 있다. X-Ray실에서 장비가 철거되어 아쉽지만,
                                                 자생의원은 개업한지 얼마되지 않아 거창군은 물론 인     신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타일로 마감
                                                 근 지역의 대표적인 의원이 되었다. 덕분에 개업한지     된 바닥과 징두리벽이 우리에게 병원의 수술실은 이렇
                                                 오래지 않아 현재의 자생의원이 지어질 수 있었다.      게 생긴 곳이었음을 가르쳐준다. 수술실 건너편에는
                                                  자생의원은 의원 본관과 병동 그리고 성원장이 살았     중앙에 외래환자 대기실이 있고 대기실에 면해 진료실
                                                 던 주택으로 구성되었는데, 1950년대 지역 의원으로는   과 처치실 그리고 약제실이 위치해 있다. 환자를 중심
                                                 가장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 건축사적 가치도       으로한 편리한 공간구성임을 알 수 있다. 처치실과 약
                                                 높다. 대도시에 지어진 5~60년대 의원이 2~3층으로   제실 곳곳에는 성원장의 마지막 진료 모습을 가늠해 볼                          수술실                     복도

                                                 지어지면서 하나의 건물에서 1층에는 의원 2층에는 입    수 있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진료실을 나오면 주
                                                 원실 그리고 3층을 주택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     택에 면한 복도 벽에 설치된 작은 구멍을 발견하게 된
                                                 던 시절에, 지역에서는 독립 건물로 이들 세 기능이 수   다. 이 구멍은 주택에서 성원장이 쉬면서도 병원과 소     억일 것이다.
                                                 용되었는데, 자생의원은 그러한 지역 의원의 가장 전     통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창구다. 병원에 붙어 있는 사     의원을 찾는 이들이 방문했을 가능성이 가장 작은 곳이 원장의 사택이겠지만, 의


慈생의원,
                                                 형적인 모습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택에 거주하면서, 24시간 병원과 소통하고자 했던 의     사가 직접 환자의 집을 방문하는 왕진제도가 살아있을 때의 병원이라는 점을 감안하
                                                  자생의원의 가치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건물이 1954   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면, 원장의 주택 문턱도 지역민들에게 그다지 높지는 않았을 것 같다. 비교적 넓은
                                                 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6.25전쟁 직후에 지어진 자    복도 끝에 위치한 문을 열고 나가면 병동과 연결된다.    마당 한편에 당시로는 꽤 호사한 취미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온실의 존재가 이채롭다.

문화를 통해 거듭나는                                      생의원에는 해방과 전쟁을 거친 우리 건축계의 모습이
                                                 온전하게 녹아들어 있다. 건물은 성원장의 밑그림에
                                                                                  그런데 병동의 구성이 흥미롭다. 1층과 2층으로 구성된
                                                                                  병동은 부정형의 마당을 중정으로 입원실들이 위치해
                                                                                                                    반쯤 땅 속에 묻혀 있는 상부로 유리창이 있어 추운 겨울에도 지열과 햇빛을 이용해
                                                                                                                    서 꽃을 가꿀 수 있었을 것이다.


집단 기억의 장소를
                                                 따라 지역 목수가 지었는데, 외관은 물론 건축의 재료    있다. 마당의 크기는 작지만, 좁고 긴 사다리꼴 마당 주    주택은‘ㄱ’ 전통 한옥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전통적인 한옥의 안채와는 많이 다
                                                                                                                          형
                                                 와 구조에서 우리 건축이 어떠한 성장과정을 거쳤는지     변에는 툇마루가 설치된 입원실의 환자들이 서로 소통      르다. 우선 원장의 동선을 배려하여 주택의 복도가 의원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안채
                                                 를 잘 보여준다.                        하기에 더 할 나위없이 좋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병동에    의 마당에 면해 있는 복도 전체에는 창호가 설치되어 있다. 창호를 열면 여느 안채처럼


기대하며…                                             길에 면한 출입구 상부가 만사드지붕의 박공면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거창의 등록문화재인 최남식 가옥
                                                                                  서 주목을 끄는 것은 각각의 입원실에 난방용 연탄아궁
                                                                                  이가 위치했는데, 각각의 아궁이 옆에는 간이 부엌이 있
                                                                                                                    개방감이 확보되지만, 창호를 닫으면, 겨울철 찬바람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각 방
                                                                                                                    이 마루로 연결되어 각 실 간의 이동이 편리하다. 방 배치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보통
                                                 의 지붕을 연상시킨다. 의원 출입구에서 인상적인 것     어, 입원환자에게 보호자가 따뜻한 식사를 만들어주었      한옥에서는 안채의 꺽임 부분에 안방이 위치해 있지만, 이 주택에서는 목욕탕과 부엌

안창모 | 경기대학교 교수                                   은 출입문 상부 창호의 창살이‘慈’ 현대적으로 번안
                                                                   를              다는 점이다. 식욕을 돋구기에는 어림없는 오늘날의 병     이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통풍에서 가장 불리한 전통주택에서 안방의 문제를 해
                                                 한 디자인이라는 점이다. 얼핏 보기에 우리나라 창살     원 환자식을 잘 알고 있는 필자에게는 끼니때마다 밥짓     결함과 동시에 목욕탕과 주방을 안채의 중심에 위치시킴으로써 취사와 난방의 편리함
                                                 문양에 많이 사용되는 희(囍)와 복(福)으로 착각하기    는 구수한 냄새가 가득한 병동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하      과 기능성 그리고 위생이라는 여러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이와같은 안채의 모습
최근 몇 달 동안 거창을 향한 발걸음이 잦았다. 서울대 의학박물관 자문회의에서 거    쉽지만, 창호의 패턴은 자생의원(慈生醫院)의 자혜로     다. 자생의원이 가르쳐준 병동의 따뜻한 풍경이 아닐 수    은 전통주택이 근대기를 거치며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
창에 있는 자생의원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자생의원의 모습에 흠뻑 빠진 때문이었     울 자(慈)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해서 만들었다. 자신의    없다. 이곳이야말로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병문안을 온     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 주택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자생의원 주택이 갖는 주택
다. 한 눈에 보기에도 철지난 해방 전 의원처럼 보이는 작은 건물이었는데, 건물 안   병원 이름을 디자인해서 창호의 창살과 로고로 사용한     지역 주민들이 서로를 위하고 완쾌의 덕담을 나누는 집     사적 가치가 살림을 맡은 이(원장 사모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으로 한 걸음 옮기는 순간 자생의원이 갖는 아우라에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 지어졌    성원장의 감각에서 자생의원의 모습이 건축가의 손을      단 기억의 장소일 것이다. 병원의 가장 큰 덕목은 아픈     자생의원의 사회적, 의료사적, 건축사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을 때의 모습을 온전하게 가지고 있는 근대건축문화유산이라는 사실 외에도, 이 건     빌리지 않고 지어졌음에도 빼어난 근대건축의 모습을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겠지만, 아픈 몸을 추스르고 난 한    정도로 크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거창 분들이 이러한 자생의원의 가치를 인식했다는
물의 가치를 인식한 거창군에서 자생의원이 갖고 있는 역사적, 사회사적 가치에 주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이유를 짐작하게 해준다.        참 후에 이곳을 다시 돌아보는 마음 속에는 각기 다른 이   사실이다. 새롭게 탄생할 자생의원을 통해 거창이 누리게 될 자부심과 그들이 함께
목하고, 이 건물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문을 열고 병원 안으로 들어가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    유로 이 병동을 찾았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    하면서 만들어갈 기억은 세대간의 벽을 뛰어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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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1년 시민공모전 <내셔널트러스트상> 수상지 경주 읍천리 화산지형 2012년 제10회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상식 개최 2012 | Autumn | No.25 www.nationaltrust.or.kr 점점 그 속도를 더해가는 난개발과 외면 속에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자연과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는 이러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중 보존가치가 뛰어난 지역을 일반 시민들과 함께 발굴하고 보존방안을 모색하고자‘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이곳만은 꼭 지키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올해 10회째를 맞이한‘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 주부, 학생, 직장인, 시민단체 등의 참여로 전국에 걸쳐 은 총 27개 대상지가 접수되었고, 전문가 서류심사와 네티즌 평가를 반영하여 현장심사 대상지 15곳을 선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장심사를 통해 최종 수상지역을 선정하게 됩니다. 시민공모전에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2012년 시민공모전 시상식에서 훼손위기로 신음하고 있는 소중한 유산들을 확인하시고, 함께 보전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 일시│2012년 12월 4일 화요일 저녁 6시 30분 ● 장소│문학의집・서울(02-778-1026) ● 프로그램│접수 및 안내 / 축하공연 / 대표인사 / 축사 / 시민공모전 경과보고 / 수상지역 영상 상영 / 시상식 / 기념촬영 / 만찬 / 폐회 ● 주최 한국내셔널트러스트 ● 주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 후원 ※ 프로그램은 당일 사정에 의해 일부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참석 신청 및 문의: 전화 02-739-3131 contest@nationaltrust.or.kr ※ 자리배치와 식사 예약을 위해 미리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ISSN 1976-2577
  • 2. CONTENTS 04 집중과 조명 산업유산의 보존과 활용 윤인석 |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고 교수 미래 세대에 어떤 것들을 생활문화 유산으로 남겨주어야 하나? 전우용 | 서울시 문화재위원 기억의 연금술로서 미래유산, 민주화운동유산 서해성 | 한신대학교・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12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 박원순 서울시장 양병이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 16 영국NT 이야기 시민공유의 공간, 애팅험 공원 조명래 | 단국대 교수, 내셔널트러스트 이사 20 근대문화유산 慈생의원, 문화를 통해 거듭나는 집단 기억의 장소를 기대하며… 안창모 | 경기대학교 교수 22 내셔널트러스트 여행 제주 한림마을 서중천 답사기 임종수 | 강화 초지리 새마을지도자 26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자연이야기 민초의 지팡이에서 소금까지, 붉나무 고주환 | 작가 습지생태계의 최후포식자 삵 김연수 | 문화일보 기자, 생태사진가 30 품안에 600년 조선의 도읍에 서다! 한양성 서쪽의 발견 김경민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온새미로 기자단, 용인외고 33 회원인터뷰 고고학의 설렘, 문화유산 사랑으로 박준범 회원님 Cogitans!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 김홍렬 회원님 36 내셔널트러스트 추천도서 스마트폰보다 더 어려운 물없는 화장실 만들기 임정진 | 동화작가, 서울디지털대문창학과 객원교수 38 내셔널트러스트 소식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소식 39 내셔널트러스트 알림마당 공지사항 40 후원해주시는 분들 2012년 6월 ~ 8월 후원내역 43 팝업카드시리즈 우리집은 한옥이다 발행일 2012년 10월 1일 발행처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발행인 김홍남 양병이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11길 20 우리빌딩 4층 2012년 가을호 편집위원장 이은희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4가 72-4번지 우리빌딩 4층) 편집위원 강동진 남준기 서왕진 안창모 오충현 전화 02-739-3131 유상오 윤인석 임정진 전은정 조명래 한동욱 전송 02-739-9598 기획 허주희 1년 정기구독료 20,000원 편집인쇄 (주)디자인내일 (정기구독료는 후원금으로 사용됩니다.) ISSN 1976-2577 www.nationaltrust.or.kr * 본지에 게재된 글과 사진, 그림은 페이스북 www.facebook.com/trustkorea 무단 전재하거나 복제하여 사용할 수 없습니다. 트위터 @ntrustkorea 표지 ※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기증과 기부를 통해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을 확보하여 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입니다. 삵의 발자국. 생태학자들은 삵이 살아있는 습지는 생태계 균형을 갖춘 건강한 습지라 말하고 있으나, 최근 개체수가 급속히 줄고 있다. 사진 김연수(문화일보 기자) 목차사진 새만금 방조제 연결 전 동진강 하구의 도요새와 어부들 사진 남준기(내일신문 기자)
  • 3. | ✽집중과 조명 | ‘교훈’ 이라 함은‘교육’ ‘배움’ ‘현물’ 유구 과 인데 의 가 가지는 생생함이 있을 때 효과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모조리 없애 놓고 그 기록영상들을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이미지만 보여 주어서는 깊은 인식을 하기 에는 부족함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압축성장의 대명사처럼 자랑스럽게 입에 담았던 그 숨가쁨 속에 우리의 가까운 과거는 아침안개처럼 사라 져버리고 말았다. 개항기 이전에 한반도로 흘러들어 온 각종 기술과 지 식들이 집약되어 나름의 생산방식이 구축되어 있었으 나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번져 나가던 산업화 물결이 유입되어 이 땅의 기반시설들을 그 이전 과 다르게 만들었다.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막강한 힘 을 분출하는 동력공급과 발전소, 전기를 이용한 시설 과 기기 등장, 철도와 신작로 건설, 그 위를 달리는 기 차와 자동차. 생산의 속도와 수량에서 그 이전 시대와 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번창함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 전통적인 방식이 다 버려졌는가 하면 1 2 그렇지도 않아서 이 땅의 환경에 맞는 방법들은 유지되 1 1933년 경상남도 창녕과 함안 사이 낙동강에 설치된 트러스 교. 6・25 때 폭격 당한 것을 복구하여 사용하였다. 2000년대 고 있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역사’ 함은 적어도 라 에 들어서 안전 상의 이유로 철거 계획을 세우던 중, 지역주민들의 보존운동에 힘 입어 등록문화재 제145호로 등록되었다. 한 세기가 넘어야 그 범주에 끼워주는 것으로 인식되 사진 부산시민운동본부 산업유산의 보존과 활용 2 한강 선유도의 과거 정수장 건축 구조물을 재활용한 국내 최초의 환경재생 생태공원 어, 개항전의 유물과 유품, 유적들은 귀하게 여기며 보 존의 대상으로 삼아‘문화재’ 지정하여 지켜 왔다. 로 윤인석 |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하지만 나이가 백 살에 미치지 못하는 것들은 유물대접 을 받지 못하며 후속 세대의 신기술과 신제품에 밀려 사라져 버려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못하고‘영결’ 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는 모든 것이 참으로 빠르게 변해 가고 있다. 쓰던 물건의 기 공업입국, 산업화의 현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 고 만 것이었다. 해 주는 것이며‘집단기억’ 나이를 먹으며 이 ‘역사’ 편입되는 것이다. 기억이 역사 에 능이 급격히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불과 이삼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들이 엄청 다. 광복 후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섰던 재건과 다행히 50년 정도의 나이를 먹은 유물을 보존대상으 속에 편입될 때까지 우리는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나의 시대가 만들어 낸 산물을 난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개발되어 우리 일상생활을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 조국근대화의 현장이 이럴진대 개항기부터 광복기에 로 삼는 제도가 최근 10년 사이에 생겨서 조금씩 그 가 없애버리지 말고 우리의 아이들 세대에게 넘겨 줄 의무가 있다. 고 있다. 우선 우리 몸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전화기로,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이르는 동안 자발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받아 들였던 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문화 ‘집단기억’ ‘산업시설’ 어떤 것이 있을까? 건축학에서는 건물의 용도별로 속의 은 모양이 전화기 같아서 그리 불리는 것이지 단순히 통화만을 위한 기기가 아니라 기억 ‘부국강병’ ,‘동도서기’구호 하의 근대화, 산업화 초 시설, 주택, 종교, 교육시설 등, ‘격조’ 있는 유적들을 향 유형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중에 산업시설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공장을 비롯한 생 장치와 지식정보의 전달 창구역할을 하며 인간 두뇌기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기 현장들은 전쟁 통에 도시재개발로, 민족감정으로, 한 관심은 높아도‘공장’ ‘창고’ , ‘수송’ , ‘관개’ , 시설 산시설, 생산품을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보관시설 및 창고, 또 이것들을 옮기는 수송, 물품의 기능이 급속하게 바뀌면서 그것을 생산하는 시설도 당연히 변화가 생겼는 용도전환으로 없어졌음은 물론 뜯어 낸 기계의 부품과 등, 생산과 노동에 관련된 시설들은 관심 밖에 있으면 운수시설 등이다. 물론 여기에 설치된 설비와 기기들도 포함을 한다. 또, 산업에는 1 데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지역의 경제발전의 척도가‘공장 굴뚝에 연기가 피어 유적지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서 그 남루함으로 인해‘제거”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 의 차, 2차, 3차 산업이 있다. 농업에는 전 근대기부터 이어져 오던 기법과 시설이 있 오르는가’였지만 이제는 굴뚝산업이라 함은 후진성의 상징처럼 인식되어 가고 있 우리는‘역사 ‘가 매우 중요하다고 곧잘 애기한다. 하 다. 익숙하게 다루었던 탈곡기, 풍로, 소달구지, 천일염 다. 이 시기의 유구들은 이미 문화재로서 지정되어 행정력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다. 굴뚝산업으로 일컬어지던 생산시설과 장비들은 노동집약적 산업과 연관되어 임 지만 그‘역사’ 라는 것이 무엇인가? 옛 사람들이 살던 전, 계단식 논이 없어지고 소규모 저수지도 대규모 다 근대기의 유구에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앗간, 정미소, 곡물창고와 관개시설, 저수 금의 급등, 수입에 의존하는 원자재비의 급등을 이유로 동남아시아의 후발 공업국가 때의‘기록’ 에서부터 유적지 또는 그것들과 관련 있는 목적 댐 속에 잠겨 버리게 되었다. 우리에겐 같은 시대 지, 육종배양 연구시설 등이 있다. 공업생산 시설에는 공장과 그 동력을 얻기 위한 로 이전되고 그 터가 주거시설이나 부도심으로 재개발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급격히 ‘사건’ 얘기한다. 그리고 을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를 살았던 사람들이 가지는‘집단기억’ 있다. 이 집 이 화력, 전기 에너지원 시설 등이 있는데, 공장에는 생산품에 따라 여러 가지 공장들이 생산터전의 환경이 변해가는 사이에 20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그렇게도 부르짖었던 역사공부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이때 단기억을 잘 지키는 방법이 당대의 유물과 유적을 보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경공업 설비만을 설치하였기 때문에 주로 섬유산업의 유구들 4 | 2012년 가을호 | | | 2012년 가을호 | | 5
  • 4. | ✽집중과 조명 | 이 더러 남아 있다. 광복 후 고도경제성장기에 세워진 철광업, 중화학 시설은 물론이 면 어렵게 보존으로 가닥을 잡은 산업유구들을 어떻게 고 탄광, 저탄시설 등이 생산력을 낮추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남아 있다. 서비스 산 활용할 수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남루하게 보이고 업에는 운송, 수송시설이 해당하여, 도로, 철도, 교량, 역, 터미널, 시장 같은 것들이 품격 없어 보이기는 하여도 지난 한 세기동안 우리들이 해당하고 이에 딸린 보관시설을 같이 생각할 수 있다. 개항기 이후의 신작로가 만들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우리들의‘집단기 어짐으로써 옛길의 사용빈도가 떨어졌듯이 고속도로 건설 후에는 국도가 외면 받고 억’ 이기 때문에 잘 다듬어서 활용하면, 원래의 그 자리 있고, 20세기 초 철로가 부설되면서 옛길들이 뒤안길로 밀려 났고, 터널과 철교들이 에서 공동의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다. 옛날의 기능을 등장하였다. 최근에는 KTX 등장으로 재래선 철로의 활용도가 떨어지며 거기에 딸 살려서 재현할 수도 있고 용도를 바꾸어서 새로운 기능 린 역건물과 부속시설들 역시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 나고 있다. 선박수송이 이 의 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 공장이 미술관으로 되는 것 루어지는 곳에 만들어진 부두와 관련시설들이 시설의 진보와 도시재개발에 의해 용 은 이제 흔한 예가 되었고 아파트나 스튜디오로 사용할 도폐기 되면서 제거되어 가고 있다. 여기에 남북분단의 특수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 수 있다. 그 밖의 여러 가지 용도와 시설로 융통성 있게 나라에서는 군사관련 시설도 도시기능의 변화에 따라 이전되고 그 터가 재개발 지역 활용할 수 있으니 이제부터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에 편입되어 가고 있다. 발휘되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모두 인식하고 자, 이제는 보존해야 할 산업시설에 무엇이 있는지 꼽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야 할 때이다. 북한산 당집 굿 미래 세대에 1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스왈로 초콜릿 공장을 고급 맨션으로 개조한 주택단지 2 옛 시드니 부두의 선창과 창고를 고급 아파트로 개조하기도 하고 요트 클럽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3 충청북도 진천군의 덕산 양조장 어떤 것들을 생활문화 유산으로 1 남겨주어야 하나? 전우용 | 서울시 문화재위원 “인류 문화 활동의 소산으로써 예술・과학・종교・도덕・법률・경제・민속・ 2 생활양식 등에서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브리태니커) 3 “대상이 구현하는 정신적 가치와 시각적・음향적으로 표현하는 심미적 가치가 독특하고 주체성을 보존하는 중요한 매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세계적 유산으로써 역사적・예술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큰 것” (대한민국 문화재보호법) 이상은 문화재, 또는 문화유산에 대한 여러 정의이다. 일 사라진 과거의 문화요소뿐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 형성되어 현재까지 영향을 미 반적으로 문화는 특정한 자연적 인위적 환경 안에서 인간 치고 있는 생활태도와 습관, 기계, 기구, 도구, 공예품, 생활용품, 언어 등도 넓은 의미에 이 획득하고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총체적인 삶의 태도 일 서는 문화유산의 범주에 포함된다. 반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사용가치’ 이미 가 그런데 현대는 대량생산과 복제의 시대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물품들에는 희 6 | 2012년 가을호 | | | 2012년 가을호 | | 7
  • 5. 소성과 개별적 고유가치가 없다. 더구나 이들 제품의 사용가치는 물리적으로 소진되 거의 것’ 중에서 선별하면 되지만, 미래 생활문화유 들 상암월드컵경기장에 걸렸던 태극기와 공장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태극기는 같은 물 기 전에 기능적으로 소진된다. 수공 도자기의 경우 100년은 지나야‘유물’ 취급되 로 산을 고민하는 자체가 이미 그런‘우연성’ 배제하겠 을 건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미래의 생활 문화유산은 현재의‘기념품’ 들이라고 할 수 지만, 휴대전화기는 5년 전 모델도 이미‘골동품’ ‘유물’ 이자 이다. 공장 생산 물품들 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있다. 에는‘인간의 향취’ 배지 못하며, 문화재 또는 문화유산 개념이 요구하는 독창성, 가 1994년 서울시는 당대의 생활 문화를 압축적으로 표 인간이 경험한 바는 일단 기억으로 저장된 뒤 이야기로 구축되고 전달, 전파된다. 희소성, 예술성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럼에도 현대의 공장제 생활용품들이 인간의 현하는 600점의 물건과 영상, 기록물을 선정하여 타임 현대인들은 급변하는 물질생활 속에서도 물건 하나하나에 특별한 이야기 거리들을 담 삶과 태도, 지식과 기능에 미치는 영향은 압도적이다. 시장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캡슐에 묻은 바 있다. 여기에는 의복, 식기, 의약품, TV 아 물건과 자기와의 관계를 설정한다. 이렇게 관계, 또는 관계에 관한 기억이 남아 있 새 기술을 채용한 새 제품이 나와 대중의 선택을 기다린다. 현대인은 새 기술과 기계 수상기, PC, 휴대전화기 등의 현물과 신문, 잡지, CD, 는 물건들이 비로소 개인 또는 집단의 기념물로 남는다. 현대의 생활 물품들을 기념물 에‘적응’ 하면서 진화를 체험하고 자기 시대의 특수성을 확인한다. 사진 등의 기록물들이 포함되었다. 이들은 당시에는 단 로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억이 담겨 있는 물품들을 지속적으로 발굴, 수집, 기록 수많은 사조와 양식(樣式)이 짧은 기간 내에 생성 소멸을 거듭하는 현대에는 건축 순히‘소비되는’ 물건들이었으나, 400년 후에는‘문화 하고 관찰하며 보존해야 한다. 기억이 씻겨 나간‘제품’ 들은 미래에도‘고물’ 지위 의 1 물, 기계, 도구, 의복, 음식, 예술 등 모든 문화요소들의 수명이 짧다. 또 자본주의 세 유산’ 가치를 인정받으리라 기대되는 의 ‘미래의 생활문 를 면할 수 없다. 미래 생활문화 유산을 만드는 일은, 몰개성한’ ‘ 물건들에 담긴‘개성 2 계 시장은 지역적, 민족적 특성을 간직한 독특한 문화요소들을 소멸시키고 세계적 표 화유산’ 들이었다. 600점에 달하는‘물품’ 다 소개할 을 있는 사연들’ 보존하는 일이다. 을 준을 창안하여 전 세계에 확산시킨다. 문화의 세계화와 보편화, 빠른 변용 등은 지역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주제별 분류표만 제시한다. 과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의 형성 자체를 곤란하게 한다. 서울 600년 타임캡슐에 담은 물품들 중에는 일부‘한 현대 문화의 이런 특성이 현대인의 정서적 불안을 낳는다. 현대인은 미증유의 물질 국적’ 것도 있으나, 대다수는 인 ‘범세계적 보편성’ 을 적 풍요 속에 살면서도 정작 마음을 담을 소재(素材)는 갖지 못한 부유하는 존재라 할 지닌 것들이다. 한국산 휴대 전화기는 한국뿐 아니라 전 타임캡슐 수장품 수 있다. 인간에게 지속감과 안정감을 제공해주는‘전통’ ‘역사’ 연계할 수 있 또는 와 세계에서 소비되며, 한국산 PC의 주요 부품은 미국 기 는 체계와 기제(機制)를 마련하는 것은 이런 실존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필요하 술로 생산된 것들이다. 또 이 타임캡슐에 담긴 것 중에 다. 당대의 특징적 문화요소를 발굴, 기록, 정리, 보존, 전승하는 일련의 행위는 바로 ‘유일한 것’ 없다. 수만 개, 또는 수백 만 개의 동종 은 이를 위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同種) 제품 중에서 손닿는 대로 하나씩만 골라 담았을 1 인쇄기 2 붕어빵 틀 문화재가 현재에 속한 과거라면, 미래 생활 문화유산은 미래에 속한 현재다. 그런 뿐이다. 현재가 미래에 넘겨 줄‘생활 문화유산’ 대개 은 데 하루에도 수백 만 개씩 새로 쏟아져 나오는 현재의‘제품들’ 중에서 대체 어떤 것들 이런 것들이다. 이들 유산에는 문화재 또는 문화유산이 을 보존하고 전승할 것인가? 모든 제품의 샘플이나 최초 생산품을 다 보관하는 것은 요구하는 고유성과 개별성이 없다. 오직 대표성만 있을 현실적이지 않을뿐더러 필요하지도 않다. 현재의 문화재들은‘우연히’ 살아남은‘과 뿐인데, 그 대표성 역시 다분히 임의적이다. 서울 600 년 타임캡슐 수장품의 경우 전문가의 심의와 시민 의견 수렴이라는 과정을 거치기는 했으나, 지금에 와서 돌이 켜 보면 아주 적절한 선정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서울 600년 타임캡슐 수장 물품 2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또 만약 1993년이나 1995년에 타임캡슐을 묻었다면 컬렉션은 많이 달랐을 분류 소분류 세목 것이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와 세상을 채우는 물질이 변 양식(73점) 의식주, 통과의례, 건강기호식품 하는 속도는 대략 같다. 그렇다고 매년 하나씩 타임캡슐 제도(215점) 언론, 의료, 경제, 치안, 행정, 복지, 교육, 사회관습 을 묻을 수는 없는 일이고, 우리의 생활공간을 계속해서 시민의 삶 (501점) 환경(77점) 자연, 도시, 교통, 문화재 ‘고물들’ 채워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로 산물(78점) 전자, 전기, 통신, 토목건축, 도시정비, 개발, 각종 소재 공장 생산 제품이 대부분인 현대의 생활 물품들과 문 형태, 주변, 기타(58점) 사회특이형태, 국방 및 남북관계, 외교, 기타 화요소을‘미래의 생활 문화유산’ 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치(40점) 종교의식, 기호, 취미, 여가활동, 일상적인 삶 는 이들 제품에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는‘고유성’ 과 ‘개별성’ 인위적으로 부가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을 표현(35점) 문학, 음악, 미술, 연극 영화, 체육 시민의 사상 (99점) ‘개별 구체적인 기억들’ 곧 이야기이다. 같은 날, 같은 , 미래지향(9점) 시민의식, 미래계획, 미래에 대한 상상력 공장에서 생산된 태극기라도 언제 어디에 걸렸던 것인 기타(15점) 600년 사업 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물건이다. 2002년 8 | 2012년 가을호 | | | 2012년 가을호 | | 9
  • 6. | ✽집중과 조명 | 기억의 연금술로서 미래유산, 민족해방운동과 민주화운동은 이렇듯 한국사회에서 부단히 기록 자체와 투쟁중이 라는 점에서, 박정희기념관 등 억압자와 싸우고 있다는 점에서나 불행히도 지금도 항쟁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인류 보편적 원리가 이 땅에 아직 상식으로 자리 잡 민주화운동유산 지 않고 있다는 명백한 방증이다. 때로 이는 역사 녹화사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임 서울시장은 이른바 남산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울 남산일대 역 사유산을 복원하고 나머지 공간을 녹화하여 시민공간으로 돌려주겠다고 했다. 성곽 서해성 | 소설가, 한신대학교・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등은 보수하고 중앙정보부 건물 등을 해체한 자리를 녹지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었 건물 외부 절개를 통해 시대의 비명과 동시에 부활을, 창틀을 손짓으로, 5국 건물 앞 주 다. 가해자의 역사기록을 휴식이라는 이미지로 바꿔치기하려 한 이 발상은 충분히 자창을 메모리얼 공간화하여 표현하였다. 역사 지우기 녹화사업으로 의심 내지는 지탄 받을 만한 일이었다. 역사를 여는 사람 ‘ 들’ 중심으로 한 시민활동으로 이를 저지한 일은 민주화운동 역사에 비춰 미래유 을 사회적 유산이란 과거로서 현재이며, 역사의 실존하는 거울이자 문화적으로는 약이 하거나 망각토록 하는 기재로 작동해온 측면이 있다. 점유했음을 선언하는 일이었다. 산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를 분명히 한 일이기도 했다. 다. 오직 이때만 미래유산일 수 있다. 모든 역사가 언제나 현재사이듯 유산 또한 그 근대사회는 중세를 폭력으로 파괴시키면서 혁명과 이 박제화 된 보호의 쇼 케이스 관점은 식민지 지배 1961년 쿠데타세력은 거사와 거의 동시(6.10)에 서울시 예장동 2-1번지에 중앙정 약효가 늘 현재적 재생과 치유능력을 지녀야 하는 법이다. 함께 등장했다. 이들이 중세를 지배하고 있다는 명백한 이념으로 한국을 여과 없이 침투해왔다. 그에 따라 한 보부를 설치했다. 정확하게 51년 전 같은 자리에서 대한제국은 일본에 국권이 넘어갔 한국인에게 문화유산이란 오랫동안 늘 과거, 그 자체였다. 이는 수학여행을 경 선언이 궁궐 공개와 몇몇 기물을 쇼 케이스에 보관・전 국인은 문화(유산)을 자기 내부에서 재식민화해서 관 다. 그 여름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 사방에 만개했다. 민중들은 이를 일러 망(국)초라 주・부여 따위로만 한정하는 발상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역사문화유산은 생명력 시하는 박물관이었다. 권력으로서 완전히 멸실되었다 조하는 비극적 모순에 입각한 완상미학을 형성할 수밖 했다. ‘망쪼 든다’ 말은 여기서 연유하다. 경술국치를 당한 한국통감관저 자리가 는 있는 현재가 아니라 가닿을 수 없는 먼 옛날에만 존재해왔던 것이다. 그 유산 앞에서 는 것을 확인된 위험하지 않은 중세는 이윽고‘보호’ 에 없었다. 쇼비니즘(Chauvinism, 광신적 애국주 이곳이다. 땅의 운명이 이토록 비감어린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보다 더 사진 몇 장을 찍고 교복을 입은 채 술을 마시는 추억은 지난 1백 년 동안 한국인의 핵 받기 시작했다. 이는 동물원의 등장시기와 대체로 일치 의)의 문화 우월주의 또한 그 변종일 따름이다. 민족해방과 민주화운동을 응축하고 있는 고도의 역사적 공간은 없는 줄 안다. 심 성장기억 중 하나였다. 식민지시대 학생들에게 잠시 주어진 거의 유일한 여행은 억 한다. 창살 안에 웅크린 열대동물 사자는 봉건과 마찬 20세기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일은 일제 이곳 전체를 새로운 역사문화공간으로 재창조하자고 제안한 것은 벌써 15년 전 일 압교육에서 일탈과 동행했던 것이다. 이는 역사와 유산을 현실로 연결하지 못하게끔 가지로 서구제국주의가 자연지배에서 폭력적 지위를 식민지배에 저항한 일과 민주화운동이다. 이는 한국사 이다. 국치현장을 기록・복원하고 더불어 중정 역사 또한 부끄러운 유산으로 남겨 이자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고 있다. 인간해방에 기초 후대에 거울로 삼자는 뜻이었다. 남산 북쪽 기슭에서 군림하면서 박정희시대와 전두 남산의‘서울문학의집・서울’이곳은 과거 중앙정보부 공관이었으며, 서울유스호스텔은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의 남산 본부였다. . 한 국가를 세우겠다는 자유와 인권을 향한 투쟁은 20 환・노태우 시대를 통치해오던 반인권 정보기관‘남산’ 떠날 때 폭파・해체하고 이 세기 들어 전지구적 일반원리가 되었다. 민족해방투쟁 도 남아 있는 건물은 아직 여러 채다. 그 가운데 현재 서울시청별관으로 사용하고 있 에 이은 민주화운동은 한국 뿐 아니라 제3세계에서 자 는 중앙정보부 5국은 납북어부 등을 간첩으로 조작해낸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곳이 연스러운 연계로 진행된 역사전개과정이었다. 한국 근 다. 서울시는 얼마 전 이를 민주화운동 관련한 공간으로 내놓겠다고 했다. 대문화유산의 뼈대는 그 가치를 세우고자 투쟁한 일이 서울시에 제안한 바 있는, 이를 보전하는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었어야 마땅했다. 우선 공간의 원형보전과 활용이다. 두 번째는 운영 주체다. 이 공간의 주인은 마땅히 역사나 문화유산에서 민족해방과 민주화 가치를 여 민주・평화・인권이어야 한다. 한국인 후대를 포함한 인간 누구나, 미래에도 변치 전히 온전하게 형성시켜내지 못하고 있는 게 한국사회 않게 세 가치를 집약한 주체의 이름을 민평인이라 하자는 의견도 덧붙였다. 세 번째 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단적인 예가 화폐인물선정이 는 단순히 의전적 기념공간이 아니라 감각을 종합하는 창조적 형상화다. 건물 재구 다. 제3세계의 경우 공화정 국가의 지폐 인물이 두 가 성을 아우르는 시각작업을 기본으로, 소리와 촉각까지를 두루 활용해야 한다. 무엇 치를 체현(體現)하고 있는 역사적 위인이 선정되는 게 보다 미래의 민주성을 담지해내야 한다. (그림으로 기본구상을 공유코자 한다.) 당연한 일이다. 유산의 3대 요소를 인물, 가치, 기물이 어떤 유산의 전승이든지 집단기억의 재구성을 통해 이뤄진다. 기록 전승 작업은 라 할 때 가장 우선하는 것이 인격적 유산, 곧 사람임은 철저히 사실이되 사실을 넘을 때 비로소 창조적 힘을 갖는다. 새로운 형상화 없이 이 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 정부는 상당한 논의를 통해 1 는 이르기 어려운 경로다. 국치의 기억과 고문 등 반인륜적 국가폭력의 기억은 곧이 십만 원 권 화폐인물로 김구를 선정했다. 이는 이명박 곧대로 드러냈을 때 즉물적 재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 기억은 연금술의 과정을 정부 들어 까닭 없이 유보되더니 이내 5만 원 권 지폐 반드시 거쳐야 한다. 유산이 문화로서 치유력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여기서 탄생한 신사임당으로 교체되었다. 근대에서 중세로 회귀해버 다. 한국 민주화운동은 그 굵은 궤적에 비해 기록과 형상화에서 아직 전형이 제시되 린 것이다. 이는 근대가치의 일상화를 거부한 전형이 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남산’재구성은 역사적・문화적 명약을 창 자 수구적 행태의 전범이기도 하다. 조해낼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10 | 2012년 가을호 | | | 2012년 가을호 | | 11
  • 7.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 | 박 원 ● 오래간만에 다시 내셔널트러스트 매거진을 통해 뵙겠습니다. 지난 인 터뷰(2007년 9호)에는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님으로 만나 뵈었고, 오늘 은 시장님으로 만나 뵙게 되었네요. 예전에는 시민운동가로서 정부를 한데, 문제는 지금까지 개발에 치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보존이 안 되었던 것이죠. 서울은 미래세대가 살아가야 할 미래의 땅이기도 하 잖아요. 과거를 보면 서울은 한양으로서 조선시대 600년의 수도였 순 감시하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입장이 바뀌셨는데, 어떤 차이가 있으 고, 한성백제 500년의 수도였거든요. 1000년 동안 수도였기에 어 신가요? 떻게 보면 거의 로마에 버금가는 그런 도시죠. 서울은 우리 역사와 ○ 그때는 조금 더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었고 정부나 다른 기관에 대 문화가 많이 녹아있고 아름다운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수도에요. 해 잘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요구를 받는 입 전 세계 수백 개의 도시에 가봤지만 서울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다고 장이 되었고, 제가 결정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까 아무래도 많이 다 생각해요. 아쉽게도 그동안 그런 유적들을 남겨오지 못했어요. 제 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갖고 있는 생각 비전, 원칙이 바뀌 가 시장되고 나서는 도시안전을 위한 토목공사처럼 불가피한 개발 서울 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때는 정부에 해 달라 요구하던 것들 을 지금은 실천해야 되니까 방식과 위치가 바뀌었지만, 그래서 더 도 해야 되지만 그래도 보존과 문화재 활용 소프트웨어, 이런 쪽으 로 가야된다고 중심을 두고 있죠. 시장 열심히 해야죠. 전에는 할 힘이 없어서 해 달라 했는데 지금은 힘이 있잖아요. 이런 기관, NGO 등과 협력하면서 가고 싶습니다. ● 마을공동체 생태계 만들기에도 힘쓰고 계신데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도 동강 제장마을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보존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 시민운동가 출신의 시장으로 사회에서 거는 기대가 크실 거라고 생각합 서울의 마을공동체 생태계만들기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신지 듣 일시 : 2012. 9. 22 니다. 특히나 자연과 문화유산 보전에 대한 입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 고 싶습니다. 장소 : 시청 별관 는데요, 근래에 서촌 개발, 한옥보존지구의 관광자원화 등에 대해 이슈 ○ 그런데 저는 마을공동체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은‘서울 같은 대도 진행 : 양병이 (서울대학교 교수, 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 가 많습니다. 요즘 같이 첨예하게 개발과 보존에 대한 입장이 대립하고 시에서 왠 뜬금없는 마을이야.’ 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대도시도 작 사진 : 남준기 편집위원 (내일신문 기자) 있는 시점에 박시장님의 입장이 궁금합니다. 은 공동체의 결합체거든요. 도시라는게 아무래도 이기주의랄지, 비 참관 : 내셔널트러스트 온새미로 청소년기자단 ○ 전 기본적으로 사실 개발과 보존이라는 것이 반드시 모순되는 게 아 즈니스가 지배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외국에 보면 커뮤니티 중 박수빈(용인외고), 이현무(무림여고) 니라고 봅니다. 때론 개발도 필요하고 보존도 해야 되는 것도 당연 심, 축제, 마을 경제라든지 마을 통합 등이 살아있거든요. 영국 같 12 | 2012년 가을호 | | | 2012년 가을호 | | 13
  • 8. ● 단순히 보존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유용성을 지닌 공간으로 꾸 며가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시도도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 좋은 예나 구상하시는 바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 그 말씀에 동의하는데 예컨대 최순우 옛집이 빈집이면 금방 상하죠. 공공기관이 하면 훨씬 좋다고 봐요. 내셔널트러스트도 공공기관이 죠. 영국내셔널트러스트도 많이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보고요. 내셔 널트러스트가 많이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으면 가능하다 봅니다. 꼭 공간만 있다고 보지 않고요. 예컨대, 장인들이라든지 공예라든지 기 술이라든지 하다못해 스토리도 다 소중하잖아요. 앞으로 서울이 부 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관광이라 보는데, 다른 도시 가 가지고 있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점이 크다고 보고요. 그 역 사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스토리텔링 사업단도 별 도로 만들고 있고 서울성곽, 한양도성 연구소, 박물관도 만듭니다. 이런 역사, 문화재 쪽에 투자하는 게 예산문제를 떠나 관심이 더 커 졌다고 봐야죠. 서울이 많이 바뀔 겁니다. ● 현재 박원순 시장님만의 미래문화유산이 있다면? ○ 이 시장실의 모든 것도 다 미래문화유산이라고 보거든요. 제가 웬만 은 경우 노동당 시절 지역공동체장관이 있더라고요. 그 정도로 그 공 면서 좋은 구성원이 되어야 하는데, 국・영・수만 시키니 사람 관계 하면 안 버립니다. 5만권 되는 자료를 수원이 인문학거리를 만든다 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동체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발전해서 OECD 맺기 어렵고 갈등과 편견이 높아지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 고 해서 기증했어요. 서울시장 될 줄 알았으면 안 주는 건데요(웃음). 회원국가가 됐지만 반면 부정적 지표도 많아요. 자살률 1위, 노동생 아가는데 결정적 장애물이라 생각해요. 교육도 완전히 바뀌어야 한 시장되기 전에 약속을 해놔서 지킬 수 밖에 없었죠. 시장실의 이 책상 ● 현재 서울시의 미래유산 찾기사업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가지고 있 산성은 낮고, 노동시간은 길고, 안전 불안증 등 이런 게 왜 생겨났나 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에는 투표권이 없는 중고등학생들이 저를 가 도 이명박, 오세훈 前시장님도 쓰신 것 같아요. 구청사 시장실은 보존 는 미션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후손을 위해 지금 현재는 관심을 끌지 보면 소득만으로는 해결 안 되는게 있다고 보거든요. 이걸 공동체로 장 많이 지지하는 거 같아요. (웃음) 할 예정이라 이 책상도 뺏길 것 같아요. 저는 새 책상을 쓰게 되겠죠. 못하지만 미래에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는 보물을 찾아내 보존하고 후 풀어보려는 거죠. 지금 여러 사회적 후유증이 생겨나고 국민들은 피 손에게 물려주는 것이지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대한 박원순 시장님 로하고 스트레스로 자살률이 높고…. 이제 한번 멈추어서 성찰하고 ● 시장이 되시기 전부터‘옛 서울역사의 복원과 활용’ 문화유산을 보전 등 ●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성인이 되기 까지 사는 사람이 서울에 몇 되지 않 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새로운 비전으로 가야하는 결정적 단계에 있다고 봐요. 새로운 문화 하고자 하는 관심이 많으셨던 걸로 압니다. 현재“서울 속 미래유산 을 것 같습니다. 시민 각자가 살았던 자신의 소중한 삶의 터전을 미래세 ○ 내셔널트러스트가 공공기관이다. 다만 법적으로는 공공기관이 아니 유산 보존이라든지, 창조적 사업이라든지, 국민들의 삶의 질과 쉼의 찾기”시민공모전을 통해 대상지를 모으고 전문가 검토를 통해 100선을 대에 까지 그대로 전해줄 수 있도록 시장님께서 시정을 통해 많이 힘써 기 때문에 갖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고 봐요. 단점은 예산, 여러 새로운 비전을 고민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제가 잘나서 주장하는 게 지정・보존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취지로 진행하시는 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행정력이라든지 이런 게 부족하시잖아요. 장점은 시민들이 함께 참 아니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업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 제 취임사 중에 기억하는 구절이‘우리들의 삶에 기억들이 남아있는 여하고 있기 때문에 자율적이고 훨씬 활력 있는 것이죠. 반대로 서울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제 트위터에“시험이 얼마 안 남았는데 불안해 ○ 저도 이 사업에 대해 내셔널트러스트와 함께 하겠다고 했어요. 서울 그런 거리’ 라는 구절이 있었어요. 요즘 자고 일어나면 골목이 사라 시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합치면 부족한 것을 보완하면 파트너로써 더 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라는 얘길 굉장히 많이 해요. 그런 얘기를 지방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보거든요. 서로 파트너로 지고 있고 그러다보면 아마 아버님, 할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제사 지 많은 일을 잘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협력, 거버넌스를 강조하는 것이 들으면 너무 미안하고 저도 힘들어요. 기성세대가 여러분들을 이렇 서 함께 할 수 있다고 보는데,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보존 가치가 낼 때 찾아오시기 힘들 것 같아요. 옥인동 수성동 계곡은 정말 아름 그것이죠. 내셔널트러스트가 잘해서 보존하면 그것이 결국 서울과 게 힘들게 만들었잖아요. (온새미로 기자단에게) 어때요, 이런 활동 높은 유산이 많다고 보거든요. 많은 유산도 결국 100년 뒤면 문화재 다운 곳인데 복원이 됐어요. 그곳에 옥인동 아파트 짓는다는 것을 주 대한민국의 것이지 누구 것이겠습니까? 서로 협력해서 역사문화유 하니까 신나고 재미있죠? 급이 되는 거잖아요. 문화재로 등록하지 않아도 다음세대에 많이 물 민들과 계속 협의 중에 있는데, 좀 낮게 지어서 산이 보이게 하고 유 산을 잘 간직하고 활용됨으로써 서울시민들이 잘 향유할 수 있도록 온새미로기자단 | 네, 아무래도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재미있어요. 려주는 것이 좋다고 보거든요. 시민들의 제안을 받기도 하구요. 그 지하자, 서울시가 돈을 더 내겠다고 하고 있고 주민분들은 높이 짓자 노력해나가겠습니다. 박원순 | 국・영・수 외우는 것보다 낫지 않아요? 이 경험으로 학생 런 시행은 민간기구와 같이 힘을 합쳐서 행정적 권한과 예산과 하다 들은 훨씬 더 많이 배우게 될꺼에요. 나중에 무얼 할까 도움이 많이 못해 매체를 통해 열심히 도와드려서 함께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 될 거에요. 청소년들이 외국에서처럼 철학공부도 하고, 경험도 많이 니다. 미래유산 사업은 지금도 내셔널트러스트에 상의 드리고 있는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사람>은 명사와의 대담현장에 회원들을 초청하여 오픈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어, 이번 인터뷰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온새미로 청소년기자단과 함께 했습니다. 쌓아서 그런 과정에서 세상을 잘 이해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으 걸로 알고 있어요. 좋은 제안 많이 주시구요. 14 | 2012년 가을호 | | | 2012년 가을호 | | 15
  • 9. | ✽영국NT 이야기 | 시민공유의 공간, 애팅험 공원 조명래 | 단국대학교 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 사진제공 Nigel Jones 애팅험 공원(Attingham Park)은 2009~2010년 사이 영국내셔널트러스트(NT) 사 애팅험 공원은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접경 지역인 슈 스 다윈이 태어나 수학한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다가 1953년 영국내셔널트러스트의 소유로 넘어갔다. 이트 중 방문객이 다섯 번째로 많은 곳이다. 257,340명이 찾았을 정도로‘인기 루즈버리(Shrewsbury)란 곳에 위치해 있다. 인구 6만 현재 애팅험 공원으로 불러지는 부지는 애팅험 저택 애팅험 저택은 1782년부터 1785년까지 3년간 지어졌다. 건축주인 힐은 정치, 땅 짱’ 사이트다. 18세기 후반 4000 에이커(약460만평) 부지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인 명의 소도시 슈루즈버리는 슈롭셔(Shropshire) 군 을 중심으로 조성된 장원(estate)에 해당한다. 1785년, 장사, 대부업, 광산업 등을 하면서 많은 돈을 모았고, 이를 가지고 저택을 지었다. 힐 ‘애팅험 저택(Attingham Mansion)’ 중심으로 잘 꾸며진 숲, 사슴정원, 과수원, 을 (county) 소재지다. 런던을 중심으로 해서 본다면, 서북 노엘 힐(Noel Hill)이란 사람이‘턴 홀(Tern Hall)’ 이 은‘그의 부인과 6명의 자녀’ 위해 대저택을 지었다고 했지만, 지금과 같은 대저택 를 강 등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국가가 조성하고 지정한 공원이 아니라 NT가 소유하 쪽의 제2도시 버밍험(Birmingham)을 약간 지나 서쪽 라 불리던 건물이 있던 자리를 허물고 지금의 애팅험 의 모습은 후손들이 덧붙이고 가꾼 결과다. 건물 자체는 조지 스튜어트(George 고 있는 사이트를 시민들에게 개방해‘공원 같이’활용하고 있는‘시민공유의 공 으로 방향을 틀어 웨일즈로 들어가기 전에 슈루즈버리 저택을 지었다. 힐 집안은 1700년대부터 이곳의 땅을 Steuart)란 건축가가 설계했다. 그러나 애팅험 저택을 화려하게 변신시킨 조경정원 간’ 셈이다. 오래된 대저택을 관람하고, 부속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각종 문화행 인 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5~6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웨일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 헨리8세가 단행한 수도원 해체 과 저택 내의 갤러리는 2대 소유주에 의해 꾸며졌다. 1대 소유주인 노엘 힐이 죽으면 사에 참여하고, 숲과 정원을 거닐며, 잔디밭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등이 이곳을 찾는 즈 군주들이 수도로 삼았던 곳이었지만, 8세기 말에 엥 에 의해 생겨난 지역 수도원(Haughmond Abbey) 땅 서 애팅험 장원의 소유권은 그의 세 아들인 토마스(Thomas), 윌리암(William), 리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NT의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이 글로섹슨족의 러시아 왕국에 흡수되면서 잉글랜드의 영 을 매입해 두었다가 애팅험 장원을 건설했던 것이다. 차드(Richard)에 의해 차례로 승계되었다. 2대 소유주인 토마스는 영국의 전통적인 ‘공유 공간’ 자연 및 문화유산으로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을 돕고 있다. NT는 9개 이 토로 편입되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지만 잉글 이 장원을 건설하면서 주인인 노엘 힐은 제1대‘버크공 정원 디자인을 창시한 험프리 렙톤(Humphry Retpon)을 고용해 장원을 공원으로 권역의 지역본부(Regional Headquarter)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데, 애팅험 공원 랜드로 보면 변방이어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Lords Berk)’ 귀족 신분까지 얻었다. 그 후 애팅 이란 설계하도록 했다. 또한‘픽처레스크 컨트리하우스(picturesque countryhouse)’ 의 은 지역본부의 하나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영국인에게 슈루즈버리는 진화론의 제창자인 찰 험 장원은 160여 년 간 버윅 집안에 의해 소유 관리되 설계자로 유명한 존 내시(John Nash)에 의뢰해 저택 내부를 다시 꾸미도록 해 지금 16 | 2012년 가을호 | | | 2012년 가을호 | | 17
  • 10. 애팅험 저택 사진제공 Etrusia UK 사진제공 (위)Mark Ellam (아래)quimby 의‘픽쳐 갤러리’시설 등이 생겨났다. 그러나 방탕한 생활을 한 결과, 1827년 집안 버윅 공이 되었다. 그러나 퇴역군인이었던 그는 저택에 부분을 셔롭셔(Shropshire) 군(郡)이 30년간 사회교육 면서, 그가 죽은 후엔 보다 안전하게 영구히 지켜질 길 바랬다. 그 바람은 곧 NT에 소 은 사실상 파산했다. 돌보는 것에 더해 별로 관심이 없었고, 거처도 저택 밖 원(Adult Education College)으로 사용하도록 임대를 유권을 넘기는 것이었다. NT에게 자산을 넘기는 것을 그는‘대중의 편익을 위한 것 장원은 토마스의 동생 윌리암(William)이 인수해 관리하면서 회복되었다. 방탕한 형 에 있었다. 결국 귀족 타이틀은 윌리암의 조카인 리차 주었다. 집안의 지출을 줄이면서 수익을 더 얻기 위한 (for the benefit of the public)’ 이라고 스스로 불렀다. 과 달리, 윌리암은 직업 외교관(주 이탈리아 영국 대사) 출신으로 차분한 성품의 소유자 드 헨리(Richard Henry)에게로 넘어갔다. 불행하게 한 방편이었다. 9대 버윅 공 찰스는 1953년 1월 사망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그를 이를 대가 없 였다. 3대‘버윅 공(Lord Berwick, 3대 소유주)’ 된 윌리암은 이탈리아 가구나 프랑스 이 도 제7대 소유주가 된 그 또한 집이나 장원을 돌보는 1947년 8대 소유주인 토마스는 세상을 떠나면서 애 었다. 버웍 공이란 지위는 그의 사망과 함께 단절되었다. 공식적인 상속자가 없게 되 도자기와 은제품 등을 들어와 저택의 내부를 화려하게 꾸몄다. 이렇게 해서 애팅험 저택 데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집안을 돌보는 것보다 부인 팅험 전체를 NT에게 유증했다. NT 역사에서 가장 큰 자, 8대 소유주 토마스의 유증에 따라 애팅험 장원의 소유권은 NT에게로 정식으로 은 안팎으로 귀족의 저택으로 풍모를 완연히 갖추게 되었다. 1842년 윌리암이 죽으면 과 함께 사냥을 하거나 배를 타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규모의 유증이었다. 그러나 애팅험 장원의 소유권이 실 넘어갔다. NT 소유권으로 바뀌면서 애팅험 장원은 시민공유의 공간인 애팅험 공원 서, 셋째 리차드(Richard)가 68세 나이로‘4대 버웍 공’ 소유주)이 되었다. 그는 인 (4대 쏟았다. 제 넘어간 것은 1953년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NT가 애 으로 거듭났다. 2006년부터 NT는‘애팅험의 재발견(Attingham Re-discovered)’ 근 베링톤(Berrington) 지역의 목사였다. 그는 집안을 별로 돌보지 않았고, 또한 술을 이렇게 해서 1897년 토마스(Thomas)가 8대 버윅 공 팅험 공원을 획득한 것은 1953년으로 되어 있다. 이는 이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애팅험 집과 땅의 생명을 되살리는 것(bringing 많이 마시는 사람으로 좋지 않는 평판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버윅 공 자리(4대 소유 (8대 소유주)이 되었다. 결혼 후 1920년 그는 애팅험 1947년 토마스의 유증이 6년 뒤인 1953년에 정식으로 the house and grounds back to life)’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애팅험 공원 내에 이 주)를 그는 겨우 6년간 지켰다. 그 결과 애팅험에는 그의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저택으로 들어 왔고, 살면서 애팅험 장원을 돌보고 가 실현 되었 것, 즉 소유권이 정식으로 넘어간 것을 의미 는‘턴(Tern)’ 이란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이 하천은 공원의 동측 경계 밖에서 1848년‘버윅 공’타이틀은 리차드의 아들인‘또 다른 리차드(another Richard)’ 꾸는 일에 전념했다. 재정적 어려움을 덜기 위해 그는 한다. 토마스가 죽은 뒤 조카인 찰스(Charls Michael ‘서번(Servern)’ 이란 강과 합류하여 웨일즈의 바다로 흘러간다. 오래 전부터 영국 에게로 넘어갔다. 5대 소유주가 된 리차드는 집안을 되살려내기 위한 여러 혁신적 8000 에이커(약 980만평)에 이르는 장원의 땅 반을 팔 Wentworth)가 잠시 9대 버윅 공의 타이틀을 가진 적 인들은 이곳의 땅을 소중한‘생명의 터’ 이용하고 가꾸어 왔다. NT의 새 프로젝트 로 인 일들을 했다. 대물림된 집안 부채를 청산하고, 장원을 근대화하며, 모범적인 농 았다. 애팅험 공원의 현재 면적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 이 있었지만, 애팅험 장원의 소유권은 승계하지 않았 ‘애팅험의 재발견’ 자연 및 문화유산을 단순히 보전 관리하는 게 아니라 그 유산 은 장을 건설하고, 저택 내 부엌시설을 새로 설치하는 등이 그가 집안을 되살리기 위 다. 그리고 그는 부인과 함께 저택의 많은 부분들을 수 다. 8대 소유주인 토마스는 애팅험이 선대로부터 여러 이 자리한 터의 생명을 온전히 되살려내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NT운동이 예사롭지 해 했던 일들이었다. 13년 뒤인 1861년, 리차드의 남동생 윌리암(William)이 6대 리하고 복원하는 일들을 벌렸다. 1946년 저택의 서쪽 차례 소유와 관리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음을 목격하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18 | 2012년 가을호 | | | 2012년 가을호 | | 19
  • 11. |✽근대문화유산 | 들었을 때, 나도 무엇인가 기여하는 바가 있으면 좋겠 거의 시간 속에 도착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생의원은 매력이 있었다. 완벽한 옛 모습을 접하게 된다. 비록 의료장비들은 철거 자생의원은 해방후 서울대 의과대학의 첫 졸업생이 되어 있지만, 나무바닥의 복도와 징두리벽 그리고 회벽 병동 었던 성수현 원장이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의병제 은 원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문과 창호의 존재와 대하고 고향에 돌아와 아버님이 운영하던 점포에서 진 함께 나를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게 하기에 충분하다. 료를 보면서 시작되었다. 전문의가 없던 시절에 군의관 복도를 들어서면 왼편에는 X-Ray실과 수술실이 위 의 경험을 바탕으로 거창에서 처음으로 수술을 하면서, 치해 있다. X-Ray실에서 장비가 철거되어 아쉽지만, 자생의원은 개업한지 얼마되지 않아 거창군은 물론 인 신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타일로 마감 근 지역의 대표적인 의원이 되었다. 덕분에 개업한지 된 바닥과 징두리벽이 우리에게 병원의 수술실은 이렇 오래지 않아 현재의 자생의원이 지어질 수 있었다. 게 생긴 곳이었음을 가르쳐준다. 수술실 건너편에는 자생의원은 의원 본관과 병동 그리고 성원장이 살았 중앙에 외래환자 대기실이 있고 대기실에 면해 진료실 던 주택으로 구성되었는데, 1950년대 지역 의원으로는 과 처치실 그리고 약제실이 위치해 있다. 환자를 중심 가장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 건축사적 가치도 으로한 편리한 공간구성임을 알 수 있다. 처치실과 약 높다. 대도시에 지어진 5~60년대 의원이 2~3층으로 제실 곳곳에는 성원장의 마지막 진료 모습을 가늠해 볼 수술실 복도 지어지면서 하나의 건물에서 1층에는 의원 2층에는 입 수 있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진료실을 나오면 주 원실 그리고 3층을 주택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 택에 면한 복도 벽에 설치된 작은 구멍을 발견하게 된 던 시절에, 지역에서는 독립 건물로 이들 세 기능이 수 다. 이 구멍은 주택에서 성원장이 쉬면서도 병원과 소 억일 것이다. 용되었는데, 자생의원은 그러한 지역 의원의 가장 전 통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창구다. 병원에 붙어 있는 사 의원을 찾는 이들이 방문했을 가능성이 가장 작은 곳이 원장의 사택이겠지만, 의 慈생의원, 형적인 모습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택에 거주하면서, 24시간 병원과 소통하고자 했던 의 사가 직접 환자의 집을 방문하는 왕진제도가 살아있을 때의 병원이라는 점을 감안하 자생의원의 가치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건물이 1954 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면, 원장의 주택 문턱도 지역민들에게 그다지 높지는 않았을 것 같다. 비교적 넓은 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6.25전쟁 직후에 지어진 자 복도 끝에 위치한 문을 열고 나가면 병동과 연결된다. 마당 한편에 당시로는 꽤 호사한 취미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온실의 존재가 이채롭다. 문화를 통해 거듭나는 생의원에는 해방과 전쟁을 거친 우리 건축계의 모습이 온전하게 녹아들어 있다. 건물은 성원장의 밑그림에 그런데 병동의 구성이 흥미롭다. 1층과 2층으로 구성된 병동은 부정형의 마당을 중정으로 입원실들이 위치해 반쯤 땅 속에 묻혀 있는 상부로 유리창이 있어 추운 겨울에도 지열과 햇빛을 이용해 서 꽃을 가꿀 수 있었을 것이다. 집단 기억의 장소를 따라 지역 목수가 지었는데, 외관은 물론 건축의 재료 있다. 마당의 크기는 작지만, 좁고 긴 사다리꼴 마당 주 주택은‘ㄱ’ 전통 한옥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전통적인 한옥의 안채와는 많이 다 형 와 구조에서 우리 건축이 어떠한 성장과정을 거쳤는지 변에는 툇마루가 설치된 입원실의 환자들이 서로 소통 르다. 우선 원장의 동선을 배려하여 주택의 복도가 의원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안채 를 잘 보여준다. 하기에 더 할 나위없이 좋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병동에 의 마당에 면해 있는 복도 전체에는 창호가 설치되어 있다. 창호를 열면 여느 안채처럼 기대하며… 길에 면한 출입구 상부가 만사드지붕의 박공면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거창의 등록문화재인 최남식 가옥 서 주목을 끄는 것은 각각의 입원실에 난방용 연탄아궁 이가 위치했는데, 각각의 아궁이 옆에는 간이 부엌이 있 개방감이 확보되지만, 창호를 닫으면, 겨울철 찬바람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각 방 이 마루로 연결되어 각 실 간의 이동이 편리하다. 방 배치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보통 의 지붕을 연상시킨다. 의원 출입구에서 인상적인 것 어, 입원환자에게 보호자가 따뜻한 식사를 만들어주었 한옥에서는 안채의 꺽임 부분에 안방이 위치해 있지만, 이 주택에서는 목욕탕과 부엌 안창모 | 경기대학교 교수 은 출입문 상부 창호의 창살이‘慈’ 현대적으로 번안 를 다는 점이다. 식욕을 돋구기에는 어림없는 오늘날의 병 이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통풍에서 가장 불리한 전통주택에서 안방의 문제를 해 한 디자인이라는 점이다. 얼핏 보기에 우리나라 창살 원 환자식을 잘 알고 있는 필자에게는 끼니때마다 밥짓 결함과 동시에 목욕탕과 주방을 안채의 중심에 위치시킴으로써 취사와 난방의 편리함 문양에 많이 사용되는 희(囍)와 복(福)으로 착각하기 는 구수한 냄새가 가득한 병동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하 과 기능성 그리고 위생이라는 여러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이와같은 안채의 모습 최근 몇 달 동안 거창을 향한 발걸음이 잦았다. 서울대 의학박물관 자문회의에서 거 쉽지만, 창호의 패턴은 자생의원(慈生醫院)의 자혜로 다. 자생의원이 가르쳐준 병동의 따뜻한 풍경이 아닐 수 은 전통주택이 근대기를 거치며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 창에 있는 자생의원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자생의원의 모습에 흠뻑 빠진 때문이었 울 자(慈)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해서 만들었다. 자신의 없다. 이곳이야말로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병문안을 온 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 주택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자생의원 주택이 갖는 주택 다. 한 눈에 보기에도 철지난 해방 전 의원처럼 보이는 작은 건물이었는데, 건물 안 병원 이름을 디자인해서 창호의 창살과 로고로 사용한 지역 주민들이 서로를 위하고 완쾌의 덕담을 나누는 집 사적 가치가 살림을 맡은 이(원장 사모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으로 한 걸음 옮기는 순간 자생의원이 갖는 아우라에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 지어졌 성원장의 감각에서 자생의원의 모습이 건축가의 손을 단 기억의 장소일 것이다. 병원의 가장 큰 덕목은 아픈 자생의원의 사회적, 의료사적, 건축사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을 때의 모습을 온전하게 가지고 있는 근대건축문화유산이라는 사실 외에도, 이 건 빌리지 않고 지어졌음에도 빼어난 근대건축의 모습을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겠지만, 아픈 몸을 추스르고 난 한 정도로 크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거창 분들이 이러한 자생의원의 가치를 인식했다는 물의 가치를 인식한 거창군에서 자생의원이 갖고 있는 역사적, 사회사적 가치에 주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이유를 짐작하게 해준다. 참 후에 이곳을 다시 돌아보는 마음 속에는 각기 다른 이 사실이다. 새롭게 탄생할 자생의원을 통해 거창이 누리게 될 자부심과 그들이 함께 목하고, 이 건물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문을 열고 병원 안으로 들어가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 유로 이 병동을 찾았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 하면서 만들어갈 기억은 세대간의 벽을 뛰어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20 | 2012년 가을호 | | | 2012년 가을호 |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