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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Summer | No.24
                                                                                                                      www.nationaltrust.or.kr



                멸종위기식물 매화마름이 피는 꽃논을 분양합니다

               멸종위기식물 보존 캠페인




꼭 지켜야 할 멸종위기식물 매화마름. 하지만 농약과 화학비료로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게다가 고령화된 농촌에서 유기농조차 쉽지 않습니다.
매화마름이 피는 꽃논의 일정면적(기본 6평)을 분양받아 주세요.
그럼 그 만큼의 면적을 유기농으로 가꾸고 매화마름과 지역주민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 논에서 서식하는 멸종위기식물 매화마름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양받으신 매화마름 꽃논 만큼의 면적에서 생산된 유기농 쌀(6평기준/5kg 1포)을 드립니다.
※ 쌀의 증정은 분양 받으신 당해년도에 한합니다.




              6평의 매화마름 꽃논(30,000원)을 사주시면 매화마름 쌀 1포를 보내드립니다.
              지역주민들께서 매화마름 보전을 위해 시작한 유기농으로 강화도 최초의 유기농인증을 받았습니다.
              매화마름은 겨울에도 논에 물을 가두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1년 내내 무논을 유지하며 논습지의 생물다양성, 그리고 우리 밥상의 건강을 지킵니다.
             ‘매화마름쌀’ 매화마름 보전과 무논유지에 동의한 농민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상표입니다.
                   은




※ 후원계좌 : 외환은행 630-007729-669 (예금주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
                                               ‘꽃논사랑 후원금’ 기부금영수증을 발행해 쌀과 함께 보내드리며 연말정산 세제혜택이 있습니다.
                                                        은
                                                                                                     ISSN 1976-2577
CONTENTS
04 집중과 조명               조선시대부터 지켜온 왕실 삼산밭       박봉우 | 강원대학교 산림대 조경학과 교수,
                                                                       “숲과문화”편집인

                        희귀 멸종위기식물의 보고     엄태원 | 상지대학교 산림과학과 교수

                        가리왕산스키장 대안지 민간 차원에서 재검토하기로               남준기 | 편집위원, 내일신문 기자

12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       이충렬 작가   양병이 | 서울대학교 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

16 영국NT 이야기             금융재벌가‘로스차일드’풍의 와데스돈 저택               조명래 | 내셔널트러스트 이사, 단국대학교 교수

20 근대문화유산               거창의 거인, 최남식 가옥     안창모 | 경기대학교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역사문화환경보존프로그램

23 내셔널트러스트 여행           굽이굽이 순천만을 향하여~ 이사천 절강(切江)                박영란 | 순천시청

24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자연이야기    백령도 터줏대감, 점박이물범        백용해 | (사)녹색습지교육원장

                        곤드레와 딱주기 이야기      고주환 | 작가

28 품안에                  ‘1 for 2’우리 2를 위한 나의 1가지 행동
30 회원인터뷰                자연을 위한 모금캠페인, 그리고 소중한 발자국                박영기 회원님 | YK안과의원 원장

                        NT의 지방모임이 활성화되길!       김민제 회원님 | 한국산업인력공단 광주지역본부 근무

32 내셔널트러스트 추천도서         혜곡 최순우, 오늘에서야 당신을 온전히 만납니다!                정양모 | 前국립중앙박물관장

34 내셔널트러스트 소식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소식
35 내셔널트러스트 알림마당         공지사항
36 후원해주시는 분들            2012년 3월 ~ 5월 후원내역
38 품안에                  지구를 지키는 선물
39 팝업카드시리즈              청주 원흥이 방죽 두꺼비




                                                                                                            발행일 2012년 7월 9일                    발행처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발행인 김홍남 양병이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11길 20 우리빌딩 4층
                                                                                          2012년 여름호         편집위원장 이은희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4가 72-4번지 우리빌딩 4층)
                                                                                                            편집위원 강동진 남준기 서왕진 안창모 오충현           전화 02-739-3131
                                                                                                            유상오 윤인석 임정진 전은정 조명래 한동욱            전송 02-739-9598
                                                                                                            기획 허주희                             1년 정기구독료 20,000원
                                                                                                            편집인쇄 (주)디자인내일                      (정기구독료는 후원금으로 사용됩니다.)
                                                                                           ISSN 1976-2577
                                                                                                            www.nationaltrust.or.kr            * 본지에 게재된 글과 사진, 그림은
                                                                                                            페이스북 www.facebook.com/trustkorea   무단 전재하거나 복제하여 사용할 수 없습니다.

                                                                                                            트위터 @ntrustkorea
                                                                                                            ※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기증과 기부를 통해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을 확보하여 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입니다.
                  표지
                  백령도의 점박이 물범 사진 남준기 내일신문 기자                                                                                          목차사진 가리왕산 하봉능선의 개다래나무 사진 남준기 내일신문 기자
|✽집중과 조명 |




                                                                                왕사스레나무   화전민 집터




조선시대부터 지켜온 왕실 삼산밭                                                                        고구려 남진세력권에 포함되어 하서라(河西良, 阿慧羅)이었으나, 550년(신라 진흥왕
                                                                                         11년)에 신라 영토에 포함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도 신라 동북 국경지대로 고구려나
                                                                                                                                                  가리왕산은 산이 높고 웅장한 세를 형성하고 있고, 전
                                                                                                                                                 형적인 육산(陸山)으로 자작나무와 주목이 군락을 이루
                                                                                         말갈 세력과 자주 충돌을 일으킨 곳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하서주(河西           고 있고, 기타 활엽수가 극상을 이루고 있다. 현재 천연
박봉우 | 강원대학교 산림대 조경학과 교수,“ 숲과문화”편집인
                                                                                         州)를 설치하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년)에 명주(溟州)라 하였다. 1263년(고려 원    보호림지이며, 주목 군락지를 중심으로 산림유전자보
                                                                                         종 1년)에 강릉도로 개칭, 1308년(고려 충령왕 34년)에 강릉부로 개칭하였다. 정선은      호림이 설정되어 있다. 또 다양한 약초 류와 풍부한 초
배경 : 정선과 평창 그리고 강릉                   강릉, 정선, 평창을 아우르는 이 지역은 구석기 시대에 사람이 살았다는 구체적인        668년(고구려 보장왕 27년) 잉매현(仍買縣)이라 하였으며, 신라는 757년에 정선으로       본 류의 꽃을 밀원으로 하여 양질의 꿀을 산출하는 곳이
가리왕산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가리왕산을 포함하       증거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특히 정선과 평창에 다수 존재하는 동굴을 조사한다면           개칭하여 명주에 소속시켰다. 평창은 5세기 경 고구려에 속하여 욱오현(郁烏縣) 혹은          기도 하다.
고 있는 지역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     그 가능성이 있고, 인접한 제천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점과 편리한 수로로 남한강         우오현(于烏縣)이라 하였다가 신라에 편입되어 757년에 백오현(白烏縣)으로 개칭하            경관으로는 숲과 계곡이 어울린 자연경관이 뛰어나
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하나의 특정한 산이 차지하는     과 연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에서도 이른 시기부터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은          고 나성군(현, 영월)에 소속시켰다. 940년(고려 태조 23년)에는 평창현으로 개칭하여       서 가리왕산 8경을 정하고 있다. 가리왕산 8경은 상봉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지역과 연계된 맥락에서 산     높다고 할 수 있다. 정선 임계천의 고인돌, 평창 계장리 등지의 고인돌과 선돌, 강릉        원주에 속하게 하였다. 이러한 초기 역사는, 세 지역이 맥국과 관계를 맺고 있다가 고         인 망운대, 가리왕성터의 샘터인 동심과 서심, 중봉인
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안현동과 장현동의 고인돌 군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특히 평창의 여만리와 응암리에          구려에 속하였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757년 이후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대체로         후룡봉의 시녀암, 하봉의 백수암, 북쪽 사면의 계곡 여
    가리왕산이 자리한 위치는 현재 강원도 정선군과 평   서는 초기 철기시대의 적석총이 발견되어 삼국시대 이전의 연맹왕국 단계도 존재하였           지금과 같은 권역체계를 형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울인 장자탄, 용굴 계곡, 회동리 계곡, 비룡종유굴 등으
창군이며, 조선시대에는 여기에 더해서 강릉과도 연계      음을 알 수 있다. 평창의 발왕산과 정선 가리왕산의 가리(갈)왕 등 맥국(강원도 춘천                                                                로 구성된다.
되어 있다. 지역 구분을 이루고 있는 경계는 지형지리적    지방의 고대 국가)과 관련된 구전에서 연맹왕국과의 연계를 시사한다고 하겠다. 원시          산과 경관
요인과 더불어 경제권역의 근접성 혹은 편리성에서 비      사회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수렵-채취시대의 무리 집단은 25~30명으로 이루어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회동리와 북면 숙암리 및 평창군 진부면 장전리에 걸쳐 자리하           가리왕산의 역사성
롯된 것이다. 조선시대의 지역구분을 보면 때로는 현재     졌고, 부족이나 동족의 무리도 천 명을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러한 까닭에 기원전         고 있는 가리왕산은 해발 1560미터이고, 그 북서쪽에 백석산(1365미터), 서쪽에 중왕      가리왕산은 조선시대 지도인“대동여지도” ‘가리
                                                                                                                                                                     에는
와 상당히 다른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지리적 이점과   3000년경에는 평균 수십 명 정도의 사람으로 이루어진 개별적 정치 독립체가 거의          산(1377미터), 동남쪽에 중봉(1438미터), 하봉(1379미터), 남서쪽에 청옥산(1289   산(加里山)’ “해동지도” ‘가리왕산(伽里王山)’
                                                                                                                                                       으로,    에는
경제권역의 연속성과 접근성의 우위에 의한 것이지만,      100만 개 정도 존재했다고 추정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전하는 삼한의 소국명        미터) 등을 거느리고 있다. 높은 봉우리 사이의 낮은 곳은 자연스럽게 사람과 지역을          으로 표기하고 있다. 현재는 가리왕산(加里旺山)이라
다분히 도보나 역마를 활용한 교통수단의 한계에서 비      이외에도 지역의 구전에 따른 개별적 정치 독립체의 존재를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는           연결해 주는 고개가 되었고, 현재 전하는 고개로는 청옥산과 중왕산 사이의 벽파령,           하고 있다. 이것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임금 왕(王)
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지금과는 달리 강   이유로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청옥산 남쪽의 성마령, 마전령 중왕산과 가리왕산 사이의 마항(말목재) 등이 전하고           자가 성할 왕(旺)자로 바뀐 것에서 비롯되는데, 이러한
릉이 내륙 깊숙이 그 권역을 포함하게 되었다.            강릉, 정선, 평창에 대한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강릉은 313년(고구려 미천왕 14년)   있다.                                                     지명의 개명은 가리왕산에 한 한 것이 아니라‘왕’
                                                                                                                                                                           자를


4    | 2012년 여름호 |   |                                                                                                                                        | 2012년 여름호 |   |   5
사용한 산 이름의 경우 거의 다 겪었다고도 한다. 가리           하는 측면에서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채삼을 금지하려는 목적으로 표석을 세운
왕산의 제 이름을 찾아 주어야 할 것이다.
    가리왕산은 맥국의 가리왕이 이곳에 피난하여 성을
                                         것인데, 이 표석의 현대적 의의는 한국의 인삼이 이러한 유전자 보존원 및 산출지를
                                         확보해 오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거하는 데 있다. 인삼의 효용에 대한 국제적
                                                                                           가리왕산 숙암계곡은‘목신(木神)들의 숲’
쌓고 머물렀다하여 가리왕산으로 부른다고 하며, 산의             인식도가 높아지면서 세계 각지에서 다량으로 산출되는 삼과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      한그루 한그루가 당산나무급… 둘레 140cm‘사시나무’ 거대수목 가득
                                                                                                                         등
북쪽 골짜기에 대궐 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맥국의 구체           는 우리나라 인삼은 이 봉표로 말미암아 수백 년 전부터 양질의 인삼 배양과 산출을 제   남준기 | 편집위원・내일신문 기자
적인 사적이라 할 수 있는 곳인데 본격적인 조사 연구가           도적으로 관리해 왔다는 역사를 내세워 다른 인삼과는 차원이 다른 고려인삼의 우수
기대되는 곳이다.                                성을 홍보하는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목신(木神)들의 숲’
                                                                                                      ‘한반도 숲의 모태(母胎)’
                                                                                                                    ‘숲의 다문화가정’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같은 숲’ 가리왕산스키장 예정지 숙암리 계곡
                                                                                                                                              ….
    근세에 있어서는, 1994년에 지방 유형문화재 113호                                                         을 본 사람들의 소감이다. 이 사시나무를 보세요. 가슴높이 둘레 140cm가 넘습니다. 지름 45cm나 된다는 얘깁니다. 사시나무는 보통 지름
                                                                                                        “
로 지정된 삼산봉표(蔘山封標)가 있어 가리왕산의 역사            맺는말                                               30cm까지 자라지, 이렇게 큰 나무는 드뭅니다. 그만큼 이곳의 토양이 비옥하고 토심이 깊다는 거죠.”
성을 더해 주고 있다. 삼산봉표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필           가리왕산 지역은 강릉, 정선, 평창이 접점을 형성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높은 산   국립수목원 이병천 박사는“숙암리 계곡의 토심은 평균 1미터 정도 된다” “보통 산 계곡부의 토심이 30cm 정도니까, 다른 산보다 3배 이
                                                                                                                                 며
요로 하는 인삼의 배양과 채취를 위하여 일반인이 함부            들이 연이어 있고, 조선시대에는 중요 역로에서는 벗어나 있어서 사람에 의한 훼손이     상 깊은 셈”
                                                                                                 이라고 말했다.
로 출입하여 삼을 캐지 못하도록 입표한 것이다. 이 봉           상대적으로 적은 상태로 유지 된 곳이어서 뛰어난 자연 경관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대표 나무는 단연‘왕사스레나무’
표는 동부지방 산림청이 임도 개설공사를 하면서, 해발             역사적으로는 맥국의 가리왕과 관련된 구전이 있어, 맥국의 실재성을 밝힐 수 있기
                                                                                           이렇게 깊은 토양층은 나무들의 풍화작용 때문이다. 수만년 이상 오랜 시간 동안 나무들
1050미터의 마항(말목재) 고개 정상에서 발견하였다.           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며, 조선시대에 입표한 삼산봉표가 있어서 한국의 고려 인삼의
                                                                                           이 암석층을 뚫고 뿌리를 내려 흙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토양에 자라는 가리왕산의 나
봉표는 청록색 자연석의 전면에‘강릉부삼산봉표(江陵              역사성을 명징하게 보여 주는 곳이다. 인삼이 산에서 내려와서 재배하게 되면서부터      무들은 다들 덩치가 크다. 중봉과 하봉에서 내려오는 1000미터 이상 능선에는 지름
府蔘山封標)’
      라고 세로로 크게 음각하고, 그 좌 우 측에           인삼 혹은 가양삼으로 불리면서, 정작 인삼은 자신의 본래 이름을 산삼으로 바꾸게 되    15cm 이상, 길이 5미터가 넘는 철쭉들이 무리지어 자란다.
지명 경계를 작은 크기로 세로로 음각하였다. 지명경계            었다. 아무튼 가리왕산은‘한국 민족문화 상징 100가지’ 하나인 인삼과 산삼의 고
                                                                       의                    신갈나무도 밑둥에서 첫 가지까지의 높이가 12미터가 넘는 거목들이 군락을 이룬다.
는 좌측에‘정선계(旌善界)’ 우측은
              ,    ‘지명 마항(地名             향으로 중요한 가치를 보존해 온 곳이다. 또, 최근에 들어서는 천연보호림, 산림유전    보통 마을에서 자랐다면 한 그루 한 그루가 당산나무가 될 만한 나무들이다.
馬項)’
   이라하여 마항에서 정선까지가 인삼의 소출지임              자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산림자원을 통한 그 생태적 가치를 더하게 되었다.            ‘물들메나무’
                                                                                                  ‘물박달나무’
                                                                                                        ‘올벚나무’
                                                                                                             ‘산개버찌나무’
                                                                                                                    ‘물푸레나무’ 수많은 나
                                                                                                                          …

을 공고하고 있다.                                가리왕산의 이러한 아름다움과 역사성, 그리고 생태성은 가리왕산의 가치를 구성       무 가운데 가리왕산을 대표할만한 나무는 단연‘왕사스레나무’ 한국특산종인 왕사스
                                                                                                                          다.
                                                                                           레나무는 북방계 나무인‘거제수나무’ ‘사스레나무’ 교잡종이다.
                                                                                                             와       의
    삼산봉표는 조선시대에 자연산 인삼(현재는 이를 산          하는 중요한 요소로, 우리가 왜 가리왕산을 있는 그대로 후세에 전해야 하는가를 말해
                                                                                            거제수나무는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는 거대수목으로 자라지만 한국에 오면 크기가 작
삼이라고 함)을 배양하고, 채취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           준다.
                                                                                           아지는데, 가리왕산의 거제수나무는 높이 20미터 이상으로 상당히 큰 편이다. 사스레나무
                                                                                           는 백두산 수목한계선에 자라는 중간키(높이 2.5미터 정도) 나무다. 이 두 나무가 만나 새로
                                                                                           운 종을 이룬 가리왕산의 왕사스레나무는 최대 20여미터까지 거대한 크기로 자란다. 회색
1 봉산 표지석 2 소나무 군락                                                                          표피가 벗겨진 울퉁불퉁한 근육질이 마치 멸종된 고대 포유류‘매머드’ 연상하게 한다.
                                                                                                                               를
                                1    2

                                                                                           거의 유일한 천연림 지대                                          1
                                                                                                                                                  2
                                                                                           상지대 엄태원(산림과학과) 교수팀의 조사 결과, 가리왕산의 왕사스레나무-신갈나무군
                                                                                           락은 평균 높이 16미터에 이르고 평균 식물종수 39종으로 종다양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반도 숲의 다문화가정’
                                                                                               ‘             이란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슬로프 예정지인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 북쪽 사면은 대부분 조림지인 가리왕산
                                                                                           일대에서 거의 유일한 천연림이다. 이 숲은 아극상림 단계의 활엽수림으로 생태적 가치
                                                                                           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병천 박사는“가리왕산은 백두대간에서 벗어난 독립된 산군이고 1500미터가 넘는
                                                                                           높이에 석회암층이 많이 분포하는 등 산림생태계가 다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골고루
                                                                                           갖춘 산”
                                                                                               이라고 강조했다.
                                                                                            현가리왕산의 산림 유전자보지역을 훼손하지 않고 동계올림픽 알파인활강경기장을 건
                                                                                                                                                  1 가슴높이 둘레 140cm가 넘는 사시나무. 지름이 45cm나 된다는 얘기다.
                                                                                           설할 수 있는 대안지는 정말 없는 것일까?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과연‘환경올림픽’
                                                                                                                                         이
                                                                                                                                                  2 물박달나무. 보통 지름 30cm 정도 자라는데, 여기선 50cm 이상의 나무들
                                                                                           될 수 있을까.                                                이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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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과 조명 |




                                                                                                 다음은 거제수-신갈나무군락으로 해발고 700~1,000m 부근에서 주로 자라며 거
                                                                                               제수나무, 신갈나무, 생강나무, 당단풍나무, 대사초, 국수나무, 붉은병꽃나무, 산새
                                                                                               풀, 참개암나무, 노린재나무 등이 생육하는 숲이다. 이 숲에 생육하는 식물종은 31종
                                                                                               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사스래나무-신갈나무군락으로 사스래나무
                                                                                               와 신갈나무가 주로 자라고 있으며, 우점종으로는 당단풍나무, 대사초, 참취, 단풍                                    1
                                                                                                                                                                                2
                                                                                               취, 고로쇠나무, 큰개별꽃, 눈개승마, 벌깨덩굴, 박새 등이 자라는 숲으로 39종 정도
                                                                                               가 모여살고 있는 숲이다.
                                                                                                 또한 다른 산의 숲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전나무-주목나무군락이 분포하고 있으며
                                                                                               전나무, 분비나무, 주목, 개시닥나무, 피나무, 두루미꽃이 생육하고 있으며, 우점종
                                                                                               은 생강나무, 대사초, 단풍취, 왕고로쇠나무, 투구꽃, 큰개별꽃 등이다.
                                                                                                 가리왕산 일대에 자생하는 식물은 총 577종류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우리나
                                                                                               라 관속식물 4071종류의 14.2%이며 강원도에 분포하는 관속식물 1,913종류의
                                                                                               30.2%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비교적 식물자원이 풍부한 이유는 산림이 잘 보존되
                                                                                               어 있으며 아고산 침엽수림과 온대 활엽수림이 접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식물종다
                                                                                               양성이 높은 곳이라 판단된다.
                                                                                                 이를 형태별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누어 보면 고사리와 같은 양치식물류는 총
                                                                      가리왕산의 중봉과 하봉 능선 사진 이수용   28종류이며, 소나무와 같이 잎이 바늘과 같은 나자식물류는 총 9종류, 잎이 넓은 활                                 1 병품쌈 2 한계령풀

                                                                                               엽수가 대부분인 피자식물류는 총 540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

희귀 멸종위기식물의 보고                                                                                  리왕산은 활엽수의 다양성이 높은 지역이다.
                                                                                                 자생하고 있는 식물 중 식용이 242종류(41.9%)로 가장 많았으며, 목초용이 207
엄태원 | 상지대학교 산림과학과 교수                                                                           종류(35.9%), 약용이 195종류(33.8%), 관상용이 77종류(13.3%), 목재용이 29종류
                                                                                               (5.0%), 섬유용이 16종류(2.8%), 잡용자원이 9종류(1.6%), 공업용이 3종류(0.5%)의
가리왕산의 분포구계                             있는 숲이다. 해발고도 500m 이하에는 지역주민을 비롯한 사람들에 의해 하층식생           순으로 나타났고 용도를 알지 못하는 것도 113종류(19.6%)로 나타났다.                                      양을 닮은 한계령풀, 멋진 머리 장식을 한 갈퀴현호색,
가리왕산(1,560.6m)은 동경 128° 57”북위 37°
                       33’ ,     27’   이 부분적으로 파괴되어 있으나 그 이상의 지역에서는 비교적 안정되고 잘 보존된               가리왕산에 자생하는 한국특산식물은 총 26종류(식재종 2종류 포함)이며 우리나라                                  애기기린초, 좀꼬리까치밥나무, 생열귀나무, 노랑갈퀴,
31” 위치하고, 행정적으로는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에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에 분포하는 특산식물 570종류의 4.6%이고 강원도에 분포하는 한국특산식물 148종류                                제비꽃 중에 꽃이 큰 금강제비꽃, 귀한 한약재로 쓰이는
북면과 평창군 진부면의 경계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중           산 능선에는 북방계 식물들이 구성하는 산림생태계의 전형성을 갖추고 있는 산림             의 17.6%(강원도, 1997)이다. 주요 특산식물종은 키버들, 요강나물, 할미밀망, 참꿩의                            고본, 왜우산풀, 참좁쌀풀, 초본 중에 잎이 가장 큰 병풍
왕산과 발왕산이 남서쪽으로는 청옥산을 마주하며 남            으로 가리왕산 일대에는 전국에서 제일가는 천연활엽수림과 희귀수목이 생육하고 있             다리, 자주꿩의 다리, 왕매발톱나무, 갈퀴현호색, 좀꼬리까치밥나무, 매화말발도리,                                   쌈, 눈개쑥부쟁이, 두루미꽃, 산마늘을 비롯하여 우리나
동쪽으로는 중봉, 하봉, 민둔산과 비황산의 연봉으로           다. 더불어 가리왕산은 최근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북방계 식물의 보전이 중           터리풀, 노랑갈퀴, 털조록싸리, 개시닥나무, 금강제비꽃, 지리산오갈피나무, 지리강                                   라 진부에서 처음 발견된 금강애기나리, 귀부인을 연상
이어지면 그 끝자락에 정선읍이 자리 잡고 있다. 가리          요한 환경문제로 대두되고 있어 그 중요성이 크며 절대적 보존가치를 가진다 하겠다.           활, 참좁쌀풀, 청괴불나무, 병꽃나무, 고려엉겅퀴, 눈개쑥부쟁이, 국화방망이 등 이다.                                시키는 연영초, 사약의 재료로 쓰인 참여로 등이다.
왕산이라는 지명은 갈왕이 서심토의 난을 피하여 이곳            주목, 분비나무, 만병초, 마가목(馬牙木) 등 전국 최대의 천연활엽수 임지로 과거 궁          또한 가리왕산에는 약 27종의 희귀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희귀식물이란 일반적으                                        식물이외에도 멸종위기 포유류인 사향노루와 보호
으로 왔다하여 갈왕산이라 명명되었다가 일제강점기를            궐에 산삼을 진상하기 위하여 일반인의 산삼채취를 금지하는 삼산봉표(蔘山封標)가 발           로 보호되어야 하는 자생지의 식물 특히, 개체군의 크기가 극히 적거나 감소하여 보전                                  대상종인 담비, 하늘다람쥐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거치면서 지금의 가리왕산으로 불리어 오게 되었다.            견되는 등 산나물과 약초가 풍부한 내륙의 육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동해바다가 조망되           이 필요한 식물로서 종의 지리적 분포영역, 서식지의 특이성 정도 및 지역 집단의 크                                  보고된바 있으며 장전계곡을 비롯한 계곡에는 열목어
    가리왕산은 거대한 육산이며 태백산맥의 지붕 역할         는 산이다.                                                  기를 고려하여 희귀성의 범주를 설정한다. 희귀식물은 멸종위기식물, 보호식물, 감소                                   가 서식하는 등 희귀동・식물의 보고이다.
을 하고 있으며 조선시대부터 그 중요성이 알려져 국가                                                                  추세종, 특정식물, 법정보호식물, 적색 식물목록 등 다양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가리왕산과 같이 희귀요소가 풍부한 것은 아고산대 침
                         1)
에서 관리하던 봉산 으로 관리되어 오던 산이다.             가리왕산의 식물                                                  주요 희귀식물종은 주저고사리, 좀호랑버들, 왕느릅나무, 애기쐐기풀, 요강나물, 바                                 엽수림과 온대 활엽수림이 혼생하는 등, 다양한 생육환
    가리왕산은 일화식물구계, 온대아구계(溫帶亞區系)         가리왕산 숲의 대표적인 숲구조를 이루는 수종은 해발고가 낮은 지역에서 소나               람의 여신이란 뜻이 있는 국화바람꽃,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흡사 사자의 머리 모                                  경에 따른 종다양성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2)
의 한국구 에 속해 있으며 이를 좀 더 세분하면 중부아         무-산거울군락으로 이 숲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식물종은 소나무와 산거울이며, 우
    3)
구 의 중앙부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전형적인 한국 온         점종(優占種)으로는 신갈나무, 철쭉, 생강나무, 노린재나무, 큰기름새, 털조록싸리           1) 봉산 : 나라에 필요한 목재를 조성하기 위하여 벌채를 금지하는 산
                                                                                               2) 한국구 : Ronald Good(1947)는 세계식물의 분포구계를 총 37개 구계로 구분했으며, 한국의 경우 일화식물구계(Sino-japonica Region)에, 반도의 거의 대부분은 온대아구계(溫帶亞區系)의 한국구에 속한다.
대의 주림목인 신갈나무-철쭉 군목이 주축을 이루고            등 약 35종 정도의 식물종이 나타나는 숲이다.                              3) 중부아구 : 한반도의 6개 아구(亞區: sub-region) 중 특산식물의 비율이 가장 높은 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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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과 조명 |




                                                                                                          백석산(1365m)은 주경기장 인근인 평창군 진부면에       경사각은 18~20.9도에 이른다.
                                                                                                         위치한다. 최대 표고차는 895m, 슬로프 길이는 3650m     정상부 일대가 폐목장지여서 식생훼손이 적다는 장점이 거론된다. 정상 능선에 천
                                                                                                         (남자 경기장), 3450m(여자 경기장)이다. 평균 경사각    연기념물 433호‘두위봉 주목’ 있으나 가리왕산에 비해서는 식생의 우수성이 떨어
                                                                                                                                                              이
                                                                                                         은 20.1~19.2도에 이른다.                   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 두위봉 아래 지역은 정선군 남면 관광레저리조트 예정지로
                                                                                                          박지산(1391m・일명 두타산)은 역시 평창군 진부면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에 위치한다. 주경기장인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직선거           백덕산(1350m)은 평창군 방림면에 위치한다. 알펜시아에서 거리는 44.2km로
                                                                                                         리로 8km 정도로 가장 가깝다. 최대 표고차는 851m,     50km 기준에 적합하다. 최대 표고차는 840m, 슬로프 길이는 3350m(남자 경기장),
                                                                                                         슬로프 길이는 3650m(남자 경기장), 2700m(여자 경    3600m(여자 경기장・표고차 800m)이다. 평균 경사각은 24.1~19.0도에 이른다.
                                                                                                         기장)이다. 평균 경사각은 20~23.1도.
                                                                                                          두위봉(1470m)은 정선군 남면, 강원도 태백・정선       가리왕산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태도 벗어나야
                                                                                                         폐광지역에 위치해 있고 강원랜드와 하이원스키장 등          노익상 우이령포럼 공동대표는“지금까지 거론된 만항재와 두위봉 2곳의 대안지 이
                                                                                                         기존의 숙박 레저단지와 인접한 곳이다. 최대 표고차는        외에 정선・평창 관내에서 4곳 이상의 대안지가 나온 만큼, 강원도나 산림청도 가리
                                                                                                         895m, 슬로프 길이는 3300m(남자 경기장・표고차       왕산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태도에서 벗어나 열린 자세로 대안 모색에 나서주었으면
                                                                                                         818m), 3300m(여자 경기장’
                                                                                                                            표고차 757m)이다. 평균   한다” 말했다.
                                                                                                                                                고




한국특산종인 왕사스레나무는 북방계 나무인‘거제수나무’ ‘사스레나무’ 교잡종이다. 회색 표피가 벗겨진 울퉁불퉁한 근육질이 마치 멸종된 포유류
                            와       의                                        ‘매머드’ 연상하게 한다.
                                                                                 를


                                                                                                            가리왕산 스키장, 특정인에 특혜 의혹
가리왕산스키장 대안지                                                                                                 스키 도착지점 토지 집중매입… 강원도에“최적지”브리핑하기도



민간 차원에서 재검토하기로                                                                                              가리왕산 알파인스키 활강경기장 예정지인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에 특정인이 3만평 가까이 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논란이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숙암리에서 38필지 2만8929평의 토지를 매입 혹은 증여로 취득한 홍 모씨는 2001년에 활강스키장 예정지로 가리
                                                                                                            왕산을 제안하고 강원도 관계자와 함께 현지답사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리왕산 스키장 예정지인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알파인스키 도착
서울대 국토문제연구소, 정선 상원산・두위봉, 평창 백석산・박지산・백덕산 제안
                                                                                                            지점) 일대의 토지 70% 이상이 서울・경기 등 외지인들 소유로 확인됐다. 실제 숙암리에서 국유림 등을 제외한 토지 7만2000평 가운데 5만

남준기 | 편집위원・내일신문 기자                                                                                          4000평이 외지인 소유로 나타났다.

                                                                                                                                              스키 도착지점 일대 집중 매입
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된 가리왕산(정선・1561m) 보전을 위한 평창동계올림픽 알                      정선・평창 관내에서만 5곳의 대안지                                                         특히 홍씨가 소유한 토지는 절반 가량이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에서 내려오는 스키 슬로
파인스키 활강경기장 대안지 모색이 민간 차원에서 활기를 띠고 있다.                             상원산(1421m)은 정선군 여량면 아우라지 북쪽에 위치                                             프 종점 부에 집중적으로 위치한다. 활강경기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땅이
 지난 4월 25일 오후 강원도 춘천 세종호텔에서 열린 제27회 우이령포럼에서 서울                    한다. 활강경기 출발지점은 상원산 정상부(A코스)와 인                                              다.(지도에서 붉은색 표시. 스키 슬로프 종점부 중심 10필지)
대 국토문제연구소 이차복(지리학) 박사는 정선 상원산・두위봉, 평창 백석산・박                       근 1320봉(B코스)과 1401봉(C코스) 3곳이고 도착지점은                                          가리왕산 숙암리에 위치한 이 땅들은 대부분 지목이‘전(밭)’ 현재 나무가 심어져 있
                                                                                                                                                                               이며
지산・백덕산 등 5곳을 알파인스키 활강경기장 대안지로 제안했다. 알파인스키 활                       자개골유원지 인근 해발 540m 지점이다. A코스(남자 경                                            다. 숙암리에서 홍씨와 친인척이 소유한 토지를 합칠 경우 4만평이 넘는다.(총 13만2672㎡)
강경기장은 표고차 800m 이상(남자 코스), 평균 경사도 17도 이상, 코스(슬로프) 길                기장)의 표고차는 881m, 슬로프 길이는 3100m이며 평                                            홍씨는 여기에 대해“숙암리 일대 토지는 동계올림픽 얘기가 나오기 전부터 매입하기
이 3.0~3.7km, 슬로프의 향은 남향보다 북(동)향을 선호하는 지형조건을 충족해야                  균 경사각은 22.8도이다. B코스(여자 경기장)의 표고차                                            시작했다” “당시 현지조사를 통해 가리왕산 숙암계곡을 스키장 적지로 판단하고 리조
                                                                                                                                                  며
한다.                                                               는 780m, 슬로프는 3060m, 평균 경사각은 19.2도이다.                                        트를 만들기 위해 매입했다” 밝혔다.
                                                                                                                                                            고
 지금까지 강원도는‘정선 가리왕산 이외의 대안은 없다’ 공식입장을 고수하고 있
                             는                                    도착지점이 평지가 아닌 작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또“현행법상 영농법인이 아니면 농지를 소유할 수 없어 개인명의로 했다” “스키장
                                                                                                                                                                                     며
다. 산림청은 가리왕산 보전을 위해 정선 두위봉과 만항재 상원산 등을 대상으로 대안                    정지작업을 통해 15만㎡의 경기장 편의시설부지를 확보                                               예정지로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아직 생각해본 일이 없다” 말했다.
                                                                                                                                                                            고
지 검토에 들어갔으나‘마땅한 대안지가 없다’ 공식입장을 밝힌 상태다.
                       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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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 |




                         이
                                               이충렬 작가님은 서울 출생으로,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간송 전형
                                               필>, <그림애호가로 가는길>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최순우 선생의 삶을 조명한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를 발행하였습니다. 이날 인터뷰는 <최순우
                                               옛집 시민축제‘흔하지 않은 이야기’
                                                                 (후원: 서울문화재단) 특별강연>으로 개최되었으며,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열린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되어 그 의미를 더했습니다.


                                               ● 미술작품 콜렉터로도 유명하신데, 그림을 모으기 시작하신 계기가 궁




                         충
                                                금합니다.
                                               ○ 제가 조국에서 산 세월보다 타국에서 산 세월이 많습니다. 집이 부
                                                도가 나면서 1976년 대학교 3학년 때 한국을 떠나서, 캘리포니아에
                                                서 17년, 애리조나에서 18년을 살았습니다. 애리조나에서는 멕시코
                                                가 보이는 국경도시에서 살면서 잡화가게를 했는데, 지금은 피닉스
                                                에서 살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있을 적에는 한국 사람을 많이




                         렬
                                                만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애리조나는 한국인이 30세대밖에 안 되는
                                                곳이었죠. 외로워서 고향생각이 났지만 장사하는 사람이 고향에 들
                                                락거릴 수도 없고, 그림이 있으면 외로움이 덜할 것 같아서 한 점, 두
                                                점 모으기 시작하면서 소품위주로 그림을 모으기 시작했던 거죠. 미
                                                국에서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외국작가들이 우리나라를 소
                                                                                                       1
                                                재로 그린 그림이나 판화를 모으기도 했고요. 돈이 많아서 유명하고                   2




                         작가
                                                비싼 그림을 모은 거부는 아니고 저렴한 그림들, 즉 소품, 판화를 모
                                                아서 2~300점정도 모았어요.


                                               ● 소장품 중에 가장 애착이 있는 작품이 있다면요?
                                               ○ 다 애착이 가지만, 특별히 애착을 가졌던 그림이 두 가지가 있어요.
                         일시 : 2012. 5. 29
                         장소 : 최순우 옛집            이중섭의 스승 중에 임용련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예일 미술대학
                         대담진행 : 양병이 (서울대학교      을 수석 졸업에 프랑스에서 일찍부터 상을 받았던 분인데, 그분이 국
                         명예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대표)    내 오산학교에서 미술 선생을 할 적에 이중섭이 학생이었죠. 그의 그
                                                                                                       1 임용련 <십자가 고난의 상>
                                                림이 국내에 딱 두 점밖에 없는데, 최초의 성화라고 할 수 있는 <십자                2 김기창 <판상도무>

                                                가 고난의 상>을 미국에서 발견을 했어요. 우리 미술사에서 가치가 있
                                                을 뿐 아니라, 그림 자체가 너무 좋았습니다. <한국미술100년展>에 소
                                                개됐습니다.
                                                두 번째로는 운보 김기창 선생의 <판상도무>라고 어린 소녀들이 널        만, 제가 봤을 때는 가짜를 그리려면 큰 그림을 그려야지 싶었죠. 막
                                                뛰기 하는 그림인데, 운보 선생이 조선미전에서 최초로 입선한 작품        상 받아보니 굉장히 섬세하고 흑백도판과 비교해보니까 거의 흡사하
                                                입니다. 입선한 작품은 국전그림이 그렇듯 무척 컸는데 6・25 전쟁       게 그린 그림이라서 색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복원할 수 있을 정도
                                                때 소실됐어요. 그 이후로 이 그림은 흑백도판으로밖에 전해지지 않        로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그림이에요.
                                                아서 원래 색이 뭔지 모르는 상태였죠. 운보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가장이 되었는데, 부츠라는 세브란스 치과 박사가 조그맣게 그림을        ●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다 출판사 쪽에서 출판 제의를 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리면 선교사에게 팔아주겠다 해서 소품을 그린 거예요. 그런 그림       ○ 제가 애리조나에서 장사를 할 적에 국내와 연락두절하고 장사에 매
                                                들이 미국에 건너왔고 자손들이 뭔지도 모르고 팔아서 미국경매에          진했었어요. 애들을 다 키우고 보니 인터넷 세상이 있더라고요. 지
                                                나온 거죠. 사람들은 이 그림의 색이 너무 선명하고 가짜 같다 했지       금은 페이스북, 트위터가 대세지만 그땐 블로그 세상이었어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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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쓰시면서최순우선생의어떤면에감명을받았는지설명을해주시죠.             자랑스러운 전시였으면 나라에서 80년대 초 우표 20종까지 만들었
                                               ○‘최순우’하면 많은 분들이 박물관에 계셨던 분,
                                                                         ‘무량수전 배흘림           겠어요. 단기(檀紀)로 해도 5천년이 안되는데 왜 5천년이냐. 기원                    │관객과의 질의응답│
                                                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쓰신 분, 성북동에 최
                                                        ,‘            를                      전 3천년의 미술품이 발견됐기 때문이지요. 최순우 선생이 1974년       ● 외국생활을 오래하셨는데 글쓰기 실력 어떻게 유지하셨나요?
                                                순우 옛집이 있다더라 그 정도로 알지요. 92년도에 나온 최순우 전        박물관장을 하던 당시, 강동 암사동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지와 빗살         ○ 감정이 한국에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조국을 늘 품고 있었다고

                                                집을 사서 보는데 세 번쯤 읽어보니 최순우 선생이 어떤 분인지 어         무늬토기가 발견됐어요. 선생이 과거 프랑스 선사유적지를 가보니,           말할 수 있겠죠. 그러면 언어감각이 부족하지 않느냐. 당연히 그렇죠. 그래
                                                                                                                                           서 근대에서 시작되는 인물의 이야기를 써보면 정신적인 삶의 모습을 조명
                                                렴풋이 그려지는데 극적인 부분 때문에 고민이 됐지요. 간송은 극적         선사시절 벽화와 토기를 프랑스 미술역사에 기원으로 따지더라는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구사능력이 국내에서 반짝반짝하는 작가들보다 떨
                                                인 부분이 많잖아요. 최순우 선생이 평생 쓰신 글이 600편정도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암사동에서 토기가 발견된 거죠. 우리 한국미술의           어져도 우직하게 써도 되는 게 전기 분야이기 때문에 쓸 수 있었죠.
                                                데, 그 안에는 공통된 주제가 있었어요. 우린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역사는 5천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우리나라와 전 세계에 발표한 거예
                                                                                                                                         ● 최순우 선생의 글을 보면 같이 심성이 부드러워지거든요. 이충렬 선생님이
                                                었죠. 1950~70년대 서부문화 숭배사상이 팽배해질 때 우리 문화를       요. 1976년에는 일본에서, 1979년에는 미국에까지 순회전시를 했습       생각하기에 최순우 선생은 어떤 품성인 분인 것 같다고 느끼시나요?
                                                강조했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선생의 출생부터 고유섭 선생으로부          니다. 당시 국내는 유신 말기로 상황이 흉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       ○ 제가 판단한 최순우 선생은 순한 소 같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불평하기보다
                                                                                                                                           묵묵히 주어진 상태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굉장
                                                터 어떻게 배웠는지, 박물관에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6・25 전쟁        시 덕에 올림픽 유치에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신 분이 최순우 선생이
                                                                                                                                           히 노력하신 분이죠. 선생의 업적이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에요. 노력했고
                                                때 국립박물관과 간송미술관의 작품을 어떻게 피난시켰는지, 부산           셨던 거죠.                                        또 누군가를 만납니다. 최순우 선생은 고유섭 선생을 만났고 간송을 만났어
                                                1・4후퇴 때 어떻게 미술품을 보호하셨는지, 간송과의 관계는 어땠                                                       요. 고유섭 선생을 만날 적에 국어 선생의 길을 갈 수 있었지만, 고유섭 선생
                                                                                                                                           을 알아봤던 것도 최순우 선생의 안목이고 열정이었겠죠. 우리 것에 대한 열
                                                는지, 그걸 따져보기 시작하니까 광맥이 발견되는 거예요. 책이 재        ●“청년 시절의 글쓰기- 이민생활- 그림 수집- 작가” 이어지는 이충렬
                                                                                                                         로
                                                                                                                                           정이 남달랐고 그것이 당대의 안목과 심미안을 만들어준 원동력이라고 생
     서 블로그를 하나 만들었는데 무얼 써야하나 고민하다 그림을 좀 모       미있습니다.                                       선생님의 여정이 다이내믹합니다. 앞으로는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각합니다.
     으고 있으니 그림에 대한 얘길 쓰면 되겠더라고요. 맨 처음 소개한 그                                                 ○‘조명이 아직 안됐지만 이분 이야기가 없었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
                                                                                                                                         ● 학생으로서 안목을 높이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림이 미국화가가 1950년대 중반 한국에 와서, 장사하는 아주머니’
                              ‘          를     ● 책 쓰시면서 최순우 선생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다면요?        로 문화에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세 편 더 써볼 생각입니다. 우리
                                                                                                                                         ○ 아주 쉽습니다. 그렇지만 멉니다. 틈날 때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세요. 감
     그린 동판화 그림이었어요. 그걸 올렸는데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       ○‘혜곡(兮谷)’ 뜻을 아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깊은 골짜기? 땡! 혜
                                                       의                                     나라에 전기작가가 없어요. 전기를 쓰려면 그 분야에 대해 공부해야          사하게도 공짜입니다. 1층에 빗살무늬토기가 있습니다. 한국미술 5천년전
     려온 거예요. 그 후로 일주일에 한번 씩 그림이야기를 쓰게 된 거죠.     곡의 혜는 어조사 혜(兮), 즉 아무 뜻 없는 글자입니다. 호는 뜻을 담아    하니 드물 수밖에요. 지금은 돈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자서전 등이 나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안 들었을 때 보는 게 다를 겁니다. 청자실에서는 강
                                                                                                                                           진에서의 최순우 선생이 애썼던 마음이 느껴지면 더 애틋하게 보이겠죠. 자
     그러다가 제 블로그를 보던 분이 김영사에 쓸 만한 필자라고 소개해       짓기도 하고 태어난 곳으로도 짓습니다. 율곡(栗谷) 이이는 밤나무골        오는 세상이죠. 야무진 꿈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도 문화적, 역사적
                                                                                                                                           주 가서 많이 봐야합니다. 제 제안이 아니라 모든 미술사학자들의 공통된 답
     준거죠. 계약을 하고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거기서부       에서 태어난 이이란 뜻이고, 혜곡 최순우는 해나무골에서 태어난 최순        으로 훌륭한 분들에 대해서 전기, 연보식의 평전이 아니라 이야기 구         입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시시한 그림은 눈에 안 들어옵니다. 그게 안목
     터 애매해 진거예요. 대학졸업도 안했어, 소설가도 아니야, 큐레이터      우란 뜻이에요. 그렇다면 최순우 선생의 고향인 개성에 해나무골이 있        조를 가지고 있는 전기의 풍토를 남긴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          과 심미안이 느는 겁니다.

     도 아니야, 화가도 아닌 내가 그림 이야기를 쓴다? 심각한 고민을 했     느냐, 궁금하시죠? 운보 김기창 선생이 어린 시절 정화학교에 다닐 적       목숨 걸고 써보려 합니다.
     어요. 그래서 결론을 내린 게, 나는 평범한 개미 콜렉터로서 그림 한     에 최순우와 동무로 함께 지냈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정화학교 출신
     점 사고 싶은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고 몇 십만 원짜리의 그림이라       들의 기록을 찾아봤더니 그곳이 해나무골이랍니다. 간송 선생이 최순        ● 마지막으로 내셔널트러스트의 활동에 대한 소감이나 격려 한 말씀 부탁
     도 사서 걸어놓는 의미를 이야기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 책이 <그     우 선생의 호를 지으실 때‘해곡’
                                                                 이라고 하면 폼이 안나니‘혜곡’
                                                                                 이라          드립니다.
     림애호가로 가는 길>이에요.                            고 하면서‘혜’ 의미없는 어조사
                                                       자를        ‘혜’ 지은 것이죠. 순우’
                                                                   자로      ‘   도            ○ 내셔널트러스트와의 인연은 벌써 5년쯤 됩니다. 최순우 옛집에서
     그다음에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간송 선생 이야기였어요. 선생의 평       간송이 지어주신 필명인데 간송 자제들의 돌림자가‘우’
                                                                            자에요.             후원 경매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김종학 선생의 붓꽃 그림을
     전이 없더라고요. 처음엔 책 얘기도 간송댁에 얘기를 못했어요. 다                                                    구입했었어요.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최순우 선생 평전까지 왔네요.
     쓴 다음에야 허락을 받고 간송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래서 나온 책이    ● 최순우 선생의 업적이 많지만 그중에서 손꼽을 만 한 이야기가 있다면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최순우 선생의 집과 같이 한국미가 잘 구현된
     <간송 전형필>이고요. 또 1920~50년에 외국인들이 그린 우리 근대    무엇일까요?                                       집들은 후손들에게 전해지면 좋겠고 더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하면 좋
     의 그림이 많아요. 그걸 중심으로 근대 얘기를 하면 좋겠다 싶었고,     ○ 고유섭 선생이 최순우 선생에게 주신 숙제로 청자기와 가마터를 발         겠어요. 그래서 이번 책의 인세 30%는 내셔널트러스트에 기증합니
     출판사 쪽에서도 근대에 관한 책으로 의미있는 작업이 되겠다고 해        견하라는 거였는데 발견되지 않았지요. 그러다 1964년에 정양모 선        다. 내 이름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최순우 선생이 훌륭해서 책을 사
     서 의기투합을 해서 낸 게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이었죠.     생과 강진을 다니셨는데 나침반 들고 산을 돌아다니다 간첩으로 오          보시는 거니까요.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은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더
     <혜곡 최순우, 한국 미의 순례자>는 최순우 옛집에 들렀다가 송지영      인 받아 파출소에 붙잡혔어요. 파출서에서 나오는데 아줌마들이 청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독자분들도 내셔널트러스트 활동
     학예사가 만약에 최순우 선생의 책을 쓴다면 자료를 적극적으로 지원       자 파편을 들고 나와서 팔더랍니다. 어떤 아줌마 집 마당에 가니 그        에 동참하면서 오는 기쁨을 맛보실 수 있는 계기를 가져보시길 바랍
     해주겠다고 해서 쓰게 된 거예요. 이제까지 나온 우리나라 평전 중에      곳이 바로 청자기와 가마터였습니다. 그러면서 강진군 일대를 발굴          니다.
     서 가장 잘 쓴 평전이란 평을 못 받으면 글을 안 쓰겠다고 생각하고      했고 결국에는 강진이 청자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겁니다.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사람>은 명사와의 대담현장에 회원들을 초청하여 오픈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쓴 책입니다(웃음).                                또 하나는 1976년에 열린‘한국미술 5천년전(展)’
                                                                            입니다.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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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NT 이야기 |




금융재벌가‘로스차일드’
           풍의
와데스돈 저택
조명래 | 내셔널트러스트 이사, 단국대학교 교수




                                                                                                                                                                                                               사진 James Stringer




                                                                                                                                                           (château)을 모델로 하여 건축되었다. 그러나 건물 밖의 정원은 빅토리아식 풍경정
                                                                                                            <2009~2010년 가장 많이 찾은 영국 10대 NT사이트>
                                                                                                            1. Wakehurst Place Garden — 439,627            원(landscape garden)으로 꾸며져 있고, 저택 내부는 유럽 유수의 그림, 도자기, 가
                                                                                                            2. Stourhead — 351,358                         구, 카펫, 패브릭 등의 컬렉션으로 채워져 있다. 이 건축물은‘로스차일드 풍(Goût
                                                                                                            3. Waddesdon Manor — 348,308
                                                                                                                                                           Rothschild)’
                                                                                                                                                                      으로 불릴 정도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4. Fountains Abbey & Studley Royal — 339,326
                                                                                                            5. Attingham Park - 257,340                    은행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은 한 때 유럽 전역에 41개의 대저택을 소유한 바 있다.
                                                                                                            6. Polesden Lacey — 256,493                     현재 전 세계 금융과 매스컴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대자
                                                                                                            7. Belton House — 249,785
                                                                                                                                                           본의 본산으로서 로스차일드 가문은 25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뿌리는 1744년
                                                                                                            8. Carrick-a-Rede Rope Bridge — 248,609
                                                                                                            9. Calke Abbey - 244,767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지역 게토에서 태어난 1대 메이어 암셸 로스차일드
                                                                                                            10. St Michael‘s Mount — 240,557               (Mayer Amschel Rothschild: 1744 1812)다. 그는 거지굴에서 고물가게와 환전
                                                                                                                                                           상으로 돈을 벌어 기적의 금융제국을 일으킨 인물이다. 로스차일드 은행을 창설한
                                                                                    사진 Paul Englefield
                                                                                                                                                           그는 국경을 초월하는 거대한 금융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다섯 아들에게 엄격한
                                                                                                          런던 서북쪽으로 뻗어있는 A41(국도)번을 따라 올라                    유대교육을 시킨 뒤 유렵 전역으로 모두 내보냈다. 장남 암셸(Amschel)은 독일 프랑
2010년 회계연도 말 영국내셔널트러스트(영국NT)의 회원은 3백7만 명, 총수입액은           데스돈 저택(Waddesdon Manor)’
                                                                                 으로 348,308명, 4          가다 보면 버킹엄셔(Buckinghamshire)의 에일즈버                 크푸르트 본가의 후계자로 삼고, 차남 살로멘(Salomen)은 오스트리아 빈, 삼남 네
4억6백만 파운드(약 7300억 원)이었다. 보전을 위해 소유하고 있는 토지는 63만 에         위는‘파운틴즈 애비 & 스터들리 로얄(Fountains Ab              리(Aylesbury)란 곳을 만나게 되는 데, 와데스돈은 이                이던(Nathen)은 영국 런던, 사남 카를(Karl)은 이탈리아 나폴리, 오남 제이콥
이커(약 서울시 면적의 4.2배)로 전 국토(잉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의 1.5%에         bey & Studley Royal)’ 339,326명이 각각 찾았다
                                                                              로                          곳에서 6마일 떨어진‘에일즈버리 베일 디스트릭트                        (Jacob)은 프랑스 파리로 각각 보내 은행지점을 세워 세계금융 대제국의 기초를 닦
해당한다. 전국 해안선의 5분의 1(1,126km, 서울-부산 간 거리 2.4배)도 소유관리       (표 참조). 1위인 웨이크허스트 플레이스 가든은 런던                 (Aylesbury Vale district)’ 소재한 마을이다. 마을
                                                                                                                                  에                        았다. 이 후손들은 나폴레옹 전쟁과 1차, 2차 세계대전을 활용해 엄청난 부를 쌓고,
하고 있다. 또한 영국NT는 문화재급 대저택들을 전국적으로 200여 곳을 보전관리             남부지역에 있는 세계 최대 식물원인‘큐 왕립식물                     이 내려다보이는 다소 황량한 언덕에 프랑스 고성 풍의                     비스마르크, 처칠, 드골 등 권력자들을 후원하면서, 유럽의 정치와 경제계에 막강한
하고 있고 약 2백만여 점의 문화유산들을 소장하고 있다.                           원’ 부속시설과 같이 관리운영하고 있어 방문객의 수
                                                           이                                             화려한 대저택이 와데스돈 저택이다. 이는 19세기 유                     영향력을 행사했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로스차일드 가문 사람들은 돈으로 유대민
 영국NT 사이트는 영국 국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관광 위락지다. 회원이 되면 모든            가 특히 많다. 이를 제외하고 2, 3위를 다투는 곳은 풍경              럽의 금융계를 지배했던 유태계 은행재벌 로스차일드                       족의 꿈인 이스라엘 건국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여 2천년 유랑생활의 한을 풀었다.
곳을 무료로 입장해 즐길 수 있어 회원증은 인기 있는 선물 품목이다. 영국NT는 방문           정원이 딸린 대저택(장원)인 스토워헤드와 와데스돈 두                  (Rothschild) 가문의 페르디난트 제임스 본 로스차일                  와데스돈 저택을 건립한 로스차일드 남작은 비엔나 패밀리(family)를 연 차남 살
객이 5만 명이 넘는 10대 사이트를 선정해 매년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2009~10년          곳이다 (스토워헤드에 관한 이야기는 <내셔널트러스                    드 남작(Baron Ferdinand James von Rothschild)에       로멘의 손자, 즉 살로멘의 둘째 아들 안젤름(Anselm)의 둘째 아들에 해당한다. 그는
보고서’ 의하면, 1위가
   에         ‘웨이크허스트 플레이스 가든(Wakehurst Place Garden)’     트> 14호 참조). 와데스돈은 2010년에 3위를 했지만 두             의해 지어진 건축물이다. 특이하게도 이 건물은 프랑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런던으로 이주하여 영국 국적을 취득했고, 1865년 6월5일 26
으로 439,627명이 찾았다. 2위는‘스토워헤드(Stourhead)’ 351,358명, 3위는
                                      로              ‘와   해 전까지만 해도 2위의 자리를 줄곧 지켰다.                      스 르와르(Loire)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르네상스식 성                  세에 런던 지점을 창설했던 네이든(Nathen)의 딸인 사촌과 결혼했다. 그러나 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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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아들을 사산하면서 부인도 함께 세상을 떠났다. 죽은 부인을 추모하기 위해 남작                     조각을 입힌 장식판자(boiseries), 가구, 세라믹스, 영                 남작이 모았던 르네상스 예술작품이나 무기들은 대영박                데스돈 장원(저택 제외)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앨리스 재단(the Alice
은 런던 남쪽 서더크(Southwark)에‘병든 아동을 위한 에블리나 병원(Evelina                 국과 네덜란드 회화, 르네상스 예술작품 등이 망라되                        물관에 기증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와데스돈 저택은               Trust)을 통해 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단체는 영국정부에 정식으로 등록된 기부금단
Hospital for Sick Child)’ 건립했다. 그 후 8년 뒤인 1874년, 그는 버킹엄셔 와데
                        을                                         어 있었다. 정원조경에도 신경을 써, 조각상, 정자, 새                     5세 이하 아동을 런던으로부터 피난시켜 돌보는 수용시               체로서 로스차일드 집안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1993년, 장원 소유자인 제이콥은 와
스돈 마을 인근의 땅을 사서 1889년까지 근 15년간 와데스돈 장원을 건설했다. 그렇                  장 등을 다채롭게 설치했다. 심지어 북이탈리아 파마                        설로 활용되었다. 1922년에 앨리스가 세상을 떠나자,              데스돈 저택을 반독립적으로 운영(semi-independent operation)할 수 있는 권한
게 해서 와데스돈은 전체가 하나의 장원 마을(estate village)로 바뀌었다. 그곳에는              공작(Dukes of Parma)의 저택에서 프로세르피나                     재산과 소장품들은 사촌 조카인 제임스(James)에게 상             을 영국NT로부터 부여받았다. 이는 영국NT가 특별하게 마련해준 것이다. 말하자면
일꾼과 소작인들을 위한 집, 학교, 퍼블릭 하우스(일종의 선술집), 크리켓시설, 마을                   (Proserpina: Jupiter와 Ceres의 딸, Pluto에게 납치          속되었다. 지미(Jimmy)로 불린 제임스는 로스차일드              저택의 소유권은 영국NT가 가지고 있지만, 원래 주인인 제이콥이 앨리스 재단을 통
회관 등이 들어섰다.                                                       되어 저승의 여왕이 됨) 상이 새겨진 분수도 가져와 설                      가문의 프랑스 패밀리(오남 Jacob의 후손) 출신이다.             해 저택을 보전관리 하도록 하되, 장원의 다른 시설과는 별개로 하라는 뜻이다. 이는,
 장원 마을의 중심은 와데스돈 저택이다. 집주인 남작은 처음부터 프랑스 중남부                       치했다.                                                그는 파리에 있는 아버지 에드몬드 제임스 드 로스차일               영국NT가 다른 사이트에 적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와데스돈 저택에만 예외적으로
르와르 지역에 르네상스 고성 형태의 저택을 짓길 원했다.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                        정원조경은 프랑스 조경설계가 레네(Lainé)에 의해                      드 남작(Baron Edmond James de Rothschild)의 소   허용했던 관리방식이었다. 대신 영국NT는 중요한 복원사업을 감독하거나 방문객 유
위해 그는 프랑스 건축가‘가브리엘 히폴리테 테스테일러(Gabriel-Hippolyte                   설계되었다. 정원을 조성할 때 당시로선 획기적인 방법                       장품들을 가져와 와데스돈 저택을 더욱 섬세하게 꾸몄                치를 위한 대외홍보만 전담했다. 운영을 맡고 있는 엘리스 트러스트가 최근 들어 역
Destailleur)’ 고용했다. 테스테일러는 프랑스의 여러 지역에서 고성을 르네상
            를                                                     들이 사용됐다. 다 자란 나무를 통째로 이식하기 위해                       다. 세 번째 주인인 제임스는 1957년에 죽었다.                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와데스돈의 소장품들을 업데이트시키기 위해 새로운 예술작
스식으로 복원하거나 건축해 그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던 건축가였다. 와데                       마취제를 사용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이식에                         그는 죽으면서 와데스돈 저택과 부속 토지 200에이               품들을 매입하거나 수집하는 일이다.
스돈 저택은 남작이 꿈꾸는 고성 모습의 바탕에 테스테일러의 비전을 통해 여러 요                      따른 나무의 충격을 최소화하고자 방안이었다. 덕분에                        커(약 810,000m²)를 사후 영구 보전을 위해 영국NT            2003년 6월10일 영국에서 유명한 존슨 갱(Johnson의 자녀와 친척들로 구성된 가
소가 절충적으로 가미되었다. 와데스돈 저택의 탑은 맹트농 고성(Château de                     성목(成木)들을 성공적으로 이식해 정원조경을 쉽게 꾸                       에게 유증했다. 영국NT는 부동산뿐만 아니라 관리운                족 강도단)이 들어와 약 100여점에 달하는 프랑스산 금제 코담배갑과 보석이 새겨진
Maintenon)에서 따왔고, 두 개의 철제 계단 건물은 샹보르 고성(Château de                몄다. 정원을 이렇게 꾸민 자체가 당시엔‘경이로운 일                       영에 필요한 기금 성격의 75만 파운드(2012년 가치로             소품 등을 훔쳐갔다. 그 대부분은 이후에 한 점도 회수되지 않았다. 도난품 중에는
Chambord)에서 따왔다. 와데스돈 만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탑의 창문들은 샹보르                   (wonder)’
                                                                          이라 불릴 정도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이                    13,461,320파운드, 한화 약 242억 원)의 기부금도 증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로서 프랑스 혁명
고성과 달리 유리로 채워져 훨씬 장식적이면서 고급스럽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구조                      를 보기 위해 1890년 빅토리아 여왕이 직접 방문까지                      여받았다. 이 기부금액은 영국NT가 지금까지 받은 것               때 처형당함)나 퐁파두르 부인(Madame de Pompadour,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정
설계가 모두 과거회귀적인 것만 아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19세기 당시로                    했다. 그러나 여왕이 실제 매료되었던 것은 18세기 풍                      중 가장 큰 규모에 해당한다.                            부)의 소장품도 있다. 이 도난 사건 덕택에 와데스돈 저택은 금융재벌‘로스차일드
선 혁신적인 요소들이 많은 부분에 도입되었다. 가령, 저층부를 철제 프레임으로 구                     샹들리에에 들어온 전깃불이었다. 여왕은 샹들리에의                          와데스돈 저택을 제외한 장원의 다른 재산들은, 앨리               가(家)’ 대표적인 저택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다시 끌었다. 유명세 덕택에 와데스
                                                                                                                                                                      의
축함으로써, 고층부에 다양한 공간구조와 형태를 연출할 수 있게 했고, 냉・온수 시                     스위치를 10분 동안 끄고 켜고를 반복했다고 한다.                        스가 지은 이스로피 정자(Pavillion at Eythrope)를 포     돈 저택은‘퀸(Queen)’ 포함한 여러 영화 촬영지이자 TV 드라마 무대로 사용되
                                                                                                                                                                                을
설, 중앙집중식 난방시설, 하인들을 부르는 초인종 시설 등을 설치해 근대적 주거생                      로스차일드 남작은 1898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저택                     함해, 제임스(James)의 후계자인‘4대 로스차일드공              고 있으며, 영국NT 사이트 중 방문객이 가장 많은 사이트의 하나로 부동의 자리를
활이 가능하도록 했다.                                                      은 결혼하지 않은 여동생 앨리스 드 로스차일드(Alice                     (4th Lord Rothschild)’ 상속되었다. 제이콥 로스
                                                                                                                                           에게                     지키고 있다. 2012년 영국의 숲 트러스트(the Woodland Trust)는 엘리자베스 여
 건물이 완성된 이후, 남작은 문화예술 작품들을 수집해 건물 안팎에 설치하는 데                      de Rothschild)에게 넘겨졌다. 새 주인은 수집품들을                  차일드(Jacob Rothschild)로 불리는 4대 로스차일드         왕 즉위 60주년(Diamond Jubilee) 기념의 일환으로 와데스돈 저택을‘60주년 기념
열중했다. 수집품에는 18세기 프랑스 태피스트리(tapestry, 그림을 짜 넣은 직물),                모아 집을 꾸미는 데 더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오빠인                       공은 와데스돈 저택의 핵심 기부자다. 그의 기부는 와               숲’ 하나로 지정했다.
                                                                                                                                                                   의


18   | 2012년 여름호 |   |                                                                                                                                                                              | 2012년 여름호 |           |   19
|✽근대문화유산 |




거창의 거인
최남식 가옥
안창모 | 경기대학교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역사문화환경보존프로그램




                                          함양에서 1084호 지방도로를 달리다 거창군에 거의 다    계림농원! 최남식 선생이 운영했던 농원이다
                                          다라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왼편에 이국적       해방 전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에서 유학했지만, 1939년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한 선
                                          인 모습의 집이 한 채 보인다. 우리의 농촌에서는 좀처럼   생은 서울을 뒤로 하고 거창으로 내려왔다. 학생 당시 꿈꾸었던 농촌계몽의 실천을
                                          보기 힘든 급경사의 만사드 지붕을 가진 집. 최남식 가    위해서였다. 그는 방학 때마다 농촌계몽대에 참여하며 비참한 농민생활을 개선하여
                                          옥이다.                              잘사는 농촌을 꿈꾸었다고 한다. 선생의 오랜 꿈이었다. 선생은 법원 공무원이었던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5대, 6대, 9대 회장! 최    부친을 따라 거창으로 돌아와 군청에 근무하면서도 빚을 얻어 공동묘지 주변의 황무
                                          남식 선생 이력의 일부다. 농업에 종사하면서 가장 명     지 2500평을 사서 개간하기 시작했다. 1940년 계림농원을 열고 농사일을 시작한지
                                          예로운 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회장을 3차례나 역임했       4년만에 황무지 개간의 큰 성과를 낸 선생은 큰 돈을 벌었고,
                                                                                                             ‘신농씨’
                                                                                                                 라는 별명도
                                          으니, 선생은 농촌계몽과 농업인의 권익보호를 위해       얻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성공을 독식하지 않았다. 성공을 이웃과 함께 하
                                          평생을 보내며 거창군은 물론 한국의 농촌사회를 위해      기 위해‘공동회의소’ 지어 동네사람들을 계몽하였는데, 곧이어 새마을운동의 열
                                                                                      를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이 거창군     풍으로 이어졌고, 거창은 사과의 고장이 되었다. 그 노력이 인정을 받아 1968년 선생
                                          민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그가 거창 사과의 뿌리     은‘제3회 국민이 주는 희망의 상’후보로 선정된 바 있다. 그의 꿈을 실천에 옮긴지
                                          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자신이 평생을 모     30년만의 일이다.
                                          아온 적지 않은 소장품과 유물을 거창군에 기증하여 거      이제 선생의 꿈이 담긴 집을 살펴보자. 그는 27세 되던 해에 네덜란드식 전원주택
                                          창박물관을 만들었다. 그는 거창의 먹거리인 사과의       을 모델로 한 채의 집을 지었다. 동화 속에서나 나옴직한 이국적인 주택이었는데, 선
                                          씨를 뿌리더니 이제는 박물관을 통해 거창에 역사와 문     생이 직접 설계하고 지었다고 한다. 건축을 배운 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화의 모종을 심고 뿌리를 내리도록 한 것이다.         훌륭한 집이 아닐 수 없다. 여러 차례 증축을 통해 곳곳의 모습이 바뀌었지만, 지금
                                           2007년 3월 1일 별세한 선생의 영결식이 거창문화원   도 선생이 처음 지었던 집의 아우라는 여전하다. 선생은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부인
                                          노제로 치러졌고, 영결식에는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        이 집을 지키고 계신다.
                                          합회, 한국농업경영인거창지회, 거창농민회, 거창문화       오후 늦은 시간에 방문을 했는데, 마침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선생의 부인 배태학
                                          원, 아림예술제위원회, 거창박물관 등 농민단체와 예술     여사를 집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방문 경위를 설명 드리니 기꺼이 집안으로 안내해
                                          단체 등 500여명이 참석한 것은 생전에 선생이 보여준    주셨다. 부인의 연세는 벌써 90세를 훌쩍 넘겼지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시고 밭일
                                          농촌과 거창에 대한 헌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을 할 정도로 정정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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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2 | Summer | No.24 www.nationaltrust.or.kr 멸종위기식물 매화마름이 피는 꽃논을 분양합니다 멸종위기식물 보존 캠페인 꼭 지켜야 할 멸종위기식물 매화마름. 하지만 농약과 화학비료로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게다가 고령화된 농촌에서 유기농조차 쉽지 않습니다. 매화마름이 피는 꽃논의 일정면적(기본 6평)을 분양받아 주세요. 그럼 그 만큼의 면적을 유기농으로 가꾸고 매화마름과 지역주민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 논에서 서식하는 멸종위기식물 매화마름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양받으신 매화마름 꽃논 만큼의 면적에서 생산된 유기농 쌀(6평기준/5kg 1포)을 드립니다. ※ 쌀의 증정은 분양 받으신 당해년도에 한합니다. 6평의 매화마름 꽃논(30,000원)을 사주시면 매화마름 쌀 1포를 보내드립니다. 지역주민들께서 매화마름 보전을 위해 시작한 유기농으로 강화도 최초의 유기농인증을 받았습니다. 매화마름은 겨울에도 논에 물을 가두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1년 내내 무논을 유지하며 논습지의 생물다양성, 그리고 우리 밥상의 건강을 지킵니다. ‘매화마름쌀’ 매화마름 보전과 무논유지에 동의한 농민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상표입니다. 은 ※ 후원계좌 : 외환은행 630-007729-669 (예금주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 ‘꽃논사랑 후원금’ 기부금영수증을 발행해 쌀과 함께 보내드리며 연말정산 세제혜택이 있습니다. 은 ISSN 1976-2577
  • 2. CONTENTS 04 집중과 조명 조선시대부터 지켜온 왕실 삼산밭 박봉우 | 강원대학교 산림대 조경학과 교수, “숲과문화”편집인 희귀 멸종위기식물의 보고 엄태원 | 상지대학교 산림과학과 교수 가리왕산스키장 대안지 민간 차원에서 재검토하기로 남준기 | 편집위원, 내일신문 기자 12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 이충렬 작가 양병이 | 서울대학교 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 16 영국NT 이야기 금융재벌가‘로스차일드’풍의 와데스돈 저택 조명래 | 내셔널트러스트 이사, 단국대학교 교수 20 근대문화유산 거창의 거인, 최남식 가옥 안창모 | 경기대학교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역사문화환경보존프로그램 23 내셔널트러스트 여행 굽이굽이 순천만을 향하여~ 이사천 절강(切江) 박영란 | 순천시청 24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자연이야기 백령도 터줏대감, 점박이물범 백용해 | (사)녹색습지교육원장 곤드레와 딱주기 이야기 고주환 | 작가 28 품안에 ‘1 for 2’우리 2를 위한 나의 1가지 행동 30 회원인터뷰 자연을 위한 모금캠페인, 그리고 소중한 발자국 박영기 회원님 | YK안과의원 원장 NT의 지방모임이 활성화되길! 김민제 회원님 | 한국산업인력공단 광주지역본부 근무 32 내셔널트러스트 추천도서 혜곡 최순우, 오늘에서야 당신을 온전히 만납니다! 정양모 | 前국립중앙박물관장 34 내셔널트러스트 소식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소식 35 내셔널트러스트 알림마당 공지사항 36 후원해주시는 분들 2012년 3월 ~ 5월 후원내역 38 품안에 지구를 지키는 선물 39 팝업카드시리즈 청주 원흥이 방죽 두꺼비 발행일 2012년 7월 9일 발행처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발행인 김홍남 양병이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11길 20 우리빌딩 4층 2012년 여름호 편집위원장 이은희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4가 72-4번지 우리빌딩 4층) 편집위원 강동진 남준기 서왕진 안창모 오충현 전화 02-739-3131 유상오 윤인석 임정진 전은정 조명래 한동욱 전송 02-739-9598 기획 허주희 1년 정기구독료 20,000원 편집인쇄 (주)디자인내일 (정기구독료는 후원금으로 사용됩니다.) ISSN 1976-2577 www.nationaltrust.or.kr * 본지에 게재된 글과 사진, 그림은 페이스북 www.facebook.com/trustkorea 무단 전재하거나 복제하여 사용할 수 없습니다. 트위터 @ntrustkorea ※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기증과 기부를 통해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을 확보하여 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입니다. 표지 백령도의 점박이 물범 사진 남준기 내일신문 기자 목차사진 가리왕산 하봉능선의 개다래나무 사진 남준기 내일신문 기자
  • 3. |✽집중과 조명 | 왕사스레나무 화전민 집터 조선시대부터 지켜온 왕실 삼산밭 고구려 남진세력권에 포함되어 하서라(河西良, 阿慧羅)이었으나, 550년(신라 진흥왕 11년)에 신라 영토에 포함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도 신라 동북 국경지대로 고구려나 가리왕산은 산이 높고 웅장한 세를 형성하고 있고, 전 형적인 육산(陸山)으로 자작나무와 주목이 군락을 이루 말갈 세력과 자주 충돌을 일으킨 곳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하서주(河西 고 있고, 기타 활엽수가 극상을 이루고 있다. 현재 천연 박봉우 | 강원대학교 산림대 조경학과 교수,“ 숲과문화”편집인 州)를 설치하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년)에 명주(溟州)라 하였다. 1263년(고려 원 보호림지이며, 주목 군락지를 중심으로 산림유전자보 종 1년)에 강릉도로 개칭, 1308년(고려 충령왕 34년)에 강릉부로 개칭하였다. 정선은 호림이 설정되어 있다. 또 다양한 약초 류와 풍부한 초 배경 : 정선과 평창 그리고 강릉 강릉, 정선, 평창을 아우르는 이 지역은 구석기 시대에 사람이 살았다는 구체적인 668년(고구려 보장왕 27년) 잉매현(仍買縣)이라 하였으며, 신라는 757년에 정선으로 본 류의 꽃을 밀원으로 하여 양질의 꿀을 산출하는 곳이 가리왕산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가리왕산을 포함하 증거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특히 정선과 평창에 다수 존재하는 동굴을 조사한다면 개칭하여 명주에 소속시켰다. 평창은 5세기 경 고구려에 속하여 욱오현(郁烏縣) 혹은 기도 하다. 고 있는 지역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 그 가능성이 있고, 인접한 제천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점과 편리한 수로로 남한강 우오현(于烏縣)이라 하였다가 신라에 편입되어 757년에 백오현(白烏縣)으로 개칭하 경관으로는 숲과 계곡이 어울린 자연경관이 뛰어나 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하나의 특정한 산이 차지하는 과 연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에서도 이른 시기부터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은 고 나성군(현, 영월)에 소속시켰다. 940년(고려 태조 23년)에는 평창현으로 개칭하여 서 가리왕산 8경을 정하고 있다. 가리왕산 8경은 상봉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지역과 연계된 맥락에서 산 높다고 할 수 있다. 정선 임계천의 고인돌, 평창 계장리 등지의 고인돌과 선돌, 강릉 원주에 속하게 하였다. 이러한 초기 역사는, 세 지역이 맥국과 관계를 맺고 있다가 고 인 망운대, 가리왕성터의 샘터인 동심과 서심, 중봉인 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안현동과 장현동의 고인돌 군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특히 평창의 여만리와 응암리에 구려에 속하였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757년 이후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대체로 후룡봉의 시녀암, 하봉의 백수암, 북쪽 사면의 계곡 여 가리왕산이 자리한 위치는 현재 강원도 정선군과 평 서는 초기 철기시대의 적석총이 발견되어 삼국시대 이전의 연맹왕국 단계도 존재하였 지금과 같은 권역체계를 형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울인 장자탄, 용굴 계곡, 회동리 계곡, 비룡종유굴 등으 창군이며, 조선시대에는 여기에 더해서 강릉과도 연계 음을 알 수 있다. 평창의 발왕산과 정선 가리왕산의 가리(갈)왕 등 맥국(강원도 춘천 로 구성된다. 되어 있다. 지역 구분을 이루고 있는 경계는 지형지리적 지방의 고대 국가)과 관련된 구전에서 연맹왕국과의 연계를 시사한다고 하겠다. 원시 산과 경관 요인과 더불어 경제권역의 근접성 혹은 편리성에서 비 사회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수렵-채취시대의 무리 집단은 25~30명으로 이루어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회동리와 북면 숙암리 및 평창군 진부면 장전리에 걸쳐 자리하 가리왕산의 역사성 롯된 것이다. 조선시대의 지역구분을 보면 때로는 현재 졌고, 부족이나 동족의 무리도 천 명을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러한 까닭에 기원전 고 있는 가리왕산은 해발 1560미터이고, 그 북서쪽에 백석산(1365미터), 서쪽에 중왕 가리왕산은 조선시대 지도인“대동여지도” ‘가리 에는 와 상당히 다른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지리적 이점과 3000년경에는 평균 수십 명 정도의 사람으로 이루어진 개별적 정치 독립체가 거의 산(1377미터), 동남쪽에 중봉(1438미터), 하봉(1379미터), 남서쪽에 청옥산(1289 산(加里山)’ “해동지도” ‘가리왕산(伽里王山)’ 으로, 에는 경제권역의 연속성과 접근성의 우위에 의한 것이지만, 100만 개 정도 존재했다고 추정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전하는 삼한의 소국명 미터) 등을 거느리고 있다. 높은 봉우리 사이의 낮은 곳은 자연스럽게 사람과 지역을 으로 표기하고 있다. 현재는 가리왕산(加里旺山)이라 다분히 도보나 역마를 활용한 교통수단의 한계에서 비 이외에도 지역의 구전에 따른 개별적 정치 독립체의 존재를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는 연결해 주는 고개가 되었고, 현재 전하는 고개로는 청옥산과 중왕산 사이의 벽파령, 하고 있다. 이것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임금 왕(王) 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지금과는 달리 강 이유로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청옥산 남쪽의 성마령, 마전령 중왕산과 가리왕산 사이의 마항(말목재) 등이 전하고 자가 성할 왕(旺)자로 바뀐 것에서 비롯되는데, 이러한 릉이 내륙 깊숙이 그 권역을 포함하게 되었다. 강릉, 정선, 평창에 대한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강릉은 313년(고구려 미천왕 14년) 있다. 지명의 개명은 가리왕산에 한 한 것이 아니라‘왕’ 자를 4 | 2012년 여름호 | | | 2012년 여름호 | | 5
  • 4. 사용한 산 이름의 경우 거의 다 겪었다고도 한다. 가리 하는 측면에서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채삼을 금지하려는 목적으로 표석을 세운 왕산의 제 이름을 찾아 주어야 할 것이다. 가리왕산은 맥국의 가리왕이 이곳에 피난하여 성을 것인데, 이 표석의 현대적 의의는 한국의 인삼이 이러한 유전자 보존원 및 산출지를 확보해 오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거하는 데 있다. 인삼의 효용에 대한 국제적 가리왕산 숙암계곡은‘목신(木神)들의 숲’ 쌓고 머물렀다하여 가리왕산으로 부른다고 하며, 산의 인식도가 높아지면서 세계 각지에서 다량으로 산출되는 삼과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 한그루 한그루가 당산나무급… 둘레 140cm‘사시나무’ 거대수목 가득 등 북쪽 골짜기에 대궐 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맥국의 구체 는 우리나라 인삼은 이 봉표로 말미암아 수백 년 전부터 양질의 인삼 배양과 산출을 제 남준기 | 편집위원・내일신문 기자 적인 사적이라 할 수 있는 곳인데 본격적인 조사 연구가 도적으로 관리해 왔다는 역사를 내세워 다른 인삼과는 차원이 다른 고려인삼의 우수 기대되는 곳이다. 성을 홍보하는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목신(木神)들의 숲’ ‘한반도 숲의 모태(母胎)’ ‘숲의 다문화가정’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같은 숲’ 가리왕산스키장 예정지 숙암리 계곡 …. 근세에 있어서는, 1994년에 지방 유형문화재 113호 을 본 사람들의 소감이다. 이 사시나무를 보세요. 가슴높이 둘레 140cm가 넘습니다. 지름 45cm나 된다는 얘깁니다. 사시나무는 보통 지름 “ 로 지정된 삼산봉표(蔘山封標)가 있어 가리왕산의 역사 맺는말 30cm까지 자라지, 이렇게 큰 나무는 드뭅니다. 그만큼 이곳의 토양이 비옥하고 토심이 깊다는 거죠.” 성을 더해 주고 있다. 삼산봉표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필 가리왕산 지역은 강릉, 정선, 평창이 접점을 형성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높은 산 국립수목원 이병천 박사는“숙암리 계곡의 토심은 평균 1미터 정도 된다” “보통 산 계곡부의 토심이 30cm 정도니까, 다른 산보다 3배 이 며 요로 하는 인삼의 배양과 채취를 위하여 일반인이 함부 들이 연이어 있고, 조선시대에는 중요 역로에서는 벗어나 있어서 사람에 의한 훼손이 상 깊은 셈” 이라고 말했다. 로 출입하여 삼을 캐지 못하도록 입표한 것이다. 이 봉 상대적으로 적은 상태로 유지 된 곳이어서 뛰어난 자연 경관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대표 나무는 단연‘왕사스레나무’ 표는 동부지방 산림청이 임도 개설공사를 하면서, 해발 역사적으로는 맥국의 가리왕과 관련된 구전이 있어, 맥국의 실재성을 밝힐 수 있기 이렇게 깊은 토양층은 나무들의 풍화작용 때문이다. 수만년 이상 오랜 시간 동안 나무들 1050미터의 마항(말목재) 고개 정상에서 발견하였다. 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며, 조선시대에 입표한 삼산봉표가 있어서 한국의 고려 인삼의 이 암석층을 뚫고 뿌리를 내려 흙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토양에 자라는 가리왕산의 나 봉표는 청록색 자연석의 전면에‘강릉부삼산봉표(江陵 역사성을 명징하게 보여 주는 곳이다. 인삼이 산에서 내려와서 재배하게 되면서부터 무들은 다들 덩치가 크다. 중봉과 하봉에서 내려오는 1000미터 이상 능선에는 지름 府蔘山封標)’ 라고 세로로 크게 음각하고, 그 좌 우 측에 인삼 혹은 가양삼으로 불리면서, 정작 인삼은 자신의 본래 이름을 산삼으로 바꾸게 되 15cm 이상, 길이 5미터가 넘는 철쭉들이 무리지어 자란다. 지명 경계를 작은 크기로 세로로 음각하였다. 지명경계 었다. 아무튼 가리왕산은‘한국 민족문화 상징 100가지’ 하나인 인삼과 산삼의 고 의 신갈나무도 밑둥에서 첫 가지까지의 높이가 12미터가 넘는 거목들이 군락을 이룬다. 는 좌측에‘정선계(旌善界)’ 우측은 , ‘지명 마항(地名 향으로 중요한 가치를 보존해 온 곳이다. 또, 최근에 들어서는 천연보호림, 산림유전 보통 마을에서 자랐다면 한 그루 한 그루가 당산나무가 될 만한 나무들이다. 馬項)’ 이라하여 마항에서 정선까지가 인삼의 소출지임 자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산림자원을 통한 그 생태적 가치를 더하게 되었다. ‘물들메나무’ ‘물박달나무’ ‘올벚나무’ ‘산개버찌나무’ ‘물푸레나무’ 수많은 나 … 을 공고하고 있다. 가리왕산의 이러한 아름다움과 역사성, 그리고 생태성은 가리왕산의 가치를 구성 무 가운데 가리왕산을 대표할만한 나무는 단연‘왕사스레나무’ 한국특산종인 왕사스 다. 레나무는 북방계 나무인‘거제수나무’ ‘사스레나무’ 교잡종이다. 와 의 삼산봉표는 조선시대에 자연산 인삼(현재는 이를 산 하는 중요한 요소로, 우리가 왜 가리왕산을 있는 그대로 후세에 전해야 하는가를 말해 거제수나무는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는 거대수목으로 자라지만 한국에 오면 크기가 작 삼이라고 함)을 배양하고, 채취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 준다. 아지는데, 가리왕산의 거제수나무는 높이 20미터 이상으로 상당히 큰 편이다. 사스레나무 는 백두산 수목한계선에 자라는 중간키(높이 2.5미터 정도) 나무다. 이 두 나무가 만나 새로 운 종을 이룬 가리왕산의 왕사스레나무는 최대 20여미터까지 거대한 크기로 자란다. 회색 1 봉산 표지석 2 소나무 군락 표피가 벗겨진 울퉁불퉁한 근육질이 마치 멸종된 고대 포유류‘매머드’ 연상하게 한다. 를 1 2 거의 유일한 천연림 지대 1 2 상지대 엄태원(산림과학과) 교수팀의 조사 결과, 가리왕산의 왕사스레나무-신갈나무군 락은 평균 높이 16미터에 이르고 평균 식물종수 39종으로 종다양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반도 숲의 다문화가정’ ‘ 이란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슬로프 예정지인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 북쪽 사면은 대부분 조림지인 가리왕산 일대에서 거의 유일한 천연림이다. 이 숲은 아극상림 단계의 활엽수림으로 생태적 가치 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병천 박사는“가리왕산은 백두대간에서 벗어난 독립된 산군이고 1500미터가 넘는 높이에 석회암층이 많이 분포하는 등 산림생태계가 다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골고루 갖춘 산” 이라고 강조했다. 현가리왕산의 산림 유전자보지역을 훼손하지 않고 동계올림픽 알파인활강경기장을 건 1 가슴높이 둘레 140cm가 넘는 사시나무. 지름이 45cm나 된다는 얘기다. 설할 수 있는 대안지는 정말 없는 것일까?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과연‘환경올림픽’ 이 2 물박달나무. 보통 지름 30cm 정도 자라는데, 여기선 50cm 이상의 나무들 될 수 있을까. 이 수두룩하다. 6 | 2012년 여름호 | | | 2012년 여름호 | | 7
  • 5. | ✽집중과 조명 | 다음은 거제수-신갈나무군락으로 해발고 700~1,000m 부근에서 주로 자라며 거 제수나무, 신갈나무, 생강나무, 당단풍나무, 대사초, 국수나무, 붉은병꽃나무, 산새 풀, 참개암나무, 노린재나무 등이 생육하는 숲이다. 이 숲에 생육하는 식물종은 31종 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사스래나무-신갈나무군락으로 사스래나무 와 신갈나무가 주로 자라고 있으며, 우점종으로는 당단풍나무, 대사초, 참취, 단풍 1 2 취, 고로쇠나무, 큰개별꽃, 눈개승마, 벌깨덩굴, 박새 등이 자라는 숲으로 39종 정도 가 모여살고 있는 숲이다. 또한 다른 산의 숲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전나무-주목나무군락이 분포하고 있으며 전나무, 분비나무, 주목, 개시닥나무, 피나무, 두루미꽃이 생육하고 있으며, 우점종 은 생강나무, 대사초, 단풍취, 왕고로쇠나무, 투구꽃, 큰개별꽃 등이다. 가리왕산 일대에 자생하는 식물은 총 577종류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우리나 라 관속식물 4071종류의 14.2%이며 강원도에 분포하는 관속식물 1,913종류의 30.2%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비교적 식물자원이 풍부한 이유는 산림이 잘 보존되 어 있으며 아고산 침엽수림과 온대 활엽수림이 접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식물종다 양성이 높은 곳이라 판단된다. 이를 형태별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누어 보면 고사리와 같은 양치식물류는 총 가리왕산의 중봉과 하봉 능선 사진 이수용 28종류이며, 소나무와 같이 잎이 바늘과 같은 나자식물류는 총 9종류, 잎이 넓은 활 1 병품쌈 2 한계령풀 엽수가 대부분인 피자식물류는 총 540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 희귀 멸종위기식물의 보고 리왕산은 활엽수의 다양성이 높은 지역이다. 자생하고 있는 식물 중 식용이 242종류(41.9%)로 가장 많았으며, 목초용이 207 엄태원 | 상지대학교 산림과학과 교수 종류(35.9%), 약용이 195종류(33.8%), 관상용이 77종류(13.3%), 목재용이 29종류 (5.0%), 섬유용이 16종류(2.8%), 잡용자원이 9종류(1.6%), 공업용이 3종류(0.5%)의 가리왕산의 분포구계 있는 숲이다. 해발고도 500m 이하에는 지역주민을 비롯한 사람들에 의해 하층식생 순으로 나타났고 용도를 알지 못하는 것도 113종류(19.6%)로 나타났다. 양을 닮은 한계령풀, 멋진 머리 장식을 한 갈퀴현호색, 가리왕산(1,560.6m)은 동경 128° 57”북위 37° 33’ , 27’ 이 부분적으로 파괴되어 있으나 그 이상의 지역에서는 비교적 안정되고 잘 보존된 가리왕산에 자생하는 한국특산식물은 총 26종류(식재종 2종류 포함)이며 우리나라 애기기린초, 좀꼬리까치밥나무, 생열귀나무, 노랑갈퀴, 31” 위치하고, 행정적으로는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에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에 분포하는 특산식물 570종류의 4.6%이고 강원도에 분포하는 한국특산식물 148종류 제비꽃 중에 꽃이 큰 금강제비꽃, 귀한 한약재로 쓰이는 북면과 평창군 진부면의 경계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중 산 능선에는 북방계 식물들이 구성하는 산림생태계의 전형성을 갖추고 있는 산림 의 17.6%(강원도, 1997)이다. 주요 특산식물종은 키버들, 요강나물, 할미밀망, 참꿩의 고본, 왜우산풀, 참좁쌀풀, 초본 중에 잎이 가장 큰 병풍 왕산과 발왕산이 남서쪽으로는 청옥산을 마주하며 남 으로 가리왕산 일대에는 전국에서 제일가는 천연활엽수림과 희귀수목이 생육하고 있 다리, 자주꿩의 다리, 왕매발톱나무, 갈퀴현호색, 좀꼬리까치밥나무, 매화말발도리, 쌈, 눈개쑥부쟁이, 두루미꽃, 산마늘을 비롯하여 우리나 동쪽으로는 중봉, 하봉, 민둔산과 비황산의 연봉으로 다. 더불어 가리왕산은 최근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북방계 식물의 보전이 중 터리풀, 노랑갈퀴, 털조록싸리, 개시닥나무, 금강제비꽃, 지리산오갈피나무, 지리강 라 진부에서 처음 발견된 금강애기나리, 귀부인을 연상 이어지면 그 끝자락에 정선읍이 자리 잡고 있다. 가리 요한 환경문제로 대두되고 있어 그 중요성이 크며 절대적 보존가치를 가진다 하겠다. 활, 참좁쌀풀, 청괴불나무, 병꽃나무, 고려엉겅퀴, 눈개쑥부쟁이, 국화방망이 등 이다. 시키는 연영초, 사약의 재료로 쓰인 참여로 등이다. 왕산이라는 지명은 갈왕이 서심토의 난을 피하여 이곳 주목, 분비나무, 만병초, 마가목(馬牙木) 등 전국 최대의 천연활엽수 임지로 과거 궁 또한 가리왕산에는 약 27종의 희귀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희귀식물이란 일반적으 식물이외에도 멸종위기 포유류인 사향노루와 보호 으로 왔다하여 갈왕산이라 명명되었다가 일제강점기를 궐에 산삼을 진상하기 위하여 일반인의 산삼채취를 금지하는 삼산봉표(蔘山封標)가 발 로 보호되어야 하는 자생지의 식물 특히, 개체군의 크기가 극히 적거나 감소하여 보전 대상종인 담비, 하늘다람쥐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거치면서 지금의 가리왕산으로 불리어 오게 되었다. 견되는 등 산나물과 약초가 풍부한 내륙의 육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동해바다가 조망되 이 필요한 식물로서 종의 지리적 분포영역, 서식지의 특이성 정도 및 지역 집단의 크 보고된바 있으며 장전계곡을 비롯한 계곡에는 열목어 가리왕산은 거대한 육산이며 태백산맥의 지붕 역할 는 산이다. 기를 고려하여 희귀성의 범주를 설정한다. 희귀식물은 멸종위기식물, 보호식물, 감소 가 서식하는 등 희귀동・식물의 보고이다. 을 하고 있으며 조선시대부터 그 중요성이 알려져 국가 추세종, 특정식물, 법정보호식물, 적색 식물목록 등 다양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가리왕산과 같이 희귀요소가 풍부한 것은 아고산대 침 1) 에서 관리하던 봉산 으로 관리되어 오던 산이다. 가리왕산의 식물 주요 희귀식물종은 주저고사리, 좀호랑버들, 왕느릅나무, 애기쐐기풀, 요강나물, 바 엽수림과 온대 활엽수림이 혼생하는 등, 다양한 생육환 가리왕산은 일화식물구계, 온대아구계(溫帶亞區系) 가리왕산 숲의 대표적인 숲구조를 이루는 수종은 해발고가 낮은 지역에서 소나 람의 여신이란 뜻이 있는 국화바람꽃,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흡사 사자의 머리 모 경에 따른 종다양성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2) 의 한국구 에 속해 있으며 이를 좀 더 세분하면 중부아 무-산거울군락으로 이 숲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식물종은 소나무와 산거울이며, 우 3) 구 의 중앙부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전형적인 한국 온 점종(優占種)으로는 신갈나무, 철쭉, 생강나무, 노린재나무, 큰기름새, 털조록싸리 1) 봉산 : 나라에 필요한 목재를 조성하기 위하여 벌채를 금지하는 산 2) 한국구 : Ronald Good(1947)는 세계식물의 분포구계를 총 37개 구계로 구분했으며, 한국의 경우 일화식물구계(Sino-japonica Region)에, 반도의 거의 대부분은 온대아구계(溫帶亞區系)의 한국구에 속한다. 대의 주림목인 신갈나무-철쭉 군목이 주축을 이루고 등 약 35종 정도의 식물종이 나타나는 숲이다. 3) 중부아구 : 한반도의 6개 아구(亞區: sub-region) 중 특산식물의 비율이 가장 높은 아구이다. 8 | 2012년 여름호 | | | 2012년 여름호 | | 9
  • 6. |✽집중과 조명 | 백석산(1365m)은 주경기장 인근인 평창군 진부면에 경사각은 18~20.9도에 이른다. 위치한다. 최대 표고차는 895m, 슬로프 길이는 3650m 정상부 일대가 폐목장지여서 식생훼손이 적다는 장점이 거론된다. 정상 능선에 천 (남자 경기장), 3450m(여자 경기장)이다. 평균 경사각 연기념물 433호‘두위봉 주목’ 있으나 가리왕산에 비해서는 식생의 우수성이 떨어 이 은 20.1~19.2도에 이른다. 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 두위봉 아래 지역은 정선군 남면 관광레저리조트 예정지로 박지산(1391m・일명 두타산)은 역시 평창군 진부면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에 위치한다. 주경기장인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직선거 백덕산(1350m)은 평창군 방림면에 위치한다. 알펜시아에서 거리는 44.2km로 리로 8km 정도로 가장 가깝다. 최대 표고차는 851m, 50km 기준에 적합하다. 최대 표고차는 840m, 슬로프 길이는 3350m(남자 경기장), 슬로프 길이는 3650m(남자 경기장), 2700m(여자 경 3600m(여자 경기장・표고차 800m)이다. 평균 경사각은 24.1~19.0도에 이른다. 기장)이다. 평균 경사각은 20~23.1도. 두위봉(1470m)은 정선군 남면, 강원도 태백・정선 가리왕산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태도 벗어나야 폐광지역에 위치해 있고 강원랜드와 하이원스키장 등 노익상 우이령포럼 공동대표는“지금까지 거론된 만항재와 두위봉 2곳의 대안지 이 기존의 숙박 레저단지와 인접한 곳이다. 최대 표고차는 외에 정선・평창 관내에서 4곳 이상의 대안지가 나온 만큼, 강원도나 산림청도 가리 895m, 슬로프 길이는 3300m(남자 경기장・표고차 왕산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태도에서 벗어나 열린 자세로 대안 모색에 나서주었으면 818m), 3300m(여자 경기장’ 표고차 757m)이다. 평균 한다” 말했다. 고 한국특산종인 왕사스레나무는 북방계 나무인‘거제수나무’ ‘사스레나무’ 교잡종이다. 회색 표피가 벗겨진 울퉁불퉁한 근육질이 마치 멸종된 포유류 와 의 ‘매머드’ 연상하게 한다. 를 가리왕산 스키장, 특정인에 특혜 의혹 가리왕산스키장 대안지 스키 도착지점 토지 집중매입… 강원도에“최적지”브리핑하기도 민간 차원에서 재검토하기로 가리왕산 알파인스키 활강경기장 예정지인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에 특정인이 3만평 가까이 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논란이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숙암리에서 38필지 2만8929평의 토지를 매입 혹은 증여로 취득한 홍 모씨는 2001년에 활강스키장 예정지로 가리 왕산을 제안하고 강원도 관계자와 함께 현지답사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리왕산 스키장 예정지인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알파인스키 도착 서울대 국토문제연구소, 정선 상원산・두위봉, 평창 백석산・박지산・백덕산 제안 지점) 일대의 토지 70% 이상이 서울・경기 등 외지인들 소유로 확인됐다. 실제 숙암리에서 국유림 등을 제외한 토지 7만2000평 가운데 5만 남준기 | 편집위원・내일신문 기자 4000평이 외지인 소유로 나타났다. 스키 도착지점 일대 집중 매입 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된 가리왕산(정선・1561m) 보전을 위한 평창동계올림픽 알 정선・평창 관내에서만 5곳의 대안지 특히 홍씨가 소유한 토지는 절반 가량이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에서 내려오는 스키 슬로 파인스키 활강경기장 대안지 모색이 민간 차원에서 활기를 띠고 있다. 상원산(1421m)은 정선군 여량면 아우라지 북쪽에 위치 프 종점 부에 집중적으로 위치한다. 활강경기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땅이 지난 4월 25일 오후 강원도 춘천 세종호텔에서 열린 제27회 우이령포럼에서 서울 한다. 활강경기 출발지점은 상원산 정상부(A코스)와 인 다.(지도에서 붉은색 표시. 스키 슬로프 종점부 중심 10필지) 대 국토문제연구소 이차복(지리학) 박사는 정선 상원산・두위봉, 평창 백석산・박 근 1320봉(B코스)과 1401봉(C코스) 3곳이고 도착지점은 가리왕산 숙암리에 위치한 이 땅들은 대부분 지목이‘전(밭)’ 현재 나무가 심어져 있 이며 지산・백덕산 등 5곳을 알파인스키 활강경기장 대안지로 제안했다. 알파인스키 활 자개골유원지 인근 해발 540m 지점이다. A코스(남자 경 다. 숙암리에서 홍씨와 친인척이 소유한 토지를 합칠 경우 4만평이 넘는다.(총 13만2672㎡) 강경기장은 표고차 800m 이상(남자 코스), 평균 경사도 17도 이상, 코스(슬로프) 길 기장)의 표고차는 881m, 슬로프 길이는 3100m이며 평 홍씨는 여기에 대해“숙암리 일대 토지는 동계올림픽 얘기가 나오기 전부터 매입하기 이 3.0~3.7km, 슬로프의 향은 남향보다 북(동)향을 선호하는 지형조건을 충족해야 균 경사각은 22.8도이다. B코스(여자 경기장)의 표고차 시작했다” “당시 현지조사를 통해 가리왕산 숙암계곡을 스키장 적지로 판단하고 리조 며 한다. 는 780m, 슬로프는 3060m, 평균 경사각은 19.2도이다. 트를 만들기 위해 매입했다” 밝혔다. 고 지금까지 강원도는‘정선 가리왕산 이외의 대안은 없다’ 공식입장을 고수하고 있 는 도착지점이 평지가 아닌 작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또“현행법상 영농법인이 아니면 농지를 소유할 수 없어 개인명의로 했다” “스키장 며 다. 산림청은 가리왕산 보전을 위해 정선 두위봉과 만항재 상원산 등을 대상으로 대안 정지작업을 통해 15만㎡의 경기장 편의시설부지를 확보 예정지로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아직 생각해본 일이 없다” 말했다. 고 지 검토에 들어갔으나‘마땅한 대안지가 없다’ 공식입장을 밝힌 상태다. 는 할 수 있다. 10 | 2012년 여름호 | | | 2012년 여름호 | | 11
  • 7.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 | 이 이충렬 작가님은 서울 출생으로,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간송 전형 필>, <그림애호가로 가는길>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최순우 선생의 삶을 조명한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를 발행하였습니다. 이날 인터뷰는 <최순우 옛집 시민축제‘흔하지 않은 이야기’ (후원: 서울문화재단) 특별강연>으로 개최되었으며,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열린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되어 그 의미를 더했습니다. ● 미술작품 콜렉터로도 유명하신데, 그림을 모으기 시작하신 계기가 궁 충 금합니다. ○ 제가 조국에서 산 세월보다 타국에서 산 세월이 많습니다. 집이 부 도가 나면서 1976년 대학교 3학년 때 한국을 떠나서, 캘리포니아에 서 17년, 애리조나에서 18년을 살았습니다. 애리조나에서는 멕시코 가 보이는 국경도시에서 살면서 잡화가게를 했는데, 지금은 피닉스 에서 살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있을 적에는 한국 사람을 많이 렬 만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애리조나는 한국인이 30세대밖에 안 되는 곳이었죠. 외로워서 고향생각이 났지만 장사하는 사람이 고향에 들 락거릴 수도 없고, 그림이 있으면 외로움이 덜할 것 같아서 한 점, 두 점 모으기 시작하면서 소품위주로 그림을 모으기 시작했던 거죠. 미 국에서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외국작가들이 우리나라를 소 1 재로 그린 그림이나 판화를 모으기도 했고요. 돈이 많아서 유명하고 2 작가 비싼 그림을 모은 거부는 아니고 저렴한 그림들, 즉 소품, 판화를 모 아서 2~300점정도 모았어요. ● 소장품 중에 가장 애착이 있는 작품이 있다면요? ○ 다 애착이 가지만, 특별히 애착을 가졌던 그림이 두 가지가 있어요. 일시 : 2012. 5. 29 장소 : 최순우 옛집 이중섭의 스승 중에 임용련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예일 미술대학 대담진행 : 양병이 (서울대학교 을 수석 졸업에 프랑스에서 일찍부터 상을 받았던 분인데, 그분이 국 명예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대표) 내 오산학교에서 미술 선생을 할 적에 이중섭이 학생이었죠. 그의 그 1 임용련 <십자가 고난의 상> 림이 국내에 딱 두 점밖에 없는데, 최초의 성화라고 할 수 있는 <십자 2 김기창 <판상도무> 가 고난의 상>을 미국에서 발견을 했어요. 우리 미술사에서 가치가 있 을 뿐 아니라, 그림 자체가 너무 좋았습니다. <한국미술100년展>에 소 개됐습니다. 두 번째로는 운보 김기창 선생의 <판상도무>라고 어린 소녀들이 널 만, 제가 봤을 때는 가짜를 그리려면 큰 그림을 그려야지 싶었죠. 막 뛰기 하는 그림인데, 운보 선생이 조선미전에서 최초로 입선한 작품 상 받아보니 굉장히 섬세하고 흑백도판과 비교해보니까 거의 흡사하 입니다. 입선한 작품은 국전그림이 그렇듯 무척 컸는데 6・25 전쟁 게 그린 그림이라서 색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복원할 수 있을 정도 때 소실됐어요. 그 이후로 이 그림은 흑백도판으로밖에 전해지지 않 로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그림이에요. 아서 원래 색이 뭔지 모르는 상태였죠. 운보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가장이 되었는데, 부츠라는 세브란스 치과 박사가 조그맣게 그림을 ●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다 출판사 쪽에서 출판 제의를 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리면 선교사에게 팔아주겠다 해서 소품을 그린 거예요. 그런 그림 ○ 제가 애리조나에서 장사를 할 적에 국내와 연락두절하고 장사에 매 들이 미국에 건너왔고 자손들이 뭔지도 모르고 팔아서 미국경매에 진했었어요. 애들을 다 키우고 보니 인터넷 세상이 있더라고요. 지 나온 거죠. 사람들은 이 그림의 색이 너무 선명하고 가짜 같다 했지 금은 페이스북, 트위터가 대세지만 그땐 블로그 세상이었어요. 그래 12 | 2012년 여름호 | | | 2012년 여름호 | | 13
  • 8. ● 글을쓰시면서최순우선생의어떤면에감명을받았는지설명을해주시죠. 자랑스러운 전시였으면 나라에서 80년대 초 우표 20종까지 만들었 ○‘최순우’하면 많은 분들이 박물관에 계셨던 분, ‘무량수전 배흘림 겠어요. 단기(檀紀)로 해도 5천년이 안되는데 왜 5천년이냐. 기원 │관객과의 질의응답│ 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쓰신 분, 성북동에 최 ,‘ 를 전 3천년의 미술품이 발견됐기 때문이지요. 최순우 선생이 1974년 ● 외국생활을 오래하셨는데 글쓰기 실력 어떻게 유지하셨나요? 순우 옛집이 있다더라 그 정도로 알지요. 92년도에 나온 최순우 전 박물관장을 하던 당시, 강동 암사동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지와 빗살 ○ 감정이 한국에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조국을 늘 품고 있었다고 집을 사서 보는데 세 번쯤 읽어보니 최순우 선생이 어떤 분인지 어 무늬토기가 발견됐어요. 선생이 과거 프랑스 선사유적지를 가보니, 말할 수 있겠죠. 그러면 언어감각이 부족하지 않느냐. 당연히 그렇죠. 그래 서 근대에서 시작되는 인물의 이야기를 써보면 정신적인 삶의 모습을 조명 렴풋이 그려지는데 극적인 부분 때문에 고민이 됐지요. 간송은 극적 선사시절 벽화와 토기를 프랑스 미술역사에 기원으로 따지더라는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구사능력이 국내에서 반짝반짝하는 작가들보다 떨 인 부분이 많잖아요. 최순우 선생이 평생 쓰신 글이 600편정도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암사동에서 토기가 발견된 거죠. 우리 한국미술의 어져도 우직하게 써도 되는 게 전기 분야이기 때문에 쓸 수 있었죠. 데, 그 안에는 공통된 주제가 있었어요. 우린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역사는 5천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우리나라와 전 세계에 발표한 거예 ● 최순우 선생의 글을 보면 같이 심성이 부드러워지거든요. 이충렬 선생님이 었죠. 1950~70년대 서부문화 숭배사상이 팽배해질 때 우리 문화를 요. 1976년에는 일본에서, 1979년에는 미국에까지 순회전시를 했습 생각하기에 최순우 선생은 어떤 품성인 분인 것 같다고 느끼시나요? 강조했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선생의 출생부터 고유섭 선생으로부 니다. 당시 국내는 유신 말기로 상황이 흉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 ○ 제가 판단한 최순우 선생은 순한 소 같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불평하기보다 묵묵히 주어진 상태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굉장 터 어떻게 배웠는지, 박물관에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6・25 전쟁 시 덕에 올림픽 유치에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신 분이 최순우 선생이 히 노력하신 분이죠. 선생의 업적이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에요. 노력했고 때 국립박물관과 간송미술관의 작품을 어떻게 피난시켰는지, 부산 셨던 거죠. 또 누군가를 만납니다. 최순우 선생은 고유섭 선생을 만났고 간송을 만났어 1・4후퇴 때 어떻게 미술품을 보호하셨는지, 간송과의 관계는 어땠 요. 고유섭 선생을 만날 적에 국어 선생의 길을 갈 수 있었지만, 고유섭 선생 을 알아봤던 것도 최순우 선생의 안목이고 열정이었겠죠. 우리 것에 대한 열 는지, 그걸 따져보기 시작하니까 광맥이 발견되는 거예요. 책이 재 ●“청년 시절의 글쓰기- 이민생활- 그림 수집- 작가” 이어지는 이충렬 로 정이 남달랐고 그것이 당대의 안목과 심미안을 만들어준 원동력이라고 생 서 블로그를 하나 만들었는데 무얼 써야하나 고민하다 그림을 좀 모 미있습니다. 선생님의 여정이 다이내믹합니다. 앞으로는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각합니다. 으고 있으니 그림에 대한 얘길 쓰면 되겠더라고요. 맨 처음 소개한 그 ○‘조명이 아직 안됐지만 이분 이야기가 없었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 ● 학생으로서 안목을 높이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림이 미국화가가 1950년대 중반 한국에 와서, 장사하는 아주머니’ ‘ 를 ● 책 쓰시면서 최순우 선생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다면요? 로 문화에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세 편 더 써볼 생각입니다. 우리 ○ 아주 쉽습니다. 그렇지만 멉니다. 틈날 때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세요. 감 그린 동판화 그림이었어요. 그걸 올렸는데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 ○‘혜곡(兮谷)’ 뜻을 아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깊은 골짜기? 땡! 혜 의 나라에 전기작가가 없어요. 전기를 쓰려면 그 분야에 대해 공부해야 사하게도 공짜입니다. 1층에 빗살무늬토기가 있습니다. 한국미술 5천년전 려온 거예요. 그 후로 일주일에 한번 씩 그림이야기를 쓰게 된 거죠. 곡의 혜는 어조사 혜(兮), 즉 아무 뜻 없는 글자입니다. 호는 뜻을 담아 하니 드물 수밖에요. 지금은 돈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자서전 등이 나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안 들었을 때 보는 게 다를 겁니다. 청자실에서는 강 진에서의 최순우 선생이 애썼던 마음이 느껴지면 더 애틋하게 보이겠죠. 자 그러다가 제 블로그를 보던 분이 김영사에 쓸 만한 필자라고 소개해 짓기도 하고 태어난 곳으로도 짓습니다. 율곡(栗谷) 이이는 밤나무골 오는 세상이죠. 야무진 꿈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도 문화적, 역사적 주 가서 많이 봐야합니다. 제 제안이 아니라 모든 미술사학자들의 공통된 답 준거죠. 계약을 하고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거기서부 에서 태어난 이이란 뜻이고, 혜곡 최순우는 해나무골에서 태어난 최순 으로 훌륭한 분들에 대해서 전기, 연보식의 평전이 아니라 이야기 구 입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시시한 그림은 눈에 안 들어옵니다. 그게 안목 터 애매해 진거예요. 대학졸업도 안했어, 소설가도 아니야, 큐레이터 우란 뜻이에요. 그렇다면 최순우 선생의 고향인 개성에 해나무골이 있 조를 가지고 있는 전기의 풍토를 남긴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 과 심미안이 느는 겁니다. 도 아니야, 화가도 아닌 내가 그림 이야기를 쓴다? 심각한 고민을 했 느냐, 궁금하시죠? 운보 김기창 선생이 어린 시절 정화학교에 다닐 적 목숨 걸고 써보려 합니다. 어요. 그래서 결론을 내린 게, 나는 평범한 개미 콜렉터로서 그림 한 에 최순우와 동무로 함께 지냈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정화학교 출신 점 사고 싶은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고 몇 십만 원짜리의 그림이라 들의 기록을 찾아봤더니 그곳이 해나무골이랍니다. 간송 선생이 최순 ● 마지막으로 내셔널트러스트의 활동에 대한 소감이나 격려 한 말씀 부탁 도 사서 걸어놓는 의미를 이야기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 책이 <그 우 선생의 호를 지으실 때‘해곡’ 이라고 하면 폼이 안나니‘혜곡’ 이라 드립니다. 림애호가로 가는 길>이에요. 고 하면서‘혜’ 의미없는 어조사 자를 ‘혜’ 지은 것이죠. 순우’ 자로 ‘ 도 ○ 내셔널트러스트와의 인연은 벌써 5년쯤 됩니다. 최순우 옛집에서 그다음에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간송 선생 이야기였어요. 선생의 평 간송이 지어주신 필명인데 간송 자제들의 돌림자가‘우’ 자에요. 후원 경매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김종학 선생의 붓꽃 그림을 전이 없더라고요. 처음엔 책 얘기도 간송댁에 얘기를 못했어요. 다 구입했었어요.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최순우 선생 평전까지 왔네요. 쓴 다음에야 허락을 받고 간송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래서 나온 책이 ● 최순우 선생의 업적이 많지만 그중에서 손꼽을 만 한 이야기가 있다면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최순우 선생의 집과 같이 한국미가 잘 구현된 <간송 전형필>이고요. 또 1920~50년에 외국인들이 그린 우리 근대 무엇일까요? 집들은 후손들에게 전해지면 좋겠고 더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하면 좋 의 그림이 많아요. 그걸 중심으로 근대 얘기를 하면 좋겠다 싶었고, ○ 고유섭 선생이 최순우 선생에게 주신 숙제로 청자기와 가마터를 발 겠어요. 그래서 이번 책의 인세 30%는 내셔널트러스트에 기증합니 출판사 쪽에서도 근대에 관한 책으로 의미있는 작업이 되겠다고 해 견하라는 거였는데 발견되지 않았지요. 그러다 1964년에 정양모 선 다. 내 이름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최순우 선생이 훌륭해서 책을 사 서 의기투합을 해서 낸 게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이었죠. 생과 강진을 다니셨는데 나침반 들고 산을 돌아다니다 간첩으로 오 보시는 거니까요.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은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더 <혜곡 최순우, 한국 미의 순례자>는 최순우 옛집에 들렀다가 송지영 인 받아 파출소에 붙잡혔어요. 파출서에서 나오는데 아줌마들이 청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독자분들도 내셔널트러스트 활동 학예사가 만약에 최순우 선생의 책을 쓴다면 자료를 적극적으로 지원 자 파편을 들고 나와서 팔더랍니다. 어떤 아줌마 집 마당에 가니 그 에 동참하면서 오는 기쁨을 맛보실 수 있는 계기를 가져보시길 바랍 해주겠다고 해서 쓰게 된 거예요. 이제까지 나온 우리나라 평전 중에 곳이 바로 청자기와 가마터였습니다. 그러면서 강진군 일대를 발굴 니다. 서 가장 잘 쓴 평전이란 평을 못 받으면 글을 안 쓰겠다고 생각하고 했고 결국에는 강진이 청자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겁니다.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사람>은 명사와의 대담현장에 회원들을 초청하여 오픈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쓴 책입니다(웃음). 또 하나는 1976년에 열린‘한국미술 5천년전(展)’ 입니다. 얼마나 14 | 2012년 여름호 | | | 2012년 여름호 | | 15
  • 9. | ✽영국NT 이야기 | 금융재벌가‘로스차일드’ 풍의 와데스돈 저택 조명래 | 내셔널트러스트 이사, 단국대학교 교수 사진 James Stringer (château)을 모델로 하여 건축되었다. 그러나 건물 밖의 정원은 빅토리아식 풍경정 <2009~2010년 가장 많이 찾은 영국 10대 NT사이트> 1. Wakehurst Place Garden — 439,627 원(landscape garden)으로 꾸며져 있고, 저택 내부는 유럽 유수의 그림, 도자기, 가 2. Stourhead — 351,358 구, 카펫, 패브릭 등의 컬렉션으로 채워져 있다. 이 건축물은‘로스차일드 풍(Goût 3. Waddesdon Manor — 348,308 Rothschild)’ 으로 불릴 정도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4. Fountains Abbey & Studley Royal — 339,326 5. Attingham Park - 257,340 은행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은 한 때 유럽 전역에 41개의 대저택을 소유한 바 있다. 6. Polesden Lacey — 256,493 현재 전 세계 금융과 매스컴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대자 7. Belton House — 249,785 본의 본산으로서 로스차일드 가문은 25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뿌리는 1744년 8. Carrick-a-Rede Rope Bridge — 248,609 9. Calke Abbey - 244,767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지역 게토에서 태어난 1대 메이어 암셸 로스차일드 10. St Michael‘s Mount — 240,557 (Mayer Amschel Rothschild: 1744 1812)다. 그는 거지굴에서 고물가게와 환전 상으로 돈을 벌어 기적의 금융제국을 일으킨 인물이다. 로스차일드 은행을 창설한 사진 Paul Englefield 그는 국경을 초월하는 거대한 금융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다섯 아들에게 엄격한 런던 서북쪽으로 뻗어있는 A41(국도)번을 따라 올라 유대교육을 시킨 뒤 유렵 전역으로 모두 내보냈다. 장남 암셸(Amschel)은 독일 프랑 2010년 회계연도 말 영국내셔널트러스트(영국NT)의 회원은 3백7만 명, 총수입액은 데스돈 저택(Waddesdon Manor)’ 으로 348,308명, 4 가다 보면 버킹엄셔(Buckinghamshire)의 에일즈버 크푸르트 본가의 후계자로 삼고, 차남 살로멘(Salomen)은 오스트리아 빈, 삼남 네 4억6백만 파운드(약 7300억 원)이었다. 보전을 위해 소유하고 있는 토지는 63만 에 위는‘파운틴즈 애비 & 스터들리 로얄(Fountains Ab 리(Aylesbury)란 곳을 만나게 되는 데, 와데스돈은 이 이던(Nathen)은 영국 런던, 사남 카를(Karl)은 이탈리아 나폴리, 오남 제이콥 이커(약 서울시 면적의 4.2배)로 전 국토(잉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의 1.5%에 bey & Studley Royal)’ 339,326명이 각각 찾았다 로 곳에서 6마일 떨어진‘에일즈버리 베일 디스트릭트 (Jacob)은 프랑스 파리로 각각 보내 은행지점을 세워 세계금융 대제국의 기초를 닦 해당한다. 전국 해안선의 5분의 1(1,126km, 서울-부산 간 거리 2.4배)도 소유관리 (표 참조). 1위인 웨이크허스트 플레이스 가든은 런던 (Aylesbury Vale district)’ 소재한 마을이다. 마을 에 았다. 이 후손들은 나폴레옹 전쟁과 1차, 2차 세계대전을 활용해 엄청난 부를 쌓고, 하고 있다. 또한 영국NT는 문화재급 대저택들을 전국적으로 200여 곳을 보전관리 남부지역에 있는 세계 최대 식물원인‘큐 왕립식물 이 내려다보이는 다소 황량한 언덕에 프랑스 고성 풍의 비스마르크, 처칠, 드골 등 권력자들을 후원하면서, 유럽의 정치와 경제계에 막강한 하고 있고 약 2백만여 점의 문화유산들을 소장하고 있다. 원’ 부속시설과 같이 관리운영하고 있어 방문객의 수 이 화려한 대저택이 와데스돈 저택이다. 이는 19세기 유 영향력을 행사했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로스차일드 가문 사람들은 돈으로 유대민 영국NT 사이트는 영국 국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관광 위락지다. 회원이 되면 모든 가 특히 많다. 이를 제외하고 2, 3위를 다투는 곳은 풍경 럽의 금융계를 지배했던 유태계 은행재벌 로스차일드 족의 꿈인 이스라엘 건국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여 2천년 유랑생활의 한을 풀었다. 곳을 무료로 입장해 즐길 수 있어 회원증은 인기 있는 선물 품목이다. 영국NT는 방문 정원이 딸린 대저택(장원)인 스토워헤드와 와데스돈 두 (Rothschild) 가문의 페르디난트 제임스 본 로스차일 와데스돈 저택을 건립한 로스차일드 남작은 비엔나 패밀리(family)를 연 차남 살 객이 5만 명이 넘는 10대 사이트를 선정해 매년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2009~10년 곳이다 (스토워헤드에 관한 이야기는 <내셔널트러스 드 남작(Baron Ferdinand James von Rothschild)에 로멘의 손자, 즉 살로멘의 둘째 아들 안젤름(Anselm)의 둘째 아들에 해당한다. 그는 보고서’ 의하면, 1위가 에 ‘웨이크허스트 플레이스 가든(Wakehurst Place Garden)’ 트> 14호 참조). 와데스돈은 2010년에 3위를 했지만 두 의해 지어진 건축물이다. 특이하게도 이 건물은 프랑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런던으로 이주하여 영국 국적을 취득했고, 1865년 6월5일 26 으로 439,627명이 찾았다. 2위는‘스토워헤드(Stourhead)’ 351,358명, 3위는 로 ‘와 해 전까지만 해도 2위의 자리를 줄곧 지켰다. 스 르와르(Loire)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르네상스식 성 세에 런던 지점을 창설했던 네이든(Nathen)의 딸인 사촌과 결혼했다. 그러나 이듬 16 | 2012년 여름호 | | | 2012년 여름호 | | 17
  • 10. 1 2 1 사진 Simon Mason 2 사진 Calotype46 와데스돈 저택의 실내 사진 Brett Saye 해 아들을 사산하면서 부인도 함께 세상을 떠났다. 죽은 부인을 추모하기 위해 남작 조각을 입힌 장식판자(boiseries), 가구, 세라믹스, 영 남작이 모았던 르네상스 예술작품이나 무기들은 대영박 데스돈 장원(저택 제외)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앨리스 재단(the Alice 은 런던 남쪽 서더크(Southwark)에‘병든 아동을 위한 에블리나 병원(Evelina 국과 네덜란드 회화, 르네상스 예술작품 등이 망라되 물관에 기증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와데스돈 저택은 Trust)을 통해 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단체는 영국정부에 정식으로 등록된 기부금단 Hospital for Sick Child)’ 건립했다. 그 후 8년 뒤인 1874년, 그는 버킹엄셔 와데 을 어 있었다. 정원조경에도 신경을 써, 조각상, 정자, 새 5세 이하 아동을 런던으로부터 피난시켜 돌보는 수용시 체로서 로스차일드 집안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1993년, 장원 소유자인 제이콥은 와 스돈 마을 인근의 땅을 사서 1889년까지 근 15년간 와데스돈 장원을 건설했다. 그렇 장 등을 다채롭게 설치했다. 심지어 북이탈리아 파마 설로 활용되었다. 1922년에 앨리스가 세상을 떠나자, 데스돈 저택을 반독립적으로 운영(semi-independent operation)할 수 있는 권한 게 해서 와데스돈은 전체가 하나의 장원 마을(estate village)로 바뀌었다. 그곳에는 공작(Dukes of Parma)의 저택에서 프로세르피나 재산과 소장품들은 사촌 조카인 제임스(James)에게 상 을 영국NT로부터 부여받았다. 이는 영국NT가 특별하게 마련해준 것이다. 말하자면 일꾼과 소작인들을 위한 집, 학교, 퍼블릭 하우스(일종의 선술집), 크리켓시설, 마을 (Proserpina: Jupiter와 Ceres의 딸, Pluto에게 납치 속되었다. 지미(Jimmy)로 불린 제임스는 로스차일드 저택의 소유권은 영국NT가 가지고 있지만, 원래 주인인 제이콥이 앨리스 재단을 통 회관 등이 들어섰다. 되어 저승의 여왕이 됨) 상이 새겨진 분수도 가져와 설 가문의 프랑스 패밀리(오남 Jacob의 후손) 출신이다. 해 저택을 보전관리 하도록 하되, 장원의 다른 시설과는 별개로 하라는 뜻이다. 이는, 장원 마을의 중심은 와데스돈 저택이다. 집주인 남작은 처음부터 프랑스 중남부 치했다. 그는 파리에 있는 아버지 에드몬드 제임스 드 로스차일 영국NT가 다른 사이트에 적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와데스돈 저택에만 예외적으로 르와르 지역에 르네상스 고성 형태의 저택을 짓길 원했다.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 정원조경은 프랑스 조경설계가 레네(Lainé)에 의해 드 남작(Baron Edmond James de Rothschild)의 소 허용했던 관리방식이었다. 대신 영국NT는 중요한 복원사업을 감독하거나 방문객 유 위해 그는 프랑스 건축가‘가브리엘 히폴리테 테스테일러(Gabriel-Hippolyte 설계되었다. 정원을 조성할 때 당시로선 획기적인 방법 장품들을 가져와 와데스돈 저택을 더욱 섬세하게 꾸몄 치를 위한 대외홍보만 전담했다. 운영을 맡고 있는 엘리스 트러스트가 최근 들어 역 Destailleur)’ 고용했다. 테스테일러는 프랑스의 여러 지역에서 고성을 르네상 를 들이 사용됐다. 다 자란 나무를 통째로 이식하기 위해 다. 세 번째 주인인 제임스는 1957년에 죽었다. 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와데스돈의 소장품들을 업데이트시키기 위해 새로운 예술작 스식으로 복원하거나 건축해 그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던 건축가였다. 와데 마취제를 사용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이식에 그는 죽으면서 와데스돈 저택과 부속 토지 200에이 품들을 매입하거나 수집하는 일이다. 스돈 저택은 남작이 꿈꾸는 고성 모습의 바탕에 테스테일러의 비전을 통해 여러 요 따른 나무의 충격을 최소화하고자 방안이었다. 덕분에 커(약 810,000m²)를 사후 영구 보전을 위해 영국NT 2003년 6월10일 영국에서 유명한 존슨 갱(Johnson의 자녀와 친척들로 구성된 가 소가 절충적으로 가미되었다. 와데스돈 저택의 탑은 맹트농 고성(Château de 성목(成木)들을 성공적으로 이식해 정원조경을 쉽게 꾸 에게 유증했다. 영국NT는 부동산뿐만 아니라 관리운 족 강도단)이 들어와 약 100여점에 달하는 프랑스산 금제 코담배갑과 보석이 새겨진 Maintenon)에서 따왔고, 두 개의 철제 계단 건물은 샹보르 고성(Château de 몄다. 정원을 이렇게 꾸민 자체가 당시엔‘경이로운 일 영에 필요한 기금 성격의 75만 파운드(2012년 가치로 소품 등을 훔쳐갔다. 그 대부분은 이후에 한 점도 회수되지 않았다. 도난품 중에는 Chambord)에서 따왔다. 와데스돈 만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탑의 창문들은 샹보르 (wonder)’ 이라 불릴 정도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이 13,461,320파운드, 한화 약 242억 원)의 기부금도 증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로서 프랑스 혁명 고성과 달리 유리로 채워져 훨씬 장식적이면서 고급스럽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구조 를 보기 위해 1890년 빅토리아 여왕이 직접 방문까지 여받았다. 이 기부금액은 영국NT가 지금까지 받은 것 때 처형당함)나 퐁파두르 부인(Madame de Pompadour,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정 설계가 모두 과거회귀적인 것만 아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19세기 당시로 했다. 그러나 여왕이 실제 매료되었던 것은 18세기 풍 중 가장 큰 규모에 해당한다. 부)의 소장품도 있다. 이 도난 사건 덕택에 와데스돈 저택은 금융재벌‘로스차일드 선 혁신적인 요소들이 많은 부분에 도입되었다. 가령, 저층부를 철제 프레임으로 구 샹들리에에 들어온 전깃불이었다. 여왕은 샹들리에의 와데스돈 저택을 제외한 장원의 다른 재산들은, 앨리 가(家)’ 대표적인 저택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다시 끌었다. 유명세 덕택에 와데스 의 축함으로써, 고층부에 다양한 공간구조와 형태를 연출할 수 있게 했고, 냉・온수 시 스위치를 10분 동안 끄고 켜고를 반복했다고 한다. 스가 지은 이스로피 정자(Pavillion at Eythrope)를 포 돈 저택은‘퀸(Queen)’ 포함한 여러 영화 촬영지이자 TV 드라마 무대로 사용되 을 설, 중앙집중식 난방시설, 하인들을 부르는 초인종 시설 등을 설치해 근대적 주거생 로스차일드 남작은 1898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저택 함해, 제임스(James)의 후계자인‘4대 로스차일드공 고 있으며, 영국NT 사이트 중 방문객이 가장 많은 사이트의 하나로 부동의 자리를 활이 가능하도록 했다. 은 결혼하지 않은 여동생 앨리스 드 로스차일드(Alice (4th Lord Rothschild)’ 상속되었다. 제이콥 로스 에게 지키고 있다. 2012년 영국의 숲 트러스트(the Woodland Trust)는 엘리자베스 여 건물이 완성된 이후, 남작은 문화예술 작품들을 수집해 건물 안팎에 설치하는 데 de Rothschild)에게 넘겨졌다. 새 주인은 수집품들을 차일드(Jacob Rothschild)로 불리는 4대 로스차일드 왕 즉위 60주년(Diamond Jubilee) 기념의 일환으로 와데스돈 저택을‘60주년 기념 열중했다. 수집품에는 18세기 프랑스 태피스트리(tapestry, 그림을 짜 넣은 직물), 모아 집을 꾸미는 데 더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오빠인 공은 와데스돈 저택의 핵심 기부자다. 그의 기부는 와 숲’ 하나로 지정했다. 의 18 | 2012년 여름호 | | | 2012년 여름호 | | 19
  • 11. |✽근대문화유산 | 거창의 거인 최남식 가옥 안창모 | 경기대학교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역사문화환경보존프로그램 함양에서 1084호 지방도로를 달리다 거창군에 거의 다 계림농원! 최남식 선생이 운영했던 농원이다 다라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왼편에 이국적 해방 전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에서 유학했지만, 1939년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한 선 인 모습의 집이 한 채 보인다. 우리의 농촌에서는 좀처럼 생은 서울을 뒤로 하고 거창으로 내려왔다. 학생 당시 꿈꾸었던 농촌계몽의 실천을 보기 힘든 급경사의 만사드 지붕을 가진 집. 최남식 가 위해서였다. 그는 방학 때마다 농촌계몽대에 참여하며 비참한 농민생활을 개선하여 옥이다. 잘사는 농촌을 꿈꾸었다고 한다. 선생의 오랜 꿈이었다. 선생은 법원 공무원이었던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5대, 6대, 9대 회장! 최 부친을 따라 거창으로 돌아와 군청에 근무하면서도 빚을 얻어 공동묘지 주변의 황무 남식 선생 이력의 일부다. 농업에 종사하면서 가장 명 지 2500평을 사서 개간하기 시작했다. 1940년 계림농원을 열고 농사일을 시작한지 예로운 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회장을 3차례나 역임했 4년만에 황무지 개간의 큰 성과를 낸 선생은 큰 돈을 벌었고, ‘신농씨’ 라는 별명도 으니, 선생은 농촌계몽과 농업인의 권익보호를 위해 얻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성공을 독식하지 않았다. 성공을 이웃과 함께 하 평생을 보내며 거창군은 물론 한국의 농촌사회를 위해 기 위해‘공동회의소’ 지어 동네사람들을 계몽하였는데, 곧이어 새마을운동의 열 를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이 거창군 풍으로 이어졌고, 거창은 사과의 고장이 되었다. 그 노력이 인정을 받아 1968년 선생 민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그가 거창 사과의 뿌리 은‘제3회 국민이 주는 희망의 상’후보로 선정된 바 있다. 그의 꿈을 실천에 옮긴지 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자신이 평생을 모 30년만의 일이다. 아온 적지 않은 소장품과 유물을 거창군에 기증하여 거 이제 선생의 꿈이 담긴 집을 살펴보자. 그는 27세 되던 해에 네덜란드식 전원주택 창박물관을 만들었다. 그는 거창의 먹거리인 사과의 을 모델로 한 채의 집을 지었다. 동화 속에서나 나옴직한 이국적인 주택이었는데, 선 씨를 뿌리더니 이제는 박물관을 통해 거창에 역사와 문 생이 직접 설계하고 지었다고 한다. 건축을 배운 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화의 모종을 심고 뿌리를 내리도록 한 것이다. 훌륭한 집이 아닐 수 없다. 여러 차례 증축을 통해 곳곳의 모습이 바뀌었지만, 지금 2007년 3월 1일 별세한 선생의 영결식이 거창문화원 도 선생이 처음 지었던 집의 아우라는 여전하다. 선생은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부인 노제로 치러졌고, 영결식에는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 이 집을 지키고 계신다. 합회, 한국농업경영인거창지회, 거창농민회, 거창문화 오후 늦은 시간에 방문을 했는데, 마침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선생의 부인 배태학 원, 아림예술제위원회, 거창박물관 등 농민단체와 예술 여사를 집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방문 경위를 설명 드리니 기꺼이 집안으로 안내해 단체 등 500여명이 참석한 것은 생전에 선생이 보여준 주셨다. 부인의 연세는 벌써 90세를 훌쩍 넘겼지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시고 밭일 농촌과 거창에 대한 헌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을 할 정도로 정정하시다. 20 | 2012년 여름호 | | | 2012년 여름호 |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