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리가 건너온
긴 강
강을 건너기 전에는 저 길고 긴 것을 어떻게 건너갈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건너는 동안은 일상이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살자고 작정했는지 잊기도 합니다. 강을 모두 건너오고 난 이후엔 뿌듯하
기도 하고, 더 빨리 왔더라면, 더 좋은 물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도 합니다. 그
렇게 우리는 한 해라는 강을 1년에 한 번씩 건넙니다. 벗바리님, 지난해는 어땠습니까? 올해는 어
떻게 맞이하셨습니까?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들은 부지런히 한 해를 살았습니다. 7년만의 안식년을 갖게 된 랄라의 빈자
리가 컸고 반상근으로 전환한 박진의 자리도 비었습니다. 아샤와 사월이 여럿의 자리를 채우기 위
해 바쁘게 일했습니다. 지역에서 요구하는 자리, 인권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반차별 모임과
인권강좌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함께 공부하며 활동했습니다. 특히 혐오와 차별의 말들 속
에 자리를 잃어가는 인권제도화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한 경기도 만
들기 도민행동’을 결성해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전국 여러 곳에서 혐오선동세력에 의해 조례가 폐
지되고 후퇴하지만 경기도에서만은, 아니 경기도에서부터 이를 지키고 평등의 전선을 넓히겠다는
각오로 일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경기도의회와 함께 도민들은 인권조례를 지켜나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2018년은 국가보안법이 태어난 지 70년 되는 해였습니다. 2019년이 되어도 국가보안법의 망령
은 시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시르죽이지만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조차 제대로 없었
습니다. 다른 단체의 여러분과 함께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여성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구술 채록 작업을 했고, 베를린을 방문해 국가폭력의 기록을 담기 위한
인사말
4 2020 다산인권센터 연간보고서
5. 연수를 했습니다. 변호사들은 국가보안법 연대기를 만들고 핵심 사건과 쟁점들을 정리하고 있습니
다. 이것을 바탕으로 2020년에는 남영동의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국가보안법전시를 하려 합니다.
인권활동가, 공공미술가, 구술작가, 법조인들이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반차별모임과 인권강좌를 통해 여러 분을 만났습니다. 연간보고서에 담긴 참여자들의 글을 보시
면 알겠지만, 모임들을 통해 인연을 맺은 분들이 인권운동의 든든한 힘이 되었습니다. 인권강좌 이
후 ‘별’과 ‘듬솔’이 자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함께 하는 자원활동가 모임도 만들어졌습니
다. 반차별 모임은 세미나를 통해 모임을 이어가면서 중요한 행사에 함께하고 있고, 인권강좌역시
후속모임을 통해 한달에 한번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권강좌는 지속적인 과정으로 해마다
두차례 기초, 심화과정을 이어가기로 했고, 이와 별도로 교육사업을 기획해서 인권을 확장하기 위
한 다양한 활동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불안이 큽니다. 특정한 국가와 인종, 감염인 전반에 대한 혐오에 반대
하고 시민들의 연대로 위기를 이겨내자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누군가를 믿을 수 있고, 응원할 수
있을 때 희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제역, 돼지열병, 조류독감 등으로 이어지는 생태의 위
기에 대한 염려 또한 큽니다. 생태와 인권의 문제를 더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기후위기의 문제처럼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인권의 현장 삼아, 위기에 대처하겠습니다. 올해는 국회
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다음 국회에서 좀 더 나은 인권입법이 이뤄지기 위해서 제대로 된 후보들이
당선되길 바랍니다. 나쁜 정치를 몰아내기 위한 대응도 해야겠지요. 수원지역은 수많은 지역이 개
발되고 있으니 삶의 거처에서 쫓겨나거나 밀려난 사람들의 생존이 걱정입니다. 지역사안에 대해서
좀 더 관심 갖고 대처하려 합니다. 그리고 오는 2022년은 단체 설립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30년
인권운동을 평가하고 다른 30년을 내다보는 준비작업을 올 해부터 하려합니다. 20년 되던 해의 주
제가 ‘그 사람 스무살, 인권이 웃는다’였는데 더 성숙한 다산인권센터의 운동을 어떻게 잘 평가하면
될지 벗바리님들이 의견 많이 주길 바랍니다.
이제 2020년이라는 강을 또 건너 봅니다. 올해는 여러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조건이지만
활동가를 새로 뽑을 계획도 세웠습니다. 운동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기에 쉼 없이 움
직여 보려 합니다. 강을 건너는 우리에겐 곁에 벗이 있기 때문입니다. 벗바리님들과 한 뼘이라도 가
까워지기 위해, 우리 사회의 인권을 한 뼘이라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다산인권센터는 두 뼘 더
많이 움직이겠습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2020년 2월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드림
5
7. 1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워크숍
지역운동포럼 후속 성평등 워크숍
故 김용균 경기지역 추모대회
故 김용균 진상조사위 간담회
용산 참사 10주기 추모문화제
국가보안법 폐지 국회토론회
태안화력발전소 인권실태조사 보고회
성소수자인권포럼_차별금지법제정연대 부스 참가
10일
11일
12일
15일
18일
23일
24일
26일
2월 21일 다산인권센터 2019년 만두잔치
3월
자유권규약 보고서 작성을 위한 시민사회간담회
삼성반도체 직업병피해자 故 황유미 12주기 추모문화제
인종차별철폐의 날 집회_모두의 목소리, 모두를 RESPECT
경기이주공대위 인종차별철폐의날 토론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법안 설명회
6일
6일
17일
20일
28일
4월
EU 대표부&한국시민사회단체 간담회
416생존학생과 함께 하는 수원지역 간담회
자유권 이행 점검을 위한 정부&시민단체간담회
국가인권위 2020년 사업계획 수립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간담회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농성장 연대방문
세월호 참사 5주기 수원시민문화제
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부산지역 간담회
혐오대응집회 워크숍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
미등록 이주민 단속 실태 파악과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
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레즈비언상담소 간담회
반차별자원활동가 첫모임
3일
6일
8일
9일
9일
12일
22일
24일
28일
29일
29일
30일
7
8. 5월
책고집 강좌 1강_‘갑질의 시대 ‘을의 비상’’
진각종 직장내 성희롱 관련 기자회견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책고집 강좌 2강_‘노동있는 민주주의와 시민’
2019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
무지개가 광ː(光/狂)나는 밤 대행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간담회
책고집 강좌 3강_‘가짜뉴스의 시대 진짜뉴스 하기’
이주민구술생애사 프로젝트
'담 허문 자리, 움트는 환대의 꽃'의 북콘서트
다산인권센터 평등 밥상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책고집 강좌 4강_‘깨어있는 시민이 되기 위한 언론 바로 보기’
8일
9일
14일
15일
17일
21일
22일
23일
24일
28일
29일
6월
서울퀴어퍼레이드_참여
혐오표현 예방 및 대처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
내란 음모사건 재심 기자회견
책고집 강좌 5강_‘인권의 새로운 패러다임-기후변화를 중심으로’
경기수원반차별연대체 ‘평등을 위한 용기’ 워크숍
오렌지 인권상 시상식과 작은 문화제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책고집 인문학 강좌 6강
_‘예방의학 교수에게 듣는 진짜 미세먼지 이야기’
수원시 인권기본조례 개정을 위한 토론회
한혜경님 산업재해 인정 축하음악회
수원시 인권정책 기본계획 의견 제출
책고집 인문학 강좌 7강_‘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책고집 인문학 강좌_‘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416연대 간담회
1일
3일
5일
5일
8일
10일
11일
12일
13일
14일
18일
19일
25일
26일
27일
8 2020 다산인권센터 연간보고서
9. 7월
‘정보기관 개혁 어떻게 할 것 인가’ 토론회
경기지역 여성주간 토론회 ‘여성에게 안전이란’ 발표
故 김태규 노동자 추모문화제
삼성해고노동자 고공 농성자 관련
_인권위 기자회견 및 촛불문화제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나들이
민주화운동기념관건립_집담회
MBC 계약직 아나운서 직장 괴롭힘 방지법 1호 진정 기자회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토론회_혐오없는 선거, 어떻게 만들 것인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잇수다 이끔이_전장연활동가대회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집시법 제11조 토론회 '집회의 자유가 사라진 장소
-집시법 11조 어떻게 할 것인가'
경찰청진상조사위원회 성과 보고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오픈 차별잇수다_가족
3일
4일
5일
8일
9일
13일
16일
17일
23일
23일
24일
26일
31일
8월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삼성해고노동자 고공 농성장 지킴이 및 문화제 주최
경찰개혁방안 및 계획수립을 위한 공동워크숍
삼성해고노동자 고공 농성 길거리 강연
전국 이주인권활동가 대회
혐오세력대응모임 관련 경기도의회 간담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지역 연대 워크숍 ‘반차별 설국열차’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_베를린연수
인천퀴어문화축제_인권침해감시단 활동
13일
14일
20일
20일
20~21일
22일
24~25일
27일
27일~2일
31일
9
10. 9월
삼성해고노동자 고공 농성장 지킴이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한 경기도만들기 도민행동 출범 기자회견
수원시 규탄 기자회견
_인권에 보류는 없다. 수원시인권기본조례 즉각 개정하라!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평등한달 선포 기자회견
정보경찰폐지네트워크 발족 토론회
_정보경찰,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4대종단과 함께하는 차별 없고 평등한 세상 말하기
5일
10일
24일
24일
30일
30일
30일
10월
광주 세계 인권도시 포럼
삼성해고노동자 고공 농성 문화제
김천톨게이트노동자 희망버스_우리가 손을 잡아야 해
국정원 '프락치' 공작사건 관련자 전원 엄중처벌 촉구하는
고발 기자회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 농성 집중문화제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한 경기도 만들기 도민행동 수원역 캠페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직접행동_응답하라 더불어민주당
경기도 성평등조례 집담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2019 평등행진
2019 전국이주노동자대회
삼성해고노동자 고공 농성 집중 문화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직접행동_응답하라 민주평화당
DMZ영화제 수원지역 상영회_카운터스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직접행동_응답하라 자유한국당
다산인권센터 인권학교 인권이 내게로 왔다
1강_‘인권이란 무엇인가’
1~2일
2일
5일
7일
11일
16일
17일
18일
19일
20일
23일
24일
24일
29일
31일
31일
10 2020 다산인권센터 연간보고서
11. 11월
국가인권위 업무추진을 위한 시민단체 간담회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한 경기도만들기 도민행동_도의원 간담회
외국인보호소 내 외국인 사망 사건 관련 법무부규탄 기자회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문화제
다산인권센터 인권학교 인권이 내게로 왔다 2강_‘인권의 역사’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다산인권센터 인권학교 인권이 내게로 왔다 3강_‘피해자와 인권’
평등한 지역사회를 위한 준비운동 워크숍
성소수자 차별하고, 성별이분법 강화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악안
발의 규탄 기자회견
다산인권센터 인권학교 인권이 내게로 왔다
4강_‘인권 쟁점 토론 첫 번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잇수다 이끔이 진행 및 간담회_유니브페미
故김태규 님 산재사망 책임자 기소ㆍ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삼성해고노동자 고공 농성 문화제
인권이 내게로 왔다 5강_‘DMZ영화제 지역 상영회 영화 관람’
DMZ영화제 수원지역 상영회_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홍콩시민을 지지하는 수원지역 연대 캠페인
4일
5일
6일
6일
7일
12일
14일
15일
20일
22일
26일
26일
27일
28일
28일
29일
12월
삼성그룹 노조파괴 범죄자 45명 엄중처벌 촉구 삼성그룹사
노동조합 대표단 기자회견
세월호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한 청와대 앞 피켓팅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국회토론회
_차별금지법 제정,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수요문화제
김진표국무총리 지명반대 경기지역 기자회견
다산인권센터 인권이 내게로 왔다
6강-‘인권 쟁점토론 두 번째 및 마무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말하는 우리, 커지는 용기’
2019 차별잇수다 돌아보기
홍콩 연대 방문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2019다산인권센터 송년회_문학이 빛나는 밤
3일
3일
4일
4일
5일
5일
6일
7일~11일
10일
18일
11
14. 반차별 연대기
사진으로 살펴보는 2019년 활동
2019년 다산인권센터는 ‘반차별’활동에 집중했습니다.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현실에서 다산인권센터는 더 많은 평등과 인권의
가치 확산을 위하여 함께 배우고 토론하며 실천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를 격주 진행하며 사회적 소수자 및 차별에 대한
책을 읽고 함께 수다로 풀어내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책읽기 외에도 평등과 관련된 실천
활동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혐오선동세력의 반대로 제·개정되지 못하고 있는 인권관련 조례 사태에 대
응하고, 평등을 옹호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내기 위해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한 경
기도만들기 도민행동’을 출범하여 단체들과 뜻을 모았습니다. 도민행동은 경기도 성평등
조례를 지키기 위해 현재의 상황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다양한 연대를 요청하는 간담회,
기자회견,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 2019년 6월 1일, 서울퀴어퍼레이드 수원지역 참가단
14 2020 다산인권센터 연간보고서
15. ▲ 2019년 9월 10일, “‘혐오와 차별은 폭력이다’ 폭력중단을 함께 외칩시다”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한 경기도만들기 도민행동 출범 기자회견
▲ 2019년 10월 16일,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한 경기도 만들기 도민행동 수원역 캠페인
15
22. 2019년 다산인권센터의 내부 활동을 소개합니다.
매년 2월 열리는 다산인권센터의 전통, 만두잔치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해 다산의 활동을
공유하하고, 오랜만에 만난 벗바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반기에는 다산인권
센터 인권학교 ‘인권이 내게로 왔다’를 진행했습니다. 매년 특정 주제를 가지고 구성했던
인권학교와는 다르게 인권 일반에 대해 공부하고 노키즈존, 강력범죄자얼굴공개 등 현재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인권의 쟁점을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해는 새로운 사업들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DMZ국제다큐영화제와 함께하는 지역상
영회를 통해 인권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지역 주민들과 함께 보는 시간을 마련
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이일하 감독의 영화 카운터스를 관람하고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
했고 두 번째로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나는 반대한다를 관람하고 춘천지방법원의 류영
재 판사님과 한국 사회의 이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송년회 ‘문학이 빛나는 밤’을 통해 참가자들이 올해의 한 구절을 낭독하고 소
개하는 따뜻한 시간으로 한해를 마무리했습니다.
▲2/21, 2019 다산인권센터 만두잔치
모이자, 다산으로!
사진으로 살펴보는 2019년 활동
22 2020 다산인권센터 연간보고서
25. [기획] 2019년 활동 자세히 살펴보기
한 발짝 더
나아가며
처음 소식을 접한 곳은 퀴어동아리 공지방이었다. 다산인권센터에서 반차별 운동을 함
께 할 자원활동가를 기다린다는 모집글에 홀린 듯이 신청했다.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
의 모임이라는 문구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저절로 좋은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쉽게 영향을
받는 나였기에 이미 좋은 사람들 곁에 있으면 많이 힘들지 않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
리라 생각했다.
반차별 운동에 대해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장애인 등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회
적 소수자에 대해 알아가는 활동을 한다는 설명도 마음에 들었다. 페미니즘이나 퀴어관
련 서적을 읽은 적은 있었어도 인권 책을 읽고 반차별이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여성이나 성소수자 문제는 주변 친구들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이기도 했기
에 쉽게 공감하고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 나를 구성하는 이슈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막상 신청할 때는 보자마자 바로 신청했는데 신청하고 보니 걱정이 많았다. 차별은 안 된
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을 뿐이었지 활동가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행동한 적은 없었기 때문
이었다.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거나 힘들어할 때 친구로서 나선 적은 있어도 활동가로서
나선 적은 없었다. 내 마음에 겨우 담을 수 있는 작은 뜰에 찾아온 사람들만 해도 버거웠던
참이었다. 하지만 마음의 문을 열고 더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고 싶다는 충동이 늘 자리하
고 있었다. 당일까지 고민이 이어졌지만 이미 발걸음은 다산인권센터로 향하였다.
우주*
*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구성원.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은 사회적 소수자 및 차별에 대한 책을 읽고 함께 수다로 풀
어내는 모임이다. 차별에 반대하는 실천활동에도 함께 참여한다.
25
26. 수원은 통학하는 길에 잠시 스쳐 지나가던 지역으로 친근했지만 익숙하진 않았다. 수원
역에 내려 한참을 헤맨 끝에 버스를 탔다. 버스가 팔달문 정류장으로 진입하자 곡선으로
된 차도에 맞게 운전대가 부드럽게 꺾였다. 내려서 골목으로 들어가자 2층 건물로 된 다
산인권센터가 보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실망할 것이 없었다. 각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말하
고 어떤 활동을 기대하는지를 나누었다. 나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커밍아웃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큰 결심을
하지 않더라도 편안하게 나로 있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센터에서 우선 정한 책을 다 읽
으면 서로 추천한 책 내에서 다시 투표하여 선정하기로 하였다. 첫 만남부터 차별에 관한
일상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저절로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슬프다거나 힘들지 않
았고 자유롭고 후련한 느낌을 받았다.
예정된 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습관처럼 벤 허리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는
데 어느 한 분 빠짐없이 같은 인사를 해주셨다. 나이가 많든 적든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
지든 상관없이 받은 만큼 그대로 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로는 당연하지 않
다. 솔직히 말해 너무나도 충격을 받아서 친구들에게도 말했었다. “글쎄, 나이가 지긋한
데다 박사까지 하고 지위도 높은 남자분이 나에게 허리 인사를 그대로 해주시는 거야.”
이렇게 말하니 친구들은 또 토크에 합성감미료를 넣는다고 타박했다. 내 주변에 또 이렇
게 있을 수 없는 당연한 일들이 생길 예정이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나에게 충격
을 주신 그분은 바쁜 일정에 더 나오시지 못했지만 나는 이미 세미나에 홀려버려 그럴 수
없었다. 바쁘더라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반차별 활동을 하면서 우유 계란 허용 채식을 시작하기도 했다. 채식을 시작한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반차별 활동이 있음을 이제야 밝힌다. 주로 활동하시는 분들 중
육식주의인 사람은 나를 포함해 두 명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센터로 오면
채식 위주의 식단을 먹게 되었다. 친구들은 어떻게 식욕을 억제하냐고 하지만 딱히 억제
한 적이 없다. 큰 고민과 결심 없이 너무나도 그냥 하게 되어서 나조차도 이래도 되나 싶
을 정도다.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또 좋은 점이라면 친구의 친구가 필리핀 화재민이라 도울 방법을 찾고 있을 때 센터에
서도 함께 고민해주셨다는 점이다. 필리핀에 어떤 단체가 있는지, 어떻게 기부금이나 물
품을 전해야 하는지를 같이 고민하고 제시해주셨다. 차별에 관련된 강연이나 행사, 시위
에 초대되기도 하면서 더 활발하게 활동가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행
사 정보를 알 수 있고 혼자라면 가지 않았을 곳들을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26 2020 다산인권센터 연간보고서
27. 내 주변 가족들과 친구들은 나를 정말 부지런하고 열성적인 사람으로 알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반차별 세미나를 하면서 저절로 부지런하고 열성적인 사람으로 보이게끔
되었다. 지금의 나는 그 전과 변한 것이 별로 없다. 여전히 누가 가자고 하지 않으면 가지
않고 누가 함께 하자고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선하고 싶은 욕
망이 있을 뿐이다.
나는 정말 보통 사람이다. 아직도 누가 활동가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렇
지만 반차별 세미나를 하기 전의 나와 하고 있는 나는 다르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여
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다면 이미 좋은 사람들과 합류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더 좋은 방향으로.
▲ 2019년 7월 9일, 반차별 자원활동가 모임 나들이
27
28. 불화하여 발화하는
인권을 만난 시간
인권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세월호였다. 분명히 살릴 수 있었던 304명의 고귀한 생명들
을 보며 억울한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이후 전태일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전태일 열
사가 일했던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나의 삶과
연결되었고 이주민 여성, 난민으로 다시 확장되었다.
페이스북에서 ‘인권이 내게로 왔다’라는 주제의 포스팅을 보았다. 관심 있던 주제라 자
세히 들여다보니 내용이 알차다. 강의 장소가 집과도 가깝고 남편이 퇴근하면 아이들을
맡기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은 여러모로 손해겠
단 마음에 남편과 의논 후 신청했다.
신청 후 한동안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용이 너무 좋아 많은 사람이 신청해 떨어졌나보
다 포기할 즈음 인권강좌 참석 안내 문자가 왔다. 내가 인권 강의를 듣다니. 아이들을 남
편에게 맡기고 약간의 긴장감과 들뜬 기분으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이니 꽉 찬 강
의실 뒤에 나는 맨 뒤에 앉아 조용히 듣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산인권센터에 도착하
니 공간은 분명 찼는데 예상보다 인원이 너무 적었다. 순간 조금 의아했다. 왜 이렇게 사
람이 적을까.
첫 번째 시간엔 인권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의의 문을 열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
하는 곳에 고통 받는 사람들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분명 그들을 보고 있으나
보지 못한다는 내용이 내 안의 사각지대가 어디인지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보이지
* 다산인권센터 인권학교 ‘인권이 내게로 왔다’ 참가자. ‘인권이 내게로 왔다’는 2019년 10월 12월까지 두 달간 진행된 다
산인권센터 인권학교로 인권 일반을 알아가고 현재 인권의 쟁점을 함께 토론하는 강의 및 토론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정서희*
[기획] 2019년 활동 자세히 살펴보기
28 2020 다산인권센터 연간보고서
29. 않는 사람들의 고통을 알고 사회와 불화하는 마음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는 행동
하지 못하는 나에게 작은 힘과 위로를 주었다.
‘피해자를 중심으로 하는 인권이야기’는 박진 해설가님의 활동가로서 삶이 녹아난 현장
성 담긴 이야기라 와 닿았다. 특별히 삼성 백혈병 피해자 황유미님의 아버지 황상기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물질 만능주의에 저항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가슴 아프고 인상적이었다.
‘루스베이더 긴즈버그:나는 반대한다’라는 여성 대법관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개인
적으로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여느 히어로 영화보다 통쾌하고 후련했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날이 언제쯤일까 생각하니 좀 착잡하기도 했다.
류영재 판사님과의 만남은 루스베이더 긴즈버그의 내용와 함께 어우러져 한국적 상황을
조명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판사님이 직접 겪은 일들과 함께 담아 낸 생동감 있는 이
야기는 시간상 충분히 들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와주신 판사님의
열정과 성심껏 해주신 대답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 한분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인권쟁점에 관한 토론의 자리는 참석한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새로
운 인식을 공급받는 시간이었다. 인권이라는 것이 설령 죄를 지은 사람일지라도 선과 악
의 기준을 떠나 한 인간에게 주어져야 하는 권리라는 것을 토론을 통해 깨달았다. 용서받
지 못할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라 하더라도, 그가 놓인 권력관계에서 어디에 있는지 제대
로 살피지 못하면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새로웠다. 대중의 시선에 사로
잡혀 타인에 대해 함부로 낙인찍는 것이 그동안 얼마나 쉽게 벌어졌는지 스스로를 돌아
보았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위해 사유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고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많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갖게 되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가장 듣고 싶었던 인권의 역사를 듣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그
외의 강의 하나하나가 모두 알차고 영양가 있는 배움의 시간이었다. 나이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른 사람들이 인권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시작으로 다양한 주제와
방법으로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함께 토론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매번 강의마다 숙제가 있었다. 그중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세계 인권선언을 필사하는 시
간은 인권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모든 인간들의 보편적
삶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인권선언문이 현실과 다르지 않은 날이 어
서 오면 좋겠다.
29
30. 거리가 가까움에도 참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갈 때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 고통 받는 약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났
다. 이렇게 유익한 강의에 적은 사람들이 온 것이 아직도 의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와
서 듣고 불편하면 좋겠다. 그 불편이 불화하여 나의 삶과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좋
겠다.
▲10/31~12/5, 다산인권센터 인권학교 인권이 내게로 왔다
30 2020 다산인권센터 연간보고서
31. 뛴다!
평등한 경기도를 위해!
무너지는 조례를 마주하며
2019년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위한 평등행진에서 외친 구호 중 이런 것이 있다. “방
방곡곡 조례들도!” “무너져!” 무너진다는 표현이 참 씁쓸하지만, 정말이지 조례들이 무
너졌고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다. 왜 이런 구호를 외치게 된 걸까?
시간을 거슬러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지자체장들에게 ‘인권 기본조
례 표준안’을 권고하였고 다수의 지자체가 동참하였다. 인권조례는 혐오와 차별이 넘실
대는 사회에서 인권과 평등,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인권위의
권고 이후 인권 기본조례뿐만 아니라 성평등, 다양성, 이주민 인권보장 등 ‘평등하기 위
해 필요한 권리보장’을 위하여 조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동성애 조장”
“이슬람 범람” 등의 혐오선동으로 조례가 개악, 철회되며 무너지고 있다. 경기도도 조례
들의 수난사를 피하긴 어려웠다. 2019년 6월 25일 경기도의회가 성평등 기본조례 일부
개정안(이하 성평등 조례)과 경기도 성인지 예산제 실효성 향상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
고 7월 성평등 조례는 가결되었다. 입법예고 순간부터 지금까지 혐오선동세력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의 폭력적인 행태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경기도, 경기도 내
시군단위들은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한 경기도만들기 도민행동(이하 도민행동)’출범에
뜻을 모았다.
사월*
*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기획] 2019년 활동 자세히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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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반차별·평등의 가치 확산을 도모하기 위하여
2019년 9월 출범 이후 도민행동은 만나고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혐오선동세력의 폭력
대응을 넘어, 경기도 내 평등을 도모하고, 한국 사회 내 반차별·평등의 가치를 확산시키
기 위해 기자회견, 간담회, 캠페인 등을 진행했다. 경기도 성평등 조례를 비롯한 인권조
례들에 대해 잘 이해하고 말할 수 있도록 교육TF의 활동을 띄웠다. 교육TF는 경기도와
도내 시군단위의 의회, 시민단체 등에 교육을 진행할 계획으로 이 사회가 누구를 배제하
고 있는지 살펴보며 성평등 조례를 둘러싼 궁금한 점들을 확인하고 배제가 아닌 함께 살
아가는 사회를 모색하고자 준비중에 있다. 교육을 통해 만난 이들과 나눈 토론은 도민행
동이 전개하는/하게 될 운동과 연결되어 단단한 기반이 될 것이다.
물러설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는 것들
2019년 도의회 마지막 회기를 앞두고 성평등 조례를 재상정하여 개악하려는 소식을 접
했다. 개악의 내용은 ‘성평등’의 정의를 생물학적 성별01
로 규정, 조례 적용대상에서 ‘종
교단체 및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법인 등 시설은 예외로 한다’를 추가하였다. 성평등을
생물학적 성별로 정의하는 것은 인터섹스02
, 트랜스젠더퀴어03
등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배제하는 것과 같다. ‘성평등’을 위한 조례에 ‘차별’적인 내용이 담긴 아이러
니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2019년 7월 가결 이후,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잘 지켜낸 성평
등 조례를 개악되도록 놔둘 순 없었기에 도민행동 활동가들은 동분서주했다. 시의적절한
대응을 했던 걸까, 다행히도 성평등 조례는 상정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웃으며 말하지
만 참 아찔했던 기억이다. 긴급했던 그 날들을 되짚어보며 도민행동에 필요한 것을 생각
했다. 인권조례에 담긴 가치와 보편적 권리보장의 필요성을 토론할 수 있는 더 많은 자리
와 더 많은 이들의 깊은 연대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2020년 도민행동은 경기도 내 31개 시군단위 조례를 조사하고 개악·철회에 대응했던
지역들과 만나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모색하고 구체적인 활동을 할 계획이다.
회동(會同). 평등한 사회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도민행동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려 한다.
물러설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을 기억하며. 2020년은 더 많은 인권조례가 상정되
어 사회적 논의의 장이 마련되는 해가 되기를 바라며! 뛴다, 도민행동!
01 생물학적 특징-생식기, 염색체, 호르몬-에 따라 사람의 성별을 두 개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념체계의 산물
을 뜻한다.
02 인터섹스는 성기나 염색체, 호르몬 등 여성/남성으로 구분되는 신체와는 다른 특징 및 정의를 나타내는 상태 또는
이러한 상태를 가진 사람이나 동물을 뜻한다.
03 트랜스젠더퀴어는 트랜스젠더와 젠더퀴어를 아우르는 말로, 신체적 외형만으로 지정한 성별과 '여, 남'으로 구분되
는 성별이분법적인 규범에서 벗어난 성별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32 2020 다산인권센터 연간보고서
34. 다시
용 기 를
내보기로
했다
활동가 인사
언젠가부터 눈물이 나지 않았다. 우는 것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 정도로
툭하면 눈물을 흘리던 나였는데, 신기하게도 눈물샘이 말라 버렸다. 인권 활동가로서 내
세울 뭔가는 없지만, 누군가의 삶에 공감하는 것, 그 마음만은 정말 잘할 자신 있는 나였
는데. 멈춰버린 눈물은 ‘내가 과연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줄 수 있을까’라는 답답함
을 들게 했다. 글도 써지지 않았다. 뭔가에 마음을 담아낼 수 없었다. 감정 없이 써내려
간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많은 글을 쓰지 않았지만 ‘절필 선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자괴감이 들게 되었다. 과연 나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이렇게 인권 활동을 언제까
지 지속할 수 있을까.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걱정이 앞서가던 즈음. 1년의 안식년이란
긴 쉼의 시간이 나를 찾아왔다. (다산인권센터는 7년 활동을 하면 1년의 안식년이 주어
진다)
7년 만의 ‘쉼’이었다. 오랜만의 쉼은, 옷장 속 처박아 두었던 오래 된 옷을 꺼내입은 것
처럼 꺼끌꺼끌하기만 했다. 늘 하루가 바쁘기만 했는데, 이상하게 하루가 바쁘지 않았다.
늘 할 일이 많았는데, ‘무엇을 할까’하는 고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갑작스레 주어진 여유에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일주일 내내 주민센터에서 이것저
것 숨이 차오르도록 배우기도 했다. 힘들어하는 활동가에게 ‘좀 쉬어, 쉬는 것이 필요해’
랄라*
*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34 2020 다산인권센터 연간보고서
35.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이렇게 하루하루 보내
다 안식년 다 지나가는 거 아냐, 우선 안식년을 알차게 보낼 나만의 목표를 세워보자. 일
하는 근육은 단련되어 있지만 쉬는 근육은 너무도 빈약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뭘까? 좀
더 혼자만의 여유를 찾는 것, 다시 활동을 시작할 때 두근거리는 마음을 갖는 것! 우선 그
목표로 1년을 알차게 살아보자. 그 다짐이 나를 대만으로 안내하게 되었다.
대만으로 떠나다
9월 20일부터 12월 15일. 대략 3개월의 일정으로 대만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쉐어
하우스에서 대만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TIWA(台灣國際勞工協會)라는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하게 되었다. 대만말 1도 모르고,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기초영어와 바디랭귀지만 가능했기에 3개월을 어떻게 보낼까 걱정이 가득하기도 했지
만, 반대로 날마다 흥분과 떨림이 찾아오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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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대만에서 3명의 룸메이트, 2명의 고양이와 함께 살았다. 대만 역시 한국처럼 집값이 너
무 비싼 상황이여서 (내가 알고 지낸) 대부분 활동가들 3~4인이 쉐어하우스에서 생활하
고 있었다. 결혼제도에 들어선 지 10년 만에 가족이란 틀을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과 살
아보게 된 것은 너무도 신나는 경험이었다. 밤마다 룸메이트들과 맥주를 마시며 홍콩과
대만 중국,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토론하고, 한국음식. 대만음식을 만들어 먹었
다. 때로는 대만의 관광지를 찾아가기도 했다. 물론 언어가 완전히 통하지 않아서 가끔은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환대와 배려 속에 3개월을 무사
히 버틸 수 있었다. (그들은 대만 욕을 가르치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대만에서 했던 주된 일 중 하나는 대만 NGO단체 자원 활동이었다. 자원 활동을 한
TIWA(台灣國際勞工協會)라는 단체는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단체로, 법률적인 상담,
생활 지원, 쉼터 운영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대만에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개인
브로커 시스템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그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또한
한국과 좀 다르게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돌봄 노동자에 종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법상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고, 돌봄 노동 특성상 돌보는 대상의 가족과 함께 거주하
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문제 역시 많았다. TIWA는 이런 이주노동자 문제 해결을 하라는
36 2020 다산인권센터 연간보고서
37. 요구를 담은 큰 집회를 2년에 한번씩 기획해서 진행했고, 나는 자원 활동을 하는 동안 집
회 준비에 참여하며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집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님을 위해,
새집을 짓기 위해, 새로운 삶을 동경하며 정든 곳을 떠나온 평범한 사람들. 물론 말이 안
통해서 번역기에 의존하거나, 이해 안되는 부분은 웃으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줬다.
용기에 대하여
대만에 처음 도착했을 때 몇 일간은 막막하고 두려웠다.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읽지 못
해 주문을 할 수도 없었고, 편의점에 가서 음료 하나 고르는 것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미용실에가서 어떻게 해달라는 설명도, 불편한 상황에서 나를 변호할 수도 없었다. 내가
살아온 곳이 아닌 공간에서 나는 아무 힘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주노동자들과 만나면서
이들 역시도 나와 마찬가지 상황을 겪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간 생활하는 나
도 두려운 일투성이인데, 실제 현장에서 작업을 지시받고, 혹은 누군가를 돌보며 노동하
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까. ‘이 어려움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것, 낯
선 나라, 낯선 생활과 언어권으로 떠나온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임이 틀림없
다. 그들의 용기를 보면서, 그동안 내가 잊고 살았던 뭔가가 떠올랐다.
‘용기’ 일상에 치이다, 일에 치이다 보니 그저 ‘이거 아니면 저거’를 선택하게 되는 삶이
었다. 효용비용과 시간, 상처를 덜 입는 쪽을 따지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새로운 것에 대
한 도전이 아니라 안정된 틀에 머무르려는 쪽으로 마음의 추가 기울지고 있었다. 내 마음
이 그렇다는 걸, 1년의 쉼과 낯선 곳에서 보냈던 시간을 통해 알아갈 수 있었다. 만약 쉼
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각박한 일상과 스스로의 고립된 틀을 벗어나
지 못한 채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1년의 안식년, 특히 대만에서의 생활을 통해 나에게
잊혔던 도전, 용기라는 언어를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
을 때, 나를 단단하게 해줄 수 있는 여유라는 근육도 마음과 몸속에 새겨 넣어 주었다. 쉼
이란 것, 잠깐 멈췄다 간다는 것은 더 오래 가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 그래서 꼭꼭
잘 쉬어야 한다는 걸 깨다는 안식년이었다. 이제 곧 안식년이 끝나간다. 안식년 동안 얻
었던 소중한 마음을 잘 간직한 채 설레는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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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회계의 코멘트
안녕하세요? 2019년도 다산의 살림살이를 맡은 아샤 활동가입니다. 작년 한해
다산을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2019년 재정에 대해 간
단히 설명 드립니다.
2019년 다산인권센터의 수입 총액은 119,057,024 원입니다. 2019년에는 수입을
창출한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교육활동도 무료로 진행) 수입의 대부분은 다산 벗
바리(후원회원)와 시민들이 정기 혹은 일시적으로 보내주신 후원금이었습니다.
후원금 중 CMS 후원과 계좌자동이체 후원이 경상 수입의 69%를, 지출 내역을
지정하여 후원하는 특별 후원이 23%, 일시 후원이 8%를 차지했습니다. 사업수
익은 DMZ다큐멘터리영화제 지역상영회 사업으로 모두 지출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지출에 대한 설명입니다. 차월 이월액을 제외한 지출 총액은 111,881,842
원입니다. 지출 내역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내역은 활동가들의 급여 및
복리후생비(76%)입니다. 그리고 복사기, 전기·가스·수도, 인터넷 등 사무실 운영을
위해 필요한 비용인 일반운영비와 경상운영비가 다음으로 비율(15%)이 큰 항목이
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산의 다양한 사업(교육·회원·현안대응 등)에 들어가는 일
반사업비(6%)와 다양한 이슈에 연대하는데 들어간 연대사업비(3%)가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재정을 정리한 내역에 대해 궁금하거나 제안하실 내용이 있다면 언제라
도 연락주세요. 작년 한 해 다산에 보내주신 벗바리와 시민들의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올해도 이 기운 받아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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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20년,
새로운 벗바리
200명을
꼬~옥
만나고 싶습니다!
다산인권센터의 새로운 벗바리(후원회원)님을 찾습니다. 다산은 정부와 기업의
후원 없이 오로지 벗바리님의 후원으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작년 겨울 후원을
호소하며 공유했듯, 후원을 해지하시는 분들이 평균 한 달에 다섯 명이기도 한
상황이죠. 다른 단체들도 그렇지만 예년부터 상임활동가 회의에서 벗바리 확대
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토론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2020년 계획을 세우며 30주년을 앞두고 다산인권센터의 활동을 보다
확장하기 위하여 새로운 상임활동가를 채용하자는 결정을 했습니다. 어려운 상
황이지만 변화를 꾀하고자 어렵게 다짐했습니다. 새로운 활동가와 함께 즐겁고
씩씩하게, 그리고 더 오래 인권을 외칠 수 있도록 다산인권센터의 벗바리 모집
에 연대의 마음을 보태주세요.
새해가 시작되고 어떤 단체에 후원할지 고민하시는 분이 곁에 계시다면, 인권운
동·지역운동·사회운동을 씩씩하게 하는 단체를 찾는 분이 곁에 계시다면 적극
적으로 다산인권센터를 소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산인권센터는 2020년
에도 양보할 수 없는 인권의 가치 확산을 위하여 즐겁고 씩씩하게 활동하겠습니
다! 한결같은 지지와 응원에 감사드리며 2020년에는 벗바리 200명 확대 캠페
인에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드림
43
44. 다산인권센터 벗바리가 되어주세요!
후원계좌
국민은행 203901-04-343446 다산인권센터
주소 (16260)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28 (남창동 91-3) 2층
전화 031-213-2105
팩스 031-215-4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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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20 다산인권센터 연간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