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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 시리즈
임도마 선교사
소개글




신구약 성경에 약속하신 모든 약속들 가운데
언약에 관한 약속들을 시리즈로 살펴본다.
목차




1    언약 시리즈 제1강 언약이란?        4

2    언약 제2강 언약 신학            5

3    언약 제3강 창조언약 (문화명령)      7

4    언약 제4강 아담 언약 (선악과)      8

5    언약 제5강 여인의 후손 언약       10

6    언약 제6강 노아 언약 (무지개)     11

7    제7강 아브라함 (이삭, 야곱) 언약   13

8    제8강 모세(시내산) 언약         16

9    제9강 안식일, 제사장 언약        19

10   제10강 다윗(영원한 왕위) 언약     20

11   제11강 새(유월절 만찬) 언약      23
언약 시리즈 제1강 언약이란?                                                  2012.07.10 20:51




 언약이란 주제는 성경의 중심 주제들을 이해하는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 구원과
교회 등 성경의 주요한 주제들은 언약이라는 주제 속에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약을 이해하는 구약성경 전체 내용의 핵심 단어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계획하셨고, 그 구원계
획을 성경을 통해 약속해 주심으로 사람이 알게 하셨다. 구약 성경에서 말씀하신 약속과 예언들이, 신약에서 성취되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언약을 통해서 성경을 읽으면, 모든 성경에서 복음의 깊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구속을 위한 언약이
기 때문에, 언약과 구속이라는 주제는 성경을 보는 렌즈다.


1. 언약의 목적
 언약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형성하는 것이다.(예레미야31:33).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언약의 목적
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줄 아는 백성을 형성하는데 있음을 알려 준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는, 의무로서 율법에 대한 순종을 요청한다. 율법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과의 사랑과 신뢰 관계를 전
제한다. 언약 관계에 충실하여 율법을 순종하는 사람들은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될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는 땅을 유업으로
얻게 될 것이다.
 1.1 언약 공부의 목적
 첫째,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언약이라는 주제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복음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면 성
령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둘째,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관된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 연구했다. 언약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관된 뜻을 발견할 수
있다.
 1.2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들
 언약은 성경에 나타난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맺은 언약의 형태들이 소개된다.
성경에는 4개의 중요한 하나님의 언약이 있다.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다윗 언약, 시내산 언약이 그 주 내용이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신호로서 하나님의 다른 이름들과는 구별되는 이름으로 계시되고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작을 본문이 말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호와의 자기 백성을 위한
목적을 밝히고 있다.


2. 언약의 흐름
 언약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은 여인의 후손을 통해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을 말씀하
셨다. 홍수 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고, 노아를 통하여 셈(Sem)의 후손을 축복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말씀
하셨다. 그 후 셈(Sem)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를 축복하시고, 그 자손을 통하여 온 세상 모든 민족을 축복하시겠노라고
약속하셨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들을 낳은 야곱(Jacob)이 죽기 전에, 자기의 4째 아들인 유다(Judah)를 왕의 조상으
로 축복한다. 그리고 유다지파의 다윗(David)에게는 그 후손을 통해, 영원한 왕권을 약속 하셨다.




                                                            언약 시리즈 제1강 언약이란?    •    4
언약 제2강 언약 신학                                                                         2012.07.10 20:53




 언약신학이란 성경을 이해라는 지배적인 범주로서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에 기초한 신학체계다.
 성경에는 복음이라는 은혜언약과, 율법이라는 행위언약이 나온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이 두 언약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성경에
서 행위언약, 은혜언약이라는 용어는 발견할 수 없다.
1. 언약 신학
 체계화된 언약신학은 최근에 이루어졌다. 언약신학자인 코르넬리우스 반 틸(Cornelius Van Til)은 “언약신학의 개념은 현 시대에
만 폭넓게 인지되었다”고 단언한다. 체계화된 계약신학은 16-17세기에 태동하였다. 언약의 개념에 있어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당사자가 있다는 것이다.
 1.1 구속언약
 구속언약은 천지창조 이전에 성부와 성자 사이의 언약으로서, 영원한 계약으로 불렀다. 이 언약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언약이기보다
는 상호 동등한 협의의 언약이었다. 비록 구속언약은 하나님과 인간 쌍방사이에 성립되었으나 하나님의 주권으로 된다.
 1.2 행위언약
 행위언약은 천지창조 후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아담과 맺은 계약을 말하는 것으로 생명의 언약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행위언약이
라고 하나님의 은혜가 배제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은혜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1.3 은혜언약
 은혜언약은 아담이 타락한 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말한다. 그러나 은혜계약이라 하여 전적으로 행위의 의무가 무
시되는 것은 아니다.
 은혜계약은 ‘옛 계약’과 ‘새 계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옛 계약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전에 하나님과의 유대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맺은 계약이다.
 새 계약은 그리스도 성육신 이후에 하나님과의 유대 관계를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 언약은 인간의 타락 후에 맺은 은혜계약이며, 동시에 옛 언약이다.
 히브리서에 나타난 복음의 근본 개념은, 새 계약에서 완성되는 옛 계약의 약속이다.


2. 언약 사상
 언약 사상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시는 개인차원의 언약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형성한 사회나 국가집단의 언약
이 있었다.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도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구속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신구약을 약속과 성취라는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신구약의 통일성을 중요시 하고 있다.
 신학자는 발터 아히로트(W. Eichrodt)는 '구약의 언약(covenant of old testament)'이라는 개념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관계성을 연결시킨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하나로 묵는 것이 언약이며, 이것은 교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과정의 묘사
(description of living process)"라고 했다. 이것은 구약의 횡적 믿음(cross-section of faith)을 통해서 본 견해다.
 2.1 종주권 조약(Suzerain-Vassal Treaty)
 종주권 조약은 영주와 백성들이 맺는 조약으로, 영주가 백성들을 보호해주는 대신에 백성들은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으시는 관계를 설명할 때, 이 조약의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
의 형식이 그 좋은 예이다.
 이것은 언약을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종주는 결코 맹세를 하지 않는다. 조약이라 하지만, 사실은 종주가 봉신에게 하는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2.2 왕의 하사 (a treaty granted by a greater to a lesser power)
 종주권 조약이 조건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왕의 하사는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약속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계약이 성립되는




                                                                                 언약 제2강 언약 신학      •   5
언약의 성격은 구두 선언이다.
하나님은 계약을 세우기 위해 말씀하셨다. 계약의 내용이나 형태가 어떻든 간에, 계약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언약 제2강 언약 신학   •   6
언약 제3강 창조언약 (문화명령)                                           2012.07.10 21:03




 약속과 율법, 복음과 율법 이 두 가지 언약은 각각 은혜언약과 행위언약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은혜언약은 무조건적이지만, 행위
언약은 조건적입니다. 은혜언약이 복음이라면 행위언약은 율법입니다. 율법은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복음은 하나님께서 “내가 하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맹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 같이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이다라고만 이해하면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에 그렇게 가르치던 말시온 이란 사람은 이단으로 정죄되고
말았습니다. 구약에도 율법과 복음이 있고, 신약에도 마찬가지로 율법과 복음이 있습니다.
창1:28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을 만드신 후 그에게 지으신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습니
다. 이것의 다른 표현으로는 문화명령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모든 환경을 주셨으며, 최상의 조건을 허락하셨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기쁨을 만끽하게 하셨습니다. 이 복
은 다른 피조물과 함께 나누는 복이 아니라 오직 사람에게 주신 권한으로 자신만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이라는 조건 속에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것은 아담을 창조하여 하나님께 책임 있는 존재
로 반응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관계는 은혜와 자비로 주어지는 무조건적인 관계는 아닙니다. 이 관계를 은혜와 자비
의 무조건적인 관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은혜와 자비는 율법을 어긴 자, 형벌을 받아야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아담은 범죄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받을 형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셨던 관계는 율법과 사랑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전제아래 아담에게 그 사랑에 반응하는 조건인 율법을 주셨고, 아담은 여기에 바르게 반응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
랑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는 표
현에서도 나타납니다(요14:21).




                                                     언약 제3강 창조언약 (문화명령)    •   7
언약 제4강 아담 언약 (선악과)                                                 2012.07.10 21:12




  성경에 나타나는 언약의 형태 가운데,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은 에덴동산에 살고 있는 아담(Adam)과 맺으신 언약이다.
"너는 먹지 말라”(창2:17).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신 말씀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이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최초로 맺으신 행위언약, 즉 형식으로는 율법 언약이다.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는 무책임하며 무조건적인 관
계가 아니라 하나님께 책임 있는 존재로 반응하도록 아담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전제하에, 아담이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도록 율법의 조건을 주셨고, 여기에 아담이 바르게 반응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어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하게 했느냐고 한다. 처음 아담은 타락한 본성이 없이 창조되었
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취약함이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온전한 의를 성취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존재로, 또한 정직하게 창조
되었습니다(전7:29). 마치 주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셨으며”(고후5:21), “시험은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셨다”(히4:15)는 것과 유
사합니다. 완벽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담은 이 행위언약을 지킬 수 있었고, 하나님은 지킬 수 있는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불순종의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이 행위언약을 깨뜨린 것은
전적으로 아담의 잘못이지, 그 언약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죄를 지은 후의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류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타락한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
난 우리에게 아담에게 주셨던 행위언약은 아무도 지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수행이 불가능한 언약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통해서 언약을 주신 것은, 아담과 책임 있는 관계를 맺으심으로써 아담에게는 책
임을 지킴으로 기쁨을 더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시는 의도였습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과 언약의 관계를
맺으심으로써 인격적이고 책임 있는 관계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에게 드러내시고자 하신 것
입니다.   또 이런 질문도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 하려는 순간, 강제로 막지 않으셨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강제로 자유 의지를 빼앗아 가시지 않으십니다. 온전한 자유의지를 가졌던 아담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우리가 잘못 행할 때 하나님은 강제로 개입하셔서 우리를 막으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결과로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나를 막지 않으셨는지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실수와
잘못을 하도록 허용하심으로써 그 일과 결과를 통해서 배우게 하십니다.
 인간이 비록 죄를 범하고 타락했을지라도 인간은 법과 질서를 기본적으로 지켜나갈 수 있는 능력이 본성상 있다. 그러나 자비와
은혜는 인간의 본성에 없기 때문에 그것은 선포되어서 복음이 들려져야 하고, 전달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계약에서 이
행하지 않은 축복들을, 구속계약에 의해서 실현하시려고 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영원 전에 예정하신 구속언약 속에서 둘째 아담의 더 영광스러운 순종을 통해 구속의
계획을 마련해 놓으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능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미 계획하셨고 이루실 능력이 있으시기에, 아담의
불순종을 허락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행위언약이 아담과 하와가 벌을 받고 나서 폐기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산상수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
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는 말씀에서 보여주는 것은 아무리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철저하게 율법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율법
이 요구하는 완전한 의를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의를 능가하는 율법의 의를 이루지 못하면 천국에 아무도 들
어갈 수 없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류는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날의 심판의 기준은 철저하게 행위에 따른 심판이 될 것이라




                                                            언약 제4강 아담 언약 (선악과)   •   8
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고후5:10; 마7:16~27; 행17:31; 유15; 계20:13; 22:11~15) 대표적으로 고린도후서 5:10을 보십
시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
다. 심판은 선악간의 행위에 의해서 베풀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자리에 설 준비가 되어있으십니까?




                                                                      언약 제4강 아담 언약 (선악과)   •   9
언약 제5강 여인의 후손 언약                                              2012.07.10 21:16




“내가 여인의 씨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 (창3:15).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뱀을 저주하시며 말씀하실 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것은 최초로 전해진 복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명령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담 편에서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약속은 인간의 행위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은혜언약이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하신 약속언약입니다. 인간은 단지 그
약속을 믿기만 하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생명을 약속하지만, 복음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그것을 믿는 믿음을 조건으로 생명을 약
속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고 복음은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숨겨진 듯 하면서 드러난 것은 보상의 내용입니다. 그것은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함께 있던 생명나무의
존재를 통해서 예시되었습니다(창2:9). 이것은 단순히 지상의 생명이 연장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완전히 의로운 상태요, 영원한 천
상의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거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생명나무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성과 순종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이 과분한 보상은 아담에게 주어질
영생과 완전한 행복의 상징적 보증이었습니다. 아담은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볼 때마다 그 옆에 세워진 생명나무를 보면서 선
하신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더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무도 이룰 수 없는 행위언약이 요구하는 의를 완전하게
이루신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순간마다,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언약의 보증으로 붙잡으십시오. 그것만
이 하나님의 완전한 요구 앞에서 흠없는 의로움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언약 제5강 여인의 후손 언약    •   10
언약 제6강 노아 언약 (무지개)                                              2012.07.10 21:20




 홍수 심판 후 하나님은 노아와 그 후손들 그리고 모든 생물들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언약은 하나님의 일
방적인 약속입니다. 동맹이라는 형식의 조약이 없다면 약소국은 강대국의 눈치만 살펴야 할 것이고, 약소국의 국민들은 늘 불안에 떨
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비슷한 정황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편케 하시기 위해서 언약이라는 형태로 관계를 맺
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는 순전히 자기 백성에게 불안이 아니라 평강을 주시려는 의도입니다. 하나님은 변덕스러우신 분이 아
니시며 그러기에 자신을 언약이라는 형식 속에 구속하심으로써 언약 당사자인 인간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이것이 인간과 언약을 맺
으시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맺으시는 두 종류의 언약은 인간 편에 행위를 요구하는 율법언약이라고 부르는 행위언약과,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일방적으로 약속하시는 약속언약이라고 부르는 은혜언약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자는 율법이고, 후자는 복음으로 구분합니다.
 행위언약은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첫 사람 아담과 맺으신 것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범죄하였고, 선악과를 먹으면 죽
는다는 행위언약은 그대로 실행되어 아담은 하나님과 단절되는 영적 죽음을 경험하였고 에덴에서 쫓겨났으며 결국 육신도 죽었습니
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한 그 자리에서 은혜언약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창세기 3:15에 있는 최초의 은혜언약입니다. 그 내
용의 골자는 여인의 후손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뱀의 머리를 깨뜨릴 것이라고 함으로써 인간을 죄로 몰고 간 마귀를 멸하시고 심
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맹세이고 약속입니다. 여기서 아담이 해야만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언약이고, 복음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은혜언약은 약속에 기초한 언약입니다. 이런 언약을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아브라함과 그리고 다윗과 맺으셨습니다. 은
혜언약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마치 큰 나라의 왕이 작은 나라의 왕을 사랑하여 조건 없는 선물을 베풀어주는 ‘왕의 하
사’와 같은 ‘선물 언약’의 성격을 가집니다.
 은혜언약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신자들 그리고 그 자녀들과 맺으시는 언약이고 공로가 아니라 만약 그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회
개와 믿음입니다. 이 은혜언약은 성 삼위 하나님 사이에 영원 전에 맺으신 구속언약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기초 위에서 주시는 약속입
니다. 본문에서 보게 되는 노아와 맺으신 언약은 분명히 은혜언약이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약간 독특한 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
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신 후에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 노아와 그 후손 그리고 모든 생물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내용은 “내가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형식상으로는 약속 언약에 속하는 것입니다. ‘해라’하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노아는 1년 2개월 동안을 동물원 같은 방주에서 지냈습니다. 물이 모든 생명을 다
휩쓸고 간 땅에 나온 노아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어떻게 우리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노아의
마음은 아마도 두려움과 불안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그처럼 경험한 사람은 인류 역사에 없었을 것입니다. 미래
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을까요? 막연함이 그를 사로잡지 않았겠습니까? 땅에 나왔지만, 그는 아무 인간도, 아무 짐승도 발견할 수 없
었습니다. 남아있는 초목조차 없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또 그는 이제 방주에서 풀려나오게 될 사나운 짐승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
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첫 사람 아담에게 주셨던 동물들과 자연의 피조물들에 대한 우월한 능력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
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제일 먼저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8:20). 하나님께
서는 노아의 예배를 받으시고 노아에게 언약을 주십니다. 이 언약은 분명히 노아의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모든 막연함을 평강으로
바꾸어주었을 것입니다(8:22; 9:2~3).
 이제 자연계는 홍수의 심판과 같은 예외적이고 두려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며, 일정한 자연의 법칙 속에서 돌아가게 될 것이며,
모든 동물은 사람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고 사람에게 동물을 먹을 수 있는 육식이 허락되었습니다. 이로써 사람은 동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근거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다”는 구절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신 이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9:1). 사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은혜언약은 전적으로 노아의 희생제사에 근거하여 주어졌다는 것인데 이 희생제사는 바로 그리스
도의 위대한 속죄희생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에게 주신 언약 자체는 이런 구속에 대한 약속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
다는 것이 놀랍고, 이것이 노아언약을 독특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언약을 주시는 상황을 보면 노아는 비록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의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
구하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방주에서 나온 후, 죄를 짓게 됩니다. 그의 아들들과 후손들은 말할 것
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실 때,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
다(8:21).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 일로 전과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사




                                                         언약 제6강 노아 언약 (무지개)   •   11
람들은 죄를 지을 것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는데 홍수로 다시는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면서 언약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
은 홍수 심판으로는 인간의 죄성이 치료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
나님은 무지개를 언약의 증거로 주셨습니다.
 이 무지개는 어떤 기능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무지개에 대해서 가지는 오해가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이유는 사람에게
무지개를 보고 물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주의 깊게 보면, 사람이
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9:15). 무지개를 보고 언약을 기억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9:16).” 무지개를 보고 맹세를 지킬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무지개는 마치 하나님께서 언약을 잊어버리시기라도 할까봐 그것을 맹세로 주신 확실한 증거입니다. 사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보좌를 두른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그만큼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는 것입니
다(계4:3).
 노아언약의 내용을 보면, 첫째는 자연법칙이 있습니다(8:22). 자연이 인간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는다는 보증입니다(9:11~16). 둘째
는 악의 세력이 통제될 것입니다(9:5~6). 셋째는 인간은 짐승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9:2~4). 그 내용들이 모두 일반적인 질서
에 관한 것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창9:13)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언약은 노아와 그의 자손들과만 세우신 언약이 아니라, 노아와 함께 배에서 나온 모든 생물들과 맺으신 언약이란 점에서 매우
독특합니다. 창8:9~10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누구와 언약을 맺으신다고 하십니까?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자연의 법칙들을 말씀해주신 것을 보면 자연계 모두에게 미치는 언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언약은
자연 언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 창조세계 전체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일반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맺으신 언
약에는 구속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언약은 일반은혜에 가장 가까운 언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른 은혜언약들, 예를 들면 아브라함 언약이나 다윗 언약과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인 특별은혜와는 매우 다른 독특한 부분입니다.

 노아언약은 형식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된 은혜언약이지만, 여기에는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나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 없기 때문에 일반은혜에 가까운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은혜와 특별은혜를 구분하지 못함으로 오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신자와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인류는 일반적 저주 아래 처해져 있고, 일반은혜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해
당하는 공통의 범주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 질병, 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과 세상 지혜와 창조적 능력과 같은 긍정적인 것들이
있고, 또 자연이 주는 비, 바람 그리고 해와 같은 것입니다. 신자는 고통과 질병과 죽음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며, 신자에게만 세상
지혜와 능력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신자에게만 비, 바람, 태양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노아 시대 이후 수많은 범죄가 자행
되어 왔지만, 하나님께서는 범죄자들을 홍수로 멸하시지 않고 오늘까지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그 순간에 우리는 아담의 죄
로 말미암은 일반적 저주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일반은혜의 한계입니다. 인류가 영원한 안식과 완성으로 들어갈 수 있
는 유일한 길은 오직 여인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믿는 것뿐입니다(창3:15). 이것은 특별은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히브리서 기자가 노
아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을 보아야겠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
주를 예배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11:7).” 구약의 모든
다른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노아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단지, 예수를 믿어서 병이 낫고, 부자가 되고, 세상 지혜가 더 많아지고, 승진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일
반은혜 가운데서 건강하고 부유하고 지혜롭고 직위가 높아져도 그것은 우리의 영혼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신자라는 사실 때문에 정당하지 않은 요구와 기대를 가지고 살 수는 없습니다. 신자이기 때문에 남보다 더 유리한 조건에서
인생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불신자와 같이 ‘심은대로 거두는 원리’속에 사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심는 것은
이 세상에서 거두는 것만이 아니라 영원 속에서 거두게 될 것, 하나님께서 주실 영원한 것을 위해 심는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돈
을 위해서 살지 마십시오. 세상에서의 성취와 성공 그 자체를 위해서 살지 마십시오. 그것들이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이 되게 하지 마
십시오. 그 위에 있는 목적, 영원 속에서 거두게 될 목적을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약속을 믿는 신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
식입니다.




                                                           언약 제6강 노아 언약 (무지개)   •   12
제7강 아브라함 (이삭, 야곱) 언약                                              2012.07.19 10:53




창15:1~21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언약은 일반은혜를 드러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구원이나 구속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지 않습
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전형적인 그리고 가장 중요
한 은혜언약의 특징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1. 은혜언약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맺으시는, 맹세로 하신 약속(언약)이다.
   은혜언약의 전형적 특징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맺으시는 것이며 무엇을 하라는 조건이나 율법 조항을 가지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로 주어지는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언약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이 됩니다. 하나님
은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고 구원하시는데 있어서 언약의 형식을 사용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언약의 성격
이 무엇이며, 왜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기를 기뻐하시는가를 조금씩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언약을 자기 백성
에게 주실 때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약속의 언약을 믿음으로
써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은 아담 이래로 지금 우리들 그리고 주님 재림 전까지 동일할 것입니다.

2. 아브라함 언약이 주어지기까지 구원에 관한 소망은 원시복음(창 3:15)밖에 없었다.
   아담이 범죄한 후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동안 아담부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얻었겠습니까? 그들에게 주어진 그리고 그들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언약은 오직 하나 밖에 없었습니
다. 그것이 아담의 범죄 직후에 하나님께서 뱀에게 저주하실 때 말씀하신 원시복음입니다(창 3:15). 이것은 인류역사에서 그리고 성
경에서 처음으로 선포된 복음입니다. 여인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깨뜨릴 것입니다. 그 여인의 후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
다. 그들이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여인의 후손이 오실 것을 바라봄으로써 소망을 가질 수 있었고 그들
은 그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을 선택하셔서 그에게 매우 구체적인 언약을 주
십니다. 이로써 우리는 오실 구원자인 여인의 후손이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오실 것과 가나안 땅에 오시게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사
항을 얻게 됩니다.

3. 아브라함에게 발생한 모든 사건은 언약의 특성을 설명한다.
   아브라함 언약은 아브람이라는 인물을 선택하셔서 그를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언약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깊이
설명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소명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의 성격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해
도 과언이 아닙니다.
  A. 부르심(행 7:2~3; 창 12:1~3): “내가 너를 축복하고 너를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창세기 12장에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을 때였고 우리가 스데반의 설교
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란에 오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셨다고 했
습니다(행 7:2~3).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다른 신들을 섬기던 사람이었으니까(수 24:2) 아마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것
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보일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부분적
으로 순종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데라를 모시고 대가족이 함께 하란으로 갔던 것입니다. 거기서 거하다가 아버지 데라가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하란에서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창세기 12장에서 보는 장면입니다. 그 내용은 하
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과 후손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을 복주실 것이고, 또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
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아브라함의 전 생애는 결국 이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과 거기에 따라서 하
나님께서 그 언약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이시고 확증해주시는 이야기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이해하는 열쇠는 바로 이 약속의 말
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아직 정확한 방식으로 언약을 맺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창세기 15장에서 보게 됩니다.
  B. 언약을 맺으심(창 15)
  하나님은 15장에서 당시 일반 사람들이 하던 방식처럼 아브라함과 언약을 정식으로 체결하십니다.
  C. 언약의 증거로 할례를 명하심(창 17)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증거로 할례를 하라고 하십니다. 이 할례는 십계명과 같은 율법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할례를 받음으
로써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효력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 증거와 표시로서 할례를 받는 것
입니다. 할례를 받음으로써, 아브라함과 그 자손은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이다”라고 스스로 상기하고 또 세상 앞에
서 그렇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D. 언약을 확증하여주심(창 22:17~18)
   아브라함의 삶의 절정은 그가 독자 이삭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리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시험하시려




                                                         제7강 아브라함 (이삭, 야곱) 언약   •   13
고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아브라함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
음을 인정해주십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는 천사가 아니라 성육신하여 오실 예수 그리스도라고 많은 학자들은 이해합니다. 왜냐
하면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1인칭으로 말씀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읽을 때 이런 부분을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번제를 드립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제까지 하신 언약의 말씀을 더욱 구체적으로 확증해주십니다. 그것이 17~18절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
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4. 언약체결 의식
  15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정식으로 언약을 체결하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A. 왕의 하사(선물, 1절)
   본문은 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시작됩
니다. 이것은 강대국 왕이 약소국의 왕에게 은혜로운 선물을 하사해주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상급이라는 단어는 군
사로 출정한 사람에게 왕이 주는 보상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아브라함은 바로 앞에서 메소포타미아 동맹 왕들과의 전쟁을 치루고서
롯의 가족과 사로잡혀간 소돔 백성들을 구해준 후, 소돔 왕이 주는 전리품을 거절한 바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소돔왕이 내가
아브라함을 치부케 하였다고 말하도록 허용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다른데로
부터 오는 것들에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소돔 왕에게서 포기한 부보다 훨씬 많은 보상물로 특별한 하사품을 상급
으로 줌으로써 언약적 의무에 충실한 아브라함의 주목할만한 행동을 인정해주는 강대국 왕의 이미지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B. 언약을 자르다(cut a covenant, 렘 34:18~20)
   주목할 가장 중요한 사건은 언약을 자른 사건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언약을 맺는 방식은 짐승을 반으로 쪼개서 벌려놓고 그 사이
로 언약 당사자들이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에는 언약을 맺다라는 말이 ‘언약을 자르다’라고 표현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가는 행위는 언약을 어길 경우에는 자신이 쪼개진 짐승과 같이 될 것이라고 하
는 맹세 행위였습니다. 렘 34:18~20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대 말기에 하나님의 율법 언약을 범한 백성들
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피로 맺은 모세의 언약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언약을 어겼으므로 하나님께서
는 그 결과 저들이 그 쪼개진 송아지와 같은 신세가 되어 공중의 새들과 땅 짐승의 밥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을 자르는 언약체결의식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C. 이상한 종주권 조약(7~11절)
   여기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 너무나 특이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밤하늘의 별과 같이
자손을 많이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그리고 이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서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도대체 자기가 어떻게 그
말씀을 믿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8). 그러나 하나님께서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
끼를 취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 짐승들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습니다. 비둘기는 몸체가 작
기 때문에 제사를 드릴 때와 마찬가지로 쪼개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진 후에 아브라함은 깊은 잠이 들었는데, 하나님께서 나타나
셔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400년 동안 이방에서 객이 되어 섬기다가 그 섬기던 나라를 하나님께서 징벌하셔서 큰 재물을 가지고 거기
서 나오게 하실텐데,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와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눈에 연기나는 화
로가 보이고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것을 그는 보게 됩니다(17).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
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라고 말씀합니다(18).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 횃불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서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맹세로 되는 언약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
는다고 할지라도 아브라함은 언약을 지킬만한 신실함을 가지지 못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수없이 실
패를 반복합니다. 약소국 왕이 언약의 내용을 지키지 못하면 그는 짐승처럼 죽을 것입니다. 이 종주권 조약은 언제나 약소국 왕에게
만 의무를 지우도록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시는 조약은 정반대로 나타납니다. 아브라
함이 지나가지 않고 하나님이 지나가십니다. 이것은 약속을 지키는 모든 책임을 하나님이 끝까지 지시며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모
든 저주를 하나님께서 직접 받으시겠다고 맹세하시는 행위였습니다. 이것은 형식은 종주권 조약과 같은 것이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
의 일방적 맹세였습니다. 이렇게 강대국 왕이 자기 목숨을 걸고 맹세를 하는 형태의 조약은 고대 근동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여기서 당신의 생명으로써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고 맹세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5. 하나님의 모든 자비와 용서의 근거는 아브라함 언약이다(출 2:24; 신 4:31; 왕하 13:23).
  이 언약은 오직 아브라함 한 사람을 위해서 하신 약속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 모두가 다 이 약속의 은택을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어기고 잘못 행할 때 그들을 용서하실 때마다 바로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억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느 한 구석에서도 모세의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하시지 않
으십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언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이 짐승의 피를 흘려서 그 피뿌림을 받고 언약을 비준했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은 행위의 원리에 근거한 행위언약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나올 때에도 하나
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합니다(출 2:24). 또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도 만일 이스라엘 백성
이 잘못 행하여 언약을 어기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실텐데 이는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신 4:31). 여기서도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의 근거는 모세의 언약이 아닙니다. 여호아하스 왕 치하의 북왕국 이스라엘을 아람
왕 하사엘에게 완전히 멸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한 것이라고 말합니




                                                       제7강 아브라함 (이삭, 야곱) 언약   •   14
다(왕하 13:23).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언약을 기억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께서 친히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심으로써 약속하신 맹세이기 때문입니다.

6. 아브라함이 언약의 영적 의미를 바라보다(히 11:8~19).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영적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A. 외부적이고 일시적인 것은 영적이고 영원한 것의 상징과 예표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주리라고 가나안 땅을 지명하셨을 때에도 이것이 다가 아니라 이 외부적이고 일시적인 것은 영적이
고 영원한 것의 상징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랬다는 것입니다(히 11:10). 그는
또 나온 본향 갈대아 우르가 자기가 돌아갈 곳이라고 생각했다면 얼마든지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텐데, 그가 바라본 것은 하늘에 있
는 더 나은 본향이었다는 것입니다(히 11:16). 그는 외부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영적이고 영원한 것의 상징과 예표에 불과하다는 사실
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언약 체결의식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B. 아브라함의 믿음의 근거는 ‘구약성경의 골고다’이다.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독자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릴만큼 하나님을 신뢰하게 만든 요인이 무
엇인가? 오늘 본문에 그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맹세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쪼갠 짐승 사이로 지나심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댓가로 약속을 지키실 것을 맹세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셔야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셔야만 할 의무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역사상 어떤 강대국 왕도 그렇게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맹세로써 아
브라함에게 언약을 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의 믿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믿음
이 만들어지는데에는 바로 이 사건, 하나님의 맹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의미는 아브라함이 세월을 보낼수록 분명하게 드러
났습니다. 비록 이 사건 후에 바로 아브라함은 육체를 따라서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 실패를 경험하지만, 이런 모든 사건들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맹세를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독자 이삭을 하나님게 바치게 되는 자리까지 가게 되는 것
입니다.

7. 우리의 신앙의 근거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이다(갈 6:14).
  어느 신학자는 이 언약체결 사건을 구약성경의 골고다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율법 파기의 저주 아래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골고다 언덕의 그림자입니다. 실제로 언약을 범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어진 은혜언약이 믿는 자들에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언약 파기에 대한 댓가를 지불함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눈 앞에서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가
신 하나님께서는 그로부터 2000년 후에 인간의 육신을 입고 땅에 오셔서 그 언약 파기의 책임을 홀로 다 당하신 것입니다. 주님 자신
이 아브라함이 쪼개서 피흘리고 죽게 한 그 짐승들과 같이 십자가에서 그 몸이 찢겨지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앞에서 하
나님이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가신 일은 하나의 퍼포먼스(performance)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뿐 아니라 그 약속의
언약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들이 될 모든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하나님과의 언약 조항들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을 자가 없다는 사실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쪼갠 짐승 사이로
지나가심으로써 언약 파기의 저주 아래 홀로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서 2000년 전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
세의 책임을 지시고, 죽어야 할 아브라함의 아들 대신에 당신의 독자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의 저주 아래 두신 것입니다. 처음 아담이
범죄함으로 실패한 행위언약의 저주를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 담당하게 하심으로써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구원하시는 은혜를 무한히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이렇게 밖에는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말입니다(갈 6:14). 아브라함의
신앙의 근거가 그가 보았던 하나님의 저주 맹세였듯이, 오늘 우리의 신앙의 유일한 근거는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인 것입니
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봄으로써 독자를 번제로 바치는 믿음의 자리에까지 이른 아브라함과 함께 그 자리에 서게 될 것
입니다.




                                                       제7강 아브라함 (이삭, 야곱) 언약   •   15
제8강 모세(시내산) 언약                                                 2012.07.19 11:05




모세 언약 (행위-율법)
 시내산 언약이라 부르는 모세와 맺은 하나님의 약속은, 그 내용상이나 형식상으로도 대표적인 율법언약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내시고 시내산에 오게 하셨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주시고 기타 율
례와 명령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언약의 형태로 주어진 것입니다. 출애굽기 19:4~6을 보면,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조건이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복 주실 것입니다. 이제 이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로부터 다
듣고 한 목소리로 그렇게 하겠노라고 두 번이나 말했습니다(3,7). 그리고 모세는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려서 피를 취하여 절반
은 단에 뿌리고, 절반은 백성에게 뿌리면서 이것은 ‘언약의 피’라고 말했습니다. 이 언약의 피는 언약을 비준하는 표시였고, 백성
들을 하나님과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표시였습니다. 결과,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모세와 아론, 아론의 아들들 그리고 이스라엘 70장
로들에게 산에서 보이셨는데, 놀랍게도 그들이 죽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언약의 피 때문에 그들은
죽지 않은 것입니다. 이 내용의 중심에 있는 것이 시내산 언약입니다. 이후, 이스라엘이란 국가의 운명은 언제나 이 언약에 대한 순
종과 불순종에 의해서 결정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내산 언약이 성경의 구속 역사 전체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에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1. 모세와 맺은 약속 :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켜라.”(출19:5)
   하나님께서 모세와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가 지상에 세워졌습니다. 이 나라는 철저하게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유지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 언약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조건을 제
시하십니다.
  먼저 사람들이 가지기 쉬운 오해를 다루려고 합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구원을 얻었습니까?
  어떤 신학자들은 구약 시대 사람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을 옛 세대주의라
고 합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복음을 심각하게 오해하게 만드는 우를 범한 것입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 아니 아담 이래로 주님 재
림 전의 마지막 구원 얻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믿음 외에 다른 구원의 방도는 주어진 적이 없고 없을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또 하나의 오해는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입니다. 이것을 언약적 율법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역시 일관되게 가르치는 것은 구원은 율법을 행하는 것 혹은 행위로서의 믿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독단적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자적, 주권적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오해를 다루는 이유는 오늘날 이 시내산 언약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세 율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잘못된 오해들
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여러분이 구약성경을 읽으실 때,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
와 직결됩니다.
   시내산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언약에 대한 문자적인 성취라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2:1~3에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후손
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15:7,16). 그러므로 하나님은 약속대로 애굽에서 그 백성을 건져내시고 가나안 땅을 기
업으로 주셨으며 나라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성취였습니다.
   1.1 국가적 언약
  시내산 언약은 모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지상 천국을 가나안 땅에
세우려는 계획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이 장차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모
델 하우스와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런 점에서 시내산 언약은 종말적 낙원의 모형으로서(호6:7) 하나님이 아담과 에덴
에서 맺으신 창조언약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의 창조언약의 조건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조건을 제시했듯이, 시내산
언약도 십계명 그리고 많은 율례와 명령들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두 언약에서 요구되는 조건은 둘 다 순종입니다. 그 보상이
나 형벌이 무엇입니까? 두 언약 모두 삶과 죽음이 각각 보상과 형벌의 내용으로 주어집니다(레18:5). 아담이 창조언약을 어기고 에덴
에서 추방되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언약인 율법을 어기고 멸망당하고 다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추방되었습니다. 에덴 동
산이 모든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면, 성경은 가나안 땅에 대해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에덴을 연상하게 합
니다. 아담이 언약을 어긴 후에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고 하였듯이,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언약인 시내산 언약을 범하고 추방을
당하자, 이스라엘 고토는 가시로 뒤덮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모세를 통해서 맺어진 시내산 언약은 모두 그 자체로 지상 낙원 건설
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하나의 신정 체제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시내산 언약이 국가적 언약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이라는 역사 속에 실존한
국가 그리고 그 민족과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입니다. 국가와 맺으신 언약이라는 말은 시내산 언약이 요구하는 순종은 외적 순종이며




                                                           제8강 모세(시내산) 언약    •   16
이 외적 순종에 의해서 지상의 나라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범위는 국가적, 민족적이고, 언약의 목적은 이
스라엘의 일시적인 사건들을 신적 통치 아래 통제하기 위함이었고, 이 언약의 결과는 결국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
다. 이점에서 시내산 언약은 형식상 율법언약이고 행위언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국가를 잘 유지하는 것은 율법 시내산 언약 에 순종하는 것에 달린 문제입니다. 천국을 얻는 문제가 아니
라 지상 국가를 유지하는 차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행위언약은 아담언약 처럼 엄격하게 시행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압
니다. 선악과를 먹었을 때, 하나님은 가차없이 아담에게 벌을 주셨고 에덴에서 내쫓으셨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영적으로 이미
죽었으면 육체적으로 죽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언약의 실행은 엄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내산 언약은 그렇게 엄격하
게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시내산 언약 안에 이미 용서와 속죄의 규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위기를 중심으로 나오는 제사규정들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왜 그런 규정들이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로 순종할 수 없고 죄를 지을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규정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시내산 언약에 있어서 하나님의 용서와 속죄가 행해
지는 근거는 시내산 언약의 자비로움이 아니라 아브라함 언약에 근거해서 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시내산 언약은 그 형식상으
로는 행위언약이기 때문에 용서와 은혜와 자비가 설 형식적인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6:40~42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짓게 되고 형벌을 받게 될 때, 하나님은 야곱, 이삭,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
억하심으로 그 땅에 다시 찾아오시고 회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시내산 언약 자체에 있는 속죄의 규정은 근본
적으로 아브라함 언약에 기초해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언약은 은혜언약인 반면에 시내산 언약은 형식이 행위언
약이기 때문입니다.
  이 행위언약으로서의 시내산 언약이 요구하는 순종은 외적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시내산 언약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외
적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그 보상도 지상적이고, 일시적이며 외적인 것이었습니다. 즉, 자싱의 모형적 안식을 얻는 것이지, 이
순종을 통해서 영원한 안식을 얻는 것, 천국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령,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명령에서 순종의 보상은 그 땅에서의 장수입니다(출20:12). 영원한 것이 아니
란 말입니다. 이와 같이 시내산 언약은 천상의 안식이 아니라 지상의 모형적 안식을 보상으로 약속하고 있습니다. 시내산 언약은 일
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언제까지 말입니까? 더 좋은 언약이 올 때 이 시내산 언약은 더 좋은 언약으로 대치될 것이라는 말입니다(히
8:13). 그러므로 시내산 언약은 일시적, 혹은 잠정적 언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넘어진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들은 시내산 언약을 복음이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과 그 율법에
대한 그들의 착각과 무지가 그들을 넘어지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자기들만이 가지고 있는 이 율법을 외적으로 지키기만
하면 그것이 영원한 복을 주고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착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선조들이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
들은 이 언약이 더 좋은 언약이 올 때까지 잠정적 기능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넘어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식으로 넘어지는 자들이 적지 않은 것을 봅니다. 소위 형통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서 유래한 것입니까? 이스
라엘 백성들의 넘어진 자리에서 그들도 넘어진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이 외적 순종을 요구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외적 축복을 약
속하는 점을 그들은 붙잡은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이 이스라엘 국가와 맺어진 언약이며 잠정적이어서 더 좋은 언약으로 대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언약을 붙잡고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인 지상에서 누리는 형통의 복을 율법 순종
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형통 복음의 출생입니다. 복음 시대에는 더 이상 이런 특성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
을 붙잡습니다.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착각과 자신감이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바울 사도가 말했을
때, 바로 이런 태도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생각처럼 복음과 은혜의 장애물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해 주겠다”라고 말하는 복음은 매력이 없을 뿐 아니라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이렇게 해라”라고 요구하는 율법이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뭔가 할 일을 주니까, 신이 나는 것입니다. 정작 그
들에게는 그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으로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고 수고한 것들을 가지고 그 토대 위에서 여러분을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율법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여러분이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악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변
함없는 사랑으로 바라보시고 대하신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2. 시내산 언약의 진리
 시내산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A. 율법의 원리는 지상의 땅을 유지하는 것이 기초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원리는 천상의 땅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시내산 언약은 그 형식에 있어 행위언약으로서 율법의 원리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중생한 자들은 시내
산 언약 안에서 내적이고 영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들이 지적했던 바, 마음에 할례를 받으
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진실한 신자들은 시내산 언약 아래서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은혜 언약을 믿었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적 순종을 나타낼 때, 구원과 영
적 축복이 주어짐을 알았습니다.
 은혜언약은 구원의 길을 약속하지만, 시내산 언약은 국가적 순종에 기초한 가나안에서의 국가적 보존의 길을 약속한다는 차이를 그
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은혜언약은 하나님과 진실한 신자들 사이에 개인적으로 맺어졌고, 거룩한 마음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영적




                                                               제8강 모세(시내산) 언약   •   17
인 순종을 나타낼 때 그들에게 영적인 축복들을 보장하고 확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도 시내산 언약 아래서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또한 그들은 시내산 언약을 순종함으로써 지상 나라의 복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일시적이고 지상적인 나라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의 씨
인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는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곧
그의 멸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B. 땅의 약속을 보장하는 시내산 언약을 영원한 생명과 안식을 약속하는 복음과 구별해야 합니다.
 구속 역사에 있어서 시내산 언약은 일시적이고 과도기적인 질서로서 막간과 같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시내산 언약은 우리
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결코 하나님과 인간이 각각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주어지는 것이 아니
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내산 언약은 쌍무적 계약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결코 구원하지 못합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맹세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라’고 말씀
하시지 않으십니다. 오직, “내가 이루리라”라고만 말씀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약속을 기억하시고 다윗에게서 그리스도
가 나게 하셨습니다. 약속을 지키시겠다고 두 번이나 단언했지만, 실패한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그리스도께서 시내산 언약의 모든 율
례와 명령을 다 완전하게 지켜 행하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 구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상에 구현되는 것은 모형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안식과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 속하는 순종을 통해서라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잠정
적인 시내산 언약의 율법 규정들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후손인 그리스도,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입니
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연약하여 할 수 없는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신구약 시대를 통틀어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구원은 저와 여러분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만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인 것입니다.
구원을 사람의 행위에 두지 않으시고 믿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은혜 때문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모세, 다윗 그리고 바울과 같이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것입니다.




                                                         제8강 모세(시내산) 언약   •   18
제9강 안식일, 제사장 언약                                                  2012.07.19 11:12




안식일 언약
 안식일 언약은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안식일’이라 말씀하시며 창조의 엿새 후 쉬어 평안하였음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영
원한 언약을 삼으셨다.
  이스라엘이 지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영원한 표징이 되도록 하셨으니 이는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인줄 알도록
하심이다.
  출31: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
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십계명을 주실때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다.

제사장 언약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은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음행하는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을 죽임으로 이방을 섬기는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질투심을 대신함으로 받은 것이다.
  민25: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
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
시니라.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5.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
라 하니라. 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
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7.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
에게서 그쳤더라. 9.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명이라.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
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
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13.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
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제사장 언약은 아론과 그의 자녀들에게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주신 후 레위 자손을 헌신한 자들로 인정해 주셨다.
 레8:22 또 다른 수양 곧 위임식의 수양을 드릴쌔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수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23. 모세가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르고 24.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가
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그 피를 바르고 또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출28:1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29:1 너는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로 거룩하게 할 일이 이러하
니 곧 젊은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수양 둘을 취하고.
 출32:21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수 없노라... 24. 내
가... 금이 있는 자는 빼어내라...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
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
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28. 레위 자손이 모
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명 가량이 죽인바 된지라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
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제9강 안식일, 제사장 언약    •   19
제10강 다윗(영원한 왕위) 언약                                                      2012.07.19 11:19




삼하 7:1~2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후, 또 하나의 중요한 언약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다윗에게 주신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방의 대적들을 파하시고 다윗과 그 나라에 평안을 주셨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자 다윗이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
궤를 둘 만한 합당한 성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2). 다윗이 이 계획을 선지자 나단에게 말하자,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서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을 약속하십니다.
1. 다윗에게 주신 언약(삼하 7:11~16)
   A. 다윗에게 주어진 왕권이 자손들에게 영원히 견고하게 주어질 것이다(대하 7:13~16).
   다윗에게 주신 언약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다윗에게 주신 왕권이 다윗의 자손들에게 영원히 견고하게 주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3~16). 그리고 여기에 구체적으로 덧붙여진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 왕들이 죄를 범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그를 징계하시겠지만, 사울에게 하신 것처럼 그 왕위를 빼앗는 일은 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B. 다윗언약의 영원성은 다윗 자손의 신실함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다(삼하 23:5).
   본문에서 ‘영원하다’는 말이 3번 반복해서 나옵니다(13, 16). 영원히 왕위를 지속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맹세이자, 언약입니다. 하
나님의 언약은 다 영원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에 이처럼 영원하다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기에 다윗에
게 주신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이 언약의 영원함은 결코 다윗 자손의 실실함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
어도, 어떤 일이 일어나도, 어떤 다윗의 자손이 하나님을 배반해도, 하나님은 그 언약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 언약은
은혜 언약입니다. 은혜 언약이란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해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해주겠다’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주신 언약도 다윗이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짓겠습니다’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니,
네가 나를 위해서 뭘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너를 위해서 할 것을 내가 알려주마”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참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
는 하나님께 ‘제가 주님을 위해서 뭘 하겠습니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아니, 내가 너를 위해서 하는 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실함이 우리의 구
원의 근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인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
님을 아십니까? 이런 하나님을 믿으시는 것입니까?

2. 하나님의 주권
   이스라엘 왕정의 역사가 시작된 과정을 보면 이스라엘은 본래 왕정이 아니라 신정이었습니다. 그 시대를 사사시대라고 합니다. 무
슨 국가의 위기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평범한 인물 중에서 사사를 세워서 위기를 극복하게 하고 나라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사사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이스라엘에 왕이 없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우리의 왕은 하나님이시다라고 대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
게 400년을 사사시대로 보낸 백성들이 마지막 사사라고 불리우는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A. 왕을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는 죄였지만, 왕을 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삼상 8:7; 신 17:14~20).
   왕을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는 죄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 요구는 왕이신 하나님을 거절하고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정을 거부하고 왕정을 요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독특함을 버리고 이방 나라들과 같이 되려는 생각이
었습니다. 비록 그들의 요구가 죄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모세를 통해서 왕이 세워지게 될 것을 암시하신 적이 있습니다(신
17:14~20). 이것은 정확한 예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왕을 달라는 요구는 죄였지만, 왕을
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그 목적을 드러내시는데 사용하십니다. 죄
조차도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시는데 쓰실 수 있는 능력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과 행사를
거스릴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특별히 우리가 금요예배 때 출애굽기를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보게 되
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 왕정이 행사되는 이스라엘 왕국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내시려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B. 다윗 왕국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승귀와 하나님 나라의 모든 특성과 영광을 보여주신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승귀(높아지심)와 하나님 나라의 모든 특성과 영광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특징을 통해
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왕국을 설명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왕, 만왕의 왕이라고 할 때 그것이 어떤 의미로 주어지는
것인가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왕국은 얼마나 복된 나라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요구한 백성들의 잘
못을 당신의 거룩한 뜻을 위해서 쓰신 것입니다.

3. 언약의 흐름: 여인의 후손(창 3:15) 셈의 후손(창 9:27) 아브라함에게서 날 자(창 15:4) 유다지파(창 49:10) 다윗(삼하 7) 다윗
의 후손
   언약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보면 처음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은 여인의 후손을 통해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을 말씀하
셨고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이 약속을 그들의 소망으로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 자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홍수 후




                                                                제10강 다윗(영원한 왕위) 언약    •   20
에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고 노아를 통하여 예언을 하시는데, 하나님은 특별히 셈의 후손을 축복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
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후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에게서 날 자를 축복하시고 그 자손을 통하여 온 세상 모든 민족
을 축복하시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조상들을 낳은 야곱이 죽기 전에 자
기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장면에서 네째 아들인 유다를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창 49:10을 보십시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실로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이견이 많지만, 그것이 메시야의 호칭이든 아니든, 메시야를 암시하는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왕이 유다에
게서 나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보십시오. 처음에는 여인의 후손, 그리고 셈의 후손으로 좁혀지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으로, 다시 유
다 지파로 좁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유다 지파의 다윗에게 이제 하나님은 당신의 영원한 언약을 주십니다. 그것은 다윗의 후손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4. 다윗 언약은 성취되었는가?
   A. 이스라엘 왕국, 하나님 나라의 상징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왕의 홀을 주심으로써 왕정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에는 부정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백성의 관심
이 더욱 땅의 것과 보이는 것에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늘의 것에서 점점 떠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눈에 보
이는 왕국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오해에 기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달라는 백성의
요구에 응하셔서 왕을 주시고 왕국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왕국의 특성과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시는 상징으로 주신 것이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상징을 실재로 받아들인 것입니
다. 이것이 유대 역사에서 그들이 가장 심각하게 복음과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게 한 부분이고, 또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을 메시
야로서 거부하게 된 원인이 된 것입니다. 상징을 실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B. 왕들의 실패와 다윗 언약에 대한 불안감(시 89:49).
   이 문제는 유대의 역사 속에서 계속 제기되었었습니다. 유대 열왕의 역사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왕들을 비교하시는 기준
은 다윗입니다. 왕들이 잘못 행할 때마다, 그리고 유대 왕국의 위기의 때마다 다윗 언약을 기억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렇
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이전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시 89:49)?” 왕들의 실패에도 불구
하고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행하신 것처럼 왕위를 빼앗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신 것을 그들은 기억했습니다. 결국 유다 왕국은 바벨
론에게 멸망을 당했고 유다의 다윗 자손의 왕권은 끊어져버렸습니다. 그러면 다시 묻습니다. 결국 영원하다고 하는 다윗에게 주신 하
나님의 언약은 휴지조각이 되고, 물거품이 된 것입니까?
   여기서 다윗 언약의 영원성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께서 영원하다는 것을 강조하셨는데, 그것은 오늘날 많은 유대인들과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다시 다윗의 왕통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왕국을 재건하신다는 약속일까요? 아니,
오히려 이 영원성에 대한 강조는 이 언약이 다윗의 자연적 후손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는 갈
라디아서 3:16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곧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윗 언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
는 다윗의 아들은 직접적으로 솔로몬과 또 이어지게 될 그 자손들이지만, 사실 여기서도 영원한 이 언약은 영원하신 한 분을 가리키
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너무 비약일까요? 히브리서 1장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성령의 영감으로 이
본문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히 1:5).” 이 구절은 시편 2:7과 삼하 7:14을 인용한 것입니다. 삼하
7:14을 보면 그것은 솔로몬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다는 것으로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남겨진 성취가 있다는 것입
니다. 그것이 어디서 이루어지느냐 하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 특히 히브리서
기자가 성령의 영감으로 해석한 다윗 언약의 내용입니다.

5. 다윗의 믿음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그는 단지 자기는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인지라 성전을 짓는 것은 합당치 않고 자기
아들 솔로몬이 지을 것이며, 유대 왕국이 자기 후손의 왕권이 끊어지지 않음으로써 영원하리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이것이 전부일까
요? 우리는 다윗이 이 언약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
신 선지자로서 기록한 시편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A.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삼하 7:18, 21; 행 2:30).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영원한 언약의 말씀을 주셨을 때, 다윗은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았습니다(18).” 다윗은 하나
님이 주신 언약의 메시지를 깨닫기 위하여 진지하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 앞으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종종 우리에게는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는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그 자신이 승승장구하여 사방의 모든 대적을 다 꺽은 왕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자기가 얼마나 작은 자인지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오늘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토록 큰
은혜를 주시고도 뭐가 부족해서 내게 이렇게까지 영원한 언약을 말씀하시느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19세기 독일의 신학자인 프레드리
히 빌헬름 크룸마허는 이렇게 썼습니다. “다윗은 영적으로 솔로몬이 아닌 다른 아들을 바라다 보았고 돌들과 나무로 세워진 성전이
아닌 다른 성전을 보았으며, 그의 보좌가 위치한 지상 왕국 배후에 있는 다른 왕국을 보았다. 다윗은 자신이 시온산에서 받았던 왕의
홀과 왕관이 단순한 상징들이었음을 깨달았다.” 다윗은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언약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21절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을 인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여기서 다윗이
말하는 ‘주의 말씀을 인하여’라는 말은 단지 그가 들은 메시지, 언약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더 핑크는 이렇게 해설합니




                                                           제10강 다윗(영원한 왕위) 언약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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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 시리즈

  • 2. 소개글 신구약 성경에 약속하신 모든 약속들 가운데 언약에 관한 약속들을 시리즈로 살펴본다.
  • 3. 목차 1 언약 시리즈 제1강 언약이란? 4 2 언약 제2강 언약 신학 5 3 언약 제3강 창조언약 (문화명령) 7 4 언약 제4강 아담 언약 (선악과) 8 5 언약 제5강 여인의 후손 언약 10 6 언약 제6강 노아 언약 (무지개) 11 7 제7강 아브라함 (이삭, 야곱) 언약 13 8 제8강 모세(시내산) 언약 16 9 제9강 안식일, 제사장 언약 19 10 제10강 다윗(영원한 왕위) 언약 20 11 제11강 새(유월절 만찬) 언약 23
  • 4. 언약 시리즈 제1강 언약이란? 2012.07.10 20:51 언약이란 주제는 성경의 중심 주제들을 이해하는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 구원과 교회 등 성경의 주요한 주제들은 언약이라는 주제 속에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약을 이해하는 구약성경 전체 내용의 핵심 단어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계획하셨고, 그 구원계 획을 성경을 통해 약속해 주심으로 사람이 알게 하셨다. 구약 성경에서 말씀하신 약속과 예언들이, 신약에서 성취되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언약을 통해서 성경을 읽으면, 모든 성경에서 복음의 깊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구속을 위한 언약이 기 때문에, 언약과 구속이라는 주제는 성경을 보는 렌즈다. 1. 언약의 목적 언약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형성하는 것이다.(예레미야31:33).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언약의 목적 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줄 아는 백성을 형성하는데 있음을 알려 준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는, 의무로서 율법에 대한 순종을 요청한다. 율법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과의 사랑과 신뢰 관계를 전 제한다. 언약 관계에 충실하여 율법을 순종하는 사람들은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될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는 땅을 유업으로 얻게 될 것이다. 1.1 언약 공부의 목적 첫째,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언약이라는 주제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복음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면 성 령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둘째,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관된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 연구했다. 언약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관된 뜻을 발견할 수 있다. 1.2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들 언약은 성경에 나타난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맺은 언약의 형태들이 소개된다. 성경에는 4개의 중요한 하나님의 언약이 있다.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다윗 언약, 시내산 언약이 그 주 내용이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신호로서 하나님의 다른 이름들과는 구별되는 이름으로 계시되고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작을 본문이 말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호와의 자기 백성을 위한 목적을 밝히고 있다. 2. 언약의 흐름 언약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은 여인의 후손을 통해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을 말씀하 셨다. 홍수 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고, 노아를 통하여 셈(Sem)의 후손을 축복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말씀 하셨다. 그 후 셈(Sem)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를 축복하시고, 그 자손을 통하여 온 세상 모든 민족을 축복하시겠노라고 약속하셨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들을 낳은 야곱(Jacob)이 죽기 전에, 자기의 4째 아들인 유다(Judah)를 왕의 조상으 로 축복한다. 그리고 유다지파의 다윗(David)에게는 그 후손을 통해, 영원한 왕권을 약속 하셨다. 언약 시리즈 제1강 언약이란? • 4
  • 5. 언약 제2강 언약 신학 2012.07.10 20:53 언약신학이란 성경을 이해라는 지배적인 범주로서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에 기초한 신학체계다. 성경에는 복음이라는 은혜언약과, 율법이라는 행위언약이 나온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이 두 언약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성경에 서 행위언약, 은혜언약이라는 용어는 발견할 수 없다. 1. 언약 신학 체계화된 언약신학은 최근에 이루어졌다. 언약신학자인 코르넬리우스 반 틸(Cornelius Van Til)은 “언약신학의 개념은 현 시대에 만 폭넓게 인지되었다”고 단언한다. 체계화된 계약신학은 16-17세기에 태동하였다. 언약의 개념에 있어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당사자가 있다는 것이다. 1.1 구속언약 구속언약은 천지창조 이전에 성부와 성자 사이의 언약으로서, 영원한 계약으로 불렀다. 이 언약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언약이기보다 는 상호 동등한 협의의 언약이었다. 비록 구속언약은 하나님과 인간 쌍방사이에 성립되었으나 하나님의 주권으로 된다. 1.2 행위언약 행위언약은 천지창조 후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아담과 맺은 계약을 말하는 것으로 생명의 언약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행위언약이 라고 하나님의 은혜가 배제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은혜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1.3 은혜언약 은혜언약은 아담이 타락한 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말한다. 그러나 은혜계약이라 하여 전적으로 행위의 의무가 무 시되는 것은 아니다. 은혜계약은 ‘옛 계약’과 ‘새 계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옛 계약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전에 하나님과의 유대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맺은 계약이다. 새 계약은 그리스도 성육신 이후에 하나님과의 유대 관계를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 언약은 인간의 타락 후에 맺은 은혜계약이며, 동시에 옛 언약이다. 히브리서에 나타난 복음의 근본 개념은, 새 계약에서 완성되는 옛 계약의 약속이다. 2. 언약 사상 언약 사상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시는 개인차원의 언약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형성한 사회나 국가집단의 언약 이 있었다.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도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구속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신구약을 약속과 성취라는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신구약의 통일성을 중요시 하고 있다. 신학자는 발터 아히로트(W. Eichrodt)는 '구약의 언약(covenant of old testament)'이라는 개념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관계성을 연결시킨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하나로 묵는 것이 언약이며, 이것은 교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과정의 묘사 (description of living process)"라고 했다. 이것은 구약의 횡적 믿음(cross-section of faith)을 통해서 본 견해다. 2.1 종주권 조약(Suzerain-Vassal Treaty) 종주권 조약은 영주와 백성들이 맺는 조약으로, 영주가 백성들을 보호해주는 대신에 백성들은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으시는 관계를 설명할 때, 이 조약의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 의 형식이 그 좋은 예이다. 이것은 언약을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종주는 결코 맹세를 하지 않는다. 조약이라 하지만, 사실은 종주가 봉신에게 하는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2.2 왕의 하사 (a treaty granted by a greater to a lesser power) 종주권 조약이 조건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왕의 하사는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약속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계약이 성립되는 언약 제2강 언약 신학 • 5
  • 6. 언약의 성격은 구두 선언이다. 하나님은 계약을 세우기 위해 말씀하셨다. 계약의 내용이나 형태가 어떻든 간에, 계약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언약 제2강 언약 신학 • 6
  • 7. 언약 제3강 창조언약 (문화명령) 2012.07.10 21:03 약속과 율법, 복음과 율법 이 두 가지 언약은 각각 은혜언약과 행위언약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은혜언약은 무조건적이지만, 행위 언약은 조건적입니다. 은혜언약이 복음이라면 행위언약은 율법입니다. 율법은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복음은 하나님께서 “내가 하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맹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 같이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이다라고만 이해하면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에 그렇게 가르치던 말시온 이란 사람은 이단으로 정죄되고 말았습니다. 구약에도 율법과 복음이 있고, 신약에도 마찬가지로 율법과 복음이 있습니다. 창1:28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을 만드신 후 그에게 지으신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습니 다. 이것의 다른 표현으로는 문화명령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모든 환경을 주셨으며, 최상의 조건을 허락하셨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기쁨을 만끽하게 하셨습니다. 이 복 은 다른 피조물과 함께 나누는 복이 아니라 오직 사람에게 주신 권한으로 자신만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이라는 조건 속에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것은 아담을 창조하여 하나님께 책임 있는 존재 로 반응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관계는 은혜와 자비로 주어지는 무조건적인 관계는 아닙니다. 이 관계를 은혜와 자비 의 무조건적인 관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은혜와 자비는 율법을 어긴 자, 형벌을 받아야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아담은 범죄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받을 형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셨던 관계는 율법과 사랑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전제아래 아담에게 그 사랑에 반응하는 조건인 율법을 주셨고, 아담은 여기에 바르게 반응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 랑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는 표 현에서도 나타납니다(요14:21). 언약 제3강 창조언약 (문화명령) • 7
  • 8. 언약 제4강 아담 언약 (선악과) 2012.07.10 21:12 성경에 나타나는 언약의 형태 가운데,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은 에덴동산에 살고 있는 아담(Adam)과 맺으신 언약이다. "너는 먹지 말라”(창2:17).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신 말씀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이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최초로 맺으신 행위언약, 즉 형식으로는 율법 언약이다.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는 무책임하며 무조건적인 관 계가 아니라 하나님께 책임 있는 존재로 반응하도록 아담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전제하에, 아담이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도록 율법의 조건을 주셨고, 여기에 아담이 바르게 반응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어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하게 했느냐고 한다. 처음 아담은 타락한 본성이 없이 창조되었 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취약함이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온전한 의를 성취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존재로, 또한 정직하게 창조 되었습니다(전7:29). 마치 주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셨으며”(고후5:21), “시험은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셨다”(히4:15)는 것과 유 사합니다. 완벽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담은 이 행위언약을 지킬 수 있었고, 하나님은 지킬 수 있는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불순종의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이 행위언약을 깨뜨린 것은 전적으로 아담의 잘못이지, 그 언약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죄를 지은 후의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류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타락한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 난 우리에게 아담에게 주셨던 행위언약은 아무도 지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수행이 불가능한 언약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통해서 언약을 주신 것은, 아담과 책임 있는 관계를 맺으심으로써 아담에게는 책 임을 지킴으로 기쁨을 더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시는 의도였습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과 언약의 관계를 맺으심으로써 인격적이고 책임 있는 관계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에게 드러내시고자 하신 것 입니다. 또 이런 질문도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 하려는 순간, 강제로 막지 않으셨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강제로 자유 의지를 빼앗아 가시지 않으십니다. 온전한 자유의지를 가졌던 아담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우리가 잘못 행할 때 하나님은 강제로 개입하셔서 우리를 막으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결과로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나를 막지 않으셨는지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실수와 잘못을 하도록 허용하심으로써 그 일과 결과를 통해서 배우게 하십니다. 인간이 비록 죄를 범하고 타락했을지라도 인간은 법과 질서를 기본적으로 지켜나갈 수 있는 능력이 본성상 있다. 그러나 자비와 은혜는 인간의 본성에 없기 때문에 그것은 선포되어서 복음이 들려져야 하고, 전달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계약에서 이 행하지 않은 축복들을, 구속계약에 의해서 실현하시려고 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영원 전에 예정하신 구속언약 속에서 둘째 아담의 더 영광스러운 순종을 통해 구속의 계획을 마련해 놓으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능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미 계획하셨고 이루실 능력이 있으시기에, 아담의 불순종을 허락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행위언약이 아담과 하와가 벌을 받고 나서 폐기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산상수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 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는 말씀에서 보여주는 것은 아무리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철저하게 율법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율법 이 요구하는 완전한 의를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의를 능가하는 율법의 의를 이루지 못하면 천국에 아무도 들 어갈 수 없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류는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날의 심판의 기준은 철저하게 행위에 따른 심판이 될 것이라 언약 제4강 아담 언약 (선악과) • 8
  • 9. 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고후5:10; 마7:16~27; 행17:31; 유15; 계20:13; 22:11~15) 대표적으로 고린도후서 5:10을 보십 시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 다. 심판은 선악간의 행위에 의해서 베풀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자리에 설 준비가 되어있으십니까? 언약 제4강 아담 언약 (선악과) • 9
  • 10. 언약 제5강 여인의 후손 언약 2012.07.10 21:16 “내가 여인의 씨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 (창3:15).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뱀을 저주하시며 말씀하실 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것은 최초로 전해진 복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명령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담 편에서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약속은 인간의 행위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은혜언약이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하신 약속언약입니다. 인간은 단지 그 약속을 믿기만 하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생명을 약속하지만, 복음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그것을 믿는 믿음을 조건으로 생명을 약 속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고 복음은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숨겨진 듯 하면서 드러난 것은 보상의 내용입니다. 그것은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함께 있던 생명나무의 존재를 통해서 예시되었습니다(창2:9). 이것은 단순히 지상의 생명이 연장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완전히 의로운 상태요, 영원한 천 상의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거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생명나무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성과 순종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이 과분한 보상은 아담에게 주어질 영생과 완전한 행복의 상징적 보증이었습니다. 아담은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볼 때마다 그 옆에 세워진 생명나무를 보면서 선 하신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더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무도 이룰 수 없는 행위언약이 요구하는 의를 완전하게 이루신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순간마다,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언약의 보증으로 붙잡으십시오. 그것만 이 하나님의 완전한 요구 앞에서 흠없는 의로움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언약 제5강 여인의 후손 언약 • 10
  • 11. 언약 제6강 노아 언약 (무지개) 2012.07.10 21:20 홍수 심판 후 하나님은 노아와 그 후손들 그리고 모든 생물들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언약은 하나님의 일 방적인 약속입니다. 동맹이라는 형식의 조약이 없다면 약소국은 강대국의 눈치만 살펴야 할 것이고, 약소국의 국민들은 늘 불안에 떨 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비슷한 정황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편케 하시기 위해서 언약이라는 형태로 관계를 맺 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는 순전히 자기 백성에게 불안이 아니라 평강을 주시려는 의도입니다. 하나님은 변덕스러우신 분이 아 니시며 그러기에 자신을 언약이라는 형식 속에 구속하심으로써 언약 당사자인 인간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이것이 인간과 언약을 맺 으시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맺으시는 두 종류의 언약은 인간 편에 행위를 요구하는 율법언약이라고 부르는 행위언약과,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일방적으로 약속하시는 약속언약이라고 부르는 은혜언약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자는 율법이고, 후자는 복음으로 구분합니다. 행위언약은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첫 사람 아담과 맺으신 것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범죄하였고, 선악과를 먹으면 죽 는다는 행위언약은 그대로 실행되어 아담은 하나님과 단절되는 영적 죽음을 경험하였고 에덴에서 쫓겨났으며 결국 육신도 죽었습니 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한 그 자리에서 은혜언약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창세기 3:15에 있는 최초의 은혜언약입니다. 그 내 용의 골자는 여인의 후손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뱀의 머리를 깨뜨릴 것이라고 함으로써 인간을 죄로 몰고 간 마귀를 멸하시고 심 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맹세이고 약속입니다. 여기서 아담이 해야만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언약이고, 복음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은혜언약은 약속에 기초한 언약입니다. 이런 언약을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아브라함과 그리고 다윗과 맺으셨습니다. 은 혜언약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마치 큰 나라의 왕이 작은 나라의 왕을 사랑하여 조건 없는 선물을 베풀어주는 ‘왕의 하 사’와 같은 ‘선물 언약’의 성격을 가집니다. 은혜언약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신자들 그리고 그 자녀들과 맺으시는 언약이고 공로가 아니라 만약 그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회 개와 믿음입니다. 이 은혜언약은 성 삼위 하나님 사이에 영원 전에 맺으신 구속언약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기초 위에서 주시는 약속입 니다. 본문에서 보게 되는 노아와 맺으신 언약은 분명히 은혜언약이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약간 독특한 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 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신 후에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 노아와 그 후손 그리고 모든 생물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내용은 “내가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형식상으로는 약속 언약에 속하는 것입니다. ‘해라’하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노아는 1년 2개월 동안을 동물원 같은 방주에서 지냈습니다. 물이 모든 생명을 다 휩쓸고 간 땅에 나온 노아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어떻게 우리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노아의 마음은 아마도 두려움과 불안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그처럼 경험한 사람은 인류 역사에 없었을 것입니다. 미래 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을까요? 막연함이 그를 사로잡지 않았겠습니까? 땅에 나왔지만, 그는 아무 인간도, 아무 짐승도 발견할 수 없 었습니다. 남아있는 초목조차 없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또 그는 이제 방주에서 풀려나오게 될 사나운 짐승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 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첫 사람 아담에게 주셨던 동물들과 자연의 피조물들에 대한 우월한 능력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 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제일 먼저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8:20). 하나님께 서는 노아의 예배를 받으시고 노아에게 언약을 주십니다. 이 언약은 분명히 노아의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모든 막연함을 평강으로 바꾸어주었을 것입니다(8:22; 9:2~3). 이제 자연계는 홍수의 심판과 같은 예외적이고 두려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며, 일정한 자연의 법칙 속에서 돌아가게 될 것이며, 모든 동물은 사람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고 사람에게 동물을 먹을 수 있는 육식이 허락되었습니다. 이로써 사람은 동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근거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다”는 구절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신 이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9:1). 사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은혜언약은 전적으로 노아의 희생제사에 근거하여 주어졌다는 것인데 이 희생제사는 바로 그리스 도의 위대한 속죄희생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에게 주신 언약 자체는 이런 구속에 대한 약속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 다는 것이 놀랍고, 이것이 노아언약을 독특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언약을 주시는 상황을 보면 노아는 비록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의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 구하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방주에서 나온 후, 죄를 짓게 됩니다. 그의 아들들과 후손들은 말할 것 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실 때,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 다(8:21).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 일로 전과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사 언약 제6강 노아 언약 (무지개) • 11
  • 12. 람들은 죄를 지을 것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는데 홍수로 다시는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면서 언약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 은 홍수 심판으로는 인간의 죄성이 치료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 나님은 무지개를 언약의 증거로 주셨습니다. 이 무지개는 어떤 기능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무지개에 대해서 가지는 오해가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이유는 사람에게 무지개를 보고 물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주의 깊게 보면, 사람이 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9:15). 무지개를 보고 언약을 기억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9:16).” 무지개를 보고 맹세를 지킬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무지개는 마치 하나님께서 언약을 잊어버리시기라도 할까봐 그것을 맹세로 주신 확실한 증거입니다. 사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보좌를 두른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그만큼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는 것입니 다(계4:3). 노아언약의 내용을 보면, 첫째는 자연법칙이 있습니다(8:22). 자연이 인간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는다는 보증입니다(9:11~16). 둘째 는 악의 세력이 통제될 것입니다(9:5~6). 셋째는 인간은 짐승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9:2~4). 그 내용들이 모두 일반적인 질서 에 관한 것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창9:13)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언약은 노아와 그의 자손들과만 세우신 언약이 아니라, 노아와 함께 배에서 나온 모든 생물들과 맺으신 언약이란 점에서 매우 독특합니다. 창8:9~10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누구와 언약을 맺으신다고 하십니까?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자연의 법칙들을 말씀해주신 것을 보면 자연계 모두에게 미치는 언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언약은 자연 언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 창조세계 전체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일반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맺으신 언 약에는 구속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언약은 일반은혜에 가장 가까운 언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른 은혜언약들, 예를 들면 아브라함 언약이나 다윗 언약과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인 특별은혜와는 매우 다른 독특한 부분입니다. 노아언약은 형식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된 은혜언약이지만, 여기에는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나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 없기 때문에 일반은혜에 가까운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은혜와 특별은혜를 구분하지 못함으로 오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신자와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인류는 일반적 저주 아래 처해져 있고, 일반은혜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해 당하는 공통의 범주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 질병, 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과 세상 지혜와 창조적 능력과 같은 긍정적인 것들이 있고, 또 자연이 주는 비, 바람 그리고 해와 같은 것입니다. 신자는 고통과 질병과 죽음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며, 신자에게만 세상 지혜와 능력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신자에게만 비, 바람, 태양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노아 시대 이후 수많은 범죄가 자행 되어 왔지만, 하나님께서는 범죄자들을 홍수로 멸하시지 않고 오늘까지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그 순간에 우리는 아담의 죄 로 말미암은 일반적 저주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일반은혜의 한계입니다. 인류가 영원한 안식과 완성으로 들어갈 수 있 는 유일한 길은 오직 여인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믿는 것뿐입니다(창3:15). 이것은 특별은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히브리서 기자가 노 아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을 보아야겠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 주를 예배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11:7).” 구약의 모든 다른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노아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단지, 예수를 믿어서 병이 낫고, 부자가 되고, 세상 지혜가 더 많아지고, 승진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일 반은혜 가운데서 건강하고 부유하고 지혜롭고 직위가 높아져도 그것은 우리의 영혼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신자라는 사실 때문에 정당하지 않은 요구와 기대를 가지고 살 수는 없습니다. 신자이기 때문에 남보다 더 유리한 조건에서 인생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불신자와 같이 ‘심은대로 거두는 원리’속에 사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심는 것은 이 세상에서 거두는 것만이 아니라 영원 속에서 거두게 될 것, 하나님께서 주실 영원한 것을 위해 심는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돈 을 위해서 살지 마십시오. 세상에서의 성취와 성공 그 자체를 위해서 살지 마십시오. 그것들이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이 되게 하지 마 십시오. 그 위에 있는 목적, 영원 속에서 거두게 될 목적을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약속을 믿는 신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 식입니다. 언약 제6강 노아 언약 (무지개) • 12
  • 13. 제7강 아브라함 (이삭, 야곱) 언약 2012.07.19 10:53 창15:1~21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언약은 일반은혜를 드러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구원이나 구속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지 않습 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전형적인 그리고 가장 중요 한 은혜언약의 특징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1. 은혜언약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맺으시는, 맹세로 하신 약속(언약)이다. 은혜언약의 전형적 특징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맺으시는 것이며 무엇을 하라는 조건이나 율법 조항을 가지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로 주어지는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언약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이 됩니다. 하나님 은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고 구원하시는데 있어서 언약의 형식을 사용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언약의 성격 이 무엇이며, 왜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기를 기뻐하시는가를 조금씩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언약을 자기 백성 에게 주실 때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약속의 언약을 믿음으로 써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은 아담 이래로 지금 우리들 그리고 주님 재림 전까지 동일할 것입니다. 2. 아브라함 언약이 주어지기까지 구원에 관한 소망은 원시복음(창 3:15)밖에 없었다. 아담이 범죄한 후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동안 아담부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얻었겠습니까? 그들에게 주어진 그리고 그들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언약은 오직 하나 밖에 없었습니 다. 그것이 아담의 범죄 직후에 하나님께서 뱀에게 저주하실 때 말씀하신 원시복음입니다(창 3:15). 이것은 인류역사에서 그리고 성 경에서 처음으로 선포된 복음입니다. 여인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깨뜨릴 것입니다. 그 여인의 후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 다. 그들이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여인의 후손이 오실 것을 바라봄으로써 소망을 가질 수 있었고 그들 은 그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을 선택하셔서 그에게 매우 구체적인 언약을 주 십니다. 이로써 우리는 오실 구원자인 여인의 후손이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오실 것과 가나안 땅에 오시게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사 항을 얻게 됩니다. 3. 아브라함에게 발생한 모든 사건은 언약의 특성을 설명한다. 아브라함 언약은 아브람이라는 인물을 선택하셔서 그를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언약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깊이 설명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소명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의 성격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해 도 과언이 아닙니다. A. 부르심(행 7:2~3; 창 12:1~3): “내가 너를 축복하고 너를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창세기 12장에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을 때였고 우리가 스데반의 설교 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란에 오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셨다고 했 습니다(행 7:2~3).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다른 신들을 섬기던 사람이었으니까(수 24:2) 아마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것 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보일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부분적 으로 순종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데라를 모시고 대가족이 함께 하란으로 갔던 것입니다. 거기서 거하다가 아버지 데라가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하란에서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창세기 12장에서 보는 장면입니다. 그 내용은 하 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과 후손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을 복주실 것이고, 또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 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아브라함의 전 생애는 결국 이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과 거기에 따라서 하 나님께서 그 언약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이시고 확증해주시는 이야기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이해하는 열쇠는 바로 이 약속의 말 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아직 정확한 방식으로 언약을 맺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창세기 15장에서 보게 됩니다. B. 언약을 맺으심(창 15) 하나님은 15장에서 당시 일반 사람들이 하던 방식처럼 아브라함과 언약을 정식으로 체결하십니다. C. 언약의 증거로 할례를 명하심(창 17)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증거로 할례를 하라고 하십니다. 이 할례는 십계명과 같은 율법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할례를 받음으 로써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효력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 증거와 표시로서 할례를 받는 것 입니다. 할례를 받음으로써, 아브라함과 그 자손은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이다”라고 스스로 상기하고 또 세상 앞에 서 그렇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D. 언약을 확증하여주심(창 22:17~18) 아브라함의 삶의 절정은 그가 독자 이삭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리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시험하시려 제7강 아브라함 (이삭, 야곱) 언약 • 13
  • 14. 고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아브라함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 음을 인정해주십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는 천사가 아니라 성육신하여 오실 예수 그리스도라고 많은 학자들은 이해합니다. 왜냐 하면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1인칭으로 말씀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읽을 때 이런 부분을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번제를 드립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제까지 하신 언약의 말씀을 더욱 구체적으로 확증해주십니다. 그것이 17~18절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 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4. 언약체결 의식 15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정식으로 언약을 체결하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A. 왕의 하사(선물, 1절) 본문은 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시작됩 니다. 이것은 강대국 왕이 약소국의 왕에게 은혜로운 선물을 하사해주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상급이라는 단어는 군 사로 출정한 사람에게 왕이 주는 보상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아브라함은 바로 앞에서 메소포타미아 동맹 왕들과의 전쟁을 치루고서 롯의 가족과 사로잡혀간 소돔 백성들을 구해준 후, 소돔 왕이 주는 전리품을 거절한 바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소돔왕이 내가 아브라함을 치부케 하였다고 말하도록 허용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다른데로 부터 오는 것들에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소돔 왕에게서 포기한 부보다 훨씬 많은 보상물로 특별한 하사품을 상급 으로 줌으로써 언약적 의무에 충실한 아브라함의 주목할만한 행동을 인정해주는 강대국 왕의 이미지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B. 언약을 자르다(cut a covenant, 렘 34:18~20) 주목할 가장 중요한 사건은 언약을 자른 사건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언약을 맺는 방식은 짐승을 반으로 쪼개서 벌려놓고 그 사이 로 언약 당사자들이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에는 언약을 맺다라는 말이 ‘언약을 자르다’라고 표현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가는 행위는 언약을 어길 경우에는 자신이 쪼개진 짐승과 같이 될 것이라고 하 는 맹세 행위였습니다. 렘 34:18~20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대 말기에 하나님의 율법 언약을 범한 백성들 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피로 맺은 모세의 언약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언약을 어겼으므로 하나님께서 는 그 결과 저들이 그 쪼개진 송아지와 같은 신세가 되어 공중의 새들과 땅 짐승의 밥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을 자르는 언약체결의식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C. 이상한 종주권 조약(7~11절) 여기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 너무나 특이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밤하늘의 별과 같이 자손을 많이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그리고 이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서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도대체 자기가 어떻게 그 말씀을 믿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8). 그러나 하나님께서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 끼를 취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 짐승들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습니다. 비둘기는 몸체가 작 기 때문에 제사를 드릴 때와 마찬가지로 쪼개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진 후에 아브라함은 깊은 잠이 들었는데, 하나님께서 나타나 셔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400년 동안 이방에서 객이 되어 섬기다가 그 섬기던 나라를 하나님께서 징벌하셔서 큰 재물을 가지고 거기 서 나오게 하실텐데,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와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눈에 연기나는 화 로가 보이고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것을 그는 보게 됩니다(17).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 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라고 말씀합니다(18).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 횃불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서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맹세로 되는 언약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 는다고 할지라도 아브라함은 언약을 지킬만한 신실함을 가지지 못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수없이 실 패를 반복합니다. 약소국 왕이 언약의 내용을 지키지 못하면 그는 짐승처럼 죽을 것입니다. 이 종주권 조약은 언제나 약소국 왕에게 만 의무를 지우도록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시는 조약은 정반대로 나타납니다. 아브라 함이 지나가지 않고 하나님이 지나가십니다. 이것은 약속을 지키는 모든 책임을 하나님이 끝까지 지시며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모 든 저주를 하나님께서 직접 받으시겠다고 맹세하시는 행위였습니다. 이것은 형식은 종주권 조약과 같은 것이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 의 일방적 맹세였습니다. 이렇게 강대국 왕이 자기 목숨을 걸고 맹세를 하는 형태의 조약은 고대 근동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여기서 당신의 생명으로써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고 맹세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5. 하나님의 모든 자비와 용서의 근거는 아브라함 언약이다(출 2:24; 신 4:31; 왕하 13:23). 이 언약은 오직 아브라함 한 사람을 위해서 하신 약속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 모두가 다 이 약속의 은택을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어기고 잘못 행할 때 그들을 용서하실 때마다 바로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억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느 한 구석에서도 모세의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하시지 않 으십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언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이 짐승의 피를 흘려서 그 피뿌림을 받고 언약을 비준했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은 행위의 원리에 근거한 행위언약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나올 때에도 하나 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합니다(출 2:24). 또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도 만일 이스라엘 백성 이 잘못 행하여 언약을 어기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실텐데 이는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신 4:31). 여기서도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의 근거는 모세의 언약이 아닙니다. 여호아하스 왕 치하의 북왕국 이스라엘을 아람 왕 하사엘에게 완전히 멸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한 것이라고 말합니 제7강 아브라함 (이삭, 야곱) 언약 • 14
  • 15. 다(왕하 13:23).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언약을 기억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께서 친히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심으로써 약속하신 맹세이기 때문입니다. 6. 아브라함이 언약의 영적 의미를 바라보다(히 11:8~19).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영적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A. 외부적이고 일시적인 것은 영적이고 영원한 것의 상징과 예표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주리라고 가나안 땅을 지명하셨을 때에도 이것이 다가 아니라 이 외부적이고 일시적인 것은 영적이 고 영원한 것의 상징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랬다는 것입니다(히 11:10). 그는 또 나온 본향 갈대아 우르가 자기가 돌아갈 곳이라고 생각했다면 얼마든지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텐데, 그가 바라본 것은 하늘에 있 는 더 나은 본향이었다는 것입니다(히 11:16). 그는 외부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영적이고 영원한 것의 상징과 예표에 불과하다는 사실 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언약 체결의식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B. 아브라함의 믿음의 근거는 ‘구약성경의 골고다’이다.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독자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릴만큼 하나님을 신뢰하게 만든 요인이 무 엇인가? 오늘 본문에 그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맹세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쪼갠 짐승 사이로 지나심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댓가로 약속을 지키실 것을 맹세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셔야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셔야만 할 의무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역사상 어떤 강대국 왕도 그렇게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맹세로써 아 브라함에게 언약을 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의 믿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믿음 이 만들어지는데에는 바로 이 사건, 하나님의 맹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의미는 아브라함이 세월을 보낼수록 분명하게 드러 났습니다. 비록 이 사건 후에 바로 아브라함은 육체를 따라서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 실패를 경험하지만, 이런 모든 사건들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맹세를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독자 이삭을 하나님게 바치게 되는 자리까지 가게 되는 것 입니다. 7. 우리의 신앙의 근거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이다(갈 6:14). 어느 신학자는 이 언약체결 사건을 구약성경의 골고다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율법 파기의 저주 아래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골고다 언덕의 그림자입니다. 실제로 언약을 범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어진 은혜언약이 믿는 자들에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언약 파기에 대한 댓가를 지불함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눈 앞에서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가 신 하나님께서는 그로부터 2000년 후에 인간의 육신을 입고 땅에 오셔서 그 언약 파기의 책임을 홀로 다 당하신 것입니다. 주님 자신 이 아브라함이 쪼개서 피흘리고 죽게 한 그 짐승들과 같이 십자가에서 그 몸이 찢겨지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앞에서 하 나님이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가신 일은 하나의 퍼포먼스(performance)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뿐 아니라 그 약속의 언약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들이 될 모든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하나님과의 언약 조항들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을 자가 없다는 사실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쪼갠 짐승 사이로 지나가심으로써 언약 파기의 저주 아래 홀로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서 2000년 전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 세의 책임을 지시고, 죽어야 할 아브라함의 아들 대신에 당신의 독자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의 저주 아래 두신 것입니다. 처음 아담이 범죄함으로 실패한 행위언약의 저주를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 담당하게 하심으로써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구원하시는 은혜를 무한히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이렇게 밖에는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말입니다(갈 6:14). 아브라함의 신앙의 근거가 그가 보았던 하나님의 저주 맹세였듯이, 오늘 우리의 신앙의 유일한 근거는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인 것입니 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봄으로써 독자를 번제로 바치는 믿음의 자리에까지 이른 아브라함과 함께 그 자리에 서게 될 것 입니다. 제7강 아브라함 (이삭, 야곱) 언약 • 15
  • 16. 제8강 모세(시내산) 언약 2012.07.19 11:05 모세 언약 (행위-율법) 시내산 언약이라 부르는 모세와 맺은 하나님의 약속은, 그 내용상이나 형식상으로도 대표적인 율법언약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내시고 시내산에 오게 하셨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주시고 기타 율 례와 명령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언약의 형태로 주어진 것입니다. 출애굽기 19:4~6을 보면,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조건이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복 주실 것입니다. 이제 이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로부터 다 듣고 한 목소리로 그렇게 하겠노라고 두 번이나 말했습니다(3,7). 그리고 모세는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려서 피를 취하여 절반 은 단에 뿌리고, 절반은 백성에게 뿌리면서 이것은 ‘언약의 피’라고 말했습니다. 이 언약의 피는 언약을 비준하는 표시였고, 백성 들을 하나님과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표시였습니다. 결과,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모세와 아론, 아론의 아들들 그리고 이스라엘 70장 로들에게 산에서 보이셨는데, 놀랍게도 그들이 죽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언약의 피 때문에 그들은 죽지 않은 것입니다. 이 내용의 중심에 있는 것이 시내산 언약입니다. 이후, 이스라엘이란 국가의 운명은 언제나 이 언약에 대한 순 종과 불순종에 의해서 결정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내산 언약이 성경의 구속 역사 전체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에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1. 모세와 맺은 약속 :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켜라.”(출19:5) 하나님께서 모세와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가 지상에 세워졌습니다. 이 나라는 철저하게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유지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 언약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조건을 제 시하십니다. 먼저 사람들이 가지기 쉬운 오해를 다루려고 합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구원을 얻었습니까? 어떤 신학자들은 구약 시대 사람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을 옛 세대주의라 고 합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복음을 심각하게 오해하게 만드는 우를 범한 것입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 아니 아담 이래로 주님 재 림 전의 마지막 구원 얻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믿음 외에 다른 구원의 방도는 주어진 적이 없고 없을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또 하나의 오해는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입니다. 이것을 언약적 율법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역시 일관되게 가르치는 것은 구원은 율법을 행하는 것 혹은 행위로서의 믿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독단적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자적, 주권적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오해를 다루는 이유는 오늘날 이 시내산 언약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세 율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잘못된 오해들 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여러분이 구약성경을 읽으실 때,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 와 직결됩니다. 시내산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언약에 대한 문자적인 성취라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2:1~3에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후손 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15:7,16). 그러므로 하나님은 약속대로 애굽에서 그 백성을 건져내시고 가나안 땅을 기 업으로 주셨으며 나라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성취였습니다. 1.1 국가적 언약 시내산 언약은 모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지상 천국을 가나안 땅에 세우려는 계획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이 장차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모 델 하우스와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런 점에서 시내산 언약은 종말적 낙원의 모형으로서(호6:7) 하나님이 아담과 에덴 에서 맺으신 창조언약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의 창조언약의 조건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조건을 제시했듯이, 시내산 언약도 십계명 그리고 많은 율례와 명령들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두 언약에서 요구되는 조건은 둘 다 순종입니다. 그 보상이 나 형벌이 무엇입니까? 두 언약 모두 삶과 죽음이 각각 보상과 형벌의 내용으로 주어집니다(레18:5). 아담이 창조언약을 어기고 에덴 에서 추방되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언약인 율법을 어기고 멸망당하고 다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추방되었습니다. 에덴 동 산이 모든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면, 성경은 가나안 땅에 대해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에덴을 연상하게 합 니다. 아담이 언약을 어긴 후에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고 하였듯이,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언약인 시내산 언약을 범하고 추방을 당하자, 이스라엘 고토는 가시로 뒤덮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모세를 통해서 맺어진 시내산 언약은 모두 그 자체로 지상 낙원 건설 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하나의 신정 체제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시내산 언약이 국가적 언약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이라는 역사 속에 실존한 국가 그리고 그 민족과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입니다. 국가와 맺으신 언약이라는 말은 시내산 언약이 요구하는 순종은 외적 순종이며 제8강 모세(시내산) 언약 • 16
  • 17. 이 외적 순종에 의해서 지상의 나라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범위는 국가적, 민족적이고, 언약의 목적은 이 스라엘의 일시적인 사건들을 신적 통치 아래 통제하기 위함이었고, 이 언약의 결과는 결국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 다. 이점에서 시내산 언약은 형식상 율법언약이고 행위언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국가를 잘 유지하는 것은 율법 시내산 언약 에 순종하는 것에 달린 문제입니다. 천국을 얻는 문제가 아니 라 지상 국가를 유지하는 차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행위언약은 아담언약 처럼 엄격하게 시행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압 니다. 선악과를 먹었을 때, 하나님은 가차없이 아담에게 벌을 주셨고 에덴에서 내쫓으셨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영적으로 이미 죽었으면 육체적으로 죽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언약의 실행은 엄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내산 언약은 그렇게 엄격하 게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시내산 언약 안에 이미 용서와 속죄의 규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위기를 중심으로 나오는 제사규정들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왜 그런 규정들이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로 순종할 수 없고 죄를 지을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규정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시내산 언약에 있어서 하나님의 용서와 속죄가 행해 지는 근거는 시내산 언약의 자비로움이 아니라 아브라함 언약에 근거해서 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시내산 언약은 그 형식상으 로는 행위언약이기 때문에 용서와 은혜와 자비가 설 형식적인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6:40~42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짓게 되고 형벌을 받게 될 때, 하나님은 야곱, 이삭,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 억하심으로 그 땅에 다시 찾아오시고 회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시내산 언약 자체에 있는 속죄의 규정은 근본 적으로 아브라함 언약에 기초해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언약은 은혜언약인 반면에 시내산 언약은 형식이 행위언 약이기 때문입니다. 이 행위언약으로서의 시내산 언약이 요구하는 순종은 외적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시내산 언약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외 적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그 보상도 지상적이고, 일시적이며 외적인 것이었습니다. 즉, 자싱의 모형적 안식을 얻는 것이지, 이 순종을 통해서 영원한 안식을 얻는 것, 천국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령,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명령에서 순종의 보상은 그 땅에서의 장수입니다(출20:12). 영원한 것이 아니 란 말입니다. 이와 같이 시내산 언약은 천상의 안식이 아니라 지상의 모형적 안식을 보상으로 약속하고 있습니다. 시내산 언약은 일 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언제까지 말입니까? 더 좋은 언약이 올 때 이 시내산 언약은 더 좋은 언약으로 대치될 것이라는 말입니다(히 8:13). 그러므로 시내산 언약은 일시적, 혹은 잠정적 언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넘어진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들은 시내산 언약을 복음이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과 그 율법에 대한 그들의 착각과 무지가 그들을 넘어지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자기들만이 가지고 있는 이 율법을 외적으로 지키기만 하면 그것이 영원한 복을 주고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착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선조들이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 들은 이 언약이 더 좋은 언약이 올 때까지 잠정적 기능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넘어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식으로 넘어지는 자들이 적지 않은 것을 봅니다. 소위 형통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서 유래한 것입니까? 이스 라엘 백성들의 넘어진 자리에서 그들도 넘어진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이 외적 순종을 요구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외적 축복을 약 속하는 점을 그들은 붙잡은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이 이스라엘 국가와 맺어진 언약이며 잠정적이어서 더 좋은 언약으로 대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언약을 붙잡고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인 지상에서 누리는 형통의 복을 율법 순종 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형통 복음의 출생입니다. 복음 시대에는 더 이상 이런 특성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 을 붙잡습니다.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착각과 자신감이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바울 사도가 말했을 때, 바로 이런 태도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생각처럼 복음과 은혜의 장애물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해 주겠다”라고 말하는 복음은 매력이 없을 뿐 아니라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이렇게 해라”라고 요구하는 율법이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뭔가 할 일을 주니까, 신이 나는 것입니다. 정작 그 들에게는 그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으로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고 수고한 것들을 가지고 그 토대 위에서 여러분을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율법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여러분이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악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변 함없는 사랑으로 바라보시고 대하신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2. 시내산 언약의 진리 시내산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A. 율법의 원리는 지상의 땅을 유지하는 것이 기초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원리는 천상의 땅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시내산 언약은 그 형식에 있어 행위언약으로서 율법의 원리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중생한 자들은 시내 산 언약 안에서 내적이고 영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들이 지적했던 바, 마음에 할례를 받으 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진실한 신자들은 시내산 언약 아래서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은혜 언약을 믿었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적 순종을 나타낼 때, 구원과 영 적 축복이 주어짐을 알았습니다. 은혜언약은 구원의 길을 약속하지만, 시내산 언약은 국가적 순종에 기초한 가나안에서의 국가적 보존의 길을 약속한다는 차이를 그 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은혜언약은 하나님과 진실한 신자들 사이에 개인적으로 맺어졌고, 거룩한 마음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영적 제8강 모세(시내산) 언약 • 17
  • 18. 인 순종을 나타낼 때 그들에게 영적인 축복들을 보장하고 확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도 시내산 언약 아래서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또한 그들은 시내산 언약을 순종함으로써 지상 나라의 복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일시적이고 지상적인 나라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의 씨 인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는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곧 그의 멸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B. 땅의 약속을 보장하는 시내산 언약을 영원한 생명과 안식을 약속하는 복음과 구별해야 합니다. 구속 역사에 있어서 시내산 언약은 일시적이고 과도기적인 질서로서 막간과 같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시내산 언약은 우리 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결코 하나님과 인간이 각각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주어지는 것이 아니 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내산 언약은 쌍무적 계약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결코 구원하지 못합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맹세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라’고 말씀 하시지 않으십니다. 오직, “내가 이루리라”라고만 말씀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약속을 기억하시고 다윗에게서 그리스도 가 나게 하셨습니다. 약속을 지키시겠다고 두 번이나 단언했지만, 실패한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그리스도께서 시내산 언약의 모든 율 례와 명령을 다 완전하게 지켜 행하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 구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상에 구현되는 것은 모형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안식과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 속하는 순종을 통해서라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잠정 적인 시내산 언약의 율법 규정들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후손인 그리스도,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입니 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연약하여 할 수 없는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신구약 시대를 통틀어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구원은 저와 여러분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만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인 것입니다. 구원을 사람의 행위에 두지 않으시고 믿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은혜 때문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모세, 다윗 그리고 바울과 같이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것입니다. 제8강 모세(시내산) 언약 • 18
  • 19. 제9강 안식일, 제사장 언약 2012.07.19 11:12 안식일 언약 안식일 언약은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안식일’이라 말씀하시며 창조의 엿새 후 쉬어 평안하였음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영 원한 언약을 삼으셨다. 이스라엘이 지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영원한 표징이 되도록 하셨으니 이는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인줄 알도록 하심이다. 출31: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 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십계명을 주실때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다. 제사장 언약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은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음행하는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을 죽임으로 이방을 섬기는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질투심을 대신함으로 받은 것이다. 민25: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 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 시니라.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5.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 라 하니라. 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 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7.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 에게서 그쳤더라. 9.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명이라.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 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 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13.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 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제사장 언약은 아론과 그의 자녀들에게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주신 후 레위 자손을 헌신한 자들로 인정해 주셨다. 레8:22 또 다른 수양 곧 위임식의 수양을 드릴쌔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수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23. 모세가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르고 24.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가 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그 피를 바르고 또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출28:1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29:1 너는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로 거룩하게 할 일이 이러하 니 곧 젊은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수양 둘을 취하고. 출32:21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수 없노라... 24. 내 가... 금이 있는 자는 빼어내라...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 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 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28. 레위 자손이 모 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명 가량이 죽인바 된지라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 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제9강 안식일, 제사장 언약 • 19
  • 20. 제10강 다윗(영원한 왕위) 언약 2012.07.19 11:19 삼하 7:1~2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후, 또 하나의 중요한 언약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다윗에게 주신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방의 대적들을 파하시고 다윗과 그 나라에 평안을 주셨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자 다윗이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 궤를 둘 만한 합당한 성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2). 다윗이 이 계획을 선지자 나단에게 말하자,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서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을 약속하십니다. 1. 다윗에게 주신 언약(삼하 7:11~16) A. 다윗에게 주어진 왕권이 자손들에게 영원히 견고하게 주어질 것이다(대하 7:13~16). 다윗에게 주신 언약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다윗에게 주신 왕권이 다윗의 자손들에게 영원히 견고하게 주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3~16). 그리고 여기에 구체적으로 덧붙여진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 왕들이 죄를 범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그를 징계하시겠지만, 사울에게 하신 것처럼 그 왕위를 빼앗는 일은 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B. 다윗언약의 영원성은 다윗 자손의 신실함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다(삼하 23:5). 본문에서 ‘영원하다’는 말이 3번 반복해서 나옵니다(13, 16). 영원히 왕위를 지속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맹세이자, 언약입니다. 하 나님의 언약은 다 영원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에 이처럼 영원하다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기에 다윗에 게 주신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이 언약의 영원함은 결코 다윗 자손의 실실함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 어도, 어떤 일이 일어나도, 어떤 다윗의 자손이 하나님을 배반해도, 하나님은 그 언약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 언약은 은혜 언약입니다. 은혜 언약이란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해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해주겠다’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주신 언약도 다윗이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짓겠습니다’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니, 네가 나를 위해서 뭘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너를 위해서 할 것을 내가 알려주마”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참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 는 하나님께 ‘제가 주님을 위해서 뭘 하겠습니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아니, 내가 너를 위해서 하는 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실함이 우리의 구 원의 근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인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 님을 아십니까? 이런 하나님을 믿으시는 것입니까? 2. 하나님의 주권 이스라엘 왕정의 역사가 시작된 과정을 보면 이스라엘은 본래 왕정이 아니라 신정이었습니다. 그 시대를 사사시대라고 합니다. 무 슨 국가의 위기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평범한 인물 중에서 사사를 세워서 위기를 극복하게 하고 나라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사사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이스라엘에 왕이 없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우리의 왕은 하나님이시다라고 대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 게 400년을 사사시대로 보낸 백성들이 마지막 사사라고 불리우는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A. 왕을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는 죄였지만, 왕을 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삼상 8:7; 신 17:14~20). 왕을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는 죄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 요구는 왕이신 하나님을 거절하고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정을 거부하고 왕정을 요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독특함을 버리고 이방 나라들과 같이 되려는 생각이 었습니다. 비록 그들의 요구가 죄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모세를 통해서 왕이 세워지게 될 것을 암시하신 적이 있습니다(신 17:14~20). 이것은 정확한 예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왕을 달라는 요구는 죄였지만, 왕을 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그 목적을 드러내시는데 사용하십니다. 죄 조차도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시는데 쓰실 수 있는 능력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과 행사를 거스릴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특별히 우리가 금요예배 때 출애굽기를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보게 되 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 왕정이 행사되는 이스라엘 왕국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내시려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B. 다윗 왕국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승귀와 하나님 나라의 모든 특성과 영광을 보여주신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승귀(높아지심)와 하나님 나라의 모든 특성과 영광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특징을 통해 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왕국을 설명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왕, 만왕의 왕이라고 할 때 그것이 어떤 의미로 주어지는 것인가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왕국은 얼마나 복된 나라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요구한 백성들의 잘 못을 당신의 거룩한 뜻을 위해서 쓰신 것입니다. 3. 언약의 흐름: 여인의 후손(창 3:15) 셈의 후손(창 9:27) 아브라함에게서 날 자(창 15:4) 유다지파(창 49:10) 다윗(삼하 7) 다윗 의 후손 언약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보면 처음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은 여인의 후손을 통해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을 말씀하 셨고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이 약속을 그들의 소망으로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 자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홍수 후 제10강 다윗(영원한 왕위) 언약 • 20
  • 21. 에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고 노아를 통하여 예언을 하시는데, 하나님은 특별히 셈의 후손을 축복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 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후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에게서 날 자를 축복하시고 그 자손을 통하여 온 세상 모든 민족 을 축복하시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조상들을 낳은 야곱이 죽기 전에 자 기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장면에서 네째 아들인 유다를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창 49:10을 보십시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실로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이견이 많지만, 그것이 메시야의 호칭이든 아니든, 메시야를 암시하는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왕이 유다에 게서 나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보십시오. 처음에는 여인의 후손, 그리고 셈의 후손으로 좁혀지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으로, 다시 유 다 지파로 좁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유다 지파의 다윗에게 이제 하나님은 당신의 영원한 언약을 주십니다. 그것은 다윗의 후손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4. 다윗 언약은 성취되었는가? A. 이스라엘 왕국, 하나님 나라의 상징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왕의 홀을 주심으로써 왕정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에는 부정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백성의 관심 이 더욱 땅의 것과 보이는 것에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늘의 것에서 점점 떠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눈에 보 이는 왕국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오해에 기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달라는 백성의 요구에 응하셔서 왕을 주시고 왕국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왕국의 특성과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시는 상징으로 주신 것이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상징을 실재로 받아들인 것입니 다. 이것이 유대 역사에서 그들이 가장 심각하게 복음과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게 한 부분이고, 또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을 메시 야로서 거부하게 된 원인이 된 것입니다. 상징을 실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B. 왕들의 실패와 다윗 언약에 대한 불안감(시 89:49). 이 문제는 유대의 역사 속에서 계속 제기되었었습니다. 유대 열왕의 역사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왕들을 비교하시는 기준 은 다윗입니다. 왕들이 잘못 행할 때마다, 그리고 유대 왕국의 위기의 때마다 다윗 언약을 기억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렇 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이전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시 89:49)?” 왕들의 실패에도 불구 하고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행하신 것처럼 왕위를 빼앗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신 것을 그들은 기억했습니다. 결국 유다 왕국은 바벨 론에게 멸망을 당했고 유다의 다윗 자손의 왕권은 끊어져버렸습니다. 그러면 다시 묻습니다. 결국 영원하다고 하는 다윗에게 주신 하 나님의 언약은 휴지조각이 되고, 물거품이 된 것입니까? 여기서 다윗 언약의 영원성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께서 영원하다는 것을 강조하셨는데, 그것은 오늘날 많은 유대인들과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다시 다윗의 왕통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왕국을 재건하신다는 약속일까요? 아니, 오히려 이 영원성에 대한 강조는 이 언약이 다윗의 자연적 후손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는 갈 라디아서 3:16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곧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윗 언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 는 다윗의 아들은 직접적으로 솔로몬과 또 이어지게 될 그 자손들이지만, 사실 여기서도 영원한 이 언약은 영원하신 한 분을 가리키 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너무 비약일까요? 히브리서 1장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성령의 영감으로 이 본문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히 1:5).” 이 구절은 시편 2:7과 삼하 7:14을 인용한 것입니다. 삼하 7:14을 보면 그것은 솔로몬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다는 것으로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남겨진 성취가 있다는 것입 니다. 그것이 어디서 이루어지느냐 하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 특히 히브리서 기자가 성령의 영감으로 해석한 다윗 언약의 내용입니다. 5. 다윗의 믿음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그는 단지 자기는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인지라 성전을 짓는 것은 합당치 않고 자기 아들 솔로몬이 지을 것이며, 유대 왕국이 자기 후손의 왕권이 끊어지지 않음으로써 영원하리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이것이 전부일까 요? 우리는 다윗이 이 언약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 신 선지자로서 기록한 시편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A.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삼하 7:18, 21; 행 2:30).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영원한 언약의 말씀을 주셨을 때, 다윗은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았습니다(18).” 다윗은 하나 님이 주신 언약의 메시지를 깨닫기 위하여 진지하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 앞으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종종 우리에게는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는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그 자신이 승승장구하여 사방의 모든 대적을 다 꺽은 왕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자기가 얼마나 작은 자인지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오늘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토록 큰 은혜를 주시고도 뭐가 부족해서 내게 이렇게까지 영원한 언약을 말씀하시느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19세기 독일의 신학자인 프레드리 히 빌헬름 크룸마허는 이렇게 썼습니다. “다윗은 영적으로 솔로몬이 아닌 다른 아들을 바라다 보았고 돌들과 나무로 세워진 성전이 아닌 다른 성전을 보았으며, 그의 보좌가 위치한 지상 왕국 배후에 있는 다른 왕국을 보았다. 다윗은 자신이 시온산에서 받았던 왕의 홀과 왕관이 단순한 상징들이었음을 깨달았다.” 다윗은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언약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21절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을 인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여기서 다윗이 말하는 ‘주의 말씀을 인하여’라는 말은 단지 그가 들은 메시지, 언약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더 핑크는 이렇게 해설합니 제10강 다윗(영원한 왕위) 언약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