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909년 1월 10일부터 12일 2박 3일
남도순행 – 대구, 부산, 마산
이토 히로부미, 이완용 동행
철도로 도착 (중부경찰서 앞 마산역)
신마산 이사청 (경남대 평생교육원)
남성동 (SC 제일은행 마산지점)
바다로 나가 일본 군함 승선
임금 얼굴을 보기 위해 수만 명 운집마지막 왕 순종
1874~1926
4. 1910년 5월부터 1912년 4월
2년간 상남동 거주
의령 집에서 가출해 창신학교 입학
초등과 1년, 고등과 1년
막노동, 마산 거리에서 인단 장사하며 고학
노비산에 자주 올라
마산은 그 위대한 생애의 첫 장소
독일 훔볼트 대학 경제학 박사(1927)
조선어 학회 회장
한글학자 이극로
1893~1978
5. 1907년 태어난 후부터 1925년
18년간 동성동(문화광장) 거주
마산보통학교(성호초) 졸업
창동 예술촌 골목이 등하굣길
남자군인들과 똑같이 일본군과 싸워
오빠 김형선, 동생 김형윤도 독립운동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해방 후(1949) 친일경찰 고문에 사망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1907~1949
6. 1925년 여름 석 달 간
상남동 이은상 집에서 기거
폐결핵 요양 차 내려 옴
상남동 주변, 구마산 선창 산책
신마산, 월포해수욕장 구경
그때 마산에서 있었던 일을 소설로 씀
<피 묻은 편지 몇 쪽>
마산 왔던 다음 해 운명소설가 나도향
1902~1926
7. 1922년부터 37년까지 15년 간
오동동에서 살아 -‘고향의 봄’씀
오동동 마산형무소에서 1년
산호동 신혼 집에서 1년
마산보통학교(성호초),
상업학교(현 용마고) 졸업
오동동 해안 갯벌에 자주 나가
마산에서의 생활, 시로 많이 남겨
고향의 봄 이원수
1911~1981
8. 1953년 세상 떠날 때까지 78년간
남성동, 중성동에서 거주
마산 최고부자 – 만석꾼
전국최초의 노동야학 설립(1907)
마산최초 한국인 주식회사 원동무역
독립운동자금 제공
초대 마산부윤(시장)
마산 모든 학교 설립에 기여
교육자 옥기환
1875~1953
9. 1936년 1월, 2월, 12월 각 하루씩
세 차례 마산에 옴
란(蘭)을 찾아 통영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경부선 기차를 타고 마산에옴
구마산 역 – 구마산 선창
육호광장 – 농협 남성동지점, 불종거리
당시 불종거리 비포장 흙 길
시 <통영>에 마산 등장
마산 객주와 이야기도 나눔
시인 백석
1875~1953
10. 1935년 7월부터 38년 2월까지
2년 7개월 간
마산의료원 통원하며 폐결핵 치료
추산동, 남성동, 상남동에서 거주
소설가 지하련과 마산에서 결혼
마산에서도 작품 많이 남김
마산선창에서 낚시 많이 함 -조어비어
마산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함
해방 후 월북했으나 53년 처형
카프 문학가 임화
1908~1953
11. 임화의 부인
1927년부터 1938년까지 11년
1940년부터 1943년까지 3년
뒤 3년은 산호리 친정 집(현존)에서
이 때 4편의 소설 남김
소설가 황석영, 그의 <도정>을 <한국
101 名단편>으로 선정
동경여자경제전문학교 유학한 엘리트
봉건사회에서 여성해방 실천한 지식인
소설가 지하련
1912~1960
12. 1954년 세상 떠날 때까지 69년 간
중성동 불종거리에서 거주
마산지역 3.1운동 적극 참여
마산 신간회 회장
여운형, 건국준비위원회 마산 위원장
마산 유일의 창씨개명 거부자
일본경찰 <갑종 요시찰 인물>
친일경찰의 고문후유증으로 사망
용마고 앞 도로 – 선생 호를 딴 허당로
독립지사 명도석
1885~1954
13. 1945년부터 1951년까지 6년간
6년제 마산중학 2학년부터 6학년까지
오동동(공영주차장 자리)에 거주
해방되자 일본에서 돌아온 귀환동포
마산중학 시절 국어교사 김춘수 만남
자산동 솔밭에서 시심 (詩心)을 키움
하교 길 구마산 서점에 서서 책을 읽음
마산고 앞길, 그의 호를 딴 <심온길>
시인 천상병
1930~1993
14. 가수 권혜경의 <산장의 여인> 노래 주인공
전쟁 후 작사자 반야월이 가포 결핵요양소
에서 만난 여인
병원 건너 산속 2인 병실(cottage)에 입원
했던 미모의 젊은 여인
병실 흔적 산속에 남아 있음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반야월 작곡 ’산장의 여인’
1957
15. 1949년부터 1961년까지 12년간
중성동에서 거주
마산 명도석의 넷째 사위
6년제 마산중학 국어교사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출퇴근
해인대학(현 경남대) 교수
‘꽃의 시’ 대부분 마산에서 탄생
3.15 시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
꽃의 시인 김춘수
1922~2004
16. 1960년 3월 10일~15일까지 6일 간
장군동 이모할머니 집에서
전북 남원 출신
마산상고 입학시험 합격
3월 15일 낮에 마산시내 구경
그날 밤 마산시청 앞 거리에서 사망
4월 11일 마산바다에 떠오른 시신
4.19혁명으로 승화
그의 죽음, 이승만 독재 붕괴의 직접적 원인
열사 김주열
1944~1960
17. 1969년 세상 떠날 때까지
소년기 – 창동
청년기 – 오동동
장년기 – 추산동에서 활동
한국무용협회 창설자
춤은 기생만 추던 시절에 무용을 함
마산갑부였던 부모 몰래 춤을 배움
일본대학 예술학부 출신
장례식 – 마산 시민장
천생 춤꾼 김해랑
1915~1969
18. 1966년부터 1968년까지 2년 간
가톨릭 마산교구 초대 주교
완월동 성지여고 내 주교관에서 생활
한국 최초의 추기경
독재정권에 할말은 했던 종교지도자
주교좌성당인 남성동성당에서 미사집전
“마산은 첫사랑과 같은 곳”이라고 함추기경 김수환
1922~2009
19. 이들은 모두
떠났지만,,
순종 - 왕
이극로 - 한글학자
김명시 - 여장군
나도향 - 소설가
이원수 - 아동문학가
옥기환 - 교육자
백석 - 시인
임화 - 카프 문학가
지하련 - 소설가
명도석 - 독립지사
천상병 - 시인
산장의 여인 - 노래주인공
김춘수 - 시인
김주열 - 열사
김해랑 - 무용가
김수환 -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