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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시민 평화 헌장을 만들자
북후정(겗 亭)은 옛 서문시장 입구에 있었다
사람이 건강하고 자연이 건강한 지속가능한 사회
그리움/‘나눔’의 정신이 필요함을 새롭게 다지며
이재화/이제상/김영애
회비안내>>
회비를 미납하신 회원께서는 동봉한 지로용지나 은행계좌로 조속히 납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구은행 031-05-003912-4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김 영 호
입회안내>>
국채보상기념사업회원을 모십니다.
애국애족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에 뜻을 함께 하고자 하시는 분은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회원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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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을 희망하시는 분은 전화 053)745 - 6753으로 문의하시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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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인 신동학
편집고문 박용규, 서상호
편집위원 엄창옥(위원장), 권오현, 남정원, 우웅택, 이용수, 전환길,
최경집, 최윤진, 황성하
발 행 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동인동 2가 42번지)
전화.053-745-6753 팩스.053-746-6753
www.gukchae.com E-mail.master@gukchae.com
기획제작 밝은사람들 053-652-5700
<꿈인가 생시인가, 하늘이 준 것인가
때가 온 것인가, 구름 안개 걷히는 것인가…
대한 광무 11년(1907년) 새봄의 제일 좋은 소식은
하늘에서 온 복음을 소리쳐 전하는 것이로다.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이러한 좋은 소식을 우리는
급히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이오…
이 소식은 다름이 아니라
대구광문사 부회장 서상돈씨 등이
단연동맹한 호소식이로다.>
1907. 2. 25 자 황성신문 논설에서 따옴
국채보상운동
동아시아 시민 평화 헌장을 만들자
북후정
북후정(겗 亭)은 옛 서문시장 입구에 있었다
나눔과 책임
사람이 건강하고 자연이 건강한 지속가능한 사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청.년들이여 년(연).탄 나눔 봉.사활동하러
Go. Go~
천둥문학
그리움
‘나눔’의 정신이 필요함을 새롭게 다지며
회원광장
효도하는 자식과 불효하는 자식
베이비붐 세대의 어제와 오늘
노인장기요양보험이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04
11
15
22
26
30
40
김영호
임경희
서종효
성영덕
김종철
김일영
이재화
이제상
김영애
2014. 겨울 제33호
나눔과 책임의
표지사진
“국채보상운동은 비록 일제의 탄압 때문에
좌절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경제침탈에 맞서
최초로 전개된 범국미적 경제주권회복운동
이며 그 중심에 대구가 있었다는 사실에 이론
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북후정은 이 운동이
구체적으로 실행된 장소, 신분과 빈부를 초월
한 구국의 민의(民意)가 최초로 결집된 장소
로서 그 역사적 의의가 자못 크다.”
(본문 14페이지에서)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1 헌법 9조와 집단적 자위권은 단순히 일본 국내의 법적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가
진 동아시아적 문제이다. 성립의 배경 및 과정도 아시아 태평양전쟁 귀결의 일환이었으며 그 파급 및 영
향 또한 아시아지역사적 문맥에서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온 제가 국제적 측면에서
말씀드리게 되었다.
나는 10년 전‘9조의 회’창립기념 강연회에 우연히 청중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오꾸라
호텔 강당에 약 1000여 명 이상의 시민 지식인들이 모여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가또 선생, 오에 겐자부
로 선생 등 고명하신 연사들의 강연이 있었는데 그 진지하고 뜨거운 분위기에 감동하여 일본의 평화헌법
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지속되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이 강연회는 틀림없이 신문·TV에 아마 톱기사로
나오리라고 예상했다. 큰 기대를 갖고 이튿날 아침 신문을 펼쳐보았다. 1면, 2면, 3면, … 기사가 없었다.
겨우 한 신문의 제일 뒤 사회면에 작게 나와 있었다. 쇼크였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시민의 소리와 신문의 기사와 정부의 반응 사이의 커다란 갭을 안고 있다. Voting
Democracy는 투표를 통하여 주권을 위임받지만 소선거구제의 금권선거, 연고주의 그리고 야당이 분열
동아시아 시민
평화 헌장을
만들자
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Ⅰ
김 영 호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
되면 야당지지 총계는 많아도 여당이 당선되는 사태 등으로 과두(寡頭)정권이 성립되어 시민의 의사를 대
변하지 못하는 대의(representation)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투표에서 당선된 대의자는 누구의
영향을 받는가? 그 배후에 때로는 빅 브라더가 등장한다. 여기에서 대의자는 시민의 의사보다 빅 브라더
의 의사를 대변하는 경향이 강하다. 문제는 매스컴조차 기업미디어 성격을 갖게 되고 시민의 소리보다 과
두정권의 의사를 대변하게 된다. 시민은 이 기업미디어에 서서히 갇혀 영향을 받고 조종당하는 상황에 빠
지게 된다. 민주주의는 도처에서 이러한 함정에 빠지게 된다. 나는 일본이 이러한 함정에 빠졌다고 단정
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함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는 데도 동의하지 않는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Voting Democracy를 넘어 Voicing Democracy를 추구하고 있다. 아울러 기업미
디어를 넘어 시민미디어가 추구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은 시민사회가 정권을 교체한 기억이 없다.
이 기억이 없는 경우, 정부가 시민의 소리를 듣는 자세가 다르고 시민이 정부를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또
한 양당제로 정권을 번갈아 지속적으로 교대한 경험이 없어 주권자의 입장에서 대안이 없게 되고 시민의
소리와 정부의 정책 사이의 갭은 더욱 크게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일본에서 평화헌법을 지지하는 여론
이 높고 그 결과 집단적자위권의 용인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데도 정부에서 평화헌법과 모순되는 집단
적 자위권을 각의 결정으로 용인하여 상위의 평화헌법을 무력화, 형해화시키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집단적 자위권은 의기양양하게 용인되었지만 헌법 9조는 구름 속에 가려졌고 민주주의는 눈비를
맞게 되었다.
2 우선 평화헌법 9조를 동아시아적 문맥에서 살펴보고 싶다. 평화헌법은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에 대
한 연합국측의 요구이면서 일본 스스로의 반성의 산물이라는 성격과 아울러 전후 일본과 동아시아와의
새로운 관계수립과 교류 협력을 위한 국제적 약속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전후 서유럽이 독일의 철저한
반성과 경무장화 및 나토(NATO) 체제로 평화와 협력이 가능했듯이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반성과 평화
헌법 그리고 미국 주도의 안보질서로 평화와 협력이 가능했다. 전후 일본의 시민사회는 평화헌법체제를
굳건히 지켜왔고 그 결과로 동아시아와의 교류협력이 심화·확대되었다.
구미(歐美)에서는 대체로 시민혁명 후 시민사회기반으로 산업화가 전개된 경향이 강했으나 동아시아는
대체로 국가주의적 기조로 고도 산업화가 전개되면서 중산층이 형성되고 중산층을 중심으로 점차 시민사
회가 발전하고 있으며, 시민사회가 성숙하면서 국가주의 내지 민족주의를 졸업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
다. 오늘날 동아시아는 일본에 이어 한국·대만·태국·인도네시아·중국 등에서 차례로 고도산업화가
전개되고 그 결과 동아시아에는 약 5억의 중산층이 형성되었고 이들 중산층을 중심으로 광범하게 동아시
아 시민사회가 전망되고 있다.
천둥소리 5
중국에서도 천안문 세대, 80년도 이후 세대, 인터넷 및 SNS 세대 등을 중심으로 신공민운동, 200만개
가 넘는 NGO 운동, 홍콩 시민 15만 명의 천안문 시위지지 데모와 최초의 우산혁명 등의 지속적인 민주화
운동 등 정치권력 차원을 제외한 시장경제영역의 시민사회화가 광범하게 전개되어 점차 복수정당제의
도입이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동아시아는 한자문화권 혹은 유교문화·불교문화권이라는 전통적인 공통성을 넘어 무역과 투자의 역
내화(域內化)라는 경제 통합의 단계에 왔고, 이미 아세안 공동체 형성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경제통합
을 넘어 사회적 아시아 혹은 Civil Asia 라는 역사적 국면의 전야에 이르고 있었다. 여기에서 Civil 이란
시민간 또는 문명화(Civilized)된 인민 또는 현재의 군사우위 매파 지배구조를 극복하고 실질적인 비둘기
파 지배의 문민통제 시스템의 확립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아시아 시대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운위되고
있는 것은 잠자는 사자 중국만이 깨어난 것이 아니라 진짜 잠자는 더 위대한 실체인 Civil Asia 라는 용이
깨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서양화라고 하는 한 세기 반에 걸친 긴 터널을 빠져나와 Civil Asia의 평야
가 눈앞에 펼쳐지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일본 평화헌법의 역할이 컸다. 평화헌법은 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공유 자산이라 할 만하며 그러한 점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하다. 동아시아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평화헌법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것을 지지한다. 수령 주체가 누구여야 할 것인가의 문제
는 법적 고려도 필요하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신적 혹은 운동사적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인 만큼 끊
임없는 개정 시도 속에서도 이를 굳건히 지켜 온‘헌법수호시민운동’측이 수령 주체가 되는 것이 합당하
며 그런 점에서는‘9조의 회’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3 주권자인 국민 내지 시민의 의사와 국가 내지 정부의 의사 사이의 괴리 문제는 현대 민주주의가 당
면한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러나 일본·중국·한국 등지에서는 그 괴리가 확대되고 심화되는 구조 속에 빠
졌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이 150여 년에 걸친‘굴욕의 세기(Century of Humiliation)’를 거치면서 이제‘잠자는 사자’가
잠을 깨고‘굴기(屈起)’하고 있는데 중국의‘굴기’가 패권주의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과거 일본의 패
권주의 유산을 청산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우리가 100여 년 전 일본제국주의의‘한국병합’의 불법무
효화 운동을 벌인 것도 우리가 이미 수차 밝힌 것처럼 한국민족주의의 요구에 멈추지 않고 Civil Asia의
필수 전제조건이라는 차원이었다.
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그러나 아베정권은 정반대 방향으로 나갔다.‘일본을 되돌리자(日本を 取り す; Japan is back)’라
는 아베정권의 키워드는 우리가 그토록 극복하고자 하는 과거를 오히려 긍정하고 미화하는 역사수정주의
의 입장에서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고 하는 평화헌법체제를 극복대상으로 삼는 헌법개정론으로 나타나고,
그것을 평화헌법정신과 어긋나는 집단적 자위권의 용인이라는 편법으로 실천되는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
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후 냉전의 파도에 휩쓸려 과거사 청산 작업이 미진했던 것을 냉전 후 다시 청산하
는 이른바‘사죄의 시대’(Age of apology)를 정면에서 역행하는 것이었다. 요즘 세계적인 주목을 끌고
있는 토머스 피케티는『21세기 자본』에서‘과거가 미래를 규정한다’는 원리를 실증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데 아베수상의 행적은 실시간으로 과거에 대한 인식이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로 중국, 한국 등과의 역사충돌을 가져왔고 그것이 민족주의와 민족주의간의 대립양상
을 띄게 되어 상대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일본과 중국 간에는 패권주의 대 패권주의라는 적대적 관계
가 형성되고 말았다.
이를 전후하여 센카쿠열도(중국명은 釣魚島) 사태가 터졌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분쟁은 어느 한쪽에만
그 책임을 전가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대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냉정한 관찰자 사이에는 일본정부의 돌발
적인 국유화조처가 사태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당시 주중일본대사
단바(丹羽宇一걏)씨가 일본정부의 이 조처를 격렬히 항의하고 경고했던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고 생각한
다. 이 조처에 대응하여 중국측의 격렬한 반발과 무력시위가 있었고 다시 일본의 군사적 반격이 나오고
중국측의 재반격이 나오는 악순환 과정에 상호 영토 내셔널리즘이 충돌하고 에스컬레이트 되면서 급격하
게 위기가 확대 심화하였다.
우리는 이것을‘적대적 상호의존’의 악순환 메카니즘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베정권으로서는 시진평정
권이라는 적이 필요했던 것이며 시진평정권으로써는 아베정권이라는 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외부의 적과의
적대관계를 이용하여 국내의 내셔널리즘을 고조시켜 보수화를 강화시키고 리버럴의 도전을 약화시키며
그 결과로 국가는 점점 제국화되고 시민은 부지불식간에 점점 신민화(臣民化)의 위험에 빠진다. 더구나
일본의 정부는 마루야마(丸山 男) 선생의 지적처럼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생명을 잃게 했다
는 사실로 내셔널리즘의 처녀성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내셔널리즘을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전
쟁범죄를 회석 내지 왜곡시키는 역사수정주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본의 시민은 역시 마루야마(丸山
男) 선생의 지적처럼 시민이 시민의 권리를 양보하는 대신 신민화됨으로써 얻는, 타민족에 대한 특권을
향유(享有)해 본 향수가 있어 신민화의 유혹에 약하다. 따라서 국가와 시민의 타협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지금 일본에서 일고 있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의 홍수, 혐한(嫌韓)·혐중(嫌中) 책과 잡지의 범
람, 재특회(在特會:재일교포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일본의 혐한파 시민모임)의 나치즘을 연상시키는
천둥소리 7
거리행진, 한국에서는 이미 20~30여 년 전에 거의 사라진 비문명적 풍조가 아시아의 최선진국 일본에서
언론 집회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횡행하고 있는 것은 특이한 역사적 풍경이다. 이것을 아베정권과 무관하
다고 하는 경향도 있긴 하지만, 최근 아베정권의 각료가 헤이트 스피치의 주동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타나면서 역시 근거가 있는 소문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아이히만(Eichmann)의 재판을 보고‘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s)’이란 개념을 내어 놓았지만 헤이트 스피치가 언론집회의 자유의 명분으로 합법적으로 공공연히 행
해지는 것을 보고‘악의 문명성(civilization of evils)’의 구체 사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금할 수 없었
다. 어느 나라에도 헤이트 스피치가 있으나 건전한 시민사회의 자정력으로 자정해 나가므로 일본도 그렇
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일본시민사회의 자정력을 믿고 있다. 독일의 메르켈 수상이 지적한 것처
럼 나치즘은 히틀러 일파만의 책임이 아니라 지식인을 포함한 시민의 책임이라는 통렬한 지적이 있었지
만 일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중국과의 전쟁위험에 직면하여‘안보냐, 헌법9조
냐’하는 양자택일구도에 시민들을 가두어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지지율을 끌어 올린다.
시진핑정부 또한 아베정부라는 외부의 적을 활용하여 중국 내셔널리즘을 최고조로 고조시키면서 온건
비둘기파가 후퇴하고 강경 매파가 중심이 되어 대외 패권주의적인 움직임을 강화하면서 군비확장에 박차
를 가하고 정부중심의 동원체제를 강화한다. 그 결과 국내의 광범한 민주화 요구나 정부에 대한 다양한
비판적 움직임을 억압하고 약화시킨다.
이러한 적대적 상호의존의 악순환 구도 속에서 국가는 시민사회를 위축시키는 제국화의 경향을 띄게
되어 상대적으로 과대 국가와 과소 시민, 일종의‘제국과 시민’이라는 구도를 만든다. 이 구도 내에서 정
부 간의 대립 내지 적대관계가 시민 간 혹은 인민 간의 대립, 적대관계로 확대된다. 시빌 아시아는 후퇴하
고 역사는 역류한다. 빈번하게 일어나던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는 이제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20세기 초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미일동맹체제가 지배하는 그 당시, 동아시아를 넘겨다보는
위협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는 혁명 전야의 혼란 속에서 국가 존립자체가 흔들리는 상황
이었다. 그 당시 다른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면 일본의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일본이 선점했다는 이야기
는 전혀 근거가 없다. 그때 일본이 침략주의로 나가지 않았더라면 아시아는 그처럼 극단적인 파괴와 전쟁
과 원한의 대륙으로 화하지 않고 평화로운 협조체제가 형성되고 일본은 진정한 맹주가 되었을 것이다.
전후에도 동아시아 화해와 통합의 기회가 있었으며, 특히 냉전 후 다시 세계적으로 역사화해의 조류가
일어나고 동아시아 무역 투자의 통합이 급피치로 전개되었을 때 일본은 과거 일본의 패권주의의 그림자
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를 지우고 역사화해와 함께 동아시아의 한국, 대만 등 민주국가 및 중국의 비둘기파와 제휴하여 중국을
설득하고 동아시아의 평화 민주 통합의 이니셔티브를 잡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아베정부에 이르러 정
반대의 역사수정주의–영토 내셔널리즘–집단적 자위권의 용인–미일군사동맹강화에 의한 대중국 대결
체제의 강화–중국의 강경 매파의 전면적 부상과 신 패권주의적 노선의 부활 등으로 동아시아는 100년
전의 사라예보의 총성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일본은 다시 한 번 동아시아 평
화와 통합을 파괴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4 동아시아의 보수정권이 보수적 통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하여 외부의 적이 필요했고 그 적이 영토 내
셔널리즘과 안보위기의식의 적으로 연출됨에 따라 대결분위기가 극적으로 에스컬레이트되어 적대적 상
호의존의 악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말았다. 이 악순환 구조 속에 일반시민·인민들도 편입되어 영문도 모
르는 체, 까닭도 없이 시민이 서로 적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실 국가와 시민의 괴리가 극단으로 가, 제국-시민의 틀에 갇히게 되고 안보냐 평화냐의 양자택일을
강요받아 시민이 안보위기 대응태세에 가담하는 것은 국가의 논리이지 시민의 논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
다. 시민끼리 인민끼리는 대립하고 적대해야 할 까닭이 없다. 시민의 논리 위에서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재조정하여 Voice Democracy 쪽으로 더욱 접근해야 한다. 원래 평화헌법 자체가 시민의 논리 위에서
국가와 시민의 관계가 재조정된 결과의 산물이고 평화헌법체제가 영향을 주고받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고
도산업화의 과정에 형성된 5억의 중산층과 또한 5억의 예비중산층이 중심이 되어 서유럽 시민사회처럼
동아시아의 시민사회화 내지 시빌 아시아가 형성되기 직전까지 이른 성과를 완성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보수 정부끼리 상호 의존하는 것처럼 시민 내지 국민 간 연대를 강화하고
상호의존관계를 공고히 해야 한다. 동서독 통일직전에 동독정부의 반통일적 움직임이 있을 때 시민들이
‘Wir sint die Volk(우리들이 바로 그 국민이다)’하고 외치며 국가의 주권자인 Volk(국민) 자신이 나서
서 통일의 방해공작을 박살낸 것처럼 한·일·중의 시민, 국민은 시빌 아시아를 역행 내지 후퇴시키고 전
쟁의 위기를 조성하는 적대적 상호의존관계를 극복해야 한다.
시민 혹은 국민과 괴리된 정부와 정부 간에 수많은 국제 제도적 연결-협의 기구가 있듯이 시민사회와
시민사회 간 혹은 NGO와 NGO 간에 단단한 연대관계가 형성되어야 정부와 시민 간의 관계의 재조정을
위한 균형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문맥에서 우리는‘동아시아 시민평화회의’를 구성할 것을 제의한다. 혹 중국 측에서 시민이란
용어문제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민평화회의는 처음부터‘동아시아
천둥소리 9
시민 평화헌장’의 제정을 제 일차적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시민 평화헌장은 아시아 시민평
화의식이 아시아 전쟁 불안 해소의 지렛대가 되는 기본 이념을 담아야 할 것이다. 종래 국가에 의해서 형
성되고 국가를 위해서 전개되는 국제법의 세계에서 시민의 관여는 한정적이며 간접적이다. 그러나 세계
화가 심화되고 시빌 아시아가 진전되면 시민이 국가를 경유하지 않고 세계 및 아시아에 밀접히 결부된다.
따라서 아시아문제에 대하여 국가를 경유하지 않고 관여하고 혹은 국가를 보완해서 참여해야 하는 상황
이 된 것이다. 따라서 시민과 아시아의 기본 관계의 이념 정립은 중요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
부재의 아시아가 되고 그것이 위기의 아시아로 귀결된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시민참가이며, 그것
이 시빌 아시아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시민평화회 참가자에 대한 대표성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 문제가 간단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러나 만일 위안부 문제라면 그 위안부 문제 관련 국제회의에 참가할 각국의 대표성 있는 인사를 관련
NGO들이 선정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며, 센카구 열도(중국명 釣魚島) 문제라면 이해당사자를 배제한 객관
적 제3자 단체들이 대표성 있는 인사를 선출하는 것이 반드시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권문제, 평화문
제, 환경문제, 역사문제 등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시민 대표자 혹은 전문가들은 정부 대표자보
다 합의를 도출하기가 훨씬 유연할 것으로 생각한다. 국가가 못한 것을 시민의 손으로 해보는 시도이다.
‘동아시아 시민평화헌장’에서는 아시아 평화가 각국별 안보 못지않게 우선되어야 하며, 각국의 역사의
입장에서 아시아 공동의 역사를 보는 것 못지않게 아시아 공동의 역사의 입장에서 각국의 역사를 보는 것
이 중시되어야 하며, 일본의 과거침략과 전쟁의 역사 청산의 과제는 피해갈 수가 없는 문제일 것이다. 동
아시아 시민사회는 피해서 지나갈 수 없는 과제이다. 동아시아 시민사회는 동아시아 공동역사의 교과서
편찬과제를 이룩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 인권, 평등과 같은 시민적 보편가치를 끌어안고 빛
나게 할 잠재력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의 일본화, 아시아의 중국화를 넘어선 아시아의 아시아화,
즉 아시아의 아시아시민사회화를 지향해야 하며, 여기에는‘동아시아 인권재판소’설립과제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
‘9조의 회’의 10주년을 맞이하여 동아시아에서도 평화헌법 9조라고 하는 아시아 공유자산을 소중하게
지켜야한다는 점을 바라는 바이다. 그 길로써 앞으로는 시민부재의 아시아에서 시민참여의 아시아로 가
는 첫걸음으로‘동아시아 시민평화회의’를 구성할 것을 제의한다. 그 회의에서 최초의 과제로‘동아시아
시민평화헌장’을 제정할 것을 제기하고 싶다.
(이 원고는 2014년 11월 27일에 열린 일본 동경의「9조의 회」10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발표된 논문입니다.)
1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북후정
Ⅱ
4년 전 이맘때 쯤, 사진 자료 문제로 종종 뵙던 정성길 동산의료박물관 명예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소장 자료들을 정리하던 중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매우 흥미로운 건물이 담긴 사진파일이 하나 나왔
으니 확인을 해보라는 말씀이셨다. 제일교회 앞 커피숍으로 약속을 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래의 사진
한 장을 내미셨다. 사진을 보는 순간 아뿔사! 서문시장 전경을 찍은 사진 속 멀찍이 높은 건물 한 채가 버티
고 서 있다. 북후정 임이 분명했다.
집에 들어가는 길로『자인총쇄록』을 다시 펼쳤다. 그동안 읽으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이 대목,“… 여기
가 대구 경계이다. 큰 버드나무가 꽉 들어서 있는 곳에 간간이 주점이 있다. 여기에서 영남 감영과의 거리
가 10리 였다. … 대구부에 들어가는데 3리 못 미쳐 달성이 길 오른 편에 있다.… 다시 2리를 남겨두고 북후
정(겗 亭)이 있는데 이곳이 곧 서문시장이었다.…(오홍묵, 1888 : 일록(日걧) 무자(戊子))”란 구절이 사진
과 오버 랩 된다. 부랴부랴 대구 고지도를 찾았다. 읍성 서문 밖 정자 그림 밑에 북후정(겗 亭)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의 진행과정에서 최초로 군민대회가 개최된 역사적 장소,
북후정은 이렇게 자신이 서 있었던 원래의 위치를 내게 알려왔다. 북후정은 대구 읍성“북문 밖”이 아니라
서쪽 문인 달서문 밖에 건립된 관아 건물(公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각 지역 성
곽들을 포함한 관아시설들을‘항일의 상징’으로 간주하고 이의 파괴에 전력을 기울이는 바람에 옛 모습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북후정(겗 亭)은 옛 서문시장
입구에 있었다
임 경 희
대구경북소비자연맹 회장
천둥소리 11
찬찬히 살펴보면「자인총쇄록」「대구부읍지」「대한자강회 월보」「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등 관련 사
료들은 하나같이 북후정이 서문 밖, 경상감영에서 서쪽으로 2리 또는 3리쯤 되는 곳, 옛 서문시장 입구에
서 있었음을 기록해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옛 지도를 통해서도 간단히 확인된다. 그런데 왜 대구광
역시와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관련 자료들은 지금껏 북후정의 위치를“북문 밖”또는“현재의 대구시민회관”
자리로 표기하고 대구상공회의소는 국채보상운동 기념비를 대구시민회관 앞 광장에 건립해 두었을까?
그 이유는 관련 사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것 외에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생각
된다. 그렇지만 구태여 위치를 왜곡하게 된 경위를 찾으려 한다면 당시 군민대회 광경을 보도한「대한매일
신보」1907년 3월 9일자 2면의 기사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국한문을 혼용한 당시의 기
사가 북후정을 표기하면서‘후’의 자모를 한글로 표기(겗 亭)하는 바람에 이후 북후정의 한자 표기에 혼동
이 생기게 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답은 당시 신문의 제작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즉 그 시절 신문
들은 지금처럼 기자가 자신의 컴퓨터를 통해 기사를 작성하고 이를 바로 편집하게 하는 대신 기자가 작성
해 온 원고를 문선부(文選部)로 보내고, 이를 토대로 문선공들이 주조된 활자들을 뽑아 지면을 채우는 방식
으로 제작되었다. 따라서 북후정(겗 亭)에 사용되는 봉화대 후( )와 같은 잘 사용되지 않는 복잡한 자모
는 기존 활자를 깎아서 만들어 내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따라서 인쇄시간에 쫓기게 되면 이렇게 한
글로 표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드물게는 기사를 쓰면서 기자가 한자를 흘려 쓰는 바람에 알아볼 수 없었
거나 아예 원고를 그렇게 작성해서 넘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런데 이후 이 기사를 인용한 일부 논문이
이 부분을 자의적으로“북후정(겗後亭)”이라고 고쳐서 표기하는 사례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기사를 검색해보면「동아일보」1971년 3월 24일자 2면도 이 광경을 인용하면서 북후정(겗後亭)이라고 쓰
고 있다. 실제 위치를 잘못 알게 되는 첫 단추가 여기에서 끼워진 셈이다. 그런데 같은 기사를 근거로 하여
당시 상황을 기술한『대구시사』제1권(통사)에 이르면 북후정의 위치가 느닷없이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이 운동의 발기인은 광문사 사장 김광제, 부사장 서상돈, 대동광문회 회장 박해령, 회원 김
윤란, 장상철 등 10여 명으로서 2월 21일 그들은 대구민의소(斷煙會)를 설립하고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이 민의소 창립 회합 장소 즉석에서만도 500원이란 성금이 모아졌다고 한다. 이
어서 민의소는 겗後亭(현재의 대구시민회관 부근)에서 국채보상모금을 위한 국민대회를 개최
하고, 3월 9일 대구 서문 밖 수창사에 국채지원금 수합사무소를 설치하였다. 이 때 국민대회
가 일본경찰에 의해 해산 당하고 연설자가 체포되기도 하였다.”
(밑줄은 필자가 표시. 대구광역시(1995),『대구시사』제1권(통사) : pp.903-4)
거기에다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간행한『국채보상운동논문 선집』에 실린 한 논문은 1907년 3월
29일자「황성신문」기사를 인용하는 과정에서“서문 밖 북후정”을“북문 밖 북후정”으로 표기하는 중대한
착오를 범하고 만다. 이런 과정에서 존재하지도 않은“북문 밖 북후정”을 찾으려는 헛수고가 이어졌고 급기
야 대구시사 편찬실은 2004년 북후정이“대구 역 부근 칠성바위 가운데 단을 높이 쌓아 지은 것”이라는 내
용이 담긴『교양 대구설화』를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국채보상운동의 첫 집회를 음력 정월 초아흐렛날(양력 2월 12일)에 북문 밖 칠성리의 북후
정에서 열었다. 그곳은 지금의 대구역전 시민회관에 서 있는 일대로서 당시 대구 사람들은 칠
성바위 가운데 단을 높이 쌓아 지어놓은 이 북후정을 곧잘 모임의 장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밑줄은 필자가 표시. 박영규(2004), 『교양 대구설화』, 대구광역시)
뿐만 아니라 대구광역시는 현재 관광안내를 위한 인터넷 카페에“북후정은 칠성바위 바로 옆에 있었으
며 의북정(依겗亭)과 동일한 정자”라는 터무니없는 내용까지 덧붙인다. 달서문 밖 서문시장 입구에 서 있었
던 북후정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읍성의 북문 밖, 지금의 대구시민회관 자리에 존재했다고 알려지게 되
었다. 그리고 관련 기관·단체들은 1차 자료를 확인하는 대신『대구시사』제1권(통사)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북후정(현재의 시민회관)’이란 오기(誤記)를 의심 없이 사용해 왔다. 그 결과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북후
천둥소리 13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정’을 검색하게 되면“북후정(현재의 시민회관)”이란 문건이 봇물을 이룬다. 이런 잘못은 국채보상운동기
념관 전시물에서도 여전하다.
북후정이 있었던 자리는 대구광역시 중구 시장북로 1-1로 추정된다. 옛 서문시장의 끝부분과 일제가 개
설했던 시장북로가 만나는 지점이다. 정확한 위치를 찾는 일은 1911년 제작된‘대구부대구면시가지도’와
이를 바탕으로 1929년 작성된 대구 중구청 소장 지적도,‘조선총독부 훈령9호’(1912년 10월 7일 발표)에
의해 대구의‘시구개정(市區改正)사업’이 진행된 후에 제작된 지도들 중 옛 서문시장이 표시된 지도들, 그
리고 현장을 다각적으로 대조하는 후속 작업이 이어진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국채보상운동은 비록 일제의 탄압 때문에 좌절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경제침탈에 맞서 최초로 전개된 범
국민적 경제주권회복운동이며 그 중심에 대구가 있었다는 사실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북후정은
이 운동이 구체적으로 실행된 장소, 신분과 빈부를 초월한 구국의 민의(民意)가 최초로 결집된 장소로써 그
역사적 의의가 자못 크다. 늦었지만 북후정의 올바른 위치를 찾아 복원하고, 힘이 들겠지만 그동안 잘못 기
록했던 각종 표지판이나 전시물, 관련 문헌의 수정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얼마 전 대구에서는 큰 행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제3회 대한민국도시농업박람회입니다. 대구 자연과학
고등학교에서 열린 행사는 도시민들이 농작물을 직접 가꾸고 기르는 재미와 수확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
는 많은 정보를 제공하였습니다.
도시농업은 도심 한복판에서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합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심지역에서의 농업은
상업적 측면뿐 아니라 생태환경, 교육, 사회적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독일의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소공원)과 영국의 얼로트먼트(Allotment-시민농장), 일본의 시민농
원 등 해외 선진국들도 도시농업을 활발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한국 또한 정부에서 도시농업 육성법까지
마련하며 도시농업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도시농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약
100만 명입니다. 앞으로 도시농부는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대구의 경우 제2회, 3회 두 번 연속 대한민국도시농업박람회를 유치할 만큼 도시농업이 활발합니다. 전
국 최초의 텃밭 동아리인 경북대학교‘희망토마을’이 있습니다. 또한 빈집을 이용해 텃밭을 조성하는‘신
나는 농장’도 있습니다. 또한 올해는 제가 공동대표로 있는 대구 도시농업 시민협의회가 출범을 하여 도시
농업을 하는 많은 단체가 모여 대구의 도시농업 발전을 위해 의기투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건강하고 자연이 건강한
지속가능한 사회
자연과 소통하고 농사의 소중함을 깨닫자
나눔과 책임
Ⅲ
천둥소리 15
서 종 효
㈜희망토 대표이장
제가 도시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농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아프리카에 농장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
기 때문입니다. 20대 초반 삶과 진로, 미래에 대해 방황하며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삶의 키워
드를 뽑았습니다. 첫 번째는 기아문제입니다. 굶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했습니다. 두 번째는 봉사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사회에 속해서 살아가는데 이 사회를 위해서 봉사를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는 CEO입니다. 리더로써의 조직을 이끌고 싶었습니다. 이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도달하게 된 결론이 바로 농업비즈니스였습니다.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농장을 운영하려면 농업을 알아야 하고 농업을 하려면 농사를 알아야 한다. 농사를 짓기 위해 캠퍼스 텃
밭을 생각했습니다. 2011년 드디어 경북대학교 안에 유휴지를 찾아 텃밭 조성 프로젝트에 돌입했습니다.
두 번의 거절을 당하기도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 끝에 희망토 캠퍼스 텃밭을 조성했습니
다. 여기서는 교수님, 교직원, 학생과 함께 농사를 지었습니다. 지금 이 텃밭은‘희망토마을’경북대학교
텃밭 동아리에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취업을 해야 하나 창업을 해야 하나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생각을 정리하고 1년만 창업에 투자를 하자 생각하고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때 현재 이장님 두 분을 만나 2012년 9월 1일 ㈜희망토를 설립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희망토의 대표이장
으로서 도시농업, 농업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희망토는‘사람이 건강하고 자연이 건강한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루겠다는 비전 아래 농업교육 콘텐츠
를 개발하고 있습니다.‘먹는 행위는 곧 농업적인 행위이다.’모든 삶의 기본은 바로 농업이라고 생각합니
다. 희망토는 가드닝, 생태, 먹거리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콘텐츠를 운영합니다.
첫 번째 콘텐츠는 어린이 농부교실입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텃밭 농사를 통해서 자연의 신비
함을 느끼고 직접 재배한 농작물 수확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올바른 먹거리의 인식을 만들어 가는 텃밭 체
험 프로그램으로 농사를 매개체로 서로의 마음과 힘을 나누는 공동체 인성을 배웁니다.
두 번째 콘텐츠는 가족농장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주말농장을 가꾸면서 신선한 채소도 재배하고 자연에
서 가족애도 느낄 수 있는 생태&먹거리 교육중심의 가족농장 프로그램입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주말농장
에서 채소를 기르고 재배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바른 먹거리의 올바른 인식을 심어줍니다.
세 번째 콘텐츠는 도시농부교실입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베란다 텃밭 가꾸기, 옥상 텃밭 가
꾸기 수업입니다. 나아가 로컬푸드, 슬로푸드를 알려 우리 먹거리에 대해 배웁니다.
네 번째 콘텐츠는 논학교입니다. 논농사를 지으면서 유기농 쌀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논 수서생태계에
대한 학습이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입니다. 직접 모내기부터 추수까지 해 손수 밥까지 지어먹는 프로그램입
니다.
다섯 번째 콘텐츠는 김장농사입니다. 가을농사의 중심에 있는 김장농사를 직접 텃밭에서 운영하면서 수
확 후 김장을 함께 담그면서 가족에게는 가족애를 높이고, 학생들에게는 김장의 참뜻과 협동심을 향상시
키는 프로그램입니다.
여섯 번째 콘텐츠는 진로농장입니다. 새로운 부각되는 미래농업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농사에 대한 실
무적인 이야기와 사례를 통해서 한국의 미래 농업 비즈니스 아이디어 발굴하고 해외농업 비즈니스 리뷰를
통한 글로벌 농업 인재를 양성하는 진로농장 프로그램입니다.
천둥소리 17
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9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일곱 번째 콘텐츠는 유기농 비즈니스입니다. 도시농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6차 산업으로써의 농업
을 재조명하고 농업창업에 도움을 드리는 교육 프로그램, 귀농과 귀촌을 고민하거나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농가에게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템을 찾을 수 있도록 가이드 합니다.
여덟 번째 콘텐츠는 텃밭 선생님 양성과정입니다. 초·중·고등학교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텃밭 교실 프로그램에서 선생님으로 활동하시거나 텃밭 교실 콘텐츠를 개발하는 기획 선생님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농업IT서비스도 시작했습니다. 텃밭 교실 교재의 전자교재화를 통해 살아있는 교육을 진행합니다. 멀티
미디어를 활용한 융복합 전자교재입니다. 온라인 다운로드 교재로서 언제 어디서나 다운받아서 활용이 가
능합니다. 나아가 스마트 시대에 부합된 통합적 차세대 교육 콘텐츠로써 스마트 교육을 진행합니다.
천둥소리 21
농사일지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통해 실시간 농사일지 작성을
하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사용자들이 자신의 텃밭 이야기를 공
유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앱입니다. 또한 텃밭 기본 가이드를
제공해 좀 더 재미있게 텃밭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농촌 농업의 문화는 나눔의 문화입니다. 예로부터 품앗이, 공동
체의 문화가 기본적으로 있는 곳이 농촌입니다. 지금 이런 문화가
도시농업을 통해 도시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도시는
개개인이 따로 떨어지고 커뮤니티, 공동체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
다. 텃밭 농사를 통해 공동체를 복원하고 서로 나누고 소통하며 어울리는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농업을 한다는 것은 곧 창조적인 일입니다. 자기가 길러 자기가 직접 먹어본 사람들은 우리 먹거리 농업
의 소중함을 배웁니다. 희망토는 대구에 많은 도시농부를 배출할 것입니다. 어린이농부부터 어른농부까지
모두가 농부가 되어 우리 농업의 소중한 가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 인터넷혁명, 스마트폰혁명을 지나 이제 다시 농업혁명이 일어날 때입니다. 한 번의 삽질, 호
미질이 모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가치를 만듭니다. 여러분들도 도시로부터의 농업혁명에 동참하십시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청년에게 길을 묻다
Ⅳ
청년봉Go는 지역의 청년들이 스스로 기부를 하고 그 기부금을 통해 연탄을 구입하여 직접
에너지빈곤층 가정에 배달한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나눔을 배우고, 이웃에게 관심을 가
짐으로써 지역사회에 따뜻한 나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봉사문화를 말한다.
1. 광열비(전기료, 연료, 난방비)를 기준으로 에너지 구입비용이 가구 소득의 10% 이상인 가구
2. 소득대비에 비해 광열비 비중이 높아서 의식주에 써야 할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따라서
에너지를 필요한 만큼 사용하기 힘든 계층
3. 저소득으로 인해 최소한의 에너지마저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가구
[네이버 국어사전] 에너지빈곤층
성 영 덕
메세지팩토리협동조합 이사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학생이 될 때까지, 봉사활동 시간을 위해서
주변의 복지시설을 잠깐 찾아가서 활동을 하거나
동사무소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등 다른 사람들
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봉사
활동을 했었는데,‘R.O.T.C로서 군인복무를 마치
면서 새로운 경험의 봉사활동을 도전해보자’라고
생각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참여할 수 있는 봉사활
동이 많이 없었는데, 취업정보 사이트를 확인하던
중“청년봉Go”라는 연탄 나눔 프로젝트를 보고
‘재미있겠다’는 생각과‘이력서의 스펙이 되겠
다’는 생각으로 신청했다. 신청하고 나서 처음 진
행하는 프로젝트라 바로 입금하라는 문자를 받고
는‘혹시 속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오리엔테이션 참여를 하면서 재미있는 형·동생
들을 만나며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 연탄
나눔 날에도 친구들 얼굴에 연탄재를 묻히며 장난
치며 낄낄대며 철없이 봉사활동을 하는 중에 생각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연탄을 받으시는 할아버지 한 분께서 갑자기 양손 무겁게 따뜻한 병 음료들을 가득사서
우리들에게 마시고 일하라고 주시는 것이었다. 연탄 1장의 가격이 약 500원 정도이고 그
3배의 가격 정도 하는 병 음료들을 할아버지께 미안해서 마실 수가 없어 거절하고 있었는데,
함께 봉사하는 간사님께서 어르신이 주시는 선물을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말씀에 함께 병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할아버지께서 고맙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하신 말씀이,
“난 세상에 나쁜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희를 바라보면서 아직도 좋은 사람이
많아서 살만한 거 같다….”였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내 속마음이 들킨 것보다 더 부끄러웠다. 단지 이력서의 스펙의 한 줄로
생각하고 신청했고 연탄을 받으시는 분들께는 기부금 2만원을 냈으니 상관이 없다는 생각
천둥소리 23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을 했었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
를 들으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활동 등을 진심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청년봉Go”1기 활동을 마치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다른 친구들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
로 자연스럽게 2기 기획단 활동을 참
여하게 되었고, 기획단이 함께 기획
한 봉사활동에 참여한 서포터즈들의
행복해하거나 즐거워하는 표정들을
보면서 또 다른 봉사활동의 재미를
느꼈다.
그 후로 이러한 봉사활동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도록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연탄
나눔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메세지팩
토리에 합류해서 2015년 올해까지
에너지빈곤층 가정을 위해 연탄 나
눔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청년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
고 있다. (청년봉Go 연탄나눔 프로젝트는 2011년 10월 시작하여 현재 2015년 1월까지 진
행 중에 있으며, 63명의 기획단, 494명의 서포터즈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직접 기
부한 금액(원)과 대구시 전역에서 시민들로부터 모금한 금액 2,826만원을 통해 연탄
51,068장을 구입하였다. 구입한 연탄은 대구 지역의 에너지빈곤층 가구에 직접 청년들이
전달했다.)
“청년봉Go”를 통해 아직 부족하지만“나눔”과“봉사”는 어렵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
는 것을 조금이라도 나눌 줄 아는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나만의 정의와 함께, 수혜자만을
위한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봉사활동을 참여하는 사람도 수혜자를 통해 배우고 재미
천둥소리 25
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메세지팩토리협동조합
의 청년봉Go와 같은 팀들이 보다 많아져서 전국적으로 연탄이 필요한 에너지 빈곤층(약
220만 가구 추정)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추운 겨울 대구 시내에 모금활동을 하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보면 무거운 지갑을 열어
안에 가지고 있던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따뜻한 인사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천둥문학
Ⅴ
봄 들
꽃 노을에
그리워 나선 길
만나서는
천 길 만 길
그리움만 쌓아 놓고
돌아와 또
버릇처럼 그리워합니다.
...
그냥
바람이려니
...
떨어지는 꽃잎만 바라봅니다.
•대구한의대학교 국제문화정보대학 학장
•대구한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김 종 철
Profile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27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천둥문학
Ⅴ
며칠 전 소파에 앉아 졸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자기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열어 보여주었다. 젊고 예쁜 아
가씨가화려한예복을입고환하게웃는모습이었다.‘예쁘네! ’나는그냥또고개를수그리고그냥자려고했다.
그러자 아내가 혼잣말을 한다.‘저러니 아빠를 재미없다고 하지! ’아니 그러면 스마트폰 사진의 주인공이
딸내미란 말이야? 벨파스트왕립음악대학 소리예술과 석사 졸업식에 참석하라고, 귀국해서 쉬고 있던 딸내미
를 쫓다시피 보내놓고, 졸업사진이 왔는데, 고작 한 말이‘예쁘네! ’였단 말이야? 졸음이 확 달아났다. 내가 딸
내미를 위해서 나누어 주고 사랑해 준 게 뭐가 있나 갑자기 외국에서 고생하고 있는 딸내미에게 민망한 생각
이 들었다.
‘나눔’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들어 어떤 늙은 부자가 금괴를 마루장 밑에 수십 개나 숨
겨 놓고 죽는 바람에 일어난 해프닝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가족끼리도 뭔가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 시대의
각박함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그 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반측하다가 불현듯이 뮤지컬 영화‘달구벌 에파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비는 어찌 되더라도 2년 후쯤에 완성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동안에
시나리오를 잘 써 두자는 각오가 생겼다. 이건 진짜로 우연이고 갑작스런 일이고 뜬금없는 일이었다.
마침 지난 2000년 뮤지컬 <달구벌 에파타>란 작품이 무대 공연 예술 지원작으로 선정되어 대구와 포항에서
공연을 했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래서 연구실의 컴퓨터를 뒤지기 시작하여 그 당시 적었던 기획 내용과 스텝
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내었다.
그런데 황성하 교수님이 느닷없이 전화를 해서 만나자는 것이었다.‘황교수님? 만날 일이 없는데? ’그래도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연구실에 오시라 했더니‘국채보상운동’에 관하여 큰 관심을 가
지고 계셨고, 거기에서 봉사를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더러 수필 한 편 써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국채보상운동에 관한 뮤지컬 영화를 꿈꿨는데, 새 길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14년 전의 간단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 당시 뮤지컬의 카피는‘국채보상운동시창자 서상돈 아오스딩, 그
나눔의정신! ’이었다.
김 일 영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그 당시 스텝들로는 총감독 박성진 신부, 시나리오 김일영, 작곡 홍세영 교수, 안무 구본숙 교수, 기획
조영석, 연출 이국휘 등이었고, 공연은 대구에서는 대구시민회관 대극장에서 2000년 10월 20일(토)과 21일
(일) 2회 공연을 하였고, 포항 효자아트홀에서는 10월 25일 오후 7시에 공연이 이루어졌다. 극단에서는 관객
수를 집계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관객이 객석에 꽉 찼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은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 시작에서부터 마칠 때까지 관여를 하면서 가진 생각은‘나는 무엇을 더 나눌 있을까? 지금 참으
로 행복하다’는 생각만을 했었다.
그 당시 공연 팜플릿에 실려 있던 이문희 대주교의 축사가 있어서 이 자리에 옮겨본다. 물론 대주교님에게
여기에 옛날의 축사를 싣겠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그러이 이해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나눔의 실천은 사회 구원의 출발점
이문희 바울로(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어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오늘날에도 지구상의 곳곳에서는 헐벗고 굶주리
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은 인류 전체에게 자원이 부
족하거나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 자원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적절하게 배분되지 않
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을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해서는 가진 자들이 없는 자
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는 정신이 근본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런 때에 서상돈 아오스딩의 정신을 현대인에게 뮤지컬로 표현하여 보여주는 것은 중요한 일
입니다. 국권이 상실되어 가는 시기에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눌 수 있었던 서 아오스딩의 정신
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됩니다. 학교를 세우고자 했던 교육운동,
나라에서 진 빚을 백성의 힘으로 갚아보자고 했던 국채보상운동, 자신의 마지막 힘을 종교에 쏟
아서 쓰러져 가는 백성의 정신을 건사하고자 했던 일 등은 모두가 서 아오스딩이 가졌던 나눔의
정신에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들은 서 아오스딩이 살았던 때만큼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신적
으로는 더욱 피폐해져가고 있음을 여러 현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이래서는 안 된
다고 야단들입니다. 그러한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들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지만 별반 효
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나눔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뮤지컬 <달구벌 에파타>를 통하여 아오스딩의 정신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라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욕심을 버리게 하여 앞으로는 더 나은 공동체가 이루
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진 것을 고루 나누어 진정
으로 평화스런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나눔의 실천은 어려운 사회를 구원하는 출발점입니다.
천둥소리 29
마침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포스터도 그림으로 올려 본다.
아내의 스마트폰으로 배달된 딸내미의 사진 한 장이 나의 생각이 뮤지컬‘달구벌 에파타’를 디딤돌로 뮤지
컬 영화‘달구벌 에파타’로 나아가게 했다. 나는 이제 뮤지컬 영화‘달구벌 에파타’를 위하여, 아니 이 사회를
위하여 무엇을 나누어야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내가 존재하는 이
공동체를 위하여 무엇을 나눌 것인가 조금씩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 고민의 강도는 추위와 상관없다.
•1992년 등단
•창작희극집‘날개달기’, 창작오페라집‘목화꽃 내사랑’, 시나리오집‘이야기 택시’등
Profile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에 이런 말이 있다. 군자(君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첫째는
부모님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탈 없이 지내는 것이요, 둘째는 하늘을 우러러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고, 머리 숙여 사람을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라 하였다. 천하를 다 지배하는 제왕도 이러한 즐거움은 갖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신세대들은 케케묵은 말이라 할지 모르지만 깊이 생각해 볼만한 말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부
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에 첫째의 윤리(괲理) 덕목으로 삼았다. 그런데 요즘 뉴
스에 나오는 끔찍한 소식이 충격적이다. 부모의 재산을 뺏기 위해 어머니를 살해하고, 또 형제도 죽
인 이런 막된 자식이 있다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회원광장
Ⅵ
이 재 화
대구광역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
30 회원광장
어머니가 10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이 탈이었고, 형은 먼저 태어 난 것이 재앙이었다. 어머니
가 자연사(自然死) 했을 경우 재산 상속이 형에게 많은 몫이 돌아가지 않고 혼자 다 차지하려는 욕
심이 가족 살해라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뉴스는 전한다. 또 범인이 그의 아내와 공범(共犯)인가를 조
사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자살하고 말았다. 글자 그대로 한 가장이 폭망(爆亡)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 가정이 이렇게 씻을 수 없는 참사를 당하는 것은 욕심이 빚어낸 비극이다. 존속살해죄는 매우
엄중하다. 최하가 7년형, 무기형, 또는 사형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보통 살인죄보다 이렇
게 형량이 엄중한 것에 대해 다 같은 살인죄인데 존속살해만 가혹한 처벌을 한 것은 공평하지 못
하니 똑같이 처벌해야 한다는 헌법소원을 낸 사람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
서 기각(棄却)되었다 한다. 존속살해범에게는 상속권이 상실된다는 점도 범인들은 알아야 한다.
10억원이란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은 서민들에게 꿈속의 이야기로 생각된다. 이 10억원의 자산을
가족과 이웃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도는 왜 생각지 못했을까, 아들을 잘 살펴보지 못한 어
머니의 불찰도 있을 것 같다. 또 자신의 보험금을 차지하려는 남편이 임신 7개월의 아내를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기다릴 줄 모르고 만족을 모르는 젊은이, 부모 형제
와 행복하게 사는 방도를 모르는 청소년들을 가정에서부터 사랑으로 지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의 모자 살해범도 가족 간에 사랑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중학교 교육 과정에 행
복교육 시간이 생겨 행복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앞의 사례를 보면 부자(富者)와 행복의 상관관계는 별로 크지 않은 것 같다. 최소한 부모에게 효
도는 못할망정 부모를 살해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몇 년 전에 90세를 넘은 노인을 지게에 태우고 금강산 관광을 다녀 온 충남 서산에 사는 이군익
씨의 사진이 한 언론에 보도되면서 인터넷에서 유명 인사가 되
었다. 이 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둔 평범한
장년으로, 시간이 나면 노령의 아버지를 모시고 여
러 곳을 구경시켜 드리는 착한 효자로 알려졌다.
일 년 전에 어머니를 먼저 여윈 아버지가 외로워하
실까 싶어 산으로 들로 아버지를 모시고 다녔다. 7남
매를 모두 잘 기르고 막내인 본인까지 대학 공부를
시키느라 넉넉지 못한 소농(小農)의 집에서 평생 허
리 한 번 펴 보지 못하고 독립기념관을 구경하고 오
는데 금강산 이야기를 하셨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
이“금강산에는 일만이천 봉의 산봉우리가 각기 다
른 모양을 하여 아름답다고 하는데...”이 말을 들
은 이 씨는 아버지가 더 늙으시기 전에 금강산을 구경
천둥소리 31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형제들 회의를 하여 혼자는 어려우
니 형과 누나가 동행하기로 결정하고, 의자형 지게를 설계하고 여러 공장을 방문하여 지게를 제작
하여 아버지를 태우고 금강산 구경을 하고 왔다 한다. 혼자 오르기도 힘든 비탈길을 아버지를 지고
걸어 올라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는가. 그러나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에 힘든 것도 잊
고 즐겁게 금강산 구경을 하고 왔다.
100년 전에는 흉년이 들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그 시절에는 부모가 영양실조로 몸이
쇠약해 탈진되었을 때 자기의 살을 떼어 내 불에 구워 먹여서 살리는 일이 최선이라 생각한 사례도
있었다. 백범 김구 선생도 자기의 허벅지 살을 떼어 내 그의 부친에게 구워 드렸는데, 두 번째는 하
도 아파서 못했다고 자서전에 기록되어 있다. 춘추전국시대 때 전쟁터에서 며칠을 굶어 아사지경
에 이르렀을 때 충성스러운 신하가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 임금을 살렸다는 할고봉군(割股奉
君)의 고사(古事)도 있다.
최근에는 107세의 어머니를 업고 다니는 72세 아들의 갸륵한 사연이 전파를 타고 많은 사람을 감
동시키고 있다. 충남 보령의 한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는 72세로 자신을 돌보기도 벅찬 나이인데,
홀로 계시는 107세의 거동조차 불편한 어머니를 업고 다니는 효자 소식이다. 더구나 107세의 어머
니는 5년 전부터 치매까지 앓고 있어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대소변 뒤처리를 다한다 하니 놀라
운 일이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따뜻한 밥을 지어 어머니께 먼저 드리고 자신은 뒤늦게 밥을 챙겨 먹는
효자로, 자신이 먹는 밥상은 초라하지만 어머니께 드리는 밥상은 언제나 고기 반찬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아들도 보호받아야 할 노인인데 이 노인의 삶은 오로지 어머니를 위한 삶이었다. 그런 할아
버지에게서는 슬픔이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효자 노인이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사
람이 감동하였으며, 할아버지를 도울 수 있는 방도를 찾자는 여론이 조성되어 할아버지 돕기 카페
까지 생겼다는 소식이다.
이런 소식을 보면 아직도 한국 사회가 건전한 면이 많아 희망적이란 생각이 든다. 동방예의지국
이란 대한민국에서 존속살해 사건이 의외로 서양보다 더 많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지나친 기대
치와 간섭이 오히려 가족 간의 갈등을 만들어 놓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화목한
가정은 천국이 되고, 불화와 갈등의 골이 깊은 가정은 지옥이 된다는 점 명심할 일이다.
32 회원광장
한국이 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베
이비붐 세대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자식 키우고 부모 모시느라 정작 자신
의 노후 준비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베이
비붐 세대의 70% 이상이 부모가 아직 생존해 있
고 80%가 성인 자녀와 함께 살고 있으며, 세 명
중 한 명이 신체질환을 가지고 있다. 부모부양과
자녀교육 그리고 노후준비 소홀의 3중고(重苦)
에 시달리고 있다.
1955년부터 63년생까지의 인구집단을 베이비
붐 세대라고 부른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땅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의 은퇴가 한창
진행 중이다. 적어도 10년이면 은퇴가 마무리될
것이다. 한국이 60년간 압축 성장을 해왔다면,
이들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지나 산업화, 민주
화,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압축경
험을 했다. 2014년 대한민국은 내수 부진, 중국
의 부상과 일본의 재등장 등으로 인해 새로운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한 시대를 주도해온 베이
비붐 세대의 퇴장이,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박정
희 모델의 퇴장을 의미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베
이비붐 세대 중간에 해당하는 가상의 1960년생
김철수씨를 추적해 대한민국의 변화상을 조명
해보자.
1960년생 김철수는 열악한 농촌에서 태어나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가 함께 사는 대가족
틈에서 자랐다. 친구들과는 자치기, 구슬치기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7년 초등학교 입
학한 그의 반 학생수가 64.8명으로 콩나물 교실
이었고, 담임선생님은 대부분 남자 선생님이었
다. 1969년 중학교 무시험 입학 제도가 도입되
었고, 1974년 고교평준화로 인하여‘뺑뺑이’라
는 말이 생겨났다. 그는 소까지 팔아 등록금을
마련해주신 교육열 높은 부모님 덕분에 친구들
의 부러움을 받으며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1979년 남학생의 29.2%, 여학생의 20.7%가
대학에 진학했다. 현재의 80%에 비하면 그야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입학하던 1979년부터
10·26사태, 12·12사태, 5·18 광주민주화운
동 등 현대사를 거리와 캠퍼스에서 겪었고, 졸
업 무렵이던 1987년 6·10항쟁도 직접 겪었다.
번민하고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한편, 대학시절
천둥소리 33
베이비붐 세대의
어제와 오늘
이 제 상
前 영남일보 기자 / 現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소장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회원광장
Ⅵ
34 회원광장
잔디밭에 앉아 당시 유행하던 대학가요제 대상
곡인‘나 어떡해’와‘젊은 연인들’등을 부르며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셨다. 친구의 주선으로 미
팅을 하게 된 그는 빵집에서 만나 빵을 먹고 다
방에서 커피를 마신 후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
다. 1982년에는 최초의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
려고 야구장을 찾았다.
1980년대 후반 김철수씨에겐, 건설업 도소매
업 쪽으로 취직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제조업체
로 가는 친구들도 많았다. 향후 수출입도 증가
할 것 같다며 무역회사를 추천하는 선배도 있어
서 진로를 두고 고민했지만, 취직은 비교적 쉬
웠다. 그러나 취업한 여자 선배들은 출산·육아
로 인해 고민하다가 대부분 직장을 그만두었다.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1990년 만 서른이 되자, 집안에서는 결혼하라
고 성화였다. 후배들이 노총각·노처녀라고 불
렀다. 당시 남성의 평균 초혼연령이 27.8세. 여
성이 24.8세였다. 결혼한 김 씨는 딸과 아들, 2
명의 자녀를 두었다. 자신이 초등학교 다닐 때
는 주위에 4남매, 5남매인 친구들이 많았는데,
2명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1명만 낳은 친구도
꽤 있었다. 요즘 아파트에 살지만, 신혼집은 단
독주택에서 시작했다. 아파트가 낯설었다.
75.3%가 단독주택이고 아파트는 14.8%에 불과
했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이 주택200만호 건
설계획을 발표했는데,“그 때 어디 어디에 아파
트 한 채 마련해 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명절 때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 고향으로 내려갔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김철수씨도
회사를 옮기거나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
다. 서울대 노화고령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자신의 삶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IMF 외환위기를 꼽았다.
2000년대 들어 소득수준이 가장 높아졌지만,
소비지출이 늘었고 그중 교육비가 가장 많았다.
아이들 교육에 엄청 투자했다. 40대인 그는 무
엇보다 일이 우선이었지만, 주5일제의 확대로
여가활동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데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등산도 하고 술을 줄이는
등 건강에 관심이 부쩍 쓰였다. 뇌졸중으로 쓰
러진 동료나 암으로 치료받는 친구 소식이 들려
온다.
2010년대 들어 김철수씨는 앞으로 30년 이상
을 더 살아야 하는데, 직장에 다닐 수 있는 시간
은 올해 아니면 내년이 끝이다. 벌써 친구 반 이
상이 퇴직했다. 김철수씨의 재산 중 부동산 비중
이 80%이고, 그중 집이 절반 이상이다. 노후준
비라곤 국민연금 외에 별로 해놓은 게 없다.
앞으로 퇴직하면 더 일할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아직 살아계시는 부모님에게 용돈도 드려
야하고, 대학 졸업 후 변변치 못한 취직자리 못
구하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딸,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몇 번씩이나 떨어진 아들 녀석도 걱정이
다.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어떻
게 해야할 지 고민이다. 한국 경제도 김철수씨
자신처럼걱정이늘어가는것같아마음이무겁다.
(통계청의 2012년‘베이버부머 및 에코세대의 인구·사회적 특성분석-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중심으로-’, 2010년
‘통계로 본 베이비붐 세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과‘사회조사를 통해본 베이비붐세대의 특징’, 서울대학교 노화고
령사회연구소의‘베이비부머 연구 특집’등을 참고해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현대 국가는 그 내용이나 정도에 차이가 있으나 모두 복지국가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경제발전과 보건의료의 발달로 인한 평균 수명의 연장, 자녀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보육 및 교육문제 등으로 출산율이 급격히 저하되어 인구구조의 급속한 고령화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변화에 따른 새로운 복지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장기
요양보장제도입니다. 즉, 노화 등에 따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 대하여 신체활동이나 일상가
사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주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회원광장
Ⅵ
천둥소리 35
김 영 애
안심성봉요양원 팀장
노인장기요양보험이란?
특히, 고령화의 진전과 함께 핵가족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증가하면서 종래 가족의 부담으로
인식되던 장기요양문제가 이제 더 이상 개인이나 가계의 부담으로 머물지 않고 이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책무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 환경의 변화와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이미 선진 각국에서는 사회보험방식 및 조
세방식으로 그 재원을 마련하여 장기요양보장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하여 노후의 건강증진 및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도록 함을 목적으로 시행하는 사회보험제도
입니다.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건강보험제도와는 별개의 제도로 도입·운영되고 있는 한편
으로, 제도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보험자 및 관리운영기관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일
원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고지원이 가미된 사회보험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수급대상자에는 65세
미만의 장애인이 제외되어 노인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건강보험제도와 별도 운영
장기요양보험제도를 건강보험제도와 분리 운영하는 경우 노인 등에 대한 요양필요성 부각이 비
교적 용이하여 새로운 제도 도입에 용이하며, 건강보험 재정에 구속되지 않아 장기요양급여 운영,
장기요양제도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국민건강보험법」과는 별도로「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제
정하였습니다.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구 분
국 가
한국(+조세), 독일, 헝가리, 일본(+조세),
스위스(+조세), 미국(Medicare),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캐나다, 아일
랜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폴란드, 스페인,
스웨덴, 영국, 미국(Medicaid)
사회보험방식 조세방식
▨ 사회보험방식을 기본으로 한 국고지원 부가방식
우리나라 장기요양보장제도는 사회보험방식을 근간으로 일부는 공적부조방식을 가미한 형태로
설계·운영되고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건강보험가입자의 장기요양보험료 [건강보험료액 x
6.55%(2011년도 보험료 기준)] +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부담(장기요양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
+ 공적부조의 적용을 받는 의료급여수급권자의 장기요양급여비용)
▨ 보험자 및 관리운영기관의 일원화
우리나라 장기요양보험제도는 이를 관리·운영할 기관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국민건강보험
법」에 의하여 설립된 기존의 국민건강보험공단을 관리·운영기관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도입과 정착을 원활하게하기 위하여 건강보험과 독립적인 형태로 설계하되, 그 운영에
있어서는 효율성 제고를 위하여 별도로 관리운영기관을 설치하지 않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를
함께 수행하도록 한 것입니다.
▨ 노인중심의 급여
우리나라 장기요양보험제도는 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65세 미만의 자로서 치매·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자 중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자를
그 수급대상자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65세 미만자의 노인성 질병이 없는 일반적인 장애인은
제외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장기요양보험의 가입자가 됩니다(법 제7조 제3항). 이는 건강보험의 적용에
서와 같이 법률상 가입이 강제되어 있습니다. 또한 공공부조의 영역에 속하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경우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의 가입자에서는 제외되지만,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으로
장기요양보험의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법 제12조).
장기요양보험 가입자 및 그 피부양자나 의료급여수급권자 누구나 장기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절차에 따라 장기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는 권리(수급권)가 부여되는데 이
를 장기요양인정이라고 합니다.
장기요양인정절차는 먼저 공단에 장기요양인정신청으로부터 출발하여 공단직원의 방문에 의한
인정조사와 등급판정위원회의 등급판정 그리고 장기요양인정서와 표준장기요양이용계획서의
작성 및 송부로 이루어집니다.
장기요양인정 신청자격 : 장기요양보험 가입자 및 그 피부양자 또는 의료급여수급권자 중 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65세 미만자로서 치매, 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자
천둥소리 37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소요되는 재원은 장기요양보험료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부담 그리고 장
기요양급여 이용자가 부담하는 본인 일부부담금으로 운영됩니다.
* 장기요양보험 가입자는 건강보험 가입자와 동일하며, 장기요양보험료는 건강보험료액에 장기
요양보험료율을 곱하여(2011년도 보험료율 : 6.55%) 부과 징수합니다. 공단은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통합 징수하되 이를 구분하여 고지합니다.
* 장기요양보험 가입가가 지역가입자인 경우 100% 본인이 부담하지만, 직장가입자인 경우 그
사용자와 국가·지방자치 단체·사립학교가 아래와 같이 부담합니다.
- 근로자인 직장가입자와 그 사용자 : 각각 50% 분담
- 공무원·교직원인 직장가입자와 소속 국가·지방자치단체·사립학교 :
각각 50%분담(사립학교의 경우 당해 학교가 30%, 국가가 20% 분담)
* 국가의 부담(법 제58조)
- 국고 지원금 : 국가는 매년 예산의 범위 안에서 당해 연도 장기요양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00분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공단에 지원합니다.
-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부담 :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의료급여수급권자에 대한 장기요양급
여비용, 의사소견서 발급비용, 방문간호지시서 발급비용 중 공
단이 부담해야 할 비용 및 관리운영비의 전액을 부담합니다.
* 본인일부부담금(법 제40조)
* 수급대상자가 실제 요양서비스를 받은 시점에서 장기요양기관에 본인일부부담금을 납부합니다.
- 재가급여 : 당해 장기요양급여비용의 100분의 15
- 시설급여 : 당해 장기요양급여비용의 100분의 20
-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는 전액 면제
- 의료급여수급권자, 소득. 재산 등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일정금액 이하인 자
는 본인일부부담금을 50% 경감
기존 건강보험제도 및 노인복지서비스 체계와의 차이점은 국민건강보험은 질환의 진단, 입원
및 외래 치료, 재활 등을 목적으로 주로 병·의원 및 약국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급여대상으로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하는 반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이나 노인성질병 등으로 인하여 혼자의 힘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대상자에게 요양시설이나 재가기관을 통해 신체활동 또는 가사지원 등의 서비스
를 제공하는 제도입니다.
기존「노인복지법」상의 노인요양은 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특정 저소득층을 대상으
로 국가나 지방자치 단체가 공적부조방식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위주로 운영되어 왔으나,「노인장
기요양보험법」상 서비스는 소득에 관계없이 심신기능 상태를 고려한 요양필요도에 따라 장기요
양 인정을 받은 자에게 서비스가 제공되는 보다 보편적인 체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구 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와 기존 노인복지서비스체계 비교표>
관련법
서비스 대상
서비스 선택
제 원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보편적 제도
·장기요양이 필요한 65세 이상 노인 및
치매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65세 미만자
·수급자 및 부양가족의 선택에 의한 서비스
제공
·기요양보험료+국가 및지방자치단체 부담+
이용자 본인부담
·노인복지법
·특정대상 한정(선택적)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포함한 저소
득층 위주
·지방자치단체장의 판단(공급자 위주)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부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기존 노인복지서비스 체계
천둥소리 39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Ⅶ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상임대표 신동학)와 이
상화기념사업회(회장 박동준), 대구가톨릭대 안중근 연
구소(본회 이사, 소장 이경규)는 2014년 8월 27일 국채
보상운동기념관에서 독립지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살
리기 위해 상호 협력을 약속하는 협약식을 체결했다.
이번 상호협약 체결을 통해 앞으로 세 단체는 공동사업
을 다양하게 펼칠 계획이다. 대구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대구의 역사, 문학, 철학, 예술, 종교,
스포츠를 망라한 전 분야에 걸쳐 명망 있는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무료 시민학교인‘민립의숙’을 공동운영 했
으며, 매년 8월 15일에는 유네스코에 세계무형문화유산
으로 등재된 아리랑의 대동정신을 통해 민족혼을 불러
일으키고자한 대구아리랑축제를 (사)영남민요아리랑보
존회와 공동 주최하기로 했다. 14년 11월 5일 민립의숙
개강식에는 정태옥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 이동희
대구시의회 의장, 윤순영 중구청장, 오진영 대구지방보
훈청장이 축사를 하고 80여 명의 시민들이 강의에 참석
했으며, 민립의숙 강의는 14년 12월 24일까지 8회에 걸
쳐 진행되었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41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Ⅶ
2014년 11월 5일 오후 5시 국채보상운동기념
관에서 전택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前 사무총
장, 최용근 새마을운동중앙회 울산시지회 사무
처장, 김종건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원을 모
시고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와 대구시 관계자
20여 명이 참석하여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의 유
네스코 등재 가능성과 절차에 대해 논의하였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2014년 10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진행된 인문주간
「근대걟 열린 인문학-인문학, 세상의 벽을 허물다」행사에
협력기관으로 참여하여 27일 개막식, 2일 폐막식이 국채
보상운동기념관에서 열렸다. 인문주간이 끝난 뒤에도‘시
민과 함께하는 근대 대구 인문여행’인문강좌가 매월 마지
막 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2015년 8월 26일
까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진행된다. 자세한 내용은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inmuncitydg)에
서 확인할 수 있다.
11월 8일 기념사업회
회원 및 시민 100여 명과
고령으로 시민문화탐방을
떠나 고령의 주요명소를
방문하였다. 대가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대가야박
물관, 국내 최초로 순장무
덤을 복원한 왕릉전시관,
가야시대 최대의 고분군
인 지산동고분군, 악성우
륵에 대하여 전시된 우륵박물관, 역사 깊은 전통마을 개실마을, 숲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산
림녹화기념숲을 둘러보며 고령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천둥소리 43
2014년 11월 7일 만화가 이현세 작가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관람하고 국채보상운동정신을
표현한 만화 방명록을 작성했다. 이현세 작가는 1978년 만화 <저 강은 알고 있다>로 데뷔했으며
대표작으로는 <공포의 외인구단><아마게돈> 등이 있다.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사)대구사진비엔날레조직위
원회, (사)대한어머니회대구연
합회, (재)대구여성가족재단,
50사단 501여단, 경북고등학교
독도328, 국제시민교육원, 대구
중구 시니어클럽, 대구경북소
비자연맹, 대구경북연구원, 대
구광역시 여성청소년가족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청소
년성문화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메세지팩토리,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양천
구립 신월청소년문화센터, 인권
통합교육 직무연수, 청구고등
학교, 청년연합, 청춘 빛, 통합
건강증진사업, 패트롤맘 대구
지부
(사)대한어머니회대구연합회, (사)어린이도서연구회경
북지부, 50사단 501여단, 감천초등학교, 경화여자고등
학교, 계명대학교, 계성유치원, 공무원교육원, 구미석적
고등학교, 남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 다문화가족지원
센터협회, 대구 동방대학 40기, 대구가창초등학교, 대구
경북소비자연맹, 대구경북연구원, 대구공업고등학교,
대구관천초등학교,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대서초
등학교, 대구동도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
터, 대구수창초등학교, 대구시청 공무원, 대구일중학교
지역문학가탐구반 동아리, 대구 중구 시니어클럽, 대구
청소년성문화센터, 대구태전초등학교, 대구팔달초등학
교, 대전광역시 청소년활동진흥센터, 동본리중학교, 동
천4, 매일신문사, 매천고등학교, 매천중학교, 반디, 시
설관리공단, 영남공업고등학교, 운암중학교, 울산청소
년활동진흥센터, 월서중학교, 지역아동센터대구지원단
(초록우산), 진천초등학교, 참좋은유치원, 창원대학교
사학과, 청구고등학교, 청춘 빛, 하늘숲유치원
천둥소리 45
(사)어린이도서연구회 대구지회, 10월항쟁유족회, 강북고등학교, 강북초등학교, 거창 샛별초등
학교,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대학교 한국사, 경북여자상업고등학교, 경산금락초등학교 4학년,
구남보건고등학교, 능인고등학교, 달성고등학교, 달성군청소년센터, 대구 봉무초등학교, 대구 중
구 시니어클럽, 대구경북소비자연맹, 대구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재생과, 대구광역시 토지정보과,
대구내당초등학교, 대구동부고등학교, 대구문성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이
버대학교 휴먼케어대학원 아트스토리 미술심리상담연구소, 대구사회연구소, 대구여성가족재단, 대
구여성의전화, 대구옥산초등학교, 대구외국어고등학교, 대구율하초등학교 4학년, 대구화랑협회,
대서중학교, 대전한남교육사랑,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운영과, 동본리중학교, 메시지팩토리, 반디,
비둘기어린이집, 시지중학교, 신기중학교, 신녕초등학교, 양산여자고등학교, 어린이 청소년 도서
관 더불어 숲, 역사를 꿈꾸다, 역사를 직시하는 한일시민교류회, 오성중학교, 인제대학교 시각디자
인학부, 재단법인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중구청, 즐거운 유치원, 지묘초등학교 4학년, 청구고등학
교 청구신문동아리, 청춘 빛, 칠곡 강북초등학교, 판뉴스 대구경북협동조합, 한남교육사랑, 현풍중
학교, 호산고등학교
※ 단체 관람 문의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053)745-6753
(사)대구여성단체협의회, (사)대구여성회, (재)아름다운가게 대구경북본부, 501여단, 경동초등학교,
경북 문경 호계초등학교,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골목투어 팸투어, 공군 K2부대, 공무원교육원,
남부초등학교, 노전초등학교, 대구 남명초등학교, 대구 동도중학교, 대구 성동초등학교, 대구광역
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복지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산초등학교 책쓰기 동아
리,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학생문화선도
기업 반디, 덕산중학교, 덕화중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반여도서관, 부산 동삼중학교, 사
대부속고등학교, 성광중학교, 시민고(나라사랑), 신기중학교, 신성초등학교, 아트스토리 미술심리
상담연구소, 울산 파랑지역아동센터, 이상화기념사업회, 장애인주간보호센터, 전국청년성서모임,
제2작전 사령부, ㈜참인재교육, 초록나라유치원, 충남 신나라역사학원, 칠곡중학교 3학년, 커뮤니
티와 경제, 학산중학교, 한국자영업성장포럼, YMCA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해가 마무리 되면서도 겨울호가 늦어지게 되어 편집부로서는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
니다. 독자님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아울러 천둥소리를 애독해주시고 지도편달해주신 애독자
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호에는 청년들의 힘찬 희망의 글을 읽을 수 있어 반가웠고,
전 회장님의 주옥같은 일본 강연원고를 수록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위원장 엄창옥
이제까지 천둥소리를 이끌어온 원동력은 편찬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의 천둥소리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뜨거운 열정이었습니다. 2015년에도 그 고뇌와 열정을 오롯이 담아낸 천둥소리가
될 수 있도록 편집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편집위원 남정원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청양의 해가 왔다고 모두가 푸르고 바르고 살자고 외칩니다.
천둥소리도 그대로 그 자리에서 그 역할을 나누기를 바래봅니다.
나눔과 책임, 그 정신을 지역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아울러 여러 나라를 보담아 볼 수 있었
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위원 우웅택
천둥소리 33호 최종
천둥소리 33호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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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동아시아 시민 평화 헌장을 만들자 북후정(겗 亭)은 옛 서문시장 입구에 있었다 사람이 건강하고 자연이 건강한 지속가능한 사회 그리움/‘나눔’의 정신이 필요함을 새롭게 다지며 이재화/이제상/김영애
  • 2. 회비안내>> 회비를 미납하신 회원께서는 동봉한 지로용지나 은행계좌로 조속히 납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구은행 031-05-003912-4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김 영 호 입회안내>> 국채보상기념사업회원을 모십니다. 애국애족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에 뜻을 함께 하고자 하시는 분은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회원에게는 각종 학술행사 및 연구회에 참여하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각종 동호회에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회비는 연 1만원 이상입니다. 가입을 희망하시는 분은 전화 053)745 - 6753으로 문의하시거나 홈페이지(www.gukchae.com)를 방문해서 회원가입을 해주시면 확인 후 바로 답변을 드립니다.
  • 3. 발 행 인 신동학 편집고문 박용규, 서상호 편집위원 엄창옥(위원장), 권오현, 남정원, 우웅택, 이용수, 전환길, 최경집, 최윤진, 황성하 발 행 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동인동 2가 42번지) 전화.053-745-6753 팩스.053-746-6753 www.gukchae.com E-mail.master@gukchae.com 기획제작 밝은사람들 053-652-5700 <꿈인가 생시인가, 하늘이 준 것인가 때가 온 것인가, 구름 안개 걷히는 것인가… 대한 광무 11년(1907년) 새봄의 제일 좋은 소식은 하늘에서 온 복음을 소리쳐 전하는 것이로다.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이러한 좋은 소식을 우리는 급히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이오… 이 소식은 다름이 아니라 대구광문사 부회장 서상돈씨 등이 단연동맹한 호소식이로다.> 1907. 2. 25 자 황성신문 논설에서 따옴 국채보상운동 동아시아 시민 평화 헌장을 만들자 북후정 북후정(겗 亭)은 옛 서문시장 입구에 있었다 나눔과 책임 사람이 건강하고 자연이 건강한 지속가능한 사회 청년에게 길을 묻다 청.년들이여 년(연).탄 나눔 봉.사활동하러 Go. Go~ 천둥문학 그리움 ‘나눔’의 정신이 필요함을 새롭게 다지며 회원광장 효도하는 자식과 불효하는 자식 베이비붐 세대의 어제와 오늘 노인장기요양보험이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04 11 15 22 26 30 40 김영호 임경희 서종효 성영덕 김종철 김일영 이재화 이제상 김영애 2014. 겨울 제33호 나눔과 책임의 표지사진 “국채보상운동은 비록 일제의 탄압 때문에 좌절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경제침탈에 맞서 최초로 전개된 범국미적 경제주권회복운동 이며 그 중심에 대구가 있었다는 사실에 이론 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북후정은 이 운동이 구체적으로 실행된 장소, 신분과 빈부를 초월 한 구국의 민의(民意)가 최초로 결집된 장소 로서 그 역사적 의의가 자못 크다.” (본문 14페이지에서)
  • 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1 헌법 9조와 집단적 자위권은 단순히 일본 국내의 법적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가 진 동아시아적 문제이다. 성립의 배경 및 과정도 아시아 태평양전쟁 귀결의 일환이었으며 그 파급 및 영 향 또한 아시아지역사적 문맥에서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온 제가 국제적 측면에서 말씀드리게 되었다. 나는 10년 전‘9조의 회’창립기념 강연회에 우연히 청중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오꾸라 호텔 강당에 약 1000여 명 이상의 시민 지식인들이 모여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가또 선생, 오에 겐자부 로 선생 등 고명하신 연사들의 강연이 있었는데 그 진지하고 뜨거운 분위기에 감동하여 일본의 평화헌법 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지속되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이 강연회는 틀림없이 신문·TV에 아마 톱기사로 나오리라고 예상했다. 큰 기대를 갖고 이튿날 아침 신문을 펼쳐보았다. 1면, 2면, 3면, … 기사가 없었다. 겨우 한 신문의 제일 뒤 사회면에 작게 나와 있었다. 쇼크였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시민의 소리와 신문의 기사와 정부의 반응 사이의 커다란 갭을 안고 있다. Voting Democracy는 투표를 통하여 주권을 위임받지만 소선거구제의 금권선거, 연고주의 그리고 야당이 분열 동아시아 시민 평화 헌장을 만들자 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Ⅰ 김 영 호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
  • 5. 되면 야당지지 총계는 많아도 여당이 당선되는 사태 등으로 과두(寡頭)정권이 성립되어 시민의 의사를 대 변하지 못하는 대의(representation)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투표에서 당선된 대의자는 누구의 영향을 받는가? 그 배후에 때로는 빅 브라더가 등장한다. 여기에서 대의자는 시민의 의사보다 빅 브라더 의 의사를 대변하는 경향이 강하다. 문제는 매스컴조차 기업미디어 성격을 갖게 되고 시민의 소리보다 과 두정권의 의사를 대변하게 된다. 시민은 이 기업미디어에 서서히 갇혀 영향을 받고 조종당하는 상황에 빠 지게 된다. 민주주의는 도처에서 이러한 함정에 빠지게 된다. 나는 일본이 이러한 함정에 빠졌다고 단정 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함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는 데도 동의하지 않는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Voting Democracy를 넘어 Voicing Democracy를 추구하고 있다. 아울러 기업미 디어를 넘어 시민미디어가 추구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은 시민사회가 정권을 교체한 기억이 없다. 이 기억이 없는 경우, 정부가 시민의 소리를 듣는 자세가 다르고 시민이 정부를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또 한 양당제로 정권을 번갈아 지속적으로 교대한 경험이 없어 주권자의 입장에서 대안이 없게 되고 시민의 소리와 정부의 정책 사이의 갭은 더욱 크게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일본에서 평화헌법을 지지하는 여론 이 높고 그 결과 집단적자위권의 용인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데도 정부에서 평화헌법과 모순되는 집단 적 자위권을 각의 결정으로 용인하여 상위의 평화헌법을 무력화, 형해화시키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집단적 자위권은 의기양양하게 용인되었지만 헌법 9조는 구름 속에 가려졌고 민주주의는 눈비를 맞게 되었다. 2 우선 평화헌법 9조를 동아시아적 문맥에서 살펴보고 싶다. 평화헌법은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에 대 한 연합국측의 요구이면서 일본 스스로의 반성의 산물이라는 성격과 아울러 전후 일본과 동아시아와의 새로운 관계수립과 교류 협력을 위한 국제적 약속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전후 서유럽이 독일의 철저한 반성과 경무장화 및 나토(NATO) 체제로 평화와 협력이 가능했듯이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반성과 평화 헌법 그리고 미국 주도의 안보질서로 평화와 협력이 가능했다. 전후 일본의 시민사회는 평화헌법체제를 굳건히 지켜왔고 그 결과로 동아시아와의 교류협력이 심화·확대되었다. 구미(歐美)에서는 대체로 시민혁명 후 시민사회기반으로 산업화가 전개된 경향이 강했으나 동아시아는 대체로 국가주의적 기조로 고도 산업화가 전개되면서 중산층이 형성되고 중산층을 중심으로 점차 시민사 회가 발전하고 있으며, 시민사회가 성숙하면서 국가주의 내지 민족주의를 졸업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 다. 오늘날 동아시아는 일본에 이어 한국·대만·태국·인도네시아·중국 등에서 차례로 고도산업화가 전개되고 그 결과 동아시아에는 약 5억의 중산층이 형성되었고 이들 중산층을 중심으로 광범하게 동아시 아 시민사회가 전망되고 있다. 천둥소리 5
  • 6. 중국에서도 천안문 세대, 80년도 이후 세대, 인터넷 및 SNS 세대 등을 중심으로 신공민운동, 200만개 가 넘는 NGO 운동, 홍콩 시민 15만 명의 천안문 시위지지 데모와 최초의 우산혁명 등의 지속적인 민주화 운동 등 정치권력 차원을 제외한 시장경제영역의 시민사회화가 광범하게 전개되어 점차 복수정당제의 도입이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동아시아는 한자문화권 혹은 유교문화·불교문화권이라는 전통적인 공통성을 넘어 무역과 투자의 역 내화(域內化)라는 경제 통합의 단계에 왔고, 이미 아세안 공동체 형성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경제통합 을 넘어 사회적 아시아 혹은 Civil Asia 라는 역사적 국면의 전야에 이르고 있었다. 여기에서 Civil 이란 시민간 또는 문명화(Civilized)된 인민 또는 현재의 군사우위 매파 지배구조를 극복하고 실질적인 비둘기 파 지배의 문민통제 시스템의 확립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아시아 시대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운위되고 있는 것은 잠자는 사자 중국만이 깨어난 것이 아니라 진짜 잠자는 더 위대한 실체인 Civil Asia 라는 용이 깨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서양화라고 하는 한 세기 반에 걸친 긴 터널을 빠져나와 Civil Asia의 평야 가 눈앞에 펼쳐지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일본 평화헌법의 역할이 컸다. 평화헌법은 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공유 자산이라 할 만하며 그러한 점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하다. 동아시아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평화헌법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것을 지지한다. 수령 주체가 누구여야 할 것인가의 문제 는 법적 고려도 필요하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신적 혹은 운동사적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인 만큼 끊 임없는 개정 시도 속에서도 이를 굳건히 지켜 온‘헌법수호시민운동’측이 수령 주체가 되는 것이 합당하 며 그런 점에서는‘9조의 회’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3 주권자인 국민 내지 시민의 의사와 국가 내지 정부의 의사 사이의 괴리 문제는 현대 민주주의가 당 면한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러나 일본·중국·한국 등지에서는 그 괴리가 확대되고 심화되는 구조 속에 빠 졌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이 150여 년에 걸친‘굴욕의 세기(Century of Humiliation)’를 거치면서 이제‘잠자는 사자’가 잠을 깨고‘굴기(屈起)’하고 있는데 중국의‘굴기’가 패권주의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과거 일본의 패 권주의 유산을 청산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우리가 100여 년 전 일본제국주의의‘한국병합’의 불법무 효화 운동을 벌인 것도 우리가 이미 수차 밝힌 것처럼 한국민족주의의 요구에 멈추지 않고 Civil Asia의 필수 전제조건이라는 차원이었다. 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7. 그러나 아베정권은 정반대 방향으로 나갔다.‘일본을 되돌리자(日本を 取り す; Japan is back)’라 는 아베정권의 키워드는 우리가 그토록 극복하고자 하는 과거를 오히려 긍정하고 미화하는 역사수정주의 의 입장에서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고 하는 평화헌법체제를 극복대상으로 삼는 헌법개정론으로 나타나고, 그것을 평화헌법정신과 어긋나는 집단적 자위권의 용인이라는 편법으로 실천되는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 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후 냉전의 파도에 휩쓸려 과거사 청산 작업이 미진했던 것을 냉전 후 다시 청산하 는 이른바‘사죄의 시대’(Age of apology)를 정면에서 역행하는 것이었다. 요즘 세계적인 주목을 끌고 있는 토머스 피케티는『21세기 자본』에서‘과거가 미래를 규정한다’는 원리를 실증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데 아베수상의 행적은 실시간으로 과거에 대한 인식이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로 중국, 한국 등과의 역사충돌을 가져왔고 그것이 민족주의와 민족주의간의 대립양상 을 띄게 되어 상대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일본과 중국 간에는 패권주의 대 패권주의라는 적대적 관계 가 형성되고 말았다. 이를 전후하여 센카쿠열도(중국명은 釣魚島) 사태가 터졌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분쟁은 어느 한쪽에만 그 책임을 전가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대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냉정한 관찰자 사이에는 일본정부의 돌발 적인 국유화조처가 사태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당시 주중일본대사 단바(丹羽宇一걏)씨가 일본정부의 이 조처를 격렬히 항의하고 경고했던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고 생각한 다. 이 조처에 대응하여 중국측의 격렬한 반발과 무력시위가 있었고 다시 일본의 군사적 반격이 나오고 중국측의 재반격이 나오는 악순환 과정에 상호 영토 내셔널리즘이 충돌하고 에스컬레이트 되면서 급격하 게 위기가 확대 심화하였다. 우리는 이것을‘적대적 상호의존’의 악순환 메카니즘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베정권으로서는 시진평정 권이라는 적이 필요했던 것이며 시진평정권으로써는 아베정권이라는 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외부의 적과의 적대관계를 이용하여 국내의 내셔널리즘을 고조시켜 보수화를 강화시키고 리버럴의 도전을 약화시키며 그 결과로 국가는 점점 제국화되고 시민은 부지불식간에 점점 신민화(臣民化)의 위험에 빠진다. 더구나 일본의 정부는 마루야마(丸山 男) 선생의 지적처럼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생명을 잃게 했다 는 사실로 내셔널리즘의 처녀성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내셔널리즘을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전 쟁범죄를 회석 내지 왜곡시키는 역사수정주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본의 시민은 역시 마루야마(丸山 男) 선생의 지적처럼 시민이 시민의 권리를 양보하는 대신 신민화됨으로써 얻는, 타민족에 대한 특권을 향유(享有)해 본 향수가 있어 신민화의 유혹에 약하다. 따라서 국가와 시민의 타협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지금 일본에서 일고 있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의 홍수, 혐한(嫌韓)·혐중(嫌中) 책과 잡지의 범 람, 재특회(在特會:재일교포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일본의 혐한파 시민모임)의 나치즘을 연상시키는 천둥소리 7
  • 8. 거리행진, 한국에서는 이미 20~30여 년 전에 거의 사라진 비문명적 풍조가 아시아의 최선진국 일본에서 언론 집회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횡행하고 있는 것은 특이한 역사적 풍경이다. 이것을 아베정권과 무관하 다고 하는 경향도 있긴 하지만, 최근 아베정권의 각료가 헤이트 스피치의 주동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타나면서 역시 근거가 있는 소문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아이히만(Eichmann)의 재판을 보고‘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s)’이란 개념을 내어 놓았지만 헤이트 스피치가 언론집회의 자유의 명분으로 합법적으로 공공연히 행 해지는 것을 보고‘악의 문명성(civilization of evils)’의 구체 사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금할 수 없었 다. 어느 나라에도 헤이트 스피치가 있으나 건전한 시민사회의 자정력으로 자정해 나가므로 일본도 그렇 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일본시민사회의 자정력을 믿고 있다. 독일의 메르켈 수상이 지적한 것처 럼 나치즘은 히틀러 일파만의 책임이 아니라 지식인을 포함한 시민의 책임이라는 통렬한 지적이 있었지 만 일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중국과의 전쟁위험에 직면하여‘안보냐, 헌법9조 냐’하는 양자택일구도에 시민들을 가두어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지지율을 끌어 올린다. 시진핑정부 또한 아베정부라는 외부의 적을 활용하여 중국 내셔널리즘을 최고조로 고조시키면서 온건 비둘기파가 후퇴하고 강경 매파가 중심이 되어 대외 패권주의적인 움직임을 강화하면서 군비확장에 박차 를 가하고 정부중심의 동원체제를 강화한다. 그 결과 국내의 광범한 민주화 요구나 정부에 대한 다양한 비판적 움직임을 억압하고 약화시킨다. 이러한 적대적 상호의존의 악순환 구도 속에서 국가는 시민사회를 위축시키는 제국화의 경향을 띄게 되어 상대적으로 과대 국가와 과소 시민, 일종의‘제국과 시민’이라는 구도를 만든다. 이 구도 내에서 정 부 간의 대립 내지 적대관계가 시민 간 혹은 인민 간의 대립, 적대관계로 확대된다. 시빌 아시아는 후퇴하 고 역사는 역류한다. 빈번하게 일어나던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는 이제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20세기 초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미일동맹체제가 지배하는 그 당시, 동아시아를 넘겨다보는 위협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는 혁명 전야의 혼란 속에서 국가 존립자체가 흔들리는 상황 이었다. 그 당시 다른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면 일본의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일본이 선점했다는 이야기 는 전혀 근거가 없다. 그때 일본이 침략주의로 나가지 않았더라면 아시아는 그처럼 극단적인 파괴와 전쟁 과 원한의 대륙으로 화하지 않고 평화로운 협조체제가 형성되고 일본은 진정한 맹주가 되었을 것이다. 전후에도 동아시아 화해와 통합의 기회가 있었으며, 특히 냉전 후 다시 세계적으로 역사화해의 조류가 일어나고 동아시아 무역 투자의 통합이 급피치로 전개되었을 때 일본은 과거 일본의 패권주의의 그림자 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9. 를 지우고 역사화해와 함께 동아시아의 한국, 대만 등 민주국가 및 중국의 비둘기파와 제휴하여 중국을 설득하고 동아시아의 평화 민주 통합의 이니셔티브를 잡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아베정부에 이르러 정 반대의 역사수정주의–영토 내셔널리즘–집단적 자위권의 용인–미일군사동맹강화에 의한 대중국 대결 체제의 강화–중국의 강경 매파의 전면적 부상과 신 패권주의적 노선의 부활 등으로 동아시아는 100년 전의 사라예보의 총성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일본은 다시 한 번 동아시아 평 화와 통합을 파괴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4 동아시아의 보수정권이 보수적 통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하여 외부의 적이 필요했고 그 적이 영토 내 셔널리즘과 안보위기의식의 적으로 연출됨에 따라 대결분위기가 극적으로 에스컬레이트되어 적대적 상 호의존의 악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말았다. 이 악순환 구조 속에 일반시민·인민들도 편입되어 영문도 모 르는 체, 까닭도 없이 시민이 서로 적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실 국가와 시민의 괴리가 극단으로 가, 제국-시민의 틀에 갇히게 되고 안보냐 평화냐의 양자택일을 강요받아 시민이 안보위기 대응태세에 가담하는 것은 국가의 논리이지 시민의 논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 다. 시민끼리 인민끼리는 대립하고 적대해야 할 까닭이 없다. 시민의 논리 위에서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재조정하여 Voice Democracy 쪽으로 더욱 접근해야 한다. 원래 평화헌법 자체가 시민의 논리 위에서 국가와 시민의 관계가 재조정된 결과의 산물이고 평화헌법체제가 영향을 주고받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고 도산업화의 과정에 형성된 5억의 중산층과 또한 5억의 예비중산층이 중심이 되어 서유럽 시민사회처럼 동아시아의 시민사회화 내지 시빌 아시아가 형성되기 직전까지 이른 성과를 완성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보수 정부끼리 상호 의존하는 것처럼 시민 내지 국민 간 연대를 강화하고 상호의존관계를 공고히 해야 한다. 동서독 통일직전에 동독정부의 반통일적 움직임이 있을 때 시민들이 ‘Wir sint die Volk(우리들이 바로 그 국민이다)’하고 외치며 국가의 주권자인 Volk(국민) 자신이 나서 서 통일의 방해공작을 박살낸 것처럼 한·일·중의 시민, 국민은 시빌 아시아를 역행 내지 후퇴시키고 전 쟁의 위기를 조성하는 적대적 상호의존관계를 극복해야 한다. 시민 혹은 국민과 괴리된 정부와 정부 간에 수많은 국제 제도적 연결-협의 기구가 있듯이 시민사회와 시민사회 간 혹은 NGO와 NGO 간에 단단한 연대관계가 형성되어야 정부와 시민 간의 관계의 재조정을 위한 균형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문맥에서 우리는‘동아시아 시민평화회의’를 구성할 것을 제의한다. 혹 중국 측에서 시민이란 용어문제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민평화회의는 처음부터‘동아시아 천둥소리 9
  • 10. 시민 평화헌장’의 제정을 제 일차적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시민 평화헌장은 아시아 시민평 화의식이 아시아 전쟁 불안 해소의 지렛대가 되는 기본 이념을 담아야 할 것이다. 종래 국가에 의해서 형 성되고 국가를 위해서 전개되는 국제법의 세계에서 시민의 관여는 한정적이며 간접적이다. 그러나 세계 화가 심화되고 시빌 아시아가 진전되면 시민이 국가를 경유하지 않고 세계 및 아시아에 밀접히 결부된다. 따라서 아시아문제에 대하여 국가를 경유하지 않고 관여하고 혹은 국가를 보완해서 참여해야 하는 상황 이 된 것이다. 따라서 시민과 아시아의 기본 관계의 이념 정립은 중요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 부재의 아시아가 되고 그것이 위기의 아시아로 귀결된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시민참가이며, 그것 이 시빌 아시아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시민평화회 참가자에 대한 대표성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 문제가 간단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러나 만일 위안부 문제라면 그 위안부 문제 관련 국제회의에 참가할 각국의 대표성 있는 인사를 관련 NGO들이 선정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며, 센카구 열도(중국명 釣魚島) 문제라면 이해당사자를 배제한 객관 적 제3자 단체들이 대표성 있는 인사를 선출하는 것이 반드시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권문제, 평화문 제, 환경문제, 역사문제 등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시민 대표자 혹은 전문가들은 정부 대표자보 다 합의를 도출하기가 훨씬 유연할 것으로 생각한다. 국가가 못한 것을 시민의 손으로 해보는 시도이다. ‘동아시아 시민평화헌장’에서는 아시아 평화가 각국별 안보 못지않게 우선되어야 하며, 각국의 역사의 입장에서 아시아 공동의 역사를 보는 것 못지않게 아시아 공동의 역사의 입장에서 각국의 역사를 보는 것 이 중시되어야 하며, 일본의 과거침략과 전쟁의 역사 청산의 과제는 피해갈 수가 없는 문제일 것이다. 동 아시아 시민사회는 피해서 지나갈 수 없는 과제이다. 동아시아 시민사회는 동아시아 공동역사의 교과서 편찬과제를 이룩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 인권, 평등과 같은 시민적 보편가치를 끌어안고 빛 나게 할 잠재력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의 일본화, 아시아의 중국화를 넘어선 아시아의 아시아화, 즉 아시아의 아시아시민사회화를 지향해야 하며, 여기에는‘동아시아 인권재판소’설립과제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 ‘9조의 회’의 10주년을 맞이하여 동아시아에서도 평화헌법 9조라고 하는 아시아 공유자산을 소중하게 지켜야한다는 점을 바라는 바이다. 그 길로써 앞으로는 시민부재의 아시아에서 시민참여의 아시아로 가 는 첫걸음으로‘동아시아 시민평화회의’를 구성할 것을 제의한다. 그 회의에서 최초의 과제로‘동아시아 시민평화헌장’을 제정할 것을 제기하고 싶다. (이 원고는 2014년 11월 27일에 열린 일본 동경의「9조의 회」10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발표된 논문입니다.) 1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11.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북후정 Ⅱ 4년 전 이맘때 쯤, 사진 자료 문제로 종종 뵙던 정성길 동산의료박물관 명예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소장 자료들을 정리하던 중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매우 흥미로운 건물이 담긴 사진파일이 하나 나왔 으니 확인을 해보라는 말씀이셨다. 제일교회 앞 커피숍으로 약속을 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래의 사진 한 장을 내미셨다. 사진을 보는 순간 아뿔사! 서문시장 전경을 찍은 사진 속 멀찍이 높은 건물 한 채가 버티 고 서 있다. 북후정 임이 분명했다. 집에 들어가는 길로『자인총쇄록』을 다시 펼쳤다. 그동안 읽으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이 대목,“… 여기 가 대구 경계이다. 큰 버드나무가 꽉 들어서 있는 곳에 간간이 주점이 있다. 여기에서 영남 감영과의 거리 가 10리 였다. … 대구부에 들어가는데 3리 못 미쳐 달성이 길 오른 편에 있다.… 다시 2리를 남겨두고 북후 정(겗 亭)이 있는데 이곳이 곧 서문시장이었다.…(오홍묵, 1888 : 일록(日걧) 무자(戊子))”란 구절이 사진 과 오버 랩 된다. 부랴부랴 대구 고지도를 찾았다. 읍성 서문 밖 정자 그림 밑에 북후정(겗 亭)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의 진행과정에서 최초로 군민대회가 개최된 역사적 장소, 북후정은 이렇게 자신이 서 있었던 원래의 위치를 내게 알려왔다. 북후정은 대구 읍성“북문 밖”이 아니라 서쪽 문인 달서문 밖에 건립된 관아 건물(公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각 지역 성 곽들을 포함한 관아시설들을‘항일의 상징’으로 간주하고 이의 파괴에 전력을 기울이는 바람에 옛 모습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북후정(겗 亭)은 옛 서문시장 입구에 있었다 임 경 희 대구경북소비자연맹 회장 천둥소리 11
  • 12. 찬찬히 살펴보면「자인총쇄록」「대구부읍지」「대한자강회 월보」「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등 관련 사 료들은 하나같이 북후정이 서문 밖, 경상감영에서 서쪽으로 2리 또는 3리쯤 되는 곳, 옛 서문시장 입구에 서 있었음을 기록해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옛 지도를 통해서도 간단히 확인된다. 그런데 왜 대구광 역시와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관련 자료들은 지금껏 북후정의 위치를“북문 밖”또는“현재의 대구시민회관” 자리로 표기하고 대구상공회의소는 국채보상운동 기념비를 대구시민회관 앞 광장에 건립해 두었을까? 그 이유는 관련 사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것 외에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생각 된다. 그렇지만 구태여 위치를 왜곡하게 된 경위를 찾으려 한다면 당시 군민대회 광경을 보도한「대한매일 신보」1907년 3월 9일자 2면의 기사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국한문을 혼용한 당시의 기 사가 북후정을 표기하면서‘후’의 자모를 한글로 표기(겗 亭)하는 바람에 이후 북후정의 한자 표기에 혼동 이 생기게 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답은 당시 신문의 제작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즉 그 시절 신문 들은 지금처럼 기자가 자신의 컴퓨터를 통해 기사를 작성하고 이를 바로 편집하게 하는 대신 기자가 작성 해 온 원고를 문선부(文選部)로 보내고, 이를 토대로 문선공들이 주조된 활자들을 뽑아 지면을 채우는 방식 으로 제작되었다. 따라서 북후정(겗 亭)에 사용되는 봉화대 후( )와 같은 잘 사용되지 않는 복잡한 자모 는 기존 활자를 깎아서 만들어 내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따라서 인쇄시간에 쫓기게 되면 이렇게 한 글로 표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드물게는 기사를 쓰면서 기자가 한자를 흘려 쓰는 바람에 알아볼 수 없었 거나 아예 원고를 그렇게 작성해서 넘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런데 이후 이 기사를 인용한 일부 논문이 이 부분을 자의적으로“북후정(겗後亭)”이라고 고쳐서 표기하는 사례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13. 기사를 검색해보면「동아일보」1971년 3월 24일자 2면도 이 광경을 인용하면서 북후정(겗後亭)이라고 쓰 고 있다. 실제 위치를 잘못 알게 되는 첫 단추가 여기에서 끼워진 셈이다. 그런데 같은 기사를 근거로 하여 당시 상황을 기술한『대구시사』제1권(통사)에 이르면 북후정의 위치가 느닷없이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이 운동의 발기인은 광문사 사장 김광제, 부사장 서상돈, 대동광문회 회장 박해령, 회원 김 윤란, 장상철 등 10여 명으로서 2월 21일 그들은 대구민의소(斷煙會)를 설립하고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이 민의소 창립 회합 장소 즉석에서만도 500원이란 성금이 모아졌다고 한다. 이 어서 민의소는 겗後亭(현재의 대구시민회관 부근)에서 국채보상모금을 위한 국민대회를 개최 하고, 3월 9일 대구 서문 밖 수창사에 국채지원금 수합사무소를 설치하였다. 이 때 국민대회 가 일본경찰에 의해 해산 당하고 연설자가 체포되기도 하였다.” (밑줄은 필자가 표시. 대구광역시(1995),『대구시사』제1권(통사) : pp.903-4) 거기에다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간행한『국채보상운동논문 선집』에 실린 한 논문은 1907년 3월 29일자「황성신문」기사를 인용하는 과정에서“서문 밖 북후정”을“북문 밖 북후정”으로 표기하는 중대한 착오를 범하고 만다. 이런 과정에서 존재하지도 않은“북문 밖 북후정”을 찾으려는 헛수고가 이어졌고 급기 야 대구시사 편찬실은 2004년 북후정이“대구 역 부근 칠성바위 가운데 단을 높이 쌓아 지은 것”이라는 내 용이 담긴『교양 대구설화』를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국채보상운동의 첫 집회를 음력 정월 초아흐렛날(양력 2월 12일)에 북문 밖 칠성리의 북후 정에서 열었다. 그곳은 지금의 대구역전 시민회관에 서 있는 일대로서 당시 대구 사람들은 칠 성바위 가운데 단을 높이 쌓아 지어놓은 이 북후정을 곧잘 모임의 장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밑줄은 필자가 표시. 박영규(2004), 『교양 대구설화』, 대구광역시) 뿐만 아니라 대구광역시는 현재 관광안내를 위한 인터넷 카페에“북후정은 칠성바위 바로 옆에 있었으 며 의북정(依겗亭)과 동일한 정자”라는 터무니없는 내용까지 덧붙인다. 달서문 밖 서문시장 입구에 서 있었 던 북후정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읍성의 북문 밖, 지금의 대구시민회관 자리에 존재했다고 알려지게 되 었다. 그리고 관련 기관·단체들은 1차 자료를 확인하는 대신『대구시사』제1권(통사)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북후정(현재의 시민회관)’이란 오기(誤記)를 의심 없이 사용해 왔다. 그 결과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북후 천둥소리 13
  • 14.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정’을 검색하게 되면“북후정(현재의 시민회관)”이란 문건이 봇물을 이룬다. 이런 잘못은 국채보상운동기 념관 전시물에서도 여전하다. 북후정이 있었던 자리는 대구광역시 중구 시장북로 1-1로 추정된다. 옛 서문시장의 끝부분과 일제가 개 설했던 시장북로가 만나는 지점이다. 정확한 위치를 찾는 일은 1911년 제작된‘대구부대구면시가지도’와 이를 바탕으로 1929년 작성된 대구 중구청 소장 지적도,‘조선총독부 훈령9호’(1912년 10월 7일 발표)에 의해 대구의‘시구개정(市區改正)사업’이 진행된 후에 제작된 지도들 중 옛 서문시장이 표시된 지도들, 그 리고 현장을 다각적으로 대조하는 후속 작업이 이어진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국채보상운동은 비록 일제의 탄압 때문에 좌절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경제침탈에 맞서 최초로 전개된 범 국민적 경제주권회복운동이며 그 중심에 대구가 있었다는 사실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북후정은 이 운동이 구체적으로 실행된 장소, 신분과 빈부를 초월한 구국의 민의(民意)가 최초로 결집된 장소로써 그 역사적 의의가 자못 크다. 늦었지만 북후정의 올바른 위치를 찾아 복원하고, 힘이 들겠지만 그동안 잘못 기 록했던 각종 표지판이나 전시물, 관련 문헌의 수정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 15.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얼마 전 대구에서는 큰 행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제3회 대한민국도시농업박람회입니다. 대구 자연과학 고등학교에서 열린 행사는 도시민들이 농작물을 직접 가꾸고 기르는 재미와 수확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 는 많은 정보를 제공하였습니다. 도시농업은 도심 한복판에서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합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심지역에서의 농업은 상업적 측면뿐 아니라 생태환경, 교육, 사회적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독일의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소공원)과 영국의 얼로트먼트(Allotment-시민농장), 일본의 시민농 원 등 해외 선진국들도 도시농업을 활발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한국 또한 정부에서 도시농업 육성법까지 마련하며 도시농업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도시농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약 100만 명입니다. 앞으로 도시농부는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대구의 경우 제2회, 3회 두 번 연속 대한민국도시농업박람회를 유치할 만큼 도시농업이 활발합니다. 전 국 최초의 텃밭 동아리인 경북대학교‘희망토마을’이 있습니다. 또한 빈집을 이용해 텃밭을 조성하는‘신 나는 농장’도 있습니다. 또한 올해는 제가 공동대표로 있는 대구 도시농업 시민협의회가 출범을 하여 도시 농업을 하는 많은 단체가 모여 대구의 도시농업 발전을 위해 의기투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건강하고 자연이 건강한 지속가능한 사회 자연과 소통하고 농사의 소중함을 깨닫자 나눔과 책임 Ⅲ 천둥소리 15 서 종 효 ㈜희망토 대표이장
  • 16. 제가 도시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농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아프리카에 농장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 기 때문입니다. 20대 초반 삶과 진로, 미래에 대해 방황하며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삶의 키워 드를 뽑았습니다. 첫 번째는 기아문제입니다. 굶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했습니다. 두 번째는 봉사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사회에 속해서 살아가는데 이 사회를 위해서 봉사를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는 CEO입니다. 리더로써의 조직을 이끌고 싶었습니다. 이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도달하게 된 결론이 바로 농업비즈니스였습니다. 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17. 농장을 운영하려면 농업을 알아야 하고 농업을 하려면 농사를 알아야 한다. 농사를 짓기 위해 캠퍼스 텃 밭을 생각했습니다. 2011년 드디어 경북대학교 안에 유휴지를 찾아 텃밭 조성 프로젝트에 돌입했습니다. 두 번의 거절을 당하기도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 끝에 희망토 캠퍼스 텃밭을 조성했습니 다. 여기서는 교수님, 교직원, 학생과 함께 농사를 지었습니다. 지금 이 텃밭은‘희망토마을’경북대학교 텃밭 동아리에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취업을 해야 하나 창업을 해야 하나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생각을 정리하고 1년만 창업에 투자를 하자 생각하고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때 현재 이장님 두 분을 만나 2012년 9월 1일 ㈜희망토를 설립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희망토의 대표이장 으로서 도시농업, 농업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희망토는‘사람이 건강하고 자연이 건강한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루겠다는 비전 아래 농업교육 콘텐츠 를 개발하고 있습니다.‘먹는 행위는 곧 농업적인 행위이다.’모든 삶의 기본은 바로 농업이라고 생각합니 다. 희망토는 가드닝, 생태, 먹거리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콘텐츠를 운영합니다. 첫 번째 콘텐츠는 어린이 농부교실입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텃밭 농사를 통해서 자연의 신비 함을 느끼고 직접 재배한 농작물 수확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올바른 먹거리의 인식을 만들어 가는 텃밭 체 험 프로그램으로 농사를 매개체로 서로의 마음과 힘을 나누는 공동체 인성을 배웁니다. 두 번째 콘텐츠는 가족농장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주말농장을 가꾸면서 신선한 채소도 재배하고 자연에 서 가족애도 느낄 수 있는 생태&먹거리 교육중심의 가족농장 프로그램입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주말농장 에서 채소를 기르고 재배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바른 먹거리의 올바른 인식을 심어줍니다. 세 번째 콘텐츠는 도시농부교실입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베란다 텃밭 가꾸기, 옥상 텃밭 가 꾸기 수업입니다. 나아가 로컬푸드, 슬로푸드를 알려 우리 먹거리에 대해 배웁니다. 네 번째 콘텐츠는 논학교입니다. 논농사를 지으면서 유기농 쌀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논 수서생태계에 대한 학습이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입니다. 직접 모내기부터 추수까지 해 손수 밥까지 지어먹는 프로그램입 니다. 다섯 번째 콘텐츠는 김장농사입니다. 가을농사의 중심에 있는 김장농사를 직접 텃밭에서 운영하면서 수 확 후 김장을 함께 담그면서 가족에게는 가족애를 높이고, 학생들에게는 김장의 참뜻과 협동심을 향상시 키는 프로그램입니다. 여섯 번째 콘텐츠는 진로농장입니다. 새로운 부각되는 미래농업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농사에 대한 실 무적인 이야기와 사례를 통해서 한국의 미래 농업 비즈니스 아이디어 발굴하고 해외농업 비즈니스 리뷰를 통한 글로벌 농업 인재를 양성하는 진로농장 프로그램입니다. 천둥소리 17
  • 20.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일곱 번째 콘텐츠는 유기농 비즈니스입니다. 도시농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6차 산업으로써의 농업 을 재조명하고 농업창업에 도움을 드리는 교육 프로그램, 귀농과 귀촌을 고민하거나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농가에게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템을 찾을 수 있도록 가이드 합니다. 여덟 번째 콘텐츠는 텃밭 선생님 양성과정입니다. 초·중·고등학교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텃밭 교실 프로그램에서 선생님으로 활동하시거나 텃밭 교실 콘텐츠를 개발하는 기획 선생님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농업IT서비스도 시작했습니다. 텃밭 교실 교재의 전자교재화를 통해 살아있는 교육을 진행합니다. 멀티 미디어를 활용한 융복합 전자교재입니다. 온라인 다운로드 교재로서 언제 어디서나 다운받아서 활용이 가 능합니다. 나아가 스마트 시대에 부합된 통합적 차세대 교육 콘텐츠로써 스마트 교육을 진행합니다.
  • 21. 천둥소리 21 농사일지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통해 실시간 농사일지 작성을 하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사용자들이 자신의 텃밭 이야기를 공 유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앱입니다. 또한 텃밭 기본 가이드를 제공해 좀 더 재미있게 텃밭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농촌 농업의 문화는 나눔의 문화입니다. 예로부터 품앗이, 공동 체의 문화가 기본적으로 있는 곳이 농촌입니다. 지금 이런 문화가 도시농업을 통해 도시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도시는 개개인이 따로 떨어지고 커뮤니티, 공동체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 다. 텃밭 농사를 통해 공동체를 복원하고 서로 나누고 소통하며 어울리는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농업을 한다는 것은 곧 창조적인 일입니다. 자기가 길러 자기가 직접 먹어본 사람들은 우리 먹거리 농업 의 소중함을 배웁니다. 희망토는 대구에 많은 도시농부를 배출할 것입니다. 어린이농부부터 어른농부까지 모두가 농부가 되어 우리 농업의 소중한 가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 인터넷혁명, 스마트폰혁명을 지나 이제 다시 농업혁명이 일어날 때입니다. 한 번의 삽질, 호 미질이 모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가치를 만듭니다. 여러분들도 도시로부터의 농업혁명에 동참하십시오.
  •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청년에게 길을 묻다 Ⅳ 청년봉Go는 지역의 청년들이 스스로 기부를 하고 그 기부금을 통해 연탄을 구입하여 직접 에너지빈곤층 가정에 배달한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나눔을 배우고, 이웃에게 관심을 가 짐으로써 지역사회에 따뜻한 나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봉사문화를 말한다. 1. 광열비(전기료, 연료, 난방비)를 기준으로 에너지 구입비용이 가구 소득의 10% 이상인 가구 2. 소득대비에 비해 광열비 비중이 높아서 의식주에 써야 할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따라서 에너지를 필요한 만큼 사용하기 힘든 계층 3. 저소득으로 인해 최소한의 에너지마저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가구 [네이버 국어사전] 에너지빈곤층 성 영 덕 메세지팩토리협동조합 이사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23. 대학생이 될 때까지, 봉사활동 시간을 위해서 주변의 복지시설을 잠깐 찾아가서 활동을 하거나 동사무소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등 다른 사람들 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봉사 활동을 했었는데,‘R.O.T.C로서 군인복무를 마치 면서 새로운 경험의 봉사활동을 도전해보자’라고 생각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참여할 수 있는 봉사활 동이 많이 없었는데, 취업정보 사이트를 확인하던 중“청년봉Go”라는 연탄 나눔 프로젝트를 보고 ‘재미있겠다’는 생각과‘이력서의 스펙이 되겠 다’는 생각으로 신청했다. 신청하고 나서 처음 진 행하는 프로젝트라 바로 입금하라는 문자를 받고 는‘혹시 속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오리엔테이션 참여를 하면서 재미있는 형·동생 들을 만나며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 연탄 나눔 날에도 친구들 얼굴에 연탄재를 묻히며 장난 치며 낄낄대며 철없이 봉사활동을 하는 중에 생각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연탄을 받으시는 할아버지 한 분께서 갑자기 양손 무겁게 따뜻한 병 음료들을 가득사서 우리들에게 마시고 일하라고 주시는 것이었다. 연탄 1장의 가격이 약 500원 정도이고 그 3배의 가격 정도 하는 병 음료들을 할아버지께 미안해서 마실 수가 없어 거절하고 있었는데, 함께 봉사하는 간사님께서 어르신이 주시는 선물을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말씀에 함께 병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할아버지께서 고맙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하신 말씀이, “난 세상에 나쁜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희를 바라보면서 아직도 좋은 사람이 많아서 살만한 거 같다….”였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내 속마음이 들킨 것보다 더 부끄러웠다. 단지 이력서의 스펙의 한 줄로 생각하고 신청했고 연탄을 받으시는 분들께는 기부금 2만원을 냈으니 상관이 없다는 생각 천둥소리 23
  • 24. 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을 했었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 를 들으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활동 등을 진심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청년봉Go”1기 활동을 마치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다른 친구들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 로 자연스럽게 2기 기획단 활동을 참 여하게 되었고, 기획단이 함께 기획 한 봉사활동에 참여한 서포터즈들의 행복해하거나 즐거워하는 표정들을 보면서 또 다른 봉사활동의 재미를 느꼈다. 그 후로 이러한 봉사활동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도록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연탄 나눔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메세지팩 토리에 합류해서 2015년 올해까지 에너지빈곤층 가정을 위해 연탄 나 눔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청년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 고 있다. (청년봉Go 연탄나눔 프로젝트는 2011년 10월 시작하여 현재 2015년 1월까지 진 행 중에 있으며, 63명의 기획단, 494명의 서포터즈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직접 기 부한 금액(원)과 대구시 전역에서 시민들로부터 모금한 금액 2,826만원을 통해 연탄 51,068장을 구입하였다. 구입한 연탄은 대구 지역의 에너지빈곤층 가구에 직접 청년들이 전달했다.) “청년봉Go”를 통해 아직 부족하지만“나눔”과“봉사”는 어렵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 는 것을 조금이라도 나눌 줄 아는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나만의 정의와 함께, 수혜자만을 위한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봉사활동을 참여하는 사람도 수혜자를 통해 배우고 재미
  • 25. 천둥소리 25 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메세지팩토리협동조합 의 청년봉Go와 같은 팀들이 보다 많아져서 전국적으로 연탄이 필요한 에너지 빈곤층(약 220만 가구 추정)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추운 겨울 대구 시내에 모금활동을 하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보면 무거운 지갑을 열어 안에 가지고 있던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따뜻한 인사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천둥문학 Ⅴ 봄 들 꽃 노을에 그리워 나선 길 만나서는 천 길 만 길 그리움만 쌓아 놓고 돌아와 또 버릇처럼 그리워합니다. ... 그냥 바람이려니 ... 떨어지는 꽃잎만 바라봅니다. •대구한의대학교 국제문화정보대학 학장 •대구한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김 종 철 Profile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27. 천둥소리 27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천둥문학 Ⅴ 며칠 전 소파에 앉아 졸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자기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열어 보여주었다. 젊고 예쁜 아 가씨가화려한예복을입고환하게웃는모습이었다.‘예쁘네! ’나는그냥또고개를수그리고그냥자려고했다. 그러자 아내가 혼잣말을 한다.‘저러니 아빠를 재미없다고 하지! ’아니 그러면 스마트폰 사진의 주인공이 딸내미란 말이야? 벨파스트왕립음악대학 소리예술과 석사 졸업식에 참석하라고, 귀국해서 쉬고 있던 딸내미 를 쫓다시피 보내놓고, 졸업사진이 왔는데, 고작 한 말이‘예쁘네! ’였단 말이야? 졸음이 확 달아났다. 내가 딸 내미를 위해서 나누어 주고 사랑해 준 게 뭐가 있나 갑자기 외국에서 고생하고 있는 딸내미에게 민망한 생각 이 들었다. ‘나눔’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들어 어떤 늙은 부자가 금괴를 마루장 밑에 수십 개나 숨 겨 놓고 죽는 바람에 일어난 해프닝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가족끼리도 뭔가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 시대의 각박함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그 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반측하다가 불현듯이 뮤지컬 영화‘달구벌 에파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비는 어찌 되더라도 2년 후쯤에 완성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동안에 시나리오를 잘 써 두자는 각오가 생겼다. 이건 진짜로 우연이고 갑작스런 일이고 뜬금없는 일이었다. 마침 지난 2000년 뮤지컬 <달구벌 에파타>란 작품이 무대 공연 예술 지원작으로 선정되어 대구와 포항에서 공연을 했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래서 연구실의 컴퓨터를 뒤지기 시작하여 그 당시 적었던 기획 내용과 스텝 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내었다. 그런데 황성하 교수님이 느닷없이 전화를 해서 만나자는 것이었다.‘황교수님? 만날 일이 없는데? ’그래도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연구실에 오시라 했더니‘국채보상운동’에 관하여 큰 관심을 가 지고 계셨고, 거기에서 봉사를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더러 수필 한 편 써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국채보상운동에 관한 뮤지컬 영화를 꿈꿨는데, 새 길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14년 전의 간단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 당시 뮤지컬의 카피는‘국채보상운동시창자 서상돈 아오스딩, 그 나눔의정신! ’이었다. 김 일 영
  • 28.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그 당시 스텝들로는 총감독 박성진 신부, 시나리오 김일영, 작곡 홍세영 교수, 안무 구본숙 교수, 기획 조영석, 연출 이국휘 등이었고, 공연은 대구에서는 대구시민회관 대극장에서 2000년 10월 20일(토)과 21일 (일) 2회 공연을 하였고, 포항 효자아트홀에서는 10월 25일 오후 7시에 공연이 이루어졌다. 극단에서는 관객 수를 집계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관객이 객석에 꽉 찼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은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 시작에서부터 마칠 때까지 관여를 하면서 가진 생각은‘나는 무엇을 더 나눌 있을까? 지금 참으 로 행복하다’는 생각만을 했었다. 그 당시 공연 팜플릿에 실려 있던 이문희 대주교의 축사가 있어서 이 자리에 옮겨본다. 물론 대주교님에게 여기에 옛날의 축사를 싣겠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그러이 이해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나눔의 실천은 사회 구원의 출발점 이문희 바울로(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어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오늘날에도 지구상의 곳곳에서는 헐벗고 굶주리 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은 인류 전체에게 자원이 부 족하거나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 자원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적절하게 배분되지 않 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을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해서는 가진 자들이 없는 자 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는 정신이 근본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런 때에 서상돈 아오스딩의 정신을 현대인에게 뮤지컬로 표현하여 보여주는 것은 중요한 일 입니다. 국권이 상실되어 가는 시기에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눌 수 있었던 서 아오스딩의 정신 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됩니다. 학교를 세우고자 했던 교육운동, 나라에서 진 빚을 백성의 힘으로 갚아보자고 했던 국채보상운동, 자신의 마지막 힘을 종교에 쏟 아서 쓰러져 가는 백성의 정신을 건사하고자 했던 일 등은 모두가 서 아오스딩이 가졌던 나눔의 정신에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들은 서 아오스딩이 살았던 때만큼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신적 으로는 더욱 피폐해져가고 있음을 여러 현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이래서는 안 된 다고 야단들입니다. 그러한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들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지만 별반 효 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나눔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뮤지컬 <달구벌 에파타>를 통하여 아오스딩의 정신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라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욕심을 버리게 하여 앞으로는 더 나은 공동체가 이루 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진 것을 고루 나누어 진정 으로 평화스런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나눔의 실천은 어려운 사회를 구원하는 출발점입니다.
  • 29. 천둥소리 29 마침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포스터도 그림으로 올려 본다. 아내의 스마트폰으로 배달된 딸내미의 사진 한 장이 나의 생각이 뮤지컬‘달구벌 에파타’를 디딤돌로 뮤지 컬 영화‘달구벌 에파타’로 나아가게 했다. 나는 이제 뮤지컬 영화‘달구벌 에파타’를 위하여, 아니 이 사회를 위하여 무엇을 나누어야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내가 존재하는 이 공동체를 위하여 무엇을 나눌 것인가 조금씩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 고민의 강도는 추위와 상관없다. •1992년 등단 •창작희극집‘날개달기’, 창작오페라집‘목화꽃 내사랑’, 시나리오집‘이야기 택시’등 Profile
  • 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에 이런 말이 있다. 군자(君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첫째는 부모님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탈 없이 지내는 것이요, 둘째는 하늘을 우러러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고, 머리 숙여 사람을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라 하였다. 천하를 다 지배하는 제왕도 이러한 즐거움은 갖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신세대들은 케케묵은 말이라 할지 모르지만 깊이 생각해 볼만한 말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부 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에 첫째의 윤리(괲理) 덕목으로 삼았다. 그런데 요즘 뉴 스에 나오는 끔찍한 소식이 충격적이다. 부모의 재산을 뺏기 위해 어머니를 살해하고, 또 형제도 죽 인 이런 막된 자식이 있다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회원광장 Ⅵ 이 재 화 대구광역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 30 회원광장
  • 31. 어머니가 10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이 탈이었고, 형은 먼저 태어 난 것이 재앙이었다. 어머니 가 자연사(自然死) 했을 경우 재산 상속이 형에게 많은 몫이 돌아가지 않고 혼자 다 차지하려는 욕 심이 가족 살해라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뉴스는 전한다. 또 범인이 그의 아내와 공범(共犯)인가를 조 사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자살하고 말았다. 글자 그대로 한 가장이 폭망(爆亡)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 가정이 이렇게 씻을 수 없는 참사를 당하는 것은 욕심이 빚어낸 비극이다. 존속살해죄는 매우 엄중하다. 최하가 7년형, 무기형, 또는 사형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보통 살인죄보다 이렇 게 형량이 엄중한 것에 대해 다 같은 살인죄인데 존속살해만 가혹한 처벌을 한 것은 공평하지 못 하니 똑같이 처벌해야 한다는 헌법소원을 낸 사람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 서 기각(棄却)되었다 한다. 존속살해범에게는 상속권이 상실된다는 점도 범인들은 알아야 한다. 10억원이란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은 서민들에게 꿈속의 이야기로 생각된다. 이 10억원의 자산을 가족과 이웃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도는 왜 생각지 못했을까, 아들을 잘 살펴보지 못한 어 머니의 불찰도 있을 것 같다. 또 자신의 보험금을 차지하려는 남편이 임신 7개월의 아내를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기다릴 줄 모르고 만족을 모르는 젊은이, 부모 형제 와 행복하게 사는 방도를 모르는 청소년들을 가정에서부터 사랑으로 지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의 모자 살해범도 가족 간에 사랑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중학교 교육 과정에 행 복교육 시간이 생겨 행복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앞의 사례를 보면 부자(富者)와 행복의 상관관계는 별로 크지 않은 것 같다. 최소한 부모에게 효 도는 못할망정 부모를 살해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몇 년 전에 90세를 넘은 노인을 지게에 태우고 금강산 관광을 다녀 온 충남 서산에 사는 이군익 씨의 사진이 한 언론에 보도되면서 인터넷에서 유명 인사가 되 었다. 이 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둔 평범한 장년으로, 시간이 나면 노령의 아버지를 모시고 여 러 곳을 구경시켜 드리는 착한 효자로 알려졌다. 일 년 전에 어머니를 먼저 여윈 아버지가 외로워하 실까 싶어 산으로 들로 아버지를 모시고 다녔다. 7남 매를 모두 잘 기르고 막내인 본인까지 대학 공부를 시키느라 넉넉지 못한 소농(小農)의 집에서 평생 허 리 한 번 펴 보지 못하고 독립기념관을 구경하고 오 는데 금강산 이야기를 하셨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 이“금강산에는 일만이천 봉의 산봉우리가 각기 다 른 모양을 하여 아름답다고 하는데...”이 말을 들 은 이 씨는 아버지가 더 늙으시기 전에 금강산을 구경 천둥소리 31
  • 32.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형제들 회의를 하여 혼자는 어려우 니 형과 누나가 동행하기로 결정하고, 의자형 지게를 설계하고 여러 공장을 방문하여 지게를 제작 하여 아버지를 태우고 금강산 구경을 하고 왔다 한다. 혼자 오르기도 힘든 비탈길을 아버지를 지고 걸어 올라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는가. 그러나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에 힘든 것도 잊 고 즐겁게 금강산 구경을 하고 왔다. 100년 전에는 흉년이 들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그 시절에는 부모가 영양실조로 몸이 쇠약해 탈진되었을 때 자기의 살을 떼어 내 불에 구워 먹여서 살리는 일이 최선이라 생각한 사례도 있었다. 백범 김구 선생도 자기의 허벅지 살을 떼어 내 그의 부친에게 구워 드렸는데, 두 번째는 하 도 아파서 못했다고 자서전에 기록되어 있다. 춘추전국시대 때 전쟁터에서 며칠을 굶어 아사지경 에 이르렀을 때 충성스러운 신하가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 임금을 살렸다는 할고봉군(割股奉 君)의 고사(古事)도 있다. 최근에는 107세의 어머니를 업고 다니는 72세 아들의 갸륵한 사연이 전파를 타고 많은 사람을 감 동시키고 있다. 충남 보령의 한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는 72세로 자신을 돌보기도 벅찬 나이인데, 홀로 계시는 107세의 거동조차 불편한 어머니를 업고 다니는 효자 소식이다. 더구나 107세의 어머 니는 5년 전부터 치매까지 앓고 있어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대소변 뒤처리를 다한다 하니 놀라 운 일이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따뜻한 밥을 지어 어머니께 먼저 드리고 자신은 뒤늦게 밥을 챙겨 먹는 효자로, 자신이 먹는 밥상은 초라하지만 어머니께 드리는 밥상은 언제나 고기 반찬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아들도 보호받아야 할 노인인데 이 노인의 삶은 오로지 어머니를 위한 삶이었다. 그런 할아 버지에게서는 슬픔이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효자 노인이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사 람이 감동하였으며, 할아버지를 도울 수 있는 방도를 찾자는 여론이 조성되어 할아버지 돕기 카페 까지 생겼다는 소식이다. 이런 소식을 보면 아직도 한국 사회가 건전한 면이 많아 희망적이란 생각이 든다. 동방예의지국 이란 대한민국에서 존속살해 사건이 의외로 서양보다 더 많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지나친 기대 치와 간섭이 오히려 가족 간의 갈등을 만들어 놓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화목한 가정은 천국이 되고, 불화와 갈등의 골이 깊은 가정은 지옥이 된다는 점 명심할 일이다. 32 회원광장
  • 33. 한국이 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베 이비붐 세대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자식 키우고 부모 모시느라 정작 자신 의 노후 준비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베이 비붐 세대의 70% 이상이 부모가 아직 생존해 있 고 80%가 성인 자녀와 함께 살고 있으며, 세 명 중 한 명이 신체질환을 가지고 있다. 부모부양과 자녀교육 그리고 노후준비 소홀의 3중고(重苦) 에 시달리고 있다. 1955년부터 63년생까지의 인구집단을 베이비 붐 세대라고 부른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땅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의 은퇴가 한창 진행 중이다. 적어도 10년이면 은퇴가 마무리될 것이다. 한국이 60년간 압축 성장을 해왔다면, 이들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지나 산업화, 민주 화,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압축경 험을 했다. 2014년 대한민국은 내수 부진, 중국 의 부상과 일본의 재등장 등으로 인해 새로운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한 시대를 주도해온 베이 비붐 세대의 퇴장이,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박정 희 모델의 퇴장을 의미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베 이비붐 세대 중간에 해당하는 가상의 1960년생 김철수씨를 추적해 대한민국의 변화상을 조명 해보자. 1960년생 김철수는 열악한 농촌에서 태어나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가 함께 사는 대가족 틈에서 자랐다. 친구들과는 자치기, 구슬치기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7년 초등학교 입 학한 그의 반 학생수가 64.8명으로 콩나물 교실 이었고, 담임선생님은 대부분 남자 선생님이었 다. 1969년 중학교 무시험 입학 제도가 도입되 었고, 1974년 고교평준화로 인하여‘뺑뺑이’라 는 말이 생겨났다. 그는 소까지 팔아 등록금을 마련해주신 교육열 높은 부모님 덕분에 친구들 의 부러움을 받으며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1979년 남학생의 29.2%, 여학생의 20.7%가 대학에 진학했다. 현재의 80%에 비하면 그야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입학하던 1979년부터 10·26사태, 12·12사태, 5·18 광주민주화운 동 등 현대사를 거리와 캠퍼스에서 겪었고, 졸 업 무렵이던 1987년 6·10항쟁도 직접 겪었다. 번민하고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한편, 대학시절 천둥소리 33 베이비붐 세대의 어제와 오늘 이 제 상 前 영남일보 기자 / 現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소장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회원광장 Ⅵ
  • 34. 34 회원광장 잔디밭에 앉아 당시 유행하던 대학가요제 대상 곡인‘나 어떡해’와‘젊은 연인들’등을 부르며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셨다. 친구의 주선으로 미 팅을 하게 된 그는 빵집에서 만나 빵을 먹고 다 방에서 커피를 마신 후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 다. 1982년에는 최초의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 려고 야구장을 찾았다. 1980년대 후반 김철수씨에겐, 건설업 도소매 업 쪽으로 취직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제조업체 로 가는 친구들도 많았다. 향후 수출입도 증가 할 것 같다며 무역회사를 추천하는 선배도 있어 서 진로를 두고 고민했지만, 취직은 비교적 쉬 웠다. 그러나 취업한 여자 선배들은 출산·육아 로 인해 고민하다가 대부분 직장을 그만두었다.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1990년 만 서른이 되자, 집안에서는 결혼하라 고 성화였다. 후배들이 노총각·노처녀라고 불 렀다. 당시 남성의 평균 초혼연령이 27.8세. 여 성이 24.8세였다. 결혼한 김 씨는 딸과 아들, 2 명의 자녀를 두었다. 자신이 초등학교 다닐 때 는 주위에 4남매, 5남매인 친구들이 많았는데, 2명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1명만 낳은 친구도 꽤 있었다. 요즘 아파트에 살지만, 신혼집은 단 독주택에서 시작했다. 아파트가 낯설었다. 75.3%가 단독주택이고 아파트는 14.8%에 불과 했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이 주택200만호 건 설계획을 발표했는데,“그 때 어디 어디에 아파 트 한 채 마련해 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명절 때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 고향으로 내려갔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김철수씨도 회사를 옮기거나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 다. 서울대 노화고령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자신의 삶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IMF 외환위기를 꼽았다. 2000년대 들어 소득수준이 가장 높아졌지만, 소비지출이 늘었고 그중 교육비가 가장 많았다. 아이들 교육에 엄청 투자했다. 40대인 그는 무 엇보다 일이 우선이었지만, 주5일제의 확대로 여가활동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데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등산도 하고 술을 줄이는 등 건강에 관심이 부쩍 쓰였다. 뇌졸중으로 쓰 러진 동료나 암으로 치료받는 친구 소식이 들려 온다. 2010년대 들어 김철수씨는 앞으로 30년 이상 을 더 살아야 하는데, 직장에 다닐 수 있는 시간 은 올해 아니면 내년이 끝이다. 벌써 친구 반 이 상이 퇴직했다. 김철수씨의 재산 중 부동산 비중 이 80%이고, 그중 집이 절반 이상이다. 노후준 비라곤 국민연금 외에 별로 해놓은 게 없다. 앞으로 퇴직하면 더 일할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아직 살아계시는 부모님에게 용돈도 드려 야하고, 대학 졸업 후 변변치 못한 취직자리 못 구하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딸,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몇 번씩이나 떨어진 아들 녀석도 걱정이 다.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어떻 게 해야할 지 고민이다. 한국 경제도 김철수씨 자신처럼걱정이늘어가는것같아마음이무겁다. (통계청의 2012년‘베이버부머 및 에코세대의 인구·사회적 특성분석-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중심으로-’, 2010년 ‘통계로 본 베이비붐 세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과‘사회조사를 통해본 베이비붐세대의 특징’, 서울대학교 노화고 령사회연구소의‘베이비부머 연구 특집’등을 참고해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
  • 35.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현대 국가는 그 내용이나 정도에 차이가 있으나 모두 복지국가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경제발전과 보건의료의 발달로 인한 평균 수명의 연장, 자녀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보육 및 교육문제 등으로 출산율이 급격히 저하되어 인구구조의 급속한 고령화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변화에 따른 새로운 복지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장기 요양보장제도입니다. 즉, 노화 등에 따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 대하여 신체활동이나 일상가 사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주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회원광장 Ⅵ 천둥소리 35 김 영 애 안심성봉요양원 팀장 노인장기요양보험이란?
  • 36. 특히, 고령화의 진전과 함께 핵가족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증가하면서 종래 가족의 부담으로 인식되던 장기요양문제가 이제 더 이상 개인이나 가계의 부담으로 머물지 않고 이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책무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 환경의 변화와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이미 선진 각국에서는 사회보험방식 및 조 세방식으로 그 재원을 마련하여 장기요양보장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하여 노후의 건강증진 및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도록 함을 목적으로 시행하는 사회보험제도 입니다.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건강보험제도와는 별개의 제도로 도입·운영되고 있는 한편 으로, 제도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보험자 및 관리운영기관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일 원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고지원이 가미된 사회보험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수급대상자에는 65세 미만의 장애인이 제외되어 노인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건강보험제도와 별도 운영 장기요양보험제도를 건강보험제도와 분리 운영하는 경우 노인 등에 대한 요양필요성 부각이 비 교적 용이하여 새로운 제도 도입에 용이하며, 건강보험 재정에 구속되지 않아 장기요양급여 운영, 장기요양제도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국민건강보험법」과는 별도로「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제 정하였습니다. 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구 분 국 가 한국(+조세), 독일, 헝가리, 일본(+조세), 스위스(+조세), 미국(Medicare),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캐나다, 아일 랜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폴란드, 스페인, 스웨덴, 영국, 미국(Medicaid) 사회보험방식 조세방식
  • 37. ▨ 사회보험방식을 기본으로 한 국고지원 부가방식 우리나라 장기요양보장제도는 사회보험방식을 근간으로 일부는 공적부조방식을 가미한 형태로 설계·운영되고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건강보험가입자의 장기요양보험료 [건강보험료액 x 6.55%(2011년도 보험료 기준)] +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부담(장기요양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 + 공적부조의 적용을 받는 의료급여수급권자의 장기요양급여비용) ▨ 보험자 및 관리운영기관의 일원화 우리나라 장기요양보험제도는 이를 관리·운영할 기관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국민건강보험 법」에 의하여 설립된 기존의 국민건강보험공단을 관리·운영기관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도입과 정착을 원활하게하기 위하여 건강보험과 독립적인 형태로 설계하되, 그 운영에 있어서는 효율성 제고를 위하여 별도로 관리운영기관을 설치하지 않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를 함께 수행하도록 한 것입니다. ▨ 노인중심의 급여 우리나라 장기요양보험제도는 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65세 미만의 자로서 치매·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자 중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자를 그 수급대상자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65세 미만자의 노인성 질병이 없는 일반적인 장애인은 제외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장기요양보험의 가입자가 됩니다(법 제7조 제3항). 이는 건강보험의 적용에 서와 같이 법률상 가입이 강제되어 있습니다. 또한 공공부조의 영역에 속하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경우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의 가입자에서는 제외되지만,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으로 장기요양보험의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법 제12조). 장기요양보험 가입자 및 그 피부양자나 의료급여수급권자 누구나 장기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절차에 따라 장기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는 권리(수급권)가 부여되는데 이 를 장기요양인정이라고 합니다. 장기요양인정절차는 먼저 공단에 장기요양인정신청으로부터 출발하여 공단직원의 방문에 의한 인정조사와 등급판정위원회의 등급판정 그리고 장기요양인정서와 표준장기요양이용계획서의 작성 및 송부로 이루어집니다. 장기요양인정 신청자격 : 장기요양보험 가입자 및 그 피부양자 또는 의료급여수급권자 중 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65세 미만자로서 치매, 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자 천둥소리 37
  • 38.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소요되는 재원은 장기요양보험료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부담 그리고 장 기요양급여 이용자가 부담하는 본인 일부부담금으로 운영됩니다. * 장기요양보험 가입자는 건강보험 가입자와 동일하며, 장기요양보험료는 건강보험료액에 장기 요양보험료율을 곱하여(2011년도 보험료율 : 6.55%) 부과 징수합니다. 공단은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통합 징수하되 이를 구분하여 고지합니다. * 장기요양보험 가입가가 지역가입자인 경우 100% 본인이 부담하지만, 직장가입자인 경우 그 사용자와 국가·지방자치 단체·사립학교가 아래와 같이 부담합니다. - 근로자인 직장가입자와 그 사용자 : 각각 50% 분담 - 공무원·교직원인 직장가입자와 소속 국가·지방자치단체·사립학교 : 각각 50%분담(사립학교의 경우 당해 학교가 30%, 국가가 20% 분담) * 국가의 부담(법 제58조) - 국고 지원금 : 국가는 매년 예산의 범위 안에서 당해 연도 장기요양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00분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공단에 지원합니다. -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부담 :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의료급여수급권자에 대한 장기요양급 여비용, 의사소견서 발급비용, 방문간호지시서 발급비용 중 공 단이 부담해야 할 비용 및 관리운영비의 전액을 부담합니다. * 본인일부부담금(법 제40조) * 수급대상자가 실제 요양서비스를 받은 시점에서 장기요양기관에 본인일부부담금을 납부합니다. - 재가급여 : 당해 장기요양급여비용의 100분의 15 - 시설급여 : 당해 장기요양급여비용의 100분의 20 -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는 전액 면제 - 의료급여수급권자, 소득. 재산 등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일정금액 이하인 자 는 본인일부부담금을 50% 경감 기존 건강보험제도 및 노인복지서비스 체계와의 차이점은 국민건강보험은 질환의 진단, 입원 및 외래 치료, 재활 등을 목적으로 주로 병·의원 및 약국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급여대상으로 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39. 하는 반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이나 노인성질병 등으로 인하여 혼자의 힘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대상자에게 요양시설이나 재가기관을 통해 신체활동 또는 가사지원 등의 서비스 를 제공하는 제도입니다. 기존「노인복지법」상의 노인요양은 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특정 저소득층을 대상으 로 국가나 지방자치 단체가 공적부조방식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위주로 운영되어 왔으나,「노인장 기요양보험법」상 서비스는 소득에 관계없이 심신기능 상태를 고려한 요양필요도에 따라 장기요 양 인정을 받은 자에게 서비스가 제공되는 보다 보편적인 체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구 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와 기존 노인복지서비스체계 비교표> 관련법 서비스 대상 서비스 선택 제 원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보편적 제도 ·장기요양이 필요한 65세 이상 노인 및 치매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65세 미만자 ·수급자 및 부양가족의 선택에 의한 서비스 제공 ·기요양보험료+국가 및지방자치단체 부담+ 이용자 본인부담 ·노인복지법 ·특정대상 한정(선택적)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포함한 저소 득층 위주 ·지방자치단체장의 판단(공급자 위주)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부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기존 노인복지서비스 체계 천둥소리 39
  •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Ⅶ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상임대표 신동학)와 이 상화기념사업회(회장 박동준), 대구가톨릭대 안중근 연 구소(본회 이사, 소장 이경규)는 2014년 8월 27일 국채 보상운동기념관에서 독립지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살 리기 위해 상호 협력을 약속하는 협약식을 체결했다. 이번 상호협약 체결을 통해 앞으로 세 단체는 공동사업 을 다양하게 펼칠 계획이다. 대구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대구의 역사, 문학, 철학, 예술, 종교, 스포츠를 망라한 전 분야에 걸쳐 명망 있는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무료 시민학교인‘민립의숙’을 공동운영 했 으며, 매년 8월 15일에는 유네스코에 세계무형문화유산 으로 등재된 아리랑의 대동정신을 통해 민족혼을 불러 일으키고자한 대구아리랑축제를 (사)영남민요아리랑보 존회와 공동 주최하기로 했다. 14년 11월 5일 민립의숙 개강식에는 정태옥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 이동희 대구시의회 의장, 윤순영 중구청장, 오진영 대구지방보 훈청장이 축사를 하고 80여 명의 시민들이 강의에 참석 했으며, 민립의숙 강의는 14년 12월 24일까지 8회에 걸 쳐 진행되었다. 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보 제33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Ⅶ 2014년 11월 5일 오후 5시 국채보상운동기념 관에서 전택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前 사무총 장, 최용근 새마을운동중앙회 울산시지회 사무 처장, 김종건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원을 모 시고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와 대구시 관계자 20여 명이 참석하여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의 유 네스코 등재 가능성과 절차에 대해 논의하였다. 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2014년 10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진행된 인문주간 「근대걟 열린 인문학-인문학, 세상의 벽을 허물다」행사에 협력기관으로 참여하여 27일 개막식, 2일 폐막식이 국채 보상운동기념관에서 열렸다. 인문주간이 끝난 뒤에도‘시 민과 함께하는 근대 대구 인문여행’인문강좌가 매월 마지 막 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2015년 8월 26일 까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진행된다. 자세한 내용은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inmuncitydg)에 서 확인할 수 있다.
  • 43. 11월 8일 기념사업회 회원 및 시민 100여 명과 고령으로 시민문화탐방을 떠나 고령의 주요명소를 방문하였다. 대가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대가야박 물관, 국내 최초로 순장무 덤을 복원한 왕릉전시관, 가야시대 최대의 고분군 인 지산동고분군, 악성우 륵에 대하여 전시된 우륵박물관, 역사 깊은 전통마을 개실마을, 숲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산 림녹화기념숲을 둘러보며 고령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천둥소리 43 2014년 11월 7일 만화가 이현세 작가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관람하고 국채보상운동정신을 표현한 만화 방명록을 작성했다. 이현세 작가는 1978년 만화 <저 강은 알고 있다>로 데뷔했으며 대표작으로는 <공포의 외인구단><아마게돈> 등이 있다.
  • 44. 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사)대구사진비엔날레조직위 원회, (사)대한어머니회대구연 합회, (재)대구여성가족재단, 50사단 501여단, 경북고등학교 독도328, 국제시민교육원, 대구 중구 시니어클럽, 대구경북소 비자연맹, 대구경북연구원, 대 구광역시 여성청소년가족과, 대구문화관광해설사, 대구청소 년성문화센터,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메세지팩토리,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양천 구립 신월청소년문화센터, 인권 통합교육 직무연수, 청구고등 학교, 청년연합, 청춘 빛, 통합 건강증진사업, 패트롤맘 대구 지부 (사)대한어머니회대구연합회, (사)어린이도서연구회경 북지부, 50사단 501여단, 감천초등학교, 경화여자고등 학교, 계명대학교, 계성유치원, 공무원교육원, 구미석적 고등학교, 남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 다문화가족지원 센터협회, 대구 동방대학 40기, 대구가창초등학교, 대구 경북소비자연맹, 대구경북연구원, 대구공업고등학교, 대구관천초등학교, 대구광역시 보건정책과, 대구대서초 등학교, 대구동도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 터, 대구수창초등학교, 대구시청 공무원, 대구일중학교 지역문학가탐구반 동아리, 대구 중구 시니어클럽, 대구 청소년성문화센터, 대구태전초등학교, 대구팔달초등학 교, 대전광역시 청소년활동진흥센터, 동본리중학교, 동 천4, 매일신문사, 매천고등학교, 매천중학교, 반디, 시 설관리공단, 영남공업고등학교, 운암중학교, 울산청소 년활동진흥센터, 월서중학교, 지역아동센터대구지원단 (초록우산), 진천초등학교, 참좋은유치원, 창원대학교 사학과, 청구고등학교, 청춘 빛, 하늘숲유치원
  • 45. 천둥소리 45 (사)어린이도서연구회 대구지회, 10월항쟁유족회, 강북고등학교, 강북초등학교, 거창 샛별초등 학교,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북대학교 한국사, 경북여자상업고등학교, 경산금락초등학교 4학년, 구남보건고등학교, 능인고등학교, 달성고등학교, 달성군청소년센터, 대구 봉무초등학교, 대구 중 구 시니어클럽, 대구경북소비자연맹, 대구고등학교, 대구광역시 도시재생과, 대구광역시 토지정보과, 대구내당초등학교, 대구동부고등학교, 대구문성초등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이 버대학교 휴먼케어대학원 아트스토리 미술심리상담연구소, 대구사회연구소, 대구여성가족재단, 대 구여성의전화, 대구옥산초등학교, 대구외국어고등학교, 대구율하초등학교 4학년, 대구화랑협회, 대서중학교, 대전한남교육사랑,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운영과, 동본리중학교, 메시지팩토리, 반디, 비둘기어린이집, 시지중학교, 신기중학교, 신녕초등학교, 양산여자고등학교, 어린이 청소년 도서 관 더불어 숲, 역사를 꿈꾸다, 역사를 직시하는 한일시민교류회, 오성중학교, 인제대학교 시각디자 인학부, 재단법인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중구청, 즐거운 유치원, 지묘초등학교 4학년, 청구고등학 교 청구신문동아리, 청춘 빛, 칠곡 강북초등학교, 판뉴스 대구경북협동조합, 한남교육사랑, 현풍중 학교, 호산고등학교 ※ 단체 관람 문의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053)745-6753 (사)대구여성단체협의회, (사)대구여성회, (재)아름다운가게 대구경북본부, 501여단, 경동초등학교, 경북 문경 호계초등학교,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골목투어 팸투어, 공군 K2부대, 공무원교육원, 남부초등학교, 노전초등학교, 대구 남명초등학교, 대구 동도중학교, 대구 성동초등학교, 대구광역 시 도시계획과, 대구광역시 복지정책관실, 대구광역시 자치행정과, 대구남산초등학교 책쓰기 동아 리,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시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학생문화선도 기업 반디, 덕산중학교, 덕화중학교, 맑고푸른대구21 추진협의회, 반여도서관, 부산 동삼중학교, 사 대부속고등학교, 성광중학교, 시민고(나라사랑), 신기중학교, 신성초등학교, 아트스토리 미술심리 상담연구소, 울산 파랑지역아동센터, 이상화기념사업회, 장애인주간보호센터, 전국청년성서모임, 제2작전 사령부, ㈜참인재교육, 초록나라유치원, 충남 신나라역사학원, 칠곡중학교 3학년, 커뮤니 티와 경제, 학산중학교, 한국자영업성장포럼, YMCA
  • 46. 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 해가 마무리 되면서도 겨울호가 늦어지게 되어 편집부로서는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 니다. 독자님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아울러 천둥소리를 애독해주시고 지도편달해주신 애독자 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호에는 청년들의 힘찬 희망의 글을 읽을 수 있어 반가웠고, 전 회장님의 주옥같은 일본 강연원고를 수록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위원장 엄창옥 이제까지 천둥소리를 이끌어온 원동력은 편찬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의 천둥소리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뜨거운 열정이었습니다. 2015년에도 그 고뇌와 열정을 오롯이 담아낸 천둥소리가 될 수 있도록 편집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편집위원 남정원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청양의 해가 왔다고 모두가 푸르고 바르고 살자고 외칩니다. 천둥소리도 그대로 그 자리에서 그 역할을 나누기를 바래봅니다. 나눔과 책임, 그 정신을 지역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아울러 여러 나라를 보담아 볼 수 있었 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위원 우웅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