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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 억원의 신화창조
        김정현 파코메리 지점장의 성공스토리


                       목차

 영업 입문·연고 판매의 한계·동행 판매·홀로서기·컨설턴트·일의 재미·목표·가족




반짝반짝 빛이 나는 다이아몬드의 반사광은 정교하게 깎여 다듬어진 무수한 절단면 덕분
이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빛과 마주하면 절단면을 통해 눈이 부시게 광채를 뽐낸다.
마치 다이아몬드 속에 머금은 빛이 퍼져나오는 것만 같다. 만약, 다이아몬드의 외면이 수
많은 각과 절단면으로 깎이지 않았다면 그러한 영롱함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성공이란 보석도 다이아몬드와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보석으로 재가공
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세공의 노력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진다. 수많은 부침과 노력을
견디며 훈련되어 다이아몬드의 절단면과 같은 성공의 노하우를 하나하나 완성해갔을 때
비로소 하나의 보석으로 만들어진다. 그것이 빛을 반사하며 모두의 선망으로 드러나게 되
면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 부른다.

나에게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오랜 '깎임'의 과정이었다. 자신의 절단면과 각을
이뤄가는 노력 끝에 스스로 성공을 이뤄냈고, 그것은 3억 연봉의 결실로 이어졌다.

나는 성공을 세공하는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재미'였다고 강조하고 싶다. 화장품 영업에
뛰어들어 처음으로 일하는 기쁨을 배웠고, 이것은 인생의 재미를 만들어줬다. 일과 인생
에서 재미를 찾자 돈은 저절로 따라왔다. 돈을 좇지 않아도 실적은 올랐고 나만의 성공
보석은 해마다 캐럿수를 더해가며 더욱 많은 절단면을 완성하고 빛을 발휘했다. 절단면을
하나하나 완성하는 과정은 고통보다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말하고 싶다. 성공의 보석을 혼자만이 아닌 자신과 같은 수많은 평범한
여성과 나누고 싶다. 세상에 더욱 많은 보석을 만들어내고 싶다고 말이다.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1
영업 입문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된 교사의 길. 나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정해진 운명처럼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안정된 직장 생활이었고 큰 기복 없이 한 해 한 해
경력을 쌓아갔으며 나도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러나 10여 년의 반복되는 교사생활은 나에
게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어제와 같고 그제와 같은 수업 시간이 답답하게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춘기 때도 멀쩡하더니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돋아나기 시작한
여드름으로 30대가 훌쩍 넘은 나이까지 고생하고 있던 나였다. 나에게 누군가 한 회사의
마사지 기구와 화장품을 사용해보라는 권유를 해왔다. 피부 트러블로 오랜 시간 고생해왔
던 터라 모르는 화장품이 없고 안 해본 민간요법이 없었지만, 속는 셈 치고 사보자며 나
는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고가의 미용기기를 구매했다.

그날부터 매일같이 그 미용기기를 사용해 피부 관리에 들어갔다. 평생 고쳐지지 않았는데
이번이라고 특별히 효과가 있을까 하며 반신반의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무지 희망이 없었던 피부에 조금씩 개선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붉게
올라와 있던 여드름이 사라지고, 지속해서 관리하자 여드름 자국도 완화되면서 몰라보게
피부가 달라져 갔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부터 그녀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
드름에 가려 있던 미모가 드러나고, 인상이 한층 밝아지니 자신감도 더욱 생겨났다.

나는 달라진 피부를 보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사용하던 화장
품과 마사지 기구를 칭찬하며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좋은 경험을 다른 사람도 함께
나누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자 나의 피부 고생을 알던 사
람들은 한결같이 크게 놀라워하며 호의를 보내왔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정현 씨! 확 달라졌네!"

"이렇게 좋은 제품이 있어? 어디 제품인데?"

사람들의 반응을 볼수록 더욱 신이 났다. 학교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도 어느덧 사라졌다.
자신에게 화장품을 권했던 영업사원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직접 경험자로서 이 제품을 사람들에게 권하면 판매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평생 영업사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장품
영업은 나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주변에선 너도나도 그녀처럼 피부가 달라졌으
면 좋겠다며 나에게 제품을 소개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화장품과 마사지 기
기의 구매를 희망하는 주변 지인들만 순식간에 스무 명이나 줄을 섰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한 번 직접 나서보자! 나처럼 피부 트러블로 고생하는 여
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분 좋은 일이 될 거야!"

화장품 영업의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2
연고 판매의 한계

영업사원으로 새 출발을 시작하자마자 나처럼 피부 개선을 열렬히 희망하는 지인 21명을
타깃으로 1차 영업을 하기로 했다. 출근 첫날, 나는 과감히 21대의 마사지 기기를 팔겠다
고 나섰다. 이미 확보한 21명의 지인에게 무조건 제품을 보내고, 확신에 찬 영업에 나섰
다. 다소 무모한 영업이었지만, 변화를 직접 경험한 산증인이 있는데 누구도 거절하지 않
으리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지인을 통한 연고 판매는 언젠가 바닥이 나기 마련. 출근
첫날 연고 판매를 모두 해버렸으니 더는 시도해볼 연고지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회생활이
라곤 교사생활이 전부였던 나에게 발 넓은 인맥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동행판매

과연 두 번째 판매는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안고 있던 나에게 당시 지점
장님은 색다른 제안을 했다. 선배 영업사원들이 영업활동에 나갈 때 함께 나가보라는 제
안이었다. 지점장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는 없었지만, 경험이 없는 나에게 선배들의 영업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지켜본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동행 판
매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선배들은 나와 동행을 하면 판매율이 높다면서 서로 함께 나
가기를 희망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만의 영업은 할 새 없이 매번 새로운 선배
와 짝이 되어 나갈 만큼 동행 전문 영업사원이 될 정도였다.

또, 동행 판매에 다녀온 다음 날이 되면 지점장은 사원들 앞에서 어제의 경험을 설명해보
라는 주문을 했다. 영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판매가 성사되면 그 상황과 비결이 무엇이
었는지, 정리해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교사 출신이었던 나이기에 사람들 앞에 서서 설명
하는 일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더구나 신출내기였던 내가 다양한 선배들의 사례를 경
험하고, 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매번 사례마다 복습하고 정리 요약을 해야 했기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기 시작하자 나는 수첩에 그날그날의 일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선배마다 가지고 있는 영업 노하우와 장점,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것은 무엇이
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정리해갔다. 이것이 한 장 한 장 쌓이기 시작하
자 나에게는 그 어떤 교과서보다도 큰 배움책이 되었다. 수년이 걸쳐야 겨우 쌓을 수 있
는 정보와 지식이 고스란히 몇 달 사이에 나의 것이 되었던 셈이다.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3
홀로서기

석 달간의 동행 판매를 마치고 드디어 나만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선배들과 함께했던
시간 덕분에 낯선 곳에 들어서 낯선 사람들과 말문을 트거나 제품을 설명하는 일에 큰 어
려움은 없었다. 아무리 높은 문턱도 나만의 서글서글한 인상과 싹싹한 화법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시골 마을 아낙들이 모여 있는 마을회관으로 마사지 기기를 들고 찾아가
서 무료 서비스를 하며 제품을 설명했고, 가가호호 방문도 서슴지 않았다. 나에게 일념은
'이 제품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가 아니라 '이 제품을 사용하도록 해서 나처럼 좋은 효과
를 보도록 돕고 싶다!'라는 생각뿐이었다. 서글서글한 성격과 사람 좋아하는 장점 덕분에
초보였던 나에게도 시장 개척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시장 어귀를 지나는데 그곳의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
다. 얼굴에 물사마귀가 가득해서 한눈에 봐도 무척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라 짐작
이 되는 분이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주머니, 다른 뜻은 없고요, 지나가다가 아주머니께 마사지해 드리면 참 좋겠다는 생각
이 들어서 왔어요. 물건 사시라는 게 아니라, 이 마사지 한번 받아보면 얼굴의 느낌이 훨
씬 나아지실 거예요."

아주머니는 나의 제안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시장어귀에 앉아서 숱한
화장품 판매사원들로부터 영업 대상이 되어왔던 터였다.

"아휴, 됐수. 내 피부는 내가 잘 알지. 이거 마사지한다고 어떻게 안 돼. 괜히 힘 빼지 말
고 저리 가슈. 장사만 방해된다니까!"

아주머니는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다.

"아니에요. 제가 물건 팔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어차피 제가 가진 기계, 놀리는 것도 아
깝고 아주머니 뵈니까 제 생각이 나서 그래요. 저도 피부 트러블로 엄청 고생했거든요.
그런데 이 마자지를 꾸준히 받으면서 이렇게 달라졌다니까요. 저 한 번 보세요. 아주머니
도 이렇게 변하실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물건 사란 소리 하지 않을 테니까 한번 받아보
세요. 그냥 아주머니도 좋아지실 수 있는데, 그걸 모르신다는 게 제가 안타까워서 그래
요."

긴 설득에도 아주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다음날도 찾아가고 또 그 다
음 날도 찾아가 마사지만이라도 받아보라며 설득했다. 밝은 성격 덕에 옆에 앉아서 말동
무를 하며 친해지기에 나섰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못 이기는 척 마사지를 받겠다고 태도
를 바꿨다.

그날부터 빠뜨리지 않고 아주머니의 가게에 들러 마사지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저 나처럼
좋은 경험을 주고 싶다는 일념이었다. 그런데 변화는 아주머니의 피부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마사지와 함께 서서히 물사마귀가 사라지고, 피부 트러블이 가라앉는 경험을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4
하면서 아주머니는 나에 대한 태도부터 호의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성화에 못 이겨 마
사지 한 번 받아보는 것이 아니라 은인을 만난 듯 나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다. 평생 고민
이던 피부 고민이 사라졌으니 그럴 만도 한 터였다.

"아유, 고마워요. 김정현 씨. 그동안 애써줘서. 내가 이거 구입하고, 사람들도 소개해줄게.
정말 고마워요."

그날로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나의 열성 고객으로 돌변했다. 아주머니에게 물건을 팔겠다
는 얄팍한 수에서 시작한 일도 아니었지만, 나의 진심이 전해졌고 이것은 아주머니 외에
도 더욱 많은 고객을 확보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나의 진정한 첫 고객이었다!




컨설턴트

생선가게 아주머니와 진정한 첫 영업이 시작된 후, 나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
었다. 비로 영업사원이지만 '마사지 기기를 한 대 팔면 수당이 얼마, 화장품 한 개를 팔면
남는 게 얼마'라는 식의 얄팍한 계산으로 영업에 나서면 결국 강매로 이어지기 십상이고,
판매는 더더욱 난관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판매보다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리고 그 부분에 대한 솔루션을 함께 찾는 컨설턴트나 해결사로서 접
근하게 되면 그들은 제품 구매는 물론 더욱 많은 고객을 연결하는 든든한 홍보전도사가
되었다. 그렇게 고객과 신뢰관계가 성립되면 영업은 저절로 이뤄졌다.

안면이 없는 고객을 만나는 일에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고객들에게 '미처 몰랐던
좋은 것을 알린다'라는 기쁨으로 다가서면 고객들의 마음도 쉽게 열렸다. 진심은 통한다
는 말처럼,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의심하던 사람들도 달라졌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인맥이 쌓이고, 그들과 접촉하며 쌓인 경험들 역시 그날그날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겨두었
다.

경험이 머릿속에만 남고 기억 저편에서 사라진다면 노하우로 성숙하기는 어려운 법. 하지
만, 일기를 기록하듯 저장해둔 그날의 메모들은 어디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고급 정보로
쌓여갔다. 한번 인연을 맺은 고객을 꾸준히 관리하고 관계를 유지하는데도 매우 큰 힘이
되었다. 그러자 나는 더이상 화장품 영업사원이 아니라 고객들의 피부관리를 책임지는 컨
설턴트로서 위상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재구매율이 늘어나고, 인생상담까지 함께 나누는
이웃사촌에서 가족처럼 인맥도 늘어났다.




일의 재미

화장품 영업은 교사생활 10여 년 동안 느껴보지 못한 재미가 있었다. 강한 성취감과 사람
들과 접하면서 배우게 되는 새로운 세계는 나에게 도전에 대한 의욕을 불러주었다. 아침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5
이면 그 어렵던 출근길도 신이 났고, 퇴근시간이 다가오는 줄도 모른 채 일에 빠져 지냈
다. 내가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하루하루 나는 삶의 의
미를 찾아갔고 생기를 더해갔다. 자연히 실적은 올라갔고, 수입도 늘어났다.

진급도 빠르게 하면서 어느새 후배 사원들의 멘토가 되는 관리급 사원으로 성장해갔다.
이제 나도 단순히 판매를 많이 하는, 고객과 현장에서 접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만 몰
두하는 평범한 영업사원이 아니라 제대로 된 영업사원을 길러 내는 관리자의 역량이 필요
해지는 시기가 되었다.

이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자신감이 없던 초짜 영업사원들이 자신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자신감을 찾고 능력을 개발해 빛이 나는 영업사원으로 변신해가는 모습은 무엇보다
큰 보람이었다. 보람은 보람으로, 신명은 신명으로 마치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펼쳐주었다.




목표

'나의 목표는 바로 박형미 회장님처럼 되는 것, 박형미 회장님처럼 사는 것이다'

나는 누가 물어도 이렇게 대답할 만큼 자신의 인생 롤 모델을 파코메리 박형미 회장을 꼽
는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장품 영업을 시작한 곳에서 박형미 회장의 활약을 생생히 지켜봤
으며 평범하기만 했던 한 여성이 부회장의 자리에 오르는 신화를 배웠기 때문이다. 더욱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욱 많은 조직원을 키우고, 전국에서 제일가는 영업조직을 키우는
식의 목표 설정과 달성은 박형미 회장을 보며 키운 꿈들이었다.

그런 꿈이 있기에 나는 2006년, 박형미 회장이 창업에 나섰을 때 과감히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서울행을 결심했다. 파코메리 서울본점의 지점장을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섰다. 이미 고향인 해남지점에서 현상유지만 해도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었던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미련 없이 파코메리 행을 결정했다. 방문판매업에 대한 그릇된 인
식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창업한 박형미 회장의 선택을 믿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미 포
화상태인 화장품 시장에 또 하나의 화장품 회사가 진출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시도인
가? 하지만, 나는 박형미 회장이라는 인생 롤 모델을 믿었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파코메리에서 새롭게 둥지를 튼 뒤 나는 오히려 더욱 큰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벽돌 하
나하나 쌓는 정성으로 조직원을 키우고, 제품의 인지도를 넓혀가며 시장을 다졌다. 전국
에 지점이 40여 개로 늘어가는 동안 서울 본점의 실적은 거의 1위를 달릴 정도다. 1위의
유지, 오늘보다 내일의 매출이 더욱 좋고, 오늘보다 내일의 조직원 능력이 더욱 향상되는
'일신우 일신'의 발전을 이어간다.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6
이러한 노력은 어김없이 나에게 값진 결실로 돌아왔다. 전국 최우수 지점을 일궈내는 성
과에서 본사 전무이사로의 승진, 연봉 3억 원에 달하는 고수입의 달성 등, 사람들이 그저
부러워하는 영업사원으로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가족

나를 지금까지 오게 한 일등 공신은 누구일까? 나는 한치도 망설이지 않고 아이들과 남편,
바로 나의 가족이라고 말한다.

화장품 영업을 시작하던 때, 겨우 초등학생이던 두 아들은 이제 군대를 마치고 누구보다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바쁜 엄마를 둔 탓에 늘 부족함이 많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바쁜 엄마에게서 열정을 배우고 자신감을 배우며 엄마를 지켰다. 천직이 교사인 남편은
바쁜 아내에 대해 단 한 번도 불만을 내색한 적이 없었으며 늘 지지를 보내주었다.

이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뛰었다. 당당히
자신의 일로써 경제력을 갖고, 자신감을 갖고, 세상에 이름도 날리는 엄마. 두 아들에게
나는 이미 자랑스러운 엄마다. 고수입을 올리는 돈 많은 엄마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뒤처
지지 않으며 제 역할을 해내는 비즈니스 우먼으로서의 엄마. 아들들이 보내는 존경이 내
가 일을 하는 이유가 되고,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나에게 가족은 그녀의 다양한 성공 보
석을 더욱 환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빛이 된다. 그리고 나의 성공은 또 다른 여성의 꿈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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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 1. 연봉 3 억원의 신화창조 김정현 파코메리 지점장의 성공스토리 목차 영업 입문·연고 판매의 한계·동행 판매·홀로서기·컨설턴트·일의 재미·목표·가족 반짝반짝 빛이 나는 다이아몬드의 반사광은 정교하게 깎여 다듬어진 무수한 절단면 덕분 이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빛과 마주하면 절단면을 통해 눈이 부시게 광채를 뽐낸다. 마치 다이아몬드 속에 머금은 빛이 퍼져나오는 것만 같다. 만약, 다이아몬드의 외면이 수 많은 각과 절단면으로 깎이지 않았다면 그러한 영롱함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성공이란 보석도 다이아몬드와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보석으로 재가공 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세공의 노력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진다. 수많은 부침과 노력을 견디며 훈련되어 다이아몬드의 절단면과 같은 성공의 노하우를 하나하나 완성해갔을 때 비로소 하나의 보석으로 만들어진다. 그것이 빛을 반사하며 모두의 선망으로 드러나게 되 면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 부른다. 나에게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오랜 '깎임'의 과정이었다. 자신의 절단면과 각을 이뤄가는 노력 끝에 스스로 성공을 이뤄냈고, 그것은 3억 연봉의 결실로 이어졌다. 나는 성공을 세공하는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재미'였다고 강조하고 싶다. 화장품 영업에 뛰어들어 처음으로 일하는 기쁨을 배웠고, 이것은 인생의 재미를 만들어줬다. 일과 인생 에서 재미를 찾자 돈은 저절로 따라왔다. 돈을 좇지 않아도 실적은 올랐고 나만의 성공 보석은 해마다 캐럿수를 더해가며 더욱 많은 절단면을 완성하고 빛을 발휘했다. 절단면을 하나하나 완성하는 과정은 고통보다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말하고 싶다. 성공의 보석을 혼자만이 아닌 자신과 같은 수많은 평범한 여성과 나누고 싶다. 세상에 더욱 많은 보석을 만들어내고 싶다고 말이다.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1
  • 2. 영업 입문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된 교사의 길. 나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정해진 운명처럼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안정된 직장 생활이었고 큰 기복 없이 한 해 한 해 경력을 쌓아갔으며 나도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러나 10여 년의 반복되는 교사생활은 나에 게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어제와 같고 그제와 같은 수업 시간이 답답하게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춘기 때도 멀쩡하더니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돋아나기 시작한 여드름으로 30대가 훌쩍 넘은 나이까지 고생하고 있던 나였다. 나에게 누군가 한 회사의 마사지 기구와 화장품을 사용해보라는 권유를 해왔다. 피부 트러블로 오랜 시간 고생해왔 던 터라 모르는 화장품이 없고 안 해본 민간요법이 없었지만, 속는 셈 치고 사보자며 나 는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고가의 미용기기를 구매했다. 그날부터 매일같이 그 미용기기를 사용해 피부 관리에 들어갔다. 평생 고쳐지지 않았는데 이번이라고 특별히 효과가 있을까 하며 반신반의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무지 희망이 없었던 피부에 조금씩 개선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붉게 올라와 있던 여드름이 사라지고, 지속해서 관리하자 여드름 자국도 완화되면서 몰라보게 피부가 달라져 갔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부터 그녀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 드름에 가려 있던 미모가 드러나고, 인상이 한층 밝아지니 자신감도 더욱 생겨났다. 나는 달라진 피부를 보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사용하던 화장 품과 마사지 기구를 칭찬하며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좋은 경험을 다른 사람도 함께 나누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자 나의 피부 고생을 알던 사 람들은 한결같이 크게 놀라워하며 호의를 보내왔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정현 씨! 확 달라졌네!" "이렇게 좋은 제품이 있어? 어디 제품인데?" 사람들의 반응을 볼수록 더욱 신이 났다. 학교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도 어느덧 사라졌다. 자신에게 화장품을 권했던 영업사원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직접 경험자로서 이 제품을 사람들에게 권하면 판매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평생 영업사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장품 영업은 나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주변에선 너도나도 그녀처럼 피부가 달라졌으 면 좋겠다며 나에게 제품을 소개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화장품과 마사지 기 기의 구매를 희망하는 주변 지인들만 순식간에 스무 명이나 줄을 섰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한 번 직접 나서보자! 나처럼 피부 트러블로 고생하는 여 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분 좋은 일이 될 거야!" 화장품 영업의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2
  • 3. 연고 판매의 한계 영업사원으로 새 출발을 시작하자마자 나처럼 피부 개선을 열렬히 희망하는 지인 21명을 타깃으로 1차 영업을 하기로 했다. 출근 첫날, 나는 과감히 21대의 마사지 기기를 팔겠다 고 나섰다. 이미 확보한 21명의 지인에게 무조건 제품을 보내고, 확신에 찬 영업에 나섰 다. 다소 무모한 영업이었지만, 변화를 직접 경험한 산증인이 있는데 누구도 거절하지 않 으리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지인을 통한 연고 판매는 언젠가 바닥이 나기 마련. 출근 첫날 연고 판매를 모두 해버렸으니 더는 시도해볼 연고지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회생활이 라곤 교사생활이 전부였던 나에게 발 넓은 인맥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동행판매 과연 두 번째 판매는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안고 있던 나에게 당시 지점 장님은 색다른 제안을 했다. 선배 영업사원들이 영업활동에 나갈 때 함께 나가보라는 제 안이었다. 지점장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는 없었지만, 경험이 없는 나에게 선배들의 영업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지켜본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동행 판 매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선배들은 나와 동행을 하면 판매율이 높다면서 서로 함께 나 가기를 희망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만의 영업은 할 새 없이 매번 새로운 선배 와 짝이 되어 나갈 만큼 동행 전문 영업사원이 될 정도였다. 또, 동행 판매에 다녀온 다음 날이 되면 지점장은 사원들 앞에서 어제의 경험을 설명해보 라는 주문을 했다. 영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판매가 성사되면 그 상황과 비결이 무엇이 었는지, 정리해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교사 출신이었던 나이기에 사람들 앞에 서서 설명 하는 일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더구나 신출내기였던 내가 다양한 선배들의 사례를 경 험하고, 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매번 사례마다 복습하고 정리 요약을 해야 했기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기 시작하자 나는 수첩에 그날그날의 일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선배마다 가지고 있는 영업 노하우와 장점,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것은 무엇이 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정리해갔다. 이것이 한 장 한 장 쌓이기 시작하 자 나에게는 그 어떤 교과서보다도 큰 배움책이 되었다. 수년이 걸쳐야 겨우 쌓을 수 있 는 정보와 지식이 고스란히 몇 달 사이에 나의 것이 되었던 셈이다.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3
  • 4. 홀로서기 석 달간의 동행 판매를 마치고 드디어 나만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선배들과 함께했던 시간 덕분에 낯선 곳에 들어서 낯선 사람들과 말문을 트거나 제품을 설명하는 일에 큰 어 려움은 없었다. 아무리 높은 문턱도 나만의 서글서글한 인상과 싹싹한 화법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시골 마을 아낙들이 모여 있는 마을회관으로 마사지 기기를 들고 찾아가 서 무료 서비스를 하며 제품을 설명했고, 가가호호 방문도 서슴지 않았다. 나에게 일념은 '이 제품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가 아니라 '이 제품을 사용하도록 해서 나처럼 좋은 효과 를 보도록 돕고 싶다!'라는 생각뿐이었다. 서글서글한 성격과 사람 좋아하는 장점 덕분에 초보였던 나에게도 시장 개척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시장 어귀를 지나는데 그곳의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 다. 얼굴에 물사마귀가 가득해서 한눈에 봐도 무척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라 짐작 이 되는 분이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주머니, 다른 뜻은 없고요, 지나가다가 아주머니께 마사지해 드리면 참 좋겠다는 생각 이 들어서 왔어요. 물건 사시라는 게 아니라, 이 마사지 한번 받아보면 얼굴의 느낌이 훨 씬 나아지실 거예요." 아주머니는 나의 제안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시장어귀에 앉아서 숱한 화장품 판매사원들로부터 영업 대상이 되어왔던 터였다. "아휴, 됐수. 내 피부는 내가 잘 알지. 이거 마사지한다고 어떻게 안 돼. 괜히 힘 빼지 말 고 저리 가슈. 장사만 방해된다니까!" 아주머니는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다. "아니에요. 제가 물건 팔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어차피 제가 가진 기계, 놀리는 것도 아 깝고 아주머니 뵈니까 제 생각이 나서 그래요. 저도 피부 트러블로 엄청 고생했거든요. 그런데 이 마자지를 꾸준히 받으면서 이렇게 달라졌다니까요. 저 한 번 보세요. 아주머니 도 이렇게 변하실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물건 사란 소리 하지 않을 테니까 한번 받아보 세요. 그냥 아주머니도 좋아지실 수 있는데, 그걸 모르신다는 게 제가 안타까워서 그래 요." 긴 설득에도 아주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다음날도 찾아가고 또 그 다 음 날도 찾아가 마사지만이라도 받아보라며 설득했다. 밝은 성격 덕에 옆에 앉아서 말동 무를 하며 친해지기에 나섰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못 이기는 척 마사지를 받겠다고 태도 를 바꿨다. 그날부터 빠뜨리지 않고 아주머니의 가게에 들러 마사지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저 나처럼 좋은 경험을 주고 싶다는 일념이었다. 그런데 변화는 아주머니의 피부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마사지와 함께 서서히 물사마귀가 사라지고, 피부 트러블이 가라앉는 경험을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4
  • 5. 하면서 아주머니는 나에 대한 태도부터 호의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성화에 못 이겨 마 사지 한 번 받아보는 것이 아니라 은인을 만난 듯 나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다. 평생 고민 이던 피부 고민이 사라졌으니 그럴 만도 한 터였다. "아유, 고마워요. 김정현 씨. 그동안 애써줘서. 내가 이거 구입하고, 사람들도 소개해줄게. 정말 고마워요." 그날로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나의 열성 고객으로 돌변했다. 아주머니에게 물건을 팔겠다 는 얄팍한 수에서 시작한 일도 아니었지만, 나의 진심이 전해졌고 이것은 아주머니 외에 도 더욱 많은 고객을 확보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나의 진정한 첫 고객이었다! 컨설턴트 생선가게 아주머니와 진정한 첫 영업이 시작된 후, 나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 었다. 비로 영업사원이지만 '마사지 기기를 한 대 팔면 수당이 얼마, 화장품 한 개를 팔면 남는 게 얼마'라는 식의 얄팍한 계산으로 영업에 나서면 결국 강매로 이어지기 십상이고, 판매는 더더욱 난관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판매보다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리고 그 부분에 대한 솔루션을 함께 찾는 컨설턴트나 해결사로서 접 근하게 되면 그들은 제품 구매는 물론 더욱 많은 고객을 연결하는 든든한 홍보전도사가 되었다. 그렇게 고객과 신뢰관계가 성립되면 영업은 저절로 이뤄졌다. 안면이 없는 고객을 만나는 일에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고객들에게 '미처 몰랐던 좋은 것을 알린다'라는 기쁨으로 다가서면 고객들의 마음도 쉽게 열렸다. 진심은 통한다 는 말처럼,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의심하던 사람들도 달라졌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인맥이 쌓이고, 그들과 접촉하며 쌓인 경험들 역시 그날그날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겨두었 다. 경험이 머릿속에만 남고 기억 저편에서 사라진다면 노하우로 성숙하기는 어려운 법. 하지 만, 일기를 기록하듯 저장해둔 그날의 메모들은 어디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고급 정보로 쌓여갔다. 한번 인연을 맺은 고객을 꾸준히 관리하고 관계를 유지하는데도 매우 큰 힘이 되었다. 그러자 나는 더이상 화장품 영업사원이 아니라 고객들의 피부관리를 책임지는 컨 설턴트로서 위상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재구매율이 늘어나고, 인생상담까지 함께 나누는 이웃사촌에서 가족처럼 인맥도 늘어났다. 일의 재미 화장품 영업은 교사생활 10여 년 동안 느껴보지 못한 재미가 있었다. 강한 성취감과 사람 들과 접하면서 배우게 되는 새로운 세계는 나에게 도전에 대한 의욕을 불러주었다. 아침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5
  • 6. 이면 그 어렵던 출근길도 신이 났고, 퇴근시간이 다가오는 줄도 모른 채 일에 빠져 지냈 다. 내가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하루하루 나는 삶의 의 미를 찾아갔고 생기를 더해갔다. 자연히 실적은 올라갔고, 수입도 늘어났다. 진급도 빠르게 하면서 어느새 후배 사원들의 멘토가 되는 관리급 사원으로 성장해갔다. 이제 나도 단순히 판매를 많이 하는, 고객과 현장에서 접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만 몰 두하는 평범한 영업사원이 아니라 제대로 된 영업사원을 길러 내는 관리자의 역량이 필요 해지는 시기가 되었다. 이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자신감이 없던 초짜 영업사원들이 자신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자신감을 찾고 능력을 개발해 빛이 나는 영업사원으로 변신해가는 모습은 무엇보다 큰 보람이었다. 보람은 보람으로, 신명은 신명으로 마치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펼쳐주었다. 목표 '나의 목표는 바로 박형미 회장님처럼 되는 것, 박형미 회장님처럼 사는 것이다' 나는 누가 물어도 이렇게 대답할 만큼 자신의 인생 롤 모델을 파코메리 박형미 회장을 꼽 는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장품 영업을 시작한 곳에서 박형미 회장의 활약을 생생히 지켜봤 으며 평범하기만 했던 한 여성이 부회장의 자리에 오르는 신화를 배웠기 때문이다. 더욱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욱 많은 조직원을 키우고, 전국에서 제일가는 영업조직을 키우는 식의 목표 설정과 달성은 박형미 회장을 보며 키운 꿈들이었다. 그런 꿈이 있기에 나는 2006년, 박형미 회장이 창업에 나섰을 때 과감히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서울행을 결심했다. 파코메리 서울본점의 지점장을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섰다. 이미 고향인 해남지점에서 현상유지만 해도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었던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미련 없이 파코메리 행을 결정했다. 방문판매업에 대한 그릇된 인 식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창업한 박형미 회장의 선택을 믿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미 포 화상태인 화장품 시장에 또 하나의 화장품 회사가 진출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시도인 가? 하지만, 나는 박형미 회장이라는 인생 롤 모델을 믿었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파코메리에서 새롭게 둥지를 튼 뒤 나는 오히려 더욱 큰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벽돌 하 나하나 쌓는 정성으로 조직원을 키우고, 제품의 인지도를 넓혀가며 시장을 다졌다. 전국 에 지점이 40여 개로 늘어가는 동안 서울 본점의 실적은 거의 1위를 달릴 정도다. 1위의 유지, 오늘보다 내일의 매출이 더욱 좋고, 오늘보다 내일의 조직원 능력이 더욱 향상되는 '일신우 일신'의 발전을 이어간다.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6
  • 7. 이러한 노력은 어김없이 나에게 값진 결실로 돌아왔다. 전국 최우수 지점을 일궈내는 성 과에서 본사 전무이사로의 승진, 연봉 3억 원에 달하는 고수입의 달성 등, 사람들이 그저 부러워하는 영업사원으로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가족 나를 지금까지 오게 한 일등 공신은 누구일까? 나는 한치도 망설이지 않고 아이들과 남편, 바로 나의 가족이라고 말한다. 화장품 영업을 시작하던 때, 겨우 초등학생이던 두 아들은 이제 군대를 마치고 누구보다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바쁜 엄마를 둔 탓에 늘 부족함이 많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바쁜 엄마에게서 열정을 배우고 자신감을 배우며 엄마를 지켰다. 천직이 교사인 남편은 바쁜 아내에 대해 단 한 번도 불만을 내색한 적이 없었으며 늘 지지를 보내주었다. 이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뛰었다. 당당히 자신의 일로써 경제력을 갖고, 자신감을 갖고, 세상에 이름도 날리는 엄마. 두 아들에게 나는 이미 자랑스러운 엄마다. 고수입을 올리는 돈 많은 엄마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뒤처 지지 않으며 제 역할을 해내는 비즈니스 우먼으로서의 엄마. 아들들이 보내는 존경이 내 가 일을 하는 이유가 되고,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나에게 가족은 그녀의 다양한 성공 보 석을 더욱 환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빛이 된다. 그리고 나의 성공은 또 다른 여성의 꿈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성공사례 · 연봉 3억원의 신화창조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