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014.12.25 07:24위기는 몰입을 몰입은 해방을 만든다 _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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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어느 화창한 가을날 그는 그렇게 암 선고를 받았다. 그는 병원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리고 그가
믿던 모든 것에 대한 원망감에 세상을 증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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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07년 고등학교 입학식 이었을까요. 그 때 당시 고등학교 입학은 소위 ‘뺑뺑이’라고 불리는 제도에 의
해 정해졌어요. 그나마 울산 안에서 괜찮다는 학교들에 지원했죠. 그런데 집이 멀다는 이유로 보기 좋게
떨어졌어요. 그리고는 동네에 있는 평범한, 아니 평범하지 않은(물론 안 좋은 쪽으로^^;)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래도 저는 초등, 중학생 때만 해도 나름 학교와 학원에서 선생님들께 인정받는 학생이었어요. 학원 현수
막에도 이름을 몇 번 올리기도 했고, 선생님들께도 칭찬을 참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내가 원하지 않는 고
등학교에 입학을 하니 마음이 삐뚤어지더군요. 동네 안에서도 그 학교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면 약간 쪽팔
리기도 했고 말이죠. 주변에서는 학교는 가까운 곳으로 다니는 것이 최고라고 말하며 저를 위로했지만 그
말들은 저를 위로할 수 없었어요.
결국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탱자탱자 놀게 되었어요. 성적은 곤두박질 쳤고, 부모님과의 갈등도 깊어졌어
요. 보통 놀면 마음이 편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때 당시에는 놀 때에도 어느 순간에도 제 스스로 많이
불안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과의 갈등이 심해지고, 내 성적도 곤두박질 치고, 내 꿈이 뭔지도 모르겠고…
여러 문제가 저의 발목을 잡았어요. 그냥 생각 없이 신나게 놀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제 마음은
더욱더 불편해졌어요. 그렇게 세상에 반항심이 늘어가던 그 학생은 학생으로서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던
담배에 손을 대기 시작했어요.
처음 담배를 입에 댔을 때, ‘이걸 왜 피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앞섰습니다. 주변에서 얘기했던 짜릿
짜릿함, 뭔가 뻥! 뚫리는 느낌을 저는 느낄 수 없었어요. 그냥 기침만 계속 나왔어요. 소위 ‘입담배’라는
것을 했죠. 그래도 뭔가 내 입에서 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게 마치 범죄영화에 나오는 멋있는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었어요. 빗대자면 신세계의 황정민, 이정재 같은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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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한 담배가 점점 저를 옭아매더군요. 그 전까지는 연기를 마시지 않는 입담배
만 하다가, 점점 제대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어요. 폐 안에 뭔가가 채워지고 온 몸이 짜릿한 느낌을 받
았어요. 그리고는 곧 담배에 중독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대충 책가방 챙기고 학교 들어가기 전에 골
목길에서 한 대 피우고, 점심시간에 점심 먹고 요 앞 문방구를 다녀온다는 핑계로 또 몰래 숨어서 한 대
피우고, 중간 중간에 학교 화장실에서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면서 한 대 피우고. 거의 하루에 적게는 반 갑
에서 많게는 한 갑 가까이 피웠던 것 같아요. 친구들 나눠주기도 하고 하면서 말이죠.
언제나 저렇게 성공적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던 것은 아니었어요. 담배를 오래 피우면 이가 누렇게 되
고 입과 손가락에서 악취가 나요. 저는 PC방에 다녀와서 냄새가 나는 것이라고 거짓말 했습니다. 처음에
는 믿어주시는 분위기였어요. 근데 한 두 달이 지나더니 점점 저를 의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성적도 점
점 떨어지고, 학교는 분명히 10시에 마치는데 더 늦게 들어오는 날이 대부분이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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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런데 어떤 방법을 써 봐도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감출 수가 없더라구요. 부모님께서 저를 의심하시기 시
작하셔서 어느 날은 제 몰래 가방과 교복 구석구석을 뒤지셨나 봐요. 무방비로 있었던 저는 걸릴 수밖에
없었죠. 저는 그날 아버지께 아주 묵사발이 되도록 맞았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유도선수 셨어요.
한창이었던 이십 대 중반 허리 부상을 당하시면서 유도의 꿈을 접게 되셨지만 그래도 저희 아버지는 웬만
한 성인 남성보다 손이 두 배로 두꺼우시고 힘도 장사 이십니다. 아버지께 호되게 혼나고 저는 펑펑 울었
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다짐했지요.
그런데 담배를 끊는 다는 것이 생각만으로는 끊기가 쉽지가 않더군요. 아버지께 호되게 혼난 다음 날 저는
주변 친구들에게 담배를 끊게 되었다고 말하고 담배를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금단
현상이 강하게 찾아왔습니다. 뭔가 허전하고 공허한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온몸이 가렵고, 종종 가슴에 통
증이 오기도 했어요. 그리고 늘 무기력하고 피곤해져 있었습니다. 막 미칠 것 같았어요. 수업을 듣다가도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몇 십 번씩 하고는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PC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금단현상을 잊기 위해 열심히 게임을 했어요. 게임에
집중하다가 친구들이 한 대 피우러 나가길래 저도 그냥 같이 따라 나갔습니다. 그때 따라 나간 것이 잘못
이었습니다. 저는 뭔가에 홀린 것 마냥 담배에 손이 갔어요. 결국 금연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담배 연기
한 모금을 빨아들이는 순간 모든 에너지를 얻은 느낌이었어요. 생기가 내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세
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렇게 담배를 끊을 수가 없었어요. 그 이후에도
몇 번 걸려서 혼나고, 다시 며칠 금연하다가 다시 또 담배에 손대게 되고 그런 생활을 계속 반복하게 됐어
요. 부모님과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2008년의 어느 가을.. 문제는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그런데 모
든 건강 검진이 끝나고 진료 결과에 대해서 듣는데 저보고 잠깐 진료실에서 나가있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
니겠습니까. 의사선생님과 부모님의 표정이 심각해 보였어요. 저는 그 때 까지 제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별 거 아니겠지'라고 생각하고 의사선생님의 말을 따랐습니다. 한 10분이나 지났을까요. 저를
조용히 진료실로 부르시더군요. 그리고 의사선생님께서는 충격적인 결과를 저에게 전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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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훈아. 이런 소식을 전하게 돼서 정말 미안하다. 폐암이야. 그래도 지금은 초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
고 선생님만 믿고 진료 받으면 치료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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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저는 그 말을 들은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CT촬영 결과를 저에게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시는데
청천벽력과 같았어요. 마치 드라마의 비운의 여주인공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폐암이 초기라고는 하
지만 고등학교 2학년의 청춘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잔인한 통보였어요.
저는 그 소식을 들은 후 더 심하게 방황했어요. 수업도 몇 일씩 결석하고, 공부도 잠시 손에서 놓았습니
다. 그 때가 또 한창 가을이어서 떨어지는 낙엽이 더 저의 맘을 아프게 했어요. 그리고 막 주변을 원망했
습니다. ‘내가 죽게 되면 부모님은 어떡하지?’, ‘내가 죽게 되면 나를 위해 슬퍼해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혼자 방에서 막 울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물론 그 계기로 담배는 확
실히 끊게 됐어요. 가족들을 위해서 꼭 나아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거든요. 담배도 안 피고 약도 꼬박꼬박
먹고 진료도 열심히 받으러 갔어요. 점차 몸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여전히 금단현상은 저를
괴롭혔지만, 점차 좋아지고 있다는 말과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들은 저를 담배에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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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2009년 설날. 오랜만에 친가에 내려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3이었지만 막내
손자여서 많은 이쁨을 받고 있었어요. 그래서 명절을 참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 즐거운 하루
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습니다. 할머니 댁은 깊은 시골에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가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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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가고 있는데 부엌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게 아니겠어요?
‘동훈이가 그래도 이렇게 담배를 끊게 돼서 다행 이예요. 그 때 한참 동훈이가 혼자 심각해져서 집에 있
는데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심했나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안 했으면 담
배를 못 끊었을 거에요.’
저는 그 말을 듣고 혼란스러웠습니다. ‘뭐가 너무 심했다는 거지?’, ‘담배를 끊게 하기 위해서 폐암이
라고 거짓말을 하신 건가?’ 머리를 열심히 굴렸는데, 답은 한 가지로 나오더군요. ‘폐암은 거짓말이다’
그 결론이 나오자마자 저는 가족들이 너무 원망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집에서
혼자 막 울기도 했고, 울면서 부모님께 정말 죄송하다고 용서를 빌기도 했고 그 모든 순간들을 떠올리니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어요. ‘아무리 담배를 끊게 하
기 위해서라도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라고 말이죠. 물론 그 이후에 가족들이랑 이야기 하면서 잘 풀
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니 제가 먹었던 약들은 비타민이었고, 진료는 그냥 대충 비슷하게 쇼 했다고 하
시더라구요^^;;
이 글을 쓰다 보니 중독과 몰입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중독은 빠져 나오기가 어려운 것, 몰입
은 빠져들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담배는 빠져 나오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폐암
이라는 위기가 저를 가족 간의 사랑에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담배의 중독으로부터 빠져 나
올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위기는 몰입을 만들고 몰입은 중독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합니다. 여러분들
의 위기는 무엇인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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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다 살아나신 서동훈님. 나경나사 오프모임에서 해주신 이야기를 글로 읽으니까 또 새롭네요.
폐암선고가 자신을 담배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내려는 가족의 계략 이라는걸 알았을 때는 멘붕 이셨겠지만, 건강하게
살아계셔서 다행이예요^ ^ '감정과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그룹을 운영하면서 매주 목요일 오프모임도 열고 계시다니
관심있는 분들 참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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