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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개인 Mass individual"

                    - 버추얼(virtual)이 리얼리티(reality)를 압도하다.




                    1. SNS가 답을 줄 수 없다.

                    정보채널이 늘어나거나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대안처럼
                    말하는 미디어들이 쏟아진다. 마치 개인의 접근권이 열려있으니 언제든 접
미디어라피스트 김탕
                    속하여 통계 안으로 진입하라는 말처럼 들려서 불편하다. 생각해 보자 처리
보편성의 함정을 경계하고       해야 할 정보가 늘어나면 그에 따른 정보해독에 따르는 집중력이 분산되는
다수결을 혐오하며,          것이 당연하기에 한 개인이 균형을 찾는 일이란 쉽지 않다. 그 덕분에 다수
주류사회가
                    의 의견이나 말잘하는 논객따위의 화려한 언어유희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대부분을
신뢰하지 않는다.           -속아 넘어가기 쉽다는 것 뿐이지 특정 누군가가 속이려 든다거나 개인의 판
덕분에 무뎌지지 않는         단력이 약화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
세상살이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 메일이 이동전화 문자메시지처럼 실시간으로 들어온다면...? 편리함을
                      넘어선 처리할 정보의 양이 늘어났다는 것. 속도와 편의성을 무기로 찾아
                      온 이동통신의 혁신적 변화에 그리 좋아만 해선 당하기 쉽다. 지금 당장
                      해 주세요...라는 요구가 늘어난다는 것을 행복에 겨워 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곳에서 온라인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라는 광고카피 따위는, 당신이 언제든 일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또는 당
                      신의 정보로 부터 소외되는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인간에겐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조절할 자율성도 가지고 있
                    다. (또는 가지고 있다고 믿거나 전제하고 싶다) 정보를 가진 자가 승자가
                    되는 사회에 사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가. 서양인들은 예로부터 생각하는 모
                    든 것은 표현 가능할 것이라는 억지스런 관념을 명제화 한 듯 하다. 대부분
                    의 수사학과 언어학의 기초는 그렇게 완성되었다고 본다. 그냥 무시할 법도
                    한데 두손 곱게 모아 학자를 신봉하고 학설을 떠받드는 사람의 수가 워낙 많
                    으니 개인이 무시한다고 무시될 수 있는 건 분명 아니다 싶다. 몰라도 되거
                    나, 몰라야 하는 정보가 나에게 와서 비효율성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 스
                    트레스의 정도를 안다. 히끼꼬모리 신드롬이 정보화되자 게임하는 내 아이
                    가 의심된다거나 장난이 심한 아이는 ADHD라고 그냥 낙인찍곤 하는 것. 이
                    것이 정보의 양과 무관할까? 상담의뢰했던 인터넷중독 청소년의 대부분은
                    "내 자녀 인터넷중독이란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부)모의 망상 또는 의심"신
                    도롬이라고 말하면 너무 큰 과장이 될까? 싸이월드에서 의사소통을 하던 사
                    람들은 싸이월드 사용자가 아닌 사람들이 정보에서 어떻게 소외되는지 관심
                    없다. 이건 싸이월드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 정보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다.
관계의 질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걸 눈치 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폰을
들고 있으면서 정작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없고 마치 공적인
업무가 우선인양 태도를 보인다면 "의사소통을 위한 매체가 의사소통을 방
해하는"꼴이다. 온라인에서 의사소통의 대안으로 포장된 트위터등 SNS는
교류와 소통이 사라진 정치와 특정인물의 욕망이 드러나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SNS에서 “social”이 지향하고 있는 신념과 확신이 빠진 것에 문제
의식이 별로 생기지 않거나, 무리한 사회적 요구로 느껴지지 않는 순간 사람
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싸이월드에 몰려들것이 분명하다. 이보다 더 중요
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집에서 나오면서 만나는 동네사람과 인사하셨는지요?"

"친구의 현재 고민을 함께 하고 계신지요?"

"문자메시지와 실시간 메일을 확인하면서 형제자매와의 통화는 늘어나고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정이슈가 모이고 집
단행동을 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하기 급급하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트위터에 모이고 파워블로거의 논점을 따라 다녀야 하는 것 이외에 실천할
수 있는 "무엇"이 남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2. 집단과 개인의 발상

건강한 개인이 건강한 발상으로 건강한 기획을 하려 한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전문성을 획득하기 위해 우
리는 집단의 힘을 빌려 쓴다. 이미 제출된 자료를 참고하고 선행연구를 검토
한다. 커리큘럼이나 매뉴얼을 뒤지고 각종 사례가 내용을 지배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목표가 명분을 따라가고 있거나 개인의 존재방식에 대한 존
중이 프로그래밍되어 희생될 때 결국 그 어떤 성과도 대상자에게는 의미없
이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전문기획자의 강의를 듣거나 지역사회의 훌륭한 사례를 의심을 해본 적 없
는가? 우수한 기획자들의 모임에서 나온 기획은 반드시 훌륭할까? 결국 자
기 전문성에 대한 성찰적 과제이며, 우리가 만나야 할 대상과 소통하고 있는
가에 대한 분석과 다르지 않았으면 한다.

"로마교황청에서는 성인(saint)을 선정할 때 의도적으로 ‘악마의 대변인
(Devil's advocate)’이라는 제도를 두었다고 전해진다. 추천이 될 정도라
면 이미 교회 내에서 검증된 위인이기에 재목이 아니라고 트집을 잡는 다는
것은 힘이 들었으며, 교회내의 입지도 문제가 되었다. 그 완충작용이 ‘악마
의 대변인’이라는 제도였다.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과 추천인들은 그가 왜 성
인이 되어야 하는가를 말하는 동안, 비숍중의 한 사람은 ‘악마의 대변인’이
되어 그가 성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전문성은 특정분야의
현장에서 훈련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결국 어떤 가치를 만들었는가를 검

   2
증받는 대다수의 방법은 돈으로 치환되거나 사회적 지위로 알 수 있다는 것
이 안타깝긴 하다"



* 생각해볼 문제

- 건강하다는 것의 기준을 무엇에 두는가

- 우리사회에서 내가 표현하거나 구현하려는 것의 가장 근본적인 믿음은 무
엇인가



3. 커뮤니티의 평상을 상상한다.

강의 끝에 질문에 "청소년이 된 우리아이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어려워
요" "방문을 꼭 닫고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 저와 말하는 것이 싫은
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면 나는 대답대신 먼저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
질문을 던진다.

"혹시 거실에 소파는 TV를 향해 배치되어 있진 않은가요?"

많은 가정에서 온 가족이 모여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은 거실이다. 그런 거실
에서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공간을 디자인 해놓고, 자녀와 대화가 사라
지고 있다고 한숨 쉬는 것.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 얼
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공간을 연출하는 것에는 너무
도 인색하다. 물론 아이들이 성장에서 흔히 말하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자기
세계가 생긴것에도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와 더불어 어떤 환경이나 조
건이 없는 상황에서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다소 무모하기까지 하다는 생
각을 지울 수 없다. 들어줄 수 있는 구조와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말하
는 것은 참 어려운 것이다.

우리 문화 안에서 집단의사소통이 일어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수없이 반복
되는 오류와 ‘사유방식의 소비적 반복’을 목격할 수 있다. 어제 회의에서 충
분히 이야기하고 결론을 내렸건만 다시 만나서 확인하면 간혹 전혀 다른 결
론을 말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같은 시-공간안에서 이야기를 나누
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우리는 이런 오류가 생기는 것
을 단순히 화자의 ‘말하기 방법’이나 ‘화술을 펼치는 태도’에서 그 해결방법
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상호작용이란 것이 의사소통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청자의 ‘듣는 방법’이나 ‘경청’과 무관하지 않다
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생
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내용을 어떻게 잘 전달하고 잘 전달 받을 수 있게 하
는가 하는 구체적 내용에 대한 문제라는 것에 초점을 두어보자.

표현에는 구체적인 단어나 문장의 조합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와 적극
적으로 듣는 행위가 포함된다. 능동적 경청자에게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


   3
은 "잘 전달하여 말걸기"보다 더 중요한 "스스로 말하게 하기"가 들어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즉, 의사소통의 환경이 문제라는 발
                             상이 필요하다. 의사소통의 내용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여도 ‘의사소
                             통의 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능
                             할리 없다. 소통이 시도되는 타이밍
                             은 항상 어떤 환경에 놓여져 있는가
                             와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문화
                             가 평상이다. 근대 이후 교육이나 정
                             보가 공공영역으로 급격히 팽창되어
                             가정과 지역사회의 기능이 분명히
                             약화되었다. 하지만 항상 마을입구
에는 느티나무가 서 있다. 느티나무는 그저 한그루의 식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 시작되는 진입에 대한 상징이다. 사람들은 느티나무 밑에서
마을로 들어가기전 잠시 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작을 알리는 곳이기에
몸이 그렇게 반응한다. 그곳에는 거의 평상이 있었다. 비를 피하기도 하고,
잠시 누굴 기다리기도 한다. 긴 시간을 걸음에 피곤한 다리를 쉴 수도 있다.
이것이 그 기능의 전부가 아니었다. 평상은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
에 어떻게 앉게 되는가에 따라 인원구성이 다양하다. 둘러앉거나 마주볼 수
있지만 등을 대고 사적인 공간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평상에 앉은
사람들은 자연스럽다. 그렇게 평상에 앉으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 청취반응reaction / feedback)

- 의사소통을위한공간space)

- 상호작용을위한위치positioning)

- 핵심과맥락을놓치고있지않은가context)

- 질문을놓치고있지않은가questions)



4. 미디어문화와 진화

미디어는 의사소통(communication)의 수단이라는 표현에 가장 들어맞는
다. 메시지를 전달 하고자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사용
하는 통로이며 수단이다. 인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간단한 소리와 상
징적인 그림 그리고 언어로 대표되는 다양한 기호들 을 발전시켜왔고 현재
는 더욱 다양해 졌다. 농경,유목사회에서 의사소통의 핵심은 듣는 것에 있었
다.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정보(지 식,지혜)는 어른(경험자)들로부터 전수
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보고 듣는 것이 중요한 방 법이었으므로 이 시기

    4
에 유능한 교사는 얼마나 잘 알아 듣도록 효과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가에
의해 결정되었다. 지역사회는 축제나 시장에서 정보를 주고 받았으며 이때
역시 말로 하는 언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마을은 마치 한 몸처럼 상부상조함
으로써 살아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청각과 감성을 발달시켰다. 15세기 구
텐베르그는 인쇄술을 발명함으로써 의사소통의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꾸었
다. 이 제 지식이나 정보는 책에 실려서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
되었다. 문맹자는 그 가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갖추었다 해도 가르치는 사람
(교사,지도자)이 될 수 없다. 교육의 장소는 가정에서 학교로 교사는 부모나
어른에서 먼저 지식을 습득한 지식인에게로 넘어갔 다. 아이들은 가정을 떠
나 집단으로 학교에 보내졌다. 전통적인 이념이나 사상보다 새로운 지식에
매료되었다. 문자를 보고 이해하기 위해 시각과 사고력이 요구되었다. 책에
씌어진 지식은 가장 강력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전기의 발명은 곧이어 라
디오와 TV를 일상에서 사용하게 했으며 공장을 움직이게 하고 대량생산된
물건들은 팔릴 곳을 찾아 시장전쟁을 불가피하게 했으며 전파는 모든 나라
와 부 족과 국가의 이념적인 담을 무너트렸다. 사람들은 마을 축제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전자문화시대의 대표적 매체는 컴 퓨터로 인간의 두뇌를 모방하고 있으며
컴퓨터의 망은 마치 신경조직처럼 뻗어나가고 있다. 전자문화시대는 의사소
통을 위해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사용하도록 한다. 인쇄문화시대에 기능을
축소시켰던 청각은 전자문화시대에 중요한 기능으로 부활하고 있다. 뉴미디
어시대의 문화는 인터넷과 멀티미디어의 시대로서 고도로 발달된 연결망을
구축하고, 그 중심에 컴퓨 터가 자리하고 전기(자)는 인간을 통제하는 실질
적인 힘이 된다.

시인은 세상을 느끼는 감각이 법관과는 다르게 발달되어 있다. 그런데 법관
이   를 쓴다면 우리는 그에게 어떤 수식어를 쓸까? 반대로 시인이던 사람이
법조인이되어 재판정에 들어선 다면 사람들은 그의 논리에 어떤 꼬리를 달
까? 21세기를 특징짓는 단어들 중에 감성과 여성성이 포함되어 있다. 오랜
세월동안 지배해왔던 논리의 시대에 마치 향기처럼 혹은 약물처럼 감성이
번져오고 있다. 몇 백년 문자우위의 긴 시대 속에서 휴면하고 있던 소리와
이미지들에 대한 감각이 하루가 다르게 잠에서 깨어 나고 있다. 인터넷을 열
면 그 안에 넘실대는 다양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만날 수 있으며 간 단히 한
번 클릭하면 그 세계로 넘어간다.

점차 미디어는 자체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메시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40여년전에 맥루한은 미디어를 수단이상이라고 주장했으며 이제 우리
는 그 한가운데 와 있다. 휴대폰에 찍히는 문자 메시지는 읽히기 전에 이미
수신자를 진동시킨다. 연애감정에 빠진 이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다 "그 사람"이기에 더 의미 있다. 이러한 사회현상이 가능
해진 것은 전기의 힘이다. 전자 혹은 전기 에너지로 불리는 이 새로 운 힘은
선형으로 해석하고 풀이되던 것들을 모자이크처럼 동시에 파편적으로 가능
하게 해 주었다. 대중매체가 가능해진 것이다. 대중매체(mass media)는
청중의 양적 규모를 말 한다기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그것에 관여하고
참가한다는 의미가 더 적절하다. 마치 월드컵 경기를 실시간으로 참여하고
    5
전쟁을 생중계로 보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것이 대중매체의 본 모습이다.
따라서 대중매체를 교육한다고 하는 것은 흐르는 강물에서 한 바가지 퍼 올
려 "이것이 여기 이 강물이다"라고 할 수 없듯이 시공간의 의식이 선형적,
연속적이 아님에 도 반복해서 나열하는 것과 같다. 전기에너지는 순간에 상
황을 증폭하고 확장하고 통일시킨 다. 따라서 인간의 오감과 직관까지 동원
해 순간에 마주치는 본능적이 행동이 요구된다. 잘 만들어진 광고처럼 한 컷
에 모든 것을 담고자 한다. 순차적인 사고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혼란과 멀미를 느끼게 된다. 가장 훌륭한 미디어는 인간임을 이해한다는 것
은 통찰과 체험으로 가능하다. 대중스타나 스포츠맨들 만의 이야기가 아니
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보다 그가 "그 사람"이므로
중요하다. 이것은 그의 지식에 부여하는 권위가 아니라 그가 총체적으로 내
보이는 인격에 부여하는 권위인 것이다. 누구나 권위있는 사람을 원한다. 그
것은 내가 도달하고자하는 미래이며 닮고자하는 얼굴이기에 그렇다. 인격적
인 사람에게서 배어나오는 분위기와 향기는 멀리서 바라보아도 추종자들을
열광케한다. 역사를 통해서나 현시대에도 그런 지도자들을 볼 수 있다.

몸은 하나의 조직이다. 그러므로 상호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제 기능이 발
휘된다. 이것은 네트워크를 인식한다. 네트워크에 필요한 것은 구조와 정기
적인 교환과 자원의 유입이다. 맥루한은 전기와 정보의 시대에 인간의 중추
신경 조직처럼 강력한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이것은 인간의 뇌에서 하나로
통일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디지털을 포함한 새로운 문화는 보편으로 가는
길이다. 어떤 곳에서 시작하든지 학문이 깊어지고 성찰이 반복 되어가면 한
지점에 서 만나게 된다. 그곳에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들어온 전문가들이 상
호 영역의 핵심이 서로 일맥상통 함을 체험하게 된다. 종파도 문화도 인종도
사라지는 경이로움을 체험 하게되고 그 곳에 인격체가 있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이 모든 메시지의 출발점이었음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몸은
이분법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는 어떤 물질이 아니라 인격체를 말한 다. 디지
털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학교는 건물이 아니다. 초기 인류처럼 배움의 장
이 움직이고 있다. 배움의 기회 는 학교나 제도에서 보다 인터넷에서 텔레비
전에서 혹은 영화에서 그리고 친밀한 사람들을 통해서 충족될 수 있다. 그럼
에도 우리는 제도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개인의 생각에서부터
인류의 미래설계까지 드러내 보이는 현대 미디어는 송신자와 수신자의 한계
도 사라지고 메시지는 무한히 복제, 증폭된다. 그 흐름에서 우리는 혼란스럽
고 정체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러므로 투명한 자신과의 만남은 현실
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 되고있다. 각자 어떤
방법으로 정체성을 찾을것인가? 해체되었던 공동체가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다시 조성되고 친밀한 사람들의 이끌림과 공감 그리고 나눔이 더욱 요구되
고 있으며 어느 시기보다 영적인 지도자를 찾아 나서고 있다.

4-1 어떤 활동가의 쪽지

최근 워크숍을 마친 후 어떤 사회단체의 활동가가 페이스북 쪽지를 보내왔
다. 디지털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 중 다양한 실험을 소개했다. 실
험은 실험뿐이라고 발문과 동영상 자료를 보여주었다. 노트북 컴퓨터와 무
선인터넷을 학교에 두었을 때 디지털네이티브 또는 디지털키드라고 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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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한 자료와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
활동가는 종이가 사라진다는 것이 많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끔찍한 상황이
라고 묘사했으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종이사
용을 줄이는 것은 사회운동 또는 활동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에코이슈로 작
용할 법도 한데 불편함을 호소하며 쪽지를 쓴 것이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
해할 수 있었기에 답변을 충실하게 보내려고 애썼다. 질문의 원문과 몇 차례
의 쪽지교환이었는데 그 전문을 공개하는 것 보다. 답변을 공개하는 것이 나
을 것 같다.

"그 실험은 그냥 실험일 뿐인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단지 제가
그날 보여드린 건 종이를 없앤다고 상상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종이 없
는 실험을 했을 경우에...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정도에요. 그런 기술력 따위가 미래일리 없죠"

" 노트북 팔려고 기획한건 아닌것 같긴 해요. (뭐 사람 속은 모르긴 하지만
요...) 하지만 저는 끔찍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이미 제 주변에서는 거의 인
쇄한 종이가 대부분 사라졌거든요. 말씀 드렸다시피...제 한 한기 수업에서
인쇄하는 종이는 유일하게 출석부 한장과 최종 성적표에 싸인한 원본 뿐이
고, 최근 참여하고 있는 각종 사업에서도 회의자료가 인쇄된 적은 없어요.
오히려 인쇄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 더 맞는 말 같긴 하네요."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등장했을 당시도 구어를 인쇄한다는 것을 받아들이
기 힘들었다는거. 한 시대(era의 개념 같은...)를 넘어서는건 문화적 충격이
나 진통이 있어요. 지금 우리손에서 1)핸드폰 사용이 금지 되거나 2)누구
하나가 핸드폰을 쓰지 않는다면...1-1)일상생활의 시간개념이 뒤틀리거나
2-1)당사자보다 주변사람이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연출되겠지요. 즉, 문화
가 시간을 거슬러 뒤로 가진 못하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매체
가 등장하고 난 뒤 그 문화적 충격파를 견디는 것 보다는 이미 상상 가능한
실험을 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제가 말씀드린대로, 그들의 성
적이 향상되는 것은 별로 의미 없구요. 아마 그 동영상에서 그런 나레이션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소비자 입맛을 맞추기 위한 진부한 방송작가의 말입니
다. 디지털키드에게 디지털기기가 주어질 때 어떤 반응이 생길까의 문제랄
까요. 변화는 교실에 갇혀 있지 않은 10대의 모습이라는 거에요. 어떤 측면
에서 보면...책에서 모니터로 교체되는 상황인데...충격일 것도 없거든요.
교실에서 책을 놓고...모여 앉아 있어야만 수업이 되는 상황에서 교실 밖으
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거나 특정 시간으로 부터 자유로와 졌다는 것 만으로
도 실험은 유의미해 보여요....
 선생님이 말씀 하시는 의도는 제가 충분히 파악했는데요. 만약 지금의 설명
으로도 부족하셔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건 정서(또는 감정이요. 끔찍
한...^^;;; 이란 표현이 생기는 건 감정이나 정서니까요)적인 문제인것 같은
데요. 문자와 기록을 반대한 사람. 지식이 인쇄되는 것을 반대한 사람. 신문
과 라디오를 반대한 사람. 컴퓨팅 기술을 반대하는 사람...이 당연히 있습니
다. 그것도 아주 거센 저항의 역사를 가져요. 문화의 변화에 따라 "헉 종이가
없는 삶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라고 다가올 수도 있어요. 더구나 종이
를 대체한 매체로 의사소통하고 성장한 세대가 있다면...옛날에는 시험문제
를 종이에 냈었다더군...왜 그랬을까....? 라는 의문이 당연시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모든 올드미디어가 사라지느냐...당연히 안그렇죠. 문화
   7
와 역사의 변화는 수직 또는 계단식의 진화가 아니라 나선형구조를 가지는
반복과 시행착오를 통한 재구조화를 기초로 변하니까요.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느리고 천천히 가는 자기 삶의 방식이란건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봐요.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속도나 방
법에 대한 선택의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그런것이라면...그냥
모른척 하시고...멀리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사는
데 지장이 없더라구요....-.-;;"

이외에도 몇 차례의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좀 더 쿨하게, 내가 필요해서
사용한다면 좋겠지만, 굳이 불편하고 여럽다면 매체 없이도 잘 살 수 있다.
도태된다고 느끼다면 그 역시 “필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도태를 규정한
것은 결국 자신과 자신이 속한 환경속에서 결정되지 않는가. 따지고 보면 도
태가 아닌 경우도 많다. 누구는 편하게 사는데 나는 이게 뭔가..라고 느낀다
면 의문이 생긴다. 편한게 좋을까? 불편한것이 즐겁고 더 인간다운 경험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스스로 불편함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즐기는 것이 과
연 불편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말이다. 핸드폰이 편리한 의사소통을 만들어
냈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나 가족이 함께 있을 때 핸드폰은 의사소통을 턱!!!
턱!!! 차단하는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즉, 불통을 만들어 낸것
이다. 편리는 우리가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
SNS 가 폭발적인 인기다. 페이스북은 현재 5억명에 가까운 사용자수를 자
랑하고 소셜 플러그인으로 개인화된 각종 정보의 선두주자다. 트위터는
140자의 단문으로 간결하게 각종 이슈를 실어나르며 발빠르게 정보접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다양한 사회적 연결망? 사람과 사람이 디지털과 온
라인으로 만난다면서 손바닥안에 들어오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내 자신
이 참 가엾어 보이는 경험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그 보다는 이웃과
먼저 인사하고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건강을 묻는게 먼저다.


5. Mass individual

우리는 단순히 생물개체의 물리적 분리를 근거로 개인라고 표현하지 않는
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은 단순히 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개인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개입되는 다양한 변수가 있다. 대한민국
의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싶거나 존재하고
싶다는 의지와 상관없이 탄생과 동시에 개인에게 영향을 준다. 개인이란 홀
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독립적 문화나 개별 집단의 특성이 무마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과 특정집단
의 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인류의 역사와 *문화적 원형의 토대위에 형성된
다. 그렇게 형성된 개인과 특정집단의 문화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별개로 우
리를 구속하기도 하지만, 그 구속으로부터 일탈하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문
화적 충돌이 새로운 문화를 생성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그리 놀라운
경험도 아니다. 개인의 경험영역이 확대되고, 학습에 근거를 둔 이성적 판단
기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개인과 집단 또는 개인의 문화와 집단의 문화에
대한 자기관찰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경험의 양"보다는 어떤 경험을 했
는가 하는 "경험의 질"이 중요하겠지만, 보편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우리
는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하여 자기 확신의 코드를 발견하곤 한다.

    8
특정 세대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고 해서 그것이 한 세대를 설명
해 줄 수 없다. 하지만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새로운 세대가 등장할 때마다
무엇이 기점이 되었는가를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서 나열한 새로운 세
대에 대한 표현에서 공통점을 추출해낼 수 있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거칠게 표현한다면 "플러그가 꽂혀"있고 "온라
인 네트워크상에서 의사소통"하고 있는 세대를 통칭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름아닌 "어떤 미디어로 의사소통하는가"에 해당된다. 세대가 달라지면서
느끼는 감성이야 추억과 다름없는 재편된 기억이겠으나 그 감성코드를 말하
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세대담론이 부정형으로 사용될 경우 해당세대의 개
인은 자신과 동일시하여 나도 어쩔 수 없는 00세대라는 식의 허무한 자괴감
을 만들기도 한다. 각성을 요구하는 분석적 담론이라 하더라도 무책임한 발
언을 삼가야 하는 이유는 윤리의식과 결부된다. 또한 세대담론이 농담코드
로 작용할 경우 그 세대의 특징과 무관하게 의미없는 격차에 대한 조롱에 그
친다. 세대를 이해하는 것은 무엇을 기점으로 나뉘게 되었으며 기존의 질서
나 문화와 어떤 차이를 발견했는가에 대한 관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
다. 세대의 기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의사소통과 미디어는 과거와 어떤 차
이가 있는가. 예를들어 386의 사회참여방식은 집회를 마련하고, 문제의 핵
심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선동에 사용하였다. 깃발을 들고 무력에 대항하
기 위한 또 다른 폭력은 불가피해 보이는 방식이었다고 하면 억지스러울까?
하지만 -참여를 지칭하는 P세대를 포함하여-새로운 세대의 사회참여는 온
라인네트워크와 미디어로 무장하고 이합집산이 자유로우나 거대한 담론의
장을 형성하는 시발점을 마련했던 터. 시민사회는 이 큰 힘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08년 촛불집회의 불씨를 만들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세인의 마음을 움직
이고 더불어 구체적인 행동을 유발한 것. 그것이 지금의 세대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다. 디지털미디어가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소통도구인 디지털키드
가 골방에서 게임에 빠져들고, 연예인사진에 뽀샵질하며, 무책임한 댓글로
사람들을 죽고 싶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문제를 묵과할 순 없
다. 또한 촛불집회에서 모두가 개인미디어를 들어나와 전체가 아닌 부분을
묘사하여 각종 오해와 루머를 퍼뜨리는 저질스런 블로깅도 존재한다. 그렇
게 욕하던 주류언론이 하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개인블로그의 편협
한 시선이 담긴 리포트나 허구에 가까운 조작글도 만만치 않은 공해였다. 하
지만 분명한 것은 스스로 찾아가고 있는 자정작용과 서로 자신이 가진 데이
터/정보/지식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언어를 다듬어 가고 있는 것 만
은 분명하다.



6. 영웅을 찾아내자. 영웅은 누구인가

공동체를 꿈꾸거나(도시에 살면서 주목받거나 성공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이미 어떤 사회에 속해 살게 된다. "자연"에
속해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 테지만 사회에 속해 사는 것이 더 자연스
럽다고 느끼는 건 무지나 오해가 아니다. 결국 어떤 집단에 속해있는가는 사

   9
람들로 모인 집단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 즉 행동이나 행위를 근거로 하
는 공동운명체에 속한다. 이때 집단의 이익으로 인해 개인이 희생되거나 희
생되길 강요당하곤 한다. 개인과 특정집단, 그리고 집단의 문화와 개인의 문
화가 건강한 뿌리를 내리는 것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해당되는 키워
드다.

           사람들은 누군가 탁월한 능력자가 나타나 이 혼탁하고
           어지러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이나 위인전, TV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사람, 간혹
           그 조차 충족시킬 수 없다면 판타지나 SF에 나오는 능력
           자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이유는 내가 아닐 것이라고 생
           각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슈퍼맨을 목격한 경험을 말하자. 난 어려서 슈퍼
           맨이 변신하고 사람들을 구한 다음에, 자기가 벗어버린
           옷을 다시 주워 입을 거라고 상상했었다. 그도 가난한 월
           급쟁이인 신문사의 기자다. 돈을 훔치지 않는다면야, 그
           많은 양복을 새로 샀을 리 없다. 일을 마치고 난 뒤 사람
들 사이에서 몰래 옷을 주섬주섬 주워 들고 눈치 보며 갈아입고는, 터덜터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거나 전철을 이용해 데일리 플래닛(신문사)으로 돌아
가는 슈퍼맨. 결국 그는 약자와 가난을 이해하는 시민이다. 영웅은 그런 거
다. 지금 내 옆자리에서 우리는 이미 영웅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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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미디어 다루기

  • 1. "대중적 개인 Mass individual" - 버추얼(virtual)이 리얼리티(reality)를 압도하다. 1. SNS가 답을 줄 수 없다. 정보채널이 늘어나거나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대안처럼 말하는 미디어들이 쏟아진다. 마치 개인의 접근권이 열려있으니 언제든 접 미디어라피스트 김탕 속하여 통계 안으로 진입하라는 말처럼 들려서 불편하다. 생각해 보자 처리 보편성의 함정을 경계하고 해야 할 정보가 늘어나면 그에 따른 정보해독에 따르는 집중력이 분산되는 다수결을 혐오하며, 것이 당연하기에 한 개인이 균형을 찾는 일이란 쉽지 않다. 그 덕분에 다수 주류사회가 의 의견이나 말잘하는 논객따위의 화려한 언어유희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대부분을 신뢰하지 않는다. -속아 넘어가기 쉽다는 것 뿐이지 특정 누군가가 속이려 든다거나 개인의 판 덕분에 무뎌지지 않는 단력이 약화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 세상살이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 메일이 이동전화 문자메시지처럼 실시간으로 들어온다면...? 편리함을 넘어선 처리할 정보의 양이 늘어났다는 것. 속도와 편의성을 무기로 찾아 온 이동통신의 혁신적 변화에 그리 좋아만 해선 당하기 쉽다. 지금 당장 해 주세요...라는 요구가 늘어난다는 것을 행복에 겨워 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곳에서 온라인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라는 광고카피 따위는, 당신이 언제든 일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또는 당 신의 정보로 부터 소외되는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인간에겐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조절할 자율성도 가지고 있 다. (또는 가지고 있다고 믿거나 전제하고 싶다) 정보를 가진 자가 승자가 되는 사회에 사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가. 서양인들은 예로부터 생각하는 모 든 것은 표현 가능할 것이라는 억지스런 관념을 명제화 한 듯 하다. 대부분 의 수사학과 언어학의 기초는 그렇게 완성되었다고 본다. 그냥 무시할 법도 한데 두손 곱게 모아 학자를 신봉하고 학설을 떠받드는 사람의 수가 워낙 많 으니 개인이 무시한다고 무시될 수 있는 건 분명 아니다 싶다. 몰라도 되거 나, 몰라야 하는 정보가 나에게 와서 비효율성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 스 트레스의 정도를 안다. 히끼꼬모리 신드롬이 정보화되자 게임하는 내 아이 가 의심된다거나 장난이 심한 아이는 ADHD라고 그냥 낙인찍곤 하는 것. 이 것이 정보의 양과 무관할까? 상담의뢰했던 인터넷중독 청소년의 대부분은 "내 자녀 인터넷중독이란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부)모의 망상 또는 의심"신 도롬이라고 말하면 너무 큰 과장이 될까? 싸이월드에서 의사소통을 하던 사 람들은 싸이월드 사용자가 아닌 사람들이 정보에서 어떻게 소외되는지 관심 없다. 이건 싸이월드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 정보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다.
  • 2. 관계의 질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걸 눈치 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폰을 들고 있으면서 정작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없고 마치 공적인 업무가 우선인양 태도를 보인다면 "의사소통을 위한 매체가 의사소통을 방 해하는"꼴이다. 온라인에서 의사소통의 대안으로 포장된 트위터등 SNS는 교류와 소통이 사라진 정치와 특정인물의 욕망이 드러나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SNS에서 “social”이 지향하고 있는 신념과 확신이 빠진 것에 문제 의식이 별로 생기지 않거나, 무리한 사회적 요구로 느껴지지 않는 순간 사람 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싸이월드에 몰려들것이 분명하다. 이보다 더 중요 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집에서 나오면서 만나는 동네사람과 인사하셨는지요?" "친구의 현재 고민을 함께 하고 계신지요?" "문자메시지와 실시간 메일을 확인하면서 형제자매와의 통화는 늘어나고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정이슈가 모이고 집 단행동을 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하기 급급하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트위터에 모이고 파워블로거의 논점을 따라 다녀야 하는 것 이외에 실천할 수 있는 "무엇"이 남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2. 집단과 개인의 발상 건강한 개인이 건강한 발상으로 건강한 기획을 하려 한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전문성을 획득하기 위해 우 리는 집단의 힘을 빌려 쓴다. 이미 제출된 자료를 참고하고 선행연구를 검토 한다. 커리큘럼이나 매뉴얼을 뒤지고 각종 사례가 내용을 지배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목표가 명분을 따라가고 있거나 개인의 존재방식에 대한 존 중이 프로그래밍되어 희생될 때 결국 그 어떤 성과도 대상자에게는 의미없 이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전문기획자의 강의를 듣거나 지역사회의 훌륭한 사례를 의심을 해본 적 없 는가? 우수한 기획자들의 모임에서 나온 기획은 반드시 훌륭할까? 결국 자 기 전문성에 대한 성찰적 과제이며, 우리가 만나야 할 대상과 소통하고 있는 가에 대한 분석과 다르지 않았으면 한다. "로마교황청에서는 성인(saint)을 선정할 때 의도적으로 ‘악마의 대변인 (Devil's advocate)’이라는 제도를 두었다고 전해진다. 추천이 될 정도라 면 이미 교회 내에서 검증된 위인이기에 재목이 아니라고 트집을 잡는 다는 것은 힘이 들었으며, 교회내의 입지도 문제가 되었다. 그 완충작용이 ‘악마 의 대변인’이라는 제도였다.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과 추천인들은 그가 왜 성 인이 되어야 하는가를 말하는 동안, 비숍중의 한 사람은 ‘악마의 대변인’이 되어 그가 성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전문성은 특정분야의 현장에서 훈련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결국 어떤 가치를 만들었는가를 검 2
  • 3. 증받는 대다수의 방법은 돈으로 치환되거나 사회적 지위로 알 수 있다는 것 이 안타깝긴 하다" * 생각해볼 문제 - 건강하다는 것의 기준을 무엇에 두는가 - 우리사회에서 내가 표현하거나 구현하려는 것의 가장 근본적인 믿음은 무 엇인가 3. 커뮤니티의 평상을 상상한다. 강의 끝에 질문에 "청소년이 된 우리아이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어려워 요" "방문을 꼭 닫고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 저와 말하는 것이 싫은 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면 나는 대답대신 먼저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 질문을 던진다. "혹시 거실에 소파는 TV를 향해 배치되어 있진 않은가요?" 많은 가정에서 온 가족이 모여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은 거실이다. 그런 거실 에서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공간을 디자인 해놓고, 자녀와 대화가 사라 지고 있다고 한숨 쉬는 것.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 얼 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공간을 연출하는 것에는 너무 도 인색하다. 물론 아이들이 성장에서 흔히 말하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자기 세계가 생긴것에도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와 더불어 어떤 환경이나 조 건이 없는 상황에서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다소 무모하기까지 하다는 생 각을 지울 수 없다. 들어줄 수 있는 구조와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말하 는 것은 참 어려운 것이다. 우리 문화 안에서 집단의사소통이 일어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수없이 반복 되는 오류와 ‘사유방식의 소비적 반복’을 목격할 수 있다. 어제 회의에서 충 분히 이야기하고 결론을 내렸건만 다시 만나서 확인하면 간혹 전혀 다른 결 론을 말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같은 시-공간안에서 이야기를 나누 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우리는 이런 오류가 생기는 것 을 단순히 화자의 ‘말하기 방법’이나 ‘화술을 펼치는 태도’에서 그 해결방법 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상호작용이란 것이 의사소통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청자의 ‘듣는 방법’이나 ‘경청’과 무관하지 않다 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생 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내용을 어떻게 잘 전달하고 잘 전달 받을 수 있게 하 는가 하는 구체적 내용에 대한 문제라는 것에 초점을 두어보자. 표현에는 구체적인 단어나 문장의 조합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와 적극 적으로 듣는 행위가 포함된다. 능동적 경청자에게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 3
  • 4. 은 "잘 전달하여 말걸기"보다 더 중요한 "스스로 말하게 하기"가 들어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즉, 의사소통의 환경이 문제라는 발 상이 필요하다. 의사소통의 내용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여도 ‘의사소 통의 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능 할리 없다. 소통이 시도되는 타이밍 은 항상 어떤 환경에 놓여져 있는가 와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문화 가 평상이다. 근대 이후 교육이나 정 보가 공공영역으로 급격히 팽창되어 가정과 지역사회의 기능이 분명히 약화되었다. 하지만 항상 마을입구 에는 느티나무가 서 있다. 느티나무는 그저 한그루의 식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 시작되는 진입에 대한 상징이다. 사람들은 느티나무 밑에서 마을로 들어가기전 잠시 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작을 알리는 곳이기에 몸이 그렇게 반응한다. 그곳에는 거의 평상이 있었다. 비를 피하기도 하고, 잠시 누굴 기다리기도 한다. 긴 시간을 걸음에 피곤한 다리를 쉴 수도 있다. 이것이 그 기능의 전부가 아니었다. 평상은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 에 어떻게 앉게 되는가에 따라 인원구성이 다양하다. 둘러앉거나 마주볼 수 있지만 등을 대고 사적인 공간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평상에 앉은 사람들은 자연스럽다. 그렇게 평상에 앉으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 청취반응reaction / feedback) - 의사소통을위한공간space) - 상호작용을위한위치positioning) - 핵심과맥락을놓치고있지않은가context) - 질문을놓치고있지않은가questions) 4. 미디어문화와 진화 미디어는 의사소통(communication)의 수단이라는 표현에 가장 들어맞는 다. 메시지를 전달 하고자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사용 하는 통로이며 수단이다. 인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간단한 소리와 상 징적인 그림 그리고 언어로 대표되는 다양한 기호들 을 발전시켜왔고 현재 는 더욱 다양해 졌다. 농경,유목사회에서 의사소통의 핵심은 듣는 것에 있었 다.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정보(지 식,지혜)는 어른(경험자)들로부터 전수 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보고 듣는 것이 중요한 방 법이었으므로 이 시기 4
  • 5. 에 유능한 교사는 얼마나 잘 알아 듣도록 효과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가에 의해 결정되었다. 지역사회는 축제나 시장에서 정보를 주고 받았으며 이때 역시 말로 하는 언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마을은 마치 한 몸처럼 상부상조함 으로써 살아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청각과 감성을 발달시켰다. 15세기 구 텐베르그는 인쇄술을 발명함으로써 의사소통의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꾸었 다. 이 제 지식이나 정보는 책에 실려서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 되었다. 문맹자는 그 가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갖추었다 해도 가르치는 사람 (교사,지도자)이 될 수 없다. 교육의 장소는 가정에서 학교로 교사는 부모나 어른에서 먼저 지식을 습득한 지식인에게로 넘어갔 다. 아이들은 가정을 떠 나 집단으로 학교에 보내졌다. 전통적인 이념이나 사상보다 새로운 지식에 매료되었다. 문자를 보고 이해하기 위해 시각과 사고력이 요구되었다. 책에 씌어진 지식은 가장 강력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전기의 발명은 곧이어 라 디오와 TV를 일상에서 사용하게 했으며 공장을 움직이게 하고 대량생산된 물건들은 팔릴 곳을 찾아 시장전쟁을 불가피하게 했으며 전파는 모든 나라 와 부 족과 국가의 이념적인 담을 무너트렸다. 사람들은 마을 축제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전자문화시대의 대표적 매체는 컴 퓨터로 인간의 두뇌를 모방하고 있으며 컴퓨터의 망은 마치 신경조직처럼 뻗어나가고 있다. 전자문화시대는 의사소 통을 위해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사용하도록 한다. 인쇄문화시대에 기능을 축소시켰던 청각은 전자문화시대에 중요한 기능으로 부활하고 있다. 뉴미디 어시대의 문화는 인터넷과 멀티미디어의 시대로서 고도로 발달된 연결망을 구축하고, 그 중심에 컴퓨 터가 자리하고 전기(자)는 인간을 통제하는 실질 적인 힘이 된다. 시인은 세상을 느끼는 감각이 법관과는 다르게 발달되어 있다. 그런데 법관 이 를 쓴다면 우리는 그에게 어떤 수식어를 쓸까? 반대로 시인이던 사람이 법조인이되어 재판정에 들어선 다면 사람들은 그의 논리에 어떤 꼬리를 달 까? 21세기를 특징짓는 단어들 중에 감성과 여성성이 포함되어 있다. 오랜 세월동안 지배해왔던 논리의 시대에 마치 향기처럼 혹은 약물처럼 감성이 번져오고 있다. 몇 백년 문자우위의 긴 시대 속에서 휴면하고 있던 소리와 이미지들에 대한 감각이 하루가 다르게 잠에서 깨어 나고 있다. 인터넷을 열 면 그 안에 넘실대는 다양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만날 수 있으며 간 단히 한 번 클릭하면 그 세계로 넘어간다. 점차 미디어는 자체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메시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40여년전에 맥루한은 미디어를 수단이상이라고 주장했으며 이제 우리 는 그 한가운데 와 있다. 휴대폰에 찍히는 문자 메시지는 읽히기 전에 이미 수신자를 진동시킨다. 연애감정에 빠진 이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다 "그 사람"이기에 더 의미 있다. 이러한 사회현상이 가능 해진 것은 전기의 힘이다. 전자 혹은 전기 에너지로 불리는 이 새로 운 힘은 선형으로 해석하고 풀이되던 것들을 모자이크처럼 동시에 파편적으로 가능 하게 해 주었다. 대중매체가 가능해진 것이다. 대중매체(mass media)는 청중의 양적 규모를 말 한다기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그것에 관여하고 참가한다는 의미가 더 적절하다. 마치 월드컵 경기를 실시간으로 참여하고 5
  • 6. 전쟁을 생중계로 보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것이 대중매체의 본 모습이다. 따라서 대중매체를 교육한다고 하는 것은 흐르는 강물에서 한 바가지 퍼 올 려 "이것이 여기 이 강물이다"라고 할 수 없듯이 시공간의 의식이 선형적, 연속적이 아님에 도 반복해서 나열하는 것과 같다. 전기에너지는 순간에 상 황을 증폭하고 확장하고 통일시킨 다. 따라서 인간의 오감과 직관까지 동원 해 순간에 마주치는 본능적이 행동이 요구된다. 잘 만들어진 광고처럼 한 컷 에 모든 것을 담고자 한다. 순차적인 사고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혼란과 멀미를 느끼게 된다. 가장 훌륭한 미디어는 인간임을 이해한다는 것 은 통찰과 체험으로 가능하다. 대중스타나 스포츠맨들 만의 이야기가 아니 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보다 그가 "그 사람"이므로 중요하다. 이것은 그의 지식에 부여하는 권위가 아니라 그가 총체적으로 내 보이는 인격에 부여하는 권위인 것이다. 누구나 권위있는 사람을 원한다. 그 것은 내가 도달하고자하는 미래이며 닮고자하는 얼굴이기에 그렇다. 인격적 인 사람에게서 배어나오는 분위기와 향기는 멀리서 바라보아도 추종자들을 열광케한다. 역사를 통해서나 현시대에도 그런 지도자들을 볼 수 있다. 몸은 하나의 조직이다. 그러므로 상호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제 기능이 발 휘된다. 이것은 네트워크를 인식한다. 네트워크에 필요한 것은 구조와 정기 적인 교환과 자원의 유입이다. 맥루한은 전기와 정보의 시대에 인간의 중추 신경 조직처럼 강력한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이것은 인간의 뇌에서 하나로 통일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디지털을 포함한 새로운 문화는 보편으로 가는 길이다. 어떤 곳에서 시작하든지 학문이 깊어지고 성찰이 반복 되어가면 한 지점에 서 만나게 된다. 그곳에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들어온 전문가들이 상 호 영역의 핵심이 서로 일맥상통 함을 체험하게 된다. 종파도 문화도 인종도 사라지는 경이로움을 체험 하게되고 그 곳에 인격체가 있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이 모든 메시지의 출발점이었음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몸은 이분법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는 어떤 물질이 아니라 인격체를 말한 다. 디지 털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학교는 건물이 아니다. 초기 인류처럼 배움의 장 이 움직이고 있다. 배움의 기회 는 학교나 제도에서 보다 인터넷에서 텔레비 전에서 혹은 영화에서 그리고 친밀한 사람들을 통해서 충족될 수 있다. 그럼 에도 우리는 제도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개인의 생각에서부터 인류의 미래설계까지 드러내 보이는 현대 미디어는 송신자와 수신자의 한계 도 사라지고 메시지는 무한히 복제, 증폭된다. 그 흐름에서 우리는 혼란스럽 고 정체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러므로 투명한 자신과의 만남은 현실 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 되고있다. 각자 어떤 방법으로 정체성을 찾을것인가? 해체되었던 공동체가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다시 조성되고 친밀한 사람들의 이끌림과 공감 그리고 나눔이 더욱 요구되 고 있으며 어느 시기보다 영적인 지도자를 찾아 나서고 있다. 4-1 어떤 활동가의 쪽지 최근 워크숍을 마친 후 어떤 사회단체의 활동가가 페이스북 쪽지를 보내왔 다. 디지털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 중 다양한 실험을 소개했다. 실 험은 실험뿐이라고 발문과 동영상 자료를 보여주었다. 노트북 컴퓨터와 무 선인터넷을 학교에 두었을 때 디지털네이티브 또는 디지털키드라고 불리는 6
  • 7. 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한 자료와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 활동가는 종이가 사라진다는 것이 많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끔찍한 상황이 라고 묘사했으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종이사 용을 줄이는 것은 사회운동 또는 활동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에코이슈로 작 용할 법도 한데 불편함을 호소하며 쪽지를 쓴 것이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 해할 수 있었기에 답변을 충실하게 보내려고 애썼다. 질문의 원문과 몇 차례 의 쪽지교환이었는데 그 전문을 공개하는 것 보다. 답변을 공개하는 것이 나 을 것 같다. "그 실험은 그냥 실험일 뿐인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단지 제가 그날 보여드린 건 종이를 없앤다고 상상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종이 없 는 실험을 했을 경우에...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정도에요. 그런 기술력 따위가 미래일리 없죠" " 노트북 팔려고 기획한건 아닌것 같긴 해요. (뭐 사람 속은 모르긴 하지만 요...) 하지만 저는 끔찍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이미 제 주변에서는 거의 인 쇄한 종이가 대부분 사라졌거든요. 말씀 드렸다시피...제 한 한기 수업에서 인쇄하는 종이는 유일하게 출석부 한장과 최종 성적표에 싸인한 원본 뿐이 고, 최근 참여하고 있는 각종 사업에서도 회의자료가 인쇄된 적은 없어요. 오히려 인쇄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 더 맞는 말 같긴 하네요."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등장했을 당시도 구어를 인쇄한다는 것을 받아들이 기 힘들었다는거. 한 시대(era의 개념 같은...)를 넘어서는건 문화적 충격이 나 진통이 있어요. 지금 우리손에서 1)핸드폰 사용이 금지 되거나 2)누구 하나가 핸드폰을 쓰지 않는다면...1-1)일상생활의 시간개념이 뒤틀리거나 2-1)당사자보다 주변사람이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연출되겠지요. 즉, 문화 가 시간을 거슬러 뒤로 가진 못하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매체 가 등장하고 난 뒤 그 문화적 충격파를 견디는 것 보다는 이미 상상 가능한 실험을 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제가 말씀드린대로, 그들의 성 적이 향상되는 것은 별로 의미 없구요. 아마 그 동영상에서 그런 나레이션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소비자 입맛을 맞추기 위한 진부한 방송작가의 말입니 다. 디지털키드에게 디지털기기가 주어질 때 어떤 반응이 생길까의 문제랄 까요. 변화는 교실에 갇혀 있지 않은 10대의 모습이라는 거에요. 어떤 측면 에서 보면...책에서 모니터로 교체되는 상황인데...충격일 것도 없거든요. 교실에서 책을 놓고...모여 앉아 있어야만 수업이 되는 상황에서 교실 밖으 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거나 특정 시간으로 부터 자유로와 졌다는 것 만으로 도 실험은 유의미해 보여요.... 선생님이 말씀 하시는 의도는 제가 충분히 파악했는데요. 만약 지금의 설명 으로도 부족하셔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건 정서(또는 감정이요. 끔찍 한...^^;;; 이란 표현이 생기는 건 감정이나 정서니까요)적인 문제인것 같은 데요. 문자와 기록을 반대한 사람. 지식이 인쇄되는 것을 반대한 사람. 신문 과 라디오를 반대한 사람. 컴퓨팅 기술을 반대하는 사람...이 당연히 있습니 다. 그것도 아주 거센 저항의 역사를 가져요. 문화의 변화에 따라 "헉 종이가 없는 삶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라고 다가올 수도 있어요. 더구나 종이 를 대체한 매체로 의사소통하고 성장한 세대가 있다면...옛날에는 시험문제 를 종이에 냈었다더군...왜 그랬을까....? 라는 의문이 당연시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모든 올드미디어가 사라지느냐...당연히 안그렇죠. 문화 7
  • 8. 와 역사의 변화는 수직 또는 계단식의 진화가 아니라 나선형구조를 가지는 반복과 시행착오를 통한 재구조화를 기초로 변하니까요.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느리고 천천히 가는 자기 삶의 방식이란건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봐요.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속도나 방 법에 대한 선택의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그런것이라면...그냥 모른척 하시고...멀리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사는 데 지장이 없더라구요....-.-;;" 이외에도 몇 차례의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좀 더 쿨하게, 내가 필요해서 사용한다면 좋겠지만, 굳이 불편하고 여럽다면 매체 없이도 잘 살 수 있다. 도태된다고 느끼다면 그 역시 “필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도태를 규정한 것은 결국 자신과 자신이 속한 환경속에서 결정되지 않는가. 따지고 보면 도 태가 아닌 경우도 많다. 누구는 편하게 사는데 나는 이게 뭔가..라고 느낀다 면 의문이 생긴다. 편한게 좋을까? 불편한것이 즐겁고 더 인간다운 경험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스스로 불편함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즐기는 것이 과 연 불편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말이다. 핸드폰이 편리한 의사소통을 만들어 냈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나 가족이 함께 있을 때 핸드폰은 의사소통을 턱!!! 턱!!! 차단하는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즉, 불통을 만들어 낸것 이다. 편리는 우리가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 SNS 가 폭발적인 인기다. 페이스북은 현재 5억명에 가까운 사용자수를 자 랑하고 소셜 플러그인으로 개인화된 각종 정보의 선두주자다. 트위터는 140자의 단문으로 간결하게 각종 이슈를 실어나르며 발빠르게 정보접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다양한 사회적 연결망? 사람과 사람이 디지털과 온 라인으로 만난다면서 손바닥안에 들어오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내 자신 이 참 가엾어 보이는 경험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그 보다는 이웃과 먼저 인사하고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건강을 묻는게 먼저다. 5. Mass individual 우리는 단순히 생물개체의 물리적 분리를 근거로 개인라고 표현하지 않는 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은 단순히 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개인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개입되는 다양한 변수가 있다. 대한민국 의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싶거나 존재하고 싶다는 의지와 상관없이 탄생과 동시에 개인에게 영향을 준다. 개인이란 홀 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독립적 문화나 개별 집단의 특성이 무마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과 특정집단 의 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인류의 역사와 *문화적 원형의 토대위에 형성된 다. 그렇게 형성된 개인과 특정집단의 문화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별개로 우 리를 구속하기도 하지만, 그 구속으로부터 일탈하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문 화적 충돌이 새로운 문화를 생성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그리 놀라운 경험도 아니다. 개인의 경험영역이 확대되고, 학습에 근거를 둔 이성적 판단 기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개인과 집단 또는 개인의 문화와 집단의 문화에 대한 자기관찰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경험의 양"보다는 어떤 경험을 했 는가 하는 "경험의 질"이 중요하겠지만, 보편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우리 는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하여 자기 확신의 코드를 발견하곤 한다. 8
  • 9. 특정 세대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고 해서 그것이 한 세대를 설명 해 줄 수 없다. 하지만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새로운 세대가 등장할 때마다 무엇이 기점이 되었는가를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서 나열한 새로운 세 대에 대한 표현에서 공통점을 추출해낼 수 있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거칠게 표현한다면 "플러그가 꽂혀"있고 "온라 인 네트워크상에서 의사소통"하고 있는 세대를 통칭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름아닌 "어떤 미디어로 의사소통하는가"에 해당된다. 세대가 달라지면서 느끼는 감성이야 추억과 다름없는 재편된 기억이겠으나 그 감성코드를 말하 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세대담론이 부정형으로 사용될 경우 해당세대의 개 인은 자신과 동일시하여 나도 어쩔 수 없는 00세대라는 식의 허무한 자괴감 을 만들기도 한다. 각성을 요구하는 분석적 담론이라 하더라도 무책임한 발 언을 삼가야 하는 이유는 윤리의식과 결부된다. 또한 세대담론이 농담코드 로 작용할 경우 그 세대의 특징과 무관하게 의미없는 격차에 대한 조롱에 그 친다. 세대를 이해하는 것은 무엇을 기점으로 나뉘게 되었으며 기존의 질서 나 문화와 어떤 차이를 발견했는가에 대한 관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 다. 세대의 기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의사소통과 미디어는 과거와 어떤 차 이가 있는가. 예를들어 386의 사회참여방식은 집회를 마련하고, 문제의 핵 심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선동에 사용하였다. 깃발을 들고 무력에 대항하 기 위한 또 다른 폭력은 불가피해 보이는 방식이었다고 하면 억지스러울까? 하지만 -참여를 지칭하는 P세대를 포함하여-새로운 세대의 사회참여는 온 라인네트워크와 미디어로 무장하고 이합집산이 자유로우나 거대한 담론의 장을 형성하는 시발점을 마련했던 터. 시민사회는 이 큰 힘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08년 촛불집회의 불씨를 만들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세인의 마음을 움직 이고 더불어 구체적인 행동을 유발한 것. 그것이 지금의 세대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다. 디지털미디어가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소통도구인 디지털키드 가 골방에서 게임에 빠져들고, 연예인사진에 뽀샵질하며, 무책임한 댓글로 사람들을 죽고 싶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문제를 묵과할 순 없 다. 또한 촛불집회에서 모두가 개인미디어를 들어나와 전체가 아닌 부분을 묘사하여 각종 오해와 루머를 퍼뜨리는 저질스런 블로깅도 존재한다. 그렇 게 욕하던 주류언론이 하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개인블로그의 편협 한 시선이 담긴 리포트나 허구에 가까운 조작글도 만만치 않은 공해였다. 하 지만 분명한 것은 스스로 찾아가고 있는 자정작용과 서로 자신이 가진 데이 터/정보/지식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언어를 다듬어 가고 있는 것 만 은 분명하다. 6. 영웅을 찾아내자. 영웅은 누구인가 공동체를 꿈꾸거나(도시에 살면서 주목받거나 성공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이미 어떤 사회에 속해 살게 된다. "자연"에 속해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 테지만 사회에 속해 사는 것이 더 자연스 럽다고 느끼는 건 무지나 오해가 아니다. 결국 어떤 집단에 속해있는가는 사 9
  • 10. 람들로 모인 집단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 즉 행동이나 행위를 근거로 하 는 공동운명체에 속한다. 이때 집단의 이익으로 인해 개인이 희생되거나 희 생되길 강요당하곤 한다. 개인과 특정집단, 그리고 집단의 문화와 개인의 문 화가 건강한 뿌리를 내리는 것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해당되는 키워 드다. 사람들은 누군가 탁월한 능력자가 나타나 이 혼탁하고 어지러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이나 위인전, TV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사람, 간혹 그 조차 충족시킬 수 없다면 판타지나 SF에 나오는 능력 자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이유는 내가 아닐 것이라고 생 각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슈퍼맨을 목격한 경험을 말하자. 난 어려서 슈퍼 맨이 변신하고 사람들을 구한 다음에, 자기가 벗어버린 옷을 다시 주워 입을 거라고 상상했었다. 그도 가난한 월 급쟁이인 신문사의 기자다. 돈을 훔치지 않는다면야, 그 많은 양복을 새로 샀을 리 없다. 일을 마치고 난 뒤 사람 들 사이에서 몰래 옷을 주섬주섬 주워 들고 눈치 보며 갈아입고는, 터덜터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거나 전철을 이용해 데일리 플래닛(신문사)으로 돌아 가는 슈퍼맨. 결국 그는 약자와 가난을 이해하는 시민이다. 영웅은 그런 거 다. 지금 내 옆자리에서 우리는 이미 영웅을 목격했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