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 로스쿨 졸업, 구글과 맥킨지 등 세계적인 기업에서 근무, 2006년 미 CBS의 대형리얼리티쇼 '서바이버'의 한국인 우승자, 한인 최초의 미 국영방송 진행자. 제 경력만 본다면 사람들은 저를 엄친아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내성적인 성격과 공황장애, 그리고 친구의 자살. 화려한 커리어와는 별개로 제 삶속에는 항상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 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삶의 도전을 던지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잘 아시는 대로 미쳐야 할 수 있거나 혹은 미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마임이스트로 산 것이 30년, 그리고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으로 24년을 살면서 미친듯이 마임만, 그리고 축제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2012년 현재 국내에 몇 안 남은 마임이스트로 살고 있고, 춘천마임축제를 대한민국 대표 문화예술축제이자 세계3대 마임축제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자부합니다. 올해 마임축제는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됩니다. 24년의 힘이, 마임에, 축제에 미친 사람들의 열정이 어떤 것인지 직접 오셔서 확인해보세요. 아마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Me theory, 사람들은 나와 관계 된 것에 커다란 가치를 느끼며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TOMS와 같이 One for One, 즉 You theory 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기서 더 나아간, Me theory와 You theory가 결합된 새로운 이론 Us theory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Us is earth, 바로 earth 프로젝트입니다. earth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단 하나의 행동으로 earth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Do it now!
Next 2013: Innovation and The Future (Post Conference Overview) Korean VersionBernard Moon
Conference discussing the creative economy, innovation and the future. SparkLabs focuses on cultivating and empowering Korean and other startups to go global. In the same spirit, SparkLabs wants to bring the best minds and most innovative people to Korea. NEXT 2013 was energizing, empowering and insightful for its attendees. It was held in Seoul on June 14th, 2013.
Consumer Driven Contracts and Your Microservice ArchitectureMarcin Grzejszczak
My talk from SpringOnePlatform about Spring Cloud Contract
Links:
* http://martinfowler.com/articles/consumerDrivenContracts.html - article about Consumer Driven Contracts by Ian Robinson
* https://github.com/marcingrzejszczak/springone-cdc-client - code for the client side of the presented example
* https://github.com/marcingrzejszczak/springone-cdc-server - code for the server side of the presented example
* https://cloud.spring.io/spring-cloud-contract/spring-cloud-contract.html - documentation of the Spring Cloud Contract project
불광불급(不狂不及). 잘 아시는 대로 미쳐야 할 수 있거나 혹은 미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마임이스트로 산 것이 30년, 그리고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으로 24년을 살면서 미친듯이 마임만, 그리고 축제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2012년 현재 국내에 몇 안 남은 마임이스트로 살고 있고, 춘천마임축제를 대한민국 대표 문화예술축제이자 세계3대 마임축제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자부합니다. 올해 마임축제는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됩니다. 24년의 힘이, 마임에, 축제에 미친 사람들의 열정이 어떤 것인지 직접 오셔서 확인해보세요. 아마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Me theory, 사람들은 나와 관계 된 것에 커다란 가치를 느끼며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TOMS와 같이 One for One, 즉 You theory 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기서 더 나아간, Me theory와 You theory가 결합된 새로운 이론 Us theory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Us is earth, 바로 earth 프로젝트입니다. earth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단 하나의 행동으로 earth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Do it now!
Next 2013: Innovation and The Future (Post Conference Overview) Korean VersionBernard Moon
Conference discussing the creative economy, innovation and the future. SparkLabs focuses on cultivating and empowering Korean and other startups to go global. In the same spirit, SparkLabs wants to bring the best minds and most innovative people to Korea. NEXT 2013 was energizing, empowering and insightful for its attendees. It was held in Seoul on June 14th, 2013.
Consumer Driven Contracts and Your Microservice ArchitectureMarcin Grzejszczak
My talk from SpringOnePlatform about Spring Cloud Contract
Links:
* http://martinfowler.com/articles/consumerDrivenContracts.html - article about Consumer Driven Contracts by Ian Robinson
* https://github.com/marcingrzejszczak/springone-cdc-client - code for the client side of the presented example
* https://github.com/marcingrzejszczak/springone-cdc-server - code for the server side of the presented example
* https://cloud.spring.io/spring-cloud-contract/spring-cloud-contract.html - documentation of the Spring Cloud Contract project
Things most people learn too late in life 뒤늦게 깨우치는 20가지 Jahee Lee
지난날들을 후회하는지? 그럴 필요는 없다. 삶은 구비와 곡절, 봉우리와 계곡, 산을 오르고 바다를 헤집는 여정이다. 좋고 나쁜 시간도, 행복 또는 불행한 시간도 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느 시점에 있든 이어가는 것이 삶을 멋지게 만든다. 어느 날 문득 도대체 무엇이 행복하게 만들고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그려보는데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순수한 아이 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것들은 성장하며 따라오는 하찮은 것들이다. 누구나 너무 늦게 깨우치게 되는 것들을 추려 정리한 내용이다. Nicolas Cole은 저술가, 바이럴 작가, Digital Press 창업자, 1억 이상 조회 블로거로 The Art & Business of Online Writing의 저자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르네상스 속에 재탄생의 비밀,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공하는 비밀 그리고 얼마나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지 해답도 담겨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모두 인생의 결박을 풀고, 나의 르네상스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기 위해서 애써왔습니다. 연민의 눈을 크게 뜨고 철저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사람 마음을 보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철저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와 내가 하는 일을 보려고 노력하면 문제는 풀립니다. 그간 제가 고전공부에 매달리고 3년간 위대한 고전 500권을 5분짜리 영상으로 만든 이유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역사 앞에 서 본 적이 있을까요? 역사 앞에 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역사 속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역사 앞에 선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오늘을 사는 지혜와 연료로 삼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역사 앞에 서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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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르네상스 속에 재탄생의 비밀,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공하는 비밀 그리고 얼마나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지 해답도 담겨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모두 인생의 결박을 풀고, 나의 르네상스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기 위해서 애써왔습니다. 연민의 눈을 크게 뜨고 철저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사람 마음을 보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철저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와 내가 하는 일을 보려고 노력하면 문제는 풀립니다. 그간 제가 고전공부에 매달리고 3년간 위대한 고전 500권을 5분짜리 영상으로 만든 이유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역사 앞에 서 본 적이 있을까요? 역사 앞에 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역사 속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역사 앞에 선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오늘을 사는 지혜와 연료로 삼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역사 앞에 서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세상 앞에 자꾸 무릎 꿇게 될 때, 연인에게 버림받았을 때, ‘좋은 사람’ 흉내 내느라 끊임없이 자기 탓할 때, 누군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질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캄캄할 때…….
선뜻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는 그 지옥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시리아나 아우슈비츠처럼 객관적 지옥도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수많은 주관적 지옥들이 있습니다.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고 등급도 없습니다. 세상에 부대끼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는 한 크고 작은 지옥을 경험할 수밖에 없죠.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 주는 세상에서 내 존재의 결과 감정, 관계의 경계는 때로 무참히 긁히고 짓밟히기도 합니다. 그럴 때 사람은, 살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help me' 사인을 보냅니다. 그 신호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의사는 많고 의료기술은 갈수록 발전합니다. 그런데 왜 환자는 늘어나는 걸까요? 병이 걸린 후에는 늦습니다. 병을 막는 적극적인 예방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픈 이유는 이 예방을 실천하지 못해서입니다. 병을 예방할 수 있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생활 속 실천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평범했던 학생이 미스코리아가 되고 '머슬마니아' 대회에서 수상까지 할 수 있었던 도전의 길을 나누려 합니다. 도전의 사전적 의미는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걺’입니다. 도전하면 안전하지 않은 걸까요? 오히려 편안함에 안주하면 우리의 안전이 위협받게 됩니다. 우리 삶을 특별하게 바꿔 줄 ‘안전을 위한 도전’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응급환자 중 많은 경우 병원에 오기까지 길게는 수시간이나 걸립니다. 우리나라의 중증외상 환자는 매년 10만여 명인데 그중 35%,10명 중 3명은 살 수 있었던 환자로 파악됩니다. 구급 전문 헬기나 구급차에서부터 외상외과 전문의가 함께 해 골든아워 안에 필요한 조치를 다 한다면 살릴 수 있었던 생명입니다. 저도 때론 지치고 절망하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수많은 걱정 중 단 4%만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한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중 우리가 꼭 해야 하는 걱정, 바로 근로 안전에 대한 걱정입니다. 안전이 없다면 행복도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화학 독성물질에 대한 많은 연구로 그 누구도 일하다 건강을 잃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안전을 먼저 채워나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인생 100세 시대, 우리 인생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합니다.
하프타임은 스포츠 경기에서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작전타임을 말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들의 삶, 숨이 찰수록 잠시 멈춰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더욱 안전하고 행복한 삶의 후반전을 위한 작전타임, 필요하지 않으세요?
성매매, 얽힌 매듭을 푸는 법 |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cbs15min
성매매가 행위가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이해관계로 견고하게 얽혀있는 매듭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성매매/성산업은 이미 불평등한, 여성 억압적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기반으로 합니다. 욕구와 수요를 차단하고, 이해관계 주체들의 연대를 해체해야 합니다.
성매매를 없애는 것이 성평등의 시작이고, 성평등의 완성이 민주주의의 완성입니다.
성적욕구를 표현하는 서로 좋은 방법 | 양동옥 2017 폭력예방 '올해의 강의' 수상자, 심리학 박사cbs15min
상대방의 성적 욕구의 표현, 그 표현과 의미의 차이를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같은 단어로 표현했지만 남성과 여성의 심리는 그 의미를 천지차이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남성의 생각으로 여성의 표현을 해석하거나, 여성의 생각으로 남성의 표현에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남녀 상호 존중적인 성적 의사소통의 기술을 제안합니다.
경제가 우리 사회의 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장애인, 저학력 계층, 사회적 약자 등 국가가 모든 것을 돌봐주고, 대기업에서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하기 어려운 이때, 사회적 경제가 해법을 줍니다.
지역에서 시민들이 모여서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작지만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 그런 사회적 경제를 통해 일하는 재미, 같이 지내는 재미를 회복시킬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인간다워지는 비폭력의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혐오표현은 막연히 무언가를 싫어하는 감정과는 구분되는 일종의 사회적 문제입니다. 차별과 배제, 그리고 폭력을 낳는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법에만 의지하지 않는 또 다른 전략이 필요합니다. 저는 혐오표현을 코너에 몰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다 함께 혐오표현에 맞서서 적극적인 실천을 해야 할 때입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수치스러울 것이다”라는 우리의 생각.
피해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어도 우리의 ‘수치스러운’ 선입견으로 인해 고통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그들이 목숨을 끊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잘못된 인식이라면, 우리의 변화된 인식으로 그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무관심은 어떻게 혐오와 폭력이 되는가? | 은유 작가, '싸울때마다 투명해진다' 저자cbs15min
우리가 누굴 미워하지 않아도, 남의 삶에 무관심하면 기존에 내가 알던 것으로 판단을 하게됩니다. 그 편견이 굳어지게되면, 혐오와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이 바로 폭력입니다.
알면 사랑하고, 모르면 혐오합니다. 타인에 생각과 감정을 알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보이는 대로 보지 말고, 아는 대로 믿지 마라 | 강종원 (주)나노미래생활 대표cbs15min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기존 소재로 불가능한 기술을 나노소재와 나노기술이 해결한 결과물을 많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미래 나노의 가능성은 우리가 보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새로운 것들을 의심하고 시도해보고, 새로운 결과를 얻으며 발전한다면 우리는 거대한 파급력의 나노 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노기술은 플랫폼이고, 생태계이며, 새로운 기회입니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고민, 인공지능과 인간은 어떤 관계에 놓일까요?
이제는 인공지능을 단순한 물질적 기반으로 보는 것에서부터 벗어나, 하나의 행위자로 보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인격성의 관점에서, 행위의 도덕적 관점, 그리고 사회적 관계의 관점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노의 크기는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현미경과 카메라를 통해 살펴보면 그 안에 작지만 큰 아름다움이 존재합니다. 이 작은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가져다줍니다. 나노의 크기가 아니어도 그 속에서 수많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은 것 속에 큰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나노 = 작다’ 이것이 나노의 전부는 아닙니다.
물질을 나노 크기로 자르면 우리가 생각지 못한 성질을 갖게 됩니다. 작아짐으로써 나타나는 표면적이 변하고, 물성이 달라지는 것을 아는 것이 나노기술의 본질입니다. 나노기술의 본질을 알면 미래를 더 크게 열어 갈 수 있습니다.
12. 1
안녕하세요. 저는 권 율 입니다.
여러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조금이나마 저에 대해 알려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이렇게 서울을 방문하게 되었고, 이런
기회를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2
13. 2
몇 해 전, 저는 미국 생존경쟁 티비프로그램 ‘서
바이버’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우승을 한 후에, 한국의 많은 분들께 감명 깊은
편지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3
14. 3
그 중 몇 분들은 백인들이 주로 장악했던 높은
수준의 경쟁게임에서 한국인이 우승했다는 사
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해 주시기도 했지요.
4
15. 4
많은 부모님들은 제게 자식들을 하버드, 스
탠포드, 예일법대 같은 유수의 대학에 어떻
게 입학시키고,
구글과 맥킨지 같은 훌륭한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부탁
도 하시죠.
5
16. 5
조금 특이한 편지도 몇 개 받았는데 그 중 결혼
해달라는 편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편지들의
서체가 모두 똑같은 것으로 보아 아마 모두 한
사람에게서 온 편지가 아닐까 합니다...^^
글씨체가 조금 지저분하고 남성적이어서 혹 남
자가 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ㅋㅋ
6
17. 6
아무튼 저는, 제가 지금껏 받아온 큰 후원에
감사하고, 제가 읽었던 모든 편지에 감동을
했답니다.
7
18. 7
그 중에서도 가장 저를 감동시킨 것은 바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과 같은
젊은 한국인 학생들에게서 받은 편지랍니다.
8
19. 8
저는 훌륭한 꿈과 야망이 많은 밝고 젊은 분
들 소식을 듣고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청소년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도 듣게 되었습니다.
9
20. 9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 그리고 부모님의 압
박에 제압을 당하고 있죠.
그리고 또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
해 걱정하고, 또 앞으로 성공하지 못해서 가
족들에게 실망을 줄까 봐 걱정하고 있습니
다.
10
21. 10
그리고 그중 어떤 친구들은 자신의 깊은 감
정적 문제, 또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쑥스럽고 부끄러워서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습니다.
11
22. 11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가 어릴
적 겪었던 어려움이 떠올라 그런 친구들에게
참 마음이 많이 갑니다.
12
23. 12
현재의 제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저의 사회
적인 자격들, 또 지금껏 이룬 성과를 보고는
저는 항상 성공했고, 또 천성적인 리더라고
생각을 하십니다.
13
24. 13
그러나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수년간, 저는 남
들과 같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했던 많은
심리적인 장애로 고통을 받았었다는 겁니다.
14
25. 14
저는 점점 더 고립되었고, 우울감에 빠지면
서, 제가 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않는
미래를 생각할 수 없었기에 생을 끝내는 상
상을 하기도 했지요.
15
26. 15
그러나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비난할까 두려워 누구에게도 터 놓고
도움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16
27. 16
결과적으로 저는 저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성공과 행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걸어온 길은 필요 이상으로 더욱
힘들고 외로웠답니다.
17
28. 17
만약 제가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알았다면, 저 혼자 이
렇게 고통을 겪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
닫고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도 같아요.
18
29. 18
그리고 만약 제가 존경할 수 있고, 또 따르고
싶은 대중적 모델들이 그들이 겪은 문제가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 어떻게 그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면 제게는 더욱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19
30. 19
우리는 여전히 심리적 문제나 감정적인 문제
는 의학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개인의 성격 결함이나 영혼의 약함이
라고 치부해버리는 사회에 살고 있어요.
20
31. 20
정신적 질병에는 이런 낙인이 따라붙기 때문
에 사람들이 도움을 찾기보다는 혼자 고통을
겪게 합니다.
이런 폭넓은 이해가 부족했기에 가족들과 친
구들이 도움을 주기보다는 무시를 하거나 비
판을 하게 하기도 하고요.
21
33. 22
그래서,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겪었던
문제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
고, 이번주에 출간되는 ‘나는 매일 진화한
다.’라는 책을 통해 이런 제 경험들을 담았습
니다.
23
34. 23
저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고통
을 겪고 있는 여러분이 혼자가 아니며 당신
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실현하기를 바
랍니다.
24
35. 24
그리고 더 나아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찾
을 수 있는 더욱 더 개괄적인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5
36. 25
제가 가졌던 문제들을 만든 많은 이유 중에
서도 제가 자라온 환경은 저에게 가장 큰 영
향을 미쳤어요.
제가 미국에서 태어난 1975년 한국인은 전
체 미국 인구의 0.5%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26
37. 26
소수민족의 일원은 차별 당하기 쉽습니다.
제 어머님이 말씀하시길 제가 어렸을 때는
저는 사교성이 풍부한 편이었다고 해요. 하
지만 저는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27
38. 27
저는 점점 두려움이 많아졌고, 내성적인 성
격이 되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한국말을 주로 쓰시고, 어머
니가 김밥과 김치 같은 음식을 점심으로 싸
줄 때마다 아이들은 저를 놀렸습니다.
28
39. 28
혀 짧은소리까지 냈던 저는 조롱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29
40. 29
그러나 조용히 있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괴롭힘을 더 악화시켰죠.
아이들은 나에게 동양인이라는 것에 대해 별
별 이름을 부르고 곁눈질 하며 놀렸습니다.
30
41. 30
어떤 해에는, 아이들이 화장실 휴지를 우리
집 전체에 여기 저기 던져 지저분하게 만들
고,
집 옆 보도에는 페인트로 “국(Gouk) 이 여기
산다” 라고 낙서해 놓기도 했습니다 (영어로
“국” 은 한국 사람들을 놀리는 용어로 쓰임)
31
42. 31
몇 해 동안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크리스마스
장식 전구를 누군가가 다 박살내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32
43. 32
그 중 저에게 특별히 파괴적인 충격을 준 사건
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상급생들은 저처럼 조그만 아이들
을 화장실에서 실컷 두들겨 패고, 오줌을 갈기
는 등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33
44. 33
그런 괴롭힘이 끝난 후에도 저는 사람들이
있으면 화장실에 가기를 무서워했습니다.
변기 앞에 서서 30분 이상을 억지로 노력을
해보아도 결국 저는 소변조차 볼 수 없었습
니다.
34
45. 34
저는 대부분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초반에
공중 화장실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영화 를
보거나 파티, 스포츠 행사나 쇼핑몰 같은 곳
에는 가지도 못했답니다.
저는 집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살았
고 평범한 아이들이 누릴 행복을 누리지 못
했습니다.
35
46. 35
또 다른 문제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저는 결벽증이 생겨 하루에도 20번 넘게 손
이 갈라지고 피가 날 정도로 손을 씻었습니
다.
36
47. 36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는 사회적인 상황에 처
해지면 긴장하고 땀을 흘리기 시작하는 사회
공포증도 갖게 되었죠. 특히 백인들과 여자
들 앞에서는 더 심했고요.
단순히 조금 땀나는게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온 몸과 얼굴이 순식간에 땀으로 범
벅이 되어 셔츠가 완전 젖어버릴 정도였습니
다.
37
48. 37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창피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창피를 겪느니 차라리 사람들을
피하는 게 낫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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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든 문제들이 저를 우울하게 만들었고,
또 외롭고,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제가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 시절
을 돌이켜볼때, 저는 그 때 도움을 구했어야 했
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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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당시에는 저의 문제들을 알아줄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했고, 이런
비밀을 누군가가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도
싫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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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40
제 문제들에 대해 말한다고 해도 부모님께서
제 고민들을 어리석은 허상이라고 치부해 무
시해 버리시거나, 화내시고 나에게 실망하실
것 같아 두려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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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말한다면 그들이 저를
괴물이라 여기고 더 심하게 왕따를 시킬 것
이 두려워 저는 그냥 조용히 혼자 괴로워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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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42
저는 저의 이런 문제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나아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실망스럽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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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43
이런 우울함은 결국 절망으로 변해버렸고,
제 생각들은 점점 더 자멸적이 되었습니다.
제 형에게 닥친 비극이 아니었다면 아마 저
의 이런 감정적인 절망은 계속 되었을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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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집에 있을 때, 형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통화를 마칠 때쯤 형은 하얗게 질려있었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자 끔찍한 소식을 들었
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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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던 가장 친한 친구
가 새로운 곳에서 친구들을 사귀는데 어려움
을 겪더니,
.
결국 자살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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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까지 한번도, 제가 형이라 부르며
잘 따를 만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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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앞길이 창창한 어린 청년이 어떻게 그 삶
을 마감하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을까 하고 슬픔
에 잠긴 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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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는 곧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
을 깨달았습니다. 외롭고 삶이 더 이상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느꼈기에…
그는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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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느꼈던 우울함과 절망을 그도 느꼈기에 생
을 마감하려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길을 향해 걷고 있는 저의 모습
을 발견했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결정을 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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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삶 동안 제 형의 친구처럼 자살을 하기 전
까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외롭게 살 수도 있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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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두려움에 맞서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며 자기 자신을 바꾸려는 시도를 해 볼 수도 있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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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결정을 내리기란 감정적으로 절대 쉽지 않
았습니다.
도전이란, 안전지대로부터 나 자신을 밀어내 내
가 두려워하던 것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의미
했죠.
그리고 실패 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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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도전이란 다른 사람의 희생양이 되기 보다
변명은 집어치우고 내 삶에 대한 책임을 스스
로 지는 것을 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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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제가 성공할 수 있
을 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력을 해야 한다는건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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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우선, 제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제가 되
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고히 하는 것이 필
요하다고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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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과 기술들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장기적인 목표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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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전히 벅차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느껴
졌습니다.
제가 변화시키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기에 조
금 쉽게 가기로 했습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할 필요 없다고 제 자신을 다
독이며 걸음마를 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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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인 목표들을 작은 성장으로도 가능하고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단기목표로 쪼갰습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기나 수업 중
에 질문하기 등 제가 해야 될 것과
성취해야 할 것들의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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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의 천성에 제 행동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것 또한 깨달았습니다.
제가 규칙들을 잘 지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세세한 규칙들을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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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수업 중에 손을 들고 발표를 해본 적
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수업이 시작 되는 첫 10분 내에 적어도 한 번은
손을 든다는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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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행동 규칙을 따르는 것이 제가 평소에 두
려워서 도전 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을
조금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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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금씩 내 자신을 몰아붙여가며 조금씩 진
전해나갔습니다.
많은 노력들이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고, 잦은
차질과 실패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몇몇의 실패가 결코 끝은 아니며,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을 배웠고, 그래서 저는 제 자신
에게 실패를 허용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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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실제적 결과는 중요
하지 않다고 나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저의 노력이 좋은 결과를 냈는지, 나쁜 결과를
냈는지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도전했다는 것으
로 성공을 판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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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다른 사람들과 제 자신을 비교하는 것을
그만두었어요.
항상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저보다 똑똑하고, 자
신감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과 같이 절대 될 수 없다고 쉽게 낙심하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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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아닌 제 자신에 대한 기
준점을 세우기를 시작했고 더 빨리 발전해 나갔
습니다.
그리고 실패할 때마다 여자들에게 어떻게 말 거
는지를 배우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 총각으로 살
게 될 거라 되뇌이며 저 스스로를 자극했습니
다.
그땐 실패보다 평생 총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이 더 무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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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떤 일을 해보려고 시도하면 할수록 그
일은 점점 쉬워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여러 번 할 수 있게 되면
진정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고, 규칙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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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자신감을 만들고,
또 자신감은 성공을 만든다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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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는 얕은 개인적인 의지력만으로는 변
화하기 어렵다는 중요한 사실도 배웠습니다.
도움을 주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우리는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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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조직에 가입하거나, 당신을 도와줄 수 있
는 사람들에게 어울려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답니
다.
제 경우에는 드라마 클래스나, 토론클럽에 가입
했어요. 그리고 운동도 하기 시작했고, 이런 조
직들을 통해 진짜 친구들을 만들 수도 있었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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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좀 더 나이가 들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
에게 제 문제점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제가 가진 문제점에 맞서고, 또
이제는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지
만, 솔직하게 사람들과 제 문제에 대해 나누지
않았다면 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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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때 부모님과 형을 조금만 더 일찍 신뢰
할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상담가나 정신과 의
사와 대화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예요.
당시엔 신중한 충고와 후원을 줄 수 있고,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
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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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우리 모두는 힘겨운 시간을 겪고 있
고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
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여러분이 도움을
구하기만 한다면 당신을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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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현재 믿을만 하고, 또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다면
당신을 도와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상담가나
정신과 의사, 또는 한국자살방지협회나 보건복
지부 같은 곳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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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다 행복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여러분의 삶뿐 만 아니라 여러분 주변의 사람들
의 삶까지 발전시킬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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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의 무게가 당신을 짓누르고 있다고 해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그 무엇이라도 충분히 이
겨내 더 나아질수 있으며
저 역시 항상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기
억해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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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evening, my name is Kwon Yul. I’m incredibly honored to be here tonight, and I want to thank you for giving this opportunity to tell you a little bit about myself and why I’ve come to visit Seoul. \n
A few years ago, I had the good fortune of winning a popular American reality show called “Survivor.” And since then, I’ve received many wonderful letters from people here in Korea. \n
Some of them have been very gracious in telling me how proud they were to see a Korean win Survivor for the first time. \n
I’ve gotten many more letters from parents asking for advice on how to get their kids into Harvard, Stanford, or Yale, or find jobs working at Google or McKinsey.\n
I’ve also gotten some unusual letters. For a while, I was getting a number of letters from people asking me to marry them. Although interestingly, they all had the same handwriting. The handwriting is also quite sloppy, so I’m pretty sure the writer was a man.\n \n
In any event, I’ve been grateful for all the support I’ve received, and I’ve been moved by all the letters I’ve read. \n
But the ones that have touched me the most are the ones from young Korean students, like many of you here today.\n
I find it inspiring to hear from so many bright people with wonderful dreams and ambitions. \nBut I’ve also been hearing more and more stories from students who are struggling. \n
Many of them are overwhelmed with pressure from school or their parents. \nMany are worried about their futures and about disappointing their families if they’re not successful. \n
And some of them are experiencing deeper emotional and psychological problems, \nbut they’re too ashamed to tell anyone and they feel trapped. \n
Whenever I hear stories like these, my heart goes out to them because it reminds me of how much I struggled in my youth. \n
When people see me today, they look at my credentials and accomplishments, and they assume that I must have always been successful and that I’ve always been a natural leader. \n
But what people don’t know is for many years, I suffered from psychological disorders that made it hard for me to have normal life. \n
As I grew more depressed and isolated, I began having thoughts of ending my life because I couldn’t imagine a time when I wouldn’t be ashamed of myself. \n
But I didn’t tell anyone and I didn’t ask for help because I didn’t think anyone would understand and didn’t want to be criticized and blamed. \n
Eventually, I learned to deal with my problems and to find happiness. But my journey was much harder and lonelier than it needed to have been. \n
I think it would have helped me to see other people discussing their problems, so that I didn’t feel like I was the only one going through this.\n
It would have helped me to see more public figures - people that I looked up as role models – talking openly about how these issues affected them and how they overcame them. \n
We still live in a society that views psychological and emotional problems not as medical problems, but as defects of character or weaknesses of spirit. \n
There’s a stigma attached to mental illness that forces people to suffer in silence rather than to seek help.\nThere’s also a widespread lack of understanding that causes family members and friends to ignore or criticize people who need help rather than support them. \n
This is something that we have to change - before more lives end in tragedy. \n
So for the past couple of years, I’ve begun speaking openly about my problems, and I’ve written about my experiences in a book that’s being published this week called “나는 매일 진화한다”. \n
My hope is that by sharing my story, those of you who are struggling today will realize that you’re not alone, and that it’s possible to change your life. \n
And beyond that, I hope this can help start a broader dialogue so that those who need help can find it.\n \n
Now in my case, there were probably many factors that contributed to my problems, but certainly the environment in which I grew up played an important role. \nWhen I was born in the United States in 1975, Koreans made up only 0.15% of the total U.S. population. \n
Being part of such a small ethnic minority made it easy to be discriminated against. \nMy mom tells me that when I was a young child, I was very talkative and outgoing. But once I started going to school, I began changing. \n
I became more fearful and introverted. Kids would make fun of me because my parents spoke Korean in public, or because my mom made me strange foods for lunch, like kim bop and kim chee.\n
I also had a lisp, which people would sometimes mistake for an accent, so I became afraid to say anything because I didn’t want to become ridiculed or bullied. \n
But staying quiet didn’t stop the bullying. In fact, it made it worse. Kids would call me names like “chink” or “chong” while squinting their eyes at me.\n
One year, some kids threw toilet paper all over our house and spray painted on the sidewalk, “Gouk lives here.” \n
For several years during Christmas time, we would wake up to find that someone had smashed all the Christmas lights on our house.\n
There was one incident in particular that had a devastating impact on me. \nIn elementary school, a group of older boys began tormenting the smaller boys, including me, by beating them up in the bathroom and trying to urinate on them. \n\n부모님은 단지 우리 형제가 \n공부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n\n저희 부모님께서는 저와 제 동생에게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주고자 미국으로 오셨고, \n그래서 저나 제 동생이 스포츠를 하거나 데이트 등 사회적 활동을 하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n\n이런 고정관념은 미디어나 제 생활 속에서 계속 강해졌습니다. \n티비에서 한국인이나 아시아인 연기자를 거의 보지 못했고, 연기자를 찾았다고 해도 항상 모두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따라 묘사되고는 했습니다\n\n아시아 남자들은 영어를 못 하는 중국 요리사나 쿵푸선수로 그려지거나,\n사회성이 결여되고 항상 바람맞는 멍청이로만 보여졌지요. \n\n한국인이 미국사회의 리더로 묘사되는 것을 본 적도 없었고 긍정적인 롤모델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n저는 무의식적으로 TV에서 줄곧 보아왔던 사회적 멍청이가 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n많은 한국 아이들과 같이, 저도 학업만을 강조하는 엄격하고 전통적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n
Even after the attacks stopped, I found that I still couldn’t go to the bathroom at school or anywhere that people were around. I would stand in front of the urinal for half an hour trying to force myself to go, but I just couldn’t relax enough to pee. \n
And because I couldn’t use the bathroom in any public setting, I couldn’t go to movies, parties, sports events, or shopping malls. \nI essentially became a prisoner in my own home, and I missed out on many of the experiences and memories that most children enjoy. \n\n\n \n
My lack of self-confidence led to other problems as well. I developed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and I washed my hands up to 20 times a day, which would cause them to crack and bleed. \n
I developed a form of social anxiety disorder that caused me to get nervous and sweat around other people, especially around white people and girls. And I don’t mean just a mild perspiration. Literally, my whole body and face would become drenched in sweat in just a few seconds, soaking through my shirt.\n
I can’t describe how embarrassed and humiliated I felt whenever this happened. So I began to avoid people entirely rather than risk shaming myself around others. \n
All of these problems left me feeling profoundly depressed and lonely. In retrospect, knowing what I know today, I realize I probably should have gotten help. \n
But at the time, I couldn’t bear the thought that anyone might learn about my secrets. \n
I knew my parents loved me, but I was afraid that they might dismiss my concerns as figments of my imagination, or worse, become mad or disappointed in me.\n
I was also afraid that if I told anyone at school, they would think I was a freak and that I’d get bullied even more. So I struggled by myself in silence. \n
I prayed that my problems would get better as I got older, but instead, I found that they just got worse with each passing year. \n
My depression eventually turned into despair, and my thoughts became increasingly self-destructive. \nMy slow emotional descent might have continued if it wasn’t for a tragedy that struck my brother. \n
One day while I was at home in middle school, my brother received a phone call. When he hung up, his face was white. I asked him what was wrong, and he told me he just received some terrible news.\n
One of his best friends, who had moved away to another part of the country and had trouble making new friends, had just committed suicide. \n
Until then, I had never experienced the death of someone I knew, much less someone I came to regard as a hyung\n
In my grief, I wondered how a young man who had his whole life ahead of him could decide to end his own life. \n \n
But I realized that I already knew the answer. He could do it because he felt alone and had lost all hope that things would get better. \n\nHe could do it because he didn’t like who he was, and he couldn’t imagine being anyone different. \n
He could do it because he felt like I did. \n \nI saw then that I was heading down the same path. And I realized that I had to make a choice.\n
I could do nothing and live out the rest of my life alone, or maybe until I decided - like my brother’s friend did - that life just wasn’t worth living anymore. \n
Or I could try to change myself by confronting my fears and reaching out to other people. \n
Emotionally, this wasn’t an easy decision to make. \nTrying meant that I had to push myself out of my comfort zone and force myself to do things that made me afraid. Trying meant that I could fail. \n
Trying meant I had to stop making excuses for myself and take responsibility for my life, rather than playing the role of the victim. \n
I didn’t know how to begin, and I didn’t know if I would succeed. But I knew that I had to try. \n
But where to even start? \n\nWell, I thought about it, and I figured that if I want to change myself, I had to identify what it was that I wanted to change. \n
So I created a set of long-term goals for the kind of person I wanted to become and the qualities and skills I wanted to have. \n
There were so many things I wanted to change. So I made it easier on myself. I told myself that I didn’t have to do everything all at once. I could take baby steps. \n
I broke up my long-term goals into short-terms goals that didn’t seem so overwhelming and that I could do in small increments. \nEach day, for example, I made a checklist of things I had to try, such as talking to someone new or asking a question in class.\n
I also realized that I couldn’t just rely on my natural emotions to guide my behavior. But I knew that I was good at following rules, so I created specific rules for how I would have to behave in certain situations. \n
For instance, since I never raised my hand in class, I made a rule that I had to raise my hand at least once in the first ten minutes of every class. \n
And I found by using rules to determine my actions, it was easier to do things that I would normally to be too afraid to try. \n
By constantly pushing myself a little each day, I started making progress. A lot of my early efforts weren’t successful, and I frequently had setbacks and failures. But I learned that failing at something isn’t the end of the world, life still goes on. \n
And more importantly, I gave myself permission to fail. I told myself that what mattered was the process, not the actual outcome. So I measured success by whether I tried, not by whether the effort led to a good or bad result.\n
I also stopped comparing myself with other people. I always thought that other people were smarter, or more articulate and confident than me, so I’d get discouraged and assume I could never be like them.\n
But once I learned to benchmark my progress against my own goals rather than other people, I actually improved much more quickly. And whenever I failed, I motivated myself by telling myself that if I never learned how to talk to girls, I’d never get married and I would stay a virgin for the rest of my life. And that scared me more than failing.\n \n
What I learned is that the more you try something, the less terrifying it becomes. And once you’re able to do something successfully enough times, you start building real confidence, and then you don’t have to rely on rules as much anymore. \n
A virtuous cycle develops where success breeds confidence, and confidence breeds success. \n
The other critical lesson I learned is that it’s hard to change yourself by yourself using just sheer willpower. You can make a lot more progress when you can get other people to help you. \n
And the way to get their help is by joining organizations and surrounding yourself with people who can support you, hold you accountable, and give you a sense of community and belonging. So in my case, I joined a drama class, a debate club, and I started playing sports. And through these organizations, I started making real friends.\n \n
The thing that I didn’t do until I was much older was to talk to people about my problems. I eventually got to a point where I could cope with my problems and live a relatively normal life. \n \n
But I didn’t really solve them until I started talking about them more openly. Looking back, I wish I’d trusted my parents and brother earlier in my life. I wish I’d spoken to a counselor or mental health professional. What I didn’t know is that there are resources available where you can get discreet advice and support, and where you can find other people who are going through the same problems. \n \n
In closing, I just want to say that we all go through difficult times in our lives, and we all need help at some point. And when you do, there are people out there who will help you if you ask for it. \n
If you don’t know anyone you can trust and talk to, reach out to a mental health professional or counselor at an organization whose job it is to help you, such as the Korean Association for Suicide Prevention or the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n
I believe that each of you deserves and has a right to be happy. I believe that each of you has the ability to change and to improve not just your life, but the lives of those around you. \n
And whatever burdens you may be carrying, I want to you to know that you’re not alone, that things can and will get better, and that I’m cheering for you.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