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현재 터키 땅은 튀르크족이 이동해 오기 훨씬 전부터
수천년 동안 히타이트, 프리기아 문명들 그리고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을 세우고 살았던 곳이다.
세계에서 옛 문명들과 로마의 유적과 유물들이 원래
모습 그대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 중에 하나이다.
오스만 튀루크 시대부터 터키인들의 정신에 깃들여진
관용과 공존의 삶 때문에 이렇게 보존 될 수 있었다.
터키인들의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자유롭게 함께 살 수 있는 조화로운
곳이기도 하다.
8
17.
실크로드의 중간거점으로 동서문명의
융합을 도모했던 대상들의 교역로로
크게 융성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
형성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로마시대 이래 탄압을 피하여 그리스도
교인들이 이곳에 몰려와 살았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아직도 수천 개의
기암에 굴을 뚫어 만든 카파도키아
동굴수도원이 남아 있다. 약 3백만년 전
화산폭발과 대규모 지진활동으로 잿빛
응회암이 뒤덮고 있으며, 그 후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특이한 암석군을
이루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17
21.
메블라나 루미는 13 세기에 살았던 철학자이자 시인이었다.
루미 선생님은 다양한 문화와 사회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평등하게 관용의
정신으로 베풀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강조했다.
"오라! 오라! 당신이 누구이든 간에 . 무신론자든지.
불을 숭배하는 자든 백 번이나 너의 맹세를 깨었어도 어느
누구이든지 오라!"
21
25.
오스만 제국에서 다양한 민족과 언어 그리고
다양한 종교가 자유롭고 조화롭게 공존했다.
◦ 튀르크, 아랍, 쿠르드, 그리스, 슬라브, 불가리아 등의
민족과 그 민족의 언어
◦ 이슬람교, 그리스 정교, 아르메니아 정교, 유대교, 신교,
카톨릭교 등 종교
25
26.
나, 정복자 술탄 메흐멧은
온 세상에 공포하노니,보스니아 프란체스코 수도원 사람들은 이 칙령에
의거해 나의 보호를 받는다.
내가 명하노니,
어느 누구도 이 수도원과 수도원 사람들을 해할 수 없다! 그들은 내
제국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 것이다.
이주민으로서 그들은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 것이다. 그들은 내 제국의
변방에 있는 수도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내 제국의 어느 누구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주민들의 명예를 실추
시키거나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모욕할 수 없고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며, 그 사람들이나
그들의 재산 및 수도원을 침해 할 수 없다.
또한 그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가져 온 소유물은 가져온 자들의 것이다.
이 칙령을 공포하며 나는 땅과 하늘을 창조하신 하난님과 그의
예언자인 무함마드, 그리고 그 이전에 나타났던 124,000명의
예언자들의 이름으로 내 검에 대고 맹세하노니,
나의 신민이라면 누구도 이 칙령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26
27.
다른 종교인과 민족에 속한 사람들에게 자유와
관용을 제공한 이 칙령은, 메흐멧 2세가
보스니아를 정복한 뒤에 1463년 5월 28일에
공포되었다. 현재 원본이 보스니아 프란체스코
카톨릭교회에 있다.
이 칙령은 1971년에 유엔으로부터 모든 회원
국가 언어로 번역 되었다.
이 칙령은 미국 헌법보다 324년 전, 프랑스 인권
선언보다 326년 전, 세계인권선언보다 485년
전에 공포 되었다.
27
28.
유럽에서 자유롭게 살지 못한
유대인들이 오스만투르크로
피신했다.
◦ 비잔틴 (1326), 헝가리 (1376),
프랑스 (1394), 시칠리아 (1401),
베네치아 (1425), 독일 (1470),
스페인 (1492), 이탈리아 (1537),
보헤미아 (1542)
나임 굴레리유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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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500 주년기념 유대인박물관 관장
31.
터키는 오스만 제국이 몇 백 년 동안 이루어낸
풍요로운 문화를 전승 받았다.
오랜 시간 오스만 제국 문화 속에서 타 종교, 타
문화 사람들을 자신들에게 동화시키지 않고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훌륭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거대한 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터키 공화국이 설립된 후에도 오스만 제국이
문화유산으로 남긴 상호이해, 관용 정신 안에서
소수일지라도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공존이
가능해질 수 있었다.
31
32.
1453년 때부터 터키 이슬람의 중심이었던
이스탄불은 로마 제국의 문화 유산을 전혀
거부하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은 항상 자신을 로마 제국의 후계자로
인식했다.
이스탄불의 다문화 모습은 어쩔 수 없이 받아
드렸던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스탄불에서 2천년 동안 이어서 온 문화들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있다.
오스만제국의 이스탄불 즉 투르크 이스탄불은
이전에 있었던 이스탄불들을 대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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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파묵칼레는 터키어로는 '목화 성'이라는 뜻이다.
수천년 동안 지하에서 흘러 나온 뜨거운
온천수가 산의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면서
지표면에 수많은 물웅덩이와 종유석, 석회동굴
등을 만들었다. 물에 포함되어 있는 미네랄
성분이 지표면을 부드러운 백색 석회질로 덮어
버려 아름다운 지형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고대에는 성스러운
지역으로 여겨졌으며, 로마시대에는 온천으로
유명했다. 최근에는 무분별한 개발과 상업화로
물이 거의 메말라 있다. 현재는 이곳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맨발로만
입장이 가능하다. 파묵칼레의 석회붕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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