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歎
                (탄식할 탄 : 탄식하다, 노래하다.)
제 1 장 재회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던 그때, 혁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이대로 세상을 구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아니었다.



연희.



혁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상상신검의 비급이 천추에게 간파되어 세상을 구하지 못한

슬픔보다 그녀와의 한 달이 거짓이었다는 점. 그녀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점. 그리고 어쩌면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를 한없이 추락하게 했다.

그래서 혁은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저 음악에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기타를 치면서 같이 밴드를 하던 친구들과 밤을

새워 연습을 하고 노래하던 순간.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상황에 자신이 왜 무공을 연마하면서

세상을 구하기로 다짐했는지 기억이 흐릿한 것만 같았다. 처음엔 그저 당연하게 받아드렸던 일이

지금은 왜 그것이 하필 나여야만 했는지 화가 났다. 어느 날 그렇게 갑자기 상상신검을 손에

넣지 않았다면 연희를 만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살았겠지.



그렇게 혁은 고통 속에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고 싶지 않은 자의식은 오래도록 혁을 망망대해에서 떠돌아다니게 했다. 이윽고 신비의 섬

독도에 그의 몸이 다다랐을 때 혁은 누군가의 손길에 눈을 떴다.



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손길과 눈빛이 너무 그리워서 헛것이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고.

아니면 이미 자신이 죽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다면 이것은 분명 현실이

아닐테니.



그리곤 다시 눈을 감았다. 만약 현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따듯한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그것이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



                     “ 혁씨, 이제 정신이 들어요? ”



거짓말처럼 자신의 눈앞엔 그녀가 있었다. 천추가 자신의 아내라고 말했던 연희. 상상신검의

비급을 빼앗기 위해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연희.



꿈이 아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여자가 너무 원망스럽고

미웠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했다.



                   “ 당신이 어째서 여기 있는 거지 ? ”



         “ 미안해요 , 나는 .. 혁이씨 내 얘기를 좀 들어줘요. 사정이 있었어요. ”
“ 사정? 당신은 누구보다 잘 알았잖아. 나는 내 인생을 상상신검을 익히는데 쏟았어. 무려

 10 년이란 시간을 세상을 구해서 돌아가기 위해. 그러다 당신을 만났고 그 한 달이란 시간이

 십년을 뛰어 넘을 만큼, 내 세상에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소중했었는데 당신은

거짓이었어. 당신이 보고 싶지 않아. 어째서 내 앞에 있는 거지? 이번에도 천추가 당신을 나에게

보냈나? 그가 이번엔 뭐라고 하지? 여전히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을 나를 찾아가 아주 세상에서

없애고 돌아오라고 하던가? 자 그럼 나를 죽여. 더 이상 별로 살아있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까. ”



그의 앞에 있는 그녀에게 혁은 날카로운 표정과 말투로 말을 쏟아 냈다. 이제 살고 싶은 마음

따위도 없었다. 어차피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나를 죽이기 위해 왔다면,

그것은 절망스럽긴 했다.



그녀는 가슴 아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곤 이내 조금은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믿어줄 것 같지 않으니까. 일단 기다릴게요. 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어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



혁은 바라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녀는 그런 혁을 두고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다시 혁이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 익숙한 얼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제 2 장 대한민국, 그리고 밴드 歎



                         “ 어 깨어났다! ”



                “정말? 야 준아! 혁이 형 깨어났대 얼른 와 ! ”



그리고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혁은 자신의 앞에 있는 세 명의 익숙한

얼굴에 또 다시 멍해졌다.



그가 연희를 만나기전 어쩌면 가장 마음을 열고 지냈던 세 사람. 밴드 '탄‘의 멤버였던 준, 민석,

현진.
처음 그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세 사람이었다. 밴드인큐베이팅에서

선발되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즐거웠던 다음 날 연습을 하겠다던 혁은 하루 아침에 행방불명이

됐고 ‘탄’은 활동을 멈췄다.



 “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걱정은 했지만 사정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실종신고를 하기도

            뭐해서 조금만 더 기다려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어. ”



밴드 ‘탄’의 드럼을 맡고 있는 준이 혁에게 상황을 설명하게 됐다.



밴드인큐베이팅 당선 후 혁이 사라진 기간은 단 한 달. 멤버들끼리 수소문했지만 혁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고 이제 정말 실종신고를 해야겠다고 뜻을 모았던 날, 연습실에서 정전이 일어났다.

그리곤 정신을 차려보니 이 곳이었고 연희라는 여자가 나타나서 혁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처음엔

다들 어이도 없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믿을 수 밖에 없었고, 몇 일 뒤

연희가 혁을 데려왔을 때 다들 마음속으로부터 수긍을 하게 됐다. 그래서 그들은 일단 혁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혁은 정신이 몽롱했다. 기쁜 마음도 안도감도 아니었다. 그저 일이 너무 커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밴드 멤버들과 10 년 만의 조우인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도 생각이 안날 만큼

깜깜하고 현실같지 않는 현실이란. 게다가 이곳에 와서 10 년의 시간을 보냈는데 단 한 달? 하긴

십년동안 현실세계에서 온 모습 그대로라는 것도 놀랍기는 했지만......



                   “연희가 너희에게 다른 이야기는 없었니? ”



            “ 연희씨도 일단은 형이 깨어나기를 기다려보자고 했어.”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려?



혁은 머리가 더 아파오는 듯 했다. 지금 깨어났지만 자신이 깨어나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상상신검의 약점은 이미 천추에게 드러났고 더 강력한 무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런데 멤버들까지. 능력도 없는데 자신 때문에 엉뚱한 일에 휘말리게 하는 것

같아서 마음만 무거울 뿐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연희, 그녀가 들어왔다.
“소식을 들었어요, 깨어났다고. 몸은... 좀 괜찮아요?”



혁은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믿어야하는 것인지도 여전히 의심스러웠고 만약

그녀에게 이런 사정이 있다고 해도 자신이 쏟아 부었던 그 비수 같은 말들이 떠올라 힘들었다.

하지만 연희는 무슨 마음인지 다 알겠다는 듯이 그에게 다가왔다.



 “복잡한 생각은 하지 말아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에게 나는 결백했지만

상처를 줬고, 아직도 당신이 혼란스러워 하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시간이 없어요, 혁이씨.

    그래서 정말로 당신에게 그리고 ‘탄’에게, 미안하지만 부탁을 하려고 온 거에요.”



 “무얼 부탁한단 말이지? 다시 천추를 물리치는 일이라도 부탁하려는 거야? 그럼 애초에 왜

    그에게 상상신검의 비급을 알려줬지? 도대체 난 연희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



그냥 연희를 믿고도 싶었지만, 그는 여전히 연희를 경계하면서 물었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탄’의 멤버들이 위험에 빠지는 걸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연희는 혁과 다른 멤버들을 한번 바라봤다. 그리고는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멤버분들을 모셔오면서 혁이씨가 깨어나면 설명해 줄 거라고 했던 이야기. 그리고 혁이씨에게

             있었다고 이야기한 사정. 지금 전부 말해 줄게요.



여러분이 있는 이곳은 대한민국이에요. 네, 여러분이 사는 현실세상과 같은 지명인거죠. 하지만

이 곳은 현실세계의 상상력으로 움직이는 곳이에요. 물론 다른 공간이지만 여러분의 세상과 아주

독립되어 있지는 않아요. 그 곳 대한민국의 상상력으로 이 곳 대한민국이 움직이니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상상으로 가득한 세상이었어요. 어디를 가든 즐거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사람들 모두 행복한 상상으로 가득했죠.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였던, 그런 곳이었어요.

함께 문화를 즐기고 예술을 고민하던 그런 나라요.



하지만 어느 날부터 하나씩 어긋나기 시작했어요. 천추. 그가 오고 난 후부터였어요. 예술이니

상상이니 하는 것은 쓸모가 없다는 듯이, 그는 이곳을 서서히 딱딱한 세상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도시는 자꾸 회색빛이 되어갔고, 이제 사람들은 노래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기보다 다른 일로 바빠져 버렸어요. 문화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공간은 점점 좁아졌어요.

여전히 사람들은 예술을 사랑하지만 시간이 없었고, 점점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어요.



천추는 바쁜 사람들의 마음을 점점 더 좀먹으면서 계속 힘을 키웠어요. 저는 그걸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사랑하는 이 세계를 지켜야 했고, 그래서 아직 남은 사람들을 모아 ‘독도’로

왔어요. 그리고 천추에게 독도만은 건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와 결혼했죠. 하지만 그와

결혼한 후 전 독도사람들과 천추 몰래 상상신검을 만드는 일을 해왔어요. 그리고 상상신검이

완성됐을 때 저와 독도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대한민국의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이 곳과 그 곳은 독립되어 있는 곳이 아니니까. 뭔가 저 쪽에도 일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우리와 같이 노력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치면 두 세계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그 쪽 세계로 갔을 때, 역시 같았어요. 지금 이 세계의 모습과 여러분이 있는 세상의

모습이 마치 같은 공간인 것처럼.



하지만 곧 절망스러워졌어요. 혁이씨가 있는 세상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고요했으니까. 그 곳에

도움을 청해도 우리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절망에

빠졌을 때 혁이씨를 발견했어요. 혁이씨라면, 혁이씨라면 우리를 도와 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중간에 천추는 뭔가 눈치를 챘어요. 사람들의 소문을 타고 혁이씨의 이야기를 들었던

거에요. 천추는 저를 의심했고 그 의심에서 벗어나야 했어요. 천추를 지켜볼 사람이 계속

필요했고, 천추의 치명적 약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기 때문에. 혁이씨에게 상상신검을

맡기고 10 년이나 지났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그리고 난 당신을 사랑하게 됐으니까. 당신을

잃을 수도 없었어요.“



연희는 혁을 바라봤다.



“ 이제, 그는 독도까지 지배하려고 하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지켜야 하는 건 알지만 뭘 할 수 있겠냐, 이미 천추의 힘이 너무 크다, 혹은 알지만

나는 우선 내가 바쁘니까 하는 회의적인 반응 뿐. 그걸 두고 볼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대책회의를 했고 ‘탄’ 여러분까지 모셔오게 된 거에요. ”
혁을 포함한 탄 멤버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니까 여기가 대한민국인데, 저기도

대한민국이고. 왠지 우리 잘못으로 이 세계가 위험에 빠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하지만 그래서

결국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듯 모두가 미묘한 표정을 짓자 연희는 다시

입을 열었다.



“발상의 전환. 우리는 천추를 없애는 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천추의 손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상상신검을 만든거였고요. 하지만 아니란걸

이번의 실패를 통해서 알았어요. 천추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것만으로 부족한 거에요.

그래서 다시 되짚어 봤어요. 왜 이런 일이 생긴건지.



천추가 있는 성에는 저 쪽 세상에서 상상력이 들어오는 통로가 있어요. 천추가 오고 난 후부터는

조금씩이나마 들어오던 상상력도 모두 말라버렸죠. 그래서 반대로 우리가 여기서 상상력을 채워

넣으면, 이 곳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반대로 그 쪽에 상상력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하고.

천추는 사실 항상 두려워하고 있거든요. 다시 사람들이 상상하게 되면 다시 예술가들이 늘어나게

되면 자신이 설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독도까지 집어 삼키려고 하는 거고 말이죠.“



          “좋은 생각인건 알겠지만, 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

잠자코 듣고 있던 준이 혁 대신 입을 얼였다.



          “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밴드 ‘탄’. 우리는 ‘탄’ 힘이 필요해요.

          여러분의 음악이, 열정이. 여러분의 歎으로 사람들을 움직여주세요.

      다시 행복한 상상이 가득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라면 할 수 있다고 믿어요.“



밴드 歎(탄)


혁은 처음 탄을 결성할 때를 떠올렸다. 밴드 이름을 뭐로 할 까하다가 ‘악기를 연주하다’의

‘타다’의 뜻도 있지만 탄식하다, 노래하다. 라는 뜻의 한자어를 선택하기로 했었다. 노래란

그들에게 나름대로 세상을 탄식(歎息)하는 방법이었고 소통하려는 통로였으니까. 그 탄식으로, 그

노래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감탄(感歎) 이끌어 내는 그런 일에 가슴이 뛰었으니까.



  “우리, 어렵고 힘들게 생각하지 말자. 형. 우린 그냥 우리 음악을 하는 거야.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여기면 어떻고 저기면 어때. 중요한건 밴드 탄이 다시 모였다는 거지.”
“그래, 형. 우리 해보자.”



멤버들의 말에 혁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10 년 혹은 한 달만에 밴드 탄은 다시 시작됐다.



제 3 장 歎, 노래하다.



오랜만에 악기를 잡은 혁은 가슴이 뛰었다. 준의 드럼과 민석의 베이스 그리고 현진의 보컬. 다시

기타를 잡고 음악을 하는 순간이 행복했다. 일단 어떤 길이 보이지 않아도 음악을 하는

순간순간이 소중했다. 그리고 하루. 일주일. 한 달. 새로운 곡을 쓰고 같이 합주를 하고. 혁의

몸도 거의 다 나아갔다. 마침내 밴드 탄은 바다를 건너 뭍으로 향했다.



“ 천추는 당신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어요. 처음에는 여러분이 활동해도 천추는 알아차리지 못할

거에요. 우리 쪽에서도 최선을 다 할테니 힘내 주세요. 여러분이라면 해내실거라고 믿어요. ”



연희의 마지막 당부를 뒤로하고 가장 가까운 곳부터 탄의 활동은 진행됐다. 길, 시장, 운동장.

그들의 음악은 그냥 옆에서 흘러나왔다. 작은 곳부터 점점 활동영역을 넓혀가기로 원래 밴드

탄이 그러했듯이 여기서도 차근차근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것이 그들이 원래 해왔던 일이었고,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들의 공연은 단순히 공연이 아니었다. 삶에 지치고 바쁜 사람들을 어루만질 줄 알았고

흥에 겨운 사람들과 함께 노래했다. 누가 가수이고 누가 관객이고를 떠나서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소통해 나갔다. 그들은 스타가 되려는 것이 아니었고. 사람들은 그

부분에 움직여줬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도 하나 둘 씩 나타났다. 그들의 팬은 물론 함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 그들의 노래에 영감을 얻어 다시 상상을 시작한 사람들.



세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문화의 힘은, 그런 것이었으니까.
제 4 장 천추의 몰락. 되찾은 상상.



탄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무렵, 천추는 미묘한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상상력 통로에 조금씩

상상력이 채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저쪽 나라에서 가끔씩 반짝 일어나는 뭔가라고

생각했다. 가끔 그런 일들이 있곤 했으니까. 하지만 뭔가 달랐다. 조금 다른 종류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천추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연희, 당신은 뭔가 알고 있지 ? 요즘 뭔가 달라졌다는 걸 말이야. ”



            “ 글쎄요, 요즘 저도 성 밖에 잘 안 나가서 모르겠네요. ”



연희가 수상하기는 했지만 딱히 뭐라고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요즘 그녀는 성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엔 독도나, 이 곳 저 곳에 다니곤 했는데, 천추는 점점 더 불안해

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로에는 뭔가 새로운 힘이 들어 차곤 했다. 천추는 점점 자신의 힘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아주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애초에 그들이 한 일은 커다란 것을 터트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주 조금씩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어떤 날은 열 사람. 일상의 변화란 그런 것이었다.

아무도 눈치 챌 만큼은 아니지만 분명히 있는 변화.



그리고 그런 변화들이 모이고 모였을 때의 힘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법이었다.



탄의 활동은 그렇게 진행됐고, 드디어 독도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바로 천추의 성이 있는 그 곳에서 사상 최대의 공연이 준비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입소문만큼 대단한 홍보도 없었지만, 그래도 탄은 초대장을 딱 한 장만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단 한 장의 초대장은 바로 그, 천추에게 전달되었다.



1 년여전 혁에게 결투 신청을 받을 때에도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번엔

불안함과 함께 두려움 그리고 황당함에 휩싸였다. 결투 신청보다 무서운 초대권이라니. 게다가

장소는 바로 성 앞이었다. 그 앞에 정말 사람들이 모이기라도 한다면 그 많은 사람들에게서
한꺼번에 뿜어져 나올 감정들은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공연을

막아야했다.



탄을 잡는다면.



그래 탄을 잡는다면.



그들이 없다면 공연은 물거품이 될게 뻔했다.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도 공연할 가수가 없다면

그걸로 끝일테니까. 설령 다른 밴드가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스타에만 움직이니까. 그런데

탄이라는 놈들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애초에 조용하던 세상에 연희와 독도 조무래기들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상상을 누가 했단 걸까.



고민하던 천추는 우연히 성 벽에 붙어있는 탄의 포스터를 보게 됐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공연당일.


모든 것이 완벽했다. 불안에 떨고 있을 천추가 오히려 불쌍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연희는 방

안에서 미리 잠깐 나가 혁을 만나고 올지 고민을 했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천추가 그녀에 방에 들어왔다.



                       “당신이 어쩐 일로... ”



                   “당신이 꾸민 짓이라는 걸 알아냈어.”



                        “ 무슨 소리에요? ”



연희는 갑자기 찾아온 천추 때문에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제 곧 공연이 있었고

공연을 보러올 사람들의 숫자는 예상할 수도 없는 범위였다. 일이 그르친다면.



이젠 방법이 없었다.



“ 그 녀석 살아있더군. 이 앞에서 공연인지 뭔지를 하겠다는 그 애송이들 중에 그 녀석이 있다는

           사실을 내가 끝까지 몰랐으면 참 좋았을 뻔 했는데, 그렇지 당신? ”
당황한 기색이나 놀란 기색을 숨기고 싶었지만 연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 걱정하지마 , 아직 죽일지 말지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으니까. 일단 오랜만에 그 애송이 얼굴

                          구경이나 해야겠군.”



공연 시작 한 시간 전


혁은 천추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공연 무대에 서는 순간 연희의 목숨이 위태로워 질 거라는 말을

들은 혁은 정신이 아찔했다. 연희를 구해야했다. 하지만 어떻게? 공연은 또 어떡해야 하는 건지.

애속한 시간만 점점 흘러갔다.



공연 시작 5 분 전.


앞으로 공연시작까지 오 분. 연희는 초조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아직 까지 무대 위에 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절대로 혁이 성으로 와서는 안됐다. 만약에라도 혁이 자신 때문에

성으로 온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 때



                            “ 연희!, ”



그가 왔다.



공연 시작 1 분 전


천추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공연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리석은 놈. 자신의 옆에

있는 연희를 한번 바라보고는 그는 혁에게 다가갔다.



공연 시작 3 초 전


“역시, 너는 나를 실망시키지 .... ”




공연 시작.
“♬ ♫ ♪♩”



                              “!!!”



분명 무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들리는 음악소리.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야 ?!”

혁은 미소를 띈 얼굴로 말했다.



              “궁금할까봐 내가 초대권 까지 보내줬잖아. 안 그래? ”



무대가 아니라 무대 밑 곳곳에서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악기가 없는 사람들은 노래를 했다.

애초에 그 무대는 밴드 탄의 공간이 아니었다. 원래 탄의 공연은 그러했으니까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 곳은 그저 축제의 공간이었다. 그러다 흥이 난 한 사람이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하자 다 같이 열광을 했다. 그러다 탄의 다른 멤버들과 사람들이 합주를 하고 같이

노래를 하기도 했다. 순간 성의 상상력 통로에는 사람들의 행복한 감정과 다양한 상상으로 가득

찼다. 이미 천추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마지막 장. 귀환 그리고 ...



천추가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후 한참이 지나서야 연희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혁을 똑바로 바라봤다.



                    “깜짝 놀랐잖아요. 나를 구하러 와서. ”



                    “당신을 구하려오지 않았을 때 놀라야지.”



혁은 연희를 꽉 안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 자 이제 우리도 공연을 즐기러 가자. ”



연희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어마어마한 인파. 무대의 중심에서 진짜 탄의 공연이 펼쳐졌다. 그런 공연 아닌 공연 축제 아닌

축제가 탄이 무대를 내려오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진짜 우리 생에 이렇게 큰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을 줄은 몰랐네. ”



                        “ 그러게 말이다. ”



         “ 가능하지 않겠어 앞으로도 , 이것보다 더 커도 난 할 수 있는데? ”



                          “하하하하”



연희는 그렇게 행복해 하는 그들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리고 혁이 그 시선을 눈치 챘을 때

연희는 그들을 성으로 불렀다.



“탄 여러분에게 정말로 감사드려요. 이제 이 곳은 다시 예전 모습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자. 천추가 가지고 있던 열쇠에요. 그 곳을 통해서 여러분이 온 세계로 여러분의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혁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가는 순간이 온다면. 연희를 두고

현실세계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저 여기에 남아서 이렇게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 행복하지

않을까. 꼭 돌아가는 길을 택해야만 하는걸까.



연희는 그런 혁를 지켜봤다.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눈에 보였고, 물론 연희 그녀 자신도 많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돌아 가야했다. 그게 당연한 것 이었고 순리였으니까.



연희는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고민하지 말아요, 혁이씨. 돌아가서 , 그 곳에서도 사람들을 움직이는 음악을 해 주세요.”



- 대한민국, 서울, 홍대, 상상마당.


밴드 탄은 한창 상상인큐베이팅 콘서트 리허설을 하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저 조금 긴, 같은 꿈을 꾼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다시 그들의 세상에

적응해갔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상상인큐베이팅 밴드들의 합동 콘서트가 있는 날이었다. 리허설

후 마지막 점검을 하고 무대에 오르기 전 밴드 탄 멤버들의 대기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공연시작 5 분 전.


                     “ 재밌게 하자, 신나게 ”

                       “오케이 ! 가자! ”



공연 시작 10 초 전.


환한 무대 조명 아래 선 그들 앞에 많은 관객들이 보였다. 기타를 쥔 혁의 심장이 뛰었다.



공연 시작 5 초 전


혁은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들어 무대 앞에 또렷히 바라봤다. 그리고 ......



                         “ 연희 ...... ”



혁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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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탄식할 탄 : 탄식하다, 노래하다.) 제 1 장 재회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던 그때, 혁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이대로 세상을 구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아니었다. 연희. 혁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상상신검의 비급이 천추에게 간파되어 세상을 구하지 못한 슬픔보다 그녀와의 한 달이 거짓이었다는 점. 그녀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점. 그리고 어쩌면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를 한없이 추락하게 했다. 그래서 혁은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 2. 그저 음악에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기타를 치면서 같이 밴드를 하던 친구들과 밤을 새워 연습을 하고 노래하던 순간.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상황에 자신이 왜 무공을 연마하면서 세상을 구하기로 다짐했는지 기억이 흐릿한 것만 같았다. 처음엔 그저 당연하게 받아드렸던 일이 지금은 왜 그것이 하필 나여야만 했는지 화가 났다. 어느 날 그렇게 갑자기 상상신검을 손에 넣지 않았다면 연희를 만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살았겠지. 그렇게 혁은 고통 속에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고 싶지 않은 자의식은 오래도록 혁을 망망대해에서 떠돌아다니게 했다. 이윽고 신비의 섬 독도에 그의 몸이 다다랐을 때 혁은 누군가의 손길에 눈을 떴다. 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손길과 눈빛이 너무 그리워서 헛것이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고. 아니면 이미 자신이 죽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다면 이것은 분명 현실이 아닐테니. 그리곤 다시 눈을 감았다. 만약 현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따듯한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그것이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 “ 혁씨, 이제 정신이 들어요? ” 거짓말처럼 자신의 눈앞엔 그녀가 있었다. 천추가 자신의 아내라고 말했던 연희. 상상신검의 비급을 빼앗기 위해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연희. 꿈이 아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여자가 너무 원망스럽고 미웠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했다. “ 당신이 어째서 여기 있는 거지 ? ” “ 미안해요 , 나는 .. 혁이씨 내 얘기를 좀 들어줘요. 사정이 있었어요. ”
  • 3. “ 사정? 당신은 누구보다 잘 알았잖아. 나는 내 인생을 상상신검을 익히는데 쏟았어. 무려 10 년이란 시간을 세상을 구해서 돌아가기 위해. 그러다 당신을 만났고 그 한 달이란 시간이 십년을 뛰어 넘을 만큼, 내 세상에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소중했었는데 당신은 거짓이었어. 당신이 보고 싶지 않아. 어째서 내 앞에 있는 거지? 이번에도 천추가 당신을 나에게 보냈나? 그가 이번엔 뭐라고 하지? 여전히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을 나를 찾아가 아주 세상에서 없애고 돌아오라고 하던가? 자 그럼 나를 죽여. 더 이상 별로 살아있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까. ” 그의 앞에 있는 그녀에게 혁은 날카로운 표정과 말투로 말을 쏟아 냈다. 이제 살고 싶은 마음 따위도 없었다. 어차피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나를 죽이기 위해 왔다면, 그것은 절망스럽긴 했다. 그녀는 가슴 아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곤 이내 조금은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믿어줄 것 같지 않으니까. 일단 기다릴게요. 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어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 혁은 바라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녀는 그런 혁을 두고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다시 혁이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 익숙한 얼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제 2 장 대한민국, 그리고 밴드 歎 “ 어 깨어났다! ” “정말? 야 준아! 혁이 형 깨어났대 얼른 와 ! ” 그리고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혁은 자신의 앞에 있는 세 명의 익숙한 얼굴에 또 다시 멍해졌다. 그가 연희를 만나기전 어쩌면 가장 마음을 열고 지냈던 세 사람. 밴드 '탄‘의 멤버였던 준, 민석, 현진.
  • 4. 처음 그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세 사람이었다. 밴드인큐베이팅에서 선발되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즐거웠던 다음 날 연습을 하겠다던 혁은 하루 아침에 행방불명이 됐고 ‘탄’은 활동을 멈췄다. “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걱정은 했지만 사정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실종신고를 하기도 뭐해서 조금만 더 기다려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어. ” 밴드 ‘탄’의 드럼을 맡고 있는 준이 혁에게 상황을 설명하게 됐다. 밴드인큐베이팅 당선 후 혁이 사라진 기간은 단 한 달. 멤버들끼리 수소문했지만 혁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고 이제 정말 실종신고를 해야겠다고 뜻을 모았던 날, 연습실에서 정전이 일어났다. 그리곤 정신을 차려보니 이 곳이었고 연희라는 여자가 나타나서 혁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처음엔 다들 어이도 없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믿을 수 밖에 없었고, 몇 일 뒤 연희가 혁을 데려왔을 때 다들 마음속으로부터 수긍을 하게 됐다. 그래서 그들은 일단 혁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혁은 정신이 몽롱했다. 기쁜 마음도 안도감도 아니었다. 그저 일이 너무 커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밴드 멤버들과 10 년 만의 조우인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도 생각이 안날 만큼 깜깜하고 현실같지 않는 현실이란. 게다가 이곳에 와서 10 년의 시간을 보냈는데 단 한 달? 하긴 십년동안 현실세계에서 온 모습 그대로라는 것도 놀랍기는 했지만...... “연희가 너희에게 다른 이야기는 없었니? ” “ 연희씨도 일단은 형이 깨어나기를 기다려보자고 했어.”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려? 혁은 머리가 더 아파오는 듯 했다. 지금 깨어났지만 자신이 깨어나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상상신검의 약점은 이미 천추에게 드러났고 더 강력한 무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런데 멤버들까지. 능력도 없는데 자신 때문에 엉뚱한 일에 휘말리게 하는 것 같아서 마음만 무거울 뿐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연희, 그녀가 들어왔다.
  • 5. “소식을 들었어요, 깨어났다고. 몸은... 좀 괜찮아요?” 혁은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믿어야하는 것인지도 여전히 의심스러웠고 만약 그녀에게 이런 사정이 있다고 해도 자신이 쏟아 부었던 그 비수 같은 말들이 떠올라 힘들었다. 하지만 연희는 무슨 마음인지 다 알겠다는 듯이 그에게 다가왔다. “복잡한 생각은 하지 말아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에게 나는 결백했지만 상처를 줬고, 아직도 당신이 혼란스러워 하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시간이 없어요, 혁이씨. 그래서 정말로 당신에게 그리고 ‘탄’에게, 미안하지만 부탁을 하려고 온 거에요.” “무얼 부탁한단 말이지? 다시 천추를 물리치는 일이라도 부탁하려는 거야? 그럼 애초에 왜 그에게 상상신검의 비급을 알려줬지? 도대체 난 연희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 그냥 연희를 믿고도 싶었지만, 그는 여전히 연희를 경계하면서 물었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탄’의 멤버들이 위험에 빠지는 걸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연희는 혁과 다른 멤버들을 한번 바라봤다. 그리고는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멤버분들을 모셔오면서 혁이씨가 깨어나면 설명해 줄 거라고 했던 이야기. 그리고 혁이씨에게 있었다고 이야기한 사정. 지금 전부 말해 줄게요. 여러분이 있는 이곳은 대한민국이에요. 네, 여러분이 사는 현실세상과 같은 지명인거죠. 하지만 이 곳은 현실세계의 상상력으로 움직이는 곳이에요. 물론 다른 공간이지만 여러분의 세상과 아주 독립되어 있지는 않아요. 그 곳 대한민국의 상상력으로 이 곳 대한민국이 움직이니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상상으로 가득한 세상이었어요. 어디를 가든 즐거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사람들 모두 행복한 상상으로 가득했죠.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였던, 그런 곳이었어요. 함께 문화를 즐기고 예술을 고민하던 그런 나라요. 하지만 어느 날부터 하나씩 어긋나기 시작했어요. 천추. 그가 오고 난 후부터였어요. 예술이니 상상이니 하는 것은 쓸모가 없다는 듯이, 그는 이곳을 서서히 딱딱한 세상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도시는 자꾸 회색빛이 되어갔고, 이제 사람들은 노래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 6. 하기보다 다른 일로 바빠져 버렸어요. 문화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공간은 점점 좁아졌어요. 여전히 사람들은 예술을 사랑하지만 시간이 없었고, 점점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어요. 천추는 바쁜 사람들의 마음을 점점 더 좀먹으면서 계속 힘을 키웠어요. 저는 그걸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사랑하는 이 세계를 지켜야 했고, 그래서 아직 남은 사람들을 모아 ‘독도’로 왔어요. 그리고 천추에게 독도만은 건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와 결혼했죠. 하지만 그와 결혼한 후 전 독도사람들과 천추 몰래 상상신검을 만드는 일을 해왔어요. 그리고 상상신검이 완성됐을 때 저와 독도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대한민국의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이 곳과 그 곳은 독립되어 있는 곳이 아니니까. 뭔가 저 쪽에도 일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우리와 같이 노력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치면 두 세계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그 쪽 세계로 갔을 때, 역시 같았어요. 지금 이 세계의 모습과 여러분이 있는 세상의 모습이 마치 같은 공간인 것처럼. 하지만 곧 절망스러워졌어요. 혁이씨가 있는 세상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고요했으니까. 그 곳에 도움을 청해도 우리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절망에 빠졌을 때 혁이씨를 발견했어요. 혁이씨라면, 혁이씨라면 우리를 도와 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중간에 천추는 뭔가 눈치를 챘어요. 사람들의 소문을 타고 혁이씨의 이야기를 들었던 거에요. 천추는 저를 의심했고 그 의심에서 벗어나야 했어요. 천추를 지켜볼 사람이 계속 필요했고, 천추의 치명적 약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기 때문에. 혁이씨에게 상상신검을 맡기고 10 년이나 지났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그리고 난 당신을 사랑하게 됐으니까. 당신을 잃을 수도 없었어요.“ 연희는 혁을 바라봤다. “ 이제, 그는 독도까지 지배하려고 하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지켜야 하는 건 알지만 뭘 할 수 있겠냐, 이미 천추의 힘이 너무 크다, 혹은 알지만 나는 우선 내가 바쁘니까 하는 회의적인 반응 뿐. 그걸 두고 볼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대책회의를 했고 ‘탄’ 여러분까지 모셔오게 된 거에요. ”
  • 7. 혁을 포함한 탄 멤버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니까 여기가 대한민국인데, 저기도 대한민국이고. 왠지 우리 잘못으로 이 세계가 위험에 빠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하지만 그래서 결국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듯 모두가 미묘한 표정을 짓자 연희는 다시 입을 열었다. “발상의 전환. 우리는 천추를 없애는 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천추의 손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상상신검을 만든거였고요. 하지만 아니란걸 이번의 실패를 통해서 알았어요. 천추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것만으로 부족한 거에요. 그래서 다시 되짚어 봤어요. 왜 이런 일이 생긴건지. 천추가 있는 성에는 저 쪽 세상에서 상상력이 들어오는 통로가 있어요. 천추가 오고 난 후부터는 조금씩이나마 들어오던 상상력도 모두 말라버렸죠. 그래서 반대로 우리가 여기서 상상력을 채워 넣으면, 이 곳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반대로 그 쪽에 상상력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하고. 천추는 사실 항상 두려워하고 있거든요. 다시 사람들이 상상하게 되면 다시 예술가들이 늘어나게 되면 자신이 설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독도까지 집어 삼키려고 하는 거고 말이죠.“ “좋은 생각인건 알겠지만, 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 잠자코 듣고 있던 준이 혁 대신 입을 얼였다. “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밴드 ‘탄’. 우리는 ‘탄’ 힘이 필요해요. 여러분의 음악이, 열정이. 여러분의 歎으로 사람들을 움직여주세요. 다시 행복한 상상이 가득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라면 할 수 있다고 믿어요.“ 밴드 歎(탄) 혁은 처음 탄을 결성할 때를 떠올렸다. 밴드 이름을 뭐로 할 까하다가 ‘악기를 연주하다’의 ‘타다’의 뜻도 있지만 탄식하다, 노래하다. 라는 뜻의 한자어를 선택하기로 했었다. 노래란 그들에게 나름대로 세상을 탄식(歎息)하는 방법이었고 소통하려는 통로였으니까. 그 탄식으로, 그 노래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감탄(感歎) 이끌어 내는 그런 일에 가슴이 뛰었으니까. “우리, 어렵고 힘들게 생각하지 말자. 형. 우린 그냥 우리 음악을 하는 거야.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여기면 어떻고 저기면 어때. 중요한건 밴드 탄이 다시 모였다는 거지.”
  • 8. “그래, 형. 우리 해보자.” 멤버들의 말에 혁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10 년 혹은 한 달만에 밴드 탄은 다시 시작됐다. 제 3 장 歎, 노래하다. 오랜만에 악기를 잡은 혁은 가슴이 뛰었다. 준의 드럼과 민석의 베이스 그리고 현진의 보컬. 다시 기타를 잡고 음악을 하는 순간이 행복했다. 일단 어떤 길이 보이지 않아도 음악을 하는 순간순간이 소중했다. 그리고 하루. 일주일. 한 달. 새로운 곡을 쓰고 같이 합주를 하고. 혁의 몸도 거의 다 나아갔다. 마침내 밴드 탄은 바다를 건너 뭍으로 향했다. “ 천추는 당신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어요. 처음에는 여러분이 활동해도 천추는 알아차리지 못할 거에요. 우리 쪽에서도 최선을 다 할테니 힘내 주세요. 여러분이라면 해내실거라고 믿어요. ” 연희의 마지막 당부를 뒤로하고 가장 가까운 곳부터 탄의 활동은 진행됐다. 길, 시장, 운동장. 그들의 음악은 그냥 옆에서 흘러나왔다. 작은 곳부터 점점 활동영역을 넓혀가기로 원래 밴드 탄이 그러했듯이 여기서도 차근차근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것이 그들이 원래 해왔던 일이었고,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들의 공연은 단순히 공연이 아니었다. 삶에 지치고 바쁜 사람들을 어루만질 줄 알았고 흥에 겨운 사람들과 함께 노래했다. 누가 가수이고 누가 관객이고를 떠나서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소통해 나갔다. 그들은 스타가 되려는 것이 아니었고. 사람들은 그 부분에 움직여줬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도 하나 둘 씩 나타났다. 그들의 팬은 물론 함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 그들의 노래에 영감을 얻어 다시 상상을 시작한 사람들. 세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문화의 힘은, 그런 것이었으니까.
  • 9. 제 4 장 천추의 몰락. 되찾은 상상. 탄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무렵, 천추는 미묘한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상상력 통로에 조금씩 상상력이 채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저쪽 나라에서 가끔씩 반짝 일어나는 뭔가라고 생각했다. 가끔 그런 일들이 있곤 했으니까. 하지만 뭔가 달랐다. 조금 다른 종류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천추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연희, 당신은 뭔가 알고 있지 ? 요즘 뭔가 달라졌다는 걸 말이야. ” “ 글쎄요, 요즘 저도 성 밖에 잘 안 나가서 모르겠네요. ” 연희가 수상하기는 했지만 딱히 뭐라고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요즘 그녀는 성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엔 독도나, 이 곳 저 곳에 다니곤 했는데, 천추는 점점 더 불안해 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로에는 뭔가 새로운 힘이 들어 차곤 했다. 천추는 점점 자신의 힘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아주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애초에 그들이 한 일은 커다란 것을 터트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주 조금씩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어떤 날은 열 사람. 일상의 변화란 그런 것이었다. 아무도 눈치 챌 만큼은 아니지만 분명히 있는 변화. 그리고 그런 변화들이 모이고 모였을 때의 힘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법이었다. 탄의 활동은 그렇게 진행됐고, 드디어 독도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바로 천추의 성이 있는 그 곳에서 사상 최대의 공연이 준비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입소문만큼 대단한 홍보도 없었지만, 그래도 탄은 초대장을 딱 한 장만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단 한 장의 초대장은 바로 그, 천추에게 전달되었다. 1 년여전 혁에게 결투 신청을 받을 때에도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번엔 불안함과 함께 두려움 그리고 황당함에 휩싸였다. 결투 신청보다 무서운 초대권이라니. 게다가 장소는 바로 성 앞이었다. 그 앞에 정말 사람들이 모이기라도 한다면 그 많은 사람들에게서
  • 10. 한꺼번에 뿜어져 나올 감정들은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공연을 막아야했다. 탄을 잡는다면. 그래 탄을 잡는다면. 그들이 없다면 공연은 물거품이 될게 뻔했다.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도 공연할 가수가 없다면 그걸로 끝일테니까. 설령 다른 밴드가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스타에만 움직이니까. 그런데 탄이라는 놈들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애초에 조용하던 세상에 연희와 독도 조무래기들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상상을 누가 했단 걸까. 고민하던 천추는 우연히 성 벽에 붙어있는 탄의 포스터를 보게 됐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공연당일. 모든 것이 완벽했다. 불안에 떨고 있을 천추가 오히려 불쌍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연희는 방 안에서 미리 잠깐 나가 혁을 만나고 올지 고민을 했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천추가 그녀에 방에 들어왔다. “당신이 어쩐 일로... ” “당신이 꾸민 짓이라는 걸 알아냈어.” “ 무슨 소리에요? ” 연희는 갑자기 찾아온 천추 때문에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제 곧 공연이 있었고 공연을 보러올 사람들의 숫자는 예상할 수도 없는 범위였다. 일이 그르친다면. 이젠 방법이 없었다. “ 그 녀석 살아있더군. 이 앞에서 공연인지 뭔지를 하겠다는 그 애송이들 중에 그 녀석이 있다는 사실을 내가 끝까지 몰랐으면 참 좋았을 뻔 했는데, 그렇지 당신? ”
  • 11. 당황한 기색이나 놀란 기색을 숨기고 싶었지만 연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 걱정하지마 , 아직 죽일지 말지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으니까. 일단 오랜만에 그 애송이 얼굴 구경이나 해야겠군.” 공연 시작 한 시간 전 혁은 천추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공연 무대에 서는 순간 연희의 목숨이 위태로워 질 거라는 말을 들은 혁은 정신이 아찔했다. 연희를 구해야했다. 하지만 어떻게? 공연은 또 어떡해야 하는 건지. 애속한 시간만 점점 흘러갔다. 공연 시작 5 분 전. 앞으로 공연시작까지 오 분. 연희는 초조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아직 까지 무대 위에 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절대로 혁이 성으로 와서는 안됐다. 만약에라도 혁이 자신 때문에 성으로 온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 때 “ 연희!, ” 그가 왔다. 공연 시작 1 분 전 천추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공연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리석은 놈. 자신의 옆에 있는 연희를 한번 바라보고는 그는 혁에게 다가갔다. 공연 시작 3 초 전 “역시, 너는 나를 실망시키지 .... ” 공연 시작.
  • 12. “♬ ♫ ♪♩” “!!!” 분명 무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들리는 음악소리.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야 ?!” 혁은 미소를 띈 얼굴로 말했다. “궁금할까봐 내가 초대권 까지 보내줬잖아. 안 그래? ” 무대가 아니라 무대 밑 곳곳에서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악기가 없는 사람들은 노래를 했다. 애초에 그 무대는 밴드 탄의 공간이 아니었다. 원래 탄의 공연은 그러했으니까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 곳은 그저 축제의 공간이었다. 그러다 흥이 난 한 사람이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하자 다 같이 열광을 했다. 그러다 탄의 다른 멤버들과 사람들이 합주를 하고 같이 노래를 하기도 했다. 순간 성의 상상력 통로에는 사람들의 행복한 감정과 다양한 상상으로 가득 찼다. 이미 천추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마지막 장. 귀환 그리고 ... 천추가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후 한참이 지나서야 연희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혁을 똑바로 바라봤다. “깜짝 놀랐잖아요. 나를 구하러 와서. ” “당신을 구하려오지 않았을 때 놀라야지.” 혁은 연희를 꽉 안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 자 이제 우리도 공연을 즐기러 가자. ” 연희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 13. 어마어마한 인파. 무대의 중심에서 진짜 탄의 공연이 펼쳐졌다. 그런 공연 아닌 공연 축제 아닌 축제가 탄이 무대를 내려오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진짜 우리 생에 이렇게 큰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을 줄은 몰랐네. ” “ 그러게 말이다. ” “ 가능하지 않겠어 앞으로도 , 이것보다 더 커도 난 할 수 있는데? ” “하하하하” 연희는 그렇게 행복해 하는 그들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리고 혁이 그 시선을 눈치 챘을 때 연희는 그들을 성으로 불렀다. “탄 여러분에게 정말로 감사드려요. 이제 이 곳은 다시 예전 모습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자. 천추가 가지고 있던 열쇠에요. 그 곳을 통해서 여러분이 온 세계로 여러분의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혁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가는 순간이 온다면. 연희를 두고 현실세계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저 여기에 남아서 이렇게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 행복하지 않을까. 꼭 돌아가는 길을 택해야만 하는걸까. 연희는 그런 혁를 지켜봤다.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눈에 보였고, 물론 연희 그녀 자신도 많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돌아 가야했다. 그게 당연한 것 이었고 순리였으니까. 연희는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고민하지 말아요, 혁이씨. 돌아가서 , 그 곳에서도 사람들을 움직이는 음악을 해 주세요.” - 대한민국, 서울, 홍대, 상상마당. 밴드 탄은 한창 상상인큐베이팅 콘서트 리허설을 하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 14. 처음에는 모두가 그저 조금 긴, 같은 꿈을 꾼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다시 그들의 세상에 적응해갔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상상인큐베이팅 밴드들의 합동 콘서트가 있는 날이었다. 리허설 후 마지막 점검을 하고 무대에 오르기 전 밴드 탄 멤버들의 대기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공연시작 5 분 전. “ 재밌게 하자, 신나게 ” “오케이 ! 가자! ” 공연 시작 10 초 전. 환한 무대 조명 아래 선 그들 앞에 많은 관객들이 보였다. 기타를 쥔 혁의 심장이 뛰었다. 공연 시작 5 초 전 혁은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들어 무대 앞에 또렷히 바라봤다. 그리고 ...... “ 연희 ...... ” 혁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