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말
1914년 12월,‘압돌바하’를 알현한 일이 있는 친구들과 대
화하기도 하고 또 몇 권의 작은 책자들을 얻어 읽기도 하여 비
로소 바하이 가르침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곧 이 가르침의 뜻 깊
음과 권위 있음과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였다. 그것은 내가 지금
까지 접촉한 다른 어느 종교보다도 현 세계의 큰 요구에 충분히
만족하게 합치된다고 생각하였고, 그 인상은 후일의 연구에 의
하여 더욱 깊어지고 확실해졌다.
나는 이 운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기 위해 필요한 문헌을
수집하는데 매우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내가 배워 얻
은 것들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려고 생각하였다. 세계대전 후‘팔레스타인’과의 교
통이 회복되자, 나는‘압돌바하’께 편지를 보내면서 본서 9장
까지의 원고를 동봉하여 보냈다. 그에 대하여 나는 사랑 깊은
격려의 답장을 받고, 또 나의 초고(草稿) 전부를 가지고‘하이
파’로 와 달라는 친절한 초청을 받았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초청에 응하여, 1919년과 20년에 걸쳐 약 2개월 반의 겨울을
‘압돌바하’의 빈객으로 지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압돌바하’께서는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여러 기회에 걸쳐
본서에 관하여 말씀해 주셨다. 본서의 개선을 위하여 나에게 중
요한 암시를 주셨고, 또 내가 원고를 수정하면 그것을 전부 페
르시아어로 번역시켜서 자신이 그것을 통독하여 필요한 곳을
수정하고 첨삭하도록 제의하셨다. 이 제의대로 수정과 번역이
1
진행되어,‘압돌바하’께서는 그 다망한 시간을 할애하시어 그
분 생전에 약 3장 반 (1, 2, 5장과 제 3장의 일부)을 수정해 주
셨다.‘압돌바하’께서 이 초고 전부의 수정을 끝내지 못하여,
본서의 가치를 크게 높이지 못한 것을 나는 심히 유감으로 생각
하는 바이다. 그러나 초고 전부는 바하이 영국 전국신성회의 면
밀한 교정을 받았고, 또 이 신성회에 의하여 출판이 승인되었
다.
나는 여기서‘E. J. 로젠버그’양,‘클로디아 S. 코올스’부인,
‘로트풀라 S. 하킴’선생,‘로이 윌헬름’씨,‘마운트포트 밀스’
씨 및 그 밖의 여러분들이 본서를 위해 해주신 귀중한 조언에
대하여 충심으로 감사하는 바이다.
‘애버딘’교외‘페어포드 컬츠’에서‘J. E. 엣슬몬트’
2
229
목 차
제 1 장 기쁜소식 ··················1
역사상 가장 큰 사건 ··············1
변천하는 세계·················3
정도의 태양··················4
‘바하올라’의 사명···············5
예언의 실현··················6
예언자인 증거·················8
탐구의 곤란··················9
본서의 목적 ·················10
제 2 장 선구자‘바압’ ···············13
새로운 계시의 발상지 ·············13
초기 생애 ··················15
선언 ····················16
바비운동의 전개 ···············17
‘바압’의 주장 ················18
박해가 더욱 심해짐 ··············19
‘바압’의 순교 ················20
‘칼멜’산 위의 무덤··············21
‘바압’의 저서 ················22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 ············23
부활, 천당, 지옥 ···············24
사회적 및 윤리적 가르침 ···········24
수난과 승리 ·················25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바하올라’··········27
탄생과 유년시대 ···············27
바비로서 감옥에 갇힘 ·············28
‘바그다드’로 추방됨 ·············30
황야에 서의 2년 ···············31
‘몰라’의 압박 ················32
230
‘바그다드’교외‘레즈완’에서의 선언 ·····33
‘콘스 탄티노플’과‘아드리아노플’·······34
여러나라 왕에게 서한을 보냄 ·········35
‘악카’에서의 감 옥 생활 ···········36
속박이 완화됨 ················37
옥문이 열림 ·················38
‘바흐지’에서의 생활 ·············41
승천 ····················43
‘바하올라’의 예언자적 지위··········44
‘바하올라’의 사명 ··············49
‘바하올라의 저서 ··············51
바하이 정신 ·················53
제 4장‘압돌바하’바하의 종 ············55
탄생과 유년시대 ···············55
청년시대 ··················57
결혼 ····················58
성약의 중심 ·················59
다시 엄중히 감 금됨 ·············60
터키 조사위원회 ···············64
서양 여행 ·················· 65
성지에 귀향 ·················66
전쟁 중의‘하 이파’ ·············68
대영제국의 훈작사 KNIGHT‘압돌바하 압바스’ ··69
만년 ····················69
‘압돌바 하’의 서거··············70
저서와 강연 ·················72
‘압돌바하’의 지위 ··············73
바하이 생활의 구현자 ············75
제 5장 바하이란 무엇인가··············77
삶의 영위 ··················77
하느님께 대한 헌신 ··············79
진리탐구 ··················80
하느님께 대한 사랑 ··············82
끊어버림 ··················84
순종 ····················85
봉사 ····················87
교도 ····················87
예의와 존경 ·················89
죄를 덮어주는눈 ···············91
겸손 ····················92
정직과 성실 ·················93
자기 실현 ··················94
제 6장 기 도····················97
하느님과의 대화 ···············97
기도하는 태도 ················98
매개자의 필요 ···············100
기도는 꼭 필요하고의무적인 것임 ·······101
회중기도 ··················102
기도는 사랑의 말이다 ············103
재난에서의 해방 ··············104
기도와 자연법칙 ··············106
바하이의 기도 ···············107
제 7장 건강과 치유 ················111
육체와 영혼 ················111
모든 생명의 일체성 ·············111
단순한 생활 ················112
알콜과 아편 ················113
향락 ····················113
청결 ····················114
예언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효과 ········114
의사로서의 예언자 ·············116
물질적 방법에 의한 치료 ···········116
231
비 물질적 방법에 의한 치료 ·········118
성령의 힘 ·················120
병자의 태도 ················120
치병자 ···················122
사람은 어떻게 서로 도울 것인가 ·······124
황금시대 ··················125
건강을 바르게 쓰는 법 ············125
제 8장 종교의 융합 ················127
19세기의 종파주의 ·············127
‘바하올라’의 전언傳言 ···········128
인간성은 변화할 수 있는가 ··········129
융합에로의 첫 걸음 ·············131
권위의 문제 ················132
점진적 계시 ················133
예언자들의 확실성 ·············135
지고의 현시 ················137
새로운 정세 ················138
바하이 계시의 충만 ·············139
바하이 성약 ················140
직업적 성직자가 없음 ············143
제 9장 참다운 문명 ················145
종교는 문명의 기초이다 ···········145
정의 ····················146
정부 ····················147
정치상의 자유 ···············150
통치자와 국민 ···············151
임명과 승진 ················152
경제 문제 ·················153
공공재정 ··················154
자발적 분배 ················154
모든 사람은 일해야 한다 ···········155
232
부의 윤리 ·················156
산업상의 노예를 인정하 지 않음 ·······157
유산과 상속 ················159
남녀 평등 ·················159
여성과 신시대 ···············161
폭력수단 을 피할 것 ·············162
교육 ····················163
천성의 선천적 차이 ·············164
품성의 훈련 ················165
예술, 과학, 기술 ··············166
범죄자 다루기 ···············166
신문의 힘 ·················168
제 10장 평화에 이르는 길 ·············169
갈등과 협조 ················169
최대의 평화 ················170
종교적 편견 ················171
인종적 및 애국적 편견 ············173
영토적 야심 ················174
세계어 ···················175
국제연맹 ··················178
국제중재 ··················180
군비제한 ··················181
무저항 ···················181
정의의 전쟁 ················183
동서양의 융합 ···············184
제 11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187
수도원 생활 ················187
결혼 ····················188
이혼 ····················189
바하이력 ··················190
신성회 ···················191
233
축제 ···················194
단식 ····················195
집회 ····················196
19일 축제 ·················198
‘마슈리꼴 아즈카르’ ············198
사후 의 생애 ················200
천국과 지옥 ················202
두 세계의 일체성 ··············204
악은 실재하지 않음 ·············207
제 12장 종교와 과학 ···············209
충돌은 잘못해서 생김 ············209
예언자들의 수난 ··············210
조화의 새벽 ················212
진리탐구 ··················213
진정한 불가지론 ··············214
하느님에 대한 인식 ·············215
하느님의 현시자 ··············216
창조 ····················217
인류의 계통 ················219
육체와 영혼 ················220
인류의 일체성 ···············222
융합의시대 ·················223
제 13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225
234
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1 장
기 쁜 소 식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된 분이 오셨다. 모든 민족과
모든 공동체들은 계시를 기다려 왔고, 바하올라, 그분은 전 인
류의 으뜸가는 교사요 대 교육자이시다. --- 압돌바하
역사상 가장 큰 사건
우리가 지금 과거의 기록을 더듬어‘인간 진보’의 역사를 연
구해 본다면 인류를 진보시켜 준 선각자들이 여러 시대를 통하
여 그 시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보다 훨씬 앞선 점을
인식하여 그때까지 인류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진리의 발견자,
계시자로서 그 당시 사람들을 지도해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발명가, 개척자, 천재, 예언자 - 주로 이러한 사람들
에 의하여 이 세계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카알라일은 다
음과 같이 말했다.
“아주 분명한 사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생각한다........ 하
나의 보다 높은 지혜,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정신적 진리
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갖지 않은 열 사람보다 만 사람보다, 아
니, 그것을 갖지 않은 모든 사람보다도 강하다........ 그가 만
인 위에 뛰어남이 마치 천검(天鈐)을 가진 영묘(靈妙)한 천사
3
제 1 장 기쁜소식
4
바하올라와 신시대
의 모든 권력에는 어떠한 방패나 철성(鐵城)으로도 대항할 수
없음과 같다.”---‘시대의 징조’에서
과학, 예술, 음악의 역사에서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한 많은 설
명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상의 위대한 인물과 그의
사명이 지극히 중대한 의의(意義)를 가진 것만큼 명확한 사실
을 다른 어떤 부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고래로 어느 시대에
나 사람들의 정신생활이 타락하고 도덕이 부패해지면 신비스럽
고 놀라운 인물, 즉 예언자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는 다만 혼자
서, 자기를 이해해 주는 자도 없고 교도하여 주고 책임을 함께
하는 자도 없이 마치 장님무리 가운데 단 한사람의 눈뜬 자와도
같이, 다만 혼자서 전 세계를 향하여 정의와 진리의 복음을 선
포하는 것이다.
예언자 중에는 특별히 탁월한 분들이 있다. 몇 세기마다 하느
님의 위대한 계시자 - 크리슈나, 조로아스터, 모세, 그리스도,
모하멧과 같은 분들이 동양에서 마치 정신적인 태양처럼 나타
나서 사람들의 어두운 정신을 빛내고 잠들어 있는 영혼을 흔들
어 깨워주셨다. 이러한 종교 창시자들의 위대성(偉大性)을 비
교하여 말함에 있어서 그 견해를 달리하는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인류의 교육에 있어서 그분들이 가장 강력한 요소(要素)로 작
용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예언자들은
모두 선언하셨다. 즉, 자신들의 말은 자기들 자신의 말이 아니
라 자기들을 통해 내려온 계시요 성스러운 메시지이고, 자기들
은 그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자라고. 기록에 남아 있는 그분들의
말씀 가운데는 반드시‘때가 오면’위대한 세계의 지도자가 출
현하리라는 암시와 약속이 많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저들의 성
업(聖業)을 완성하여 거기에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나타나
는 것이라고. 그분에 의하여 지상세계(地上世界)는 평화와 정
의의 통치를 완성하여 모든 종족, 종교, 국가, 민족은 하나의 큰
가족을 이루어‘하나로 뭉쳐서 한분의 목자에 의하여 양육될
것이요’, 모든 사람은‘지극히 하찮은 자로부터 가장 위대한 자
에 이르기까지’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말세의 이 위대한‘인류의 교육자’가 도래하는 날이야 말로
참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바하
이신앙은 그 대교육자가 이미 실제로 출현하셨으며 계시가 전
해지고 기록되어서 진실한 구도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고,‘주
의 날’이 벌써 밝아서‘정도(正道)의 태양’이 떠올랐다는 기쁜
소식을 전 세계에 선언하고 있다. 이 영광스러운 광륜(光輪)을
본 자는 산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이 광선
은 이미 하늘과 땅을 비치고 있으니 머지않아 산을 넘어 떠오를
것이요, 그리하여 평원과 골짜기까지 전력으로 비치어 전 인류
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을 지도할 것이다.
변천하는 세계
19세기로부터 20세기 초기에 걸쳐 세계가 낡은 시대의 죽어
가는 단말고(斷末苦)와 새 시대를 낳는 진통(陣痛)의 기간을
겪고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유물주의(唯
物主義), 이기주의(利己主義)와 같은 묵은 사상과, 낡은 종파
적, 애국적인 편견과 증오는 그것들 자체가 쇠퇴함에 따라 점차
그 면목이 희미해지고, 모든 나라에는 새로운 신앙과 인류애(人
類愛), 국제주의와 같은 새로운 정신이 일어나 낡은 질곡(桎梏)
에서 벗어나고 묵은 경계선을 넘으려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
5
제 1 장 기쁜소식
찍이 보지 못한 큰 세력으로써 혁명적인 변화가 인간생활의 모
든 분야에 일어났다. 그러나 낡은 시대가 아직도 완전히 쇠멸한
것이 아니어서, 그는 다가오는 새 시대와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
을 하고 있다. 거기에는 거대한 무서운 폐해가 생기고, 그것들
은 새 힘과 새 희망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정체가 폭로되어
조사를 받고 공격을 당하고 있다. 어두운 구름은 몽롱하게 무서
운 광경을 나타내고 있으나 빛은 그 구름을 뚫고 향상(向上)의
길을 비치어 앞길을 막는 장애물과 함정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8세기는 이와 달랐다. 당시는 정신적, 도덕적 생활의 암흑시
대여서 빛이 비칠 틈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것은 여명(黎明)
직전의 어둠으로서, 간신히 흘러나오는 등불 빛이 있기는 해도
그 암흑을 비칠만한 힘이 없었다. 카알라일은 그의‘프레데릭
대왕전’에서 18세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가 없었던 시대, 역사를 가질 수 없는 시대, 일찍이 보
지 못한 거짓이 충만했던 시대, 거짓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깨
닫지 못한 시대, 부정(不正)이 제멋대로 날뛰어 병이 고황에
들었던 시대, 이와 같이 악이 쌓이고 쌓인 결과로 마침내 프랑
스혁명이 그것에 종말을 지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러
한 시대에 당연한 결말이 온 것을 감사한다. 사람의 자식들이
꼬리 없는 원숭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또 한번 하느님의 계
시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프레데릭 대왕전’제 1권 제 1장
이 18세기 시대에 비하면 현대는 마치 암흑 후의 서광시대요
엄동 후의 양춘시대로서, 세계는 새 생명에 약동하고 새 이상과
새 희망에 불타고 있다. 몇 해 전까지는 불가능한 공상으로 보
6
바하올라와 신시대
이던 것이 지금은 사실로 성취되었고, 몇 세기 후의 일로만 생
각되었던 일이 이미 실제문제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하
늘을 날아다니고 바다 밑을 잠항하게 되었으며, 전광(電光)의
속도로 전 세계에 통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 해 사이
에 대 군국주의가 거꾸러지고 여성들은 종래에 하지 못했던 직
업에 종사하게 되었으며, 국제연맹이 탄생하고, 그 밖의 기적과
같은 여러 가지 사실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정도(正道)의 태양
세계에 넘쳐흐르는 이 급격한 각성의 원인이 무엇인가? 바하
이는 이것을, 지금으로부터 약 1세기 전 페르시아에서 탄생하
시어 19세기 말엽에 성지(聖地)에서 세상을 떠나신 예언자 바
하올라를 통하여 이루어진, 성령(聖靈)의 크나 큰 발로(發露)
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다.
태양이 자연계에 광명을 주는 존재인 것 같이 예언자, 혹은
‘하느님의 현시자’는 정신계에 광명을 가져오는 존재라는 것을
바하올라께서는 가르치셨다. 물질적 태양이 지상세계를 비치어
물질유기체(物質有機體)를 성장, 발육시킴과 같이 하느님의 현
시자를 통하여 진리의 태양은 마음과 영혼의 세계를 비추어 인
간의 사상과 도덕과 성격을 교육한다. 자연계의 태양의 빛이 온
세계를 비추고 그늘진 구석까지 침투하여 태양을 보지도 못한
생물에게까지 열과 생명을 주는 힘이 있음과 같이, 성령의 발로
는 하느님의 현시자를 통하여 모든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
고, 예언자의 출현은 봄이 다시 돌아옴과 같아서 영적으로 죽은
자에게 새 생명을 불러일으키는‘부활의 날’인 것이다. 그리하
여 하느님의 종교의 실체가 갱신되고 재건되어 거기에‘새로운
7
제 1 장 기쁜소식
하늘과 땅’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에 있어서는 봄이 생물에게 새 생명의 생장과
각성을 줄 뿐 아니라 노쇠하게 만드는 요소를 파괴하여 쫓아버
린다. 꽃이 피게 하고 움이 트게 하는 태양의 힘은, 동시에 또한
죽어서 무용하게 된 물건을 썩어 없어지게 한다. 그리고 굳은
얼음을 깨뜨리고 쌓인 눈을 녹이며 홍수와 폭풍을 일으켜 지상
을 청소한다. 영적(靈的)세계에 있어서도 이와 같아서 정신적
태양의 광명은 동일한 동요(動搖)와 변화를 정신세계에 일으킨
다. 그리하여 부활의 날은 또한 심판의 날이기도 한 것이다. 부
패와 진리의 모방, 그리고 무용한 낡은 관념과 좋지 못한 관습
은 버림을 받고 멸망을 당하는 것이니, 겨울 동안에 쌓이고 쌓
였던 편견과 미신의 어름과 눈이 풀리고 오래 얼어붙었던 세력
이 홍수처럼 넘쳐흘러서 이 세계를 갱신케 하는 것이다.
바하올라의 사명(使命)
바하올라께서는 분명히, 그리고 거듭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
셨다. 그분은 자기 자신이 전 인류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교육자
요 교사이며, 이전의 모든 하느님의 은총의 발로(發露)를 초월
한 신비스러운 은총의 수로(水路)가 되어, 그 도도한 흐름 속에
마치 모든 냇물이 바다에 흘러 들어감과 같이 종래의 여러 가지
형태의 종교가 융합될 것이라고. 그리고 이전의 예언자가 말씀
하시고 시인이 노래한 바와 같이 전 인류의 선량한 의사가 소통
하여 전 세계가 통합되고 지상에 완전 평화의 황금시대가 이루
어질 확고한 주춧돌을 놓았다고 하셨다.
진리의 탐구, 인류의 일체성, 종교와 종족과 국가와 동서양의
8
바하올라와 신시대
통합, 종교와 과학의 조화, 편견과 미신의 근절, 남녀 평등, 정
의와 정도의 확립, 최고 국제재판소의 설치, 언어의 통일, 지식
의 의무적 보급, 그 밖의 여러 가지 가르침은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에 바하올라의 붓으로 계시되어 많은 서적과 서한에 기
록되어 있고, 그 중 몇 가지 사항은 세계의 제왕과 지배자들에
게 보낸 서한에도 씌어 있다.
그 범위와 내용이 지극히 광대하고 심오한 그분의 계시는 참
으로 놀랍게도 시대의 요구와 목적에 합치되어 있다. 현대처럼
크고 복잡하고 새로운 여러 가지 문제에 당면했던 시대가 없었
고, 현대처럼 많은 해결 방책이 제시되면서도 그것들이 모순에
가득 차 있던 시대가 없었으며 현대처럼 기대가 일반적인 때도
없었을 것이다.
예언의 실현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지금으로부터 20세기 전에 나타나셨을 당시
유대인들은 모두 그분의 출현을 열망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매
일 열심히‘오 하느님 구세주의 계시를 빨리 내려 주소서’하
면서 기도하였다. 그러나 진리의 태양이 그 서광을 발하기 시
작하자 저들은 그리스도 그분이 구세주임을 부인하고, 그분에
대항하여 몹시 미워한 나머지 그분을 악마라고 불러, 마침내
‘하느님의 말씀’이요‘하느님의 정신’인 그분을 무참하게도 십
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실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거니와 그
이유는 이러하다. 저들 유대인들은 말하되, 토라의 원전(原典)
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곧 구세주라 함에는 확실한 표징에 의하
9
제 1 장 기쁜소식
여 검증되어야 할 것인데 이와 같은 표징이 없는 이상, 그가 아
무리 구세주라고 주장할 지라도 그는 사기꾼이다. 그 표징 가
운데는 이러한 것이 있다. 즉, 구세주는 세상이 모르는 곳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자렛 에 있는 그 사람의 생가
(生家)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어찌 나자렛에서 그런 일이 생
길 수 있겠는가? 다음의 표징은 이러하다. 구세주는 쇠 지팡이
로 지배한다 하였으니 그는 반드시 검을 잡고 활동해야 할 것
인데 이 사람은 나무 지팡이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또 다른
조건인 표징은 이러하다. 그는 다윗의 왕좌에 앉아 다윗의 통
치권을 확립해야 할 것인데 이 사람은 왕좌에 앉기는커녕 자기
가 앉을 거적자리 한 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또 토라의
율법을 전부 지켜야 할 것인데 그는 이 율법을 무시하였다. 안
식일의 계율을 깨뜨린 자와 기적을 행한 자와 예언자라고 공언
하는 자는 누구든지 사형에 처한다고 토라의 율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그는 안식일의 계율을 깨뜨리지 않았는가. 또 다른 표
징으로는 구세주의 치세(治世)에는 정의가 증진되고 바른 길과
착한 행실이 인간으로부터 동물세계에까지 널리 퍼져서 뱀과
생쥐가 한 굴에서 살고 독수리와 꿩, 새가 한 둥우리에, 사자와
양이 한 목장에, 이리와 양이 한 샘에서 물을 마시게 되어야 할
것인데 부정의(不正義)와 포학한 정치가 그리스도를 학살하도
록 사람들의 마음이 거칠어진 시대가 아닌가. 또 다른 조건은,
구세주가 나타나면 유대인은 번영하여 세계의 모든 나라를 정
복하고 통치해야 할 것인데 그들은 로마제국에 정복되어 무서
운 굴욕과 불운에 울고 있지 않은가. 이러하거늘 어찌 이 사람
이 토라의 경전에 약속된 구세주일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말
하는 것이었다.
10
바하올라와 신시대
유대인들은 이러한 이유로서 진실로 그분이 토라에 약속된
‘하느님의 정신’임에도 불구하고‘진리의 태양’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토라에 기록된 그 표징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여‘하
느님의 말씀’을 학살한 것이다. 바하이는 그 해석을 유대인과
는 달리하여, 토라에 기록된 구세주의 표징이란 것은 비유적인
우의(愚意)로써 표현된 것이요,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하느님
의 계시에 의하여 나타나셨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
컨대, 구세주의 통치권의 뜻은, 바하이가 믿는 바에 의하면 짧
은 시일에 멸망하는 나폴레옹의 통치권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
것은 천국적인 신성한 항구(恒久)의 통치권을 말하는 것이다.
진실로 그리스도의 통치는 2천년 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 성스러운 존재자(存在者)는 영원히 불
멸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뜻으로써 다른 많은 표징도 나타났건만 유대인들
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영광을
가지고 나타나신 이래 거의 20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직도 구세주가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
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바를 진리로 알고 그리스도를 거짓
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 본장을 위하여 압돌바하께서 친히 쓰신 것임.
만일 유대인들이 그 의심되는 뜻을 그리스도께 물었더라면 그
분은 반드시 자기 자신에 관한 예언의 참뜻을 설명하셨을 것이
다. 우리는 이러한 실례에 의하여 얻는 바가 있어야 하겠다. 그
리하여 우리가 후대(後代)의 대 교사의 현시에 관한 예언이 실
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단정하기 전에, 바하올라께서 그러한 예
언의 해석에 대하여 쓰신 것을 보기로 하자. 그것은 예언이란
11
제 1 장 기쁜소식
것의 대부분이‘봉인된’말씀이어서 진정한 인류교육자 자신이
라야 비로소 그 비봉(秘封)을 뜯어 그 속에 감추어진 참뜻을 명
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하올라께서 고대의 예언에 대
하여 많은 설명을 기술하셨다. 그러나 그것을 기초로 하여 그분
자신이 예언자임을 증거 하려하지는 않으셨다. 태양은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에게는 그 자체가 증거인 것이
다. 태양이 떠오를 때 그 빛나는 광명에 대하여 묵은 증거를 끌
어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의 현시자의 출현도 이와 같아
서 지난날의 예언이 전부 잊혀졌더라도 영적감각(靈的感覺)이
열려져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분 자신이 완전하고 충분한 증
거인 것이다.
예언자인 증거
바하올라께서는 자신의 설명이나 가르침을 누구에게나 맹목
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는 않으셨다. 그와는 반대로, 그
분은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위험성을 경계하시고,
진리탐구를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거리낌 없이 자기의 눈과 귀
를 열어 자기의 판단으로써 탐구할 것을 권하셨다. 그분은 자신
이 예언자인 증거로써, 당신의 언행과 그것의 결과로써 여러 사
람의 생활과 품성을 도야(陶冶)하고 변화시킨 사실을 제공하
여, 그것들을 충분히 검토할 것을 요구하시고, 조금도 스스로를
숨기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제기한 사고 방법은
그분 이전의 현시자들이 보여준 바와 같은 것이었다. 모세께서
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한 일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
12
바하올라와 신시대
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
라.”---‘신명기’제 18장 22절
그리스도께서도 분명히 이와 같은 시험 방법으로써 그분 자신
을 증거하려 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
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지
나무에서 포도를, 또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
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
매를 맺나니........ .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제 7장 15~20절
이하의 각장에서 우리는 바하올라께서는 예언자인가, 혹은 예
언자로서의 이러한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신 것인가, 즉 그분께
서 말씀하신 바가 실현되었는가, 또는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
왔는가, 아니면 나쁜 결과를 가져왔는가. 다시 말하자면 그분의
예언이 실현되고 그분의 가르침이 확립되었는가. 그리고 그분
의 일생의 사업이 인류의 교육에, 인문의 향상에, 덕성의 함양
에 얼마나 공헌하였는가. 또는 반대로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했
는가에 대해서 연구하여 보기로 한다.
탐구의 곤란
이 대업(大業)을 연구하여 그 사실의 진상을 깊이 파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 연구 상 적지 않은 곤란이 있다. 도덕의 대혁
신과 정신의 개조에 있어서 대개 그러하였던 바와 같이 바하이
신앙은 많은 오해를 받았다. 바하올라와 그분의 신도들이 받은
무서운 박해와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던가는 적이나 동지나 다
13
제 1 장 기쁜소식
같이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신앙의 가치와 창시자의 인격에
대해서는 신자들의 진술과 반대자들의 의견이 구구하여 마치
그리스도 시대와 같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과 그
신도가 받은 박해와 그들의 순교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신자들
은 그가 모세의 가르침을 실현하고 발전시켰다고 말하고, 반대
자들은 예수가 율법을 파괴하고 하느님의 계율을 유린하였으므
로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다고 한다.
과학에서와 같이 종교에 있어서도‘천금의 가치 있는 한 알의
진주’를 얻기 위하여 전 재산을 파는 자의 태도가 필요하다. 모
든 편견과 미신을 다 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써 진주를 구하는
자에게만 진리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바하이신앙의 참뜻을 충
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건한 마음을 기울여, 모름지기 하느
님의 지도에 의탁하고 진리 앞에서는 자기를 잊어버리고 연구
해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이 종교 창시자들이 남긴 기록 가
운데서 커다란 정신적 자각과 그 가치의 비밀을 규명하는 열쇠
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 기록들이 우리가 알기
어려운 페르시아어와 아랍어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여기에 또
한 연구상 적지 않은 곤란이 있다. 다만 그 서적의 일부가 오늘
날 영어로 번역된 것이 있으나 그 문체와 정확성에 있어서 아직
우리의 희망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적인 설
화(說話)와 번역에 부적당하고 불충분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
고, 이 대업이 웅대하고 견실한 기초 위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자욱한 안개 속에 우뚝 치솟은 산과 같이 보인다.
14
바하올라와 신시대
본서의 목적
이하 각 장에서 바하이신앙의 역사적 사실과 특히 그 가
르침을 되도록 공정하게 편견 없이 서술하여, 독자로 하여
금 그 중요성에 자기의 지적(知的) 판단을 내리게 하고
자기 자신으로서 더 깊이 연구하는 데 길잡이가 되도록
힘쓰려 한다. 그러나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기
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전 목적일 수는 없다. 진리는 죽
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박물관에 진열되어 목록과 부전
이 붙어 분류되어 무미건조한 것으로 다루어질 그러한 물
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에 깊이 뿌리 박혀져, 그 탐
구의 성과(成果)를 거두기 전에 벌써 그들의 생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야 마는 살아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예언적인 계시의 지식을 널리 보급시키려 하는 진정
한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그 진리를 확신하게 된 사람들이 그
원칙을 실행하여‘바른 생활’을 하고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
하여,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 위에도
실현되는 행복의 날이 하루 속히 오도록 함에 있는 것이다.
15
제 1 장 기쁜소식
16
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2 장
선구자 바압
진실로 압제자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아야 할 이를 죽임으
로써, 피조물(被造物)가운데서 하느님의 빛을 없이 하여 은총
과 혜택이 충만한 날의 천국생활의 분류(奔流)에서 인류를 제
지(制止)하려 하였다. -- 바하올라의‘라이스에게의 서한’에서
새로운 계시의 발상지(發祥地)
바하이 계시의 발상지인 페르시아는 세계 역사 중에서도 특이
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페르시아 초기의 위대한 전성시대에
는 그 문명과 부강에 있어서 여러 나라에 비류가 없어 마치 특
출한 여왕과도 같았다. 훌륭한 왕과 정치가도 적지 않았고, 세
계에 유명한 예언자, 시인, 철학자, 미술가들을 많이 배출하였
다. 조로아스터, 싸이러스, 다리우스, 하페즈, 페르도우시, 싸아
디, 우마르 케이얌 등은 페르시아의 유명한 사람들 중의 소수에
불과하다. 이 나라의 공예가는 참으로 우수하였다. 융단, 강철
칼, 도기 등은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하였다. 근동지방과 중동지
방에서 고대의 페르시아는 위대한 자취를 많이 남겼다.
그러나 18세기와 19세기에 있어서 페르시아의 위세는 기울어
져 그전의 영광을 다시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부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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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선구자 바압
18
바하올라와 신시대
경제가 와해되고, 지배자는 무력하였으며 그중에 어떤 자는 잔인
무도한 괴물과도 같았다. 승려(僧侶)는 완미고루하고, 국민은 무
지하여 미신에 깊이 빠져 제도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대다수는
이슬람교도 중에서도 쉬이에파1)에 속해 있었고, 그 밖에 조로아
스터교도, 유대교도, 기독교도 등 서로 적대시하여 용납하지 않
는 각종 각파의 신자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유일신(唯一神)을
예배하고 서로 사랑과 화합으로써 살아갈 것을 가르친 위대한 지
도자의 명령을 받든다고 입으로는 주장하면서도, 서로 다른 종교
의 사람을 부정(不淨)하고, 짐승, 이단자(異端者)로 배척하며 비
방하기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저들 사이의 증오와 저주는
험악할 정도에 이르렀다. 유대교도나 조로아스터교도는 비 오는
날 외출하여 거리를 걷는 것조차 위험하였다. 만일 길에서 비에
젖은 옷이 잘못하여 이슬람교도의 옷에 닿기만 하면 그는 자기를
더럽힌 자라 하여 그 죄 갚음으로 상대방의 생명을 빼앗고야 마
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슬람교도가 유대교도나 조로아스터교도,
또는 기독교도에게서 돈을 받을 때 그는 그 돈을 물로써 깨끗이
씻지 않고는 주머니에 넣지 않는 것이었다. 또 만일 유대교도가
자기의 어린 아이가 이슬람교도 거지에게 물 한잔 주는 것을 발
견했을 때 그는 노하여 아이의 손에서 물그릇을 쳐서 떨어뜨리는
것이었으니 이교도(異敎徒)에 대해서는 친절이란 있을 수 없었
다. 이슬람교에는 또한 무수한 종파가 분립하여 같은 교도 사이
의 충돌과 분쟁이 더욱 심하였다. 조로아스터교도는 이러한 분쟁
속에 휩쓸리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종교를 달리한 자국인과 단교
(斷交)하여 저들 자신의 조직만으로써 생활하는 상태에 있었다.
이와 같이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희망 없는 퇴폐의 구렁
1. 모하멧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얼마 안 되어 이슬람교가 쉬이에, 순니의 2대 교파로 분열된 것 중의
하나임. 쉬이에파는 모하멧의 사위 알리가 예언자의 정당한 후계자라고 하여 그 후예만이 칼리프의
정통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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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빠져 있었다. 교육은 무시되고 서양의 과학과 예술은 종교에
반대되는 부정(不淨)한 것이라고 배척되었다. 정의는 왜곡(歪
曲)되고 약탈과 강도가 횡행하였다. 도로는 파괴되어 여행이 불
안하였고 위생 상태는 지극히 나빴다.
이러한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생활의 한 가닥 광명
이 아주 꺼지지는 않았다. 혼돈한 세상 욕심과 미신 가운데서도
여기저기에 하느님을 동경하는 순진한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 이전의 안나와 시몬의 마음과 같은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약속된 하느님의 선구자’께서 오실 날
이 멀지 않았음을 믿고 기다렸다. 새 시대의 선구자 바압께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여 온 나라를 진동케 한 것은 페르시아
가 바로 이러한 상태에 있을 때였다.
초기 생애
미르자 알리 모하멧, 후에 바압(문이라는 뜻)이라는 칭호로써
불리운 그분은 1819년 10월 20일 페르시아의 남쪽에 있는 쉬
라즈라는 곳에서 탄생하셨다. 그분은 세이예드, 즉 예언자 모하
멧의 후예였다. 유명한 상인이었던 그분의 부친께서는 바압께
서 탄생하신지 얼마 안 되어 타계하시고, 그분은 쉬라즈에 사는
상인인 외숙의 댁에서 성장하셨다. 어릴 때 독서를 배우고 그때
의 통례대로 초보의 교육을 받으셨다2). 15세 때 비로소 외숙을
제 2 장 선구자 바압
2. 이점에 관하여 역사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양에 있는 많은 사람들, 특히 바압의 신도들(현재의 바하이)
은 다음과 같이 믿고 있다. 즉, 바압께서는 교육을 받지 않으셨다. 그러나 저 몰라(이슬람교의 신학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바압의 지위를 격하시키기 위하여 바압께서 가지신 지식과 지혜는 그분이 받은 교육에 의
한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이 점에 관한 사실을 깊이 연구한 결과 우리는 바압께서는 어렸을 때 쉐이크 모하
멧(아베드라고도 알려져 있음)의 집에 얼마동안 출입하시어 거기서 페르시아어의 읽기와 쓰기를 배우셨다
는 증거를 발견하였다. 바압께서 자신의 저서 바얀 가운데‘모하멧, 나의 스승이여........’라고 쓰신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그분의 스승이었던 쉐이크가 자기의 제자였던 바압의 충성스러운 사도
가 된 것이다. 또 바압께서는 아버지와 같았던 숙부 하지 세이예드 알리가 또한 그분의 충성스러운 사도가
되어 바비(바압의 신도라는 뜻)로써 순교한 사실이다. 이러한 비밀은 진리를 탐구하는 자에게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니, 우리는 바압께서 받으신 교육은 극히 초보에 불과한 것이요, 바압에게 나타난 희한한 위대성
과 지식의 표징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것은 천부(天賦)의 것이요,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 상업에 종사하셨고, 후에 페르시아만(灣) 연안의 부쉐흐
르라는 곳에 사는 또 다른 숙부에게 가서 역시 그곳에서 상업에
종사하셨다.
청년으로서의 그분은 이목이 청수하고 행동이 얌전하였으며
마음이 경건하고 품성이 고상하여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
셨다. 그분은 이슬람교의 의식인 기도와 단식과 그 밖의 모든
계율을 잘 준수하였을 뿐 아니라 교조(敎祖)가 가르친 정신을
가지고 사셨다. 그분은 22세에 결혼하셨다. 이 결혼에 의하여
남아 하나를 얻었으나 그 아이는 바압께서 공공연하게 성직(聖
職)에 나아가신 해에 어린 아기로써 사망하였다.
선언
그분이 25세에 달했을 때, 하느님의 명령에 의하여 그분은
“높으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바압의 직책을 주셨다.”고 선언
하셨다.‘나그네의 이야기’란 책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바압이라는 칭호에 의하여 그분께서 나타내려고 하신 의미
는 이러하다. 그분은, 무한히 완전한 덕성을 갖추고 있고, 그리
고 아직 영광의 베일에 가리워져 있는 어떤 위대한 인물로부터
오는 은총의 통로(通路)가 되어, 그 완전한 분의 뜻에 의하여
자기는 움직이고, 그분의 사랑의 끈에 자기가 매여 있다는 것
을 의미한다.”---‘바압의 에피소드’3쪽
당시 하느님의 사자가 불원에 나타나시리라는 신앙은 쉐이키
라는 이슬람교의 일파에 특히 그 믿음이 강하였고, 바압께서 처
음으로 자신의 사명을 알린 사람은 이 종파에 속하는 몰라 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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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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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보슈루이라는 유명한 신학자였다. 그리고 그 알린 정확한 날
짜는 바압의 저서 중의 하나인 바얀이라는 책에 헤쥬라트 기원3)
1260년 쟈마디율 아발월 4일 (즉 1844년 5월 22일) 해진 뒤
2시간 11분이라고 적혀 있다. 바하이의 하루는 서양의 여러 나
라와는 달리 자정이 아니라 해지는 때에 시작되므로 바압 선언
축제는 5월 23일에 해당하는 쟈마디월 5일에 행하게 되어 있
다. 압돌바하께서는 바로 그날 밤에 탄생하셨는데 그 정확한 시
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몰라 호세인은 며칠 동안 열심히 연구
하고 검토한 끝에, 쉬이에 종파의 신도들이 오랫동안 기다린 사
자가 참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의 이 발견에
대한 열성적인 태도가 곧 그의 많은 친구들을 움직여 얼마 후에
쉐이키 종파 사람들의 대부분이 바압을 받아들여 그 신자가 되
었다. 그리하여 이 청년 예언자의 명성이 갑자기 요원의 불길처
럼 전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바비 운동의 전개
바압의 처음의 제자 18인(그 자신까지 19인)은 곧‘생명의
문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분은 이 제자들을 페르시아와 터키
의 각지에 보내어 그분의 출현에 대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메카에 순례를 떠나 1844년 12월 그곳에 도착
하시어 거기서 공공연하게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다. 그분께
서 부쉐흐르에 돌아오시자, 그분이 바압의 지위에 있다는 선언
은 비상한 충동을 일으켰다. 불같은 그분의 웅변, 질풍같이 빠
르고 감화에 찬 그분의 저서의 놀라움, 비범한 그분의 지혜와
지식, 개혁자로서의 그분의 용기와 정열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
제 2 장 선구자 바압
3. 이슬람교의 역서(曆書)는 서력 622년 모하멧께서 메카에서 메디나로 패주(敗走)한 날을 기원으로
하는 것이요,‘헤쥬라트’란 아랍어로 패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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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들에게 비상한 열광을 일으킴과 동시에 이슬람교의 정통파에게
는 무서움과 적의(敵意)를 품게 하였다. 쉬이에파의 박사들은
맹렬히 그분을 공격하고 파르쓰지사(知事)로서 광포한 전제자
인 호세인 칸에게 그를 이단자로써 탄압하도록 설득하였다. 그
리하여 바압께서는 여러번 잡혀 와서 감금, 추방, 심판, 태형,
모욕 등 온갖 박해를 당하시게 되어, 그 박해는 1850년 바압께
서 마침내 순교하심으로써 끝났다.
바압의 주장
바압의 지위에 있다는 선언으로써, 그리고 다시 더 나아가서
이 젊은 개혁자가 자기를 모하멧의 예언에 있는 메흐디라고 자
칭함으로써 적의(敵意)는 더 한층 격렬해졌다. 쉬이에파의 신
도들은 약 천년 전에 이상하게 자취를 감춘 제 12 에맘4)을 이
메흐디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이 에맘이 아직도 생존해 있어
다시 전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며 그에 의하여 통치와 정
복과 국위발양(國威發揚)이 훌륭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 예
언을 물질적 의미로 해석하여 그 출현의 표징이 나타날 것을 믿
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유대인들이‘구세주’의 출현의 예언을
그와 같이 해석한 것과 같다. 그들은 메흐디가 지상의 주권(主
權)을 가지고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나타나서 그가 계시자임을
선언할 뿐 아니라 죽은 육체도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을 것이
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적인 표징이 나타나지 않
았으므로 쉬이에파의 신도들은 극심한 모욕으로써 바압을 배척
하였다. 그것은 마치 유대교가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과 같다.
4. 쉬이에파의 에맘은 전 신도가 복종해야 하는 모하멧의 후계자로서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이다.
12인이 대대로 에맘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최초의 에맘은 모하멧의 종제(宗弟)이자 사위인 알리였다.
제 12대의 에맘은 쉬이에파의 신도들에 의하여 에맘 메흐디라고 불리웠다. 그들은 에맘 메흐디가 죽
은 것이 아니라 다만‘헤쥬라트’기원329년에 지하도(地下道)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뿐이니 때가 오
면 그가 다시 와서 불신앙의 모든 사람을 멸망시키고 행복한 시대를 오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편 바압의 신도들은 이 예언의 대부분을 비유적인 것
으로 해석하였다.
그들은 갈릴리의‘슬픈 사람’과 마찬가지로‘약속된 분’의
주권을 신비한 주권으로 해석하여 그분의 영광은 물질적인 것
이 아니라 정신적인 영광이며, 정복이란 것은 인간 정신의 정복
이라고 믿었으며, 그들은 바압의 놀라운 생애와 가르침, 흔들리
지 않는 신앙과 굳은 정신, 과오와 무지에 파묻힌 사람들을 깨
우쳐 정신생활의 새 삶으로 끌어올리는 신비스러운 힘을 보고
바압의 주장이 틀림없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바압께서는 자신이 메흐디라고 주장하셨을 뿐 아니라 다시 더
나아가서 녹테 올라, 즉‘최초의 점’이라는 성스러운 칭호를 쓰
기도 하셨다. 이 칭호는 모하멧께서 그분의 신도에게서 받으신
것으로서, 에맘이라고 불리우는 자들도 이‘최초의 점’으로부
터 영감과 권위를 받은 것이라고 믿어 온 것이니, 이 칭호를 씀
으로써 바압께서는 자신을 모하멧과 동등한 위대한 종교 창시
자의 지위에 견준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써 쉬이에파의 신도
들은 그분을 협잡꾼으로 간주했으나 이것은 그분 이전의 현시
자들인 모세와 그리스도께서도 협잡꾼으로 몰린 것과 같다. 그
분은 또 역서(曆書)를 고쳐 태양력(太陽曆)을 채용하고 그분
자신이 선언하신 해를 신시대의 기원으로 하셨다.
박해가 더욱 심해짐
바압의 이러한 선언과 빈부귀천, 그리고 유식무식의 모든 계급
의 사람들이 놀라운 속도로 그분의 가르침에 열심히 따른 결과
로써 탄압은 더욱 가혹해졌다. 신도들의 재산은 약탈 파괴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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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선구자 바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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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부녀자들은 잡혀서 끌려갔다. 테헤란, 파르스, 마젠다란, 그 밖의
각지에서 살해당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많은 사람이 단두(斷
頭), 교수(絞首), 혹은 대포구멍에 놓여 폭격되고, 혹은 불속에
던져지고, 또 혹은 갈기갈기 찢겨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진전되었다. 아니, 이와 같은 탄압
을 통하여 신도들의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 그것은, 이 탄압에
의하여 메흐디의 출현에 관한 예언 중의 많은 것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어 갔기 때문이었다. 쉬이에파가 권위를 인정하는 쟈베르
에 의하여 기록된 전설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분에게는 모세의 완전과 그리스도의 존귀와 욥의 인고(忍
苦)가 있을 것이다.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시대에 천대를 받
을 것이다. 터키인과 데일라미트인들이 선물로 교환됨과 같이
그들의 머리는 베어져서 선물로 교환 될 것이다. 그들은 목이
베어지고 불에 타서 죽어 공포와 전율 속에 대지는 그들의 피
로써 물들일 것이요, 부녀자는 모두 울부짖을 것이다. 진실로
그들은 나의 성자(聖者)들이다.”
--- E. G. 브라운 교수 번역‘바압의 새 역사’132쪽
바압의 순교
1850년 7월 9일5) 바압께서 31세 되시던 때, 그분은 마침내
포학한 박해자의 분노의 희생이 되셨다. 그분과 순교를 같이 하
기를 애원한 아가 모하멧 알리라는 소년과 함께 타브리즈 병영
(兵營) 안에 있는 사형대에 끌려가셨다. 그날 정오 2시간 전에
모하멧 알리의 머리가 그의 사랑하는 스승 바압의 가슴에 기대
이게 두 사람은 겨드랑 밑으로 동아줄에 묶여 벽에 매달렸다.
5.‘헤쥬라트’기원 1266년 샤아반월 28일 금요일
아르메니아 병사의 1대가 총살 명령을 받아 곧 일제 사격이 집
행되었다. 그러나 총탄 연기가 사라진 뒤 바압과 그분의 제자가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총탄은 다만 동아줄을 끊었을 뿐이
요, 두 사람은 부상도 입지 않고 땅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옆에 있는 방에 들어가서 그들의 친구 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
었다. 정오경에 두 사람은 다시 묶여 매달렸다. 아르메니아 병
사들은 사격의 결과가 이와 같이 이상하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놀란 나머지 다시 사격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병사
의 1대가 새로 와서 명령을 받고 발사하였다. 이번에는 총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신체는 많은 총알이 관통
하여 무참하게 상하였으나 얼굴에는 별로 손상된 곳이 없었다.
무도한 이 행위에 의하여 타브리즈의 영정(營庭)은 제 2의 골
고다가 된 것이었다. 바압의 적들은 이 죄 많은 승리에 기뻐하
였다. 미워하던 바비교의 나무가 줄기 째 꺾여졌으니 나머지 무
리들을 일소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저
들의 승리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저들은 진리의 나무가
인공의 도끼로써 쉽게 꺾여질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
죄악행위가 바압의 운동에 보다 큰 힘을 주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을 저들이 알았더라면 어떠하였을까. 바압의 순교는 그분의
소원을 성취한 것이었고, 뒤에 남은 신도들에게는 감격과 열정
(熱情)을 더하였다. 그들의 정신적 정열이 이와 같이 격렬하였
으므로 박해의 냉혹한 바람은 도리어 그 정열에 부채질하여 탄
압이 가해질수록 불꽃은 더욱 더 높이 충천할 뿐이었다.
25
제 2 장 선구자 바압
칼멜산 위의 무덤
바압께서 순교하신 후 그분의 시신은 그분의 헌신적인 제자의
시신과 함께 타브리즈 성 밖의 못 가에 버려졌다. 다음 날 깊은
밤 신도들은 두 분의 시신을 몰래 건져 여러 해 동안 페르시아
국내의 비밀한 곳에 감추어 모셔두었다가 비상한 위험과 곤란
한 가운데 최후에는 성지에 운반되었다. 성지의 엘리야 동굴에
서 멀지 않은 칼멜산 중턱의 아름다운 산경(山景)을 등진 곳에
쌓아진 무덤에 그들 두 분의 유해가 안장되었다. 여기는 바하올
라께서 최후의 몇 해를 지내신 곳이며, 또 그분의 영묘가 있는
곳에서 2~3마일 되는 지점이다. 바하올라의 성스러운 영묘(靈
廟)를 찾아 세계 각지로부터 모여드는 많은 순례자들은 바하올
라의 헌신적인 사랑의 표적이요, 또한 선구자인 바압의 영묘에
참배할 것을 누구나 잊지 않는다.
바압의 저서
바압의 저서는 매우 많다. 그분은 연구하거나 사색함이 없이
신속하게 훌륭한 주석과 뜻 깊은 해설과 웅변적인 기도를 많이
쓰셨는데, 이러한 저술들은 모두 그분의 영감에서 이루어진 증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분의 여러 가지 저서의 근본 되는 뜻을 요
약하면 대개 다음과 같다.
“이들 바압의 저서의 어떤 것은 코란의 여러 절의 주석과 해
설, 혹은 기도와 설교와 문의(文義)해석의 암시요, 어떤 것은
‘하느님의 유일성’에 대한 교의(敎義)의 여러 점에 관한 훈계
와 경고와 강화(講話)들이다. 그리고 인격을 수양하는 일, 세
속의 나쁜 습관을 버리는 일, 하느님의 영감에 의탁할 것을 권
26
바하올라와 신시대
장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분의 저서의 가장 중요한 취지의
요점은 그분의 유일한 목적이요 소원인, 불원에 세상에 나타날
‘실재’(實在)에 대한 서술이요 예찬이었다. 그 까닭은, 그분은
자기가 출현한 것이 오로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선구자요, 그
분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다만 저‘장차 오실 분’의 보다 큰 완
성의 현시를 위한 중간 역할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
다. 그리하여 바압께서는 밤낮‘그분’을 예찬하셨을 뿐 아니라
신도들에게‘그분’의 출현을 기다리라고 뇌이어, 그분은 이것
을 저서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즉, 나는 다만 이
가장 강력한 책의 한 글자요, 무변대해의 한 방울의 물에 불과
하다. 그리고‘그분’이 나타나실 때 비로소 나의 진정한 본성
과 비밀과 수수께끼와 암시, 이 모든 것이 분명히 알려질 것이
다. 그리고 또 이 종교의 싹은 여러 단계를 거쳐서 점차 발전하
여‘형상이 가장 아름다운’경지에 도달하여,‘가장 훌륭한 창
조자이신 하느님께 영광이 있을 진저’하는 찬미의 법의(法衣)
로써 장식될 것이라고........ 그렇게도‘그분’의 불꽃에 타고
있었으므로 그분이 마쿠의 요새(要塞)에 감금되셨을 때 어두운
밤의 등불은 진실로 장차 오실‘그분’인 바하올라에 대한 축하
의 불꽃이었으며,‘그분’에 대한 생각은 췌흐리끄의 감옥에서
고난에 잠겨있는 그분에게 가장 좋은 위안의 벗이었다. 이것으
로써 그분은 정신이 왕성해지고‘그분’의 향기로운 술에 황홀
히 취하며,‘그분’을 생각함으로써 무한한 기쁨을 느끼신 것이
었다.”---‘바압의 에피소드’54쪽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
바압 그분은 세례 요한에 비유되기도 하였으나 그분의 지위는
27
제 2 장 선구자 바압
단순한 선구자나 전조로서의 그것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바압
께서는 그 자신이 하느님의 현시자여서 그 종교가 비록 시간적
으로 짧은 기간만 존속했다 할지라도 그분은 하나의 독립된 종
교의 창시자이셨다. 바하이들은 바압과 바하올라께서는 바하이
신앙의 공동 창시자임을 믿고 있으며, 바하올라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이 진리를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 가장 강력하고 경이에 찬 계시와 그것에 앞선 현시자와
의 사이에 그처럼 짧은 기간만 존속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밝힐
수 없는 신비요, 어떠한 지혜로써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그것이 계속하는 기간은 미리 정해진 것이었으나 나의 감추어
진‘글’의 내용이 알려지기 전에는 누구나 그 까닭을 모를 것
이다.”
그러나 바압께서 바하올라에 관하여 말씀하심에 있어서는 오
로지 겸허한 마음으로 하셨으니, 즉 그분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
셨다.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의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듣고 그
것을 암송하는 자는 바얀(즉 바압의 계시)을 천독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바압의 에피소드’349쪽
그분은 자기가‘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을 위하여 조금이라
도 그 통로를 닦을 수 있다면 어떠한 고난이라도 참는 것을 행
복으로 생각하셨다. 그리하여 장차 오실‘그분’이야말로 자기
의 사랑의 유일한 대상이요, 또한 영감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선
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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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부활, 천당, 지옥
바압의 가르침의 주요한 부분은 부활, 심판의 날, 천당과 지옥
등의 용어에 관한 그분의 설명이다. 부활이란‘진리의 태양’의
새 현시가 나타남을 의미하는 것이니, 죽은 자의 부활이란 무지
와 무사려와 욕정(欲情)의 무덤 속에 잠든 사람들이 정신적으
로 각성하는 것이다. 심판의 날이란 것은‘새 현시자의 날’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 계시를 받아들이는 여부에 따라서 양과
염소가 구별되는 것이니, 양은 착한 목자의 소리를 알아듣고 그
를 따르는 것이다. 천당이란 것은 하느님의 현시자를 통하여 계
시된 하느님을 인식하고 그분을 사랑함에 이르는 기쁨을 말하
는 것이니, 그것으로써 될 수 있는 한 최상의 완전에 도달하여
사후에‘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의
미한다.
그분은 결정적으로 이러한 용어는 위에 말한 해석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리하여 물질적인
천당, 지옥, 육체의 부활 등의 관념은 단지 상상에서 생긴 것이
라고 하셨다. 그분은, 사람은 사후의 생활이 있고, 내세에 있어
서의 완전으로 향하는 진보는 무한하다고 가르치셨다.
사회적 및 윤리적 가르침
바압께서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신도들
은 서로 형제자매의 애정과 친절을 가져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
어야 한다. 유익한 기술과 공예(工藝)는 더욱 더 연구되어야 하
고, 초등교육은 일반에게 보급되어야 한다. 지금 시작되는 새롭
고 훌륭한 시대에 있어서는 부인들은 더 충분한 자유를 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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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선구자 바압
한다. 빈곤한 사람은 공공창고(公共倉庫)에서 도와주어야 할 것
이나 빌어먹는 일은 술을 음료로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
금되어야 한다. 그리고 참다운 바비의 지도의 동기(動機)는 순
진한 사랑이어야 한다. 보수를 바라거나 벌을 무서워서 하는 일
이어서는 안 된다. 바얀 가운데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하느님에 대한 예배가 비록 불로써 갚아지더라도 변함없이
하느님을 예배하라. 하느님이 무서워서 예배한다면 그는 하느
님의 성역(聖域)에 들어갈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네가 천당을 희망하여 거기를 향하여 예배한다면 너는 하느
님의 창조물로서 하느님의 동행자가 되려는 것과 다름없다.”
--- E. G. 브라운교수의‘페르시아의 바비’(영국 아시아 협
회의 기관지 제 21권 931쪽)
수난(受難)과 승리
이 끝절에서, 바압의 전 생애를 약동케 한 그 정신을 찾아보
기로 한다. 하느님을 인식하고 또 사랑하고 하느님의 속성을 나
타내고 장차 오실 하느님의 현시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일 -
이러한 일이야말로 그분의 생존의 전 목적이요 소원이셨다. 그
분에게는 사는 것도 걱정될 것이 없었고, 죽는 것도 두려울 것
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랑은 두려운 것을 없이하고 순교는 다만
사랑하는 하느님의 발 앞에 그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
이다.
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 이 하느님의 진리의 영감에 찬 교
사, 이 하느님과 동포를 열애하는 분이 그렇게도 미움을 받아
그 시대의 이른바 신앙심을 가졌다는 자들의 손에 순교하셨다
는 것은 괴이한 일이 아닌가. 이것은 확실히 무사려와 완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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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편견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이 참으로 예언자요, 성스러운 하
느님의 사자인 사실에 눈이 어둡게 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분은
세속적인 위대성과 영예를 가지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런
속세의 원조를 받음이 없이 가장 포악한 속세의 반대를 넘어서
승리를 얻을 능력이 없고서야 어찌 정신적 위력과 지배를 증명
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극도의 고난과 많은 적들의 증오와 거짓
친구의 간사한 흉계를 참고 이 모든 것을 극복하여, 낙망하지
않고 번뇌하지 않고 도리어 저들을 용서하고 축복해 주는 능력
을 갖지 않고서야 어찌 이 불신앙의 세계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인가.
바압께서는 모든 고난을 참고 받아들이셨다. 그리하여 승리하
셨다. 수천의 신도는 자기의 생명과 모든 것을 바쳐 봉사함으로
써 그분에 대한 저들의 사랑을 실증하였다. 여러 왕들은 사람들
의 마음과 생명에 미치는 그분의 위력을 미워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이 마침내 나타나셔서 그분의
주장을 확인하시고 자신의 선구자로서의 헌신을 받아들여 바압
으로 하여금 자신의 영광의 동반자로 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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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선구자 바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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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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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그대, 이제 그만 기다려라. 그분이 이미 오셨나니. 보라, 그
분의 성전과 그 안에 있는 그분의 영광을. 그것은 새로운 현시
로써 온 고래의 영광이니라. --- 바하올라
탄생과 유년시대
미르자 호세인 알리, 후에 바하올라6) (하느님의 영광)라는
칭호로써 불리운 그분은 페르시아의 대신인 누르 주 출신 미르
자 압바스의 장남이셨다. 그분의 집은 부유한 명문으로서 그 일
가에는 문무관(文武官)의 높은 지위에 있는 이가 많았다. 그분
은 1817년 11월 12일7) 페르시아의 수도 테헤란에서 탄생하셨
다. 그분은 가정에서 얼마의 교육을 받았을 뿐이요, 학교 교육
이라고는 받으신 일이 없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어
렸을 때부터 놀라운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계셨다. 그분이 아직
젊었을 때 그분의 부친은 타계하시고 막대한 재산의 관리와 동
생들의 보호의 책임을 지게 되셨다.
어느 때 바하올라의 장남인 압돌바하께서는 그분의 부친의 유
년 시대의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6. 제 2, 제 4의 음절에 액센트가 있다.
7.‘헤쥬라트’기원 무하람월 2일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어릴 때부터 그분은 성질이 대단히 친절하시고 관대하셨다.
그분은 밖에서 놀기를 좋아하셨고, 화원이나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으셨다. 그분은 사람을 끄는 비상한 힘을 가지
시어 누구나 그것을 느꼈고 그분의 주위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
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대신과 궁정(宮廷)관리들이 그분에게
친근해지고 아이들도 그분을 매우 좋아하였다. 겨우 십 삼, 사
세 때에 그분의 박식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분은 어떠한 문제
에 대해서도 답변 할 수 있었고, 어떠한 문제가 제기되든지 그
것을 규명하시고 해결하셨다. 큰 모임에서 그분은‘올라마’(이
슬람교의 교사)들과 토론하시고 종교상의 어려운 문제에 대하
여 해설하기도 하셨다. 모든 사람은 비상한 흥미를 가지고 그
분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바하올라께서 22세 되
셨을 때 그분의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시매, 정부는 그때의 관
례에 의하여 바하올라께 부친의 관직을 승계할 것을 명했으나
그분은 이것을 사양하셨다. 당시의 총리대신은 이것을 평하여
‘그의 뜻대로 하게 하라. 그런 관직은 그에게는 가치 없는 것
이다. 그는 보다 높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뜻을 알 수
없으나 그는 확실히 어떤 높은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생각하는 바가 우리네와는 다르다. 그의 뜻대로 하게 하
라.’고 말했다.”
바비로서 감옥에서 갇힘
바압께서 1844년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을 때, 바하올라께
서는 27세이셨는데 그분은 대담하게 이 새로운 신앙의 대업에
동참하셨고, 얼마 안 되어 가장 유력하고 용감한 제창자로서 알
려지게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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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그분은 이 대업을 위하여 두 번이나 감옥에 갇히셨는데 한 번
은 발 때리는 고문을 받으셨다. 그것은 1852년 8월 바비교도에
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 사건이 돌발했을 때였다. 사데크라는
바압의 한 청년신도가 그의 사랑하는 스승의 순교를 목격하고
통분한 나머지 마침내 바른 길을 벗어나서 복수하기 위하여 길
에 잠복했다가 총으로 황제를 쏘았던 것이다. 그러나 보통 탄환
이 아니고 산탄(散彈)을 장전했던 관계로 몇 발의 작은 탄알이
명중하였으나 대단한 상해는 없었다. 청년은 말을 탄 황제를 끌
어내렸으나 자신은 잡혀 즉석에서 살해되었다. 이와 같은 일이
있어 바비의 전 교단(全敎團)은 불법하게도 이 행위의 책임을
지게 되어 80명의 신도가 참혹한 고문 끝에 테헤란에서 학살당
하고, 그 밖의 많은 사람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으니 그중에
바하올라께서도 계셨다. 그분은 후일 다음과 같이 쓰셨다.
“하느님의 바른 길에 있어서 짐(朕)이 이 비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는 바로서 짐(朕)의 무죄는 법정
에서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朕)은 체포되어 황제
의 거처였던 니야와란으로부터 테헤란감옥으로 호송되었다. 짐
(朕)은 쇠사슬에 결박된 채 맨발로 걸었다. 말을 타고 우리를
호송하는 악한이 짐(朕)의 모자를 빼앗기도 하면서 많은 형리
(刑吏)와 감시인들이 큰 속력으로써 우리를 몰아갔다. 4개월
동안 짐(朕)은 일찍이 보지 못한 불결한 곳에 감금되어 있었
다. 아무리 비좁고 어두운 토굴이라도 피해자인 나와 나의 동
반자들이 갇혀 있는 이 토옥(土獄)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도착하자 우리는 이 감옥의 입구를 통하여 어두운 복도로 끌
려가서 가파른 세 계단을 내려가 우리에게 정해진 토옥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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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갔다. 토옥은 아주 깜깜하였고, 거기에는 이미 갇혀있는 사람이
150명가량 있었다. 그들은 모두 도둑, 살인자, 날치기, 강도들
이었다. 이 감옥에는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 있으면서
도 우리가 들어간 문 이외에는 출입구가 없었다. 이곳의 광경과
악취에 대해서는 한입으로 다 말할 수는 없다. 여기 있는 사람
들의 태반은 입을 옷도 누울 거적자리도 없었다. 이 어둡고 더
러운 곳에서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가는 하느님만이 아시는
일이다.
이 감옥에서 짐은 밤낮 바비교도의 상태와 행동에 대하여 반
성하였다. 저들의 영혼이 위대하고 심지가 고결하고 총명하거
늘 어찌하여 황제를 살해하려는 흉악한 행위를 감행하였을까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피해자인 짐은 출옥 후에 이들
교도들의 심령개조(心靈改造)에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하였다.
어느 날 밤 꿈에 사방에서 영감(靈感)에 찬 말씀이 들려왔다.
‘진실로 내가 그대 자신에 의하여, 또 그대 붓에 의하여 그대가
승리를 얻도록 도울 것이다. 그대가 당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슬퍼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 진실로 그대는 안전하느니라.
멀지 않아 하느님께서는 이 땅에 보배를 보내 주실 것이니, 그
들은 그대 자신과 그대의 이름에 의하여 그분을 인식하고 마음
이 갱신될 것이며, 그들에 의하여 그대는 승리를 얻을 것이니
라.”---‘이리의 자식에게 보내는 서한’(쇼기 에펜디의 영
어 번역)에서
바그다드로 추방
이 무서운 감옥생활이 4개월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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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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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그분의 동반자들은 최대의 행복에 잠겨 태연자약하고 열성
에 넘쳐있었다. 거의 매일 같이 그 중의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이
고문을 당하고 살해되어 남아있는 사람들도 다만 자기의 순번
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형리(刑吏)가 와서 그 중의 한 사
람을 호출하면 그 사람은 기뻐서 춤을 추면서 바하올라의 손에
입 맞추고 다른 신도들을 포옹한 후 조용히 순난(殉難)의 장소
로 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바하올라께서는 국왕반역(國王叛逆)의 음모에 관여
하지 않은 것이 판명되고, 러시아 공사도 그분의 품성이 결백함
을 증언하여 주었다. 그때 바하올라께서는 병에 걸려 매우 위독
한 상태에 계셨다. 그리하여 국왕은 그분에게 사형판결을 내리
지 않고 그 대신 메소포타미아의 이라크로 추방할 것을 명령하
였다. 2주일 후 그분은 가족과 몇 사람의 신자를 데리고 그곳으
로 출발하셨다. 그들은 겨울의 장거리 여행에 추위와 그 밖의
무서운 고난을 겪으면서 극도의 곤궁 속에 바그다드에 도착하
였다.8)
바하올라께서는 건강이 회복되시자마자 구도자의 질의(質疑)
에 응답하여 신자들을 고무하고 격려하셨다. 그리하여 바비교
도들에게 다시 평화와 행복이 찾아오게 되었다.9) 그러나 이것
이 오래 계속되지는 못하였다. 소브헤 아잘이라고도 알려진 미
르자 야흐야라고 하는 바하올라의 이복동생이 바그다드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이 사람의 비밀한 꾀임에 의하여 신자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점차 커 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분열과 흡사한 것이었다. 이 충돌은 (그
8. 1852년 10월 테헤란을 떠나 4,50일 만에 바그다드에 도착하셨다. (아베르에 의함)
9. 1853년 초의 이야기로서 바압의 선언으로부터 9년 후의 일이다. 그리하여 바압의‘9’년에 관한 예
언이 실현된 것이다.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후 아드리아노플에서 공공연하게 더욱 격렬해졌다.) 세계 인류
의 통합을 이룩하는 것이 인생의 전 목적인 바하올라께는 참으
로 마음 아픈 일이었다.
황야(荒野)에서의 2년
바그다드에 온지 약 1년 후 바하올라께서는 다만 혼자 솔레이
마니예의 거친 들로 단 한 벌의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떠나셨
다. 이 시기에 관하여 그분은‘케타베 이간’에 다음과 같이 쓰
셨다.
“이곳(바그다드)에 처음 왔을 때, 후일 재난이 있을 것을 예
감했으므로 그것이 일어나기 전에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
하여 짐(朕)은 거친 들판에 가서 그곳에서 2년간 쓸쓸히 고독
한 생활을 보낸 것이다. 짐(朕)의 눈에서 고뇌의 눈물이 비오
듯하고 심장에는 고통의 큰 물결이 일어났다. 먹을 것이 없는
날도 많았고, 짐(朕)의 몸이 쉴 수 없는 밤도 많았다. 이러한
궁핍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재를 그분 두 손에 가지고
계신 하느님께 의지하여 짐(朕)의 영혼은 행복과 기쁨 속에 있
었던 것이다. 짐(朕)은 이 고독한 거처에서 누구의 이해득실
(利害得失)이나 건강이나 질병 같은 것은 염두에 없이 혼자서
세계와 그 일체를 잊어버리고 나의 정신과 문답하였다. 그러나
짐(朕)은, 하느님의 운명의 그물이 인간의 가장 큰 관념을 초
월하는 것이어서 하느님의 명령의 화살이 인간의 가장 대담한
기도(企圖)를 이긴다는 것을 몰랐었다. 하느님께서 놓으신 덫
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 하느님의 바른길에 있어서는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짐(朕)의 이별은 다시 만날 것을 바라
지 않은 것이었다. 짐(朕)의 귀양살이의 유일한 목적은 신자들
38
바하올라와 신시대
사이에 불화의 원인이 되거나 동지에게 폐를 끼치거나 누구에
게 해를 입히거나 누구의 마음에 슬픔의 원인이 됨을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 밖에는 아무 의도도 목적도 없었다. 그러나
각자는 제각기 자기의 뜻대로 계획을 세우고 각자의 쓸데없는
공상을 따랐다. 그리하여 그것 은 짐(朕)이 온 곳으로 돌아가
라는 신비의 근원(즉 하느님)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
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짐(朕)은 그 명령에 복종하였다. 짐
(朕)이 돌아온 후에 당한 일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 2년
동안 적들이 전력을 다하여 짐(朕)을 없애버리려고 부단히 노
력한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바이다.”
---‘케타베 이간’251쪽
‘몰라’의 압박
은거지(隱居地)에서 돌아온 후의 그분의 명성은 더욱 커졌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그분을 알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들으
려고 원근 각지로부터 바그다드에 모여 들었다. 유대교도, 기독
교도, 조로아스터교도, 이슬람교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하느님의 계시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몰라’(이슬람
교의 교사)들은 적대 행동을 취하여 그분을 없애버리려고 악착
같이 박해를 가하였다. 어느 때, 저들은 동료 한 사람을 보내어
그분을 면회하여 어려운 문제를 출제케 하였다. 그러나 그 사자
는 바하올라의 대답이 비상히 조리가 서 있고 그것이 분명히 연
구에 의하여 얻은 지식이 아니라 그분의 지혜가 진실로 놀라운
것임을 발견하였으므로, 지식으로써나 이해력으로써나 바하올
라 그분은 세상에 다시없는 인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를 사자로 보낸‘몰라’들에게 바하올라 그분이 진정
39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한 예언자임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그 증거로써 어떠한 기적을
보여줄 것을 그는 요구하였다. 바하올라께서는 어떤 조건하에
그 요구에 응할 의사를 표하셨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
셨다. 즉, 어떤 기적을 행하는 데에‘몰라’들이 동의하여 그 기
적의 실행을 본 다음 저들은 그분의 사명이 정당함을 고백하고,
그분에게 적대하는 일을 중지하겠다는 증서에 서명 날인한다면
요구대로 증거를 보일 것이며, 만일 그렇지 못하면 사기죄인이
될 것이라고.‘몰라’들의 목적이 참으로 진리를 원하는 것이었
다면 확실히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저들의 의향
은 그것이 아니었다. 좋거나 궂거나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의 결
정을 얻자는 심산이었다. 저들은 진실에 부닥칠 것이 두려워 이
감연한 도전에서 도피하였다. 그러나 저들의 이 계획의 좌절은,
바하올라의 교단을 전멸시키기 위한 새로운 음모를 계획하는
방향으로 저들을 몰아넣었다. 바그다드에 주재해 있는 페르시
아 정부의 총영사는 저들의 음모에 가담하여 황제에게 많은 보
고를 하였다. 즉, 바하올라는 이전보다 더 한층 이슬람교에 대
하여 위해를 주고 있다는 것, 페르시아 사람에게 일종의 해를
끼치는 세력을 이루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그를 더 먼 곳으로
추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이슬람교의‘몰라’들의 꼬임에 대하여 페르시아정부와 터키
정부가 그분의 운동을 근절하기 위하여 협력하고 있는 이 위기
에 즈음하여 고요히 신자들을 격려하시며 위안과 지도의, 그 불
후(不朽)의 말씀을 쓰시고 계신 것은 진실로 바하올라다운 일
이었다. 압돌바하께서는 저‘숨겨진 말씀’이 어떻게 이 시대에
씌어졌는가를 말씀하셨다. 바하올라께서는 티그리스강가에 산
책하시는 일이 많으셨다. 그분은 밝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오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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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서는 수천 사람의 괴롭고 쓰린 마음을 위로하고 쓰다듬어 주는
저 주옥같은 서정시(抒情詩)적인 잠언(箴言)을 쓰신 것이었다.
몇 해 동안은 이‘숨겨진 말씀’의 원고의 사본(寫本) 몇 부가
몰려드는 적의 수중에 들어갈 것을 우려하여 조심스럽게 감추
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작은 책이 바하올라의 저서 가
운데서 아마 가장 널리 알려져 있어 전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읽을 수 있다.‘케타베 이간’도 또한 널리 알려져 있는 바하올
라의 저서인데 역시 같은 시대, 즉 바그다드 체류의 말경
(1862~1863)에 씌어진 것이다.
바그다드 교외‘레즈완’에서의 선언
여러 가지 교섭이 있은 후 페르시아정부의 요구에 의하여 터
키 정부는 바하올라를 콘스탄티노플로 소환하는 명령을 내렸
다. 이 소식을 들은 그분의 추종자들은 크게 놀랐다. 그들은 사
랑하는 지도자의 집을 둘러싸고 물러가지 않았으므로 가족들은
부득이 12일 간이나 나집파샤의 정원에 천막을 치고 지냈다.
그동안 먼 길을 여행할 여대(旅隊)가 준비되었다. 이 12일간
(즉 바압의 선언이 있은 후 19년째인 1863년 4월 21일부터 5
월 2일까지)의 첫 날에 바하올라께서는 몇 사람의 신자들에게
자신이 바압에 의하여 예언된 분 - 즉 하느님의 택함을 받은
분, 모든 예언자들에 의하여‘약속된 분’임을 선언하셨다. 이
기념해야 할 선언이 있었던 정원은 후에 바하이 신자들에게‘레
즈완 동산’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바하올라께서 이곳
에서 지낸 여러 날을‘레즈완 축제’라고 하여 해마다 이 12일
간을 기념한다. 이 동안에 바하올라께서는 슬픔과 절망의 빛이
없이 도리어 큰 기쁨과 위엄을 보이셨다. 신자들은 기쁨에 넘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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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고,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모여들었다.
바그다드의 모든 유력한 사람들과 지사(知事)까지도 이 죄수의
출발에 경의를 표하러 왔었다.
콘스탄티노플과 아드리아노플
콘스탄티노플 여행은 3-4개월이 걸렸다. 가족 12명과 제자
72명으로 된 바하올라의 일행은 이 멀고 먼 여로의 노숙(露宿)
에 비상한 고난을 당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자 일
행은 비좁고 더러운 집에 죄수로써 감금되었다. 그 후 조금 나
은 옥사(獄舍)에 들었으나 4개월 후에 다시 아드리아노플로 옮
기게 되었다. 아드리아노플로 가는 길은 며칠 걸리지 않았으나
이 여행은 그들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무서운 것이었다. 눈
은 끊임없이 분분히 내리는데 엷은 옷은 헤어지고 먹을 것조차
없어 그 고생이 형언할 수 없었다. 아드리아노플의 첫 해 겨울
에 바하올라와 그분 가족 12명은 아무 설비도 없고 해충이 우
굴거리는 단지 3칸뿐인 조그마한 집에서 지냈다. 봄에 그들은
조금 나은 집으로 옮겼다. 그들은 아드리아노플에 4년 반 이상
이나 있었다. 여기서 바하올라께서는 다시 설교를 시작하시어
많은 신자가 그분의 주위에 모이게 되었다. 그분은 널리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다. 그리하여 대다수의 바비신도에게 열성으로
써 환영을 받았다. 이때부터 바비들은 바하이로 알려지게 되었
다. 그런데 소수의 바비신도들이 바하올라의 이복동생인 미르
자 야흐야의 지휘 하에 바하올라에게 맹렬히 반대하여, 그들은
이전의 적이었던 쉬이에파 교도와 손을 잡아 그분을 없애버릴
것을 계획하였다. 여기에 대혼란이 생겼다. 그리하여 터키 정부
는 마침내 바비와 바하이를 함께 아드리아노플에서 쫓아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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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고, 바하올라와 그 측근자들을 팔레스타인의 악카에 귀양 보냈
다. 역사가 나빌에 의하면 그들은 1868년 8월 31일 악카에 도
착하였다. 한편 미르자 야흐야와 그 일당은 싸이프러스섬으로
추방되었다.
여러 나라 왕에게 서한을 보냄
바로 이때 바하올라께서는 유럽의 여러 나라 원수(元首)와 로
마 법왕, 페르시아 황제, 그리고 아메리카합중국 정부에 저 유
명한 일련의 서한을 보내어 자신의 사명을 전하시고, 진정한 종
교, 정의의 정치, 국제평화의 건설을 위하여 저들이 진력할 것
을 호소하셨다. 페르시아 황제에게 보낸 서한 가운데 압박받는
바비들을 극력 변소(辯訴)하고 아울러 그들의 박해를 선동하는
자들과의 회견을 요청하셨다. 물론 이 요청이 허용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서한을 전한 열렬한 바하이 청년 바디는 잡혀서
불타는 벽돌로 몸을 지지는 무서운 고문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
서한 가운데 그분은 자신의 고난과 그 소망을 가장 감동적인 문
장으로써 표현하셨다.
“폐하여, 나는 하느님의 길에서 일찍이 아무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일을 보았습니다. 벗들은 나를 거부하였고 나의 갈
길은 막혔습니다. 안전의 못(池)은 말랐고 위안의 평원은 초토
(焦土)로 화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난이 내려졌으며 또 얼
마나 많은 고난이 올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강대하시고
혜택이 많으신 하느님을 향하여 전진하건만 나의 뒤에는 독사
(毒蛇)가 따릅니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비오듯하여 침상을 적
시건만 이것이 나를 위한 슬픔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맹세하거
니와 나의 머리는 주의 사랑을 위하여 창검의 난(難)에 맡겼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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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니다. 그리하여 한 나무를 지날 때마다‘너는 내 이름으로 베어
질 것이며 내 몸은 주님의 길에서 그대의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라’고 염하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인류는 침취(沈醉)하여 길을 잃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저들은 욕정(欲情)에 빠져 하느님을 멀리 하고 하느님의 명령
을 오락인 냥 우롱합니다. 그러고도 제 행위가 옳은 줄로만 믿
고 제 자신이 안락성중에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사리(事
理)는 저들이 생각하는 바와는 다르니 저들은 오늘에 거부한
것을 내일에는 보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변경(邊境)의 적소(아드리아노플)에서 다시
악카의 감옥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악카
는 가장 황막한 벽지로서 외관이 극히 추하고 기후와 수질이
심히 좋지 못하여 사람이 거접할 곳이 못되고, 올빼미의 서울
인냥 들리는 이 다만 그 새소리뿐이라 합니다. 저들은 나를 그
곳에 유폐하여 은사(恩赦)의 문을 막고 생명의 자량(資糧)을
끊어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여생을 마치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비록 피로가 나를 쇠약케 하고 굶주림이 나를 거꾸러뜨릴지라
도, 비록 굳은 바위를 침상으로 하고 사막의 야수를 벗하고 있
을지라도 참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맹세하여 당연히 참을 것입
니다. 만물 존재 전의 왕이시며 만민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권
능 안에서 모든 고난을 받아들이고 어떠한 사정 하에 있어서도
나는 하느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은총 깊으신
하느님께서 (높이 계시는 하느님이시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성실한 얼굴을, 강력하시고 혜택 많으신 하느님께로 돌리게 하
여주실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진실로 하느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대답하시고 부른 자에게 가까이 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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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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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느님께 비나니, 원컨대, 이 어두운 고난으로써 그분의
성자(聖者)들의 몸을 보호하는 방패로 삼으사 칼날과 창끝으로
부터 그들을 방어하게 하여 주십사고. 고난을 통하여 하느님의
광명이 더욱 밝아지고 하느님의 영광이 더욱 빛나는 것이니 이
것이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 취하신 방법입니
다.”---‘바압의 에피소드’(146-147)
악카에서의 감옥생활
그때의 악카는 터키제국 각지로부터 가장 흉악한 죄인들을 보
내는 감옥 도시였다. 남녀 노소 80명 내지 84명으로 된 바하올
라와 그분 추종자들의 일행은 비참한 해상(海上)여행을 마치고
여기에 도착하여 곧 병영(兵營) 안에 수감되었다. 그 장소는 심
히 불결하고 음산한 곳이었다. 거기에는 침상도 없고 아무 침구
도 없었다. 음식물도 극히 조악하고 부족하였으므로 얼마 후에
참을 수 없는 이 죄수들은 자신들이 식료를 사 올 것을 원하였
다. 처음 몇 일 동안은 아이들이 울기만 하여 전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말라리아, 적리 등 괴질이 발생하여 겨우 2명을 제외하
고는 동행자 거의 전부가 병석에 눕고 말았다. 그들 중 세 사람
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
었다.10) 이 참혹한 감옥생활이 2년간 계속되었는데 그동안 누
구도 외출할 수 없었다. 다만 네 사람이 매일 엄중한 감시 하에
식료품을 사러 나갈 수 있을 뿐이었다.
이 병영 내의 감금생활 중 외부로부터의 방문은 엄격하게 금
지되어 있었다. 페르시아의 바하이 몇 사람이 사랑하는 지도자
10. 바하올라께서는 사망자 두 사람의 매장 비용을 위하여 자신이 쓰시던 융단을 제공하셨다. 그러나
그 돈은 군인들에게 횡령을 당하고 시체는 땅 구덩이에 던져지고 말았다.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를 알현하고자 도보로써 멀리 왔으나 성안으로는 한 걸음도 들
어갈 수 없었다. 그들은 가끔 성 밑 제3호(濠)의 바깥에 있는
들에 나갔다. 거기서는 바하올라께서도 그 창에 용안(龍顔)을
나타내셨다. 그 사람들은 멀리서 그분을 바라보며 울다가 돌아
갔지만 그들은 희생과 봉사의 정열이 더욱 불타는 것을 느꼈다.
속박이 완화됨
이 감옥생활도 조금 완화되는 날이 왔다. 터키 군대가 동원되
어 이 병사(兵舍)를 사용하게 되었다. 바하올라와 그분의 가족
들은 그들만의 한 주택에 옮기고 다른 신자들은 시내의 어느 대
상하숙(隊商下宿)에 수용되었다. 바하올라께서는 이후 7년간
이 집에서 감금 생활을 하셨다. 그분이 유폐(幽閉)되어 계신 작
은 방 가까이에 그분의 가족 남녀 13명이 그럭저럭 큰 고통 없
이 살 수 있었다. 이곳으로 처음 옮겼을 때에는 설비의 불충분
과 음식물, 기타 생활필수품의 부족으로 인하여 비상한 곤란을
겪었다. 그러나 그 후 두 세 개의 방을 더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비교적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병사를 나온 후에
는 외래자의 방문도 허락 되어, 칙령에 의하여 극히 엄격하였던
속박이 때때로, 일시적으로 시행되기는 하였으나, 점차 완화되
었다.
옥문이 열림
감옥생활이 비참의 극에 달했을 때에도 바하이들은 무서워하
거나 동요함이 없이 확고한 신념을 결코 잃지 않았다. 악카의
병사에 갇혀 있을 때 바하올라께서는 신자 몇 사람에게 보낸 편
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셨다.“무서워하지 말라. 옥문은 열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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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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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나의 천막은 저 칼멜산 위에 세워질 것이요, 그리하여 무
상의 기쁨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라고. 이 선언은 그분의 추
종자들에게 위안의 대원천이 되었으며 얼마 후에 사실로 실현
되었다. 어떻게 하여 옥문이 열렸는가에 대하여는 그분의 증손
쇼기 에펜디에 의하여 영어로 번역된 압돌바하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바하올라께서는 농촌 풍경의 아름다움과 푸른 나무가 울창
한 것을 몹시 좋아하셨다. 어느 날 그분은‘나는 9년간이나 초
목이 무성한 것을 보지 못하였다. 농촌은 영혼의 세계요, 도시
는 육신의 세계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간접적으로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그분이 농촌을 몹시 그리워하시는 걸 알았다. 그리
고 나는 그분의 희망을 실현해 드리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을 확신하였다. 당시 악카에 모하멧 파샤 사
프와트 라고 하는 우리의 큰 반대자가 있었다. 그는 마즈라에
라고 하는 큰 저택을 시(市)의 북쪽 4마일 지점에 가지고 있었
다. 그 대저택은 화원과 시냇물에 둘러싸여 매우 좋은 곳이었
다. 나는 파샤를 그의 집으로 찾아가서 파샤, 당신은 저 훌륭한
성을 버리고 악카에 와서 살고 있는데’하고 말한즉,‘나는 병
이 있는 몸이므로 도시를 떠날 수 없다. 거기 있으면 쓸쓸하고
친구를 만날 수도 없다.’고 그는 대답했다. 나는‘당신이 거기
살지 않고 성이 비어 있는 동안 우리에게 빌려줄 수 없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나의 말에 놀랐으나 곧 승낙하였다. 나는 1
년에 약 5파운드라는 싼 집세로 5년 분을 지불하고 계약하였
다. 나는 곧 사람을 보내어 성을 수리하고 화원을 정리하고 욕
실(浴室)을 만들었다. 그리고‘축복받은 미(美)’11)를 위하여
11.‘쟈말레 무바락’(즉 축복받은 미)란 것은 신자와 벗들이 가끔 바하올라를 부르는 칭호였다.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마차 한대를 준비하였다.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이 거기 가서 그
장소를 보려고 결심하였다. 우리는 시(市)를 둘러싼 성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여러 번 내린 칙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의 관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갔다. 감시하는 병사들이
파수를 보고 있었으나 아무 말도 없으므로 나는 곧게 그 성으
로 갔다. 이튿날 나는 다시 몇 사람의 친구와 관리들과 함께 나
갔으나 성문의 양측에 있는 파수병이 우리를 막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바흐지의 소나무 밑에 테이블을 갖추어 연회를 베풀어
시의 주요한 인물과 관리들을 초대하였다. 저녁에 우리들은 함
께 돌아왔다.
어느 날 나는‘축복받은 미’의 앞에 나아가‘마즈라에에서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마차도 한대 준비 하였습니다.’고 여쭈었
다. (당시 악카나 하이파에는 마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분은
‘나는 죄수다.’하면서 그곳에 가시기를 거절하셨다. 후에 다
시 말씀드렸으나 전과 같은 대답을 얻었을 뿐이었다. 세 번 간
원하였으나 역시 거절하셨다. 나는 그 이상 강청 할 수 없었다.
당시 악카에는 세력 있는 유명한 이슬람교도인 쉐이크가 있어
바하올라를 사랑하고 바하올라께서도 그를 사랑하셨다. 나는
쉐이크를 불러 그 사정을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과감한 사람이다. 오늘밤 바하올라의 성스러운 면전에 나가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두 손을 잡고 그분이 시가를 떠난
다고 약속하실 때까지 그분을 놓지 말고 간청해 달라고. 쉐이
크는 아라비아사람이었다....... 그는 곧 바하올라께 다가가서
그분의 발 앞에 꿇어 앉았다. 그는‘축복받은 미’의 손을 잡아
입 맞추면서‘왜 당신은 시가를 떠나지 않습니까?’하고 여쭈
었다. 바하올라께서는‘나는 죄수’라고 대답하셨다. 쉐이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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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다시 말했다.‘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당신을 죄수 되게
할 권리를 가졌습니까? 당신 자신이 당신을 감옥에 가두어 두
고 계신 것입니다. 이 감옥생활은 당신 자신의 의사였습니다.
지금 나는 당신이 감옥을 나와서 저 성에 가시기를 원합니다.
거기는 경치가 좋습니다. 수목이 청청하고 오렌지는 불구슬 같
습니다.’‘축복받은 미’께서‘나는 죄수이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나 그는 간원하였다. 마
침내 바하올라께서는‘케일리 쿱’, 즉‘좋다’고 승낙하셨다.
이리하여 쉐이크의 인내와 고집은 승낙을 나에게 알렸다. 압돌
아지즈의 엄중한 칙령에 의하여‘축복받은 완전’과의 회합이나
교제가 엄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튿날 마차를 몰아
그분을 저 성에 모셔 갔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다. 나는 그분
을 거기에 계시게 하고 시내로 돌아왔다.
2년간 그분은 이 매력 있는 아름다운 곳에 머물러 계셨다. 거
기에서 다른 장소, 즉 바흐지로 옮기게 되셨다. 그것은 바흐지
에 마침 전염병이 발생하여 집 주인이 가족을 데리고 도피하게
되어 집을 누구에게든지 무료로 빌려주게 된 것이다. 우리는
매우 싼 집세로써 집을 얻어 거기에 신위(神威)와 존엄에 빛나
는 문호가 열리게 된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명목상으로는 죄
수였으나 (터키 황제 압돌 아지즈의 엄중한 칙령은 결코 철회
된 것이 아니었다.) 실제에 있어서는 그분의 생활과 태도에 존
귀와 위엄이 나타나 있었으므로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
고 팔레스타인의 지배 계급 사람들은 그 감화력과 권위를 부러
워하였다. 지사와 군단장, 장군과 지방 관리들이 간절히 그분
을 알현하기를 원했으나 그분은 거기에 응하는 일이 매우 드물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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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어느 때 시의 지사가 상관의 명령이라 하여 무관 한 사람을
데리고‘축복받은 완전’에게 면회를 요청하였다. 그 요청이 허
락되었는데 심히 비대한 서양 사람인 그 무관은 바하올라의 숭
엄한 품위에 위압되어 문 옆 땅위에 무릎을 꿇고 움직이지 않
았다. 두 사람은 그저 송구하여, 권하는‘나르귈레’(터키 물담
뱃대)를 좀처럼 피울 수 없었다. 바하올라께서 여러번 권하시
므로 간신히 입에 가져갔으나 그들은 다만 그 파이프를 입술에
대었을 뿐으로 도루 옆에 놓고 옷깃을 바로 잡고 손을 모아 시
종일관 겸양과 존경의 태도로써 앉아 있어 거기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벗들의 존경과 사랑, 또는 관리와 요인들로부터의 후정과 존
경, 순례자와 진리 탐구자들의 끊임없는 내방, 모든 사람들이
표하는 봉사와 충성의 정신,‘축복받은 완전’의 숭엄한 왕과
같은 풍모, 그분의 명령의 힘, 그분의 열렬한 신자의 수 - 이러
한 모든 점이 바하올라께서는 실제로 죄수가 아니라 오히려 왕
중의 왕임을 실증하는 것이었다. 두 전제적인 왕이 그분에게
반대하였다. 이 두 독재적 군주가 그분을 유폐하였을 때에도
옥중에서 그들에게 보내신 바하올라의 서한은 마치 왕이 신하
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위엄에 찬 것이었다. 그 후 그분은
엄중한 칙령이 철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흐지에서 왕과
같은 생활을 하셨다. 그분은 여러 번 말씀하셨다.‘진실로, 진
실로 가장 참담한 옥사가 에덴의 낙원으로 변하였다.’고.
참으로 이러한 일은 세계 창조 이래 일찍이 전례없는 일이
었다.”
50
바하올라와 신시대
바흐지에서의 생활
바하올라께서는 초기 고난의 시대에는 빈곤과 불명예의 경우
에 처하여 어떻게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할 것인가를 보여주셨
고, 그 만년(晩年)에는 바흐지에서 명성과 부 가운데서 어떻게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할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수백 수천의 영
성스러운 신자들은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여 그분의 자유재량에
맡겼다. 그러나 그분의 바흐지에서의 생활은 최고의 의미에서
의 왕자(王子)와 같은 것이지 결코 물질적인 영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축복받은 완전’과 그분 가족의 생활은 극히 간
소하고 검박한 것이어서 자신을 위한 사치라고는 그 집 어디에
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분의 집 부근에 신자들은‘레즈완’이
라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그분은 때때로 이 정원에서 며
칠 혹은 몇 주일 보내시는 일이 있었고, 밤에 그 안의 정자에서
주무시기도 하셨다. 때때로 그분은 악카와 하이파에 자주 가셔
서 일찍이 악카의 병영에 유폐되셨을 때에 예언하신 바와 같이
칼멜산에 천막을 치신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바하올라께서는 당
신 시간의 대부분을 기도와 명상, 그리고 경전을 쓰시는 일과
서한을 쓰시는 일, 그리고 신자들의 정신적 교육에 소비하셨다.
이 위대한 성업에 그분이 자유스럽게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압돌바하께서 일체의 사무처리를 담당하시고 몰라, 시인, 정부
관리들의 면담까지도 담당하셨다. 이 모든 사람들은 압돌바하
와의 면회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 그분의 설명과 담화에 만
족하여, 바하올라와는 직접 만나지 못하였어도 그분의 아들 압
돌바하와 친숙해짐으로써 전면적으로 바하올라에 대하여 우정
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압돌바하의 태도가 그분의 아
버지의 지위를 저들에게 이해시킨 때문이었다.
51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저 유명한 동양학자인 캠브리지대학의 에드워드 G. 브라운교
수는 1890년에 바하올라를 바흐지에서 방문하고 그 인상을 다
음과 같이 썼다.
“나의 안내자는 내가 신을 벗는 동안 잠시 서 있었다. 다음
그는 능숙하고 빠른 솜씨로 휘장을 밀어 나를 통과 시켰다. 그
래서 나는 넓은 방에 들어선 것이었다. 나를 어디로 인도하는
것인지 누구를 만나게 될 것인지 그때까지 분명치 않았는데
(미리 아무런 확언이 없었으므로), 순간 후에 나는 오싹 소름
이 끼치는 듯 이방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장의자의 끝
이 벽에 닿은 모퉁이에 아주 경이스럽고 거룩해 보이는 인물이
이슬람교의 탁발승들이 쓰는 타아쥬와 같은 (그러나 보통 것과
는 높이와 모양이 다른) 종류의 두건을 쓰고 앉아 계셨다. 그
두건 끝에는 희고 작은 터어번이 둘려져 있었다. 내가 본 그분
의 얼굴은 묘사할 수는 없으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빛나는 그분의 눈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고 힘
과 권위가 그분의 넓은 이마에 갖추어져 있었다. 이마와 양쪽
볼에 깊은 주름살이 있었으나 숱이 많은 검은 머리와 가슴까지
덮은 풍성한 수염은 나이보다 젊어 보이게 하였다. 내가 그분
앞에 허리를 굽혔을 때 누구의 앞에 내가 서 있는가를 물을 필
요가 없었다. 그분이야말로 왕들이 부러워하고 황제들이 헛되
이 탄식 할 만큼 위대한, 사랑과 헌신의 목표인 바로 그분이셨
던 것이다.
부드럽고 위엄있는 음성은 나에게 앉기를 권하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이었다.‘당신이 오신 것을 하느님
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죄수이며 귀양살이하는 나를
52
바하올라와 신시대
만나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세계의 이익과 모든 나
라의 행복을 원할 뿐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우리를 폭동의 선
동자로 몰아 그 죄가 금고와 추방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모든 나라가 신앙에서 일체가 되고, 모든 사람이 동포로서 일
체가 되는 것, 인류사이에 친애와 결합의 맹약이 촉진되는 것,
종교의 난립이 소멸되고 인종의 차별이 없어지는 것, 이런 것
에 무슨 해로움이 있을 것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실현됩니다. 무익한 투쟁과 파괴적인 전쟁이 없어지고‘최대의
평화’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당신은 유럽에서 이러한 것
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까? 이것이 그리스도가 예언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당신네의 왕들과 지배자들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보다 인류의 파괴를 위하여 많은 재보(財
寶)를 없애고 있는 사실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투쟁과 유혈과 불화가 없어지고 전 인류가 한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나라만을 사랑하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인류 동
포를 사랑하는 것이 자랑이어야 합니다........ .’
내가 바하올라에게서 들은 많은 것 중에 이상이 나의 기억에
남은 그때 그분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읽은 사람들은
이러한 교의(敎義)가 속박과 죽음에 해당할 것인가, 그리고 이
교의의 보급이 세계에 이익을 줄 것인가, 혹은 해를 끼칠 것인
가를 스스로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으리라 믿습니다.”---‘나
그네의 이야기’의 서문 바압의 에피소드 39쪽
승천(昇天)
바하올라께서는 이와 같이 간소하고 청순한 지상의 만년(晩
年)을 보내시고 1892년 5월 29일 열병으로 마침내 75세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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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상을 떠나셨다. 그분이 계시하신 최후의 서한 가운데 자필로 기
명 조인한‘유훈’이 있었다. 세상을 떠나신 후 9일 째 되던 날
가족과 친구들 몇 사람 앞에서 그분의 장남의 손으로써 개봉되
어 간단하고도 뜻 깊은 그 문서의 내용이 밝혀졌다. 이 유훈에
의하여 압돌바하께서는 아버지 바하올라의 후계자로, 또 그분
의 가르침의 해석자(解釋者)로 지명되시고, 바하올라의 모든
신자와 가족과 근친들은 모두 그분에게 귀향(歸鄕)하여 복종할
것이 지시되었다. 이 지정에 의하여 그분의 사후에 교파의 분열
이 방지되고 이 대업의 통일이 확립되었다.
바하올라의 예언자적 지위
바하올라의 예언자적 지위에 대하여 명확한 관념을 가지는 것
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분의 말씀은 다른 신성한‘현시자’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단지
동포들에게 전할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부탁받은 입장에서 쓰시
기도 하고 말씀하시기도 한 것이요, 다른 한 가지는 하느님 그
분으로부터 직접 온 것이라고 생각된다.‘케타베 이간’에 그분
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짐(朕)이 이미 위에서, 영원한 성스러움의 여명으로부터 떠
오르는 여러‘발광체’의 두 지위를 정하였다. 그 지위의 하나
는 본질적 일체성의 지위로서 짐(朕)이 설명한 바와 같다.‘짐
은 저희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았다.’(코란 제2장
136절) 다른 하나는 차별성의 지위이니 그것은 창조의 세계와
그 세계에 있어서의 제한성(制限性)에 관한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하느님 여러 현시자는 분명한 개성과 명확히 규정된 사
명과 예정된 계시와 특히 지명된 제한성을 가져 저들은 각기
54
바하올라와 신시대
다른 이름으로써 알려지고, 다른 속성에 의하여 특징을 나타내
고 예정된 사명을 성취하며 독특한 계시를 부탁받은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셨으되‘짐(朕)은, 어떤‘사도’들을 다른
‘사도’들보다 우월하게 하였다. 어떤 자에게 하느님께서는 말
씀하시기를 어떤‘사도’를 그분은 높이시고 귀하게 하셨다. 그
리하여 성 마리아의 아들 그리스도에게 짐은 분명한 표징을 주
고 성령으로써 그를 강하게 하였다.’(코란 제2장 353절)
이와 같이 저들의 일체성, 지극히 높은 초월의 관점(觀點)에
서 볼 때‘신성’(神性),‘신격’(神格),‘지극히 높은 단일성’,
‘가장 깊은 본질’등의 속성은 이들‘존재의 본질’에 과거와
현재에 함께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저들은 모두 신성한 계
시의 왕좌에 살고 신성한 은가(隱家)에 좌정해 있기 때문이다.
저들의 출현에 의하여 하느님의 계시가 나타나고 저들의 모습
에 의하여 하느님의 미(美)가 계시된다. 이와 같이 하느님 자
신의 말씀은 이들‘성스러운 실체’인 현시자에 의하여 정해지
는 것이다.
저들의 제 2의 지위, 즉 차별성, 특이성(特異性)에서 시대의
제한성, 기준 등의 지위의 입장에서 보면 그분들은 절대의 봉
사, 극도의 궁핍, 완전한 자기포기를 나타내신다. 모하멧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나는 하느님의 종이요, 너희와 같은 인간
에 불과하다.’(코란 제41장)
만일 하느님의 모든 속성을 가진 어느 현시자께서‘나는 하
느님이라’고 선언했다 하여도 그분은 진실로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라 거기에는 의문이 없다. 왜냐하면 그분들의 계시와 속성
과 명칭을 통하여 하느님의 계시와 속성과 명칭이 세상에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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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진 일이 지금까지 여러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분은
‘그 모든 박해는 하느님에 대한 것이요 너에 대한 것이 아니니
라.’(코란 8장 17절)고 가르치셨다. 또 그분은‘진실로, 너에
게 충성을 맹세한 자는 하느님께 맹세한 자이니라.’(코란 제
48장 19절)고 하셨다. 그리고 만일 그분들 중의 누군가‘나는
하느님의 사자’라고 선언한다면 그것 역시 명백한 진리를 말씀
하신 것이다. 모하멧께서는‘나는 너희들 중의 누구의 아버지
도 아니요, 다만 하느님의 사자’라고 말씀하셨다. 이 입장에서
보면 저들은 모두 불변의 본질인 저‘이상(理想)의 왕’의 사자
에 불과하다. 그리고 만일 그분들 모두가‘나는 예언의 봉함
(封緘)이라’고 선언하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의문의 여지없는
진리이다. 왜냐하면 모두 한 분, 한 영혼, 한 정신, 한 존재자,
한 계시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모두‘처음과 마지막’,‘최초
와 최후’,‘가시(可視)와 불가시(不可視)’의 나타남이니, 이러
한 것은 정신 중의 가장 깊은 정신이요, 본질 중의 영원한 본질
인 하느님의 속성이다. 그리고 만일 그분들이‘짐(朕)은 하느
님의 종이다.’(코란 33장 40절)고 말씀하신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시비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절대의 봉사를 보이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존재의
본질’이 고래로 영원한 성스러움의 바다 밑에 깊이 잠긴 순간,
혹은 그분들이 하느님의 비밀의 지고(至高)한 꼭대기에 날을
때 그분들은 자신들의 발언을 하느님의 말씀, 즉 하느님 자신
의 소리라고 선언하셨다. 만일 판단의 눈이 열려 있다면 위에
말한 선언의 경우에도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영원한 하느님에
대해서는 그분들이 그분들 자신을 전혀 아무런 가치 없는 자로
간주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분들은 그분들 자신을 전
무(全無)로 간주하시고 그분들의 말씀이 하느님의 궁정(宮廷)
56
바하올라와 신시대
에서는 모독 행위라고 생각하신다. 왜냐하면 자아(自我)의 최
소한의 속삭임도 그 궁정 안에서는 자기주장이 되고 독립적 존
재의 주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 궁정에 도착한 그분들에게는
그와 같은 암시야말로 슬픈 죄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만일 하
느님의 면전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말이 진술된다면, 만일 사람
의 마음, 사람의 말, 사람의 뜻, 사람의 영혼이 가장 사랑하는
하느님 이외의 존재로 향해진다면, 만일 사람의 눈이 하느님의
미(美) 이외의 모습을 본다면, 만일 사람의 귀가 하느님의 소
리 이외의 곡조를 듣는다면, 또 만일 사람의 발이 하느님의 길
이외의 길을 걷는다면, 그 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으랴.
오늘날 하느님의 산들바람이 불어 그 정신이 모든 사물(事
物)에 충만하였다. 하느님의 은총의 흐름이 붓을 멈추게 하고
혀를 놀리지 못하게 한다.
이 지위에 의하여 그분들은 자기를 하느님의 소리라고 주장
하시고, 또 사자의 지위에 의하여 그분들 자신을 하느님의 사
자라고 선언하셨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분들은 그때그때의
필요에 응하는 말씀을 하시고 이러한 모든 선언은 그분들 자신
이 책임지시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러한 선언은 하느님의 계시
의 영역(領域)으로부터 창조의 영역에 걸치고, 신성(神性)의
영역으로부터 지상존재(地上存在)의 영토에 향해진 것이다. 그
리하여 그것이 하느님, 주, 예언자, 사자, 수호자, 사도, 혹은
종의 영토에서도 그분들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의문의 여지
없는 진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짐(朕)이 짐(朕)의 논의(論議)
의 뒷받침으로 인용한 말들은 여기에서 주의 깊게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하면‘성스러움의 여명’이요,‘불가시(不可視)한
자’인 현시자의 여러 가지 발언은 사람들의 영혼을 움직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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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음이 혼란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케타베 이간’176~181쪽
바하올라께서 한 인간으로서 말씀하시는 때의 그분의 지위는
오로지 겸손한 것이어서‘하느님 안에 몰입(沒入)’한 그것이었
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분의 인간으로서의 인격에 감추어
진 현시자를 판별케 하는 점은 그분의 위력의 완전함과 또 그분
의 완전한 자기몰각(自己沒却)이다. 어떠한 경우에나 그분은
겟세마네 동산의 그리스도와 같이‘나의 뜻대로 행하려 함이
아니요, 다만 당신의 뜻대로’라고 말씀할 수 있는 것이었다. 페
르시아 황제에게 보낸 서한에서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폐하여, 진실로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침상에서 잠자는 일개의 인간이었습니다. 영광 있는 분의 대풍
이 일과한 뒤 나에게 주어진 일체의 지식, 이것은 본시 나에게
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강대하고 전지하신 하느님에게서 온 것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이것을 천지간에 선포케 하
셨습니다. 이에 의하여 그것을 아는 자의 감격에 넘쳐 우는 일
들이 모두 나의 몸에 퍼부어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학
문을 배운 일이 없고 학원에 입학한 일도 없습니다........ 나는
강대한 하느님의 뜻의 산들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는 한 잎입
니다. 질풍이 부는 곳에 어찌 고요히 있을 수 있으리까. 다만
명칭과 속성을 갖춘 주님께 의지할 뿐입니다. 바람이 부는 대
로 움직이나니 영겁(永劫) 앞에는‘존재의 것’이 비실재물(非
實在物)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단호한 명령은 나
로 하여금 그분의 축복을 세계에 전하게 하셨습니다. 진실로
나는 주의 명령 앞에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비와 관용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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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분의 손에 자신을 맡길 뿐입니다. 누가 감히, 자신의 임무를 위
하여 뭇사람의 박해를 달게 받을 수 있으리까. 아니, 원컨대 영
원의 신비를 그 붓에 가르치신 하느님에 의하여,‘강력하신
분’에 의하여 힘을 얻는 자를 구(救)하게 하여이다.”
---‘바압의 에피소드’395쪽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의 발을 씻어주셨던 것처럼 바하올
라 또한 때에 따라서는 가끔 그 종자(從者)들을 위하여 밥 짓기
와 그 밖의 잡역을 하셨다. 그분은 종(從)중의 종이셨다. 그분
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즐거이 봉사하셨고 때에 따라서는 아무
것도 깔지 않은 박판 위에서 주무시기도 하셨고, 빵과 물만으로
써 식사를 하시기도 하셨으며, 때로는 그분의 이른바‘신성한
음식, 즉 굶주림’을 식(食)으로 하며 사셨다. 그분의 완전한 겸
양의 덕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존경, 특히 성자, 예언자, 순교자
들에 대한 지극한 존경에서 볼 수 있다. 그분에게는 극히 작은
것으로부터 위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사물(事物)은 모두 하느님
을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분의 인간으로서의 인격은 하느님의 대변자가 되고 붓이 되
기 위하여 하느님의 택함을 받으신 것이었다. 그분이 이 무서운
곤궁과 가난의 길을 취하신 것은 그분 자신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아버지여, 될 수 있으면 이 잔을 저에
게서 물러가게 하소서.’라고 하신 것처럼 바하올라께서도‘만
일 다른데 대행자, 대변자가 있었다면 나는 몸소 민중의 비난,
조롱, 박해의 과녁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에슈라가트의 서한)
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느님의 부르심은 분명하고 명령적이
었으며, 그분은 거기에 따르셨다. 하느님의 뜻은 그분의 뜻이었
으며, 하느님의 기쁨은 그분의 기쁨이었다. 그리하여‘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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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묵종’으로써 그분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진실로 내가 말하노니, 하느님의 길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
든지 그것은 영혼이 사랑하는 것이며 마음이 또한 바라는 바이
다. 하느님의 길에서는 무서운 독도 순량한 꿀이요, 모든 고난
도 청량한 한 모금의 물이다.”
---‘이리의 자식에게 보내는 서한’(쇼기 에펜디의 영어 번
역) 17쪽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바하올라께서는 어떤 때에는‘하느님
의 지위’에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에 있어서는 그분의 인간
적 개인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으리만큼 완전히 종속적이셨다.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그 창조물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권하시고 하느님의 속성을 가르치시고 하느님의 뜻을 알리시고
저들을 인도하는 하느님의 계율을 선포하시어, 하느님에 대한
저들의 사랑과 충성과 봉사를 호소하신 것이다.
바하올라의 저서에는 때때로 그 형식이 어떤 것에서 다른 형
식으로 바뀌는 일이 있다. 즉 어떤 때는 분명히 인간으로서의
논담이던 것이 갑자기 하느님 자신의 말씀과 같은 형식으로써
계속한다. 그러나 그 인간으로서 말씀하시는 때에도 바하올라
께서는 하느님의 사자로서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몸을 바친 살
아 있는 모범으로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분의 전 생명은 성
령에 의하여 작동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분의 생활과 가르
침에서 인간적인 요소와 신적(神的)인 요소를 확연히 분별하기
는 어려운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말씀하셨으되,
“말할지어다.‘나의 전당에서는 하느님의 전당 이외에, 나의
미(美)에서는 하느님의 미 이외에, 나의 존재에서는 하느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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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존재 이외에, 나 자신에서는 하느님의 자신 이외에, 나의 운동
에서는 하느님의 운동 이외에, 나의 묵인(默認)에서는 하느님
의 묵인 이외에, 나의 붓에서는 하느님의 붓 이외에, 즉 가장
귀하고 가장 상찬할 것 이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
할지어다.‘나의 영혼에는 진리만이 있고, 나 자신 가운데는 하
느님만이 보인다.’고.”---‘수라톨 헤이칼’30쪽
바하올라의 사명
바하올라의 이 세계에서의 사명은 통합, 즉 하느님에 의하여,
하느님을 통하여 전 인류의 통합을 이룩하는 그것이다. 그분은
말씀하셨으되,
“지식의 나무에 가장 영광 있는 열매는 이 훌륭한 말씀이다.
너희들 모든 사람은 한 나무의 열매요, 한 가지의 잎이다. 제
나라만을 사랑하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인류 동포를 사랑하는
것이 자랑이다.”
종래의 예언자들께서는 인류 사이에 서로의 호의가 통하여 지
상에 평화가 이루어질 것을 전하셨으며, 그것의 실현을 촉진하
기 위하여 그분들의 생명을 바치셨다. 그러나 그분들은 한결같
이, 이 축복을 받을 완성의 시기는 말세의 (주님이 오신 후에)
사악(邪惡)이 심판을 받고, 정도(正導)가 보응됨으로써 비로소
올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조로아스터께서는 3천년 후에 비로소
구세주 샤 바흐람이 나타나셔서 악령(惡靈) 아리만을 정복하여
정의와 평화의 통치를 세울 것을 예언하셨다.
모세께서는‘만군의 주’께서 나타나셔서 여러 나라로부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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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스라엘의 후예들을 모아 압제자들을 멸망시키고‘만군의 주’
의 왕국을 지상에 세울 때가 오기까지는 아직도 오랜 동안 이
스라엘의 후예들에게 추방과 박해와 압박의 긴 시기가 있을 것
을 예언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으되‘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태복
음 제 10장 34절) 하셨다. 그리고 그분은‘아버지의 영광’을
가지고‘인자(人子)가 나타나시기까지 전쟁과 전쟁 소문과 소
요와 재난의 시기가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
모하멧께서는 선언하셨으되, 유대교도와 기독교 사이의 악업
(惡業)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 사이에 적의(敵意)와 증오를
두셨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께서 저들의 모든 것을 심판하시
기 위하여 나타나시는‘부활의 날’까지 계속하리라고 하셨다.
한편, 바하올라께서는 자신이 바로 모든 예언자들에 의해 약
속된 분, 즉 그분의 시대에 평화의 통치가 세워질 신성한 현시
자임을 선언하셨다. 이 성명은 전례 없는 독자적인 것인데 놀랍
게도 시대의 징조에 바로 적합 되고 모든 위대한 예언자의 예언
과 합치된다. 바하올라께서는 비류 없이 명확한 해명으로써 인
류의 평화와 통합을 이룩할 방법을 계시하셨다.
물론, 바하올라께서 오신 이래 오늘날까지 전례 없는 대 전쟁
과 대 파괴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예언자들이‘주의 무서운
대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 여명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한 바로
서,‘주님의 출현’이 이제 있을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사
실임을 증거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우화(偶話)를 빌어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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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자면, 마치 포도원의 주인인 하느님께서 사악한 농부에게서 그
것을 되찾아 그를 엄하게 징벌하고, 그 계절의 과실을 주인인
하느님께 잘 바치는 다른 사람에게 그 포도원을 주시는 것과 같
다. 이것은 주님이 오심에 즈음하여 무서운 파괴가 일어나서,
저 사악한 농부처럼 몇 세기를 통하여 이 지구상에 잘못된 정치
를 하여 그 과실을 횡령하여 온 포악한 정부와 탐욕스럽고 완미
한 승려(僧侶)와 몰라, 그리고 포악한 지배자들을 각성케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서운 사건과 전례 없는 참화가 아직도 당분간 이 지구상에
끊이지 않으리라. 그러나 바하올라께서는 우리에게 보증하셨
다. 멀지 않아서 이러한 무익한 투쟁과 파괴적인 전쟁이 없어
지고‘최대의 평화’가 올 것이라고. 전쟁과 쟁투는 그 파괴성
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으므로 인류는 여기에서 구원의
길을 발견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도리가 없게
되었다.
‘정해진 때’가 이미 왔고, 그와 함께 약속된‘구세주’도 출현
하셨다.
바하올라의 저서
바하올라의 저서는 그 범위가 광범위하여 개인적 및 사회적
생활의 여러 가지 일, 물질계와 정신계의 일들, 고대와 현대의
성전(聖典)의 해석, 혹은 가까운 장래와 먼 미래의 예언적인 말
씀 등 일체를 다루었다.
그분의 지식이 해박하고 명확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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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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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그분께 통신이나 질문을 하는 자가 잘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종
교 경전에 대하여 설명하고 해석할 때, 그분 자신은 그러한 경
전에 접하신 일이 없으셨건만 명확하고 권위 있는 태도로써 설
명하셨다.‘이리의 자식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그분은 아직 바
압의 저서도 통독할 기회와 시간을 갖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
는데, 그분의 저서에는 바압의 계시에 대한 가장 완전한 지식과
이해를 가졌음이 나타나 있다. (위에 기술한 바와 같이 바압 자
신의 계시, 즉 바얀은‘하느님이 나타내실 분’에 의하여 고취되
고 분출(噴出)된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분은 1890년에 내
방한 브라운 교수와 이삼십분 간씩 겨우 네 번 응대한 외에는
서양의 학식 있는 사상가와 접촉할 기회가 없으셨건만 그분의
저서에는 그분이 서양의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여러 문제에 대
하여 충분한 이해를 가지신 것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그분의
적들까지도 그분의 학식과 지혜가 비할데 없이 해박함을 인정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의 오랜 유폐의 생활 상태는 그 풍부
한 지식이 오로지 영적원천(靈的源泉)에서 솟아난 것이지 결코
보통의 연구나 학문의 방법이나 서적의 도움이나 지도 등에 의
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12)
그분께서는 때로는 자국인의 일반 용어인 페르시아어로 쓰셨
는데 그것은 아라비아어가 많이 섞인 말이다. 또 다른 경우, 학
식 있는 조로아스터교도에게 보내신 글은 순수한 고전적 페르
시아어로 쓰셨다. 그분은 또 아라비아어로도 자유로이 쓰셨는
데, 어떤 때는 평이한 문장으로써, 또 어떤 때는 코란 문체와 같
12. 바하올라께서 서양의 서적을 특히 공부하여 그 지식 위에 그분의 가르침을 세웠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60년 전에 쓰신 바하올라의 여러 가지 저서에는 현재 서양에서 잘 알려져
있는 사상이 포함되어 있으나 당시 서양에서는 이러한 사상이 인쇄되어 있기는 커녕 생각한 일도
없었다고 대답하셨다.
은 고전적인 문체로 쓰셨다. 그분은 전혀 문학적 교육을 받으신
일이 없으셨지만 이와 같이 많은 국어와 문체를 완전히 쓰실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분 저서의 어떤 것에는 성스러운 길을 말씀하심에 있어서
‘이 길을 가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라.’
(이사야 제 35장 8절)와 같이 단순한 말로 쓰셨다. 또 다른 저
서에서는 풍부한 시적 상상(想像)과 심원한 철리(哲理), 그리
고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및 기타의 경전들, 페르시아 및 아
라비아의 문학과 전설들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는데, 이런 것
은 다만 시인, 철학자, 학자들만이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다. 그리고 또 정신생활의 진보된 경지(境地)를 다룬 것이 있는
데 이런 것은 다만 그 경지에 도달한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
이다. 그분의 저작품은 마치 여러 가지 좋은 요리를 풍성하게
차려놓은 식탁과도 같아서 참다운 구도자(求道者)의 요구와 기
호(嗜好)에 맞는 것이다.
그분의 대업이 학자, 교양 있는 자, 정신적인 시인, 유명한 작
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 기인한 것이다. 그
리고‘수피’및 기타 종파의 지도자들과 몇 사람의 문필가이기
도 한 대신들까지도 바하올라의 말씀에 매혹된 바 있었는데 그
것은 그분의 저서가 아름다운 맛과 정신적 의미의 깊이에 있어
서 다른 모든 저술가의 저작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바하이 정신
악카의 감옥에 감금되어 계시면서도 바하올라께서는 고국인
페르시아을 근저(根底)로부터 움직이셨다. 페르시아뿐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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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라 당시 전 세계를 움직이셨고, 지금도 움직이고 계신다. 그분
과 그분의 신자들을 고무한 정신은 극히 온건하고 점잖고 강인
(强靭)한 것인데 그것은 일면 놀라운 활력(活力)과 초인(超人)
의 힘을 가져 일견 불가능한 일도 성취하고, 사람의 성격까지도
일변시켰다. 이 힘에 따른 사람은 완전히 새로운 인간이 되었
다. 저들은 사랑과 신앙과 열정에 차서, 거기에 비하면 지상의
기쁨과 슬픔은 한 알의 티끌과 같은 것이었다. 저들은 일생동안
의 고난과 참혹한 죽음앞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
니라, 오히려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신성한 기쁨에 충만
하여 있었으며, 특히, 가슴은 새로운 삶의 기쁨으로 넘쳐흘러
자기의 박해자들에 대하여 아므런 원한이나 복수할 생각을 품
을 여지가 없었다. 저들은 자위(自衛)를 위하여 폭력을 쓸 것을
포기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운명을 슬퍼하는 대신에 새로운
영광 있는 계시를 받은 것을 기뻐하고, 그 진리를 입증하기 위
하여 자진하여 피를 흘리고 생명을 바치는 특권을 얻는 자신을
가장 행운아로 생각하였다. 그들의 정신은 기쁨에 차서 노래하
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숭고하고 영원한 사랑의 하느님이 인
간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저들을 종으로 또는 벗으로 불러
이 지상에 하느님의 왕국을 세워, 전쟁과 불화에 지친 세계에
평화의 무량한 축복을 가져오기 위하여 오신 것임을 믿었기 때
문이다.
바하올라에 의하여 고취된 신앙은 이러한 것이었다. 그분은
앞서 바압께서 예언하신 대로 그분의 사명을 선언하셨다. 그분
의 대 선구자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그분의 출현을 맞이할
준비를 갖춘 몇 천의 사람이 있었다. - 이 몇 천의 사람은 미신
과 편견을 버리고 순결한 정신과 공정한 도량으로써‘하느님께
66
바하올라와 신시대
서 약속하신 영광이 현시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빈궁과
속박과 숨 막히는 경우와 심한 모욕도 마침내 저들에게‘주의
거룩한 영광’을 막아 버릴 수는 없었다. - 아니, 이러한 어두운
지상의 환경이 도리어 그분의 참다운 빛을 더욱 빛나게 할 따름
이었다.
67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68
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4 장
압돌바하(바하의 종)
나의 출현의 바닷물이 퇴조(退潮)하고 나의 계시의 글이 끝
나거든, 너희는 하느님께서 뜻하신 바 이 고래의 뿌리에서 갈
린 그에게 너희의 얼굴을 돌리라. --- 바하올라
탄생과 유년 시대
압바스 에펜디, 후에 압돌바하(즉 바하의 종)의 칭호로써 불
리운 그분은 바하올라의 장남이다. 그분은 1844년 5월 23일
자정 조금 전, 즉 바압께서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신 그 날 밤 테
헤란에서 탄생하셨다.
그분의 부친께서 테헤란 감옥에 갇혀 계셨을 때, 그분은 겨우
8세였지만 그때 벌써 아버지에게 비상한 애착심을 가지고 계셨
다. 당시 그분의 일가는 폭도들에게 가옥이 점령되고 재산을 약
탈당하여 심한 곤궁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사랑하는 부친께서
일과(日課)의 운동에 나오신 시간에, 감옥 뜰 안에서 면회가 허
락되었던 때의 일을 그분께서 말씀하신 일이 있다. 아버지의 얼
굴은 몹시 초췌해 보였다. 병든 몸은 걸음도 곤란하셨고, 머리
와 수염은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었으며, 목에 끼인 무거운 쇠목
도리에 근육은 상하여 부풀었고, 쇠사슬의 무게 때문에 그분의
몸은 구부러져 있었다. 이 비참한 모습이 민감(敏感)한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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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의 마음에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새겨 주었던 것이다.
그들이 바그다드에 머물러 있던 처음 해, 즉 바하올라께서 자
신의 사명을 공공연히 선언하시기 십년 전, 당시 겨우 9세인 압
돌바하의 통찰력(洞察力)은, 아버지 바하올라께서는 참으로
‘약속된 분’이신 것, 그 현시는 전‘바비’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임을 영리하게도 이미 발견하셨던 것이다. 약 60년 후에 그
분은 이 확신이 단번에 그분의 전 존재(全存在)를 압도했던 때
의 일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셨다.
“나는‘축복받은 완전’의 종이다. 바그다드에 있을 때 나는
아직 어린 아이였다. 이 때 그곳에서 그분은 나에게 그‘말씀’
을 알려주셨다. 나는 곧 그것을 믿었다. 그분이 이‘말씀’을 나
에게 알리시자 나는 그 자리에서 그분의 성스러운 발 앞에 나
의 몸을 던져, 나의 피로써 그분의 길을 위한 희생이 되게 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랐다. 희생! 이 말이 얼마나 나에게 달콤한
느낌을 주었던가! 나에게는 그 이상 더 큰 은혜가 없었다. 내
목이 그분을 위하여 쇠사슬에 매이고, 이 두 다리가 그분에 대
한 사랑 때문에 형틀에 얽매이며, 그분의 대업을 위하여 이 몸
이 찢기고 찢겨 깊은 바다에 던져짐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
을 것인가! 진실로‘축복받은 문턱’에 희생하여야 할 것은 당
연한 일이다.”--- 미르자 아아맏 소오랍의 일기 (1914년 1월)
이때부터 그분의 벗들은 그분을‘하느님의 신비’라고 불렀다.
이것은 바하올라에게서 받은 칭호로서 바그다드에 머물러 있는
동안 주위의 사람들은 그분을 이렇게 불렀다.
그분의 부친께서 황야(荒野)에 가 계신 2년 동안 압바스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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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71
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슬프셨다. 그분의 주요한 위안은 바압의
성스러운 서한을 베껴 쓰며 그것을 암송하는 일이었고, 그분은
대개 고독한 명상(瞑想)에 잠겨 있었다. 후에 부친께서 돌아오
셨을 때 이 소년의 기쁨은 형언할 수 없었다.13)
청년 시대
그때부터 그분은 아버지의 가장 친한 동반자이며 옹호자이기
도 하셨다. 일개의 청년으로서 그분은 벌써 비상한 총명과 식견
을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응접하는 소임을
맡으셨다. 방문객 중에 진실한 구도자(求道者)만을 아버지에게
면접시키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아버지와의 면접을 사절하
여, 바하올라를 괴롭히지 않게 하셨다. 그리고 때때로 방문객의
질의에 응답하시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심으로써 아버지를 도
우셨다. 예컨대, 수피교사인 알리 쇼우카트 파샤라는 사람이 이
슬람교의 전설 가운데 유명한‘나는 숨은 비밀’이라는 구절에
대하여 설명을 요청하였을 때 바하올라께서는 자신의 아들‘하
느님의 신비’, 즉 압바스에게 설명할 것을 분부하셨다. 그때 겨
우 십 오륙 세인 그분은 곧 붓을 잡아 명확하고 빛나는 설명을
써서 그 교사를 탄복케 하셨다. 이 서한은 지금 바하이들 사이
에 널리 퍼져 있고 바하이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알려져 있다.
이 시대에 그분은 자주 이슬람교의 사원(寺院)에 출입하시어
교사, 학자들과 더불어 즐겨 신학상의 문제에 대하여 토론하셨
다. 그분은 어떤 학교에서도 배운 일이 없으셨고, 그분의 유일
한 교사는 부친이셨다. 그리고 그분이 즐기는 소일거리는 승마
(乘馬)여서 그분은 이것으로써 가끔 유쾌한 시간을 보내시기도
13.‘헤쥬라트’기원 1260년‘쟈마디율’월 5일 목요일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하셨다.
바그다드 교외의 동산에서 바하올라의 선언이 있은 이래 압돌
바하의 부친에 대한 헌신은 한층 더 하였다. 콘스탄티노플로 가
는 긴 여행 중 그분은 아버지 마차 옆에 타기도 하고 아버지의
천막 옆을 떠나지 않고 밤낮 경호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될 수
있는 한, 부친을 대신하여 가사를 돌보시고 책임을 져서 일가의
지지자(支持者)가 되고 위안자가 되셨다.
아드리아노플에 머문 몇 해 동안 압돌바하께서는 여러 사람의
경애의 표적이셨다. 그분은 사람들을 많이 가르치셨고 항상‘사
부’라고 불리웠다. 악카에서 그분 일행의 거의 전부가 장질부
사, 말라리아, 적리에 걸려 누워 있을 때, 그분은 환자를 목욕시
키고 음식을 만들며 친히 여러 사람을 간호하셨다. 그분은 조금
도 쉬지 않고 일하신 탓으로 극도로 피로한 나머지 마침내 자신
도 적리에 걸려 거의 1개월 동안 위험한 상태에 빠진 일이 있으
셨다. 아드리아노플에 있을 때와 같이 악카에서도 그분은 위로
는 지사(知事)로부터 아래로는 거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받으셨다.
결혼
압돌바하의 결혼에 관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바하이신앙의 역
사가인 어느 페르시아인 학자가 저자에게 제공하여 주었다.
“압돌바하의 청년시대에는 그분의 결혼문제는 신자들의 큰
관심사(關心事)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많은 신자들이 그
들 자신의 가정에서 이 영관(塋冠)을 얻으려고 몰려들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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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73
러나 압돌바하께서는 오랫동안 결혼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귀
를 귀울이지 않으셨으므로 누구나 그분의 마음을 알 수 없었
다. 후에, 그것은 그분의 배우자로 내심에 정한 소녀가 있었기
때문임을 알았으니, 그것은 에스파한에서 그의 양친이 바압의
축복을 받고 낳은 소녀였다. 그 아버지는 유명한‘순교자의
왕’과‘순교자의 애인’의 숙부인 미르자 모하멧 알리라는 사람
으로서 에스파한의 명문 출신이었다. 바압께서 에스파한에 계
셨을 때, 미르자 모하멧 알리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그의 처가
아이 갖기를 열망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바압께서는 자기의 음
식물의 일부를 그에게 주시면서 그의 처와 나누어 먹으라고 하
셨다. 그들이 이것을 먹은지 얼마 후에 처가 임신하여 오랫동
안 바라던 아이를 낳으니 여아라 그 이름을 모니레 카놈이라고
지었다.14) 그 후에 또 남아를 낳아 세이예드 야흐야라고 이름
지었고, 다시 후에 그들은 자녀 몇 사람을 더 낳았다. 모니레의
아버지가 죽은 후 이 소녀의 종형제들이 젤로스 솔탄과‘몰라’
들에 의하여 순교 당하였고, 가족이 바하이였기 때문에 무서운
고난과 박해를 받았다. 그래서 바하올라께서는 모니레와 그의
동생 세이예드 야흐야를 악카에 데려와서 난을 면하게 하셨다.
바하올라와 그분의 부인, 즉 압돌바하의 어머니 나밥은 모니레
를 사랑하므로 측근자들은 바하올라부처가 그 소녀를 장차 압
돌바하와 결혼시킬 의사가 있는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양친의
소망 또한 압돌바하의 소원이었다. 그분은 모니레에게 뜨거운
사랑을 바쳤고, 모니레 또한 진심으로 이에 응하여 얼마 후에
그들은 결혼하였다.”
이 결혼은 지극히 행복하고 원만하였다. 그분들 사이에서 난
14. 이 이야기를 세례 요한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와 비교하면 재미있다. (누가복음 제 1장 참조)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자녀 중에 오랜 고난의 옥중생활에서 살아남은 것은 네 따님들
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봉사의 아름다운 생활로 인하여
그녀들을 아는 특전을 가진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서 총애를
받았다.
성약(聖約)의 중심
바하올라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써 압돌바하가 자신이 세
상을 떠난 후의 후계자임을 표시하셨다. 그분께서는 승천하시
기 몇 해 전 그분의 저서‘케타베 악다스’가운데서 암암리에
이것을 선언하셨다. 그분은 압돌바하를 가리켜,‘나의 성약의
중심’, 혹은‘가장 큰 가지’,‘고래의 뿌리에서 갈린 가지’라고
칭하셨다. 그분은 항상 압돌바하에 대하여‘사부’라는 칭호로
써 말씀하시고 가족들에게 특히 그를 존경할 것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후에‘유훈’으로써 모든 사람이 그에게 귀향(歸向)하여
그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명확히 지시하셨다.
저‘축복받은 미’(바하올라께서는 신자들에게 항상 이 칭호
로써 불리었다.)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압돌바하께서는 부친께
서 분명히 지시하신 대로 대업의 수반, 이 가르침의 권위 있는
해석자의 지위에 오르셨다. 그러나 이것이 그분의 친척과 일부
신자의 반대를 받았다.
저들 반대자들은 신자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려 하다가 실패하
고 나중에는 여러 가지 허위사실로써 압돌바하를 터키정부에
무고(誣告)하였다.
압돌바하께서는 부친의 유명(遺命)에 의하여 하이파 위쪽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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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멜산 중턱에 한 건물을 세우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압의 유해를
안치할 곳이요, 거기에 집회실과 참배자를 위한 방들이 달려 있
는 것이었다. 저들 반대자들은 이 건물이 압돌바하와 그 도당의
요새(要塞)로서, 그들은 이것을 본거지로 하여 정부에 반항하
고 시리아 근방의 지역을 탈취하려는 음모라고 관헌에 고소한
것이다.
다시 엄중히 감금됨
이 고소와 그 밖의 근거 없는 혐의로 말미암아, 20여 년 동안
악카의 주변 및 몇 마일 사이에서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었던
압돌바하와 그분의 일족(一族)은 또 다시 1901년부터 7년 이
상 이 감옥도시 악카의 성벽 안에 엄중히 감금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분께서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지에 바하이 계시를
선포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호레이스 홀리씨는 이 시
대의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압돌바하를 사부님으로 또는 벗으로 하여 내방하는 자는 그
인종, 종교, 국적의 여하를 막론하고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은 손
님으로서 그분의 책상에 둘러 앉아, 다정한 친구로서 몇시간
혹은 몇 달 동안 머물면서 그분에게서 사회적, 도덕적 문제에
대하여 탐구하여, 모두 감동되고 갱신되고 현명해져서 돌아가
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숙사(宿舍)는 아마 세계의 다른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그분의 집 안에는 저 인도의 엄격한 세습(世襲) 계급제도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보는 인종적 편견은 그림자도
볼 수 없었고, 다만 따뜻한 마음과 대망(大望)의 정신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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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한 법칙을 제외하고는 모든 인습이 이집 주인의 통합정신에 의
하여 타파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아아더왕과 그의‘원탁회의’
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아아더왕은 남녀의 구별이
없이 나이트작(爵)을 주고 싸움터에 보냄에 있어서 검으로써
하지 않고 단지 말씀으로써 하시는 것이었다.”
--- 호레이스 홀리의‘근대사회종교’171쪽
그 동안에 압돌바하께서는 세계각국의 신자와 연구자들과 통
신거래를 많이 하셨다. 이 일에는 그분의 딸들과 여러 통역자와
비서들이 그분의 일을 많이 도왔다.
그분은 많은 시간을, 질병과 빈곤으로 고생하는 자들을 그들
의 집으로 방문하시어 위로하는 일에 바치셨다. 악카의 빈민굴
에서 이‘스승’만큼 환영받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악카에 찾아
간 어느 순례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압돌바하께서는 매주 금요일 아침에 빈곤자들에게 희사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분은 자기의 넉넉지 않은 저축에
서 도움을 바라는 여러 사람에게 조금씩 분배해 주셨다. 그날
아침 압돌바하의 집 부근에는 약 백 명의 사람들이 혹은 앉기
도 하고 구부리고 서서 열을 지어 있었다. 거기에는 여러 종류
의 인간이 모여 있었다.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 - 가난과 피로로
말미암아 절망에 잠기고 헌옷을 걸친 사람들로서, 그중에는 장
님과 불구자와 병자와 형언할 수 없이 가난한 거지들도 많았
다. 그들은 모두 압돌바하께서 문 앞에 나타나시기를 고대하는
표정이었다........ 그분은 한 사람 한사람 순차로 빨리 지나시
다가 때로는 잠시 걸음을 멈추시고 서서, 동정과 고무의 말씀
을 속삭이시고 열심히 내민 손에 잔돈을 떨어뜨리시며 어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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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이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시기도 하고, 눈먼 노인에게 따뜻한
말씀을 주시기도 하고, 병석에 누워있어 여기에 나오지 못한
사람의 안부를 물으시고는 사랑과 위로의 말씀과 함께 그들에
게도 그들의 몫을 보내주시는 것이었다.”---‘압돌바하 별견
기’(M. J. M. 저) 13쪽
압돌바하의 개인적 욕구(欲求)는 극히 작은 것이었다. 그분은
늦게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셔서 일하시고, 식사는 하루에 간단
한 2식으로 족하셨다. 의복은 몇벌의 값싼 것들뿐이었다. 그분
은 다른 사람이 궁하게 사는데 자신이 사치한 생활을 할 수 없
는 분이셨다. 그분은 아이들과 꽃과 자연미를 사랑하셨다. 매일
아침 6시나 7시에 아침차를 같이 마시기 위하여 가족이 한자리
에 모여,‘사부님’께서 천천히 차를 마시고 계시는 동안에 아이
들이 기도를 읊는 것이었다. 쏜톤 췌이스씨는 이 아이들에 대하
여 다음과 같이 썼다.
“상냥하고 사욕이 없으며 타인에 대한 동정심이 깊고 떼쓰는
일이 없이 총명하여, 아이들이 즐기는 조그마한 일에도 자기의
욕심을 억제하는 이러한 순진한 아이들을 나는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갈릴리에서’51쪽
‘꽃 성직자’란 것은 그분의 악카 생활의 면모를 잘 표현한 말
이다. 이에 대해서는 순례자들이 모두 향기로운 회상(回想)을
가지고 있다. 루카스 부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꽃향기를 맡는‘사부님’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분이 히야신스의 꽃잎에 얼굴을 파묻고 그 향기를 맡으실 때
히야신스꽃이 그분에게 무엇을 속삭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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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그것은 마치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으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여
주의력을 집중하는 것 같았다.”---
‘나의 악카 방문기 초(抄)’26쪽
그분은 아름답고 향기 좋은 꽃을 많은 방문객들에게 선사하기
를 좋아하셨다. 쏜톤 췌이스 씨는 압돌바하의 악카에서의 옥중
생활의 인상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들은 이‘최대의 감옥’에 그분과 함께 5일간 머물러 있
어 죄수생활을 하였다. 그것은 평화와 사랑과 봉사의 감옥이었
다. 거기에는 인류의 선(善)과 세계의 평화와, 하느님의 피조
물이요 그분의 아들딸인 인간으로서, 하느님이 아버지임과 인
간 서로의 권리를 인증하는 것 외에 다른 아무런 욕망도 소원
도 없었다. 실제의 감옥, 숨 막히는 분위기, 인간의 진정(眞情)
에서 격리(隔離)되는 것, 세상 조건의 속박 같은 것들은 이상
하게도 이 석벽(石壁)안에서는 그림자도 볼 수 없었고, 여기에
서는 다만 자유와 깨끗한‘하느님의 정신’이 넘쳐흐를 뿐이요,
모든 근심과 소란과 세속 걱정 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다.”---
‘갈릴리에서’24쪽
보통 사람들에게는 감옥생활이란 비참한 고난이 아닐 수 없건
만 압돌바하에게는 그것이 조금도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옥중
에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나의 감금과 화난을 슬퍼하지 말라. 이 감옥은 나의 아름다
운 화원이요, 내가 사는 낙원이요, 인류를 지배하는 왕좌(王
座)이기 때문이다. 옥중의 화난이 내게는 외로운 자 가운데서
영광을 받는 왕관이다. 고난과 빈곤과 중병의 상태에서도 행복
을 느끼고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존귀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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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2권 258, 263쪽
터키 조사위원회
압돌바하에 대한 소송에 대하여 1904년과 1907년 터키정부
로부터 조사위원회가 임명되었다. 거짓으로 꾸며진 증인들은
그분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였다. 압돌바하께서는 이 소송에 대
하여 반박은 하면서도 법정의 어떠한 판결에도 복종할 용의가
있음을 표시하셨다. 비록 투옥되거나 거리를 끌려 다니거나 저
주받거나 얼굴에 침을 뱉거나 돌멩이에 맞는 등 어떠한 모욕을
받더라도, 또 혹은 교수형(絞首刑)이나 총살형을 당할지라도
그분은 오히려 행복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조사위원회가 조사하는 도중에도 그분은 평정한 마음으로 정
원에 과수를 심기도 하시고 결혼식 사회를 보시기도 하면서 평
상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셨다. 이태리 영사가 비밀히 그분을 희
망하는 외국 항구에 안전하게 보내주겠다고 말해 왔으나 그분
은 이에 대하여 감사는 하면서도 굳이 사절하셨다. 그리고 비록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자기는, 결코 적에게서 도피하거나 자
신을 구출하려고 하지 않은 바압과‘축복받은 완전’의 뒤를 따
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많은 바하이들에 대해
서는 당시 매우 위험상태에 있는 악카 부근으로부터 퇴거할 것
을 권고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몇 사람의 충실한 신자들과 함께
그곳에 남아 있어 그 운명을 기다리셨다.
1907년 초겨울에 4명의 부패한 관리가 최후의 조사위원으로
서 악카에 와서 1개월간 머물며 그 소위 조사를 마치고, 압돌바
하의 혐의는 사실에 근거한다는 보고로써 그분을 추방이나 사
79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형에 처할 것을 권고하기 위하여 콘스탄티노플을 향하여 떠났
다. 그러나 저들이 터키에 도착할 무렵 바로 그곳에서 혁명이
일어나, 구 정권 하에 있는 저들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새로 정권을 잡은 청년 터키는
오토만 제국 하의 모든 정치적, 종교적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압돌바하께서도 1908년 9월 마침내 석방되셨고, 그 이듬해에
황제 압돌하밋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서양 여행
석방 후의 압돌바하께서는 여전히 설교와 통신과 빈곤자 및
질병자들의 구호에 그 성스러운 생활을 바치면서 그 동안 악카
에서 하이파로, 다시 알렉산드리아로 옮기셨고, 1911년 8월 처
음으로 서양 여러 나라에 여행을 떠나셨다. 서양 여행 중 그분
은 각양각색의 의견을 가진 여러 방면의 사람들을 만나‘혼연히
모든 사람과 사귀라.’는 바하올라의 가르침을 충실히 수행하셨
다. 그분은 1911년 9월 초 런던에 도착하시어 거기서 1개월을
지내시는 동안 매일 질문자들과 담화하시고 기타 활동을 하시
는 한편, 씨티 템플에서 R. J. 캠벨 대사(大師)가 주관하는 모임
과 웨스트민스터의 성 요한성당에서 윌버포오스 부감독이 주재
하는 모임에서 강연하셨으며, 또 시장과 아침식사를 같이 하기
도 하셨다. 런던을 떠나 파리에 건너가신 그분은 거기서도 매일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게 강연도 하시고 담화도 하시면서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셨다. 12월에 이집트에 돌아오셨다가 다음 해
봄 아메리카 바하이 벗들의 열렬한 초청에 응하여 미국으로 건
너가셨다. 1912년 4월 뉴욕에 도착하셨다. 이후 9개월 동안 그
분은 아메리카의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대학생, 사회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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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에스페란티스토의 모임, 평화협회, 신 사상클럽, 부인참정협회
등 여러 종류, 여러 경우의 사람들에게 강연하시고, 또 거의 모
든 종파의 교회에서 그때그때의 청중들에게 적당한 강연을 하
셨다. 12월 5일 다시 영국을 향발하여 리버풀, 런던, 브리스톤,
에딘버러 등지를 6주일간 역방하셨다. 에딘버러에서는 에스페
란토 협회에서 주목할 만한 강연을 하셨다. 그 강연에서 그분은
동양과 서양이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위하여 동방의 바하
이들에게 에스페란토의 습득을 권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2개월 동안 파리에서 전번과 같이 매일 회견과 회합을 가
짐으로써 분주히 활동하신 후 스투트가르트에 가셔서 독일의
바하이들과 성공리에 회합을 거듭하고, 다시 거기서 부다페스
트와 뷔엔나에 가셔서 가는 곳마다 새 집단을 창설하면서 1913
년 5월에 이집트에 도착하셨고, 그해 12월 5일 하이파에 돌아
오셨다.
성지에 귀향
당시 70세인 그분은, 그 오랜 동안 고생하시면서 애쓴 활동이
이 분투적인 서양여행에서 그 최고조에 달하여 마침내 신체의
건강을 해침에 이르렀다. 그분은 여행에서 돌아오시어 동서양
의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서한을 쓰셨다.
“벗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서 떠날 시기가 가까워졌습니다.
나는 전력을 다하여 가능한 한도까지 바하올라의 대업에 봉사
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전 생애를 통하여 밤낮으로 노력을 다
하였습니다.
나는 신자들에게 이 대업에 대하여 충분히 그 책임을 다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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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것을 얼마나 바랐던가! 지금이야말로‘압하(최상의 영광)의 나
라’를 선전할 때요, 지금이야말로 결합 협동할 때요, 지금이야
말로 하느님의 벗들이 정신적으로 화합할 때입니다........
나는 동서남북으로 귀를 기울여 신자들의 모임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우정의 노래를 들으려 하노니, 여명(餘命)이 얼마 없는
나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기쁨입니다.
나는 빛나는 일련의 진주와도 같이, 하늘에 반짝이는 성좌
(星座)와도 같이, 태양의 광선과도 같이, 한 목장의 양떼와도
같이 벗들이 일치단합해 주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신비의 꾀꼬리가 저들을 위하여 노래하거늘 들리지 않는가.
낙원의 새가 지저귀거늘 들리지 않는가.‘압하의 나라’의 천사
가 저들을 부르거늘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는가. 성약의 사자가
호소하거늘 따르지 않으려는가.
나는 기다립니다. 모든 신자들이 성실과 충의의 체현(體現)
이요 신애와 화목의 화신(化神)이며, 화합과 일치의 시현(示
現)이라는 기쁜 소식을 나는 기다립니다.
그대들은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않으려는가. 그대들은 나
의 소원을 채워주지 않으려는가. 그대들은 나의 호소에 유의
(留意)하지 않으려는가. 그대들은 나의 희망을 이루어 주지 않
으려는가. 그대들은 나의 부름에 응하지 않으려는가. 나는 기
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아맏 소오랍의 일기 (1914. 4. 2.)
바압께서 적들의 포악에 희생되시고, 바하올라께서는 향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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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쫓겨나셔서 옥중에서 일생을 보내시고, 다시 바하올라께서 세
상을 떠나심으로써 그 기세가 한층 강해진 바하이 대업의 적들
은, 이제 압돌바하께서 서양여행에서 돌아오신 후 건강을 해하
여 쇠약해졌음을 보고는 더욱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들의 희
망은 다시 실망으로 변하고 말았다. 얼마 후에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실 수 있었다.
“물론, 이 육체와 인간의 정력이 끊임없는 노력과 긴장에 감
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요청된 분’의 원조의
힘은 이 약소하고 비천한 압돌바하의 수호가 되고 지도가 되었
다........ . 어떤 사람들은 압돌바하의 체력이 완전히 쇠잔하여
이제 이 세상에 최후의 고별을 하게 될 것이요, 그의 생명에는
종말이 왔다고 떠드는 모양이나 그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성약 파괴자와 뜻이 악한 무리의 이러한 관측에도 불구하고 성
스러운 길에서의 시련으로 인하여 내 몸이 비록 약해지기는 했
으나, 하느님께 영광 있으옵소서,‘축복받은 완전’의 섭리에
의하여 나의 정신력은 더욱 더 젊어지고 왕성해졌다. 그리하여
지금 하느님께 감사하노니, 바하올라의 축복으로써 나의 정력
이 회복되어 신성한 기쁨이 넘쳐흐르고, 무상의 기쁜 소식이
찬연히 빛나 지상(至上)의 행복이 내 가슴에 충만하게 되었
다.”---‘서방의 별’제5권 14호 213쪽
유럽의 대전 중과 대전 후에, 압돌바하께서는 다망한 활동 중
에 사람들을 감동케 하는 서한을 여러 방면에 보내셨는데, 이 서
한들은 통신이 다시 열렸을 때 전 세계의 신자들에게 봉사의 새
로운 열과 충성을 다시 환기시켰다. 그리하여 그 감격 속에 이
대업이 약진하여 도처에 이 신앙의 새 세력이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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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전쟁 중의 하이파
압돌바하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있어 그 주목할 만한 실례
가 대전 직전 몇 달 동안에 있었다. 종래 평화 시에는 페르시아
와 그 밖의 세계 각지로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하이파를 방문하
였다. 대전이 일어나기 약 6개월 전 하이파에 사는 어떤 늙은
바하이로부터 페르시아의 신자 몇 사람이‘사부님’을 방문할
것을 신청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압돌바하께서는 그것을 허가
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하이파에 와 있는 순례자들을 그때부
터 점차로 귀환시켜 1914년 7월 말에는 그 전부를 떠나 보내셨
다. 그리하여 8월 상순에 저 대 전쟁이 일어나서 세계를 뒤흔들
었을 때 그분의 선견지명이 분명하게 알려졌다.
대전이 일어남과 동시에, 이미 55년간 추방과 감옥살이로 지
낸 그분은 이제 다시 사실상 터키정부의 수인(囚人)이 되셨다.
시리아 이외에 있는 신자와 벗들과의 통신은 전혀 허락되지 않
았고, 그분과 그분을 추종하는 몇 사람의 신자들은 식량의 부족
과 생명의 큰 위험과 그 밖의 모든 불편과 싸우지 않을 수 없는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전쟁 중의 압돌바하께서는 주위의 사람들의 정신적 및 물질적
곤란을 원조하기 위하여 다망한 시일을 보내셨다. 그분은 티베
리아 부근에 대규모의 농업을 일으켜 다량의 밀을 생산하여 바
하이 뿐 아니라 하이파와 악카에 있는 모든 종교의 신자들의 굶
주림을 널리 구제하셨고, 모든 사람을 돌보아 될 수 있는 한, 그
곤란을 경감시켜 주셨다. 매일 수백 명의 궁민들에게 적은 돈을
주시고 빵도 주셨다. 빵이 없을 때는 대추야자의 씨나 그 밖의
다른 것을 주셨다. 또 자주 악카에 가셔서 거기 있는 신자와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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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민들을 위로하시고 구조해 주셨다. 그리고 전쟁 중에 그분은 매
일 신자들과 회합을 가지셨고, 그분의 도움으로써 저들은 이 동
란의 여러 해를 평온과 행복 가운데에서 지낼 수 있었다.
대영제국의 훈작사(KNIGHT) 압돌바하 압바스
1918년 9월 23일 오후 3시, 1주야에 걸친 전투 끝에 하이파
가 영국 및 인도의 기병대에 점령되어, 터키 통치 하에서의 전
시의 무서움이 가셨을 때 시민들의 기쁨은 대단하였다.
영국군의 점령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각 계급의 군인과 정부관
리와 그 최고층의 인물들까지도 연달아 압돌바하에게 면회를
청하여, 그 명쾌한 담화와 광박한 식견과 심원한 통찰(洞察)과
점잖은 예의와 온화한 접대에 크게 기쁨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
분의 고상한 품성과 평화를 촉진하고, 인류의 참된 번영을 위한
위대한 공헌에 영국정부 당국자들은 깊이 감동하여, 압돌바하
에게 대영제국의 나이트작(K. B. E.)을 수여하게 되어, 그 수작
식(授爵式)이 1920년 4월 27일 하이파 군정총독의 정원에서
거행되었다.
만년(晩年)
1919년부터 1920년에 걸쳐, 저자는 하이파에 계신 압돌바하
의 빈객으로서 2개월 반 동안 친히 그분의 일상생활에 접하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당시 그분은 76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비상한 원기로써 매일 경탄할 만치 많은 일을 하셨다.
그분은 가끔 피로해 보이는 때가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곧 회복
하는 힘을 가지셨다. 그리하여 그분의 봉사의 활동은 가장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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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을 필요로 하는 여러 사람에게 언제든지 제공되었다. 그분의 한
없는 참을성과 온화하고 친절하고 슬기로움은 그분의 존재를
축복해 주는 것이었다. 매일 밤 시간의 대부분을 기도와 명상으
로 보내는 것이 그분의 습관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사이에는, 점심 후에 짧은 낮잠 외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편지
를 읽으시고 회답하는 일과 여러 가지 집안 사무와 바하이 대업
을 위한 일에 종사하셨다. 오후에 대개 산책이나 드라이브로써
잠시의 휴식을 취하는 일이 있으나, 이런 때에도 2~3명 혹은
여러 사람의 순례자를 동반하여 정신적인 문제를 논하기도 하
시고 도중에 어떤 빈민을 방문하여 도와주기도 하셨다.
외출에서 돌아오시면 그분은 객실에 벗들을 불러 저녁모임을
하셨다. 점심과 저녁식사에는 대개 순례자와 벗들과 식탁을 같
이 하시어, 풍부한 화제로써 귀중한 말씀을 하시어 재미있는 이
야기로써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하셨다. 그분이‘우리 집은 웃음
과 열락(悅樂)의 집안’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실제로 그
러하였다. 그분은 여러 가지 다른 인종, 민족, 국가, 종교의 사
람들과 아무 격의(隔意)없이 마음을 터놓고 진정어린 식탁에
둘러앉는 것을 매우 좋아하셨다. 진실로 그분은 하이파에 있는
조그마한 일단(一團)의 사랑하는 아버지 일뿐 아니라 전 세계
바하이 공동체의 아버지셨다.
압돌바하의 서거
압돌바하의 다방면의 활동은, 점차 쇠약해 가는 신체의 피로
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생애의 임종 며칠 전까지 별로 감소되는
일이 없이 계속되었다. 1921년 11월 25일 금요일 그분은 하이
파의 이슬람교 사원의 정오 기도회에 임석하신 다음 여전히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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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소 궁민들에게 희사를 하셨다. 점심 후에 몇 통의 서한을 구수
(口搜)하시고, 휴식하신 다음 정원에서 정원사와 이야기 하셨
다. 그리고 저녁에, 이날 결혼한 충성스러운 봉사자에게 축복과
훈계를 주신 다음 평소와 다름없이 그분의 객실의 바하이 모임
에 참석하셨다. 그로부터 3일도 못되는 11월 28일 오전 1시
30분경 그분은 아주 고요히 세상을 떠나셨다. 옆에 모시고 있
는 그분의 따님 두 분도 그분이 평온히 잠들어 계신 줄로만 알
았다.
슬픈 소식이 곧 시내에 퍼지고 조전(弔電)이 세계각지에 전해
졌다. 이튿날 아침 (11월 29일 화요일)에 장의가 집행되었다.
“이와 같은 장의는 하이파, 아니, 전 팔레스타인에서도 일찍
이 본 일이 없었다........ 수 천 명의 모든 종교, 민족, 언어를
대표하여 모인 애도자들의 슬픔은 참으로 큰 것이었다.
총독 허버트 사무엘씨, 예루살렘 지사, 페니키아 지사, 정부
요인들, 하이파 주재의 각국 영사, 여러 종교단체의 영수, 팔레
스타인의 명사들, 유대교도,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드루즈교
도, 이집트인, 그리스인, 터키인, 쿠르드인, 그리고 아메리카,
유럽 및 국내의 벗들,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그 수가 실로 1만을 헤아렸으며, 그들은 모두 그 친애하는 분
의 영결을 애도하여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하느님, 하느님,
우리의 아버지는 가셨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가셨습니다.’
하며 슬퍼하였다.
저들은 천천히‘하느님의 포도원’인 칼멜산을 향하여 걸었
다....... 도보로 2시간, 일행은 바압의 무덤이 있는 동산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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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착하였다........ 군중이 영구(靈柩)의 주위에 모였을 때, 이슬
람교, 기독교, 유대교의 각파 대표들은 압돌바하에 대한 애착
의 정이 가슴에 차서, 어떤 사람은 그 현장의 상황에 감격하고,
어떤 사람은 미리 준비해 온 애석과 찬송의 사(詞)를 낭독하여
저들은 다 같이 압돌바하를, 이 괴롭고 혼란한 시대의 좋은 교
사로서 조정자(調停者)로서 찬상하여 마지않았으므로 바하이
로서는 그 이상 더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레이디 블롬
필드와 쇼기 에펜디의‘압돌바하의 서거’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신자 사회의 대표로 저명한 인사 9
인이 지금 최후의 막을 닫은 이 순결하고 고귀한 생애에 대하여
모두 웅변으로써 애절한 경애의 뜻을 표한 다음, 관은 고요히
간소하고 신성한 영원의 안식처에 놓여졌다.
모든 종교, 인종, 언어의 통일을 위하여 전 생명을 바쳐 봉사
하신 분에 대한 기념으로써는 이것이 진실로 적절한 헌송(獻
頌)이었다. 이것은 또한 압돌바하의 일생의 사업이 헛되지 않았
다는 것과 그분의 영감(靈感), 아니, 그분의 생활 그것이었던
바하올라의 이상(理想)이 이미 세계에 침투하기 시작하여, 여
러 세기에 걸쳐 이슬람교도, 기독교도, 유대교도들을 서로 이반
(離反)케 한 종파와 계급의 장벽을 타파하고, 인류 가족을 분열
시킨 여러 가지 파당을 없애기 시작한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저서와 강연
압돌바하의 저서는 대단히 많은데 그 대부분이 신자와 구도자
에게 주는 서한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훌륭한 그분의 담화들과
연설들은 기록되었고, 그 중 많은 부분이 출판되었다. 또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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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순례자 중에는 저들의 인상을 기술하여 둔 이가 많고, 이러한
기록은 지금 대개 출판되어 있다.
그분의 가르침은 이와 같이 완전히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그
취급한 범위가 또한 극히 광범위하다. 동양과 서양과의 많은 문
제에 대하여, 그분은 바하올라에 의하여 정해진 일반원칙의 적
용을 구체적으로 다루어 아버지 바하올라보다도 더 자세히 설
명하셨다. 그분의 저서로써 아직 서구 언어로 번역되지 않은 것
이 많다. 그러나 그분의 교의(敎義)의 가장 중요한 원칙에 대하
여 깊고 완전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충분히 번역되었다.
그분은 페르시아어와 아라비아어, 그리고 터키어를 사용하셨
다. 서양 여행 중에는 그분의 담화와 강연이 언제나 통역되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 독특한 아름다움과 능변과 힘을 잃은 것은 틀
림없으나 그분의 말씀에 따르는 정신적 위력이 비상하여 청중
이 모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압돌바하의 지위
압돌바하께서‘축복받은 완전’에 의하여 주어진 독자적인 지
위는 바하올라의 다음과 같은 서한에 표시되었다.
“나의 출현의 바닷물이 퇴조(退潮)하고 나의 계시의 글이 끝
나거든, 너희는 하느님이 뜻하신 바 이 고래의 뿌리에서 갈린
그에게 너희의 얼굴을 돌리라.”
그리고 또
“너희가 만일‘계시의 글’에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있거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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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권위 있는 혈통에서 갈린 그에게 물으라.”
압돌바하 자신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케타베 악다스’의 명문(名文)에 의하여 바하올라께서는
‘성약의 중심’을 그분의 말씀의 해석자로 정하셨다. 이 성약은
태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종제(宗制)에서도 만들
어 내지 못하리만큼 확고하고 강대한 것이다.”
압돌바하께서 동서양에 바하올라의 신앙을 전파한 그 봉사의
완전함이, 때로는 그분의 지위에 대한 신자의 인식에 혼란을 일
으켰다. 많은 전통적 교의의 붕괴를 명시하는 종교적 영향력 가
운데서, 압돌바하의 말씀과 행동에 생기를 주는 그 정신의 순수
성(純粹性)을 의식하면서 많은 바하이들은 압돌바하를 현시자
와 같이 보기도 하고, 혹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분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압돌바하께서
바하올라께 봉사하는 자격이‘진리의 태양’을 향한 거울의 맑
음에서 발한 것이지,‘태양’자체에서 온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함을 그분은 매우 슬퍼하셨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종제와는 달리, 바하올라의 신앙은 그 내
부에 세계 인류사회의 잠재성(潛在性)을 보유하고 있다. 1902
년부터 1921년까지 압돌바하께서 그 사명을 가지고 계신 기간
중에 바하이신앙은 계속적 발전의 몇 단계를 참다운 세계질서
의 방향을 향하여 전개하였다. 이 발전은 이 시대의 지상에 나
타난 강하고 새로운 영감을 충분히 인식한 단 한 사람인 압돌
바하의 끊임없는 지도와 특별한 가르침을 필요로 하였다. 압돌
바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그 분 자신의‘유훈’이 공개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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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바하이신앙의 초대 수호자 쇼기 에펜디에 의하여 그 의의가 설
명되기까지, 바하이 신자는 사랑하는‘사부’의 지도가 거의 필
연적으로 현시자와 같은 정도의 정신적 권위를 가진 것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소박한 열의(熱意)의 반향은 이제는 바하이 공동체
안에서 느끼지 않게 되었고, 그 비류 없는 헌신과 봉사의 신비
를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오늘의 바하이 신자들은 압돌바하께서
성취하신 사명의 독특한 성격을 깨닫게 되었다. 구현자(具現
者)이시며 해석자이신 그분의 추방과 감금으로 인하여 1892년
에 매우 약해진 것처럼 보였던 바하이신앙은 그 후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써 무릇 40개국에 공동체를 세워, 절망적인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는 가르침만으로써 쇠퇴해가는 문명의 약점에 도
전(挑戰)하고 있다.
압돌바하께서는 그분의‘유훈록’에서 바압과 바하올라의 지
위의 비밀과 그 자신의 사명의 비밀을 명백히, 그리고 완전히
표시하셨다.
“바하의 백성(내 생명이 저들을 위하여 바쳐지기를 기원함)
의 신앙의 기초는 다음과 같다.
성스러운 높으신 분(바압)은 하느님의 일체성과 유일성의 현
시자요,‘고래의 미’의 선구자이시다. 성스러운‘압하의 미’
(내 생명이 그의 변함없는 벗을 위하여 희생되기를 기원함)는
하느님의 최상의 현시자요,‘최고의 신성(神性) 본질의 여명’
이시다. 그 밖의 모든 사람은 그분을 섬기는 자요, 그분의 명령
대로 움직이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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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이 성명과 우리들의 신앙에 대한 지식이 압돌바하의 일반적
서한에 의존하는 중요성을 강조한 그분의 다른 많은 성명에 의
하여 신앙의 일체제(一體制)가 확립되어, 그 결과로, 개인적인
질문에 대답한‘사부’의 서한을 참조함으로써 생기는 이해(理
解)의 상위는 급속히 소멸되었다. 그리고 수호자를 수반으로 한
명확한 행정질서의 설립에 의하여, 과거에 여러 지방 소단체 안
에서 개인 바하이의 위엄과 힘으로써 지배되었던 모든 권위가
신설된 운영기관으로 옮겨졌다.
바하이 생활의 구현자(俱現者)
바하올라께서는 원래‘말씀’의 계시자이셨다. 그분은 40년간
의 감금생활로 인하여 그 동포들과의 접촉을 많이 제한받으셨
다. 그러므로 계시의 설명자가 되시고,‘말씀’의 실행자가 되시
며, 여러 가지 활동의 가장 복잡한 형태에서 오늘의 세계와 실
제로 접촉하여, 바하이 생활의 위대한 구현자가 되는 중요한 임
무가 압돌바하에게 지워졌다. 즉 그분은 근대생활의 분류(奔
流)속에서, 도처에 편만한 이기욕(利己慾)과 물질적 번영을 위
해 싸우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바하올라, 그 밖의 모든 예언
자들이 인류에게 요구한 생활, 즉 하느님에게 완전히 귀의(歸
依)하고 인류에게 봉사하는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셨
다.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시련과 고난과 비방과 배반의 소용돌
이 속에서 견디어 참으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과 칭송과 헌
신과 존경을 받으시면서 그분은, 주위에서 겨울의 눈보라가 휘
몰아치거나 여름 바다의 노도(怒濤)가 들볶아 쳐도 꿈적 않는
바위 위에 세워진 등대와도 같이, 광란 노호하는 가운데서 조금
도 흔들리지 않으시고 태연 자약히 서 계신 것이었다. 그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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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자신이 몸소 신앙생활을 하셨고, 그분을 따르는 자에게 지금 곧
여기서 신앙생활을 하라고 호소하셨다. 그분은 전쟁하는 세계
의 한복판에서 융합과 평화의 깃발, 신시대의 큰 깃발을 세우시
고, 그분을 지지하는 자들은 신시대의 정신으로써 고무될 것을
보증하셨다. 그것은 과거의 예언자, 성자들을 고취한 성령의,
신시대의 요구에 적응한 새로운 발로(發露)에 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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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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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열매를 맺어야 하나니, 열매를 맺지 않는 자는‘거룩
한 정신’즉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하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
와 같고,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마땅히 불에 던져져야 하느
니라. --- 바하올라의‘천국의 말씀’
하버트 스펜서는 일찍이 말했으되, 납(鉛)의 본능에서 황금의
행위를 나게 하는 정치적 연금술(鍊金術)은 없다고 하였다. 마
찬가지로 납의 개인들로서 황금의 사회를 이룩하는 정치적 연
금술이란 있을 수 없다. 바하올라 또한 모든 옛날의 예언자와
같이 이 진리를 주장하여, 이 세상에‘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함
에는 그것이 먼저 인간의 마음 가운데 건설되어야 한다고 가르
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바하이 가르침을 연구함에 있어
서 먼저 개인의 행위에 대한 바하올라의 교훈으로부터 시작하
여 바하이란 것의 의의(意義)에 대하여 명확한 이해를 가지고
자 한다.
삶의 영위
어느 때,‘바하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압돌바하께
서는 대답하셨으되, 바하이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전 세계를 사
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며, 그에 봉사하여 세계의 평화와 인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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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를 위하여 활동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또 다른 기회에 그분은
바하이란‘활동하고 있는 인간의 모든 의미에서 완전성을 가진
자’라고 정의하셨다. 런던에서의 어느 강연에서 그분은, 비록
바하올라의 이름을 들은 일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바하이가 될
수 있다고 하시고 다음과 같이 부언하셨다.
“바하올라의 가르침에 따라서 생활하는 자는 이미 바하이인 것
이다. 이와 반대로, 비록 자신이 50년간 바하이였노라고 하여
도 그 생활이 바하이답지 않으면 그는 바하이가 아닌 것이다.
추하게 생긴 사람이 예쁘노라고 자칭하여도 속는 사람이 없을
것이요, 흑인이 백인이라고 자칭할지라도 누구나 속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런던에서의 압돌바하’109쪽
여기에 인용된 압돌바하의 말씀은 바하올라에 대한 신앙 상
태와 동일하게 보이는 질(質)과 아름다운 점에 대한 중요한 주
석이다. 그러나 바하이 공동체원의 정의로서는, 이 글을 만일
압돌바하에 의하여 씌어진 확실한 성명서나 그 밖의, 예컨대 그
분의‘유훈’등에 비추어 읽지 않으면 불완전하다. 이 개정판에
는 오늘날 바하이신자의 신앙에 대한 판정인, 수호자에 의한 바
하이신자의 정식 정의가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바하이신자에
대한 개념에는 네 가지 다른 요점이 내포되고 조화되어 있다.
즉 미덕(美德)의 표준, 예찬과 예배의 초점, 지식의 체계(體係)
및 사회기율(社會紀律)이 그것이다. 호의나 봉사만으로써 바하
이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또 교의(敎義)를 인정한다고 자칭
할지라도 그 사람이 만일 바하올라의 가르침에 의한 종교적 신
세계 공동체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바하이신자가 될 수 없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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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그러나‘하느님의 사자’를 알지 못하는 인간은 그늘에서 자라
나는 식물과도 같아서 그는 태양을 몰라도 절대적으로 태양에
의존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예언자들은 정신적 태양이
요, 바하올라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태양이다.
과거에는 과거의 태양이 이 세계에 온도와 생기를 주었다. 만일
이러한 태양이 없었더라면 세계는 식어서 없어졌을 것이다. 그
러나 이러한 과거의 태양이 길러 놓은 과실을 성숙케 할 수 있
는 것은 오늘의 태양뿐이다.
하느님께 대한 헌신
완전한 바하이생활에 도달함에는 마치 백합꽃이나 장미꽃이
피는 데에 햇빛이 필요한 것처럼 바하올라와의 의식적이고 직
접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바하이는 바하올라의 인간으
로서의 인격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격을 통하여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예배하는 것이다. 바하이는 그리스도, 모하
멧, 그 밖의 과거에 인류에게 보내어진 모든 하느님의 사자를
존경하지만 바하올라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신시대를 위하여
하느님의 선탁(宣託)을 전하는 분으로서, 그리고 그 선행자(善
行者)들의 업을 실행하고 성취시키는 위대한‘세계교육자’로서
받드는 것이다.
신조에 대하여 단지 지적(知的)으로 찬동하는 것으로써 바하
이가 되는 것이 아니요, 또 단지 외면적으로 바른 행위를 한다
고 하여 그 사람이 바하이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바하올라께
서는 그 신자들에게 지극히 순수하고 완전한 헌신을 요구하셨
다. 이와 같은 요구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데, 바하올
라께서는 하느님의 현시자, 하느님의 뜻의 계시자로서 말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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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신 것이다. 바하올라 이전의 현시자들께서도 이점에 관해서는
모두 같았으니,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
으리라.”--- 마태복음 제 16장 24~25절
말의 표현은 다르지만 모든 신성한 현시자들께서도 한결같이
그 신도들에게 이와 같은 요구를 하셨으며, 이러한 요구가 솔직
하게 승인되고 받아들여지는 동안은 어떠한 세속적인 반대나
신자들의 고난, 박해, 순교가 있을지라도 그 종교가 번영하였다
는 것을 종교역사가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반하여 타협
심이 스며들고 이른바‘명망심’이 헌신 봉사의 정신에 대체(代
替)하게 될 때 그 종교는 곧 쇠퇴하고 마는 것이다. 즉 종교가
시대유행에 영합할 때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고 개선하는 능력
과 기적을 행하는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진정한 종교는 결코
유행적이었던 예가 없다. 하느님께서 종교가 그렇게 됨을 언제
한번인들 허용하셨으랴. 그러나 그리스도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으니
라.’(마태복음 제 7장 14절)고 한 것은 진리다. 정신적 탄생의
문은 자연의 탄생문과 같아서 한 사람 한 사람 씩 알몸으로 들
어가게 한다. 만일 장래에 과거보다 많은 사람이 이 길에 들어
감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이 문은 넓어진 것이 아니
라 단지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대귀의’(大歸依)
의 정신이 왕성하여진 때문이다. 왜냐하면 오랜 동안의 쓰라린
경험에 의하여 사람들이 마침내, 지금까지 하느님의 길을 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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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지 않고 자아(自我)의 길을 택하여 온 어리석음을 깨달음에 이
른 때문이다.
진리 탐구
바하올라께서는 모든 신자에게 정의(正義)를 설(說)하시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定義)하셨다.
“일체성의 눈으로써 하느님의 현시자를 알아보고, 만사를 날
카롭게 통찰할 수 있도록 인간을 미신과 모방에서 해방하는 것
이다.”---‘지혜의 말씀’
즉, 각 개인은 몸소 바하올라의 인격에 현시된‘하느님의 영
광’을 보고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하이신앙은 그에게
아무 의미 없는 명목에 불과할 것이다. 예언자들께서 사람들에
게 요구하신 것을 각자가 눈을 떠서 그것을 감지 말고, 이성(理
姓)을 써서 그것을 억누르지 않는 것이다. 편견의 구름을 통찰
하고 맹목적인 모방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계시의 진리
를 체득(體得)함에는 명확한 식견과 자유스러운 사고(思考)로
써 해야지 노예적인 경신(輕信)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바하이가 되고자 하는 자는 용감한 진리탐구자가 되어야 하나
그것은 결코 이 탐구를 물질계에 한해서는 안된다. 그 물질적
감수성(感受性)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감수성도 각성해야 한다.
타당하고 충분히 조리에 맞는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말고,
진리를 얻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능력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만일 마음이 깨끗하고 편견이 없는 성실한 구도자(求道
者)라면 어느 사원(寺院)에서든지 그곳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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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광을 보는 데에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시 이
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고, 존귀와 비천, 영예와 치욕, 또는
가난과 부유에 이르게 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타라자트의 서한’
“모든 학문의 근원은 하느님을 아는 것이다. (하느님께 영광
있을 진저) 그리고 이 지식은 하느님의 신성한 현시자에 의하
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지혜의 말씀’
현시자는 곧 완전한 인간이요, 인류의 위대한 구현자요, 인류
라는 나무의 첫째 열매이다. 우리는 현시자를 모르고서는 우리
안에 잠재한 여러 가지 능력을 알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백
합이 어떻게 하여 생장하는가를 보라고 하셨고 또 선언하셨으
되, 솔로몬은 그 전성시대에도 몸차림이 한 송이 백합꽃만 못했
다고 하셨다. 우리가 만일 백합이 그 찬란하게 핀 모습을 보지
않고 그 꽃과 잎의 비류 없는 아름다움을 보지 않았다면 그 구
근(球根)에 감추어진 실재(實在)에 대하여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구근(球根)을 아무리 조심히 해부하여 아무리 정밀히
검사할지라도 우리는 정원사가 불러일으킬 줄 아는, 그 속에 잠
재해 있는 미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는 현시자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영광을 보기 전에는 우리와 우
리의 이웃사람의 안에 잠재해 있는 정신적 미에 대하여 아무런
관념도 가질 수 없다. 다만 하느님의 현시자를 알고 그분을 사
랑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조금씩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완전성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니, 그때에야 비로소
인생과 우주의 의의와 목적이 우리에게 명확히 알려지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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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것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
하느님의 현시자를 아는 것은 또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는 분리하여 생각할 것이 아니다. 바하올
라에 의하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인간이 하느님을 알고 그분
을 경배함에 있다. 바하올라께서는 어느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잘 알려져 있는 전설에‘나는 숨겨진 보물인데 사람에게 알
려지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나는 알려지기 위하여 만물을 창조
하였다.’고 하신 바와 같이 만물창조의 원인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또‘숨겨진 말씀’가운데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존재의 아들아! 나를 사랑하여 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라.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사랑이 그대에게
이를 길이 전혀 없느니라. 오! 종아, 이를 알아 두어라.”
“놀라운 시야의 아들아! 나는 그대 안에 나의 정신의 입김을
불어 넣어 그대가 나의 연인이 될 수 있도록 하였노라. 어찌하
여 그대는 나를 버리고 다른 임을 얻으려고 하느냐?”
하느님의 애인이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바하이에게 유일한
인생의 목적이다.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을 가장 친애하는 동반
자로, 가장 친밀한 벗으로, 다시없는 총애자로 삼는 자는 기쁨
이 넘쳐흐른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만물을 사랑하
고 만인을 사랑함을 의미하나니,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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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때문이다. 진정한 바하이는 가장 완전한 사랑의 길을 아는 자이
다. 그는 만인을 순결한 마음으로써 사랑할 것이요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사랑하는 자의 모습’을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그리고 하느님의 자취를 어디서나 발견할 것
이므로 누구나 멸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사랑은 종파와 국가
와 계급과 인종 등에 의하여 막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바하올
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옛날에는‘조국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의 신앙의 일부’라
고 계시되어 있었지만‘장엄의 혀’는 그 현시의 날에 성명하셨
으되,‘자기나라만을 사랑하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인류동포를
사랑하는 것이 자랑이라.’고 하셨다.”---‘세계에 관한 서한’
그리고 또 말씀하시되,
“자신보다 먼저 그 형제를 받드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 같은
자야말로 바하의 백성이니라.”---‘천국의 말씀’
압돌바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되,‘많은 다른 몸이 한
영혼처럼 되어야 하나니, 서로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하느님께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라.’고 하셨고, 그분은 또 아메리카의 청
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성스러운 현시자들께서 가르치신 신
성한 종교는 이름이 서로 다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이다.
사람은, 그것이 어떤 여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건 빛을 사랑하
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어떤 흙에서 자란 장미꽃이건 그
것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또 그것이 어떤 근원
에서 나온 진리이건 그 탐구자가 되어야 한다. 초롱에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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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끌리는 것이 빛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흙에 마음이 끌리는
것보다 흙 위에 자란 장미꽃을 즐기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다.
나무에 애착할 것이 아니라 과실을 먹는 것이 이로운 일이다.
맛있는 과실은 그것이 어느 나무에 열렸건 어디서 생산되었건
좋은 것이다. 진리의 말씀은 누구의 입에서 나왔건 시인되어야
하고, 절대의 진리는 어느 책에 씌어 있거나 용인되어야 한다.
만일 편견에 사로잡히면 그것은 손실과 무지의 원인이 된다.
종교 사이, 국가 사이, 인종 사이의 알력은 오해에서 오는 것이
다. 우리가 여러 종교를 연구하여 그 기초되는 원칙을 발견했
을 때 모든 종교가 일치함을 알 수 있나니, 그 기초적 실체(實
體)가 하나요 여럿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방법에 의하여 전 세
계의 종교가는 통일과 조화의 지점(地點)에 도달할 수 있는 것
이다.”
그분은 또 말씀하셨으되,
“사랑받는 자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자기
의 재산과 생명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함에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 다른 사
람들이 또한 각기 무사봉공(無私奉公)의 희생을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이‘아침 해’는 지평선에 떠올라 찬연히 세계를 비
치고, 이‘곡조’는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하며, 이‘신약(神藥)’
은 만병을 다스리고,‘진리의 정신’은 모든 영혼의 생명의 근
원이 될 것이다.”--‘압돌바하의 서한집’제 1권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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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끊어 버림
하느님께 헌신한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 아닌 것을
끊어 버리는 것, 즉 모든 사욕과 세상욕심, 다시 더 나아가서 내
세에 대한 욕심까지도 끊어 버림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길은 부
귀와 빈천, 건강과 질병, 궁전과 감옥, 또는 장미원과 고문실을
통하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 어느 것에 당면하든지 바하이는
‘빛나는 묵종’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 끊어 버리는 태도는 결코 자기의 주위에 대한 막연한
무관심이거나 악조건에 대한 수동적인 체념(諦念)이거나, 또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좋은 것에 대한 경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다. 참다운 바하이는 무감각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또는 금욕적
이 아니다. 다만 하느님의 길에서 무량한 흥취와 활동과 기쁨을
가지되, 쾌락을 얻기 위하여 이 길에서 한걸음이라도 벗어남이
없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금하신 것을 결코 간구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바하이가 된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뜻이 곧 그 사람의
뜻이 되나니,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은 그 사람에게 가장
참을 수 없는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길에서는 어떠
한 잘못을 저질렀어도 놀라지 않고 어떠한 곤란에 부딪혀도 허
둥거리거나 실망하는 일이 없다. 사랑의 빛이 그 사람의 어두운
날을 비치어 괴로움을 기쁨으로 변하게 하고 순교에도 무상의
법열(法悅)을 느끼게 한다. 생명이 크게 고양(高揚)되어 죽음
이 즐거운 모험으로 변하는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말씀하셨
으되,
“나 이외의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겨자씨만큼이라도 있는 자
는 나의 왕국에 들어올 수 없느니라.”--- 수라톨 헤이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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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사람의 아들아! 나를 사랑하거든 네 자신을 외면하고, 나의
기쁨을 바라거든 너의 기쁨을 생각지 말아라. 그래야 네가 내
안에서 죽을 수 있고, 내가 영원히 네 안에서 살 수 있느니라.”
“나의 종아! 이 세상의 족쇄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아의 감옥
에서 그대의 영혼을 풀어 주어라. 그대에게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리니, 이를 꼭 붙들어라.”---‘숨겨진 말씀’
순종
하느님께 대한 헌신은, 그 명령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지라
도 하느님께서 계시하신‘명령’에 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
부(水夫)가 선장의 명령에 대하여, 그 명령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에 복종하여 선장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이 맹
목적이 아님과 같다. 수부는 선장이 이미 항해자(航海者)로서
의 시련의 공을 쌓아 충분히 그 자격을 가진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선장의 지휘에 복종하는 것이 완전히 어리
석은 일일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바하이는 그 구제의 선장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인데, 이 선장을 신뢰할 수 있는 충분한 증
거를 먼저 확인함이 없이 거기에 따른다면 그것은 더욱 어리석
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 충분한 증거를 얻은 이상 그 명
령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더 더욱 어리석은 일이니, 현명한 주인
에 대한 총명한 복종에 의해서만 우리가 주인의 지혜의 혜택을
입을 것이요, 또 그 지혜를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장이 아무리 현명할지라도 한 사람의 선원도 그에 따르지 않
는다면 배가 어찌 항구에 닿을 수 있으며, 수부가 항해술을 체
득할 수 있으랴. 그리스도께서는 순종이 지식의 길임을 명시하
셨으니, 그분은 말씀하셨으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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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니라. 사람
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려면 이 교훈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복음’제 7장 16~17절
바하올라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하느님에 대한 지식은,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바와‘영광의 붓’에 의하여 씌어진‘책’에 계시된 모
든 것을 실행함으로써 얻은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충분히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타잘리야트의 서한’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 시대에는 묵종이란 것이 인기 있는
덕이 아니요, 실제에 있어서 항간의 어떤 보통 사람의 뜻에 절
대로 복종한다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통합이란 것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조화됨으로
써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진실로 이‘뜻’이 분명히 계시되
어 모든 사람이 다른 지휘자를 버리고‘신성한 사자’를 따르지
않는다면 충돌과 쟁투가 한없이 계속되어, 사람들은‘하느님의
영광’과 인류의 공동의 복리를 위한 협조를 헛되게 하는 일에
씌어질 것이다.
봉사
하느님에 대한 헌신은, 또한 우리 인류동포에 대한 봉사의 생
활을 의미하는 것이니, 우리는 이것 외에 달리 하느님을 섬길
길이 없다. 우리가 동포를 등지는 것은 곧 하느님을 등지는 것
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으되,‘이 작은 자 하나에게 하
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태복음 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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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장 45절)고 하셨다. 바하올라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만일 자비(慈悲)를 숭상하거든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말고 너의 인류 동포의 이익을 생각하라.
네가 만일 정의를 숭상하거든 너를 위하여 하고 싶은 일을 남
을 위하여 하여라.”---‘천국의 말씀’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바하이 대업에서는 예술과 과학과 모든 기술은 다 하느님께
대한 예배로 간주될 것이다. 즉 의식적으로 전 능력을 기울여,
열심히 그 완성에 힘을 집중하여 한 장의 종이조각을 만드는
자는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자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진심에서 발하는 노력과 수고는 그것이 최고의 동기(動
機)와 인류봉사의 뜻에서 나오는 한,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예
배이다. 봉사는 또한 기도이다. 의사가 친절하고 편견 없이 인
류의 협동을 믿고 환자를 치료한다면 그는 또한 하느님을 찬미
하는 자라고 할 것이다.”---‘압돌바하의 지혜’
교도
참다운 바하이는 바하올라의 가르침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에서 각자의 전 생활에 대한 지도와 영감(靈感)을 발견
할 것이요, 각자의 존재의 원천인 그 지식을 기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전할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비로소‘성령(聖靈)의 위
력과 확증’을 충분히 받는 것이다. 만인이 모두 웅변인 연설가
가 될 수 없고 능숙한 문필가가 될 수는 없지만 다만 모든 사람
이‘바하이 생활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는 있는 것
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말씀하셨으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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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바하의 백성은 지혜로써 주를 섬기고 자신의 생활로써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하느님의 빛을 그 행위에서 나타내어야 한다.
진실로 행위의 효력은 말의 효력보다 강하다....... 교사가 말한
그 말의 효력은, 그 의도의 순결성과 그의 헌신과 태도에 의하
여 달라진다. 말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진실성은
행위에 의하여 음미(吟味)되고 생활에 의하여 증명된다. 행위
는 곧 그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말은‘하느님의 뜻’
의 입에서 발한 것과 성스러운 서한에 기록된 것에 합치되어야
한다.”---‘지혜의 말씀’
그러나 바하이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자에게는 어떠한
경우에나 그 신앙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람들을‘하느님
의 나라’로 인도하기는 하지만 결코 몰아넣으려 하지는 않는다.
바하이는 양의 무리를 인도하는 착한 목자(牧者)와 같이 음악
으로써 양을 매혹(魅惑)케 하는 일은 있어도 뒤에서 개와 몽둥
이로써 그들을 몰아가려고 하는 자는 아니다.
바하올라께서는 그분의‘숨겨진 말씀’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티끌의 아들아! 현자는 듣는 이 없으면 말하지 않는 사람이
니, 이는 마치 마시고파하는 이를 찾기 전에는 잔을 올리지 않
는 작인(酌人)과 같으며, 자기 임의 아름다움을 보고서야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소리쳐 부르는 애인과 같으니라. 그러니,
순수한 가슴의 흙에 지혜와 지식의 씨앗들을 뿌리고, 신성한
지혜의 히아신스가, 수렁과 진흙이 아닌 가슴에서 돋아날 때까
지 잘 감추어 두어라.”
108
바하올라와 신시대
그분은 또‘에슈라가트의 서한’가운데서 말씀하셨으되,
“오 바하의 백성들아! 너희는 하느님의 사랑의 발생지요 하
느님의 은혜의 여명(黎明)이니라. 욕설과 저주로써 너희의 혀
(舌)를 더럽히지 말지며 볼만한 가치가 없는 것에서 너희의 눈
을 돌리라. 다만 너희가 가진 힘(진리)을 나타낼지니 그것이
용납되면 목적을 달하는 것이니라. 사람이 만일 그것을 받아들
이지 않을지라도 그를 책하거나 간섭함은 무익한 일이니, 그는
그대로 두고 너희는 너희의 보호자이시며 자존하시는 하느님께
로 향하여 너희의 길을 걸으라. 알력과 불화는 물론이요 근심
걱정의 원인을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가‘신성한 은혜’의 나
무 그늘에서 양육되어 하느님이 너희에게 바라신 대로 행동하
기를 바라노라. 너희는 모두 한 나무의 잎이요, 한 바다의 물방
울들이니라.”
예의와 존경
바하올라께서는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백성들아! 나는 너희에게 예의가 바른 자 되기를
바라노라. 진실로 예의는....... 모든 덕의 왕이니라. 몸에 정직
의 옷을 입고 예의의 빛으로 빛나는 자는 축복받은 자이니라.
예의 (혹은 존경)의 덕을 갖춘 자는 곧 큰 지위를 얻은 자이니
라. 나는 이 피해자와 그대들이 다 같이 여기에 도달하여 이것
을 붙잡고 이것을 받들어 지키기를 바라노라. 이는 곧‘가장 큰
이름’의 붓에서 넘쳐흐른 반박할 수 없는 명령이니라.”
---‘세계에 관한 서한’
그분은 다시 반복하여 말씀하셨으되,
109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전 세계 모든 나라로 하여금 기쁨과 향기로써 서로 사귀게
하라. 사람들아, 너희는 또 다른 종교의 백성들과 기쁨과 향기
로써 사귀라.”
압돌바하께서도 아메리카의 바하이들에게 보낸 서한 가운데
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남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도록 조심하라. 조심하라.
남의 영혼에 해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라. 조심하라.
어떤 사람에게나 불친절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조심하라.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실망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조심하라.
누구의 마음, 누구의 영혼을 불문하고 그것의 슬픔의 원인이
되는 자는 이 지상을 걸어다님보다 차라리 지하의 깊은 곳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그분은 꽃이 그 봉오리 속에 감추어져 있음과 같이, 외면이 아
무리 추할지라도 각자의 가슴 속에는 하느님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참다운 바하이는 마치 정원
사가 진귀하고 아름다운 식물을 돌보아줌과 같이 모든 사람을
대우할 것이다. 그는 사람의 성급한 간섭이 꽃을 피게 하는 것
이 아니라 다만 하느님의 햇빛만이 이것을 할 수 있음을 잘 알
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어두운 마음과 가정에 이 생명의
햇빛을 부어넣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바하올라의 가르침 가운데, 사람은 어떠한 조건과 경우를
막론하고 관대하여 그 적을 사랑하고 악의 있는 자라도 선의
110
바하올라와 신시대
있는 자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있다. 이것은 남을 적으로 생각
하고 그리고서 그것을 내버려두라, 참으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선(僞善)이지 참다운 사랑이 아니다. 아니, 적을 지
기(知己)와 같이 보고 악의를 품고 오는 자를 선의 있는 자로
이를 대우하라는 것이다. 그대의 사랑과 친절은 진실한 것이어
야 한다........ 단지 참는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그
참는다는 것이 충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그것은 위선이기 때
문이다.”---‘서방의 별’제 4권 191쪽
이와 같은 충언(忠言)은 우리가, 외면적 육체적 인간이 밉고
악의 있는 자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의 안에는 참 인간인 내면적
정신적인 성질이 있어 거기서 사랑과 선의가 발한다는 것을 깨
닫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으로 보인다. 우리의 생각과
사랑은 우리의 모든 이웃사람의 안에 있는 이 내면적 인간에게
로 향해야 하나니, 이 참 인간이 활동하도록 각성할 때 외면적
인 인간도 변화하고 갱생하는 것이다.
죄를 덮어주는 눈
바하이 가르침은 무엇보다도 남을 꾸짓는 것을 삼가도록 엄격
히 요구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역설하
셨지만 지금은 그 산상수훈(山上垂訓)이 이른바‘완전의 교훈’
이라 하여 일반 기독교도에게 바랄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는 이 점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 그 모
든 것을 실행해야 할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애쓰셨다.‘숨
겨진 말씀’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사람의 아들아! 네 자신이 죄인인 한, 남의 죄를 이르지 말
111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아라. 네가 이 명령을 어기면 나의 저주를 받을 터니, 내 이를
증언하노라.”
“존재의 아들아! 네탓으로 돌리지 않으려던 일은 어떤 영혼
의 탓으로도 돌리지 말며, 네가 행하지 않는 일은 말하지도 말
아라. 이것이 내가 너에게 내리는 명령이니, 이를 반드시 지키
어라.”
압돌바하께서도 말씀하셨으되,
“남의 잘못을 말하지 말고,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며 친절로
써 그가 허물을 고치도록 도와주어라. 언제나 선을 보고 악을
보지 말라. 남에게 만일 열 가지 선이 있으면서 한 가지 악이
있거든, 그 열을 보고 하나를 잊으라. 만일 열 가지 악이 있으
면서 한 가지 선이 있거든, 그 하나를 보고 열을 잊으라. 우리
의 적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의 악을 말함을 삼가야 한다.”
아메리카의 어떤 벗에게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인간의 가장 악한 성질이며, 동시에 가장 큰 죄악은 험담하
는 것이다. 특히 하느님을 믿는 자의 입에서 나오는 험담은 더
욱 큰 죄악이다. 만일 험담의 문이 영원히 닫혀지는 어떤 방법
이라도 발견되어 모든 신자가 아낌없이 입을 열어 남을 칭찬하
게 된다면 성스러운 바하올라의 가르침이 곧 널리 퍼져, 인심
은 밝아지고 정신은 빛나서 인간세계에 영원한 복지(福祉)가
이루어질 것이다.”---‘서방의 별’제 4권 191쪽
112
바하올라와 신시대
겸손
우리는 남의 결점을 관대히 보고 그 덕행(德行)을 좋게 보라
고 명령받고 있다. 그리고 한편,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고 자기
의 덕행에 대해서는 그것을 문제 삼지 말라고 또한 명령받고 있
다. 바하올라께서는‘숨겨진 말씀’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존재의 아들아! 어찌하여 너는 자신의 잘못을 잊고, 남의 잘
못을 탓하느라 분주할 수 있느냐? 누구나 이러하면 나의 저주
를 받느리라.”
바하올라 : 숨겨진 말씁
“이민자(移民者)들아! 입은 내 말을 하라고 내가 만들었으
니, 험담으로 이를 더럽히지 말아라. 자아(自我)의 불길이 너
희에게 덮치면, 너희가 제각기 남을 알기보다 자신을 더 잘 알
거늘, 내 피조물의 잘못보다 너희 자신의 잘못을 기억하여라.”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으되,
“그대의 생활을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발산(發散)된 것으로
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남의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
니라 다만 섬기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바하올라의 종교
에서는 만인이 모두 종이며 시녀(侍女)요 형제자매이다. 자신
이 조금이라도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위험한 지위
에 있는 것이니, 이와 같은 악한 마음의 씨를 버리지 않는 한,
그는‘하느님의 나라’에 봉사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113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자기불만(自己不滿)은 진보의 표징이다. 자신에 만족하는
사람은 악마의 증거요 자신에 만족치 못하는 사람은 자비한 이
의 증거이다. 사람이 만일 자신에게 천 가지 좋은 점이 있을지
라도 그것을 보지 말고 도리어 자신의 결함과 불완전을 찾아보
아야 한다........ 아무리 사람이 진보할지라도 더 향상될 여지
가 있으므로 불완전함을 면할 수 없나니, 자기의 지위에 만족
치 않으면 진보의 여지를 발견하므로 거기에 도달할 것을 바라
게 되는 것이다. 자기칭찬은 이기주의(利己主義)의 표징이다.”
---‘미르자 아아맏 소오랍의 일기’(1914년)
우리는 이와 같이 자기의 죄를 스스로 인정하고 후회하도록
요청되고 있으나, 그러나 그것을 승려(僧侶)나 그 밖의 남에게
고백하는 것은 엄금되어 있다. 바하올라께서는 그분의‘기쁜 소
식’이라는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죄인으로서 그 마음이 하느님 이외의 누구에게나 자유일 때
다만 하느님께 대해서만 용서를 빌 것이니라. 종(즉 인간)에게
고백하는 것은 하느님의 용서를 얻는 길이 아니요 또한 용서를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니라. 하느님의 창조물(즉 인간)에게 고백
하는 것은 스스로 비굴케 하는 것이니, 하느님께서는 (지고한
그의 영광이여) 당신 종의 이와 같은 굴욕을 바라시지 않느니
라. 진실로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어지신 분이시니라. 죄
있는 자는 하느님과 자신과의 사이에서 자비의 바다에 자비를
간구하고 관용의 하늘에 용서를 빌 것이니라.”
114
바하올라와 신시대
정직과 성실
바하올라께서는‘타라자트의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진실로 정직은 세계의 모든 사람의 평안의 문이요 자비하신
분의 앞에서 받는 영광의 표징이니라. 누구나 여기에 이른 자
는 곧 부유의 재보를 얻은 것이니라. 정직은 인류의 안전과 평
안으로 들어가는 가장 큰 문이니라. 만사의 안정이 여기에 달
렸고 명예와 영광과 부유의 세계가 그 빛에 비치리라........ .”
“바하의 백성들아! 정직은 너희가 입을 가장 좋은 옷이요 너
희가 쓸 가장 빛나는 왕관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전능하신
지휘자의 위령(威令)에 따라 이것을 지켜라.”
그분은 다시 말씀하셨으되,
“신앙의 요체(要諦)는 곧 말이 적고 행함이 많음에 있나니, 그
말이 행위를 지나는 자는 진실로 그가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낫고 그의 죽음이 사는 것보다 나음을 알라.”---
‘지혜의 말씀’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실은 인간의 모든 덕의 근원이다. 성실이 없이는 어느 세
계에서나 진보와 성공이 있을 수 없다. 이 성스러운 속성(屬
性)이 한번 인간의 마음에 확립되면 다른 모든 신성한 성질이
또한 나타날 것이다.”---‘압돌바하의 서한집’제 2권 459쪽
“정직과 성실의 빛이 그대들의 얼굴에서 빛나게 하라. 그리
115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하여 사업에서나 오락에서나 그대들의 말이 믿을 수 있고 확실
함을 세상에 알리라. 자기를 잊고 전체를 위하여 일하라.”---
‘런던 바하이에게 보낸 서한’(1911년 10월)
자기실현
바하올라께서는 항상 사람들을 고무하여 그들 안에 잠재해 있
는 완전한 천부(天賦)의 성질을 실현시키고 발양(發揚)시키도
록 힘쓰셨다. 즉 제한된 외면적인 자아(自我)와는 구별된 별개
의 참된 내면적인 자아를 발현시키자는 것이다. 그 외면적 자아
는 최선의 경우에 전당(殿堂)이요 대개의 경우에는 참 인간의
감옥인 것이다.‘숨겨진 말씀’가운데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존재의 아들아! 힘의 손으로 내 너를 만들고 기운의 손가락
으로 내 너를 창조하여, 네 안에 내 빛의 본질을 두었노라. 나
의 일은 완전하며 나의 명령은 거역될 수 없으니, 그로써 만족
하고 달리 아무것도 찾지 말아라. 이에 의문도 의심도 품지 말
아라.”
“정신의 아들아! 내가 너를 부유하게 창조하였거늘, 어찌하
여 너는 자신을 가난으로 끌어 내리느냐? 내가 너를 고귀하게
만들었거늘, 어찌하여 너는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느냐? 지식
의 본질로 내 너를 만들었거늘, 어찌하여 너는 나 아닌 남에게
서 깨달음을 찾으려 하느냐? 사랑의 진흙으로 내 너를 빚었거
늘, 어찌하여 너는 다른 이에게 몰두하느냐? 네 자신에게 눈을
돌리어, 힘차고 굳세며 자존하는 내가 네 안에 있음을 볼 수 있
도록 하여라.”
116
바하올라와 신시대
“나의 종아! 너는 어두운 칼집 속에 감추어진 잘 단련된 검과
같고, 제조공도 모르는 그 숨은 가치와도 같으니라. 그러니 자
아와 욕망의 칼집에서 빠져 나와 너의 가치가 온 세상에 찬란
하고 명백하게 나타나도록 하여라.”
“나의 벗아! 너는 내 거룩함의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니, 세
상의 더러움이 네 광채를 가리지 못하게 하여라. 네가 구름 뒤
에서 눈부시게 나타나서, 만물을 생명의 옷으로 치장할 수 있
도록, 부주의의 너울을 산산이 찢어 버려라.”
바하올라께서 그분의 신자들에게 요구하신 생활은, 인간능력
의 전 범위 안에서 사람이 바랄 수 있는 가장 높고 가장 아름다
운 것이라고 할 만큼 고귀한 것이다. 우리의 안에 있는 정신적
자신을 실현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왔고, 또 하느
님에게로 돌아간다는 숭고한 진리를 체득(體得)하는 것을 의미
한다. 이 하느님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바하이의 영광스러운
목표다. 그러나 이 목적을 성취하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께서 택
하신 사자, 특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자, 즉 신
시대의 예언자인 바하올라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117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118
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6 장
기 도
기도는, 그것에 의하여 누구든지 하늘에 오를 수 있는 사닥다
리다. --- 모하멧
하느님과의 대화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생각과 뜻을 알리기 위하여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써 사람에게 말씀하시지 않을 수 없
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성스러운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
시는 것이다. 이들 예언자들은 육체로써 생존해 계신 동안은 사
람들과 면대하여 말씀하시고 하느님의 계시를 전하시지만 그
사후에는 그분들의 기록된 말씀과 문장에 의하여 사람들의 마
음에 그 계시가 계속하여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
님께서 사람과 말씀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이밖에
‘정신의 말’이 있다. 이것은 연설이나 문장과는 전혀 달라서,
이것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어디서든지 어떠한 인종, 어떤 국어
를 말하는 사람이든지 구별 없이, 진리를 구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교통하여 그에게 영감을 주실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에
의하여 현시자께서는 물질세계를 떠난 후에도 신자와의 대화를
계속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도 그분의
119
제 6 장 기도
제자들과 대화하여 그들을 고무해 주셨다. 실제로 그리스도께
서는 지상에 생존해 계셨을 때보다 사후에 더 큰 감화를 주셨
고, 다른 예언자들께서도 또한 그러하셨다. 압돌바하께서는 이
정신적 말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하신 바 있으니 예를 들면 다
음과 같다.
“우리는 하늘의 말, 즉 정신의 말로써 하여야 하나니, 정신의
말은 마음의 말이다. 이것이 인간의 말과 다른 점은 마치 우리
의 말이, 다만 부르짖는 소리만으로써 의사를 표시하는 동물의
말과 다름과 같다.
하느님께 하는 말은 이 정신의 말로써 한다. 기도할 때 우리
가 일체의 외계에서 떠나 하느님을 향하면 마치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생긴다. 우리는
말이 없이 하느님과 말하고 하느님의 대답을 듣는다........ 우
리는 진정한 정신적 상태에 달했을 때 비로소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 E. J. 로젠버그양이 전하는 담화에 의함
바하올라께서는 보다 높은 정신적 진리는 이 정신의 말에 의
해서만 전달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입으로 말할 수 있고 문
자로 쓸 수 있는 말로는 불충분하다.‘일곱골짜기’라는, 속세
(俗世)로부터 하늘나라에 이르는 나그네가 거쳐 가는 길을 기
술한 작은 책 가운데서 그분은 이 여행의 진전된 단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혀는 이것을 말할 수 없고 말이 또한 도저히 여기에 미칠 수
없나니, 이 경우에 붓은 무용한 것이요, 먹은 검은 점을 남길
뿐이다........ 다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해하는 자의 상태를
120
바하올라와 신시대
알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자로서도 할 수 없고
문자에 함축시킬 수도 없다.”
기도하는 태도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는 정신적 상태에 도달함에 대하여 압
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상태에 도달하기 위하여 모름지기 만사를 잊고
세상 사람을 멀리하여 일심전념(一心專念) 하느님께 향해야 한
다. 그러한 상태에 이름에는 얼마의 노력을 요하나 인간은 그
것을 위하여 힘써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물질적 세계에 집
착하지 말고 정신적 세계에 전념해야 한다. 전자(前者)를 멀리
함으로써 후자에 가까워지는 것이니 그 선택은 우리의 자유에
있을 뿐이다.
우리의 정신적 지각(知覺), 우리의 마음의 눈이 열리어 만사
에 있어서 하느님의 자취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만물은 우리에
게 성령(聖靈)의 빛을 반사할 수 있는 것이다.”---
E. J. 로젠버그양이 전하는 담화에 의함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그 구도자는........ 매일 새벽에....... 하느님과 교통하여
전 영혼을 기울여 그의 사랑하는 이를 찾아야 한다. 그는 모든
제멋대로의 생각을 하느님의 사랑의 말씀의 불꽃으로써 태워
버려야 한다........ .”---‘낙수집’256쪽
같은 방법으로 압돌바하께서는 선언하셨다.
“인간이 그의 영혼을 통하여, 정신으로 하여금 그 이해력을
121
제 6 장 기도
계발시킬 때 그 사람은 자기 안에 우주를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인간이 정신의 축복에 대하여 마음이 열리지 않아
서 그의 영혼을 물질 면, 즉 인간성의 육체적 부분에 돌릴 때
그 사람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보다 낮은 동물계의 거주자 낮
은 자가 된다.”---‘압돌바하의 지혜’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사람들아! 자아의 속박에서 너희의 영혼을 구출하라. 그리
고 나 이외의 모든 사물에 대한 애착에서도 이탈하라. 나에 대
한 추억은 더럽혀진 모든 것을 깨끗이 씻어 주리라. 나의 종이
여,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말씀을 당신께 이끌린 이들이 낭송
한 것처럼 그대가 낭송하여, 그대의 달콤한 음률이 그대 자신
의 영혼에 불을 켜게 하고, 만인의 마음을 매혹토록 하라. 누구
든 자기 방안에서 남몰래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을 낭송한
다면 전능자의 향기 퍼뜨리는 천사들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
의 향기를 널리 퍼뜨릴 것이니라.”---‘낙수집’294~295쪽
매개자의 필요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인간과 창조자의 사이에는 매개자가 필요하다. 그 매개자가
하느님의 광휘(光輝)에서 충분한 빛을 받아 그것을 인간세계에
반사하는 것이 마치 지구표면의 대기(大氣)가 태양광선으로부
터 열을 받아서 그것을 반사하는 것과 같다.”
---‘신성한 철학’8쪽
“우리가 기도하려고 할 때에는 먼저 그 정신을 한 곳에 집중
하여야 하나니, 하느님을 향할 때는 마음을 그 한 점에 부어야
122
바하올라와 신시대
한다. 사람이 만일 하느님의 현시자에 의하지 않고 달리 하느
님을 예배하려고 하면 먼저 자신의 마음 안에 하느님의 개념
(槪念)을 만들어야하는데 이 개념은 자신이 창조한 것이다. 유
한자가 무한자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써는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다만 인간이 자신의 마음으
로써 상상하는 것만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이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다. 사람 자신이 만들어 놓은 하
느님의 개념은 단지 환영(幻影), 영상(影像), 상상(想像)에 불
과하다. 이와 같은 개념과 최고 존재자와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사람이 만일 하느님을 알려고 하면 그리스도, 또는 바하올라
와 같은 완전한 하느님, 즉 정신적 태양이 현시자의 전당(殿
堂)을 통하여 비칠 때, 그 완전한 속성(屬性)과 그 성질의 아름
다움과 그 광명의 혁혁함에 의하여 그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1909년 악카에서의 퍼시 우드코트씨와의 담화에서
그분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령이 매개하지 않으면 사람이 하느님의 은혜를 직접 얻을
수 없다. 이 명백한 진리를 소홀히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어린
아이는 교사 없이 가르침을 받을 수 없고, 지식은 하느님의 은
혜의 하나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땅은 구름에서 오는 비가
아니면 초목으로써 덮여질 수 없으니 구름이 곧 땅과 하느님의
은혜와의 매개자이다........ 빛(光)은 중심을 가졌으므로 이 중
심 이외의 이것을 찾으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일을 생각해 보라. 구세주의
은혜가 없이도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자도 있었지만
123
제 6 장 기도
이와 같은 공상은 저들이 타락에 이르는 원인이 된 것이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591~592쪽
하느님의 현시자를 향하지 않고 하느님을 예배하려고 하는 자
는 어두운 토옥(土獄)에 있는 사람이 햇볕을 쪼이려고 공상하
는 것과 같다.
기도는 꼭 필요하고 의무적인 것임
기도의 습관을 가지는 것은 바하이들에게 분명히 명령된 일
이다.
바하올라께서는‘케타베 악다스’(지성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날마다 아침과 저녁에 하느님의 말씀을 낭송하라. 이것을
게을리 하는 자는 하느님의 성약(聖約)에 충실치 못한 것이니,
오늘에 이것을 소홀히 하는 자는 하느님께 얼굴을 등 지는 자
이니라. 나의 백성들아! 하느님을 외경(畏敬)하라. 경전을 많
이 읽고 밤낮 행사(行事)를 지키는 것으로써 너희들의 자랑을
삼지 말라. 기쁨으로써 단 한 구절을 낭송하는 것이 명심 없이
전능하신 하느님의 전 계시를 통독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피로
하지 않고 권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하느님의 경전을 낭송하
라. 영혼으로 하여금 피로 위축케하지 말고 이것을 청신활발케
하여 계시의 날개로써 증거의 발생지에 오르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이해하면 하느님께로 가까워질 수 있느니라.”
압돌바하께서는 어느 신자에게 말씀하셨으되,
124
바하올라와 신시대
“그대, 정신의 벗이여! 기도는 필수 불가결한 것임을 알지니,
정신적으로 결함(缺陷)이 있거나 불가피한 장애가 없는 한, 어
떠한 구실로써도 이것에서 면제될 수 없는 것이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683쪽
또 다른 신자의 질문에,‘무엇 때문에 기도하는 것인가. 하느
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최선의 질서에 의하여 만사를 처
리하실 것인데, 인간이 자기의 소망을 진술하고 도움을 구하여
간절히 기원해야 하는 참뜻이 어디 있는가?’라고 한데 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진실로, 저 강력하신 분에게 약한 자가 기원하고‘영광스럽
고 은혜 베푸시는 분’에게 은혜를 바라는 자가 간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 주께 기원하고 주를 향하여 그 바다에
은혜를 구할 때, 이 기원은 그 사람의 마음에 빛을 주고 눈을
밝게 하고 영혼에 생명을 주어 그의 존재를 고귀하게 하는 것
이다.
그대가 하느님께 기원하여‘당신의 이름은 나의 치유(治癒)
로소이다.’라고 기원할 때, 하느님의 사랑의 힘에 의하여 얼마
나 그대의 마음이 위안을 받고, 그대 영혼이 기쁨을 느끼며 그
대의 정신이‘하느님의 나라’에 끌리는가를 생각해 보라. 이
매력에 의하여 사람의 능력과 역량(力量)이 증진되는 것이다.
그릇이 커짐에 따라 그 담는 수량(水量)이 많아지고 갈증이 더
함에 따라 구름의 혜택이 사람의 입에 시원한 맛을 주는 것이
다. 이것이 기원의 비밀이요 사람이 그 소망을 진술하는 참뜻
인 것이다.”--- 알리 쿨리 칸에 의하여 번역된, 아메리카 신자
에게 보낸 1908년 10월의 서한에서
125
제 6 장 기도
회중기도(會衆祈禱)
바하올라께서 바하이들을 위해 제정하신 매일의 필수기도는
개인적으로 해야 한다.
단지 망자를 위한 기도에 있어서만, 바하올라께서는 회중기도
를 명하셨다. 그때 지켜야 할 사항은 그 기도문을 읽는 사람은
큰소리로 낭송해야 하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일어서야 한다.
이는 신자들이 기도를 이끄는 에맘 뒤에 행렬을 지어 서서 기도
하는 이슬람교의 의식과는 다른 것으로, 바하올라께서는 이를
금하셨다.
이러한 의식은 바하올라께서 직업적인 성직자 제도를 폐지하
신 것과 일치하며, 예배를 위한 모임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
미하지는 않는다.
합동기도의 가치에 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어떤 사람은 말하리라. 자기는 언제든지 자기의 마음이 하
느님께로 끌리는 때, 야외에서든지 시내(市內)에서든지 그밖에
어떤 곳에 있을 때든지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특정한 날, 일정한 시간에 다른 사람이 모인 곳에 가서 내가 기
도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때에도 다른 사람의 기도에 자기의
기도를 합쳐야 할 것인가고.
이러한 생각은 무의미한 공상이다. 여럿이 모이면 그 힘이 한
층 커지는 것이다. 개인 단독으로 싸우는 군인은 많은 사람으
로 집단화 된 군대와 같은 힘을 가질 수 없다. 이 정신적 싸움
126
바하올라와 신시대
에 있어서 모든 사병이 결속하면 그 결합된 정신적 감정은 서
로 도와서 그 기도가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 E. J. 로젠버그 양의 수기에서
압돌바하께서는 이러한 말씀으로써, 여러 사람의 집합된 정신
이 하느님께로 향할 때 그것이 강화되는 것이므로 회중기도의
필요성을 강조(强調)하셨지만, 그분께서는 바하이의 기도가 의
무적 회중기도의 형식이라고는 가르치지 않으셨다. 바하올라에
의하여 계시된 필수(必須)기도는 개인적인 것이다. 장례식에서
올리기 위하여 계시된 기도 이외는 어떠한 기도의 회중낭독도
바하이 가르침이 아니다.
기도는 사랑의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만인의 소원을 알고 계실 것이니 기도가 필요
없지 않은가라는 다른 질문자에게 그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
셨다.
“사람이 만일 그 벗에게 사랑을 느낀다면 그것을 말하고 싶
을 것이다. 비록 그 벗이 자기의 사랑을 알고 있을지라도 역시
그것을 고백하고 싶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원하는 바를 알고 계시지만, 기도의 충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하느님께 대한 사람의 사랑에서 솟아나오는 것이다.
기도는 반드시 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태도만으
로써 족하다. 만일 사랑과 요구가 없다면 아무리 힘쓰고 억지
로 할지라도 헛된 일이다. 사랑이 없는 말은 무의미한 일이다.
만일 누가 불쾌한 의무로써 그대를 만나 사랑도 기쁨도 없이
말한다면 그대는 그 사람과 대화하고 싶을 것인가.”
127
제 6 장 기도
---1911년 6월호‘격주평론’에 실린 E. S. 스티븐슨양의 논
설에서
또 다른 담화에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가장 높은 기도에서는 다만 하느님께 대한 사랑만을 위하여
비는 것이니, 이것은 결코 하느님 혹은 지옥을 무서워서 하는
것이거나 은혜 또는 천국을 바라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사
람이 한번 남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
지 않을 수 없거늘 하물며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때 그분의 이
름을 부르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는가........ 정신적인 사람에게
는 하느님을 기억하는 일 이외에 더 기쁜 일이 없는 것이다.”
--- 알마 로버트손양 및 기타 순례자들의 수기에서 (1900년
11월 12일)
재난에서의 해방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의하여 질병과 그 밖의 일반 고난은 하
느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홍수, 태풍,
지진 등의 재난도, 압돌바하께서는 간접적으로 이것에 기인하
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과실 때문에 받은 고통은 복수적인 뜻이 아니
라 교육적인 교정(矯正)과 치료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이
것은 사람이 바른 길에서 벗어난 것을 경고하는 하느님의 소리
다. 고통이 심하면 그것은 비행의 위해(危害)가 심한 것을 뜻하
는 것이니‘죄의 값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재난이 불복종에 기
인한 것이므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복종에 의해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에는 우연도 없고 불확실한 일도 없다. 하
128
바하올라와 신시대
느님을 등지면 반드시 화가 이르고 하느님께로 향하면 반드시
복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전체는 한 조직체이므로 각 개인의 복지(福祉)
는 그 사람 자신의 행동에만 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웃사람의
행동에도 의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한 사람의 비행이 만인
을 괴롭히고 한 사람의 선행이 만인을 이롭게 한다. 각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이웃사람의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것이어서 인
류 중의 가장 착한 자는 가장 무거운 짐을 지는 사람들이다. 성
자들은 항상 큰 괴로움을 겪었고 예언자들은 가장 큰 고난을 당
하셨다. 바하올라께서는‘케타베 이간’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너희는 하느님의 모든 예언자와 그 동료들에게 내려진 고
난, 빈곤, 불행, 불명예가 어떠하였음을 알 것이요, 너희는 저
들의 신도들의 머리가 선물로써 여러 도시에 보내졌음을 들었
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하느님의 모든 예언자들에게 죄가 있어 다른 사
람 이상으로 벌을 받은 것이 아니다. 아니, 그분들은 다른 사람
의 죄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셨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고난의 길
을 스스로 택하셨던 것이다. 그분들의 관심사(關心事)는 세계
의 복지를 위하는 것이지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를
참으로 사랑하는 자의 기도는, 개인으로서 그가 빈궁과 병고와
참화를 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무지와 죄과와 그리고 거
기서 필연적으로 오는 불행에서 해방될 것을 기도하는 것이다.
만일 저들이 자신의 건강과 부유를 바란다면 그것은 다만 하느
님의 나라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만일 신체의 건강과
129
제 6 장 기도
부유가 그에게 허락되지 않을지라도, 하느님의 길에서 그에게
내려지는 어떠한 일이든지 그 가운데 바른 지혜가 있음을 잘 알
기 때문에 그는‘빛나는 묵종’의 태도로써 자신의 운명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시되,
“근심과 슬픔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완
전하게 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자비에 의하여 보내지는 것이다.
근심과 슬픔이 올 때 그 사람은 이 굴욕에서 구원해 주실 수 있
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시
련이 더욱 가해질수록 거기에서 받는 정신의 덕에 대한 깊음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압돌바하의 지혜’45쪽
죄 없는 자가 죄 있는 자 때문에 벌을 받는다는 것은 얼른 보
기에 심히 부당한 일 같으나 압돌바하께서는 이에 대하여, 그 부
조리(不條理)는 단지 피상적이요, 결국은 정의가 완전히 승리한
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증하셨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어린 아기나 아동이나 약한 자가 압박자들의 손에 괴로움을
받을 때........ 저들의 영혼은 다른 세계에서 보상을 받는 것이
므로........ 그 고통은 하느님의 무상의 자비인 것이다. 진실
로, 하느님의 이와 같은 자비는 현세의 모든 위안이나, 마침내
는 모두 죽고야 마는 이 세상에 속한 성장과 발달보다도 나은
것이다.”---‘압돌바하의 서한집’제 2권 337쪽
기도와 자연 법칙
많은 사람들은,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자연법칙에 함부로 저촉
되는 것 같이 생각하므로 기도의 효험을 믿기 어려워한다. 다음
130
바하올라와 신시대
의 비유가 이 곤란을 제거함에 도움이 될 것이다. 즉 쇠 부스러
기 위에 자석(磁石)을 가져가면 그 쇠 부스러기는 자석에 달라
붙는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중력(重力)의 법칙을 방해하는 것
이 아니다. 중력의 법칙은 이 경우에도 의연히 쇠 부스러기에
미치고 있는 것이니, 사실은 다만 하나의 보다 큰 다른 힘이 작
용한 것에 불과하다....... 이 다른 힘의 움직임은 중력의 움직임
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이고 계량할 수 있는 것이다. 바하이의 견
해에 의하면 기도는 곧 아직 별로 알려져 있지 않는 더 높은 힘
을 작용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힘은 물질적인 힘보다 작용
이 무법칙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 차이는 단지 이 힘
이 아직 충분히 실험적으로 연구되어 있지 않아서 우리가 이것
을 모르기 때문에 그 작용이 신비하고 계량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일부의 사람들을 당황케 하는 또 한 가지 곤란한 점은, 기도가
가끔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바와 같은 그러한 큰 결과를 가져오
기에는 그 힘이 너무 약하게 보이는 일이다. 이 곤란한 점도 또
한 가지 비유로써 해명된다. 즉, 저수지의 수문을 움직이는 작
은 힘은 막대한 수량을 방출하고 조절함에 족한 것이요, 대양을
항해하는 배의 조타기(操舵機)에 가해지는 작은 힘은 큰 배의
진로(進路)를 지배함에 충분한 것이다. 바하이의 견해에 의하
면 기도에 효과를 초래하는 힘은 무궁무진한 하느님의 힘이다.
기원자의 할 일은 단지 하느님의 은혜가 흘러나오게 하고 그 방
향을 정함에 필요한 조그마한 힘을 적용케 하는 것뿐이다. 하느
님의 은혜는 이 작은 힘을 사용할 줄 아는 자에게는 언제나 쉽
게 주어지는 것이다.
131
제 6 장 기도
바하이의 기도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는 여러 가지 경우와 목적에 따라서
수많은 기도를 신자들의 사용을 위하여 계시하셨다. 그 말씀에
계시된 의상(意想)의 위대함과 심오한 영성(靈性)은 안식(眼
識)있는 신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것을 자신의
생활의 규칙적인 중요한 일과(日課)로 함으로써만 그 참뜻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고 그 힘을 참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다. 심히 유감 되는 일이지만 지면이 허하지 않으므로 그 기도
문 중의 극소수 짧은 견본만을 예거(例擧)하고 그 이상의 것은
독자 자신이 다른 서적에서 구하기를 바란다.
저의 주여! 주님의 아름다음을 저의 먹을 것으로 하여 주시
옵고, 주님의 모습을 저의 마실 것으로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의 뜻을 저의 희망으로, 주님의 찬송을 저의 행동으로, 주님께
대한 기억을 저의 동무로, 주님의 권력을 저의 구원자로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주님이 계신 곳을 저의 집으로 하여 주시
옵고, 제가 사는 곳을 장막으로 막히듯 주님에게서 떨어진 자
들에게 허하지 않으시는 거룩한 자리로 하여 주시옵소서. 진실
로 주님은 전능하시고 지극히 영광되시며 가장 강력하신 분이
시옵나이다. - 바하올라 -
저의 하느님 제가 증언하오니, 주님은 저로 하여금 주님을 알
고, 주님을 경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저를 창조하셨나이다. 지
금 이 순간에도 저의 무력함과 주님의 강력하심을, 그리고 저
의 가난함과 주님의 부하심을 증언하옵나이다. 위험에서 도와
주시고 자존하시는 주님 밖에는 다른 하느님이 없사옵나이다.
- 바하올라 -
132
바하올라와 신시대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이시여! 주님의 종들의 마음을 통
합시켜 주시옵고 그들에게 주님의 위대한 목적을 계시하여 주
시옵소서.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계명을 따르고, 주님의 율법
을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느님, 그들의 노력을 도와 주시
옵고 그들에게 주님께 봉사할 힘을 주시옵소서. 하느님! 그들
을 그냥 내버려 두지 마시옵고 그들의 발걸음을 주님의 지식의
빛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주님의 사랑으로 즐겁게 하
여 주시옵소서. 진실로 주님은 그들의 구조자이시며 그들의 주
님이시옵나이다. - 바하올라 -
인자하신 주여! 주님은 같은 근원으로부터 모든 인류를 창조
하셨사옵고, 모두가 한 집안으로 살도록 정하셨사옵나이다. 주
님 앞에서는 저들이 모두 주님의 종이오며, 온 인류가 주님의
천막 아래 보호받고 있사옵고, 모두 주님의 은혜의 식탁에 모
여 있사오며, 모두가 주님의 섭리의 빛을 받고 있사옵나이다.
하느님! 주님은 모두에게 인자하시옵고, 모두에게 베풀어 주
셨사오며, 모두를 비호하시옵고, 모두에게 생명을 주시옵나이
다. 주님은 만인에게 각기 재주와 기능을 주셨사옵고, 모두가
주님의 자비의 바다에 잠겨 있사옵나이다.
인자하신 주여! 모두를 하나로 결합하소서. 여러 종교들을
화합케 하시옵고, 나라들을 하나로 묶어 주시와, 저들이 서로
를 한 가족같이 보고, 온 땅덩어리를 한 집안처럼 보게 하소서.
저들이 모두 온전한 화합아래 모여 같이 살게 하소서.
하느님! 인류일체의 깃발을 드높이 세워주소서!
133
제 6 장 기도
하느님! 최대의 평화를 확립해 주소서.
하느님이시여, 사람들의 마음을 굳게 결합시켜 주소서.
인자하신 아버지 하느님이시여! 주님의 사랑의 향기로써 저
희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주소서. 저희들의 눈을 주님의 인도
의 빛으로 밝혀 주소서. 저희들의 귀를 주님의 말씀의 곡조로
즐겁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 모두를 주님의 섭리의 성채 안에
보호하여 주소서.
주님은 강대하시고 강력하시옵나이다. 주님은 용서하는 분이
시옵고, 모든 인류의 결점을 너그러이 보시는 분이시옵나이다.
- 압돌바하 -
저의 주, 전능자이시여! 저는 죄인이오나 주님은 용서하시옵
나이다. 저는 심히 부족하오나 주님은 불쌍히 보시옵나이다.
저는 미망의 어둠 속에 있사오나 주님은 관용의 빛으로써 비쳐
주시옵나이다.
그러하오니, 주님, 자비하신 하느님이시여! 저의 죄를 사해
주시옵고 주님의 선물을 주시오며, 저의 잘못을 용서하시옵고
저에게 피난할 곳을 주시오며, 주님의 관용의 샘에 제가 잠기
게 하시옵고 모든 병고에서 저를 구하여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씻어 성스럽게 하여 주소서. 원컨대, 저로 하여금
신성(神聖)이 넘쳐흐르는 곳에 참여하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
여 근심과 슬픔이 저에게서 떠나고, 기쁨과 행복이 저를 찾아
오며, 불쾌와 낙망은 환희와 신뢰로, 무서움은 용기로 변하게
134
바하올라와 신시대
하여 주소서.
진실로, 주님은 관대하시고 인자하시며 대자대비하신 분이시
옵나이다. - 압돌바하 -
주님, 자비하신 하느님이시여! 주님의 사랑의 빛으로써 거울과
같이 빛나는 마음을 제게 주시옵고, 성령의 은혜로써 저에게
힘을 주시와 이 세상을 장미동산으로 만들 수 있게 해 주시옵
소서. 주님은 자비하시고 인애하신 분이시옵나이다. -
압돌바하 -
이러한 여러 가지 기도의 형식이 필요한 것이지만 바하이의
기도는 결코 이런 것뿐이 아니다. 바하올라께서는 인간의 전 생
애가 곧 참다운 기도가 되어야 할 것, 바른 정신에 의하여 행해
지는 모든 일은 참다운 예배인 것, 하느님의 영광과 인류동포의
복리를 위하여 바치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가 곧 기도인 것,
이러한 것들이 진정한 의미의 기도인 것을 가르치셨다.
135
제 6 장 기도
136
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7 장
건강과 치유
하느님께 얼굴을 향함으로써 몸과 마음과 영혼의 치유(治癒)
를 얻을 것이다. --- 압돌바하
육체와 영혼
바하이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의 육체는 영혼의 발달을 위하
여 일시적으로 필요한 것이어서 그 목적을 달성하면 무용한 것
이 되고 만다. 마치 달걀의 껍데기는 병아리의 부화를 위하여
일시적으로 필요한 것이어서 그 목적이 이루어지면 버리게 되
는 것과 같다. 인간의 육체는 원자와 분자로 조직된 합성물이요
영원불멸의 성질을 가진 것이 아니므로, 다른 모든 합성된 물체
와 마찬가지로, 때가 오면 해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압돌바
하께서는 말씀하셨다.
육체는 영혼의 종이지 결코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육체는 기
쁘게 행하고 잘 복종하고 매사에 유능한 종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이 착한 종으로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만
일 육체가 적당히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병에 걸리거나 불행한
일이 생겨 주인과 종이 함께 해를 입는 결과를 초래한다.
137
제 7장 건강과 치유
모든 생명의 일체성(一體性)
모든 생명은 무수한 형상과 등급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본질적
으로는 일체하는 것이 바하올라의 근본적 가르침의 하나이다.
우리의 육체의 건강은 지식, 도덕, 정신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
를 가졌고, 또 인류동포의 개인적 및 사회적 건강에도, 심지어
다른 동식물의 생명과도 큰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실제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넓은 범위에 걸쳐 서로 영
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하여, 예언자의 명령은 그것이 인생의 어느 부분을 가리
킨 것이든지 신체의 건강에 관계를 가지지 않는 것이 없다. 그
가르침의 어떤 것은 직접 육체적인 건강에 관한 것이니 우리는
지금 그것을 연구하여 보기로 한다.
단순한 생활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으되,
“절약은 인간번영의 토대가 된다. 낭비하는 사람은 항상 고생
한다. 누구에게든지 낭비는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다. 우리는
기생식물(寄生植物)처럼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 살아서는 안된
다. 사람은 모두 정신적인 것이건 육체적인 것이건 한 가지 직
업을 가져야 하고, 또 여러 사람이 청렴한 모범이 될 만큼 정결
하고 인간답고 정직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 남의 주머니에서
지불되는, 너무 지나친 성찬의 대접을 받는 것보다는 한 개의
빵 조각에 만족하는 것이 훨씬 정정당당하다. 만족할 줄 아는
자의 마음은 언제나 평화롭고 안식이 있는 것이다.”
---‘바하이 경전’453쪽
138
바하올라와 신시대
육식은 금지되어 있지 않으나 압돌바하께서는 그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장래의 식품은 과실과 곡류(穀類)일 것이다. 육식을 하지 않
는 때가 올 것이다. 오늘의 의학은 아직 유치하지만 자연의 식
품은 땅에서 나는 것이 적당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쥴리아 M. 그룬디의 악카의 광명에 찬 10일 간’에서
알콜과 아편
술이나 아편 등 마취제를 질병치료 이외에 사용하는 것을 바
하올라께서는 엄금하셨다.
향락(享樂)
바하이 가르침은 중용(中庸)에 기초한 것이지 금욕주의는 아
니다. 일생을 위하여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유익하고 아
름다운 일을 즐기는 것은 장려할 뿐 아니라 오히려 명령하고 있
다. 바하올라께서는 말씀하시되,‘너희를 위하여 창조된 것을
너희에게서 빼앗아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또‘큰 즐거움과
기쁜 소식의 빛을 너희의 얼굴에 나타내는 것이 너희의 길이
다.’라고 하셨다.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으되,
“모든 물건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니 하
느님의 은혜에 대하여 항상 감사하여야 한다. 만물은 우리를
위하여 있는 것이니 우리는 기쁨 가운데서 이 생명이 하느님의
은혜임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인생에 대하여
염증(厭症)을 느낀다면 우리는 배은망덕 하는 자가 되는 것이
니, 우리의 물질적 정신적 존재가 하느님의 자비의 외부적(外
部的)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사에 하느님의
139
제 7장 건강과 치유
은혜를 깨닫고 찬미하면서 행복한 날을 보내야 한다.”
---‘신성한 철학’104쪽
도박이나 만인계(萬人契)를 금지하는 바하이 가르침이 모든
종류의 유희에도 적용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압돌바하께서
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아니 어떤 종류의 유희는 무해한 것이니 단지 오락으로 하
는 것은 무방하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허비할 우려가 있는 것
은 삼가야 한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하느님의 대업에 있어
서 용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체력을 증진하는 운동유희는 장려
하는 것이 좋다.”---‘하늘의 광경’9쪽
청결
‘케타베 악다스’에서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인류 중의 청결의 본체가 되라........ .어떠한 경우에 있어
서든지 청결의 습관으로 일관하라........ 너희의 옷에 불결한
점이 있어서는 안된다. 맑은 물에 너희의 몸을 담그라. 한번 사
용한 물을 다시 쓰지 말라........ . 진실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들이 너희에게서 발산하는 지상
낙원(地上樂園)의 발현(發現)으로 보고자 하노라.”
미르자 아불 파즐은 그의 저서‘바하이의 증거’가운데서(89
면) 청결에 관한 훈계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을 지적하
였다. 특히 동양의 어떤 지방에서는 심히 불결한 물이 가사(家
事)에 사용되고 목욕이나 심지어는 음료로까지 쓰여, 이 무서운
비위생적 행위가 조심하면 방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질병과 불
140
바하올라와 신시대
행을 초래한다. 일반에 유행되는 종교의 가르침에 의하여 가끔
용인되는 이러한 상태는, 동양사람 가운데서 신성한 권위를 가
졌다고 일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의 가르침에 의해서만 개선될
수 있다. 서반구의 여러 지방에서도 청결은 경신(敬神) 다음가
는 일이라기보다 오히려 경신의 요점이라고 일반이 믿게 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예언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효과
단순한 생활, 위생, 알콜과 아편, 기타의 금지에 관한 이러한
명령을 지키는 것이 건강에 이로움은 설명을 요하지 않는 명백
한 일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의 중요성이 흔히 과소평가되기 쉽
다. 만일 이것이 일반에게 준수된다면 전염병과 기타 여러 가지
질병의 대부분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간단한 위생상의 주
의를 게을리 하거나 술과 아편에 빠짐으로써 생기는 여러 가지
질병의 해는 막대하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명령을 지키면 건강
에 유익한 것은 물론이요, 인간의 품성과 행위에 미치는 효과가
또한 크다. 술과 아편을 마시면 그 사람의 걸음걸이가 방정치
못해지고 뚜렷하게 신체에 병을 일으키기 전에 벌써 인간의 양
심에 나쁜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이것을 금하는 것이 도덕상
정신상에 주는 이익은 육체상의 이익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압돌
바하께서는 정결(淨潔)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외부의 청결은 단지 육체상의 문제이지만 그것이 정신에 미치
는 영향은 심대하다........ 육체를 청결하게 가지는 것은 인간
의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585쪽
남녀 양성 간의 순결에 관한 예언자들의 훈계가 일반에 실행
141
제 7장 건강과 치유
된다면 질병의 근원이 대부분 제거될 것이다. 단정한 사람이나
품행이 나쁜 사람이거나 어린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다 같이 건
강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성병도 그 때에 비로소 과거의 이야기
가 될 것이다.
예언자들께서 가르치신 정의, 상호부조(相互扶助), 자신을 돌
보듯 이웃을 사랑하라는 교훈이 한번 실행된다면, 한편에는 너
무 값싼 노동으로 인한 극심한 빈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이
기향략(利己享樂)과 무위도식(無爲徒食)을 누리는 극단의 사
치가 있지만, 어떻게 인간을 정신적 도덕적으로 또는 육체적 파
멸에 이르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인가. 위생상 및 도덕상 문제에
관한 모세, 석가모니, 그리스도, 모하멧, 또는 바하올라의 교훈
을 준수한다면, 질병의 예방에 있어서 세계의 모든 의사와 공중
위생의 여러 가지 법규에 의하여 수행된 것보다 훨씬 유효하게
이러한 여러 가지 병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
분들의 교훈을 믿고 지킨다면 일반의 건강상태가 반드시 좋아
질 것이 분명하다. 현재 많이 일어나는 사실과 같이, 인간의 생
명이 중도에 병의 침식을 받아 유년기와 청년기 또는 장년기에
돌연히 사망하는 일이 없어져서, 마치 좋은 과실이 충분히 익은
다음에 땅에 떨어짐과 같이 인간도 충분히 노성(老成)하여 천
수(天壽)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로서의 예언자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태고로부터 예언자들의 가르
침이 잘 용납되지 않아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보다는 이기적(利
己的) 사랑이 더 강하다. 그리하여, 인류에 대한 관심보다 국한
된 당파적 관심이 더 강하고, 물욕적 관능적(官能的) 쾌락을 추
142
바하올라와 신시대
구하는 마음이 인류의 사회적 정신적 행복을 바라는 것보다 더
존중되어 왔다. 그 결과로, 격렬한 경쟁과 충돌과 압제와 포학
한 정치와 극단의 빈부의 차가 생겨 정신상으로나 육체상으로
나 여러 가지 질병을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인류라는 나무는 병
들어 모든 가지와 잎사귀의 끝까지 모두 괴로움에 빠지고, 마침
내는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성스러운 분까지 다른 사람들이
범한 죄로 인하여 고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때의 가장
급한 일은 인류 전체로서든지 국민으로서든지 개인으로서든지
병을 치료하는 일이다. 바하올라께서는 그분 이전의 성령 받은
예언자들이 하신 바와 같이, 어떻게 하여 건강을 유지하며 어떻
게 하여 잃어버린 건강을 회복할 것인가를 가르치셨다. 그분은
세계의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고쳐주는 위대한 의사로서 이 세
상에 오신 것이다.
물질적 방법에 의한 치료
지금, 서양의 여러 나라에 심리적, 심령적 치료법의 효력을 믿
는 사람이 현저하게 많아졌음을 볼 수 있다. 실제로 그 많은 사
람들은, 19세기에 성행한 질병에 대한 물질적 관념과 그 치료
법에 반항하는 자들로서, 지금 극단적으로 물질적 치료법과 위
생학적 방법의 가치까지도 부인한다. 바하올라께서는 물질적
치료법이나 정신적 치료법이 함께 필요한 것이라고 두 방법의
가치를 모두 인정하셨다. 그분은 질병을 치료하는 과학과 기술
이 장려되고 발달되고 완성되어, 치료에 관한 모든 방법이 각기
특성을 발휘하도록 가장 유효하게 응용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
다.‘너희가 병에 걸렸을 때 숙련된 의사에게 문의하라’고 그분
은 말씀하셨다.(케타베 악다스)
143
제 7장 건강과 치유
이것은 일반 과학과 기술에 대한 바하올라의 태도와 일치한
다. 인류의 복리증진을 위한 모든 과학과 기술은 그것이 물질적
방법이라도 존중하여 그 발달과 보급을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인간은 과학에 의하여 물질을 지배하는 것이요, 과학적 지식이
없으면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필요한 경우에는 의약의 치료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지만
건강을 회복하면 그만두는 것이 좋다. 의약을 피하여 차라리
식사요법(食事療法)을 행하는 것이 좋고, 혹은 단지 약초로써
치료할 수 있는 경우에는 복잡한 의약에 의할 필요가 없
다........ 의약은 건강할 때에는 피하고 다만 필요할 때만 쓸
것이다.”--- 어느 의사에게의 서한에서
압돌바하께서는 어느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쓰셨다.
“진리의 탐구자여! 질병의 치료에는 물질적, 정신적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전자는 물질적 의약을 사용하는 것이요, 후자는
하느님께 기도하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니 이 두 가지 방법
이 채용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결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최초에 의술상의 지식을 인간에게 부여
하고 보여주신 분은 하느님이시므로, 물질적 치료법도 이것이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에서 온 것임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써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함으로써 하느님의 종인 인간이 이러
한 치료법의 이익에도 힘입을 수 있는 것이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587쪽
우리의 본래의 미각(味覺)과 본능이, 우매하고 부자연한 생활
144
바하올라와 신시대
양식으로 인하여 방해되지 않았더라면 야생동물의 경우와 같
이, 적당한 음식물과 약이 되는 과실과 초목 기타의 약 용품을
선택하는 데 신뢰할 수 있는 안내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그분은
가르치셨다.‘질의응답록’가운데 치료에 관한 유익한 담화가
있는데, 압돌바하께서는 그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영양물, 식품, 과실류로써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의 의학은 아직 불완전하여
이 사실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의학이 완성될 때에는
의료법 중에 영양요법, 식사요법, 향기 많은 과실과 야채 등의
요법이 채용되고 냉수나 열탕 등 각종의 물 치료법도 장려될
것이다.”
치료방법이 물질적인 경우에는 그 치유되는 힘은 전부 하느님
에 의한 것이니, 초근목피(草根木皮)나 광물 가운데 있는, 병을
낫게 하는 요소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만
물은 하느님에 의존한다. 의약은 단지 우리가 천유(天癒)를 얻
기 위한 외적(外的)방법에 불과 한 것이다.’
비물질적인 방법에 의한 치료
병을 치료함에는 물질적 치료법 이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그분은 가르치셨다. 질병의 전염과 마찬가지로‘건강의
전염’도 있다. 다만 그 전염하는 힘이 전자는 빠르고 맹렬함에
반하여 후자는 느리고 영향이 적다.
한층 강대한 효력은 환자 자신의 심리상태에 따라서 생기는
것이며‘암시’는 이 심리상태를 결정짓는 데 중대한 구실을 한
145
제 7장 건강과 치유
다. 공포와 분노의 근심 걱정은 건강에 크게 해로운데 반하여
희망과 사랑과 기쁨은 매우 유익하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떠한 경우에 처해서나 만족한 생각으로 생활하는 것은 가
장 필요한 일이다. 이에 의하여 사람은 병적이고 불활발한 상
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근심과 슬픔에 항복하지 말라. 그것은
최대의 불행을 초래한다. 질투는 심신을 소모하고 분노는 간장
을 태우나니, 너희는 사자를 무서워함과 같이 이 두 가지를 무
서워하고 삼가라.”--- 어느 의사에게의 서한에서
압돌바하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기쁨은 우리에게 날개를 준다. 기쁠 때에는 원기가 왕성해
지고 지력(知力)이 또한 예민해진다....... 그러나 슬픈 마음이
생길 때는 곧 원기가 없어진다.”---‘압돌바하의 지혜’100쪽
정신치료의 또 한 가지 방법에 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강대한 심의력(心意力)을 가진 사람이 그 모든 심의력을 환
자에게 집중시킬 때 환자가, 그 강력자의 정신력에 의하여 치
유될 것을 절대로 믿고 있으면 그 강력자와 환자와의 사이에는
충심으로부터 교감(交感)이 이루어진다. 강력자는 환자를 치료
하기 위하여 전 노력을 다하고 환자는 치유된다는 것을 확신한
다. 이 심의감동(心意感動)에 의하여 신경이 흥분되고 이 감동
과 신경의 흥분이 환자의 건강 회복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질의응답록’
146
바하올라와 신시대
그러나 이러한 모든 치료방법은 그 결과에 어느 정도의 제한
이 있어, 심각한 질병이나 고질(痼疾)에는 효과를 얻지 못하는
일이 있다.
성령의 힘
가장 힘 있는 치료법은 성령(聖靈)의 위력에 의하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서로 접촉하거나 면대하거나 가까이 있음을
요하지 않는다........ 병세의 경중(敬重)도 상관없고 환자와 치
료자와의 신체를 접촉할 필요도 없으며 그 양자의 개인적 관계
의 유무도 문제되지 않는다. 이러한 치료는 다만 성령의 힘에
의하는 것이다.”---‘질의응답록’
1904년 10월 E. 로젠버그양과의 담화에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령의 힘에 의한 치료에는 특히 심의(心意)를 집중하거나
환자와 접촉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다만 성스러운 이의 기원
과 요망에 의한다. 환자는 동양에, 치료자는 서양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혹은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라도 무방하다. 다
만 그 성스러운 이가 하느님께 향하여 성의를 다하여 기도하면
병자가 곧 치유되는 것이다. 이것은 성스러운 현시자와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속한 천부(天賦)의 능력이다.”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와 그 사도들이 행한 치료법이었고, 또
각 시대의 성자들에 의해서도 행해진 일들이다. 바하올라와 압
돌바하께서도 이 능력을 가지셨고, 그분의 충실한 신자들에게
147
제 7장 건강과 치유
도 이와 같은 힘이 약속되어 있다.
병자의 태도
정신적 치료의 힘이 충분히 발휘되기 위해서는 병자나 치료자
나 병자의 벗들이나 또는 일반사회의 사람들이 다 같이 지켜야
할 요건이 있다. 병자로서 지켜야 할 첫째 요건은, 하느님께서
는 무슨 일에나 최선을 다해 주시는 그 위력과 뜻을 가지고 계
심을 확신하고 성심성의로써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다. 1912
년 8월 어느 아메리카 부인에게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러한 모든 질병이 없어지고 당신은 육체와 정신의 완전한
건강을 얻을 것이다........ 바하올라의 자비, 바하올라의 은혜
에 의하여 모든 것이 당신에게 기쁨이 될 것을 믿으라.......그
러나 당신은 일심전념‘압하(영광에 찬)의 나라’로 얼굴을 향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주의력 --- 막달라 마리아가 성스러운
그리스도에게 향한 것과 같은 주의력을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
그때 당신은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얻을 것을 나는 보증한다.
당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당신의 마음이 깨끗하므로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확신하라. 행복
하라. 기쁨에 차 있으라. 희망에 빛나 있으라........”
압돌바하께서는 이러한 특별한 경우에는 건강을 회복하여 육
체가 건전해짐을 보증하셨으나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나 다 그
러한 것이 아니고 때로는 병자에게 강한 신념이 있어도 반드시
치유된다고 보증하지는 않으셨다. 악카에서 어떤 순례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48
바하올라와 신시대
“치유의 목적으로써 씌어진 기도는 정신과 육체의 치유를 위
한 것이다. 만일 치유되는 것이 병자의 최선을 위한 것일 경우
에는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기도에 응하신다. 그러나 때로는 그
병자의 치유가 도리어 다른 병의 원인이 되는 수가 있으니, 이
러한 경우에‘최상의 지혜’는 기도에 응하시지 않으신다.
하느님의 시녀(侍女)여! 성령의 힘은 정신적인 병이거나 육체
적인 병을 다 같이 낫게 한다.”---
‘악카에서의 매일의 교훈’95쪽
그분은 또 어느 병자에게 다음과 같이 쓰셨다.
“진실로, 때로는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사람으로서 알 수
없는 일이 많다. 그러나 후일에 그 원인과 이유가 알려진다. 하
느님을 신뢰하고 일체(一切)를 하느님의 뜻에 맡기라. 하느님
께서는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시므로....... 하느님의 자비가
반드시 당신에게 내려질 것이다.”
---‘서방의 별’제 8권 232쪽
그분은 또 가르치셨으되, 정신의 건강은 육체의 건강에 도움
이 된다. 그러나 육체의 건강은 많은 요소에 의하는 것인데 그
요소 중에는 개인의 자유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하셨다. 개
인으로서는 가장 모범적인 정신상태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육체
의 건강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가장 성스러운 선
남선녀(善男善女)가 병에 걸려 고생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올
바른 정신상태가 육체의 건강에 미치는 힘은 일반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커서, 많은 경우에 건강을 되찾기에 족하다. 압돌바하
께서는 어느 영국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쓰셨다.
“당신은 당신의 육체의 허약함에 대하여 편지하였는데,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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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건강과 치유
바하올라의 은혜에 의하여 당신의 정신이 강해지고 당신의 정
신이 강해짐으로써 당신의 육체도 건강해질 것을 기도한다.”
또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불가사의(不可司儀)한 능력을 주시
어 항상 하느님을 우러러 보게 하셨고 그 여러 가지 선물 중에
하느님의 은혜에서 발하는, 치유를 받을 힘을 주셨다. 그러나
슬프다. 인간은 이 무상의 선물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할 줄
은 모르고 이것을 등한히 하여, 하느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대
자대비에 주의하지 않고 도리어 그‘빛’으로부터 얼굴을 돌려
암흑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압돌바하의 지혜’16쪽
치병자(治病者)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신적으로 병을 낫게 하
는 힘을 만인이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치 어떤 사람은 수학
에, 또 어떤 사람은 음악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
로 특히 치병에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
람은 치병을 일생의 업으로 해야 할 것이다. 불행한 일은, 근세
에 와서 세계가 점점 유물사상(唯物思想)에 기울어져 정신적
치유의 가능성을 거의 망각하고 있는 일이다. 모든 다른 능력과
마찬가지로 치병의 능력도 인식하고 훈련하며 교육함으로써 고
도(高度)로 발달하여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할 것이다. 사
실, 오늘의 세계에는 치병의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귀한 능력이 저들의 안에 잠자고 있어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
는 일이 많다. 심리적, 심령적 치료의 가능성도 더 충분히 인식
된다면 치병술도 일변되고 존중되어 그 효과가 크게 증진될 것
이다. 그리하여 치병자의 이 새로운 지식과 힘이 환자의 강한
150
바하올라와 신시대
신념과 희망에 결합될 때, 여기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날 것을
기약할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하여야 한다.‘그분’밖에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치병자요 전지자요 구조자이시
다........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하느님의 통어(通御)에서 벗어
날 자가 없다.
의사여! 환자를 접할 때는 먼저 심판의 날의 주재자이신 하
느님의 이름을 부르라. 그리한 후에 그 창조물이 병을 치료하
기 위하여 정해주신 것을 쓰라. 진실로, 나의 사랑의 술을 마신
의사의 방문(訪問)은 병자의 치유요, 그의 호흡은 병자에게 자
비의 희망이다. 신체의 건강을 위하여 그를 신뢰하라. 그의 치
료는 하느님이 보증하는 바이다.
이 지식(치병술)은 모든 과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생명의 근원인 하
느님께서 주신 최대의 방법이요,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다른 모
든 과학과 지혜보다도 높은 지위에 두셨다. 지금이야말로‘나
의 승리’를 위하여 그대들이 일어서야 할 시대이다.
기도하라 - 저의 하느님이시여! 주님의 이름은 저의 치유이
오며, 주님을 기억함은 저의 치료이옵나이다. 주님을 가까이
함이 저의 소망이오며, 주님께 대한 사랑은 저의 반려이옵나이
다. 저에게 베푸시는 자비는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저의 구원
이옵나이다. 진실로, 주님은 관대하시고, 전지하시며, 영명하
시옵나이다.”---‘어느 의사에게 보낸 바하올라의 서한’에서
151
제 7장 건강과 치유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바하의 사랑이 충만하여 심중에 다른 생각이 없는 자의 입
술에서 성령이 들릴 것이요, 생명의 정신이 그의 마음에 가득
할 것이다.......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진주의 실과
같고, 모든 질병은 그분의 손이 닿음으로써 치유될 것이다.”
---‘서방의 별’제8권 233쪽
“그대, 순결하고 정신적인 자여!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불타
는 마음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찬미에 헌신하는 마음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대망하는 마음으로써 하느님을 향하라. 그
리하여 법열(法悅)과 황홀과 사랑과 사모와 기쁨의 향기로운
마음으로써 성령의 도움을 구하라. 하느님께서는 그 어전(御
前)으로부터의 정신을 통일하여 모든 병을 다스림에 그대를 도
와주실 것이다.”
“마음과 육체의 건강에 힘쓰라. 그리고 지상(至上)의 왕국을
향하여‘가장 큰 이름’의 힘과 하느님의 정신에 의하여 치료에
전념함으로써 여러 사람의 병을 낫게 하도록 힘쓰라.”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628, 629쪽
사람은 어떻게 서로 도울 것인가
병을 치료하는 일은 병자와 의사에게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관계되는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동정과 봉사의 마음으로써, 바
른 생활과 바른 생각으로써, 특히 기도로써 병자를 도와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치료 중에 기도가 가장 효력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압돌바하께서는‘남을 위한 기원과 기도는 반드시 효
과를 얻는다.’고 하셨다. 착한 일이나 악한 일이나 벗에게서 받
152
바하올라와 신시대
은 감화력은 가장 직접적이고 또한 힘이 있는 것이므로 병자의
벗에게는 특별한 책임이 있다. 많은 질병의 경우에는 그 부모나
벗이나 이웃사람의 도움에 의하여 쾌히 치유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반사회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또한 질병의 모든 경우에 영향
을 준다. 개인의 경우에는 그 영향이 작게 보이나 집단인 경우에
는 그 결과가 심히 크다. 각 개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일
반적으로 유행하는 신앙, 유물사상, 도덕, 쾌활, 우울 등 이러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동시에 그 사회의 분위기 상태를 조성(造
成)하는 데에도 또한 각각 상당한 구실을 한다. 현재의 사회 상
태에서는 누구나 완전한 건강을 유지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러
나 사람에게 건강을 주는 힘인 성령의‘호의(好意)의 통로(通
路)’가 되어, 자기의 육체 또는 자기와 접촉하는 사람들을 위하
여 병을 낫게 하는 유효한 감화를 주도록 힘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병자를 치료하는 일만큼, 거듭 강조하여 바하이
들에게 요청된 중요한 임무는 없다. 그리하여 치유에 관한 기도
문이 바하올라와 압돌바하에 의하여 많이 계시되어 있다.
황금시대
병자와 치병자와 일반사회가 협동 조화하여 건강을 위하여 물
질적, 심리적, 심령적 여러 가지 적당한 방법을 쓰게 된다면 인
생의 황금시대가 실현되어, 그때에는 하느님의 힘에 의하여‘모
든 근심걱정이 기쁨으로, 모든 질병이 건강으로 변할 것이라’고
바하올라께서는 보증하셨다. 압돌바하께서도‘하느님의 계시가
이해되는 그때 모든 재앙이 소멸될 것이라’고 하셨고, 그분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53
제 7장 건강과 치유
“물질세계와 하느님의 세계가 잘 조화되어 사람의 마음이 하늘
을 향하고 그 바라는 바가 깨끗해지면 이 두 세계는 완전히 결
합될 것이다. 그때에 이 힘은 완전히 효과를 나타내어 육체와
정신의 질병도 완전히 치유될 것이다.”
---‘압돌 바하의 서한집’제 2권 109쪽
건강을 바르게 쓰는 법
이 장(章)의 결론으로서 건강을 바르게 쓰는 법에 대한 압돌
바하의 가르침을 회상(回想)하는 것이 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
다. 워싱톤에 있는 바하이들에게 보낸 서한의 일절(一節)에 그
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일 신체의 건강과 복리가‘하느님의 나라’의 길에서 사용
된다면 그것은 매우 가상한 일이요 칭찬할 일이다. 만일 그것
이 일반적으로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사용되고 또 그것이 선행
(善行)을 위한 수단이 된다면 비록 그것이 저들의 물질적(육체
적) 복지를 위하는 것이라도 좋다. 그러나 만일 인간의 건강과
복지가 야수적(野獸的) 생활의 육욕만족이나 악마적 생활의 추
구에 사용된다면 그러한 건강보다는 병들어 있는 것이 오히려
유익할 것이다. 아니, 차라리 죽는 것이 그러한 생활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그대들이 만일 건강을 원하거든‘하느님의 나라’
에 봉사하기 위하여 그것을 구하라. 나는 그대들이 완전한 식
견(識見)과 불구의 결심과 완전한 건강과 육체적 및 정신적 힘
을 얻어, 영생의 샘을 마시고 하느님의 확증의 정신에 도움 받
게 되기를 바란다.”
154
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8 장
종교의 융합
너희, 세계의 백성들아!‘계시의 글’에서 차별, 악덕, 불화의
원인이 되는 것을 모두 말소하고 거기에 통일, 조화, 일치로 인
도하는 것을 써 넣은 것은 이 위대한 현시(顯示)의 덕이니라.
이것에 따라 행하는 자에게 기쁨이 있을 진저.
--- 바하올라의‘세계에 관한 서한’에서
19세기의 종파주의
19세기처럼 종교적 융합에서 멀어졌던 시대는 없을 것이다.
몇 세기 동안 대 계시종교 -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불교, 기독
교, 이슬람교, 기타 여러 종교가 병행(倂行)하여 존재하였다.
그러나 그 전체가 일치 조화되지 못하고 도리어 서로 적대, 반
목하여 왔다. 그뿐 아니라 그 각 종교 자체가 분열에 분열을 거
듭하여 종파가 더욱 더 많아져서 그것들이 서로 싸움을 계속하
여 왔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으되.“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한복음 제
13장 35절)하셨다. 모하멧께서도 말씀하셨으되,“너희들 종교
는 유일의 종교이니라........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명하시고, 짐
(朕)이 너희에게 계시한 것, 또 짐(朕)이 아브라함, 모세, 그리
스도에게‘이 신앙을 따르라, 그리고 분열하여 종파를 만들지
말라.’고 명한 이 신앙을 믿고 따르라고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
155
제 8 장 종교의 융합
명령하셨다.”고 하셨다. 대 계시종교의 창시자들께서는 모두
그 신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융합하기를 요구하셨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에든지 이들 창시자의 목적은 좁은 생각과 완미(頑
迷)한 정신, 허식과 위선, 악덕과 오전(誤傳), 분립과 논쟁 등의
어지러움 속에 가리워져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반목하는 여러 종파의 총 수는 바하이 시대의 초기에 있어서,
아마 인류 역사가 있어온 이래 가장 많았으리라. 당시의 사람들
은 마치 모든 종류의 종교적 신앙과 의식과 의례의 방식, 여러
가지 도덕적 법전(法典)의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
다.
이와 동시에 자연법칙과 신앙의 기초에 대한 대담한 연구와
비판적 관찰에 노력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새로운 과학
지식이 급속히 보급되고 생활상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새로
운 해결이 발견되고 있었다. 기선과 철도, 통신시설과 인쇄술
등의 발명의 진보는 사상의 확대와 여러 형태의 사고방식과 생
활면에 많은 접촉을 촉진하였다.
그리하여, 이른바‘종교와 과학의 충돌’은 무서운 투쟁을 일
으켰다. 기독교계에서는 성서의 비판이 자연과학과 결탁하여
성서의 권위, 즉 여러 세기 동안 일반이 받아들인 신앙의 기초
가 되는 권위를 어느 정도까지 반박하기에 이르렀다. 교회의 교
의(敎義)에 의문을 품은 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많은 승려들까
지도 각자의 교파에 기초하는 자신들의 고유한 신조에 대하여
비밀히 혹은 공공연히 은폐하거나 의심을 품게 되었다.
낡은 정교(正敎)와 낡은 교리(敎理)의 불충분함에 대한 인식
이 높아짐에 따라 완전한 지식과 이해를 탐색하고 추구하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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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어 그 견해와 의견이 물 끓듯 격동하였으니, 이러한 현상은 기
독교국에서만이 아니라 정도의 차는 있지만 여러 가지 형태로
써 모든 나라와 모든 종교인들 사이에 나타났다.
바하올라의 전언(傳言)
바로 이 충돌과 분규의 상태가 그 절정(絶頂)에 달했을 때 바
하올라께서는 인류를 향하여 큰 나팔을 불으셨던 것이다.
“모든 나라들이 신앙에 있어서 일체가 되고 모든 사람들이
동포로서 일체가 되는 것, 인류 사이에 친애와 결합의 맹약(盟
約)이 강화되는 것, 여러 가지 종교의 분화가 중지되고 인종의
차별이 없어지는 것........ .이러한 투쟁과 유혈(流血)과 불화
가 없어져 전 인류가 한 가족, 한 친족과 같이 되어야 한다.”
--- 브라운 교수에게의 담화
이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전언(傳言)이다. 그러나 이 제의가
어떻게 하여 수행될 것인가. 몇 천 년의 오랜 세월을 거쳐 이러
한 일에 대하여 예언자들이 설교하고 시인들이 노래하며 성자
들이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파벌이 없어지지 않고, 쟁
투와 유혈과 참사와 알력이 제거되지 않았거늘 지금에 이르러
무엇으로써 이 기적이 성취될 것인가. 이러한 상황에 무슨 새로
운 요인(要因)이 있는 것일까. 인간성은 옛날의 그것과 같은 것
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이 존속하는 한, 마찬가지로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만일 두 사람 혹은 두 나라 사이에 동일
한 욕구물(欲求物)이 있다면 그들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장래에
있어서도 그것을 위하여 싸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모세, 석가
모니, 그리스도, 모하멧께서 달성하지 못하신 세계통합을 바하
올라께서 과연 성취하실 수 있을 것인가. 또 종전의 모든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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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종교의 융합
가 퇴폐하여 많은 종파로 분열되었다면 바하이신앙도 또한 동
일한 운명에 놓여지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바하
이의 가르침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인간성은 변화할 수 있는가
교육과 종교는 한가지로 인간성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정(假
定)위에 서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어떠한 샘물이든지 변
화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언할 수 있으며 그것은 별로
연구를 요하는 일도 아니다. 변화 없이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광물까지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고, 모든 존재물이 권내(圈內)
에서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이 변화가 다종다양(多種多樣)하여
더욱 복잡하고 기이(奇異)한 현상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모
든 종류의 창조물이 진보와 발전에 있어서 우리는 두 종류의 변
화가 있음을 발견한다. 즉, 그 하나는 완만하고 점진적이어서
거의 지각(知覺)할 수 없는 변화요, 다른 하나는 급속하여 돌연
히 일어나며 극적(劇的)인 것이다. 후자는 이른바 발달의‘임계
기’(臨界期)에 일어나는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광물의 경우 이
와 같은 임계기는 용해점(熔解點)과 비등점(沸騰點)이니, 예컨
대, 고체가 갑자기 액체로 변하고, 혹은 액체가 기체로 변함과
같은 것이다. 식물의 이와 같은 임계기는 씨앗이 움트는 것, 혹
은 움이 잎으로 변하는 경우다. 동물계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현상을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 예컨대 유충(幼?)이 돌연히 나
비로 변하고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는 것, 혹은 아기가 어머니의
태에서 출생하는 것 같은 것이다. 보다 높은 영혼의 생활에서
우리는 가끔 이와 비슷한 변화를 본다. 사람이‘거듭나는’때
그 사람의 전 존재가 그 목적, 성격, 활동성에 있어서 근본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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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로 변화한다. 또 봄에는 여러 종류의 식물이 일제히 새 생명을
얻음과 같이, 이러한 임계기가 가끔 전종(全種) 혹은 다종(多
種)에 걸쳐 동시에 영향을 주는 일이 있다.
마치 하등생물이 새롭고 완전한 생명으로 돌연히 변화하는 시
기가 있음과 같이, 인류에게도‘임계기’, 즉‘재생기’가 가까워
졌다는 것을 바하올라께서는 선언하셨다. 즉, 인간 역사의 여명
으로부터 오늘까지 계속하여 온 생활양식이 급속히, 그리고 돌
연히 변화하여, 인간은 마치 나비가 모충(毛蟲)과 다르고 새가
알과 다름과 같이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운 국면(局面)에 들어
갈 것이다. 태양이 떠오를 때 온 땅이 그 빛에 비치어, 지금까지
모든 것이 어둡고 몽롱하던 것을 모든 사람이 명료하게 볼 수
있음과 같이, 전 인류는 새로운 계시의 빛 가운데 진리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시력(視力)을 얻을 것이다.‘이것은 인간능력의 새
로운 주기(週期)이다. 세계의 전 지평선은 밝게 빛나고 세계가
참으로 장미동산으로 화하여 낙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압돌
바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자연과 비슷한 점을 이러한 견지(見
地)에서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니, 옛날의 예언자들은 모두 한결
같이 이와 같은 영광의 날이 올 것을 예언하였고, 인간의 사상
과 제도에 심원하고 혁명적인 변화가 오늘 그 발전도상에 있는
것을 시대의 징조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만물은 변화하는데
인간성만이 변화할 수 없다는 염세론(厭世論)처럼 무익하고 무
근한 설은 없을 것이다.
통합에로의 첫 걸음
종교의 통합을 이루는 방법으로서 바하올라께서는 자애와 관
용에 최선을 다할 것을 권장하시고, 그 신자들에게‘모든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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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종교의 융합
의 신자들과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귀라.’고 가르치셨다. 그분의
‘유훈’에 말씀하셨으되,
“논쟁과 알력은 그분의 책‘케타베 악다스’에서 엄금하신 것
으로서, 이것은 이 지고(至高)한 계시에 있는 주의 명령이니
라. 그분은 - 이 명령을 폐지할 수 없게 하여 그분 확증의 장식
으로써 단장한 것이니라. 너희, 세계의 백성들아! 하느님의 종
교는 사랑과 융합을 위하여 있는 것이니 그것으로 하여금 원한
과 충돌의 원인이 되게 하지 말라....... 나는 바라노니, 바하의
백성은 항상‘보라,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니라.’고 한 이 신
성한 말씀으로 향하라. 이것은 물과 같아서, 가슴 속에 불붙는
증오와 원한의 불꽃을 꺼 버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말씀이니라.
단지 이 한 말씀에 의하여 세계의 여러 종파는 참다운 융합의
빛에 달하리니, 진실로 하느님께서는 진리를 말씀하시고 유일
의 길로 인도하시느니라. 그분은 지극히 강대하시고 은혜로우
시고 또 지극히 아름다운 분이시니라.”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으되,
“모든 사람은 편견을 버리고 서로의 교회와 사원(寺院)에 출
입할지니, 이 모든 예배장소에는 다 같이 하느님의 이름이 불
리우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이
는데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을 것인가. 누구도 악마를 예배하
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교도는 기독교의 교회나 유대인 회당에
가고, 반대로 기독교나 유대교인은 이슬람교 사원에 가야할 것
이다. 그들이 서로 멀리하는 것은 단지 아무 근거 없는 편견과
독단에 기인하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가끔 유대교의 회당을
방문한 일이 있는데 기독교 교회와 마찬가지로 저들이 근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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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서 하느님을 예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여러 장소에서 나는 여러번, 신성한 여러 종교의 본래
의 기초에 대하여 말하고 하느님의 예언자와 성스러운 현시자
의 확실성의 증거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나는 저들에게 맹목적
인 모방을 버릴 것을 권하였다. 모든 지도자들은 다 같이 서로
의 교회에 가서 신성한 종교의 기초의 근본적 원리를 말해야
할 것이다. 각자 서로의 예배장소에서 무사의 일치와 조화 가
운데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요 광신(狂信)은 버려야 한다.”
---‘서방의 별’제 9권 제 3호 37쪽
만일 이러한 첫 걸음이 성취되어 서로 우정을 가진 관용의 상
태가 여러 종교와 종파 사이에 조성된다면 얼마나 놀라운 변화
가 이 세상에 이루어질 것인가. 그러나 진정한 융합을 이룩함에
는 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종파분열의 병에는 관용이 중
요한 완화제가 되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는다. 그것만으
로는 결코 혼란의 원인을 제거할 수 없다.
권위의 문제
과거의 여러 종교단체가 일치연합에 실패한 것은 그 각 종교
의 추종자들이 제각기 자기가 믿는 종교의 창시자를 유일 최고
의 권위자로 알고 그 계율을 하느님의 계율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른 계시를 선언한 예언자를 진리의 적으로 보게 된
것이니, 각파의 추종자들은 어느 종속적인 권위자를 받들어, 창
시자의 계시에 대한 어떤 특수한 견해나 해석으로써 유일한 참
다운 신앙으로 알고 그 외의 것은 모두 부당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가 계속되는 동안은 진정한 융합이 불가
능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편, 바하올라께서는 모든 예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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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종교의 융합
은 다 하느님께서 믿을 만한 신탁(神託)을 받은 자들이요, 그들
은 모두 각자의 시대에 있어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고
의 가르침을 전하고 그들의 후계자에게서 더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한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바하올라께서는 모든 종
교의 신자들을 향하여, 저들 각자가 신봉하는 예언자의 신성한
영감(靈感)을 부정하지 않음과 같이 다른 모든 예언자들의 신
성한 영감도 인정하라 하셨고, 그 모든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조
화되는 것이고 인류의 교육과 통합의 대 계획의 여러 부분을 이
루는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또 그분은 모든 종파의 사람들에 대
하여, 모든 예언자들이 온갖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 노력을 통하
여 얻은 이 융합의 완성에 신명(身命)을 바침으로써, 자기가 신
봉하는 예언자에게 존경을 표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분께서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내신 서한에서 세계를 병자에 비유하여,
그의 병이 무능한 의사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에 더욱 악화되는
것이라고 하셨고, 어떠한 치료가 그 효력을 나타낼 것인가에 대
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주께서 전 세계의 치료를 위하여 최상의 치료법, 최강의 의약
으로 정한 것은, 모든 민족이 한 보편의 대업, 즉 공통의 종교
로써 통합되는 것이다. 이 일은 숙련되고 완전하며, 그리고 영
감을 받은 의사의 힘에 의하지 않으면 결코 달성할 수 없나니,
진실로 이것이 진리요, 다른 것은 모두 잘못이다.”
---‘낙수집’225쪽
점진적 계시
종교통일의 길에서 최대의 장애물은 여러 예언자에 의하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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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해진 계시가 서로 다른 점이다. 한 예언자가 명령하신 일을 다
른 예언자가 금하신 것이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하여 둘이 다
정당하고 둘이 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진리는 하나요, 변할 수 없다. 그렇다. 절대적인 진리는 하나요,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진리는 인간의 이해력의
현재 한계의 무한한 저쪽에 있어서, 그것에 대한 우리의 개념
(槪念)은 부단히 변화함을 면치 못한다. 즉, 우리의 옛날의 불
완전한 사상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하여 시대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완전한 개념으로 변해간다. 페르시아의 어떤 바하이들에
게 주신 서한에서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들아! 말씀은 이것을 받는 자의 능력에 맞게 계시되나
니, 그리하여 초보자라도 진보할 수 있는 것이다. 아기에게는
적당한 양(量)의 젖이 주어져야 하나니, 그리하여 이 세상의
아기는 장엄의 왕국에 들어가서‘융합의 궁정’에 안주(安住)할
수 있는 것이다.”
아기를 튼튼하게 하여 점차 굳은 음식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하
여 주는 영양물은 젖이다. 어느 예언자가 그의 시대에 설법(說
法)한 가르침이 정당치 않다고 하는 것은, 마치 젖이 간난 아기
에게 가장 좋은 영양물이라고 하여 장성한 사람도 그것을 먹어
야 하고 다른 음식을 주는 것이 부당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압
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으되,
“모든 하느님의 계시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제 1의
부분은 본질적인 것이요, 영원의 세계에 속한 것이다. 이것은
신성한 진리와 그 근본 원칙을 설명한 것이니 곧‘하느님의 사
랑’의 표현이다. 이것은 모든 종교에 있어서 동일한 것이며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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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종교의 융합
한 영원불변의 것이다. 그 제 2의 부분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생활이나 업무와 거래 등에 관한 것으로서 인
간의 발달과 각 예언자의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다. 예컨대....... 모세의 시대는 조그마한 도둑에 대한 형벌로
서 손목을 자른 것이니‘눈에는 눈, 이(齒)에는 이로써’갚는
법률이 행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은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적당치 않았으므로 폐지되었다. 마찬가지로 당시 이혼이 일반
적 풍습을 이루어 결혼에 대한 일정한 법률이 없었으므로 성
그리스도께서는 이혼을 금하셨다.
시대의 긴급한 요구에 따라 성 모세께서는 극형으로서 10개조
의 계율을 계시하셨다. 왜냐하면 당시의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아무 확립된 법정이나 감옥도 없이 타아라는 황막한 들에 사는
민족으로서, 이러한 엄격한 법규가 없이는 도저히 그 단체를
보호하고 사회적 안전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법전이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필요치 않았다. 종교의
제 2부분의 역사는 단지 그 생활풍습에 관한 것이므로 중요한
의의를 갖지 않는다. 그런데 하느님의 종교의 기초는 하나요,
성 바하올라께서는 그 기초를 새로 고치셨다.”---
‘신성한 철학’
하느님의 종교는 유일한 종교요, 모든 예언자께서는 그것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있어 성장하는 것이지 생명 없
는 불변의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세의 가르침에서 봉오리를 보
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꽃을 보며, 바하올라의 가르침에서
열매를 본다. 꽃은 봉오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며 열매는 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파괴가 아니라 성취시키는 것이
다. 꽃이 피기 위하여 봉오리 껍데기와 꽃잎이 무용한 것이었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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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둘다 그 시기에는 없어서는 안되
는 것이었으니 이것들이 없이는 도저히 열매가 있을 수 없는 것
이다. 여러 예언적 가르침도 이와 같아서, 그 외관은 시대에 따
라 변화하나 그 어느 계시든지 다 그 선행자(先行者)의 가르침
을 완성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 관련된 것이어서
이 유일의 종교는 살아 있는 역사에 혹은 씨가 되고 혹은 봉오
리가 되고 혹은 꽃이 되어 나타났고, 지금은 열매의 단계에 들
어선 것이다.
예언자들의 확실성
예언자의 지위를 받은 분은 다 그 사명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선행자(先行者)의 가르침을 고치고 폐지하고 추가하는
권위를 가졌다고 바하올라께서는 가르치셨다. 그분은‘케타베
이간’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만인 중에서 하느님의 창조물의 지도자로 한 사람을 택하고
서, 그에게 신성한 자로서의 충분한 증거를 주지도 않고, 그를
배반하는 자에게 벌을 준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혜와 자비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만유(萬有)의 주의 무한한 은혜는
항상 그 신성한 본질의 현시자를 통하여 세계와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을 포용한다........ ”
“모든 계시의 목적은 인류의 일반적 성격에 변화를 일으키
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그 변화는 인류의 성격에 내면
적 또는 외면적으로 나타나서 인류의 내면적 생활과 외면적
상태의 양면에 영향을 준다. 만일 인류의 성격이 변화하지 않
는다면 하느님의 만유의 현시자들의 출현은 분명히 무익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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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종교의 융합
일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유일하시고 절대 오류(誤謬)없는 권위자이시며
예언자들 또한 확실성을 가지셨나니, 그분들의 계시는 하느님
께서 그분들을 통하여 세상에 주시는 전언(傳言)이기 때문이
다. 그리고 그 전언은 동일한 예언자 혹은 다른 예언자에 의하
여 다음 계시가 전해지기까지는 유효하다.
하느님께서는 세계의 질병을 바로 진찰하시고 적당한 치료법
을 지정하실 수 있는 유일한 대 의사(大醫師)이시다. 어느 시대
에 지정된 치료법은 후일 환자의 상태가 달라진 경우에는 그것
이 적용되지 않는다. 의사가 새로운 처방을 명령했을 때 아직도
묵은 치료법을 고수(固守)하는 것은 의사를 신뢰하는 것이 아
니라 도리어 불신을 표하는 것이 된다. 3천년 전에 모세께서 세
계의 질병에 대하여 명령하신 치료법 중의 어떤 것은 벌써 시대
에 뒤져 부적당하다고 말하면 유대교도들은 아마 놀랄 것이다.
기독교도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명령한 것에 모하멧께서
필요하고 가치 있는 어떤 사항을 부가하셨다고 말하면 역시 놀
랄 것이다. 또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가 바압과 바하올라에게
모하멧께서 명령하신 바를 고치는 권위가 있음을 승인하라고
요구한다면 또한 놀랄 것이다. 그러나 바하이의 견해에 의하면
하느님께 대한 진정한 헌신이란 것은 모든 하느님의 예언자를
존중하고 우리 자신의 시대의 예언자에 의하여 주어진 하느님
의 가장 새로운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
은 헌신에 의해서만 진정한 통합이 달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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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지고(至高)의 현시
다른 모든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바하올라께서도 가장 명확
한 술어로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다. 특히 기독교도들에게 보
내신‘로우에 악다스’라는 서한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참으로 천부(天父)는 오시어‘하느님의 나라’에서 그대들에
게 약속하신 바를 성취하셨다. 이것은‘하느님의 아들’이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 아직 그 시대에는 저들이 감당할 수 없다고
하여 단지 묵시(默示)했음에 불과한‘말씀’이다. 그러나 그 시
대는 이미 지나고 때가 이르러 그‘말씀’은‘하느님의 뜻’의
지평선에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명심하라.‘하느님의 아들’
의 무리(기독교도)여! 모름지기 이것을 버리지 말고 튼튼히 붙
잡으라. 그것은 그대들의 눈 앞에 있는 모든 것보다도 나으니
라........ 진실로‘진리의 정신’은 모든 진리로 그대들을 인도
하기 위하여 오셨다. 진실로 그분의 말씀은 그 자신의 것이 아
니라 전지하시고 총명하신 분에게서 온 것이다. 그분은‘하느
님의 아들’이 찬미하신 바로 그분이시다........ 지상(地上)의
사람들아. 그대들의 눈앞에 있는 것을 버리라. 그리고 위력 있
고 신의 있는 분이 명하신 것을 붙잡으라.”
1867년 아드리아노플에서 로마법왕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음
과 같이 말씀하셨다.
“찬미함으로써 찬미 받으시는 분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예
배함으로써 예배 받으시는 분에게서 멀어지지 않도록 조심하
라! 강대하고 전지하신 주를 보라! 그분은 세계의 생명에 봉사
하고 지상에 사는 모든 것을 화합시키기 위하여 오셨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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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종교의 융합
들아! 계시의 발생지로 오라. 한 시간이라도 주저하지 말라. 그
대들은 복음서를 배웠건만 아직‘영광의 주’를 보지 못하는가.
학식있는 사람들이 이럴 수도 있는가. 그대들이 만일 이것을
부정한다면 무슨 증거에 의하여 하느님을 믿는가. 그 증거를
제시하라........ ”
기독교도들에게 보내신 이러한 서한에서 복음서의 약속이 성
취된 것을 발표하신 것과 같이, 이슬람교도, 유대교도, 조로아
스터교도, 그밖에 다른 신앙의 사람들에게도 그분은 각각 그 경
전 중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설명하셨다. 그분은 이 모든 사람
들을, 종래 별개의 양의 무리로서 별개의 양우리에 보호된 하느
님의 어린 양이라고 부르셨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
분의 계시는 하느님의 소리요 때가 성숙하여 착한 목자가 오신
것이니, 흩어진 양의 떼를 한 무리로 모으고 저들 사이의 장벽
을 제거하여,‘한 양우리에 한 목자’로 하기 위하여 그분이 오
신 것이다.
새로운 정세
모든 예언자들 가운데서 바하올라의 위치는 전례가 없는 독특
한 것이니, 그것은 그분이 출현하신 시대의 세계상태가 전례 없
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종교, 과학, 예술, 문명이 오랫동안의 착
잡한 발전과정(發展過程)을 거쳐, 세계는 마침내 성숙되어 융
합을 불가능케 했던 장벽도 바하올라께서 출현하셨을 때에는
이미 와해(瓦解)되려는 기운에 놓여 있었다. 그리하여 1817년
그분이 탄생하신 이래, 특히 그분의 가르침이 선포된 이후 이러
한 장벽은 가장 놀라운 상태로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거기에
대한 설명은 어떠하든, 그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68
바하올라와 신시대
전대의 예언자들의 시대에 있어서는 지리상의 장애만으로도
세계의 융합을 방해함에 충분하였다. 지금은 그 장애가 제거되
었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지구의 양편에 있는 사람들이 신속하
고 용이하게 통신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 유럽에서 일어난 사
건이 오늘은 세계각지의 구석구석까지 보도되고, 오늘 아메리
카에서 행한 강연을 내일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의 큰 장애는 언어상의 곤란이었다. 다행히 외국어의 많
은 연구와 보급에 의하여 이 언어상의 장애도 많이 감소되었다.
그리고 장래의 하나의 보조적 세계어가 채택되어 세계의 모든
학교에서 이것을 가르칠 때가 올 것임을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
가 있다. 그때에는 이 장애도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
세계의 큰 장애는 종교상의 편견과 편협이다. 그러나 이것도
점차로 해소되어 가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점점 열리고 민중의
교육은 종파적인 승려들의 손에서 점차로 떠나게 되었다. 그리
고 새롭고 더 자유스러운 사상이, 가장 배타적이며 보수적인 사
회에까지 침투하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막아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하올라께서는 그 사명을 비교적 짧은 시일 내에
전 지구상의 각지에 알리게 된 최초의 위대한 예언자이셨다. 멀
지 않은 장래에 그분의 권위 있는 저서에서 번역된 그 본질적
가르침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문자를 해독하는 자에
게는 직접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69
제 8 장 종교의 융합
바하이 계시의 충만
바하이 계시는 그 권위 있는 기록이 풍부하고 완전한 점에 있
어서 세계의 여러 종교 중 고금(古今)에 무비하고 독특하다. 그
리스도, 모세, 조로아스터, 석가모니, 크리슈나 등 여러 예언자
들 자신이 확실히 말해서 남긴 기록은 극히 적어서, 현재의 많
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것이 많다.
여러 종교의 창시자들의 가르침이라고 일반에 전해져 있는 것
중의 많은 것이 진가(眞假)를 알 수 없고, 어떤 것은 확실히 후
세에 첨가된 것이다. 이슬람교도는 그들의 경전‘코란’과 많은
경외전설(經外傳說) 가운데 그들의 예언자의 전기(傳記)와 가
르침이 더 풍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하멧 자신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으셨지만 그분의 최초의 많은 신도들과 마
찬가지로 전혀 무학(無學)하였다. 따라서 그분의 가르침을 기
록하고 전파할 방법이 여러 가지 점에서 심히 불충분하였다. 그
리하여 그 전설에는 믿기 어려운 것이 많다. 그 결과로써 모든
전대의 종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에도 여러 가지 해
석과 서로 충돌하는 의견으로 말미암아 많은 분열과 알력이 생
긴 것이다.
이와는 달리, 바압과 바하올라 두 분께서는 탁월한 능변과 권
위로써 풍부한 저술을 하셨다. 그분들께서 사명을 선언하신 후
에는 공공연히 말씀하시기 어렵게 되셨고, 그 생애의 대부분을
옥중에서 지내셨으므로 많은 시간을 저술에 바치셨다. 그 결과
바하이의 계시는 그 경전이 확실하고 풍부한 점에서 전대의 종
교의 어느 것이나 그것을 따를 수 없다. 전대의 계시에서 막연
히 예시(豫示)한 많은 진리에 관하여 명확하고 충분한 해석을
170
바하올라와 신시대
가하여, 모든 예언자가 가르친 진리의 영원한 원리가 오늘의 세
계가 직면한 실제 문제에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가장 복잡하고
곤란한 문제 중의 많은 것은 전대의 예언자들의 시대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충분하고 권위 있는 계시의 기록은
장래의 오해를 방지하는 큰 힘이 되고, 여러 종교의 통합을 방
해했던 과거의 오해를 일소하는 힘이 될 것은 명백한 일이다.
바하이 성약(聖約)
바하이 계시는 다른 점에서 보아도 독특하고 무비하다. 바하
올라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성약’을 쓰시어 그 가운데
서, 그분이 가끔‘가지’혹은‘가장 큰 가지’라고 인용한 바 있
는 그분의 장자 압돌바하를 이 가르침의 권위 있는 해석자로 지
명하셨다. 그리고 이 장자에 의하여 행해지는 어떠한 설명이나
해석이든지 바하올라 자신의 말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으로 받
아들여야 한다고 선언하셨다. 그분의‘유훈’에 다음과 같이 씌
어 있다.
“나의‘케타베 악다스’에 계시된 것을 회상하라.‘나의 출현
의 바닷물이 퇴조하고 나의 계시의 글이 끝나거든, 너희는 하
느님이 뜻하신 바, 이 고래의 뿌리에서 갈린 그에게 너희의 얼
굴을 돌리라.’이 축복받은 싯귀(詩句)는‘가장 큰 가지’에 관
한 것이니라.”
또 그분이 압돌바하의 지위를 설명하신‘가지에 관한 서한’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사람들아! 너희는 이‘가지’의 출현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
171
제 8 장 종교의 융합
미하라. 진실로 그것은 너희를 위한 지극히 큰 은혜요, 완전한
축복이니라. 그로 말미암아 모든 썩은 뼈도 생명을 얻으리라.
진실로, 그를 향하는 자는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요, 그에게서
얼굴을 돌리는 자는 나의 미(美)에서 얼굴을 돌리고 나의 증거
를 부정하고 또 계율을 범하는 자이니라.”
바하올라의 사후에 압돌바하께서는 그분의 집에서, 또는 넓은
범위에 걸친 여행에서 세계의 각 방면의 각양각색의 의견을 가
진 사람들과 접촉하는 많은 기회를 가지셨다. 그분은 이러한 여
러 사람의 질문과 반대의견을 들으시고는 거기에 대하여 일일
이 충분한 설명을 하여 주셨고, 그것들은 정확히 기록되어 있
다. 압돌바하께서 그 긴 생애를 통하여 가르침을 설명하시고 그
것의 근대생활의 모든 문제에 대한 적용을 보여주는 일에 힘쓰
셨다. 신자들 사이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의견 상위는 그분에게
제출되었고, 그분은 권위로써 이것을 해결하셨다. 그리하여 장
래에 일어날 수 있는 오해의 위기를 크게 감소시켰다.
그리고 바하이신앙의 정신적 혹은 섭리적(攝理的) 성격은 계
속될 것으로 예시되어 있으니, 압돌바하의 유훈에 의하여 규정
된 대대계승의 수호자가 그분의 사후에 경전해석자로서의 임무
를 계속한다고 역시 그 유훈에 지시되어 있다. 그것에 의하여
이 신앙은 그 시대가 계속되는 한, 해석이 서로 다름으로 말미
암아 분파가 생기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며, 또 일반에 유행하
는 유물론이 창시자에 의하여 계시된 기준(基準)을 낮은 기준
으로 대치(代置)시킬 때 그 영향으로 말미암아 타락하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172
바하올라와 신시대
사회발전의 필요성에 관련하여 바하올라께서는 세계정의원의
설립을 규정하셨다. 그리고 그 정의원의 선출과 기능은 압돌바
하의 유훈에 더 명확히 계시되었다. 대대계승의 수호자가 의장
인 이 최고 행정기구는, 계시의 글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
은 모든 사항에 대하여 입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태
가 다른 방법을 필요로 할 때 그 자체가 설정한 사항을 폐지할
수도 있다. 이 사실은 생명있는 유기체(有機體)의 활기있는 영
속(永續)을 바하이신앙에 보증한다. 일반진리의 터전에 세워진
바하이신앙은 각 연대(年代)와 시대의 상태와 요구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바하올라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분께서 계시하시고 규정하신,
또는 압돌바하께서 설정하신 모든 사회적 가르침과 사회적 제
도를 포함하는 것이므로 어떠한 바하이라도 분파나 종파를 세
울 수 없고, 또 어떠한 분립의 근거도 정당시될 수 없다. 이 종
교제의 본질적 목적은 모든 인종과 민족과 국가를 한 신앙과 한
질서 안에 모이게 하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
씀하셨다.
“바하올라의 말씀에 제멋대로 해석을 가하고 그 능력에 응하
여 거기에 색칠하고, 그 주위에 사람들을 모아 다른 종파를 만
들고 자기의 지위를 높여 이 대업에 분열을 일으키도록 꾀하는
자는 대업의 적이다.”---‘서방의 별’제 3권 8쪽
또 다른 서한 가운데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이러한 사람들(분파의 주창자들)은 바다의 표면에 모이는
거품과 같은 것이다. 물결은‘성약’의 바다 가운데서 몰려와서
173
제 8 장 종교의 융합
‘압하의 나라’의 힘으로 이것을 바닷가에 밀어 버린다.......개
인적인 악한 생각에서 발하는 이러한 부패한 사상은 다 사라지
고 다만‘하느님의 성약’만이 확실하고 완전하게 존속할 것이
다.”---‘서방의 별’제 10권 95쪽
만일 어떤 사람이 종교를 버린다고 하여 누구나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으되,‘하느님 자신도 영혼
이 정신적으로 될 것을 사람에게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인간의
자유스러운 의지활동은 필요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정
신적 성약은 분명히, 바하이 공동체 내에 종파 분립이 생기는
것을 전혀 불가능케 한다.
직업적인 성직자가 없음
바하이신앙의 또 한 가지 특색은 직업적 성직자의 제도가 없
는 것이다. 선교활동을 하는 신자들의 교도활동비용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것은 허락하는 일이어서 이 대업을 위하
여 많은 봉사를 바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바하이가 각자의 기
회와 능력에 응하여 교도사업에 전력할 것을 기대한 것이요, 따
로 성직자의 직분과 특권을 전문으로 행사함으로써 일반신자와
구별되는 특별한 계급은 정해져 있지 않다.
옛날에는 인류가 무지하고 배우지 못하여 저들의 종교교육과
종교적 의식이나 제전(祭典)의 집행과 재판사무 등이 성직자에
의하여 행해졌으므로 성직자 제도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지금
은 시대가 변하였다. 보통교육이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 만일
바하올라의 명령이 준행된다면 세계의 모든 소년소녀가 모두
훌륭히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각 개인은 자유로이 경
174
바하올라와 신시대
전을 연구하여 스스로‘생명수’를 그 수원(水源)에서 떠서 마
실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특별한 직업 혹은 특별한 계급의 봉사
를 요하는 극히 장엄한 의식과 제전이 바하이 조직에는 없다.
그리고 정의의 행정은 그 목적으로 세워진 행정기구에 위임되
어 있다.
어린이를 위하여 교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참다운 교사의 목
적은 학생으로 하여금 교사 없이 학생 자신으로서 배우게, 즉
자기의 눈으로써 사물을 관찰하고, 자기의 귀로써 들으며, 자기
의 심의(心意)로써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
지로 인류의 유년시대에는 성직자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성직
자의 참된 직무는 중생이 성직자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행동하여, 자신의 눈으로써 신성한 사물을 보고, 자신의 귀로써
듣고 자신의 심의로써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지금
은 이 승려의 직분이 거의 달성되었다. 그리하여 바하이 가르침
의 목적은 그 직분을 완성시켜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 이외의
일체(一切)의 것으로부터 독립케 함에 있다. 그렇게 되면 저들
은 직접 하느님께, 즉 하느님의 현시자에게 향할 수 있는 것이
다. 전 인류가 다 같이 유일의 중심으로 향할 때, 거기에는 아무
런 오해와 혼란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더욱 그 중
심에 가까워질수록 저들도 더욱 더 서로 가까워 질 것이다.
175
제 8 장 종교의 융합
176
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9 장
참다운 문명
하느님의 백성들아! 너희 자신의 일에 몰두하지 말라. 세계
를 개선하는 일, 모든 나라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에 힘쓰라.
--- 바하올라
종교는 문명의 기초다
바하이 견해에 의하면 인생문제는 개인적인 것이건 사회적인
것이건 보통 사람의 지혜로서는 혼자의 힘으로 바로 해석하기
는 불가능하리만치 상상이상으로 복잡하다. 다만 전지하신 하
느님만이 천지창조의 목적과 그 목적이 어떻게 수행될 것인가
를 아신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인생의 참다운 목
적과 진보의 올바른 계정(階庭)을 인류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요, 참다운 문화의 건설은 예언자에 의하여 계시된 바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성취되는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
씀하셨다.
“종교는 세계의 질서와 모든 존재물의 평안을 유지하는
가장 큰 도구(道具)이다. 종교의 기둥이 약해질 때 어리석
은 백성이 선동되어 불손하고 오만해졌다. 내가 진실로 말
하노니, 종교의 고귀한 지위를 낮추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
었든지 간에 사악(邪惡)한 자아의 불근신(不謹愼)을 더하게
177
제 9 장 참다운 문명
하여 마침내 무질서한 상태를 초래한다........
서양 사람들의 문명을 보라. 그것이 세계 인류에게 얼마나 소
란과 동요를 일으켰던가를. 악마의 도구가 수없이 발명되어,
세계의 눈이 일찍이 보지 못하고 세계의 귀가 일찍이 듣지도
못한 잔인한 행위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데 씌어졌다. 이
러한 언어도단의 사악을 개선함에는 다만 세계의 모든 사람이
어떤 일정한 원칙에 결합되거나 또는 한 종교의 그늘에 통합되
지 않으면 안된다........ .
바하의 백성들아! 계시된 명령의 하나 하나는 다 세계를 보
호하는 가장 튼튼한 요새(要塞)이니라.”---‘낙원의 말씀’
유럽과 세계 일반의 현상은 오래 전에 씌어진 이러한 말씀이
진리임을 웅변으로 확증한다. 예언자의 명령을 무시하든지 무
종교가 유행하는 것은 무질서와 무서운 파괴를 초래한다. 그리
하여 참다운 종교의 근본적인 마음과 목적의 변화가 없이는 사
회개혁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의(正義)
바하올라께서는 예언자로서 가르침의 요점을 간단히 기술한
‘숨겨진 말씀’이라는 작은 책에서 그분의 첫째의 권고로써, 개
인생활에 관하여‘착하고 깨끗하고 빛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셨고, 다음에 사회생활의 근본원리를 계시하셨다.
“정신의 아들아! 내 앞에 있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것은 정의이니, 나를 바라거든 정의를 외면하지 말고, 내가 너
178
바하올라와 신시대
를 믿을 수 있도록 이를 소홀히 하지 말아라. 정의의 도움으로
인해 너는 남의 눈이 아닌 네 눈으로 보게 될 것이며 이웃사람
의 지식이 아닌 너의 지식으로 알게 되리라. 네가 어떻게 하여
야 마땅한지 가슴깊이 숙고하여라. 참으로 정의는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요 내 자애의 표시이니라. 그러니 이를 네 눈앞에
두어라.”
사회생활의 첫째 요체(要諦)는 각 개인이 참과 거짓, 그리고
선과 악을 식별하는 능력을 가져 사물(事物)을 바른 기준에서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정신적 사회적으로 눈이 어두워지는
최대의 원인과 사회 진보의 최대의 적은 이기심(利己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 지혜의 아들아! 엷은 눈꺼풀도 눈을 덮어 세계와 그
안의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거늘, 탐욕의 장막이 마음의 눈을
가리운 때의 결과를 생각해 보라.”
“사람들아! 탐욕과 원한의 암흑은 구름이 태양광선을 가리움
같이 영혼의 빛을 어둡게 한다.”
--- 조로아스터교도였던 페르시아의 어떤 바하이에게 보낸
서한에서
오랜 경험에 의하여 사람들은 마침내 예언자의 가르침이 진실
하였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즉, 이기주의의 인생관과 이기
주의의 행동은 필연적으로 사회질서를 어지럽게 한다. 만일 인
류가 불명예스러운 멸망을 원치 않는다면 모든 사람은 이웃사
람의 일도 자기의 일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전체
로서의 인류의 이해를 자기의 이해보다 앞세워야 한다. 그리하
179
제 9 장 참다운 문명
여 각자와 전체의 이해는 종국에 가서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
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만일 자비(慈悲)를 원하거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말고, 너의 인류 동포의 이익을 생각하라.
네가 만일 정의를 원하거든 너를 위하여 하고 싶은 일을 남을
위하여 하라.”---‘낙원의 말씀’
정부
올바른 사회질서의 문제에 관한 바하올라의 가르침은 두 종류
의 설명으로 구분할 수 있으니, 그 하나는 여러 나라 왕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보는 바와 같은 것으로서, 바하올라의 재세(在
世) 중에 세상에 있는 대로의 정치문제를 다룬 것이고, 다른 하
나는 바하이 공동체 안에 전개될 새 질서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다음에 인용하는 구절 사이에는 현저한 대조(對照)가
생긴다. 즉,“그분의 영광이 고귀하도다. 유일의 참된 하느님께
서는 과거에도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하느님 자신의 것, 즉 하
느님의 독점적인 소유물로 하시었고 미래에도 또한 그러할 것
이다. 그리고 그 이외의 모든 것, 즉 땅 위에 있는 것이건 바다
가운데 있는 것이건, 부(富)이건 영광이건 모두 지상(地上)의
왕들과 통치자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라고 하셨고, 또
“‘가장 큰 이름’을 든든히 붙잡아 전 인류의 통합을 실현하는
일은 오늘날 모든 사람이 힘써야 할 일이다. 하느님 이외에는
사람이 도피할 곳이 없고 구할 수 있는 안식처가 없다.”고 하셨
다.(낙수집 203, 206쪽)
이와 같은 두 가지 견해 상의 모순은 우리가 바하올라에 의하
180
바하올라와 신시대
여 보여진‘소평화’와‘최대의 평화’와의 구별을 보면 해소된
다. 왕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바하올라께서는 저들의 힘을 합하
여 정치적 평화를 유지하고, 군비를 축소하며 가난한 자의 괴로
움과 불안을 제거하는 방책을 취하라고 요구하셨다. 그러나 한
편 그분의 말씀에는, 왕들이 이 시대의 요청에 응하지 않아 그
결과로 전쟁과 혁명이 일어나서 묵은 질서가 뒤집히리라는 것
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그분은“오늘의 인류에게 필
요한 것은 권력의 자리에 있는 자에게 복종하는 일이라.”고 하
는 한편,“현세의 허영과 허식을 쌓아 하느님을 모욕하고 그분
에게 얼굴을 등지는 자는 현세와 내세를 잃을 것이다. 불원에
하느님께서는‘위력의 손’으로써 저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
고, 그분의 은혜의 옷을 벗길 것이다. 오 사람들아, 나는 너희를
위하여 시간을 정하여 두노니, 너희가 만일 지정된 시간에 하느
님을 향하지 않으면 진실로 너는‘그분’에게 잡혀서 모든 방면
으로부터 오는 무서운 고통을 받으리라. ..... 현재의 질서는 심
히 불완전하므로 가까워 오는 대변동과 혼돈의 징후가 지금 바
로 나타나게 되었다. .....짐(朕)이 맹세하노니, 이 세상에‘주
님’의 승리가 확립되어,‘주님’께로 향하는 왕이 한 사람도 없
을지라도‘짐(朕)의 대업’을 모든 사람 위에 높이 세울 것이
다.”---‘낙수집’209, 214, 216, 248쪽
“‘위대한 존재자’께서는 세계의 평화와 평온과 그 백성들의
진보의 선결 요건을 제시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셨다. 세계
인류의 모든 것을 포괄(包括)하는 광대(廣大)한 집합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일반이 느낄 때는 그것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 이
세상의 통치자와 왕들은 반드시 거기에 참여하여, 그 평의에
의하여 사람들 사이에 세계의‘최대의 평화’의 주춧돌을 놓는
181
제 9 장 참다운 문명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평화는 열강
(列强) 각국이 세상 사람들의 평안을 위하여 굳은 결의로써 완
전히 화합하여야 할 것을 요한다. 만일 어느 왕이 다른 왕에 대
하여 군사를 일으키는 일이 있으면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그의
의도를 막아야 한다.”---‘낙수집’249쪽
이와 같은 권고에 의하여 바하올라께서는 이‘하느님의 날’에
공적책임(公的責任)이 풀릴 여러 조건을 명시하셨다. 한편으로
국제간의 공동일치를 호소하면서, 그분은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끊임없는 분쟁은 그들의 힘을 파괴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경
고하셨다. 즉, 모든 문명국에 있어서 이와 같은 파괴적인 힘을
얻기 위한 강압적인 운동이 일어나고 전쟁지식이 발달하여 이
제는 어느 편에도 승리란 것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너희가‘최대의 평화’를 거부할지라도 너희와 너희의 가족
의 생활조건을 다소라도 개선할 수 있는‘소평화’는 고집하
라........‘주’께서 전 세계의 치료를 위하여 최상의 치료법과
최강의 도구로 정한 것은, 모든 민족을 하나의 보편(普遍)의
대업, 즉 하나의 공통된 신앙으로써 통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숙련되고 전능한, 그리고 영감(靈感)을 가지신‘의사’의 힘이
아니면 결코 달성할 수 없다.”---‘낙수집’254, 255쪽
‘소평화’는 다만 여러 나라의 정치적 통합을 의미하고,‘최대
의 평화’는 정치적 및 경제적 요소와 함께 정신적 요소도 포괄
하는 통합을 의미한다.
“불원에 오늘의 질서는 걷혀지고 그에 대체(代替)하여 새 질
서가 전개될 것이다.”---‘낙수집’7쪽
182
바하올라와 신시대
이전에는 정부가 외면적인 일과 물질적인 일만을 문제 삼으면
족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정부 기능은 하느님을 향하는 자가 아
니면 할 수 없는 지도와 헌신, 그리고 정신적 지식의 성질을 요
구하고 있다.
정치상의 자유
지역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또는 국제적으로나 이상(理想)으
로서는 대의정체(代議政體)를 주장하는 바이지만, 그것은 다만
개인적 또는 사회적으로 그 수준이 충분히 높은 정도로 발달했
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라고 바하올라께서는 가르치셨다. 국민
이 이기적 욕망에 지배되고 국정(國政)을 다룸에 경험이 충분
치 못한데, 교육도 하지 않고 갑자기 그들에게 자치를 허용한다
면 폐해가 많을 것이다. 그것을 잘 운용할 줄 모르는 국민에게
자유를 주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은 없다. 바하올라께서는‘케
타베 악다스’에서 다음과 같이 쓰셨다.
“사람의 마음이 보잘 것 없음을 생각해 보라. 저들은 자기에
게 해로운 것을 찾고 이로운 것을 멀리한다. 진실로 저들은 헛
길에 깊이 들어 헤매는 것이니라.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도에
넘친 자유를 요구하며, 그 자유 가운데 있는 것을 자랑으로 아
는 것을 보고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무지한 탓이니라. 도에 넘
친 자유는 마침내 혼란을 초래하여 누구나 그 불을 끌 수 없는
상태에 이를 것이다. 전지자이시요 결산자로서의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 경고하나니, 도에 넘친 자유의 구체적인 상징이 동물
이란 것을 알라. 인간다운 생활은 그 자신의 무지와 배신자의
가해를 막아주는 것과 같은 제한(制限)에 복종함에 있느니라.
도에 넘친 자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제(節制)의 규범을 벗어
183
제 9 장 참다운 문명
나게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케 하여 인간은 심한 부패와
사악에 빠지게 되느니라. 인간을 양의 무리로 생각해 보라. 그
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목자가 필요한 것이니 진실로 그것은 의
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니라. 짐(朕)은 어떤 경우에는 자유를 존
중하나 다른 경우에는 용인할 수 없느니라. 진실로 짐(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나니. 말하여라: -‘참다운 자유란 나의 명령
에 복종함에 있음을 너는 모르느냐. 만일 사람들이 나의 계시
의 하늘에서 보낸 자를 따르면 저들은 반드시 완전한 자유 안
에 있음을 발견하리라. 모든 창조물에게는 하느님의 뜻이 숨어
있나니, 하느님의 뜻의 하늘에서 계시된 것, 그것이 무엇이든
지, 거기서 하느님의 목적을 알아내는 자는 행복하느니라.’-
‘너희를 이롭게 하는 자유는, 영원한 진리인 하느님께 봉사하
는 것 이외에는 찾을 수 없느니라. 그리고 한번 그 단맛을 알게
된 사람은 하늘과 땅의 지배를 송두리째 주더라도 그것과 바꾸
지 않을 것이니라.’”
진보에 뒤진 인종이나 국민의 사정을 개선함에는 하느님의 가
르침이 가장 좋은 약이다. 국민이나 정치가나 다 같이 이 가르
침을 배워 실제로 행한다면 그 때에 비로소, 그 여러 나라들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통치자와 국민
바하올라께서는 가장 강력한 어조로써 포학한 정치와 압제를
금하셨다.‘숨겨진 말씀’가운데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땅위의 압제자들아! 나는 어느 누구의 불의도 용서하지 않
기로 굳게 마음 먹었으니, 폭정에서 손을 떼어라. 이것은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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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된 성한 속에 내가 취하 불가능하도록 정한 뒤 내 옥쇄로 봉인
해 둔 성약이니라.”
법률과 규칙의 제정과 집행을 위탁받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
이 쓰셨다.
“협의의 끈을 단단히 붙잡아 국민의 안전과 부유와 후생의 안
녕을 증진하는 일을 결정하고 실행하라. 그리하지 않고 다른
길로 나간다면 불화와 혼란을 초래하리라.”
---‘세계에 관한 서한’에서
그리고 한편, 국민은 정당한 정부의 법률을 존중하고 거기에
충성을 바쳐야 한다. 국민의 생활상태를 개선함에는 교육적 방
법을 신뢰하여 폭력에 의하지 않고 좋은 모범의 힘에 의하여야
한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떤 나라에 있어서든지 이 공동체의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는 그들은 충성과 진실과 복종의 태도로써 그 나라의 정부를
대하여야 한다.”---‘기쁜 소식’
“하느님의 백성들아! 신임과 정직의 옷으로써 너의 몸을 단
장하라. 그리고 선행과 도덕의 군대로써 너의 주를 섬기라. 진
실로 나는 나의 책에서, 나의 서한에서, 동란과 쟁투를 너희에
게 금하였나니, 나는 다만 이에 의하여 너희가 성장하고 고귀
하게 될 것을 바라는 바이다.”---‘에슈라가트의 서한’
임명(任命)과 승진(昇進)
사람을 임명하는 유일한 표준은 그 지위에 가장 적당한 자를
185
제 9 장 참다운 문명
고르는 것이다. 이 중요한 고려에 있어서 연장(年長)이라거나
사회적 또는 재산상의 지위라거나 가족적 혹은 우의적(友誼的)
관계와 같은 것은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 바하올라께서는‘에
슈라가트의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제5‘에슈락’(빛남)은 정부당국자가 피치자(被治者)의 상
태를 알고 공로와 업적에 응하여 계위(階位)를 주는 것이다.
이 점은 모든 장관이나 집권자들에게 엄격히 명령한 바이니,
반역자들이 신뢰받을 사람들의 지위를 빼앗거나 약탈자들이 보
호자의 자리를 점령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여야 한다.”
이 원칙이 일반에게 채용되어 실행될 때 우리의 사회생활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모든 사람이 각각 그
재주와 능력에 알맞은 직업을 가질 때, 각자는 그 일에 전력을
경주하여 그 직업에서 하나의 예술가가 될 것이요, 그렇게 됨으
로써 그 자신과 세상 일반에 무한한 이익을 주게 될 것이다.
경제 문제
바하이 가르침은 빈부간의 경제관계를 개선할 필요를 가장 강
력하게 주장한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국민의 생활상태를 정리하여야 하나니, 빈곤이 없어져 누구
나 그 위치와 계위(階位)에 응하여 될 수 있는 한, 안위와 행복
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들 사이에 한편에는 너무
많은 부(富)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것도
없어 굶주림에 고생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있음을 본다. 또 한
편에 화려한 저택과 별장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는 머리 둘 곳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상태는
186
바하올라와 신시대
부정한 것이니 개선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개선은 용의주도하
게 행해져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 절대의 평등은 있을 수 없다.
평등은 환상(幻想)이요, 전혀 실행될 수 없는 일이다. 만일에
평등이 실현된다 하여도 그것은 영속(永續)할 수 없다. 만일
그것이 존속한다면 세계의 모든 질서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인간세계에는 항상 질서의 법칙이 행해져야 하나니, 하늘은 인
간을 창조할 때 이와 같이 명령한 것이다........ .인간사회는
마치 대규모의 군대와 같아서 거기에는 제각기 임무를 가진 각
계급의 장관, 위관, 하사관 및 병이 필요한 것과 같다. 질서 있
는 조직을 유지함에는 절대로 계급이 필요하다. 군대는 대장만
으로, 또는 영관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요, 또 권력을 가진
상관이 없는 사병만으로도 물론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은 무한히 부하고 다른 사람들은 참담한 빈곤
에 허덕이는 세상은 이것을 제한하고 이와 같은 상태를 개선하
기 위하여 어떤 조직이 필요하다. 부와 가난을 다 제한하여야
하나니, 어느 편이나 극단은 좋지 못하다........ 가난이 굶주리
는 상태에까지 달했다는 것은 반드시 어디에 포학이 행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인간은 이 점에 분발하여야 하나니, 대다수의
국민을 참혹한 빈궁에 빠지게 한 오늘의 상태를 하루라도 지연
해서는 안된다.
부자는 저들의 남는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또 마음으로부
터의 동정심을 길러, 생활의 절대필수품의 결핍에 고생하는 불
쌍한 사람들을 생각해 주어야 한다.
빈부의 두 극단(極端)을 달리는 것을 막는 특별한 법률이 제정
되어야 한다........ 여러나라 정부는 전 인류에게 평등의 정의
를 부여한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이것이 실현되
187
제 9 장 참다운 문명
기까지는 하느님의 계율이 지켜졌다고 할 수 없다.”
---‘압돌바하의 지혜’140쪽
공공재정(公共財政)
압돌바하께서는 재정관리(財政管理)에 관하여 의견을 말씀하
셨으되, 각 도, 시, 구(區), 군(郡)등의 또는 지방관청이 될 수
있는 한, 각각 그 지역 내의 재정행정을 위탁받아 관리하고 중
앙정부의 일반비용을 위하여 적당한 비례로써 그것을 부담하여
야 할 것이라고 하셨다. 수입의 중요한 재원(財源)의 하나는 누
진소득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의 소득이 그 사람의 생활비 이상
이 되지 않으면 조금도 세금을 낼 필요가 없으나 생활비 이상의
수입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그 수입에서 생활비를 제한 금액에
따라 누진하는 세금을 내어야 한다. 한편, 질병이나 수확불량,
기타 불가항력의 원인으로 그 해의 생활비를 지탱할만한 충분
한 소득이 없는 경우에는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의 생활을 유지함
에 부족한 것은 공공기금(公共基金)에서 지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밖의 공공재원으로서는 예컨대, 유언 없는 유산, 광
산, 소유자 불명한 보물 및 유지의 기부 등이 있고, 공공세비(公
共歲費)중에는 병자와 고아와 눈먼 사람과 귀먼 사람, 그리고
학교와 공중위생의 유지 등을 위한 보조금이 포함되어 있다. 이
와 같이 하여 일반국민의 행복과 안녕이 보장되는 것이다.15)
자발적 분배
1919년‘영구평화를 위한 중앙기관’에 보낸 서한에서 압돌
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88
바하올라와 신시대
15. 더 자세한 것은 압돌바하의 강연집, 특히 아메리카에서 행하신 연설문에서 참조
“바하올라의 가르침 가운데는 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타인에
게 자발적으로 분배한다는 것이 있다. 이 자발적 분배란 것은
법률로써 명령한 평등보다도 한층 더 큰 의미가 있으니, 여기에
는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타인의 일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 타
인을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과 재산도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절대로 복종해야 하는 법
률과 같이 강제적이어서는 안된다. 아니, 이것은 페르시아의 바
하이들 사이에 행해지고 있는 바와 같이 자발적으로 자기의 재
산과 생명을 타인을 위하여 희생하고, 자기의 의사로써 빈곤자
에게 돈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만인개로(萬人皆勞)
경제문제에 관한 바하올라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의 하나는,
모든 사람이 다 유익한 일에 종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라
는 벌통 안에는 한 마리의 숫 벌, 즉 일하지 않고 먹는 자가 있
어서는 안 된다. 사회에는 노동할 수 있는 좋은 체력을 가진 기
생자(寄生者)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분은 말씀하셨으되,
“너희는 다 어떤 업무 - 기술, 손으로 하는 일, 기타 - 에 종
사할 의무가 있다. 나는 너희의 업무가 진리의 하느님을 예배
함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아, 하느님의 자비와 은
혜를 생각하여 아침저녁으로 하느님께 감사하라.
안일과 나태로 너희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자기를 이롭게
하고, 또한 타인을 이롭게 하는 어떤 일에 종사하라. 하느님의
지혜와 그의 신성한 말씀의 태양이 지평선에서 빛나는 이 서한
에서 그렇게 명령하셨다. 하느님 앞에서 가장 꺼림 받을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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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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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앉아서 얻어먹는 자이다. 모든 원인의 원
인자(原因者)인 하느님을 신뢰하고 생활의 끈을 굳게 잡으라.”
---‘기쁜 소식’
오늘의 실업계에는 얼마나 많은 정력이 무익한 경쟁에, 다만
사람의 노력을 소모하는 일에 사용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보다
도 더욱 해로운 일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인간의 노력이 허비되
고 있는가. 바하올라의 명령대로 만인이 다 같이 일하며, 머리
로 하든지 손으로 하든지 모두 인류에게 이익 되는 일에 종사한
다면, 건강하고 유쾌한, 그리고 고귀한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
지 물자가 모든 사람에게 충분히 공급될 것이다. 그리하여 빈민
굴이나 굶주림이나 빈곤이나 산업상의 노예나 건강을 해하는
고된 일이 없어질 것이다.
부(富)의 윤리(倫理)
바하이 가르침에 의하면 정당한 방법으로 얻어 정당히 사용되
는 부는 귀한 것이며 찬양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공로는 적당
히 갚아져야 한다. 바하올라께서는‘타라자트의 서한’에 다음
과 같이 쓰셨다.
“바하의 백성은 남에게 적당한 보수를 지불할 것을 거부해서
는 안된다. 그리고 재능의 소유자를 존경해야 한다........ 인간은
정의로써 말하고, 이익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돈의 이자에 대하여 바하올라께서는‘에슈라가트의 서한’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의 필요를 느낀다. 만일 금리제도(金利
制度)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사업은 구속되어 장애를 초래할 것
이다........‘카르디 하산’(좋은 대부, 즉 이자 없이 대부하여
차용자의 형편이 허하는 대로 반환하는 금전대차)에 의하여 돈
을 빌려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종들에
게 은혜로써, 사람들 사이에 실행되고 있는 상거래에서와 같이
돈의 이자제도를 허하였다. 즉....... 돈에 이자를 청구하는 것
은 용인되는 합법적인 일이다........ .다만 주의할 것은 적당한
정도와 정의로써 실행되어야 한다.‘영광의 붓’은 하느님 앞에
서의 지혜로써, 또 종들의 편의를 위하여 이자의 범위를 제한
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동정심이 상호간
에 표시됨과 같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공정과 정의로써
이 문제를 다루기를 권한다........ 이러한 일의 실행은 시대의
필요에 의하여, 사무가 현명하게 처리되기 위하여 이것을 정의
원의 소관(所管)으로 하였다.”
산업상의 노예를 인정하지 않음
바하올라께서는‘케타베 악다스’에서 노예제도를 금하셨다.
압돌바하께서도 동산(물건)으로서의 노예는 물론이고, 산업상
의 노예도 하느님의 계율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그
분은 1912년 미국에서 아메리카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1860년부터 1865년 사이에 여러분들은 놀라운 대사업을 성
취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동산으로서의 노예제도를 폐지하였습
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분은 더 큰 사업을 수행하여야 합니
다. 즉 여러분은 산업상의 노예를 없애야 합니다........ 경제상
191
제 9 장 참다운 문명
문제는 자본이 노동에 대항하고, 노동이 자본에 반항하는 쟁투
와 분쟁의 방법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자본
과 노동 양편의 자발적인 선의(善意)에 의해서만 참된 해결을
볼 수 있을 것이니, 그때에 비로소 진실하고 영구적인 바른 상
태가 보증될 것입니다........ .
바하이 가운데는 강탈하거나 부정한 행동을 하거나 부정한
요구를 하거나 현 정부에 대하여 혁명적 폭동을 일으키는 일이
없습니다.
장래에는 남의 노력에 의하여 부(富)를 얻는 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부자는 기쁜 마음으로 자기의 재산을 분배할 것입니
다. 이것은 저들의 자유의사에 의하여 서서히 자연적으로 행해
질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전쟁이나 피를 흘림으로써 성취될
것이 아닙니다.”---‘서방의 별’제 7권 제 15호 147쪽
자본과 노동 양편의 이익을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우호적
인 상담과 협력, 정당한 협동과 이익분배의 방법을 취하는 일이
다. 동맹파업과 사업장폐쇄와 같은 극렬한 수단은 그 사업에 좋
지 못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일반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일이
심대하다. 그러므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이러한 야만적 수단
에 호소하는 것을 방지하는 적당한 방법을 도출하는 것이 정부
의 할 일이다. 압돌바하께서는 1912년 뉴 햄프셔주 더블린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계율을 말하려 합니다. 하
느님의 계율에 의하면 고용인은 단지 임금을 받기만 하면 그만
인 것이 아닙니다. 아니, 저들은 모든 사업에 있어서 협력자가
192
바하올라와 신시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사회화(社會化)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
운 문제이기는 하나, 임금을 위한 동맹파업으로는 해결되지 않
을 것입니다. 모든 나라의 정부가 합동하여 회의를 조직하고
그 의원은 국회와 각국의 덕망 있는 자 중에서 선출되어야 합
니다. 이들 의원들은 지혜와 권력으로써 자본가도 큰 손해를
보지 않고 노동자도 빈궁에 빠지는 일이 없을 방법을 강구하여
야 합니다. 그들은 가장 온건하게 법률을 제정하여 노동자의
권리가 유효하게 보장되고 동시에 자본가의 권익도 보호된다는
것을 공고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일반적 법률이 노동과 자
본 양편의 의사에 의하여 채용된 후에 만일 파업이 일어나는
일이 있다면 각국정부는 협동하여 이것을 단속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사업이 많이 파괴될 것입니다. 특히 유
럽에는 그 위험성이 많고 무서운 사건이 일어날 것입니다.
유럽 전체에 걸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 중 하나는 이
문제일 것입니다. 토지, 광산, 공장 등의 소유자들은 그 소득을
고용인들과 함께 분배하여야 합니다. 고용인들도 그 임금 외에
공장의 일반소득의 얼마를 받도록, 고용주는 이 이윤 중에서
공평하게 결정된 비율에 의하여 노동자에게 분배하여야 합니
다. 이렇게 하면 고용인들은 그 일에 전 생명을 걸고 힘써 일할
것입니다.”---‘서방의 별’제 8권 제 1호 7쪽
유산(遺産)과 상속
사람은 생존 중에 자기의 의사대로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자
유를 가졌고, 사후에 그 재산이 어떻게 처분될 것인가를 지정하
는 유언장을 써 둘 의무가 있다고 바하올라께서는 말씀하셨다.
193
제 9 장 참다운 문명
만일 아무 유언도 없이 죽었을 경우에는 그 재산의 가격을 평가
하여 7등급의 상속자, 즉 자녀, 처 또는 남편, 부, 모, 형제, 자매
및 교사에게 어떤 일정한 비율에 의하여 분배되어야 한다. 그
분배는 제 1급자로부터 최하급 자에게 순차로 체감하는 것이
며, 이 7등급 중의 하나 혹은 그 이상이 빠질 때는 그에 해당하
는 분배를 공공수입으로 한다. 그리하여 그것으로 빈곤자, 고
아, 미망인이 구조를 받을 것이요, 또는 유익한 공공사업에 쓰
여질 것이다. 만일 사망자에게 유산상속자가 한 사람도 없을 때
는 그 유산 전부를 공공기금의 수입으로 한다.
바하올라의 계율로서는 사람이 만일 원한다면 그 전 재산을
한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도 무방하지만, 바하이들은 유언을 함
에 있어서, 바하올라께서 유언 없는 유산에 대하여 정한 바와
같은 여러 유산 상속자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방법에 자연히 영
향을 받게 될 것이다.
남녀 평등
바하올라께서 강조하신 사회 원칙의 하나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되어, 동등한 권리와 특권을 가지고 동등한 교육
을 받고,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성해방의 실현을 위하여 그분께서 취하려고 하신 가장 힘
있는 방법은 교육의 보급이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
아야 한다. 실제에 있어서 여성교육은 남성교육 이상으로 필요
하다. 그것은, 여성은 앞으로 어머니가 되기 때문이요, 또 어머
니로서 다음 세대 사람들의 최초의 교사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
들은 푸르고 부드러운 나뭇가지와 같아서, 만일 최초의 교육이
194
바하올라와 신시대
바르면 곧고 바르게 성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구부러
진 대로 자란다. 그리하여 전 생애에 그들은 어렸을 때의 교육
에 영향을 받게 되나니, 여성이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랴.
서양 여러 나라의 여행 중에 압돌바하께서는 이 문제에 관하
여 바하이 가르침을 설명할 기회를 여러번 가지셨다. 1913년 1
월 런던의 부인자유동맹 회합 석상에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
씀하셨다.
“인류는 두 날개를 가진 새와 같으니 하나는 남성이요, 다른
하나는 여성이다. 이 두 날개가 든든히 그 힘을 합하지 않으면
새는 공중을 날 수 없다. 현대정신에 의하면 여성도 그 위치를
높여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서 인생의 모든 방면에 그 사명을
충분히 수행해야 한다. 그들은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동
등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 이것은 내가 간절히 바라는 바요, 동
시에 이것은 바하올라의 근본 원칙의 하나이다.
일부의 과학자들은 남성의 뇌수가 여성의 뇌수보다 더 무거
우니 이것이 남성이 우월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주위에는 머리가 작아 뇌수가 가벼운 듯하나 비상한 지혜자로
서 위대한 이해력을 가진 사람이 있음을 본다. 그리고 한편, 머
리가 커서 그 뇌수가 확실히 무거울 듯한 사람이 우둔하고 무
능함을 본다. 그러므로 뇌수의 무거운 것이 지혜와 우수성의
참된 표준이 될 수는 없다.
남성이 우수하다는 제 2의 증거로서 여성이 남자만큼 일한
것이 없다는 점을 들어서 단정하지만 이것은 역사의 사실을 무
195
제 9 장 참다운 문명
시하는 박약한 이론이다. 만일 저들이 좀 더 충실히 역사의 가
르치는 바를 연구한다면, 과거에 많은 위대한 여성들이 나타나
서 대사업을 성취 하였고, 현대에도 많은 여성들이 대사업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압돌바하께서는 제노비아와 그 밖의 과거의 여성들의
공적을 말씀하시고, 여러 사도(使道)들의 신앙이 동요되어도
엄연히 그 신앙을 고수한 대담한 막달라의 마리아에 대한 찬사
로써 이 항을 맺고 그분은 다음과 같이 계속하셨다.
“현대의 여성들 중에, 어떤 이슬람교 승려의 딸인 코라톨 에
인이 있었다. 바압께서 출현하셨을 때 그 여자는 페르시아 사
회의 태고로부터의 풍습인 베일(覆莎)을 벗어버리고 남자와 담
화하는 것이 예의에 벗어난 행위라고 일반이 생각하던 그때에,
가장 이름 있는 학자들과 논쟁하여 여러 회합에서 그들을 설득
하였다. 페르시아 정부는 그녀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녀는 거
리에서 군중이 던지는 돌에 얻어맞고 저주를 받았다. 도시에서
도시로 추방 되어 죽음의 위협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조
금도 굴하지 않고 자매인 여성들의 자유를 위한 자기의 결심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가장 위대한 영웅적 정신으로써 모든
박해와 고난을 참았으며 옥중에서도 개종자(改宗者)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그녀가 감금되어 있는 곳은 페르시아의 어느 대신
의 집이었는데 그녀는 그 대신에게 향하여‘각하가 지금 곧 나
를 죽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하는 여성의 해방을 막
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마침내 그녀의 비극적
생애의 최후가 왔다. 그녀는 정원에 끌려가서 교살되었다. 그
때 그녀는 결혼식장에 가는 신부와도 같이 가장 아름다운 옷을
196
바하올라와 신시대
입었다. 이와같이 대담과 용기로써 그녀는 죽음을 맞았으며 이
것을 본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진실로 그녀는 위대한
여장부였다. 오늘의 페르시아의 바하이 중에는 백절불굴의 용
기있는 여성과 위대한 시적재분(詩的才分)을 가진 여성들이 있
다. 그녀들은 비상한 웅변으로써 군중을 향하여 조금도 거리낌
없이 연설한다. 여성도 진보하여야 한다. 그녀들은 인류의 완
성을 위하여 과학, 문학, 역사의 지식을 발달시켜야 한다. 그녀
들은 불원에 그 권리를 찾을 것이다. 여성들이 고귀한 기품을
몸에 지니고 시민생활, 정치생활을 개선하고 전쟁에 반대하고
투표권과 동등의 기회를 요구하는 것을 남성들은 바르게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생활상의 모든 면에 여러 자매의 향상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당신들의 머리에는 영원한 영광의
왕관이 빛날 것이다.”
여성과 신시대
여성의 의견이 적당히 고려되고 여성의 의사가 사회정책에 충
분히 표현되는 것이 허용되는 시기가 오면, 남성 지배시대의 낡
은 정치 하에서 대체로 등한히 다루어졌던, 건강과 절제(節制)
와 평화와 개인생명의 존엄성 등의 문제에 커다란 진보를 기대
할 수 있을 것이요, 이러한 것들의 개선은 매우 원대하고 유익
한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과거의 세계는 힘으로써 지배되었다. 그리하여 남성이 마음
과 몸이 여성보다 강하고 공격적인 이유로써 여성의 위에 지배
권을 가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지위가 이미 변화하고 있다.
완력은 그 세력을 잃고 도리어 여성의 장점인 심의적(心意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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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참다운 문명
주의력과 직각(直覺)과 사랑과 봉사의 정신적 능력이 세력을
얻고 있다. 그러므로 신시대는 남성의 세력이 감소되고 여성의
이상이 더 많이 지배하는 시대, 정확히 말하자면 남녀 성의 문
명을 구성하는 요소가 모든 점에서 더 균형을 이루는 시대가
될 것이다.”---‘서방의 별’제 8권 제 4쪽
폭력수단을 피할 것
여성해방을 실천함에도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하올라께
서는 폭력수단을 피할 것을 신자들에게 권하셨다. 사회개선에
대한 바하이의 수단의 훌륭한 실례를 페르시아, 이집트 및 시리
아의 바하이 여성들에게서 볼 수 있다. 이 몇몇 나라의 이슬람
교도의 여성들은 옥외에서는 언제든지 베일로써 얼굴을 가리는
것이 고래의 습관이다. 그런데 바압께서 새 종교제에서는 여성
들이 이 불편한 습관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러
나 바하올라께서는 신자들에 대하여, 도덕상 중대문제가 아닌
일로써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분개하게하고 실없이 적개심
을 일으키게 하는 것보다는 국민이 성숙되기까지는 종래의 풍
습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고 권하셨다. 그러므로 바하이 여성들
은 얼굴을 가리는 낡은 풍습이 성숙된 사람들에게는 아무 필요
도 없고 불편한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베일 없이 공중의 면
전에 나서서 도리어 광적인 미움과 반항심을 도발하지 않기 위
하여 불편을 참고 고요히 베일을 쓰는 풍습을 지킨다. 이와 같
이 구습을 지키는 것은 결코 무서워서 하는 일이 아니라 교육의
힘과 진정한 종교의 개선하는 생활규범의 힘을 충분히 믿기 때
문이다. 이 지방에 있는 바하이들은 그들의 자제의 교육, 특히
여성교육에 힘써 바하이 이상(理想)을 보급하고 고취하는 일에
198
바하올라와 신시대
힘쓰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봄이 와서 잎과 꽃이 햇빛을 받
아 필 때, 자연히 또 필연적으로 그 꽃봉오리의 껍데기가 떨어
짐과 같이, 새로운 정신생활이 민중 가운데 성장발달하면 묵은
관습과 편견이 천천히 없어짐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16)
교육
교육 - 인간을 훈육하고 지도하는 일, 그리고 그들의 타고난
능력을 훈련하고 발전시키는 일 - 은 세계 창생 이래 모든 성스
러운 예언자들의 최고의 목적이었다. 그리하여 바하이 가르침
가운데도 교육의 근본적 중요성과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가능
성이 가장 명백히 선언되어 있다. 교사는 문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그의 임무는 인간이 열망하는 가장 고귀한 일이다. 교
육은 어머니의 태안에서 시작되어 인간의 일생을 통하여 끝날
때가 없는 것이다. 교육은 바른 생활을 함에 있어서 영원히 필
요한 것이요, 또 개인과 사회의 행복의 기초가 된다. 바른 교육
이 보급되면 인류는 개선되어 이 세계가 낙원으로 변할 것이다.
현재 참으로 바르게 교육받은 사람은 드물어 거의 모든 사람
이 나면서부터 익혀진 비뚤어진 편견과 잘못된 이상과 그릇된
관념과 그리고 또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마
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전 생애를 하느님께 바치고 인
류에 봉사하는 것을 인생 최고의 이상으로 하고 전 인류의 행복
을 위하여 가장 잘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교육받은 사람이
어찌 그리도 적은가! 이런 것들은 좋은 교육의 근본적 요소이
다. 수학, 지리, 문법, 국어 등의 사실을 단지 기억 속에 집어넣
는 것으로는 고상하고 유위한 인물을 만드는 데에 그다지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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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참다운 문명
16. 이것은 터키 공화국 정치하의 사회진보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되는 바가 큰 것은 아니다. 바하올라께서는 교육이 보급되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버지 된 자는 반드시 그 자녀에게 읽기와 쓰기의 학문과
경전에 명령되어 있는 가르침을 교육하여야 한다. 이 명령된
의무를 게을리 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만일 부유한 자라면 그
의 자녀를 교육함에 필요한 금액을 그에게서 징수하는 것은 정
의원 의원의 책임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즉 어버이에게 그 힘
이 없는)에는 이 문제를 정의원이 맡아야 한다. 진실로 짐(朕)
은 정의원을 빈곤자들이 의지할 곳으로 하였다.
자기의 자녀 혹은 어느 누구의 자녀를 위한 자금으로서, 농업
이나 상업, 기타의 일로써 얻은 소득의 일부를 신용할 수 있는
자의 손에 위탁하여 둘 필요가 있다. 그 위탁된 것은 정의원 의
원(혹은 임원)의 지도 하에 그 자녀의 교육에 쓰여져야 한다.”
---‘세계에 관한 서한’
천성의 선천적 차이
바하이의 견해에 의하면 어린이의 천성은 교사의 뜻대로 어떤
모양으로든지 자유로이 만들 수 있는 밀랍과 같은 것이 아니다.
아니, 어린이는 처음부터 각각 고유한 성격과 개성을 하느님으
로부터 부여받은 것이 있어, 그것은 각각 특별한 방법에 의해서
만 가장 유효하게 발달시킬 수 있으며, 그 방법이 또한 각각의
경우에 따라서 독특하다. 두 사람이 전혀 동일한 능력과 재능을
가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러므로 참된 교육자는 두 사람을
동일한 모형(模型)에 넣으려고 무리하게 교육하는 일이 결코
없다. 실제로 그는 어떠한 모형에 누구를 억지로 넣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본연(本然)의 천성을 발달시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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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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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장려하고 보호하고 거기에 필요
한 양분과 원조를 주는 것이다. 그의 임무는 여러 가지 초목을
배양하는 정원사와 같다. 어떤 나무는 밝은 햇볕을 좋아하고 어
떤 나무는 서늘한 그늘을 좋아하며, 혹은 물가(水邊)를 좋아하
는 것, 건조한 야산을 좋아하는 것, 또 모래밭에서 잘 자라는
것, 비옥한 점토에서 잘 자라는 것이 있다. 각자는 그 필요로 하
는 것을 적당히 공급받아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결코 충분히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
이 말씀하셨다.
“예언자들께서는 인류에게 미치는 교육의 힘이 위대함을 인식
하지만 인간의 심의(心意)와 이해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선
언하신다. 같은 나이의 아이로서 출생지와 인종이 같고 교사에
게서 교육을 받으면서도 그 심의와 이해력이 서로 다름을 우리
는 본다. 조개껍질은 아무리 교육하여도(즉 갈아도) 빛나는 진
주가 될 수 없고, 검은 돌이 세계에 빛나는 보석으로 변할 수
없다. 가시 많은 선인장은 아무리 잘 길러도 좋은 나무가 될 수
없다. 이것은 즉, 교육으로서 인간이라는 보석의 본래의 성질
을 변화시킬 수는 없으나 놀라운 효과를 나타낼 수는 있다는
말이다. 이 효과에 의하여 인간 본래의 숨은 덕성과 능력을 외
부에 발양시킬 수 있는 것이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577쪽
품성의 훈련
교육의 주안점(主眼點)은 품성의 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훈
화(訓話)보다는 시범(示範)이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어린이의
제 9 장 참다운 문명
부모와 교사와 주위의 사람들의 생활과 성격이 교육에 가장 중
요한 요소가 된다.
하느님의 예언자들은 인류의 대교육자이시다. 그분들의 교훈
과 그분들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아이들이 그것을 이해하게
되자마자 곧 저들의 마음에 스며든다. 특히 중요한 것은 최상
의 교사인 바하올라의 말씀이다. 그분은 장래의 문화가 그 위
에 건설될 기초적 원칙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
씀하셨다.
“‘영광의 붓’을 통하여 계시된 것을 너희의 아이들에게 가르
치라. 위대와 위력의 하늘에서 내려온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
라. 그들에게 자비하신 분의 서한을 암송케 하고, 마슈리꼴 아
즈카르의 회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조로써 그것을 읊게 하
라.”---‘서방의 별’제 9권 제 7호 81쪽
예술, 과학, 기술
예술, 과학, 기술, 그 밖의 유익한 직업교육은 중요한 것이
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지식은 존재물(인간)의 날개와 같고 높은 데 오르는 사닥다
리와 같다. 지식을 얻는 일은 의무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상(地
上)의 인류를 이롭게 하는 여러 가지 과학의 지식을 말하는 것
이지, 단지 문자나 말의 연구로 시작하여 그것으로 끝나는 것
과 같은 과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예술의 소유자
는 세계 인류 가운데 큰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진실로 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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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지식은 그의 참된 보물창고이다. 지식은 명예, 번영, 기쁨, 유
쾌, 행복 및 자랑의 수단이다.”---‘타잘리야트의 서한’
범죄자 다루기
범죄자를 다루는 바른 방법에 대한 담화에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이 범죄를 피하고, 죄를 무서워하는
방법으로 저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저들에게 있어서
범죄 자체가 최대의 징벌이 되고, 최대의 죄의 선고가 되며, 또
가책이 되어서 형벌을 받을 죄악을 범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만일 남에게 압제하고 해하고 악행을 하는 자가 있어, 이에
대하여 피해자가 악으로써 갚는다면 이것은 복수이므로 비난받
을 일이다. 만일 아므루가 제이드를 모욕하였다 할지라도 후자
가 전자를 도로 모욕할 권리는 없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것
은 복수이므로 진실로 비난받을 행위이다. 그는 이 경우에 악
에 대하여 선으로써 갚아야 한다. 단지 그 죄를 용서할 뿐 아니
라 될 수 있으면 압제자를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
로 인간다운 행위이다. 복수로써 무슨 이익을 얻을 것인가. 이
경우에 두 사람의 행위는 동일하다. 한편의 행위가 좋지 못하
다면 다른 편의 행위도 역시 비난받을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다
른 점은 한 사람이 먼저 범죄하고 다른 한 사람이 후에 범죄 한
것뿐이다.
‘사람이 만일 너의 오른 쪽 뺨을 때리거든 왼쪽 뺨도 그에게
돌리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도 개인적으로 복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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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참다운 문명
않도록 인간을 가르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것은, 이리가
양의 우리에 침입하여 저들을 죽이려고 할 때 그것을 그대로
방임하여 이리의 행위를 장려하는 것을 의미함이 아니다. 아
니, 만일 이리가 양의 우리에 침입하여 양을 죽이려 하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보셨다면 그분은 반드시 양의 위해를 막기 위하
여 전력을 다했을 것이다........ .
사회조직은 정의(正義)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른바 죄의 용서와 사면이란 것은, 어떤 국민이
그대의 나라에 침입하여 그대의 집을 불사르고 그대의 가재(家
財)를 약탈하고 그대의 처자권속에게 위해를 가하고 그대의 명
예를 유린할 때, 그대가 이러한 잔인한 적의 면전에서 방관하
고 복종하여 저들의 모든 압제와 포학을 방임하라는 의미가 아
니다. 아니, 그리스도의 말씀은 개인 두 사람 서로의 행위에 관
한 것이다. 만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했을 때 피
해자는 그것을 용서하여야 한다. 그러나 사회는 인권(人權)을
보호하여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말할 것은, 즉 사회는 밤낮
용의주도하게 형법을 만들고 형벌의 기관과 수단을 준비하고
설정하는 데에 힘쓴다. 감옥을 짓고 쇠사슬과 형틀을 만들고
추방형장(追放刑場)과 가책 고문의 여러 계정을 만들어 이러한
수단으로써 죄인을 징벌하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덕성
의 파괴와 인격의 악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이루고 있다. 사회
는 본래 이와는 반대로 전력을 다하여 교육을 완성하여, 사람
들로 하여금 더욱 더 과학의 진보와 지식의 향상과 덕성의 함
양과 선량한 풍습의 습득과 악의 방지에 힘쓰게 하여, 죄악이
발생할 여지가 없도록 하는 데에 최대의 열의와 노력을 기울여
야 할 것이다.”---‘질의응답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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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신문의 힘
지식보급과 대중교육의 수단으로서의 신문의 중요성과, 신문이
바른 방향으로 향했을 때 개화(開花)에 이바지하는 큰 힘을 바하
올라께서는 충분히 인정하셨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오늘날 지상의 모든 비밀이 눈앞에 전개되어 신속히 나타나
는 신문의 각 면은 참으로 세계의 거울이다. 그것은 여러 나라
의 모든 사실을 보도하여 이것을 그림으로써 보여주고 말로써
들려준다. 신문은 청각(聽覺)과 시각(視覺)과 언어(言語)를
가진 거울과 같아서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요 위대한 일
이다.
그러나 신문기자와 편집자들은 이기주의와 탐욕의 편견을 벗
어나서 공정과 정의로써 단장하여야 한다. 저들은 진정한 사실
을 보도하기 위하여 충분히 사건의 진상을 규명한 후에 그 실
상을 기재하여야 한다. 이 피해자에 대하여 신문에 발표된 것
의 대부분은 진실성을 결한 것이었다. 좋은 논설과 성실은 지
위와 품위의 높이에 있어서 지식의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
과 같은 것이다.”---‘타라자트의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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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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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오늘날, 이‘종’은, 확실히 세계에 새 생명을 주고 지상의 모든
것을 통합시키기 위하여 왔느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 이
지상도‘압하’(최상 왕국)의 낙원이 됨을 볼 것이다. ---
바하올라 (라이스에게의 서한에서)
갈등과 협조
19세기에는 과학자들이 동식물계의 생존경쟁에 대한 연구에
많은 노력을 하여, 하급 자연계에 적용되는 원칙으로써 복잡한
사회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침을 삼는 자가 많았다. 그리하
여 사회의 약한 자를 죽이는 것은 종족개량을 위하여 정당한 일
이며 또한 필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하올
라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치셨으되, 우리가 만일 진보의 단계에
오르려고 할진대 뒤로 동물계를 돌아볼 것이 아니라 앞을 바라
보고 위를 쳐다 보아, 동물을 지도자로 삼지 말고 예언자를 지
도자로 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예언자들께서 가르치신 융합, 협
조, 동정 등의 원칙은 자기보존을 위하여 투쟁하는 동물계의 원
칙과는 정반대가 된다. 그리하여 이 양자는 서로 용납할 수 없
는 것이니 우리는 이 양자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 압돌바
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자연계의 지배적 특징은 생존경쟁이다. 그 결과는 적자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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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適者生存)이다. 이 적자생존의 원칙은 모든 곤란의 근원이 된
다. 그것은 인류 사이에 전쟁과 쟁투와 증오와 원한을 일으킨
다. 자연계는 포학, 이기, 침범, 횡포, 남의 권리침해, 기타 동
물계의 결함인 여러가지 비난할 것이 많다. 그러므로 이와 같
은 자연계의 요구가 사람의 자식들 사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안은 성공과 번영은 불가능하다. 자연은 투쟁을 좋아한다.
자연은 피에 목말라 한다. 자연은 포학하다. 왜냐하면 자연은
전능하신 하느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잔인한
성질도 동물계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경전을 계시
하여, 그 신성한 교육으로써 인류를 자연의 타락과 우매의 암
흑에서 구출하고, 이상적 덕성과 정신적 품성으로써 확증하고
자비심의 발생지로 하셨다....... 그러하건만 아! 이 어리석은
편견과 부자연한 불화와 반목적인 주장이 의연히 세계의 여러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여 일반적 진보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슬
픈 일이다. 이러한 지체(遲滯)는 신성한 문명의 원칙이 완전히
포기되고 예언자의 가르침이 망각된 사실에서 오는 것이다.”
---‘서방의 별’제 8권 15쪽
최대의 평화
모든 시대에 있어서 하느님의 예언자들은‘지상(地上)의 평
화와 인간 사이의 선의(善意)’의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셨다.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바하올라께서는 가장 열렬하시고 확
신 있는 어조로써 이러한 예언을 확증하시고 그 실현도 멀지 않
았다고 선언하셨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놀라운 주기(週期)에는 지구는 변화하고 인류는 평화와
미(美)로써 단장될 것이다. 조화와 성실과 융합이 불화와 쟁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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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와 살육에 대체되고, 각 국민과 종족과 국가 사이에는 사랑과
우정이 발현될 것이다. 협력과 동맹이 수립되어 마침내는 전쟁
이 사라질 것이다........ 세계평화는 지구의 한가운데 그 천막
을 칠 것이요, 축복받은‘생명의 나무’는 지구의 동쪽과 서쪽
에 그늘이 뻗히도록 무성해질 것이다. 이리와 어린양, 표범과
어린 산양, 사자와 송아지와 같았던,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
자, 적대하는 종파, 적대하는 국가들은 서로 가장 완전한 사랑
과 우정과 정의와 공정으로 행동할 것이다. 세계는 과학으로
써, 존재물의 비밀의 본체에 대한 지식으로써, 그리고 하느님
에 대한 인식으로써 가득 차게 될 것이다.”---‘질의응답록’
종교적 편견
어떻게 하여 최대의 평화가 이루어질 것인가를 분명히 보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과거에 있어서의 전쟁의 주요 원인을 검토
하고, 그것들에 대하여 바하올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전쟁의 최대 원인의 하나는 종교적 편견이었다. 이것에 대하
여 바하이 가르침은 서로 다른 종교와 종파의 사람들 사이의 원
한과 쟁투는 언제나 참된 종교 때문이 아니라 참된 종교의 필요
성 때문이었고, 그리고 그것이 허망한 편견과 모방과 그릇된 해
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명백히 가르쳐 주고 있다.
파리에서의 어느 강연에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종교는 만인의 마음을 융합하고 전쟁과 불화를 지상에서 없
애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에 삶을 주고 모든 사람에게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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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과 생명을 가져오는 것이어야 한다. 만일 종교가 증오와 분
열의 원인이 된다면 그러한 종교는 차라리 없는 것이 좋고, 그
러한 종교에서 물러서는 것이 참다운 종교적 행위가 될 것이
다. 치료의 목적은 병을 낫게 하는 것이니 만일 치료가 병을 악
화시킬 뿐이라면 그것은 차라리 내버려 두는 편이 좋을 것이
다. 사랑과 융합의 원인이 되지 않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압돌바하의 지혜’180쪽
그분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류역사의 시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여러 종교
는 서로 저주하고 서로 허망함을 비난하여 왔다. 그것들은 가
장 완고하게 서로 꺼리고 미워하고 원한을 일삼아 왔다. 종교
전쟁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최대의 종교전쟁의 하나인 십자군
전쟁은 2백년간 계속 되었다. 어떤 때에는 십자군이 승리하여
이슬람교도가 살육되고 약탈당하고 포로가 되었다.
또 어떤 때에는 이슬람교도가 승리하여 반대로 침입자가 학
살되고 섬멸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2백년 동안 싸웠다. 유럽의 광신자들이 황폐
의 잿더미를 남기고 동방에서 철퇴되어 저들 자신의 나라가 동
란과 격변 중에 있음을 발견하기까지, 그동안에 서로,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원만하게 전쟁을 계속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
을‘신성한 전쟁’의 하나라고 하였다.
종교전쟁은 지금까지 많았다. 기독교의 신교와 구교의 쟁투
와 알력에 희생된 신교도의 순교자는 90만이었다. 그 밖에 얼
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서 신음하였던가. 얼마나 가혹한 대
우를 포로들이 받았던가. 이 모든 것이 종교의 이름으로써 행
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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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은 유대교도들을 악마의 무리요 하
느님의 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저들은 유대교도들을
저주하고 박해하였다. 수많은 유대교도가 살육되고 그들의 집
은 불살라졌으며 가재는 약탈당하고, 또한 자녀들은 붙잡혀 가
고 포로가 되었다. 유대교도들은 또 기독교도들을 불신앙자라
하고, 이슬람교도들은 모세의 율법의 적이요 파괴자라고 하였
다. 그리하여 저들은 복수하기를 원하고 오늘날까지도 저주하
고 있다.
바하올라의 광명이 동방에 서광을 비췄을 때, 그분은 인류 통
합의 약속을 선언하셨다. 그분은 전 인류를 향하여‘너희는 모
두 한 나무의 열매이다. 하느님의 자비의 나무와 악마의 나무
라는 두 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
리는 서로 최선의 사랑으로써 사귀어야 한다. 어떠한 사람이든
지 악마의 백성으로 보지 말고 모든 사람을 유일한 하느님의
종으로 알아야 한다. 만일 누구나 무지한 자가 있으면 그는 교
육을 받고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 뿐이다. 무지한 자는 가르쳐
야 한다. 어린이와 같은 자는 어른이 되기까지 도와주어야 한
다. 질병과 같이 도덕적 상태가 나쁜 자는 그 덕행이 정화되기
까지 치료해 주어야 한다. 병자라 하여 싫어할 것이 아니요, 어
린이라 하여 버릴 것이 아니며 무지한 자라 하여 멸시할 것이
아니다. 그들을 사랑으로써 치료하고 교육하고 훈련하고 도와
주어야 한다. 전 인류가 가장 안전하고 지극히 행복하게 하느
님의 자비의 그늘에 살 수 있게 함에는 그러한 여러 가지가 행
해져야 한다.”---‘서방의 별’제 8권 76쪽
인종적 및 애국적 편견
인류의 일체성을 가르치는 바하이 교의(敎義)는 전쟁의 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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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나의 원인이 되는 인종적 편견을 타파한다. 어떤 인종은 자기네
가 다른 인종에 비하여 우수하다고 믿어,‘적자생존’의 원리에
의하여 자기네의 이익을 위해서는 약소 인종을 혹사(酷使)하
고, 혹은 이것을 근절해 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도 있
다. 세계 역사에 있는 오점(汚點)의 대부분은 이 원칙을 잔인하
게 적용한 실례들이다. 바하이의 견해에 의하면 모든 인종의 백
성은 하느님 앞에서는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다만 저들의 발전을 위한 적당한 교육이 필요할 뿐이요 다 같이
놀라운 내재적(內在的)능력을 가지고 있어, 각자는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構成員)의 생활을 빈곤하게가 아니라 풍부하게 완
성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
이 말씀하셨다.
“인종적 편견이란 일종의 환상(幻想)이요 단순한 미신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들 모든 사람을 한 종족으로 창조
하셨기 때문이다........ 최초에는 여러나라 사이에 구역 경계라
는 것이 없었고 어떤 땅이나 어느 한 민족에게 전속된 것이 아
니었다. 하느님 앞에서는 인종 사이에 아무 차별도 없다. 무엇
때문에 사람은 이와 같은 편견을 발견하였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와 같은 환상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전쟁을 지지하여
야 하는가.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서로 살육하라고 창조하신 것
이 아니다. 모든 인종, 민족, 종파, 계급은 동등하게 저의 하늘
에 계시는 아버지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유일의 참된 차별은 하느님의 계율에 대한 충성과 순종의 정
도에만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피어오르는 횃불과 같고, 또
어떤 사람은 인류의 하늘 위에 빛나는 별과 같다.
인류를 사랑하는 자는 국적, 신조, 피부색이야 어떻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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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가장 훌륭한 인간이다.”---‘압돌바하의 지혜’137쪽
인종적 편견과 마찬가지로 해로운 것이 정치적 또는 애국적
편견이다. 지금은 편협한 애국주의가, 세계를 자기나라로 하는
더 넓은 애국주의에 포괄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바하올라께서
는 말씀하셨으되,
“옛날에는‘자기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신앙(信仰)의 일부’로
되어 있었지만,‘장엄의 혀’는 그 현시의 날에 성명하건데,
‘자기나라만을 사랑하는 자에게 영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동포를 사랑하는 자에게 영광이 있다.’고 하셨다. 그분은 이러
한 고원한 말씀으로써 영혼의 새에게 새로운 날개를 주셨고,
‘계시의 글’에서 속박과 맹목적인 모방을 말소하셨다.”---
‘세계에 관한 서한’
영토적 야심
두 나라 혹은 두 나라 이상의 적대국이 열망하는 영토소유권
의 쟁탈로 인하여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소유욕은 개인 사이에
서와 마찬가지로 국가 사이에 있어서도 중대한 쟁투의 원인이
된다. 바하이의 견해에 의하면 토지는 결코 개인이나 또는 개개
의 국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인류에게 속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하느님에게만 속한 것이요, 만인
은 그 차용인에 불과한 것이다. 벵가지전투에 즈음하여 압돌바
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벵가지 전쟁의 소식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오늘의 세계
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인간의 야만성을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
다. 어떻게 인간이 아침부터 밤까지 싸워서 동료의 피를 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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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고 서로 살육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지상의 일부
를 얻기 위하여! 동물도 싸울 때에는 그 싸움의 직접적이며 또
한 그럴 듯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조그마한 토지를 갖기 위하여 동료를 살육하고 재난을 일으키
도록 타락한 것, 최고의 창조물이 최하급형의 물질인 땅을 얻
기 위하여 싸운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토지는 한 민족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속한 것
이요, 지구는 인간의 가정이 아니라 그 무덤이다. 승리자가 아
무리 위대하고 아무리 많은 나라들을 예속시켰다 하더라도 그
는 그 침략한 국토의 극소부분, 즉 자기의 무덤 외에 더 차지할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하여, 문명의 발전을 위하여 만일
더 넓은 땅이 필요하다면....... 그 필요한 것만큼의 영토는 확
실히 평화적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행해진다. 소수자의 세속적 이득을
위하여 무수한 가정에 무서운 참사(慘事)를 빚어내고 수많은
남녀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
나는 여러분이 모두 마음을 사랑과 융합에 집중시킬 것을 당
부한다. 전쟁할 마음이 일어나거든 더 강력한 평화를 위하는
마음으로써 거기에 대항하라. 증오의 마음은 더 힘 있는 사랑
의 마음으로써 분쇄하라. 세계의 병사들이 살육을 위하여 검을
빼거든 하느님의 병사들은 서로 굳게 손을 잡으라. 그리하면
인간의 모든 야만성은, 순결한 마음과 성실한 영혼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느님의 자비에 의하여 소멸될 것이다. 세계평화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하느님의 거룩한
사랑에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만일 여러분이 진심으로 지상의
모든 민족과의 친선을 바란다면 여러분의 사상은 정신적으로
214
바하올라와 신시대
또는 실제적으로 널리 전파될 것이요, 그것이 또한 다른 사람
의 소원이 되고 점차로 힘 있게 되어 마침내 만인의 마음에 도
달할 것이다.”---‘압돌바하의 지혜’23쪽
세계어
전쟁의 주요 원인을 대개 살펴보아, 어떻게 하면 그것을 피할
수 있는가를 알아본 우리는 지금‘최대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
한 바하올라의 건설적인 제의를 검토하여 보자.
그 첫째는 국제보조어의 선정이다. 바하올라께서는‘케타베
악다스’와 많은 서한에서 이것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 있다. 예
를 들자면‘에슈라가트의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제 6‘에슈락’(光輝)은 인류 사이의 일치와 융합이다. 융합
의 광선에 의하여 세계 각지가 항상 비칠 것이요, 거기에 이르
는 최상의 방법은 서로의 글과 말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나
의 서한에서 정의원 의원들에게 명령하노니, 세계를 한 나라
한 집안으로 하기 위하여, 현존하는 언어의 하나를 택하든지
혹은 새로운 언어를 창안하든지 하고, 또 마찬가지 방법으로써
하나의 공통 한 문자를 선택하여, 이것을 세계 각지의 학교에
서 아동들에게 가르치라.”고 하셨다.
바하올라의 이 제의가 처음으로 세상에 발표된 당시에 그것의
실현에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될 운명을 가진 루도비크 자멘호프
라는 남아가 폴란드에서 탄생하였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의 세
계어라는 이상이 자멘호프의 생애에 유력한 동기가 되었다. 그
리하여 그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로 에스페란토라는 언어가
215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발명되고 전파되어, 이래 35년여의 시련을 거쳐 오늘날은 국제
적 교제에 있어서 만족할 만한 매개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 언어는 영어, 불어, 독어 등의 국어 습득에 요하는 약 20분
의 1의 단시일에 숙달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1913년
2월, 압돌바하께서는 파리의 에스페란토 연회 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오늘날 유럽에서 일어나는 알력의 주요 원인의 하나는 언어
가 서로 다름에 있다. 우리는 이 사람은 독일 사람이고, 저 사
람은 이태리 사람이라고 한다. 또 우리는 영국 사람을 만나고
불란서 사람을 만난다. 저들은 다 같은 인종이면서 언어가 저
들 사이의 최대의 장벽이 되어 있다. 만일 국제보조어가 사용
된다면 저들은 다 한나라의 사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약 40년 전에 이 국제어에 대하여 쓰신 바가
있다. 그분은 국제어가 사용되지 않는 한, 완전한 융합은 실현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오해는 여러 사람
서로의 교제를 방해하고, 이 오해는 국제보조어가 사용되지 않
고는 도저히 제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양사람 전체는 서양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에
대하여 충분히 알지 못하고, 서양사람 또한 동양사람에게 동정
적인 접촉을 가지기 어렵다. 이들의 사상은 궤짝 속에 감추어
져 있는데 국제어만이 이것을 열수 있는 열쇠이다. 우리가 만
일 세계어를 가지게 된다면 서양의 서적이 세계어로 번역되어
동양사람은 그 내용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요, 마찬가지로 동
양의 서적이 서양사람의 편의를 위하여 세계어로 번역될 것이
다. 동서 융합을 촉진하는 최대의 수단은 공통어이다. 그것은
저 세계를 한 집안으로 만들어 인류 발달의 최대의 자극이 될
216
바하올라와 신시대
것이다. 그것은‘인류의 일체성’의 깃발을 올릴 것이요 지구상
으로 하여금 하나의 세계공통국이 되게 할 것이다. 이것은 사
람의 아들 사이의 사랑의 원인이 될 것이요, 모든 인종 사이의
좋은 교제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자메호프’선생의‘에스페란토’어의 발명은 진실로
하느님을 찬송할 일이다. 그것은 국제적 교제수단으로서의 모
든 가능성을 구비하여 있다. 우리는 이 귀한 노력에 대하여 그
에게 감사하여야 한다. 그는 이것으로서 인류동포에 훌륭히 공
헌하였기 때문이다.‘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선구자들의 부단
한 노력과 자기희생에 의하여 그것은 전 세계에 퍼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다 이 말을 배우고 될 수 있는 한 널
리 전파하여, 더욱 더 이것이 일반에게 인정되고 세계 모든 나
라와 정부의 받아들여, 모든 공립학교의 정과(正科)의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에스페란토’가 장래의 모든 국제
대회의 용어가 되고 만인이 그 자국어와 이 국제어의 두 가지
말만 습득하면 좋도록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완전한 융합이
세계의 만민 사이에 수립될 것이다. 오늘 여러 국민과 교제하
기 얼마나 곤란한가를 생각해 보라. 만일 우리가 50개의 국어
를 습득하였다 할지라도 아직도 그 국어로 통하지 못하는 나라
에 여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전력을 다하
여‘에스페란토’가 널리 세계에 보급되도록 노력하여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에스페란토에 대한 이와 같은 담화는 명확하고 또한 고무적인
것이지만, 정의원이 바하올라의 가르침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하
여 행동하기 까지는, 바하이신앙은 에스페란토나 다른 자연어
혹은 인조어의 어느 것이나 결정짓지 않을 것은 사실이다. 사실
217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상 압돌바하께서는 한 서한에서‘통합의 일곱 등불’가운데 언
어 통합을 마지막에 두셨다. 이 사상은 세계가 국가통합, 인종
통합, 종교통합을 이룩하기 전에는 언어통합의 성취가 불가능
함을 시사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와 같은 과도적(過渡的)
기간에는, 세계적 보조어의 선택이 결국 가능하게 될 때 그 어
느 것이 결과로써 나타날 것인지는 예상할 수 없다.
국제 연맹
바하올라께서 여러번 힘있게 제창하신 또 하나의 제안은, 세
계국제연맹이 국제평화의 유지를 위하여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
이었다. 1865년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낸 서한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주권자의 집단이여! 당신들의 알력을 조정하라. 그리하면
많은 군병과 군비는 필요 없을 것이요, 다만 당신들의 영토와
인민을 보호함에 필요한 것으로써 족할 것이다....... 주권자들
의 집단이여! 단결하라. 그리하면 당신들 사이의 불화의 폭풍
은 잠자고 당신들 주위의 백성은 안식을 얻을 것이요....... 당
신들 중의 어느 하나가 남을 공격하면 당신들 전체가 그에 대
항하여 일어서라. 그것이 명백한 정의의 표명이기 때문이다.
1875년 압돌바하께서는 세계 국제연맹의 설립을 예상하셨는
데, 오늘의 세계가 그러한 연맹의 설립을 열심히 모색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특히 흥미 있는 일이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17)
“진실로 참다운 문명이 그 깃발을 세계의 중심에서 올리는
218
바하올라와 신시대
17. 본서의 저자는 이글을 1919년으로 부터 1920년 사이에 썼다.
그날은, 높은 야심을 가진 어떤 고귀한 주권자들, 즉 인류애(人
類愛)의 정렬에 빛나는 여러 태양이 전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확고한 결심과 날카로운 이지(理智)의 힘으로써 걸어 나와 세
계평화의 문제에 대하여 회의를 가질 때일 것이다. 저들의 이
상을 실현하는 수단을 확립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연합을 수립
하여, 회피할 수 없는 조건하에 서로의 확고한 조약과 강력한
동맹이 체결되는 때일 것이다. 여기에는 전 인류가 그 대표를
통하여 참가하고 참으로 세계평화를 위하여야 하는 이 조약을
확인하기 위하여 초청될 것이며, 지상의 모든 민족에 의하여
이 조약이 신성시(神聖視)되어야 할 것이니, 이 위대한 조약으
로 하여금 힘 있게 하고 지속하게 하는 것이 세계 동맹국의 의
무일 것이다.
이와 같은 세계적 조약에서 각국의 국경과 경계가 결정되고,
각 정부의 관례(慣例)와 법률이 확인될 것이다. 그리고 여러
나라의 일체의 합의사항과 정부 간의 협정이 제출되어 적당한
형식으로 결정될 것이다. 각국 정부의 군비(軍備)한도도 역시
이와 같이 하여 평정(評定)될 것이니 어느 한 나라의 군비가
증대되는 것은 다른 나라의 공포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
힘 있는 동맹의 기초는, 후일 어느 한 나라가 이 조약의 어느
하나라도 깨뜨릴 때는 세계의 다른 모든 나라들이 총 궐기하여
이것을 굴복시킬 만큼 확고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세계라는
병든 몸에 이와 같은 대요법(大療法)이 적용된다면 그것은 확
실히 세계 일반에 절제(節制)를 가르침으로써 부단히, 또 영구
히 그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문명의 신비한 힘’134~140쪽
바하이 견해에 의하면 국제연맹은 세계의 질서와 평화의 문제
219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에 관한 가르침을 완수할 수는 없다. 바하이 가르침은‘소평화’
(국제적 협조를 달성하려는 정치적 국가의 노력)와 바하올라의
‘최대의 평화’와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이
‘최대의 평화’는 사회적 방책을 정신적 융합의 터전에서 실현
하려는 것이니 그것만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1919년 12월17일,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현재 세계평화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 문제의 기초를
안전케 하고 그 설립을 공고케 하며 그 기구(機構)를 강력케 하
기 위해서는 양심의 융합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국제연
맹은 존재하기에 이르렀으나 그러나 그것은 전 세계의 평화를
확립할 수는 없다. 바하올라께서 기술하신 최고재판소가 최고
의 강대성과 위력으로써 이 성스러운 일을 완수할 것이다.”
국제 중재(國際仲裁)
바하올라께서는 또 국제재판소의 설립을 제창하여, 국가 사이
의 알력을 전쟁수단에 의하지 않고 정의와 도리로써 조정할 것
을 권하셨다.
1911년 8월 압돌바하께서는 국제 중재에 관한‘모흥크’회의
의 서기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약 50년 전 바하올라께서는‘케타베 악다스’에서, 사람들에
게 세계평화 수립을 명령하시고 만국을 국제 중재의 거룩한 잔
치에 초청하셨다. 그리하여 모든 경계와 국제적 명예와 재산과
그 밖의 국가 사이의 중대한 문제가 정의의 중재재판소에 의하
여 조정되고, 어느 나라이든지 이 결정을 준수하여 감히 거부
220
바하올라와 신시대
하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셨다. 만일 두 나라 사이에 어떤 분
쟁이 발생했을 때 이 국제재판소에 의하여 심판될 것이니, 마
치 두개인 사이에 재판관이 내리는 판결과 같이 중재되고 결정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언제든지 이 결정을 깨뜨리는 나라
가 있으면 다른 모든 나라들이 이 불법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일어서야 한다.
또 1911년 파리에서의 강연에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모든 국가의 국민과 정부는 각 국가와 정부에서 선출한 대
표자들에 의하여 조직되는 최고재판소를 설립하여야 한다. 그
리고 이 대회의 의원들은 일치 협력 하여야 한다. 모든 국제적
성질을 가진 분쟁은 이 법정에 제출되어 전쟁의 원인이 되는
일체의 사건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것이 그 본무(本務)가 될 것
이니, 이 재판소의 사명은 전쟁을 방지함에 있는 것이다.”
---‘압돌바하의 지혜’145쪽
국제연맹이 창설되기 전 25년 동안 상설 중재재판소가 헤이
그에 설치되어(1900년) 많은 중재조약이 조인되었으나 이것들
의 대부분은 바하올라의 원대한 제안에는 멀리 미흡한 것이었
다. 두 강대국 사이의 모든 분쟁사건에 적용되는 중재조약은 한
번도 체결된 일이 없었다. 각국의 사활(死活)에 관계되는‘중대
한 이해’와‘명예’와‘독립’에 관한 문제는 특히 제외되어 있었
다. 그뿐 아니라 여러 나라가 참가한 조약의 준수도 그 효과적
인 보장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하올라의 제안에는 국경
문제, 국가적인 명예문제, 사활에 관계되는 이해문제들이 포함
되어 있고, 그 조약은 배후에 세계 국제연맹의 최상의 보장을
221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요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제안이 완전히 실행될 때 비로소 국
제 중재가 충분히 실효를 나타내어 전쟁의 재난이 마침내 지상
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군비 제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세계의 모든 정부는 전체적 조약에 의하여 군비를 동시에
폐지하여야 한다. 한 나라가 군비를 폐지하여도 다른 나라들이
이것을 거부하면 아무 효과가 없다. 세계 각국은 서로 이 가장
중대한 문제에 일치 협력하여 한결같이 인간 살육의 흉기를 버
려야 한다. 한 나라가 그 육해군의 예산을 증가하는 한, 다른
나라들도 부득이 그 자연적 또는 가상적(假想的) 이해를 위하
여 그 경쟁에 광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1914년 5월11~14일의 미르자 아아맏 소오랍의 일기에
서
무저항
바하이들은 바하올라의 명백한 명령에 의하여, 한 종교단체로
서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단순한 자위(自衛)의 목적을 위
해서라도 전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페르시아에서는 수만
의 바비와 바하이들이 그들의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이
대업의 초기에는 바비들이 가끔 검으로써 용감히 자기와 자기
가족을 보호하였다. 그러나 바하올라께서는 그것을 금하셨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바하올라께서 출현하셨을 때, 그분은, 이와 같은 수단에 의
222
바하올라와 신시대
하여 진리를 공포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자위의 목적에서라 할
지라도 용허(容許)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분은 검
으로써 통치하는 것을 부정하시고‘성스러운 전쟁’의 명령을
폐지하셨다. 그분은 말씀하셨으되,‘너희가 죽음을 당하는 것
이 남을 죽이는 것보다 나으리라.’하셨다. 하느님의 대업이 세
상에 널리 퍼지는 것은 신자들의 굳은 뜻과 확신을 통하여 이
루어지는 것이다. 신자들이 과감하고 대담하게 절대적인 헌신
으로써‘하느님의 말씀’을 찬미하기 위하여 일어서서, 현세의
사물에서 눈을 돌려 하느님을 위하여, 또 하느님의 힘에 의하
여 봉사의 생활에 들어갈 때 진리의 말씀이 승리를 얻을 것이
다. 이들 축복받은 영혼은 그 붉은 피로써 대업의 진리를 증거
하고 자신의 신앙의 진실성과 헌신과 항심(恒心)으로써 그것을
증명하나니, 주께서 이것으로써 대업을 홍포(弘布)하시고 고집
불통을 정복하신다. 우리는 하느님 이외에 보호자를 구하지 않
고 우리의 생명을 그분의 손에 맡기어 적을 대하고 순교를 맞
아들인다.”--- 본서를 위하여 집필한 압돌바하의 수기
바하올라께서는 그 대업의 박해자의 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신 일이 있다.
“하느님의 자비 크심이여! 이 백성은 세계를 개조하기 위하
여 준비하고 있나니 파괴를 위한 무기는 필요치 않다. 선행(善
行)이 그 군대요, 자선(慈善)이 그 무기이며, 하느님께 대한 외
경(畏敬)이 그 사령관이다. 공정으로써 판단하는 자에게 행복
이 있을 것이니라.
하느님의 정의에 의하여 말하거니와, 이 사람들은 그 인내와
침착과 체념과 만족에 의하여 정의의 대변자가 되었다.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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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유순함은 남을 죽이기보다 자기가 죽임을 당함을 택하기까지
이르러, 그들 지상의 박해받은 자들은 세계 역사에 아직 기록
된 일이 없고 여러나라 사람들이 일찍이 보지 못했던 고난을
달게 받았다.
어떻게 그들은 자기를 보호하려 하지 않고 이와 같은 무서운
시련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가. 그들의 체념과 침착의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그 참된 원인은‘영광의 붓’으로써 부과시킨 금
제(禁制)였나니, 그들은 저 인류의 주이신 하느님의 강대와 위
력에 의한 통치의 열쇠를 잡은 것이다.”
---‘이리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한’(쇼기 에펜디의 영어 번역)
바하올라의 무저항주의론의 정당성은 그 결과에 의하여 증명
되었다. 페르시아에서 한 사람의 신도가 순교할 때마다 바하이신
앙은 그 종문(宗門)에 백 사람의 새 신도를 얻었다. 저들 순교자
들이 기쁨으로써 주이신 하느님의 발 앞에 생명의 관(冠)을 던진
것은, 참으로 저들이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는 새 생명, 무한한 풍
부(豊富)와 희열(喜悅)의 생명을 발견한 때문임을 증명하는 것
이다. 이것에 비하면 지상의 쾌락은 먼지와 같은 것이며 잔인을
극한 육체적 고통도 공기와 같이 가벼운 것이었음을 증거한다.
정의의 전쟁
바하올라께서는 그리스도와 같이 신도들에게, 개인으로서 또
는 종교단체로서 그 적에 대하여 무저항과 관용의 태도를 취하
라고 하셨지만, 그러나 사회로서는 불의와 포학을 방지하는 것
이 의무라고 가르치셨다.
만일 개인은 자신이 박해와 손상을 받았을 때 그것을 용서하
224
바하올라와 신시대
여 복수하지 않는 것이 옳으나, 사회가 그 내부에 약탈과 살육
이 자행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악행을 억제하
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좋은 정부의 의무이다.18) 이것은 또
한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니, 만일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
를 박해하거나, 모욕할 때, 이와 같은 압박을 방지하기 위하여
다른 모든 나라들이 협력하는 것이 그 의무이다. 압돌바하께서
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떤 때에는 호전적(好戰的)이며 야만적인 종족이 맹렬히 다
른 나라를 공격하여 그 나라의 민중을 대량으로 학살하려 하는
일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방어가 필요하다.”
---‘압돌바하의 지혜’170쪽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공격할 때 그 밖의 여러 나라들이
중립 방관하여, 직접 자기나라와 이해관계가 없는 한, 그 사건
에 대하여 어떤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인류의 지금까지의 관례
였다. 공격을 받는 나라가 아무리 약소할지라도 방어의 무거운
짐을 혼자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바하올라의 가르침은 이 관례를
타파하셨으니, 방어의 책임이 단지 공격받는 나라에만 있는 것
이 아니라 개별적 또는 단체적으로 모든 다른 나라에도 있다고
하셨다. 인류 전체가 한 사회이므로 어느 한나라에 대한 공격도
그 사회에 대한 공격이니 그 사회에 의하여 그것이 처치되어야
한다. 만일 이 주의가 일반에 인정되고 실행된다면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려고 하여도, 침략을 받는 나라뿐 아니라 세
계 각국의 반항을 받을 것을 미리 알 것이니, 그것을 아는 것만
으로도 가장 대담하고 호전적인 나라라도 억제하기에 족할 것
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 나라 사이에 충분하고 강력한 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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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18.‘마슈리꼴 아즈카르’에 관련하여 테니슨의 시를 상기해 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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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이 설립된다면 전쟁은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국제적
무질서의 구 상태에서 국제협력의 신 상태로 넘어가는 과도기
에는 아직도 침략적 전쟁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병력
기타의 고압적 행동은 국제적 정의와 융합과 평화를 위하여 절
대적인 의무일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전쟁도 때로는 평화의 중요한 기초가 되고, 파괴도 재건의
원인이 된다. 이 전쟁은 본질적으로 평화의 음곡(音曲)에 조자
를 맞추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그 광포(狂暴)가 친절 그것이
요 그 압제는 정의의 본질이며 그 전쟁은 화해의 원천이다. 오
늘의 유력한 군주(君主)의 참된 의무는 세계평화를 촉진시키는
일이니, 그것은 진실로 세계 만민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문명의 신비한 힘’
동서양의 융합
세계평화를 이룩함에 필요한 또 한 가지 요소는 동서양의 연
결이다.‘최대의 평화’는 단지 적대 행위를 정지하는 것만이 아
니라 종래 분산하여 있는 지구상의 여러 민족이 서로 잘 살도록
결합하여 성실히 협력함에 있다. 그리하여 인류는 더 많은 귀중
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파리에서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과거에도 현재와 같이 정신적 진리의 태양은 언제나 동양의
지평선에 떠올랐다. 모세께서는 동양에 출현하시어 민중을 지
도하고 교훈하셨다. 그리스도께서도 동양의 지평선에 일어나셨
다. 모하멧께서도 동양의 국민에게 보내지셨다. 바압도 동방의
나라 페르시아에 출현하셨다. 바하올라께서도 동양에서 생활하
시고 가르치심을 전하셨다. 모든 위대한 정신적인 교사들은 동
양에 출현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라는 태양은 동양에 서광을 비추었지만 그
빛은 서양에서 명확히 빛났고 그 영광의 광채가 거기서 한층
더 분명하였다. 그분의 가르침의 신성한 광명은 보다 위대한
힘으로써 서방세계에 빛났고 그분이 탄생하신 땅에서보다 서방
에서 더 빨리 발전하였다.
현재 동양은 물질적 진보를 필요로 하고 서양은 정신적 이상
의 부족을 느낀다. 서양은 동양에서 정신적 광명을 얻는 대신
에 과학적 지식을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선물교환이
있어야 한다. 동서양은 서로 그 부족한 것을 주기 위하여 융합
되어야 한다. 그 융합에 의하여 정신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에
표현되고 실현되어 참다운 문명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 받음으로써 위대한 조화를 이루고 만민
이 확고히 결합되어 위대한 완성의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그
리하여 이 세계는 하느님의 속성을 반사하는 빛나는 거울이 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동서양 사람들은 전 심혼(心魂)을 기울여
이 고귀한 이상을 실현하여 지구상의 모든 나라의 통합을 확립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이 새
로워지고 모든 사람의 눈이 열리며 가장 놀라운 힘이 생겨 인
류의 행복이 보장될 것이다........ .그것은 전 인류가‘영광의
나라’통합의 천막에 함께 모이는 때에 이 지상에 오게 될 낙원
이다.”---‘압돌바하의 지혜’17쪽
227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228
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어느 시대에나 어느 종교제(宗敎制)에서나 하느님의 모든 계
율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하고 고쳐지는 것임을 알라. 다만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는 사랑의 법칙만은 예외여서 변하지 않
느니라. --- 바하올라
수도원 생활
바하올라께서는 모하멧과 같이 그 신자들에게 세상을 등진 수
도원생활에 들어가는 것을 금하셨다. 나폴레옹 3세에게 보내신
그분의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 승려(僧侶)의 집단이여! 너희는 수도원 독방에 몸을
감추지 말고, 나의 명령에 따라 그것을 버리고 너 자신과 인류
의 영혼을 이롭게 하는 일에 종사하라.
짐(朕)이 너희에게 부정(不貞)을 금하고 정절(貞節)을 명하
였나니, 너희는 모름지기 결혼생활에 들어가서 후사(後嗣)를
얻으라. 너희는 이미 자의(自意)의 길에 들어 주의 길을 잊었
도다. 너희는 주를 두려워함으로써 스스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 만일 사람이 없다면 나의 나라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를
229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것이며 어떻게 나의 특질과 속성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깊
이 생각하라. 그리하여 미망(迷妄)과 혼수(昏睡)에 빠지지 말
라. 결혼하지 않는 그리스도께서는 거처할 곳이 없었고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지만 그것은 모두 반역자들 때문이었느니라.
그분의 영혼의 신성함은 너희의 공상으로 하는 그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세상 사람
들의 사상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지위를 알고자 간구하라. 아는
자에게 행복이 있느니라.”
그리스도께서 결혼한 자들을 그분 제자로 택하셨고 그 분 자
신과 그분의 제자들이 세상 사람과 친밀히 교제하여 그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을 본다면, 후세의 기독교파가 수도원생활과 승
려의 독신생활의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모하멧의‘코란’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나는 마라아의 아들 예수에게 복음을 주고 신자들의 마음에
친절과 자비를 부어넣었다. 그러나 수도원생활은 저들 자신이
생각해 낸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다만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하기를 명하였건만 그들은 지켜야 할 것을 그대로 지키지 않았
다.”---‘코란’제 57장 27절
옛날에는 그때의 형편에 있어서 수도원생활을 정당화시키는
어떤 구실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바하올라께서는 이제는 그러
한 구실이 통용될 수 없다고 선언하셨다. 실제로, 가장 경건하
고 하느님을 외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동포와 교제를 끊고 사
람의 어버이 될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면 그것은 인류의 정신적
빈곤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230
바하올라와 신시대
결혼
바하이 가르침은 일부일처주의를 주장하고 있으며, 바하올라
께서는 혼인은 그 당사자 쌍방과 그들 부모의 동의를 조건으로
하여 성립될 것이라고 하셨다. 즉‘케타베 악다스’에 다음과 같
이 씌어 있다.
“진실로‘바얀’(바압의 계시)에서는 혼인을 양자(신랑과 신
부)의 동의로써 성립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사랑과 우정과 여
러 사람의 융화를 원하므로 부모의 동의도 그것의 조건으로 한
다. 그리함으로써 원한과 악감정이 없어질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어느 질문자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혼인문제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계율에 의하면, 그대가 먼저
한 사람을 택하라. 그리고 부모의 동의를 얻으라. 그대가 택하
기 전에 부모들은 간섭할 권리가 없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563쪽
바하올라의 이와 같은 세심한 주의의 결과로써, 기독교국이나
이슬람교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혼인으로 인한 부모와 자식
사이의 불화가 바하이 사회에서는 거의 없고, 이혼하는 일도 매
우 드물다고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분은 혼인에 관하
여 다음과 같이 쓰셨다.
“바하이 혼약은 양편의 완전무결한 동의일치에 의한다. 그들
은 최대의 주의를 기울여 서로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서로의
굳은 약속은 영원한 결합을 이루고, 그 의향은 영구한 친화와
231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우의와 일치와 생활이어야 한다.
바하이의 혼인은 남녀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결합하여 하
느님의 모든 세계에서 영원한 일치를 얻고 서로의 정신생활을
개선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하이의 혼인이다.
바하이 결혼식은 대단히 간소해서, 신랑과 신부가 두 사람의
바하이 증인 앞에서‘진실로 저희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
겠습니다.’라고 서약하면 된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2권 325쪽
이혼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혼에 관해서 예언자들께서 가르치신 바
가 시대의 상태에 따라서 다르다. 이혼에 관하여 압돌바하께서
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바하이 벗들은 서로 미워함으로 인한 부득이한 사정이 아닌
한, 결코 이혼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러한 경우에는 두 사람
은 신성회의 승인을 얻어 별거할 수 있다. 이 경우에 그들은 만
1년 간 참고 기다려야 하며 그 동안에 다시 조화(調和)를 얻을
수 없으면 그들의 이혼은 성립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의 기초는 조화와 사랑과 통일과 친족관계와 융합에 있는
것이요, 결코 알력, 특히 부부간의 알력에는 있을 수 없다. 만
일 그들의 한편이 이혼의 원인이 된다면 그는 반드시 큰 곤란
에 빠질 것이요, 무서운 재앙을 당하여 심심한 후회를 경험할
것이다.”--- 아메리카의 바하이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혼에 관해서도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바하이 가르침뿐만
232
바하올라와 신시대
아니라 그 사람이 거주하는 나라의 법률에 따라야 할 것은 물론
이다.
바하이력(曆)
서로 다른 민족과 서로 다른 시대에, 시간을 계산하고 날짜를
정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어서 오늘날에는 몇 가지 역법(曆
法)이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서부 유럽의 그레고리력, 동부 유
럽 여러 나라의 쥴리앤력, 유대인 사이의 히브리력, 이슬람교도
사이의 이슬람력이 그것이다.
바압께서는 새 역법을 제정하심으로써 그분은 선구자로서 세
상에 전한 종교제(宗敎制)의 중요성을 강력히 표명하셨다. 이
역법에서는 그레고리력에서와 같이 태음월(太陰月)을 폐지하
고 태양년(太陽年)을 채용하셨다.
바하이력의 1년은 매월 19일의 19개월(즉 361일)로서, 이
것을 태양년에 합치시키기 위하여 제 18월과 제 19월 사이에
윤일(평년은 4일, 윤년은 5일)을 두었다. 바압께서는 각월의 이
름을 하느님의 속성(屬性)으로써 명명하셨다. 바하이의 신년은
고대 페르시아의 신년과 마찬가지로 천문학적으로 정해져 있어
춘분(3월 21일)에 시작되었고, 바하이 기원(紀元)은 바압선언
의 해(즉 서기 1844년, 헤쥬라트 기원 1260년)에 시작된다.
가까운 장래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공통의 역법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세계 통합의 시대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세계의 전 민중에게 용납되기 어려운 종래의 여러 가지
역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역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233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생각되는 데, 바압께서 제시한 이 역법보다 더 간편한 것을 생
각해 내기 어려울 것이다.
바하이 달은 아래의 표와 같다.
신성회
압돌바하께서는 그분의 지상에서의 사명을 마치시기 전에 바하
올라의 문서 가운데 확립되어 있는 행정질서의 발전을 위한 기반
을 제시하셨다. 신성회라는 제도가 고도(高度)로 중요하다는 것
을 보이기 위하여 압돌바하께서는 어느 서한에서, 그분 자신이
234
바하올라와 신시대
달 아라비아어 한국어 초하룻날
1 바 하 광휘(光輝) 3월 21일
2 잘 랄 영광(榮光) 4월 9일
3 자 말 미려(美麗) 4월 28일
4 아자맡 장엄(莊嚴) 5월 17일
5 누르 광명(光明) 6월 5일
6 라흐맡 자비(慈悲) 6월 24일
7 칼레맡 언사(言辭) 7월 13일
8 카말 완전(完全) 8월 1일
9 아스마 명칭(名稱) 8월 20일
10 에즈잗 권능(權能) 9월 8일
11 마쉬얕 의지(意志) 9월 27일
12 앨름 지식(知識) 10월 16일
13 꼬드랄 위력(威力) 11월 4일
14 꼬올 발언(發言) 11월 23일
15 마사엘 질문(質問) 12월 12일
16 샤라프 명예(名譽) 12월 31일
17 솔탄 주권(主權) 1월 19일
18 몰크 지배(支配) 2월 7일
윤일(閏日) 2월26일~3월1일
19 알라 고원(高遠) 3월 2일
원문을 검열하고 정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번역이 출판되기 전
에 카이로 신성회에서 인가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언하셨다.
신성회란 것은 각 지방의 바하이 공동체에서 매년 선출되는 9
인으로 조직된 행정기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 공동체를 대
리하여 활동하며 모든 문제에 대한 결정권이 부여되어 있다. 그
명칭은 일시적인 것이나 장래에는‘신성회’가‘정의원’으로 교
체될 것이다.
교회의 조직과는 달라서 이러한 바하이 기구는 교회적 제도라
기 보다는 사회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들은, 국가기관
의 재판소에 사건을 제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바하이 사이
에 일어난 여러 가지 문제와 곤란한 일에 대하여 협의의 법칙을
적용한다. 그리하여 공동체 전체를 통하여 정의와 통일을 증진
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
신성회는 결코 승려나 목사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교의(敎義)를 지지하고 장려하는 일, 실체의 봉사를 고무(鼓
舞)하는 일, 집회를 개최하는 일, 통일을 유지하는 일, 공동체를
위하여 바하이의 재산을 신탁보관 하는 일을 하고, 그 밖에 일
반사회에 대한 일과 다른 바하이 공동체와의 관계에 있어서 공
동체를 대표하는 임무를 가진다.
지방신성회와 전국신성회의 성격에 대해서는 최종장(最終章)
의 압돌바하의‘유훈’을 취급한 부분에서 더 자세히 기술하겠
거니와 그 일반적인 기능은 수호자 쇼기 에펜디에 의하여 다음
과 같이 정의(正義)되었다.
235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교도(敎導)의 내용과 그 방향, 그 방법과 수단, 그 보급, 그
강화 등의 문제는 그것이 대업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것이 결코 신성회의 주의를 전부 집중
할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바하올라와 압돌바하의 여러 서한을
주의 깊게 연구하면 대업의 이해관계 못지않은 중요한 다른 의
무가, 각 지방의 벗들에 의하여 선출된 대표자들의 임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임무는 부단한 주의와 신중한 습격
을 받지 않도록 대업의‘성당’을 지키는 것이다.
그들은 바하이 벗들 사이의 친목과 화합을 증진시키고 여러
사람의 마음에서 불신, 냉담, 소격(疏隔)의 모든 자취를 제거
하도록 노력할 것이요, 대업의 봉사를 위하여 활동적이며 충심
으로의 협조(協調)를 확보하여야 한다.
그들은 항상 피부색, 계급, 종교 등에 관계없이 빈곤자, 병
자, 불구자, 고아, 미망인 등에 구조의 손을 뻗쳐 최선을 다해
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써 청년의 정신적 또
는 물질적인 계몽에 힘쓰고 또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방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능할 때에는 언제든지 바하이 교육기관
을 설립하여 그 교육기관의 조직을 감독하고 그것의 진보발전
을 위하여 최선의 수단을 다해야 한다.
그들은 바하이 벗들을 위하여 규칙적인 집회와 축제회합과
기념회합 이외에 다시 더 나아가서 인류의 사회적, 지능적, 정
신적 이익에 이바지하고, 또 그 진흥을 목적으로 한 특수한 집
회를 마련해야 한다.
236
바하올라와 신시대
그들은 대업이 아직 유년기에 있는 오늘에 있어서 모든 바하
이 출판물과 번역을 감독하고, 전반에 걸쳐 모든 바하이 문헌
이 권위 있고 정확한 표현이 되기를 기하고 그것들이 일반대중
에게 잘 선포되도록 힘써야 한다.”
바하이 제도에 고유한 모든 가능성은, 우리가 근대문명이 그
정신력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빨리 붕괴되고 있는가를
깨달을 때에라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력만이 지
도자들에게 필요한 책임과 겸손한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이요, 정신력만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構成員)들에게 요구되는
충성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바하이 축제일, 기념일, 단식일
축제
바하이신앙의 중요한 즐거움은 1년을 통하여 시행되는 여러
가지 축제와 성일(聖日)에 나타난다.
1912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열린 노우루즈 축제회합에
237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바압의 탄신 1819년 10월 20일
바압의 선언 1844년 5월 23일
바압의 순교 1850년 7월 9일(정오)
바하올라의 탄신 1817년 11월 12일
레즈완 축제 (바하올라의 선언) 1863년 4월 21일~5월 2일
바하올라의 승천 1892년 5월 29일(오전 3시)
성약의 날 11월 26일
압돌바하의 승천 1921년 11월 28일(오전 1시)
단식 기간 3월 2일 부터 20일까지(19일 간)
노우루즈 축제 (바하이 신년) 3월 21일
서의 강연에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신성한 계율에는, 어느 시대 어떤 종교제에서나
거룩한 축제와 안식일과 휴일이 있다. 그날에는 상업, 공업, 농
업, 기타 모든 직업은 쉬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일반적인 집회를 개최하여 하
나와 같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통일과 일치조화가 만인의
눈에 보일 것이다. 이것은 거룩한 날이므로 결코 등한시 하거
나 단순히 쾌락을 추구하는데 씌어져서는 안된다. 이 기간 중
에 사람들의 영원한 복리를 위하여 여러 가지 기관이 설립되어
야 한다........ 오늘날 민중을 지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효과는
없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러한 날에 단지 바하이에게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 미치는 확실한 박애(博愛)와 이상(理想)의
증거를 남겨야 한다. 이 훌륭한 종교제에 있어서 박애사업은
하느님의 자비의 발현이므로 예외 없이 전 인류를 위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각각 전 인류
를 위한 하느님의 자비와 같이 되기를 희망한다.
노우루즈와 레즈완 축제, 바압과 바하올라의 탄신일, 바압선
언 기념일 (이날은 압돌바하의 탄신일이기도 함)들은 바하이들
에게 1년 중 가장 기쁜 날이다. 페르시아에서는 이 날에 소풍을
가거나 또는 즐거운 모임으로써 경축하며 음악과 시와 성서한
의 낭독과 그밖에 적당한 짧은 연설이 참가자에 의하여 행해진
다. 제 18월과 19월 사이에 있는 윤일 (즉 2월 26일부터 3월 1
일까지)에는 특히 친구들을 환대하는 일, 선사하는 일, 빈곤자
와 병자를 도와주는 일들을 한다.
238
바하올라와 신시대
바압께서 순교하신 날과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 세상을 떠
나신 기념일은 적당한 집회와 강연과 기도와 성서한 낭독 등으
로 엄숙히 기념한다.
단식
윤일 환대의 뒤에 오는 제 19월은 단식 월이다. 이 19일 간 일
출부터 일몰까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끊음으로써 단식을 행
한다. 이 단식은 춘분날에 끝나므로 언제나 동일한 계절에 행하
게 된다. 북반구에는 봄이요 남반구에는 가을이어서, 여러 가지
곤란이 있기 쉬운 혹서(酷暑)와 혹한(酷寒)을 피하게 되어 있
다. 그뿐 아니라 지구에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지대의 일출로부
터 일몰까지의 시간이 거의 동일하게 대체로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소아와 병자와 여행자와 노쇠자와 허약자(임산부
와 유아를 가진 부인도 포함)에게는 이 단식의 의무가 없다.
바하이 가르침이 명한 바와 같은 정기적인 단식은 신체의 위
생수단으로써 유익한 것임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가 있다. 그러
나 바하이 단식의 본질은 물질적인 음식물을 소비하지 않는다
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정신적인 음식물인 하느님
을 찬미하는 것에 있나니, 비록 그것이 신체의 정화(淨化)에 도
움이 된다 할지라도 물질적인 음식물을 끊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以上)으로 육신의 욕망과 쾌락을 끊어버리고 하느님 이외
의 모든 사물을 멀리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
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단식은 하나의 상징(象徵)이다. 단식은 욕정(欲情)을 끊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적인 단식은 이 금욕의 상징이요 이것을
239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생각하는 수단이다. 이것은 마치 식욕을 끊은 사람이 자아욕과
정욕에서 멀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단지 음식물을 끊는다는
것만으로서는 정신상에 아무런 효과도 없다. 그것은 단지 상징
이요 생각하는 수단에 불과하고 아무런 중요한 의미가 없나니,
이 목적을 위한 단식은 완전한 단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음식
물에 대한 금과옥조(金科玉條)는 과부족(過不足)이 없게 하는
것이다. 중용(中庸)이 필요하다. 인도에 극단의 단식을 하는
일파의 종지(宗旨)가 있어 점차로 음식물을 감소하여 마침내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지력(知力)은 쇠약해진
다. 만일 음식의 결핍으로 쇠약해진다면 그는 심신(心身)을 바
쳐 하느님께 봉사하기 어려울 것이며 그의 눈은 분명히 볼 수
없을 것이다.”
--- E. S. 스티븐슨양에 의하여‘격주평론’1911년 6월호에
인용된 것
집회
압돌바하께서는 합동예배와 교의(敎義)연구 및 발표와 운동
의 발전에 대한 협의 등을 위하여 신자들이 정기적으로 회합하
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다. 그분은 어느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에 의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와
자비 깊으신 분의 시녀(侍女)들 가운데 일치와 조화가 날마다
더 증진되어 갈 것이다. 이것이 실현되기까지는 무슨 일이나
어떠한 수단으로서도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일치와 조
화를 위한 최대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집회이다. 이것
은 극히 중요한 일이어서 자석처럼 하느님의 확증을 끌어들이
240
바하올라와 신시대
는 것이다.”---‘압돌바하의 서한집’제 1권 125쪽
바하이신앙의 정신적 집회에는 논쟁과 정치 및 세속적인 일에
관한 토론은 피하여야 한다. 신자들의 유일한 목적은,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 하느님의 사랑으로써 신자의 마음
을 충만시키는 일, 하느님의 뜻에 더 완전히 따르는 일,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를 촉진시키는 것에 있다. 1912년 뉴욕
에서의 강연에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바하이의 집회는‘천상집단’(天上集團)의 모임이어야 한
다. 그것은‘천상집단’의 빛으로써 비쳐져야 한다. 여러 사람
의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아서 거기에‘진리의 태양’의 빛이
비쳐질 것이다. 각자의 마음은 전신국과 같아야 한다. 즉 그
전선의 한 끝은 사람의 영혼 가운데 있고 다른 한 끝은‘천상
집단’가운데 있어 통신이 그 사이에 교환될 것이다. 이와 같
이 하여‘압하의 나라’에서 영감이 흘러내려 모든 토의에 조화
가 지배할 것이다....... 여러분들 사이에 화합과 일치와 사랑
이 크면 클수록 하느님의 확증이 더욱 여러분을 도울 것이며,
‘축복받은 미’인 바하올라의 원조가 또한 여러분을 고무하여
줄 것이다.”
그분은 또 어느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러한 집회 중에 외부에 관한 담화는 일체 금지되어야 한
다. 그 집회에서는 다만 싯귀(詩句)를 읊고 경전을 읽고 하느
님의 대업에 관한 일, 예컨대 증거의 해석과 명확한 증언의 제
시와 창조물이 가장 사랑하는 이의 증적을 탐색하는 일들에만
집중하여야 한다. 이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먼저 몸차림을
241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깨끗이 하고‘압하의 나라’로 향한 다음 온순하고 겸손한 태도
로써 회장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성서한을 읽는 동안은 정
숙해야 한다. 만일 발언하고 싶을 때는 참석자들의 동의와 허
락을 얻어 점잖게 능변으로 유창하게 말해야 한다.”
19일 축제
압돌바하께서 승천하신 이래, 바하이 행정질서의 발전에 따라
바하이 월 첫날에 거행되는 19일마다의 축제모임은 그것이 합
동기도와 경전낭독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오늘날의 모든 바하
이 업무에 관한 일반적 협의를 위한 기회로써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 축제모임은 신성회가 공동체에 대하여 보고
도 하고 계획에 관한 협의도 하며 봉사를 위한 새로운 더 좋은
방법을 참석자로 하여금 제안케 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마슈리꼴 아즈카르’
바하올라께서는 신자들의 힘으로써 모든 나라와 도시에 예배
원을 세우라고 유명(遺命)으로써 지시하셨다. 그분은 이 예배
원을‘마슈리꼴 아즈카르’(Mashriqu’l-Adhka’r)라고 명명
하셨으니‘하느님의 찬미의 발생지’라는 뜻이다.‘마슈리꼴 아
즈카르’는 한 둥근 지붕으로 덮인 9면을 가진 건물로서 설계와
기술이 모두 미(美)와 선(善)을 다하여야 한다. 이 건물은 분수
(噴水)와 수목과 화초로써 단장된 큰 정원 가운데 세워져야 하
고, 교육과 자선과 사회사업을 위하여 세워진 많은 부속 건물로
둘러싸이고, 원(阮)내에서 행하는 하느님께 대한 예배가 항상
자연과 예술미의 경건한 즐거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상태를 개선하는 실체적 사업과도 또한 밀접
242
바하올라와 신시대
하게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19)
페르시아에서는 현재까지 바하이들에게 일반예배를 위한 전
당(殿堂)의 건축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최초의 대‘마슈
리꼴 아즈카르’가 러시아의 에슈카바드에 세워졌다. 그리고 두
번째의 바하이 예배원은 아메리카의 시카고 북방 조금 떨어진
곳 미시간 호숫가에 세워졌다. 고 루이 부르죠의 설계로 된 이
건축양식은 널리 주목을 끌고 있다. 압돌바하께서 1912년 아메
리카를 방문하셨을 때 그 기지(基地)가 헌납되었다. 상부 건축
은 헌납식이 있던 날로부터 19년째인 1931년 4월에 완성되었
다. 설계자의 디자인에 의한 외부장식은 손으로 새긴 원형(原
型)에 의하여 일정한 단위로 만들어진 인조석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새로운 방법이었다. 그 결과로 표면은 복잡하고 아름다
운 디자인이면서 자연석보다도 강한 내구력(耐久力)을 가졌다.
1935년에는 돔(둥근 지붕)과 고창(高窓)부분이 완성되었다.
근년에 페르시아의 바하이들은 테헤란 시가를 굽어보는 곳에
‘마슈리꼴 아즈카르’를 세울 땅을 얻었다. 이 서양의‘모사원’
(母寺院)에 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많은 서한을 쓰셨는데 그
가운데 한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느님께 영광 있을 진저, 지금 아메리카의‘마슈리꼴 아즈
카르’의 건립기금이 세계각지로부터 각자의 자의에 응하여 송
금되고 있다........ 아시아의 가장 먼 지방에서부터 아메리카에
기부금이 왔다는 일은 아담시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일찍이 없었
던 일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성약에 의한 것이다. 하느님을 믿
는 사람들이 큰 도량을 보여 이 건축을 위하여 대금(代金)을
243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19.‘마슈리꼴 아즈카르’에 관련하여 테니슨의 시를 상기해 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조달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뜻대
로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일 누가 어떤 다른 일에 돈을
쓰고 싶어 하거든 그대로 하게 하라. 무슨 일에나 간섭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은‘마슈리꼴 아즈카르’를
건립하는 일임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마슈리꼴 아즈카르’는 9면을 가진 건물로서 9개의 문이 있
고, 또 각각 9개의 분수, 길, 입구, 기둥, 화원이 있으며 당내에
는 지하실과 회랑(廻廊)과 원개(圓蓋)가 있고, 그 의장(意匠)
과 구조가 모두 미와 선을 다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집을 세우
는 것은 오늘의 가장 큰 사업이다.‘마슈리꼴 아즈카르’는 중
요한 부속건물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이 또한 뜻깊은 기본적 건
물이다. 이것은 고아를 위한 학교, 빈곤자를 위한 병원과 시약
소(試藥所), 불구자를 위한 주택과 고등 과학교육을 위한 학교
및 방문자의 숙박소 등이다. 모든 도시에 대‘마슈리꼴 아즈카
르’가 이와 같은 질서로 세워져야 한다.‘마슈리꼴 아즈카르’
에서는 예배가 행해질 것이다. 원(院)내에는 풍금이 없을 것이
다. 잔치, 예배, 대회, 공개집회 및 정신적 집회들은 모두 부속
건물에서 행해질 것이요, 본당 안에서는 기도문 낭송과 찬가
(讚歌)가 반주 없이 행해질 것이다. 전 인류에게 예배원 문을
개방하라.”
이러한 학교, 병원, 폐질자(廢疾者)를 위한 건축물, 고등 과학
의 연구를 위한 대학, 그밖에 박애자선을 위한 건물들이 세워질
때 모든 사람과 모든 종교에 그 문호(門戶)가 개방될 것이다.
거기에는 절대로 조그마한 차별이나 구별도 있을 수 없다. 그
자혜(慈惠)는 피부색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베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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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245
그 문호는 널리 전 인류에게 개방되어 누구에게나 편견 없이 모
든 사람에게 사랑이 미칠 것이다. 본당은 기도와 예배를 위하여
씌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종교는 과학과 조화되고 과학은
종교의 시녀가 되어 양자(兩者)는 그 물질적 및 정신적 선물을
전 인류에게 부어줄 것이다.
사후의 생애
바하올라께서는, 육체의 생명은 우리의 생존의 미완성의 단계
에 있는 것이며, 육체로부터의 벗어남은 인간 정신이 더 완전하
고 더 자유스러운 생명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탄생과 같은 것이
라고 가르치셨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영혼은 육체를 떠난 뒤에도 계속 진보하여 마침내 하느님이
계신 곳에 이르러, 시대와 세기의 변혁이나 이 세상의 어떠한
변화도 그것을 변하게 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도달한다는 진리
를 알라. 영혼은‘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주권, 하느님의 지
배력, 하느님의 위력이 영원함과 같이 영원히 존속하는 것이
다. 그리하여 거기에 하느님의 증적과 속성과 그 자애와 혜택
이 나타나는 것이다. 나의 붓의 움직임은, 이처럼 높은 지위의
고상함과 영광스러움을 기술하려는 때에 정지하여 버리는 것이
다.‘자애의 손’으로써 인간의 영혼에게 주는 명예는 어떠한
혀(舌)로써도 적절히 표현하여 말할 수 없고, 지상의 어떠한
자도 그것을 서술할 수 없다. 육체를 벗어난 뒤에 세계의 모든
미망(迷妄)에서 성별(聖別)된 영혼은 축복 받을진저. 이와 같
이 영혼은 그 창조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최상(最上)의 낙원
에 들어간다. 최상의 낙원에 사는 천사들은 그들을 맞아들여
싸고 돌 것이며, 그 영혼은 모든 하느님의 예언자들과 그분의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택함을 받은 자들과 사귀게 될 것이요, 그들에게 세계의 주이
신 하느님의 길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말하게 될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하늘 위의 왕좌(王座)와 하늘 아래 이 땅의
주이신 하느님의 모든 세계에서 그와 같은, 영혼을 위하여 정
해진 것이 있음을 안다면 그의 전 존재(全存在)는 곧 그 가장
고귀한 성별된 영광의 지위에 도달하려는 그의 최대의 소원에
불타게 될 것이다........ 사후의 영혼의 성질은 기술할 수도 없
고 또 그것을 만나거나 그 전부의 성질을 인간의 눈에 분명히
보이게 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예언자와 사자들
은 인류를 진리의 바른 길로 인도하기위해 오신 것이다. 사람
이 죽을 때 최상의 깨끗함과 신성과 절대의 초월로써‘최고
자’의 왕좌에 오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들 영혼들이 발하는
광명은 인류 향상과 세계 진보의 원인이 된다. 그들은 존재의
세계에 감화와 영향을 주는 누룩이 되고, 세계의 예술과 경이
(驚異)를 나타내는 활력이 된다. 그들을 통하여 구름은 그 혜
택을 사람들에게 부어주고, 땅은 그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원인을, 원동력을, 활력소(活力素)를 가져야 한다.
이들 영혼과 초월(超越)의 상징은 이 존재의 세계에 늘 최상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저 세상과 이 세상의 차이는 태아(胎兒)의 세계와 이 세계와
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낙수집’155~127쪽
압돌바하께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쓰셨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알지 못한 비밀을 천국에서 발견하게
된다. 거기서 진리의 비밀을 알게 되고 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
들을 더 잘 이해하고 발견하는 것이다. 순수한 눈과 통찰력을
가진 깨끗한 영혼은 틀림없이 이 광명의 나라에서 모든 비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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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깨닫고 모든 위대한 영혼의 실상을 보는 혜택을 바랄 것이다.
그들은 그 세계에서 하느님의 미를 분명히 볼 것이요, 또 그들
은 과거나 현재의 모든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그 하늘의
모임에서 발견할 것이다.
인간 사이의 차이와 차별은 이 세상을 떠난 후에 자연히 나타
난다. 그러나 이 차별은 지위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다만 영혼과
양심에 관한 것이다.‘하느님의 나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
여 성별되는(혹은 자유로이 되는)것이므로 그것은 전혀 별세계
요 별천지인 것이다. 하느님의 모든 세계에서는 정신적으로 사
랑받은 자들이 서로 만나서 알게 되고, 서로 결합을 바라게 되
는데 이것은 물론 정신적 결합임을 알라. 그와 마찬가지로 현
세에서 누구에게 품은 사랑은‘하느님의 나라’의 세계에서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요, 여러분의 현세에서의 생활도 또한 잊
혀지는 것이 아니다.”---‘압돌바하의 서한집’제 1권 204쪽
천국과 지옥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는 묵은 종교서적의 어떤 것에 기록
되어 있는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를, 성서의 창세기 이야기와 마
찬가지로 상징적인 것으로 보고 문구 그대로 진실한 것으로는
보지 않으셨다. 그분들에 의하면 천국은 완전한 상태요 지옥은
불완전한 상태이다. 천국은 하느님의 뜻과 우리 동포와의 조화
(調和)가 이루어진 곳이요 지옥은 정신적으로 죽은 상태이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살아있는 동안에도 천국이나 지옥에 있
을 수 있다. 천국의 기쁨은 정신적 기쁨이요 지옥의 고통은 이
러한 기쁨이 없어진 데 있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
이 말씀하셨다.
247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인간이 신앙의 빛에 의하여 죄악의 암흑에서 해방되는‘진
리의 태양’의 빛으로 광명을 받고 모든 선덕(善德)으로써 존귀
하게 될 때, 그들은 이것으로써 최대의 보수를 삼고 이것을 참
다운 낙원으로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정신적 형벌은,
자연의 세계에 굴복되어 있는 것,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있는
것, 야만무지하게 사는 것, 육욕(肉慾)에 빠지는 것, 짐승처럼
약한 의지에 얽매이는 것, 어두운 성품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러한 것들이 최대의 형벌이요 최대의 가책이라고 생
각한다.
내세의 보수는, 이 세상을 떠난 후 영적(靈的)세계에서 완성
과 평화를 얻는 그것이다........ 즉, 정신적인 은혜와‘하느님
의 나라’의 여러 가지 선물을 받고 심령의 희망을 이루고 영원
한 세계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곧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내세의 형벌은,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과 절대적인 은혜를 받지
못하여 최하급적 존재로 굴러 떨어지는 그것이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후의 생활은, 그것이 존속할지라
도 진리의 사람들의 눈에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이
다. 내세의 부(富)는 하느님께 가까워지는 그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궁정(宮庭)에 가까이 있는 자는 대청(代聽)이 허용되
어 있음이 확실하다. 이 중재는 하느님께서 승인하신 것이다.
죄악과 불신앙 중에 죽은 자의 상태라도 변경할 수 있을 것이
다. 그것은, 즉 저들이 하느님의 정의의 심판에 의하는 것이 아
니라 하느님의 은혜에 의하여 용서의 대상(對象)이 될 수 있다
는 것을 말함이니, 은혜란 것은 당연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는 것이요, 정의란 것은 당연히 가치 있는 자에게 주는 것이
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영혼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기도하
는 힘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또한‘하느님의 나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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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내세에 있어서도 그와 같은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
로 저 세상에서도 그들은 진보할 수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그들 자신의 기원에 의하여 빛을 받을 수 있음과 같이 저 세상
에서도 또한 용서를 빌고, 간원과 기도에 의하여 빛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완전성을 향한 진보를 계속하
지만, 그것은 지위가 달라지는 진보는 아니다. 완전한 인간보
다 더 높은 존재물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이러한 지위에 도
달했을 때도 여전히 완전성에 있어서 진보를 하고 있지만, 그
것은 지위적 상태에 있어서의 진보가 아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인간이 자신을 올려 세울 수 있는 더 이상의 높은 지위적 상태
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만 인간이라는 지위적 상태에서만
진보 발전하는 것이니, 인간의 완전성이란 무한한 것이기 때문
이다. 이와 같이 한 인간이 제아무리 학식이 있다 할지라도 우
리들은 더 학식 있는 인간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완전성은 무한하기 때문에, 인간은 이 세상
을 하직한 후에도 역시 완전성 속에서 계속 진보할 수 있는 것
이다.”---‘질의응답록’
두 세계의 일체성
바하올라께서 가르치신 인류의 일체성 정신은 단지 육체를 가
진 인간에게 대해서만이 아니라 생(生)과 사(死)를 통한 전 인
류에 대한 것이다.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전부의 인간만이 아
니라 정신계에 있어서의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직체의 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이 두 부분은 서로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다. 양
자의 정신적 교통은 불가능하거나 부자연한 것이 아니라 항상
있을 수 있고 또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정신적인 능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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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아직 발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생생한 관계를 깨닫지 못하지
만 그 능력이 발달함에 따라 저쪽 세상 사람들과의 교통을 점차
분명히 의식하게 되고 명확히 알게 된다. 예언자와 성자들에게
는 이 정신적 교통이, 일반사람이 사람을 보고 그와 대화하는
것처럼 범상한 일이요 실제로 있는 일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
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예언자들의 환상(幻像)은 꿈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정신
적 발견이며 실재성(實在性)을 가진 것이다. 예컨대 그들이 말
씀하시되,‘자기는 이러이러한 형상의 누구를 보았고, 자기는
이렇게 말하고,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 환상은
각성(覺醒)의 세계에 있는 일이지 수면(睡眠)의 세계의 일이
아니다. 이 환상은 하나의 정신적 발견이다.
정신적인 영혼들 사이에는 정신적인 이해(理解)와 발견이 있
고, 상상과 공상에서 순화(純化)된 교통이 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교제가 있다. 그리하여 복음서 가운데는 타보르산 위의
그리스도에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신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데 이것이 물질적인 회합이 아니었던 것은 명백한 일이다. 그
것은 정신적인 상태이다. 이와 같은 교통은 실제로 있는 것이
어서 인간의 마음과 사상에 불가사의한 영향을 주고 그의 마음
을 끌어당기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질의응답록’
그분은 이‘초정상(超正常)의 심령적인 능력의 실재를 인정
하셨지만, 그러나 시기가 이르기 전에 그것을 무리하게 발전시
키려 하는 일에는 찬성하지 않으셨다. 이러한 능력은, 예언자들
이 우리를 위하여 마련한 정신적 발달의 길을 따르기만 하면 적
당한 시기에 자연히 개발되는 것이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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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하셨다.
“현세에 있는 동안에 심령적 힘에 무리한 실험을 하면 내세
에 있어서의 영혼의 상태에 장애를 초래한다. 이러한 심령적인
힘은 실재한 것이지만 현세에 있어서는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자궁에 있는 태아는 눈, 귀, 손, 발들을 가졌으나
그것이 활동하지 않는다. 이 물질세계에서의 생활의 전 목적은
이러한 힘이 능동적(能動的)이 될 수 있는‘실재’(實在)의 세
계에 이르게 함에 있다. 이러한 힘은 그 세계에 속한 것이다.”
--- 압돌바하에 의하여 교정된 벅톤 양의 수기에서
죽은 자의 영혼과 교제하는 것은 결코 그 일 자체를 위해서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명(幽
明)의 한편에 있는 자가 저편에 있는 자를 사랑하고 도와주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그 사람의 특권이요 또 의무이다.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은 바하이에게 명령되어 있는 것
이다. 압돌바하께서는 1904년에 E. J. 로젠버그 양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효과있는 대청(代請)을 할 수 있는 은총은 진보한 영혼과
하느님의 현시자에게 속한 완성(完成)의 하나이다. 그리스도께
서는 이 세상에 계셨을 때 그 적을 용서하기 위하여 대청권(代
請權)을 가지셨다. 그리고 물론 지금도 그 힘을 가지고 계신다.
압돌바하께서는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를 때는 반드시‘하느님이
시여 그를 용서하소서’하든가, 또는 그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
다. 예언자들의 신도들도 또한 영혼의 용서를 비는 힘을 가지
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영혼이든지 절대로 하느님을
알지 못하였다는 죄로 영원한 괴로움이나 멸망의 변함없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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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태로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그들에 대한 효
과 있는 대청의 능력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저 세상에서도 부자가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이 세
상에서와 마찬가지이다. 어느 세계에서든지 모든 것은 하느님
의 창조물이다. 그것들은 항상 하느님께 의존한다. 그것들은
결코 독립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또 독립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들이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한 모든 사람은 기원하면 할수록
부하여진다. 그들의 상품은 무엇이며 그들의 재산은 무엇인가.
저 세상에서의 도움과 원조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청이다. 아
직 발달하지 않은 영혼은 먼저 정신적 부자의 기원에 의하여
진보되어야 하며 다음에 자기 자신의 기원에 의하여 진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승천한 자는 아직 지상에 있는 자와는 다른 속성을 가지지
만 그러나 거기에 실제적인 분리는 없다. 기도에는 지위의 혼
합이 있고 경우의 혼합이 있다. 그들이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
함과 같이 여러분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런던에서의 압돌바하’97쪽
이 새로운 계시를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신앙
과 사랑으로써 이것을 알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압돌
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물론 그렇다. 성실한 기도는 반드시 그 효과를 얻을 것이요,
그것이 저 세상에 대하여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
코 거기 있는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효과적이
고 진정한 영향은 이 세상보다 오히려 저 세상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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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 파리에서의 매리 핸포오드 포오드의 수기(1911년)
한편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만일 누가 그를 위하여 정해진 바에 맞게 생활한다면,‘천상
집단’과‘지상낙원(地上樂園)’의 민중과 또 위대한 궁전에 사
는 사람들이,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서 그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 알리 쿨리 칸에 의하여 번역된 서한
압돌바하께서는 일찍이 어째서 사람의 마음이 가끔 이미 저
세상에 간 어느 벗에게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의존하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의 법
칙이다. 제군이 마음을 향하는 사람들은 현세에 있을 때에도
하느님의 힘을 제군에게 중개한 사람들이겠지만 전 인류에게
힘을 주는 것은 유일한 성령이다.”
---‘런던에서의 압돌바하’98쪽
악은 실재하지 않음
바하이 철학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유일하시다는 교의(敎
義)에 따라 적극적인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게 된다.
하나의 무한이란 것만이 존재할 수 있다. 만일 우주에 그 유일
한 것 외에 이것에 대항하는 다른 어떤 힘이 있다면 그 유일하
다는 것은 무한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암흑이란 것이 광명의
결핍 혹은 그 정도의 낮은 것임과 같다. 악한 사람이란 본성의
보다 높은 면이 아직 발달되어 있지 않은 자이다. 만일 그가 이
기적일지라도 그 악이 그의 자아애(自我愛)에 있는 것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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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다. - 모든 사랑은(자아애까지도) 선한 것이요 신성한 것이다.
악은, 그가 이와 같은 빈약하고 불충분한 잘못된 자아애를 가지
고, 다른 사람과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가지지 못한 데에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우수한 동물로만 생각하여, 마치 사랑하는
개를 제멋대로 행동하게 함과 같이 자신의 저급한 성질을 방종
하게 다루고 있으니, 그 결과는 개에게 보다도 자신에게 미치는
해가 더 클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어느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압돌바하께서 어느 신도에게 악은 결코 존재할 수 없고 실
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는 당신의 말은 확실히 진리이다. 최
대의 악은 인간이 길을 잘못 들어 진리로부터 눈이 가리워진
것이다. 과실은 지도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요 암흑은 광명이
없는 것이다. 무지는 지식의 결핍이요 허위는 진실의 결핍이
며, 또한 눈먼 것은 시력의 결핍이요 귀머거리는 청력의 결핍
이다. 그러므로 과실, 눈먼 것, 귀먹은 것, 무지 등은 실재의 사
물이 아니다.”
그분은 다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창조물에는 악이란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선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는, 비난 받을 것으로 보이는 성질과 소질
도 실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예컨대 유아(乳兒)에게서는 인생
의 최초로부터 욕심과 불쾌하게 성내는 것 등의 징후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선과 악이 함께 인간 본래의 성질이어서, 그것
이 자연과 만물의 지선(至善)에 상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
나,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이나 보다 이상(以上)의 것을
254
바하올라와 신시대
요구하는 욕망은 만일 그것이 적당히 쓰여 진다면 칭찬받을 성
질이다. 만일 사람이 과학이나 지식을 얻기를 욕망하고 자비롭
고 관대하고 공정하게 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가장 찬양할 일
이다. 그리고 흉악한 짐승처럼 피에 목말라하는 포학한 군주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은 또한 크게 칭찬할 일이지만 만일 이와
같은 성질을 바르게 쓰지 않으면 비난받을 것이 된다........ 인
간생활의 자본이 되는 모든 천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만일
그 성질들이 부당하게 사용되고 발휘될 때는 비난을 받게 된
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창조물인 천지만물이 순전히 선이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질의응답록’
악은 언제나 생명의 결핍이다. 만일 인생의 저급한 성질이 불
균형하게 발달할 때 그 치료법은 그 성질의 생활력을 감소시키
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방향으로 생활력을 증가시키는 것이니,
그리하여 균형이 취해질 것이다.‘내가 온 것은 너희에게 생명
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복음 제 10
장 10절)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찾는 것이다. - 생명을, 보다 더한 생명을, 참다운 생명인 생명
을!
바하올라의 사명도 그리스도의 사명과 같다. 그분은 말씀하셨
으되,‘오늘 이 종이 온 것은 진실로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한
것이다.’(라이스에게의 서한)고 하셨다. 그리고 또 신자들에게
‘오라, 내가 너희로 하여금 세상에 생명을 주는 자가 되게 하리
라.’(로마법왕에게의 서한)고 하셨다.
255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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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12 장
종교와 과학
모하멧의 사위 알리는 말했으되,‘과학과 조화되는 것은 또
한 종교와도 조화된다.’고 하였다. 사람의 지능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종교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종교와 과학은 서
로 제휴(提携)하여 나아갈 것이며, 과학에 배치되는 종교는 진
리가 아니다. ---‘압돌바하의 지혜’에서
충돌은 잘못에서 생김
바하올라의 기본적 가르침의 하나는, 참다운 과학은 종교와
항상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이다. 그리고 충돌
이 일어나는 것은 그것이 진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잘못에서 생
기는 것이다. 이른바 과학과 종교와의 사이에는 고래로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 그러나 보다 완전한 진리의 광명으로써 이러한
충돌을 회고해 본다면 그것들이 언제나 무지와 편견과 허영과
탐욕과 편협한 마음과 너그럽지 못한 정신과 완고한 생각과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 즉 과학과 종교의 참된 정신에 배치되는
것이 그 원인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과학과 종
교의 정신은 하나이어서 거기에 충돌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헉슬리가 말한 바에 의하면 철학자들의 위대한 사업도 그들의
지력(知力)의 결과라기보다 그 훌륭한 종교심에 의하여 지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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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장 종교와 과학
지휘한 결과이다. 진리는 저들의 논리적 총명보다도 저들의 인
내와 사랑과 순진과 희생의 정신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다. 수학
자 보올도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즉‘기하학(幾何學)의 귀납
추리(歸納推理)는 오로지 기도의 과정(過程) - 즉 유한자가 유
한한 사항에 대하여 무한자에게 광명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종교의 대예언자와 과학의 대예언자들은 아직 한번도 서로를
비난한 일이 없었다. 후세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진보에 가장
악하게 적대한 자는 이들 세계적 대교사들의 불초한 제자들이
었다. - 위대한 교사의 가르침의 정신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그 문구(文句)를 숭배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신
성하다고 받아들인 한 가지 특수한 계시의 광명만을 연구하여,
그 제한된 눈에 비친 것을 가장 주의 깊고 정밀하게 그 교리의
본질과 특성을 삼았으니 이것이 그들에게 유일한 광명이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그 무한한 은혜로써 다른 곳으로부터 한
층 더 밝은 광명을 보내시어, 그 새로운 횃불을 든 사람에게서
이전보다 더 밝은 영감의 횃불이 타고 있으면, 그들은 이 새 빛
을 맞아들여 새로운 감사로써 만유의 빛의‘아버지’를 경배하
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분노하고 경계하나니, 이 새로운 광명이
그들의 정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통의 빛깔이 아니
고 정통의 땅에서 빛을 발한 것이 아니므로, 사람들이 이단(異
端)의 길에 헤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代價)를 치
르더라도 이 불을 꺼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예언자들의 많
은 적은 대개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장님을 지도하
는 장님과 같아서, 자기들이 참으로 진리라고 믿는 것의 가정적
(假定的) 이해를 위하여 새롭고 더 밝은 진리를 반대하는 것이
다. 그리고 그밖에 더 하천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진리에 반대하여 싸우고 혹은 정신적 마
258
바하올라와 신시대
비와 타성(惰性)으로 말미암아 진보의 길을 막는 것이다.
예언자들의 수난(受難)
종교의 대예언자들은 언제나 그 출현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의
모욕과 배척을 받았다. 그들과 그들의 초기의 신도들은 모두 박
해를 당하였고, 하느님의 길을 위하여 소유물을 희생하고 생명
까지도 바쳤다. 우리의 시대에 있어서도 그러한 사정이었다.
1844년 이래 페르시아의 바비와 바하이들이 그 신앙 때문에 수
천 명이 학살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거나 유형
(流刑)을 당하였으며 빈곤과 좌천의 지경에 떨어졌다. 근대의
대종교 중 최근의 것도 선행자(先行者) 이상으로 피의 세례를
받았고 오늘날까지도 의연히 순교가 계속되고 있다. 과학의 예
언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사건이 있었다. 죠르다노 브루노는
1600년에, 지구가 태양을 회전한다고 가르친 죄로 이단자라 하
여 분형(焚刑)을 당하였다. 그 몇 해 후 노련한 철학자 갈릴레
오는 그와 비슷한 운명을 피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그 학설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그 후에 다아윈과 근대 지질학의
선각자들은, 약 6000년 전에 이 세계가 6일 동안 창조되었다는
성서의 가르침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
러나 새로운 과학적 진리에 대한 반대는 그 모두 종교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과학에 있어서의 정통파는 종교에 있어서의 정
통파와 마찬가지로 진보의 적이었다. 배가 만일 지구의 반대편
으로 내려갈 수 있는 경우에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
라고 주장한 당시의 이른바 과학자들은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
하여 콜럼부스를 조소하였다. 전기과학의 선구자 갈바니도 학
식있는 동료들에게서‘개구리 무용선생’이라고 조롱을 받았다.
259
제 12 장 종교와 과학
또 혈액순환의 발견자 하아비는 그 이단이라는 이유로 같은 교
직(敎職)에 있는 벗들로부터 우롱과 박해를 당하여 마침내 교
수직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스티븐슨이 기관차를 발명했을 때
당시 유럽의 수학자들은 자신의 눈을 뜨고 그 사실을 연구하려
하지 않고는 자기만족을 위하여, 기관차는 평활(平滑)한 궤도
위에서 바퀴가 미끄러져 차량이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화
물을 운송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몇해 동안 논쟁을 계속하였다.
이와 같은 예는 고대와 근대의 역사에서 뿐 아니라 현대에 있어
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에스페란토의 창안자 자멘호프선생
도 그 훌륭한 국제어 때문에 콜럼부스, 갈바니, 스티븐슨같은
이들이 받은 것과 같은 조소와 경멸과 우매한 반항과 싸우지 않
을 수 없었다. 1887년이라는 최근에 세상에 나온 에스페란토
까지도 그 일 때문에 희생자를 냈던 것이다.
조화의 새벽
그런데 이 반세기 동안에 시대의 정신이 일변하여 이상하게도
지난 세기의 논쟁을 무의미하게 하는 새로운‘진리의 빛’이 나
타났다. 최근까지 종교를 세계에서 몰아내려고 하던 오만한 물
질주의자와 독단적인 무신론자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
고 또 자기들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단호히 지옥의
불과 영겁의 가책(呵責)으로 넘겨 보내는 종교가 어디 있는가.
그들이 떠들던 그 소리는 아직도 우리의 귀에 남아 있을는지 모
르나 그들의 날은 이미 기울어 졌고 그들의 교리는 믿을 수 없
게 되었다. 그들이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그 교리는 참된 과학
도 아니요 참된 종교도 아니었음을 이제 와서 우리는 알 수 있
다. 근대의 심리적 연구의 성과 앞에서 어느 과학자가 아직도
260
바하올라와 신시대
‘간장(肝臟)이 담즙을 분비(分泌)하는 것과 같이 뇌수는 생각
을 분비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육체가 죽으면
필연적으로 영혼도 없어진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제 와서, 사상이 참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것이 결코 물질
적 현상에만 국한되지 않고 심령적, 정신적 현상의 경지에까지
이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 자연에 대
하여 아는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에 비하면 망망한 대해의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법
칙을 파괴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전기나 엑스광선을 우리의
조상이 몰랐던 것과 같이, 우리가 아직도 알지 못하는 미묘한
힘의 작용의 표현으로써 기적의 가능성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한편 또 현재의 주요한 종교의 지도자들 가운데, 아직도 세계가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는 것과 구약성서의‘출애급기’에 있는
이집트의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는 것과
또는 조슈아에서 적을 추격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태양이 하늘
에 정지하여 있었다는 것 (즉 지구가 그 회전을 정지하였다는
것)을 믿는 것이 구원을 얻는 데에 필요하다고 말할 자가 있을
것인가. 또 혹은 사람이 성 아타나시우스의 신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그는 반드시 영원히 멸망할 것이라’고 말할 자가 있을
것인가. 이와 같은 신앙은 형식적으로는 아직도 되풀이할는지
는 모르나 누가 그것을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서 무조건 받아들
일 것인가. 그러한 것이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힘은 이미 없어졌거나 또는 없어지고 있다. 종교계는 이와 같은
썩은 신조와 교리를 버리고 진리로 하여금 자유로이 출현케한
은혜를 과학계의 사람들에게서 입은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많이 과학계는, 세평(世評)의 여하에 구애됨이 없이 정신적
체험의 산 진리를 파악하여, 생명은 육체보다 귀하고 무형한 것
261
제 12 장 종교와 과학
이 유형한 것보다 낫다는 것을 의심 많은 세계에 증명한 참다운
성자와 신비가(神秘家)들에게 은혜를 지고 있다. 이들 과학자,
성자들은 아침 해의 광선을 맨 먼저 받아서 그것을 하계(下界)
에 반사하는 산꼭대기와 같은 것이었는데, 즉 우리는 바하올라
의 가르침 가운데서 심정과 이성(理性)을 만족케 하고 종교와
과학을 합치시키는 진리의 영광스러운 계시를 발견한 것이다.
진리 탐구
우리가 진리를 탐구함에 있어서 취할 방법에 대한 바하이 가
르침에는 과학과 완전히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있다. 우리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오로지 백지의 상태로 진리를 탐구하여야
한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편견과 좁은 견해를 버려
야 한다.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만일 우
리의 잔에 자아(自我)가 가득 차 있으면 생명의 물을 담을 여
지가 없다. 자기 자신은 바르고 남들은 모두 그르다고 생각하
는 것은 융합의 길에 있어서 최대의 장애가 된다. 진리는 하나
이므로 우리가 진리에 도달함에는 첫째로 융합이 필요하
다........
한 진리가 다른 진리에 모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남포등에서 빛나도 빛은 좋은 것이다. 장미는 어떤 화원에 피
든지 아름다운 것이다. 별은 동쪽에서 빛나든지 서쪽에서 빛나
든지 같은 광채를 발한다. 편견을 버리라. 그리하여 여러분은
지평선 어느 쪽에서 떠오르든지‘진리의 태양’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진리의 신성한 빛이 만일 그리스도의 안에
빛났다고 하면 그것은 또한 모세나 석가모니에게도 빛났다는
262
바하올라와 신시대
것을 알 것이다. 이것이 진리 탐구의 의미인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이미 배운 모든 것을, 진리의 길에 방해
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할 것을 의미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우
리는 교육을 처음부터 전부 새로 고쳐 받아야 할 것을 각오하
여야 한다. 우리는 어떤 한 종교나 또는 어떤 한 인격에 사랑을
바침으로써 미신에 사로잡히도록 눈이 어두워져서는 안된다.
이러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마음으로서 탐구할
때 우리는 반드시 목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압돌바하의 지혜’127쪽
진정한 불가지론(不可知論)
하느님의 본질은 인간의 이해력을 전혀 초월한 것이라고 주장
하는 점에서 바하이 가르침은 과학이나 철학과 일치한다. 헉슬
리와 스펜서가‘위대한 제 1원인’(즉 조물주)의 본질은 불가지
(不可知)한 것이라고 역설한 바와 같이 바하올라께서도‘하느
님은 전지(全知)하시지만 사람이 그분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
라’고 가르치셨다. 하느님의 본질을 아는‘길은 막혀서 통과할
수 없다.’왜냐하면 유한자(有限者)가 무한자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한 방울의 물이 어떻게 대양(大洋)을 포함할 수 있으
며 태양광선 가운데 떠도는 한 알의 먼지가 어떻게 우주를 포용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만 전 우주는 하느님을 웅변으로 증
거 해 주고 있다. 한 방울의 물 가운데에도 의미의 대양이 숨겨
져 있고 한 알의 먼지에도 의미의 우주가 포함되어 있어, 그것
은 가장 학식 있는 과학자라도 밝히 알 수 없는 일이다. 물질의
본질을 깊이 연구하는 화학자나 물리학자들은 물체에서 분자
로, 분자에서 원자로, 원자에서 전자와‘에테르’로 분석을 진행
하였다. 그러나 그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갈수록 탐구의 곤란이
263
제 12 장 종교와 과학
더하여, 마침내 가장 심오한 지력(智力)으로서도 이제 더 투철
하게 할 수가 없어, 다만 영원히 탐색할 수 없는 신비에 싸인 불
가해(不可解)한‘무한’앞에 머리를 숙여 침묵할 수밖에 없게
된다.
벽 틈에 핀 한 송이 꽃이여,
내, 너를 틈에서 뽑아
뿌리 채 손에 받들었노라.
그러나 작은 꽃이여, 너를
그 뿌리 통틀어 알 수 있다면
사람과 하느님을 내 또한 알 수 있으리. --- 테니슨
만일 벽 틈에 핀 꽃이나 물질의 원자가 가지고 있는 신비를
최고의 지력으로서도 이해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인간이 이 대우
주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인간이 감히 만물의 무한
한 원인을 설명하고 서술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
로 하느님의 본질에 대한 모든 신학적 이론은 어리석고 무용한
일이라 일체 소탕해 버려야 한다.
하느님에 대한 인식
그러나 그 본질은 알 수 없어도 그에게서 오는 은혜가 나타나
있는 것을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다. 비록 제 1원인은 이해할
수 없어도 그 결과는 우리의 모든 능력으로써 느낄 수 있다. 마
치 어떤 화가가 그린 그림을 인식하는 것이 그 예술가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감상자에게 주는 것과 같이, 모든 형태에서 우주를
아는 것 - 자연 혹은 인간의 성질을 아는 것, 유형 또는 무형의
사물을 아는 것 - 은 하느님의 작품을 아는 것이며 하느님의 진
리의 탐구자에게 하느님의 영광의 참된 인식을 주는 것이다.
264
바하올라와 신시대
“하늘이 하느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창궁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시편’제 19편 1~2절
하느님의 현시자
햇빛에 비친 모든 물체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다 햇빛을
반사함과 마찬가지로, 만물은 모든 것이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분명히 하느님의 혜택을 나타낸다. 숯덩이는 조금 반사하
고 돌은 그 보다 더 반사하고 백묵은 한층 더 반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의 반사에서는 태양 그대로의 형체와 빛을 반사한
다. 따라서 거울을 보는 것은 태양 그것을 직접 보는 것과 같다.
만물이 우리에게 하느님에 대하여 말해주는 것도 이와 마찬가
지이다. 돌은 하느님의 속성의 약간을 말할 수 있고 꽃은 한층
더 많이 말할 수 있고 동물은 그 놀라운 감각과 본능과 운동력
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층 더 많이 알 수 있다. 우리 인류동포 중
의 최하급 자에게도 창조자에 대하여 말하는 놀라운 여러 가지
능력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시인과 성자와 천재들에게서 우리는
한층 높은 계시를 발견한다. 그리고 위대한 예언자와 종교창시
자들은 완전한 거울이어서, 그에 의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지혜
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반사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거울
은 자아(自我)와 편견의 상처와 먼지로 흐려져 있지만 그들의
거울은 깨끗하고 흐려지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바쳐져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교육자가 된다. 그
들에게서 발하는 하느님의 가르침과 성령의 힘은 인류발전의
원인이 되었고 현재도 그 원인이 되고 있나니, 하느님은 사람에
의하여 사람을 돕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향상의 길에서 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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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장 종교와 과학
다 높은 자는 낮은 자를 돕는 수단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 가
운데 가장 높은 이러한 사람들은 전 인류의 구원자가 된다. 모
든 사람은 마치 탄력성 있는 끈으로써 연결되어 있음과 같아서,
만일 그 중의 한 사람이 동료의 일반 수준보다 조금이라도 높아
지면 끈은 저절로 당겨진다. 그 동료들은 그를 도루 끌어 내리
려고 하지만 무게를 더 느끼게 되고, 그보다 더 높은데 있는 소
수의 사람을 통하여 그에게 미치는 하느님의 지지(支持)에 더
욱 의지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 중의 최고자라는 위대한 예언자
와 구세주, 즉, 하느님의 현시자로서, 이들 완전한 사람들은 각
각 그 시대에 있어서 동반자도 동료도 없이 전 세계의 무거운
짐을 지고 다만 하느님의 지지만 받고 있었다.“우리들 자신의
죄의 무거운 짐이 그의 어깨에 놓여 있었다.”는 것은 그분들 중
의 누구에게나 사실이었다. 그분들은 모두 그 신자들을 위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다. 그분들은 모두 하느님의 은혜를
받으려는 자들의 마음에 그것이 통하는 길이었다. 그분들은 인
류의 향상을 위한 하느님의 대계획 가운데서 각각 그 맡은 바
일을 하신 것이다.
창조
바하올라께서는 우주에는 시간의 시작이 없다고 가르치셨다.
그것은 제 1원인으로부터 부단히 흘러나오는 것이다. 창조자는
항상 그 창조물을 소유하셨고 또 언제나 소유하실 것이다. 천체
와 태양계는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기도 하겠지만 우주는 그
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조직된 만물은 때가 오면 분해되지만
그 조직요소는 그대로 남는다. 한 세계나, 한 송이 꽃 혹은 한
사람의 육체의 창조는‘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
266
바하올라와 신시대
는 여러 요소가 하나로 집합된 것이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으로 된 것이니, 얼마 후에 이 요소들은 다시 흩어지고 형체
가 없어져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무엇이나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새로운 결합과 형체가 낡은 터에서 계속하
여 생겨나는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세계창조의 역사가 6천만
년이 아니라 몇 억조의 오랜 세월이 지났다는 과학자들의 학설
을 인정하셨다. 진화론은 결코 창조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다만 창조의 힘이 나타나는 방법을 설명하려는 시도(試
圖)인 것이다. 그리고 천문학자, 지질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들이 점차로 우리의 눈앞에 전개하여 주는 놀라운 물질우주의
이야기는, 그것을 바르게 평가한다면, 히브리경전에 있는 것과
같은 조잡(粗雜)하고 무의미한 천지창조의 기록보다는 훨씬 깊
은 존경과 숭배의 염(念)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나
와 있는‘창세기’의 기사는 대담한 상징의 단순한 필치로써 이
야기의 본질인 정신적 의미를 표현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마치
보통 사람이 세밀한 점에까지 비상한 주의를 기울여도 그려낼
수 없는 표정을, 화가가 단지 붓을 몇 번 움직임으로써 쉽게 표
현하여 놓은 것과 같다. 만일 물질적인 자세한 것이 우리로 하
여금 정신적 의미를 잃게 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없는 것이 좋
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전체조직의 본질적 의미를 한번 파악한
다면 그 자세한 지식은 우리의 착상(着想)에 놀라운 풍부성과
광채를 더하여, 그것을 단순한 사생적(寫生的)인 윤곽이 아니
라 훌륭한 그림을 만들게 될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
이 말씀하셨다.
“존재의 세계에, 즉 이 무한의 우주에 시작이 없다는 것은 가
장 현묘(玄妙)한 정신적 진리의 하나임을 알라........ 창조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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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장 종교와 과학
없는 곳에 창조자가 있을 수 없고, 공급을 받은 자가 없이 공급
자를 상상할 수 없음을 알라. 왜냐하면 모든 하느님의 명칭과
속성은 존재물의 존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어떠
한 존재물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상상할 수 있다면 이 상상
은 하느님의 신격(神格)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뿐 아니라
절대적인 비존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일체성의 본
질’, 즉 하느님의 존재는 영원무궁한 것이며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대우주의 일부분, 예컨대 천체의
하나가 생기고 없어질 수는 있으나 다른 천체는 남아 있는 것
이다. 복합적(複合的)이건 단독적이건 모든 조직체는 필연적으
로 분해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므로 각개의 천체에는 시작이
있다. 다만 그 분해의 시기에 조만(早晩)의 차가 있을 뿐이다.
조직된 것은 마침내 분해되지 않을 수 없다.”---‘질의응답록’
인류의 계통
바하올라께서는 또 인체(人體)의 역사가 수 백 만년 동안 계
속된 종(種)의 발달에까지 소급한다는 생물학자의 설에 찬성하
셨다. 극히 간단하여 겉으로 보기에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
형체로부터, 인체는 한 단계 또 한 단계 무수한 세대를 거쳐 발
달하여, 더욱 복잡해지고 더욱 잘 조직되어 마침내 현재의 인간
으로까지 도달한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각 개인의 신체도
이와 같이 많은 단계를 거쳐, 조그마하고 둥근 아교모양의 보잘
것없는 것에서 완전히 발달하여 인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
이 한 개인에 있어서 틀림없는 사실이어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 하는 이상, 인류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발달을 인정하는 것
이 어찌 인류의 존엄성을 손상한다고 생각할 것인가. 이것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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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류가 원숭이에게서 왔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의 태아(胎
兒)는 어느 시기에는 아가미와 꼬리가 있는 점에서 어류(魚類)
와 비슷하나 그러나 물고기가 아니요 그것은 인간의 태아인 것
이다. 이와 같이 인류는 그 오랜 발달의 여러 단계에서의 외관
상으로는 여러 가지 하급동물과 비슷할 수는 있으나 그러나 그
것은 어디까지나 인류이고 우리가 오늘 보는 바와 같은 인간으
로 발달한 불가사의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앞으
로 미래를 향하여 더 고급한 것으로 계속하여 발달하는 신비한
잠재력을 가진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지구가 단번에 현재의 상태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늘
의 완전에 이르기까지에는 점차로 여러 가지 형태를 거쳐 왔다
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인간은 그 존재의 처음에는 마치
어머니의 태안에 있는 태아와 같이 지구의 모태에서 점차 발육
하고 발달하여, 한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로 전환하여 오늘의
이 미와 완전한 정력과 능력을 가지고 나타나게 된 것이다. 처
음으로부터 인간이 이와 같이 사랑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라 점차로 이 형태와 미와 우아함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하게 된 최초로
부터 현재의 정도와 형체와 상태에 이르기까지는 필연적으로
오랜세월이 지났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존재의 처
음부터 별개의 종(種)이었다....... 현재 (인체에)없어진 기관
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그것이 종의 불변성과 독자성이 없다는
증거는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형체와 모양과 기관이 발달하였
다는 것을 보임에 불과하다. 인간은 언제나 독자의 한 종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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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장 종교와 과학
다. 즉 인간은 짐승이 아니었다.”---‘질의응답록’
아담과 이브의 옛이야기에 대하여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만일 우리가 이 이야기를 일반적 해석과 같이 표현상의 의
미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너무도 부조리(不條理)한 일이다.
지능은 이와 같은 것을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믿거나 상
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경우와 내용과 설화와 비
난은 유식자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며 더욱이 이 무한한 우주를
완전한 형태로 창조하여 그 무수한 주민을 절대의 체계와 힘과
완전으로 조직하신 하느님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금단(禁斷)의 나무 열매를 먹고 낙원을 쫓겨난 아
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단지 상징으로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신성한 신비와 보편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놀라운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질의응답록’
육체와 영혼
바하이 가르침은 육체와 영혼과 그리고 사후의 생애에 대한
심령학적 연구의 결과와 꼭 일치한다. 그것은 우리가 보아 온
바와 같이, 죽음이란 단지 새로운 탄생이요 육체라는 감옥에서
더 넓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탈출(脫出)이어서 사후에 있어서의
진보는 제한이 없다고 가르친다.
많은 과학적 증거가 점차로 쌓였으니 그 공정하고 냉철한 탐
구자의 의견에 의하면, 사후의 생애 즉 물질적인 육체가 분해
된 후에도 의식적(意識的)인 영혼은 계속하여 활동한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F. W. H. 마이어스
가 심령연구회의 많은 연구를 요약한‘인간의 인격’이라는 저
270
바하올라와 신시대
서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관찰, 실험, 추리(推理)는 우리들 많은 탐구자로 하여금 단
지 지상에 있는 인간의 심의(心意)사이만이 아니라 지상에 생
존하여 있는 자와 죽은 사람과의 심의나 영혼 사이에 직접 혹
은 이심전심적(以心傳心的)인 상통(相通)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계시(啓示)의 가능성을 증명하
는 것이 되기도 한다........ 많은 속임과 자기 속임 또는 사기
와 환상(幻想) 가운데서도 우리는 무덤 저쪽에서 참된 표명(表
明)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일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발견과 계시에 의하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죽은 자의 영혼에
관하여 어떤 가정적(假定的)학설이 세워졌다. 첫째로 적어도
나는 이러한 영혼의 상태가 지혜와 사랑 안에서 무한히 발달한
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들의 이 세
계에 대한 사랑, 특히 존경과 예배로써 나타나는 최고의 사랑
은 계속하여 존재한다........ .죄악은 저들에 있어서 무서운 것
이라기보다 노예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결코 힘 있는
권력자에게 나타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고립(孤立)된 광기(狂
氣)와 같아서, 보다 높은 정령(精靈)은 사곡(邪曲)된 영혼을
이것에서 해방시키려고 노력한다. 거기에는 겁화(劫火)의 징벌
이 필요 없다. 자각(自覺)이 곧 벌이며 상이다. 즉 자각과, 영
혼끼리의 친밀 혹은 소격(疏隔)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그 세계
에서는 사랑이야말로 진실로 자기 보존이요,‘성자들과의 교
제’는 영원히 생명을 장식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본질을 이루
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심전심적인 상통의 법칙에 의하
여 이러한 교제는 현재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에도 죽은 영혼의 사랑은 우리의 기도에 응한다. 우리의 사랑
271
제 12 장 종교와 과학
에 대한 기억은 - 사랑은 그 자체가 기도임 - 현재에도 이들 해
방된 영혼의 향상을 지지하고 강화시킨다.”
주도면밀한 과학적 연구에 기초한 이 견해와 바하이 가르침의
견해가 잘 합치하는 것은 참으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인류의 일체성
‘너희는 한 나무의 열매요 한 가지의 잎이며 한 화원의 꽃이
니라.’‘자랑은 자기나라만을 사랑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
라 인류동포를 사랑하는 자에게 있느니라.’란 것은 바하올라의
가장 특색 있는 말씀이다. 일체성 - 즉, 인류의 일체성 및 모든
창조물의 하느님 안에서의 일체성 - 이야말로 이 가르침의 주
안점(主眼點)이다. 여기에 또한 참다운 종교와 과학이 조화됨
이 분명하다. 과학이 진보됨에 따라 우주가 일체인 것, 그리고
그 각 부분이 서로 의존하여 있다는 것이 더욱 명료해졌다. 천
문학자의 영역(領域)은 물리학자의 영역과, 물리학자의 영역은
화학자의 영역과, 화학자의 영역은 생물학자의 영역과, 생물학
자의 영역은 심리학자의 영역과, 이와 같이 모든 것이 서로 불
가분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어느 분야(分野)의 새로운 발견이
든지 필연적으로 다른 분야에 광명을 준다. 우주의 모든 물체의
조각(片)은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는 것일지라도 다른 작은 조각을 끄는 힘이 있어 그것
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물리학자가 증명한 바와 같이 심령학자
도 또한 우주의 모든 영혼이 다른 모든 영혼에 작용하여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크로포트킨 공작은 그 저서‘상호
부조론’에서, 하급 동물계에 있어서도 서로 돕는 것은 생명보존
을 위하여 절대로 필요한 것이며, 인간의 경우에 있어서도 서로
272
바하올라와 신시대
미워하던 것이 점차로 서로 돕게 됨으로써 문명의 발전이 이루
어짐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각 사람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각 사람을 위하여’라는 것이 인류사회의 번영을 위한 유일한 원
리인 것이다.
융합의 시대
현대의 여러 가지 징후는 우리가 인류역사의 신기원의 여명에
처하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인류의 젊은 독수리는
주아(主我)와 유물주의라는 굳은 바위의 낡은 둥우리에 들어앉
아 있었다. 그는 아직 겁이 많아서 시험적으로 날개를 조금 움
직여 보며 아직 얻지 못한 무엇을 항상 초조히 갈망하여 왔다.
그리하여 더욱 낡은 교리와 전통의 구속에 신음하여 왔다. 그러
나 지금은 그 구속의 시기가 끝나서 신앙과 이성(異姓)의 날개
를 부쳐 정신적 사랑과 진리의 하늘에 높이 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아직 날개가 성장하지 않았을 때처럼 이제는 지상에 더
매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광막한 지평선상의 빛나는 자
유 천지에 마음껏 그 날개를 펼쳐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더 확
실히 날기 위해서는 한 가지 더 필요한 조건이 있으니, 두 날개
가 강할 뿐 아니라 완전한 조화와 협조로써 움직여야 한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것은 한 날개로써 날 수 없다. 만일 종교만의 한 날개로써
날려고 하면 미신의 흙탕물에 떨어질 것이요, 만일 과학만의
한 날개로써 날려고 하면 유물론이라는 암담한 늪에 빠질 것이
다.”---‘압돌바하의 지혜’132쪽
273
제 12 장 종교와 과학
종교와 과학의 완전한 조화는 인류의 고귀한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다. 만일 이 조화가 이루어져 모든 아이들이 과학
과 기술을 배울 뿐 아니라 전 인류에 대한 사랑과, 진화의 발전
과, 예언자들의 가르침 가운데 계시된 하느님의 뜻에 대한 빛나
는 묵종(?從)을 함께 배운다면, 여기에 비로소‘하느님의 나라’
가 세워져,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
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 비로소‘최대의 평화’가
그 축복을 이 세상에 보내 줄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종교가 그 미신과 전례와 황당한 교조(敎條)를 버리고 과학
과 일치하게 되면 거기에 커다란 융합력과 정화력(淨化力)이 발
현하여, 그것이 모든 전쟁, 충돌, 알력, 쟁투의 일체를 이 세계에
서 일소해 버릴 것이니, 그때에 비로소 전 인류는 하느님의 사랑
과 힘 안에서 융합될 것이다.”---‘압돌바하의 지혜’135쪽
274
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가장 큰 이름’의 현시자(바하올라)에 관하여 말하자면, 그
분은 바로 하느님께서 성서와 복음서와‘코란’등 모든 경전과
계시의 글에서 약속된 분이다. --- 압돌바하
예언의 해석
예언의 해석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써, 학자들 사이에 이것처럼 여러 가지 의견을 달리하는 것이 없
다. 그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계시된 여러 문
서 그 자체에 의하면 많은 예언은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에도 마
음이 맑고 편견이 없는 자에게만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언자 다니엘은 그 계시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해 두
어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여 지식이 더 하리라........ 내
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내 주여, 이 모든 일
의 결과가 어떠하겠나이까’. 그가 가로되,‘다니엘아, 갈지어
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할 것이니라.’”
--- 다니엘 제 12장 4~9절
만일 하느님께서 지정하신 때까지 예언이 봉해져 있어 그것을
275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말한 예언자에게까지 그 해석이 충분히 계시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다만 하느님께서 명하신 사자(使者)만이 그 봉인을 찢
어, 예언적 우화(偶話)의 문갑 속에 감추어져 있는 뜻을 밝힐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예언의 역사와 전대의
종교제에 있어서의 예언의 그릇된 해석을 돌이켜 보고 그것을
예언자들 자신의 엄숙한 경고에 결부시켜 생각해 본다면, 그 현
시자께서 말씀하신 것과 그것의 실현방법의 참뜻에 관하여 우
리는 신학자들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극히 조심하여
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편, 예언을 실현한다고 자칭하는 자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관대하고 편견 없는 마음으로써 그의 주장
을 음미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그가 사기꾼이라면 그 속임을
곧 발견하여 위해를 피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자는 의외
의 형상으로 의외의 때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부주의로 말미암
아 그를 문 앞에서 쫓아 보내는 사람은 불행하다. 바하올라의
생활과 말씀은 그분이 모든 경전에 약속된 분이며 예언의 봉인
을 찢어 성스러운 신비의‘밀봉된 가장 좋은 술’을 부어 줄 수
있는 힘을 가지신 분임을 증거 한다. 우리는 먼저 그분의 설명
을 듣자. 그리고 그것에 비추어, 이미 알려져 있으면서도 가끔
신비스럽게만 보이는 옛날의 예언자들의 말씀을 다시 음미하여
보기로 하자.
주의 출현
‘최후의 날’에 있을‘주의 출현’은 모든 예언자들이 기다렸
으며 가장 영광스러운 찬송이 바쳐지는 먼 미래의 신성한 사건
이다. 그런데‘주의 출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확실히
하느님께서는 항상 그 창조물과 함께,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
276
바하올라와 신시대
을 통하여, 또 모든 것 위에 존재하신다.‘하느님은 우리의 호흡
보다도 가깝고 우리의 손발보다도 가까운 것이다.’그렇다. 그
러나 사람은,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형체로써 나타
나셔서 사람의 말로써 그들에게 말하기 전에는, 내재적(內在
的)이며 초월적(超越的)인 하느님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고,
존재를 실감할 수도 없다. 하느님께서는 그 높은 속성을 계시하
시기 위하여 언제나 인간이라는 도구(道具)를 이용하셨다. 모
든 예언자들은 매개자이니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그 백
성을 찾아오시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매개자이
셨다. 그리하여 기독교도들이 그분의 출현을 하느님께서 오신
것으로 본 것은 정당하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서 하느님의 얼
굴을 보았고, 그분의 입을 통하여 하느님의 소리를 들은 것이었
다. 바하올라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되,‘종말의 때’에 오
신다고 모든 예언자들이 말씀하신‘만군의 주’,‘영원의 아버
지’,‘세계의 창조자, 속죄의 주’의 출현이란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몸을 통하여 나타나신다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하셨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나자렛의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나타나신
것과 같다. 그러나 이번은 더 한층 완벽하고 영광스러운 계시를
가지고 오시는 것이니, 그리스도와 그 밖의 모든 예언자들은 그
분을 받아들이기 위한 인간의 마음과 심령의 준비를 위하여 오
신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구세주’의 통치에 관한 예언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
에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이었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77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구세주’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어
그분이 하루라도 빨리 오시기를 밤낮 기도하고 있다. 예수께서
나타나셨을 때 저들은 그분을 거부하여 죽이고 말하기를, 이것
은 우리가 기다리는 자가 아니다. 보라,‘구세주’가 오실 때는
반드시 징후와 기적이 나타나서 그분이 참으로 그리스도인 것
을 증거 할 것이다.‘구세주’는 사람들이 모르는 도시에서 나
타나실 것이다. 그분은 다윗의 왕좌에 앉아 강철의 검을 가지
고 철홀(鐵笏)로써 통치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예언자들
의 계율을 실현하실 것이다. 그분은 동서양을 정복하시고 그
선민(選民)인 유대인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그분은 평화의
통치를 이루어 짐승들까지도 사람에게 적대(敵對)하는 일이 없
어질 것이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한 샘에서 물을 마시게 되고 모
든 하느님의 창조물은 안식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이와 같이 생각하였고 또한 말하였으니, 그것은
경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영광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문구를 암송하지만
생명을 주는 정신에 대해서는 단 한 말씀도 이해하지 못한 것
이었다.
여러분께 내가 지금 그 의미를 설명하리라. 예수께서는 물론
세상이 다 아는 나자렛에서 오셨지만 그분은 또한 천국에서 오
신 것이다. 그분의 육체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지만 그분의
정신은 천국에서 오신 것이다. 그분이 가지고 오신 검이란 것
은 혀(舌)의 검을 말하는 것이니, 그것으로써 그분은 악에서
선을, 거짓에서 참됨을, 불신에서 신의를, 그리고 어둠에서 빛
을 갈라내셨다. 그분의 말씀은 참으로 날카로운 검이었다. 그
278
바하올라와 신시대
분이 앉으신 왕좌는 거기에서 영원히 지배하는 영원의 왕좌요
천국의 왕좌이지 지상의 왕좌는 아니다. 왜냐하면 지상의 왕좌
는 없어지는 것이지만 천국의 왕좌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
문이다. 그분은 모세의 율법을 해석하시고 그것을 완성하셨다.
그분의 왕국은 영원한 것이다. 그분은 그분을 받아들인 유대인
들을 높여 주셨다. 그들은 출생이 비천한 남녀들이었지만 그리
스도와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위대해졌고 영원하고 권위 있는
품성을 받았다. 함께 살아갈 동물이란 것은 일찍이 서로 싸우
던 여러 종파와 인종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들은 지금 사랑과
자비 가운데 살고 영원의 샘인 그리스도에게서 함께‘생명의
물’을 마시는 것이다.”---‘압돌바하의 지혜’48쪽
대다수의 기독교도들이‘구세주’에 관한 예언의 이러한 해석
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후세의
‘구세주’에 대한 마찬가지 예언에 관해서는 그것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물질면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
대하면서 그들의 대부분은 유대인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바압과 바하올라에 대한 예언
바하이의 해석에 의하면‘종말의 때’,‘후일’,‘만군의 주’의
출현과‘영원의 아버지’에 대한 예언은 그것이 특히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한 것이 아니라, 바하올라의 출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예로서 저‘이사야’서의 유명한 예언을 들어보기로 하자.
“흑암에서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
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
279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라.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 묻은 복장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
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政事)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寄妙者)라, 모사(謀士)
라, 전능하신 하느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平康)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
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서 제 9장 2~9절
이것은 가끔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으로 보는 것 중의 하나인
데 그 대부분은 그러한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연구해 보면 그것이 바하올라에게 적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광명을 가져온 분이며 구세주였지만
그분의 출현 이래 거의 2천년이 지났건만 이 세상 인류의 대부
분은 아직도 암흑의 길을 걷고 있어, 이스라엘의 자손과 그 밖
의 많은 하느님의 아들딸들이 압제자의 채찍 밑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바하이기원 불과 몇 십 년에 진리의 광명이 동서
양에 비치어, 하느님은 아버지요 인류는 동포라는 복음이 세계
의 도처에 퍼지고, 대군국주의적 전제는 타도되며, 세계의 모든
학대받고 압제받아온 민족에 대하여 마침내 구제될 희망을 주
는 세계통합의 의식이 생겼다.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 일
어난 세계를 뒤흔든 대전쟁은 총포, 독가스, 소이탄, 기관연료
등 일찍이 듣지 못한 무기가 사용됨으로써 실제로‘불에 타서
죽을 것이라’고 한 그대로였다. 바하올라께서는 그분의 저서 가
운데서 정치, 행정문제를 광범위하게 다루시어 그것이 어떻게
하면 가장 잘 해결될 것인가를 보여주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
280
바하올라와 신시대
일찍이 취하시지 않은 방법에 의하여 그분은‘정사를 그 자신의
어깨에 메었다’.‘영원의 아버지’,‘평화의 임금’이라는 칭호에
관하여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아들’이라
고 하셨음에 반하여, 바하올라께서는 가끔 자신을 그리스도와
이사야가 말씀한 바‘아버지’의 나타남이라고 하셨다. 바하올
라께서는 자신의 사명이 지상에 평화를 건설하는 일이라고 하
셨는데, 그리스도께서는‘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제 10장 34절)고 하셨다. 사실 기독교의 시대에는
전쟁과 당파싸움이 심히 많았다.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라는 칭호는 아라비아어로‘하느님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이 칭호는 히브리의 예언자들에 의하여‘후일’에 출현
한다고‘약속된 분’에 대하여 많이 씌어진 말이다. 이사야서 제
40장 1~5절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너희 하느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
하라. 너희는 정답게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
라. 그 복역(服役)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赦)함을 입었
느니라. 그 모든 죄로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
라 할지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
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느님의 대로(大路)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 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
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
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
리라.”
281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위에 기록된 예언과 같이 이것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의 출현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일부분이었으니,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예루살렘에
싸움이 끊이지 않아서 잔혹한 시련과 굴욕이 여러 세기 동안 이
지상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압과 바하올라의 출현
에 의하여 그 예언이 더 한층 완전하게 실현되기 시작하였으니,
보다 더 밝은 날이 예루살렘을 위하여 이미 서광이 비치고, 평화
롭고 영광스러운 장래의 희망이 지금 확실히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예언으로는,‘이스라엘의 속죄 주’인‘주의 영광’이 해
돋는 동방에서‘성지’에 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바하올라께서
는 팔레스타인의 동방, 해 돋는 저쪽 페르시아에 출현하시어
‘성지’에 오셨고, 그곳에서 그분의 만년(晩年) 24년을 보내셨
다. 그분이 만일 자유스러운 몸으로서 그곳에 가셨다면 혹은 고
의로 예언에 합치시키기 위한 사기꾼의 책략(策略)이라고 할지
도 모르나 그분은 추방된 몸이 되어 죄수로서 그곳에 가신 것이
었다. 그분은 페르시아 황제와 터키황제에 의하여 그곳에 끌려
가신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이, 그분이 예언자들에 의하
여 예언된 바 장차 오실‘하느님의 영광’이라는 바하올라의 주
장을 지지하여, 그 증거를 주기 위한 의도 하에 행한 일이라고
는 생각할 수 없다.
하느님의 날
‘하느님의 날’또는‘종말의 날’이라는 어귀의‘날’이란 말
은‘종교제’의 의미로 해석된다. 모든 대종교의 창시자들은 모
두 각자의‘날’을 가지고 있다. 그 각자는 태양과 같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새벽이 있고, 그들의 진리는 점차로 민중의 마음과
282
바하올라와 신시대
정신을 비치어 마침내 그 영향이 절정(絶頂)에 달한다. 그리고
점차로 그 빛이 희미해지고 곡해되고 부패하여 다시 새날의 태
양이 떠오를 때까지는 암흑이 땅을 뒤덮게 된다. 하느님의 최상
(最上)의 현시자의 날은‘종말의 날’이니, 그날은 끝이 없는 날
이요 다시 밤이 오지 않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의 태양은 결코
일몰(日沒)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인간의 영혼을 비칠 것이다. 사실, 정신적 태양은 일몰이 없다.
모세, 그리스도, 모하멧, 그 밖의 모든 예언자들의 태양은 지금
도 하늘에서 불멸의 빛으로써 빛나고 있다. 그러나 땅에서 발생
한 안개와 구름이 그들의 빛을 민중에게 가리고 있다. 바하올라
의 지고(至高)의 태양은 마침내 그 어두운 구름을 일소하여, 모
든 종교의 백성들이 모든 예언자들의 광명에 기쁨을 느끼고, 모
든 예언자들이 그 빛을 반영한 유일의 하느님을 함께 예배하게
될 것이다.
압돌바하에 대한 예언
이사야, 예레미아, 에제키엘, 제카리아 등의 예언에‘가지’라
고 불리우는 사람에 대하여 몇 군데 언급된 것이 있다. 이러한
언급은 기독교에 의하여 가끔 그리스도에 해당되는 것으로 해
석되어 왔다. 그러나 바하이들은 그것이 특히 압돌바하에 적용
되는 것으로 본다. 한 가족의 장남을‘가장 큰 가지’라고 하는
것은 페르시아의 일반적인 관습으로서, 압돌바하께서도 바하올
라의 장남이므로 바하이들 사이에 이 칭호로써 널리 알려져 있
다. 바하올라께서는 그 저서 가운데 가끔 자신을‘나무’또는
‘뿌리’라 하시고 압돌바하를‘가지’라고 기록하셨다. 압돌바하
자신도 다음과 같이 쓰셨다.
283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압돌바하는‘하느님의 성약의 중심’이어서‘나무’에 필요한
‘가지’인 것이다. 본질적인 것은‘나무’이다. 기초는‘나무’이
다. 또 보편적 실재(實在)는‘나무’이다.”
---‘서방의 별’제 8권 325쪽
‘가지’에 관하여 성서에 가장 길게 씌어 있는 예언은 이사야
서 제 11장 1~12절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
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
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
림하시리니........ 공의(公儀)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
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
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이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
음과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
라........ .그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
르와 애급과 바드로와 구스 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
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열방(列邦)을 향하
여 기호(旗號)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대의 이산(離散)한 자를 모으시리니.”
압돌바하께서는 이 예언과 그 밖의‘가지’에 관한 예언에 대
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저 무비(無比)의‘가지’가 나타나는 날에 일어날 대사건의
하나는 모든 민족 사이에 하느님의 깃발이 세워지는 일이다.
284
바하올라와 신시대
그것은 모든 국민과 종족이 이 신성한 깃발, 즉 웅대한‘가지’
아래에 모여 단일한 국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신
앙과 종교의 반목(反目), 민족의 적개심, 애국적인 알력은 저
들에게서 근절될 것이다. 모두가 한 종교, 한 신앙, 한 인종, 한
백성이 되어 이 지구를 한 조국으로 하여 살게 될 것이다. 그리
하여 세계평화와 조화가 만국 사이에 실현될 것이다. 무비의
‘가지’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을 한데 모을 것이다. 즉 이 주
기(週期)에는 동서남북에 이산되어 있는 유대인들이 다 이 성
지로 모일 것이다. 진실로,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의 주기에는
일어나지 않았나니, 여러 국민이 신성한‘가지’인 한 깃발 아
래에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만군의 주’의
주기에는 만국의 백성들이 이 깃발 아래에 모일 것이다. 또 세
계 각지에 이산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그리스도의 주
기에는 이 성지에 모이지 않았지만 바하올라의 주기의 시초에
있어서, 모든 예언서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 신
성한 약속이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세계 각
지로부터 유대민족이 성지를 향하여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들은 저들 자신의 것으로 건설한 촌락과 소유지에 거주하게 되
고 그 수가 날로 늘어 불원에 전 팔레스타인 지방이 저들의 집
이 될 것이다.”---‘질의응답록’
이상의 글이 씌어진 이후, 팔레스타인 지방은 터키의 지배를
벗어났고‘동맹 연합국’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이 그 민족적
조국을 재건하려는 주장을 시인하였다.
세계대전 이후에 국제연맹이 설립되었다. 그것이 평화를 유지
하는 일, 또는 안전보장을 조직화하는 일에 실패하였지만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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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국민 사이에 새롭고 보다 큰 집단적 책임의식이 나타나서 세계
시민제의 예비적 교육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는 일
에 이바지하였고, 그 실패는 곧 바하올라에 의하여 세워진 신질
서를 강조하는 일에 공헌하고 있다. 그리고 신질서의 힘은 구질
서의 힘이 급속도로 감퇴함에 따라 점차로 커져 가고 있다.
심판의 날
그리스도께서는 위대한‘심판의 날’에 관하여 우화(偶話)로
써 말씀하시고, 그날에‘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태복음 제 16장 27
절)고 하셨다. 그분은 이‘날’로써 가라지는 불사르고 곡식은
모아 곡간에 넣는 수확의 때에 비유하였다.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를 보내리니, 저희
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
을 거두어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齒)를
갊이 있으리라. 그때에 의인(義人)들은 자기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태복음’제 13장 40~43절
위에 인용한 흠정역(欽定譯)성서에 사용된‘세상의 끝’이라
는 어귀와 그와 비슷한 다른 구절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심
판의 날’이 오면 지구가 갑자기 파괴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
였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이 어귀의 바른 뜻은‘시
대의 완성(혹은 종국)’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는‘아버지의 왕국’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건설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분은‘그 나라가 오기를,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치
286
바하올라와 신시대
셨다. 그분의‘포도원’의 우화에서‘아버지’, 즉‘포도원 주인’
은 사악한 농부를 파멸시키기 위하여 오신다. 그러나 그분은 포
도원(세계)을 파괴하지는 않으신다. 다만‘추수 때에 이르러 과
실을 바치는 다른 농부들에게’빌릴 것이다.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새로 고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 다른
기회에, 그날에 대하여‘세상이 고쳐지어 인자가 그 영광의 자
리에 앉는 때’라고 하셨다. 성 베드로는 이것을‘위안의 때’,
‘하느님께서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
하신 바 만유(萬有)를 회복하실 때’(사도행전 제 3장 21절)라
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심판의 날’이란 것
은 이사야와 그 밖의 구약의 예언자들에 의하여 예언된‘만군의
주’이신‘아버지’의 출현과 분명히 같은 뜻이다. 즉 사악한 자
가 엄벌을 받는 때요, 하늘에서와 같이 땅위에도 정의가 확립되
고 정도(正導)가 지배하는 때를 가리킨 것이다.
바하이 해석에 의하면 모든 하느님의 현시자들의 출현은‘심
판의 날’이, 그리고 지상(至上)의 현시자 바하올라의 출현은 우
리가 살고 있는 이‘세계주기’(世界週期)의 최대의‘심판의
날’이다. 그리스도나 모하멧이나 그 밖의 많은 예언자들이 말씀
하신 나팔소리란 것은, 하늘에 있는 자와 땅위에 있는 자 - 산
자나 죽은 자나 - 모든 사람을 위한 현시자의 부르는 소리이다.
하느님의 현시자를 통하여 하느님과 만나는 것은, 이것을 바라
는 자에게는,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하느님
의 모든 창조물과 더불어 사랑 가운데서 사는‘낙원’으로 통하
는 문이다. 한편, 현시자에 의하여 계시된 하느님의 길을 버리
고 자신의 길을 택한 사람들은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이
기심과 착오와 증오의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287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대부활(大復活)
‘심판의 날’은 또한‘부활의 날’이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는 날이다. 성바울은 고린도 전서 가운데 다음과 같이 썼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
리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
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옷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로다.”
--- 고린도 전서 제 15장 51~53절
죽은 자의 갱생에 관한 이러한 구절의 의미에 대하여 바하올
라께서는‘케타베 이간’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경전에 기록된‘생’과‘사’라는 말은, 신앙의‘생’과 불신앙
의‘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
하므로 인하여 일반 민중은 하느님의 현시자를 거부하고 멸시
하고 신성한 지도자의 빛에서 그들 자신을 멀리하고 불멸의 미
(美)의 교훈을 따르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
으되,‘너희가 거듭 나야 한다.’(요한복음 제 3장 7절)고 하셨
다. 또 말씀하셨으되,‘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
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肉)으로 난 것은 육이
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靈)이라.’(요한복음 제 3장 5~6절)
고 하셨다. 이러한 말씀의 참뜻은, 모든 종교제에서 사람은 누
구든지 성령으로 나서 성질(聖質)의 현시자의 입김을 받은 자
가‘생명’과‘부활’을 얻어 하느님의 사랑의‘낙원’에 들어갈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자는 누구든지‘죽음’과‘잃음’과 불신
앙의 불과 하느님의‘벌’의 선고를 받는다........ 모든 시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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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세기(世紀)에 있어서 하느님의 예언자와 그분들의 택함을 받은
자들의 목적은,‘생명’과‘부활’과‘심판’의 말의 정신적 의미
를 긍정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만일 그대가 하
느님의 지식의‘샘물’을 한 방울이라도 맛보았다면 그대는 곧
참다운 생이란 것은 정신의 생이요 육체의 생이 아님을 깨달을
것이니, 육체의 생명은 인간과 동물의 양자에 공통하는 것임에
반하여 정신의 생명은 신앙의 바다에서 마시고 확신의 과실을
맛보는 깨끗한 마음의 소유자라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생은 사가 따르지 않고 이 존재는 불멸의 영관(塋冠)을 쓴다.
‘참다운 신도는 현세와 내세의 두 세상에 걸쳐 사는 것이라.’
고 말한 바와 같다. 만일 생명이 육체의 외면적 생명을 의미한
다면 그것은 분명히 사에 의하여 정복된다.”
---‘케타베 이간’114, 118, 120쪽
바하이 가르침에 의하면,‘부활’이란 것은 조잡한 물질적 육
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육체는 한번 죽으면 그만이
다. 그것은 분해되어 그 원자는 다시 같은 육체로 조성될 수는
없다. 부활은 하느님의 현시자를 통하여 주어진, 성령의 혜택으
로 이루어지는 개인의 정신적 생명으로의 탄생이다. 그가 갱생
하는 무덤은, 하느님에 대한 무지와 태만의 무덤이다. 그가 깨
는 잠이란 것은 많은 사람들이‘하느님의 날’이 새벽빛을 기다
리고 있는 잠들은 정신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 서광은 육체의
유무에 불구하고 이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비치고 있지
만, 다만 정신적으로 눈먼 사람은 이것을 느껴 깨달을 수 없다.
‘부활의 날’은 24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현재에 시작되어 지금
의‘세계주기’가 끝나기까지 계속하는 한 연대(年代)를 가리키
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문명의 자취가 이 지상에서 아주 없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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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계속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스도께서는 그 많은 담화에서 미래의 하느님의 현시자에
대하여 대개 제 3인칭으로써 말씀하셨지만 때로는 제 1인칭을
쓰기도 하셨다. 그분은 말씀하셨으되,‘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
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
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요한복음 제 14장
2~3절)고 하셨다. 그리고‘사도행전’제 1장 11절에, 그리스
도께서 승천하실 때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 기
록되어 있다.‘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
로 가심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이와 같은
말씀이 있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도들은‘인자’가‘하늘의 구름
에 앉아 큰 영광을 가지고’오실 때,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2천
년 전에 예루살렘 거리를 걸으셨고 십자가에 피를 흘리시고 괴
로움을 당했을 그때의 그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
들은 자기의 손가락으로써 그리스도의 손과 발에 남아 있는 못
자국을 만지고, 자기의 손으로써 그리스도의 옆구리의 창에 찔
린 자리를 만져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을 좀 자세히 살펴본다면 이러한 생각은 곧 사라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재세(在世) 시에 유대인들은 엘리야의
재현에 대하여 꼭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리스도
께서는‘엘리야가 먼저 오리라’는 예언이, 옛날의 엘리야가 그
인격과 육체로써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정신과 힘을
가지고 온 세례자 요한의 인격에 나타난 것임을 알려 주시면서
그들의 잘못을 설명하셨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으되,“만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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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태복음 제 11장 14~15절)고 하셨
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재현은 다른 부모에게서 난 다른 사람의
출현에 의하여 성취된 것이지만 같은 정신과 같은 힘을 하느님
에게서 받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같이 하느님의‘성
령’과‘힘’을 나타내는 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바압의 출현과 바
하올라 자신의 출현에 의하여 실현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태양을 생각해 보라. 오늘의 태양이 만일‘나는 어제의 태양
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실이다. 그리고 만일 일순(日順)을
염두에 두고‘나는 어제의 태양과 다르다’고 말하여도 그것 역
시 진실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날들이 동일하다고 하여도 그것
이 진실이요, 또 그 특별한 이름과 지정에 의하여 각자가 서로
다르다고 하여도 그것 또한 진실이다. 그것은 그 각자가 서로
같으면서도 그 각자에게는 사람이 인정하는 서로 다른 이름과
특수한 속성과 특수한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서 신
성한 여러 현시자의 차이와 구별과 일체성을 생각해 보라. 그
리하면 너는 여러 이름과 속성의 창조자에 의하여 이루어진 차
이와 일체성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시대
에 있어 영원의 미(美)가 그들 자신을 다른 이름과 다른 명칭
으로 부른 이유에 대한 너의 질문의 해답을 발견할 것이다.”
---‘케타베 이간’21~22쪽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출현하신다는 것은 일반 민중이 믿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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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와 같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뒤에 오는‘약속된 분’의 출
현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라. 그분은‘하느님의 나라’와 세계에
넘치는‘하느님의 힘’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다. 그분의 지배는
마음과 정신의 세계에 있는 것이지 물질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
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눈에는 이 물질 세계는 파리의 날개에
도 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것을 아는가. 진실
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나라’와 함께 처음 없는 처음에서 오셨
고, 또 영원의 영원까지 그‘나라’와 함께 오실 것이다. 왜냐하
면,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처음이 없고 끝이 없는
순수한‘본질’이요, 천국의 본체인‘신성한 실재(實在)’의 표
현이다. 그것은 어느 주기에나 나타나서 일어서고 현시하고 몰
입(沒入)하는 것이다.”---‘압돌바하의 서한집’제 1권 138쪽
종말의 때
그리스도와 그 사도들은‘인자’가‘아버지’의 영광을 가지고
‘재림’하는 때를 분별할 수 있는 많은 징후에 대하여 말씀하셨
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으되,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
는 형벌의 날이니라.......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震
怒)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음을 당하며 모든 이방
(異邦)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누가복음’제 21장 20~24절
그분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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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나는 그리스도라’하여 많은 사람
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
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때에는 사
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때에 많
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겠으며 불법이 성
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
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제 24장 4~14절
이상의 두 문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조금도 가리움 없이 분명
히‘인자’가 오시기 전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예언하셨다. 그리
스도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이래 오랜 시일 동안에 이러한 징
후가 모두 실현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구들의 끝에는 그분이
재림할 때를 증표할 사건에 대하여 언급하셨으니, 그 하나는 유
대인의 추방이 끝나는 것과 예루살렘이 재건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두
징후가 문구 그대로 실현되어 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
이다. 만일 그 예언의 일부분이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진실한
것이라면 분명히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종말의
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모하멧께서도 또한‘부활의 날’까지
계속할 여러 징후에 대하여 말씀하셨다.‘코란’에 다음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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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씌어 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으되,‘그리스도여, 진실로 내가 너를
죽여 너로 하여금 내게로 높일 것이다. 그리하여 불신자들의
고소에서 너를 깨끗이 하고, 부활의 날까지 그들 불신자 (즉 유
대인 기타)의 위에 너를 따르는 사람들 (즉 기독교도)을 둘 것
이다. 그때에 너는 내게로 돌아올 것이요, 나는 너희의 서로 다
른 것에 대하여 결정을 내릴 것이다’.”
---‘수라트’제 3장 54절
“유대인은 말하되,‘하느님의 손이 결박되었다.’고 하나 그
들 자신의 손이 결박될 것이요, 그들이 말한 것으로 인하여 그
들은 저주받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하느님의 두 손은 뻗쳐 있
다. 하느님 자신의 뜻에 의하여 하느님께서는 선물을 주신다.
너희 하느님께서 너에게 주신 것은 반드시 저들 가운데 많은
반역과 불신앙의 마음을 더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저들 사
이에 질투와 증오심을 두었나니 그것은‘부활의 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저들이 전쟁을 위하여 봉화를 들 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끄실 것이다.”---‘수라트’제 5장 69절
“그리고‘우리는 기독교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성약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저들은 저들에게 가르친 것의 일부를 잊어
버렸다. 그러므로 우리는‘부활의 날’까지 계속할 적개심과 증
오심을 저들 사이에 두었고, 최후에 하느님께서 저들의 행위에
대하여 저들에게 말씀하실 것이다.”---‘수라트’제 5장 17절
이러한 말들은 유대인이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에게 복종함
으로써, 또 모하멧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이래 여러 세기 동
안에 유대교도와 기독교도는 그 어느 것에나 내부에 종파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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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립하여 서로 싸운 사실에 의하여 문자 그대로 실현되었다. 바하
이 기원 (부활의 날)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이러한 상태의 종말
이 가까워진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천지의 징후
히브리, 기독교, 이슬람교, 그 밖의 많은 경전에,‘약속된 분’
의 출현에 따르는 여러 가지 징후에 대한 기록이 이상하게도 비
슷한 점이 많다.
요엘서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내가 이적(異蹟)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
기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
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그날, 곧 내가 유대
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때에, 내가 만국
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을 국
문하리니........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
여, 판결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해와 달이 캄
캄하여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
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
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山城)이 되리로다.”
--- 요엘서 제 2장 30~31절, 제 3장 1~2절, 14~16절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
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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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
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의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
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제 24장 29~30절
‘코란’에도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해가 가리워지는 때
별들이 떨어지는 때
산들이 없어지는 때
책장(冊張)도 풀리는(解) 때
하늘도 덮개가 벗겨지는 때
지옥도 불타는 때”---‘수라트’제 81장
바하올라께서는‘케타베 이간’에서, 해와 달과 별과 하늘과
땅에 관한 이러한 예언은 상징적인 것이요, 문자 그대로 해석
할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셨다. 예언자는 주로 정신적인 사물에
관계하는 것이요, 물질적인 사물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므로 정
신적 광명을 말씀하신 것이지 물질적 광명을 말씀하신 것은 아
니다.‘심판의 날’에 관하여‘태양’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분
들이‘정도(正導)의 태양’을 가리키신 것이다. 태양은 광명의
지상(至上)의 원천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모세는 히브리민족
의 태양이셨고, 그리스도는 기독교도의 태양이셨으며, 모하멧
은 이슬람교도의 태양이셨다. 태양이 빛을 잃는다고 예언자께
서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이러한 정신적 태양의 순수한 가르
침이 그릇된 해석과 편견에 의하여 흐려져, 민중이 정신적 암
흑에 있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달과 별은 태양의 다음 가는
광명의 원천이니, 민중을 지도하고 고무하는 종교상의 지도자
와 교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달이 빛을 잃는다 하고 혹은 달이
296
바하올라와 신시대
피로 변한다 하고 또 별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한 것은 교회
의 지도자들이 불화와 쟁투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승려가 세속
일에만 관여하고 천국 일에 등한하여 완전히 세속적이 되는 것
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의 의미는 단지 한 가지 설명만으로써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상징은 다른 여러 가지 의미로
서도 해석할 수 있다. 바하올라께서는 다른 의미에서‘해’와
‘달’과‘별’이라는 말들이 여러 종교에서 제정한 계율과 교훈
에 적용된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뒤에 온 여러 현시자에 의하
여, 먼저 온 현시자의 의식과 형식과 관례와 교훈이 그 시대의
요구에 응하여 고쳐질 수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의미에서도 해
와 달이 변하고 별이 없어지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예언들이 외면적 의미에서 문자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은 부조리(不條理)하고 불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자면 달이 피로 변하고 별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 같은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별도 그 크
기가 지구의 수 천 배나 된다. 만일 그 하나가 땅위에 떨어진다
면 다른 별이 떨어질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경우
에는 정신적으로와 마찬가지로 물질적으로 실현되는 수도 있
다. 예를 들자면 예언자들에 의하여 예언된 바와 같이‘성지’는
문자 그대로 여러 세기 동안 황폐하여 있었다. 그러나 이사야가
예언한 바와 같이,‘부활의 날’에 이미 그것이‘장미꽃 피듯이
번영하기’시작하였다. 반세기 전까지는 모래벌판에 불과하던
땅에 지금은 번영한 식민지가 창설되어, 토지는 관개하여 경작
되고 포도밭과 감람나무숲과 화원들이 점차로 번성해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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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다. 인간이 검을 호미로, 창을 낫으로 두드려 만들 때에 이르러
의심 없이 세계각지의 황무지와 불모의 땅이 옥토로 변할 것이
다. 이러한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비와 뜨거운 바람이 부근의
주민을 못살게 괴롭히던 것이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전 지구의
기후가 더 평온해지고 모든 도시가 연기와 독한 냄새로써 공기
를 더럽히는 일이 없어, 외면적 물질적 의미에서도‘신천지’가
이루어질 것이다.
출현의 모양
시대의 종말에 있어서의 자신의 출현의 모양에 대하여 그리스
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
들을 보내리라.......그때에 자기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
‘마태복음’제 24장 30~31절, 제 25장 31~32절
이러한 구절과 그 밖의 비슷한 문구에 관하여 바하올라께서는
‘케타베 이간’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이‘하늘’이란 말은 고상(高尙)과 고원(高遠)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고래의 영광의 새벽빛인 신성한 현시자의 계
시의 자리(坐)인 것이다. 그들은 이 지상에 살기는 하지만 그
들의 진정한 주거(住居)는 하늘 위의 영역(領域)에 있는 영광
의 은택(隱宅)이다. 지상을 걸으면서도 그들은 하느님의 어전
(御前)인 천국에 날아오른다. 발 없이 그들은 정신의 길을 걷
298
바하올라와 신시대
고 날개 없이 그들은 하느님의 일체성의 고원한 높이에까지 오
른다. 모든 순간의 호흡으로써 그들은 광대한 공간을 날고 모
든 순간에 있어서 가시(可視)와 불가시(不可視)의 영역을 넘는
다.......
‘구름’이란 말은 사람의 습관과 욕망에 반대되는 것을 의미
한다. 내가 이미 인용한 싯귀에서 모하멧이 계시한 바와 같이,
‘너의 영혼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오는 사자에
게, 너희는 언제나 오만하게 그들을 대하고, 혹은 사기꾼으로
몰고 또는 죽였다.’(코란 제 2장 81절) 이러한‘구름’은 어느
의미에 있어서 계율의 폐지와, 재래 종교제의 폐기와, 인간 사
이에 통용되는 의식과 습관의 철폐와, 하느님의 신교를 반대하
는 유식자의 위에 신앙 깊은 무학자를 두는 것 등을 의미한다.
또 다른 의미에서‘구름’이란 것은, 인간의 마음에 의심을 주
어 저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현시자를 거부하게 하는 인간적 제
한, 즉 먹는 일과 마시는 일, 빈부와 귀천, 잠자고 깨는 일과 같
은, 모든 죽고야 마는 인간의 모습에 있어서의‘불멸의 미’의
나타남을 의미한다. 모든 이러한 베일(面紗)은 상징적으로‘구
름’으로써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것은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의 지식과 이해(理解)의
천국을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는‘구름’이다. 모하멧이 계시
한 바와 같이‘그날에 천국은 구름으로 인하여 멀어질 것이
다.’(코란 제 25장 27절). 구름은 사람의 눈이 신성한‘발광
체’의 빛을 보는 것을 방해 한다. 신성한 경전에 계시된 바와
같이 무신앙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니
그들은 말하되,‘그 사람은 대체 어떤 사도인가. 그는 음식을
299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먹고 길을 걷는다. 만일 천사가 와서 그의 경고(警告)에 참가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믿을 수 없다.’(코란 제 25장 7절) 모든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빈곤과 고난과 굶주림과 세속적 불행한
운명으로 고생하였다. 이들 성스러운 사람들은 이와 같은 부족
과 결핍으로 고생하였으므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불안과 의심
의 황야(荒野)에 헤매고 미혹과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그와
같은 자가 하느님의 보냄을 받아 지상에 사는 모든 종족과 민
족에 대하여 자기의 주권을 주장하여, 그 자신이 곧 전 우주의
목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던가. 모하멧이 말씀한 바와 같이,
‘네가 없이는 나는 천상과 지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하건만 이와 같은 쓸데없는 일에 괴로움을 당하
고 있다. 너희는 하느님의 모든 예언자와 그들의 동반자들에게
내려진 고난과 질병과 불명예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
다. 너희는 그들의 신자의 머리가 어떻게 선물로 여러 도시에
보내졌는지, 또 저들은 얼마나 슬프게 저들이 명령받은 일에
방해를 당했는지를 들었을 것이다. 저들은 그 대업의 적의 손
에 희생되었고, 적들이 정해 놓은 모든 일에 참지 않을 수 없었
다.
최고 영광자는, 시금석(試金石)이 되고 표준이 되는 일, 즉
악의(惡意)있는 자의 욕망에 반대되는 일들을 정하였다. 그것
에 의하여 그는 그의 종들에게, 바른 자와 사악한 자를 알아내
고 신앙심이 깊은 자와 불신앙자를 가려낼 수 있도록 시험한다.
그리고 모하멧이 말씀하신 바‘그분은 그분의 천사들을 보낼
것이라’는 그‘천사’라는 말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불로써
모든 인간성과 성한(性限)을 불살라 버리고, 그뿐 아니라 가장
300
바하올라와 신시대
고원한 존재자들과 천동(天童)의 속성을 그들 자신의 몸에 지
니고 정신의 힘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신자들은 이러한 말에 감추어진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그리고 저들과 저들의 신교(信敎)의 지도자들이
기대한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저들은 그리스도의 날이
현시된 이래 새로 나타난 성질(聖質)의 현시자들의 진리를 인
정하기를 오늘까지도 거부하여 왔다. 그리하여, 저들은 하느님
의 성스러운 은총을 받지 못하고 하느님의 성스러운 말씀의 묘
미를 잃은 것이다. 이것은‘부활의 날’에 있어서의 저들의 타
락한 상태이다. 저들은, 각 시대에 있어서 하느님의 현시자의
징후가 일반이 아는 전설의 글과 일치하여 가시(可視)의 영역
에 나타나더라도 누구나 부정도 무시도 할 수 없을 것이며 축
복 받은 자와 불행자를, 위반자와 신앙 깊은 자를 구별할 수 없
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였다. 공정하게 판단하라. 만일 복음서
에 기록된 예언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었다고 하면, 또 만일 성
마리아의 아들인 예수가 천사의 수종을 받아 구름 위의 가시
(可視)의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면 누가 이것을 부정하고 이
진리를 거부하고 경멸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누구나 그 진리
를 거부하거나 혹은 시인하기는 고사하고 한마디 말도 못할 정
도로 그 놀람이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일시에 사로잡을 것
이다.”---‘케타베 이간’67, 71~73, 78~81쪽
이상의 설명에 의하면, 비천한 인간의 형체로 여자에게서 태
어나서 빈곤하여 교육도 받지 못하고 지상의 권력자들의 멸시
를 받은‘인자’의 출현은, 진실로 그분이 지상의 백성을 심판하
시어 목자가 그 면양을 산양에서 구별함과 같이 각각 분별하여
놓는 시금석(試金石)이다. 정신의 눈이 열려진 사람들은 이러
301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한 구름을 꿰뚫어 보아 그분이 나타내려 하는바‘능력과 큰 영
광’, 즉 하느님의 영광을 기뻐할 수 있으나, 편견과 착오에 눈이
어두워진 다른 사람들은 검은 구름을 볼 수 있을 뿐이어서 축복
받은 햇빛이 없는 어둠 속에 헤매기만 할 것이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殿)에 임하리
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
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
히 서리오.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재물
과 같은 것이니라....... 보라, 극렬한 풀무 불같은 날이 이르리
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러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말라기’서 제 3장 1~2절 제 4장 1~2절20)
302
바하올라와 신시대
20. 예언의 실현에 관한 문제는 그 범위가 넓어서 충분한 해설을 쓰자면 여러 권의 책이 필요하다. 이
단 한 장(章)에서 설명한 것은 겨우 바하이해석의 주요한 윤곽을 보였을 뿐이다. 다니엘과 성 요
한이 나타낸 상세한 묵시록에는 손을 대지 못하였다. 독자는 그 어느 장(章)이‘질의응답록’가운
데 다루어져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바하올라의‘케타베 이간’과 미르자 아불 파즐의‘바
하이 증거’와 그리고 바하올라와 압돌바하의 많은 성서한(聖書翰)가운데서 더 많은 예언의 설명을
발견할 것이다.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돌바하의 예언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
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
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신명기’제18장 21~22절
하느님의 말씀의 창조력
하느님만이, 다만 하느님만이 그 소망대로 무엇이나 할 수 있
는 힘을 가지셨다. 하느님의 현시자의 가장 큰 증거는 그 말씀
의 창조력 - 즉 인간만사에 걸쳐 개조하고 변혁하는 힘, 또는
모든 사람의 반대에도 이겨내는 힘 그것이다. 예언자의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그 뜻하신 바를 표명하신다. 그리고 그 말
씀하신 바가 빨리 혹은 점차로 실현되는 것이 예언자의 주장의
명확한 증거가 되고 또 그의 영감이 순수하고 가장 분명한 증거
가 된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
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고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
게 종자를 주고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
303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 이사야서 제 55장 10~11절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에게 와서‘오실 분이 당신
이십니까, 혹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하고 물었을 때 그리
스도의 대답은 단지 자신의 말씀에 의한 결과를 보일 뿐이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
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
시니라.”---‘마태복음’제 11장 4~6절
우리는 여기서 바하올라의 말씀이 하느님의 말씀 특유의 창조
력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아보기로 하자.
바하올라께서는 위정자들에게 세계평화 건설에 노력할 것을
명하셨다. 그런데 1869년 이래 저들이 전쟁정책을 연장함으로
써 여러 고래의 왕조(王朝)를 전복하여 버렸다. 그리고 한편,
계속하여 일어난 전쟁의 그 어느 것이나 승리한 편에도 결국에
는 이익이 되는 것, 즉 얻는 것이 더욱 더 적어졌다. 그리고 마
침내 1914년부터 1918년에 걸친 세계대전은 승리자에게나 패
배자에게나 꼭 같이 전쟁이란 비참한 것이라는, 역사적으로 놀
라운 사실을 보여주었다.
바하올라께서는 또 통치자들이 그 정치적 권력을 참다운 일반
복지를 위한 수단으로 하여, 그들의 지배 하에 있는 모든 사람
304
바하올라와 신시대
들의 신임자가 되어 행동하기를 명하셨다. 그 후 사회입법(社會
立法)을 지향하는 진보는 전례 없이 빠르게 되었고, 그리고 이
정신적 명령에 불응한 여러 나라에는 혁명이 일어나서 새롭고
더 많은 대표에 의한 정부가 권력을 잡게 되었다.
그분은 빈부의 극단을 제한할 것을 명하셨는데, 이래 최저생
활의 표준을 정하여 수입과 유산(遺産)등 부(富)에 대하여 누
진적으로 과세하는 법령이 자주 문제되어 왔다. 그분은 동산으
로서의 노예와 경제적 노예의 폐지를 명하셨는데, 그 후 해방을
지향하는 진보는 세계의 구석구석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바하올라께서는 평등한 책임과 평등한 권리와 특권을 가지는
남녀평등을 선언하셨는데 그 선언 이래, 오랫동안 여자를 속박
하던 굴레가 타파되어,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자이며 동반자인
바른 지위를 급속히 얻어 가고 있다.
그분은 종교의 근본은 하나라고 선언하셨다. 그 선언에 뒤따
른 시대에 세계각지의 성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관용(寬
容)과 상호이해(相互理解)의 세계공통의 목적을 위한 협력에
새로운 등급을 만들기 위하여 감연희 노력하게 되었고, 종파심
이 강한 태도는 어디에서나 약화되어 그 역사적 지위를 유지하
기 점점 곤란하게 되었다. 종교에 있어서의 배타(排他)의 기초
가, 자족적인 국가주의를 존속할 수 없게 하는 것과 같은 동일
한 힘에 의하여 파괴되고 있다.
그분은 교육의 보편화를 명하셨다. 그리고 진리의 독자적 탐
구를 정신적 활력의 증거로 하셨다. 현대의 문화는 이 새로운
누룩에 의하여 깊이 각성되었다. 아동을 위한 의무교육과 성인
305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을 위한 교육의 편의를 확장하는 것이 일반정부의 기본정책이
되었다. 시민의 독립적 정신을 고의로 속박하려고 하는 국가는
그 정책으로 인하여 안으로는 혁명이 일어나고 이웃나라에는
의심과 공포를 느끼게 하였다.
바하올라께서는 국제보조어의 채용을 명하셨다. 자멘호프 선
생과 그 밖의 사람들이 그의 부름에 응하여, 이 위대한 사업과
기회에 대하여 그들의 생명과 재능을 바쳤다.
그리고 바하올라께서는 마음과 정신에 새로운 희망을 주고 사
회에 새로운 이상(理想)을 일으키는 새 정신을 인류에게 불어
넣으셨다. 역사를 통하여, 1844년 바하이 기원의 새 아침 이래
일어난 사건만큼 극적이며 인상적인 일은 없었다. 모든 남녀 지
성인들이, 인류가 가장 무서운 위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인
식하게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낡은 이상, 습관, 태도, 제도에
의하여 연명하여온 과거의 권력은 해마다 약화되어 갔다. 한편
에서는 우리는 진화의 참된 길을 계시한 바하올라의 가르침과
빛이 있는 곳에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다른 한편
에서는 우리는 그 빛이 방해를 받고 무시를 당한 여러 곳에 재
앙과 실망만이 있음을 본다.
그러나 믿음이 깊은 바하이에게는, 이러한 것과 그 밖의 무수
한 증거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써 바하올라의 정신적
숭고성(崇高性)을 분명히 척도(尺度)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상에서의 그분의 생활과 영감을 받은 그분의 말씀의 저항할
수 없는 힘이 하느님의 뜻의 유일한 참된 표준이 된다.
바하올라의 더 자세한 예언과 그것의 실현에 대하여 깊이 연
306
바하올라와 신시대
구한다면 더 유력한 확증을 얻을 것이다. 이러한 예언 중에 그
권위에 있어서 더 논쟁할 여지없는 몇 개의 실례를 들어보자.
이것들은 어느 것이나 그것이 실현되기 전에 널리 공포되어 잘
알려진 것이다. 이러한 예언의 많은 것이 여러 나라 원수(元首)
들에게 보낸 서한에 씌어 있는데, 그 서한은 한권의 책‘수라톨
헤이칼’로 편찬되어, 그 제 1판이 1877년경 봄베이에서 출판
되었고, 그 후 여러 판이 거듭되었다. 우리는 또 주목할 가치 있
는 압돌바하의 예언도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나폴레옹 3세
1869년 바하올라께서는 나폴레옹 3세에게 서한을 보내어,
그의 전쟁욕에 대하여 경고하는 동시에 전날 바하올라께서 보
낸 서한에 대한 그의 모욕적 태도를 책망하셨다. 그 가운데 다
음과 같은 엄중한 경고가 있다.
“그대의 하는 일은 그대의 나라를 혼란에 빠뜨려, 그 결과로
써 주권은 그대의 손에서 떠날 것이요, 그대에게는 근심스러운
파멸이 올 것이다. 이 대업에 의하여 깨닫지 못하고 이 바른 길
에서 성령에 따르지 않으면 불원에 그 땅의 모든 백성에게 동
란이 이를 것이다. 그대는 오만하게 뻗댈 것인가. 진실로 그 허
영은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들으라, 그대가 만일 나의 이 강력
한 동아줄에 매달리지 않으면 그것이 그대를 떠나고 말 것이
다. 패망이 당장 그대의 등 뒤에 닥쳐온 것을 나는 보고 있건만
그대는 전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당시 그 권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나폴레옹 3세가 이 경고에 조
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그는 그 다음 해에 프
307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켰다. 그 군대가 일거에 베를린을 무찌르
려 한 것은 그가 처음부터 기약한 바였다. 그러나 바하올라께서
예고하신 와이센부르그에서 패하고, 메츠에서 패했으며 마침내
세단에서 괴멸의 비운에 빠졌다. 그는 프러시아에 잡혀간 몸이
되었고, 2년 후에는 영국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말았다.
독일
바하올라께서는 그 후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의 정복자들에게
도 엄숙한 경고를 주었는데, 그들이 또한 귀를 기울이지 않았
고, 모두 한결같이 비참한 운명에 빠졌다. 아드리아노플에서 쓰
시기 시작하여 악카의 감금생활 초년 경에 끝낸‘악다스’라는
책에 바하올라께서는 독일황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셨다.
“베를린의 국왕이여.......그 지위에 있어서 그대보다 더하던
자 (즉 나폴레옹 3세), 그 직분에 있어서 그대보다 더 높던 자
를 기억하라.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의 소유물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잠을 깨라. 그리하여 잠자던 저들의 전철을 밟
지 말라. 짐(朕)이 일찍이 박해자들이 우리에게 어떤 압박을
주었는지를 그에게 알렸건만 그는‘하느님의 성스러운 서한’을
던져 버렸다. 그리하여 치욕이 사방에 몰려들어 그는 마침내
파멸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국왕이여, 그에 대하여, 그리고 여
러 도시를 빼앗고 하느님의 종들을 지배하여 온 그대들에 대해
서도 깊이 생각하는바 있으라. 하느님은 저들을 궁전에서 무덤
으로 보내셨나니 두려워 하라. 조심하라........ .
라인강의 언덕이여, 짐(朕)은 그대가 붉은 피에 잠긴 것을 보
나니, 그것은 복수의 칼이 너에게 행해지고, 네가 또한 복수를
308
바하올라와 신시대
도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 베를린의 빛나는 영화를 보건
만 한편 통곡 소리를 듣고 있노라.”
1914년부터 1918년에 걸친 독일의 승전기에 있어서, 특히
1918년 봄 독일의 최후 대공격 기간 중에 말씀하신 이 유명한
예언은, 페르시아에 있는 바하이신앙의 반대자에 의하여 바하
올라를 불신케 하는 수단으로써 많이 인용되었다. 그러나 승리
를 자랑한 독일의 대공격이 갑자기 패망의 비운에 빠졌을 때,
바하이 대업을 공격하던 적들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을 뿐 아
니라 저들이 바하올라의 명성을 높이는 유력한 수단이 되고 말
았다.
페르시아
포악한 황제 나세레딘 샤의 권력이 그 절정에 달해 있을 때에
쓴‘악다스’가운데서 바하올라께서는 페르시아의 수도이며 그
분의 탄생지인 테헤란시를 축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타’의 땅(테헤란)이여, 너는 슬퍼하지 말라. 하느님께서는
너로 하여금 전 인류의 기쁨의 발생지로 하셨느니라. 만일 하
느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느님께서는 정의로써 통치하시어 이리
떼에 쫓겨 흩어진 하느님의 어린 양들을 모으는 자로서 너의
왕좌(王座)를 축복하리니, 진실로 그는 기쁨과 즐거움으로써
바하의 백성에게 얼굴을 돌려 환대하시리라. 하느님의 눈에는
그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보석처럼 귀중하고, 그에게는 하느
님과의 영광과, 또 하느님의 계시의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의
영광이 영원히 깃들어 있을 것이니라. 크게 기뻐하라. 하느님
께서는 너의 안에 그 영광의 현시자를 나게 함으로써 너를‘그
의 빛의 새벽하늘’로 하였나니, 너에게 주어진 그 이름을 기뻐
309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하라. 그 이름을 통하여 은총의‘낮별’이 빛을 발하고 그 광채
를 통하여 하늘과 땅이 밝아지리라. 그리고 불원에 너의 안에
변화가 일어나서 권력의 지배가 백성의 손에 떨어지리라. 진실
로 너의 주께서는‘전지’하시어 그의 권위가 모든 것을 포용하
나니, 너는 주의 은총 깊은 혜택 안에 평안 할지어다. 진실로
하느님의 사랑의 눈이 영원히 너를 지켜 주시리라. 너의 소란
한 마음이 평화와 완전한 평온으로 변할 날이 가까웠나니, 이
는‘불가사의의 책’에 정해져 있는 바이니라.”
지금 페르시아는 바하올라께서 예언하신 그 혼란의 시기에서
겨우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이미 입헌정치도 마련되어 광명의
시대가 가까워 오는 징후가 보인다.
터키
바하올라께서는 터키 감옥에 갇혀 계셨을 때(1868년), 터키
황제와 그 총리대신 알리 파샤에게 가장 엄숙하고 인상적인 경
고를 하셨다. 악카의 병영(兵營)에서 터키 황제에게 보낸 서한
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자신을 인간의 가장 위대한 자로 생각하는 자여,........ 불
원에 그대의 이름은 잊혀지고 그대는 패잔의 신세가 될 것이
다. 그대의 생각에 의하면 이‘세계에 생명을 주는 자’,‘평화
를 가져오는 자’는 죄인이며 선동자이다. 부녀와 소아와 울부
짖는 갓난아기들이 그대의 분노와 압박과 증오를 받을 무슨 죄
를 지었는가? 그대의 나라에 반항하지 않고 정부에 대하여 혁
명을 선동한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밤낮으로 평화를 위하여 하
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 많은 영혼을 그대는 박해하였다.
310
바하올라와 신시대
그대는 그들의 재산을 빼앗았고 그대의 학정은 그들에게 한 가
지 물건도 남김이 없었다........ .하느님 앞에서는 한줌의 티끌
이라도 그대의 국토와 영광과 주권과 지배보다 나은 것이니,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느님께서는 그대를 사막의 모래처럼
날려 버리실 것이다. 불원에 그 분노의 진노가 그대의 머리에
떨어지고 혁명이 그대의 수중에서 계속하여 일어나 그대의 국
토는 분열될 것이다. 그때에 그대가 통곡하며 슬퍼할지라도 그
대를 구원하고 비호하는 자가 없으리라......... 명심하라. 하느
님의 진노가 가까웠나니, 불원에‘명령의 붓’에 의하여 기록된
것을 그대는 볼 것이다.”---‘서방의 별’제 2권 3쪽
또 그분은 알리 파샤에게 다음과 같이 쓰셨다.
“라이스(수령)여, 그대가 하는 일은 하느님의 예언자 모하멧
으로 하여금‘최상(最上)의 낙원’에서 신음케 하였다. 세상은
그대로 하여금 오만하게 하였고, 그 오만이 증대(增大)되어,
‘천상집단’의 사람들이 그 빛을 받은‘하느님의 얼굴’을 그대
는 등졌다. 그대는 불원에 파멸에 빠질 것이다. 나는 위대한 전
능자의 발생지로부터 하느님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의 눈을 맑
게 하는 대업을 그대에게 가져왔건만, 그대는 나에게 위해를
주기 위하여 페르시아의 통치자들과 결탁하였다.........
그대는 하느님께서 우주에 켜 놓으신‘불’을 끌 수 있다고 생
각하는가? 아니다! 그대가 이것을 이해한다면 내가 선언하건
대, 그대가 저지른 일로 말미암아 그 불꽃은 더욱 치성해질 것
이요, 불원에 그것이 세계와 그 백성을 둘러쌀 것이다.........
불원에 신비의 땅(아드리아노플)과 그 밖에 변란이 일어나서
그것들이 국왕의 손에서 떠날 것이요, 동란이 계속하여 일어나
고 각지가 퇴폐하여 사태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대개 그것은
311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이 유폐(幽閉)의 사람들(바하올라와 그 추종자들)을 박해한 포
학자의 군대의 편에서 일어나리라. 지배권은 변하고 사태는 슬
픈 지경에 이르러, 모래는 사람 없는 언덕에서 울고 수목은 산
위에서 통곡하며 모든 것이 피를 흘리고 사람들은 무서운 곤란
에 빠지리라........
이와 같은 사건은 총명한‘설계자’에 의하여 정해졌나니, 그
분의 지령은 하늘과 땅의 어떠한 군병으로써도 거역할 수 없고,
모든 국왕과 통치자들로써도 그분이 하시고자하는 바를 막지 못
하리라. 재난은 이‘등불’을 위한 기름이 되고 이러한 재난을
통하여 그 빛이 더해질 것이니 그것은 그대들이 잘 아는 바이
다. 압박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대립(對立)은 이러한 사
건의 포고가 되는 것이니, 그것에 의하여 하느님과 그의 대업의
출현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이다.”
그분은 또‘악다스’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두 바다의 해안에 임해 있는 지점(즉 콘스탄티노플)이여,
부정(不貞)의 왕좌가 너의 안에 있으니, 거기에 증오의 불이
커져‘천상집단’과‘고상한 왕좌’를 둘러싼 자들이 그것 때문
에 탄식한다. 우리는 너의 안에서 어진 자에게 어리석은 정치
가 행해지고 암흑이 광명을 가리우는 것을 본다. 그러고도 너
는 득의만만(得意滿滿)하구나. 너의 겉치장이 너로 하여금 자
부(自負)케 하느냐? 너는 불원에 창조주에 의하여 멸망할 것이
다! 그리하여 너의 딸들과 과부들과 너의 안에 있는 백성들이
통곡하리라.‘지혜’요‘전지자’는 너에게 이와 같이 예언하고
있다.”
이러한 경고가 발표된 후 그 거대한 제국(帝國)을 연속적으로
312
바하올라와 신시대
엄습한 재난은 바로 이 경고의 예언적 의미를 웅변으로 설명하
는 것이 되었다.
아메리카
바하올라께서는 1870년경에 쓰신‘악다스’에서 아메리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호소하셨다.
“아메리카의 통치자여, 공화국의 대통령이여, 지배자
여......... 저 높은 발생지에서 오는 부름의 소리를 들으라. 즉
‘발언자이며 전지자인 나 이외에 하느님이 없느니라.’바라노
니, 부러진 사지(四肢)를 정의의 손으로써 싸매 주고, 압제자
의 완강한 수족을 통치자이며 전지자인 그대의 주의 명령의 채
찍으로써 깨뜨려 버리라.”
압돌바하께서는 아메리카와 그 밖의 여러 곳에서 행하신 강연
에서 국제평화의 깃발이 먼저 아메리카에서 세워지리라는 희망
과 기원과 확신을 표명하셨다. 1912년 11월 5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메리카는 고귀한 국가이어서 평화의 기수(旗手)로서 세계
각지에 그 광명을 보낸다. 미국과 같이 다른 나라의 방해를 받
지 않고 침략을 면하여 세계평화를 도울 수 있는 나라가 없다.
다행히도 아메리카는 전 세계의 모든 나라와 화평의 상태에 있
어, 세계평화와 사해동포(四海同胞)의 깃발을 올리기에 알맞은
나라이다. 국제평화의 소리가 이 나라에서 일어날 때, 각국은
‘그렇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화답할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 각국은 50년 전에 계시된 바하올라의 가르침
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분은 성스러운 서한에서, 여러 민족 사
313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이의 문제를 재결하고 평화를 수립하는 국제대회에는 가장 지
혜롭고 가장 착한 인물을 파견하라고 세계 각국의 의회에 요구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로소 예언자들이 예상한‘인
류의 의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서방의 별’제 6권 81쪽
바하올라와 압돌바하의 호소는 이미 아메리카 합중국에서 크
게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이 나라와 같이 바하이 가르침을
빨리 받아들인 나라가 없다. 그러나 여러 나라들을 국제평화로
불러일으키는 아메리카의 맡은 바 임무는 아직도 그 일부분을
수행하였음에 불과하다. 바하이들은 많은 흥미를 가지고 그 장
래의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세계대전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는 1914년부터 1918년에 걸쳐 세
계대전이 일어날 것을 여러 기회에 놀랍게도 정확하게 예언하
셨다. 1912년 10월 26일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압돌
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오늘의 유럽대륙은 병기창과 같다. 점화(點火)하기를 기다
리는 화약고와 같아서 단 한개의 불꽃이 전 유럽을 태워 버리
려는 상태에 있다. 특히 발칸 문제가 세계문제로 되어 있는 오
늘, 위험은 한층 절박한 상태에 있다.”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행하신 많은 강연에서 그분은 이와 비슷
한 경고를 하셨다. 1912년 10월 캘리포니아주에서 또 다음과
같이 강연하셨다.
“우리는 지금‘묵시록’제 16장에 씌어 있는‘아마겟돈’싸
움의 전야(前夜)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2년 후 단 한 개의 불
314
바하올라와 신시대
꽃이 전 유럽을 불타게 할 것이다 모든 나라의 사회적 불안과,
황금시대(천년왕국)에 앞서 올 - 이미 와 있거니와 - 종교
적 회의(懷疑)의 증대(增大)는 다니엘서와 요한의‘묵시록’에
예언되어 있는 바와 같이 장차 전 유럽을 불태워 버리려고 한
다. 1917년까지 여러 왕국이 붕괴되고 대변동이 지상을 뒤흔들
것이다.”(1814년 9월 26일 시카고의 노오스 쇼어 리뷰지에
코린 투르 부인에 의하여 보도된 것임)
대전의 전날 밤에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문명국 여러 나라의 대전란이 지금 문전에 박도하였다. 무
서운 대충돌이 지금 당장 발발하려 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가
장 비참한 쟁투의 문턱에 서 있다........거대한 군대 - 수 백만
의 군대 - 는 지금 동원되어 그 국경에 배치되어 있다. 저들은
무서운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단지 조그마한 마찰을
계기로 하여 갑자기 대전란이 일어나려고 하는데, 이와 같은
일은 과거의 인류역사에 일찍이 기록된 일이 없었다.”(1914년
8월 3일 하이파에서) ---‘서방의 별’제 5권 163쪽
대전 후의 사회적 분쟁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는 또 세계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무
종교, 편견, 미신 등의 필연적 결과로써 커다란 사회적 동란과
쟁투와 재난의 시대가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 거대한 국제적 군
사적 충돌은 이 동란의 일면을 보여줌에 지나지 않는다. 1920
년 1월에 쓰신 서한에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파하셨
다.
“그대들 진리의 애호자여. 그대들 인류의 종들이여. 그대들
의 사상과 숭고한 생각의 아름다운 향기가 내게 미치어, 나의
315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영혼이 그대와 사귀고 싶음을 억제할 수 없노라.
세계가 휩쓸려 들어간 혼란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또 지구상
의 여러 나라가 인간의 피로 물들어, 아니, 저들의 땅이 엉킨
피로 변하고 말 것인지 그대의 마음에 깊이 생각하는바 있으
라. 전쟁의 불꽃은 너무도 큰 불을 일으켰으므로 고대와 중세
기와 또는 현대의 세계가 그와 같은 것을 일찍이 본 일이 없었
다. 전쟁이란 이름의 맷돌은 많은 인간의 두뇌를 갈고 부수었
다. 아니, 이들 희생자의 운명은 더욱 참혹하다. 풍요한 나라들
이 황폐하여지고 여러 도시가 평탄한 지면을 이루며, 평화롭던
마을들이 폐허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잃고 아들은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는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여 피눈물을
흘리고 철모르는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으며, 부인들은 집 없는
부랑자가 되었다. 한 말로써 말하자면 인류는 모든 면에서 타
락하였다. 부모 잃은 아이의 울부짖음과 하늘에 사무치는 어머
니의 탄식은 측은하다.
이러한 모든 일의 첫째의 원인은 인종적, 국가적, 종교적, 정
치적 등의 편견이다. 그리고 그 편견의 근원은 비록 종교적, 인
종적, 국가적, 정치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이미 낡아빠
진, 그러나 깊이 뿌리박힌 전통에 있다. 이러한 전통이 계속되
는 한, 인류조직의 기초는 불안정하여 인류 그 자체가 언제나
끊임없이 위기에 놓여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빛나는 시
대, 즉 모든 존재물의 본질이 드러나고 모든 창조물의 감추어
진 비밀이 밝혀지며 진리의 아침 해가 빛나기 시작하여 세계의
암흑이 광명으로 바뀌는 이 때, 세계에 다시 회복할 수 없는 파
멸을 초래하는 무서운 대 살육이 가능하다는 것이 과연 마땅하
고 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아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16
바하올라와 신시대
60년 전 바하올라께서는 빛나는 태양처럼 페르시아의 하늘
높이 두루 비치었다. 그분은 선언하셨으되, 세계가 암흑에 싸
이고 이 암흑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 무서운 투쟁으로 인도
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분이 계셨던 감옥 도시 악카의 성벽 안
에서 터키황제에 의하여 피해를 당한 죄수의 몸으로 계셨을
때, 그분은 분명하고 힘차게 콘스탄티노플은 무서운 전란의 희
생이 되어 혼란에 빠지고 부인들과 아이들은 슬프게 울부짖을
것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그 황제에게 보내셨다. 요약하여 말하
면 그분은 세계의 주요한 통치자와 군주들에게 서한을 보냈으
며 그분의 예언은 틀림없이 실현되었다. 그분의‘영광의 붓’에
서 전쟁방지의 가르침이 흘러나왔고 그것이 널리 퍼졌다.
그분의 첫째 가르침은 진리탐구이다. 맹목적인 모방은 인간
의 정신을 죽이는 것이지만 이에 반하여 진리탐구에 의하여 세
계는 편견의 암흑에서 해방된다고 그분은 선언하셨다.
그분의 둘째 가르침은 인류는 하나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하나의 양의 무리요 하느님은 그것을 기르는 목자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최대의 자비를 그들에게 베푸시고 그들 전부를
하나로 보신다.‘하느님의 창조물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인정
하지 않으신다.’그들 모두가 하느님의 종이며 누구나 그분의
혜택을 구하고 있다.
그분의 셋째 가르침은 종교는 가장 힘 있는 성채(城砦)라는
것이다. 종교는 적의(敵意)와 증오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통일로 인도하는 원동력이 된다. 만일 종교가 적의와 증오로
통한다면 전혀 그것을 가지지 않는 편이 좋다. 종교는 약과 같
으니 그것이 병을 덧나게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버리는 것이
좋다.
317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마찬가지로 종교적, 인종적, 국가적, 정치적 편견은 그것들이
모두 인간사회의 기초를 파괴하고 유혈(流血)의 길로 통하며
인류사회에 폐허를 쌓아 올린다. 이러한 것들이 남아있는 한
전쟁의 공포가 계속된다. 단 하나의 치료법은 세계평화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 정부와 민족을 대표하여 이루어진 국제재
판소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모든 국가적 및 국제적 문제
는 이 재판소에 위임되어야 하고 그 결정은 어떤 것이든지 시
행되어야 한다. 만일 어느 정부나 민족이 찬동하지 않는 경우
에는 전 세계가 일체가 되어 그에 대항하여 일어서야 한다.
또 그분의 가르침 가운데는 남녀평등의 권리에 대한 것이 있
고, 그 밖에 비슷한 많은 가르침이 그분의 붓에 의하여 계시되
었다.
현재에 있어서 이러한 원칙은 세계의 생명의 본질이며 그 참
다운 정신의 구체화(具體化)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지금 인류
의 종인 그대들은‘하느님의 도시(都市)’의 빛으로 세계를 비
치기 위하여 세계를 물질주의와 인간적 편견의 암흑에서 해방
되도록 심신을 다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바하올라를 칭송하라. 그대들은 세계의 여러 가지 학파와 제
도와 원칙을 잘 알고 있다. 오늘에 있어서 이러한 성스러운 가
르침 이외의 것은 인류에게 평화와 평온을 보증할 수 없다. 이
러한 가르침 없이는 이 암흑이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또
이러한 만성적 질병이 결코 나아질 수 없는 것이다. 아니, 그
암흑과 질병이 날로 더해질 것이다. 발칸반도는 불안정한 대로
있어 그 상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정복을 당한 자는 가만히
있지 않고 새로운 전쟁의 발단이 되는 모든 수단을 취할 것이
다. 현대의 세계적 운동은 그 목적과 의도(意圖)를 수행하기
318
바하올라와 신시대
위하여 전력을 다할 것이다. 좌익운동은 큰 중요성을 가지어
그 영향이 확대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숙한 마음과 천국의 정신과 신성한 힘을 가지고
바하올라의 은총에 힘입어, 그대들은 하느님의 혜택의 선물,
즉 전 인류에 대한 위안과 평안의 선물을 세계에 주도록 노력
하여라.”
1919년 11월의 담화에서 그분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바하올라께서는 여러 번, 무종교와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무질서의 상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이 혼란은 아직
자유에 대하여 준비 없는 사람들 사이에 너무 큰 자유가 주어
지는데 원인한다. 그 결과로 민중자신의 이익을 위하고 또 이
무질서와 혼란상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강제적인 정
부가 출현할 것이다. 각 민족이 완전한 자결(自決)과 행동의
자유를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아직 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가 있다. 세계의 현상은 대개 무종교
이므로 이것이 필연적으로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이 대 전쟁에 따른 평화의 제안은 이제 겨우 새벽하늘의
희미한 빛에 불과한 것이지, 평화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님은 내가 항상 말한 바와 같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
그러나 이와 같이 분란이 극한 시대에도‘하느님의 대업’은
왕성해질 것이다. 개인생활 또는 당파와 종파와 국가적인 이익
을 위한 이기적인 싸움에서 일어나는 재난은 사람들을 실망케
하여‘하느님의 말씀’에 의한 구원으로 향하게 할 것이다. 재난
319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이 심하면 심할수록 사람들은 참된 구원으로 향할 것이다. 바하
올라께서는 페르시아 황제에게 보낸 서한에 다음과 같이 쓰셨
다.
“하느님께서는 고난으로 하여금 이 푸른 목장의 아침비로 하
시고 하늘과 땅을 비치는 그분의 ‘등불’의 심지로 하셨
다........ 고난에 의하여 그분의 등불은 빛나고 그분의 찬미는
부단히 밝았나니, 이것은 고래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
없는 하느님의 방법이다.”
그리고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는 정신성(精神性)이 급속히
유물론을 이겨 그 결과로써‘최대의 평화’가 이루어질 것을 확
신하는 어조로써 예언하셨다. 1904년에 압돌바하께서는 다음
과 같이 쓰셨다.
“고난과 불행이 날로 더하여 사람들이 괴로움에 시달릴 것임
을 알라. 기쁨과 행복의 문은 사방에서 닫혀질 것이다. 그리고
무서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실망과 낙담이 사방으로부터 사
람들을 포위하여 마침내 하느님을 향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
이다. 그때에 큰 행복의 빛이 지평선에 비치며‘야 바하올 압
하’의 함성이 사방에서 일어날 것이다.”---‘전쟁과 평화에 관
한 편찬물’187면에 인용된 L. D. B. 씨에게의 서한
1914년 2월 세계열강 중 어느 나라가 신앙에 들어올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그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다 신도가 될 것이다. 이‘대업’이 시
작되었을 때와 오늘의 상태를 비교하여 보면‘하느님의 말씀’
이 얼마나 빨리 영향을 주고, 또‘하느님의 대업’이 얼마나 넓
게 세계에 퍼져 가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모
320
바하올라와 신시대
든 사람이‘하느님의 대업’의 그늘 아래에 모일 것이다.”
---‘서방의 별’제 9권 31쪽
다니엘서 최종의 2절에 다음과 같은 은어(隱語)가 있다.
“기다려서 1335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특히 복이 있으리
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이러한 말씀의 의미를 해석하려는 많은 노력이 학자들 사이에
있었다. 본서의 저자도 참석한 식탁에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
과 같이 말씀하셨다. 즉, 1335일의 날이란 것은 모하멧의 생애
와 관계있는 사건 후 1335년째의 태양년(太陽年)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예언은 바그다드의‘레즈완’동산에서 행
한 바하올라의 선언 100주년에 관한 것이다. 바하올라의 선언
이 1863년에 있었으므로 여기에 말한 연대는 즉 1963년이다.
‘1335일째의 끝에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하는 질문에 압
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세계평화는 확고히 수립되고 세계어는 촉진될 것이며 오해
는 제거될 것이다. 바하이 대업이 도처에 전파되어 인류의 통
일이 성취될 것이다. 그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다.”
악카와 하이파
미르자 아아맏 소오랍은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악카와 하
이파에 관한 압돌바하의 예언을 기록하였다. 이것은 압돌바하
께서 1914년 2월 14일 하이파의 바하이 순례자 숙소의 창가에
앉아서 하신 말씀이다.
321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이 순례자 숙소에서 내다보는 조망(眺望)은 매우 아름답다.
특히 바하올라의 성스러운 영묘(靈廟)를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좋다. 장래의 악카와 하이파의 사이는 연결되어 두 도시가 한
대도시의 두 구(區)를 이룰 것이다. 나는 지금 이 풍경을 내다
보고 이곳이 세계 굴지의 상업중심지가 될 것을 확신한다. 이
반원형(半圓形)의 만(灣)은 최상의 항구가 되고 세계 선박의
피난처가 될 것이다. 각국 최대의 선박들이 세계각지로부터 많
은 남녀를 싣고 여기로 올 것이다. 언덕과 평지는 가장 근대적
인 대건물로 점철(點綴)될 것이다. 산업이 융흥하고 여러 가지
박애(博愛)의 시설이 세워질 것이다. 각국의 문명과 문화의 정
화(精華)가 이곳에 모여 그 향기가 조화되어 인류형제애의 도
표(道標)를 이룰 것이다. 훌륭한 화원과 과수원과 밀림과 공원
이 여기저기에 만들어질 것이다. 밤에는 이 대도시의 전등불이
휘황하고 악카와 하이파 사이의 연안은 전등장식의 길을 이룰
것이다. 칼멜산의 양편에는 강력한 탐조등이 해상선박을 인도
하기 위하여 비칠 것이다. 칼멜산은 산 밑으로부터 꼭대기까지
등불바다에 잠길 것이다. 칼멜산 위에 서 있는 사람이나 이곳
에 오는 선객들은 세계에서 가장 숭고하고 장엄한 광경에 놀랄
것이다.
이 산의 여기저기서‘야 바하올 압하’의 교향악(交響樂)이
울리고, 날 밝기 전에는 아름다운 곡조의 황홀한 음악이‘전능
자’의 왕좌를 향하여 바쳐질 것이다.
진실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신비하고 측량할 수 없는 것
이다. 쉬라즈와 테헤란, 바그다드와 콘스탄티노플, 아드리아노
플과 악카 및 하이파의 사이에 무슨 외적(外的)관계가 있는가.
322
바하올라와 신시대
그러나 예언자들을 통하여 전해진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참고 또 참으시면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 확고
하고 영원한 계획에 따라 이 여러 도시를 통하여 일하셨다.‘구
세주’의 황금시대(천년왕국)에 관한 이 약속의 금실(金絲)은
성서를 일관(一貫)하여 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고 싶으신 때에 그것들을 나타내시기 마련인 것이다. 한
말씀이라도 뜻 없는 것이 없고 실현되지 않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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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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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15 장
회고와 전망
오, 벗들아! 내가 증언하노니, 은혜는 완전하며, 이론은 충족
되고, 증명은 명백하며 증거는 확립되었느니라. 초연(超然)의
길에서 너희의 노력이 나타낼 바를 이제 보여라. 이렇게 해서
거룩한 은혜는 너희와 또 하늘과 땅에 있는 자들에게 완전히
베풀어졌느니라. 모든 세상의 주님이신 하느님께 모든 찬양을
드려라. ---‘숨겨진 말씀’
바하이 대업의 진전
전 세계를 통한 바하이신앙의 진전을 여기에 상세히 기술할
여유가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이 흥미 있는 제목과
이 대업의 개척자와 순교자에 관한 감동할 많은 이야기를 위해
서는 여러 장(章)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극히 간단하
게 그 개략을 적어 보기로 한다.
페르시아에서는 이 계시의 초기의 신도들이 제나라 사람들에
게서 극단의 반대와 박해와 학대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훌륭한 용기와 견실과 인내로써 그 모든 재난과 시련을 받아들
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피로써 세례를 받았나니, 무수한 사
325
제 15 장 회고와 전망
람들이 순교자로서 죽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태형과 약탈과 투
옥과 추방과 그 밖의 학대를 받았다. 페르시아에서는 60여년
동안 바압과 바하올라를 따를 것을 자인한 사람은 모두 그 재산
과 자유와 또는 생명까지도 희생을 당하는 위험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철저하고 가혹한 압박도 먼지구름이 아침 해가 떠오
름을 막지 못함과 같이 이 신앙의 진전을 막을 수는 없었다.
현재에 있어서는 페르시아 전국을 통하여 모든 도시와 촌락과
그리고 유목민(遊牧民) 중에서도 바하이 신도들을 찾아볼 수
있다.21) 어떤 마을들에는 그 주민의 대부분이 이 신자인 곳도
있다. 서로 격렬히 미워하던 여러 많은 종파에서 모여든 저들이
지금은 서로 친애하게 되어 형제애의 큰 집단을 이루고 있을 뿐
이다. 그 사랑이 모든 지방의 모든 사람에게까지 비치어, 인류
의 융합과 향상을 위하여, 모든 편견과 투쟁을 버리기 위하여,
이 세상에‘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일하고 있다.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러나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이러한 사람들이 목적한 바가 전 세계를 통하여 실현되
는 일인데 이 더 큰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징후가 충분히 보이
고 있다.
서양에 있어서의 초기의 신자들은, 바하이신앙의 정신을 보급
시키고 그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써 어느 예정된 시기에
326
바하올라와 신시대
21. 커르존경은 1892년 바하올라께서 세상을 떠나신 해에 출판한 저서‘페르시아와 페르시아 문제’
가운데 다음과 같이 썼다.“‘페르시아에 있는 바비신도의 현재의 수는 가장 적게 보아도 50만은
될 것이다. 나는 어떤 믿을 만한 인물과의 회담에서 그 총수가 100만에 가깝다고 보고 되었다. 그
들은 모든 방면에 있다. 대신과 궁중의 귀족들부터 거리의 청소부와 마부(馬夫)에까지 이르고, 저
들이 활동하는 장소는 이슬람교의 승려가 있는 곳까지 미치고 있다. 만일 현재의 비례로 바비교가
팽창하여 간다면 아마 페르시아의 벌판에서 이슬람교를 쫓아버릴 때가 올 것이다. 하나의 적대적
인 종교의 깃발을 들고 나타난 것이라면 그럴 수 없을 것이지만 그 신자는 공격받는 진영의 가장
우수한 정병(精兵)중에서 온 것이므로 바비교는 마침내 승리를 얻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 제 1권 499-502면
인류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희망하였다, 그러나 이 가르침
가운데 내포된 요소가 더 분명히 밝혀짐으로써, 이 계시를 받아
들이는 것이 단지 내면적 태도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라는 문
제, 즉 바하올라에 의하여 확립된 새로운 사회제도를 충분히 발
전시키는 의식적 노력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대업의 성장을 보이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 우리
는 바하올라의 여러 원칙이 일반 대중적 이상(理想)의 형태로
써 다소 막연하게 표현된 그 속을 깊이 통찰하여야 하며, 또 등
록된 신도수의 증가까지도 초월하여 보아야 한다. 이 신앙의 발
전단계에 있어서, 단순한 열성적인 숭배자의 상태에서 절망적
인 환경의 혼란과 싸워서 이겨낼 수 있는 견실한 헌법적 질서의
형태로 번져가는 바하이 공동체의 급속한 발전이 이 신앙의 힘
을 입증한다.
압돌바하께서 또 하나의 국제적인 전쟁이 일어날 것을 명확히
예언하신 사실은, 전통적 사회제도 위에 참기 어려운 긴박한 사
태가 다시 올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재래의 여러 종교의 신도
에 비하여 그 수가 적은 바하이는 아직 보잘것없는 존재로 보일
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가까운 장래에 동서양의 대중이 모
여들 새로운 질서에 봉사하는 최상의 특권으로서, 성스러운 힘
이 저들을 축복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며, 또 바하이들
은 1963년, 즉‘레즈완’동산에서의 바하올라의 선언 100주년
까지에는 바하올라의 신앙의 기초가 전 세계에 확립되리라는
것을 쇼기 에펜디에 의하여 알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의 아직 그 빛의 근원을 모르는 순결한 마
음에 성령이 반사되고 있는 것이 확실하며, 또 바하올라의 가르
327
제 15 장 회고와 전망
328
바하올라와 신시대
침 가운데 어떤 것은, 바하이 공동체 이외에서 추진시키는 많은
노력에서, 바하이신앙의 성장이 입증되기도 하지만, 낡은 질서
의 그 항구적 기반의 결함은‘하느님의 나라’의 이상이 바하이
공동체의 기구에서만 그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는 확실한 증
거가 된다.
바압과 바하올라의 예언자적 지위
바압과 바하올라의 생활과 그 가르침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우리는 그분들의 위대성이‘신성한 영감’에 의한 것이라고 하
는 설명 외에 다른 말이 있을 수 없다. 그분들은 광신(狂信)과
고루(固陋)의 분위기 가운데서 성장하셨다. 그분들은 극히 초
보적인 교육을 받으셨을 뿐이었다. 그분들은 서양의 문화에 접
촉한 일이 없으셨다. 그분들은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세력을
가지신 일도 없으셨다. 그분들은 사람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신
것이 없었고 받으신 것이란 다만 불법과 압박뿐이었다. 지상의
유력자들은 그분들을 알아주지 못했고 그분들을 반대하였다.
그분들은 자신의 사명을 실현하시기 위하여 채찍에 맞으시고
고문을 당하시고 투옥되셨으며 무서운 화(禍)를 입으셨다. 그
분들은 다만 혼자서 속세에 반대하여 일어섰고 하느님 이외에
는 아무 지원도 없으셨다. 그러나 지금 그분들의 승리는 이미
명백하고 굉장하다.
그분들의 이상의 장대하고 숭고함, 그분들의 생활의 고상하고
희생적임, 그분들의 불굴의 용기와 확신, 그분들의 놀라운 지혜
와 지식, 그분들의 동서양의 민중의 요구에 대한 명철한 파악,
그분들의 가르침의 활달하고 적절함, 그분들의 신도들에게 받는
열렬한 헌신과 열정을 고취하는 힘, 그분들의 감화력의 강대함,
그분들이 창시하신 대업의 발전 등 - 이러한 것이 확실히 종교
역사가 보여줄 수 있는, 예언자인 가장 유력한 증거인 것이다.
영광스러운 전망
바하이의 기쁜 소식은 하느님의 은혜와 인류 장래의 진보한
광경을 나타내서 보여준다. 이것은 확실히 인류에게 주어진 가
장 크고 영광스러운 계시이며 전대에 있는 모든 계시의 발달이
요 완성이다. 그 목적은 인류의 갱신과‘새 하늘과 새 땅’의 창
조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 밖의 모든
예언자들이 생명을 바친 것과 동일한 사업이다. 그리고 이들 위
대한 교육자들 사이에는 아무런 경쟁도 없다. 이 사업의 성취는
어느 한 현시자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의 일치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낮출 필요가 없고,
바하올라를 선양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낮출 필요도 없다. 우
리는 어디서 나타나는 것이든‘하느님의 진리’를 환영하여야
한다. 문제의 요점은 이러한 모든 위대한‘사자’들은 완전히
‘하느님의 깃발’을 게양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이다. 그분들
은 모두‘하느님의 뜻’이 같은 하늘의 천체(天體)로서 빛난다.
그분들은 모두‘빛’을 이 세계에 보내시는 것이다.”
---‘서방의 별’3권 8호 8쪽
이 사업은 하느님의 것인데,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만을 부르시
는 것이 아니라 이 창조적 과정의 협력자로서 전 인류를 부르신
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부한다 할지라도 이 사업
329
제 15 장 회고와 전망
의 진행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성취하시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맡은 바 일을
수행하지 못하면 하느님께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
른 방법을 취하실 수 있으시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활의 참
된 목적과 목표를 잃을 것이다. 하느님과의 합일(合一) - 하느
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고 종이 되어, 하느님의 창조력의 진실한
통로가 되고 수단이 됨으로써 우리의 안에 하느님의 신성하고
풍요(豊饒)한 생명이 깃들게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는 경지
(境地) - 이것은 바하이 가르침에 의하면 인류존재의 형언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완성이다.
그런데, 인류는 본래 마음이 건전한 것이니,‘하느님의 모습
을 본떠서’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번 진리를
체득하면 결코 어리석은 길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바하올라
께서는, 불원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일반이 받아들여 전 인류가
정도(正道)와 순종(順從)으로 향할 것이라고 보증하셨다.‘그
때에는 모든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고 모든 질병이 건강으로 바
뀔 것이다.’그리하여‘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묵시록 제11
장 15절). 지상에 있는 자들뿐 아니라 천지만물이 모두 하느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종교의 쇄신
오늘의 세계 상태는 분명히,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종교의 백성들이 각각 그 종교의 참다운 의의를 새삼 깨달
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재 각성(再覺醒)이야말로 바하올라
의 사업의 주요한 일부인 것이다. 그분은 기독교도로 하여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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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착실한 기독교도가 되게 하시고 이슬람교도로 하여금 더 참다
운 이슬람교도가 되게 하시며, 모든 사람들을 그들의 예언자께
서 고취하신 정신으로 돌아가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그
분은 또 모든 예언자들께서 약속하신 바를 실현하시어, 저들의
노력한 바를 완성하시기 위하여‘때가 오면’출현하시기로 약
속된 더 영광 있는 현시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선행자들 보다도 더 충분히 정신적 진리를 전개시키어, 오늘 우
리가 직면한 개인적 및 사회적 생활의 모든 문제에 관하여‘하
느님의 뜻’을 계시하셨다. 그분은 새롭고 더 좋은 문명이 건설
될 확고한 기초가 되는 보편적인 가르침, 지금 시작되는 새 시
대의 요구에 가장 적합한 가르침을 주셨다.
새로운 계시의 필요
인류세계의 통일, 세계 각 종교의 종합통일, 종교와 과학의 조
화, 세계평화의 건설, 국제중재재판소의 설립, 세계정의원의 설
치, 국제보조어의 제정, 여성해방, 교육의 보편화, 동산적 및 산
업상 노예제도의 폐지, 각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고 인류
를 일체로 한 인간 사회의 조직 - 이러한 것은 다 기독교도나
이슬람교도나 기타 각 종교의 신도들이 각 방면에서 가끔 맹렬
히 반대하여 온 매우 크고 곤란한 문제들이다. 그러나 바하올라
께서는, 일반에 적용하면 그것에 의하여 확실히 세계를 낙원으
로 만들 수 있는 결정적인 원칙을 분명히 계시하셨다.
진리는 만인을 위한 것임
바하이 가르침은 페르시아이나 그 밖의 동양 사람들에게는 매
우 좋은 것이지만, 서양의 여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불필
331
제 15 장 회고와 전망
요하고 적당치 않은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기 쉬운 일이
다. 이와 같은 의견을 말하는 사람에게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바하올라의 대업의 의미에서는 세계의 이익을 위하는 일은
하느님의 일이요, 하느님의 모든 일은 세계의 이익을 위한 것
이다. 만일 어떠한 것이 진리라면 그것은 만인을 위한 것이요,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아무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이익을 위한 하느님의 대업은 단지 동양이나
혹은 서양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진리의 태양’의
빛은 동서양을 두루 비치고, 그 열은 남북을 널리 덥게 하여 남
북 양극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의 현시의 시대에 로마사람들과 희랍사람들은 그 대업을 오로
지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기네의 완전
한 문명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으니, 이 그릇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은총을 받지 못한 사람이 심히 많았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원칙과 바하올라의 가르침은 일치되는 것이어서 그
길이 또한 동일함을 알아야 한다. 세계는 날마다 진보한다. 이
신성한 제도, 즉 점진적으로 계시된 종교에도 태아의 시대가
있었고, 탄생하여 소아가 되고 지능 있는 청년이 되었다. 그리
하여 오늘에 그것이 찬연한 아름다움에 빛나고 무상의 광채를
발하게 되었다. 이 신비를 깨달아 광명을 받은 자의 세계에 사
는 사람은 행복하다.”
압돌바하의 마지막 소망과‘유훈’
332
바하올라와 신시대
새로운 국면(局面)
바하이신앙은 사랑하는 지도자 압돌바하께서 세상을 떠나심
으로써 그 역사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이 새 국면은, 같은
정신적 유기체의 존재에 있어서 더 높은 상태, 즉 그 신자들이
느낀 신앙이 더 성숙하고 따라서 더 책임 있는 표현으로써 나타
나 있다. 압돌바하께서는 그 초인적인 정력과 비할 데 없는 능
력으로써 그분의 바하올라에 대한 사랑을 동서양에 널리 전파
하는 일에 헌신하셨다. 그분은 무수한 사람들의 영혼에 신앙의
촛불을 켜 주셨다. 그분은 개인의 정신생활의 특질에 따라서 저
들을 교도하셨다. 바하올라의 종교의 특별한 사명이 세계질서
의 건설인데, 그 질서의 모형(模型) 또는 중심이라고 불리우는
행정질서를 세울 때가 되었을 때 압돌바하께서는 세상을 떠나
셨다.
따라서 압돌바하의 소망과‘유훈’은 바하이 역사의 전환기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것은 미성숙하고 무책임하던 시대에서,
개인적 경험의 영역(領域)에서, 사회적 융합과 협력의 영역에
까지 그 범위를 넓힘으로써, 바하이신도 자신이 그 정신성을 실
현하도록 정해진 시대이다. 압돌바하에 의하여 남겨진 행정계
획의 주요한 세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하느님 대업의 수호자
2. 하느님 대업의 선양자
3. 지방, 전국 및 세계 정의원
하느님 대업의 수호자
압돌바하께서는 그분의 장손인 쇼기 에펜디를‘대업의 수호
333
제 15 장 회고와 전망
자’(와리예 암롤라)로서의 책임 있는 지위에 임명하셨다. 쇼기
에펜디는 압돌바하의 장녀 지아이예 카놈의 장남이며 그분의
아버지 미르자 하디는 바압의 친족이다. (바압의 외아들은 어려
서 사망하였으므로 그 직계는 아니지만), 쇼기 에펜디께서는 조
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 25세로 옥스포드의 발리올 칼리지에
서 수학 중이셨다. 그분의 임명에 관하여 압돌바하의‘유훈’에
다음과 같이 발표되어 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 이 피해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신성
한‘로트나무’의 가지와 작은 가지(즉 바압과 바하올라의 친
족)와 하느님의 대업의 선양자와‘압하의 미’의 사랑을 받는
자들은, 모름지기 두 신성한‘로트나무’(즉 바압과 바하올라)
에서 난 젊은 가지이며‘성질(聖質)의 나무’의 두 가지의 결합
에 의하여 성장한 열매인 쇼기 에펜디에게 향하라. 그는 진실
로‘하느님의 증적(證迹)’이요‘택함을 받은 가지’이며,‘하느
님의 대업의 수호자’이니, 모든‘가지’와‘작은 가지’와 하느
님의 대업의 선양자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은 모두 그에
게로 향하여야 한다. 그는‘하느님의 말씀’의 해석자이며, 그
의 지위는 그 직계의 장남이 승계할 것이다........ ...
신성한 젊은‘가지’인 하느님의 대업의 수호자도, 일반적으
로 선출되어 설립되는 세계정의원(바이톨 아들)과 마찬가지로,
‘압하의 미’의 보호 하에 성스러운‘고원자’(高遠者)의 비호와
오류 없는 지도를 받을 것이며, 나의 생명이 이 양자(兩者)를
위하여 바쳐질 것을 원한다. 그들이 결정하는 일은 어느 것이
나 하느님에 의한 것이다........ ..
그대들, 주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여, 하느님의 대업의 수호자
334
바하올라와 신시대
는 생전에 그의 후계자를 결정할 것이니, 그것은 그의 사후에
불화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결정된 자는 모든 속세의
사물을 초월하여 순결의 본질이 되고 하느님께 대한 외경(畏
敬)과 지식과 지혜와 학문을 체득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하느님의 대업의 수호자의 장남으로서‘아들은 그 조상의 비밀
의 본질이라’는 말씀의 진리를 체득하지 못하면, 즉 아버지(수
호자)에 내재한 정신적인 것을 계승하지 못하고, 또 그 영광스
러운 계통의 좋은 품격을 갖추지 못할 때는, 대업의 수호자는
다른‘가지’를 후계자로 택하여야 한다.
하느님 성업의 선양자는 그 동료 중에서 항상 하느님 대업의
수호자의 활동의 주요한 봉사에 종사할 자로 9명을 선출하여야
한다. 이들 9명의 선출은 하느님 대업의 선양자 중에서 전원일
치 혹은 과반수에 의한 결정으로써 한다. 그리고 하느님 대업
의 수호자가 택한 후계자도 이들 9명의 위원 전원 혹은 과반수
의 동의를 얻어서 결정한다. 이 동의는 찬부 어느 것이나 그 소
리를 내지 말고(무기명 투표) 행하여야 한다.”
하느님의 성업선양자
바하올라께서는 그 생전에 확실하고 신임할 수 있는 네 사람
의 벗을 택하여 대업의 활동의 지도와 계발에 협력케 하고, 그
들에게‘아야디예 암롤라’(성업선양자)라는 칭호를 주셨다. 압
돌바하께서는 그‘유훈’가운데 대업을 위하여 봉사하고 그 수
호자에 조력할 상설기구의 조직에 관한 규정을 기술하셨다.
“벗들이여, 하느님의 성업선양자는 하느님 성업의 수호자에
의하여 지명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성업선양자는‘하느
335
제 15 장 회고와 전망
님의 향기를 퍼뜨리고 인간의 영혼을 훈도하며 어느 때나 어떠
한 경우에나 세속적인 일에서 성별(聖別)되어 초월하여 있어야
한다. 그들은 그 행위와 동작과 언어 등에 의하여 하느님에 대
한 외경을 나타내야 한다.
이 하느님의 성업선양자 기구는 하느님 대업의 수호자의 지
휘 하에 있다. 수호자는 그들이 항상 하느님의 향기를 발산하
고 세계의 전 인류의 지도에 전력을 다할 것을 항상 격려 하여
야 한다. 전 우주를 조명하는 지도의 광명이기 때문이다.”
행정질서
바하이 행정질서에 관하여는‘바하이 세계연감’제 5권 191
면 이하에 기록된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바하이 대업에 있어서 세계 행정질서의 원칙이 바하올라에 의
하여 정해졌고, 그것이 압돌바하의 문서, 특히 그분의‘유훈’에
서 발전하였다.
이 기구의 목적은, 서로 다른 민족, 계급, 이해관계, 성격, 그
리고 조상전래의 신조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참으로 영속할 수
있는 통일을 확립할 수 있게 함에 있다. 바하이 대업의 이 방면
에 면밀하고 동조적인 연구를 가한다면, 바하이 행정의 목적과
방법이 진실로 완전히 계시의 근본정신에 적용되어 있어, 행정
이 계시에 대한 것이 마치 육체가 영혼에 대한 것과 같은 관계
를 가졌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하이 행정의 원칙은 그 본질
에 있어서 세계적 범위의 새롭고 보다 높은 도덕형(道德型)을
제공하여 주는 것이다.
336
바하올라와 신시대
바하이 공동체는 다른 자발적인 집단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 기초가 깊이 뿌리박혀 있고 그 범위가 넓어서 성실한 사람이
면 누구나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단체는, 의도하는 바
는 아니더라도 그 실제에 있어서는 배타적이며, 또한 이상(理
想)하는 바는 아니더라도 그 방법에 있어서는 역시 배타적이지
만, 바하이의 모임은 성실한 사람이면 누구에게 대해서든지 친
화의 문을 닫지 않고 포용한다. 모든 집단에는 거기에 감추어
진, 혹은 드러난 어떤 선택의 출발점이 있다. 종교에 있어서의
이 출발점은 그 기원(起源)인 역사적 성실에 제한된 신조이고,
정치에 있어서의 그 출발점은 정당이나 정강(政綱)이며, 경제
에 있어서의 그 출발점은 공통의 불행과 불우와 공동의 힘이고,
예술과 과학에 있어서의 그 출발점은 특별한 훈련과 활동과 혹
은 관심이다. 이러한 모든 사항에 있어서는 선택의 출발점이 배
타적일수록 그 활동이 강력하여진다. 이와 같은 상태는 전혀 반
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하이대업은 그 성장과 진보의 정신에 따라 열성적
인 신도 수에 관계하여 천천히 발전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
든 분야에 배타와 분립의 습관을 가지고 있어 일반이 중요시하
는 일은 언제나 사회적 분열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바하이
활동에 참가하는 일은 이러한 인습(因習)을 버리는 일이므로
그 사람은 처음에는 인간의 자아(自我)가 인류애의 지고한 명
령에 반항하게 되는 새로운 시련과 고민에 부닥치게 된다. 장구
한 세월에 걸쳐 존재하였던 자부심과 특권의 우월감(優越感)을
제거한 기초 위에서, 과학적인 자는 무식하고 몽매한자와 사귀
어야 하고, 부자는 빈자와, 백인은 유색인종과, 신비주의자는
직해(直解)주의자와, 기독교도는 유대교도와 이슬람교도와 조
337
제 15 장 회고와 전망
로아스터교도들과 서로 사귀어야 한다. 그런데 이 곤란한 경험
에 대하여 영광스러운 보수가 있다. 예술의 공통의 인간성을 벗
어나면 그것은 무익한 것이 되고, 철학도 마찬가지로 고독하게
발달될 때 그 관찰력을 잃게 되며, 그리고 정치와 종교는 인류
의 전체적 요구에서 분리되면 그것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
을 알아야 한다. 인간성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우리는
모두 지능적 방어와 도덕적 방어와 감정적 방어 또는 사회적 방
어의 상태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방어의 심리는 곧 억제의 심리
인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공포심을 없애고 공포
심이 없어지면 잠재한 힘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정신적 사랑에
기초한 타인과의 사귐은 이러한 힘에 활기를 주어 적극성을 가
지게 한다. 바하이공동체는 이 시대에 있어서 이러한 과정(科
程)을 이루는 집단이다. 새로운 추진력(推進力)이 그 힘을 일으
키는,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나 신자들이 인류통합의 꽃을 피게
하는 힘을 인식할 때에는 더 급속히........
지방의 바하이 문제에 대한 관리와 책임은 신성회라는 기구에
귀속되어 있다. 이 신성회(9인으로 된)는 매년 4월 21일, 즉
‘레즈완’(바하올라의 선언을 기념하는 축제)의 첫날에, 그 공
동체에 등록된 성년 신도들에 의하여 선출된다. 이 신성회의 성
격과 임무에 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모든 바하이 신도는 어떠한 바하이 활동을 하고자 할 때에
는 먼저 신성회에 문의하여야 하는 것이 의무로 되어 있다. 그
리고 그들은 신성회가 명하는 일에는 마음과 영혼으로써 확신
을 가지고 복종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각 개인이 독립하여 각자의 판단으로써
338
바하올라와 신시대
행동할 것이므로 개인의 욕망에 따라 대업에 해를 미치게 될
것이다.
집회하고 협의하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필수조건은, 동기
가 순수할 것, 빛나는 정신을 가질 것, 하느님 이외의 모든 세
속에서 떠날 것, 하느님의 성스러운 향기에 잠길 것,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 사이에 겸양하고 겸손할 것, 곤란에 대하여
참고 견딜 것, 그리하여 고원한 문턱에 봉사할 것 등이다. 그들
이 이러한 속성을 얻는 데에 은총의 도움을 받는다면, 보이지
않는‘압하의 나라’에서 오는 승리가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 약
속되어 있다. 오늘에 있어서 협의를 목적으로 하는 신성회는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에 대한 복종은 반드시 지켜
야 할 의무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성회 의원은 악감정이나 불
화를 일으키지 않는 방법으로 서로 협의 하여야 한다. 그것은
모든 신성회 의원들이 완전한 자유 하에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논지를 설명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일이다. 만일 누가 반대
하였다 하여도 그것이 결코 남의 감정을 상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문제가 충분히 토의되기 전에는 바른 방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의 빛나는 불꽃은 서로 다른 의견의
충돌이 있은 후에라야 나타난다. 만일 토의한 후에 전원일치로
의결되면 좋고 의견이 서로 다를 때에는(그러한 일이 없는 것
이 더욱 좋지만) 과반수의 의견이 채택되어야 한다.
첫째의 필요조건은 신성회 의원 사이의 완전한 사랑과 조화
(調和)이다. 그들은 불화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안에 하느님의 일체성을 나타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바다의 물결이요 한 냇물의 물방울이며, 한 하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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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장 회고와 전망
별이요 한 태양의 광선이고, 한 과수원의 나무들이요 한 정원
의 꽃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랑의 조화와 완전한 통일이 없
다면 그 모임은 분산될 수 밖에 없고 그 신성회는 무익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둘째의 필요조건은 집회할 때 그들의 얼굴을 가장 높은 나라
로 돌려 그 영광의 나라에서 오는 도움을 구하여야 하는 것이
다......... 토론은 오로지 정신적인 사항에 국한 하여야 하나
니, 즉 영혼의 훈련, 어린이의 교도, 빈곤자의 구제, 세계에 사
는 모든 계급 가운데의 약자를 돕는 일, 모든 민족에 대한 친
절, 하느님의 향기를 발산하는 일, 그리고 하느님의 성스러운
말씀을 높이 찬양하는 일들에 관한 것이다. 만일 저들이 이러
한 조건의 성취에 힘쓴다면 성령의 은총이 저들에게 내려져서
그 신성회는 하느님의 축복의 중심이 되어 하느님의 확증의 군
대가 저들을 돕기 위하여 올 것이다. 그리하여 저들은 나날이
정신의 새로운 흐름에 잠길 것이다........ ..”
이 주제를 설명(說明)하며 쇼기 에펜디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
셨다.
“어떠한 일이든지 그 지역의 신성회에 의하여 충분히 고려되
고 승인되지 않고서는 바하이 벗의 어느 개인에 의하여 대중에
게 공포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그 나라에
있어서의 대업의 일반적 이해관계에 속하는 일이면 그것은 여
러 지방신성회를 대표하는 전국신성회의 협의와 승인을 얻기
위하여 거기에 제출하는 것이 그 지방신성회의 의무이다. 개인
적 혹은 단체적인 그 지역에 있어서의 대업의 이해관계에 관하
여, 출판에 관한 일뿐 아니라 어떠한 예외도 없이 모든 문제는
340
바하올라와 신시대
모름지기 그 지역의 신성회에 문의하여야 한다. 지방신성회는
그것이 국가적 이해에 관한 것이 아니면 그것을 결정한다. 그
리고 그것이 국가적 이해에 관한 것이면 전국신성회에 문의하
여야 한다. 또 이 전국신성회에는 어떤 문제가 지역적인 것인
가 혹은 국가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것인가의 판단이 위임 되어
있다. (국가적 문제란 말은 그 성격이 정치적인 문제를 의미하
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의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떠한 방
법에 의한 것이든지 정치문제에 관여하는 것이 엄금되어 있다.
국가적 문제란 것은 그 나라에 있어서의 일반 바하이 공동체의
정신적 활동에 영향을 주는 일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러 지방신성회와 신도들 사이는 물론이요, 특히 각
개의 지방신성회와 전국신성회와의 사이에 충분한 협력과 조화
가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에 하
느님의 대업의 융합과 바하이 벗 사이의 결속과 하느님을 사랑
하는 자들의 정신적 활동의 충분하고 급속하고 효과적인 움직
임이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방신성회와 전국신성회 등 여러 신성회는 오늘날 공고한
기반을 이루어 그 강력한 기반 위에 장래에 세계정의원이 확고
하게 설립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신성회가 강력하게 조화적으
로 기능을 발휘하기까지는, 이 과도기(過渡期)가 끝나기까지는
그것이 실현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대업의 주지(主旨)는
독재적인 권위가 아니라 겸손한 사귐이요 전횡적(專橫的)인 권
력이 아니라 솔직하고 충실한 협의의 정신임을 명심하라. 참다
운 바하이 정신이 없이는 자비와 정의, 자유와 복종, 개인권리
와 존엄과 인종(忍從), 그리고 한편으로 경계와 사려(思慮)와
신중, 다른 한편으로 우정과 공평과 용기 등의 원칙을 조화시
341
제 15 장 회고와 전망
킬 수 없다......... .”
한 나라의 여러 지방신성회는 다른, 선출된 9인으로 조직된
기구, 즉 전국신성회에 의하여 연결되고 조정된다. 이 전국신성
회는 각 지방의 바하이공동체에서 선출된 대의원에 의한 선거
를 통하여 매년 새로 선출된다. 이 대의원들은 지방공동체를 구
성하고 있는 모든 등록된 성인신도들에 의하여 선출된다. 대의
원들이 집회하는 전국대회는 비례대표제의 원칙에 의하여 선출
된 대의원들로써 구성된다. 대의원 총수는‘세계정의원’에 의
하여 정해지고, 그 총수가 각 지방공동체의 상대적 인원수에 비
례하여 할당된다. 이 전국대회는 되도록‘레즈완 축제’의 기간
중에 개최된다. (레즈완 축제의 기간이란 것은 바하올라께서 바
그다드 교외에 있는 레즈완동산에서 행한 선언을 기념하는 4월
21일부터 12일 간이다.) 대의원을 승인하는 일은 전기(前期)
의 전국신성회에 위임되어 있다.
전국대회는 바하이활동에 대한 개인의 인식을 깊게 하고 또
전년도의 전국적 및 지방적 활동의 보고를 하고 듣는 기회이다.
이 대회에 관하여 일반에게 공개하는 바하이 집회를 가지는 것
이 관례가 되어 있다. 바하이 대의원들의 임무는 전국대회에 출
석하는 일과 새 전국신성회의 선거에 참가하는 일에 한정된 것
이 아니다. 회의 기간 중 그 대의원들은 협의단인 동시에 상담
단 이어서 그들의 건의는 새로 선출된 전국신성회에 의하여 신
중히 고려되어야 한다. 전국신성회와 지방신성회 및 그 나라 신
도와의 관계는 수호자의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전국신성회의 설립에 관해서는, 그 사정형편이 좋고 바하이
신도의 수가 상당한 수에 달한 모든 나라에서는 그 나라 전체
342
바하올라와 신시대
343
의 바하이 신도를 대표하는 전국신성회가 곧 설립되는 것이 매
우 중요한 일이다.
그 직접적인 목적은 자주 행하는 협의에 의하여 지방신성회
와 마찬가지로 바하이 신도들의 다방면의 활동을 자극하고 통
합하고 조정하기 위한 것이요, 그리고‘성지’와의 밀접하고 끊
임없는 접촉을 가짐으로써 방책을 시행하고 일반적으로 그 나
라에 있어서의 대업의 업무를 관리하는 일이다.
그것은 또 첫째의 목적과 비등하게 중요한 다른 목적도 가졌
으니, 압돌바하의‘유훈’가운데‘제 2위의 정의원’이라고 언
급되어 있는 전국정의원으로 발전되는 그것이다. 전국신성회는
압돌바하의‘유훈’의 명백한 원문에 의하면, 바하이 세계를 통
하여 다른 전국신성회와 더불어 국제 혹은 세계정의원의 의원
을 직접 선출하여야 한다. 그 세계정의원은 전 세계를 통하여
바하이 활동을 지도하고 조직하고 통합하는 최고의 기구이다.
이 전국신성회는 세계정의원이 아직 설립되어 있지 않은 동안
매년 한번 씩 새로 선출 되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분명히 중대
한 책임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 관할지역에 있어서의 모든 지방
신성회에 대하여 충분한 권한을 행사하여야 하고, 또 바하이 신
도들의 활동을 지도하고 하느님의 대업을 신중히 보호하며, 일
반적인 바하이 활동을 통제하고 감독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나라에 있어서의 대업의 이해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 문제,
예컨대 번역과 출판, 마슈리꼴 아즈카르, 포교활동, 기타 비슷
한 사항으로서 어느 지방에 관한 문제에서 명확히 구별되는 다
른 일들은 전국신성회의 충분한 권한 하에 두어야 한다.
제 15 장 회고와 전망
우리 모두가 사랑하여 봉사하는 대업을 위하여, 전국대회에
서 대의원들이 선출한 새 전국신성회의 임무는,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대회에 모인 대의원들의 권고와 신중한 의견과
진실한 소감을 들어, 그것에 최대의 관심을 가지는 일이다. 그
들 가운데서 비밀과 지나친 침묵과 독재적인 무관심 등의 모든
자취를 추방하여 버리고, 그들의 계획과 그들의 희망과 그들의
관심사를, 그들을 선출한 대의원들의 면전에 빛나게 충분히 표
명하여야 한다. 그들은 임기 중에 고려하여야 할 여러 가지 사
항을 대의원들에게 충분히 알려야 한다. 그리고 대의원들의 의
견과 판단을 냉정하고 양심적으로 연구하고 음미하여야 한다.
새로 선출된 전국신성회는 전국대회 개최 중의 며칠 동안과 대
의원들이 해산한 후에 이해력을 증진하고 의견교환을 촉진하며
확신을 깊게 하는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여, 모든 명백한 증거
에 의하여 그들의 유일한 염원이, 공공의 복리에 봉사하고 그
것을 촉진시키는 일임을 증명하여야 한다.
그런데, 빈번하고 여러 날 계속되는 전국대회의 소집에 따르
는 피할 수 없는 불편 때문에 전국신성회는 그 책임으로써, 대
업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관한 최종판단, 즉 어
떤 지방신성회가 대업의 행동과 발전을 위하여 규정된 여러 원
칙에 따라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가 어떤가 하는 판단을
내리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매년 지방 바하이 선거에 사용되는 선거명부의 작성에 관해서
는 그에 대한 책임이 각 지방신성회에 있고 그 일에 대한 지도
서로서 수호자께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셨다.
“어떤 사람을, 참다운 신도로 인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판
344
바하올라와 신시대
단을 내리기 전에, 신중히 생각해야 할 중요한 요소를, 극히 간
단히, 현재의 상태에서 적어보기로 한다.
1. 압돌바하의‘유훈’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은, 바하이대업
의 선구자, 창시자, 그리고 참다운 구현자(具現者)의 지위
를 충분히 인식할 것.
2. 그분들의‘붓’에 의하여 계시된 어떤 것이든지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복종할 것.
3. 우리의 사랑하는 분의 성스러운‘유훈’의 모든 조항을 충
실하고 확고하게 준수할 것.
4. 오늘의 바하이행정의 형태와 함께 그 정신을 이해하여 거
기에 밀접하게 참여할 것.......
이러한 것들은 이와 같은 중대한 판단에 도달하기 전에, 공평
하고 신중하며 주의깊게 확인되어야 할 기본적이며 가장 중
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압돌바하의 지시에는 바하이 조직의 한층 더 높은 발전에 대
해서도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든 선(善)의 근원이 되고 모든 오류에
서 해방되도록 정하신‘베이톨 아들’(정의원)에 관해서 말하자
면, 그것은 신자들 일반의 투표권에 의하여 선출되어야 한다.
그 의원은 하느님을 외경하고 지식과 이해(理解)의 새벽이 되
며 하느님의 신앙에 확고부동하고 전 인류의 행복을 비는 자들
이어야 한다. 이 정의원이란 것은 세계정의원을 의미하는 것으
로서, 각국에 제 2의 정의원이 설립되어야 하고 이들 제 2의 정
의원이 세계정의원을 선출하여야 한다.
345
제 15 장 회고와 전망
이 세계정의원에 모든 일을 문의하여야 한다. 세계정의원은
성스러운 글에 명백히 씌어 있지 않은 모든 계율과 규칙을 제
정한다. 세계정의원에 의하여 모든 곤란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
며 대업의 수호자가 그 신성한 의장으로서 생존 중에 그 기구
의 존귀한 의원이 된다. 만일 그 자신이 회의에 출석하지 않을
때는 그를 대리할 한 사람을 지명하여야 한다. 이 정의원은 법
률을 제정하고 집행부가 그것을 시행한다. 입법기관은 집행부
를 지지하고 집행부는 입법기관을 원조하여야 한다. 그리함으
로써 이 두 기관이 밀접한 결합과 조화를 통하여 공평과 정의
의 기초가 확고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의 모든 영역(領域)
이 낙원과 같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가장 성스러운 책’(케
타베 악다스)에 향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글에 명백히 기록되
어 있지 않은 모든 일은 정의원에 물어야 한다. 이 정의원이 전
원일치 혹은 과반수로써 의결한 것은 진실로 진리요 하느님 자
신의 목적이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자는 누구든지 진실로 불화
를 좋아하고 악의를 보이고 성약의 주에게서 얼굴을 돌리는 자
의 한 사람이다.”
오늘에 있어서도 전 세계의 모든 지역에 있는 바하이들은 규
칙적인 통신과 개인적 방문의 수단에 의하여 친밀하고 진정어
린 교제를 계속하고 있다. 이 서로 다른 인종, 국적, 종교적 배
경을 가진 신도의 교제는, 편견과 분파의 역사적 요소가 바하올
라에 의하여 세워진 일체성의 정신을 통하여 완전히 극복된 구
체적인 증거인 것이다.
바하올라의 세계질서
이 질서의 보다 큰 암시는, 1929년 2월부터 계속하여 바하이
346
바하올라와 신시대
공동체에 보낸 서한에서 쇼기 에펜디에 의하여 설명되었다.
“나는 이 신교의 신도로서 알려져 있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노
니, 오늘의 지배적인 생각이나 일시적인 유행을 돌아보지 말
라. 그리고 현대문명이 논파(論破)한 이론이나 허약하고 미덥
지 않은 여러 가지 제도가 일찍이 없었던 것처럼 무너지고 그
위에 세워질 운명에 있는, 하느님께서 주신 제도가 분명한 대
조(對照)로써 나타나리라는 것을 깨달으라.,,,,,,,,, 왜냐하면
바하올라께서는........ 인류에게 단지 새로운 재생의 정신을 불
어넣으셨을 뿐이 아니다. 그분은 다만 어떤 일반적 원칙이나
특수한 철학을 - 그것들이 아무리 강력하고 건전하여 보편적이
라 할지라도 - 선언하시거나 제의하셨을 뿐이 아니다. 그것에
첨가하여 바하올라께서는 그분의 후계자 압돌바하와 함께 과거
의 종교제와는 달리, 법전을 명확히 제정하시고 결정적인 제도
를 확립하시며 신성한 조직에 관한 중요한 일을 규정하셨다.
이러한 것들은 장래사회의 규범으로서‘최대의 평화’를 확립하
는 지고한 수단이 되고, 또 세계 통일과 이 지상에 있어서의 정
도(正道)와 정의의 지배를 선언하는 유일한 힘이 되도록 정해
져 있다........ .
그리스도의 종교제와도 다르고 모하멧의 종교제와도 다르며,
또한 과거의 모든 종교제와도 달라서, 모든 나라에 있는 바하
올라의 사도들은 그들이 어디서 노력하고 있든지 그들의 눈앞
에는 분명하고 의심 없는 강력한 말씀으로 된, 그들의 임무 수
행상 필요한 법과 규율과 원칙과 제도와 지도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하이 계시의 특수한 점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
신앙의 일체성의 힘, 즉 이전의 여러 계시를 파괴하거나 경시
하지 않고 그 계시들을 결합하고 통합하고 그 실현을 주장하는
347
제 15 장 회고와 전망
이 계시의 타당성의 힘이 있는 것이다. ........
비록 우리의 신앙이, 이것을 이슬람교의 일파라고 비난하거
나 또는 서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애매한 몇 개 종파의 또 하
나쯤으로 생각하여 멸시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심히 약하게 보
일지는 모르지만, 이 하느님의 계시라는 귀중하고 훌륭한 보석
은 아직은 그 움트는 시기에 있으나, 바하올라의 계율이라는
껍데기 속에서 자라서 그것이 전 인류를 포용하기까지 분열하
는 일이 없이, 또 약해지고 손상되는 일이 없이 발전할 것이다.
바하올라의 사랑으로 눈을 떠서 바하올라의 정신의 힘을 잘 알
고 있는 사람만이 충분히 이 신성한 조직, 즉 바하올라의 인류
에 대한 측량할 수 없는 선물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
다.”(1930년 3월 21일)
“이 목표를 향하여 괴로움 속에 있는 인류는 노력하면서 나
아가야 한다. 즉 이 목표는 그 기원이 하느님이요, 그 범위가
모든 것을 포함하고 그 원리가 공정하고 그 특징이 주의를 요
하는 신세계질서이다.
바하올라에 의하여 예시(豫示)된 세계통합을 성취하느냐, 그
렇지 않으면 멸망하느냐하는 현 시점에, 시대의 정신을 전혀
무시하고 옛날의 자기자족적(自己自足的)인 나라에 알맞은 국
가의 길을 그대로 적응시키려고 노력하는 인류사회의 지도자들
의 노력은 참으로 얼마나 슬픈 일이랴. 문명의 역사에 있어서
의 이와 같은 중대한 위기에 처하여, 세계의 모든 나라 - 작은
나라거나 큰 나라거나, 동양에서거나 서양에서거나, 또는 정복
하는 나라거나 정복 당하는 나라거나를 막론하고 그 지도자들
은 바하올라의 명확하고 날카로운 부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세계의 일치공통, 즉 바하올라의 대업에 충성을 바침
348
바하올라와 신시대
에 완전히 동화(同化)되어, 신성한 의사인 그분이 병든 인류에
게 처방한 치료법을 그대로 용감하게 시행하기 위하여 일어서
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모든 선입견과 국가적 편견을 깨끗이
버리고 바하올라의 가르침의 권위 있는 해석자인 압돌바하의
숭고한 권고에 귀를 기울이게 하라. 아메리카합중국 연방정부
에 재직해 있는 한 고관이 그 정부와 국민의 이익을 증진하는
최선의 방법을 물은 데 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대답하셨으되.
‘귀하가 만일 세계시민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나라들 사이
에 현존하는 여러 가지 관계에 있어서, 귀국 정부의 기조가 되
어 있는 연방제도 원칙의 종국적 응용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한
다면 그것이 곧 귀하 자신의 나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
다.”(1912년에)
“어떤 형태의 세계 초국가(世界超國家)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세계의 모든 나라는 자발적으로, 전쟁하는 모든
권리주장과 어느 정도의 과세권(課稅權)과 여러 나라 각자의
영토의 내부적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이외의 군비를 가지
는 모든 권리를 이양(移讓)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세계 국가
는 그 권내(圈內)에, 그 연방을 구성한 국가 중의 순종하지 않
은 나라에 대하여 이것을 굴복시킬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을 행
사함에 적당한 국제집행부와 각 국민에 의하여 선출되고 그들
의 정부에 의하여 인증된 의원들로써 조직된 세계의회와, 관계
국 쌍방이 자발적으로 사건을 재판에 위임하는데 동의하지 않
는 경우에라도 그 판결이 구속력을 가진 국제재판소를 가져야
한다. 그 세계사회에는 모든 경제적 장애가 영구히 제거되고,
노동과 자본의 상호의존이 명확히 인정되며, 종교의 광신으로
인한 분쟁이 영원히 진정되고, 인종적 증오와 적대행위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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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장 회고와 전망
내 없어지며, 또한 단 하나의 국제 법전(國際法典) - 세계연방
대의원들의 충분히 생각한 판단에 의하여 이루어진 - 이 연방
여러 구성국이 결정한 병력으로써 즉시 제재할 수 있는 강제적
간섭력을 가지게 되어, 으쓱대던 군사적 국가주의가 마침내 세
계시민이라는 영원한 자각으로 바뀌는, 이와 같은 국제공동체
야말로 광범한 윤곽에 있어서 바하올라에 의하여 예기(豫期)되
어 있는 질서요, 천천히 성숙하여 가는 시대의 가장 눈부신 성
과로 볼 수 있는 질서인 것이다........
바하올라의 세계를 포괄하는‘법’에 활기를 주는 목표에 관
하여 의혹을 가지지 말라. 그것은 현존하는 사회의 기초를 파
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변해가는 세계의 필요에 응하여
그 기초를 확장하고 그 제도를 만들어 놓는 데에 목적이 있다.
그것은 어떤 본래의 정통적인 충성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요,
또 본질적인 충의(忠義)를 저해하는 것도 아니다. 그 목표는
인간의 마음 가운데 있는 진정하고 이지적(理智的)인 애국적
열정을 억압하는 것도 아니요, 또 과도한 중앙집권화의 피해를
피할 수 없어, 매우 중요한 민족과 국가를 구별하고 특징짓는
종족적 기원과 풍토와 역사와 언어와 전통과 사상과 습관의 다
양성(多樣性)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요 또 억압하려는 것도 아
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인류에게 활기를 준 어떤 것보다 더 넓
은 의미의 충성과 더 큰 포부를 요구한다.........
바하올라의 호소는 주로 모든 편협주의와 섬나라 근성과 편
견에 대하여 외쳐지고 있다....... 왜냐하면 법률의 표준과 정치
적, 경제적 이론은 오로지 일반 인류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생
각해 낸 것이요, 인류로 하여금 어떤 특정한 법칙이나 교리의
완전성을 위하여 희생케 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체
350
바하올라와 신시대
성이라는 원칙 - 그 주위에 바하올라의 모든 가르침이 회전하
는 중축(中軸)은 한갓 무지한 주정주의(主情主義)의 폭발도 아
니요, 또 애매하고 경건한 희망의 표현도 아니다......... 그 함
축성 있는 주장은 과거의 예언자가 제창한 어느 것보다도 의미
가 심원하고 위대하다. 그 계시는 비단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모든 국가와 민족을 하나의 인류가족의 구성
원으로 하여 통합할 본질적인 관계의 성질을 가진 것이
다.........
인류의 일체성이라는 원칙은 인류 진화의 극치(極致)를 의미
한다......... 세계적 대 파괴의 힘만이 이러한 인간사고(人間事
考)의 새로운 국면(局面)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슬픈 일이
지만 점차로 명백해졌다......... 격렬한 시련 - 그것으로서 인
류는 세련되고 준비되어 나타나는 것이지만 - 이 없이는 무엇
이나 신생시대(新生時代)의 지도자들의 두 어깨에 짊어지고 일
어설 책임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압돌바하께서는 명
확한 말씀으로써‘이전 보다 더 격렬한 전쟁이 틀림없이 일어
난다.’고 주장하지 않으셨는가.”(1931년 11월 28일)
“이 행정질서는 그 구성요소와 유기적 기관이 능률과 용기로
써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함에 따라, 때가 오면 전 인류를 포용
하도록 정해져 있는 새 세계질서의 핵심이 될 뿐 아니라 마땅
히 그 규범이 되는 권리를 주장하고 또 그와 같은 능력을 보일
것이다.........
바하이신앙은 과거에 나타난 모든 계시 중에서 독특 무비한
것이다. 그 구조는 파탄된 종파의 추종자들이 접근하여 비판적
으로 연구할 수 있고 때가 늦기 전에 세계 포괄의 보호 안에 흔
들림 없는 안전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351
제 15 장 회고와 전망
이 행정질서 - 그것은 미래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하이 연
방의 기본이다. - 가 나타낼 위력과 존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면, 바하올라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것인가. 즉‘세계의 균형은 이 가장 위대한 새 세계질서의
고동적(鼓動的) 영향으로 말미암아 뒤집히고, 인간의 정형화
(定刑化)된 생활은 이 비류 없는 경이적 조직의 힘 - 이와 같은
조직은 인간의 눈으로 일찍이 본 일이 없다. - 에 의하여 혁신
되었다.........
이 거대한 행정질서가 그 유일한 기구(機構)인 장래의 바하
이 연방은, 이론과 실제의 양 면에 있어서 단지 정치기구 전체
의 역사에서 비류 없을 뿐 아니라 세계가 인정하는 어떠한 종
교제의 기록에서도 그 유례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형
태의 민주정치도, 군주정치 혹은 공화정치도, 전제정치 혹은
독재정치도, 또 순순한 귀족적 중용적인 조직도, 어떤 신정(神
政)의 형태, 예컨대 히브리연방이나, 여러 가지 기독교 교회의
조직이나, 이슬람교의 에맘제와 칼리프제나, 그 어떤 것이든지
완전한‘건축사’의 손으로 이루어진 이 행정질서와는 비교할
수도 없고, 일치될 수도 없다.......
이 조직이 아직 요람기(搖籃期)에 있는 동안은 누구나 그 의
의를 경시하거나 그 목적을 오전(誤傳)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행정질서가 세워진 암상(岩床)은 현대에 있어서 하느
님께서 인류에게 바라시는 변함없는 의도이다. 이 행정질서가
그 고무(鼓舞)를 받는 근원은 바하올라 자신이다...... 그것에
활기를 주는 기본적인 중심목표는 바하올라에 의하여 예시된
세계질서의 확립이다. 그 쓰는 방법과 그 가르치는 표준은 동
양 혹은 서양에나, 유대인 혹은 이교도(異敎徒)에게나, 부자
352
바하올라와 신시대
혹은 빈자에게나, 백인 혹은 유색인에게나 치우치지 않는다.
그 신호는‘인류의 통합’이요, 이 표지(標識)는‘최대의 평화’
이다.”(1934년 2월 8일)
“하느님의 종교의 행정질서가 진척됨에 따라서 부단히 누적
(累積)되는 통합의 증거와 변천해 가는 사회조직을 무너뜨리는
분해력과의 대조가 명확하게 보인다. 이 질서의 설립이 하느님
의 대업의 황금시대를 신호하는 것이거니와, 지금 바하이 세계
의 내외에는 신비스럽게도 이 세계질서의 탄생을 예고하는 여
러 가지 징후가 날로 더해가고 있다.....
또 바하올라 자신의 말씀이 그것을 선언하는 것이니, 즉‘멀
지 않아서 오늘의 질서는 걷혀지고 그 대신 새로운 질서가 전
개되리라.’고 하셨다.
바하올라의 계시는........ 그분 출현에 의하여‘전 인류가 성
숙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단지
부단히 변해가는 인류의 운명에 있어서의 또 하나의 정신적 부
흥일 뿐 아니라, 또 일련의 점진적 계시의 한 걸음 더 나간 단
계라든가 회귀(回歸)하는 예언적 주기(週期)의 한 극치(極致)
로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보다도 이 지구상의 인간의 집단생
활의 놀라운 진화에 있어서의 최후이며 최고의 단계를 의미하
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공동체의 출현, 세계시민
이라는 자각, 세계문화와 문명의 확립........ 그것은 인간 개인
으로서는 실제에 있어서 이와 같은 극치의 결과로서 무한히 진
보 발달을 계속하는 것이지만, 이 지구상의 생활에 관한 한도
안에서는 인간사회의 기구(機構)에 있어서의 최고의 한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53
제 15 장 회고와 전망
바하올라에 의하여 나타난 인류의 일체성은 모든 국가와 민
족과 종파와 계급이 밀접하게도 영구히 통합되는 세계연방의
설립을 의미하는 것이니, 거기에는 그 연방 구성국의 자치권과
그들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창의력이 확정적
으로 또 완전히 보장된다. 이 연방에 우리가 구상화(具象化)할
수 있는 한에서는 세계입법부를 포함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입법부의 의원은 인류전체의 신탁을 맡은 사람으로서 궁극적으
로 모든 구성국가의 모든 자원(資源)을 통할하고 모든 인종과
민족의 관계를 조정하고 생활을 규정하고 요구를 만족시킴에
필요한 법률을 제정할 것이다. 그리고 국제적 병력(兵力)의 배
경을 가지고 있는 세계집행부는 세계입법부에 의하여 제정된
법률과 의결사항을 시행하여 전 연방의 유기적 일체성을 옹호
할 것이다. 세계재판소는 이 세계적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여
러 구성원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분쟁에 대하여 그것을 재판하
여 강제적이며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것이다. 국제적 장해와
제한에서 개방된, 전 지구를 포함한 세계 통신기관이 도출되어
경이적인 신속성과 완전한 정확성으로써 기능을 발휘할 것이
다. 세계의 중심도시는 세계문명의 중추(中樞)가 되어, 생명의
통합적 모든 힘이 집중되고 또 거기서 생명의 강력한 영향력이
발생하는 초점으로서 작용할 것이다. 세계어는 새로 고안되든
가 혹은 현존하는 언어 중에서 선택되어 전 연방의 학교에서
모국어에 대한 보조어로서 가르치게 될 것이다. 세계문자와 세
계문헌, 그리고 공통적인 세계통화(通貨)와 도량형(度量衡)의
제도는 인류의 국가와 민족 사이의 교류와 이해(理解)를 간편
하고 용이하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세계사회에서는 인류생활
의 가장 큰 두 가지 힘인 과학과 종교는 서로 화합하고 제휴하
여 조화적 발전을 이룰 것이다. 신문과 잡지는 이와 같은 제도
354
바하올라와 신시대
하에서는 인간의 여러 가지 의견이나 신념을 충분히 표현하여
도 사적(私的)이나 또는 공적인 기성세력에 의하여 해롭게 조
종되는 일이 없고 또 투쟁적인 정부나 민족의 영향에서 해방될
것이다. 세계의 경제적 모든 자원은 개발되어 충분히 이용되고
세계시장은 정비되고 발전되어 생산품의 분배가 공정하게 규정
될 것이다.
국가 사이의 경쟁과 증오와 음모는 없어지고 인종적인 적대
(敵對)와 편견은 인종적 친선과 이해(理解)와 협조로 바뀌며,
종교적 분쟁의 원인은 영원히 제거되고 또 경제적 장벽과 제안
은 완전히 없어지며, 계급사이의 과도한 차별은 철폐될 것이
다. 한편에는 빈곤이 있고 다른 한편에 소유권의 과다한 축적
이 있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혹은 정치적으로나
전쟁에 의하여 낭비되던 거대한 정력은 인간의 발명과 기술발
전의 범위를 넓히는 일에, 인류의 생산력을 증진하는 일에, 질
병을 박멸하는 일에, 과학적 탐구를 진전시키는 일에, 육체적
건강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에, 인간의 두뇌를 현명하게 하고
정화시키는 일에, 지구상에 아직 사용되지 않는 상상할 수 없
이 많은 여러 가지 자원을 개발하여 이용하는 일에, 정신적 생
활을 고무(鼓舞)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다른 기관을 증진시키는
일에 바쳐질 것이다.”
“세계연방조직 - 그것은 전 세계를 통치하여 그 상상할 수도
없는 막대한 자원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동양과 서양의
이상(理想)을 융합하여 일체가 되게 하며, 전쟁의 저주와 비극
에서 해방되고 지구표면의 모든 유용한 에너지원(源)의 개발에
힘쓸 것이며, 거기에는 힘의 정의의 종이 되고, 생명의 유일신
(唯一神)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 공통적인 계시에 대한 충성에
355
제 15 장 회고와 전망
의지하여 지지되는 조직 - 이러한 것이야말로 인류가 생명의
통합력에 의하여 자극을 받으면서 나아가는 목표이다........
전 인류는 고민하고 있다. 통합으로 인도되기 위하여, 또는
옛날부터 끊임없이 일어난 순교(殉敎)에 종지부를 찍게 되기를
충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의연히 혼미한 가운데
있어, 그들을 삼키려고 위협하는 불행에서 광명으로 구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의 최고권위를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현재의 인류사회는 전 인류의 통합의 단계에 접근하여 있음
을 실증한다. 가족, 종족, 도시국가 및 국가의 통합은 계속적으
로 시도되어 충분히 확립되었고, 이제 세계통합이 고민하는 인
류가 분투노력하여 나아가야 할 목표가 되었다. 국가를 세우는
시대는 끝났다. 국가 주권에 뿌리박은 무질서는 그 절정(絶頂)
에 달하였다. 성숙(成熟)에 가까워진 세계는 이 물신(物神)을
버리고 인간 상호관계의 일체성과 전체성을 인정하여, 세계적
생활이 이 근본원리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기구(機構)를
결정적으로 수립하여야 한다.”(1036년 3월 2일)
압돌바하의‘유훈’에서 뽑은 것 추가
압돌바하의‘유훈’이 극히 중대한 의의를 가졌고 그 제기한
문제의 중요성과 그 여러 조항의 기초가 되는 지혜의 심오함에
비추어, 지금 여기에 새삼스럽게 그 내용에 주석을 가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위에 기술해 온 이
바하이신앙의 개략의 가장 적당한 마감으로서, 압돌바하를 고
무하고 지도하고 그분의 충실한 신도들에게 최대의 유산이 된,
그 정신과 주요원리를 뚜렷이 나타내는 몇 가지를 뽑아서 여기
에 추가한다.
356
바하올라와 신시대
“그대들, 주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여, 이 신성한 종교에서는
쟁투와 논쟁은 결코 허용 되지 않는다. 모든 침략자는 그 자신
이 하느님의 은총에서 제외된다. 모든 사람은 최대의 사랑과
방정한 행위와 정직과 참된 친절로써, 벗이거나 모르는 사람이
거나를 막론하고 세계의 모든 사람을 대한다면 모르는 이도 벗
이 될 것이요 원수도 참다운 형제가 되어,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없을 것이다. 세계성(世界性)은 하느님의 것이요 모든
제한은 지상(地上)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친애하는 벗들이여. 최대의 성실과 진실과 공
정과 경애와 호의와 우애로써 세계의 모든 종족과 동포와 종교
인들과 사귀라. 그리함으로써 존재(存在)의 전 세계는 바하의
은총의 성스러운 법열(法悅)에 잠기어, 무지와 적의(敵意)와
증오와 원한은 자취를 감추고, 각 민족 사이의 소격(疏隔)의 어
두움은‘융합의 빛’에 그 자리를 물려줄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타국민이 그대들에게 성실치 않거든 그대들의 성실을 보여주
고, 공정치 못하거든 그대들의 정의를 그들에게 보여주어라. 그
들이 그대들에게 탐탁스럽지 않거든 그들을 그대들에게 끌도록
힘쓰라. 그들이 그대들에게 적개심을 보이거든 그대들은 그들
에게 우정으로써 대하여라. 그들이 그대들의 생명에 해독을 끼
치거든 그들의 영혼을 부드럽게 하여주어라. 그들이 그대들을
손상하거든 그들의 아픈 곳을 위한 진통제가 되어라. 이러한 것
이 성실한 자의 속성이요 이러한 것이 정직한 자의 속성이니
라.”
“그대들, 주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여. 모든 정의의 군주에게
복종하고 공정의 제왕에게 충성을 보이는 것은 그대들의 의무
이다. 진실과 충성을 다하여 세계의 통치자들에게 봉사하라.
357
제 15 장 회고와 전망
그들에게 순종을 보이고 그들에게 호의를 가지는 자가 되라.
그들의 허락이 없이 정사(政事)에 간섭하지 말지니, 공정한 군
주에게 불충하는 것은 하느님께 불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것은 나의 훈계이며 또한 그대들에 대한 하느님의 명령이다.
이 명령에 따르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라.”
“주여, 만물이 나를 위하여 울고 있으며 나의 동포 중에 나의
슬픔을 기뻐하는 자가 있음을 당신은 보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의 하느님이시여, 당신의 영광으로써 아뢰옵거니와, 나의 적
들 가운데 내가 받는 재앙과 고난을 슬퍼하는 자가 있고, 나를
시기하는 자들 가운데도 나의 심려와 추방과 고뇌에 눈물을 흘
리는 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저들이 내 마음 가운데 근심과 걱
정만이 있음을 보고 또 친절과 자비 이외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난과 걱정의 파도에 휩쓸려, 마치 운
명이 화살의 과녁으로서 드러나 있음을 보고는, 저들에게도 동
정심이 생기어 눈물을 흘리면서 증언하되,‘주께서는 우리들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그분에게는 다만 충성과 관용과 최대의 자
비가 있음을 볼 뿐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재앙을 예언하는 성
약파괴자들은 더욱 원한의 불꽃을 일으켜, 내가 최대의 고난에
빠진 것을 기뻐하고 더욱 나를 괴롭혔으며, 가슴이 찢어질 듯
한 불행한 경우에 그들은 박수를 보내면서 좋아하였습니다.”
“주여, 저의 하느님이시여. 제가 말과 마음을 다하여 간원하
옵나니, 저들의 포악과 비행과 교활과 사악(邪惡)에 대하여 보
복하지 마시옵소서. 저들은 다만 우매하고 비천하여 자신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들은 선악과 곡직(曲直)과
정사(正邪)의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에 따라 그 가장
악하고 가장 어리석은 행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저의 주여.
358
바하올라와 신시대
원컨대 저들을 불쌍히 여기사 이 어려운 때에 저들을 비호하여
난을 면하게 하시옵소서. 저로 하여금 일체의 고난을 맛보게
하시고,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희생이 되게 하시옵소
서. 가장 높이 계신 주여. 저의 영혼과 생명과 존재와 정신, 저
의 일체를 저들을 위하여 바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느님, 저
의 하느님. 당신 앞에 엎드려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저를 해하
는 자를 용서하여 주시옵고, 저에게 모반하고 저를 괴롭힌 자
를 사하여 주시오며, 저에게 불의를 행한 자들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옵소서. 원컨대 저들에게 당신의 은혜를 베푸사 기쁨
을 주시옵고, 근심을 없이하고 평화와 번영을 주시오며, 저들
을 축복하사 저들에게 당신의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당신은
전능하시고 은총이 깊으시고 위험에서 구해 주시며 자존하시는
분이시옵나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기 자신과 지상의 모든 사물(事物)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이해 관계와 일체의 소유물을 버리고 자아와
욕정을 깨끗이 떠나서 절대적인 헌신으로써 각지에 유세(遊說)
하여, 세계 만민을‘하느님의 지도’안으로 이끌어 들였다. 그
리하여 마침내 세계로 하여금 다른 세계가 되게 하고 지상에 빛
을 주어, 그들의 최후의 날까지도‘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의
길에 따라서 자기희생의 정신을 보여 주었고, 그들은 마침내 여
러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순교의 난을 당한 것이다. 세상의 열성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발자국을 따르게 하라.”
“하느님, 저의 하느님. 저는 주님과, 주님의 예언자와 사자와
성자와 그 밖의 성스러운 이들에게 바라옵나니, 제가 마침내
주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증거를 결정적으로 선언하고
저들에게 모든 것을 분명히 알려주어, 저들이 주님의 신앙을
359
제 15 장 회고와 전망
수호하고 주님의 바른 길과 주님의 빛나는 계율을 지키게 한
것을 증거하여 주시옵소서. 진실로 주님은 전지하시고 영명하
신 분이시옵나이다.”
360
바하올라와 신시대
361
제 15 장 회고와 전망
362
바하올라와 신시대
363
찾아보기
찾 아 보 기
‘차례’에 의하여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대개 제외하였음.
가지 ················61, 146, 243
갈릴레오 ···················222
갈바니 ····················222
계시, 새 계시의 발생지 ·············13
새 계시의 필요 ················285
바하이 계시의 충만 ··············145
점진적 계시 ·················139
꽃 성직자 ···················64
교육 ·····················171
구름(인자가 타고 오는) ············257
구세주·················6, 18, 228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238
나밥 ·····················61
나집 파샤 ···················34
노예제도 ···················164
녹테 올라 ···················19
니야와란 ···················29
다리우스 ···················13
다아윈 ····················222
데일라미트 인 ·················20
동맹파업 ···················165
레즈완 동산················34, 282
마쿠의 요새 ··················22
마이어스 ···················232
364
바하올라와 신시대
마젠다란 ···················19
마즈라에성 ··················40
막달라의 마리아 ···············168
메디나 ····················16
메흐디 ····················18
메카 ·····················17
모니레 카놈 ··················61
모세가 말한 예언자의 증거 ············9
모세의 치료법 ················142
모세의 율법 ·················140
모하멧의 전통 ·················17
모하멧의 독신생활 의견 ············196
모하멧 파샤 사프와트 ··············39
몰라 ·····················32
몰라 호세인 보슈루이 ··············16
미르자 모하멧 알리 ···············60
미르자 알리 모하멧 ···············15
미르자 압바스 ·················27
미르자 야흐야 ···············31, 35
미르자 호세인 알리 ···············27
바그다드 ··············30, 31, 33, 34
바디 ·····················36
바비가 바하이로 알려진 때 ···········35
바흐지·················40, 41, 43
바얀 ···············16, 23, 54, 198
바하이 공동체 ··········72, 80, 148, 154
보올 ·····················220
365
찾아보기
부쉐흐르 ···················17
브라운 교수 ················20, 54
빛나는 묵종 ··················87
사데크 ····················28
샤 바흐람 ···················52
싸아디 ····················13
싸이러스 ···················13
싸이프러스 ··················35
성약의 중심················61, 244
세계어 ···············184, 186, 277
세계정의원 ·············147, 285, 288
세이예드 야흐야 ················61
소브헤 아잘 ··················31
솔레이마니예 ·················31
솔로몬 왕 ···················83
수피 종파 ·················55, 59
순교자의 왕, 순교자의 애인 ···········60
순니 종파 ···················14
숨겨진 말씀이 계시된 때 ············34
쉐이크 ····················41
쉐이크 모하멧 ·················15
쉐이키 종파 ··················16
쉬라즈 ····················15
스티븐슨 ················108, 205
스펜서 ··················79, 225
쉬이에 종파 ··············14, 17, 18
십자군 ····················180
366
바하올라와 신시대
아가 모하멧 알리 ················20
아담과 이브 ·················231
아리만 ····················52
아아더왕의 원탁회의 ··············63
아타나시우스 ·················224
악카 ·············35, 37, 43, 60, 265
압바스 에펜디 ·················57
알리 쇼우카트 파샤 ···············59
알리 파샤 ··················267
알콜과 아편 ···············117, 119
애국주의, 세계적 애국주의 ···········182
압돌 아지즈 ··················41
압돌하밋 ···················67
약속된 분 ·······1, 18, 34, 53, 58, 236, 241
에맘 ···················19, 304
에스파한 ···················60
에스페란토 ·············67, 185, 222
엘리야에 대한 예언 ··············250
엘리야 동굴 ··················21
예언자의 중요성 ·················1
예언자의 확실성 ···············141
예언자의 수난 ················221
예언자인 증거 ···············9, 261
예언자들 사이의 조화 ·············221
올라마 ····················28
우마르 케이얌 ·················13
윌버포오스 부감독 ···············67
367
유훈 ············45, 62, 76, 136, 146,
············201, 287, 289, 290, 295
자본과 노동 ·················165
자멘호프 ················185, 263
정도의 태양 ················4, 255
정의원··········147, 171, 184, 201, 285
젤로스 솔탄 ··················61
조로아스터 ···········2, 13, 33, 52, 132
종교는 문명의 기초 ··············151
종교는 최대평화의 기초 ············178
종교와 과학의 일치 ··············235
종교의 쇄신 ·················285
종교의 융합 ·················132
종교적 권위 ·················137
종교적 편견 ·················179
종교창시자의 중요성 ···············2
종교전쟁 ···················180
죄의 고백 ···················96
죽은 자와의 교통 ···············214
진리의 태양 ···5, 8, 24, 76, 194, 206, 225, 286
진리 탐구···············42, 82, 224
진화와 창조 ·················228
질서의 법칙 ·················160
축복받은 미··············40, 62, 207
축복받은 완전 ···········41, 58, 66, 75
췌흐리끄의 감옥 ················22
찾아보기
카알라일 ···················1, 4
칼멜산 ············21, 39, 43, 62, 278
캠벨 대사 ···················67
코라톨 에인 ·················168
콜럼부스 ···················222
크로포트킨 ··················234
크리슈나··················2, 145
케타베 이간이 씌어진 때 ············34
타브리즈 ···················20
테헤란·················19, 29, 57
토라의 율법 ···················7
통치자에게의 서한 ················
페르시아 황제에게···········36, 49, 242
로마 법왕에게···············36, 143
빅토리아 여왕에게 ············138, 186
나폴레옹 3세에게 ············196, 264
독일 황제에게 ················265
터키 황제에게 ················267
터키 수상에게 ················267
티그리스강 ··················34
파르스 ····················19
페르도우시 ··················13
평화, 세계평화 ···········178, 184, 245
소평화 ···············154, 156, 188
최대의 평화 ······44, 53, 154, 156, 178, 299
포도원(그리스도의 우화)········53, 73, 246
폭력에 대한 무저항············190, 192
368
바하올라와 신시대
하느님께 대한 헌신 ···············81
하느님과의 대화 ···············100
하느님과의 합일 ···············284
하느님 나라의 도래 ··············276
하느님의 날 ·················243
하느님의 대업 ················276
하느님의 비밀 ·················48
하느님의 말씀의 창조력 ············261
하느님의 사랑 ·················91
하느님의 영광 ··············8, 27, 81
하느님은 위대한 의사 ·············141
하아비 ····················222
하이파 ············40, 62, 68, 70, 278
하지 세이예드 알리 ···············15
하페즈 ····················13
헉슬리 ·················220, 225
현시자 ····5, 23, 46, 77, 81, 83, 141, 227, 236
호세인 칸 ···················17
환상 ·····················21
369
371
뒤에 붙임
이 한국어판은 일본어판을 대본으로 하고 그것과 에스페란토
판을 대조하여 번역한 것이다.(에스페란토판이 출판된지 오랜
것이어서 원서에 증보된 부분은 없었지만)
1957년 초여름 번역에 착수한 것이 거의 8년의 세월이 흘러
간 이제야 출판을 보게 되었다. 출판이 이와 같이 늦어진 주요
한 이유는 다른데 있었거니와, 그 동안 나는 출판위원회에 넘어
간 원고를 도로 찾아 고쳐 쓰기를 여러번 하였다. 처음에 탈고
한 것은 한자가 많이 섞인 문제였으니, 종교상 또는 철학상의
어려운 술어가 많은 이 책의 번역으로서는 부득이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독자의 범위가 많이 좁
아지는 것이 아까워서, 전부를 뜯어 고쳐 순 한글로 되도록 쉬
운 말로 풀어 써보았더니 거기에 무리가 있어 도리어 읽기에 까
다로운 것이 되었다. 그래서 세 번째로 뜯어고친 것이 한자를
최소한도로 제한하여 섞어 쓴 것이었는데, 역시 불만이 많았다.
여기서 나는 교우 송대암(宋大岩)씨의 원서(영문)와의 면밀한
대조에 의한 기탄없는 교정을 받아, 그것을 크게 참작하면서 마
지막으로 고쳐 썼는데, 문제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순 한글로
하되 무리한 풀어쓰기를 삼가고 이해키 어려울 듯한 곳에만 한
자를 괄호 안에 끼워 넣었다.
이렇게 여러번 뜯어고침으로써 거의 8천장의 원고를 썼거니
와, 원고 보따리를 안고 여러곳을 전전하면서 틈틈이 펜을 잡
아, 오로지 기도하는 정성으로써 일했건만 워낙 재주가 부족하
372
바하올라와 신시대
니 만족한 것이 될 리가 없었다. 바라건대, 글자 하나하나에 바
친 나의 작은 정성이 번역의 미흡한 점을 감싸주어, 원저자가
나타내려고 힘쓴 이 아름다운 신앙의 온전한 모습이 독자의 마
음의 눈에 분명히 드러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번 역 자-
373373
추 록
1965년 4월에 故 김창진옹의 번역으로 출판된 이 책을 종서
(縱書)로 되어 있던 것을 이번에 그것을 횡서(橫書)로 바꾸었
다. 초판은 낮춤말로 씌어 졌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것을 현시
자들에 한해서 높임말로 고쳤다.
그리고 바하이신앙의 세분 중심인물(바압, 바하올라, 압돌바
하)의 저서 또한 어록으로부터의 인용구는 본문과는 다른 글자
체(신명조)로 하였다.
인쇄 과정에서 이 책을 여러번 읽을 기회를 가졌던 본인은 저
자와 역자에 대한 존경심을 금할 길 없었는데, 신앙의 길에서
그분들이 쏟으신 정성에 깊이 감사드린다.
87년 월
- 교 정 자 -
374
375
377
바하올라와 신시대
초판 발행일 1965년 4월
재판 발행일 1987년 8월 5일
3 판 발행일 2009년 7월
지 은 이 : J. E. 엣슬몬트
번 역 인 : 김 창 진
번역교정 : 바하이 번역위원회
펴 낸 곳 : 금 하 기 획
발 행 처 한국 바하이 출판사
출 판 등 록 제 302-1993-000036호
주 소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249-36 우: 140-902
전 화 02-754-1947
팩 스 02-754-1948
웹 사 이 트 www.bahai.or.kr
ISBN 978-89-91037-03-8 03290
값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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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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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 리 말 1914년12월,‘압돌바하’를 알현한 일이 있는 친구들과 대 화하기도 하고 또 몇 권의 작은 책자들을 얻어 읽기도 하여 비 로소 바하이 가르침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곧 이 가르침의 뜻 깊 음과 권위 있음과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였다. 그것은 내가 지금 까지 접촉한 다른 어느 종교보다도 현 세계의 큰 요구에 충분히 만족하게 합치된다고 생각하였고, 그 인상은 후일의 연구에 의 하여 더욱 깊어지고 확실해졌다. 나는 이 운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기 위해 필요한 문헌을 수집하는데 매우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내가 배워 얻 은 것들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려고 생각하였다. 세계대전 후‘팔레스타인’과의 교 통이 회복되자, 나는‘압돌바하’께 편지를 보내면서 본서 9장 까지의 원고를 동봉하여 보냈다. 그에 대하여 나는 사랑 깊은 격려의 답장을 받고, 또 나의 초고(草稿) 전부를 가지고‘하이 파’로 와 달라는 친절한 초청을 받았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초청에 응하여, 1919년과 20년에 걸쳐 약 2개월 반의 겨울을 ‘압돌바하’의 빈객으로 지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압돌바하’께서는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여러 기회에 걸쳐 본서에 관하여 말씀해 주셨다. 본서의 개선을 위하여 나에게 중 요한 암시를 주셨고, 또 내가 원고를 수정하면 그것을 전부 페 르시아어로 번역시켜서 자신이 그것을 통독하여 필요한 곳을 수정하고 첨삭하도록 제의하셨다. 이 제의대로 수정과 번역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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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되어,‘압돌바하’께서는 그 다망한시간을 할애하시어 그 분 생전에 약 3장 반 (1, 2, 5장과 제 3장의 일부)을 수정해 주 셨다.‘압돌바하’께서 이 초고 전부의 수정을 끝내지 못하여, 본서의 가치를 크게 높이지 못한 것을 나는 심히 유감으로 생각 하는 바이다. 그러나 초고 전부는 바하이 영국 전국신성회의 면 밀한 교정을 받았고, 또 이 신성회에 의하여 출판이 승인되었 다. 나는 여기서‘E. J. 로젠버그’양,‘클로디아 S. 코올스’부인, ‘로트풀라 S. 하킴’선생,‘로이 윌헬름’씨,‘마운트포트 밀스’ 씨 및 그 밖의 여러분들이 본서를 위해 해주신 귀중한 조언에 대하여 충심으로 감사하는 바이다. ‘애버딘’교외‘페어포드 컬츠’에서‘J. E. 엣슬몬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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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9 목 차 제 1장 기쁜소식 ··················1 역사상 가장 큰 사건 ··············1 변천하는 세계·················3 정도의 태양··················4 ‘바하올라’의 사명···············5 예언의 실현··················6 예언자인 증거·················8 탐구의 곤란··················9 본서의 목적 ·················10 제 2 장 선구자‘바압’ ···············13 새로운 계시의 발상지 ·············13 초기 생애 ··················15 선언 ····················16 바비운동의 전개 ···············17 ‘바압’의 주장 ················18 박해가 더욱 심해짐 ··············19 ‘바압’의 순교 ················20 ‘칼멜’산 위의 무덤··············21 ‘바압’의 저서 ················22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 ············23 부활, 천당, 지옥 ···············24 사회적 및 윤리적 가르침 ···········24 수난과 승리 ·················25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바하올라’··········27 탄생과 유년시대 ···············27 바비로서 감옥에 갇힘 ·············28 ‘바그다드’로 추방됨 ·············30 황야에 서의 2년 ···············31 ‘몰라’의 압박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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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 ‘바그다드’교외‘레즈완’에서의 선언 ·····33 ‘콘스탄티노플’과‘아드리아노플’·······34 여러나라 왕에게 서한을 보냄 ·········35 ‘악카’에서의 감 옥 생활 ···········36 속박이 완화됨 ················37 옥문이 열림 ·················38 ‘바흐지’에서의 생활 ·············41 승천 ····················43 ‘바하올라’의 예언자적 지위··········44 ‘바하올라’의 사명 ··············49 ‘바하올라의 저서 ··············51 바하이 정신 ·················53 제 4장‘압돌바하’바하의 종 ············55 탄생과 유년시대 ···············55 청년시대 ··················57 결혼 ····················58 성약의 중심 ·················59 다시 엄중히 감 금됨 ·············60 터키 조사위원회 ···············64 서양 여행 ·················· 65 성지에 귀향 ·················66 전쟁 중의‘하 이파’ ·············68 대영제국의 훈작사 KNIGHT‘압돌바하 압바스’ ··69 만년 ····················69 ‘압돌바 하’의 서거··············70 저서와 강연 ·················72 ‘압돌바하’의 지위 ··············73 바하이 생활의 구현자 ············75 제 5장 바하이란 무엇인가··············77 삶의 영위 ··················77 하느님께 대한 헌신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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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탐구 ··················80 하느님께 대한사랑 ··············82 끊어버림 ··················84 순종 ····················85 봉사 ····················87 교도 ····················87 예의와 존경 ·················89 죄를 덮어주는눈 ···············91 겸손 ····················92 정직과 성실 ·················93 자기 실현 ··················94 제 6장 기 도····················97 하느님과의 대화 ···············97 기도하는 태도 ················98 매개자의 필요 ···············100 기도는 꼭 필요하고의무적인 것임 ·······101 회중기도 ··················102 기도는 사랑의 말이다 ············103 재난에서의 해방 ··············104 기도와 자연법칙 ··············106 바하이의 기도 ···············107 제 7장 건강과 치유 ················111 육체와 영혼 ················111 모든 생명의 일체성 ·············111 단순한 생활 ················112 알콜과 아편 ················113 향락 ····················113 청결 ····················114 예언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효과 ········114 의사로서의 예언자 ·············116 물질적 방법에 의한 치료 ···········116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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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물질적 방법에의한 치료 ·········118 성령의 힘 ·················120 병자의 태도 ················120 치병자 ···················122 사람은 어떻게 서로 도울 것인가 ·······124 황금시대 ··················125 건강을 바르게 쓰는 법 ············125 제 8장 종교의 융합 ················127 19세기의 종파주의 ·············127 ‘바하올라’의 전언傳言 ···········128 인간성은 변화할 수 있는가 ··········129 융합에로의 첫 걸음 ·············131 권위의 문제 ················132 점진적 계시 ················133 예언자들의 확실성 ·············135 지고의 현시 ················137 새로운 정세 ················138 바하이 계시의 충만 ·············139 바하이 성약 ················140 직업적 성직자가 없음 ············143 제 9장 참다운 문명 ················145 종교는 문명의 기초이다 ···········145 정의 ····················146 정부 ····················147 정치상의 자유 ···············150 통치자와 국민 ···············151 임명과 승진 ················152 경제 문제 ·················153 공공재정 ··················154 자발적 분배 ················154 모든 사람은 일해야 한다 ···········155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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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의 윤리 ·················156 산업상의노예를 인정하 지 않음 ·······157 유산과 상속 ················159 남녀 평등 ·················159 여성과 신시대 ···············161 폭력수단 을 피할 것 ·············162 교육 ····················163 천성의 선천적 차이 ·············164 품성의 훈련 ················165 예술, 과학, 기술 ··············166 범죄자 다루기 ···············166 신문의 힘 ·················168 제 10장 평화에 이르는 길 ·············169 갈등과 협조 ················169 최대의 평화 ················170 종교적 편견 ················171 인종적 및 애국적 편견 ············173 영토적 야심 ················174 세계어 ···················175 국제연맹 ··················178 국제중재 ··················180 군비제한 ··················181 무저항 ···················181 정의의 전쟁 ················183 동서양의 융합 ···············184 제 11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187 수도원 생활 ················187 결혼 ····················188 이혼 ····················189 바하이력 ··················190 신성회 ···················191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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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 ···················194 단식 ····················195 집회····················196 19일 축제 ·················198 ‘마슈리꼴 아즈카르’ ············198 사후 의 생애 ················200 천국과 지옥 ················202 두 세계의 일체성 ··············204 악은 실재하지 않음 ·············207 제 12장 종교와 과학 ···············209 충돌은 잘못해서 생김 ············209 예언자들의 수난 ··············210 조화의 새벽 ················212 진리탐구 ··················213 진정한 불가지론 ··············214 하느님에 대한 인식 ·············215 하느님의 현시자 ··············216 창조 ····················217 인류의 계통 ················219 육체와 영혼 ················220 인류의 일체성 ···············222 융합의시대 ·················223 제 13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225 23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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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장 기쁜 소 식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된 분이 오셨다. 모든 민족과 모든 공동체들은 계시를 기다려 왔고, 바하올라, 그분은 전 인 류의 으뜸가는 교사요 대 교육자이시다. --- 압돌바하 역사상 가장 큰 사건 우리가 지금 과거의 기록을 더듬어‘인간 진보’의 역사를 연 구해 본다면 인류를 진보시켜 준 선각자들이 여러 시대를 통하 여 그 시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보다 훨씬 앞선 점을 인식하여 그때까지 인류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진리의 발견자, 계시자로서 그 당시 사람들을 지도해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발명가, 개척자, 천재, 예언자 - 주로 이러한 사람들 에 의하여 이 세계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카알라일은 다 음과 같이 말했다. “아주 분명한 사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생각한다........ 하 나의 보다 높은 지혜,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정신적 진리 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갖지 않은 열 사람보다 만 사람보다, 아 니, 그것을 갖지 않은 모든 사람보다도 강하다........ 그가 만 인 위에 뛰어남이 마치 천검(天鈐)을 가진 영묘(靈妙)한 천사 3 제 1 장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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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바하올라와 신시대 의 모든권력에는 어떠한 방패나 철성(鐵城)으로도 대항할 수 없음과 같다.”---‘시대의 징조’에서 과학, 예술, 음악의 역사에서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한 많은 설 명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상의 위대한 인물과 그의 사명이 지극히 중대한 의의(意義)를 가진 것만큼 명확한 사실 을 다른 어떤 부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고래로 어느 시대에 나 사람들의 정신생활이 타락하고 도덕이 부패해지면 신비스럽 고 놀라운 인물, 즉 예언자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는 다만 혼자 서, 자기를 이해해 주는 자도 없고 교도하여 주고 책임을 함께 하는 자도 없이 마치 장님무리 가운데 단 한사람의 눈뜬 자와도 같이, 다만 혼자서 전 세계를 향하여 정의와 진리의 복음을 선 포하는 것이다. 예언자 중에는 특별히 탁월한 분들이 있다. 몇 세기마다 하느 님의 위대한 계시자 - 크리슈나, 조로아스터, 모세, 그리스도, 모하멧과 같은 분들이 동양에서 마치 정신적인 태양처럼 나타 나서 사람들의 어두운 정신을 빛내고 잠들어 있는 영혼을 흔들 어 깨워주셨다. 이러한 종교 창시자들의 위대성(偉大性)을 비 교하여 말함에 있어서 그 견해를 달리하는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인류의 교육에 있어서 그분들이 가장 강력한 요소(要素)로 작 용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예언자들은 모두 선언하셨다. 즉, 자신들의 말은 자기들 자신의 말이 아니 라 자기들을 통해 내려온 계시요 성스러운 메시지이고, 자기들 은 그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자라고. 기록에 남아 있는 그분들의 말씀 가운데는 반드시‘때가 오면’위대한 세계의 지도자가 출 현하리라는 암시와 약속이 많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저들의 성 업(聖業)을 완성하여 거기에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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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것이라고. 그분에의하여 지상세계(地上世界)는 평화와 정 의의 통치를 완성하여 모든 종족, 종교, 국가, 민족은 하나의 큰 가족을 이루어‘하나로 뭉쳐서 한분의 목자에 의하여 양육될 것이요’, 모든 사람은‘지극히 하찮은 자로부터 가장 위대한 자 에 이르기까지’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말세의 이 위대한‘인류의 교육자’가 도래하는 날이야 말로 참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바하 이신앙은 그 대교육자가 이미 실제로 출현하셨으며 계시가 전 해지고 기록되어서 진실한 구도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고,‘주 의 날’이 벌써 밝아서‘정도(正道)의 태양’이 떠올랐다는 기쁜 소식을 전 세계에 선언하고 있다. 이 영광스러운 광륜(光輪)을 본 자는 산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이 광선 은 이미 하늘과 땅을 비치고 있으니 머지않아 산을 넘어 떠오를 것이요, 그리하여 평원과 골짜기까지 전력으로 비치어 전 인류 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을 지도할 것이다. 변천하는 세계 19세기로부터 20세기 초기에 걸쳐 세계가 낡은 시대의 죽어 가는 단말고(斷末苦)와 새 시대를 낳는 진통(陣痛)의 기간을 겪고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유물주의(唯 物主義), 이기주의(利己主義)와 같은 묵은 사상과, 낡은 종파 적, 애국적인 편견과 증오는 그것들 자체가 쇠퇴함에 따라 점차 그 면목이 희미해지고, 모든 나라에는 새로운 신앙과 인류애(人 類愛), 국제주의와 같은 새로운 정신이 일어나 낡은 질곡(桎梏) 에서 벗어나고 묵은 경계선을 넘으려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 5 제 1 장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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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찍이 보지 못한큰 세력으로써 혁명적인 변화가 인간생활의 모 든 분야에 일어났다. 그러나 낡은 시대가 아직도 완전히 쇠멸한 것이 아니어서, 그는 다가오는 새 시대와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 을 하고 있다. 거기에는 거대한 무서운 폐해가 생기고, 그것들 은 새 힘과 새 희망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정체가 폭로되어 조사를 받고 공격을 당하고 있다. 어두운 구름은 몽롱하게 무서 운 광경을 나타내고 있으나 빛은 그 구름을 뚫고 향상(向上)의 길을 비치어 앞길을 막는 장애물과 함정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8세기는 이와 달랐다. 당시는 정신적, 도덕적 생활의 암흑시 대여서 빛이 비칠 틈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것은 여명(黎明) 직전의 어둠으로서, 간신히 흘러나오는 등불 빛이 있기는 해도 그 암흑을 비칠만한 힘이 없었다. 카알라일은 그의‘프레데릭 대왕전’에서 18세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가 없었던 시대, 역사를 가질 수 없는 시대, 일찍이 보 지 못한 거짓이 충만했던 시대, 거짓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깨 닫지 못한 시대, 부정(不正)이 제멋대로 날뛰어 병이 고황에 들었던 시대, 이와 같이 악이 쌓이고 쌓인 결과로 마침내 프랑 스혁명이 그것에 종말을 지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러 한 시대에 당연한 결말이 온 것을 감사한다. 사람의 자식들이 꼬리 없는 원숭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또 한번 하느님의 계 시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프레데릭 대왕전’제 1권 제 1장 이 18세기 시대에 비하면 현대는 마치 암흑 후의 서광시대요 엄동 후의 양춘시대로서, 세계는 새 생명에 약동하고 새 이상과 새 희망에 불타고 있다. 몇 해 전까지는 불가능한 공상으로 보 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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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던 것이 지금은사실로 성취되었고, 몇 세기 후의 일로만 생 각되었던 일이 이미 실제문제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하 늘을 날아다니고 바다 밑을 잠항하게 되었으며, 전광(電光)의 속도로 전 세계에 통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 해 사이 에 대 군국주의가 거꾸러지고 여성들은 종래에 하지 못했던 직 업에 종사하게 되었으며, 국제연맹이 탄생하고, 그 밖의 기적과 같은 여러 가지 사실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정도(正道)의 태양 세계에 넘쳐흐르는 이 급격한 각성의 원인이 무엇인가? 바하 이는 이것을, 지금으로부터 약 1세기 전 페르시아에서 탄생하 시어 19세기 말엽에 성지(聖地)에서 세상을 떠나신 예언자 바 하올라를 통하여 이루어진, 성령(聖靈)의 크나 큰 발로(發露) 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다. 태양이 자연계에 광명을 주는 존재인 것 같이 예언자, 혹은 ‘하느님의 현시자’는 정신계에 광명을 가져오는 존재라는 것을 바하올라께서는 가르치셨다. 물질적 태양이 지상세계를 비치어 물질유기체(物質有機體)를 성장, 발육시킴과 같이 하느님의 현 시자를 통하여 진리의 태양은 마음과 영혼의 세계를 비추어 인 간의 사상과 도덕과 성격을 교육한다. 자연계의 태양의 빛이 온 세계를 비추고 그늘진 구석까지 침투하여 태양을 보지도 못한 생물에게까지 열과 생명을 주는 힘이 있음과 같이, 성령의 발로 는 하느님의 현시자를 통하여 모든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 고, 예언자의 출현은 봄이 다시 돌아옴과 같아서 영적으로 죽은 자에게 새 생명을 불러일으키는‘부활의 날’인 것이다. 그리하 여 하느님의 종교의 실체가 갱신되고 재건되어 거기에‘새로운 7 제 1 장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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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땅’이 나타나는것이다. 그러나 자연계에 있어서는 봄이 생물에게 새 생명의 생장과 각성을 줄 뿐 아니라 노쇠하게 만드는 요소를 파괴하여 쫓아버 린다. 꽃이 피게 하고 움이 트게 하는 태양의 힘은, 동시에 또한 죽어서 무용하게 된 물건을 썩어 없어지게 한다. 그리고 굳은 얼음을 깨뜨리고 쌓인 눈을 녹이며 홍수와 폭풍을 일으켜 지상 을 청소한다. 영적(靈的)세계에 있어서도 이와 같아서 정신적 태양의 광명은 동일한 동요(動搖)와 변화를 정신세계에 일으킨 다. 그리하여 부활의 날은 또한 심판의 날이기도 한 것이다. 부 패와 진리의 모방, 그리고 무용한 낡은 관념과 좋지 못한 관습 은 버림을 받고 멸망을 당하는 것이니, 겨울 동안에 쌓이고 쌓 였던 편견과 미신의 어름과 눈이 풀리고 오래 얼어붙었던 세력 이 홍수처럼 넘쳐흘러서 이 세계를 갱신케 하는 것이다. 바하올라의 사명(使命) 바하올라께서는 분명히, 그리고 거듭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 셨다. 그분은 자기 자신이 전 인류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교육자 요 교사이며, 이전의 모든 하느님의 은총의 발로(發露)를 초월 한 신비스러운 은총의 수로(水路)가 되어, 그 도도한 흐름 속에 마치 모든 냇물이 바다에 흘러 들어감과 같이 종래의 여러 가지 형태의 종교가 융합될 것이라고. 그리고 이전의 예언자가 말씀 하시고 시인이 노래한 바와 같이 전 인류의 선량한 의사가 소통 하여 전 세계가 통합되고 지상에 완전 평화의 황금시대가 이루 어질 확고한 주춧돌을 놓았다고 하셨다. 진리의 탐구, 인류의 일체성, 종교와 종족과 국가와 동서양의 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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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 종교와 과학의조화, 편견과 미신의 근절, 남녀 평등, 정 의와 정도의 확립, 최고 국제재판소의 설치, 언어의 통일, 지식 의 의무적 보급, 그 밖의 여러 가지 가르침은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에 바하올라의 붓으로 계시되어 많은 서적과 서한에 기 록되어 있고, 그 중 몇 가지 사항은 세계의 제왕과 지배자들에 게 보낸 서한에도 씌어 있다. 그 범위와 내용이 지극히 광대하고 심오한 그분의 계시는 참 으로 놀랍게도 시대의 요구와 목적에 합치되어 있다. 현대처럼 크고 복잡하고 새로운 여러 가지 문제에 당면했던 시대가 없었 고, 현대처럼 많은 해결 방책이 제시되면서도 그것들이 모순에 가득 차 있던 시대가 없었으며 현대처럼 기대가 일반적인 때도 없었을 것이다. 예언의 실현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지금으로부터 20세기 전에 나타나셨을 당시 유대인들은 모두 그분의 출현을 열망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매 일 열심히‘오 하느님 구세주의 계시를 빨리 내려 주소서’하 면서 기도하였다. 그러나 진리의 태양이 그 서광을 발하기 시 작하자 저들은 그리스도 그분이 구세주임을 부인하고, 그분에 대항하여 몹시 미워한 나머지 그분을 악마라고 불러, 마침내 ‘하느님의 말씀’이요‘하느님의 정신’인 그분을 무참하게도 십 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실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거니와 그 이유는 이러하다. 저들 유대인들은 말하되, 토라의 원전(原典) 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곧 구세주라 함에는 확실한 표징에 의하 9 제 1 장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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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검증되어야 할것인데 이와 같은 표징이 없는 이상, 그가 아 무리 구세주라고 주장할 지라도 그는 사기꾼이다. 그 표징 가 운데는 이러한 것이 있다. 즉, 구세주는 세상이 모르는 곳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자렛 에 있는 그 사람의 생가 (生家)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어찌 나자렛에서 그런 일이 생 길 수 있겠는가? 다음의 표징은 이러하다. 구세주는 쇠 지팡이 로 지배한다 하였으니 그는 반드시 검을 잡고 활동해야 할 것 인데 이 사람은 나무 지팡이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또 다른 조건인 표징은 이러하다. 그는 다윗의 왕좌에 앉아 다윗의 통 치권을 확립해야 할 것인데 이 사람은 왕좌에 앉기는커녕 자기 가 앉을 거적자리 한 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또 토라의 율법을 전부 지켜야 할 것인데 그는 이 율법을 무시하였다. 안 식일의 계율을 깨뜨린 자와 기적을 행한 자와 예언자라고 공언 하는 자는 누구든지 사형에 처한다고 토라의 율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그는 안식일의 계율을 깨뜨리지 않았는가. 또 다른 표 징으로는 구세주의 치세(治世)에는 정의가 증진되고 바른 길과 착한 행실이 인간으로부터 동물세계에까지 널리 퍼져서 뱀과 생쥐가 한 굴에서 살고 독수리와 꿩, 새가 한 둥우리에, 사자와 양이 한 목장에, 이리와 양이 한 샘에서 물을 마시게 되어야 할 것인데 부정의(不正義)와 포학한 정치가 그리스도를 학살하도 록 사람들의 마음이 거칠어진 시대가 아닌가. 또 다른 조건은, 구세주가 나타나면 유대인은 번영하여 세계의 모든 나라를 정 복하고 통치해야 할 것인데 그들은 로마제국에 정복되어 무서 운 굴욕과 불운에 울고 있지 않은가. 이러하거늘 어찌 이 사람 이 토라의 경전에 약속된 구세주일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말 하는 것이었다. 1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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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들은 이러한 이유로서진실로 그분이 토라에 약속된 ‘하느님의 정신’임에도 불구하고‘진리의 태양’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토라에 기록된 그 표징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여‘하 느님의 말씀’을 학살한 것이다. 바하이는 그 해석을 유대인과 는 달리하여, 토라에 기록된 구세주의 표징이란 것은 비유적인 우의(愚意)로써 표현된 것이요,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하느님 의 계시에 의하여 나타나셨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 컨대, 구세주의 통치권의 뜻은, 바하이가 믿는 바에 의하면 짧 은 시일에 멸망하는 나폴레옹의 통치권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 것은 천국적인 신성한 항구(恒久)의 통치권을 말하는 것이다. 진실로 그리스도의 통치는 2천년 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 성스러운 존재자(存在者)는 영원히 불 멸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뜻으로써 다른 많은 표징도 나타났건만 유대인들 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영광을 가지고 나타나신 이래 거의 20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직도 구세주가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 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바를 진리로 알고 그리스도를 거짓 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 본장을 위하여 압돌바하께서 친히 쓰신 것임. 만일 유대인들이 그 의심되는 뜻을 그리스도께 물었더라면 그 분은 반드시 자기 자신에 관한 예언의 참뜻을 설명하셨을 것이 다. 우리는 이러한 실례에 의하여 얻는 바가 있어야 하겠다. 그 리하여 우리가 후대(後代)의 대 교사의 현시에 관한 예언이 실 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단정하기 전에, 바하올라께서 그러한 예 언의 해석에 대하여 쓰신 것을 보기로 하자. 그것은 예언이란 11 제 1 장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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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의 대부분이‘봉인된’말씀이어서 진정한인류교육자 자신이 라야 비로소 그 비봉(秘封)을 뜯어 그 속에 감추어진 참뜻을 명 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하올라께서 고대의 예언에 대 하여 많은 설명을 기술하셨다. 그러나 그것을 기초로 하여 그분 자신이 예언자임을 증거 하려하지는 않으셨다. 태양은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에게는 그 자체가 증거인 것이 다. 태양이 떠오를 때 그 빛나는 광명에 대하여 묵은 증거를 끌 어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의 현시자의 출현도 이와 같아 서 지난날의 예언이 전부 잊혀졌더라도 영적감각(靈的感覺)이 열려져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분 자신이 완전하고 충분한 증 거인 것이다. 예언자인 증거 바하올라께서는 자신의 설명이나 가르침을 누구에게나 맹목 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는 않으셨다. 그와는 반대로, 그 분은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위험성을 경계하시고, 진리탐구를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거리낌 없이 자기의 눈과 귀 를 열어 자기의 판단으로써 탐구할 것을 권하셨다. 그분은 자신 이 예언자인 증거로써, 당신의 언행과 그것의 결과로써 여러 사 람의 생활과 품성을 도야(陶冶)하고 변화시킨 사실을 제공하 여, 그것들을 충분히 검토할 것을 요구하시고, 조금도 스스로를 숨기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제기한 사고 방법은 그분 이전의 현시자들이 보여준 바와 같은 것이었다. 모세께서 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한 일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 1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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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그 선지자가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 라.”---‘신명기’제 18장 22절 그리스도께서도 분명히 이와 같은 시험 방법으로써 그분 자신 을 증거하려 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 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지 나무에서 포도를, 또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 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 매를 맺나니........ .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제 7장 15~20절 이하의 각장에서 우리는 바하올라께서는 예언자인가, 혹은 예 언자로서의 이러한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신 것인가, 즉 그분께 서 말씀하신 바가 실현되었는가, 또는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 왔는가, 아니면 나쁜 결과를 가져왔는가. 다시 말하자면 그분의 예언이 실현되고 그분의 가르침이 확립되었는가. 그리고 그분 의 일생의 사업이 인류의 교육에, 인문의 향상에, 덕성의 함양 에 얼마나 공헌하였는가. 또는 반대로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했 는가에 대해서 연구하여 보기로 한다. 탐구의 곤란 이 대업(大業)을 연구하여 그 사실의 진상을 깊이 파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 연구 상 적지 않은 곤란이 있다. 도덕의 대혁 신과 정신의 개조에 있어서 대개 그러하였던 바와 같이 바하이 신앙은 많은 오해를 받았다. 바하올라와 그분의 신도들이 받은 무서운 박해와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던가는 적이나 동지나 다 13 제 1 장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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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인정하는 바이다.그러나 신앙의 가치와 창시자의 인격에 대해서는 신자들의 진술과 반대자들의 의견이 구구하여 마치 그리스도 시대와 같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과 그 신도가 받은 박해와 그들의 순교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신자들 은 그가 모세의 가르침을 실현하고 발전시켰다고 말하고, 반대 자들은 예수가 율법을 파괴하고 하느님의 계율을 유린하였으므 로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다고 한다. 과학에서와 같이 종교에 있어서도‘천금의 가치 있는 한 알의 진주’를 얻기 위하여 전 재산을 파는 자의 태도가 필요하다. 모 든 편견과 미신을 다 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써 진주를 구하는 자에게만 진리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바하이신앙의 참뜻을 충 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건한 마음을 기울여, 모름지기 하느 님의 지도에 의탁하고 진리 앞에서는 자기를 잊어버리고 연구 해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이 종교 창시자들이 남긴 기록 가 운데서 커다란 정신적 자각과 그 가치의 비밀을 규명하는 열쇠 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 기록들이 우리가 알기 어려운 페르시아어와 아랍어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여기에 또 한 연구상 적지 않은 곤란이 있다. 다만 그 서적의 일부가 오늘 날 영어로 번역된 것이 있으나 그 문체와 정확성에 있어서 아직 우리의 희망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적인 설 화(說話)와 번역에 부적당하고 불충분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 고, 이 대업이 웅대하고 견실한 기초 위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자욱한 안개 속에 우뚝 치솟은 산과 같이 보인다. 1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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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서의 목적 이하 각장에서 바하이신앙의 역사적 사실과 특히 그 가 르침을 되도록 공정하게 편견 없이 서술하여, 독자로 하여 금 그 중요성에 자기의 지적(知的) 판단을 내리게 하고 자기 자신으로서 더 깊이 연구하는 데 길잡이가 되도록 힘쓰려 한다. 그러나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기 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전 목적일 수는 없다. 진리는 죽 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박물관에 진열되어 목록과 부전 이 붙어 분류되어 무미건조한 것으로 다루어질 그러한 물 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에 깊이 뿌리 박혀져, 그 탐 구의 성과(成果)를 거두기 전에 벌써 그들의 생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야 마는 살아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예언적인 계시의 지식을 널리 보급시키려 하는 진정 한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그 진리를 확신하게 된 사람들이 그 원칙을 실행하여‘바른 생활’을 하고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 하여,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 위에도 실현되는 행복의 날이 하루 속히 오도록 함에 있는 것이다. 15 제 1 장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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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 장 선구자바압 진실로 압제자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아야 할 이를 죽임으 로써, 피조물(被造物)가운데서 하느님의 빛을 없이 하여 은총 과 혜택이 충만한 날의 천국생활의 분류(奔流)에서 인류를 제 지(制止)하려 하였다. -- 바하올라의‘라이스에게의 서한’에서 새로운 계시의 발상지(發祥地) 바하이 계시의 발상지인 페르시아는 세계 역사 중에서도 특이 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페르시아 초기의 위대한 전성시대에 는 그 문명과 부강에 있어서 여러 나라에 비류가 없어 마치 특 출한 여왕과도 같았다. 훌륭한 왕과 정치가도 적지 않았고, 세 계에 유명한 예언자, 시인, 철학자, 미술가들을 많이 배출하였 다. 조로아스터, 싸이러스, 다리우스, 하페즈, 페르도우시, 싸아 디, 우마르 케이얌 등은 페르시아의 유명한 사람들 중의 소수에 불과하다. 이 나라의 공예가는 참으로 우수하였다. 융단, 강철 칼, 도기 등은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하였다. 근동지방과 중동지 방에서 고대의 페르시아는 위대한 자취를 많이 남겼다. 그러나 18세기와 19세기에 있어서 페르시아의 위세는 기울어 져 그전의 영광을 다시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부패하여 17 제 2 장 선구자 바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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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바하올라와 신시대 경제가 와해되고,지배자는 무력하였으며 그중에 어떤 자는 잔인 무도한 괴물과도 같았다. 승려(僧侶)는 완미고루하고, 국민은 무 지하여 미신에 깊이 빠져 제도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대다수는 이슬람교도 중에서도 쉬이에파1)에 속해 있었고, 그 밖에 조로아 스터교도, 유대교도, 기독교도 등 서로 적대시하여 용납하지 않 는 각종 각파의 신자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유일신(唯一神)을 예배하고 서로 사랑과 화합으로써 살아갈 것을 가르친 위대한 지 도자의 명령을 받든다고 입으로는 주장하면서도, 서로 다른 종교 의 사람을 부정(不淨)하고, 짐승, 이단자(異端者)로 배척하며 비 방하기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저들 사이의 증오와 저주는 험악할 정도에 이르렀다. 유대교도나 조로아스터교도는 비 오는 날 외출하여 거리를 걷는 것조차 위험하였다. 만일 길에서 비에 젖은 옷이 잘못하여 이슬람교도의 옷에 닿기만 하면 그는 자기를 더럽힌 자라 하여 그 죄 갚음으로 상대방의 생명을 빼앗고야 마 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슬람교도가 유대교도나 조로아스터교도, 또는 기독교도에게서 돈을 받을 때 그는 그 돈을 물로써 깨끗이 씻지 않고는 주머니에 넣지 않는 것이었다. 또 만일 유대교도가 자기의 어린 아이가 이슬람교도 거지에게 물 한잔 주는 것을 발 견했을 때 그는 노하여 아이의 손에서 물그릇을 쳐서 떨어뜨리는 것이었으니 이교도(異敎徒)에 대해서는 친절이란 있을 수 없었 다. 이슬람교에는 또한 무수한 종파가 분립하여 같은 교도 사이 의 충돌과 분쟁이 더욱 심하였다. 조로아스터교도는 이러한 분쟁 속에 휩쓸리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종교를 달리한 자국인과 단교 (斷交)하여 저들 자신의 조직만으로써 생활하는 상태에 있었다. 이와 같이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희망 없는 퇴폐의 구렁 1. 모하멧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얼마 안 되어 이슬람교가 쉬이에, 순니의 2대 교파로 분열된 것 중의 하나임. 쉬이에파는 모하멧의 사위 알리가 예언자의 정당한 후계자라고 하여 그 후예만이 칼리프의 정통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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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에 빠져 있었다.교육은 무시되고 서양의 과학과 예술은 종교에 반대되는 부정(不淨)한 것이라고 배척되었다. 정의는 왜곡(歪 曲)되고 약탈과 강도가 횡행하였다. 도로는 파괴되어 여행이 불 안하였고 위생 상태는 지극히 나빴다. 이러한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생활의 한 가닥 광명 이 아주 꺼지지는 않았다. 혼돈한 세상 욕심과 미신 가운데서도 여기저기에 하느님을 동경하는 순진한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 이전의 안나와 시몬의 마음과 같은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약속된 하느님의 선구자’께서 오실 날 이 멀지 않았음을 믿고 기다렸다. 새 시대의 선구자 바압께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여 온 나라를 진동케 한 것은 페르시아 가 바로 이러한 상태에 있을 때였다. 초기 생애 미르자 알리 모하멧, 후에 바압(문이라는 뜻)이라는 칭호로써 불리운 그분은 1819년 10월 20일 페르시아의 남쪽에 있는 쉬 라즈라는 곳에서 탄생하셨다. 그분은 세이예드, 즉 예언자 모하 멧의 후예였다. 유명한 상인이었던 그분의 부친께서는 바압께 서 탄생하신지 얼마 안 되어 타계하시고, 그분은 쉬라즈에 사는 상인인 외숙의 댁에서 성장하셨다. 어릴 때 독서를 배우고 그때 의 통례대로 초보의 교육을 받으셨다2). 15세 때 비로소 외숙을 제 2 장 선구자 바압 2. 이점에 관하여 역사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양에 있는 많은 사람들, 특히 바압의 신도들(현재의 바하이) 은 다음과 같이 믿고 있다. 즉, 바압께서는 교육을 받지 않으셨다. 그러나 저 몰라(이슬람교의 신학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바압의 지위를 격하시키기 위하여 바압께서 가지신 지식과 지혜는 그분이 받은 교육에 의 한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이 점에 관한 사실을 깊이 연구한 결과 우리는 바압께서는 어렸을 때 쉐이크 모하 멧(아베드라고도 알려져 있음)의 집에 얼마동안 출입하시어 거기서 페르시아어의 읽기와 쓰기를 배우셨다 는 증거를 발견하였다. 바압께서 자신의 저서 바얀 가운데‘모하멧, 나의 스승이여........’라고 쓰신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그분의 스승이었던 쉐이크가 자기의 제자였던 바압의 충성스러운 사도 가 된 것이다. 또 바압께서는 아버지와 같았던 숙부 하지 세이예드 알리가 또한 그분의 충성스러운 사도가 되어 바비(바압의 신도라는 뜻)로써 순교한 사실이다. 이러한 비밀은 진리를 탐구하는 자에게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니, 우리는 바압께서 받으신 교육은 극히 초보에 불과한 것이요, 바압에게 나타난 희한한 위대성 과 지식의 표징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것은 천부(天賦)의 것이요,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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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 상업에 종사하셨고,후에 페르시아만(灣) 연안의 부쉐흐 르라는 곳에 사는 또 다른 숙부에게 가서 역시 그곳에서 상업에 종사하셨다. 청년으로서의 그분은 이목이 청수하고 행동이 얌전하였으며 마음이 경건하고 품성이 고상하여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 셨다. 그분은 이슬람교의 의식인 기도와 단식과 그 밖의 모든 계율을 잘 준수하였을 뿐 아니라 교조(敎祖)가 가르친 정신을 가지고 사셨다. 그분은 22세에 결혼하셨다. 이 결혼에 의하여 남아 하나를 얻었으나 그 아이는 바압께서 공공연하게 성직(聖 職)에 나아가신 해에 어린 아기로써 사망하였다. 선언 그분이 25세에 달했을 때, 하느님의 명령에 의하여 그분은 “높으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바압의 직책을 주셨다.”고 선언 하셨다.‘나그네의 이야기’란 책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바압이라는 칭호에 의하여 그분께서 나타내려고 하신 의미 는 이러하다. 그분은, 무한히 완전한 덕성을 갖추고 있고, 그리 고 아직 영광의 베일에 가리워져 있는 어떤 위대한 인물로부터 오는 은총의 통로(通路)가 되어, 그 완전한 분의 뜻에 의하여 자기는 움직이고, 그분의 사랑의 끈에 자기가 매여 있다는 것 을 의미한다.”---‘바압의 에피소드’3쪽 당시 하느님의 사자가 불원에 나타나시리라는 신앙은 쉐이키 라는 이슬람교의 일파에 특히 그 믿음이 강하였고, 바압께서 처 음으로 자신의 사명을 알린 사람은 이 종파에 속하는 몰라 호세 2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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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인 보슈루이라는 유명한신학자였다. 그리고 그 알린 정확한 날 짜는 바압의 저서 중의 하나인 바얀이라는 책에 헤쥬라트 기원3) 1260년 쟈마디율 아발월 4일 (즉 1844년 5월 22일) 해진 뒤 2시간 11분이라고 적혀 있다. 바하이의 하루는 서양의 여러 나 라와는 달리 자정이 아니라 해지는 때에 시작되므로 바압 선언 축제는 5월 23일에 해당하는 쟈마디월 5일에 행하게 되어 있 다. 압돌바하께서는 바로 그날 밤에 탄생하셨는데 그 정확한 시 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몰라 호세인은 며칠 동안 열심히 연구 하고 검토한 끝에, 쉬이에 종파의 신도들이 오랫동안 기다린 사 자가 참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의 이 발견에 대한 열성적인 태도가 곧 그의 많은 친구들을 움직여 얼마 후에 쉐이키 종파 사람들의 대부분이 바압을 받아들여 그 신자가 되 었다. 그리하여 이 청년 예언자의 명성이 갑자기 요원의 불길처 럼 전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바비 운동의 전개 바압의 처음의 제자 18인(그 자신까지 19인)은 곧‘생명의 문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분은 이 제자들을 페르시아와 터키 의 각지에 보내어 그분의 출현에 대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메카에 순례를 떠나 1844년 12월 그곳에 도착 하시어 거기서 공공연하게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다. 그분께 서 부쉐흐르에 돌아오시자, 그분이 바압의 지위에 있다는 선언 은 비상한 충동을 일으켰다. 불같은 그분의 웅변, 질풍같이 빠 르고 감화에 찬 그분의 저서의 놀라움, 비범한 그분의 지혜와 지식, 개혁자로서의 그분의 용기와 정열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 제 2 장 선구자 바압 3. 이슬람교의 역서(曆書)는 서력 622년 모하멧께서 메카에서 메디나로 패주(敗走)한 날을 기원으로 하는 것이요,‘헤쥬라트’란 아랍어로 패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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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바하올라와 신시대 들에게 비상한열광을 일으킴과 동시에 이슬람교의 정통파에게 는 무서움과 적의(敵意)를 품게 하였다. 쉬이에파의 박사들은 맹렬히 그분을 공격하고 파르쓰지사(知事)로서 광포한 전제자 인 호세인 칸에게 그를 이단자로써 탄압하도록 설득하였다. 그 리하여 바압께서는 여러번 잡혀 와서 감금, 추방, 심판, 태형, 모욕 등 온갖 박해를 당하시게 되어, 그 박해는 1850년 바압께 서 마침내 순교하심으로써 끝났다. 바압의 주장 바압의 지위에 있다는 선언으로써, 그리고 다시 더 나아가서 이 젊은 개혁자가 자기를 모하멧의 예언에 있는 메흐디라고 자 칭함으로써 적의(敵意)는 더 한층 격렬해졌다. 쉬이에파의 신 도들은 약 천년 전에 이상하게 자취를 감춘 제 12 에맘4)을 이 메흐디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이 에맘이 아직도 생존해 있어 다시 전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며 그에 의하여 통치와 정 복과 국위발양(國威發揚)이 훌륭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 예 언을 물질적 의미로 해석하여 그 출현의 표징이 나타날 것을 믿 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유대인들이‘구세주’의 출현의 예언을 그와 같이 해석한 것과 같다. 그들은 메흐디가 지상의 주권(主 權)을 가지고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나타나서 그가 계시자임을 선언할 뿐 아니라 죽은 육체도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을 것이 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적인 표징이 나타나지 않 았으므로 쉬이에파의 신도들은 극심한 모욕으로써 바압을 배척 하였다. 그것은 마치 유대교가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과 같다. 4. 쉬이에파의 에맘은 전 신도가 복종해야 하는 모하멧의 후계자로서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이다. 12인이 대대로 에맘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최초의 에맘은 모하멧의 종제(宗弟)이자 사위인 알리였다. 제 12대의 에맘은 쉬이에파의 신도들에 의하여 에맘 메흐디라고 불리웠다. 그들은 에맘 메흐디가 죽 은 것이 아니라 다만‘헤쥬라트’기원329년에 지하도(地下道)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뿐이니 때가 오 면 그가 다시 와서 불신앙의 모든 사람을 멸망시키고 행복한 시대를 오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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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한편 바압의신도들은 이 예언의 대부분을 비유적인 것 으로 해석하였다. 그들은 갈릴리의‘슬픈 사람’과 마찬가지로‘약속된 분’의 주권을 신비한 주권으로 해석하여 그분의 영광은 물질적인 것 이 아니라 정신적인 영광이며, 정복이란 것은 인간 정신의 정복 이라고 믿었으며, 그들은 바압의 놀라운 생애와 가르침, 흔들리 지 않는 신앙과 굳은 정신, 과오와 무지에 파묻힌 사람들을 깨 우쳐 정신생활의 새 삶으로 끌어올리는 신비스러운 힘을 보고 바압의 주장이 틀림없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바압께서는 자신이 메흐디라고 주장하셨을 뿐 아니라 다시 더 나아가서 녹테 올라, 즉‘최초의 점’이라는 성스러운 칭호를 쓰 기도 하셨다. 이 칭호는 모하멧께서 그분의 신도에게서 받으신 것으로서, 에맘이라고 불리우는 자들도 이‘최초의 점’으로부 터 영감과 권위를 받은 것이라고 믿어 온 것이니, 이 칭호를 씀 으로써 바압께서는 자신을 모하멧과 동등한 위대한 종교 창시 자의 지위에 견준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써 쉬이에파의 신도 들은 그분을 협잡꾼으로 간주했으나 이것은 그분 이전의 현시 자들인 모세와 그리스도께서도 협잡꾼으로 몰린 것과 같다. 그 분은 또 역서(曆書)를 고쳐 태양력(太陽曆)을 채용하고 그분 자신이 선언하신 해를 신시대의 기원으로 하셨다. 박해가 더욱 심해짐 바압의 이러한 선언과 빈부귀천, 그리고 유식무식의 모든 계급 의 사람들이 놀라운 속도로 그분의 가르침에 열심히 따른 결과 로써 탄압은 더욱 가혹해졌다. 신도들의 재산은 약탈 파괴되고, 23 제 2 장 선구자 바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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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바하올라와 신시대 부녀자들은 잡혀서끌려갔다. 테헤란, 파르스, 마젠다란, 그 밖의 각지에서 살해당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많은 사람이 단두(斷 頭), 교수(絞首), 혹은 대포구멍에 놓여 폭격되고, 혹은 불속에 던져지고, 또 혹은 갈기갈기 찢겨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진전되었다. 아니, 이와 같은 탄압 을 통하여 신도들의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 그것은, 이 탄압에 의하여 메흐디의 출현에 관한 예언 중의 많은 것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어 갔기 때문이었다. 쉬이에파가 권위를 인정하는 쟈베르 에 의하여 기록된 전설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분에게는 모세의 완전과 그리스도의 존귀와 욥의 인고(忍 苦)가 있을 것이다.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시대에 천대를 받 을 것이다. 터키인과 데일라미트인들이 선물로 교환됨과 같이 그들의 머리는 베어져서 선물로 교환 될 것이다. 그들은 목이 베어지고 불에 타서 죽어 공포와 전율 속에 대지는 그들의 피 로써 물들일 것이요, 부녀자는 모두 울부짖을 것이다. 진실로 그들은 나의 성자(聖者)들이다.” --- E. G. 브라운 교수 번역‘바압의 새 역사’132쪽 바압의 순교 1850년 7월 9일5) 바압께서 31세 되시던 때, 그분은 마침내 포학한 박해자의 분노의 희생이 되셨다. 그분과 순교를 같이 하 기를 애원한 아가 모하멧 알리라는 소년과 함께 타브리즈 병영 (兵營) 안에 있는 사형대에 끌려가셨다. 그날 정오 2시간 전에 모하멧 알리의 머리가 그의 사랑하는 스승 바압의 가슴에 기대 이게 두 사람은 겨드랑 밑으로 동아줄에 묶여 벽에 매달렸다. 5.‘헤쥬라트’기원 1266년 샤아반월 28일 금요일
  • 31.
    아르메니아 병사의 1대가총살 명령을 받아 곧 일제 사격이 집 행되었다. 그러나 총탄 연기가 사라진 뒤 바압과 그분의 제자가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총탄은 다만 동아줄을 끊었을 뿐이 요, 두 사람은 부상도 입지 않고 땅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옆에 있는 방에 들어가서 그들의 친구 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 었다. 정오경에 두 사람은 다시 묶여 매달렸다. 아르메니아 병 사들은 사격의 결과가 이와 같이 이상하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놀란 나머지 다시 사격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병사 의 1대가 새로 와서 명령을 받고 발사하였다. 이번에는 총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신체는 많은 총알이 관통 하여 무참하게 상하였으나 얼굴에는 별로 손상된 곳이 없었다. 무도한 이 행위에 의하여 타브리즈의 영정(營庭)은 제 2의 골 고다가 된 것이었다. 바압의 적들은 이 죄 많은 승리에 기뻐하 였다. 미워하던 바비교의 나무가 줄기 째 꺾여졌으니 나머지 무 리들을 일소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저 들의 승리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저들은 진리의 나무가 인공의 도끼로써 쉽게 꺾여질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 죄악행위가 바압의 운동에 보다 큰 힘을 주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을 저들이 알았더라면 어떠하였을까. 바압의 순교는 그분의 소원을 성취한 것이었고, 뒤에 남은 신도들에게는 감격과 열정 (熱情)을 더하였다. 그들의 정신적 정열이 이와 같이 격렬하였 으므로 박해의 냉혹한 바람은 도리어 그 정열에 부채질하여 탄 압이 가해질수록 불꽃은 더욱 더 높이 충천할 뿐이었다. 25 제 2 장 선구자 바압
  • 32.
    칼멜산 위의 무덤 바압께서순교하신 후 그분의 시신은 그분의 헌신적인 제자의 시신과 함께 타브리즈 성 밖의 못 가에 버려졌다. 다음 날 깊은 밤 신도들은 두 분의 시신을 몰래 건져 여러 해 동안 페르시아 국내의 비밀한 곳에 감추어 모셔두었다가 비상한 위험과 곤란 한 가운데 최후에는 성지에 운반되었다. 성지의 엘리야 동굴에 서 멀지 않은 칼멜산 중턱의 아름다운 산경(山景)을 등진 곳에 쌓아진 무덤에 그들 두 분의 유해가 안장되었다. 여기는 바하올 라께서 최후의 몇 해를 지내신 곳이며, 또 그분의 영묘가 있는 곳에서 2~3마일 되는 지점이다. 바하올라의 성스러운 영묘(靈 廟)를 찾아 세계 각지로부터 모여드는 많은 순례자들은 바하올 라의 헌신적인 사랑의 표적이요, 또한 선구자인 바압의 영묘에 참배할 것을 누구나 잊지 않는다. 바압의 저서 바압의 저서는 매우 많다. 그분은 연구하거나 사색함이 없이 신속하게 훌륭한 주석과 뜻 깊은 해설과 웅변적인 기도를 많이 쓰셨는데, 이러한 저술들은 모두 그분의 영감에서 이루어진 증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분의 여러 가지 저서의 근본 되는 뜻을 요 약하면 대개 다음과 같다. “이들 바압의 저서의 어떤 것은 코란의 여러 절의 주석과 해 설, 혹은 기도와 설교와 문의(文義)해석의 암시요, 어떤 것은 ‘하느님의 유일성’에 대한 교의(敎義)의 여러 점에 관한 훈계 와 경고와 강화(講話)들이다. 그리고 인격을 수양하는 일, 세 속의 나쁜 습관을 버리는 일, 하느님의 영감에 의탁할 것을 권 2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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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는 것들이다. 그러나그분의 저서의 가장 중요한 취지의 요점은 그분의 유일한 목적이요 소원인, 불원에 세상에 나타날 ‘실재’(實在)에 대한 서술이요 예찬이었다. 그 까닭은, 그분은 자기가 출현한 것이 오로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선구자요, 그 분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다만 저‘장차 오실 분’의 보다 큰 완 성의 현시를 위한 중간 역할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 다. 그리하여 바압께서는 밤낮‘그분’을 예찬하셨을 뿐 아니라 신도들에게‘그분’의 출현을 기다리라고 뇌이어, 그분은 이것 을 저서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즉, 나는 다만 이 가장 강력한 책의 한 글자요, 무변대해의 한 방울의 물에 불과 하다. 그리고‘그분’이 나타나실 때 비로소 나의 진정한 본성 과 비밀과 수수께끼와 암시, 이 모든 것이 분명히 알려질 것이 다. 그리고 또 이 종교의 싹은 여러 단계를 거쳐서 점차 발전하 여‘형상이 가장 아름다운’경지에 도달하여,‘가장 훌륭한 창 조자이신 하느님께 영광이 있을 진저’하는 찬미의 법의(法衣) 로써 장식될 것이라고........ 그렇게도‘그분’의 불꽃에 타고 있었으므로 그분이 마쿠의 요새(要塞)에 감금되셨을 때 어두운 밤의 등불은 진실로 장차 오실‘그분’인 바하올라에 대한 축하 의 불꽃이었으며,‘그분’에 대한 생각은 췌흐리끄의 감옥에서 고난에 잠겨있는 그분에게 가장 좋은 위안의 벗이었다. 이것으 로써 그분은 정신이 왕성해지고‘그분’의 향기로운 술에 황홀 히 취하며,‘그분’을 생각함으로써 무한한 기쁨을 느끼신 것이 었다.”---‘바압의 에피소드’54쪽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 바압 그분은 세례 요한에 비유되기도 하였으나 그분의 지위는 27 제 2 장 선구자 바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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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선구자나 전조로서의그것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바압 께서는 그 자신이 하느님의 현시자여서 그 종교가 비록 시간적 으로 짧은 기간만 존속했다 할지라도 그분은 하나의 독립된 종 교의 창시자이셨다. 바하이들은 바압과 바하올라께서는 바하이 신앙의 공동 창시자임을 믿고 있으며, 바하올라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이 진리를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 가장 강력하고 경이에 찬 계시와 그것에 앞선 현시자와 의 사이에 그처럼 짧은 기간만 존속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밝힐 수 없는 신비요, 어떠한 지혜로써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그것이 계속하는 기간은 미리 정해진 것이었으나 나의 감추어 진‘글’의 내용이 알려지기 전에는 누구나 그 까닭을 모를 것 이다.” 그러나 바압께서 바하올라에 관하여 말씀하심에 있어서는 오 로지 겸허한 마음으로 하셨으니, 즉 그분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 셨다.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의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듣고 그 것을 암송하는 자는 바얀(즉 바압의 계시)을 천독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바압의 에피소드’349쪽 그분은 자기가‘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을 위하여 조금이라 도 그 통로를 닦을 수 있다면 어떠한 고난이라도 참는 것을 행 복으로 생각하셨다. 그리하여 장차 오실‘그분’이야말로 자기 의 사랑의 유일한 대상이요, 또한 영감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선 언하셨다. 2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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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천당, 지옥 바압의가르침의 주요한 부분은 부활, 심판의 날, 천당과 지옥 등의 용어에 관한 그분의 설명이다. 부활이란‘진리의 태양’의 새 현시가 나타남을 의미하는 것이니, 죽은 자의 부활이란 무지 와 무사려와 욕정(欲情)의 무덤 속에 잠든 사람들이 정신적으 로 각성하는 것이다. 심판의 날이란 것은‘새 현시자의 날’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 계시를 받아들이는 여부에 따라서 양과 염소가 구별되는 것이니, 양은 착한 목자의 소리를 알아듣고 그 를 따르는 것이다. 천당이란 것은 하느님의 현시자를 통하여 계 시된 하느님을 인식하고 그분을 사랑함에 이르는 기쁨을 말하 는 것이니, 그것으로써 될 수 있는 한 최상의 완전에 도달하여 사후에‘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의 미한다. 그분은 결정적으로 이러한 용어는 위에 말한 해석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리하여 물질적인 천당, 지옥, 육체의 부활 등의 관념은 단지 상상에서 생긴 것이 라고 하셨다. 그분은, 사람은 사후의 생활이 있고, 내세에 있어 서의 완전으로 향하는 진보는 무한하다고 가르치셨다. 사회적 및 윤리적 가르침 바압께서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신도들 은 서로 형제자매의 애정과 친절을 가져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 어야 한다. 유익한 기술과 공예(工藝)는 더욱 더 연구되어야 하 고, 초등교육은 일반에게 보급되어야 한다. 지금 시작되는 새롭 고 훌륭한 시대에 있어서는 부인들은 더 충분한 자유를 누려야 29 제 2 장 선구자 바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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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다. 빈곤한 사람은공공창고(公共倉庫)에서 도와주어야 할 것 이나 빌어먹는 일은 술을 음료로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 금되어야 한다. 그리고 참다운 바비의 지도의 동기(動機)는 순 진한 사랑이어야 한다. 보수를 바라거나 벌을 무서워서 하는 일 이어서는 안 된다. 바얀 가운데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하느님에 대한 예배가 비록 불로써 갚아지더라도 변함없이 하느님을 예배하라. 하느님이 무서워서 예배한다면 그는 하느 님의 성역(聖域)에 들어갈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네가 천당을 희망하여 거기를 향하여 예배한다면 너는 하느 님의 창조물로서 하느님의 동행자가 되려는 것과 다름없다.” --- E. G. 브라운교수의‘페르시아의 바비’(영국 아시아 협 회의 기관지 제 21권 931쪽) 수난(受難)과 승리 이 끝절에서, 바압의 전 생애를 약동케 한 그 정신을 찾아보 기로 한다. 하느님을 인식하고 또 사랑하고 하느님의 속성을 나 타내고 장차 오실 하느님의 현시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일 - 이러한 일이야말로 그분의 생존의 전 목적이요 소원이셨다. 그 분에게는 사는 것도 걱정될 것이 없었고, 죽는 것도 두려울 것 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랑은 두려운 것을 없이하고 순교는 다만 사랑하는 하느님의 발 앞에 그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 이다. 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 이 하느님의 진리의 영감에 찬 교 사, 이 하느님과 동포를 열애하는 분이 그렇게도 미움을 받아 그 시대의 이른바 신앙심을 가졌다는 자들의 손에 순교하셨다 는 것은 괴이한 일이 아닌가. 이것은 확실히 무사려와 완미한 3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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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이 사람들로 하여금그분이 참으로 예언자요, 성스러운 하 느님의 사자인 사실에 눈이 어둡게 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분은 세속적인 위대성과 영예를 가지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런 속세의 원조를 받음이 없이 가장 포악한 속세의 반대를 넘어서 승리를 얻을 능력이 없고서야 어찌 정신적 위력과 지배를 증명 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극도의 고난과 많은 적들의 증오와 거짓 친구의 간사한 흉계를 참고 이 모든 것을 극복하여, 낙망하지 않고 번뇌하지 않고 도리어 저들을 용서하고 축복해 주는 능력 을 갖지 않고서야 어찌 이 불신앙의 세계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인가. 바압께서는 모든 고난을 참고 받아들이셨다. 그리하여 승리하 셨다. 수천의 신도는 자기의 생명과 모든 것을 바쳐 봉사함으로 써 그분에 대한 저들의 사랑을 실증하였다. 여러 왕들은 사람들 의 마음과 생명에 미치는 그분의 위력을 미워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이 마침내 나타나셔서 그분의 주장을 확인하시고 자신의 선구자로서의 헌신을 받아들여 바압 으로 하여금 자신의 영광의 동반자로 삼으셨다. 31 제 2 장 선구자 바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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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제 3 장 하느님의영광, 바하올라 그대, 이제 그만 기다려라. 그분이 이미 오셨나니. 보라, 그 분의 성전과 그 안에 있는 그분의 영광을. 그것은 새로운 현시 로써 온 고래의 영광이니라. --- 바하올라 탄생과 유년시대 미르자 호세인 알리, 후에 바하올라6) (하느님의 영광)라는 칭호로써 불리운 그분은 페르시아의 대신인 누르 주 출신 미르 자 압바스의 장남이셨다. 그분의 집은 부유한 명문으로서 그 일 가에는 문무관(文武官)의 높은 지위에 있는 이가 많았다. 그분 은 1817년 11월 12일7) 페르시아의 수도 테헤란에서 탄생하셨 다. 그분은 가정에서 얼마의 교육을 받았을 뿐이요, 학교 교육 이라고는 받으신 일이 없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어 렸을 때부터 놀라운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계셨다. 그분이 아직 젊었을 때 그분의 부친은 타계하시고 막대한 재산의 관리와 동 생들의 보호의 책임을 지게 되셨다. 어느 때 바하올라의 장남인 압돌바하께서는 그분의 부친의 유 년 시대의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6. 제 2, 제 4의 음절에 액센트가 있다. 7.‘헤쥬라트’기원 무하람월 2일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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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부터 그분은성질이 대단히 친절하시고 관대하셨다. 그분은 밖에서 놀기를 좋아하셨고, 화원이나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으셨다. 그분은 사람을 끄는 비상한 힘을 가지 시어 누구나 그것을 느꼈고 그분의 주위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 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대신과 궁정(宮廷)관리들이 그분에게 친근해지고 아이들도 그분을 매우 좋아하였다. 겨우 십 삼, 사 세 때에 그분의 박식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분은 어떠한 문제 에 대해서도 답변 할 수 있었고, 어떠한 문제가 제기되든지 그 것을 규명하시고 해결하셨다. 큰 모임에서 그분은‘올라마’(이 슬람교의 교사)들과 토론하시고 종교상의 어려운 문제에 대하 여 해설하기도 하셨다. 모든 사람은 비상한 흥미를 가지고 그 분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바하올라께서 22세 되 셨을 때 그분의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시매, 정부는 그때의 관 례에 의하여 바하올라께 부친의 관직을 승계할 것을 명했으나 그분은 이것을 사양하셨다. 당시의 총리대신은 이것을 평하여 ‘그의 뜻대로 하게 하라. 그런 관직은 그에게는 가치 없는 것 이다. 그는 보다 높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뜻을 알 수 없으나 그는 확실히 어떤 높은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생각하는 바가 우리네와는 다르다. 그의 뜻대로 하게 하 라.’고 말했다.” 바비로서 감옥에서 갇힘 바압께서 1844년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을 때, 바하올라께 서는 27세이셨는데 그분은 대담하게 이 새로운 신앙의 대업에 동참하셨고, 얼마 안 되어 가장 유력하고 용감한 제창자로서 알 려지게 되셨다. 3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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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분은 이 대업을위하여 두 번이나 감옥에 갇히셨는데 한 번 은 발 때리는 고문을 받으셨다. 그것은 1852년 8월 바비교도에 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 사건이 돌발했을 때였다. 사데크라는 바압의 한 청년신도가 그의 사랑하는 스승의 순교를 목격하고 통분한 나머지 마침내 바른 길을 벗어나서 복수하기 위하여 길 에 잠복했다가 총으로 황제를 쏘았던 것이다. 그러나 보통 탄환 이 아니고 산탄(散彈)을 장전했던 관계로 몇 발의 작은 탄알이 명중하였으나 대단한 상해는 없었다. 청년은 말을 탄 황제를 끌 어내렸으나 자신은 잡혀 즉석에서 살해되었다. 이와 같은 일이 있어 바비의 전 교단(全敎團)은 불법하게도 이 행위의 책임을 지게 되어 80명의 신도가 참혹한 고문 끝에 테헤란에서 학살당 하고, 그 밖의 많은 사람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으니 그중에 바하올라께서도 계셨다. 그분은 후일 다음과 같이 쓰셨다. “하느님의 바른 길에 있어서 짐(朕)이 이 비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는 바로서 짐(朕)의 무죄는 법정 에서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朕)은 체포되어 황제 의 거처였던 니야와란으로부터 테헤란감옥으로 호송되었다. 짐 (朕)은 쇠사슬에 결박된 채 맨발로 걸었다. 말을 타고 우리를 호송하는 악한이 짐(朕)의 모자를 빼앗기도 하면서 많은 형리 (刑吏)와 감시인들이 큰 속력으로써 우리를 몰아갔다. 4개월 동안 짐(朕)은 일찍이 보지 못한 불결한 곳에 감금되어 있었 다. 아무리 비좁고 어두운 토굴이라도 피해자인 나와 나의 동 반자들이 갇혀 있는 이 토옥(土獄)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도착하자 우리는 이 감옥의 입구를 통하여 어두운 복도로 끌 려가서 가파른 세 계단을 내려가 우리에게 정해진 토옥에 들어 35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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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갔다. 토옥은 아주깜깜하였고, 거기에는 이미 갇혀있는 사람이 150명가량 있었다. 그들은 모두 도둑, 살인자, 날치기, 강도들 이었다. 이 감옥에는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 있으면서 도 우리가 들어간 문 이외에는 출입구가 없었다. 이곳의 광경과 악취에 대해서는 한입으로 다 말할 수는 없다. 여기 있는 사람 들의 태반은 입을 옷도 누울 거적자리도 없었다. 이 어둡고 더 러운 곳에서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가는 하느님만이 아시는 일이다. 이 감옥에서 짐은 밤낮 바비교도의 상태와 행동에 대하여 반 성하였다. 저들의 영혼이 위대하고 심지가 고결하고 총명하거 늘 어찌하여 황제를 살해하려는 흉악한 행위를 감행하였을까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피해자인 짐은 출옥 후에 이들 교도들의 심령개조(心靈改造)에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하였다. 어느 날 밤 꿈에 사방에서 영감(靈感)에 찬 말씀이 들려왔다. ‘진실로 내가 그대 자신에 의하여, 또 그대 붓에 의하여 그대가 승리를 얻도록 도울 것이다. 그대가 당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슬퍼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 진실로 그대는 안전하느니라. 멀지 않아 하느님께서는 이 땅에 보배를 보내 주실 것이니, 그 들은 그대 자신과 그대의 이름에 의하여 그분을 인식하고 마음 이 갱신될 것이며, 그들에 의하여 그대는 승리를 얻을 것이니 라.”---‘이리의 자식에게 보내는 서한’(쇼기 에펜디의 영 어 번역)에서 바그다드로 추방 이 무서운 감옥생활이 4개월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바하올라 3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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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와 그분의 동반자들은최대의 행복에 잠겨 태연자약하고 열성 에 넘쳐있었다. 거의 매일 같이 그 중의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이 고문을 당하고 살해되어 남아있는 사람들도 다만 자기의 순번 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형리(刑吏)가 와서 그 중의 한 사 람을 호출하면 그 사람은 기뻐서 춤을 추면서 바하올라의 손에 입 맞추고 다른 신도들을 포옹한 후 조용히 순난(殉難)의 장소 로 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바하올라께서는 국왕반역(國王叛逆)의 음모에 관여 하지 않은 것이 판명되고, 러시아 공사도 그분의 품성이 결백함 을 증언하여 주었다. 그때 바하올라께서는 병에 걸려 매우 위독 한 상태에 계셨다. 그리하여 국왕은 그분에게 사형판결을 내리 지 않고 그 대신 메소포타미아의 이라크로 추방할 것을 명령하 였다. 2주일 후 그분은 가족과 몇 사람의 신자를 데리고 그곳으 로 출발하셨다. 그들은 겨울의 장거리 여행에 추위와 그 밖의 무서운 고난을 겪으면서 극도의 곤궁 속에 바그다드에 도착하 였다.8) 바하올라께서는 건강이 회복되시자마자 구도자의 질의(質疑) 에 응답하여 신자들을 고무하고 격려하셨다. 그리하여 바비교 도들에게 다시 평화와 행복이 찾아오게 되었다.9) 그러나 이것 이 오래 계속되지는 못하였다. 소브헤 아잘이라고도 알려진 미 르자 야흐야라고 하는 바하올라의 이복동생이 바그다드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이 사람의 비밀한 꾀임에 의하여 신자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점차 커 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분열과 흡사한 것이었다. 이 충돌은 (그 8. 1852년 10월 테헤란을 떠나 4,50일 만에 바그다드에 도착하셨다. (아베르에 의함) 9. 1853년 초의 이야기로서 바압의 선언으로부터 9년 후의 일이다. 그리하여 바압의‘9’년에 관한 예 언이 실현된 것이다.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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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아드리아노플에서 공공연하게더욱 격렬해졌다.) 세계 인류 의 통합을 이룩하는 것이 인생의 전 목적인 바하올라께는 참으 로 마음 아픈 일이었다. 황야(荒野)에서의 2년 바그다드에 온지 약 1년 후 바하올라께서는 다만 혼자 솔레이 마니예의 거친 들로 단 한 벌의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떠나셨 다. 이 시기에 관하여 그분은‘케타베 이간’에 다음과 같이 쓰 셨다. “이곳(바그다드)에 처음 왔을 때, 후일 재난이 있을 것을 예 감했으므로 그것이 일어나기 전에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 하여 짐(朕)은 거친 들판에 가서 그곳에서 2년간 쓸쓸히 고독 한 생활을 보낸 것이다. 짐(朕)의 눈에서 고뇌의 눈물이 비오 듯하고 심장에는 고통의 큰 물결이 일어났다. 먹을 것이 없는 날도 많았고, 짐(朕)의 몸이 쉴 수 없는 밤도 많았다. 이러한 궁핍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재를 그분 두 손에 가지고 계신 하느님께 의지하여 짐(朕)의 영혼은 행복과 기쁨 속에 있 었던 것이다. 짐(朕)은 이 고독한 거처에서 누구의 이해득실 (利害得失)이나 건강이나 질병 같은 것은 염두에 없이 혼자서 세계와 그 일체를 잊어버리고 나의 정신과 문답하였다. 그러나 짐(朕)은, 하느님의 운명의 그물이 인간의 가장 큰 관념을 초 월하는 것이어서 하느님의 명령의 화살이 인간의 가장 대담한 기도(企圖)를 이긴다는 것을 몰랐었다. 하느님께서 놓으신 덫 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 하느님의 바른길에 있어서는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짐(朕)의 이별은 다시 만날 것을 바라 지 않은 것이었다. 짐(朕)의 귀양살이의 유일한 목적은 신자들 3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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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에 불화의 원인이되거나 동지에게 폐를 끼치거나 누구에 게 해를 입히거나 누구의 마음에 슬픔의 원인이 됨을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 밖에는 아무 의도도 목적도 없었다. 그러나 각자는 제각기 자기의 뜻대로 계획을 세우고 각자의 쓸데없는 공상을 따랐다. 그리하여 그것 은 짐(朕)이 온 곳으로 돌아가 라는 신비의 근원(즉 하느님)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 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짐(朕)은 그 명령에 복종하였다. 짐 (朕)이 돌아온 후에 당한 일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 2년 동안 적들이 전력을 다하여 짐(朕)을 없애버리려고 부단히 노 력한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바이다.” ---‘케타베 이간’251쪽 ‘몰라’의 압박 은거지(隱居地)에서 돌아온 후의 그분의 명성은 더욱 커졌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그분을 알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들으 려고 원근 각지로부터 바그다드에 모여 들었다. 유대교도, 기독 교도, 조로아스터교도, 이슬람교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하느님의 계시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몰라’(이슬람 교의 교사)들은 적대 행동을 취하여 그분을 없애버리려고 악착 같이 박해를 가하였다. 어느 때, 저들은 동료 한 사람을 보내어 그분을 면회하여 어려운 문제를 출제케 하였다. 그러나 그 사자 는 바하올라의 대답이 비상히 조리가 서 있고 그것이 분명히 연 구에 의하여 얻은 지식이 아니라 그분의 지혜가 진실로 놀라운 것임을 발견하였으므로, 지식으로써나 이해력으로써나 바하올 라 그분은 세상에 다시없는 인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를 사자로 보낸‘몰라’들에게 바하올라 그분이 진정 39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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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예언자임을 인식시키기위하여 그 증거로써 어떠한 기적을 보여줄 것을 그는 요구하였다. 바하올라께서는 어떤 조건하에 그 요구에 응할 의사를 표하셨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 셨다. 즉, 어떤 기적을 행하는 데에‘몰라’들이 동의하여 그 기 적의 실행을 본 다음 저들은 그분의 사명이 정당함을 고백하고, 그분에게 적대하는 일을 중지하겠다는 증서에 서명 날인한다면 요구대로 증거를 보일 것이며, 만일 그렇지 못하면 사기죄인이 될 것이라고.‘몰라’들의 목적이 참으로 진리를 원하는 것이었 다면 확실히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저들의 의향 은 그것이 아니었다. 좋거나 궂거나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의 결 정을 얻자는 심산이었다. 저들은 진실에 부닥칠 것이 두려워 이 감연한 도전에서 도피하였다. 그러나 저들의 이 계획의 좌절은, 바하올라의 교단을 전멸시키기 위한 새로운 음모를 계획하는 방향으로 저들을 몰아넣었다. 바그다드에 주재해 있는 페르시 아 정부의 총영사는 저들의 음모에 가담하여 황제에게 많은 보 고를 하였다. 즉, 바하올라는 이전보다 더 한층 이슬람교에 대 하여 위해를 주고 있다는 것, 페르시아 사람에게 일종의 해를 끼치는 세력을 이루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그를 더 먼 곳으로 추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이슬람교의‘몰라’들의 꼬임에 대하여 페르시아정부와 터키 정부가 그분의 운동을 근절하기 위하여 협력하고 있는 이 위기 에 즈음하여 고요히 신자들을 격려하시며 위안과 지도의, 그 불 후(不朽)의 말씀을 쓰시고 계신 것은 진실로 바하올라다운 일 이었다. 압돌바하께서는 저‘숨겨진 말씀’이 어떻게 이 시대에 씌어졌는가를 말씀하셨다. 바하올라께서는 티그리스강가에 산 책하시는 일이 많으셨다. 그분은 밝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오셔 4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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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는 수천 사람의괴롭고 쓰린 마음을 위로하고 쓰다듬어 주는 저 주옥같은 서정시(抒情詩)적인 잠언(箴言)을 쓰신 것이었다. 몇 해 동안은 이‘숨겨진 말씀’의 원고의 사본(寫本) 몇 부가 몰려드는 적의 수중에 들어갈 것을 우려하여 조심스럽게 감추 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작은 책이 바하올라의 저서 가 운데서 아마 가장 널리 알려져 있어 전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읽을 수 있다.‘케타베 이간’도 또한 널리 알려져 있는 바하올 라의 저서인데 역시 같은 시대, 즉 바그다드 체류의 말경 (1862~1863)에 씌어진 것이다. 바그다드 교외‘레즈완’에서의 선언 여러 가지 교섭이 있은 후 페르시아정부의 요구에 의하여 터 키 정부는 바하올라를 콘스탄티노플로 소환하는 명령을 내렸 다. 이 소식을 들은 그분의 추종자들은 크게 놀랐다. 그들은 사 랑하는 지도자의 집을 둘러싸고 물러가지 않았으므로 가족들은 부득이 12일 간이나 나집파샤의 정원에 천막을 치고 지냈다. 그동안 먼 길을 여행할 여대(旅隊)가 준비되었다. 이 12일간 (즉 바압의 선언이 있은 후 19년째인 1863년 4월 21일부터 5 월 2일까지)의 첫 날에 바하올라께서는 몇 사람의 신자들에게 자신이 바압에 의하여 예언된 분 - 즉 하느님의 택함을 받은 분, 모든 예언자들에 의하여‘약속된 분’임을 선언하셨다. 이 기념해야 할 선언이 있었던 정원은 후에 바하이 신자들에게‘레 즈완 동산’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바하올라께서 이곳 에서 지낸 여러 날을‘레즈완 축제’라고 하여 해마다 이 12일 간을 기념한다. 이 동안에 바하올라께서는 슬픔과 절망의 빛이 없이 도리어 큰 기쁨과 위엄을 보이셨다. 신자들은 기쁨에 넘쳤 41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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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많은 사람들이그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모여들었다. 바그다드의 모든 유력한 사람들과 지사(知事)까지도 이 죄수의 출발에 경의를 표하러 왔었다. 콘스탄티노플과 아드리아노플 콘스탄티노플 여행은 3-4개월이 걸렸다. 가족 12명과 제자 72명으로 된 바하올라의 일행은 이 멀고 먼 여로의 노숙(露宿) 에 비상한 고난을 당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자 일 행은 비좁고 더러운 집에 죄수로써 감금되었다. 그 후 조금 나 은 옥사(獄舍)에 들었으나 4개월 후에 다시 아드리아노플로 옮 기게 되었다. 아드리아노플로 가는 길은 며칠 걸리지 않았으나 이 여행은 그들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무서운 것이었다. 눈 은 끊임없이 분분히 내리는데 엷은 옷은 헤어지고 먹을 것조차 없어 그 고생이 형언할 수 없었다. 아드리아노플의 첫 해 겨울 에 바하올라와 그분 가족 12명은 아무 설비도 없고 해충이 우 굴거리는 단지 3칸뿐인 조그마한 집에서 지냈다. 봄에 그들은 조금 나은 집으로 옮겼다. 그들은 아드리아노플에 4년 반 이상 이나 있었다. 여기서 바하올라께서는 다시 설교를 시작하시어 많은 신자가 그분의 주위에 모이게 되었다. 그분은 널리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다. 그리하여 대다수의 바비신도에게 열성으로 써 환영을 받았다. 이때부터 바비들은 바하이로 알려지게 되었 다. 그런데 소수의 바비신도들이 바하올라의 이복동생인 미르 자 야흐야의 지휘 하에 바하올라에게 맹렬히 반대하여, 그들은 이전의 적이었던 쉬이에파 교도와 손을 잡아 그분을 없애버릴 것을 계획하였다. 여기에 대혼란이 생겼다. 그리하여 터키 정부 는 마침내 바비와 바하이를 함께 아드리아노플에서 쫓아 버리 4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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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바하올라와 그측근자들을 팔레스타인의 악카에 귀양 보냈 다. 역사가 나빌에 의하면 그들은 1868년 8월 31일 악카에 도 착하였다. 한편 미르자 야흐야와 그 일당은 싸이프러스섬으로 추방되었다. 여러 나라 왕에게 서한을 보냄 바로 이때 바하올라께서는 유럽의 여러 나라 원수(元首)와 로 마 법왕, 페르시아 황제, 그리고 아메리카합중국 정부에 저 유 명한 일련의 서한을 보내어 자신의 사명을 전하시고, 진정한 종 교, 정의의 정치, 국제평화의 건설을 위하여 저들이 진력할 것 을 호소하셨다. 페르시아 황제에게 보낸 서한 가운데 압박받는 바비들을 극력 변소(辯訴)하고 아울러 그들의 박해를 선동하는 자들과의 회견을 요청하셨다. 물론 이 요청이 허용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서한을 전한 열렬한 바하이 청년 바디는 잡혀서 불타는 벽돌로 몸을 지지는 무서운 고문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 서한 가운데 그분은 자신의 고난과 그 소망을 가장 감동적인 문 장으로써 표현하셨다. “폐하여, 나는 하느님의 길에서 일찍이 아무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일을 보았습니다. 벗들은 나를 거부하였고 나의 갈 길은 막혔습니다. 안전의 못(池)은 말랐고 위안의 평원은 초토 (焦土)로 화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난이 내려졌으며 또 얼 마나 많은 고난이 올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강대하시고 혜택이 많으신 하느님을 향하여 전진하건만 나의 뒤에는 독사 (毒蛇)가 따릅니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비오듯하여 침상을 적 시건만 이것이 나를 위한 슬픔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맹세하거 니와 나의 머리는 주의 사랑을 위하여 창검의 난(難)에 맡겼습 43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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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다. 그리하여 한나무를 지날 때마다‘너는 내 이름으로 베어 질 것이며 내 몸은 주님의 길에서 그대의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라’고 염하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인류는 침취(沈醉)하여 길을 잃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저들은 욕정(欲情)에 빠져 하느님을 멀리 하고 하느님의 명령 을 오락인 냥 우롱합니다. 그러고도 제 행위가 옳은 줄로만 믿 고 제 자신이 안락성중에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사리(事 理)는 저들이 생각하는 바와는 다르니 저들은 오늘에 거부한 것을 내일에는 보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변경(邊境)의 적소(아드리아노플)에서 다시 악카의 감옥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악카 는 가장 황막한 벽지로서 외관이 극히 추하고 기후와 수질이 심히 좋지 못하여 사람이 거접할 곳이 못되고, 올빼미의 서울 인냥 들리는 이 다만 그 새소리뿐이라 합니다. 저들은 나를 그 곳에 유폐하여 은사(恩赦)의 문을 막고 생명의 자량(資糧)을 끊어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여생을 마치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비록 피로가 나를 쇠약케 하고 굶주림이 나를 거꾸러뜨릴지라 도, 비록 굳은 바위를 침상으로 하고 사막의 야수를 벗하고 있 을지라도 참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맹세하여 당연히 참을 것입 니다. 만물 존재 전의 왕이시며 만민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권 능 안에서 모든 고난을 받아들이고 어떠한 사정 하에 있어서도 나는 하느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은총 깊으신 하느님께서 (높이 계시는 하느님이시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성실한 얼굴을, 강력하시고 혜택 많으신 하느님께로 돌리게 하 여주실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진실로 하느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대답하시고 부른 자에게 가까이 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4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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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다시 하느님께 비나니,원컨대, 이 어두운 고난으로써 그분의 성자(聖者)들의 몸을 보호하는 방패로 삼으사 칼날과 창끝으로 부터 그들을 방어하게 하여 주십사고. 고난을 통하여 하느님의 광명이 더욱 밝아지고 하느님의 영광이 더욱 빛나는 것이니 이 것이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 취하신 방법입니 다.”---‘바압의 에피소드’(146-147) 악카에서의 감옥생활 그때의 악카는 터키제국 각지로부터 가장 흉악한 죄인들을 보 내는 감옥 도시였다. 남녀 노소 80명 내지 84명으로 된 바하올 라와 그분 추종자들의 일행은 비참한 해상(海上)여행을 마치고 여기에 도착하여 곧 병영(兵營) 안에 수감되었다. 그 장소는 심 히 불결하고 음산한 곳이었다. 거기에는 침상도 없고 아무 침구 도 없었다. 음식물도 극히 조악하고 부족하였으므로 얼마 후에 참을 수 없는 이 죄수들은 자신들이 식료를 사 올 것을 원하였 다. 처음 몇 일 동안은 아이들이 울기만 하여 전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말라리아, 적리 등 괴질이 발생하여 겨우 2명을 제외하 고는 동행자 거의 전부가 병석에 눕고 말았다. 그들 중 세 사람 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 었다.10) 이 참혹한 감옥생활이 2년간 계속되었는데 그동안 누 구도 외출할 수 없었다. 다만 네 사람이 매일 엄중한 감시 하에 식료품을 사러 나갈 수 있을 뿐이었다. 이 병영 내의 감금생활 중 외부로부터의 방문은 엄격하게 금 지되어 있었다. 페르시아의 바하이 몇 사람이 사랑하는 지도자 10. 바하올라께서는 사망자 두 사람의 매장 비용을 위하여 자신이 쓰시던 융단을 제공하셨다. 그러나 그 돈은 군인들에게 횡령을 당하고 시체는 땅 구덩이에 던져지고 말았다.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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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알현하고자 도보로써멀리 왔으나 성안으로는 한 걸음도 들 어갈 수 없었다. 그들은 가끔 성 밑 제3호(濠)의 바깥에 있는 들에 나갔다. 거기서는 바하올라께서도 그 창에 용안(龍顔)을 나타내셨다. 그 사람들은 멀리서 그분을 바라보며 울다가 돌아 갔지만 그들은 희생과 봉사의 정열이 더욱 불타는 것을 느꼈다. 속박이 완화됨 이 감옥생활도 조금 완화되는 날이 왔다. 터키 군대가 동원되 어 이 병사(兵舍)를 사용하게 되었다. 바하올라와 그분의 가족 들은 그들만의 한 주택에 옮기고 다른 신자들은 시내의 어느 대 상하숙(隊商下宿)에 수용되었다. 바하올라께서는 이후 7년간 이 집에서 감금 생활을 하셨다. 그분이 유폐(幽閉)되어 계신 작 은 방 가까이에 그분의 가족 남녀 13명이 그럭저럭 큰 고통 없 이 살 수 있었다. 이곳으로 처음 옮겼을 때에는 설비의 불충분 과 음식물, 기타 생활필수품의 부족으로 인하여 비상한 곤란을 겪었다. 그러나 그 후 두 세 개의 방을 더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비교적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병사를 나온 후에 는 외래자의 방문도 허락 되어, 칙령에 의하여 극히 엄격하였던 속박이 때때로, 일시적으로 시행되기는 하였으나, 점차 완화되 었다. 옥문이 열림 감옥생활이 비참의 극에 달했을 때에도 바하이들은 무서워하 거나 동요함이 없이 확고한 신념을 결코 잃지 않았다. 악카의 병사에 갇혀 있을 때 바하올라께서는 신자 몇 사람에게 보낸 편 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셨다.“무서워하지 말라. 옥문은 열릴 것 4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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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이다. 나의 천막은저 칼멜산 위에 세워질 것이요, 그리하여 무 상의 기쁨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라고. 이 선언은 그분의 추 종자들에게 위안의 대원천이 되었으며 얼마 후에 사실로 실현 되었다. 어떻게 하여 옥문이 열렸는가에 대하여는 그분의 증손 쇼기 에펜디에 의하여 영어로 번역된 압돌바하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바하올라께서는 농촌 풍경의 아름다움과 푸른 나무가 울창 한 것을 몹시 좋아하셨다. 어느 날 그분은‘나는 9년간이나 초 목이 무성한 것을 보지 못하였다. 농촌은 영혼의 세계요, 도시 는 육신의 세계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간접적으로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그분이 농촌을 몹시 그리워하시는 걸 알았다. 그리 고 나는 그분의 희망을 실현해 드리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을 확신하였다. 당시 악카에 모하멧 파샤 사 프와트 라고 하는 우리의 큰 반대자가 있었다. 그는 마즈라에 라고 하는 큰 저택을 시(市)의 북쪽 4마일 지점에 가지고 있었 다. 그 대저택은 화원과 시냇물에 둘러싸여 매우 좋은 곳이었 다. 나는 파샤를 그의 집으로 찾아가서 파샤, 당신은 저 훌륭한 성을 버리고 악카에 와서 살고 있는데’하고 말한즉,‘나는 병 이 있는 몸이므로 도시를 떠날 수 없다. 거기 있으면 쓸쓸하고 친구를 만날 수도 없다.’고 그는 대답했다. 나는‘당신이 거기 살지 않고 성이 비어 있는 동안 우리에게 빌려줄 수 없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나의 말에 놀랐으나 곧 승낙하였다. 나는 1 년에 약 5파운드라는 싼 집세로 5년 분을 지불하고 계약하였 다. 나는 곧 사람을 보내어 성을 수리하고 화원을 정리하고 욕 실(浴室)을 만들었다. 그리고‘축복받은 미(美)’11)를 위하여 11.‘쟈말레 무바락’(즉 축복받은 미)란 것은 신자와 벗들이 가끔 바하올라를 부르는 칭호였다.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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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 한대를 준비하였다.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이 거기 가서 그 장소를 보려고 결심하였다. 우리는 시(市)를 둘러싼 성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여러 번 내린 칙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의 관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갔다. 감시하는 병사들이 파수를 보고 있었으나 아무 말도 없으므로 나는 곧게 그 성으 로 갔다. 이튿날 나는 다시 몇 사람의 친구와 관리들과 함께 나 갔으나 성문의 양측에 있는 파수병이 우리를 막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바흐지의 소나무 밑에 테이블을 갖추어 연회를 베풀어 시의 주요한 인물과 관리들을 초대하였다. 저녁에 우리들은 함 께 돌아왔다. 어느 날 나는‘축복받은 미’의 앞에 나아가‘마즈라에에서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마차도 한대 준비 하였습니다.’고 여쭈었 다. (당시 악카나 하이파에는 마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분은 ‘나는 죄수다.’하면서 그곳에 가시기를 거절하셨다. 후에 다 시 말씀드렸으나 전과 같은 대답을 얻었을 뿐이었다. 세 번 간 원하였으나 역시 거절하셨다. 나는 그 이상 강청 할 수 없었다. 당시 악카에는 세력 있는 유명한 이슬람교도인 쉐이크가 있어 바하올라를 사랑하고 바하올라께서도 그를 사랑하셨다. 나는 쉐이크를 불러 그 사정을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과감한 사람이다. 오늘밤 바하올라의 성스러운 면전에 나가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두 손을 잡고 그분이 시가를 떠난 다고 약속하실 때까지 그분을 놓지 말고 간청해 달라고. 쉐이 크는 아라비아사람이었다....... 그는 곧 바하올라께 다가가서 그분의 발 앞에 꿇어 앉았다. 그는‘축복받은 미’의 손을 잡아 입 맞추면서‘왜 당신은 시가를 떠나지 않습니까?’하고 여쭈 었다. 바하올라께서는‘나는 죄수’라고 대답하셨다. 쉐이크는 4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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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했다.‘결코 그렇지않습니다. 누가 당신을 죄수 되게 할 권리를 가졌습니까? 당신 자신이 당신을 감옥에 가두어 두 고 계신 것입니다. 이 감옥생활은 당신 자신의 의사였습니다. 지금 나는 당신이 감옥을 나와서 저 성에 가시기를 원합니다. 거기는 경치가 좋습니다. 수목이 청청하고 오렌지는 불구슬 같 습니다.’‘축복받은 미’께서‘나는 죄수이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나 그는 간원하였다. 마 침내 바하올라께서는‘케일리 쿱’, 즉‘좋다’고 승낙하셨다. 이리하여 쉐이크의 인내와 고집은 승낙을 나에게 알렸다. 압돌 아지즈의 엄중한 칙령에 의하여‘축복받은 완전’과의 회합이나 교제가 엄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튿날 마차를 몰아 그분을 저 성에 모셔 갔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다. 나는 그분 을 거기에 계시게 하고 시내로 돌아왔다. 2년간 그분은 이 매력 있는 아름다운 곳에 머물러 계셨다. 거 기에서 다른 장소, 즉 바흐지로 옮기게 되셨다. 그것은 바흐지 에 마침 전염병이 발생하여 집 주인이 가족을 데리고 도피하게 되어 집을 누구에게든지 무료로 빌려주게 된 것이다. 우리는 매우 싼 집세로써 집을 얻어 거기에 신위(神威)와 존엄에 빛나 는 문호가 열리게 된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명목상으로는 죄 수였으나 (터키 황제 압돌 아지즈의 엄중한 칙령은 결코 철회 된 것이 아니었다.) 실제에 있어서는 그분의 생활과 태도에 존 귀와 위엄이 나타나 있었으므로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 고 팔레스타인의 지배 계급 사람들은 그 감화력과 권위를 부러 워하였다. 지사와 군단장, 장군과 지방 관리들이 간절히 그분 을 알현하기를 원했으나 그분은 거기에 응하는 일이 매우 드물 었다. 49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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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때 시의지사가 상관의 명령이라 하여 무관 한 사람을 데리고‘축복받은 완전’에게 면회를 요청하였다. 그 요청이 허 락되었는데 심히 비대한 서양 사람인 그 무관은 바하올라의 숭 엄한 품위에 위압되어 문 옆 땅위에 무릎을 꿇고 움직이지 않 았다. 두 사람은 그저 송구하여, 권하는‘나르귈레’(터키 물담 뱃대)를 좀처럼 피울 수 없었다. 바하올라께서 여러번 권하시 므로 간신히 입에 가져갔으나 그들은 다만 그 파이프를 입술에 대었을 뿐으로 도루 옆에 놓고 옷깃을 바로 잡고 손을 모아 시 종일관 겸양과 존경의 태도로써 앉아 있어 거기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벗들의 존경과 사랑, 또는 관리와 요인들로부터의 후정과 존 경, 순례자와 진리 탐구자들의 끊임없는 내방, 모든 사람들이 표하는 봉사와 충성의 정신,‘축복받은 완전’의 숭엄한 왕과 같은 풍모, 그분의 명령의 힘, 그분의 열렬한 신자의 수 - 이러 한 모든 점이 바하올라께서는 실제로 죄수가 아니라 오히려 왕 중의 왕임을 실증하는 것이었다. 두 전제적인 왕이 그분에게 반대하였다. 이 두 독재적 군주가 그분을 유폐하였을 때에도 옥중에서 그들에게 보내신 바하올라의 서한은 마치 왕이 신하 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위엄에 찬 것이었다. 그 후 그분은 엄중한 칙령이 철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흐지에서 왕과 같은 생활을 하셨다. 그분은 여러 번 말씀하셨다.‘진실로, 진 실로 가장 참담한 옥사가 에덴의 낙원으로 변하였다.’고. 참으로 이러한 일은 세계 창조 이래 일찍이 전례없는 일이 었다.” 50 바하올라와 신시대
  • 57.
    바흐지에서의 생활 바하올라께서는 초기고난의 시대에는 빈곤과 불명예의 경우 에 처하여 어떻게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할 것인가를 보여주셨 고, 그 만년(晩年)에는 바흐지에서 명성과 부 가운데서 어떻게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할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수백 수천의 영 성스러운 신자들은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여 그분의 자유재량에 맡겼다. 그러나 그분의 바흐지에서의 생활은 최고의 의미에서 의 왕자(王子)와 같은 것이지 결코 물질적인 영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축복받은 완전’과 그분 가족의 생활은 극히 간 소하고 검박한 것이어서 자신을 위한 사치라고는 그 집 어디에 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분의 집 부근에 신자들은‘레즈완’이 라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그분은 때때로 이 정원에서 며 칠 혹은 몇 주일 보내시는 일이 있었고, 밤에 그 안의 정자에서 주무시기도 하셨다. 때때로 그분은 악카와 하이파에 자주 가셔 서 일찍이 악카의 병영에 유폐되셨을 때에 예언하신 바와 같이 칼멜산에 천막을 치신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바하올라께서는 당 신 시간의 대부분을 기도와 명상, 그리고 경전을 쓰시는 일과 서한을 쓰시는 일, 그리고 신자들의 정신적 교육에 소비하셨다. 이 위대한 성업에 그분이 자유스럽게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압돌바하께서 일체의 사무처리를 담당하시고 몰라, 시인, 정부 관리들의 면담까지도 담당하셨다. 이 모든 사람들은 압돌바하 와의 면회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 그분의 설명과 담화에 만 족하여, 바하올라와는 직접 만나지 못하였어도 그분의 아들 압 돌바하와 친숙해짐으로써 전면적으로 바하올라에 대하여 우정 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압돌바하의 태도가 그분의 아 버지의 지위를 저들에게 이해시킨 때문이었다. 51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 58.
    저 유명한 동양학자인캠브리지대학의 에드워드 G. 브라운교 수는 1890년에 바하올라를 바흐지에서 방문하고 그 인상을 다 음과 같이 썼다. “나의 안내자는 내가 신을 벗는 동안 잠시 서 있었다. 다음 그는 능숙하고 빠른 솜씨로 휘장을 밀어 나를 통과 시켰다. 그 래서 나는 넓은 방에 들어선 것이었다. 나를 어디로 인도하는 것인지 누구를 만나게 될 것인지 그때까지 분명치 않았는데 (미리 아무런 확언이 없었으므로), 순간 후에 나는 오싹 소름 이 끼치는 듯 이방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장의자의 끝 이 벽에 닿은 모퉁이에 아주 경이스럽고 거룩해 보이는 인물이 이슬람교의 탁발승들이 쓰는 타아쥬와 같은 (그러나 보통 것과 는 높이와 모양이 다른) 종류의 두건을 쓰고 앉아 계셨다. 그 두건 끝에는 희고 작은 터어번이 둘려져 있었다. 내가 본 그분 의 얼굴은 묘사할 수는 없으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빛나는 그분의 눈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고 힘 과 권위가 그분의 넓은 이마에 갖추어져 있었다. 이마와 양쪽 볼에 깊은 주름살이 있었으나 숱이 많은 검은 머리와 가슴까지 덮은 풍성한 수염은 나이보다 젊어 보이게 하였다. 내가 그분 앞에 허리를 굽혔을 때 누구의 앞에 내가 서 있는가를 물을 필 요가 없었다. 그분이야말로 왕들이 부러워하고 황제들이 헛되 이 탄식 할 만큼 위대한, 사랑과 헌신의 목표인 바로 그분이셨 던 것이다. 부드럽고 위엄있는 음성은 나에게 앉기를 권하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이었다.‘당신이 오신 것을 하느님 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죄수이며 귀양살이하는 나를 52 바하올라와 신시대
  • 59.
    만나러 오셨습니다........ 우리는다만 세계의 이익과 모든 나 라의 행복을 원할 뿐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우리를 폭동의 선 동자로 몰아 그 죄가 금고와 추방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모든 나라가 신앙에서 일체가 되고, 모든 사람이 동포로서 일 체가 되는 것, 인류사이에 친애와 결합의 맹약이 촉진되는 것, 종교의 난립이 소멸되고 인종의 차별이 없어지는 것, 이런 것 에 무슨 해로움이 있을 것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실현됩니다. 무익한 투쟁과 파괴적인 전쟁이 없어지고‘최대의 평화’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당신은 유럽에서 이러한 것 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까? 이것이 그리스도가 예언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당신네의 왕들과 지배자들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보다 인류의 파괴를 위하여 많은 재보(財 寶)를 없애고 있는 사실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투쟁과 유혈과 불화가 없어지고 전 인류가 한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나라만을 사랑하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인류 동 포를 사랑하는 것이 자랑이어야 합니다........ .’ 내가 바하올라에게서 들은 많은 것 중에 이상이 나의 기억에 남은 그때 그분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읽은 사람들은 이러한 교의(敎義)가 속박과 죽음에 해당할 것인가, 그리고 이 교의의 보급이 세계에 이익을 줄 것인가, 혹은 해를 끼칠 것인 가를 스스로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으리라 믿습니다.”---‘나 그네의 이야기’의 서문 바압의 에피소드 39쪽 승천(昇天) 바하올라께서는 이와 같이 간소하고 청순한 지상의 만년(晩 年)을 보내시고 1892년 5월 29일 열병으로 마침내 75세로 세 53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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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을 떠나셨다. 그분이계시하신 최후의 서한 가운데 자필로 기 명 조인한‘유훈’이 있었다. 세상을 떠나신 후 9일 째 되던 날 가족과 친구들 몇 사람 앞에서 그분의 장남의 손으로써 개봉되 어 간단하고도 뜻 깊은 그 문서의 내용이 밝혀졌다. 이 유훈에 의하여 압돌바하께서는 아버지 바하올라의 후계자로, 또 그분 의 가르침의 해석자(解釋者)로 지명되시고, 바하올라의 모든 신자와 가족과 근친들은 모두 그분에게 귀향(歸鄕)하여 복종할 것이 지시되었다. 이 지정에 의하여 그분의 사후에 교파의 분열 이 방지되고 이 대업의 통일이 확립되었다. 바하올라의 예언자적 지위 바하올라의 예언자적 지위에 대하여 명확한 관념을 가지는 것 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분의 말씀은 다른 신성한‘현시자’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단지 동포들에게 전할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부탁받은 입장에서 쓰시 기도 하고 말씀하시기도 한 것이요, 다른 한 가지는 하느님 그 분으로부터 직접 온 것이라고 생각된다.‘케타베 이간’에 그분 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짐(朕)이 이미 위에서, 영원한 성스러움의 여명으로부터 떠 오르는 여러‘발광체’의 두 지위를 정하였다. 그 지위의 하나 는 본질적 일체성의 지위로서 짐(朕)이 설명한 바와 같다.‘짐 은 저희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았다.’(코란 제2장 136절) 다른 하나는 차별성의 지위이니 그것은 창조의 세계와 그 세계에 있어서의 제한성(制限性)에 관한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하느님 여러 현시자는 분명한 개성과 명확히 규정된 사 명과 예정된 계시와 특히 지명된 제한성을 가져 저들은 각기 5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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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이름으로써 알려지고,다른 속성에 의하여 특징을 나타내 고 예정된 사명을 성취하며 독특한 계시를 부탁받은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셨으되‘짐(朕)은, 어떤‘사도’들을 다른 ‘사도’들보다 우월하게 하였다. 어떤 자에게 하느님께서는 말 씀하시기를 어떤‘사도’를 그분은 높이시고 귀하게 하셨다. 그 리하여 성 마리아의 아들 그리스도에게 짐은 분명한 표징을 주 고 성령으로써 그를 강하게 하였다.’(코란 제2장 353절) 이와 같이 저들의 일체성, 지극히 높은 초월의 관점(觀點)에 서 볼 때‘신성’(神性),‘신격’(神格),‘지극히 높은 단일성’, ‘가장 깊은 본질’등의 속성은 이들‘존재의 본질’에 과거와 현재에 함께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저들은 모두 신성한 계 시의 왕좌에 살고 신성한 은가(隱家)에 좌정해 있기 때문이다. 저들의 출현에 의하여 하느님의 계시가 나타나고 저들의 모습 에 의하여 하느님의 미(美)가 계시된다. 이와 같이 하느님 자 신의 말씀은 이들‘성스러운 실체’인 현시자에 의하여 정해지 는 것이다. 저들의 제 2의 지위, 즉 차별성, 특이성(特異性)에서 시대의 제한성, 기준 등의 지위의 입장에서 보면 그분들은 절대의 봉 사, 극도의 궁핍, 완전한 자기포기를 나타내신다. 모하멧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나는 하느님의 종이요, 너희와 같은 인간 에 불과하다.’(코란 제41장) 만일 하느님의 모든 속성을 가진 어느 현시자께서‘나는 하 느님이라’고 선언했다 하여도 그분은 진실로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라 거기에는 의문이 없다. 왜냐하면 그분들의 계시와 속성 과 명칭을 통하여 하느님의 계시와 속성과 명칭이 세상에 알려 55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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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 일이 지금까지여러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분은 ‘그 모든 박해는 하느님에 대한 것이요 너에 대한 것이 아니니 라.’(코란 8장 17절)고 가르치셨다. 또 그분은‘진실로, 너에 게 충성을 맹세한 자는 하느님께 맹세한 자이니라.’(코란 제 48장 19절)고 하셨다. 그리고 만일 그분들 중의 누군가‘나는 하느님의 사자’라고 선언한다면 그것 역시 명백한 진리를 말씀 하신 것이다. 모하멧께서는‘나는 너희들 중의 누구의 아버지 도 아니요, 다만 하느님의 사자’라고 말씀하셨다. 이 입장에서 보면 저들은 모두 불변의 본질인 저‘이상(理想)의 왕’의 사자 에 불과하다. 그리고 만일 그분들 모두가‘나는 예언의 봉함 (封緘)이라’고 선언하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의문의 여지없는 진리이다. 왜냐하면 모두 한 분, 한 영혼, 한 정신, 한 존재자, 한 계시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모두‘처음과 마지막’,‘최초 와 최후’,‘가시(可視)와 불가시(不可視)’의 나타남이니, 이러 한 것은 정신 중의 가장 깊은 정신이요, 본질 중의 영원한 본질 인 하느님의 속성이다. 그리고 만일 그분들이‘짐(朕)은 하느 님의 종이다.’(코란 33장 40절)고 말씀하신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시비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절대의 봉사를 보이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존재의 본질’이 고래로 영원한 성스러움의 바다 밑에 깊이 잠긴 순간, 혹은 그분들이 하느님의 비밀의 지고(至高)한 꼭대기에 날을 때 그분들은 자신들의 발언을 하느님의 말씀, 즉 하느님 자신 의 소리라고 선언하셨다. 만일 판단의 눈이 열려 있다면 위에 말한 선언의 경우에도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영원한 하느님에 대해서는 그분들이 그분들 자신을 전혀 아무런 가치 없는 자로 간주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분들은 그분들 자신을 전 무(全無)로 간주하시고 그분들의 말씀이 하느님의 궁정(宮廷) 5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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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서는 모독 행위라고생각하신다. 왜냐하면 자아(自我)의 최 소한의 속삭임도 그 궁정 안에서는 자기주장이 되고 독립적 존 재의 주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 궁정에 도착한 그분들에게는 그와 같은 암시야말로 슬픈 죄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만일 하 느님의 면전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말이 진술된다면, 만일 사람 의 마음, 사람의 말, 사람의 뜻, 사람의 영혼이 가장 사랑하는 하느님 이외의 존재로 향해진다면, 만일 사람의 눈이 하느님의 미(美) 이외의 모습을 본다면, 만일 사람의 귀가 하느님의 소 리 이외의 곡조를 듣는다면, 또 만일 사람의 발이 하느님의 길 이외의 길을 걷는다면, 그 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으랴. 오늘날 하느님의 산들바람이 불어 그 정신이 모든 사물(事 物)에 충만하였다. 하느님의 은총의 흐름이 붓을 멈추게 하고 혀를 놀리지 못하게 한다. 이 지위에 의하여 그분들은 자기를 하느님의 소리라고 주장 하시고, 또 사자의 지위에 의하여 그분들 자신을 하느님의 사 자라고 선언하셨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분들은 그때그때의 필요에 응하는 말씀을 하시고 이러한 모든 선언은 그분들 자신 이 책임지시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러한 선언은 하느님의 계시 의 영역(領域)으로부터 창조의 영역에 걸치고, 신성(神性)의 영역으로부터 지상존재(地上存在)의 영토에 향해진 것이다. 그 리하여 그것이 하느님, 주, 예언자, 사자, 수호자, 사도, 혹은 종의 영토에서도 그분들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의문의 여지 없는 진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짐(朕)이 짐(朕)의 논의(論議) 의 뒷받침으로 인용한 말들은 여기에서 주의 깊게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하면‘성스러움의 여명’이요,‘불가시(不可視)한 자’인 현시자의 여러 가지 발언은 사람들의 영혼을 움직여 마 57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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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이 혼란해지는 일이없을 것이다.” ---‘케타베 이간’176~181쪽 바하올라께서 한 인간으로서 말씀하시는 때의 그분의 지위는 오로지 겸손한 것이어서‘하느님 안에 몰입(沒入)’한 그것이었 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분의 인간으로서의 인격에 감추어 진 현시자를 판별케 하는 점은 그분의 위력의 완전함과 또 그분 의 완전한 자기몰각(自己沒却)이다. 어떠한 경우에나 그분은 겟세마네 동산의 그리스도와 같이‘나의 뜻대로 행하려 함이 아니요, 다만 당신의 뜻대로’라고 말씀할 수 있는 것이었다. 페 르시아 황제에게 보낸 서한에서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폐하여, 진실로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침상에서 잠자는 일개의 인간이었습니다. 영광 있는 분의 대풍 이 일과한 뒤 나에게 주어진 일체의 지식, 이것은 본시 나에게 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강대하고 전지하신 하느님에게서 온 것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이것을 천지간에 선포케 하 셨습니다. 이에 의하여 그것을 아는 자의 감격에 넘쳐 우는 일 들이 모두 나의 몸에 퍼부어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학 문을 배운 일이 없고 학원에 입학한 일도 없습니다........ 나는 강대한 하느님의 뜻의 산들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는 한 잎입 니다. 질풍이 부는 곳에 어찌 고요히 있을 수 있으리까. 다만 명칭과 속성을 갖춘 주님께 의지할 뿐입니다. 바람이 부는 대 로 움직이나니 영겁(永劫) 앞에는‘존재의 것’이 비실재물(非 實在物)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단호한 명령은 나 로 하여금 그분의 축복을 세계에 전하게 하셨습니다. 진실로 나는 주의 명령 앞에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비와 관용의 그 5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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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의 손에 자신을맡길 뿐입니다. 누가 감히, 자신의 임무를 위 하여 뭇사람의 박해를 달게 받을 수 있으리까. 아니, 원컨대 영 원의 신비를 그 붓에 가르치신 하느님에 의하여,‘강력하신 분’에 의하여 힘을 얻는 자를 구(救)하게 하여이다.” ---‘바압의 에피소드’395쪽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의 발을 씻어주셨던 것처럼 바하올 라 또한 때에 따라서는 가끔 그 종자(從者)들을 위하여 밥 짓기 와 그 밖의 잡역을 하셨다. 그분은 종(從)중의 종이셨다. 그분 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즐거이 봉사하셨고 때에 따라서는 아무 것도 깔지 않은 박판 위에서 주무시기도 하셨고, 빵과 물만으로 써 식사를 하시기도 하셨으며, 때로는 그분의 이른바‘신성한 음식, 즉 굶주림’을 식(食)으로 하며 사셨다. 그분의 완전한 겸 양의 덕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존경, 특히 성자, 예언자, 순교자 들에 대한 지극한 존경에서 볼 수 있다. 그분에게는 극히 작은 것으로부터 위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사물(事物)은 모두 하느님 을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분의 인간으로서의 인격은 하느님의 대변자가 되고 붓이 되 기 위하여 하느님의 택함을 받으신 것이었다. 그분이 이 무서운 곤궁과 가난의 길을 취하신 것은 그분 자신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아버지여, 될 수 있으면 이 잔을 저에 게서 물러가게 하소서.’라고 하신 것처럼 바하올라께서도‘만 일 다른데 대행자, 대변자가 있었다면 나는 몸소 민중의 비난, 조롱, 박해의 과녁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에슈라가트의 서한) 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느님의 부르심은 분명하고 명령적이 었으며, 그분은 거기에 따르셨다. 하느님의 뜻은 그분의 뜻이었 으며, 하느님의 기쁨은 그분의 기쁨이었다. 그리하여‘빛나는 59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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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종’으로써 그분은 다음과같이 선언하셨다. “진실로 내가 말하노니, 하느님의 길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 든지 그것은 영혼이 사랑하는 것이며 마음이 또한 바라는 바이 다. 하느님의 길에서는 무서운 독도 순량한 꿀이요, 모든 고난 도 청량한 한 모금의 물이다.” ---‘이리의 자식에게 보내는 서한’(쇼기 에펜디의 영어 번 역) 17쪽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바하올라께서는 어떤 때에는‘하느님 의 지위’에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에 있어서는 그분의 인간 적 개인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으리만큼 완전히 종속적이셨다.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그 창조물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권하시고 하느님의 속성을 가르치시고 하느님의 뜻을 알리시고 저들을 인도하는 하느님의 계율을 선포하시어, 하느님에 대한 저들의 사랑과 충성과 봉사를 호소하신 것이다. 바하올라의 저서에는 때때로 그 형식이 어떤 것에서 다른 형 식으로 바뀌는 일이 있다. 즉 어떤 때는 분명히 인간으로서의 논담이던 것이 갑자기 하느님 자신의 말씀과 같은 형식으로써 계속한다. 그러나 그 인간으로서 말씀하시는 때에도 바하올라 께서는 하느님의 사자로서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몸을 바친 살 아 있는 모범으로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분의 전 생명은 성 령에 의하여 작동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분의 생활과 가르 침에서 인간적인 요소와 신적(神的)인 요소를 확연히 분별하기 는 어려운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말씀하셨으되, “말할지어다.‘나의 전당에서는 하느님의 전당 이외에, 나의 미(美)에서는 하느님의 미 이외에, 나의 존재에서는 하느님의 6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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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 이외에, 나자신에서는 하느님의 자신 이외에, 나의 운동 에서는 하느님의 운동 이외에, 나의 묵인(默認)에서는 하느님 의 묵인 이외에, 나의 붓에서는 하느님의 붓 이외에, 즉 가장 귀하고 가장 상찬할 것 이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 할지어다.‘나의 영혼에는 진리만이 있고, 나 자신 가운데는 하 느님만이 보인다.’고.”---‘수라톨 헤이칼’30쪽 바하올라의 사명 바하올라의 이 세계에서의 사명은 통합, 즉 하느님에 의하여, 하느님을 통하여 전 인류의 통합을 이룩하는 그것이다. 그분은 말씀하셨으되, “지식의 나무에 가장 영광 있는 열매는 이 훌륭한 말씀이다. 너희들 모든 사람은 한 나무의 열매요, 한 가지의 잎이다. 제 나라만을 사랑하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인류 동포를 사랑하는 것이 자랑이다.” 종래의 예언자들께서는 인류 사이에 서로의 호의가 통하여 지 상에 평화가 이루어질 것을 전하셨으며, 그것의 실현을 촉진하 기 위하여 그분들의 생명을 바치셨다. 그러나 그분들은 한결같 이, 이 축복을 받을 완성의 시기는 말세의 (주님이 오신 후에) 사악(邪惡)이 심판을 받고, 정도(正導)가 보응됨으로써 비로소 올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조로아스터께서는 3천년 후에 비로소 구세주 샤 바흐람이 나타나셔서 악령(惡靈) 아리만을 정복하여 정의와 평화의 통치를 세울 것을 예언하셨다. 모세께서는‘만군의 주’께서 나타나셔서 여러 나라로부터 이 61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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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라엘의 후예들을 모아압제자들을 멸망시키고‘만군의 주’ 의 왕국을 지상에 세울 때가 오기까지는 아직도 오랜 동안 이 스라엘의 후예들에게 추방과 박해와 압박의 긴 시기가 있을 것 을 예언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으되‘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태복 음 제 10장 34절) 하셨다. 그리고 그분은‘아버지의 영광’을 가지고‘인자(人子)가 나타나시기까지 전쟁과 전쟁 소문과 소 요와 재난의 시기가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 모하멧께서는 선언하셨으되, 유대교도와 기독교 사이의 악업 (惡業)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 사이에 적의(敵意)와 증오를 두셨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께서 저들의 모든 것을 심판하시 기 위하여 나타나시는‘부활의 날’까지 계속하리라고 하셨다. 한편, 바하올라께서는 자신이 바로 모든 예언자들에 의해 약 속된 분, 즉 그분의 시대에 평화의 통치가 세워질 신성한 현시 자임을 선언하셨다. 이 성명은 전례 없는 독자적인 것인데 놀랍 게도 시대의 징조에 바로 적합 되고 모든 위대한 예언자의 예언 과 합치된다. 바하올라께서는 비류 없이 명확한 해명으로써 인 류의 평화와 통합을 이룩할 방법을 계시하셨다. 물론, 바하올라께서 오신 이래 오늘날까지 전례 없는 대 전쟁 과 대 파괴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예언자들이‘주의 무서운 대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 여명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한 바로 서,‘주님의 출현’이 이제 있을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사 실임을 증거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우화(偶話)를 빌어 말하 62 바하올라와 신시대
  • 69.
    자면, 마치 포도원의주인인 하느님께서 사악한 농부에게서 그 것을 되찾아 그를 엄하게 징벌하고, 그 계절의 과실을 주인인 하느님께 잘 바치는 다른 사람에게 그 포도원을 주시는 것과 같 다. 이것은 주님이 오심에 즈음하여 무서운 파괴가 일어나서, 저 사악한 농부처럼 몇 세기를 통하여 이 지구상에 잘못된 정치 를 하여 그 과실을 횡령하여 온 포악한 정부와 탐욕스럽고 완미 한 승려(僧侶)와 몰라, 그리고 포악한 지배자들을 각성케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서운 사건과 전례 없는 참화가 아직도 당분간 이 지구상에 끊이지 않으리라. 그러나 바하올라께서는 우리에게 보증하셨 다. 멀지 않아서 이러한 무익한 투쟁과 파괴적인 전쟁이 없어 지고‘최대의 평화’가 올 것이라고. 전쟁과 쟁투는 그 파괴성 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으므로 인류는 여기에서 구원의 길을 발견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도리가 없게 되었다. ‘정해진 때’가 이미 왔고, 그와 함께 약속된‘구세주’도 출현 하셨다. 바하올라의 저서 바하올라의 저서는 그 범위가 광범위하여 개인적 및 사회적 생활의 여러 가지 일, 물질계와 정신계의 일들, 고대와 현대의 성전(聖典)의 해석, 혹은 가까운 장래와 먼 미래의 예언적인 말 씀 등 일체를 다루었다. 그분의 지식이 해박하고 명확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63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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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바하올라와 신시대 그분께 통신이나질문을 하는 자가 잘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종 교 경전에 대하여 설명하고 해석할 때, 그분 자신은 그러한 경 전에 접하신 일이 없으셨건만 명확하고 권위 있는 태도로써 설 명하셨다.‘이리의 자식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그분은 아직 바 압의 저서도 통독할 기회와 시간을 갖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 는데, 그분의 저서에는 바압의 계시에 대한 가장 완전한 지식과 이해를 가졌음이 나타나 있다. (위에 기술한 바와 같이 바압 자 신의 계시, 즉 바얀은‘하느님이 나타내실 분’에 의하여 고취되 고 분출(噴出)된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분은 1890년에 내 방한 브라운 교수와 이삼십분 간씩 겨우 네 번 응대한 외에는 서양의 학식 있는 사상가와 접촉할 기회가 없으셨건만 그분의 저서에는 그분이 서양의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여러 문제에 대 하여 충분한 이해를 가지신 것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그분의 적들까지도 그분의 학식과 지혜가 비할데 없이 해박함을 인정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의 오랜 유폐의 생활 상태는 그 풍부 한 지식이 오로지 영적원천(靈的源泉)에서 솟아난 것이지 결코 보통의 연구나 학문의 방법이나 서적의 도움이나 지도 등에 의 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12) 그분께서는 때로는 자국인의 일반 용어인 페르시아어로 쓰셨 는데 그것은 아라비아어가 많이 섞인 말이다. 또 다른 경우, 학 식 있는 조로아스터교도에게 보내신 글은 순수한 고전적 페르 시아어로 쓰셨다. 그분은 또 아라비아어로도 자유로이 쓰셨는 데, 어떤 때는 평이한 문장으로써, 또 어떤 때는 코란 문체와 같 12. 바하올라께서 서양의 서적을 특히 공부하여 그 지식 위에 그분의 가르침을 세웠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60년 전에 쓰신 바하올라의 여러 가지 저서에는 현재 서양에서 잘 알려져 있는 사상이 포함되어 있으나 당시 서양에서는 이러한 사상이 인쇄되어 있기는 커녕 생각한 일도 없었다고 대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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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고전적인 문체로쓰셨다. 그분은 전혀 문학적 교육을 받으신 일이 없으셨지만 이와 같이 많은 국어와 문체를 완전히 쓰실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분 저서의 어떤 것에는 성스러운 길을 말씀하심에 있어서 ‘이 길을 가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라.’ (이사야 제 35장 8절)와 같이 단순한 말로 쓰셨다. 또 다른 저 서에서는 풍부한 시적 상상(想像)과 심원한 철리(哲理), 그리 고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및 기타의 경전들, 페르시아 및 아 라비아의 문학과 전설들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는데, 이런 것 은 다만 시인, 철학자, 학자들만이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다. 그리고 또 정신생활의 진보된 경지(境地)를 다룬 것이 있는 데 이런 것은 다만 그 경지에 도달한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 이다. 그분의 저작품은 마치 여러 가지 좋은 요리를 풍성하게 차려놓은 식탁과도 같아서 참다운 구도자(求道者)의 요구와 기 호(嗜好)에 맞는 것이다. 그분의 대업이 학자, 교양 있는 자, 정신적인 시인, 유명한 작 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 기인한 것이다. 그 리고‘수피’및 기타 종파의 지도자들과 몇 사람의 문필가이기 도 한 대신들까지도 바하올라의 말씀에 매혹된 바 있었는데 그 것은 그분의 저서가 아름다운 맛과 정신적 의미의 깊이에 있어 서 다른 모든 저술가의 저작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바하이 정신 악카의 감옥에 감금되어 계시면서도 바하올라께서는 고국인 페르시아을 근저(根底)로부터 움직이셨다. 페르시아뿐만 아니 65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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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당시 전세계를 움직이셨고, 지금도 움직이고 계신다. 그분 과 그분의 신자들을 고무한 정신은 극히 온건하고 점잖고 강인 (强靭)한 것인데 그것은 일면 놀라운 활력(活力)과 초인(超人) 의 힘을 가져 일견 불가능한 일도 성취하고, 사람의 성격까지도 일변시켰다. 이 힘에 따른 사람은 완전히 새로운 인간이 되었 다. 저들은 사랑과 신앙과 열정에 차서, 거기에 비하면 지상의 기쁨과 슬픔은 한 알의 티끌과 같은 것이었다. 저들은 일생동안 의 고난과 참혹한 죽음앞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 니라, 오히려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신성한 기쁨에 충만 하여 있었으며, 특히, 가슴은 새로운 삶의 기쁨으로 넘쳐흘러 자기의 박해자들에 대하여 아므런 원한이나 복수할 생각을 품 을 여지가 없었다. 저들은 자위(自衛)를 위하여 폭력을 쓸 것을 포기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운명을 슬퍼하는 대신에 새로운 영광 있는 계시를 받은 것을 기뻐하고, 그 진리를 입증하기 위 하여 자진하여 피를 흘리고 생명을 바치는 특권을 얻는 자신을 가장 행운아로 생각하였다. 그들의 정신은 기쁨에 차서 노래하 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숭고하고 영원한 사랑의 하느님이 인 간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저들을 종으로 또는 벗으로 불러 이 지상에 하느님의 왕국을 세워, 전쟁과 불화에 지친 세계에 평화의 무량한 축복을 가져오기 위하여 오신 것임을 믿었기 때 문이다. 바하올라에 의하여 고취된 신앙은 이러한 것이었다. 그분은 앞서 바압께서 예언하신 대로 그분의 사명을 선언하셨다. 그분 의 대 선구자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그분의 출현을 맞이할 준비를 갖춘 몇 천의 사람이 있었다. - 이 몇 천의 사람은 미신 과 편견을 버리고 순결한 정신과 공정한 도량으로써‘하느님께 6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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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약속하신 영광이현시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빈궁과 속박과 숨 막히는 경우와 심한 모욕도 마침내 저들에게‘주의 거룩한 영광’을 막아 버릴 수는 없었다. - 아니, 이러한 어두운 지상의 환경이 도리어 그분의 참다운 빛을 더욱 빛나게 할 따름 이었다. 67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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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 장 압돌바하(바하의종) 나의 출현의 바닷물이 퇴조(退潮)하고 나의 계시의 글이 끝 나거든, 너희는 하느님께서 뜻하신 바 이 고래의 뿌리에서 갈 린 그에게 너희의 얼굴을 돌리라. --- 바하올라 탄생과 유년 시대 압바스 에펜디, 후에 압돌바하(즉 바하의 종)의 칭호로써 불 리운 그분은 바하올라의 장남이다. 그분은 1844년 5월 23일 자정 조금 전, 즉 바압께서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신 그 날 밤 테 헤란에서 탄생하셨다. 그분의 부친께서 테헤란 감옥에 갇혀 계셨을 때, 그분은 겨우 8세였지만 그때 벌써 아버지에게 비상한 애착심을 가지고 계셨 다. 당시 그분의 일가는 폭도들에게 가옥이 점령되고 재산을 약 탈당하여 심한 곤궁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사랑하는 부친께서 일과(日課)의 운동에 나오신 시간에, 감옥 뜰 안에서 면회가 허 락되었던 때의 일을 그분께서 말씀하신 일이 있다. 아버지의 얼 굴은 몹시 초췌해 보였다. 병든 몸은 걸음도 곤란하셨고, 머리 와 수염은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었으며, 목에 끼인 무거운 쇠목 도리에 근육은 상하여 부풀었고, 쇠사슬의 무게 때문에 그분의 몸은 구부러져 있었다. 이 비참한 모습이 민감(敏感)한 어린이 69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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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마음에 잊을수 없는 인상을 새겨 주었던 것이다. 그들이 바그다드에 머물러 있던 처음 해, 즉 바하올라께서 자 신의 사명을 공공연히 선언하시기 십년 전, 당시 겨우 9세인 압 돌바하의 통찰력(洞察力)은, 아버지 바하올라께서는 참으로 ‘약속된 분’이신 것, 그 현시는 전‘바비’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임을 영리하게도 이미 발견하셨던 것이다. 약 60년 후에 그 분은 이 확신이 단번에 그분의 전 존재(全存在)를 압도했던 때 의 일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셨다. “나는‘축복받은 완전’의 종이다. 바그다드에 있을 때 나는 아직 어린 아이였다. 이 때 그곳에서 그분은 나에게 그‘말씀’ 을 알려주셨다. 나는 곧 그것을 믿었다. 그분이 이‘말씀’을 나 에게 알리시자 나는 그 자리에서 그분의 성스러운 발 앞에 나 의 몸을 던져, 나의 피로써 그분의 길을 위한 희생이 되게 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랐다. 희생! 이 말이 얼마나 나에게 달콤한 느낌을 주었던가! 나에게는 그 이상 더 큰 은혜가 없었다. 내 목이 그분을 위하여 쇠사슬에 매이고, 이 두 다리가 그분에 대 한 사랑 때문에 형틀에 얽매이며, 그분의 대업을 위하여 이 몸 이 찢기고 찢겨 깊은 바다에 던져짐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 을 것인가! 진실로‘축복받은 문턱’에 희생하여야 할 것은 당 연한 일이다.”--- 미르자 아아맏 소오랍의 일기 (1914년 1월) 이때부터 그분의 벗들은 그분을‘하느님의 신비’라고 불렀다. 이것은 바하올라에게서 받은 칭호로서 바그다드에 머물러 있는 동안 주위의 사람들은 그분을 이렇게 불렀다. 그분의 부친께서 황야(荒野)에 가 계신 2년 동안 압바스께서 7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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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는 가슴이 찢어지는듯 슬프셨다. 그분의 주요한 위안은 바압의 성스러운 서한을 베껴 쓰며 그것을 암송하는 일이었고, 그분은 대개 고독한 명상(瞑想)에 잠겨 있었다. 후에 부친께서 돌아오 셨을 때 이 소년의 기쁨은 형언할 수 없었다.13) 청년 시대 그때부터 그분은 아버지의 가장 친한 동반자이며 옹호자이기 도 하셨다. 일개의 청년으로서 그분은 벌써 비상한 총명과 식견 을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응접하는 소임을 맡으셨다. 방문객 중에 진실한 구도자(求道者)만을 아버지에게 면접시키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아버지와의 면접을 사절하 여, 바하올라를 괴롭히지 않게 하셨다. 그리고 때때로 방문객의 질의에 응답하시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심으로써 아버지를 도 우셨다. 예컨대, 수피교사인 알리 쇼우카트 파샤라는 사람이 이 슬람교의 전설 가운데 유명한‘나는 숨은 비밀’이라는 구절에 대하여 설명을 요청하였을 때 바하올라께서는 자신의 아들‘하 느님의 신비’, 즉 압바스에게 설명할 것을 분부하셨다. 그때 겨 우 십 오륙 세인 그분은 곧 붓을 잡아 명확하고 빛나는 설명을 써서 그 교사를 탄복케 하셨다. 이 서한은 지금 바하이들 사이 에 널리 퍼져 있고 바하이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알려져 있다. 이 시대에 그분은 자주 이슬람교의 사원(寺院)에 출입하시어 교사, 학자들과 더불어 즐겨 신학상의 문제에 대하여 토론하셨 다. 그분은 어떤 학교에서도 배운 일이 없으셨고, 그분의 유일 한 교사는 부친이셨다. 그리고 그분이 즐기는 소일거리는 승마 (乘馬)여서 그분은 이것으로써 가끔 유쾌한 시간을 보내시기도 13.‘헤쥬라트’기원 1260년‘쟈마디율’월 5일 목요일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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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셨다. 바그다드 교외의 동산에서바하올라의 선언이 있은 이래 압돌 바하의 부친에 대한 헌신은 한층 더 하였다. 콘스탄티노플로 가 는 긴 여행 중 그분은 아버지 마차 옆에 타기도 하고 아버지의 천막 옆을 떠나지 않고 밤낮 경호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될 수 있는 한, 부친을 대신하여 가사를 돌보시고 책임을 져서 일가의 지지자(支持者)가 되고 위안자가 되셨다. 아드리아노플에 머문 몇 해 동안 압돌바하께서는 여러 사람의 경애의 표적이셨다. 그분은 사람들을 많이 가르치셨고 항상‘사 부’라고 불리웠다. 악카에서 그분 일행의 거의 전부가 장질부 사, 말라리아, 적리에 걸려 누워 있을 때, 그분은 환자를 목욕시 키고 음식을 만들며 친히 여러 사람을 간호하셨다. 그분은 조금 도 쉬지 않고 일하신 탓으로 극도로 피로한 나머지 마침내 자신 도 적리에 걸려 거의 1개월 동안 위험한 상태에 빠진 일이 있으 셨다. 아드리아노플에 있을 때와 같이 악카에서도 그분은 위로 는 지사(知事)로부터 아래로는 거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받으셨다. 결혼 압돌바하의 결혼에 관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바하이신앙의 역 사가인 어느 페르시아인 학자가 저자에게 제공하여 주었다. “압돌바하의 청년시대에는 그분의 결혼문제는 신자들의 큰 관심사(關心事)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많은 신자들이 그 들 자신의 가정에서 이 영관(塋冠)을 얻으려고 몰려들었다. 그 7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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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러나 압돌바하께서는 오랫동안결혼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귀 를 귀울이지 않으셨으므로 누구나 그분의 마음을 알 수 없었 다. 후에, 그것은 그분의 배우자로 내심에 정한 소녀가 있었기 때문임을 알았으니, 그것은 에스파한에서 그의 양친이 바압의 축복을 받고 낳은 소녀였다. 그 아버지는 유명한‘순교자의 왕’과‘순교자의 애인’의 숙부인 미르자 모하멧 알리라는 사람 으로서 에스파한의 명문 출신이었다. 바압께서 에스파한에 계 셨을 때, 미르자 모하멧 알리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그의 처가 아이 갖기를 열망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바압께서는 자기의 음 식물의 일부를 그에게 주시면서 그의 처와 나누어 먹으라고 하 셨다. 그들이 이것을 먹은지 얼마 후에 처가 임신하여 오랫동 안 바라던 아이를 낳으니 여아라 그 이름을 모니레 카놈이라고 지었다.14) 그 후에 또 남아를 낳아 세이예드 야흐야라고 이름 지었고, 다시 후에 그들은 자녀 몇 사람을 더 낳았다. 모니레의 아버지가 죽은 후 이 소녀의 종형제들이 젤로스 솔탄과‘몰라’ 들에 의하여 순교 당하였고, 가족이 바하이였기 때문에 무서운 고난과 박해를 받았다. 그래서 바하올라께서는 모니레와 그의 동생 세이예드 야흐야를 악카에 데려와서 난을 면하게 하셨다. 바하올라와 그분의 부인, 즉 압돌바하의 어머니 나밥은 모니레 를 사랑하므로 측근자들은 바하올라부처가 그 소녀를 장차 압 돌바하와 결혼시킬 의사가 있는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양친의 소망 또한 압돌바하의 소원이었다. 그분은 모니레에게 뜨거운 사랑을 바쳤고, 모니레 또한 진심으로 이에 응하여 얼마 후에 그들은 결혼하였다.” 이 결혼은 지극히 행복하고 원만하였다. 그분들 사이에서 난 14. 이 이야기를 세례 요한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와 비교하면 재미있다. (누가복음 제 1장 참조)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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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중에 오랜고난의 옥중생활에서 살아남은 것은 네 따님들 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봉사의 아름다운 생활로 인하여 그녀들을 아는 특전을 가진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서 총애를 받았다. 성약(聖約)의 중심 바하올라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써 압돌바하가 자신이 세 상을 떠난 후의 후계자임을 표시하셨다. 그분께서는 승천하시 기 몇 해 전 그분의 저서‘케타베 악다스’가운데서 암암리에 이것을 선언하셨다. 그분은 압돌바하를 가리켜,‘나의 성약의 중심’, 혹은‘가장 큰 가지’,‘고래의 뿌리에서 갈린 가지’라고 칭하셨다. 그분은 항상 압돌바하에 대하여‘사부’라는 칭호로 써 말씀하시고 가족들에게 특히 그를 존경할 것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후에‘유훈’으로써 모든 사람이 그에게 귀향(歸向)하여 그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명확히 지시하셨다. 저‘축복받은 미’(바하올라께서는 신자들에게 항상 이 칭호 로써 불리었다.)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압돌바하께서는 부친께 서 분명히 지시하신 대로 대업의 수반, 이 가르침의 권위 있는 해석자의 지위에 오르셨다. 그러나 이것이 그분의 친척과 일부 신자의 반대를 받았다. 저들 반대자들은 신자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려 하다가 실패하 고 나중에는 여러 가지 허위사실로써 압돌바하를 터키정부에 무고(誣告)하였다. 압돌바하께서는 부친의 유명(遺命)에 의하여 하이파 위쪽 칼 7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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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산 중턱에 한건물을 세우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압의 유해를 안치할 곳이요, 거기에 집회실과 참배자를 위한 방들이 달려 있 는 것이었다. 저들 반대자들은 이 건물이 압돌바하와 그 도당의 요새(要塞)로서, 그들은 이것을 본거지로 하여 정부에 반항하 고 시리아 근방의 지역을 탈취하려는 음모라고 관헌에 고소한 것이다. 다시 엄중히 감금됨 이 고소와 그 밖의 근거 없는 혐의로 말미암아, 20여 년 동안 악카의 주변 및 몇 마일 사이에서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었던 압돌바하와 그분의 일족(一族)은 또 다시 1901년부터 7년 이 상 이 감옥도시 악카의 성벽 안에 엄중히 감금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분께서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지에 바하이 계시를 선포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호레이스 홀리씨는 이 시 대의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압돌바하를 사부님으로 또는 벗으로 하여 내방하는 자는 그 인종, 종교, 국적의 여하를 막론하고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은 손 님으로서 그분의 책상에 둘러 앉아, 다정한 친구로서 몇시간 혹은 몇 달 동안 머물면서 그분에게서 사회적, 도덕적 문제에 대하여 탐구하여, 모두 감동되고 갱신되고 현명해져서 돌아가 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숙사(宿舍)는 아마 세계의 다른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그분의 집 안에는 저 인도의 엄격한 세습(世襲) 계급제도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보는 인종적 편견은 그림자도 볼 수 없었고, 다만 따뜻한 마음과 대망(大望)의 정신에 필요 75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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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법칙을 제외하고는모든 인습이 이집 주인의 통합정신에 의 하여 타파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아아더왕과 그의‘원탁회의’ 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아아더왕은 남녀의 구별이 없이 나이트작(爵)을 주고 싸움터에 보냄에 있어서 검으로써 하지 않고 단지 말씀으로써 하시는 것이었다.” --- 호레이스 홀리의‘근대사회종교’171쪽 그 동안에 압돌바하께서는 세계각국의 신자와 연구자들과 통 신거래를 많이 하셨다. 이 일에는 그분의 딸들과 여러 통역자와 비서들이 그분의 일을 많이 도왔다. 그분은 많은 시간을, 질병과 빈곤으로 고생하는 자들을 그들 의 집으로 방문하시어 위로하는 일에 바치셨다. 악카의 빈민굴 에서 이‘스승’만큼 환영받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악카에 찾아 간 어느 순례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압돌바하께서는 매주 금요일 아침에 빈곤자들에게 희사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분은 자기의 넉넉지 않은 저축에 서 도움을 바라는 여러 사람에게 조금씩 분배해 주셨다. 그날 아침 압돌바하의 집 부근에는 약 백 명의 사람들이 혹은 앉기 도 하고 구부리고 서서 열을 지어 있었다. 거기에는 여러 종류 의 인간이 모여 있었다.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 - 가난과 피로로 말미암아 절망에 잠기고 헌옷을 걸친 사람들로서, 그중에는 장 님과 불구자와 병자와 형언할 수 없이 가난한 거지들도 많았 다. 그들은 모두 압돌바하께서 문 앞에 나타나시기를 고대하는 표정이었다........ 그분은 한 사람 한사람 순차로 빨리 지나시 다가 때로는 잠시 걸음을 멈추시고 서서, 동정과 고무의 말씀 을 속삭이시고 열심히 내민 손에 잔돈을 떨어뜨리시며 어린아 7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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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시기도 하고, 눈먼 노인에게 따뜻한 말씀을 주시기도 하고, 병석에 누워있어 여기에 나오지 못한 사람의 안부를 물으시고는 사랑과 위로의 말씀과 함께 그들에 게도 그들의 몫을 보내주시는 것이었다.”---‘압돌바하 별견 기’(M. J. M. 저) 13쪽 압돌바하의 개인적 욕구(欲求)는 극히 작은 것이었다. 그분은 늦게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셔서 일하시고, 식사는 하루에 간단 한 2식으로 족하셨다. 의복은 몇벌의 값싼 것들뿐이었다. 그분 은 다른 사람이 궁하게 사는데 자신이 사치한 생활을 할 수 없 는 분이셨다. 그분은 아이들과 꽃과 자연미를 사랑하셨다. 매일 아침 6시나 7시에 아침차를 같이 마시기 위하여 가족이 한자리 에 모여,‘사부님’께서 천천히 차를 마시고 계시는 동안에 아이 들이 기도를 읊는 것이었다. 쏜톤 췌이스씨는 이 아이들에 대하 여 다음과 같이 썼다. “상냥하고 사욕이 없으며 타인에 대한 동정심이 깊고 떼쓰는 일이 없이 총명하여, 아이들이 즐기는 조그마한 일에도 자기의 욕심을 억제하는 이러한 순진한 아이들을 나는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갈릴리에서’51쪽 ‘꽃 성직자’란 것은 그분의 악카 생활의 면모를 잘 표현한 말 이다. 이에 대해서는 순례자들이 모두 향기로운 회상(回想)을 가지고 있다. 루카스 부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꽃향기를 맡는‘사부님’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분이 히야신스의 꽃잎에 얼굴을 파묻고 그 향기를 맡으실 때 히야신스꽃이 그분에게 무엇을 속삭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77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 84.
    그것은 마치 아름다운하모니를 들으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여 주의력을 집중하는 것 같았다.”--- ‘나의 악카 방문기 초(抄)’26쪽 그분은 아름답고 향기 좋은 꽃을 많은 방문객들에게 선사하기 를 좋아하셨다. 쏜톤 췌이스 씨는 압돌바하의 악카에서의 옥중 생활의 인상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들은 이‘최대의 감옥’에 그분과 함께 5일간 머물러 있 어 죄수생활을 하였다. 그것은 평화와 사랑과 봉사의 감옥이었 다. 거기에는 인류의 선(善)과 세계의 평화와, 하느님의 피조 물이요 그분의 아들딸인 인간으로서, 하느님이 아버지임과 인 간 서로의 권리를 인증하는 것 외에 다른 아무런 욕망도 소원 도 없었다. 실제의 감옥, 숨 막히는 분위기, 인간의 진정(眞情) 에서 격리(隔離)되는 것, 세상 조건의 속박 같은 것들은 이상 하게도 이 석벽(石壁)안에서는 그림자도 볼 수 없었고, 여기에 서는 다만 자유와 깨끗한‘하느님의 정신’이 넘쳐흐를 뿐이요, 모든 근심과 소란과 세속 걱정 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다.”--- ‘갈릴리에서’24쪽 보통 사람들에게는 감옥생활이란 비참한 고난이 아닐 수 없건 만 압돌바하에게는 그것이 조금도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옥중 에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나의 감금과 화난을 슬퍼하지 말라. 이 감옥은 나의 아름다 운 화원이요, 내가 사는 낙원이요, 인류를 지배하는 왕좌(王 座)이기 때문이다. 옥중의 화난이 내게는 외로운 자 가운데서 영광을 받는 왕관이다. 고난과 빈곤과 중병의 상태에서도 행복 을 느끼고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존귀한 증거이다.” 78 바하올라와 신시대
  • 85.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2권258, 263쪽 터키 조사위원회 압돌바하에 대한 소송에 대하여 1904년과 1907년 터키정부 로부터 조사위원회가 임명되었다. 거짓으로 꾸며진 증인들은 그분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였다. 압돌바하께서는 이 소송에 대 하여 반박은 하면서도 법정의 어떠한 판결에도 복종할 용의가 있음을 표시하셨다. 비록 투옥되거나 거리를 끌려 다니거나 저 주받거나 얼굴에 침을 뱉거나 돌멩이에 맞는 등 어떠한 모욕을 받더라도, 또 혹은 교수형(絞首刑)이나 총살형을 당할지라도 그분은 오히려 행복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조사위원회가 조사하는 도중에도 그분은 평정한 마음으로 정 원에 과수를 심기도 하시고 결혼식 사회를 보시기도 하면서 평 상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셨다. 이태리 영사가 비밀히 그분을 희 망하는 외국 항구에 안전하게 보내주겠다고 말해 왔으나 그분 은 이에 대하여 감사는 하면서도 굳이 사절하셨다. 그리고 비록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자기는, 결코 적에게서 도피하거나 자 신을 구출하려고 하지 않은 바압과‘축복받은 완전’의 뒤를 따 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많은 바하이들에 대해 서는 당시 매우 위험상태에 있는 악카 부근으로부터 퇴거할 것 을 권고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몇 사람의 충실한 신자들과 함께 그곳에 남아 있어 그 운명을 기다리셨다. 1907년 초겨울에 4명의 부패한 관리가 최후의 조사위원으로 서 악카에 와서 1개월간 머물며 그 소위 조사를 마치고, 압돌바 하의 혐의는 사실에 근거한다는 보고로써 그분을 추방이나 사 79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 86.
    형에 처할 것을권고하기 위하여 콘스탄티노플을 향하여 떠났 다. 그러나 저들이 터키에 도착할 무렵 바로 그곳에서 혁명이 일어나, 구 정권 하에 있는 저들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새로 정권을 잡은 청년 터키는 오토만 제국 하의 모든 정치적, 종교적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압돌바하께서도 1908년 9월 마침내 석방되셨고, 그 이듬해에 황제 압돌하밋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서양 여행 석방 후의 압돌바하께서는 여전히 설교와 통신과 빈곤자 및 질병자들의 구호에 그 성스러운 생활을 바치면서 그 동안 악카 에서 하이파로, 다시 알렉산드리아로 옮기셨고, 1911년 8월 처 음으로 서양 여러 나라에 여행을 떠나셨다. 서양 여행 중 그분 은 각양각색의 의견을 가진 여러 방면의 사람들을 만나‘혼연히 모든 사람과 사귀라.’는 바하올라의 가르침을 충실히 수행하셨 다. 그분은 1911년 9월 초 런던에 도착하시어 거기서 1개월을 지내시는 동안 매일 질문자들과 담화하시고 기타 활동을 하시 는 한편, 씨티 템플에서 R. J. 캠벨 대사(大師)가 주관하는 모임 과 웨스트민스터의 성 요한성당에서 윌버포오스 부감독이 주재 하는 모임에서 강연하셨으며, 또 시장과 아침식사를 같이 하기 도 하셨다. 런던을 떠나 파리에 건너가신 그분은 거기서도 매일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게 강연도 하시고 담화도 하시면서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셨다. 12월에 이집트에 돌아오셨다가 다음 해 봄 아메리카 바하이 벗들의 열렬한 초청에 응하여 미국으로 건 너가셨다. 1912년 4월 뉴욕에 도착하셨다. 이후 9개월 동안 그 분은 아메리카의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대학생, 사회주의자, 8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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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페란티스토의 모임, 평화협회,신 사상클럽, 부인참정협회 등 여러 종류, 여러 경우의 사람들에게 강연하시고, 또 거의 모 든 종파의 교회에서 그때그때의 청중들에게 적당한 강연을 하 셨다. 12월 5일 다시 영국을 향발하여 리버풀, 런던, 브리스톤, 에딘버러 등지를 6주일간 역방하셨다. 에딘버러에서는 에스페 란토 협회에서 주목할 만한 강연을 하셨다. 그 강연에서 그분은 동양과 서양이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위하여 동방의 바하 이들에게 에스페란토의 습득을 권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2개월 동안 파리에서 전번과 같이 매일 회견과 회합을 가 짐으로써 분주히 활동하신 후 스투트가르트에 가셔서 독일의 바하이들과 성공리에 회합을 거듭하고, 다시 거기서 부다페스 트와 뷔엔나에 가셔서 가는 곳마다 새 집단을 창설하면서 1913 년 5월에 이집트에 도착하셨고, 그해 12월 5일 하이파에 돌아 오셨다. 성지에 귀향 당시 70세인 그분은, 그 오랜 동안 고생하시면서 애쓴 활동이 이 분투적인 서양여행에서 그 최고조에 달하여 마침내 신체의 건강을 해침에 이르렀다. 그분은 여행에서 돌아오시어 동서양 의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서한을 쓰셨다. “벗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서 떠날 시기가 가까워졌습니다. 나는 전력을 다하여 가능한 한도까지 바하올라의 대업에 봉사 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전 생애를 통하여 밤낮으로 노력을 다 하였습니다. 나는 신자들에게 이 대업에 대하여 충분히 그 책임을 다해줄 81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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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을 얼마나 바랐던가!지금이야말로‘압하(최상의 영광)의 나 라’를 선전할 때요, 지금이야말로 결합 협동할 때요, 지금이야 말로 하느님의 벗들이 정신적으로 화합할 때입니다........ 나는 동서남북으로 귀를 기울여 신자들의 모임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우정의 노래를 들으려 하노니, 여명(餘命)이 얼마 없는 나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기쁨입니다. 나는 빛나는 일련의 진주와도 같이, 하늘에 반짝이는 성좌 (星座)와도 같이, 태양의 광선과도 같이, 한 목장의 양떼와도 같이 벗들이 일치단합해 주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신비의 꾀꼬리가 저들을 위하여 노래하거늘 들리지 않는가. 낙원의 새가 지저귀거늘 들리지 않는가.‘압하의 나라’의 천사 가 저들을 부르거늘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는가. 성약의 사자가 호소하거늘 따르지 않으려는가. 나는 기다립니다. 모든 신자들이 성실과 충의의 체현(體現) 이요 신애와 화목의 화신(化神)이며, 화합과 일치의 시현(示 現)이라는 기쁜 소식을 나는 기다립니다. 그대들은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않으려는가. 그대들은 나 의 소원을 채워주지 않으려는가. 그대들은 나의 호소에 유의 (留意)하지 않으려는가. 그대들은 나의 희망을 이루어 주지 않 으려는가. 그대들은 나의 부름에 응하지 않으려는가. 나는 기 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아맏 소오랍의 일기 (1914. 4. 2.) 바압께서 적들의 포악에 희생되시고, 바하올라께서는 향토를 8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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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쫓겨나셔서 옥중에서 일생을보내시고, 다시 바하올라께서 세 상을 떠나심으로써 그 기세가 한층 강해진 바하이 대업의 적들 은, 이제 압돌바하께서 서양여행에서 돌아오신 후 건강을 해하 여 쇠약해졌음을 보고는 더욱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들의 희 망은 다시 실망으로 변하고 말았다. 얼마 후에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실 수 있었다. “물론, 이 육체와 인간의 정력이 끊임없는 노력과 긴장에 감 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요청된 분’의 원조의 힘은 이 약소하고 비천한 압돌바하의 수호가 되고 지도가 되었 다........ . 어떤 사람들은 압돌바하의 체력이 완전히 쇠잔하여 이제 이 세상에 최후의 고별을 하게 될 것이요, 그의 생명에는 종말이 왔다고 떠드는 모양이나 그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성약 파괴자와 뜻이 악한 무리의 이러한 관측에도 불구하고 성 스러운 길에서의 시련으로 인하여 내 몸이 비록 약해지기는 했 으나, 하느님께 영광 있으옵소서,‘축복받은 완전’의 섭리에 의하여 나의 정신력은 더욱 더 젊어지고 왕성해졌다. 그리하여 지금 하느님께 감사하노니, 바하올라의 축복으로써 나의 정력 이 회복되어 신성한 기쁨이 넘쳐흐르고, 무상의 기쁜 소식이 찬연히 빛나 지상(至上)의 행복이 내 가슴에 충만하게 되었 다.”---‘서방의 별’제5권 14호 213쪽 유럽의 대전 중과 대전 후에, 압돌바하께서는 다망한 활동 중 에 사람들을 감동케 하는 서한을 여러 방면에 보내셨는데, 이 서 한들은 통신이 다시 열렸을 때 전 세계의 신자들에게 봉사의 새 로운 열과 충성을 다시 환기시켰다. 그리하여 그 감격 속에 이 대업이 약진하여 도처에 이 신앙의 새 세력이 나타나게 되었다. 83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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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중의 하이파 압돌바하의선견지명(先見之明)에 있어 그 주목할 만한 실례 가 대전 직전 몇 달 동안에 있었다. 종래 평화 시에는 페르시아 와 그 밖의 세계 각지로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하이파를 방문하 였다. 대전이 일어나기 약 6개월 전 하이파에 사는 어떤 늙은 바하이로부터 페르시아의 신자 몇 사람이‘사부님’을 방문할 것을 신청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압돌바하께서는 그것을 허가 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하이파에 와 있는 순례자들을 그때부 터 점차로 귀환시켜 1914년 7월 말에는 그 전부를 떠나 보내셨 다. 그리하여 8월 상순에 저 대 전쟁이 일어나서 세계를 뒤흔들 었을 때 그분의 선견지명이 분명하게 알려졌다. 대전이 일어남과 동시에, 이미 55년간 추방과 감옥살이로 지 낸 그분은 이제 다시 사실상 터키정부의 수인(囚人)이 되셨다. 시리아 이외에 있는 신자와 벗들과의 통신은 전혀 허락되지 않 았고, 그분과 그분을 추종하는 몇 사람의 신자들은 식량의 부족 과 생명의 큰 위험과 그 밖의 모든 불편과 싸우지 않을 수 없는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전쟁 중의 압돌바하께서는 주위의 사람들의 정신적 및 물질적 곤란을 원조하기 위하여 다망한 시일을 보내셨다. 그분은 티베 리아 부근에 대규모의 농업을 일으켜 다량의 밀을 생산하여 바 하이 뿐 아니라 하이파와 악카에 있는 모든 종교의 신자들의 굶 주림을 널리 구제하셨고, 모든 사람을 돌보아 될 수 있는 한, 그 곤란을 경감시켜 주셨다. 매일 수백 명의 궁민들에게 적은 돈을 주시고 빵도 주셨다. 빵이 없을 때는 대추야자의 씨나 그 밖의 다른 것을 주셨다. 또 자주 악카에 가셔서 거기 있는 신자와 궁 8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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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들을 위로하시고 구조해주셨다. 그리고 전쟁 중에 그분은 매 일 신자들과 회합을 가지셨고, 그분의 도움으로써 저들은 이 동 란의 여러 해를 평온과 행복 가운데에서 지낼 수 있었다. 대영제국의 훈작사(KNIGHT) 압돌바하 압바스 1918년 9월 23일 오후 3시, 1주야에 걸친 전투 끝에 하이파 가 영국 및 인도의 기병대에 점령되어, 터키 통치 하에서의 전 시의 무서움이 가셨을 때 시민들의 기쁨은 대단하였다. 영국군의 점령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각 계급의 군인과 정부관 리와 그 최고층의 인물들까지도 연달아 압돌바하에게 면회를 청하여, 그 명쾌한 담화와 광박한 식견과 심원한 통찰(洞察)과 점잖은 예의와 온화한 접대에 크게 기쁨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 분의 고상한 품성과 평화를 촉진하고, 인류의 참된 번영을 위한 위대한 공헌에 영국정부 당국자들은 깊이 감동하여, 압돌바하 에게 대영제국의 나이트작(K. B. E.)을 수여하게 되어, 그 수작 식(授爵式)이 1920년 4월 27일 하이파 군정총독의 정원에서 거행되었다. 만년(晩年) 1919년부터 1920년에 걸쳐, 저자는 하이파에 계신 압돌바하 의 빈객으로서 2개월 반 동안 친히 그분의 일상생활에 접하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당시 그분은 76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비상한 원기로써 매일 경탄할 만치 많은 일을 하셨다. 그분은 가끔 피로해 보이는 때가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곧 회복 하는 힘을 가지셨다. 그리하여 그분의 봉사의 활동은 가장 그분 85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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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필요로 하는여러 사람에게 언제든지 제공되었다. 그분의 한 없는 참을성과 온화하고 친절하고 슬기로움은 그분의 존재를 축복해 주는 것이었다. 매일 밤 시간의 대부분을 기도와 명상으 로 보내는 것이 그분의 습관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사이에는, 점심 후에 짧은 낮잠 외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편지 를 읽으시고 회답하는 일과 여러 가지 집안 사무와 바하이 대업 을 위한 일에 종사하셨다. 오후에 대개 산책이나 드라이브로써 잠시의 휴식을 취하는 일이 있으나, 이런 때에도 2~3명 혹은 여러 사람의 순례자를 동반하여 정신적인 문제를 논하기도 하 시고 도중에 어떤 빈민을 방문하여 도와주기도 하셨다. 외출에서 돌아오시면 그분은 객실에 벗들을 불러 저녁모임을 하셨다. 점심과 저녁식사에는 대개 순례자와 벗들과 식탁을 같 이 하시어, 풍부한 화제로써 귀중한 말씀을 하시어 재미있는 이 야기로써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하셨다. 그분이‘우리 집은 웃음 과 열락(悅樂)의 집안’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실제로 그 러하였다. 그분은 여러 가지 다른 인종, 민족, 국가, 종교의 사 람들과 아무 격의(隔意)없이 마음을 터놓고 진정어린 식탁에 둘러앉는 것을 매우 좋아하셨다. 진실로 그분은 하이파에 있는 조그마한 일단(一團)의 사랑하는 아버지 일뿐 아니라 전 세계 바하이 공동체의 아버지셨다. 압돌바하의 서거 압돌바하의 다방면의 활동은, 점차 쇠약해 가는 신체의 피로 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생애의 임종 며칠 전까지 별로 감소되는 일이 없이 계속되었다. 1921년 11월 25일 금요일 그분은 하이 파의 이슬람교 사원의 정오 기도회에 임석하신 다음 여전히 몸 8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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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궁민들에게 희사를하셨다. 점심 후에 몇 통의 서한을 구수 (口搜)하시고, 휴식하신 다음 정원에서 정원사와 이야기 하셨 다. 그리고 저녁에, 이날 결혼한 충성스러운 봉사자에게 축복과 훈계를 주신 다음 평소와 다름없이 그분의 객실의 바하이 모임 에 참석하셨다. 그로부터 3일도 못되는 11월 28일 오전 1시 30분경 그분은 아주 고요히 세상을 떠나셨다. 옆에 모시고 있 는 그분의 따님 두 분도 그분이 평온히 잠들어 계신 줄로만 알 았다. 슬픈 소식이 곧 시내에 퍼지고 조전(弔電)이 세계각지에 전해 졌다. 이튿날 아침 (11월 29일 화요일)에 장의가 집행되었다. “이와 같은 장의는 하이파, 아니, 전 팔레스타인에서도 일찍 이 본 일이 없었다........ 수 천 명의 모든 종교, 민족, 언어를 대표하여 모인 애도자들의 슬픔은 참으로 큰 것이었다. 총독 허버트 사무엘씨, 예루살렘 지사, 페니키아 지사, 정부 요인들, 하이파 주재의 각국 영사, 여러 종교단체의 영수, 팔레 스타인의 명사들, 유대교도,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드루즈교 도, 이집트인, 그리스인, 터키인, 쿠르드인, 그리고 아메리카, 유럽 및 국내의 벗들,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그 수가 실로 1만을 헤아렸으며, 그들은 모두 그 친애하는 분 의 영결을 애도하여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하느님, 하느님, 우리의 아버지는 가셨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가셨습니다.’ 하며 슬퍼하였다. 저들은 천천히‘하느님의 포도원’인 칼멜산을 향하여 걸었 다....... 도보로 2시간, 일행은 바압의 무덤이 있는 동산에 도 87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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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하였다........ 군중이 영구(靈柩)의주위에 모였을 때, 이슬 람교, 기독교, 유대교의 각파 대표들은 압돌바하에 대한 애착 의 정이 가슴에 차서, 어떤 사람은 그 현장의 상황에 감격하고, 어떤 사람은 미리 준비해 온 애석과 찬송의 사(詞)를 낭독하여 저들은 다 같이 압돌바하를, 이 괴롭고 혼란한 시대의 좋은 교 사로서 조정자(調停者)로서 찬상하여 마지않았으므로 바하이 로서는 그 이상 더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레이디 블롬 필드와 쇼기 에펜디의‘압돌바하의 서거’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신자 사회의 대표로 저명한 인사 9 인이 지금 최후의 막을 닫은 이 순결하고 고귀한 생애에 대하여 모두 웅변으로써 애절한 경애의 뜻을 표한 다음, 관은 고요히 간소하고 신성한 영원의 안식처에 놓여졌다. 모든 종교, 인종, 언어의 통일을 위하여 전 생명을 바쳐 봉사 하신 분에 대한 기념으로써는 이것이 진실로 적절한 헌송(獻 頌)이었다. 이것은 또한 압돌바하의 일생의 사업이 헛되지 않았 다는 것과 그분의 영감(靈感), 아니, 그분의 생활 그것이었던 바하올라의 이상(理想)이 이미 세계에 침투하기 시작하여, 여 러 세기에 걸쳐 이슬람교도, 기독교도, 유대교도들을 서로 이반 (離反)케 한 종파와 계급의 장벽을 타파하고, 인류 가족을 분열 시킨 여러 가지 파당을 없애기 시작한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저서와 강연 압돌바하의 저서는 대단히 많은데 그 대부분이 신자와 구도자 에게 주는 서한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훌륭한 그분의 담화들과 연설들은 기록되었고, 그 중 많은 부분이 출판되었다. 또 많은 8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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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자 중에는 저들의인상을 기술하여 둔 이가 많고, 이러한 기록은 지금 대개 출판되어 있다. 그분의 가르침은 이와 같이 완전히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그 취급한 범위가 또한 극히 광범위하다. 동양과 서양과의 많은 문 제에 대하여, 그분은 바하올라에 의하여 정해진 일반원칙의 적 용을 구체적으로 다루어 아버지 바하올라보다도 더 자세히 설 명하셨다. 그분의 저서로써 아직 서구 언어로 번역되지 않은 것 이 많다. 그러나 그분의 교의(敎義)의 가장 중요한 원칙에 대하 여 깊고 완전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충분히 번역되었다. 그분은 페르시아어와 아라비아어, 그리고 터키어를 사용하셨 다. 서양 여행 중에는 그분의 담화와 강연이 언제나 통역되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 독특한 아름다움과 능변과 힘을 잃은 것은 틀 림없으나 그분의 말씀에 따르는 정신적 위력이 비상하여 청중 이 모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압돌바하의 지위 압돌바하께서‘축복받은 완전’에 의하여 주어진 독자적인 지 위는 바하올라의 다음과 같은 서한에 표시되었다. “나의 출현의 바닷물이 퇴조(退潮)하고 나의 계시의 글이 끝 나거든, 너희는 하느님이 뜻하신 바 이 고래의 뿌리에서 갈린 그에게 너희의 얼굴을 돌리라.” 그리고 또 “너희가 만일‘계시의 글’에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있거든 이 89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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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위 있는 혈통에서갈린 그에게 물으라.” 압돌바하 자신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케타베 악다스’의 명문(名文)에 의하여 바하올라께서는 ‘성약의 중심’을 그분의 말씀의 해석자로 정하셨다. 이 성약은 태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종제(宗制)에서도 만들 어 내지 못하리만큼 확고하고 강대한 것이다.” 압돌바하께서 동서양에 바하올라의 신앙을 전파한 그 봉사의 완전함이, 때로는 그분의 지위에 대한 신자의 인식에 혼란을 일 으켰다. 많은 전통적 교의의 붕괴를 명시하는 종교적 영향력 가 운데서, 압돌바하의 말씀과 행동에 생기를 주는 그 정신의 순수 성(純粹性)을 의식하면서 많은 바하이들은 압돌바하를 현시자 와 같이 보기도 하고, 혹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분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압돌바하께서 바하올라께 봉사하는 자격이‘진리의 태양’을 향한 거울의 맑 음에서 발한 것이지,‘태양’자체에서 온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함을 그분은 매우 슬퍼하셨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종제와는 달리, 바하올라의 신앙은 그 내 부에 세계 인류사회의 잠재성(潛在性)을 보유하고 있다. 1902 년부터 1921년까지 압돌바하께서 그 사명을 가지고 계신 기간 중에 바하이신앙은 계속적 발전의 몇 단계를 참다운 세계질서 의 방향을 향하여 전개하였다. 이 발전은 이 시대의 지상에 나 타난 강하고 새로운 영감을 충분히 인식한 단 한 사람인 압돌 바하의 끊임없는 지도와 특별한 가르침을 필요로 하였다. 압돌 바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그 분 자신의‘유훈’이 공개되고 90 바하올라와 신시대
  • 97.
    바하이신앙의 초대 수호자쇼기 에펜디에 의하여 그 의의가 설 명되기까지, 바하이 신자는 사랑하는‘사부’의 지도가 거의 필 연적으로 현시자와 같은 정도의 정신적 권위를 가진 것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소박한 열의(熱意)의 반향은 이제는 바하이 공동체 안에서 느끼지 않게 되었고, 그 비류 없는 헌신과 봉사의 신비 를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오늘의 바하이 신자들은 압돌바하께서 성취하신 사명의 독특한 성격을 깨닫게 되었다. 구현자(具現 者)이시며 해석자이신 그분의 추방과 감금으로 인하여 1892년 에 매우 약해진 것처럼 보였던 바하이신앙은 그 후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써 무릇 40개국에 공동체를 세워, 절망적인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는 가르침만으로써 쇠퇴해가는 문명의 약점에 도 전(挑戰)하고 있다. 압돌바하께서는 그분의‘유훈록’에서 바압과 바하올라의 지 위의 비밀과 그 자신의 사명의 비밀을 명백히, 그리고 완전히 표시하셨다. “바하의 백성(내 생명이 저들을 위하여 바쳐지기를 기원함) 의 신앙의 기초는 다음과 같다. 성스러운 높으신 분(바압)은 하느님의 일체성과 유일성의 현 시자요,‘고래의 미’의 선구자이시다. 성스러운‘압하의 미’ (내 생명이 그의 변함없는 벗을 위하여 희생되기를 기원함)는 하느님의 최상의 현시자요,‘최고의 신성(神性) 본질의 여명’ 이시다. 그 밖의 모든 사람은 그분을 섬기는 자요, 그분의 명령 대로 움직이는 자이다.” 91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 98.
    이 성명과 우리들의신앙에 대한 지식이 압돌바하의 일반적 서한에 의존하는 중요성을 강조한 그분의 다른 많은 성명에 의 하여 신앙의 일체제(一體制)가 확립되어, 그 결과로, 개인적인 질문에 대답한‘사부’의 서한을 참조함으로써 생기는 이해(理 解)의 상위는 급속히 소멸되었다. 그리고 수호자를 수반으로 한 명확한 행정질서의 설립에 의하여, 과거에 여러 지방 소단체 안 에서 개인 바하이의 위엄과 힘으로써 지배되었던 모든 권위가 신설된 운영기관으로 옮겨졌다. 바하이 생활의 구현자(俱現者) 바하올라께서는 원래‘말씀’의 계시자이셨다. 그분은 40년간 의 감금생활로 인하여 그 동포들과의 접촉을 많이 제한받으셨 다. 그러므로 계시의 설명자가 되시고,‘말씀’의 실행자가 되시 며, 여러 가지 활동의 가장 복잡한 형태에서 오늘의 세계와 실 제로 접촉하여, 바하이 생활의 위대한 구현자가 되는 중요한 임 무가 압돌바하에게 지워졌다. 즉 그분은 근대생활의 분류(奔 流)속에서, 도처에 편만한 이기욕(利己慾)과 물질적 번영을 위 해 싸우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바하올라, 그 밖의 모든 예언 자들이 인류에게 요구한 생활, 즉 하느님에게 완전히 귀의(歸 依)하고 인류에게 봉사하는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셨 다.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시련과 고난과 비방과 배반의 소용돌 이 속에서 견디어 참으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과 칭송과 헌 신과 존경을 받으시면서 그분은, 주위에서 겨울의 눈보라가 휘 몰아치거나 여름 바다의 노도(怒濤)가 들볶아 쳐도 꿈적 않는 바위 위에 세워진 등대와도 같이, 광란 노호하는 가운데서 조금 도 흔들리지 않으시고 태연 자약히 서 계신 것이었다. 그분은 92 바하올라와 신시대
  • 99.
    자신이 몸소 신앙생활을하셨고, 그분을 따르는 자에게 지금 곧 여기서 신앙생활을 하라고 호소하셨다. 그분은 전쟁하는 세계 의 한복판에서 융합과 평화의 깃발, 신시대의 큰 깃발을 세우시 고, 그분을 지지하는 자들은 신시대의 정신으로써 고무될 것을 보증하셨다. 그것은 과거의 예언자, 성자들을 고취한 성령의, 신시대의 요구에 적응한 새로운 발로(發露)에 의한 것이다. 93 제 4 장 하압돌바하(바하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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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5 장 바하이란무엇인가? 사람은 열매를 맺어야 하나니, 열매를 맺지 않는 자는‘거룩 한 정신’즉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하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 와 같고,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마땅히 불에 던져져야 하느 니라. --- 바하올라의‘천국의 말씀’ 하버트 스펜서는 일찍이 말했으되, 납(鉛)의 본능에서 황금의 행위를 나게 하는 정치적 연금술(鍊金術)은 없다고 하였다. 마 찬가지로 납의 개인들로서 황금의 사회를 이룩하는 정치적 연 금술이란 있을 수 없다. 바하올라 또한 모든 옛날의 예언자와 같이 이 진리를 주장하여, 이 세상에‘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함 에는 그것이 먼저 인간의 마음 가운데 건설되어야 한다고 가르 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바하이 가르침을 연구함에 있어 서 먼저 개인의 행위에 대한 바하올라의 교훈으로부터 시작하 여 바하이란 것의 의의(意義)에 대하여 명확한 이해를 가지고 자 한다. 삶의 영위 어느 때,‘바하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압돌바하께 서는 대답하셨으되, 바하이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전 세계를 사 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며, 그에 봉사하여 세계의 평화와 인류애 95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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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위하여 활동하는것이라고 하셨다. 또 다른 기회에 그분은 바하이란‘활동하고 있는 인간의 모든 의미에서 완전성을 가진 자’라고 정의하셨다. 런던에서의 어느 강연에서 그분은, 비록 바하올라의 이름을 들은 일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바하이가 될 수 있다고 하시고 다음과 같이 부언하셨다. “바하올라의 가르침에 따라서 생활하는 자는 이미 바하이인 것 이다. 이와 반대로, 비록 자신이 50년간 바하이였노라고 하여 도 그 생활이 바하이답지 않으면 그는 바하이가 아닌 것이다. 추하게 생긴 사람이 예쁘노라고 자칭하여도 속는 사람이 없을 것이요, 흑인이 백인이라고 자칭할지라도 누구나 속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런던에서의 압돌바하’109쪽 여기에 인용된 압돌바하의 말씀은 바하올라에 대한 신앙 상 태와 동일하게 보이는 질(質)과 아름다운 점에 대한 중요한 주 석이다. 그러나 바하이 공동체원의 정의로서는, 이 글을 만일 압돌바하에 의하여 씌어진 확실한 성명서나 그 밖의, 예컨대 그 분의‘유훈’등에 비추어 읽지 않으면 불완전하다. 이 개정판에 는 오늘날 바하이신자의 신앙에 대한 판정인, 수호자에 의한 바 하이신자의 정식 정의가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바하이신자에 대한 개념에는 네 가지 다른 요점이 내포되고 조화되어 있다. 즉 미덕(美德)의 표준, 예찬과 예배의 초점, 지식의 체계(體係) 및 사회기율(社會紀律)이 그것이다. 호의나 봉사만으로써 바하 이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또 교의(敎義)를 인정한다고 자칭 할지라도 그 사람이 만일 바하올라의 가르침에 의한 종교적 신 세계 공동체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바하이신자가 될 수 없는 것 이다. 9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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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하느님의 사자’를 알지못하는 인간은 그늘에서 자라 나는 식물과도 같아서 그는 태양을 몰라도 절대적으로 태양에 의존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예언자들은 정신적 태양이 요, 바하올라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태양이다. 과거에는 과거의 태양이 이 세계에 온도와 생기를 주었다. 만일 이러한 태양이 없었더라면 세계는 식어서 없어졌을 것이다. 그 러나 이러한 과거의 태양이 길러 놓은 과실을 성숙케 할 수 있 는 것은 오늘의 태양뿐이다. 하느님께 대한 헌신 완전한 바하이생활에 도달함에는 마치 백합꽃이나 장미꽃이 피는 데에 햇빛이 필요한 것처럼 바하올라와의 의식적이고 직 접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바하이는 바하올라의 인간으 로서의 인격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격을 통하여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예배하는 것이다. 바하이는 그리스도, 모하 멧, 그 밖의 과거에 인류에게 보내어진 모든 하느님의 사자를 존경하지만 바하올라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신시대를 위하여 하느님의 선탁(宣託)을 전하는 분으로서, 그리고 그 선행자(善 行者)들의 업을 실행하고 성취시키는 위대한‘세계교육자’로서 받드는 것이다. 신조에 대하여 단지 지적(知的)으로 찬동하는 것으로써 바하 이가 되는 것이 아니요, 또 단지 외면적으로 바른 행위를 한다 고 하여 그 사람이 바하이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바하올라께 서는 그 신자들에게 지극히 순수하고 완전한 헌신을 요구하셨 다. 이와 같은 요구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데, 바하올 라께서는 하느님의 현시자, 하느님의 뜻의 계시자로서 말씀하 97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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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것이다. 바하올라이전의 현시자들께서도 이점에 관해서는 모두 같았으니,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 으리라.”--- 마태복음 제 16장 24~25절 말의 표현은 다르지만 모든 신성한 현시자들께서도 한결같이 그 신도들에게 이와 같은 요구를 하셨으며, 이러한 요구가 솔직 하게 승인되고 받아들여지는 동안은 어떠한 세속적인 반대나 신자들의 고난, 박해, 순교가 있을지라도 그 종교가 번영하였다 는 것을 종교역사가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반하여 타협 심이 스며들고 이른바‘명망심’이 헌신 봉사의 정신에 대체(代 替)하게 될 때 그 종교는 곧 쇠퇴하고 마는 것이다. 즉 종교가 시대유행에 영합할 때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고 개선하는 능력 과 기적을 행하는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진정한 종교는 결코 유행적이었던 예가 없다. 하느님께서 종교가 그렇게 됨을 언제 한번인들 허용하셨으랴. 그러나 그리스도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으니 라.’(마태복음 제 7장 14절)고 한 것은 진리다. 정신적 탄생의 문은 자연의 탄생문과 같아서 한 사람 한 사람 씩 알몸으로 들 어가게 한다. 만일 장래에 과거보다 많은 사람이 이 길에 들어 감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이 문은 넓어진 것이 아니 라 단지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대귀의’(大歸依) 의 정신이 왕성하여진 때문이다. 왜냐하면 오랜 동안의 쓰라린 경험에 의하여 사람들이 마침내, 지금까지 하느님의 길을 택하 9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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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않고 자아(自我)의길을 택하여 온 어리석음을 깨달음에 이 른 때문이다. 진리 탐구 바하올라께서는 모든 신자에게 정의(正義)를 설(說)하시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定義)하셨다. “일체성의 눈으로써 하느님의 현시자를 알아보고, 만사를 날 카롭게 통찰할 수 있도록 인간을 미신과 모방에서 해방하는 것 이다.”---‘지혜의 말씀’ 즉, 각 개인은 몸소 바하올라의 인격에 현시된‘하느님의 영 광’을 보고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하이신앙은 그에게 아무 의미 없는 명목에 불과할 것이다. 예언자들께서 사람들에 게 요구하신 것을 각자가 눈을 떠서 그것을 감지 말고, 이성(理 姓)을 써서 그것을 억누르지 않는 것이다. 편견의 구름을 통찰 하고 맹목적인 모방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계시의 진리 를 체득(體得)함에는 명확한 식견과 자유스러운 사고(思考)로 써 해야지 노예적인 경신(輕信)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바하이가 되고자 하는 자는 용감한 진리탐구자가 되어야 하나 그것은 결코 이 탐구를 물질계에 한해서는 안된다. 그 물질적 감수성(感受性)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감수성도 각성해야 한다. 타당하고 충분히 조리에 맞는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말고, 진리를 얻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능력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만일 마음이 깨끗하고 편견이 없는 성실한 구도자(求道 者)라면 어느 사원(寺院)에서든지 그곳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 99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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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을 보는 데에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시 이 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고, 존귀와 비천, 영예와 치욕, 또는 가난과 부유에 이르게 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타라자트의 서한’ “모든 학문의 근원은 하느님을 아는 것이다. (하느님께 영광 있을 진저) 그리고 이 지식은 하느님의 신성한 현시자에 의하 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지혜의 말씀’ 현시자는 곧 완전한 인간이요, 인류의 위대한 구현자요, 인류 라는 나무의 첫째 열매이다. 우리는 현시자를 모르고서는 우리 안에 잠재한 여러 가지 능력을 알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백 합이 어떻게 하여 생장하는가를 보라고 하셨고 또 선언하셨으 되, 솔로몬은 그 전성시대에도 몸차림이 한 송이 백합꽃만 못했 다고 하셨다. 우리가 만일 백합이 그 찬란하게 핀 모습을 보지 않고 그 꽃과 잎의 비류 없는 아름다움을 보지 않았다면 그 구 근(球根)에 감추어진 실재(實在)에 대하여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구근(球根)을 아무리 조심히 해부하여 아무리 정밀히 검사할지라도 우리는 정원사가 불러일으킬 줄 아는, 그 속에 잠 재해 있는 미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는 현시자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영광을 보기 전에는 우리와 우 리의 이웃사람의 안에 잠재해 있는 정신적 미에 대하여 아무런 관념도 가질 수 없다. 다만 하느님의 현시자를 알고 그분을 사 랑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조금씩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완전성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니, 그때에야 비로소 인생과 우주의 의의와 목적이 우리에게 명확히 알려지게 되는 10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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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 하느님의현시자를 아는 것은 또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는 분리하여 생각할 것이 아니다. 바하올 라에 의하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인간이 하느님을 알고 그분 을 경배함에 있다. 바하올라께서는 어느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잘 알려져 있는 전설에‘나는 숨겨진 보물인데 사람에게 알 려지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나는 알려지기 위하여 만물을 창조 하였다.’고 하신 바와 같이 만물창조의 원인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또‘숨겨진 말씀’가운데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존재의 아들아! 나를 사랑하여 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라.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사랑이 그대에게 이를 길이 전혀 없느니라. 오! 종아, 이를 알아 두어라.” “놀라운 시야의 아들아! 나는 그대 안에 나의 정신의 입김을 불어 넣어 그대가 나의 연인이 될 수 있도록 하였노라. 어찌하 여 그대는 나를 버리고 다른 임을 얻으려고 하느냐?” 하느님의 애인이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바하이에게 유일한 인생의 목적이다.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을 가장 친애하는 동반 자로, 가장 친밀한 벗으로, 다시없는 총애자로 삼는 자는 기쁨 이 넘쳐흐른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만물을 사랑하 고 만인을 사랑함을 의미하나니,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왔기 101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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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문이다. 진정한 바하이는가장 완전한 사랑의 길을 아는 자이 다. 그는 만인을 순결한 마음으로써 사랑할 것이요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사랑하는 자의 모습’을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그리고 하느님의 자취를 어디서나 발견할 것 이므로 누구나 멸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사랑은 종파와 국가 와 계급과 인종 등에 의하여 막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바하올 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옛날에는‘조국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의 신앙의 일부’라 고 계시되어 있었지만‘장엄의 혀’는 그 현시의 날에 성명하셨 으되,‘자기나라만을 사랑하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인류동포를 사랑하는 것이 자랑이라.’고 하셨다.”---‘세계에 관한 서한’ 그리고 또 말씀하시되, “자신보다 먼저 그 형제를 받드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 같은 자야말로 바하의 백성이니라.”---‘천국의 말씀’ 압돌바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되,‘많은 다른 몸이 한 영혼처럼 되어야 하나니, 서로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하느님께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라.’고 하셨고, 그분은 또 아메리카의 청 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성스러운 현시자들께서 가르치신 신 성한 종교는 이름이 서로 다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이다. 사람은, 그것이 어떤 여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건 빛을 사랑하 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어떤 흙에서 자란 장미꽃이건 그 것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또 그것이 어떤 근원 에서 나온 진리이건 그 탐구자가 되어야 한다. 초롱에 마음이 10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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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리는 것이 빛을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흙에 마음이 끌리는 것보다 흙 위에 자란 장미꽃을 즐기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다. 나무에 애착할 것이 아니라 과실을 먹는 것이 이로운 일이다. 맛있는 과실은 그것이 어느 나무에 열렸건 어디서 생산되었건 좋은 것이다. 진리의 말씀은 누구의 입에서 나왔건 시인되어야 하고, 절대의 진리는 어느 책에 씌어 있거나 용인되어야 한다. 만일 편견에 사로잡히면 그것은 손실과 무지의 원인이 된다. 종교 사이, 국가 사이, 인종 사이의 알력은 오해에서 오는 것이 다. 우리가 여러 종교를 연구하여 그 기초되는 원칙을 발견했 을 때 모든 종교가 일치함을 알 수 있나니, 그 기초적 실체(實 體)가 하나요 여럿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방법에 의하여 전 세 계의 종교가는 통일과 조화의 지점(地點)에 도달할 수 있는 것 이다.” 그분은 또 말씀하셨으되, “사랑받는 자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자기 의 재산과 생명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함에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 다른 사 람들이 또한 각기 무사봉공(無私奉公)의 희생을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이‘아침 해’는 지평선에 떠올라 찬연히 세계를 비 치고, 이‘곡조’는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하며, 이‘신약(神藥)’ 은 만병을 다스리고,‘진리의 정신’은 모든 영혼의 생명의 근 원이 될 것이다.”--‘압돌바하의 서한집’제 1권 147쪽 103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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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 버림 하느님께 헌신한다는것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 아닌 것을 끊어 버리는 것, 즉 모든 사욕과 세상욕심, 다시 더 나아가서 내 세에 대한 욕심까지도 끊어 버림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길은 부 귀와 빈천, 건강과 질병, 궁전과 감옥, 또는 장미원과 고문실을 통하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 어느 것에 당면하든지 바하이는 ‘빛나는 묵종’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 끊어 버리는 태도는 결코 자기의 주위에 대한 막연한 무관심이거나 악조건에 대한 수동적인 체념(諦念)이거나, 또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좋은 것에 대한 경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다. 참다운 바하이는 무감각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또는 금욕적 이 아니다. 다만 하느님의 길에서 무량한 흥취와 활동과 기쁨을 가지되, 쾌락을 얻기 위하여 이 길에서 한걸음이라도 벗어남이 없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금하신 것을 결코 간구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바하이가 된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뜻이 곧 그 사람의 뜻이 되나니,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은 그 사람에게 가장 참을 수 없는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길에서는 어떠 한 잘못을 저질렀어도 놀라지 않고 어떠한 곤란에 부딪혀도 허 둥거리거나 실망하는 일이 없다. 사랑의 빛이 그 사람의 어두운 날을 비치어 괴로움을 기쁨으로 변하게 하고 순교에도 무상의 법열(法悅)을 느끼게 한다. 생명이 크게 고양(高揚)되어 죽음 이 즐거운 모험으로 변하는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말씀하셨 으되, “나 이외의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겨자씨만큼이라도 있는 자 는 나의 왕국에 들어올 수 없느니라.”--- 수라톨 헤이칼 10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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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아들아! 나를사랑하거든 네 자신을 외면하고, 나의 기쁨을 바라거든 너의 기쁨을 생각지 말아라. 그래야 네가 내 안에서 죽을 수 있고, 내가 영원히 네 안에서 살 수 있느니라.” “나의 종아! 이 세상의 족쇄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아의 감옥 에서 그대의 영혼을 풀어 주어라. 그대에게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리니, 이를 꼭 붙들어라.”---‘숨겨진 말씀’ 순종 하느님께 대한 헌신은, 그 명령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지라 도 하느님께서 계시하신‘명령’에 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 부(水夫)가 선장의 명령에 대하여, 그 명령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에 복종하여 선장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이 맹 목적이 아님과 같다. 수부는 선장이 이미 항해자(航海者)로서 의 시련의 공을 쌓아 충분히 그 자격을 가진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선장의 지휘에 복종하는 것이 완전히 어리 석은 일일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바하이는 그 구제의 선장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인데, 이 선장을 신뢰할 수 있는 충분한 증 거를 먼저 확인함이 없이 거기에 따른다면 그것은 더욱 어리석 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 충분한 증거를 얻은 이상 그 명 령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더 더욱 어리석은 일이니, 현명한 주인 에 대한 총명한 복종에 의해서만 우리가 주인의 지혜의 혜택을 입을 것이요, 또 그 지혜를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장이 아무리 현명할지라도 한 사람의 선원도 그에 따르지 않 는다면 배가 어찌 항구에 닿을 수 있으며, 수부가 항해술을 체 득할 수 있으랴. 그리스도께서는 순종이 지식의 길임을 명시하 셨으니, 그분은 말씀하셨으되, 105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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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교훈은 내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니라. 사람 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려면 이 교훈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복음’제 7장 16~17절 바하올라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하느님에 대한 지식은,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바와‘영광의 붓’에 의하여 씌어진‘책’에 계시된 모 든 것을 실행함으로써 얻은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충분히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타잘리야트의 서한’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 시대에는 묵종이란 것이 인기 있는 덕이 아니요, 실제에 있어서 항간의 어떤 보통 사람의 뜻에 절 대로 복종한다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통합이란 것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조화됨으로 써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진실로 이‘뜻’이 분명히 계시되 어 모든 사람이 다른 지휘자를 버리고‘신성한 사자’를 따르지 않는다면 충돌과 쟁투가 한없이 계속되어, 사람들은‘하느님의 영광’과 인류의 공동의 복리를 위한 협조를 헛되게 하는 일에 씌어질 것이다. 봉사 하느님에 대한 헌신은, 또한 우리 인류동포에 대한 봉사의 생 활을 의미하는 것이니, 우리는 이것 외에 달리 하느님을 섬길 길이 없다. 우리가 동포를 등지는 것은 곧 하느님을 등지는 것 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으되,‘이 작은 자 하나에게 하 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태복음 제 2 10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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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45절)고 하셨다.바하올라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만일 자비(慈悲)를 숭상하거든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말고 너의 인류 동포의 이익을 생각하라. 네가 만일 정의를 숭상하거든 너를 위하여 하고 싶은 일을 남 을 위하여 하여라.”---‘천국의 말씀’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바하이 대업에서는 예술과 과학과 모든 기술은 다 하느님께 대한 예배로 간주될 것이다. 즉 의식적으로 전 능력을 기울여, 열심히 그 완성에 힘을 집중하여 한 장의 종이조각을 만드는 자는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자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진심에서 발하는 노력과 수고는 그것이 최고의 동기(動 機)와 인류봉사의 뜻에서 나오는 한,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예 배이다. 봉사는 또한 기도이다. 의사가 친절하고 편견 없이 인 류의 협동을 믿고 환자를 치료한다면 그는 또한 하느님을 찬미 하는 자라고 할 것이다.”---‘압돌바하의 지혜’ 교도 참다운 바하이는 바하올라의 가르침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에서 각자의 전 생활에 대한 지도와 영감(靈感)을 발견 할 것이요, 각자의 존재의 원천인 그 지식을 기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전할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비로소‘성령(聖靈)의 위 력과 확증’을 충분히 받는 것이다. 만인이 모두 웅변인 연설가 가 될 수 없고 능숙한 문필가가 될 수는 없지만 다만 모든 사람 이‘바하이 생활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는 있는 것 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말씀하셨으되, 107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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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하의 백성은 지혜로써주를 섬기고 자신의 생활로써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하느님의 빛을 그 행위에서 나타내어야 한다. 진실로 행위의 효력은 말의 효력보다 강하다....... 교사가 말한 그 말의 효력은, 그 의도의 순결성과 그의 헌신과 태도에 의하 여 달라진다. 말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진실성은 행위에 의하여 음미(吟味)되고 생활에 의하여 증명된다. 행위 는 곧 그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말은‘하느님의 뜻’ 의 입에서 발한 것과 성스러운 서한에 기록된 것에 합치되어야 한다.”---‘지혜의 말씀’ 그러나 바하이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자에게는 어떠한 경우에나 그 신앙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람들을‘하느님 의 나라’로 인도하기는 하지만 결코 몰아넣으려 하지는 않는다. 바하이는 양의 무리를 인도하는 착한 목자(牧者)와 같이 음악 으로써 양을 매혹(魅惑)케 하는 일은 있어도 뒤에서 개와 몽둥 이로써 그들을 몰아가려고 하는 자는 아니다. 바하올라께서는 그분의‘숨겨진 말씀’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티끌의 아들아! 현자는 듣는 이 없으면 말하지 않는 사람이 니, 이는 마치 마시고파하는 이를 찾기 전에는 잔을 올리지 않 는 작인(酌人)과 같으며, 자기 임의 아름다움을 보고서야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소리쳐 부르는 애인과 같으니라. 그러니, 순수한 가슴의 흙에 지혜와 지식의 씨앗들을 뿌리고, 신성한 지혜의 히아신스가, 수렁과 진흙이 아닌 가슴에서 돋아날 때까 지 잘 감추어 두어라.” 10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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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분은 또‘에슈라가트의 서한’가운데서말씀하셨으되, “오 바하의 백성들아! 너희는 하느님의 사랑의 발생지요 하 느님의 은혜의 여명(黎明)이니라. 욕설과 저주로써 너희의 혀 (舌)를 더럽히지 말지며 볼만한 가치가 없는 것에서 너희의 눈 을 돌리라. 다만 너희가 가진 힘(진리)을 나타낼지니 그것이 용납되면 목적을 달하는 것이니라. 사람이 만일 그것을 받아들 이지 않을지라도 그를 책하거나 간섭함은 무익한 일이니, 그는 그대로 두고 너희는 너희의 보호자이시며 자존하시는 하느님께 로 향하여 너희의 길을 걸으라. 알력과 불화는 물론이요 근심 걱정의 원인을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가‘신성한 은혜’의 나 무 그늘에서 양육되어 하느님이 너희에게 바라신 대로 행동하 기를 바라노라. 너희는 모두 한 나무의 잎이요, 한 바다의 물방 울들이니라.” 예의와 존경 바하올라께서는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백성들아! 나는 너희에게 예의가 바른 자 되기를 바라노라. 진실로 예의는....... 모든 덕의 왕이니라. 몸에 정직 의 옷을 입고 예의의 빛으로 빛나는 자는 축복받은 자이니라. 예의 (혹은 존경)의 덕을 갖춘 자는 곧 큰 지위를 얻은 자이니 라. 나는 이 피해자와 그대들이 다 같이 여기에 도달하여 이것 을 붙잡고 이것을 받들어 지키기를 바라노라. 이는 곧‘가장 큰 이름’의 붓에서 넘쳐흐른 반박할 수 없는 명령이니라.” ---‘세계에 관한 서한’ 그분은 다시 반복하여 말씀하셨으되, 109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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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모든나라로 하여금 기쁨과 향기로써 서로 사귀게 하라. 사람들아, 너희는 또 다른 종교의 백성들과 기쁨과 향기 로써 사귀라.” 압돌바하께서도 아메리카의 바하이들에게 보낸 서한 가운데 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남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도록 조심하라. 조심하라. 남의 영혼에 해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라. 조심하라. 어떤 사람에게나 불친절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조심하라.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실망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조심하라. 누구의 마음, 누구의 영혼을 불문하고 그것의 슬픔의 원인이 되는 자는 이 지상을 걸어다님보다 차라리 지하의 깊은 곳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그분은 꽃이 그 봉오리 속에 감추어져 있음과 같이, 외면이 아 무리 추할지라도 각자의 가슴 속에는 하느님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참다운 바하이는 마치 정원 사가 진귀하고 아름다운 식물을 돌보아줌과 같이 모든 사람을 대우할 것이다. 그는 사람의 성급한 간섭이 꽃을 피게 하는 것 이 아니라 다만 하느님의 햇빛만이 이것을 할 수 있음을 잘 알 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어두운 마음과 가정에 이 생명의 햇빛을 부어넣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바하올라의 가르침 가운데, 사람은 어떠한 조건과 경우를 막론하고 관대하여 그 적을 사랑하고 악의 있는 자라도 선의 11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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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자로 보아야한다는 것이 있다. 이것은 남을 적으로 생각 하고 그리고서 그것을 내버려두라, 참으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선(僞善)이지 참다운 사랑이 아니다. 아니, 적을 지 기(知己)와 같이 보고 악의를 품고 오는 자를 선의 있는 자로 이를 대우하라는 것이다. 그대의 사랑과 친절은 진실한 것이어 야 한다........ 단지 참는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그 참는다는 것이 충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그것은 위선이기 때 문이다.”---‘서방의 별’제 4권 191쪽 이와 같은 충언(忠言)은 우리가, 외면적 육체적 인간이 밉고 악의 있는 자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의 안에는 참 인간인 내면적 정신적인 성질이 있어 거기서 사랑과 선의가 발한다는 것을 깨 닫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으로 보인다. 우리의 생각과 사랑은 우리의 모든 이웃사람의 안에 있는 이 내면적 인간에게 로 향해야 하나니, 이 참 인간이 활동하도록 각성할 때 외면적 인 인간도 변화하고 갱생하는 것이다. 죄를 덮어주는 눈 바하이 가르침은 무엇보다도 남을 꾸짓는 것을 삼가도록 엄격 히 요구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역설하 셨지만 지금은 그 산상수훈(山上垂訓)이 이른바‘완전의 교훈’ 이라 하여 일반 기독교도에게 바랄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는 이 점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 그 모 든 것을 실행해야 할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애쓰셨다.‘숨 겨진 말씀’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사람의 아들아! 네 자신이 죄인인 한, 남의 죄를 이르지 말 111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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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 네가 이명령을 어기면 나의 저주를 받을 터니, 내 이를 증언하노라.” “존재의 아들아! 네탓으로 돌리지 않으려던 일은 어떤 영혼 의 탓으로도 돌리지 말며, 네가 행하지 않는 일은 말하지도 말 아라. 이것이 내가 너에게 내리는 명령이니, 이를 반드시 지키 어라.” 압돌바하께서도 말씀하셨으되, “남의 잘못을 말하지 말고,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며 친절로 써 그가 허물을 고치도록 도와주어라. 언제나 선을 보고 악을 보지 말라. 남에게 만일 열 가지 선이 있으면서 한 가지 악이 있거든, 그 열을 보고 하나를 잊으라. 만일 열 가지 악이 있으 면서 한 가지 선이 있거든, 그 하나를 보고 열을 잊으라. 우리 의 적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의 악을 말함을 삼가야 한다.” 아메리카의 어떤 벗에게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인간의 가장 악한 성질이며, 동시에 가장 큰 죄악은 험담하 는 것이다. 특히 하느님을 믿는 자의 입에서 나오는 험담은 더 욱 큰 죄악이다. 만일 험담의 문이 영원히 닫혀지는 어떤 방법 이라도 발견되어 모든 신자가 아낌없이 입을 열어 남을 칭찬하 게 된다면 성스러운 바하올라의 가르침이 곧 널리 퍼져, 인심 은 밝아지고 정신은 빛나서 인간세계에 영원한 복지(福祉)가 이루어질 것이다.”---‘서방의 별’제 4권 191쪽 11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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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손 우리는 남의 결점을관대히 보고 그 덕행(德行)을 좋게 보라 고 명령받고 있다. 그리고 한편,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고 자기 의 덕행에 대해서는 그것을 문제 삼지 말라고 또한 명령받고 있 다. 바하올라께서는‘숨겨진 말씀’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존재의 아들아! 어찌하여 너는 자신의 잘못을 잊고, 남의 잘 못을 탓하느라 분주할 수 있느냐? 누구나 이러하면 나의 저주 를 받느리라.” 바하올라 : 숨겨진 말씁 “이민자(移民者)들아! 입은 내 말을 하라고 내가 만들었으 니, 험담으로 이를 더럽히지 말아라. 자아(自我)의 불길이 너 희에게 덮치면, 너희가 제각기 남을 알기보다 자신을 더 잘 알 거늘, 내 피조물의 잘못보다 너희 자신의 잘못을 기억하여라.”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으되, “그대의 생활을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발산(發散)된 것으로 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남의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 니라 다만 섬기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바하올라의 종교 에서는 만인이 모두 종이며 시녀(侍女)요 형제자매이다. 자신 이 조금이라도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위험한 지위 에 있는 것이니, 이와 같은 악한 마음의 씨를 버리지 않는 한, 그는‘하느님의 나라’에 봉사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113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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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불만(自己不滿)은 진보의 표징이다.자신에 만족하는 사람은 악마의 증거요 자신에 만족치 못하는 사람은 자비한 이 의 증거이다. 사람이 만일 자신에게 천 가지 좋은 점이 있을지 라도 그것을 보지 말고 도리어 자신의 결함과 불완전을 찾아보 아야 한다........ 아무리 사람이 진보할지라도 더 향상될 여지 가 있으므로 불완전함을 면할 수 없나니, 자기의 지위에 만족 치 않으면 진보의 여지를 발견하므로 거기에 도달할 것을 바라 게 되는 것이다. 자기칭찬은 이기주의(利己主義)의 표징이다.” ---‘미르자 아아맏 소오랍의 일기’(1914년) 우리는 이와 같이 자기의 죄를 스스로 인정하고 후회하도록 요청되고 있으나, 그러나 그것을 승려(僧侶)나 그 밖의 남에게 고백하는 것은 엄금되어 있다. 바하올라께서는 그분의‘기쁜 소 식’이라는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죄인으로서 그 마음이 하느님 이외의 누구에게나 자유일 때 다만 하느님께 대해서만 용서를 빌 것이니라. 종(즉 인간)에게 고백하는 것은 하느님의 용서를 얻는 길이 아니요 또한 용서를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니라. 하느님의 창조물(즉 인간)에게 고백 하는 것은 스스로 비굴케 하는 것이니, 하느님께서는 (지고한 그의 영광이여) 당신 종의 이와 같은 굴욕을 바라시지 않느니 라. 진실로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어지신 분이시니라. 죄 있는 자는 하느님과 자신과의 사이에서 자비의 바다에 자비를 간구하고 관용의 하늘에 용서를 빌 것이니라.” 11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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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직과 성실 바하올라께서는‘타라자트의 서한’에서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진실로 정직은 세계의 모든 사람의 평안의 문이요 자비하신 분의 앞에서 받는 영광의 표징이니라. 누구나 여기에 이른 자 는 곧 부유의 재보를 얻은 것이니라. 정직은 인류의 안전과 평 안으로 들어가는 가장 큰 문이니라. 만사의 안정이 여기에 달 렸고 명예와 영광과 부유의 세계가 그 빛에 비치리라........ .” “바하의 백성들아! 정직은 너희가 입을 가장 좋은 옷이요 너 희가 쓸 가장 빛나는 왕관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전능하신 지휘자의 위령(威令)에 따라 이것을 지켜라.” 그분은 다시 말씀하셨으되, “신앙의 요체(要諦)는 곧 말이 적고 행함이 많음에 있나니, 그 말이 행위를 지나는 자는 진실로 그가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낫고 그의 죽음이 사는 것보다 나음을 알라.”--- ‘지혜의 말씀’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실은 인간의 모든 덕의 근원이다. 성실이 없이는 어느 세 계에서나 진보와 성공이 있을 수 없다. 이 성스러운 속성(屬 性)이 한번 인간의 마음에 확립되면 다른 모든 신성한 성질이 또한 나타날 것이다.”---‘압돌바하의 서한집’제 2권 459쪽 “정직과 성실의 빛이 그대들의 얼굴에서 빛나게 하라. 그리 115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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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 사업에서나 오락에서나그대들의 말이 믿을 수 있고 확실 함을 세상에 알리라. 자기를 잊고 전체를 위하여 일하라.”--- ‘런던 바하이에게 보낸 서한’(1911년 10월) 자기실현 바하올라께서는 항상 사람들을 고무하여 그들 안에 잠재해 있 는 완전한 천부(天賦)의 성질을 실현시키고 발양(發揚)시키도 록 힘쓰셨다. 즉 제한된 외면적인 자아(自我)와는 구별된 별개 의 참된 내면적인 자아를 발현시키자는 것이다. 그 외면적 자아 는 최선의 경우에 전당(殿堂)이요 대개의 경우에는 참 인간의 감옥인 것이다.‘숨겨진 말씀’가운데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존재의 아들아! 힘의 손으로 내 너를 만들고 기운의 손가락 으로 내 너를 창조하여, 네 안에 내 빛의 본질을 두었노라. 나 의 일은 완전하며 나의 명령은 거역될 수 없으니, 그로써 만족 하고 달리 아무것도 찾지 말아라. 이에 의문도 의심도 품지 말 아라.” “정신의 아들아! 내가 너를 부유하게 창조하였거늘, 어찌하 여 너는 자신을 가난으로 끌어 내리느냐? 내가 너를 고귀하게 만들었거늘, 어찌하여 너는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느냐? 지식 의 본질로 내 너를 만들었거늘, 어찌하여 너는 나 아닌 남에게 서 깨달음을 찾으려 하느냐? 사랑의 진흙으로 내 너를 빚었거 늘, 어찌하여 너는 다른 이에게 몰두하느냐? 네 자신에게 눈을 돌리어, 힘차고 굳세며 자존하는 내가 네 안에 있음을 볼 수 있 도록 하여라.” 11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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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종아! 너는어두운 칼집 속에 감추어진 잘 단련된 검과 같고, 제조공도 모르는 그 숨은 가치와도 같으니라. 그러니 자 아와 욕망의 칼집에서 빠져 나와 너의 가치가 온 세상에 찬란 하고 명백하게 나타나도록 하여라.” “나의 벗아! 너는 내 거룩함의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니, 세 상의 더러움이 네 광채를 가리지 못하게 하여라. 네가 구름 뒤 에서 눈부시게 나타나서, 만물을 생명의 옷으로 치장할 수 있 도록, 부주의의 너울을 산산이 찢어 버려라.” 바하올라께서 그분의 신자들에게 요구하신 생활은, 인간능력 의 전 범위 안에서 사람이 바랄 수 있는 가장 높고 가장 아름다 운 것이라고 할 만큼 고귀한 것이다. 우리의 안에 있는 정신적 자신을 실현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왔고, 또 하느 님에게로 돌아간다는 숭고한 진리를 체득(體得)하는 것을 의미 한다. 이 하느님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바하이의 영광스러운 목표다. 그러나 이 목적을 성취하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께서 택 하신 사자, 특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자, 즉 신 시대의 예언자인 바하올라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117 제 5 장 바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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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6 장 기도 기도는, 그것에 의하여 누구든지 하늘에 오를 수 있는 사닥다 리다. --- 모하멧 하느님과의 대화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생각과 뜻을 알리기 위하여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써 사람에게 말씀하시지 않을 수 없 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성스러운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 시는 것이다. 이들 예언자들은 육체로써 생존해 계신 동안은 사 람들과 면대하여 말씀하시고 하느님의 계시를 전하시지만 그 사후에는 그분들의 기록된 말씀과 문장에 의하여 사람들의 마 음에 그 계시가 계속하여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 님께서 사람과 말씀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이밖에 ‘정신의 말’이 있다. 이것은 연설이나 문장과는 전혀 달라서, 이것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어디서든지 어떠한 인종, 어떤 국어 를 말하는 사람이든지 구별 없이, 진리를 구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교통하여 그에게 영감을 주실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에 의하여 현시자께서는 물질세계를 떠난 후에도 신자와의 대화를 계속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도 그분의 119 제 6 장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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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과 대화하여 그들을고무해 주셨다. 실제로 그리스도께 서는 지상에 생존해 계셨을 때보다 사후에 더 큰 감화를 주셨 고, 다른 예언자들께서도 또한 그러하셨다. 압돌바하께서는 이 정신적 말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하신 바 있으니 예를 들면 다 음과 같다. “우리는 하늘의 말, 즉 정신의 말로써 하여야 하나니, 정신의 말은 마음의 말이다. 이것이 인간의 말과 다른 점은 마치 우리 의 말이, 다만 부르짖는 소리만으로써 의사를 표시하는 동물의 말과 다름과 같다. 하느님께 하는 말은 이 정신의 말로써 한다. 기도할 때 우리 가 일체의 외계에서 떠나 하느님을 향하면 마치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생긴다. 우리는 말이 없이 하느님과 말하고 하느님의 대답을 듣는다........ 우 리는 진정한 정신적 상태에 달했을 때 비로소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 E. J. 로젠버그양이 전하는 담화에 의함 바하올라께서는 보다 높은 정신적 진리는 이 정신의 말에 의 해서만 전달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입으로 말할 수 있고 문 자로 쓸 수 있는 말로는 불충분하다.‘일곱골짜기’라는, 속세 (俗世)로부터 하늘나라에 이르는 나그네가 거쳐 가는 길을 기 술한 작은 책 가운데서 그분은 이 여행의 진전된 단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혀는 이것을 말할 수 없고 말이 또한 도저히 여기에 미칠 수 없나니, 이 경우에 붓은 무용한 것이요, 먹은 검은 점을 남길 뿐이다........ 다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해하는 자의 상태를 12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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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릴 수 있는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자로서도 할 수 없고 문자에 함축시킬 수도 없다.” 기도하는 태도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는 정신적 상태에 도달함에 대하여 압 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상태에 도달하기 위하여 모름지기 만사를 잊고 세상 사람을 멀리하여 일심전념(一心專念) 하느님께 향해야 한 다. 그러한 상태에 이름에는 얼마의 노력을 요하나 인간은 그 것을 위하여 힘써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물질적 세계에 집 착하지 말고 정신적 세계에 전념해야 한다. 전자(前者)를 멀리 함으로써 후자에 가까워지는 것이니 그 선택은 우리의 자유에 있을 뿐이다. 우리의 정신적 지각(知覺), 우리의 마음의 눈이 열리어 만사 에 있어서 하느님의 자취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만물은 우리에 게 성령(聖靈)의 빛을 반사할 수 있는 것이다.”--- E. J. 로젠버그양이 전하는 담화에 의함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그 구도자는........ 매일 새벽에....... 하느님과 교통하여 전 영혼을 기울여 그의 사랑하는 이를 찾아야 한다. 그는 모든 제멋대로의 생각을 하느님의 사랑의 말씀의 불꽃으로써 태워 버려야 한다........ .”---‘낙수집’256쪽 같은 방법으로 압돌바하께서는 선언하셨다. “인간이 그의 영혼을 통하여, 정신으로 하여금 그 이해력을 121 제 6 장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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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발시킬 때 그사람은 자기 안에 우주를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인간이 정신의 축복에 대하여 마음이 열리지 않아 서 그의 영혼을 물질 면, 즉 인간성의 육체적 부분에 돌릴 때 그 사람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보다 낮은 동물계의 거주자 낮 은 자가 된다.”---‘압돌바하의 지혜’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사람들아! 자아의 속박에서 너희의 영혼을 구출하라. 그리 고 나 이외의 모든 사물에 대한 애착에서도 이탈하라. 나에 대 한 추억은 더럽혀진 모든 것을 깨끗이 씻어 주리라. 나의 종이 여,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말씀을 당신께 이끌린 이들이 낭송 한 것처럼 그대가 낭송하여, 그대의 달콤한 음률이 그대 자신 의 영혼에 불을 켜게 하고, 만인의 마음을 매혹토록 하라. 누구 든 자기 방안에서 남몰래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을 낭송한 다면 전능자의 향기 퍼뜨리는 천사들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 의 향기를 널리 퍼뜨릴 것이니라.”---‘낙수집’294~295쪽 매개자의 필요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인간과 창조자의 사이에는 매개자가 필요하다. 그 매개자가 하느님의 광휘(光輝)에서 충분한 빛을 받아 그것을 인간세계에 반사하는 것이 마치 지구표면의 대기(大氣)가 태양광선으로부 터 열을 받아서 그것을 반사하는 것과 같다.” ---‘신성한 철학’8쪽 “우리가 기도하려고 할 때에는 먼저 그 정신을 한 곳에 집중 하여야 하나니, 하느님을 향할 때는 마음을 그 한 점에 부어야 12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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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다. 사람이 만일하느님의 현시자에 의하지 않고 달리 하느 님을 예배하려고 하면 먼저 자신의 마음 안에 하느님의 개념 (槪念)을 만들어야하는데 이 개념은 자신이 창조한 것이다. 유 한자가 무한자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써는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다만 인간이 자신의 마음으 로써 상상하는 것만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이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다. 사람 자신이 만들어 놓은 하 느님의 개념은 단지 환영(幻影), 영상(影像), 상상(想像)에 불 과하다. 이와 같은 개념과 최고 존재자와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사람이 만일 하느님을 알려고 하면 그리스도, 또는 바하올라 와 같은 완전한 하느님, 즉 정신적 태양이 현시자의 전당(殿 堂)을 통하여 비칠 때, 그 완전한 속성(屬性)과 그 성질의 아름 다움과 그 광명의 혁혁함에 의하여 그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1909년 악카에서의 퍼시 우드코트씨와의 담화에서 그분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령이 매개하지 않으면 사람이 하느님의 은혜를 직접 얻을 수 없다. 이 명백한 진리를 소홀히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어린 아이는 교사 없이 가르침을 받을 수 없고, 지식은 하느님의 은 혜의 하나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땅은 구름에서 오는 비가 아니면 초목으로써 덮여질 수 없으니 구름이 곧 땅과 하느님의 은혜와의 매개자이다........ 빛(光)은 중심을 가졌으므로 이 중 심 이외의 이것을 찾으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일을 생각해 보라. 구세주의 은혜가 없이도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자도 있었지만 123 제 6 장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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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공상은저들이 타락에 이르는 원인이 된 것이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591~592쪽 하느님의 현시자를 향하지 않고 하느님을 예배하려고 하는 자 는 어두운 토옥(土獄)에 있는 사람이 햇볕을 쪼이려고 공상하 는 것과 같다. 기도는 꼭 필요하고 의무적인 것임 기도의 습관을 가지는 것은 바하이들에게 분명히 명령된 일 이다. 바하올라께서는‘케타베 악다스’(지성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날마다 아침과 저녁에 하느님의 말씀을 낭송하라. 이것을 게을리 하는 자는 하느님의 성약(聖約)에 충실치 못한 것이니, 오늘에 이것을 소홀히 하는 자는 하느님께 얼굴을 등 지는 자 이니라. 나의 백성들아! 하느님을 외경(畏敬)하라. 경전을 많 이 읽고 밤낮 행사(行事)를 지키는 것으로써 너희들의 자랑을 삼지 말라. 기쁨으로써 단 한 구절을 낭송하는 것이 명심 없이 전능하신 하느님의 전 계시를 통독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피로 하지 않고 권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하느님의 경전을 낭송하 라. 영혼으로 하여금 피로 위축케하지 말고 이것을 청신활발케 하여 계시의 날개로써 증거의 발생지에 오르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이해하면 하느님께로 가까워질 수 있느니라.” 압돌바하께서는 어느 신자에게 말씀하셨으되, 12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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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정신의 벗이여!기도는 필수 불가결한 것임을 알지니, 정신적으로 결함(缺陷)이 있거나 불가피한 장애가 없는 한, 어 떠한 구실로써도 이것에서 면제될 수 없는 것이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683쪽 또 다른 신자의 질문에,‘무엇 때문에 기도하는 것인가. 하느 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최선의 질서에 의하여 만사를 처 리하실 것인데, 인간이 자기의 소망을 진술하고 도움을 구하여 간절히 기원해야 하는 참뜻이 어디 있는가?’라고 한데 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진실로, 저 강력하신 분에게 약한 자가 기원하고‘영광스럽 고 은혜 베푸시는 분’에게 은혜를 바라는 자가 간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 주께 기원하고 주를 향하여 그 바다에 은혜를 구할 때, 이 기원은 그 사람의 마음에 빛을 주고 눈을 밝게 하고 영혼에 생명을 주어 그의 존재를 고귀하게 하는 것 이다. 그대가 하느님께 기원하여‘당신의 이름은 나의 치유(治癒) 로소이다.’라고 기원할 때, 하느님의 사랑의 힘에 의하여 얼마 나 그대의 마음이 위안을 받고, 그대 영혼이 기쁨을 느끼며 그 대의 정신이‘하느님의 나라’에 끌리는가를 생각해 보라. 이 매력에 의하여 사람의 능력과 역량(力量)이 증진되는 것이다. 그릇이 커짐에 따라 그 담는 수량(水量)이 많아지고 갈증이 더 함에 따라 구름의 혜택이 사람의 입에 시원한 맛을 주는 것이 다. 이것이 기원의 비밀이요 사람이 그 소망을 진술하는 참뜻 인 것이다.”--- 알리 쿨리 칸에 의하여 번역된, 아메리카 신자 에게 보낸 1908년 10월의 서한에서 125 제 6 장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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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중기도(會衆祈禱) 바하올라께서 바하이들을 위해제정하신 매일의 필수기도는 개인적으로 해야 한다. 단지 망자를 위한 기도에 있어서만, 바하올라께서는 회중기도 를 명하셨다. 그때 지켜야 할 사항은 그 기도문을 읽는 사람은 큰소리로 낭송해야 하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일어서야 한다. 이는 신자들이 기도를 이끄는 에맘 뒤에 행렬을 지어 서서 기도 하는 이슬람교의 의식과는 다른 것으로, 바하올라께서는 이를 금하셨다. 이러한 의식은 바하올라께서 직업적인 성직자 제도를 폐지하 신 것과 일치하며, 예배를 위한 모임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 미하지는 않는다. 합동기도의 가치에 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어떤 사람은 말하리라. 자기는 언제든지 자기의 마음이 하 느님께로 끌리는 때, 야외에서든지 시내(市內)에서든지 그밖에 어떤 곳에 있을 때든지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특정한 날, 일정한 시간에 다른 사람이 모인 곳에 가서 내가 기 도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때에도 다른 사람의 기도에 자기의 기도를 합쳐야 할 것인가고. 이러한 생각은 무의미한 공상이다. 여럿이 모이면 그 힘이 한 층 커지는 것이다. 개인 단독으로 싸우는 군인은 많은 사람으 로 집단화 된 군대와 같은 힘을 가질 수 없다. 이 정신적 싸움 12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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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있어서 모든사병이 결속하면 그 결합된 정신적 감정은 서 로 도와서 그 기도가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 E. J. 로젠버그 양의 수기에서 압돌바하께서는 이러한 말씀으로써, 여러 사람의 집합된 정신 이 하느님께로 향할 때 그것이 강화되는 것이므로 회중기도의 필요성을 강조(强調)하셨지만, 그분께서는 바하이의 기도가 의 무적 회중기도의 형식이라고는 가르치지 않으셨다. 바하올라에 의하여 계시된 필수(必須)기도는 개인적인 것이다. 장례식에서 올리기 위하여 계시된 기도 이외는 어떠한 기도의 회중낭독도 바하이 가르침이 아니다. 기도는 사랑의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만인의 소원을 알고 계실 것이니 기도가 필요 없지 않은가라는 다른 질문자에게 그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 셨다. “사람이 만일 그 벗에게 사랑을 느낀다면 그것을 말하고 싶 을 것이다. 비록 그 벗이 자기의 사랑을 알고 있을지라도 역시 그것을 고백하고 싶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원하는 바를 알고 계시지만, 기도의 충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하느님께 대한 사람의 사랑에서 솟아나오는 것이다. 기도는 반드시 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태도만으 로써 족하다. 만일 사랑과 요구가 없다면 아무리 힘쓰고 억지 로 할지라도 헛된 일이다. 사랑이 없는 말은 무의미한 일이다. 만일 누가 불쾌한 의무로써 그대를 만나 사랑도 기쁨도 없이 말한다면 그대는 그 사람과 대화하고 싶을 것인가.” 127 제 6 장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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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 6월호‘격주평론’에 실린E. S. 스티븐슨양의 논 설에서 또 다른 담화에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가장 높은 기도에서는 다만 하느님께 대한 사랑만을 위하여 비는 것이니, 이것은 결코 하느님 혹은 지옥을 무서워서 하는 것이거나 은혜 또는 천국을 바라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사 람이 한번 남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 지 않을 수 없거늘 하물며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때 그분의 이 름을 부르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는가........ 정신적인 사람에게 는 하느님을 기억하는 일 이외에 더 기쁜 일이 없는 것이다.” --- 알마 로버트손양 및 기타 순례자들의 수기에서 (1900년 11월 12일) 재난에서의 해방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의하여 질병과 그 밖의 일반 고난은 하 느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홍수, 태풍, 지진 등의 재난도, 압돌바하께서는 간접적으로 이것에 기인하 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과실 때문에 받은 고통은 복수적인 뜻이 아니 라 교육적인 교정(矯正)과 치료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이 것은 사람이 바른 길에서 벗어난 것을 경고하는 하느님의 소리 다. 고통이 심하면 그것은 비행의 위해(危害)가 심한 것을 뜻하 는 것이니‘죄의 값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재난이 불복종에 기 인한 것이므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복종에 의해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에는 우연도 없고 불확실한 일도 없다. 하 12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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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님을 등지면 반드시화가 이르고 하느님께로 향하면 반드시 복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전체는 한 조직체이므로 각 개인의 복지(福祉) 는 그 사람 자신의 행동에만 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웃사람의 행동에도 의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한 사람의 비행이 만인 을 괴롭히고 한 사람의 선행이 만인을 이롭게 한다. 각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이웃사람의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것이어서 인 류 중의 가장 착한 자는 가장 무거운 짐을 지는 사람들이다. 성 자들은 항상 큰 괴로움을 겪었고 예언자들은 가장 큰 고난을 당 하셨다. 바하올라께서는‘케타베 이간’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너희는 하느님의 모든 예언자와 그 동료들에게 내려진 고 난, 빈곤, 불행, 불명예가 어떠하였음을 알 것이요, 너희는 저 들의 신도들의 머리가 선물로써 여러 도시에 보내졌음을 들었 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하느님의 모든 예언자들에게 죄가 있어 다른 사 람 이상으로 벌을 받은 것이 아니다. 아니, 그분들은 다른 사람 의 죄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셨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고난의 길 을 스스로 택하셨던 것이다. 그분들의 관심사(關心事)는 세계 의 복지를 위하는 것이지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를 참으로 사랑하는 자의 기도는, 개인으로서 그가 빈궁과 병고와 참화를 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무지와 죄과와 그리고 거 기서 필연적으로 오는 불행에서 해방될 것을 기도하는 것이다. 만일 저들이 자신의 건강과 부유를 바란다면 그것은 다만 하느 님의 나라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만일 신체의 건강과 129 제 6 장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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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유가 그에게 허락되지않을지라도, 하느님의 길에서 그에게 내려지는 어떠한 일이든지 그 가운데 바른 지혜가 있음을 잘 알 기 때문에 그는‘빛나는 묵종’의 태도로써 자신의 운명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시되, “근심과 슬픔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완 전하게 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자비에 의하여 보내지는 것이다. 근심과 슬픔이 올 때 그 사람은 이 굴욕에서 구원해 주실 수 있 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시 련이 더욱 가해질수록 거기에서 받는 정신의 덕에 대한 깊음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압돌바하의 지혜’45쪽 죄 없는 자가 죄 있는 자 때문에 벌을 받는다는 것은 얼른 보 기에 심히 부당한 일 같으나 압돌바하께서는 이에 대하여, 그 부 조리(不條理)는 단지 피상적이요, 결국은 정의가 완전히 승리한 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증하셨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어린 아기나 아동이나 약한 자가 압박자들의 손에 괴로움을 받을 때........ 저들의 영혼은 다른 세계에서 보상을 받는 것이 므로........ 그 고통은 하느님의 무상의 자비인 것이다. 진실 로, 하느님의 이와 같은 자비는 현세의 모든 위안이나, 마침내 는 모두 죽고야 마는 이 세상에 속한 성장과 발달보다도 나은 것이다.”---‘압돌바하의 서한집’제 2권 337쪽 기도와 자연 법칙 많은 사람들은,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자연법칙에 함부로 저촉 되는 것 같이 생각하므로 기도의 효험을 믿기 어려워한다. 다음 13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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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비유가 이곤란을 제거함에 도움이 될 것이다. 즉 쇠 부스러 기 위에 자석(磁石)을 가져가면 그 쇠 부스러기는 자석에 달라 붙는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중력(重力)의 법칙을 방해하는 것 이 아니다. 중력의 법칙은 이 경우에도 의연히 쇠 부스러기에 미치고 있는 것이니, 사실은 다만 하나의 보다 큰 다른 힘이 작 용한 것에 불과하다....... 이 다른 힘의 움직임은 중력의 움직임 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이고 계량할 수 있는 것이다. 바하이의 견 해에 의하면 기도는 곧 아직 별로 알려져 있지 않는 더 높은 힘 을 작용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힘은 물질적인 힘보다 작용 이 무법칙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 차이는 단지 이 힘 이 아직 충분히 실험적으로 연구되어 있지 않아서 우리가 이것 을 모르기 때문에 그 작용이 신비하고 계량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일부의 사람들을 당황케 하는 또 한 가지 곤란한 점은, 기도가 가끔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바와 같은 그러한 큰 결과를 가져오 기에는 그 힘이 너무 약하게 보이는 일이다. 이 곤란한 점도 또 한 가지 비유로써 해명된다. 즉, 저수지의 수문을 움직이는 작 은 힘은 막대한 수량을 방출하고 조절함에 족한 것이요, 대양을 항해하는 배의 조타기(操舵機)에 가해지는 작은 힘은 큰 배의 진로(進路)를 지배함에 충분한 것이다. 바하이의 견해에 의하 면 기도에 효과를 초래하는 힘은 무궁무진한 하느님의 힘이다. 기원자의 할 일은 단지 하느님의 은혜가 흘러나오게 하고 그 방 향을 정함에 필요한 조그마한 힘을 적용케 하는 것뿐이다. 하느 님의 은혜는 이 작은 힘을 사용할 줄 아는 자에게는 언제나 쉽 게 주어지는 것이다. 131 제 6 장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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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하이의 기도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는여러 가지 경우와 목적에 따라서 수많은 기도를 신자들의 사용을 위하여 계시하셨다. 그 말씀에 계시된 의상(意想)의 위대함과 심오한 영성(靈性)은 안식(眼 識)있는 신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것을 자신의 생활의 규칙적인 중요한 일과(日課)로 함으로써만 그 참뜻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고 그 힘을 참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다. 심히 유감 되는 일이지만 지면이 허하지 않으므로 그 기도 문 중의 극소수 짧은 견본만을 예거(例擧)하고 그 이상의 것은 독자 자신이 다른 서적에서 구하기를 바란다. 저의 주여! 주님의 아름다음을 저의 먹을 것으로 하여 주시 옵고, 주님의 모습을 저의 마실 것으로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의 뜻을 저의 희망으로, 주님의 찬송을 저의 행동으로, 주님께 대한 기억을 저의 동무로, 주님의 권력을 저의 구원자로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주님이 계신 곳을 저의 집으로 하여 주시 옵고, 제가 사는 곳을 장막으로 막히듯 주님에게서 떨어진 자 들에게 허하지 않으시는 거룩한 자리로 하여 주시옵소서. 진실 로 주님은 전능하시고 지극히 영광되시며 가장 강력하신 분이 시옵나이다. - 바하올라 - 저의 하느님 제가 증언하오니, 주님은 저로 하여금 주님을 알 고, 주님을 경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저를 창조하셨나이다. 지 금 이 순간에도 저의 무력함과 주님의 강력하심을, 그리고 저 의 가난함과 주님의 부하심을 증언하옵나이다. 위험에서 도와 주시고 자존하시는 주님 밖에는 다른 하느님이 없사옵나이다. - 바하올라 - 13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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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의 하느님! 저의하느님이시여! 주님의 종들의 마음을 통 합시켜 주시옵고 그들에게 주님의 위대한 목적을 계시하여 주 시옵소서.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계명을 따르고, 주님의 율법 을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느님, 그들의 노력을 도와 주시 옵고 그들에게 주님께 봉사할 힘을 주시옵소서. 하느님! 그들 을 그냥 내버려 두지 마시옵고 그들의 발걸음을 주님의 지식의 빛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주님의 사랑으로 즐겁게 하 여 주시옵소서. 진실로 주님은 그들의 구조자이시며 그들의 주 님이시옵나이다. - 바하올라 - 인자하신 주여! 주님은 같은 근원으로부터 모든 인류를 창조 하셨사옵고, 모두가 한 집안으로 살도록 정하셨사옵나이다. 주 님 앞에서는 저들이 모두 주님의 종이오며, 온 인류가 주님의 천막 아래 보호받고 있사옵고, 모두 주님의 은혜의 식탁에 모 여 있사오며, 모두가 주님의 섭리의 빛을 받고 있사옵나이다. 하느님! 주님은 모두에게 인자하시옵고, 모두에게 베풀어 주 셨사오며, 모두를 비호하시옵고, 모두에게 생명을 주시옵나이 다. 주님은 만인에게 각기 재주와 기능을 주셨사옵고, 모두가 주님의 자비의 바다에 잠겨 있사옵나이다. 인자하신 주여! 모두를 하나로 결합하소서. 여러 종교들을 화합케 하시옵고, 나라들을 하나로 묶어 주시와, 저들이 서로 를 한 가족같이 보고, 온 땅덩어리를 한 집안처럼 보게 하소서. 저들이 모두 온전한 화합아래 모여 같이 살게 하소서. 하느님! 인류일체의 깃발을 드높이 세워주소서! 133 제 6 장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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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최대의 평화를확립해 주소서. 하느님이시여, 사람들의 마음을 굳게 결합시켜 주소서. 인자하신 아버지 하느님이시여! 주님의 사랑의 향기로써 저 희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주소서. 저희들의 눈을 주님의 인도 의 빛으로 밝혀 주소서. 저희들의 귀를 주님의 말씀의 곡조로 즐겁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 모두를 주님의 섭리의 성채 안에 보호하여 주소서. 주님은 강대하시고 강력하시옵나이다. 주님은 용서하는 분이 시옵고, 모든 인류의 결점을 너그러이 보시는 분이시옵나이다. - 압돌바하 - 저의 주, 전능자이시여! 저는 죄인이오나 주님은 용서하시옵 나이다. 저는 심히 부족하오나 주님은 불쌍히 보시옵나이다. 저는 미망의 어둠 속에 있사오나 주님은 관용의 빛으로써 비쳐 주시옵나이다. 그러하오니, 주님, 자비하신 하느님이시여! 저의 죄를 사해 주시옵고 주님의 선물을 주시오며, 저의 잘못을 용서하시옵고 저에게 피난할 곳을 주시오며, 주님의 관용의 샘에 제가 잠기 게 하시옵고 모든 병고에서 저를 구하여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씻어 성스럽게 하여 주소서. 원컨대, 저로 하여금 신성(神聖)이 넘쳐흐르는 곳에 참여하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 여 근심과 슬픔이 저에게서 떠나고, 기쁨과 행복이 저를 찾아 오며, 불쾌와 낙망은 환희와 신뢰로, 무서움은 용기로 변하게 13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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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 주소서. 진실로, 주님은관대하시고 인자하시며 대자대비하신 분이시 옵나이다. - 압돌바하 - 주님, 자비하신 하느님이시여! 주님의 사랑의 빛으로써 거울과 같이 빛나는 마음을 제게 주시옵고, 성령의 은혜로써 저에게 힘을 주시와 이 세상을 장미동산으로 만들 수 있게 해 주시옵 소서. 주님은 자비하시고 인애하신 분이시옵나이다. - 압돌바하 - 이러한 여러 가지 기도의 형식이 필요한 것이지만 바하이의 기도는 결코 이런 것뿐이 아니다. 바하올라께서는 인간의 전 생 애가 곧 참다운 기도가 되어야 할 것, 바른 정신에 의하여 행해 지는 모든 일은 참다운 예배인 것, 하느님의 영광과 인류동포의 복리를 위하여 바치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가 곧 기도인 것, 이러한 것들이 진정한 의미의 기도인 것을 가르치셨다. 135 제 6 장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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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7 장 건강과치유 하느님께 얼굴을 향함으로써 몸과 마음과 영혼의 치유(治癒) 를 얻을 것이다. --- 압돌바하 육체와 영혼 바하이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의 육체는 영혼의 발달을 위하 여 일시적으로 필요한 것이어서 그 목적을 달성하면 무용한 것 이 되고 만다. 마치 달걀의 껍데기는 병아리의 부화를 위하여 일시적으로 필요한 것이어서 그 목적이 이루어지면 버리게 되 는 것과 같다. 인간의 육체는 원자와 분자로 조직된 합성물이요 영원불멸의 성질을 가진 것이 아니므로, 다른 모든 합성된 물체 와 마찬가지로, 때가 오면 해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압돌바 하께서는 말씀하셨다. 육체는 영혼의 종이지 결코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육체는 기 쁘게 행하고 잘 복종하고 매사에 유능한 종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이 착한 종으로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만 일 육체가 적당히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병에 걸리거나 불행한 일이 생겨 주인과 종이 함께 해를 입는 결과를 초래한다. 137 제 7장 건강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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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생명의 일체성(一體性) 모든생명은 무수한 형상과 등급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본질적 으로는 일체하는 것이 바하올라의 근본적 가르침의 하나이다. 우리의 육체의 건강은 지식, 도덕, 정신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 를 가졌고, 또 인류동포의 개인적 및 사회적 건강에도, 심지어 다른 동식물의 생명과도 큰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실제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넓은 범위에 걸쳐 서로 영 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하여, 예언자의 명령은 그것이 인생의 어느 부분을 가리 킨 것이든지 신체의 건강에 관계를 가지지 않는 것이 없다. 그 가르침의 어떤 것은 직접 육체적인 건강에 관한 것이니 우리는 지금 그것을 연구하여 보기로 한다. 단순한 생활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으되, “절약은 인간번영의 토대가 된다. 낭비하는 사람은 항상 고생 한다. 누구에게든지 낭비는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다. 우리는 기생식물(寄生植物)처럼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 살아서는 안된 다. 사람은 모두 정신적인 것이건 육체적인 것이건 한 가지 직 업을 가져야 하고, 또 여러 사람이 청렴한 모범이 될 만큼 정결 하고 인간답고 정직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 남의 주머니에서 지불되는, 너무 지나친 성찬의 대접을 받는 것보다는 한 개의 빵 조각에 만족하는 것이 훨씬 정정당당하다. 만족할 줄 아는 자의 마음은 언제나 평화롭고 안식이 있는 것이다.” ---‘바하이 경전’453쪽 13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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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식은 금지되어 있지않으나 압돌바하께서는 그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장래의 식품은 과실과 곡류(穀類)일 것이다. 육식을 하지 않 는 때가 올 것이다. 오늘의 의학은 아직 유치하지만 자연의 식 품은 땅에서 나는 것이 적당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쥴리아 M. 그룬디의 악카의 광명에 찬 10일 간’에서 알콜과 아편 술이나 아편 등 마취제를 질병치료 이외에 사용하는 것을 바 하올라께서는 엄금하셨다. 향락(享樂) 바하이 가르침은 중용(中庸)에 기초한 것이지 금욕주의는 아 니다. 일생을 위하여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유익하고 아 름다운 일을 즐기는 것은 장려할 뿐 아니라 오히려 명령하고 있 다. 바하올라께서는 말씀하시되,‘너희를 위하여 창조된 것을 너희에게서 빼앗아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또‘큰 즐거움과 기쁜 소식의 빛을 너희의 얼굴에 나타내는 것이 너희의 길이 다.’라고 하셨다.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으되, “모든 물건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니 하 느님의 은혜에 대하여 항상 감사하여야 한다. 만물은 우리를 위하여 있는 것이니 우리는 기쁨 가운데서 이 생명이 하느님의 은혜임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인생에 대하여 염증(厭症)을 느낀다면 우리는 배은망덕 하는 자가 되는 것이 니, 우리의 물질적 정신적 존재가 하느님의 자비의 외부적(外 部的)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사에 하느님의 139 제 7장 건강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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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를 깨닫고 찬미하면서행복한 날을 보내야 한다.” ---‘신성한 철학’104쪽 도박이나 만인계(萬人契)를 금지하는 바하이 가르침이 모든 종류의 유희에도 적용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압돌바하께서 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아니 어떤 종류의 유희는 무해한 것이니 단지 오락으로 하 는 것은 무방하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허비할 우려가 있는 것 은 삼가야 한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하느님의 대업에 있어 서 용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체력을 증진하는 운동유희는 장려 하는 것이 좋다.”---‘하늘의 광경’9쪽 청결 ‘케타베 악다스’에서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인류 중의 청결의 본체가 되라........ .어떠한 경우에 있어 서든지 청결의 습관으로 일관하라........ 너희의 옷에 불결한 점이 있어서는 안된다. 맑은 물에 너희의 몸을 담그라. 한번 사 용한 물을 다시 쓰지 말라........ . 진실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들이 너희에게서 발산하는 지상 낙원(地上樂園)의 발현(發現)으로 보고자 하노라.” 미르자 아불 파즐은 그의 저서‘바하이의 증거’가운데서(89 면) 청결에 관한 훈계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을 지적하 였다. 특히 동양의 어떤 지방에서는 심히 불결한 물이 가사(家 事)에 사용되고 목욕이나 심지어는 음료로까지 쓰여, 이 무서운 비위생적 행위가 조심하면 방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질병과 불 14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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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을 초래한다. 일반에유행되는 종교의 가르침에 의하여 가끔 용인되는 이러한 상태는, 동양사람 가운데서 신성한 권위를 가 졌다고 일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의 가르침에 의해서만 개선될 수 있다. 서반구의 여러 지방에서도 청결은 경신(敬神) 다음가 는 일이라기보다 오히려 경신의 요점이라고 일반이 믿게 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예언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효과 단순한 생활, 위생, 알콜과 아편, 기타의 금지에 관한 이러한 명령을 지키는 것이 건강에 이로움은 설명을 요하지 않는 명백 한 일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의 중요성이 흔히 과소평가되기 쉽 다. 만일 이것이 일반에게 준수된다면 전염병과 기타 여러 가지 질병의 대부분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간단한 위생상의 주 의를 게을리 하거나 술과 아편에 빠짐으로써 생기는 여러 가지 질병의 해는 막대하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명령을 지키면 건강 에 유익한 것은 물론이요, 인간의 품성과 행위에 미치는 효과가 또한 크다. 술과 아편을 마시면 그 사람의 걸음걸이가 방정치 못해지고 뚜렷하게 신체에 병을 일으키기 전에 벌써 인간의 양 심에 나쁜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이것을 금하는 것이 도덕상 정신상에 주는 이익은 육체상의 이익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압돌 바하께서는 정결(淨潔)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외부의 청결은 단지 육체상의 문제이지만 그것이 정신에 미치 는 영향은 심대하다........ 육체를 청결하게 가지는 것은 인간 의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585쪽 남녀 양성 간의 순결에 관한 예언자들의 훈계가 일반에 실행 141 제 7장 건강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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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다면 질병의 근원이대부분 제거될 것이다. 단정한 사람이나 품행이 나쁜 사람이거나 어린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다 같이 건 강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성병도 그 때에 비로소 과거의 이야기 가 될 것이다. 예언자들께서 가르치신 정의, 상호부조(相互扶助), 자신을 돌 보듯 이웃을 사랑하라는 교훈이 한번 실행된다면, 한편에는 너 무 값싼 노동으로 인한 극심한 빈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이 기향략(利己享樂)과 무위도식(無爲徒食)을 누리는 극단의 사 치가 있지만, 어떻게 인간을 정신적 도덕적으로 또는 육체적 파 멸에 이르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인가. 위생상 및 도덕상 문제에 관한 모세, 석가모니, 그리스도, 모하멧, 또는 바하올라의 교훈 을 준수한다면, 질병의 예방에 있어서 세계의 모든 의사와 공중 위생의 여러 가지 법규에 의하여 수행된 것보다 훨씬 유효하게 이러한 여러 가지 병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 분들의 교훈을 믿고 지킨다면 일반의 건강상태가 반드시 좋아 질 것이 분명하다. 현재 많이 일어나는 사실과 같이, 인간의 생 명이 중도에 병의 침식을 받아 유년기와 청년기 또는 장년기에 돌연히 사망하는 일이 없어져서, 마치 좋은 과실이 충분히 익은 다음에 땅에 떨어짐과 같이 인간도 충분히 노성(老成)하여 천 수(天壽)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로서의 예언자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태고로부터 예언자들의 가르 침이 잘 용납되지 않아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보다는 이기적(利 己的) 사랑이 더 강하다. 그리하여, 인류에 대한 관심보다 국한 된 당파적 관심이 더 강하고, 물욕적 관능적(官能的) 쾌락을 추 14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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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하는 마음이 인류의사회적 정신적 행복을 바라는 것보다 더 존중되어 왔다. 그 결과로, 격렬한 경쟁과 충돌과 압제와 포학 한 정치와 극단의 빈부의 차가 생겨 정신상으로나 육체상으로 나 여러 가지 질병을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인류라는 나무는 병 들어 모든 가지와 잎사귀의 끝까지 모두 괴로움에 빠지고, 마침 내는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성스러운 분까지 다른 사람들이 범한 죄로 인하여 고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때의 가장 급한 일은 인류 전체로서든지 국민으로서든지 개인으로서든지 병을 치료하는 일이다. 바하올라께서는 그분 이전의 성령 받은 예언자들이 하신 바와 같이, 어떻게 하여 건강을 유지하며 어떻 게 하여 잃어버린 건강을 회복할 것인가를 가르치셨다. 그분은 세계의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고쳐주는 위대한 의사로서 이 세 상에 오신 것이다. 물질적 방법에 의한 치료 지금, 서양의 여러 나라에 심리적, 심령적 치료법의 효력을 믿 는 사람이 현저하게 많아졌음을 볼 수 있다. 실제로 그 많은 사 람들은, 19세기에 성행한 질병에 대한 물질적 관념과 그 치료 법에 반항하는 자들로서, 지금 극단적으로 물질적 치료법과 위 생학적 방법의 가치까지도 부인한다. 바하올라께서는 물질적 치료법이나 정신적 치료법이 함께 필요한 것이라고 두 방법의 가치를 모두 인정하셨다. 그분은 질병을 치료하는 과학과 기술 이 장려되고 발달되고 완성되어, 치료에 관한 모든 방법이 각기 특성을 발휘하도록 가장 유효하게 응용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 다.‘너희가 병에 걸렸을 때 숙련된 의사에게 문의하라’고 그분 은 말씀하셨다.(케타베 악다스) 143 제 7장 건강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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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일반 과학과기술에 대한 바하올라의 태도와 일치한 다. 인류의 복리증진을 위한 모든 과학과 기술은 그것이 물질적 방법이라도 존중하여 그 발달과 보급을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인간은 과학에 의하여 물질을 지배하는 것이요, 과학적 지식이 없으면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필요한 경우에는 의약의 치료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지만 건강을 회복하면 그만두는 것이 좋다. 의약을 피하여 차라리 식사요법(食事療法)을 행하는 것이 좋고, 혹은 단지 약초로써 치료할 수 있는 경우에는 복잡한 의약에 의할 필요가 없 다........ 의약은 건강할 때에는 피하고 다만 필요할 때만 쓸 것이다.”--- 어느 의사에게의 서한에서 압돌바하께서는 어느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쓰셨다. “진리의 탐구자여! 질병의 치료에는 물질적, 정신적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전자는 물질적 의약을 사용하는 것이요, 후자는 하느님께 기도하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니 이 두 가지 방법 이 채용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결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최초에 의술상의 지식을 인간에게 부여 하고 보여주신 분은 하느님이시므로, 물질적 치료법도 이것이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에서 온 것임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써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함으로써 하느님의 종인 인간이 이러 한 치료법의 이익에도 힘입을 수 있는 것이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587쪽 우리의 본래의 미각(味覺)과 본능이, 우매하고 부자연한 생활 14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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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식으로 인하여 방해되지않았더라면 야생동물의 경우와 같 이, 적당한 음식물과 약이 되는 과실과 초목 기타의 약 용품을 선택하는 데 신뢰할 수 있는 안내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그분은 가르치셨다.‘질의응답록’가운데 치료에 관한 유익한 담화가 있는데, 압돌바하께서는 그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영양물, 식품, 과실류로써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의 의학은 아직 불완전하여 이 사실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의학이 완성될 때에는 의료법 중에 영양요법, 식사요법, 향기 많은 과실과 야채 등의 요법이 채용되고 냉수나 열탕 등 각종의 물 치료법도 장려될 것이다.” 치료방법이 물질적인 경우에는 그 치유되는 힘은 전부 하느님 에 의한 것이니, 초근목피(草根木皮)나 광물 가운데 있는, 병을 낫게 하는 요소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만 물은 하느님에 의존한다. 의약은 단지 우리가 천유(天癒)를 얻 기 위한 외적(外的)방법에 불과 한 것이다.’ 비물질적인 방법에 의한 치료 병을 치료함에는 물질적 치료법 이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그분은 가르치셨다. 질병의 전염과 마찬가지로‘건강의 전염’도 있다. 다만 그 전염하는 힘이 전자는 빠르고 맹렬함에 반하여 후자는 느리고 영향이 적다. 한층 강대한 효력은 환자 자신의 심리상태에 따라서 생기는 것이며‘암시’는 이 심리상태를 결정짓는 데 중대한 구실을 한 145 제 7장 건강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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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공포와 분노의근심 걱정은 건강에 크게 해로운데 반하여 희망과 사랑과 기쁨은 매우 유익하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떠한 경우에 처해서나 만족한 생각으로 생활하는 것은 가 장 필요한 일이다. 이에 의하여 사람은 병적이고 불활발한 상 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근심과 슬픔에 항복하지 말라. 그것은 최대의 불행을 초래한다. 질투는 심신을 소모하고 분노는 간장 을 태우나니, 너희는 사자를 무서워함과 같이 이 두 가지를 무 서워하고 삼가라.”--- 어느 의사에게의 서한에서 압돌바하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기쁨은 우리에게 날개를 준다. 기쁠 때에는 원기가 왕성해 지고 지력(知力)이 또한 예민해진다....... 그러나 슬픈 마음이 생길 때는 곧 원기가 없어진다.”---‘압돌바하의 지혜’100쪽 정신치료의 또 한 가지 방법에 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강대한 심의력(心意力)을 가진 사람이 그 모든 심의력을 환 자에게 집중시킬 때 환자가, 그 강력자의 정신력에 의하여 치 유될 것을 절대로 믿고 있으면 그 강력자와 환자와의 사이에는 충심으로부터 교감(交感)이 이루어진다. 강력자는 환자를 치료 하기 위하여 전 노력을 다하고 환자는 치유된다는 것을 확신한 다. 이 심의감동(心意感動)에 의하여 신경이 흥분되고 이 감동 과 신경의 흥분이 환자의 건강 회복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질의응답록’ 14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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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러한 모든치료방법은 그 결과에 어느 정도의 제한 이 있어, 심각한 질병이나 고질(痼疾)에는 효과를 얻지 못하는 일이 있다. 성령의 힘 가장 힘 있는 치료법은 성령(聖靈)의 위력에 의하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서로 접촉하거나 면대하거나 가까이 있음을 요하지 않는다........ 병세의 경중(敬重)도 상관없고 환자와 치 료자와의 신체를 접촉할 필요도 없으며 그 양자의 개인적 관계 의 유무도 문제되지 않는다. 이러한 치료는 다만 성령의 힘에 의하는 것이다.”---‘질의응답록’ 1904년 10월 E. 로젠버그양과의 담화에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령의 힘에 의한 치료에는 특히 심의(心意)를 집중하거나 환자와 접촉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다만 성스러운 이의 기원 과 요망에 의한다. 환자는 동양에, 치료자는 서양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혹은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라도 무방하다. 다 만 그 성스러운 이가 하느님께 향하여 성의를 다하여 기도하면 병자가 곧 치유되는 것이다. 이것은 성스러운 현시자와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속한 천부(天賦)의 능력이다.”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와 그 사도들이 행한 치료법이었고, 또 각 시대의 성자들에 의해서도 행해진 일들이다. 바하올라와 압 돌바하께서도 이 능력을 가지셨고, 그분의 충실한 신자들에게 147 제 7장 건강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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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이와 같은힘이 약속되어 있다. 병자의 태도 정신적 치료의 힘이 충분히 발휘되기 위해서는 병자나 치료자 나 병자의 벗들이나 또는 일반사회의 사람들이 다 같이 지켜야 할 요건이 있다. 병자로서 지켜야 할 첫째 요건은, 하느님께서 는 무슨 일에나 최선을 다해 주시는 그 위력과 뜻을 가지고 계 심을 확신하고 성심성의로써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다. 1912 년 8월 어느 아메리카 부인에게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러한 모든 질병이 없어지고 당신은 육체와 정신의 완전한 건강을 얻을 것이다........ 바하올라의 자비, 바하올라의 은혜 에 의하여 모든 것이 당신에게 기쁨이 될 것을 믿으라.......그 러나 당신은 일심전념‘압하(영광에 찬)의 나라’로 얼굴을 향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주의력 --- 막달라 마리아가 성스러운 그리스도에게 향한 것과 같은 주의력을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 그때 당신은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얻을 것을 나는 보증한다. 당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당신의 마음이 깨끗하므로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확신하라. 행복 하라. 기쁨에 차 있으라. 희망에 빛나 있으라........” 압돌바하께서는 이러한 특별한 경우에는 건강을 회복하여 육 체가 건전해짐을 보증하셨으나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나 다 그 러한 것이 아니고 때로는 병자에게 강한 신념이 있어도 반드시 치유된다고 보증하지는 않으셨다. 악카에서 어떤 순례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4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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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의 목적으로써 씌어진기도는 정신과 육체의 치유를 위 한 것이다. 만일 치유되는 것이 병자의 최선을 위한 것일 경우 에는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기도에 응하신다. 그러나 때로는 그 병자의 치유가 도리어 다른 병의 원인이 되는 수가 있으니, 이 러한 경우에‘최상의 지혜’는 기도에 응하시지 않으신다. 하느님의 시녀(侍女)여! 성령의 힘은 정신적인 병이거나 육체 적인 병을 다 같이 낫게 한다.”--- ‘악카에서의 매일의 교훈’95쪽 그분은 또 어느 병자에게 다음과 같이 쓰셨다. “진실로, 때로는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사람으로서 알 수 없는 일이 많다. 그러나 후일에 그 원인과 이유가 알려진다. 하 느님을 신뢰하고 일체(一切)를 하느님의 뜻에 맡기라. 하느님 께서는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시므로....... 하느님의 자비가 반드시 당신에게 내려질 것이다.” ---‘서방의 별’제 8권 232쪽 그분은 또 가르치셨으되, 정신의 건강은 육체의 건강에 도움 이 된다. 그러나 육체의 건강은 많은 요소에 의하는 것인데 그 요소 중에는 개인의 자유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하셨다. 개 인으로서는 가장 모범적인 정신상태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육체 의 건강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가장 성스러운 선 남선녀(善男善女)가 병에 걸려 고생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올 바른 정신상태가 육체의 건강에 미치는 힘은 일반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커서, 많은 경우에 건강을 되찾기에 족하다. 압돌바하 께서는 어느 영국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쓰셨다. “당신은 당신의 육체의 허약함에 대하여 편지하였는데, 나는 149 제 7장 건강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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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하올라의 은혜에 의하여당신의 정신이 강해지고 당신의 정 신이 강해짐으로써 당신의 육체도 건강해질 것을 기도한다.” 또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불가사의(不可司儀)한 능력을 주시 어 항상 하느님을 우러러 보게 하셨고 그 여러 가지 선물 중에 하느님의 은혜에서 발하는, 치유를 받을 힘을 주셨다. 그러나 슬프다. 인간은 이 무상의 선물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할 줄 은 모르고 이것을 등한히 하여, 하느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대 자대비에 주의하지 않고 도리어 그‘빛’으로부터 얼굴을 돌려 암흑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압돌바하의 지혜’16쪽 치병자(治病者)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신적으로 병을 낫게 하 는 힘을 만인이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치 어떤 사람은 수학 에, 또 어떤 사람은 음악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 로 특히 치병에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 람은 치병을 일생의 업으로 해야 할 것이다. 불행한 일은, 근세 에 와서 세계가 점점 유물사상(唯物思想)에 기울어져 정신적 치유의 가능성을 거의 망각하고 있는 일이다. 모든 다른 능력과 마찬가지로 치병의 능력도 인식하고 훈련하며 교육함으로써 고 도(高度)로 발달하여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할 것이다. 사 실, 오늘의 세계에는 치병의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귀한 능력이 저들의 안에 잠자고 있어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 는 일이 많다. 심리적, 심령적 치료의 가능성도 더 충분히 인식 된다면 치병술도 일변되고 존중되어 그 효과가 크게 증진될 것 이다. 그리하여 치병자의 이 새로운 지식과 힘이 환자의 강한 15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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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념과 희망에 결합될때, 여기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날 것을 기약할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하여야 한다.‘그분’밖에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치병자요 전지자요 구조자이시 다........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하느님의 통어(通御)에서 벗어 날 자가 없다. 의사여! 환자를 접할 때는 먼저 심판의 날의 주재자이신 하 느님의 이름을 부르라. 그리한 후에 그 창조물이 병을 치료하 기 위하여 정해주신 것을 쓰라. 진실로, 나의 사랑의 술을 마신 의사의 방문(訪問)은 병자의 치유요, 그의 호흡은 병자에게 자 비의 희망이다. 신체의 건강을 위하여 그를 신뢰하라. 그의 치 료는 하느님이 보증하는 바이다. 이 지식(치병술)은 모든 과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생명의 근원인 하 느님께서 주신 최대의 방법이요,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다른 모 든 과학과 지혜보다도 높은 지위에 두셨다. 지금이야말로‘나 의 승리’를 위하여 그대들이 일어서야 할 시대이다. 기도하라 - 저의 하느님이시여! 주님의 이름은 저의 치유이 오며, 주님을 기억함은 저의 치료이옵나이다. 주님을 가까이 함이 저의 소망이오며, 주님께 대한 사랑은 저의 반려이옵나이 다. 저에게 베푸시는 자비는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저의 구원 이옵나이다. 진실로, 주님은 관대하시고, 전지하시며, 영명하 시옵나이다.”---‘어느 의사에게 보낸 바하올라의 서한’에서 151 제 7장 건강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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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쓰셨다. “바하의 사랑이 충만하여 심중에 다른 생각이 없는 자의 입 술에서 성령이 들릴 것이요, 생명의 정신이 그의 마음에 가득 할 것이다.......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진주의 실과 같고, 모든 질병은 그분의 손이 닿음으로써 치유될 것이다.” ---‘서방의 별’제8권 233쪽 “그대, 순결하고 정신적인 자여!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불타 는 마음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찬미에 헌신하는 마음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대망하는 마음으로써 하느님을 향하라. 그 리하여 법열(法悅)과 황홀과 사랑과 사모와 기쁨의 향기로운 마음으로써 성령의 도움을 구하라. 하느님께서는 그 어전(御 前)으로부터의 정신을 통일하여 모든 병을 다스림에 그대를 도 와주실 것이다.” “마음과 육체의 건강에 힘쓰라. 그리고 지상(至上)의 왕국을 향하여‘가장 큰 이름’의 힘과 하느님의 정신에 의하여 치료에 전념함으로써 여러 사람의 병을 낫게 하도록 힘쓰라.”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628, 629쪽 사람은 어떻게 서로 도울 것인가 병을 치료하는 일은 병자와 의사에게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관계되는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동정과 봉사의 마음으로써, 바 른 생활과 바른 생각으로써, 특히 기도로써 병자를 도와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치료 중에 기도가 가장 효력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압돌바하께서는‘남을 위한 기원과 기도는 반드시 효 과를 얻는다.’고 하셨다. 착한 일이나 악한 일이나 벗에게서 받 15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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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감화력은 가장직접적이고 또한 힘이 있는 것이므로 병자의 벗에게는 특별한 책임이 있다. 많은 질병의 경우에는 그 부모나 벗이나 이웃사람의 도움에 의하여 쾌히 치유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반사회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또한 질병의 모든 경우에 영향 을 준다. 개인의 경우에는 그 영향이 작게 보이나 집단인 경우에 는 그 결과가 심히 크다. 각 개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일 반적으로 유행하는 신앙, 유물사상, 도덕, 쾌활, 우울 등 이러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동시에 그 사회의 분위기 상태를 조성(造 成)하는 데에도 또한 각각 상당한 구실을 한다. 현재의 사회 상 태에서는 누구나 완전한 건강을 유지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러 나 사람에게 건강을 주는 힘인 성령의‘호의(好意)의 통로(通 路)’가 되어, 자기의 육체 또는 자기와 접촉하는 사람들을 위하 여 병을 낫게 하는 유효한 감화를 주도록 힘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병자를 치료하는 일만큼, 거듭 강조하여 바하이 들에게 요청된 중요한 임무는 없다. 그리하여 치유에 관한 기도 문이 바하올라와 압돌바하에 의하여 많이 계시되어 있다. 황금시대 병자와 치병자와 일반사회가 협동 조화하여 건강을 위하여 물 질적, 심리적, 심령적 여러 가지 적당한 방법을 쓰게 된다면 인 생의 황금시대가 실현되어, 그때에는 하느님의 힘에 의하여‘모 든 근심걱정이 기쁨으로, 모든 질병이 건강으로 변할 것이라’고 바하올라께서는 보증하셨다. 압돌바하께서도‘하느님의 계시가 이해되는 그때 모든 재앙이 소멸될 것이라’고 하셨고, 그분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53 제 7장 건강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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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세계와 하느님의 세계가잘 조화되어 사람의 마음이 하늘 을 향하고 그 바라는 바가 깨끗해지면 이 두 세계는 완전히 결 합될 것이다. 그때에 이 힘은 완전히 효과를 나타내어 육체와 정신의 질병도 완전히 치유될 것이다.” ---‘압돌 바하의 서한집’제 2권 109쪽 건강을 바르게 쓰는 법 이 장(章)의 결론으로서 건강을 바르게 쓰는 법에 대한 압돌 바하의 가르침을 회상(回想)하는 것이 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 다. 워싱톤에 있는 바하이들에게 보낸 서한의 일절(一節)에 그 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일 신체의 건강과 복리가‘하느님의 나라’의 길에서 사용 된다면 그것은 매우 가상한 일이요 칭찬할 일이다. 만일 그것 이 일반적으로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사용되고 또 그것이 선행 (善行)을 위한 수단이 된다면 비록 그것이 저들의 물질적(육체 적) 복지를 위하는 것이라도 좋다. 그러나 만일 인간의 건강과 복지가 야수적(野獸的) 생활의 육욕만족이나 악마적 생활의 추 구에 사용된다면 그러한 건강보다는 병들어 있는 것이 오히려 유익할 것이다. 아니, 차라리 죽는 것이 그러한 생활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그대들이 만일 건강을 원하거든‘하느님의 나라’ 에 봉사하기 위하여 그것을 구하라. 나는 그대들이 완전한 식 견(識見)과 불구의 결심과 완전한 건강과 육체적 및 정신적 힘 을 얻어, 영생의 샘을 마시고 하느님의 확증의 정신에 도움 받 게 되기를 바란다.” 15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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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8 장 종교의융합 너희, 세계의 백성들아!‘계시의 글’에서 차별, 악덕, 불화의 원인이 되는 것을 모두 말소하고 거기에 통일, 조화, 일치로 인 도하는 것을 써 넣은 것은 이 위대한 현시(顯示)의 덕이니라. 이것에 따라 행하는 자에게 기쁨이 있을 진저. --- 바하올라의‘세계에 관한 서한’에서 19세기의 종파주의 19세기처럼 종교적 융합에서 멀어졌던 시대는 없을 것이다. 몇 세기 동안 대 계시종교 -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불교, 기독 교, 이슬람교, 기타 여러 종교가 병행(倂行)하여 존재하였다. 그러나 그 전체가 일치 조화되지 못하고 도리어 서로 적대, 반 목하여 왔다. 그뿐 아니라 그 각 종교 자체가 분열에 분열을 거 듭하여 종파가 더욱 더 많아져서 그것들이 서로 싸움을 계속하 여 왔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으되.“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한복음 제 13장 35절)하셨다. 모하멧께서도 말씀하셨으되,“너희들 종교 는 유일의 종교이니라........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명하시고, 짐 (朕)이 너희에게 계시한 것, 또 짐(朕)이 아브라함, 모세, 그리 스도에게‘이 신앙을 따르라, 그리고 분열하여 종파를 만들지 말라.’고 명한 이 신앙을 믿고 따르라고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 155 제 8 장 종교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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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령하셨다.”고 하셨다. 대계시종교의 창시자들께서는 모두 그 신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융합하기를 요구하셨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에든지 이들 창시자의 목적은 좁은 생각과 완미(頑 迷)한 정신, 허식과 위선, 악덕과 오전(誤傳), 분립과 논쟁 등의 어지러움 속에 가리워져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반목하는 여러 종파의 총 수는 바하이 시대의 초기에 있어서, 아마 인류 역사가 있어온 이래 가장 많았으리라. 당시의 사람들 은 마치 모든 종류의 종교적 신앙과 의식과 의례의 방식, 여러 가지 도덕적 법전(法典)의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 다. 이와 동시에 자연법칙과 신앙의 기초에 대한 대담한 연구와 비판적 관찰에 노력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새로운 과학 지식이 급속히 보급되고 생활상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새로 운 해결이 발견되고 있었다. 기선과 철도, 통신시설과 인쇄술 등의 발명의 진보는 사상의 확대와 여러 형태의 사고방식과 생 활면에 많은 접촉을 촉진하였다. 그리하여, 이른바‘종교와 과학의 충돌’은 무서운 투쟁을 일 으켰다. 기독교계에서는 성서의 비판이 자연과학과 결탁하여 성서의 권위, 즉 여러 세기 동안 일반이 받아들인 신앙의 기초 가 되는 권위를 어느 정도까지 반박하기에 이르렀다. 교회의 교 의(敎義)에 의문을 품은 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많은 승려들까 지도 각자의 교파에 기초하는 자신들의 고유한 신조에 대하여 비밀히 혹은 공공연히 은폐하거나 의심을 품게 되었다. 낡은 정교(正敎)와 낡은 교리(敎理)의 불충분함에 대한 인식 이 높아짐에 따라 완전한 지식과 이해를 탐색하고 추구하게 되 15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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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그 견해와의견이 물 끓듯 격동하였으니, 이러한 현상은 기 독교국에서만이 아니라 정도의 차는 있지만 여러 가지 형태로 써 모든 나라와 모든 종교인들 사이에 나타났다. 바하올라의 전언(傳言) 바로 이 충돌과 분규의 상태가 그 절정(絶頂)에 달했을 때 바 하올라께서는 인류를 향하여 큰 나팔을 불으셨던 것이다. “모든 나라들이 신앙에 있어서 일체가 되고 모든 사람들이 동포로서 일체가 되는 것, 인류 사이에 친애와 결합의 맹약(盟 約)이 강화되는 것, 여러 가지 종교의 분화가 중지되고 인종의 차별이 없어지는 것........ .이러한 투쟁과 유혈(流血)과 불화 가 없어져 전 인류가 한 가족, 한 친족과 같이 되어야 한다.” --- 브라운 교수에게의 담화 이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전언(傳言)이다. 그러나 이 제의가 어떻게 하여 수행될 것인가. 몇 천 년의 오랜 세월을 거쳐 이러 한 일에 대하여 예언자들이 설교하고 시인들이 노래하며 성자 들이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파벌이 없어지지 않고, 쟁 투와 유혈과 참사와 알력이 제거되지 않았거늘 지금에 이르러 무엇으로써 이 기적이 성취될 것인가. 이러한 상황에 무슨 새로 운 요인(要因)이 있는 것일까. 인간성은 옛날의 그것과 같은 것 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이 존속하는 한, 마찬가지로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만일 두 사람 혹은 두 나라 사이에 동일 한 욕구물(欲求物)이 있다면 그들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장래에 있어서도 그것을 위하여 싸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모세, 석가 모니, 그리스도, 모하멧께서 달성하지 못하신 세계통합을 바하 올라께서 과연 성취하실 수 있을 것인가. 또 종전의 모든 종교 157 제 8 장 종교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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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퇴폐하여 많은종파로 분열되었다면 바하이신앙도 또한 동 일한 운명에 놓여지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바하 이의 가르침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인간성은 변화할 수 있는가 교육과 종교는 한가지로 인간성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정(假 定)위에 서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어떠한 샘물이든지 변 화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언할 수 있으며 그것은 별로 연구를 요하는 일도 아니다. 변화 없이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광물까지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고, 모든 존재물이 권내(圈內) 에서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이 변화가 다종다양(多種多樣)하여 더욱 복잡하고 기이(奇異)한 현상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모 든 종류의 창조물이 진보와 발전에 있어서 우리는 두 종류의 변 화가 있음을 발견한다. 즉, 그 하나는 완만하고 점진적이어서 거의 지각(知覺)할 수 없는 변화요, 다른 하나는 급속하여 돌연 히 일어나며 극적(劇的)인 것이다. 후자는 이른바 발달의‘임계 기’(臨界期)에 일어나는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광물의 경우 이 와 같은 임계기는 용해점(熔解點)과 비등점(沸騰點)이니, 예컨 대, 고체가 갑자기 액체로 변하고, 혹은 액체가 기체로 변함과 같은 것이다. 식물의 이와 같은 임계기는 씨앗이 움트는 것, 혹 은 움이 잎으로 변하는 경우다. 동물계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현상을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 예컨대 유충(幼?)이 돌연히 나 비로 변하고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는 것, 혹은 아기가 어머니의 태에서 출생하는 것 같은 것이다. 보다 높은 영혼의 생활에서 우리는 가끔 이와 비슷한 변화를 본다. 사람이‘거듭나는’때 그 사람의 전 존재가 그 목적, 성격, 활동성에 있어서 근본적으 15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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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 변화한다. 또봄에는 여러 종류의 식물이 일제히 새 생명을 얻음과 같이, 이러한 임계기가 가끔 전종(全種) 혹은 다종(多 種)에 걸쳐 동시에 영향을 주는 일이 있다. 마치 하등생물이 새롭고 완전한 생명으로 돌연히 변화하는 시 기가 있음과 같이, 인류에게도‘임계기’, 즉‘재생기’가 가까워 졌다는 것을 바하올라께서는 선언하셨다. 즉, 인간 역사의 여명 으로부터 오늘까지 계속하여 온 생활양식이 급속히, 그리고 돌 연히 변화하여, 인간은 마치 나비가 모충(毛蟲)과 다르고 새가 알과 다름과 같이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운 국면(局面)에 들어 갈 것이다. 태양이 떠오를 때 온 땅이 그 빛에 비치어, 지금까지 모든 것이 어둡고 몽롱하던 것을 모든 사람이 명료하게 볼 수 있음과 같이, 전 인류는 새로운 계시의 빛 가운데 진리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시력(視力)을 얻을 것이다.‘이것은 인간능력의 새 로운 주기(週期)이다. 세계의 전 지평선은 밝게 빛나고 세계가 참으로 장미동산으로 화하여 낙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압돌 바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자연과 비슷한 점을 이러한 견지(見 地)에서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니, 옛날의 예언자들은 모두 한결 같이 이와 같은 영광의 날이 올 것을 예언하였고, 인간의 사상 과 제도에 심원하고 혁명적인 변화가 오늘 그 발전도상에 있는 것을 시대의 징조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만물은 변화하는데 인간성만이 변화할 수 없다는 염세론(厭世論)처럼 무익하고 무 근한 설은 없을 것이다. 통합에로의 첫 걸음 종교의 통합을 이루는 방법으로서 바하올라께서는 자애와 관 용에 최선을 다할 것을 권장하시고, 그 신자들에게‘모든 종교 159 제 8 장 종교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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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신자들과 기쁨과즐거움으로 사귀라.’고 가르치셨다. 그분의 ‘유훈’에 말씀하셨으되, “논쟁과 알력은 그분의 책‘케타베 악다스’에서 엄금하신 것 으로서, 이것은 이 지고(至高)한 계시에 있는 주의 명령이니 라. 그분은 - 이 명령을 폐지할 수 없게 하여 그분 확증의 장식 으로써 단장한 것이니라. 너희, 세계의 백성들아! 하느님의 종 교는 사랑과 융합을 위하여 있는 것이니 그것으로 하여금 원한 과 충돌의 원인이 되게 하지 말라....... 나는 바라노니, 바하의 백성은 항상‘보라,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니라.’고 한 이 신 성한 말씀으로 향하라. 이것은 물과 같아서, 가슴 속에 불붙는 증오와 원한의 불꽃을 꺼 버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말씀이니라. 단지 이 한 말씀에 의하여 세계의 여러 종파는 참다운 융합의 빛에 달하리니, 진실로 하느님께서는 진리를 말씀하시고 유일 의 길로 인도하시느니라. 그분은 지극히 강대하시고 은혜로우 시고 또 지극히 아름다운 분이시니라.”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으되, “모든 사람은 편견을 버리고 서로의 교회와 사원(寺院)에 출 입할지니, 이 모든 예배장소에는 다 같이 하느님의 이름이 불 리우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이 는데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을 것인가. 누구도 악마를 예배하 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교도는 기독교의 교회나 유대인 회당에 가고, 반대로 기독교나 유대교인은 이슬람교 사원에 가야할 것 이다. 그들이 서로 멀리하는 것은 단지 아무 근거 없는 편견과 독단에 기인하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가끔 유대교의 회당을 방문한 일이 있는데 기독교 교회와 마찬가지로 저들이 근처에 16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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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하느님을 예배하고있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여러 장소에서 나는 여러번, 신성한 여러 종교의 본래 의 기초에 대하여 말하고 하느님의 예언자와 성스러운 현시자 의 확실성의 증거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나는 저들에게 맹목적 인 모방을 버릴 것을 권하였다. 모든 지도자들은 다 같이 서로 의 교회에 가서 신성한 종교의 기초의 근본적 원리를 말해야 할 것이다. 각자 서로의 예배장소에서 무사의 일치와 조화 가 운데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요 광신(狂信)은 버려야 한다.” ---‘서방의 별’제 9권 제 3호 37쪽 만일 이러한 첫 걸음이 성취되어 서로 우정을 가진 관용의 상 태가 여러 종교와 종파 사이에 조성된다면 얼마나 놀라운 변화 가 이 세상에 이루어질 것인가. 그러나 진정한 융합을 이룩함에 는 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종파분열의 병에는 관용이 중 요한 완화제가 되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는다. 그것만으 로는 결코 혼란의 원인을 제거할 수 없다. 권위의 문제 과거의 여러 종교단체가 일치연합에 실패한 것은 그 각 종교 의 추종자들이 제각기 자기가 믿는 종교의 창시자를 유일 최고 의 권위자로 알고 그 계율을 하느님의 계율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른 계시를 선언한 예언자를 진리의 적으로 보게 된 것이니, 각파의 추종자들은 어느 종속적인 권위자를 받들어, 창 시자의 계시에 대한 어떤 특수한 견해나 해석으로써 유일한 참 다운 신앙으로 알고 그 외의 것은 모두 부당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가 계속되는 동안은 진정한 융합이 불가 능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편, 바하올라께서는 모든 예언자들 161 제 8 장 종교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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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다 하느님께서믿을 만한 신탁(神託)을 받은 자들이요, 그들 은 모두 각자의 시대에 있어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고 의 가르침을 전하고 그들의 후계자에게서 더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한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바하올라께서는 모든 종 교의 신자들을 향하여, 저들 각자가 신봉하는 예언자의 신성한 영감(靈感)을 부정하지 않음과 같이 다른 모든 예언자들의 신 성한 영감도 인정하라 하셨고, 그 모든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조 화되는 것이고 인류의 교육과 통합의 대 계획의 여러 부분을 이 루는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또 그분은 모든 종파의 사람들에 대 하여, 모든 예언자들이 온갖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 노력을 통하 여 얻은 이 융합의 완성에 신명(身命)을 바침으로써, 자기가 신 봉하는 예언자에게 존경을 표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분께서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내신 서한에서 세계를 병자에 비유하여, 그의 병이 무능한 의사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에 더욱 악화되는 것이라고 하셨고, 어떠한 치료가 그 효력을 나타낼 것인가에 대 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주께서 전 세계의 치료를 위하여 최상의 치료법, 최강의 의약 으로 정한 것은, 모든 민족이 한 보편의 대업, 즉 공통의 종교 로써 통합되는 것이다. 이 일은 숙련되고 완전하며, 그리고 영 감을 받은 의사의 힘에 의하지 않으면 결코 달성할 수 없나니, 진실로 이것이 진리요, 다른 것은 모두 잘못이다.” ---‘낙수집’225쪽 점진적 계시 종교통일의 길에서 최대의 장애물은 여러 예언자에 의하여 전 16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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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진 계시가 서로다른 점이다. 한 예언자가 명령하신 일을 다 른 예언자가 금하신 것이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하여 둘이 다 정당하고 둘이 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진리는 하나요, 변할 수 없다. 그렇다. 절대적인 진리는 하나요,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진리는 인간의 이해력의 현재 한계의 무한한 저쪽에 있어서, 그것에 대한 우리의 개념 (槪念)은 부단히 변화함을 면치 못한다. 즉, 우리의 옛날의 불 완전한 사상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하여 시대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완전한 개념으로 변해간다. 페르시아의 어떤 바하이들에 게 주신 서한에서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들아! 말씀은 이것을 받는 자의 능력에 맞게 계시되나 니, 그리하여 초보자라도 진보할 수 있는 것이다. 아기에게는 적당한 양(量)의 젖이 주어져야 하나니, 그리하여 이 세상의 아기는 장엄의 왕국에 들어가서‘융합의 궁정’에 안주(安住)할 수 있는 것이다.” 아기를 튼튼하게 하여 점차 굳은 음식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하 여 주는 영양물은 젖이다. 어느 예언자가 그의 시대에 설법(說 法)한 가르침이 정당치 않다고 하는 것은, 마치 젖이 간난 아기 에게 가장 좋은 영양물이라고 하여 장성한 사람도 그것을 먹어 야 하고 다른 음식을 주는 것이 부당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압 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으되, “모든 하느님의 계시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제 1의 부분은 본질적인 것이요, 영원의 세계에 속한 것이다. 이것은 신성한 진리와 그 근본 원칙을 설명한 것이니 곧‘하느님의 사 랑’의 표현이다. 이것은 모든 종교에 있어서 동일한 것이며 또 163 제 8 장 종교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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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영원불변의 것이다.그 제 2의 부분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생활이나 업무와 거래 등에 관한 것으로서 인 간의 발달과 각 예언자의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다. 예컨대....... 모세의 시대는 조그마한 도둑에 대한 형벌로 서 손목을 자른 것이니‘눈에는 눈, 이(齒)에는 이로써’갚는 법률이 행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은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적당치 않았으므로 폐지되었다. 마찬가지로 당시 이혼이 일반 적 풍습을 이루어 결혼에 대한 일정한 법률이 없었으므로 성 그리스도께서는 이혼을 금하셨다. 시대의 긴급한 요구에 따라 성 모세께서는 극형으로서 10개조 의 계율을 계시하셨다. 왜냐하면 당시의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아무 확립된 법정이나 감옥도 없이 타아라는 황막한 들에 사는 민족으로서, 이러한 엄격한 법규가 없이는 도저히 그 단체를 보호하고 사회적 안전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법전이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필요치 않았다. 종교의 제 2부분의 역사는 단지 그 생활풍습에 관한 것이므로 중요한 의의를 갖지 않는다. 그런데 하느님의 종교의 기초는 하나요, 성 바하올라께서는 그 기초를 새로 고치셨다.”--- ‘신성한 철학’ 하느님의 종교는 유일한 종교요, 모든 예언자께서는 그것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있어 성장하는 것이지 생명 없 는 불변의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세의 가르침에서 봉오리를 보 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꽃을 보며, 바하올라의 가르침에서 열매를 본다. 꽃은 봉오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며 열매는 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파괴가 아니라 성취시키는 것이 다. 꽃이 피기 위하여 봉오리 껍데기와 꽃잎이 무용한 것이었느 16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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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냐 하면 그런것이 아니라 이 둘다 그 시기에는 없어서는 안되 는 것이었으니 이것들이 없이는 도저히 열매가 있을 수 없는 것 이다. 여러 예언적 가르침도 이와 같아서, 그 외관은 시대에 따 라 변화하나 그 어느 계시든지 다 그 선행자(先行者)의 가르침 을 완성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 관련된 것이어서 이 유일의 종교는 살아 있는 역사에 혹은 씨가 되고 혹은 봉오 리가 되고 혹은 꽃이 되어 나타났고, 지금은 열매의 단계에 들 어선 것이다. 예언자들의 확실성 예언자의 지위를 받은 분은 다 그 사명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선행자(先行者)의 가르침을 고치고 폐지하고 추가하는 권위를 가졌다고 바하올라께서는 가르치셨다. 그분은‘케타베 이간’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만인 중에서 하느님의 창조물의 지도자로 한 사람을 택하고 서, 그에게 신성한 자로서의 충분한 증거를 주지도 않고, 그를 배반하는 자에게 벌을 준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혜와 자비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만유(萬有)의 주의 무한한 은혜는 항상 그 신성한 본질의 현시자를 통하여 세계와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을 포용한다........ ” “모든 계시의 목적은 인류의 일반적 성격에 변화를 일으키 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그 변화는 인류의 성격에 내면 적 또는 외면적으로 나타나서 인류의 내면적 생활과 외면적 상태의 양면에 영향을 준다. 만일 인류의 성격이 변화하지 않 는다면 하느님의 만유의 현시자들의 출현은 분명히 무익한 일 165 제 8 장 종교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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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유일하시고절대 오류(誤謬)없는 권위자이시며 예언자들 또한 확실성을 가지셨나니, 그분들의 계시는 하느님 께서 그분들을 통하여 세상에 주시는 전언(傳言)이기 때문이 다. 그리고 그 전언은 동일한 예언자 혹은 다른 예언자에 의하 여 다음 계시가 전해지기까지는 유효하다. 하느님께서는 세계의 질병을 바로 진찰하시고 적당한 치료법 을 지정하실 수 있는 유일한 대 의사(大醫師)이시다. 어느 시대 에 지정된 치료법은 후일 환자의 상태가 달라진 경우에는 그것 이 적용되지 않는다. 의사가 새로운 처방을 명령했을 때 아직도 묵은 치료법을 고수(固守)하는 것은 의사를 신뢰하는 것이 아 니라 도리어 불신을 표하는 것이 된다. 3천년 전에 모세께서 세 계의 질병에 대하여 명령하신 치료법 중의 어떤 것은 벌써 시대 에 뒤져 부적당하다고 말하면 유대교도들은 아마 놀랄 것이다. 기독교도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명령한 것에 모하멧께서 필요하고 가치 있는 어떤 사항을 부가하셨다고 말하면 역시 놀 랄 것이다. 또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가 바압과 바하올라에게 모하멧께서 명령하신 바를 고치는 권위가 있음을 승인하라고 요구한다면 또한 놀랄 것이다. 그러나 바하이의 견해에 의하면 하느님께 대한 진정한 헌신이란 것은 모든 하느님의 예언자를 존중하고 우리 자신의 시대의 예언자에 의하여 주어진 하느님 의 가장 새로운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 은 헌신에 의해서만 진정한 통합이 달성될 것이다. 16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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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고(至高)의 현시 다른 모든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바하올라께서도 가장 명확 한 술어로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다. 특히 기독교도들에게 보 내신‘로우에 악다스’라는 서한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참으로 천부(天父)는 오시어‘하느님의 나라’에서 그대들에 게 약속하신 바를 성취하셨다. 이것은‘하느님의 아들’이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 아직 그 시대에는 저들이 감당할 수 없다고 하여 단지 묵시(默示)했음에 불과한‘말씀’이다. 그러나 그 시 대는 이미 지나고 때가 이르러 그‘말씀’은‘하느님의 뜻’의 지평선에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명심하라.‘하느님의 아들’ 의 무리(기독교도)여! 모름지기 이것을 버리지 말고 튼튼히 붙 잡으라. 그것은 그대들의 눈 앞에 있는 모든 것보다도 나으니 라........ 진실로‘진리의 정신’은 모든 진리로 그대들을 인도 하기 위하여 오셨다. 진실로 그분의 말씀은 그 자신의 것이 아 니라 전지하시고 총명하신 분에게서 온 것이다. 그분은‘하느 님의 아들’이 찬미하신 바로 그분이시다........ 지상(地上)의 사람들아. 그대들의 눈앞에 있는 것을 버리라. 그리고 위력 있 고 신의 있는 분이 명하신 것을 붙잡으라.” 1867년 아드리아노플에서 로마법왕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음 과 같이 말씀하셨다. “찬미함으로써 찬미 받으시는 분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예 배함으로써 예배 받으시는 분에게서 멀어지지 않도록 조심하 라! 강대하고 전지하신 주를 보라! 그분은 세계의 생명에 봉사 하고 지상에 사는 모든 것을 화합시키기 위하여 오셨다. 사람 167 제 8 장 종교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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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아! 계시의 발생지로오라. 한 시간이라도 주저하지 말라. 그 대들은 복음서를 배웠건만 아직‘영광의 주’를 보지 못하는가. 학식있는 사람들이 이럴 수도 있는가. 그대들이 만일 이것을 부정한다면 무슨 증거에 의하여 하느님을 믿는가. 그 증거를 제시하라........ ” 기독교도들에게 보내신 이러한 서한에서 복음서의 약속이 성 취된 것을 발표하신 것과 같이, 이슬람교도, 유대교도, 조로아 스터교도, 그밖에 다른 신앙의 사람들에게도 그분은 각각 그 경 전 중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설명하셨다. 그분은 이 모든 사람 들을, 종래 별개의 양의 무리로서 별개의 양우리에 보호된 하느 님의 어린 양이라고 부르셨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 분의 계시는 하느님의 소리요 때가 성숙하여 착한 목자가 오신 것이니, 흩어진 양의 떼를 한 무리로 모으고 저들 사이의 장벽 을 제거하여,‘한 양우리에 한 목자’로 하기 위하여 그분이 오 신 것이다. 새로운 정세 모든 예언자들 가운데서 바하올라의 위치는 전례가 없는 독특 한 것이니, 그것은 그분이 출현하신 시대의 세계상태가 전례 없 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종교, 과학, 예술, 문명이 오랫동안의 착 잡한 발전과정(發展過程)을 거쳐, 세계는 마침내 성숙되어 융 합을 불가능케 했던 장벽도 바하올라께서 출현하셨을 때에는 이미 와해(瓦解)되려는 기운에 놓여 있었다. 그리하여 1817년 그분이 탄생하신 이래, 특히 그분의 가르침이 선포된 이후 이러 한 장벽은 가장 놀라운 상태로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거기에 대한 설명은 어떠하든, 그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6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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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대의 예언자들의 시대에있어서는 지리상의 장애만으로도 세계의 융합을 방해함에 충분하였다. 지금은 그 장애가 제거되 었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지구의 양편에 있는 사람들이 신속하 고 용이하게 통신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 유럽에서 일어난 사 건이 오늘은 세계각지의 구석구석까지 보도되고, 오늘 아메리 카에서 행한 강연을 내일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의 큰 장애는 언어상의 곤란이었다. 다행히 외국어의 많 은 연구와 보급에 의하여 이 언어상의 장애도 많이 감소되었다. 그리고 장래의 하나의 보조적 세계어가 채택되어 세계의 모든 학교에서 이것을 가르칠 때가 올 것임을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 가 있다. 그때에는 이 장애도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 세계의 큰 장애는 종교상의 편견과 편협이다. 그러나 이것도 점차로 해소되어 가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점점 열리고 민중의 교육은 종파적인 승려들의 손에서 점차로 떠나게 되었다. 그리 고 새롭고 더 자유스러운 사상이, 가장 배타적이며 보수적인 사 회에까지 침투하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막아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하올라께서는 그 사명을 비교적 짧은 시일 내에 전 지구상의 각지에 알리게 된 최초의 위대한 예언자이셨다. 멀 지 않은 장래에 그분의 권위 있는 저서에서 번역된 그 본질적 가르침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문자를 해독하는 자에 게는 직접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69 제 8 장 종교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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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하이 계시의 충만 바하이계시는 그 권위 있는 기록이 풍부하고 완전한 점에 있 어서 세계의 여러 종교 중 고금(古今)에 무비하고 독특하다. 그 리스도, 모세, 조로아스터, 석가모니, 크리슈나 등 여러 예언자 들 자신이 확실히 말해서 남긴 기록은 극히 적어서, 현재의 많 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것이 많다. 여러 종교의 창시자들의 가르침이라고 일반에 전해져 있는 것 중의 많은 것이 진가(眞假)를 알 수 없고, 어떤 것은 확실히 후 세에 첨가된 것이다. 이슬람교도는 그들의 경전‘코란’과 많은 경외전설(經外傳說) 가운데 그들의 예언자의 전기(傳記)와 가 르침이 더 풍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하멧 자신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으셨지만 그분의 최초의 많은 신도들과 마 찬가지로 전혀 무학(無學)하였다. 따라서 그분의 가르침을 기 록하고 전파할 방법이 여러 가지 점에서 심히 불충분하였다. 그 리하여 그 전설에는 믿기 어려운 것이 많다. 그 결과로써 모든 전대의 종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에도 여러 가지 해 석과 서로 충돌하는 의견으로 말미암아 많은 분열과 알력이 생 긴 것이다. 이와는 달리, 바압과 바하올라 두 분께서는 탁월한 능변과 권 위로써 풍부한 저술을 하셨다. 그분들께서 사명을 선언하신 후 에는 공공연히 말씀하시기 어렵게 되셨고, 그 생애의 대부분을 옥중에서 지내셨으므로 많은 시간을 저술에 바치셨다. 그 결과 바하이의 계시는 그 경전이 확실하고 풍부한 점에서 전대의 종 교의 어느 것이나 그것을 따를 수 없다. 전대의 계시에서 막연 히 예시(豫示)한 많은 진리에 관하여 명확하고 충분한 해석을 17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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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하여, 모든 예언자가가르친 진리의 영원한 원리가 오늘의 세 계가 직면한 실제 문제에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가장 복잡하고 곤란한 문제 중의 많은 것은 전대의 예언자들의 시대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충분하고 권위 있는 계시의 기록은 장래의 오해를 방지하는 큰 힘이 되고, 여러 종교의 통합을 방 해했던 과거의 오해를 일소하는 힘이 될 것은 명백한 일이다. 바하이 성약(聖約) 바하이 계시는 다른 점에서 보아도 독특하고 무비하다. 바하 올라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성약’을 쓰시어 그 가운데 서, 그분이 가끔‘가지’혹은‘가장 큰 가지’라고 인용한 바 있 는 그분의 장자 압돌바하를 이 가르침의 권위 있는 해석자로 지 명하셨다. 그리고 이 장자에 의하여 행해지는 어떠한 설명이나 해석이든지 바하올라 자신의 말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으로 받 아들여야 한다고 선언하셨다. 그분의‘유훈’에 다음과 같이 씌 어 있다. “나의‘케타베 악다스’에 계시된 것을 회상하라.‘나의 출현 의 바닷물이 퇴조하고 나의 계시의 글이 끝나거든, 너희는 하 느님이 뜻하신 바, 이 고래의 뿌리에서 갈린 그에게 너희의 얼 굴을 돌리라.’이 축복받은 싯귀(詩句)는‘가장 큰 가지’에 관 한 것이니라.” 또 그분이 압돌바하의 지위를 설명하신‘가지에 관한 서한’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사람들아! 너희는 이‘가지’의 출현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 171 제 8 장 종교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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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하라. 진실로 그것은너희를 위한 지극히 큰 은혜요, 완전한 축복이니라. 그로 말미암아 모든 썩은 뼈도 생명을 얻으리라. 진실로, 그를 향하는 자는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요, 그에게서 얼굴을 돌리는 자는 나의 미(美)에서 얼굴을 돌리고 나의 증거 를 부정하고 또 계율을 범하는 자이니라.” 바하올라의 사후에 압돌바하께서는 그분의 집에서, 또는 넓은 범위에 걸친 여행에서 세계의 각 방면의 각양각색의 의견을 가 진 사람들과 접촉하는 많은 기회를 가지셨다. 그분은 이러한 여 러 사람의 질문과 반대의견을 들으시고는 거기에 대하여 일일 이 충분한 설명을 하여 주셨고, 그것들은 정확히 기록되어 있 다. 압돌바하께서 그 긴 생애를 통하여 가르침을 설명하시고 그 것의 근대생활의 모든 문제에 대한 적용을 보여주는 일에 힘쓰 셨다. 신자들 사이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의견 상위는 그분에게 제출되었고, 그분은 권위로써 이것을 해결하셨다. 그리하여 장 래에 일어날 수 있는 오해의 위기를 크게 감소시켰다. 그리고 바하이신앙의 정신적 혹은 섭리적(攝理的) 성격은 계 속될 것으로 예시되어 있으니, 압돌바하의 유훈에 의하여 규정 된 대대계승의 수호자가 그분의 사후에 경전해석자로서의 임무 를 계속한다고 역시 그 유훈에 지시되어 있다. 그것에 의하여 이 신앙은 그 시대가 계속되는 한, 해석이 서로 다름으로 말미 암아 분파가 생기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며, 또 일반에 유행하 는 유물론이 창시자에 의하여 계시된 기준(基準)을 낮은 기준 으로 대치(代置)시킬 때 그 영향으로 말미암아 타락하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17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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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발전의 필요성에 관련하여바하올라께서는 세계정의원의 설립을 규정하셨다. 그리고 그 정의원의 선출과 기능은 압돌바 하의 유훈에 더 명확히 계시되었다. 대대계승의 수호자가 의장 인 이 최고 행정기구는, 계시의 글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 은 모든 사항에 대하여 입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태 가 다른 방법을 필요로 할 때 그 자체가 설정한 사항을 폐지할 수도 있다. 이 사실은 생명있는 유기체(有機體)의 활기있는 영 속(永續)을 바하이신앙에 보증한다. 일반진리의 터전에 세워진 바하이신앙은 각 연대(年代)와 시대의 상태와 요구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바하올라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분께서 계시하시고 규정하신, 또는 압돌바하께서 설정하신 모든 사회적 가르침과 사회적 제 도를 포함하는 것이므로 어떠한 바하이라도 분파나 종파를 세 울 수 없고, 또 어떠한 분립의 근거도 정당시될 수 없다. 이 종 교제의 본질적 목적은 모든 인종과 민족과 국가를 한 신앙과 한 질서 안에 모이게 하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 씀하셨다. “바하올라의 말씀에 제멋대로 해석을 가하고 그 능력에 응하 여 거기에 색칠하고, 그 주위에 사람들을 모아 다른 종파를 만 들고 자기의 지위를 높여 이 대업에 분열을 일으키도록 꾀하는 자는 대업의 적이다.”---‘서방의 별’제 3권 8쪽 또 다른 서한 가운데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이러한 사람들(분파의 주창자들)은 바다의 표면에 모이는 거품과 같은 것이다. 물결은‘성약’의 바다 가운데서 몰려와서 173 제 8 장 종교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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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하의 나라’의 힘으로이것을 바닷가에 밀어 버린다.......개 인적인 악한 생각에서 발하는 이러한 부패한 사상은 다 사라지 고 다만‘하느님의 성약’만이 확실하고 완전하게 존속할 것이 다.”---‘서방의 별’제 10권 95쪽 만일 어떤 사람이 종교를 버린다고 하여 누구나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으되,‘하느님 자신도 영혼 이 정신적으로 될 것을 사람에게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인간의 자유스러운 의지활동은 필요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정 신적 성약은 분명히, 바하이 공동체 내에 종파 분립이 생기는 것을 전혀 불가능케 한다. 직업적인 성직자가 없음 바하이신앙의 또 한 가지 특색은 직업적 성직자의 제도가 없 는 것이다. 선교활동을 하는 신자들의 교도활동비용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것은 허락하는 일이어서 이 대업을 위하 여 많은 봉사를 바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바하이가 각자의 기 회와 능력에 응하여 교도사업에 전력할 것을 기대한 것이요, 따 로 성직자의 직분과 특권을 전문으로 행사함으로써 일반신자와 구별되는 특별한 계급은 정해져 있지 않다. 옛날에는 인류가 무지하고 배우지 못하여 저들의 종교교육과 종교적 의식이나 제전(祭典)의 집행과 재판사무 등이 성직자에 의하여 행해졌으므로 성직자 제도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지금 은 시대가 변하였다. 보통교육이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 만일 바하올라의 명령이 준행된다면 세계의 모든 소년소녀가 모두 훌륭히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각 개인은 자유로이 경 17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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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을 연구하여 스스로‘생명수’를그 수원(水源)에서 떠서 마 실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특별한 직업 혹은 특별한 계급의 봉사 를 요하는 극히 장엄한 의식과 제전이 바하이 조직에는 없다. 그리고 정의의 행정은 그 목적으로 세워진 행정기구에 위임되 어 있다. 어린이를 위하여 교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참다운 교사의 목 적은 학생으로 하여금 교사 없이 학생 자신으로서 배우게, 즉 자기의 눈으로써 사물을 관찰하고, 자기의 귀로써 들으며, 자기 의 심의(心意)로써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 지로 인류의 유년시대에는 성직자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성직 자의 참된 직무는 중생이 성직자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행동하여, 자신의 눈으로써 신성한 사물을 보고, 자신의 귀로써 듣고 자신의 심의로써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지금 은 이 승려의 직분이 거의 달성되었다. 그리하여 바하이 가르침 의 목적은 그 직분을 완성시켜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 이외의 일체(一切)의 것으로부터 독립케 함에 있다. 그렇게 되면 저들 은 직접 하느님께, 즉 하느님의 현시자에게 향할 수 있는 것이 다. 전 인류가 다 같이 유일의 중심으로 향할 때, 거기에는 아무 런 오해와 혼란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더욱 그 중 심에 가까워질수록 저들도 더욱 더 서로 가까워 질 것이다. 175 제 8 장 종교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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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9 장 참다운문명 하느님의 백성들아! 너희 자신의 일에 몰두하지 말라. 세계 를 개선하는 일, 모든 나라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에 힘쓰라. --- 바하올라 종교는 문명의 기초다 바하이 견해에 의하면 인생문제는 개인적인 것이건 사회적인 것이건 보통 사람의 지혜로서는 혼자의 힘으로 바로 해석하기 는 불가능하리만치 상상이상으로 복잡하다. 다만 전지하신 하 느님만이 천지창조의 목적과 그 목적이 어떻게 수행될 것인가 를 아신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인생의 참다운 목 적과 진보의 올바른 계정(階庭)을 인류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요, 참다운 문화의 건설은 예언자에 의하여 계시된 바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성취되는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 씀하셨다. “종교는 세계의 질서와 모든 존재물의 평안을 유지하는 가장 큰 도구(道具)이다. 종교의 기둥이 약해질 때 어리석 은 백성이 선동되어 불손하고 오만해졌다. 내가 진실로 말 하노니, 종교의 고귀한 지위를 낮추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 었든지 간에 사악(邪惡)한 자아의 불근신(不謹愼)을 더하게 177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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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 마침내 무질서한상태를 초래한다........ 서양 사람들의 문명을 보라. 그것이 세계 인류에게 얼마나 소 란과 동요를 일으켰던가를. 악마의 도구가 수없이 발명되어, 세계의 눈이 일찍이 보지 못하고 세계의 귀가 일찍이 듣지도 못한 잔인한 행위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데 씌어졌다. 이 러한 언어도단의 사악을 개선함에는 다만 세계의 모든 사람이 어떤 일정한 원칙에 결합되거나 또는 한 종교의 그늘에 통합되 지 않으면 안된다........ . 바하의 백성들아! 계시된 명령의 하나 하나는 다 세계를 보 호하는 가장 튼튼한 요새(要塞)이니라.”---‘낙원의 말씀’ 유럽과 세계 일반의 현상은 오래 전에 씌어진 이러한 말씀이 진리임을 웅변으로 확증한다. 예언자의 명령을 무시하든지 무 종교가 유행하는 것은 무질서와 무서운 파괴를 초래한다. 그리 하여 참다운 종교의 근본적인 마음과 목적의 변화가 없이는 사 회개혁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의(正義) 바하올라께서는 예언자로서 가르침의 요점을 간단히 기술한 ‘숨겨진 말씀’이라는 작은 책에서 그분의 첫째의 권고로써, 개 인생활에 관하여‘착하고 깨끗하고 빛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셨고, 다음에 사회생활의 근본원리를 계시하셨다. “정신의 아들아! 내 앞에 있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것은 정의이니, 나를 바라거든 정의를 외면하지 말고, 내가 너 17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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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믿을 수있도록 이를 소홀히 하지 말아라. 정의의 도움으로 인해 너는 남의 눈이 아닌 네 눈으로 보게 될 것이며 이웃사람 의 지식이 아닌 너의 지식으로 알게 되리라. 네가 어떻게 하여 야 마땅한지 가슴깊이 숙고하여라. 참으로 정의는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요 내 자애의 표시이니라. 그러니 이를 네 눈앞에 두어라.” 사회생활의 첫째 요체(要諦)는 각 개인이 참과 거짓, 그리고 선과 악을 식별하는 능력을 가져 사물(事物)을 바른 기준에서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정신적 사회적으로 눈이 어두워지는 최대의 원인과 사회 진보의 최대의 적은 이기심(利己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 지혜의 아들아! 엷은 눈꺼풀도 눈을 덮어 세계와 그 안의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거늘, 탐욕의 장막이 마음의 눈을 가리운 때의 결과를 생각해 보라.” “사람들아! 탐욕과 원한의 암흑은 구름이 태양광선을 가리움 같이 영혼의 빛을 어둡게 한다.” --- 조로아스터교도였던 페르시아의 어떤 바하이에게 보낸 서한에서 오랜 경험에 의하여 사람들은 마침내 예언자의 가르침이 진실 하였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즉, 이기주의의 인생관과 이기 주의의 행동은 필연적으로 사회질서를 어지럽게 한다. 만일 인 류가 불명예스러운 멸망을 원치 않는다면 모든 사람은 이웃사 람의 일도 자기의 일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전체 로서의 인류의 이해를 자기의 이해보다 앞세워야 한다. 그리하 179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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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각자와 전체의이해는 종국에 가서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 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만일 자비(慈悲)를 원하거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말고, 너의 인류 동포의 이익을 생각하라. 네가 만일 정의를 원하거든 너를 위하여 하고 싶은 일을 남을 위하여 하라.”---‘낙원의 말씀’ 정부 올바른 사회질서의 문제에 관한 바하올라의 가르침은 두 종류 의 설명으로 구분할 수 있으니, 그 하나는 여러 나라 왕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보는 바와 같은 것으로서, 바하올라의 재세(在 世) 중에 세상에 있는 대로의 정치문제를 다룬 것이고, 다른 하 나는 바하이 공동체 안에 전개될 새 질서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다음에 인용하는 구절 사이에는 현저한 대조(對照)가 생긴다. 즉,“그분의 영광이 고귀하도다. 유일의 참된 하느님께 서는 과거에도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하느님 자신의 것, 즉 하 느님의 독점적인 소유물로 하시었고 미래에도 또한 그러할 것 이다. 그리고 그 이외의 모든 것, 즉 땅 위에 있는 것이건 바다 가운데 있는 것이건, 부(富)이건 영광이건 모두 지상(地上)의 왕들과 통치자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라고 하셨고, 또 “‘가장 큰 이름’을 든든히 붙잡아 전 인류의 통합을 실현하는 일은 오늘날 모든 사람이 힘써야 할 일이다. 하느님 이외에는 사람이 도피할 곳이 없고 구할 수 있는 안식처가 없다.”고 하셨 다.(낙수집 203, 206쪽) 이와 같은 두 가지 견해 상의 모순은 우리가 바하올라에 의하 18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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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보여진‘소평화’와‘최대의 평화’와의구별을 보면 해소된 다. 왕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바하올라께서는 저들의 힘을 합하 여 정치적 평화를 유지하고, 군비를 축소하며 가난한 자의 괴로 움과 불안을 제거하는 방책을 취하라고 요구하셨다. 그러나 한 편 그분의 말씀에는, 왕들이 이 시대의 요청에 응하지 않아 그 결과로 전쟁과 혁명이 일어나서 묵은 질서가 뒤집히리라는 것 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그분은“오늘의 인류에게 필 요한 것은 권력의 자리에 있는 자에게 복종하는 일이라.”고 하 는 한편,“현세의 허영과 허식을 쌓아 하느님을 모욕하고 그분 에게 얼굴을 등지는 자는 현세와 내세를 잃을 것이다. 불원에 하느님께서는‘위력의 손’으로써 저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 고, 그분의 은혜의 옷을 벗길 것이다. 오 사람들아, 나는 너희를 위하여 시간을 정하여 두노니, 너희가 만일 지정된 시간에 하느 님을 향하지 않으면 진실로 너는‘그분’에게 잡혀서 모든 방면 으로부터 오는 무서운 고통을 받으리라. ..... 현재의 질서는 심 히 불완전하므로 가까워 오는 대변동과 혼돈의 징후가 지금 바 로 나타나게 되었다. .....짐(朕)이 맹세하노니, 이 세상에‘주 님’의 승리가 확립되어,‘주님’께로 향하는 왕이 한 사람도 없 을지라도‘짐(朕)의 대업’을 모든 사람 위에 높이 세울 것이 다.”---‘낙수집’209, 214, 216, 248쪽 “‘위대한 존재자’께서는 세계의 평화와 평온과 그 백성들의 진보의 선결 요건을 제시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셨다. 세계 인류의 모든 것을 포괄(包括)하는 광대(廣大)한 집합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일반이 느낄 때는 그것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 이 세상의 통치자와 왕들은 반드시 거기에 참여하여, 그 평의에 의하여 사람들 사이에 세계의‘최대의 평화’의 주춧돌을 놓는 181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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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여야할 것이다. 이와 같은 평화는 열강 (列强) 각국이 세상 사람들의 평안을 위하여 굳은 결의로써 완 전히 화합하여야 할 것을 요한다. 만일 어느 왕이 다른 왕에 대 하여 군사를 일으키는 일이 있으면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그의 의도를 막아야 한다.”---‘낙수집’249쪽 이와 같은 권고에 의하여 바하올라께서는 이‘하느님의 날’에 공적책임(公的責任)이 풀릴 여러 조건을 명시하셨다. 한편으로 국제간의 공동일치를 호소하면서, 그분은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끊임없는 분쟁은 그들의 힘을 파괴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경 고하셨다. 즉, 모든 문명국에 있어서 이와 같은 파괴적인 힘을 얻기 위한 강압적인 운동이 일어나고 전쟁지식이 발달하여 이 제는 어느 편에도 승리란 것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너희가‘최대의 평화’를 거부할지라도 너희와 너희의 가족 의 생활조건을 다소라도 개선할 수 있는‘소평화’는 고집하 라........‘주’께서 전 세계의 치료를 위하여 최상의 치료법과 최강의 도구로 정한 것은, 모든 민족을 하나의 보편(普遍)의 대업, 즉 하나의 공통된 신앙으로써 통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숙련되고 전능한, 그리고 영감(靈感)을 가지신‘의사’의 힘이 아니면 결코 달성할 수 없다.”---‘낙수집’254, 255쪽 ‘소평화’는 다만 여러 나라의 정치적 통합을 의미하고,‘최대 의 평화’는 정치적 및 경제적 요소와 함께 정신적 요소도 포괄 하는 통합을 의미한다. “불원에 오늘의 질서는 걷혀지고 그에 대체(代替)하여 새 질 서가 전개될 것이다.”---‘낙수집’7쪽 18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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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는 정부가 외면적인일과 물질적인 일만을 문제 삼으면 족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정부 기능은 하느님을 향하는 자가 아 니면 할 수 없는 지도와 헌신, 그리고 정신적 지식의 성질을 요 구하고 있다. 정치상의 자유 지역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또는 국제적으로나 이상(理想)으 로서는 대의정체(代議政體)를 주장하는 바이지만, 그것은 다만 개인적 또는 사회적으로 그 수준이 충분히 높은 정도로 발달했 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라고 바하올라께서는 가르치셨다. 국민 이 이기적 욕망에 지배되고 국정(國政)을 다룸에 경험이 충분 치 못한데, 교육도 하지 않고 갑자기 그들에게 자치를 허용한다 면 폐해가 많을 것이다. 그것을 잘 운용할 줄 모르는 국민에게 자유를 주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은 없다. 바하올라께서는‘케 타베 악다스’에서 다음과 같이 쓰셨다. “사람의 마음이 보잘 것 없음을 생각해 보라. 저들은 자기에 게 해로운 것을 찾고 이로운 것을 멀리한다. 진실로 저들은 헛 길에 깊이 들어 헤매는 것이니라.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도에 넘친 자유를 요구하며, 그 자유 가운데 있는 것을 자랑으로 아 는 것을 보고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무지한 탓이니라. 도에 넘 친 자유는 마침내 혼란을 초래하여 누구나 그 불을 끌 수 없는 상태에 이를 것이다. 전지자이시요 결산자로서의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 경고하나니, 도에 넘친 자유의 구체적인 상징이 동물 이란 것을 알라. 인간다운 생활은 그 자신의 무지와 배신자의 가해를 막아주는 것과 같은 제한(制限)에 복종함에 있느니라. 도에 넘친 자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제(節制)의 규범을 벗어 183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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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게 하고 인간의존엄성을 침해케 하여 인간은 심한 부패와 사악에 빠지게 되느니라. 인간을 양의 무리로 생각해 보라. 그 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목자가 필요한 것이니 진실로 그것은 의 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니라. 짐(朕)은 어떤 경우에는 자유를 존 중하나 다른 경우에는 용인할 수 없느니라. 진실로 짐(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나니. 말하여라: -‘참다운 자유란 나의 명령 에 복종함에 있음을 너는 모르느냐. 만일 사람들이 나의 계시 의 하늘에서 보낸 자를 따르면 저들은 반드시 완전한 자유 안 에 있음을 발견하리라. 모든 창조물에게는 하느님의 뜻이 숨어 있나니, 하느님의 뜻의 하늘에서 계시된 것, 그것이 무엇이든 지, 거기서 하느님의 목적을 알아내는 자는 행복하느니라.’- ‘너희를 이롭게 하는 자유는, 영원한 진리인 하느님께 봉사하 는 것 이외에는 찾을 수 없느니라. 그리고 한번 그 단맛을 알게 된 사람은 하늘과 땅의 지배를 송두리째 주더라도 그것과 바꾸 지 않을 것이니라.’” 진보에 뒤진 인종이나 국민의 사정을 개선함에는 하느님의 가 르침이 가장 좋은 약이다. 국민이나 정치가나 다 같이 이 가르 침을 배워 실제로 행한다면 그 때에 비로소, 그 여러 나라들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통치자와 국민 바하올라께서는 가장 강력한 어조로써 포학한 정치와 압제를 금하셨다.‘숨겨진 말씀’가운데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땅위의 압제자들아! 나는 어느 누구의 불의도 용서하지 않 기로 굳게 마음 먹었으니, 폭정에서 손을 떼어라. 이것은 보존 18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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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 성한 속에내가 취하 불가능하도록 정한 뒤 내 옥쇄로 봉인 해 둔 성약이니라.” 법률과 규칙의 제정과 집행을 위탁받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 이 쓰셨다. “협의의 끈을 단단히 붙잡아 국민의 안전과 부유와 후생의 안 녕을 증진하는 일을 결정하고 실행하라. 그리하지 않고 다른 길로 나간다면 불화와 혼란을 초래하리라.” ---‘세계에 관한 서한’에서 그리고 한편, 국민은 정당한 정부의 법률을 존중하고 거기에 충성을 바쳐야 한다. 국민의 생활상태를 개선함에는 교육적 방 법을 신뢰하여 폭력에 의하지 않고 좋은 모범의 힘에 의하여야 한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떤 나라에 있어서든지 이 공동체의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는 그들은 충성과 진실과 복종의 태도로써 그 나라의 정부를 대하여야 한다.”---‘기쁜 소식’ “하느님의 백성들아! 신임과 정직의 옷으로써 너의 몸을 단 장하라. 그리고 선행과 도덕의 군대로써 너의 주를 섬기라. 진 실로 나는 나의 책에서, 나의 서한에서, 동란과 쟁투를 너희에 게 금하였나니, 나는 다만 이에 의하여 너희가 성장하고 고귀 하게 될 것을 바라는 바이다.”---‘에슈라가트의 서한’ 임명(任命)과 승진(昇進) 사람을 임명하는 유일한 표준은 그 지위에 가장 적당한 자를 185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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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르는 것이다. 이중요한 고려에 있어서 연장(年長)이라거나 사회적 또는 재산상의 지위라거나 가족적 혹은 우의적(友誼的) 관계와 같은 것은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 바하올라께서는‘에 슈라가트의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제5‘에슈락’(빛남)은 정부당국자가 피치자(被治者)의 상 태를 알고 공로와 업적에 응하여 계위(階位)를 주는 것이다. 이 점은 모든 장관이나 집권자들에게 엄격히 명령한 바이니, 반역자들이 신뢰받을 사람들의 지위를 빼앗거나 약탈자들이 보 호자의 자리를 점령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여야 한다.” 이 원칙이 일반에게 채용되어 실행될 때 우리의 사회생활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모든 사람이 각각 그 재주와 능력에 알맞은 직업을 가질 때, 각자는 그 일에 전력을 경주하여 그 직업에서 하나의 예술가가 될 것이요, 그렇게 됨으 로써 그 자신과 세상 일반에 무한한 이익을 주게 될 것이다. 경제 문제 바하이 가르침은 빈부간의 경제관계를 개선할 필요를 가장 강 력하게 주장한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국민의 생활상태를 정리하여야 하나니, 빈곤이 없어져 누구 나 그 위치와 계위(階位)에 응하여 될 수 있는 한, 안위와 행복 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들 사이에 한편에는 너무 많은 부(富)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것도 없어 굶주림에 고생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있음을 본다. 또 한 편에 화려한 저택과 별장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는 머리 둘 곳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상태는 18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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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한 것이니 개선하여야한다. 그리고 이 개선은 용의주도하 게 행해져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 절대의 평등은 있을 수 없다. 평등은 환상(幻想)이요, 전혀 실행될 수 없는 일이다. 만일에 평등이 실현된다 하여도 그것은 영속(永續)할 수 없다. 만일 그것이 존속한다면 세계의 모든 질서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인간세계에는 항상 질서의 법칙이 행해져야 하나니, 하늘은 인 간을 창조할 때 이와 같이 명령한 것이다........ .인간사회는 마치 대규모의 군대와 같아서 거기에는 제각기 임무를 가진 각 계급의 장관, 위관, 하사관 및 병이 필요한 것과 같다. 질서 있 는 조직을 유지함에는 절대로 계급이 필요하다. 군대는 대장만 으로, 또는 영관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요, 또 권력을 가진 상관이 없는 사병만으로도 물론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은 무한히 부하고 다른 사람들은 참담한 빈곤 에 허덕이는 세상은 이것을 제한하고 이와 같은 상태를 개선하 기 위하여 어떤 조직이 필요하다. 부와 가난을 다 제한하여야 하나니, 어느 편이나 극단은 좋지 못하다........ 가난이 굶주리 는 상태에까지 달했다는 것은 반드시 어디에 포학이 행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인간은 이 점에 분발하여야 하나니, 대다수의 국민을 참혹한 빈궁에 빠지게 한 오늘의 상태를 하루라도 지연 해서는 안된다. 부자는 저들의 남는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또 마음으로부 터의 동정심을 길러, 생활의 절대필수품의 결핍에 고생하는 불 쌍한 사람들을 생각해 주어야 한다. 빈부의 두 극단(極端)을 달리는 것을 막는 특별한 법률이 제정 되어야 한다........ 여러나라 정부는 전 인류에게 평등의 정의 를 부여한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이것이 실현되 187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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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까지는 하느님의 계율이지켜졌다고 할 수 없다.” ---‘압돌바하의 지혜’140쪽 공공재정(公共財政) 압돌바하께서는 재정관리(財政管理)에 관하여 의견을 말씀하 셨으되, 각 도, 시, 구(區), 군(郡)등의 또는 지방관청이 될 수 있는 한, 각각 그 지역 내의 재정행정을 위탁받아 관리하고 중 앙정부의 일반비용을 위하여 적당한 비례로써 그것을 부담하여 야 할 것이라고 하셨다. 수입의 중요한 재원(財源)의 하나는 누 진소득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의 소득이 그 사람의 생활비 이상 이 되지 않으면 조금도 세금을 낼 필요가 없으나 생활비 이상의 수입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그 수입에서 생활비를 제한 금액에 따라 누진하는 세금을 내어야 한다. 한편, 질병이나 수확불량, 기타 불가항력의 원인으로 그 해의 생활비를 지탱할만한 충분 한 소득이 없는 경우에는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의 생활을 유지함 에 부족한 것은 공공기금(公共基金)에서 지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밖의 공공재원으로서는 예컨대, 유언 없는 유산, 광 산, 소유자 불명한 보물 및 유지의 기부 등이 있고, 공공세비(公 共歲費)중에는 병자와 고아와 눈먼 사람과 귀먼 사람, 그리고 학교와 공중위생의 유지 등을 위한 보조금이 포함되어 있다. 이 와 같이 하여 일반국민의 행복과 안녕이 보장되는 것이다.15) 자발적 분배 1919년‘영구평화를 위한 중앙기관’에 보낸 서한에서 압돌 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88 바하올라와 신시대 15. 더 자세한 것은 압돌바하의 강연집, 특히 아메리카에서 행하신 연설문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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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하올라의 가르침 가운데는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타인에 게 자발적으로 분배한다는 것이 있다. 이 자발적 분배란 것은 법률로써 명령한 평등보다도 한층 더 큰 의미가 있으니, 여기에 는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타인의 일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 타 인을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과 재산도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절대로 복종해야 하는 법 률과 같이 강제적이어서는 안된다. 아니, 이것은 페르시아의 바 하이들 사이에 행해지고 있는 바와 같이 자발적으로 자기의 재 산과 생명을 타인을 위하여 희생하고, 자기의 의사로써 빈곤자 에게 돈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만인개로(萬人皆勞) 경제문제에 관한 바하올라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의 하나는, 모든 사람이 다 유익한 일에 종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라 는 벌통 안에는 한 마리의 숫 벌, 즉 일하지 않고 먹는 자가 있 어서는 안 된다. 사회에는 노동할 수 있는 좋은 체력을 가진 기 생자(寄生者)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분은 말씀하셨으되, “너희는 다 어떤 업무 - 기술, 손으로 하는 일, 기타 - 에 종 사할 의무가 있다. 나는 너희의 업무가 진리의 하느님을 예배 함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아, 하느님의 자비와 은 혜를 생각하여 아침저녁으로 하느님께 감사하라. 안일과 나태로 너희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자기를 이롭게 하고, 또한 타인을 이롭게 하는 어떤 일에 종사하라. 하느님의 지혜와 그의 신성한 말씀의 태양이 지평선에서 빛나는 이 서한 에서 그렇게 명령하셨다. 하느님 앞에서 가장 꺼림 받을 것은 189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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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 바하올라와 신시대 아무 일도하지 않고 앉아서 얻어먹는 자이다. 모든 원인의 원 인자(原因者)인 하느님을 신뢰하고 생활의 끈을 굳게 잡으라.” ---‘기쁜 소식’ 오늘의 실업계에는 얼마나 많은 정력이 무익한 경쟁에, 다만 사람의 노력을 소모하는 일에 사용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보다 도 더욱 해로운 일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인간의 노력이 허비되 고 있는가. 바하올라의 명령대로 만인이 다 같이 일하며, 머리 로 하든지 손으로 하든지 모두 인류에게 이익 되는 일에 종사한 다면, 건강하고 유쾌한, 그리고 고귀한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 지 물자가 모든 사람에게 충분히 공급될 것이다. 그리하여 빈민 굴이나 굶주림이나 빈곤이나 산업상의 노예나 건강을 해하는 고된 일이 없어질 것이다. 부(富)의 윤리(倫理) 바하이 가르침에 의하면 정당한 방법으로 얻어 정당히 사용되 는 부는 귀한 것이며 찬양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공로는 적당 히 갚아져야 한다. 바하올라께서는‘타라자트의 서한’에 다음 과 같이 쓰셨다. “바하의 백성은 남에게 적당한 보수를 지불할 것을 거부해서 는 안된다. 그리고 재능의 소유자를 존경해야 한다........ 인간은 정의로써 말하고, 이익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돈의 이자에 대하여 바하올라께서는‘에슈라가트의 서한’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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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은 이것의필요를 느낀다. 만일 금리제도(金利 制度)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사업은 구속되어 장애를 초래할 것 이다........‘카르디 하산’(좋은 대부, 즉 이자 없이 대부하여 차용자의 형편이 허하는 대로 반환하는 금전대차)에 의하여 돈 을 빌려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종들에 게 은혜로써, 사람들 사이에 실행되고 있는 상거래에서와 같이 돈의 이자제도를 허하였다. 즉....... 돈에 이자를 청구하는 것 은 용인되는 합법적인 일이다........ .다만 주의할 것은 적당한 정도와 정의로써 실행되어야 한다.‘영광의 붓’은 하느님 앞에 서의 지혜로써, 또 종들의 편의를 위하여 이자의 범위를 제한 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동정심이 상호간 에 표시됨과 같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공정과 정의로써 이 문제를 다루기를 권한다........ 이러한 일의 실행은 시대의 필요에 의하여, 사무가 현명하게 처리되기 위하여 이것을 정의 원의 소관(所管)으로 하였다.” 산업상의 노예를 인정하지 않음 바하올라께서는‘케타베 악다스’에서 노예제도를 금하셨다. 압돌바하께서도 동산(물건)으로서의 노예는 물론이고, 산업상 의 노예도 하느님의 계율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그 분은 1912년 미국에서 아메리카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1860년부터 1865년 사이에 여러분들은 놀라운 대사업을 성 취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동산으로서의 노예제도를 폐지하였습 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분은 더 큰 사업을 수행하여야 합니 다. 즉 여러분은 산업상의 노예를 없애야 합니다........ 경제상 191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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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자본이 노동에대항하고, 노동이 자본에 반항하는 쟁투 와 분쟁의 방법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자본 과 노동 양편의 자발적인 선의(善意)에 의해서만 참된 해결을 볼 수 있을 것이니, 그때에 비로소 진실하고 영구적인 바른 상 태가 보증될 것입니다........ . 바하이 가운데는 강탈하거나 부정한 행동을 하거나 부정한 요구를 하거나 현 정부에 대하여 혁명적 폭동을 일으키는 일이 없습니다. 장래에는 남의 노력에 의하여 부(富)를 얻는 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부자는 기쁜 마음으로 자기의 재산을 분배할 것입니 다. 이것은 저들의 자유의사에 의하여 서서히 자연적으로 행해 질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전쟁이나 피를 흘림으로써 성취될 것이 아닙니다.”---‘서방의 별’제 7권 제 15호 147쪽 자본과 노동 양편의 이익을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우호적 인 상담과 협력, 정당한 협동과 이익분배의 방법을 취하는 일이 다. 동맹파업과 사업장폐쇄와 같은 극렬한 수단은 그 사업에 좋 지 못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일반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일이 심대하다. 그러므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이러한 야만적 수단 에 호소하는 것을 방지하는 적당한 방법을 도출하는 것이 정부 의 할 일이다. 압돌바하께서는 1912년 뉴 햄프셔주 더블린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계율을 말하려 합니다. 하 느님의 계율에 의하면 고용인은 단지 임금을 받기만 하면 그만 인 것이 아닙니다. 아니, 저들은 모든 사업에 있어서 협력자가 19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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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사회화(社會化)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 운 문제이기는 하나, 임금을 위한 동맹파업으로는 해결되지 않 을 것입니다. 모든 나라의 정부가 합동하여 회의를 조직하고 그 의원은 국회와 각국의 덕망 있는 자 중에서 선출되어야 합 니다. 이들 의원들은 지혜와 권력으로써 자본가도 큰 손해를 보지 않고 노동자도 빈궁에 빠지는 일이 없을 방법을 강구하여 야 합니다. 그들은 가장 온건하게 법률을 제정하여 노동자의 권리가 유효하게 보장되고 동시에 자본가의 권익도 보호된다는 것을 공고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일반적 법률이 노동과 자 본 양편의 의사에 의하여 채용된 후에 만일 파업이 일어나는 일이 있다면 각국정부는 협동하여 이것을 단속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사업이 많이 파괴될 것입니다. 특히 유 럽에는 그 위험성이 많고 무서운 사건이 일어날 것입니다. 유럽 전체에 걸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 중 하나는 이 문제일 것입니다. 토지, 광산, 공장 등의 소유자들은 그 소득을 고용인들과 함께 분배하여야 합니다. 고용인들도 그 임금 외에 공장의 일반소득의 얼마를 받도록, 고용주는 이 이윤 중에서 공평하게 결정된 비율에 의하여 노동자에게 분배하여야 합니 다. 이렇게 하면 고용인들은 그 일에 전 생명을 걸고 힘써 일할 것입니다.”---‘서방의 별’제 8권 제 1호 7쪽 유산(遺産)과 상속 사람은 생존 중에 자기의 의사대로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자 유를 가졌고, 사후에 그 재산이 어떻게 처분될 것인가를 지정하 는 유언장을 써 둘 의무가 있다고 바하올라께서는 말씀하셨다. 193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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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아무 유언도없이 죽었을 경우에는 그 재산의 가격을 평가 하여 7등급의 상속자, 즉 자녀, 처 또는 남편, 부, 모, 형제, 자매 및 교사에게 어떤 일정한 비율에 의하여 분배되어야 한다. 그 분배는 제 1급자로부터 최하급 자에게 순차로 체감하는 것이 며, 이 7등급 중의 하나 혹은 그 이상이 빠질 때는 그에 해당하 는 분배를 공공수입으로 한다. 그리하여 그것으로 빈곤자, 고 아, 미망인이 구조를 받을 것이요, 또는 유익한 공공사업에 쓰 여질 것이다. 만일 사망자에게 유산상속자가 한 사람도 없을 때 는 그 유산 전부를 공공기금의 수입으로 한다. 바하올라의 계율로서는 사람이 만일 원한다면 그 전 재산을 한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도 무방하지만, 바하이들은 유언을 함 에 있어서, 바하올라께서 유언 없는 유산에 대하여 정한 바와 같은 여러 유산 상속자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방법에 자연히 영 향을 받게 될 것이다. 남녀 평등 바하올라께서 강조하신 사회 원칙의 하나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되어, 동등한 권리와 특권을 가지고 동등한 교육 을 받고,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성해방의 실현을 위하여 그분께서 취하려고 하신 가장 힘 있는 방법은 교육의 보급이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 아야 한다. 실제에 있어서 여성교육은 남성교육 이상으로 필요 하다. 그것은, 여성은 앞으로 어머니가 되기 때문이요, 또 어머 니로서 다음 세대 사람들의 최초의 교사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 들은 푸르고 부드러운 나뭇가지와 같아서, 만일 최초의 교육이 19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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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면 곧고 바르게성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구부러 진 대로 자란다. 그리하여 전 생애에 그들은 어렸을 때의 교육 에 영향을 받게 되나니, 여성이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랴. 서양 여러 나라의 여행 중에 압돌바하께서는 이 문제에 관하 여 바하이 가르침을 설명할 기회를 여러번 가지셨다. 1913년 1 월 런던의 부인자유동맹 회합 석상에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 씀하셨다. “인류는 두 날개를 가진 새와 같으니 하나는 남성이요, 다른 하나는 여성이다. 이 두 날개가 든든히 그 힘을 합하지 않으면 새는 공중을 날 수 없다. 현대정신에 의하면 여성도 그 위치를 높여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서 인생의 모든 방면에 그 사명을 충분히 수행해야 한다. 그들은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동 등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 이것은 내가 간절히 바라는 바요, 동 시에 이것은 바하올라의 근본 원칙의 하나이다. 일부의 과학자들은 남성의 뇌수가 여성의 뇌수보다 더 무거 우니 이것이 남성이 우월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주위에는 머리가 작아 뇌수가 가벼운 듯하나 비상한 지혜자로 서 위대한 이해력을 가진 사람이 있음을 본다. 그리고 한편, 머 리가 커서 그 뇌수가 확실히 무거울 듯한 사람이 우둔하고 무 능함을 본다. 그러므로 뇌수의 무거운 것이 지혜와 우수성의 참된 표준이 될 수는 없다. 남성이 우수하다는 제 2의 증거로서 여성이 남자만큼 일한 것이 없다는 점을 들어서 단정하지만 이것은 역사의 사실을 무 195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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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하는 박약한 이론이다.만일 저들이 좀 더 충실히 역사의 가 르치는 바를 연구한다면, 과거에 많은 위대한 여성들이 나타나 서 대사업을 성취 하였고, 현대에도 많은 여성들이 대사업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압돌바하께서는 제노비아와 그 밖의 과거의 여성들의 공적을 말씀하시고, 여러 사도(使道)들의 신앙이 동요되어도 엄연히 그 신앙을 고수한 대담한 막달라의 마리아에 대한 찬사 로써 이 항을 맺고 그분은 다음과 같이 계속하셨다. “현대의 여성들 중에, 어떤 이슬람교 승려의 딸인 코라톨 에 인이 있었다. 바압께서 출현하셨을 때 그 여자는 페르시아 사 회의 태고로부터의 풍습인 베일(覆莎)을 벗어버리고 남자와 담 화하는 것이 예의에 벗어난 행위라고 일반이 생각하던 그때에, 가장 이름 있는 학자들과 논쟁하여 여러 회합에서 그들을 설득 하였다. 페르시아 정부는 그녀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녀는 거 리에서 군중이 던지는 돌에 얻어맞고 저주를 받았다. 도시에서 도시로 추방 되어 죽음의 위협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조 금도 굴하지 않고 자매인 여성들의 자유를 위한 자기의 결심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가장 위대한 영웅적 정신으로써 모든 박해와 고난을 참았으며 옥중에서도 개종자(改宗者)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그녀가 감금되어 있는 곳은 페르시아의 어느 대신 의 집이었는데 그녀는 그 대신에게 향하여‘각하가 지금 곧 나 를 죽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하는 여성의 해방을 막 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마침내 그녀의 비극적 생애의 최후가 왔다. 그녀는 정원에 끌려가서 교살되었다. 그 때 그녀는 결혼식장에 가는 신부와도 같이 가장 아름다운 옷을 19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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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었다. 이와같이 대담과용기로써 그녀는 죽음을 맞았으며 이 것을 본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진실로 그녀는 위대한 여장부였다. 오늘의 페르시아의 바하이 중에는 백절불굴의 용 기있는 여성과 위대한 시적재분(詩的才分)을 가진 여성들이 있 다. 그녀들은 비상한 웅변으로써 군중을 향하여 조금도 거리낌 없이 연설한다. 여성도 진보하여야 한다. 그녀들은 인류의 완 성을 위하여 과학, 문학, 역사의 지식을 발달시켜야 한다. 그녀 들은 불원에 그 권리를 찾을 것이다. 여성들이 고귀한 기품을 몸에 지니고 시민생활, 정치생활을 개선하고 전쟁에 반대하고 투표권과 동등의 기회를 요구하는 것을 남성들은 바르게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생활상의 모든 면에 여러 자매의 향상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당신들의 머리에는 영원한 영광의 왕관이 빛날 것이다.” 여성과 신시대 여성의 의견이 적당히 고려되고 여성의 의사가 사회정책에 충 분히 표현되는 것이 허용되는 시기가 오면, 남성 지배시대의 낡 은 정치 하에서 대체로 등한히 다루어졌던, 건강과 절제(節制) 와 평화와 개인생명의 존엄성 등의 문제에 커다란 진보를 기대 할 수 있을 것이요, 이러한 것들의 개선은 매우 원대하고 유익 한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과거의 세계는 힘으로써 지배되었다. 그리하여 남성이 마음 과 몸이 여성보다 강하고 공격적인 이유로써 여성의 위에 지배 권을 가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지위가 이미 변화하고 있다. 완력은 그 세력을 잃고 도리어 여성의 장점인 심의적(心意的) 197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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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력과 직각(直覺)과 사랑과봉사의 정신적 능력이 세력을 얻고 있다. 그러므로 신시대는 남성의 세력이 감소되고 여성의 이상이 더 많이 지배하는 시대, 정확히 말하자면 남녀 성의 문 명을 구성하는 요소가 모든 점에서 더 균형을 이루는 시대가 될 것이다.”---‘서방의 별’제 8권 제 4쪽 폭력수단을 피할 것 여성해방을 실천함에도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하올라께 서는 폭력수단을 피할 것을 신자들에게 권하셨다. 사회개선에 대한 바하이의 수단의 훌륭한 실례를 페르시아, 이집트 및 시리 아의 바하이 여성들에게서 볼 수 있다. 이 몇몇 나라의 이슬람 교도의 여성들은 옥외에서는 언제든지 베일로써 얼굴을 가리는 것이 고래의 습관이다. 그런데 바압께서 새 종교제에서는 여성 들이 이 불편한 습관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러 나 바하올라께서는 신자들에 대하여, 도덕상 중대문제가 아닌 일로써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분개하게하고 실없이 적개심 을 일으키게 하는 것보다는 국민이 성숙되기까지는 종래의 풍 습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고 권하셨다. 그러므로 바하이 여성들 은 얼굴을 가리는 낡은 풍습이 성숙된 사람들에게는 아무 필요 도 없고 불편한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베일 없이 공중의 면 전에 나서서 도리어 광적인 미움과 반항심을 도발하지 않기 위 하여 불편을 참고 고요히 베일을 쓰는 풍습을 지킨다. 이와 같 이 구습을 지키는 것은 결코 무서워서 하는 일이 아니라 교육의 힘과 진정한 종교의 개선하는 생활규범의 힘을 충분히 믿기 때 문이다. 이 지방에 있는 바하이들은 그들의 자제의 교육, 특히 여성교육에 힘써 바하이 이상(理想)을 보급하고 고취하는 일에 19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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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쓰고 있다. 그리하여그들은, 봄이 와서 잎과 꽃이 햇빛을 받 아 필 때, 자연히 또 필연적으로 그 꽃봉오리의 껍데기가 떨어 짐과 같이, 새로운 정신생활이 민중 가운데 성장발달하면 묵은 관습과 편견이 천천히 없어짐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16) 교육 교육 - 인간을 훈육하고 지도하는 일, 그리고 그들의 타고난 능력을 훈련하고 발전시키는 일 - 은 세계 창생 이래 모든 성스 러운 예언자들의 최고의 목적이었다. 그리하여 바하이 가르침 가운데도 교육의 근본적 중요성과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가능 성이 가장 명백히 선언되어 있다. 교사는 문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그의 임무는 인간이 열망하는 가장 고귀한 일이다. 교 육은 어머니의 태안에서 시작되어 인간의 일생을 통하여 끝날 때가 없는 것이다. 교육은 바른 생활을 함에 있어서 영원히 필 요한 것이요, 또 개인과 사회의 행복의 기초가 된다. 바른 교육 이 보급되면 인류는 개선되어 이 세계가 낙원으로 변할 것이다. 현재 참으로 바르게 교육받은 사람은 드물어 거의 모든 사람 이 나면서부터 익혀진 비뚤어진 편견과 잘못된 이상과 그릇된 관념과 그리고 또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마 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전 생애를 하느님께 바치고 인 류에 봉사하는 것을 인생 최고의 이상으로 하고 전 인류의 행복 을 위하여 가장 잘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교육받은 사람이 어찌 그리도 적은가! 이런 것들은 좋은 교육의 근본적 요소이 다. 수학, 지리, 문법, 국어 등의 사실을 단지 기억 속에 집어넣 는 것으로는 고상하고 유위한 인물을 만드는 데에 그다지 도움 199 제 9 장 참다운 문명 16. 이것은 터키 공화국 정치하의 사회진보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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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는 바가 큰것은 아니다. 바하올라께서는 교육이 보급되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버지 된 자는 반드시 그 자녀에게 읽기와 쓰기의 학문과 경전에 명령되어 있는 가르침을 교육하여야 한다. 이 명령된 의무를 게을리 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만일 부유한 자라면 그 의 자녀를 교육함에 필요한 금액을 그에게서 징수하는 것은 정 의원 의원의 책임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즉 어버이에게 그 힘 이 없는)에는 이 문제를 정의원이 맡아야 한다. 진실로 짐(朕) 은 정의원을 빈곤자들이 의지할 곳으로 하였다. 자기의 자녀 혹은 어느 누구의 자녀를 위한 자금으로서, 농업 이나 상업, 기타의 일로써 얻은 소득의 일부를 신용할 수 있는 자의 손에 위탁하여 둘 필요가 있다. 그 위탁된 것은 정의원 의 원(혹은 임원)의 지도 하에 그 자녀의 교육에 쓰여져야 한다.” ---‘세계에 관한 서한’ 천성의 선천적 차이 바하이의 견해에 의하면 어린이의 천성은 교사의 뜻대로 어떤 모양으로든지 자유로이 만들 수 있는 밀랍과 같은 것이 아니다. 아니, 어린이는 처음부터 각각 고유한 성격과 개성을 하느님으 로부터 부여받은 것이 있어, 그것은 각각 특별한 방법에 의해서 만 가장 유효하게 발달시킬 수 있으며, 그 방법이 또한 각각의 경우에 따라서 독특하다. 두 사람이 전혀 동일한 능력과 재능을 가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러므로 참된 교육자는 두 사람을 동일한 모형(模型)에 넣으려고 무리하게 교육하는 일이 결코 없다. 실제로 그는 어떠한 모형에 누구를 억지로 넣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본연(本然)의 천성을 발달시킴에 20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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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 신중한 주의를 기울여,그것을 장려하고 보호하고 거기에 필요 한 양분과 원조를 주는 것이다. 그의 임무는 여러 가지 초목을 배양하는 정원사와 같다. 어떤 나무는 밝은 햇볕을 좋아하고 어 떤 나무는 서늘한 그늘을 좋아하며, 혹은 물가(水邊)를 좋아하 는 것, 건조한 야산을 좋아하는 것, 또 모래밭에서 잘 자라는 것, 비옥한 점토에서 잘 자라는 것이 있다. 각자는 그 필요로 하 는 것을 적당히 공급받아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결코 충분히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 이 말씀하셨다. “예언자들께서는 인류에게 미치는 교육의 힘이 위대함을 인식 하지만 인간의 심의(心意)와 이해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선 언하신다. 같은 나이의 아이로서 출생지와 인종이 같고 교사에 게서 교육을 받으면서도 그 심의와 이해력이 서로 다름을 우리 는 본다. 조개껍질은 아무리 교육하여도(즉 갈아도) 빛나는 진 주가 될 수 없고, 검은 돌이 세계에 빛나는 보석으로 변할 수 없다. 가시 많은 선인장은 아무리 잘 길러도 좋은 나무가 될 수 없다. 이것은 즉, 교육으로서 인간이라는 보석의 본래의 성질 을 변화시킬 수는 없으나 놀라운 효과를 나타낼 수는 있다는 말이다. 이 효과에 의하여 인간 본래의 숨은 덕성과 능력을 외 부에 발양시킬 수 있는 것이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577쪽 품성의 훈련 교육의 주안점(主眼點)은 품성의 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훈 화(訓話)보다는 시범(示範)이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어린이의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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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와 교사와 주위의사람들의 생활과 성격이 교육에 가장 중 요한 요소가 된다. 하느님의 예언자들은 인류의 대교육자이시다. 그분들의 교훈 과 그분들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아이들이 그것을 이해하게 되자마자 곧 저들의 마음에 스며든다. 특히 중요한 것은 최상 의 교사인 바하올라의 말씀이다. 그분은 장래의 문화가 그 위 에 건설될 기초적 원칙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 씀하셨다. “‘영광의 붓’을 통하여 계시된 것을 너희의 아이들에게 가르 치라. 위대와 위력의 하늘에서 내려온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 라. 그들에게 자비하신 분의 서한을 암송케 하고, 마슈리꼴 아 즈카르의 회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조로써 그것을 읊게 하 라.”---‘서방의 별’제 9권 제 7호 81쪽 예술, 과학, 기술 예술, 과학, 기술, 그 밖의 유익한 직업교육은 중요한 것이 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지식은 존재물(인간)의 날개와 같고 높은 데 오르는 사닥다 리와 같다. 지식을 얻는 일은 의무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상(地 上)의 인류를 이롭게 하는 여러 가지 과학의 지식을 말하는 것 이지, 단지 문자나 말의 연구로 시작하여 그것으로 끝나는 것 과 같은 과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예술의 소유자 는 세계 인류 가운데 큰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진실로 인간의 20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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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은 그의 참된보물창고이다. 지식은 명예, 번영, 기쁨, 유 쾌, 행복 및 자랑의 수단이다.”---‘타잘리야트의 서한’ 범죄자 다루기 범죄자를 다루는 바른 방법에 대한 담화에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이 범죄를 피하고, 죄를 무서워하는 방법으로 저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저들에게 있어서 범죄 자체가 최대의 징벌이 되고, 최대의 죄의 선고가 되며, 또 가책이 되어서 형벌을 받을 죄악을 범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만일 남에게 압제하고 해하고 악행을 하는 자가 있어, 이에 대하여 피해자가 악으로써 갚는다면 이것은 복수이므로 비난받 을 일이다. 만일 아므루가 제이드를 모욕하였다 할지라도 후자 가 전자를 도로 모욕할 권리는 없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것 은 복수이므로 진실로 비난받을 행위이다. 그는 이 경우에 악 에 대하여 선으로써 갚아야 한다. 단지 그 죄를 용서할 뿐 아니 라 될 수 있으면 압제자를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 로 인간다운 행위이다. 복수로써 무슨 이익을 얻을 것인가. 이 경우에 두 사람의 행위는 동일하다. 한편의 행위가 좋지 못하 다면 다른 편의 행위도 역시 비난받을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다 른 점은 한 사람이 먼저 범죄하고 다른 한 사람이 후에 범죄 한 것뿐이다. ‘사람이 만일 너의 오른 쪽 뺨을 때리거든 왼쪽 뺨도 그에게 돌리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도 개인적으로 복수하지 203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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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않도록 인간을 가르치는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것은, 이리가 양의 우리에 침입하여 저들을 죽이려고 할 때 그것을 그대로 방임하여 이리의 행위를 장려하는 것을 의미함이 아니다. 아 니, 만일 이리가 양의 우리에 침입하여 양을 죽이려 하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보셨다면 그분은 반드시 양의 위해를 막기 위하 여 전력을 다했을 것이다........ . 사회조직은 정의(正義)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른바 죄의 용서와 사면이란 것은, 어떤 국민이 그대의 나라에 침입하여 그대의 집을 불사르고 그대의 가재(家 財)를 약탈하고 그대의 처자권속에게 위해를 가하고 그대의 명 예를 유린할 때, 그대가 이러한 잔인한 적의 면전에서 방관하 고 복종하여 저들의 모든 압제와 포학을 방임하라는 의미가 아 니다. 아니, 그리스도의 말씀은 개인 두 사람 서로의 행위에 관 한 것이다. 만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했을 때 피 해자는 그것을 용서하여야 한다. 그러나 사회는 인권(人權)을 보호하여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말할 것은, 즉 사회는 밤낮 용의주도하게 형법을 만들고 형벌의 기관과 수단을 준비하고 설정하는 데에 힘쓴다. 감옥을 짓고 쇠사슬과 형틀을 만들고 추방형장(追放刑場)과 가책 고문의 여러 계정을 만들어 이러한 수단으로써 죄인을 징벌하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덕성 의 파괴와 인격의 악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이루고 있다. 사회 는 본래 이와는 반대로 전력을 다하여 교육을 완성하여, 사람 들로 하여금 더욱 더 과학의 진보와 지식의 향상과 덕성의 함 양과 선량한 풍습의 습득과 악의 방지에 힘쓰게 하여, 죄악이 발생할 여지가 없도록 하는 데에 최대의 열의와 노력을 기울여 야 할 것이다.”---‘질의응답록’ 20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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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의 힘 지식보급과 대중교육의수단으로서의 신문의 중요성과, 신문이 바른 방향으로 향했을 때 개화(開花)에 이바지하는 큰 힘을 바하 올라께서는 충분히 인정하셨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오늘날 지상의 모든 비밀이 눈앞에 전개되어 신속히 나타나 는 신문의 각 면은 참으로 세계의 거울이다. 그것은 여러 나라 의 모든 사실을 보도하여 이것을 그림으로써 보여주고 말로써 들려준다. 신문은 청각(聽覺)과 시각(視覺)과 언어(言語)를 가진 거울과 같아서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요 위대한 일 이다. 그러나 신문기자와 편집자들은 이기주의와 탐욕의 편견을 벗 어나서 공정과 정의로써 단장하여야 한다. 저들은 진정한 사실 을 보도하기 위하여 충분히 사건의 진상을 규명한 후에 그 실 상을 기재하여야 한다. 이 피해자에 대하여 신문에 발표된 것 의 대부분은 진실성을 결한 것이었다. 좋은 논설과 성실은 지 위와 품위의 높이에 있어서 지식의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 과 같은 것이다.”---‘타라자트의 서한’ 205 제 9 장 참다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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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0 장 평화에이르는 길 오늘날, 이‘종’은, 확실히 세계에 새 생명을 주고 지상의 모든 것을 통합시키기 위하여 왔느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 이 지상도‘압하’(최상 왕국)의 낙원이 됨을 볼 것이다. --- 바하올라 (라이스에게의 서한에서) 갈등과 협조 19세기에는 과학자들이 동식물계의 생존경쟁에 대한 연구에 많은 노력을 하여, 하급 자연계에 적용되는 원칙으로써 복잡한 사회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침을 삼는 자가 많았다. 그리하 여 사회의 약한 자를 죽이는 것은 종족개량을 위하여 정당한 일 이며 또한 필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하올 라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치셨으되, 우리가 만일 진보의 단계에 오르려고 할진대 뒤로 동물계를 돌아볼 것이 아니라 앞을 바라 보고 위를 쳐다 보아, 동물을 지도자로 삼지 말고 예언자를 지 도자로 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예언자들께서 가르치신 융합, 협 조, 동정 등의 원칙은 자기보존을 위하여 투쟁하는 동물계의 원 칙과는 정반대가 된다. 그리하여 이 양자는 서로 용납할 수 없 는 것이니 우리는 이 양자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 압돌바 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자연계의 지배적 특징은 생존경쟁이다. 그 결과는 적자생존 207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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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適者生存)이다. 이 적자생존의원칙은 모든 곤란의 근원이 된 다. 그것은 인류 사이에 전쟁과 쟁투와 증오와 원한을 일으킨 다. 자연계는 포학, 이기, 침범, 횡포, 남의 권리침해, 기타 동 물계의 결함인 여러가지 비난할 것이 많다. 그러므로 이와 같 은 자연계의 요구가 사람의 자식들 사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안은 성공과 번영은 불가능하다. 자연은 투쟁을 좋아한다. 자연은 피에 목말라 한다. 자연은 포학하다. 왜냐하면 자연은 전능하신 하느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잔인한 성질도 동물계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경전을 계시 하여, 그 신성한 교육으로써 인류를 자연의 타락과 우매의 암 흑에서 구출하고, 이상적 덕성과 정신적 품성으로써 확증하고 자비심의 발생지로 하셨다....... 그러하건만 아! 이 어리석은 편견과 부자연한 불화와 반목적인 주장이 의연히 세계의 여러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여 일반적 진보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슬 픈 일이다. 이러한 지체(遲滯)는 신성한 문명의 원칙이 완전히 포기되고 예언자의 가르침이 망각된 사실에서 오는 것이다.” ---‘서방의 별’제 8권 15쪽 최대의 평화 모든 시대에 있어서 하느님의 예언자들은‘지상(地上)의 평 화와 인간 사이의 선의(善意)’의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셨다.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바하올라께서는 가장 열렬하시고 확 신 있는 어조로써 이러한 예언을 확증하시고 그 실현도 멀지 않 았다고 선언하셨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놀라운 주기(週期)에는 지구는 변화하고 인류는 평화와 미(美)로써 단장될 것이다. 조화와 성실과 융합이 불화와 쟁투 20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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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살육에 대체되고,각 국민과 종족과 국가 사이에는 사랑과 우정이 발현될 것이다. 협력과 동맹이 수립되어 마침내는 전쟁 이 사라질 것이다........ 세계평화는 지구의 한가운데 그 천막 을 칠 것이요, 축복받은‘생명의 나무’는 지구의 동쪽과 서쪽 에 그늘이 뻗히도록 무성해질 것이다. 이리와 어린양, 표범과 어린 산양, 사자와 송아지와 같았던,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 자, 적대하는 종파, 적대하는 국가들은 서로 가장 완전한 사랑 과 우정과 정의와 공정으로 행동할 것이다. 세계는 과학으로 써, 존재물의 비밀의 본체에 대한 지식으로써, 그리고 하느님 에 대한 인식으로써 가득 차게 될 것이다.”---‘질의응답록’ 종교적 편견 어떻게 하여 최대의 평화가 이루어질 것인가를 분명히 보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과거에 있어서의 전쟁의 주요 원인을 검토 하고, 그것들에 대하여 바하올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전쟁의 최대 원인의 하나는 종교적 편견이었다. 이것에 대하 여 바하이 가르침은 서로 다른 종교와 종파의 사람들 사이의 원 한과 쟁투는 언제나 참된 종교 때문이 아니라 참된 종교의 필요 성 때문이었고, 그리고 그것이 허망한 편견과 모방과 그릇된 해 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명백히 가르쳐 주고 있다. 파리에서의 어느 강연에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종교는 만인의 마음을 융합하고 전쟁과 불화를 지상에서 없 애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에 삶을 주고 모든 사람에게 광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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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과 생명을 가져오는것이어야 한다. 만일 종교가 증오와 분 열의 원인이 된다면 그러한 종교는 차라리 없는 것이 좋고, 그 러한 종교에서 물러서는 것이 참다운 종교적 행위가 될 것이 다. 치료의 목적은 병을 낫게 하는 것이니 만일 치료가 병을 악 화시킬 뿐이라면 그것은 차라리 내버려 두는 편이 좋을 것이 다. 사랑과 융합의 원인이 되지 않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압돌바하의 지혜’180쪽 그분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류역사의 시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여러 종교 는 서로 저주하고 서로 허망함을 비난하여 왔다. 그것들은 가 장 완고하게 서로 꺼리고 미워하고 원한을 일삼아 왔다. 종교 전쟁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최대의 종교전쟁의 하나인 십자군 전쟁은 2백년간 계속 되었다. 어떤 때에는 십자군이 승리하여 이슬람교도가 살육되고 약탈당하고 포로가 되었다. 또 어떤 때에는 이슬람교도가 승리하여 반대로 침입자가 학 살되고 섬멸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2백년 동안 싸웠다. 유럽의 광신자들이 황폐 의 잿더미를 남기고 동방에서 철퇴되어 저들 자신의 나라가 동 란과 격변 중에 있음을 발견하기까지, 그동안에 서로,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원만하게 전쟁을 계속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 을‘신성한 전쟁’의 하나라고 하였다. 종교전쟁은 지금까지 많았다. 기독교의 신교와 구교의 쟁투 와 알력에 희생된 신교도의 순교자는 90만이었다. 그 밖에 얼 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서 신음하였던가. 얼마나 가혹한 대 우를 포로들이 받았던가. 이 모든 것이 종교의 이름으로써 행 해졌던 것이다. 21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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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은 유대교도들을악마의 무리요 하 느님의 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저들은 유대교도들을 저주하고 박해하였다. 수많은 유대교도가 살육되고 그들의 집 은 불살라졌으며 가재는 약탈당하고, 또한 자녀들은 붙잡혀 가 고 포로가 되었다. 유대교도들은 또 기독교도들을 불신앙자라 하고, 이슬람교도들은 모세의 율법의 적이요 파괴자라고 하였 다. 그리하여 저들은 복수하기를 원하고 오늘날까지도 저주하 고 있다. 바하올라의 광명이 동방에 서광을 비췄을 때, 그분은 인류 통 합의 약속을 선언하셨다. 그분은 전 인류를 향하여‘너희는 모 두 한 나무의 열매이다. 하느님의 자비의 나무와 악마의 나무 라는 두 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 리는 서로 최선의 사랑으로써 사귀어야 한다. 어떠한 사람이든 지 악마의 백성으로 보지 말고 모든 사람을 유일한 하느님의 종으로 알아야 한다. 만일 누구나 무지한 자가 있으면 그는 교 육을 받고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 뿐이다. 무지한 자는 가르쳐 야 한다. 어린이와 같은 자는 어른이 되기까지 도와주어야 한 다. 질병과 같이 도덕적 상태가 나쁜 자는 그 덕행이 정화되기 까지 치료해 주어야 한다. 병자라 하여 싫어할 것이 아니요, 어 린이라 하여 버릴 것이 아니며 무지한 자라 하여 멸시할 것이 아니다. 그들을 사랑으로써 치료하고 교육하고 훈련하고 도와 주어야 한다. 전 인류가 가장 안전하고 지극히 행복하게 하느 님의 자비의 그늘에 살 수 있게 함에는 그러한 여러 가지가 행 해져야 한다.”---‘서방의 별’제 8권 76쪽 인종적 및 애국적 편견 인류의 일체성을 가르치는 바하이 교의(敎義)는 전쟁의 또 하 211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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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원인이 되는인종적 편견을 타파한다. 어떤 인종은 자기네 가 다른 인종에 비하여 우수하다고 믿어,‘적자생존’의 원리에 의하여 자기네의 이익을 위해서는 약소 인종을 혹사(酷使)하 고, 혹은 이것을 근절해 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도 있 다. 세계 역사에 있는 오점(汚點)의 대부분은 이 원칙을 잔인하 게 적용한 실례들이다. 바하이의 견해에 의하면 모든 인종의 백 성은 하느님 앞에서는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다만 저들의 발전을 위한 적당한 교육이 필요할 뿐이요 다 같이 놀라운 내재적(內在的)능력을 가지고 있어, 각자는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構成員)의 생활을 빈곤하게가 아니라 풍부하게 완 성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 이 말씀하셨다. “인종적 편견이란 일종의 환상(幻想)이요 단순한 미신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들 모든 사람을 한 종족으로 창조 하셨기 때문이다........ 최초에는 여러나라 사이에 구역 경계라 는 것이 없었고 어떤 땅이나 어느 한 민족에게 전속된 것이 아 니었다. 하느님 앞에서는 인종 사이에 아무 차별도 없다. 무엇 때문에 사람은 이와 같은 편견을 발견하였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와 같은 환상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전쟁을 지지하여 야 하는가.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서로 살육하라고 창조하신 것 이 아니다. 모든 인종, 민족, 종파, 계급은 동등하게 저의 하늘 에 계시는 아버지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유일의 참된 차별은 하느님의 계율에 대한 충성과 순종의 정 도에만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피어오르는 횃불과 같고, 또 어떤 사람은 인류의 하늘 위에 빛나는 별과 같다. 인류를 사랑하는 자는 국적, 신조, 피부색이야 어떻든지 간에 21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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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훌륭한 인간이다.”---‘압돌바하의지혜’137쪽 인종적 편견과 마찬가지로 해로운 것이 정치적 또는 애국적 편견이다. 지금은 편협한 애국주의가, 세계를 자기나라로 하는 더 넓은 애국주의에 포괄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바하올라께서 는 말씀하셨으되, “옛날에는‘자기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신앙(信仰)의 일부’로 되어 있었지만,‘장엄의 혀’는 그 현시의 날에 성명하건데, ‘자기나라만을 사랑하는 자에게 영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동포를 사랑하는 자에게 영광이 있다.’고 하셨다. 그분은 이러 한 고원한 말씀으로써 영혼의 새에게 새로운 날개를 주셨고, ‘계시의 글’에서 속박과 맹목적인 모방을 말소하셨다.”--- ‘세계에 관한 서한’ 영토적 야심 두 나라 혹은 두 나라 이상의 적대국이 열망하는 영토소유권 의 쟁탈로 인하여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소유욕은 개인 사이에 서와 마찬가지로 국가 사이에 있어서도 중대한 쟁투의 원인이 된다. 바하이의 견해에 의하면 토지는 결코 개인이나 또는 개개 의 국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인류에게 속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하느님에게만 속한 것이요, 만인 은 그 차용인에 불과한 것이다. 벵가지전투에 즈음하여 압돌바 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벵가지 전쟁의 소식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오늘의 세계 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인간의 야만성을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 다. 어떻게 인간이 아침부터 밤까지 싸워서 동료의 피를 흘리 213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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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서로 살육할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지상의 일부 를 얻기 위하여! 동물도 싸울 때에는 그 싸움의 직접적이며 또 한 그럴 듯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조그마한 토지를 갖기 위하여 동료를 살육하고 재난을 일으키 도록 타락한 것, 최고의 창조물이 최하급형의 물질인 땅을 얻 기 위하여 싸운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토지는 한 민족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속한 것 이요, 지구는 인간의 가정이 아니라 그 무덤이다. 승리자가 아 무리 위대하고 아무리 많은 나라들을 예속시켰다 하더라도 그 는 그 침략한 국토의 극소부분, 즉 자기의 무덤 외에 더 차지할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하여, 문명의 발전을 위하여 만일 더 넓은 땅이 필요하다면....... 그 필요한 것만큼의 영토는 확 실히 평화적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행해진다. 소수자의 세속적 이득을 위하여 무수한 가정에 무서운 참사(慘事)를 빚어내고 수많은 남녀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 나는 여러분이 모두 마음을 사랑과 융합에 집중시킬 것을 당 부한다. 전쟁할 마음이 일어나거든 더 강력한 평화를 위하는 마음으로써 거기에 대항하라. 증오의 마음은 더 힘 있는 사랑 의 마음으로써 분쇄하라. 세계의 병사들이 살육을 위하여 검을 빼거든 하느님의 병사들은 서로 굳게 손을 잡으라. 그리하면 인간의 모든 야만성은, 순결한 마음과 성실한 영혼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느님의 자비에 의하여 소멸될 것이다. 세계평화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하느님의 거룩한 사랑에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만일 여러분이 진심으로 지상의 모든 민족과의 친선을 바란다면 여러분의 사상은 정신적으로 21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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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는 실제적으로 널리전파될 것이요, 그것이 또한 다른 사람 의 소원이 되고 점차로 힘 있게 되어 마침내 만인의 마음에 도 달할 것이다.”---‘압돌바하의 지혜’23쪽 세계어 전쟁의 주요 원인을 대개 살펴보아, 어떻게 하면 그것을 피할 수 있는가를 알아본 우리는 지금‘최대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 한 바하올라의 건설적인 제의를 검토하여 보자. 그 첫째는 국제보조어의 선정이다. 바하올라께서는‘케타베 악다스’와 많은 서한에서 이것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 있다. 예 를 들자면‘에슈라가트의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제 6‘에슈락’(光輝)은 인류 사이의 일치와 융합이다. 융합 의 광선에 의하여 세계 각지가 항상 비칠 것이요, 거기에 이르 는 최상의 방법은 서로의 글과 말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나 의 서한에서 정의원 의원들에게 명령하노니, 세계를 한 나라 한 집안으로 하기 위하여, 현존하는 언어의 하나를 택하든지 혹은 새로운 언어를 창안하든지 하고, 또 마찬가지 방법으로써 하나의 공통 한 문자를 선택하여, 이것을 세계 각지의 학교에 서 아동들에게 가르치라.”고 하셨다. 바하올라의 이 제의가 처음으로 세상에 발표된 당시에 그것의 실현에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될 운명을 가진 루도비크 자멘호프 라는 남아가 폴란드에서 탄생하였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의 세 계어라는 이상이 자멘호프의 생애에 유력한 동기가 되었다. 그 리하여 그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로 에스페란토라는 언어가 215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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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명되고 전파되어, 이래35년여의 시련을 거쳐 오늘날은 국제 적 교제에 있어서 만족할 만한 매개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 언어는 영어, 불어, 독어 등의 국어 습득에 요하는 약 20분 의 1의 단시일에 숙달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1913년 2월, 압돌바하께서는 파리의 에스페란토 연회 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오늘날 유럽에서 일어나는 알력의 주요 원인의 하나는 언어 가 서로 다름에 있다. 우리는 이 사람은 독일 사람이고, 저 사 람은 이태리 사람이라고 한다. 또 우리는 영국 사람을 만나고 불란서 사람을 만난다. 저들은 다 같은 인종이면서 언어가 저 들 사이의 최대의 장벽이 되어 있다. 만일 국제보조어가 사용 된다면 저들은 다 한나라의 사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약 40년 전에 이 국제어에 대하여 쓰신 바가 있다. 그분은 국제어가 사용되지 않는 한, 완전한 융합은 실현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오해는 여러 사람 서로의 교제를 방해하고, 이 오해는 국제보조어가 사용되지 않 고는 도저히 제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양사람 전체는 서양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에 대하여 충분히 알지 못하고, 서양사람 또한 동양사람에게 동정 적인 접촉을 가지기 어렵다. 이들의 사상은 궤짝 속에 감추어 져 있는데 국제어만이 이것을 열수 있는 열쇠이다. 우리가 만 일 세계어를 가지게 된다면 서양의 서적이 세계어로 번역되어 동양사람은 그 내용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요, 마찬가지로 동 양의 서적이 서양사람의 편의를 위하여 세계어로 번역될 것이 다. 동서 융합을 촉진하는 최대의 수단은 공통어이다. 그것은 저 세계를 한 집안으로 만들어 인류 발달의 최대의 자극이 될 21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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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이다. 그것은‘인류의 일체성’의깃발을 올릴 것이요 지구상 으로 하여금 하나의 세계공통국이 되게 할 것이다. 이것은 사 람의 아들 사이의 사랑의 원인이 될 것이요, 모든 인종 사이의 좋은 교제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자메호프’선생의‘에스페란토’어의 발명은 진실로 하느님을 찬송할 일이다. 그것은 국제적 교제수단으로서의 모 든 가능성을 구비하여 있다. 우리는 이 귀한 노력에 대하여 그 에게 감사하여야 한다. 그는 이것으로서 인류동포에 훌륭히 공 헌하였기 때문이다.‘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선구자들의 부단 한 노력과 자기희생에 의하여 그것은 전 세계에 퍼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다 이 말을 배우고 될 수 있는 한 널 리 전파하여, 더욱 더 이것이 일반에게 인정되고 세계 모든 나 라와 정부의 받아들여, 모든 공립학교의 정과(正科)의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에스페란토’가 장래의 모든 국제 대회의 용어가 되고 만인이 그 자국어와 이 국제어의 두 가지 말만 습득하면 좋도록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완전한 융합이 세계의 만민 사이에 수립될 것이다. 오늘 여러 국민과 교제하 기 얼마나 곤란한가를 생각해 보라. 만일 우리가 50개의 국어 를 습득하였다 할지라도 아직도 그 국어로 통하지 못하는 나라 에 여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전력을 다하 여‘에스페란토’가 널리 세계에 보급되도록 노력하여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에스페란토에 대한 이와 같은 담화는 명확하고 또한 고무적인 것이지만, 정의원이 바하올라의 가르침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하 여 행동하기 까지는, 바하이신앙은 에스페란토나 다른 자연어 혹은 인조어의 어느 것이나 결정짓지 않을 것은 사실이다. 사실 217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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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압돌바하께서는 한서한에서‘통합의 일곱 등불’가운데 언 어 통합을 마지막에 두셨다. 이 사상은 세계가 국가통합, 인종 통합, 종교통합을 이룩하기 전에는 언어통합의 성취가 불가능 함을 시사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와 같은 과도적(過渡的) 기간에는, 세계적 보조어의 선택이 결국 가능하게 될 때 그 어 느 것이 결과로써 나타날 것인지는 예상할 수 없다. 국제 연맹 바하올라께서 여러번 힘있게 제창하신 또 하나의 제안은, 세 계국제연맹이 국제평화의 유지를 위하여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 이었다. 1865년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낸 서한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주권자의 집단이여! 당신들의 알력을 조정하라. 그리하면 많은 군병과 군비는 필요 없을 것이요, 다만 당신들의 영토와 인민을 보호함에 필요한 것으로써 족할 것이다....... 주권자들 의 집단이여! 단결하라. 그리하면 당신들 사이의 불화의 폭풍 은 잠자고 당신들 주위의 백성은 안식을 얻을 것이요....... 당 신들 중의 어느 하나가 남을 공격하면 당신들 전체가 그에 대 항하여 일어서라. 그것이 명백한 정의의 표명이기 때문이다. 1875년 압돌바하께서는 세계 국제연맹의 설립을 예상하셨는 데, 오늘의 세계가 그러한 연맹의 설립을 열심히 모색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특히 흥미 있는 일이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17) “진실로 참다운 문명이 그 깃발을 세계의 중심에서 올리는 218 바하올라와 신시대 17. 본서의 저자는 이글을 1919년으로 부터 1920년 사이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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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은, 높은 야심을가진 어떤 고귀한 주권자들, 즉 인류애(人 類愛)의 정렬에 빛나는 여러 태양이 전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확고한 결심과 날카로운 이지(理智)의 힘으로써 걸어 나와 세 계평화의 문제에 대하여 회의를 가질 때일 것이다. 저들의 이 상을 실현하는 수단을 확립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연합을 수립 하여, 회피할 수 없는 조건하에 서로의 확고한 조약과 강력한 동맹이 체결되는 때일 것이다. 여기에는 전 인류가 그 대표를 통하여 참가하고 참으로 세계평화를 위하여야 하는 이 조약을 확인하기 위하여 초청될 것이며, 지상의 모든 민족에 의하여 이 조약이 신성시(神聖視)되어야 할 것이니, 이 위대한 조약으 로 하여금 힘 있게 하고 지속하게 하는 것이 세계 동맹국의 의 무일 것이다. 이와 같은 세계적 조약에서 각국의 국경과 경계가 결정되고, 각 정부의 관례(慣例)와 법률이 확인될 것이다. 그리고 여러 나라의 일체의 합의사항과 정부 간의 협정이 제출되어 적당한 형식으로 결정될 것이다. 각국 정부의 군비(軍備)한도도 역시 이와 같이 하여 평정(評定)될 것이니 어느 한 나라의 군비가 증대되는 것은 다른 나라의 공포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 힘 있는 동맹의 기초는, 후일 어느 한 나라가 이 조약의 어느 하나라도 깨뜨릴 때는 세계의 다른 모든 나라들이 총 궐기하여 이것을 굴복시킬 만큼 확고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세계라는 병든 몸에 이와 같은 대요법(大療法)이 적용된다면 그것은 확 실히 세계 일반에 절제(節制)를 가르침으로써 부단히, 또 영구 히 그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문명의 신비한 힘’134~140쪽 바하이 견해에 의하면 국제연맹은 세계의 질서와 평화의 문제 219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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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관한 가르침을완수할 수는 없다. 바하이 가르침은‘소평화’ (국제적 협조를 달성하려는 정치적 국가의 노력)와 바하올라의 ‘최대의 평화’와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이 ‘최대의 평화’는 사회적 방책을 정신적 융합의 터전에서 실현 하려는 것이니 그것만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1919년 12월17일,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현재 세계평화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 문제의 기초를 안전케 하고 그 설립을 공고케 하며 그 기구(機構)를 강력케 하 기 위해서는 양심의 융합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국제연 맹은 존재하기에 이르렀으나 그러나 그것은 전 세계의 평화를 확립할 수는 없다. 바하올라께서 기술하신 최고재판소가 최고 의 강대성과 위력으로써 이 성스러운 일을 완수할 것이다.” 국제 중재(國際仲裁) 바하올라께서는 또 국제재판소의 설립을 제창하여, 국가 사이 의 알력을 전쟁수단에 의하지 않고 정의와 도리로써 조정할 것 을 권하셨다. 1911년 8월 압돌바하께서는 국제 중재에 관한‘모흥크’회의 의 서기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약 50년 전 바하올라께서는‘케타베 악다스’에서, 사람들에 게 세계평화 수립을 명령하시고 만국을 국제 중재의 거룩한 잔 치에 초청하셨다. 그리하여 모든 경계와 국제적 명예와 재산과 그 밖의 국가 사이의 중대한 문제가 정의의 중재재판소에 의하 여 조정되고, 어느 나라이든지 이 결정을 준수하여 감히 거부 22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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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서는 안 될것이라고 하셨다. 만일 두 나라 사이에 어떤 분 쟁이 발생했을 때 이 국제재판소에 의하여 심판될 것이니, 마 치 두개인 사이에 재판관이 내리는 판결과 같이 중재되고 결정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언제든지 이 결정을 깨뜨리는 나라 가 있으면 다른 모든 나라들이 이 불법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일어서야 한다. 또 1911년 파리에서의 강연에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모든 국가의 국민과 정부는 각 국가와 정부에서 선출한 대 표자들에 의하여 조직되는 최고재판소를 설립하여야 한다. 그 리고 이 대회의 의원들은 일치 협력 하여야 한다. 모든 국제적 성질을 가진 분쟁은 이 법정에 제출되어 전쟁의 원인이 되는 일체의 사건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것이 그 본무(本務)가 될 것 이니, 이 재판소의 사명은 전쟁을 방지함에 있는 것이다.” ---‘압돌바하의 지혜’145쪽 국제연맹이 창설되기 전 25년 동안 상설 중재재판소가 헤이 그에 설치되어(1900년) 많은 중재조약이 조인되었으나 이것들 의 대부분은 바하올라의 원대한 제안에는 멀리 미흡한 것이었 다. 두 강대국 사이의 모든 분쟁사건에 적용되는 중재조약은 한 번도 체결된 일이 없었다. 각국의 사활(死活)에 관계되는‘중대 한 이해’와‘명예’와‘독립’에 관한 문제는 특히 제외되어 있었 다. 그뿐 아니라 여러 나라가 참가한 조약의 준수도 그 효과적 인 보장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하올라의 제안에는 국경 문제, 국가적인 명예문제, 사활에 관계되는 이해문제들이 포함 되어 있고, 그 조약은 배후에 세계 국제연맹의 최상의 보장을 221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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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하게 되어 있다.이러한 제안이 완전히 실행될 때 비로소 국 제 중재가 충분히 실효를 나타내어 전쟁의 재난이 마침내 지상 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군비 제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세계의 모든 정부는 전체적 조약에 의하여 군비를 동시에 폐지하여야 한다. 한 나라가 군비를 폐지하여도 다른 나라들이 이것을 거부하면 아무 효과가 없다. 세계 각국은 서로 이 가장 중대한 문제에 일치 협력하여 한결같이 인간 살육의 흉기를 버 려야 한다. 한 나라가 그 육해군의 예산을 증가하는 한, 다른 나라들도 부득이 그 자연적 또는 가상적(假想的) 이해를 위하 여 그 경쟁에 광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1914년 5월11~14일의 미르자 아아맏 소오랍의 일기에 서 무저항 바하이들은 바하올라의 명백한 명령에 의하여, 한 종교단체로 서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단순한 자위(自衛)의 목적을 위 해서라도 전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페르시아에서는 수만 의 바비와 바하이들이 그들의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이 대업의 초기에는 바비들이 가끔 검으로써 용감히 자기와 자기 가족을 보호하였다. 그러나 바하올라께서는 그것을 금하셨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바하올라께서 출현하셨을 때, 그분은, 이와 같은 수단에 의 22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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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 진리를 공포하는것은 그것이 비록 자위의 목적에서라 할 지라도 용허(容許)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분은 검 으로써 통치하는 것을 부정하시고‘성스러운 전쟁’의 명령을 폐지하셨다. 그분은 말씀하셨으되,‘너희가 죽음을 당하는 것 이 남을 죽이는 것보다 나으리라.’하셨다. 하느님의 대업이 세 상에 널리 퍼지는 것은 신자들의 굳은 뜻과 확신을 통하여 이 루어지는 것이다. 신자들이 과감하고 대담하게 절대적인 헌신 으로써‘하느님의 말씀’을 찬미하기 위하여 일어서서, 현세의 사물에서 눈을 돌려 하느님을 위하여, 또 하느님의 힘에 의하 여 봉사의 생활에 들어갈 때 진리의 말씀이 승리를 얻을 것이 다. 이들 축복받은 영혼은 그 붉은 피로써 대업의 진리를 증거 하고 자신의 신앙의 진실성과 헌신과 항심(恒心)으로써 그것을 증명하나니, 주께서 이것으로써 대업을 홍포(弘布)하시고 고집 불통을 정복하신다. 우리는 하느님 이외에 보호자를 구하지 않 고 우리의 생명을 그분의 손에 맡기어 적을 대하고 순교를 맞 아들인다.”--- 본서를 위하여 집필한 압돌바하의 수기 바하올라께서는 그 대업의 박해자의 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신 일이 있다. “하느님의 자비 크심이여! 이 백성은 세계를 개조하기 위하 여 준비하고 있나니 파괴를 위한 무기는 필요치 않다. 선행(善 行)이 그 군대요, 자선(慈善)이 그 무기이며, 하느님께 대한 외 경(畏敬)이 그 사령관이다. 공정으로써 판단하는 자에게 행복 이 있을 것이니라. 하느님의 정의에 의하여 말하거니와, 이 사람들은 그 인내와 침착과 체념과 만족에 의하여 정의의 대변자가 되었다. 그들의 223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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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순함은 남을 죽이기보다자기가 죽임을 당함을 택하기까지 이르러, 그들 지상의 박해받은 자들은 세계 역사에 아직 기록 된 일이 없고 여러나라 사람들이 일찍이 보지 못했던 고난을 달게 받았다. 어떻게 그들은 자기를 보호하려 하지 않고 이와 같은 무서운 시련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가. 그들의 체념과 침착의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그 참된 원인은‘영광의 붓’으로써 부과시킨 금 제(禁制)였나니, 그들은 저 인류의 주이신 하느님의 강대와 위 력에 의한 통치의 열쇠를 잡은 것이다.” ---‘이리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한’(쇼기 에펜디의 영어 번역) 바하올라의 무저항주의론의 정당성은 그 결과에 의하여 증명 되었다. 페르시아에서 한 사람의 신도가 순교할 때마다 바하이신 앙은 그 종문(宗門)에 백 사람의 새 신도를 얻었다. 저들 순교자 들이 기쁨으로써 주이신 하느님의 발 앞에 생명의 관(冠)을 던진 것은, 참으로 저들이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는 새 생명, 무한한 풍 부(豊富)와 희열(喜悅)의 생명을 발견한 때문임을 증명하는 것 이다. 이것에 비하면 지상의 쾌락은 먼지와 같은 것이며 잔인을 극한 육체적 고통도 공기와 같이 가벼운 것이었음을 증거한다. 정의의 전쟁 바하올라께서는 그리스도와 같이 신도들에게, 개인으로서 또 는 종교단체로서 그 적에 대하여 무저항과 관용의 태도를 취하 라고 하셨지만, 그러나 사회로서는 불의와 포학을 방지하는 것 이 의무라고 가르치셨다. 만일 개인은 자신이 박해와 손상을 받았을 때 그것을 용서하 22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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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복수하지 않는것이 옳으나, 사회가 그 내부에 약탈과 살육 이 자행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악행을 억제하 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좋은 정부의 의무이다.18) 이것은 또 한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니, 만일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 를 박해하거나, 모욕할 때, 이와 같은 압박을 방지하기 위하여 다른 모든 나라들이 협력하는 것이 그 의무이다. 압돌바하께서 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떤 때에는 호전적(好戰的)이며 야만적인 종족이 맹렬히 다 른 나라를 공격하여 그 나라의 민중을 대량으로 학살하려 하는 일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방어가 필요하다.” ---‘압돌바하의 지혜’170쪽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공격할 때 그 밖의 여러 나라들이 중립 방관하여, 직접 자기나라와 이해관계가 없는 한, 그 사건 에 대하여 어떤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인류의 지금까지의 관례 였다. 공격을 받는 나라가 아무리 약소할지라도 방어의 무거운 짐을 혼자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바하올라의 가르침은 이 관례를 타파하셨으니, 방어의 책임이 단지 공격받는 나라에만 있는 것 이 아니라 개별적 또는 단체적으로 모든 다른 나라에도 있다고 하셨다. 인류 전체가 한 사회이므로 어느 한나라에 대한 공격도 그 사회에 대한 공격이니 그 사회에 의하여 그것이 처치되어야 한다. 만일 이 주의가 일반에 인정되고 실행된다면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려고 하여도, 침략을 받는 나라뿐 아니라 세 계 각국의 반항을 받을 것을 미리 알 것이니, 그것을 아는 것만 으로도 가장 대담하고 호전적인 나라라도 억제하기에 족할 것 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 나라 사이에 충분하고 강력한 연맹 225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18.‘마슈리꼴 아즈카르’에 관련하여 테니슨의 시를 상기해 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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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6 바하올라와 신시대 이 설립된다면전쟁은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국제적 무질서의 구 상태에서 국제협력의 신 상태로 넘어가는 과도기 에는 아직도 침략적 전쟁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병력 기타의 고압적 행동은 국제적 정의와 융합과 평화를 위하여 절 대적인 의무일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전쟁도 때로는 평화의 중요한 기초가 되고, 파괴도 재건의 원인이 된다. 이 전쟁은 본질적으로 평화의 음곡(音曲)에 조자 를 맞추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그 광포(狂暴)가 친절 그것이 요 그 압제는 정의의 본질이며 그 전쟁은 화해의 원천이다. 오 늘의 유력한 군주(君主)의 참된 의무는 세계평화를 촉진시키는 일이니, 그것은 진실로 세계 만민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문명의 신비한 힘’ 동서양의 융합 세계평화를 이룩함에 필요한 또 한 가지 요소는 동서양의 연 결이다.‘최대의 평화’는 단지 적대 행위를 정지하는 것만이 아 니라 종래 분산하여 있는 지구상의 여러 민족이 서로 잘 살도록 결합하여 성실히 협력함에 있다. 그리하여 인류는 더 많은 귀중 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파리에서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과거에도 현재와 같이 정신적 진리의 태양은 언제나 동양의 지평선에 떠올랐다. 모세께서는 동양에 출현하시어 민중을 지 도하고 교훈하셨다. 그리스도께서도 동양의 지평선에 일어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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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모하멧께서도 동양의국민에게 보내지셨다. 바압도 동방의 나라 페르시아에 출현하셨다. 바하올라께서도 동양에서 생활하 시고 가르치심을 전하셨다. 모든 위대한 정신적인 교사들은 동 양에 출현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라는 태양은 동양에 서광을 비추었지만 그 빛은 서양에서 명확히 빛났고 그 영광의 광채가 거기서 한층 더 분명하였다. 그분의 가르침의 신성한 광명은 보다 위대한 힘으로써 서방세계에 빛났고 그분이 탄생하신 땅에서보다 서방 에서 더 빨리 발전하였다. 현재 동양은 물질적 진보를 필요로 하고 서양은 정신적 이상 의 부족을 느낀다. 서양은 동양에서 정신적 광명을 얻는 대신 에 과학적 지식을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선물교환이 있어야 한다. 동서양은 서로 그 부족한 것을 주기 위하여 융합 되어야 한다. 그 융합에 의하여 정신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에 표현되고 실현되어 참다운 문명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 받음으로써 위대한 조화를 이루고 만민 이 확고히 결합되어 위대한 완성의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그 리하여 이 세계는 하느님의 속성을 반사하는 빛나는 거울이 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동서양 사람들은 전 심혼(心魂)을 기울여 이 고귀한 이상을 실현하여 지구상의 모든 나라의 통합을 확립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이 새 로워지고 모든 사람의 눈이 열리며 가장 놀라운 힘이 생겨 인 류의 행복이 보장될 것이다........ .그것은 전 인류가‘영광의 나라’통합의 천막에 함께 모이는 때에 이 지상에 오게 될 낙원 이다.”---‘압돌바하의 지혜’17쪽 227 제 10 장 평화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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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1 장 여러가지 계율과 교훈 어느 시대에나 어느 종교제(宗敎制)에서나 하느님의 모든 계 율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하고 고쳐지는 것임을 알라. 다만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는 사랑의 법칙만은 예외여서 변하지 않 느니라. --- 바하올라 수도원 생활 바하올라께서는 모하멧과 같이 그 신자들에게 세상을 등진 수 도원생활에 들어가는 것을 금하셨다. 나폴레옹 3세에게 보내신 그분의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 승려(僧侶)의 집단이여! 너희는 수도원 독방에 몸을 감추지 말고, 나의 명령에 따라 그것을 버리고 너 자신과 인류 의 영혼을 이롭게 하는 일에 종사하라. 짐(朕)이 너희에게 부정(不貞)을 금하고 정절(貞節)을 명하 였나니, 너희는 모름지기 결혼생활에 들어가서 후사(後嗣)를 얻으라. 너희는 이미 자의(自意)의 길에 들어 주의 길을 잊었 도다. 너희는 주를 두려워함으로써 스스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 만일 사람이 없다면 나의 나라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를 229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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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이며 어떻게 나의특질과 속성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깊 이 생각하라. 그리하여 미망(迷妄)과 혼수(昏睡)에 빠지지 말 라. 결혼하지 않는 그리스도께서는 거처할 곳이 없었고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지만 그것은 모두 반역자들 때문이었느니라. 그분의 영혼의 신성함은 너희의 공상으로 하는 그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세상 사람 들의 사상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지위를 알고자 간구하라. 아는 자에게 행복이 있느니라.” 그리스도께서 결혼한 자들을 그분 제자로 택하셨고 그 분 자 신과 그분의 제자들이 세상 사람과 친밀히 교제하여 그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을 본다면, 후세의 기독교파가 수도원생활과 승 려의 독신생활의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모하멧의‘코란’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나는 마라아의 아들 예수에게 복음을 주고 신자들의 마음에 친절과 자비를 부어넣었다. 그러나 수도원생활은 저들 자신이 생각해 낸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다만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하기를 명하였건만 그들은 지켜야 할 것을 그대로 지키지 않았 다.”---‘코란’제 57장 27절 옛날에는 그때의 형편에 있어서 수도원생활을 정당화시키는 어떤 구실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바하올라께서는 이제는 그러 한 구실이 통용될 수 없다고 선언하셨다. 실제로, 가장 경건하 고 하느님을 외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동포와 교제를 끊고 사 람의 어버이 될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면 그것은 인류의 정신적 빈곤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23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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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바하이 가르침은 일부일처주의를주장하고 있으며, 바하올라 께서는 혼인은 그 당사자 쌍방과 그들 부모의 동의를 조건으로 하여 성립될 것이라고 하셨다. 즉‘케타베 악다스’에 다음과 같 이 씌어 있다. “진실로‘바얀’(바압의 계시)에서는 혼인을 양자(신랑과 신 부)의 동의로써 성립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사랑과 우정과 여 러 사람의 융화를 원하므로 부모의 동의도 그것의 조건으로 한 다. 그리함으로써 원한과 악감정이 없어질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어느 질문자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혼인문제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계율에 의하면, 그대가 먼저 한 사람을 택하라. 그리고 부모의 동의를 얻으라. 그대가 택하 기 전에 부모들은 간섭할 권리가 없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3권 563쪽 바하올라의 이와 같은 세심한 주의의 결과로써, 기독교국이나 이슬람교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혼인으로 인한 부모와 자식 사이의 불화가 바하이 사회에서는 거의 없고, 이혼하는 일도 매 우 드물다고 압돌바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분은 혼인에 관하 여 다음과 같이 쓰셨다. “바하이 혼약은 양편의 완전무결한 동의일치에 의한다. 그들 은 최대의 주의를 기울여 서로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서로의 굳은 약속은 영원한 결합을 이루고, 그 의향은 영구한 친화와 231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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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의와 일치와 생활이어야한다. 바하이의 혼인은 남녀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결합하여 하 느님의 모든 세계에서 영원한 일치를 얻고 서로의 정신생활을 개선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하이의 혼인이다. 바하이 결혼식은 대단히 간소해서, 신랑과 신부가 두 사람의 바하이 증인 앞에서‘진실로 저희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 겠습니다.’라고 서약하면 된다.” ---‘압돌바하의 서한집’제 2권 325쪽 이혼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혼에 관해서 예언자들께서 가르치신 바 가 시대의 상태에 따라서 다르다. 이혼에 관하여 압돌바하께서 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바하이 벗들은 서로 미워함으로 인한 부득이한 사정이 아닌 한, 결코 이혼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러한 경우에는 두 사람 은 신성회의 승인을 얻어 별거할 수 있다. 이 경우에 그들은 만 1년 간 참고 기다려야 하며 그 동안에 다시 조화(調和)를 얻을 수 없으면 그들의 이혼은 성립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의 기초는 조화와 사랑과 통일과 친족관계와 융합에 있는 것이요, 결코 알력, 특히 부부간의 알력에는 있을 수 없다. 만 일 그들의 한편이 이혼의 원인이 된다면 그는 반드시 큰 곤란 에 빠질 것이요, 무서운 재앙을 당하여 심심한 후회를 경험할 것이다.”--- 아메리카의 바하이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혼에 관해서도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바하이 가르침뿐만 23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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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라 그 사람이거주하는 나라의 법률에 따라야 할 것은 물론 이다. 바하이력(曆) 서로 다른 민족과 서로 다른 시대에, 시간을 계산하고 날짜를 정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어서 오늘날에는 몇 가지 역법(曆 法)이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서부 유럽의 그레고리력, 동부 유 럽 여러 나라의 쥴리앤력, 유대인 사이의 히브리력, 이슬람교도 사이의 이슬람력이 그것이다. 바압께서는 새 역법을 제정하심으로써 그분은 선구자로서 세 상에 전한 종교제(宗敎制)의 중요성을 강력히 표명하셨다. 이 역법에서는 그레고리력에서와 같이 태음월(太陰月)을 폐지하 고 태양년(太陽年)을 채용하셨다. 바하이력의 1년은 매월 19일의 19개월(즉 361일)로서, 이 것을 태양년에 합치시키기 위하여 제 18월과 제 19월 사이에 윤일(평년은 4일, 윤년은 5일)을 두었다. 바압께서는 각월의 이 름을 하느님의 속성(屬性)으로써 명명하셨다. 바하이의 신년은 고대 페르시아의 신년과 마찬가지로 천문학적으로 정해져 있어 춘분(3월 21일)에 시작되었고, 바하이 기원(紀元)은 바압선언 의 해(즉 서기 1844년, 헤쥬라트 기원 1260년)에 시작된다. 가까운 장래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공통의 역법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세계 통합의 시대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세계의 전 민중에게 용납되기 어려운 종래의 여러 가지 역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역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233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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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되는 데, 바압께서제시한 이 역법보다 더 간편한 것을 생 각해 내기 어려울 것이다. 바하이 달은 아래의 표와 같다. 신성회 압돌바하께서는 그분의 지상에서의 사명을 마치시기 전에 바하 올라의 문서 가운데 확립되어 있는 행정질서의 발전을 위한 기반 을 제시하셨다. 신성회라는 제도가 고도(高度)로 중요하다는 것 을 보이기 위하여 압돌바하께서는 어느 서한에서, 그분 자신이 234 바하올라와 신시대 달 아라비아어 한국어 초하룻날 1 바 하 광휘(光輝) 3월 21일 2 잘 랄 영광(榮光) 4월 9일 3 자 말 미려(美麗) 4월 28일 4 아자맡 장엄(莊嚴) 5월 17일 5 누르 광명(光明) 6월 5일 6 라흐맡 자비(慈悲) 6월 24일 7 칼레맡 언사(言辭) 7월 13일 8 카말 완전(完全) 8월 1일 9 아스마 명칭(名稱) 8월 20일 10 에즈잗 권능(權能) 9월 8일 11 마쉬얕 의지(意志) 9월 27일 12 앨름 지식(知識) 10월 16일 13 꼬드랄 위력(威力) 11월 4일 14 꼬올 발언(發言) 11월 23일 15 마사엘 질문(質問) 12월 12일 16 샤라프 명예(名譽) 12월 31일 17 솔탄 주권(主權) 1월 19일 18 몰크 지배(支配) 2월 7일 윤일(閏日) 2월26일~3월1일 19 알라 고원(高遠)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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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을 검열하고 정정했음에도불구하고 그 번역이 출판되기 전 에 카이로 신성회에서 인가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언하셨다. 신성회란 것은 각 지방의 바하이 공동체에서 매년 선출되는 9 인으로 조직된 행정기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 공동체를 대 리하여 활동하며 모든 문제에 대한 결정권이 부여되어 있다. 그 명칭은 일시적인 것이나 장래에는‘신성회’가‘정의원’으로 교 체될 것이다. 교회의 조직과는 달라서 이러한 바하이 기구는 교회적 제도라 기 보다는 사회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들은, 국가기관 의 재판소에 사건을 제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바하이 사이 에 일어난 여러 가지 문제와 곤란한 일에 대하여 협의의 법칙을 적용한다. 그리하여 공동체 전체를 통하여 정의와 통일을 증진 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 신성회는 결코 승려나 목사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교의(敎義)를 지지하고 장려하는 일, 실체의 봉사를 고무(鼓 舞)하는 일, 집회를 개최하는 일, 통일을 유지하는 일, 공동체를 위하여 바하이의 재산을 신탁보관 하는 일을 하고, 그 밖에 일 반사회에 대한 일과 다른 바하이 공동체와의 관계에 있어서 공 동체를 대표하는 임무를 가진다. 지방신성회와 전국신성회의 성격에 대해서는 최종장(最終章) 의 압돌바하의‘유훈’을 취급한 부분에서 더 자세히 기술하겠 거니와 그 일반적인 기능은 수호자 쇼기 에펜디에 의하여 다음 과 같이 정의(正義)되었다. 235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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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도(敎導)의 내용과 그방향, 그 방법과 수단, 그 보급, 그 강화 등의 문제는 그것이 대업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것이 결코 신성회의 주의를 전부 집중 할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바하올라와 압돌바하의 여러 서한을 주의 깊게 연구하면 대업의 이해관계 못지않은 중요한 다른 의 무가, 각 지방의 벗들에 의하여 선출된 대표자들의 임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임무는 부단한 주의와 신중한 습격 을 받지 않도록 대업의‘성당’을 지키는 것이다. 그들은 바하이 벗들 사이의 친목과 화합을 증진시키고 여러 사람의 마음에서 불신, 냉담, 소격(疏隔)의 모든 자취를 제거 하도록 노력할 것이요, 대업의 봉사를 위하여 활동적이며 충심 으로의 협조(協調)를 확보하여야 한다. 그들은 항상 피부색, 계급, 종교 등에 관계없이 빈곤자, 병 자, 불구자, 고아, 미망인 등에 구조의 손을 뻗쳐 최선을 다해 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써 청년의 정신적 또 는 물질적인 계몽에 힘쓰고 또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방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능할 때에는 언제든지 바하이 교육기관 을 설립하여 그 교육기관의 조직을 감독하고 그것의 진보발전 을 위하여 최선의 수단을 다해야 한다. 그들은 바하이 벗들을 위하여 규칙적인 집회와 축제회합과 기념회합 이외에 다시 더 나아가서 인류의 사회적, 지능적, 정 신적 이익에 이바지하고, 또 그 진흥을 목적으로 한 특수한 집 회를 마련해야 한다. 23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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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대업이 아직유년기에 있는 오늘에 있어서 모든 바하 이 출판물과 번역을 감독하고, 전반에 걸쳐 모든 바하이 문헌 이 권위 있고 정확한 표현이 되기를 기하고 그것들이 일반대중 에게 잘 선포되도록 힘써야 한다.” 바하이 제도에 고유한 모든 가능성은, 우리가 근대문명이 그 정신력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빨리 붕괴되고 있는가를 깨달을 때에라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력만이 지 도자들에게 필요한 책임과 겸손한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이요, 정신력만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構成員)들에게 요구되는 충성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바하이 축제일, 기념일, 단식일 축제 바하이신앙의 중요한 즐거움은 1년을 통하여 시행되는 여러 가지 축제와 성일(聖日)에 나타난다. 1912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열린 노우루즈 축제회합에 237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바압의 탄신 1819년 10월 20일 바압의 선언 1844년 5월 23일 바압의 순교 1850년 7월 9일(정오) 바하올라의 탄신 1817년 11월 12일 레즈완 축제 (바하올라의 선언) 1863년 4월 21일~5월 2일 바하올라의 승천 1892년 5월 29일(오전 3시) 성약의 날 11월 26일 압돌바하의 승천 1921년 11월 28일(오전 1시) 단식 기간 3월 2일 부터 20일까지(19일 간) 노우루즈 축제 (바하이 신년) 3월 21일
  • 244.
    서의 강연에서 압돌바하께서는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신성한 계율에는, 어느 시대 어떤 종교제에서나 거룩한 축제와 안식일과 휴일이 있다. 그날에는 상업, 공업, 농 업, 기타 모든 직업은 쉬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일반적인 집회를 개최하여 하 나와 같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통일과 일치조화가 만인의 눈에 보일 것이다. 이것은 거룩한 날이므로 결코 등한시 하거 나 단순히 쾌락을 추구하는데 씌어져서는 안된다. 이 기간 중 에 사람들의 영원한 복리를 위하여 여러 가지 기관이 설립되어 야 한다........ 오늘날 민중을 지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효과는 없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러한 날에 단지 바하이에게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 미치는 확실한 박애(博愛)와 이상(理想)의 증거를 남겨야 한다. 이 훌륭한 종교제에 있어서 박애사업은 하느님의 자비의 발현이므로 예외 없이 전 인류를 위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각각 전 인류 를 위한 하느님의 자비와 같이 되기를 희망한다. 노우루즈와 레즈완 축제, 바압과 바하올라의 탄신일, 바압선 언 기념일 (이날은 압돌바하의 탄신일이기도 함)들은 바하이들 에게 1년 중 가장 기쁜 날이다. 페르시아에서는 이 날에 소풍을 가거나 또는 즐거운 모임으로써 경축하며 음악과 시와 성서한 의 낭독과 그밖에 적당한 짧은 연설이 참가자에 의하여 행해진 다. 제 18월과 19월 사이에 있는 윤일 (즉 2월 26일부터 3월 1 일까지)에는 특히 친구들을 환대하는 일, 선사하는 일, 빈곤자 와 병자를 도와주는 일들을 한다. 23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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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압께서 순교하신 날과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 세상을 떠 나신 기념일은 적당한 집회와 강연과 기도와 성서한 낭독 등으 로 엄숙히 기념한다. 단식 윤일 환대의 뒤에 오는 제 19월은 단식 월이다. 이 19일 간 일 출부터 일몰까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끊음으로써 단식을 행 한다. 이 단식은 춘분날에 끝나므로 언제나 동일한 계절에 행하 게 된다. 북반구에는 봄이요 남반구에는 가을이어서, 여러 가지 곤란이 있기 쉬운 혹서(酷暑)와 혹한(酷寒)을 피하게 되어 있 다. 그뿐 아니라 지구에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지대의 일출로부 터 일몰까지의 시간이 거의 동일하게 대체로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소아와 병자와 여행자와 노쇠자와 허약자(임산부 와 유아를 가진 부인도 포함)에게는 이 단식의 의무가 없다. 바하이 가르침이 명한 바와 같은 정기적인 단식은 신체의 위 생수단으로써 유익한 것임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가 있다. 그러 나 바하이 단식의 본질은 물질적인 음식물을 소비하지 않는다 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정신적인 음식물인 하느님 을 찬미하는 것에 있나니, 비록 그것이 신체의 정화(淨化)에 도 움이 된다 할지라도 물질적인 음식물을 끊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以上)으로 육신의 욕망과 쾌락을 끊어버리고 하느님 이외 의 모든 사물을 멀리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 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단식은 하나의 상징(象徵)이다. 단식은 욕정(欲情)을 끊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적인 단식은 이 금욕의 상징이요 이것을 239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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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수단이다. 이것은마치 식욕을 끊은 사람이 자아욕과 정욕에서 멀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단지 음식물을 끊는다는 것만으로서는 정신상에 아무런 효과도 없다. 그것은 단지 상징 이요 생각하는 수단에 불과하고 아무런 중요한 의미가 없나니, 이 목적을 위한 단식은 완전한 단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음식 물에 대한 금과옥조(金科玉條)는 과부족(過不足)이 없게 하는 것이다. 중용(中庸)이 필요하다. 인도에 극단의 단식을 하는 일파의 종지(宗旨)가 있어 점차로 음식물을 감소하여 마침내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지력(知力)은 쇠약해진 다. 만일 음식의 결핍으로 쇠약해진다면 그는 심신(心身)을 바 쳐 하느님께 봉사하기 어려울 것이며 그의 눈은 분명히 볼 수 없을 것이다.” --- E. S. 스티븐슨양에 의하여‘격주평론’1911년 6월호에 인용된 것 집회 압돌바하께서는 합동예배와 교의(敎義)연구 및 발표와 운동 의 발전에 대한 협의 등을 위하여 신자들이 정기적으로 회합하 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다. 그분은 어느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에 의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와 자비 깊으신 분의 시녀(侍女)들 가운데 일치와 조화가 날마다 더 증진되어 갈 것이다. 이것이 실현되기까지는 무슨 일이나 어떠한 수단으로서도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일치와 조 화를 위한 최대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집회이다. 이것 은 극히 중요한 일이어서 자석처럼 하느님의 확증을 끌어들이 24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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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것이다.”---‘압돌바하의 서한집’제1권 125쪽 바하이신앙의 정신적 집회에는 논쟁과 정치 및 세속적인 일에 관한 토론은 피하여야 한다. 신자들의 유일한 목적은,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 하느님의 사랑으로써 신자의 마음 을 충만시키는 일, 하느님의 뜻에 더 완전히 따르는 일,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를 촉진시키는 것에 있다. 1912년 뉴욕 에서의 강연에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바하이의 집회는‘천상집단’(天上集團)의 모임이어야 한 다. 그것은‘천상집단’의 빛으로써 비쳐져야 한다. 여러 사람 의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아서 거기에‘진리의 태양’의 빛이 비쳐질 것이다. 각자의 마음은 전신국과 같아야 한다. 즉 그 전선의 한 끝은 사람의 영혼 가운데 있고 다른 한 끝은‘천상 집단’가운데 있어 통신이 그 사이에 교환될 것이다. 이와 같 이 하여‘압하의 나라’에서 영감이 흘러내려 모든 토의에 조화 가 지배할 것이다....... 여러분들 사이에 화합과 일치와 사랑 이 크면 클수록 하느님의 확증이 더욱 여러분을 도울 것이며, ‘축복받은 미’인 바하올라의 원조가 또한 여러분을 고무하여 줄 것이다.” 그분은 또 어느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러한 집회 중에 외부에 관한 담화는 일체 금지되어야 한 다. 그 집회에서는 다만 싯귀(詩句)를 읊고 경전을 읽고 하느 님의 대업에 관한 일, 예컨대 증거의 해석과 명확한 증언의 제 시와 창조물이 가장 사랑하는 이의 증적을 탐색하는 일들에만 집중하여야 한다. 이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먼저 몸차림을 241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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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이 하고‘압하의 나라’로향한 다음 온순하고 겸손한 태도 로써 회장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성서한을 읽는 동안은 정 숙해야 한다. 만일 발언하고 싶을 때는 참석자들의 동의와 허 락을 얻어 점잖게 능변으로 유창하게 말해야 한다.” 19일 축제 압돌바하께서 승천하신 이래, 바하이 행정질서의 발전에 따라 바하이 월 첫날에 거행되는 19일마다의 축제모임은 그것이 합 동기도와 경전낭독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오늘날의 모든 바하 이 업무에 관한 일반적 협의를 위한 기회로써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 축제모임은 신성회가 공동체에 대하여 보고 도 하고 계획에 관한 협의도 하며 봉사를 위한 새로운 더 좋은 방법을 참석자로 하여금 제안케 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마슈리꼴 아즈카르’ 바하올라께서는 신자들의 힘으로써 모든 나라와 도시에 예배 원을 세우라고 유명(遺命)으로써 지시하셨다. 그분은 이 예배 원을‘마슈리꼴 아즈카르’(Mashriqu’l-Adhka’r)라고 명명 하셨으니‘하느님의 찬미의 발생지’라는 뜻이다.‘마슈리꼴 아 즈카르’는 한 둥근 지붕으로 덮인 9면을 가진 건물로서 설계와 기술이 모두 미(美)와 선(善)을 다하여야 한다. 이 건물은 분수 (噴水)와 수목과 화초로써 단장된 큰 정원 가운데 세워져야 하 고, 교육과 자선과 사회사업을 위하여 세워진 많은 부속 건물로 둘러싸이고, 원(阮)내에서 행하는 하느님께 대한 예배가 항상 자연과 예술미의 경건한 즐거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상태를 개선하는 실체적 사업과도 또한 밀접 24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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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게 관련되어 있어야한다.19) 페르시아에서는 현재까지 바하이들에게 일반예배를 위한 전 당(殿堂)의 건축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최초의 대‘마슈 리꼴 아즈카르’가 러시아의 에슈카바드에 세워졌다. 그리고 두 번째의 바하이 예배원은 아메리카의 시카고 북방 조금 떨어진 곳 미시간 호숫가에 세워졌다. 고 루이 부르죠의 설계로 된 이 건축양식은 널리 주목을 끌고 있다. 압돌바하께서 1912년 아메 리카를 방문하셨을 때 그 기지(基地)가 헌납되었다. 상부 건축 은 헌납식이 있던 날로부터 19년째인 1931년 4월에 완성되었 다. 설계자의 디자인에 의한 외부장식은 손으로 새긴 원형(原 型)에 의하여 일정한 단위로 만들어진 인조석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새로운 방법이었다. 그 결과로 표면은 복잡하고 아름다 운 디자인이면서 자연석보다도 강한 내구력(耐久力)을 가졌다. 1935년에는 돔(둥근 지붕)과 고창(高窓)부분이 완성되었다. 근년에 페르시아의 바하이들은 테헤란 시가를 굽어보는 곳에 ‘마슈리꼴 아즈카르’를 세울 땅을 얻었다. 이 서양의‘모사원’ (母寺院)에 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많은 서한을 쓰셨는데 그 가운데 한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느님께 영광 있을 진저, 지금 아메리카의‘마슈리꼴 아즈 카르’의 건립기금이 세계각지로부터 각자의 자의에 응하여 송 금되고 있다........ 아시아의 가장 먼 지방에서부터 아메리카에 기부금이 왔다는 일은 아담시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일찍이 없었 던 일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성약에 의한 것이다. 하느님을 믿 는 사람들이 큰 도량을 보여 이 건축을 위하여 대금(代金)을 243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19.‘마슈리꼴 아즈카르’에 관련하여 테니슨의 시를 상기해 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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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달해 주기를 바란다........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뜻대 로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일 누가 어떤 다른 일에 돈을 쓰고 싶어 하거든 그대로 하게 하라. 무슨 일에나 간섭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은‘마슈리꼴 아즈카르’를 건립하는 일임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마슈리꼴 아즈카르’는 9면을 가진 건물로서 9개의 문이 있 고, 또 각각 9개의 분수, 길, 입구, 기둥, 화원이 있으며 당내에 는 지하실과 회랑(廻廊)과 원개(圓蓋)가 있고, 그 의장(意匠) 과 구조가 모두 미와 선을 다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집을 세우 는 것은 오늘의 가장 큰 사업이다.‘마슈리꼴 아즈카르’는 중 요한 부속건물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이 또한 뜻깊은 기본적 건 물이다. 이것은 고아를 위한 학교, 빈곤자를 위한 병원과 시약 소(試藥所), 불구자를 위한 주택과 고등 과학교육을 위한 학교 및 방문자의 숙박소 등이다. 모든 도시에 대‘마슈리꼴 아즈카 르’가 이와 같은 질서로 세워져야 한다.‘마슈리꼴 아즈카르’ 에서는 예배가 행해질 것이다. 원(院)내에는 풍금이 없을 것이 다. 잔치, 예배, 대회, 공개집회 및 정신적 집회들은 모두 부속 건물에서 행해질 것이요, 본당 안에서는 기도문 낭송과 찬가 (讚歌)가 반주 없이 행해질 것이다. 전 인류에게 예배원 문을 개방하라.” 이러한 학교, 병원, 폐질자(廢疾者)를 위한 건축물, 고등 과학 의 연구를 위한 대학, 그밖에 박애자선을 위한 건물들이 세워질 때 모든 사람과 모든 종교에 그 문호(門戶)가 개방될 것이다. 거기에는 절대로 조그마한 차별이나 구별도 있을 수 없다. 그 자혜(慈惠)는 피부색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베풀어질 것이다. 24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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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5 그 문호는 널리전 인류에게 개방되어 누구에게나 편견 없이 모 든 사람에게 사랑이 미칠 것이다. 본당은 기도와 예배를 위하여 씌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종교는 과학과 조화되고 과학은 종교의 시녀가 되어 양자(兩者)는 그 물질적 및 정신적 선물을 전 인류에게 부어줄 것이다. 사후의 생애 바하올라께서는, 육체의 생명은 우리의 생존의 미완성의 단계 에 있는 것이며, 육체로부터의 벗어남은 인간 정신이 더 완전하 고 더 자유스러운 생명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탄생과 같은 것이 라고 가르치셨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영혼은 육체를 떠난 뒤에도 계속 진보하여 마침내 하느님이 계신 곳에 이르러, 시대와 세기의 변혁이나 이 세상의 어떠한 변화도 그것을 변하게 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도달한다는 진리 를 알라. 영혼은‘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주권, 하느님의 지 배력, 하느님의 위력이 영원함과 같이 영원히 존속하는 것이 다. 그리하여 거기에 하느님의 증적과 속성과 그 자애와 혜택 이 나타나는 것이다. 나의 붓의 움직임은, 이처럼 높은 지위의 고상함과 영광스러움을 기술하려는 때에 정지하여 버리는 것이 다.‘자애의 손’으로써 인간의 영혼에게 주는 명예는 어떠한 혀(舌)로써도 적절히 표현하여 말할 수 없고, 지상의 어떠한 자도 그것을 서술할 수 없다. 육체를 벗어난 뒤에 세계의 모든 미망(迷妄)에서 성별(聖別)된 영혼은 축복 받을진저. 이와 같 이 영혼은 그 창조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최상(最上)의 낙원 에 들어간다. 최상의 낙원에 사는 천사들은 그들을 맞아들여 싸고 돌 것이며, 그 영혼은 모든 하느님의 예언자들과 그분의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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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함을 받은 자들과사귀게 될 것이요, 그들에게 세계의 주이 신 하느님의 길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말하게 될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하늘 위의 왕좌(王座)와 하늘 아래 이 땅의 주이신 하느님의 모든 세계에서 그와 같은, 영혼을 위하여 정 해진 것이 있음을 안다면 그의 전 존재(全存在)는 곧 그 가장 고귀한 성별된 영광의 지위에 도달하려는 그의 최대의 소원에 불타게 될 것이다........ 사후의 영혼의 성질은 기술할 수도 없 고 또 그것을 만나거나 그 전부의 성질을 인간의 눈에 분명히 보이게 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예언자와 사자들 은 인류를 진리의 바른 길로 인도하기위해 오신 것이다. 사람 이 죽을 때 최상의 깨끗함과 신성과 절대의 초월로써‘최고 자’의 왕좌에 오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들 영혼들이 발하는 광명은 인류 향상과 세계 진보의 원인이 된다. 그들은 존재의 세계에 감화와 영향을 주는 누룩이 되고, 세계의 예술과 경이 (驚異)를 나타내는 활력이 된다. 그들을 통하여 구름은 그 혜 택을 사람들에게 부어주고, 땅은 그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원인을, 원동력을, 활력소(活力素)를 가져야 한다. 이들 영혼과 초월(超越)의 상징은 이 존재의 세계에 늘 최상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저 세상과 이 세상의 차이는 태아(胎兒)의 세계와 이 세계와 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낙수집’155~127쪽 압돌바하께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쓰셨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알지 못한 비밀을 천국에서 발견하게 된다. 거기서 진리의 비밀을 알게 되고 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 들을 더 잘 이해하고 발견하는 것이다. 순수한 눈과 통찰력을 가진 깨끗한 영혼은 틀림없이 이 광명의 나라에서 모든 비밀을 24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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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닫고 모든 위대한영혼의 실상을 보는 혜택을 바랄 것이다. 그들은 그 세계에서 하느님의 미를 분명히 볼 것이요, 또 그들 은 과거나 현재의 모든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그 하늘의 모임에서 발견할 것이다. 인간 사이의 차이와 차별은 이 세상을 떠난 후에 자연히 나타 난다. 그러나 이 차별은 지위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다만 영혼과 양심에 관한 것이다.‘하느님의 나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 여 성별되는(혹은 자유로이 되는)것이므로 그것은 전혀 별세계 요 별천지인 것이다. 하느님의 모든 세계에서는 정신적으로 사 랑받은 자들이 서로 만나서 알게 되고, 서로 결합을 바라게 되 는데 이것은 물론 정신적 결합임을 알라. 그와 마찬가지로 현 세에서 누구에게 품은 사랑은‘하느님의 나라’의 세계에서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요, 여러분의 현세에서의 생활도 또한 잊 혀지는 것이 아니다.”---‘압돌바하의 서한집’제 1권 204쪽 천국과 지옥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는 묵은 종교서적의 어떤 것에 기록 되어 있는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를, 성서의 창세기 이야기와 마 찬가지로 상징적인 것으로 보고 문구 그대로 진실한 것으로는 보지 않으셨다. 그분들에 의하면 천국은 완전한 상태요 지옥은 불완전한 상태이다. 천국은 하느님의 뜻과 우리 동포와의 조화 (調和)가 이루어진 곳이요 지옥은 정신적으로 죽은 상태이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살아있는 동안에도 천국이나 지옥에 있 을 수 있다. 천국의 기쁨은 정신적 기쁨이요 지옥의 고통은 이 러한 기쁨이 없어진 데 있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 이 말씀하셨다. 247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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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신앙의 빛에의하여 죄악의 암흑에서 해방되는‘진 리의 태양’의 빛으로 광명을 받고 모든 선덕(善德)으로써 존귀 하게 될 때, 그들은 이것으로써 최대의 보수를 삼고 이것을 참 다운 낙원으로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정신적 형벌은, 자연의 세계에 굴복되어 있는 것,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있는 것, 야만무지하게 사는 것, 육욕(肉慾)에 빠지는 것, 짐승처럼 약한 의지에 얽매이는 것, 어두운 성품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러한 것들이 최대의 형벌이요 최대의 가책이라고 생 각한다. 내세의 보수는, 이 세상을 떠난 후 영적(靈的)세계에서 완성 과 평화를 얻는 그것이다........ 즉, 정신적인 은혜와‘하느님 의 나라’의 여러 가지 선물을 받고 심령의 희망을 이루고 영원 한 세계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곧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내세의 형벌은,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과 절대적인 은혜를 받지 못하여 최하급적 존재로 굴러 떨어지는 그것이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후의 생활은, 그것이 존속할지라 도 진리의 사람들의 눈에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이 다. 내세의 부(富)는 하느님께 가까워지는 그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궁정(宮庭)에 가까이 있는 자는 대청(代聽)이 허용되 어 있음이 확실하다. 이 중재는 하느님께서 승인하신 것이다. 죄악과 불신앙 중에 죽은 자의 상태라도 변경할 수 있을 것이 다. 그것은, 즉 저들이 하느님의 정의의 심판에 의하는 것이 아 니라 하느님의 은혜에 의하여 용서의 대상(對象)이 될 수 있다 는 것을 말함이니, 은혜란 것은 당연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는 것이요, 정의란 것은 당연히 가치 있는 자에게 주는 것이 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영혼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기도하 는 힘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또한‘하느님의 나라’인 24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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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세에 있어서도 그와같은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 로 저 세상에서도 그들은 진보할 수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그들 자신의 기원에 의하여 빛을 받을 수 있음과 같이 저 세상 에서도 또한 용서를 빌고, 간원과 기도에 의하여 빛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완전성을 향한 진보를 계속하 지만, 그것은 지위가 달라지는 진보는 아니다. 완전한 인간보 다 더 높은 존재물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이러한 지위에 도 달했을 때도 여전히 완전성에 있어서 진보를 하고 있지만, 그 것은 지위적 상태에 있어서의 진보가 아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인간이 자신을 올려 세울 수 있는 더 이상의 높은 지위적 상태 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만 인간이라는 지위적 상태에서만 진보 발전하는 것이니, 인간의 완전성이란 무한한 것이기 때문 이다. 이와 같이 한 인간이 제아무리 학식이 있다 할지라도 우 리들은 더 학식 있는 인간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완전성은 무한하기 때문에, 인간은 이 세상 을 하직한 후에도 역시 완전성 속에서 계속 진보할 수 있는 것 이다.”---‘질의응답록’ 두 세계의 일체성 바하올라께서 가르치신 인류의 일체성 정신은 단지 육체를 가 진 인간에게 대해서만이 아니라 생(生)과 사(死)를 통한 전 인 류에 대한 것이다.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전부의 인간만이 아 니라 정신계에 있어서의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직체의 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이 두 부분은 서로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다. 양 자의 정신적 교통은 불가능하거나 부자연한 것이 아니라 항상 있을 수 있고 또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정신적인 능력이 249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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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발달하지 못한사람들은 이 생생한 관계를 깨닫지 못하지 만 그 능력이 발달함에 따라 저쪽 세상 사람들과의 교통을 점차 분명히 의식하게 되고 명확히 알게 된다. 예언자와 성자들에게 는 이 정신적 교통이, 일반사람이 사람을 보고 그와 대화하는 것처럼 범상한 일이요 실제로 있는 일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 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예언자들의 환상(幻像)은 꿈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정신 적 발견이며 실재성(實在性)을 가진 것이다. 예컨대 그들이 말 씀하시되,‘자기는 이러이러한 형상의 누구를 보았고, 자기는 이렇게 말하고,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 환상은 각성(覺醒)의 세계에 있는 일이지 수면(睡眠)의 세계의 일이 아니다. 이 환상은 하나의 정신적 발견이다. 정신적인 영혼들 사이에는 정신적인 이해(理解)와 발견이 있 고, 상상과 공상에서 순화(純化)된 교통이 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교제가 있다. 그리하여 복음서 가운데는 타보르산 위의 그리스도에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신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데 이것이 물질적인 회합이 아니었던 것은 명백한 일이다. 그 것은 정신적인 상태이다. 이와 같은 교통은 실제로 있는 것이 어서 인간의 마음과 사상에 불가사의한 영향을 주고 그의 마음 을 끌어당기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질의응답록’ 그분은 이‘초정상(超正常)의 심령적인 능력의 실재를 인정 하셨지만, 그러나 시기가 이르기 전에 그것을 무리하게 발전시 키려 하는 일에는 찬성하지 않으셨다. 이러한 능력은, 예언자들 이 우리를 위하여 마련한 정신적 발달의 길을 따르기만 하면 적 당한 시기에 자연히 개발되는 것이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 250 바하올라와 신시대
  • 257.
    하셨다. “현세에 있는 동안에심령적 힘에 무리한 실험을 하면 내세 에 있어서의 영혼의 상태에 장애를 초래한다. 이러한 심령적인 힘은 실재한 것이지만 현세에 있어서는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자궁에 있는 태아는 눈, 귀, 손, 발들을 가졌으나 그것이 활동하지 않는다. 이 물질세계에서의 생활의 전 목적은 이러한 힘이 능동적(能動的)이 될 수 있는‘실재’(實在)의 세 계에 이르게 함에 있다. 이러한 힘은 그 세계에 속한 것이다.” --- 압돌바하에 의하여 교정된 벅톤 양의 수기에서 죽은 자의 영혼과 교제하는 것은 결코 그 일 자체를 위해서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명(幽 明)의 한편에 있는 자가 저편에 있는 자를 사랑하고 도와주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그 사람의 특권이요 또 의무이다.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은 바하이에게 명령되어 있는 것 이다. 압돌바하께서는 1904년에 E. J. 로젠버그 양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효과있는 대청(代請)을 할 수 있는 은총은 진보한 영혼과 하느님의 현시자에게 속한 완성(完成)의 하나이다. 그리스도께 서는 이 세상에 계셨을 때 그 적을 용서하기 위하여 대청권(代 請權)을 가지셨다. 그리고 물론 지금도 그 힘을 가지고 계신다. 압돌바하께서는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를 때는 반드시‘하느님이 시여 그를 용서하소서’하든가, 또는 그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 다. 예언자들의 신도들도 또한 영혼의 용서를 비는 힘을 가지 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영혼이든지 절대로 하느님을 알지 못하였다는 죄로 영원한 괴로움이나 멸망의 변함없는 상 251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 258.
    태로 벌을 받는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그들에 대한 효 과 있는 대청의 능력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저 세상에서도 부자가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이 세 상에서와 마찬가지이다. 어느 세계에서든지 모든 것은 하느님 의 창조물이다. 그것들은 항상 하느님께 의존한다. 그것들은 결코 독립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또 독립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들이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한 모든 사람은 기원하면 할수록 부하여진다. 그들의 상품은 무엇이며 그들의 재산은 무엇인가. 저 세상에서의 도움과 원조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청이다. 아 직 발달하지 않은 영혼은 먼저 정신적 부자의 기원에 의하여 진보되어야 하며 다음에 자기 자신의 기원에 의하여 진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승천한 자는 아직 지상에 있는 자와는 다른 속성을 가지지 만 그러나 거기에 실제적인 분리는 없다. 기도에는 지위의 혼 합이 있고 경우의 혼합이 있다. 그들이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 함과 같이 여러분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런던에서의 압돌바하’97쪽 이 새로운 계시를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신앙 과 사랑으로써 이것을 알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압돌 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물론 그렇다. 성실한 기도는 반드시 그 효과를 얻을 것이요, 그것이 저 세상에 대하여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 코 거기 있는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효과적이 고 진정한 영향은 이 세상보다 오히려 저 세상에 있는 것이다.” 252 바하올라와 신시대
  • 259.
    --- 파리에서의 매리핸포오드 포오드의 수기(1911년) 한편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만일 누가 그를 위하여 정해진 바에 맞게 생활한다면,‘천상 집단’과‘지상낙원(地上樂園)’의 민중과 또 위대한 궁전에 사 는 사람들이,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서 그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 알리 쿨리 칸에 의하여 번역된 서한 압돌바하께서는 일찍이 어째서 사람의 마음이 가끔 이미 저 세상에 간 어느 벗에게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의존하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의 법 칙이다. 제군이 마음을 향하는 사람들은 현세에 있을 때에도 하느님의 힘을 제군에게 중개한 사람들이겠지만 전 인류에게 힘을 주는 것은 유일한 성령이다.” ---‘런던에서의 압돌바하’98쪽 악은 실재하지 않음 바하이 철학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유일하시다는 교의(敎 義)에 따라 적극적인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게 된다. 하나의 무한이란 것만이 존재할 수 있다. 만일 우주에 그 유일 한 것 외에 이것에 대항하는 다른 어떤 힘이 있다면 그 유일하 다는 것은 무한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암흑이란 것이 광명의 결핍 혹은 그 정도의 낮은 것임과 같다. 악한 사람이란 본성의 보다 높은 면이 아직 발달되어 있지 않은 자이다. 만일 그가 이 기적일지라도 그 악이 그의 자아애(自我愛)에 있는 것은 아니 253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 260.
    다. - 모든사랑은(자아애까지도) 선한 것이요 신성한 것이다. 악은, 그가 이와 같은 빈약하고 불충분한 잘못된 자아애를 가지 고, 다른 사람과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가지지 못한 데에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우수한 동물로만 생각하여, 마치 사랑하는 개를 제멋대로 행동하게 함과 같이 자신의 저급한 성질을 방종 하게 다루고 있으니, 그 결과는 개에게 보다도 자신에게 미치는 해가 더 클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어느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압돌바하께서 어느 신도에게 악은 결코 존재할 수 없고 실 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는 당신의 말은 확실히 진리이다. 최 대의 악은 인간이 길을 잘못 들어 진리로부터 눈이 가리워진 것이다. 과실은 지도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요 암흑은 광명이 없는 것이다. 무지는 지식의 결핍이요 허위는 진실의 결핍이 며, 또한 눈먼 것은 시력의 결핍이요 귀머거리는 청력의 결핍 이다. 그러므로 과실, 눈먼 것, 귀먹은 것, 무지 등은 실재의 사 물이 아니다.” 그분은 다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창조물에는 악이란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선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는, 비난 받을 것으로 보이는 성질과 소질 도 실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예컨대 유아(乳兒)에게서는 인생 의 최초로부터 욕심과 불쾌하게 성내는 것 등의 징후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선과 악이 함께 인간 본래의 성질이어서, 그것 이 자연과 만물의 지선(至善)에 상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 나,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이나 보다 이상(以上)의 것을 254 바하올라와 신시대
  • 261.
    요구하는 욕망은 만일그것이 적당히 쓰여 진다면 칭찬받을 성 질이다. 만일 사람이 과학이나 지식을 얻기를 욕망하고 자비롭 고 관대하고 공정하게 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가장 찬양할 일 이다. 그리고 흉악한 짐승처럼 피에 목말라하는 포학한 군주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은 또한 크게 칭찬할 일이지만 만일 이와 같은 성질을 바르게 쓰지 않으면 비난받을 것이 된다........ 인 간생활의 자본이 되는 모든 천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만일 그 성질들이 부당하게 사용되고 발휘될 때는 비난을 받게 된 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창조물인 천지만물이 순전히 선이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질의응답록’ 악은 언제나 생명의 결핍이다. 만일 인생의 저급한 성질이 불 균형하게 발달할 때 그 치료법은 그 성질의 생활력을 감소시키 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방향으로 생활력을 증가시키는 것이니, 그리하여 균형이 취해질 것이다.‘내가 온 것은 너희에게 생명 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복음 제 10 장 10절)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찾는 것이다. - 생명을, 보다 더한 생명을, 참다운 생명인 생명 을! 바하올라의 사명도 그리스도의 사명과 같다. 그분은 말씀하셨 으되,‘오늘 이 종이 온 것은 진실로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한 것이다.’(라이스에게의 서한)고 하셨다. 그리고 또 신자들에게 ‘오라, 내가 너희로 하여금 세상에 생명을 주는 자가 되게 하리 라.’(로마법왕에게의 서한)고 하셨다. 255 제 11 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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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2 장 종교와과학 모하멧의 사위 알리는 말했으되,‘과학과 조화되는 것은 또 한 종교와도 조화된다.’고 하였다. 사람의 지능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종교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종교와 과학은 서 로 제휴(提携)하여 나아갈 것이며, 과학에 배치되는 종교는 진 리가 아니다. ---‘압돌바하의 지혜’에서 충돌은 잘못에서 생김 바하올라의 기본적 가르침의 하나는, 참다운 과학은 종교와 항상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이다. 그리고 충돌 이 일어나는 것은 그것이 진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잘못에서 생 기는 것이다. 이른바 과학과 종교와의 사이에는 고래로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 그러나 보다 완전한 진리의 광명으로써 이러한 충돌을 회고해 본다면 그것들이 언제나 무지와 편견과 허영과 탐욕과 편협한 마음과 너그럽지 못한 정신과 완고한 생각과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 즉 과학과 종교의 참된 정신에 배치되는 것이 그 원인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과학과 종 교의 정신은 하나이어서 거기에 충돌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헉슬리가 말한 바에 의하면 철학자들의 위대한 사업도 그들의 지력(知力)의 결과라기보다 그 훌륭한 종교심에 의하여 지력을 257 제 12 장 종교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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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한 결과이다. 진리는저들의 논리적 총명보다도 저들의 인 내와 사랑과 순진과 희생의 정신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다. 수학 자 보올도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즉‘기하학(幾何學)의 귀납 추리(歸納推理)는 오로지 기도의 과정(過程) - 즉 유한자가 유 한한 사항에 대하여 무한자에게 광명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종교의 대예언자와 과학의 대예언자들은 아직 한번도 서로를 비난한 일이 없었다. 후세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진보에 가장 악하게 적대한 자는 이들 세계적 대교사들의 불초한 제자들이 었다. - 위대한 교사의 가르침의 정신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그 문구(文句)를 숭배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신 성하다고 받아들인 한 가지 특수한 계시의 광명만을 연구하여, 그 제한된 눈에 비친 것을 가장 주의 깊고 정밀하게 그 교리의 본질과 특성을 삼았으니 이것이 그들에게 유일한 광명이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그 무한한 은혜로써 다른 곳으로부터 한 층 더 밝은 광명을 보내시어, 그 새로운 횃불을 든 사람에게서 이전보다 더 밝은 영감의 횃불이 타고 있으면, 그들은 이 새 빛 을 맞아들여 새로운 감사로써 만유의 빛의‘아버지’를 경배하 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분노하고 경계하나니, 이 새로운 광명이 그들의 정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통의 빛깔이 아니 고 정통의 땅에서 빛을 발한 것이 아니므로, 사람들이 이단(異 端)의 길에 헤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代價)를 치 르더라도 이 불을 꺼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예언자들의 많 은 적은 대개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장님을 지도하 는 장님과 같아서, 자기들이 참으로 진리라고 믿는 것의 가정적 (假定的) 이해를 위하여 새롭고 더 밝은 진리를 반대하는 것이 다. 그리고 그밖에 더 하천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진리에 반대하여 싸우고 혹은 정신적 마 258 바하올라와 신시대
  • 265.
    비와 타성(惰性)으로 말미암아진보의 길을 막는 것이다. 예언자들의 수난(受難) 종교의 대예언자들은 언제나 그 출현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의 모욕과 배척을 받았다. 그들과 그들의 초기의 신도들은 모두 박 해를 당하였고, 하느님의 길을 위하여 소유물을 희생하고 생명 까지도 바쳤다. 우리의 시대에 있어서도 그러한 사정이었다. 1844년 이래 페르시아의 바비와 바하이들이 그 신앙 때문에 수 천 명이 학살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거나 유형 (流刑)을 당하였으며 빈곤과 좌천의 지경에 떨어졌다. 근대의 대종교 중 최근의 것도 선행자(先行者) 이상으로 피의 세례를 받았고 오늘날까지도 의연히 순교가 계속되고 있다. 과학의 예 언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사건이 있었다. 죠르다노 브루노는 1600년에, 지구가 태양을 회전한다고 가르친 죄로 이단자라 하 여 분형(焚刑)을 당하였다. 그 몇 해 후 노련한 철학자 갈릴레 오는 그와 비슷한 운명을 피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그 학설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그 후에 다아윈과 근대 지질학의 선각자들은, 약 6000년 전에 이 세계가 6일 동안 창조되었다는 성서의 가르침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 러나 새로운 과학적 진리에 대한 반대는 그 모두 종교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과학에 있어서의 정통파는 종교에 있어서의 정 통파와 마찬가지로 진보의 적이었다. 배가 만일 지구의 반대편 으로 내려갈 수 있는 경우에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 라고 주장한 당시의 이른바 과학자들은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 하여 콜럼부스를 조소하였다. 전기과학의 선구자 갈바니도 학 식있는 동료들에게서‘개구리 무용선생’이라고 조롱을 받았다. 259 제 12 장 종교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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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혈액순환의 발견자하아비는 그 이단이라는 이유로 같은 교 직(敎職)에 있는 벗들로부터 우롱과 박해를 당하여 마침내 교 수직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스티븐슨이 기관차를 발명했을 때 당시 유럽의 수학자들은 자신의 눈을 뜨고 그 사실을 연구하려 하지 않고는 자기만족을 위하여, 기관차는 평활(平滑)한 궤도 위에서 바퀴가 미끄러져 차량이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화 물을 운송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몇해 동안 논쟁을 계속하였다. 이와 같은 예는 고대와 근대의 역사에서 뿐 아니라 현대에 있어 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에스페란토의 창안자 자멘호프선생 도 그 훌륭한 국제어 때문에 콜럼부스, 갈바니, 스티븐슨같은 이들이 받은 것과 같은 조소와 경멸과 우매한 반항과 싸우지 않 을 수 없었다. 1887년이라는 최근에 세상에 나온 에스페란토 까지도 그 일 때문에 희생자를 냈던 것이다. 조화의 새벽 그런데 이 반세기 동안에 시대의 정신이 일변하여 이상하게도 지난 세기의 논쟁을 무의미하게 하는 새로운‘진리의 빛’이 나 타났다. 최근까지 종교를 세계에서 몰아내려고 하던 오만한 물 질주의자와 독단적인 무신론자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 고 또 자기들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단호히 지옥의 불과 영겁의 가책(呵責)으로 넘겨 보내는 종교가 어디 있는가. 그들이 떠들던 그 소리는 아직도 우리의 귀에 남아 있을는지 모 르나 그들의 날은 이미 기울어 졌고 그들의 교리는 믿을 수 없 게 되었다. 그들이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그 교리는 참된 과학 도 아니요 참된 종교도 아니었음을 이제 와서 우리는 알 수 있 다. 근대의 심리적 연구의 성과 앞에서 어느 과학자가 아직도 260 바하올라와 신시대
  • 267.
    ‘간장(肝臟)이 담즙을 분비(分泌)하는것과 같이 뇌수는 생각 을 분비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육체가 죽으면 필연적으로 영혼도 없어진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제 와서, 사상이 참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것이 결코 물질 적 현상에만 국한되지 않고 심령적, 정신적 현상의 경지에까지 이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 자연에 대 하여 아는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에 비하면 망망한 대해의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법 칙을 파괴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전기나 엑스광선을 우리의 조상이 몰랐던 것과 같이, 우리가 아직도 알지 못하는 미묘한 힘의 작용의 표현으로써 기적의 가능성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한편 또 현재의 주요한 종교의 지도자들 가운데, 아직도 세계가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는 것과 구약성서의‘출애급기’에 있는 이집트의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는 것과 또는 조슈아에서 적을 추격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태양이 하늘 에 정지하여 있었다는 것 (즉 지구가 그 회전을 정지하였다는 것)을 믿는 것이 구원을 얻는 데에 필요하다고 말할 자가 있을 것인가. 또 혹은 사람이 성 아타나시우스의 신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그는 반드시 영원히 멸망할 것이라’고 말할 자가 있을 것인가. 이와 같은 신앙은 형식적으로는 아직도 되풀이할는지 는 모르나 누가 그것을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서 무조건 받아들 일 것인가. 그러한 것이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힘은 이미 없어졌거나 또는 없어지고 있다. 종교계는 이와 같은 썩은 신조와 교리를 버리고 진리로 하여금 자유로이 출현케한 은혜를 과학계의 사람들에게서 입은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많이 과학계는, 세평(世評)의 여하에 구애됨이 없이 정신적 체험의 산 진리를 파악하여, 생명은 육체보다 귀하고 무형한 것 261 제 12 장 종교와 과학
  • 268.
    이 유형한 것보다낫다는 것을 의심 많은 세계에 증명한 참다운 성자와 신비가(神秘家)들에게 은혜를 지고 있다. 이들 과학자, 성자들은 아침 해의 광선을 맨 먼저 받아서 그것을 하계(下界) 에 반사하는 산꼭대기와 같은 것이었는데, 즉 우리는 바하올라 의 가르침 가운데서 심정과 이성(理性)을 만족케 하고 종교와 과학을 합치시키는 진리의 영광스러운 계시를 발견한 것이다. 진리 탐구 우리가 진리를 탐구함에 있어서 취할 방법에 대한 바하이 가 르침에는 과학과 완전히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있다. 우리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오로지 백지의 상태로 진리를 탐구하여야 한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편견과 좁은 견해를 버려 야 한다.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만일 우 리의 잔에 자아(自我)가 가득 차 있으면 생명의 물을 담을 여 지가 없다. 자기 자신은 바르고 남들은 모두 그르다고 생각하 는 것은 융합의 길에 있어서 최대의 장애가 된다. 진리는 하나 이므로 우리가 진리에 도달함에는 첫째로 융합이 필요하 다........ 한 진리가 다른 진리에 모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남포등에서 빛나도 빛은 좋은 것이다. 장미는 어떤 화원에 피 든지 아름다운 것이다. 별은 동쪽에서 빛나든지 서쪽에서 빛나 든지 같은 광채를 발한다. 편견을 버리라. 그리하여 여러분은 지평선 어느 쪽에서 떠오르든지‘진리의 태양’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진리의 신성한 빛이 만일 그리스도의 안에 빛났다고 하면 그것은 또한 모세나 석가모니에게도 빛났다는 26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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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을 알 것이다.이것이 진리 탐구의 의미인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이미 배운 모든 것을, 진리의 길에 방해 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할 것을 의미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우 리는 교육을 처음부터 전부 새로 고쳐 받아야 할 것을 각오하 여야 한다. 우리는 어떤 한 종교나 또는 어떤 한 인격에 사랑을 바침으로써 미신에 사로잡히도록 눈이 어두워져서는 안된다. 이러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마음으로서 탐구할 때 우리는 반드시 목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압돌바하의 지혜’127쪽 진정한 불가지론(不可知論) 하느님의 본질은 인간의 이해력을 전혀 초월한 것이라고 주장 하는 점에서 바하이 가르침은 과학이나 철학과 일치한다. 헉슬 리와 스펜서가‘위대한 제 1원인’(즉 조물주)의 본질은 불가지 (不可知)한 것이라고 역설한 바와 같이 바하올라께서도‘하느 님은 전지(全知)하시지만 사람이 그분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 라’고 가르치셨다. 하느님의 본질을 아는‘길은 막혀서 통과할 수 없다.’왜냐하면 유한자(有限者)가 무한자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한 방울의 물이 어떻게 대양(大洋)을 포함할 수 있으 며 태양광선 가운데 떠도는 한 알의 먼지가 어떻게 우주를 포용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만 전 우주는 하느님을 웅변으로 증 거 해 주고 있다. 한 방울의 물 가운데에도 의미의 대양이 숨겨 져 있고 한 알의 먼지에도 의미의 우주가 포함되어 있어, 그것 은 가장 학식 있는 과학자라도 밝히 알 수 없는 일이다. 물질의 본질을 깊이 연구하는 화학자나 물리학자들은 물체에서 분자 로, 분자에서 원자로, 원자에서 전자와‘에테르’로 분석을 진행 하였다. 그러나 그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갈수록 탐구의 곤란이 263 제 12 장 종교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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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하여, 마침내 가장심오한 지력(智力)으로서도 이제 더 투철 하게 할 수가 없어, 다만 영원히 탐색할 수 없는 신비에 싸인 불 가해(不可解)한‘무한’앞에 머리를 숙여 침묵할 수밖에 없게 된다. 벽 틈에 핀 한 송이 꽃이여, 내, 너를 틈에서 뽑아 뿌리 채 손에 받들었노라. 그러나 작은 꽃이여, 너를 그 뿌리 통틀어 알 수 있다면 사람과 하느님을 내 또한 알 수 있으리. --- 테니슨 만일 벽 틈에 핀 꽃이나 물질의 원자가 가지고 있는 신비를 최고의 지력으로서도 이해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인간이 이 대우 주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인간이 감히 만물의 무한 한 원인을 설명하고 서술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 로 하느님의 본질에 대한 모든 신학적 이론은 어리석고 무용한 일이라 일체 소탕해 버려야 한다. 하느님에 대한 인식 그러나 그 본질은 알 수 없어도 그에게서 오는 은혜가 나타나 있는 것을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다. 비록 제 1원인은 이해할 수 없어도 그 결과는 우리의 모든 능력으로써 느낄 수 있다. 마 치 어떤 화가가 그린 그림을 인식하는 것이 그 예술가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감상자에게 주는 것과 같이, 모든 형태에서 우주를 아는 것 - 자연 혹은 인간의 성질을 아는 것, 유형 또는 무형의 사물을 아는 것 - 은 하느님의 작품을 아는 것이며 하느님의 진 리의 탐구자에게 하느님의 영광의 참된 인식을 주는 것이다. 264 바하올라와 신시대
  • 271.
    “하늘이 하느님의 영광을선포하고 창궁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시편’제 19편 1~2절 하느님의 현시자 햇빛에 비친 모든 물체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다 햇빛을 반사함과 마찬가지로, 만물은 모든 것이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분명히 하느님의 혜택을 나타낸다. 숯덩이는 조금 반사하 고 돌은 그 보다 더 반사하고 백묵은 한층 더 반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의 반사에서는 태양 그대로의 형체와 빛을 반사한 다. 따라서 거울을 보는 것은 태양 그것을 직접 보는 것과 같다. 만물이 우리에게 하느님에 대하여 말해주는 것도 이와 마찬가 지이다. 돌은 하느님의 속성의 약간을 말할 수 있고 꽃은 한층 더 많이 말할 수 있고 동물은 그 놀라운 감각과 본능과 운동력 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층 더 많이 알 수 있다. 우리 인류동포 중 의 최하급 자에게도 창조자에 대하여 말하는 놀라운 여러 가지 능력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시인과 성자와 천재들에게서 우리는 한층 높은 계시를 발견한다. 그리고 위대한 예언자와 종교창시 자들은 완전한 거울이어서, 그에 의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지혜 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반사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거울 은 자아(自我)와 편견의 상처와 먼지로 흐려져 있지만 그들의 거울은 깨끗하고 흐려지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바쳐져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교육자가 된다. 그 들에게서 발하는 하느님의 가르침과 성령의 힘은 인류발전의 원인이 되었고 현재도 그 원인이 되고 있나니, 하느님은 사람에 의하여 사람을 돕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향상의 길에서 남보 265 제 12 장 종교와 과학
  • 272.
    다 높은 자는낮은 자를 돕는 수단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 가 운데 가장 높은 이러한 사람들은 전 인류의 구원자가 된다. 모 든 사람은 마치 탄력성 있는 끈으로써 연결되어 있음과 같아서, 만일 그 중의 한 사람이 동료의 일반 수준보다 조금이라도 높아 지면 끈은 저절로 당겨진다. 그 동료들은 그를 도루 끌어 내리 려고 하지만 무게를 더 느끼게 되고, 그보다 더 높은데 있는 소 수의 사람을 통하여 그에게 미치는 하느님의 지지(支持)에 더 욱 의지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 중의 최고자라는 위대한 예언자 와 구세주, 즉, 하느님의 현시자로서, 이들 완전한 사람들은 각 각 그 시대에 있어서 동반자도 동료도 없이 전 세계의 무거운 짐을 지고 다만 하느님의 지지만 받고 있었다.“우리들 자신의 죄의 무거운 짐이 그의 어깨에 놓여 있었다.”는 것은 그분들 중 의 누구에게나 사실이었다. 그분들은 모두 그 신자들을 위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다. 그분들은 모두 하느님의 은혜를 받으려는 자들의 마음에 그것이 통하는 길이었다. 그분들은 인 류의 향상을 위한 하느님의 대계획 가운데서 각각 그 맡은 바 일을 하신 것이다. 창조 바하올라께서는 우주에는 시간의 시작이 없다고 가르치셨다. 그것은 제 1원인으로부터 부단히 흘러나오는 것이다. 창조자는 항상 그 창조물을 소유하셨고 또 언제나 소유하실 것이다. 천체 와 태양계는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기도 하겠지만 우주는 그 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조직된 만물은 때가 오면 분해되지만 그 조직요소는 그대로 남는다. 한 세계나, 한 송이 꽃 혹은 한 사람의 육체의 창조는‘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 266 바하올라와 신시대
  • 273.
    는 여러 요소가하나로 집합된 것이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으로 된 것이니, 얼마 후에 이 요소들은 다시 흩어지고 형체 가 없어져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무엇이나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새로운 결합과 형체가 낡은 터에서 계속하 여 생겨나는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세계창조의 역사가 6천만 년이 아니라 몇 억조의 오랜 세월이 지났다는 과학자들의 학설 을 인정하셨다. 진화론은 결코 창조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다만 창조의 힘이 나타나는 방법을 설명하려는 시도(試 圖)인 것이다. 그리고 천문학자, 지질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들이 점차로 우리의 눈앞에 전개하여 주는 놀라운 물질우주의 이야기는, 그것을 바르게 평가한다면, 히브리경전에 있는 것과 같은 조잡(粗雜)하고 무의미한 천지창조의 기록보다는 훨씬 깊 은 존경과 숭배의 염(念)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나 와 있는‘창세기’의 기사는 대담한 상징의 단순한 필치로써 이 야기의 본질인 정신적 의미를 표현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마치 보통 사람이 세밀한 점에까지 비상한 주의를 기울여도 그려낼 수 없는 표정을, 화가가 단지 붓을 몇 번 움직임으로써 쉽게 표 현하여 놓은 것과 같다. 만일 물질적인 자세한 것이 우리로 하 여금 정신적 의미를 잃게 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없는 것이 좋 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전체조직의 본질적 의미를 한번 파악한 다면 그 자세한 지식은 우리의 착상(着想)에 놀라운 풍부성과 광채를 더하여, 그것을 단순한 사생적(寫生的)인 윤곽이 아니 라 훌륭한 그림을 만들게 될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 이 말씀하셨다. “존재의 세계에, 즉 이 무한의 우주에 시작이 없다는 것은 가 장 현묘(玄妙)한 정신적 진리의 하나임을 알라........ 창조물이 267 제 12 장 종교와 과학
  • 274.
    없는 곳에 창조자가있을 수 없고, 공급을 받은 자가 없이 공급 자를 상상할 수 없음을 알라. 왜냐하면 모든 하느님의 명칭과 속성은 존재물의 존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어떠 한 존재물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상상할 수 있다면 이 상상 은 하느님의 신격(神格)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뿐 아니라 절대적인 비존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일체성의 본 질’, 즉 하느님의 존재는 영원무궁한 것이며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대우주의 일부분, 예컨대 천체의 하나가 생기고 없어질 수는 있으나 다른 천체는 남아 있는 것 이다. 복합적(複合的)이건 단독적이건 모든 조직체는 필연적으 로 분해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므로 각개의 천체에는 시작이 있다. 다만 그 분해의 시기에 조만(早晩)의 차가 있을 뿐이다. 조직된 것은 마침내 분해되지 않을 수 없다.”---‘질의응답록’ 인류의 계통 바하올라께서는 또 인체(人體)의 역사가 수 백 만년 동안 계 속된 종(種)의 발달에까지 소급한다는 생물학자의 설에 찬성하 셨다. 극히 간단하여 겉으로 보기에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 형체로부터, 인체는 한 단계 또 한 단계 무수한 세대를 거쳐 발 달하여, 더욱 복잡해지고 더욱 잘 조직되어 마침내 현재의 인간 으로까지 도달한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각 개인의 신체도 이와 같이 많은 단계를 거쳐, 조그마하고 둥근 아교모양의 보잘 것없는 것에서 완전히 발달하여 인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 이 한 개인에 있어서 틀림없는 사실이어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 하는 이상, 인류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발달을 인정하는 것 이 어찌 인류의 존엄성을 손상한다고 생각할 것인가. 이것은 인 268 바하올라와 신시대
  • 275.
    류가 원숭이에게서 왔다는것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의 태아(胎 兒)는 어느 시기에는 아가미와 꼬리가 있는 점에서 어류(魚類) 와 비슷하나 그러나 물고기가 아니요 그것은 인간의 태아인 것 이다. 이와 같이 인류는 그 오랜 발달의 여러 단계에서의 외관 상으로는 여러 가지 하급동물과 비슷할 수는 있으나 그러나 그 것은 어디까지나 인류이고 우리가 오늘 보는 바와 같은 인간으 로 발달한 불가사의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앞으 로 미래를 향하여 더 고급한 것으로 계속하여 발달하는 신비한 잠재력을 가진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지구가 단번에 현재의 상태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늘 의 완전에 이르기까지에는 점차로 여러 가지 형태를 거쳐 왔다 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인간은 그 존재의 처음에는 마치 어머니의 태안에 있는 태아와 같이 지구의 모태에서 점차 발육 하고 발달하여, 한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로 전환하여 오늘의 이 미와 완전한 정력과 능력을 가지고 나타나게 된 것이다. 처 음으로부터 인간이 이와 같이 사랑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라 점차로 이 형태와 미와 우아함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하게 된 최초로 부터 현재의 정도와 형체와 상태에 이르기까지는 필연적으로 오랜세월이 지났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존재의 처 음부터 별개의 종(種)이었다....... 현재 (인체에)없어진 기관 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그것이 종의 불변성과 독자성이 없다는 증거는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형체와 모양과 기관이 발달하였 다는 것을 보임에 불과하다. 인간은 언제나 독자의 한 종이었 269 제 12 장 종교와 과학
  • 276.
    다. 즉 인간은짐승이 아니었다.”---‘질의응답록’ 아담과 이브의 옛이야기에 대하여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만일 우리가 이 이야기를 일반적 해석과 같이 표현상의 의 미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너무도 부조리(不條理)한 일이다. 지능은 이와 같은 것을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믿거나 상 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경우와 내용과 설화와 비 난은 유식자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며 더욱이 이 무한한 우주를 완전한 형태로 창조하여 그 무수한 주민을 절대의 체계와 힘과 완전으로 조직하신 하느님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금단(禁斷)의 나무 열매를 먹고 낙원을 쫓겨난 아 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단지 상징으로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신성한 신비와 보편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놀라운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질의응답록’ 육체와 영혼 바하이 가르침은 육체와 영혼과 그리고 사후의 생애에 대한 심령학적 연구의 결과와 꼭 일치한다. 그것은 우리가 보아 온 바와 같이, 죽음이란 단지 새로운 탄생이요 육체라는 감옥에서 더 넓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탈출(脫出)이어서 사후에 있어서의 진보는 제한이 없다고 가르친다. 많은 과학적 증거가 점차로 쌓였으니 그 공정하고 냉철한 탐 구자의 의견에 의하면, 사후의 생애 즉 물질적인 육체가 분해 된 후에도 의식적(意識的)인 영혼은 계속하여 활동한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F. W. H. 마이어스 가 심령연구회의 많은 연구를 요약한‘인간의 인격’이라는 저 270 바하올라와 신시대
  • 277.
    서에 다음과 같이씌어 있다. “관찰, 실험, 추리(推理)는 우리들 많은 탐구자로 하여금 단 지 지상에 있는 인간의 심의(心意)사이만이 아니라 지상에 생 존하여 있는 자와 죽은 사람과의 심의나 영혼 사이에 직접 혹 은 이심전심적(以心傳心的)인 상통(相通)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계시(啓示)의 가능성을 증명하 는 것이 되기도 한다........ 많은 속임과 자기 속임 또는 사기 와 환상(幻想) 가운데서도 우리는 무덤 저쪽에서 참된 표명(表 明)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일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발견과 계시에 의하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죽은 자의 영혼에 관하여 어떤 가정적(假定的)학설이 세워졌다. 첫째로 적어도 나는 이러한 영혼의 상태가 지혜와 사랑 안에서 무한히 발달한 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들의 이 세 계에 대한 사랑, 특히 존경과 예배로써 나타나는 최고의 사랑 은 계속하여 존재한다........ .죄악은 저들에 있어서 무서운 것 이라기보다 노예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결코 힘 있는 권력자에게 나타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고립(孤立)된 광기(狂 氣)와 같아서, 보다 높은 정령(精靈)은 사곡(邪曲)된 영혼을 이것에서 해방시키려고 노력한다. 거기에는 겁화(劫火)의 징벌 이 필요 없다. 자각(自覺)이 곧 벌이며 상이다. 즉 자각과, 영 혼끼리의 친밀 혹은 소격(疏隔)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그 세계 에서는 사랑이야말로 진실로 자기 보존이요,‘성자들과의 교 제’는 영원히 생명을 장식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본질을 이루 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심전심적인 상통의 법칙에 의하 여 이러한 교제는 현재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에도 죽은 영혼의 사랑은 우리의 기도에 응한다. 우리의 사랑 271 제 12 장 종교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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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대한 기억은- 사랑은 그 자체가 기도임 - 현재에도 이들 해 방된 영혼의 향상을 지지하고 강화시킨다.” 주도면밀한 과학적 연구에 기초한 이 견해와 바하이 가르침의 견해가 잘 합치하는 것은 참으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인류의 일체성 ‘너희는 한 나무의 열매요 한 가지의 잎이며 한 화원의 꽃이 니라.’‘자랑은 자기나라만을 사랑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 라 인류동포를 사랑하는 자에게 있느니라.’란 것은 바하올라의 가장 특색 있는 말씀이다. 일체성 - 즉, 인류의 일체성 및 모든 창조물의 하느님 안에서의 일체성 - 이야말로 이 가르침의 주 안점(主眼點)이다. 여기에 또한 참다운 종교와 과학이 조화됨 이 분명하다. 과학이 진보됨에 따라 우주가 일체인 것, 그리고 그 각 부분이 서로 의존하여 있다는 것이 더욱 명료해졌다. 천 문학자의 영역(領域)은 물리학자의 영역과, 물리학자의 영역은 화학자의 영역과, 화학자의 영역은 생물학자의 영역과, 생물학 자의 영역은 심리학자의 영역과, 이와 같이 모든 것이 서로 불 가분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어느 분야(分野)의 새로운 발견이 든지 필연적으로 다른 분야에 광명을 준다. 우주의 모든 물체의 조각(片)은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는 것일지라도 다른 작은 조각을 끄는 힘이 있어 그것 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물리학자가 증명한 바와 같이 심령학자 도 또한 우주의 모든 영혼이 다른 모든 영혼에 작용하여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크로포트킨 공작은 그 저서‘상호 부조론’에서, 하급 동물계에 있어서도 서로 돕는 것은 생명보존 을 위하여 절대로 필요한 것이며, 인간의 경우에 있어서도 서로 27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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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워하던 것이 점차로서로 돕게 됨으로써 문명의 발전이 이루 어짐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각 사람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각 사람을 위하여’라는 것이 인류사회의 번영을 위한 유일한 원 리인 것이다. 융합의 시대 현대의 여러 가지 징후는 우리가 인류역사의 신기원의 여명에 처하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인류의 젊은 독수리는 주아(主我)와 유물주의라는 굳은 바위의 낡은 둥우리에 들어앉 아 있었다. 그는 아직 겁이 많아서 시험적으로 날개를 조금 움 직여 보며 아직 얻지 못한 무엇을 항상 초조히 갈망하여 왔다. 그리하여 더욱 낡은 교리와 전통의 구속에 신음하여 왔다. 그러 나 지금은 그 구속의 시기가 끝나서 신앙과 이성(異姓)의 날개 를 부쳐 정신적 사랑과 진리의 하늘에 높이 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아직 날개가 성장하지 않았을 때처럼 이제는 지상에 더 매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광막한 지평선상의 빛나는 자 유 천지에 마음껏 그 날개를 펼쳐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더 확 실히 날기 위해서는 한 가지 더 필요한 조건이 있으니, 두 날개 가 강할 뿐 아니라 완전한 조화와 협조로써 움직여야 한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것은 한 날개로써 날 수 없다. 만일 종교만의 한 날개로써 날려고 하면 미신의 흙탕물에 떨어질 것이요, 만일 과학만의 한 날개로써 날려고 하면 유물론이라는 암담한 늪에 빠질 것이 다.”---‘압돌바하의 지혜’132쪽 273 제 12 장 종교와 과학
  • 280.
    종교와 과학의 완전한조화는 인류의 고귀한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다. 만일 이 조화가 이루어져 모든 아이들이 과학 과 기술을 배울 뿐 아니라 전 인류에 대한 사랑과, 진화의 발전 과, 예언자들의 가르침 가운데 계시된 하느님의 뜻에 대한 빛나 는 묵종(?從)을 함께 배운다면, 여기에 비로소‘하느님의 나라’ 가 세워져,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 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 비로소‘최대의 평화’가 그 축복을 이 세상에 보내 줄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종교가 그 미신과 전례와 황당한 교조(敎條)를 버리고 과학 과 일치하게 되면 거기에 커다란 융합력과 정화력(淨化力)이 발 현하여, 그것이 모든 전쟁, 충돌, 알력, 쟁투의 일체를 이 세계에 서 일소해 버릴 것이니, 그때에 비로소 전 인류는 하느님의 사랑 과 힘 안에서 융합될 것이다.”---‘압돌바하의 지혜’135쪽 274 바하올라와 신시대
  • 281.
    제 13 장 바하이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가장 큰 이름’의 현시자(바하올라)에 관하여 말하자면, 그 분은 바로 하느님께서 성서와 복음서와‘코란’등 모든 경전과 계시의 글에서 약속된 분이다. --- 압돌바하 예언의 해석 예언의 해석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써, 학자들 사이에 이것처럼 여러 가지 의견을 달리하는 것이 없 다. 그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계시된 여러 문 서 그 자체에 의하면 많은 예언은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에도 마 음이 맑고 편견이 없는 자에게만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언자 다니엘은 그 계시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해 두 어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여 지식이 더 하리라........ 내 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내 주여, 이 모든 일 의 결과가 어떠하겠나이까’. 그가 가로되,‘다니엘아, 갈지어 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할 것이니라.’” --- 다니엘 제 12장 4~9절 만일 하느님께서 지정하신 때까지 예언이 봉해져 있어 그것을 275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 282.
    말한 예언자에게까지 그해석이 충분히 계시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다만 하느님께서 명하신 사자(使者)만이 그 봉인을 찢 어, 예언적 우화(偶話)의 문갑 속에 감추어져 있는 뜻을 밝힐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예언의 역사와 전대의 종교제에 있어서의 예언의 그릇된 해석을 돌이켜 보고 그것을 예언자들 자신의 엄숙한 경고에 결부시켜 생각해 본다면, 그 현 시자께서 말씀하신 것과 그것의 실현방법의 참뜻에 관하여 우 리는 신학자들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극히 조심하여 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편, 예언을 실현한다고 자칭하는 자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관대하고 편견 없는 마음으로써 그의 주장 을 음미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그가 사기꾼이라면 그 속임을 곧 발견하여 위해를 피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자는 의외 의 형상으로 의외의 때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부주의로 말미암 아 그를 문 앞에서 쫓아 보내는 사람은 불행하다. 바하올라의 생활과 말씀은 그분이 모든 경전에 약속된 분이며 예언의 봉인 을 찢어 성스러운 신비의‘밀봉된 가장 좋은 술’을 부어 줄 수 있는 힘을 가지신 분임을 증거 한다. 우리는 먼저 그분의 설명 을 듣자. 그리고 그것에 비추어, 이미 알려져 있으면서도 가끔 신비스럽게만 보이는 옛날의 예언자들의 말씀을 다시 음미하여 보기로 하자. 주의 출현 ‘최후의 날’에 있을‘주의 출현’은 모든 예언자들이 기다렸 으며 가장 영광스러운 찬송이 바쳐지는 먼 미래의 신성한 사건 이다. 그런데‘주의 출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확실히 하느님께서는 항상 그 창조물과 함께,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 276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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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통하여, 또모든 것 위에 존재하신다.‘하느님은 우리의 호흡 보다도 가깝고 우리의 손발보다도 가까운 것이다.’그렇다. 그 러나 사람은,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형체로써 나타 나셔서 사람의 말로써 그들에게 말하기 전에는, 내재적(內在 的)이며 초월적(超越的)인 하느님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고, 존재를 실감할 수도 없다. 하느님께서는 그 높은 속성을 계시하 시기 위하여 언제나 인간이라는 도구(道具)를 이용하셨다. 모 든 예언자들은 매개자이니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그 백 성을 찾아오시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매개자이 셨다. 그리하여 기독교도들이 그분의 출현을 하느님께서 오신 것으로 본 것은 정당하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서 하느님의 얼 굴을 보았고, 그분의 입을 통하여 하느님의 소리를 들은 것이었 다. 바하올라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되,‘종말의 때’에 오 신다고 모든 예언자들이 말씀하신‘만군의 주’,‘영원의 아버 지’,‘세계의 창조자, 속죄의 주’의 출현이란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몸을 통하여 나타나신다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하셨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나자렛의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나타나신 것과 같다. 그러나 이번은 더 한층 완벽하고 영광스러운 계시를 가지고 오시는 것이니, 그리스도와 그 밖의 모든 예언자들은 그 분을 받아들이기 위한 인간의 마음과 심령의 준비를 위하여 오 신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구세주’의 통치에 관한 예언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 에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이었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77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 284.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구세주’의 출현을기다리고 있어 그분이 하루라도 빨리 오시기를 밤낮 기도하고 있다. 예수께서 나타나셨을 때 저들은 그분을 거부하여 죽이고 말하기를, 이것 은 우리가 기다리는 자가 아니다. 보라,‘구세주’가 오실 때는 반드시 징후와 기적이 나타나서 그분이 참으로 그리스도인 것 을 증거 할 것이다.‘구세주’는 사람들이 모르는 도시에서 나 타나실 것이다. 그분은 다윗의 왕좌에 앉아 강철의 검을 가지 고 철홀(鐵笏)로써 통치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예언자들 의 계율을 실현하실 것이다. 그분은 동서양을 정복하시고 그 선민(選民)인 유대인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그분은 평화의 통치를 이루어 짐승들까지도 사람에게 적대(敵對)하는 일이 없 어질 것이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한 샘에서 물을 마시게 되고 모 든 하느님의 창조물은 안식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이와 같이 생각하였고 또한 말하였으니, 그것은 경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영광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문구를 암송하지만 생명을 주는 정신에 대해서는 단 한 말씀도 이해하지 못한 것 이었다. 여러분께 내가 지금 그 의미를 설명하리라. 예수께서는 물론 세상이 다 아는 나자렛에서 오셨지만 그분은 또한 천국에서 오 신 것이다. 그분의 육체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지만 그분의 정신은 천국에서 오신 것이다. 그분이 가지고 오신 검이란 것 은 혀(舌)의 검을 말하는 것이니, 그것으로써 그분은 악에서 선을, 거짓에서 참됨을, 불신에서 신의를, 그리고 어둠에서 빛 을 갈라내셨다. 그분의 말씀은 참으로 날카로운 검이었다. 그 278 바하올라와 신시대
  • 285.
    분이 앉으신 왕좌는거기에서 영원히 지배하는 영원의 왕좌요 천국의 왕좌이지 지상의 왕좌는 아니다. 왜냐하면 지상의 왕좌 는 없어지는 것이지만 천국의 왕좌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 문이다. 그분은 모세의 율법을 해석하시고 그것을 완성하셨다. 그분의 왕국은 영원한 것이다. 그분은 그분을 받아들인 유대인 들을 높여 주셨다. 그들은 출생이 비천한 남녀들이었지만 그리 스도와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위대해졌고 영원하고 권위 있는 품성을 받았다. 함께 살아갈 동물이란 것은 일찍이 서로 싸우 던 여러 종파와 인종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들은 지금 사랑과 자비 가운데 살고 영원의 샘인 그리스도에게서 함께‘생명의 물’을 마시는 것이다.”---‘압돌바하의 지혜’48쪽 대다수의 기독교도들이‘구세주’에 관한 예언의 이러한 해석 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후세의 ‘구세주’에 대한 마찬가지 예언에 관해서는 그것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물질면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 대하면서 그들의 대부분은 유대인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바압과 바하올라에 대한 예언 바하이의 해석에 의하면‘종말의 때’,‘후일’,‘만군의 주’의 출현과‘영원의 아버지’에 대한 예언은 그것이 특히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한 것이 아니라, 바하올라의 출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예로서 저‘이사야’서의 유명한 예언을 들어보기로 하자. “흑암에서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 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 279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 286.
    의 날과 같이하셨음이니라.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 묻은 복장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 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政事)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寄妙者)라, 모사(謀士) 라, 전능하신 하느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平康)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 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서 제 9장 2~9절 이것은 가끔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으로 보는 것 중의 하나인 데 그 대부분은 그러한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연구해 보면 그것이 바하올라에게 적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광명을 가져온 분이며 구세주였지만 그분의 출현 이래 거의 2천년이 지났건만 이 세상 인류의 대부 분은 아직도 암흑의 길을 걷고 있어, 이스라엘의 자손과 그 밖 의 많은 하느님의 아들딸들이 압제자의 채찍 밑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바하이기원 불과 몇 십 년에 진리의 광명이 동서 양에 비치어, 하느님은 아버지요 인류는 동포라는 복음이 세계 의 도처에 퍼지고, 대군국주의적 전제는 타도되며, 세계의 모든 학대받고 압제받아온 민족에 대하여 마침내 구제될 희망을 주 는 세계통합의 의식이 생겼다.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 일 어난 세계를 뒤흔든 대전쟁은 총포, 독가스, 소이탄, 기관연료 등 일찍이 듣지 못한 무기가 사용됨으로써 실제로‘불에 타서 죽을 것이라’고 한 그대로였다. 바하올라께서는 그분의 저서 가 운데서 정치, 행정문제를 광범위하게 다루시어 그것이 어떻게 하면 가장 잘 해결될 것인가를 보여주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 280 바하올라와 신시대
  • 287.
    일찍이 취하시지 않은방법에 의하여 그분은‘정사를 그 자신의 어깨에 메었다’.‘영원의 아버지’,‘평화의 임금’이라는 칭호에 관하여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아들’이라 고 하셨음에 반하여, 바하올라께서는 가끔 자신을 그리스도와 이사야가 말씀한 바‘아버지’의 나타남이라고 하셨다. 바하올 라께서는 자신의 사명이 지상에 평화를 건설하는 일이라고 하 셨는데, 그리스도께서는‘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제 10장 34절)고 하셨다. 사실 기독교의 시대에는 전쟁과 당파싸움이 심히 많았다.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라는 칭호는 아라비아어로‘하느님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이 칭호는 히브리의 예언자들에 의하여‘후일’에 출현 한다고‘약속된 분’에 대하여 많이 씌어진 말이다. 이사야서 제 40장 1~5절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너희 하느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 하라. 너희는 정답게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 라. 그 복역(服役)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赦)함을 입었 느니라. 그 모든 죄로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 라 할지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 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느님의 대로(大路)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 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 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 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 리라.” 281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 288.
    위에 기록된 예언과같이 이것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의 출현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일부분이었으니,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예루살렘에 싸움이 끊이지 않아서 잔혹한 시련과 굴욕이 여러 세기 동안 이 지상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압과 바하올라의 출현 에 의하여 그 예언이 더 한층 완전하게 실현되기 시작하였으니, 보다 더 밝은 날이 예루살렘을 위하여 이미 서광이 비치고, 평화 롭고 영광스러운 장래의 희망이 지금 확실히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예언으로는,‘이스라엘의 속죄 주’인‘주의 영광’이 해 돋는 동방에서‘성지’에 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바하올라께서 는 팔레스타인의 동방, 해 돋는 저쪽 페르시아에 출현하시어 ‘성지’에 오셨고, 그곳에서 그분의 만년(晩年) 24년을 보내셨 다. 그분이 만일 자유스러운 몸으로서 그곳에 가셨다면 혹은 고 의로 예언에 합치시키기 위한 사기꾼의 책략(策略)이라고 할지 도 모르나 그분은 추방된 몸이 되어 죄수로서 그곳에 가신 것이 었다. 그분은 페르시아 황제와 터키황제에 의하여 그곳에 끌려 가신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이, 그분이 예언자들에 의하 여 예언된 바 장차 오실‘하느님의 영광’이라는 바하올라의 주 장을 지지하여, 그 증거를 주기 위한 의도 하에 행한 일이라고 는 생각할 수 없다. 하느님의 날 ‘하느님의 날’또는‘종말의 날’이라는 어귀의‘날’이란 말 은‘종교제’의 의미로 해석된다. 모든 대종교의 창시자들은 모 두 각자의‘날’을 가지고 있다. 그 각자는 태양과 같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새벽이 있고, 그들의 진리는 점차로 민중의 마음과 282 바하올라와 신시대
  • 289.
    정신을 비치어 마침내그 영향이 절정(絶頂)에 달한다. 그리고 점차로 그 빛이 희미해지고 곡해되고 부패하여 다시 새날의 태 양이 떠오를 때까지는 암흑이 땅을 뒤덮게 된다. 하느님의 최상 (最上)의 현시자의 날은‘종말의 날’이니, 그날은 끝이 없는 날 이요 다시 밤이 오지 않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의 태양은 결코 일몰(日沒)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인간의 영혼을 비칠 것이다. 사실, 정신적 태양은 일몰이 없다. 모세, 그리스도, 모하멧, 그 밖의 모든 예언자들의 태양은 지금 도 하늘에서 불멸의 빛으로써 빛나고 있다. 그러나 땅에서 발생 한 안개와 구름이 그들의 빛을 민중에게 가리고 있다. 바하올라 의 지고(至高)의 태양은 마침내 그 어두운 구름을 일소하여, 모 든 종교의 백성들이 모든 예언자들의 광명에 기쁨을 느끼고, 모 든 예언자들이 그 빛을 반영한 유일의 하느님을 함께 예배하게 될 것이다. 압돌바하에 대한 예언 이사야, 예레미아, 에제키엘, 제카리아 등의 예언에‘가지’라 고 불리우는 사람에 대하여 몇 군데 언급된 것이 있다. 이러한 언급은 기독교에 의하여 가끔 그리스도에 해당되는 것으로 해 석되어 왔다. 그러나 바하이들은 그것이 특히 압돌바하에 적용 되는 것으로 본다. 한 가족의 장남을‘가장 큰 가지’라고 하는 것은 페르시아의 일반적인 관습으로서, 압돌바하께서도 바하올 라의 장남이므로 바하이들 사이에 이 칭호로써 널리 알려져 있 다. 바하올라께서는 그 저서 가운데 가끔 자신을‘나무’또는 ‘뿌리’라 하시고 압돌바하를‘가지’라고 기록하셨다. 압돌바하 자신도 다음과 같이 쓰셨다. 283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 290.
    “압돌바하는‘하느님의 성약의 중심’이어서‘나무’에필요한 ‘가지’인 것이다. 본질적인 것은‘나무’이다. 기초는‘나무’이 다. 또 보편적 실재(實在)는‘나무’이다.” ---‘서방의 별’제 8권 325쪽 ‘가지’에 관하여 성서에 가장 길게 씌어 있는 예언은 이사야 서 제 11장 1~12절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 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 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 림하시리니........ 공의(公儀)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 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 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이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 음과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 라........ .그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 르와 애급과 바드로와 구스 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 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열방(列邦)을 향하 여 기호(旗號)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대의 이산(離散)한 자를 모으시리니.” 압돌바하께서는 이 예언과 그 밖의‘가지’에 관한 예언에 대 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저 무비(無比)의‘가지’가 나타나는 날에 일어날 대사건의 하나는 모든 민족 사이에 하느님의 깃발이 세워지는 일이다. 284 바하올라와 신시대
  • 291.
    그것은 모든 국민과종족이 이 신성한 깃발, 즉 웅대한‘가지’ 아래에 모여 단일한 국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신 앙과 종교의 반목(反目), 민족의 적개심, 애국적인 알력은 저 들에게서 근절될 것이다. 모두가 한 종교, 한 신앙, 한 인종, 한 백성이 되어 이 지구를 한 조국으로 하여 살게 될 것이다. 그리 하여 세계평화와 조화가 만국 사이에 실현될 것이다. 무비의 ‘가지’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을 한데 모을 것이다. 즉 이 주 기(週期)에는 동서남북에 이산되어 있는 유대인들이 다 이 성 지로 모일 것이다. 진실로,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의 주기에는 일어나지 않았나니, 여러 국민이 신성한‘가지’인 한 깃발 아 래에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만군의 주’의 주기에는 만국의 백성들이 이 깃발 아래에 모일 것이다. 또 세 계 각지에 이산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그리스도의 주 기에는 이 성지에 모이지 않았지만 바하올라의 주기의 시초에 있어서, 모든 예언서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 신 성한 약속이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세계 각 지로부터 유대민족이 성지를 향하여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들은 저들 자신의 것으로 건설한 촌락과 소유지에 거주하게 되 고 그 수가 날로 늘어 불원에 전 팔레스타인 지방이 저들의 집 이 될 것이다.”---‘질의응답록’ 이상의 글이 씌어진 이후, 팔레스타인 지방은 터키의 지배를 벗어났고‘동맹 연합국’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이 그 민족적 조국을 재건하려는 주장을 시인하였다. 세계대전 이후에 국제연맹이 설립되었다. 그것이 평화를 유지 하는 일, 또는 안전보장을 조직화하는 일에 실패하였지만 여러 285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 292.
    국민 사이에 새롭고보다 큰 집단적 책임의식이 나타나서 세계 시민제의 예비적 교육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는 일 에 이바지하였고, 그 실패는 곧 바하올라에 의하여 세워진 신질 서를 강조하는 일에 공헌하고 있다. 그리고 신질서의 힘은 구질 서의 힘이 급속도로 감퇴함에 따라 점차로 커져 가고 있다. 심판의 날 그리스도께서는 위대한‘심판의 날’에 관하여 우화(偶話)로 써 말씀하시고, 그날에‘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태복음 제 16장 27 절)고 하셨다. 그분은 이‘날’로써 가라지는 불사르고 곡식은 모아 곡간에 넣는 수확의 때에 비유하였다.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를 보내리니, 저희 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 을 거두어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齒)를 갊이 있으리라. 그때에 의인(義人)들은 자기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태복음’제 13장 40~43절 위에 인용한 흠정역(欽定譯)성서에 사용된‘세상의 끝’이라 는 어귀와 그와 비슷한 다른 구절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심 판의 날’이 오면 지구가 갑자기 파괴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 였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이 어귀의 바른 뜻은‘시 대의 완성(혹은 종국)’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는‘아버지의 왕국’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건설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분은‘그 나라가 오기를,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치 286 바하올라와 신시대
  • 293.
    셨다. 그분의‘포도원’의 우화에서‘아버지’,즉‘포도원 주인’ 은 사악한 농부를 파멸시키기 위하여 오신다. 그러나 그분은 포 도원(세계)을 파괴하지는 않으신다. 다만‘추수 때에 이르러 과 실을 바치는 다른 농부들에게’빌릴 것이다.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새로 고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 다른 기회에, 그날에 대하여‘세상이 고쳐지어 인자가 그 영광의 자 리에 앉는 때’라고 하셨다. 성 베드로는 이것을‘위안의 때’, ‘하느님께서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 하신 바 만유(萬有)를 회복하실 때’(사도행전 제 3장 21절)라 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심판의 날’이란 것 은 이사야와 그 밖의 구약의 예언자들에 의하여 예언된‘만군의 주’이신‘아버지’의 출현과 분명히 같은 뜻이다. 즉 사악한 자 가 엄벌을 받는 때요, 하늘에서와 같이 땅위에도 정의가 확립되 고 정도(正導)가 지배하는 때를 가리킨 것이다. 바하이 해석에 의하면 모든 하느님의 현시자들의 출현은‘심 판의 날’이, 그리고 지상(至上)의 현시자 바하올라의 출현은 우 리가 살고 있는 이‘세계주기’(世界週期)의 최대의‘심판의 날’이다. 그리스도나 모하멧이나 그 밖의 많은 예언자들이 말씀 하신 나팔소리란 것은, 하늘에 있는 자와 땅위에 있는 자 - 산 자나 죽은 자나 - 모든 사람을 위한 현시자의 부르는 소리이다. 하느님의 현시자를 통하여 하느님과 만나는 것은, 이것을 바라 는 자에게는,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하느님 의 모든 창조물과 더불어 사랑 가운데서 사는‘낙원’으로 통하 는 문이다. 한편, 현시자에 의하여 계시된 하느님의 길을 버리 고 자신의 길을 택한 사람들은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이 기심과 착오와 증오의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287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 294.
    대부활(大復活) ‘심판의 날’은 또한‘부활의날’이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는 날이다. 성바울은 고린도 전서 가운데 다음과 같이 썼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 리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 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옷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로다.” --- 고린도 전서 제 15장 51~53절 죽은 자의 갱생에 관한 이러한 구절의 의미에 대하여 바하올 라께서는‘케타베 이간’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경전에 기록된‘생’과‘사’라는 말은, 신앙의‘생’과 불신앙 의‘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 하므로 인하여 일반 민중은 하느님의 현시자를 거부하고 멸시 하고 신성한 지도자의 빛에서 그들 자신을 멀리하고 불멸의 미 (美)의 교훈을 따르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 으되,‘너희가 거듭 나야 한다.’(요한복음 제 3장 7절)고 하셨 다. 또 말씀하셨으되,‘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 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肉)으로 난 것은 육이 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靈)이라.’(요한복음 제 3장 5~6절) 고 하셨다. 이러한 말씀의 참뜻은, 모든 종교제에서 사람은 누 구든지 성령으로 나서 성질(聖質)의 현시자의 입김을 받은 자 가‘생명’과‘부활’을 얻어 하느님의 사랑의‘낙원’에 들어갈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자는 누구든지‘죽음’과‘잃음’과 불신 앙의 불과 하느님의‘벌’의 선고를 받는다........ 모든 시대와 288 바하올라와 신시대
  • 295.
    세기(世紀)에 있어서 하느님의예언자와 그분들의 택함을 받은 자들의 목적은,‘생명’과‘부활’과‘심판’의 말의 정신적 의미 를 긍정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만일 그대가 하 느님의 지식의‘샘물’을 한 방울이라도 맛보았다면 그대는 곧 참다운 생이란 것은 정신의 생이요 육체의 생이 아님을 깨달을 것이니, 육체의 생명은 인간과 동물의 양자에 공통하는 것임에 반하여 정신의 생명은 신앙의 바다에서 마시고 확신의 과실을 맛보는 깨끗한 마음의 소유자라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생은 사가 따르지 않고 이 존재는 불멸의 영관(塋冠)을 쓴다. ‘참다운 신도는 현세와 내세의 두 세상에 걸쳐 사는 것이라.’ 고 말한 바와 같다. 만일 생명이 육체의 외면적 생명을 의미한 다면 그것은 분명히 사에 의하여 정복된다.” ---‘케타베 이간’114, 118, 120쪽 바하이 가르침에 의하면,‘부활’이란 것은 조잡한 물질적 육 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육체는 한번 죽으면 그만이 다. 그것은 분해되어 그 원자는 다시 같은 육체로 조성될 수는 없다. 부활은 하느님의 현시자를 통하여 주어진, 성령의 혜택으 로 이루어지는 개인의 정신적 생명으로의 탄생이다. 그가 갱생 하는 무덤은, 하느님에 대한 무지와 태만의 무덤이다. 그가 깨 는 잠이란 것은 많은 사람들이‘하느님의 날’이 새벽빛을 기다 리고 있는 잠들은 정신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 서광은 육체의 유무에 불구하고 이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비치고 있지 만, 다만 정신적으로 눈먼 사람은 이것을 느껴 깨달을 수 없다. ‘부활의 날’은 24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현재에 시작되어 지금 의‘세계주기’가 끝나기까지 계속하는 한 연대(年代)를 가리키 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문명의 자취가 이 지상에서 아주 없어지 289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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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한이 있더라도그냥 계속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스도께서는 그 많은 담화에서 미래의 하느님의 현시자에 대하여 대개 제 3인칭으로써 말씀하셨지만 때로는 제 1인칭을 쓰기도 하셨다. 그분은 말씀하셨으되,‘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 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 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요한복음 제 14장 2~3절)고 하셨다. 그리고‘사도행전’제 1장 11절에, 그리스 도께서 승천하실 때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 기 록되어 있다.‘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 로 가심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이와 같은 말씀이 있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도들은‘인자’가‘하늘의 구름 에 앉아 큰 영광을 가지고’오실 때,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2천 년 전에 예루살렘 거리를 걸으셨고 십자가에 피를 흘리시고 괴 로움을 당했을 그때의 그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 들은 자기의 손가락으로써 그리스도의 손과 발에 남아 있는 못 자국을 만지고, 자기의 손으로써 그리스도의 옆구리의 창에 찔 린 자리를 만져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을 좀 자세히 살펴본다면 이러한 생각은 곧 사라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재세(在世) 시에 유대인들은 엘리야의 재현에 대하여 꼭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리스도 께서는‘엘리야가 먼저 오리라’는 예언이, 옛날의 엘리야가 그 인격과 육체로써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정신과 힘을 가지고 온 세례자 요한의 인격에 나타난 것임을 알려 주시면서 그들의 잘못을 설명하셨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으되,“만일 너 290 바하올라와 신시대
  • 297.
    희가 즐겨 받을진대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태복음 제 11장 14~15절)고 하셨 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재현은 다른 부모에게서 난 다른 사람의 출현에 의하여 성취된 것이지만 같은 정신과 같은 힘을 하느님 에게서 받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같이 하느님의‘성 령’과‘힘’을 나타내는 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바하올라께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바압의 출현과 바 하올라 자신의 출현에 의하여 실현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태양을 생각해 보라. 오늘의 태양이 만일‘나는 어제의 태양 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실이다. 그리고 만일 일순(日順)을 염두에 두고‘나는 어제의 태양과 다르다’고 말하여도 그것 역 시 진실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날들이 동일하다고 하여도 그것 이 진실이요, 또 그 특별한 이름과 지정에 의하여 각자가 서로 다르다고 하여도 그것 또한 진실이다. 그것은 그 각자가 서로 같으면서도 그 각자에게는 사람이 인정하는 서로 다른 이름과 특수한 속성과 특수한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서 신 성한 여러 현시자의 차이와 구별과 일체성을 생각해 보라. 그 리하면 너는 여러 이름과 속성의 창조자에 의하여 이루어진 차 이와 일체성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시대 에 있어 영원의 미(美)가 그들 자신을 다른 이름과 다른 명칭 으로 부른 이유에 대한 너의 질문의 해답을 발견할 것이다.” ---‘케타베 이간’21~22쪽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출현하신다는 것은 일반 민중이 믿는 바 291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 298.
    와 같은 것이아니라 그리스도의 뒤에 오는‘약속된 분’의 출 현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라. 그분은‘하느님의 나라’와 세계에 넘치는‘하느님의 힘’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다. 그분의 지배는 마음과 정신의 세계에 있는 것이지 물질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 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눈에는 이 물질 세계는 파리의 날개에 도 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것을 아는가. 진실 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나라’와 함께 처음 없는 처음에서 오셨 고, 또 영원의 영원까지 그‘나라’와 함께 오실 것이다. 왜냐하 면,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처음이 없고 끝이 없는 순수한‘본질’이요, 천국의 본체인‘신성한 실재(實在)’의 표 현이다. 그것은 어느 주기에나 나타나서 일어서고 현시하고 몰 입(沒入)하는 것이다.”---‘압돌바하의 서한집’제 1권 138쪽 종말의 때 그리스도와 그 사도들은‘인자’가‘아버지’의 영광을 가지고 ‘재림’하는 때를 분별할 수 있는 많은 징후에 대하여 말씀하셨 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으되,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 는 형벌의 날이니라.......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震 怒)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음을 당하며 모든 이방 (異邦)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누가복음’제 21장 20~24절 그분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92 바하올라와 신시대
  • 299.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나는 그리스도라’하여 많은 사람 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 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때에는 사 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때에 많 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겠으며 불법이 성 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 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제 24장 4~14절 이상의 두 문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조금도 가리움 없이 분명 히‘인자’가 오시기 전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예언하셨다. 그리 스도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이래 오랜 시일 동안에 이러한 징 후가 모두 실현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구들의 끝에는 그분이 재림할 때를 증표할 사건에 대하여 언급하셨으니, 그 하나는 유 대인의 추방이 끝나는 것과 예루살렘이 재건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두 징후가 문구 그대로 실현되어 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 이다. 만일 그 예언의 일부분이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진실한 것이라면 분명히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종말의 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모하멧께서도 또한‘부활의 날’까지 계속할 여러 징후에 대하여 말씀하셨다.‘코란’에 다음과 같이 293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 300.
    씌어 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으되,‘그리스도여,진실로 내가 너를 죽여 너로 하여금 내게로 높일 것이다. 그리하여 불신자들의 고소에서 너를 깨끗이 하고, 부활의 날까지 그들 불신자 (즉 유 대인 기타)의 위에 너를 따르는 사람들 (즉 기독교도)을 둘 것 이다. 그때에 너는 내게로 돌아올 것이요, 나는 너희의 서로 다 른 것에 대하여 결정을 내릴 것이다’.” ---‘수라트’제 3장 54절 “유대인은 말하되,‘하느님의 손이 결박되었다.’고 하나 그 들 자신의 손이 결박될 것이요, 그들이 말한 것으로 인하여 그 들은 저주받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하느님의 두 손은 뻗쳐 있 다. 하느님 자신의 뜻에 의하여 하느님께서는 선물을 주신다. 너희 하느님께서 너에게 주신 것은 반드시 저들 가운데 많은 반역과 불신앙의 마음을 더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저들 사 이에 질투와 증오심을 두었나니 그것은‘부활의 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저들이 전쟁을 위하여 봉화를 들 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끄실 것이다.”---‘수라트’제 5장 69절 “그리고‘우리는 기독교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성약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저들은 저들에게 가르친 것의 일부를 잊어 버렸다. 그러므로 우리는‘부활의 날’까지 계속할 적개심과 증 오심을 저들 사이에 두었고, 최후에 하느님께서 저들의 행위에 대하여 저들에게 말씀하실 것이다.”---‘수라트’제 5장 17절 이러한 말들은 유대인이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에게 복종함 으로써, 또 모하멧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이래 여러 세기 동 안에 유대교도와 기독교도는 그 어느 것에나 내부에 종파가 분 294 바하올라와 신시대
  • 301.
    립하여 서로 싸운사실에 의하여 문자 그대로 실현되었다. 바하 이 기원 (부활의 날)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이러한 상태의 종말 이 가까워진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천지의 징후 히브리, 기독교, 이슬람교, 그 밖의 많은 경전에,‘약속된 분’ 의 출현에 따르는 여러 가지 징후에 대한 기록이 이상하게도 비 슷한 점이 많다. 요엘서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내가 이적(異蹟)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 기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 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그날, 곧 내가 유대 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때에, 내가 만국 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을 국 문하리니........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 여, 판결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해와 달이 캄 캄하여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 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 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山城)이 되리로다.” --- 요엘서 제 2장 30~31절, 제 3장 1~2절, 14~16절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 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95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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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 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의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 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제 24장 29~30절 ‘코란’에도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해가 가리워지는 때 별들이 떨어지는 때 산들이 없어지는 때 책장(冊張)도 풀리는(解) 때 하늘도 덮개가 벗겨지는 때 지옥도 불타는 때”---‘수라트’제 81장 바하올라께서는‘케타베 이간’에서, 해와 달과 별과 하늘과 땅에 관한 이러한 예언은 상징적인 것이요, 문자 그대로 해석 할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셨다. 예언자는 주로 정신적인 사물에 관계하는 것이요, 물질적인 사물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므로 정 신적 광명을 말씀하신 것이지 물질적 광명을 말씀하신 것은 아 니다.‘심판의 날’에 관하여‘태양’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분 들이‘정도(正導)의 태양’을 가리키신 것이다. 태양은 광명의 지상(至上)의 원천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모세는 히브리민족 의 태양이셨고, 그리스도는 기독교도의 태양이셨으며, 모하멧 은 이슬람교도의 태양이셨다. 태양이 빛을 잃는다고 예언자께 서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이러한 정신적 태양의 순수한 가르 침이 그릇된 해석과 편견에 의하여 흐려져, 민중이 정신적 암 흑에 있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달과 별은 태양의 다음 가는 광명의 원천이니, 민중을 지도하고 고무하는 종교상의 지도자 와 교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달이 빛을 잃는다 하고 혹은 달이 296 바하올라와 신시대
  • 303.
    피로 변한다 하고또 별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한 것은 교회 의 지도자들이 불화와 쟁투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승려가 세속 일에만 관여하고 천국 일에 등한하여 완전히 세속적이 되는 것 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의 의미는 단지 한 가지 설명만으로써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상징은 다른 여러 가지 의미로 서도 해석할 수 있다. 바하올라께서는 다른 의미에서‘해’와 ‘달’과‘별’이라는 말들이 여러 종교에서 제정한 계율과 교훈 에 적용된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뒤에 온 여러 현시자에 의하 여, 먼저 온 현시자의 의식과 형식과 관례와 교훈이 그 시대의 요구에 응하여 고쳐질 수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의미에서도 해 와 달이 변하고 별이 없어지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예언들이 외면적 의미에서 문자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은 부조리(不條理)하고 불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자면 달이 피로 변하고 별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 같은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별도 그 크 기가 지구의 수 천 배나 된다. 만일 그 하나가 땅위에 떨어진다 면 다른 별이 떨어질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경우 에는 정신적으로와 마찬가지로 물질적으로 실현되는 수도 있 다. 예를 들자면 예언자들에 의하여 예언된 바와 같이‘성지’는 문자 그대로 여러 세기 동안 황폐하여 있었다. 그러나 이사야가 예언한 바와 같이,‘부활의 날’에 이미 그것이‘장미꽃 피듯이 번영하기’시작하였다. 반세기 전까지는 모래벌판에 불과하던 땅에 지금은 번영한 식민지가 창설되어, 토지는 관개하여 경작 되고 포도밭과 감람나무숲과 화원들이 점차로 번성해지고 있 297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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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인간이 검을호미로, 창을 낫으로 두드려 만들 때에 이르러 의심 없이 세계각지의 황무지와 불모의 땅이 옥토로 변할 것이 다. 이러한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비와 뜨거운 바람이 부근의 주민을 못살게 괴롭히던 것이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전 지구의 기후가 더 평온해지고 모든 도시가 연기와 독한 냄새로써 공기 를 더럽히는 일이 없어, 외면적 물질적 의미에서도‘신천지’가 이루어질 것이다. 출현의 모양 시대의 종말에 있어서의 자신의 출현의 모양에 대하여 그리스 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 들을 보내리라.......그때에 자기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 ‘마태복음’제 24장 30~31절, 제 25장 31~32절 이러한 구절과 그 밖의 비슷한 문구에 관하여 바하올라께서는 ‘케타베 이간’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이‘하늘’이란 말은 고상(高尙)과 고원(高遠)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고래의 영광의 새벽빛인 신성한 현시자의 계 시의 자리(坐)인 것이다. 그들은 이 지상에 살기는 하지만 그 들의 진정한 주거(住居)는 하늘 위의 영역(領域)에 있는 영광 의 은택(隱宅)이다. 지상을 걸으면서도 그들은 하느님의 어전 (御前)인 천국에 날아오른다. 발 없이 그들은 정신의 길을 걷 298 바하올라와 신시대
  • 305.
    고 날개 없이그들은 하느님의 일체성의 고원한 높이에까지 오 른다. 모든 순간의 호흡으로써 그들은 광대한 공간을 날고 모 든 순간에 있어서 가시(可視)와 불가시(不可視)의 영역을 넘는 다....... ‘구름’이란 말은 사람의 습관과 욕망에 반대되는 것을 의미 한다. 내가 이미 인용한 싯귀에서 모하멧이 계시한 바와 같이, ‘너의 영혼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오는 사자에 게, 너희는 언제나 오만하게 그들을 대하고, 혹은 사기꾼으로 몰고 또는 죽였다.’(코란 제 2장 81절) 이러한‘구름’은 어느 의미에 있어서 계율의 폐지와, 재래 종교제의 폐기와, 인간 사 이에 통용되는 의식과 습관의 철폐와, 하느님의 신교를 반대하 는 유식자의 위에 신앙 깊은 무학자를 두는 것 등을 의미한다. 또 다른 의미에서‘구름’이란 것은, 인간의 마음에 의심을 주 어 저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현시자를 거부하게 하는 인간적 제 한, 즉 먹는 일과 마시는 일, 빈부와 귀천, 잠자고 깨는 일과 같 은, 모든 죽고야 마는 인간의 모습에 있어서의‘불멸의 미’의 나타남을 의미한다. 모든 이러한 베일(面紗)은 상징적으로‘구 름’으로써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것은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의 지식과 이해(理解)의 천국을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는‘구름’이다. 모하멧이 계시 한 바와 같이‘그날에 천국은 구름으로 인하여 멀어질 것이 다.’(코란 제 25장 27절). 구름은 사람의 눈이 신성한‘발광 체’의 빛을 보는 것을 방해 한다. 신성한 경전에 계시된 바와 같이 무신앙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니 그들은 말하되,‘그 사람은 대체 어떤 사도인가. 그는 음식을 299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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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 길을 걷는다.만일 천사가 와서 그의 경고(警告)에 참가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믿을 수 없다.’(코란 제 25장 7절) 모든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빈곤과 고난과 굶주림과 세속적 불행한 운명으로 고생하였다. 이들 성스러운 사람들은 이와 같은 부족 과 결핍으로 고생하였으므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불안과 의심 의 황야(荒野)에 헤매고 미혹과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그와 같은 자가 하느님의 보냄을 받아 지상에 사는 모든 종족과 민 족에 대하여 자기의 주권을 주장하여, 그 자신이 곧 전 우주의 목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던가. 모하멧이 말씀한 바와 같이, ‘네가 없이는 나는 천상과 지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하건만 이와 같은 쓸데없는 일에 괴로움을 당하 고 있다. 너희는 하느님의 모든 예언자와 그들의 동반자들에게 내려진 고난과 질병과 불명예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 다. 너희는 그들의 신자의 머리가 어떻게 선물로 여러 도시에 보내졌는지, 또 저들은 얼마나 슬프게 저들이 명령받은 일에 방해를 당했는지를 들었을 것이다. 저들은 그 대업의 적의 손 에 희생되었고, 적들이 정해 놓은 모든 일에 참지 않을 수 없었 다. 최고 영광자는, 시금석(試金石)이 되고 표준이 되는 일, 즉 악의(惡意)있는 자의 욕망에 반대되는 일들을 정하였다. 그것 에 의하여 그는 그의 종들에게, 바른 자와 사악한 자를 알아내 고 신앙심이 깊은 자와 불신앙자를 가려낼 수 있도록 시험한다. 그리고 모하멧이 말씀하신 바‘그분은 그분의 천사들을 보낼 것이라’는 그‘천사’라는 말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불로써 모든 인간성과 성한(性限)을 불살라 버리고, 그뿐 아니라 가장 30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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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원한 존재자들과 천동(天童)의속성을 그들 자신의 몸에 지 니고 정신의 힘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신자들은 이러한 말에 감추어진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그리고 저들과 저들의 신교(信敎)의 지도자들이 기대한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저들은 그리스도의 날이 현시된 이래 새로 나타난 성질(聖質)의 현시자들의 진리를 인 정하기를 오늘까지도 거부하여 왔다. 그리하여, 저들은 하느님 의 성스러운 은총을 받지 못하고 하느님의 성스러운 말씀의 묘 미를 잃은 것이다. 이것은‘부활의 날’에 있어서의 저들의 타 락한 상태이다. 저들은, 각 시대에 있어서 하느님의 현시자의 징후가 일반이 아는 전설의 글과 일치하여 가시(可視)의 영역 에 나타나더라도 누구나 부정도 무시도 할 수 없을 것이며 축 복 받은 자와 불행자를, 위반자와 신앙 깊은 자를 구별할 수 없 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였다. 공정하게 판단하라. 만일 복음서 에 기록된 예언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었다고 하면, 또 만일 성 마리아의 아들인 예수가 천사의 수종을 받아 구름 위의 가시 (可視)의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면 누가 이것을 부정하고 이 진리를 거부하고 경멸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누구나 그 진리 를 거부하거나 혹은 시인하기는 고사하고 한마디 말도 못할 정 도로 그 놀람이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일시에 사로잡을 것 이다.”---‘케타베 이간’67, 71~73, 78~81쪽 이상의 설명에 의하면, 비천한 인간의 형체로 여자에게서 태 어나서 빈곤하여 교육도 받지 못하고 지상의 권력자들의 멸시 를 받은‘인자’의 출현은, 진실로 그분이 지상의 백성을 심판하 시어 목자가 그 면양을 산양에서 구별함과 같이 각각 분별하여 놓는 시금석(試金石)이다. 정신의 눈이 열려진 사람들은 이러 301 제 13 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 308.
    한 구름을 꿰뚫어보아 그분이 나타내려 하는바‘능력과 큰 영 광’, 즉 하느님의 영광을 기뻐할 수 있으나, 편견과 착오에 눈이 어두워진 다른 사람들은 검은 구름을 볼 수 있을 뿐이어서 축복 받은 햇빛이 없는 어둠 속에 헤매기만 할 것이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殿)에 임하리 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 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 히 서리오.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재물 과 같은 것이니라....... 보라, 극렬한 풀무 불같은 날이 이르리 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러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말라기’서 제 3장 1~2절 제 4장 1~2절20) 302 바하올라와 신시대 20. 예언의 실현에 관한 문제는 그 범위가 넓어서 충분한 해설을 쓰자면 여러 권의 책이 필요하다. 이 단 한 장(章)에서 설명한 것은 겨우 바하이해석의 주요한 윤곽을 보였을 뿐이다. 다니엘과 성 요 한이 나타낸 상세한 묵시록에는 손을 대지 못하였다. 독자는 그 어느 장(章)이‘질의응답록’가운 데 다루어져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바하올라의‘케타베 이간’과 미르자 아불 파즐의‘바 하이 증거’와 그리고 바하올라와 압돌바하의 많은 성서한(聖書翰)가운데서 더 많은 예언의 설명을 발견할 것이다.
  • 309.
    제 14 장 바하올라와압돌바하의 예언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 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 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신명기’제18장 21~22절 하느님의 말씀의 창조력 하느님만이, 다만 하느님만이 그 소망대로 무엇이나 할 수 있 는 힘을 가지셨다. 하느님의 현시자의 가장 큰 증거는 그 말씀 의 창조력 - 즉 인간만사에 걸쳐 개조하고 변혁하는 힘, 또는 모든 사람의 반대에도 이겨내는 힘 그것이다. 예언자의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그 뜻하신 바를 표명하신다. 그리고 그 말 씀하신 바가 빨리 혹은 점차로 실현되는 것이 예언자의 주장의 명확한 증거가 되고 또 그의 영감이 순수하고 가장 분명한 증거 가 된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 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고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 게 종자를 주고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 303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 310.
    는 말도 헛되이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 이사야서 제 55장 10~11절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에게 와서‘오실 분이 당신 이십니까, 혹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하고 물었을 때 그리 스도의 대답은 단지 자신의 말씀에 의한 결과를 보일 뿐이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 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 시니라.”---‘마태복음’제 11장 4~6절 우리는 여기서 바하올라의 말씀이 하느님의 말씀 특유의 창조 력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아보기로 하자. 바하올라께서는 위정자들에게 세계평화 건설에 노력할 것을 명하셨다. 그런데 1869년 이래 저들이 전쟁정책을 연장함으로 써 여러 고래의 왕조(王朝)를 전복하여 버렸다. 그리고 한편, 계속하여 일어난 전쟁의 그 어느 것이나 승리한 편에도 결국에 는 이익이 되는 것, 즉 얻는 것이 더욱 더 적어졌다. 그리고 마 침내 1914년부터 1918년에 걸친 세계대전은 승리자에게나 패 배자에게나 꼭 같이 전쟁이란 비참한 것이라는, 역사적으로 놀 라운 사실을 보여주었다. 바하올라께서는 또 통치자들이 그 정치적 권력을 참다운 일반 복지를 위한 수단으로 하여, 그들의 지배 하에 있는 모든 사람 30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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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의 신임자가 되어행동하기를 명하셨다. 그 후 사회입법(社會 立法)을 지향하는 진보는 전례 없이 빠르게 되었고, 그리고 이 정신적 명령에 불응한 여러 나라에는 혁명이 일어나서 새롭고 더 많은 대표에 의한 정부가 권력을 잡게 되었다. 그분은 빈부의 극단을 제한할 것을 명하셨는데, 이래 최저생 활의 표준을 정하여 수입과 유산(遺産)등 부(富)에 대하여 누 진적으로 과세하는 법령이 자주 문제되어 왔다. 그분은 동산으 로서의 노예와 경제적 노예의 폐지를 명하셨는데, 그 후 해방을 지향하는 진보는 세계의 구석구석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바하올라께서는 평등한 책임과 평등한 권리와 특권을 가지는 남녀평등을 선언하셨는데 그 선언 이래, 오랫동안 여자를 속박 하던 굴레가 타파되어,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자이며 동반자인 바른 지위를 급속히 얻어 가고 있다. 그분은 종교의 근본은 하나라고 선언하셨다. 그 선언에 뒤따 른 시대에 세계각지의 성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관용(寬 容)과 상호이해(相互理解)의 세계공통의 목적을 위한 협력에 새로운 등급을 만들기 위하여 감연희 노력하게 되었고, 종파심 이 강한 태도는 어디에서나 약화되어 그 역사적 지위를 유지하 기 점점 곤란하게 되었다. 종교에 있어서의 배타(排他)의 기초 가, 자족적인 국가주의를 존속할 수 없게 하는 것과 같은 동일 한 힘에 의하여 파괴되고 있다. 그분은 교육의 보편화를 명하셨다. 그리고 진리의 독자적 탐 구를 정신적 활력의 증거로 하셨다. 현대의 문화는 이 새로운 누룩에 의하여 깊이 각성되었다. 아동을 위한 의무교육과 성인 305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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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위한 교육의편의를 확장하는 것이 일반정부의 기본정책이 되었다. 시민의 독립적 정신을 고의로 속박하려고 하는 국가는 그 정책으로 인하여 안으로는 혁명이 일어나고 이웃나라에는 의심과 공포를 느끼게 하였다. 바하올라께서는 국제보조어의 채용을 명하셨다. 자멘호프 선 생과 그 밖의 사람들이 그의 부름에 응하여, 이 위대한 사업과 기회에 대하여 그들의 생명과 재능을 바쳤다. 그리고 바하올라께서는 마음과 정신에 새로운 희망을 주고 사 회에 새로운 이상(理想)을 일으키는 새 정신을 인류에게 불어 넣으셨다. 역사를 통하여, 1844년 바하이 기원의 새 아침 이래 일어난 사건만큼 극적이며 인상적인 일은 없었다. 모든 남녀 지 성인들이, 인류가 가장 무서운 위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인 식하게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낡은 이상, 습관, 태도, 제도에 의하여 연명하여온 과거의 권력은 해마다 약화되어 갔다. 한편 에서는 우리는 진화의 참된 길을 계시한 바하올라의 가르침과 빛이 있는 곳에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다른 한편 에서는 우리는 그 빛이 방해를 받고 무시를 당한 여러 곳에 재 앙과 실망만이 있음을 본다. 그러나 믿음이 깊은 바하이에게는, 이러한 것과 그 밖의 무수 한 증거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써 바하올라의 정신적 숭고성(崇高性)을 분명히 척도(尺度)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상에서의 그분의 생활과 영감을 받은 그분의 말씀의 저항할 수 없는 힘이 하느님의 뜻의 유일한 참된 표준이 된다. 바하올라의 더 자세한 예언과 그것의 실현에 대하여 깊이 연 306 바하올라와 신시대
  • 313.
    구한다면 더 유력한확증을 얻을 것이다. 이러한 예언 중에 그 권위에 있어서 더 논쟁할 여지없는 몇 개의 실례를 들어보자. 이것들은 어느 것이나 그것이 실현되기 전에 널리 공포되어 잘 알려진 것이다. 이러한 예언의 많은 것이 여러 나라 원수(元首) 들에게 보낸 서한에 씌어 있는데, 그 서한은 한권의 책‘수라톨 헤이칼’로 편찬되어, 그 제 1판이 1877년경 봄베이에서 출판 되었고, 그 후 여러 판이 거듭되었다. 우리는 또 주목할 가치 있 는 압돌바하의 예언도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나폴레옹 3세 1869년 바하올라께서는 나폴레옹 3세에게 서한을 보내어, 그의 전쟁욕에 대하여 경고하는 동시에 전날 바하올라께서 보 낸 서한에 대한 그의 모욕적 태도를 책망하셨다. 그 가운데 다 음과 같은 엄중한 경고가 있다. “그대의 하는 일은 그대의 나라를 혼란에 빠뜨려, 그 결과로 써 주권은 그대의 손에서 떠날 것이요, 그대에게는 근심스러운 파멸이 올 것이다. 이 대업에 의하여 깨닫지 못하고 이 바른 길 에서 성령에 따르지 않으면 불원에 그 땅의 모든 백성에게 동 란이 이를 것이다. 그대는 오만하게 뻗댈 것인가. 진실로 그 허 영은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들으라, 그대가 만일 나의 이 강력 한 동아줄에 매달리지 않으면 그것이 그대를 떠나고 말 것이 다. 패망이 당장 그대의 등 뒤에 닥쳐온 것을 나는 보고 있건만 그대는 전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당시 그 권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나폴레옹 3세가 이 경고에 조 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그는 그 다음 해에 프 307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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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켰다.그 군대가 일거에 베를린을 무찌르 려 한 것은 그가 처음부터 기약한 바였다. 그러나 바하올라께서 예고하신 와이센부르그에서 패하고, 메츠에서 패했으며 마침내 세단에서 괴멸의 비운에 빠졌다. 그는 프러시아에 잡혀간 몸이 되었고, 2년 후에는 영국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말았다. 독일 바하올라께서는 그 후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의 정복자들에게 도 엄숙한 경고를 주었는데, 그들이 또한 귀를 기울이지 않았 고, 모두 한결같이 비참한 운명에 빠졌다. 아드리아노플에서 쓰 시기 시작하여 악카의 감금생활 초년 경에 끝낸‘악다스’라는 책에 바하올라께서는 독일황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셨다. “베를린의 국왕이여.......그 지위에 있어서 그대보다 더하던 자 (즉 나폴레옹 3세), 그 직분에 있어서 그대보다 더 높던 자 를 기억하라.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의 소유물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잠을 깨라. 그리하여 잠자던 저들의 전철을 밟 지 말라. 짐(朕)이 일찍이 박해자들이 우리에게 어떤 압박을 주었는지를 그에게 알렸건만 그는‘하느님의 성스러운 서한’을 던져 버렸다. 그리하여 치욕이 사방에 몰려들어 그는 마침내 파멸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국왕이여, 그에 대하여, 그리고 여 러 도시를 빼앗고 하느님의 종들을 지배하여 온 그대들에 대해 서도 깊이 생각하는바 있으라. 하느님은 저들을 궁전에서 무덤 으로 보내셨나니 두려워 하라. 조심하라........ . 라인강의 언덕이여, 짐(朕)은 그대가 붉은 피에 잠긴 것을 보 나니, 그것은 복수의 칼이 너에게 행해지고, 네가 또한 복수를 308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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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오늘 베를린의 빛나는 영화를 보건 만 한편 통곡 소리를 듣고 있노라.” 1914년부터 1918년에 걸친 독일의 승전기에 있어서, 특히 1918년 봄 독일의 최후 대공격 기간 중에 말씀하신 이 유명한 예언은, 페르시아에 있는 바하이신앙의 반대자에 의하여 바하 올라를 불신케 하는 수단으로써 많이 인용되었다. 그러나 승리 를 자랑한 독일의 대공격이 갑자기 패망의 비운에 빠졌을 때, 바하이 대업을 공격하던 적들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을 뿐 아 니라 저들이 바하올라의 명성을 높이는 유력한 수단이 되고 말 았다. 페르시아 포악한 황제 나세레딘 샤의 권력이 그 절정에 달해 있을 때에 쓴‘악다스’가운데서 바하올라께서는 페르시아의 수도이며 그 분의 탄생지인 테헤란시를 축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타’의 땅(테헤란)이여, 너는 슬퍼하지 말라. 하느님께서는 너로 하여금 전 인류의 기쁨의 발생지로 하셨느니라. 만일 하 느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느님께서는 정의로써 통치하시어 이리 떼에 쫓겨 흩어진 하느님의 어린 양들을 모으는 자로서 너의 왕좌(王座)를 축복하리니, 진실로 그는 기쁨과 즐거움으로써 바하의 백성에게 얼굴을 돌려 환대하시리라. 하느님의 눈에는 그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보석처럼 귀중하고, 그에게는 하느 님과의 영광과, 또 하느님의 계시의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의 영광이 영원히 깃들어 있을 것이니라. 크게 기뻐하라. 하느님 께서는 너의 안에 그 영광의 현시자를 나게 함으로써 너를‘그 의 빛의 새벽하늘’로 하였나니, 너에게 주어진 그 이름을 기뻐 309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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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라. 그 이름을통하여 은총의‘낮별’이 빛을 발하고 그 광채 를 통하여 하늘과 땅이 밝아지리라. 그리고 불원에 너의 안에 변화가 일어나서 권력의 지배가 백성의 손에 떨어지리라. 진실 로 너의 주께서는‘전지’하시어 그의 권위가 모든 것을 포용하 나니, 너는 주의 은총 깊은 혜택 안에 평안 할지어다. 진실로 하느님의 사랑의 눈이 영원히 너를 지켜 주시리라. 너의 소란 한 마음이 평화와 완전한 평온으로 변할 날이 가까웠나니, 이 는‘불가사의의 책’에 정해져 있는 바이니라.” 지금 페르시아는 바하올라께서 예언하신 그 혼란의 시기에서 겨우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이미 입헌정치도 마련되어 광명의 시대가 가까워 오는 징후가 보인다. 터키 바하올라께서는 터키 감옥에 갇혀 계셨을 때(1868년), 터키 황제와 그 총리대신 알리 파샤에게 가장 엄숙하고 인상적인 경 고를 하셨다. 악카의 병영(兵營)에서 터키 황제에게 보낸 서한 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자신을 인간의 가장 위대한 자로 생각하는 자여,........ 불 원에 그대의 이름은 잊혀지고 그대는 패잔의 신세가 될 것이 다. 그대의 생각에 의하면 이‘세계에 생명을 주는 자’,‘평화 를 가져오는 자’는 죄인이며 선동자이다. 부녀와 소아와 울부 짖는 갓난아기들이 그대의 분노와 압박과 증오를 받을 무슨 죄 를 지었는가? 그대의 나라에 반항하지 않고 정부에 대하여 혁 명을 선동한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밤낮으로 평화를 위하여 하 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 많은 영혼을 그대는 박해하였다. 31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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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는 그들의 재산을빼앗았고 그대의 학정은 그들에게 한 가 지 물건도 남김이 없었다........ .하느님 앞에서는 한줌의 티끌 이라도 그대의 국토와 영광과 주권과 지배보다 나은 것이니,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느님께서는 그대를 사막의 모래처럼 날려 버리실 것이다. 불원에 그 분노의 진노가 그대의 머리에 떨어지고 혁명이 그대의 수중에서 계속하여 일어나 그대의 국 토는 분열될 것이다. 그때에 그대가 통곡하며 슬퍼할지라도 그 대를 구원하고 비호하는 자가 없으리라......... 명심하라. 하느 님의 진노가 가까웠나니, 불원에‘명령의 붓’에 의하여 기록된 것을 그대는 볼 것이다.”---‘서방의 별’제 2권 3쪽 또 그분은 알리 파샤에게 다음과 같이 쓰셨다. “라이스(수령)여, 그대가 하는 일은 하느님의 예언자 모하멧 으로 하여금‘최상(最上)의 낙원’에서 신음케 하였다. 세상은 그대로 하여금 오만하게 하였고, 그 오만이 증대(增大)되어, ‘천상집단’의 사람들이 그 빛을 받은‘하느님의 얼굴’을 그대 는 등졌다. 그대는 불원에 파멸에 빠질 것이다. 나는 위대한 전 능자의 발생지로부터 하느님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의 눈을 맑 게 하는 대업을 그대에게 가져왔건만, 그대는 나에게 위해를 주기 위하여 페르시아의 통치자들과 결탁하였다......... 그대는 하느님께서 우주에 켜 놓으신‘불’을 끌 수 있다고 생 각하는가? 아니다! 그대가 이것을 이해한다면 내가 선언하건 대, 그대가 저지른 일로 말미암아 그 불꽃은 더욱 치성해질 것 이요, 불원에 그것이 세계와 그 백성을 둘러쌀 것이다......... 불원에 신비의 땅(아드리아노플)과 그 밖에 변란이 일어나서 그것들이 국왕의 손에서 떠날 것이요, 동란이 계속하여 일어나 고 각지가 퇴폐하여 사태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대개 그것은 311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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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유폐(幽閉)의 사람들(바하올라와그 추종자들)을 박해한 포 학자의 군대의 편에서 일어나리라. 지배권은 변하고 사태는 슬 픈 지경에 이르러, 모래는 사람 없는 언덕에서 울고 수목은 산 위에서 통곡하며 모든 것이 피를 흘리고 사람들은 무서운 곤란 에 빠지리라........ 이와 같은 사건은 총명한‘설계자’에 의하여 정해졌나니, 그 분의 지령은 하늘과 땅의 어떠한 군병으로써도 거역할 수 없고, 모든 국왕과 통치자들로써도 그분이 하시고자하는 바를 막지 못 하리라. 재난은 이‘등불’을 위한 기름이 되고 이러한 재난을 통하여 그 빛이 더해질 것이니 그것은 그대들이 잘 아는 바이 다. 압박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대립(對立)은 이러한 사 건의 포고가 되는 것이니, 그것에 의하여 하느님과 그의 대업의 출현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이다.” 그분은 또‘악다스’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두 바다의 해안에 임해 있는 지점(즉 콘스탄티노플)이여, 부정(不貞)의 왕좌가 너의 안에 있으니, 거기에 증오의 불이 커져‘천상집단’과‘고상한 왕좌’를 둘러싼 자들이 그것 때문 에 탄식한다. 우리는 너의 안에서 어진 자에게 어리석은 정치 가 행해지고 암흑이 광명을 가리우는 것을 본다. 그러고도 너 는 득의만만(得意滿滿)하구나. 너의 겉치장이 너로 하여금 자 부(自負)케 하느냐? 너는 불원에 창조주에 의하여 멸망할 것이 다! 그리하여 너의 딸들과 과부들과 너의 안에 있는 백성들이 통곡하리라.‘지혜’요‘전지자’는 너에게 이와 같이 예언하고 있다.” 이러한 경고가 발표된 후 그 거대한 제국(帝國)을 연속적으로 31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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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습한 재난은 바로이 경고의 예언적 의미를 웅변으로 설명하 는 것이 되었다. 아메리카 바하올라께서는 1870년경에 쓰신‘악다스’에서 아메리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호소하셨다. “아메리카의 통치자여, 공화국의 대통령이여, 지배자 여......... 저 높은 발생지에서 오는 부름의 소리를 들으라. 즉 ‘발언자이며 전지자인 나 이외에 하느님이 없느니라.’바라노 니, 부러진 사지(四肢)를 정의의 손으로써 싸매 주고, 압제자 의 완강한 수족을 통치자이며 전지자인 그대의 주의 명령의 채 찍으로써 깨뜨려 버리라.” 압돌바하께서는 아메리카와 그 밖의 여러 곳에서 행하신 강연 에서 국제평화의 깃발이 먼저 아메리카에서 세워지리라는 희망 과 기원과 확신을 표명하셨다. 1912년 11월 5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메리카는 고귀한 국가이어서 평화의 기수(旗手)로서 세계 각지에 그 광명을 보낸다. 미국과 같이 다른 나라의 방해를 받 지 않고 침략을 면하여 세계평화를 도울 수 있는 나라가 없다. 다행히도 아메리카는 전 세계의 모든 나라와 화평의 상태에 있 어, 세계평화와 사해동포(四海同胞)의 깃발을 올리기에 알맞은 나라이다. 국제평화의 소리가 이 나라에서 일어날 때, 각국은 ‘그렇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화답할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 각국은 50년 전에 계시된 바하올라의 가르침 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분은 성스러운 서한에서, 여러 민족 사 313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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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의 문제를 재결하고평화를 수립하는 국제대회에는 가장 지 혜롭고 가장 착한 인물을 파견하라고 세계 각국의 의회에 요구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로소 예언자들이 예상한‘인 류의 의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서방의 별’제 6권 81쪽 바하올라와 압돌바하의 호소는 이미 아메리카 합중국에서 크 게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이 나라와 같이 바하이 가르침을 빨리 받아들인 나라가 없다. 그러나 여러 나라들을 국제평화로 불러일으키는 아메리카의 맡은 바 임무는 아직도 그 일부분을 수행하였음에 불과하다. 바하이들은 많은 흥미를 가지고 그 장 래의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세계대전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는 1914년부터 1918년에 걸쳐 세 계대전이 일어날 것을 여러 기회에 놀랍게도 정확하게 예언하 셨다. 1912년 10월 26일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압돌 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오늘의 유럽대륙은 병기창과 같다. 점화(點火)하기를 기다 리는 화약고와 같아서 단 한개의 불꽃이 전 유럽을 태워 버리 려는 상태에 있다. 특히 발칸 문제가 세계문제로 되어 있는 오 늘, 위험은 한층 절박한 상태에 있다.”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행하신 많은 강연에서 그분은 이와 비슷 한 경고를 하셨다. 1912년 10월 캘리포니아주에서 또 다음과 같이 강연하셨다. “우리는 지금‘묵시록’제 16장에 씌어 있는‘아마겟돈’싸 움의 전야(前夜)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2년 후 단 한 개의 불 314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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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전 유럽을불타게 할 것이다 모든 나라의 사회적 불안과, 황금시대(천년왕국)에 앞서 올 - 이미 와 있거니와 - 종교 적 회의(懷疑)의 증대(增大)는 다니엘서와 요한의‘묵시록’에 예언되어 있는 바와 같이 장차 전 유럽을 불태워 버리려고 한 다. 1917년까지 여러 왕국이 붕괴되고 대변동이 지상을 뒤흔들 것이다.”(1814년 9월 26일 시카고의 노오스 쇼어 리뷰지에 코린 투르 부인에 의하여 보도된 것임) 대전의 전날 밤에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문명국 여러 나라의 대전란이 지금 문전에 박도하였다. 무 서운 대충돌이 지금 당장 발발하려 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가 장 비참한 쟁투의 문턱에 서 있다........거대한 군대 - 수 백만 의 군대 - 는 지금 동원되어 그 국경에 배치되어 있다. 저들은 무서운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단지 조그마한 마찰을 계기로 하여 갑자기 대전란이 일어나려고 하는데, 이와 같은 일은 과거의 인류역사에 일찍이 기록된 일이 없었다.”(1914년 8월 3일 하이파에서) ---‘서방의 별’제 5권 163쪽 대전 후의 사회적 분쟁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는 또 세계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무 종교, 편견, 미신 등의 필연적 결과로써 커다란 사회적 동란과 쟁투와 재난의 시대가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 거대한 국제적 군 사적 충돌은 이 동란의 일면을 보여줌에 지나지 않는다. 1920 년 1월에 쓰신 서한에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파하셨 다. “그대들 진리의 애호자여. 그대들 인류의 종들이여. 그대들 의 사상과 숭고한 생각의 아름다운 향기가 내게 미치어, 나의 315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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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이 그대와 사귀고싶음을 억제할 수 없노라. 세계가 휩쓸려 들어간 혼란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또 지구상 의 여러 나라가 인간의 피로 물들어, 아니, 저들의 땅이 엉킨 피로 변하고 말 것인지 그대의 마음에 깊이 생각하는바 있으 라. 전쟁의 불꽃은 너무도 큰 불을 일으켰으므로 고대와 중세 기와 또는 현대의 세계가 그와 같은 것을 일찍이 본 일이 없었 다. 전쟁이란 이름의 맷돌은 많은 인간의 두뇌를 갈고 부수었 다. 아니, 이들 희생자의 운명은 더욱 참혹하다. 풍요한 나라들 이 황폐하여지고 여러 도시가 평탄한 지면을 이루며, 평화롭던 마을들이 폐허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잃고 아들은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는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여 피눈물을 흘리고 철모르는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으며, 부인들은 집 없는 부랑자가 되었다. 한 말로써 말하자면 인류는 모든 면에서 타 락하였다. 부모 잃은 아이의 울부짖음과 하늘에 사무치는 어머 니의 탄식은 측은하다. 이러한 모든 일의 첫째의 원인은 인종적, 국가적, 종교적, 정 치적 등의 편견이다. 그리고 그 편견의 근원은 비록 종교적, 인 종적, 국가적, 정치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이미 낡아빠 진, 그러나 깊이 뿌리박힌 전통에 있다. 이러한 전통이 계속되 는 한, 인류조직의 기초는 불안정하여 인류 그 자체가 언제나 끊임없이 위기에 놓여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빛나는 시 대, 즉 모든 존재물의 본질이 드러나고 모든 창조물의 감추어 진 비밀이 밝혀지며 진리의 아침 해가 빛나기 시작하여 세계의 암흑이 광명으로 바뀌는 이 때, 세계에 다시 회복할 수 없는 파 멸을 초래하는 무서운 대 살육이 가능하다는 것이 과연 마땅하 고 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아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16 바하올라와 신시대
  • 323.
    60년 전 바하올라께서는빛나는 태양처럼 페르시아의 하늘 높이 두루 비치었다. 그분은 선언하셨으되, 세계가 암흑에 싸 이고 이 암흑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 무서운 투쟁으로 인도 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분이 계셨던 감옥 도시 악카의 성벽 안 에서 터키황제에 의하여 피해를 당한 죄수의 몸으로 계셨을 때, 그분은 분명하고 힘차게 콘스탄티노플은 무서운 전란의 희 생이 되어 혼란에 빠지고 부인들과 아이들은 슬프게 울부짖을 것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그 황제에게 보내셨다. 요약하여 말하 면 그분은 세계의 주요한 통치자와 군주들에게 서한을 보냈으 며 그분의 예언은 틀림없이 실현되었다. 그분의‘영광의 붓’에 서 전쟁방지의 가르침이 흘러나왔고 그것이 널리 퍼졌다. 그분의 첫째 가르침은 진리탐구이다. 맹목적인 모방은 인간 의 정신을 죽이는 것이지만 이에 반하여 진리탐구에 의하여 세 계는 편견의 암흑에서 해방된다고 그분은 선언하셨다. 그분의 둘째 가르침은 인류는 하나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하나의 양의 무리요 하느님은 그것을 기르는 목자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최대의 자비를 그들에게 베푸시고 그들 전부를 하나로 보신다.‘하느님의 창조물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인정 하지 않으신다.’그들 모두가 하느님의 종이며 누구나 그분의 혜택을 구하고 있다. 그분의 셋째 가르침은 종교는 가장 힘 있는 성채(城砦)라는 것이다. 종교는 적의(敵意)와 증오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통일로 인도하는 원동력이 된다. 만일 종교가 적의와 증오로 통한다면 전혀 그것을 가지지 않는 편이 좋다. 종교는 약과 같 으니 그것이 병을 덧나게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버리는 것이 좋다. 317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 324.
    마찬가지로 종교적, 인종적,국가적, 정치적 편견은 그것들이 모두 인간사회의 기초를 파괴하고 유혈(流血)의 길로 통하며 인류사회에 폐허를 쌓아 올린다. 이러한 것들이 남아있는 한 전쟁의 공포가 계속된다. 단 하나의 치료법은 세계평화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 정부와 민족을 대표하여 이루어진 국제재 판소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모든 국가적 및 국제적 문제 는 이 재판소에 위임되어야 하고 그 결정은 어떤 것이든지 시 행되어야 한다. 만일 어느 정부나 민족이 찬동하지 않는 경우 에는 전 세계가 일체가 되어 그에 대항하여 일어서야 한다. 또 그분의 가르침 가운데는 남녀평등의 권리에 대한 것이 있 고, 그 밖에 비슷한 많은 가르침이 그분의 붓에 의하여 계시되 었다. 현재에 있어서 이러한 원칙은 세계의 생명의 본질이며 그 참 다운 정신의 구체화(具體化)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지금 인류 의 종인 그대들은‘하느님의 도시(都市)’의 빛으로 세계를 비 치기 위하여 세계를 물질주의와 인간적 편견의 암흑에서 해방 되도록 심신을 다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바하올라를 칭송하라. 그대들은 세계의 여러 가지 학파와 제 도와 원칙을 잘 알고 있다. 오늘에 있어서 이러한 성스러운 가 르침 이외의 것은 인류에게 평화와 평온을 보증할 수 없다. 이 러한 가르침 없이는 이 암흑이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또 이러한 만성적 질병이 결코 나아질 수 없는 것이다. 아니, 그 암흑과 질병이 날로 더해질 것이다. 발칸반도는 불안정한 대로 있어 그 상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정복을 당한 자는 가만히 있지 않고 새로운 전쟁의 발단이 되는 모든 수단을 취할 것이 다. 현대의 세계적 운동은 그 목적과 의도(意圖)를 수행하기 318 바하올라와 신시대
  • 325.
    위하여 전력을 다할것이다. 좌익운동은 큰 중요성을 가지어 그 영향이 확대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숙한 마음과 천국의 정신과 신성한 힘을 가지고 바하올라의 은총에 힘입어, 그대들은 하느님의 혜택의 선물, 즉 전 인류에 대한 위안과 평안의 선물을 세계에 주도록 노력 하여라.” 1919년 11월의 담화에서 그분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바하올라께서는 여러 번, 무종교와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무질서의 상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이 혼란은 아직 자유에 대하여 준비 없는 사람들 사이에 너무 큰 자유가 주어 지는데 원인한다. 그 결과로 민중자신의 이익을 위하고 또 이 무질서와 혼란상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강제적인 정 부가 출현할 것이다. 각 민족이 완전한 자결(自決)과 행동의 자유를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아직 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가 있다. 세계의 현상은 대개 무종교 이므로 이것이 필연적으로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이 대 전쟁에 따른 평화의 제안은 이제 겨우 새벽하늘의 희미한 빛에 불과한 것이지, 평화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님은 내가 항상 말한 바와 같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 그러나 이와 같이 분란이 극한 시대에도‘하느님의 대업’은 왕성해질 것이다. 개인생활 또는 당파와 종파와 국가적인 이익 을 위한 이기적인 싸움에서 일어나는 재난은 사람들을 실망케 하여‘하느님의 말씀’에 의한 구원으로 향하게 할 것이다. 재난 319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 326.
    이 심하면 심할수록사람들은 참된 구원으로 향할 것이다. 바하 올라께서는 페르시아 황제에게 보낸 서한에 다음과 같이 쓰셨 다. “하느님께서는 고난으로 하여금 이 푸른 목장의 아침비로 하 시고 하늘과 땅을 비치는 그분의 ‘등불’의 심지로 하셨 다........ 고난에 의하여 그분의 등불은 빛나고 그분의 찬미는 부단히 밝았나니, 이것은 고래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 없는 하느님의 방법이다.” 그리고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께서는 정신성(精神性)이 급속히 유물론을 이겨 그 결과로써‘최대의 평화’가 이루어질 것을 확 신하는 어조로써 예언하셨다. 1904년에 압돌바하께서는 다음 과 같이 쓰셨다. “고난과 불행이 날로 더하여 사람들이 괴로움에 시달릴 것임 을 알라. 기쁨과 행복의 문은 사방에서 닫혀질 것이다. 그리고 무서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실망과 낙담이 사방으로부터 사 람들을 포위하여 마침내 하느님을 향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 이다. 그때에 큰 행복의 빛이 지평선에 비치며‘야 바하올 압 하’의 함성이 사방에서 일어날 것이다.”---‘전쟁과 평화에 관 한 편찬물’187면에 인용된 L. D. B. 씨에게의 서한 1914년 2월 세계열강 중 어느 나라가 신앙에 들어올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그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다 신도가 될 것이다. 이‘대업’이 시 작되었을 때와 오늘의 상태를 비교하여 보면‘하느님의 말씀’ 이 얼마나 빨리 영향을 주고, 또‘하느님의 대업’이 얼마나 넓 게 세계에 퍼져 가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모 320 바하올라와 신시대
  • 327.
    든 사람이‘하느님의 대업’의그늘 아래에 모일 것이다.” ---‘서방의 별’제 9권 31쪽 다니엘서 최종의 2절에 다음과 같은 은어(隱語)가 있다. “기다려서 1335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특히 복이 있으리 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이러한 말씀의 의미를 해석하려는 많은 노력이 학자들 사이에 있었다. 본서의 저자도 참석한 식탁에서 압돌바하께서는 다음 과 같이 말씀하셨다. 즉, 1335일의 날이란 것은 모하멧의 생애 와 관계있는 사건 후 1335년째의 태양년(太陽年)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예언은 바그다드의‘레즈완’동산에서 행 한 바하올라의 선언 100주년에 관한 것이다. 바하올라의 선언 이 1863년에 있었으므로 여기에 말한 연대는 즉 1963년이다. ‘1335일째의 끝에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하는 질문에 압 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세계평화는 확고히 수립되고 세계어는 촉진될 것이며 오해 는 제거될 것이다. 바하이 대업이 도처에 전파되어 인류의 통 일이 성취될 것이다. 그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다.” 악카와 하이파 미르자 아아맏 소오랍은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악카와 하 이파에 관한 압돌바하의 예언을 기록하였다. 이것은 압돌바하 께서 1914년 2월 14일 하이파의 바하이 순례자 숙소의 창가에 앉아서 하신 말씀이다. 321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 328.
    “이 순례자 숙소에서내다보는 조망(眺望)은 매우 아름답다. 특히 바하올라의 성스러운 영묘(靈廟)를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좋다. 장래의 악카와 하이파의 사이는 연결되어 두 도시가 한 대도시의 두 구(區)를 이룰 것이다. 나는 지금 이 풍경을 내다 보고 이곳이 세계 굴지의 상업중심지가 될 것을 확신한다. 이 반원형(半圓形)의 만(灣)은 최상의 항구가 되고 세계 선박의 피난처가 될 것이다. 각국 최대의 선박들이 세계각지로부터 많 은 남녀를 싣고 여기로 올 것이다. 언덕과 평지는 가장 근대적 인 대건물로 점철(點綴)될 것이다. 산업이 융흥하고 여러 가지 박애(博愛)의 시설이 세워질 것이다. 각국의 문명과 문화의 정 화(精華)가 이곳에 모여 그 향기가 조화되어 인류형제애의 도 표(道標)를 이룰 것이다. 훌륭한 화원과 과수원과 밀림과 공원 이 여기저기에 만들어질 것이다. 밤에는 이 대도시의 전등불이 휘황하고 악카와 하이파 사이의 연안은 전등장식의 길을 이룰 것이다. 칼멜산의 양편에는 강력한 탐조등이 해상선박을 인도 하기 위하여 비칠 것이다. 칼멜산은 산 밑으로부터 꼭대기까지 등불바다에 잠길 것이다. 칼멜산 위에 서 있는 사람이나 이곳 에 오는 선객들은 세계에서 가장 숭고하고 장엄한 광경에 놀랄 것이다. 이 산의 여기저기서‘야 바하올 압하’의 교향악(交響樂)이 울리고, 날 밝기 전에는 아름다운 곡조의 황홀한 음악이‘전능 자’의 왕좌를 향하여 바쳐질 것이다. 진실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신비하고 측량할 수 없는 것 이다. 쉬라즈와 테헤란, 바그다드와 콘스탄티노플, 아드리아노 플과 악카 및 하이파의 사이에 무슨 외적(外的)관계가 있는가. 322 바하올라와 신시대
  • 329.
    그러나 예언자들을 통하여전해진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참고 또 참으시면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 확고 하고 영원한 계획에 따라 이 여러 도시를 통하여 일하셨다.‘구 세주’의 황금시대(천년왕국)에 관한 이 약속의 금실(金絲)은 성서를 일관(一貫)하여 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고 싶으신 때에 그것들을 나타내시기 마련인 것이다. 한 말씀이라도 뜻 없는 것이 없고 실현되지 않는 것이 없다.” 323 제 14 장 바하올라와 압둘바하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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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1.
    제 15 장 회고와전망 오, 벗들아! 내가 증언하노니, 은혜는 완전하며, 이론은 충족 되고, 증명은 명백하며 증거는 확립되었느니라. 초연(超然)의 길에서 너희의 노력이 나타낼 바를 이제 보여라. 이렇게 해서 거룩한 은혜는 너희와 또 하늘과 땅에 있는 자들에게 완전히 베풀어졌느니라. 모든 세상의 주님이신 하느님께 모든 찬양을 드려라. ---‘숨겨진 말씀’ 바하이 대업의 진전 전 세계를 통한 바하이신앙의 진전을 여기에 상세히 기술할 여유가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이 흥미 있는 제목과 이 대업의 개척자와 순교자에 관한 감동할 많은 이야기를 위해 서는 여러 장(章)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극히 간단하 게 그 개략을 적어 보기로 한다. 페르시아에서는 이 계시의 초기의 신도들이 제나라 사람들에 게서 극단의 반대와 박해와 학대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훌륭한 용기와 견실과 인내로써 그 모든 재난과 시련을 받아들 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피로써 세례를 받았나니, 무수한 사 325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32.
    람들이 순교자로서 죽었고,더 많은 사람들이 태형과 약탈과 투 옥과 추방과 그 밖의 학대를 받았다. 페르시아에서는 60여년 동안 바압과 바하올라를 따를 것을 자인한 사람은 모두 그 재산 과 자유와 또는 생명까지도 희생을 당하는 위험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철저하고 가혹한 압박도 먼지구름이 아침 해가 떠오 름을 막지 못함과 같이 이 신앙의 진전을 막을 수는 없었다. 현재에 있어서는 페르시아 전국을 통하여 모든 도시와 촌락과 그리고 유목민(遊牧民) 중에서도 바하이 신도들을 찾아볼 수 있다.21) 어떤 마을들에는 그 주민의 대부분이 이 신자인 곳도 있다. 서로 격렬히 미워하던 여러 많은 종파에서 모여든 저들이 지금은 서로 친애하게 되어 형제애의 큰 집단을 이루고 있을 뿐 이다. 그 사랑이 모든 지방의 모든 사람에게까지 비치어, 인류 의 융합과 향상을 위하여, 모든 편견과 투쟁을 버리기 위하여, 이 세상에‘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일하고 있다.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러나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이러한 사람들이 목적한 바가 전 세계를 통하여 실현되 는 일인데 이 더 큰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징후가 충분히 보이 고 있다. 서양에 있어서의 초기의 신자들은, 바하이신앙의 정신을 보급 시키고 그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써 어느 예정된 시기에 326 바하올라와 신시대 21. 커르존경은 1892년 바하올라께서 세상을 떠나신 해에 출판한 저서‘페르시아와 페르시아 문제’ 가운데 다음과 같이 썼다.“‘페르시아에 있는 바비신도의 현재의 수는 가장 적게 보아도 50만은 될 것이다. 나는 어떤 믿을 만한 인물과의 회담에서 그 총수가 100만에 가깝다고 보고 되었다. 그 들은 모든 방면에 있다. 대신과 궁중의 귀족들부터 거리의 청소부와 마부(馬夫)에까지 이르고, 저 들이 활동하는 장소는 이슬람교의 승려가 있는 곳까지 미치고 있다. 만일 현재의 비례로 바비교가 팽창하여 간다면 아마 페르시아의 벌판에서 이슬람교를 쫓아버릴 때가 올 것이다. 하나의 적대적 인 종교의 깃발을 들고 나타난 것이라면 그럴 수 없을 것이지만 그 신자는 공격받는 진영의 가장 우수한 정병(精兵)중에서 온 것이므로 바비교는 마침내 승리를 얻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 제 1권 499-502면
  • 333.
    인류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희망하였다, 그러나 이 가르침 가운데 내포된 요소가 더 분명히 밝혀짐으로써, 이 계시를 받아 들이는 것이 단지 내면적 태도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이라는 문 제, 즉 바하올라에 의하여 확립된 새로운 사회제도를 충분히 발 전시키는 의식적 노력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대업의 성장을 보이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 우리 는 바하올라의 여러 원칙이 일반 대중적 이상(理想)의 형태로 써 다소 막연하게 표현된 그 속을 깊이 통찰하여야 하며, 또 등 록된 신도수의 증가까지도 초월하여 보아야 한다. 이 신앙의 발 전단계에 있어서, 단순한 열성적인 숭배자의 상태에서 절망적 인 환경의 혼란과 싸워서 이겨낼 수 있는 견실한 헌법적 질서의 형태로 번져가는 바하이 공동체의 급속한 발전이 이 신앙의 힘 을 입증한다. 압돌바하께서 또 하나의 국제적인 전쟁이 일어날 것을 명확히 예언하신 사실은, 전통적 사회제도 위에 참기 어려운 긴박한 사 태가 다시 올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재래의 여러 종교의 신도 에 비하여 그 수가 적은 바하이는 아직 보잘것없는 존재로 보일 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가까운 장래에 동서양의 대중이 모 여들 새로운 질서에 봉사하는 최상의 특권으로서, 성스러운 힘 이 저들을 축복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며, 또 바하이들 은 1963년, 즉‘레즈완’동산에서의 바하올라의 선언 100주년 까지에는 바하올라의 신앙의 기초가 전 세계에 확립되리라는 것을 쇼기 에펜디에 의하여 알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의 아직 그 빛의 근원을 모르는 순결한 마 음에 성령이 반사되고 있는 것이 확실하며, 또 바하올라의 가르 327 제 15 장 회고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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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8 바하올라와 신시대 침 가운데어떤 것은, 바하이 공동체 이외에서 추진시키는 많은 노력에서, 바하이신앙의 성장이 입증되기도 하지만, 낡은 질서 의 그 항구적 기반의 결함은‘하느님의 나라’의 이상이 바하이 공동체의 기구에서만 그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는 확실한 증 거가 된다. 바압과 바하올라의 예언자적 지위 바압과 바하올라의 생활과 그 가르침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우리는 그분들의 위대성이‘신성한 영감’에 의한 것이라고 하 는 설명 외에 다른 말이 있을 수 없다. 그분들은 광신(狂信)과 고루(固陋)의 분위기 가운데서 성장하셨다. 그분들은 극히 초 보적인 교육을 받으셨을 뿐이었다. 그분들은 서양의 문화에 접 촉한 일이 없으셨다. 그분들은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세력을 가지신 일도 없으셨다. 그분들은 사람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신 것이 없었고 받으신 것이란 다만 불법과 압박뿐이었다. 지상의 유력자들은 그분들을 알아주지 못했고 그분들을 반대하였다. 그분들은 자신의 사명을 실현하시기 위하여 채찍에 맞으시고 고문을 당하시고 투옥되셨으며 무서운 화(禍)를 입으셨다. 그 분들은 다만 혼자서 속세에 반대하여 일어섰고 하느님 이외에 는 아무 지원도 없으셨다. 그러나 지금 그분들의 승리는 이미 명백하고 굉장하다. 그분들의 이상의 장대하고 숭고함, 그분들의 생활의 고상하고 희생적임, 그분들의 불굴의 용기와 확신, 그분들의 놀라운 지혜 와 지식, 그분들의 동서양의 민중의 요구에 대한 명철한 파악, 그분들의 가르침의 활달하고 적절함, 그분들의 신도들에게 받는 열렬한 헌신과 열정을 고취하는 힘, 그분들의 감화력의 강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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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분들이 창시하신 대업의발전 등 - 이러한 것이 확실히 종교 역사가 보여줄 수 있는, 예언자인 가장 유력한 증거인 것이다. 영광스러운 전망 바하이의 기쁜 소식은 하느님의 은혜와 인류 장래의 진보한 광경을 나타내서 보여준다. 이것은 확실히 인류에게 주어진 가 장 크고 영광스러운 계시이며 전대에 있는 모든 계시의 발달이 요 완성이다. 그 목적은 인류의 갱신과‘새 하늘과 새 땅’의 창 조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 밖의 모든 예언자들이 생명을 바친 것과 동일한 사업이다. 그리고 이들 위 대한 교육자들 사이에는 아무런 경쟁도 없다. 이 사업의 성취는 어느 한 현시자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의 일치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낮출 필요가 없고, 바하올라를 선양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낮출 필요도 없다. 우 리는 어디서 나타나는 것이든‘하느님의 진리’를 환영하여야 한다. 문제의 요점은 이러한 모든 위대한‘사자’들은 완전히 ‘하느님의 깃발’을 게양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이다. 그분들 은 모두‘하느님의 뜻’이 같은 하늘의 천체(天體)로서 빛난다. 그분들은 모두‘빛’을 이 세계에 보내시는 것이다.” ---‘서방의 별’3권 8호 8쪽 이 사업은 하느님의 것인데,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만을 부르시 는 것이 아니라 이 창조적 과정의 협력자로서 전 인류를 부르신 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부한다 할지라도 이 사업 329 제 15 장 회고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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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진행을 방해할수는 없으니,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성취하시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맡은 바 일을 수행하지 못하면 하느님께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 른 방법을 취하실 수 있으시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활의 참 된 목적과 목표를 잃을 것이다. 하느님과의 합일(合一) - 하느 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고 종이 되어, 하느님의 창조력의 진실한 통로가 되고 수단이 됨으로써 우리의 안에 하느님의 신성하고 풍요(豊饒)한 생명이 깃들게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는 경지 (境地) - 이것은 바하이 가르침에 의하면 인류존재의 형언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완성이다. 그런데, 인류는 본래 마음이 건전한 것이니,‘하느님의 모습 을 본떠서’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번 진리를 체득하면 결코 어리석은 길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바하올라 께서는, 불원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일반이 받아들여 전 인류가 정도(正道)와 순종(順從)으로 향할 것이라고 보증하셨다.‘그 때에는 모든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고 모든 질병이 건강으로 바 뀔 것이다.’그리하여‘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묵시록 제11 장 15절). 지상에 있는 자들뿐 아니라 천지만물이 모두 하느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종교의 쇄신 오늘의 세계 상태는 분명히,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종교의 백성들이 각각 그 종교의 참다운 의의를 새삼 깨달 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재 각성(再覺醒)이야말로 바하올라 의 사업의 주요한 일부인 것이다. 그분은 기독교도로 하여금 더 330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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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실한 기독교도가 되게하시고 이슬람교도로 하여금 더 참다 운 이슬람교도가 되게 하시며, 모든 사람들을 그들의 예언자께 서 고취하신 정신으로 돌아가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그 분은 또 모든 예언자들께서 약속하신 바를 실현하시어, 저들의 노력한 바를 완성하시기 위하여‘때가 오면’출현하시기로 약 속된 더 영광 있는 현시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선행자들 보다도 더 충분히 정신적 진리를 전개시키어, 오늘 우 리가 직면한 개인적 및 사회적 생활의 모든 문제에 관하여‘하 느님의 뜻’을 계시하셨다. 그분은 새롭고 더 좋은 문명이 건설 될 확고한 기초가 되는 보편적인 가르침, 지금 시작되는 새 시 대의 요구에 가장 적합한 가르침을 주셨다. 새로운 계시의 필요 인류세계의 통일, 세계 각 종교의 종합통일, 종교와 과학의 조 화, 세계평화의 건설, 국제중재재판소의 설립, 세계정의원의 설 치, 국제보조어의 제정, 여성해방, 교육의 보편화, 동산적 및 산 업상 노예제도의 폐지, 각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고 인류 를 일체로 한 인간 사회의 조직 - 이러한 것은 다 기독교도나 이슬람교도나 기타 각 종교의 신도들이 각 방면에서 가끔 맹렬 히 반대하여 온 매우 크고 곤란한 문제들이다. 그러나 바하올라 께서는, 일반에 적용하면 그것에 의하여 확실히 세계를 낙원으 로 만들 수 있는 결정적인 원칙을 분명히 계시하셨다. 진리는 만인을 위한 것임 바하이 가르침은 페르시아이나 그 밖의 동양 사람들에게는 매 우 좋은 것이지만, 서양의 여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불필 331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38.
    요하고 적당치 않은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기 쉬운 일이 다. 이와 같은 의견을 말하는 사람에게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바하올라의 대업의 의미에서는 세계의 이익을 위하는 일은 하느님의 일이요, 하느님의 모든 일은 세계의 이익을 위한 것 이다. 만일 어떠한 것이 진리라면 그것은 만인을 위한 것이요,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아무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이익을 위한 하느님의 대업은 단지 동양이나 혹은 서양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진리의 태양’의 빛은 동서양을 두루 비치고, 그 열은 남북을 널리 덥게 하여 남 북 양극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의 현시의 시대에 로마사람들과 희랍사람들은 그 대업을 오로 지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기네의 완전 한 문명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으니, 이 그릇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은총을 받지 못한 사람이 심히 많았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원칙과 바하올라의 가르침은 일치되는 것이어서 그 길이 또한 동일함을 알아야 한다. 세계는 날마다 진보한다. 이 신성한 제도, 즉 점진적으로 계시된 종교에도 태아의 시대가 있었고, 탄생하여 소아가 되고 지능 있는 청년이 되었다. 그리 하여 오늘에 그것이 찬연한 아름다움에 빛나고 무상의 광채를 발하게 되었다. 이 신비를 깨달아 광명을 받은 자의 세계에 사 는 사람은 행복하다.” 압돌바하의 마지막 소망과‘유훈’ 332 바하올라와 신시대
  • 339.
    새로운 국면(局面) 바하이신앙은 사랑하는지도자 압돌바하께서 세상을 떠나심 으로써 그 역사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이 새 국면은, 같은 정신적 유기체의 존재에 있어서 더 높은 상태, 즉 그 신자들이 느낀 신앙이 더 성숙하고 따라서 더 책임 있는 표현으로써 나타 나 있다. 압돌바하께서는 그 초인적인 정력과 비할 데 없는 능 력으로써 그분의 바하올라에 대한 사랑을 동서양에 널리 전파 하는 일에 헌신하셨다. 그분은 무수한 사람들의 영혼에 신앙의 촛불을 켜 주셨다. 그분은 개인의 정신생활의 특질에 따라서 저 들을 교도하셨다. 바하올라의 종교의 특별한 사명이 세계질서 의 건설인데, 그 질서의 모형(模型) 또는 중심이라고 불리우는 행정질서를 세울 때가 되었을 때 압돌바하께서는 세상을 떠나 셨다. 따라서 압돌바하의 소망과‘유훈’은 바하이 역사의 전환기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것은 미성숙하고 무책임하던 시대에서, 개인적 경험의 영역(領域)에서, 사회적 융합과 협력의 영역에 까지 그 범위를 넓힘으로써, 바하이신도 자신이 그 정신성을 실 현하도록 정해진 시대이다. 압돌바하에 의하여 남겨진 행정계 획의 주요한 세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하느님 대업의 수호자 2. 하느님 대업의 선양자 3. 지방, 전국 및 세계 정의원 하느님 대업의 수호자 압돌바하께서는 그분의 장손인 쇼기 에펜디를‘대업의 수호 333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40.
    자’(와리예 암롤라)로서의 책임있는 지위에 임명하셨다. 쇼기 에펜디는 압돌바하의 장녀 지아이예 카놈의 장남이며 그분의 아버지 미르자 하디는 바압의 친족이다. (바압의 외아들은 어려 서 사망하였으므로 그 직계는 아니지만), 쇼기 에펜디께서는 조 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 25세로 옥스포드의 발리올 칼리지에 서 수학 중이셨다. 그분의 임명에 관하여 압돌바하의‘유훈’에 다음과 같이 발표되어 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 이 피해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신성 한‘로트나무’의 가지와 작은 가지(즉 바압과 바하올라의 친 족)와 하느님의 대업의 선양자와‘압하의 미’의 사랑을 받는 자들은, 모름지기 두 신성한‘로트나무’(즉 바압과 바하올라) 에서 난 젊은 가지이며‘성질(聖質)의 나무’의 두 가지의 결합 에 의하여 성장한 열매인 쇼기 에펜디에게 향하라. 그는 진실 로‘하느님의 증적(證迹)’이요‘택함을 받은 가지’이며,‘하느 님의 대업의 수호자’이니, 모든‘가지’와‘작은 가지’와 하느 님의 대업의 선양자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은 모두 그에 게로 향하여야 한다. 그는‘하느님의 말씀’의 해석자이며, 그 의 지위는 그 직계의 장남이 승계할 것이다........ ... 신성한 젊은‘가지’인 하느님의 대업의 수호자도, 일반적으 로 선출되어 설립되는 세계정의원(바이톨 아들)과 마찬가지로, ‘압하의 미’의 보호 하에 성스러운‘고원자’(高遠者)의 비호와 오류 없는 지도를 받을 것이며, 나의 생명이 이 양자(兩者)를 위하여 바쳐질 것을 원한다. 그들이 결정하는 일은 어느 것이 나 하느님에 의한 것이다........ .. 그대들, 주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여, 하느님의 대업의 수호자 334 바하올라와 신시대
  • 341.
    는 생전에 그의후계자를 결정할 것이니, 그것은 그의 사후에 불화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결정된 자는 모든 속세의 사물을 초월하여 순결의 본질이 되고 하느님께 대한 외경(畏 敬)과 지식과 지혜와 학문을 체득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하느님의 대업의 수호자의 장남으로서‘아들은 그 조상의 비밀 의 본질이라’는 말씀의 진리를 체득하지 못하면, 즉 아버지(수 호자)에 내재한 정신적인 것을 계승하지 못하고, 또 그 영광스 러운 계통의 좋은 품격을 갖추지 못할 때는, 대업의 수호자는 다른‘가지’를 후계자로 택하여야 한다. 하느님 성업의 선양자는 그 동료 중에서 항상 하느님 대업의 수호자의 활동의 주요한 봉사에 종사할 자로 9명을 선출하여야 한다. 이들 9명의 선출은 하느님 대업의 선양자 중에서 전원일 치 혹은 과반수에 의한 결정으로써 한다. 그리고 하느님 대업 의 수호자가 택한 후계자도 이들 9명의 위원 전원 혹은 과반수 의 동의를 얻어서 결정한다. 이 동의는 찬부 어느 것이나 그 소 리를 내지 말고(무기명 투표) 행하여야 한다.” 하느님의 성업선양자 바하올라께서는 그 생전에 확실하고 신임할 수 있는 네 사람 의 벗을 택하여 대업의 활동의 지도와 계발에 협력케 하고, 그 들에게‘아야디예 암롤라’(성업선양자)라는 칭호를 주셨다. 압 돌바하께서는 그‘유훈’가운데 대업을 위하여 봉사하고 그 수 호자에 조력할 상설기구의 조직에 관한 규정을 기술하셨다. “벗들이여, 하느님의 성업선양자는 하느님 성업의 수호자에 의하여 지명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성업선양자는‘하느 335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42.
    님의 향기를 퍼뜨리고인간의 영혼을 훈도하며 어느 때나 어떠 한 경우에나 세속적인 일에서 성별(聖別)되어 초월하여 있어야 한다. 그들은 그 행위와 동작과 언어 등에 의하여 하느님에 대 한 외경을 나타내야 한다. 이 하느님의 성업선양자 기구는 하느님 대업의 수호자의 지 휘 하에 있다. 수호자는 그들이 항상 하느님의 향기를 발산하 고 세계의 전 인류의 지도에 전력을 다할 것을 항상 격려 하여 야 한다. 전 우주를 조명하는 지도의 광명이기 때문이다.” 행정질서 바하이 행정질서에 관하여는‘바하이 세계연감’제 5권 191 면 이하에 기록된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바하이 대업에 있어서 세계 행정질서의 원칙이 바하올라에 의 하여 정해졌고, 그것이 압돌바하의 문서, 특히 그분의‘유훈’에 서 발전하였다. 이 기구의 목적은, 서로 다른 민족, 계급, 이해관계, 성격, 그 리고 조상전래의 신조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참으로 영속할 수 있는 통일을 확립할 수 있게 함에 있다. 바하이 대업의 이 방면 에 면밀하고 동조적인 연구를 가한다면, 바하이 행정의 목적과 방법이 진실로 완전히 계시의 근본정신에 적용되어 있어, 행정 이 계시에 대한 것이 마치 육체가 영혼에 대한 것과 같은 관계 를 가졌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하이 행정의 원칙은 그 본질 에 있어서 세계적 범위의 새롭고 보다 높은 도덕형(道德型)을 제공하여 주는 것이다. 336 바하올라와 신시대
  • 343.
    바하이 공동체는 다른자발적인 집단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 기초가 깊이 뿌리박혀 있고 그 범위가 넓어서 성실한 사람이 면 누구나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단체는, 의도하는 바 는 아니더라도 그 실제에 있어서는 배타적이며, 또한 이상(理 想)하는 바는 아니더라도 그 방법에 있어서는 역시 배타적이지 만, 바하이의 모임은 성실한 사람이면 누구에게 대해서든지 친 화의 문을 닫지 않고 포용한다. 모든 집단에는 거기에 감추어 진, 혹은 드러난 어떤 선택의 출발점이 있다. 종교에 있어서의 이 출발점은 그 기원(起源)인 역사적 성실에 제한된 신조이고, 정치에 있어서의 그 출발점은 정당이나 정강(政綱)이며, 경제 에 있어서의 그 출발점은 공통의 불행과 불우와 공동의 힘이고, 예술과 과학에 있어서의 그 출발점은 특별한 훈련과 활동과 혹 은 관심이다. 이러한 모든 사항에 있어서는 선택의 출발점이 배 타적일수록 그 활동이 강력하여진다. 이와 같은 상태는 전혀 반 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하이대업은 그 성장과 진보의 정신에 따라 열성적 인 신도 수에 관계하여 천천히 발전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 든 분야에 배타와 분립의 습관을 가지고 있어 일반이 중요시하 는 일은 언제나 사회적 분열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바하이 활동에 참가하는 일은 이러한 인습(因習)을 버리는 일이므로 그 사람은 처음에는 인간의 자아(自我)가 인류애의 지고한 명 령에 반항하게 되는 새로운 시련과 고민에 부닥치게 된다. 장구 한 세월에 걸쳐 존재하였던 자부심과 특권의 우월감(優越感)을 제거한 기초 위에서, 과학적인 자는 무식하고 몽매한자와 사귀 어야 하고, 부자는 빈자와, 백인은 유색인종과, 신비주의자는 직해(直解)주의자와, 기독교도는 유대교도와 이슬람교도와 조 337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44.
    로아스터교도들과 서로 사귀어야한다. 그런데 이 곤란한 경험 에 대하여 영광스러운 보수가 있다. 예술의 공통의 인간성을 벗 어나면 그것은 무익한 것이 되고, 철학도 마찬가지로 고독하게 발달될 때 그 관찰력을 잃게 되며, 그리고 정치와 종교는 인류 의 전체적 요구에서 분리되면 그것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 을 알아야 한다. 인간성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우리는 모두 지능적 방어와 도덕적 방어와 감정적 방어 또는 사회적 방 어의 상태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방어의 심리는 곧 억제의 심리 인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공포심을 없애고 공포 심이 없어지면 잠재한 힘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정신적 사랑에 기초한 타인과의 사귐은 이러한 힘에 활기를 주어 적극성을 가 지게 한다. 바하이공동체는 이 시대에 있어서 이러한 과정(科 程)을 이루는 집단이다. 새로운 추진력(推進力)이 그 힘을 일으 키는,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나 신자들이 인류통합의 꽃을 피게 하는 힘을 인식할 때에는 더 급속히........ 지방의 바하이 문제에 대한 관리와 책임은 신성회라는 기구에 귀속되어 있다. 이 신성회(9인으로 된)는 매년 4월 21일, 즉 ‘레즈완’(바하올라의 선언을 기념하는 축제)의 첫날에, 그 공 동체에 등록된 성년 신도들에 의하여 선출된다. 이 신성회의 성 격과 임무에 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다. “모든 바하이 신도는 어떠한 바하이 활동을 하고자 할 때에 는 먼저 신성회에 문의하여야 하는 것이 의무로 되어 있다. 그 리고 그들은 신성회가 명하는 일에는 마음과 영혼으로써 확신 을 가지고 복종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각 개인이 독립하여 각자의 판단으로써 338 바하올라와 신시대
  • 345.
    행동할 것이므로 개인의욕망에 따라 대업에 해를 미치게 될 것이다. 집회하고 협의하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필수조건은, 동기 가 순수할 것, 빛나는 정신을 가질 것, 하느님 이외의 모든 세 속에서 떠날 것, 하느님의 성스러운 향기에 잠길 것,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 사이에 겸양하고 겸손할 것, 곤란에 대하여 참고 견딜 것, 그리하여 고원한 문턱에 봉사할 것 등이다. 그들 이 이러한 속성을 얻는 데에 은총의 도움을 받는다면, 보이지 않는‘압하의 나라’에서 오는 승리가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 약 속되어 있다. 오늘에 있어서 협의를 목적으로 하는 신성회는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에 대한 복종은 반드시 지켜 야 할 의무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성회 의원은 악감정이나 불 화를 일으키지 않는 방법으로 서로 협의 하여야 한다. 그것은 모든 신성회 의원들이 완전한 자유 하에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논지를 설명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일이다. 만일 누가 반대 하였다 하여도 그것이 결코 남의 감정을 상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문제가 충분히 토의되기 전에는 바른 방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의 빛나는 불꽃은 서로 다른 의견의 충돌이 있은 후에라야 나타난다. 만일 토의한 후에 전원일치로 의결되면 좋고 의견이 서로 다를 때에는(그러한 일이 없는 것 이 더욱 좋지만) 과반수의 의견이 채택되어야 한다. 첫째의 필요조건은 신성회 의원 사이의 완전한 사랑과 조화 (調和)이다. 그들은 불화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안에 하느님의 일체성을 나타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바다의 물결이요 한 냇물의 물방울이며, 한 하늘의 339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46.
    별이요 한 태양의광선이고, 한 과수원의 나무들이요 한 정원 의 꽃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랑의 조화와 완전한 통일이 없 다면 그 모임은 분산될 수 밖에 없고 그 신성회는 무익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둘째의 필요조건은 집회할 때 그들의 얼굴을 가장 높은 나라 로 돌려 그 영광의 나라에서 오는 도움을 구하여야 하는 것이 다......... 토론은 오로지 정신적인 사항에 국한 하여야 하나 니, 즉 영혼의 훈련, 어린이의 교도, 빈곤자의 구제, 세계에 사 는 모든 계급 가운데의 약자를 돕는 일, 모든 민족에 대한 친 절, 하느님의 향기를 발산하는 일, 그리고 하느님의 성스러운 말씀을 높이 찬양하는 일들에 관한 것이다. 만일 저들이 이러 한 조건의 성취에 힘쓴다면 성령의 은총이 저들에게 내려져서 그 신성회는 하느님의 축복의 중심이 되어 하느님의 확증의 군 대가 저들을 돕기 위하여 올 것이다. 그리하여 저들은 나날이 정신의 새로운 흐름에 잠길 것이다........ ..” 이 주제를 설명(說明)하며 쇼기 에펜디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 셨다. “어떠한 일이든지 그 지역의 신성회에 의하여 충분히 고려되 고 승인되지 않고서는 바하이 벗의 어느 개인에 의하여 대중에 게 공포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그 나라에 있어서의 대업의 일반적 이해관계에 속하는 일이면 그것은 여 러 지방신성회를 대표하는 전국신성회의 협의와 승인을 얻기 위하여 거기에 제출하는 것이 그 지방신성회의 의무이다. 개인 적 혹은 단체적인 그 지역에 있어서의 대업의 이해관계에 관하 여, 출판에 관한 일뿐 아니라 어떠한 예외도 없이 모든 문제는 340 바하올라와 신시대
  • 347.
    모름지기 그 지역의신성회에 문의하여야 한다. 지방신성회는 그것이 국가적 이해에 관한 것이 아니면 그것을 결정한다. 그 리고 그것이 국가적 이해에 관한 것이면 전국신성회에 문의하 여야 한다. 또 이 전국신성회에는 어떤 문제가 지역적인 것인 가 혹은 국가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것인가의 판단이 위임 되어 있다. (국가적 문제란 말은 그 성격이 정치적인 문제를 의미하 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의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떠한 방 법에 의한 것이든지 정치문제에 관여하는 것이 엄금되어 있다. 국가적 문제란 것은 그 나라에 있어서의 일반 바하이 공동체의 정신적 활동에 영향을 주는 일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러 지방신성회와 신도들 사이는 물론이요, 특히 각 개의 지방신성회와 전국신성회와의 사이에 충분한 협력과 조화 가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에 하 느님의 대업의 융합과 바하이 벗 사이의 결속과 하느님을 사랑 하는 자들의 정신적 활동의 충분하고 급속하고 효과적인 움직 임이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방신성회와 전국신성회 등 여러 신성회는 오늘날 공고한 기반을 이루어 그 강력한 기반 위에 장래에 세계정의원이 확고 하게 설립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신성회가 강력하게 조화적으 로 기능을 발휘하기까지는, 이 과도기(過渡期)가 끝나기까지는 그것이 실현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대업의 주지(主旨)는 독재적인 권위가 아니라 겸손한 사귐이요 전횡적(專橫的)인 권 력이 아니라 솔직하고 충실한 협의의 정신임을 명심하라. 참다 운 바하이 정신이 없이는 자비와 정의, 자유와 복종, 개인권리 와 존엄과 인종(忍從), 그리고 한편으로 경계와 사려(思慮)와 신중, 다른 한편으로 우정과 공평과 용기 등의 원칙을 조화시 341 제 15 장 회고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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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 수 없다..........” 한 나라의 여러 지방신성회는 다른, 선출된 9인으로 조직된 기구, 즉 전국신성회에 의하여 연결되고 조정된다. 이 전국신성 회는 각 지방의 바하이공동체에서 선출된 대의원에 의한 선거 를 통하여 매년 새로 선출된다. 이 대의원들은 지방공동체를 구 성하고 있는 모든 등록된 성인신도들에 의하여 선출된다. 대의 원들이 집회하는 전국대회는 비례대표제의 원칙에 의하여 선출 된 대의원들로써 구성된다. 대의원 총수는‘세계정의원’에 의 하여 정해지고, 그 총수가 각 지방공동체의 상대적 인원수에 비 례하여 할당된다. 이 전국대회는 되도록‘레즈완 축제’의 기간 중에 개최된다. (레즈완 축제의 기간이란 것은 바하올라께서 바 그다드 교외에 있는 레즈완동산에서 행한 선언을 기념하는 4월 21일부터 12일 간이다.) 대의원을 승인하는 일은 전기(前期) 의 전국신성회에 위임되어 있다. 전국대회는 바하이활동에 대한 개인의 인식을 깊게 하고 또 전년도의 전국적 및 지방적 활동의 보고를 하고 듣는 기회이다. 이 대회에 관하여 일반에게 공개하는 바하이 집회를 가지는 것 이 관례가 되어 있다. 바하이 대의원들의 임무는 전국대회에 출 석하는 일과 새 전국신성회의 선거에 참가하는 일에 한정된 것 이 아니다. 회의 기간 중 그 대의원들은 협의단인 동시에 상담 단 이어서 그들의 건의는 새로 선출된 전국신성회에 의하여 신 중히 고려되어야 한다. 전국신성회와 지방신성회 및 그 나라 신 도와의 관계는 수호자의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전국신성회의 설립에 관해서는, 그 사정형편이 좋고 바하이 신도의 수가 상당한 수에 달한 모든 나라에서는 그 나라 전체 342 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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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3 의 바하이 신도를대표하는 전국신성회가 곧 설립되는 것이 매 우 중요한 일이다. 그 직접적인 목적은 자주 행하는 협의에 의하여 지방신성회 와 마찬가지로 바하이 신도들의 다방면의 활동을 자극하고 통 합하고 조정하기 위한 것이요, 그리고‘성지’와의 밀접하고 끊 임없는 접촉을 가짐으로써 방책을 시행하고 일반적으로 그 나 라에 있어서의 대업의 업무를 관리하는 일이다. 그것은 또 첫째의 목적과 비등하게 중요한 다른 목적도 가졌 으니, 압돌바하의‘유훈’가운데‘제 2위의 정의원’이라고 언 급되어 있는 전국정의원으로 발전되는 그것이다. 전국신성회는 압돌바하의‘유훈’의 명백한 원문에 의하면, 바하이 세계를 통 하여 다른 전국신성회와 더불어 국제 혹은 세계정의원의 의원 을 직접 선출하여야 한다. 그 세계정의원은 전 세계를 통하여 바하이 활동을 지도하고 조직하고 통합하는 최고의 기구이다. 이 전국신성회는 세계정의원이 아직 설립되어 있지 않은 동안 매년 한번 씩 새로 선출 되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분명히 중대 한 책임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 관할지역에 있어서의 모든 지방 신성회에 대하여 충분한 권한을 행사하여야 하고, 또 바하이 신 도들의 활동을 지도하고 하느님의 대업을 신중히 보호하며, 일 반적인 바하이 활동을 통제하고 감독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나라에 있어서의 대업의 이해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 문제, 예컨대 번역과 출판, 마슈리꼴 아즈카르, 포교활동, 기타 비슷 한 사항으로서 어느 지방에 관한 문제에서 명확히 구별되는 다 른 일들은 전국신성회의 충분한 권한 하에 두어야 한다.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50.
    우리 모두가 사랑하여봉사하는 대업을 위하여, 전국대회에 서 대의원들이 선출한 새 전국신성회의 임무는,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대회에 모인 대의원들의 권고와 신중한 의견과 진실한 소감을 들어, 그것에 최대의 관심을 가지는 일이다. 그 들 가운데서 비밀과 지나친 침묵과 독재적인 무관심 등의 모든 자취를 추방하여 버리고, 그들의 계획과 그들의 희망과 그들의 관심사를, 그들을 선출한 대의원들의 면전에 빛나게 충분히 표 명하여야 한다. 그들은 임기 중에 고려하여야 할 여러 가지 사 항을 대의원들에게 충분히 알려야 한다. 그리고 대의원들의 의 견과 판단을 냉정하고 양심적으로 연구하고 음미하여야 한다. 새로 선출된 전국신성회는 전국대회 개최 중의 며칠 동안과 대 의원들이 해산한 후에 이해력을 증진하고 의견교환을 촉진하며 확신을 깊게 하는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여, 모든 명백한 증거 에 의하여 그들의 유일한 염원이, 공공의 복리에 봉사하고 그 것을 촉진시키는 일임을 증명하여야 한다. 그런데, 빈번하고 여러 날 계속되는 전국대회의 소집에 따르 는 피할 수 없는 불편 때문에 전국신성회는 그 책임으로써, 대 업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관한 최종판단, 즉 어 떤 지방신성회가 대업의 행동과 발전을 위하여 규정된 여러 원 칙에 따라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가 어떤가 하는 판단을 내리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매년 지방 바하이 선거에 사용되는 선거명부의 작성에 관해서 는 그에 대한 책임이 각 지방신성회에 있고 그 일에 대한 지도 서로서 수호자께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셨다. “어떤 사람을, 참다운 신도로 인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판 344 바하올라와 신시대
  • 351.
    단을 내리기 전에,신중히 생각해야 할 중요한 요소를, 극히 간 단히, 현재의 상태에서 적어보기로 한다. 1. 압돌바하의‘유훈’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은, 바하이대업 의 선구자, 창시자, 그리고 참다운 구현자(具現者)의 지위 를 충분히 인식할 것. 2. 그분들의‘붓’에 의하여 계시된 어떤 것이든지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복종할 것. 3. 우리의 사랑하는 분의 성스러운‘유훈’의 모든 조항을 충 실하고 확고하게 준수할 것. 4. 오늘의 바하이행정의 형태와 함께 그 정신을 이해하여 거 기에 밀접하게 참여할 것....... 이러한 것들은 이와 같은 중대한 판단에 도달하기 전에, 공평 하고 신중하며 주의깊게 확인되어야 할 기본적이며 가장 중 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압돌바하의 지시에는 바하이 조직의 한층 더 높은 발전에 대 해서도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든 선(善)의 근원이 되고 모든 오류에 서 해방되도록 정하신‘베이톨 아들’(정의원)에 관해서 말하자 면, 그것은 신자들 일반의 투표권에 의하여 선출되어야 한다. 그 의원은 하느님을 외경하고 지식과 이해(理解)의 새벽이 되 며 하느님의 신앙에 확고부동하고 전 인류의 행복을 비는 자들 이어야 한다. 이 정의원이란 것은 세계정의원을 의미하는 것으 로서, 각국에 제 2의 정의원이 설립되어야 하고 이들 제 2의 정 의원이 세계정의원을 선출하여야 한다. 345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52.
    이 세계정의원에 모든일을 문의하여야 한다. 세계정의원은 성스러운 글에 명백히 씌어 있지 않은 모든 계율과 규칙을 제 정한다. 세계정의원에 의하여 모든 곤란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 며 대업의 수호자가 그 신성한 의장으로서 생존 중에 그 기구 의 존귀한 의원이 된다. 만일 그 자신이 회의에 출석하지 않을 때는 그를 대리할 한 사람을 지명하여야 한다. 이 정의원은 법 률을 제정하고 집행부가 그것을 시행한다. 입법기관은 집행부 를 지지하고 집행부는 입법기관을 원조하여야 한다. 그리함으 로써 이 두 기관이 밀접한 결합과 조화를 통하여 공평과 정의 의 기초가 확고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의 모든 영역(領域) 이 낙원과 같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가장 성스러운 책’(케 타베 악다스)에 향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글에 명백히 기록되 어 있지 않은 모든 일은 정의원에 물어야 한다. 이 정의원이 전 원일치 혹은 과반수로써 의결한 것은 진실로 진리요 하느님 자 신의 목적이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자는 누구든지 진실로 불화 를 좋아하고 악의를 보이고 성약의 주에게서 얼굴을 돌리는 자 의 한 사람이다.” 오늘에 있어서도 전 세계의 모든 지역에 있는 바하이들은 규 칙적인 통신과 개인적 방문의 수단에 의하여 친밀하고 진정어 린 교제를 계속하고 있다. 이 서로 다른 인종, 국적, 종교적 배 경을 가진 신도의 교제는, 편견과 분파의 역사적 요소가 바하올 라에 의하여 세워진 일체성의 정신을 통하여 완전히 극복된 구 체적인 증거인 것이다. 바하올라의 세계질서 이 질서의 보다 큰 암시는, 1929년 2월부터 계속하여 바하이 346 바하올라와 신시대
  • 353.
    공동체에 보낸 서한에서쇼기 에펜디에 의하여 설명되었다. “나는 이 신교의 신도로서 알려져 있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노 니, 오늘의 지배적인 생각이나 일시적인 유행을 돌아보지 말 라. 그리고 현대문명이 논파(論破)한 이론이나 허약하고 미덥 지 않은 여러 가지 제도가 일찍이 없었던 것처럼 무너지고 그 위에 세워질 운명에 있는, 하느님께서 주신 제도가 분명한 대 조(對照)로써 나타나리라는 것을 깨달으라.,,,,,,,,, 왜냐하면 바하올라께서는........ 인류에게 단지 새로운 재생의 정신을 불 어넣으셨을 뿐이 아니다. 그분은 다만 어떤 일반적 원칙이나 특수한 철학을 - 그것들이 아무리 강력하고 건전하여 보편적이 라 할지라도 - 선언하시거나 제의하셨을 뿐이 아니다. 그것에 첨가하여 바하올라께서는 그분의 후계자 압돌바하와 함께 과거 의 종교제와는 달리, 법전을 명확히 제정하시고 결정적인 제도 를 확립하시며 신성한 조직에 관한 중요한 일을 규정하셨다. 이러한 것들은 장래사회의 규범으로서‘최대의 평화’를 확립하 는 지고한 수단이 되고, 또 세계 통일과 이 지상에 있어서의 정 도(正道)와 정의의 지배를 선언하는 유일한 힘이 되도록 정해 져 있다........ . 그리스도의 종교제와도 다르고 모하멧의 종교제와도 다르며, 또한 과거의 모든 종교제와도 달라서, 모든 나라에 있는 바하 올라의 사도들은 그들이 어디서 노력하고 있든지 그들의 눈앞 에는 분명하고 의심 없는 강력한 말씀으로 된, 그들의 임무 수 행상 필요한 법과 규율과 원칙과 제도와 지도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하이 계시의 특수한 점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 신앙의 일체성의 힘, 즉 이전의 여러 계시를 파괴하거나 경시 하지 않고 그 계시들을 결합하고 통합하고 그 실현을 주장하는 347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54.
    이 계시의 타당성의힘이 있는 것이다. ........ 비록 우리의 신앙이, 이것을 이슬람교의 일파라고 비난하거 나 또는 서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애매한 몇 개 종파의 또 하 나쯤으로 생각하여 멸시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심히 약하게 보 일지는 모르지만, 이 하느님의 계시라는 귀중하고 훌륭한 보석 은 아직은 그 움트는 시기에 있으나, 바하올라의 계율이라는 껍데기 속에서 자라서 그것이 전 인류를 포용하기까지 분열하 는 일이 없이, 또 약해지고 손상되는 일이 없이 발전할 것이다. 바하올라의 사랑으로 눈을 떠서 바하올라의 정신의 힘을 잘 알 고 있는 사람만이 충분히 이 신성한 조직, 즉 바하올라의 인류 에 대한 측량할 수 없는 선물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 다.”(1930년 3월 21일) “이 목표를 향하여 괴로움 속에 있는 인류는 노력하면서 나 아가야 한다. 즉 이 목표는 그 기원이 하느님이요, 그 범위가 모든 것을 포함하고 그 원리가 공정하고 그 특징이 주의를 요 하는 신세계질서이다. 바하올라에 의하여 예시(豫示)된 세계통합을 성취하느냐, 그 렇지 않으면 멸망하느냐하는 현 시점에, 시대의 정신을 전혀 무시하고 옛날의 자기자족적(自己自足的)인 나라에 알맞은 국 가의 길을 그대로 적응시키려고 노력하는 인류사회의 지도자들 의 노력은 참으로 얼마나 슬픈 일이랴. 문명의 역사에 있어서 의 이와 같은 중대한 위기에 처하여, 세계의 모든 나라 - 작은 나라거나 큰 나라거나, 동양에서거나 서양에서거나, 또는 정복 하는 나라거나 정복 당하는 나라거나를 막론하고 그 지도자들 은 바하올라의 명확하고 날카로운 부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세계의 일치공통, 즉 바하올라의 대업에 충성을 바침 348 바하올라와 신시대
  • 355.
    에 완전히 동화(同化)되어,신성한 의사인 그분이 병든 인류에 게 처방한 치료법을 그대로 용감하게 시행하기 위하여 일어서 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모든 선입견과 국가적 편견을 깨끗이 버리고 바하올라의 가르침의 권위 있는 해석자인 압돌바하의 숭고한 권고에 귀를 기울이게 하라. 아메리카합중국 연방정부 에 재직해 있는 한 고관이 그 정부와 국민의 이익을 증진하는 최선의 방법을 물은 데 대하여 압돌바하께서는 대답하셨으되. ‘귀하가 만일 세계시민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나라들 사이 에 현존하는 여러 가지 관계에 있어서, 귀국 정부의 기조가 되 어 있는 연방제도 원칙의 종국적 응용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한 다면 그것이 곧 귀하 자신의 나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 다.”(1912년에) “어떤 형태의 세계 초국가(世界超國家)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세계의 모든 나라는 자발적으로, 전쟁하는 모든 권리주장과 어느 정도의 과세권(課稅權)과 여러 나라 각자의 영토의 내부적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이외의 군비를 가지 는 모든 권리를 이양(移讓)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세계 국가 는 그 권내(圈內)에, 그 연방을 구성한 국가 중의 순종하지 않 은 나라에 대하여 이것을 굴복시킬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을 행 사함에 적당한 국제집행부와 각 국민에 의하여 선출되고 그들 의 정부에 의하여 인증된 의원들로써 조직된 세계의회와, 관계 국 쌍방이 자발적으로 사건을 재판에 위임하는데 동의하지 않 는 경우에라도 그 판결이 구속력을 가진 국제재판소를 가져야 한다. 그 세계사회에는 모든 경제적 장애가 영구히 제거되고, 노동과 자본의 상호의존이 명확히 인정되며, 종교의 광신으로 인한 분쟁이 영원히 진정되고, 인종적 증오와 적대행위가 마침 349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56.
    내 없어지며, 또한단 하나의 국제 법전(國際法典) - 세계연방 대의원들의 충분히 생각한 판단에 의하여 이루어진 - 이 연방 여러 구성국이 결정한 병력으로써 즉시 제재할 수 있는 강제적 간섭력을 가지게 되어, 으쓱대던 군사적 국가주의가 마침내 세 계시민이라는 영원한 자각으로 바뀌는, 이와 같은 국제공동체 야말로 광범한 윤곽에 있어서 바하올라에 의하여 예기(豫期)되 어 있는 질서요, 천천히 성숙하여 가는 시대의 가장 눈부신 성 과로 볼 수 있는 질서인 것이다........ 바하올라의 세계를 포괄하는‘법’에 활기를 주는 목표에 관 하여 의혹을 가지지 말라. 그것은 현존하는 사회의 기초를 파 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변해가는 세계의 필요에 응하여 그 기초를 확장하고 그 제도를 만들어 놓는 데에 목적이 있다. 그것은 어떤 본래의 정통적인 충성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요, 또 본질적인 충의(忠義)를 저해하는 것도 아니다. 그 목표는 인간의 마음 가운데 있는 진정하고 이지적(理智的)인 애국적 열정을 억압하는 것도 아니요, 또 과도한 중앙집권화의 피해를 피할 수 없어, 매우 중요한 민족과 국가를 구별하고 특징짓는 종족적 기원과 풍토와 역사와 언어와 전통과 사상과 습관의 다 양성(多樣性)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요 또 억압하려는 것도 아 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인류에게 활기를 준 어떤 것보다 더 넓 은 의미의 충성과 더 큰 포부를 요구한다......... 바하올라의 호소는 주로 모든 편협주의와 섬나라 근성과 편 견에 대하여 외쳐지고 있다....... 왜냐하면 법률의 표준과 정치 적, 경제적 이론은 오로지 일반 인류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생 각해 낸 것이요, 인류로 하여금 어떤 특정한 법칙이나 교리의 완전성을 위하여 희생케 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체 350 바하올라와 신시대
  • 357.
    성이라는 원칙 -그 주위에 바하올라의 모든 가르침이 회전하 는 중축(中軸)은 한갓 무지한 주정주의(主情主義)의 폭발도 아 니요, 또 애매하고 경건한 희망의 표현도 아니다......... 그 함 축성 있는 주장은 과거의 예언자가 제창한 어느 것보다도 의미 가 심원하고 위대하다. 그 계시는 비단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모든 국가와 민족을 하나의 인류가족의 구성 원으로 하여 통합할 본질적인 관계의 성질을 가진 것이 다......... 인류의 일체성이라는 원칙은 인류 진화의 극치(極致)를 의미 한다......... 세계적 대 파괴의 힘만이 이러한 인간사고(人間事 考)의 새로운 국면(局面)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슬픈 일이 지만 점차로 명백해졌다......... 격렬한 시련 - 그것으로서 인 류는 세련되고 준비되어 나타나는 것이지만 - 이 없이는 무엇 이나 신생시대(新生時代)의 지도자들의 두 어깨에 짊어지고 일 어설 책임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압돌바하께서는 명 확한 말씀으로써‘이전 보다 더 격렬한 전쟁이 틀림없이 일어 난다.’고 주장하지 않으셨는가.”(1931년 11월 28일) “이 행정질서는 그 구성요소와 유기적 기관이 능률과 용기로 써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함에 따라, 때가 오면 전 인류를 포용 하도록 정해져 있는 새 세계질서의 핵심이 될 뿐 아니라 마땅 히 그 규범이 되는 권리를 주장하고 또 그와 같은 능력을 보일 것이다......... 바하이신앙은 과거에 나타난 모든 계시 중에서 독특 무비한 것이다. 그 구조는 파탄된 종파의 추종자들이 접근하여 비판적 으로 연구할 수 있고 때가 늦기 전에 세계 포괄의 보호 안에 흔 들림 없는 안전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351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58.
    이 행정질서 -그것은 미래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하이 연 방의 기본이다. - 가 나타낼 위력과 존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면, 바하올라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것인가. 즉‘세계의 균형은 이 가장 위대한 새 세계질서의 고동적(鼓動的) 영향으로 말미암아 뒤집히고, 인간의 정형화 (定刑化)된 생활은 이 비류 없는 경이적 조직의 힘 - 이와 같은 조직은 인간의 눈으로 일찍이 본 일이 없다. - 에 의하여 혁신 되었다......... 이 거대한 행정질서가 그 유일한 기구(機構)인 장래의 바하 이 연방은, 이론과 실제의 양 면에 있어서 단지 정치기구 전체 의 역사에서 비류 없을 뿐 아니라 세계가 인정하는 어떠한 종 교제의 기록에서도 그 유례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형 태의 민주정치도, 군주정치 혹은 공화정치도, 전제정치 혹은 독재정치도, 또 순순한 귀족적 중용적인 조직도, 어떤 신정(神 政)의 형태, 예컨대 히브리연방이나, 여러 가지 기독교 교회의 조직이나, 이슬람교의 에맘제와 칼리프제나, 그 어떤 것이든지 완전한‘건축사’의 손으로 이루어진 이 행정질서와는 비교할 수도 없고, 일치될 수도 없다....... 이 조직이 아직 요람기(搖籃期)에 있는 동안은 누구나 그 의 의를 경시하거나 그 목적을 오전(誤傳)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행정질서가 세워진 암상(岩床)은 현대에 있어서 하느 님께서 인류에게 바라시는 변함없는 의도이다. 이 행정질서가 그 고무(鼓舞)를 받는 근원은 바하올라 자신이다...... 그것에 활기를 주는 기본적인 중심목표는 바하올라에 의하여 예시된 세계질서의 확립이다. 그 쓰는 방법과 그 가르치는 표준은 동 양 혹은 서양에나, 유대인 혹은 이교도(異敎徒)에게나, 부자 352 바하올라와 신시대
  • 359.
    혹은 빈자에게나, 백인혹은 유색인에게나 치우치지 않는다. 그 신호는‘인류의 통합’이요, 이 표지(標識)는‘최대의 평화’ 이다.”(1934년 2월 8일) “하느님의 종교의 행정질서가 진척됨에 따라서 부단히 누적 (累積)되는 통합의 증거와 변천해 가는 사회조직을 무너뜨리는 분해력과의 대조가 명확하게 보인다. 이 질서의 설립이 하느님 의 대업의 황금시대를 신호하는 것이거니와, 지금 바하이 세계 의 내외에는 신비스럽게도 이 세계질서의 탄생을 예고하는 여 러 가지 징후가 날로 더해가고 있다..... 또 바하올라 자신의 말씀이 그것을 선언하는 것이니, 즉‘멀 지 않아서 오늘의 질서는 걷혀지고 그 대신 새로운 질서가 전 개되리라.’고 하셨다. 바하올라의 계시는........ 그분 출현에 의하여‘전 인류가 성 숙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단지 부단히 변해가는 인류의 운명에 있어서의 또 하나의 정신적 부 흥일 뿐 아니라, 또 일련의 점진적 계시의 한 걸음 더 나간 단 계라든가 회귀(回歸)하는 예언적 주기(週期)의 한 극치(極致) 로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보다도 이 지구상의 인간의 집단생 활의 놀라운 진화에 있어서의 최후이며 최고의 단계를 의미하 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공동체의 출현, 세계시민 이라는 자각, 세계문화와 문명의 확립........ 그것은 인간 개인 으로서는 실제에 있어서 이와 같은 극치의 결과로서 무한히 진 보 발달을 계속하는 것이지만, 이 지구상의 생활에 관한 한도 안에서는 인간사회의 기구(機構)에 있어서의 최고의 한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53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60.
    바하올라에 의하여 나타난인류의 일체성은 모든 국가와 민 족과 종파와 계급이 밀접하게도 영구히 통합되는 세계연방의 설립을 의미하는 것이니, 거기에는 그 연방 구성국의 자치권과 그들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창의력이 확정적 으로 또 완전히 보장된다. 이 연방에 우리가 구상화(具象化)할 수 있는 한에서는 세계입법부를 포함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입법부의 의원은 인류전체의 신탁을 맡은 사람으로서 궁극적으 로 모든 구성국가의 모든 자원(資源)을 통할하고 모든 인종과 민족의 관계를 조정하고 생활을 규정하고 요구를 만족시킴에 필요한 법률을 제정할 것이다. 그리고 국제적 병력(兵力)의 배 경을 가지고 있는 세계집행부는 세계입법부에 의하여 제정된 법률과 의결사항을 시행하여 전 연방의 유기적 일체성을 옹호 할 것이다. 세계재판소는 이 세계적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여 러 구성원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분쟁에 대하여 그것을 재판하 여 강제적이며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것이다. 국제적 장해와 제한에서 개방된, 전 지구를 포함한 세계 통신기관이 도출되어 경이적인 신속성과 완전한 정확성으로써 기능을 발휘할 것이 다. 세계의 중심도시는 세계문명의 중추(中樞)가 되어, 생명의 통합적 모든 힘이 집중되고 또 거기서 생명의 강력한 영향력이 발생하는 초점으로서 작용할 것이다. 세계어는 새로 고안되든 가 혹은 현존하는 언어 중에서 선택되어 전 연방의 학교에서 모국어에 대한 보조어로서 가르치게 될 것이다. 세계문자와 세 계문헌, 그리고 공통적인 세계통화(通貨)와 도량형(度量衡)의 제도는 인류의 국가와 민족 사이의 교류와 이해(理解)를 간편 하고 용이하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세계사회에서는 인류생활 의 가장 큰 두 가지 힘인 과학과 종교는 서로 화합하고 제휴하 여 조화적 발전을 이룰 것이다. 신문과 잡지는 이와 같은 제도 354 바하올라와 신시대
  • 361.
    하에서는 인간의 여러가지 의견이나 신념을 충분히 표현하여 도 사적(私的)이나 또는 공적인 기성세력에 의하여 해롭게 조 종되는 일이 없고 또 투쟁적인 정부나 민족의 영향에서 해방될 것이다. 세계의 경제적 모든 자원은 개발되어 충분히 이용되고 세계시장은 정비되고 발전되어 생산품의 분배가 공정하게 규정 될 것이다. 국가 사이의 경쟁과 증오와 음모는 없어지고 인종적인 적대 (敵對)와 편견은 인종적 친선과 이해(理解)와 협조로 바뀌며, 종교적 분쟁의 원인은 영원히 제거되고 또 경제적 장벽과 제안 은 완전히 없어지며, 계급사이의 과도한 차별은 철폐될 것이 다. 한편에는 빈곤이 있고 다른 한편에 소유권의 과다한 축적 이 있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혹은 정치적으로나 전쟁에 의하여 낭비되던 거대한 정력은 인간의 발명과 기술발 전의 범위를 넓히는 일에, 인류의 생산력을 증진하는 일에, 질 병을 박멸하는 일에, 과학적 탐구를 진전시키는 일에, 육체적 건강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에, 인간의 두뇌를 현명하게 하고 정화시키는 일에, 지구상에 아직 사용되지 않는 상상할 수 없 이 많은 여러 가지 자원을 개발하여 이용하는 일에, 정신적 생 활을 고무(鼓舞)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다른 기관을 증진시키는 일에 바쳐질 것이다.” “세계연방조직 - 그것은 전 세계를 통치하여 그 상상할 수도 없는 막대한 자원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동양과 서양의 이상(理想)을 융합하여 일체가 되게 하며, 전쟁의 저주와 비극 에서 해방되고 지구표면의 모든 유용한 에너지원(源)의 개발에 힘쓸 것이며, 거기에는 힘의 정의의 종이 되고, 생명의 유일신 (唯一神)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 공통적인 계시에 대한 충성에 355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62.
    의지하여 지지되는 조직- 이러한 것이야말로 인류가 생명의 통합력에 의하여 자극을 받으면서 나아가는 목표이다........ 전 인류는 고민하고 있다. 통합으로 인도되기 위하여, 또는 옛날부터 끊임없이 일어난 순교(殉敎)에 종지부를 찍게 되기를 충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의연히 혼미한 가운데 있어, 그들을 삼키려고 위협하는 불행에서 광명으로 구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의 최고권위를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현재의 인류사회는 전 인류의 통합의 단계에 접근하여 있음 을 실증한다. 가족, 종족, 도시국가 및 국가의 통합은 계속적으 로 시도되어 충분히 확립되었고, 이제 세계통합이 고민하는 인 류가 분투노력하여 나아가야 할 목표가 되었다. 국가를 세우는 시대는 끝났다. 국가 주권에 뿌리박은 무질서는 그 절정(絶頂) 에 달하였다. 성숙(成熟)에 가까워진 세계는 이 물신(物神)을 버리고 인간 상호관계의 일체성과 전체성을 인정하여, 세계적 생활이 이 근본원리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기구(機構)를 결정적으로 수립하여야 한다.”(1036년 3월 2일) 압돌바하의‘유훈’에서 뽑은 것 추가 압돌바하의‘유훈’이 극히 중대한 의의를 가졌고 그 제기한 문제의 중요성과 그 여러 조항의 기초가 되는 지혜의 심오함에 비추어, 지금 여기에 새삼스럽게 그 내용에 주석을 가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위에 기술해 온 이 바하이신앙의 개략의 가장 적당한 마감으로서, 압돌바하를 고 무하고 지도하고 그분의 충실한 신도들에게 최대의 유산이 된, 그 정신과 주요원리를 뚜렷이 나타내는 몇 가지를 뽑아서 여기 에 추가한다. 356 바하올라와 신시대
  • 363.
    “그대들, 주의 사랑을받는 자들이여, 이 신성한 종교에서는 쟁투와 논쟁은 결코 허용 되지 않는다. 모든 침략자는 그 자신 이 하느님의 은총에서 제외된다. 모든 사람은 최대의 사랑과 방정한 행위와 정직과 참된 친절로써, 벗이거나 모르는 사람이 거나를 막론하고 세계의 모든 사람을 대한다면 모르는 이도 벗 이 될 것이요 원수도 참다운 형제가 되어,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없을 것이다. 세계성(世界性)은 하느님의 것이요 모든 제한은 지상(地上)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친애하는 벗들이여. 최대의 성실과 진실과 공 정과 경애와 호의와 우애로써 세계의 모든 종족과 동포와 종교 인들과 사귀라. 그리함으로써 존재(存在)의 전 세계는 바하의 은총의 성스러운 법열(法悅)에 잠기어, 무지와 적의(敵意)와 증오와 원한은 자취를 감추고, 각 민족 사이의 소격(疏隔)의 어 두움은‘융합의 빛’에 그 자리를 물려줄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타국민이 그대들에게 성실치 않거든 그대들의 성실을 보여주 고, 공정치 못하거든 그대들의 정의를 그들에게 보여주어라. 그 들이 그대들에게 탐탁스럽지 않거든 그들을 그대들에게 끌도록 힘쓰라. 그들이 그대들에게 적개심을 보이거든 그대들은 그들 에게 우정으로써 대하여라. 그들이 그대들의 생명에 해독을 끼 치거든 그들의 영혼을 부드럽게 하여주어라. 그들이 그대들을 손상하거든 그들의 아픈 곳을 위한 진통제가 되어라. 이러한 것 이 성실한 자의 속성이요 이러한 것이 정직한 자의 속성이니 라.” “그대들, 주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여. 모든 정의의 군주에게 복종하고 공정의 제왕에게 충성을 보이는 것은 그대들의 의무 이다. 진실과 충성을 다하여 세계의 통치자들에게 봉사하라. 357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64.
    그들에게 순종을 보이고그들에게 호의를 가지는 자가 되라. 그들의 허락이 없이 정사(政事)에 간섭하지 말지니, 공정한 군 주에게 불충하는 것은 하느님께 불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것은 나의 훈계이며 또한 그대들에 대한 하느님의 명령이다. 이 명령에 따르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라.” “주여, 만물이 나를 위하여 울고 있으며 나의 동포 중에 나의 슬픔을 기뻐하는 자가 있음을 당신은 보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의 하느님이시여, 당신의 영광으로써 아뢰옵거니와, 나의 적 들 가운데 내가 받는 재앙과 고난을 슬퍼하는 자가 있고, 나를 시기하는 자들 가운데도 나의 심려와 추방과 고뇌에 눈물을 흘 리는 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저들이 내 마음 가운데 근심과 걱 정만이 있음을 보고 또 친절과 자비 이외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난과 걱정의 파도에 휩쓸려, 마치 운 명이 화살의 과녁으로서 드러나 있음을 보고는, 저들에게도 동 정심이 생기어 눈물을 흘리면서 증언하되,‘주께서는 우리들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그분에게는 다만 충성과 관용과 최대의 자 비가 있음을 볼 뿐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재앙을 예언하는 성 약파괴자들은 더욱 원한의 불꽃을 일으켜, 내가 최대의 고난에 빠진 것을 기뻐하고 더욱 나를 괴롭혔으며, 가슴이 찢어질 듯 한 불행한 경우에 그들은 박수를 보내면서 좋아하였습니다.” “주여, 저의 하느님이시여. 제가 말과 마음을 다하여 간원하 옵나니, 저들의 포악과 비행과 교활과 사악(邪惡)에 대하여 보 복하지 마시옵소서. 저들은 다만 우매하고 비천하여 자신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들은 선악과 곡직(曲直)과 정사(正邪)의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에 따라 그 가장 악하고 가장 어리석은 행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저의 주여. 358 바하올라와 신시대
  • 365.
    원컨대 저들을 불쌍히여기사 이 어려운 때에 저들을 비호하여 난을 면하게 하시옵소서. 저로 하여금 일체의 고난을 맛보게 하시고,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희생이 되게 하시옵소 서. 가장 높이 계신 주여. 저의 영혼과 생명과 존재와 정신, 저 의 일체를 저들을 위하여 바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느님, 저 의 하느님. 당신 앞에 엎드려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저를 해하 는 자를 용서하여 주시옵고, 저에게 모반하고 저를 괴롭힌 자 를 사하여 주시오며, 저에게 불의를 행한 자들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옵소서. 원컨대 저들에게 당신의 은혜를 베푸사 기쁨 을 주시옵고, 근심을 없이하고 평화와 번영을 주시오며, 저들 을 축복하사 저들에게 당신의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당신은 전능하시고 은총이 깊으시고 위험에서 구해 주시며 자존하시는 분이시옵나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기 자신과 지상의 모든 사물(事物)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이해 관계와 일체의 소유물을 버리고 자아와 욕정을 깨끗이 떠나서 절대적인 헌신으로써 각지에 유세(遊說) 하여, 세계 만민을‘하느님의 지도’안으로 이끌어 들였다. 그 리하여 마침내 세계로 하여금 다른 세계가 되게 하고 지상에 빛 을 주어, 그들의 최후의 날까지도‘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의 길에 따라서 자기희생의 정신을 보여 주었고, 그들은 마침내 여 러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순교의 난을 당한 것이다. 세상의 열성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발자국을 따르게 하라.” “하느님, 저의 하느님. 저는 주님과, 주님의 예언자와 사자와 성자와 그 밖의 성스러운 이들에게 바라옵나니, 제가 마침내 주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증거를 결정적으로 선언하고 저들에게 모든 것을 분명히 알려주어, 저들이 주님의 신앙을 359 제 15 장 회고와 전망
  • 366.
    수호하고 주님의 바른길과 주님의 빛나는 계율을 지키게 한 것을 증거하여 주시옵소서. 진실로 주님은 전지하시고 영명하 신 분이시옵나이다.” 360 바하올라와 신시대
  • 367.
    361 제 15 장회고와 전망
  • 368.
  • 369.
    363 찾아보기 찾 아 보기 ‘차례’에 의하여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대개 제외하였음. 가지 ················61, 146, 243 갈릴레오 ···················222 갈바니 ····················222 계시, 새 계시의 발생지 ·············13 새 계시의 필요 ················285 바하이 계시의 충만 ··············145 점진적 계시 ·················139 꽃 성직자 ···················64 교육 ·····················171 구름(인자가 타고 오는) ············257 구세주·················6, 18, 228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238 나밥 ·····················61 나집 파샤 ···················34 노예제도 ···················164 녹테 올라 ···················19 니야와란 ···················29 다리우스 ···················13 다아윈 ····················222 데일라미트 인 ·················20 동맹파업 ···················165 레즈완 동산················34, 282 마쿠의 요새 ··················22 마이어스 ···················232
  • 370.
    364 바하올라와 신시대 마젠다란 ···················19 마즈라에성··················40 막달라의 마리아 ···············168 메디나 ····················16 메흐디 ····················18 메카 ·····················17 모니레 카놈 ··················61 모세가 말한 예언자의 증거 ············9 모세의 치료법 ················142 모세의 율법 ·················140 모하멧의 전통 ·················17 모하멧의 독신생활 의견 ············196 모하멧 파샤 사프와트 ··············39 몰라 ·····················32 몰라 호세인 보슈루이 ··············16 미르자 모하멧 알리 ···············60 미르자 알리 모하멧 ···············15 미르자 압바스 ·················27 미르자 야흐야 ···············31, 35 미르자 호세인 알리 ···············27 바그다드 ··············30, 31, 33, 34 바디 ·····················36 바비가 바하이로 알려진 때 ···········35 바흐지·················40, 41, 43 바얀 ···············16, 23, 54, 198 바하이 공동체 ··········72, 80, 148, 154 보올 ·····················220
  • 371.
    365 찾아보기 부쉐흐르 ···················17 브라운 교수················20, 54 빛나는 묵종 ··················87 사데크 ····················28 샤 바흐람 ···················52 싸아디 ····················13 싸이러스 ···················13 싸이프러스 ··················35 성약의 중심················61, 244 세계어 ···············184, 186, 277 세계정의원 ·············147, 285, 288 세이예드 야흐야 ················61 소브헤 아잘 ··················31 솔레이마니예 ·················31 솔로몬 왕 ···················83 수피 종파 ·················55, 59 순교자의 왕, 순교자의 애인 ···········60 순니 종파 ···················14 숨겨진 말씀이 계시된 때 ············34 쉐이크 ····················41 쉐이크 모하멧 ·················15 쉐이키 종파 ··················16 쉬라즈 ····················15 스티븐슨 ················108, 205 스펜서 ··················79, 225 쉬이에 종파 ··············14, 17, 18 십자군 ····················180
  • 372.
    366 바하올라와 신시대 아가 모하멧알리 ················20 아담과 이브 ·················231 아리만 ····················52 아아더왕의 원탁회의 ··············63 아타나시우스 ·················224 악카 ·············35, 37, 43, 60, 265 압바스 에펜디 ·················57 알리 쇼우카트 파샤 ···············59 알리 파샤 ··················267 알콜과 아편 ···············117, 119 애국주의, 세계적 애국주의 ···········182 압돌 아지즈 ··················41 압돌하밋 ···················67 약속된 분 ·······1, 18, 34, 53, 58, 236, 241 에맘 ···················19, 304 에스파한 ···················60 에스페란토 ·············67, 185, 222 엘리야에 대한 예언 ··············250 엘리야 동굴 ··················21 예언자의 중요성 ·················1 예언자의 확실성 ···············141 예언자의 수난 ················221 예언자인 증거 ···············9, 261 예언자들 사이의 조화 ·············221 올라마 ····················28 우마르 케이얌 ·················13 윌버포오스 부감독 ···············67
  • 373.
    367 유훈 ············45, 62,76, 136, 146, ············201, 287, 289, 290, 295 자본과 노동 ·················165 자멘호프 ················185, 263 정도의 태양 ················4, 255 정의원··········147, 171, 184, 201, 285 젤로스 솔탄 ··················61 조로아스터 ···········2, 13, 33, 52, 132 종교는 문명의 기초 ··············151 종교는 최대평화의 기초 ············178 종교와 과학의 일치 ··············235 종교의 쇄신 ·················285 종교의 융합 ·················132 종교적 권위 ·················137 종교적 편견 ·················179 종교창시자의 중요성 ···············2 종교전쟁 ···················180 죄의 고백 ···················96 죽은 자와의 교통 ···············214 진리의 태양 ···5, 8, 24, 76, 194, 206, 225, 286 진리 탐구···············42, 82, 224 진화와 창조 ·················228 질서의 법칙 ·················160 축복받은 미··············40, 62, 207 축복받은 완전 ···········41, 58, 66, 75 췌흐리끄의 감옥 ················22 찾아보기
  • 374.
    카알라일 ···················1, 4 칼멜산············21, 39, 43, 62, 278 캠벨 대사 ···················67 코라톨 에인 ·················168 콜럼부스 ···················222 크로포트킨 ··················234 크리슈나··················2, 145 케타베 이간이 씌어진 때 ············34 타브리즈 ···················20 테헤란·················19, 29, 57 토라의 율법 ···················7 통치자에게의 서한 ················ 페르시아 황제에게···········36, 49, 242 로마 법왕에게···············36, 143 빅토리아 여왕에게 ············138, 186 나폴레옹 3세에게 ············196, 264 독일 황제에게 ················265 터키 황제에게 ················267 터키 수상에게 ················267 티그리스강 ··················34 파르스 ····················19 페르도우시 ··················13 평화, 세계평화 ···········178, 184, 245 소평화 ···············154, 156, 188 최대의 평화 ······44, 53, 154, 156, 178, 299 포도원(그리스도의 우화)········53, 73, 246 폭력에 대한 무저항············190, 192 368 바하올라와 신시대
  • 375.
    하느님께 대한 헌신···············81 하느님과의 대화 ···············100 하느님과의 합일 ···············284 하느님 나라의 도래 ··············276 하느님의 날 ·················243 하느님의 대업 ················276 하느님의 비밀 ·················48 하느님의 말씀의 창조력 ············261 하느님의 사랑 ·················91 하느님의 영광 ··············8, 27, 81 하느님은 위대한 의사 ·············141 하아비 ····················222 하이파 ············40, 62, 68, 70, 278 하지 세이예드 알리 ···············15 하페즈 ····················13 헉슬리 ·················220, 225 현시자 ····5, 23, 46, 77, 81, 83, 141, 227, 236 호세인 칸 ···················17 환상 ·····················21 369
  • 377.
  • 378.
    뒤에 붙임 이 한국어판은일본어판을 대본으로 하고 그것과 에스페란토 판을 대조하여 번역한 것이다.(에스페란토판이 출판된지 오랜 것이어서 원서에 증보된 부분은 없었지만) 1957년 초여름 번역에 착수한 것이 거의 8년의 세월이 흘러 간 이제야 출판을 보게 되었다. 출판이 이와 같이 늦어진 주요 한 이유는 다른데 있었거니와, 그 동안 나는 출판위원회에 넘어 간 원고를 도로 찾아 고쳐 쓰기를 여러번 하였다. 처음에 탈고 한 것은 한자가 많이 섞인 문제였으니, 종교상 또는 철학상의 어려운 술어가 많은 이 책의 번역으로서는 부득이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독자의 범위가 많이 좁 아지는 것이 아까워서, 전부를 뜯어 고쳐 순 한글로 되도록 쉬 운 말로 풀어 써보았더니 거기에 무리가 있어 도리어 읽기에 까 다로운 것이 되었다. 그래서 세 번째로 뜯어고친 것이 한자를 최소한도로 제한하여 섞어 쓴 것이었는데, 역시 불만이 많았다. 여기서 나는 교우 송대암(宋大岩)씨의 원서(영문)와의 면밀한 대조에 의한 기탄없는 교정을 받아, 그것을 크게 참작하면서 마 지막으로 고쳐 썼는데, 문제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순 한글로 하되 무리한 풀어쓰기를 삼가고 이해키 어려울 듯한 곳에만 한 자를 괄호 안에 끼워 넣었다. 이렇게 여러번 뜯어고침으로써 거의 8천장의 원고를 썼거니 와, 원고 보따리를 안고 여러곳을 전전하면서 틈틈이 펜을 잡 아, 오로지 기도하는 정성으로써 일했건만 워낙 재주가 부족하 372 바하올라와 신시대
  • 379.
    니 만족한 것이될 리가 없었다. 바라건대, 글자 하나하나에 바 친 나의 작은 정성이 번역의 미흡한 점을 감싸주어, 원저자가 나타내려고 힘쓴 이 아름다운 신앙의 온전한 모습이 독자의 마 음의 눈에 분명히 드러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번 역 자- 373373
  • 380.
    추 록 1965년 4월에故 김창진옹의 번역으로 출판된 이 책을 종서 (縱書)로 되어 있던 것을 이번에 그것을 횡서(橫書)로 바꾸었 다. 초판은 낮춤말로 씌어 졌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것을 현시 자들에 한해서 높임말로 고쳤다. 그리고 바하이신앙의 세분 중심인물(바압, 바하올라, 압돌바 하)의 저서 또한 어록으로부터의 인용구는 본문과는 다른 글자 체(신명조)로 하였다. 인쇄 과정에서 이 책을 여러번 읽을 기회를 가졌던 본인은 저 자와 역자에 대한 존경심을 금할 길 없었는데, 신앙의 길에서 그분들이 쏟으신 정성에 깊이 감사드린다. 87년 월 - 교 정 자 - 374
  • 381.
  • 383.
    377 바하올라와 신시대 초판 발행일1965년 4월 재판 발행일 1987년 8월 5일 3 판 발행일 2009년 7월 지 은 이 : J. E. 엣슬몬트 번 역 인 : 김 창 진 번역교정 : 바하이 번역위원회 펴 낸 곳 : 금 하 기 획 발 행 처 한국 바하이 출판사 출 판 등 록 제 302-1993-000036호 주 소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249-36 우: 140-902 전 화 02-754-1947 팩 스 02-754-1948 웹 사 이 트 www.bahai.or.kr ISBN 978-89-91037-03-8 03290 값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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