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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이겨내고 인간답게 산다는 것

                                                                        2001.6.4

                                                                         이찬우



한센병이란
흔히 나병으로, 심하게는 문둥병으로 부르는 한센병을 가진 환자나 그 경력이 있던

사람들은 주위의 편견과 오해에 의해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왔다. 인류의 역사와도 함께 한

한센병에 대해 사람들은 ‘죄의 대가’, ‘천형(天刑)’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는 모세를 거역한 누이 미리암이 이 병에 걸리는 것으로 나오고,

예수의 행적에는 나병환자를 치유한 기적이 나온다. 불후의 명화 [벤허]에서 이 병에 걸린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는 동굴에 숨어 살아야 하는 처지로 나온다. 그러나 한센병은 ‘죄의

대가’도 아니고 유전병도 아니며, 단지 결핵균의 일종인 미코박테리움에 의해 사람

사이에서 전염되는 「제 3 군 전염병」(모니터망을 통한 감시, 국민홍보 등으로 대응이

가능한 전염성 질환) 이다. 병원균의 전파력도 약하며 감염된 나균도 인체의 자연면역으로

대부분이 죽는다고 한다. 다만 극히 적은 수의 생균만이 3-7 년의 잠복기를 지나 병을

일으킬 수 있는데 얼굴과 손발 등의 말초신경과 피부를 특이하게 침범함으로써 신경손상에

따른   불구를     유발하는     위험성이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한센병환자를       격리함으로써

전염원이 차단된다고 생각하였지만, 1950 년대 이후 한센병 환자중 극히 일부만이 전염원이

되며 또한 투약이 시작된 이후에는 전염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프로민剤

등의 약으로 완치할 수 있는 체계가 확립되면서, 중증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용시설에서의

치료가 필요없이, 통원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



일본 한센병 환자 및 경력자들의 인간승리
일본은 「癩予防法」(1953 년, 법률 제 214 호)이 1996 년 4 월 1 일 폐지되기까지, 이 법에

따라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적으로 격리하여 수용시설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였다. 한센병

경력자들은 수십년간 이 시설에서 수용되어 감금, 강제노동, 단종(断種), 낙태 등을

강요받아         [인간]으로서          향유해야할            권리를      빼앗긴채        살아왔다고

한다.(http://www.hansenkokubai.com    에서   인용)   이들이    1998   년에   국가를    상대로

<「癩予防法」위헌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구마모토(熊本), 도쿄(東京), 오카야마(岡山) 등

3 곳의 지방법원에 제출하였다(原告人수는 1,702 명). 변호인단과 시민들의 자원봉사지원도
가세하였다. 이 가운데서 구마모토 지방법원이 지난 5 월 11 일 가장 먼저 판결을 내렸는 바,

그 내용은 국가 패소였다. 판결문 가운데 중요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환자의 격리는, 환자에 대하여 계속적이고 대단히 중대한 인권의 제한을 강요하는

것이므로, 적어도 한센병 예방이라는 공중위생상의 입장에서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허용되어야 한다. 나병예방법이 제정되었던 1953 년 전후의 의학적 지식 등을

종합하여 보면, 늦어도 1960 년 이후에는 이미 한센병은 격리정책을 쓰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특별한 질환은 아니었으며, 모든 입소자 및 한센병 환자에 대하여 격리의 필요성이

없어졌다. 따라서 후생성으로서는 그 시점에서 격리정책의 근본적인 전환 등을 해야할

필요가 있었으나 나병예방법의 폐지시기까지 그 일을 태만히 하였으며, 이 점에서 후생성

장관의 직무행위에 국가배상법상의 위법성 및 과실이 있다고 인정된다.”



이와 같은 판결에 대하여 일본정부는 5 월 23 일 항소를 단념하고 「한센병 문제에

대하여」라는 다음과 같은 정부 대책을 내놓았다.

1. 환자 및 경력자의 고통과 고난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사죄한다.

2. 판결에는 중대한 법률상의 문제점이 있지만, 조기에 전면적인 해결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3. 대단히 이례적인 판단으로서 항소를 단념하며 전국의 모든 환자 및 경력자를 대상으로

한 통일적인 대응을 실시한다.

4. 새로운 손실보상을 위한 입법조치를 취한다.

5. 퇴소자 급여금의 창설, 한센병 자료관의 충실, 명예회복을 위한 계발사업등을 실시한다.

6. 환자 및 경력자와 정부사이에 협의의 자리를 마련한다.



이러한 정부결정은 원래 [항소 후 타협]으로 정리되었던 정부입장을 고이즈미(小泉純一郎)

총리가 정치적 결단으로 뒤집은 것이기도 하다. 정부내에서 이러한 결정을 견인한 사람은

자신의    장관자리를   내걸면서까지      「항소   단념」을   주장하였던   사카구치(坂口力)

후생노동상이었다. 관료들의 ‘상식’적인 생각을 넘어서 국민의 정서를 읽은 정치인

고이즈미    총리의   대담한   결정으로   내각지지율(아사히신문   조사기준)은   4   월말   내각

성립시의 78%에서 5 월 26 일에 84%까지 상승하였다. 역대 최고 내각지지율을 계속 갱신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는 일본정부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고자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피해자]들의 인간승리이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현재 전국의 15 개 요양소에서 한센병 경력자 4,393 명(요미우리신문 조사기준,

2001.5.24)이 생활하고 있다. 정부는 1 인당 약 900 만엔의 예산으로, 주거, 식사, 의료

등을 무료로 보장해주고 있다. 1 인당 월평균 84,000 엔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기도 하다.

요양소 입소자의 평균연령은 74 세이다. 이것으로 보면 [피해자] 들이 돈을 요구하여

항소를 한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정부가 1996 년 나병예방법을 폐지하고 1 인당 250 만엔의

사회복귀준비자금을 마련하였음에도 그 후 5 년간 이를 이용한 사람은 17 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한센병 경력자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 이들

[피해자] 들로 하여금 사회의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인간적 존엄을 되찾고자 하게 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일본 정부가 과거 당연히 했어야할 한센병 환자 및 경력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해소를 하지 않았기에, 이들 [피해자]들은 명예회복을 위한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부의 항소단념 발표 후 原告団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제야 인간으로

돌아왔다”였다.



한국사회도 한센병 환자 및 경력자들에 대한 인간적 대우를
한국에는 총 18,689 명의 한센병 환자 및 경력자(환자는 704 명, 1999 년말 기준)가 있다고

한다. 국립소록도병원 등 7 개 시설에 수용되어 치료 및 재활관리를 받고 있는 사람이

2,037 명, 농원 등을 만들어 정착하고 있는 사람이 6,738 명, 집에서 치료 또는 관리를 받고

있는 사람이 9,914 명이다. 1962 년에 법적으로 강제격리 규정이 없어져 일본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강제적인 격리수용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일본과 같은

강제격리에 따른 인권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는 일본사회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한센병 환자를 보살피려는 사회적 관심은 이어지고 있지만, 더 나아가 같은 인간으로

동등하게 대우하는 사회적 편견 해소가 더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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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en

  • 1. 편견을 이겨내고 인간답게 산다는 것 2001.6.4 이찬우 한센병이란 흔히 나병으로, 심하게는 문둥병으로 부르는 한센병을 가진 환자나 그 경력이 있던 사람들은 주위의 편견과 오해에 의해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왔다. 인류의 역사와도 함께 한 한센병에 대해 사람들은 ‘죄의 대가’, ‘천형(天刑)’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는 모세를 거역한 누이 미리암이 이 병에 걸리는 것으로 나오고, 예수의 행적에는 나병환자를 치유한 기적이 나온다. 불후의 명화 [벤허]에서 이 병에 걸린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는 동굴에 숨어 살아야 하는 처지로 나온다. 그러나 한센병은 ‘죄의 대가’도 아니고 유전병도 아니며, 단지 결핵균의 일종인 미코박테리움에 의해 사람 사이에서 전염되는 「제 3 군 전염병」(모니터망을 통한 감시, 국민홍보 등으로 대응이 가능한 전염성 질환) 이다. 병원균의 전파력도 약하며 감염된 나균도 인체의 자연면역으로 대부분이 죽는다고 한다. 다만 극히 적은 수의 생균만이 3-7 년의 잠복기를 지나 병을 일으킬 수 있는데 얼굴과 손발 등의 말초신경과 피부를 특이하게 침범함으로써 신경손상에 따른 불구를 유발하는 위험성이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한센병환자를 격리함으로써 전염원이 차단된다고 생각하였지만, 1950 년대 이후 한센병 환자중 극히 일부만이 전염원이 되며 또한 투약이 시작된 이후에는 전염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프로민剤 등의 약으로 완치할 수 있는 체계가 확립되면서, 중증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용시설에서의 치료가 필요없이, 통원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 일본 한센병 환자 및 경력자들의 인간승리 일본은 「癩予防法」(1953 년, 법률 제 214 호)이 1996 년 4 월 1 일 폐지되기까지, 이 법에 따라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적으로 격리하여 수용시설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였다. 한센병 경력자들은 수십년간 이 시설에서 수용되어 감금, 강제노동, 단종(断種), 낙태 등을 강요받아 [인간]으로서 향유해야할 권리를 빼앗긴채 살아왔다고 한다.(http://www.hansenkokubai.com 에서 인용) 이들이 1998 년에 국가를 상대로 <「癩予防法」위헌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구마모토(熊本), 도쿄(東京), 오카야마(岡山) 등 3 곳의 지방법원에 제출하였다(原告人수는 1,702 명). 변호인단과 시민들의 자원봉사지원도
  • 2. 가세하였다. 이 가운데서 구마모토 지방법원이 지난 5 월 11 일 가장 먼저 판결을 내렸는 바, 그 내용은 국가 패소였다. 판결문 가운데 중요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환자의 격리는, 환자에 대하여 계속적이고 대단히 중대한 인권의 제한을 강요하는 것이므로, 적어도 한센병 예방이라는 공중위생상의 입장에서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허용되어야 한다. 나병예방법이 제정되었던 1953 년 전후의 의학적 지식 등을 종합하여 보면, 늦어도 1960 년 이후에는 이미 한센병은 격리정책을 쓰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특별한 질환은 아니었으며, 모든 입소자 및 한센병 환자에 대하여 격리의 필요성이 없어졌다. 따라서 후생성으로서는 그 시점에서 격리정책의 근본적인 전환 등을 해야할 필요가 있었으나 나병예방법의 폐지시기까지 그 일을 태만히 하였으며, 이 점에서 후생성 장관의 직무행위에 국가배상법상의 위법성 및 과실이 있다고 인정된다.” 이와 같은 판결에 대하여 일본정부는 5 월 23 일 항소를 단념하고 「한센병 문제에 대하여」라는 다음과 같은 정부 대책을 내놓았다. 1. 환자 및 경력자의 고통과 고난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사죄한다. 2. 판결에는 중대한 법률상의 문제점이 있지만, 조기에 전면적인 해결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3. 대단히 이례적인 판단으로서 항소를 단념하며 전국의 모든 환자 및 경력자를 대상으로 한 통일적인 대응을 실시한다. 4. 새로운 손실보상을 위한 입법조치를 취한다. 5. 퇴소자 급여금의 창설, 한센병 자료관의 충실, 명예회복을 위한 계발사업등을 실시한다. 6. 환자 및 경력자와 정부사이에 협의의 자리를 마련한다. 이러한 정부결정은 원래 [항소 후 타협]으로 정리되었던 정부입장을 고이즈미(小泉純一郎) 총리가 정치적 결단으로 뒤집은 것이기도 하다. 정부내에서 이러한 결정을 견인한 사람은 자신의 장관자리를 내걸면서까지 「항소 단념」을 주장하였던 사카구치(坂口力) 후생노동상이었다. 관료들의 ‘상식’적인 생각을 넘어서 국민의 정서를 읽은 정치인 고이즈미 총리의 대담한 결정으로 내각지지율(아사히신문 조사기준)은 4 월말 내각 성립시의 78%에서 5 월 26 일에 84%까지 상승하였다. 역대 최고 내각지지율을 계속 갱신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는 일본정부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고자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피해자]들의 인간승리이기 때문이다.
  • 3. 일본에는 현재 전국의 15 개 요양소에서 한센병 경력자 4,393 명(요미우리신문 조사기준, 2001.5.24)이 생활하고 있다. 정부는 1 인당 약 900 만엔의 예산으로, 주거, 식사, 의료 등을 무료로 보장해주고 있다. 1 인당 월평균 84,000 엔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기도 하다. 요양소 입소자의 평균연령은 74 세이다. 이것으로 보면 [피해자] 들이 돈을 요구하여 항소를 한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정부가 1996 년 나병예방법을 폐지하고 1 인당 250 만엔의 사회복귀준비자금을 마련하였음에도 그 후 5 년간 이를 이용한 사람은 17 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한센병 경력자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 이들 [피해자] 들로 하여금 사회의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인간적 존엄을 되찾고자 하게 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일본 정부가 과거 당연히 했어야할 한센병 환자 및 경력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해소를 하지 않았기에, 이들 [피해자]들은 명예회복을 위한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부의 항소단념 발표 후 原告団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제야 인간으로 돌아왔다”였다. 한국사회도 한센병 환자 및 경력자들에 대한 인간적 대우를 한국에는 총 18,689 명의 한센병 환자 및 경력자(환자는 704 명, 1999 년말 기준)가 있다고 한다. 국립소록도병원 등 7 개 시설에 수용되어 치료 및 재활관리를 받고 있는 사람이 2,037 명, 농원 등을 만들어 정착하고 있는 사람이 6,738 명, 집에서 치료 또는 관리를 받고 있는 사람이 9,914 명이다. 1962 년에 법적으로 강제격리 규정이 없어져 일본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강제적인 격리수용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일본과 같은 강제격리에 따른 인권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는 일본사회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한센병 환자를 보살피려는 사회적 관심은 이어지고 있지만, 더 나아가 같은 인간으로 동등하게 대우하는 사회적 편견 해소가 더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