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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 골 개 황
2011.8
외 교 통 상 부
동 북 아 3 과
몽골개황 2011
발간등록번호 11-1260000-000264-14
발행처 외교통상부 동북아시아국 동북아3과
발행 허승재 동북아시아국 동북아3과 과장
편찬 하도겸 동북아시아국 동북아3과 3등서기관
조사ㆍ번역 김선아 동북아시아국 동북아3과 연구원
발행일 2011년 8월
연락처 02)2100-0116
주소 110-787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37
FAX 02)2100-0113
※ 본 책자의 내용에 관하여 문의사항이나 지적하실 사항이 있으면
외교통상부 동북아3과로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Ⅰ. 개 관 ····································································· 1
Ⅱ. 역 사 ···································································· 17
1. 북방 유목민족 시대 ········································· 19
2. 몽골 제국 시대 ················································ 22
3. 북원과 명의 대결시대, 청 복속 시대 ··········· 28
4. 몽골 독립이후 ···················································· 31
5. 민주주의 시대 ···················································· 32
6. 역사적 인물 ························································ 33
Ⅲ. 정치 ․ 군사 ·······························································43
1. 정치제도 ······························································· 45
2. 개혁 ․ 개방 이후 정치발전 ······························· 55
3. 군 사 ···································································· 62
Ⅳ. 외 교 ···································································· 65
1. 외교정책 기조 ··················································· 67
2. 주요국과의 관계 ················································ 69
3. 북한과의 관계 ···················································· 77
Ⅴ. 경 제 ····································································· 81
1. 개 요 ··································································· 83
2. 자원개발 연계 경제발전 추진 ······················ 91
3. 부문별 경제현황 ············································ 97
Ⅵ. 한 ․ 몽 관계 ·························································· 111
1. 한 ․ 몽 관계 개관 ·············································· 113
2. 정상급 방문 ······················································ 115
3. 외교관계 ···························································· 116
4. 경제관계 ···························································· 119
5. 영사 ․ 교민관계 ················································· 125
6. 문화관계 ···························································· 128
Ⅶ. 지리 ․ 사회 ․ 문화 ·············································· 139
1. 지 리 ·································································· 141
2. 문화 ․ 예술 ․ 사회 ·············································· 143
3. 교 육 ·································································· 154
4. 언 론 ·································································· 157
Ⅷ. 참 고 자 료 ················································ 161
1. 주요 지도자 인적사항 ···································· 163
2. 외교공관 ․ 국제기구 현황 ······························· 180
3. 행정구역 ···························································· 181
4. 평균기온 및 강수량 ········································ 186
5. 울란바타르市 개황 ·········································· 187
6. 울란바타르市 주요 관광지 ···························· 192
7. 한 ․ 몽간 주요 공동문서 ································· 197
8. 기초 몽골어와 속담 ········································ 208
9. 몽골 관련 인터넷 사이트 ······························ 212
10. 몽골 약황 ························································ 214
- 1 -
Ⅰ. 개 관
1. 개요
2. 정치ㆍ경제ㆍ군사
- 3 -
세계 속의 몽골
- 4 -
몽골의 지방 행정 구역도(아이막)
- 5 -
1 개 요
가. 국 가가. 국 가
2010년말 기준
국 명 몽골(МОНГОЛ, MONGOLIA)
민 족 할흐 몽골족(90%), 카자흐족(5.9%), 브리야트계(2%) 등 17개 부족
수 도 울란바타르(Ulaanbaatar, "붉은 영웅"이라는 의미, 해발고도 1,350m)
면 적 1,567,000㎢(한반도 7.4배)
인 구
275만명(울란바타르 거주 : 124만명)
- 인구밀도 : 1.78명/㎢
- 평균수명 : 65.2세(남 62.9세, 여 67.6세)
가 축 수
총 32,700천두
- 염소 13,883천두, 양 14,480천두, 소 2,176천두, 말 1,920천두,
낙타 269천두 등
행정단위 21개 아이막(도), 315개 솜(군)
정부형태
의원내각제적 성격이 강한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
형태
독 립 일 1921. 7.11(소련 적군과 연합하여 중국으로부터 독립)
국가선포일 1924.11.26(러시아식 헌법 채택, 몽골인민공화국 선포)
종 교
라마불교(80%이상), 이슬람교(5%), 90년 이후 개신교 및 카톨릭 등
전파(약 4만명 추산, 약2%)
국 화 연꽃(불교 영향)
공 용 어 할흐 몽골어(Khalkh Mongolian)
문 자 키릴문자(러시아문자 차용)
시 차 한국보다 1시간 늦음
거 리/
비행거리
2,000㎞(인천-울란바타르 1,226Mile) /
비행기로 약 3시간 정도 소요
- 6 -
❏ 공휴일
1.1 신년
1.1-2(음력) 차강사르(우리나라의 음력설)
3.8 여성의 날
6.1 母子의 날
7.11-13 나담축제
11.26 국가선포일
❏ 문자
구 분 고대 문자 현대 문자
문자 비치그 러시아 키릴 문자 차용
형태
(뜻 : 몽골) МОНГОЛ
❏ 국기 : 소욤보(СОЁМБО) 기(旗)
o 중앙은 청색, 양측은 적색의 직사각형과
좌측 적색부분에 황색의 국가상징인
소욤보 문양으로 구성
o 중앙의 푸른색은 국가에 대한 영원
한 충성, 좌우 붉은색은 부단한 전
진과 번영을 상징
o 소욤보는 표의문자로 몽골의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는 전통문장
- 1924년 제1회 대인민회에서 결정
- 윗부분은 상징적으로 묘사된 불꽃(가정과 국가의 번영을 의미)
- 불꽃 밑 부분(태양과 달로서 몽골 민족의 발전을 상징)
- 7 -
- 끝부분이 아래로 향한 것은 화살(예리함과 대담함을 의미)
- 중간에 있는 두개의 직사각형(평등과 성실한 봉사를 의미)
- 두 마리 물고기(눈을 감지 않고 자는 물고기 같은 경계심)
- 양쪽에 수직으로 그려진 직사각형(성벽과 같이 국가 수호 의미)
o 몽골 국기 변천사(1992년 현 국기 사용 시작)
1921-1924 1924-1940 1940-1992
❏ 국 장
o 원형 테두리 상부 중앙의 보석 3개
- 과거 ․ 현재 ․ 미래를 상징
o 중앙의 말과 소욤보
- 몽골의 정신과 주권 및 독립 의미
o 아래 부분의 수레바퀴
- 몽골의 영원한 발전과 번영 상징
o 1991년 현 국장 사용 시작
o 몽골 국장 변천사
1940-1941 1941-1960 1960-1991
- 8 -
❏ 국가(國歌)
o 작곡 : 빌레긴 담딘수렌(Б.Дамдинсүрэн),
무르도르지(Л.Мөрдорж)
o 작사 : 첸딘 담딘수렌(Ц.Дамдинсүрэн)
o 1950년 처음 만들어져 1961년, 1991년, 2006년에 가사 개정
- 9 -
악 보
- 10 -
가 사
Дархан манай тусгаар улс 우리는 신성한 독립국가
Даяар Монголын ариун голомт 몽골인의 성스러운 보금자리
Далай их дээдсийн гэгээн үйлс 조상들의 훌륭한 업적
Дандаа энхжиж үүрд мөнхөжнө 영원히 빛나리라
Хамаг дэлхийн шударга улстай 세상의 모든 정의로운 국가와
Хамтран нэгдсэн эвээ бэхжүүлж 우리의 유대를 강화하리
Хатан зориг бүхий л чадлаараа 불굴의 용기와 온 힘을 다해
Хайртай Монгол орноо мандуулъя 사랑하는 몽골을 드높이리라
Өндөр төрийн минь сүлд ивээж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고
Өргөн түмний минь заяа түшиж 백성들의 안녕을 기리며
Үндэс язгуур хэл соёлоо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Үрийн үрдээ өвлөн бадраая 계승하고 번영시키리라
Эрэлхэг Монголын золтой ардууд 용감한 몽골의 백성들이
Эрх чөлөө жаргалыг эдлэв 자유와 행복을 누리리라
Жаргалын түлхүүр 행복의 열쇠,
хөгжлийн тулгуур 번영의 주춧돌
Жавхлант манай орон мандтугай 위대한 나의 조국 만세
- 11 -
나. 국 토나. 국 토
위 치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북방에 위치한 내륙국가
- 북쪽으로 러시아, 남쪽으로 중국과 접경
- 국경선 : 총길이 8,162km(대중국 4,710km, 대러시아 3,452km)
길 이
동서 2,394km
남북 1,259km
총 면 적 1,567,000㎢ (한반도의 7.4배)
부존자원
석탄, 동, 형석, 원유, 우라늄, 몰리브덴, 텅스텐, 주석, 니켈, 아연,
금 등
국토이용 목축지(80%), 산림(10%), 경작지(2%), 기타(9%)
지 형
고원국가로서 사막이 전국토의 40%를 차지, 서부지역에는 알타이
산맥이 있으며, 북부지역은 밀림과 농경지, 동남부는 평원 및 사막
지대, 서쪽의 후이틍 어르길(Huityn Origil) 산은 최고지대로 높이는
4,366m, 동부평원은 최저지대로 평균고도 522m 정도
평균고도 1,580m (오대산 정상 높이)
기 후
건성냉대기후 (Foreal Realm)
-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 (길고 추운 겨울, 짧은 여름)
- 1년에 구름 없는 날이 257일
평균기온
10월초부터 4월말까지는 영하의 추위로 특히 겨울철 야간에는 영하
45℃이하까지 내려가며, 여름에는 36℃까지 올라가나 습도가 높지
않아 체감 온도는 그리 높지 않고 자외선이 강한 편
평균기압 1,036hpa
- 12 -
2 정치 ․ 경제 ․ 군사
가. 정 치가. 정 치
❏ 정체 : 민주공화제(1992.1.13 新민주헌법 발효, 2000.12.14 헌법 개정)
o 헌법 개정 전
-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 형태인 이원집정부제
o 헌법 개정 후
- 의회와 내각의 권력을 대폭 확대하여 의원내각제적 성격을 강화
❏ 주요 지도자
o 대 통 령 : Ts. Elbegdorj(엘벡도르지, 민주당)
o 총 리 : S. Batbold(바트볼드, 인민당)
o 국회의장 : D. Demberel(뎀베렐, 인민당)
❏ 주요 정당
o 인민당(Mongolian People's Party) : 45석
- 1990년대초 헌법으로 보장된 일당독재체제 유지
(구 당명 : 몽골인민혁명당)
- 1996. 6 총선 패배로 야당으로 전락(25석)
- 2000. 7 총선 압승(76석 중 72석)
- 2004. 6 총선 결과, 37석으로 의석 수 크게 감소
→ 야당과 연립내각 구성
- 2006. 1 단독내각 구성(야당연합 내분으로 해체 → 내각 해산
→ 제1야당인 민주당을 제외한 군소정당과 연립정부
구성)
- 2007.11 전당대회를 통해 당수 Enkhbold(엥흐볼드)가 물러
- 13 -
나고 Bayar(바야르)가 당수에 선출되어 총리에 취임
- 2008. 6 총선시 당수 바야르의 청렴한 이미지로 과반수인 45석을
확보하였으나, 부정선거 논란으로 소요사태 발생
→ 2008.9월 민주당과 연립내각 구성
- 2009.10 바야르 당수가 총리직 사임 후 계속 당수직을 유지하여
논란 발생
→ 2010.4 전당대회를 거쳐 Batbold(바트볼드) 총리가
당수직 수임
- 2010.11 인민당으로 당명 변경
- 2011. 3 창당 90주년 행사 개최
- 당수 : S. Batbold(바트볼드, 현 총리)
o 민주당(Democratic Party) : 27석
- 2000. 7 총선 참패 이후 구여권 민주세력인 민족민주당과 사회
민주당 등 5개 정당이 2001.12 발족한 통합야당
- 2004. 6 총선에서 군소 야당과 연합하여 민주연합을 결성,
연립내각 참여
- 2006. 1 여당인 인민혁명당의 일방적 내각해산으로 야당으로
전락
- 2008. 6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수 엘벡도르지 사퇴
- 2008. 9 인민당과 연립내각 구성 → Altankhuyag(알탕후약)
당수가 제1부총리로 입각
- 당수 : N. Altankhuyag(알탕후약)
※ 2008년 선거시 의석수가 28석이었으나 Elbegdorj(엘벡도르지) 의원의 대통령
출마에 따른 공석을 인민당이 차지함에 따라 27석으로 감소
o 민의당(Mongolian Citizens Will Party) : 1석
- 깨끗한 정치와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보수정당
- 당수 : S. Oyun (오윤)
o 녹색당(Mongolian Green Party) : 1석
- 당수 : Enkhbat (엥흐바트)
※ 2011.2.3 몽골인민당과 녹색당이 합당을 발표하였으나, 대법원은 형식적 요건
미비를 이유로 합당 정당 등록을 거부
- 14 -
o 무소속 : 2석
- Altai (알타이, 25채널 TV 방송국 사장)
- Shinebayar(신바야르, 전 Dornod(도르너드) 아이막 도의회 의장,
인민혁명당 소속의원이었으나, 2010.11 당명 개정에 반대하여 탈당)
나. 경 제(2010년말)나. 경 제(2010년말)
❏ 국내총생산 : 59.8억불
❏ 1인당 GDP : 약 2,200불
❏ 경제성장율 : 6.1%
❏ 무역액 : 61.7억불
o 수 출 : 28.9억불
o 수 입 : 32.8억불
❏ 주요 무역품목 및 교역국
o 수 출 품 : 석탄, 동 등 광물(82%), 캐시미어(6%)
o 수 입 품 : 석유제품(21%), 중장비 및 부품(17%), 자동차(13%),
식품(5%) 등
o 주요 무역상대국 : 중국, 러시아, 미국, 한국, 일본, 캐나다 順
❏ 물가상승율 : 10.1%
❏ 실 업 율 : 3.3%
❏ 외환보유고 : 23억불
❏ 외국인투자(누계) : 48.4억불
- 15 -
❏ 화폐단위 : Tugrik(투그릭)(US$1 = 1,250Tg 2011.7월 기준)
o 현재 몽골에서 통용되는 화폐 단위
- 1, 5, 10, 20, 50, 100, 500, 1000, 5000, 10000, 20000 투그릭
o 지폐만 사용(동전 사용 없음)
100 투그릭 500 투그릭
1000 투그릭 5000 투그릭
10000 투그릭 20000 투그릭
❏ 주요자원 : 석탄(1,750억톤, 세계 4위), 동(5,500만톤, 세계 2위), 형석
(1,400만톤, 세계 3위), 우라늄(6만톤, 세계 14위), 몰리브덴
(21톤, 세계7위), 인(24억톤, 세계3위), 텅스텐(7만톤, 세계
5위), 금, 철, 아연, 석유 등 광물자원 풍부(10대 자원부국)
- 17 -
Ⅱ. 역 사
1. 북방 유목민족 시대
2. 몽골 제국 시대
3. 북원과 명의 대결시대, 청 복속 시대
4. 몽골 독립이후
5. 민주주의 시대
6. 역사적 인물
가. 칭기스칸
나. 쿠빌라이
다. 만두하이
라. 수흐바타르 장군
- 19 -
1 북방 유목민족 시대 (BC 20C∼AD 12C)
가. 기마유목민가. 기마유목민
❏ 기마유목민 : 기원전 2천년-1천년 사이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
o 사마천의 「사기」 중 흉노인 묘사
-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며 살아 성곽이나 일정한 거주지가
없고 농사를 지어먹고 살지 않았으나, 각자가 나누어 갖고 있는 땅은
있었다. … 어린 아이들도 양을 타고 돌아다닐 수 있으며 활을
당겨 새나 쥐를 쏘아 맞추고, 조금 크면 여우나 토끼를 쏘아
맞추어 식량으로 삼았다. 남자들은 힘이 세고 활을 잘 다룰 수
있어 모두 무장 기병이 되었다.”
o 헤르도토스의 「역사」 중 스키타이인의 묘사
- “도시도 성채도 갖지 않고 어디를 가나 집을 가지고 다니며, 모두
말 위에서 활을 쏠 줄 알았고, 농사가 아니라 가축을 키우며
살았다.”
나. 몽골고원에 건설되었던 유목제국나. 몽골고원에 건설되었던 유목제국
❏ 현 몽골지역을 중심으로 한 주요 북방유목민족의 계통구분
o 몽 골 계통 : 선비, 유연, 거란, 몽골
o 투르크 계통 : 흉노, 돌궐, 위구르
o 퉁구스 계통 : 여진, 만주
❏ 흉노
o B.C. 3세기 후반 몽골고원 동 ․ 서부와 화북지방에는 흉노 등 유목
집단이 할거
- 20 -
o 흉노의 문화
- 경마와 씨름을 즐기고 하늘을 숭배하는 샤머니즘적 세계관
- 선우 휘하에 좌현왕, 우현왕 등 여러 칭호를 가진 왕들이 존재
했으며, 이들은 좌․ 우로 구분하여 영지를 소유하였고 만기-천장-
백장-십장으로 나누어진 “십진법(十進法)” 단위의 군사조직 체제
보유
o 흉노의 분열
- 동흉노와 서흉노로 분열되었다가 오환의 공격 등으로 다시 남 ․ 북
흉노로 분열 후 후한에 투항
❏ 유연
o 4세기 초에는 선비 탁발부에 복속되어 가축이나 담비 가죽을 공물로
바침
o 402년 유연이 점차 발전하여 북위와 대립하게 되자 북위는 유연을
토벌 → 유연의 족장 사륜은 몽골 고원 북부로 도망
o 사륜 사후 약 140년 동안 지속되다 북위 및 돌궐과의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555년 와해
❏ 돌궐
o 유연에 예속되었으나 토문 카간이 552년 돌궐제국 건국
o 제3대 무한 카간 : 북중국 북주와 북제의 분열을 이용해 돌궐
제국의 토대를 세운 인물로, 이른바 ‘동돌궐 카간국(돌궐 제1제국)’
건립
o 토문 카간의 동생 이스테미는 야브구라는 칭호를 얻어 준가르,
일리 강, 추강, 탈라스 강 등지를 물려받아 ‘서돌궐 카간국’ 건립
o 당시 이 두 카간국을 합친 돌궐제국은 만주에서 카스피해 북쪽
연안의 광대한 투르크계 유목제국을 형성
→ 581년경 동 ․ 서 돌궐 카간 제국으로 분열, 동돌궐은 630년, 서돌
궐은 657년에 각각 당(唐)에 의해 멸망
- 21 -
o 쿠틀룩 카간의 돌궐 제2제국(682-745) : 682년 당(唐)의 지배에서
벗어나 음산(陰山)산맥을 중심으로 막남지역에 거점을 두고 부흥에
성공
- 고대 투르크 비문 : 북방 유목민족 중 최초로 독창적인 문자를
사용하여 돌궐의 역사를 기록
o 돌궐 제2제국은 통치부족 내부의 지속적인 분쟁으로 인해 몰락
❏ 위구르
o 돌궐 제1제국이 붕괴 후, 당(唐)이 대돌궐 지배에서 몽골고원으로
진입하게 되면서 새롭게 세력화
o 745년 쿠틀룩 빌게 카간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840년까지 만주와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점유
o 당(唐)의 ‘안사의 난(755-763)’을 제압하는 데 크게 기여
o 카간의 직계계승을 통한 정치적 안정성 도모, 오르혼 강 지역에
시장경제가 발전되었던 카라 발가순(=오르두 발릭) 건설, 위구르
문자 창제
※ 카라 발가순 : 위구르 제국의 수도 유적, 옛 명칭은 오르두 발릭, 2004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오르콘 계곡 문화경관’의 일부
o 840년 북쪽의 키르기즈에 의해 멸망
o 우수한 문명의 초원 유목제국으로 발전한 위구르는 이후 건립된
유목제국들에게 “초원유목사회가 농경정착사회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답안”, “문명 부흥의 본보기”로서의 역할 수행
- 22 -
칭기스칸 생애 비고
1162
∙ 父 예수게이 바타르 ․ 母 후엘룬 사이에서 ‘테무진’
출생
∙ 몽골학자들의 공식견해 - 1162년 출생설
출생설 : 1155,
1161, 1162,
1167년설
1175-
1176
∙ 父 예수게이 바타르, 타타르 부족에게 독살
∙ 부친 독살 직후 동족들은 테무진과 그 일가를 외면
∙ 가장이 된 테무진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복동생 벡테르를 살해
∙ 이에 타이치우드 씨족은 테무진이 무서운 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여 테무진을 포로로 붙잡으나
탈출
“그림자 말고는
동무도 없고,
꼬리 말고는
채찍도 없던”
고단한 어린
시절을 회상
1182
∙ 케레이트 부족의 군주 토오릴(옹칸)을 방문하여
의부자 관계 확인
1184
∙ 메르키트 부족에게 약탈당한 부인 보르테를 탈환
∙ 안다(anda, 의형제) 자무카와 연합 시작
1186 ∙ 자무카와 결별하고 몽골 부족의 ‘칸’으로 즉위 1차 즉위
1187 ∙ 달란 발주트에서 전투
2 몽골 제국 시대(1206-1368)
가. 대몽골 제국의 태동가. 대몽골 제국의 태동
❏ 흑룡강 상류의 남쪽, 흥안령 북부에 거주하며 수렵과 원시적 농업을
병행
❏ 9세기 중반 위구르 붕괴 후 대규모의 민족이동 시작, 12세기 중 ᠂
후반에 오논 강 상류 보르항 할동산 인근에 정착
❏ 칭기스칸 등장 전의 몽골초원은 여러 개 큰 부족국가들간 끊임없는
전쟁으로 혼란 가중
나. 칭기스칸의 등장나. 칭기스칸의 등장
- 23 -
칭기스칸 생애 비고
1196 ∙ 금나라 ․ 케레이트와 연합하여 타타르 원정
1196-
1197
∙ 주르킨 가문의 족장들(사차 베키, 타이추) 처형
1198-
1199
∙ 케레이트와 연맹하여 나이만 부족에 원정
1201
∙ 자무카, ‘구르칸’으로 즉위했으나 쿠이텐의 전투
에서 패배
1202 ∙ 달란 네무르게스의 전투로 타타르 전멸
1203 ∙ 케레이트와 카라 칼지트에서 전투, 패배
1204 ∙ 케레이트 습격과 승리, 나이만과 메르키트 정벌
1205 ∙ 자무카 처형
1206
∙ ‘칭기스칸(Chinggis Khan)’으로 즉위,
천호제 조직, 나이만 정복
2차 즉위
1207 ∙ 키르기즈 복속
1208 ∙ 오이라트 복속
1209 ∙ 탕구트(西夏) 원정
1211 ∙ 위구르 ․ 카를룩 복속, 금나라와 전쟁시작
몽골어표기에
위구르문자 채용
1218 ∙ 중앙아시아로 파견한 사신단, 오트라르에서 몰살 서방원정의 원인
1219 ∙ 호라즘 및 서방원정 시작 네 아들과 주요
장군이 모두 참여
하는15-20만원정
규모의 대대적인
응징
1225
∙ 서방원정에서 귀환 : 이슬람 신흥강국 호라즘 멸망,
중앙아시아 ․ 서아시아 도시들 황폐화
(이 지역의 지배의사가 없었으므로 전군철수)
1226 ∙ 탕구트 원정 : 호라즘 원정 불참자에 대한 응징
1227 ∙ 원정도중 사망
o 칭기스칸의 막내 아들 톨루이의 섭정 : 1227-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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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몽골제국의 흥망다. 몽골제국의 흥망
❏ 칭기스칸의 후계자들
조 치 바투 조치 올스
차가타이 차가타이 올스
3. 구육
1. 칭기스칸 2. 어거데이 어거데이 올스
4. 뭉케
톨루이
5.쿠빌라이 대칸 올스
훌레구 훌레구 올스
아릭베케
※ 올스 : ‘제국’을 의미
❏ 어거데이칸(Ogotai Khan, 1229-1241)
o 칭기스칸의 3남으로 1229년 몽골 올스의 2대 칸으로 등극
o 1234년 금 멸망
o 1235년 수도 카라코름 건설
o 1240년 바투를 사령관, 수베테이를 실질적인 지휘관으로 하는 대규모
서방원정 시작
o ‘몽골 국가’가 전통적으로 몽골 초원지대를 통치하던 ‘유목 국가’로서의
성격을 탈피, 정주 ․ 농경국가를 지배하는 ‘세계 제국’으로 변모
❏ 투르게네의 섭정(어거데이 부인, 1242-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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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육칸(Guyuk Khan, 1246-1248)
o 바투와의 불화, 1248년 즉위 2년 만에 돌연사
❏ 오골-카이미쉬의 섭정(구육의 부인, 1248-1251)
❏ 뭉케칸(Munkhe Khan, 1251-1259)
o 바투의 적극적인 지지로 대칸에 즉위
o 어거데이 가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
o 운남 ․ 티벳지역 평정
o 2차례 고려 침공(1252년, 1254년)
o 페르시아 및 소아시아 일대 장악(1258년, 훌레구)
o 남송 원정도중 장티푸스로 사망(1259년)
❏ 쿠빌라이칸(Khubilai khan, 1260-1294)
o 1267년 현 북경지역에 카라코름을 대신할 새 수도 건설 명령, 1272년
완성 후 대도로 명명
o 대도(大都, 현재 베이징)와 상도(上都, 현재 내몽골 정람기)를 오가는
양도순행(兩都巡行)
o 1271년 ‘대재건원(大哉乾元)’에서 그 뜻을 취하여 ‘대원(大元)’이라는
국호 선포
※ 대재건원(大哉乾元) : 크도다! 하늘의 으뜸이여! (출처 : 역경(易經))
o 남송정벌(1272년)
o 고려와 연합하여 2차례 일본정벌에 나섰으나 태풍으로 실패(1274년,
1281년)
o 인도차이나 자바 원정
o 유라시아 대륙에 몽골 세계제국 건설 및 국제교역 대폭 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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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元)의 쇠망(1368)
o 쿠빌라이칸 사후 대칸위 계승권을 둘러싼 왕실 내부 분열
o 라마승의 횡포로 재정파탄
o 가뭄, 홍수, 지진 등 잇따른 자연재해
o 1333년 마지막 황제 토곤 테무르(Togun-temur) 즉위
o 주원장이 이끄는 명나라군에 의해 몽골고원으로 패퇴
o 1483년 몽골의 러시아 지배종료
❏ 몽골제국(4대 칸국과 元)의 흥망일지
칸국명 건국자 존속기간 위 치 멸 망
어거데이
어거데이
(칭기스칸의
3남)
1224-1310
o 몽골남부 알타이山-발카슈湖 일대
o 도읍지 : 에밀
o 차가타이
칸국에 병합
차가타이
차가타이
(칭기스칸의
차남)
1227-1380
o 중앙아시아-아프가니스탄
지역
o 도읍지
- 초기 : 아마리크
- 후기 :
東차가타이-악스
西차가타이-사마르한트
o 내부분열
o 티무르에게
멸망
킵차크
바 투
(칭기스칸의
장손자)
1243-1502
o 러시아 볼가강유역
o 도읍지 : 사라이
o 모스크바公國의
독립
o 티무르의 침입
o 내부분열
일
훌레구
(칭기스칸
4남의 아들)
1258-1410
o 이란, 이라크 등 서남아 일대
o 도읍지 : 타브리즈
o 내부분열
o 티무르에게
멸망
元
쿠빌라이
(칭기스칸
4남의 아들)
1271-1368
o 중국전토, 몽골지역
o 도읍지 : 대도(북경)
o 내부분열
o 홍건적의 난
(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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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몽골 올스는 1260년 이후 각 계승국가로 분열된 것이 아니라
올스들의 연맹으로 칭기스칸의 후손이라는 연대감과 일체성을 유지
하며 오랫동안 존재
몽골제국의 역사적 의의
ㅇ 진정한 의미의 “세계제국”과 “세계사”의 실현
ㅇ 유럽-아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 육상 ․ 해상교통로를 발달시키고 인터넷보다
700년 앞서 국제통신망을 건설함으로써 동 ․ 서간 경제 ․ 문화교류 촉진
- 기독교 ․ 이슬람교의 동방전파
- 지리학 ․ 천문학 ․ 역학 ․ 수학 ․ 지도제작법 등의 전래
- 신항로 발견 촉진
-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의 탄생
※ Washington Post지 1995년 송년특집호는 지난 1천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로 칭기스칸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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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북원과 명의 대결시대, 청 복속 시대 (1368∼1911)
가. 북원과 명의 대결시대가. 북원과 명의 대결시대
o 1368년 대도를 떠나 상도로 피신한 토곤 테무르 정권
- 북쪽으로 근거지를 옮긴 ‘북원(北元)’이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한
나라는 고려
o 토곤 테무르의 아들 아유시리다라가 몽골본토로 돌아가 1371년 ‘빌
릭투칸’이라고 칭하고 옛 대원세력의 잔여세력들을 규합하고 지배
체제를 안정시켜 북원 내부를 안정화
o 북원시기 몽골고원은 정치적 분열과 내분으로 ‘6만호 몽골(동몽골)’과
‘4만호 오이라트(서몽골)’로 나뉘어졌다가, 다시 ‘6만호 몽골(동몽골)’이
남 ․ 북으로 분열되어 3개의 독립국 형성
※ 오이라트 : 15세기말,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정착하여 현재 러시아 칼미크
공화국 형성
o 몽골의 오이라트는 몽골고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지만
대칸 즉위는 불가능
- 칭기스칸의 직계만이 대칸에 오를 수 있다는 ‘칭기스 통치원칙’
여전히 존재
o ‘칭기스 통치 원칙’을 어기고 오이라트의 에센 타이시가 대칸에
등극하나 1455년 사망
→ 오이라트부 급속 와해
o 1466년 만두하이 여왕은 바트멍흐에게 ‘다얀(dayan)’이라는 칭호를
수여하고 칸으로 추대 → ‘다얀칸’
나. 청 지배기나. 청 지배기
o 17세기 몽골은 몽골고원의 알타이 산을 경계로 서부의 오이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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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의 할하몽골, 고비남쪽의 내몽골로 분립
o 차하르 부의 릭단칸, 통치력을 강화하고 전 몽골인 통합 ․ 통치를 위해
노력
- 후금은 걸림돌인 릭단칸을 가장 먼저 공격
o 1626년 후금의 홍타이지는 차하르를 공격, 이에 대항해 릭단칸은
호르친을 공격
o 1632년 홍타이지는 릭단칸을 정복하기 위해 친정을 감행
- 1634년 릭단칸은 허흐노르로 피신을 가던 중 천연두에 걸려 사망
- 릭단칸의 사망으로 칸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자 공백 상황 발생
o 1636년 내몽골의 16개 아이막, 49개 호쇼의 왕공들이 홍타이지를
몽골의 대칸으로 인정, 내몽골은 만주로 복속
o 1640년 ‘몽골-오이라트 법전’ 비준
- 러시아와 청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몽골 각부와 오이라트 연합 결성
o 1688년 갈단칸 몽골 할하부 공격
o 1689년 청 ․ 러간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청 ․ 러간 국경선 확정
→ 부리야트 몽골을 비롯한 북부지대 러시아에 합병
o 1691년 할하 몽골, 내몽골 왕공들의 회맹을 통해 몽골은 청에 복속
o 1717년 청이 몽골 전역을 장악
o 1727년 청 ․ 러간 캬흐타근처의 보오린 골에서 ‘보오린 조약’ 체결로
현재의 몽 ․ 러간 국경선 확정, 캬흐타에서는 ‘캬흐타 무역 조약’ 체결
- 청은 한족, 만주족을 몽골지역에 이주시키는 등 동화정책(同化政策)
추진
다. 반(다. 반(反反)청 운동)청 운동
o 1755년 이후 반청 ․ 반봉건 ․ 반식민지 운동을 계속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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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1911.8 신해혁명으로 청이 붕괴되면서 독립운동확산
o 1911.9 제8대 접준담바 호탁트를 혁명의 정신적 지주로 세우고
외몽골 독립선언
o 1912.11 외몽골의 고륜정부와 러시아간의 협약을 통해 내몽골은
포함하지 않는 독립을 결정
→ 몽골인들의 내 ․ 외몽골 통합독립 희망은 러시아와 일본의 사전
협약에 따라 실패 (러시아와 일본은 외몽골은 러시아, 내몽골은
일본이 특수한 이해관계를 갖는 지역임을 상호승인하고 이를
위반하지 않기로 사전 합의)
o 1912년-1919년 몽골, 러시아 보호하에 자치주로 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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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몽골 독립이후(1920년 이후)
o 몽골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수흐바타르(D.Sukhebaatar)는 몽골
인민혁명당을 창당, 소비에트 적군(赤軍)과 연합하여 중국군을
몰아내고 독립선포(1921.7.11)
※ 몽골은 독립선포일(7.11)을 혁명기념일로 기념, 매년 7.11∼13간을 몽골민족 최대의
축제인 “나담축제” 기간으로 선정
o 1924.11.26 새로이 제정된 헌법에 따라 몽골인민공화국 선포
※ 구 소련에 이어 세계 2번째의 사회주의 국가
o 1939.5-9월 할힌골 전투 : 일본의 동몽골지역 침입에 대해 소련과
연합하여 격퇴
o 1946.2월 중국은 외몽골은 몽골인민공화국으로 인정하였으나, 내몽골은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1947.5)
o 1959.12월 인민 경영주에 대한 협동 조합화 완료
- 사유재산 소유제 기능 상실
o 1960년 몽골인민공화국 신헌법 승인
- 사회주의 실현과 향후 공산주의 건설 목표를 규정,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등 사회주의 건설이 완료되었음을 선포
o 1961년 UN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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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주주의 시대(1990년 이후)
o 1960-1990년간은 몽골인민공화국의 사회주의 건설을 완료하는 과정
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일당독제체제에 따른 관료주의와 상명하복
체제로 인한 내부 이완과 쇠락 초래
o 1990년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운동은 몽골 민주화 운동의 외적
요인으로 작용
o 1989.12.10 몽골민주연맹 결성 공식 선포
o 1990.2.18 제1차 몽골민주연맹 대회의에서 몽골인민혁명당에 이어
몽골 역사상 두 번째 정당인 몽골민주당 창당을 선언
o 1990.5.10 몽골인민공화국 헌법 개정으로 합법적인 다당제 체제
인정
o 1990.7.29 민주적 절차에 의한 최초의 자유선거 실시
- 다당제의 현실화
- 몽골인민혁명당의 오치르바트를 몽골인민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
o 1991년 제30호 정부 결정으로 사유화 규정을 확정, 사유재산 인정
o 1992.1.13 몽골국 헌법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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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역사적 인물
가. 칭기스칸 [1162-1227]가. 칭기스칸 [1162-1227]
❏ 칭기스칸 일대기
“그의 눈에는 불이 있고 얼굴에는
빛이 있다.” <몽골비사> 중
< 칭기스칸 초상화 >
복수와 약탈의 세계에서 사고무친의 고난을 겪다
1162년경 오늘날의 몽골과 시베리아 지역이 맞닿은 곳 근처, 오논 강 유역
숲에서 보르지긴 씨족 예수게이와 올크누트 부족 출신 후엘룬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후엘룬은 메르키트 부족 전사의 아내였으나 예수게이에게 납치당한
처지였다. 예수게이는 이미 첫 부인 소치겔과의 사이에 아들 벡테르를 두고
있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테무진. 예수게이가 죽인 타타르족 전사의
이름이었다. 예수게이는 테무진을 보르테와 약혼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타타르족
야영지를 방문했다가 독살당하면서 두 아내와 10살이 안 된 자식 일곱 명이
남겨졌다. 12세기 당시 초원 지대에는 수십 개 부족과 씨족들이 전투, 사냥,
유목, 약탈, 납치, 교역 등으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었다.
예수게이의 보르지긴 씨족은 타이치우드 씨족에 사실상 의탁해 살고 있었는데,
타이치우드 씨족은 예수게이가 죽자 그 가족들을 버리고 이동했다. 고립된
가족은 오논 강 유역에서 사냥과 채집으로 겨우 연명하며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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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테무진은 자무카와 의형제를 맺었고, 배다른 형 벡테르를 활로 쏘아
죽였다. 타이치우드 씨족은 테무진을 사로잡아 노예로 만들었지만 테무진은
탈출했다. 1178년 16살 경 테무진은 보르테와 결혼하고 몽골 중부의 유력
한 부족 케레이트의 옹칸에게 복종하여 안전을 도모했다. 그러나 메르키트
부족이 후엘룬을 빼앗긴 것에 대한 뒤늦은 복수로, 테무진의 아내 보르테를
납치해갔다.
타타르와 타이치우드를 정복하고 초원의 강자로 떠오르다
테무진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옹칸에게 메르키트를 습격할 뜻을 밝혔다.
메르키트와 구원(舊怨)이 있던 옹칸은 테무진과 의형제를 맺은 자무카를
끌어들여 메르키트를 공격해 승리했다. 테무진은 의형제 자무카 무리와 함께
생활하며 안정을 찾았지만 1181년 자무카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세력을 쌓기
시작했다. 1189년 여름 27살의 테무진은 옹칸의 승인 아래 전통적인 씨족,
부족 회의 쿠릴타이를 소집하여 칸의 칭호를 차지했다. 1196년에는 옹칸과
함께 타타르 원정에 나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쟁을 통해 테무진은 금나라가
타타르, 케레이트, 몽골 등 여러 부족들을 서로 싸우게 한다는 사실을 분명
하게 인식했다.
1197년 테무진은 주르킨 부족을 공격해 무너뜨리고 헤를렌 강과 쳉헤르 강이
만나는 곳 근처에 새로운 근거지를 만들었다. 이곳이 몽골의 수도 아바르가가
되어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원정을 위한 기지 구실을 했다. 1201년 새롭게 떠오
르는 테무진 세력에 반감을 지닌 씨족들이 자무카를 구르칸으로 추대해 옹칸과
테무진에 도전했다. 옹칸은 자무카와 맞서고 테무진은 타이치우드 부족과
맞서 승리했으나 자무카는 달아났다. 1202년 옹칸은 메르키트를 공격하고
테무진은 타타르를 공격했다. 타타르를 정복한 테무진은 수레바퀴 비녀장보다
키가 큰 타타르 남성들은 모두 죽이고 나머지는 자기 부족의 구성원으로
융합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몽골 군대와 부족을 아르반(10호), 조(100호),
밍간(1000호), 투멘(1만호) 체제로 재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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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흐 몽골 올스(대몽골제국)의 지배자로 거듭나다
테무진은 맏아들 조치와 옹칸의 딸을 혼인시키려 했으나 옹칸은 거부했다.
그러나 테무진의 군사력을 당해내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옹칸은 계략을
세웠다. 혼인을 수락하고 축하 잔치에 테무진을 초대해 제거하려 했던 것. 소수
병사만 이끌고 옹칸에게 가던 테무진은 계략을 알아채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옹칸의 추격을 피해 살아남은 자는 불과 19명. 이들은 흙탕물을 마시며 테무진
에게 충성을 서약했다. 이들 19명은 아홉 부족 출신으로 전통적인 씨족이나
부족 관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결사체가 탄생한 셈이었고, 이는 몽골 제국 내
통일의 기초나 마찬가지였다. 테무진은 흩어진 추종자들을 모아 옹칸을 향해
진군했다. 기습당한 케레이트 부족은 대부분 테무진에게 항복했다. 옹칸은 나이만
에서 죽임을 당했고 자무카는 부하들의 배신으로 테무진 앞에 끌려오게 되
었다. 자무카는 피를 흘리지 않고 명예롭게 죽기를 바랬다. 테무진은 어린
시절 동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었고 1204년 테무진은 나이만을 완전히
정복하게 되었다.
1206년 테무진은 보르항 할동 성산(聖山) 근처 오논 강 상류에서 쿠릴타이
(대집회)를 열었다. 100만 명에 가까운 인구와 2000만 마리에 가까운 가축을
보유한 새로운 나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나라의 이름은 이흐 몽골
올스(대몽골제국), 통치자의 칭호는 칭기즈칸이었다. 테무진, 아니 칭기즈칸은
부족 간 납치와 몽골인을 노예로 삼는 것을 금지시키고, 종교의 자유를 선포
했으며, 칭기즈칸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개인보다 법이 우위에 선다는 것을
선언했다. 칭기즈칸은 시베리아 부족과 위구르족까지 친족 관계를 확대하여, 부
족이나 민족 전체 단위로 가족적 유대를 맺는 정책을 폈다. 그리고 1207년부터
1209년까지 여러 차례 공격을 통해 탕구트, 즉 서하(西夏)를 정복했다.
금나라와 호라즘을 정복하고 제국을 건설하다
칭기즈칸이 48세가 된 1210년 금나라 사신이 몽골의 복종을 요구하러 왔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땅에 침을 뱉고 금나라를 욕했다. 전쟁 선포였다. 1211년
쿠릴타이를 소집해 원정을 결정하고 진군을 개시한 칭기즈칸은 1215년 금나라
수도 중도(中都. 오늘날의 베이징)를 포위해 항복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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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원정에서 몽골군의 병력은 기병 6만5천이었다. 지구력 강한 몽골 말과
보급부대를 두지 않는 간편함(육포와 우유를 말려 응고시킨 덩어리를 휴대),
고도로 조직화된 부대 편재는 몽골군의 기동력을 세계 최강으로 만들어주었다.
여기에 포로들을 통해 익힌 공성전(攻城戰) 전술과 무기, 굳은 충성심과 규율,
적에게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선전전, 적이 제대로 대응하기 전에 전격
적으로 기습하는 전술, 적의 영토 전역에 걸쳐 작전을 펼쳐 혼란을 일으키는
전술 등으로 몽골군은 위세를 떨쳤다.
칭기즈칸은 이제 넓어진 영역을 다스리며 교역과 상업에 큰 관심을 기울
였다. 그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흑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차지한
호라즘과 교역 조건을 협상하고 관계를 공식화하기 위해 사신을 보냈다.
호라즘의 지배자인 투르크 족 술탄 무함마드 2세는 칭기즈칸의 제의를 받아
들이기로 했고, 칭기즈칸은 많은 물자와 함께 상인들을 보냈다. 그러나 호라즘의
북서쪽 오트라트(카자흐스탄 남부)의 총독이 상인들을 죽이고 물자를 빼앗았다.
칭기즈칸은 사신을 보내 총독을 처벌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무함마드 2세는
오히려 사신들을 죽였다. 남은 것은 전쟁이었다. 1219년 원정을 떠난 칭기즈칸은
이듬해 봄 호라즘 영역에 도착하여 그 해가 끝나기 전에 호라즘의 주요 도시들을
속속 점령했다. 무함마드 2세는 몽골군에 쫓기다가 카스피해의 작은 섬에서
죽었다. 무함마드 2세의 아들 잘랄웃딘이 인더스 강변에서 몽골군과 맞서기도
했지만 칭기즈칸에게 패했다. 중앙아시아 대부분을 휩쓴 칭기즈칸의 원정은
1222년 여름 오늘날의 파키스탄 중심부에서 멈추었다.(1223년 제배와 수부타이가
이끈 별동군이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 러시아 남부 지역과 이란 일부 지역
여러 도시를 공략)
“내가 사라진 뒤에도 세상에는 위대한 이름이 남게 될 것이오”
칭기즈칸은 인도 북부를 모두 점령하고 히말라야 남쪽을 돌아 중국 송나라
영토를 가로지를 생각을 했지만, 더위와 습기가 커다란 장벽이 되었다. 본거지로
돌아온 칭기즈칸은 이제 서하, 즉 탕구트 공격을 준비했다. 탕구트는 이미
항복했지만 호라즘 원정 때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탕구트 원정을 위해 고비
사막을 건너던 1226∼27년 겨울 칭기즈칸은 진군을 멈추고 야생마를 사냥
했다. 갑자기 야생마들이 돌진해오자 칭기즈칸이 탄 말이 놀라 뛰어올랐다.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지만 칭기즈칸은 탕구트와 전쟁을 계속했다. 수도를
포위하고 마지막 승리를 얼마 앞둔 1227년 8월 칭기즈칸은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중국 간쑤성(甘肅省) 칭수이현(淸水縣) 시장(西江) 강변이었다. 그러나
칭기스칸의 무덤은 현재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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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기스칸 리더십의 특징
1) 원대한 비전의 제시
o 조직원들은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 더 탄탄하게 움직이며 그러한
목표는 너무 작은 것보다는 조금은 이상적이어야 힘을 낸다는 점,
끊임없이 목표를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점은 현대의 여러 리더십
이론에 부합
2) 슈퍼 리더십
o 부하에게 전적인 권한을 부여, 나눠준 영토에 대해서는 현지의
관리자들에게 맡겼으며 특별한 간섭을 하지 않음으로써 최대한
많은 자율권을 부여
3) 통합적 패러다임과 거시적 안목
o 범세계화되어가는 세계 흐름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통합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상대적인 시각 또한 필요
4) 과학기술과 교역 장려
o 실리를 추구하고 교역을 중시하는 개방정책으로 발달한 문명과
각종 기술들을 수용함. 당시에는 유럽과 통상을 하기에는 가는
길도 멀고 도적들도 많아 곤란했지만 이때부터 시작한 문명교류는
과학과 기술 문명의 발전을 앞당기는 역할
5) 역할 모델
o 먼저 함성을 외치고 적을 향해 돌진함으로써 부하들의 사기를
증진시키고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한 모습 시현
6) 아웃소싱
o 칭기스칸은 적이든 아니든 쓸모있는 모든 사람들을 확보, 경영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철저한 아웃소싱
- 38 -
7) 개인적 지지
o 칭기스칸은 개인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부하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용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에 맞추어
칭찬과 포상
8) 대인관계 & 커뮤니케이션 방법
o 칭기스칸은 항상 아래와 같이 부하들에게 말하였고 본인 스스로도
실천
- “大人을 찾아가는 사람은 그 大人이 질문을 하기 전에는 어떠한
말도 하지 말라. 그 질문에 따라서 적절한 답변을 하라. 만일 그가
묻기 전에 말했을 때 大人이 듣는다면 상관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은 차가운 쇠로 두드리는 것과 같다.”
- “말을 할 땐 항상 신중함을 기울여라.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9) 평등의 원칙
o 씨족끼리 모여 사는 씨족봉건사회였던 몽골 전 사회를 아르반 ․ 조
․ 망간 ․ 투멘의 10진법 체제로 재편하고(지연 ․ 혈연 ․ 학연을 철저히
배제) 싸움터에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이면 누구든 신분에 관계없이
지휘관으로 발탁
o 지역을 정복한 후에 재물을 분배할 때에도 모두에게 평등 분배
- 39 -
나. 쿠빌라이 [1215-1294]나. 쿠빌라이 [1215-1294]
1215년 칭기스칸의 손자(4남 톨루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쿠빌라이는 어려서는 별로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었다. 1251년이 될 때까지
톨루이 가문이 권력의 핵심에서 소외되었고, 쿠
빌라이는 톨루이 가문에서도 둘째 아들이라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소르각타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중국
인들을 탄압하고 착취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살피고 다독이는 정책을 취해 우리 몽골에
충성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을 멸시하기보다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가르침이
훗날 그가 칸의 자리에 올랐을 때 중국을
다스리는 데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 쿠빌라이 초상화 >
1259년 형 뭉케가 남송원정 도중에 사망하자 모든 이목이 쿠빌라이에게
집중된다. 칸으로 즉위함에 있어 막내동생인 아릭베케와 대립하게 된다.
1260년, 쿠빌라이는 상도에서 자신의 지지자들만을 모아 쿠릴타이를 열어
제5대 대칸에 오르게 된다. 아릭베케는 몽골에서 별도로 쿠릴타이를 열고
대칸을 선언하는데 킵차크, 어거데이, 차가타이칸국이 아릭베케의 편에 서고
훌레구가 이끄는 일한국은 쿠빌라이를 지지했다. 그 뒤로 두 칸이 싸우기를
4년, 마침내 아릭베케를 굴복시킨 쿠빌라이는 도읍을 북경으로 옮겨 대도(大都)라
일컫고, 이어 1271년 국호를 원(元)이라 칭하였다.
대원제국 수립 후 내적으로는 아릭베케의 잔당인 하이두(어거데이의 손자)와
도와(차가타이의 손자)의 반란으로 인해 30여 년에 걸친 내전이 일어났다.
쿠빌라이가 실시한 주요 외정으로는 고려, 동남아시아, 일본 정복이 있다.
쿠빌라이의 만년은 만주에서 티베트, 중앙아시아까지 제국 각지에서의 잇따른
반란과 끝날 줄 모르는 통치권 도전으로 시끄러웠다. 게다가 의지했던 황후
차비가 1281년에 죽고, 그녀가 낳은 황태자 친킨 역시 1285년에 병사하자
쿠빌라이는 인간적인 고통과 고독에 시달렸다. 그리하여 이후 10년 동안
정치 업무를 새 황후인 남비에게 일임하고 폭음과 폭식을 거듭했다. 그 결과
급속도로 건강을 해친 그는 1294년 사망하고 친킨의 아들인 테무르가 대를
이었다.
- 40 -
다. 만두하이 [1449-1510]다. 만두하이 [1449-1510]
만두하이는 처러스바이
투무르의 딸로써 16살이
되던 해에 아름다움과 지혜
로움이 널리 퍼져 이를
들은 만두굴칸(1463-1467)
은 그녀를 왕비로 삼았다.
하지만 1467년 만두굴칸은
타이슨칸의 손자인 바얀
멍흐와 권력 다툼을 벌이다
사망하였다. 하지만 바얀< 만두하이 영화 한 장면 >
멍흐 역시 칸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피살되었다. 만두굴칸 사망 당시 만두하
이가 31살, 바얀멍흐의 아들 바트멍흐는 겨우 여섯 살이었다.
쿠빌라이 자손들이 대부분 사라진 상황에서 바트멍흐는 거의 유일하게
남겨진 귀한 황손이었다. 바트멍흐는 아버지(바얀멍흐) 사후 재혼한 생모로
부터도 천대를 받는 버려진 아이가 되는데 만두하이가 이를 거두어 돌보게
된다. 만두하이는 칸의 자리를 이어갈 사람은 바트멍흐뿐이라고 판단을 하는
한편 동몽골인들의 충성을 이끌어 내어 바트멍흐를 정식 칸으로 추대하였
는데 이가 다얀칸이다.
만두하이는 어린 다얀칸을 키워가면서 섭정으로서 동몽골을 다스렸다.
1481년, 다얀칸이 성장하자 만두하이는 42살의 나이로 17살의 다얀칸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7명의 아들을 낳는다. 후에 다얀칸의 후비가 낳은 4명의 아들까지
총 11명의 아들들이 이후 칭기스칸 가계의 새로운 몽골족을 탄생시킨다. 칸의
부인 자격을 얻은 만두하이는 군대를 직접 지휘하며 몽골고원의 통일전쟁을
이끌었다. 만두하이는 오이라트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몽골초원에서
동몽골이 완전히 주도권을 잡은 후, 장성한 다얀칸에게 몽골의 통치권을 넘겼
다. 당시 몽골은 명나라 주원장 세력에 쫓겨 초원으로 밀려난 뒤, 100여년 동안
이나 사분오열의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였는데, 만두하이 활약으로 분열과
반목을 거듭하던 몽골은 다시 통일된 국가가 될 수 있었다.
- 41 -
라. 수흐바타르 장군 [1893-1923]라. 수흐바타르 장군 [1893-1923]
< 수흐바타르 장군 > < 수흐바타르 광장에 세워진 수흐바타르 장군 동상 >
가난한 유목민의 집에서 태어나 16세에 역전 마차의 마부가 되었다.
1911년, 몽골 독립 후 자치(自治)몽골군의 소집을 받고 입대, 하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기관총대장으로서 공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1911년 중국으로부터
독립에 성공한 몽골의 독립은 같은 해 청나라 멸망 후 들어선 중화민국에
의해 사실상 물거품이 되고 만다. 중화민국이 무력을 동원하여 몽골을 무력
침공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이 시기 수흐바타르는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자극을
받아 공산주의자가 되고 1920년 6월 초이발산 등과 몽골인민당을 결성,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무장 독립
투쟁은 강력한 중국군 앞에서는 결국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여러 전투에서
중국군에게 패배당한 수흐바타르는 러시아로 건너가 당시 러시아 혁명 지도자
였던 레닌을 만나 몽골을 도와줄 것을 요구했다. 여러 차례의 협상 끝에 레
닌은 수흐바타르에게 몽골 독립 지원과 몽골군의 군사 훈련 원조를 약속하게
된다. 수흐바타르는 1921년 인민의용군을 결성, 몽골혁명의 성공과 그후의
국가건설을 위한 전술지도를 받고, 총사령관으로서 마이마친에서 군사를
일으켜 7월 10일 울란바타르에 인민정부를 수립하고 몽골의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그는 몽골이 완전한 주권 독립국으로서의 기반을 굳건히 다져가는 것을
보기도 전에 1923년 2월 22일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
다. 그를 기리기 위해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그의 이름을 딴 광장과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 43 -
Ⅲ. 정치 ․ 군사
1. 정치제도
2. 개혁ㆍ개방 이후 정치발전
3. 군사
- 45 -
1 정치제도
가. 정 체 : 민주공화제가. 정 체 : 민주공화제
❏ 의원내각제적인 성격이 강한 이원집정부제
o 총 리 : 의회 다수당의 당수가 총리직 수임(내정 통할)
o 대통령 : 국가의 상징이며 직선제 선출(외교, 국방, 사법)
❏ 형식적으로 입법 ․ 사법 ․ 행정 3권이 분리되어 있으나, 국가 주요
기관이 긴밀히 연결되어 주요 기능이 3부에 혼재
나. 국회(The State Great Hural)나. 국회(The State Great Hural)
❏ 구성
o 헌법상 국가권력의 최고 기관이며 입법권을 가지는 유일한 기관으로
국내외의 주요 정책에 관하여 심의 ․ 결정
o 의원 76명으로 구성, 임기는 4년(2012.6월 선거 예정)
- 소선거구제(2011.7월 현재 비례대표제 도입 논의 중)
o 정기회의는 통상적으로 춘계(4월-7월), 추계(10월-익년도 2월) 등
2회 개최
- 임시회의는 재적 의원 1/3 이상 발의 혹은 대통령이나 의장의
발의에 의하여 소집
- 7개의 상임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으며 각 의원은 통상 2개의
상임위원회에 소속
- 46 -
직 책 성 명 소 속
의 장 D. Demberel (뎀베렐) 인민당
부 의 장
N. Enkhbold (엥흐볼드)
G. Batkhuu (바트후)
인민당
민주당
안보외교상임위원장 Ya.Batsuuri (바트소리) 민주당
환경식량상임위원장 P. Altangerel (알탕게렐) 민주당
예산상임위원장 D. Khayankharvaa(하얀하르와) 인민당
법률정책상임위원장 D. Odbayar(오드바야르) 인민당
사회정책상임위원장 D. Ochirbat(오치르바트) 인민당
국가조직상임위원장 J. Sukhbaatar(수흐바타르) 인민당
경제정책상임위원장 D. Zorigt(조릭트) 인민당
국회 사무총장 Ts.Sharavdorj (샤랍도르지) -
❏ 국회 소속 기관
국회국회국회국회국회국회국회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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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감사원 Ch.Radnaa(라드나)
국가통계위원회 S. Mendsaikhan(멘드사이한)
중앙은행 L. Purevdorj(푸렙도르지)
공무원관리위원회 D. Zumberellkham(줌베렐함)
금융관리위원회 D. Bayarsaikhan(바야르사이한)
국가인권위원회 J. Byambadorj(뱜바도르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N. Luvsanjav(롭상자브)
헌법재판소 업무대행(N. Jantsan)(잔창)
부정부패방지청 공석
- 47 -
다. 대통령다. 대통령
o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 직선제를 통해 선출(2013.5월 선거 예정)
- 임기 4년, 연임 가능
o 대통령은 외교․ 국방․ 사법권을 보유하며, 국회에서 총리․ 각료 임명시
제한적인 동의권을 행사
o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이사회(The National Security Council) 의장
겸 군 최고통수권자
o 대통령은 국회에 대해 책임을 지며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 규정에
위배되었을 때, 국회는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 가능
※ 국가안전보장이사회(NSC)
- 대통령(의장), 총리, 국회의장 등 3인으로 구성
- NSC 사무국(사무총장 : Enkhtuvshin(엥흐툽신)) : 실무직원 약 15명
※ 소속기관 : 전략연구소(Institute of Strategic Studies)
- ▶국가안보 연구센터, ▶경제사회안보 연구센터, ▶정부안보 연구센터로 구성
되어 있으며 총 25명의 직원이 근무 중(소장 : Ganbat(간바트))
대통령대통령대통령대통령대통령대통령대통령대통령
국가안전보장 이사회
(NSC)
국가배상관리위원회
직 책 기 관 장 소 속
국가안전보장보이사회(NSC) Ts.Elbegdorj(대통령, 엘벡도르지) 민주당
국가배상관리위원회 N. Enkhbold(국회부의장, 엥흐볼드) 인민당
라. 내 각라. 내 각
❏ 구 성
o 형식적으로 각 부처의 행정권이 분산되어 있으나 내각회의를
통해 집단적으로 의사 결정
- 내각회의에서 채택되는 내각결의문을 통해 특정 사안에 대해
소관 부처 장관에게 권한을 부여
- 48 -
- 내각회의는 매주 수요일 오전에 개최하고 매주 월․ 화요일은 국회
상임위, 매주 목 ․ 금요일은 국회 본회의를 개최함으로써 내각과
국회가 사실상 유기적으로 연결
o 내각 각료는 총리의 제청으로 국회에서 임명, 임기는 4년이나
임기만료 전이라도 불신임 결의에 의하여 퇴진 가능
❏ 정부 조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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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리실, 부총리실은 내각관방부 소속
- 49 -
❏ 정부 내각 주요 인사(총리, 부총리2, 12개부)
※ 몽골인의 성은 아버지의 이름인바, 상대방에 대해서 통상 이름으로 호명
직 책 성 명 소속
총 리 S. Batbold(바트볼드) 인민당
정보총국 R. Bold(볼드)
국유재산위원회 D. Sugar(소가르)
정보우정통신기술청 J. Bat-Erdene(바트에르덴)
통신규제위원회 B. Boldbaatar(볼드바타르)
국가개발혁신위원회 Ch.Khashchuluun(하시촐롱)
원자력청 S. Enkhbat(엥흐바트)
수석 부총리 N. Altankhuyag(알탕후약) 민주당
국가등록청 L. Munkhbaatar(뭉흐바타르)
공정거래소비자청 D. Mandakh(만다흐)
부총리 M. Enkhbold(엥흐볼드) 인민당
국가전문감독청 R. Sodkhuu(서드후)
비상사태관리청 Ts.Amgalanbaatar(암갈랑바타르)
내각관방부장관 Ch.Khurelbaatar(후렐바타르) 인민당
행정아카데미 G. Chuluunbaatar(촐롱바타르)
재무부장관 S. Bayartsogt(바야르촉트) 민주당
국세청 B. Battumur(바트투무르)
관세청 D. Tseveenjav(체벤자브)
법무내무부장관 Ts.Nyamdorj(냠도르지) 인민당
경찰청 D. Sandag-Ochir(산닥오치르)
국경수비대 Ts.Sergelen(세르겔렝)
외국인관리청 D. Murun(무릉)
외교통상부장관 G. Zandanshatar(잔단샤타르) 인민당
외국인투자청 B. Ganzorig(간조릭)
자연환경관광부장관 L. Gansukh(간수흐) 민주당
기상청 S. Enkhtuvshin(엥흐툽신)
수자원청 Ts.Badrakh(바드라흐)
산림청 M. Tungalag(통갈락)
식량농업경공업부장관 T. Badamjunai(바담조나이) 인민당
중소기업청 Ts.Nyam-Osor(냠오소르)
사회복지노동부장관 T. Gandi(간디) 인민당
사회보험청 Ch.Altankhuyag(알탕후약)
노동사회복지서비스청 D. Bayarsaikhan(바야르사이한)
- 50 -
직 책 성 명 소속
교육문화과학부장관 Yo.Otgonbayar(어트겅바야르) 인민당
문화예술위원회 B. Lkhagvasuren(학바수렌)
도로교통건설도시계획부장관 Kh.Battulga(바트톨가) 민주당
토지측지지도제작청 Ts.Gankhuu(간후)
도로청 B. Enkhtur(엥흐투르)
민간항공청 S. Batmunkh(바트뭉흐)
국방부장관 L. Bold(볼드) 민주당
합동참모대 Ts.Byambajav(비암바자브)
자원에너지부장관 D. Zorigt(조릭트) 인민당
광물청 D. Batkhuyag(바트후약)
에너지청 Ts.Bayarbaatar(바야르바타르)
석유청 D. Amarsaikhan(아마르사이한)
보건부장관 S. Lambaa(람바) 민주당
보건청 Sh.Enkhbat(엥흐바트)
마. 사법부마. 사법부
❏ 사법부 구성
o 대법원(The Supreme Court), 지방법원(Aimag, Capital City Court),
지구법원(Som, Intersom, District Court)으로 구성
- 대법원에 법원협의회(The General Council of Courts)를 설치,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으며 대법원장과 재판관들은 일반
법관위원회와 국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
- 대법원은 대법원장과 16명의 재판관으로 구성, 대법원 산하의
민사, 형사, 행정재판실은 독립적으로 활동
o 국가 검찰청은 독립 기관으로 검찰총장, 검찰차장은 국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임기 6년)하며 市검찰청과 아이막 검찰청으로
구성
- 51 -
직 책 성 명
대법원장 Ts.Zorig(조릭)
국가검찰청장 D. Dorligjav(도를릭자브)
대법원대법원대법원대법원대법원대법원대법원대법원
지방법원(2심법원) 지방행정법원(1심법원)
지구법원(1심법원)
바. 지방자치단체바. 지방자치단체
❏ 구성
o 몽골의 지방조직은 수도 울란바타르시와 21개 아이막으로 구성
① 울란바타르시
- 시정부와 시의회로 구성
- 시의회 의원은 45명으로 주민 선거를 통해 선출(임기 4년)
- 시장은 시의회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를 총리가 임명(임기 4년)
- 울란바타르시는 9개의 구(district)와 그 하위조직인 동(khoroo)
으로 구성
- 구의회는 인구수에 따라 의원수(21명~35명)가 결정되며 구청장과
동(khoroo)장은 각각 울란바타르 시장, 구청장이 임명
② 아이막(道)
- 아이막 도정부와 아이막 도의회로 구성
- 아이막 도의원은 인구수에 따라 의원수(25명~35명)가 결정되며
주민 선거를 통해 선출
- 아이막 도지사는 아이막 의회의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를
총리가 임명(임기 4년)
- 아이막 하위조직으로 솜(som : 군)과 박(bag : 읍)이 존재
- 52 -
- 군의회는 인구수에 따라 의원수(15명~25명)가 결정
- 군수와 읍장은 각각 아이막 지사와 군수가 임명
직 책 성 명 소 속
울란바타르 시장 G. Munkhbayar(뭉흐바야르) 인민당
금융경제 담당 부시장(수석부시장) B. Baatarzorig(바타르조릭) 인민당
도시건설개발인프라 담당 부시장 B. Munkhbaatar(뭉흐바타르) 인민당
사회문화담당 부시장 Ts.Tsogzolmaa(척절마) 인민당
생산 및 자연문제 담당 부시장 D. Ganbold(간볼드) 민주당
울란바타르 시의회의장 T. Bilegt(빌렉트) 인민당
사. 정 당사. 정 당
o 1921년 독립과 동시에 출범한 몽골인민당은 1925년 인민혁명당
(Mongolian People's Revolutionary Party : MPRP)으로 개칭,
1990년대 초까지 헌법으로 보장된 일당 독재체제 유지
o 1990.2 몽골최초의 야당인 민주당 탄생
o 1990.3 인민혁명당, 중앙위 제8차 총회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일당
독재를 포기하고 복수후보에 의한 자유선거를 실시토록 함으로써,
민주다당제 정당정치의 기초 마련
o 1990.7.29 최초의 민주총선 실시, 인민혁명당 외에 민주당, 사회
민주당 등 5개의 신설 야당 참여
o 1992.6.28 신헌법 제정후 최초로 실시된 총선에서 집권당인 인민
혁명당(MPRP)이 압승 → 총선에서 참패한 군소 야당들 연합,
민족민주당(MNDP)과 사회민주당(MSDP)을 결성
o 1996.6.30 두 번째 총선에서 민주연합(민족민주당 및 사회민주당
등의 연합)은 총 76석 중 50석을 획득, 집권당인 인민혁명당의
75년간 장기집권 종식
o 2000.7.2 인민혁명당, 총선에서 76석 중 72석을 획득, 여당으로 복귀
- 2000.12.6 야당으로 전락한 민족민주당, 사회민주당 통합 →
민주당 창당
- 53 -
o 2008.6 총선에서 부정선거 시비로 촉발된 시위(2008.7.1)로 정치적
혼란 발생
- 2008.9 인민혁명당과 민주당의 연립정부 출범으로 정치적 안정
도모
- 2010.11 인민혁명당 당명을 인민당으로 변경
o 2012년 총선에서 인민당과 민주당의 치열한 경쟁구도 예상
- 2011.6 엥흐바야르 전 대통령이 인민당내 권력투쟁 과정에서
구 인민당 당명과 같은 인민혁명당을 새로이 창당하여 정당
등록을 마침으로써 2012년 총선의 새로운 변수로 대두
인민당 당내 서열
서열 직 책 성 명
1 당수 S. Batbold(바트볼드)
2 사무총장 U. Khurelsukh(후렐수흐)
3 당서기 Ya.Sodbaatar(서드바타르)
4 당서기 Ts.Sukhbaatar(수흐바타르)
5 원내대표 U. Enkhtuvshin(엥흐툽싱)
민주당 당내 서열
서열 직 책 성 명
1 당수 N. Altankhuyag(알탕후약)
2 사무총장 D. Erdenebat(에르덴바트)
3 울란바타르 지구당대표 Sh.Tuvdendorj(툽뎅도르지)
4 원내대표 Ch.Saikhanbileg(사이항빌렉)
몽골 역대 대통령
No 성 명 근무기간 소속 정당
1 Punsalmaa Ochirbat(오치르바트) 1992-1997 인민혁명당
2 Natsag Bagabandi(바가반디) 1997-2001 인민혁명당
3 Natsag Bagabandi(바가반디) 2001-2005 인민혁명당
4 Nambar Enkhbayar(엥흐바야르) 2005-2009 인민혁명당
5 Tsakhia Elbegdorj(엘벡도르지) 2009-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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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역대 총리
1 Balin Tserendorj(체렌도르지) 1924-1928 인민혁명당
2 Anand Amar(아마르) 1928-1930 인민혁명당
3 Tsengelt Jigjidjav(지그지드자브) 1930-1932 인민혁명당
4 Peljid Genden(겐뎅) 1932-1936 인민혁명당
5 Anand Amar(아마르) 1936-1939 인민혁명당
6 Khorloo Choibalsan(초이발산) 1939-1952 인민혁명당
7 Yumjaa Tsedenbal(체렌발) 1952-1974 인민혁명당
8 Jamba Batmunkh(바트멍흐) 1974-1984 인민혁명당
9 Dumaa Sodnom(소드넘) 1984-1990 인민혁명당
10 Sharav Gungaadorj(궁가도르지) 1990 인민혁명당
11 Dash Byambasuren(뱜바수렌) 1990-1992 인민혁명당
12 Puntsag Jasrai(자스라이) 1992-1996 인민혁명당
13 Mendsaikhan Enkhsaikhan(엥흐사이한) 1996-1998 민주당
14 Tsakhia Elbegdorj(엘벡도르지) 1998 민주당
15 Janlav Narantsatsralt(나란차츠랄트) 1998-1999 민주당
16 Rinchinnyam Amarjargal(아마르자르갈) 1999-2000 민주당
17 Nambar Enkhbayar(엥흐바야르) 2000-2004 인민혁명당
18 Tsakhia Elbegdorj(엘벡도르지) 2004-2006 민주당
19 Miyegombo Enkhbold(엥흐볼드) 2006-2007 인민혁명당
20 Sanjaa Bayar(바야르) 2007-2009 인민혁명당
21 Sukhbaatar Batbold(바트볼드) 2009.10.29- 인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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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혁 ․ 개방 이후 정치발전
가. 민주화 발전가. 민주화 발전
❏ 배경
o 1980년대 후반 舊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 ․ 개방
움직임이 확대되면서, 몽골도 국가체제 개혁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
o 1986년 인민혁명당(MPRP : Mongolian People's Revolutionary
Party) 전당대회에서 舊소련의 개혁(Perestroika) ․ 개방(Glasnost)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黨 체질 개선문제 논의
- 1988.12 몽골판 페레스트로이카인 신칠렐(shinechlelt, 혁명) 정책 채택
o 몽골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확대되면서 야당탄생 등 민주화 진전
- 1990.2 정부의 공식인정을 받아 몽골 최초의 야당인 민주당
(MDP : Mongolian Democratic Party) 탄생
o 1990.7 최초의 민주총선에서 압승한 인민혁명당은 정치민주화와
시장 경제체제로의 이행 다짐 및 마르크스 ․ 레닌주의 포기를 선언
하고 新헌법 제정에 착수
- 1990.9 오치르바트 대통령이 이끄는 새로운 개혁정부가 들어
서면서 정치 ․ 경제개혁 본격 추진
❏ 민주화 개혁의 주요내용
o 1992.1 新헌법 제정
- 국명을 “몽골인민공화국”에서 “몽골(Mongolia)”로 변경
- 3권분립을 기초로 대통령 직선제(임기 4년)와 국회 단원제 및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 자유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규정
-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 중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건설” 문구를
삭제하고 인도적 시민사회의 발전을 최대 목표로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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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과 민주 ․ 공정 ․ 자유, 민족의 통일성 등을 최고 원칙으로 규정
- 국제법 원칙 존중과 평화적 외교 수행 및 몽골정부의 허가없는
외국군의 주둔이나 영토통과 금지 등을 규정(중립 ․ 비동맹주의)
o 法제도 정비
- 1992.6 총선 후 임명된 개혁파 경제학자 출신의 P. Jasrai(자스라이)
총리는 오치르바트 대통령과 함께 개혁과 개방정책을 더욱 적극
추진하면서 법률 ․ 제도 정비에 박차
- 정부조직법, 대통령선거법, 국회법 등 정치 관련법 정비
- 일반세법, 법인소득세법, 통상세법, 국민소득세법, 자동차세법,
회계감사법, 외국인투자법, 부당경쟁방지법, 저작권법 등 제정
- 연금생활자, 실업자, 저소득자를 보호하기 위한 연금 ․ 임금 인상
등 생활보장제도를 개선하고, 관세 인하 추진
o 중앙부처의 통폐합 및 지방행정조직 개혁
- 1994년 지방행정자치의 확립을 위해 3개의 道(아이막, Aimag)를
신설, 1997년 중앙부처 9개로 축소
o 공산당(인민혁명당)의 75년 통치 종식
- 1996.6 총선에서 야당연합(민족민주당+사회민주당)인 「민주연합」이
인민혁명당을 누르고 압승(민주연합 50석, 인민혁명당 25석,
보수당 1석)
❏ 평가
o 개혁 ․ 개방 이후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의 포기, 자유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 정부기구의 축소, 언론자유화 등 민주화를 진전시킴
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상당부분 긍정적 평가
o 다만, 주어진 산업여건과 경제상황, 정치 ․ 사회문화 및 제도화
수준을 감안하지 않은 급진적 정치개혁 추진은 정치 ․ 관료조직의
비능률과 부패, 이해 대립 등 부산물을 낳으면서 정치적 불안
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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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정치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도입된 몽골의 독특한 통치구조는 대통령-국회-정당간 대립을
빈번하게 발생시켜 개혁초기에 요구되는 강력한 리더쉽, 일관성
있는 정책추진을 제약함으로써 개혁 ․ 개방에 부담으로 작용
나. 민주화 진전나. 민주화 진전
❏ 1997.5.18 대통령 선거
o 인민혁명당 후보인 Bagabandi(바가반디) 국회의장이 압도적인
득표율로 민주연합 후보인 Ochirbat(오치르바트)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
- 신정부 출범이래 가중되는 경제난 속에서, 1인 장기집권에 반대
하고 새로운 인물과 정책의 등장을 희구하는 국민들의 여망
반영
- 국가발전을 위해 대통령과 국회의장(민주연합), 총리(민주연합)간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확산
❏ 정국불안으로 4차례 내각 교체
o 민주연합의 Enkhsaikhan(엥흐사이한) 정권은 출범 이후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위한 의욕적인 정책을 추진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듯하였으나, 여러 정치파벌로 구성되어 있는 민주연합 내부의
권력투쟁 결과, 1998.4 엥흐사이한 내각이 퇴진하고, 몽골민주당
당수 겸 국회부의장인 Elbegdorj(엘벡도르지)가 총리에 취임
o 엘벡도르지 내각은 민주연합내 정파간 갈등을 표출하면서 총리,
국회의장 등 여권 고위인사 다수가 개입된 은행 불법합병조치
문제로 출범 3개월만인 1998.7.24 퇴진
o 1998.12 Narantsatsralt(나란차츠랄트) 울란바타르 시장이 제19대
총리에 취임했으나, 에르데넷 동(銅)광산 경영진 교체문제 등을
둘러싼 여․ 야간 대립이 심화되자 퇴임, Amarjargal(아마르자르갈)이
새 총리에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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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혁명당의 압승
o 2000.7.2 총선결과 야당인 인민혁명당(MPRP)이 76석 중 72석을
차지하며 압승
- 1997년 인민혁명당, 당규를 개정하여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채택
하고 과감한 인물 교체와 9만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하는 등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구축함으로써 정권 탈환에 성공
- 집권당인 민주연합, 급진적 개혁에 치우치며 2년간 내각이 4번
교체되는 등 정치불안정을 초래, 빈곤과 각종 비리 확대 등으로
국민 여론 이반
o 신정부는 시장경제 개혁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사회복지를 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삼고 정부의 개입기능을 강화
❏ 헌법개정 논쟁과 총리 권한 강화
o 1999.12.24 국회의원의 각료겸직을 허용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요지의 헌법 개정안이 여야간 합의하에 압도적 다수결로
통과
o 2000.11.29 헌법재판소는 국회통과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전체회의를 소집하여 동 개헌이 무효임을 최종 결정
o 2000.12.14 집권 인민혁명당(소속 국회의원 72명중 69명 확보),
법률위헌여부를 심사하는 헌법재판소가 국회 헌법 개정행위에
관여한 월권행위라고 비판
- Enkhbayar(엥흐바야르) 총리 주도하에 국회 본회의에서 같은
헌법개정안을 단독 처리하여 발효
o 바가반디 대통령은 헌법개정안이 대통령의 권한을 지나치게 제한
했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였으나, 국회는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기각한다는 결의안을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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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총선과 연립내각 구성
o 2004.6.27 총선 결과,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여당 인민혁명당은
단독 정부구성에 필요한 과반수 의석 획득에 실패
- 인민혁명당 37석, 민주연합 35석, 무소속 3석 및 공화당 1석
o 과반수 이상을 확보한 당이 없는 관계로 연정 합의에 따라 민주
연합의 엘벡도르지를 총리로 임명하고 연립내각을 구성하였으며,
국회의장에는 인민혁명당 당수인 엥흐바야르가 취임
- 여 ․ 야가 교대로 총리직(2년 임기) 수임 합의
- 장관급 18명을 여 ․ 야 9명씩 동수로 임명
❏ 민주연합 해체 및 연립내각 해산
o 2004.6 총선에서 선전하였던 민주연합이 2005년 대통령 선거 후보를
놓고 내분 끝에 해체
o 2005.5.22 선거 결과 인민혁명당 후보인 엥흐바야르 여당 대표가
53.46% 득표로 엥흐사이한 야당후보를 누르고 당선
- 국회의장에는 Nyamdorj(냠도르지) 취임
o 민주연합이 해체되자 인민혁명당은 연립내각의 상대방이 해산
되었음을 이유로 인민혁명당 소속 장관들 사퇴
- 인민혁명당 소속 장관급 10명이 사퇴서를 제출한 후 내각해임안을
상정하여 국회통과
o 2006.2 Enkhbold(엥흐볼드) 총리를 수반으로 인민혁명당의 실질적
지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내각 구성
- 부총리 1명과 장관 5명은 민주당을 제외한 군소정당에 할애
o 2007.11 엥흐바야르 대통령과 엥흐볼드 총리간 갈등 구도 속에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지지하는 Bayar(바야르) 총리가 당 총재 및
총리로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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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총선과 연립내각 구성
o 2008.6 총선에서 여당인 인민혁명당이 바야르 총리의 청렴한 이미지
부각으로 국민들의 호응을 받아 전체 의석의 과반수가 넘는 45석 확보
o 총선 결과에 대한 의혹과 불만을 가진 시민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7.1 폭력시위를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인민혁명당사가 전소
되고 사망자 6명 발생
- 엥흐바야르 대통령은 7.1 사상 헌정 최초 비상사태를 선포하였으나,
조기에 질서가 확보됨에 따라 7.5 해제
o 2008.7.23 제5대 국회를 개원했으나 민주당은 신정부 참여 목적으로
의원선서를 거부, 파행 거듭
- 2008.9.19 인민혁명당, 수석부총리 1명과 장관 5명을 민주당에게
할애하여 신내각 구성
- 바야르 총리로서는 7.1 폭력시위 수습, 오유톨고이 ․ 타반톨고이
등 대규모 광산 개발을 위해서는 민주당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인식, 민주당을 내각구성에 참여시킴
다. 최근 정세다. 최근 정세
❏ 2009년 대통령 선거
o 2009.5.24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엘벡
도르지 前총리가 재선에 도전한 인민혁명당 엥흐바야르 현직
대통령에 승리
- 엘벡도르지 신임 대통령은 관료주의 및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우며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
o 엘벡도르지 대통령, 2010.1 사형 집행 중단 및 사형제 폐지 발표,
국회의원 입법지원비 예산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등 친국민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집권층 내에서는 돌출 행동에 대해 다소의
부정적 분위기도 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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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르 총리 사임 및 바트볼드 총리 취임
o 2009.10.26 바야르 총리, 건강을 이유로 사퇴 의사를 표명
- 2009.10.28 인민혁명당 소회의를 거쳐 Batbold(바트볼드) 외교
장관이 신임 총리에 선임
- 2010.4 바트볼드 총리는 당수직을 겸임하면서 사실상 인민혁명당의
핵심 리더로 부상
o 2009.10 엘벡도르지 의원의 대통령 당선에 따라, 울란바타르시
Chingeltei(칭겔테) 선거구 보궐선거에 대선에서 패배한 엥흐바야르
전대통령(인민혁명당)이 출마를 시도하였으나 당내 반발로 무산
- 동 보궐선거에서 Zorigt(조릭트) 의원(자원에너지부장관)이 인민
혁명당 후보로 당선되었으며, 이에 따라 엥흐바야르 전대통령의
입지는 약화
❏ 「인민당」으로 당명 변경
o 2010.11 인민혁명당 제26차 전당대회 개최, 1921년 창당 당시의
명칭인 인민당으로 당명을 변경, 바트볼드 총리를 인민당 당수로
재선임
o 2011.3.1 인민당 창당 9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개최, 몽골 경제발전과
인민당의 성과를 강조함으로써 2012년 총선을 겨냥한 본격 행보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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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군 사
가.가. 軍軍 편성편성
❏ 군사력
o 1988년 이후 군감축 및 구조개편 작업을 추진해 총 15,500명 규모의
병력을 유지
- 육군 7,500명(징집병 3,300명 포함), 공군 800명
- 준군사요원 : 7,200명(국경수비대 : 6,000명, 국가보안군 : 1,200명)
- 예비군 : 137,000명
❏ 군체제 및 장비
o 구소련식 군체제로서 대부분 소련제 장비 보유
o 탱크 600대, 장갑차 650대, MIG-21/36대, MI-24/12대 등
❏ 국방예산
o 1990년대 초반 이후, 구소련의 원조 중단과 몽골경제 악화에 따라
매년 감소 추세였으나, 최근 몇 년간 절대액 증가 추세
- 2006년 1,900만불 → 2008년 약 5,000만불 → 2010년 5,900
만불 → 2011년 약 6,400만불
나. 군복무나. 군복무
❏ 징병제도 : 18-25세 남자
❏ 군복무기간 : 1년(260만 투그릭을 납부하면 징집면제)
다. 외국군다. 외국군
❏ 1993.10 舊소련군 완전 철수, 현재 외국군 주둔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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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군사정책라. 군사정책
❏ 군사력 미약으로 국가 안전보장을 주로 외교정책에 의존
o 평시에 있어서 군사 블럭 및 동맹에 불가입, 외국군 주둔 및 통과
금지 등 중립주의 노선 견지
o 러 ․ 중 양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환경하에서 국가안전보장
확보를 위해 러 ․ 중 양국과의 균형적 관계 추구
o 지역평화와 세력균형 유지 차원에서 제3국과의 군사협력 확대를
희망하고, ARF 등 지역안보협력체제에 적극 참여하는 등 전방위
군사협력 추구
o 1992.9 오치르바트 대통령이 유엔에서 발표한 “몽골 비핵지대화”
선언의 국제화를 추진, 1998.11 UN 총회에 “몽골 국제안보 비핵
지위 결의안”을 제출, 채택
❏ 대외 군사협력 적극 추진
o 군 고위인사 교류, 군 장교 위탁교육, 낙후된 무기 및 장비의
보수 ․ 유지를 위한 협력이 주종
o 러시아와는 1993년 체결한 “몽 ․ 러 국방부간 군사협력 협정” 및
“몽 ․ 러 양국간 군사 ․ 기술협력 협정”을 근간으로 군사 ․ 기술협력 중기
계획에 따라 국방장관 등 군 고위인사 교류, 군사전문가 양성 및
무기공급, 장비교체 등 협력관계 유지
o 중국과는 1990년대에 들어 협력 관계 진전
- 1995년 중국 총참모장 방몽시 약 40만불 상당의 병원기자재, 컴퓨터
등 기증
- 1997년 “군사협력 의정서” 체결 및 군 고위인사교류, 위탁 연수 등 실시
o 북한과는 2008년 몽골 국방부 사무차관의 북한 방문에 이어 2009년
북한 인민무력부 부부장의 몽골 방문 등 남북한 동시 균형 군사외교
실시
- 군 대표단 상호 방문, 체육․ 예술대표단 교류, 장기적으로 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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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부 설치 검토 등
o 미국과는 1991년 이후 몽골 군사요원 연수, 인도적 원조 등의
형태로 진행
- 1997년 양국간 “군사부문 교류 ․ 방문 협정” 체결로 본격화
- 2000년 미국의 지원으로 몽골내 평화유지군 훈련센터 설립
- 2000.12.1-3 미국 국방차관 방몽시 협정체결, 몽골 국경수비대
통신장비 교체에 5백만불 지원키로 약속
- 2004.1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 방몽시, 평화유지군 훈련센터의
현대화를 위한 1백만불 지원을 약속
- 2006.8.12-25간 몽골, 미국, 기타 30여개국이 참가하는 960명
규모의 Khaan Quest 훈련(UN PKO 형태의 훈련) 실시 중
o 한국과는 인사․교육․학술교류, 정례 회의체 운영, Khaan Quest
훈련 참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협력 확대 중
- 고위급 인사교류 : 몽골 국방장관 방한(2007년, 2010년, 2011년),
한국 국방장관 방몽(2009년)
- 실무회의체 : 국방정책실무회의, 정보교류회의 등
- 기타 학술교류 : 국방학술회의, 국방대간 교류 등
※ 1999.12 Tubden Dorj(툽덴도르지) 국방장관 방한시 한 ․ 몽 군사교류협정 체결
o 2003년 이후 UN 평화유지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시에라레온, 차드, 수단에 총 5,000명 파병
- 2011.3 시에라레온, 아프가니스탄, 수단에 약 400명의 군장병
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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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외 교
1. 외교 정책 기조
2. 주요국과의 관계
가. 對 러시아 관계
나. 對 중국 관계
다. 對 미국 관계
라. 對 일본 관계
3. 북한과의 관계
- 67 -
1 외교정책 기조
가. 지정학적 특수성을 반영한 균형적 외교 노선가. 지정학적 특수성을 반영한 균형적 외교 노선
o 시장경제 체제 전환 이후 안정적 대외 환경 조성을 위해 균형적
외교 노선을 견지
- 중국,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특수성을
반영하여, 국방보다는 외교에 중점을 두는 국가안보 전략 시행
o 1994년 “몽골의 안전지침”, “대외정책 지침”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전환기를 거친 후, 최근 국내외 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를 바탕
으로 2010.7 국회에서 “국가안보 기본원칙”을 변경․확정
- 2011.2.10 동 기본원칙의 하위 계획 중 하나인 외교기본계획을
확정
o 안전보장 차원에서 인접한 중국․러시아에 대해 중립노선을 견지하고,
과도한 중․러 의존을 피하기 위해 한국․미국․일본․EU 등 제3의
이웃 국가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
- 구 사회주의 국가와도 전통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최근
자원 위주의 경제발전 전략에 따라 호주․캐나다․카타르 등 자원
부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강화
o 2006년 ASEM 가입 후 다자 외교에도 적극 참여
- 2011년 UN 가입 50주년을 맞아 활발한 UN 외교 진행 중
- 2011-2013년 민주주의 공동체(CD) 의장국 수임을 기점으로
몽골 외교의 세계화를 추진 중
나. 양자 외교관계 개황나. 양자 외교관계 개황
o 2011.7 현재, 150개 국가와 수교
- 몽골의 외국주재 상주 대사관은 28개국에 불과하나 몽골의 경제
발전 및 협력 강화 필요성에 따라 상주 대사관은 증가할 것으로 전망
※ 몽골의 재외공관 : 대사관 28, 총영사관 7, 영사관 1
- 68 -
o 구사회주의국가, 한국 ․ 일본 ․ 미국 등 제3의 이웃국가, 자원 부국
등과 균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통령 ․ 총리의 꾸준한
정상외교를 통해 활발한 외교활동 전개
다. 다자 외교 현황다. 다자 외교 현황
o 1961.10.27 UN 가입(102번째 유엔가입국)후 ESCAP, WHO,
UNESCO, ILO, UNDP, IMF, WB, WTO등 48개 국제기구 가입
- 유엔헌장 등 133개 다자협정 가입
- 몽골내 9개 국제기구(UNDP, UNFPA, UNICEF, IMF, ADB,
국제적십자사, WB, EBRD, WHO) 사무소 상주
o CICA(2001), ASEM(2006), FEALAC(2010) 가입 후 활발한 다자 ․
지역 외교활동 전개
- 상하이 협력기구(SCO) 옵저버 지위를 유지하면서 APEC 가입
및 한 ․ 중 ․ 일 협력체 참여 의사도 표명 중
- ARF 가입(1998), OSCE 아시아협력 동반자국 참여, NATO
협력국 추진 등 지역안보 회의에도 꾸준히 참여
- UN내에서 LLDC(내륙개도국) 외교장관회의를 주도하면서 내륙
개도국 연구소(LLDC Think Tank)를 울란바타르에 유치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전개
o 2011-2013년간 민주주의 공동체(CD) 의장국 수임을 계기로 본
격적인 다자 외교 활동 전개
- 69 -
2 주요국과의 관계
가.가. 對對 러시아 관계러시아 관계
❏ 개 요
o 1921년 수교 후 사회주의 연대를 바탕으로 긴밀한 협력 관계 형성
- 1921년 몽골 독립도 구소련의 전면적 지원에 의해 가능
- 1939년 대일 전쟁 승전
- 1945년 2차 세계대전 전승을 통해 공동의 유대의식 형성
o 1990년 민주화 이후 종전의 종속관계에서 평등한 외교관계 지향
- 1993.1 오치르바트 대통령 방러시 양국간 상호불간섭 원칙에
입각한 호혜적인 선린 관계를 수립하는 몽․러 우호협력 조약 체결
o 2009.8 지속적인 협력 외교를 통해 몽․러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형성
- 러시아는 몽골의 제2위 교역국이자 제4위 대몽골 투자국이며,
몽골은 유류 수입을 대부분 러시아에 의존
- 몽․러 교역은 이르쿠츠크, 울란우데 등 브리야트 지역과의 접경
교역이 대부분을 차지
※ 2010년말 몽골의 대러시아 수출 0.8억불, 수입 10.9억불
※ 2010년말 러시아의 몽골 투자액 1.08억불(769개사)
o 러시아는 몽골 내 친러시아 정서를 바탕으로 ▶몽골 내 정치적
영향력 행사, ▶몽골의 자원개발과 관련된 철도 참여, ▶에르데넷
동광산 운영, ▶우라늄 개발 참여 등에 관심
- 몽골은 ▶에너지 확보, ▶육류 수출, ▶중국 영향력 확대 견제
수단으로 러시아를 활용하기를 희망
에르데넷 동광산
ㅇ 1978.12.14 설립되어 동 ․ 몰리브덴 정광 공장 운영
- 규모 : 1년 정광능력 600만톤, 매장량 5억 7,200만톤
- 몽골 국가예산의 40%, 수출액의 40-50%를 차지
ㅇ 지분 구조 : 몽골 51%, 러시아 49%
ㅇ 위치 : 오르홍 아이막 Erdenet시
- 70 -
❏ 최근 동향
o 1999.2 러시아 이바노프(Ivanov) 외무장관 방몽, 몽 ․ 러 외무장관
회담 개최
- 양국간 전통적 우호협력 관계를 재확인하고 경제 ․ 통상 협력 증진
방안 협의
o 2000.11 푸틴 대통령 방몽 : 러 대통령 최초 방문
- 양국 현안문제, 국제문제에 대한 25개항의 울란바타르 선언
공동 발표
- 접경 지역간 경제․통상 협정 서명,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
서명, 국경 불법침입 및 실종 ․ 무단월경 가축에 관한 협력각서
교환
o 2003.12 몽골의 대 러시아 채무문제(양국간 최대 현안) 타결
- 러시아정부, 구소련이 몽골에 지원한 114억 루불 중 98%(100억불
상당)를 탕감해 주기로 결정
o 2006.12 엥흐바야르 대통령 방러
- 2010년까지 10억불 규모의 경제협력서 체결
o 2008.4 바야르 총리 방러
- 울란바타르 철도회사(UBTZ) 기술혁신(몽․러측 각각 50% 지분소유)
- 우라늄 탐사 및 합작사 설립 의정서 체결
- 농업분야에 2억불 차관협정 서명 등 11건의 문서 서명
o 2009.3 바야르 총리 방러
o 2009.5 푸틴 총리 방몽
o 2009.8 메데베데프 대통령 방몽
- 할힌골 지역 승전 70주년 기념 행사 참석
- 몽․러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
o 2010.12 바트볼드 총리 방러
- 도르너드 우라늄 합작회사 설립 합의
- 몽골의 대러 채무 1.72억불 추가 면제 합의
- 71 -
- 울란바타르 철도회사(UBTZ), 에르데넷 동광산 등 현대화 합의
- 몽골의 대러시아 육류 수출 확대 합의
o 2011.5 엘벡도르지 대통령 방러
- 울란바타르 철도회사(UBTZ) 몽골측 지분을 51%로 변경 추진
- 몽골의 무역 역조 문제 해결을 위해 몽․ 러 교역조건 개선 방안 협의
나.나. 對對 중국 관계중국 관계
❏ 개 요
o 몽골과 중국은 200여년간 청나라의 몽골지배에서 유래한 민족
감정과 국경분쟁 등의 요인으로 오랫동안 불편한 관계 유지
- 1949.10.16 외교관계 수립 “선린우호 및 상호신뢰 동반자관계”
- 1960년 중 ․ 소 분쟁시기 몽골의 소련 지지 및 소련군의 몽골 주둔
- 1967.8 몽 ․ 중간 외교관계 단절
o 1971.8 외교관계 복원
- 1980년 중반 중․소 관계가 개선되면서 양국관계는 급속히 개선
- 1989년 몽골 내 소련군 철수, 몽골의 친중국 행보에 따라 몽․중 관계
급격히 개선
- 1994년 몽․중 신우호협력 협정 체결
- 1998년 바가반디 대통령 중국 방문 이후 관계 개선
o 2003년 “선린우호 및 상호신뢰 동반자 관계”
- 2011.6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형성을 통해 몽․ 중 관계 새로운 국면
진입
o 중국은 몽골의 제1위 교역․투자국이며, 자원 수출시장, 소비재 공급국,
최단거리 항구 제공국으로서 몽골의 대중국 의존도는 갈수록 심화
※ 2010년 몽골의 대중국 수출 24.6억불, 수입 10억불
※ 2010년 중국의 대몽골 투자 24.6억불(5,303개사)로 1위 차지
❏ 최근 동향
o 2003.6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방몽
- 72 -
- 양국간 “선린우호 및 상호신뢰의 동반자 관계” 설정 및 발전에 합의
※ 양국관계에 있어 ‘동반자’란 용어 사용은 최초이며, 이는 중국측이 먼저 제의
- 협정 서명(경제 ․ 기술 협력 협정 및 울란바타르-북경간 국제열차
운행 증편 협정)
- 중국측은 몽골에 대한 무상원조(770만불) 및 양허성 차관(3억불)
제공 계획 발표
o 2005.11 엥흐바야르 대통령 방중
- 형식적으로는 후진타오 국가주석 몽골 방문에 대한 답방이었으나,
실제로는 미국의 대몽골 접근을 의식한 중국의 몽골 끌어안기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
- 양국간 교류활성화, 자원개발 및 사회간접자본 건설 확대 문제
협의
o 2008.6 시진핑 국가부주석 방몽
- 중국의 대몽골 자원분야 진출 의지 표현으로 평가
- 양국간 무역경제협력 발전 종합방안을 확정하고 중국측이 제공
하는 3억불 저리차관 사용관련 협정 개정 등 13개 문서에 서명
o 2010.4 엘벡도르지 대통령 방중
- 중국의 대몽골 4천만 위안 지원 협력서 서명
- 중국 길림성을 통한 물류 운송 문제 협의
- 양국 문화센터 설립 협정 서명
o 2010.6 원자바오 총리 방몽
- 인프라, 광업, 금융 분야에 대한 중국의 5억불 차관 제공
- 울란바타르내 베이징 거리 조성 및 캠퍼스 설립에 5천만 위안 제공
- 국방분야 1천만 위안 제공
- 향후 5년간 2천명의 몽골인에 대해 국비 중국 유학 지원
o 2011.6 바트볼드 총리 방중
- 몽 ․ 중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
- 중국의 대몽골 5억 위안 차관 공여 협정 서명
- 73 -
❏ 평가 및 전망
o 2011.6 몽․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 성명 채택 이후 양국관계는 실질적
이해를 공유하는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로 재편
o 중국 경제발전에 따른 원자재 수요와 몽골의 원자재 수출 중심
경제 구조가 상호 연계되어 있어, 단기적으로 선순환적 관계 발전을
이룰 것으로 예상
- 몽골은 대중국 의존도 축소를 위한 자원 가공공장 설립, 수출
시장 ․ 운송 경로 다변화 시도를 보이고 있으나, 내륙국으로서의
몽골의 한계상 중국의 대몽골 영향력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
- 몽골은 유럽 스탠더드 채택, 캐나다․호주 등 자원 부국과의 협력
강화 등 제3의 이웃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중국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
다.다. 對對 미국 관계미국 관계
❏ 개 요
o 1987.1.27 외교관계 수립
- 1990.5 몽골 부총리의 방미를 계기로 적극적인 관계 개선
- 1988년 울란바타르에 미국 대사관 개설
- 1989년 워싱턴에 몽골 대사관 개설
o 소련 해체 이후 몽 ․ 러 관계 약화에 따라 몽 ․ 미 관계는 반사적인
이익을 향유
- 미국은 몽골을 對러시아, 對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인식하고, 몽골도 미국을 경제원조 획득과 전방위 외교 추진의
핵심요소로 인식함으로써 양국 관계 급진전
o 미국은 몽골의 국제평화유지 활동 참여, 민주주의의 평화적 정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몽골의 지정학적 특성에 유의
- 몽골은 제3의 핵심이웃국가인 對미국 관계 강화를 희망하며
인권 가치 중시, 비핵화 선언, PSI 가입 등 친미적인 행보를 유지
- 74 -
o 미국은 몽골의 제3위 교역국(2010년 대미 수출 1.48억불, 수입 1.59
억불)
수교 초기 몽골-미국간 주요 교류 현황
o 1990. 8 베이커 미국무장관의 방몽시 양국간 영사협정 및 평화유지군 협정 체결
o 1991. 1 오치르바트 대통령 방미
o 1991. 7 베이커 미국무장관 재방몽
- 미국은 몽골의 경제개발 지원을 위해 1천만 달러 경제지원 및 몽골 원
조그룹 회의와 UNDP 주관회의에 적극 동참
o 1991.10 미 하원은 對몽골 MFN 대우 영구부여 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
o 1993. 6 자스라이 몽골 총리 방미
o 1994.10 양국 투자보장협정 체결 및 USAID의 「대몽골 지원 5개년 계획(750만불)」에
서명
o 1998. 5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방몽, 엘벡도르지 총리와 함께 공동성명 발표
- 몽골-미국간 실질협력 관계 증진 합의
- 1,200만불의 對몽골 경제원조 의사 확인
❏ 최근 동향
o 2005.11 부시 대통령 방몽
- 대테러 공조 ․ 이라크 파병 등 군사 ․ 안보분야 협력 강화
- 이라크 파병, PKO 훈련센터를 미군과 합동으로 운영하는 등
미국의 정책을 지지하고 양자 관계 긴밀화에 주력
o 2007.10 엥흐바야르 대통령 방미
- 미국은 향후 5년간 미 Millenium Challenge Corporation (MCC)
자금을 통해 몽골 내 철도시설 개선과 지재권, 직업교육, 보건
사업 등에 총 2.85억불의 무상지원 제공 합의
※ 철도시설 개선을 위한 자금(1.88억불)은 울란바타르 철도에 영향력을 가진
러시아의 반대로 도로 건설 분야에 전환 사용
- 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Ship Boarding 협약 및
양국간 보다 긴밀한 협력원칙 선언, 핵 및 방사능 물질의 밀수
방지에 관한 MOU 등에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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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몽 골 개 황 2011.8 외 교 통 상 부 동 북 아 3 과
  • 2. 몽골개황 2011 발간등록번호 11-1260000-000264-14 발행처 외교통상부 동북아시아국 동북아3과 발행 허승재 동북아시아국 동북아3과 과장 편찬 하도겸 동북아시아국 동북아3과 3등서기관 조사ㆍ번역 김선아 동북아시아국 동북아3과 연구원 발행일 2011년 8월 연락처 02)2100-0116 주소 110-787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37 FAX 02)2100-0113 ※ 본 책자의 내용에 관하여 문의사항이나 지적하실 사항이 있으면 외교통상부 동북아3과로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3. Ⅰ. 개 관 ····································································· 1 Ⅱ. 역 사 ···································································· 17 1. 북방 유목민족 시대 ········································· 19 2. 몽골 제국 시대 ················································ 22 3. 북원과 명의 대결시대, 청 복속 시대 ··········· 28 4. 몽골 독립이후 ···················································· 31 5. 민주주의 시대 ···················································· 32 6. 역사적 인물 ························································ 33 Ⅲ. 정치 ․ 군사 ·······························································43 1. 정치제도 ······························································· 45 2. 개혁 ․ 개방 이후 정치발전 ······························· 55 3. 군 사 ···································································· 62 Ⅳ. 외 교 ···································································· 65 1. 외교정책 기조 ··················································· 67 2. 주요국과의 관계 ················································ 69 3. 북한과의 관계 ···················································· 77
  • 4. Ⅴ. 경 제 ····································································· 81 1. 개 요 ··································································· 83 2. 자원개발 연계 경제발전 추진 ······················ 91 3. 부문별 경제현황 ············································ 97 Ⅵ. 한 ․ 몽 관계 ·························································· 111 1. 한 ․ 몽 관계 개관 ·············································· 113 2. 정상급 방문 ······················································ 115 3. 외교관계 ···························································· 116 4. 경제관계 ···························································· 119 5. 영사 ․ 교민관계 ················································· 125 6. 문화관계 ···························································· 128 Ⅶ. 지리 ․ 사회 ․ 문화 ·············································· 139 1. 지 리 ·································································· 141 2. 문화 ․ 예술 ․ 사회 ·············································· 143 3. 교 육 ·································································· 154 4. 언 론 ·································································· 157
  • 5. Ⅷ. 참 고 자 료 ················································ 161 1. 주요 지도자 인적사항 ···································· 163 2. 외교공관 ․ 국제기구 현황 ······························· 180 3. 행정구역 ···························································· 181 4. 평균기온 및 강수량 ········································ 186 5. 울란바타르市 개황 ·········································· 187 6. 울란바타르市 주요 관광지 ···························· 192 7. 한 ․ 몽간 주요 공동문서 ································· 197 8. 기초 몽골어와 속담 ········································ 208 9. 몽골 관련 인터넷 사이트 ······························ 212 10. 몽골 약황 ························································ 214
  • 6.
  • 7. - 1 - Ⅰ. 개 관 1. 개요 2. 정치ㆍ경제ㆍ군사
  • 8.
  • 9. - 3 - 세계 속의 몽골
  • 10. - 4 - 몽골의 지방 행정 구역도(아이막)
  • 11. - 5 - 1 개 요 가. 국 가가. 국 가 2010년말 기준 국 명 몽골(МОНГОЛ, MONGOLIA) 민 족 할흐 몽골족(90%), 카자흐족(5.9%), 브리야트계(2%) 등 17개 부족 수 도 울란바타르(Ulaanbaatar, "붉은 영웅"이라는 의미, 해발고도 1,350m) 면 적 1,567,000㎢(한반도 7.4배) 인 구 275만명(울란바타르 거주 : 124만명) - 인구밀도 : 1.78명/㎢ - 평균수명 : 65.2세(남 62.9세, 여 67.6세) 가 축 수 총 32,700천두 - 염소 13,883천두, 양 14,480천두, 소 2,176천두, 말 1,920천두, 낙타 269천두 등 행정단위 21개 아이막(도), 315개 솜(군) 정부형태 의원내각제적 성격이 강한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 형태 독 립 일 1921. 7.11(소련 적군과 연합하여 중국으로부터 독립) 국가선포일 1924.11.26(러시아식 헌법 채택, 몽골인민공화국 선포) 종 교 라마불교(80%이상), 이슬람교(5%), 90년 이후 개신교 및 카톨릭 등 전파(약 4만명 추산, 약2%) 국 화 연꽃(불교 영향) 공 용 어 할흐 몽골어(Khalkh Mongolian) 문 자 키릴문자(러시아문자 차용) 시 차 한국보다 1시간 늦음 거 리/ 비행거리 2,000㎞(인천-울란바타르 1,226Mile) / 비행기로 약 3시간 정도 소요
  • 12. - 6 - ❏ 공휴일 1.1 신년 1.1-2(음력) 차강사르(우리나라의 음력설) 3.8 여성의 날 6.1 母子의 날 7.11-13 나담축제 11.26 국가선포일 ❏ 문자 구 분 고대 문자 현대 문자 문자 비치그 러시아 키릴 문자 차용 형태 (뜻 : 몽골) МОНГОЛ ❏ 국기 : 소욤보(СОЁМБО) 기(旗) o 중앙은 청색, 양측은 적색의 직사각형과 좌측 적색부분에 황색의 국가상징인 소욤보 문양으로 구성 o 중앙의 푸른색은 국가에 대한 영원 한 충성, 좌우 붉은색은 부단한 전 진과 번영을 상징 o 소욤보는 표의문자로 몽골의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는 전통문장 - 1924년 제1회 대인민회에서 결정 - 윗부분은 상징적으로 묘사된 불꽃(가정과 국가의 번영을 의미) - 불꽃 밑 부분(태양과 달로서 몽골 민족의 발전을 상징)
  • 13. - 7 - - 끝부분이 아래로 향한 것은 화살(예리함과 대담함을 의미) - 중간에 있는 두개의 직사각형(평등과 성실한 봉사를 의미) - 두 마리 물고기(눈을 감지 않고 자는 물고기 같은 경계심) - 양쪽에 수직으로 그려진 직사각형(성벽과 같이 국가 수호 의미) o 몽골 국기 변천사(1992년 현 국기 사용 시작) 1921-1924 1924-1940 1940-1992 ❏ 국 장 o 원형 테두리 상부 중앙의 보석 3개 - 과거 ․ 현재 ․ 미래를 상징 o 중앙의 말과 소욤보 - 몽골의 정신과 주권 및 독립 의미 o 아래 부분의 수레바퀴 - 몽골의 영원한 발전과 번영 상징 o 1991년 현 국장 사용 시작 o 몽골 국장 변천사 1940-1941 1941-1960 1960-1991
  • 14. - 8 - ❏ 국가(國歌) o 작곡 : 빌레긴 담딘수렌(Б.Дамдинсүрэн), 무르도르지(Л.Мөрдорж) o 작사 : 첸딘 담딘수렌(Ц.Дамдинсүрэн) o 1950년 처음 만들어져 1961년, 1991년, 2006년에 가사 개정
  • 15. - 9 - 악
  • 16. - 10 - 가 사 Дархан манай тусгаар улс 우리는 신성한 독립국가 Даяар Монголын ариун голомт 몽골인의 성스러운 보금자리 Далай их дээдсийн гэгээн үйлс 조상들의 훌륭한 업적 Дандаа энхжиж үүрд мөнхөжнө 영원히 빛나리라 Хамаг дэлхийн шударга улстай 세상의 모든 정의로운 국가와 Хамтран нэгдсэн эвээ бэхжүүлж 우리의 유대를 강화하리 Хатан зориг бүхий л чадлаараа 불굴의 용기와 온 힘을 다해 Хайртай Монгол орноо мандуулъя 사랑하는 몽골을 드높이리라 Өндөр төрийн минь сүлд ивээж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고 Өргөн түмний минь заяа түшиж 백성들의 안녕을 기리며 Үндэс язгуур хэл соёлоо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Үрийн үрдээ өвлөн бадраая 계승하고 번영시키리라 Эрэлхэг Монголын золтой ардууд 용감한 몽골의 백성들이 Эрх чөлөө жаргалыг эдлэв 자유와 행복을 누리리라 Жаргалын түлхүүр 행복의 열쇠, хөгжлийн тулгуур 번영의 주춧돌 Жавхлант манай орон мандтугай 위대한 나의 조국 만세
  • 17. - 11 - 나. 국 토나. 국 토 위 치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북방에 위치한 내륙국가 - 북쪽으로 러시아, 남쪽으로 중국과 접경 - 국경선 : 총길이 8,162km(대중국 4,710km, 대러시아 3,452km) 길 이 동서 2,394km 남북 1,259km 총 면 적 1,567,000㎢ (한반도의 7.4배) 부존자원 석탄, 동, 형석, 원유, 우라늄, 몰리브덴, 텅스텐, 주석, 니켈, 아연, 금 등 국토이용 목축지(80%), 산림(10%), 경작지(2%), 기타(9%) 지 형 고원국가로서 사막이 전국토의 40%를 차지, 서부지역에는 알타이 산맥이 있으며, 북부지역은 밀림과 농경지, 동남부는 평원 및 사막 지대, 서쪽의 후이틍 어르길(Huityn Origil) 산은 최고지대로 높이는 4,366m, 동부평원은 최저지대로 평균고도 522m 정도 평균고도 1,580m (오대산 정상 높이) 기 후 건성냉대기후 (Foreal Realm) -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 (길고 추운 겨울, 짧은 여름) - 1년에 구름 없는 날이 257일 평균기온 10월초부터 4월말까지는 영하의 추위로 특히 겨울철 야간에는 영하 45℃이하까지 내려가며, 여름에는 36℃까지 올라가나 습도가 높지 않아 체감 온도는 그리 높지 않고 자외선이 강한 편 평균기압 1,036hpa
  • 18. - 12 - 2 정치 ․ 경제 ․ 군사 가. 정 치가. 정 치 ❏ 정체 : 민주공화제(1992.1.13 新민주헌법 발효, 2000.12.14 헌법 개정) o 헌법 개정 전 -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 형태인 이원집정부제 o 헌법 개정 후 - 의회와 내각의 권력을 대폭 확대하여 의원내각제적 성격을 강화 ❏ 주요 지도자 o 대 통 령 : Ts. Elbegdorj(엘벡도르지, 민주당) o 총 리 : S. Batbold(바트볼드, 인민당) o 국회의장 : D. Demberel(뎀베렐, 인민당) ❏ 주요 정당 o 인민당(Mongolian People's Party) : 45석 - 1990년대초 헌법으로 보장된 일당독재체제 유지 (구 당명 : 몽골인민혁명당) - 1996. 6 총선 패배로 야당으로 전락(25석) - 2000. 7 총선 압승(76석 중 72석) - 2004. 6 총선 결과, 37석으로 의석 수 크게 감소 → 야당과 연립내각 구성 - 2006. 1 단독내각 구성(야당연합 내분으로 해체 → 내각 해산 → 제1야당인 민주당을 제외한 군소정당과 연립정부 구성) - 2007.11 전당대회를 통해 당수 Enkhbold(엥흐볼드)가 물러
  • 19. - 13 - 나고 Bayar(바야르)가 당수에 선출되어 총리에 취임 - 2008. 6 총선시 당수 바야르의 청렴한 이미지로 과반수인 45석을 확보하였으나, 부정선거 논란으로 소요사태 발생 → 2008.9월 민주당과 연립내각 구성 - 2009.10 바야르 당수가 총리직 사임 후 계속 당수직을 유지하여 논란 발생 → 2010.4 전당대회를 거쳐 Batbold(바트볼드) 총리가 당수직 수임 - 2010.11 인민당으로 당명 변경 - 2011. 3 창당 90주년 행사 개최 - 당수 : S. Batbold(바트볼드, 현 총리) o 민주당(Democratic Party) : 27석 - 2000. 7 총선 참패 이후 구여권 민주세력인 민족민주당과 사회 민주당 등 5개 정당이 2001.12 발족한 통합야당 - 2004. 6 총선에서 군소 야당과 연합하여 민주연합을 결성, 연립내각 참여 - 2006. 1 여당인 인민혁명당의 일방적 내각해산으로 야당으로 전락 - 2008. 6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수 엘벡도르지 사퇴 - 2008. 9 인민당과 연립내각 구성 → Altankhuyag(알탕후약) 당수가 제1부총리로 입각 - 당수 : N. Altankhuyag(알탕후약) ※ 2008년 선거시 의석수가 28석이었으나 Elbegdorj(엘벡도르지) 의원의 대통령 출마에 따른 공석을 인민당이 차지함에 따라 27석으로 감소 o 민의당(Mongolian Citizens Will Party) : 1석 - 깨끗한 정치와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보수정당 - 당수 : S. Oyun (오윤) o 녹색당(Mongolian Green Party) : 1석 - 당수 : Enkhbat (엥흐바트) ※ 2011.2.3 몽골인민당과 녹색당이 합당을 발표하였으나, 대법원은 형식적 요건 미비를 이유로 합당 정당 등록을 거부
  • 20. - 14 - o 무소속 : 2석 - Altai (알타이, 25채널 TV 방송국 사장) - Shinebayar(신바야르, 전 Dornod(도르너드) 아이막 도의회 의장, 인민혁명당 소속의원이었으나, 2010.11 당명 개정에 반대하여 탈당) 나. 경 제(2010년말)나. 경 제(2010년말) ❏ 국내총생산 : 59.8억불 ❏ 1인당 GDP : 약 2,200불 ❏ 경제성장율 : 6.1% ❏ 무역액 : 61.7억불 o 수 출 : 28.9억불 o 수 입 : 32.8억불 ❏ 주요 무역품목 및 교역국 o 수 출 품 : 석탄, 동 등 광물(82%), 캐시미어(6%) o 수 입 품 : 석유제품(21%), 중장비 및 부품(17%), 자동차(13%), 식품(5%) 등 o 주요 무역상대국 : 중국, 러시아, 미국, 한국, 일본, 캐나다 順 ❏ 물가상승율 : 10.1% ❏ 실 업 율 : 3.3% ❏ 외환보유고 : 23억불 ❏ 외국인투자(누계) : 48.4억불
  • 21. - 15 - ❏ 화폐단위 : Tugrik(투그릭)(US$1 = 1,250Tg 2011.7월 기준) o 현재 몽골에서 통용되는 화폐 단위 - 1, 5, 10, 20, 50, 100, 500, 1000, 5000, 10000, 20000 투그릭 o 지폐만 사용(동전 사용 없음) 100 투그릭 500 투그릭 1000 투그릭 5000 투그릭 10000 투그릭 20000 투그릭 ❏ 주요자원 : 석탄(1,750억톤, 세계 4위), 동(5,500만톤, 세계 2위), 형석 (1,400만톤, 세계 3위), 우라늄(6만톤, 세계 14위), 몰리브덴 (21톤, 세계7위), 인(24억톤, 세계3위), 텅스텐(7만톤, 세계 5위), 금, 철, 아연, 석유 등 광물자원 풍부(10대 자원부국)
  • 22.
  • 23. - 17 - Ⅱ. 역 사 1. 북방 유목민족 시대 2. 몽골 제국 시대 3. 북원과 명의 대결시대, 청 복속 시대 4. 몽골 독립이후 5. 민주주의 시대 6. 역사적 인물 가. 칭기스칸 나. 쿠빌라이 다. 만두하이 라. 수흐바타르 장군
  • 24.
  • 25. - 19 - 1 북방 유목민족 시대 (BC 20C∼AD 12C) 가. 기마유목민가. 기마유목민 ❏ 기마유목민 : 기원전 2천년-1천년 사이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 o 사마천의 「사기」 중 흉노인 묘사 -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며 살아 성곽이나 일정한 거주지가 없고 농사를 지어먹고 살지 않았으나, 각자가 나누어 갖고 있는 땅은 있었다. … 어린 아이들도 양을 타고 돌아다닐 수 있으며 활을 당겨 새나 쥐를 쏘아 맞추고, 조금 크면 여우나 토끼를 쏘아 맞추어 식량으로 삼았다. 남자들은 힘이 세고 활을 잘 다룰 수 있어 모두 무장 기병이 되었다.” o 헤르도토스의 「역사」 중 스키타이인의 묘사 - “도시도 성채도 갖지 않고 어디를 가나 집을 가지고 다니며, 모두 말 위에서 활을 쏠 줄 알았고, 농사가 아니라 가축을 키우며 살았다.” 나. 몽골고원에 건설되었던 유목제국나. 몽골고원에 건설되었던 유목제국 ❏ 현 몽골지역을 중심으로 한 주요 북방유목민족의 계통구분 o 몽 골 계통 : 선비, 유연, 거란, 몽골 o 투르크 계통 : 흉노, 돌궐, 위구르 o 퉁구스 계통 : 여진, 만주 ❏ 흉노 o B.C. 3세기 후반 몽골고원 동 ․ 서부와 화북지방에는 흉노 등 유목 집단이 할거
  • 26. - 20 - o 흉노의 문화 - 경마와 씨름을 즐기고 하늘을 숭배하는 샤머니즘적 세계관 - 선우 휘하에 좌현왕, 우현왕 등 여러 칭호를 가진 왕들이 존재 했으며, 이들은 좌․ 우로 구분하여 영지를 소유하였고 만기-천장- 백장-십장으로 나누어진 “십진법(十進法)” 단위의 군사조직 체제 보유 o 흉노의 분열 - 동흉노와 서흉노로 분열되었다가 오환의 공격 등으로 다시 남 ․ 북 흉노로 분열 후 후한에 투항 ❏ 유연 o 4세기 초에는 선비 탁발부에 복속되어 가축이나 담비 가죽을 공물로 바침 o 402년 유연이 점차 발전하여 북위와 대립하게 되자 북위는 유연을 토벌 → 유연의 족장 사륜은 몽골 고원 북부로 도망 o 사륜 사후 약 140년 동안 지속되다 북위 및 돌궐과의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555년 와해 ❏ 돌궐 o 유연에 예속되었으나 토문 카간이 552년 돌궐제국 건국 o 제3대 무한 카간 : 북중국 북주와 북제의 분열을 이용해 돌궐 제국의 토대를 세운 인물로, 이른바 ‘동돌궐 카간국(돌궐 제1제국)’ 건립 o 토문 카간의 동생 이스테미는 야브구라는 칭호를 얻어 준가르, 일리 강, 추강, 탈라스 강 등지를 물려받아 ‘서돌궐 카간국’ 건립 o 당시 이 두 카간국을 합친 돌궐제국은 만주에서 카스피해 북쪽 연안의 광대한 투르크계 유목제국을 형성 → 581년경 동 ․ 서 돌궐 카간 제국으로 분열, 동돌궐은 630년, 서돌 궐은 657년에 각각 당(唐)에 의해 멸망
  • 27. - 21 - o 쿠틀룩 카간의 돌궐 제2제국(682-745) : 682년 당(唐)의 지배에서 벗어나 음산(陰山)산맥을 중심으로 막남지역에 거점을 두고 부흥에 성공 - 고대 투르크 비문 : 북방 유목민족 중 최초로 독창적인 문자를 사용하여 돌궐의 역사를 기록 o 돌궐 제2제국은 통치부족 내부의 지속적인 분쟁으로 인해 몰락 ❏ 위구르 o 돌궐 제1제국이 붕괴 후, 당(唐)이 대돌궐 지배에서 몽골고원으로 진입하게 되면서 새롭게 세력화 o 745년 쿠틀룩 빌게 카간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840년까지 만주와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점유 o 당(唐)의 ‘안사의 난(755-763)’을 제압하는 데 크게 기여 o 카간의 직계계승을 통한 정치적 안정성 도모, 오르혼 강 지역에 시장경제가 발전되었던 카라 발가순(=오르두 발릭) 건설, 위구르 문자 창제 ※ 카라 발가순 : 위구르 제국의 수도 유적, 옛 명칭은 오르두 발릭, 2004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오르콘 계곡 문화경관’의 일부 o 840년 북쪽의 키르기즈에 의해 멸망 o 우수한 문명의 초원 유목제국으로 발전한 위구르는 이후 건립된 유목제국들에게 “초원유목사회가 농경정착사회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답안”, “문명 부흥의 본보기”로서의 역할 수행
  • 28. - 22 - 칭기스칸 생애 비고 1162 ∙ 父 예수게이 바타르 ․ 母 후엘룬 사이에서 ‘테무진’ 출생 ∙ 몽골학자들의 공식견해 - 1162년 출생설 출생설 : 1155, 1161, 1162, 1167년설 1175- 1176 ∙ 父 예수게이 바타르, 타타르 부족에게 독살 ∙ 부친 독살 직후 동족들은 테무진과 그 일가를 외면 ∙ 가장이 된 테무진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복동생 벡테르를 살해 ∙ 이에 타이치우드 씨족은 테무진이 무서운 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여 테무진을 포로로 붙잡으나 탈출 “그림자 말고는 동무도 없고, 꼬리 말고는 채찍도 없던” 고단한 어린 시절을 회상 1182 ∙ 케레이트 부족의 군주 토오릴(옹칸)을 방문하여 의부자 관계 확인 1184 ∙ 메르키트 부족에게 약탈당한 부인 보르테를 탈환 ∙ 안다(anda, 의형제) 자무카와 연합 시작 1186 ∙ 자무카와 결별하고 몽골 부족의 ‘칸’으로 즉위 1차 즉위 1187 ∙ 달란 발주트에서 전투 2 몽골 제국 시대(1206-1368) 가. 대몽골 제국의 태동가. 대몽골 제국의 태동 ❏ 흑룡강 상류의 남쪽, 흥안령 북부에 거주하며 수렵과 원시적 농업을 병행 ❏ 9세기 중반 위구르 붕괴 후 대규모의 민족이동 시작, 12세기 중 ᠂ 후반에 오논 강 상류 보르항 할동산 인근에 정착 ❏ 칭기스칸 등장 전의 몽골초원은 여러 개 큰 부족국가들간 끊임없는 전쟁으로 혼란 가중 나. 칭기스칸의 등장나. 칭기스칸의 등장
  • 29. - 23 - 칭기스칸 생애 비고 1196 ∙ 금나라 ․ 케레이트와 연합하여 타타르 원정 1196- 1197 ∙ 주르킨 가문의 족장들(사차 베키, 타이추) 처형 1198- 1199 ∙ 케레이트와 연맹하여 나이만 부족에 원정 1201 ∙ 자무카, ‘구르칸’으로 즉위했으나 쿠이텐의 전투 에서 패배 1202 ∙ 달란 네무르게스의 전투로 타타르 전멸 1203 ∙ 케레이트와 카라 칼지트에서 전투, 패배 1204 ∙ 케레이트 습격과 승리, 나이만과 메르키트 정벌 1205 ∙ 자무카 처형 1206 ∙ ‘칭기스칸(Chinggis Khan)’으로 즉위, 천호제 조직, 나이만 정복 2차 즉위 1207 ∙ 키르기즈 복속 1208 ∙ 오이라트 복속 1209 ∙ 탕구트(西夏) 원정 1211 ∙ 위구르 ․ 카를룩 복속, 금나라와 전쟁시작 몽골어표기에 위구르문자 채용 1218 ∙ 중앙아시아로 파견한 사신단, 오트라르에서 몰살 서방원정의 원인 1219 ∙ 호라즘 및 서방원정 시작 네 아들과 주요 장군이 모두 참여 하는15-20만원정 규모의 대대적인 응징 1225 ∙ 서방원정에서 귀환 : 이슬람 신흥강국 호라즘 멸망, 중앙아시아 ․ 서아시아 도시들 황폐화 (이 지역의 지배의사가 없었으므로 전군철수) 1226 ∙ 탕구트 원정 : 호라즘 원정 불참자에 대한 응징 1227 ∙ 원정도중 사망 o 칭기스칸의 막내 아들 톨루이의 섭정 : 1227-1229
  • 30. - 24 - 다. 몽골제국의 흥망다. 몽골제국의 흥망 ❏ 칭기스칸의 후계자들 조 치 바투 조치 올스 차가타이 차가타이 올스 3. 구육 1. 칭기스칸 2. 어거데이 어거데이 올스 4. 뭉케 톨루이 5.쿠빌라이 대칸 올스 훌레구 훌레구 올스 아릭베케 ※ 올스 : ‘제국’을 의미 ❏ 어거데이칸(Ogotai Khan, 1229-1241) o 칭기스칸의 3남으로 1229년 몽골 올스의 2대 칸으로 등극 o 1234년 금 멸망 o 1235년 수도 카라코름 건설 o 1240년 바투를 사령관, 수베테이를 실질적인 지휘관으로 하는 대규모 서방원정 시작 o ‘몽골 국가’가 전통적으로 몽골 초원지대를 통치하던 ‘유목 국가’로서의 성격을 탈피, 정주 ․ 농경국가를 지배하는 ‘세계 제국’으로 변모 ❏ 투르게네의 섭정(어거데이 부인, 1242-1246)
  • 31. - 25 - ❏ 구육칸(Guyuk Khan, 1246-1248) o 바투와의 불화, 1248년 즉위 2년 만에 돌연사 ❏ 오골-카이미쉬의 섭정(구육의 부인, 1248-1251) ❏ 뭉케칸(Munkhe Khan, 1251-1259) o 바투의 적극적인 지지로 대칸에 즉위 o 어거데이 가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 o 운남 ․ 티벳지역 평정 o 2차례 고려 침공(1252년, 1254년) o 페르시아 및 소아시아 일대 장악(1258년, 훌레구) o 남송 원정도중 장티푸스로 사망(1259년) ❏ 쿠빌라이칸(Khubilai khan, 1260-1294) o 1267년 현 북경지역에 카라코름을 대신할 새 수도 건설 명령, 1272년 완성 후 대도로 명명 o 대도(大都, 현재 베이징)와 상도(上都, 현재 내몽골 정람기)를 오가는 양도순행(兩都巡行) o 1271년 ‘대재건원(大哉乾元)’에서 그 뜻을 취하여 ‘대원(大元)’이라는 국호 선포 ※ 대재건원(大哉乾元) : 크도다! 하늘의 으뜸이여! (출처 : 역경(易經)) o 남송정벌(1272년) o 고려와 연합하여 2차례 일본정벌에 나섰으나 태풍으로 실패(1274년, 1281년) o 인도차이나 자바 원정 o 유라시아 대륙에 몽골 세계제국 건설 및 국제교역 대폭 증대
  • 32. - 26 - ❏ 원(元)의 쇠망(1368) o 쿠빌라이칸 사후 대칸위 계승권을 둘러싼 왕실 내부 분열 o 라마승의 횡포로 재정파탄 o 가뭄, 홍수, 지진 등 잇따른 자연재해 o 1333년 마지막 황제 토곤 테무르(Togun-temur) 즉위 o 주원장이 이끄는 명나라군에 의해 몽골고원으로 패퇴 o 1483년 몽골의 러시아 지배종료 ❏ 몽골제국(4대 칸국과 元)의 흥망일지 칸국명 건국자 존속기간 위 치 멸 망 어거데이 어거데이 (칭기스칸의 3남) 1224-1310 o 몽골남부 알타이山-발카슈湖 일대 o 도읍지 : 에밀 o 차가타이 칸국에 병합 차가타이 차가타이 (칭기스칸의 차남) 1227-1380 o 중앙아시아-아프가니스탄 지역 o 도읍지 - 초기 : 아마리크 - 후기 : 東차가타이-악스 西차가타이-사마르한트 o 내부분열 o 티무르에게 멸망 킵차크 바 투 (칭기스칸의 장손자) 1243-1502 o 러시아 볼가강유역 o 도읍지 : 사라이 o 모스크바公國의 독립 o 티무르의 침입 o 내부분열 일 훌레구 (칭기스칸 4남의 아들) 1258-1410 o 이란, 이라크 등 서남아 일대 o 도읍지 : 타브리즈 o 내부분열 o 티무르에게 멸망 元 쿠빌라이 (칭기스칸 4남의 아들) 1271-1368 o 중국전토, 몽골지역 o 도읍지 : 대도(북경) o 내부분열 o 홍건적의 난 (주원장)
  • 33. - 27 - ❏ 대몽골 올스는 1260년 이후 각 계승국가로 분열된 것이 아니라 올스들의 연맹으로 칭기스칸의 후손이라는 연대감과 일체성을 유지 하며 오랫동안 존재 몽골제국의 역사적 의의 ㅇ 진정한 의미의 “세계제국”과 “세계사”의 실현 ㅇ 유럽-아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 육상 ․ 해상교통로를 발달시키고 인터넷보다 700년 앞서 국제통신망을 건설함으로써 동 ․ 서간 경제 ․ 문화교류 촉진 - 기독교 ․ 이슬람교의 동방전파 - 지리학 ․ 천문학 ․ 역학 ․ 수학 ․ 지도제작법 등의 전래 - 신항로 발견 촉진 -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의 탄생 ※ Washington Post지 1995년 송년특집호는 지난 1천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로 칭기스칸을 선정
  • 34. - 28 - 3 북원과 명의 대결시대, 청 복속 시대 (1368∼1911) 가. 북원과 명의 대결시대가. 북원과 명의 대결시대 o 1368년 대도를 떠나 상도로 피신한 토곤 테무르 정권 - 북쪽으로 근거지를 옮긴 ‘북원(北元)’이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한 나라는 고려 o 토곤 테무르의 아들 아유시리다라가 몽골본토로 돌아가 1371년 ‘빌 릭투칸’이라고 칭하고 옛 대원세력의 잔여세력들을 규합하고 지배 체제를 안정시켜 북원 내부를 안정화 o 북원시기 몽골고원은 정치적 분열과 내분으로 ‘6만호 몽골(동몽골)’과 ‘4만호 오이라트(서몽골)’로 나뉘어졌다가, 다시 ‘6만호 몽골(동몽골)’이 남 ․ 북으로 분열되어 3개의 독립국 형성 ※ 오이라트 : 15세기말,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정착하여 현재 러시아 칼미크 공화국 형성 o 몽골의 오이라트는 몽골고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지만 대칸 즉위는 불가능 - 칭기스칸의 직계만이 대칸에 오를 수 있다는 ‘칭기스 통치원칙’ 여전히 존재 o ‘칭기스 통치 원칙’을 어기고 오이라트의 에센 타이시가 대칸에 등극하나 1455년 사망 → 오이라트부 급속 와해 o 1466년 만두하이 여왕은 바트멍흐에게 ‘다얀(dayan)’이라는 칭호를 수여하고 칸으로 추대 → ‘다얀칸’ 나. 청 지배기나. 청 지배기 o 17세기 몽골은 몽골고원의 알타이 산을 경계로 서부의 오이라트,
  • 35. - 29 - 동부의 할하몽골, 고비남쪽의 내몽골로 분립 o 차하르 부의 릭단칸, 통치력을 강화하고 전 몽골인 통합 ․ 통치를 위해 노력 - 후금은 걸림돌인 릭단칸을 가장 먼저 공격 o 1626년 후금의 홍타이지는 차하르를 공격, 이에 대항해 릭단칸은 호르친을 공격 o 1632년 홍타이지는 릭단칸을 정복하기 위해 친정을 감행 - 1634년 릭단칸은 허흐노르로 피신을 가던 중 천연두에 걸려 사망 - 릭단칸의 사망으로 칸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자 공백 상황 발생 o 1636년 내몽골의 16개 아이막, 49개 호쇼의 왕공들이 홍타이지를 몽골의 대칸으로 인정, 내몽골은 만주로 복속 o 1640년 ‘몽골-오이라트 법전’ 비준 - 러시아와 청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몽골 각부와 오이라트 연합 결성 o 1688년 갈단칸 몽골 할하부 공격 o 1689년 청 ․ 러간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청 ․ 러간 국경선 확정 → 부리야트 몽골을 비롯한 북부지대 러시아에 합병 o 1691년 할하 몽골, 내몽골 왕공들의 회맹을 통해 몽골은 청에 복속 o 1717년 청이 몽골 전역을 장악 o 1727년 청 ․ 러간 캬흐타근처의 보오린 골에서 ‘보오린 조약’ 체결로 현재의 몽 ․ 러간 국경선 확정, 캬흐타에서는 ‘캬흐타 무역 조약’ 체결 - 청은 한족, 만주족을 몽골지역에 이주시키는 등 동화정책(同化政策) 추진 다. 반(다. 반(反反)청 운동)청 운동 o 1755년 이후 반청 ․ 반봉건 ․ 반식민지 운동을 계속 전개
  • 36. - 30 - o 1911.8 신해혁명으로 청이 붕괴되면서 독립운동확산 o 1911.9 제8대 접준담바 호탁트를 혁명의 정신적 지주로 세우고 외몽골 독립선언 o 1912.11 외몽골의 고륜정부와 러시아간의 협약을 통해 내몽골은 포함하지 않는 독립을 결정 → 몽골인들의 내 ․ 외몽골 통합독립 희망은 러시아와 일본의 사전 협약에 따라 실패 (러시아와 일본은 외몽골은 러시아, 내몽골은 일본이 특수한 이해관계를 갖는 지역임을 상호승인하고 이를 위반하지 않기로 사전 합의) o 1912년-1919년 몽골, 러시아 보호하에 자치주로 존립
  • 37. - 31 - 4 몽골 독립이후(1920년 이후) o 몽골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수흐바타르(D.Sukhebaatar)는 몽골 인민혁명당을 창당, 소비에트 적군(赤軍)과 연합하여 중국군을 몰아내고 독립선포(1921.7.11) ※ 몽골은 독립선포일(7.11)을 혁명기념일로 기념, 매년 7.11∼13간을 몽골민족 최대의 축제인 “나담축제” 기간으로 선정 o 1924.11.26 새로이 제정된 헌법에 따라 몽골인민공화국 선포 ※ 구 소련에 이어 세계 2번째의 사회주의 국가 o 1939.5-9월 할힌골 전투 : 일본의 동몽골지역 침입에 대해 소련과 연합하여 격퇴 o 1946.2월 중국은 외몽골은 몽골인민공화국으로 인정하였으나, 내몽골은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1947.5) o 1959.12월 인민 경영주에 대한 협동 조합화 완료 - 사유재산 소유제 기능 상실 o 1960년 몽골인민공화국 신헌법 승인 - 사회주의 실현과 향후 공산주의 건설 목표를 규정,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등 사회주의 건설이 완료되었음을 선포 o 1961년 UN 가입
  • 38. - 32 - 5 민주주의 시대(1990년 이후) o 1960-1990년간은 몽골인민공화국의 사회주의 건설을 완료하는 과정 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일당독제체제에 따른 관료주의와 상명하복 체제로 인한 내부 이완과 쇠락 초래 o 1990년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운동은 몽골 민주화 운동의 외적 요인으로 작용 o 1989.12.10 몽골민주연맹 결성 공식 선포 o 1990.2.18 제1차 몽골민주연맹 대회의에서 몽골인민혁명당에 이어 몽골 역사상 두 번째 정당인 몽골민주당 창당을 선언 o 1990.5.10 몽골인민공화국 헌법 개정으로 합법적인 다당제 체제 인정 o 1990.7.29 민주적 절차에 의한 최초의 자유선거 실시 - 다당제의 현실화 - 몽골인민혁명당의 오치르바트를 몽골인민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 o 1991년 제30호 정부 결정으로 사유화 규정을 확정, 사유재산 인정 o 1992.1.13 몽골국 헌법 승인
  • 39. - 33 - 6 역사적 인물 가. 칭기스칸 [1162-1227]가. 칭기스칸 [1162-1227] ❏ 칭기스칸 일대기 “그의 눈에는 불이 있고 얼굴에는 빛이 있다.” <몽골비사> 중 < 칭기스칸 초상화 > 복수와 약탈의 세계에서 사고무친의 고난을 겪다 1162년경 오늘날의 몽골과 시베리아 지역이 맞닿은 곳 근처, 오논 강 유역 숲에서 보르지긴 씨족 예수게이와 올크누트 부족 출신 후엘룬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후엘룬은 메르키트 부족 전사의 아내였으나 예수게이에게 납치당한 처지였다. 예수게이는 이미 첫 부인 소치겔과의 사이에 아들 벡테르를 두고 있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테무진. 예수게이가 죽인 타타르족 전사의 이름이었다. 예수게이는 테무진을 보르테와 약혼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타타르족 야영지를 방문했다가 독살당하면서 두 아내와 10살이 안 된 자식 일곱 명이 남겨졌다. 12세기 당시 초원 지대에는 수십 개 부족과 씨족들이 전투, 사냥, 유목, 약탈, 납치, 교역 등으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었다. 예수게이의 보르지긴 씨족은 타이치우드 씨족에 사실상 의탁해 살고 있었는데, 타이치우드 씨족은 예수게이가 죽자 그 가족들을 버리고 이동했다. 고립된 가족은 오논 강 유역에서 사냥과 채집으로 겨우 연명하며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 40. - 34 - 이 시기 테무진은 자무카와 의형제를 맺었고, 배다른 형 벡테르를 활로 쏘아 죽였다. 타이치우드 씨족은 테무진을 사로잡아 노예로 만들었지만 테무진은 탈출했다. 1178년 16살 경 테무진은 보르테와 결혼하고 몽골 중부의 유력 한 부족 케레이트의 옹칸에게 복종하여 안전을 도모했다. 그러나 메르키트 부족이 후엘룬을 빼앗긴 것에 대한 뒤늦은 복수로, 테무진의 아내 보르테를 납치해갔다. 타타르와 타이치우드를 정복하고 초원의 강자로 떠오르다 테무진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옹칸에게 메르키트를 습격할 뜻을 밝혔다. 메르키트와 구원(舊怨)이 있던 옹칸은 테무진과 의형제를 맺은 자무카를 끌어들여 메르키트를 공격해 승리했다. 테무진은 의형제 자무카 무리와 함께 생활하며 안정을 찾았지만 1181년 자무카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세력을 쌓기 시작했다. 1189년 여름 27살의 테무진은 옹칸의 승인 아래 전통적인 씨족, 부족 회의 쿠릴타이를 소집하여 칸의 칭호를 차지했다. 1196년에는 옹칸과 함께 타타르 원정에 나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쟁을 통해 테무진은 금나라가 타타르, 케레이트, 몽골 등 여러 부족들을 서로 싸우게 한다는 사실을 분명 하게 인식했다. 1197년 테무진은 주르킨 부족을 공격해 무너뜨리고 헤를렌 강과 쳉헤르 강이 만나는 곳 근처에 새로운 근거지를 만들었다. 이곳이 몽골의 수도 아바르가가 되어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원정을 위한 기지 구실을 했다. 1201년 새롭게 떠오 르는 테무진 세력에 반감을 지닌 씨족들이 자무카를 구르칸으로 추대해 옹칸과 테무진에 도전했다. 옹칸은 자무카와 맞서고 테무진은 타이치우드 부족과 맞서 승리했으나 자무카는 달아났다. 1202년 옹칸은 메르키트를 공격하고 테무진은 타타르를 공격했다. 타타르를 정복한 테무진은 수레바퀴 비녀장보다 키가 큰 타타르 남성들은 모두 죽이고 나머지는 자기 부족의 구성원으로 융합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몽골 군대와 부족을 아르반(10호), 조(100호), 밍간(1000호), 투멘(1만호) 체제로 재편했다.
  • 41. - 35 - 이흐 몽골 올스(대몽골제국)의 지배자로 거듭나다 테무진은 맏아들 조치와 옹칸의 딸을 혼인시키려 했으나 옹칸은 거부했다. 그러나 테무진의 군사력을 당해내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옹칸은 계략을 세웠다. 혼인을 수락하고 축하 잔치에 테무진을 초대해 제거하려 했던 것. 소수 병사만 이끌고 옹칸에게 가던 테무진은 계략을 알아채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옹칸의 추격을 피해 살아남은 자는 불과 19명. 이들은 흙탕물을 마시며 테무진 에게 충성을 서약했다. 이들 19명은 아홉 부족 출신으로 전통적인 씨족이나 부족 관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결사체가 탄생한 셈이었고, 이는 몽골 제국 내 통일의 기초나 마찬가지였다. 테무진은 흩어진 추종자들을 모아 옹칸을 향해 진군했다. 기습당한 케레이트 부족은 대부분 테무진에게 항복했다. 옹칸은 나이만 에서 죽임을 당했고 자무카는 부하들의 배신으로 테무진 앞에 끌려오게 되 었다. 자무카는 피를 흘리지 않고 명예롭게 죽기를 바랬다. 테무진은 어린 시절 동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었고 1204년 테무진은 나이만을 완전히 정복하게 되었다. 1206년 테무진은 보르항 할동 성산(聖山) 근처 오논 강 상류에서 쿠릴타이 (대집회)를 열었다. 100만 명에 가까운 인구와 2000만 마리에 가까운 가축을 보유한 새로운 나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나라의 이름은 이흐 몽골 올스(대몽골제국), 통치자의 칭호는 칭기즈칸이었다. 테무진, 아니 칭기즈칸은 부족 간 납치와 몽골인을 노예로 삼는 것을 금지시키고, 종교의 자유를 선포 했으며, 칭기즈칸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개인보다 법이 우위에 선다는 것을 선언했다. 칭기즈칸은 시베리아 부족과 위구르족까지 친족 관계를 확대하여, 부 족이나 민족 전체 단위로 가족적 유대를 맺는 정책을 폈다. 그리고 1207년부터 1209년까지 여러 차례 공격을 통해 탕구트, 즉 서하(西夏)를 정복했다. 금나라와 호라즘을 정복하고 제국을 건설하다 칭기즈칸이 48세가 된 1210년 금나라 사신이 몽골의 복종을 요구하러 왔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땅에 침을 뱉고 금나라를 욕했다. 전쟁 선포였다. 1211년 쿠릴타이를 소집해 원정을 결정하고 진군을 개시한 칭기즈칸은 1215년 금나라 수도 중도(中都. 오늘날의 베이징)를 포위해 항복을 받아냈다.
  • 42. - 36 - 당시 원정에서 몽골군의 병력은 기병 6만5천이었다. 지구력 강한 몽골 말과 보급부대를 두지 않는 간편함(육포와 우유를 말려 응고시킨 덩어리를 휴대), 고도로 조직화된 부대 편재는 몽골군의 기동력을 세계 최강으로 만들어주었다. 여기에 포로들을 통해 익힌 공성전(攻城戰) 전술과 무기, 굳은 충성심과 규율, 적에게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선전전, 적이 제대로 대응하기 전에 전격 적으로 기습하는 전술, 적의 영토 전역에 걸쳐 작전을 펼쳐 혼란을 일으키는 전술 등으로 몽골군은 위세를 떨쳤다. 칭기즈칸은 이제 넓어진 영역을 다스리며 교역과 상업에 큰 관심을 기울 였다. 그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흑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차지한 호라즘과 교역 조건을 협상하고 관계를 공식화하기 위해 사신을 보냈다. 호라즘의 지배자인 투르크 족 술탄 무함마드 2세는 칭기즈칸의 제의를 받아 들이기로 했고, 칭기즈칸은 많은 물자와 함께 상인들을 보냈다. 그러나 호라즘의 북서쪽 오트라트(카자흐스탄 남부)의 총독이 상인들을 죽이고 물자를 빼앗았다. 칭기즈칸은 사신을 보내 총독을 처벌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무함마드 2세는 오히려 사신들을 죽였다. 남은 것은 전쟁이었다. 1219년 원정을 떠난 칭기즈칸은 이듬해 봄 호라즘 영역에 도착하여 그 해가 끝나기 전에 호라즘의 주요 도시들을 속속 점령했다. 무함마드 2세는 몽골군에 쫓기다가 카스피해의 작은 섬에서 죽었다. 무함마드 2세의 아들 잘랄웃딘이 인더스 강변에서 몽골군과 맞서기도 했지만 칭기즈칸에게 패했다. 중앙아시아 대부분을 휩쓴 칭기즈칸의 원정은 1222년 여름 오늘날의 파키스탄 중심부에서 멈추었다.(1223년 제배와 수부타이가 이끈 별동군이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 러시아 남부 지역과 이란 일부 지역 여러 도시를 공략) “내가 사라진 뒤에도 세상에는 위대한 이름이 남게 될 것이오” 칭기즈칸은 인도 북부를 모두 점령하고 히말라야 남쪽을 돌아 중국 송나라 영토를 가로지를 생각을 했지만, 더위와 습기가 커다란 장벽이 되었다. 본거지로 돌아온 칭기즈칸은 이제 서하, 즉 탕구트 공격을 준비했다. 탕구트는 이미 항복했지만 호라즘 원정 때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탕구트 원정을 위해 고비 사막을 건너던 1226∼27년 겨울 칭기즈칸은 진군을 멈추고 야생마를 사냥 했다. 갑자기 야생마들이 돌진해오자 칭기즈칸이 탄 말이 놀라 뛰어올랐다.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지만 칭기즈칸은 탕구트와 전쟁을 계속했다. 수도를 포위하고 마지막 승리를 얼마 앞둔 1227년 8월 칭기즈칸은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중국 간쑤성(甘肅省) 칭수이현(淸水縣) 시장(西江) 강변이었다. 그러나 칭기스칸의 무덤은 현재도 찾지 못하고 있다.
  • 43. - 37 - ❏ 칭기스칸 리더십의 특징 1) 원대한 비전의 제시 o 조직원들은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 더 탄탄하게 움직이며 그러한 목표는 너무 작은 것보다는 조금은 이상적이어야 힘을 낸다는 점, 끊임없이 목표를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점은 현대의 여러 리더십 이론에 부합 2) 슈퍼 리더십 o 부하에게 전적인 권한을 부여, 나눠준 영토에 대해서는 현지의 관리자들에게 맡겼으며 특별한 간섭을 하지 않음으로써 최대한 많은 자율권을 부여 3) 통합적 패러다임과 거시적 안목 o 범세계화되어가는 세계 흐름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통합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상대적인 시각 또한 필요 4) 과학기술과 교역 장려 o 실리를 추구하고 교역을 중시하는 개방정책으로 발달한 문명과 각종 기술들을 수용함. 당시에는 유럽과 통상을 하기에는 가는 길도 멀고 도적들도 많아 곤란했지만 이때부터 시작한 문명교류는 과학과 기술 문명의 발전을 앞당기는 역할 5) 역할 모델 o 먼저 함성을 외치고 적을 향해 돌진함으로써 부하들의 사기를 증진시키고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한 모습 시현 6) 아웃소싱 o 칭기스칸은 적이든 아니든 쓸모있는 모든 사람들을 확보, 경영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철저한 아웃소싱
  • 44. - 38 - 7) 개인적 지지 o 칭기스칸은 개인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부하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용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에 맞추어 칭찬과 포상 8) 대인관계 & 커뮤니케이션 방법 o 칭기스칸은 항상 아래와 같이 부하들에게 말하였고 본인 스스로도 실천 - “大人을 찾아가는 사람은 그 大人이 질문을 하기 전에는 어떠한 말도 하지 말라. 그 질문에 따라서 적절한 답변을 하라. 만일 그가 묻기 전에 말했을 때 大人이 듣는다면 상관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은 차가운 쇠로 두드리는 것과 같다.” - “말을 할 땐 항상 신중함을 기울여라.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9) 평등의 원칙 o 씨족끼리 모여 사는 씨족봉건사회였던 몽골 전 사회를 아르반 ․ 조 ․ 망간 ․ 투멘의 10진법 체제로 재편하고(지연 ․ 혈연 ․ 학연을 철저히 배제) 싸움터에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이면 누구든 신분에 관계없이 지휘관으로 발탁 o 지역을 정복한 후에 재물을 분배할 때에도 모두에게 평등 분배
  • 45. - 39 - 나. 쿠빌라이 [1215-1294]나. 쿠빌라이 [1215-1294] 1215년 칭기스칸의 손자(4남 톨루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쿠빌라이는 어려서는 별로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었다. 1251년이 될 때까지 톨루이 가문이 권력의 핵심에서 소외되었고, 쿠 빌라이는 톨루이 가문에서도 둘째 아들이라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소르각타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중국 인들을 탄압하고 착취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살피고 다독이는 정책을 취해 우리 몽골에 충성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을 멸시하기보다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가르침이 훗날 그가 칸의 자리에 올랐을 때 중국을 다스리는 데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 쿠빌라이 초상화 > 1259년 형 뭉케가 남송원정 도중에 사망하자 모든 이목이 쿠빌라이에게 집중된다. 칸으로 즉위함에 있어 막내동생인 아릭베케와 대립하게 된다. 1260년, 쿠빌라이는 상도에서 자신의 지지자들만을 모아 쿠릴타이를 열어 제5대 대칸에 오르게 된다. 아릭베케는 몽골에서 별도로 쿠릴타이를 열고 대칸을 선언하는데 킵차크, 어거데이, 차가타이칸국이 아릭베케의 편에 서고 훌레구가 이끄는 일한국은 쿠빌라이를 지지했다. 그 뒤로 두 칸이 싸우기를 4년, 마침내 아릭베케를 굴복시킨 쿠빌라이는 도읍을 북경으로 옮겨 대도(大都)라 일컫고, 이어 1271년 국호를 원(元)이라 칭하였다. 대원제국 수립 후 내적으로는 아릭베케의 잔당인 하이두(어거데이의 손자)와 도와(차가타이의 손자)의 반란으로 인해 30여 년에 걸친 내전이 일어났다. 쿠빌라이가 실시한 주요 외정으로는 고려, 동남아시아, 일본 정복이 있다. 쿠빌라이의 만년은 만주에서 티베트, 중앙아시아까지 제국 각지에서의 잇따른 반란과 끝날 줄 모르는 통치권 도전으로 시끄러웠다. 게다가 의지했던 황후 차비가 1281년에 죽고, 그녀가 낳은 황태자 친킨 역시 1285년에 병사하자 쿠빌라이는 인간적인 고통과 고독에 시달렸다. 그리하여 이후 10년 동안 정치 업무를 새 황후인 남비에게 일임하고 폭음과 폭식을 거듭했다. 그 결과 급속도로 건강을 해친 그는 1294년 사망하고 친킨의 아들인 테무르가 대를 이었다.
  • 46. - 40 - 다. 만두하이 [1449-1510]다. 만두하이 [1449-1510] 만두하이는 처러스바이 투무르의 딸로써 16살이 되던 해에 아름다움과 지혜 로움이 널리 퍼져 이를 들은 만두굴칸(1463-1467) 은 그녀를 왕비로 삼았다. 하지만 1467년 만두굴칸은 타이슨칸의 손자인 바얀 멍흐와 권력 다툼을 벌이다 사망하였다. 하지만 바얀< 만두하이 영화 한 장면 > 멍흐 역시 칸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피살되었다. 만두굴칸 사망 당시 만두하 이가 31살, 바얀멍흐의 아들 바트멍흐는 겨우 여섯 살이었다. 쿠빌라이 자손들이 대부분 사라진 상황에서 바트멍흐는 거의 유일하게 남겨진 귀한 황손이었다. 바트멍흐는 아버지(바얀멍흐) 사후 재혼한 생모로 부터도 천대를 받는 버려진 아이가 되는데 만두하이가 이를 거두어 돌보게 된다. 만두하이는 칸의 자리를 이어갈 사람은 바트멍흐뿐이라고 판단을 하는 한편 동몽골인들의 충성을 이끌어 내어 바트멍흐를 정식 칸으로 추대하였 는데 이가 다얀칸이다. 만두하이는 어린 다얀칸을 키워가면서 섭정으로서 동몽골을 다스렸다. 1481년, 다얀칸이 성장하자 만두하이는 42살의 나이로 17살의 다얀칸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7명의 아들을 낳는다. 후에 다얀칸의 후비가 낳은 4명의 아들까지 총 11명의 아들들이 이후 칭기스칸 가계의 새로운 몽골족을 탄생시킨다. 칸의 부인 자격을 얻은 만두하이는 군대를 직접 지휘하며 몽골고원의 통일전쟁을 이끌었다. 만두하이는 오이라트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몽골초원에서 동몽골이 완전히 주도권을 잡은 후, 장성한 다얀칸에게 몽골의 통치권을 넘겼 다. 당시 몽골은 명나라 주원장 세력에 쫓겨 초원으로 밀려난 뒤, 100여년 동안 이나 사분오열의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였는데, 만두하이 활약으로 분열과 반목을 거듭하던 몽골은 다시 통일된 국가가 될 수 있었다.
  • 47. - 41 - 라. 수흐바타르 장군 [1893-1923]라. 수흐바타르 장군 [1893-1923] < 수흐바타르 장군 > < 수흐바타르 광장에 세워진 수흐바타르 장군 동상 > 가난한 유목민의 집에서 태어나 16세에 역전 마차의 마부가 되었다. 1911년, 몽골 독립 후 자치(自治)몽골군의 소집을 받고 입대, 하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기관총대장으로서 공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1911년 중국으로부터 독립에 성공한 몽골의 독립은 같은 해 청나라 멸망 후 들어선 중화민국에 의해 사실상 물거품이 되고 만다. 중화민국이 무력을 동원하여 몽골을 무력 침공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이 시기 수흐바타르는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자극을 받아 공산주의자가 되고 1920년 6월 초이발산 등과 몽골인민당을 결성,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무장 독립 투쟁은 강력한 중국군 앞에서는 결국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여러 전투에서 중국군에게 패배당한 수흐바타르는 러시아로 건너가 당시 러시아 혁명 지도자 였던 레닌을 만나 몽골을 도와줄 것을 요구했다. 여러 차례의 협상 끝에 레 닌은 수흐바타르에게 몽골 독립 지원과 몽골군의 군사 훈련 원조를 약속하게 된다. 수흐바타르는 1921년 인민의용군을 결성, 몽골혁명의 성공과 그후의 국가건설을 위한 전술지도를 받고, 총사령관으로서 마이마친에서 군사를 일으켜 7월 10일 울란바타르에 인민정부를 수립하고 몽골의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그는 몽골이 완전한 주권 독립국으로서의 기반을 굳건히 다져가는 것을 보기도 전에 1923년 2월 22일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 다. 그를 기리기 위해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그의 이름을 딴 광장과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 48.
  • 49. - 43 - Ⅲ. 정치 ․ 군사 1. 정치제도 2. 개혁ㆍ개방 이후 정치발전 3. 군사
  • 50.
  • 51. - 45 - 1 정치제도 가. 정 체 : 민주공화제가. 정 체 : 민주공화제 ❏ 의원내각제적인 성격이 강한 이원집정부제 o 총 리 : 의회 다수당의 당수가 총리직 수임(내정 통할) o 대통령 : 국가의 상징이며 직선제 선출(외교, 국방, 사법) ❏ 형식적으로 입법 ․ 사법 ․ 행정 3권이 분리되어 있으나, 국가 주요 기관이 긴밀히 연결되어 주요 기능이 3부에 혼재 나. 국회(The State Great Hural)나. 국회(The State Great Hural) ❏ 구성 o 헌법상 국가권력의 최고 기관이며 입법권을 가지는 유일한 기관으로 국내외의 주요 정책에 관하여 심의 ․ 결정 o 의원 76명으로 구성, 임기는 4년(2012.6월 선거 예정) - 소선거구제(2011.7월 현재 비례대표제 도입 논의 중) o 정기회의는 통상적으로 춘계(4월-7월), 추계(10월-익년도 2월) 등 2회 개최 - 임시회의는 재적 의원 1/3 이상 발의 혹은 대통령이나 의장의 발의에 의하여 소집 - 7개의 상임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으며 각 의원은 통상 2개의 상임위원회에 소속
  • 52. - 46 - 직 책 성 명 소 속 의 장 D. Demberel (뎀베렐) 인민당 부 의 장 N. Enkhbold (엥흐볼드) G. Batkhuu (바트후) 인민당 민주당 안보외교상임위원장 Ya.Batsuuri (바트소리) 민주당 환경식량상임위원장 P. Altangerel (알탕게렐) 민주당 예산상임위원장 D. Khayankharvaa(하얀하르와) 인민당 법률정책상임위원장 D. Odbayar(오드바야르) 인민당 사회정책상임위원장 D. Ochirbat(오치르바트) 인민당 국가조직상임위원장 J. Sukhbaatar(수흐바타르) 인민당 경제정책상임위원장 D. Zorigt(조릭트) 인민당 국회 사무총장 Ts.Sharavdorj (샤랍도르지) - ❏ 국회 소속 기관 국회국회국회국회국회국회국회국회 국 가 감 사 원 국 가 통 계 위 원 회 중 앙 은 행 공 무 원 관 리 위 원 회 금 융 관 리 위 원 회 국 가 인 권 위 원 회 중 앙 선 거 관 리 위 원 회 헌 법 재 판 소 부 정 부 패 방 지 청 직 책 기 관 장 국가감사원 Ch.Radnaa(라드나) 국가통계위원회 S. Mendsaikhan(멘드사이한) 중앙은행 L. Purevdorj(푸렙도르지) 공무원관리위원회 D. Zumberellkham(줌베렐함) 금융관리위원회 D. Bayarsaikhan(바야르사이한) 국가인권위원회 J. Byambadorj(뱜바도르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N. Luvsanjav(롭상자브) 헌법재판소 업무대행(N. Jantsan)(잔창) 부정부패방지청 공석
  • 53. - 47 - 다. 대통령다. 대통령 o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 직선제를 통해 선출(2013.5월 선거 예정) - 임기 4년, 연임 가능 o 대통령은 외교․ 국방․ 사법권을 보유하며, 국회에서 총리․ 각료 임명시 제한적인 동의권을 행사 o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이사회(The National Security Council) 의장 겸 군 최고통수권자 o 대통령은 국회에 대해 책임을 지며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 규정에 위배되었을 때, 국회는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 가능 ※ 국가안전보장이사회(NSC) - 대통령(의장), 총리, 국회의장 등 3인으로 구성 - NSC 사무국(사무총장 : Enkhtuvshin(엥흐툽신)) : 실무직원 약 15명 ※ 소속기관 : 전략연구소(Institute of Strategic Studies) - ▶국가안보 연구센터, ▶경제사회안보 연구센터, ▶정부안보 연구센터로 구성 되어 있으며 총 25명의 직원이 근무 중(소장 : Ganbat(간바트)) 대통령대통령대통령대통령대통령대통령대통령대통령 국가안전보장 이사회 (NSC) 국가배상관리위원회 직 책 기 관 장 소 속 국가안전보장보이사회(NSC) Ts.Elbegdorj(대통령, 엘벡도르지) 민주당 국가배상관리위원회 N. Enkhbold(국회부의장, 엥흐볼드) 인민당 라. 내 각라. 내 각 ❏ 구 성 o 형식적으로 각 부처의 행정권이 분산되어 있으나 내각회의를 통해 집단적으로 의사 결정 - 내각회의에서 채택되는 내각결의문을 통해 특정 사안에 대해 소관 부처 장관에게 권한을 부여
  • 54. - 48 - - 내각회의는 매주 수요일 오전에 개최하고 매주 월․ 화요일은 국회 상임위, 매주 목 ․ 금요일은 국회 본회의를 개최함으로써 내각과 국회가 사실상 유기적으로 연결 o 내각 각료는 총리의 제청으로 국회에서 임명, 임기는 4년이나 임기만료 전이라도 불신임 결의에 의하여 퇴진 가능 ❏ 정부 조직도 총총총총총총총총총 리리리리리리리리리총 리 정 보 총 국 국 유 재 산 위 원 회 정 보 우 정 통 신 기 술 청 통 신 규 제 위 원 회 국 가 개 발 혁 신 위 원 회 원 자 력 청 국 가 양 성 평 등 위 원 회 Open governme ntwebsite 수 석 부 총 리 부 총 리 내 각 관 방 부 재 무 부 법 무 내 무 부 외 교 부 자 연 환 경 관 광 부 도 로 교 통 건 설 도 시 개 발 부 국 방 부 교 육 문 화 과 학 부 사 회 복 지 노 동 부 자 원 에 너 지 부 식 량 농 업 경 공 업 부 보 건 부 국 가 등 록 청 국 가 아 동 지 원 청 행 정 아 카 데 미 국 세 청 중 앙 경 찰 청 외 교 단 서 비 스 국 기 상 청 토 지 측 지 지 도 제 작 청 합 동 참 모 대 문 화 예 술 위 원 회 사 회 보 험 청 광 물 청 중 소 기 업 청 국 가 체 육 스 포 츠 위 원 회 표 준 측 량 청 국 가 전 문 감 독 청 정 부 기 관 서 비 스 국 관 세 청 국 경 수 비 대 외 국 인 투 자 청 수 자 원 청 교 통 청 전 문 교 육 연 수 청 노 동 사 회 복 지 서 비 스 청 에 너 지 청 수 의 동 물 청 보 건 청 공 정 거 래 소 비 자 청 비 상 사 태 관 리 청 외 국 인 관 리 청 산 림 청 자 동 차 검 사 감 독 규 제 청 석 유 청 전 염 병 연 구 센 터 지 적 재 산 권 관 리 청 국 가 에 이 즈 예 방 관 리 위 원 회 집 달 리 국 도 로 청 국 가 기 록 문 서 보 관 소 철 도 청 국 가 법 률 연 구 소 민 간 항 공 청 ※ 총리실, 부총리실은 내각관방부 소속
  • 55. - 49 - ❏ 정부 내각 주요 인사(총리, 부총리2, 12개부) ※ 몽골인의 성은 아버지의 이름인바, 상대방에 대해서 통상 이름으로 호명 직 책 성 명 소속 총 리 S. Batbold(바트볼드) 인민당 정보총국 R. Bold(볼드) 국유재산위원회 D. Sugar(소가르) 정보우정통신기술청 J. Bat-Erdene(바트에르덴) 통신규제위원회 B. Boldbaatar(볼드바타르) 국가개발혁신위원회 Ch.Khashchuluun(하시촐롱) 원자력청 S. Enkhbat(엥흐바트) 수석 부총리 N. Altankhuyag(알탕후약) 민주당 국가등록청 L. Munkhbaatar(뭉흐바타르) 공정거래소비자청 D. Mandakh(만다흐) 부총리 M. Enkhbold(엥흐볼드) 인민당 국가전문감독청 R. Sodkhuu(서드후) 비상사태관리청 Ts.Amgalanbaatar(암갈랑바타르) 내각관방부장관 Ch.Khurelbaatar(후렐바타르) 인민당 행정아카데미 G. Chuluunbaatar(촐롱바타르) 재무부장관 S. Bayartsogt(바야르촉트) 민주당 국세청 B. Battumur(바트투무르) 관세청 D. Tseveenjav(체벤자브) 법무내무부장관 Ts.Nyamdorj(냠도르지) 인민당 경찰청 D. Sandag-Ochir(산닥오치르) 국경수비대 Ts.Sergelen(세르겔렝) 외국인관리청 D. Murun(무릉) 외교통상부장관 G. Zandanshatar(잔단샤타르) 인민당 외국인투자청 B. Ganzorig(간조릭) 자연환경관광부장관 L. Gansukh(간수흐) 민주당 기상청 S. Enkhtuvshin(엥흐툽신) 수자원청 Ts.Badrakh(바드라흐) 산림청 M. Tungalag(통갈락) 식량농업경공업부장관 T. Badamjunai(바담조나이) 인민당 중소기업청 Ts.Nyam-Osor(냠오소르) 사회복지노동부장관 T. Gandi(간디) 인민당 사회보험청 Ch.Altankhuyag(알탕후약) 노동사회복지서비스청 D. Bayarsaikhan(바야르사이한)
  • 56. - 50 - 직 책 성 명 소속 교육문화과학부장관 Yo.Otgonbayar(어트겅바야르) 인민당 문화예술위원회 B. Lkhagvasuren(학바수렌) 도로교통건설도시계획부장관 Kh.Battulga(바트톨가) 민주당 토지측지지도제작청 Ts.Gankhuu(간후) 도로청 B. Enkhtur(엥흐투르) 민간항공청 S. Batmunkh(바트뭉흐) 국방부장관 L. Bold(볼드) 민주당 합동참모대 Ts.Byambajav(비암바자브) 자원에너지부장관 D. Zorigt(조릭트) 인민당 광물청 D. Batkhuyag(바트후약) 에너지청 Ts.Bayarbaatar(바야르바타르) 석유청 D. Amarsaikhan(아마르사이한) 보건부장관 S. Lambaa(람바) 민주당 보건청 Sh.Enkhbat(엥흐바트) 마. 사법부마. 사법부 ❏ 사법부 구성 o 대법원(The Supreme Court), 지방법원(Aimag, Capital City Court), 지구법원(Som, Intersom, District Court)으로 구성 - 대법원에 법원협의회(The General Council of Courts)를 설치,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으며 대법원장과 재판관들은 일반 법관위원회와 국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 - 대법원은 대법원장과 16명의 재판관으로 구성, 대법원 산하의 민사, 형사, 행정재판실은 독립적으로 활동 o 국가 검찰청은 독립 기관으로 검찰총장, 검찰차장은 국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임기 6년)하며 市검찰청과 아이막 검찰청으로 구성
  • 57. - 51 - 직 책 성 명 대법원장 Ts.Zorig(조릭) 국가검찰청장 D. Dorligjav(도를릭자브) 대법원대법원대법원대법원대법원대법원대법원대법원 지방법원(2심법원) 지방행정법원(1심법원) 지구법원(1심법원) 바. 지방자치단체바. 지방자치단체 ❏ 구성 o 몽골의 지방조직은 수도 울란바타르시와 21개 아이막으로 구성 ① 울란바타르시 - 시정부와 시의회로 구성 - 시의회 의원은 45명으로 주민 선거를 통해 선출(임기 4년) - 시장은 시의회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를 총리가 임명(임기 4년) - 울란바타르시는 9개의 구(district)와 그 하위조직인 동(khoroo) 으로 구성 - 구의회는 인구수에 따라 의원수(21명~35명)가 결정되며 구청장과 동(khoroo)장은 각각 울란바타르 시장, 구청장이 임명 ② 아이막(道) - 아이막 도정부와 아이막 도의회로 구성 - 아이막 도의원은 인구수에 따라 의원수(25명~35명)가 결정되며 주민 선거를 통해 선출 - 아이막 도지사는 아이막 의회의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를 총리가 임명(임기 4년) - 아이막 하위조직으로 솜(som : 군)과 박(bag : 읍)이 존재
  • 58. - 52 - - 군의회는 인구수에 따라 의원수(15명~25명)가 결정 - 군수와 읍장은 각각 아이막 지사와 군수가 임명 직 책 성 명 소 속 울란바타르 시장 G. Munkhbayar(뭉흐바야르) 인민당 금융경제 담당 부시장(수석부시장) B. Baatarzorig(바타르조릭) 인민당 도시건설개발인프라 담당 부시장 B. Munkhbaatar(뭉흐바타르) 인민당 사회문화담당 부시장 Ts.Tsogzolmaa(척절마) 인민당 생산 및 자연문제 담당 부시장 D. Ganbold(간볼드) 민주당 울란바타르 시의회의장 T. Bilegt(빌렉트) 인민당 사. 정 당사. 정 당 o 1921년 독립과 동시에 출범한 몽골인민당은 1925년 인민혁명당 (Mongolian People's Revolutionary Party : MPRP)으로 개칭, 1990년대 초까지 헌법으로 보장된 일당 독재체제 유지 o 1990.2 몽골최초의 야당인 민주당 탄생 o 1990.3 인민혁명당, 중앙위 제8차 총회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일당 독재를 포기하고 복수후보에 의한 자유선거를 실시토록 함으로써, 민주다당제 정당정치의 기초 마련 o 1990.7.29 최초의 민주총선 실시, 인민혁명당 외에 민주당, 사회 민주당 등 5개의 신설 야당 참여 o 1992.6.28 신헌법 제정후 최초로 실시된 총선에서 집권당인 인민 혁명당(MPRP)이 압승 → 총선에서 참패한 군소 야당들 연합, 민족민주당(MNDP)과 사회민주당(MSDP)을 결성 o 1996.6.30 두 번째 총선에서 민주연합(민족민주당 및 사회민주당 등의 연합)은 총 76석 중 50석을 획득, 집권당인 인민혁명당의 75년간 장기집권 종식 o 2000.7.2 인민혁명당, 총선에서 76석 중 72석을 획득, 여당으로 복귀 - 2000.12.6 야당으로 전락한 민족민주당, 사회민주당 통합 → 민주당 창당
  • 59. - 53 - o 2008.6 총선에서 부정선거 시비로 촉발된 시위(2008.7.1)로 정치적 혼란 발생 - 2008.9 인민혁명당과 민주당의 연립정부 출범으로 정치적 안정 도모 - 2010.11 인민혁명당 당명을 인민당으로 변경 o 2012년 총선에서 인민당과 민주당의 치열한 경쟁구도 예상 - 2011.6 엥흐바야르 전 대통령이 인민당내 권력투쟁 과정에서 구 인민당 당명과 같은 인민혁명당을 새로이 창당하여 정당 등록을 마침으로써 2012년 총선의 새로운 변수로 대두 인민당 당내 서열 서열 직 책 성 명 1 당수 S. Batbold(바트볼드) 2 사무총장 U. Khurelsukh(후렐수흐) 3 당서기 Ya.Sodbaatar(서드바타르) 4 당서기 Ts.Sukhbaatar(수흐바타르) 5 원내대표 U. Enkhtuvshin(엥흐툽싱) 민주당 당내 서열 서열 직 책 성 명 1 당수 N. Altankhuyag(알탕후약) 2 사무총장 D. Erdenebat(에르덴바트) 3 울란바타르 지구당대표 Sh.Tuvdendorj(툽뎅도르지) 4 원내대표 Ch.Saikhanbileg(사이항빌렉) 몽골 역대 대통령 No 성 명 근무기간 소속 정당 1 Punsalmaa Ochirbat(오치르바트) 1992-1997 인민혁명당 2 Natsag Bagabandi(바가반디) 1997-2001 인민혁명당 3 Natsag Bagabandi(바가반디) 2001-2005 인민혁명당 4 Nambar Enkhbayar(엥흐바야르) 2005-2009 인민혁명당 5 Tsakhia Elbegdorj(엘벡도르지) 2009- 민주당
  • 60. - 54 - 몽골 역대 총리 1 Balin Tserendorj(체렌도르지) 1924-1928 인민혁명당 2 Anand Amar(아마르) 1928-1930 인민혁명당 3 Tsengelt Jigjidjav(지그지드자브) 1930-1932 인민혁명당 4 Peljid Genden(겐뎅) 1932-1936 인민혁명당 5 Anand Amar(아마르) 1936-1939 인민혁명당 6 Khorloo Choibalsan(초이발산) 1939-1952 인민혁명당 7 Yumjaa Tsedenbal(체렌발) 1952-1974 인민혁명당 8 Jamba Batmunkh(바트멍흐) 1974-1984 인민혁명당 9 Dumaa Sodnom(소드넘) 1984-1990 인민혁명당 10 Sharav Gungaadorj(궁가도르지) 1990 인민혁명당 11 Dash Byambasuren(뱜바수렌) 1990-1992 인민혁명당 12 Puntsag Jasrai(자스라이) 1992-1996 인민혁명당 13 Mendsaikhan Enkhsaikhan(엥흐사이한) 1996-1998 민주당 14 Tsakhia Elbegdorj(엘벡도르지) 1998 민주당 15 Janlav Narantsatsralt(나란차츠랄트) 1998-1999 민주당 16 Rinchinnyam Amarjargal(아마르자르갈) 1999-2000 민주당 17 Nambar Enkhbayar(엥흐바야르) 2000-2004 인민혁명당 18 Tsakhia Elbegdorj(엘벡도르지) 2004-2006 민주당 19 Miyegombo Enkhbold(엥흐볼드) 2006-2007 인민혁명당 20 Sanjaa Bayar(바야르) 2007-2009 인민혁명당 21 Sukhbaatar Batbold(바트볼드) 2009.10.29- 인민당
  • 61. - 55 - 2 개혁 ․ 개방 이후 정치발전 가. 민주화 발전가. 민주화 발전 ❏ 배경 o 1980년대 후반 舊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 ․ 개방 움직임이 확대되면서, 몽골도 국가체제 개혁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 o 1986년 인민혁명당(MPRP : Mongolian People's Revolutionary Party) 전당대회에서 舊소련의 개혁(Perestroika) ․ 개방(Glasnost)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黨 체질 개선문제 논의 - 1988.12 몽골판 페레스트로이카인 신칠렐(shinechlelt, 혁명) 정책 채택 o 몽골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확대되면서 야당탄생 등 민주화 진전 - 1990.2 정부의 공식인정을 받아 몽골 최초의 야당인 민주당 (MDP : Mongolian Democratic Party) 탄생 o 1990.7 최초의 민주총선에서 압승한 인민혁명당은 정치민주화와 시장 경제체제로의 이행 다짐 및 마르크스 ․ 레닌주의 포기를 선언 하고 新헌법 제정에 착수 - 1990.9 오치르바트 대통령이 이끄는 새로운 개혁정부가 들어 서면서 정치 ․ 경제개혁 본격 추진 ❏ 민주화 개혁의 주요내용 o 1992.1 新헌법 제정 - 국명을 “몽골인민공화국”에서 “몽골(Mongolia)”로 변경 - 3권분립을 기초로 대통령 직선제(임기 4년)와 국회 단원제 및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 자유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규정 -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 중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건설” 문구를 삭제하고 인도적 시민사회의 발전을 최대 목표로 규정
  • 62. - 56 - - 법률과 민주 ․ 공정 ․ 자유, 민족의 통일성 등을 최고 원칙으로 규정 - 국제법 원칙 존중과 평화적 외교 수행 및 몽골정부의 허가없는 외국군의 주둔이나 영토통과 금지 등을 규정(중립 ․ 비동맹주의) o 法제도 정비 - 1992.6 총선 후 임명된 개혁파 경제학자 출신의 P. Jasrai(자스라이) 총리는 오치르바트 대통령과 함께 개혁과 개방정책을 더욱 적극 추진하면서 법률 ․ 제도 정비에 박차 - 정부조직법, 대통령선거법, 국회법 등 정치 관련법 정비 - 일반세법, 법인소득세법, 통상세법, 국민소득세법, 자동차세법, 회계감사법, 외국인투자법, 부당경쟁방지법, 저작권법 등 제정 - 연금생활자, 실업자, 저소득자를 보호하기 위한 연금 ․ 임금 인상 등 생활보장제도를 개선하고, 관세 인하 추진 o 중앙부처의 통폐합 및 지방행정조직 개혁 - 1994년 지방행정자치의 확립을 위해 3개의 道(아이막, Aimag)를 신설, 1997년 중앙부처 9개로 축소 o 공산당(인민혁명당)의 75년 통치 종식 - 1996.6 총선에서 야당연합(민족민주당+사회민주당)인 「민주연합」이 인민혁명당을 누르고 압승(민주연합 50석, 인민혁명당 25석, 보수당 1석) ❏ 평가 o 개혁 ․ 개방 이후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의 포기, 자유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 정부기구의 축소, 언론자유화 등 민주화를 진전시킴 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상당부분 긍정적 평가 o 다만, 주어진 산업여건과 경제상황, 정치 ․ 사회문화 및 제도화 수준을 감안하지 않은 급진적 정치개혁 추진은 정치 ․ 관료조직의 비능률과 부패, 이해 대립 등 부산물을 낳으면서 정치적 불안 야기
  • 63. - 57 - o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정치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도입된 몽골의 독특한 통치구조는 대통령-국회-정당간 대립을 빈번하게 발생시켜 개혁초기에 요구되는 강력한 리더쉽, 일관성 있는 정책추진을 제약함으로써 개혁 ․ 개방에 부담으로 작용 나. 민주화 진전나. 민주화 진전 ❏ 1997.5.18 대통령 선거 o 인민혁명당 후보인 Bagabandi(바가반디) 국회의장이 압도적인 득표율로 민주연합 후보인 Ochirbat(오치르바트)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 - 신정부 출범이래 가중되는 경제난 속에서, 1인 장기집권에 반대 하고 새로운 인물과 정책의 등장을 희구하는 국민들의 여망 반영 - 국가발전을 위해 대통령과 국회의장(민주연합), 총리(민주연합)간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확산 ❏ 정국불안으로 4차례 내각 교체 o 민주연합의 Enkhsaikhan(엥흐사이한) 정권은 출범 이후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위한 의욕적인 정책을 추진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듯하였으나, 여러 정치파벌로 구성되어 있는 민주연합 내부의 권력투쟁 결과, 1998.4 엥흐사이한 내각이 퇴진하고, 몽골민주당 당수 겸 국회부의장인 Elbegdorj(엘벡도르지)가 총리에 취임 o 엘벡도르지 내각은 민주연합내 정파간 갈등을 표출하면서 총리, 국회의장 등 여권 고위인사 다수가 개입된 은행 불법합병조치 문제로 출범 3개월만인 1998.7.24 퇴진 o 1998.12 Narantsatsralt(나란차츠랄트) 울란바타르 시장이 제19대 총리에 취임했으나, 에르데넷 동(銅)광산 경영진 교체문제 등을 둘러싼 여․ 야간 대립이 심화되자 퇴임, Amarjargal(아마르자르갈)이 새 총리에 취임
  • 64. - 58 - ❏ 인민혁명당의 압승 o 2000.7.2 총선결과 야당인 인민혁명당(MPRP)이 76석 중 72석을 차지하며 압승 - 1997년 인민혁명당, 당규를 개정하여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채택 하고 과감한 인물 교체와 9만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하는 등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구축함으로써 정권 탈환에 성공 - 집권당인 민주연합, 급진적 개혁에 치우치며 2년간 내각이 4번 교체되는 등 정치불안정을 초래, 빈곤과 각종 비리 확대 등으로 국민 여론 이반 o 신정부는 시장경제 개혁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사회복지를 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삼고 정부의 개입기능을 강화 ❏ 헌법개정 논쟁과 총리 권한 강화 o 1999.12.24 국회의원의 각료겸직을 허용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요지의 헌법 개정안이 여야간 합의하에 압도적 다수결로 통과 o 2000.11.29 헌법재판소는 국회통과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전체회의를 소집하여 동 개헌이 무효임을 최종 결정 o 2000.12.14 집권 인민혁명당(소속 국회의원 72명중 69명 확보), 법률위헌여부를 심사하는 헌법재판소가 국회 헌법 개정행위에 관여한 월권행위라고 비판 - Enkhbayar(엥흐바야르) 총리 주도하에 국회 본회의에서 같은 헌법개정안을 단독 처리하여 발효 o 바가반디 대통령은 헌법개정안이 대통령의 권한을 지나치게 제한 했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였으나, 국회는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기각한다는 결의안을 채택
  • 65. - 59 - ❏ 2004년 총선과 연립내각 구성 o 2004.6.27 총선 결과,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여당 인민혁명당은 단독 정부구성에 필요한 과반수 의석 획득에 실패 - 인민혁명당 37석, 민주연합 35석, 무소속 3석 및 공화당 1석 o 과반수 이상을 확보한 당이 없는 관계로 연정 합의에 따라 민주 연합의 엘벡도르지를 총리로 임명하고 연립내각을 구성하였으며, 국회의장에는 인민혁명당 당수인 엥흐바야르가 취임 - 여 ․ 야가 교대로 총리직(2년 임기) 수임 합의 - 장관급 18명을 여 ․ 야 9명씩 동수로 임명 ❏ 민주연합 해체 및 연립내각 해산 o 2004.6 총선에서 선전하였던 민주연합이 2005년 대통령 선거 후보를 놓고 내분 끝에 해체 o 2005.5.22 선거 결과 인민혁명당 후보인 엥흐바야르 여당 대표가 53.46% 득표로 엥흐사이한 야당후보를 누르고 당선 - 국회의장에는 Nyamdorj(냠도르지) 취임 o 민주연합이 해체되자 인민혁명당은 연립내각의 상대방이 해산 되었음을 이유로 인민혁명당 소속 장관들 사퇴 - 인민혁명당 소속 장관급 10명이 사퇴서를 제출한 후 내각해임안을 상정하여 국회통과 o 2006.2 Enkhbold(엥흐볼드) 총리를 수반으로 인민혁명당의 실질적 지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내각 구성 - 부총리 1명과 장관 5명은 민주당을 제외한 군소정당에 할애 o 2007.11 엥흐바야르 대통령과 엥흐볼드 총리간 갈등 구도 속에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지지하는 Bayar(바야르) 총리가 당 총재 및 총리로 선출
  • 66. - 60 - ❏ 2008년 총선과 연립내각 구성 o 2008.6 총선에서 여당인 인민혁명당이 바야르 총리의 청렴한 이미지 부각으로 국민들의 호응을 받아 전체 의석의 과반수가 넘는 45석 확보 o 총선 결과에 대한 의혹과 불만을 가진 시민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7.1 폭력시위를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인민혁명당사가 전소 되고 사망자 6명 발생 - 엥흐바야르 대통령은 7.1 사상 헌정 최초 비상사태를 선포하였으나, 조기에 질서가 확보됨에 따라 7.5 해제 o 2008.7.23 제5대 국회를 개원했으나 민주당은 신정부 참여 목적으로 의원선서를 거부, 파행 거듭 - 2008.9.19 인민혁명당, 수석부총리 1명과 장관 5명을 민주당에게 할애하여 신내각 구성 - 바야르 총리로서는 7.1 폭력시위 수습, 오유톨고이 ․ 타반톨고이 등 대규모 광산 개발을 위해서는 민주당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인식, 민주당을 내각구성에 참여시킴 다. 최근 정세다. 최근 정세 ❏ 2009년 대통령 선거 o 2009.5.24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엘벡 도르지 前총리가 재선에 도전한 인민혁명당 엥흐바야르 현직 대통령에 승리 - 엘벡도르지 신임 대통령은 관료주의 및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우며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 o 엘벡도르지 대통령, 2010.1 사형 집행 중단 및 사형제 폐지 발표, 국회의원 입법지원비 예산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등 친국민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집권층 내에서는 돌출 행동에 대해 다소의 부정적 분위기도 감지
  • 67. - 61 - ❏ 바야르 총리 사임 및 바트볼드 총리 취임 o 2009.10.26 바야르 총리, 건강을 이유로 사퇴 의사를 표명 - 2009.10.28 인민혁명당 소회의를 거쳐 Batbold(바트볼드) 외교 장관이 신임 총리에 선임 - 2010.4 바트볼드 총리는 당수직을 겸임하면서 사실상 인민혁명당의 핵심 리더로 부상 o 2009.10 엘벡도르지 의원의 대통령 당선에 따라, 울란바타르시 Chingeltei(칭겔테) 선거구 보궐선거에 대선에서 패배한 엥흐바야르 전대통령(인민혁명당)이 출마를 시도하였으나 당내 반발로 무산 - 동 보궐선거에서 Zorigt(조릭트) 의원(자원에너지부장관)이 인민 혁명당 후보로 당선되었으며, 이에 따라 엥흐바야르 전대통령의 입지는 약화 ❏ 「인민당」으로 당명 변경 o 2010.11 인민혁명당 제26차 전당대회 개최, 1921년 창당 당시의 명칭인 인민당으로 당명을 변경, 바트볼드 총리를 인민당 당수로 재선임 o 2011.3.1 인민당 창당 9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개최, 몽골 경제발전과 인민당의 성과를 강조함으로써 2012년 총선을 겨냥한 본격 행보 개시
  • 68. - 62 - 3 군 사 가.가. 軍軍 편성편성 ❏ 군사력 o 1988년 이후 군감축 및 구조개편 작업을 추진해 총 15,500명 규모의 병력을 유지 - 육군 7,500명(징집병 3,300명 포함), 공군 800명 - 준군사요원 : 7,200명(국경수비대 : 6,000명, 국가보안군 : 1,200명) - 예비군 : 137,000명 ❏ 군체제 및 장비 o 구소련식 군체제로서 대부분 소련제 장비 보유 o 탱크 600대, 장갑차 650대, MIG-21/36대, MI-24/12대 등 ❏ 국방예산 o 1990년대 초반 이후, 구소련의 원조 중단과 몽골경제 악화에 따라 매년 감소 추세였으나, 최근 몇 년간 절대액 증가 추세 - 2006년 1,900만불 → 2008년 약 5,000만불 → 2010년 5,900 만불 → 2011년 약 6,400만불 나. 군복무나. 군복무 ❏ 징병제도 : 18-25세 남자 ❏ 군복무기간 : 1년(260만 투그릭을 납부하면 징집면제) 다. 외국군다. 외국군 ❏ 1993.10 舊소련군 완전 철수, 현재 외국군 주둔 전무
  • 69. - 63 - 라. 군사정책라. 군사정책 ❏ 군사력 미약으로 국가 안전보장을 주로 외교정책에 의존 o 평시에 있어서 군사 블럭 및 동맹에 불가입, 외국군 주둔 및 통과 금지 등 중립주의 노선 견지 o 러 ․ 중 양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환경하에서 국가안전보장 확보를 위해 러 ․ 중 양국과의 균형적 관계 추구 o 지역평화와 세력균형 유지 차원에서 제3국과의 군사협력 확대를 희망하고, ARF 등 지역안보협력체제에 적극 참여하는 등 전방위 군사협력 추구 o 1992.9 오치르바트 대통령이 유엔에서 발표한 “몽골 비핵지대화” 선언의 국제화를 추진, 1998.11 UN 총회에 “몽골 국제안보 비핵 지위 결의안”을 제출, 채택 ❏ 대외 군사협력 적극 추진 o 군 고위인사 교류, 군 장교 위탁교육, 낙후된 무기 및 장비의 보수 ․ 유지를 위한 협력이 주종 o 러시아와는 1993년 체결한 “몽 ․ 러 국방부간 군사협력 협정” 및 “몽 ․ 러 양국간 군사 ․ 기술협력 협정”을 근간으로 군사 ․ 기술협력 중기 계획에 따라 국방장관 등 군 고위인사 교류, 군사전문가 양성 및 무기공급, 장비교체 등 협력관계 유지 o 중국과는 1990년대에 들어 협력 관계 진전 - 1995년 중국 총참모장 방몽시 약 40만불 상당의 병원기자재, 컴퓨터 등 기증 - 1997년 “군사협력 의정서” 체결 및 군 고위인사교류, 위탁 연수 등 실시 o 북한과는 2008년 몽골 국방부 사무차관의 북한 방문에 이어 2009년 북한 인민무력부 부부장의 몽골 방문 등 남북한 동시 균형 군사외교 실시 - 군 대표단 상호 방문, 체육․ 예술대표단 교류, 장기적으로 양국
  • 70. - 64 - 무관부 설치 검토 등 o 미국과는 1991년 이후 몽골 군사요원 연수, 인도적 원조 등의 형태로 진행 - 1997년 양국간 “군사부문 교류 ․ 방문 협정” 체결로 본격화 - 2000년 미국의 지원으로 몽골내 평화유지군 훈련센터 설립 - 2000.12.1-3 미국 국방차관 방몽시 협정체결, 몽골 국경수비대 통신장비 교체에 5백만불 지원키로 약속 - 2004.1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 방몽시, 평화유지군 훈련센터의 현대화를 위한 1백만불 지원을 약속 - 2006.8.12-25간 몽골, 미국, 기타 30여개국이 참가하는 960명 규모의 Khaan Quest 훈련(UN PKO 형태의 훈련) 실시 중 o 한국과는 인사․교육․학술교류, 정례 회의체 운영, Khaan Quest 훈련 참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협력 확대 중 - 고위급 인사교류 : 몽골 국방장관 방한(2007년, 2010년, 2011년), 한국 국방장관 방몽(2009년) - 실무회의체 : 국방정책실무회의, 정보교류회의 등 - 기타 학술교류 : 국방학술회의, 국방대간 교류 등 ※ 1999.12 Tubden Dorj(툽덴도르지) 국방장관 방한시 한 ․ 몽 군사교류협정 체결 o 2003년 이후 UN 평화유지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시에라레온, 차드, 수단에 총 5,000명 파병 - 2011.3 시에라레온, 아프가니스탄, 수단에 약 400명의 군장병 파병
  • 71. - 65 - Ⅳ. 외 교 1. 외교 정책 기조 2. 주요국과의 관계 가. 對 러시아 관계 나. 對 중국 관계 다. 對 미국 관계 라. 對 일본 관계 3. 북한과의 관계
  • 72.
  • 73. - 67 - 1 외교정책 기조 가. 지정학적 특수성을 반영한 균형적 외교 노선가. 지정학적 특수성을 반영한 균형적 외교 노선 o 시장경제 체제 전환 이후 안정적 대외 환경 조성을 위해 균형적 외교 노선을 견지 - 중국,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특수성을 반영하여, 국방보다는 외교에 중점을 두는 국가안보 전략 시행 o 1994년 “몽골의 안전지침”, “대외정책 지침”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전환기를 거친 후, 최근 국내외 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를 바탕 으로 2010.7 국회에서 “국가안보 기본원칙”을 변경․확정 - 2011.2.10 동 기본원칙의 하위 계획 중 하나인 외교기본계획을 확정 o 안전보장 차원에서 인접한 중국․러시아에 대해 중립노선을 견지하고, 과도한 중․러 의존을 피하기 위해 한국․미국․일본․EU 등 제3의 이웃 국가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 - 구 사회주의 국가와도 전통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최근 자원 위주의 경제발전 전략에 따라 호주․캐나다․카타르 등 자원 부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강화 o 2006년 ASEM 가입 후 다자 외교에도 적극 참여 - 2011년 UN 가입 50주년을 맞아 활발한 UN 외교 진행 중 - 2011-2013년 민주주의 공동체(CD) 의장국 수임을 기점으로 몽골 외교의 세계화를 추진 중 나. 양자 외교관계 개황나. 양자 외교관계 개황 o 2011.7 현재, 150개 국가와 수교 - 몽골의 외국주재 상주 대사관은 28개국에 불과하나 몽골의 경제 발전 및 협력 강화 필요성에 따라 상주 대사관은 증가할 것으로 전망 ※ 몽골의 재외공관 : 대사관 28, 총영사관 7, 영사관 1
  • 74. - 68 - o 구사회주의국가, 한국 ․ 일본 ․ 미국 등 제3의 이웃국가, 자원 부국 등과 균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통령 ․ 총리의 꾸준한 정상외교를 통해 활발한 외교활동 전개 다. 다자 외교 현황다. 다자 외교 현황 o 1961.10.27 UN 가입(102번째 유엔가입국)후 ESCAP, WHO, UNESCO, ILO, UNDP, IMF, WB, WTO등 48개 국제기구 가입 - 유엔헌장 등 133개 다자협정 가입 - 몽골내 9개 국제기구(UNDP, UNFPA, UNICEF, IMF, ADB, 국제적십자사, WB, EBRD, WHO) 사무소 상주 o CICA(2001), ASEM(2006), FEALAC(2010) 가입 후 활발한 다자 ․ 지역 외교활동 전개 - 상하이 협력기구(SCO) 옵저버 지위를 유지하면서 APEC 가입 및 한 ․ 중 ․ 일 협력체 참여 의사도 표명 중 - ARF 가입(1998), OSCE 아시아협력 동반자국 참여, NATO 협력국 추진 등 지역안보 회의에도 꾸준히 참여 - UN내에서 LLDC(내륙개도국) 외교장관회의를 주도하면서 내륙 개도국 연구소(LLDC Think Tank)를 울란바타르에 유치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전개 o 2011-2013년간 민주주의 공동체(CD) 의장국 수임을 계기로 본 격적인 다자 외교 활동 전개
  • 75. - 69 - 2 주요국과의 관계 가.가. 對對 러시아 관계러시아 관계 ❏ 개 요 o 1921년 수교 후 사회주의 연대를 바탕으로 긴밀한 협력 관계 형성 - 1921년 몽골 독립도 구소련의 전면적 지원에 의해 가능 - 1939년 대일 전쟁 승전 - 1945년 2차 세계대전 전승을 통해 공동의 유대의식 형성 o 1990년 민주화 이후 종전의 종속관계에서 평등한 외교관계 지향 - 1993.1 오치르바트 대통령 방러시 양국간 상호불간섭 원칙에 입각한 호혜적인 선린 관계를 수립하는 몽․러 우호협력 조약 체결 o 2009.8 지속적인 협력 외교를 통해 몽․러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형성 - 러시아는 몽골의 제2위 교역국이자 제4위 대몽골 투자국이며, 몽골은 유류 수입을 대부분 러시아에 의존 - 몽․러 교역은 이르쿠츠크, 울란우데 등 브리야트 지역과의 접경 교역이 대부분을 차지 ※ 2010년말 몽골의 대러시아 수출 0.8억불, 수입 10.9억불 ※ 2010년말 러시아의 몽골 투자액 1.08억불(769개사) o 러시아는 몽골 내 친러시아 정서를 바탕으로 ▶몽골 내 정치적 영향력 행사, ▶몽골의 자원개발과 관련된 철도 참여, ▶에르데넷 동광산 운영, ▶우라늄 개발 참여 등에 관심 - 몽골은 ▶에너지 확보, ▶육류 수출, ▶중국 영향력 확대 견제 수단으로 러시아를 활용하기를 희망 에르데넷 동광산 ㅇ 1978.12.14 설립되어 동 ․ 몰리브덴 정광 공장 운영 - 규모 : 1년 정광능력 600만톤, 매장량 5억 7,200만톤 - 몽골 국가예산의 40%, 수출액의 40-50%를 차지 ㅇ 지분 구조 : 몽골 51%, 러시아 49% ㅇ 위치 : 오르홍 아이막 Erdenet시
  • 76. - 70 - ❏ 최근 동향 o 1999.2 러시아 이바노프(Ivanov) 외무장관 방몽, 몽 ․ 러 외무장관 회담 개최 - 양국간 전통적 우호협력 관계를 재확인하고 경제 ․ 통상 협력 증진 방안 협의 o 2000.11 푸틴 대통령 방몽 : 러 대통령 최초 방문 - 양국 현안문제, 국제문제에 대한 25개항의 울란바타르 선언 공동 발표 - 접경 지역간 경제․통상 협정 서명,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 서명, 국경 불법침입 및 실종 ․ 무단월경 가축에 관한 협력각서 교환 o 2003.12 몽골의 대 러시아 채무문제(양국간 최대 현안) 타결 - 러시아정부, 구소련이 몽골에 지원한 114억 루불 중 98%(100억불 상당)를 탕감해 주기로 결정 o 2006.12 엥흐바야르 대통령 방러 - 2010년까지 10억불 규모의 경제협력서 체결 o 2008.4 바야르 총리 방러 - 울란바타르 철도회사(UBTZ) 기술혁신(몽․러측 각각 50% 지분소유) - 우라늄 탐사 및 합작사 설립 의정서 체결 - 농업분야에 2억불 차관협정 서명 등 11건의 문서 서명 o 2009.3 바야르 총리 방러 o 2009.5 푸틴 총리 방몽 o 2009.8 메데베데프 대통령 방몽 - 할힌골 지역 승전 70주년 기념 행사 참석 - 몽․러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 o 2010.12 바트볼드 총리 방러 - 도르너드 우라늄 합작회사 설립 합의 - 몽골의 대러 채무 1.72억불 추가 면제 합의
  • 77. - 71 - - 울란바타르 철도회사(UBTZ), 에르데넷 동광산 등 현대화 합의 - 몽골의 대러시아 육류 수출 확대 합의 o 2011.5 엘벡도르지 대통령 방러 - 울란바타르 철도회사(UBTZ) 몽골측 지분을 51%로 변경 추진 - 몽골의 무역 역조 문제 해결을 위해 몽․ 러 교역조건 개선 방안 협의 나.나. 對對 중국 관계중국 관계 ❏ 개 요 o 몽골과 중국은 200여년간 청나라의 몽골지배에서 유래한 민족 감정과 국경분쟁 등의 요인으로 오랫동안 불편한 관계 유지 - 1949.10.16 외교관계 수립 “선린우호 및 상호신뢰 동반자관계” - 1960년 중 ․ 소 분쟁시기 몽골의 소련 지지 및 소련군의 몽골 주둔 - 1967.8 몽 ․ 중간 외교관계 단절 o 1971.8 외교관계 복원 - 1980년 중반 중․소 관계가 개선되면서 양국관계는 급속히 개선 - 1989년 몽골 내 소련군 철수, 몽골의 친중국 행보에 따라 몽․중 관계 급격히 개선 - 1994년 몽․중 신우호협력 협정 체결 - 1998년 바가반디 대통령 중국 방문 이후 관계 개선 o 2003년 “선린우호 및 상호신뢰 동반자 관계” - 2011.6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형성을 통해 몽․ 중 관계 새로운 국면 진입 o 중국은 몽골의 제1위 교역․투자국이며, 자원 수출시장, 소비재 공급국, 최단거리 항구 제공국으로서 몽골의 대중국 의존도는 갈수록 심화 ※ 2010년 몽골의 대중국 수출 24.6억불, 수입 10억불 ※ 2010년 중국의 대몽골 투자 24.6억불(5,303개사)로 1위 차지 ❏ 최근 동향 o 2003.6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방몽
  • 78. - 72 - - 양국간 “선린우호 및 상호신뢰의 동반자 관계” 설정 및 발전에 합의 ※ 양국관계에 있어 ‘동반자’란 용어 사용은 최초이며, 이는 중국측이 먼저 제의 - 협정 서명(경제 ․ 기술 협력 협정 및 울란바타르-북경간 국제열차 운행 증편 협정) - 중국측은 몽골에 대한 무상원조(770만불) 및 양허성 차관(3억불) 제공 계획 발표 o 2005.11 엥흐바야르 대통령 방중 - 형식적으로는 후진타오 국가주석 몽골 방문에 대한 답방이었으나, 실제로는 미국의 대몽골 접근을 의식한 중국의 몽골 끌어안기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 - 양국간 교류활성화, 자원개발 및 사회간접자본 건설 확대 문제 협의 o 2008.6 시진핑 국가부주석 방몽 - 중국의 대몽골 자원분야 진출 의지 표현으로 평가 - 양국간 무역경제협력 발전 종합방안을 확정하고 중국측이 제공 하는 3억불 저리차관 사용관련 협정 개정 등 13개 문서에 서명 o 2010.4 엘벡도르지 대통령 방중 - 중국의 대몽골 4천만 위안 지원 협력서 서명 - 중국 길림성을 통한 물류 운송 문제 협의 - 양국 문화센터 설립 협정 서명 o 2010.6 원자바오 총리 방몽 - 인프라, 광업, 금융 분야에 대한 중국의 5억불 차관 제공 - 울란바타르내 베이징 거리 조성 및 캠퍼스 설립에 5천만 위안 제공 - 국방분야 1천만 위안 제공 - 향후 5년간 2천명의 몽골인에 대해 국비 중국 유학 지원 o 2011.6 바트볼드 총리 방중 - 몽 ․ 중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 - 중국의 대몽골 5억 위안 차관 공여 협정 서명
  • 79. - 73 - ❏ 평가 및 전망 o 2011.6 몽․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 성명 채택 이후 양국관계는 실질적 이해를 공유하는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로 재편 o 중국 경제발전에 따른 원자재 수요와 몽골의 원자재 수출 중심 경제 구조가 상호 연계되어 있어, 단기적으로 선순환적 관계 발전을 이룰 것으로 예상 - 몽골은 대중국 의존도 축소를 위한 자원 가공공장 설립, 수출 시장 ․ 운송 경로 다변화 시도를 보이고 있으나, 내륙국으로서의 몽골의 한계상 중국의 대몽골 영향력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 - 몽골은 유럽 스탠더드 채택, 캐나다․호주 등 자원 부국과의 협력 강화 등 제3의 이웃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중국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 다.다. 對對 미국 관계미국 관계 ❏ 개 요 o 1987.1.27 외교관계 수립 - 1990.5 몽골 부총리의 방미를 계기로 적극적인 관계 개선 - 1988년 울란바타르에 미국 대사관 개설 - 1989년 워싱턴에 몽골 대사관 개설 o 소련 해체 이후 몽 ․ 러 관계 약화에 따라 몽 ․ 미 관계는 반사적인 이익을 향유 - 미국은 몽골을 對러시아, 對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인식하고, 몽골도 미국을 경제원조 획득과 전방위 외교 추진의 핵심요소로 인식함으로써 양국 관계 급진전 o 미국은 몽골의 국제평화유지 활동 참여, 민주주의의 평화적 정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몽골의 지정학적 특성에 유의 - 몽골은 제3의 핵심이웃국가인 對미국 관계 강화를 희망하며 인권 가치 중시, 비핵화 선언, PSI 가입 등 친미적인 행보를 유지
  • 80. - 74 - o 미국은 몽골의 제3위 교역국(2010년 대미 수출 1.48억불, 수입 1.59 억불) 수교 초기 몽골-미국간 주요 교류 현황 o 1990. 8 베이커 미국무장관의 방몽시 양국간 영사협정 및 평화유지군 협정 체결 o 1991. 1 오치르바트 대통령 방미 o 1991. 7 베이커 미국무장관 재방몽 - 미국은 몽골의 경제개발 지원을 위해 1천만 달러 경제지원 및 몽골 원 조그룹 회의와 UNDP 주관회의에 적극 동참 o 1991.10 미 하원은 對몽골 MFN 대우 영구부여 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 o 1993. 6 자스라이 몽골 총리 방미 o 1994.10 양국 투자보장협정 체결 및 USAID의 「대몽골 지원 5개년 계획(750만불)」에 서명 o 1998. 5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방몽, 엘벡도르지 총리와 함께 공동성명 발표 - 몽골-미국간 실질협력 관계 증진 합의 - 1,200만불의 對몽골 경제원조 의사 확인 ❏ 최근 동향 o 2005.11 부시 대통령 방몽 - 대테러 공조 ․ 이라크 파병 등 군사 ․ 안보분야 협력 강화 - 이라크 파병, PKO 훈련센터를 미군과 합동으로 운영하는 등 미국의 정책을 지지하고 양자 관계 긴밀화에 주력 o 2007.10 엥흐바야르 대통령 방미 - 미국은 향후 5년간 미 Millenium Challenge Corporation (MCC) 자금을 통해 몽골 내 철도시설 개선과 지재권, 직업교육, 보건 사업 등에 총 2.85억불의 무상지원 제공 합의 ※ 철도시설 개선을 위한 자금(1.88억불)은 울란바타르 철도에 영향력을 가진 러시아의 반대로 도로 건설 분야에 전환 사용 - 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Ship Boarding 협약 및 양국간 보다 긴밀한 협력원칙 선언, 핵 및 방사능 물질의 밀수 방지에 관한 MOU 등에 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