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정옥 ∥ 대구가톨릭대 사회매체학부장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누가 셈을 하고 있는가?
22살에 뉴질랜드 의회에 진출한 최초의 여성인 메릴린 웨어링이 포르토 알레그레 세계 사
회포럼에서 전세계인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녀는 현재의 회계 시스템은 돈으로 환산되는 것만을 추적하고 있고, 그 결과 가정과 자원
봉사 단체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의 활동은 기록되지도 않는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녀의 뒤를 이어 구아시르 세자르 드 올리베이는 브라질에서도 IMF에 의한 구조조정 때문
에 감소된 의료와 교육 분야의 재정지원의 부담은 고스란히 여성의 추가 부담이 된다고 주
장하고 있다.
포르토 알레그레 사회포럼의 대 주제 가운데 하나를 부의 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표현
을 쓰는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한다.
숨어 있는 누구나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이 글로발리제이션 10년의 시행착오를 겪
으면서 시민사회가 모색한 대안의 결실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신좌파로 자처했던 정치 지도자들이 내걸었던 공동체, 시민사회,
분권화, 제3의 길이라는 구호가 민영화, 탈규제, 시장이라는 용어로 바뀔 만큼 글로발리제이
션의 영향은 압도적이었다.
체코 젊은이들의 영웅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광장에 나와 시위를 벌이는 체코 젊은
이들의 정치적 영웅은 로날드 레이건과 마가렛 대처였으며, 그들의 이론적 스승은 자유시장
경제이론가인 하이예크였다.
글로발리제이션의 압도적인 영향에 대해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민
영화, 탈규제, 시장우선주의가 설득력 있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곳곳에서 지적되고
있다. 세계의 젊은이들은 시장 만능의 글로발리제이션이 자신들의 세계가 될 수 없다는 점
을 시애틀에서, 제노아에서, 도하에서, 뉴욕에서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이제는 탈규제 대신 효율적 규제를 이야기하고 생산성 높은 공공 소유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효율적 규제와 공공 소유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참여 민주주의’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2. 그러나 ‘참여 민주주의’의 실현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1999년 말 시애틀에서 글로벌 경
제 기구인 WTO, IMF, 세계은행 등의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민주적 절차의 문제를 쟁
점화하여 밀레니엄 라운드의 통과를 저지시킨 국제 시민사회운동의 주역인 NGO 포럼 역시
끊임없이 대표성의 시비와 NGO 자체의 민주주의 의사결정의 투명성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
게 된다.
2000년 유엔총회와 병행하여 열린 세계 NGO포럼 조직위에 대해 조직위 구성의 대표성 문
제를 따지면서 항의하는 장면을 지켜본 적이 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 호모 레시프로칸스
세계 NGO회의가 열리고 있는 처치 센터 8층에서는 남아프리카에서 열릴 인종차별회의 조
직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NGO 포럼조차 얼마나 인종 차별적인지를 낱낱
이 밝히고 성토하는 자리였다.
볼쓰와 진티쓰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인간성 전체를 대표할 수 없으며, 호모 레시프로칸스
(Homo Reciprocans)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안하고 있다.
호모 레시프로칸스는 상호작용을 통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충족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인간
을 이기적 존재와 이타적 존재로 이분화하는 입장을 뛰어 넘고자 한다.
글로발리제이션에 대한 새로운 대안은 실제의 사례를 통해 미래의 싹을 보여주고 있다. 인
간 생활에 필요한 기본 서비스의 질을 지혜의 공유를 통해 향상시키려는 사례들이 새로운
대안의 싹으로 부상하고 있다.
브라질노동자 정당 PT(Partido dos Trabalhadores, the Workers' Party)는 베를린 장벽
붕괴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브라질 PT를 지탱하는 세 축은 사웅 파울로에 집결한 자동차 공장 노동자, 가톨릭 해방신
학의 세례를 받은 농민들, 독재에 항거했던 도시 인텔리이다.
독재에 대한 저항이라는 공통점에서 연대하고 있는 이들 세 축은 부패와의 싸움, 급진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라는 점에서 연대하고 있다.
브라질의 PT가 선거에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정책 대안은 시민 참여 예산제
(Participatory Budget, PB)였다.
포르토 알레그레, 산 안드레 같은 도시들은 10년에 걸쳐 PB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
빈민층과 중산층의 부의 균형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세계화 속에 다국적 기업에 의
한 공공 서비스 부문의 장악이 저지되었다.
3. 시민 참여 예산 편성을
예산문제에 대한 시민참여제도가 조직되는 방식을 포르토 알레그레시의 예를 들어 살펴보
자. 반상회와 같은 회의에서 도로 포장, 학교건물 보수, 하수 시설 등 그들은 매년 그들에게
필요한 사업을 결정한다.
그리고는 그들의 대표를 뽑아 구 회의에 보낸다. 거기에서 예산 심의회를 결성한다. 공개적
인 타협과 보고과정을 통해 예산이 책정되면 그것을 시장에게 보내 시의회의 최종 승인을
거치게 된다.
같은 기구가 예산의 집행 과정도 감시한다. 공무원들은 시민회의에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을
수시로 보고하게 되어 있다.
12년이 지난 지금 시협의회에 대한 전원 직접 참여가 이제는 제도화 되었다.
PB의 가장 뚜렷한 성과는 부패를 추방했다는 점이다. 참여민주주의의 실천을 통해 중앙정
부는 물론 해당 지역에 투자를 희망하는 다국적 기업에 대해 지방자치도시는 교섭력을 강화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포르토 알레그레에서는 시의 시설물과 서비스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투자는 PB 협의회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참여 민주주의는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데도 기여한다. 글로발리제이션의 중요 추세인 민영
화가 설득력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공기업의 비효율성과 서비스 수준 미달 때문이었다.
민영화에 대한 대안은 공기업을 통해서도 사기업보다 더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신뢰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참여 민주주의는 부패를 추방하고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였다
예를 들면 뉴 캐슬 지방에서는 가택 간병 서비스를 민영화하려는 프로그램이 시도되면서 공
기업이나 사기업이냐를 떠나 간병자와 간병을 받는 사람 모두가 ‘훌륭한 간병’은 무엇인가
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훌륭한 간병은 육체적인 것 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포함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신
적인 측면에 해당되는 선택 가능성, 간병을 받는 사람의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고려 등이
관료제적 틀에 의해 무시당하게 된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말단 노동자와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 공공의 소유를 유지하면서도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대안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학교 의료제도 등의 공공 서비스 부문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한 논의 과정에서 공공노조지도
4. 부는 최말단에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서비스를 받는 일반 시민과 연대하지
않고서는 민영화의 추세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던 것이었다.
계층간 연대감이 되살아나다
공공부문 노조의 성공은 지역민과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는 사례를 보여준 경우가 로스앤젤
레스의 버스 승차자 조합운동의 사례이다.
버스 승차자 조합이라는 독창적인 조직을 만들어 빈민들에게 무료 승차권을 발부하는 것을
계기로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아 로스앤젤레스 시 교통위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여
철도보다는 버스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하층과 중간층의 부의 재분
배가 일어나고 공공부문에 대한 연대감이 조성되게 되었다.
민영화에 대한 저항의 과정에서 최말단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입지와 서비스를
받는 공공 대중의 영향력이 증대하고 있다. 구 좌파와 신 좌파의 한계는 그들이 인간의 필
요를 충족시켜주는 서비스의 섬세함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 비타협적인 민주주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지니는 위력을 깨닫지 못한데서 드러난다.
이 시점에서 베아트리체 웨브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대부분 양식 있는 신사들은 문제를
묘사할 줄은 알지만 해결책을 처방하지는 않는다.’
동구 사회주의는 전지전능한 국가를 토대로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모든 지혜와 지식
을 국가를 중심으로 수렴한다는 입장을 취했고, 하이예크는 지식은 결코 중앙 집중화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하이예크는 지식과 지혜는 그것을 실행할 수는 있지만 설명할 수는 없는 부분이 더 많기 때
문에 실행자의 머리 속에서 다 털어 내 올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하이예크는 따라서 기업가의 지식과 지혜는 중앙 집중화할 수 없으
며 소비자의 기호 또한 꺼내서 한데 조립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엮는 유일한 방법은 '
자유시장’이라는 논리를 폈다.
글로벌 시대의 진보, 하이예크 편에 서서 공공의 선을 주장하다
글로벌 시대의 진보는 전지전능한 국가보다 보통사람들의 지식과 지혜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는 하이예크의 편에 선다.
그러나 그 지식과 지혜가 이윤이라는 시장의 논리가 아닌 공공의 선을 위한 나눔의 장에서
도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공공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논의를 통해 만들어 가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5.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모든 의사결정의 과정에 위임보다는 직접 참여의 원리를 최대한
수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이 위로 가는 길이 막힐 때 택하는 길은 더 아래로 귀를 기울인
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