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기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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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6학년의 유럽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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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여행기 0820

  1. 1. 서유럽 여행기 영국,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바티칸,오스트리아,독일
  2. 2. 일정 출발일:4/17 도착일:4/28 여행기간:12일 여행국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바티칸, 오스트리아, 독일 총7개국 여행도시:인천,런던,파리,인터라켄,융프라우,밀라노,피사, 로마,폼페이,소렌토,카프리,나폴리,피렌체,베니스,인스부 르크,하이델베르크 호 텔 : st.giles( 런 던 ),kyriadvliy( 파 리 ),kyriadbelfort( 벨 포 트 ),Lodi( 밀 라 노 ),tobruk( 피 우 치 ),antile( 파 도 바 ),ibis budget(아우구스부르크) 2
  3. 3. 여행을 떠나기 전 내일 부터 12일간의 유럽여행을 하게 되는데 유럽여행의 목 적은 유럽의 낭만과 문화, 예술, 역사를 목적으로 떠나는 여 행이다. 5학년 때 국사를 배운 이후 세계사에 관심을 갖게 되어 떠나게 된 여행이다. 유럽은 나의 소원이었다. 유럽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유럽 하면 여러 도시가 떠오르게 된다. 런던, 파리, 밀라노, 로마, 베네치아, 프랑크푸르트 등은 누구나 다 떠올리게 되 는 도시이다. 유럽 여행을 위해 300만원을 투자 했으니 여 행이 내 추억으로 잘 남았으면 한다. 2013년 4월 16일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날
  4. 4. 전통의 도시 런던 4월 1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런던 히드로국 제공항 까지 국제선을 타고 갔다. 13시간 동 안 비행기를 타서 아주 고단했다. 히드로국 제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아갔다. 히드로국제공항의 크기는 인천국 제공항처럼 크기가 크지 않았다. 바로 나와 서 호텔로 이동하여 투숙했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서 매우 고단하고,힘들고,머리가 아팠다. 4월 18일, 호텔에서 일어나서 간단하게 호텔 조식을 먹고 런던시내로 이동했다. 30분 정 도 이동하자 런던 시내에 왔다. 먼저 영국은 세계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국가이다. 19 세기에는 전세계의 4/1을 다스린 나라 이기 도 하다. 그리고 영국은 헨리8세의 성공회를 따르고 있다. LONDON
  5. 5. 영국인 남성들은 신사적이라고 한다. 항상 약자를 양보 하고 자신의 명예를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정 부는 국민을 가장 무서워 한다. 국민의 세금을 잘못 사 용하면 물러나고 국민들을 갑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이 런 민주화된 정치가 잘 되어있기 때문에 크게 발달된 나라가 된 것 같다. 영국은 전통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런던은 옛날의 마차길을 이용하여 좁은길이 많은데 넓히지 못하는 이 유는 오래된 건물을 부셔야 하는데 건물들이 100~150 년 정도 된 건물들 이어서 허물지 않고 옛날에 있던 마 찻길을 차도로 이용한다.
  6. 6. 런던의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이 건물이 바로 세계민 주주의 의 상징이다. 1295년에 지어졌지만 1834년 화제 로 손실되어서 다시 재건된 모습이 지금의 모습이다. 오른쪽 끝 쪽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있는데 벤저민 프랭 클린의 이름을 따서 ‘빅벤’ 이라고 한다. 사진에서만 보 던 국회의사당을 보니 더 웅장하고 빛나 보였다. 아래에는 탬즈강이 흐르고 있는데 갈색이고 작아서 실 망을 하게 되었다. 국회의사당의 전경 이제 런던시청으로 향하였다. 런던시청을 보니 참으로 실 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볼품없어 보이는 건물처럼 보였 다. 그래도 앞과 옆에는 세계적인 건물이 있었다. 둘다 유 네스코에 지정된 타워브리지와 런던탑의 모습이 잘 보였 다.
  7. 7. 타워브리지는 개폐교이고 탬즈강을 건너기 위해 지어졌 다. 궁처럼 보이기도 해서 사람이 안에 있을 듯 하다. 건너편의 런던탑은 중세시대 때 지어진 성이다. 런던을 방어 하기 위해 지어진 성이었지만 14세기때 장미전쟁 포로가 된 왕세자가 리처드 공작에게 죽음을 당한 끔찍 한 성이다. 이후에는 동물원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관 광객 들에게 공개되는 성이다.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서 보고만 오고 직접 가지 못하였다. 런던탑 타워브리지
  8. 8. 버킹검 궁전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왕들이 머무르는 궁전 이다. 현재 국왕인 엘리자베스2세 여왕도 이곳에서 머무 르며 정치를 하고 있다. 운이 좋게 지금 시간에 2일에 한 번하는 교대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보니 덕수궁 대안문에서 하는 교대식 보다 못하였다. 사실 영국은 정 직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고, 세계 교대식의 원조 이다. 그리고 대안문 교대식은 버킹검 교대식을 따라한 것이다. 그래도 세계 최초의 교대식을 본 것에 의의가 있다고 생 각한다. 근위병 교대식 버킹검 궁전 점심으로 로스트 비프를 먹고 웨스트민스터로 이동했다. 지나가면서 시민들의 휴양공원인 하이드 파크를 지나갔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단순한 성당이 아니었다. 역대 영국 국왕이 즉위한 곳으로 왕세자인 찰스와 왕세자비인 다이애 나가 결혼한 곳이다. 웨스트 민스터가 희면서 아름다운 성 당모습 이었다. 지금은 기독교인들이 아닌 청도교 들이 사 용하는 교회가 되었다.
  9. 9. 마지막으로 대영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대영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중 하나로 규모도 매우 크고 그리스 신전 같았 다. 대영박물관은 그리스,터키,바빌로니아의 유물이 많이 있었다. 다들 훔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원래 영국에서 그 지역에서 싼 값에 산 것이다. 로제타 스톤에서 미라와 크레타 유물,바빌론 성문이 대표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가 이드와 둘러보다가 한국관이 나왔다. 한국관은 한국의 것 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우리나라가 기증한 것이다. 청자와 그림 등으로 우리나라의 미술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관 을 뒤로하고 대영박물관을 나왔다. 웨스트 민스터 사원
  10. 10. 대영박물관을 뒤로하고 런던을 떠나기 전에 차를 타고 런던 시내를 둘러보았다. 자연사박물관,서커스광장, 쇼핑거리 등 을 차타고 보았다. 이제 킹스 크로스역 으로 이동했다. 나는 이곳에서 유로스타 타고 파리로 이동할 것 이다. 킹스 크로 스역은 유로스타의 기차역으로 런던, 파리, 브뤼셀과 연결 되어 있다. 유로스타는 시속 300km/h의 속도를 가진 초고속 열차이다. 나는 파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 출국심사 를 받았다. 테러 방지를 위해서 유로스타 기차역에서는 공 항처럼 꼼꼼히 입출국 심사를 본다. 자연사 박물관 서커스광장 런던의 쇼핑거리
  11. 11. 가방 엑스레이 까지 찍고 대기실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는 8시1분 열차였다. 이제 들뜬 마음으로 기차 타러 올라갔다. 도버해협해저터널(33.7km)와 노르망디를 지나 서 파리 까지는 2시간 이지만 그라나치 천문대를 지나가 기 때문에 1시간을 시차로 손해 본다. 야간기차의 풍경은 계속 어둡기만 했다. 해저터널에 들어가서도 계속 어두워 서 지하철 타는 듯 하였다. 이제 해저터널을 빠져 나왔다. 드디어 프랑스 땅에 온 것이다. 기차는 유유히 밤길을 달 리다가 파리의 노드역에 멈추어 섰다.
  12. 12. 예술의 나라 프랑스 프랑스 하면 예술,패션,와인,음식 등이 떠 오르게 된다.프랑스는 넓은 평야지대와 동 남쪽의 몽블랑을 포함한 알프스, 서남쪽의 보르도, 동북쪽의 알자스지방, 서쪽의 노 르망디를 끼고 있는 넓은 땅을 가지고 있 다. 알프스 지방에서는 치즈,우유 같은 신 선한 유제품이 많고 보르도와 중부의 보르 고뉴에서의 최고급 포도주 등의 술과 알자 스의 기름진 땅에서 나온 곡식들과 노르망 디의 수산물 등이 합쳐져서 세계 최고급의 프랑스 음식 만들어 지게 된다. 그래서 프 랑스가 와인, 음식이 유명해진 것이다. 프 랑스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하다. 옷,가방, 부츠,모자 등을 늘 유행에 맞추어 입는다. 특히, 20세기에 샤넬이 등장한 이후 프랑 스의 패션은 더욱더 발달이 되었다. France
  13. 13. 프랑스는 예술가의 천국이다. 수 많은 예술가들을 양성 하였으며,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하여 세계 예술의 중심 지가 되었다. 프랑스의 역사로 돌아가 보면 기원전 1000년경 부터 갈리아인 들이 들어와 살았다. 이후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의 땅이 되었다. 하지만 AD476년, 로마가 게르만 민족에게 멸망 하면서 게르만 족이 세운 나라 중 하나인 프랑크족의 프랑크 왕국의 중심이 되었다. 서기843년, 베르됭 조약이 체결되고 서 프랑크 왕국, 즉, 프랑스 왕국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는 십자가군 원정에 참전하고, 백년전쟁의 승전국이 되면서 점점 강해져 갔다. 루이14세 때는 전 성기를 누리고, 최고의 왕권을 가진 나라가 되었으나 왕족들의 사치가 너무 심하여 돈을 빌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1776년, 세 왕비인 마리앙투아네트와 황제 루 이 16세 는 정치를 하지 않고 방탕하게 생활하자 1789 년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다. 왕비와 국왕이 처형 당했다. 이후 나폴레옹은 혁명으로 어수선한 프랑스를 바로 잡았으나 독재 정치로 쫓겨난다.
  14. 14. 1871년, 나폴레옹 3세 때에는 프로이센이 쳐들어 와 서 파리를 함락 시켜서 파리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프 로이센 에게 알자스 로렌 지역을 빼앗기고 왕의 시대 가 끝이 나서 지금의 프랑스를 이루게 된다.
  15. 15. 예술의 도시 파리 오늘은 파리 투어를 할 것이다. 파리 시내에 개선문을 보았다. 개선문 앞 에서 파리 가이드를 만났다. 개선문 은 나폴레옹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40년 동안 지었다. 개선문을 중심으 로 12개의 거리가 있는데 12시 방향 에 샹젤리제가 있었다. 뒤에는 콩코 드광장의 오벨리스크 탑이 보였다. 개선문 안에는 불이 피어 있었다. 이 불은 꺼지지 않는데, 프랑스에 희생 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피우고 있 다고 한다. 높이가 56m나 되어서 꾀 크게 보였다. 다음주에 로마의 콘스 탄티누스 개선문을 보아도 이렇게 클 것 같지는 않다. 이제 트렁카 대로로 이동했다. Paris
  16. 16. 개선문 트렁카 데로는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개선 문에서 트렁카 데로 까지 가는데 바스티유 광장을 보 았다. 바스티유 광장은 프랑스 혁명 당시에 점령된 바 스티유 감옥을 기념하여 만든 광자이다. 드디어 프랑 스 혁명의 첫 번째 흔적을 보았다. 트렁카 데로에 다다 르자 에펠탑이 보였다. 만국박람회를 위해 에펠이 만 들었는데 흉물스럽다며 무너뜨리려고 하였으나 에디 슨이 위에 송신탑을 세워서 유명해 졌다. 지금도 여전 히 멋을 잃지 않은 상태로 멋지게 파리를 대표하는 것 같다. 송신탑이 하늘을 찌르듯이 높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17. 17. TIP 에펠탑 모형을 산다면 노점보다 들고 다니면서 파는 흑 인 상인들에게서 사면 경제적이다. 가격: 상점:1~3유로/ 서서 파는 상인: 6개에 1유로
  18. 18. 콩코드 광장으로 이동했다. 콩코드 광장은 1793년에 국왕인 루이 16세와 왕비인 마리앙투아네트 가 혁명군에 사로잡혀 서 단두형을 당한 끔찍하고 잔인한 곳이다. 지금은 이런 끔찍 한 단두대가 없고 이집트 에서 수집한 오벨리스크 탑이 있다. 직접 보니 아주 높아 하늘을 찌를 기세인것 같다. 탑에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가 적혀 있고 꼭대기에는 피 라미드 모양의 황금 사각뿔이 있었다. 이제 식사하러 이동했다. 가면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거 장이 살아 숨쉬는 오르세 미술관이 보였다. 아쉽게도 시간관계로 오르세 미술관은 가지를 못하였다. 다음에 파리에 오면 꼭 가보고 싶다. 점심식사로 에스카르코와 보르고뉴 소고기를 맛보고 몽마르트로 갔다.
  19. 19. ‘몽’은 프랑스어 로 언덕이고, ‘마르트’는 순교자 이다. 이곳에서 많은 순교자가 죽었다고 한다. 200년 전에는 파리의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을 했고 지금은 많은 노상 과 카페가 있다. 몽마르트는 파리에서 제일 높지만 정 상의 사크레 쾨르 성당 까지는 해발 125m 밖에 되지 않 는다. 정상에 올라가서 사크레 쾨르 성당을 보았다. 1914년에 이성당이 지어졌을 당시 반대가 아주 심했다 고 한다. 이제 내려가서 몽마르트를 구경했다. 카페와 노점이 많았으나 너무 변두리 같았다. 내가 변두리를 싫어해도 몽마르트는 아주 예술적 이었다. 카페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지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어 이동했다.
  20. 20. 이번에는 프랑스 최대의 왕가 부르봉 왕가를 알아보기 위 해 파리를 빠져 나왔다. 파리에서 30분 가자 베르사유가 나왔다. 꿈의 궁전 베르사유궁전은 화려함으로 관광객들 을 사로 잡았다. 베르사유궁전에 도착해서 바로크 식 궁전 과 부르봉 왕가에 대해 가이드에게로 부터 설명을 들었다. 베르사유궁전은 1682년에 루이 14세에 의해 지어진 궁전 으로 황제의 본궁으로 씌었다. 이전의 루브르 궁전에서 베 르사유궁전 으로 왕의 거처를 옮긴 것이었다. 하지만 1789 년에 프랑스 대혁명으로 혁명군에 의해 함락되어 이후에 는 파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베르사유궁전에 들어가서 내 부를 보니 아름답고 화려한 그림들이 천장에 그려져 있고, 여러 장군의 황제의 대리석상과 여러 개의 장식품 들이 많 았다.
  21. 21. 전쟁의 방에 들어갔다. 전쟁의 방은 전쟁과 승전을 뜻하 는 그림과 유물이 많았다. 이 방에는 타원 모양의 부조 작 품에 말을 타고 적을 물리치는 위엄있는 루이 14세의 모 습이 새겨져 있었다. 왕의 침실로 이동했다. 이곳은 루이 14세,루이 15세, 루 이 16세가 잠을 자던 침실 이다. 침대가 아름답고 귀족스 러운 카펫이 깔려 있어서 방 전체가 화려 했다. 내 취향 과 맞아서 이런 방에서 잠을 자보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화려해서 잠을 자지 못 자고 계속 천장화와 카펫만 볼 것 같기도 하다. 왕비의 침실로 이동했다. 왕의 침실은 가운 데 정면에 있었지만 왕비의 침실은 정면이 아니었다.
  22. 22. 왕의 침실은 빨강색이 많아서 조금 어둡게 느껴 졌지만, 왕비 의 침실은 살색, 흰색을 많이 써서 밝게 느껴지고 꽃 문양이 많았다. 왕비의 궁도 마음에 들었다. 이곳도 화려하고 아름다 웠다. 특히 샹젤리에가 기억에 잘 남는 것 같다. 왕의 침실은 빨강색이 많아서 조금 어둡게 느껴 졌지만, 왕 비의 침실은 살색, 흰색을 많이 써서 밝게 느껴지고 꽃 문양 이 많았다. 왕비의 궁도 마음에 들었다. 이곳도 화려하고 아 름다웠다. 특히 샹젤리에가 기억에 잘 남는 것 같다.
  23. 23. 이제 베르사유궁전의 하이라이트인 거울의 방에 갔다. 거울의 방은 황제와 귀족들이 무도회를 열던 곳이다. 이 곳은 거울이 많아서 거울의 방이라고 불린다. 루이 14세 이후 루이 15세와 루이 16세는 이곳에서 너무 무도회를 자주 열어서 세금을 낭비했다. 거울의 방 위에는 화려한 천장화와 아름다운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샹젤리에도 보 였다. 거울의 방은 길이가 매우 길었다. 그런데 가는 길 마다 화려한 장식품들이 있어 절대 지루하지 않았다.
  24. 24. 거울의 방을 보고 나서 밖으로 이동했다. 궁전을 나오면 세계 에서 가장 화려한 베르사유정원이 나온다. 베르사유정원은 가로,세로가 3.4km인 대운하와 쁘띠 트리아농궁전과 아름다 운 꽃들과 조각상 들이 베르사유정원을 화려하게 했다. 무료 정원 기차도 운영했으나 시간이 없어서 타보지는 못했 다. 기차비는 입장권만 있으면 무료였다. 대운하로 이동했다. 대운하가 십자가 모양이었고 아주 컸다. 저 멀리 트리아농궁전이 보였다. 하지만 너무 멀고 가는 시간이 길어서 가지 못하였다. 베르사유정원을 구경하고 나서 가이드와의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이제 베르사유를 떠나서 파리 시로 돌아갔다. 파리에 도착해서 저녁식사를 했다.
  25. 25. 에펠탑 으로 이동해서 에펠탑 전망대에 올라가려고 했다. 에펠탑에 올라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파업을 하는 바람에 에펠탑을 올라가지 못해 아쉬웠다. 내일 올라간다고 하니 내일을 기다렸다. 세느강 유람선을 타러 서쪽에 있는 선착 장에 갔다. 유람선을 타고 내 취향의 낭만적인 파리를 보려 고 하니 마음이 들떴다. 파리의 야경은 내가 생각한 것 보 다 로맨틱 하고 예술적 이며 화려했다. 동쪽으로 가면서 황 금빛의 에펠탑을 보고 더 가서 노틀담 성당을 보았다. 세 TIP 세느강 유람선과 에펠탑은 낮보다 밤이 50유로 정도 더 받으나 파리의 야경은 그것에 따른 가치가 있다.
  26. 26. 파리의 야경은 모두를 감동 시킨다. 파리의 모습은 낮보다 밤이 더 예술적이며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파리의 야경을 보고 나는 시 하나를 적어 보았다. 나는 파리의 예술에 빠져버렸다 파리에서 나의 마음이 헤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헤어나야 한다 또 다른 유럽의 도시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사실 또 다른 유럽의 도시를 보려면 파리에서 헤어나야 한 다. 시를 생각하며 유람선 관광을 마쳤다. 오늘의 파리의 관광이 끝났다. 이제 호텔로 돌아갔다. 다행스럽게도 파리 투어는 2일 이여서 내일이 남았다. 내일에는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백화점에 갈 것이다.
  27. 27. 아침 9시에 일어나서 파리로 향했다. 파리 시내에 도착해서 어제 올라가지 못한 에펠탑을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매우 낡았으나 보이는 경치는 멋있었다. 에펠탑은 에펠이 세운 탑 이다. 구스타프 에펠은 만국박람회를 기념해서 세운 탑이다. 파리의 배경을 해친다고 비난을 많이 받아서 철거당할 위기 에 처했지만 토마스 에디슨이 위에 송신탑을 세워서 유명해 졌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에펠탑을 올라가려고 파리를 찾 는다. 에펠탑 2층 전망대 에서 파리 시내를 한눈에 보았다. 정 말 아름답고 멋있었지만 좀 높아서 무섭기도 했다.
  28. 28. 드디어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루브르 박물관은 백년전 쟁 이후에 지어져서 황제의 본 궁으로 씌었다. 그러다 가 루이 16세 때 베르사유궁전 으로 천도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이후 나폴레옹이 박물관으로 쓰이게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박물관이 된지 200년 정도 되었다. 루 브르 박물관도 대영박물관 처럼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 나인데 그림이 많아서 미술관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대표적으로 <모나리자>, <가나의 결혼식>, <비너스 상> 등이 유명하다. 많은 작품들이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가 그린 그 림이 많았다. 루브르 박물관은 가운데의 유리 피라미드 가 유명한데 안은 지상이 아닌 지하였다. 루브르 박물 관에서 모나리자 앞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있는데 크 기는 매우 작았다 내 동생이 찍힌 루브르 박물관 입구 비너스 상
  29. 29. 유리 피라미드 내부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나폴레옹 대관식 루브르 박물관은 그림이 많이 있어 르네상스, 바로크, 로 코코, 낭만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비너스의 상으로 갔는데 사진 그대로 팔이 잘려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마무리로 파리 여행이 끝났다. 이렇게 끝나서 너무 아쉬운 여행 이었지만 다음에 아빠가 파리 에 가야 하는 일이 있다고 하시니 그때 가봐야 겠다. 파리 동역에서 기차를 타고 벨포트로 갔다. 왜냐하면 내 일 스위스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벨포트만 지나면 바로 스위스 이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파리를 떠났다.
  30. 30. 벨포트 위치 스위스 바로 앞에 자리잡은 벨포트는 프랑스의 작은 주도 이다. 파리에서 유로 레일을 타고 5시간 30분 거 리로 많이 외졌다. 알프스 산지와 가까워서 인지 날씨 가 파리보다 더 추웠다. 오늘 이곳에서 경유하여 하룻 밤 자고 내일 스위스로 갈 것이다. 스위스 국경까지는 차를 타고 숙소에서 20분 거리인데 목적지인 인터라 켄 까지는 3시간 거리이다. 스위스 산악열차가 내일 아침 8시5분에 출발하니까 새벽 4시 30분에 출발해 야 했다. 잠을 자다가 4시가 되자 모닝 콜이 왔다. 잠 이 깨지 않았는데 스위스로 가야 하니 스위스 가는 길 이 매우 힘들었다. 그래도 스위스의 아름다운 만년설 을 기대 하면서 가니 설래 였다. 6시 30분이 되자 아 침이 밝았다. 지나가는데 에메랄드 빛의 호수가 나왔 다. 바로 툰호수 이었다. 사방은 온통 만년설로 되어 있으니 이제야 스위스에 온 것 같았다.
  31. 31. 만년설의 나라 스위스 만년설의 나라 스위스는 전국토의 70% 이상이 알프스로 되어 있다. 사실 알 프스 지역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나 라는 스위스가 아닌 이탈리아 이다. 그런 데 스위스가 알프스로 가장 유명한 이유 는 알프스에 관광 시설을 많이 만들고 알 프스의 자연을 많이 지켜와서 이다. 옛날 의 스위스는 알프스를 매우 무서워 했다. 많은 사람이 알프스를 오르다가 죽었기 때문 이었다. 스위스의 역사를 알아보면 스위스에서는 수많은 산악 민족이 살아가 고 있었다. 그러다가 갈리아인 들이 차지 하게 되지만 율리어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의 땅이 된다. 로마는 스위스에 살던 민족을 알프스에 가두어 버렸다.
  32. 32. 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는 게르만의 땅이 되었다가 신 성로마제국의 영토가 된다. 스위스는 계속해서 식민지배를 받았으나 30년 종교 전쟁 으로 독립되었다. 그리고 강대국이 침입하지 않 는 중립국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지금의 스위스가 이루어 졌다. 지금의 스위스는 매우 부자이다. 국민 총소득은 우리나라의 3배 정도 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위스 여행을 시작했다.
  33. 33. 스위스의 만년설 융프라우 융프라우에 올라가기 전에 인터라켄에 서 기차를 타러 갔다. 인터라켄은 툰호수 와 브리엔츠호수 사이에 있는 도시 이다. 독일어로 ‘Inter’은 사이 이고, ‘Raken’ 은 호수이다. 즉, 호수 사이 라는 의미이다. 인터라켄 오스트 역에서 출발했다. 다행 스럽게도 융프라우요흐 까지는 힘 하나 들지 않고 기차를 타고 융프라우요흐역 까지 갈수 있다. 기차를 타고 2시간 동안 올라간다. 인터라켄 오스트 역의 해발고 도 가 567M 인 데 융 프 라 우 요 흐 역 은 3453M이고, 융프라우요흐 전망대는 3561M이니 기차 타고는 약 2900M나 올 라간다. 인터라켄 오스트 역에서 출발하 여 가는데 풍경은 아주 아름다웠다.
  34. 34. 목장에서는 소들이 풀을 뜯어 먹고 만년설이 녹아서 생긴 폭포도 흘렀다. 이 모습 때문에 스위스에서 살고 싶기 까지 하였다. 40분 정도 타고 기차를 갈아탔다. 하지만 이번 기차 부터는 고통이 심해졌다. 바로 고산 병 때문이다. 이제 높이는 2000M를 넘어섰다. 다른 일 행들 까지도 앓게 했다. 이 일로 고산병이 얼마나 무서 운지 알게 되었다. 올라가다가 터널을 만나게 되었다. 이 터널은 1400M를 9.3KM의 거리로 뚤었다. 이 터널을 지나는데 50분이나 걸린다. 이 터널을 만든 사람은 아돌프 구에르 첼러 이었다. 1893년 뱅겐알프철 도가 개통되어 많은 사람들이 융프라우를 찾았으나 체 력이 좋은 사람들만 융프라우를 볼 수 있었다. 아돌프 구에르 첼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융프라우를 찾게 하기 위해서 융프라우요흐 까지 철도를 설계 하였다.
  35. 35. 터널을 뚫고 톱니로 된 철도를 연결하여 8년이 걸릴 것이라 고 생각했으나 노동자들이 자주 파업을 하여 16년이 걸려서 1912년에 완성되었다. 내가 힘 하나 들지 않고 3454M까지 올라갈수 있었던 것에 아돌프 구에르 첼러 에게 감사했다. 드디어 융프라우 역에 도착하였다. 융프라우역에 도착한 후 기차에서 내렸다. 3454M나 올라와 서 머리가 어지럽고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내 부는 동굴 같았다. 더 가보니 영상물이 있었다. 융프라우요 흐의 스핑크스 전망대 에서 찍은 영상 이었다. 더 가보니 초 고속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이 엘리베이터는 108M를 18초 만에 올라간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아이거만 보이고 묀히와 융프라우가 보이지 않았다.
  36. 36. 왜냐하면 이곳은 융프라우와 묀히 사이에 있는 융프라우요 흐 이여서 이다. 융프라우요흐 란 융프라우의 어깨라는 뜻이 다. 야외로 나가보았다. 나가 보니 시원하기는 했으나 눈보 라가 아주 강해서 따가웠다. 융프라우요흐 에는 자연이 만든 스키장과 설매장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고산병에 너무 심하게 걸려서 아쉽지만 타지 못하였다. TIP 융프라우요흐 스키장, 설매장 에서는 토요일에는 만15 세 이하 어린이 대여,이용료가 무료이다.
  37. 37.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서 융프라우요흐 스핑크스 전망대 에 서 계속 앉아 있었다. 내 동생은 얼음동굴까지 갔다 왔다. 일행 중에서도 갔다 온 사람이 많지 않다. 왜냐하면 고산병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동생이라도 갔다 와서 사진 을 남길 수 있었다. 얼음동굴은 여러 개의 얼음작품이 있다 고 한다. 이제 하산하러 내려갔다.이번에는 그린델발트로 내려갔다. 그린델발트는 해발 1034m의 작은 도시이다. 내려오니 고 산병 증세도 가라앉았다. 그린델발트는 전형적인 알프스의 도시였다. 그린델발트 에서 내려가 인터라켄 오스트에 도착했다.
  38. 38. 인터라켄에 도착하여 식사를 했다.식사는 스위스의 전통 음식점에서 했다. 퐁듀, 치즈, 아이스크림을 맛보았다. 인터라켄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인터라켄 투어를 했다. 인터라켄의 모든 상점은 모두다 면세점 이다. EU국민이 아니면 무조건 공항에서 부가가치세를 돌려받을 수가 있 다고 한다. 나의 친구에게 선물할 스위스 종과 초콜릿을 샀다. 시계상점에 가보았다. 시계의 가격들은 꾀 비싸지만 고 급스럽고 화려하다. 대체적으로 80프랑에서 300프랑 정 도 보통 하지만 비싼 것은 훨씬 더 비싸다. 상점구경을 마친 3시 30분에 밀라노로 출발했다.
  39. 39. 환상의 반도 이탈리아 Italy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같이 반도국 가 이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공통된 부분 이 있다면 한국과 같이 사람들이 매우 성 질 급하고 고집이 세다. 그리고 한국처럼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간다. 이탈리아는 통일이 된지 130년 정도 된 다. 이탈리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476년, 로마가 멸망한 이후 이탈리아는 도시국 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도시끼리 경쟁도 서슴지 않았다. 쳐들어 가거나 죽은 사람 을 대포로 쏘기까지 했다. 이 도시국가 중 에서도 많이 발달된 도시들도 있었다. 바 로 밀라노, 피렌체, 제노바, 피사 등이 국 력이 강했다. 하지만 15세기에 들어서 이 탈리아 북부에 오스트리아나
  40. 40. 프랑스가 자주 쳐들어 갔다. 이탈리아 북부지역은 이탈리아의 통일을 원했다.가리발디 셔츠로 유명 한 가리발디 장군은 빅토리아 엠마누엘 과 함께 이 탈리아를 통일시켰다. 북부 이탈리아는 쉽게 통일 이 됬지만 남부이탈리아의 나폴리 왕국은 통일을 바라지 않자 무력으로 나폴리 왕국을 차지하고 교 황령의 땅도 빼앗았다. 이렇게 해서 이탈 리아가 통 일되었다.이때가 1860년 이니 통일이 된지 150년 정도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에서는 중립을 지켰으 나 이후 파시즘의 무솔리니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총통이 되었다.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일본 천왕과 손을 잡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하지만 1943 년 시칠리아 까지 연합군 손에 들어가자 이탈리아 는 항복을 했다. 다행히 분단되는 것은 막을 수 있 었다. 이렇게 해서 지금의 이탈리아가 되었다. 지 금의 이탈리아는 볼 것이 매우 많다. 왜냐하면 이런 역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유적지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41. 41. . 그래서 내가 이탈리아에 있을 기간도 5일이나 되 는 것 같다. 이탈리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많다 대표적으로 샐러드, 피자, 스파게티 등이다. 이제 밀라노 부터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한다
  42. 42. 패션의 도시 밀라노 인터라켄에서 약 5시간 정도 걸렸다. 오면서 아주 긴 터널을 만났다. 길이가 무려 20KM이고 건너는데 25분 걸렸다. 그리고 이탈리아에 와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모호수를 보았다. 코모호수 는 로마제국 때 부터 로마의 귀족과 황 제들이 경치가 아름다워서 별장을 많 이 지었다. 나도 이곳에 별장 하나를 지 었으면 한다. 코모호수 는 밀라노에서 1시간 거리이 다. 저녁 7시 반쯤에 도착해서 식사를 하였다. 간단히 식사를 한 뒤 밀라노 투 어를 하였다. 밀라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자도시 이다. 예로 부터 알프스 넘어 서유럽의 강대국들과 무역을 많 이 해서 이고 수많은 패션 업체들의 본 사가 자리잡은 도시이다. Milan
  43. 43. 밀라노는 건축물 들이 화려했다. 이곳에 오니 파바로티의 공연이 보고 싶어 졌다. 파바 로티의 고향은 아니지만 밀라노에서 많이 활동했다. 이처럼 수 많은 오페라 작곡가,가수 들이 활동한 곳이 다. 그래서 인지 내 마음에 쏙 든 도시 중 하나였다. 밀라노는 오페라로 도 유명하다. 이중에는 내가 좋아하 는 작곡가인 주세페 베르디, 자코모 푸치니,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 등이 있고 성악가로는 루치아노 파바 로티 등이 많이 활동했다. 주세페 베르디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 자코모 푸치니 루치아노 파바로티
  44. 44. 그래서 먼저 라 스칼라 극장에 갔다. 라 스칼라 극장은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이다. 그런데 직접 가 보니 정말 작았다. 크 기는 상관없이 많은 작곡가와 성악가들이 활약했던 장소에 왔다는 것 조차도 실감이 난다. 라 스칼라 극장은 화려하지 는 않았다. 앞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상이 있었다. 이 동상은 빈치시 에도 있다고 한다. 라 스칼라 극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
  45. 45. 라 스칼라 극장의 바로 옆에는 쇼핑센터인 빅토리아 엠마누 엘 2세 겔러리 가 보였다. 빅토리아 엠마누엘 2세 겔러리 안 에 들어가 보니 화려하고 수많은 카페와 옷 가게와 고급 레스 토랑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늦은 저녁시간 이여서 많이 문닫 아서 많이 구경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바닥에 로물루스 와 레 무스가 늑대의 젖을 먹는 그림이 있었다. 이곳에 이런 그림이 있을 줄 전혀 몰랐다. 빅토리아 엠마누엘 2세 겔러리는 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다음에 또 오고 싶다.
  46. 46. 빅토리아 엠마누엘 2세 겔러리 옆에는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 이 있다.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은 14세기에 건축하기 시작하 여 20세기 중반에 완공되었다. 중간에 잦은 오스트리아, 프랑 스군의 침략으로 전쟁준비를 하거나 1,2차 세계대전으로 짓 는데 중단이 된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짓는데 600년이 넘은 것이었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은 높고 화려하게 지어져 있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은 높고 화려해서 밀라노의 상징이 되었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을 관람하고 나서 밀라노를 떠났 다. 오늘은 참 고단했다. 3500M 넘는 고지에 갔다가 온 다음에 차를 타고 4시간 30분이나 가서 아주 힘든 날 인 것 같다.
  47. 47. 피사 Pisa밀라노에서 하룻밤 자고 나서 피사 현으 로 떠났다. 피사 현은 토스카나 주에 위 치해 있어 내가 지금 있는 애밀리아로마 나 주 에서 3시간 거리 이다. 드디어 이 탈리아 반도에 들어서는 것이었다. 이탈 리아 라면 평지 인 것 같았는데, 피사 까 지 온통 산이었다. 우리나라의 산 과는 달리 산이 아주 울퉁불퉁 하고 산 중턱 에는 구름이 껴 있어 신비해 보였다. 산 위가 평평한 언덕에는 구릉도시가 발달 해 있었다. 토스카나 주는 구릉도시로 유명하다. 피사 현에 다다랐을 때는 평 야였다. 드디어 피사 현에 도착 했다. 먼 저 피사 의 역사를 살펴 본다.
  48. 48. 로마 제국 시절 피사 는 로마가 다스렸다. 2차 포에니 전 쟁 때는 한니발의 동생이 형인 한니발을 돕기 위해 에스 파냐 에서 배를 타고 피사 에서 배를 세우고 형을 도우려 고 했으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가 에스파냐로 쳐들어 와서 침략하지 못했다. 476년, 로마가 망한 후 피사는 도 시국가로 발전 하게 된다. 바다가 있어 여러 나라와의 무 역으로 발전 하게 되었으나 제노바가 해상권을 빼앗아서 약해 지다가 피렌체에 의해 합병됐다. 피사 에 도착해서 피사의 사탑 으로 향했다. 피사에 서 피 사의 사탑 있는 곳 까지 걸어서 갔다. 피사의 동네를 걷다 보니 집들이 2층 단독주택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흔히 라일락 꽃을 볼 수 있었다. 향까지 좋았다.
  49. 49. 15분 정도 걷다 보니 꾀 높은 성벽이 보였다. 높은 성벽 안 에는 피사의 사탑과 피사 두오모 성당, 세례당이 있었다. 피사의 사탑을 보니 생각보다 매우 기울어져 있었다. 다행 히 성수기가 아니 여 서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오늘 은 운이 좋았다. 2유로 하던 두오모 성당 입장권이 오늘은 무료였다. 즉, 8유로 아낀 셈 이었다. 두오모 성당은 로마 네스크 양식의 성당 이다. 두오모 성당이란, 지방의 주교가 있는 성당을 두오모 성당 이라고 한다. 어제 봤던 밀라노 두오모 성당 도 이런 뜻인 것 같았다. 피사 두오모 성당의 내부
  50. 50. 세례당으로 가 봤다. 세례당의 앞쪽 지붕은 빨간 타일이 위 에 있었지만 뒤쪽 지붕은 청동 색 타일로 되어 있었다. 둥근 모양으로 되어 있지만 크기는 생각한 것보다 컸다. 다시 피사의 사탑으로 돌아갔더니 피사의 사탑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들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실험하고 길 울어 져 있어서 세계7대 불가사의 중에서 손 꼽힌 건축물 인데 삭제 되었다. 그 이유는 피사의 사탑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땅속에 지탱하는 대리석이 56M인 대리석 탑을 견 디지 못해서 기울고 있는 것이다. 피사의 사탑 역사는 중세 시대인 12세기로 돌아가야 한다. 12세기 에는 피사 와 피렌 체가 도시국가로 경쟁 했는데 이 두 도시는 무역, 문화, 물 건, 건축물, 국력 등으로 경쟁을 했다. 피사는 피렌체의 성 당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피사 두오모 성당을 짓고 더 화려 하게 하기 위해 피사의 사탑을 지었다. 급하게 만들어서 받 침을 약하게 하여 탑이 이때 부터 기울어 진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피사 관광을 마치고 로마로 향했다. 로마로 가 면서 운이 좋은 일이 있었다. 가는 중에 무지개가 1개가 아 닌 쌍무지개가 뜬 것이었다. 오늘은 운이 좋은 것 같다.
  51. 51. 로마제국의 영광 로마 로마 인근의 피우치 라는 마을에서 자 고 나서 로마 시내 까지 메트로를 타고 갔다. 로마를 알려면 먼저 로마의 역사 를 알아야 한다. 로마제국은 로마의 초 대 황제인 로물루스 가 세웠다. 로물루 스 에 대한 신화도 전해 온다. 마르스 라는 신이 있는 데 마르스가 인간과 사 랑을 하자 제우스 신은 화가 나서 그 소녀를 죽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 소녀 는 두 쌍둥이가 있어서 쌍둥이 만큼은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쌍둥이 를 바구니에 담아 테베레 강에 떠내려 보냈다. 테베레 강 에세 물을 마시던 늑대가 이 쌍둥이를 발견 하고 새끼 처 럼 키웠다. 젖도 먹이고 음식도 갖다 주었다. 그러다가 한 양치기가 이를 발 견 하고는 양아들로 삼아서 키웠다 Roma
  52. 52. .두 쌍둥이는 자라서 훌륭한 리더가 되었다. 로물루스 는 테베레 강변의 7언덕 중에서 팔라티노 언덕을 선택 하여 튼튼한 성을 쌓았다. 레무스는 팔라티노 언덕 남 쪽에 성을 쌓았다. 그런데 레무스가 형인 로물루스 에 게 불만이 있어 팔라티노 언덕에 가다가 형인 로물루스 에게 서 죽임을 당하고 로물루스는 로마를 혼자 다스렸 다. BC509년 에트루이아 족 출신인 타르퀴니우스 황제가 죽임을 당한 이후 로마는 공화정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500년간 공화정 국가로 발전 하게 되다가 카이사 르의 아들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 가 새로운 황제가 되 어 로마가 망할 때 까지는 제정 시대가 이어졌다. 하지 만 잦은 게르만 민족의 침입으로 AD476년 결국 로마가 함락되고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게르만 대표인 오로아케르 에게 항복하여 서로마 제국의 역사 가 망하지만 동로마는 비잔티움 제국으로 1000년간 더 이어졌다. 이후 중세의 암흑기가 찾아오고 많은 사람들 이 흑사병으로 죽었고 크리스트교의 교황 중심의 세계 가 되었다.
  53. 53. 이탈리아 로마는 교황령 땅이 되고 이탈리아가 여러 나라로 갈라지게 된다. 가리발디 장군이 1870년에 통일을 이루었으니 즉, 통 일이 된지 약 140년 정도 밖에 안되었다. 로마는 로마 제국의 수도이자 중심지 이었다. 그래서 로마제국의 유적지가 유럽에서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도시 이다. 로 마에는 2000년이 넘는 건물들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 건물들은 카이사르나 옥타비아누스 시절에 만들 어 진 것들이 많다. 건물을 대리석으로 지었기 때문에 2000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의 건축물도 대리석으로 지었다면 지금 까지도 많이 남았을 텐데 나무 건물은 수명이 짧은데 나무로 지어 서 고대 건물이 없는 것 같다. 로마는 두 가지의 얼굴을 지닌 도시 인 것 같다. 거대 한 로마제국, 또 하나는 바로 크리스트 문화이다. 크 리스트 교의 중심지는 예루살렘 다음으로 손 꼽히는 곳이 바로 로마이다. 로마에는 크리스트 교를 대표하 는 교황이 살기 때문이다. 13세기에는 교황청이 로마 말고 아비뇽 에도 있었다.
  54. 54. 하지만 로마 교황청이 승리를 해서 로마에 크리스트 교 문화가 발달이 된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미켈 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도나 텔로 등의 훌륭한 화가들이 로마 교황청에 많은 작품 을 남겨 피렌체 다음의 르네상스 도시가 되었다. 자, 이제 본격적 으로 로마 투어를 해 보자. 로마에 도착해서 먼저 바티칸에 갔다. 걸어서 이탈리 아 국경을 걸어서 넘으니 참 흥미로웠다. 바티칸 박물 관에 먼저 갔다. 바티칸 박물관의 유물들은 아주 화려 하고 빛났다. 나 같은 크리스트 교인 에게는 더욱더 흥 미로웠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으 로 멋지게 장식해 두었기 때문 이다. 바티칸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중 하나이다. 이번 여행으로 세계3대 박물관을 다 가본 것이다 뱀에 물리는 라오콘
  55. 55. . 바티칸 박물관 에서 가장 화려한 지도의 방으로 갔다. 지도의 방의 길이는 자그마치 500M나 되고 안의 천장은 천장화가 그려져 있고 나머지 천장 부분은 금색으로 되어 있어 더 화려 하게 느껴졌다. 벽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카펫에 그려져 있어 더욱더 실감이 났다. ‘어떻게 해서 카펫에 그려놓을 생 각을 했을까?’ 하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 화려한 구간이 500M나 되서 방을 지나는데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지도를 보며 갔다. 지도에는 이탈리아 지도, 로마 시 지도, 바티칸 지 도, 유럽 지도 등을 그려 놨는데 똑같은 곳의 지도 라도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 지도의 방은 지도의 고정관념을 없앤것 같 고 지도에 대한 새로운 화려함을 더한 작품 인 것 같다. 이제 시스티나 소성당 으로 내려갔다. 지도의 방 내부의 천장벽화
  56. 56. 시스티나 소성당에 들어가니 경비원 여러 사람이 소 성당 안에 있었다. 시스티나 소성당 에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었다. 이 두그림은 전 세계 적 으로 유명 하기 때문에 소음이나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되었다. 이를 어기면 아까 말한 경비원들이 밖으로 쫓 아 낸다. 이곳 에서는 찍소리 내면 안되기 때문에 이곳 에 들어온 한국 할머니 들이나 아주머니들은 화가 난 다고 한다. 시스티나 소성당 처럼 성경의 말을 그림으 로 넣는 이유는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백성들 까 지도 크리스트교를 믿어야 했다. 그런데 백성들은 글 을 읽지 못해서 쉽게 성경을 알려주기 위해서 성경의 말씀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백성 들에게 크리스트 교를 교리 할 수 있고 후세 에게는 훌 륭한 작품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천지창조와 최후 의 심판은 메디치 가의 양아들인 미켈란젤로가 그린 작품이다. 시스티나 소성당 의 천장은 천지창조가 그 려져 있고 제단의 벽의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리고 나서 얼굴이 삐뚤어 졌다고 한다.
  57. 57. 미켈란젤로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 는지 그림만으로도 이해가 갔다. 이 그림에서 교훈을 주는 것 같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는 큰 고생을 하겠지만 고생을 할수록 그림은 더욱더 완성도 높은 그림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 같다. 시스티나 소성당을 보고 바티칸 박물관에서 나왔다. 아쉽게도 천지창조 와 최후의 심판은 촬영 하지 못했다. 이제 미켈란젤로 가 건축한 성 베드로 대성당에 갔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크리스트 교의 중심이 되는 성당 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현재 교황 프렌체스코 1세 가 머물고 있는 성당이다. 나에게는 이곳이 성스러운 성당인 것 같다. 들어가기 전에 광장 모양을 봤더니 꼭 열쇠 구멍 모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 화려한 제단과 어두운 모습이 인상 적이었다
  58. 58. 들어가자 마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가 있었다. 피에타 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자 성모 마리아가 슬퍼 하는 모습이다. 피에타 상이 아주 우울해 보였다. 스테인 드 글라스는 제단이 있는 벽 에세 가장 위쪽에 있었다. 오 늘은 운이 좋게 일요일이 아닌 이유로 성 베드로 대성당 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일요일 에는 미사를 봐서 성 베드로 대성당을 들어갈 수 없고 박물관만 이용할 수 있다. 이렇 게 해서 바티칸 여행을 마쳤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성베드로성당 광장
  59. 59. 로마에서의 점심식사를 한 뒤 로마 시내를 둘러보며 여 행을 했다. 로마는 참 볼 것이 많다. 바티칸 외의 로마를 둘러 보았다. 먼저 히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지어진 판테온을 보았다. 판테온은 2000년 이나 되었지만 아직 도 터만 남은 것이 아니라 건물이 완전히 남아있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크게 신 7명을 믿었다. 판테온은 황제 들이 이 7신 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하지만 콘스탄 티누스 황제가 314년에 밀라노 칙령을 내린 후 부터 사 용을 많이 하지 않았다. 로마제국이 망한 이후 교황령 땅이 되면서 판테온을 크리스트 교회가 차지 했다. 지 금도 성당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판테온은 이것으로 유명하기 보다는 위의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있다는 것 이다.
  60. 60. 로마제국 시대로 돌아와서 보면 제사를 지내는데 향 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에 머물러 있자 히드리안 황제는 천장에 큰 구멍을 뚫으라고 했다. 신기한 것 이 구멍에 비가 쏟아 지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향을 피우면 공기가 대워 지는데 데워진 공기 안에 빗물이 들어올 수 없기 때문 이었다. 판테온 안에는 무덤이 있었다. 이 무덤에는 천재 화가인 라파엘로의 시신이 묻혀 있 었다. 판테온은 정말 신기한 곳이었다. 우리나라 에 도 이런 2000년 된 건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61. 61. 판테온을 보고 나서 르네상스식 분수인 트레비 분수로 갔다. 트레비 분수에는 가운데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 이 있고 옆에는 포세이돈의 아들이 있는데 포세이돈 아들의 두 가지 모습을 담고 있었다. 트레비 분수 에서는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 1개를 던지면 자신의 사랑이 이어지고 2개 던지면 로마에 돌아 올 수 있고 3개 던지면 사랑과 헤어질 수 있고 4개 던지면 새로 운 사랑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동전을 2개 던졌다. 왜냐하면 로마로 다시 또 여행 오고 싶기 때문 이다.
  62. 62. 트레비 분수 앞에는 젤라또 가게가 많다. 나도 젤라또 를 하나 사 먹었다. 작은 사이즈로 시켰는데 너무 많았 다. 나는 2.50 유로 젤라또를 사먹어서 2가지 맛이 섞 였다. 다시 트레비 분수로 돌아 갔더니 사람들이 더 많 아 졌다. 트레비 분수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젤라또 를 먹는다. 시원한 분수 앞에서 젤라또를 먹으니 로마 에서 먹은 더위가 날아갔다. 4월 말인데도 날씨가 30도 에 가까웠다. 한 여름에는 45도가 넘는다고 한다. 트레 비 분수는 화려한 대리석으로 지어져 있어서 더욱더 아 름다웠다.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하 지만 겨울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63. 63. 왜냐하면 분수를 꺼 놓는다고 한다. 트레비 분수를 보고 스페인 광장으로 이동했다. 트레비 분수에서 스 페인 광장 까지는 멀지 않았지만 로마 벤츠 투어를 이용했기 때문에 아무런 힘 안 들고 차 타고 갔다. 스 페인 광장 앞은 계단이 무수히 많았다. 스페인 광장 은 스페인 대사관 앞에 있는 광장 이라고 해서 스페 인 광장 이라고 한다. 스페인 광장은 계단 위에서 보 면 여기가 어딘지 모르지만 계단을 내려가면 스페인 광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스페인 광장 계단에 앉 았는데 대리석이 너무 데워져서 앉지 못하고 내려갔 다. 스페인 광장에도 집시 같은 사람이 돗자리 펴고 계단 에서 장사를 했다. 스페인 광장은 아주 아름다 웠다
  64. 64. 가운데에 야자수가 있어 여기가 로마인지 착각하게 된 다. 스페인 식 계단과 건물이 있어서 스페인 느낌이 난 다. 스페인 광장을 보니 다음에는 스페인을 가고 싶었 다. 스페인 광장의 계단을 내려가자 스페인 광장 꼭대 기로 올라가야 할 것 같아서 한 숨을 쉬다가 마침 벤츠 가 스페인 광장 아래쪽에 와 있었다. 운전자가 매너 있 었던 것 같다. 이제 진실의 입으로 향하였다. 팔라티노 언덕 아래에 자리잡은 진실의 입은 산 발레스타인 성당에 있었다. 진실의 입 앞에 가자 모든 사람들이 긴장했다. 진실에 입에 손을 넣는데 거짓말을 하면 손이 잘린다는 말이 있다
  65. 65. 나도 한번 손을 넣었더니 잘리지 않았다. 사실은 진실 의 입은 원래 하수구 뚜껑 이었다. 손을 넣었을 때 진실 의 입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았고 안에는 비어 있고 벽돌만 있었다. 생각보다 꽤 실망이었다. 산 발레 스타인 성당에 들어 갔다. 안에 가보니 산 발레스타인 성인의 해골이 있었다. 진짜 해골을 봐서 너무 무서웠 다. 산 발레스타인 성인의 성일은 2월 14일 이다. 초콜 릿 파는 상인들이 참 한심했다. 장사를 하려고 산 발레 스타인 성인의 성일을 이용한 것이었다. 산 발레스타 인 성당 안에서는 성가가 미사 때 빼고는 계속 나온다 고 한다. 이 성가들은 라틴어로 나와서 성가 이름이 무 엇인지 잘 몰랐다. 산 발레스타인 성당에서 나와 바로 옆이 포로로마노로 향하였다.
  66. 66. 포로로마노는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가 세운 팔라티노 언덕 바로 아래에 지어져 있다. 포로로마노 안에 들어 가면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팔라티노 언덕 위에 서 봤다. 팔라티노 언덕 위에서는 포로로마노가 한 눈 에 보였다. 포로로마노는 라틴어로 포로로마늄 이라 고 한다. 포로로마노는 로마의 가장 큰 심장부 라고 할 수 있다. 로마제국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의 중심지 로 원로원과 민회가 자리잡은 곳이다. 2000년 전을 떠 올려 보면 로마의 장군들이 깃발을 꽂고 승전을 기념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로마는 1200년간 지중해를 상대로 무역을 하거나 차지하기 위해 여러 나라와 싸 워 이긴 나라 이다. 북으로는 영국 남쪽으로는 북아프 리카 서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차지한 제국 이었다. 그런 로마였기 때문에 로마의 중심지인 포로 로마노가 더 멋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 다. 이곳 포로로마노 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죽었 던 곳이기도 한다. 포로로마노를 둘러보면 2000년 전 의 로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우리는 로마의 것을 많 이 사용하고 있다.
  67. 67. 집을 지을 때 시멘트로 짓는데 이것은 로마의 건축에서 나온 것이다. 영어를 쓸 때도 마찬가지 이다. 영어는 라틴 어 에서 비롯되었는데 로마제국이 라틴어 국가였다. 책 을 읽을 때 우리는 책을 넘겨서 읽는데 이런 책도 로마에 서 비롯되었다. 이런 사소한 것도 로마에 비롯되었으니 로마의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자국의 역사도 중요 하다. 팔라티노 언덕은 로마의 역사 속으로 스며들게 한 다. 팔라티노 언덕은 로물루스 황제 때부터 로물루스 아 우구스툴루스 까지 오랜 시간 동안 발달이 된 언덕이기 때문이다. 여행의 비수기에는 혼자서 조용히 걸을 수 있 지만 성수기에는 시끄럽다고 한다. 팔라티노 언덕은 다른 로마지역에 비해 아주 시원해서 좋았다. 사이프러스 나무와 오랜지 나무가 팔라티노 언 덕에 많이 있는데 사이프러스 나무와 오랜지 나무는 로 마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제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 와 로마의 대전차 경기장을 갔다. 언덕에서 내려가서 얼 마 안 가면 바로 대전차 경기장 이다.
  68. 68. 대전차 경기장으로 내려가니 타원형 모양의 대전차 경기 장 모습이 나왔다. 로마제국 에서는 오락시설이 많이 없 었기 때문에 로마의 서민들은 경기장에서 경기를 즐겼다. 전차경주도 그 중 일부였다. 대전차 경기장은 길이가 길 지만 선수들은 한 바퀴를 도는데 자그마치 1분 밖에 걸리 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한번 전차 경주를 보고 싶어 졌다. 대전차 경기장은 땅을 파서 지은 것 같았다. 대전차 경기장을 보고 원형 경 기장인 콜로세움으로 향하였다. 대전차 경기장의 모양
  69. 69. 베스파시우스 황제가 콜로세움을 건축하였다. 콜로세움 은 AD80년에 건축되었다. 베스파시우스 황제의 아들 티 투스 황제가 콜로세움에 첫 번째 주인공 이다. 티투스 황 제 때부터 시작한 경기는 매우 잔인했다. 검투사들은 서 로 다른 검투사들을 죽이면서 경기를 했다. 황제는 경기 에서 패한 검투사의 운명을 결정하였으나 대부분의 로마 시민들은 검투사의 죽음을 원했다고 한다. 이때 당시에 는 콜로세움이 3층 이었고 지하가 없었으나 티투스의 동 생인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콜로세움에 없었던 4층을 짓 고 검투사들의 대기실인 지하를 만들었다. 검투사들은 무대로 올라 갈 때 도르래가 달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 라갔다. 콜로세움은 시멘트 와 화산재를 섞어서 지어졌 다. 콜로세움은 지금 예전의 3/2만 남아있다. AD432년에 로마에 대지진이 일어나 일부가 붕괴되었고 기독교회에 서 많이 떼어갔다.
  70. 70. 콜로세움에 저녁에 가니 사람들이 많이 없어 구경하기 편했다. 콜로세움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컸다. 콜로세 움을 끝으로 로마투어를 마쳤다.
  71. 71. 아름다운 지중해의 보석,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이제 로마에서 3시간 남쪽에 있는 캄파 니아 주의 나폴리로 갔다. 3시간 정도 내려가더니 나폴리가 나왔다. 하지만 우 리의 목적지는 나폴리가 아니었다. 1번 고속도로 종점에서 빠져 나와서 베수비 오 화산 을 향해 갔다. 30분 정도 베수비 오 화산을 향해 가니 폼페이 고대 유적 지 가 나왔다. 폼페이는 기원전 2세기 부터 로마의 큰 고대 도시였다. 항구가 가까워서 빠른 속도로 발전을 했지만 기 원후 79년 8월 24일에 화산 폭발로 잿더 미가 되었다. 폼페이 고대 유적지를 들어가기 전에 가 이드에게 로 부터 설명을 들었다. 이번 에도 로마 가이드가 설명해 주셨다. Campania
  72. 72. 근처에 큰 항구가 있어서 폼페이에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황제와 귀족들 에게는 휴양도시 였 다고 한다. 로마의 다른 지방에서 온 상인들로 넘쳐나 고 항구로 무역을 해서 큰 이익을 벌었다. 하지만 사람 들은 점점 부유해 져 가자 술이나 빵을 사먹는데 돈을 많이 써서 전 재산을 탕진 하기도 할 만큼 돈을 쓸데 없 는 데에 허비를 했다. 폼페이 입구의 모습
  73. 73. 이제 폼페이 유적지 안으로 진압했다. 폼페이 고대 유적지는 꾀 컸다. 동과 서 의 길이가 3km나 된다고 한다. 먼저 목욕탕으로 갔다. 목욕탕은 온통 프레스코화 로 되어 있었다. 커다란 수 조가 있고 수도 꼭지 가 있어서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목욕탕과 비슷했다. 프레 스코화가 아름답고 욕조가 크고 대리석 으로 되어 있어서 목욕탕 안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싶었다. 빵집에 갔다. 화덕도 보이고 방아도 보였다. 지금의 빵집과 매우 비슷했다. 이 빵집의 빵은 어떤 맛일지 궁금하고 유럽 여행 하면서 매일 빵을 먹었는데도 빵이 입에 당겼다.
  74. 74. 이제는 폼페이 시민의 여가 공공장소인 경기장에 갔다. 이 폼페이 경기장이 세계 최초의 원형 경기장 이었다. 이 곳 에서는 검투사가 칼을 겨누고 서로 싸우거나 포식자 와 붙는 경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수 많은 검투 사들이 싸우다가 죽었다고 한다. 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 은 내가 어제 갔던 콜로세움 에서도 자주 일어났는데 왜 이런 경기가 재미 있었던 지는 이해가 않간다. 당시 사람 들은 칼로 사람들 죽이고 하는 경기가 재미있었나 보다. 폼페이의 골목을 걷다가 바를 발견했다. 과일이나 술이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이다. 이 그림을 보니 갑자 기 과일이 먹고 싶어 졌다. 폼페이의 시민이 살았던 집에 들어 갔다. 집은 넓지 않고 좁았다. 돌 침대가 있었지만 성 매매 하는 프레스코화가 있었다. 당시 혼자 사는 남성들은 돈 주고 여자들을 사서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고 한다. 이 일은 지금의 성 매매 와 똑같았다. 폼페이 사람들이 이런 성범죄자 들인 줄 몰랐 다. 신이 벌을 주려고 베수비오 화산을 폭발 시킨 것 같기 도 하다. 이제 식당으로 이동했다. 가면서 후추나무를 발견했다. 내 평생 처음 본 후추나무에 놀라고 말았다.
  75. 75. 이제 소렌토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탔 다. 하지만 전철을 불편하기에 짝이 없었다. 북아프리카의 메트로를 탄 것 같았다. 그래도 아코디언과 탬버 린을 들고 있던 한 청년들이 이태리 남부의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해 서 흥이 났다. 소렌토 역에 도착했다. 이곳은 절벽도시로 유명하다. 그리 고 토르콰토 타소의 ‘돌아오라 소렌 토로’로 유명하다 토르콰토 타소 소렌토의 구시가를 둘러보며 소렌토 투어를 했다. 소렌토 의 특징은 많은 주민이 영어를 잘해서 관광객들이 편하게 찾는 곳이다. 바닷가 쪽에 도착하자 호텔들이 해안선을 중 심으로 쭉 나있었다. 호텔들이 절벽까지 파고 들어가서 지 어졌다. 평균 숙박비는 1박에 60만원 이상이다. 이제 부두로 가서 바닷가를 즐겼다. 지중해는 한국의 동해, 서해와 많이 달랐다. 지중해는 온통 파란색이고 물에 소금 끼가 많이 없었다. 소렌토를 구경하는 동안 젤라또 아이스 크림을 먹으니 젤라또가 아주 맛있었다.
  76. 76. 소렌토는 예전에 나폴리 현에 속해 있었지만 지금은 소 렌토 현으로 되어있다. 소렌토 관람을 마치고 카프리섬 으로 향했다. 하지만 내 가 싫어하는 배를 타야 했다. 25분 동안 배를 타는데 단 점은 파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파도가 강할 때는 배가 아 주 심하게 흔들렸다. 이 고비를 넘기니 환상의섬 카프리 섬에 도착했다. 내가 본 카프리섬은 파라다이스 이었다. 흰색 대리석으로 건물이 지어져서 그리스 같기도 했다. 배에서 내리자 마자 소형버스를 타고 갔다. 이 소형버스 는 카프리섬의 명물 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현지가이드 가 불러주신 음악을 들으며 케이블카 탑승 장이 있는 아 나카프리로 향했다. 아나카프리는 높은 카프리 라는 뜻 이다. 아나카프리로 가는 동안 현지가이드가 ‘오 솔레미 오’, ‘돌아오라 소렌토로’, ‘산타루치아’를 불러주셨다. 이 곡들은 캄파니아의 전통 민요들 이었다. 현지가이드는 이탈리아 사람이었지만 한국어를 잘하셨다. 왜냐하면 한 국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지가이드가 불러주신 곡을 들으며 지중해를 보니 마치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 이었다. 하지만 천국도 끝이었다.
  77. 77. 아나카프리에 도착해서 1인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 는데 너무 무서웠다. 온몸은 소름이 돌았다. 결국에는 눈을 감았는데도 무서웠다. 그것도 잠깐이 아니었다. 15분이나 타고 올라갔다. 케이블카가 오래되어서 그 런지 삐걱하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 본 카프리는 천국 같았는데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 다행히 올라와서 는 멋있는 풍경이 보였다. 바다가 푸른색을 띄고 집들 이 다 하얀색 이어서 더욱더 낭만적이었다. 이 아름다 운 풍경에는 대가가 있었나 보다. 나는 썬 베드에 앉아서 하늘과 지중해 바다를 보니 참 낭만적 이었다. 오늘 이 일로 3달 후에 여름휴가를 가 기 싫어졌다. 카프리섬의 풍경은 마치 제주도 같았다. 하지만 내려가야 했다. 아나카프리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 또다시 낡은 1인용 케이블카를 타야 해서 너무 두려웠다. 아나카프리에 돌아와서는 어느 정도 고소공포증을 이겨낸 듯 하다.
  78. 78. 다시 소형버스를 타고 내려가서 카프리에 도착했다. 이 곳의 화덕피자 집에서 야외 테라스에 앉아 화덕피자를 먹었다. 이탈리아의 화덕피자 맛은 최고였다. 나는 최초 의 피자 마가렛따 피자를 먹었다. 그리고 캄파니아의 대 표 음료 레몬에이드를 마셨다. 캄파니아 주는 레몬으로 유명하다. 아까 식당에서 레몬도 생으로 먹어 봤더니 맛 있었다. 피자와 레몬에이드를 다 마시고 나서 항구로 돌 아갔다. 하지만 또다시 고비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바람 이 세게 불고 나폴리 까지 50분 이나 걸려서 문제가 생겼 다. 이번에는 뱃멀미가 너무 심했다. 심지어 구토 까지 했 다. 나폴리로 가는 길은 죽음의 길이었다.
  79. 79. 나폴리에 도착했으나 실망이 저절로 나왔다. 보이는 것은 이탈리아 인이 아니라 북아프리카 집시들 이고 건물들도 북아프리카 식 건물들 이었다. 집들도 낡았고 위험이 되 살 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폴리는 마피아 집단이 서식 하는 도시 이다. 나폴리 항구에는 드나드는 크루즈가 많 았다. 나폴리를 끝으로 해서 다시 호텔이 있는 피우치로 향했다.
  80. 80.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피렌체 하면 매디치 가문, 르네상스, 미 켈란젤로, 단테 등이 떠오르게 된다. 피 렌체는 중세의 암흑기를 닫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 매디치 가문의 도시이다. 중세시대 피렌체는 많은 사람들이 흑사 병으로 죽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굶주 리고 일찍 사람들이 죽었다. 크리스트 교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다 잡아서 마녀라고 화형 시켰다. 코지모 데 메디치는 중세의 암흑기를 닫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다.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 시대 이다. 메디치 가문 은 피렌체를 중심으로 하여 유럽의 중 세 암흑기를 닫고 새로운 시대를 열게 했다. 처음 메디치 가문은 봉건 시대때 성을 지을 물자를 담당하는 직책이었다. Florence
  81. 81. 이들은 성실히 일을 하여 많은 영주들 에게 주목을 받았다. 덕분에 돈이 많아져서 금융업을 시작하게 된 다. 이들은 12세기경 피렌체에 정착하여 금융업을 하게 되었다. 피렌체 뿐만 아니라 여러 이탈리아 도 시에 지점을 두어서 환전을 하거나 돈을 빌려주고 이 자를 받았다. 메디치 가문은 교황, 추기경 과 친하게 지내어서 교황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이후 신성 로마제국, 프랑스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 영국의 왕 과 귀족들을 상대로 환전을 하거나 돈을 빌려주었다. 이들은 성실히 일을 하여 많은 영주들 에게 주목을 받았다. 덕분에 돈이 많아져서 금융업을 시작하게 된 다. 이들은 12세기경 피렌체에 정착하여 금융업을 하게 되었다. 피렌체 뿐만 아니라 여러 이탈리아 도 시에 지점을 두어서 환전을 하거나 돈을 빌려주고 이 자를 받았다. 메디치 가문은 교황, 추기경 과 친하게 지내어서 교황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이후 신성 로마제국, 프랑스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 영국의 왕 과 귀족들을 상대로 환전을 하거나 돈을 빌려주었다.
  82. 82. 메디치 가문 의 전성기는 코지모 데 메디치 에서 로 렌초 데 메디치 시대였다. 코지모 데 메디치는 인문 학 사상을 부활시켰다. 그래서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 와 사상을 받아드려서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 낸 것이 다. 피렌체 인근에 플라톤 철학을 연구하는 연구소도 지어냈다. 이전 중세시대 에는 크리스트 교 사상 이 었지만 플라톤의 철학을 받아드린 것이다. 코지모 데 메디치의 손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는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여러 화가들을 양성 했는데 그 중에 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도나 텔로, 보티첼리 등이다. 보티첼리는 19세기 이전까 지는 잊혀진 인물이다. 이후 메디치 가문은 프랑스 왕가인 부르봉 왕가와 결혼하게 된다. 케서린 데 메 디치는 프랑스 황제인 헨리 4세와 결혼을 하여 왕비 가 된다. 케서린 데 메디치는 파리에 피렌체의 궁전 과 똑같은 모양의 궁전을 지었는데 이 궁전이 바로 튈르리 궁전이다. 이후 메디치 가문은 부유한 삶을 지내는데 1777년 메디치 가문이 사라지게 된다. 안 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가 자식을 낳지 않고 흑 사병으로 죽은 것이었다. 결국 메디치 가문은 존재 하지 않게 되었다
  83. 83. . 메디치 가문의 역사는 피렌체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먼저 메디치 가문의 역사를 미리 익힌 것이다. 피렌체에 도착해서 먼저 페루자 백화점에 갔다. 페루자 백화점은 한국에는 없지만 유럽에서는 인기 많 은 백화점 이다. 엄마는 이곳에서 270 유로 가죽 가방을 사셨고 나와 동생은 20유로 수첩을 샀다. 면세 혜택을 받아 10% 할인 받았다. 페루자 백화점은 볼 것이 많았 다. 이곳에는 한국인 관광객 들이 많이 왔다. 나도 원하 는 가죽 가방이 있었으나 너무 비싸고 어울리지 않아서 포기하고 백화점을 나왔다. 백화점을 나오고 나서 식당 으로 걸어갔다. 피렌체는 골목이나 건물들이 중세 풍 이었다. 그래서 피렌체는 시 전체가 유네스코 이다. 꼭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이탈리아로 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중세답게 더러웠다. 마차들이 많이 왕래해서 길 가에 만의 배설물이 많았다. 너무 불쾌하여 왜 중세시 대 때 더럽다고 한 이유를 알았다. 600년 전에 세워진 식당으로 갔다. 이 식당은 내가 유럽에 와서 제일 만족 한 식당 이었다. 건물은 메디치 가문 때 지어졌고 르네 상스식 건물과 벽과 천장에는 음식이 그려져 있어 입맛 이 좋아졌다
  84. 84. . 이탈리아 에서는 음식이 3가지로 나뉜다. 애피타이저 에서는 파스타 아니면 수프 가 나온다. 그 다음 에는 고 기나 생선 이 나오고 디저트 로는 맛있는 치즈나 과일 이 다. 이 식당에서는 먼저 스파게티가 나왔다.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매일 스파게티를 먹었지만 질리지 않았다. 이 탈리아 스파게티는 내 입맛에 매우 맞았다. 스파게티를 먹고 난 다음에는 토마토 소스에 버무린 닭고기가 나왔 다. 나는 이 음식이 제일 맛있었다. 부드러운 이탈리아 닭고기에 상큼한 이탈리아 토마토 소스가 섞여 있어서 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오랜지가 나왔다. 유럽의 어느 식당에서 후식으로는 오렌지를 먹었는데 색갈이 주황색 이 아닌 보라색 이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자몽으로 오해 를 하지만 먹어보면 오렌지 맛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먹 는 오렌지 보다 훨씬 더 수분이 많고 과일 맛이 좋았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서 출발했다. 피렌체는 정말 살기 좋은 도시인 것 같다. 더럽지만 않다면 말이다. 골목에서 빠져 나오니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이 나왔다. 피렌체 두 오모 대성당은 크기가 매우 컸다.
  85. 85. 특히 피렌체 대성당의 돔이 인상적이었다. 700년 전 피 렌체는 시에나 현과 경쟁이 심했다. 시에나 에서는 커다 란 성당으로 다른 도시에게 주목을 받자 질투가 난 피렌 체도 큰 두오모 성당을 짓기로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 다. 피렌체 대성당을 다 지었지만 지붕을 짓지 못한 것이 었다. 그리고 로렌초 데 메디치의 아버지인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때 로마를 여행하던 부 르넬레스키 가 내가 2일전 본 판테온의 돔을 이용하라고 했다. 돔 건설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피렌체 두오모 대성 당도 완공이 되었다. 그리고 성당 장식은 도나텔로가 담 당했다.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옆에 보니 작은 바위가 있었다. 바위에는 단테라고 써있었다. 바로 단테가 앉았던 바위 였다. 단테는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의 건축짓는 모습을 이 바 위에 앉았다고 한다. 700년 전인데 아직도 남아있어 참 으로 대단
  86. 86.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의 역사적 가치를 생각하며 소중히 관리하거나 보관한다고 한다. 그럼 우리 나라에는 정약용이 앉은 바위나 의자가 있을까? 하고 생각 해 보았다. 단테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뒤로하고 단테의 집으로 향했다. 천국의 문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단테의 집에 가보니 집이 생각보다 매우 컸다. 단테는 새 로운 사상을 내세운 사람이다. 중세시대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트교에 의존을 하다가 십자가 원정에서 소득
  87. 87. 없이 전쟁이 끝나거나 군인들이 약탈, 살인, 강도를 심하 게 하자 교황에게 신뢰를 잃게 된다. 단테는 세상을 바꾸 기 위해 새로운 사상을 담은 신곡을 쓰게 된다. 단테는 아 버지가 피렌체의 의장 이어서 부유하게 자랐다. 그래서 생가가 큰 것 같다. 단테는 교황파가 아닌 황제파에 들어 가자 교황파는 단테를 추격하게 된다. 단테는 결국 피렌 체에서 떠나게 되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을 떠돌게 된다. 그러다가 라벤나 에서 1321년에 숨을 거둔다. 단테 의 신곡 덕분에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고 중세 암흑기가 막을 내리게 된다. 단테의 생가
  88. 88.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단테,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바로 피렌체의 주인고 메디치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 의 중심지는 피렌체 이지만 피렌체 안에서는 피아짜 데 시뇨리아 이다. 피아짜 데 시뇨리아 은 메디치 가문 의 광장으로 피렌체의 교역 중심지 이자 르네상스 문 화의 중심지 이다. 바로 르네상스 최고의 미술관인 우 피치 미술관 이다. 우피치 미술관을 영어로 하면 office 이다. 바로 메디치 가문의 사무실에 아름다운 르네상스 예술품들을 전시해 두었다. 르네상스 작품 들을 보관할 곳이 없어서 메디치 가문이 자기의 사무 실에 전시해 둔 것이다. 우피치 미술관은 비수기 인데 도 사람들이 어마 어마 하게 많았다. 나는 시간관계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앞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 물을 상으로 만들어 전시해 져있고 베키오 궁전이 있 었다. 베키오 궁전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멋있고 웅장 했다. 베키오 궁전은 메디치 가문의 궁전이다. 지금은 피렌체 시청으로 쓰이고 있다. 피아짜 데 시뇨리아도 내가 가본 유럽의 광장 중에서 인상적으로 깊게 남는 광장이었다.
  89. 89. 피아짜 데 시뇨리아를 뒤로 하고 피렌체의 골목을 걸었 다. 피렌체 골목을 나오니 피렌체 구시가지에서 나오게 되었다. 아르노 강이 보이고 강 건너의 피렌체가 보였 다. 이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피렌체를 떠났다. 이제 어느 새 유럽여행도 2일 밖에 남지 않았고 내일이면 이탈리 아를 떠나게 된다. 여행도 점점 종말을 이어 가는 것 같 다. 내일을 물의 도시 베네치아 와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서 인스부르크와 독일 까지 갈 것이다. 아…. 참으 로 고단한 여정도 내일의 고비만 넘으면 끝이다. 베네 치아 인근 도시인 파도바에서 하룻밤 잤다. 피아짜 데 시뇨리아 베키오 궁전
  90. 90. 물의도시 베네치아 Venice 베네치아는 도시 대부분이 운하로 되어 있다. 대운하를 중심으로 여러 운하가 있 는데 섬도 수십 개 이다. 이곳은 북쪽의 게 르만 족을 피해 온 피난민들이 살았던 도 시다. 베네치아로 온 사람들은 이곳에 인 공으로 땅을 만들어 냈다. 만들어진 과정 을 보면 1. 바닷물이 빠질 때 육지에서 4KM 떨어 진 곳에 나무토막을 세운다. 2. 나무토막에 벽돌과 시 멘트를 쌓아 올린다. 이렇 게 되면 인공으로 섬이 생 긴다. 그리고 위에 건물을 쌓게 되어 베네치아가 생 기게 된 것이다.
  91. 91. 이후 베네치아는 눈부시도록 발전해 나아갔다. 비잔 티움 제국이나 발칸 반도 등과 교역을 했으나 세월이 지 나면서 멀리 아라비아나 페르시아, 원나라 등과도 무 역을 해 나가면서 베네치아는 부유해 진다. 베네치아 에는 3대 위인이 있다. 바로 마르코 폴로, 안토니오 비발디, 카사노바 이다.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의 전 성기 때 태어나서 원나라를 여행하게 된다. 마르코 폴 로의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이었다. 그러다가 교황에 게서 원나라 쿠빌라이를 만나고 오라고 해서 마르코 폴로는 원나라에 가게 된다. 원나라에 가서 원나라의 풍습을 적었는데, 이것이 동방견문록 이다. 베네치아는 그들의 부를 상징하기 위해 성당도 짓고 으리으리한 궁전도 지었다. 17세기에 들어서는 베네 치아가 쇠퇴하기 시작한다. 전쟁에 의해 항로를 잃고 상인들이 줄어들자 귀족들은 노는데 정신을 팔았다. 현재의 베네치아는 가라앉을 위기에 처해 있다.
  92. 92. 환경오염으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섬들이 가라앉 는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보는 베네치아는 이런 베 네치아 이다. 베네치아는 파도바에서 30분 거리였 다. 베네치아 신시가지에 도착해서 배를 타고 구시 가지로 가는 것이다. 내가 뱃멀미가 있지만 파도가 없어서 멀미하지 않고 갔다. 베네치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비발디 고아원에 갔다. 비발디는 어머니 와 아버지가 부자였지만 버려져서 고아가 되었다. 이 시대의 부잣집 아이들은 부모 에게서 벌임을 받 았다. 비발디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발디는 수도원 에서 지은 고아원에서 성장한 덕분에 신부가 되었 다. 하지만 자기가 음악의 재능이 더 뛰어나다는 것 을 알고 신부를 그만두고 작곡을 했다. 유명한 성가 나 우리가 잘아는 사계도 남겼다. 내가 좋아하는 작 곡가의 고아원에 가서 흥미로웠다. 지금은 고아원 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비발디 고아원 에는 사람 들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여행에서 머니 머니 해도 사람들이 많은 곳은 기분이 나쁘다. 비수기에 오길 잘한 것 같다. 이 비발디 고아원도 2달 후면 시 끄러워 질 것이 분명했다.
  93. 93. 비발디 고아원 에서 탄식의 다리로 향하였다 이 곳은 베 네치아 죄수들이 감옥으로 가 는 다리였다. 탄식의 다리만 건너면 바로 감옥이었다. 탄 식의 다리는 카사노바와 관련 이 깊다. 카사노바는 판사의 부인을 좋아 했는데 판사는 카사노바를 감옥에 가두기로 하고 재판도 하지 않고 카사 노바를 감옥에 가둔다. 카사 노바도 감옥으로 끌려갈 때 이 탄식의 다리를 건넜다. 탄 식의 다리는 죄수들의 탄식이 흘려 나오는 다리로 죄수들이 보는 마지막 베네치아의 모습 이다. 아니 마지막으로 보는 세상의 모습이다. 왜냐하면 이 감옥에서의 탈옥은 불가능 했다. 비발디 고아원 탄식의 다리
  94. 94. 하지만 카사노바는 밤에 안개가 짖은 것을 이용해 탈 옥을 한다. 그리고 카페에서 여유 있게 차를 마시면서 판사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의 내용을 보면 ‘당신은 재 판도 없이 나를 감옥에 가두었으니 나도 석방 받지 않 고 감옥에 나갔소’ 하고 적었다.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바 로 사자상 이다. 베네치아는 사자상을 흔히 볼 수 있었 다. 사자는 베네치아의 상징이다. 베네치아가 차지했 던 다른 지역인 곳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 눈에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성당의 탑 위에 있 는 황금상 이다. 이 황금상은 높이가 3M이고 더 놀라 운 것은 순금 24K로 만들어 졌다. 이 황금상이 베네치아의 부를 상징한다. 산 마르코 광장의 건물
  95. 95.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곤돌라를 탑승했다. 곤돌라 를 타고 광장 주위를 돌다가 광장 반대편 에서 하선 할 것이다. 곤돌라를 타고 바라본 베네치아는 화려했지만 물은 더러웠다. 그래도 곤돌라와 사공을 소유한다면 베네치아 에서도 살만 할 것 같다. 건물들도 멋있고 맛 있는 식당도 많고 큰 마트도 있어 살만 할 것 같다. 곤 돌라를 살펴보니 온통 검은색 이고 모양도 같았다. 곤 돌라를 타는 시간 만큼은 여유로웠다. 여유있게 곤돌 라를 타고 내려서 본격적 으로 산 마르코 광장을 둘러 보았다. 산 마르코 광장은 참 특이했다. 광장 뒤쪽에서 보면 성당이 가까워 보이고 반대로 성당에서 광장 뒤 쪽을 보면 멀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로 원근 법이 쓰인 것이다. 성당이 가까워 지게 하고 성당 밖의 세상은 멀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베네치아 곤돌라
  96. 96. 광장 옆을 보니 특이한 카페가 있었다. 이 카페에는 실내 악단도 있었다. 이 카페는 세계 최초의 카페였다. 무역을 하면서 원두를 알게 되었는데 원두를 갈아서 물이나 우유 에 타 마시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카페가 생긴 것이다. 그 리고 카사노바가 탈옥해서 판사에게 편지를 쓴 곳도 바로 이 카페였다. 나도 이곳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싶 었으나 시간이 안돼서 포기했다. 지도와 가면을 사고 수상 택시를 타고 갔다. 50분 정도 타고 갔다. 대운하를 횡단해 서 신시가지로 돌아가는 코스였다. 대운하를 보며 베네치 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수상택시를 타며 베네치아의 다 리와 궁전과 집을 구경했다. 뒤로 갈수록 궁전이 사라지고 서민들의 집들이 보였다. 베네치아 서민들의 모습도 한눈 에 볼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에서
  97. 97. 산 마르코 성당 산 마르코 성당 입구 사자상 수상택시를 타며 리알토 다리를 보았다.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의 상인들의 집합 소 같은 역할을 했다. 왜냐하 면 다리 안에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신선한 채 소나 과일 해산물을 판다고 한다. 나는 수상택시를 타며 보고 지나갔다. 리알토 다리
  98. 98. 베네치아의 궁전 수상택시를 타면서 45분쯤 달리자 대 운하 에서 나오더니 바다가 나왔다. 이곳에서 수상택시가 전력질주를 했 다. 비가 와서 파도까지 더해져서 스 릴이 넘쳤으나 나는 뱃멀미가 났다. 속도가 빠르고 파도가 있어서 너무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내 동생은 너 무 신난 모양이다. 수상택시 안에 들 어가 있어도 뱃멀미를 피할 수 없었 다. 10분 정도 달리다 보니 베네치아 항구에 도착했다. 이제야 한시름 돌 릴 수 있었다. 신시가지 에서 식사를 하고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오스트리 아로 가는 길은 신났다. 왜냐하면 나 는 오스트리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비록 6시간 정도만 있지만 그래도 흥 미로웠다.
  99. 99.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라면 음악이 먼저 떠오르 게 된다. 오스트리아는 음악의 나라로 불 릴 만한 도시이다.왜냐하면 하이든, 모차 르트, 슈트라우스, 슈베르트 등이 활약했 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활약할 수 있 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예술가 들이 알 프스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스 트리아 땅에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합스부 르크 왕가가 지원을 하거나 세계무대에 설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성로마 제국 시대로 내려간다. 합스부르크 왕가 는 12세기경 오스트리아로 내려와서 오 스트리아 제국을 세웠다. 오스트리아는 먼저 스위스를 얻었으나 스위스의 독립 운동 으로 스위스의 영향력을 Austria 국장
  100. 100. 잃어서 동유럽을 차지했었다.동쪽의 나라라는 뜻으 로 ‘와스터라이히 왕국’ 이라고 했었다. 이후 오스트 리아 왕국은 1529년과 1683년에 이슬람 세력인 오 스만 제국을 물리치자 오스트리아는 최 전성기를 맞 이한다.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발칸반도, 흑해지 역, 헝가리 등을 차지하여 유럽의 최 강자로 떠올랐 다. 이웃의 프랑스와 경쟁을 피할 수 없어서 나폴레 옹과의 전투에서 선전포고를 했으나 1806년 빈이 함 락된다. 그리고 프로이센과 전쟁을 했으나 패하게 된 다. 이를 지켜본 동유럽의 여러나라는 독립을 하려고 했다. 이를 막고자 한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헝 가리 제국을 세웠으나 동유럽의 나라들은 인정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했다. 오스트리아는 무력으로 동유 럽의 독립운동을 막자 세르비아의 청년은 오스트리 아 황태자를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1914년 6월 28 일, 사라예보에 도착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행 진을 하는데 세르비아 청년인 가브릴로 프린치프 가 총을 쏴서 황태자 부부를 암살했다.
  101. 101. 오스트리아 황제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이 전쟁이 바로 제 1차 세계대전 이다. 동맹국으로 오스 만 제국, 독일제국, 오스트리아 제국이 동맹국이 되었고 영국, 러시아, 프랑스, 세르비아, 미국 등이 연합군이 되 었다. 연합군이 승리하자 오스트리아는 지금의 영토가 되어 10배나 되는 영토를 잃었고 합스부르크 왕가도 몰 락하게 된다. 비록 예전의 영광은 세월에 묻히게 되었지만 내가 본 오 스트리아는 아름답고 화려하고 멋있는 나라였다. 그리고 훌륭한 음악까지 있으니 오스트리아는 작지만 강한 나라 인 것 같았다.
  102. 102. 바로크의 중심지 인스부르크 티롤주에 위치한 인스부르크는 바로크의 중심 도시였다. 인스부르크의 주변은 온 통 산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드디어 5일 만에 알프스를 찾게 되었다. 나는 스위스 의 알프스 모습과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모습을 비교하면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보습이 더 멋지고 아름다운 것 같다. 오스 트리아는 스위스 보다 여행하기 편했다. 왜냐하면 별로 지대가 높지 않았기 때문 이다. 먼저 인스부르크의 뜻을 알아보겠 다. 인스부르크의 Inns는 인강 이라는 뜻 이고 Bruck는 다리 라는 뜻이지만 성이 있는 곳을 말한다. 예를 들면 잘츠부르크 나 하이델베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베르크도 부르크와 같은 의미 이다. 인스부르크를 한국어로 바꾸 면 인강의 다리 라고 할 Innsbruck
  103. 103. 수 있겠다. 오스트리아의 골목을 지나자 마리아 테레지 아 거리가 나왔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은 합스부르크 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여왕이다. 그녀는 40년 동안 오스 트리아를 다스렸는데 그때가 오스트리아의 전성기였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은 16명의 딸을 낳았는데 그 중 가 장 유명한 인물이 마리 앙투아네트 이다. 마리아 테레지 아 여왕은 조카인 조세프를 양아들로 삼게 되고 왕권을 그에게 물려준다. 인스부르크는 참 아름다웠다. 바르크식 건물들이 많고 알프스도 멋있었다. 이곳은 티롤주로 오스트리아 에서 알프스를 가장 많이 차지한 주로 오스트리아 에서 알프 스를 흔히 볼 수 있는 주 이다. 먼저 황금지붕 부터 찾았 다. 오스트리아 에서는 자유관광 이어서 자유롭게 인스 부르크를 둘러보았다. 황금지붕은 말 그대로 지붕이 황 금색 이었다. 아쉬운 것은 베네치아 처럼 순금이 아닌 것 이 아쉬웠다. 지금은 고급 아파트로 이용하고 있다.
  104. 104. 그 다음은 성 야곱 성당 이다. 성 야곱 성당으로 가는 길 은 골목을 지나야 했다. 표지판이 독일어로 되어 있어 서 다른 사람들은 포기했지만 나는 독일어 표지판을 의 존하며 골목을 벗어났더니 성 야곱 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좀 독일어의 감각이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이 일로 독일어를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해 봤다. 성 야 곱 성당은 1717년에 짓기 시작하여 1724년에 지어졌다.
  105. 105. 성 야곱 성당 안에 들어가 보니 아주 화려했다. 황금색 제 단과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고 안은 온통 바로크 식 으로 되어 있었다. 분홍색 대리석과 흰색 대리석이 멋지게 조 화를 이루어 낸 것 같았다. 성 야곱 성당은 내가 가본 성당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에서 하나가 되었다. 성 야 곱 성당이 6시에 문을 닫아서 빨리 보고 나왔다. 나오기 전에 0.5유로 하는 양초에 불을 켜서 소원을 빌었다. 내가 빌었던 소원은 바로 오스트리아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소 원이었다. 성 야곱 성당에서 나와서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를 둘러 보았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중앙에 탑이 있었는데 이 탑은 흰색의 대리석 으로 되어있었고 이름은 안나 기념 탑 이다. 안나 기념탑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오스트 리아가 바이에른 군을 물리친 기념으로 세워진 기념탑이 다.
  106. 106. 안나 기념탑을 지났더니 트렘이 보였다. 유럽에는 트렘 이 많았다. 우리나라에도 트렘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모차르트 기념품을 사러 갔다. 모차르트는 이곳이 고향이 아니지만 모차르트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나 는 기념품 점에서 인스부르크 엽서와 모차르트 상반신 상을 샀다. 오스트리아의 전통 의상을 보기 위해 인스부르크의 전 통의상 집을 찾았다. 중절모는 둥근 모양이고 깃털펜을 달고 있었다. 코트와 부츠가 마음에 들었으나 너무 짐이 많아져서 사지 못했다. 인스부르크로 향했다. 인강이 매우 거칠고 물살이 강했 으나 이런 강한 강줄기를 인스부르크가 막고 있었다. 나 는 색이 청색일줄 알았는데 의외로 갈색 빛 이었다. 이제 인스부르크 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차를 타러 이동 했는데 고급 호텔이 보였다. 이곳에 모차르트 이름이 써 있었다. 모차르트의 흔적을 찾아서 좋았다. 이것으로 인스부르크, 오스트리아 여행을 마쳤다. 이제 알프스 넘어 독일 국경을 넘었다.
  107. 107. 게르만의 나라 독일 독일은 우리나라와 같이 분단 되었던 나라이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되었 고 전쟁을 일으킨 대가로 분단이 되었다. 서독은 자유 민주주의 사회이고, 동독은 사회 민주주의 사회가 되었다. 서독은 동 독보다 훨씬 더 발달이 되었다. 그런데 반 대로 동독은 너무 가난했다. 동독 사람들 은 대이동을 했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갔다. 서독 총리인 헬무트 콜 총리 는 독일을 통일 시키기로 했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통일이 되 었다. 독일은 나에게 마음에 드는 나라이다. 왜 냐하면 독일제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 제 는 품질이 매우 우수하고 고급스럽기 때 문이다. Deutschland
  108. 108. 그리고 독일과 한국은 가까운 사이이다. 한국이 유럽에 서 가장 친한 나라는 독일이다 서로 130년 전부터 수교 를 맺어왔다. 독일은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 바로 나치의 히틀러 때문 이다. 당시 나치를 지지한 독일 국민은 90%라고 한다. 하지만 독일은 이를 반성하고 피해를 입은 나라들 에게 보상을 해서 이런 치욕스러운 역사를 잘 정리했다. 반면, 일본은 어떤가. 우리에게 보상하지도 않고 독도를 자기 내 땅으로 여기고 위안부 문제도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독일은 이러한 문제와 역사를 정리 했기에 이러 한 독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어른들 이라면 독일을 싫어할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 면 신선한 맥주와 소시지, 치킨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역사는 매우 복잡하다. 괴테가 말하길 독일 역사를 어디 서 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독일은 로마의 지배 를 받은 이후 신성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영 주들 에게 여러 나라로 갈라졌다. 그 중 프로이센은 비스 마르크 라는 재상이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109. 109. 1870년 프랑스 파리까지 함락시킨 영웅 이었다. 그리고 1871년 에는 독일을 통일 시켰다. 독일은 겨우 하루밖에 있지 않고 마지막 나라이다. 마지막 도시인 하이델베르크 여행을 시작하겠다.
  110. 110. 대학의 도시 하이델베르크 Heidelberg 하이델베르크는 독일의 대학도시중 하나이다. 하이델베르크는 유서 깊은 유적지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구교와 신교의 전쟁인 30년 종교전쟁이 치열 했던 도시였다. 하이델베르크성의 내 부는 완전히 사라졌고 도시가 온통 폐허가 되었다. 다행히 17세기에 마 을을 복원했다. 아우크스부르크 에서 하룻밤 자고 아 우토반을 타고 하이델베르크로 향했 다. 하이델베르크 까지는 3시간 거리 였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해서 먼저 구다리에 갔다. 이 구다리는 라인강 의 지류인 네타르 강 이었다. 구다리 를 바치는 기둥에 자 같은 것이 있었 는데 매우 오래되 보였다.
  111. 111. 네타르 강에 홍수가 날 때 측정해 둔 것이었다. 구다리 앞에는 조각상이 있었다. 원숭이 같았는데 이 원숭이 상에 머리를 넣고 엄지를 맞대었다. 그러면 좋은 대학 교에 갈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좋은 대학교에 갔으면 좋 겠다. 이제 시청 쪽으로 향했다. 시청으로 가는 길은 골 목길 이었다. 독일의 골목을 보니 진짜 독일에 온 것 같 았다. 골목을 벗어났더니 교회와 시청이 보였다. 내가 있는 시청 앞 광장은 무시무시 한 곳 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화형을 했기 때문이다. 정말 끔찍했다. 구다리 구시가지 시청 앞 광장
  112. 112. 성령교회 하이델베르크 고성 뒤에 보이는 교회는 성령교회 이 다. 성령교회는 종교전쟁 이후 구교가 차지했다. 하지만 나중에 는 이 성령교회를 신교가 차지했 고 이후에는 신교가 반을 차지하 고 구교가 반을 차지했다. 지금 은 신교가 다 차지하고 있다. 성 령교회는 매우 크고 로마네스크 양식 같았다. 언덕 위에 있는 하이델베르크성 은 외관만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안에는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30년 종교전쟁으로 성 내부가 약탈되어서 이다.
  113. 113. 유럽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먹고 독일제를 보기 위해 백 화점을 찾았다.이 백화점 안에는 온통 독일제 이었다. 독일제 이 백화점은 매우 친근했다. 간판에 독일어가 아닌 한국어로 ‘백화점’ 이라고 써져 있었다. 스테인리 스로 만들어진 포크와 숟가락, 메탈비누, 냄비 등이 있 었고 인덕션, 비타민, 포도당, 믹서기, 접시 등이 있었다. 이곳 에서는 중국산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나라에도 독 일제가 많았으면 좋겠다. 이제 자유롭게 구시가지를 둘러 보았다. 이곳에서 맥주 와 와인들 맛보았다. 와인은 트리어 와인 이었고 맥주 는 어딘지 몰랐지만 독일맥주 이었다. 구시가지를 둘러보면서 새로운 것도 맛보았다. 바로 사 과 칩 이다. 사과 칩을 파는 곳을 가 보았더니 사과 술, 사과 주스, 사과 잼, 사과 쿠키, 사과 시럽이 있었다. 봉 지마다 Apfel이라고 써져 있었다. 독일어로 Apfel이 사 과이기 때문이다. 몇 일전 파리에서는 La pomme이라 고 써있었는데 프랑스어 로 사과이었다. 사과가게에서 사과 칩과 스파게티 면을 샀다. 스파게티가 값이 한국 에 반값이었다.
  114. 114. 슈퍼마켓에 가서 반 친구들에게 줄 초콜릿을 샀다.그 리고 음료, 치즈, 햄을 사고 광장으로 돌아갔다. 이제 독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시지를 사먹었 다. 독일 소시지는 한국의 소시지와 비교가 되지 않 았다. 머스타드 소스도 맛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꿀 을 넣는데 독일에서는 오리지널로 먹었다. 나는 이 맛이 더 맛있던 것 같다. 이제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이동했다. 11일전에 유 럽에 온 지 어제 같았는데 여행을 한 사이 시간이 빨 리 간 것 같았다. 괴테의 고향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행 을 목적으로 온 곳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려고 온 곳이었다. 하이델베르크 에서 1시간 정도 갔더니 프 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에 빨리 도착해서 비행기 자리를 잡으려고 했으나 독일 인 승무원은 자리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인 승 무원에게 잡아달라고 하자 자리를 잘 잡아주었다. 독 일인 보다 한국인이 더 친절한 것 같았다.
  115. 115. 프라크푸르트 국제공항은 한국보다 작았다. 유럽에서 제 일 큰 국제공항 이라고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됐다. 출국장 에 들어갔다. 그런데 면세점이 매우 작았다. 인천공항에 반도 안 되는 크기였다. 그래도 볼 것은 많았다. 유럽의 사탕, 초콜릿, 과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포장도 매우 고급스러웠다. 하지만 나에게 더욱더 눈길을 끌게 되는 초콜릿도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의 모습 이제 면세서류를 작성했다. 덕분에 부가가치세를 돌 려받았다. 유럽연합의 국민이 아니면 돈을 돌려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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