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deShare a Scribd company logo
1 of 48
Download to read offline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홍승갑 주소 경기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 현인농원 
전화번호 010-2967-8898 이메일주소 http://pajukoko.com(031-952-8989) 
1. 품목명 *(파주 현인닭) 
2. 품목에 대한 설명* 
현인닭은 경기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 현인농원의 홍승갑(74) 대표가 1983년부터 국립축산과학원 정선부 박 
사와 함께 시작한 한국재래닭보존회를 중심으로, 축산원 시험장 종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면서 복원된 
한국의 재래닭이다. 
현재 1,000마리 15개 색상의 재래닭 복원에 성공한 현인농원은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지정한 가 
축유전자원(재래닭) 관리농장으로, 조상들이 기르던 우리 고유의 재래닭을 복원·유지하여 많은 사람들이 재 
래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보존·연구하는 농원이다. 2009년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았고, 한닭의 개량 사업 
참여한 전국의 6개 농장중 하나이다. 
홍 대표는 명나라때 저술된 의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기록된 한국 중부닭의 우월성을 접하고, 국립축 
산과학원에서 20여가지 재래닭에 관한 기록을 접하면서 본격적인 재래닭 복원에 나섰다. 그는 재래 닭을 
복원한 공로로 ‘2013년 경기도 최고’의 인물로 선정됐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는 재래닭의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래서 재래닭의 품종이나 
종류, 색 등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기록으로 남아있는 재래닭의 색상은 20여종이다. 그중 홍 대 
표가 복원한 색은 적(황)갈색, 흑색, 백색 등 모두 15종이다. 
현인농원은 흑색의 닭을 복원,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UN FAO)의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DAD-IS)에 ‘현인흑 
계’로 등재되는 성과를 올기도 했다. 
현인농원은 보통 10~20%의 확률로 다른 색의 닭이 나올 수 있는데, 농원은 그런 확률로 나온 소수의 닭을 
정해 놓고 키우기를 반복하면서 그 색의 유전 확률을 70~80% 확률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져서 결국 한 가지 색으로 고정하는데 약 10년이 걸렸다. 
현인농원은 색이 섞일까봐 1.5~2평 기준으로 10마리씩 닭을 사육하며, 닭장에서 한 번 나간 닭을 약 20일 
동안 격리해서 키우는 현인농원은 토착균을 배양해 쌀겨 등을 발효시킨 후 사료와 먹이는 전통방식의 유기 
농법만을 고집한다. 
현인닭은 면역력이 강하고 건강해 조류독감을 비롯한 질병피해가 없었을 뿐 아니라 닭을 사육하는 다른 농 
원과 달리 계사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현인농장은 20가지 재래닭을 복원해서 관상용으로 재래닭을 보급하고, 20년간 모은 300여점의 민속품들과 
50마리의 재래닭 박제들을 활용해서 재래닭 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현인농원의 주 수익원은 재래닭과 유정란 판매다. 개량된 닭은 병아리에서 3개월이면 성계가 되는데 비해 
재래닭은 4개월에서 5개월이 걸린다. 산란용 닭은 매일 알을 낳아 연간 300개 이상 생산이 가능한 반면, 
재래닭은 연간 생산량이 100~150개에 머무르며 그것도 번식기(3월~6월)에만 치우친다. 770여 평, 4동의 계 
사를 홍 대표와 그의 아내 김두희씨가 함께 관리하고 여기서 낳은 유정란을 한 알 한 알 정성들여 닦고 번 
호를 매겨 직거래하고 있다. 
3. 품목의 역사 
현인닭은 홍승갑씨에 의해 복원된 우리의 토종닭이다. 홍 씨는 1983년 이래로 현인농장주로 한국 토종닭 
보존위원회 창립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국립 축산과학연구소와 협력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국내 축산자원보존농장으로 지정된 현인농장은 20여가지 토종닭 품종가운데 15가지를 복원했다. 
이중 현인흑계는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등재됐다. 현인농장에서 복원한 토종 닭은 대외적으로 현인닭으로 
알려져 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전국)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경기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제한적인 유정란 직거래)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현인농원은 까다로운 재래닭 복원에 주력하고 있는 만큼, 이를 물려받고자하는 후계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홍 씨 부부의 나이가 일흔을 넘기면서 지속적인 농장관리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재래닭 복원 농장인 현인농원의 미래가 그만큼 불투명하고 복원된 재래닭 15종의 앞날 또한 밝지 
만은 않은 실정이다.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임은주 주소 충남 논산시 광석면 천동2길7 
전화번호 010-2988-8986 이메일주소 olim8986@naver.com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 어육장 漁肉醬 ) 
2. 품목에 대한 설명* 
'어육장'은 큰 독에 잘 말려 손질한 고기와 생선을 메주 사이에 켜켜이 넣고 소금물을 부어 밀봉한 후 1년 
간 발효시킨 장(醬)으로, 궁중 장으로 알려져 있는 전통 장이다. 
조선시대 궁궐에서 담그던 전통 된장·간장인 어육장의 제조과정을 살펴 보면, 우선 된장을 담글 때 쇠고기 
와 닭고기, 꿩고기, 도미·조기·병어·민어 등 흰살생선을 꾸덕꾸덕 말려 넣는다. 고기와 생선이 자연스럽게 배 
어 맛과 향이 보통 된장·간장과는 전혀 다르다. 어육장은 단백질 함량이 높은 고급 장으로,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고기를 따로 넣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어육장은 기존 재래식 간장과는 달리 맛과 향이 풍부하고 개량식 간장보다 영양이 훨씬 더 풍부하다. 
어육재료를 첨가해 고소하고 감칠맛이 날 뿐만 아니라, 인공조미료 대신 천연의 다양한 전통 식재료를 사 
용해 웰빙 트렌드에도 부합한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010년 1월 27일 조선시대부터 궁중이나 서울 양반가에서 주로 이용했던 고급스런 장의 
대표격인 어육장을 3대째 계승 발전시켰으며 특히 1999년부터 상품화를 통해 어육장의 제조기술 확립과 
장류의 산업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권기옥(상촌식품/용인)씨를 명인 증서를 교부했다. 
전통음식 연구가 박한재(의왕) 씨는 독특한 맛과 향의 어육장을 선보여 2009년 8월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기능성 농식품 베스트 10’에서 대상을 받은데 이어, 그 해 9월 농림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그는 어릴 적 고 
향 경남 고성에서 어머니가 사골로 장(육장,肉醬)을 담는 것을 봤던 경험을 살려 어육장을 복원했다. 
충남 논산의 임은주(해담골/논산)씨는 젓갈로 유명한 강경포구가 있던 강경읍 일원과 연무읍, 광석면 천동 
리 등지에서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다양 젓갈과 같은 어장(漁醬), 그리고 꿩과 같은 날짐승을 
잡아 푹 고은 다음 된장에 박아넣어 삭혀 먹던 육장(肉醬) 풍습을 되살려 어육장을 안전하게 발효·숙성시킬 
수 있는 장독대를 개발해 지난 2013년 11월 소상공인진흥원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임 씨는 신속하고 간편한 패스트푸드가 손이 많이 가고 긴 시간을 요구하는 전통음식들을 빠르게 대체해 
가는 요즈음, 소중한 전통음식과 조리법들이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까워 지역의 주부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어육장 장 담그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3. 품목의 역사 
어육장은 큰 독에 잘 말려 손질한 고기와 생선을 메주 사이에 켜켜이 넣고 소금물을 부어 밀봉한 뒤 1년간 
발효시킨 조선시대 서울의 양반들이 주로 이용했던 반가식품으로 조선후기 유일의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 
씨(憑虛閣 李氏, 1759∼1824, 영조 35년~순조 24년)가 저술한 생활경제 백과사전 《규합총서(閨閤叢書)》에 
‘그 맛이 아름답다’고 기록돼 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전국)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경기 용인·의왕, 충남 논산)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음)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어육장은 고급 식재료를 사용하는 귀족 음식으로 서민들이 쉽사리 접하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그만큼 어육 
장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이가 적었다. 옛 문헌에는 어육장이 소개돼 있으나 정확한 조리방법은 전해 
지지 않고 있다. 조리과정이 까다로와 보편적인 음식으로 자리잡지 못했으며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과정에 
서 그 원형이 계승되지 못해 현재 어육장을 제대로 담그는 이가 소수에 그치고 있다. 
어육장은 농수축산물을 발효시켜 얻은, 일반 장류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훌륭한 기능성 식품이다. 하지만 
생선과 고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 상온에서 발효하는 장류와는 달리 발효과정이 까다롭다. 온도변화가 
크지 않은 땅속에 묻어두고 저온으로 오랜 기간 숙성을 시켜야 하는 탓에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이 크다. 이 
런 이유들로 대를 이어 어육장을 생산하려는 이들이 줄어들고 어육장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있다.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한귀숙 주소 경북 울릉군 북면 나리 187번지 
전화번호 010-4744-4643 이메일주소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 울릉 홍감자 ) 
2. 품목에 대한 설명* 
울릉홍감자는 쌀을 대신해 지역주민들의 끼니를 해결해준 토종 먹거리다. 
울릉지역은 예로부터 쌀을 비롯한 곡물 재배가 어려워 옥수수로 밥을 지어 먹기도 했고 감자를 주식으로 
이용해 왔다. 옥수수만큼이나 감자를 이용한 음식이 매우 다양하다. 
1883년 울릉도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한 이래 홍감자는 양감자, 돼지감자 등과 더불어 지역주민들이 
주로 재배하던 작물이었다. 
울릉의 홍감자는 개량 감자보다는 크기가 적고 붉은 빛을 띤다. 삶으면 입자가 매우 부드럽고 치밀해서 그 
맛이 매우 뛰어나다. 곡물이 귀했던 지역의 특성상 울릉 주민들은 감자를 쌀이나 밀가루 대용으로 사용해 
서 송편이나 인절미 등 전통음식을 요리하는 식문화를 이어왔다. 
울릉지역 주민들은 예로부터 감자 녹말에 소금을 넣어 반죽한 다음 반죽을 빚어 감자송편을 만들어 먹었는 
가 하면 호박, 고추와 함께 감자를 갈아서 불에 익혀 먹는 감자부침, 감자녹말을 반죽해서 만든 새알심을 
팥죽에 넣어 먹기도 했다. 또한 삶은 감자를 절구에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춰 찰지게 찧은 다음 먹기 알맞 
게 떼어내 팥고물을 입힌 감자인절미를 만들어 먹었다. 
3. 품목의 역사 
감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불과 18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 
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순조 24년인 1824~1825년에 관북지역인 만주에서 처음 전해졌다. 1862 
년에 쓴 김창한의 〈원저보(圓藷譜)〉에 의하면 순조 32년에 전라도 해안에 영국 상선이 표류했다. 이 상선에 
타고 있던 네덜란드 선교사가 감자의 종자와 재배법을 전했다고 한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감자는 우리 식탁에 빠르게 보급되었다.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은 칡뿌리, 토란, 도 
라지, 인삼 등의 뿌리식물이 일상식뿐 아니라 의약재로 이용되어 왔기 때문에 뿌리식물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었다. 흉년때 감자는 밥과 반찬을 대신했다. 감자는 가난의 고통을 함께 나눴던 중요한 작물로 자리 
를 잡았다. 산이 많아 논농사를 짓기 힘든 강원도 등지에서는 감자가 주식이었다. 
홍감자는 양감자, 돼지감자, 자주감자 등과 함께 울릉도를 비롯한 전국에 걸쳐 자생하거나 재배되었으나 국 
가에 의한 개량종 감자 보급이 활발해지면 점차 사라졌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울릉도)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울릉도)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습니다)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교통수단이 발전하고 내륙지방과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울릉의 토종 감자는 사라져 갔다. 또한 감자를 이용 
해 인절미나 송편을 만들어 먹는 전통 식문화 또한 잊혀져 가고 있다. 현재 울릉의 전통 감자요리는 몇 
안되는 가정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한귀숙 주소 경북 울릉군 북면 나리 187번지 
전화번호 010-4744-4643 이메일주소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 울릉옥수수엿청주 ) 
2. 품목에 대한 설명* 
울릉옥수수엿청주는 지역의 토종 옥수수를 이용해서 주민들이 즐겨운 전통주이다. 
울릉지역은 예로부터 쌀을 비롯한 곡물 재배가 어려워 옥수수로 밥을 지어 먹었다. 그만큼 옥수수가 다양 
하게 이용됐다. 울릉의 토종 옥수수는 빛깔이 진노란 황금색을 띠어 보기에 매우 좋다. 
쌀이 귀했던 울릉도 지역 주민들은 이 옥수수를 이용해서 막걸리, 청주 등을 담았다. 
울릉옥수수엿청주를 만드는 방법은 옥수수 낱알을 훑어내서 맷돌이나 분쇄기를 거쳐 분말을 만든 다음, 하 
룻밤 물에 넣어 불린다. 이런 다음 옥수수 죽을 쑤어 식힌 다음 엿기름에 섞어 넣는다. 그리고 나서 불을 
지펴 2/3가량 남을 정도로 달인다. 이렇게 달여낸 뒤 식힌뒤 누룩을 집어넣어 술을 담근다. 계절에 따라 다 
르지만 보통 열흘이 지나면 술이 완성된다. 
울릉옥수수엿청주는 단 맛이 느껴지면서도 순하고 부드러워서 남녀노소할 것 없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3. 품목의 역사 
예로부터 전해내려 오는 지역 민요인 울릉도 아리랑 노랫말에 등장할 정도로 옥수수엿청주는 쌀이 귀한 울 
릉도에서 지난 100년간 지역 주민들이 즐겨온 향토 술이다. 
“옥수수 엿 청주(淸酒)에 흑(黑)염소 고기 꾸어놓고 혼자먹기 하도 심심해서 산(山)고랑이 처녀(處女)가 나를 
농락(籠絡)하네”(울릉도 아리랑 7절, 사동 김재조)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울릉도 나리분지 )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울릉도 나리분지 )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장에서 판매되지는 않습니다. 주문식 소량 생산)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교통수단이 발전하고 내륙지방과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울릉의 토중 옥수수는 사라져 갔고 옥수수를 이용해 
술을 빚는 일도 잊혀져 가고 있다. 현재 울릉 옥수수엿청주는 몇 안되는 지역주민이 가정에서 담그고 있을 
정도다.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장병태 주소 경북 울릉군 울릉읍 간령길 83-68 울릉군농업기술센터 
전화번호 010-7941-5154 이메일주소 jbt5154@korea.kr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 울릉손꽁치 ) 
2. 품목에 대한 설명* 
울릉도 근해는 예로부터 꽁치가 많이 나기로 이름난 곳이다. 늦봄철이면 몰려드는 꽁치떼에 가려 어부들이 
다른 생선을 잡기 어렵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울릉손꽁치는 울릉 주민들이 뗏목을 만들어 바다에서 꽁치를 손으로 잡는 전통어업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해마다 5월쯤 꽁치가 산란기를 맞아 알을 낳으러 울릉도 근해를 찾는다. 꽁치는 산란을 하기 위해 해초 속 
으로 몰리는데 이 때 뗏목을 탄 어부가 손을 내밀어 꽁치를 잡는다. 마땅한 해초가 없을 경우 어부들은 꽁 
치가 즐겨 찾는 몰이란 해초를 준비해서 물위에 올려놓고 꽁치를 유인한다. 
이렇게 잡은 꽁치는 산란철 살집이 오른데다, 그물이나 낚시로 잡은 생선보다 스트레스가 덜해서 맛이 매 
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릉주민들은 꽁치를 바다에서 잡는 즉시 젓갈을 담아 먹었다. 울릉 꽁치젓갈은 김치의 식재료나 밑반찬으 
로 널이 이용됐다. 뿐만 아니라 울릉의 손꽁치는 물회는 물론 다양한 지역의 식재료로 쓰였다. 꽁치를 곱게 
따져서 경단을 빚고 이것을 떡국에 넣어 먹기도 했다. 가축이 적었던 지역에서 꽁치는 축산물을 대신하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3. 품목의 역사 
섬이라는 지역적인 특수한 여건으로 인해 울릉지역은 예로부터 수산업이 지역주민들의 주된 소득원으로 자 
리해 있다. 울릉꽁치는 오징어와 함께 대표적인 지역의 수산자원으로 오랫동안 울릉도의 특산자원으로 자 
리해 왔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울릉도 근해 )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울릉도 )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울릉도 내부 소비)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몇 년전만 해도 울릉지역에선 꽁치가 많이 잡혔으나 최근 동해에 걸쳐 전반적인 어족자원 감소현상으로 인 
해 생산량이 급격히 줄고 있다. 실제로 내륙지방에서 사용하는 꽁치의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런 현상은 울릉도에 까지 영향을 미쳐 올들어 꽁치가 거의 잡히지 않았다. 해양수산부는 울릉도를 포함한 
동해에서 올해 꽁치가 거의 잡히지 않았다면서 이것이 장기적인 추세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최수호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234-46 남양주농업기술센터 
전화번호 010-8279-7983 이메일주소 csh386@korea.kr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 청실배 ) 
2. 품목에 대한 설명*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18번지에 자리한 1997년 12월 30일 천연기념물 386호로 지정된 마이산 청실 
배 나무는 조선태조 이성계가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이산 청실배나무는 일명, 아그배 또는 독배라고도 
하는데 꽃은 4월 중순경 만개하며 그 열매는 일반 배와는 달리 작으며 푸른 색을 띤다. 
기원전 2~3세기 삼한시대이후 사람들은 산에서 자라는 돌배를 집에다 옮겨 심었고, 돌배는 과수로 자리매 
김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돌배나무 중에서 특히 맛좋은 열매가 달리는 나무를 골라 심고, 청실배 
나무란 새로운 이름을 붙여 아껴왔다. 
전북 진안에 오랜 전설을 간직한 청실배나무 한 그루가 용케 살아남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간신히 명맥 
을 이어가고 있다. 키 15m, 가슴높이 줄기 둘레가 2.8m에 이른다. 흔한 고목 품새처럼 옆으로 퍼진 것이 
아니라 솟아오른 마이산과 경쟁하듯 훌쩍 큰 키로 자라고 있다. 봄날이면 수십만개의 하얀 꽃을 뒤집어쓰 
고 가을이면 주먹크기의 배가 달리는 어찌 보면 평범한 배나무처럼 보일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 
는 유일한 청실배나무다. 전국에 걸쳐 자라던 청실배나무는 서양 문물과 함께 들어온 ‘개량 배’에 밀려 사 
라겨 깄다. 다행히 남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전북 진안에서 살아남은 셈이다. 
둥그스름한 바위 덩어리 두 개가 커다란 산을 이루는 마이산 자락에 은수사란 자그마한 절이 있고, 그 앞 
마당에서 이 귀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청실배나무가 자라는 곳은 산 밑에서 꼭대기로 바람이 불 때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여름에 
는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잎들이 서로 마찰하여 만들어내는 소리는 신비감마저 준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나무 밑동에다 물 담은 그릇을 담아두면 아래에서 위로 곧추서는 역(逆)고드름이 생기기도 하는 특별한 나 
무다. 
3. 품목의 역사 
청실배의 유래는 멀리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먼 옛날 산에서 그냥 따먹기만 하던 돌배는 삼한시대 
부터 집 주위에다 한두 포기씩 심으면서 과수로 자리매김을 해나갔다. 
고전소설 춘향전에 보면 이도령이 춘향이 집을 찾아가 첫날밤을 치르기 전, 월매가 장만해준 산해진미 주 
안상에는 여러 과일이 올라와 있다. 열녀춘향수절가에는 ‘청슬이’, 이고본(李古本)춘향전에는 ‘청술레’라고 한 
과일이 바로 청실배(靑實梨)다. 300여년 전까지 이도령도 춘향이도 즐겨 먹던 청실배나무는 지금은 남원 땅 
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서울에서 남원까지 우리나라 곳곳에 널리 자라던 청실배나무가 개량배에 떠밀려 멀리 진안 땅에 살아남게 
된 데는 이성계와의 깊은 인연 때문이다. 서기 1380년 전북 운봉의 넓은 들에는 이성계가 이끄는 군사들의 
화살에 수많은 왜구의 시신이 쌓여갔다. 몇년째 왜구의 침입으로 남부지방이 쑥대밭이 되도록 당하기만 한 
조선관군은 그들의 노략질에 종지부를 찍고 대승을 거두는 순간이다. 개선장군이 된 그는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수도 개경으로 향한다. 훗날 임금이 될 디딤돌을 마련한 그는 예견이라도 한 듯이 곧장 내다르지 
않고 명산 마이산으로 들어갔다.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끝낼 무렵, 은수사 마당에 청실배나무 한 그루를 심 
고 이곳을 다녀갔다는 증표를 남긴다. 나라를 일군 이성계가 손수 심었다니 조선왕조 내내 보호받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흘러간 620년 세월을 나이테에 묻어두고 새 천년을 다시 살아가고 있다. 
서양 문물과 함께 들어온 ‘개량 배’에 밀려 사라진 청실배는 다행히 남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전북 진안에 
오랜 전설을 간직한채 한 그루가 용케 살아남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둥 
그스름한 바위 덩어리 두 개가 커다란 산을 이루는 마이산 자락에 은수사란 자그마한 절이 있고, 그 앞마 
당에서 이 귀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 서울 경기 충청 전라 )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전북 진안)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판하지 않습니다)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서울에서 남원까지 우리나라 곳곳에 널리 자라던 청실배나무는 서양 문물과 함께 들어온 ‘개량 배’에 밀려 
사라졌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 자락 은수사 앞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청실배나무 한그루가 유일하다.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최수호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234-46 남양주농업기술센터 
전화번호 010-8279-7983 이메일주소 csh386@korea.kr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 남양주 먹골 황실배 ) 
2. 품목에 대한 설명* 
‘먹골배’로 이름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자리한 남양주 먹골 황실배나무는 조선시대때 주로 기르던 청실배와 
다른 품중으로 조선후기 황실에 진상하는 토종배 나무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정순왕후 묘앞 
에 심겨진 남양주 먹골 황실배는 조선 6대 왕인 단종비인 정순왕후의 제사를 위한 배를 얻고자 심은 배나 
무로 토종이며 병해충에 매우 강하다. 가을에 익는 남양주 먹골 황실배는 단맛이 매우 강하며 배과실이 황 
금색 빛을 띠고 있다. 남양주 먹골 황실배는 조선시대말 고종때 황실에 진상되던 품종이다. 
1456년 세조3년 세조(수양대군)가 사육신을 숙청하고 이듬해 단종을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낼 때 수행했 
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관직을 그만두고 지금의 서울 중랑구 묵동지역인 먹골에 심은 배나무가 번식해서 사 
방으로 퍼져나간 먹골배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1930년대 지금의 묵동에서 신내동,남쪽으로는 중화동, 상봉 
동, 남양주 일대에서 생산한 배를 가리킨다. 
오늘날 서울에서 남양주에 이르는 먹골배 생산지에 남아있는 토종배는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산 65번지 
에 자리한 남양주 먹골 황실배가 유일하다. 오늘날 먹골배란 낱말은 남양주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자리한 
먹골(묵동)이라는 지역에서 생산된 배를 지칭하고 있다. 먹골지역에서 생산하던 배 품종은 일제강점기를 거 
치면서 교체되기 시작해 오늘날 개량종배 품종인 신고로 대체됐다. 
3. 품목의 역사 
우리나라의 배 재배는 삼한시대와 신라의 문헌에 배에 관한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에 배 재배를 장려했다 
는 기록을 보면 배에 관한 역사는 길다. 
또 품종분화도 오래전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이며 기록상 허균 (AD. 1611)의 저서인 도문대작 (屠門大嚼) 
에 5품종이 나오고, 19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완판본 춘향전에서는 청실배 (靑實梨)라는 이름이 나오며 구한 
말에 황실배 (黃實梨),청실배 (靑實梨) 등과 같은 명칭이 있어 일반에게 널리 재배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1920년대의 조사에는 33품종에 달하는 학명이 밝혀진 재래종과 학명이 밝혀지지 않은 26품종이 기재되어 
있다. 이들 재래종 배의 명산지로는 봉산, 함흥, 안변, 금화, 봉화현, 수원, 평양 등이었고, 품질이 우수한 품 
종은 황실배, 청실배, 함흥배(咸興梨), 봉화배 (逢火梨), 청당로배 (靑棠露梨), 봉의면배 (鳳儀面梨), 운두면배 
(雲頭面梨), 합실배 등이 알려졌다. 일본인들은 1920년경 지금의 경기도 구리시 묵동을 중심으로 한 남양주 
지역에 장십랑 (長十郞)과 만삼길 (晩三吉)을 길렀는데, 묵동은 중랑천변으로 토심이 5∼10cm로 깊고 배수가 
잘되는 사양토로서 맛이 좋아 먹골배라 불렸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여기서 재배되던 품종도 이제는 신 
고 (新高)로 거의 바뀌어져 먹골배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서울지역의 재배면적이 줄어들면서 오늘날 
남양주 일대가 먹골배의 주산지로 자리하고 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 서울 경기 충청 전라 )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전북 진안)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판하지 않습니다)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기르던 토종배 품종인 황실배는 먹골배 생산지역이었던 서울에서 남양주에 까지 이 
르던 지역에서 자랐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장십랑과 만삼길 품종으로 대체됐고, 그후에 신고로 바뀌었 
다. 오늘날 남양주를 주산지로 하는 먹골배는 토종배가 아닌 신고배를 뜻하며 과거 서울에서 남양주에 이 
르는 먹골배 생산지에서 남아있는 토종배는 남양주시 사능의 황실배가 유일하다. 
남양주시농업기술센터는 맛의 방주 등재를 계기로 멸종 위기에 처한 황실배를 복원한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김영숙 주소 예산군 대술면 시산서길 64-11 
전화번호 010-8816-5028 이메일주소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예산집장) 
2. 품목에 대한 설명* 
예산집장은 백중이 지난 음력 7월 15-20일쯤 담그며, 예로부터 예산의 양반가에서 주로 먹던 된장으로, 즙 
장(汁醬)이라고도 하고 채소를 많이 넣어서 채장(菜醬)이라고도 한다. 
타 지방의 집장과는 달리 소고기와 말린 대하가 들어가며, 소금으로 간을 맞추지 않고 간장으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메주콩, 보리, 찹쌀, 한우양지머리, 오이, 가지, 고추, 천일염, 조선간장과 같은 곡물류 채소 육류 
해산물 등의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한 지역 양반가의 고급 음식이었다. 이에 따라 예산집장은 동물성 단백 
질과 같은 값비싼 많이 담고 있으며, 항산화 역할을 하는 비타민 C와 E가 많아 고단백, 저칼로리 건강식으 
로 꼽히고 있다. 과거에는 예산집장을 보리밥에 비벼먹었다. 특히 여름철 단기간의 발효를 거쳐 양반가에 
서 별미로 즐겼다고 한다. 
예산집장은 지역고유의 별미된장으로 고급재료가 들어가는 탓에 서민들보다는 주로 양반가에서 즐겨먹던 
음식으로 정통성이나 품질면에서 차별화가 뚜렷하다. 일반된장(1년이상)과는 달리 속성생산(1주일)이 가능하 
며 현대인들의 생활패턴에 맞게 별도의 양념없이도 바로 끊여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물성 단백질 
과 비타민이 풍부하며, 일반된장에 비해 짜지 않고, 특히 전골이나 비빔밥에 넣어 먹으면 별미이다. 반면, 
저염된장으로 장기간의 보관이 어렵고 냉장유통 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궁중요리전문가 한복려씨와 한복진 교수가 함께 쓴 종가집시어머니 장담그는 법에 따르면 예산집장에 들어 
가는 집장메주는 콩 3되와 보리쌀 5되의 비율로 쑤는데 콩은 무르게 삶고, 보리쌀은 시루에 넣고 찐다. 먼 
저 절구에 삶은 콩을 넣고 찧다가 나중에 보리쌀을 넣고 함께 찧는다. 주먹만한 크기로 메주를 만들고 사 
이사이에 짚을 깔고 그늘진 곳에서 띄운다. 집장 담글 때는 찹쌀 5되로 밥을 짓고, 곱게 빻아 둔 메주가루 
를 섞는데 이때는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그러나 밥이 질 경우에는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미리 준비해 둔 
오이.가지.고추.양지머리.대하등을 함께 넣는다. 오이는 소금물에 하룻밤 정도 절인 후 맹물에 우려서 간을 
빼고 가지와 고추는 너무 크거나 맵지 않은 것을 골라 하룻밤 절여 행궈낸다. 양지머리는 삶아서 수육으로 
쓰고, 대하는 말린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위의 재료를 항아리 속에 켜켜이 넣고 뚜껑은 덮지 않는다. 대신 
열에 강한 감잎을 두껍게 쌓는다. 이 항아리를 물 속에 2/3쯤 잠기게 한후 사흘동안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 
도록 한다. 감잎을 벗기고 잘 섞은 후 3-4일 후면 먹을 수 있다. 예전에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퇴비더미에 묻어서 삭히기도 했다. 
3. 품목의 역사 
예산집장은 충남 예산지역 양반가를 중심으로 오랫전부터 전해오는 전통음식으로 아직도 지역에선 그 맛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적잖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식생활의 변화 등으로 인해 예산집장을 찾아보기 힘들다. 현 
재 지역에선 햇빛촌농원이 복원에 성공했으나 저장유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생산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충청남도 예산)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충남 예산)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가정소비용)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식문화의 변화, 그리고 예산집장의 특성상 저장 유통이 어렵고, 일부 귀족을 위함 음식이었다는 점으로 인 
해 널리 보급이 이뤄지지 않고 지역의 1개 농장이 이를 복원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소멸위기에 처함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김영숙 주소 예산군 대술면 시산서길 64-11 
전화번호 010-8816-5028 이메일주소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예산삭힌김치 ) 
2. 품목에 대한 설명* 
예산삭힌김치는 충남 예산군 봉산면 금치리 일대 주민들이 예로부터 즐겨 먹던 김치의 일종이다. 
과거 예산군에서 경제적인 여건이 그리 넉넉지 못햇던 금치리 주민들은 해마다 11월쯤 배추를 재배해서 팔 
고 남은 시레기 또는 겉절이를 이용해 김치를 담궜다. 예산삭힌김치는 배추의 시레기를 이용했다는 점, 그 
리고 고춧가루를 쓰지 않은채 마늘 파 새우젓만을 이용했고, 반드시 깨진 독을 이용해서 물기를 제거하며 
삭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김치와는 다르다. 이 김치는 또 단맛을 내는 설탕,사카린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예산삭힌김치는 깨진 독을 이용해 약 2개월간의 발효과정을 거치는데 물기를 제거함으로써 습기와 신맛을 
피했다고 한다. 즉 발효된 김치가 눅눅하거나 신맛이 난다면 제대로된 예산삭힌김치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 맛도 마치 삭힌 홍어회를 연상케 할 만큼 독특하다. 
금치리 주민들은 예산삭힌김치를 지역에서 나는 마늘, 파와 함께, 1km 떨어진 구만리 포구에서 새우젓을 
조달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1979년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사이로 흘러드 
는 삽교천 하구를 가로막은 둑인 삽교천방조제가 들어서기 전까지 만조때 27km를 거슬러 바닷물이 예산군 
구만리에 가지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구만리에는 포구가 형성됐는데 당시 금치리 주민들은 예산삭힌김 
치를 만들기 위해 구만리 포구에 들러 새우젓을 조달했다. 
금치리 주민들은 예산삭힌김치를 밥을 지을 때 나오는 쌀뜨물에 넣어 자작하게 지져서 먹는다. 
현재 금치리에선 아직도 5가구 내외의 가정이 예산삭힌김치를 담아서 먹고 있다. 
예산삭힌김치는 식재료, 그리고 발효방식과 조리방법, 맛에서 일반 김치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배추 시레 
기, 깨진 독 등을 이용해서 만드는 예산삭힌김치는 경제적으로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 힘들었을 당시에 마 
을주민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담긴 대표적인 서민 건강음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예산삭힌김치는 배추 부산물인 시레기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시레기김치, 또는 겉절이 김치라고 불리며, 그 
맛이 홍어회를 흡사하다는 점에서 홍어김치라고 불리기도 한다. 
3. 품목의 역사 
예산삭힌김치는 오랫동안 금치리 주민들의 주된 음식으로 자리했으나 식재료 사용의 변화, 지역주민의 고 
령화, 이농현상 등이 겹쳐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현재 금치리의 15가구 정도가 계속해서 예산삭힌김치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금치리)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금치리)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가정소비용)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급격한 이농현상, 농촌 고령화, 식재료의 변화 등으로 인해 금치리 마을의 대표적인 서민음식이었던 예산삭 
힌김치 또한 사라지고 있다. 현재 예산삭힌김치를 담고 있는 금치리 노인들이 사라지면서 예산삭힌김치 또 
한 소멸위기에 처하고 있다.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 성명 이민형 주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강선로 187 1003-1301 
전화번호 010-2738-6233 이메일 leesimak@naver.com 
1. 품목명 
감홍로 (감홍로주) 
2. 품목에 대한 설명 
감홍로는 좁쌀 누룩과 멥쌀 고두밥으로 술을 빚어 두 번 증류해 일정기간 숙성시킨 뒤 8가지 약재를 넣고 
침출시켜 다시 1년~ 5년을 숙성시켜 완성한다. 용안육, 정향, 진피, 방풍, 계피, 생강, 감초, 지초가 들어간 
다. 이중 용안육, 계피, 감초에서 나는 단맛의 감(甘), 지초가 내는 붉은 빛의 홍(紅)을 써 술의 이름이 감홍 
로이다. 궁중에서 발생한 병이 약을 끓일 만큼의 시간도 없이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일 때 약 대신 급 
히 감홍로를 처방하곤 했다. 본래 대다수의 술은 체온을 높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내장 기관을 냉하게 
만든다. 그러나 감홍로의 경우 약재의 성분이 내장기관을 따뜻하게 만들어 막혀있던 기와 혈을 뚫어준다. 
한의학에서는 내장기관에 암이 생기는 것은 냉한 기운이 뭉쳐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그러한 이유로 감홍 
로가 암을 치료하는 데에 쓰이기도 했다는 견해도 있다. 또한 2010년 5월에 발간된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에서 감홍로주 제조에 사용하는 약재 침출액들의 항산화 작용에 대해 다루었을 만큼 약리작용이 뛰어난 
술이라고 할 수 있다. 
3. 품목의 역사 
감홍로는 관서지방에서 생산되고, 그 맛이 달고(甘) 붉은 빛깔(紅)을 띄는 이슬같은 술(露)이라는 뜻이다. 평 
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의 특산명주로 알려져 왔던 까닭에 ‘관서 감홍로’ 또는 ‘평양 감홍로’로도 불린 
다. 관서 감홍로는 조선 중기 1787년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고사십이집]을 비롯하여 1827년 [임원십육 
지], 1849년 [동국세시기] 등의 여러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 “관서 감홍로는 세 번 고아서 만든 소주를 이 
용하여 만든 만큼 맛이 매우 달고 맹렬하며, 술 빛깔이 연지와 같아 홍로주 가운데서도 으뜸이다.”라고 기 
록되어 있다. 
감홍로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밀주단속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겼다가 한말의 학자이자 시인이기도 했 
던 육당 최남선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하였다. 1946년,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3대 명 
주’ 가운데 관서지방의 감홍로를 으뜸으로 꼽고, 다음으로 전라도의 이강고와 죽력고를 소개하며 제조방법 
도 간략하게 기록하였다. 술에는 격이 있는데, 로(露), 고(膏), 춘(春), 주(酒) 의 순서이다. 조선 3대 명주 중 
로(露)의 격을 지닌 것은 감홍로가 유일하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원래는 평양(관서)지방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던 술이다. 평양에서 양조장을 하다가 6.25전쟁 때 월남한 故
포암(浦巖) 이경찬선생에 의해 전해지게 되었다. 선생은 1986년 86-가호 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로 지정되 
었으며 이후 막내딸 이원(利園) 이기숙이 재현하여 2012년 10월 농립축산식품부에서 명인43호로 지정되었 
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윗가마울길 ·149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야산으로 둘러싸여있고 
6.25때는 파주읍에 주민들이 이곳에 피난을 하여 살았다고 하며 수온이 일정하여 겨울에도 빨래를 하였으 
며, 물이 좋기로 알려진 지역이다. 
6. 대략적인 생산량에 대해 적어주세요. 
연 생산량은 전체를 가동하면 약 12톤을 생산할 수 있다. 
7.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약간의 주류코너, 몇몇 음식점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8.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감홍로의 주원료는 우리나라 토종 우리밀로 만든 누룩과 메조, 찰수수, 쌀이다. 현재는 메조를 재배하는 농 
가가 많지 않아 국내산 메조를 안정적으로 수급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또한 대중적인 술이 아니기 때 
문에 지속적인 감홍로 생산을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판매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9. 개인적인 신청 동기 
술의 발전은 한 나라의 식문화와도 관련이 있으며 이에 대한 복원을 통하여 우리선조들의 음식문화를 접 
하고자 하였으며, 우리나라의 과거의 주류문화의 단절은 곧 음식문화의 단절이며, 이는 선조들의 문화를 
후대에게 알려야하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일환으로 우리나라의 고 
급술에 대한 보급을 하고자 한다. 
제도권에서의 보호가 아닌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지켜야할 우리의 유산이며 후대에 물려 줘야 할 우리의 
문화라고 봅니다.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강원희 주소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함적1리 
전화번호 010-2944-5672 이메일주소 nonsan2395@kccf.or.kr 
1. 품목명 
논산 을문이(Nonsan Eulmooni) 
2. 품목에 대한 설명 
효자고기가 살고 있는 논산시 가야곡면 병암리 하천은 논산천의 중.하류 지역으로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에 
서 발원한 논산천의 냇물이 경사가 급하고 차가운 산골짝을 흘러오다가 전북 완주군 운주면 근처부터 경사 
가 완만한 너른 들판을 흐르며 물의 속도도 천천히 흐르고 또 충분한 햇빛을 받아 수온이 따뜻해지기 시작 
한다. 이런 상태로 탑정저수지가 시작되는 병암리에 이르고 이곳의 냇물에 많이 있는 굵은 자갈에는 이끼 
가 끼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 이끼를 뜯어 먹고 사는 물고기들이 서식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이 근처 동네 
사람들이 흔히 “효자고기”라고 부르는 을문이다. 
고기가 다 자라면 어른 손가락 정도 까지 자라고 수년 전 까지만 해도 병암 냇가에 많이 살았는데 요즘은 
고기도 귀해졌고 더구나 큰 고기는 거의 구경하기 어렵고 잔챙이들만 가끔 눈에 뜨일 정도이다. 오늘날도 
이 물고기는 가야곡면 병암리의 탑정저수지가 시작되는 곳에서 상류 쪽으로 약 10리 정도 내에서만 자라며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없다. 
3. 품목의 역사 
조선 성종(재위 1470~1494)때 현재의 논산시 가야곡면 함적리에 효성이 지극한 중화재 강응정이라는 분이 
살았는데 왕조실록에도 여러 번 거론 되고 효행으로 벼슬에 천거될 정도로 유명했었다. 이 분의 효행에 관 
한 여러 이야기 중에 이 효자고기 탕과 연관된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께서 병환으로 오래 
고생하시는데 어느 추운 겨울 정월달에 어머니께서 개장국이 잡수시고 싶다고 하셨다. 원래 겨울에는 개장 
국을 거의 먹지 않고 특히 정월(1월)에는 개장국 먹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어 개장국을 구하기가 어려웠지 
만 효성이 지극했던 강응정은 집에서 20여리나 되는 인내장(양촌장)에까지 가서 어렵게 개장국을 구해 부 
지런히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가야곡면 함적리에서 인내장에 가려면 오늘날도 논산천의 큰 냇 
물을 건너야 하는데 그 때도 이 냇물을 건너게 되었다. 한겨울이었으므로 냇물은 얼어 있었고 조심조심 얼 
음 위를 걸었지만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물론 어렵게 구한 개장국도 다 쏟아버렸다. 눈앞이 깜깜 
해진 강응정은 얼음 위에 주저 앉아 하늘을 보고 울면서 “이제 우리 어머니께 무얼 갔다 드리나” 하면서 
한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펴보니 넘어지면서 깨진 얼음구멍에 작은 
물고기들이 몰려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강응정은 할 수 없이 이 물고기라도 떠다가 어머니께 끓여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이 물고기를 빈 그릇으로 떠내어 배를 따고 다듬어서 집으로 가져와 어머니께 끓여 드 
렸다. 어머니께서는 이 물고기 탕을 맛있게 잡수시고 병환이 나아 오래 사셨다고 한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이 물고기는 강응정이 물고기를 다듬었던 그 냇물 근처에서만 살았는데 사람들은 강응정이 물고기 배를 따 
고 다듬을 때 그 물고기의 알이 냇물에 가라앉아 거기서 부화되어 그 근처에서만 살게 되었다고 하며, 그 
래서 이 물고기는 강응정의 효성에 감동한 하늘이 내려준 고기라 하여 마을 사람들이 ‘효자고기’ 라고 부르 
게 되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 뒤로 사람들은 이 고기로 끓인 탕을 ‘효자고기 탕’ 이라 하며 부모님께 드리 
는 효도하는 음식으로 삼았고 평소에도 이 효자고기 탕을 자주 먹게 되었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자연적으로 이 지역(가야곡면 함적·산노·병암리-지역민들은 흔히 ‘안갈매울’ 이라 한다)의 특색음식으로 전해 
오게 되었다.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장에서 판매된 적은 없으며 지금은 을문이가 귀해져서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일반 가정에서도 잘 소비되 
지 않고 있다. 현재 강응정의 18세손인 신청자가 선조로부터 을문이탕 조리법을 전수 받아 명맥을 이어오 
고 있으며 마을의 몇몇 집에서도 나름의 독특한 조리법들을 갖고 있다.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고기가 너무 작아 고기를 잡는데 노동력이 많이 들고 양식하거나 상품화하기에도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며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독특한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근년에는 황소개구리의 
올챙이들이 을문이를 무차별적으로 잡아먹어 더욱 더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어 멸종위기를 맞게 되었다.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임장옥 주소 (580-953) 전북 정읍시 산외면 화죽리 716-5 
전화번호 063. 537. 3917 이메일주소 kumkye@naver.com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먹시감식초) 
2. 품목에 대한 설명* 
먹시감을 홍시가 되기전 수확하여 깨끗이 씻은후 물기를 빼고 항아리에 넣는다. 감이 적실정도의 술을 부 
어주어 알콜발효가 되도록 하여준다. 이때 술을 직접제조하여 사용하여야 안전하다. 아니면 일반주조장에서 
생산되는것을 할용할시는 생막걸리를 사용한다. 
알콜발효가 끝나면 찌거기를 분리하여 맑은물만 채취하여 종초를 첨가하여 초산발효가 끝날때까지 1일 
1~2회씩저어준다 초산발효가 끝나면은 밀봉하여 서늘한곳에서 숙성시키면서 사용한다. 
감식초는 오래 숙성시키면 깊은 맛이 향이생긴다 먹시감은 전라북도지방 일부 지역 산 기슭기나 밭두렁 등 
에서 자생하는 자연 토종(재래종)감으로써 씨알은 작지만 당도가 높고 탄닌성분이 많아 내륙 지방의 소득원 
으로써 다른감에 비해 찰기가 있어 곶감용 및 추석명절때는 과일이 귀한시절 땡감을 울궈<탈삽> 재사상에 
놓고 먹어왔으며 목포지방에서는 고기잡이 어망에 감물을 들여 사용했는데 이지역감을 이용한것은 탄닌성 
분이 많아 어망에 감물피복이 잘되기 때문이였고 지금도 제주도 지역에서 의복등에 감물드리는데 이지역 
먹시감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먹시감은 감식초 뿐만아니라 식용, 곶감, 염료 등 다양하게 활용하며 어려 
울때 내륙지방의 주소득으로 자녀학비를 조달해주기도 했다. 
3. 품목의 역사 
❍ 식초는 오래 전부터 우리 일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조미료 였음. 조선시대 문헌인 『증보산림경 
제』에 “초는 장 다음으로 맛을 돋우어주는 바가 많아 가정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한 번 만들면 오래가 
고 또 비용을 절약하는 바가 적지 않다.”로, 사람이 최초로 만들어 낸 조미료로 알려져 있다. 
❍ 감식초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 되었음 .지금은 감식초가 전통발효식품으로 다이어트와 
변비 스트레스와 육체적 노동으로 우리몸에 쌓인 젖산을 없애주어 피로를 풀어주는 전통건강발효식품으로 
애용이 되고있지만 초기에는 약품으로더 많이 사용 되었다고 한다. 
❍ 먹시감식초는 토종 먹시감을 재배해오던때 부터 1980년대 까지는 집에서 초두루미를 두고 담아서 사용 
해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점차 손쉽게 구입할 수 있고 값이 싼 빙초산<화학식초> 맛에 길들여져 관리가 
어려운 감식초는 점차 사라져 갔다. 인근지역에 먹시감식초를 생산하는 곳이 10여곳이 있었으나 소득보장 
이 되지 못하니 자연스레 도산했다. 지금은 1곳만 어렵게 토종보존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전통방 
법으로 꾸준이 지켜온 덕분에 전통방식을 고수하여 온 것을 인정 받아 임장옥씨는 농식품부로부터 국내 최 
초로 감식초 명인지정을 받았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 전북 정읍시 )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 전북 정읍시 산외면 화죽길 58 금계식품에서만 생산되고 있다 )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1994년부터 공장을 설립하여 국내유기농매장을 비롯해 우체국쇼핑, 농협쇼핑, 초록마을, 풀무원, 울가 , 이 
마트, 홈플러스 등지에서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양조 식초나 화학식초와 가격 경쟁이 어려워서 판매 
는 부진하다.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감나무 품종개량으로 대봉시 단감등 과일이큰 품종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먹시감은 
과거 면으로 짠 고기어망의 염료로 사용됐으나 화학섬유로 만든 고기어망이 나오면서 이마저 어려워지고 
있다. 과일 크기가 작은데도 불구 과일속 씨가 8개나 들어 있는 재래종 먹시감은 경제성마저 떨어져 설 땅 
을 잃어가고 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감나무 몇 그루 있느냐에 따라 빈부가 결정 되었으나 지금은 
먹시 감나무가 이제 칡넝쿨로 덮여 고사돼 가고 있다. 지역에선 섬징감 물길을 따라 벼농사가 성행하면서 
감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현재 먹시감은 일부에서 곶감으로 만들어 팔기도 하지만 과실이 적고 씨가 많아 
서(8개)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 김동환 주소 충남 논산시 연산면 선비로 574-6 
전화번호 041-735-1910, 010-3258-8484 이메일 ah@bandi22.com 
1. 품목명 : 어간장 
간장은 산분해 간장, 소금물로 담그는 재래식 간장이 있다. 그러나 어간장은 멸치 액젓으로만 담근다. 
2. 품목에 대한 설명 
어(御) 간장은 물 한방울 사용하지 않고 멸치액젓과 태광콩으로 쑨 메주로만 만든 간장이다. 
어간장은 만들기도 까다롭고 오랜 기간 숙성해야 되기에 일반 가정에서보다는 궁궐에서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어간장은 멸치액젓과 메주로 만든 간장을 항아리에 담아 볕이 잘 들어 잡균이 없는 곳에서 1년을 숙성시킨 
후 다시 간장에 메주를 넣어 50여 일 지난 뒤 메주를 꺼내고 2년 더 숙성시킨 겹간장이다. 
어간장을 만드는 방법을 살펴보면, 봄에 처음 소금을 채취해서 3년동안 간수를 빼고 5월 알을 배어 단백질 
이 풍부한 멸치를 염장한 후 3년 숙성을 거친다. 
또 연산지역에서 생산한 중간크기의 콩(태광)을 삶아 메주를 만들어 40일이상 발효시켜 음력 정월에 멸치 
액젓에 담근 후 50일이 지나 얻은 된장을 잡균이 없는 장독에 넣어 1년간 1년을 숙성시켜 1차 간장을 만 
든다. 1년뒤 여기다 다시 메주를 넣어 맛을 증진시킨 다음 2년을 더 숙성시켜 겹간장을 완성한다. 
단백질이 균에 의해 분해되어 숙성되면서 간장의 감칠맛이 베인다. 멸치의 단백질이 3년 동안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단백한 맛을 내고 다시 콩으로 만든 메주를 넣어 단백질을 추가하는 어간장은 맛과 영양면에서 
일반 간장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3. 품목의 역사 
어간장은 조선시대때 궁궐이나 양반 종가집에서 주로 사용됐다고 한다. 제조비법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 
고 있느나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없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어간장은 멸치액젓으로만 제조하기에 부패하기 쉽다. 그래서 낮과 밤의 온도차가 큰 지역, 즉 산골에서 주 
로 생산되었다고 한다. 차령산맥 남쪽 지역이 주요 생산지역이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마을의 이름 등 
연산면. 차령산맥 남쪽 끝자락인 강경을 중심으로 30~40km 이내에 있다. 
6. 대략적인 생산량에 대해 적어주세요. 연간 약 2톤 규모 
7.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현재까지는 신청자인 옹기식품 김동환 대표의 모친(노순애, 85)께서 혼자 생산하여 집에서만 먹어왔다. 옹기식 
품은 2015년부터 처음으로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8.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어(御)간장이 만들어지기기까지 9년이 소요되고 만드는 방법도 까다롭다. 경제성이 떨어져 생산하고자 하는 이 
들들 찾아보기 힘들다.
9. 신청의 개인적인 동기 
강경읍 채운면 출신인 신청자의 모친은 안동 김 씨 집안에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로 부터 전해 들은 것에, 
본인 솜씨를 더해 겨우겨우 명맥을 이어 왔다. 신청자는 2005년부터 어간장을 복원하는데 성공하였다. 
어린 시절 신청자 모친이 소화가 안 되거나 출산을 하면 어(御)간장을 약처럼 사용하였는데 물에 타서 약 
하게 먹었는데도 맛은 물론 향기가 가시지 않는. 
신청자의 모친은 지금도 저녁에 몸속의 노폐물을 제거하신다며 어간장을 물에 타서 드시곤 하는데 장수의 
비결이 아닌가 한다. 이와 같이 좋은 식품이 경제성에 밀려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신청하게 되었다.
신청자성 
명* 
전화번호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 있는 이름* 
제주강술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양용진 
제주특별자치도 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 
+82 10 3692 0628 
+82 64 710 3132 
이메일 주소* yyjeju@naver.com / pinkseon@korea.kr 
- 이름이 지역어 또는 사투리일 경우 표준어로 번역된 이름 
- 영문명 
Kangsool, Jeju traditional paste-type alchol 
주소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평로 318 
204동 506호 (외도1동, 부영아파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문연로 6 (연동) 
2. 품목에 대한 설명* 
(1) 가공된 식품의 경우 
- 다양한 가공 단계를 포함하여 어떻게 생산되는지, 재료가 지역에서 생산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 
제주지역에서 생산되는 ‘차조’를 갈아서 반죽하여 술떡(오메기떡)을 만들어 익힌 후 토종 밀로 제조한 ‘밀누 
룩’과 혼합하여 항아리에 담아 약 4개월간 발효와 건조과정을 거쳐 건조된 상태로 보관하여 필요할 때마다 
물로 희석하여 마시는 술. 
제주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흐린조(차조)를 겨울에서 봄에 이르는 동안 주곡인 보리와 혼합하여 밥을 지어 
먹었을 만큼 많이 생산 되었으나 현재 수입산 차조에 의해 시장이 잠식되어 재배지를 찾기 힘든 지경에 이 
르렀다. 
(2) 품목과 관련된 전통 음식이 있을 경우 설명하여 주십시오. 
이 술을 만들기 위해 제조되는 오메기떡은 현재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전통적인 제조방법을 지켜내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강술의 전 단계인 제주전통술인 오메기술이 전해오고 있으나 이 또한 차조의 생산이 
저조하여 생산량이 미미하다. 
3. 품목의 역사 - 품목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다면 상세히 소개(연관된 축제, 속담, 지역 관습 등). 
강술은 말태우리(목동)가 목장이나 산에 갈 때 휴대하여 현장에서 물을 타서 탁배기를 만들어 마신 전통주 
이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제주 산간 지역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 이름 등 
현재 완전히 사라져서 제조하는 마을이 없음. 40여년 전 구전조사에 의해 전래되어 온 제조법을 재현하는 
데 성공 함.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장에서 판매된바 없으며 가정에서 소량 제조한 것으로 조사 됨.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강술은 제조기간이 4개월 가량 소요된다. 또한 10~18℃의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등 제조방법이 까다 
로우며 주재료인 재래종 차조를 조달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편리한 생활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탁주 전문 회사들이 대량생산 하는 막걸리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더더욱 제조 
의 필요성을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도시의 발달로 인한 환경 호르몬과 각종 유해 물질의 영향으로 장기간 
발효 할 경우 이상 발효를 일으켜서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을 정도로 제조환경이 열악해 졌기 때문에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게 되었다. 
8. 개인적인 신청 동기 
신청자 본인 2대에 걸쳐 제주의 전통음식을 연구하는 자로서 선조들의 지혜가 살아있는 독특한 제조방법 
을 가져 희소가치가 있는 강술이 영원히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을 늘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강술은 문화 
적인 가치와 친환경적인 제조방법 등이 현대인들에게 교훈적인 요소가 충분하여 현대에 되살릴 만한 가치 
가 있다고 판단한다. 마침 제주의 사라져가는 독특한 음식을 찾아내어 체계적 목록을 만들고 관리하려고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가 활동하고 있다고 하여 자료를 준비하여 식품산업과와 같이 등 
재 신청하게 되었다. 
※ 다음과 같은 첨부 자료가 있다면 첨부하여 주십시오. 
- 품목을 사용한 요리, 사진, 영상, 웹사이트, 기사, 문헌 등 
- 품목 생산자 명단과 연락처 
제주향토음식명인 김지순 +82 10 3692 0628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 
성명* 
제주민속식품 대표 강주남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 
주소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2744-2 
전화번호 ☎ 064-782-1500 / 064-710-3132 이메일 kjn5432@hanmail.net/pinkseon@korea.kr 
1. 품목명 
- 품목의 꿩엿 
- 영문명 Pheasant Yoet (Korean traditional sweet thing similar to taffy) 
제주시 문연로 6 (연동) 
2. 품목에 대한 설명* 
가공된 식품의 경우 
꿩엿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다음과 같은 가공과정을 거쳐 만들어 진다. 
1단계, 차조를 깨끗이 씻고 물에 불린 뒤 밥을 짓는다. 쌀이 귀한 제주에서 조는 대표적인 밭작물이다. 
이 가운데 차조는 꿩엿을 만들기에 가장 흔하고 적합하였다. 이 차조를 깨끗이 씻어 물에 잘 불린 다음 밥 
을 짓는 일이 가장 처음에 하는 일이었다. 현재는 오히려 차조 생산이 적어졌기 때문에 찹쌀을 사용한다. 
2단계, 보리로 엿기름(제주어로 ‘골’)을 만들어 차조밥과 섞어 삭힌다. 보리 역시 차조와 더불어 제주의 대 
표적인 밭작물이다. 이 보리를 물에 불려 싹을 틔운 뒤 말려서 깨끗이 비벼서 턴 것이 엿기름이다. 제주 사 
람들은 이를 ‘골’이라고 하였다. 이 ‘골’(엿기름)을 미지근하게 잘 개어서 차조밥과 섞어서 삭힌다. 삭히는 과 
정이 곧 당화이다. 예전에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적어도 8시간 이상을 두어 기다려야만 하는 기다림의 과정 
이었다. 
3단계, 당화하는 사이에 꿩고기를 미리 손질하여 둔다. 꿩은 털과 내장을 제거한 뒤 깨끗이 씻는다. 꿩을 
삶아서 뼈를 발라내고 살만 얻는다. 살은 먹기 좋게 잘게 찢어 준비한다. 이때 손질한 꿩고기는 나중에 엿 
을 고는 중간에 넣을 수 있게 준비한다. 
4단계, 잘 삭힌 당화물과 꿩고기를 함께 넣어 오랫동안 고아 엿을 만든다. 잘 삭힌 당화물을 고운 삼베나 
무명보자기로 찌꺼기를 잘 거른다. 잘 걸러진 물을 솥에 부어놓는다. 처음에는 센 불로 하다가 어느 정도 
고아지면 불을 조절하여 은근히 고아낸다. 이때 엿이 거의 고아지면 꿩고기를 넣어 다시 되직하게 곤다. 고 
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하루 이상 걸린다. 
5단계, 엿단지에 넣어 보관한다. 겨울 내내 조금씩 덜어 먹는다. 
꿩엿의 주재료는 다음과 같다. 
첫째, 꿩엿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주재료는 꿩이다. 꿩은 한국의 대표적인 텃새이다. 전체 길이는 수컷이 
80cm이고 암컷이 60cm이다. 생김새는 닭과 비슷하나 꼬리가 길다. 수컷과 암컷의 몸 빛깔이 아주 다르다. 
흔히 빛깔이 고운 수컷을 장끼라 하고, 빛깔이 곱지 않은 암컷은 까투리라고 부른다. 주로 아시아 중남부, 
중국 동부, 한국 등지에 약 50종이 분포한다. 예전에 제주도에서 꿩엿을 만드는데 사용하던 꿩은 전부가 수 
렵한 야생종이었다. 제주도에는 한라산이라는 커다란 산이 있고 한라산 아래에 초지가 발달하여 꿩이 서식 
하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 제주도는 대표적 꿩 서식지로 꼽히고 있다. 한반도 전체 특히 내륙지방의 
산악에도 모두 서식하였지만 백과사전이나 동물도감 등에는 제주를 대표적인 서식지로 기술하고 있다. 
둘째, 제주도에서 전통적으로 꿩엿을 만드는 데에 곡물로는 차조와 보리를 사용하였다. 옛날에 제주는 땅 
이 척박하고 물이 귀해서 쌀을 얻을 수 있는 벼를 재배하지 못하고 밭작물을 재배하여 조와 보리 등을 주 
곡으로 삼았다. 그러나 요즘은 차조 대신 찹쌀을 주로 사용한다. 이는 한반도에서 생산된 쌀이 들어와 싸게 
유통되고 있고 차조는 제주도에서 많이 재배하지 않아 오히려 귀하고 비싸기 때문이다. 곡물을 삭히는 작 
용을 하는 엿기름(제주어로 ‘골’)은 보리로 만든다.
3. 품목의 역사 - 품목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다면 상세히 소개(연관된 축제, 속담, 지역 관습 등). 
제주에서 꿩엿은 가장 대표적인 보양식품이었다. 제주는 예부터 땅이 척박하여 농사일은 고되고 수확량 
은 많지 않았다. 육지와는 달리 단백질의 공급원도 적었다. 그러나 제주의 한라산과 오름의 초지에는 열량 
과 고단백질의 꿩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꿩엿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꿩엿은 과거 열량과 단백질이 부 
족하였던 시절에 제주도민에게 곡물을 당화시킨 단맛과 단백질 영양이 같이 들어간 음식으로 귀하게 대접 
받았다. 꿩고기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 함량이 많아 위와 장에 부담을 주지 않아서 노인이나 회복기 환자의 
보양식으로 쓰였다. 또한 어린이들의 감기와 천식의 예방에 좋았다. 
제주에서 꿩엿은 가장 대표적인 세시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꿩은 산란을 앞둔 겨울철에 가장 살이 찌고 
영양이 풍부하였다. 따라서 농한기인 겨울에 제주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 들판을 누비며 꿩을 사냥하였다. 
이렇게 꿩 사냥 자체가 즐거운 절기 놀이였고 꿩엿은 중요한 세시음식이었다. 
꿩엿은 제주사람에게는 효성과 자애의 음식이었다. 꿩엿은 손수 꿩을 사냥하는 노력과 귀한 곡식으로 오 
랫동안 엿을 고아내는 노고가 있어야만 얻어지는 음식이었다. 곡식으로 허기를 면하기에도 어렵던 시절에 
곡물을 삭히고 오랫동안 고아 곡물로 단맛을 내고, 야생에서 꿩을 수렵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집안 어르신 
들과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꿩엿은 연로한 어르신에게 우선적 
으로 드리는 효성의 음식이었고, 귀한 아이를 위한 집안 어른들의 사랑이 담긴 자애의 음식이었다. 
꿩엿은 단맛이 그리운 아이들이 고아질 때까지 기다리다 지쳐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겨우 한 입 얻 
어먹던 것이었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 번씩 입에 넣어주던 것이었고, 어른들 몰래 훔쳐 먹는 즐거운 것이 
었다. 지금 50대 이상의 제주도 사람들은 이런 어린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제주도 전역의 가정에서 만들어 먹었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 이름 등 
꿩엿은 현재 제주도 구좌읍 송당리에 위치한 제주민속식품이라는 제주향토음식업체에서 조금 생산되고 있 
다. 제주의 각 가정에서도 지금은 직접 만들어 먹는 일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6. 대략적인 생산량 
현재 제주민속식품에서 연간 약 5톤을 생산하고 있다. 
7.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현재 제주민속식품의 생산하는 꿩엿 제품은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예전에는 각 가정에서 건강보양식으 
로 직접 만들어 먹었으나 현재는 거의 만들어 먹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8.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첫째, 재료 꿩 및 차조 확보가 어렵다. 꿩 자체를 구하기 어렵다. 시중 판매를 위한 목적으로 꿩엿을 생산할 
경우 원재료 꿩은 반드시 요건을 갖춘 도계장에서 잡은 꿩만을 원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야생종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꿩은 야생성이 강하여 사육이 어렵고 사육기간이 길어 
경제성이 좋지 않다. 닭과는 달리 적어도 5개월 이상은 키워야 상품성이 있고 산란도 1년에 한 번 밖에 하 
지 않아 현재 제주도에 사육농가가 2곳 밖에 남아있지 않다. 직접 가정에서 꿩엿을 만드는 경우 야생종 사 
용이 가능하겠지만 꿩 사냥이 허가된 기간이 정해져 있어 이 기간 이외에는 포획이 금지되어 있다. 이렇게 
꿩엿 재료인 꿩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또한 꿩엿 주재료 중 하나인 차조 또한 국제 농산업품이 된 밀에 밀린 저가 쌀 때문에 제주도에서 적합한 
수량 확보가 어렵고 가격 경쟁력은 더욱 없는 현실이다. 
경제적 요인으로 귀중한 식재료인 꿩, 차조 등이 없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제조에 오랜 시간과 많은 공이 들어 가정 내에서 만들어 먹지 않다 보니 제조법이 전수되고 있는 가 
정이 거의 없다. 꿩엿을 만드는 옛 공정 자체가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엿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옛 공정을 준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도구 등이 좋아졌다고 하나 제작에 걸리는 시간과 노력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현대의 가정은 예전보다 훨씬 바쁜 삶을 살고 있어 일반 가정이 개별적으로 만 
들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 가정 내에서 꿩엿을 만드는 방법이 지금 부모 세대로도 전수되고 
있는 집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셋째, 단맛을 내는 인스턴트 상품의 범람으로 전통적인 꿩엿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단맛의 측면 
에서 보면 시장은 설탕, 꿀, 등, 단맛을 쉽게 내는 값싼 제품으로 범람하고 있다. 오랜 시간과 공이 걸려 만 
들어지는 전통적인 엿은 산업화 된 식품과 시장에서 버거운 경쟁을 하고 있다. 보양 즉 약의 측면에서 보 
면 과거 선조들은 음식을 곧 약으로 인식하여 많은 공을 들여 만들고 섭생이라는 전체적 관점에서 보는 것 
을 당연하게 여겼으나 요즘은 부분적 기능에 맞춘 인스턴트 화학약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어 전통적인 민 
간보양식품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9. 개인적인 신청 동기 
제주도에서 꿩엿을 가장 오랫동안 제조 판매하는 제주민속식품의 대표로 있는 신청자는 제주의 사라져가 
는 독특한 음식을 찾아내어 체계적 목록을 만들고 관리하려는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와 
같이 하여 이 품목이 슬로푸드의 맛의 방주에 등재되면 아래와 같은 바람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여 
겨서 신청하게 되었다. 
첫째, 열량과 단백질을 곡물과 자연에서 얻었던 옛 제주 선조들의 지혜를 지속적으로 전승하고자 한다. 
인스턴트 음식의 등장으로 제주 선조들의 지혜로 만들어 먹던 꿩엿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제조 공 
정이 번거롭고 힘들다는 이유로 제주 전통음식이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둘째, 꿩엿이 제주사람에게는 효도와 자애의 음식인 것처럼 제주의 전통음식이 세대를 잇는 소통 수단이 
되었으면 한다. 세대 간의 소통을 통하여 공동체의 지혜를 전승할 수 있었으면 한다. 
※ 다음과 같은 첨부 자료가 있다면 첨부하여 주십시오. 
- 품목을 사용한 요리, 사진, 영상, 웹사이트, 기사, 문헌 등 
꿩엿 제품 꿩 사냥 찹쌀을 끓임 엿기름을 넣고 삭힘 삼베로 짜기 
당화된 물을 끓이기 고으기 꿩 손질하기 꿀단지에 보관 꿩엿 먹기 
- 품목 생산자 명단과 연락처 
제주민속식품 대표 강주남 064-782-1500
신청자 
전화번호 064-760-7832/064-710-3132 이메일 lifefly@korea.kr/pinkseon@korea.kr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 있는 이름* 
댕유지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제주도농업기술원,서귀포농업기술센터 
제주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중산간동로 7413 
제주시 문연로 6 (연동) 
- 이름이 지역어 또는 사투리일 경우 표준어로 번역된 이름 
당유자(唐柚子). 한자어 ‘당’이 제주어에서는 제주어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모음역행동화로 ‘댕’으로 한자어 
‘유자’는 제주어에서는 ‘유지’로 나타나고 있다. 
- 영문명(학명) 
Citrus grandis OSBEK 
2. 품목에 대한 설명* 
식물의 경우 
- 형태, 무게, 색깔, 맛 등에 대하여 묘사하고 언제 어떻게 수확되는지 설명 
상록 활엽수로 높이 6m정도 수세는 강하고 줄기에 가시가 있다. 잎은 길이 10~13cm, 폭 5cm, 열매는 계 
란형으로 종경(세로지름) 10~12cm, 횡경(가로지름) 9~10cm이고 무게는 300~500g, 껍질 두께는 9mm 정도이 
다. 12월이 되면 진한 황색으로 완전 착색 되고 당도는 9~10°Bx 정도이다. 
주로 과육을 먹었지만 껍질도 먹었다. 과육은 맛이 아주 시다. 껍질은 말리거나 그대로 달려 먹었다. 껍질은 
약간 씁쓸한 맛이 난다. 
- 종에 대한 정보와 더불어 지역 내에서의 종자번식에 의한 특별한 종류인지에 대해 설명 
한국 내에서는 현재 제주도에만 있다. 번식은 재래 감귤 품종으로 접목 번식을 해야 한다. 
품목과 관련된 전통 음식이 있을 경우 설명하여 주십시오. 
당유자차 : 특유의 쓴맛이 있어 생과로 먹기도 하였으나 예로부터 감기의 치유, 혹은 예방 목적으로 당에 
절인 것을 달여 차로 마셨다. 
당유자꿀탕 : 원래 이를 지칭하여 부르던 음식의 명칭은 없다. 추운 겨울 당유자의 윗 부분을 잘라 안을 파 
고 속을 으깨어 꿀과 생강을 함께 넣고 자른 뚜껑을 다시 닫아 화롯불 재 속에 묻어 익혀 안에 생긴 즙을 
감기 치료제로 먹었다. 꿀과 생강을 안 놓고 그대로 먹기도 하였다. 이렇게 먹을 경우 맛은 많이 시다. 
3. 품목의 역사 - 품목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다면 상세히 소개(연관된 축제, 속담, 지역 관습 등). 
제주도 자생종일 수도 있으나 이름으로 보아 오래 전에 중국에서 들어와 제주도에 적응한 귀화종으로 보인 
다. 조선 영조 즉위년인 1724년 12월 23일자 승정원일기에 천신할 당유자의 봉진을 거른 제주목사 신유익 
을 엄하게 추고할 것을 청하는 예조의 계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당유자가 제주도로 들어 온 것은 
수 백여 년 더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052년 고려사세가에 탐라의 감귤 공물을 100포로 늘렸다는 기록을 
보면 당유자의 기원도 다른 재래 감귤처럼 1000년도 더 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도 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과거에는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포읍 지역에서 주로 재배 되었다. 제주시 일원에도 일부 재배되었다. 지금 
은 대부분 없어져 100년 이상 나무 24그루는 행정기관에서 보호수로 관리하고 그 외 일부 농가에서 1~2그
루씩 가정 소비용으로 재배되고 있다. 전통적인 생산 지역인 예전 서귀포읍 지역에서는 1960년대만 해도 
집집마다 반 아름 둥치의 당유자 몇 그루가 집 담 옆에 있었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 이름 등 
제주도 남부인 서귀포 지역 ( 동경 : 126도 08분 ~ 126도 58분, 북위 : 33도 06분 ~ 34도 00분). 서귀포시 
서홍동 마을회에서 백년의 감귤마을 사업으로 2011년 당유자 200본을 접목하였다. 
6. 대략적인 생산량 
2,000kg/년 내외 
7.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전통시장 등에서 제수용으로 일부 판매되고 일부는 가정 소비용으로 활용 
8.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생과육을 직접 먹는 온주 밀감이 1911년 일본에서 들어오고 1960년대 이후 온주 밀감 중심으로 감귤 재 
배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들어온 또 다른 품종인 와세 밀감도 1980년대에 재배량이 늘어나며 서귀포 주 
변에서 감귤 산업화가 진행돼갔다. 더욱이 시장에는 생과육을 즐기는 다양한 과일들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기존 제주재래감귤들은 계속 잘려나갔다. 당유자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값싼 의약품이 보급되며 전통적으로 집안에서 감기 치료 및 예방용으로 차 형식으로 먹던 당유자는 
그 수요도 잃어 계속 잘려나갔다. 
지금은 겨우 재래 자원 보존을 위한 정도를 겨우 가지고 있을 뿐이다. 
9. 개인적인 신청 동기 
제주도에서 이제 사라져가는 제주의 재래 자원들의 가치를 인식하고 뒤늦게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일 
어나고 있는데 마침 슬로푸드 맛의 방주와 제주의 사라져가는 독특한 음식을 찾아내어 체계적 목록을 만들 
고 관리하려는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도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귀포시 
서홍동 마을회에서 재래 감귤을 보존하고자 당유자를 증식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일을 더 의미 있게 하고 
싶어졌다. 이 품목이 슬로푸드의 맛의 방주에 등재되면 이와 같은 우리의 노력에 큰 도움이 되리라 여겨서 
신청하게 되었다. 
※ 다음과 같은 첨부 자료가 있다면 첨부하여 주십시오. 
- 품목을 사용한 요리, 사진, 영상, 웹사이트, 기사, 문헌 등 
[탐라문견록, 정운경 1731년] 12월에 익는다. 빛깔은 짙은 황색이다. 생긴 것은 대귤과 비슷한데 크기는 배 
나 되어 술그릇만 하다. 껍질을 까서 알맹이를 취한다. 담눌이 신령스레 엉긴 것이 뚝뚝 떨어진다.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맛이 진하고 상쾌하다. 껍질을 벗겨 틀에 넣어 잔을 만든다. 기관지를 낫게 하는 데 가장 좋다. 
-추사 감귤론, 당유자는 농익어 봄을 지낸 것은 아주 달고 시원하다. - 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 
휴머니스트 
[서귀포시 제례음식 진설] 조선시대 후기인 18세기에 이르러 남성중심의 유교식 제례가 정착되었다. 제주특 
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기제사나 명절 등 유교식 제례에서 사용되는 음식으로 예전에는 당유자를 주로 썼 
다. 겨울철에 시장에서 구입하여 보리항아리 속이나 뒤뜰에 땅을 파서 저장하여 두었다가 세 개씩 꺼내어 
썼다.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집필자 오영주 
[제주풍토록] 제주도의 특산물인 귤과 유자는 모두 아홉 종이 있다...중간생략...알이 작고 씨는 유자 같으면 
서 맛이 단 산귤이 있다. 그 외에 일반 사람들도 그 맛을 다 아는 감자, 유자가 있다. 또 당유자가 있다. 이 
는 알이 커서 모과와 비슷하여 알의 용량이 한 되 이상 되며 맛은 유자와 같다. 그런데 그 큰 열매가 달려
서 샛노랗게 익는 것이 기이하다. 왜귤도 있는데, 이것은 알의 크기가 당유자의 다음이고, 맛도 당유자만 못 
하니 이것이 최하의 등급이다. ...중간생략...유자나무가 가장 가시가 많고 열매의 껍질이 가장 향기롭다...중 
간생략...씹으면 매우 향기가 강하고 또 자극성이 많다. 당유자와 왜귤도 자극성만은 그러하다. 먹지는 못해 
도 약으로는 효력이 가장 많으니 아마도 그 품의를 높이 치는 까닭이 또한 여기에도 있는가 싶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7 - 제주도, 제주의 산물 감귤 
[승정원일기(18세기, 영조 즉위년 갑진(1724년)] 12월 23일 기록 : 천신할 당유자의 봉진을 거른 제주목사 
신유익을 엄하게 추고할 것을 청하는 예조의 계 - 한국고전번역원, 2011년 
[제주계록(19세기, 헌종 12, 1846년 탐영계록)] 11월령 당유자를 봉진하다. - 제주발전연구원, 2012년 
- 품목 사진 
당유자 나무 당유자 달린 것 당유자 달리 당유자 잘라낸 순다리 
- 품목 생산자 명단과 연락처 
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서귀포농업기술센터 : 064-760-7832 
서귀포시 서홍동 마을회 백년의귤향기영농조합법인 : 064-760-4721 
오등감귤관광농원 : 064-746-4738
신청자 
성명* 
전화번호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 있는 이름* 
순다리, 쉰다리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1. 고정순 
2.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 
1. +82 10 8779 0904 
2. +82 64 710 3132 
- 영문명 
Sundari, Jeju traditional sweet mild alcholic beverage 
주소 
1. 제주시 서광로 5길 17 
2. 제주도 제주시 문연로 6 (연동) 
이메일 
주소* 
1. ko7535252@naver.com 
2. pinkseon@korea.kr 
2. 품목에 대한 설명* 
순다리는 제주도 지역에서 전기 보온 밥솥이나 냉장고 등이 없던 시절에 밥이 남아 쉬어버릴 것 같은 경우 
에 남은 밥을 이용하여 만들어 마시던 곡물발효음료이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약한 술의 단계까지 가는 것 
이 일반적이다. 맛은 발효 정도에 따라 다르나 약간 달고 새콤하다. 밥이 상하기 쉬운 여름철에 주로 만들 
어 마셨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먼저 누룩을 잘게 부어 물과 함께 밥에 넣고 하루, 이틀 정도 둔다. 온도는 여름철 상온이다. 발효기간은 
밥의 상태, 누룩의 품질, 밥과 누룩의 양, 물의 양, 온도 등에 따라 차이가 난다. 발효에 사용하는 용기는 옹 
기가 일반적이었다. 
2. 기포가 올라오고 밥이 뭉글뭉글하게 형태가 없어지고 원하는 맛이 도는 시기가 되면 마실 수 있다. 
3. 밥을 체로 걸러 액체만 마시기도 하고 밥과 액체를 저어 걸쭉하게 하여 같이 먹을 수 있다. 
4. 그냥 마시기도 하고 끊여서 마시기도 한다. 끊이지 않고 마시면 새콤한 맛이 더 강하다. 끊이지 않았을 
경우에는 발효상태가 진행되어 맛이 계속 변한다. 
5. 전통적으로 감미제를 첨가하지 않았으나 설탕 같은 감미제가 흔해지며 요즘은 설탕 등을 첨가하여 드는 
경우가 많다. 
순다리를 만들기 위하여 사용하는 밥은 전통적으로는 대부분이 보리밥이었다. 제주도는 땅이 물 빠짐이 좋 
고 척박하여 벼농사가 힘들어 쌀을 구하기가 예전에는 어려워 보리와 조가 주곡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육지부 한반도에서 들어온 값싼 쌀이 풍부하여 순다리를 만들 목적으로 쌀밥을 하여 사용하기도 한 
다. 쌀밥을 사용하면 단맛이 더욱 강하다. 또한 순다리를 만들 때 발효시작제로 사용하는 누룩은 보리나 밀 
을 띄워 사용하였다. 
품목과 관련된 전통 음식이 있을 경우 설명하여 주십시오. 
순다리는 발효의 정도에 따라 알코올이 맛이 돌기 전에 마실 수도 있고, 약간 알코올이 도는 약술 단계에 
서 마실 수도 있다. 그러나 술의 정도를 지나게 더 발효시켜 식초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식초 
단계까지 간 것을 ‘자리물회’ 등에 넣어 먹기도 하였다. 
3. 품목의 역사 - 품목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다면 상세히 소개(연관된 축제, 속담, 지역 관습 등). 
제주에서 순다리가 언제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하였는지를 알 수는 없으나 몇 가지 기원을 유추해볼 수 있 
다. 첫째는 명칭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순다리의 또 다른 지역 명칭은 쉰다리이다. 쉰다리에서 쉰은 밥, 음 
식 등이 상한 것을 일컫는 ‘쉬다’의 활용인 ‘쉰’으로 보는 경우이다. 이렇게 그 명칭이 순 우리말에서 기원하 
는 것이라면 한자어의 영향이 크지 않은 시절인 조선(1392년 건립) 이전 시대처럼 그 기원이 아주 오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가설이다. 둘째는 순다리가 누룩을 사용한 곡물발효주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 
서 볼 때 몽고가 제주도(당시 탐라)에 탐라총관부를 세워 직할하던 1200년대 후반과 1300년대 초반의 백년 
에 가까운 간섭기에 증류기법의 발전 등과 같이 몽고의 영향으로 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가설이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순다리는 제주도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만들어 먹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제주도 전역의 가정에서 만들어 먹었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 이름 등 
각 가정에서는 아직도 아주 드물게 만들어 먹고 있다. 최근 들어 음식점 등에서 남는 밥을 활용할 목적으 
로 또는 향토적인 것을 대접할 목적으로 손님들에게 순다리를 대접하는 예가 제주도 전역에서 조금씩 다시 
조금씩 생기고 있다. 
6. 대략적인 생산량 
가정, 음식점, 단체급식소 등에서 소량 자가생산하여 사용하고 있어 그 양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7.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장에서 판매되는 것은 없고 가정, 음식점, 단체급식소 등에서 소량 자가생산하여 먹고 있다. 
8.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1970년대 이후 가정이나 음식점에 전기보온밥솥과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남는 밥을 쉬지 않게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 순다리 소멸의 가장 큰 이유이다. 그에 못지않게 큰 이유는 예전에는 보리밥도 귀하게 여기 
는 정도의 궁핍한 시절이었지만 1980년대 이후 값싼 쌀이 흔해지며 굶주림과 식량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 
게 되며 남는 밥을 알뜰히 활용하려는 태도가 사회 전반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최근에 들어서는 아 
에 밥 없이도 살아갈 정도로 식생활에서 밥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져서 만들려는 예전의 동인이 사라지는 
점 등이다. 
둘째 순다리를 만드는 누룩의 측면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스스로 만든 누룩을 
사용하였으나 최근에는 누룩을 가정에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고 만드는 제법을 물려받은 가정도 많지 않 
은 실정이다. 이제 누룩은 몇몇 가내 수공업자들이 만든 것을 오일장과 같은 전통시장에서 사거나 대규모 
생산공장에서 나오는 것을 사서 쓰는 형편이다. 가정 내 발효 기술이 이렇게 사라지고 있어서 쌀이 흔해져 
단맛이 강한 순다리를 만들 수 있는 상황임에도 순다리는 일반 가정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중이다. 
9. 개인적인 신청 동기 
이 음료는 현 시점에서 보아도 건강에 유익한 음료일 뿐만 아니라 옛 제주도의 조상들이 한 톨의 밥알이 
라도 절약하려는 정신이 담겨 있는 이 시대에 교훈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 순다리를 계속 유지하고 확산시 
켰으면 하는 마음을 늘 지니고 있던 차에 제주의 사라져가는 독특한 음식을 찾아내어 체계적 목록을 만들 
고 관리하려는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의 활동을 알게 되고 신청서 작성 권유를 받아 식 
품산업과와 같이 등재신청을 하게 되었다. 
※ 다음과 같은 첨부 자료가 있다면 첨부하여 주십시오. 
- 품목을 사용한 요리, 사진, 영상, 웹사이트, 기사, 문헌 등 
누룩 부수기 밥과 물 섞기 누룩 섞어 넣기 발효하기 다 된 순다리 
- 품목 생산자 명단과 연락처 
제주향토음식문화연구소장 고정순 +82 10 8779 0904 
제주향토음식명인 김지순 +82 10 3692 0628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박지혜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항구로 
121번길 120. 
전화번호 +82 10 6789 1944 이메일 주소* jihey3601@naver.com 
1. 품목명 
- 제주 재래감, Jeju Native persimons 
감은 제주어에서는 현재 ‘갈’로 나타나기도 한다. 제주에서 감으로 염색한 옷을 갈옷이라고 한다. 즉 감이 
제주어로는 ‘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감은 옛 문헌을 찾아보면 갇-갈-갈암-가암-감으로 변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감나무를 ‘카끼’라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감나무의 일본어 이름인 ‘카끼’는 감을 나 
타내는 한국어 고어인 갇, 갈 등에 해당하는 ‘카’라는 음과 일본어에서 나무를 뜻하는 ‘끼’로 이루어진 합성 
어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감나무를 감낭이라고 부른다. 낭은 나무의 제주어이다. 감나무를 나타내는 한자는 시(柿)다. 
2. 품목에 대한 설명* 
제주 재래감에는 폿감, 고래감, 베개감, 쇠불감, 종지감 등 다양한 종이 있다. 제주도 내에서 감을 분류하는 
일반적 기준은 과실의 형태를 본 뜬 분류였다. 팥 모양을 담아 폿감, 맷돌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맷돌의 제 
주도 명칭인 고래를 넣은 고래감, 베게를 닮았다 하여 베개감, 쇠불알을 닮았다 하여 쇠불감, 작은 종지를 
닮았다 하여 종지감 등으로 분류하는 속명이 있다. 
이 중 베개감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나무의 형태는 1년생 가지 길이가 16cm, 1년생 가지 굵기는 4.9mm, 
마디 수는 9.0 개이며 피목수(㎠당) 0.9 개이다. 꽃은 5월28일 경에 만개하며 암꽃과 수꽃이 있고 꽃모양은 
방형이다. 잎 모양은 방추형이며 잎 길이는 13.4cm, 잎 폭은 9.0cm, 잎 면적은 93㎠이다. 과실은 10월 26일 
정도에 익으며 완전 떫은 감으로 편방형이며 과피색(적색도)은 20.6이다. 과육색(황색도)은 48.3이며 당도는 
23〬 Brix이다. 종자의 특성은 4~5립이며 길이는 17.1mm이며 폭은 13.7mm이다. 염색에 쓰이는 떫은 감은 
7~8월경에 따서 절구에 으깨서 즙을 내어 10일 정도 발색한다. 
모든 종류의 제주 재래 감에서 열매인 감의 맛은 달고 떫다. 떫은맛은 탄닌 성분에서 기인한다. 
현재 제주도에만 있다. 번식은 재래 감 품종을 이용한 접목으로 번식하는 법과 씨앗으로 번식하는 법이 있 
다. 토양 때문인지 제주도에 자생하는 감나무를 육지부에 옮겨 심어도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감나무만큼 풀 
기가 있지 않고 탄닌 함량에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제주 재래 감에는 여러 변종들이 있으나 그 과실 모양을 빼고는 사용법 및 사용처 등에 큰 차이가 없어 구 
분지어 다룰 필요가 없다. 
제주도 애월읍 하가리 방문조사에서는 서리 내린 후에 익은 감을 따서 먹으면 감기에 좋아 매년마다 약으 
로 먹고 있다고 하였다. 서귀포시 일원에서는 지금도 서리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관지에 좋다며 약으 
로 먹는다고 하였다. 
떫은맛을 빼는 탈삽방법으로는 주로 가을에 과육이 딴딴하고 푸른 기미가 있을 때 따뜻한 물에 뜨지 않 
게 담가 놓고 매일 물을 갈아주며 3~4일 정도 나두었다. 이런 방식은 70년대까지도 가을 운동회 때면 집집 
마다 이렇게 하여 떫은맛을 뺀 감을 운동회 간식으로 내놓았다. 항아리에 정미하기 전인 보리 속에 푸른 
기미가 있는 떫은 감을 1주일 정도 묻어 두었다가 탄닌을 뺀 후에 간식으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소주에 넣 
어서 울려 먹었다는 응답도 있었다. 이 방법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사료된다. 
3. 품목의 역사 - 품목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다면 상세히 소개(연관된 축제, 속담, 지역 관습 등). 
조선시대 『남사록』에 제주 성안에 감이 많이 있으나 크기가 작고 씨앗이 많으며 맛이 없다는 기록이 있 
는데, 요즘 남아 있는 제주 재래 감도 크기가 작고 씨가 많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고광민은 『제주도 
민구조사』에서 낚시줄의 풋감 즙으로 물들여 쓴다고 했다. 『탐라성주유사』에서는 오왕 8 년(1382년)에 명나 
라 태조는 전원의 제후국인 운남국을 평정하고 양왕의 태자와 그의 아들, 권속들을 탐라에 이주, 공양왕 4
년(1392년)에도 양왕의 자손과 그의 권속들을 이주시켰는데 이때 이들의 문화와 풍속이 전래되었으며 운남 
성에서 어망, 우산, 부채무명옷에 염색하여 입는 풍습이 전래 된 것 같다고 하였다. 운남성에 유시가 많았음 
을 고려 할 때 이때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제주도에서 감물로 염색한 옷을 입었다는 확실한 기록은 조 
선총독부에서 행한 제주의 생활상태조사(1929년)에서 처음 나오지만 한반도에서 1600년대 초에 이미 감물 
염색이 성행하였음을 출토복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학자인 윤봉조(1680~1761)의 시문집인 
『포암집(圃巖集)』 도중잡영(島中雜詠)에 10번째 시 중에 “장맛비 올 때는 감으로 옷에 물들이고(凌雨柿染衣) 
라는 대목으로 윤봉조가 제주도로 유배 와서 여기에서 본 것을 시로 읊은 것 중의 한 대목이다. 동아일보 
1965년 9월9일자에 실린 살림의 아이디어 ” 제주의 갈옷“에는 감물염색방법과 감물염색 옷의 장점이 소개 
되어 있다. 이렇듯 남녀노소의 일상복 및 노동복으로 정착되었던 갈옷이 1960년대까지 대표적인 민속복으 
로 전승되어져 왔음을 알 수 있고, 빳빳하게 염색한 갈옷은 현재 제주도에만 남아 있을 뿐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제주도 안덕면 동광리 북동쪽에 위치한 측화산으로『 탐라지』에는 시목악(柿木岳)이 나오는데 이는 오름에 
감나무가 많은데서 유래되었고,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柑山里)는 산이 감과 비슷하다고 해서 시산(柿山)이 
라고 하다가 후세에 이르러 감산이라 개칭되었고, 안덕면 광평리에는 감낭물이 있는데 이것은 연못에 야생 
감나무가 많아 붙여졌다고 한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도 감낭골이라 하여 감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 
진 이름이 있다. 과거에는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포읍 지역에서 주로 재배 되었다. 제주시 일원에도 일부 재 
배되었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지고 100년 이상 나무는 10~15 그루 정도로 하귀, 월평, 와흘 등지에서 관찰 
되었다. 현재 집집마다 노동복을 염색하기 위해 보존되어 있지 않다. 나무가 든든하지 않아 제주도의 특성 
상 태풍에 나무가 잘 꺾여 고사하기도 하고 관리 소홀로 죽기도 하고 감 따기가 힘들어서 잘려지기도 하고 
있는 상황이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 이름 등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4237-2 번지에서 제주의 재래 감을 보존 재배하고 있다. 
6. 대략적인 생산량 
현재 제주 재래 감의 생산량은 파악이 어렵다. 오래된 나무에서 생산은 되고 있으나 수확이 안 되고 그대 
로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7.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전통시장인 오일장에서는 제주 재래 감이 아주 미미한 수준에서 팔린다. 그러나 이런 판매도 1990년대 말 
제주도에 단감나무 재배가 시작되면서 단감 풋감으로 대체되고 경북 청도나 경산 등지에서 재배하는 떫은 
감으로 만든 감물이 저가로 제주도에 공급되며 지속적으로 적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8.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제주재래감은 식용, 약용, 염색용으로 사용돼 왔다. 이 중 식용은 단감, 홍시 등 감만이 아니라 여타 값싼 
과일이 시중에 넘쳐나 떫은맛을 빼서 먹는 노력을 하며까지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약용도 의료 서비스가 
값싸게 보급되며 시골 지역에 있는 나이 드신 분들 몇몇이 겨우 사용하고 있는 정도이다. 제주 재래 감의 
용처 중 가장 늦게까지 가장 많았던 염색용 수요도 1990년대 말부터 제주도에 단감이 도입되어 재배되면 
서 그 씨앗을 대신 이용하고, 최근 경북 청도에서 감물이 다량 제조되어 제주도에서도 저렴하게 시판되면 
서 점점 제주산 감물의 사용이 적어져 직접 감나무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런 수요 감소에다가 지역 
난개발, 마을 재개발, 주택 개량 등으로 점점 감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1970년대 이후 
서귀포 지역을 중심으로 한 감귤 산업화로 점점 감귤 단종 재배를 하게 되어 감귤 경작지 확보를 위해 집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More Related Content

Similar to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일본Cb] 히마와리테 10년의 발자취에 감사를_담아
[일본Cb] 히마와리테 10년의 발자취에 감사를_담아[일본Cb] 히마와리테 10년의 발자취에 감사를_담아
[일본Cb] 히마와리테 10년의 발자취에 감사를_담아seekly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먹거리 돌봄망 이대경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먹거리 돌봄망 이대경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먹거리 돌봄망 이대경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먹거리 돌봄망 이대경푸드스마일즈 우양
 
서울도시농업 비전투어자료집 2013
서울도시농업 비전투어자료집 2013서울도시농업 비전투어자료집 2013
서울도시농업 비전투어자료집 2013여성환경연대
 
산지 추석선물세트
산지 추석선물세트산지 추석선물세트
산지 추석선물세트응태 이
 
2017년 무릉외갓집 추석선물세트 소개서 20170814
2017년 무릉외갓집 추석선물세트 소개서 201708142017년 무릉외갓집 추석선물세트 소개서 20170814
2017년 무릉외갓집 추석선물세트 소개서 20170814Chang-ouck Hong
 
고씨곳간 지난 꾸러미 보기
고씨곳간 지난 꾸러미 보기고씨곳간 지난 꾸러미 보기
고씨곳간 지난 꾸러미 보기ko gyoungil
 
산지 추석선물세트2014
산지 추석선물세트2014산지 추석선물세트2014
산지 추석선물세트2014응태 이
 

Similar to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9)

[일본Cb] 히마와리테 10년의 발자취에 감사를_담아
[일본Cb] 히마와리테 10년의 발자취에 감사를_담아[일본Cb] 히마와리테 10년의 발자취에 감사를_담아
[일본Cb] 히마와리테 10년의 발자취에 감사를_담아
 
종로사랑 (448호)
종로사랑 (448호)종로사랑 (448호)
종로사랑 (448호)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먹거리 돌봄망 이대경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먹거리 돌봄망 이대경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먹거리 돌봄망 이대경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먹거리 돌봄망 이대경
 
서울도시농업 비전투어자료집 2013
서울도시농업 비전투어자료집 2013서울도시농업 비전투어자료집 2013
서울도시농업 비전투어자료집 2013
 
김다인 Ppt
김다인 Ppt김다인 Ppt
김다인 Ppt
 
산지 추석선물세트
산지 추석선물세트산지 추석선물세트
산지 추석선물세트
 
2017년 무릉외갓집 추석선물세트 소개서 20170814
2017년 무릉외갓집 추석선물세트 소개서 201708142017년 무릉외갓집 추석선물세트 소개서 20170814
2017년 무릉외갓집 추석선물세트 소개서 20170814
 
고씨곳간 지난 꾸러미 보기
고씨곳간 지난 꾸러미 보기고씨곳간 지난 꾸러미 보기
고씨곳간 지난 꾸러미 보기
 
산지 추석선물세트2014
산지 추석선물세트2014산지 추석선물세트2014
산지 추석선물세트2014
 

More from 성훈 김

2022년 평택로컬푸드 설 선물세트
2022년 평택로컬푸드 설 선물세트 2022년 평택로컬푸드 설 선물세트
2022년 평택로컬푸드 설 선물세트 성훈 김
 
2021 평택시 선물세트 특선집 평택시로컬푸드재단
2021 평택시 선물세트 특선집 평택시로컬푸드재단2021 평택시 선물세트 특선집 평택시로컬푸드재단
2021 평택시 선물세트 특선집 평택시로컬푸드재단성훈 김
 
국회 인도적 남북교류와 농업협력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180201
국회 인도적 남북교류와 농업협력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180201국회 인도적 남북교류와 농업협력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180201
국회 인도적 남북교류와 농업협력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180201성훈 김
 
[김현권의원] 농협상호금융발전을위한토론회_토론자중 이홍재 회장소속을 대한양계협회로 정정함
[김현권의원] 농협상호금융발전을위한토론회_토론자중 이홍재 회장소속을 대한양계협회로 정정함[김현권의원] 농협상호금융발전을위한토론회_토론자중 이홍재 회장소속을 대한양계협회로 정정함
[김현권의원] 농협상호금융발전을위한토론회_토론자중 이홍재 회장소속을 대한양계협회로 정정함성훈 김
 
김현권의원, "소비자와 따로 노는 농협" "쌀값 폭락 원인은 농협쌀 판매 실패"
김현권의원, "소비자와 따로 노는 농협" "쌀값 폭락 원인은 농협쌀 판매 실패"김현권의원, "소비자와 따로 노는 농협" "쌀값 폭락 원인은 농협쌀 판매 실패"
김현권의원, "소비자와 따로 노는 농협" "쌀값 폭락 원인은 농협쌀 판매 실패"성훈 김
 
김현권 "정부, 5년 전 공급과잉 예측하고도 '쌀 대란' 방치"
김현권 "정부, 5년 전 공급과잉 예측하고도 '쌀 대란' 방치"김현권 "정부, 5년 전 공급과잉 예측하고도 '쌀 대란' 방치"
김현권 "정부, 5년 전 공급과잉 예측하고도 '쌀 대란' 방치"성훈 김
 
농민 국회의원 김현권의 삶
농민 국회의원 김현권의 삶농민 국회의원 김현권의 삶
농민 국회의원 김현권의 삶성훈 김
 
농정예산구조와 정책방향
농정예산구조와 정책방향농정예산구조와 정책방향
농정예산구조와 정책방향성훈 김
 
160614 국회 김현권 의원 보도자료 청년 농업 일자리 창출 방안
160614 국회 김현권 의원 보도자료 청년 농업 일자리 창출 방안160614 국회 김현권 의원 보도자료 청년 농업 일자리 창출 방안
160614 국회 김현권 의원 보도자료 청년 농업 일자리 창출 방안성훈 김
 
2015 상반기 국내외 GMO 현안 정리
2015 상반기 국내외 GMO 현안 정리2015 상반기 국내외 GMO 현안 정리
2015 상반기 국내외 GMO 현안 정리성훈 김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먹거리 과제와 전망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먹거리 과제와 전망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먹거리 과제와 전망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먹거리 과제와 전망성훈 김
 
2014 슬로푸드 생물다양성 미디어데이 보도자료
2014 슬로푸드 생물다양성 미디어데이 보도자료2014 슬로푸드 생물다양성 미디어데이 보도자료
2014 슬로푸드 생물다양성 미디어데이 보도자료성훈 김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원고) Download Ver.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원고) Download Ver.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원고) Download Ver.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원고) Download Ver.성훈 김
 
FTA TPP가 먹거리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_Download Ver.
FTA TPP가 먹거리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_Download Ver.FTA TPP가 먹거리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_Download Ver.
FTA TPP가 먹거리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_Download Ver.성훈 김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한글상세버전)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한글상세버전)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한글상세버전)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한글상세버전)성훈 김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성훈 김
 
최종보고서 공정위 20131111(수정) (1)
최종보고서 공정위 20131111(수정) (1)최종보고서 공정위 20131111(수정) (1)
최종보고서 공정위 20131111(수정) (1)성훈 김
 
한미 유기가공식품 상호동등성 협상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한미 유기가공식품 상호동등성 협상의 문제점과 대응방안한미 유기가공식품 상호동등성 협상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한미 유기가공식품 상호동등성 협상의 문제점과 대응방안성훈 김
 
2013 Slow food AsiOGusto, food, Justice and Peace in Asia
2013 Slow food AsiOGusto, food, Justice and Peace in Asia2013 Slow food AsiOGusto, food, Justice and Peace in Asia
2013 Slow food AsiOGusto, food, Justice and Peace in Asia성훈 김
 
영농후계인력양성을 통한 청년일자리_창출방안
영농후계인력양성을 통한 청년일자리_창출방안영농후계인력양성을 통한 청년일자리_창출방안
영농후계인력양성을 통한 청년일자리_창출방안성훈 김
 

More from 성훈 김 (20)

2022년 평택로컬푸드 설 선물세트
2022년 평택로컬푸드 설 선물세트 2022년 평택로컬푸드 설 선물세트
2022년 평택로컬푸드 설 선물세트
 
2021 평택시 선물세트 특선집 평택시로컬푸드재단
2021 평택시 선물세트 특선집 평택시로컬푸드재단2021 평택시 선물세트 특선집 평택시로컬푸드재단
2021 평택시 선물세트 특선집 평택시로컬푸드재단
 
국회 인도적 남북교류와 농업협력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180201
국회 인도적 남북교류와 농업협력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180201국회 인도적 남북교류와 농업협력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180201
국회 인도적 남북교류와 농업협력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180201
 
[김현권의원] 농협상호금융발전을위한토론회_토론자중 이홍재 회장소속을 대한양계협회로 정정함
[김현권의원] 농협상호금융발전을위한토론회_토론자중 이홍재 회장소속을 대한양계협회로 정정함[김현권의원] 농협상호금융발전을위한토론회_토론자중 이홍재 회장소속을 대한양계협회로 정정함
[김현권의원] 농협상호금융발전을위한토론회_토론자중 이홍재 회장소속을 대한양계협회로 정정함
 
김현권의원, "소비자와 따로 노는 농협" "쌀값 폭락 원인은 농협쌀 판매 실패"
김현권의원, "소비자와 따로 노는 농협" "쌀값 폭락 원인은 농협쌀 판매 실패"김현권의원, "소비자와 따로 노는 농협" "쌀값 폭락 원인은 농협쌀 판매 실패"
김현권의원, "소비자와 따로 노는 농협" "쌀값 폭락 원인은 농협쌀 판매 실패"
 
김현권 "정부, 5년 전 공급과잉 예측하고도 '쌀 대란' 방치"
김현권 "정부, 5년 전 공급과잉 예측하고도 '쌀 대란' 방치"김현권 "정부, 5년 전 공급과잉 예측하고도 '쌀 대란' 방치"
김현권 "정부, 5년 전 공급과잉 예측하고도 '쌀 대란' 방치"
 
농민 국회의원 김현권의 삶
농민 국회의원 김현권의 삶농민 국회의원 김현권의 삶
농민 국회의원 김현권의 삶
 
농정예산구조와 정책방향
농정예산구조와 정책방향농정예산구조와 정책방향
농정예산구조와 정책방향
 
160614 국회 김현권 의원 보도자료 청년 농업 일자리 창출 방안
160614 국회 김현권 의원 보도자료 청년 농업 일자리 창출 방안160614 국회 김현권 의원 보도자료 청년 농업 일자리 창출 방안
160614 국회 김현권 의원 보도자료 청년 농업 일자리 창출 방안
 
2015 상반기 국내외 GMO 현안 정리
2015 상반기 국내외 GMO 현안 정리2015 상반기 국내외 GMO 현안 정리
2015 상반기 국내외 GMO 현안 정리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먹거리 과제와 전망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먹거리 과제와 전망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먹거리 과제와 전망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먹거리 과제와 전망
 
2014 슬로푸드 생물다양성 미디어데이 보도자료
2014 슬로푸드 생물다양성 미디어데이 보도자료2014 슬로푸드 생물다양성 미디어데이 보도자료
2014 슬로푸드 생물다양성 미디어데이 보도자료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원고) Download Ver.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원고) Download Ver.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원고) Download Ver.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원고) Download Ver.
 
FTA TPP가 먹거리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_Download Ver.
FTA TPP가 먹거리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_Download Ver.FTA TPP가 먹거리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_Download Ver.
FTA TPP가 먹거리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_Download Ver.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한글상세버전)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한글상세버전)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한글상세버전)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한글상세버전)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
FTA와 TPP가 먹거리 안전과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
 
최종보고서 공정위 20131111(수정) (1)
최종보고서 공정위 20131111(수정) (1)최종보고서 공정위 20131111(수정) (1)
최종보고서 공정위 20131111(수정) (1)
 
한미 유기가공식품 상호동등성 협상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한미 유기가공식품 상호동등성 협상의 문제점과 대응방안한미 유기가공식품 상호동등성 협상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한미 유기가공식품 상호동등성 협상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2013 Slow food AsiOGusto, food, Justice and Peace in Asia
2013 Slow food AsiOGusto, food, Justice and Peace in Asia2013 Slow food AsiOGusto, food, Justice and Peace in Asia
2013 Slow food AsiOGusto, food, Justice and Peace in Asia
 
영농후계인력양성을 통한 청년일자리_창출방안
영농후계인력양성을 통한 청년일자리_창출방안영농후계인력양성을 통한 청년일자리_창출방안
영농후계인력양성을 통한 청년일자리_창출방안
 

2014맛의방주품목설명서

  • 1.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홍승갑 주소 경기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 현인농원 전화번호 010-2967-8898 이메일주소 http://pajukoko.com(031-952-8989) 1. 품목명 *(파주 현인닭) 2. 품목에 대한 설명* 현인닭은 경기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 현인농원의 홍승갑(74) 대표가 1983년부터 국립축산과학원 정선부 박 사와 함께 시작한 한국재래닭보존회를 중심으로, 축산원 시험장 종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면서 복원된 한국의 재래닭이다. 현재 1,000마리 15개 색상의 재래닭 복원에 성공한 현인농원은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지정한 가 축유전자원(재래닭) 관리농장으로, 조상들이 기르던 우리 고유의 재래닭을 복원·유지하여 많은 사람들이 재 래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보존·연구하는 농원이다. 2009년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았고, 한닭의 개량 사업 참여한 전국의 6개 농장중 하나이다. 홍 대표는 명나라때 저술된 의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기록된 한국 중부닭의 우월성을 접하고, 국립축 산과학원에서 20여가지 재래닭에 관한 기록을 접하면서 본격적인 재래닭 복원에 나섰다. 그는 재래 닭을 복원한 공로로 ‘2013년 경기도 최고’의 인물로 선정됐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는 재래닭의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래서 재래닭의 품종이나 종류, 색 등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기록으로 남아있는 재래닭의 색상은 20여종이다. 그중 홍 대 표가 복원한 색은 적(황)갈색, 흑색, 백색 등 모두 15종이다. 현인농원은 흑색의 닭을 복원,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UN FAO)의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DAD-IS)에 ‘현인흑 계’로 등재되는 성과를 올기도 했다. 현인농원은 보통 10~20%의 확률로 다른 색의 닭이 나올 수 있는데, 농원은 그런 확률로 나온 소수의 닭을 정해 놓고 키우기를 반복하면서 그 색의 유전 확률을 70~80% 확률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져서 결국 한 가지 색으로 고정하는데 약 10년이 걸렸다. 현인농원은 색이 섞일까봐 1.5~2평 기준으로 10마리씩 닭을 사육하며, 닭장에서 한 번 나간 닭을 약 20일 동안 격리해서 키우는 현인농원은 토착균을 배양해 쌀겨 등을 발효시킨 후 사료와 먹이는 전통방식의 유기 농법만을 고집한다. 현인닭은 면역력이 강하고 건강해 조류독감을 비롯한 질병피해가 없었을 뿐 아니라 닭을 사육하는 다른 농 원과 달리 계사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현인농장은 20가지 재래닭을 복원해서 관상용으로 재래닭을 보급하고, 20년간 모은 300여점의 민속품들과 50마리의 재래닭 박제들을 활용해서 재래닭 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현인농원의 주 수익원은 재래닭과 유정란 판매다. 개량된 닭은 병아리에서 3개월이면 성계가 되는데 비해 재래닭은 4개월에서 5개월이 걸린다. 산란용 닭은 매일 알을 낳아 연간 300개 이상 생산이 가능한 반면, 재래닭은 연간 생산량이 100~150개에 머무르며 그것도 번식기(3월~6월)에만 치우친다. 770여 평, 4동의 계 사를 홍 대표와 그의 아내 김두희씨가 함께 관리하고 여기서 낳은 유정란을 한 알 한 알 정성들여 닦고 번 호를 매겨 직거래하고 있다. 3. 품목의 역사 현인닭은 홍승갑씨에 의해 복원된 우리의 토종닭이다. 홍 씨는 1983년 이래로 현인농장주로 한국 토종닭 보존위원회 창립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국립 축산과학연구소와 협력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국내 축산자원보존농장으로 지정된 현인농장은 20여가지 토종닭 품종가운데 15가지를 복원했다. 이중 현인흑계는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등재됐다. 현인농장에서 복원한 토종 닭은 대외적으로 현인닭으로 알려져 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전국)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경기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제한적인 유정란 직거래)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현인농원은 까다로운 재래닭 복원에 주력하고 있는 만큼, 이를 물려받고자하는 후계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홍 씨 부부의 나이가 일흔을 넘기면서 지속적인 농장관리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재래닭 복원 농장인 현인농원의 미래가 그만큼 불투명하고 복원된 재래닭 15종의 앞날 또한 밝지 만은 않은 실정이다.
  • 2.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임은주 주소 충남 논산시 광석면 천동2길7 전화번호 010-2988-8986 이메일주소 olim8986@naver.com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 어육장 漁肉醬 ) 2. 품목에 대한 설명* '어육장'은 큰 독에 잘 말려 손질한 고기와 생선을 메주 사이에 켜켜이 넣고 소금물을 부어 밀봉한 후 1년 간 발효시킨 장(醬)으로, 궁중 장으로 알려져 있는 전통 장이다. 조선시대 궁궐에서 담그던 전통 된장·간장인 어육장의 제조과정을 살펴 보면, 우선 된장을 담글 때 쇠고기 와 닭고기, 꿩고기, 도미·조기·병어·민어 등 흰살생선을 꾸덕꾸덕 말려 넣는다. 고기와 생선이 자연스럽게 배 어 맛과 향이 보통 된장·간장과는 전혀 다르다. 어육장은 단백질 함량이 높은 고급 장으로,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고기를 따로 넣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어육장은 기존 재래식 간장과는 달리 맛과 향이 풍부하고 개량식 간장보다 영양이 훨씬 더 풍부하다. 어육재료를 첨가해 고소하고 감칠맛이 날 뿐만 아니라, 인공조미료 대신 천연의 다양한 전통 식재료를 사 용해 웰빙 트렌드에도 부합한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010년 1월 27일 조선시대부터 궁중이나 서울 양반가에서 주로 이용했던 고급스런 장의 대표격인 어육장을 3대째 계승 발전시켰으며 특히 1999년부터 상품화를 통해 어육장의 제조기술 확립과 장류의 산업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권기옥(상촌식품/용인)씨를 명인 증서를 교부했다. 전통음식 연구가 박한재(의왕) 씨는 독특한 맛과 향의 어육장을 선보여 2009년 8월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기능성 농식품 베스트 10’에서 대상을 받은데 이어, 그 해 9월 농림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그는 어릴 적 고 향 경남 고성에서 어머니가 사골로 장(육장,肉醬)을 담는 것을 봤던 경험을 살려 어육장을 복원했다. 충남 논산의 임은주(해담골/논산)씨는 젓갈로 유명한 강경포구가 있던 강경읍 일원과 연무읍, 광석면 천동 리 등지에서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다양 젓갈과 같은 어장(漁醬), 그리고 꿩과 같은 날짐승을 잡아 푹 고은 다음 된장에 박아넣어 삭혀 먹던 육장(肉醬) 풍습을 되살려 어육장을 안전하게 발효·숙성시킬 수 있는 장독대를 개발해 지난 2013년 11월 소상공인진흥원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임 씨는 신속하고 간편한 패스트푸드가 손이 많이 가고 긴 시간을 요구하는 전통음식들을 빠르게 대체해 가는 요즈음, 소중한 전통음식과 조리법들이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까워 지역의 주부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어육장 장 담그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3. 품목의 역사 어육장은 큰 독에 잘 말려 손질한 고기와 생선을 메주 사이에 켜켜이 넣고 소금물을 부어 밀봉한 뒤 1년간 발효시킨 조선시대 서울의 양반들이 주로 이용했던 반가식품으로 조선후기 유일의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 씨(憑虛閣 李氏, 1759∼1824, 영조 35년~순조 24년)가 저술한 생활경제 백과사전 《규합총서(閨閤叢書)》에 ‘그 맛이 아름답다’고 기록돼 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전국)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경기 용인·의왕, 충남 논산)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음)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어육장은 고급 식재료를 사용하는 귀족 음식으로 서민들이 쉽사리 접하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그만큼 어육 장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이가 적었다. 옛 문헌에는 어육장이 소개돼 있으나 정확한 조리방법은 전해 지지 않고 있다. 조리과정이 까다로와 보편적인 음식으로 자리잡지 못했으며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과정에 서 그 원형이 계승되지 못해 현재 어육장을 제대로 담그는 이가 소수에 그치고 있다. 어육장은 농수축산물을 발효시켜 얻은, 일반 장류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훌륭한 기능성 식품이다. 하지만 생선과 고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 상온에서 발효하는 장류와는 달리 발효과정이 까다롭다. 온도변화가 크지 않은 땅속에 묻어두고 저온으로 오랜 기간 숙성을 시켜야 하는 탓에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이 크다. 이 런 이유들로 대를 이어 어육장을 생산하려는 이들이 줄어들고 어육장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있다.
  • 3.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한귀숙 주소 경북 울릉군 북면 나리 187번지 전화번호 010-4744-4643 이메일주소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 울릉 홍감자 ) 2. 품목에 대한 설명* 울릉홍감자는 쌀을 대신해 지역주민들의 끼니를 해결해준 토종 먹거리다. 울릉지역은 예로부터 쌀을 비롯한 곡물 재배가 어려워 옥수수로 밥을 지어 먹기도 했고 감자를 주식으로 이용해 왔다. 옥수수만큼이나 감자를 이용한 음식이 매우 다양하다. 1883년 울릉도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한 이래 홍감자는 양감자, 돼지감자 등과 더불어 지역주민들이 주로 재배하던 작물이었다. 울릉의 홍감자는 개량 감자보다는 크기가 적고 붉은 빛을 띤다. 삶으면 입자가 매우 부드럽고 치밀해서 그 맛이 매우 뛰어나다. 곡물이 귀했던 지역의 특성상 울릉 주민들은 감자를 쌀이나 밀가루 대용으로 사용해 서 송편이나 인절미 등 전통음식을 요리하는 식문화를 이어왔다. 울릉지역 주민들은 예로부터 감자 녹말에 소금을 넣어 반죽한 다음 반죽을 빚어 감자송편을 만들어 먹었는 가 하면 호박, 고추와 함께 감자를 갈아서 불에 익혀 먹는 감자부침, 감자녹말을 반죽해서 만든 새알심을 팥죽에 넣어 먹기도 했다. 또한 삶은 감자를 절구에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춰 찰지게 찧은 다음 먹기 알맞 게 떼어내 팥고물을 입힌 감자인절미를 만들어 먹었다. 3. 품목의 역사 감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불과 18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 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순조 24년인 1824~1825년에 관북지역인 만주에서 처음 전해졌다. 1862 년에 쓴 김창한의 〈원저보(圓藷譜)〉에 의하면 순조 32년에 전라도 해안에 영국 상선이 표류했다. 이 상선에 타고 있던 네덜란드 선교사가 감자의 종자와 재배법을 전했다고 한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감자는 우리 식탁에 빠르게 보급되었다.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은 칡뿌리, 토란, 도 라지, 인삼 등의 뿌리식물이 일상식뿐 아니라 의약재로 이용되어 왔기 때문에 뿌리식물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었다. 흉년때 감자는 밥과 반찬을 대신했다. 감자는 가난의 고통을 함께 나눴던 중요한 작물로 자리 를 잡았다. 산이 많아 논농사를 짓기 힘든 강원도 등지에서는 감자가 주식이었다. 홍감자는 양감자, 돼지감자, 자주감자 등과 함께 울릉도를 비롯한 전국에 걸쳐 자생하거나 재배되었으나 국 가에 의한 개량종 감자 보급이 활발해지면 점차 사라졌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울릉도)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울릉도)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습니다)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교통수단이 발전하고 내륙지방과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울릉의 토종 감자는 사라져 갔다. 또한 감자를 이용 해 인절미나 송편을 만들어 먹는 전통 식문화 또한 잊혀져 가고 있다. 현재 울릉의 전통 감자요리는 몇 안되는 가정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4.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한귀숙 주소 경북 울릉군 북면 나리 187번지 전화번호 010-4744-4643 이메일주소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 울릉옥수수엿청주 ) 2. 품목에 대한 설명* 울릉옥수수엿청주는 지역의 토종 옥수수를 이용해서 주민들이 즐겨운 전통주이다. 울릉지역은 예로부터 쌀을 비롯한 곡물 재배가 어려워 옥수수로 밥을 지어 먹었다. 그만큼 옥수수가 다양 하게 이용됐다. 울릉의 토종 옥수수는 빛깔이 진노란 황금색을 띠어 보기에 매우 좋다. 쌀이 귀했던 울릉도 지역 주민들은 이 옥수수를 이용해서 막걸리, 청주 등을 담았다. 울릉옥수수엿청주를 만드는 방법은 옥수수 낱알을 훑어내서 맷돌이나 분쇄기를 거쳐 분말을 만든 다음, 하 룻밤 물에 넣어 불린다. 이런 다음 옥수수 죽을 쑤어 식힌 다음 엿기름에 섞어 넣는다. 그리고 나서 불을 지펴 2/3가량 남을 정도로 달인다. 이렇게 달여낸 뒤 식힌뒤 누룩을 집어넣어 술을 담근다. 계절에 따라 다 르지만 보통 열흘이 지나면 술이 완성된다. 울릉옥수수엿청주는 단 맛이 느껴지면서도 순하고 부드러워서 남녀노소할 것 없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3. 품목의 역사 예로부터 전해내려 오는 지역 민요인 울릉도 아리랑 노랫말에 등장할 정도로 옥수수엿청주는 쌀이 귀한 울 릉도에서 지난 100년간 지역 주민들이 즐겨온 향토 술이다. “옥수수 엿 청주(淸酒)에 흑(黑)염소 고기 꾸어놓고 혼자먹기 하도 심심해서 산(山)고랑이 처녀(處女)가 나를 농락(籠絡)하네”(울릉도 아리랑 7절, 사동 김재조)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울릉도 나리분지 )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울릉도 나리분지 )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장에서 판매되지는 않습니다. 주문식 소량 생산)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교통수단이 발전하고 내륙지방과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울릉의 토중 옥수수는 사라져 갔고 옥수수를 이용해 술을 빚는 일도 잊혀져 가고 있다. 현재 울릉 옥수수엿청주는 몇 안되는 지역주민이 가정에서 담그고 있을 정도다.
  • 5.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장병태 주소 경북 울릉군 울릉읍 간령길 83-68 울릉군농업기술센터 전화번호 010-7941-5154 이메일주소 jbt5154@korea.kr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 울릉손꽁치 ) 2. 품목에 대한 설명* 울릉도 근해는 예로부터 꽁치가 많이 나기로 이름난 곳이다. 늦봄철이면 몰려드는 꽁치떼에 가려 어부들이 다른 생선을 잡기 어렵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울릉손꽁치는 울릉 주민들이 뗏목을 만들어 바다에서 꽁치를 손으로 잡는 전통어업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해마다 5월쯤 꽁치가 산란기를 맞아 알을 낳으러 울릉도 근해를 찾는다. 꽁치는 산란을 하기 위해 해초 속 으로 몰리는데 이 때 뗏목을 탄 어부가 손을 내밀어 꽁치를 잡는다. 마땅한 해초가 없을 경우 어부들은 꽁 치가 즐겨 찾는 몰이란 해초를 준비해서 물위에 올려놓고 꽁치를 유인한다. 이렇게 잡은 꽁치는 산란철 살집이 오른데다, 그물이나 낚시로 잡은 생선보다 스트레스가 덜해서 맛이 매 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릉주민들은 꽁치를 바다에서 잡는 즉시 젓갈을 담아 먹었다. 울릉 꽁치젓갈은 김치의 식재료나 밑반찬으 로 널이 이용됐다. 뿐만 아니라 울릉의 손꽁치는 물회는 물론 다양한 지역의 식재료로 쓰였다. 꽁치를 곱게 따져서 경단을 빚고 이것을 떡국에 넣어 먹기도 했다. 가축이 적었던 지역에서 꽁치는 축산물을 대신하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3. 품목의 역사 섬이라는 지역적인 특수한 여건으로 인해 울릉지역은 예로부터 수산업이 지역주민들의 주된 소득원으로 자 리해 있다. 울릉꽁치는 오징어와 함께 대표적인 지역의 수산자원으로 오랫동안 울릉도의 특산자원으로 자 리해 왔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울릉도 근해 )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울릉도 )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울릉도 내부 소비)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몇 년전만 해도 울릉지역에선 꽁치가 많이 잡혔으나 최근 동해에 걸쳐 전반적인 어족자원 감소현상으로 인 해 생산량이 급격히 줄고 있다. 실제로 내륙지방에서 사용하는 꽁치의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런 현상은 울릉도에 까지 영향을 미쳐 올들어 꽁치가 거의 잡히지 않았다. 해양수산부는 울릉도를 포함한 동해에서 올해 꽁치가 거의 잡히지 않았다면서 이것이 장기적인 추세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6.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최수호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234-46 남양주농업기술센터 전화번호 010-8279-7983 이메일주소 csh386@korea.kr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 청실배 ) 2. 품목에 대한 설명*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18번지에 자리한 1997년 12월 30일 천연기념물 386호로 지정된 마이산 청실 배 나무는 조선태조 이성계가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이산 청실배나무는 일명, 아그배 또는 독배라고도 하는데 꽃은 4월 중순경 만개하며 그 열매는 일반 배와는 달리 작으며 푸른 색을 띤다. 기원전 2~3세기 삼한시대이후 사람들은 산에서 자라는 돌배를 집에다 옮겨 심었고, 돌배는 과수로 자리매 김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돌배나무 중에서 특히 맛좋은 열매가 달리는 나무를 골라 심고, 청실배 나무란 새로운 이름을 붙여 아껴왔다. 전북 진안에 오랜 전설을 간직한 청실배나무 한 그루가 용케 살아남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간신히 명맥 을 이어가고 있다. 키 15m, 가슴높이 줄기 둘레가 2.8m에 이른다. 흔한 고목 품새처럼 옆으로 퍼진 것이 아니라 솟아오른 마이산과 경쟁하듯 훌쩍 큰 키로 자라고 있다. 봄날이면 수십만개의 하얀 꽃을 뒤집어쓰 고 가을이면 주먹크기의 배가 달리는 어찌 보면 평범한 배나무처럼 보일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 는 유일한 청실배나무다. 전국에 걸쳐 자라던 청실배나무는 서양 문물과 함께 들어온 ‘개량 배’에 밀려 사 라겨 깄다. 다행히 남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전북 진안에서 살아남은 셈이다. 둥그스름한 바위 덩어리 두 개가 커다란 산을 이루는 마이산 자락에 은수사란 자그마한 절이 있고, 그 앞 마당에서 이 귀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청실배나무가 자라는 곳은 산 밑에서 꼭대기로 바람이 불 때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여름에 는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잎들이 서로 마찰하여 만들어내는 소리는 신비감마저 준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나무 밑동에다 물 담은 그릇을 담아두면 아래에서 위로 곧추서는 역(逆)고드름이 생기기도 하는 특별한 나 무다. 3. 품목의 역사 청실배의 유래는 멀리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먼 옛날 산에서 그냥 따먹기만 하던 돌배는 삼한시대 부터 집 주위에다 한두 포기씩 심으면서 과수로 자리매김을 해나갔다. 고전소설 춘향전에 보면 이도령이 춘향이 집을 찾아가 첫날밤을 치르기 전, 월매가 장만해준 산해진미 주 안상에는 여러 과일이 올라와 있다. 열녀춘향수절가에는 ‘청슬이’, 이고본(李古本)춘향전에는 ‘청술레’라고 한 과일이 바로 청실배(靑實梨)다. 300여년 전까지 이도령도 춘향이도 즐겨 먹던 청실배나무는 지금은 남원 땅 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서울에서 남원까지 우리나라 곳곳에 널리 자라던 청실배나무가 개량배에 떠밀려 멀리 진안 땅에 살아남게 된 데는 이성계와의 깊은 인연 때문이다. 서기 1380년 전북 운봉의 넓은 들에는 이성계가 이끄는 군사들의 화살에 수많은 왜구의 시신이 쌓여갔다. 몇년째 왜구의 침입으로 남부지방이 쑥대밭이 되도록 당하기만 한 조선관군은 그들의 노략질에 종지부를 찍고 대승을 거두는 순간이다. 개선장군이 된 그는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수도 개경으로 향한다. 훗날 임금이 될 디딤돌을 마련한 그는 예견이라도 한 듯이 곧장 내다르지 않고 명산 마이산으로 들어갔다.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끝낼 무렵, 은수사 마당에 청실배나무 한 그루를 심 고 이곳을 다녀갔다는 증표를 남긴다. 나라를 일군 이성계가 손수 심었다니 조선왕조 내내 보호받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흘러간 620년 세월을 나이테에 묻어두고 새 천년을 다시 살아가고 있다. 서양 문물과 함께 들어온 ‘개량 배’에 밀려 사라진 청실배는 다행히 남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전북 진안에 오랜 전설을 간직한채 한 그루가 용케 살아남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둥 그스름한 바위 덩어리 두 개가 커다란 산을 이루는 마이산 자락에 은수사란 자그마한 절이 있고, 그 앞마 당에서 이 귀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 서울 경기 충청 전라 )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전북 진안)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판하지 않습니다)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서울에서 남원까지 우리나라 곳곳에 널리 자라던 청실배나무는 서양 문물과 함께 들어온 ‘개량 배’에 밀려 사라졌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 자락 은수사 앞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청실배나무 한그루가 유일하다.
  • 7.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최수호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234-46 남양주농업기술센터 전화번호 010-8279-7983 이메일주소 csh386@korea.kr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 남양주 먹골 황실배 ) 2. 품목에 대한 설명* ‘먹골배’로 이름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자리한 남양주 먹골 황실배나무는 조선시대때 주로 기르던 청실배와 다른 품중으로 조선후기 황실에 진상하는 토종배 나무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정순왕후 묘앞 에 심겨진 남양주 먹골 황실배는 조선 6대 왕인 단종비인 정순왕후의 제사를 위한 배를 얻고자 심은 배나 무로 토종이며 병해충에 매우 강하다. 가을에 익는 남양주 먹골 황실배는 단맛이 매우 강하며 배과실이 황 금색 빛을 띠고 있다. 남양주 먹골 황실배는 조선시대말 고종때 황실에 진상되던 품종이다. 1456년 세조3년 세조(수양대군)가 사육신을 숙청하고 이듬해 단종을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낼 때 수행했 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관직을 그만두고 지금의 서울 중랑구 묵동지역인 먹골에 심은 배나무가 번식해서 사 방으로 퍼져나간 먹골배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1930년대 지금의 묵동에서 신내동,남쪽으로는 중화동, 상봉 동, 남양주 일대에서 생산한 배를 가리킨다. 오늘날 서울에서 남양주에 이르는 먹골배 생산지에 남아있는 토종배는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산 65번지 에 자리한 남양주 먹골 황실배가 유일하다. 오늘날 먹골배란 낱말은 남양주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자리한 먹골(묵동)이라는 지역에서 생산된 배를 지칭하고 있다. 먹골지역에서 생산하던 배 품종은 일제강점기를 거 치면서 교체되기 시작해 오늘날 개량종배 품종인 신고로 대체됐다. 3. 품목의 역사 우리나라의 배 재배는 삼한시대와 신라의 문헌에 배에 관한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에 배 재배를 장려했다 는 기록을 보면 배에 관한 역사는 길다. 또 품종분화도 오래전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이며 기록상 허균 (AD. 1611)의 저서인 도문대작 (屠門大嚼) 에 5품종이 나오고, 19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완판본 춘향전에서는 청실배 (靑實梨)라는 이름이 나오며 구한 말에 황실배 (黃實梨),청실배 (靑實梨) 등과 같은 명칭이 있어 일반에게 널리 재배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1920년대의 조사에는 33품종에 달하는 학명이 밝혀진 재래종과 학명이 밝혀지지 않은 26품종이 기재되어 있다. 이들 재래종 배의 명산지로는 봉산, 함흥, 안변, 금화, 봉화현, 수원, 평양 등이었고, 품질이 우수한 품 종은 황실배, 청실배, 함흥배(咸興梨), 봉화배 (逢火梨), 청당로배 (靑棠露梨), 봉의면배 (鳳儀面梨), 운두면배 (雲頭面梨), 합실배 등이 알려졌다. 일본인들은 1920년경 지금의 경기도 구리시 묵동을 중심으로 한 남양주 지역에 장십랑 (長十郞)과 만삼길 (晩三吉)을 길렀는데, 묵동은 중랑천변으로 토심이 5∼10cm로 깊고 배수가 잘되는 사양토로서 맛이 좋아 먹골배라 불렸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여기서 재배되던 품종도 이제는 신 고 (新高)로 거의 바뀌어져 먹골배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서울지역의 재배면적이 줄어들면서 오늘날 남양주 일대가 먹골배의 주산지로 자리하고 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 서울 경기 충청 전라 )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전북 진안)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판하지 않습니다)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기르던 토종배 품종인 황실배는 먹골배 생산지역이었던 서울에서 남양주에 까지 이 르던 지역에서 자랐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장십랑과 만삼길 품종으로 대체됐고, 그후에 신고로 바뀌었 다. 오늘날 남양주를 주산지로 하는 먹골배는 토종배가 아닌 신고배를 뜻하며 과거 서울에서 남양주에 이 르는 먹골배 생산지에서 남아있는 토종배는 남양주시 사능의 황실배가 유일하다. 남양주시농업기술센터는 맛의 방주 등재를 계기로 멸종 위기에 처한 황실배를 복원한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 8.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김영숙 주소 예산군 대술면 시산서길 64-11 전화번호 010-8816-5028 이메일주소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예산집장) 2. 품목에 대한 설명* 예산집장은 백중이 지난 음력 7월 15-20일쯤 담그며, 예로부터 예산의 양반가에서 주로 먹던 된장으로, 즙 장(汁醬)이라고도 하고 채소를 많이 넣어서 채장(菜醬)이라고도 한다. 타 지방의 집장과는 달리 소고기와 말린 대하가 들어가며, 소금으로 간을 맞추지 않고 간장으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메주콩, 보리, 찹쌀, 한우양지머리, 오이, 가지, 고추, 천일염, 조선간장과 같은 곡물류 채소 육류 해산물 등의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한 지역 양반가의 고급 음식이었다. 이에 따라 예산집장은 동물성 단백 질과 같은 값비싼 많이 담고 있으며, 항산화 역할을 하는 비타민 C와 E가 많아 고단백, 저칼로리 건강식으 로 꼽히고 있다. 과거에는 예산집장을 보리밥에 비벼먹었다. 특히 여름철 단기간의 발효를 거쳐 양반가에 서 별미로 즐겼다고 한다. 예산집장은 지역고유의 별미된장으로 고급재료가 들어가는 탓에 서민들보다는 주로 양반가에서 즐겨먹던 음식으로 정통성이나 품질면에서 차별화가 뚜렷하다. 일반된장(1년이상)과는 달리 속성생산(1주일)이 가능하 며 현대인들의 생활패턴에 맞게 별도의 양념없이도 바로 끊여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물성 단백질 과 비타민이 풍부하며, 일반된장에 비해 짜지 않고, 특히 전골이나 비빔밥에 넣어 먹으면 별미이다. 반면, 저염된장으로 장기간의 보관이 어렵고 냉장유통 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궁중요리전문가 한복려씨와 한복진 교수가 함께 쓴 종가집시어머니 장담그는 법에 따르면 예산집장에 들어 가는 집장메주는 콩 3되와 보리쌀 5되의 비율로 쑤는데 콩은 무르게 삶고, 보리쌀은 시루에 넣고 찐다. 먼 저 절구에 삶은 콩을 넣고 찧다가 나중에 보리쌀을 넣고 함께 찧는다. 주먹만한 크기로 메주를 만들고 사 이사이에 짚을 깔고 그늘진 곳에서 띄운다. 집장 담글 때는 찹쌀 5되로 밥을 짓고, 곱게 빻아 둔 메주가루 를 섞는데 이때는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그러나 밥이 질 경우에는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미리 준비해 둔 오이.가지.고추.양지머리.대하등을 함께 넣는다. 오이는 소금물에 하룻밤 정도 절인 후 맹물에 우려서 간을 빼고 가지와 고추는 너무 크거나 맵지 않은 것을 골라 하룻밤 절여 행궈낸다. 양지머리는 삶아서 수육으로 쓰고, 대하는 말린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위의 재료를 항아리 속에 켜켜이 넣고 뚜껑은 덮지 않는다. 대신 열에 강한 감잎을 두껍게 쌓는다. 이 항아리를 물 속에 2/3쯤 잠기게 한후 사흘동안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 도록 한다. 감잎을 벗기고 잘 섞은 후 3-4일 후면 먹을 수 있다. 예전에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퇴비더미에 묻어서 삭히기도 했다. 3. 품목의 역사 예산집장은 충남 예산지역 양반가를 중심으로 오랫전부터 전해오는 전통음식으로 아직도 지역에선 그 맛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적잖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식생활의 변화 등으로 인해 예산집장을 찾아보기 힘들다. 현 재 지역에선 햇빛촌농원이 복원에 성공했으나 저장유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생산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충청남도 예산)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충남 예산)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가정소비용)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식문화의 변화, 그리고 예산집장의 특성상 저장 유통이 어렵고, 일부 귀족을 위함 음식이었다는 점으로 인 해 널리 보급이 이뤄지지 않고 지역의 1개 농장이 이를 복원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소멸위기에 처함
  • 9.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김영숙 주소 예산군 대술면 시산서길 64-11 전화번호 010-8816-5028 이메일주소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예산삭힌김치 ) 2. 품목에 대한 설명* 예산삭힌김치는 충남 예산군 봉산면 금치리 일대 주민들이 예로부터 즐겨 먹던 김치의 일종이다. 과거 예산군에서 경제적인 여건이 그리 넉넉지 못햇던 금치리 주민들은 해마다 11월쯤 배추를 재배해서 팔 고 남은 시레기 또는 겉절이를 이용해 김치를 담궜다. 예산삭힌김치는 배추의 시레기를 이용했다는 점, 그 리고 고춧가루를 쓰지 않은채 마늘 파 새우젓만을 이용했고, 반드시 깨진 독을 이용해서 물기를 제거하며 삭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김치와는 다르다. 이 김치는 또 단맛을 내는 설탕,사카린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예산삭힌김치는 깨진 독을 이용해 약 2개월간의 발효과정을 거치는데 물기를 제거함으로써 습기와 신맛을 피했다고 한다. 즉 발효된 김치가 눅눅하거나 신맛이 난다면 제대로된 예산삭힌김치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 맛도 마치 삭힌 홍어회를 연상케 할 만큼 독특하다. 금치리 주민들은 예산삭힌김치를 지역에서 나는 마늘, 파와 함께, 1km 떨어진 구만리 포구에서 새우젓을 조달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1979년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사이로 흘러드 는 삽교천 하구를 가로막은 둑인 삽교천방조제가 들어서기 전까지 만조때 27km를 거슬러 바닷물이 예산군 구만리에 가지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구만리에는 포구가 형성됐는데 당시 금치리 주민들은 예산삭힌김 치를 만들기 위해 구만리 포구에 들러 새우젓을 조달했다. 금치리 주민들은 예산삭힌김치를 밥을 지을 때 나오는 쌀뜨물에 넣어 자작하게 지져서 먹는다. 현재 금치리에선 아직도 5가구 내외의 가정이 예산삭힌김치를 담아서 먹고 있다. 예산삭힌김치는 식재료, 그리고 발효방식과 조리방법, 맛에서 일반 김치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배추 시레 기, 깨진 독 등을 이용해서 만드는 예산삭힌김치는 경제적으로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 힘들었을 당시에 마 을주민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담긴 대표적인 서민 건강음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예산삭힌김치는 배추 부산물인 시레기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시레기김치, 또는 겉절이 김치라고 불리며, 그 맛이 홍어회를 흡사하다는 점에서 홍어김치라고 불리기도 한다. 3. 품목의 역사 예산삭힌김치는 오랫동안 금치리 주민들의 주된 음식으로 자리했으나 식재료 사용의 변화, 지역주민의 고 령화, 이농현상 등이 겹쳐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현재 금치리의 15가구 정도가 계속해서 예산삭힌김치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금치리)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금치리)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가정소비용)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급격한 이농현상, 농촌 고령화, 식재료의 변화 등으로 인해 금치리 마을의 대표적인 서민음식이었던 예산삭 힌김치 또한 사라지고 있다. 현재 예산삭힌김치를 담고 있는 금치리 노인들이 사라지면서 예산삭힌김치 또 한 소멸위기에 처하고 있다.
  • 10.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 성명 이민형 주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강선로 187 1003-1301 전화번호 010-2738-6233 이메일 leesimak@naver.com 1. 품목명 감홍로 (감홍로주) 2. 품목에 대한 설명 감홍로는 좁쌀 누룩과 멥쌀 고두밥으로 술을 빚어 두 번 증류해 일정기간 숙성시킨 뒤 8가지 약재를 넣고 침출시켜 다시 1년~ 5년을 숙성시켜 완성한다. 용안육, 정향, 진피, 방풍, 계피, 생강, 감초, 지초가 들어간 다. 이중 용안육, 계피, 감초에서 나는 단맛의 감(甘), 지초가 내는 붉은 빛의 홍(紅)을 써 술의 이름이 감홍 로이다. 궁중에서 발생한 병이 약을 끓일 만큼의 시간도 없이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일 때 약 대신 급 히 감홍로를 처방하곤 했다. 본래 대다수의 술은 체온을 높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내장 기관을 냉하게 만든다. 그러나 감홍로의 경우 약재의 성분이 내장기관을 따뜻하게 만들어 막혀있던 기와 혈을 뚫어준다. 한의학에서는 내장기관에 암이 생기는 것은 냉한 기운이 뭉쳐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그러한 이유로 감홍 로가 암을 치료하는 데에 쓰이기도 했다는 견해도 있다. 또한 2010년 5월에 발간된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에서 감홍로주 제조에 사용하는 약재 침출액들의 항산화 작용에 대해 다루었을 만큼 약리작용이 뛰어난 술이라고 할 수 있다. 3. 품목의 역사 감홍로는 관서지방에서 생산되고, 그 맛이 달고(甘) 붉은 빛깔(紅)을 띄는 이슬같은 술(露)이라는 뜻이다. 평 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의 특산명주로 알려져 왔던 까닭에 ‘관서 감홍로’ 또는 ‘평양 감홍로’로도 불린 다. 관서 감홍로는 조선 중기 1787년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고사십이집]을 비롯하여 1827년 [임원십육 지], 1849년 [동국세시기] 등의 여러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 “관서 감홍로는 세 번 고아서 만든 소주를 이 용하여 만든 만큼 맛이 매우 달고 맹렬하며, 술 빛깔이 연지와 같아 홍로주 가운데서도 으뜸이다.”라고 기 록되어 있다. 감홍로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밀주단속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겼다가 한말의 학자이자 시인이기도 했 던 육당 최남선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하였다. 1946년,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3대 명 주’ 가운데 관서지방의 감홍로를 으뜸으로 꼽고, 다음으로 전라도의 이강고와 죽력고를 소개하며 제조방법 도 간략하게 기록하였다. 술에는 격이 있는데, 로(露), 고(膏), 춘(春), 주(酒) 의 순서이다. 조선 3대 명주 중 로(露)의 격을 지닌 것은 감홍로가 유일하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원래는 평양(관서)지방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던 술이다. 평양에서 양조장을 하다가 6.25전쟁 때 월남한 故
  • 11. 포암(浦巖) 이경찬선생에 의해 전해지게 되었다. 선생은 1986년 86-가호 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로 지정되 었으며 이후 막내딸 이원(利園) 이기숙이 재현하여 2012년 10월 농립축산식품부에서 명인43호로 지정되었 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윗가마울길 ·149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야산으로 둘러싸여있고 6.25때는 파주읍에 주민들이 이곳에 피난을 하여 살았다고 하며 수온이 일정하여 겨울에도 빨래를 하였으 며, 물이 좋기로 알려진 지역이다. 6. 대략적인 생산량에 대해 적어주세요. 연 생산량은 전체를 가동하면 약 12톤을 생산할 수 있다. 7.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약간의 주류코너, 몇몇 음식점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8.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감홍로의 주원료는 우리나라 토종 우리밀로 만든 누룩과 메조, 찰수수, 쌀이다. 현재는 메조를 재배하는 농 가가 많지 않아 국내산 메조를 안정적으로 수급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또한 대중적인 술이 아니기 때 문에 지속적인 감홍로 생산을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판매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9. 개인적인 신청 동기 술의 발전은 한 나라의 식문화와도 관련이 있으며 이에 대한 복원을 통하여 우리선조들의 음식문화를 접 하고자 하였으며, 우리나라의 과거의 주류문화의 단절은 곧 음식문화의 단절이며, 이는 선조들의 문화를 후대에게 알려야하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일환으로 우리나라의 고 급술에 대한 보급을 하고자 한다. 제도권에서의 보호가 아닌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지켜야할 우리의 유산이며 후대에 물려 줘야 할 우리의 문화라고 봅니다.
  • 12.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강원희 주소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함적1리 전화번호 010-2944-5672 이메일주소 nonsan2395@kccf.or.kr 1. 품목명 논산 을문이(Nonsan Eulmooni) 2. 품목에 대한 설명 효자고기가 살고 있는 논산시 가야곡면 병암리 하천은 논산천의 중.하류 지역으로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에 서 발원한 논산천의 냇물이 경사가 급하고 차가운 산골짝을 흘러오다가 전북 완주군 운주면 근처부터 경사 가 완만한 너른 들판을 흐르며 물의 속도도 천천히 흐르고 또 충분한 햇빛을 받아 수온이 따뜻해지기 시작 한다. 이런 상태로 탑정저수지가 시작되는 병암리에 이르고 이곳의 냇물에 많이 있는 굵은 자갈에는 이끼 가 끼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 이끼를 뜯어 먹고 사는 물고기들이 서식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이 근처 동네 사람들이 흔히 “효자고기”라고 부르는 을문이다. 고기가 다 자라면 어른 손가락 정도 까지 자라고 수년 전 까지만 해도 병암 냇가에 많이 살았는데 요즘은 고기도 귀해졌고 더구나 큰 고기는 거의 구경하기 어렵고 잔챙이들만 가끔 눈에 뜨일 정도이다. 오늘날도 이 물고기는 가야곡면 병암리의 탑정저수지가 시작되는 곳에서 상류 쪽으로 약 10리 정도 내에서만 자라며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없다. 3. 품목의 역사 조선 성종(재위 1470~1494)때 현재의 논산시 가야곡면 함적리에 효성이 지극한 중화재 강응정이라는 분이 살았는데 왕조실록에도 여러 번 거론 되고 효행으로 벼슬에 천거될 정도로 유명했었다. 이 분의 효행에 관 한 여러 이야기 중에 이 효자고기 탕과 연관된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께서 병환으로 오래 고생하시는데 어느 추운 겨울 정월달에 어머니께서 개장국이 잡수시고 싶다고 하셨다. 원래 겨울에는 개장 국을 거의 먹지 않고 특히 정월(1월)에는 개장국 먹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어 개장국을 구하기가 어려웠지 만 효성이 지극했던 강응정은 집에서 20여리나 되는 인내장(양촌장)에까지 가서 어렵게 개장국을 구해 부 지런히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가야곡면 함적리에서 인내장에 가려면 오늘날도 논산천의 큰 냇 물을 건너야 하는데 그 때도 이 냇물을 건너게 되었다. 한겨울이었으므로 냇물은 얼어 있었고 조심조심 얼 음 위를 걸었지만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물론 어렵게 구한 개장국도 다 쏟아버렸다. 눈앞이 깜깜 해진 강응정은 얼음 위에 주저 앉아 하늘을 보고 울면서 “이제 우리 어머니께 무얼 갔다 드리나” 하면서 한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펴보니 넘어지면서 깨진 얼음구멍에 작은 물고기들이 몰려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강응정은 할 수 없이 이 물고기라도 떠다가 어머니께 끓여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이 물고기를 빈 그릇으로 떠내어 배를 따고 다듬어서 집으로 가져와 어머니께 끓여 드 렸다. 어머니께서는 이 물고기 탕을 맛있게 잡수시고 병환이 나아 오래 사셨다고 한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이 물고기는 강응정이 물고기를 다듬었던 그 냇물 근처에서만 살았는데 사람들은 강응정이 물고기 배를 따 고 다듬을 때 그 물고기의 알이 냇물에 가라앉아 거기서 부화되어 그 근처에서만 살게 되었다고 하며, 그 래서 이 물고기는 강응정의 효성에 감동한 하늘이 내려준 고기라 하여 마을 사람들이 ‘효자고기’ 라고 부르 게 되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 뒤로 사람들은 이 고기로 끓인 탕을 ‘효자고기 탕’ 이라 하며 부모님께 드리 는 효도하는 음식으로 삼았고 평소에도 이 효자고기 탕을 자주 먹게 되었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자연적으로 이 지역(가야곡면 함적·산노·병암리-지역민들은 흔히 ‘안갈매울’ 이라 한다)의 특색음식으로 전해 오게 되었다.
  • 13.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장에서 판매된 적은 없으며 지금은 을문이가 귀해져서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일반 가정에서도 잘 소비되 지 않고 있다. 현재 강응정의 18세손인 신청자가 선조로부터 을문이탕 조리법을 전수 받아 명맥을 이어오 고 있으며 마을의 몇몇 집에서도 나름의 독특한 조리법들을 갖고 있다.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고기가 너무 작아 고기를 잡는데 노동력이 많이 들고 양식하거나 상품화하기에도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며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독특한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근년에는 황소개구리의 올챙이들이 을문이를 무차별적으로 잡아먹어 더욱 더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어 멸종위기를 맞게 되었다.
  • 14.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임장옥 주소 (580-953) 전북 정읍시 산외면 화죽리 716-5 전화번호 063. 537. 3917 이메일주소 kumkye@naver.com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있는 품목의 이름* (먹시감식초) 2. 품목에 대한 설명* 먹시감을 홍시가 되기전 수확하여 깨끗이 씻은후 물기를 빼고 항아리에 넣는다. 감이 적실정도의 술을 부 어주어 알콜발효가 되도록 하여준다. 이때 술을 직접제조하여 사용하여야 안전하다. 아니면 일반주조장에서 생산되는것을 할용할시는 생막걸리를 사용한다. 알콜발효가 끝나면 찌거기를 분리하여 맑은물만 채취하여 종초를 첨가하여 초산발효가 끝날때까지 1일 1~2회씩저어준다 초산발효가 끝나면은 밀봉하여 서늘한곳에서 숙성시키면서 사용한다. 감식초는 오래 숙성시키면 깊은 맛이 향이생긴다 먹시감은 전라북도지방 일부 지역 산 기슭기나 밭두렁 등 에서 자생하는 자연 토종(재래종)감으로써 씨알은 작지만 당도가 높고 탄닌성분이 많아 내륙 지방의 소득원 으로써 다른감에 비해 찰기가 있어 곶감용 및 추석명절때는 과일이 귀한시절 땡감을 울궈<탈삽> 재사상에 놓고 먹어왔으며 목포지방에서는 고기잡이 어망에 감물을 들여 사용했는데 이지역감을 이용한것은 탄닌성 분이 많아 어망에 감물피복이 잘되기 때문이였고 지금도 제주도 지역에서 의복등에 감물드리는데 이지역 먹시감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먹시감은 감식초 뿐만아니라 식용, 곶감, 염료 등 다양하게 활용하며 어려 울때 내륙지방의 주소득으로 자녀학비를 조달해주기도 했다. 3. 품목의 역사 ❍ 식초는 오래 전부터 우리 일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조미료 였음. 조선시대 문헌인 『증보산림경 제』에 “초는 장 다음으로 맛을 돋우어주는 바가 많아 가정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한 번 만들면 오래가 고 또 비용을 절약하는 바가 적지 않다.”로, 사람이 최초로 만들어 낸 조미료로 알려져 있다. ❍ 감식초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 되었음 .지금은 감식초가 전통발효식품으로 다이어트와 변비 스트레스와 육체적 노동으로 우리몸에 쌓인 젖산을 없애주어 피로를 풀어주는 전통건강발효식품으로 애용이 되고있지만 초기에는 약품으로더 많이 사용 되었다고 한다. ❍ 먹시감식초는 토종 먹시감을 재배해오던때 부터 1980년대 까지는 집에서 초두루미를 두고 담아서 사용 해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점차 손쉽게 구입할 수 있고 값이 싼 빙초산<화학식초> 맛에 길들여져 관리가 어려운 감식초는 점차 사라져 갔다. 인근지역에 먹시감식초를 생산하는 곳이 10여곳이 있었으나 소득보장 이 되지 못하니 자연스레 도산했다. 지금은 1곳만 어렵게 토종보존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전통방 법으로 꾸준이 지켜온 덕분에 전통방식을 고수하여 온 것을 인정 받아 임장옥씨는 농식품부로부터 국내 최 초로 감식초 명인지정을 받았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 전북 정읍시 )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의 이름 등 ( 전북 정읍시 산외면 화죽길 58 금계식품에서만 생산되고 있다 )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1994년부터 공장을 설립하여 국내유기농매장을 비롯해 우체국쇼핑, 농협쇼핑, 초록마을, 풀무원, 울가 , 이 마트, 홈플러스 등지에서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양조 식초나 화학식초와 가격 경쟁이 어려워서 판매 는 부진하다.
  • 15.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감나무 품종개량으로 대봉시 단감등 과일이큰 품종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먹시감은 과거 면으로 짠 고기어망의 염료로 사용됐으나 화학섬유로 만든 고기어망이 나오면서 이마저 어려워지고 있다. 과일 크기가 작은데도 불구 과일속 씨가 8개나 들어 있는 재래종 먹시감은 경제성마저 떨어져 설 땅 을 잃어가고 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감나무 몇 그루 있느냐에 따라 빈부가 결정 되었으나 지금은 먹시 감나무가 이제 칡넝쿨로 덮여 고사돼 가고 있다. 지역에선 섬징감 물길을 따라 벼농사가 성행하면서 감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현재 먹시감은 일부에서 곶감으로 만들어 팔기도 하지만 과실이 적고 씨가 많아 서(8개)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 16.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 김동환 주소 충남 논산시 연산면 선비로 574-6 전화번호 041-735-1910, 010-3258-8484 이메일 ah@bandi22.com 1. 품목명 : 어간장 간장은 산분해 간장, 소금물로 담그는 재래식 간장이 있다. 그러나 어간장은 멸치 액젓으로만 담근다. 2. 품목에 대한 설명 어(御) 간장은 물 한방울 사용하지 않고 멸치액젓과 태광콩으로 쑨 메주로만 만든 간장이다. 어간장은 만들기도 까다롭고 오랜 기간 숙성해야 되기에 일반 가정에서보다는 궁궐에서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어간장은 멸치액젓과 메주로 만든 간장을 항아리에 담아 볕이 잘 들어 잡균이 없는 곳에서 1년을 숙성시킨 후 다시 간장에 메주를 넣어 50여 일 지난 뒤 메주를 꺼내고 2년 더 숙성시킨 겹간장이다. 어간장을 만드는 방법을 살펴보면, 봄에 처음 소금을 채취해서 3년동안 간수를 빼고 5월 알을 배어 단백질 이 풍부한 멸치를 염장한 후 3년 숙성을 거친다. 또 연산지역에서 생산한 중간크기의 콩(태광)을 삶아 메주를 만들어 40일이상 발효시켜 음력 정월에 멸치 액젓에 담근 후 50일이 지나 얻은 된장을 잡균이 없는 장독에 넣어 1년간 1년을 숙성시켜 1차 간장을 만 든다. 1년뒤 여기다 다시 메주를 넣어 맛을 증진시킨 다음 2년을 더 숙성시켜 겹간장을 완성한다. 단백질이 균에 의해 분해되어 숙성되면서 간장의 감칠맛이 베인다. 멸치의 단백질이 3년 동안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단백한 맛을 내고 다시 콩으로 만든 메주를 넣어 단백질을 추가하는 어간장은 맛과 영양면에서 일반 간장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3. 품목의 역사 어간장은 조선시대때 궁궐이나 양반 종가집에서 주로 사용됐다고 한다. 제조비법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 고 있느나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없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어간장은 멸치액젓으로만 제조하기에 부패하기 쉽다. 그래서 낮과 밤의 온도차가 큰 지역, 즉 산골에서 주 로 생산되었다고 한다. 차령산맥 남쪽 지역이 주요 생산지역이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마을의 이름 등 연산면. 차령산맥 남쪽 끝자락인 강경을 중심으로 30~40km 이내에 있다. 6. 대략적인 생산량에 대해 적어주세요. 연간 약 2톤 규모 7.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현재까지는 신청자인 옹기식품 김동환 대표의 모친(노순애, 85)께서 혼자 생산하여 집에서만 먹어왔다. 옹기식 품은 2015년부터 처음으로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8.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어(御)간장이 만들어지기기까지 9년이 소요되고 만드는 방법도 까다롭다. 경제성이 떨어져 생산하고자 하는 이 들들 찾아보기 힘들다.
  • 17. 9. 신청의 개인적인 동기 강경읍 채운면 출신인 신청자의 모친은 안동 김 씨 집안에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로 부터 전해 들은 것에, 본인 솜씨를 더해 겨우겨우 명맥을 이어 왔다. 신청자는 2005년부터 어간장을 복원하는데 성공하였다. 어린 시절 신청자 모친이 소화가 안 되거나 출산을 하면 어(御)간장을 약처럼 사용하였는데 물에 타서 약 하게 먹었는데도 맛은 물론 향기가 가시지 않는. 신청자의 모친은 지금도 저녁에 몸속의 노폐물을 제거하신다며 어간장을 물에 타서 드시곤 하는데 장수의 비결이 아닌가 한다. 이와 같이 좋은 식품이 경제성에 밀려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신청하게 되었다.
  • 18. 신청자성 명* 전화번호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 있는 이름* 제주강술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양용진 제주특별자치도 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 +82 10 3692 0628 +82 64 710 3132 이메일 주소* yyjeju@naver.com / pinkseon@korea.kr - 이름이 지역어 또는 사투리일 경우 표준어로 번역된 이름 - 영문명 Kangsool, Jeju traditional paste-type alchol 주소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평로 318 204동 506호 (외도1동, 부영아파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문연로 6 (연동) 2. 품목에 대한 설명* (1) 가공된 식품의 경우 - 다양한 가공 단계를 포함하여 어떻게 생산되는지, 재료가 지역에서 생산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 제주지역에서 생산되는 ‘차조’를 갈아서 반죽하여 술떡(오메기떡)을 만들어 익힌 후 토종 밀로 제조한 ‘밀누 룩’과 혼합하여 항아리에 담아 약 4개월간 발효와 건조과정을 거쳐 건조된 상태로 보관하여 필요할 때마다 물로 희석하여 마시는 술. 제주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흐린조(차조)를 겨울에서 봄에 이르는 동안 주곡인 보리와 혼합하여 밥을 지어 먹었을 만큼 많이 생산 되었으나 현재 수입산 차조에 의해 시장이 잠식되어 재배지를 찾기 힘든 지경에 이 르렀다. (2) 품목과 관련된 전통 음식이 있을 경우 설명하여 주십시오. 이 술을 만들기 위해 제조되는 오메기떡은 현재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전통적인 제조방법을 지켜내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강술의 전 단계인 제주전통술인 오메기술이 전해오고 있으나 이 또한 차조의 생산이 저조하여 생산량이 미미하다. 3. 품목의 역사 - 품목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다면 상세히 소개(연관된 축제, 속담, 지역 관습 등). 강술은 말태우리(목동)가 목장이나 산에 갈 때 휴대하여 현장에서 물을 타서 탁배기를 만들어 마신 전통주 이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제주 산간 지역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 이름 등 현재 완전히 사라져서 제조하는 마을이 없음. 40여년 전 구전조사에 의해 전래되어 온 제조법을 재현하는 데 성공 함.
  • 19. 6.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장에서 판매된바 없으며 가정에서 소량 제조한 것으로 조사 됨. 7.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강술은 제조기간이 4개월 가량 소요된다. 또한 10~18℃의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등 제조방법이 까다 로우며 주재료인 재래종 차조를 조달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편리한 생활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탁주 전문 회사들이 대량생산 하는 막걸리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더더욱 제조 의 필요성을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도시의 발달로 인한 환경 호르몬과 각종 유해 물질의 영향으로 장기간 발효 할 경우 이상 발효를 일으켜서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을 정도로 제조환경이 열악해 졌기 때문에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게 되었다. 8. 개인적인 신청 동기 신청자 본인 2대에 걸쳐 제주의 전통음식을 연구하는 자로서 선조들의 지혜가 살아있는 독특한 제조방법 을 가져 희소가치가 있는 강술이 영원히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을 늘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강술은 문화 적인 가치와 친환경적인 제조방법 등이 현대인들에게 교훈적인 요소가 충분하여 현대에 되살릴 만한 가치 가 있다고 판단한다. 마침 제주의 사라져가는 독특한 음식을 찾아내어 체계적 목록을 만들고 관리하려고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가 활동하고 있다고 하여 자료를 준비하여 식품산업과와 같이 등 재 신청하게 되었다. ※ 다음과 같은 첨부 자료가 있다면 첨부하여 주십시오. - 품목을 사용한 요리, 사진, 영상, 웹사이트, 기사, 문헌 등 - 품목 생산자 명단과 연락처 제주향토음식명인 김지순 +82 10 3692 0628
  • 20.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 성명* 제주민속식품 대표 강주남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 주소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2744-2 전화번호 ☎ 064-782-1500 / 064-710-3132 이메일 kjn5432@hanmail.net/pinkseon@korea.kr 1. 품목명 - 품목의 꿩엿 - 영문명 Pheasant Yoet (Korean traditional sweet thing similar to taffy) 제주시 문연로 6 (연동) 2. 품목에 대한 설명* 가공된 식품의 경우 꿩엿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다음과 같은 가공과정을 거쳐 만들어 진다. 1단계, 차조를 깨끗이 씻고 물에 불린 뒤 밥을 짓는다. 쌀이 귀한 제주에서 조는 대표적인 밭작물이다. 이 가운데 차조는 꿩엿을 만들기에 가장 흔하고 적합하였다. 이 차조를 깨끗이 씻어 물에 잘 불린 다음 밥 을 짓는 일이 가장 처음에 하는 일이었다. 현재는 오히려 차조 생산이 적어졌기 때문에 찹쌀을 사용한다. 2단계, 보리로 엿기름(제주어로 ‘골’)을 만들어 차조밥과 섞어 삭힌다. 보리 역시 차조와 더불어 제주의 대 표적인 밭작물이다. 이 보리를 물에 불려 싹을 틔운 뒤 말려서 깨끗이 비벼서 턴 것이 엿기름이다. 제주 사 람들은 이를 ‘골’이라고 하였다. 이 ‘골’(엿기름)을 미지근하게 잘 개어서 차조밥과 섞어서 삭힌다. 삭히는 과 정이 곧 당화이다. 예전에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적어도 8시간 이상을 두어 기다려야만 하는 기다림의 과정 이었다. 3단계, 당화하는 사이에 꿩고기를 미리 손질하여 둔다. 꿩은 털과 내장을 제거한 뒤 깨끗이 씻는다. 꿩을 삶아서 뼈를 발라내고 살만 얻는다. 살은 먹기 좋게 잘게 찢어 준비한다. 이때 손질한 꿩고기는 나중에 엿 을 고는 중간에 넣을 수 있게 준비한다. 4단계, 잘 삭힌 당화물과 꿩고기를 함께 넣어 오랫동안 고아 엿을 만든다. 잘 삭힌 당화물을 고운 삼베나 무명보자기로 찌꺼기를 잘 거른다. 잘 걸러진 물을 솥에 부어놓는다. 처음에는 센 불로 하다가 어느 정도 고아지면 불을 조절하여 은근히 고아낸다. 이때 엿이 거의 고아지면 꿩고기를 넣어 다시 되직하게 곤다. 고 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하루 이상 걸린다. 5단계, 엿단지에 넣어 보관한다. 겨울 내내 조금씩 덜어 먹는다. 꿩엿의 주재료는 다음과 같다. 첫째, 꿩엿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주재료는 꿩이다. 꿩은 한국의 대표적인 텃새이다. 전체 길이는 수컷이 80cm이고 암컷이 60cm이다. 생김새는 닭과 비슷하나 꼬리가 길다. 수컷과 암컷의 몸 빛깔이 아주 다르다. 흔히 빛깔이 고운 수컷을 장끼라 하고, 빛깔이 곱지 않은 암컷은 까투리라고 부른다. 주로 아시아 중남부, 중국 동부, 한국 등지에 약 50종이 분포한다. 예전에 제주도에서 꿩엿을 만드는데 사용하던 꿩은 전부가 수 렵한 야생종이었다. 제주도에는 한라산이라는 커다란 산이 있고 한라산 아래에 초지가 발달하여 꿩이 서식 하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 제주도는 대표적 꿩 서식지로 꼽히고 있다. 한반도 전체 특히 내륙지방의 산악에도 모두 서식하였지만 백과사전이나 동물도감 등에는 제주를 대표적인 서식지로 기술하고 있다. 둘째, 제주도에서 전통적으로 꿩엿을 만드는 데에 곡물로는 차조와 보리를 사용하였다. 옛날에 제주는 땅 이 척박하고 물이 귀해서 쌀을 얻을 수 있는 벼를 재배하지 못하고 밭작물을 재배하여 조와 보리 등을 주 곡으로 삼았다. 그러나 요즘은 차조 대신 찹쌀을 주로 사용한다. 이는 한반도에서 생산된 쌀이 들어와 싸게 유통되고 있고 차조는 제주도에서 많이 재배하지 않아 오히려 귀하고 비싸기 때문이다. 곡물을 삭히는 작 용을 하는 엿기름(제주어로 ‘골’)은 보리로 만든다.
  • 21. 3. 품목의 역사 - 품목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다면 상세히 소개(연관된 축제, 속담, 지역 관습 등). 제주에서 꿩엿은 가장 대표적인 보양식품이었다. 제주는 예부터 땅이 척박하여 농사일은 고되고 수확량 은 많지 않았다. 육지와는 달리 단백질의 공급원도 적었다. 그러나 제주의 한라산과 오름의 초지에는 열량 과 고단백질의 꿩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꿩엿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꿩엿은 과거 열량과 단백질이 부 족하였던 시절에 제주도민에게 곡물을 당화시킨 단맛과 단백질 영양이 같이 들어간 음식으로 귀하게 대접 받았다. 꿩고기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 함량이 많아 위와 장에 부담을 주지 않아서 노인이나 회복기 환자의 보양식으로 쓰였다. 또한 어린이들의 감기와 천식의 예방에 좋았다. 제주에서 꿩엿은 가장 대표적인 세시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꿩은 산란을 앞둔 겨울철에 가장 살이 찌고 영양이 풍부하였다. 따라서 농한기인 겨울에 제주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 들판을 누비며 꿩을 사냥하였다. 이렇게 꿩 사냥 자체가 즐거운 절기 놀이였고 꿩엿은 중요한 세시음식이었다. 꿩엿은 제주사람에게는 효성과 자애의 음식이었다. 꿩엿은 손수 꿩을 사냥하는 노력과 귀한 곡식으로 오 랫동안 엿을 고아내는 노고가 있어야만 얻어지는 음식이었다. 곡식으로 허기를 면하기에도 어렵던 시절에 곡물을 삭히고 오랫동안 고아 곡물로 단맛을 내고, 야생에서 꿩을 수렵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집안 어르신 들과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꿩엿은 연로한 어르신에게 우선적 으로 드리는 효성의 음식이었고, 귀한 아이를 위한 집안 어른들의 사랑이 담긴 자애의 음식이었다. 꿩엿은 단맛이 그리운 아이들이 고아질 때까지 기다리다 지쳐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겨우 한 입 얻 어먹던 것이었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 번씩 입에 넣어주던 것이었고, 어른들 몰래 훔쳐 먹는 즐거운 것이 었다. 지금 50대 이상의 제주도 사람들은 이런 어린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제주도 전역의 가정에서 만들어 먹었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 이름 등 꿩엿은 현재 제주도 구좌읍 송당리에 위치한 제주민속식품이라는 제주향토음식업체에서 조금 생산되고 있 다. 제주의 각 가정에서도 지금은 직접 만들어 먹는 일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6. 대략적인 생산량 현재 제주민속식품에서 연간 약 5톤을 생산하고 있다. 7.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현재 제주민속식품의 생산하는 꿩엿 제품은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예전에는 각 가정에서 건강보양식으 로 직접 만들어 먹었으나 현재는 거의 만들어 먹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8.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첫째, 재료 꿩 및 차조 확보가 어렵다. 꿩 자체를 구하기 어렵다. 시중 판매를 위한 목적으로 꿩엿을 생산할 경우 원재료 꿩은 반드시 요건을 갖춘 도계장에서 잡은 꿩만을 원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야생종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꿩은 야생성이 강하여 사육이 어렵고 사육기간이 길어 경제성이 좋지 않다. 닭과는 달리 적어도 5개월 이상은 키워야 상품성이 있고 산란도 1년에 한 번 밖에 하 지 않아 현재 제주도에 사육농가가 2곳 밖에 남아있지 않다. 직접 가정에서 꿩엿을 만드는 경우 야생종 사 용이 가능하겠지만 꿩 사냥이 허가된 기간이 정해져 있어 이 기간 이외에는 포획이 금지되어 있다. 이렇게 꿩엿 재료인 꿩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또한 꿩엿 주재료 중 하나인 차조 또한 국제 농산업품이 된 밀에 밀린 저가 쌀 때문에 제주도에서 적합한 수량 확보가 어렵고 가격 경쟁력은 더욱 없는 현실이다. 경제적 요인으로 귀중한 식재료인 꿩, 차조 등이 없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 22. 둘째, 제조에 오랜 시간과 많은 공이 들어 가정 내에서 만들어 먹지 않다 보니 제조법이 전수되고 있는 가 정이 거의 없다. 꿩엿을 만드는 옛 공정 자체가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엿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옛 공정을 준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도구 등이 좋아졌다고 하나 제작에 걸리는 시간과 노력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현대의 가정은 예전보다 훨씬 바쁜 삶을 살고 있어 일반 가정이 개별적으로 만 들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 가정 내에서 꿩엿을 만드는 방법이 지금 부모 세대로도 전수되고 있는 집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셋째, 단맛을 내는 인스턴트 상품의 범람으로 전통적인 꿩엿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단맛의 측면 에서 보면 시장은 설탕, 꿀, 등, 단맛을 쉽게 내는 값싼 제품으로 범람하고 있다. 오랜 시간과 공이 걸려 만 들어지는 전통적인 엿은 산업화 된 식품과 시장에서 버거운 경쟁을 하고 있다. 보양 즉 약의 측면에서 보 면 과거 선조들은 음식을 곧 약으로 인식하여 많은 공을 들여 만들고 섭생이라는 전체적 관점에서 보는 것 을 당연하게 여겼으나 요즘은 부분적 기능에 맞춘 인스턴트 화학약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어 전통적인 민 간보양식품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9. 개인적인 신청 동기 제주도에서 꿩엿을 가장 오랫동안 제조 판매하는 제주민속식품의 대표로 있는 신청자는 제주의 사라져가 는 독특한 음식을 찾아내어 체계적 목록을 만들고 관리하려는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와 같이 하여 이 품목이 슬로푸드의 맛의 방주에 등재되면 아래와 같은 바람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여 겨서 신청하게 되었다. 첫째, 열량과 단백질을 곡물과 자연에서 얻었던 옛 제주 선조들의 지혜를 지속적으로 전승하고자 한다. 인스턴트 음식의 등장으로 제주 선조들의 지혜로 만들어 먹던 꿩엿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제조 공 정이 번거롭고 힘들다는 이유로 제주 전통음식이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둘째, 꿩엿이 제주사람에게는 효도와 자애의 음식인 것처럼 제주의 전통음식이 세대를 잇는 소통 수단이 되었으면 한다. 세대 간의 소통을 통하여 공동체의 지혜를 전승할 수 있었으면 한다. ※ 다음과 같은 첨부 자료가 있다면 첨부하여 주십시오. - 품목을 사용한 요리, 사진, 영상, 웹사이트, 기사, 문헌 등 꿩엿 제품 꿩 사냥 찹쌀을 끓임 엿기름을 넣고 삭힘 삼베로 짜기 당화된 물을 끓이기 고으기 꿩 손질하기 꿀단지에 보관 꿩엿 먹기 - 품목 생산자 명단과 연락처 제주민속식품 대표 강주남 064-782-1500
  • 23. 신청자 전화번호 064-760-7832/064-710-3132 이메일 lifefly@korea.kr/pinkseon@korea.kr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 있는 이름* 댕유지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제주도농업기술원,서귀포농업기술센터 제주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중산간동로 7413 제주시 문연로 6 (연동) - 이름이 지역어 또는 사투리일 경우 표준어로 번역된 이름 당유자(唐柚子). 한자어 ‘당’이 제주어에서는 제주어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모음역행동화로 ‘댕’으로 한자어 ‘유자’는 제주어에서는 ‘유지’로 나타나고 있다. - 영문명(학명) Citrus grandis OSBEK 2. 품목에 대한 설명* 식물의 경우 - 형태, 무게, 색깔, 맛 등에 대하여 묘사하고 언제 어떻게 수확되는지 설명 상록 활엽수로 높이 6m정도 수세는 강하고 줄기에 가시가 있다. 잎은 길이 10~13cm, 폭 5cm, 열매는 계 란형으로 종경(세로지름) 10~12cm, 횡경(가로지름) 9~10cm이고 무게는 300~500g, 껍질 두께는 9mm 정도이 다. 12월이 되면 진한 황색으로 완전 착색 되고 당도는 9~10°Bx 정도이다. 주로 과육을 먹었지만 껍질도 먹었다. 과육은 맛이 아주 시다. 껍질은 말리거나 그대로 달려 먹었다. 껍질은 약간 씁쓸한 맛이 난다. - 종에 대한 정보와 더불어 지역 내에서의 종자번식에 의한 특별한 종류인지에 대해 설명 한국 내에서는 현재 제주도에만 있다. 번식은 재래 감귤 품종으로 접목 번식을 해야 한다. 품목과 관련된 전통 음식이 있을 경우 설명하여 주십시오. 당유자차 : 특유의 쓴맛이 있어 생과로 먹기도 하였으나 예로부터 감기의 치유, 혹은 예방 목적으로 당에 절인 것을 달여 차로 마셨다. 당유자꿀탕 : 원래 이를 지칭하여 부르던 음식의 명칭은 없다. 추운 겨울 당유자의 윗 부분을 잘라 안을 파 고 속을 으깨어 꿀과 생강을 함께 넣고 자른 뚜껑을 다시 닫아 화롯불 재 속에 묻어 익혀 안에 생긴 즙을 감기 치료제로 먹었다. 꿀과 생강을 안 놓고 그대로 먹기도 하였다. 이렇게 먹을 경우 맛은 많이 시다. 3. 품목의 역사 - 품목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다면 상세히 소개(연관된 축제, 속담, 지역 관습 등). 제주도 자생종일 수도 있으나 이름으로 보아 오래 전에 중국에서 들어와 제주도에 적응한 귀화종으로 보인 다. 조선 영조 즉위년인 1724년 12월 23일자 승정원일기에 천신할 당유자의 봉진을 거른 제주목사 신유익 을 엄하게 추고할 것을 청하는 예조의 계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당유자가 제주도로 들어 온 것은 수 백여 년 더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052년 고려사세가에 탐라의 감귤 공물을 100포로 늘렸다는 기록을 보면 당유자의 기원도 다른 재래 감귤처럼 1000년도 더 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도 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과거에는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포읍 지역에서 주로 재배 되었다. 제주시 일원에도 일부 재배되었다. 지금 은 대부분 없어져 100년 이상 나무 24그루는 행정기관에서 보호수로 관리하고 그 외 일부 농가에서 1~2그
  • 24. 루씩 가정 소비용으로 재배되고 있다. 전통적인 생산 지역인 예전 서귀포읍 지역에서는 1960년대만 해도 집집마다 반 아름 둥치의 당유자 몇 그루가 집 담 옆에 있었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 이름 등 제주도 남부인 서귀포 지역 ( 동경 : 126도 08분 ~ 126도 58분, 북위 : 33도 06분 ~ 34도 00분). 서귀포시 서홍동 마을회에서 백년의 감귤마을 사업으로 2011년 당유자 200본을 접목하였다. 6. 대략적인 생산량 2,000kg/년 내외 7.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전통시장 등에서 제수용으로 일부 판매되고 일부는 가정 소비용으로 활용 8.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생과육을 직접 먹는 온주 밀감이 1911년 일본에서 들어오고 1960년대 이후 온주 밀감 중심으로 감귤 재 배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들어온 또 다른 품종인 와세 밀감도 1980년대에 재배량이 늘어나며 서귀포 주 변에서 감귤 산업화가 진행돼갔다. 더욱이 시장에는 생과육을 즐기는 다양한 과일들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기존 제주재래감귤들은 계속 잘려나갔다. 당유자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값싼 의약품이 보급되며 전통적으로 집안에서 감기 치료 및 예방용으로 차 형식으로 먹던 당유자는 그 수요도 잃어 계속 잘려나갔다. 지금은 겨우 재래 자원 보존을 위한 정도를 겨우 가지고 있을 뿐이다. 9. 개인적인 신청 동기 제주도에서 이제 사라져가는 제주의 재래 자원들의 가치를 인식하고 뒤늦게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일 어나고 있는데 마침 슬로푸드 맛의 방주와 제주의 사라져가는 독특한 음식을 찾아내어 체계적 목록을 만들 고 관리하려는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도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귀포시 서홍동 마을회에서 재래 감귤을 보존하고자 당유자를 증식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일을 더 의미 있게 하고 싶어졌다. 이 품목이 슬로푸드의 맛의 방주에 등재되면 이와 같은 우리의 노력에 큰 도움이 되리라 여겨서 신청하게 되었다. ※ 다음과 같은 첨부 자료가 있다면 첨부하여 주십시오. - 품목을 사용한 요리, 사진, 영상, 웹사이트, 기사, 문헌 등 [탐라문견록, 정운경 1731년] 12월에 익는다. 빛깔은 짙은 황색이다. 생긴 것은 대귤과 비슷한데 크기는 배 나 되어 술그릇만 하다. 껍질을 까서 알맹이를 취한다. 담눌이 신령스레 엉긴 것이 뚝뚝 떨어진다.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맛이 진하고 상쾌하다. 껍질을 벗겨 틀에 넣어 잔을 만든다. 기관지를 낫게 하는 데 가장 좋다. -추사 감귤론, 당유자는 농익어 봄을 지낸 것은 아주 달고 시원하다. - 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 휴머니스트 [서귀포시 제례음식 진설] 조선시대 후기인 18세기에 이르러 남성중심의 유교식 제례가 정착되었다. 제주특 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기제사나 명절 등 유교식 제례에서 사용되는 음식으로 예전에는 당유자를 주로 썼 다. 겨울철에 시장에서 구입하여 보리항아리 속이나 뒤뜰에 땅을 파서 저장하여 두었다가 세 개씩 꺼내어 썼다.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집필자 오영주 [제주풍토록] 제주도의 특산물인 귤과 유자는 모두 아홉 종이 있다...중간생략...알이 작고 씨는 유자 같으면 서 맛이 단 산귤이 있다. 그 외에 일반 사람들도 그 맛을 다 아는 감자, 유자가 있다. 또 당유자가 있다. 이 는 알이 커서 모과와 비슷하여 알의 용량이 한 되 이상 되며 맛은 유자와 같다. 그런데 그 큰 열매가 달려
  • 25. 서 샛노랗게 익는 것이 기이하다. 왜귤도 있는데, 이것은 알의 크기가 당유자의 다음이고, 맛도 당유자만 못 하니 이것이 최하의 등급이다. ...중간생략...유자나무가 가장 가시가 많고 열매의 껍질이 가장 향기롭다...중 간생략...씹으면 매우 향기가 강하고 또 자극성이 많다. 당유자와 왜귤도 자극성만은 그러하다. 먹지는 못해 도 약으로는 효력이 가장 많으니 아마도 그 품의를 높이 치는 까닭이 또한 여기에도 있는가 싶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7 - 제주도, 제주의 산물 감귤 [승정원일기(18세기, 영조 즉위년 갑진(1724년)] 12월 23일 기록 : 천신할 당유자의 봉진을 거른 제주목사 신유익을 엄하게 추고할 것을 청하는 예조의 계 - 한국고전번역원, 2011년 [제주계록(19세기, 헌종 12, 1846년 탐영계록)] 11월령 당유자를 봉진하다. - 제주발전연구원, 2012년 - 품목 사진 당유자 나무 당유자 달린 것 당유자 달리 당유자 잘라낸 순다리 - 품목 생산자 명단과 연락처 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서귀포농업기술센터 : 064-760-7832 서귀포시 서홍동 마을회 백년의귤향기영농조합법인 : 064-760-4721 오등감귤관광농원 : 064-746-4738
  • 26. 신청자 성명* 전화번호 1. 품목명 - 품목의 원산지에서 알려져 있는 이름* 순다리, 쉰다리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1. 고정순 2.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 1. +82 10 8779 0904 2. +82 64 710 3132 - 영문명 Sundari, Jeju traditional sweet mild alcholic beverage 주소 1. 제주시 서광로 5길 17 2. 제주도 제주시 문연로 6 (연동) 이메일 주소* 1. ko7535252@naver.com 2. pinkseon@korea.kr 2. 품목에 대한 설명* 순다리는 제주도 지역에서 전기 보온 밥솥이나 냉장고 등이 없던 시절에 밥이 남아 쉬어버릴 것 같은 경우 에 남은 밥을 이용하여 만들어 마시던 곡물발효음료이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약한 술의 단계까지 가는 것 이 일반적이다. 맛은 발효 정도에 따라 다르나 약간 달고 새콤하다. 밥이 상하기 쉬운 여름철에 주로 만들 어 마셨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먼저 누룩을 잘게 부어 물과 함께 밥에 넣고 하루, 이틀 정도 둔다. 온도는 여름철 상온이다. 발효기간은 밥의 상태, 누룩의 품질, 밥과 누룩의 양, 물의 양, 온도 등에 따라 차이가 난다. 발효에 사용하는 용기는 옹 기가 일반적이었다. 2. 기포가 올라오고 밥이 뭉글뭉글하게 형태가 없어지고 원하는 맛이 도는 시기가 되면 마실 수 있다. 3. 밥을 체로 걸러 액체만 마시기도 하고 밥과 액체를 저어 걸쭉하게 하여 같이 먹을 수 있다. 4. 그냥 마시기도 하고 끊여서 마시기도 한다. 끊이지 않고 마시면 새콤한 맛이 더 강하다. 끊이지 않았을 경우에는 발효상태가 진행되어 맛이 계속 변한다. 5. 전통적으로 감미제를 첨가하지 않았으나 설탕 같은 감미제가 흔해지며 요즘은 설탕 등을 첨가하여 드는 경우가 많다. 순다리를 만들기 위하여 사용하는 밥은 전통적으로는 대부분이 보리밥이었다. 제주도는 땅이 물 빠짐이 좋 고 척박하여 벼농사가 힘들어 쌀을 구하기가 예전에는 어려워 보리와 조가 주곡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육지부 한반도에서 들어온 값싼 쌀이 풍부하여 순다리를 만들 목적으로 쌀밥을 하여 사용하기도 한 다. 쌀밥을 사용하면 단맛이 더욱 강하다. 또한 순다리를 만들 때 발효시작제로 사용하는 누룩은 보리나 밀 을 띄워 사용하였다. 품목과 관련된 전통 음식이 있을 경우 설명하여 주십시오. 순다리는 발효의 정도에 따라 알코올이 맛이 돌기 전에 마실 수도 있고, 약간 알코올이 도는 약술 단계에 서 마실 수도 있다. 그러나 술의 정도를 지나게 더 발효시켜 식초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식초 단계까지 간 것을 ‘자리물회’ 등에 넣어 먹기도 하였다. 3. 품목의 역사 - 품목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다면 상세히 소개(연관된 축제, 속담, 지역 관습 등). 제주에서 순다리가 언제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하였는지를 알 수는 없으나 몇 가지 기원을 유추해볼 수 있 다. 첫째는 명칭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순다리의 또 다른 지역 명칭은 쉰다리이다. 쉰다리에서 쉰은 밥, 음 식 등이 상한 것을 일컫는 ‘쉬다’의 활용인 ‘쉰’으로 보는 경우이다. 이렇게 그 명칭이 순 우리말에서 기원하 는 것이라면 한자어의 영향이 크지 않은 시절인 조선(1392년 건립) 이전 시대처럼 그 기원이 아주 오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가설이다. 둘째는 순다리가 누룩을 사용한 곡물발효주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 서 볼 때 몽고가 제주도(당시 탐라)에 탐라총관부를 세워 직할하던 1200년대 후반과 1300년대 초반의 백년 에 가까운 간섭기에 증류기법의 발전 등과 같이 몽고의 영향으로 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가설이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순다리는 제주도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만들어 먹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 27.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제주도 전역의 가정에서 만들어 먹었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 이름 등 각 가정에서는 아직도 아주 드물게 만들어 먹고 있다. 최근 들어 음식점 등에서 남는 밥을 활용할 목적으 로 또는 향토적인 것을 대접할 목적으로 손님들에게 순다리를 대접하는 예가 제주도 전역에서 조금씩 다시 조금씩 생기고 있다. 6. 대략적인 생산량 가정, 음식점, 단체급식소 등에서 소량 자가생산하여 사용하고 있어 그 양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7.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시장에서 판매되는 것은 없고 가정, 음식점, 단체급식소 등에서 소량 자가생산하여 먹고 있다. 8.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1970년대 이후 가정이나 음식점에 전기보온밥솥과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남는 밥을 쉬지 않게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 순다리 소멸의 가장 큰 이유이다. 그에 못지않게 큰 이유는 예전에는 보리밥도 귀하게 여기 는 정도의 궁핍한 시절이었지만 1980년대 이후 값싼 쌀이 흔해지며 굶주림과 식량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 게 되며 남는 밥을 알뜰히 활용하려는 태도가 사회 전반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최근에 들어서는 아 에 밥 없이도 살아갈 정도로 식생활에서 밥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져서 만들려는 예전의 동인이 사라지는 점 등이다. 둘째 순다리를 만드는 누룩의 측면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스스로 만든 누룩을 사용하였으나 최근에는 누룩을 가정에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고 만드는 제법을 물려받은 가정도 많지 않 은 실정이다. 이제 누룩은 몇몇 가내 수공업자들이 만든 것을 오일장과 같은 전통시장에서 사거나 대규모 생산공장에서 나오는 것을 사서 쓰는 형편이다. 가정 내 발효 기술이 이렇게 사라지고 있어서 쌀이 흔해져 단맛이 강한 순다리를 만들 수 있는 상황임에도 순다리는 일반 가정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중이다. 9. 개인적인 신청 동기 이 음료는 현 시점에서 보아도 건강에 유익한 음료일 뿐만 아니라 옛 제주도의 조상들이 한 톨의 밥알이 라도 절약하려는 정신이 담겨 있는 이 시대에 교훈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 순다리를 계속 유지하고 확산시 켰으면 하는 마음을 늘 지니고 있던 차에 제주의 사라져가는 독특한 음식을 찾아내어 체계적 목록을 만들 고 관리하려는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 식품산업과의 활동을 알게 되고 신청서 작성 권유를 받아 식 품산업과와 같이 등재신청을 하게 되었다. ※ 다음과 같은 첨부 자료가 있다면 첨부하여 주십시오. - 품목을 사용한 요리, 사진, 영상, 웹사이트, 기사, 문헌 등 누룩 부수기 밥과 물 섞기 누룩 섞어 넣기 발효하기 다 된 순다리 - 품목 생산자 명단과 연락처 제주향토음식문화연구소장 고정순 +82 10 8779 0904 제주향토음식명인 김지순 +82 10 3692 0628
  • 28.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신청서 신청자성명* 박지혜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항구로 121번길 120. 전화번호 +82 10 6789 1944 이메일 주소* jihey3601@naver.com 1. 품목명 - 제주 재래감, Jeju Native persimons 감은 제주어에서는 현재 ‘갈’로 나타나기도 한다. 제주에서 감으로 염색한 옷을 갈옷이라고 한다. 즉 감이 제주어로는 ‘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감은 옛 문헌을 찾아보면 갇-갈-갈암-가암-감으로 변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감나무를 ‘카끼’라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감나무의 일본어 이름인 ‘카끼’는 감을 나 타내는 한국어 고어인 갇, 갈 등에 해당하는 ‘카’라는 음과 일본어에서 나무를 뜻하는 ‘끼’로 이루어진 합성 어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감나무를 감낭이라고 부른다. 낭은 나무의 제주어이다. 감나무를 나타내는 한자는 시(柿)다. 2. 품목에 대한 설명* 제주 재래감에는 폿감, 고래감, 베개감, 쇠불감, 종지감 등 다양한 종이 있다. 제주도 내에서 감을 분류하는 일반적 기준은 과실의 형태를 본 뜬 분류였다. 팥 모양을 담아 폿감, 맷돌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맷돌의 제 주도 명칭인 고래를 넣은 고래감, 베게를 닮았다 하여 베개감, 쇠불알을 닮았다 하여 쇠불감, 작은 종지를 닮았다 하여 종지감 등으로 분류하는 속명이 있다. 이 중 베개감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나무의 형태는 1년생 가지 길이가 16cm, 1년생 가지 굵기는 4.9mm, 마디 수는 9.0 개이며 피목수(㎠당) 0.9 개이다. 꽃은 5월28일 경에 만개하며 암꽃과 수꽃이 있고 꽃모양은 방형이다. 잎 모양은 방추형이며 잎 길이는 13.4cm, 잎 폭은 9.0cm, 잎 면적은 93㎠이다. 과실은 10월 26일 정도에 익으며 완전 떫은 감으로 편방형이며 과피색(적색도)은 20.6이다. 과육색(황색도)은 48.3이며 당도는 23〬 Brix이다. 종자의 특성은 4~5립이며 길이는 17.1mm이며 폭은 13.7mm이다. 염색에 쓰이는 떫은 감은 7~8월경에 따서 절구에 으깨서 즙을 내어 10일 정도 발색한다. 모든 종류의 제주 재래 감에서 열매인 감의 맛은 달고 떫다. 떫은맛은 탄닌 성분에서 기인한다. 현재 제주도에만 있다. 번식은 재래 감 품종을 이용한 접목으로 번식하는 법과 씨앗으로 번식하는 법이 있 다. 토양 때문인지 제주도에 자생하는 감나무를 육지부에 옮겨 심어도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감나무만큼 풀 기가 있지 않고 탄닌 함량에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제주 재래 감에는 여러 변종들이 있으나 그 과실 모양을 빼고는 사용법 및 사용처 등에 큰 차이가 없어 구 분지어 다룰 필요가 없다. 제주도 애월읍 하가리 방문조사에서는 서리 내린 후에 익은 감을 따서 먹으면 감기에 좋아 매년마다 약으 로 먹고 있다고 하였다. 서귀포시 일원에서는 지금도 서리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관지에 좋다며 약으 로 먹는다고 하였다. 떫은맛을 빼는 탈삽방법으로는 주로 가을에 과육이 딴딴하고 푸른 기미가 있을 때 따뜻한 물에 뜨지 않 게 담가 놓고 매일 물을 갈아주며 3~4일 정도 나두었다. 이런 방식은 70년대까지도 가을 운동회 때면 집집 마다 이렇게 하여 떫은맛을 뺀 감을 운동회 간식으로 내놓았다. 항아리에 정미하기 전인 보리 속에 푸른 기미가 있는 떫은 감을 1주일 정도 묻어 두었다가 탄닌을 뺀 후에 간식으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소주에 넣 어서 울려 먹었다는 응답도 있었다. 이 방법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사료된다. 3. 품목의 역사 - 품목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다면 상세히 소개(연관된 축제, 속담, 지역 관습 등). 조선시대 『남사록』에 제주 성안에 감이 많이 있으나 크기가 작고 씨앗이 많으며 맛이 없다는 기록이 있 는데, 요즘 남아 있는 제주 재래 감도 크기가 작고 씨가 많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고광민은 『제주도 민구조사』에서 낚시줄의 풋감 즙으로 물들여 쓴다고 했다. 『탐라성주유사』에서는 오왕 8 년(1382년)에 명나 라 태조는 전원의 제후국인 운남국을 평정하고 양왕의 태자와 그의 아들, 권속들을 탐라에 이주, 공양왕 4
  • 29. 년(1392년)에도 양왕의 자손과 그의 권속들을 이주시켰는데 이때 이들의 문화와 풍속이 전래되었으며 운남 성에서 어망, 우산, 부채무명옷에 염색하여 입는 풍습이 전래 된 것 같다고 하였다. 운남성에 유시가 많았음 을 고려 할 때 이때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제주도에서 감물로 염색한 옷을 입었다는 확실한 기록은 조 선총독부에서 행한 제주의 생활상태조사(1929년)에서 처음 나오지만 한반도에서 1600년대 초에 이미 감물 염색이 성행하였음을 출토복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학자인 윤봉조(1680~1761)의 시문집인 『포암집(圃巖集)』 도중잡영(島中雜詠)에 10번째 시 중에 “장맛비 올 때는 감으로 옷에 물들이고(凌雨柿染衣) 라는 대목으로 윤봉조가 제주도로 유배 와서 여기에서 본 것을 시로 읊은 것 중의 한 대목이다. 동아일보 1965년 9월9일자에 실린 살림의 아이디어 ” 제주의 갈옷“에는 감물염색방법과 감물염색 옷의 장점이 소개 되어 있다. 이렇듯 남녀노소의 일상복 및 노동복으로 정착되었던 갈옷이 1960년대까지 대표적인 민속복으 로 전승되어져 왔음을 알 수 있고, 빳빳하게 염색한 갈옷은 현재 제주도에만 남아 있을 뿐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4. 전통적인 생산 지역* 제주도 안덕면 동광리 북동쪽에 위치한 측화산으로『 탐라지』에는 시목악(柿木岳)이 나오는데 이는 오름에 감나무가 많은데서 유래되었고,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柑山里)는 산이 감과 비슷하다고 해서 시산(柿山)이 라고 하다가 후세에 이르러 감산이라 개칭되었고, 안덕면 광평리에는 감낭물이 있는데 이것은 연못에 야생 감나무가 많아 붙여졌다고 한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도 감낭골이라 하여 감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 진 이름이 있다. 과거에는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포읍 지역에서 주로 재배 되었다. 제주시 일원에도 일부 재 배되었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지고 100년 이상 나무는 10~15 그루 정도로 하귀, 월평, 와흘 등지에서 관찰 되었다. 현재 집집마다 노동복을 염색하기 위해 보존되어 있지 않다. 나무가 든든하지 않아 제주도의 특성 상 태풍에 나무가 잘 꺾여 고사하기도 하고 관리 소홀로 죽기도 하고 감 따기가 힘들어서 잘려지기도 하고 있는 상황이다. 5. 현재 생산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 마을 이름 등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4237-2 번지에서 제주의 재래 감을 보존 재배하고 있다. 6. 대략적인 생산량 현재 제주 재래 감의 생산량은 파악이 어렵다. 오래된 나무에서 생산은 되고 있으나 수확이 안 되고 그대 로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7.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 소비용으로만 생산되고 있습니까? 전통시장인 오일장에서는 제주 재래 감이 아주 미미한 수준에서 팔린다. 그러나 이런 판매도 1990년대 말 제주도에 단감나무 재배가 시작되면서 단감 풋감으로 대체되고 경북 청도나 경산 등지에서 재배하는 떫은 감으로 만든 감물이 저가로 제주도에 공급되며 지속적으로 적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8. 어떤 이유로 이 품목이나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제주재래감은 식용, 약용, 염색용으로 사용돼 왔다. 이 중 식용은 단감, 홍시 등 감만이 아니라 여타 값싼 과일이 시중에 넘쳐나 떫은맛을 빼서 먹는 노력을 하며까지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약용도 의료 서비스가 값싸게 보급되며 시골 지역에 있는 나이 드신 분들 몇몇이 겨우 사용하고 있는 정도이다. 제주 재래 감의 용처 중 가장 늦게까지 가장 많았던 염색용 수요도 1990년대 말부터 제주도에 단감이 도입되어 재배되면 서 그 씨앗을 대신 이용하고, 최근 경북 청도에서 감물이 다량 제조되어 제주도에서도 저렴하게 시판되면 서 점점 제주산 감물의 사용이 적어져 직접 감나무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런 수요 감소에다가 지역 난개발, 마을 재개발, 주택 개량 등으로 점점 감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1970년대 이후 서귀포 지역을 중심으로 한 감귤 산업화로 점점 감귤 단종 재배를 하게 되어 감귤 경작지 확보를 위해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