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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시50선감상




정삼조 엮음
박재삼기념사업회 간행


                  晶歌수정가




 집을 치면, 精華水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선
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平床의, 갈앉은 뜨락
의, 물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같단들 어느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에 順順순순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春香춘향이 마
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
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
나. 진실로, 우리가 받들 山神靈산신령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
의 萬里만리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春香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水晶수정빛 임
자가 아니었을까나.
박재삼 시인의 첫 시집 『春香이 마음』에 맨 처음 실린 시입니다. 시집의
처음 시란 점에서 볼 때 이 시는 박재삼 시인이 특히 애정을 가진 시이거나
시집의 성격을 대변할 수 있는 시로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가 있
는 시이고 또 그만큼 아름다운 시인데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춘향과 서방님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시는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시
인은 그들을   물과 바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물은 가장 깨끗한 것입니다.
정화수를 떠 놓고 가족의 안전을 빌었던 옛어머니들을 연상할 수 있듯이 춘
향은 간절한 소망을 늘 안고 있는 존재입니다.
 바람과 어울린 물은 증발하여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이라도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습니다. 구름으로 되고 비가 되고 다시 세상에 스며 샘으로 솟습
니다. 새 바람과 새 물은 순환하면서 항상 어울립니다.
 춘향과 서방님은 죽었지만 그 뒤에도 물과 바람이 되어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랑이 존재합니다. 사람
들은 사랑을 하면서 살다가 각기 물처럼 스러집니다. 그러고 나면 새 사랑이
새 사람에 의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랑으로 충만한 것이지요.
 박재삼 시인은 세상 살아가는 일을 ‘사랑’으로 표현합니다. 그 사랑이 영
원할 수야 없지만, 정화수의 물처럼 깨끗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사랑이 충만한 세상, 그것을 기원하고 노래하는 것으로 보면 박재삼 시인은
결국 현실주의자는 아닙니다. 이상주의자 또는 낭만주의자로 불릴 법합니다.
自然자연




뉘라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을 아는 내 마음 꽃나무는
내 얼굴에 가지 벋은 채
참말로 참말로
바람 때문에
햇살 때문에
못이겨 그냥 그
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자연친화(自然親和)라는 말이 꼭 생각나는 시입니다. 내 마음을 꽃나무에
비기고 그 꽃나무에 영향을 주는 것을 바람과 햇살로 놓았습니다. 그 바람과
햇살에 따라 내 마음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내 마음이 꽃나무이기에
세상 살아가면서 생기는 온갖 시름과 기쁨이 바람과 햇살에 의해 생길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람이 꽃나무처럼 식물은 아니지만 자연의 일부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
다.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
고 사람들은 자연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葡萄포도


刑형틀에 매여 원통하던 일을 이승에서야 다 풀고 갔으련만
저승에 가 비로소 못잊겠던가
春香춘향이 마음은 조롱조롱 살아 다시 열렸네.


저것은 가냘피 아파 우는 소리였던 것을,
저것은, 여릿이 구슬 맺힌 눈물이던 것을,
못견딜 만큼으로 휘드리었네.


우리의 무릎을 고쳐, 무릎 고쳐 뼈마치는 소리에 우리의 귀는 스스로 놀라
고,
절로는 신물이 나, 신물나는 입맛에 가슴 떨리어,
다만 우리는 或時혹시 刑吏형리의 손아픈 後裔후예일라……


그러나 아가야, 우리게게도 비치는 것은
네 눈이 葡萄포도라, 살결 또한 葡萄포도라……




 시 「포도(葡萄)」에서는 춘향이 포도로 부활합니다. 조롱조롱 살아 다시
열린 춘향의 여기서의 마음은 이승의 원통하던 일을 못 잊는 마음입니다. 그
리고 그 포도를 깨물면서 그 신맛과 함께 시인은 춘향의 사랑과 억울한 사
정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내가 세상에 혹시 잘못한 일은 없는가를 되
돌아봅니다.
 하지만 포도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것이 춘향의 원망하는 마음을 담았다
손 치더라도 춘향의 일 자체를 담은 것이기에 아름다운 사랑의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마지막 연에서 아이에게 비춰져 있습니다. 사랑의
결과물이고 이제 새로운 사랑을 해 나갈 아이의 눈에서 아이의 살결에서 시
인은 사랑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봄바다에서




一
 화안한 꽃밭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핀 것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것가 참. 실로 언짢달것가, 기
쁘달것가.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사람과 산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것가.


二
 우리가 少時소시적에, 우리까지를 사랑한 南平文氏남평문씨 夫人부인은,
그러나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의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헤쳤더란다.
 確實확실히 그때로부터였던가, 그 둘러썼던 비단치마를 새로 풀며 우리에
게까지도 설레는 물결이라면
 우리는 치마 안자락으로 코훔쳐 주던 때의 머언 향내 속으로 살달아 마음
달아 젖는단것가.
*
 돛단배 두엇, 해동갑하여 그 참 흰나비같네.




 꽃밭은 바다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죽은 사람들이 만든 세계가 이승의 바다, 곧 햇빛 받아 반짝이는 꽃
밭 같은 것이 된다고 노래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는 데 있습니다. 남평문씨
부인은 마음 넉넉하게 살았던, 죽은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보면 되겠는데 그
남평문씨부인도 이 아름다운 꽃밭의 한 부분을 당연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꽃밭은 ‘설레는 물결’이 되어 우리에게로 다가듭니다. 남평문씨부인
은 죽을 때 둘러썼던 비단치마를 새로 풀며 그 치마 안자락으로 어린 우리
의 코를 훔쳐 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향기에 취해 마음도 몸도 들뜨는
때를 맞게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바다의 물결을 어머니나 누이의 치맛자락
으로 비유한 표현은 시집 『春香이 마음』의 여러 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
다.
 결국 바다는 죽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됩니다. 그 혼이 반짝이는 꽃
으로 우리 눈 앞에 살아나 있고, 설레는 물결이 되어 밀려오고 있고, 그 치
마폭에 싸여 우리는 자라는 것입니다.
 봄날의 황홀한 꽃밭 같은, 햇빛 받아 반짝이는 바다는 죽은 사람들의 아름
답고 치열했던 사랑의 일을 연상시킵니다. 결국 죽음이라는 허무로 돌아갈
것이나, 삶이 가지는 격정과 정열은 저렇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지러운 魂혼


 겨우 예닐곱살 난 우리를 그리 사랑하신 南平文氏남평문씨 夫人부인은
 서늘한 모시옷 위에 그 눈부신 동전을 하냥 달고 계셨던 그와도 같이
 마음 위에 늘 또하나 바래인 마음을 冠관올려 사셨느니라.


 그것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그것 그 짐 때문에,
 어이할까나,
 갈앉아지기로는,
 몸을 풀어 사랑을 나누기로는
 바다밖에 죽을 데가 없었느니라.


 魂혼도 어여쁜 魂혼은, 우리의 바다에 살아 바다로 구경나선 눈썹위에서,
다시살아 어지러울 줄이야……
 밝은 날, 바다밑이 이세상 아니게 기웃거려지는 閑麗水道한려수도를 크고
너른 꽃하나로 느껴보아라. 우리는 한시도 가만 못 있는 지껄이는 이파리 되
어, 누구에게 손잡혀 따라가며 따라가며 크고 있는가.




 남평문씨부인은 사랑의 일 때문에 죽은 분입니다. 사랑은 순수한 것이고,
또 삶의 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
다면 남평문씨부인은 착하고 정이 많은 옛날 우리 어머니나 누님의 표상쯤
되는 사람으로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또, 사랑이 많은 사람은 그 사랑이 짐
이 되어 세상을 편히 살 수 없는 사람이고, 그것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
라는 것을 이 시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남평문씨부인은 이제 온 바다에 살아나 있습니다. 온 바다는 하나의 꽃
으로 비유되고, 사람들은 그 큰 꽃에 딸린 작은 이파리들이 되어 남평문씨부
인의 ‘사랑’을 배우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밤 바다에서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質定질정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天下천하에 많은 할말이, 天上천상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때 나는 섬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원래 박재삼 시인에게는 누님이 없으니 이 시의 누님은 어느 친척 누님이
거나 가상의 누님을 설정한 것이고, 이 시에서 그 누님을 통해 시인은 슬픔
의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즉, 누님의 슬픔은 다름 아닌 시인의 슬픔인 것
입니다. 그 슬픔의 구체적인 사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난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하는 일이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아니면 세상
모든 일에서의 슬픔이 복합된 어떤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시에서 인간사와 자연은 동격을 이룹니다. 눈물과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 그리고 말과 별, 누님과 섬의 잠이 어울려 집니다. 그리고 나의 울
음이 놓입니다. 마지막의 네 번이나 반복되는 울음은 결국 세상 모든 것이
잠든 뒤에 시인이 비밀히 토해 놓는 설움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설
움은 주위의 자연에 그대로 녹아들어 갑니다. 인간사인 설움과 자연이 절묘
한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의 골목에서는




 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머리칼 같은 달빛을 빗어내고 있었다. 아니, 달이
바로 얼기빗이었었다. 흥부의 사립문을 通통하여서 골목을 빠져서 꿈꾸는 숨
결들이 바다로 간다. 그 程度정도로 알거라.


 사람이 죽으면 물이 되고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바다에나 가는 것이 아
닌것가. 우리의 골목 속의 사는 일 중에는 눈물 흘리는 일이 그야말로 많고
도 옳은 일쯤 되리라. 그 눈물 흘리는 일을 저승같이 잊어버린 한밤중, 참말
로 참말로 우리의 가난한 숨소리는 달이 하는 빗질에 빗어져, 눈물고인 한
바다의 반짝임이다.




 박재삼 시인이 어릴 때 살던, 가난한 돌담집들이 늘어선 골목골목을 빗의
빗살로 비유하고 달이 그 빗으로 빗질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과 눈물을
정화(淨化)시켜 주고 있는 모양을 그리고 있는 시입니다.
 사람은 죽고 나면 자연의 일부분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런 점에서
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죽은 후의 이야기입니다. 살
아있는 사람에게는 현실의 고통이 중요한 것인데 그 가난의 고통을 잠시 잊
고 있는 한밤중, 달빛은 가난한 동네를 쓰다듬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잠
속 숨결은 이제 바다로 가, 달빛 받은 한 바다의 반짝임으로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연과 더 잘 합일될 수 있을까요. 박재삼 시인은 가난한
삶과 자연의 조화를 눈물 속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江강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江강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 시인의 대표시로 누구나 꼽고 있는 시입니다.
이 시의 핵심은 한번 지나가 버린 사랑은 시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당연히 돌이킬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강에 비유된 인간의 사랑은 강이 바
다에 와서 종말을 맞듯,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생의 종말인 바다에 다 온 가을강은 당연히 서러운 것이고 울음이 타는
것이 될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종말을 이야기하는 허무보다는 그 과정에 이르는 격정
적인 인간사가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 기쁜 첫사랑, 그 다음 사랑 끝의
울음, 마지막으로 울음이 타는 가을강, 미칠 것 같은 격정 그것이 우리 인간
사입니다. 불타는 노을이 비친 강을 울음이 타는 가을강으로 설정한 그 상상
력이 놀랍습니다.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이라는 구절은 결국 승복할 수밖에 없
을 줄 알면서도 결코 승복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이 시가 애
송되는 까닭은 인간적인 이런 처절한 몸부림이 공감을 얻기 때문일 것입니
다.
恨한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뒤로 벋어가서
그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본데,


그러나 그사람이
그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前生전생의 내 全전설움이요 全전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사람도 이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많은 평자들이 박재삼 시를 논하면서 이 시의 제목인 ‘恨(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박재삼시는 恨을 노래했다는 것입니다. 한은 풀지 못해 마음에 엉
어리져 있는 것을 말하는데,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풀고자 노력하
는 바탕 힘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시에서의 恨은 사랑 때문에 생긴 듯합니다. 이승에서는 그 사랑을 이룰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저승에서라도 감나무쯤 되어 그 사람의 등 뒤에나마 그
열매를 드리울까 싶은데, 그 사람은 이 사랑을 알아채지도 못할 것 같다는
독백이 이 시의 내용입니다. 또 그 사람이 이 감나무를 마음에 들어할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다도 그 사람이 설움으로 세상을 살았던지 어쨌던지가 문제
가 됩니다. 세상을 설움으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 설움을 알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알도록 말도 건네보지 못한 사랑, 평생을 가슴에 묻어둔 사랑,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는 감나무 열매의 빛깔을 연상이 선연히 떠오르는 시
입니다.
追憶추억에서




晋州진주장터 생魚物어물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發발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銀錢은전만큼 손안닿는 恨한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안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晉州南江진주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첫 시집에 실렸고 훗날 시집 『追憶추억에서』에 다시 실린 시입니다. 말
하자면 소시(少時)적의 일을 회고한 시의 첫 번째 작품쯤 되는 시입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야 더 말로 보탤 것이 없을 듯합니다. 어머니는 생선
행상을 하셨고, 이른 아침에 나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옵니다. 그 고생스러움
을 추위에 떨고 있을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감내합니다. 진주 남강 맑은 물
을 날마다 지나다니면서도 제대로 구경해 보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돈은 없
는 기막힌 가난이 이 가족에게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에 있는 것은 원망이나 한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한나절 언덕에서




 옛날의 우리 누님이 흰 옷가지를 주물르던 그리운 빨래터의 그 닦인 빨랫
돌이 멀리서 시방 쟁쟁쟁 반짝이고 있는데…… 참 새로 보것구나.


 그리고 天地천지가 하는 별의 별 가늘고 희한한 소리도 다 듣것네. 수풀이
소리하는 것은 수풀이 반짝이는 탓으로 치고, 저 빨랫돌의 반짝이는 것은 또
한 빨랫돌의 소리하는 법으로나 느낄까 보다.


 그렇다면…… 오늘토록 남아서 반짝이는 빨래터의 빨랫돌처럼 個個개개보
아 우리 목숨도 흐르는 햇살 속에 한 쪽은 몸을 담그어 잠잠하고 다른 한
쪽은 무얼 끝없이 뇌고 있는, 갈수록 찬란한 한 平生평생인지도 모른다.
박재삼 시인의 시에서는 유독 햇빛이 많이 나옵니다. 찬란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에 의미를 많이 부여한 것입니다.
 반짝이는 빨랫돌은 많은 여인네와 인연을 맺고 많은 사연을 들어 알고 있
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반짝일 수가 없고 저렇게 무슨
추억 같은 비밀을 끊임없이 풀어내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도 많이 인연을 맺고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빨랫
돌이 소리하듯이 멀리서 보면 우리 사람도 햇빛 받아 반짝이는 존재, 그 인
연과 추억에 따라 개인 개인이 다른 소리를 내는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
다. 딴은 그 추억과 간직한 비밀이 쌓여갈수록 사람의 삶은 햇빛 속에서 찬
란한 빛을 발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과일가게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아,
네 맑은 눈
고운 볼을
나는 오래 볼 수가 없다.
한정없이 말을 자꾸 걸어오는
그 수다를 나는 당할 수가 없다.
나이 들면 부끄러운 것,
네 살냄새에 홀려
살 戀愛연애나 생각하는
그 죄를 그대로 지고 갈 수가 없다.
저 수박덩이처럼 그냥은
둥글 도리가 없고
저 참외처럼 그냥은
달콤할 도리가 없는,
이 복잡하고도 아픈 짐을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여기 부려놓고 갈까 한다.




 과일가게 앞에 서면 온갖 과일의 냄새가 향기롭습니다. 그 진한 향기는 어
쩌면 아름다운 몸을 연상시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젊은 사
람들이 가진 것이어서 나이 들수록 그런 사랑은 생각조차도 죄스러울 뿐입
니다.
그러나, 사랑은 자꾸 말을 걸어오고, 그 수다는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
짐을 과일 가게에 부려놓고 간다지만 나이 들어도 사랑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시들지 않았다는 아름다운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섬을 보는 자리
그의 형제와
그의 사촌들을 더불고 있듯이
바람받이 잘하고
햇살받이 잘하며
어린 섬들이 의좋게 논다.


어떤 때는
구슬을 줍듯이 머리를 수그리고
어떤 때는
고개 재껴 티없이 웃는다.


그중의 어떤 누이는
치맛살 펴어 춤추기도 하고
그중의 어떤 동생은
뜀박질로 다가오기도 한다.


바라건대 하느님이여
우리들의 나날은
늘 이와 같은
공일날로 있게 하소서.




 섬을 보면서 공일날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연상해 본 시입니다. 세속의 욕
심이 전혀 묻지 않은 맑은 생각이며 행동이 즐겁고 경쾌한 느낌을 줍니다.
형제나 사촌의 정겨움도 묻어 있습니다.
 무덤덤하게 그냥 봐 넘기기 쉬운 섬들을 이런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보배로운 시심을 시인은 가지고 있습니다. 공일날과 같은 평화가 이 시
에서 느껴지지 않습니까?
한 景致경치
풀밭에 바람이 날리듯이
남쪽바다에 햇살이 날리네.


바야흐로
갈매기 두어마리
無心무심끝에 날으고
돛단배 가물가물
먼 나라로 갈듯이 떴네


오, 안스러운 것,
하얀 하얀 저것들,
어디까지 가서야 지치는 것이랴,
지쳐서는 돌아오는 것이랴.


꽃지는 꽃그늘엔
바람이 잠시 피하고
저것들의 깃쭉지와 돛폭 아래선
햇살이 잠시 피하는가.


사람들이여
이승과 저승은 어디서 갈린다더냐.


풀밭에 바람이 흐르듯이
남쪽 바다에 햇살이 흐르네.


 저승 세계에 와 있는 듯이 현실을 잊고 한낮의 경치에 푹 빠져 있는 시인
의 모습이 연상되는 시입니다. 햇살이 날리고 흐른다고 하는 표현이 멋집니
다. 그 햇살 속에 갈매기가 날고 돛단배가 가물가물 떴습니다. 그 갈매기와
돛단배는 안쓰럽게도 이승의 힘든 여정을 헤쳐나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다시 보면 햇살 속 그 모습들은 지친 모습을 잠시 멈추고 이승도 저승도 아
닌 세계에 늘 있었던 듯이 그냥 떠 있는 한 경치입니다. 사진 한 장으로 모
든 사정을 고정시켜 놓듯이 말입니다.
 바람 날리듯 햇살 날리고 바람 흐르듯 햇살 흐르는 한낮에 이승의 일을
떠나있는 듯한 경치를 바라보는 시인의 모습 또한 한 경치가 되었는지 모릅
니다.
小曲소곡




먼 나라로 갈까나.
가서는 虛飢허기져
콧노래나 부를까나.


이왕 억울한 판에는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
더 서러운 일을
뼈에 차도록
당하고 살까나.


고향의 뒷골목
돌담사이 풀잎 모양
할수없이 솟아서는
남의 손에 뽑힐듯이 뽑힐듯이
나는 살까나.




 이 시 속에 나오는 사람은 ‘억울하고 서러운 일’을 당하고 사는 사람으로
설정됩니다. 그 서러움은 ‘허기’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가난에서 온
것인 듯합니다. 그리고 그 가난한 삶은 언제 뿌리채 뽑힐지 모르는 ‘풀잎’같
이 안정되어 있지 않은 아슬아슬한 삶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람은 ‘먼 나라
로 갈까나’라고 노래 부르지만, 먼 나라로 갈 수도 없을뿐더러, 실제로는 그
먼 나라도 삶의 고난을 면해 줄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
니다.
 그래도 그는 ‘먼 나라로 갈까나’라고 노래 부릅니다. 푸념이고 하소연입니
다. 그러나 이 푸념과 하소연은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것입니다. 가난
이라는 삶의 질곡에서 온전히 벗어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기 때문
이기도 하고, 설혹 부자일지라도 인간이기에 담장 위 풀잎 같이 아슬아슬한
삶에서 결국은 자유롭지 못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가난이라는 삶의 문제, 그리고 그 가난에서 파생되는 온갖 억울함과 서러
움의 정서는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게 마련입니다. 콧노래를
부르듯이 가벼운 듯하면서도 절절하게 가난한 사람들의 심정을 아름답게 대
변하고 있는 시입니다.
흥부의 햇빛과 바람




千石천석꾼 萬石만석꾼의 재산 불어나는
그 기쁜 인생도
저 햇빛과 바람이 짜 올리는
씨와 날의 밝고 넘치는 것을
당할 수야 없으리.


하늘이여
저 햇빛과 바람이 짜내는 엄청난 재산을
누구나 골고루 갖게는 하되
욕심많은 놀부한테보다 더 많이
흥부한테는 눈물 섞어
그것을 갖게 하는 곡절을
나는 오늘 비로소
마태복음에서 읽어낸 참이노라.




한 해에 천 석 만 석을 거두는 큰 부자들의 재산 불리는 기쁨보다도 자연
의 아름다움이 훨씬 보배롭다는 것을 첫 연에서 시인은 감칠맛 나게 노래하
고 있습니다.
 둘째 연에서는 그 아름다운 자연을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눈물과
함께 더 잘 누린다는 것을 노래합니다. 흥부는 착하고 가난한 사람을, 놀부
는 부자이나 심술 많은 사람을 대표합니다.
 딴은 부자들은 재산 불리고 관리하는 일에 바빠 자연을 돌아볼 새가 없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은 배고프고 가슴 아픈
일을 당하며 살지라도 하늘을 보고 땅을 가꾸며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
들이지요.
 ‘하늘이여’라고 부른 까닭은 하늘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는 것을 믿는
다는 뜻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마태복음’을 들고 나온 것은 이런 사실이
성경에도 적혀 있다는 뜻쯤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자연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가난할 사람이야 없을 것이지만, 부자보다도
가난한 사람이 더 낫다는 반어(反語)적 수법에 의지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설
운 마음을 따뜻이 감싸 안는   시입니다.
千年천년의 바람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1975년에 간행된 시집 ꡔ千年의 바람ꡕ의 표제시이며, 박재삼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많이 회자되는 작품입니다.
 사람은 자연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요.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임에
틀림없는데, 사람만 유독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요.
아득하면 되리라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
냉수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오는
그 이상을 나는 볼 수가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때문에
마실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는 실제로 얼마나 될까요. 과학에서는 그것의 거리
를 무슨 광년인가 하는 단위로 나타낸다지만, 시인은 간단하게 답합니다. 아
득한 거리라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도 역시 아득하다고 간단히
말합니다. 너무 멀어 뭐라 말할 수 없을 때 아득한 것인데, 이 아득하다는
말은 멀다는 것만 말할 뿐 정확한 거리를 나타낸 말은 아닙니다. 너무 멀어
보이기에 그냥 아득하다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정확한 거리가 나온다면 당
장에라도 도시락 싸 들고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나서야 옳지 않겠습니까?
아득한 거리이니 아등바등 가까이 가려고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
서 냉수 사발에 아른아른 비쳐오는 사랑하는 사람 생각에도 그렇게 가슴 아
파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아득한 사람인데, 하며 가볍게 그 냉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은 하되, 그 때문에 크게 마음 상하지 않으면서 또
그 사람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적당한 거리, 그것이 아득한 거리입니
다. 이 거리야말로 인위적인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자연의 거리, 그것이
아닐까 합니다.
新신 아리랑




바다 두고 산을 두고
사랑이여, 너를 버릴 수는 없을지니라.


백리 바깥을 보는
네 山산처럼 아득한 눈을 어찌하고,


내 잘못을 거울처럼 받아 비추는
물같은 이마를 어찌하고,


복사꽃 피는 앵도꽃 피는
정다운 동네어구 입술을 어찌하고,


우거진 숲이여
네 시원한 머리카락을 어찌하고,


아, 어찌하고 어찌하고
고향의 稜線능선 젓가슴을 어찌하고,


바다 있기에 산이 있기에
사랑이여, 너를 버릴 수는 없을지니라.
아리랑은 이별을 서러워하는 노래입니다. 이 시의 제목이 신(新) 아리랑이
니 역시 이별을 서러워하는 내용을 달리 부른 노래일 것 같습니다.
 이 시에서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차마 이별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대상은 두 가지로 읽혀집니다. 하나는 바다며 산과 같
은 자연이고 하나는 여인네입니다. 그 둘은 교묘하게 하나로 합쳐지고 있습
니다. 산이며 바다에서 여인네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며, 여인네의 자태에 산
과 바다가 비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둘은 자연이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이 시에서 설정된 이별은 아마도 죽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
다. 그러니 이별은 불가피한 것이고, 불가피하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이별할
수 없고, 이런 점에서 인간의 고뇌는 시작되는가 봅니다.
어떤 歸路귀로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
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
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


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
먼지만 부옇게 쌓여 있는데,
빚으로도 못갚는 땟국물같은 어린것들이
방안에 제멋대로 뒹굴어져 자는데,


보는 이 없는 것,
알아주는 이 없는 것,
이마 위에 이고 온
별빛을 풀어놓는다.
소매에 묻히고 온
달빛을 털어놓는다.
1976년에 출간된 제4시집 ꡔ어린것들 옆에서ꡕ에 실린 작품입니다.
 혹독한 가난을 가족 간의 사랑으로 극복해 내고 있는 시입니다. 고생에
절은 어머니의 재산은 어린것들뿐입니다. 그 어린것들에게 어머니가 가져온
것은 배부를 아무것도 아닌 별빛 달빛뿐이지요. 그러나 어린것들은 빚으로
도 못 갚는 큰 고생덩어리이나 어머니에겐 그지없이 소중한 것들이고, 아이
들은 어머니가 이고 묻히고 해서 가져 온 달빛 별빛을 먹고 자랍니다. 이 별
빛 달빛은 당연히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 가족은 가난하나 불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아름답고 사람 사는 진한 냄새가 우러나는 삶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난
을 겪은 당사자들은 그 시절이 얼마나 서러웠을까요.
그대가 내게 보내는 것




못물은 찰랑찰랑
넘칠 듯하면서 넘치지 않고
햇빛에 무늬를 주다가
별빛 보석도 만들어 낸다.


사랑하는 사람아,
어쩌면 좋아!
네 눈에 눈물 괴어
흐를 듯하면서 흐르지 않고
혼백만 남은 미루나무 잎사귀를,
어지러운 바람을,
못견디게 내게 보내고 있는데!
아름다운 자연의 일과 내 뜻처럼 맞아떨어지지 않는 사람의 일이 안타까
움을 자아낸다는 뜻으로 읽히는 시입니다.
 못물은 그지없이 아름답습니다. 햇빛을 받아 온갖 무늬를 만들어내고 별빛
을 받아 보석도 만듭니다. 사람의 눈에 가만히 맺힌 눈물도 못물과 같습니
다. 그 못물 주위의 미루나무 잎사귀와 어지러운 바람이 끊임없이 내게 와
닿습니다. 이런 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할 것인데,
나의 사정은 그리 뜻 같지 않은 모양입니다.
 ‘어쩌면 좋아’하는 것이 고작인데, 사랑의 마음이 소홀해서 그런 것은 아
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해 주고 싶은데 해 줄 수 없는 것이 또 우
리 삶에는 많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사람의 한계일 것 같은데, 그 한
계를 자연을 빌어다가 참말 절실하게 드러내었습니다.
哀歌애가




이 세상 얼마나 많은 착한 이들이
서로 등도 못 기대고 외따로들
글썽글썽 마음 반짝거릴까.


어찌어찌 하다가 어울렸으랴
무논에선 개구리 울음이 반짝거리고
아슬히는 하늘에 별도 반짝거리네.


저 반짝거림들을
받아서 다시 비추는
무수한 무수한 임자들


등도 없는 칠칠한 밤을,
그 밤의 줄기 끝에 달린 열매들을,
이슬이 영롱한 가난한 사람들을.
제목인 애가(哀歌)는 슬픈 노래 또는 슬픔을 노래한다는 뜻일 듯합니다.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물론 시인 자신일 것입니다. 슬픔의 대상은 가난한 사
람들인 듯합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착할 리야 없겠지만, 가난한 사람은 적어도 남
을 속이고 남의 것을 훔치는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벌써 가
난을 면했겠지요. 이 시는 그 외롭고 착한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칠칠하다는 말은 옻칠이라는 뜻의 한자 칠(漆)을 겹쳐 써서 검다 캄캄하다
는 뜻으로 쓴 말인 듯 합니다. 그 검은 밤에는 반짝이는 것들이 유독 많을밖
에 없는데 그 빛을 받아 다시 비추는 임자들이 있습니다. 그 임자들은 가난
한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의 눈물 곧, 이슬이 별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입니
다.
 박재삼 시인은 슬픈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술회한 바도 있습니다만 가
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이처럼 아름답게 나타내었습니다.
내 사랑은




한빛 黃土황토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 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萬만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 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쳐 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박재삼 시인의 중학교 때 은사였고 그분으로 하여금 시에 눈뜨게 해준 이
는 다 아시는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 선생이십니다. 그 초청 선생의 영향이었
는지 박재삼 시인은 먼저 시조부터 쓴 듯합니다. 제1회 영남예술제(지금의
개천예술제)에서 이형기 시인이 장원을, 박재삼 시인이 차상을 했다 했는데,
시 1등은 장원, 시조 중 가장 잘 쓴 작품은 차상, 이런 식으로 상을 준 것이
라고 들었습니다. 박재삼 시인의 시집 15권 중 아홉 번째 시집인 『내 사랑
은』은 시조시집입니다. 앞 시조는 이 시조집의 표제시입니다. 박재삼 시인
이 가장 애정을 가졌던 시조인 셈입니다.
 시조 「내 사랑은」은 박재삼 시 중에서 보기 드물게 격정적인 감정을 토
로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로 읽으면 되겠습니다. 아주 젊을
때 쓰신 작품인 듯합니다.
 1연은 기다림을 썼습니다. 한 가지 황토빛 뿐인 언덕 넘어 오실 님을 기다
리고 있습니다. 몸은 멈춰 있으나 마음은 애가 타고 있습니다.
 2연은 밤의 시름을 적었습니다. 사랑에 애태우는 심정을 들기름불이 지지
지 앓는다 했습니다. 절창입니다.
 3연은 사랑의 마음을 적었습니다. 잠도 자지 않았고 눈물도 흘렸다는 심정
을 조약돌을 소재로 하여 드러냈습니다.
꿈이라는 것




아가야 이야기는
슬기롭고 신기하다
이제 막 꿈꾼 일을
엄지가락 자랑으로
「엄마야 알아맞춰 봐!」
기가 차게 조르네.


엄마는 아가를 안고
꿈을 안고도 어두워
너희 기쁜 세상과
無色한 엄마를 비겨
우람한 古木 밑둥과
그 가지 끝을 보는가.
아가를 바라보는 기쁜 마음을 드러낸 시조입니다.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을 박재삼 시인은 가장 즐겨 시화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
다.
 1연은 아가의 몸짓이며 표정을 대변해 본 것입니다. 아가의 마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표현하지 못할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2연에서는 아가와 엄마를 나뭇가지와 고목 밑둥으로 비유해 표현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이제 세상에 갓 나와 세상 일에 신기해 하는
아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물 옆에 노는 아이




물 옆에 노는 아이는 물빛 닮은 마음일레.
햇살도 잘 받고 바람 또한 잘 받고
종일을 지치지 않고 살에 차는 기쁨을.


풀잎에 이슬모양 손끝에 물방울 달고
빛나는 하늘 속에 퍼지는 네 웃음이
멀찌기 꽃으로 서서 시름 잊게 하노나.
천진난만한 아이의 기쁘기만한 모습을 그렸습니다. 시인의 마음이 그러하
길래 이런 시를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연은 햇빛과 바람을 잘 받는 물처럼 햇빛과 바람 속에서 노는 아이를 그
렸습니다. 살에 차는 기쁨은 기쁨으로 자라나는 아이라는 뜻으로도 읽힐 듯
합니다.
 2연은 이슬을 머금은 꽃과 같이 아름답고 시름을 잊게 하는 아이의 모습
을 그렸습니다.
구름의 여름 방학


모였다간 흩어지고
흩어졌다간 모이는
여름 하늘에 구름들을 보아라.
늘 새로이 모양짓지 않던가.


바다에 가서는
아득히 海岸線해안선에서
예쁜 아이의 아양 섞어 돌아간
입모습을 느끼고,
산에 가서는
밀짚모자 둘레에
매미 울음이
햇볕과 함께 밝게 쏟아지는
그것을 느끼고,
요컨대 그러한 새로운 것을
많이들 느끼고,
그런 다음에 너희는 다시는 모여 보아라.


그것은 구름의 形象형상,
구름을 水蒸氣수증기라고만 하겠는가,
그것은 잘 닦은 영혼의 얼굴들이
하늘에 떠서 동무되어 노는 것이다.




 하늘에 뜬 구름을 보며 여름방학을 맞아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연
상해 본 시입니다. 그리고 그 구름을 잘 닦은 영혼의 얼굴들이라고 했습니
다. 세상에 정말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
지를 느끼게 해 주는 시입니다.
꽃 지는 것 옆에서


Ⅰ
이젠 얼마 안 남은 꽃 질 일밖에 안 남았네.
꽃대들이 서 있을 그 일밖에 안 남았네.


마음이 착해 물 같은 마음이라 하고,
그래 그 마음을 주는, 물 주는 朝夕이라 하고,
가만히 피어나면 꽃은 어떻게 피던가,
몇만년 후에도 그것은 모를 일일레.


그러나 시방 보아라,
지는 꽃잎 두어 잎 저걸 보아라.
무슨 모양인가를
우리의 물빛 마음은 비추어 알아내는 것이다.


Ⅱ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가를
그야말로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나 바야흐로 이별하며 있는 지금 멀찌기
오히려 손 흔들며 보여오는 사랑의 모습……


꽃대밖에 꽃대밖에 더 남겠는가.




 꽃이 피어남과 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면 반드시 맞닥뜨리게 마련인 죽
음을 소재로 하여 쓴 시입니다.
 꽃이 착한 마음의 소산인 물을 먹고 자라지만 그 생명의 비밀은 풀 길이
없습니다. 꽃이 지는 것도 그 형상은 알 수 있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아무도
경험해 본 사람이 없습니다. 생명의 비밀을 풀지 못 하니 죽음은 어쩔 수 없
는 것이 됩니다. 이제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새삼 살아있을 때의 아름
다웠던 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 때 비로소 사랑이 손짓하며 다가오는 것입니
다.
 결국 꽃대만을 남기고 꽃은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사람도 속절없이
죽음을 맞으면 사라질 것입니다. 허무하지요. 그러나 이 시에서는 ‘손 흔들
며 보여오는 사랑의 모습’이 남을 것 같습니다. 살아있을 때 이 사랑을 많이
만들어야겠지요.
追憶추억에서 30




국민학교를 나온 형이
花月화월여관 심부름꾼으로 있을 때
그 층층계 밑에
옹송그리고 얼마를 떨고 있으면
손님들이 먹다가 남은 음식을 싸서
나를 향해 남몰래 던져 주었다.
집에 가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누이동생이
浮黃부황에 떠서 그래도 웃으면서
반가이 맞이했다.


나는   맛있는 것을
많이   많이 먹었다며
빤한   거짓말을 꾸미고
문득   뒷간에라도 가는 척
뜰에   나서면
바다   위에는 달이 떴는데
내 눈물과 함께
안개가 어려 있었다.




 박재삼 시집 『追憶에서』는 박재삼 시인이 장년이 되어 어린 시절의 일
을 회고하여 쓴 시입니다. 이 시집에 나오는 생활과 자연은 모두 실제 있었
던 일이고 모습입니다. 이 시도 어릴 때의 가난한 생활을 그대로 쓴 것인데,
어릴 때부터 키워왔던 저러한 감수성이 한 큰 시인을 키우기 않았나 싶습니
다.
 이 시는 숨기고 싶을지도 모를 개인적 사정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사실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박재삼 시인이 왜 가난의 문제를 시 속에서 그렇
게 많이 다루고 있는지 짐작 가게 하는 시입니다. 이 집안의 가난은 대를 물
립니다. 형은 초등학교만 나온 뒤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것이고 동생
은 그 형이 던져준 깨끗하지 못한, 양도 얼마 되지 않을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고도 못 먹어 부황에 뜬 식구들에게는 배불리 먹었다는 거짓말을 합니
다. 어린 마음에도 가족의 심기를 배려할 줄 아는 슬기가 있고 사랑이 있습
니다. 이런 모습을 달이 비춰주고 있습니다. 바다와 달, 안개 이런 자연들을
박재삼 시인은 가난한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시킨다는 점을 상
기해 보시면 감상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追憶추억에서 31



해방된 다음해
魯山노산 언덕에 가서
눈아래 貿易무역회사 자리
홀로 三千浦中學校삼천포중학교 입학식을 보았다.
기부금 三천원이 없어서
그 학교에 못 간 나는
여기에 쫓겨오듯 와서
빛나는 모표와 모자와 새 교복을
눈물 속에서 보았다.


그러나 저 먼 바다
섬가에 부딪히는 물보라를
또는 하늘하늘 뜬 작은 배가
햇빛 속에서 길을 내며 가는 것을
눈여겨 뚫어지게 보았다.


학교에 가는 대신
이 눈물 범벅을 씻고
세상을 멋지게 훌륭하게
헤쳐 가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오늘토록 밀려서
내 주위에 너무 많은 것에 지쳐
이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 어렴풋이 배웠다.




 노산에 올라 학교에 가지 못한 설움을 토로하며 장래를 기약하는 박재삼
의 어린 시절을 짐작케 해 보는 시입니다. 읽어보는 것 이상의 해설이 군더
더기일 뿐인 쉬운 시이면서도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러한 매력은 박재삼 특유의 진실성에서 옵니다. 숨김없는 한 삶의 내력
은 어떤 예술보다도 감동적인 것이 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시절
에는 너나없이 빈곤을 절감하던 형편이었으므로, 그 공감의 폭은 훨씬 더 넓
어지리라 생각됩니다.
가난의 결과로 시에 나타난 것은 ‘눈물‘입니다. 이 눈물 또는 울음은 박재
삼의 설움을 드러내는 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소재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눈물이나 울음이 그의 시를 청승맞게 하거나 값싼 동정심을 유발하는 천박
함에 몰아넣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물이나 울음은 삶의 가장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만큼 시인의 깨끗한 내력을 돌아보게 하는 소
재입니다.
追憶추억에서 41




모래밭에 물결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꼭 주름살을 폈다 오무렸다 하는
사실과 너무나 흡사하다고 느꼈다.
千萬천만날로 되풀이하는 바다가
우리 어머니나 누이의
치맛단을 설마 닮은 것이랴,
그들이 생겨나기 전부터
아득히 있어 온 물결이라면
곰곰이 이제야 알겠다,
우리 어머니나 누이들이
물결의 그리움을 담아 아슬아슬하게
치마를 만들었다는 그 순서를.
그 치마 속에서는
빨간 珊瑚산호를 빚기도 하고
하얀 眞珠진주를 뿜어내기도 하는
요컨대 눈부신 공사를 열심히 하고,
아무 것이나 마구 만진 흙장난으로
우리의 더러워진 코하며 얼굴을
치마 안자락으로 말끔히
꿈같이 훔쳐 주는 것이었다.




 박재삼 시인의 시에 많이 등장하는 비유의 한 형태를 알기 쉽게 드러내고
있는 시입니다. 파도며 밀려오는 물살이 만들어내는 물결을 어머니나 누님의
치맛살에 비유한 것입니다. 즉, 치마폭은 바다의 물결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이 시에서는 먼저 말합니다. 그 코훔쳐 주며 감싸안아 주던 치마폭에 싸여
자라났다면, 치마폭이 바다를 본떴기에, 어릴 적 시인은 바다가 키워준 존재
가 됩니다.
 이 시는 바다를 대상으로 상상력을 키워온 시인의 내력을 돌아보게 하는
시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追憶추억에서 68




어머니는 모래뜸질로
남향 십리 밖 沙登里사등리에 가시고
아버지는 魚物到付어물도부로
북향 십리 밖 龍峙里용치리에 가시고
여름 해 길다.


문득
낮닭 울음소리 멀리 불기둥 오르고
피 듣는 맨드라미 뜰 안에 피어,
내 귀를 찢는다
내 눈을 찌른다.


오히려 物情물정 없는 나이로도
십리 밖 칼끝 같은 세상을
짚어 짚어 앓았더니라.




 이 시는 시집 『追憶에서』에 실린 마지막 시입니다.
 시에 나온 날에는 어머니가 민간요법인 모래뜸질을 하러 지금의 남일대
해수욕장에 갔고, 아버지는 먼 곳으로 어물 장사를 나가 집에는 어린 꼬마
혼자 남아 무서움과 외로움에 싸여 있습니다. 긴 여름 한낮, 곁에 아무도 없
는 적막 속에 때로 높이 울려 퍼지는 낮닭의 울음소리와 피처럼 붉은 맨드
라미에서 어린 화자는 문득 섬찟한 것을 느낍니다. 평화로와 보이는 고요 속
에도 생존을 위한 투쟁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세상사는 것의 어려움을 어렴
풋이나마 짐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냥 고운 서정만을 노래한 줄로만 알았던 박재삼의 시에서 이처럼 날카
로운 이미지의 돌출을 보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세상 사는 일이 만만한 일
이 아니고, 그 만만치 않은 세상을 나름대로 헤쳐나가는 시인의 정신적 편력
이 드러나는 시입니다.
친구여 너는 가고




친구여 너는 가고
너를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대신
그 그리움만한 중량의 무엇인가가 되어
이승에 보내지는가,
나뭇잎이 진 자리에는 마치
그 잎사귀의 중량만큼 바람이
가지끝에 와 머무누나.


내 오늘 설령
글자의 숲을 헤쳐
가락을 빚는다 할손
그것은 나뭇가지에 살랑대는
바람의 그윽한 그것에는
비할래야 비할 바 못되거늘,
이 일이 예사 일이 아님을
친구여 너가 감으로 뼈속 깊이 저려 오누나.




 나뭇잎 진 자리에 나뭇잎 무게 만큼 바람이 와 머문다는 발견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일 듯합니다. 사람이 죽고 난 후의 그 그리움의 중량은 어떻게
나타나는 걸까요. 이 시에서는 사람의 어떤 재주도 나뭇가지 끝에 살랑대는
바람의 재주를 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
그것이 그 그리움의 중량일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자연에서 났으니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겠고 그것을 죽음이라 부르
면 간단한 것이지만 그것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벌여 놓았나 봅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자연의 이법을 차마
따르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자연 앞에서 초라해 보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이법에 따르라는 것, 그것이 친구가 주고간 그리움
의 중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 종소리



韓紙한지 위
山水산수가 먹물로 번지는
가을비 속의 저녁 종소리


樵夫초부는 산에 대하여
물에 대하여
그렇게 낯이 익건만
아직도 그는
산의 끝간 데
물의 끝간 데를 가보지 못한
안개 속 나그네에 지나지 않던가.


그 나그네
눈썹 밑을 재우며
눈썹 위를 깨우며
하늘가에서 아득히
울려오는 저녁 종소리


바야흐로
너는 영롱한 이슬들을
소매 끝에 발 끝에 묻히고
너의 日常일상의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거라.




 기도하듯이 기원하는 시인의 고운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입니다. 하루의
일을 마칠 즈음에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앞길을 축복하고
있는 시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앞길에 자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불안한 길을 서로 의지해 헤쳐 나가고 있는 나그
네인 셈이지요. 그 중에도 가난한 사람을 대표한 초부 곧 나무꾼은 영롱한
이슬들을 묻히고 다니는 착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죄악에 물들 일이 없
어 보입니다. 가난할지라도 그의 앞길은 축복받을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祭祀제사를 보며


풍성한 가을이건만
바칠 것이 적은 祭床제상에는
바람이 유독
누더기를 펄럭이며 참례하고 있고,


돌아간 사람은 이제 말이 없는채
그가 늘 걸치던 닳아진 소매 끝과
똑같은 소매 끝을 가진
後孫후손들의 흐느낌을
귀뚜라미가 대신하고 있고,


떼 성긴 封墳봉분이
그 情況정황 아는 듯
아무도 몰래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느니라.




 제사를 받는 조상이나 그 제사를 지내는 후손이나 똑 같이 가난한 삶을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가난은 물려주고 물려받은 것이기에
그 사정은 조상이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도 바칠 것이 없는 제상을
대한 후손은 그 설움과 죄스러움에 흐느낄 수밖에 없고, 말은 없으나마 조상
은 그 정성을 잘 아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시에서 가난은 허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조상에 대한
정성이 사무치는 바 있고, 조상 또한 그 정성을 기꺼이 흠향할 듯합니다.
 이 시는 설움과 눈물을 노래했으되 한없이 맑고 아름다운 정서를 일깨웁
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는 부자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정서입니다.
봄바다에서 느끼다




한마지기도 없는 논밭이어서
하늘은 시방 울아배를
병신이라 부르다가
다시 太平태평이라 고쳐 부르면서
수천 마지기 논밭을 열심히 주고 있다.
이렇게 햇빛이 밝고
바람도 맑은 날을 택하여
무턱대고 주고 있다.


모처럼 주는 이것들을
五臟六腑오장육부의 힘으로나 갈아 낼까보아,
아, 눈물 힘으로나 갈아 낼까보아,
하늘아, 어쩔래,
울아배는 멍청한 살만
잔뜩 갖고 있을 뿐이니.




 땅 한 마지기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설움을 대변하고 있는 시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하소연합니다. 하늘이 주는 것은 자연, 수천
마지기 햇빛과 바람뿐입니다. 이것을 눈물로 갈면서 사람들은 그래도 하늘을
쳐다봅니다.
 하늘도 어쩔 수 없다는 가난의 문제, 이것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그 문제의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일깨우는 것, 이것 또한 시인의 사명이 아닐까 싶습니
다.
病床병상에서 Ⅰ




내일 어머님이 시골에서 오시는데,
한달 보름만에 오시는데,
우리 집 뜰에 와서 처음으로 핀
木蓮목련의 마지막 꽃잎마저 다 져버렸네요.
눈물 흘리듯이 져버렸네요.


그러나 시방 한창
山棠花산당화가 잘 피어 있고
라일락이 피기 시작했거든요.
다만 木蓮목련의 그 맏며느리 같은
탐스러운 꽃잎이 아니고
끼니 없는 사람에겐 더 아프게 보일
밥알로만 피어 있거든요.
그러면서 결국은
꽃이 피었으니 신기하거든요.


그런데 하나 걱정이 남았어요.
이 좋은 봄날,
내 팔다리에서는 꽃이 피기는커녕
저리고 막막한 高血壓고혈압만 再發재발한 걸
어쩔 수 없이 보여 드려야 하거든요.




 박재삼 시인의 어머니는 생선 행상으로 가족을 부양하였다. 이런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공경은 당연히 대단할밖에 없다. 그런데 집안 형편은 여의치 않
다. 그것을 목련의 복스런 꽃은 지고 라일락의 밥알 같은 꽃으로 나타내었
다. 거기다 고혈압까지 재발했으니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아릴 것인가. 이
것은 효(孝)라기 보단 모자간의 정이다.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난다.
 서울 가서 시인으로 성공했다지만 생활은 늘 곤궁했던 것, 이런 점이 가슴
아팠는지 박재삼 시인은 시 공부하겠다는 후학에게 반드시 다짐을 받곤 했
다. 가난하게 살아도 견딜 수 있으면 시를 쓰라고. 이런 형편이니 박재삼 시
인은 제자를 기르지 못했다는 후문을 듣는다. 이런 점을 봐도 박재삼 시인은
세속의 명리에 초연했던 분이다.
봄 속의 아이




풀밭엔 풀밭 소리,
못가엔 또 다른 소리,
봄 하는 소리는
헤아리기 어려운데
한자락 끝이나 잡는
노는 아이 창가여.


돌돌돌 도랑물 소리
이어진 그 구슬이
창가 소리 속에
몇 가닥은 흘러들어
氣勝기승한 목청을 끌고
갈 데까지 가 본다.


창가와 함께 달리던
아이는 쓰러지고
스미는 풀 냄새
흙 냄새 아뜩한데
창가를 그친 대목에
종다리가 솟는다.




 천진난만한 아이를 통하여 삶의 즐거움을 노래한 시조 작품입니다. 아이가
아니면 노래를 부르며 들판을 달릴 수가 없고 아이의 눈이 아니면 세상이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시인이 도달하고자 했던 세계는 아마도 이
런 세계가 아니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욕심 없는 세상, 착하고 즐거운 것만
생각하는 세상, 자연에 묻혀 자연을 즐기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었던 시인
이 박재삼입니다.
 그런 세상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런 시를 많
이 읽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일 생각을 품지는 않을 것 같습
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어쩌다가
땅 위에 태어나서
기껏해야 한 七十년
결국은 울다가 웃다가 가네.
이 기간 동안에
내가 만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점지해 준
빛나고 선택받은 인연을
 물방울 어리는 거미줄로 이승에 그어놓고
 그것을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보태며
 나는 꺼져갈까 하네.




 1933년에 나서 1997년에 타계하셨으니 박재삼 시인은 이 시에 나오는 대
로의 천수도 누리지 못한 셈입니다. 그래도 15권의 좋은 시집이 남았으니
웬만한 사람보다 더 오래 산 셈입니다.
 이 시는 1986년에 나온 제10시집 『찬란한 미지수』에 실린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유언삼아 쓴 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는 개인사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사랑의 소중함을 노래한 것이
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다 허망하지만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점지해준 아
름다운 인연을 남기고 떠난다는 것이 이 시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인연이
거미줄이라는 의미는 좀 생각해 볼 여지를 남깁니다. 거미줄은 무언가가 달
라붙으면 잘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인연의 거역할 수 없음을 뜻한 것 같
기도 합니다. 아니면, 남긴 거미줄이 인연이 되어 죽은 후에라도 새로운 인
연이 생길 수도 있음직합니다. 우리가 이 인연으로 이 시를 읽고 있듯이 말
입니다.




                 갈대밭에서




갈대밭에 오면
늘 인생의 변두리에 섰다는
느낌밖에는 없어라.


하늘 복판을 여전히
구름이 흐르고 새가 날지만
쓸쓸한 것은 밀리어
이 근처에만 치우쳐 있구나.


사랑이여
나는 왜 그 간단한 고백 하나
제대로 못하고
그대가 없는 지금에사
울먹이면서, 아, 흐느끼면서
누구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할 소리로
몸째 징소리 같은 것을 뱉나니.




 갈대는 제 스스로 나서 스스로 큽니다.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고 그 성장
에 관심 가져 주는 이 없습니다. 이런 갈대가 모여 이룬 갈대밭은 쓸쓸함을
느끼기에 적당한 곳이고 변두리라는 느낌을 주기에 적당한 곳입니다.
 외로움이란 혼자일 때를 말하는 것, 이 시 속의 말하는 이는 함께 있어야
할 사람을 놓치고 속으로 울면서 흐느끼고 있습니다. 그 소리는 겉으로는 나
지 않으나 매우 격렬합니다. 온 몸이 징이 되어 울립니다. 그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천




나는 그대에게
가슴 뿌듯하게 사랑을 못 쏟고
그저 심약한, 부끄러운
먼 빛으로만 그리워하는,
그 짓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가리라고 봅니다.
그런 엉터리 사랑이 어디 있느냐고
남들은 웃겠지만,
나는 그런 짝사랑을 보배로이 가졌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비밀로 짠
아름다운 천을 두르고 있다는 것이
이 가을,
갈대소리가 되어 서걱입니다.
가다가는 기러기 울음을
하늘에 흘리고 맙니다.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기에 그 사랑은 비밀로 남았습니다. 때 묻지 않았고
누구도 넘볼 수 없기에 그것은 보배로운 것이지만 때로 외로움을 타는 일은
어쩔 수 없습니다. 갈대 소리, 기러기 소리에 그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세
월이 지나도 사랑은 낡지 않았고 그 사랑의 사람도 항상 아름답습니다.
비가(悲歌)




잔잔한 노래만을 외우면서
결국에는 별까지 가고 싶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더냐.


서럽지만 하는 수 없이
땅에 묻히고
밝은 데는 어림도 없고
캄캄한 데로만 가는 것이
누구에게나 예비되어 있을 따름인데,
아, 온갖 발버둥치는 것을 섞어도
이 엄정한 사실에서
한치도 벗어날 장사가 없네.
그러니 오늘
환한 꽃이 물에 어리는
천하에 제일 가는 경치를
원대로는 보고 간다마는
어쩔거나,
그것도
눈물을 배경으로
누리는 것이 그 전부라네.




 죽음을 노래한 시입니다. 뻔한 사실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죽음만큼 절실
한 것은 없기에 잔잔하게 음미해볼만한 시라고 생각합니다. 밝은 곳으로만
가고 싶지만 어둠의 세계가 예비되어 있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아도 그 아름
다움에 머물 수 없는 것이 눈물겹게 만듭니다.
 가만히 읽으면서 사람의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시입니다.
우수 무렵




입춘을 지나
우수(雨水) 무렵으로 오면
아직 분명히 나무는 벗은 채
찬바람에 노다지로 몸을 내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어딘가 회초리를 맞아도
옛날 서당 훈장의 그것 같아
사랑의 물끼가 실려 있고,
멀리서 보면
아지랑이가 낀 듯하고,
조금은 어지럼증도 섞여 들더니
드디어 울음을 터뜨릴
기운까지 얻고 있는
한마디로
눈부신 경이(驚異)가 묻어 있구나.




 계절의 놀라운 변화를 노래하고 있는 시입니다. 다 아는 것을 새삼 말하는
것 같아도 봄이 만드는 신비는 항상 새롭습니다. 죽었던 것들이 차츰 살아나
는 기미를 보일 때, 사람들은 절망했다가도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를 가져보
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神)은 낮게 곡선을 그리며




문명에 길든 것은
모두 날카로운
직선을 이루고 있건만,
거기에 때가 묻지 않은 것은
가령 눈 덮인 경치와 같이
얼마나 순박한 곡선을 긋고 있는가.


저 눈을 쓴
자태 속으로 들어가면
그 밑바닥에는 시방
녹은 물이 자기네들끼리 모여
고향의 예닐곱 살 적의,
세상이 즐겁고 기쁘기만 한
노래를 하기에만 골똘한
시냇물 소리를 내느니
그 근처에 신(神)은 늘
높이 좌정(坐定)하기는커녕
공일날처럼 가만히 놀면서
아, 낮게 임하누나.




 문명이란 것은 혹시 욕심의 산물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자꾸 더 높이 올
라가고 효율성을 살리려다 보니 직선을 이룰 수밖에 없겠지요. 여기에 비해
자연 그대로의 것에는 욕심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때 묻지 않은 것, 가
장 순수한 것이 신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요.
 박재삼 시인은 늘 약자의 편에서 시를 썼습니다. 착하기에 약자일 수밖에
없다면 억지일까요. 신의 뜻과 가까운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지를 이 시에서
는 차분히 노래하고 있습니다. 박재삼 시인이 아니라면 이 어려운 논리를 이
처럼 아름답게 풀어낼 사람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福地복지를 향하여




물이 다 모여서는
드디어 바다에 이르지만
거기에서는
흘러오고 거쳐온
땅의 일을 못 잊는 것이겠지.


바다의 물살을 보아라.
한 물살 넘어
또 다른 물살.
그 너머의 물살로
몇 겹으로 영원히 이어져서
쏴아 쏴아
여기 땅 쪽 福地복지를 향하여
연신 밀려오고 있는 것을
환생의 구름 노니는 것과
같은 이치와 가락으로
나는 파악하고 있다네.




 이 세상을 복지(福地)로 밝게 표현하고 있는 시입니다. 물이 강을 거쳐 바
다로 갔지만 땅을 못 잊어 저렇게 밀려오는 것을 보면, 물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었지만 땅을 못 잊어 비로 내리는 것을 보면 세상은 분명 복 받은
땅, 복지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가난할지라도 힘들지라도 이 땅을 복지
(福地)로 여긴다면 그 또한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을 하늘




極樂극락이나 天堂천당이 있는 것을
꼭이 믿을 수는 없지만


하여간 한번 죽음이 닥치면
물이나 먼지로 남아


이 세상에 겨우
참여하기는 하리라.


이것만 아슬아슬하게 아는
天痴천치 앞에, 어쩔꺼나,


그 깊이와 존재의 까닭을
알 수 없는, 아, 태평한 것,
가을 하늘이 휘영청
머리 위에 없는 듯이 떴어라.




 죽고 나면 먼지나 물이 되어 세상에 남기는 하리라는 말에서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애착을 가진 존재인가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말 그대로 인
간적인 것이지요. 그런 슬픈 인간의 앞에 어쩌자고 가을 하늘이 휘영청 아름
답게 펼쳐집니다.
 무한한 것 앞에 선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시입니다.
復活부활의 생각




당신이 푸른 빛과
별로 관계가 없는 것은
빤하고 분명하건만,
그러나 늘 그 근처에서
자나 새나
그리워하고 산 것은
너무나 확실하다.


저 햇빛에 반짝이는
무수한 이파리들 둘레에서
혼을 빼앗긴 채
멍청히 지냈던 사실을 헤아려 보라.


결국 이런 과정을 거치고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땅 밑에 묻혀
스미는 물로 변하여
그 이파리들을 타고
눈부시게 올라오기는 하리라.
아, 이것이 復活부활이 아니고 무엇인가.




 제14시집 『허무에 갇혀』에 실린 시입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사람이 죽고 나면 그것으로 세상과 영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생시에 그 사람이 오랜 세월 가까이 했던 푸른 것을 타고 올라오는
물이 되어 세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눈부신 나뭇잎을 통해 그
사람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므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로
또는 적어도 그 일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그 사람은 부활합니다. 이쯤 되
면 사람은 죽어도 영 죽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을 법합니다.
 하지만, 시 「부활의 생각」에서는 세상의 아름다움보다는 삶의 종말을 맞
이하게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쓸쓸한 독백 쪽에 무게가 실려 있는 듯합니
다. 죽음 앞에서 완전히 초연할 수는 없는 인간의 슬픔이 시 속에 어쩔 수
없이 스며들어 있는 것입니다.
紅柿(홍시)에서 받은 추억


가을날 해는 짧은데,
아버지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시고
캄캄해져야 돌아오는데,
혼자서 집을 보며
서러움에 복받쳐
오직 우리는 왜 못살까만
골똘히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던 것을
더욱 찬란한 것으로만 모두우며
감나무 끝에
홍시들이 빨갛게 익어
그것은 전적으로
햇빛과 바람이 빚은
덕택이란 것을 알고
이것이 부잣집이라고
많이 내리고
가난한 집이라고 하여
적게 내리는 것이 아님을
똑똑히 보며
만가지 수심을 지울 수가 있었다.


아, 그러나
가난에 매인 심정일수록
그것은 제자리를 찾아 내린다는
대전제만 하늘처럼 믿다가
그것이 오늘까지 와서
세상에서 제일 착하게
나를 맨발로
역사의 현장에 서게 했더니라.




 평생을 지켜온 믿음인 ‘자연 앞에 평등한 인간사’를 확인하면서 자기의 일
생이 이 자연의 섭리를 좇아 크게 어긋남이 없었다는 술회를 함으로써 일생
을 정리한 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생활인으로서 시인은 평생 양심을 지켜 왔고 가진 것 없는 ‘맨발’로 거
친 세상, 곧 역사적 현장을 헤쳐 왔습니다. 박재삼 시인만큼 가난한 사람들
의 편에 서서 그 고난을 정리하고 정화시키며, 세상의 다수인 그 가난한 사
람들이 ‘역사의 현장’을 헤쳐나가는 데 길을 잡아준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어느 뱃사공




아버지는 그 넓은 바다를
밭처럼 갈고 살더니
결국은 푸른 바다에 빠져 죽고,
그 원통한 길을 다만 별수없이
아들이 대를 이어
그물을 던져 생선을 길어 올리네.


푸드득 뛰는 그 선연한
비늘빛에 취하여
죽으나 사나
손때 묻고 닳아진 노를 젓네.


삐그덕 삐그덕 가더라도
그 끝간데가 없는 길을
아득한 햇빛 속에 묻고
저절로 익힌 뱃노래만 부르노니
어쩔 수 없이 슬픔은 물려받고
그 슬픔을 꽃피우는
이 짓 밖에 다른 할일은 없네.




 가난의 대물림, 가난한 직업의 대물림까지 감수할 수밖에 없는 어부의 삶
을 노래한 시입니다. 설움이 가슴에 맺힌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겠습니
까. 이들의 사연을 아름답게 노래함으로써 시인은 이들을 가만히 위로하고자
합니다. 아픔을 알아주고 그 아픔을 같이 토해 냄으로써 그 아픔을 정화시켜
주고 있는 셈입니다.
虛無허무의 내력




늘 돈은 조금만 있고
머리맡엔 책만 쌓이고
그 책도 이제는
있으나마나한데
땅 밑에
갈 생각만 하면
나는 빈 것뿐이네.
1996년에 간행된 마지막 시집 『다시 그리움으로』에 수록된 시입니다.
 죽음을 예감하면서 당신의 현실을 담담하게 그렸기에 간결한 말 속에 많
은 사연이 담기고 당연한 말인 듯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자아냅니다. 시인
의 일생을 가늠해 보게 하고 사람의 운명을 생각하게 해 주는 시입니다.
물결의 態태




항상 바람 앞에서
물결의 態태가 잡혀


오지도 가지도 못해
결국에는 영원으로


내닫는
빠안한 길을
출렁이며 가누나.
態(태)라는 말은 한자말이긴 해도 옛 삼천포 지역에서는 ‘모양새’쯤 되는
뜻으로 일상생활에 흔히 쓰던 말입니다. ‘보기 좋다’는 뜻으로 ‘태가 난다’라
고 하는 식이지요. 한자말이라곤 하지만 박재삼 시인이 어릴 때부터 일상 써
오던 말입니다. 박재삼 시인의 시에 쓰인 한자말은 기실 이런 식의 한자말이
많습니다. 한자말의 사투리격쯤 될까요.
 이 시는 물결 모양이 바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일정하게 정해지듯이 사
람의 삶도 크게 보면 정해진 길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는 새삼스런 깨달음
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운명을 거역할 수 인간의 삶을 물결에 비유한 것입니
다. 간결한 말 속에 삶의 곡진한 내력이 굽이굽이 묻어나는 듯합니다. 마지
막인 제 15시집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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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시모음

  • 1. 박재삼시50선감상 정삼조 엮음 박재삼기념사업회 간행 晶歌수정가 집을 치면, 精華水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선 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平床의, 갈앉은 뜨락 의, 물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같단들 어느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에 順順순순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春香춘향이 마 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 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 나. 진실로, 우리가 받들 山神靈산신령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 의 萬里만리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春香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水晶수정빛 임 자가 아니었을까나.
  • 2. 박재삼 시인의 첫 시집 『春香이 마음』에 맨 처음 실린 시입니다. 시집의 처음 시란 점에서 볼 때 이 시는 박재삼 시인이 특히 애정을 가진 시이거나 시집의 성격을 대변할 수 있는 시로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가 있 는 시이고 또 그만큼 아름다운 시인데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춘향과 서방님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시는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시 인은 그들을 물과 바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물은 가장 깨끗한 것입니다. 정화수를 떠 놓고 가족의 안전을 빌었던 옛어머니들을 연상할 수 있듯이 춘 향은 간절한 소망을 늘 안고 있는 존재입니다. 바람과 어울린 물은 증발하여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이라도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습니다. 구름으로 되고 비가 되고 다시 세상에 스며 샘으로 솟습 니다. 새 바람과 새 물은 순환하면서 항상 어울립니다. 춘향과 서방님은 죽었지만 그 뒤에도 물과 바람이 되어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랑이 존재합니다. 사람 들은 사랑을 하면서 살다가 각기 물처럼 스러집니다. 그러고 나면 새 사랑이 새 사람에 의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랑으로 충만한 것이지요. 박재삼 시인은 세상 살아가는 일을 ‘사랑’으로 표현합니다. 그 사랑이 영 원할 수야 없지만, 정화수의 물처럼 깨끗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사랑이 충만한 세상, 그것을 기원하고 노래하는 것으로 보면 박재삼 시인은 결국 현실주의자는 아닙니다. 이상주의자 또는 낭만주의자로 불릴 법합니다.
  • 3. 自然자연 뉘라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을 아는 내 마음 꽃나무는 내 얼굴에 가지 벋은 채 참말로 참말로 바람 때문에 햇살 때문에 못이겨 그냥 그 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자연친화(自然親和)라는 말이 꼭 생각나는 시입니다. 내 마음을 꽃나무에
  • 4. 비기고 그 꽃나무에 영향을 주는 것을 바람과 햇살로 놓았습니다. 그 바람과 햇살에 따라 내 마음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내 마음이 꽃나무이기에 세상 살아가면서 생기는 온갖 시름과 기쁨이 바람과 햇살에 의해 생길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람이 꽃나무처럼 식물은 아니지만 자연의 일부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 다.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 고 사람들은 자연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5. 葡萄포도 刑형틀에 매여 원통하던 일을 이승에서야 다 풀고 갔으련만 저승에 가 비로소 못잊겠던가 春香춘향이 마음은 조롱조롱 살아 다시 열렸네. 저것은 가냘피 아파 우는 소리였던 것을, 저것은, 여릿이 구슬 맺힌 눈물이던 것을, 못견딜 만큼으로 휘드리었네. 우리의 무릎을 고쳐, 무릎 고쳐 뼈마치는 소리에 우리의 귀는 스스로 놀라 고, 절로는 신물이 나, 신물나는 입맛에 가슴 떨리어, 다만 우리는 或時혹시 刑吏형리의 손아픈 後裔후예일라…… 그러나 아가야, 우리게게도 비치는 것은 네 눈이 葡萄포도라, 살결 또한 葡萄포도라…… 시 「포도(葡萄)」에서는 춘향이 포도로 부활합니다. 조롱조롱 살아 다시 열린 춘향의 여기서의 마음은 이승의 원통하던 일을 못 잊는 마음입니다. 그
  • 6. 리고 그 포도를 깨물면서 그 신맛과 함께 시인은 춘향의 사랑과 억울한 사 정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내가 세상에 혹시 잘못한 일은 없는가를 되 돌아봅니다. 하지만 포도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것이 춘향의 원망하는 마음을 담았다 손 치더라도 춘향의 일 자체를 담은 것이기에 아름다운 사랑의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마지막 연에서 아이에게 비춰져 있습니다. 사랑의 결과물이고 이제 새로운 사랑을 해 나갈 아이의 눈에서 아이의 살결에서 시 인은 사랑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 7. 봄바다에서 一 화안한 꽃밭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핀 것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것가 참. 실로 언짢달것가, 기 쁘달것가.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사람과 산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것가. 二 우리가 少時소시적에, 우리까지를 사랑한 南平文氏남평문씨 夫人부인은, 그러나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의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헤쳤더란다. 確實확실히 그때로부터였던가, 그 둘러썼던 비단치마를 새로 풀며 우리에 게까지도 설레는 물결이라면 우리는 치마 안자락으로 코훔쳐 주던 때의 머언 향내 속으로 살달아 마음 달아 젖는단것가. * 돛단배 두엇, 해동갑하여 그 참 흰나비같네. 꽃밭은 바다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죽은 사람들이 만든 세계가 이승의 바다, 곧 햇빛 받아 반짝이는 꽃
  • 8. 밭 같은 것이 된다고 노래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는 데 있습니다. 남평문씨 부인은 마음 넉넉하게 살았던, 죽은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보면 되겠는데 그 남평문씨부인도 이 아름다운 꽃밭의 한 부분을 당연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꽃밭은 ‘설레는 물결’이 되어 우리에게로 다가듭니다. 남평문씨부인 은 죽을 때 둘러썼던 비단치마를 새로 풀며 그 치마 안자락으로 어린 우리 의 코를 훔쳐 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향기에 취해 마음도 몸도 들뜨는 때를 맞게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바다의 물결을 어머니나 누이의 치맛자락 으로 비유한 표현은 시집 『春香이 마음』의 여러 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 다. 결국 바다는 죽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됩니다. 그 혼이 반짝이는 꽃 으로 우리 눈 앞에 살아나 있고, 설레는 물결이 되어 밀려오고 있고, 그 치 마폭에 싸여 우리는 자라는 것입니다. 봄날의 황홀한 꽃밭 같은, 햇빛 받아 반짝이는 바다는 죽은 사람들의 아름 답고 치열했던 사랑의 일을 연상시킵니다. 결국 죽음이라는 허무로 돌아갈 것이나, 삶이 가지는 격정과 정열은 저렇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 9. 어지러운 魂혼 겨우 예닐곱살 난 우리를 그리 사랑하신 南平文氏남평문씨 夫人부인은 서늘한 모시옷 위에 그 눈부신 동전을 하냥 달고 계셨던 그와도 같이 마음 위에 늘 또하나 바래인 마음을 冠관올려 사셨느니라. 그것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그것 그 짐 때문에, 어이할까나, 갈앉아지기로는, 몸을 풀어 사랑을 나누기로는 바다밖에 죽을 데가 없었느니라. 魂혼도 어여쁜 魂혼은, 우리의 바다에 살아 바다로 구경나선 눈썹위에서, 다시살아 어지러울 줄이야…… 밝은 날, 바다밑이 이세상 아니게 기웃거려지는 閑麗水道한려수도를 크고 너른 꽃하나로 느껴보아라. 우리는 한시도 가만 못 있는 지껄이는 이파리 되 어, 누구에게 손잡혀 따라가며 따라가며 크고 있는가. 남평문씨부인은 사랑의 일 때문에 죽은 분입니다. 사랑은 순수한 것이고,
  • 10. 또 삶의 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 다면 남평문씨부인은 착하고 정이 많은 옛날 우리 어머니나 누님의 표상쯤 되는 사람으로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또, 사랑이 많은 사람은 그 사랑이 짐 이 되어 세상을 편히 살 수 없는 사람이고, 그것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 라는 것을 이 시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남평문씨부인은 이제 온 바다에 살아나 있습니다. 온 바다는 하나의 꽃 으로 비유되고, 사람들은 그 큰 꽃에 딸린 작은 이파리들이 되어 남평문씨부 인의 ‘사랑’을 배우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 11. 밤 바다에서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質定질정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天下천하에 많은 할말이, 天上천상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때 나는 섬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원래 박재삼 시인에게는 누님이 없으니 이 시의 누님은 어느 친척 누님이 거나 가상의 누님을 설정한 것이고, 이 시에서 그 누님을 통해 시인은 슬픔
  • 12. 의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즉, 누님의 슬픔은 다름 아닌 시인의 슬픔인 것 입니다. 그 슬픔의 구체적인 사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난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하는 일이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아니면 세상 모든 일에서의 슬픔이 복합된 어떤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시에서 인간사와 자연은 동격을 이룹니다. 눈물과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 그리고 말과 별, 누님과 섬의 잠이 어울려 집니다. 그리고 나의 울 음이 놓입니다. 마지막의 네 번이나 반복되는 울음은 결국 세상 모든 것이 잠든 뒤에 시인이 비밀히 토해 놓는 설움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설 움은 주위의 자연에 그대로 녹아들어 갑니다. 인간사인 설움과 자연이 절묘 한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 13. 가난의 골목에서는 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머리칼 같은 달빛을 빗어내고 있었다. 아니, 달이 바로 얼기빗이었었다. 흥부의 사립문을 通통하여서 골목을 빠져서 꿈꾸는 숨 결들이 바다로 간다. 그 程度정도로 알거라. 사람이 죽으면 물이 되고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바다에나 가는 것이 아 닌것가. 우리의 골목 속의 사는 일 중에는 눈물 흘리는 일이 그야말로 많고 도 옳은 일쯤 되리라. 그 눈물 흘리는 일을 저승같이 잊어버린 한밤중, 참말 로 참말로 우리의 가난한 숨소리는 달이 하는 빗질에 빗어져, 눈물고인 한 바다의 반짝임이다. 박재삼 시인이 어릴 때 살던, 가난한 돌담집들이 늘어선 골목골목을 빗의 빗살로 비유하고 달이 그 빗으로 빗질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과 눈물을
  • 14. 정화(淨化)시켜 주고 있는 모양을 그리고 있는 시입니다. 사람은 죽고 나면 자연의 일부분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런 점에서 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죽은 후의 이야기입니다. 살 아있는 사람에게는 현실의 고통이 중요한 것인데 그 가난의 고통을 잠시 잊 고 있는 한밤중, 달빛은 가난한 동네를 쓰다듬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잠 속 숨결은 이제 바다로 가, 달빛 받은 한 바다의 반짝임으로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연과 더 잘 합일될 수 있을까요. 박재삼 시인은 가난한 삶과 자연의 조화를 눈물 속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江강
  • 15.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江강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 시인의 대표시로 누구나 꼽고 있는 시입니다. 이 시의 핵심은 한번 지나가 버린 사랑은 시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당연히 돌이킬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강에 비유된 인간의 사랑은 강이 바 다에 와서 종말을 맞듯,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 16. 인생의 종말인 바다에 다 온 가을강은 당연히 서러운 것이고 울음이 타는 것이 될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종말을 이야기하는 허무보다는 그 과정에 이르는 격정 적인 인간사가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 기쁜 첫사랑, 그 다음 사랑 끝의 울음, 마지막으로 울음이 타는 가을강, 미칠 것 같은 격정 그것이 우리 인간 사입니다. 불타는 노을이 비친 강을 울음이 타는 가을강으로 설정한 그 상상 력이 놀랍습니다.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이라는 구절은 결국 승복할 수밖에 없 을 줄 알면서도 결코 승복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이 시가 애 송되는 까닭은 인간적인 이런 처절한 몸부림이 공감을 얻기 때문일 것입니 다.
  • 17. 恨한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뒤로 벋어가서 그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본데, 그러나 그사람이 그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前生전생의 내 全전설움이요 全전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사람도 이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많은 평자들이 박재삼 시를 논하면서 이 시의 제목인 ‘恨(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박재삼시는 恨을 노래했다는 것입니다. 한은 풀지 못해 마음에 엉
  • 18. 어리져 있는 것을 말하는데,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풀고자 노력하 는 바탕 힘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시에서의 恨은 사랑 때문에 생긴 듯합니다. 이승에서는 그 사랑을 이룰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저승에서라도 감나무쯤 되어 그 사람의 등 뒤에나마 그 열매를 드리울까 싶은데, 그 사람은 이 사랑을 알아채지도 못할 것 같다는 독백이 이 시의 내용입니다. 또 그 사람이 이 감나무를 마음에 들어할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다도 그 사람이 설움으로 세상을 살았던지 어쨌던지가 문제 가 됩니다. 세상을 설움으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 설움을 알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알도록 말도 건네보지 못한 사랑, 평생을 가슴에 묻어둔 사랑,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는 감나무 열매의 빛깔을 연상이 선연히 떠오르는 시 입니다.
  • 19. 追憶추억에서 晋州진주장터 생魚物어물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發발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銀錢은전만큼 손안닿는 恨한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안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晉州南江진주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첫 시집에 실렸고 훗날 시집 『追憶추억에서』에 다시 실린 시입니다. 말
  • 20. 하자면 소시(少時)적의 일을 회고한 시의 첫 번째 작품쯤 되는 시입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야 더 말로 보탤 것이 없을 듯합니다. 어머니는 생선 행상을 하셨고, 이른 아침에 나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옵니다. 그 고생스러움 을 추위에 떨고 있을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감내합니다. 진주 남강 맑은 물 을 날마다 지나다니면서도 제대로 구경해 보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돈은 없 는 기막힌 가난이 이 가족에게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에 있는 것은 원망이나 한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 21. 한나절 언덕에서 옛날의 우리 누님이 흰 옷가지를 주물르던 그리운 빨래터의 그 닦인 빨랫 돌이 멀리서 시방 쟁쟁쟁 반짝이고 있는데…… 참 새로 보것구나. 그리고 天地천지가 하는 별의 별 가늘고 희한한 소리도 다 듣것네. 수풀이 소리하는 것은 수풀이 반짝이는 탓으로 치고, 저 빨랫돌의 반짝이는 것은 또 한 빨랫돌의 소리하는 법으로나 느낄까 보다. 그렇다면…… 오늘토록 남아서 반짝이는 빨래터의 빨랫돌처럼 個個개개보 아 우리 목숨도 흐르는 햇살 속에 한 쪽은 몸을 담그어 잠잠하고 다른 한 쪽은 무얼 끝없이 뇌고 있는, 갈수록 찬란한 한 平生평생인지도 모른다.
  • 22. 박재삼 시인의 시에서는 유독 햇빛이 많이 나옵니다. 찬란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에 의미를 많이 부여한 것입니다. 반짝이는 빨랫돌은 많은 여인네와 인연을 맺고 많은 사연을 들어 알고 있 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반짝일 수가 없고 저렇게 무슨 추억 같은 비밀을 끊임없이 풀어내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도 많이 인연을 맺고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빨랫 돌이 소리하듯이 멀리서 보면 우리 사람도 햇빛 받아 반짝이는 존재, 그 인 연과 추억에 따라 개인 개인이 다른 소리를 내는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 다. 딴은 그 추억과 간직한 비밀이 쌓여갈수록 사람의 삶은 햇빛 속에서 찬 란한 빛을 발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과일가게 앞에서
  • 23. 사랑하는 사람아, 네 맑은 눈 고운 볼을 나는 오래 볼 수가 없다. 한정없이 말을 자꾸 걸어오는 그 수다를 나는 당할 수가 없다. 나이 들면 부끄러운 것, 네 살냄새에 홀려 살 戀愛연애나 생각하는 그 죄를 그대로 지고 갈 수가 없다. 저 수박덩이처럼 그냥은 둥글 도리가 없고 저 참외처럼 그냥은 달콤할 도리가 없는, 이 복잡하고도 아픈 짐을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여기 부려놓고 갈까 한다. 과일가게 앞에 서면 온갖 과일의 냄새가 향기롭습니다. 그 진한 향기는 어 쩌면 아름다운 몸을 연상시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젊은 사 람들이 가진 것이어서 나이 들수록 그런 사랑은 생각조차도 죄스러울 뿐입 니다.
  • 24. 그러나, 사랑은 자꾸 말을 걸어오고, 그 수다는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 짐을 과일 가게에 부려놓고 간다지만 나이 들어도 사랑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시들지 않았다는 아름다운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섬을 보는 자리
  • 25. 그의 형제와 그의 사촌들을 더불고 있듯이 바람받이 잘하고 햇살받이 잘하며 어린 섬들이 의좋게 논다. 어떤 때는 구슬을 줍듯이 머리를 수그리고 어떤 때는 고개 재껴 티없이 웃는다. 그중의 어떤 누이는 치맛살 펴어 춤추기도 하고 그중의 어떤 동생은 뜀박질로 다가오기도 한다. 바라건대 하느님이여 우리들의 나날은 늘 이와 같은 공일날로 있게 하소서. 섬을 보면서 공일날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연상해 본 시입니다. 세속의 욕 심이 전혀 묻지 않은 맑은 생각이며 행동이 즐겁고 경쾌한 느낌을 줍니다. 형제나 사촌의 정겨움도 묻어 있습니다. 무덤덤하게 그냥 봐 넘기기 쉬운 섬들을 이런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보배로운 시심을 시인은 가지고 있습니다. 공일날과 같은 평화가 이 시 에서 느껴지지 않습니까?
  • 27. 풀밭에 바람이 날리듯이 남쪽바다에 햇살이 날리네. 바야흐로 갈매기 두어마리 無心무심끝에 날으고 돛단배 가물가물 먼 나라로 갈듯이 떴네 오, 안스러운 것, 하얀 하얀 저것들, 어디까지 가서야 지치는 것이랴, 지쳐서는 돌아오는 것이랴. 꽃지는 꽃그늘엔 바람이 잠시 피하고 저것들의 깃쭉지와 돛폭 아래선 햇살이 잠시 피하는가. 사람들이여 이승과 저승은 어디서 갈린다더냐. 풀밭에 바람이 흐르듯이 남쪽 바다에 햇살이 흐르네. 저승 세계에 와 있는 듯이 현실을 잊고 한낮의 경치에 푹 빠져 있는 시인 의 모습이 연상되는 시입니다. 햇살이 날리고 흐른다고 하는 표현이 멋집니
  • 28. 다. 그 햇살 속에 갈매기가 날고 돛단배가 가물가물 떴습니다. 그 갈매기와 돛단배는 안쓰럽게도 이승의 힘든 여정을 헤쳐나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다시 보면 햇살 속 그 모습들은 지친 모습을 잠시 멈추고 이승도 저승도 아 닌 세계에 늘 있었던 듯이 그냥 떠 있는 한 경치입니다. 사진 한 장으로 모 든 사정을 고정시켜 놓듯이 말입니다. 바람 날리듯 햇살 날리고 바람 흐르듯 햇살 흐르는 한낮에 이승의 일을 떠나있는 듯한 경치를 바라보는 시인의 모습 또한 한 경치가 되었는지 모릅 니다.
  • 29. 小曲소곡 먼 나라로 갈까나. 가서는 虛飢허기져 콧노래나 부를까나. 이왕 억울한 판에는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 더 서러운 일을 뼈에 차도록 당하고 살까나. 고향의 뒷골목 돌담사이 풀잎 모양 할수없이 솟아서는 남의 손에 뽑힐듯이 뽑힐듯이 나는 살까나. 이 시 속에 나오는 사람은 ‘억울하고 서러운 일’을 당하고 사는 사람으로 설정됩니다. 그 서러움은 ‘허기’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가난에서 온 것인 듯합니다. 그리고 그 가난한 삶은 언제 뿌리채 뽑힐지 모르는 ‘풀잎’같
  • 30. 이 안정되어 있지 않은 아슬아슬한 삶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람은 ‘먼 나라 로 갈까나’라고 노래 부르지만, 먼 나라로 갈 수도 없을뿐더러, 실제로는 그 먼 나라도 삶의 고난을 면해 줄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 니다. 그래도 그는 ‘먼 나라로 갈까나’라고 노래 부릅니다. 푸념이고 하소연입니 다. 그러나 이 푸념과 하소연은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것입니다. 가난 이라는 삶의 질곡에서 온전히 벗어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기 때문 이기도 하고, 설혹 부자일지라도 인간이기에 담장 위 풀잎 같이 아슬아슬한 삶에서 결국은 자유롭지 못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가난이라는 삶의 문제, 그리고 그 가난에서 파생되는 온갖 억울함과 서러 움의 정서는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게 마련입니다. 콧노래를 부르듯이 가벼운 듯하면서도 절절하게 가난한 사람들의 심정을 아름답게 대 변하고 있는 시입니다.
  • 31. 흥부의 햇빛과 바람 千石천석꾼 萬石만석꾼의 재산 불어나는 그 기쁜 인생도 저 햇빛과 바람이 짜 올리는 씨와 날의 밝고 넘치는 것을 당할 수야 없으리. 하늘이여 저 햇빛과 바람이 짜내는 엄청난 재산을 누구나 골고루 갖게는 하되 욕심많은 놀부한테보다 더 많이 흥부한테는 눈물 섞어 그것을 갖게 하는 곡절을 나는 오늘 비로소 마태복음에서 읽어낸 참이노라. 한 해에 천 석 만 석을 거두는 큰 부자들의 재산 불리는 기쁨보다도 자연
  • 32. 의 아름다움이 훨씬 보배롭다는 것을 첫 연에서 시인은 감칠맛 나게 노래하 고 있습니다. 둘째 연에서는 그 아름다운 자연을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눈물과 함께 더 잘 누린다는 것을 노래합니다. 흥부는 착하고 가난한 사람을, 놀부 는 부자이나 심술 많은 사람을 대표합니다. 딴은 부자들은 재산 불리고 관리하는 일에 바빠 자연을 돌아볼 새가 없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은 배고프고 가슴 아픈 일을 당하며 살지라도 하늘을 보고 땅을 가꾸며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 들이지요. ‘하늘이여’라고 부른 까닭은 하늘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는 것을 믿는 다는 뜻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마태복음’을 들고 나온 것은 이런 사실이 성경에도 적혀 있다는 뜻쯤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자연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가난할 사람이야 없을 것이지만, 부자보다도 가난한 사람이 더 낫다는 반어(反語)적 수법에 의지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설 운 마음을 따뜻이 감싸 안는 시입니다.
  • 33. 千年천년의 바람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 34. 1975년에 간행된 시집 ꡔ千年의 바람ꡕ의 표제시이며, 박재삼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많이 회자되는 작품입니다. 사람은 자연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요.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임에 틀림없는데, 사람만 유독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요.
  • 35. 아득하면 되리라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 냉수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오는 그 이상을 나는 볼 수가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때문에 마실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는 실제로 얼마나 될까요. 과학에서는 그것의 거리 를 무슨 광년인가 하는 단위로 나타낸다지만, 시인은 간단하게 답합니다. 아
  • 36. 득한 거리라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도 역시 아득하다고 간단히 말합니다. 너무 멀어 뭐라 말할 수 없을 때 아득한 것인데, 이 아득하다는 말은 멀다는 것만 말할 뿐 정확한 거리를 나타낸 말은 아닙니다. 너무 멀어 보이기에 그냥 아득하다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정확한 거리가 나온다면 당 장에라도 도시락 싸 들고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나서야 옳지 않겠습니까? 아득한 거리이니 아등바등 가까이 가려고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 서 냉수 사발에 아른아른 비쳐오는 사랑하는 사람 생각에도 그렇게 가슴 아 파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아득한 사람인데, 하며 가볍게 그 냉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은 하되, 그 때문에 크게 마음 상하지 않으면서 또 그 사람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적당한 거리, 그것이 아득한 거리입니 다. 이 거리야말로 인위적인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자연의 거리, 그것이 아닐까 합니다.
  • 37. 新신 아리랑 바다 두고 산을 두고 사랑이여, 너를 버릴 수는 없을지니라. 백리 바깥을 보는 네 山산처럼 아득한 눈을 어찌하고, 내 잘못을 거울처럼 받아 비추는 물같은 이마를 어찌하고, 복사꽃 피는 앵도꽃 피는 정다운 동네어구 입술을 어찌하고, 우거진 숲이여 네 시원한 머리카락을 어찌하고, 아, 어찌하고 어찌하고 고향의 稜線능선 젓가슴을 어찌하고, 바다 있기에 산이 있기에 사랑이여, 너를 버릴 수는 없을지니라.
  • 38. 아리랑은 이별을 서러워하는 노래입니다. 이 시의 제목이 신(新) 아리랑이 니 역시 이별을 서러워하는 내용을 달리 부른 노래일 것 같습니다. 이 시에서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차마 이별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대상은 두 가지로 읽혀집니다. 하나는 바다며 산과 같 은 자연이고 하나는 여인네입니다. 그 둘은 교묘하게 하나로 합쳐지고 있습 니다. 산이며 바다에서 여인네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며, 여인네의 자태에 산 과 바다가 비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둘은 자연이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이 시에서 설정된 이별은 아마도 죽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 다. 그러니 이별은 불가피한 것이고, 불가피하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이별할 수 없고, 이런 점에서 인간의 고뇌는 시작되는가 봅니다.
  • 39. 어떤 歸路귀로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 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 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 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 먼지만 부옇게 쌓여 있는데, 빚으로도 못갚는 땟국물같은 어린것들이 방안에 제멋대로 뒹굴어져 자는데, 보는 이 없는 것, 알아주는 이 없는 것, 이마 위에 이고 온 별빛을 풀어놓는다. 소매에 묻히고 온 달빛을 털어놓는다.
  • 40. 1976년에 출간된 제4시집 ꡔ어린것들 옆에서ꡕ에 실린 작품입니다. 혹독한 가난을 가족 간의 사랑으로 극복해 내고 있는 시입니다. 고생에 절은 어머니의 재산은 어린것들뿐입니다. 그 어린것들에게 어머니가 가져온 것은 배부를 아무것도 아닌 별빛 달빛뿐이지요. 그러나 어린것들은 빚으로 도 못 갚는 큰 고생덩어리이나 어머니에겐 그지없이 소중한 것들이고, 아이 들은 어머니가 이고 묻히고 해서 가져 온 달빛 별빛을 먹고 자랍니다. 이 별 빛 달빛은 당연히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 가족은 가난하나 불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아름답고 사람 사는 진한 냄새가 우러나는 삶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난 을 겪은 당사자들은 그 시절이 얼마나 서러웠을까요.
  • 41. 그대가 내게 보내는 것 못물은 찰랑찰랑 넘칠 듯하면서 넘치지 않고 햇빛에 무늬를 주다가 별빛 보석도 만들어 낸다. 사랑하는 사람아, 어쩌면 좋아! 네 눈에 눈물 괴어 흐를 듯하면서 흐르지 않고 혼백만 남은 미루나무 잎사귀를, 어지러운 바람을, 못견디게 내게 보내고 있는데!
  • 42. 아름다운 자연의 일과 내 뜻처럼 맞아떨어지지 않는 사람의 일이 안타까 움을 자아낸다는 뜻으로 읽히는 시입니다. 못물은 그지없이 아름답습니다. 햇빛을 받아 온갖 무늬를 만들어내고 별빛 을 받아 보석도 만듭니다. 사람의 눈에 가만히 맺힌 눈물도 못물과 같습니 다. 그 못물 주위의 미루나무 잎사귀와 어지러운 바람이 끊임없이 내게 와 닿습니다. 이런 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할 것인데, 나의 사정은 그리 뜻 같지 않은 모양입니다. ‘어쩌면 좋아’하는 것이 고작인데, 사랑의 마음이 소홀해서 그런 것은 아 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해 주고 싶은데 해 줄 수 없는 것이 또 우 리 삶에는 많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사람의 한계일 것 같은데, 그 한 계를 자연을 빌어다가 참말 절실하게 드러내었습니다.
  • 43. 哀歌애가 이 세상 얼마나 많은 착한 이들이 서로 등도 못 기대고 외따로들 글썽글썽 마음 반짝거릴까. 어찌어찌 하다가 어울렸으랴 무논에선 개구리 울음이 반짝거리고 아슬히는 하늘에 별도 반짝거리네. 저 반짝거림들을 받아서 다시 비추는 무수한 무수한 임자들 등도 없는 칠칠한 밤을, 그 밤의 줄기 끝에 달린 열매들을, 이슬이 영롱한 가난한 사람들을.
  • 44. 제목인 애가(哀歌)는 슬픈 노래 또는 슬픔을 노래한다는 뜻일 듯합니다.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물론 시인 자신일 것입니다. 슬픔의 대상은 가난한 사 람들인 듯합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착할 리야 없겠지만, 가난한 사람은 적어도 남 을 속이고 남의 것을 훔치는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벌써 가 난을 면했겠지요. 이 시는 그 외롭고 착한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칠칠하다는 말은 옻칠이라는 뜻의 한자 칠(漆)을 겹쳐 써서 검다 캄캄하다 는 뜻으로 쓴 말인 듯 합니다. 그 검은 밤에는 반짝이는 것들이 유독 많을밖 에 없는데 그 빛을 받아 다시 비추는 임자들이 있습니다. 그 임자들은 가난 한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의 눈물 곧, 이슬이 별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입니 다. 박재삼 시인은 슬픈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술회한 바도 있습니다만 가 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이처럼 아름답게 나타내었습니다.
  • 45. 내 사랑은 한빛 黃土황토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 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萬만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 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쳐 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 46. 박재삼 시인의 중학교 때 은사였고 그분으로 하여금 시에 눈뜨게 해준 이 는 다 아시는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 선생이십니다. 그 초청 선생의 영향이었 는지 박재삼 시인은 먼저 시조부터 쓴 듯합니다. 제1회 영남예술제(지금의 개천예술제)에서 이형기 시인이 장원을, 박재삼 시인이 차상을 했다 했는데, 시 1등은 장원, 시조 중 가장 잘 쓴 작품은 차상, 이런 식으로 상을 준 것이 라고 들었습니다. 박재삼 시인의 시집 15권 중 아홉 번째 시집인 『내 사랑 은』은 시조시집입니다. 앞 시조는 이 시조집의 표제시입니다. 박재삼 시인 이 가장 애정을 가졌던 시조인 셈입니다. 시조 「내 사랑은」은 박재삼 시 중에서 보기 드물게 격정적인 감정을 토 로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로 읽으면 되겠습니다. 아주 젊을 때 쓰신 작품인 듯합니다. 1연은 기다림을 썼습니다. 한 가지 황토빛 뿐인 언덕 넘어 오실 님을 기다 리고 있습니다. 몸은 멈춰 있으나 마음은 애가 타고 있습니다. 2연은 밤의 시름을 적었습니다. 사랑에 애태우는 심정을 들기름불이 지지 지 앓는다 했습니다. 절창입니다. 3연은 사랑의 마음을 적었습니다. 잠도 자지 않았고 눈물도 흘렸다는 심정 을 조약돌을 소재로 하여 드러냈습니다.
  • 47. 꿈이라는 것 아가야 이야기는 슬기롭고 신기하다 이제 막 꿈꾼 일을 엄지가락 자랑으로 「엄마야 알아맞춰 봐!」 기가 차게 조르네. 엄마는 아가를 안고 꿈을 안고도 어두워 너희 기쁜 세상과 無色한 엄마를 비겨 우람한 古木 밑둥과 그 가지 끝을 보는가.
  • 48. 아가를 바라보는 기쁜 마음을 드러낸 시조입니다.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을 박재삼 시인은 가장 즐겨 시화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 다. 1연은 아가의 몸짓이며 표정을 대변해 본 것입니다. 아가의 마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표현하지 못할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2연에서는 아가와 엄마를 나뭇가지와 고목 밑둥으로 비유해 표현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이제 세상에 갓 나와 세상 일에 신기해 하는 아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 49. 물 옆에 노는 아이 물 옆에 노는 아이는 물빛 닮은 마음일레. 햇살도 잘 받고 바람 또한 잘 받고 종일을 지치지 않고 살에 차는 기쁨을. 풀잎에 이슬모양 손끝에 물방울 달고 빛나는 하늘 속에 퍼지는 네 웃음이 멀찌기 꽃으로 서서 시름 잊게 하노나.
  • 50. 천진난만한 아이의 기쁘기만한 모습을 그렸습니다. 시인의 마음이 그러하 길래 이런 시를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연은 햇빛과 바람을 잘 받는 물처럼 햇빛과 바람 속에서 노는 아이를 그 렸습니다. 살에 차는 기쁨은 기쁨으로 자라나는 아이라는 뜻으로도 읽힐 듯 합니다. 2연은 이슬을 머금은 꽃과 같이 아름답고 시름을 잊게 하는 아이의 모습 을 그렸습니다.
  • 51. 구름의 여름 방학 모였다간 흩어지고 흩어졌다간 모이는 여름 하늘에 구름들을 보아라. 늘 새로이 모양짓지 않던가. 바다에 가서는 아득히 海岸線해안선에서 예쁜 아이의 아양 섞어 돌아간 입모습을 느끼고, 산에 가서는 밀짚모자 둘레에 매미 울음이 햇볕과 함께 밝게 쏟아지는 그것을 느끼고,
  • 52. 요컨대 그러한 새로운 것을 많이들 느끼고, 그런 다음에 너희는 다시는 모여 보아라. 그것은 구름의 形象형상, 구름을 水蒸氣수증기라고만 하겠는가, 그것은 잘 닦은 영혼의 얼굴들이 하늘에 떠서 동무되어 노는 것이다. 하늘에 뜬 구름을 보며 여름방학을 맞아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연 상해 본 시입니다. 그리고 그 구름을 잘 닦은 영혼의 얼굴들이라고 했습니 다. 세상에 정말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 지를 느끼게 해 주는 시입니다.
  • 53. 꽃 지는 것 옆에서 Ⅰ 이젠 얼마 안 남은 꽃 질 일밖에 안 남았네. 꽃대들이 서 있을 그 일밖에 안 남았네. 마음이 착해 물 같은 마음이라 하고, 그래 그 마음을 주는, 물 주는 朝夕이라 하고, 가만히 피어나면 꽃은 어떻게 피던가, 몇만년 후에도 그것은 모를 일일레. 그러나 시방 보아라, 지는 꽃잎 두어 잎 저걸 보아라. 무슨 모양인가를 우리의 물빛 마음은 비추어 알아내는 것이다. Ⅱ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가를
  • 54. 그야말로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나 바야흐로 이별하며 있는 지금 멀찌기 오히려 손 흔들며 보여오는 사랑의 모습…… 꽃대밖에 꽃대밖에 더 남겠는가. 꽃이 피어남과 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면 반드시 맞닥뜨리게 마련인 죽 음을 소재로 하여 쓴 시입니다. 꽃이 착한 마음의 소산인 물을 먹고 자라지만 그 생명의 비밀은 풀 길이 없습니다. 꽃이 지는 것도 그 형상은 알 수 있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아무도 경험해 본 사람이 없습니다. 생명의 비밀을 풀지 못 하니 죽음은 어쩔 수 없 는 것이 됩니다. 이제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새삼 살아있을 때의 아름 다웠던 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 때 비로소 사랑이 손짓하며 다가오는 것입니 다. 결국 꽃대만을 남기고 꽃은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사람도 속절없이 죽음을 맞으면 사라질 것입니다. 허무하지요. 그러나 이 시에서는 ‘손 흔들 며 보여오는 사랑의 모습’이 남을 것 같습니다. 살아있을 때 이 사랑을 많이 만들어야겠지요.
  • 55. 追憶추억에서 30 국민학교를 나온 형이 花月화월여관 심부름꾼으로 있을 때 그 층층계 밑에 옹송그리고 얼마를 떨고 있으면 손님들이 먹다가 남은 음식을 싸서 나를 향해 남몰래 던져 주었다. 집에 가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누이동생이 浮黃부황에 떠서 그래도 웃으면서 반가이 맞이했다. 나는 맛있는 것을 많이 많이 먹었다며 빤한 거짓말을 꾸미고 문득 뒷간에라도 가는 척 뜰에 나서면 바다 위에는 달이 떴는데
  • 56. 내 눈물과 함께 안개가 어려 있었다. 박재삼 시집 『追憶에서』는 박재삼 시인이 장년이 되어 어린 시절의 일 을 회고하여 쓴 시입니다. 이 시집에 나오는 생활과 자연은 모두 실제 있었 던 일이고 모습입니다. 이 시도 어릴 때의 가난한 생활을 그대로 쓴 것인데, 어릴 때부터 키워왔던 저러한 감수성이 한 큰 시인을 키우기 않았나 싶습니 다. 이 시는 숨기고 싶을지도 모를 개인적 사정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사실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박재삼 시인이 왜 가난의 문제를 시 속에서 그렇 게 많이 다루고 있는지 짐작 가게 하는 시입니다. 이 집안의 가난은 대를 물 립니다. 형은 초등학교만 나온 뒤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것이고 동생 은 그 형이 던져준 깨끗하지 못한, 양도 얼마 되지 않을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고도 못 먹어 부황에 뜬 식구들에게는 배불리 먹었다는 거짓말을 합니 다. 어린 마음에도 가족의 심기를 배려할 줄 아는 슬기가 있고 사랑이 있습 니다. 이런 모습을 달이 비춰주고 있습니다. 바다와 달, 안개 이런 자연들을 박재삼 시인은 가난한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시킨다는 점을 상 기해 보시면 감상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 57. 追憶추억에서 31 해방된 다음해 魯山노산 언덕에 가서 눈아래 貿易무역회사 자리 홀로 三千浦中學校삼천포중학교 입학식을 보았다. 기부금 三천원이 없어서 그 학교에 못 간 나는 여기에 쫓겨오듯 와서 빛나는 모표와 모자와 새 교복을 눈물 속에서 보았다. 그러나 저 먼 바다 섬가에 부딪히는 물보라를 또는 하늘하늘 뜬 작은 배가 햇빛 속에서 길을 내며 가는 것을
  • 58. 눈여겨 뚫어지게 보았다. 학교에 가는 대신 이 눈물 범벅을 씻고 세상을 멋지게 훌륭하게 헤쳐 가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오늘토록 밀려서 내 주위에 너무 많은 것에 지쳐 이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 어렴풋이 배웠다. 노산에 올라 학교에 가지 못한 설움을 토로하며 장래를 기약하는 박재삼 의 어린 시절을 짐작케 해 보는 시입니다. 읽어보는 것 이상의 해설이 군더 더기일 뿐인 쉬운 시이면서도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러한 매력은 박재삼 특유의 진실성에서 옵니다. 숨김없는 한 삶의 내력 은 어떤 예술보다도 감동적인 것이 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시절 에는 너나없이 빈곤을 절감하던 형편이었으므로, 그 공감의 폭은 훨씬 더 넓 어지리라 생각됩니다. 가난의 결과로 시에 나타난 것은 ‘눈물‘입니다. 이 눈물 또는 울음은 박재 삼의 설움을 드러내는 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소재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눈물이나 울음이 그의 시를 청승맞게 하거나 값싼 동정심을 유발하는 천박 함에 몰아넣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물이나 울음은 삶의 가장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만큼 시인의 깨끗한 내력을 돌아보게 하는 소 재입니다.
  • 59. 追憶추억에서 41 모래밭에 물결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꼭 주름살을 폈다 오무렸다 하는 사실과 너무나 흡사하다고 느꼈다. 千萬천만날로 되풀이하는 바다가 우리 어머니나 누이의 치맛단을 설마 닮은 것이랴, 그들이 생겨나기 전부터 아득히 있어 온 물결이라면 곰곰이 이제야 알겠다, 우리 어머니나 누이들이 물결의 그리움을 담아 아슬아슬하게 치마를 만들었다는 그 순서를.
  • 60. 그 치마 속에서는 빨간 珊瑚산호를 빚기도 하고 하얀 眞珠진주를 뿜어내기도 하는 요컨대 눈부신 공사를 열심히 하고, 아무 것이나 마구 만진 흙장난으로 우리의 더러워진 코하며 얼굴을 치마 안자락으로 말끔히 꿈같이 훔쳐 주는 것이었다. 박재삼 시인의 시에 많이 등장하는 비유의 한 형태를 알기 쉽게 드러내고 있는 시입니다. 파도며 밀려오는 물살이 만들어내는 물결을 어머니나 누님의 치맛살에 비유한 것입니다. 즉, 치마폭은 바다의 물결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이 시에서는 먼저 말합니다. 그 코훔쳐 주며 감싸안아 주던 치마폭에 싸여 자라났다면, 치마폭이 바다를 본떴기에, 어릴 적 시인은 바다가 키워준 존재 가 됩니다. 이 시는 바다를 대상으로 상상력을 키워온 시인의 내력을 돌아보게 하는 시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 61. 追憶추억에서 68 어머니는 모래뜸질로 남향 십리 밖 沙登里사등리에 가시고 아버지는 魚物到付어물도부로 북향 십리 밖 龍峙里용치리에 가시고 여름 해 길다. 문득 낮닭 울음소리 멀리 불기둥 오르고 피 듣는 맨드라미 뜰 안에 피어, 내 귀를 찢는다 내 눈을 찌른다. 오히려 物情물정 없는 나이로도
  • 62. 십리 밖 칼끝 같은 세상을 짚어 짚어 앓았더니라. 이 시는 시집 『追憶에서』에 실린 마지막 시입니다. 시에 나온 날에는 어머니가 민간요법인 모래뜸질을 하러 지금의 남일대 해수욕장에 갔고, 아버지는 먼 곳으로 어물 장사를 나가 집에는 어린 꼬마 혼자 남아 무서움과 외로움에 싸여 있습니다. 긴 여름 한낮, 곁에 아무도 없 는 적막 속에 때로 높이 울려 퍼지는 낮닭의 울음소리와 피처럼 붉은 맨드 라미에서 어린 화자는 문득 섬찟한 것을 느낍니다. 평화로와 보이는 고요 속 에도 생존을 위한 투쟁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세상사는 것의 어려움을 어렴 풋이나마 짐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냥 고운 서정만을 노래한 줄로만 알았던 박재삼의 시에서 이처럼 날카 로운 이미지의 돌출을 보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세상 사는 일이 만만한 일 이 아니고, 그 만만치 않은 세상을 나름대로 헤쳐나가는 시인의 정신적 편력 이 드러나는 시입니다.
  • 63. 친구여 너는 가고 친구여 너는 가고 너를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대신 그 그리움만한 중량의 무엇인가가 되어 이승에 보내지는가, 나뭇잎이 진 자리에는 마치
  • 64. 그 잎사귀의 중량만큼 바람이 가지끝에 와 머무누나. 내 오늘 설령 글자의 숲을 헤쳐 가락을 빚는다 할손 그것은 나뭇가지에 살랑대는 바람의 그윽한 그것에는 비할래야 비할 바 못되거늘, 이 일이 예사 일이 아님을 친구여 너가 감으로 뼈속 깊이 저려 오누나. 나뭇잎 진 자리에 나뭇잎 무게 만큼 바람이 와 머문다는 발견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일 듯합니다. 사람이 죽고 난 후의 그 그리움의 중량은 어떻게 나타나는 걸까요. 이 시에서는 사람의 어떤 재주도 나뭇가지 끝에 살랑대는 바람의 재주를 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 그것이 그 그리움의 중량일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자연에서 났으니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겠고 그것을 죽음이라 부르 면 간단한 것이지만 그것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벌여 놓았나 봅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자연의 이법을 차마 따르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자연 앞에서 초라해 보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이법에 따르라는 것, 그것이 친구가 주고간 그리움 의 중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65. 저녁 종소리 韓紙한지 위 山水산수가 먹물로 번지는 가을비 속의 저녁 종소리 樵夫초부는 산에 대하여 물에 대하여 그렇게 낯이 익건만 아직도 그는
  • 66. 산의 끝간 데 물의 끝간 데를 가보지 못한 안개 속 나그네에 지나지 않던가. 그 나그네 눈썹 밑을 재우며 눈썹 위를 깨우며 하늘가에서 아득히 울려오는 저녁 종소리 바야흐로 너는 영롱한 이슬들을 소매 끝에 발 끝에 묻히고 너의 日常일상의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거라. 기도하듯이 기원하는 시인의 고운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입니다. 하루의 일을 마칠 즈음에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앞길을 축복하고 있는 시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앞길에 자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불안한 길을 서로 의지해 헤쳐 나가고 있는 나그 네인 셈이지요. 그 중에도 가난한 사람을 대표한 초부 곧 나무꾼은 영롱한 이슬들을 묻히고 다니는 착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죄악에 물들 일이 없 어 보입니다. 가난할지라도 그의 앞길은 축복받을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67. 한 祭祀제사를 보며 풍성한 가을이건만 바칠 것이 적은 祭床제상에는 바람이 유독 누더기를 펄럭이며 참례하고 있고, 돌아간 사람은 이제 말이 없는채 그가 늘 걸치던 닳아진 소매 끝과
  • 68. 똑같은 소매 끝을 가진 後孫후손들의 흐느낌을 귀뚜라미가 대신하고 있고, 떼 성긴 封墳봉분이 그 情況정황 아는 듯 아무도 몰래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느니라. 제사를 받는 조상이나 그 제사를 지내는 후손이나 똑 같이 가난한 삶을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가난은 물려주고 물려받은 것이기에 그 사정은 조상이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도 바칠 것이 없는 제상을 대한 후손은 그 설움과 죄스러움에 흐느낄 수밖에 없고, 말은 없으나마 조상 은 그 정성을 잘 아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시에서 가난은 허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조상에 대한 정성이 사무치는 바 있고, 조상 또한 그 정성을 기꺼이 흠향할 듯합니다. 이 시는 설움과 눈물을 노래했으되 한없이 맑고 아름다운 정서를 일깨웁 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는 부자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정서입니다.
  • 69. 봄바다에서 느끼다 한마지기도 없는 논밭이어서 하늘은 시방 울아배를 병신이라 부르다가 다시 太平태평이라 고쳐 부르면서 수천 마지기 논밭을 열심히 주고 있다.
  • 70. 이렇게 햇빛이 밝고 바람도 맑은 날을 택하여 무턱대고 주고 있다. 모처럼 주는 이것들을 五臟六腑오장육부의 힘으로나 갈아 낼까보아, 아, 눈물 힘으로나 갈아 낼까보아, 하늘아, 어쩔래, 울아배는 멍청한 살만 잔뜩 갖고 있을 뿐이니. 땅 한 마지기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설움을 대변하고 있는 시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하소연합니다. 하늘이 주는 것은 자연, 수천 마지기 햇빛과 바람뿐입니다. 이것을 눈물로 갈면서 사람들은 그래도 하늘을 쳐다봅니다. 하늘도 어쩔 수 없다는 가난의 문제, 이것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그 문제의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일깨우는 것, 이것 또한 시인의 사명이 아닐까 싶습니 다.
  • 71. 病床병상에서 Ⅰ 내일 어머님이 시골에서 오시는데, 한달 보름만에 오시는데, 우리 집 뜰에 와서 처음으로 핀 木蓮목련의 마지막 꽃잎마저 다 져버렸네요. 눈물 흘리듯이 져버렸네요. 그러나 시방 한창
  • 72. 山棠花산당화가 잘 피어 있고 라일락이 피기 시작했거든요. 다만 木蓮목련의 그 맏며느리 같은 탐스러운 꽃잎이 아니고 끼니 없는 사람에겐 더 아프게 보일 밥알로만 피어 있거든요. 그러면서 결국은 꽃이 피었으니 신기하거든요. 그런데 하나 걱정이 남았어요. 이 좋은 봄날, 내 팔다리에서는 꽃이 피기는커녕 저리고 막막한 高血壓고혈압만 再發재발한 걸 어쩔 수 없이 보여 드려야 하거든요. 박재삼 시인의 어머니는 생선 행상으로 가족을 부양하였다. 이런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공경은 당연히 대단할밖에 없다. 그런데 집안 형편은 여의치 않 다. 그것을 목련의 복스런 꽃은 지고 라일락의 밥알 같은 꽃으로 나타내었 다. 거기다 고혈압까지 재발했으니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아릴 것인가. 이 것은 효(孝)라기 보단 모자간의 정이다.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난다. 서울 가서 시인으로 성공했다지만 생활은 늘 곤궁했던 것, 이런 점이 가슴 아팠는지 박재삼 시인은 시 공부하겠다는 후학에게 반드시 다짐을 받곤 했 다. 가난하게 살아도 견딜 수 있으면 시를 쓰라고. 이런 형편이니 박재삼 시 인은 제자를 기르지 못했다는 후문을 듣는다. 이런 점을 봐도 박재삼 시인은 세속의 명리에 초연했던 분이다.
  • 73. 봄 속의 아이 풀밭엔 풀밭 소리, 못가엔 또 다른 소리, 봄 하는 소리는 헤아리기 어려운데 한자락 끝이나 잡는 노는 아이 창가여. 돌돌돌 도랑물 소리
  • 74. 이어진 그 구슬이 창가 소리 속에 몇 가닥은 흘러들어 氣勝기승한 목청을 끌고 갈 데까지 가 본다. 창가와 함께 달리던 아이는 쓰러지고 스미는 풀 냄새 흙 냄새 아뜩한데 창가를 그친 대목에 종다리가 솟는다. 천진난만한 아이를 통하여 삶의 즐거움을 노래한 시조 작품입니다. 아이가 아니면 노래를 부르며 들판을 달릴 수가 없고 아이의 눈이 아니면 세상이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시인이 도달하고자 했던 세계는 아마도 이 런 세계가 아니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욕심 없는 세상, 착하고 즐거운 것만 생각하는 세상, 자연에 묻혀 자연을 즐기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었던 시인 이 박재삼입니다. 그런 세상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런 시를 많 이 읽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일 생각을 품지는 않을 것 같습 니다.
  • 75.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어쩌다가 땅 위에 태어나서 기껏해야 한 七十년 결국은 울다가 웃다가 가네. 이 기간 동안에 내가 만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점지해 준
  • 76. 빛나고 선택받은 인연을 물방울 어리는 거미줄로 이승에 그어놓고 그것을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보태며 나는 꺼져갈까 하네. 1933년에 나서 1997년에 타계하셨으니 박재삼 시인은 이 시에 나오는 대 로의 천수도 누리지 못한 셈입니다. 그래도 15권의 좋은 시집이 남았으니 웬만한 사람보다 더 오래 산 셈입니다. 이 시는 1986년에 나온 제10시집 『찬란한 미지수』에 실린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유언삼아 쓴 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는 개인사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사랑의 소중함을 노래한 것이 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다 허망하지만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점지해준 아 름다운 인연을 남기고 떠난다는 것이 이 시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인연이 거미줄이라는 의미는 좀 생각해 볼 여지를 남깁니다. 거미줄은 무언가가 달 라붙으면 잘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인연의 거역할 수 없음을 뜻한 것 같 기도 합니다. 아니면, 남긴 거미줄이 인연이 되어 죽은 후에라도 새로운 인 연이 생길 수도 있음직합니다. 우리가 이 인연으로 이 시를 읽고 있듯이 말
  • 77. 입니다. 갈대밭에서 갈대밭에 오면 늘 인생의 변두리에 섰다는 느낌밖에는 없어라. 하늘 복판을 여전히 구름이 흐르고 새가 날지만
  • 78. 쓸쓸한 것은 밀리어 이 근처에만 치우쳐 있구나. 사랑이여 나는 왜 그 간단한 고백 하나 제대로 못하고 그대가 없는 지금에사 울먹이면서, 아, 흐느끼면서 누구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할 소리로 몸째 징소리 같은 것을 뱉나니. 갈대는 제 스스로 나서 스스로 큽니다.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고 그 성장 에 관심 가져 주는 이 없습니다. 이런 갈대가 모여 이룬 갈대밭은 쓸쓸함을 느끼기에 적당한 곳이고 변두리라는 느낌을 주기에 적당한 곳입니다. 외로움이란 혼자일 때를 말하는 것, 이 시 속의 말하는 이는 함께 있어야 할 사람을 놓치고 속으로 울면서 흐느끼고 있습니다. 그 소리는 겉으로는 나 지 않으나 매우 격렬합니다. 온 몸이 징이 되어 울립니다. 그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 않습니까.
  • 79. 아름다운 천 나는 그대에게 가슴 뿌듯하게 사랑을 못 쏟고 그저 심약한, 부끄러운 먼 빛으로만 그리워하는, 그 짓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가리라고 봅니다. 그런 엉터리 사랑이 어디 있느냐고 남들은 웃겠지만,
  • 80. 나는 그런 짝사랑을 보배로이 가졌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비밀로 짠 아름다운 천을 두르고 있다는 것이 이 가을, 갈대소리가 되어 서걱입니다. 가다가는 기러기 울음을 하늘에 흘리고 맙니다.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기에 그 사랑은 비밀로 남았습니다. 때 묻지 않았고 누구도 넘볼 수 없기에 그것은 보배로운 것이지만 때로 외로움을 타는 일은 어쩔 수 없습니다. 갈대 소리, 기러기 소리에 그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세 월이 지나도 사랑은 낡지 않았고 그 사랑의 사람도 항상 아름답습니다.
  • 81. 비가(悲歌) 잔잔한 노래만을 외우면서 결국에는 별까지 가고 싶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더냐. 서럽지만 하는 수 없이 땅에 묻히고 밝은 데는 어림도 없고 캄캄한 데로만 가는 것이 누구에게나 예비되어 있을 따름인데, 아, 온갖 발버둥치는 것을 섞어도 이 엄정한 사실에서 한치도 벗어날 장사가 없네.
  • 82. 그러니 오늘 환한 꽃이 물에 어리는 천하에 제일 가는 경치를 원대로는 보고 간다마는 어쩔거나, 그것도 눈물을 배경으로 누리는 것이 그 전부라네. 죽음을 노래한 시입니다. 뻔한 사실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죽음만큼 절실 한 것은 없기에 잔잔하게 음미해볼만한 시라고 생각합니다. 밝은 곳으로만 가고 싶지만 어둠의 세계가 예비되어 있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아도 그 아름 다움에 머물 수 없는 것이 눈물겹게 만듭니다. 가만히 읽으면서 사람의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시입니다.
  • 83. 우수 무렵 입춘을 지나 우수(雨水) 무렵으로 오면 아직 분명히 나무는 벗은 채 찬바람에 노다지로 몸을 내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어딘가 회초리를 맞아도 옛날 서당 훈장의 그것 같아 사랑의 물끼가 실려 있고, 멀리서 보면 아지랑이가 낀 듯하고, 조금은 어지럼증도 섞여 들더니
  • 84. 드디어 울음을 터뜨릴 기운까지 얻고 있는 한마디로 눈부신 경이(驚異)가 묻어 있구나. 계절의 놀라운 변화를 노래하고 있는 시입니다. 다 아는 것을 새삼 말하는 것 같아도 봄이 만드는 신비는 항상 새롭습니다. 죽었던 것들이 차츰 살아나 는 기미를 보일 때, 사람들은 절망했다가도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를 가져보 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85. 신(神)은 낮게 곡선을 그리며 문명에 길든 것은 모두 날카로운 직선을 이루고 있건만, 거기에 때가 묻지 않은 것은 가령 눈 덮인 경치와 같이 얼마나 순박한 곡선을 긋고 있는가. 저 눈을 쓴 자태 속으로 들어가면 그 밑바닥에는 시방 녹은 물이 자기네들끼리 모여 고향의 예닐곱 살 적의,
  • 86. 세상이 즐겁고 기쁘기만 한 노래를 하기에만 골똘한 시냇물 소리를 내느니 그 근처에 신(神)은 늘 높이 좌정(坐定)하기는커녕 공일날처럼 가만히 놀면서 아, 낮게 임하누나. 문명이란 것은 혹시 욕심의 산물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자꾸 더 높이 올 라가고 효율성을 살리려다 보니 직선을 이룰 수밖에 없겠지요. 여기에 비해 자연 그대로의 것에는 욕심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때 묻지 않은 것, 가 장 순수한 것이 신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요. 박재삼 시인은 늘 약자의 편에서 시를 썼습니다. 착하기에 약자일 수밖에 없다면 억지일까요. 신의 뜻과 가까운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지를 이 시에서 는 차분히 노래하고 있습니다. 박재삼 시인이 아니라면 이 어려운 논리를 이 처럼 아름답게 풀어낼 사람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 87. 福地복지를 향하여 물이 다 모여서는 드디어 바다에 이르지만 거기에서는 흘러오고 거쳐온 땅의 일을 못 잊는 것이겠지. 바다의 물살을 보아라. 한 물살 넘어 또 다른 물살. 그 너머의 물살로 몇 겹으로 영원히 이어져서 쏴아 쏴아 여기 땅 쪽 福地복지를 향하여 연신 밀려오고 있는 것을
  • 88. 환생의 구름 노니는 것과 같은 이치와 가락으로 나는 파악하고 있다네. 이 세상을 복지(福地)로 밝게 표현하고 있는 시입니다. 물이 강을 거쳐 바 다로 갔지만 땅을 못 잊어 저렇게 밀려오는 것을 보면, 물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었지만 땅을 못 잊어 비로 내리는 것을 보면 세상은 분명 복 받은 땅, 복지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가난할지라도 힘들지라도 이 땅을 복지 (福地)로 여긴다면 그 또한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89. 가을 하늘 極樂극락이나 天堂천당이 있는 것을 꼭이 믿을 수는 없지만 하여간 한번 죽음이 닥치면 물이나 먼지로 남아 이 세상에 겨우 참여하기는 하리라. 이것만 아슬아슬하게 아는 天痴천치 앞에, 어쩔꺼나, 그 깊이와 존재의 까닭을 알 수 없는, 아, 태평한 것,
  • 90. 가을 하늘이 휘영청 머리 위에 없는 듯이 떴어라. 죽고 나면 먼지나 물이 되어 세상에 남기는 하리라는 말에서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애착을 가진 존재인가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말 그대로 인 간적인 것이지요. 그런 슬픈 인간의 앞에 어쩌자고 가을 하늘이 휘영청 아름 답게 펼쳐집니다. 무한한 것 앞에 선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시입니다.
  • 91. 復活부활의 생각 당신이 푸른 빛과 별로 관계가 없는 것은 빤하고 분명하건만, 그러나 늘 그 근처에서 자나 새나 그리워하고 산 것은 너무나 확실하다. 저 햇빛에 반짝이는 무수한 이파리들 둘레에서 혼을 빼앗긴 채 멍청히 지냈던 사실을 헤아려 보라. 결국 이런 과정을 거치고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땅 밑에 묻혀 스미는 물로 변하여 그 이파리들을 타고
  • 92. 눈부시게 올라오기는 하리라. 아, 이것이 復活부활이 아니고 무엇인가. 제14시집 『허무에 갇혀』에 실린 시입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사람이 죽고 나면 그것으로 세상과 영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생시에 그 사람이 오랜 세월 가까이 했던 푸른 것을 타고 올라오는 물이 되어 세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눈부신 나뭇잎을 통해 그 사람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므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로 또는 적어도 그 일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그 사람은 부활합니다. 이쯤 되 면 사람은 죽어도 영 죽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을 법합니다. 하지만, 시 「부활의 생각」에서는 세상의 아름다움보다는 삶의 종말을 맞 이하게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쓸쓸한 독백 쪽에 무게가 실려 있는 듯합니 다. 죽음 앞에서 완전히 초연할 수는 없는 인간의 슬픔이 시 속에 어쩔 수 없이 스며들어 있는 것입니다.
  • 93. 紅柿(홍시)에서 받은 추억 가을날 해는 짧은데, 아버지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시고 캄캄해져야 돌아오는데, 혼자서 집을 보며 서러움에 복받쳐 오직 우리는 왜 못살까만 골똘히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이던 것을 더욱 찬란한 것으로만 모두우며 감나무 끝에 홍시들이 빨갛게 익어 그것은 전적으로 햇빛과 바람이 빚은 덕택이란 것을 알고 이것이 부잣집이라고 많이 내리고 가난한 집이라고 하여 적게 내리는 것이 아님을
  • 94. 똑똑히 보며 만가지 수심을 지울 수가 있었다. 아, 그러나 가난에 매인 심정일수록 그것은 제자리를 찾아 내린다는 대전제만 하늘처럼 믿다가 그것이 오늘까지 와서 세상에서 제일 착하게 나를 맨발로 역사의 현장에 서게 했더니라. 평생을 지켜온 믿음인 ‘자연 앞에 평등한 인간사’를 확인하면서 자기의 일 생이 이 자연의 섭리를 좇아 크게 어긋남이 없었다는 술회를 함으로써 일생 을 정리한 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생활인으로서 시인은 평생 양심을 지켜 왔고 가진 것 없는 ‘맨발’로 거 친 세상, 곧 역사적 현장을 헤쳐 왔습니다. 박재삼 시인만큼 가난한 사람들 의 편에 서서 그 고난을 정리하고 정화시키며, 세상의 다수인 그 가난한 사 람들이 ‘역사의 현장’을 헤쳐나가는 데 길을 잡아준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 95. 어느 뱃사공 아버지는 그 넓은 바다를 밭처럼 갈고 살더니 결국은 푸른 바다에 빠져 죽고, 그 원통한 길을 다만 별수없이 아들이 대를 이어 그물을 던져 생선을 길어 올리네. 푸드득 뛰는 그 선연한 비늘빛에 취하여 죽으나 사나 손때 묻고 닳아진 노를 젓네. 삐그덕 삐그덕 가더라도 그 끝간데가 없는 길을 아득한 햇빛 속에 묻고 저절로 익힌 뱃노래만 부르노니 어쩔 수 없이 슬픔은 물려받고
  • 96. 그 슬픔을 꽃피우는 이 짓 밖에 다른 할일은 없네. 가난의 대물림, 가난한 직업의 대물림까지 감수할 수밖에 없는 어부의 삶 을 노래한 시입니다. 설움이 가슴에 맺힌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겠습니 까. 이들의 사연을 아름답게 노래함으로써 시인은 이들을 가만히 위로하고자 합니다. 아픔을 알아주고 그 아픔을 같이 토해 냄으로써 그 아픔을 정화시켜 주고 있는 셈입니다.
  • 97. 虛無허무의 내력 늘 돈은 조금만 있고 머리맡엔 책만 쌓이고 그 책도 이제는 있으나마나한데 땅 밑에 갈 생각만 하면 나는 빈 것뿐이네.
  • 98. 1996년에 간행된 마지막 시집 『다시 그리움으로』에 수록된 시입니다. 죽음을 예감하면서 당신의 현실을 담담하게 그렸기에 간결한 말 속에 많 은 사연이 담기고 당연한 말인 듯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자아냅니다. 시인 의 일생을 가늠해 보게 하고 사람의 운명을 생각하게 해 주는 시입니다.
  • 99. 물결의 態태 항상 바람 앞에서 물결의 態태가 잡혀 오지도 가지도 못해 결국에는 영원으로 내닫는 빠안한 길을 출렁이며 가누나.
  • 100. 態(태)라는 말은 한자말이긴 해도 옛 삼천포 지역에서는 ‘모양새’쯤 되는 뜻으로 일상생활에 흔히 쓰던 말입니다. ‘보기 좋다’는 뜻으로 ‘태가 난다’라 고 하는 식이지요. 한자말이라곤 하지만 박재삼 시인이 어릴 때부터 일상 써 오던 말입니다. 박재삼 시인의 시에 쓰인 한자말은 기실 이런 식의 한자말이 많습니다. 한자말의 사투리격쯤 될까요. 이 시는 물결 모양이 바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일정하게 정해지듯이 사 람의 삶도 크게 보면 정해진 길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는 새삼스런 깨달음 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운명을 거역할 수 인간의 삶을 물결에 비유한 것입니 다. 간결한 말 속에 삶의 곡진한 내력이 굽이굽이 묻어나는 듯합니다. 마지 막인 제 15시집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