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삼 성 혈
삼 성 혈이란 제주도 원주민의 발상지로 고을
나, 양을나, 부을나의 세신인이 솟아났다는 구
멍 이라고 한다.삼성혈을 지상에 팬 세 구멍으
로 되어있는데, 구멍은 품자모양으로 배치되
어 있다. 가운데 구멍은 둘레가 6자이며 깊이
는 바다까지 통한다고 하며 나머지 구멍은 둘
레가 각기 3자인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흔적
만 남아있다고 한다.그리고 1997년에는 1753
년에 제주목사 김정이 세운 삼석비를 발굴하
였고 이듬해에 표석을 건립하여 지방문화재
제4호로 등록되었다.삼성혈을 국가 소유가
아니어서 재단법인에서 관리하고있다고 한다.
5. 삼성혈과 관한 행사
• 현재 제례는 향교의 석전(釋奠)과 같이
제복을 갖추어 매년 봄(4월 10일)과 가
을(10월 10일)에 삼성전에 삼성의 후손
들이 모여 춘추대제(春秋大祭)를 지낸
다. 삼헌관은 고·양·부 3성씨가 윤번제
로 한다. 매년 12월 10일에는 삼을나의
탐라개벽을 기려 봉향하는 건시대제(乾
始大祭)가 제주도민제로 열린다. 초헌
관은 도지사, 아헌관과 종헌관은 기관
장이나 유지 중에서 선임한다. 춘추대
제(春秋大祭)는 삼을나 위패를 모신 삼
성전에서 지내고, 건시대제(乾始大祭)
는 삼성혈단에서 지내므로 혈제라고도
한다.
혈제
6. 삼성혈 오시는 길
버스를 타고 오시는 경우
2번, 3번, 5번, 10번 ,28번 ,43번 등 버스를 타시고
광양 정류장에 하차하여 도보로 10정도 소요됩니다.
개인 차로 오시는 경우
제주시 이도1동 1283-6번지를 입력하시면
제주 시청에서 약 2분정도 소요됩니다.
걸어서 오시는 경우
제주 시청에서 광양사거리로 내려오시고
계속 내려오시다가 KAL사거리가 나오시며
우측으로 꺽어 계속 가시면 됩니다.
7. 혼인지
• 3신인은 나이 순에 따라
3공주를 각각 배필로 정
하고, 이들을 맞아 이 연
못에서 혼례를 올리고,
그 함 속에서 나온 송아
지·망아지를 기르고 오
곡의 씨앗을 뿌려 태평
한 생활을 누렸다. 이로
부터 제주특별자치도에
농경과 목축 생활이 시
작되었다고 한다.
11. 혼인지 설화
혼인지는 탐라의 시조인 고,양,부 삼신인이 수렵을 하던 중 우연히 바다를 보니 무언가
떠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해변으로 가서 자세히 보니 석함이 떠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귀중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세 신인은 일제히 쾌성을 올렸고,
온평리 바닷가 이름을 그 쾌성개라고 합니다.
쾌성개에서 쾌성을 지른 세 신인은 석함이 떠오르는 바닷가로 내려가니 물결에
출렁이며 석함이 뭍으로 떠올라왔습니다.
12. 석함이 떠왔다고 해서 이곳을 오통이라고 하는데 석함이 열리자
사신이 말을 타고 먼저 올라오고, 이어서 세 처녀가 오곡의 씨와 송아지,
망아지 등을 이끌고 올라왔습니다.
사신이 올라오면서 첫발을 디딘 말 발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바닷가 물결이 출렁대는 평평한 바위에 흡사 발자국 같이 패어 있는 곳인데 이곳을
물성개라고 합니다.
온평리에서 남쪽으로 약 500미터 떨어진 곳에 횐죽이라는 못이 있는데
세 신인은 세 처녀와 더불어 이 못에 가서 목욕을 하고 혼인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못을 혼인지라고 하며 바로 곁에 자그마한 굴이 있는데,
여기는 세 신인들이 혼인하고 같이 잠을 잔 곳이라고 전해 옵니다.
13. 혼인지 축제
혼인지 축제는 10월25일, 26일 양일간
마을안에 자리한 혼인지에서
개최된다.
축제에서는 세 신인과 세 공주가
혼례를 올린 신화 속 내용을 바탕으로
꾸며져 있다.
황루알 부터 혼인지까지 펼쳐지는
거리 퍼레이드는 축제의 전통적인
식전 행사로
세 신인 탄생의 비밀을 밝혀준다. 세
신인과 세공주의 결혼식을 재현한
퍼포먼스는 관람하는
재미 뿐 아니라 제주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14. 혼인지 찾아 오시는 길
버스타고 오시는 경우
동광양 버스 정류장에서 701번을 타시고
혼인지 입구 정류장에 하차하여
혼인지까지 도보로 약 13분정도 소요됩니다.
개인 차로 오시는 경우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1688-1번지를
입력하시면 약 47분 정도 소요됩니다.
16. 삼 사 석
•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4호인 삼사석(三射石)
은 탐라시조 삼신인(고을나,양을나,부을나)
이 벽랑국 삼공주를 맞아 배필로 정한 후, 생
활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한라한 북쪽 기슭
쌀손장오리에서 활을 쏠때 화살이 박혔던
돌과녁이다. 그래서 시사석(矢射石)이라고
도 하는데 화북동 주민들의 이 지역을 '쌀쏜
디왓'이라 부른다. 최초의 신인 삼을라가 지
금의 성산읍 온평리 해안가에서 벽랑국의
세 왕녀를 맞아 그곳에서 가까운 혼인지에
서 혼례를 치르고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하여
활을 쏘았다. 화살은 지금의 제주시(일도),
(이도), (삼도)에 떨어졌다. 그 화살이 박힌
곳이 지금의 이 삼사석이라고 한다. 석실에
안치된 삼사석은 직경 55cm내외의 현무암 2
개인데, 바라 옆에는 1735년(영조 11)제주목
사 김정이 세운 삼사석비가 있다. 석실(石室)
은 1735년 제주사람 양종창이 처음 만들었
으나 허물어졌고 지금 것은 1870년(고종 7)
에 중건되었다. 돌담을 나지막히 둘러친 가
운데 비석처럼 생긴 자연석에 큰 화살촉이
박힌 듯한 자욱이 남아있는 돌을 세워 놓았
다.
17. 삼사석지 찾아 오시는 길
버스로 오시는 경우
10번, 11번, 20번, 26번, 43번, 48번 등
버스를 타시고 제주 동중학교 정류장에
하차하여 삼사석지까지 도보로 약 14분정도
소요됩니다.
개인 차로 오시는 경우
화북1동 5749-61번지를 입력하시면
약 8분정도 소요됩니다.
18. • 그들의 옛 기록에 이르기를, 태곳적에는 (어떠한) 사람과 물상(物象)도 없었는데, 세
신인(神人)이 땅에서 솟아 나왔다. 제일 큰 사람이 양을나(梁乙那)요, 다음이 고을나
(高乙那)요, 셋째가 부을나(夫乙那)이다. 세 사람은 황량한 들판으로 다니면서 사냥
을 했는데, 가죽으로는 옷을 만들고 고기는 먹었다. 하루는 인(印)을 찍어 봉한 나무
궤짝이 동쪽 바닷가에 닿는 것을 보았다. 좇아가서 열어 보니 그 궤짝 속에는 돌함이
들어 있었으며, 동시에 붉은 띠에 자주색 옷을 입은 사신이 따라왔다. 돌함을 열어
보니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망아지, 송아지, 오곡(五穀) 씨앗이 나왔다.
그제야 사신이 “나는 일본국의 사신이오. 우리 임금이 세 따님을 낳아 놓고 말씀하시
기를, ‘서해 복판에 있는 멧부리에 신의 아들 세 사람을 내려 보내 나라를 이룩하려
고 하나 배필이 없느니라.’ 하면서 이에 나더러 세 따님을 모시고 가라고 하여 모시고
왔으니 그대들은 짝을 이루어 큰일을 성취하시오.”라고 한 다음 갑자기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 세 사람이 나이 순서에 따라 장가를 들고, 샘물이 달고 토지가 비옥한 고
장으로 가서 화살을 따라 각기 자리를 잡았다. 양을나가 사는 고장을 첫째 도읍, 고
을나가 사는 고장을 둘째 도읍, 부을나가 사는 고장을 셋째 도읍이라고 하였다. 처음
으로 오곡을 심고 망아지와 송아지도 길러서 날로 번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