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작전 (토오취 작전 ) 영미 합동 상륙작전 알제리의 비시 프랑스 세력 축출 단일합동참모본부하의 대형상륙작전
14.
튀니지 전투 패배후 퇴로를 위해 튀니지 확보 필요 병참선이 짧았던 독일이 우선 확보 몽고메리와 영미연합군의 합동공격 롬멜 퇴각
Editor's Notes
#3 9 월 13 일 이탈리아는 리비아에서 영국령이었던 이집트로 기습을 가하였습니다 20 만에 달했던 이탈리아군은 3 만 6 천에 불과했던 영국군을 물리치고 3 일간 90km 를 나아갔지만 보급문제로 제동이 걸렸고 방어선을 구축하고 전선은 교착됩니다 . 10 월경 독일 공군에 의해 막혔던 영국 본토로부터의 보급이 재개되었고 12 월 9 일 영국군의 컴파스 작전이 시행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차의 숫자 , 그리고 성능에 있어서 우위에 있던 영국군이 전차를 앞세워 기동력으로 이탈리아군과의 병력차이를 무효화 시키는 작전이었습니다 그리고 2 월 9 일 이탈리아군은 알 아게일라까지 철수하였습니다 웨이블 휘하의 3 만 1 천의 병력으로 20 만의 병사 중 13 만을 포로로 잡고 전차 400 대와 포 850 문을 노획하는 큰 승리였습니다
#4 이탈리아 군은 처음에 기습으로 영국군에게 승기를 얻었었으나 수송차량의 부족과 훈련부족 등의 이유로 신속한 이동이 불가능했고 결국 얼마 진군하지도 못하고 발이 묶였습니다 이는 애초에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전쟁을 일으킨 무솔리니의 목표달성을 위한 역량 파악부족이 원인이라고 할수있겠습니다 반면에 영국군은 3 만 1 천이라는 부족한 병력을 가지고 거의 7 배에 달하는 이탈리아군을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동력의 우세와 그로 인해 적의 병력을 각개격파 할수있었기 때문입니다 .
#5 2 월 12 일 롬멜이 독일 북아프리카 군단의 군단장으로 부임합니다 . 롬멜은 3 월 22 일 기습공격으로 영국군을 퇴각시키는데 이는 롬멜이 대군을 이끌고 있다고 착각시키게 한 탓도 있지만 영국군이 그리스전선에 구원을 보내기 위해 북이탈리아 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한 탓도 있었습니다 토부룩을 포위하고 3 차례에 걸쳐 공격했으나 실패하였고 영국군이 이집트 국경지대에 방어선을 구축하자 롬멜은 토부룩을 장기포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
#7 몰타섬에 의해 1941 년 8 월중에는 수송량의 35% 의 손실을 입었고 10 월에는 63% 나 되는 보급품을 잃어야했습니다 . 이탈리아군은 몰타섬 때문에 벵가지를 보급항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트리폴리를 이용했으며 이는 보급선이 엄청나게 길어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
#9 몽고메리는 부임 직후 영국군이 롬멜을 존경하면서 두려워하고 사기가 극도로 내려가있는 것을 해결하기위해 군기를 잡고 병사들의 사기를 독려하였으며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동시에 롬멜이 공격에 있어 틈을 보여주더라도 철저하게 방어로 일관하였다
#10 몽고메리는 88 포에 의해 전차전을 할 경우 피해가 극심하다는것을 파악 ( 동영상 no03) 방어에 집중하며 조금씩 롬멜의 전력을 고갈시켜갔고 동영상 no08( 알파할름전투 ) 결국 롬멜도 공격을 포기하고 방어태세로 돌아섭니다 -> 동영상 no4( 악마의정원 )-> 동영상 no5( 라이트풋 )-> 동영상 no06-> 동영상 no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