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쿄의 3분의 1 넓이를 자랑하는 초능력 개발기관 '학원도시' 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들 하는 명문교이자 동시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아가씨 학교다.
그 입학 조건은 매우 엄격하여, 모 나라 왕족의 딸을 선뜻 불합격시키는 바람에
국제문제로 비화할 뻔했다는 일화까지 존재한다.
학교 부지는 인접한 다른 네 개의 아가씨 학교와 공용으로 되어 있다. 땅이 부족
한 것이 아니라 서로 비용을 나눠 냄으로써 튼튼한 경비체제를 만들기 위한 것이
다.
보통 학교의 열다섯 배 이상이나 되는 부지를 갖고 있는 공용지대인 이곳은 '배움
의 동산' . 그러나 열다섯 배 이상이라고는 해도 광대한 이미지는 없다. 안 그래도
특수한 커리큘럼에 사용되는 실험시설 증설이 많은데다,
나아가서는 독자 기술이 누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능력개발용 기재는 일절 외부
에 맡기지 않고 '배움의 동산' 내부에서 생산하고 있는 관계로 그 제조 및 판매시
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각 시설은 외관만 보자면 서양식으로 통일되어 있어서 마치 지중해의 작은 마을
을 통째로 가져온 것 같은 공간으로 완성되어 있다. 어쨌거나, '배움의 동산' 안에
서는 표지판이나 신호등 디자인까지 바깥과 다를 정도다.

2. 교정에는 대영박물관 앞 광장처럼 돌이 깔려 있지만, 전문 측량사가 그 표면을 잰
다 해도 약간의 요철이나 기울어짐조차 검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소재는 평
범한 돌이 아니다. 육안으로는 구별이 가지 않지만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학원도시에서 만든 특수 건축재료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반짝반짝하게 닦여 있는 것 같은 그 교정에는 얼룩 하나 없다.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종종 사용하는, 트랙에 선을 그리기 위한 하얀 분말조차도.
지금은 수업 중이고 능력 측정 경기 중이지만 그것을 위한 선은 다른 소재로 그려
져 있었다.
그것은 빛의 선이었다. 교정에는 수천만 개나 되는 광섬유가 수직으로 묻혀 있고,
그것들이 내뿜는 광점이 모여 전광게시판처럼 빛의 선을 자유자재로 그리는 것이
다.
빛의 선은 지금 시라이를 둘러싼 작은 원과 그 원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부채꼴
을 형성하고 있다.
투포환을 할 때와 매우 비슷했다. 다만 투포환에 비해 부채의 각도가 압도적으로
작다.

3. 시라이의 능력은 '텔레포트(공간이동)' 다. 간단히 말하자면 가까이 있는 물체(자
신의 몸을 포함)를 3차원적인 공간을 무시하고 순식간에 멀리 날려 보내는 능력
이다. 일단 피부에 닿아 있는 물체여야 한다는 제한도 있지만.
'텔레포트' 의 레벨 인정은 세 가지 조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물체를 날려 보낼 때
의 '크기(질량)' , '거리' , '정확성' 이다. 그것을 조사하는 측정방법 중 하나로 이렇
게 투포환에 가까운 스타일이 있는 셈이다. 평범한 투포환과는 달리 그냥 멀리 날
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지점에 떨어뜨린다는 요소도 추가된다.
덧붙여 말하자면 토키와다이 중학교에는 텔레포트 능력자가 시라이밖에 없다. 주
위에 있는 소녀들은 시라이와는 다른 '암기 타입' 의 능력자다.
시라이의 시선 멀리로 뭔가가 툭 떨어졌다.
그녀가 아까 텔레포트를 써서 날려 보낸, 모래를 채운 120킬로그램짜리 자루다.
『기록 · 78미터 23센티미터 · 지정거리와의 오차 54센티미터 · 종합평가 '5'』
글씨를 본 소녀는 하아 하고 양갈래로 묶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4. 본래 그녀의 능력의 한계치는 비거리가 81.5미터, 질량이 130.7킬로그램이지만 이
능력에서 비거리와 질량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질량을 작게 해도 그만큼 비
거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어떤 물건을 날려 보내도 비거리
의 한계에 가까운 라인을 노리려고 하면 아무래도 정밀도가 떨어진다.
게다가 시라이의 능력치는 정신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처음부터 아슬아슬
하게 한계에 가까운 일인데 하물며 이 더위 속에서 해내라니 정밀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거기에서 변명이나 생각하니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레벨5(초능력)가 될 수 없는
거예요─하고 시라이가 자조하듯이 무거운 한숨을 쉬고 있는데 문득 옆에 있는
투포환용 원 안에서 바보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훗후. 어머, 시라이 씨. 기계가 내놓은 숫자에 일희일비하다니 그릇이 너무 작
은 거 아니에요? 좀 더 확고한 기준을 자기 마음속에서 찾아내지 못해서야…, 푸
풋."
시라이는 지겹다는 듯이 옆을 본다.

5. 부채를 팔락팔락 흔드는 콘고우에게 시라이는 마지못해 시선을 보낸다. 콘고우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달콤한 냄새가 나는 부채를 팔락팔락 부치면서,
"아까 하던 얘긴데, 당신의 능력이 떨어지는 건 당신 자신이 필요없는 부분의 공
간파악 처리까지 하려하기 때문 아닐까요? 좀 더 계산식을 타이트하게 하면 좋을
텐데."
"…쓸데없는 참견이군요. 무엇보다 3차원과 11차원은 파악법이 근본적으로 다르
다니까요."
"아뇨, 아뇨, 참견은 이제부터 할 거예요. 저는 이번에 '파벌' 을 만들어볼까 하거
든요. 시라이 씨도 한가하면 부디랄까,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서 꼭 들어오는 게 어
때요? 스터디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참가해보세요. 다른 능력자들의 제어법을 알
게 되면 자신의 계산식에 대한 발상의 힌트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시라이는 하아 하며 눈썹을 찌푸렸다.
파벌.
딱딱한 말로 들리지만 요컨대 같이 노는 그룹 같은 것이다.

6. 다만 이곳은 토키와다이 중학교. '의무교육이 끝날 때까지 세계에 통할 만한 인재
를 키워내는 것' 을 목표로 내걸고 있는 이 학교에서는 재학 당시부터 모든 방면
의 연구 분야에서 활약하며 이름을 남기는 학생도 적지 않다.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끼리 학교 안에서 모여 학교에서 설비를 빌리거나 자금
을 조달해서 결국에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남긴다…. 그렇다면 파벌은 학교의 동아
리 활동과도 비슷한 성질을 갖는지도 모른다.
큰 파벌은 인맥이나 금맥, 독자적인 지식 등도 갖고 있으며 제일선에서 활약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그러한 힘을 빌려 공을 세우고 있다.
그중에는 '파벌' 같은 것을 만들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학생도 있
지만, 시설을 빌리거나 자금을 조달하는 면에서는 파벌에 소속되어 거기에서 서
류를 작성하는 편이 학교에 신청하기가 더 쉽다. 인원이 많고 공을 세운 파벌일수
록 학교 안에서의 지위가 높아지고 힘도 커진다.
이런 점은 일반적인 동아리 활동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큰 파벌은 큰 힘을 갖는다. 토키와다이 중학교 안은 물론이고 학교
밖에까지. 큰 파벌에 들어가기만 해도 일종의 지위가 되기 대문에 그 파벌의 창설
자쯤 되면 얻을 수 있는 명성은 보통이 아니다.

7. 여기에서는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그 뒤쪽에는 수영장이 있다.
폭발음은 거기에서 들려왔다.
사이에 건물이 있는데도 물방울이 가느다란 안개처럼 콘고우의 달아오른 뺨에 닿
는다. 몸의 열이 급속하게 식어간다. 성대한 폭파 탓에 수영장의 물이 겨기까지 튄
것이다.
"…무…, 뭐야, 저거."
얼굴에 물방울이 닿자 놀란 그녀는 마치 누군가 혀로 얼굴을 핥기라도 한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뺨에 손을 대고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마지막으로 건물을
돌아본다.
"그렇군요. 당신은 2학기에 전학을 왔으니까 모르실지도 모르겠지만 저게 토키와
다이 중학교의 에이스예요."
그 목소리에 콘고우는 떠올린다.
건물 뒤쪽의 수영장에는 한 소녀가 서 있을 것이다.

8. 시라이나 콘고우와 마찬가지로 암기 도구 타입의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지나친
파괴력 때문에 통상의 측정방법을 쓸 수 없어서 토키와다이 중학교의 교직원들을
애먹인 절대적인 능력자.
학교 측에서 전용 특수 커리큘럼을 준비하고 수영장에 담겨 있던 방대한 물을 이
용해 위력을 감소시키지 않으면 측정기기와 함께 학교 건물을 통째로 무너뜨릴지
도 모를 만큼, 토키와다이 중학교에서도 두 명밖에 없는 레벨5 중 한 사람.
레일건(초전자포)의 미사카 미코토.
어느 '파벌' 에도 속하지 않고 누구하고나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
시라이 쿠로코는 자신이 동경하는 언니의 모습을 떠올리면서도 어이없다는 듯이
묻는다.
"콘고우 씨, 당신, 진심으로 저 무시무시한 일격을 정면에서 받아낼 각오가 있는
건가요?"
천진난만한 물음.
콘고우 미츠코는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얼굴이 새파래진다.

9. 토키와다이 중학교에는 세 개의 샤워실이 있다.
그중 하나─주로 방과 후에 학교에서 거리로 나가기 위해 몸단장을 하기 위한, 학
교 건물에 딸려 있는 샤워실─'귀가하시는 분들의 목욕터' 라고 불리는 그 방에서
하얀 김과 딱 알맞은 온도의 온수를 뒤집어쓰면서 시라이 쿠로코는 말했다.
가냘픈 몸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그녀의 가슴에 달라붙어 있던 비누 거품을 배
쪽으로 밀치며 내려간다.
"아─, 물보라가 그렇게까지 멀리 날아갔구나. 그런데 그 정도 일로 시끄럽게 소
란을 떨어도 실감이 나지 않는단 말이야. 그래봬도 최대한 힘을 아낀 거거든. 내가
진심으로 내지른 일격의 위력을 그런 수영장으로 죽일 수 있을 리 없잖아."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서 미코토의 시시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교실 절반만 한 넓이의 샤워실에는 90개 가까이 되는 샤워 수도꼭지 하나하나를
둘러싸듯이 하얀 칸막이와 스윙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칸막이는 몰라도 흐린 유리로 되어 있는 스윙 도어는 평균 신장의 중학생
의 허벅지에서 가슴 위까지를 가리는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키가 큰 여자라면 규격이 맞지 않아서, 약간 몸을 굽히고 샤워를 하지 않으면 여
기저기가 보이고 마는 모양이다.

10. 한쪽 눈썹만 흠칫흠칫 움직이던 시라이는 스윙 도어 위쪽에 손을 댄다. 거기에는
머리를 양쪽으로 묶기 위한 가느다란 리본이 두 개 있다.
시라이는 그중 하나를 천천히 바닥에 떨어뜨린다. 하얀 대리석 바닥에는 샤워꼭
지에서 흘러나온 온수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어서 거기에 떨어진 리본은 얇은 물
의 막이 흘러가는 대로 칸막이 틈을 지나 옆 샤워 부스로 흘러간다.
"아앗, 이 무슨 실수를! 제 리본이 금단의 언니 구역으로!"
"그래, 일부러 텔레포트를 써서 이쪽으로 돌격하려고 하지 마!"
텔레포트를 하기 직전에 미코토가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칸막이를 맞은편에서 세
게 두드렸다. 다른 샤워 부스에서 샤워를 하던 여학생들의 수다 소리가 놀라서 잠
시 멈춘다.
소리와 충격 때문에 완벽하게 타이밍을 놓친 시라이는 텔레포트에 실패했다. 그
녀가 능력을 발동할 때는 감각적으로 3차원으로 파악하고 있는 이 세계를 11차원
상의 이론적 수치로치환하여 다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산이 매우 번거롭고, 갑작스러운 초조함이나 놀라움 등으로 힘
이 작용하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