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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ermas의 공론장에 대한 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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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정보사회학과 윤영민 교수의 '정보기술과 사회' 강의 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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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ermas의 공론장에 대한 강의1

  1. 1. JurgenHabermas. 1962/1990/2001. <공론장의 구조변동>. 나남.(Part 1) <br />2008년 2학기, ‘의사소통의 사회학’에서 사용한 강의노트임. 학생들이 읽기 어려운 책이라 <공론장의 구조변동>의 내용을 최대한 인용하면서 작성함.<br />2010년 1학기 ‘정보기술과 사회’에서 재사용함.<br />
  2. 2. H-1.공공성의 변화: 과시적 공공성<br />공공적 의사소통(public communications)– 이하 공공성(publicity)이라고부름—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생각해보자. <br />공공적 의사소통(공공성):공동체와 그것의 구성원들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 즉, 공공문제에 대한 공개적 논의. <br />주제: 공공문제<br />소통 대상: 왕과 신민들, 정치적 지도자와 시민들, 신민들(혹은 시민들)끼리<br />방식: 공개적 의사소통(포고, 상소, 담화, 대화, 토론 등)<br />
  3. 3. <ul><li>인쇄기술이 등장하기 전에는 집회(meetings)를 통한 대면적 의사소통이 거의 전부. 벽보(방)를 통한 포고 혹은 상소, 면담 등이 존재.
  4. 4. 집회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을까?
  5. 5. 중세에는 사적 영역으로부터 분리된 독자적 영역으로서의 공론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6. 6. 그러나 통치권의 공적 과시가 존재했다. 이것을 하버마스는 과시적 공공성(publicity of representation)이라고부른다. 봉건제에서 ‘사적’ 지배권과 ‘공공적’ 지배권이 분리가 불가능하게 되어있었다. 장원영주의 지위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사적’임과 동시에 ‘공공적’이었다.
  7. 7. 장원영주는 “언제나 자신을 ‘보다 높은’ 권력의 체화로 나타낸다(68).” 영주는 군주의, 주교는 신과 교황의 대표자 혹은대리인으로서의 지위를 과시하였다. 군주는 국가를 대표. 교황은 하느님을 대표(대리).</li></li></ul><li><ul><li>과시적 공공성은 표장(表章), 용모, 거동, 수사(修辭) 등과 결부되어 있었다.(대학의 emblems)
  8. 8. 과시는 권위에 ‘아우라(Aura)’를 부여한다.
  9. 9. 군주는 세속영주, 성직영주, 기사, 고위성직자, 도시민을 자신의 주변에 불러모아 자신의 통치권을 민중 앞에 과시하였다.
  10. 10. 성직영주(주교)는 고유한 과시장소를 가지고 있었음—교회
  11. 11. 오늘날에도 교회의식, 예배의식, 미사, 의식행렬에 과시적 공공성이 살아있다.
  12. 12. “대연회는 참가자의 재미를 위한다기보다 위대함(grandeur), 바로주최자의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한 것(73)”
  13. 13. 과시적 공공성은 루이14세의 예법에서 가장 세련된 수준에 도달</li></li></u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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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0. H-2. 문예적 공론장의 출현<br />유럽에서 공론장(public sphere)의출현은 자본주의의 출현에 수반된 두 가지 사회변화에 의존하여 등장: <br />신문의 출현: 도시에서 상품교환과 함께 전개된 뉴스교류를 위한 비공개 소식지에서 출발. 17세기에 ‘정치신문’ 등장. 주간에서 일간으로. 17세기 후반에는 잡지도 등장. 17세기말 출판사가 등장하여 문학작품을 출판  18세기 초반, ‘독서공중’의 출현을 가능하게 함.<br />“커피하우스의 공중은 신문기사를 토론대상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이 토론의 구성부분으로 여겼다(116).”<br />
  21. 21. According to the World Association of Newspapers, Johann Carolus (1575 - 1634) was the publisher of the first newspaper, called Relation aller Fürnemmen und <br />gedenckwürdigen Historien (Collection of all distinguished and commemorable news). The Relation was first published in Strassburg, Germany, in 1605.<br />
  22. 22. Jean François de Troy (Paris 1679 - Rome 1752), Reading from <br />Molière around 1728<br />
  23. 23. 살롱, 커피하우스 등 대중적 집회장소의 출현<br /><ul><li>17세기 프랑스에 살롱(salon) 등장. 궁정의 연회장 대신 등장.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이며, 정치적 기능이 없는 도시귀족과 시민출신의 중요한 작가, 예술가, 과학자의 결합.
  24. 24. 17세기 중반, 영국에는 커피하우스(coffee house)가 출현. 18세기 처음 10년간 런던에는 이미 3천 개가 넘는 커피 하우스가 존재. 모든 직업, 생업, 당파가 그들의 단골 커피하우스를 가지고 있었음
  25. 25. 살롱(귀부인의 살롱)은 여성이 주도, 남성이 참여한 반면에 커피하우스에는 남성만 허용됨.</li></li></ul><li>"A Salon of Ladies" by Abraham Bosse<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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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27. Coffee-houses were fashionable meeting places for political, philosophical and cultural debates. Politicians and <br />businessmen could sit, discuss and read newspapers.<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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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29. A coffee house of London in 18th century<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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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33. <ul><li>살롱과 커피하우스에서는 처음에는 예술작품, 문학작품이 공유되고, 논의되었음
  34. 34. 도시민들(귀족, 부르주아, 상점주인, 지식인 등)이 신문, 잡지, 소설을 읽고, 살롱과 커피하우스에서 토론하는 모습의 문예적 공론장(literal public shere)이 출현.
  35. 35. 공론장은 사적 개인들로 구성됨.
  36. 36. “어떤 관직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공권력에 대한 참여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바로 사적 개인들(83). ” ‘논의하는 사적 개인들’로 구성. 이름이 ‘공론’장(public sphere)임에도 불구하고관청이 운영하는 공간도 아니고, 관청이 주관하는 모임도 아니다. ‘공공적’이라는 말은 ‘국가적’이라는 말과 동의어였다.
  37. 37. “관청의 대응물로 구성되는 것이 부르주아 사회이다(84).”</li></li></ul><li>“독서 클럽, 독서회, 도서예약 도서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1750년 이후 영국에서와 같이 일간지와 잡지의 판매가 1분기에 두 배로 증가하는 시기에 소설 읽기는 부르주아 계층에서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이들을 통해 공중이 형성되는데, 이들은 커피하우스, 살롱, 만찬회와 같은 초기의 제도들로부터 성장해서 신문과 신문의전문적 비판의 중계망을 통해 결속된 공중이다. 그리고 핵가족이라는 친밀한 원천을갖는 주체성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과 의사소통하는 문예적 논의의 공론장이 형성된다(126-127).”<br />
  38. 38. The Clubs of London,” National Review, No. 8(April 1857). 301 쪽.<br />“모든 직업, 생업, 계급, 당파가 그들의 단골 커피하우스를 가지고 있었다. 법률가들은 사원 근처에 있는 커피하우스인 넌도(Nando)나 그리션(Grecian)에서 법이난 문학에 대해 토론하고 최근의 새로운 연극을 비평하고, 웨스트민스트 홀에서 일어난 최신의 신랄한 논평을 퍼뜨렸다….시민들은 커피하우스 개러웨이(Garraway)나 조나단(Jonathan)에서 만나 주식 상승과 하락에 대해 토론하고 보험률을 확인하였다.사제들은 성바울 교회묘지에 있는 커피하우스 트러비(Truby)나 차일드(Child)에서 대학의 가십을 교환하거나 세이처버렐 박사의 설교를 평가하였다. 군인들은 채링 크로스(런던시 중앙 번화가) 근처에 있는 커피하우스 영맨이나 올드맨에 모여서 그들의 불만거리에 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br />
  39. 39. 세인트 제임스와 스미르나는 휘그당 정치인들의 본부였던 반면에, 토리당원들은 코코아 트리나 오우진다를 뻔질나게 출입하였는데, 이들 커피하우스는 모두 세인트 제임스가에 있었다. 스코틀랜드인들의 단골집은 포리스트였고, 프랑스인들의 단골집은 세인트 마틴스 레인에 있는 자일즈나 올드 슬로터였다. 도박꾼들은 화이트와 코번트 가든 근처의 초콜릿 하우스들에세 주사위를 던졌고, 예술의 거장들은 그레샴 대학의 이웃들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주도적인 재사(才士)들은 그레이트 러셀가의 커피점 윌, 버튼, 톰에 몰려 들었는데, 여기서는 연극이 끝난 후 피켓(두 사람이 32매의 패를 가지고 하는 놀이)놀이를 하거나 한밤중까지 최고의 대화가 계속되었다….부유한 상인들은 로이드에서 주식 상승과 하락에 대해 잡담을 나누었다. 로빈과 로치포트에서는 외교관들과 은행가들이 협의하였다. 예술애호가들은 샤인 웍에 있는 커피하우스 돈 살터로를 방문하였다…”<br />
  40. 40. The Age of Journalism<br />The age of journalism, as form of expression and <br />communication of news and ideas, began in England with the first weekly magazine “A Current of General News”, published in 1622/23. Throughout the 17th century other magazines (“MercuriusBritannicus” was the most famous one) and, mainly, political pamphlets and moral tracts were published cheaply and <br />distributed widely. These magazines opened the way to a fuller development of the periodicals, reviews and newspapers of the next century. The abolition of the Licensing Act in 1694 put an end to the heavy censorship that had previously prevailed to <br />the detriment of free speech and press, and allowed journalists greater freedom to criticize and debate, although some forms <br />of punishment such as fines, the pillory and even, sometimes, <br />imprisonment, remained for libel towards the highest <br />institutions, namely the Monarchy, Parliament and Church (in <br />other European countries, censorship wasn’t abolished till <br />1848). (Part 2에 계속)<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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