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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서, 제안서 작성




               지난 호에서 우리는 대화에서 시작해 예술 정보에 이르기까지 여러 경로를 통해 유용
               한 자료를 모으는 방법에 관해 살펴보았다. 메모 기술을 적용해 자료를 정리할 때 뭔
               가 보고 나서 메모하려 하지 말고 메모하려고 뭔가를 보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
               조했으며, 단어나 문구보다는 완결된 한 문장으로 정리해 두어야 나중에 바로 글에 적
               용할 수 있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이번 호에서는 기획서와 제안서 작성을 다룰 것이며
               제안서는 기획서의 한 종류이므로 공통 내용을 다룰 때는 기획서 하나로 통칭하겠다.

이강룡
한겨레교육문화센터
글쓰기 강사·작가



 TV 프로그램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가수 박정현이 출연했다. 방송 중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집에서 벗
어나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던 박정현의 생각과 신학 대학에 진학해 집에서 통학하기를 바랐던 아버지
(목사)의 의견이 대립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박정현은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한 시간 넘게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그 결과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되 집과 멀지 않은 대학을 택하고, 독립적 생활을 할 수 있는 기숙
사에 들어가되 주일마다 집(교회)에 오는 타협안을 이끌어냈다. 박정현도 부모도 모두 이 결과에 만족했다.
여기에 기획서의 핵심이 있다.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박정현은 협상 당사자의 두 입
장에서 생각해 보고, 현실적으로 희박한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공집합 상태를 교집합 상태로 전환하는 태도의 힘
 기획서, 특히 특정 기업이나 고객에게 제출하는 제안서의 목적도 이와 같다. 공감대를 찾아내 효율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그렇다면 공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역지사지 태도에서 공
감이 싹튼다. 『디자인의 디자인』(안그라픽스)에서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친구가 겪은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공감의 원리를 말한다. 해외 여행을 간 친구가 입국 수속 중 여권을 건네받으면서 직원에게 ‘생일 축하한다
(Happy birthday!)’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입국 심사를 맡은 직원은 자기 나라를 찾은 여행객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 입장이 되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했다. 친구는 그 직원의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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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때문에 그 나라가 조금 더 좋아졌다고 했다. 짐작컨대 그 직원은 오늘도 여러 외국인들의 여권을
살펴본 뒤 ‘하루 앞서 미리 생일 축하합니다’ 또는 ‘늦었지만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도 건넬 것 같다. 훌륭
한 기획도 이런 태도에서 비롯하는 것 아닐까. 이왕이면 더 훌륭하게 표현할 방법은 없을지 항상 생각하자.


1퍼센트 가능성을 51퍼센트로 확장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제안서는 아마도 콜럼버스(콜론)가 에스파냐 왕실에 제출한 항해 기획서일 것이다. 15
세기까지 유럽의 바다를 지배한 포르투갈에 이어 16세기에는 새로운 강자인 에스파냐가 세계 해상 패권을 차
지하는데, 이러한 권력 이동을 가능케 한 결정적 계기는 이사벨라 여왕의 후원 아래 1492년부터 실시된 콜럼
버스 원정대의 신대륙 탐험이었다. 콜럼버스는 탐험 계획과 비용, 그리고 탐험이 성공하면 이해 당사자가 얻
게 될 경제적 이익에 대한 분배 비율을 상세히 기록한 제안서를 이미 수년 전 이사벨라 여왕에게 제출했다.
여왕은 제안 내용을 신중히 검토하고 콜럼버스의 프리젠테이션을 경청한 다음 심사숙고 끝에 허락했다. 여왕
은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수익의 10퍼센트와 신대륙의 총독직을 주는 조건으로 콜럼버스와 계약을 체결한
다. 전 세계 역사를 뒤바꿀 투자 계획이 결정된 것이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나중에 포르투갈은 땅을 치고 후
회했다. 이사벨라 여왕에 앞서 1484년 포르투갈의 주앙 2세에게 이미 콜럼버스가 투자 제안서를 제출했었기
때문이다.
 주앙 2세가 조금 더 마음을 열었거나, 콜럼버스가 조금 더 끈질기게 포르투갈 왕실을 설득했다면 공감대는
조금 더 넓어졌을지도 모르지만 지나간 역사에 ‘만약에’라는 단서를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점은 기
획서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제안하는 사람이나 투자하는 사람 중 어느 한쪽이라도 현실적 준비가 안 된 상
태라면 기획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채택된 기획서 중에 실제 프로젝트 성공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
히 일부이니까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오랜 시간에 걸쳐 대형 음반사들을 상대로 자신의 기획을 꾸준히 제안하고 설득함으로써 끝
내 성공을 거둔 이야기는 기획의 모범 사례로 업계에 회자된다. 잡스와 애플사의 현재를 있게 한 결정적 계기
는 온라인 음원시장 아이튠즈 서비스의 성공이다. 아이팟(하드웨어)과 아이튠즈(소프트웨어)의 강력한 결합
이 음악 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 당시 디지털(온라인) 음원을 확보하기 위해 대형 음반사들과 제휴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MP3 파일의 유통은 모두 불법으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유통 행태가 음반 시장 질
서를 망쳐놓는다고 굳게 믿고 있던 대형 음반사들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뒤바뀐 것은 잡스의 끈질긴 노력 덕
분이었다. 잡스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온라인 음원 거래가 음악 시장을 더욱 키울 것이고 침체된 음원 판매 시
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며 대형 음반사를 꾸준히 설득했다. 2년 가까이 진행된 협상은 대성공으로 마무
리되었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뒤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창의적 발상과 굳은 신념이 그 험난한 과정을 버티게끔
한다. 2001년 아이팟을 소개하면서 잡스는 이렇게 말문을 열였다. “우리는 음악을 택했습니다. 우리 모두 음
악을 사랑하니까요.” 그는 ‘부정문이나 부정적 메시지를 피하라’는 기획과 발표의 중요한 기본 원칙에도 충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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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콘셉트)을 발명하기보다 발견하려고 노력하라
 사과 산지로 유명한 일본 아오모리 현에 1991년 태풍이 불어닥쳐 수확을 앞둔 사과의 90퍼센트가 땅에 떨
어져버렸다. 한해 농사를 다 망쳤다고 낙심할 법도 하지만, 그들은 절망하는 대신 이 상황을 유리하게 바꿀
아이디어를 모색했다. 그 결과 태풍에도 견딘 10퍼센트 사과를 ‘떨어지지 않은 사과’라 이름붙인 후 수험생을
대상으로 비싼 값에 팔았다. 그해 아오모리의 사과 농사는 ‘성공’했다. 어찌할 수 없는 90퍼센트에 집착하지
않고 손안에 있는 10퍼센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것이다.
 기획서가 담고자 하는 모든 개념은 이미 사전 안에, 우리의 삶속에 다 있다. 저명한 카피라이터 헬 스티빈
즈는 말한다. “아이디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을 파서 캐내는 것이다.” (김재호, 『창의적 기획
법』, 이코북) 찾으려는 노력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그 기회가 온다. 아예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
미 우리 주변에 있는 것, 잠시 잊고 있던 어떤 것을 발굴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축구장에서 광고료가 가장 비싼 자리는 어디일까? 중계석 맞은편도, 골대 뒤도 아니다. 그곳은 바로 선수
들의 가슴이다. 명문 프로축구팀 유니폼 앞에 광고를 게재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삼성이
첼시 유니폼에 3년 간 자사의 브랜드를 새겨넣는 조건으로 지불한 금액이 990억 원이다. 축구팀의 실력이나
지명도에 따라 이 광고료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면 세계 최고 축구팀인 FC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에는 어떤 광고가 실려 있을까?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가슴에 유니세프 광고를 달고 뛴다. 2006년 9월 FC 바르셀로나는 유니세프와 후원 계약을 맺었다. 돈을 받
고 광고를 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유니세프를 전세계에 알리면서 에이즈에 노출된 어린이들을 위해
구단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구단의 이미지는 더욱 좋아졌고 선수들과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자부심과 애정은 높아졌으며 전 세계 팬들도 찬사를 보냈다. FC 바르셀로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가치
를 얻은 것이다. ‘스폰서십’이라는 기존 고정관념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거둔 성과다.


더 훌륭한 가치를 이끌어 내려 노력하라
 프랑스 영화감독 뤽 베송은 영화 <잔다르크 이야기>를 민족을 구원하는 소명을 지닌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
라 여성을 유린하는 남성 전쟁광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로 연출함으로써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팬들
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역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일깨우고자 하는 시도에서 나왔다.
 1945년 6월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평화 회담이 열렸다. 이 회의는 이전에 개최된 평화 회담과는 성
격이 달랐다. 지금까지 평화 회담들은 휴전 협정이거나 전쟁이 남긴 것들을 처리하는 ‘땡처리’ 계약이었는데,
샌프란시스코 회의는 과거의 불행을 종식하기 위함이 아니라 장래에 닥칠 불행을 미리 막자는 취지로 열렸다
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채택한 협정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연합국 국민들은 일생
중에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원하고 인권, 존엄 및 가치, 평등
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며, 더 많은 자유 속에서 사회 진보와 생활수준 향상을 촉진할 것을 결의했다.” 이
협정문의 출발에는 평화에 대한 개념을 새롭고 적극적으로 해석한 기획자가 있었을 것이다.
 기획 단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아이디어와 기획을 혼동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글쓰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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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원칙이기도 한데, 글쓰기 초보들은 문제 의식이 마치 주제인 양 혼동하여 논지를 전개하다가 결국 실패
한다.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원제 : Don’t think of an elephant!,)』(삼인)에서 이 문제를 적
절히 지적했다. 이 책의 부제는 ‘미국의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이다. 미국의 진보세력은 유권자
들에게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집권 세력인 공화당이 만든 프레임(코끼리)을 비판하기만 하다
가 결국 실패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 원리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나쁜 정책이에요’라고 외치면
유권자들의 머릿속에는 오히려 코끼리라는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자리잡기 때문이다. 현재 프레임에 대해 불
만만 쏟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프레임을 제안할 것인가. 제안할 때도 바보처럼 고객에게 ‘어느 것이 좋아
요?’라고 물어선 곤란하다. ‘최선을 다해 연구해 보니 이 길로 가는 게 옳소. 자, 함께 갈 거요, 말 거요?’ 이렇
게 물어야 한다. 물론 같이 가자는 답을 얻기 위해 애쓰는 거지만, 콜럼버스와 포르투갈처럼 인연이 아니거나
한쪽의 준비가 덜 됐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핵심을 먼저 전달하고 세부 내용을 덧붙여라
 스티브 잡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잡스는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을 직접 주관하는데 그의 발표는 핵심 주
제를 간결하게 전달하기로 유명하다. 청중은 발표자의 배경 화면에 뜬 키워드를 보고 요지를 쉽게 파악한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도구다. 청중은 발표자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 놓을지 대강 짐작한 다음 상세한 설명을 들
으며 이를 검증한다. 어떤 발표자들은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이런저런 주변 이야기를 펼쳐 놓다가 마지막
에 핵심을 전달하고자 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전달 방식으로 대개 비극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할리우드에서 오고가는 각종 영화 제작 제안서의 첫 장에는 영화의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한 핵심 개념
(high concept)이 첨부돼 있다(예 : <ET> - 길 잃은 외계생명체가 지구 소년과 우정을 나누다가 고향별로 돌
아감). 제작자는 이 핵심 개념을 먼저 읽은 다음 검토 방향을 정한다. 장이머우 감독이 총연출을 맡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개막식 공연은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공자의 말을 소개하며 시작되었
다. 두 시간에 가까운 행사의 개념과 목적을 잘 보여준 간결하고 명료한 도입이다. 한 마디로 명확하게 정리
할 수 없다면 그런 기획은 설익었다는 증거이며 기획서 또한 지면 낭비에 불과하다.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끈 기획서 작성 교재인 『강력하고 간결한 한 장의 기획서(원제 : The
One-Page Proposal)』(을유문화사) 역시 이러한 주제를 담았다. 기획서 분
량을 맞추는 데만 몰두하지 말고 오히려 중요한 내용을 한 장으로 압축해 전
달하라는 것이다. 니콜라스 카의 저작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원제 : The
Shallows)』(청림출판)은 꼼꼼하게 읽던 독서 습관이 훑어보는 습관으로 바뀌
는 현대인의 속성을 다룬다. 대부분 사람들이 문서의 제목이나 첫 문장만 제
대로 읽고 나머지는 웹페이지 보듯 ‘스크롤’ 해 버린다는 것이다. 첫 발표 자리
에서 30장짜리 제안서를 정독해 줄 만한 고객이 몇이나 될까? 기획서를 작성
하는 사람은 이를테면 세 가지 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30장의 원본, 3장의
요약 문서, 그리고 3줄의 핵심 문장. 할리우드 영화 제안서처럼 3줄의 문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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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호기심을 유발하고 3장의 문서로 신뢰를 준 다음 30장의 원본으로 결정타를 날려라.


<서론-본론-결론> 형식은 잊어라. <결론–결론–결론>만 있을 뿐이다
 2010년도에 나는 글쓰기 책을 준비하면서 영국의 사회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형식을 본땄다.
『자유론』의 형식은 대략 이렇다. 첫 문장에 책 전체의 주제를 표명한다. “이 논문의 주제는 철학적 의미의 자
유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다.” 서론에는 책의 대략적 얼개를 담았다.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질과 한계를 규정하고자 한다. 자유와 권력의 대립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사회가 발전하
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지배자의 이익이 대립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그런
데 권력을 행사하는 인민은 그 권력이 행사되는 대상과 늘 같진 않다. 엄밀히 말하면 인민의 의지란 다수파의
의지로, 정치 영역에서 ‘다수의 횡포’는 가장 경계해야 할 해악이다.”
 서론 한두 쪽만 읽어도 이 논문이 주장하는 내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본론은 서론의 확장판이자 상세
버전으로, 풍부한 사례와 비유 등 구체적인 논거들이 나온다. 결론에서는 서론에서 제기하고 본론에서 입증
한 주제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강조한다. 이 책을 본따 나도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이 책의 주제는
공감입니다.” 나는 기획서에도 이런 형식이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획서의 개요를 작성할 때 결론에서
시작해 조금씩 살을 덧붙여가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의외로 쉽게 진행된다.


 1. 결론(핵심 개념)을 정한다.
 2. 결론에 부합하는 사례(증거)를 모으고 연결한다.
 3. 결론이 과연 적절한지 재검토하고 조정한다.
 4. 자료를 다시 정리한다.


추상적 구호 대신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라
 <매출 증대, 브랜드 인지도 제고, 고객 확보 및 니즈 충족, 방문자 증가, 점유율 향상, 윈–윈 전략, 시너지
효과>


 기획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다. 뻔한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독자와 고객은 지겹다. 이 추상적 구호 앞에
‘얼마나?’, ‘어떻게?’, ‘어떤?’ 같은 수식어를 붙여 보라. 그러면 이야기는 달라지고 생동감이 부여된다. 객관
적 데이터를 명기하는 것은 케케묵은 상투어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매출 증대’라고 쓰기보
다는 ‘매출 20퍼센트 증대’라고 쓰는 게 낫다. ‘매출 21.3퍼센트 증대’라고 쓰면 더 좋다. 정확한 정보를 주면
‘아, 20퍼센트 정도 늘어나는구나’, 또는 ‘어, 제법 많이 늘어나네?’라고 독자가 알아서 정리할 것이다. 독자가
잘 판단할 수 있도록 충실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저자의 역할이라는 점은 7월호와 8월호에서 여러 번 강조
한 내용이다. 용어를 선택할 때에도 주관적 표현 대신 객관적 표현을 사용하라. ‘지난 월드컵에서’라고 말하지
말고 ‘2006년 독일 월드컵’인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인지 밝혀라. ‘전년동기비’라고 적지 말고 ‘2010년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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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또는 ‘2010년 3/4분기에 비해’라고 적어라. ‘요즘 10대들의 소비 성향’이라고 표현하지 말고 ‘고양시 신일
중학교 학생들의 소비 성향’을 조사한 다음 그 데이터를 보여주라.
 다음은 광고 기획자 두 사람이 각기 기획서 주제를 정한 것이다. 어느 것이 채택될까?


  1. “신규 온라인 광고 마케팅 전략 수립 방안”
  2. “트위터, 미투데이 등 SNS 활용 광고 전략”


 2번이 채택될 것이다. 1번보다 대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어떤 고객층을 사업 기획의 대상으로 삼을지 정
할 때도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 <여성>이라고 정하기보다는 <엄마>라고 정하는 게 낫고, 그보다는
<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 그보다는 <수험생 엄마>로 정해야 사업 전략을 짜기 좋다. (김재호, 같은 책)


텍스트와 경합에서 이긴 이미지만 출연시켜라
 기획서에서 시각화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렇지만 도표나 이미지가 쓸데없이 많으면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일반 텍스트와 비교해서 효율성이 명백히 높다는 판단이 설 때만 이미
지 자료를 활용하자. 변화의 추이나 수치를 비교하고 분석하려면 도표나 그래프가 텍스트에 비해 월등히 효
율적일 것이다. 다큐멘터리 작가가 찍은 현실 사진보다 삽화가가 그린 카툰을 넣는 게 어떤 경우에는 훨씬 명
료할지도 모른다. 여기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맥락에 따라 형식을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키치’라는 개
념을 전달한다고 해 보자.(『월간미술』 2011년 7월호 참조) 이것을 텍스트만 이용해 전달하려면 이렇게 적으면
된다. “키치는 진정성(reality)이 결여된 껍데기뿐인 삶의 양식이다.” 미술 대학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발
표라면 그 정도 설명이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공학부 신입생들을 위한 교양 강좌라면 이미지를 이용한 시각
화 방식이 더 나을 것이다. 화면에 다음과 같은 이미지들을 먼저 보여주는 게 낫다. <갈비집의 헛도는 물레방
아, 대형 뷔페집에서 드레스 입고 ‘미스코리아 머리’ 한 삼인조 연주자들, 예식장 한쪽에 있는 조율 안 된 흰색
그랜드 피아노,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졸부집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독자의 수준에 맞춰
텍스트가 나을지 이미지로 보여주는 게 나을지 잘 판단해야 한다. 이미지가 텍스트보다 전달력이 뛰어날 것
이라는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
 아직도 제안서 첫 장을 ‘안녕하십니까? 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로 시작하는가? 비즈니스 문서에
경어체를 사용하면 내용을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된다. 또한 쓸데없이 경어체를 쓰면 전
문성이 떨어져 보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 점을 끝으로 덧붙이자면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이런 글을 남
겼다. “내가 죽으면 묘비에 이렇게 새겨 달라. <그는 세상에 많은 것을 제안했다. 우리는 그중에 몇 개를 받아
들였다.>” 우리는 때로 제안하는 쪽에, 때로 제안을 받는 쪽에 선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자 노력하면 아름다
운 공감대가 싹틀 것이며 세상을 바꾸는 근사한 제안이 현실로 바뀔 것이다. 다음 호에는 이메일에서 트위터
까지, 인터넷 글쓰기 전반에 관해 다룬다.   금융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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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비즈 라이팅(3) 기획서, 제안서 작성 지난 호에서 우리는 대화에서 시작해 예술 정보에 이르기까지 여러 경로를 통해 유용 한 자료를 모으는 방법에 관해 살펴보았다. 메모 기술을 적용해 자료를 정리할 때 뭔 가 보고 나서 메모하려 하지 말고 메모하려고 뭔가를 보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 조했으며, 단어나 문구보다는 완결된 한 문장으로 정리해 두어야 나중에 바로 글에 적 용할 수 있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이번 호에서는 기획서와 제안서 작성을 다룰 것이며 제안서는 기획서의 한 종류이므로 공통 내용을 다룰 때는 기획서 하나로 통칭하겠다. 이강룡 한겨레교육문화센터 글쓰기 강사·작가 TV 프로그램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가수 박정현이 출연했다. 방송 중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집에서 벗 어나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던 박정현의 생각과 신학 대학에 진학해 집에서 통학하기를 바랐던 아버지 (목사)의 의견이 대립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박정현은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한 시간 넘게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그 결과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되 집과 멀지 않은 대학을 택하고, 독립적 생활을 할 수 있는 기숙 사에 들어가되 주일마다 집(교회)에 오는 타협안을 이끌어냈다. 박정현도 부모도 모두 이 결과에 만족했다. 여기에 기획서의 핵심이 있다.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박정현은 협상 당사자의 두 입 장에서 생각해 보고, 현실적으로 희박한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공집합 상태를 교집합 상태로 전환하는 태도의 힘 기획서, 특히 특정 기업이나 고객에게 제출하는 제안서의 목적도 이와 같다. 공감대를 찾아내 효율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그렇다면 공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역지사지 태도에서 공 감이 싹튼다. 『디자인의 디자인』(안그라픽스)에서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친구가 겪은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공감의 원리를 말한다. 해외 여행을 간 친구가 입국 수속 중 여권을 건네받으면서 직원에게 ‘생일 축하한다 (Happy birthday!)’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입국 심사를 맡은 직원은 자기 나라를 찾은 여행객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 입장이 되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했다. 친구는 그 직원의 따뜻한 74
  • 2. 말 한마디 때문에 그 나라가 조금 더 좋아졌다고 했다. 짐작컨대 그 직원은 오늘도 여러 외국인들의 여권을 살펴본 뒤 ‘하루 앞서 미리 생일 축하합니다’ 또는 ‘늦었지만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도 건넬 것 같다. 훌륭 한 기획도 이런 태도에서 비롯하는 것 아닐까. 이왕이면 더 훌륭하게 표현할 방법은 없을지 항상 생각하자. 1퍼센트 가능성을 51퍼센트로 확장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제안서는 아마도 콜럼버스(콜론)가 에스파냐 왕실에 제출한 항해 기획서일 것이다. 15 세기까지 유럽의 바다를 지배한 포르투갈에 이어 16세기에는 새로운 강자인 에스파냐가 세계 해상 패권을 차 지하는데, 이러한 권력 이동을 가능케 한 결정적 계기는 이사벨라 여왕의 후원 아래 1492년부터 실시된 콜럼 버스 원정대의 신대륙 탐험이었다. 콜럼버스는 탐험 계획과 비용, 그리고 탐험이 성공하면 이해 당사자가 얻 게 될 경제적 이익에 대한 분배 비율을 상세히 기록한 제안서를 이미 수년 전 이사벨라 여왕에게 제출했다. 여왕은 제안 내용을 신중히 검토하고 콜럼버스의 프리젠테이션을 경청한 다음 심사숙고 끝에 허락했다. 여왕 은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수익의 10퍼센트와 신대륙의 총독직을 주는 조건으로 콜럼버스와 계약을 체결한 다. 전 세계 역사를 뒤바꿀 투자 계획이 결정된 것이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나중에 포르투갈은 땅을 치고 후 회했다. 이사벨라 여왕에 앞서 1484년 포르투갈의 주앙 2세에게 이미 콜럼버스가 투자 제안서를 제출했었기 때문이다. 주앙 2세가 조금 더 마음을 열었거나, 콜럼버스가 조금 더 끈질기게 포르투갈 왕실을 설득했다면 공감대는 조금 더 넓어졌을지도 모르지만 지나간 역사에 ‘만약에’라는 단서를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점은 기 획서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제안하는 사람이나 투자하는 사람 중 어느 한쪽이라도 현실적 준비가 안 된 상 태라면 기획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채택된 기획서 중에 실제 프로젝트 성공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 히 일부이니까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오랜 시간에 걸쳐 대형 음반사들을 상대로 자신의 기획을 꾸준히 제안하고 설득함으로써 끝 내 성공을 거둔 이야기는 기획의 모범 사례로 업계에 회자된다. 잡스와 애플사의 현재를 있게 한 결정적 계기 는 온라인 음원시장 아이튠즈 서비스의 성공이다. 아이팟(하드웨어)과 아이튠즈(소프트웨어)의 강력한 결합 이 음악 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 당시 디지털(온라인) 음원을 확보하기 위해 대형 음반사들과 제휴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MP3 파일의 유통은 모두 불법으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유통 행태가 음반 시장 질 서를 망쳐놓는다고 굳게 믿고 있던 대형 음반사들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뒤바뀐 것은 잡스의 끈질긴 노력 덕 분이었다. 잡스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온라인 음원 거래가 음악 시장을 더욱 키울 것이고 침체된 음원 판매 시 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며 대형 음반사를 꾸준히 설득했다. 2년 가까이 진행된 협상은 대성공으로 마무 리되었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뒤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창의적 발상과 굳은 신념이 그 험난한 과정을 버티게끔 한다. 2001년 아이팟을 소개하면서 잡스는 이렇게 말문을 열였다. “우리는 음악을 택했습니다. 우리 모두 음 악을 사랑하니까요.” 그는 ‘부정문이나 부정적 메시지를 피하라’는 기획과 발표의 중요한 기본 원칙에도 충실 했다. 1109 The Banker 75
  • 3. 비즈 라이팅(3) 개념(콘셉트)을 발명하기보다 발견하려고 노력하라 사과 산지로 유명한 일본 아오모리 현에 1991년 태풍이 불어닥쳐 수확을 앞둔 사과의 90퍼센트가 땅에 떨 어져버렸다. 한해 농사를 다 망쳤다고 낙심할 법도 하지만, 그들은 절망하는 대신 이 상황을 유리하게 바꿀 아이디어를 모색했다. 그 결과 태풍에도 견딘 10퍼센트 사과를 ‘떨어지지 않은 사과’라 이름붙인 후 수험생을 대상으로 비싼 값에 팔았다. 그해 아오모리의 사과 농사는 ‘성공’했다. 어찌할 수 없는 90퍼센트에 집착하지 않고 손안에 있는 10퍼센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것이다. 기획서가 담고자 하는 모든 개념은 이미 사전 안에, 우리의 삶속에 다 있다. 저명한 카피라이터 헬 스티빈 즈는 말한다. “아이디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을 파서 캐내는 것이다.” (김재호, 『창의적 기획 법』, 이코북) 찾으려는 노력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그 기회가 온다. 아예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 미 우리 주변에 있는 것, 잠시 잊고 있던 어떤 것을 발굴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축구장에서 광고료가 가장 비싼 자리는 어디일까? 중계석 맞은편도, 골대 뒤도 아니다. 그곳은 바로 선수 들의 가슴이다. 명문 프로축구팀 유니폼 앞에 광고를 게재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삼성이 첼시 유니폼에 3년 간 자사의 브랜드를 새겨넣는 조건으로 지불한 금액이 990억 원이다. 축구팀의 실력이나 지명도에 따라 이 광고료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면 세계 최고 축구팀인 FC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에는 어떤 광고가 실려 있을까?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가슴에 유니세프 광고를 달고 뛴다. 2006년 9월 FC 바르셀로나는 유니세프와 후원 계약을 맺었다. 돈을 받 고 광고를 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유니세프를 전세계에 알리면서 에이즈에 노출된 어린이들을 위해 구단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구단의 이미지는 더욱 좋아졌고 선수들과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자부심과 애정은 높아졌으며 전 세계 팬들도 찬사를 보냈다. FC 바르셀로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가치 를 얻은 것이다. ‘스폰서십’이라는 기존 고정관념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거둔 성과다. 더 훌륭한 가치를 이끌어 내려 노력하라 프랑스 영화감독 뤽 베송은 영화 <잔다르크 이야기>를 민족을 구원하는 소명을 지닌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 라 여성을 유린하는 남성 전쟁광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로 연출함으로써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팬들 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역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일깨우고자 하는 시도에서 나왔다. 1945년 6월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평화 회담이 열렸다. 이 회의는 이전에 개최된 평화 회담과는 성 격이 달랐다. 지금까지 평화 회담들은 휴전 협정이거나 전쟁이 남긴 것들을 처리하는 ‘땡처리’ 계약이었는데, 샌프란시스코 회의는 과거의 불행을 종식하기 위함이 아니라 장래에 닥칠 불행을 미리 막자는 취지로 열렸다 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채택한 협정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연합국 국민들은 일생 중에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원하고 인권, 존엄 및 가치, 평등 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며, 더 많은 자유 속에서 사회 진보와 생활수준 향상을 촉진할 것을 결의했다.” 이 협정문의 출발에는 평화에 대한 개념을 새롭고 적극적으로 해석한 기획자가 있었을 것이다. 기획 단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아이디어와 기획을 혼동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글쓰기의 76
  • 4. 일반 원칙이기도 한데, 글쓰기 초보들은 문제 의식이 마치 주제인 양 혼동하여 논지를 전개하다가 결국 실패 한다.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원제 : Don’t think of an elephant!,)』(삼인)에서 이 문제를 적 절히 지적했다. 이 책의 부제는 ‘미국의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이다. 미국의 진보세력은 유권자 들에게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집권 세력인 공화당이 만든 프레임(코끼리)을 비판하기만 하다 가 결국 실패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 원리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나쁜 정책이에요’라고 외치면 유권자들의 머릿속에는 오히려 코끼리라는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자리잡기 때문이다. 현재 프레임에 대해 불 만만 쏟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프레임을 제안할 것인가. 제안할 때도 바보처럼 고객에게 ‘어느 것이 좋아 요?’라고 물어선 곤란하다. ‘최선을 다해 연구해 보니 이 길로 가는 게 옳소. 자, 함께 갈 거요, 말 거요?’ 이렇 게 물어야 한다. 물론 같이 가자는 답을 얻기 위해 애쓰는 거지만, 콜럼버스와 포르투갈처럼 인연이 아니거나 한쪽의 준비가 덜 됐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핵심을 먼저 전달하고 세부 내용을 덧붙여라 스티브 잡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잡스는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을 직접 주관하는데 그의 발표는 핵심 주 제를 간결하게 전달하기로 유명하다. 청중은 발표자의 배경 화면에 뜬 키워드를 보고 요지를 쉽게 파악한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도구다. 청중은 발표자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 놓을지 대강 짐작한 다음 상세한 설명을 들 으며 이를 검증한다. 어떤 발표자들은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이런저런 주변 이야기를 펼쳐 놓다가 마지막 에 핵심을 전달하고자 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전달 방식으로 대개 비극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할리우드에서 오고가는 각종 영화 제작 제안서의 첫 장에는 영화의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한 핵심 개념 (high concept)이 첨부돼 있다(예 : <ET> - 길 잃은 외계생명체가 지구 소년과 우정을 나누다가 고향별로 돌 아감). 제작자는 이 핵심 개념을 먼저 읽은 다음 검토 방향을 정한다. 장이머우 감독이 총연출을 맡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개막식 공연은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공자의 말을 소개하며 시작되었 다. 두 시간에 가까운 행사의 개념과 목적을 잘 보여준 간결하고 명료한 도입이다. 한 마디로 명확하게 정리 할 수 없다면 그런 기획은 설익었다는 증거이며 기획서 또한 지면 낭비에 불과하다.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끈 기획서 작성 교재인 『강력하고 간결한 한 장의 기획서(원제 : The One-Page Proposal)』(을유문화사) 역시 이러한 주제를 담았다. 기획서 분 량을 맞추는 데만 몰두하지 말고 오히려 중요한 내용을 한 장으로 압축해 전 달하라는 것이다. 니콜라스 카의 저작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원제 : The Shallows)』(청림출판)은 꼼꼼하게 읽던 독서 습관이 훑어보는 습관으로 바뀌 는 현대인의 속성을 다룬다. 대부분 사람들이 문서의 제목이나 첫 문장만 제 대로 읽고 나머지는 웹페이지 보듯 ‘스크롤’ 해 버린다는 것이다. 첫 발표 자리 에서 30장짜리 제안서를 정독해 줄 만한 고객이 몇이나 될까? 기획서를 작성 하는 사람은 이를테면 세 가지 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30장의 원본, 3장의 요약 문서, 그리고 3줄의 핵심 문장. 할리우드 영화 제안서처럼 3줄의 문장으 1109 The Banker 77
  • 5. 비즈 라이팅(3) 로 호기심을 유발하고 3장의 문서로 신뢰를 준 다음 30장의 원본으로 결정타를 날려라. <서론-본론-결론> 형식은 잊어라. <결론–결론–결론>만 있을 뿐이다 2010년도에 나는 글쓰기 책을 준비하면서 영국의 사회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형식을 본땄다. 『자유론』의 형식은 대략 이렇다. 첫 문장에 책 전체의 주제를 표명한다. “이 논문의 주제는 철학적 의미의 자 유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다.” 서론에는 책의 대략적 얼개를 담았다.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질과 한계를 규정하고자 한다. 자유와 권력의 대립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사회가 발전하 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지배자의 이익이 대립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그런 데 권력을 행사하는 인민은 그 권력이 행사되는 대상과 늘 같진 않다. 엄밀히 말하면 인민의 의지란 다수파의 의지로, 정치 영역에서 ‘다수의 횡포’는 가장 경계해야 할 해악이다.” 서론 한두 쪽만 읽어도 이 논문이 주장하는 내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본론은 서론의 확장판이자 상세 버전으로, 풍부한 사례와 비유 등 구체적인 논거들이 나온다. 결론에서는 서론에서 제기하고 본론에서 입증 한 주제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강조한다. 이 책을 본따 나도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이 책의 주제는 공감입니다.” 나는 기획서에도 이런 형식이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획서의 개요를 작성할 때 결론에서 시작해 조금씩 살을 덧붙여가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의외로 쉽게 진행된다. 1. 결론(핵심 개념)을 정한다. 2. 결론에 부합하는 사례(증거)를 모으고 연결한다. 3. 결론이 과연 적절한지 재검토하고 조정한다. 4. 자료를 다시 정리한다. 추상적 구호 대신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라 <매출 증대, 브랜드 인지도 제고, 고객 확보 및 니즈 충족, 방문자 증가, 점유율 향상, 윈–윈 전략, 시너지 효과> 기획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다. 뻔한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독자와 고객은 지겹다. 이 추상적 구호 앞에 ‘얼마나?’, ‘어떻게?’, ‘어떤?’ 같은 수식어를 붙여 보라. 그러면 이야기는 달라지고 생동감이 부여된다. 객관 적 데이터를 명기하는 것은 케케묵은 상투어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매출 증대’라고 쓰기보 다는 ‘매출 20퍼센트 증대’라고 쓰는 게 낫다. ‘매출 21.3퍼센트 증대’라고 쓰면 더 좋다. 정확한 정보를 주면 ‘아, 20퍼센트 정도 늘어나는구나’, 또는 ‘어, 제법 많이 늘어나네?’라고 독자가 알아서 정리할 것이다. 독자가 잘 판단할 수 있도록 충실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저자의 역할이라는 점은 7월호와 8월호에서 여러 번 강조 한 내용이다. 용어를 선택할 때에도 주관적 표현 대신 객관적 표현을 사용하라. ‘지난 월드컵에서’라고 말하지 말고 ‘2006년 독일 월드컵’인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인지 밝혀라. ‘전년동기비’라고 적지 말고 ‘2010년에 비 78
  • 6. 해’ 또는 ‘2010년 3/4분기에 비해’라고 적어라. ‘요즘 10대들의 소비 성향’이라고 표현하지 말고 ‘고양시 신일 중학교 학생들의 소비 성향’을 조사한 다음 그 데이터를 보여주라. 다음은 광고 기획자 두 사람이 각기 기획서 주제를 정한 것이다. 어느 것이 채택될까? 1. “신규 온라인 광고 마케팅 전략 수립 방안” 2. “트위터, 미투데이 등 SNS 활용 광고 전략” 2번이 채택될 것이다. 1번보다 대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어떤 고객층을 사업 기획의 대상으로 삼을지 정 할 때도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 <여성>이라고 정하기보다는 <엄마>라고 정하는 게 낫고, 그보다는 <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 그보다는 <수험생 엄마>로 정해야 사업 전략을 짜기 좋다. (김재호, 같은 책) 텍스트와 경합에서 이긴 이미지만 출연시켜라 기획서에서 시각화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렇지만 도표나 이미지가 쓸데없이 많으면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일반 텍스트와 비교해서 효율성이 명백히 높다는 판단이 설 때만 이미 지 자료를 활용하자. 변화의 추이나 수치를 비교하고 분석하려면 도표나 그래프가 텍스트에 비해 월등히 효 율적일 것이다. 다큐멘터리 작가가 찍은 현실 사진보다 삽화가가 그린 카툰을 넣는 게 어떤 경우에는 훨씬 명 료할지도 모른다. 여기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맥락에 따라 형식을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키치’라는 개 념을 전달한다고 해 보자.(『월간미술』 2011년 7월호 참조) 이것을 텍스트만 이용해 전달하려면 이렇게 적으면 된다. “키치는 진정성(reality)이 결여된 껍데기뿐인 삶의 양식이다.” 미술 대학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발 표라면 그 정도 설명이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공학부 신입생들을 위한 교양 강좌라면 이미지를 이용한 시각 화 방식이 더 나을 것이다. 화면에 다음과 같은 이미지들을 먼저 보여주는 게 낫다. <갈비집의 헛도는 물레방 아, 대형 뷔페집에서 드레스 입고 ‘미스코리아 머리’ 한 삼인조 연주자들, 예식장 한쪽에 있는 조율 안 된 흰색 그랜드 피아노,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졸부집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독자의 수준에 맞춰 텍스트가 나을지 이미지로 보여주는 게 나을지 잘 판단해야 한다. 이미지가 텍스트보다 전달력이 뛰어날 것 이라는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 아직도 제안서 첫 장을 ‘안녕하십니까? 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로 시작하는가? 비즈니스 문서에 경어체를 사용하면 내용을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된다. 또한 쓸데없이 경어체를 쓰면 전 문성이 떨어져 보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 점을 끝으로 덧붙이자면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이런 글을 남 겼다. “내가 죽으면 묘비에 이렇게 새겨 달라. <그는 세상에 많은 것을 제안했다. 우리는 그중에 몇 개를 받아 들였다.>” 우리는 때로 제안하는 쪽에, 때로 제안을 받는 쪽에 선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자 노력하면 아름다 운 공감대가 싹틀 것이며 세상을 바꾸는 근사한 제안이 현실로 바뀔 것이다. 다음 호에는 이메일에서 트위터 까지, 인터넷 글쓰기 전반에 관해 다룬다. 금융 <다음 호에 계속> 1109 The Banker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