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설 고향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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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설 고향가는 길

  1. 1. 문화체육관광부 2013 설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아빠 어렸을 적에… 그땐 그랬지 뱀띠들이 바라는 2013 대한민국 올 내 고향에선 어떤 축제가 벌어질까 나눔과 사랑이 넘치는 푸드뱅크
  2. 2. 이 한 편의 시 2013 설 CONTENTS | 문화체육관광부 |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겨울 보리밭에 가면 겨울 보리밭에 가면 맑은 가난과 속삭여 섬진 보리밭 겨울로 가면 아무리 삶이 쓰라려도 고개 숙이지 않는 목숨의 장엄한 지붕들 있다 살아갈수록 환하게 드세어지는 황금의 우렁찬 뿌리들 있다 살아라, 살아라 살을 에이며 02 명사 에세이 50 생활공감 종소리로 씽씽씽 떠밀려 가는 시인 문정희의 ‘설’ 심심치 않은 앱 안전한 귀성길 눈보라 저 거친 머리 위에 04 포토 에세이 류근 설음식 이야기 산골마을의 ‘설’ 중앙대학교 예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55 이 한 장의 사진 더 큰 봄 있다 2010년 시집 <상처적 체질> 발간. 08 한국의 재발견 나눔의 情 아빠 어렸을 적에… 우리의 恨 ‘아리랑’ 58 고향 카툰 그 시절 설날 풍경 14 특별한 만남 뱀띠들의 수다 60 그림 동화 보고 싶은 나라 20 행복! 국민시대 국민과 함께 더 큰 대한민국 64 낱말 풀고 상품 타고 서민을 위한 맞춤형 정책 새정부에 바란다 정책 캘린더 표지 이야기 우리 설날은 차례와 세배, 덕담, 명절 음식, 그리고 액 운을 떨치고 복을 비는 다채로운 세시풍속이 어우러지는 날이었 34 지금, 내 고향에선 다. 시대가 바뀌면서 설 풍속도 바뀌고 있지만, 가족 간에 나누는 따뜻한 정(情)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표지 배경의 한자 그림은 미리 짜보는 휴가 계획 ‘승경도’ 놀이의 말판으로 주사위인 ‘윤목(숫자방망이)’을 던져 점 40 행복공감 차 벼슬을 높여가는 조선시대 민속놀이다. 행복한 귀성길 ● 발행처 문화체육관광부 www.mcst.go.kr ● 발행인 최광식 ● 발행일 2013. 2. 4 르포-나눔이 있는 음식은행, 푸드뱅크 일러스트·유현호 ● 제작기획 홍보콘텐츠과 02-3704-9987 ● 제작협력 조선뉴스프레스 ● 인쇄제본 양정인쇄(주) 깔깔 유머·신세대 언어2
  3. 3. 명사 에세이 시인 문정희의 ‘설’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간 마음을 “흰 무명옷 갈아입고 난 가 나를 부른 것이다. 아니, 나를 부른 것은 치자꽃 향기가 튀어나올 것 같기도 했다. 을 훔치고 말았다.마음”이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서정주 시인의 유명한 아니라 바로 노부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생생한 고향 사 나는 뒷마당 쪽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큰 감나무 한쪽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흰 무명옷 갈아입고 난 마음”을<수대동시(水帶洞詩)>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수대동은 투리였는지도 모른다. 어설픈 가공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에 솥을 걸고 물을 데워 장독대 사이에서 목욕했던 자리도 실감했다. “별 생겨나듯 돌아오는 사투리”로 그리운 이름물론 시인의 고향 이름이다. 원형 그대로의 사투리를 그분들은 지니고 있었다. 슬쩍 훔쳐보았다. 아직 완전히 폐가(廢家)가 된 것은 아니 들을 속으로 하나하나 불러보았다. 고향이란 무엇일까. 사람의 가슴 깊은 밑바닥에 그리 그 어떤 문화유산보다 귀한 사투리를 위안처럼 듣고 지만,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빈 고향집을 돌아보는 것은 오랜 도시의 삶과 어지러운 속도들이 조금 정화되는움으로 살아 있는 곳, 태어나고 자란 곳을 우리는 고향이 서 있다가 나도 몰래 치자꽃 화분 두 개를 사들었다. 한쪽 아픈 일이었다. 반쯤 허물린 토방 돌 틈을 비집고 제비꽃이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쩌면 실향민(失鄕民)라 부른다. 눈에 안대를 한데다가 핸드백과 약봉지를 들고 서 있는 처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탐방팀 중 몇 사람은 그것을 열심 이 아니었다. 마음속에 이렇듯 ‘뜨거이’ 살아있는 고향을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은 대부분이 실향민(失鄕民)이 지였지만, 치자꽃 화분을 양손에 나눠 들고 집으로 오며 히 사진에 담았다. 가졌지 않는가.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는 절절하게 고향을 그리고 있었다. “저 창문을 좀 보세요.” 명절이면 고향을 향한 행렬로 사방의 길들이 모두 막사람은 참 드물다. 그러고 보니 고향을 다녀온 지가 언제였던가. 부모님 내가 안방 쪽으로 난 네모난 창을 가리켰다. 히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행렬이 한없이 부럽다. 이 그곳에 안 계신 후로 고향을 찾는 발길도 아주 뜸해졌 “어렸을 때 개기월식을 처음 바라본 창이에요.” 고향은 돌아가고 싶다는 향수와 돌아갈 수 없는 현실비어 있는 고향집… 부모님께서 금방 달려나오실 듯 었다. 하지만 아직도 지상에서 가장 그리운 곳이 그곳이다. 나의 말에 마치 진귀한 사실이라도 발견한 양 사람들 속에 존재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아직 돌얼마 전 갑자기 눈알이 충혈되어 급하게 동네 안과를 찾은 고향을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어린아이가 된다. 이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나무 숲에서 새들이 울었다. 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더구나 정다운 혈육이적이 있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지만, 몇 가지 주의 사항 몇 년 전, 남도 쪽 문학탐방팀과 함께 고향집에 들르게 사람만 나이가 드는 것이 아니라 고향도 나이가 드는 아직도 고향에 살아 있다면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과 함께 처방받은 약이 한 뭉치였다. 그것을 손에 들고 더 되었다. 내 고향집은 현재 빈집으로 남아 있어 몇 번이고 구나 하는 생각이 절절히 들었다. 행복이다.듬더듬 골목을 걸어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그리운 고향 사양했지만, 몇 사람이 강력하게 우기는 바람에 그냥 마음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한 가장 순수하고 신성한 공간냄새가 나를 흔들었다. 을 다잡고 동행했다. 그 집이 없어도 우린 실향민이 아니다 이 고향이다. 고향을 향한 길은 그래서 멀지만, 한없이 가 내 눈 한쪽은 안대로 가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선명하 나는 마당에 들어서며 속으로 “엄마!”하고 불렀다. 명 마루에 앉아 기념 촬영을 하고 기차역으로 나왔다. 이발소 슴 설렐 수밖에 없다. 고게 고향의 느티나무와 울타리와 우물가가 순간 떠올랐다. 절 때 서울에서 내려오면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뛰어 가 있고, 구멍가게와 술도가가 있던 곳, 봄에는 벚꽃이 만 글·문정희 일러스트·이철원나도 몰래 고향 냄새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오던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구수한 음식 냄새와 두 발하던 역이었다. 이제는 역무원이 없는 무인(無人) 간이 골목 끝 주차장 한쪽에 치자꽃 화분을 잔뜩 실은 트럭 런거리는 정겨운 사투리들은 모두 흩어지고 없었다. 아버 역이 되었다고 했다. 하루에 단 한번 무궁화호가 잠시 머이 한 대 서 있었다. 초로의 노부부가 싣고 온 치자꽃 향기 지의 엄하지만 한없이 친근하던 기침 소리가 방금이라도 물 뿐인 역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도 몰래 눈물지상에서 가장 그리운 그곳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문정희 1947년생. 진명여고ㆍ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서울여대 대학원 현대문학 박사. 동국대 석좌교수.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천상병 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문학부문, 2008년) 등 수상.2 2013 설 고향가는 길 3
  4. 4. 포토 에세이 산골마을의 ‘설’ 2 4 1 3우리 강아지들 언제 올라나~장작불 지펴야겠네 5 1 ‌어서들 내려오거라! 가족을 기다리는 노부부의 저녁은 그렇게 저물어간다. 2 ‌충북 단양 산골. 지붕 위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당 가마솥은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로 분주하다. 3 ‌화롯불에서는 전이 먹음직스럽게 익어간다. 4 ‌손주가 오면 주려고 지난가을에 딴 감이 어느새 먹음직설이 가까워지면서 겨울잠 자듯 고요하던 산골에 생기가 물고물한 손자들 생각만 하면 괜히 기분이 좋다. 입에서 미 스러운 홍시가 되었다.돈다. 겨우내 베를 짜던 어머니는 가마솥 아궁이에 장작불 소가 떠나질 않고, 허리가 언제 아팠나 싶다. 어미에겐 그 5 ‌겨우내 아궁이에 지필 장작더미만큼이나 할머니의 표정이 푸근하다.을 지핀다. 며칠 후면 내려올 자식 생각에 마음이 바쁘다. 저 새끼들이 보약이다. 6 ‌외양간에서 한겨울을 넘기는 소도 고향을 지켜온손자들이 좋아할 조청도 고아야 하고, 묵도 쑤어야 한다. 장작불 탓에 조청색이 된 아랫목에선 찹쌀 반죽으로 노부부에게는 한 식구나 매한가지이다. 7 ‌눈길을 밟으며 가는 고향길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떡도 해야 하고, 전도 부쳐야 한다. 할 일이 태산이지만 고 빚은 유과본이 단단하게 익어가는 중이다. 7 6 이다.4 2013 설 고향가는 길 5
  5. 5. 8 10 8 ‌ 매 타기에 푹 빠진 아이들은 해 넘어가는 줄 모른다. 썰 9 ‌ 식, 손주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발길은 벌써 동구 밖으로 향해 있다. 자 10 남 함양 지리산 자락 마을. 조용한 산골 마을에도 설이 되면 어김없이 가족 ‌ 경 들의 웃음꽃이 피어난다. 11 설이 그친 뒤 녹은 눈이 다시 나뭇가지에 얼어붙으면서 수정처럼 맑은 ‌ 폭 얼음꽃이 피었다. 12 도 밭도 도로도 지붕도 온통 하얀색. 그래도 고향을 향하는 발걸음은 설 ‌ 논 렘으로 가뿐하다. 11 12 할머니는 화로(火爐) 가득 참나무 잉걸(뜨거운 숯불) 싶더니 어느새 아버지를 앞세워 마을회관으로 향한다. 마 마당 한쪽에 멍석이 깔리고 삶은 돼지고기와 김치, 막 을 담는다. 그 위에 석쇠를 놓고 잘 마른 유과본을 올린 을회관 앞 너른 마당에는 커다란 맷돌이 있고, 온 동네 사 걸리가 차려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에 막걸리 한 다. 단단하던 유과본이 목화 벌어지듯 푹신하고 탐스럽 람들이 불린 콩을 한 소쿠리씩 들고 나와 소를 반긴다. 잔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설 분위기가 단내나는 연 게 부풀어 오른다. 어머니가 장단 맞추듯 구워낸 유과본 “이랴, 이랴!” 아버지가 어처구니에 묶인 소를 재촉하 시처럼 한껏 무르익는다. 에 조청을 바르고 눈처럼 흰 쌀 뻥튀기 가루를 뿌려댄다. 자 맷돌이 돌기 시작한다. 꼬리잡기 놀이를 하듯 소를 따 자식을 기다리는 노부부의 마음은 벌써 동구 밖에 마 완성된 유과가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인 듯 차곡차곡 쌓 라 도는 조무래기 아이들 웃음소리에 동네가 시끌벅적하 중 나가 있다. 사립문 밖 마을 길과 시계를 번갈아 보며 설 인다. 다. 아낙들은 부지런히 맷돌에 콩을 붓고, 갈린 콩물을 가 레는 맘을 숨기지 못한다. 손자들이 묵을 방에 불 넣는 것 사랑방에 앉아 가마니와 멍석 짜던 아버지도 자리를 마솥에 끓인다. 뭉글뭉글 흰 목화솜 같은 순두부가 피어오 도 잊지 않는다. 산골 설의 행복은 기다림과 설렘이다. 고 9 털고 일어난다. 외양간에 매어놓은 소가 몇 번 울부짖는가 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단단하고 고소한 두부가 완성된다. 글·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사진·서경리 기자, 김승완 기자, 조선일보 DB 6 2013 설 고향가는 길 7
  6. 6. 한국의 재발견 아빠 어렸을 적에… 4 2 3 5 6 1 7 8 9 사진 한 장에 부모생각 물건 하나에 눈물 뚝 1 지게에 나무를 한 짐 지고 귀가하는 촌로. 이렇듯 부지런히 땔감을 장만하지 않으면 한겨울을 나기 어려웠다. ‌ 2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쓰던 풍구. 풍구를 사용하면 장작의 화력을 몇 배로 올릴 수 있다. ‌ 3 재봉틀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혼수품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아낙네들의 보물과 같은 존재였다. ‌ 4 남자아이들의 필수 놀이도구인 유리구슬. 구슬치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 5 ‌‌낡은 트랜지스터라디오.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는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서 1959년 11월 생산한 진공관식 오래된 흑백사진이나 옛날 물건은 수다스럽지 않지만, 이 세상 어느 이야기꾼보다 많 라디오로 당시 가격 쌀 50가마니에 해당하는 고가품이었다. 6 한 통화에 20원이었던 빨간색 다이얼식 공중전화(1980년대). ‌ 10 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걸어온 고단 7 ‌ 1971년 수원에서 열린 대통령 후보의 연설회. 한 청중이 짐수레 자전거에 막걸리 통(말통)을 쌓아놓고 앉아 연설을 듣고 있다. 했던 삶의 모습이 녹아 있고, 옛 물건 하나하나에는 서민들의 애환이 스며 있기 8 기아산업에서 1967년부터 생산한 삼륜 용달차(T2000). 화물 등을 싣고 경제 발전 현장 곳곳을 누볐다. 1969년에 나온 소형 삼륜차(T600)는 연탄·분뇨·용달차 등 ‌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 주위에서 사라졌지만, 고맙고 다정한 것들이었다. 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9 1970년대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도심 속의 소달구지. 연장과 달구지 구조로 봐서 두엄을 나르는 듯하다. ‌ 글·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사진·유창우 기자, 서경리 기자, 조선일보 DB 10 안과의사였던 故 공병우 박사가 1949년에 개발한 세벌식 한글 타자기.8 2013 설 고향가는 길 9
  7. 7. 13 1511 12 14 16 17 18 11 학교 앞 골목에서 아이스케키(아이스크림)를 사 먹는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15 동네 꼬마들이 이동식 놀이기구인 목마를 타고 있다. 주로 리어카에 이동식 놀이기구를 설치해 동네를 돌곤 했다. ‌ 12 옷이나 이불을 세탁한 후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을 하면 천이 견고해지고 매끄러워진다. ‌ 16 우리 민족에게 겨울철 화로는 상하 귀천 없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물건이다. ‌ 13 1980년대는 잡지의 전성시대였다. 1968년부터 1991년까지 발행된 선데이 서울은 대중문화를 다룬 연예주간지였다. ‌ 17 집집마다 상수도 시설이 들어서기 전, 아낙들은 동네 우물에 모여 물을 긷거나, 빨래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 14 아리랑, 태양, 한산도, 환희 등 1960~70년대 생산된 담배들. ‌ 18 딱지치기는 아이들이 가장 즐겨한 놀이. 동네 친구 딱지를 죄다 따서 한가득 들고 집에 올 때면 개선장군이 된 듯했다. ‌ 19 1970~1980년대에 취사도구로 인기를 끌었던 석유풍로(곤로). ‌ 머리에 장거리를 가득 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여인의 꿈틀대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자식의 등록금 마련을 위해 6 25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젊은이들은 고향을 · 우리는 지금 비록 최첨단 뒷모습, 그리고 그 여인을 담은 사진 한 장을 보노라면 집 밤낮없이 고된 노동을 하는 부모님도, 동생의 학비를 보태 떠나 도시에서 새로운 터를 잡았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고 정보통신 시대를 살고 있지 에서 목이 빠져라 엄마를 기다릴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모 기 위해 도회지로 떠난 누님도, 날품팔이 아저씨도, 신문배 향’은 어머니의 품과 같이 푸근한 특별한 의미로 가슴 깊 만, 주위를 둘러보면 치열하 습까지 그려지는 듯하다. 봄날 고즈넉한 햇살 아래 밭을 달 소년도 가슴 한켠에는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아질 것’ 이 각인되어 있다. 게 살았던 우리의 지난 시절 갈고 있는 촌로(村老)는 바로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이라는 희망을 품고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헤쳐나 이 군데군데 화석처럼 남아 19 아니었던가. 갔다. 그래 그래, 그땐 그랬어! 있다. 서울의 어느 뒷골목을 지날 때면 마치 시간이 1970 어느 식당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나뒹구는 재봉 우리의 1950년대는 전쟁의 잿더미에서 살아남기 위해 1980년대는 배고픔에서 완전히 벗어난 시대였다. 부모의 년대 어느 쯤에서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오래된 틀은 또 어떤가. 아이를 굶기지 않기 위해 밤낮없이 재봉틀 몸부림친 시기였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자신의 모 가없는 희생으로 공부한 자녀는 1970년대 산업화와 1980 이발관 간판, 수십 년 된 식당, 골동품 거리, 시장의 노점상 을 돌렸을 어느 홀어머니의 눈물이 동시에 묻어나오는 듯 든 것을 희생하며 자식을 공부시켰다. 전쟁의 폐허로 남은 년대 민주화의 주역이 되었다. 가난이 물러가자 문화생활 할머니도 마치 시간을 예전으로 되돌려놓은 듯한 착각을 하다. 것이 하나 없는 나라였지만, 배움의 열기는 여느 선진국 못 에 대한 욕구가 급격하게 팽창했다. 프로야구가 국민 스포 불러일으킨다. ‘보릿고개’로 대변되던 가난은 1970년대 중반까지 이 지않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과 건설의 츠로 성장했고, 잡지와 출판 시장도 전성기를 맞았다. 전통 자고 나면 뭔가 바뀌는 세상이라 바뀌지 않는 것에 대 어졌다. 그래서 우리의 지난 시절을 꿰뚫고 있는 공통의 열기가 온 나라를 가득 덮었다. 사람들은 일거리를 찾아 과 첨단, 산업화와 민주화, 희망과 절망, 아날로그와 디지 한 고마움과 향수가 저절로 묻어난다. 우리가 옛 사진과 단어와 추억은 바로 ‘가난’이다. 하지만 우리의 가난은 결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명절이면 고 털이 뒤섞여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었던 1980년대는 언제나 물건에 애틋한 정을 느끼는 것은 지금 이 순간도 결국은 먼 코 ‘절망’을 의미하지 않았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동시에 향을 찾는 귀성전쟁이 새로운 명절 풍속도로 등장했다.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훗날의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리라. 고 10 2013 설 고향가는 길 11
  8. 8. 한국의 재발견 우리의 恨 ‘아리랑’ 1896년 우리나라 최초 영문잡지 코리안 리포지터리 2월호 내 1 2 3 ‘한국의 성악’이라는 글 속에 실린 최초의 아리랑 악보. 1. 춘사(春史) 나운규. 그가 직접 제작·감독·주연한 아리랑〉은 민족혼을 노래한 한국영화의 뿌리다. 사진·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2. ‘아리랑’이 실린 미국 포크송의 대부 피트 시거의 음반. 3. 6·25전쟁 당시 참전 군인들에게 기념품으로 판매한 아리랑 실크 스카프.아리랑, 한민족의 DNA 의 노래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발매된 이래 독일과 영국에서도 출반되어 많은 사람을 사은근, 끈기, 한, 위안, 극복, 희망… 광복의 기쁨도 잠깐, 6 25전쟁이 일어나자 해외 언론 · 로잡았다. 당시 나온 음반에는 그가 아리랑을 부르기 전 은 매일 6 25전쟁과 함께 우리 민족의 고단한 삶을 소개 · 아리랑의 역사와 배경을 짧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아리랑 했다. 그 속에는 아리랑도 있었다. 유엔군으로 참전한 용 을 남북이 하나 되는 상징적인 노래로, 분단을 극복하는아리랑은 한민족을 상징하는 가장 상징적인 노래다. 아리랑에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고민, 삶에 대한 희망 등 생활의 정 사들에게 아리랑은 귀 익은 노래였다. 포연 속에서 틈틈 노래로 보았다.서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아리랑은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제 아리랑은 한민족만의 이 듣던 노래가 아리랑이다 보니 기념품으로 아리랑 가 아리랑은 남북을 통틀어 약 70여 종에 이르며 노랫말아리랑이 아닌 세계인의 가슴속으로도 파고들고 있다. 사와 악보가 새겨진 스카프・손수건 인형도 나왔다. ・ 도 6천 수가 넘는다. 강원도에 ‘정선아리랑’과 ‘강원도아 리랑’, 경상도에는 ‘밀양아리랑’과 ‘영천아리랑’, ‘대구아리 6·25전쟁 이후 미국·유럽서도 사랑받아 랑’, ‘문경새재아리랑’, 충청도에는 ‘청주아리랑’, 전라도에아리랑이 어느 시대에 생겨나 전승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사람이 구름떼처럼 단성사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주인공 유엔군들의 위문공연을 위해 수많은 가수와 연주자들이 는 ‘진도아리랑’, 경기도에는 ‘긴아리랑’ 등이 있다.않다. 다만 “아로롱 아로롱 어희야(啞魯聾 啞魯聾 於戱 영진이 일본 헌병에게 붙잡혀 아리랑고개를 넘는 영화의 한국을 오가게 되면서 아리랑은 이들의 음악 속에 깃들게 이 가운데 산간지방의 정서를 가락에 잘 담고 있는 ‘정也)”로 부르는 농요가 1790년 이승훈(李承薰)의 만천유 마지막 대목에서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주제곡인 아리 되었다. 포연 속에 태평양을 건너간 아리랑은 1950년대 모 선아리랑’, 세마치장단과 육자배기토리를 바탕으로 특유고(蔓川遺稿)에 있는 ‘농부사(農夫詞)’에 등장하고, 대원 랑을 가슴 깊이 새겼다. 당시 아리랑은 구아리랑을 모태로 던 포크 운동의 여파 속에 미국은 물론 유럽 등지로 급격 의 장중한 맛을 내는 ‘진도아리랑’, 힘찬 세마치장단의 경군의 경복궁 중수 때 통속민요로 퍼져 나간 아리랑을 고종 나운규가 새롭게 만든 노래로 지금 우리가 흔히 즐겨 부르 히 퍼져 나갔다. 쾌함이 짙게 깔린 ‘밀양아리랑’을 3대 아리랑이라고 한다.과 명성황후가 듣고 즐거워했다는 사실이 매천야록(梅 는 아리랑이다. 그 중심에는 위문공연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우연히 지역에서 전승되는 아리랑은 지역의 정체성을 구현하泉野錄)이나 한양오백년가(漢陽五百年歌)에 기록되 듣게 된 아리랑을 ‘아디동 부르스’(Ah De Dong Blues) 면서 지역의 독특한 정서를 담아 공연 전시 문학 등 다 ・ ・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와 구한말에 확산했음을 알 1700년대 등장… 일제강점기 때는 저항의 상징으로 라는 재즈로 편곡해 1952년 미국에서 SP음반으로 낸 유명 양한 장르에서 문화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수 있다. 무성영화 아리랑이 성공을 거두고 난 뒤부터 아리랑은 한 재즈 연주자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가 있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특별한 역사적 고난과 이를 극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Diaspora·이산) ‘문자 보급가’나 ‘종두 선전가’로 불리기도 했고, 만주와 었다. 구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의 ‘아디동 부르스’는 복한 사회적 경험이 배어 있기에 누구나 한민족을 하나로로 인해 중국 일본・ ・ 러시아・하와이 멕시코와 쿠바 등 ・ 연해주 일대에서는 ‘독립군 아리랑’ 등 항일가로도 나타났 뭇 사람들 가슴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묶는 노래, 한민족의 DNA가 깃든 노래로 여긴다. 이러한지로 퍼져가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나운규(羅雲 다. 1930년대부터는 아리랑 노래, 강남 아리랑, 아리랑 술 6 25전쟁 때 아리랑에 빠져든 가수도 있다. 미국 포크 · 사실은 은근과 끈기의 정서로 상징되는 아리랑고개에 잘奎)가 연출하고 주연을 한 무성영화 아리랑은 우리 민족 집 등 유행가 아리랑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제는 아리랑 송 가수로 유명한 피트 시거(Pete Seeger)는 한국에서 돌 나타난다. 아리랑고개는 절망에서 희망의 세계로 넘어가의 고단한 삶을 그렸다. 나라를 잃은 좌절감과 설움을 훌 가창을 금했으나 아리랑은 그치지 않고 풍자와 해학이 깃 아간 후 반조(banjo)를 연주하며 ‘아리랑(Ariran)’을 불렀 는 고개이자 현실 극복의 상징이기도 하다. 고훌 털어버리고 싶어서였을까. 서울에서는 상연 첫날부터 든 가사로 계속해서 퍼져 나갔다. 일제강점기 은근한 저항 다. 그가 노래한 아리랑은 1952년 미국에서 LP 음반으로 글·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12 2013 설 고향가는 길 13
  9. 9. 특별한 만남 뱀띠들의 수다 2013년 계사년(癸巳年)의 새해가 밝았다. 예부터 뱀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허물을 벗는다는 특징에서 ‘재생’을 의미하기도 하며 ‘집안 의 재산을 불리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행운의 동물로 칭송받았다. 특 히 올해는 60년 만에 찾아왔다는 ‘흑사’, 즉 검은 뱀의 해로 뱀띠해의 복이 그 몇 배로 찾아온다는 행운의 해다. 경사스런 계사년 새해를 맞아 뱀띠 출생자 네 명이 모여 각자의 고민과 희망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이들은 십이지신(十二支神) 중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뱀처럼 올 한 해 겸손하게 지내겠다며 입을 모았다. 상 자신이 은퇴하고 보니 젊었을 때 시간 핑계로 못 읽었던 책도 보고, 하고 싶었던 음악 공부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 다는 이씨의 얘기에 조성윤 씨와 윤성노 씨는 부러움이 가 득한 눈길을 보낸다. “사실 저도 나이가 들면 파리에서 5~10년 정도 생활하 면서 순수미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미대 출신의 조씨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자신의 은 퇴 후 계획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고정 수입 없이도 딸과 함께 파리에서 생활해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을 모으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죠. 그런24세에서 60세까지, 열두 살 터울을 두고 태어난 뱀띠 네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윤성노(36), 이경상(60), 김민지(24), 조성윤(48) 씨. 데 8년이 지나도 목표로 했던 자금이 좀처럼 모이질 않고 3월 퇴직했다는 그는 자신이 경험한 은퇴 후 생활에 대해 있어요. 계획을 세울 당시만 해도 ‘못할 것도 없겠다’는 생“재산 불려주고 복을 준다는 뱀의 해 얘기했다. 각으로 덤볐었는데,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업계 상황에 여러 변화가 찾아오면서 좀처럼 저축할 여력이 없는 상태죠.” “돈 걱정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 못해” “전 은퇴 후 생활에 대해선 좀처럼 감이 오지 않아요. 올해는 항상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이 퇴직하고 나면 경제적인 고민을 대신 가장 많이 생각하고, 그만큼 고민하는 문제가 바로 많이 하게 돼요. 그런데 돈 걱정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 아이들 교육문제예요.” 도 맘대로 못하고 참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좀 다른 방 윤성노 씨의 말이다.네 명의 뱀띠들이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의 전통한옥 다사 로 활동하고 있으며, 77년생 윤성노 씨는 경기도 광주소방 향으로 생각을 해봤어요. 저축이나 퇴직금으로 여유가 있 “곧 있으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큰아이를 둘러싸헌에 모였다. 1934년에 지어진 한옥을 조선일보사가 사 서 소방교로 재직하며 대민봉사에 힘쓰는 한편 ‘소방전 28 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말이에요. 어차피 돈이 떨어 고 아내와 가장 많이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교육문제예요.들여 새롭게 보수 단장한 이 고즈넉한 고옥은 서로 다른 ・ 호’라는 직장인 밴드활동도 병행하고 있는 열혈 공무원이 지면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는데 미리 걱정할 거 뭐 있냐는 전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공부를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시대에 태어나 다른 배경을 갖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온 이 다. 이날의 막내 격인 89년생 김민지 씨는 한창 취업 준비 마음에서요. 그래서 아내와 함께 서유럽 일주도 했고, 기운 창조정신을 짓누르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거든요. 그런데들을 하나로 품어주는 힘을 발휘했다. 에 바쁜 4학년 졸업반으로, 현재 이화여대 경영학과에 재 이 달려 못 움직이기 전에 말레이시아 키나발루산에도 올 아내는 ‘남들 하는 만큼은 시켜야 한다’ ‘공부를 안 시키면 모인 이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53년생 이경상 씨는 학 중이다. 랐죠.” 어떻게 할 생각이냐’며 반박을 해요.”33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정년퇴직해 제2의 인생을 걷고 첫 만남의 서먹함을 깨고 대화의 문을 연 것은 모인 이 먼저 퇴직한 사람들로부터 ‘6개월만 놀아봐라, 얼마나 부부싸움 중 가장 큰 원인이 아이 교육문제에 있다는있다. 65년생 조성윤 씨는 광고대행사에서 제작본부장으 들 중 가장 풍부한 인생경험을 가진 이경상 씨였다. 지난해 지루한지 알게 될 거다’라는 경고를 받아 걱정했지만, 막 그는 초등학생에게까지 과도하게 집중되는 사교육 열풍14 2013 설 고향가는 길 15
  10. 10. “경제적인 것 일단 제쳐놓고 “회사 설립 참여해 줄곧 2인자 생활 “아내와 가장 부딪치는 게 자녀교육 “어린 시절부터 방송기자 꿈 퇴직 후 아내와 해외여행… 요즘 들어 설 자리 없다는 불안감… 그래도 과도한 사교육은 문제 경쟁률 높아서 된다는 보장 없어 주위에 큰 병 걸린 사람 많아져 자녀 미래와 내 노후설계까지 지난해 여덟 명의 소방관 순직 일반기업체로 진로 바꿔야 할지 고민… 아프지 않고 노후 즐기고 싶어” 도움될 정책들 쏟아졌으면” 올해는 증원도 되고 사고 없길” 일자리 150만 개 창출 지켜졌으면” 이경상(60) 33년 근무한 직장서 퇴직 조성윤(48) 광고대행사 제작본부장 윤성노(36) 소방공무원 김민지(24) 이화여대 경영학과 4년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참가자 중 최연소자면서 졸업을 앞둔 김민지 씨의 고 요. 그런 면에서 새정부가 내건 ‘경제민주화’는 캠프 출범 ‘1가구 2주택자’다. 아파트를 한 채 보유한 상태에서 다른 “학원에서 5~6시가 되어야 돌아오면 언제 놀 시간이 민은 ‘취업문제’였다. 당시부터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었어요. 아이들의 미래 곳으로 이사하려고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새 아파트있겠어요? 전 아이들이 학원 공부에 의존하게 되면 학원 “어린 시절부터 방송기자를 꿈꿔왔어요. 그런데 막상 와 내 노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이라는 기대감 를 분양받은 후 이전의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본의 아니게선생님께서 알려주는 것을 그냥 받아먹는 것에 익숙해지 졸업반이 되니 상황이 달라진 거예요. 방송기자는 경쟁률 이 있습니다.” ‘1가구 2주택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두 채 모두 대출을 끼기 때문에 나중에 자랐을 때 창의력을 갖고 스스로 문제를 이 치열해서 제가 꿈을 꾼다고 꼭 이뤄질 거라는 보장이 없 고 사들인 것이라 부담이 큰데도 아파트가 팔리지 않는 상헤쳐가기 어려울 거로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보다 어요. 졸업반인 지금 일반기업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 건 투기목적 아닌 ‘1가구 2주택’… 대책 마련을 황에서 속수무책으로 ‘1가구 2주택자’로 남아있을 수밖에자유롭게 놀 수 있는 시간을 주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 아닌지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그가 종사하는 광고업계는 소수의 대기업 광고대행사가 없는 현실이다.도록 하고 싶어요.” 사회진출을 앞두고 진로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여대 전체 시장의 약 80%를 차지하는 비정상적인 시장 구조를 “경기가 좋아져서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이 가 생의 고민에 참가자들은 모두 자신의 대학 시절이 생각나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불균형을 깰 수 있는 ‘경제민주화’ 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투기성이 아닌 1“하고 싶은 일을 하자니 경쟁률 너무 높아” 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로 환갑이 된 이씨는 건강에 정책에 큰 관심을 보였다. 가구 2주택자에 대해선 세제혜택을 주는 등 부동산 매매를창의력을 키워주는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윤씨의 말이 끝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이어 주택문제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조씨는 현재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어요.”나기도 전에 선배 아빠 조씨가 반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 “엊그제까지 멀쩡하게 같이 말을 나누던 사람인데 느는 “제가 경험자라 잘 아는데(웃음), 아이들의 창의력 자 ・ 닷없이 큰 병에 걸렸다는 연락을 듣게 돼요. 최근 두세 달 행주대첩율성을 살려주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무작정 자 사이에 지인의 투병소식을 여섯 차례나 듣게 되니 남일 같 계사년에 얽힌 역사유롭게 풀어주면 오히려 역효과를 맞을 수 있어요”라며 운 지가 않아 매우 신경이 쓰여요.” 서희 담판 993… 권율 행주대첩 1593을 뗀 뒤 “지나치게 아이들을 풀어주는 것보다 다소 강제 중간 세대인 조씨는 회사에서의 중간자적인 위치에서 1953년에는 6 25전쟁 휴전협정 ·성을 띠더라도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교육을 해 아이 오는 불안과 고민을 털어놓았다. “15년 전에 회사를 설립 계사년은 뱀의 해로 육십갑자 중 서른 번째 해에 해당한다. 올해를 흑사(黑巳), 즉 검은 뱀 혹은 물들이 나가는 길에 지침을 주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해 줄곧 2인자로 일을 하고 있는데, 요즘 들어 내가 설 자 뱀의 해라고 하는데 이는 음양오행에서 계(癸)의 의미가 검은색 혹은 물을 뜻하기 때문이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리가 없어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그는 “대놓고 나 한편 뱀은 불의 속성을 가진 것으로 풀이되는데 계와 사 두 글자가 만났으니 물과 불이 만난 셈이다. 그래서 계사년에 대해서는 그 풀이가 분분한 상반된 둘의 이견을 조율한 것은 장성한 자녀를 두고 가라는 사람은 없어도 내가 지금 회사에 계속 남아 있어야 데 물과 불이 만나 조화를 이룬다고 하기도 하고 물과 불이 만나 극단적인 갈등이 빚어지리라 예측하기도 한다. 올해를 점쳐보기 전에 먼저 지나간있는 이경상 씨였다. 하는가? 아니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그만두면 가계 운 계사년을 돌아보면 올해의 일이 조금은 가늠되지 않을까? 고려시대 거란의 침입을 서희가 외교술로 담판지어 평화롭게 종전시킨 것이 993년 계사년이다. 여전히 불행한 역사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기 “사실 교육에 대해선 정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왜 동물 영은 어쩌나, 그러다 보면 내 꿈에서도 그만큼 멀어지게 되 는 하지만 1953년 6·25전쟁이 휴전협정을 맺고 잠정적 평화를 얻은 것도 계사년의 일이다. 393년 삼국시대에 일본이 신라를 침범했을 때 내물왕을 키우는 건 ‘사육’이라 하면서 인간을 키우는 것은 ‘양육’ 고…. 그래서 쉽게 결정할 수 없어 고민”이라며 진퇴양난의 이 대승을 거둔 것도 계사년이며, 1593년 임진왜란 때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큰 승리를 거둬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준 것도 계사년이다.이라고 하는지 아세요? 동물은 같은 조건을 제시하면 엇비 고민을 밝혔다. 한편 계사년에는 새로운 일도 많이 일어났는데, 33년 백제 다루왕 때 벼농사가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하며 우리 민족의 자랑인 조선 왕조실록이 처음 편찬된 것도 1413년(태종 13년) 계사년이다. 또 이 해에는 호패법이 처음 실행되어 국가관리가 한결 쉬워지기도 하였다. 1773년 영슷한 성장을 보이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거든요. 결과는 아 “정치와 경제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늘 조 49년에 범람하던 청계천을 준설하고 수표석을 세운 것도 계사년의 일이었다.이마다 제각각이에요. 부모가 각자 자기 아이의 특성을 잘 정치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어요. 특히 정치가의 공약 이렇듯 역사 속에서 계사년은 분쟁이 있었지만 이를 잘 수습하거나 사회·문화적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한 일이 많았다.파악해서 아이가 성장 단계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을 살펴볼 때, 어떤 공약이 내 생활에 도움이 되고, 내 아이 올해는 어떤 많은 일이 일어날까? 분쟁보다는 조화와 수습, 문화와 복지가 풍성해지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이끌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들의 미래를 지탱해 줄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지게 돼 글 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16 2013 설 고향가는 길 17
  11. 11. 우리 민족과 뱀 생명과 재물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 조선 후기부터 민간에서 전해오는 당사주책(唐四柱 )에 뱀띠는 “용모가 단 정하고 학업과 예능에 능하며 문무를 겸비”했다고 쓰여 있다. 흔히 서양에서는 뱀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유혹해 인간을 타락 시킨 존재라 생각되지만, 우리 민족에 있어 뱀은 선과 악의 이중적 의미가 있다. 뱀의, 그 다소 거리감 있는 외모와 슬금슬금 움직이는 행동 탓에 탐욕·유 혹·복수의 상징처럼 여겨진 예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재생과 불사(不死)의 상징, 집의 재물과 복을 지키는 존재로 생각되기도 했던 것이다. 땅을 기어 다니는 뱀이 땅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뱀은 지신(地神)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인간이 죽으면 돌아가는 땅속의 무덤을 지키는 신으로도 생각되었다. 한편으로 뱀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기에 불사와 재생의 상징으로 받아들 여졌다. 고구려 고분 삼실총에는 뱀이 그려진 그림이 있는데, 이는 무덤의 수호신으로 뱀을 그려 넣은 것과 동시에 망자가 뱀처럼 허물을 벗어 재 생하라는 기원이 들어 있다. 또 뱀은 한번에 많은 알을 낳아 다산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옛날에는 사람이 노동력이다 보니 다산은 축복이었고 집안이 흥하는 척도였다. 그래 서 뱀은 집의 맨 밑바닥에 살면서 재물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생각되었다. 이를 업(業)이라고 하였다. 이때의 뱀은 주로 구렁이가 많았는데, 집에 사 는 구렁이가 사람의 눈에 띄거나 집 밖으로 나가면 그 집은 망하는 것으로 여겼다. 뱀은 집안뿐만 아니라 동네의 큰 나무, 바위나 산에 있으면서뱀띠 남자 세 사람이 인터뷰 장소에 늦게 도착한 김민지 씨를 기다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동네를 지키는 신으로도 여겨졌다. 아직도 제주도 민간에서는 뱀을 사신(蛇神)이자 재신(財神)으로 보고 믿는 풍습이 남아 있다. 우리 민족에게 뱀은 수호신이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현실의 뱀은 그 외양과 독 때문에 꺼리는 경향이 많지만, 상징 속에서 의 뱀은 우리 민족에게 생명과 재물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였던 것이다. 글 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바라는 조씨의 발언으로 이야 한 기대감도 컸다. “‘일자리 150만 개 창출’ 공약도 꼭 지기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새해에 들어설 새정부에 대한 기 켜졌으면 좋겠다”며 “선거를 위한 공약에 그치는 것이 아 뱀 관련 지명대감으로 이어졌다.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조씨의 말을 경 니라 실질적으로 혜택을 입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도록 현 뱀골 등 전국에 208곳… 남부 지역에 특히 많아청하던 이씨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무조건 이전 정권 실적인 실현 안을 기대한다”고 말했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공과를 공정하게 가려 고칠 점은 뱀사골·비암리·김녕사굴·뱀길이 마을….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150여만 개의 지명 중 뱀과 관련된 것은 모두 208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국토지고치고, 계승할 점은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계속 이어나갈 실질적으로 혜택 입는 사람 많아졌으면 리정보원이 뱀(巳)의 해를 맞아 뱀과 관련된 지명을 분석한 결과다. 뱀과 관련된 지명은 전라남도가 41개로수 있는 정부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며 ‘연속성 있는 국정 소방공무원 윤씨는 순직자 없는 2013년이 되기를 바라는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경상북도 32개, 경상남도 31개 순이다.운영’에 대한 바람을 밝혔다. 간절한 염원을 하고 있었다. “2012년 한 해 동안 여덟 명 대체로 남부 지역에 뱀 관련 지명이 많이 분포하는 것은 농경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조상들은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이 다산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뱀을 풍요와 재물을 가 의 소방관이 순직했는데, 지금처럼 현장 인원이 부족한 상 져다주는 가복신(家福神)으로 여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세대 간 서로 소통하며 화합의 길 찾아야 태에선 늘 순직의 위험과 마주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마을 명칭이 157개로 가장 많았으며, 섬의 명칭이 15개, 고개와 산의 명칭이 14개 등으로 조사됐다. 구체적 지리산 뱀사골20대 김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통령 당선에 대한 기 것”이라며 “올해에는 꼭 인원이 증원되어 순직사고 없는 인 이름을 보면 ‘사동(巳洞)’이라는 지명이 경상북도 경산시 동부동의 마을 이름을 비롯해 전국에 15개로쁨과 기대감을 밝혔다. 또한 “대선 결과로 세대 간의 갈등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가장 많았으며, 이어 ‘뱀골’이 10개 순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지역에 따라 뱀을 ‘배암’, ‘비암’, ‘배염’ 등으로 부르며 다양한 형태의 지명으로 존재하 고 있었다.이 커진 것 같아 안타까운데 새정부가 세대 간의 화합을 열두 살 터울을 두고 태어난 이들 뱀띠 4인방에게 새해 뱀 관련 지명 중에는 뱀길이 마을, 장사골, 비사도, 사두섬 등 뱀의 모양과 관련된 지명이 전체의 137개(65%)로 가장 많았다. 그 밖에 뱀의 출현 설이룰 수 있는 국정운영을 펼쳤으면 좋겠다”는 지적도 했 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전기 동력 없이 화분에 물을 주는 화와 관련된 지명도 있는데, 경주시 남면 구암리의 마을 이름인 ‘구뱀이’는 귀가 달린 뱀이 나왔다 하여 유래되었으며,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금다. 그는 세대 간 갈등이 심화한 원인은 각 세대 간에 얼굴 장치를 개발하고 있는데, 내 아이디어가 남에게 편리함을 계리 ‘구수재’는 아홉 마리 구렁이가 재를 못 넘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뱀이 공포의 대상으로 유래된 지명으로는 제주도 월정리의 ‘김녕사굴’과 천안시 직산읍 상덕리에 ‘덕령’ 등이 있는데, 이곳에 전해지는 전설에는 뱀을 맞대고 소통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없는 데서 온 것 같다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퇴직 1년 차’ 이경상 씨와 이 인간을 해치려는 사악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 ‘장사동’은 마을이 큰 구렁이의 모습을 닮았는데, 허물을 벗으며, 새정부에선 각자가 가진 마음의 벽을 허물고 함께 어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이뤄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 며 성장하는 뱀의 영생불사(永生不死) 속성에 따라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은 장수를 누린다고 믿고 있다.우러질 수 있도록 세대 간 통합의 장을 마련하는 데 힘을 었으면 좋겠다”는 김민지 씨는 각자 인생의 분기점에서 앞 전남 고흥군 동강면 한천리 ‘뱀골고개(뱀골재)’ 는 고개를 넘을 때 악한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큰 뱀을 만난다고 하여 뱀을 지혜로운 존재로 생써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안고 있었다. 고 각했음을 지명에서 알 수 있다. 이처럼 뱀의 형상이나 뱀과 관련된 설화가 우리의 ‘지명’ 속에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다. 지혜롭고 다산하는 뱀처럼 마을의 풍요를 기원한 조상들의 소망이 녹아 있는 지명들이다. 글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 취업고민이 한창인 졸업반의 입장에서 ‘취업공약’에 대 글·이윤진 객원기자 사진·서경리 월간조선 기자18 2013 설 고향가는 길 19
  12. 12. 행복! 국민시대 국민과 함께 더 큰 대한민국국격 상승·녹색 종주국·한류…세계가 달리 본다지난 5년간 우리나라의 위상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한류로 대변되는 우리 문화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고, 지난해 외래관광객은 사상 처음으로 1천만 명을 돌파했다. 2011년에는 세계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열었으며, 서울 G20 정상회의를개최해 국제사회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FTA를 통해 세계 3위의 경제영토를 확보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원조를 받던 최빈국중에서 원조를 주는 유일한 나라로 성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조기 극복… 신용등급 상향 진입했다. ‘20-50 클럽’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인구 경제 유로존과 일본 등은 여전히 2008년 금융위 5천만 명 이상의 나라를 지칭하는 것으로 우리 경제 규모 기 이전의 GDP(국내총생산) 수준이거나 아 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20-직 경제위기 여파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 경제 50 클럽’에 진입한 국가 대부분이 수년 내 1인당 국민소득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참가국 정상과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2. 3. 27) 사진·조선일보 DB는 위기 이전보다 10% 이상 성장했다. 3만 달러를 돌파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기간에 일자리가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우리나라는 2010년 7대 수출국에 올랐으며, 이듬해인회복한 국가는 우리와 독일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지 2011년에는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함으로써 금융위기 이후난 5년간 당면한 글로벌 재정위기 속에서도 건전한 재정 1조 달러 클럽에 진입한 최초의 국가로 기록됐다. 가 인정한 것으로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 가치를 제고하 국민 모두가 잘사는 따뜻한 사회를 위하여 친서민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대응을 펼친 결과 국가신용등급이 이 밖에 우리나라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국가신용등급 는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현 정부 들어 우리나라의 복지지출 규모와 복지상향조정되는 등 국제사회의 평가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이 사상 최고 수준을 달성하는 성과도 올렸다. 글로벌 경제 우리나라는 지난 5년간 미국 유럽 아시아 3개 대륙 ・ ・ 증가율은 역대 정부 가운데 최고 수준을 유양호한 상태다. 위기로 주요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추세에서 세계 3대 의 국가들과 적극적인 FTA 체결을 통해 세계 3위의 경제 지했다. 2012년 복지지출액은 92조 6천억 원이었는데, 이 2012년 우리나라는 세계 일곱 번째로 ‘20-50 클럽’에 신용평가사가 우리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한 것은 극히 이 영토를 확보했다(세계 GDP 대비 57.3%, 국토 표면적은 는 교육과 국방비 지출을 합한 금액(78.5조 원)보다 큰 규 례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0.07%). 각국과의 적극적인 FTA 체결을 통해 중소기업은 모다. 정부는 확대된 복지재원을 바탕으로 사회안전망을 특히 2011년 이후 A레벨 이상 국가 중 동일 연도에 3대 시장개척 수출증대 원가절감 같은 혜택을 받고 있으며, ・ ・ 대폭으로 확충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를 통해 취약계층 국가별 2만 달러-5천만 명 달성 시점 신용평가사가 모두 등급을 상향조정한 나라는 우리가 유 선택의 폭 확대와 수입품 가격 인하로 소비자에게 혜택이 보호를 강화하고,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과 기초노령연 일하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일본 중국보다 높은 신용등 ・ 돌아가고 있다. 금 대상을 확대하는 등 취약계층 노인들의 생활안정에 실 1인당 국내총생산 인구 일본(가입연도 : 1987) 미국(1988) 급을 보유한 국가로 발돋움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5년간 미국 일본 러시아・ ・ ・ 프랑스 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2만 366달러 2만 821달러 1억 2,203만 명 2억 4,497만 명 에 이어 세계 5대 원전강국으로 도약했다. 2009년 아랍에 고용위기에도 신속하게 대처했다. 2008년 금융위기 프랑스(1990) 이탈리아(1990) 서울 G20 정상회의·핵안보정상회의 개최 미리트(UAE)에 한국형 원전 4기를 수출하는 등 세계 여섯 이후 신속하고 과감한 고용극복 프로그램을 추진, 재정 2만 2,003달러 2만 151달러 5,671만 명 5,669만 명 국격 제고 지난 5년간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번째의 원전 수출국이 되었다. 이는 세계 원전시장을 독점 투입을 통해 공공근로 등 새로운 일자리를 적극 제공했 독일(1991) 영국(1996) 리더 국가로 성장했다. 아시아에서 그것도 해 온 프랑스의 아레바, 미국의 GE, 일본의 히타치 등 유수 으며(2012년 11월, 58만 명), 사회적기업을 확대해 1만 9 2만 2,693달러 2만 990달러 7,998만 명 5,816만 명 비(非) G8 국가 중 최초로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를 의 기업을 누르고 이뤄낸 성과다. 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 취업 애로 계층에게 일자리를 제 개최했으며, 핵안보정상회의 개최(2012) 등을 통해 경제와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140여 개국 공했다. 한국(2012) 안보 분야에서 국제사회 중심국으로 우뚝 섰다. 서울 G20 중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DAC- 또한 저소득 취업 애로 계층에 대해 개인별 맞춤형 고 2만 3,020달러 5,000만 명 정상회의 개최는 우리나라가 더는 아시아의 중소국이 아 일명 공여국 클럽)에 가입(2010)한 최초 국가가 되었고, 우 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취업 지원을 강화했다. 그 결과 자료 IMF(국제통화기금) 니라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를 형성하는 중심국가임을 세계 리의 개발경험을 개도국과 나누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2011~2012년 연속 취업자 수가 40만 명 이상 늘어났고, 고20 2013 설 고향가는 길 21
  13. 13. 선심을 사고, 말썽을 피우지 않도록 무마하는 왜곡된 남 주요국 FTA 경제영토(%, GDP 기준) 북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이에 따라 북한 지도부의 100 선의에 의존하던 평화에서 한반도 평화 결정권과 남북관 80 계의 주도권을 회복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로 꼽힌다. 78.5 안보 분야에서도 정부는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300km 64.1 60 에서 800km로 연장하는 미사일지침 개정을 미국으로부 57.3 51.8 터 이끌어 내는 데 성공, 북한 전 지역을 사정권 내에 둘 40 수 있게 되었다. 중국·러시아와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 38.7 36.6 33.4 32.7 계’를 강화해 미래의 관계 발전을 위한 기반을 다졌으며, 20 일본과는 성숙한 동반자관계를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대 17 통령이 직접 독도를 방문해 확고한 영토수호 의지를 밝 0 혔다. 칠레 멕시코 한국 싱가포르 페루 EFTA EU 미국 일본 아무도 간 적이 없는 ‘코리안 루트’ 개척 위 등 짧은 시간 내에 녹색산업 강국으로 부상했다. 이러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서쪽 해안 브라카에서 열린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기공식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모하메드 왕세자가 설명을 듣고 있다. (2011. 3. 14) 녹색ㆍ미래 이명박 대통령은 출범 직후 기후변화에 대 한 녹색정책을 배경으로 우리나라는 녹색기후기금(GCF) 응하기 위해 녹색성장정책을 미래의 신성장 유치와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의 설립과 국제기구화용률도 상승했다. 특히 주취업 청년층(25~29세)의 고용률 확충에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외래관광객 1천만 명 시대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우리 정부의 일관된 녹색성장정 등을 통해 녹색성장의 메카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그 밖에 국가가 책 의 개막을 앞당길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병인양요 당시 프 책에 대해 2012년 4월 OECD 앙헬 구리아 사무총장은 “장 했다.임지는 보육 및 육아교육 시대를 열었으며, 대기업과 중소 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한 외규장각도서 27책을 환수했으 기적인 경제성장전략으로 녹색성장을 채택한 국가는 한 정부는 또한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 문제에 대비하기업 간의 동반성장 문화 조성,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지원 며, 민 관이 협력해 국외문화재 환수를 위한 범국가적 체 ・ 국이 최초다”라고 평가했다. 고, 홍수예방 안정적인 물 공급 수질과 생태계 개선 수변 ・ ・ ・확대, 미소금융 같은 서민금융 지원 강화 및 불법 사금융 계 구축 등 체계적인 문화재 환수 전략을 마련했다. 아리 특히 정부는 녹색성장 선도국의 위상에 걸맞게 법과 농지개량 관광과 레저문화공관 확충 등 다목적용으로 4대 ・척결 등도 친서민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랑, 조선왕릉, 하회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로 · 제도적 기반을 구축함과 동시에 녹색성장 분야에 매년 강살리기 사업을 추진했다. 4대강을 잇는 1만 7천여km 수 국가위상을 높인 것도 문화적 성과다. GDP의 2% 수준의 재정을 투자(유엔 권고치의 2배)해 녹 변에 자전거길을 조성해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종주 능력이 존중받고 품격 있는 문화국가로 색기술 개발과 산업화를 지원했다. 이에 따라 리튬 2차전 가 가능해졌다. 고 교육ㆍ문화 정부는 지난 5년간 학력만능주의를 깨기 위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열기 위한 노력 지에서 시장점유율 세계 1위, LED(발광소자) 생산 세계 2 글·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사진·조선일보 DB 해 범국가적으로 고졸 채용 지원 정책을 펼 외교·안보 지난 5년간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펼친쳤다. 산업수요에 맞는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는 마이스터 결과 북한 내부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고를 도입해 학비면제와 기숙사를 지원, 100% 취업하는 를 이끌어냈다. 실례로 대규모 식량배급을 중단하면서 북직업교육의 모델로 만든 결과 2013년 마이스터고 졸업예 한의 배급체계는 힘을 잃었고,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하는정자의 89%가 취업이 확정됐다(정규직 99.6%). 등 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주민의 독자적인 활동 공간이 크 정부가 나서서 공공부문에 고졸 채용을 확대하고 능 게 확대되고 있다.력과 성과 중심의 인사제도를 도입했으며, 대기업 금융권 내부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북한은 궁여지책이기는을 중심으로 고졸 취업확대를 위한 협력을 강화해 열린 고 하지만 농업개혁과 경영의 자율권을 확대했으며, 특히 남용 문화가 정착되도록 계도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한 드라마의 확산 등으로 북한 사회에서 아래로부터 의미결과 2012년 30대 그룹 전체 채용규모의 30%에 이르는 인 있는 의식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력을 고졸 출신으로 채용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정부는 북한의 무리한 요구에 끌려다니며 대화를 얻 지난해 11월 외래관광객이 1천만 명을 넘어섰다. 정부는 2020년에는 지금보다 서울에서 열린 GGGI(글로벌녹색성장기구) 창립회의 개막식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또한 고부가가치 관광산업 육성과 선진관광 인프라 어내기 위한 지원이나 퍼주기식 지원으로 북한 지도부의 두 배 늘어난 2천만 명의 외래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라스무센 GGGI 의장 등 각국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2. 10. 23)22 2013 설 고향가는 길 23
  14. 14. 행복! 국민시대 서민을 위한 맞춤형 정책 좀 더 따뜻한 세상, 좀 더 안전한 세상을 위해 2013년 서민복 지정책이 달라졌다. 어린아이에서부터 청소년·청년·노인까지, 여성과 저소득층·장애인까지, 취업희망자와 근로자·농어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한층 촘촘 하게 복지 그물이 짜였다. 던 간암(넥사바) 위암 약제(TS-1)에 대해 올해부터 본인 ・ 부담이 5%로 경감되고, 올 10월부터 암, 심 뇌혈관 질환 · 등 중증질환 초음파 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또한 2012년부터 단계적으로 허용돼 온 75세 이상 어 르신 틀니혜택이 올 7월부터 완전틀니에서 부분틀니까지 확대돼 50%의 지원을 받게 된다. 최저임금액 인상 올 1월 1일부터 시간급 최저임금이 4,860 원으로 인상됐다. 이를 일급으로 환산하면 8시간 기준 3만 8,880원이고, 월급으로 환산하면 주 40시간제 시행 사업 장 기준으로 월 101만 5,740원, 주 44시간제 시행 사업장에 서는 월 109만 8,360원이다.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 자를 말하므로 상용근로자뿐 아니라 임시직 일용직 시 · · 간제 근로자 외국인 근로자 등 고용형태나 국적에 관계 · 없이 모두 적용된다. 국민주택기금 대출 및 조성금리 인하 올 1월부터 무주택 4인 이하 사업장 근로자 퇴직급여 법정퇴직금 수준 상향더 따뜻하고… 더 안전하게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지원하는 국민주택기금의 대출 올 1월 1일부터 상시 4인 이하 사업장에서 1년 이상 재직한서민행복 앞당기는 희망사다리 금리를 0.5%p 내외로 인하하고, 기금의 주요 조성재원 인 청약저축의 금리도 0.5%p 내렸다. 이에 따라 근로자· 퇴직근로자에게 법정퇴직금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 지금 까지는 4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영세성을 고려해 법정퇴직 서민을 위한 전세자금은 연 4%에서 3.7%로, 구입자금은 금의 50% 이상만 지급해도 됐다. 5.2%에서 4.3%로 생애최초 구입자금은 4.2%에서 3.8%로 따라서 앞으로 사업장 규모와 관계없이 계속근로 기저소득층 초·중·고생 교육비 지원 절차 변경·개선 올 2월 방과후학교 자유수강권 지원 확대 올해부터 교육의 공공 인하됐다. 간이 1년 이상인 퇴직근로자는 1년에 대해 30일분 이상의부터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비 신청 접수와 처리 기관이 확 성을 높이고 계층 간 교육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저소득층 중증질환 의료비 경감 및 취약계층 건강보험 보장 확대 평균 임금을 퇴직금으로 받을 수 있게 됐다.대된다. 이전까지는 저소득층 초 중 고생 자녀의 교육비 · · 자녀의 방과후학교 학습기회를 확대한다. 예기치 않은 중증질환이 생겨 어려움을 겪는 가계의 부담을 근로시간단축형 임금피크제지원금 지급요건 조정 올 1월를 접수하고 처리하는 기관이 학교뿐이었으나, 올해부터는 지난해 차상위계층 70%까지 지원하던 자유수강권을 덜어주기 위해 올해부터 고가의 항암제 및 중증질환자에 대 부터 근로시간단축형 임금피크제 활성화를 위해 임금피크읍 면 동 주민센터에서도 가능하게 변경된다. 또 읍 면 · · · · 차상위 100%까지 확대하고, 이전까지 연간 48만 원이었 한 초음파 검사의 건강보험이 확대된다. 제 지원금 지급요건이 개선됐다.동 주민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신청도 할 수 있다. 던 1인당 지원 규모도 연간 60만 원으로 상향한다. 치료에 필요하지만, 약값이 비싸 가계에 큰 부담이 됐 지금까지 ‘근로시간 50% 미만 감소, 임금 50% 이상 감24 2013 설 고향가는 길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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