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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가 생시인가, 하늘이 준 것인가
때가 온 것인가, 구름 안개 걷히는 것인가…
대한 광무 11년(1907년) 새봄의 제일 좋은 소식은
하늘에서 온 복음을 소리쳐 전하는 것이로다.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이 소식이...
고령지역의 국채보상운동
구본욱
대구가톨릭대학교
특별연구위원
국채보상운동
Ⅰ
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5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광무 11)에 일어난 국권수호 운동이다. 이
운동은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맞서 나...
천둥소리 7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위의 짧은 편지글은 고령지역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향교를 중심으로 한 고령의 유림 지도자들이 고령단연상채회(高靈斷烟償債會)를 조직하여 근...
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4) 국채 보상금 처리 문제
국채보상운동은 근 1여 년간 활발히 전개되었으나 일제의 방해로 보상금의 수합과 처리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각 지역에서는 의연금의 처리가 원만하지 못하자 이를 자신들...
안녕하십니까? 대구시의회 의장 이동희입니다.
먼저, 대구 시민의 정체성 근간이자 우리 조상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깃든 국채보상운동의 현대화, 세계화에 앞장서고 계신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신동학 상임 대표님을 비롯한 ...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된
점은 대구경북 지역민 모두에게 경사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시간과 인적·물적 자원의 한계 속에서도 땀과 열정을 쏟고
계시는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 정신과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 21세기는 책임 사회(RS)의 시대
2016년도의 국제적 이슈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입니다. 이 목표는
우리에게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
천둥소리 17천둥소리 17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2. 국채보상운동 정신과 책임
1907년의 국채보상운동은 당시 대한제국 국민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져있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국민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일어난 운...
천둥소리 19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두훈[李斗勳, 1856~1918] 선생은 외가인 칠곡에서 부친 이인한(李寅漢, 1830-1904)과
모친 광주이씨 슬하에 태어났다. 자는 대형(大衡), 호는 홍와(弘窩)이다. 본...
나눔과 책임
Ⅴ
우리는 건강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한다.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또한 열심히 공부한다. 우리
가족들에게도 열심히 운동하고 공부하라고 권한다. 우리는 건강해야 하고 부유해야 하며 또한
존경받아야 행...
천둥소리 23
청년에게 길을 묻다
Ⅵ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허그인’
허그인은 나눔을 즐기는 문화를 만드는 브랜드입니다.
세상의 누구나 나눔을 일상에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나눔의 즐거운 에너지...
천둥소리 25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나와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글로벌 기업 모먼트워치 역시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서 감동을 받아 언젠가
현실로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고 해요.
우연히 허...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27
“네 소원이 무엇이냐?”
- 내 소원은 대한 독립입니다 -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 우리나라의 독립입니다 -
“또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
늘 벼루기만 하고 미루어온 일을 처리하려고, 옅은 갈색 커튼 사이를 헤집고 들어온 햇볕이 따사로운
늦가을 오후를 서재에서 보냈다. 그 일은 몇 해 전에 이사 온 날 허겁지겁 치우느라 뒤섞여버린 책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
여러 해 뒤, 직장에서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영업장의 상품을 살펴보다가 왠지 타인의 눈초리가 느껴져
주변을 둘러봤다. 시야에는 흠칫 놀란 표정의 그녀가 얼른 몸을 돌려, 동행한 남자와 함께 귀금속
진열대에서 한 쌍의 반지...
회원광장
Ⅷ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구려 제1도읍 환인 가는 길. 인천 국제여객선 터미널에서
동방명주(東方明珠)호 배를 타고 저녁 8시경 출발해 밤새도록 서해안을 거슬러 오르고 올라가면
이튿날 오전 ...
회원광장
Ⅷ
지난해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우리나라의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총 2,472건이다. 이 기록물은 1)국채보상운동의 발단과 전개를 기록한 수기 기록물,...
사진1)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소장하고 있는 국채보상회 사통 및 취지서다. 이 취지서는
1907년 3월 3일 국채보상회 회장 심호택이 경상북도 청송군 부서면 회장에게 ‘취지서를 각동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협조를 구하라...
천둥소리 39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Ⅷ
정의와 평화의 소녀,
의병장 우배선 장군에게
길을 묻다
3.1절 아침 방송을 마치고 나온 동성로에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부 사이에 이루어진 일본군 위안부 합
의를 무효화...
회원광장
Ⅷ
국채보상운동,
공익을 위한 문화기반으로
자리 잡길 바라며
요즘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공익을 위한 활동에 자신의 관심을 표현하고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서 공익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천둥소리 43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친절은 행복 바이러스
한 도시의 교통 문화는 시민들의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특히 도시의 얼굴
이라 할 수 있는 도로 위의 택시는 도시의 이미지로 연결되...
문 화 체 육 관 광 부 산 하 한 국 콘 텐 츠 진 흥 원 이 주 최 한 ‘ 2 0 1 5 년
지역특화문화콘텐츠개발사업’에 대구에서 유일하게 선정된 뮤지컬
‘기적소리’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된 대한...
천둥소리 47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2016년 1월 27일 오후 2시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7층 다목적강당에서 광주 5·18
민주화운동기록관(관장 나간채)과 ‘세계기록유산 달빛(대구-광주) 학술토론회’를 개최...
천둥소리 49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0월 방문단체
사단법인 대구여성회, 50사단, 강동중학교, 경명여자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신중학교, 경안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전유치원, 골목해설사, 구미 산동...
천둥소리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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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소리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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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소리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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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소리 36호

  1. 1. <꿈인가 생시인가, 하늘이 준 것인가 때가 온 것인가, 구름 안개 걷히는 것인가… 대한 광무 11년(1907년) 새봄의 제일 좋은 소식은 하늘에서 온 복음을 소리쳐 전하는 것이로다.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이러한 좋은 소식을 우리는 급히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이오… 이 소식은 다름이 아니라 대구광문사 부회장 서상돈씨 등이 단연동맹한 호소식이로다.> 1907. 2. 25 자 황성신문 논설에서 따옴 2016. 봄 제36호 발 행 인 편집고문 편집위원 발 행 처 기획제작 표지사진 신동학 박용규, 서상호 엄창옥(위원장), 남정원, 우웅택, 이용수, 전환길, 최경집, 최윤진, 황성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동인동 2가 42번지) 전화. 053-745-6753 팩스. 053-746-6753 www.gukchae.com E-mail. master@gukchae.com 밝은사람들 053-652-5700 나눔과 책임의 4 9 14 18 구본욱 권영진 우동기 이동희 진영환 여창환 엄창옥 윤석호 국채보상운동 고령지역의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등재특집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격려사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염원합니다! 국채보상운동을 세계인의 유산으로! 우리지역의 긍지와 자부심, 국채보상운동 고귀한 정신적 자산 ‘국채보상운동’ 북후정 국채보상운동 정신과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 20 22 26 32 46 함인석 신성국 김선진 봉창욱 최운집 서지월 남정원 우웅택 여운재 김대현 정판규 나눔과 책임 나눔과 배려 그리고 건강 청년에게 길을 묻다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천둥문학 “네 소원이 무엇이냐?” - 시 오녀산에 올라 - 시 오래된 풍경 - 수필 회원광장 고구려 제1도읍 환인 땅을 가다 유네스코로 가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정의와 평화의 소녀, 의병장 우배선 장군에게 길을 묻다 국채보상운동, 공익을 위한 문화기반으로 자리 잡길 바라며 친절은 행복 바이러스 대구의 자부심, 국채보상운동! 뮤지컬로 뜨겁게 노래하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사업회 소식 방문단체 천둥소리 36호 표지는 2월 22일 한국은행 대강당에서 개최한 ‘제109회 국채보상운동 기념식’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 재하기 위해 준비 중인 국채보상운동기록 물 중 ‘대한자강회월보’ 그리고 광주 5.18민 주화운동기록관과 함께 진행한 세계기록유 산 달빛 학술토론회 사진이다. 대한자강회 월보에는 함께 담배를 끊어 국채보상운동 에 동참하자는 ‘단연동맹가’가 수록돼 있다.
  2. 2. 고령지역의 국채보상운동 구본욱 대구가톨릭대학교 특별연구위원 국채보상운동 Ⅰ 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5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광무 11)에 일어난 국권수호 운동이다. 이 운동은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맞서 나라가 진 빚 1300만 원을 국민들이 갚아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지키려는 운동이었다. 당시 국채 1300만 원은 대한제국정부 1년 예산에 버금가는 거액이었다. 이 운동은 1907년 1월 29일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에서 서상돈(徐相敦)에 의하여 제기되어 요원의 불길처럼 우리나라 전역으로 확산되어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한 운동이었다. 지금까지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연구는 상당량 축적되었는데 대부분 당시에 보도되었던 신문 자료에 의존하였다. 2013년 고령의 성산이씨 홍와고택에서 국채 보상에 관한 자료가 발굴되면서 국채 보상에 관한 연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원본 자료에 의거하여 새로운 방식으로의 연구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 1856~1918)은 성주의 한주(寒州) 이진상(李震相)의 문인으로 당시에 유림계에서 명망이 있었다. 1907년 3월 9일에 고령 향교의 향약회에서 추대를 받아 고령단연상채회의 회장으로서 국채 보상에 관하여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을 볼 수 있는 원본 자료는 그 이전에도 단편적으로 발굴되었는데 홍와고택에서 발굴된 자료와 같이 국채 보상에 관하여 그 전말을 알 수 있는 자료가 한꺼번에 나타난 경우는 없었다. 홍와고택에서 발굴된 자료를 살펴보면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이 경북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과 그 목표인 의연금 모금, 국채 보상금 처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전모를 알 수 있다. 대구단연회에서 고령 향교에 보낸 공함 공경히 알리는 것은 이번 국채담보사(國債擔報事)에 관한 것입니다. 단연동맹(斷烟同盟)에 신속히 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신문(新文)에 게재된 것을 잘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본회에서는 규칙과 통문을 인쇄하여 우송할 생각이었으나 일반 사무가 동시에 생겨 이 일이 시급하여 먼저 취지서(趣旨書) 1부를 등서(謄書) 하여 보내오니, 이를 살핀 연후에 일향(一鄕)에 알려 단체를 만드셔서 특별히 의연(義捐)을 할 수 있도록 각자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3. 3. 천둥소리 7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위의 짧은 편지글은 고령지역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향교를 중심으로 한 고령의 유림 지도자들이 고령단연상채회(高靈斷烟償債會)를 조직하여 근 1여 년에 걸쳐 의연금(義捐金)을 모금하게 된다. 이것으로 보아 대구단연회에서는 같은 시기에 고령 이외에 전국 각 지역에 위와 같은 공함을 발송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공함을 처음에 발송한 곳도 당시 지역의 지도자이자 지식인들이 회합할 수 있는 향교로 보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령단연회에서는 위의 공함을 받은 1주일 후인 3월 15일에 대구단연회에 답서를 보내었으며, 관내 읍면에 통문을 보내어 임원을 위촉하였다. 이후 대구단연회에서는 고령단연상채회에 의연금 모금 규칙 등을 보내었으며, 시종 지도와 독려를 하였다. 고령단연상채회 역시 여러 차례 대구단연회에 의연금 모금에 관한 경과를 보고하는 공함을 보내었다. 또 한성에 본부를 둔 국채보상연합회의소에서도 동년 4월 20일에 고령단연의무소장(상채회장) 이두훈 앞으로 이준(李寯)의 공함을 발송하였다. 이때 이준(1859∼1907) 열사는 49세로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로 떠나기 이틀 전이었다. 위 대구와 고령 간에 왕래한 공함을 살펴보면 기타 여러 지역에서도 이와 동일한 과정을 거쳐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준이 보낸 공함에서 국채보상운동이 ‘광문사(廣文社)에서 1통의 편지로 부르짖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전국에 고동치게 하여 인심을 감발하게 하였다.’ 고 한 것으로 보아 당시 대구지역을 비롯한 전국의 국민들이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2) 임원 위촉 및 임명 대구단연회로부터 통문을 받은 고령 향교에서는 향약회(鄕約會)를 중심으로 임원을 위촉하였으며, 관내 읍면에도 임원을 위촉하였다. 고령 향약회에서 1907년 3월 9일에 이두훈에게 도회장(都會長)을 맡아 줄 것을 요청한 돈청문(敦請文)은 다음과 같다. 군 상채회에서 임원의 위촉을 받은 사람들의 일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사양하는 청원서 내었는데, 이것으로 보아 당시에 위촉 임원들이 이 일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을 알 수 있다. 3) 의연금 모금 고령단연상채회에서는 임원의 위촉과 더불어 관내 각 면에 공함을 보내어 의연금을 모금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때 상채회에서는 의연금을 모금하기 이전에 각 면(面) 동리(洞里)의 남자 장정[男口]의 수를 조사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으로 보아 의연금의 모금이 조직적으로 전개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의연금을 모금하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산면에서는 흉년으로 의연금 모금의 어려움을 말하고, 본면에 부과된 금액을 납부하기 위하여 주민의 동의를 거쳐 본면에서 소유하고 있는 주을지(注乙池)의 창고 1개와 상하 벌목장을 방매하여 의연금을 납부하겠다고 하고 있다. 군의 각 지역에서 모금된 의연금은 명단을 잘 정리하여 철저히 관리되었는데, 그 명단으로 보아 고령 지역 주민의 대다수가 동참함 것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보아 당시에 많은 국민들이 국채 보상 의연금 모금에 동참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국채 보상 의연금을 모금할 때 타 지역과 같이 고령에서도 장문(長文)의 국채 보상가가 나타나는데 그 명칭은 ‘단연상채광고가(斷烟償債廣告歌)’이다. 국채보상연합회의소장 이준의 공함 우문(右文)은 돈청사(敦請事)입니다. 본군(本郡) 단연상채회사(斷烟償債會社)의 도회장(都會長)을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좌우(左右)의 사람들로부터 귀하께 귀일(歸一) 하였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자리에 나오셔서 회(會)의 일에 돈독히 힘써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옵니다.
  4. 4. 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4) 국채 보상금 처리 문제 국채보상운동은 근 1여 년간 활발히 전개되었으나 일제의 방해로 보상금의 수합과 처리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각 지역에서는 의연금의 처리가 원만하지 못하자 이를 자신들이 직접 논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는데, 고령지역에서도 이러한 예를 볼 수 있다. 1908년 1월 11일에 고령 향교 향약회에서 고령지역 국채 보상 의연금의 처리를 위하여 26개 면의 대표자들이 모여 ‘완의문(完議文)’을 작성하였다. 완의문은 다음과 같다. 위의 완의문은 백성들로부터 받은 의연금이 상부에서 원만하게 처리되지 못하니 향 중에서 관리하기로 한다고 하였다. 또 1909년 8월 14일에는 의연금으로 고령 향교에 사립(私立) 우신학교(又新學校)를 설립하였는데, 이러한 예는 성주에서 심산 김창숙에 의해 실행된 바 있다. 이것으로 보아 국채보상운동의 의연금이 인재를 양성하는 근대식 학교를 설립하는데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홍와가의 자료를 살펴보면 김광제(金光濟)와 서상돈은 처음부터 시종 이 운동을 이끄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서상돈이 대구를 중심으로 이 운동을 주도하였다면, 김광제는 중앙의 국채보상연합회의소를 통하여 임무를 완수하려고 하였다. 특히 서상돈은 시종일관 재무을 맡아 재정을 관리하였으며, 이준의 공함 등을 통하여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제기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右)의 글은 완의(完議)에 대한 것입니다. 본군 단연의무회 각 회원들이 낸 의연금 1천여 원을 (의무회에서) 보관하고 있는데 국회총소(國會總所)의 지휘를 기다린 지 지금 몇 개월이 되었습니다. 의연금으로 낸 재화에 대해 명목도 없이 중간에 오래도록 보관해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고을 전체의 회의에 따라 각 면에서 수합한 목록에 의거 각 면의 부유하고 건실한 몇 사람을 택하여 맡겨 두었다가 후일의 사태를 지켜보기로 하고, 지금 이후로부터 본군 의연금[一款]은 향중(鄕中)에서 담당하여 관리하기로 합니다. 당초에 임무를 맡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책임을 전가시키지 않도록 합니다. 이와 같이 완의를 합니다. 천둥소리 9 유네스코등재특집 Ⅱ 영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카(Edward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역사적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후대에 가르침을 주는 것은 물론 나아가 현대 사회가 직면한 여러 난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되었던 국채보상운동은 역사가 현재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일본의 경제 침탈에 맞서 나라의 빚을 갚아 국권을 수호하고자 했던 국채보상운동은 비록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했지만, 그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1997년 IMF 경제난 때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금모으기운동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우리 시는 ‘나눔과 책임’으로 대표되는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시민들 삶 속에서 발현될 수 있도록 시내 중심가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조성하고, 대구 중심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국채보상로’로 명명했습니다. 또한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2·28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대구 시민정신으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국채보상운동기념일인 2월 21일부터 2·28 민주화운동기념일인 2월 28일까지를 대구 정체성 확립 주간으로 지정하여 시민이 만들어 가는 정신문화축제로 육성해 나가고자 합니다. 특히 자랑스러운 역사인 국채보상운동을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알리고자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와 함께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문화재청의 국내 심사를 통과하여 조선왕실어보와 함께 우리나라의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우리 시와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 간의 긴밀한 협조 아래 유네스코의 최종 심사를 대비하는 일입니다. 우리 시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최종 등재가 결정되는 내년 하반기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또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선정 이후의 사업 추진을 위한 시 차원의 지원방안도 준비하겠습니다. 100여 년 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전 국민적 관심과 참여였습니다. 지금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성패 여부 역시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에 달려있다고 생각됩니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어 국채보상운동과 그 정신이 대구의 자부심을 넘어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의 유산’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많은 성원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권 영 진 대구광역시장
  5. 5. 안녕하십니까? 대구시의회 의장 이동희입니다. 먼저, 대구 시민의 정체성 근간이자 우리 조상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깃든 국채보상운동의 현대화, 세계화에 앞장서고 계신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신동학 상임 대표님을 비롯한 관계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아시다시피,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의 경제 주권 침입에 대항해 대구에서 일어난 국민적 경제 주권 회복운동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시민운동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기부문화 운동이며, 여성 운동·학생 운동·언론 캠페인 운동입니다. 특히 1997년 IMF 경제난 당시 전 국민이 참여한 ‘나라 살리기 금 모으기 운동’으로 승화돼 글로벌 금융 위기 극복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국가가 진 빚을 국민이 나서서 책임지고 갚겠다고 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하며,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사람들의 실제적 삶과 정신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로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함께 공유하며 보전해 나가야 할 소중한 문화적 자산입니다. 지난해부터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추진하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대구를 넘어 한국의 자긍심을 세우고, 인류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미래 인류가 기억하게 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각 지역에 산재한 국채보상운동 자료를 발굴, 수집, 정리해 역사 문화자원으로서 지속해서 보존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많은 분의 따뜻한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며, 우리 시의회도 국채보상운동이 후세에 길이 남는 정신적 자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함께하여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천둥소리 111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풍전등화와 같은 국운을 되살리고자 고종 황제로부터 걸인에 이르기까지 의연금을 모았던 국채보상운동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남다른 운동입니다. 을사늑약을 전후하여 일제가 우리 민족을 경제적으로 예속하고 식민지 건설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들여온 나랏빚 1,300여만 원을 국민이 스스로 힘을 모아 갚아 내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국채보상운동은 국권 수호 운동이며 자주적인 시민사회운동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아름다운 운동은 1907년 2월 우리 대구의 지식인, 민족 자산가 등이 자발적으로 시작하여,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에 그 취지문이 실리게 되면서 각계각층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국채보상단체가 창립되고, 의연소가 마련되었으며, 부녀자, 유림, 학생, 상민층은 물론 기생, 인력거꾼, 백정 같은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담배를 끊고, 패물을 팔고 심지어는 마을 숲과 저수지를 팔기까지 하며 저마다 모은 돈들을 주저 없이 기탁하였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처럼 각계각층이 자발적으로 마음을 모아 낸 경우는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대한인의 후손으로서 참으로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2,500여 종의 소중한 기록물들을 살펴보면, 국채보상운동은 시민 기부 운동, 여성 운동, 학생 운동, 더 나아가 민주 평등 운동의 정신이 나라를 구하자는 뜻을 고갱이로 거대하게 한 덩이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또, 이 기록물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이에 맞선 우리 겨레의 자주독립의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 줍니다. 이처럼 국채보상운동 기록물들은 제국주의가 횡횡한 근현대사를 생생히 드러내고, 이 운동이 세계 시민운동의 선구적 위치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인류가 보존해야 할 기록유산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취지에서 지난 2013년부터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지역 사회가 힘을 모아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지난해 국내 심사를 최종 통과하고 이제 2017년 유네스코 최종 선정을 위해 지역 사회를 넘어 온 국민의 마음을 모아 가고 있습니다. 열성을 다해 노력하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냅니다.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하고 전국으로 확산한 우리 대구인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시민의식을 다시금 발휘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은 1997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이나 우리 대구 시민의 활발한 교육기부 활동, 일제 만행을 고발한 영화 ‘귀향(鬼鄕)’의 제작을 위한 배우들의 재능 기부와 시민 모금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아름답게 계승되고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아름다운 우리 겨레의 이 숭고한 시민 정신이 더욱 빛을 발하며 세계 시민 사회의 귀감이 되기를 염원합니다. 우 동 기 대구광역시교육감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염원합니다! 이 동 희 대구광역시의회 의장
  6. 6.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된 점은 대구경북 지역민 모두에게 경사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시간과 인적·물적 자원의 한계 속에서도 땀과 열정을 쏟고 계시는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위원회,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안동 국학진흥원, 독립기념관, 국가기록원 등 전국 곳곳에 흩어진 2천500여 건의 문서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이 녹녹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한국 최초의 시민운동입니다. 밑으로부터의 경제주권 회복운동이며, 일제의 경제 침탈에 맞선 주권 수호 운동입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남성 중심의 사회 환경 속에서도 부녀자들이 대거 참여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운동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운동은 대구의 애국계몽단체인 광문회를 이끌던 김광제·서상돈 선생 등이 불을 지폈습니다. ‘일본에서 들여온 외채 1천300만 원을 갚는 일에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다’는 호소와 국민적 보상 제의가 전국에 들불처럼 확산된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단순히 100여 년 전의 ‘역사적 사실’로만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은 IMF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으로 이어졌고, 민주화 정신으로 그 생명력을 발휘했습니다. 또한 국채보상운동 정신은 오늘날의 세계경제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외국의 투기자본과 글로벌 금융자본이 한 국가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이 냉혹한 세계경제질서에 저항할 힘과 지혜를 주는 정신적 자산입니다. 이렇듯 국채보상운동은 우리 지역의 자랑스러운 유산입니다. 이 운동의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은 우리의 고귀한 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것은 물론 그 정신을 세계인과 공유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등재가 최종 확정될 때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많습니다. 올 3월까지 유네스코 등재 신청된 후 내년 7월 열릴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심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합니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만드는 일에 지방자치단체나 유관단체는 물론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매일신문사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여 창 환 매일신문사 사장 1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13 109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국채보상운동을 펼친 우리 선조들의 간절한 마음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와 끊임없이 소통해 왔습니다. 가깝게는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시대정신이 큰 힘이 되었고, 멀게는 물산장려운동과 3.1만세 운동의 바탕에도 국채보상운동의 애국정신이 이어졌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이 우리 지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대구경북 시도민에게는 큰 긍지와 자부심입니다. 특히 대구상공회의소는 국채보상운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구상공회의소의 전신이었던 대구민의소의 선대 상공인들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하고 이끈 주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 지역은 국채보상운동이 담고 있는 소중한 정신적 유산을 후대에 온전히 물려주어야 하는 사명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노력이 드디어 소중한 결실을 하나둘 맺고 있습니다. 문희갑·김영호·신동학 공동위원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열정과 노고에 힘입어 국내 최종 심사에 선정되는 성과를 이루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최종 선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지역민 모두가 힘을 모아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최종 선정까지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지만 우리 선조들이 나라를 위했던 그 뜨거운 마음을 계승·발전시키고, 나아가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우리의 간절함이 함께 한다면 반드시 우리가 기대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후에도 모든 대구경북 시도민들께서 자랑스러운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간곡히 희망합니다. 진 영 환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7. 7. 천둥소리 15 국채보상운동 정신과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 21세기는 책임 사회(RS)의 시대 2016년도의 국제적 이슈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입니다. 이 목표는 우리에게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2016년부터 2030년까지 세계 사회가 지향할 지구적 목표입니다. 유엔의 193개국 정상들이 모여 전 세계 인류가 상생 발전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구체적인 목표로 17개 대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를 설정한 것입니다. 17개의 대목표는 저개발국의 빈곤과 환경오염 그리고 경제적 저성장에 대해 세계시민사회가 공동의 책임의식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적자생존의 경쟁이 아니라 지구촌 사회에서 세계시민으로서의 공존을 위한 목표를 설정한 것입니다. ‘지속 가능성’이란 용어는 1970년대부터 논의되어 온 것으로 이제 우리에겐 익숙한 용어입니다. 잘 알고 있듯이 1972년의 로마클럽 보고서인 ‘성장의 한계’에서 지속 가능성이라는 주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인류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멀지 않아 자멸하고 말 것이므로, 만일 인류가 멸종을 피하려면 지금까지의 살아온 방식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진단했습니다. 35년 전의 경고였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브라질 리우에서 1992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목표가 설정되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 2012년에 ‘리우+20’회의에서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의 토대가 마련됐습니다. 엄 창 옥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설정된 또 다른 경로가 있습니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해인 2000년에 ‘새천년개발목표’(MDG)를 유엔에서 발표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기아 종식과 빈곤 퇴치를 위한 공동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세계 사회와의 약속이었습니다. 이 ‘새천년개발목표’는 2001년부터 2015년까지의 목표였습니다. 2016년에 와서는 ‘새천년개발목표’를 갱신하여 새로운 세계 사회의 과제로서 ‘지속가능발전목표’가 제시된 것입니다. 따라서 ‘지속가능발전목표(S D G s)’는 ‘새천년개발목표(MDGs)’에 비하여 그 목표의 차원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유엔이 ‘새천년개발목표’나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설정한 것은 저개발 국가 시민들의 열악한 삶에 대해 지구촌 주민으로서의 책임의식의 표현입니다. 다음 세대에서도 서로 의존하며 살 수 있는 지구촌 사회의 공존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새천년개발목표’의 사회적 책임은 저개발국 시민의 기아와 빈곤 그리고 건강과 환경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지속가능발전목표’의 사회적 책임은 여기에 더하여 청정에너지에 대한 접근, 사회 공동체의 복원, 산업과 기반 시설의 혁신 등의 사회 전반에 대한 발전 역량까지 확대됐습니다. 이제 지구촌 사회는 저개발 사회에 살고 있는 주민에 대해 지속 가능한 시민적 역량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선언한 것입니다. 책임 사회가 도래한 것입니다. 북후정 Ⅲ 1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의 심볼과 17대 목표 모든 국가에서 모든 형태의 빈곤 종식 기아의 종식, 식량안보 확보, 영양상태 개선 및 지속 가능 농업 증진 모든 사람의 건강한 삶을 보장하고 웰빙(well-being)을 증진 모든 사람을 위한 포용적이고 형평성 있는 양질의 교육 보장 및 평생교육 기회 증진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에너지 보장 지속적·포괄적·지속 가능한 경제성장 및 생산적 완전고용과 양질의 일자리 증진 성 평등 달성 및 여성·여아의 역량 강화 모두를 위한 식수와 위생시설 접근성 및 지속 가능한 관리 확립 GOAL 01 GOAL 02 GOAL 03 GOAL 04 GOAL 05 GOAL 06 GOAL 07 GOAL 08
  8. 8. 천둥소리 17천둥소리 171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2. 국채보상운동 정신과 책임 1907년의 국채보상운동은 당시 대한제국 국민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져있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국민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일어난 운동입니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나라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 했던 것입니다. 당시 여러 ‘국채보상운동 취지서’에 나타난 공통적 생각은 나라와 가정을 하나로 생각했고, 국채로 인해 나라가 망할 상황을 부모가 병들어 집안이 망해가는 상황으로 비유했습니다. 부모가 망해가는데 장가들어 분가한 아들이 이를 보고만 있다면 사람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자식 된 도리로 집안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이듯이 나랏빚을 갚는 것이 ‘국민의 도리’인 것입니다. 자식으로서의 책임과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같은 수준에 두고 국가 공동체를 위기에서 건져내자는 것이 당시 국채보상운동 발기문의 기본적인 관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신으로 취지문을 발표하니 전국에서 호응하여 대구의 서상돈, 김광제 선각자의 단연상채운동 (斷煙償債運動)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이 당시 우리 사회에 이러한 책임정신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채보상운동 정신이 ‘책임정신’이라는 것에 동의한다고 해도, 당시 국민 된 책임을 다 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나랏빚을 책임질 위치나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습니다. 그들은 가난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뒤안길에서 늘 부패한 권력에 의해 억압을 받기만 했고, 계급적 서열로 인해 상것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던 서민들이 스스로 책임을 자각하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실로 역사의 주체세력이 교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국채보상운동은 한국 역사에서 시민계급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그들이 국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자각하면서 비로소 시민사회를 연 특수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3. 국채보상운동은 책임 사회운동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세계는 책임을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사회적 책임’ 운동입니다. 근대역사는 책임이 아니라 권리의 자각으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책임 사회운동은 초기에는 환경문제에 초점을 두었습니다만, 점차 교육과 성(性), 공동체와 경제체제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개발국의 저발전(underdevelopment)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2016년부터 시작된 지속가능발전목표에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목표 7, 8, 9> 그리고 <목표 11, 12>를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목표 9>에는 세계 사회는 개도국에 건실한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인프라에는 금융인프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막대한 세계적 부가 금융 시스템을 통해 이동되고 있는데, 금융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저개발국에는 금융인력마저도 부족하여 부의 유출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이런 개도국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금융 시스템의 구축과 금융전문가의 육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110년 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취약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금융 시스템과 일본제국주의의 사악한 자본의 침투였습니다. 일본 외채로 쓰라린 식민지를 경험했고, IMF 외환위기로 혹독한 고통을 감내한 우리나라로서는 바로 이 지점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실천적인 현대적 재해석을 필요로 하는 대목입니다. 건실한 인프라 구축,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산업화 진흥 및 혁신 지속 가능한 소비 및 생산 패턴 확립 육지생태계 보호와 복구 및 지속 가능한 수준에서의 사용 증진 및 산림의 지속 가능한 관리, 사막화 대처, 토지황폐화 중단 및 회복 및 생물 다양성 손실 중단 국가 내·국가 간 불평등 완화 기후변화와 그 영향을 대처하는 긴급 조치 시행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사회 증진과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사법제도, 모든 수준에서 효과적·책무성 있는· 포용적인 제도 구축 포용적인·안전한·회복력 있는 지속 가능한 도시와 거주지 조성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해양·바다·해양자원 보존과 지속 가능한 사용 이행수단 강화 및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 재활성화 GOAL 09 GOAL 10 GOAL 11 GOAL 12 GOAL 13 GOAL 14 GOAL 15 GOAL 16 GOAL 17
  9. 9. 천둥소리 191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두훈[李斗勳, 1856~1918] 선생은 외가인 칠곡에서 부친 이인한(李寅漢, 1830-1904)과 모친 광주이씨 슬하에 태어났다. 자는 대형(大衡), 호는 홍와(弘窩)이다. 본관은 성산(星山)인데, 그가 자란 관동(館洞, 현 고령읍 본관 1리 일대)은 성산이씨 대종가의 세거지이기도 했다. 9대 조인 문룡(文龍)이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에게서 수학했으므로, 홍와의 가학은 퇴계와 남명의 학풍에 연원을 둔다 할 수 있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행의(行儀)와 재기(才氣)가 출중했는데, 12세에는 고령 현 백일장에서 장원을 거두어 고령 현감 이수겸(李秀謙)으로부터 특별히 칭찬을 받기도 했다. 부친 인한(寅漢)은 성재(惺齋) 김희진(金希鎭)을 독선생으로 초빙하거나, 명망가였던 계당(溪堂) 유주목(柳疇睦, 1813~1872)의 문하에 나아가게 하는 등으로 어린 시절 선생의 학문을 독려했다. 20세에 접어든 홍와는 당대 거유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문하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학문에 매진했다. 한주의 거주지였던 성주의 대포[大浦, 한개마을]에 장기간 머무르던 그는 곧 성주 남쪽의 운산(雲山)으로 집을 옮겼다. 이후 본격적으로 한주의 학문을 습득하여 ‘주문8현(洲門八賢)’ 중 한 명으로서 한주학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한주 역시 ‘大衡’이라는 자를 지어주었고, 字說에서 “대형은 자질이 아름답고 학문에 뜻을 두고 있으니, 쌓고 넓히고 중도를 가려 치우침 없는 도리를 추구할 수 있는 큰 그릇될 것이다.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한주전서』 1, 「이대형자설」]”라고 하며 홍와 선생을 각별히 여겼다. 이후의 일이지만 1902년 5월 한주의 학설을 이단으로 규정한 통문이 충주의 하강서원(荷江書院)의 명의로 성균관을 비롯한 전국 유림에게 발송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때 홍와 선생은 한주의 문집을 들고 성균관을 방문하여 변무했고, 또한 하강서원으로 가서 통문이 위조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주 학설에 대한 배척은 사그라들지 않아서, 안동의 도산서원(陶山書院)과 상주의 도남서원(道南書院)이 통문을 내어 상주향교에서 유림 도회를 개최하는 한편 도남서원에서는 한주의 문집 1질을 불태우기도 했다. 물론 한주 문하인들에 대한 배척도 있었는데, 특히 한주는 앞서 스승의 학설을 변무하고 통문위조를 밝혀내는 등의 이력으로 인해 배척이 심했다. 그럼에도 홍와는 대응하지 않고 칩거하며 후진을 양성했다. 이처럼 한주의 가르침은 그의 삶과 학문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31세 되던 해 스승 한주가 별세하자 주선하여 상을 치르고, 37세에는 거처를 고령 현청 북쪽의 봉동(鳳東)으로, 2년 뒤인 1894년에 동학군의 소요를 피해 거창으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그는 한주의 문인들과 함께 『한주집』의 간행에 참여했다. 이듬해에는 문인들과 상경하여 일제의 을미사변을 성토하고 단발령 철회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수령이 거부되었다. 이에 선생은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포고천하문(布告天下文)>의 초안을 작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곽종석(郭鍾錫)을 대표로 하여 이승희(李承熙), 이두훈(李斗勳), 윤주하(尹冑夏), 강구상(姜龜相), 장완상(張完相) 등이 발의했고, 미국·영국·러시아 등 주한 각국 공사관에 최종본을 발송하기도 했다. 이후 선생은 고령의 내산에 내산서당(乃山書堂)을 짓고 은거하며 후학을 가르쳤다. 그동안에도 선생의 사회참여는 면면히 이어졌다. 1905년에는 이승희, 작석영 등과 상경하여 을사오적의 처단을 요청하는 상소를 제출했다. 고령지역에서의 활동도 왕성했는데, 향약을 만들어 시행하는 한편 종산재(鍾山齋)와 도연재(道淵齋)에서 유계(儒契)를 결성해 고령 유림의 중심인물로 활동하기도 했다. 선생은 1907년에는 고령의무소장(高靈義務所長) 및 고령군 단연상채회(斷煙償債會) 회장으로 추대되어 고령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였다. 최근(2013년 12월) 홍와 선생의 손자인 이진환 전 고령군수는 가장(家藏) 자료 만여 점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했다. 여기에는 <포고천하문>의 초안을 비롯해 선생이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며 면밀히 정리했던 각종 문서와 기록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당시 모금 내역이 수록된 10여 종의 장부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랏빚을 갚기 위해 지역민들의 적극적이고 애절했던 모금 활동 내역이 담겨 있다. 말년에 일본의 강제병합을 목도한 선생은 해외이주를 결심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못했다. 결국 식민지 조선의 초야에서 63세의 삶을 마감했으나, 그의 뒤안길은 선생의 흔들림 없는 삶과 학문을 흠모한 이들로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정연히 남겨놓은 국채 보상의 흔적들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까지 그 가치가 이어지고 있다. 선생에게는 2015년 3월 1일 독립유공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특별기획 「나눔과 책임을 실천한 사람들」 Ⅳ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 윤석호 역사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이두훈 선생의 53세 때 모습 사진출처:한국국학진흥원소장 국학자료목록집23 『성산이씨 홍와고택』 관련유적지 홍와이선생사적비(弘窩李先生事蹟碑)(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관동3길 5-18) 고령군 국채보상운동 기념비(경북 고령군 고령읍 향교길 29-18)
  10. 10. 나눔과 책임 Ⅴ 우리는 건강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한다.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또한 열심히 공부한다. 우리 가족들에게도 열심히 운동하고 공부하라고 권한다. 우리는 건강해야 하고 부유해야 하며 또한 존경받아야 행복하다. 그러면 우리가 아닌 타인들은 어떠한가. 그들도 우리와 꼭 같이 행복해야만 할 자격과 권리가 있다. 나는 뇌와 척추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신경외과 의사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환자의 뇌와 척추 수술을 해왔다. 수술할 때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마취제이다. 이제까지 마취제로 흔히 쓰이던 물질은 모르핀(morphine)이었다. 이는 양귀비에서 얻은 아편 속에서 진통 효과 물질을 추출한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전쟁 속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포함해 수술 중 고통을 완화시킨 것이 바로 모르핀이다. 이것은 19세기에는 설사, 이질, 콜레라로부터 목숨을 구한 특효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르핀에는 장기 투여 시 중독되는 무서운 부작용이 숨어있다. 이러한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현재는 모르핀 사용이 금지되어 있고 말기 암 환자들에게만 부분적으로 투여가 허용되고 있다. 그래서 1975년, 코스테리츠라는 학자는 이 모르핀 보다 통증 완화가 수 백배나 강한 물질을 찾아냈다. 이것은 아무런 부작용이 없고 인간 체내에서 무한하게 생성될 수 있는 엔도르핀(endorphine)이라는 물질이다. 어머니가 자녀를 10달 동안 잉태하고 출산 시 숨이 차는 극한의 고통 속에도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출산의 고통을 잊게 한다. 또한 각종 스포츠에서 극한의 어려운 상황에 클라이맥스를 경험하는 그때 바로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그 순간을 행복하게 한다. 이런 엔도르핀은 특히 웃을 때, 그리고 남을 도와주어 행복을 느낄 때에 가장 많이 분비가 된다고 한다. 함인석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나눔과 배려 그리고 건강 2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하버드대에서는 이것을 ‘마더테레사 효과’라는 것으로 입증한 바 있는데, 타인을 사랑하고 도와줄 때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엔도르핀이 정상치의 세배 이상 분비되어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넘치게 되어 행복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 외에도 행복할 때 우리 몸 스스로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 물질도 있다. 우리가 건강하고 부유하고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공부한다. 마침내 타인으로부터 존경받으므로 행복하게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건강하고 부유함과 권력으로 타인에게 부러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존경받을 수는 없다. 소위 건강과 부유함 권력은 존경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타인에 대한 사랑과 나눔이 더 해질 때 비로소 존경과 행복의 충분조건이 완성된다. 이때 행복 신경전달 물질인 엔도르핀과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이런 행복물질은 우리들의 신체 면역력을 수십 배 증가시켜 우리들의 몸과 맘을 무한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소위 행복은 수명을 연장 시키는 큰 효과가 있다. 우리 지역 2014년 연말은 다른 겨울보다 엔도르핀이 부족한 추운 겨울이었다. 공동모금회에서 대구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사랑의 온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다. 교육과 문화의 도시이자 신의와 명예의 지역인 우리 대구, 과거 국채보상운동의 시발지라는 명성과 어울리지 않게, 사랑의 온도탑이 겨우 80도 부근에 머물러 우리 모두 자존심 상하고 매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2015년 지난해는 달랐다. 본인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전해주신 청소부 할머니의 쌈짓돈, 상인들이 한마음으로 나눔 실천을 결심하여 탄생시킨 착한 골목, 올해도 변함없이 찾아와 1억 2천 2백여 만 원을 전해주고 홀연히 사라진 키다리 아저씨, 1억 이상의 기부를 함께한 7명의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 사랑의 온도가 아직도 낮다는 소식에 기꺼이 함께 해 준 500여 개의 지역의 중소기업들, 그리고 수만 명의 우리 시민들, 특히 타 지역에서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지역의 명예를 드높인 30대 청년, 총각, 경북대 학생의 타인을 위한 수 억 원의 엄청난 나눔, 모두들 한마음으로 사랑을 베풀어 주셨기에 올해 대구의 모금액은 사랑의 온도 101.5도로 뜨겁게 끓어오를 수 있었다. 엔도르핀과 세로토닌 이들 행복물질 효과는 대구시, 각 구청, 상공회의소 대구은행, 한국감정원과 한국가스공사, 언론계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의 구성원들과 저희 사랑의 열매 직원들, 지원을 받는 소외된 이웃들에게도 번져나가 따뜻하고 행복한 대구를 구축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행복 물질들의 가장 큰 효과를 받은 분들은 나눔을 직접 실천해 주신 대구 시민 여러분들이시다. 이러한 행복 신경전달 물질들이 대구와 우리나라, 세계 전역에 퍼져서 어제보다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사랑의 배려가 계속해서 이어지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희망 2016 나눔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고 사랑과 나눔을 직접 실천해주신 존경하는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리며,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이 되기를 기원드린다. 천둥소리 21
  11. 11. 천둥소리 23 청년에게 길을 묻다 Ⅵ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허그인’ 허그인은 나눔을 즐기는 문화를 만드는 브랜드입니다. 세상의 누구나 나눔을 일상에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나눔의 즐거운 에너지를 통해서 세상을 행복하게 합니다. ➊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서 시작된 꿈 허그인은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꼬마는 자신이 진심을 담아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그 나눔이 이어지고 또 이어져서 확산될 것이고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상상을 합니다. 실제로 꼬마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고, 세상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나눔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나눔을 주고받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보고 들은 사람들까지도 나눔을 계속해서 이어간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아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실천에 옮겼고, 3개월 동안 300명의 사람들이 나눔을 실천하고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를 실행해보는 글로벌 라이프 프로젝트 공모사업에서 대상을 수상하였고, 나눔의 놀라운 잠재력을 확인하게 됩니다.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2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그래서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나눔을 자주 실천하고 이어가게 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꿈이 생겼고, 다양한 사람들의 나눔과 응원이 모여서 허그인의 핵심컨텐츠 <허그인 대국민 나눔 프로젝트 PROMISE>가 탄생했습니다. ➋ 허그인 대국민 나눔프로젝트 PROMISE -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를 현실로!! <허그인 대국민 나눔 프로젝트 PROMISE>는 세상의 누구나 나눔을 일상에서 즐길 수 있도록 자신이 실천한 나눔 스토리를 공유하고 서로 응원해주는 즐거운 나눔문화운동입니다. 나눔의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눔 활동에 재미와 활력을 더해주는 특별한 응원을 제공해서 일상에서 지치지 않고 나눔을 즐겁게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나눔에 대한 인식, 실천, 소통에 대한 종합적인 변화를 기반으로, 세상의 누구나 어떠한 나눔을 해도 나눔의 크기와 종류에 상관없이 개인 및 단체 차원에서 서로 ‘응원’해주는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나눔이 일상이 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프라미스 모바일 플랫폼에서는 다양한 나눔 스토리를 보면서 각자의 일상에서 혼자가 아닌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 있구나를 느끼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응원이 될 수 있고요. 각자가 실천한 나눔 스토리에 대한 공감과 댓글을 통해서도 응원을 받게 됩니다. 더불어 오프라인에서도 나눔을 좋아하는 매력적인 사람들과의 파티, 나눔 명사와의 특별한 만남, 판타스틱한 페스티벌 등 나눔 활동에 재미와 활력을 더해주는 특별한 응원을 제공하여서, 나눔이 일상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렇게 개인의 나눔 실천 활성화를 가능케 하는 동시에 프라미스 공동 미션을 통해서는 이들의 즐거운 나눔 에너지를 모아서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에도 실제적인 기여를 하려고 합니다. ➌ 나눔을 통해 함께 행복해지고 싶은 꿈이 점점 현실로!! <허그인>의 꿈이 재미있고 의미 있는 그리고 모두가 공감할 만한 꿈이어서인지 신기하게도 좋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음을 함께하게 되었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글로벌 패션시계 브랜드 <모먼트워치>인데요.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시계 수익금의 30%를 기부하는 멋진 시계입니다. 국내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국민 MC 유재석님이 무한도전에서 차고 신성국 허그인 대표
  12. 12. 천둥소리 252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나와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글로벌 기업 모먼트워치 역시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서 감동을 받아 언젠가 현실로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고 해요. 우연히 허그인이 실제로 영화를 현실로 만들 예정이라는 사실을 접했고, 글로벌 공식 파 트 너 가 되 는 기 적 같 은 만 남 이 이루어졌어요. 허그인 대국민 나눔 프로젝트 PROMISE 테마 시계 제작을 시작으로 프라미스(PROMISE)가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약속해주었습니다. 실제로 올해 4월에 프라미스 국내 론칭을 시작으로 아시아, 북미, 유럽 순으로 전 세계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이 나눔이 일상이 되는 그날까지 함께 확산시켜 나갈 예정입니다. 두 번째는 교육 회사인데요. 마찬가지로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짧은 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은 교육 회사에서 사회 공헌 차원으로 프라미스 교육 콘텐츠 제작을 지원해주셨고, 올해 4월부터 전국 중·고등학교에 나눔,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들어가서 나눔의 즐거움을 전파할 예정입니다. 이처럼 나눔을 통해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나아가다 보니, 전혀 생각지 못했던 좋은 기회와 가능성들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➍ 허그인 대국민 나눔 프로젝트 PROMISE의 준비과정 - 나눔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공간 + 프라미스 전국투어 허그인에서는 지난 2년 동안 허그인 대국민 나눔 프로젝트 PROMISE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준비과정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나눔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나눔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응원하기 위해서 만든 공간입니다. 나눔은 실천 자체도 중요하지만, 실천한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해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나눔을 주제로 프라미스 전국투어를 진행 중입니다. 대한민국의 남녀노소가 실제로 일상에서 나눔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전국의 이미 즐겁게 나누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소통, 나아가서 함께 힘을 합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 & 경기 쪽에서는 지난 2년 동안 즐겁게 나누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틈틈이 가져왔고, 최근엔 2개월 (2015년 11월 28일 ~ 2016년 1월 22일) 동안 제주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즐 겁 게 나 누 는 사 람 들 을 만나고 왔습니다. 앞으로 전국투어를 이어가서 전국의 지역별로 색깔에 맞는 나눔 프로젝트와 커뮤니티 파티를 진행하는 게 목표입니다. 나아가서는 나눔을 주제로 프라미스 세계 일주를 꿈꾸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낭만적인 나눔을, 스페인서는 열정적인 나눔을 하는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나라별 색깔에 맞는 나눔 프로젝트를 즐겁게 펼쳐서 나눔의 일상화에 기여할 예정입니다. ➎ 우리가 각자의 나눔을 통해 함께 행복해지는 기적을 꿈꾸며 허그인의 비전은 나눔을 즐기는 문화를 만드는 거예요. 우리가 일상에서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고,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듯이 나눔이 일상에서 자연스러워지는 그래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기적을 꿈꾸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세상의 나누는 사람들을 위한 응원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서 각자의 일상에서 나눔을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면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처럼 세상의 곳곳에서 일상 속 나눔이 활발해져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기적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13. 13. 2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27 “네 소원이 무엇이냐?” - 내 소원은 대한 독립입니다 -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 우리나라의 독립입니다 - “또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입니다 - 그 해 뜨거운 여름, 경교장 총탄에 맞고 돌연 비명에 가신 백범 김구 선생님 신탁통치 반대의 깃발이 파도처럼 펄럭이던 부산 대신동 공설운동장 본부석 나라를 잃었는지? 나라를 찾았는지? 선생님 이름도 모르고 환영 꽃다발을 바친, 눈이 큰 부산 보명 유치원 화동 고희의 비탈길에 서서 묻는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네 소원이 무엇이냐?” 천둥문학 Ⅶ 천둥문학 Ⅶ 서문구 주춧돌 꿈 안고 살아가는 고구려인 물 마시던 천지 마르지 않네 초병처럼 량창 지키고 섰는 우거진 억새풀 사이 청태 낀 연자돌 가볍게 옛사람과 숨소리 나누네 세월의 흔적 묻은 성벽 아래로 바람처럼 구름처럼 나뭇잎들 뛰어내리네 오녀산에 올라 약력 ·2011년 요녕신문 ‘압록강부간’에 시 오녀산, 해인사 차 한 잔 등으로 시작품 활동 ·료녕성예술사진작가협회, 본계시사진작가협회 회원 ·환인현사진작가협회 이사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작가회 상임시인 ·환인만족자치현 조선족고중학교 교사봉창욱 약력 ·월간[詩文學] 신인상으로 등단함(1989) ·한국현대시인상 수상(2012) ·이화문학상 수상(2015) ·시집 「끈끈한 손잡이로 묶어주는 고리는」 , 「촛농의 두께만큼」 등 김선진 천둥소리 27천둥소리 27
  14. 14. 늘 벼루기만 하고 미루어온 일을 처리하려고, 옅은 갈색 커튼 사이를 헤집고 들어온 햇볕이 따사로운 늦가을 오후를 서재에서 보냈다. 그 일은 몇 해 전에 이사 온 날 허겁지겁 치우느라 뒤섞여버린 책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다. 단단한 편백 나무로 만들어진 벽면 책장 앞에서 오래된 책들은 조심스레 다루면서 상태를 눈여겨봤다. 고요함 속에서 사락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와 독특한 종이 냄새가 방안을 은은히 부유했다.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한 70년대 중반에 발간된 시집을 뒤척이다가 문득 손짓을 멈췄다. 책 중간에 엽서 크기의 종이에다 볼펜으로 소녀티를 갓 벗은 여자를 그린 인물화가 끼여 있었다. 여자는 아몬드 열매를 닮은 눈매에 검고 촉촉한 눈을 가졌다. 섬세하게 묘사한 그림 속의 인물이 자못 궁금해져 누구인지를 기억해내려고 한동안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기억은 마치 높은 벽에 막힌 듯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고 끝내는 포기했다. 달포쯤 지나 밤늦은 시간에 케이블 방송에서는 ‘건축학개론’이란 멜로물을 방영했다. 대학시절에 만난 첫사랑을 훗날 재회하면서 새롭게 사랑을 찾아가는 줄거리였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뜻밖에 아득한 잊혀진 시절의 기억이 안개같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느 가을에 점수가 후하다고 소문이 돌던 과목을 수강하러 간 강의실은 많은 학생으로 소란스러웠다. 난 잠깐을 두리번거리다가 창가 자리에서 턱을 괴고 오래된 풍경최운집 천둥문학 Ⅶ 2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천둥소리 29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뚜렷한 쌍꺼풀에 날렵한 콧날의 여학생에게 눈이 멈췄다. 아침이슬이 맺힌 풀잎처럼 여기서 빛나는 것은 그녀뿐이었다. 그렇게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 후로 줄곧 주위를 서성거렸다. 대개는 떨어져 훔쳐봤는데 그러다 마침내 바로 뒷자리에 앉고 말았다. 열린 창문으로 침입한 황금빛 햇살이 하얀 목덜미에 닿아 빛 알갱이들이 반짝이는 동안, 난 눈으로 천천히 가녀린 목과 좁은 어깨를 어루만지며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내 숨결이 전해졌는지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에 속내를 감추려고 애써 감정 없는 표정을 지었으나 상대방을 속일 수는 없었다. 내 강렬한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 다음부터는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학기가 끝날 무렵, 하루는 급히 복도 모퉁이를 돌아서다가 눈앞에 별안간 맑은 눈망울이 보이고 이내 둘은 부딪쳤다. 바닥에 떨어진 노트를 줍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어정쩡한 자세로 미안하다는 말을 은연 중에 더듬었다. 말을 채 끝내지 못했는데 그녀는 차분한 얼굴로 가벼운 목례를 남기고 떠났다. 아쉬운 마음으로 창가에 서서, 버스정류장으로 길게 난 호젓한 오솔길을 사뿐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길섶의 떡갈나무 가지 사이로 눈부신 오렌지색 노을이 쏟아져 내려, 그녀의 화사한 꽃무늬 치마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 내 마음도 바람을 타고 번지는 산불처럼 함께 타올랐다. 그해 겨울, 군대에 가게 되자 도시를 배회하며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입영을 며칠 앞둔 술자리에서 몹시 취해 그간 숨겨온 비밀스러운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한 친구가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고 나서면서 난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친구 편에 전했다. 약속한 찻집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긴 기다림에 지친 나는 어쩐지 이 사랑의 결말은 슬플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마지막 쳐다본 창에는, 달도 별도 없는 어둠 속에서 유리창에 비친 휑한 내 눈만 보였다. 이미 막차도 끊긴 거리에서 나는 혼자 오롯이 어둠 한가운데 버려져 있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어디에서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만 갈 곳 잃은 애달픈 연정은 내뿜는 담배연기 따라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지고, 우울한 나는 모든 게 시들해졌다. 하지만 몇 번의 꽃이 피고 지는 사이에 망각의 도움으로 언제까지나 못 잊을 것 같던 애틋한 감정이 차츰 사그라졌다.
  15. 15. 여러 해 뒤, 직장에서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영업장의 상품을 살펴보다가 왠지 타인의 눈초리가 느껴져 주변을 둘러봤다. 시야에는 흠칫 놀란 표정의 그녀가 얼른 몸을 돌려, 동행한 남자와 함께 귀금속 진열대에서 한 쌍의 반지를 끼워보고 있었다. 그들이 떠난 후 판매원은 결혼반지를 마련하려고 온 예비부부임을 알려줬고, 난 그 뒤를 뭔가에 이끌린 듯 따라 나갔다. 길을 사이에 두고 반가움과 상실감으로 그저 두 사람이 정답게 걸어가는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불쑥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짧은 순간에 서로의 시선이 엉켰다. 가냘픈 어깨너머 비추는 환한 햇빛으로 얼굴은 그늘져 있어도, 날 쳐다보는 깊고 투명한 눈에 따뜻한 웃음이 담겨 있었다. 거리는 봄바람에 실려 온 달콤한 라일락 꽃향기가 넘치고 짙은 푸르름으로 살아 있었다. 그들이 수채화 같은 오월의 풍경 속으로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진 뒤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삼십 년 전, 이때가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얼마 전 발견한 그림이 아니었다면 나는 영원히 그녀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도 하늘이 참 푸른 어느 가을날에 패물함을 정리하다가 결혼반지를 보면서, 우연히 그날 봄 햇살에 눈이 시려 실눈을 하고 바라보던 남자를 기억해 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는 아련한 옛 추억을 회상하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도록 뇌리에서 지워진 얼굴이었다. 그래도 가뭇한 스무 살 시간 속으로 돌아가면, 막 어른으로 발돋움하는 마음에 예리하게 패인 흔적을 남긴 시람이다. 향긋한 로즈메리 차 한 잔 도 정겨운 말 한마디 도 나눈 적 없어도, 난 결국 이 오래된 이야기를 사랑이라 부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 자신에게 되묻는다. 여리고 순수한 시절에 온종일 그녀 생각에 심장이 터질 듯 한 가슴 앓이를 다른 말로 대신할 수는 없을 테니깐. 밤을 새워 낮에 본 얼굴을 기억 속에서 불러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눈, 코, 입을 만족할 때까지 몇 번이나 고쳐 그렸던 청년은 어느새 초로의 나이가 되었다. 종잇조각은 황동규 시집의 ‘내 그대를 생각함은...’으로 시작하는 ‘즐거운 편지’에 꽂혀있었다. 이제 빛바랜 시간 속의 그림은 우리 모두의 사랑, 이별, 고독, 그리움에 관한 미처 못 다한 이야기를 품고서, 묵묵히 흐르는 근처 강물에 띄워 보낼 작정이다. 잠시 눈을 감고,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진 시간의 연결고리를 거슬러 가본다. 라일락 꽃향기가 거리 곳곳에 흩날리던 아름답고 슬픈 어떤 봄날, 내 눈에서 가슴속에서 점점 멀어져 간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무관심한 척했지만 꼭 한번 뒤돌아보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혼잣말로 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존재감을 인정받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오랜만에 나는 소년처럼 해맑게 미소 지었다. 천둥소리 313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최운집 ㅣ 화요수필 동인
  16. 16. 회원광장 Ⅷ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구려 제1도읍 환인 가는 길. 인천 국제여객선 터미널에서 동방명주(東方明珠)호 배를 타고 저녁 8시경 출발해 밤새도록 서해안을 거슬러 오르고 올라가면 이튿날 오전 10시경 단동항에 도착한다. 북한의 신의주 맞은편인 단동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6시간가량 산 넘고 물 건너 처음 당도했던 고구려 제1도읍 환인 땅이었다. 말구유와 들판에 버려지기도 하면서 알에서 태어나 어머니 유화부인과 동 부여땅에 살다가 대소 왕자의 위협에 탈출을 감행했다는 어쩌면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런 주몽이 동 부여땅에서 탈출해 자라 등을 타고 무사히 엄리대수를 건너 비류수를 따라 남하해 당도한 곳이라니. 아직도 비류수는 그대로 푸른 고등어의 등살같이 푸들거리며 흐르고 있었고 올라다 보이는 오녀산은 하늘 병풍처럼 그 위풍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다. ‘5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라고 읊은 고려 말 야은 길재 선생의 싯구가 떠오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5백 년’이 아니라 2천 년이 되지만. 슬픈 현상은 역사가 2천 년을 내려오면서 온갖 풍상을 겪다 보니 고구려인들은 어디론가 간 곳 없고 만족 자치현이 되었고 청나라 후예들인 만족들의 근거지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압록강변 집안 땅 광개토대왕비에도 새겨져 있듯이 이곳 환인 땅 오녀산은 ‘시조 추모왕(주몽)께서는 북부여 출신으로 부여의 엄리대수를 건너 비류곡을 지나 홀본 서성산 위에 도읍을 정하시다’ 이렇게 광개토대왕 비문에 새겨져 있는 홀본 서성산이 바로 이곳 오녀산성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곳에서 기원전 37년에 주몽이 고구려의 첫 도읍을 정해 18년간 집정한 역사의 현장이라면 누가 믿을까. 산정에 서니 천하절경이 여기 말고 어디 또 있으랴! 이런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고구려의 젖줄인 혼강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으며 혼강을 낀 산맥들이 굽이쳐 흐르는 것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것이 대장관이었다. 이곳에도 천지라는 연못과 왕궁터가 있고 맷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주몽의 사당이 있었던 자리엔 그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뒤 고구려 역대 왕들이 왕위에 오르면 이곳에 와서 시조 동명성왕에게 참배했다고 한다. 그 어느 때나 역사의 흥망은 있는 법이지만 남의 땅이 되어버린 이 절박함 앞에서 무슨 말이 소용 있겠는가. 산길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 허탈한 마음 가눌 길 없었다. 오녀산을 터벅터벅 내려와 해가 지고 어둠이 강물을 소리 없이 뒤덮을 때까지 나는 비류수 강가에서 떠날 줄 몰랐다. 순간 2천 년 전 과거로 돌아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 다리난간에 떠오른 초승달을 바라보며 새 나라 고구려가 다시 일어서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었다. 주몽이시여, 그대 꿈결의 초승달 하나 그대 2천 년 꿈의 머리맡 돌아 비춰오시니 어찌하오리까 벌써 다 먹어버린 밥그릇처럼 이 땅은 남의 것이 되었으며 고구려 제1도읍 환인 땅을 가다! 서지월 시인과 함께 하는 만주 역사기행-1 천둥소리 333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주몽이 대고구려를 세운 오녀산 전경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작가회의 공동의장 서지월
  17. 17. 회원광장 Ⅷ 지난해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우리나라의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총 2,472건이다. 이 기록물은 1)국채보상운동의 발단과 전개를 기록한 수기 기록물, 2)국채보상운동의 확산과 파급을 기록한 수기 기록물, 3)국채보상운동 관련 일본 정부(통감부, 조선총독부) 기록물, 4)국채보상운동의 실황을 전한 신문 및 잡지의 언론 기록물 등 네 가지 종류의 세부 기록물로 구성되어 있다. 천둥소리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대한 여러분들의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라는 마음으로 ‘유네스코로 가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들을 4회에 걸쳐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1. 국채보상운동의 발단과 전개를 기록한 수기 기록물 국채보상운동의 발단과 전개를 기록한 수기 기록물은 전 국민에게 국채보상운동에의 참여를 호소하기 위해 이 운동의 취지와 목적 등을 설명하는 취지문과 발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수량은 등재 신청 기록물 총 2,472건 중 12건이며, 한지에 한문 혹은 한글 혼용체의 붓글씨로 기록되어 있다. 국채보상운동 취지서와 발기문의 내용은 대체로 ‘국민 된 책임으로 금연 등의 기부운동을 통해 국채 1,300만 원을 갚아서 위기에 빠진 황제와 나라를 구하자’라는 것이다. 남정원 유네스코로 가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이 강 역시 우리의 말(馬)이 먹을 수 없는 물이 되었음을 아시오니까 2천 년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으시매 누가 이를 증명하며 부싯돌에 칼을 갈아 저 천공에 번쩍이오리까 주몽이시여, 머리 부분 빼앗기고 허리마저 동강나 그 동강난 두 다리 이끌고 천만리 길 마다하지 않고 북으로 북으로 왔건만 조금만 쉬어가라며 이 땅의 새 주인은 비자만 한 달랑 손에 쥐어 주더이다 내일이면 떠나야 하니 흐르는 눈물 닦을만한 손수건도 없이 저 달이 차오르는 것마저 몇 날 며칠 지켜보지 못한 채 어디로 저를 가라 하는지 아, 아, 주몽이시여, 어찌하오리까! 나는 이렇게 지금의 남의 땅, 잃어버린 설움에 대하여 시 한 수를 지어보았다. 지금은 비류수(沸流水)가 혼강(渾江)으로 홀승골성(紇升骨城) 서성산(西城山)이 오녀산((五女山)으로 중국 역사 속으로 잠식되어 불리고 있지만 지나가는 바람은 풀잎의 몸을 빌려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다 라고 위로해 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천둥소리 353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책임연구원
  18. 18. 사진1)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소장하고 있는 국채보상회 사통 및 취지서다. 이 취지서는 1907년 3월 3일 국채보상회 회장 심호택이 경상북도 청송군 부서면 회장에게 ‘취지서를 각동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협조를 구하라’는 내용의 사통(私通)에 첨부된 것이다. 그 내용은 ‘청송의 대소 백성과 여러 군자들은 위로는 우리 조국이 4천여 년 동안 자주적으로 이어 온 기틀을 생각하고, 중간으로는 우리 선조가 몇 백 년 동안 쌓은 은혜를 위로하고, 아래로는 우리 자손이 천만 년 동안 편안하게 살 땅과 자산을 열어두어야 한다. 빨리 의기를 떨쳐 재산을 보내어 이웃의 웃음거리가 되지 말고 천하의 대의를 그르치지 말고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하자’는 내용이다. 이 취지서는 동봉한 사통(私通)과 함께 지역 단위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사진2)는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국채보상운동취지서는 용궁면의 정진사라는 사람이 쓴 국채보상운동취지서이다. 그 내용은 ‘우리 동포들이 열성적으로 국채 보상에 참여하여 이마에는 대한의 하늘을 이고, 발은 대한의 땅을 밟도록 해주시기를 눈물을 머금고 간절히 요구한다’는 것이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5월 14일 자 1면에 실린 경북 용궁군 국채보상모집문과 유사한 내용으로 신문에 실린 모집 문의 원본으로 판단되는 취지서이다. 당시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기관들이 국채보상운동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사진1), 2)로 소개한 국채보상운동 취지서를 비롯한 총 12건의 국채보상운동 취지서와 발기문은 주로 한지에 붓글씨로 쓰인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기록물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느껴볼 수 있게 하는 자료이다. 또한 그 내용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와 목표, 구체적인 운동의 방법 등을 파악할 수 있고, 국채보상운동이 사상적으로 전통적 충군애국사상(忠君愛國思想)과 근대적 시민의식이 결합된 ‘아래로부터의 국민운동’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특히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와 발기문은 용궁면 국채보상운동취지서의 사례처럼 발표된 그대로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한 당시의 언론매체에 기사 형식으로 개제되었기 때문에 시기별로 국채보상운동의 전국적인 전개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사진1) 국채보상회 사통 및 취지서 사진2) 경북 용궁면 국채보상운동취지서 천둥소리 373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9. 19. 천둥소리 393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광장 Ⅷ 정의와 평화의 소녀, 의병장 우배선 장군에게 길을 묻다 3.1절 아침 방송을 마치고 나온 동성로에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부 사이에 이루어진 일본군 위안부 합 의를 무효화해야 한다는 대구 시민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 곁을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친 종이로 재현된 평화의 소녀상...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며칠 후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월곡 역사공원 안에 자 리 잡은 월곡역사박물관에 다녀왔다. 비 오는 주말이 라 그런지 공원과 박물관은 조용했다. 산책을 하며 둘러 본 역사박물관은 단양 우씨 판서공파 자손들이 약 600여 년 동안 지켜온 그 터전에서 청소년 역사 교육과 충의의 정신을 지역민들과 나누고 있음을 뚜 렷이 느낄 수 있었다. 의병장 월곡 우배선 장군은 단양 우씨 판서공파 파 조 우홍명선조의 제6대 종손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 자 용감히 의병을 모아 생명과 재산을 돌보지 않고 싸웠다. 요즘 말로 하면 게릴라 전술로 매번 이겼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초유사 학봉 김성일 선생은 우배선 장군의 공적을 높이 찬양하여 조정에 표창해 줄 것을 청원하였고 선무원종공신 일등공신으로 녹훈 되었다. 현재 그와 관련된 34건의 문헌은 국가 보물 제1334호로 지정되어 전해지고 있다. 물론, 후손인 제가 보아도 우배선 할아버지가 약관 24세의 백면서생으로 창의를 한 것이 놀랍기도 하 지만 전국에서 제일 먼저 왜의 침략에 맞서 항쟁하였고, 왜병이 점령한 지역인 화원 일대에서 활동했다는 점 또한 그 의미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나눔을 주시는 성주 화원 의병장 우배선 장군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 믿는다.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한 이후 민중들의 저항과 독립운동이 우리나라 전체에서 치열하게 타올랐던 것도 국채보상운동과 임진왜란 의병활동 등 민족 저항 정신이 그 밑바닥에 포근히 담겨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의 이야기를 다룬 “귀향”과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극화한 “동주”까지...다시 근현대사의 의미를 나눌 수 있는 영화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상상력을 펼치고 싶 어졌다. “정의와 평화의 소녀상에서 그 소녀가 다시 살아나 우배선 할아버지를 만난다면 어떤 질문을 했 을까?” 라고...굳이 말한다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까?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면 우배선 장군 은 이렇게 답하시지 않았을까? “그래, 힘이 들더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싸워야지...우리 후손을 위해서라도 평화로운 아시아를 위해서라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두 나라 정부 사이의 합의에서 느끼는 괴로움이 나만의 문제는 아닐 듯싶다. 피해 당사자들인 할머니들의 의 견이 빠져있다는 것이고, 아울러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정부나 우익인사들은 여전히 반성과 화해의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행위를 미화하고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피 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고 진정한 사과와 반성 그리고 화해도 이루 어지지 않았는데 정부 사이 합의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3.1절 오후 대구 시내에서 만난 평화의 소녀상을 보면서 소녀의 옆 자리에 앉아 역사의 수레바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충동에 서 시작해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 지...? 임진년 왜구의 침략이 다시 1910년 식민지화로, 해방 이후 여 전히 우리나라와 북한, 중국, 일본은 갈등하고 싸우고 있으니, 과연 동 북아시아의 평화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불편한 숙제만 남기고 이 글을 마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구시 동성로에서 본 평화의 소녀상 우웅택 대구PBC 프로듀서 학봉 김성일 선생의 계문초 보물로 지정된 창의유록 (의병진 군공책)
  20. 20. 회원광장 Ⅷ 국채보상운동, 공익을 위한 문화기반으로 자리 잡길 바라며 요즘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공익을 위한 활동에 자신의 관심을 표현하고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서 공익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가 하는 질문을 먼저 던져본다. 의사로서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1990년도에 대구사회복지 문제 연구소 상임이사직을 맡으면서, 1993년 전석복지 재 단을 설립하고 다양한 지역사회복지 활동을 하였다. 그 당시 시민문화와 복지를 위해 일하려는 젊은이들 과 자유롭고 창의적인 자원봉사모임을 하고자 그러한 결정을 하였다. 요즘은 스마트폰에서 사람을 만나고 인간애를 찾는 듯하며, 자연이 사라진 자리에 도시문명이 자리 잡 아서 아이들은 언제든 집 밖에서 뛰어놀 수 있는 게 아니라, 정해진 공간에 정해진 시간에 놀 수 있게 되 었다. 인간은 환경 속에서 살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공간, 사고의 문화배경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영향 을 준다. 어른들은 이제 후손들에게 경제성장을 물려주기보다는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전달해주는데 집중 해야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사회가 될 거라고 본다.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은 경제성장의 둔화와 복지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는 현시대에서 국민들의 갈등을 완화하고 통합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시민들이 인지하고 다시 되새겨야 할 가치가 있다. 민간주도의 구국 운동이었다는 점, 국권 회복이라는 목표의식이 분명했다는 점,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로 여겼다는 점,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했다는 점 등은 현 우리 사회에서 자원봉사, 시민참여의 활동에서 요구하는 가 치이다. 국채보상운동의 단순 과거의 우수사례인 국권 회복이라는 애국계몽운동으로만 여기는 것에 머무 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지역사회 내 새로운 시민운동인 자원봉사활동으 로 승화해야 할 것이다. 자원봉사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이며, 국채보상운동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국가적, 사회 적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했다는 점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같다고 본다. 현대 자원봉사 생활화 시대에, 자원봉사에 대한 많은 제도들이 도리어 자원봉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만들어 낸다. 왜 참여하고 있는 지, 나의 참여가 우리 사회의 어떤 공익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사고의 단계를 생략해 버리게 된 결과일 것이다. 사회참여를 하는 목적과 나의 참여방법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충분히 필요하다. 그런 사고 의 과정이 행동을 보다 적극적이고 책임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고의 과정은 사회 전반의 문화 속에서 학습된다고 본다. 국채보상운동의 가치는 시민운동의 가치이며, 향후 사회 성장과 더불어 시민복 지의 향상을 가져오기 위한 중요한 정신문화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적 가치가 현대 자원봉사로 승화되어 우리 사회에 긍정적 인식 확산뿐만 아니라 이웃사랑과 나눔의 실천이 활발해지 기를 기대한다. 천둥소리 4140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여운재 前 전석복지재단 대표이사
  21. 21. 천둥소리 434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친절은 행복 바이러스 한 도시의 교통 문화는 시민들의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특히 도시의 얼굴 이라 할 수 있는 도로 위의 택시는 도시의 이미지로 연결되기 때문에 교통질서는 물론 친절서비스는 아 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덕목이다. 시민들이 원하는 택시 서비스는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겨울 추 위에는 따뜻한 온기가 생각나고, 여름 더위에는 시원한 바람을 찾는 것처럼, 시민들은 따뜻한 온기와 시 원한 바람 같은 택시 서비스를 바란다. 그러나 대구 택시 서비스는 시민들이 원하는 수준과는 크게 차이가 나고 있다. 2015년 대구시 교통연 수원이 대구시 택시 물류과와 협업으로 추진한 ‘택시 서비스 만족도 평가 용역 결과’ 대구 시민 택시 이 용 만족도는 62.09점으로 나타났다. 2014년에 조사된 타 지역 택시 서비스 만족도는 서울 77.2점, 부산 68.8점, 인천 62.0점으로 평균 69.3점이다. 지역별 평가 지표와 배점이 다르기 때문에 평가에 있어 차 이가 있는 점을 고려해도 타 지역에 비해 택시 서비스 만족도가 낮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원인을 살펴보면, 수요보다 많은 택시 대수, 국내외 경제 불황, 택시 운전자의 고령화, 무뚝뚝하고 친 근하지 못한 지역정서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대구택시 서비스에 관해 불친절하다고만 말했지 시민들이 택시 서비스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원인을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택시 서비스를 개선할 것인지 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다. 택시 운전자가 제공해야 할 택시 서비스의 기준도 없었고, 택시를 이용하는 시민들도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불친절하다고 했고, 제공받아야 할 택시 서비스가 어떤 것인지 체계화하거나 지속적으로 관 심을 두지 않았다. 시민들의 택시 서비스 만족도 향상을 위해 택시 운전자에 대한 교육과 아울러 근무환 경과 보수체계 등을 개선하여 친절하면 할수록 이에 대한 보상도 커져야 친절서비스가 행복 바이러스가 되어 널리 확산된다. 대구광역시 교통연수원에서는 시민들의 택시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고 대구를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대 구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하여 연도별 목표를 2016년 65.49점, 2017년 68.89점, 2018년 72.29점으로 설정하고, 택시 서비스 기본 모델의 매뉴얼을 제작하여 택시 서비스를 표준화하고, 이를 토대로 택시 운 전자에 대한 서비스 교육을 추진할 계획이다. 택시 운전은 ‘고객서비스’가 핵심이다. 취약점으로 지적된 투박한 언행을 개선하고 카드 단말기 등 미숙 한 기기 조작을 숙달하고 대구 관광명소와 유명 음식점, 쇼핑몰 등 지리 숙지와 취객이나 장애인 등 특수 상황에 따른 대처 방법 등에 교육의 중점을 두고자 한다. 친절은 행복 바이러스다. 추위를 녹이는 온기처럼 따뜻한 친절서비스는 시민을 행복하게 하고 대구를 찾은 사람을 재방문하게 만든다. 대구교통연수원은 시민이 행복한 교통 문화를 창조하고 대구 관광객 1천 만 명 유치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필자는 ‘오로지 시민행복, 반드시 창조대구’라는 시정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즐거운 도시 대 구의 미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김대현 대구광역시 교통연수원장 회원광장 Ⅷ
  22. 22. 문 화 체 육 관 광 부 산 하 한 국 콘 텐 츠 진 흥 원 이 주 최 한 ‘ 2 0 1 5 년 지역특화문화콘텐츠개발사업’에 대구에서 유일하게 선정된 뮤지컬 ‘기적소리’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된 대한민국 최초의 자발적 국민 모금운동이자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국채보상운동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계층과 세대를 뛰어넘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뮤지컬로서 차제에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도 힘을 보탤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야심 차게 시작하였다 지난해 12월 대구학생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1차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고, 대구 시민의 큰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올 2월 24일부터 28일까지 봉산문화회관에서 2차 공연 또한 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뮤지컬 ‘기적소리’는 일제의 경제적 침략을 막기 위해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벌인 기부운동 전개 과정을 그렸으며 국채보상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한 광문사 사장 김광제, 부사장 서상돈, 대구 감영의 기생 앵무, 반대로 조선 수탈에 앞장선 친일파 박중량 등 실존 인물의 이야기와 기생 앵무의 딸 연희와 친일파의 아들 이재구의 사랑과 우정으로 사상적 혼란을 겪는 허구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았다. 일제의 반강제적인 정책으로 빚더미에 올랐던 아픈 역사와 범국민적 경제주권 회복운동을 전개한 인물들의 희생정신은 역사 교육적 의미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재미와 감동, 민족적 자긍심까지 불러일으킨다. 정 판 규 대구메트로아트센터 대표 천둥소리 4544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메트로아트센터는 지금까지 많은 공연기획을 통해 쌓아온 경험과 인프라를 토대로 나름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공연제작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무엇보다도 대구를 대표하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한 작품이기에 그 어떤 작품보다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숱한 역경과 쓰라린 고난이 찾아올 때마다 뜨거운 민족 공동체 의식의 발현으로 그 많은 위기를 극복해 왔다. 그래서 이 작품을 통해 역사적 인식을 고양시키고 앞으로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재정립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국채보상운동은 우리나라의 민족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저는 뮤지컬 ‘기적소리’를 제작하면서 기록만으로 남아있는 자료들을 어떻게 하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어 ‘현재’로 펼쳐낼 것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자신의 뼈와 살을 내어주는 우리의 DNA 속에 심어져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 질문으로 시작된 여정은 실존 인물들과 더불어 허구의 인물들로 재창조되어 새롭게 재현되었다. 뮤지컬 ‘기적소리’는 국채보상운동의 의의를 널리 알리고 대구 시민의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대구의 정체성 확립과 올바른 역사관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점이 대구, 경북 시도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그래서 국채보상운동을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통해 남녀노소 계층과 세대를 뛰어넘고, 문화소외계층까지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명성황후’는 뮤지컬, 연극,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로 재구성하여 제작되어 범국민적으로 사랑받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국채보상운동 뮤지컬 ‘기적소리’도 여기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대구시와 유관기관단체 차원에서의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며 국채보상운동의 의의에 맞춰 범국민적 차원의 성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뮤지컬 ‘기적소리’를 통해 대구, 경북의 지역愛를 살리고 지역 문화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회원광장 Ⅷ
  23. 23. 천둥소리 4746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2016년 1월 27일 오후 2시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7층 다목적강당에서 광주 5·18 민주화운동기록관(관장 나간채)과 ‘세계기록유산 달빛(대구-광주) 학술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토론회에서는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장관(한국학중앙연구원 고등연구소 석좌교수)이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과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세계적 가치’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엄창옥 교수( 경북대)가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의 세계사적 의미’를, 안종철 박사(전 광주시인권옴부즈맨)가 ‘5·18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과정과 의의’에 대해 주제 발표했으며 토론은 김혜정 대구시의원, 조오섭 광주시의원, 김영철 계명대 교수, 이덕재 4·19혁명 유네스코등재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이 참여했다. 학술토론회를 마치고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와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향후 세계기록유산 등재 과정에서 상호 협력키로 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협약에 따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와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활동에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상호 지원하고, 세계기록유산 교류 전시회, 교류활동을 정례화하기로 협의했다. 세계기록유산 달빛 학술토론회02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소식 Ⅸ 2015년 10월 17일 고령 대가야 박물관에서 ‘고령의 국채보상운동’이라는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진환 전 고령군수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새롭게 발굴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기탁 자료는 성산이씨 홍와고택에서 국채보상운동에 관하여 왕래한 문서와 서간, 취지문, 기부금 명부 등이 포함돼 있어 운동의 전개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같은 해 12월 2일 오전 11시 고령 향교에 세미나 내용을 바탕으로 비문을 새긴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를 건립하고 고령군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원 1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제막식을 가졌다. 국채보상운동의 구국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숭고한 정신을 기념하여 후세에 기리고자 2016 년 2월 22일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강당에서 ‘제109주년 국채보상운동 기념식’을 개최했다. 200여 명이 참석한 이번 기념식에서 행사 참석자들은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낭독을 통해 국가를 대신해 나랏빚을 갚고자 한 국채보상운동의 책임정신을 되새기고 2017년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재를 위한 결의를 다졌다. 대성에너지 주식회사(대표이사 김영훈 강석기)와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상임대표 신동학)는 2016년 3월 8일 화요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상호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대성그룹의 김영훈 회장은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경제적 독립을 주창한 서상돈 선생의 뜻을 기려 매일신문사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격년제로 시행하는 제8회 서상돈 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이 협약을 통해 양 기관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의 성공과 국채보상운동 정신 선양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교류활동의 정례화 및 등재 추진을 위해 필요한 시민 홍보 교육 등의 활동을 위해 상호 간에 지원·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국채보상운동기념 사업회 소식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건립 제막식 제109주년 국채보상운동 기념식 대성에너지 주식회사와 MOU 체결 01 03 04
  24. 24. 천둥소리 4948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10월 방문단체 사단법인 대구여성회, 50사단, 강동중학교, 경명여자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경신중학교, 경안여자고등학교, 경운중학교, 경전유치원, 골목해설사, 구미 산동초등학교, 남덕초등학교, 남산초등학교, 내당교회, 내서초등학교, 달서공업고등학교, 달성고등학교, 대건고등학교, 대구광역시 여성단체협의회, 대구광역시 중구보건소, 대구-광주여성단체협의회,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시청 관광과, 대구시청 기획담당관실, 대구시청 도시계획과, 대구시청 식품관리과, 대구시청 여성가족정책관실,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중앙도서관, 대구초등학교,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대전광역시 자원봉사센터, 도림초등학교, 동문고등학교, 동본리중학교, 동산병원, 동촌초등학교, 부천시청, 북동중학교, 성광중학교, 성서중학교, 신기중학교, 신라대학교, 신암중학교, 아트스토리, 안심중학교, 오성중학교, 월서중학교, 율하초등학교, 인지초등학교, 정화중학교, 제일여자상업고등학교, 지봉초등학교, 진천유치원, 질병관리본부 건강영양조사과, 커뮤니티와 경제, 팔달중학교, 패트롤맘, 한남대학교, 함지초등학교, 해운대구 문화복합센터, 화원초등학교, 황금중학교, KT중대구지점 11월 방문단체 (재)대구여성가족재단, 2015관광안내인력교육, 50사단 501여단, K-2공군 전투비행단, 강북중학교, 건강기능성식품교육, 경남양산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고경수님 외 4명(남양주), 근로복지공단 대구북부지사, 달성고등학교, 대구경북소비자연맹, 대구시청 교육청소년정책관실, 대구시청 기획담당관실, 대구시청 도시계획과, 대구시청 보건건강과, 대구시청 체육진흥과,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한심장학회 부정맥연구회, 동부고등학교, 동중학교, 들안길초등학교, 마인드리커버리, 부산양정고등학교, 서구지역아동센터 소개기관, 서변중학교, 서재중학교, 석적고등학교 1학년, 성광고등학교, 성광중학교, 수성초등학교, 아트스토리, 월배중학교 달구벌동아리, 이상화기념사업회, (주)디자인피움, 청년연합 36.5, 커뮤니티와 경제, 태전초등학교, 한국자영업성장포럼,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현풍초등학교, 효성실버홈 1월 방문단체 50사단 501여단,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광주시청 인권평화협력관실, 대구비폭력대회연습모임, 대구시 중구 위해시 환치구 청소년 문화교류, 대구시청 기획담당관실, 대구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문화해설사 7기 8기, 미담장학회(대전), 부산교육청, 뷰티인사이드, 사단법인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아트스토리, 참누리정신건강상담센터, 커뮤니티와 경제 협동조합지원센터 12월 방문단체 50사단, 50사단 신병교육대대,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경뿌리학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시청 도시계획과, 대구중구시니어클럽, 대구 중구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대구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동평중학교, 산격중학교, 산청초등학교, 서진중학교, 성광중학교, 성지중학교, 성화여자고등학교, 소 선 여 자 중 학 교 , 아 트 스 토 리 , 영 남 대 학 교 문 화 예 술 디 자 인 대 학 원 예 술 행 정 학 과 , 영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제일고등학교, 청소년교육상담센터, 커뮤니티와 경제, 태국여행자 2월 방문단체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대구 SOS 어린이마을, 대구사회연구소, 대구시설관리공단 도심공원, 대구시청 복지정책관실, 대구시청 식품관리과, 대구시청 체육진흥과, 아트스토리, 지역아동센터 대구지원단, 청춘빛, 패트롤맘 대구시지부,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지부, “ ”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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